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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징용시설 세계유산 등재에 ‘친서’ 로비 나선 아베

    조선인 강제징용 현장이 포함된 산업시설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려는 일본이 전방위 외교 로비에 열을 올리고 있다. 등재 자격 논란이 들끓는 와중에 아베 신조 총리가 등재 심사를 맡은 관계국들에 친서까지 보내 지원을 호소하고 나섰다. 다음달 말 최종 심사를 앞두고 시비가 확산될 조짐을 보이자 총리가 작정하고 ‘등재 굳히기’에 팔소매를 걷어붙인 모양새다. 최근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산하 민간 자문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는 메이지(明治) 일본의 산업혁명 유산 23곳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하도록 유네스코에 권고했다. 23곳 중에는 나가사키조선소와 야하타제철소 등 태평양전쟁 중 조선인들이 강제 징용된 산업시설 7곳이 포함됐다. 일본의 등재 작업은 치밀하게 전개됐다. 문제의 산업시설들을 ‘산업 근대화의 유산’이란 허울을 씌워 등재 신청한 뒤 시비가 이어지자 그 유산 가치를 한·일 강제병합 이전까지로 한정 짓는다는 대응 논리를 들이댔다.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기 전에 들어선 시설인 만큼 강제 징용과는 별개로 봐야 한다는 아전인수(我田引水)식 주장이다. 전례로 봤을 때 ICOMOS의 등재 권고는 ‘다 된 밥’을 의미한다. 다음달 말에 있을 제39회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회의에서 최종 결정되는 공식적인 수순만 남겨 뒀다고 보면 된다. 일본 내부에서도 이는 기정사실로 굳어진 분위기다. 문제의 산업시설이 있는 섬 주변으로 내국인 관광객들이 연일 몰려들고 있다는 소식이다. 우리 정부는 뒤늦게야 수습에 나서는 척하고 있다. 두 나라 외교 당국자가 조만간 만나 세계유산 등재 시 징용 사실 기재 등의 쟁점을 협의해 보겠다고 한다. 지금 와서 승산 있는 얘기가 아닐 게 뻔하다. 이번 등재 건은 갑자기 불거지지 않았다. 일본 정부가 2012년부터 등재를 추진하고 있다는 사실은 알려져 있었다. 이 지경이 되도록 외교부는 뭘 했는지 통탄스러울 따름이다. ‘뒷북 외교’를 들먹이는 것도 입이 아프다. 등재를 없었던 일로 돌릴 수 없다면 남은 카드는 하나다. 유대인 학살 현장인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처럼 일본 징용시설도 ‘부(負)의 유산’으로 등재시켜야 한다. 반인간적 범죄 행위를 상징하는 반면교사의 유산으로 남겨야 한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옷 벗을 각오로 이번 등재 건에 매달려야 할 것이다.
  • [현장 행정] 인생사 들으며 전달한 초대장

    [현장 행정] 인생사 들으며 전달한 초대장

    “1983년에 이태원에 왔는데 다른 집 처마 밑을 대충 막고 다섯 식구가 살았죠. 비가 오면 바닥에 고인 물을 퍼내느라 힘겨웠고, 이웃집에 쌀 한 되 빌리고는 창피해했습니다. 그럼에도 다들 열심히 살았고 그 대가로 국민도, 우리나라도 발전한 거죠.” 6일 ‘용산구 어르신의 날’을 홍보하기 위해 이태원 양복점을 찾은 구 직원은 나용순(67) 사장의 얘기에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35살에 시작해 33년간 이태원을 지킨 나씨는 “2개월 전에 국제시장이란 영화를 봤는데 젊은이들도 우리나라의 발달 과정을 이해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힘든 시절도 있었지만 1988년 서울 올림픽 등 장사가 잘되던 좋은 기억도 있다”면서 “외환위기 시절 IMF 관계자들이 경제 활성화를 위해 쇼핑을 많이 해 모순적으로 장사가 잘될 때도 있었다”고 회상했다. 나씨는 “이태원에 먹자골목이 늘면서 다른 업종은 경기가 안 좋은 게 사실이지만 건강이 허락하는 한 문을 열 것”이라면서 “여태껏 먹고산 터전이자 힘든 날에 일군 모든 것이기도 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그와 20년 이상 함께 한 이모(80)씨도 외국 고객을 유창한 영어로 응대하고 있었다. 이씨는 “다 그렇게 살았다”고 짤막하게 말했지만 여러 회한의 장면이 떠오르는 듯한 표정이었다. 남순우(71·여) 미망인회 용산구 지회장은 베트남 전쟁 후에 순직한 남편 이야기를 다시 꺼내는 것이 여전히 힘들어 보였다. 그는 “1978년에 중령이었던 남편이 간암으로 세상을 등졌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고엽제 후유증이 아니었나 싶다”면서 “남편 병수발에 집도 팔고 힘들게 살았었다”고 말했다. 남편은 현재 국립현충원에 잠들어 있다. 이날 직원들이 홍보한 ‘어르신의 날’은 용산구가 오는 16일 용산가족공원에서 여는 대규모 노인 잔치다. 노인 4000명이 참여할 예정이고 자원봉사자만 1000명이다. 구는 지난해 11월 매년 5월 셋째 주 토요일을 어르신의 날로 정한다는 것을 서울시 자치구 중 처음으로 조례에 명문화했다. 이번 행사에는 무료치매검진, 초청가수공연, 발마사지, 보드게임 등이 준비돼 있다. 또 네일아트 및 이·미용서비스를 받을 수 있고 스마트폰 교육 등도 받을 수 있다. 성장현 구청장은 “노인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그들이 행복해야 가족 구성원 모두 행복할 수 있다”면서 “노인들이 조금이라도 더 행복한 생활을 누릴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역사가도 사람이다” 역사가 재밌는 이유

    “역사가도 사람이다” 역사가 재밌는 이유

    역사가를 사로잡은 역사가들/이영석 지음/푸른역사/476쪽/2만 8000원 ‘내가 다루려는 주제는 쾌락으로서의 역사다. 힘들고 바쁜 세상을 살면서 우리에게 허용되는 여가 시간을 기분 좋고 유익하게 소비할 수 있는 방법으로서의 역사 말이다.’(버트런드 러셀) 역사학자의 논문이나 저술은 딱딱하고 어려운 영역으로 인식된다. 하지만 버트런드 러셀이 갈파했듯이 역사 읽기는 난해한 기피의 장르만은 아니다. 역사가 역시 개인적 단상과 주관을 충분히 견지한 채 살고 있는 자연인이기 때문이다. ‘역사가를 사로잡은 역사가들’은 사회사·경제사에 일가를 이룬 역사가 12명을 통해 문명과 세계사의 이면을 들춘 책이다. 한국서양사학회장을 지낸 이영석 광주대 영어영문학과 교수가 12명의 궤적과 대표작을 훑어 역사 이면의 역사를 소개했다. 윌리엄 호스킨스, 로런스 스톤, 로이 포터, 에드워드 톰슨, 에릭 홉스봄, 니얼 퍼거슨, 데이비드 캐너다인, 사이먼 샤마, 시어도어 젤딘, 아널드 토인비, 한국 학자 이순탁·노명식 교수가 주인공들이다. 영국사 학자답게 책 속 주인공들은 영국학자에 편중된 느낌이다. 그러나 단선적 영국사에 머물지 않고 문명과 세계사를 연관지어 풀어낸 울림이 작지 않다. 로런스 스톤은 대표적인 학자로 다가온다. 스톤은 영국혁명의 원인을 튜더-스튜어드 왕조시대 귀족사회의 위기로 지목, 학계로부터 비판받아 미국으로 이주한 학자다. 스톤은 귀족층의 낭비가 심해 파탄 상태에 이르렀으며 이런 현상이 중세후기에 형성된 중산적 토지소유층인 ‘젠트리’(향신)의 대두를 촉발했다고 주장했다. 스톤은 미국으로 옮긴 뒤 학계의 비판을 조목조목 반박하며 영국혁명의 요인을 재차 강조했다. 군주정에의 존경·복종심이 약화됐고, 국교회 또한 다른 종파에 대한 포용력을 잃었으며 귀족층도 사회경제적 위기에 빠져들었다는 것이다. 특히 절대권력의 교회가 공식 교회 결혼식을 강력하게 요구했지만 사생활에 대한 요구가 늘면서 교회 아닌 다른 곳에서 치르는 비밀결혼이 성행했고 결국 법과 교회법정을 무너뜨렸음을 제시한다. 역사 서술이 문자언어에서 영상언어로 전환되는 경향의 추적도 흥미롭다. 역사가들은 영상물이 여흥이나 오락 성격이 강하고, 역사학의 정체성과 영상언어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를 들어 영상물로서의 역사 접근을 폄훼하고 기피한다. 그러나 컬럼비아대 예술사 교수인 사이먼 샤마는 전혀 다른 입장을 갖고 영상물 역사서술을 시도했다. 샤마 교수는 BBC ‘브리튼의 역사’에 참여해 영국사의 그늘을 들춰냈다. 서민 삶에 관심을 둔 낭만주의 지식인들의 혁명분위기 주도며 산업화에 따른 노동계급의 전면 부상, 나폴레옹전쟁, 차티즘운동…. 이런 부분들을 카메라 앞에서 일일이 서술한 샤마를 놓고 저자는 ‘영화 탄생 이후 처음으로 역사가가 영상역사물이란 새 형식의 저자가 됐다’고 말한다 아널드 토인비의 동아시아에 대한 인식도 눈길을 끈다. 토인비는 1929년 안식년을 맞아 중국, 일본, 조선, 만주 등 동아시아 일대를 답사해 ‘중국으로의 여행’을 펴냈다. 토인비의 동아시아 여행은 그의 문명사 서술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된다. 그런데 ‘중국으로의 여행’과 이에 바탕한 ‘역사의 연구’에 드러난 동아시아 인식은 중국에 쏠려 있다. ‘중국에서는 아래로부터 위로 서구화를 향한 움직임이 있었다. 그 과정은 점진적이면서 자주 제동이 걸렸지만 실제 중간계급을 형성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일본은 어떤가. 오직 권위와 명령으로만 신민의 서구화 작업에 착수한 지배자들은 국민에게 토착적이고 내실 있는 중간계급을 낳도록 하는 비강제적 사회진화 과정을 기다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토인비는 특히 한국여행 중 들판의 농민들을 보고는 ‘그 작은 사람들’이라고 표현해 일본제국주의의 침탈 관련성을 보지 못한 인상이 짙다. 저자는 유럽중심주의에 쏠린 토인비가 동아시아 문명의 전개 과정에서 중국의 헤게모니를 상정했다고 단정 짓는다. 그리고 이렇게 묻는다. “만약 토인비가 살아 있다면 지금 중국의 재부상을 새로운 문명의 탄생과 발전의 징후로 여길까?”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주말 영화]

    ■나니아 연대기 2:캐스피언 왕자(OBS 토요일 밤 10시 10분) 나니아에서 현실의 세계로 돌아온 지 1년 후, 페벤시 네 남매는 마법의 힘에 의해 다시 나니아의 세계로 들어간다. 그곳은 이미 폐허로 변해 있었다. 알고 보니 나니아 시간으로 벌써 1300년이란 세월이 흐른 뒤다. 그들이 없는 동안 나니아는 황금기의 종말을 고하고, 인간인 텔마린족에게 점령되어 무자비한 미라즈 왕의 통치를 받고 있었다. 한편 페벤시 네 남매를 나니아로 불러낸 건 텔마린족의 진정한 왕위 계승자인 캐스피언 왕자다. 삼촌 미라즈에게 왕위를 뺏기고 위협을 느낀 그는 나니아인들이 숨어 사는 숲 속으로 피신해 페벤시 남매와 만난다. 캐스피언은 자신의 왕위를 찾게 도와주면 나니아인들의 터전을 돌려주겠다는 약속을 한다. 이에 네 남매와 나니아인들은 그를 도와 미라즈의 군대와 전쟁을 벌이게 된다. ■안녕, 형아(EBS 1TV 일요일 밤 11시) 아홉 살 장한이는 세상에 무서울 게 없는 말썽꾸러기다. 학교 친구들은 모두 자기 똘마니이고 가족들은 부하나 다름없다. 특히 가끔 아프다고 투정부리는 형 한별은 최고의 괴롭히기 연습 상대다. 그런데 오늘도 형아는 아프단다. 학원 가야 한다고 알람시계 맞춰 놓고, 형이 잠든 사이에 몰래 알람시계를 꺼 버렸는데 그만 엄마한테 딱 걸리고 만다. 형이 갑자기 쓰러지고, 병원으로 향한 엄마는 그곳에서 의사 할아버지와 뭔가 심각한 대화를 주고받는다. 그리고 형은 머릿속에 나쁜 혹이 있어서 머리를 열어서 잘라 낸다고 하는데….
  • [요동치는 동북아] 아베의 질주 어디까지

    [요동치는 동북아] 아베의 질주 어디까지

    ‘아베의 질주는 어디까지 갈까.’ 미국 방문을 계기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행보에 가속도가 붙게 됐다. 귀국 즉시 아베 총리는 안보 관련 법률 정비를 시작으로 숨 가쁜 일정을 앞두고 있다. 젊은 층에 우경화 교육을 위한 ‘교육 재생’, 종전 70주년 담화를 통한 과거사 입장 정리 등 ‘평화헌법’ 개헌과 최종 목표인 ‘전후체제 탈피’ 등을 향해 달려나갈 기세다. 아베 총리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일본 총리로서 사상 첫 미국 상·하 양원 합동연설 등을 통해 전후 70주년을 맞는 시점에서 미·일 동맹을 다지고 이를 전 세계에 과시했다. 자위대의 군사활동 범위·역할 확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조기 타결 의견접근 등 미국으로부터 아·태지역의 믿음직한 동반자란 ‘신임장’도 받아냈다. 오는 3일 귀국하는 아베 총리의 사실상 첫 업무는 안보 법률 정비다. 15일 각의(국무회의)에서 관련 내용을 확정해 국회에 제출한다. 6월 24일 끝나는 국회 회기도 8월까지 연장해 올여름에 법안을 처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워뒀다. 미·일 정상회담에 앞서 18년 만에 개정된 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 내용을 안보 관련 법률들에 담는 일이다. 이는 방어만을 위한 군사 활동으로 국한된 ‘전수방위’의 족쇄를 풀고, 아베 총리의 숙원인 ‘군사적 보통국가’로 향한 첫발을 내딛게 되는 셈이다. 아베 총리는 정상회담에서 국제 평화를 위한 ‘공헌’을 강조하면서 가이드라인 개정에 따른 후속 조치로 안보관련 법안의 8월 이전 개정을 약속했다. 국회를 장악하고 있는 자민·공명 연립 정부는 이를 밀어붙일 태세다. 아베 구상대로 ‘국제평화지원법’과 ‘중요영향사태법’이 제·개정되면 자위대엔 지리적 제약과 활동범위가 풀린다. 전수방위를 기본으로 한 일본의 안보 정책에서 근본적인 변화가 예상된다. 가이드라인과 안보관련 법률 개정, 방위력 증강 등으로 이어지는 아베 총리의 행보는 궁극적으로 평화헌법 개헌을 통해 ‘전후 체제의 굴레’에서 벗어나겠다는 것이다. ‘군사적 보통국가’라는 아베 총리의 야심도 전후 체제의 탈피라는 큰 틀에서 진행되고 있다. ‘전범 국가’라는 낙인에서 벗어나 지난 70년간 일본을 구속한 여러 제약을 떨쳐버리겠다는 것으로, 이 같은 속내는 일찌감치 노출됐다. 아베 총리는 지난 2월 12일 중의원에서 내년 여름 참의원 선거 후 “개헌을 위한 국민적 논의를 확대하자”고 제안했다. 2017년 개헌을 사실상 발의한 셈이다. 아베 총리는 전후 체제의 탈피와 함께 ‘일본 재생’이란 기치를 흔들면서 “자랑스럽고 아름다운 역사와 전통”을 강조하고 있다. 이런 행보에는 “일본이 왜 전범국가냐, 힘이 없어서 전쟁에서 졌을 뿐, 서구 국가들도 제국주의를 하지 않았느냐”는 인식이 깔려 있다. 침략전쟁에 대한 죄의식보다는 패전에 대한 억울함이 밑바닥에 있다. 아베 총리를 비롯한 일본 재생을 주장하는 쪽은 일본이 가해자라기보다는 피해자, 특히 원폭 피해자란 이미지에 집착한다. 과거 군국주의 만행과 죄악을 세탁하고 과거 미화와 ‘자부심 회복’을 강조하는 이런 행보는 ‘교육 재생’이란 이름으로 교과서 수정, 영토 주장 등 민족주의 감정에 호소하면서 저변 확대를 시도하고 있다. 도쿄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 “아베, 말장난 그만하라”… 韓·美서 규탄 물결

    “아베, 말장난 그만하라”… 韓·美서 규탄 물결

    29일(현지시간)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미국 상·하원 합동연설을 앞두고 국내의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유족들은 “통탄을 금할 수 없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미국 워싱턴DC의 의사당 앞에서는 한국·중국계는 물론 미국 시민단체들까지 모여 아베 총리의 그릇된 역사관을 성토했다.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는 이날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미국 정부가 제2차 세계대전 전범국의 만행을 미화하는 아베를 의회에 세워 연설하게 한 것은 세계인을 배신하는 처사”라며 “일본 정부와 아베 총리는 전후 70년이 지났음에도 반성과 사죄 없이 제1급 전범자를 추앙하고 전쟁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빗줄기가 쏟아지는 궂은 날씨 속에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1176차 수요집회에서도 아베 총리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길원옥 할머니와 시민 1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집회를 열고 “아베 총리는 연설에서 식민 지배와 일본군 성노예 등 전쟁범죄 책임을 공식 인정하라”고 촉구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와 워싱턴 정신대대책위원회, 워싱턴한인연합회, 버지니아한인회 등 한인단체는 물론 미국 반전단체인 ‘앤서 콜리션’의 브라이언 베커 대표, 대만참전용사워싱턴협회 스탄 차이 부회장 등도 미 의사당 앞에 모여 아베 총리를 비난했다. 이들은 ‘아베는 말장난을 중단하고 사과하라’, ‘위안부 피해자에게 정의를’, ‘과거를 부정하면 잘못된 역사는 되풀이된다’ 등의 플래카드를 들고 나왔다. 특히 이 할머니는 “아베는 계속 (위안부를) 강제로 끌고 간 적이 없다고 거짓말을 하는데 내가 바로 15살 때 일본의 대만 가미카제 부대로 끌려간 ‘역사의 산증인’이다. 그런데도 계속 거짓말을 하면 인간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 할머니는 시위 직후 마이크 혼다(민주·캘리포니아) 하원의원과 함께 아베 총리가 연설하는 의사당에 입장했다. 집회에 참석한 단체들과 국제사면위원회(AI) 워싱턴지부 등은 워싱턴포스트에 ‘미국과 일본 국민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이란 제목의 전면 광고를 통해 아베 총리의 공개 사과를 촉구했다. 한국 홍보 전문가인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도 이날 뉴욕타임스에 ‘진주만 공격’이라는 제목의 광고를 게재하고 아베 총리가 미 의회 연설에서 사죄 및 보상 약속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울 윤수경 기자 yoon@seoul.co.kr 워싱턴 김미경 특파원 chaplin7@seoul.co.kr
  • [기획] 유사시엔 일본 자위대가 한반도에?

    [기획] 유사시엔 일본 자위대가 한반도에?

    일본의 끔찍한 전쟁 범죄 사실은 부인한 채 홀로코스트 박물관과 알링턴 국립묘지를 찾는 위선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고 있는 가운데, 미국 정부가 그의 이번 방미 기간 중 그의 행보에 힘을 실어주면서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미래에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다. 아베 총리의 이번 방미 기간 중 논의된 여러 가지 의제 가운데 가장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는 것은 27일 양국 외교·국방장관 회의(2+2회의)에서 합의된 미·일 방위협력지침 개정안이었다. 합의문은 온갖 미사여구로 포장되어 있지만 이 한 장의 합의가 차후 아시아·태평양 지역, 특히 한반도와 그 주변 지역에 가져올 후폭풍은 가히 메가톤급이 될 것으로 보인다. -미·일 ‘新방위협력지침’...전범국 일본 ‘족쇄’ 풀어줘 이번에 개정된 미·일 방위협력지침은 냉전 시기 북해도 지역에서 소련의 군사적 위협에 시달리던 일본의 필요에 의해 책정된 정부 간 합의이다. 이 합의에는 일본이 타국의 공격을 받았을 때 미군과 자위대가 정보·작전·군수 등 분야에서 각각 어떻게 역할을 분담할 것인지에 대한 내용이 들어 있는 정부 대 정부의 합의문으로 일종의 가이드라인으로 활용된다. 이 지침은 1978년 처음 만들어질 당시만 하더라도 철저하게 일본 영토와 영해, 영공 방위를 위한 내용만을 담고 있었다. 일본은 패전국이었기 때문에 헌법 제9조에 따라 정규군을 보유할 수 없었고, 자위대는 이름 그대로 자국의 치안과 영토 보호를 위해서만 무력을 사용할 수 있었는데, 미·일 방위협력지침은 자위대의 성격과 작전 영역을 명시함으로써 일본의 공세적 무기 획득과 군비증강을 '억제'하는 역할을 해 왔다. 일본은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전 총리가 방위청장관으로 재직하던 당시 제창한 ‘전수방위(專守防衛)’ 원칙을 오랫동안 고수해 오고 있었지만, 냉전 붕괴 이후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제1차 북핵위기로 홍역을 치른 이후인 1996년, 미·일 안보공동선언을 통해 미·일 방위협력지침에서 자위대의 역할 확대와 공세적 무기 확보 가능성을 열어두기 시작한 것이다. 자위대의 역할 확대를 위한 변화는 미국의 세력 약화와 중국의 부상, 극우 성향의 아베 신조 내각이 들어선 이후 ‘집단적 자위권’이라는 용어가 등장하면서 더욱 극명하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일본은 미국이 글로벌 금융위기와 정부 재정위기 등으로 곤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 위협론을 부채질했고, 미국은 서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을 억제하기 위해 일본을 잡아두고 있던 끈을 서서히 풀어주기 시작했다. 우선, 일본이 주장하는 ‘집단적 자위권’을 허용했다. 일반적으로 자위권이란 국가 주권과 이익에 대한 외부로부터의 위협에 대항하기 위해 무력을 사용할 권리를 말하는데, ‘집단적 자위권’이란 지켜야 할 주권과 이익에 자국뿐만 아니라 동맹 또는 우방국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쉽게 말해 자신이 불량배에게 맞을 위기에 있으면 친구가 와서 함께 싸워주고, 반대로 친구가 불량배에게 당할 위기에 처하면 자신도 나서서 친구와 함께 불량배와 싸워 준다는 개념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개념은 과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 바르샤바조약기구(WTO) 등 집단안보체제, 또는 각국이 개별적으로 체결한 동맹 등의 형태로 나타나는데, 이 같은 집단안보체제에 가입한 국가가 정상국가라면 문제가 되지 않지만, 그럴 자격이 없는 전쟁범죄국가일 경우에는 문제가 복잡해진다. 일본은 과거사를 반성하지 않은 전쟁범죄국가이기 때문에 원칙적으로는 ‘군대’를 보유할 수 없는 대신, 일본 영토와 영공, 영해에서 방어적 목적으로만 운용될 수 있는 최소한의 무력인 ‘자위대’만 가질 수 있다. 이 때문에 일본은 이른바 ‘평화헌법’이라 불리는 헌법 제9조에서 군대의 보유와 국가의 교전권 포기를 명문화하고 있다. 그러나 아베 정권은 집권 초기부터 이 헌법 개헌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왔으며, 국내외의 반대로 개헌이 어려워지자 헌법 해석 변경과 집단적 자위권이라는 개념 도입을 통해 자위대를 교전권을 가진 정식 군대로 만들려 하고 있다. 교전권이란 국가 간 분쟁을 평화적인 수단으로 해결할 수 없을 때 적국과 전쟁을 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집단적 자위권이라는 범위 내에서만 허용되는 교전권이지만,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기 위한 파트너 국가가 미국이라면 이론적으로 일본은 미국과 동맹을 맺거나 우방 관계에 있지 않은 거의 모든 국가와 전쟁을 할 수 있는 교전권을 손에 쥐게 된다. -한반도 유사시 '자위대 파병' 날개? 또한 한반도 유사시 자위대를 파병할 수 있는 길도 열린다. 일본은 굳이 미·일 방위협력지침이 아니더라도 한반도 유사시 전쟁에 개입할 수 있는 명분은 충분히 가지고 있었다. 한반도 유사시 주일미군이 작전에 투입될 경우, 이를 지원하기 위해 자위대가 나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반도 유사시 형식상 최고사령부가 되는 UN군사령부는 일본에 7개의 후방기지를 두고 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 기지들은 모두 미군과 자위대가 공동으로 사용하는 기지다. 요코스카 해군기지는 미7함대와 해상자위대 제1호위대군이, 사세보 해군기지는 제7함대와 해상자위대 제2호위대군이 함께 쓰고 있고, 캠프 자마에는 주일미육군 제500군사정보여단과 지원부대가 일본판 특전사라 할 수 있는 중앙즉응집단사령부와 함께 입주해 있다. 제5공군사령부가 있는 요코타 공군기지는 항공자위대 방공지휘소가, 해군과 공군, 해병대가 사용하는 가데나 기지와 후텐마 기지, 화이트비치 기지 등에도 모두 자위대 지원부대가 함께 입주해 있거나 유사시 기지에 전개되는 전력의 작전을 지원한다. 어떤 형태로든지 한반도에서 미군의 군사작전에 자위대가 엮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더욱이 이번 방위협력지침 개정으로 인해 자위대는 날개를 달게 됐다. 집단적 자위권 행사 논리에 따라 한반도에서 작전하는 미군의 후방지원 수준을 넘어서, 필요에 따라 미군과 함께 북한에 대한 공세적 군사작전을 펼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됐기 때문이다. -정부는 앵무새처럼 “우리 동의없이 한반도전쟁 개입 못해” 우리 정부는 즉각 “일본의 사전요청과 우리의 동의 없이 자위대의 한반도 개입은 있을 수 없다”고 발표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개전 초기 북한은 한·미 연합군을 향해 대량의 미사일 공격을 가할 것이고, 새로 개정된 지침에 따라 자위대는 해상에서 이 미사일 요격을 시도할 의무가 있다. 미군의 작전을 후방에서 지원해야 하는 일본은 일본 인근 해역이나 괌 인근에서 들어오는 사전배치전단은 물론 미 본토와 하와이 등지에서 병력과 장비를 싣고 들어오는 미 수송선단에 대한 보호 작전도 ‘후방 지원’ 개념에서 수행해야 한다. 기동함대 등 선단 호위를 위한 해군력을 갖추지 못한 우리나라가 미 수송선단에 대한 호송 지원을 제공하지 못해 미 해군 수송선단이 한반도 해역 진입에 난색을 표하고, 연합사령부가 신속한 물자 하역을 요구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이를 위해 자위대가 한반도 영해에 들어올 수밖에 없다. 즉, 우리 정부는 평시에는 “우리 동의 없이 자위대가 한반도 전쟁에 개입할 수 없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 전시가 되어 국가의 운명이 풍전등화에 빠진 상황이라면 명분 보다는 생존이 우선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자위대의 한반도 진출을 묵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발생할 것이다. 자위대의 해외 군사작전 허용은 곧 일본에 채워져 있던 전범국이라는 족쇄가 서서히 풀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은 일본의 족쇄를 풀어줌으로써 심각한 골칫거리인 북한과 잠재적 적국인 중국에 맞서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손 안 대고 코 푸는’ 장밋빛 미래를 기대하겠지만, 상황은 그렇게 흘러갈 수 없을 것이다. -미일동맹 격상은 미국의 자충수 영국의 저명한 역사학자 에드워드 카(Edward H. Carr)는 “역사는 반복된다”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중국은 군웅할거(群雄割據)가 지속되다가 통일되고, 통일되어 전성기를 잠시 누리다가 부정부패와 반란, 외적의 침입 등으로 망하고 흥하고를 수 없이 반복했고, 우리나라 역시 비록 왕조 교체는 중국보다 적었다고는 하지만 위정자들의 권력다툼과 국론 분열과 국력 약화, 이 틈을 탄 외적의 침략, 침략을 물리친 뒤 잠시 평화를 누리다가 다시 권력다툼과 외침이 이어지는 같은 역사의 반복이었다. 일본 역시 마찬가지다. 메이지 유신 이전까지 동아시아 역사의 변두리에 있었던 일본은 섬나라라는 특성상 정치적으로는 강력한 독립성을 유지했지만, 경제적·문화적으로는 한국과 중국의 영향을 강하게 받으며, 이들로부터 선진 문물을 받아들이는데 국가적 역량을 기울여 왔다. 이들은 국가가 분열되어 혼란스러운 상황이거나 힘을 갖추지 못했을 때는 한국과 중국에 사신단을 보내 이른바 통신사로 불리는 사절단을 보내줄 것을 정중히 요청했지만, 힘이 있을 때는 수시로 한국과 중국을 침략하며 노략질을 일삼았다. 3세기 초 호족연합정권인 야마토 정권이 전국을 통일한 이후에는 정규군을 갖춰 가야, 백제와 결탁해 신라를 침략했고, 통일신라 시대에도 경상·전라·충청·경기 연안 일대에 수시로 해적선단을 보내 해안선을 약탈하거나 조운선, 무역선을 습격했다. 고려시대에는 한반도와 가까운 쓰시마섬에 거점을 마련하고, 한반도 해안에 대한 노략질을 일삼았고, 조선시기에는 15만 대병력으로 한반도 전역을 전쟁의 참화로 몰아넣기도 했다. 문제는 역사가 반복된다는 것과 과거 한반도를 침략하고 노략질을 일삼았던 가문이 현재 일본의 집권세력에 있다는 것이다. -한반도 노략질 일삼던 가문들이... 에도시대부터 일본 정계의 주류를 이루며 한반도와 대륙 침략을 주장했던 조슈번(長州藩) 세력은 1592년 임진왜란 당시 번주(藩主)인 모리 테루모토(毛利輝元)가 제7군(약 3만 명)을 이끌고 조선 전국토를 유린했던 자들이다. 이들은 메이지 유신을 주도하고 정한론(征韓論)을 주장했던 요시다 쇼인(吉田松陰)이나 조선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배출했고, 이들 세력은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에도 일본 정치계의 주류로 남아 아베 신조(安倍晋三)라는 인물을 배출하고 지금도 일본 군국주의 부활과 극우 민족주의 활동에 열을 올리고 있다. 에도시대부터 동해와 남해, 난세이 제도 일대에서 가장 규모가 큰 해적 집단이었던 사쓰마번(薩摩藩) 역시 번주인 시마즈 요시히로(島津義弘)가 이끄는 제4군(약 1만5,000여 명)이 참전하여 경상도 일대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칠전량 해전에서 조선수군을 전멸시켰으며, 노량해전에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죽게 만든 자들이었다. 이들은 조슈번과 함께 메이지 유신을 주도하며 일본제국해군을 건설해 태평양전쟁을 일으켰고, 전후에도 일본 정계의 주류 정치세력으로 남아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郎)라는 극우 정치인을 배출하고 현재도 극우 민족주의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일본 정계를 주도하고 있는 이들 정치세력은 과거부터 내부 권력 투쟁을 이어오면서 일본 국내 상황이 정리되고 힘이 축적되면 반드시 한반도와 대륙을 상대로 침략전쟁을 일으켰던 자들이다. 특히 이들은 현재도 과거사 왜곡을 통해 한국과 중국을 열등 민족이자 타도 대상으로, 미국을 ‘핵무기'라는 비인도적인 무기를 일본인에게 사용한 가해자로 선전하고 있다. 현재 미일관계는 표면적으로는 역대 그 어느 시절보다 굳건하지만, 일본은 자신들의 힘이 어느 정도 갖춰지면 언제든지 이빨을 드러낼 것이다. 실제로 냉전 시기 ‘120% 한통속’이라는 미·일 밀월관계 속에서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까지 성장했던 일본은 경제력과 군사력이 어느 정도 갖춰지자 미국을 향해 “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을 외치기 시작했다. 일본은 자신들이 초강대국이 될 것이며, 미국이 첨단 무기를 자랑해도 일본의 전자부품 없이는 빈껍데기라며 초강대국 행세를 하기 시작했다. 이에 미국은 ‘슈퍼 301조’라는 무역통상법 제301조, 즉, “미국의 눈 밖에 난 국가와는 무역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카드를 꺼내들었다. 이 결과로 일본은 치명타를 입게 되었는데 금융과 제조업의 거품이 순식간에 증발하면서 도쿄 증시는 3분의 1토막이 났고, 금융기업들이 연쇄적으로 문을 닫으면서 이른바 ‘잃어버린 20년’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20년 전 경제력으로 미국에게 반기를 들었던 일본이 이제는 군사력 카드를 들고 나왔다. 중국 위협론과 자신들의 역할론을 들고 나오며 자위대라는 이름의 족쇄를 서서히 풀기 시작한 것이다. 이미 일본은 원거리 공습이 가능한 고성능 전투기와 공중급유기, 항공모함과 대형 상륙함과 같은 공격무기를 손에 넣었고, 수천 개의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양인 약 47톤의 플루토늄까지 보유하고 있다. 지난해 약 80개의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양인 640kg의 플루토늄을 IAEA에 신고하지 않고 은닉했다가 적발되는 등 미심쩍은 행동도 이어가고 있다. -마지막 관문 '핵무장'만 남은 셈 일본이 이처럼 공세적 군사력을 갖추고 대량의 플루토늄까지 보유하게 된 것은 전적으로 미국의 용인과 협력 덕분이었다. 경제력을 갖추고 있는 일본은 이제 보통군대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는 막강한 공격력을 갖춘 군대까지 보유했고, 군사강국이 되기 위한 마지막 관문인 핵무장만을 남겨놓고 있다. 일본은 핵무기를 개발하기 위한 핵물질과 기반시설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고, 대륙간탄도미사일로 전용할 수 있는 고성능 위성 발사체까지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의지만 있다면 몇 주 이내에 핵탄두를 장착한 대륙간탄도미사일을 갖출 수 있다. 핵확산금지조약(Nuclear Non-Proliferation Treaty) 제10조 1항에 따르면, NPT 가입국은 NPT에 가입했더라도 국가 비상사태나 국가이익이 위협 받는 상황에서는 UN에 통보하고 NPT를 탈퇴할 수 있다. 즉, 센카쿠에서 중국의 위협, 북한의 핵실험이나 장거리 미사일 실험을 빌미로 얼마든지 NPT를 탈퇴하고 핵개발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의 군사적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이 일본의 핵무장을 용인하는 순간 경제력·핵 능력으로 일본은 미국에 다시 "NO"라고 맞서려 할 것이며, 그때는 미국도 일본을 통제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요컨대 미국은 일본 우익의 속셈과 그 위험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중국이라는 맹수를 잡기 위해 반성하지 않는 전범국가를 풀어줄 준비를 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 러시아는 일본에 맞설 강력한 군사력이라도 있지만, 상황이 이렇게 돌아감에도 불구하고 큰 소리로 허세만 부리며 막대기라도 주워볼 생각조차 하지 않는 대한민국은 만에 하나라도 유사시에 무엇으로 대응할지 이제는 국민들이 나서서 위정자들에게 물어볼 때가 아닐까? 이일우 군사통신원(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美, 전범국의 ‘족쇄’를 풀어주다...한반도 앞날은?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美, 전범국의 ‘족쇄’를 풀어주다...한반도 앞날은?

    일본의 끔찍한 전쟁 범죄 사실은 부인한 채 홀로코스트 박물관과 알링턴 국립묘지를 찾는 위선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고 있는 가운데, 미국 정부가 그의 이번 방미 기간 중 그의 행보에 힘을 실어주면서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미래에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다. 아베 총리의 이번 방미 기간 중 논의된 여러 가지 의제 가운데 가장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는 것은 27일 양국 외교·국방장관 회의(2+2회의)에서 합의된 미·일 방위협력지침 개정안이었다. 합의문은 온갖 미사여구로 포장되어 있지만 이 한 장의 합의가 차후 아시아·태평양 지역, 특히 한반도와 그 주변 지역에 가져올 후폭풍은 가히 메가톤급이 될 것으로 보인다. -미·일 방위협력지침 합의 이번에 개정된 미·일 방위협력지침은 냉전 시기 북해도 지역에서 소련의 군사적 위협에 시달리던 일본의 필요에 의해 책정된 정부 간 합의이다. 이 합의에는 일본이 타국의 공격을 받았을 때 미군과 자위대가 정보·작전·군수 등 분야에서 각각 어떻게 역할을 분담할 것인지에 대한 내용이 들어 있는 정부 대 정부의 합의문으로 일종의 가이드라인으로 활용된다. 이 지침은 1978년 처음 만들어질 당시만 하더라도 철저하게 일본 영토와 영해, 영공 방위를 위한 내용만을 담고 있었다. 일본은 패전국이었기 때문에 헌법 제9조에 따라 정규군을 보유할 수 없었고, 자위대는 이름 그대로 자국의 치안과 영토 보호를 위해서만 무력을 사용할 수 있었는데, 미·일 방위협력지침은 자위대의 성격과 작전 영역을 명시함으로써 일본의 공세적 무기 획득과 군비증강을 '억제'하는 역할을 해 왔다. 일본은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전 총리가 방위청장관으로 재직하던 당시 제창한 ‘전수방위(專守防衛)’ 원칙을 오랫동안 고수해 오고 있었지만, 냉전 붕괴 이후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제1차 북핵위기로 홍역을 치른 이후인 1996년, 미·일 안보공동선언을 통해 미·일 방위협력지침에서 자위대의 역할 확대와 공세적 무기 확보 가능성을 열어두기 시작한 것이다. 자위대의 역할 확대를 위한 변화는 미국의 세력 약화와 중국의 부상, 극우 성향의 아베 신조 내각이 들어선 이후 ‘집단적 자위권’이라는 용어가 등장하면서 더욱 극명하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일본은 미국이 글로벌 금융위기와 정부 재정위기 등으로 곤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 위협론을 부채질했고, 미국은 서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을 억제하기 위해 일본을 잡아두고 있던 끈을 서서히 풀어주기 시작했다. 우선, 일본이 주장하는 ‘집단적 자위권’을 허용했다. 일반적으로 자위권이란 국가 주권과 이익에 대한 외부로부터의 위협에 대항하기 위해 무력을 사용할 권리를 말하는데, ‘집단적 자위권’이란 지켜야 할 주권과 이익에 자국뿐만 아니라 동맹 또는 우방국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쉽게 말해 자신이 불량배에게 맞을 위기에 있으면 친구가 와서 함께 싸워주고, 반대로 친구가 불량배에게 당할 위기에 처하면 자신도 나서서 친구와 함께 불량배와 싸워 준다는 개념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개념은 과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 바르샤바조약기구(WTO) 등 집단안보체제, 또는 각국이 개별적으로 체결한 동맹 등의 형태로 나타나는데, 이 같은 집단안보체제에 가입한 국가가 정상국가라면 문제가 되지 않지만, 그럴 자격이 없는 전쟁범죄국가일 경우에는 문제가 복잡해진다. 일본은 과거사를 반성하지 않은 전쟁범죄국가이기 때문에 원칙적으로는 ‘군대’를 보유할 수 없는 대신, 일본 영토와 영공, 영해에서 방어적 목적으로만 운용될 수 있는 최소한의 무력인 ‘자위대’만 가질 수 있다. 이 때문에 일본은 이른바 ‘평화헌법’이라 불리는 헌법 제9조에서 군대의 보유와 국가의 교전권 포기를 명문화하고 있다. 그러나 아베 정권은 집권 초기부터 이 헌법 개헌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왔으며, 국내외의 반대로 개헌이 어려워지자 헌법 해석 변경과 집단적 자위권이라는 개념 도입을 통해 자위대를 교전권을 가진 정식 군대로 만들려 하고 있다. 교전권이란 국가 간 분쟁을 평화적인 수단으로 해결할 수 없을 때 적국과 전쟁을 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집단적 자위권이라는 범위 내에서만 허용되는 교전권이지만,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기 위한 파트너 국가가 미국이라면 이론적으로 일본은 미국과 동맹을 맺거나 우방 관계에 있지 않은 거의 모든 국가와 전쟁을 할 수 있는 교전권을 손에 쥐게 된다. -한반도 유사시 '자위대 파병' 날개? 또한 한반도 유사시 자위대를 파병할 수 있는 길도 열린다. 일본은 굳이 미·일 방위협력지침이 아니더라도 한반도 유사시 전쟁에 개입할 수 있는 명분은 충분히 가지고 있었다. 한반도 유사시 주일미군이 작전에 투입될 경우, 이를 지원하기 위해 자위대가 나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반도 유사시 형식상 최고사령부가 되는 UN군사령부는 일본에 7개의 후방기지를 두고 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 기지들은 모두 미군과 자위대가 공동으로 사용하는 기지다. 요코스카 해군기지는 미7함대와 해상자위대 제1호위대군이, 사세보 해군기지는 제7함대와 해상자위대 제2호위대군이 함께 쓰고 있고, 캠프 자마에는 주일미육군 제500군사정보여단과 지원부대가 일본판 특전사라 할 수 있는 중앙즉응집단사령부와 함께 입주해 있다. 제5공군사령부가 있는 요코타 공군기지는 항공자위대 방공지휘소가, 해군과 공군, 해병대가 사용하는 가데나 기지와 후텐마 기지, 화이트비치 기지 등에도 모두 자위대 지원부대가 함께 입주해 있거나 유사시 기지에 전개되는 전력의 작전을 지원한다. 어떤 형태로든지 한반도에서 미군의 군사작전에 자위대가 엮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더욱이 이번 방위협력지침 개정으로 인해 자위대는 날개를 달게 됐다. 집단적 자위권 행사 논리에 따라 한반도에서 작전하는 미군의 후방지원 수준을 넘어서, 필요에 따라 미군과 함께 북한에 대한 공세적 군사작전을 펼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됐기 때문이다. -정부는 앵무새처럼 “우리 동의없이 한반도전쟁 개입 못해” 우리 정부는 즉각 “일본의 사전요청과 우리의 동의 없이 자위대의 한반도 개입은 있을 수 없다”고 발표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개전 초기 북한은 한·미 연합군을 향해 대량의 미사일 공격을 가할 것이고, 새로 개정된 지침에 따라 자위대는 해상에서 이 미사일 요격을 시도할 의무가 있다. 미군의 작전을 후방에서 지원해야 하는 일본은 일본 인근 해역이나 괌 인근에서 들어오는 사전배치전단은 물론 미 본토와 하와이 등지에서 병력과 장비를 싣고 들어오는 미 수송선단에 대한 보호 작전도 ‘후방 지원’ 개념에서 수행해야 한다. 기동함대 등 선단 호위를 위한 해군력을 갖추지 못한 우리나라가 미 수송선단에 대한 호송 지원을 제공하지 못해 미 해군 수송선단이 한반도 해역 진입에 난색을 표하고, 연합사령부가 신속한 물자 하역을 요구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이를 위해 자위대가 한반도 영해에 들어올 수밖에 없다. 즉, 우리 정부는 평시에는 “우리 동의 없이 자위대가 한반도 전쟁에 개입할 수 없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 전시가 되어 국가의 운명이 풍전등화에 빠진 상황이라면 명분 보다는 생존이 우선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자위대의 한반도 진출을 묵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발생할 것이다. 자위대의 해외 군사작전 허용은 곧 일본에 채워져 있던 전범국이라는 족쇄가 서서히 풀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은 일본의 족쇄를 풀어줌으로써 심각한 골칫거리인 북한과 잠재적 적국인 중국에 맞서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손 안 대고 코 푸는’ 장밋빛 미래를 기대하겠지만, 상황은 그렇게 흘러갈 수 없을 것이다. -미일동맹 격상은 미국의 자충수 영국의 저명한 역사학자 에드워드 카(Edward H. Carr)는 “역사는 반복된다”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중국은 군웅할거(群雄割據)가 지속되다가 통일되고, 통일되어 전성기를 잠시 누리다가 부정부패와 반란, 외적의 침입 등으로 망하고 흥하고를 수 없이 반복했고, 우리나라 역시 비록 왕조 교체는 중국보다 적었다고는 하지만 위정자들의 권력다툼과 국론 분열과 국력 약화, 이 틈을 탄 외적의 침략, 침략을 물리친 뒤 잠시 평화를 누리다가 다시 권력다툼과 외침이 이어지는 같은 역사의 반복이었다. 일본 역시 마찬가지다. 메이지 유신 이전까지 동아시아 역사의 변두리에 있었던 일본은 섬나라라는 특성상 정치적으로는 강력한 독립성을 유지했지만, 경제적·문화적으로는 한국과 중국의 영향을 강하게 받으며, 이들로부터 선진 문물을 받아들이는데 국가적 역량을 기울여 왔다. 이들은 국가가 분열되어 혼란스러운 상황이거나 힘을 갖추지 못했을 때는 한국과 중국에 사신단을 보내 이른바 통신사로 불리는 사절단을 보내줄 것을 정중히 요청했지만, 힘이 있을 때는 수시로 한국과 중국을 침략하며 노략질을 일삼았다. 3세기 초 호족연합정권인 야마토 정권이 전국을 통일한 이후에는 정규군을 갖춰 가야, 백제와 결탁해 신라를 침략했고, 통일신라 시대에도 경상·전라·충청·경기 연안 일대에 수시로 해적선단을 보내 해안선을 약탈하거나 조운선, 무역선을 습격했다. 고려시대에는 한반도와 가까운 쓰시마섬에 거점을 마련하고, 한반도 해안에 대한 노략질을 일삼았고, 조선시기에는 15만 대병력으로 한반도 전역을 전쟁의 참화로 몰아넣기도 했다. 문제는 역사가 반복된다는 것과 과거 한반도를 침략하고 노략질을 일삼았던 가문이 현재 일본의 집권세력에 있다는 것이다. -한반도 노략질 일삼던 가문들이... 에도시대부터 일본 정계의 주류를 이루며 한반도와 대륙 침략을 주장했던 조슈번(長州藩) 세력은 1592년 임진왜란 당시 번주(藩主)인 모리 테루모토(毛利輝元)가 제7군(약 3만 명)을 이끌고 조선 전국토를 유린했던 자들이다. 이들은 메이지 유신을 주도하고 정한론(征韓論)을 주장했던 요시다 쇼인(吉田松陰)이나 조선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배출했고, 이들 세력은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에도 일본 정치계의 주류로 남아 아베 신조(安倍晋三)라는 인물을 배출하고 지금도 일본 군국주의 부활과 극우 민족주의 활동에 열을 올리고 있다. 에도시대부터 동해와 남해, 난세이 제도 일대에서 가장 규모가 큰 해적 집단이었던 사쓰마번(薩摩藩) 역시 번주인 시마즈 요시히로(島津義弘)가 이끄는 제4군(약 1만5,000여 명)이 참전하여 경상도 일대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칠전량 해전에서 조선수군을 전멸시켰으며, 노량해전에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죽게 만든 자들이었다. 이들은 조슈번과 함께 메이지 유신을 주도하며 일본제국해군을 건설해 태평양전쟁을 일으켰고, 전후에도 일본 정계의 주류 정치세력으로 남아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郎)라는 극우 정치인을 배출하고 현재도 극우 민족주의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일본 정계를 주도하고 있는 이들 정치세력은 과거부터 내부 권력 투쟁을 이어오면서 일본 국내 상황이 정리되고 힘이 축적되면 반드시 한반도와 대륙을 상대로 침략전쟁을 일으켰던 자들이다. 특히 이들은 현재도 과거사 왜곡을 통해 한국과 중국을 열등 민족이자 타도 대상으로, 미국을 ‘핵무기'라는 비인도적인 무기를 일본인에게 사용한 가해자로 선전하고 있다. 현재 미일관계는 표면적으로는 역대 그 어느 시절보다 굳건하지만, 일본은 자신들의 힘이 어느 정도 갖춰지면 언제든지 이빨을 드러낼 것이다. 실제로 냉전 시기 ‘120% 한통속’이라는 미·일 밀월관계 속에서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까지 성장했던 일본은 경제력과 군사력이 어느 정도 갖춰지자 미국을 향해 “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을 외치기 시작했다. 일본은 자신들이 초강대국이 될 것이며, 미국이 첨단 무기를 자랑해도 일본의 전자부품 없이는 빈껍데기라며 초강대국 행세를 하기 시작했다. 이에 미국은 ‘슈퍼 301조’라는 무역통상법 제301조, 즉, “미국의 눈 밖에 난 국가와는 무역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카드를 꺼내들었다. 이 결과로 일본은 치명타를 입게 되었는데 금융과 제조업의 거품이 순식간에 증발하면서 도쿄 증시는 3분의 1토막이 났고, 금융기업들이 연쇄적으로 문을 닫으면서 이른바 ‘잃어버린 20년’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20년 전 경제력으로 미국에게 반기를 들었던 일본이 이제는 군사력 카드를 들고 나왔다. 중국 위협론과 자신들의 역할론을 들고 나오며 자위대라는 이름의 족쇄를 서서히 풀기 시작한 것이다. 이미 일본은 원거리 공습이 가능한 고성능 전투기와 공중급유기, 항공모함과 대형 상륙함과 같은 공격무기를 손에 넣었고, 수천 개의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양인 약 47톤의 플루토늄까지 보유하고 있다. 지난해 약 80개의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양인 640kg의 플루토늄을 IAEA에 신고하지 않고 은닉했다가 적발되는 등 미심쩍은 행동도 이어가고 있다. -마지막 관문 '핵무장'만 남은 셈 일본이 이처럼 공세적 군사력을 갖추고 대량의 플루토늄까지 보유하게 된 것은 전적으로 미국의 용인과 협력 덕분이었다. 경제력을 갖추고 있는 일본은 이제 보통군대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는 막강한 공격력을 갖춘 군대까지 보유했고, 군사강국이 되기 위한 마지막 관문인 핵무장만을 남겨놓고 있다. 일본은 핵무기를 개발하기 위한 핵물질과 기반시설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고, 대륙간탄도미사일로 전용할 수 있는 고성능 위성 발사체까지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의지만 있다면 몇 주 이내에 핵탄두를 장착한 대륙간탄도미사일을 갖출 수 있다. 핵확산금지조약(Nuclear Non-Proliferation Treaty) 제10조 1항에 따르면, NPT 가입국은 NPT에 가입했더라도 국가 비상사태나 국가이익이 위협 받는 상황에서는 UN에 통보하고 NPT를 탈퇴할 수 있다. 즉, 센카쿠에서 중국의 위협, 북한의 핵실험이나 장거리 미사일 실험을 빌미로 얼마든지 NPT를 탈퇴하고 핵개발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의 군사적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이 일본의 핵무장을 용인하는 순간 경제력·핵 능력으로 일본은 미국에 다시 "NO"라고 맞서려 할 것이며, 그때는 미국도 일본을 통제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요컨대 미국은 일본 우익의 속셈과 그 위험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중국이라는 맹수를 잡기 위해 반성하지 않는 전범국가를 풀어줄 준비를 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 러시아는 일본에 맞설 강력한 군사력이라도 있지만, 상황이 이렇게 돌아감에도 불구하고 큰 소리로 허세만 부리며 막대기라도 주워볼 생각조차 하지 않는 대한민국은 만에 하나라도 유사시에 무엇으로 대응할지 이제는 국민들이 나서서 위정자들에게 물어볼 때가 아닐까? 이일우 군사통신원(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 [아하! 우주] 지구는 ‘별’이다? 아니다?

    [아하! 우주] 지구는 ‘별’이다? 아니다?

    태양계의 운수납자(雲水衲子)…지구는 '별'이 아니다? ​ 지구와 금성을 흔히 초록별이니 샛별이니 하는데, 과연 행성도 별일까? ​ 관례적으로 ​그렇게 말하지만, 엄격히 말하자면 행성은 별이 아니다. 보통 태양처럼 천체 내부의 에너지 복사로 스스로 빛을 내는 천체, 곧 항성을 별이라고 한다. 따라서 항성의 빛을 반사시켜 빛을 내는 행성이나 위성, 혜성 등은 별이라고 할 수 없다. 태양계에서 빛을 내는 천체는 태양이 유일하다.​ 예로부터 인류와 가장 가까운 천체는 해와 달을 비롯,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이었다. 옛사람들은 밤하늘이 통째로 바뀌더라도 별들 사이의 상대적인 거리는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별은 영원을 상징하는 존재로 인류에게 각인되었다. 하지만 위의 다섯 개 행성은 일정한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별들 사이를 유랑하는 것을 보고, 떠돌이란 뜻의 그리스 어인 플라나타이(planetai), 곧 떠돌이별이라고 불렀다. ​ 플라톤 시대 이후부터 서구인들은 이들 행성은 지구에서 가까운 쪽부터 달, 수성, 금성, 태양, 화성, 목성, 토성이 차례로 늘어서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동양에서도 이 다섯 행성은 쉽게 관측되었으므로 오래 전부터 잘 알려져 있었다. 드넓은 밤하늘에서 수많은 별들 사이를 움직여 다니는 다섯 별을 본 고대 동양인은 이 별들에게 음양오행설에 따라 '화(불), 수(물), 목(나무), 금(쇠), 토(흙)'이라는 특성을 각각 부여했고, 결국 이들은 별을 뜻하는 한자 별 성(星)자가 뒤에 붙여져 화성, 수성, 목성, 금성, 토성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 것이다. 단, 지구만은 예외인데, 그 이유는 고대 사람들이 지구가 행성이라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이다. 망원경이 발명된 이후에 발견된 천왕성, 해왕성, 명왕성은 일본을 거쳐 우리나라로 들어왔다. 서양에 대해 가장 먼저 문호를 개방한 일본은 서양 천문학을 받아들이면서 이 세 행성의 이름을 자국어로 옮길 때, 우라누스가 하늘의 신이므로 천왕(天王), 포세이돈이 바다의 신이므로 해왕(海王), 플루토가 명계(冥界)의 신이므로 명왕(冥王)이라는 한자 이름을 만들어 붙였고, 한국에서는 이를 그대로 받아들여 오늘날까지 사용하게 된 것이다. -요일 이름에는 '천동설'이 숨어 있다 우리가 쓰는 요일 이름이 해와 달을 포함하여 다섯 행성들의 이름으로 지어진 것은 천동설의 후유증이라 할 수 있다. 요일 이름이 지어질 당시에는 천동설이 대세를 이루어 태양과 달도 지구 둘레를 도는 행성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가 애용하는 일, 월, 화, 수,목, 금, 토는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지구가 행성으로 낙착된 것은 17세기 초 망원경이 발명되면서, 수천 년 동안 인류의 머리를 옥죄어온 천동설의 굴레가 벗겨지고 지동설이 확립된 이후의 일이다. 태양계의 개념이 인류에게 자리잡은 것도 이때부터였다. 그러니까 태양계라는 말의 역사가 겨우 400년밖에 되지 않았다는 얘기다. 토성까지 울타리 쳐진 이 아담한 태양계가 우주의 전부인 줄 알고 인류가 나름 평온하게 살았던 시간은 200년이 채 안된다. 인류의 이 평온한 꿈을 일거에 깨뜨린 사람은 탈영병 출신의 한 음악가였다. 유럽에서 터진 7년전쟁에 종군하다가 영국으로 도망친 독일 출신의 윌리엄 허셜이 오르간 연주로 밥벌이하는 틈틈이 자작 망원경으로 밤하늘을 열심히 쳐다보다가 그만 횡재를 하게 됐는데, 그게 바로 1781년의 천왕성 발견이다. 그 행성은 토성 궤도의 거의 2배나 되는 아득한 변두리를 천천히 돌고 있었다. 그전까지 사람들은 토성 바깥으로 행성이 더 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어쨌든 한 천체의 발견으로 신분이 혁명적으로 바뀐 예는 허셜 외에는 없을 것이다. 한 무명 아마추어 천문가에 지나지 않던 허셜은 천왕성 발견 하나로 문자 그대로 팔자를 고쳤다. 하루아침에 유명인사가 되었을 뿐 아니라, 왕립협회 회원으로 가입하고, 영국왕 조지 3세의 부름으로 궁정에서 왕을 알현하고는 연봉 200파운드의 왕실 천문관에 임명되었던 것이다. 이로써 허셜은 음악가라는 직업을 벗어던지고 명실공히 프로 천문학자로서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다. 천문학상의 발견으로 이처럼 신분의 수직상승을 이룬 예는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어쨌든, 천왕성의 발견이 당시 사회에 던진 충격파는 신대륙 발견 이상으로 엄청나게 컸다. 인류가 수천 년 동안 믿어온 아담하던 태양계의 크기가 갑자기 2배로 확장되는 바람에 세상 사람들은 잠시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그로부터 반세가 남짓 만인 1846년에 영국의 애덤스와 프랑스의 르베리에에 의해 해왕성이 발견되었고, 다시 1930년에 미국의 C. 톰보에 의해 명왕성이 발견되어 태양계의 9번째 행성이 되었다. ​ 가난한 고학생 출신의 톰보를 일약 천문학 교수로 만들어준 이 명왕성의 영광은 그러나 한 세기를 넘기지 못했다. 2006년 국제천문연맹이 행성의 정의를 새로이 함으로써 명왕성이 행성 반열에서 퇴출되어 '왜소행성 134340'으로 강등되었던 것이다. 태양계 행성은 모두 여덟 개로, 물리적 특성에 따라 지구형 행성과 목성형 행성으로 분류되는데, 전자는 암석형 행성으로, 수성, 금성, 지구, 화성이고, 후자는 가스형 행성으로,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이다. 또한 지구를 기준으로 궤도가 안쪽이면 내행성, 바깥쪽이면 외행성이라 부르기도 한다. -행성은 절대로 '혹성'이 아니다 마지막으로서 하나 짚어둘 것은, 이 '행성'을 아직까지 '혹성(惑星)'이라고 하는 책(특히 일본 책 번역한 전문사전류들)이나 사람들이 꽤 있는데, 이건 절대 써서는 안 되는 용어로, 순 일본말이다. 영화 ‘혹성탈출’도 당연히 잘못된 제목이다. 일본 것 보고 그대로 베껴서 그렇다. 혹성의 ‘혹(惑)자는 ‘혹시’라는 뜻인데, ‘혹시 별?’ 이런 엉거주춤한 용어다. 행성을 영어로는 플래닛(planet)이라 하는데, ‘떠돌이’라는 뜻을 가진 그리스어 ‘플라네타이(planetai)에서 온 것이다. 그러니 우리말인 떠돌이별, ‘행성(行星)’이란 말이 더 아름답고 맞는 말이다. ​ 태양에서 가장 가까운 행성인 수성은 초속 60km로 88일 만에 태양을 한 바퀴 돌지만, 가장 멀리 있는 해왕성은 초속 5km로 165년을 달려야 태양을 한 바퀴 돌 수 있다. 2011년으로 해왕성이 발견된 지 딱 1주기을 맞았다. 지금 해왕성이 심우주의 머나먼 궤도를 한 바퀴 돌아와 70억 인구가 사는 지구를 내려다보고 있겠지만, 그 전에 보았던 얼굴은 하나도 찾을 수 없으리라. 캄캄한 우주공간을 쉼없이 달리며 태양을 도는 이들 지구의 형제, 행성들을 생각하면 마치 운수납자(雲水衲子)와 같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구름 가듯 물 흐르듯 떠돌아다니면서 수행하는 스님을 일컫는 아름다운 말이다. 지구와 같은 궤도평면을 떠나지 않고 46억 년 동안이나 변함없이 지구와 길동무 해서 같이 가고 있는 저 화성이나 천왕성 같은 행성이 바로 태양계의 운수납자가 아닐까? 이광식 통신원 joand999@naver.com 
  • [손성진 칼럼] 총리의 자격

    [손성진 칼럼] 총리의 자격

    사표를 던지고 공관에서 칩거한 이완구 국무총리의 표정은 만감이 교차하는 듯했다. 약관 24세에 행정고시에 합격하고 곧바로 고향 마을인 충남 청양군 비봉면 양사리와 지척에 있는 홍성군청 사무관으로 부임해 청운의 꿈을 품었던 때가 떠올랐을 것이다. 31세에 경찰서장을 하고 43세에 지방경찰청장이 된 그의 공직 인생은 ‘승승장구’라는 말 그대로였다. 그가 걸어온 길은 장애물이라고는 없는 탄탄대로였다. 경찰의 선두주자로 늘 승진에서 앞섰으며 정치인 이완구로서 소외감에 젖은 충청도 지역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도 받았다. 거침없는 41년의 질주 끝에 임명직 공직자의 최고봉인 총리가 됐을 때 마침내 고향 땅에서 꾸었던 꿈을 이루었다고 쾌재를 불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마지막은 불행히도 단 64일의 일장춘몽(一場春夢)이었다. 압도하는 능력으로 실패를 몰랐던 이 총리에게 최후의 좌절을 안겨 준 것은 거짓말과 부정이었다. 능력과 자질보다 더 귀중한 덕목인 정직과 겸손, 청렴성의 부족이 결국 인생의 화룡점정을 방해했다. 심리학자 폴 에크먼은 사람은 평균 8분에 한 번 거짓말을 한다고 했지만 정치에는 거짓말이 필요충분조건처럼 따른다. 공직에 만족하지 못한 그의 정치 인생 20년 동안 거짓말이 판을 치는 오염된 정치판의 물이 든 셈이다. 경찰 공직자로 평생 봉직했더라면 헛웃음이 나게 하는 그의 ‘거짓말 릴레이’를 들을 일이 물론 없었다. 정치가란 거짓말과 식언(食言)쯤은 아무렇지 않게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고 지레 자율학습을 했는지 알 길도 없다. 좌절을 겪지 않은 사람은 고개를 숙일 줄 모른다. 늘 ‘갑’인 사람은 ‘을’의 심정을 알지 못하기에 평생 갑 행세만 하는 것이다. 자세를 낮추는 겸손은 안중에도 없고 자신이 최고라는 교만에 빠지게 된다. 나의 판단과 행동은 모두 옳다는 아집과 그릇된 행동을 하고도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후안무치의 지경에 이른다. 경우야 다르지만 이 총리에 앞서 낙마한 총리 후보자들 또한 ‘이완구형’이다. 김용준, 안대희, 문창극씨는 전후(戰後)의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자수성가에 가까운 성공을 거둔 인물들이다. 사법시험 수석 합격, 최연소 합격, 최연소 경무관, 명문대 박사 등의 수식어를 달고 막힘 없는 출세 가도를 달렸다. 다만 그들에게 부족했던 것은 앞서 말한 정직과 겸손, 청렴으로 대변되는 덕망과 도덕성이었다. 1938년부터 1955년 사이에 태어난 ‘개발독재 세대’인 네 사람의 면면은 우리의 압축성장 과정과도 닮았다. 오로지 경제성장을 위해 다른 소중한 가치들을 무시했듯이 권력과 부귀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불법과 합법의 경계선을 넘나드는 부도덕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가장 거짓말을 잘할 때는 전쟁 중일 때와 사냥이 끝난 뒤, 그리고 선거하기 직전이다.” 역대 최고의 거짓말 정치가로 통하는 독일의 비스마르크도 말했듯이 거짓말을 앞세운 정치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 때로는 정치가에게 거짓말이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수단의 정당화는 목적이 정당하다는 조건이 붙는다. 정당한 목적이란 명백히 국민에게 이로운 국익과 같은 것이다. 과거와 같은 우민(愚民) 정책이 통할 만큼 대한민국의 백성은 어리석지 않다. 이 총리의 사퇴는 변명을 위한 거짓과 공약의 식언 따위를 유권자가 더이상 용납하지 않는다는 교훈을 남겼다. 정치는 도덕과 분리되어야 한다는 낡아빠진 마키아벨리즘은 이제 버려야 한다는 인식의 확산도 소득이라면 소득이다. 총리에 걸맞은 존경받을 어른을 찾지 못한다는 것은 어쩌면 국민의 불행이다. 그러나 덕망 높은 원로가 없다고만 자책할 일은 아니다. 한눈팔지 않고 묵묵히 제 길을 걸어온 강직하고 청렴한 어른은 어딘가에 있다. 단지 찾지 못할 뿐이다. 참된 원로를 찾는 일은 대통령과 청와대가 할 일이다. 시야를 더 폭넓게 가져야 한다. 앞만 보고 영달을 좇아온 주변 인물들에 함몰되어서는 안 된다. 국정의 2인자로서 총리는 국정수행 능력도 중요하지만 그저 국민이 우러러볼 인물만으로도 반은 역할을 하는 것이다. sonsj@seoul.co.kr
  • [재계 인맥 대해부 (4부) 뜨고 지는 기업&기업인 삼천리기업] 맨손으로 기업 일군 두 사람… 자손들이 지켜온 ‘동업의 힘’

    [재계 인맥 대해부 (4부) 뜨고 지는 기업&기업인 삼천리기업] 맨손으로 기업 일군 두 사람… 자손들이 지켜온 ‘동업의 힘’

    친구끼리 동업을 하면 우정도 잃고 돈도 잃는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돈 앞에서는 냉정해지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2대에 걸쳐 철저한 동업자 관계를 유지하며 견실한 기업을 일궈 온 이들이 있다. 올해 창립 60주년을 맞은 삼천리의 창업주 이장균 명예회장(1920~1997)과 유성연 명예회장(1917~1999)이다. 두 사람은 한국전쟁으로 혈혈단신 남한에 내려와 맨손으로 견실한 에너지 기업을 일궈 냈다. 이들은 마지막 순간 각자 평생 간직해 온 동업각서를 남기고 떠났다. 이 동업서약서에는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다른 사람이 남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다’, ‘투자 비율이 다르더라도 수익은 절반씩 나눈다’, ‘한 사람이라도 반대하면 중요한 의사 결정을 할 수 없다’는 등의 5개 조항이 담겨 있다. 아버지들의 약속은 여전히 두 집안의 금과옥조다. 현재 삼천리그룹을 이끌고 있는 이만득(59) 회장의 부친 이장균 명예회장은 1920년 6월 27일 함경남도 함주에서 아버지 이황주씨와 어머니 윤윤옥씨 슬하의 6남매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모두가 어렵던 시절 이 명예회장은 주경야독하며 야학에 다녔다. 이 명예회장은 흥남질소비료공장의 사원을 거쳐 토목건설 현장의 서기로 일했다. 성실한 성품을 인정받아 함남토목회사의 하도급을 시작했고 이는 사업가로서의 첫걸음이기도 하다. 사업 수완도 좋았다. 그는 소련군이 함흥에 진군하자 시내에서 ‘민흥상회’를 차려 군을 상대로 장사했다. 이 과정에서 만난 이가 유성연 명예회장이다. 영원한 동업자로 남은 유 명예회장은 1917년 함경남도 삼평면 부흥리에서 아버지 유봉주씨와 어머니 김씨의 2남 4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부친의 사업 실패로 곤궁한 삶이 이어졌지만 소년은 똘똘했다. 늦깎이 공부를 해야 했지만 보통학교 4년을 우등으로 졸업한 뒤 평양사범학교를 마쳤다. 함흥의 한 보통학교 등에서 6년간 교편도 잡았다. 유 명예회장은 해방 이후 사업에 뛰어들었다. 1944년 함흥 선덕비행장에 주둔한 소련 공군을 상대로 미군 군수물자, 초콜릿, 통조림, 담배, 술 등을 팔았다. 서울에서 재회한 두 사람은 1955년 ‘삼천리연탄기업사’를 설립했다. 서민들의 연료인 신탄(숯)을 제조해 파는 과정에서 앞으론 무연탄이 가정 연료로 귀하게 쓰일 것이라고 판단했다. 삼천리가 설립된 1950년대는 온 나라가 ‘재건’이란 기치에 매달리던 때다. 하지만 당시 남한의 석탄 생산량은 북한보다 터무니없이 모자랐다. 정부는 석탄의 증산이 무엇보다 시급하다는 판단에 따라 막대한 탄광 복구비를 투입했고 석탄 수송을 위한 철도도 건설했다. 예상은 적중했다. 질 좋은 원탄을 쓴 삼천리 연탄은 시중에서 불티나게 팔렸다. 특히 1964년 개발한 22공탄은 고품질 연탄의 대명사처럼 회자됐다. 시장의 뜨거운 반응에 힘입어 창업 10년 만인 1965년 연탄 공장은 최초 설립 당시보다 52배나 성장할 정도였다. 삼천리는 1970년 삼척탄좌를 인수하면서 일대 전환점을 맞이했다. 석탄을 안정적으로 수급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드물게 한 기업이 석탄 채굴부터 연탄 생산까지 수직계열화를 이뤘다는 점도 의미가 깊다. 결국 8년 뒤인 1978년 삼천리는 국내 1위 연탄기업에 올라섰다. 사업이 번창하면 동업 관계는 금이 가게 마련이지만 두 집안의 관계는 오히려 단단해졌다. 두 사람의 이야기는 1985년 KBS 드라마 ‘열망’의 소재가 될 만큼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석탄만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었다.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올림픽을 계기로 대기오염 문제와 환경보호가 화두로 떠오르면서 여전히 석탄 비중이 적지 않았던 당시 에너지 업계엔 커다란 파도가 일었다. 석탄보다 운송이 쉽고 오염물질도 적은 도시가스가 새로운 에너지원으로 대두했다. 삼천리는 이런 변화를 읽고 있었다. 1982년 경인도시가스를 인수, 도시가스 사업에 진출했다. 가정용은 물론 산업용 수요 개발에 힘을 쏟은 덕에 삼천리는 국내 최고 도시가스 기업으로 변화할 수 있었다. 당시 도시가스는 가정용이라는 인식이 강해 기업은 물론 정부도 용도 변경을 시도해 본 적이 없었다. 정부를 설득해 1985년 국내 최초로 산업용 가스를 공급하게 된 삼천리는 최고의 자리를 이어 갔다. 1987년에는 액화석유가스(LPG)를 액화천연가스(LNG)로 전환해 국내 최초로 도시가스에 공급하면서 삼천리는 한국의 도시가스 산업을 선도하는 기업으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유영규 기자 whoami@seoul.co.kr
  • 日의원 106명 야스쿠니 신사 집단 참배 강행

    일본의 유력 언론들이 아베 신조 총리에게 과거사에 대한 사죄를 촉구하는 가운데 아베 정부 장관 등 일본 국회의원 106명이 태평양전쟁의 A급 전범들을 합사해 놓은 야스쿠니 신사에 집단 참배를 강행했다. 의원들의 집단 참배는 과거사를 반성하라는 국제 사회와 일본 내의 여론과 기대에 역행하는 것이란 비판을 받고 있다. 22일 NHK 등 일본 매체에 따르면 초당파 의원연맹 ‘다함께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국회의원 모임’ 소속 의원 106명은 이날 야스쿠니 신사를 단체로 방문해 참배했다. 오자토 야스히로 환경부대신도 참여했다. 2013년 12월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던 아베 총리는 전날 참배 대신 공물인 ‘마사카키’를 봉납했다. 관련 의원 모임은 지난해 봄과 가을 예대제(제사) 때 각각 국회의원 147명과 111명이 단체로 야스쿠니 신사를 찾았고 패전일(8월 15일)에도 집단으로 참배했다. 야스쿠니 신사에는 극동군사재판에 따라 사형된 도조 히데키 전 총리 등 태평양전쟁 A급 전범 14명이 포함돼 있어 군국주의의 상징처럼 여겨져 왔다. 보수 성향의 요미우리신문과 마이니치신문 등의 사설을 통한 비판에 이어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일본 총리도 과거사를 사죄하지 않는 아베 총리를 에둘러 비판했다. 무라야마 전 총리는 “(아베 총리가 식민지 지배와 침략 등을) 인정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 속에 있으니까 언급하고 싶지 않은 것이며 그런 점이 의심된다”면서 “(총리는) ‘왜 일본만 사죄해야 하는가’ 하는 마음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유흥수 주일대사도 이날 내외정세조사회 강연에서 식민지 지배와 침략에 대한 반성 문구를 70주년 담화에 포함하는 것이 “일본에 득이 될 것”이라며 “주변국 국민의 평가를 받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아베 총리의 사상 첫 미 상·하원 연설 성사에 큰 역할을 한 사사에 겐이치로 주미 일본대사는 21일(현지시간)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강연에서 “아베 총리가 역대 일본 정권의 담화를 계승한다는 입장을 밝혔다”며 합동연설에서 한국·중국 등과의 과거사 문제는 명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사사에 대사는 “아베 총리가 합동연설에서 과거사 문제를 적절하게 다룰 것이며 나는 걱정하지 않는다”고 언급, 포괄적 수준의 언급만 있을 것임을 시사했다. 워싱턴 김미경 특파원 chaplin7@seoul.co.kr 도쿄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 [당신의 책]

    [당신의 책]

    목수의 인문학(임병희 지음,비아북 펴냄) 문학도에서 신화 연구가로, 다시 목수로 변신을 거듭한 저자가 일상에서 건져 올린 인문학의 묘미. ‘공부도 할 만큼 했다’는 목수가 지난날의 삶에서 깨친 ‘인생미정(人生未定)’의 철학을 바탕으로 지금 일들을 덤덤하게 풀어낸 이야기 묶음이다. 공방에서 가구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 빗대 ‘삶의 재료’들, ‘삶을 바꾸는 공구들’, ‘삶의 찬란한 마감재들’이란 세 개의 카테고리로 묶은 에피소드들이 동·서양 고전의 어렵지 않은 덧칠로 풀어진다. ‘나도 내가 목수 될 줄 몰랐다’는 식의 덤덤하지만 앙금 있는 글 투르기가 녹록지 않은 인문학 지식과 어울린 ‘생활 속 인문학’ 읽기랄까. “삶이란 죽는 그 순간까지는 끝난 것이 아니므로 스스로 한계 짓지 말라”는 맺음 부분의 당부도 저자 개인의 삶과 맞물려 호소력 있는 울림으로 전해진다. 목공 일을 하면서 겪거나 부닥치는 일상의 일들이 이야기의 주 테마인 만큼 공방과 직접 만든 가구 모습으로 만나는 목공예의 풍경은 덤이다. 264쪽. 1만 4000원. 생각은 죽지 않는다(클라이브 톰슨 지음, 이경남 옮김, 알키 펴냄) “디지털 기술은 인류의 생각하는 능력을 갉아먹는다” 2011년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니컬러스 카) 출간 이후 통념이 된 명제. 그 명제와 달리 ‘새 기술은 사고 패턴을 좋은 쪽으로 바꾼다’고 강조, 글쓰기·인쇄술을 포함해 기술혁신이 우려를 낳았던 해프닝들을 소개한다. 글쓰기가 그리스의 웅변술 전통을 파멸시킬 것이라 했던 소크라테스 등 염세주의자들의 불찰도 들어 있다. 소크라테스는 사람들이 어떤 사실을 기억하지 않고 적으려고만 든다고 걱정했다. 저자는 마주치는 것들을 머릿속에 저장할 필요가 없어졌을 때 비로소 복잡한 생각을 할 수 있게 됨을 소크라테스는 보지 못했다고 말한다. 소크라테스의 우려는 전자책이 종이책을 대체하고, 스마트폰이 필수품이 되면서 우리가 갖게 된 두려움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그 맥락에서 디지털 기술특성을 조목조목 짚어 인간정신에 미치는 영향을 다각적으로 분석한다. 456쪽. 1만 6800원. 네트워크의 부(요하이 벤클러 지음, 최은창 옮김, 커뮤니케이션북스 펴냄) 2006년 영문 초판이 발행된 직후 큰 반향을 일으킨 책. 인터넷 시대의 미래를 낙관적으로 전망해 많은 미래학 관련 논문·저서에 인용됐다. 제목 ‘네트워크의 부’는 인간의 이기심에 의해 작동하는 ‘보이지 않는 손’이 사회적 진보와 공공선을 가져오는 원동력이라고 했던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에 빗댄 표현이다. 저자는 인터넷의 출현에 따라 개인들이 네트워크로 연결되고 이들이 사회적 존재로서 공유와 협업을 통해 비시장적으로 정보·문화·지식을 생산하는 네트워크 정보경제가 도래했다고 주장한다. 시장에 의존하지 않고 이루어지는 생산인 ‘사회적 생산’이 소셜네트워크를 기본으로 한 동료생산을 통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강조한다. 네트워크 정보경제에서 창출된 사회적 부가 정치·경제·문화적 자유와 성찰을 증진시킨다는 것이다. 초판 발행 이후 변화된 상황을 한국어판 서문에 직접 썼다. 876쪽. 2만 9000원. 이화림 회고록(장촨제외 엮음, 박경철·이선경 옮김, 차이나하우스 펴냄) 중국 상하이로 망명해 김구 선생이 이끄는 한인애국단에 가담한 뒤 이봉창·윤봉길 거사에 협력했던 여성 독립운동가 이화림(1905-1999). 김구 선생의 비서로 한인애국단 활동을 시작했다는 이화림의 이야기가 ‘백범일지’에 단 한 줄도 보이지 않는 이유는 뭘까. 이화림은 윤봉길 의사와 일본인 부부로 위장해 상하이 훙커우 공원을 정탐하는 등 의열활동의 숨은 조력자 임무를 성공적으로 해낸 여성이다. 나라 잃은 여인으로서 고난과 역경에 굴하지 않고 조국독립과 해방을 위해 평생을 살았던 걸출한 인물이다. 하지만 한국전쟁 중 중국인민지원군으로 참전했다는 이유 등으로 사실상 잊혀지고 묻혀 금기시돼 왔다. 책은 그 독립운동가를 발굴해 역사 속에서 부활시켰다. 이화림의 회고를 바탕으로 중대 사건과 관련한 그의 활동을 꼼꼼하게 붙였다. 중국 내 항일구국·민족해방과 국가독립 쟁취의 역사 재현을 통해 중국 현대에서 잊혀진 빈 공간을 채운 기록이 눈길을 끈다. 388쪽.1만 5800원.
  • [서울신문이 만난 사람] 한국 첫 이슬람 출판사 대표 후세인 크르데미리가 말하는 무슬림이란…

    [서울신문이 만난 사람] 한국 첫 이슬람 출판사 대표 후세인 크르데미리가 말하는 무슬림이란…

    이 세상에는 유별나게 자신의 삶을 개척하며 살아가는 이들이 적지 않다. 21년간 이 땅에 무슬림(이슬람 신자)으로 살고 있는 터키 출신의 후세인 크르데미리(44·한국명 장후세인)도 종교계에선 이름 난 인물이다. 본국에서부터 한국어를 전공해 서울대 대학원에서 국어국문학 공부를 계속한 한국통이다. 이슬람 제대로 알리기를 천직이자 으뜸 소명으로 삼다가 한국에 귀화했고 결국 3년 전 출판사를 직접 차려 한국과 이슬람의 가교 역할을 자임해 사는 그를 서울 용산구 한남동 이슬람 사원에서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최근 들어 이슬람국가(IS)의 움직임이 지구촌 최대 관심사 중 하나가 돼 버린 느낌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IS가 테러와 침탈, 학살의 주체나 배후로 지목되고 있다. IS는 어떤 단체인가. -나도 잘 모른다. 9·11사태가 발생하기 전 사람들이 오사마 빈라덴을 잘 몰랐던 것처럼 IS 역시 갑자기 돌출돼 세상 사람들의 시선을 끌게 됐다. 대부분의 무슬림들이 당황스러워한다. 정치적 배후며 무기 공급 통로 같은 것들이 베일에 가려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만천하에 드러날 것이다. 분명한 건 그들이 지금 보여주고 있는 행동은 무슬림이라면 할 수 없는 것들이라는 점이다. 이슬람 신앙에 토대를 둔 순수 종교집단이 아니라 정치적 이해로 결속된 무장단체로 본다. →IS는 테러 등 집단행동을 할 때 꼭 이슬람을 표방하고 이슬람 단체임을 명시하는데. -나를 포함해 전 세계 16억 이슬람 교도들이 걱정하며 지켜보고 있다. 그들의 행태는 코란과 예언자 언행록인 하디스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코란에는 ‘한 사람을 죽이는 건 온 인류를 죽이는 것과 같고, 한 사람을 구하는 것은 온 인류를 구하는 것과 같다’고 쓰여 있다. 예언자 언행록인 하디스에는 낙타를 타고 갈 때 강아지가 밟혀 죽을까 염려해 길을 바꿔 돌아갔다는 대목도 전해진다. 무슬림들은 그렇게 배웠고 배우고 있다. 그런데 생각이 다르다고, 함께 행동하지 않는다고 사람을 잔인하게 죽인다면 무슬림이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할 수 있다. 이슬람에서는 전투에도 나름의 법도가 있다. 나와 싸우는 사람만 적으로 보며 나를 죽일 목적으로 무기를 들지 않는 한 여성과 아이들을 포함한 민간인은 절대 죽이지 않는다. 적의 시신도 존중하라고 가르치는데 어떻게 민간인 시신을 불태우고 칼로 자를 수 있는가. →IS가 기승을 부리면서 주변의 시선이 달라지지 않았나. -IS의 잔인한 모습이 연신 등장하는 언론 보도를 보면서 많은 이들이 이슬람교를 무서운 종교라고 생각하게 될 것 같아 안타깝다. 뉴스에 비치는 모습들은 모든 이슬람을 대표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백인 우월주의를 내세운 미국의 극우 비밀결사 KKK를 보고 모든 기독교 단체가 다 그렇다고 말할 수 없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렇다면 IS와 정통 무슬림을 엄격하게 구분 짓는 으뜸의 정신은 무엇인가. -평화라고 말할 수 있다. 이슬람 국가들이 다른 국적의 사람들과 평화롭게 공존한 역사적 흔적들은 조금만 관심을 기울인다면 숱하게 찾을 수 있다. 서방세계에 이슬람이 잘못 알려져 지금처럼 편견과 오해가 만연한 것 같다. 안타깝게도 이런 것들은 쉽게 바로잡을 수 없고 개선하기도 힘들다. →평화를 중시한다는 이슬람과 아랍 세계에서 왜 전쟁과 테러가 끊임없이 반복되나. -자원을 둘러싼 서방세계, 특히 유럽의 정치 역학이 큰 원인일 것이다. 교육 기회가 늘고 해외 이주가 늘면서 유럽화된 무슬림을 포함해 이슬람과 멀어진 무슬림들이 많아진 탓도 크다. 이슬람 국가들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이슬람식으로 풀어야 하는데 지도자들이 제 나라 제 민족보다 자신을 지원하는 서방 국가들에 휘둘리기 일쑤다. 그 많은 자원을 갖고도 가난하게 살며 내분이 만연한 이유다. 이집트만 하더라도 전 국민의 40%가 1달러로 하루를 살아간다. 다행히 무슬림권에서 ‘원래의 이슬람으로 돌아가야 평화롭게 살 수 있다’는 인식이 늘고 있고 잘못을 바로잡으려는 몸짓들이 확산되고 있다. 서방세계도 함께 노력해야 한다. 유럽의 무슬림들은 옛날 유대인 격리 거주구역 ‘게토’처럼 따로 모여 사는 경우가 많고 취업할 때도 아랍어 이름을 쓰면 불이익을 받는다. 우리에게 민주주의를 가르친다는 나라들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일들이다. →한국인들 사이에도 이슬람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용어가 많은가. -‘알라신’과 ‘회교’가 가장 대표적인 경우다. 알라는 이슬람교의 유일신을 지칭하는데 알라신이라고 말하면 동어반복이다. 흔히 무함마드를 이슬람교의 창시자라 부르지만 무함마드는 창시자가 아닌 예언자다. 코란도 예언자 무함마드가 쓴 책이 아닌데 무함마드가 썼다고 인식되기 일쑤다. ‘한손에 칼, 한손에 코란’처럼 서방세계가 이슬람의 호전성을 악의적으로 왜곡해 만들어낸 말도 적지 않다. 전쟁이 끝난 뒤 홀로 된 여성을 보호하기 위해 등장했던 일부다처제도 잘못된 인식의 단적인 사례다. 한국의 나이 든 세대에서 이슬람교 대신 자주 쓰이는 ‘회교’도 옛 중국 무슬림 중에 회족이 많았던 데서 비롯된 말이다. →주변에 이슬람의 지하드나 자살 테러와 관련해 궁금해하는 이들이 많다. 실제로 이슬람에서 용인하는 개념들인가. -성전(holy war)으로 널리 알려진 지하드는 이슬람이 아닌 서방세계에서 비롯됐다. 성지 탈환을 위한 십자군전쟁 때 모병하면서 성스러운 전쟁을 강조한 말이다. 이슬람에서의 지하드는 원래 ‘노력하다’ ‘열심히 하다’ ‘투쟁하다’의 뜻을 담고 있다. 이를테면 학생이 커닝 안 하고 정직하게 공부하거나 통치자가 나라를 바르게 다스린다는 뜻이다. 물론 적군의 공격에 방어한다는 의미도 있다. 무함마드는 예언자 시절 전투가 끝난 뒤 “싸우기는 쉽지만 나 자신을 올바르게 바꾸기에는 더 큰 노력이 필요하다”며 작은 지하드 끝에 정신적인 차원의 더 큰 지하드가 시작된다고 늘 말했다고 한다. 자살 테러와 관련해선 코란의 가르침을 보면 명확히 알 수 있다. 무슬림은 하나님이 몸을 주셨기 때문에 죽을 때까지 잘 관리해야 한다고 다짐한다. 영혼을 주신 분의 허락 없이 목숨을 끊는 자살은 당연히 금지된다. 지옥에선 현생과 똑같은 방식으로 고통받는다고 하는데 지옥에는 죽음이 없는 만큼 지금 세상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 없는 것이다. 자살 폭탄 테러는 식구들의 생계를 위해 또는 배후 세력의 위협을 받아 저지르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한국은 많은 종교가 평화롭게 공존해 ‘종교 천국’이라는 말이 통한다. 하지만 일각에선 이미 평화가 깨졌다는 우려가 제기되기도 한다. 한국의 종교 마찰 양상이 그렇게 심한가. -피부로 느낄 만큼 종교 간 마찰이 심하지는 않은 것 같다. 다만 일부 개신교의 지나친 선교 행위는 비기독교인들이 적지 않게 거부감을 느낄 것이다. 무슬림인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한국인들도 눈살을 찌푸린다. →한국에서 이슬람 교세 학장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는데 어느 정도인가. -외국인 무슬림은 10만명 안팎으로 추산되며 최근 들어 신도가 부쩍 늘고 있다. 이슬람 사원 같은 곳에서 처음 마주치는 얼굴, 특히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 마트에 가 보면 히잡으로 머리와 상반신을 가린 동남아시아나 아랍국 여성을 자주 만나게 되는데 한국인들도 별로 어색하지 않게 보는 것 같다. →출판사 이름이 특이하다. 왜 이슬람 출판사를 시작했나. -초등학생인 딸 이름 젠나와 입학 전인 아들 무민의 이름을 합쳐 출판사 이름을 지었다. 이슬람을 바르게 알리는 게 시급하다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해 왔다. 이슬람을 신앙으로 택하건 안 하건 자유이지만 알려면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슬람을 이해하면 세계인의 4분의1을 아는 것이다. 국가 간의 관계도 편견 없이 정확하게 알아야 오래 지속되고 얻는 게 많은 법이다. 그런데 국내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볼 수 있는 이슬람 서적의 95%가 비무슬림이 쓴 책이다. 제대로 알리려면 정확한 지식을 정확한 한국어로 전달해야 한다는 생각을 실행에 옮긴 것이다. 2013년에 이어 지난해에도 서울국제도서전에 참석했다. 한국의 무슬림 출판사로는 처음이라고 한다. →어떤 책을 냈나. 책은 잘 팔리나. -주로 이슬람을 쉽고 정확하게 이해하도록 돕는 책들인데 반응이 썩 나쁘지 않은 편이다. 지금까지 5권을 냈는데 모두 재판을 찍었다. 해외에서도 주문이 들어온다. 특히 지난해 낸 ‘한국인들이 이슬람에 대해 궁금해하는 40가지’는 나도 놀랄 만큼 반응이 좋았다. →한국인들은 지금 이슬람과 무슬림을 어떻게 보고 있다고 생각하나.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세종대왕이 경복궁 경회루 앞뜰에서 좌우로 문무백관이 도열한 가운데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이슬람 원로의 코란 암송 소리에 빠져 있는 모습이 등장한다. 그렇게 한국과 이슬람의 관계는 오래됐지만 여전히 한국인에게 이슬람은 낯선 종교이자 문화의 영역으로 남아 있다. 그래서 나처럼 다리 역할을 할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처음 한국에 올 때와 비교해 보면 큰 변화를 실감한다. 이제는 이슬람교에 대한 거부감도 별로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귀화 한국인인데 앞으로 하고 싶은 일들은. -이슬람을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편하게 찾을 수 있는 성원 같은 공간을 파주에 세웠으면 한다. 이슬람 교육이 필요한 무슬림 아이들이 점점 늘어나지만 그들을 수용할 마땅한 공간이 없다. 신앙과 교육, 문화를 함께 접할 수 있는 학교 형식의 공간도 마련했으면 한다. 물론 이슬람을 정확하게 알리는 출판 일이 으뜸이다. 출판 단지에 이슬람 출판사를 크게 짓고 싶은 꿈이 이뤄질 수 있을지 모르겠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후세인 크르데미리는 누구 1971년 터키 동쪽의 작은 도시 요즈가트에서 대대로 제빵 기술자의 업을 이은 ‘명문 빵집’의 4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다. 한국의 TV 만화영화며 다큐멘터리를 즐겨 보며 자랐고 앙카라대 한국어과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한국 정부 초청 장학생으로 1994년 한국에 들어와 서울대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석·박사 과정을 모두 마쳤고 현재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 중이다. 웬만한 한국 사람보다 고급 한국어 구사가 더 정확하다. 2005년 서울 용산구 한남동 이슬람 사원을 찾았다가 한국이슬람교중앙회 선교교육국에서 이슬람 안내 책자를 펴내는 일을 하게 된 것을 시작으로 7년간 언론·홍보 담당과 내외국 방문객 안내 및 통역 일을 두루 했다. 2006년 귀화했고 한국인 아내와의 사이에 1녀(8세), 1남(6세)을 뒀다. 이슬람 사원 인근 이태원에 보금자리를 꾸며 살다가 2012년 경기 파주시에 한국 최초의 이슬람 전문 출판사 ‘젠나무민북스’를 차리면서 그곳으로 옮겨 가 살고 있다. 지금까지 모두 다섯권의 이슬람 관련 서적을 세상에 내놓았으며 서울국제도서전에도 해마다 참여하고 있다. 이슬람을 제대로 알리는 것을 으뜸 소명으로 삼아 “한국과 이슬람의 다리로 살다가 이 땅에 뼈를 묻겠다”는 독특한 이방인이다.
  • [재계 인맥 대해부 (4부) 뜨고 지는 기업&기업인 삼양그룹] ‘만인의 양식’ 식품서 바이오까지… 글로벌 100년 기업 꿈꾼다

    [재계 인맥 대해부 (4부) 뜨고 지는 기업&기업인 삼양그룹] ‘만인의 양식’ 식품서 바이오까지… 글로벌 100년 기업 꿈꾼다

    삼양그룹은 ‘100년 기업’을 불과 9년 앞둔 전통의 식품·화학·의약바이오 소재 기업이다. 일반 소비자들에겐 ‘큐원설탕’(옛 삼양설탕)으로 더욱 친숙하지만 삼양은 국내 주요 식품·화학·의약바이오 등 대기업에 원재료를 공급하고 있어 기업 간 거래(B2B) 분야의 강자로 유명하다. 올해로 출범 91주년을 맞는 삼양그룹은 신소재 고부가가치사업 분야를 강화하며 향후 보다 공격적인 경영을 통해 글로벌 기업으로 우뚝 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호남 거부의 후예인 고 김연수 삼양그룹 창업주는 1924년 삼양의 모태인 삼수사(三水社)를 설립했다. 국내 최초의 기업형 농장으로 간척사업도 병행했다. 사업이 날로 확대되던 1931년 ‘만인의 양식’이란 의미로 ‘물 수’(水) 대신 ‘기를 양’(養)을 넣어 상호를 삼양사(三養社)로 바꿨다. 1939년 만주에 한국 기업 최초의 해외 생산법인인 남만방적도 건설했다. 1945년 해방으로 만주방적사업은 철수했고, 농지개혁으로 농장과 사업장을 잃었다. 김 창업주는 위기를 기회로 삼아 국내 최대 민영 염전을 개척해 새 출발의 기틀을 다졌다. 그는 6·25전쟁 이후인 1955년 울산 제당공장을 준공한 뒤 이듬해 삼양사를 본격 출범시켰다. 당시 수익성이 더 컸던 해리염전(현 삼양염업사)은 장남 상준, 차남 상협, 넷째 상돈에게 물려줬다. 자신이 직접 경영한 삼양사는 3남과 5남이 이어 가도록 했다. 3남은 고 김상홍 삼양그룹 명예회장, 5남은 김상하 삼양그룹 회장이다. 김상홍 명예회장은 와세다대 출신으로 34세의 나이에 삼양사 사장으로 입사해 창업주를 도와 삼양사를 함께 키워 갔다. 1950년대 창업주가 제당사업을 할 때 창업주인 부친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식품 회사의 틀을 함께 일궜다. 동생인 5남 김상하 삼양그룹 회장과 함께 부친을 도와 1960년대 화학섬유산업, 1980년대 석유화학산업, 1990년대 의약바이오 산업으로 사업을 다각화하면서 사세를 키워 나갔다. 1996년 김상하 회장에게 그룹 회장직을 넘겨주고 명예회장으로 물러난 뒤 2010년 세상을 떠났다. 1955년 울산 제당공장의 준공으로 시작된 식품사업은 1984년 선일포도당을 인수한 뒤 오늘날 그룹의 주력 중 하나인 삼양제넥스로 커졌다. 1988년엔 제분사업, 2004년엔 가공유지사업 등을 아우르는 식품소재 기업으로 발전해 국내 음료, 제과, 면 등 식품 완제품 업체에 소재를 공급하고 있다. 김상홍 명예회장은 당시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등이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으로 있을 때 부회장(1983~1993년)으로 활동하며 재계를 이끌기도 했다. 지금은 장남인 김윤 삼양홀딩스 회장이 전경련 부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서울대 정치학과 출신인 김상하 회장은 1988년부터 12년간 최장수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역임했다. 삼양그룹은 2011년 말 기업 투명성을 높이고 기업 가치를 제고하기 위해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했다. 주력이던 삼양사는 삼양홀딩스와 삼양사, 삼양바이오팜 등 3개 회사로 분할했다. 지주회사 격인 삼양홀딩스는 투자, 무역, 임대사업 등을 맡고 있는데 오너 대주주들이 삼양홀딩스 주식을 보유하는 식으로 그룹을 소유하고 있다. 식품 등을 담당하는 그룹의 주력 기업인 삼양사는 지난 3년간 이어진 사업 부문 재편을 통해 올해를 기점으로 향후 큰 폭의 이익 개선이 기대된다는 평을 받고 있다. 다만 석유화학산업의 경기 하락으로 그룹의 또 다른 축인 화학 쪽이 저조해 그룹 전체 매출이 2011년 이후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페트병 등의 원료로 사용되는 테레프탈산(TPA) 등을 만드는 삼남석유화학은 2014년까지 3년 연속 적자를 기록했으며, 화학 쪽 신소재사업을 담당하는 삼양이노켐은 자본 잠식 상태에 빠져 있다. 그러나 삼양그룹은 선대가 그랬듯 위기를 기회로 삼아 글로벌 연구·개발(R&D) 혁신 기업으로 성장한다는 비전을 제시하고 공격적인 경영에 힘을 쏟고 있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옥수수를 이용해 친환경 소재인 ‘바이오 플라스틱’을 개발했다. 이 소재는 인체에 무해한 친환경적인 생활 속 플라스틱 재료로 어린이용 장난감 등 다양한 곳에 쓰인다. 미래형 경량화 자동차 소재인 엔지니어링 플라스틱도 개발 중이다. 바이오사업 분야에서는 자체 기술력으로 만든 수술용 봉합사가 세계 브랜드로 자리매김하는 등 성과를 내고 있다. 부진했던 석유화학 분야는 수출선을 기존 중국에서 유럽, 중동 등으로 다변화해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내년 상반기에는 판교 R&D센터가 문을 연다. 분산돼 있는 기존 R&D 부문을 한곳으로 모아 R&D 시너지를 강화한다는 복안이다. 삼양의 3세대 리더인 김윤 삼양홀딩스 회장은 지난 1월 신년사에서 “2015년은 삼양이 미래 성장 기반을 준비하는 또 다른 전환점이다. 우리만의 차별화된 강점을 바탕으로 그룹의 성장을 이끌 고부가가치사업을 발굴해야 한다”며 도약을 다짐했다. 주현진 기자 jhj@seoul.co.kr
  • [이슈&논쟁] 대학생 예비군 동원훈련 부활

    [이슈&논쟁] 대학생 예비군 동원훈련 부활

    국방부가 대학생들도 예비군 동원훈련(2박 3일)을 받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혀 찬반 논란이 뜨겁다. 예비군에 편성된 대학생들은 1971년부터 학습권 보장 차원에서 동원훈련을 면제받았고 대신 하루 8시간의 학교 예비군 훈련만 받도록 돼 있다. 하지만 생업에 종사하면서 동원훈련에 참여하는 일반 예비군과의 형평성 문제가 제기돼 왔다. 군 안팎에서는 현역병 감축에 따라 예비군 가용 인원이 줄어들었다는 점을 들어 예비 전력의 정예화를 위해서는 대학생들을 동원훈련 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하지만 동원 예비군 자체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시각도 만만찮다. 특히 국가가 시민을 함부로 동원하는 국가 동원 시스템을 합리화하려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贊] “예비군 부족… 대학생 특혜 안 돼” 양욱 한국국방안보포럼 선임연구위원 대한민국 남성에게는 군 복무만큼이나 중요한 국방의 의무가 있다. 바로 예비군 훈련이다. 예비군이란 상비군에 반대되는 개념이다. 항상 무장 상태로 전쟁을 준비하는 상비군과 달리 예비군은 전쟁이나 분란이 생겨 병력이 부족할 때 증원되는 부대다. 예비군 대상 인원은 군 복무를 마친 지 8년 이내의 베테랑들로, 체력적으로도 뛰어나고 군 시절의 전투 기술이 몸에 배어 있는 이들이다. 예비군이 중요한 이유는 전시에 곧바로 현역 부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구 감소로 현역 복무 대상이 줄어드는 요즘 예비군은 더욱 중요하다. 특히 병력 수가 중요한 지상군의 미래는 암울하다. 현재 50만명 남짓한 육군 병력이 앞으로 7년 뒤인 2022년에는 38만여명 수준으로 줄어든다. 북한 지상군이 110만명 남짓한 규모를 계속 유지할 것임을 감안한다면 이는 엄청난 위협이다. 병사 1명이 적 3명 이상을 죽여야 침략을 막아낼 수 있는 상황이다. 이렇게 중과부적인 상황에서 예비군이야말로 유사시 대한민국 방어의 핵심이 된다. 과거 출산율이 높던 시절에는 대학생을 제외하더라도 예비군 동원 인원이 400만명을 넘었다. 그러나 저출산·고령화 시대인 현재는 대학생을 포함해도 예비군은 270만~290만명 수준에 불과하다. 그중에 대학생은 무려 50여만명에 이른다. 현재 육군 총원보다도 많은 숫자다. 그런데 이런 엄청난 숫자의 병력들이 대학생이라는 이유로 2박 3일의 동원훈련 대신 8시간의 훈련으로 대체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유독 대학생만 예비군 훈련에서 혜택을 받는 것일까. 현재 예비군에는 보류자로 분류돼 훈련을 면제받는 인원이 68만여명에 이른다. 지자체 단체장·의원 등의 사회 지도층 인사나 판검사, 경찰공무원 등 국가의 공공임무를 매일 단위로 수행하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법령에 근거해 예비군 훈련이 면제된다. 그러나 대학생의 면제 근거는 법률이 아닌 국방부 장관의 방침이었다. 예비군 창설 초기인 1971년부터 동원훈련이 면제돼 왔다. 학습 여건을 보장하고 학원 질서를 유지하며 국가 자원을 활용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당시만 하더라도 우리 사회는 대학생을 엘리트 계층으로 봤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도 대학생은 소중한 국가 자원이다. 가혹한 등록금 압박에 취업도 어려운 데다가 방학 동안 노는 것도 아닌데 예비군 훈련까지 늘리는 것은 가혹하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청소년의 80%가 대학을 진학하고 있는 현재 대학생을 동원훈련 대상에서 제외해 버린다면 전시에 귀중한 자원이 심각하게 줄어들게 된다. 앞서 언급했듯이 현재 지상군 전체보다 많은 병력인 50여만명이 전시 대비 태세를 갖추지 못하는 셈이 된다. 또한 대학 진학 대신 먼저 실업 전선에 뛰어든 예비군들도 있다. 이들은 대학생들보다 더욱 어려운 환경에서도 예비군 훈련에 임하고 있다. 일례로 자영업자인 예비군이라면 하루하루의 생계가 훈련으로 위협받는데도 여전히 국가를 위한 의무를 지고 있다. 국가의 미래를 책임질 지성인 대학생이라면 오히려 이러한 국가적 상황을 위해 나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법률로 훈련을 면제받는 사회 지도층이 솔선수범해 훈련에 나서는 게 먼저다. 물론 국가적 배려도 필요하다. 아무리 병역의 의무라지만 기존까지 부과하지 않던 의무가 생긴다면 그것이 2박 3일이라도 힘든 것은 매한가지다. 대학생이건 아니건 최소한 예비군으로서 활동하는 시간에 대해서는 현실적인 비용 보상이 필요하다. 동원 예비군의 진정한 의미는 전시에 부대를 증편하는 것이다. 형식적인 부대 방문이 아니라 실제 전쟁의 혼란 속에서 증편하는 실전적 연습이 필요하다. 대학생 예비군들의 귀중한 봉사가 북한의 오판을 막을 수 있는 전력이 되도록 우리 군이 노력해야만 할 것이다. [反] “전시 동원병 충분… 시대착오적”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 요즘 복고가 정치, 사회, 문화를 넘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영화 ‘쎄시봉’에서 배우 조복래가 부르던 ‘사랑이야’는 가수 송창식씨가 1978년 발표한 앨범 ‘프랑코 로마노 악단’에 수록된 곡이다. 이곡은 1977년 송창식씨가 향토예비군설치법(이하 향군법) 위반으로 수감됐을 때 만든 노래다. 2005년 국방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예비군 훈련 불참으로 고발당한 사람은 한 해 4만여명이다. 이 가운데 무혐의 처분을 받은 수백명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대부분의 대한민국 남성은 향군법과 관련해 결코 자유롭지 않다. 최근 국방부가 44년 만에 대학생 예비군 동원훈련 제도의 부활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동원훈련에 참석하는 일반 예비군과의 형평성 문제가 첫째 이유이고, 현역병 감소와 예비군 가용 인원이 부족하다는 것이 둘째 이유다. 일단 현역병 감소 문제는 저출산이 핵심인데 이를 2박 3일간의 동원 예비군 훈련으로 보완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 보인다. 전력이 부족하다는 것 역시 44년 전과 비교해 검증된 바 없다. 현재 예비군 8년차까지 동원 가능한 인력은 270만~290만명 수준이며 매년 50만명씩 양산하고 있다. 한국국방연구원 연구 결과에 따르면 1990년대 냉전 당시 서독은 85만명, 이스라엘이 50만명, 북한이 54만명의 예비군을 보유하고 있었다. 냉전 당시 기준으로 보더라도 예비군 병력을 운용하는 규모는 대한민국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 할 것이다. 따라서 예비군 가용 인원이 부족한 것이지 전시 동원 예비군이 부족한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생업에 종사하는 예비군과의 형평성 문제는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형평성 문제 외에는 문제점이 없는가. 국방연구원 연구 자료에 따르면 예비군 제도로 인해 노동 현장에서 발생하는 경제적 손실액은 무려 1조 3000억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형평성 문제를 말하기 전에 제도 자체에는 문제가 없는지 따져 봐야 할 것이다. 향토예비군이 창설된 시점은 1968년이다. 1·21사태라 일컫는, 김신조 등 북한 특수부대가 청와대를 습격하려다 실패한 사건이 있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같은 해 5월 250만명을 동원할 수 있는 향군법을 공포한다. 이 법은 5·16군사쿠테타가 발생한 1961년 12월에 제정됐었다. 하지만 예산 등의 문제로 그동안 부대 창설과 편성을 하지 못했던 법이 결국 재탄생하는 배경이 된 셈이다. 당시 향토예비군이 창설된 직후 김영삼 의원은 향군법 폐지안을 제출했다. 그 이유는 남성의 의무를 지나치게 확대해 인권을 침해하기 때문에 위헌이라는 것이었지만 폐지안은 부결됐다. 이후 대통령 선거에서 당시 40대였던 김대중 후보는 예비군 폐지 공약을 전면에 내세웠고 돌풍을 일으키며 박정희 후보를 위협했다. 한국전쟁 직후에도 없던 제도가 과연 왜 만들어졌을까. 국민 동원 시스템을 구축해 안보를 내세운 반공주의를 표방하면서 국민들을 통제하기 위함은 아닐까. 지문 날인을 의무로 하는 주민등록증제도와 주민번호제도가 같은 시기에 만들진 것은 과연 우연일까. 이제 국가가 시민을 함부로 호명하고 동원하는 데 많은 시민들이 부당함을 느끼고 있다. 시민들은 이미 대학생 예비군 동원훈련의 부활에 대해 일반인과 대학생 간 대립 구도를 형성해 국가 동원 시스템을 합리화하려는 꼼수로 인식한다. 그런 점에서 이는 시대착오로 보인다. 물론 스위스, 이스라엘, 핀란드, 스웨덴처럼 조합주의적 성격을 띤 국가라면 얘기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예비군 제도가 내가 살고 있는 지역 안보를 위해 복무하고 그에 필요한 것들을 함께 토의하고 결정하는 구조라고 한다면 정당성을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 [新 평판 사회] 지역사회에 부는 ‘신선한 변화’

    [新 평판 사회] 지역사회에 부는 ‘신선한 변화’

    ‘이웃사촌’보다 ‘갑과 을’이란 말이 더 어울리는 사회가 됐다. 이익을 앞에 두면 담을 사이에 둔 이웃도, 인접한 아파트 단지나 지자체끼리도 법정의 판단을 묻곤 한다. 아파트 주민에게 괴롭힘을 당한 경비가 목숨을 끊고, 아파트 층간소음 때문에 살인도 일어난다. 쓰레기 매립지 문제를 두고 지자체끼리 싸우는 것은 다반사다. 주변에 임대아파트가 들어온다고 시위를 하고, 다른 아파트 단지의 초등학생들이 통학로로 이용한다는 이유로 아파트 도로를 막아 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최근 ‘이익’이란 틀을 깨고 이웃을 되찾는 경우도 늘고 있다. 정작 이런 일을 한 이들은 이익을 버린 것도 아니고 거창한 일도 아니라고 했다. 옳은 변화는 작더라도 큰 호응을 받는다고도 했다. ●갑을 관계 버리는 작은 변화가 큰 호응 불러 지난 12일 만난 서울 성북구 석관동 두산아파트 전 입주자 대표 심재철(45)씨는 “사실 시작은 거창하지 않았다”며 “경비 아저씨가 자주 바뀌어서 왜 잘하는 사람을 바꾸냐고 질문한 것뿐이었다”고 밝혔다. 2009년부터 동 대표를 맡은 그는 일을 잘하는 경비가 1년도 안 돼 바뀌는 게 이상했다. 곧 퇴직금을 주지 않으려는 경비용역업체 때문임을 알았다. 아낀 퇴직금은 주민이 아닌 업체의 수익이었다. 그는 용역업체 대표를 불러 주민의 뜻에 반해서 경비를 바꾸지 않고 퇴직금을 주겠다는 조항을 계약서에 넣으면 계약을 연장하겠다고 했다. 업체는 이를 따랐다. 경비 임금을 최저임금의 90%에서 100%로 올리는 법이 시행되면서 지난해 각 아파트는 시끄러웠다. 보안문을 설치하고 경비 수를 줄이는 등의 노력이 이어졌다. 이 아파트도 동 대표 회의에서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하지만 결국 1표 차로 경비 수 보전과 임금 인상이 결정됐다. 경비원은 질 좋은 서비스로 화답했다. 6년간 한 동에서 종사하는 경우도 나왔다. 경비의 임금 인상 재원은 주민들의 자발적인 전기 절약으로 메웠다. 심 전 대표는 “우리는 교육보다 실천이 중요하다고 믿었다”면서 “첫걸음은 에어컨을 쓰는 7~9월을 제외하고 코드를 빼놓도록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것만으로 가구당 월 3㎾의 전기를 아꼈다. 총 2000가구 중에 처음에는 1000가구가, 지금은 1500가구가 참여하고 있다. 이후 전기 절약 방식을 하나씩 늘렸다. TV를 절전모드로 바꾸고, 냉장고 냉동실 온도를 영하 25도에서 17도로 바꾸자고 공지했다. 결과적으로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관리비 4억 2000만원을 절감했고, 이 중 1억원을 경비 임금 인상에 사용했다. 한 주민은 “전기 절약 운동을 하면서 이웃끼리 친해졌고 경비 아저씨도 정겨운 이웃임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며 “좋은 변화는 누구나 알아보는 법이어서 쉽게 퍼지더라”고 말했다. 이후 성북구청뿐 아니라 성동구, 노원구 등도 경비원 고용안정 협약을 연이어 맺고 있다. ●아파트 주차장을 인근 주택에 40% 싸게 대여 용산구 한남동의 주택가는 담장 허물기 사업이 한창이다. 차 한 대 돌릴 곳이 없는 좁은 골목길에서 벌어지던 주차전쟁은 주택들의 담장 허물기로 사라졌다. 신모(70·여)씨는 “담장을 없앴더니 차량을 두 대나 댈 수 있는 마당 주차장이 생겼고, 바로 앞의 빌라 주민들은 차를 돌릴 수 있는 여유공간이 생겼다면서 고마워한다”며 “도둑이 들까 걱정했는데 오히려 빌라 주민들이 훤히 마당을 볼 수 있으니 안심이 되더라”고 설명했다. 성북구 월곡임대아파트는 지난해 2월부터 주차장을 인근 주택에 대여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가구당 매월 7만~8만원의 관리비 중 8% 정도가 줄었는데 이보다 더 좋은 것은 임대아파트를 꺼리던 시선이 많이 좋아진 부분이다. 대당 대여 가격은 월 6만 5000원으로 인근의 사설주차장(10만~12만원)보다 40%가량 저렴하다. 한 주민은 “349대의 차량을 댈 수 있는 주차장이 있지만 실제 차량 보유 대수는 250대에 불과해 대여하게 됐다”며 “주택 거주자들이 싼 가격에 안전한 주차장을 이용하면서 임대아파트에 대해 보이던 안 좋은 시선이 많이 사라져 기쁘다”고 말했다. ●‘임대 vs 분양’… 여전히 반목하는 이웃 사회도 반면 둘로 갈라져 반목하는 이웃사회의 모습도 여전하다. 서울 강남구 일원동의 아파트 단지는 구역상으로 한 곳이지만 101~104동, 114·115동에 각기 다른 이름이 적혀 있다. 임대와 분양이 섞이지 않도록 주민들이 조치한 것이다. 이 같은 문제는 지방도 마찬가지다. 부산 해운대구 마린시티에 거주하는 장모(45)씨는 가족 식사를 위해 패밀리 레스토랑을 찾았다가 음식점에서 만난 딸의 친구가 딸에게 ‘재수 없다’는 말을 해 충격을 받았다. 단지 임대아파트에 산다는 게 이유였다. ‘돼지엄마’라는 신조어도 나왔다. 돼지가 새끼를 끌고 다니듯 자녀를 명문대에 보내기 위해 사교육을 하는 모임의 리더를 말한다. 강남구 대치동에서 오래된 용어로 집단 밖의 아이들에게는 폐쇄적인 게 특징이다. 장세훈 동아대 사회학과 교수는 “패거리 문화가 우리 사회에 자주 등장하는 이유는 자동차와 집으로 부를 과시하려는 국민성과 연관이 있다”며 “불평등과 차별에 대한 어른들의 행태가 아이들에게 학습되지 않도록 함께 고민하고 바꿔 가야 한다”고 밝혔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범죄행위”… 반기문 총장, 아르메니아 논쟁 가세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1915~1917년 발생한 아르메니아 학살을 ‘잔혹 행위’(atrocity)라고 표현, 이를 ‘제노사이드’(genocide·인종 청소)로 규정한 프란치스코 교황과 이견을 보였다. 제노사이드란 말에는 2차대전 중 유대인 학살처럼 ‘인간이라면 저지를 수 없는 반인륜적 행위’란 뜻이 내포돼 있다. 반 사무총장의 대변인인 스테판 두자릭은 13일(현지시간) “반 총장은 아르메니아와 터키가 사건 발생 100주년을 함께 기리고 공동 조사로 사실을 밝힘으로써 그런 잔혹한 범죄행위(atrocity crimes)의 재발을 막겠다는 집단적 의지가 강해질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두자릭 대변인은 “반 총장이 교황의 언급에 주목했다”며 “반 총장은 1915년에 일어난 일을 정의하는 게 민감하다는 점을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고 AP통신 등이 전했다. 아르메니아 대학살은 터키의 전신인 오스만튀르크 제국이 1차대전 중 저지른 만행이다. 150만명에 이르는 아르메니아인이 학살당하거나 추방됐다. 외교기록이나 생존자 증언뿐 아니라 오스만 제국 역시 관련 내용을 기록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터키는 상황을 부인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회원국인 터키가 책임을 인정하지 않자 서방 국가 대부분도 망각에 동참했다. 프랑스, 러시아, 그리스, 폴란드, 스위스 등 22개국만 아르메니아 학살을 제노사이드로 인정했다. 우리 정부도 터키가 한국전쟁 참전국이란 점을 감안, 아르메니아 학살에 대한 터키의 책임을 공식 인정하지 않고 있다. 2007년 터키 전차(XK2·흑표) 수주전 당시 학살을 인정한 프랑스 대신 한국이 협상대상자로 선정되는 등 경제적 실리를 얻기도 했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독일의 양심 두드린 양철북 멈추다

    독일의 양심 두드린 양철북 멈추다

    ‘양철북’으로 널리 알려진 독일 작가 귄터 그라스가 13일 독일 북부도시 뤼벡의 한 병원에서 숨졌다. 87세. 1927년 10월 16일 폴란드 단치히(현재 그단스크)의 독실한 가톨릭교도 집안에서 태어난 그라스는 원래는 조각가 지망생이었다. 뒤셀도르프 미술대, 베를린국립예술대를 거쳐 결혼과 함께 프랑스 파리로 건너갔다. 그러나 1959년 발표한 ‘양철북’이 대성공을 거두며 작가의 길로 접어들었다. ‘양철북’은 이후 발표한 ‘고양이와 생쥐’, ‘개들의 시절’과 함께 그라스의 ‘단치히 3부작’으로 불린다. 고향에 대한 기억, 참전 경험, 포로생활 등을 잘 녹여낸 3부작은 2차대전에 대한 독일인의 기억과 죄책감을 잘 드러냈다는 평을 받았다. 환상적 서술에 세밀한 묘사를 잘 결합한 문학적 성취도 인정받았다. 이 때 이미 ‘독일 문단의 양심’으로 자리를 굳혔다. 1972년 하인리히 벨이 노벨문학상 수상자라 통보받았을 때 “왜 그라스가 아니라 나지”라고 되물었다는 일화가 전해질 정도다. 그라스에게는 1999년 노벨문학상이 주어졌다. “무조건 닥치는 대로 쓴다”는 스스로의 표현처럼 ‘단치히 3부작’ 이후로도 그라스는 숱한 작품을 내놨다. 소설뿐 아니라 시, 조각, 그래픽 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로 손을 뻗쳤다. 이때만 해도 그에 대한 비판은 “작품이 지나치게 정치적”이라는게 전부였다. 그라스 자신은 1991년 파리리뷰와의 인터뷰에서 “내게 2차대전, 나치, 독일이라는 상황은 이미 주어진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라스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2006년 자서전 ‘양파 껍질 벗기기’에서 17세 때 나치의 SS무장친위대에 자원입대했다는 사실을 고백했다. ‘행동하는 작가’를 자임하면서 정치에 적극 참여했던 그라스였기에 ‘위선자’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2012년에는 ‘말해져야만 하는 것들’이란 시를 일간지에 발표해 다시금 독일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그라스는 이 시에서 이스라엘의 핵무기 보유를 비판했고, 독일이 나치의 기억 때문에 이스라엘에 끌려다니다가는 또 다른 전쟁범죄에 휘말려들 것이라는 주장을 내놨다. 이 때문에 또 한번 격한 반유대주의 논쟁이 벌어졌다. ‘행동하는 작가’로서 그라스는 한국과도 인연이 있다. 김지하·황석영 등 탄압받던 문인들의 구명활동을 벌이기도 했고 2004년 송두율 교수 사건 때도 석방 탄원서를 한국 법원에다 냈다. 황석영은 “20세기를 치열하게 살았던 작가들이 하나씩 떠나고 있다”면서 “그라스의 문학적 업적, 민주주의와 평화를 위한 공헌 등은 남은 작가들에게 큰 귀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태성 기자 cho1904@seoul.co.kr
  • 힐러리 대선 출마 선언에 공화당 ‘집중포화’

    힐러리 대선 출마 선언에 공화당 ‘집중포화’

    ‘힐러리 대선 출마 선언’ 힐러리 대선 출마 선언에 공화당이 일제히 ‘포문’을 열었다. 미국 민주당 유력 대선주자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12일(현지시간) 2016년 미국 대통령선거에 출마하겠다고 공식으로 선언했다. 공화당은 기다렸다는 듯이 일제히 공세를 펼쳤다. 국무장관 재임 당시 외교정책과 공적 업무에 개인 이메일 사용, 그리고 클린턴 부부가 운영하는 클린턴 자선재단의 기부금 수령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이미 대권 도전을 선언한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텍사스)은 클린턴 전 장관이 출마 선언을 하자마자 보도자료를 통해 “실패한 외교정책의 대표”라고 몰아붙였다. 그는 특히 “오바마-클린턴의 외교정책이 세계를 더 위험하게 만들었다”면서 “러시아, 이란, ISIS 등이 부상하는 동안 지켜보기만 했다”고 비난했다. 플로리다 전 주지사인 젭 부시는 지지자들에게 보낸 메일에서 “그녀를 멈춰야 할 때가 됐다”고 선언했으며, 출마 선언이 있기 전인 이날 오전에는 “클린턴의 외교정책이 버락 오바마 외교정책과 연결돼 있다. 오바마-클린턴 외교정책은 동맹국과의 관계를 악화시켰으며 우리의 적들을 대담하게 만들었다”고 공격했다. 위스콘신 주지사인 스콧 워커도 “클린턴은 모든 실패한 외교정책의 책임자”라고 공격했다. 최근 대선 출마를 선언한 공화당 잠룡 랜드 폴(켄터키) 상원의원도 날을 세웠다. 그는 NBC 방송에서 “클린턴 전 장관은 아주 위선적이며, 클린턴 일가는 자신들이 법 위에 있다고 생각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사우디아라비아 성폭행 피해자 박해 사례를 거론하면서 “클린턴 재단은 성폭행 피해자가 공개적으로 채찍질당하는 나라로부터도 기부금을 받았다. 우리는 여성을 그렇게 대하는 나라로부터 물건을 살 게 아니라 아예 보이콧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폴 의원의 이 발언은 공화당이 앞으로 클린턴 재단의 외국 기부금 논란을 집중적으로 문제 삼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이다. 클린턴 재단 기부금 논란은 재직 중 개인 이메일 논란,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최대 외교적 실패 사례인 2012년 리비아 벵가지 미국 영사관 피습 사건과 함께 공화당이 주요 공세 포인트로 삼는 대표적 소재다. 폴 의원은 자신의 대선 웹사이트에서 클린턴 전 장관의 개인 이메일 사용 스캔들을 부각시키며 ‘힐러리의 하드 드라이브’(Hillary’s hard drive)를 판매하는 이색 캠페인도 하고 있다. 또 다른 공화당 대권 후보인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사우스캐롤라이나)도 CNN에 출연해 2012년 벵가지 사건 등을 언급한 뒤 “클린턴은 오바마의 외교정책과 국내정책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다”며 오바마 정부의 실정과 클린턴을 연관시켰다. 2012년 공화당 대선 후보 출신인 밋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 역시 이날 폭스 뉴스 인터뷰에서 “국민은 변화를 원하는데 클린턴 전 장관은 결코 변화에 맞는 인물이 아니다”면서 개인 이메일 사용 논란을 겨냥해 “클린턴 전 장관이 믿지 못할 사람이라는 결과가 나온 여론조사를 당신도 봤을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클린턴 전 장관을 저지하기 위한 공화당과 그 지지층의 ‘스톱 힐러리(Stop Hillary)’ 캠페인도 본격 시작됐다. 대표적인 ‘힐러리 비판론자’로 꼽히는 라인스 프리버스 위원장이 이끄는 공화당 전국위원회(RNC)는 수십만 달러를 들여 클린턴 전 장관의 재단 기부금과 개인 이메일 사용 문제를 집중 제기하는 내용의 인터넷 광고를 내기로 했다. 공화당의 선거 전략가인 로저 스톤은 남편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사생활 등을 조명한 저서 ‘클린턴가(家)의 여성들과의 전쟁(The Clintons’ War on Women)’을 올해 여름 출판할 예정이라고 밝혔고, 보수단체 ‘단합된 시민들(Citizens United)’은 클린턴 전 장관을 겨냥해 지난 2008년 상영한 ‘힐러리 : 더 무비’의 속편 제작을 공언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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