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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의 싱크탱크] (2) 미국기업연구소

    [세계의 싱크탱크] (2) 미국기업연구소

    |워싱턴 이도운특파원|미국기업연구소(AEI)는 스스로를 ‘학생이 없는 대학’이라고 소개한다.AEI의 연구원들은 해당 분야에서 세계적인 수준의 전문성과 영향력을 갖춘 인사들로 구성돼 있다.AEI는 그러나 현실 세계와 떨어진 ‘우매한 상아탑’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오히려 AEI는 권력의 속성을 간파하고 정치와 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연구에 관심을 갖고 있다. 이같은 AEI의 성격은 구성원들의 면면에서 드러난다. AEI의 연구원들은 대부분 백악관과 국무부 등 정부 부처, 의회, 군, 정보기관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다.1986년 AEI에 부임한 크리스토퍼 디머스 AEI 소장은 정부에서 일했던 경험이 있는 인사들을 연구소로 영입하기 시작했다. 정부에서 정책을 결정하는 과정을 알면 그에 대해 영향을 미치는 연구가 어떤 것인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디머스 소장의 이런 노력이 AEI의 위상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 특히 조지 부시 대통령의 임기 동안 AEI는 정부 요직의 산실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딕 체니 부통령과 폴 오닐·존 스노 전 재무장관이 AEI의 이사회 멤버였다. 또 로렌스 린지 백악관 경제보좌관,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장도 AEI에 몸담았었다.AEI의 대외관계 담당자인 베로니크 로드먼이 불러주는 AEI 출신 부시 행정부 인사들의 명단은 일일이 받아적을 수도 없을 정도였다. AEI는 부시 대통령이 ‘테러와의 전쟁’을 기획하고 수행하는 데 큰 영향을 끼친 이른바 ‘네오콘(신보수주의자)의 요새’로도 유명하다. 국무부에서 군축 및 국제안보 담당 차관을 지내며 ‘무리할’ 정도로 이라크 전의 당위성을 설파해왔던 존 볼턴 유엔주재 미국대사는 AEI 부소장을 지냈다. 이라크 전의 기획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히는 리처드 펄 전 국방정책 자문위원장은 AEI로 돌아왔다. 최근에는 지난 2002년 부시 대통령의 국정연설에서 북한과 이란, 이라크를 ‘악의 축’으로 규정하도록 연설문을 작성했던 데이비드 프럼 전 대통령 보좌관도 최근 AEI로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AEI에 네오콘들이 자리잡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이념의 충돌은 자유사회의 근원”이라는 연구소의 오랜 믿음 때문이라고 로드먼은 설명했다. 그러나 로드먼은 “AEI의 네오콘은 외교 정책과 관련된 분야에만 국한돼 있다.”면서 “AEI를 네오콘과 동일시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로드먼은 “AEI는 외교 정책 말고도 법률과 정치, 경제, 문화, 종교, 바이오 테크 등과 관련해 수많은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AEI는 연구의 독립성을 유지하기 위해 재정과 관련한 두 가지 원칙을 세워놓고 있다. 첫번째는 정부의 돈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유시장경제를 신봉하기 때문에 정부보다는 기업을 중요시 한다는 이유다.AEI의 이사회는 세계적인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들로 가득차 있다. 연구소 운영비도 대부분 기업과 개인들의 기부금에서 나온다. 정부에서 받는 돈은 매년 국방부가 장교 한 명을 파견하면서 지불하는 비용이 전부라고 한다. 두번째는 계약연구(Contract Research)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연구의 주제를 미리 정해주는 계약연구는 결과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와 함께 AEI는 연구원의 독자성과 창의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연구의 결과와 성과를 연구소가 아니라 연구원 개인의 이름으로 출간한다. AEI는 1938년 미국기업연합(AEA)라는 이름으로 뉴욕에서 설립됐다. 설립자는 존스 맨빌 코퍼레이션의 회장 루이스 브라운이었다. 설립 당시 이사회에 참여했던 기업에는 제너럴 밀스, 브리스톨 마이어스, 크라이슬러 등이 포함돼 있다.AEA는 2차 대전이 발발하자 1943년 정치의 중심지인 워싱턴으로 옮겼다. 이름도 AEI로 바꿨다. dawn@seoul.co.kr ■ AEI - 한국과의 관계 |워싱턴 이도운특파원|현재 미국기업연구소(AEI) 내의 대표적인 한반도 전문가는 제임스 릴리 전 주한대사와 니컬러스 에버스타트 선임연구원이다. 중앙정보국(CIA) 출신 외교관이었던 릴리 전 대사는 역대 주한대사들 가운데서도 대표적인 대북 강경파로 손꼽힌다. 그는 지난해 북한 핵 문제가 고조되자 미 언론들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은 대북 사업 및 관광 프로젝트를 중단하고, 미국은 유엔 제재를 재추진하며, 일본은 대북 물자 선적을 중단하는 등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릴리 전 대사는 북한인권법에 따라 신설된 북한인권특사에 거론되기도 했으나 본인이 고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버드대 정치경제학 박사인 에버스타트 연구원은 당초 인구경제학을 연구하다가 한반도 문제로 연구의 폭을 넓혔다. 에버스타트 연구원은 지난 2004년 11월 조지 부시 대통령이 대통령선거에서 승리한 직후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청와대에서 부시의 낙선을 원했던 인사가 누구인지 이름까지 댈 수 있다.”며 노무현 정부를 비판해 큰 파문을 일으킨 바 있다. 네오콘(신보수주의자)으로 분류되는 에버스타트 연구원은 이후에도 ‘한·미동맹 청산론’과 ‘북한붕괴론’ 등을 제기하는 등 한국과 북한 정권에 강경한 목소리를 계속 내고 있다. 이 때문에 국제교류재단은 지난해 에버스타트 연구원에게 지원하던 연구비를 끊었다. 올해부터는 AEI에 대한 지원도 중단했다. 외교통상부 산하기관인 국제교류재단은 지난 92년부터 140만달러(약 14억원) 정도를 AEI에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dawn@seoul.co.kr ■ 칼린 바우먼 연구원 인터뷰 |워싱턴 이도운특파원|미국기업연구소(AEI)의 칼린 바우먼 연구원은 AEI를 “자유시장경제를 추구하는 중도우파적인 싱크탱크”라고 규정했다. 그는 “권력의 속성은 좌파에게나 우파에게나 똑같이 작용한다.”면서 “권력을 잡으면 중도로 옮겨가기 마련”이라고 강조했다.AEI도 영향력이 커질수록 중도적 성격이 강화되는 것이라고 바우먼 연구원은 설명했다. 여론조사, 미디어 전문가인 바우먼 연구원은 크리스토퍼 디머스 소장과 함께 AEI의 역사를 저술하고 있다. ▶AEI가 다른 싱크탱크들과 차별화되는 이유는. -AEI의 명성은 오랜시간을 통해 축적된 것이다.1943년 설립된 이후 미래를 보는 통찰력 있는 연구로 정부와 의회, 기업들에 영향력을 계속 키워왔다. 그런 맥락에서 부시 행정부에도 많이 진출했다. ▶AEI의 연구가 실제로 정책에 영향을 미친 사례들은. -연구소의 비전이 정책으로 현실화되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10년에서 15년까지 걸리기도 했다.AEI가 1960년대에 시작한 교통 분야의 규제완화 연구는 1979년 지미 카터 대통령이 관련법에 서명함으로써 현실화됐다.AEI가 1980년대 초부터 시작한 복지 개혁에 대한 연구는 1986년에 법제화됐다. ▶AEI는 이념에 기반한 싱크탱크인가. -워싱턴에 있는 싱크탱크를 이념에 따라 한줄로 세워 놓는다면 AEI는 중간에서 약간 오른쪽에 있을 것이다. 우리는 중도좌파적인 브루킹스와 세 개의 공동연구를 진행중이다. 이념에 기반한 적대감 같은 것은 전혀 없다. ▶네오콘이 AEI에서 차지하는 부분은. -연구소 내에서 네오콘이라는 이름표에 만족하는 사람도 있고, 그들이 추구하는 정책에 동의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그것이 연구소 전체의 연구활동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연구 과제 선정이나 연구 과정에서 여론이 많이 감안되나.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여론조사 전문가로서 낙태나 이라크전 등에 대한 여론을 계속 파악하고 있다. 그러나 AEI의 연구는 그때그때의 여론이 아니라 시장경제와 같은 원칙에 충실하게 진행되고 있다. ▶한국에 세계적인 싱크탱크를 만들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나라마다 상황이 다 다르다. 미국의 경우 정부의 역할을 가급적 줄이려는 문화 때문에 싱크탱크가 활성화됐을 수도 있다. 훌륭한 싱크탱크를 만들려면 먼저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목표를 명확히 정해야 한다. 그 다음 그 목표에 이르는 수단을 찾으면 된다. 펀드(기금조성) 문제도 그렇다. 핵심적 아이디어와 이를 실현시키는 강력한 행동이 필수요소다. dawn@seoul.co.kr
  • 미국 TV앵커 ‘女超’

    여성이 처음 미국 TV뉴스의 앵커로 등장한 지 40년만에 뉴스룸을 점령했다고 워싱턴포스트가 23일 보도했다. 1990년대 초반부터 방송에 진출하는 여성의 숫자가 늘어났다. 라디오 및 TV 뉴스 제작자 협회에 따르면 지난해에는 TV 뉴스 앵커의 57%를 여성이 차지했다. 방송 기자의 58%도 여성이다.PD와 같은 중간 간부는 55%, 뉴스 PD는 66%, 뉴스 작가는 56%가 여성이다. 반면 남성들은 스포츠, 일기예보, 임원 등 전통적인 영역을 제외하고는 점점 TV에서 사라지고 있다. 남성 단독 앵커나 두명의 남성 앵커를 보는 경우는 드물다. 적어도 남녀 혼성 진행이나 여성 단독 혹은 두명의 여성 앵커들이 뉴스를 진행하고 있다.상징적인 예는 NBC방송의 아침 뉴스 프로그램 ‘투데이’를 진행했던 케이티 커릭(49)이 오는 9월부터 CBS 저녁 메인뉴스를 단독 진행하는 데서 찾아볼 수 있다. 그녀는 여성 단독으로 전국 방송국의 뉴스를 처음 진행한 앵커다.NBC 계열 WRC의 저녁 5시 뉴스는 웬디 리커, 수전 키드 두명의 여성 앵커가 진행한다. 폭스 뉴스가 운영하는 수도권 방송인 WTTG-폭스5의 뉴스감독 캐서린 그린은 “앵커와 방송 기자 지원자 중 여성이 남성보다 3배나 많다.”고 설명했다. 앞으로 방송에 진출할 대학 신문방송학과 졸업생들의 3분의 2도 여성이다. 애리조나 주립대 월커 크롱카이트 저널리즘 스쿨의 크레이그 앨런 교수는 “젊은 남성들은 방송에 흥미를 느끼지 않고 있으며, 방송에서 남성은 거의 추방됐다.”고 말했다. 이같은 현상은 TV 뉴스가 매력적인 산업에서 저성장, 저임금에 승진도 제한된 분야가 됐기 때문이란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있다. 방송사도 다른 언론매체처럼 재정 압박을 받자 남성들은 더 나은 기회를 찾는다는 것이다. 주요 방송국 앵커들의 연봉은 수백만달러(약 수십억원)를,TV 기자들도 일반적으로 20만달러(약 2억원) 이상을 받는다. 하지만 미국 전체 TV 뉴스 산업의 일자리 2만 5000개 가운데 이러한 연봉이 보장되는 자리는 얼마되지 않는다. 결국 신참들은 3류방송국에서 평균보다 낮은 연봉 2만달러밖에 받지 못한다. 게다가 머리, 화장 등으로 꾸밀 수 있는 여성이 남성보다 TV에는 유리하다. 뉴스의 내용도 과거 정치, 전쟁 등에서 출산, 피임, 낙태 등 가족과 성에 관한 얘기가 많아지면서 여성 앵커를 선호하게 됐다.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美, 이스라엘에 ‘정밀 유도탄’ 지원

    미국이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습 지지에서 한걸음 나아가 벙커버스터 등 고성능 폭탄을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공급하기로 했다. 또 국무부는 23일 밤(현지시간) 콘돌리자 라이스 장관의 중동 방문 출발에 때맞춰 레바논내 시아파 무장조직인 헤즈볼라에 대한 시리아와 이란의 지원을 차단하는 한편, 둘 사이를 떼어놓는 데 중동 외교전의 초점을 맞출 작정이라고 뉴욕타임스(NYT)가 보도했다.●사우디·이집트 활용 시리아 설득 부시 행정부가 레바논 사태 해법으로 제시한 것은 시리아와 이란의 ‘형식적인 동맹’을 와해시켜 헤즈볼라에 대한 지원을 막자는 것이다. 미국은 시리아가 이란에 등을 돌리기만 해도 헤즈볼라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미국의 외교 수단은 사우디아라비아·이집트·요르단 등 수니파 친미 정권들이다. 이란과 이라크 새 정부, 레바논과 헤즈볼라로 이어지는 이른바 ‘시아 초승달’의 확장을 두려워하는 수니파 국가들의 정서를 자극해 시리아 설득에 나서도록 유도한다는 것이다. 시리아와 이란은 1980년대 이란-이라크 전쟁을 계기로 동맹을 맺기 전까지 오랫동안 맞서왔기 때문에 미국은 틈새를 벌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실제로 1996년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충돌때 워런 크리스토퍼 미 국무장관이 10일간 예루살렘과 베이루트, 다마스쿠스를 오가며 휴전을 이끌어낸 바 있다. 미국의 구상은 9·11테러와 사담 후세인 제거 이후 빈틈을 메우고 들어온 이란의 역내 영향력 확대를 차단하는 한편, 수니파 국가들을 중심으로 친미 아랍망(부시 대통령은 22일 주례 라디오 연설에서 ‘연합’이란 단어 대신 ‘umbrella’라고 표현)을 구축하겠다는 포부를 드러냈다는 분석이다.●“사우디 이중적 태도로 성과 얻기 힘들 것” 그러나 96년과 달리 지금은 라피크 하리리 레바논 전 총리 암살을 계기로 미국이 시리아 대사를 소환, 외교 관계를 단절한 상태여서 이같은 지렛대가 없다. 따라서 미국의 시도는 외교적 전략보다는 공작이나 압박의 성격을 강하게 띤다는 풀이다. 여기에 헤즈볼라의 도발을 비난하던 수니파 국가들도 민간인 희생이 급증하면서 직접적인 비난을 자제하고 있어 미국의 구상대로 움직여줄지 의문이다. 아울러 미국이 시리아를 이란과 떼어놓을 것으로 기대하는 사우디는 이집트 정권에 위협이 되는 ‘무슬림 형제단’을 지원하는 등 전세계 수니파의 ‘학교’ 역할을 하고 있으며 요르단과 이스라엘이 적으로 간주하는 팔레스타인 집권세력 하마스를 지원하고 있다. 또 이라크의 수니파 저항세력을 노골적으로 돕는 등 역내에서 이중적이고 모호한 태도를 보여 시리아를 설득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NYT는 분석했다. 한편 부시 행정부는 레바논 공격이 시작된 이후 지난해 체결한 무기공급 계약에 따라 정밀유도 폭탄을 빨리 인도해달라는 이스라엘의 요청을 받고 며칠만에 이를 수용했다고 NYT가 전했다. 벙커버스터로 불리는 GBU-28폭탄 100기와 위성유도무기 등 정밀무기를 “정부 내부 검토도 없이” 신속히 인도하기로 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고 신문은 강조했다. 헤즈볼라에 무기를 지원했다고 이란을 비난한 미국이 얼마나 위선적인지 증명된 셈이다. 또 13일째 이스라엘의 공격이 이어진 23일, 레바논 중부 시돈과 남부 티레 등에 무차별 공습이 계속됐다. 희생자는 계속 늘어 레바논 380여명, 이스라엘 36명이었다. 아미르 페레츠 이스라엘 국방장관은 다국적 평화유지군의 레바논 남부 배치안을 받아들일 것이라고 밝혀 주목된다.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일요영화]

    ●레트로액티브(위성MGM 오전 9시)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과거 일을 살짝이라도 바꾸게 되면 이후 상황이 현재와 달라진다는 일종의 ‘나비 효과’를 소재로 한 SF소품이다. 구체적인 이야기는 다르지만 비슷한 설정의 작품으로 ‘백 투 더 퓨처’시리즈나 ‘사랑의 블랙홀’(1992),‘나비효과’(2004) 등이 있다. 특히 빌 머레이 주연의 로맨틱 코미디 ‘사랑의 블랙홀’과 시간 반복이라는 기본 설정이 매우 유사하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긍정적인 결과를 내기 위해 과거로 가나 일은 더 복잡하게 꼬이게 되고, 과거로 가는 일을 반복하게 된다. 대부분 무명 배우들이 나오는 가운데 그나마 얼굴이 알려진 성격파 배우 제임스 벨루시의 악역 연기가 돋보인다.SF라지만 저예산 영화다. 규모는 작지만 아이디어로 승부하는 영화가 어때야 하는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재미를 던지는 작품. 고속도로에서 차가 고장 난 범죄심리학자 카렌(카일리 트래비스)은 프랭크(제임스 벨루시) 레이앤(샤논 위리) 부부가 모는 차에 타게 된다. 컴퓨터칩을 밀매하는 사기꾼 노릇을 하는 프랭크는 아내를 모질게 학대하는 난봉꾼이었다. 카렌은 이들 부부에게 조금씩 불편함을 느낀다. 프랭크는 간이 휴게소에 들렀다가 아내의 간통 사실을 알게 되고 화가 나서 레이앤을 총으로 쏴 죽인다. 프랭크는 카렌마저 없애려 하고, 이에 카렌은 달리는 차에서 필사적으로 탈출한다. 쉴 새 없이 도망치던 카렌은 우연히 시간역행 시스템을 연구하는 연구소에 들어가게 되고, 살인 사건이 일어나기 직전인 20분전 과거로 돌아가게 되는데….1997년작.90분.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EBS 오후 1시50분) 중동에서 탄압받고 있는 쿠르드족 최초의 감독이라고 불리는 바흐만 고바디가 만든 영화. 고바디는 동포들의 삶에 깊숙이 카메라를 들이댄다. 이란-이라크 전쟁으로 폐허가 된 삶의 터전에서 살기 위해 무엇이라도 해야 하는 비극적인 삶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고바디는 ‘바람이’와 ‘칠판’에서는 연기자로 출연하기도 했다. 이란과 이라크의 전쟁으로 황폐해진 국경의 작은 마을.12세 소년 아윱(아윱 아마디)은 어머니가 출산 중에 숨지고, 아버지도 밀수를 하다 지뢰를 밟아 목숨을 잃자 가장이 된다. 학교를 그만 둔 아윱은 병상에 있는 형 마디(마디 에크티아르-디니)의 수술비를 구하기 위해 밀수하는 사람들의 심부름꾼이 되는데….2000년작.80분.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이길로 가면…여름잊고 심신 살찌우고

    이길로 가면…여름잊고 심신 살찌우고

    서울 근교 산으로 숲속여행을 떠나보자. 싱그러운 나무 향기에 취해 야생화와 곤충, 새들을 관찰하다 보면 아이들은 금세 숲속을 탐험하는 재미에 빠져든다. 서울시와 각 자치구는 매주 일요일에 자연탐방 프로그램 ‘숲속 여행’을 서울 근교 산 17곳에서 운영한다. 탐방코스에는 전문 숲 해설가가 동행한다. 코스가 완만해 가족 나들이에 제격이다. 참가비는 없지만 인기가 많아 인터넷 예약(san.seoul.go.kr)을 서둘러야 한다. 지난주 강남지역의 산에 이어 이번 주에는 앵봉산, 안산, 인왕산, 남산, 개운산, 오패산, 초안산, 아차산, 봉화산, 수락산 등 강북지역 10곳을 소개한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앵봉산 꾀꼬리가 많아 앵봉(鶯峯)이란 이름을 얻었다. 해발 230m로 높지 않지만 정상 인근은 경사가 급한 편이다. 온대림 숲의 마지막 천이단계에서 나타나는 서어나무를 비롯한 100여종의 수종과 각종 초본류, 지의류, 버섯 같은 균류가 살고 있다. 다양한 식물 덕에 곤충과 조류, 다람쥐, 청설모 등 야생동물이 터전을 잡았다. 특히 천연기념물 제323호인 황조롱과 맹금류인 말똥가리도 관찰되고 있다. ●탐방코스 3호선 구파발역 4번출구에서 만나 출발한다.7단계로 나뉘어 국수나무, 도토리, 아까시나무, 진달래, 소나무, 팥배나무, 서어나무 등 다양한 수종을 만난다. 정상에 자리한 서어나무 군락지에는 서울에서 보기 힘든 서어나무와 작살나무, 담쟁이덩굴, 물갬나무, 다릅나무 등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코스는 총 연장 2㎞로 3시간 정도 걸린다. 둘째·넷째주 일요일 오전 10시∼오후 1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주변 볼거리 서오릉은 사적 제198호로 경기도 고양시 용두동에 있다. 창릉 익릉 명릉 홍릉으로 구성돼 있는데 구리시의 공구릉 다음가는 조선왕실의 왕릉이다. 주변에는 먹을거리도 풍부하다. 통일로변에 위치한 구파발 인공폭포는 통일로의 이정표로 상징적인 공간이라 유명하다. ●가는길 지하철 3호선 구파발역에서 내려 4번출구로 나오면 집결지가 보인다. 버스는 7023,7723,7724,7731∼5,9703,9709,9710∼2번 등이 오간다. 탐방신청 및 문의는 강동구청 공원녹지과(350-1395). ■ 안산 무악(毋岳)이라고도 부른다. 산의 모양이 말안장, 즉 길마와 비슷하게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동쪽에 있는 현저동에서 홍제동을 넘는 고개를 길마재, 즉 안현이라고 했다. 안산은 인왕산에서 서쪽으로 비스듬히 뻗어 무악재를 이루고 솟은 산이다. 해발 295.9m. 조선왕조가 도읍을 한양으로 옮기면서 무악은 궁궐의 주산으로 주목받았다. ●탐방코스 서대문구청에서 출발한 탐방팀은 연흥약수터에서 안산의 역사와 문화를 소개받는다. 조선시대 기록인 ‘용재총화’에는 무악재 주변에 밤나무와 소나무가 무성했다고 하나 지금은 찾아보기 힘들다. 대신 1960년대에 난립한 무허가 집을 철거하고,1970년대부터 인공 수림을 조성하여 지금은 메타세쿼이어, 왕벚나무, 산수유, 모감주나무, 소나무, 당단풍나무, 잣나무 등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자연림으로 보존된 북쪽 비탈에는 진달래, 물오리나무, 노린재나무, 산초나무, 산벚나무 등이 드문드문 자리잡았다. 꿩, 메추라기, 박새, 딱따구리 등도 자주 눈에 띈다. 코스는 총 연장 2㎞로 3시간 정도 걸린다. 둘째 넷째 일요일에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주변 볼거리 안산 정상의 무악봉수대(서울시 기념물 제 13호)는 평안도와 황해도의 육로 봉화를 남산봉수대로 최종 보고하던 곳이다. 연희동에 있는 서대문자연사박물관은 2003년 7월에 개원했다.1층은 인간과 자연관,2층은 생명진화관,3층은 지구환경관으로 구성돼 있다. 서대문형무소도 독특한 볼거리다.1908년 경성감옥으로 문을 연 이후 우리의 항일 독립투사들이 옥고를 치른 곳이다. ●가는 길 지하철 3호선 홍제역 3번출구에서 7713,7738,7739번 버스를 타고 서대문구청 앞에 도착. 탐방신청 및 문의는 서대문구청 공원녹지과(330-1395) ■ 인왕산 해발 338.2m. 화강암으로 이뤄져 암반이 유난히 노출된 것이 특징이다. 북악산이나 남산보다 산세가 웅장하고 풍치가 아름답다. 광복 전까지만 해도 서울의 외곽을 둘러싸고 있던 산이었는데, 서울이 팽창하면서 중심부로 들어왔다. 인왕산에는 실제 사물과 닮은 기묘한 괴석들이 많다. 둥근 모자 모양의 모자바위, 돼지가 코를 들고 있는 듯한 돼지 바위 등이 유명하다. 산을 오르며 바위를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탐방코스 사직공원에서 출발해 단군성전, 황학정, 쉼터, 약수터를 돌아온다. 바위산이라 중턱 이상에는 수목이 별로 없지만, 산등성이에는 때죽나무, 국수나무, 팥배나무, 소나무 등이 오밀조밀 들어차 있다. 쉼터에 앉아 각종 나무의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고, 야생 조수와 계곡생태계 등을 배운다. 코스는 총연장 2㎞로 2시간 정도 걸린다. 둘째 넷째주 일요일에 운영한다. ●주변 볼거리 국사당(서울시 중요민속자료 제28호)은 서울을 수호하는 신당으로 무학동 인왕산 기슭에 있다. 원래는 남산 정상에 있다가 1925년 현 위치로 이전됐다. 일본인들이 남산 기슭에 신사인 조선신궁을 지으면서 더 높은 곳에 국사당이 있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겨 이전을 강요당했다. 선바위(서울시 중요민속자료 제4호)는 인왕산 서쪽 기슭에 있는 두 개의 거석이다. 마치 중이 장삼을 입고 서 있는 것 같다고 ‘선(禪)’자를 따서 선바위라 불렀다고 한다. 조선 태조와 무학대사의 상이라거나, 이성계 부부의 상이라는 전설이 있다. 자식 없는 사람이 바위에 빌면 효험이 있다고 전해진다. ●가는 길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1번 출구에서 내려 사직공원까지 도보로 5분 걸린다. 탐방신청 및 문의는 종로구청 공원녹지관(731-1459). ■ 남산 해발 265m로 서울의 중심부에 자리한 서울의 상징이다. 본래 이름은 인경산이었으나 조선왕조 태조가 1394년 도읍지를 개성에서 서울로 옮긴 뒤 궁궐 남쪽에 있다고 해 자연스럽게 남산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풍수지리상 남주작, 안산에 해당하는 중요한 산으로 태조는 나라의 평안을 비는 제사를 지내기 위해서 지금의 팔각정 자리에 국사당을 세웠다. 서울시가 1991년부터 ‘남산 제모습 가꾸기’사업을 실시하여 훼손된 시설물을 철거한 후 야외식물원, 한옥마을 등을 조성했다. ●탐방코스 남산전시관에서 출발하는 탐방코스는 볼거리가 풍성하다. 양생화단지, 팔도소나무림, 야외식물원, 숲속길, 서울성곽, 봉수대 등 숲속여행의 총 결정판이라 부를 만한다. 애국가 2절에 나오는 것처럼 ‘철갑을 두른 듯’ 소나무가 울창했던 곳이지만, 일제 시대와 광복 이후 크게 훼손돼 지금은 아까시나무와 신갈나무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다행히도 소나무 탐방로가 있어 아쉬움을 달랜다. 코스는 총 연장 4㎞로 3시간 정도 걸린다. 첫째 셋째 일요일, 둘째 넷째 토요일에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주변 볼거리 1975년에 설치된 서울 N타워(옛 남산타워)는 방송송신탑이다. 최근 리모델링을 끝내 휴식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안중근 의사의 유품과 유물이 전시된 안중근의사기념관(771-4195)과 명성황후 시해사건을 몸으로 막은 충신들을 기리는 장충단비가 놓인 장충공원도 구경할 만하다. 남산골 한옥마을에는 물이 흐르는 골짜기에 정자를 짓고, 전통한옥 5채를 옮겨 놓아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다. ●가는길 지하철 2호선 시청역, 지하철 3호선 동대입구역,4호선 서울역·회현역에서 15분 걸어가면 전시관 뒤편 맨발보드 앞에 야외식물원이 나온다. 이곳이 집결지다. 탐방신청 및 문의는 남산공원관리사무소(753-7060∼2). ■ 개운산 ‘나라의 운명을 새롭게 열었다.’는 뜻을 담은 개운사라는 절이 있는 곳이어서 개운산이라고 부른다. 동쪽으로는 정릉천과 월곡산이, 서쪽으로는 성북천과 북악산이 뻗어 있다. 두 물줄기는 용두동에서 만나 청계천에 합류한다. 성북구 중심에 위치한 자연산지형 공원이어서 쾌적한 주거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 ●탐방코스 “대화 없이 힘들게 하는 산행은 어린 두 딸에게 무리지만, 숲 해설가 선생님과 더불어 자세한 설명을 들으며 산책을 하듯 탐방을 마쳤습니다. 집에서 가까워 탐방 후에는 개운산을 둘러보며 휴일 오후를 보냈습니다.” 개운산을 다녀온 정옥씨 가족이 홈페이지에 남긴 글이다. 도심에 있어 수목이 울창하지 않지만, 산책로와 자연생태학습장이 잘 조성돼 있어 가족나들이에 제격이다. 때죽나무, 산딸나무, 국수나무 등 수목과 복수초, 비비추, 옥잠화 등 초화류를 자연학습장에 심어 놓았다. 산책로 주변에는 활엽수림과 침엽수림이 자리하고, 민들레, 제비꽃, 복수초 등이 자란다. 코스는 총 연장 1.5㎞로 약 3시간 소요된다. 첫째, 셋째 일요일에 탐방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주변 볼거리 서울성곽(사적 제10호)은 서울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조선시대 석축 성곽. 높이 40척(12m)의 돌로 쌓았고 둘레가 5만 9500척으로 서울 장안을 지키던 울타리다. 돌 틈에 노송이 뿌리를 내리고, 이끼와 넝쿨이 뒤덮여 있어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 있다. 성락원(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378호)은 조선 말 철종 때 이조판서 심상응의 별장이던 것을 의친왕 이강이 별궁으로 사용하다가 그의 아들 이건이 살았다고 한다.6만여 평의 저택에는 소나무·참나무·다래나무·등나무 등 우리 고유의 조경수가 연못가와 산비탈에 우거져 있고 암벽과 폭포, 수석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가는 길 지하철 4호선 길음역 2번출구에서 도보로 5분 걸으면 집결지인 개운초등학교를 만난다. 탐방신청 및 문의는 성북구청 공원녹지과 920-3395∼7. ■ 초안산 도봉구 창동, 노원구 월계동에 자리한다. 해발 114.1m로 아담하다. 이곳에는 1000여기에 달하는 조선시대 무덤이 밀집해 있다. 흔히 ‘내시묘’라 부르는데 실제로는 내시의 무덤와 더불어 단장이 잘된 이름 있는 문중의 선산도 있다. 조선시대 ‘공동묘지’였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한국 전쟁 때 국군이 이곳에 ‘청동 저지선’을 치고 북한군과 치열한 접전을 벌여 지금도 당시의 방공호가 곳곳에 남아 있다. ●탐방코스 창골어린이공원에서 출발해 초안산 정상에 도착한 뒤 궁인 분묘군으로 내려오는 코스다. 주요 수종은 참나무류이다. 겉으로 보기엔 단순한 식생으로 보이지만 노박덩굴, 노린재, 누리장, 물푸레, 참싸리, 굴참, 산사, 산초, 오리, 단풍, 소나무, 상수리 등 다양한 수종이 자라고 있다. 생태육교에선 생태계의 파괴와 복원에 관한 설명이 이어져 자연보호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를 갖는다. 코스는 총 연장 2㎞로 소요시간은 약 2시간. 둘째·넷째주 일요일에 운영된다. ●주변 볼거리 초안산은 생태육교와 약수터 4곳, 배드민턴장 3곳, 인조잔디 축구장 1곳 등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다. 방학사거리에 있는 방학사계광장에는 환경조형물과 분수 등 수경시설을 만들어 시민들에게 개방했다. 조선시대 제10대 임금인 연산군(1476∼1506)과 왕비였던 거창군부인 신씨의 묘가 주변에 있다. ●가는 길 지하철 1호선 녹천역 2번 출구로 나와 주공 4단지쪽으로 5분 정도 걸어가면 창골어린이공원, 만남의 광장을 찾을 수 있다. 탐방신청 및 문의는 도봉구청 공원녹지과 2289-1396. ■ 아차산 해발 300m로 서울과 구리시에 걸쳐 있는 야트막한 산이다. 그러나 산 위에 서면 서울시를 둘러싼 모든 산과 시가지 전체가 한 눈에 들어온다. 특히 굽이치는 한강의 푸른 물과 강변의 풍광이 장관이다. 삼국시대 전략 요충지로, 특히 고구려 온달장군의 전설이 전해져 내려온다. 학문적 고증과 상관없이 주민들은 온달장군이 신라에 빼앗긴 한강유역을 되찾고자 이곳에서 싸우다가 전사하였다고 믿는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아차산에는 ‘온달샘’이란 약수터와 온달이 가지고 놀았다고 전해지는 지름 3m의 거대한 공기돌 바위가 있다. ●탐방코스 만남의 광장에서 출발해 생태공원, 소나무숲, 목본·초본식물 관찰대를 거쳐 아차산성에 도착하는 코스다. 총 연장 2㎞로 약 3시간 걸린다. 아차산은 화강암으로 이뤄져 주요 수종은 소나무다. 동부와 북부 산지에는 상수리나무가 많지만, 산의 높이가 낮아 다양한 나무의 경관보다는 아까시나무·물오리나무 등 인공림이 대부분이다. 대체로 멧비둘기·박새·붉은머리오목눈이·뻐꾸기 등이 관찰되고 천연기념물인 새매와 소쩍새도 볼 수 있다. 한여름 숲속에선 참매미의 울음소리가 귀청을 울린다. 첫째·셋째주 일요일 오전 10시 집결지에서 탐방 프로그램이 시작된다. ●주변 볼거리 워커힐 호텔 뒤편에 자리한 아차산성(사적 제234호)은 백제의 유산이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백제 책계왕(286년) 때 쌓은 성으로 삼국시대에는 중요한 요새였다. 용마폭포공원에 자리한 용마폭포는 청룡폭과 백마폭포 등 세 갈래 폭포줄기로 구분된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시원하다. ●가는 길 지하철 5호선 광나루역 1번출구로 나와 광장중학교 방향으로 10분 정도 걸어가면 만남의 광장과 만난다. 탐방신청 및 문의는 광진구청 공원녹지과(450-1395). ■ 봉화산 중랑구 상봉동, 중화동, 묵동, 신내동에 접해 있으며 일명 ‘봉우재’라고 불린다.1963년에 경기도 양주군 구리면에서 서울시에 편입됐다. 봉화산이란 이름만으로도 봉화와 관련이 있는 지역임을 알 수 있다. 북쪽의 한이산(汗伊山)으로부터 연락을 받아 남산으로 전달하는 아차산봉수대가 있던 곳이다. 봉수대 모형은 1994년 11월7일에 설치됐다. 해발 160m로 평지에 돌출된 독립구릉지역이다. 동쪽에 아차산 주능선을 제외하고는 북쪽으로 불암산과 도봉산, 양주 일대까지 조망할 수 있다. 서쪽과 남쪽으로도 높은 산이 없어 한강 이남까지 보인다. ●탐방코스 중랑구청에서 출발해 소나무 숲을 지나 봉수대(서울시 기념물 제15호)에 오른다. 중랑구 전경을 조망한 뒤 참나무숲을 거쳐 초본류 관찰대로 돌아오는 코스다. 총연장 1.5㎞로 길이가 짧고 산이 높지 않아 산책로로 그만이다. 주요 수종은 소나무지만, 태릉중학교로 내려가는 길에는 잣나무 군락이 조성돼 있다. 팥배나무, 국수나무 관찰대가 있고, 박새, 직바구리, 어치 등 텃새가 서식한다. 첫째·셋째주 일요일에 탐방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주변 볼거리 아차산봉수대(서울시 기념물 제15호)는 조선시대 통신 시설이면서 군사 시설이다. 평시에는 횃불 한 번, 적이 나타나면 횃불 두 번, 적이 가까이 오면 횃불 세 번, 지경을 침범하면 횃불 네 번, 적과 접전하면 다섯 번의 횃불을 올렸다. 낮에는 연기를, 밤에는 불을 올린다. 정상에서 약간 남쪽에 봉화산 도당인 산신각이 있다. 이곳은 400년 전에 주민들이 도당굿과 산신제를 지내던 곳이다.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 34호로 주민의 안녕과 결속을 위하고 대동의식을 고취시킨 마을 굿이다. 지금도 매년 음력 3월3일(삼월 삼짇날) 도당제를 지낸다. ●가는 길 지하철 1호선 신이문역이나 지하철 6호선 봉화산역에서 내려 지선버스 1223,2216번을 타고 중량구청 앞에 내린다. 구청 뒤 공원이 집결지다. 탐방신청 및 문의는 중랑구청 공원녹지과(490-3395). ■ 오패산 강북구 미아동과 번동, 성북구 장위동, 월곡동에 위치해 있다. 도심 한복판에 있으면서도 자연이 잘 보존된 편이다. 일명 빡빡산·벽오산·매봉짜 등으로 불린다. 남북으로 뻗어 동쪽으로 속칭 공주릉과 드림랜드를, 남쪽으로 동덕여대를 품고 있다. 해발 123m 오패산과 115m 봉우리,135m 벽오산 봉우리로 이루어져 나지막한 구릉지 형태다. 산기슭에는 예부터 자두나무가 많이 자생해 봄이 되면 수려한 꽃이 만발한다. 특히 수정 등 보석이 많이 나오고, 맞은편 초안산은 명당이라는 풍수지리설에 따라 고려의 중신들이 자주 다녀갔단다. ●탐방코스 강북구민운동장을 출발해 제1코스,2코스로 나뉜다.1코스는 벌리약수터, 대왕참나무숲, 복자기나무길, 꽃샘길, 참나무숲을 거쳐 정자와 율곡놀이터로 이어진다.2코스는 벌리약수터에서 군수나무 군락지, 야생화단지, 기념식수지, 소나무숲을 거쳐 정자에 닿는다. 아까시나무, 소나무, 참나무류, 팥배나무, 산벚나무 등 중부지방 자연상태의 수림에다 자작나무, 잣나무, 산딸나무 등을 꾸준히 식재해 숲이 울창하다. 산이 낮아 계곡은 없지만, 약수터가 있어 탐방객들이 즐겨 이용한다. 첫째·셋째주 일요일에 탐방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주변 볼거리 1987년에 개장한 드림랜드는 수영장, 골프연습장과 같은 운동시설과 문화시설을 갖추고 있다. 구민운동장은 각종 체육·문화행사를 개최하는 장소. 지난 4월 조깅트랙을 설치했다. 강북문화정보센터는 지하1층, 지상 4층 규모로 2001년 5월에 문을 열었다. 열람실, 정보실, 시청각실, 문화교실 등을 개방한다. ●가는길 지하철 4호선 수유역 3번출구로 나와 마을버스 9번이나 11번을 타고 10분 정도 가다 집결지인 강북구민운동장에 내린다. 탐방신청 및 문의는 강북구청 공원녹지과(901-2386). ■ 수락산 북쪽으로 불암산과 연결되고, 노원구 상계동과 경기도 의정부시, 남양주시 별내면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해발 637m로 높은 편이다. 수락산 능선의 암봉이 서울을 향해서 고개를 숙이고 있어 태조 이성계는 서울의 수호산이라 불렀다. ●탐방코스 임간휴게소에서 출발해 냇가와 향토꽃 전시장, 아까시나무숲, 명상의 숲, 숲속 길을 거쳐 바위 밑 샘터에 도착한다. 총 연장 3㎞로 다소 길다. 소요시간은 약 3시간. 향토꽃 전시장에서 야생화를 관찰하고, 꽃과 곤충의 관계를 살펴본다. 아까시나무 숲에선 흙 나무냄새 산림욕 보물찾기 등 숲속 체험거리가 가득하다. 숲속길이 나오면 청진기로 나무 소리를 듣고, 샘터에선 약수를 마신다. 대부분 돌산으로 화강암 암벽이 노출돼 있지만, 산세가 험하지 않다. 수락계곡과 노원골 일대 11㎞ 산책로는 산림욕하기에 좋은 곳이다. 둘째·넷째 일요일에 탐방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주변 볼거리 수락산 유원지는 남양주시 별내면 청학리에 있는 계곡 일대로 웅장한 석벽과 기암괴석이 많고 계곡이 수려하다. 예로부터 시인, 묵객이 즐겨 찾았다. 노원구 상계동에서 남양주시 별내면으로 넘어가는 덕릉고개에는 경기도기념물 제55호로 지정된 선조의 생부 덕흥부원군의 묘, 일명 덕릉이 자리한다. 수락산 중턱 남쪽 기슭에는 박세당이 김시습의 명복을 빌기 위해 중창한 석림사가 있다. 그 옆에는 박세당의 묘소와 영정각이 있다. 김시습은 1455년 수양대군의 왕위 찬탈 소식을 듣고 수락산에 숨어들었다. 박세당은 숙종 때 정쟁에 혐오를 느껴 관직을 포기하고 이곳에 은둔해 농사를 지으며 제자를 길렀다. ●가는길 지하철 7호선 수락산역 2번출구로 나와 도보로 10분 걸어 집결지인 수락산 입구에 도착한다. 탐방신청 및 문의는 노원구청 공원녹지과(950-3896).
  • 英인디펜던트 “이스라엘은 전범”

    英인디펜던트 “이스라엘은 전범”

    “그 소녀의 주검은 자동차 옆에 너덜너덜해진 인형처럼 누워 있었다.자신과 가족을 안전한 곳에 데려다줄 것으로 믿었던 차에서 그녀는 튕겨나와 처참하게 숨졌다.레바논 전쟁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장면이다.” 이스라엘 정부는 9일째 계속되는 레바논 공격의 명분을 피랍 병사 구출과 이슬람 시아파 무장세력 헤즈볼라의 해체라고 강변한다.무고한 민간인 피해는 군사작전에 수반되는 ‘부수적인 피해’라는 식으로 빠져나간다.과연 그런가? 영국의 진보일간지 인디펜던트는 20일자 1면에 게재된 로버트 피스크 기자의 베이루트 르포를 통해 이제 전쟁범죄 얘기를 꺼내야 할 때라고 주장한다.다음은 르포 요약. 소녀의 죽음은 잘 연출된 다큐멘터리 같다.그녀와 가족,주민들이 살고 있던 남부 레바논의 국경 마을에 15일 갑자기 이스라엘 군인들이 들이닥쳤다.그들은 헤즈볼라 기지가 너무 가까워 공습에 다칠 수 있다며 마을을 떠나라고 명령했다.주민들은 명령에 할 수 없이 따랐지만 곧 근처를 지키던 가나 출신 유엔평화유지군에 자신들을 보호해달라고 간청했다. 그러나 가나 병사들은 1996년 유엔에 의해 만들어진 교전수칙에 따라 민간인들을 기지에 수용할 수 없다고 거부했다.역설적이게도 10년 전 이스라엘이 카나의 유엔 시설을 공습하는 바람에 보호받던 민간인 106명-절반 이상이 어린이들-이 몰살당한 데 따라 만들어진 수칙이었다. 얼마 뒤 주민들은 북쪽에 있는 텔 하르파 마을로 데려갈 호송 차량에 올라타게 됐고 그 마을 근처에서 그만 이스라엘 전투기가 퍼부은 폭탄에 희생되고 말았다.모든 차량이 폭탄에 산산조각났고 소녀와 부모를 비롯,20여명이 목숨을 잃었고 12명은 몸에 불이 붙은 채 차량에서 간신히 빠져나왔다.소녀의 이름조차 알 길 없다. 얼마나 빨리 ‘전범’이란 용어를 꺼내야 할 것인가?얼마나 많은 어린이들이 이스라엘 공습에 찢겨져야 ‘어쩔 수 없는 피해’라는 애매모호한 단어를 부인하게 될까?이제 인간성에 반하는 전범 얘기를 시작할 때가 아닌가? 무고한 희생은 19일에도 계속됐다.이스라엘 미사일이 나바티 마을을 박살냈을 때 민간인 5명이 숨졌다.남부 스리파 마을 가옥 15채가 무너졌을 때 적어도 23명이 목숨을 잃었고 건물안에 갇혀있던 부상자를 구조할 사람조차 찾을 수 없었다.레바논 당국은 동부 베카 계곡의 나비칫 마을이 공습당한 뒤 숨진 이들의 이름조차 확인해주지 못했다. 이스라엘은 늘 ‘핀으로 집어내듯’‘외과수술같은’ 정밀한 공습 능력을 자랑해왔다.그러나 이들의 공습이 무고한 시민을 살해할 목적으로 치밀하게 기획됐다는 증거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실제로 헤즈볼라 로켓포도 이스라엘 시민을 살상한 적이 있지만 이건 부정확한 군사력의 반증이었다.서구 국가들도 이스라엘 공군에는 헤즈볼라보다 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 마땅하다.그런 기준에서 이스라엘이 베카계곡에 있는 우유공장을 박살낸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왜 미국계 생필품 회사의 수입 창고를 공습해야 하는가?베이루트 외곽의 종이상자 공장과 시리아로부터 들여오던 새 앰뷸런스에 폭탄을 퍼부은 이유를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텔 하르파 마을에서 숨진 소녀가 ‘테러리스트 타깃’인가? 이스라엘이 레바논내 목표물을 얼마나 부주의하게 골랐는가를 잘 보여준 사례는 이스라엘이 자신들의 협력자가 살고 있다고 주장한 베이루트의 기독교 구역에 있는 사용하지도 않는 주차장에 미사일을 4발이나 퍼부은 것에서 드러난다.심지어 진창에 빠져있던 샘물 파는 관정기 2대를 폭격하기도 했다. 지하드 아주르 레바논 재무장관은 이번 공습으로 45개의 다리가 파괴되고 50만명의 민간인이 삶의 터전에서 쫓겨났다고 주장했다. 이런 상황에서 레바논에서 이중 국적을 지니고 있던 수천명의 외국인들이 탈출하고 있다.요르단 암만에 있는 프랑스계 보안회사는 버스로 미국인 한명을 탈출시킬 때마다 3000달러를 받기로 하고 미국 정부에 고용됐다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물론 그들은 다마스쿠스나 키프로스에 무사히 도착하기만 한다면,텔하르파에서 몸에 불이 붙은 채 호송차량을 빠져나온 이들보다 운이 좋은 편이다. 한편 19일 하루동안 이스라엘 공습에 70명이 숨져 9일째 이어진 이스라엘 공습기간 가장 많은 인명 피해를 기록했다.지금까지 300여명이 목숨을 잃었고 다친 이는 1000여명이라고 푸아드 시니오라 레바논 총리는 전하면서 즉각 휴전과 국제적인 긴급 원조를 호소했다.20일 뉴욕에서 유엔 사무총장,미 국무장관,유럽연합 대표 등이 회동하지만 전쟁을 뜯어말릴 뚜렷한 해결책이 나올 것이라고 기대하는 이는 찾아보기 어렵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창간 102주년 기획] 佛 망명 25년 평화운동가 틱낫한 스님 인터뷰

    [창간 102주년 기획] 佛 망명 25년 평화운동가 틱낫한 스님 인터뷰

    |플럼빌리지(프랑스 디우리볼) 함혜리특파원|“분단이 되어 있어도 평화를 찾을 수 있다.” 프랑스 중남부의 한적한 시골에 위치한 플럼빌리지에서 만난 틱낫한 스님. 한반도 분단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을 묻자 “통일에 집착하지 말라.”고 답했다. 열여섯살에 불가에 입문해 구도자의 길을 걷고 있는 팔순의 노스님. 스님은 “통일을 위해 노력하지 말라는 뜻은 아니다.”면서 “조건을 붙이지 말고 도움 주는 자체에 최선을 다한다면 이로써 충분히 평화를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베트남 출신인 틱낫한 스님은 전쟁반대 운동을 펼치다 베트남 정부로부터 귀국을 금지당한 뒤 1982년부터 프랑스로 망명했다. 전쟁의 아픔을 누구보다 뼈져리게 체험했을 스님은 “추상적이고 어려운 과제인 통일에 연연하는 대신 미래의 주인공이 될 남과 북의 젊은이들이 한데 모여 대화를 나누는 자리를 갖자.”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젊은이들이 플럼빌리지에서 함께 생활하며 서로를 이해하는 기회를 가진 것처럼 남북의 젊은이들이 서로를 이해하는 기회를 갖도록 플럼빌리지에서 만남의 기회를 마련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한반도는 유일한 분단국으로 남아 있다. 분쟁과 갈등에서 벗어날 방법은. -통일에 집착하지 말라. 통일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란 생각도 갖지 마시오. 분단된 상태에서도 행복할 수 있다. 조건 달지 말고 북한에 도움을 주시오. 식량이든, 의약품이든…작은 힘이 모여 큰힘이 되듯이 통일은 자연스럽게 다가올 것이다. 현재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되 남과 북의 젊은이들이 만나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장을 마련해야 한다. 비정치적인 대화를 나누면서 서로를 이해한다면 통일에 진정으로 도움이 될 것이다. ▶왜 굳이 젊은이들인가. -젊은이들은 마음이 순수하고, 여유가 있기 때문에 충분히 평화를 받아들일 수 있다. 또 미래의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기성세대는 아픈 과거의 상처 때문에 쉽게 서로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남북의 젊은이들이 만나 대화를 나누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젊은이들을 위해 여러차례 만남의 장을 만들었다. 오랜 세월동안 갈등관계인 두 지역의 젊은이들은 이곳에서 함께 대화하고, 평화 속에 생활하면서 서로 아끼고 사랑하게 된다. 플럼빌리지의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서 생활하면서 서로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이곳에서 만남을 주선하는 것은 평화로운 통일의 시작이다. 마음을 열고 얘기를 하는 방법을 배울 것이다. 믿음을 갖고 상대방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고, 마음을 열고 대화하는 가운데 서로의 아픔을 쉽게 이해하게 된다. 서로를 깊이 이해하는 사람들이 늘면 통일은 자연스럽게 다가올 것이다. ▶평화란 무엇인가. -이론적인 질문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곳 생활을 보고 들은대로 전한다면 도움이 될 것이다. 플럼빌리지에서는 오직 ‘평화’ 속에서 말하고, 듣고, 식사하고, 걷고, 일한다. 삶에 지친 사람들에게 마음의 고향 같은 곳이다.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순간순간의 평화를 접하면서 몸과 마음을 치유하고 행복한 미소를 되찾을 것이다. ▶이곳 스님들은 행복해 보이는데…. -이곳 스님들은 개인 재산이 아무것도 없다. 개인 계좌도, 자동차도, 인터넷도 모두 공동체에 속해 있다. 서열도 없다. 함께 일하고, 수행하면서 형제애, 자매애 속에 생활한다. 순수한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 산다. 이것이 행복이다. 나는 돈도, 권력도 없다. 가진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자유롭다. 수행자로서 많은 사람들이 마음의 평화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기 때문에 행복하다. 가장 큰 행복은 당신이 좋아하는 일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다. 행복은 얼마나 마음이 자유로운가에 달려 있다. ▶‘깨어 있는 마음(정념)’은 왜 중요한가. -우리는 매일 깨달음을 얻고 닦아야 한다. 그 첫번째 수행은 지금 이 순간에 머무는 것이다. 삶이란 오직 찰나의 이 순간에만 존재한다고 붓다께서 가르치셨다. 지나간 과거나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마음을 빼앗긴다면 현재를 충실하게 살 수 없다. 지금 이 순간, 이곳에 머무르면 힘과 지혜는 자연히 따라온다. 삶을 있는 그대로 보고 듣고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이 ‘깨어 있는 마음’이다. 깨어 있는 마음을 통해 온전히 존재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다.‘깨어 있는 마음’을 꾸준히 수행한다는 것은 현재에 집중하는 것이다. 그러면 모든 것에서 자유롭고, 힘과 지혜를 얻을 수 있다. lotus@seoul.co.kr ■ 수행 공동체 ‘플럼 빌리지’ |플럼빌리지 함혜리특파원|틱낫한 스님과 인터뷰 계획을 세우고 연락을 취하기 시작한 것은 5월 초였다. 연결을 시도했지만 전화연결은 번번이 실패했고, 메일은 답장이 없었다. 포기 상태에 있던 5월 마지막주 연락이 왔다. 틱낫한 스님의 제자이자 40여년을 늘 함께하며 스님을 돕고 있는 찬콩 스님이었다. 찬콩 스님은 “인터뷰를 할 수는 있지만, 곧바로 할 수는 없다.”면서 플럼빌리지의 생활을 경험하고 있으면 그때 봐서 적당한 시간을 잡아 주겠다고 했다. 최소 일주일을 경험하는 것이 좋다고 했지만 바쁘다는 핑계를 대고 3박4일로 줄여서 방문시기(6월 15∼18일)를 잡았다. 럼빌리지(www.plumvillage.org)는 틱낫한 스님이 프랑스에 정착한 뒤 찬콩 스님을 비롯한 제자들과 함께 24년 전인 1982년에 세운 수행 공동체다. 틱낫한 스님의 불교적인 신념과 철학을 구체화한 플럼빌리지는 윗마을, 아랫마을, 새마을 등 세개의 마을로 되어 있으며 스님들이 함께 수행을 한다. 수련회 때 윗마을에는 남자, 아랫마을과 새마을에는 여자들이 머문다. 오전 10시45분 기차로 파리를 떠나 나흘간 머물 숙소(시골집)에 도착한 때는 오후 4시가 가까워오고 있었다. 파리를 떠난 지 5시간여만에 바뀐 것은 풍경뿐이 아니었다. 플럼빌리지에 도착한 순간 분주함과 들뜬 마음은 연기처럼 사라졌다. 드넓은 밀밭과 포도밭 사이로 난 시골길을 자동차가 간간이 지나갈 뿐 사람 구경하기 힘든 그런 한적한 시골에 있는 불교수행 공동체였다. 플럼빌리지를 방문했을 때는 미국, 캐나다, 영국, 아일랜드 등지에서 찾아온 수련회 참가자가 780명이나 됐다. 불교도들이 대종을 이뤘지만 목사님도, 수녀님도, 유대교도들도 있었다. 생활은 단순하지만 명상과 수행을 충실하게 하도록 짜여져 있다. 호흡과 걸음에 마음을 집중하고 숨을 들이 마시며 두세 걸음 걷고, 내쉬며 두세 걸음 걷는다(걷기 명상). 식사는 우주에 감사하면서 말없이 한다(식사 명상). 저녁식사 후 다음날 아침 법문 시작 전까지 침묵을 지킨다(침묵 수행). 이런 명상과 수행은 다른 수행자와 함께 있되 각자 자신의 내면에 충실하도록 해준다. 이른 아침의 법문과 수련회 참가자들과 함께 하는 걷기 명상을 통해서 멀리서만 바라보던 틱낫한 스님과의 개인적인 만남은 플럼빌리지에 온 지 사흘째 오후에 이뤄졌다. lotus@seoul.co.kr
  • 美, 미사일 관련 기업 제재법 곧 통과…北압박 가시화

    |워싱턴 이도운특파원|북한에 미사일과 핵 등 대량살상무기(WMD) 관련 물자나 기술을 거래하는 기업과 개인을 제재할 수 있는 ‘북한 비확산법안’이 금명간 상원을 통과할 것으로 보인다. 상원은 지난 14일 제출된 북한 비확산법안을 두차례 회독한 뒤 외교위원회로 보냈다. 법안은 A4용지 두쪽 분량이다. 이미 제출된 대 시리아 및 이란 비확산법안 속의 시리아와 이란이라는 문구에 북한이란 단어만 추가하는 형식으로 구성돼 있다. 따라서 법안 심의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을 전망이다. 북한 비확산법안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결의와 관련한 미국측의 첫번째 입법 조치다. 이에 따라 법안이 의회를 통과하면 미 정부의 대북 제재는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 법안의 공동제출자인 공화당의 샘 브라운백 상원의원은 19일(현지시간) 기자회견을 갖고 “북한이 미사일 능력을 자체적으로 개발하지 못하도록 하는 동시에 다른 국가들이 북한을 돕는 것도 좌절시켜야 한다.”며 이 법안의 신속한 처리를 촉구했다. 브라운백 의원은 “피폐해진 북한 주민들에게 탈출할 기회와 장소를 제공함으로써 내부로부터 북 체제에 압력을 넣도록 해야 한다.”면서 과거 동유럽에 적용됐던 헬싱키 협약과 같은 포괄적이고, 다면적인 새로운 안보 틀을 제안했다. 그는 조만간 백악관이 새로운 동북아 안보틀을 마련토록 촉구하는 결의안을 제출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의 북한인권 관련 단체 및 종교계는 20일 워싱턴의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헬싱키 협약 방식에 따른 대북 접근 방안에 대한 지지 입장을 밝힐 계획이다. dawn@seoul.co.kr ●헬싱키 협약이란 지난 1975년 미국과 옛 소련, 유럽 등 35개국이 헬싱키에서 체결한 협약이다. 서방은 주권존중, 전쟁방지, 인권보호를 핵심으로 하는 이 협약을 근거로 소련과 동유럽의 인권문제를 지속적으로 거론, 공산권 붕괴를 촉진시켰다고 미국의 보수진영은 주장하고 있다.
  • 4층건물에 쪽방 78개… 비상계단도 없어

    20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I고시텔. 지하 1층, 지상 4층인 건물에는 작게는 0.8평, 크게는 1.7평 정도의 쪽방 78개가 다닥다닥 붙어 있다. 지어진 지 4년밖에 되지 않은 건물이지만 복도는 성인 한 명이 어깨를 움츠려야 겨우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비좁았다. 소화기가 놓여진 곳은 사람들 눈이 가장 잘 띄는 2층 복도 양쪽 끝뿐,3층과 4층엔 없었다.●한평도 안되는 비좁은 쪽방…화재에 무방비출입구 계단을 빼면 비상 계단은 찾아볼 수 없었고 유도등도 없었다.2층의 한 방문을 열자 책상 위에 텔레비전과 책장이 겹쳐 놓여 있다. 책상 밑까지 다리를 뻗어도 한 사람이 겨우 누울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좁다.“하나 남은 이 방에는 창문이 있어서 30만원을 내고도 서로 들어오려 해요.” 주인 이모(52·여)씨의 말이다. 19일 8명의 목숨을 앗아간 송파구 잠실동 나우고시텔 화재 사건을 계기로 서울신문 취재진이 서울 시내 고시원을 긴급 점검했다. 고시생뿐 아니라 일용노동자와 직장인들까지 숙소처럼 사용하는 고시원은 열악한 시설뿐만 아니라 좁은 통로와 소방 시설 미비 등으로 화재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었다. 4층 건물 전체가 고시원인 동작구 노량진동의 H고시원에도 소화기는 건물 입구와 4층에 하나뿐이었다. 성인 두 사람이 어깨를 접어야 교차할 수 있는 복도에 1.6평 크기의 방이 각층에 20개씩 양쪽으로 나열해 있다. 습기가 가득찬 실내 벽은 불붙기 쉬운 벽지가 더덕더덕 붙어 있다. 한 고시생은 취재진에게 대뜸 “여긴 화재에는 무방비다. 불이 나면 탈출하다가 압사할 지경인데 소화기가 뭐 필요 있겠느냐.”고 말했다.●일용노동자, 직장인, 유흥업소 종업원들의 삶터 서울 신림동이나 노량진 같은 곳의 고시원에는 실제 고시 공부하는 사람들이 기거하지만 대부분의 도심 고시원은 사실상 고시원이 아니라 ‘쪽방’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광진구 군자동 W고시텔에도 고시생이나 학생이 거의 살지 않았다.3층 건물 맨 위층에 방 스무개로 운영되는 이곳에서 지난 3월부터 살아온 대학생 정모(19)군은 “밤늦은 시간 집에 들어오다 보면 30∼40대 여성 여러 명이 그때서야 옷을 차려입고 나가는 걸 자주 본다. 고시텔에는 고시생보다 일반인들이 숙소로 더 많이 이용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 고시원 주인은 “고시원은 20∼30대 미혼 직장인, 중국동포 식당 파출부와 일용노동자들이 싸고 편리하게 이용하는 시설이 됐다.”고 말했다. 동대문구 이문동 E고시텔은 대학생들과 직장인들로 매번 만원이다. 역시 5층 건물 맨 위층에 1.5∼2평가량의 쪽방 25개가 붙어 있는 이 고시텔은 25명이 변기 2개와 샤워기 2개가 있는 화장실 겸 목욕탕을 나눠 쓰느라 아침 시간은 늘 전쟁이다. 방 하나를 헐어 만든 식당에는 밥통에 밥만 제공돼 반찬을 가져와 식사를 해결한다. 지난 3월부터 이곳에 살아 왔다는 대학생 김모(24)씨는 “보증금 없이 한달에 27만원으로 싸게 살 수 있고 방을 빼기도 수월해 고시텔을 선호했는데 창문이 없어 답답하기도 하고 어제 화재 사건을 보니 겁도 나서 곧 나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주인들도 할 말은 많았다. 용산구 남영동에서 C고시텔을 운영하고 있는 주인은 “보증금도 없고 한달 월세를 다 합쳐 봤자 월수입이 몇 백만원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다닥다닥 많은 방을 만들어 많은 손님을 받으려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동대문구 신설동의 I고시텔 주인은 “건물 주인과 고시텔 주인이 다르면 임대인이 월세 내기에 빠듯해 노숙자, 공사장 인부, 일용직 아줌마 등 돈만 되면 아무나 받아 주기 때문에 술 먹고 난동부리는 사람도 많고 소동도 자주 일어난다.”고 말했다.●관리 감독에서 벗어난 사각지대의 고시원 하지만 고시원은 법의 사각지대에 있었다. 건축법상 고시원이라는 이름 자체가 등록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화재가 난 잠실동 나우고시텔은 99년 건립 당시 주택으로 등록됐다 신고도 없이 고시원으로 용도변경했다. 하지만 현행법상 용도 변경에 대해 제재할 근거가 없다. 지난 5월9일 건축법 개정이전에는 주택에서 근린생활시설로 용도변경을 하는데 신고 절차를 밟지 않아도 됐다. 현행법에서는 허가제로 개정됐다. 게다가 건축법상 근린생활시설에 고시원이란 시설은 등록되어 있지 않다. 건설교통부 건축기획팀 손동월 주사는 “나우고시텔은 독서실로 용도변경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로선 이런 편법을 제재할 아무런 법적 근거가 없어 보건복지부와 교육부 등 관계부처의 기준 제정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소방방재본부 예방담당 고승 주임은 “현행 소방법상 다중이용시설은 소화기와 열감지센서, 유도등 등을 갖추고 완비 증명을 받아야 하지만 이전에 지어진 건물에 대한 법 적용 소급시기가 내년 5월 말로 미뤄진데다 건축법상 고시원 자체가 등록되어 있지 않아 법적인 미비점이 발견되고 있다.”고 말했다.이재훈 김준석 윤설영기자 nomad@seoul.co.kr
  • 美 전시작전권 4년내 반환 제안

    美 전시작전권 4년내 반환 제안

    미국 정부가 전시 작전통제권(작통권)의 한국군 환수와 관련,“한국군이 작전능력을 확보한다면, 오는 2010년 이전에라도 되돌려주겠다.”는 입장을 최근 우리 정부에 통보한 것으로 19일 알려졌다. 한·미 군사관계 소식통에 따르면, 미국은 지난 13∼14일 서울에서 열린 제9차 한·미 안보정책구상(SPI)회의 실무협상에서 이같은 입장을 전달했다는 것이다. 미국측이 우리 군의 작전능력 확보를 전제로 작통권을 돌려줄 수 있다는 입장을 소극적으로 밝힌 적은 전에도 있었지만,‘2010년 이전’이라는 구체적 시기를 명시하기는 처음이다. 특히 ‘2010년 이전’은 우리 정부의 희망 환수 시기인 2011∼2012년보다도 앞선 때여서 미국측의 돌연한 적극 행보의 배경이 주목된다. 미국측의 제안에 우리측은 일단 “2010년 이전이면 준비가 덜 돼 있을 때인데, 이른 감이 있다.”는 입장을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작통권 환수 시기는 추가적인 한·미간 실무협의를 거친 뒤 오는 10월 양국 국방장관이 참석한 가운데 미 워싱턴에서 열리는 한·미 연례안보협의회(SCM)에서 확정될 전망이다. 향후 한반도 안보에 대한 미국 정부의 밑그림이 점차 뚜렷한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지난 13일 미측이 ‘2010년 이전 전시작전통제권 반환 의사’를 밝혔다는 새로운 사실이 결정적 분석의 틀을 제공해주고 있다. 일각에서는 ‘작통권을 가져갈 테면 가져가보라.’라는 식의 감정적 내지르기로 보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이해 득실을 철저히 따지는 미국인과 미국 정부의 속성상, 허언(虛言)이라기보다는 실제 정책의 방향성이 작통권 반환쪽으로 굳어진 것 같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해석이다. 버웰 벨 한미연합사령관 겸 주한미군사령관이 작통권 환수 이후에 대비, 한미연합사를 해체하는 대신 2개의 한·미 독자사령부를 구성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최근 밝힌 것도 이같은 관측을 뒷받침할 만하다. 한·미 군사관계 소식통은 19일 “작통권 환수에 거부감을 보이던 미국이 지난 5∼6월을 기점으로 굳이 기존 입장을 고집하지 않겠다는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다.”며 “이번 ‘2010년’ 의사 표명으로 미국의 정책방향이 확인된 셈”이라고 분석했다. 그렇다면 미국은 작통권 반환에 따른 영향력 감소를 고스란히 감수하려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는 것이 지배적인 분석이다. 이와 관련, 미국이 작통권 반환에 따른 영향력 공백을 유엔사 강화를 통해 메우려 한다는 관측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전쟁이 나면 미군 위주의 유엔군이 구성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어차피 한국군도 실질적으로는 미군의 지휘를 받을 수밖에 없다는 메커니즘을 간파했다는 것이다. 미국 의회가 ‘한반도에 주둔 중인 유엔사령부 소속 회원국가의 군병력 증강과 관련한 연구’를 해달라고 자국 정부에 요구하는 법안을 지난달 22일 통과시킨 것도 이같은 변화와 궤를 같이 하고 있는 인상이다. 이렇게 되면 우리 입장에서 작통권 환수는 명분에 그칠 뿐 실질적으로는 미군의 영향을 받는 구도가 유지되는 셈이다. 이와 더불어 미국으로서는 작통권 반환을 명분 삼아 주한 미 지상군 감축에 더 쉽게 나설 수 있게 되고, 이는 곧 전략적 유연성이라는 정책목표에도 탄력을 부여하는 이점도 있다. 그렇다면 왜 하필 2010년일까. 외교 소식통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기보다는, 미국이 진정으로 작전권을 반환할 의사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한국의 목표보다 앞선 시점을 제시한 것 같다.”고 해석했다. 이제 부담은 우리 정부 쪽이 커졌다. 독자적 작통권 행사를 위해서는 감시·정찰장비 수준이 지금보다 2∼3배가량 향상돼야 하기 때문에 4년 이내에 천문학적인 국방예산 투입이 필요하다. 여기에 미군에 비해 실전 경험이 일천한 지휘관들의 전쟁지휘 노하우는 단기간 내에 축적되기 힘든 사안이라는 점도 고민이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전시 작전통제권이란 전쟁 중 행사하는 작전계획 및 작전명령권을 말한다.6·25전쟁 발발 20일 후인 1950년 7월14일 이승만 대통령은 자위권이 미약했던 당시 국군의 작전권을 더글러스 맥아더 유엔군사령관에게 자진해 넘겼다. 이후 44년 만인 1994년 한국군은 평시 작전통제권을 환수했다. 그러나 진정한 작전통제권이라 할 수 있는 전시작전통제권은 아직 주한미군 몫이다.
  • [요리조리 명사와 함께] 이갈 카스피 이스라엘 대사

    [요리조리 명사와 함께] 이갈 카스피 이스라엘 대사

    ‘성서의 땅’으로 불리는 이스라엘. 유대교와 기독교, 이슬람교 등 3개 종교의 성지가 그곳에 있다 보니 가는 곳마다 신앙의 깊이와 역사의 향취를 품고 있다. 물론 바다에 들어가면 몸이 붕붕 뜬다는 사해처럼 관광자원도 풍부하다.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있는 이스라엘 대사관저를 찾아 이갈 카스피 대사와 부인 미할 카스피를 만났다. 부인 미할의 한국어 실력은 간단한 자기 소개를 넘어 대화가 가능할 정도. 연세대 어학당에서 3학기째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니 반가운 마음이 절로 들었다. 글 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 여러나라 영향을 받은 이스라엘 음식 카스피 대사는 이스라엘에는 초원이 별로 없어 소고기 값이 비싸 닭고기와 칠면조 고기를 많이 먹는다고 말했다. 대신 우유와 치즈 등 유제품이 발달돼 있단다. 큰 슈퍼에 가면 기업이 아닌 가족 단위로 생산한 염소 치즈 등이 선보일 정도다. 또 토마토, 오이, 상추, 당근, 피망 등 야채를 많이 먹는다고 했다. 이날 처음으로 이스라엘 음식을 맛보았다. 보기에도 푸짐한 ‘꿀과 고구마, 마른 자두를 곁들인 닭고기’는 다양한 야채와 부드러운 닭고기 맛이 일품이다. “이스라엘은 여러 나라에서 온 이민자들이 세운 나라이다 보니 이집트, 팔레스타인, 모로코, 알제리 등 여러가지 요리가 뒤섞여 있어요.” 부인 미할에게 음식 솜씨를 묻자 “보통 수준”이라면서 “가끔 맛있을 때도 있다.”고 겸손한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카스피 대사는 “(부인이)부엌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도 아닌데 행사가 있을 때 제가 주문한 요리를 척척 만들어 낼 정도”라고 부인의 요리솜씨를 치켜세웠다. 카스피 대사의 요리솜씨는 어떨까?바쁜 업무로 요리할 시간이 있을까 싶은데 뜻밖에 가족들을 위해 스파게티 등을 만드는 자상함이 있다. 부인 미할은 “아이들은 아빠가 만든 스파게티를 좋아해요. 남편은 스파게티의 토마토 소스와 미트소스 등을 한번에 3㎏이나 만들어 냉동고에 보관했다가 먹을 때마다 전자레인지에 데워서 먹어요.” 미할은 “결혼전 데이트할 때 남편이 자신에게 프랑스 요리를 해줬다.”며 그 옛날 요리로 사랑 고백을 했던 카스피 대사와의 러브 스토리를 살짝 들려줬다. 옆에 있던 카스피 대사는 멋쩍었는지 “스파게티 만드는 것 뭐 별로 어려운 것 없어요. 이것저것 넣고 끓이기만 하면 된다.”고 스파게티 소스 만드는 법을 설명했다. # 한국말 잘하는 미할 부인은 연극배우 출신 이스라엘에서 태어났지만 스웨덴에서 자라고 교육 받은 미할은 연극배우 시절 스웨덴 대사관에서 근무하던 현재의 남편을 만나 두아들 아담(13), 에레즈(12)를 두고 있다. 인터뷰 도중에 나타난 에레즈를 보고 “잘 생겼다.“고 하자 그녀는 한국말로 “내가 잘 만들었지요.”라고 받아치며 유창한 한국어 실력을 뽐냈다. “한국에 와서 처음 본 김밥을 보고 뭘로 만들었는지 궁금했어요. 대화를 위해 한국말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했지요. 한국말을 하면 한국에서의 경험이 더 특별해지잖아요.” 자녀교육은 어떻게 할까.“아이들에게 무엇보다 정직하라고 말합니다. 다른 것은 배울 수 있지만 정직은 잃어버리면 찾을 수 없기 때문이죠. 항상 보석처럼 마음에 지녀라, 모든 것은 정직에서 시작된다고 가르치죠.” 카스피 대사의 말이 이어지기 무섭게 부인 미할은 정직에다 덧붙이고 싶은 게 있는데 바로 친절과 사랑이라고 했다. 한국에 온 지 10개월이 된 이들 부부는 한국 음식을 무척 좋아한다면서 한식 코스 요리는 가히 환상적이란다. 카스피 대사는 갈비, 비빔밥 등 줄줄이 나열하더니만 그 가운데 물김치를 첫번째로 꼽았다. 미할은 “이스라엘에서는 여러 반찬을 한꺼번에 차려 놓고 덜어 먹고, 야채도 많이 먹는데 한국과 비슷한 것 같아아요.”라고 말했다. # 한국과 이스라엘 직항 노선 개설을 추진하고 있어요 이들 부부는 이번 월드컵에서 한국민들의 열광적인 응원을 보고도 다른 외국인들과는 달리 크게 별로 놀라지 않은 표정이다. “만약 이스라엘도 16강 진출했다면 비슷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이스라엘인들도 한국처럼 자신의 감정을 잘 드러내요. 감정이 불 붙듯 확 달아 올랐다가 잘 꺼지는 것도 비슷해요.” 미할은 우리의 ‘냄비근성’이라는 단어까지 소개하며 두 나라의 국민성을 열심히 비교·분석했다. 카스피 대사가 신경쓰는 업무는 역시 양국간의 교류문제. 특히 경제분야에 대한 협력 증대에 관심이 높다. “한국과 이스라엘의 기업들을 연결해주는 중간 역할을 하려고 노력합니다. 한국이 미국과 FTA체결 협상을 하고 있는데 그 다음 이스라엘이 협상하려고 줄 서서 기다리고 있어요.” 이스라엘과 한국은 경쟁국이 아니고 우호적인 관계에 있기에 FTA 협상으로 서로 도움이 되리라는 설명이다. 특히 한·이스라엘간의 직항 항공로 노선 재개 문제에도 적극적인 입장이다. 성지순례객들의 발길이 늘어나면서 직항로가 필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1) 호두·시럽 곁들인 바크라바 과자 재료:400g 퍼프 페스트리,페스트리 안에 채우는 것: 잘게 부순 호두 2컵, 설탕 11/2컵, 껍질 벗긴 레몬 1작은술, 껍질 벗긴 오렌지 1작은술, 정향나무 간 것 1/4작은술, 계핏가루 1작은술, 오렌지 주스 4작은술, 달걀 1개, 시럽:물 11/2컵, 설탕 2컵, 껍질 벗긴 레몬 1작은술, 껍질 벗긴 오렌지 1작은술, 정향나무 간 것 1/4작은술, 계핏가루 1작은술 만드는 법:(1)퍼프 페스트리를 3개로 똑같은 사이즈로 나눠 동그랗게 모양을 만들어 오븐 쟁반 위에 놓는다.(2)오븐 쟁반에 베이킹 종이를 놓고 그 위에 3개의 반죽을 올린다.200℃로 예열된 오븐에 15분정도 구워 식힌다.(3)페스트리를 채울 재료를 골고루 잘 섞어 놓는다.(4)오븐 쟁반에 다시 베이킹 종이를 깔고, 이어 그위에 (3)을 골고루 펴 놓아 냉장고에 2시간 놓아둔다.(5)냉장고에서 (4)를 꺼내 5㎝ 크기의 다이아몬드 모양으로 잘라내 190℃로 오븐에서 25∼30분 구워 낸다.(6)시럽 재료를 잘 섞어 중불에서 20분 동안 끓여내 걸쭉한 시럽으로 만든다.(7)구워 낸 바크라바 위에 시럽을 올려 차게 놓아둔다. (2) 파라텔을 곁들인 휴무스 # 휴무스 재료:밤새 불려 놓은 이집트 콩 225g, 작은술, 레몬 주스, 올리브 오일 2작은술, 마늘 다져놓은 것, 후추와 소금 약간, 닭 육수 만드는 법:(1)콩을 헹구어 큰 냄비에 물을 넣고 10분 끓인다. 거품을 제거하면서 60∼90분 정도 다시 뭉근하게 끓인다.(2)물에서 콩을 건져내 믹서기로 간다.(3)믹서기에 닭육수 350㏄를 넣고 콩이 걸쭉하게 되도록 다시 간다. 다른 재료들과 함께 넣고 2시간 냉장고에 넣어 둔다. 맛을 보고 필요하면 레몬주스와 양념으로 간을 한다.(4)(3)그릇에 담아 올리브 오일을 뿌려 준다. 빵과 달걀 프라이와 함께 먹는다. # 파라펠 재료:마른 이집트 콩 1/2㎏, 파셀리 갈아 놓은 것 2컵, 양파 1개, 다진 마늘과 후추 약간, 베이킹파우더와 소금 1/2 작은술, 쿠민(미나리과) 1작은술, 오일 만드는 법:(1)물에 콩과 베이킹파우더 1/2작은술을 넣고 밤새 불린다.(2)파슬리, 양파, 마늘, 후추 등을 넣고 믹서기에 간다.(3)소금과 쿠민, 베이킹파우더 1/2 작은술을 넣고 다시 섞어 1시간 둔다.(4)움푹 패인 냄비에 오일을 두른다.(3)덩어리를 3㎝크기의 볼모양으로 만든다.(5)(4)가 갈색이 되도록 냄비에서 튀겨낸다. (3) 완자가 있는 치킨수프 # 치킨 스프 재료:닭고기 반마리, 당근 1개, 부추 약간, 양파 1개, 샐러리 1개, 소금과 후추 약간 만드는 법:(1)당근, 양파, 샐러리를 큰 냄비에 담아 물을 붓고 1시간 정도 끓인다.(2)(1)에 닭고기를 넣고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한 뒤 다시 뭉근하게 끓인다. # 완자 재료:밀가루 3/4컵, 닭육수 1컵 혹은 물 1컵, 오일 1큰술, 소금 1/2작은술, 달걀 1∼2개, 흰후추 1/2작은술 만드는 법:(1)밀가루를 볼에 넣고 닭육수 1컵이나 물 1컵을 넣어 잘 섞는다. 여기에 오일과 소금, 달걀, 흰후추 등을 넣고 다시 부드럽게 섞는다. 냉장고에 30분 정도 넣어둔다.(2)큰 냄비에 물을 3/4정도 넣는다. 냉장고에서 가져온 반죽을 3㎝크기로 동그랗게 빚어 끓는 물에 넣고 15분 정도 익힌다. 치킨 수프 안에 넣으면 된다. (4) 꿀·고구마·자두를 곁들인 닭고기 재료:껍질 벗긴 고구마 3개를 네토막씩 잘라 놓음, 작은 양파 12개나 파, 말린 자두 12개, 닭고기의 넓적다리살 6조각, 쿠스쿠스(밀 종류) 닭고기 절이는 양념:꿀1/3컵, 간장1/3 컵, 발사믹 식초 3작은술, 올리브오일 3작은술, 생강뿌리, 잘게 다진 마늘 3쪽, 계피가지 2개, 잘게 부순 고수풀 씨 1작은술, 월계수 2잎, 백리향, 레드와인 11/2컵, 소금과 후추 약간 만드는 법:(1)오븐 쟁반위에 닭고기, 고구마, 자두를 골고루 잘 펴 놓는다.(2)볼에 닭고기 절이는 양념을 잘 혼합한 뒤 닭고기와 야채가 잠길 정도로 붓는다. 그위에 알루미늄 포일로 덮어 적어도 한시간 동안 재어 둔다.(3)190℃로 오븐을 예열해 둔다. 다시 한번 닭고기 양념을 위에 뿌려 준 뒤 45분 구워 낸다.(4)큰 접시에 먼저 닭고기 다음에 고구마를 담고, 그 주변을 양파와 자두로 둥글게 모양을 낸다. ■ 이스라엘은 1948년 건국 이래로 수많은 유대인이 유럽·북아프리카·러시아 등지에서 이스라엘로 이주해 왔다. 북쪽은 레바논, 북동쪽은 시리아, 동쪽과 남동쪽은 요르단, 남서쪽은 이집트, 서쪽은 지중해와 이웃한다. 이스라엘은 시리아의 골란 고원(북동쪽), 웨스트뱅크와 동예루살렘(동쪽), 가자 지구(남서쪽) 등 7477㎢의 점령지(반자치주)를 제외한 면적이 2만 700㎢이다.1967년 전쟁으로 빼앗은 여러 점령지에서는 지금도 분쟁이 계속되고 있다. 공식 언어는 히브리어·아랍어를 쓰고 유대인이 전인구의 5분의 4 이상을 차지하며, 아랍인은 6분의 1정도이다.
  • 삶의 일탈 낯선 세상으로

    삶의 일탈 낯선 세상으로

    북적거리는 도시, 스트레스를 한아름 안겨주던 일에서 뛰쳐나와 “나 이번 휴가에는 정말 푹 쉬고 싶어∼.”라며 울부짖고 있다면. 조금은 독특한 추억과 경험이 담긴 여행을 하고 싶다면. 갈 때마다 다른 느낌을 주는 태국, 그 중에서도 깐짜나부리의 자연에 나를 맡기자. 깊은 산 속, 콰이강가에 걸린 해먹에 누워 좋아하는 음악을 귀에 꽂고 책 한 권 펼치는 순간. 세상만사 모든 시름을 다 벗어버린 ‘나’만이 존재한다. 글 사진 태국 깐짜나부리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태국 콰이강의 깐짜나부리 정글 래프트 깎아지른 듯한 절벽과 수풀이 무성한 밀림 사이를 흐르는 연한 갈색의 강물, 그 위에 둥실둥실 방갈로가 떠있는 그림을 상상해보라. 어둠이 내려앉으면 전등 대신 호롱불에 의지해 길을 밝힌다.TV도, 에어컨도, 컴퓨터도 쓸 수 없다. 완벽하게 세상에서 벗어나 있다. 혹, 그래서 불편하겠다는 생각이 든다면, 이것은 당신이 들어갈 만한 그림이 아니다. 강가에 쳐놓은 흔들거리는 해먹(그물침대)에 누워 음악을 듣고 책을 읽는 ‘극도의 한가로움’이 그려지고, 어느 순간 그런 여유를 동경하는 자신을 발견했다면, 이곳에 당신을 던져보라. # 자연 속에 그려넣은 한가로운 나 우리나라에서 비행기로 5시간 남짓 떨어진, 멀지 않은 태국에는 방콕, 푸껫, 파타야, 치앙마이 등 유명한 여행지가 많다. 방콕에서 서북쪽으로 120여㎞ 떨어진 깐짜나부리도 어떤 면에서는 꽤나 잘 알려진 곳이라 하겠다. 우리나라에는 다소 생소한 지명이지만, 면적상으로는 태국에서 3번째로 큰 지역인데다, 그 유명한 콰이강의 다리가 있으니. 이런 곳에서 어떻게 ‘휴(休)’를 즐길 수 있겠냐고? 성급한 판단은 잠시 접고, 깐짜나부리 시내에서 서북쪽으로 차를 몰고가자. 태국에서도 손꼽히는 천혜의 밀림, 사이욕 국립공원으로 향하는 길이다. 국립공원 안으로 들어가면 연갈색 물이 흐르는 콰이강을 만난다. 이 강변에 있는 작은 선착장에서 롱테일 보트를 타고 달려가면, 바로 그 ‘그림’이 나온다.‘리버콰이 정글 래프트(River Kwai Jungle Raft)’다. # 머리를 비우고, 그냥 자연에 맡기자 콰이강의 연갈색 물은 울창한 밀림, 정글 래프트의 나무 방갈로와 한데 어우러져, 자연스럽고 안정된 그림을 만들어내는 가장 적합하다. 들뜨고 지친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는 연한 베이지톤의 그림이다. 이런 곳에서 누군가 내게 전화를 하지 않았을까, 연락을 해야 한다는 걱정은 필요하지 않다. 당장 컴퓨터를 켜서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도 버렸다. 방갈로 기둥 사이에 매달아 놓은 해먹에 누워 MP3플레이어에 가득 채운 음악을 듣는다. 일에 치여 읽지 못했던 책을 폈다. 책장이 술술 넘어간다. 가끔씩 지나는 롱테일 보트가 만들어내는 파도에 해먹이 움직인다. 그네처럼 흔들흔들, 재미있다. 책을 읽다가 눈이 피로해지면 눈 앞에 펼쳐진 울창한 밀림을 바라보며 달래준다. 시력까지 좋아지는 듯하다. 테라스에 누워 선탠을 즐기는 친구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어둠이 내려앉고, 호롱불이 리버콰이 정글 래프트를 은은하게 밝힌다. 저녁식사는 양꿍, 쁘리오 완 등 태국음식으로 차려져 있다. 작은 불빛에 의지해야 하는 어둠이 약간 불편하고, 어색하더니 어느새 적응이 됐다. 오히려 아늑한 느낌이다. 강가에 있어 푹푹 찌던 도심의 더위는 이곳에 없다. 바람이 살랑이며 불어와 에어컨이나 선풍기 따위는 필요 없다. 눈을 뜨는 아침부터 잠자리에 드는 밤까지, 스트레스를 벗어버린 편안함과 시간에 쫓기지 않는 넉넉함, 자연에 동화되는 여유를 그저 만끽하면 된다. # 정글 탐험, 몬족 마을 여행도 좋아 이 무릉도원(武陵桃源)에서 활동적인 무엇인가를 해보고 싶다면-그럴 일은 없어보이지만 혹 지루해졌다면- 콰이강으로 뛰어들어 보자. 카누를 타거나, 대나무로 만든 뗏목을 타고 조금 더 멀리 나가서 수영을 즐기는 대나무 래프팅을 해도 좋다. 구명조끼를 입고 잔잔한 물결에 몸을 맡겨 흘러흘러 가는 것도 꽤나 재미있다. 물살이 세지 않아 조금만 발장구를 치면 원하는 방향으로 쭉쭉 전진한다. 방갈로 뒤편 밀림 속에 태국의 소수민족 ‘몬족 마을’을 돌아보는 코끼리 트레킹을 해도 되겠다. 전통 생활 방식을 고수하고 있는 이들의 마을을 찬찬히 둘러보는 것도 이국적인 문화를 만끽하는 방법. 단, 모기약은 필수다. ■ 이곳에서 休~ 리버콰이 리조텔 다듬어지지 않은 자연 속의 산책, 세상에서 벗어난 여유, 여기에 약간의 ‘문명 생활’을 추가하고 싶다면 ‘리버콰이 리조텔(River Kwai Resortel)’이 딱이다. 사이욕 국립공원 선착장에서 롱테일 보트를 타고 달려가면 밀림을 배경으로 한 목조 건물이 나타난다. 이곳이 리버콰이 리조트다. # 밀림을 정원 삼아 산책하는 맛 선착장에서 보면 그리 넓어보이지 않는 2층 건물이 이 리조트의 본관이다. 롱테일 보트에서 내려 로비로 올라가는 곳곳에 태국 전통 장식품들이 놓여있어 작은 박물관 같다. 로비 한쪽에 맑고 푸른 물이 가득한 수영장과 콰이강이 한눈에 들어오는 레스토랑이 있고, 방갈로로 가는 길에는 ‘매점’도 있다! 확실히 정글 래프트보다는 현대적이다. 50여채의 방갈로가 숲 속에 난 좁은 길을 따라 띄엄띄엄 놓여있다. 함부로 나무를 자르거나 길을 내는 등 밀림을 훼손하지 않고 방갈로를 짓다 보니 이렇게 방갈로들이 멀찍이 놓여졌단다. 자연을 보호하고자 함이었지만, 결국은 울창한 밀림을 리조트의 정원으로 만들어버린 셈이 됐다. 다양한 허브를 재배하는 허브공원이 가까이 있어, 은은한 허브향이 풍겨온다. 밀림을 정원 삼아 산책도 하고, 자연 아로마 요법으로 마음까지 다스린다. 조금 더 걸어가면 태국에서 손꼽히는 규모(길이 280m)의 ‘라와동굴’ 표시가 나온다.107개의 계단을 올라 동굴로 들어갔다. 온갖 기이한 형상으로 만들어진 자연 인테리어로 동굴 안이 화려하게 장식돼 있다. 동굴 안 햇빛이 들어오는 곳에 불상이 덩그러니 놓여있는 것도 독특하다. 역시 독실한 신자가 많은 불교국가답다.(어른은 200바트, 아이는 100바트) # 여유 속에서 찾는 알찬 즐거움 평상시에 태국식당에서 먹어본 얼큰한 국물 ‘양꿍’과 볶음국수 ‘팟타이’를 직접 만들어보는 시간은 이곳에서 준비한 독특한 코스다. 주방장이 직접 나와 태국의 채소, 양념 등을 소개하며 만드는 법을 설명한다. 커다란 팬을 들고 온갖 재료를 넣으며 요리를 직접 만들어 보고, 한끼를 즐기는 재미있는 시간이다. 통돼지 바비큐 뷔페와 캠프파이어가 이어지며 리조트의 밤이 저문다. 연갈색의 콰이강물과 대조되는 깨끗한 수영장에서 물장구를 치거나, 햇살을 즐기는 선탠을 해도 좋다. 콰이강에서 카누, 수영, 대나무 트레킹을 즐기고 온 뒤 피곤함이 밀려온다면 산들바람을 느끼며 태국 전통 마사지를 받아보자. 호사가 별건가. 몸이 노곤해지며 피로가 풀리고 정신이 맑아지는, 여기서 누리는 이것이 바로 호사다. # 여행 정보 ■ 가는 길:태국 방콕의 북부터미널에서 깐짜나부리로 가는 에어컨버스(120바트·100바트는 약 2600원)가 매일 오전 2차례 출발한다.3시간 정도 소요. ■ 여행상품:㈜황금깃털여행(마타하리)는 태국전통안마, 바비큐 파티, 코끼리 트레킹, 뗏목 트레킹(또는 카누), 태국 전통음식을 만드는 쿠킹 클래스 등이 포함된 ‘리버콰이 리조텔’상품을 89만원에 준비했다. 편안한 휴식을 즐길 수 있는 ‘리버콰이 정글 래프트’ 는 79만원. 두 상품 모두 콰이강의 다리, 담넌 사두악 수상시장, 사이욕 너이 폭포, 전쟁박물관 등의 일정이 포함돼 있다.3박5일. 1577-2585,www.goldtravel.co.kr ■ 이곳 뺀다면 아니온만 못하리 # 휘파람이 들려오는 듯, 콰이강의 다리 제2차 세계대전에 지어진 미얀마로 넘어가는 철도용 다리. 영화 ‘콰이강의 다리’(1957년)의 배경이 된 곳이기도 하다. 푸른 숲으로 둘러싸여 흐르는 연갈색의 콰이강은 전시 상황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고즈넉하다. 다리 위를 걸으면 멀리서 경쾌하면서도 비장한 콰이강의 휘파람 행진곡이 들려오는 듯하다. 다소 허술하게 관리되는 곳도 있어, 발 아래 흐르는 황토빛 강물이 그대로 보이기도 한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경우라면 다리 전경만 보는 것이 좋을 듯. 난간의 모양이 아치형이 아닌, 사다리꼴로 된 곳이 폭파 이후 복구된 부분이다. 콰이강의 다리 위를 달리는 기차는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2시까지 운행한다.20바트. 기차가 지날 때에 대비해 곳곳에 대피공간이 있다. 주로 일본인이 많이 오는 편. 적어도 다리를 만들 당시는 일본이 ‘패전국’이 되기 전 ‘점령국’이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근처 수상 레스토랑(Floating Restaurant)에서 콰이강을 보며 맛있는 태국음식을 먹을 수 있다. 유명 관광지의 식당인 만큼 다른 곳에 비해, 또 보통 태국의 물가에 비해 약간 비싼 편이다. 대다수의 메뉴가 100바트 이상. # 전쟁 관련 갤러리, 전쟁박물관 콰이강의 다리 근처에 ‘제쓰 전쟁박물관(JEATH War Museum)’이 있다. 세계대전 당시 태국에서 일어난 전쟁에 참가했던 일본(Japan), 영국(England), 미국(America), 태국(Thailand), 네덜란드(Holland)의 앞글자를 딴 이름이다. 당시 일본군의 무기와 사진들을 전시해 놓았다. 또 콰이강의 다리 건설 당시의 열악하고 잔혹한 환경을 밀랍인형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조악해보이는 인형의 모습이 오히려 더욱 잔인하고 사실적으로 보인다. 입장료 20바트, 오전 8시30분부터 오후 4시30분까지. # ‘태국스러운’ 시장, 담넘 사두악 서민의 생활을 보고 싶다면 시장을 가라고 했다. 태국인의 순수함이 남아있는, 방콕 근처에서 가장 크고 활발히 움직이는 수산 시장이 바로 이곳. 황토빛 짜오프라야강 곳곳에 나무로 지어진 주택들과 배를 타고 물건을 파는 사람들이 모인다. 비좁은 수로를 황야우라는 배들이 부대끼며 다니는 진풍경이 펼쳐진다.1시간 정도 구경을 하면서 싱싱한 과일, 먹을거리, 수공예품들을 즉석에서 구입할 수도 있다. 황야우 빌리는 데 500∼1000바트 정도. # 사이욕 너이 폭포 깐짜나부리 외곽 열대밀림 지대인 ‘사이욕 국립공원’ 안에 있는 폭포. 큰 규모의 폭포가 ‘사이욕 야이’, 그보다 작은 것이 ‘사이욕 너이’다. 비가 많이 오는 우기에는 사이욕 너이가 폭포의 웅장함을 즐기기에 가장 좋은 경관을 연출해 관광객이 많이 찾는다. ■ 축제의 천국 말레이시아 말라카 ‘치트라와르나 말레이시아(citrawarna malaysia)’.‘말레이시아의 색깔’이란 뜻의 말레이어로 다인종·다문화 국가인 말레이시아의 다양한 색깔을 한껏 뽐내는 축제다. 지난 8일 개막돼 말레이시아 전역을 뜨겁게 달궈가고 있다. 독립기념일 축제나 메가세일 축제 등 연이은 축제의 신호탄이기도 하다. 이 축제의 개막식에서 사이드 시라주딘 말레이시아 국왕은 2007년을 ‘말레이시아 방문의 해’로 공식선포하기도 했다. 내년은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지 50주년이 되는 해. 그동안 이룩한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풍요 등의 바탕위에 관광지로서의 명성 또한 한층 업그레이드시키겠다는 것이다. 엄격한 회교율법이 지배하는 말레이시아 여행에 매력을 못 느끼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조용하고 자연친화적인 분위기속에 다양한 색깔을 숨겨둔 말레이시아의 관광지들에 주목하는 사람들 또한 점차 늘고 있는 추세. 그중의 한 곳이 말라카다. 스펙트럼을 통해 뿜어져 나오는 빛처럼 동서와 고금을 아우르는 다양한 문화가 살아 숨쉬는 곳이다. 말레이시아의 심장, 쿠알라룸푸르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여행지. 세계적 랜드마크인 페트로나스 트윈빌딩 등의 현대적 건물이 눈을 부시게 하는가 하면, 도심에서 1시간거리인 부키팅기 같은 고산지역의 원시림이 폐부를 씻어주기도 한다. 그곳에 야자수 늘어진 해변은 없다. 그러나 말레이시아의 역사와 문화의 향기를 느껴보고 싶다면, 그네들만의 다양한 전통과 생활상을 들여다보고 싶다면 결코 지나쳐서는 안 될 곳이다. 팔색조의 현란한 날갯깃과 같은 다양한 색깔을 가진 나라 말레이시아. 물이랑 열대과일 몇개 싸들고 팔색조의 중심부를 관통해 보자. 글 사진 말레이시아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역사의 향기 가득한 말라카 말라카는 말레이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의 도시.‘말라카의 역사는 말레이시아의 역사’라는 말처럼 옛것과 새것, 동양과 서양이 절묘하게 융화되어 있는 곳이다.14세기말 수마트라섬에서 쫓겨온 한 왕자에 의해 세워진 말라카 왕조는 해상 실크로드의 동방거점으로 성장하며 풍요로운 시절을 구가했지만,1511년 포르투갈의 침공으로 멸망한 이후, 수백년에 걸쳐 네덜란드와 영국 등 유럽열강의 지배하에 놓이게 된다. 이같은 외세 통치기간의 역사가 토착화되면서 동서양의 문화가 혼재된 독특한 문화를 형성하게 된 것. 말라카 관광은 현지인들이 에이 파모사(A´ Famosa)요새라고 부르는 산티아고 요새(porta de santiago)에서 시작된다. 포르투갈의 점령 직후 세워진 난공불락의 요새.1641년 네덜란드의 침공으로 파괴됐다가 정복자들의 손에 의해 복원된 다음, 다시 영국과 일본 등의 공격을 받아 정문외에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질곡으로 점철된 말레이시아 역사를 웅변하고 있는 곳이다. 하모니카를 불며 관광객들의 동정을 자극하는 악사를 뒤로하고 산티아고 요새 뒤쪽 언덕을 오르면 세인트 폴 처치(St.Paul´s church). 포르투갈의 그리스도교 포교 거점지였지만, 이곳 역시 가톨릭을 박해하던 네덜란드와 영국의 공격으로 파괴되어 벽만 남아있다. 요즘엔 ‘밤이면 밤마다’ 말라카 해협을 배경삼아 내레이션 쇼가 진행되고 있다. 세인트 폴 교회앞에 서 있는 프랑스 신부 성 사비에르(St.Xavier) 동상의 왼쪽손이 가리키는 대로 언덕을 내려오면 스태더이스 광장이다. 말라카 왕국부터 외세 통치시절과 현재까지의 유물들이 보관된 스태더이스기념관, 네덜란드 건축 양식의 크라이스트 처치 등이 있는 곳이다. 얼핏 보기에도 유럽의 시골마을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인상을 받는다. 스태더이스 광장 왼쪽의 존커 스트리트(Jonker Street)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골동품 골목이다. 수백년된 골동품을 파는 가게들과 불교·이슬람교·힌두교 사원이 모여있는 평화의 거리, 그리고 기념품 등을 파는 가게 등이 뒤섞여 있다. 이곳 상권을 주름잡는 사람들은 화교. 그래서인지 중세유럽식 건물에 중국식 홍등이 매달려 있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조그마한 기념품은 이곳에서 준비하는 것이 좋다. 공항 면세점보다도 가격이 저렴한 편이다. 유적지외에 특별한 관광코스가 없는 이곳에서 말라카 강(강이라기보다는 수로에 가깝다)을 따라 뱃놀이를 즐겨보는 것도 색다른 재미. 강변에 빼곡히 들어선 전통가옥들과 허름한 현대식 건물에 매달린 빨래들, 그리고 개흙을 뒤져 조개를 잡는 사람 등 현지인들의 생활상을 한눈에 들여다볼 수 있다. 거리가 다소 짧은 것이 흠. 날은 무더운 데다 이곳저곳 구경 하며 돌아다니느라 다리는 아프고…. 숙소까지 편하게 가는 방법을 찾는다면 트라이쇼(trishaw)가 제격이다. 트라이쇼는 세발 자전거 모양을 한 일종의 인력거. 스태더이스 광장이나 존커 스트리트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꽃으로 장식된 트라이쇼에 앉아 야자수 나뭇가지에 걸린 석양을 바라보자면 남국의 정취가 여실히 느껴진다. # 말레이시아의 심장 쿠알라룸푸르 “자동차 기름값보다 사먹는 식수값이 비싼 나라”라는 가이드의 설명이 귀를 의심케했다. 휘발유는 1ℓ에 600원-그것도 최근에 올랐기 때문이란다- 정도. 식수는 300㎖가 채 못 되는 페트병에 800원 가까이 된다. 혹시 이 나라 부자들은 물을 낭비하는 자식들에게 “물을 돈쓰듯 한다.”고 야단칠는지도 모를 일이다. 서울 뺨치는 차량숲을 지나 세계적인 랜드마크, 페트로나스 트윈타워앞에 섰다. 높이가 452m에 달하는 세계 2위의 마천루다. 쌍둥이 건물로는 세계 최고층 건물이다. 이슬람 모스크 형태를 하고 있는 둥그런 지붕을 밑에서 올려다 보자니 뒷목이 뻐근할 지경. 하지만 이 건물 한쪽을 국내의 한 건설업체가 지었다는 설명에 뻐근함은 곧 으쓱거림으로 바뀌어 졌다. 쿠알라룸푸르 전경을 감상하기에는 KL타워만한 곳이 없다. 특히 야경이 아름다워 ‘다이아몬드 인 블랙(diamond in black)’으로 불리기도 한다. 선웨이 라군(sunway lagoon)리조트도 그냥 지나치면 서운한 곳. 서울 잠실의 롯데월드와 경기도 용인의 캐리비안 베이를 합쳐놓은 듯한 대형 테마파크다.2m에 달하는 파도풀장과 170m짜리 인공해변, 그리고 공원 전체를 가르는 길이 400m의 초대형 현수교가 이곳의 자랑거리. # 서늘한 고원(高原) 부키팅기 푹푹 삶는 듯한 도심의 열기를 피하고 싶다면 쿠알라룸푸르에서 불과 1시간 거리에 있는 부키팅기를 찾아가 보자. 말레이어로 ‘높은 언덕’이란 뜻을 가진 곳. 해발 1400m 고원에 위치해 우리나라의 초가을 날씨를 연상케 할 만큼 선선하다. 연평균 기온은 18∼20℃정도. 현지인들이 ‘여름에는 가죽점퍼, 겨울에는 밍크코트’를 입고 찾는단다. 그래서인지 ‘밍크코트’는 몰라도 긴팔옷을 입은 사람들은 간간이 눈에 띈다. 말을 빌려타고 울울창창한 밀림지대를 둘러보는 프로그램이 권할 만하다. 유의할 점은 음료수나 과자 등의 가격이 쿠알라룸푸르 시내보다 무려 6∼7배에 달할 만큼 비싸다는 것. 또 다른 자랑거리는 골프코스다. 동남아 골프 여행객들 사이에 간간이 회자되는 곳.18홀 규모에 총길이는 6312m다. 페어웨이의 기복이 심해 난이도는 높은 편이다. 하지만 워낙 시원한 곳이니 잘 안 맞는다고 ‘열받을’ 일은 없을 듯하다. # 싱마타이 여행 떠나볼까 10일이상의 동남아시아 배낭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그리고 태국 등 3개국을 돌아보는 ‘싱마타이 여행’을 고려해 볼 만하다.3국을 연결하는 철도와 선박, 버스 등의 교통편이나 게스트 하우스 등 숙박시설이 잘 정비되어 있어 별다른 불편함없이 여행할 수 있다.3개국 모두 우리나라와 비자면제 협정이 맺어져 있는 것도 장점. 체류기간이 30일 이내라면 별도의 비자가 필요없다. 싱가포르(visitsingapore.com), 말레이시아(mtpb.co.kr), 태국(tatsel.or.kr) 관광청 홈페이지에서 자세한 여행정보를 얻을 수 있다. 말레이시아 현지여행사인 FM투어(myfmtour.com)의 윤지환씨, 싱가포르 룩 싱가포르여행사(65-6270-8812)의 정 실장(looksingapore@yahoo.co.kr), 그리고 태국 필그림 여행사(66-1-510-0101)의 임 실장(pilgrimthai@hotmail.com ) 등을 통해서도 현지정보를 얻을 수 있다. 엔투어(www.ntour.co.kr) 등의 여행사에서는 ‘싱마타이 기차 배낭여행’ 상품을 팔기도 한다.90만∼120만원선. # 여행정보 ●말레이시아는 차량통행 방향이 우리와 반대. 횡단보도 또한 없는 곳이 많다. 도로를 건널 때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고온다습한 아열대 기후지만, 호텔 등에 냉방시설이 잘돼 있어 긴팔 옷 하나쯤 준비하는 것이 좋다. ●물인심이 짠 편이다.4성급 호텔인 데도 음료수가 비치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심지어 미니바가 텅 비어 있기도 하다. 숙소에 들어가기 전 음료수 등은 미리 사둘 것. ●사먹는 식수는 ‘drinking→air mineral→mineral water’ 등 3등급. 물갈이 등에 민감한 사람이면 ‘air mineral’이상을 마시는 것이 좋다. ●욕실에 드라이어나 면도기 등 생활용품이 비치되지 않은 경우도 흔하다. ●전기용품을 사용하려면 국내에서 3핀 어댑터를 준비해 가야 한다. 전압은 220v. ●호텔 등에서 지급하는 영수증은 반드시 확인하고 꼼꼼하게 챙겨둘 것. ●국제전화 요금이 엄청 비싼 편. 출국전에 국제전화 카드를 준비하는 것이 좋다. ■ 싸고 재미난 해외여행 본격적인 여름휴가철이 시작된다. 해외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올여름 가볼 만한 해외 여행지를 소개한다. 유럽, 남태평양 등 좋은 곳도 많지만 시간과 경제적인 여건을 생각하면 동남아나 중국쪽을 권해본다. 동남아를 제집 드나들듯 돌아다녔다는 엔투어(02-775-0900,www.ntour.co.kr)의 김신철 동남아 팀장이 일반적인 패키지 여행이 아닌 저렴하고 새로운 여행 방법과 여행지를 소개한다.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태국, 가이드없이 떠나보자 가족이 함께 해외를 간다면 ‘돈’이 만만치 않게 드는 것이 사실이다. 태국 전지역을 싸게 여행할 수 있는 타이항공의 에어텔 프로그램인 로열오키드 할러데이스(ROH)를 이용해보자. 어른 두명이 ROH를 이용하면 12세미만의 아이 한명은 ‘공짜’로 경제적인 부담이 확 줄어든다. ROH는 패키지 여행이 아닌 전 일정에 가이드나 인솔자가 없이 오붓하게 가족들만이 즐기는 자유여행이다. 옵션이나 쇼핑의 강요도 없고 팁을 요구하는 것도 없다. 미리 가고 싶은 곳과 일정을 정해서 움직이면 된다. 공항과 호텔이나 여행지로 픽업서비스가 포함되어 있어 자유여행을 처음 떠나는 가족이라도 전혀 어려움이 없는 새로운 상품이다. 가능한 도시는 방콕, 푸껫, 파타야, 크라비, 코사무이, 치앙마이 등 태국의 주요 관광지이며 상품가격은 왕복항공료와 조식이 포함된 숙박 2박, 그리고 픽업서비스를 포함하여 1인 45만원부터다.(02)775-0900. # 열차를 타고 떠나는 동남아 싱가포르-말레이시아-태국을 잇는 철로를 이용해 이들 나라를 돌아보는 ‘싱마타이.’ 전세계 배낭여행객들이 가장 선호한다는 동남아 3개국의 관광청이 오랜기간 준비해 온 야심찬 프로젝트다. 유럽여행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던 ‘야간열차를 타고 국경을 넘는’ 기차여행의 낭만을 동남아에서도 즐길 수 있게 됐다. 각국의 서로 다른 문화를 체험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 또 앙코르와트가 있는 캄보디아나 홍콩 등 동남아 전 도시로의 연결이 가능해 새로운 경험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여행이다. 가장 인기 있는 상품은 ‘싱마타이 simple 푸껫 10일’. 싱가포르나 쿠알라룸푸르 같은 대도시 여행과 야간열차 이동으로 피곤해진 심신을 태국 푸껫의 아름다운 해변에서 잠시 쉬었다 갈 수 있는 상품이다. # 아름다운 자연과 맥주를 좋아하는 사람 모여라 깨끗한 산과 바다, 문화 유적지가 어우러진 맥주의 도시 중국 칭다오(청도)는 요즘 인기 상한가. 칭다오가 관광지로 주목 받는 이유는 아름다운 산과 해변·섬뿐 아니라 시내에는 여러 나라의 독특한 문화를 담은 건물들, 다양한 쇼핑거리와 저렴한 해산물 그리고 무엇보다 빠질 수 없는 칭다오 맥주까지 세계적인 여행지로서 모든 조건을 갖춘 곳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대표 맥주 칭다오 맥주의 고장인 칭다오는 동아시아에서 가장 큰 해수욕장인 제1해수욕장에서 물놀이뿐 아니라 칭다오의 상징인 잔교를 걸으며 산책도 하고 저녁엔 시원한 칭다오 맥주 한 잔으로 일상을 잊고 쉬기에 그만이다. 특히 매년 8월에 열리는 ‘칭다오 맥주 페스티벌’은 전 세계 20개 유명 맥주 회사들이 참가하는 세계 최대 맥주축제.10일이 넘는 축제 기간동안 온 도시에 맥주 파티가 열려 우리를 더욱 즐겁게 한다. 올해는 8월13일에 축제가 시작된다. # 세계 7대 불가사의 앙코르와트로 떠나는 사원여행 영화 툼레이더의 촬영 장소로 잘 알려진 앙코르와트는 동남아 전체를 호령했던 크메르 제국의 수도인 시엠리아프, 그리고 그 속에 남아있는 수천 개의 사원들을 가리킨다. 신을 위해 지어진 신전인 이곳은 분명 인간의 세상이 아닌, 신의 세상이다. 유럽과 동남아 여행을 한 사람이라면 이번 여름 꼭 앙코르와트에서 ‘신’들을 느끼며 세속의 때를 벗기를 권한다. 앙코르와트 유적군 외에도 시엠리아프 시내에 있는 올드(old)마켓에서는 현지인들의 생활상을 엿보고 저렴한 기념품도 살 수 있다. 요즘 젊은이들이 가장 관심이 있는 여행지 중 하나이다. # 유토피아 ‘샹그릴라’를 찾아서 영국의 작가 젬스 힐턴의 베스트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의 배경이 되었던 중국 윈난성. 태곳적 웅장한 아름다움을 그대로 간직한 ‘실존하는 유토피아’라고 불린다. 미얀마, 베트남, 라오스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윈난성에는 티베트, 리수족, 라오족 등 약 26개 소수 민족이 살고 있다. 이들이 함께 만들어 가고 있는 독특한 전통과 풍습도 전세계 여행객들이 운남성을 찾게 하고 있다. 윈난성의 대표 도시인 다리와 리장에는 마치 수천년전으로 돌아간 듯한 고성이 그대로 간직되어 있고, 특히 윈난성의 쿤밍은 세계 배낭 여행자들이 모여 서로 정보를 교환하고 같이 여행을 떠나는 곳으로 변신하고 있다.
  • [’서울신문 102년-코주부서 대추씨까지] 풍자·해학·익살로 세상을 뒤흔든 ‘4컷’

    [’서울신문 102년-코주부서 대추씨까지] 풍자·해학·익살로 세상을 뒤흔든 ‘4컷’

    4개의 창문으로 세상을 다 들여다볼 수 있을까. 그것이 불가하지 않다고 서울신문의 4컷만화는 반세기가 넘게 웅변하고 있다. 서울신문은 전쟁 중이던 1952년 6월17일 ‘코주부’란 제목으로 4컷만화 연재를 시작한다. 이것이 난난이(정운경 화백)→너털주사(신동헌)→애비씨(김대영)→까투리여사(윤영옥)로 이어졌으며,94년부터 지금까지 조기영 화백의 ‘대추씨’가 4컷의 역사를 계승하고 있다. 익살스러운 캐릭터와 간결한 그림의 4컷만화는, 글로 쓰는 기사보다 가벼워 보일지 몰라도 속살에서 배어나오는 특유의 촌철살인은 기사의 그것을 능가한다. 이것이 4컷만화의 매력이다. 복잡다단한 세상을 한 움큼의 신문으로 소화시켜야 하는 독자들은, 매일 아침 4컷만화에 먼저 눈길을 돌림으로써 ‘소화불량’을 피하는 지혜를 발휘해온 것이다. 73년 7월1일자 애비씨는 4컷만화의 위력을 보여주는 전형이라 할 만하다. 신문을 통해 불국사가 복원됐다는 소식을 접한 남편은 아내에게 불국사로 결혼기념일 여행을 가자고 하려다 비가 새는 방 안에서 아내가 처량하게 그릇을 받쳐놓고 있는 장면을 보고는 “날이 개면 (천장을) 틀림없이 복원하리다.”라고 멋쩍게 말한다. 김대영 화백은 ‘불국사 복원’이란 거창한 뉴스의 이면에 서민들의 생활고가 가려져 있음을 꼬집고 있는데, 이 각박한 메시지가 고도의 페이소스를 통해 긴 여운을 남기며 전달된다. 불과 4개의 창에 이 모든 단면들을 담아낼 수 있다는 사실이 경이롭다.4컷만화는 특유의 촌철살인 덕분에 종종 필화사건에 연루되기도 했다. 까투리여사는 72년 6월19일자에 당시 전국의 농민들에게 큰 피해를 입힌 농가소득 향상을 위한 농림당국의 특수 농산물 생산권장 정책을 꼬집었는데, 이것이 새마을운동을 비판하는 것으로 오해돼 5년 동안 만화가 중단되는 고초를 겪는다. 조기영 화백은 저마다 튀지 못해 안달인 세류에 휩쓸리지 않고 고전적인 4컷만화의 컨셉트를 고수하고 있다. 지난달 10일자 대추씨는 월드컵 열풍이 일상사에 미치는 영향을 누구나 예상할 법한 ‘기승전결’로 설명하고 있다. 맘에 맞는 친구처럼 자분자분한 친근감을 잃지 않는 한, 독자들은 4컷만화에 길들여진 중독성을 끊어내기 힘들 것이다. 4컷만화의 장수 비결은 지루함을 느끼기엔 너무 짧고, 싱겁다고 하기엔 너무 긴 분량에 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래도 워낙 변화무쌍한 세상인지라 4컷만화가 느닷없이 ‘성형수술’을 하고 나타나는 건 아닌지 늘 불안한 마음을 떨칠 수 없다. 그것은 어느날 갑자기 랩이 노래가 되고 브레이크 댄스가 춤이 되는 것을 보고 느꼈던 관성의 혼란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코주부 4단만화 첫 연재 서울신문은 전쟁 중이던 1952년 6월17일 ‘코주부’란 제목으로 4컷만화 연재를 시작한다. 이것이 난난이(정운경 화백)→너털주사(신동헌)→애비씨(김대영)→까투리여사(윤영옥)로 이어졌으며,94년부터 지금까지 조기영 화백의 ‘대추씨’가 4컷의 역사를 계승하고 있다. ■ 필화 겪은 까투리 여사 70년대 초 전국의 농민들에게 큰 피해를 입힌 농가 소득향상을 위한 농림당국의 특수 농산물 생산 권장 정책을 비판한 만화가 그 무렵 막 시작된 새마을운동 비난으로 오해를 받아 작가는 파면되고 만화는 중단됐다. 5년 후에 복직과 함께 연재가 계속 됐다. <72년 6월 19일자> ■ 대추씨 고전적 컨셉트 고수 조기영 화백은 저마다 튀지 못해 안달인 세류에 휩쓸리지 않고 고전적인 4컷만화의 컨셉트를 고수하고 있다. 지난달 10일자 대추씨는 월드컵 열풍이 일상사에 미치는 영향을 누구나 예상할 법한 ‘기승전결’로 설명하고 있다. ■ 애비씨 서민애환 그려 신문을 통해 불국사가 복원됐다는 소식을 접한 남편은 아내에게 불국사로 결혼기념일 여행을 가자고 하려다 비가 새는 방 안에서 아내가 처량하게 그릇을 받쳐놓고 있는 장면을 보고는 “날이 개면 (천장을) 틀림없이 복원하리다.”라고 멋쩍게 말한다. 김대영 화백은 ‘불국사 복원’이란 거창한 뉴스의 이면에 서민들의 생활고가 가려져 있음을 꼬집고 있다.
  • [‘서울신문 102년-서울신문의 어제] 겨레와 동고동락 서울신문의 102년

    [‘서울신문 102년-서울신문의 어제] 겨레와 동고동락 서울신문의 102년

    서울신문이 겪은 정치적 격랑은 100년 역사의 신문이 쌓아온 문화적 의미마저 짓눌러왔다.‘총독부 기관지’‘군사정권 선전도구’라는 어두운 역사의 그늘에 가려 서울신문이 한 세기 역사속에 남긴 문화사적 족적마저 축소되고 폄하되어온 것이다. 그러나 서울신문은, 창간 초 대한매일신보 시절은 물론 일제 강점기 매일신보, 광복 후 서울신문으로 신문의 맥을 이어오면서 한국 근현대문화사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신춘문예 효시가 된 소설 현상공모를 처음 도입했는가 하면 춘원 이광수의 ‘무정’, 정비석의 ‘자유부인’, 김주영의 ‘객주’ 등 연재소설들은 한국문학사의 자양분이 되었다. 또 한글판 서울신문 발간과 한글전용 단행, 최초의 시사종합 월간지인 ‘신천지’와 시사주간지 ‘주간 서울’ 등을 창간하며 한국 언론역사에 다양성을 부여했다.1904년 창간 이후 격동의 한 세기를 넘기며 대한매일신보, 매일신보, 서울신문이 우리 근현대 문화사에 남긴 족적과 의미를 살펴본다. 매일신보는 광복과 함께 총독부 기관지란 굴레를 벗고 민족의 공기(公器) 서울신문으로 거듭태어나게 된다. 한국 전쟁 발발전까지 특히 눈에 띄는 행보는 ‘신천지’와 ‘주간서울’ 창간이다. 훗날 한국 잡지사의 빛나는 한 페이지로 남게 되는 신천지는 서울신문과 짝을 이루는 월간 종합시사지로 1946년 2월 창간됐다. 신천지는 창간이래 좌우익 논쟁과 정부수립을 전후한 혼란기에서 6·25 및 휴전 이후에 이르기까지 만 9년동안 통권 68호를 기록했다. 광복 후 6개월동안 100여종의 잡지가 쏟아져나왔으나 창간호가 곧 종간호가 되거나 기껏해야 5호를 넘기기 어려웠던 당시에 신천지는 ‘잡지 전장(戰場)의 유일한 생존자’로 불렸다. 신천지가 선택한 국판 크기는 뒷날 우리나라 월간지의 대표적 판형이 되며,200여쪽에 이르는 분량도 100쪽 안팎의 다른 잡지를 압도했다. 1948년 10월엔 국내 최초의 시사주간지 ‘주간 서울’을 창간했다. 빈약한 타블로이드 판형의 지면에 정치 기사 일변도였던 일간지들이 일반 독자의 수요를 고루 충족시켜주지 못하던 상황에서 다양한 분야의 관심거리를 다루었던 주간서울은 창간 즉시 큰 인기를 모았다. 악화일로를 걷던 식량사정을 파헤친 ‘국민의 식생활은 안도되는가’, 반민특위 재판으로 서리를 맞은 육당과 춘원의 저서 회수 소동, 국내 음악계 동향과 각종 취미오락 등 각계 각층의 독자 취향을 염두에 두었다. 서울신문은 이후에도 연예주간지 시대를 연 ‘선데이서울’ 창간, 고급 지성지 ‘서울평론 창간’, 최초의 TV연예주간지 ‘TV가이드’, 계간 예술비평 전문지 ‘예술과 비평’ 등 대중과 고급을 아우르며 잡지 트렌드 메이커로서 역할을 해냈다. 잡지 발간과 함께 단행본 출판에도 관심을 기울였는데, 광복과 전쟁의 혼란기 전단지 수준의 정치선전물이 주류를 이루었던 상황에서 서울신문 출판물은 단연 돋보였다. 신채호의 ‘단재저작집’과 ‘조선사’, 정인보의 ‘조선사연구’(상하)와 ‘오천년간 조선의 얼’, 홍기문의 ‘훈민정음 발달사’와 ‘조선문법연구’ 등이 대표적이며, 박은식의 역사서도 여러권 출판했다. 연재소설의 맥은 서울신문에서도 꾸준히 이어졌다.1940년대의 암울한 생활고를 그린 주요섭의 ‘대학교수와 모리배’, 무능한 지식인 남편과 자유분방한 아내 사이에 빚어지는 갈등을 그린 최상덕의 ‘새벽’ 등이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특히 1954년 1월1일부터 8월6일까지 연재됐던 정비석의 ‘자유부인’은 전무후무한 화제와 논란을 불렀다. 완고한 학자 남편과 가정에 권태를 느껴 뭇남성들과 다방, 댄스홀을 드나드는 여주인공의 대담한 행태는 장안의 화제로 번져갔고, 자유부인이란 단어는 곧 바람난 주부의 대명사가 되었다. 사회적 파장도 컸다. 특히 교수사회가 발끈했다. 당시 서울대 법대 황산덕 교수는 대학신문에 ‘작가에게 드리는 글’을 통해 비판의 날을 세우자 작가는 서울신문을 통해 이를 조목조목 반박했고, 황 교수 또한 서울신문 기고를 통해 재반박했다. 서울신문은 논쟁의 당사자에게 공정한 기회를 준다는 차원에서 황 교수의 재반박 기고를 실어 독자들과 문화계로부터 긍정적 평가를 받기도 했다. 이후에도 홍순엽 변호사의 ‘자유부인 작가를 변호함’이란 글, 문학평론가 백철의 ‘문학과 사회와의 관계-자유부인 논의와 관련하여’란 평론이 나오는 등 ‘자유부인’발 문화적 열기는 좀처럼 식을 줄 몰랐다. 1979년 6월부터 1984년 2월까지 연재한 김주영의 ‘객주’는 서울신문 최장기 연재소설로 ‘자유부인’이래 가장 많은 독자를 모았다. 이 소설은 신문소설사뿐 아니라 한국 문단에 있어서 역사소설의 새 지평을 연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조선 후기를 시공간적 배경으로 보부상을 비롯한 백정·기생·천민의 사랑과 애환이 장강처럼 굽이쳐 흐르는 소설이다. 문학 분야와 함께 서울신문이 특히 높은 비중을 두었던 게 한글문화 보급이었다.1956년 10월18일 나온 ‘한글판 서울신문’은 언론사 및 국어사에 일대 사건이었다. 기존의 서울신문과 병행, 석간으로 선보인 한글 전용 지면은 외솔 최현배를 중심으로 한 한글학계는 물론 독자로부터 폭넓은 지지를 받았다. 이승만 대통령은 특별담화를 통해 한글신문 탄생의 기쁨을 표시하기도 했다. 한글판 신문을 별도로 발행했던 서울신문은 1968년 11월22일 전지면의 한글 전용을 단행했다. 국내 일간지로는 유일한 한글 전용이었다. 이후 1970년 1월1일 ‘온국민이 모든 분야에서 한글만 쓰도록 하라’는 대통령 담화가 발표되었고, 국한문 혼용체와 문어체를 고수하던 각 신문사도 한글 전용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신문협회도 한글 전용을 위한 연구기구를 설치, 운영했다. 결과적으로 서울신문은 신문계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의 한글문화 보급과 정착에 촉매 역할을 한 셈이 됐다.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우리나라 최초·최고령 프로 마술사 이흥선 옹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우리나라 최초·최고령 프로 마술사 이흥선 옹

    올리버 스톤이 감독한 영화 ‘알렉산더’가 생각난다. 유럽과 아프리카, 아시아 등 3개 대륙을 정복하고 최초로 동·서양 화합을 꿈꾸는 가장 위대한 정복자, 역사적 ‘대왕’의 위용을 그렸다.‘알렉산더’라는 이름이 낯설지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25년 전 어느날. 서울 중구 명동에 위치한 극장식 레스토랑 ‘무랑루즈’. 동안(童顔)의 한 50대 남자가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무대 위에 올랐다. 주위는 순간 침묵으로 변했다. 잠시 후 그가 쓴 모자에서 비둘기가 튀어나오더니 하늘로 계속 날아오른다. 이어 입안에서 하얀 종이를 내뱉더니 곧 국수가락으로 변해버린다. 또 객석으로 내던져진 낚싯줄마다 금붕어가 연이어 딸려나온다. 기립박수는 그칠 줄 몰랐다. 이를 지켜보던 ‘눈물젖은 두만강’의 김정구씨는 놀라 벌어진 입을 억지로 다물며 “당신은 대왕이오, 대왕. 세계를 정복한 알렉산더처럼 말이오.”라고 했다. 이후 이 남자는 ‘알렉산더 리’로 통했다. 그랬다. 마술계의 대왕, 살아있는 마술의 전설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프로 마술사이며 현역 최고령 마술가이기도 하다.‘알렉산더 리’, 대중들에겐 이흥선(83)씨로 잘 알려져 있다.26세에 마술계에 입문했으니 말 그대로 60년 성상을 ‘마술 인생’이라는 파란만장하고 독특한 삶을 살아왔다. 더욱 흥미있는 것은 원래 선수급 수준의 기계체조를 했다는 사실. 서울 용산에서 출생한 그는 어릴 적부터 철봉에 매달리고 있어야 더 행복해질 정도였다. 이후 체조, 물구나무서기, 고난도의 텀블링 등을 척척 해냈다. 나중에는 차력까지 배웠다.‘근육짱’으로 소문났음은 당연했다. ●새달 부산 국제매직페스티벌 심사위원 그래서 일제 때 유명했던 신광·동양·대륙서커스단에서 앞다투어 데려가 청년시절부터 전국을 돌며 유랑생활을 하게 된다. 가설극장에서 고 서영춘씨와 배삼룡씨 등 여러 희극인들과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감동의 공연도 자주 펼쳤다. 서커스와 마술, 만담까지 자유자재로 구사했던 이씨는 가는 곳마다 ‘인기짱’이었다. 춥고 배고팠던 암울했던 시절의 온갖 시름을 잊게 해줬다. 세월이 지난 요즘, 어느 정도 쉴 법도 한데 아니다. 팔순 중반의 나이를 무색케 할 정도로 여전히 정열을 쏟아낸다. 노인들과 불우이웃이 있는 곳, 어디든 달려가 흥미진진한 마술로 즐거움을 선사한다. 또 해마다 어린이날이면 마술공연을 통해 어린이들에게 기쁨과 희망을 전해준다. 지난해에는 일본에 초청돼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젊은이 못지않은 기발한 마술연기로 기립박수를 받았다. 어디 이뿐이랴. 김정우와 최현우 등 차세대 마술사들을 키워내는 것도 중요하게 여긴다.‘앉으나 서나 마술생각’에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한다. 작은 성냥갑 하나라도 그의 손이 닿는 순간 척척 마술도구로 변해버려 ‘요술손’이라는 별명 또한 여전하다. 오는 8월에는 특별한 무대를 갖는다.10일부터 5일 동안 부산에서 열리는 국제매직페스티벌에서 심사위원을 맡은 것. 아울러 여기에서 신인 마술가들을 위한 무대, 즉 지금까지 공개되지 않았던 새로운 마술로 한 수 지도할 예정이다. 지금까지 그의 손에서 개발된 마술만 어림잡아 2000가지가 넘는다. 이래저래 응용된 것까지 합하면 1만여가지나 된다. 이같은 마술인생의 흔적은 그의 집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비둘기 15마리가 이리저리 날아다니고 온갖 마술도구가 구석구석 널려 있어 흡사 ‘매직박물관’을 연상케 한다. ●지금까지 1만여가지 개발… 김정우·최현우씨 등 조련 지난주 서울 홍익대 근처의 ‘알렉산더 매직바’에서 이씨를 만났다.‘알렉선더 리’의 이름을 따서 그렇게 지었다. 이씨는 이곳에 자주 들러 팬들에게 서비스차원에서 간단한 마술을 선보이곤 한다. 먼저 근황을 물었다.“가만히 있을 수 있나. 이것저것 마술기계를 만드느라 끝이 없지 뭐.”라고 했다. 옆에 있던 마술감독이자 이씨의 매니저인 김준오씨는 “제자들이 사용하다 망가진 마술도구를 고쳐주기도 해요.”라고 거들었다. 80대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젊게 보인다고 하자 “근심 걱정 없어요. 밤낮 그저 웃고 명랑하게 지내지 뭐. 그게 건강비결이요.”라고 하며 연신 웃는다. 이씨는 26세에 마술을 처음 접했다. 서커스단 일로 평소 알고 지내던 타이완의 마술사 ‘미스터 엑스’가 하루는 다급하게 찾아왔다. 숙소에서 잠을 자던 중 누가 돈을 훔쳐가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됐다는 것. 딱하게 여긴 이씨는 미스터 엑스를 자신의 집에서 잠시 동안 지내게 했다. 그러던 중 하루는 미스터 엑스가 이씨에게 “차력이나 체조는 나이가 들면 못합니다. 그러니 나이 먹고도 할 수 있는 마술을 배우십시오.”라고 하면서 마술을 가르쳐준다. 비둘기 날리는 것 등 몇 가지 기술을 전수받은 이씨는 자료 등을 열심히 뒤져가며 여러 가지 응용기술을 터득했다. “당시 마술을 가끔씩 하는 사람이 있긴 했어요. 간단한 소품정도였지요. 하지만 비둘기가 여기저기에서 나오고, 입에서 불이 뿜어나오고, 또 사람이 공중에 붕붕 뜨니까 무척 좋아했어요. 또 깡통에서 담배 꺼내기, 종이를 찢어 국수가락 만들기 등을 막 했지요.” 6·25전쟁 때에는 마술 덕분에 생명을 건지기도 했다. 피란길 무주경찰서에서 잠시 지낼 때 갑자기 인민군의 공격을 받게 됐다. 그런데 경찰관은 불과 5∼6명밖에 없었다. 이씨는 경찰서에 있는 모자랑 옷가지를 다 모아놓고 이리저리 움직이는 마술을 부리며 수십명이 있는 것처럼 위장했다. 그랬더니 인민군들은 경찰관 숫자가 많은 것으로 착각해 다른 곳으로 향했다. 이씨는 해방 전 유랑극단과 함께 평안도와 함경도까지 공연을 한 경험이 있어 인민군들과 맞닥뜨리면 이를 내세워 죽을 고비에서 살아남곤 했다. ●“한번 사용한 마술은 두번 다시 안해” 전쟁이 끝나면서 이씨는 본격적인 마술사의 인생을 걷는다. 때마침 가수 김정구씨, 한복남씨 등과 극단이나 호텔에서 공연을 자주 하게 된다. 그때마다 연예인들은 이씨의 마술솜씨에 감탄사를 연발했다. 이는 방송 출연을 자주하는 데 도움이 됐고 유일한 프로 마술사로 독주하게 된다. 하룻밤 사이에 많게는 열군데씩 밤무대를 누볐고 일주일에 1∼2회 고정 출연하는 TV마술쇼를 맡기도 했다. 빈손에서 비둘기 10여마리가 나오고 네모난 도구속에 사람을 집어넣어 부분절단하는 아찔한 장면은 시청자들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이씨는 특히 80년대초 외손자 김정우와 함께 변웅전씨가 진행하는 ‘TV 묘기 대행진’에 출연해 눈길을 끌었다. 현재 김정우는 최현우와 함께 이씨의 뒤를 잇는 대표적 수제자로서 활약하고 있다. 이씨의 마술철학은 한번 사용한 마술은 두번 이상 하지 않는다는 것. 항상 새로운 것을 선보여야 한다는 고집으로 일관했다. 롯데월드에서 7,8년 동안 최장수 고정 출연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 덕분이다. 늘 웃음을 잃지 않는 노(老) 마술사에게 즉석 묘기를 주문했다. 사진촬영을 위해 흔쾌히 의상까지 갈아입는다. 잠시 손으로 뭔가 만지작 하더니 눈깜짝할 사이에 모자 속에서 비둘기 한마리가 푸드득 날아간다. 방안을 한바퀴 휘 돌더니 이내 이씨의 어깨에 사뿐이 앉는 비둘기. 그에게 있어서 마술은 인생의 전부였음이 느껴진다. 평생을 거의 마술에 바쳤고 전쟁통에는 마술로 목숨을 건졌다. 요즘에는 우리나라 마술발전을 위해 잠시도 쉬지 않는다. 문득 마술이란 무엇인지 물었다.“뭐니뭐니 해도 잡념을 없애주지요. 사람이 잡념이 없으면 즐겁잖아요. 마술은 아이디어와 노력이 뒤따라야 하기 때문에 어린이들에게는 꿈과 희망을 선사해요.IQ도 높여주고….” 또 마술기계를 만드는 데 중요한 것은 재료가 아니라 창의력이라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이씨는 “벙어리학교나, 눈감은 맹인 앞에서도 마술공연을 여러번 했는데 그때마다 박수소리가 요란했다.”며 크게 웃는다. 주말매거진 We팀장 k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24년 서울 용산 출생. ▲40년 근민체육단 결성. 이후 신광·천마·금강·대륙·동양·동춘서커스단 공연. ▲49년 마술계 입문. 비둘기 마술을 국내 처음 선보임. 이후 기계체조와 마술, 만담 등으로 매년 전국 순회공연. ▲64년 TBC방송 개국기념 마술쇼 출연. 이후 ‘묘기 대행진’ ‘희한한 세상’ 등 TV 마술프로그램 단골출연. ▲80년 ‘알렉산더 리’라는 별명을 얻음. ▲96년 서울에 최초의 마술 상설공연장 ‘알렉산더 매직바’ 개설. ▲2001∼05년 대한민국 매직페스티벌 심사위원 및 특별출연. ▲04년 한국마술협회 공로상 수상 ▲05년 서울랜드마술대회 심사위원, 일본 특별 초청공연 참가. ▲06년 5월 서울국제매직페스티벌 초청공연 참가. ▲기타 지금까지 주특기만 2000여가지 개발.
  • [안보리 對北결의문 채택] 5자회담 카드 급부상

    유엔 안보리의 대북 결의안이 국제사회 힘겨루기 끝에 ‘15대0’으로 채택됐다. 북한 미사일뿐 아니라 핵문제도 안보리 차원에선 처음으로 심도 있게 언급돼 북한 문제의 안보리 차원 해결이라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게 됐다. 결의안은 일본 주도의 초안보다 누그러진 것이지만,1950년 한국전쟁 당시 유엔 안보리의 82·83호 결의안 이후 가장 강력한 대북 경고를 담고 있다. 특히 중·러가 처음으로 결의안에 찬성표를 던졌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의미를 갖는다. 지난 93년 북한이 핵비확산조약(NPT) 탈퇴시 중국·파키스탄의 기권으로 채택된 안보리 결의안 825호와 달리, 이번에는 만장 일치로 채택됐다. ●최초의 만장일치 북핵 결의안 유엔헌장 7장을 삭제하긴 했으나 행동 조항에 담긴 내용은 강력한 메시지로 채워져 있다.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프로그램 포기를 언급하고,‘조건 없는’ 6자회담 복귀를 촉구했다.‘조건 없는’이란 표현은 중국측이 북한을 옹호하며 주장해 온 수준을 넘어섰다는 평가다. 북한이 이날 외무성 성명에서 그동안 담아왔던 ‘비핵화 의지’를 아예 언급하지 않은 것은 이같은 기류에 대한 반발로 보인다.6자 회담이든, 어떤 회담이든 대화국면은 기대하지 말라는 뜻이다. 특히 북한이 미사일 추가발사나 핵실험 등 상황악화 조치를 취할 경우 국제사회는 더 강하게 북한을 압박할 것으로 보인다. 존 볼턴 미국 유엔 대사는 표결 직후 “북한이 다른 길을 택할 경우 미국과 유엔 회원국은 어느 때라도 추가 대응을 위해 안보리로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유엔헌장 7장의 부활은 물론, 군사적 조치를 복안에 둔 발언이란 분석이다. 북한이 국제사회의 압력에 굴복하는 모양새, 즉 현시점에서 6자회담에 나올 가능성은 거의 없다. 남북관계는 장관급회담 결렬 이후 더욱 경색될 것 같다. 문제는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사업 등의 남북경협에 차질을 빚을지 여부다. 이종석 통일부 장관은 “민간기업들이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중장기적 사업에 대해 정부가 손을 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지만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본격 탄력받는 5자회담 정부가 6자회담 재개에 주력하겠다고는 하지만 현실적으론 북한을 뺀 한·미·일·중·러 등 5개국이 참가하는 5자회담 쪽에 초점이 모아지는 분위기다. 북한을 자극한다면서 5자회담을 계속 거부해온 중국은 15일 베이징을 방문한 이규형 외교부 차관에게 유보적인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두차례나 체면을 구긴 중국이 5자회담 수용쪽으로 방향을 틀지 않았겠느냐는 관측이다. 회담이 열리게 되면 오는 26일부터 말레이시아에서 열리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 5자 외무장관 회담형식으로 열릴 가능성이 높다. 물론 참가국은 백남순 북한외무장관에게 참가를 요청하겠지만 북한은 이를 거부할 공산이 크다. 김수정기자 crystal@seoul.co.kr
  • ‘세계의 화약고’ 중동분쟁 구도

    레바논 사태로 부각된 중동분쟁의 뿌리는 1948년 영국을 주축으로 한 강대국들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이스라엘의 건국이다. 민족, 종교, 영토, 에너지 4가지 요인이 얽히고 설킨 중동은 ‘세계의 화약고’란 오명을 얻게 됐다. 유엔은 1947년 11월 팔레스타인 지역 56%를 이스라엘에,42%를 아랍국가에 할당했다. 팔레스타인 지역의 대부분을 소유하던 아랍인들은 이 분할안을 거부했으나 이듬해 5월14일 이스라일이 건국됐다. ●1·2·3·4차 중동전 이집트, 시리아, 레바논, 이라크, 요르단 아랍 5개국은 일방적 독립을 선포한 이스라엘을 공격해 1차 중동전이 발발했다. 결과는 강대국의 지원을 받은 이스라엘의 승리였다. 이 전쟁으로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지역 78%를 장악했다. 일명 수에즈 전쟁이라 불리는 2차 중동전은 56년 이집트 나세르 대통령이 수에즈 운하를 국유화하고 이스라엘 선박의 운하 통과를 금지하면서 발발했다. 이스라엘은 영국, 프랑스 연합군과 함께 전쟁을 일으켰고 이집트는 패했다. 3차 중동전은 6일전쟁으로 불린다.67년 전쟁은 이스라엘 공군이 이집트 공군기지를 기습하면서 시작됐다. 승리한 이스라엘은 예루살렘 구(舊)시가, 가자지구, 시나이 반도, 시리아의 골란 고원, 요르단 강 서안 지역을 차지한다. 4차 중동전은 6일전쟁으로 영토를 잃은 이집트와 시리아가 이스라엘을 공격해 1973년 10월 발생했다. 역시 이스라엘이 이겼으나 아랍 산유국들이 미국과 서방에 원유 공급을 제한해 1차 오일 쇼크가 발생한다. 팔레스타인인들은 이스라엘 건국 이후 22년 만에 모든 땅을 빼앗기고, 난민 신세로 전락한다. 이 과정에서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가 조직된다.PLO의 투쟁은 서방 언론으로부터 ‘테러’로 낙인찍힌다.1988년 태동한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는 이스라엘의 존재를 부인하면서 모든 영토의 회복을 주장했다. ●미국의 일방적인 정책이 중동의 불씨 이스라엘이 지난달 25일 자국 병사의 납치를 문제 삼아 팔레스타인을 공격한 것은 단순한 ‘샬리트 상병 구하기’가 아니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장악한 하마스를 제거하기 위함이란 분석이 일반적이다. 민병조직을 갖고 레바논 제도 정치권에 진출한 헤즈볼라는 이스라엘을 파괴해야 할 국가로 보고 있다. 레바논 침공도 단순 납치병 구출이 아니라 헤즈볼라 분쇄작전인 셈이다. 이스라엘 보호와 원유 자원 확보를 근간으로 삼고 있는 미국의 일방적인 외교정책도 중동의 불씨를 키우고 있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중동戰 막아라” 국제사회 비상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14일 긴급 소집됐다. 상황이 이스라엘과 아랍국가들의 전면전으로 치닫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이스라엘은 자국 병사 2명을 납치한 시아파 무장조직 헤즈볼라를 소탕한다는 명분으로 레바논 남부에서 1996년 이후 최대 규모의 군사작전을 사흘째 이어갔다. 해상봉쇄도 계속됐다. 로이터통신은 이날 레바논에서 3명이 사망, 지난 12일 이스라엘군 공격이 시작된 뒤 레바논인 63명이 숨지고 최소 165명이 다쳤다고 전했다. 헤즈볼라도 이날 이스라엘 북부에 로켓 공격으로 맞섰으나 인명피해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다음 목표는 시리아와 이란? 북한 미사일과 이란 핵문제에 발목이 잡혀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개입을 주저해 왔던 안보리도 더 이상 사태를 방관할 수 없게 됐다.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미국과 아랍권의 정면대결 양상으로 전개될 경우 정세불안이 심화되면서 유가가 폭등, 세계경제의 동반추락도 초래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은 이미 조건부 개입 의사를 밝힌 상황이다.그는 “이스라엘이 헤즈볼라 지원을 트집잡아 시리아를 공격한다면 이슬람 국가들은 힘을 합쳐 맞설 것”이라고 경고했다고 관영 IRNA통신이 전했다. 그러나 이스라엘군은 “(적대국인)시리아와 이란이 레바논 남부에서 헤즈볼라에 대한 지원을 늘리고 있다.”며 전선을 시리아로 확대할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G8 정상회담 주요의제로 유엔과 유럽연합 등 국제사회는 특사를 파견해 막후 중재에 나섰다.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은 3명의 사절단을 보내 아랍연맹(AL) 외무장관들을 만난 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레바논, 시리아를 잇따라 방문할 계획이라고 밝혔다.하비에르 솔라나 유럽연합(EU) 외교정책 집행위원도 다음주 중동의 관련국들을 방문한다. 15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리는 서방선진 8개국(G8) 정상회의에서도 기존 의제와 별도로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 문제가 주요 의제로 논의될 전망이라고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가 전했다.●레바논 “미국이 이스라엘에 공격중단 압력 약속”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14일 푸아드 시니오라 레바논 총리에게 전화를 걸어 이스라엘에 레바논에 대한 공격중단 압력을 넣기로 약속했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부시 대통령은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과도 통화를 갖고 팔레스타인과 레바논 사태의 해법을 논의했지만 의견접근에는 실패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동 문제를 바라보는 미국과 유럽국가의 견해차도 노출되고 있다. 부시 대통령이 이날 헤즈볼라와 하마스를 가리켜 “평화의 진전을 원치 않는 테러리스트 집단”이라며 이스라엘을 두둔한 반면, 유럽국가들은 이스라엘의 행위를 강하게 비난하고 나선 것이다.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은 이날 연례 TV회견에서 “이스라엘의 대응은 전적으로 균형잡히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인질 억류는 잘못됐지만 군사력을 동원해 보복하는 것도 용납되기 힘들다.”고 일침을 놓았다. 마시모 달레마 이탈리아 외무장관도 “부적절한 전쟁행위”라며 이스라엘을 비난했다.이석우기자 jun88@seoul.co.kr
  • 이軍 레바논 침공… 중동 전면전 ‘암운’

    이軍 레바논 침공… 중동 전면전 ‘암운’

    무장단체의 자국 병사 납치로 촉발된 이스라엘의 무력 보복이 ‘두개의 전쟁’으로 확산되고 있다. 지난 2000년 5월 철군한 지 6년 만에 레바논을 침공한 이스라엘군은 13일 레바논에 대한 육해공 봉쇄에 착수하는 한편, 시리아 접경지에 주둔해 있던 레바논 공군기지까지 타격해 전면전 확전 우려를 낳았다.1973년 4차 중동전쟁 이후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스라엘은 이날 군함을 레바논 영해로 진입시킨 뒤 항구들에 대한 봉쇄 조치에 들어갔다. 또 시리아 국경과 맞붙은 베카 계곡의 레바논 공군기지마저 폭격했다. 침공 이틀 만에 이스라엘이 레바논군을 직접 공격, 전면전을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내보인 것이다. 수도 베이루트 국제공항 공습에 이어 항구마저 봉쇄한 것은 사실상 레바논 경제를 무력화시키려는 조치로 풀이된다. 이 지역에서 전운이 고조되면서 국제 원유 가격은 이날 사상 최고가를 기록했다. 뉴욕상업거래소(NYMEX) 전자거래에서 8월 인도분 경질유는 94센트가 뛴 75.89달러를 기록했다. 지난 주말 폐장 때는 75.78달러였다. 지난달 28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공습으로 포문을 연 이스라엘군은 무장단체 하마스에 대한 공세를 늦추지 않고 있다. 레바논 남부 지역에도 지상군을 투입해 시아파 민병대 헤즈볼라와 교전하고 있다. 현지 언론은 이스라엘이 육·해·공군을 모두 투입했고 예비군에 대한 총동원 명령도 내렸다고 전했다. 문제는 ‘전선 확대’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헤즈볼라는 레바논뿐만 아니라 시리아로부터도 무기와 자금을 지원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시리아는 이란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고 이란은 또 팔레스타인 집권세력인 하마스와도 연대하고 있다.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은 평소 “이스라엘을 세계 지도에서 없애버리겠다.”고 공언해 왔다. 분석가들은 시리아와 이란이 개입하면 레바논 사태가 주변국과의 전쟁으로 비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이스라엘과 무장단체는 표면적으로는 각각 납치 병사 석방과 1만여명에 달하는 팔레스타인 재소자의 해방을 놓고 힘겨루기를 벌이고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슬람 무장단체를 초토화시킬 전략적 기회로, 무장단체는 전선 확대를 통해 이스라엘 무력의 분산을 노리고 있어 전쟁 위기를 해소하기란 쉽지 않다. 핵문제로 이란과 적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미국도 과거와 같은 중재력을 발휘하기 어렵다. 백악관은 헤즈볼라의 오랜 후원자인 이란에 레바논 납치 사태의 책임을 묻고 있다. 이틀간의 공습으로 어린이 8명 등 52명이 사망하고 103명이 부상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전했다. 헤즈볼라는 이스라엘 도시들에 대한 로켓 공격을 공언했다. 안동환기자 sunstory@seoul.co.kr
  • [문화마당] 바다와 나비/고운기 연세대 국문학 연구교수

    “아무도 그에게 수심을 일러준 일이 없기에/흰 나비는 도무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김기림은 그의 대표작 ‘바다와 나비’ 첫 연에 그렇게 썼다.1939년의 일이다. 일제 말기의 단말마적 비명이 횡행하는 거리에서, 이 여린 모더니즘 시인은 수심을 모르는 바다 같은 시대에 한 마리 흰 나비처럼 살았다. 도무지 무섭지 않은 것은 그만큼 용감해서가 아니라 무지의 겁 없음에 대한 탄식이다. 그러나 정작 그가 더욱 난감했던 것은 그로부터 10여년 후인 1940년대 말 남북분단 초기의 시절이었다. 1949년 여름 어느 날, 한때 함북 종성의 중학교 교사로 있을 때 가르친 제자 한 사람이 서울 혜화동의 집으로 그를 찾아온다. 이 제자는 해방 후 평양에서 김일성대학을 다니다, 그 체제가 싫어서, 아니 스승인 김기림을 꼭 만나보고 싶어서 단신 월남했다. 아무 연고도 없이 서울에 몸을 부린 이 딱한 제자에게 스승은 이렇게 말한다.“평양에서 그냥 살지, 여기는 무엇 하러 왔니. 서울에는 아무도 없다. 정지용도 젊은 축들한테 비판을 받는 형편이다.” 젊은 축들이란 보수 우익적인 색채를 띠고 해방 후 남쪽 문단을 차지한 일군의 문인들을 일컫는다. 해방 전 우리 문단의 중심축을 이루었고, 모더니즘 성향의 시를 쓰던 김기림과 정지용은, 어쩐 일인지, 해방 후에 좌익적인 문인으로 분류되어 있었다. 정작 좌익인 사람들은 대거 평양으로 몰려간 다음, 김기림과 정지용은 서울에 남아 후배들에게 내몰리며 곤고한 세월을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처지였지만, 알음알음으로 스승은 딱한 제자를 위해 직장을 마련해 준다. 중학교 선생 자리였다. 이 제자가 첫 월급을 타서 닭 한 마리를 사들고 혜화동 언저리 김기림의 집을 찾았을 때가 1950년 5월, 전쟁이 터지기 한 달 전이었던가 보다. 선생 몸 보신이라도 하시라는 당부의 말씀과 함께. 그리고 전쟁이 터졌고, 인민군이 서울을 점령한 다음, 제자는 스승의 안부가 걱정되어 다시 혜화동 집을 찾았는데, 이미 스승은 어디론가 끌려가고 없고, 부인만 혼자 남아 집을 지키고 있었다. 몸 보신 하시라 사다 드린 닭은 마당 한쪽 우리에 그냥 놀고 있었다. 알이라도 받아서 긴한 용처에 쓰려 했다는 부인의 말에 제자는 목이 메었을 뿐이고. 해방 후 우리 역사는 그렇게 갈리고 찢긴 세월의 퍼즐이다. 문인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아니 도리어 문인은 해방 후 분단의 역사를 가장 예민하게 느끼는 집단이다. 나비는 바다를 “청무우 밭인가 해서 내려갔다가는/어린 날개가 물결에 저려서/공주처럼 지쳐서 돌아온다.”(‘바다와 나비’ 2연)라고 쓰는 이들이다. 바다가 청무 밭으로 보이는 문인들에게 현실의 삶은 얼마나 고단한가. 그렇게 나뉘었던 남북의 문인이 한 자리에 모여보자고, 지난해 여름 남쪽의 문인들이 평양을 방문했다. 참여한 문인 각자가 300만원씩의 경비를 댔다. 그들이 결코 돈이 많아서는 아니었다.1년 원고료 수입을 합쳐보아야 300만원도 안 되는 이들이 그들 가운데는 수두룩했다. 그런데도 그 돈을 내고 평양을 갔다. 모임은 나름대로 성과를 거두어 남북 문인이 함께하는 단체를 만들자고 약속한 시점이 그때로부터 1년 후, 바로 이즈음이다. 이제 그 실무 작업을 한창 벌이고 있는데, 북한이 미사일을 쐈다. 남쪽 실무자들이 고민에 빠진 모양이다. 북쪽이 예정대로 응해줄지, 아니 그보다도, 나빠진 남쪽의 여론을 감안하면, 이대로 단체를 만들자고 협상을 벌이는 일이 눈 밖에 나지는 않을지. 남북을 잇는 문인들의 순수한 열정이 시절 모르는 철없는 짓으로 보이지나 않을지. 김기림의 ‘바다와 나비’는 이렇게 끝을 맺는다.“삼월 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거픈/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이 시리다.” 삼월에 무슨 꽃이 피겠는가. 초생달에 비친 허리가 시린 것이 어디 나비뿐이겠는가. 고운기 연세대 국문학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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