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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성사판 ‘3·1독립선언서’ 문화재 등록 추진

    보성사판 ‘3·1독립선언서’ 문화재 등록 추진

    1910년대 최남선의 ‘신문관’과 천도교 ‘보성사’는 대한제국의 지성을 이끈 출판·인쇄계 양대 기관이다. 한국 출판문화를 꽃피운 전당이란 의미를 갖는 이곳이 한국사에 남긴 큰 의미는 1919년 3·1운동을 앞두고 독립선언서 원고를 인쇄했다는 점이다. 1919년 2월 27일 밤 두 곳에서 찍은 독립선언서는 2만 1000여장에 이른다. 그러나 현재는 거의 볼 수 없어 가치가 더 높다. 서울시는 3·1독립선언서 중 개인이 소장한 보성사판에 대해 문화재청에 등록문화재 신청을 했다고 17일 밝혔다. 등록문화재는 1876년 개항 후 한국전쟁까지 근대문화유산 중 보존·활용 가치가 높은 문화재를 뜻한다. 전문가 조사와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 심의 등을 거쳐 등록문화재 등록이 확정되면 독립선언서가 등록문화재로 지정되는 첫 사례가 된다. 보성사판이 신문관판과 다른 부분은 판형, 활자체와 첫 줄에 ‘我鮮朝(아조선)’이라고 된 표기 오류다. 보성사판 중 공개된 것은 독립기념관, 서울역사박물관, 독립운동가 오세창과 박종화 가문의 소장본 등 5점이다. 아울러 시는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인 백용성 스님의 ‘조선글화엄경’과 ‘조선어늠엄경’, 성북구 흥천사가 소장한 ‘감로도’ 등도 함께 등록문화재 등록을 신청했다. 백용성 스님은 한문 불경을 우리말로 번역해 불교를 대중화하고 민족의 독립 역량을 결집하고자 했다. 두 자료에선 당시 한글의 변화 과정도 엿볼 수 있다. 최여경 기자 cyk@seoul.co.kr
  • [시론] 북핵 해결에 집중력을 발휘해야 한다/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시론] 북핵 해결에 집중력을 발휘해야 한다/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군사적으로 민감한 개성 지역을 남북 협력사업의 현장으로 만들 것을 제안한 인물은 기업인 정주영이었다. 남과 북의 치열한 대치점인 휴전선을 연 것은 총과 대포가 아닌 소떼였다. 정주영이 펼친 소떼 퍼포먼스는 인간이 소보다 미련하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지난 10여년 동안 개성공단은 크고 작은 북한의 도발에도 불구하고 잘 버텨 왔다. 그만큼 상호 의존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한계 상황에 처한 우리 중소기업들은 북한의 저임금 숙련노동에서 활력을 찾고, 북한은 토지와 노동력을 남측 기업에 제공하고 부족한 외화를 벌어들였다. 무엇보다 북한이 군사 요충지역을 남측 기업에 내준 배경에는 전쟁 억지 효과를 의식했을 가능성이 높다. 개성공단 지역은 수도권을 타격할 수 있는 북한군 기갑부대와 장사정 포병부대 및 보병사단이 주둔하던 군사지역이다. 군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남측 기업에 개성공단을 제공한 것은 사회주의권 붕괴 이후 고립무원에 빠진 북한 정권이 전쟁에 의한 흡수통일을 막기 위한 고도로 계산된 ‘인질 전략’이 반영된 것인지도 모른다. 개성공단을 추진할 당시의 남북한 지도자들의 주관적 의지가 어디에 있었든 개성공단은 남북 화해협력에 기여하고 대외 신인도를 높였다. 개성공단은 북한을 자본주의 세계 경제로 부분적으로 편입시켜 시장화를 촉진하는 기능도 수행했다. 북한의 수소탄 핵실험과 광명성 4호 로켓 발사로 촉발된 불똥이 개성공단으로 가장 먼저 튀었다. 북한의 연이은 전략적 도발의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한 고육지책이라곤 하지만, 너무나 전격적으로 취해진 ‘전면 중단’ 조치를 둘러싸고 논쟁이 뜨거워지고 있다. 국제사회의 강화된 대북 제재를 불러오기 위해 우리가 먼저 모범을 보인다는 차원에서 개성공단 전면 중단이란 선제적 제재 조치가 취해졌다. 남북 관계의 특성상 대북 제재는 일방적일 수 없다. 북한에 고통을 주는 만큼 우리도 고통과 손실을 감내해야 한다. 북한의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건에 따른 관광 중단과 천안함 폭침 이후 취해진 5·24 조치로 남북 경협 사업에 뛰어든 많은 사업자들이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이번에도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말미도 주지 않고 설 연휴에 전격적으로 취해진 개성공단 전면 중단 조치로 수조원의 피해가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공단의 설비와 장비를 몰수해 가동하고, 숙련된 인력을 중국 등으로 송출할 경우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기업들은 정부가 막대한 세금으로 피해를 보상하지 않으면 도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개성공단 폐쇄와 함께 남북 사이의 모든 통신선이 끊어짐으로써 완충장치 없이 ‘강대강’의 브레이크 없는 치킨게임의 시기로 접어들었다. 사소한 충돌이 국지전 또는 전면전으로 확전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외부 투자가들이 한반도 정세를 관찰하는 바로미터 중 하나가 개성공단의 유지 여부였다. 남측 인력이 북측 지역에 머물고 있을 경우 적어도 남측에 의한 무력 사용이 쉽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제 그런 부담이 없으니 언제라도 전면전으로 치달을 수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만큼 우리나라의 국가 신인도는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개성공단 전면 중단 결정은 공공의 안위와 국가 안보를 위해 사적 영역의 재산권을 제한할 수 있다는 논리를 내세운 통치권 차원의 행정행위라는 것이 정부의 설명이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을 저지하려는 목적으로 시작한 개성공단 전면 중단 조치와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한반도 배치 문제가 ‘남남 갈등’으로 번지고 중국·러시아와의 외교 마찰로 비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개성공단 중단과 사드 배치는 북한과 중국, 러시아를 겨냥한 지렛대(레버리지)다. 지렛대는 키워서 꼭 필요할 때 써야 한다. 이미 개성공단 카드는 전략적 도발 억지에 사용하지 못하고 제재 강화를 위한 선제 카드로 사용했다. 사드 문제는 제재에 동참해야 할 나라들을 자극하고 있다. 남남 갈등과 주변 국가들과의 마찰은 제재 효과를 반감시킬 수밖에 없다. 북핵 문제 해결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전략적 우선순위를 정하고 의도하지 않은 부작용을 최소화해야 한다. 이번에도 북핵 해결에 집중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북핵 고도화를 막지 못한다면 소가 웃을 일이다.
  • 죽음을 강요받는 삶… 군인이란 슬픔에 대하여

    죽음을 강요받는 삶… 군인이란 슬픔에 대하여

    “저 살고 싶어요.” 군대와 전쟁, 국가와 거대 담론 아래 가려졌던 군인들의 외침에 귀를 기울인 작품이 무대에 오른다. 서울문화재단 남산예술센터와 극단 골목길이 공동 제작한 연극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다. 연극은 2015년 한국, 1945년 일본 오키나와, 2004년 이라크 팔루자, 2010년 한국 서해 백령도 등 서로 다른 시대와 공간을 배경으로 한다. 그 속에서 규율, 강압, 폭력에 시달리다 탈영한 젊은 병사와 일제 말 일본 가미카제 특공대가 된 조선인, 이라크에서 미군 식품업체에 물건을 배달하는 일을 하다 이라크 무장단체에 납치된 평범한 선교사, 천안함 침몰로 목숨을 잃은 선원들의 이야기가 씨줄과 날줄로 얽혀 펼쳐진다. 작품 속 사건들은 교차 전개되면서 공통적으로 죽음이라는 비극적 결말로 치닫는다. 다양한 음악, 자막과 영상 등 다큐멘터리 요소가 현실과 연극적 환상을 넘나드는 장치로 활용된다. 배우 박윤희, 성노진, 고수희, 오순태, 강지은, 서동갑 등이 열연한다. 극작가 겸 연출가 박근형이 연출을 맡았다. 박근형은 “국가 간 거래, 전쟁, 시스템 속에서 자의적 또는 타의적으로 강요받는 군인들의 죽음은 단지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그들의 죽음 위에서 편안하게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을 통해 그들의 외침에 귀를 기울이고, 죽음의 순간에 섬광처럼 스치는 기억에 공감할 수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2016년 페스티벌 도쿄’에 공식 초청받아 오는 10월 일본 도쿄에서 공연될 예정이다. 다음달 10~27일, 서울 중구 남산예술센터, 전석 3만원, 고등학생·대학생 1만 8000원. (02)758-2150.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전쟁 피해 올라간 나무 위에서 2년

    전쟁 피해 올라간 나무 위에서 2년

    28일까지 ‘나무 위의 군대’ 공연…2차 대전 때 실화 바탕으로 연출두 군인의 삶과 인간의 본질 그려 두 군인이 전후 나무 위에서 2년을 보내는 내용이 다다. 단조롭고 밋밋한 탓에 지루하고 재미없게 느껴질 수 있는 취약점을 태생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다. 이 약점을 극복하고 극을 생동감 있게 만든 건 전적으로 탄탄한 구성과 대사, 그리고 군인 역을 맡은 두 배우의 힘이다. 두 군인의 삶은 국가란 무엇인지, 전쟁이란 무엇인지, 인간의 삶이란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되묻게 한다. 2시간 가까운 시간 동안 의식을 완전히 깨어 있게 한다. “지켜 주고 있는 것이 무섭고, 무서우면서도 거기에 매달리고, 매달리면서도 미워하고, 미워하면서도 믿는다.” 극중 이 대사는 극이 끝나도 오래도록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연극 ‘나무 위의 군대’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오키나와 본섬에서 북서쪽으로 9㎞ 떨어진 섬인 이에지마에서 적군의 공격을 피해 거대한 나무 위로 올라가 그곳에서 2년을 보낸 두 군인의 실화를 모티프로 했다. 두 군인은 1945년 4월부터 1947년 3월까지 나무 위에서 살았다. 무대에는 3명의 배우가 등장한다. 수많은 전장을 누빈 베테랑 군인 ‘분대장’(윤상화·김영민), 섬 출신 젊은 병사 ‘신병’(성두섭·신성민), 나무의 정령이자 극중 해설자 ‘여자’(강애심·유은숙)다. 분대장은 국가의 명령을 받고 섬으로 파견됐다. 신병은 자신의 삶의 터전인 섬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군에 자원했다. 둘은 적의 맹렬한 공격을 피해 거대한 나무 위로 숨어들었다. 동료들은 모두 죽고 오직 둘만 남았다. 낮에는 적의 야영지를 감시하고 밤이 되면 동료와 적군의 시신을 뒤져 찾은 식량으로 연명했다. 무대를 꽉 채운 거대한 나무는 양날의 칼이다. 두 군인이 살았던 나무를 재현해 극의 사실성을 높인 측면이 있는 반면 배우들의 움직임을 수평과 수직으로 제한해 극의 역동성을 떨어뜨리는 면도 있다. 일본의 셰익스피어로 불리는 이노우에 히사시(1934~2010)의 미완성 희곡을 작가 겸 연출가 호라이 류타가 완성했다. 뮤지컬 ‘데스노트’ 등으로 잘 알려진 구리야마 다미야의 연출로 2013년 일본에서 초연됐다. 초연 당시 살기 위해 누군가를 죽여야 하는 전쟁의 모순과 삶에 대한 통찰을 깊이 있게 다뤘다는 평을 받았다. 국내 공연은 처음이다. 격년제 연극 페스티벌 ‘연극열전’의 여섯 번째 시즌 첫 작품이다. 강량원 연출가는 “본능과 신념, 믿음과 변화, 전쟁과 평화, 개인과 국가 등 다양한 관점에서 삶에 대한 통찰을 담고자 했다. 모순 가득한 전쟁에서 인간이 진정으로 지켜야 하는 가치가 무엇인지도 묻고 싶었다”고 밝혔다. 오는 28일까지,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3만 5000~5만원. (02)766-6007.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나치가 만든 어린이용 ‘영국침략’ 보드게임 공개

    나치가 만든 어린이용 ‘영국침략’ 보드게임 공개

    나치 독일이 자국민들에게 승리의 확신을 심어주기 위해 제작했던 ‘영국 침략’ 보드게임이 대중에 공개돼 눈길을 끌고 있다. 다음 달 영국의 경매기업 멀록스(Mullocks)에 의해 경매에 오를 이 보드게임의 제목은 ‘우리는 적에 맞서 싸운다’(Wir Kampfen gegen den Feind)이며 현재 가치는 약 52만 원 정도로 파악된다. 말판과 말, 돌림판, 설명서로 구성된 이 게임의 주목적은 세 사람의 플레이어가 각자의 말을 움직여 말판 위에 그려진 영국 영토를 먼저 정복하는 것이다. 말판에는 영국 전도가 그려져 있으며 노스요크셔 주 스카보로 지역을 중심으로 6개의 동심원들이 마치 과녁처럼 일정 간격으로 배열돼있다. 플레이어는 돌림판을 돌려 나오는 숫자대로 말들을 맨 바깥쪽 원에서 안쪽 원으로 진격시키면 된다. 각 원에는 영국 공군 및 해군을 표현하는 그림들이 그려져 있으며 다음 원으로 진행하면 이들 영국군을 격파한 것으로 간주한다. 말은 세 종류이며 각각 전투기, 폭격기, 잠수정의 형태를 띠고 있다. 돌림판 역시 동일하게 세 종류로 구분된다. 돌림판을 첫 번째로 돌려서 나온 숫자는 공격력, 두 번째 숫자는 명중률을 의미한다. 두 가지 수치가 충분해야만 다음 원으로 진격할 수 있다. 모든 영국 공군과 해군을 무력화하고 가운데 원까지 도달하면 게임은 끝난다. 게임은 영국과 독일의 대결이 아닌, 독일군들 사이의 경쟁으로 구성돼있기 때문에, 결국 독일은 영국을 점령하게 돼있다. 이는 독일 국민들에게 승리에 대한 믿음을 심어주기 위해서인 것으로 보인다. 멀록스 사업관리 담당자 벤 존스는 “이 제품은 순수한 선전선동용(propaganda)으로, 나치가 전쟁에 승리할 것이란 착각을 불러일으키기기 위해서 만들어진 제품”이라고 설명한다. 이어 “이 게임은 당시의 독일인들, 특히 아이들로 하여금 독일군이 질 수 없으며 영국이 끝내 함락되고 말 것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며 “독일 국민들이 협조해 준다면 빠른 시일 안에 손쉽게 가능하다고 설득하려 했던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처럼 젊은 세대에게 특정 사상을 주입하기 위해 오락물을 도구로 이용하는 것은 과거만의 일이 아니다. 단적인 예로 지난해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의 추종자들은 유명 FPS 게임 ‘ARMAⅢ’를 개조, 온라인상에 무료 배포해 똑같은 시도를 했다. 이 게임은 IS 테러리스트가 돼 미군, 시리아 정부군, 야지디 전사들과 전투를 벌인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사진=ⓒ멀록스 방승언 기자 earny@seoul.co.kr
  • 글로벌은행 수익 악화 ·환율전쟁… ‘퍼펙트 스톰’ 현실화되나

    글로벌은행 수익 악화 ·환율전쟁… ‘퍼펙트 스톰’ 현실화되나

    수익성 감소 유럽 대형銀 부실 우려 반영 獨 최대 도이체방크 등 주가 일제히 급락 설 연휴 기간 글로벌 금융시장이 요동치고 닷새 만에 개장한 코스피와 홍콩 증시도 폭락하면서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저금리 지속에 따른 글로벌 은행 수익 악화, 각국 중앙은행의 환율전쟁 확대 가능성, 미국 경기 회복 둔화, 저유가로 인한 디플레이션 공포 등의 악재가 동시다발적으로 불거져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위기가 한꺼번에 겹치는 최악의 상황)을 야기할 수 있다는 우려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연휴 기간 세계 증시는 유럽 대형 은행의 수익성 감소에 따른 부실 우려가 제기되면서 새파랗게 질렸다. 독일 최대 은행 도이체방크는 내년 조건부 후순위 전환사채(코코본드) 이자를 지급하지 못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되면서 지난 8일 주가가 10% 가까이 급락하는 등 시장의 불신을 받았다. 도이체방크의 부실 우려는 프랑스 BNP파리바, 영국 바클레이즈 등 다른 대형 은행의 주가도 일제히 끌어내렸다. 도이체방크가 과거 발행한 은행채를 되사들이겠다고 밝히는 등 진화에 나서면서 11일 유럽 주요 은행주는 반등에 성공했지만 불안감은 여전하다. 저금리 지속과 주요국 중앙은행의 추가 금리 인하 가능성으로 인해 은행은 물론 다른 금융사의 수익도 악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세계 경제성장 전망 불확실성과 양적 완화 실패의 위험이 커지면서 금융사 주가가 하락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의 위안화 평가절하로 촉발된 환율전쟁 전운에 일본이 가세한 점도 시장 불안을 가속화시키고 있다. 특히 일본은 마이너스 금리 도입에도 엔화 가치가 달러 약세와 맞물려 오히려 절상되자 추가 금리 인하 가능성을 내비쳤다. 이날 엔·달러 환율은 장중 한때 112엔대로 내려앉는 등 1년 4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앞서 닛케이225지수는 지난 9~10일 8% 가까이 급락해 마이너스 금리의 역풍을 맞았다는 지적을 받았다. 지난해 12월 제로금리 시대에 종지부를 찍으며 경기 회복에 자신감을 보였던 미국조차 최근 각종 지표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경기 선행지표인 미국 공급관리협회 1월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48.2로 4개월 연속 기준치 50에 못 미쳤다. 재닛 옐런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은 글로벌 금융시장 불안 등을 들어 금리 인상 속도를 늦출 수 있다고 밝혔으나 시장은 경기 회복 둔화 가능성을 인정한 것에 주목했다. 임희정 현대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2010년 유럽 재정위기와 천안함 침몰 사건이 겹쳤을 때 국내 금융시장 충격은 오랜 기간 지속됐다”며 “이번에도 글로벌 악재와 (개성공단 폐쇄) 대북 리스크가 겹친 만큼 시장을 안정시킬 만한 메시지를 정부가 명확히 보내 줘야 한다”고 말했다. 김광현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글로벌 금융위기를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것처럼 퍼펙트 스톰 발생 가능성은 쉽게 예측할 수 없다”며 “최근 대외 환경을 볼 때 국내 증시가 지난해 12월 수준으로 회복되는 것은 당분간 힘들어 보인다”고 내다봤다. 임주형 기자 hermes@seoul.co.kr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 근대 소설 효시 ‘혈의 누’ 경매… 시작가 7000만원

    근대 소설 효시 ‘혈의 누’ 경매… 시작가 7000만원

    우리나라 근대 소설의 효시로 평가받는 이인직(1862~1916)의 ‘혈의 누’가 경매에 나온다. 경매사 ‘화봉문고’는 오는 20일 서울 종로구 인사고전문화중심에서 진행되는 제35회 화봉현장 경매전에 ‘혈의 누’를 비롯한 작품 340종 445점을 경매에 부친다고 10일 밝혔다. ‘혈의 누’는 1894년 청일전쟁이 발발했을 때 피란길에서 부모를 잃은 7살 여주인공 ‘옥련’의 파란만장한 삶을 그린 작품으로, 근대소설 이행기의 면모를 보여주는 최초의 신소설이란 평가를 받는다. 초판본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으며, 그동안 국립중앙도서관·‘아단문고’·‘화봉장서’에 재판본 3권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에 경매에 나온 책 역시 1908년 발행된 재판본이다. 경매 시작가는 7000만원이다. 경매에는 ‘혈의 누’ 이외에도 한국 소설 희귀본 여러 점이 출품됐다. 윤동주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1948년 초판본, 김억의 첫 창작시집 ‘해파리의 노래’ 1923년 초판본, 서정주의 첫 시집 1941년 ‘화사집’ 초판본, 유치환의 첫 시집 ‘청마시초’ 1939년 초판본 등이 대표적이다. 앞서 지난해 12월 19일 치러진 경매에서는 김소월의 시집 ‘진달래꽃’이 1억 5000만원(수수료 포함)에 팔렸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시진핑 “한반도 핵·전쟁 안돼… 韓과 협력 지속할 것”

    시진핑 “한반도 핵·전쟁 안돼… 韓과 협력 지속할 것”

    朴대통령 “국제사회 적극 공조를” 시진핑(習近平·오른쪽) 중국 국가주석은 5일 박근혜(왼쪽)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한반도에는 핵이 있어서도, 전쟁이 나서도 안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중국 외교부는 시 주석이 이날 저녁 박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이같이 말하며 “우리는 관련 당사국이 한반도의 평화·안정이라는 큰 틀을 바탕으로 현재의 정세에 냉정하게 대처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고 발표했다. 시 주석은 이어 “중국은 시종일관 대화와 협상이란 정확한 방향을 관련 당사국이 견지하기를 희망한다”고 강조했다. 또 “중국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한반도 비핵화 실현, 한반도의 평화·안정 수호, 대화 협상을 통한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며 한반도에 관한 중국의 ‘3대 원칙’을 거론했다. 그러면서 이는 중국과 한국을 포함한 동북아 각국의 공동이익과 부합한다고 강조했다. 시 주석은 중국은 한반도 문제에 대해 한국 측과 소통과 협조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길 원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이날 “박근혜 대통령이 시 주석으로부터 전화를 받고 북한의 4차 핵실험과 뒤이은 장거리미사일 발사 준비 등에 대한 대응책과 협력 방안 등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은 시 주석과의 통화에서 “북의 오판을 막으려면 국제사회가 강력한 유엔 제재를 통해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생존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만들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으며 “이를 위해서는 중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와의 적극적인 공조 및 대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북한 핵실험 이후 시 주석과 북핵 관련 정상 간 통화는 처음이다. 핵실험 직후 박 대통령을 포함한 북핵 관련국 정상들은 시 주석과 직접 통화해 대응책을 논의하려 했으나 중국 측 사정으로 지금까지 통화가 이뤄지지 않았다. 다만 중국 정부는 “시 주석이 북한의 핵실험 문제로 외국 정상과 통화를 한다면 박 대통령과 가장 먼저 통화하겠다”는 입장을 우리 정부에 전해왔었다.<서울신문 1월 30일자 1면> 이날 두 정상의 통화와 관련해 한 외교 소식통은 “두 정상 간에 통화가 이뤄진 것은 어떤 방식으로든 중국의 내부 입장이 일정 부분 정리된 것을 의미하며 약속대로 박 대통령을 첫 통화 대상으로 한 것은 한국의 입장을 나름대로 고려하고 있음을 알려주기 위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지운 기자 jj@seoul.co.kr
  • [길섶에서] 귀성 전쟁/구본영 논설고문

    김종길 시인은 세상이 아무리 각박하더라도 설날만큼은 따스하게 맞이하라고 했다. 즉 “따듯한 한잔 술과/한 그릇 국을 앞에 하였거든/그것만으로도 푸지고/고마운 것이라 생각하라”고. 그런데도 그다지 맘이 설레지 않은 까닭이 뭘까? 제수 장만과 같은 생활인으로서 걱정만 앞서고 있으니…. 처음엔 나이가 든 증좌이려니 했다. 하지만 귀성 인파로 북적이는 서울역과 버스 터미널 풍경을 보면서 그게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몇 년 전부터 동생들이 어머니를 모시고 역귀성하면서 서울의 난 고향 냄새를 맡을 기회를 잃어버린 셈이다. 수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는 설날 전날이면 늘 대문 밖에서 우리 가족을 기다리셨다. 아무리 추운 날이라도 열차 도착 시각을 가늠해 골목 어귀에서 서성이면서. 올해도 어김없이 시작된 귀성 전쟁을 보면서 기억의 창고 속에서 다시 끄집어낸 삽화다. 그러나 귀성을 어찌 물리적 좌표로만 한정 지으랴. 부모, 형제가 만나 혈육의 정을 나누는 그곳이 바로 고향일 거라는 객쩍은 위안을 해 봤다. 문득 “아가, 애비 말 잊지 마라/가서 배불리 먹고사는 곳/그곳이 고향이란다”(서정춘 시인)라는 시구가 떠오른다. 구본영 논설고문 kby7@seoul.co.kr
  •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만화가 이현세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만화가 이현세

    갓 태어나서 큰집에 양자로 갔다 10대의 나는 연좌제에 떨었다 20대의 나는 까치였다 30대의 나는 최고 작가였다 40대의 나는 영화를 말아먹고 심의·검열과 싸웠다 50대의 나는 내 시대는 갔다고 생각했다 60대의 나는 웹툰을 배웠고 처음 신인상도 받았다 70대의 나는 동화를 쓰고 싶다 20년 동안 ‘삼촌’과 ‘숙모’로 알아 왔던 분들이 실제로는 나를 낳아 준 사람들이었다. 나 자신의 우둔함에 질식할 것 같았고, 아무 말도 안해준 식구들이 야속했다. 방황하기를 한 달여, 그 숙모가 조용히 말했다. “친자식에게 더운 밥 한 그릇 제대로 못 먹인 나만큼이나 아프겠니. 나를 봐서라도 이래선 안 된다.” 어머니는 눈빛으로 아들의 마음을 읽으셨던 것이다. 내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박찬호가 어떤 사람인지 아세요? 자기가 이긴 게임에서 던진 공들, 경기장 입장권을 다 갖고 있는 친구예요. 미국 생활에서 여러 번 위기가 왔는데, 그때마다 자기 자신이 너무 소중하고 아까워서 포기를 못했다더군요.” 화실 창가에 놓인 박찬호 투구 모습 모형(피규어)을 유심히 들여다보자 그가 말했다. 그는 박찬호를 매우 좋아하고, 또 친하다고 했다. 그의 등번과 이름이 적힌 유니폼을 사러 미국 LA 다저스 구장까지 갔다 오기도 했다. “자기를 정말 사랑합니다. 자유, 독립, 자존이라는, 제가 중요하게 여기는 3가지 가치를 가장 확실히 실현한 친구죠.” 그건 어떻게 보면 자신과 닮았다는 말이기도 했다. 지난달 28일 서울 강남구 개포동 화실. 이현세(60) 만화가는 아무런 준비 없이 평소처럼 앉아 있었다. 눈가의 주름과 희끗희끗한 머리만 빼면 영락없는 ‘까치’였다. -‘현세는 자기 아버지가 누군지 아직 모르나 봐요.’ 친척들이 하는 나직한 수군거림이 대형 스피커 음량으로 내 귀에 꽂혔다. 경주 시내로 나가 재수를 하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20년 동안 ‘삼촌’과 ‘숙모’로 알아 왔던 분들이 실제로는 나를 낳아 준 사람들이란 걸 알게 된 것은. 성인이 되고 나서 처음으로 참석한 문중 시제(時祭). 엄마와 숙모, 누나들 모두 나에게 비밀로 해 왔던 ‘천기’를 집안 어른들이 누설하고 말았다. 내가 갓난아기 때 큰집에 양자로 들어갔고, 생부는 내가 아홉살 때 돌아가신 삼촌이었다는 사실. 나 자신의 우둔함에 질식할 것 같았고, 아무 말도 안 해준 식구들이 야속했다. -수험서를 덮고 매일 술만 마셨다. 왜 그렇게 20년을 꽁꽁 숨겼냐고 따지고 싶었지만, 내색은 하지 않았다. 혼자서 끙끙 앓으며 방황하기를 한 달여. 어느날 밤 술에 취해 ‘숙모’의 품에 안겨 잠을 잤다. 다음날 아침, 그 숙모가 조용히 말했다. “친자식에게 더운 밥 한 그릇 제대로 못 먹인 나만큼이나 아프겠니. 나를 봐서라도 이래선 안 된다.” 어머니는 눈빛으로 아들의 마음을 읽으셨던 것이다. -그 일은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대학을 포기하고, 만화의 길을 걷기로 했다. 혼자서 서울로 왔다. 경주가 세상의 전부인 줄 알았는데 서울은 또 달랐다. 생활은 만만치 않았고 정착할 곳도 찾아지지 않았다. 문하생으로 받아 달라고 무수한 만화작가 화실의 문을 두드렸지만, 번번이 퇴짜를 맞았다. 내가 제법 ‘성공’을 한 뒤 그분들 중 한 분을 뵀는데 “눈빛에 반항기가 줄줄 흘러 부담스러웠다”고 당시 얘기를 하셨다. 처음 자리잡은 곳은 순정만화로 유명한 나하나 선생님 화실이었다. 그다음은 개그만화의 하영조 선생님 화실. 액션만화를 추구했던 나에게 두 분 선생님과의 작업은 오히려 큰 도움이 됐다. 순정만화의 섬세하고 부드러운 미학과 개그만화의 익살맞은 표정 연기 등이 합쳐져 까치를 비롯한 내 만화의 등장인물 라인업이 구축될 수 있었다. -분단의 비극을 오롯이 간직한 우리 집의 가족사를 떼어 놓고는 나와 만화를 말할 수 없다. 일제 때 만주에서 살던 할머니는 해방 직후 서른 언저리에 아들 셋을 데리고 경북 울진 고향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고향이라고 해도 먹고살 게 없었다. 얼마 후 둘째 아들은 “내가 돈 벌어 오겠다”며 다시 만주로 나갔다. 그러다 38선이 그어지면서 둘째는 졸지에 가족과 생이별을 하게 됐다. 가족이 다시 만나게 된 것은 6·25가 터지고 북한 인민군이 남쪽까지 밀고 내려오면서였다. 둘째는 인민군이 돼 나타났다. 형제가 어울리는 모습이 마을 사람들 눈에 띌 수밖에 없었는데, 그게 화근이 됐다. 인민군이 퇴각한 후 첫째 아들이 괴뢰군 부역자로 몰려 헌병대에 끌려갔다가 죽임을 당했다. 큰아들은 처형되고 둘째 아들은 월북. 할머니는 차라리 만주에 계속 있는 게 나았다고 생각하시지 않았을까. 1956년 셋째 아들의 장남으로 내가 태어났다. 할머니는 나를 큰며느리에게 양자로 보냈다. 종가의 대를 잇기 위해서였다. -우리 일가는 내가 태어나기 전 전쟁 직후에 흥해(현재 포항시 북구 흥해읍)로 터전을 옮겼다. 부역자 가족이란 딱지를 달고서 울진에 계속 머물 수는 없었다. 길러 준 어머니는 잡화점을 냈고, 낳아 준 아버지는 자갈땅을 사서 밭을 일궜다. 그 덕에 끼니를 거르지는 않았다. 초등학교 2학년쯤 됐을 때 ‘삼촌’이 경주역의 기차 수리 공장에 취직했다. 어느 날 삼촌에게 “크레파스를 사 달라”고 졸랐다. 선뜻 돈을 주셨다. 하지만 나는 극장에서 서부영화를 보고 만화책을 빌려 보느라 그 돈을 다 써 버렸다. 다음날 저녁 삼촌이 집에 들러 새로 산 크레파스로 그림 한번 그려 보라고 하셨다. 엉겁결에 나는 “저한테 돈 주겠다고만 하시고 그냥 가셨잖아요”라고 둘러댔다. 삼촌은 고개를 갸웃하더니 “내가 착각했다”며 다시 돈을 주셨다. 아들이 거짓말하는 걸 다른 가족들이 알게 되는 게 싫으셨던 것이다. -그게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다음날 수업을 받는데 작은누나가 파랗게 질린 얼굴로 교실로 왔다. 아버지가 일하던 공장으로 뛰어갔는데 할머니와 큰어머니, 숙모가 통곡을 하고 있었다. 앞에는 아버지가 하얀 무명천에 덮여 누워 있었다. 전기 감전이라고 했다. 삼일장 내내 나는 학교에 있었다. ‘삼촌은 나를 거짓말하는 아이로 알고 돌아가셨겠구나’ 생각하니 죄스럽기도 했지만, 억울하기도 했다. 10여년 후 그가 나의 진짜 아버지라는 사실을 알게 된 직후 가장 먼저 떠올랐던 게 그 일이었다. -학교 생활은 평탄치 않았다. 그럭저럭 공부를 잘해서 지역 명문인 경주중에 입학했지만 줄곧 형사들의 감시 속에 살았다. 연좌제에 걸려 인생이 막혀 있다는 생각이 점차 커져 갔다. 경주고에 들어가면서 원래 좋아했던 술이 더 잦아졌다. 방과 후에 당시 경주오거리에 있던 막걸리집에 뻔질나게 드나들었다. -고등학교 때 가장 열성이었던 건 미술부 활동이었다. 고1 때 유도에 빠져 2학년 때는 경북 대표로 전국체전까지 나가기도 했지만, 미술만큼은 아니었다. 특히 스케치는 어렸을 때부터 꽤 소질이 있었다. 미대 진학을 유일한 길로 생각했다. 연좌제의 공포가 나를 더욱 미술로 몰아갔다. 그러나 미대 입학원서를 쓰기 위해 안과에 가서 색맹검사를 했더니 색약 판정이 나왔다. 그때는 왜 그렇게 색약에 대해 엄격했는지. 당시 입시제도하에서 나는 미대 지원을 아예 할 수가 없었다. -유신과 군사정부 치하에서는 노래나 영화가 그렇듯 만화에 대해서도 검열이 심했다. 이를테면 갈등이 증폭되는 스토리나 격투 장면 같은 게 들어가는 그림은 허용되지 않았다. ‘아이들이 액션만화를 보면 커서 데모를 하기 쉽다’는 게 주된 이유였다. 스포츠 만화로 방향을 돌리고 ‘공포의 외인구단’을 처음 내놓은 것이 1982년. 26세 때였다. -내가 만화를 그리는 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캐릭터다. 날 대신해 움직여 줄 수 있는 아바타만 구현하면 그다음부터 소재나 스토리는 부차적인 일이라고 생각했다. 스스로 스토리 궁핍을 느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 생각으로 만들어 낸 게 필생의 캐릭터인 ‘까치 오혜성’이다. 한(恨)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운명에 순응하지 않고 의지로 부딪쳐 결국 파괴되는 인간이랄까. 가족사 때문에 트라우마와 핸디캡에 시달려야 했던 성장기의 아픔이 고스란히 투영돼 있기도 하다. -‘공포의 외인구단’ 이전에도 나는 대본소(만화방) 시장에서 꽤 인지도 있는 작가였다. 하지만 외인구단은 기존 작품과 차원이 달랐다. 어린이 만화만 있던 시절, 극단적이고 상처투성이인 주인공 영웅이 다른 캐릭터들과 함께 고난에 시달리다 결국 이를 극복하지만 최후에는 처절히 파멸하는 이야기의 만화는 이전까지 존재하지 않았다. 대략 한 달에 한 권씩 2년간 30권을 내놨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대본소의 맨 앞칸에는 언제나 외인구단이 자리잡았다. ‘까치’를 이름으로 내건 만화방들이 속속 생겨났다. -나이 서른 전에 최고액을 받는 작가가 됐는데, 권투(‘지옥의 링’)든 시대극(‘사자여 새벽을 노래하라’)이든, 페미니즘(‘며느리 밥풀꽃에 대한 보고서’)이든 뭘 그려도 잘 팔렸다. ‘남벌’은 서울대 신입생들이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 중 하나로 선정됐다. 만화가 뜨니 나도 스타가 됐다. 맥주 등 광고 CF에까지 나올 정도였다. 돈도 정말 많이 벌었다. 돈이 나를 거쳐 밖으로 흘러나가는 게 문제였지만. 마흔을 갓 넘긴 1997년부터는 세종대에서 교편을 잡았다. -나의 40대는 ‘전쟁’의 시기였다. 첫 번째 난관은 1996년 만화를 애니메이션으로 옮긴 ‘아마게돈’의 대실패였다. 한동안 영화계에서 최고의 손실액 기록을 보유했을 정도다. 총감독으로서 투자를 담당했던 나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도 손해를 많이 봤다. 돌이켜보면 그건 영화도 아니었다. 영화 문법도 모르는 총감독의 오만과 무지 탓이다. -두 번째 난관은 ‘천국의 신화’ 필화 사건이다. 대하 역사물을 쓰겠다고 마음먹은 건 서른 살 때였다. 미국에 가서 광활한 그랜드캐니언을 마주하고 나니 ‘내가 왜 스포츠 만화나 그리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10여년간 ‘환단고기’ 등 역사서들을 공부하고 ‘100권’을 목표로 1996년 1부 3권을 내놨다. 그러나 2년 뒤 청소년 음란물 시비로 검찰에서 기소하고, 법원이 300만원의 벌금형을 내렸다. ‘터무니없는 심의와 검열에 내가 고개를 숙이면 어느 작가가 이겨 낼 수 있겠나’ 하는 생각에 정식 재판을 청구했다. 최종 무죄 선고를 받은 것은 6년이 흐른 뒤였다. 당시 중학교와 초등학교에 다니던 아이들(1남 2녀)이 끝까지 아버지를 믿어 준 데 대해 지금도 고마움이 크다. -50대가 되니 세상이 많이 변해 있었다. 더 이상 예전의 인기 만화 작가 ‘이현세’는 존재하지 않았다. 처음엔 ‘내 시대는 갔구나’ 하는 생각에 씁쓸하기도 했지만 이게 당연한 세상의 섭리 아닌가. 지금까지 많은 작품을 그려 큰 인기를 얻었지만 개인적으로는 모두 ‘쓰레기’라고 생각한다. 표현이 좀 과한가?(웃음) 완벽하다고 여긴 작품은 없다. 그리고 원래 나는 ‘옥에 티’가 많은 작가다. ‘공포의 외인구단’에도 같은 사람인데 야구 글러브가 왼손, 오른손 바뀌어 그려진 장면들이 있다. 나는 쓰레기통 속에서 수많은 ‘가짜 꽃’을 피우다가 언젠가는 한 송이 진짜 꽃을 피우는 게 작가라고 여긴다. 내 작품은 아직도 쓰고 구겨서 쓰레기통에 집어던질 습작의 연장선상이다. 난 천재형과는 거리가 멀다. 대신 부모님께 극단적인 집중력과 낙관주의를 물려받았다. 한창때는 한번 그리기 시작하면 하루이틀 꼬박 밤을 새우는 건 일도 아니었다. 그 덕분에 마감은 종종 늦었지만 펑크를 낸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남들은 그림을 그리면서 어떻게 배가 고프고 화장실에 갈 수 있을까’ 생각했을 정도다. -얼마 전부터 인터넷 포털 ‘네이버’에서 ‘천국의 신화’ 6부를 시작했다. 남녀노소 다 볼 수 있도록 수위를 조절했지만, 나로서는 무척 감사한 일이다. 작년 말에는 네이버에서 ‘웹툰 신인상’까지 받았다. “60 평생에 처음으로 신인상을 받았다”고 하니 후배 작가들이 다들 자지러졌다. -지금 연재 중인 천국의 신화는 10년 정도 더 해야 한다. 6부는 고조선 멸망으로 끝난다. 이후 여러 민족들이 군웅할거했던 시기를 지나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예정이다. 그 뒤에는 나도 70대가 된다. 그때는 동년배를 위한 동화를 그리고 싶다. 아니면 손주를 위한 동화를 쓰고 있을지 모르겠다. 문제는 큰아이가 30대 후반인데, 이 녀석들이 셋 다 결혼을 안 했다는 거다. 김태균 사회부장 windsea@seoul.co.kr 이두걸 기자 douzirl@seoul.co.kr 만화가 이현세(60)씨는 한국 만화의 ‘오늘’을 있게 한 대표적인 작가다. 1979년 ‘저 강은 알고 있다’로 데뷔한 그는 1982년 ‘공포의 외인구단’을 통해 운명에 맞서는 열정과 지고지순한 사랑을 역동적인 그림체로 선보여 만화계에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그의 나이 불과 26세였다. 이후 ‘지옥의 링’(1985), ‘야수의 전설’(1985), ‘며느리 밥풀꽃에 대한 보고서’(1988), ‘아마게돈’(1988), ‘블루엔젤’(1989), ‘폴리스’(1992), ‘남벌’(1994), ‘천국의 신화’(1997) 등 히트작과 문제작을 내놓으면서 ‘불온’과 ‘미숙’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니던 만화를 대중문화의 중심부로 격상시켰다는 평을 받는다. 초로(初老)의 나이에도 ‘천국의 신화’ 6부를 웹툰에 연재하는 여전한 ‘현역’이다. ▲경주중·경주고 ▲세종대 만화애니메이션학과 교수(1997~) ▲한국만화가협회 회장(2005~2007년)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이사장(2009~2012년)
  • “러시아·IS·中·北 위협에 직면”… 美 국방예산 ‘선택과 집중’

    “러시아·IS·中·北 위협에 직면”… 美 국방예산 ‘선택과 집중’

    러 대응 4배…IS 격퇴 50% 증액 기술력 우위 위해 R&D 12% 투자 “北 도발 탓 주한미군 늘 전투 태세” 내년도 미국 국방예산은 러시아 견제와 이슬람국가(IS) 격퇴에 방점이 찍혔다. 주한 미군에 대해서는 언제든지 전투 준비를 갖출 수 있도록 했다. 애슈턴 카터 미국 국방장관이 2일(현지시간) 2017 회계연도(2016년 10월~2017년 9월) 국방예산으로 5827억 달러(약 709조원)를 요구한다고 발표했다. 전년도에 비해 0.3% 줄었다. 카터 장관은 이날 워싱턴DC 소재 싱크탱크 이코노믹센터에서 “미국은 러시아, 중국, 북한, 이란, IS의 도전에 직면해 있으며, 이들에 대해 육·해·공중전뿐만 아니라 사이버·우주·전자전에서도 우위를 점해야 한다”며 예산안을 소개했다. 그는 “북한의 핵프로그램과 장거리 미사일 개발은 미국과 동맹국에 심각한 걱정거리이고 위협”이라며 “이 때문에 주한 미군이 당장이라도 싸울 수 있도록 늘 준비태세를 갖춰 놓는 것”이라고 말했다. 카터 장관은 북한과 함께 중국, 이란도 미국의 잠재적 위협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요구안에 따르면 미 국방부는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과 우크라이나 내전 개입 이후 거세진 러시아의 공세에 대응하는 데 34억 달러를 편성했다. 이는 전년도 예산보다 4배 늘어난 금액이다. 이 예산은 유럽에 파견되는 미군과 동맹국과의 훈련 빈도를 늘리는 데 사용될 예정이다. 또 IS 및 테러와의 전쟁에도 전년도 예산보다 50%를 증액한 75억 달러가 책정됐다. 이 중 18억 달러는 뛰어난 적 탐지 및 타격 능력으로 IS 공습에서 성능이 입증된 GPS 유도 스마트폭탄과 레이저 유도 로켓 4만 5000대를 구입하는 데 쓰인다. 카터 장관은 미군의 기술력 우위를 유지하기 위해 2017년도 국방예산의 12.2%에 해당하는 714억 달러를 연구개발에 투자한다고 밝혔다. 또한 새로운 전장으로 떠오른 사이버 세계와 우주에서의 전쟁 수행 능력을 높이기 위해 각각 70억 달러와 50억 달러를 책정했다. 카터 장관은 이와 관련해 “미국은 현재 벌어지는 전쟁에 대응하는 동시에 30년 뒤에 일어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전쟁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송혜민의 월드why] ‘세뱃돈’에 울고 웃고…韓·中 차이 보니

    [송혜민의 월드why] ‘세뱃돈’에 울고 웃고…韓·中 차이 보니

    민족 최대의 명절인 설, 아이들에게는 맛있는 음식과 더불어 또 하나의 즐거움이 있으니, 바로 세뱃돈이다. 뿌리는 유사하지만 부르는 이름도, 형식도 그리고 평균적인 액수도 각기 다른 세뱃돈 문화의 과거와 현재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세뱃돈은 중국서 유래?…한국의 세뱃돈 역사, 그리 길지 않아 세뱃돈 문화는 중국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보편적이다. 중국은 송나라 때부터 정월 초하루, 즉 음력 1월 1일이 되면 결혼하지 않은 자녀에게 ‘나쁜 일을 물리치는 돈’ 이라는 의미로 덕담과 함께 붉은 봉투에 돈을 넣어줬다. 귀신이나 요괴 등이 어린아이를 해치려고 할 때 돈을 공물로 바쳐 위기를 넘기라는 데에서 유래한 것으로, 이를 압세전(壓歲錢·재앙을 막는 돈이라는 뜻), 현지어로는 ‘야수이첸’이라 부른다. 중국인이 세뱃돈을 건넬 때에는 반드시 악귀와 불운을 물리친다는 의미의 붉은색 봉투를 사용하는데, 이를 홍바오(紅包·붉은 주머니)라고 부른다. 홍바오는 설 뿐만 아니라 다른 명절이나 결혼, 출생, 환갑 등에서도 자주 사용된다. 지폐가 나오기 전에는 홍바오가 아닌 붉은색 끈에 엽전을 꿰어 줬다. 한국에 세뱃돈 문화가 전파된 것은 그리 오래 전 일이 아니다. 세뱃돈의 역사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민속학자들은 1800년대 조선의 풍습을 모은 ‘동국세시기’에 세뱃돈에 대한 언급은 없다고 밝힌다. 설에 세배를 받은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떡이나 과일 등을 내주었다는 기록은 있지만 정확히 돈을 건넸다는 기록은 찾아보기 어렵다. 때문에 학자들은 한국의 세뱃돈 문화가 1900년대에 들어 시작됐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달라지는 세뱃돈 문화 과거 끈에 꿴 엽전이나 과일, 떡 등으로 받았던 세뱃돈은 지폐가 나오면서 현금으로 ‘지급되기’ 시작했고, 최근에 들어서는 다양한 금융 수단의 등장에 힘입어 그야말로 기상천외한 세뱃돈 관련 금융 상품이 인기를 끌고 있다. 중국 현지 매체인 중국망의 보도에 따르면, 이제 갓 5살을 넘긴 야오링허우(10後·2010년 이후 출생자) 세대들은 야수이첸을 붉은색 봉투에 담긴 현금으로 받기 보다는 주식으로 받는 것이 대세다. 취학 전인 어린아이들에게는 당장 쓸 수 있는 현금보다는 시장이 상황을 장기적으로 보고 굴려야 하는 주식이 더 적격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야수이첸을 주식도 현금도 아닌 모바일로 ‘결제’하는 문화도 생겨나고 있다. 현지 전문가들은 올해 모바일 야수이첸 시장이 지난해보다 30% 이상 늘어난 100억 위안 규모에 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세뱃돈 시장’의 급변하는 기류는 한국도 만만치 않다. 세뱃돈을 각국 외화로 전할 수 있는 ‘외화세뱃돈세트’가 등장한 것은 물론이고, 자녀의 올바른 경제관념을 확립시킬 수 있다는 문구와 함께 세뱃돈으로 시작할 수 있는 각종 어린이금융상품 광고가 줄을 잇는다. 전문가들은 “자녀명의의 예금통장에 세뱃돈을 그저 예치해 두는 것만으로는 자녀에게 별다른 의미도 없고 도움도 되지 않는다”면서 증권사 CMA(종합자산관리계좌)와 (어린이용)적금·적립식펀드를 이용해 올바른 저축습관을 들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액운을 물리치고 복과 건강을 받으라고 건네는 세뱃돈에 이리도 ‘엄중한’ 의미를 부여해야하나 싶기도 하지만, 요새 아이들이 원하는 혹은 실제로 받는 세뱃돈 액수를 보면 금융회사들이 욕심을 낼 만도 하다. ◆“베이징 어린이 세뱃돈 평균 89만원” 중국 신징바오(新京報)의 지난해 보도에 따르면 베이징에 사는 10~13세 어린이 90명을 대상으로 세뱃돈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한 명당 평균 세뱃돈은 무려 4867위안(약 89만원)으로 조사됐다. 이는 전년도인 2013년보다 5% 상승한 것이며, 올해 역시 상승세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어린아이에게 고가의 세뱃돈을 주는 것이 도덕적으로 옳은지에 대해 고민할 법도 한데, 중국의 태도는 사뭇 다르다. 세뱃돈이 고위 공직자들의 뇌물로 세탁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 것. 시진핑 중국국가주석이 강력한 반부패 정책을 내놓자 자녀의 세뱃돈이 뇌물로 비쳐질 것을 우려한 일부 공직자들은 자녀가 일가친척 외에 타인으로부터 세뱃돈 받는 것을 금지시킨다는 보도가 나왔을 정도다. 한국인의 경우, 지난해 여론조사기관인 한국갤럽이 전국 만 19세 이상 성인 1003명을 상대로 실시한 ‘2015년 한국인의 설 풍경’ 설문에 따르면 초등학생에겐 1만원, 중학생에겐 3만원 정도의 세뱃돈이 가장 적절하다고 여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이건 어른들의 생각일 뿐이고, 실제 ‘수혜자’인 아이들의 생각은 다르다. 초등학교 6학년을 앞두고 있다는 한 네티즌이 포털사이트 질문란에 ‘내 나이면 보통 얼마 정도의 세뱃돈을 받는지 알고 싶다’는 질문을 올리자, 비슷한 또래라고 밝힌 네티즌은 “5~6학년이면 5~10만원이 일반적”이라고 답변을 달았다. 세뱃돈을 건네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온도차가 상당한 것으로 추정되는 대목이다. ◆세뱃돈에 얽힌 웃지 못 할 해프닝 2007년, 중국의 14세 소녀는 관영 CCTV에 '설에 받은 세뱃돈 2800위안을 돌려받기 위해 부모를 고소하려 한다'는 제보를 했다가 네티즌들의 비난을 한 몸에 받았다. 2011년에는 세뱃돈 100위안을 돌려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10대 아들과 아버지가 다툼을 벌이다 아버지가 사망하는 불행한 사건도 발생했다. 한국 포털사이트에는 이맘쯤이면 ‘세뱃돈 뺏기지 않는 방법’이란 제목의 질문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세뱃돈의 소유권과 액수를 둘러싸고 아이와 어른이 전쟁을 벌이기 보다는, 액운을 물리치고 부와 건강을 기원한다는 본래의 의미를 잊지 말아야 하겠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글로벌 시대] 중국의 일대일로는 순풍에 돛을 달았는가/원동욱 동아대 국제학부 교수

    [글로벌 시대] 중국의 일대일로는 순풍에 돛을 달았는가/원동욱 동아대 국제학부 교수

    2016년 새해 벽두 1, 2월을 피하던 관례를 깨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최근 중동 지역의 맹주인 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등 3개국을 순방했다. 이들 방문국은 중국과 마찬가지로 찬란한 고대문명의 발상지이자 고대 실크로드가 지나는 곳이기도 하다. 시 주석은 이들 중동 국가를 향해 돈 보따리를 풀어내며 물류, 에너지 등 여러 분야에 걸친 협력을 이끌어 냄으로써 고대 문명의 길, 실크로드의 복원을 꾀했다. 시진핑 시기 ‘중국의 꿈’(中國夢)을 실현하기 위한 전략 구상이자 유라시아를 향한 중국의 그랜드 디자인이라 할 수 있는 ‘일대일로’(一帶一路·실크로드 경제벨트, 21세기 해상 실크로드)가 올해에도 중국 외교의 핵심 키워드임을 확신케 하는 대목이다. ‘일대일로’가 통과하는 유라시아 지역, 특히 중동 지역은 세계적인 천연자원의 보고로서 오랜 기간 강대국 간 경쟁과 각축이 이루어져 온 전략적 요충지다. 중국이 추진하는 일대일로는 중동 지역, 특히 이란 핵 문제를 둘러싼 서방 세계의 관여와 제재라는 지정학적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어 중국의 일대일로가 과연 순풍에 돛을 달았는지 의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전혀 그렇다고 할 수 없다. 중국의 일대일로에 대해 주요 강대국들은 정부 차원의 공개적 언급을 피하고 있지만, 각국의 싱크탱크를 통해 중국의 의도에 대한 경계심을 넘어 반대의 목소리를 내보내고 있다. 미국의 언론은 “중국이 두 개의 실크로드를 이용해 워싱턴을 공격하고 있다”며 일종의 ‘서진전략’을 통해 해상과 육상을 통한 미국의 압박과 봉쇄를 무력화하려는 의도로 보고 있다. 일본도 중국의 일대일로가 서쪽, 서남쪽, 남쪽 방면으로 영향력 확장을 꾀하려는 것으로 보고 있다. 투자를 미끼로 위안화의 국제화를 통해 달러의 심연에서 벗어나기 위한 전략으로 파악하기도 한다. 특히 주목할 국가는 중국의 오랜 라이벌 관계인 인도로, 남아시아의 주도권 확보 차원에서 확실한 경계심을 드러내며 일대일로에 대한 맞대응 차원에서 ‘마우삼 계획’을 수립한 바 있다. 혜택을 볼 것으로 예상되는 동남아국가연합(ASEAN) 국가나 중앙아시아와 아프리카 국가들 역시 중국의 자원 정책에 대해 각기 이러한 복잡한 기대와 경계 심리를 드러내고 있다. 중국의 일대일로 추진에서 기초 인프라 건설은 핵심적 위상을 차지하며, 여기에는 주변국의 지정학적 우려 외에도 사업 자체가 갖는 잠재적 리스크가 적지 않다. 호주의 화교학자 쉐얼(雪珥)은 최근 한 기고문에서 일대일로를 가리켜 ‘고부패지대’, ‘고 리스크로’(high risk road)라고 비관적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일대일로가 통과하는 국가들은 대체로 권위주의 통치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거나 관료 부패가 매우 심각한 곳이라는 점에서 사업의 안정성을 해치기 쉽다는 의미다. 더욱이 ‘실크로드 경제벨트’에 해당하는 지역은 오랫동안 국제 테러리즘의 주요 온상지이고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시리아 등에서 전개되는 반테러리즘 전쟁이 진행 중인 지역이라는 점도 성공 가능성을 낮추는 요인이다. 더욱이 남중국해와 관련한 일부 동남아 국가들과의 영토분쟁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21세기 해상 실크로드’ 건설을 추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 전략과 맞물려 중국의 해양 진출을 억제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어 이래저래 중국에 어려운 시련이 될 것이다.
  • 북극 정령이 흘려놓은 풀빛 오로라, 시간이 멈춘 듯

    북극 정령이 흘려놓은 풀빛 오로라, 시간이 멈춘 듯

    겨울, 북극에선 누구나 뤼나티크가 될 수밖에 없다. 달빛에 홀린 월광병 환자 말이다. 핀란드 북쪽의 작은 마을 레비. 이곳에선 하루 가운데 20시간이 밤이다. 하늘엔 별이 총총, 땅엔 불빛에 반사된 얼음 알갱이들이 반짝대며 ‘다이아몬드의 바다’를 이룬다. 그뿐이랴. 머리 위로는 ‘북극의 꽃’ 오로라가 핀다. 이 빛, 참 고혹적이다. 유혹의 선처럼 다가온다. 멀리서 아른대다 어느새 훅 하고 머리 위까지 날아와 넘실댄다. 그러니 밤 풍경 속을 떠돌 수밖에. 옛사람 안견이라면 몽유‘설’원도를 그렸겠지. 한데 잊지는 마시라. 북극은 오로라 그 이상의 풍경을 선보인다는 걸. 짧은 낮 동안에도 극한의 환경이 만든 극적인 풍경이 이어진다. 이건 좀 세다. 추위는 각오했지만 이 정도로 혹한일 줄은 몰랐다. 어지간한 방한 장비로는 턱도 없다. 같은 핀란드라도 수도 헬싱키와 북쪽의 소도시 키틸라 사이엔 무려 20도 이상 기온 차이가 난다. 헬싱키는 북극권(아크틱 서클) 아래, 키틸라는 북극권에서도 북쪽으로 170㎞나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지난 며칠 동안 한반도를 꽁꽁 얼렸던 ‘북극의 찬 공기’도 따지고 보면 키틸라 일대의 공기와 사촌 간이다. ●상상 이상의 추위… 키틸라에서 레비로 착륙 십여 분 전. 기내 스크린에 고도 등 각종 영상정보들이 표출된다. 외부기온 영하 19도. 보통은 하늘이 더 차다. 높을수록 기온이 떨어지니 당연하다. 하지만 이곳, 북극은 다르다. 땅이 더 차다. 착륙 당시 기온 영하 31.9도. 냉동실보다 낮다. 생전 처음 겪는 온도다. 그나마 바람이 불지 않는 게 다행이다. 이 기온에 바람까지 불었다면 체감온도는 상상 이하로 곤두박질쳤을 테고, 여정 내내 입에 육두문자를 달고 지냈을 테니 말이다. 극과 극은 통한다. 세상 어디보다 냉혹한 곳이지만 한편으론 더없이 아름다운 땅이다. 어디서도 볼 수 없는 극지방 특유의 풍경들을 갈무리해 뒀다. 엄혹한 땅에서 멋진 풍경들과 함께 지내기 위해선 갖춰야 할 덕목이 있다. 겸손이다. 추위를 이기려 들지 말고, 순응하며 지혜롭게 견뎌내야 한다. 이 추위는 이길 수 있는 추위가 아니다. 키틸라 공항에서 ‘겨울 레포츠의 천국’ 레비로 넘어간다. 이곳에서 습기는 찾기 힘들다. 정확히는 습기가 습기일 틈이 없다. 습기를 품은 온기는 곧바로 얼음 결정으로 변한다. 입에서 나온 김이 곧바로 얼음으로 변해 얼굴 주변에 맺히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눈도 비슷하다. 얼음 알갱이 외에 습기란 없다. 우리나라에 내리는 눈이 습기 가득한 습설이라면, 핀란드에 내리는 눈은 마른 눈, 건설이다. 우리와 달리 눈 쌓인 도로에서 스노 타이어가 우수한 제동력을 갖는 것도 그 때문이지 싶다. 극한의 자연 환경은 극적인 풍경을 만든다. 대표적인 게 오로라다. 사실 이번 여정의 ‘팔할’도 오로라를 보자는 뜻이었다. 하지만 일정 내내 오로라 관측 가능지수는 ‘2’였다. 미국 알래스카 대학의 과학자들이 운영하는 사이트(www.gi.alaska.edu/AuroraForecast)에서 예상한 수치다. 이 사이트에선 매일 오로라 활동 지수를 0에서 9까지 10단계로 나눠 게시하는데, 지수가 3 이상이고 날이 맑다면 오로라와 마주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단언컨대 이는 수치일 뿐이다. 오로라는 미처 의식하지 못한 상태에서도 기적처럼 당신을 찾을 수 있다. 오후 8~9시께 오로라가 나타났다면 그날은 가급적 새벽 3~4시까지 잠을 미뤄두길 권한다. 당신 생애에 가장 화려한 오로라와 마주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정령들의 춤·전쟁의 처녀신·여우불 ‘오로라’ 오로라의 사전적 의미는 ‘태양에서 방출된 전기 입자들이 지구 대기와 부딪쳐 빛을 내는 현상’이다. 북극권 일대에 사는 이들은 메마른 현실 언어보다 동화적인 방식으로 오로라를 표현한다. 북미의 인디언들은 ‘정령들의 춤’, 바이킹은 ‘전쟁의 처녀신’ 발키리의 방패에서 반사된 빛이라고 했다. 사미족(族)은 북극 여우가 불붙은 꼬리로 하늘에 뿌려대는 불꽃이라고 했다. 핀란드 사람들은 레본툴레라고 부른다. 여우불이란 뜻이다. 도착 이튿날 오후 8시. 오로라를 ‘영접’하러 갈 시간이다. 장소는 레비 마을 옆 호숫가다. 현지 주민들이 오로라 감상 최적지로 꼽은 곳이다. 꽝꽝 언 호수 위에서 덜덜 떨며 기다리길 두어 시간쯤. 북쪽 하늘 위로 여러 갈래 빛이 쏟아져 내렸다. 이게 오로라일까. 일반적으로 오로라는 물결치듯 흘러간다. 한데 이 ‘오로라’는 특이했다. 빛이 바늘처럼 내리꽂혔다. 당시엔 오로라일 거라 철썩같이 믿었다. 오로라에 대한 갈망이 컸던 탓이다. 게다가 안내 책자에서 수직으로 내리꽂히는 오로라 사진을 본 터라 바람은 쉽게 확신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이날 본 건 빛기둥(light poles)으로 추정된다. 대기 중의 얼음 알갱이들이 불빛을 반사해 생겼을 것으로 판단된다. 빛기둥도 진기한 자연현상이다. 오로라가 전자들이 빚어낸 빛의 예술이라면 빛기둥은 얼음 알갱이들이 연출한 ‘불빛쇼’라 부를 수 있겠다. ● 빛기둥·눈보라가 만든 피니시 라플란드 행운은 마지막 날 밤에 찾아왔다. 저녁 식사 도중 생일을 맞은 일행 한 명이 소원을 말하려던 찰나, 퇴근했던 현지 관광청 직원이 부러 식당을 찾아 오로라 출현 소식을 알렸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식당 문을 박차고 나선 순간, 마을 하늘 위로 풀빛의 오로라‘들’이 유령처럼 흘러다녔다. 곧이어 뒷덜미를 훑어 내려가는 전율. 초록빛 광선에 감전된 듯한 느낌이다. 서둘러 호숫가로 달렸다. 이 시간을 카메라에 가둬놓기 위해서다. 오로라는 이후 두 시간 남짓 너울거렸다. 책에서나 보았던 ‘어마무시한’ 오로라는 아니었지만, 감동은 충분했다. 레비에서 만날 수 있는 자연현상 몇 가지 덧붙이자. 피니시 라플란드는 눈보라가 반복적으로 쌓여 거대한 괴물의 형상을 한 나무를 일컫는 표현이다. 레비 스키장 언덕 위로 조금만 올라가면 마을 근처의 수목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굵기의 눈 나무들이 늘어서 있다. 해가 뜨고 질 때면 얼음 알갱이에 반사된 볕이 아래로 확산되는 현상도 볼 수 있다. 글 사진 키틸라(핀란드)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 ●모자부터 신발까지 두툼하고 따뜻하게 추위에 견딜 장비 마련이 가장 중요하다. 모자부터 신발까지 무조건 ‘두툼’해야 한다. 외투의 경우 아웃도어 업체 블랙야크에서 제작한 발열다운 점퍼가 요긴하다. 스마트폰을 활용해 온도와 습도를 외부 조건에 맞춰 제어할 수 있다. 발열섬유는 옷 안의 등쪽에 붙어 있다. 점퍼 탈착식 배터리에서 전원을 공급하면 신기하게도 금방 등쪽이 따뜻해진다. 몸 한쪽에 열을 내는 장치가 있다는 건 냉혹한 환경에서 대단한 위로가 된다. 점퍼 충전재도 거위털이라 한결 따뜻하다. 바지는 두툼하되, 몸에 달라붙는 것이 좋다. 내복과 양말, 장갑 등은 두 개씩 준비한다. 하나는 얇고 하나는 두꺼워야 탈착이 수월하다. 안면 가리개와 모자 등도 필수다. ‘핫팩’은 아쉬운 점이 많다. 신발과 장갑 등 외부에 노출된 부분에 부착한 발열팩은 제기능을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밖에 나가기 전 미리 발열팩을 덥혀 두는 게 좋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오래 열기가 지속된다. 외투 주머니에 넣어 둔 발열팩은 열기가 제법 오래 간다. ●핀에어 인천~헬싱키 직항편 주 7회 운항 핀에어(www.finair.com/kr)가 인천~헬싱키 직항편을 주 7회 운용한다. 매일 오전 11시 15분에 출발해 오후 2시 15분에 도착하는 일정이다. 레비 등 북극권 지역으로 가려면 헬싱키 공항에서 국내선으로 갈아타야 한다. 레비 인근 키틸라 공항까지 1시간 30분쯤 걸린다. 이발로 공항을 거쳐 가는 경우엔 2시간 남짓 소요될 수도 있다. 키틸라에서 레비는 20분 거리다. ●오로라 보려면 기동성 필수… 렌트카 추천 오로라를 보려면 기동성이 필요하다. 현지에서 차량을 렌트해야 오로라를 만날 가능성을 한층 높일 수 있다. 키틸라 공항에 유럽카 사무소가 있다. 아우디 A4가 하루 15만 7000원 정도다. 도로가 늘 눈에 덮여 있어서 차량자세제어장치 등의 기능이 탑재된 중형차 이상을 선택하는 게 좋다. 스노 타이어는 모든 차종에 장착돼 있다. 눈길 운전에도 별 무리가 없다. 한국에선 퍼시픽에어에이젠시(PAA)가 유럽카 판매를 대행하고 있다. 홈페이지(www.europcar.co.kr) 참조. (02)317-8776. 차량 연료는 가솔린의 경우 옥탄가에 따라 약 1.5~1.6유로, 경유는 1.3유로 정도다.
  • [균형발전·혁신도시 대해부(끝)] ‘국가균형발전 선언 12주년’ 심포지엄

    [균형발전·혁신도시 대해부(끝)] ‘국가균형발전 선언 12주년’ 심포지엄

    29일 참여정부 국가 균형발전 정책의 상징인 세종시에서 한국미래발전연구원 주최로 ‘골고루 잘 사는 대한민국!’을 주제로 기념식과 심포지엄이 열렸다.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전에서 ‘지방화와 균형발전시대 선포식’을 열면서 뿌린 씨앗을 키우는 지방정부의 수장들이 참석해 대한민국의 미래를 고민했다. 박근혜 정부의 수도권 규제 완화를 통한 경제발전 전략이 근시안적이라고 비판하면서 균형발전을 기회의 공정성으로 확대해 진정한 지방분권 시대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모았다. 이날 국가균형발전 선언 12주년 기념식 참석자들은 보수정부의 수도권 집중화 정책은 당장 중국에 따라 잡힐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해찬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진통이 있었지만 계획된 공공기관의 약 90%가 이전하는 등 혁신도시가 기틀을 잡았다”며 “여기서 머물지 않고 국가균형발전을 가속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구가 수도권으로 역류하는 것을 막기 위한 규제 정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154개 공공기관 가운데 136개가 전국 10개 혁신도시로 이전을 마쳤고, 세종시는 인구 22만명의 행정중심 복합도시(행복도시)로 우뚝 섰다. 이민원 전 국토균형발전위원장은 “12년 전 처음 균형발전을 선언하고 행정수도와 혁신도시를 건설하자고 주장할 때만 해도 지금 같은 위용으로 혁신도시가 꾸려질 것이라 상상할 수 없었다”며 “혁신도시 건설이 예상보다 3년쯤 늦었지만,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 6·25전쟁 이후 처음으로 2011년부터 수도권 인구가 줄었다”며 균형발전 정책의 성과를 평가했다. 비수도권의 1인당 지역내총생산(GRDP) 증가율도 수도권을 앞질렀고, 지난해 공시지가 상승률은 혁신도시가 조성된 나주시가 1위, 세종시가 2위였다고 설명했다. 균형발전의 성과와 과제를 토론하는 장에는 박원순 서울시장, 이춘희 세종시장, 안희정 충남도지사, 최문순 강원도지사가 참여했다. 안희정 지사는 “국토 균형발전의 핵심은 땅과 부를 나누는 것이 아니라 기회의 균등성을 보장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참여정부의 균형발전 정책은 혁신도시 건설로 이미 효용의 한계에 다다랐다고 진단했다. 수도권에서 지방으로 기관과 사람을 내려보내는 것은 제조업의 한계 때문에 과거의 의제가 됐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제조업의 성장 동력이 말라버려서 지방의 땅값과 임금이 싸다고 내려보내도 중국과 경쟁이 되지 않는 상황”이라며 “균형발전의 핵심 가치는 공정한 기회”라고 밝혔다. 박정희 시대부터 노무현 정부까지 산업화를 통한 국토 균형발전은 마무리됐고, 혁신도시도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며 “공정한 경제적 기회를 약속하는 균형발전 전략을 다시 짜야 한다”고 말했다. 균형발전을 위해 넘어서야 할 과제가 된 수도 서울의 수장 박원순 시장은 “시장이 바뀌었으니 서울을 너무 미워하지 마라”며 농담으로 말문을 열었다. 박 시장은 “서울의 재정자립도가 보수정부 들어 90%에서 80%로 떨어졌는데 지방분권이 제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열악한 서울시의 사정을 소개했다. 한국전쟁 이후 건설된 많은 사회적 기반시설이 노후화됐다며 하수관거와 지하철을 대표적인 예로 들었다. 50년 이상 되어 교체해야 할 하수관거가 서울 전체의 30%나 되지만, 중앙정부로부터 받을 수 있는 예산은 없다며 한숨 지었다. 이어 일본의 도쿄도는 중앙정부로부터 매년 5000억원을 하수관거 교체 예산으로 받는다고 덧붙였다. 박 시장은 “서울시도 지방 정부”라며 조직권이 없어 국장 한 명을 추가로 임명하려 해도 행정자치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꼬집었다. 서울시조차도 지방 분권을 보장받지 못한다며 “혁신도시로 균형발전의 큰 외과적 수술을 했다면 이젠 지방분권의 속살을 채워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시도지사회의를 양원제도로 운영하는 독일의 상원 의회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최문순 지사는 “감자는 싹을 잘라서 심으면 어떤 방향으로든 전부 열매를 맺는 분권이 이뤄졌기 때문에 글로벌한 작물이 됐다. 혁신도시 덕분에 강원도 인구가 매년 조금씩 늘고 있다”면서 강원도를 상징하는 감자에 빗대 혁신도시의 성과를 알렸다. 최 지사는 참여정부의 국토 균형발전 정책 이후 더는 지방분권 정책이 나오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이춘희 시장은 “참여정부가 가장 잘한 일로 국가 균형발전을 많이 꼽는다. 이미 1960년대 ‘서울은 만원’이란 이야기가 나왔고, 국토 균형발전 시도는 있었지만 참여정부의 정책만큼 지속성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 시장은 “지방정부가 활력을 발휘할 기회가 없으면 대한민국이 어렵다. 지방분권 개헌을 통해 국민이 주인 되는 진정한 지방분권이 이뤄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세종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총선 앞둔 이란 보수파의 반격

    “이란의 개혁·개방 정책을 주도하는 하산 로하니 대통령에게 보수파가 일격을 날렸다.” 다음달 26일 치러지는 이란 전문가의회 및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한 중도·개혁파 후보들이 사전 심사에서 대거 탈락하자 외신들은 이같이 평가했다. 이란의 헌법수호위원회는 26일(현지시간) 전문가의회 의원 선거에 입후보한 801명 중 166명을 후보로 승인했다고 밝혔다. 선출직 후보의 자격 심사를 맡는 헌법수호위원회는 보수 성향의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가 직간접적으로 임명하는 12명의 위원으로 구성돼 ‘보수 일색’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새달 26일 선거… 중도·개혁파 사전 심사서 대거 탈락 헌법수호위원회의 편향적 성격 때문에 중도·개혁파로부터 심사의 공정성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는 가운데 전문가의회 의원 선거에 출마한 중도 성향의 하산 호메이니(43)가 탈락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논란은 증폭되고 있다. 호메이니는 이란 이슬람혁명의 주역이자 초대 최고지도자인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의 손자이며 로하니 대통령 등 중도·개혁파로부터 지지를 받는 인물이다. 앞서 지난주 헌법수호위원회는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 신청을 한 1만 2000여명 가운데 4700여명만 출마를 허가했다. 개혁파 지도자인 호세인 마라시는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개혁파 후보 3000여명 중 단 1%만 승인을 받았다”고 말했다. ●로하니 대통령에게 ‘넘지 말아야 할 선’ 경고 분석도 다음달 총선은 이란에 대한 서방의 경제제재가 해제된 뒤 처음 치러진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중도·개혁파가 국회에 대거 진출한다면 로하니 대통령이 추진 중인 개혁·개방 정책이 탄력을 받겠지만, 보수파가 권력을 유지한다면 지난해 극적으로 타결된 핵합의가 흔들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하메네이 최고지도자가 76세 고령임을 감안할 때 최고지도자 유고 시 후계자를 정하는 전문가의회 선거는 보수파와 중도·개혁파 모두 물러설 수 없는 전쟁터다. 이에 최근 경제제재 해제로 중도·개혁파에 대한 인기가 높아지자 보수파가 반격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한 관계자는 로이터에 “중도·개혁파 후보의 대거 탈락은 보수파가 로하니 대통령에게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음을 경고한 것”이라고 말했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경제 블로그] 이란과 의리 지킨 대림산업에 러브콜 ‘으리으리’

    ‘친구는 어려움 속에 있다.’ 어려울 때 도와주는 친구가 진정한 친구라는 이슬람 속담입니다. 요즘 이란에 대한 경제 제재가 풀리면서 이런 현지 속담의 수혜를 보는 기업이 있습니다. 건설기업인 대림산업입니다. 수출입은행의 한 고위 임원은 “요즘 진행 중인 건설 프로젝트 10건 중 8건에 대림산업 이름이 오르내린다”면서 “이렇다 보니 ‘대림과 일을 좀 나눠서 했으면 하는데 다리를 놓아 줄 수 없느냐’는 요청도 이어진다”고 귀띔했습니다. 여기에는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대기업도 많다고 합니다. 왜 대림일까요. 답은 앞서 말한 이슬람 속담에 있습니다. 대림산업은 1975년 국내 건설사로는 처음으로 이란에 진출해 지속적으로 정유, 액화천연가스(LNG), 화력발전소, 댐 건설 등에 대규모 공사를 해 왔습니다. 총 21건으로 수주액은 34억 달러에 이릅니다. 하지만 한때 이란이 중동 건설 시장 5위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것만으론 ‘대림의 이란 특수’에 대한 설명이 부족합니다. 대림은 전쟁과 경제 제재로 이란 경제가 나락으로 떨어졌을 때도 고집스럽게 현지에 남아 공사를 마무리했습니다. 다들 사업을 중도 포기하고 짐을 쌀 때도 테헤란 지사에 직원을 상주시키며 끝까지 공사를 마무리했습니다. “어려울 때 곁에서 약속을 지켜 준 기업이라 현지 분위기가 대림에 우호적”이란 게 관련 업계의 전언입니다. 최근 이란은 세계 건설업계가 주목하는 블루칩입니다. 경제 제재 속에 묶여 있던 사회 기반 시설과 플랜트 공사 등이 대규모 발주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입니다. 대림 측 분위기는 차분합니다. 대림산업 관계자는 “우리가 다소 유리한 고지에 있는 건 맞지만 당장 도장을 찍은 프로젝트는 없다”면서 “(이란의 경제) 제재가 풀렸다고 바로 발주 물량이 쏟아지는 것도 아니니 서둘러서는 안 된다”고 되레 조언합니다. 눈앞의 이익을 생각해 투자나 대출을 접는 상황이 비일비재한 것이 요즘 현실입니다. 하지만 당장의 이익만 생각하면 큰 이익을 남길 장기 투자도, 오랜 동반자 관계도 만들 수 없습니다. 오랜 친구에 대한 신뢰가 결국 우정으로 거듭나는 해피엔딩을 기대해 봅니다. 유영규 기자 whoami@seoul.co.kr
  • 유일호 “불합리한 룰 파괴자 되겠다”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6일 “기업의 혁신적·창의적 도전을 뒷받침하려면 정부 역할도 변해야 한다”면서 “과도하고 불합리한 규제를 없애는 룰 ‘파괴자’가 되겠다”고 말했다. 유 부총리는 이날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대한상의 중장기 어젠다 전략회의’에서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쓰나미 같은 변화를 경제 도약을 위한 기회로 활용하려고 각국이 기술, 시장 선점을 위한 총성 없는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며 정부의 역할 변화를 강조했다. 4차 산업혁명이란 정보기술(IT) 인프라를 기반으로 기존 영역의 경계를 넘어 사람, 기계, 제품, 정보가 융합돼 나타나는 변화를 뜻한다. 유 부총리는 “(정부가) 공정한 경쟁을 감시하는 룰 심판자일 뿐 아니라 과도하고 불합리한 룰을 없애는 룰 파괴자로, 나아가 새로운 게임을 만들어 나가는 룰 창조자로서 창조경제 실현에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유 부총리는 당장의 득실보다 중장기적 파급 효과를 먼저 고려하는 전략적 판단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앞서 유 부총리는 이날 국무회의에서는 재정 조기 집행을 거듭 강조했다. 유 부총리는 관계 부처 장관들에게 “경제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도록 각 부처는 모든 역랑을 동원해 1분기 조기 집행에 만전을 기해 달라”고 요청했다. 정부는 1분기에 지난해보다 8조원이 더 늘어난 125조원을 집행하기로 했다. 도로 등 경제활성화 기여도가 큰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을 중심으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각 4조원이다. 지난해 하반기 25조원에 달하는 추가경정예산이 집행되면서 진작됐던 소비가 재정 급감으로 인해 위축될 우려가 있다는 분석에 따른 것이다. 특히 올해 1분기 성장률은 지난 13일 취임한 유 부총리의 첫 성적표가 된다. 유 부총리는 “최단 기간 내 사전절차를 마무리하는 등 집행에 차질이 생기지 않도록 장관들이 직접 챙겨 달라”면서 “지방자치단체 국고보조사업, 출연사업 등에 대한 실집행률도 중점 점검해 달라”고 당부했다. 기재부는 매달 재정관리 점검회의를 열어 조기집행 추진 상황 등을 점검하기로 했다. 세종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글로벌 인사이트] 이집트 이슬람문명 중심지 자처…‘아랍의 봄’ 이후 위상에 큰 상처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올해 첫 순방한 중동 3개국(사우디, 이집트, 이란)은 모두 중동의 ‘맹주’를 자처하는 국가들이다. 이 때문에 중동의 진정한 맹주가 어디인지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과거부터 이어져 온 전통적 개념의 중동 지역 맹주는 이집트다. 고대 문명의 발상지로 8세기부터 이슬람 문명의 중심지 역할을 자처해 왔다. 중동을 대표해 이스라엘과 4차례 전쟁을 벌였고, 지금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중동 지역 22개국을 회원국으로 둔 아랍연맹 본부도 카이로에 있다. 2009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이슬람 국가들에 화해를 제안한 역사적 연설을 한 곳이 이집트 카이로대학이었다는 것도 중동 국가들 가운데 이집트의 정치적 위상을 잘 말해준다. 하지만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3000달러대에 머무는 등 과거에 비해 경제적 위상이 쇠퇴했고, ‘아랍의 봄’ 이후 국내 정치 혼란도 심해져 아랍 국가들의 맏형 역할을 계속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 때문에 최근에는 아랍 국가들 사이에서 이집트의 자리를 사우디아라비아가 대신하기 시작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미국 국가정보위원회(NIC) 보고서에 따르면 “이집트가 과거 수십년간 지켜 왔던 아랍권 내 독보적 지위를 잃어 가는 대신 사우디가 그 자리를 물려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막대한 오일머니를 바탕으로 중동의 새 맹주로 떠오른 사우디는 팔레스타인 양대 정파인 파타와 하마스,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와 레바논 정부 간 화해를 각각 주선하는 등 나름대로 역할을 확대하고 있다. 다만 아직까지 중재자로서 뚜렷한 성과는 내지 못해 이집트를 완전히 대체하기에는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아랍연맹에 가입하지 않은 이란은 8000만명이 넘는 인구와 세계 최고 수준의 원유 매장량이 가장 큰 강점이다. 군사력도 중동에서 최강이라 자부한다. 전 세계가 앞다퉈 이란과의 협력 강화에 나서고 있는 것도 경제제재 해제 이후 중동 지역 최고 대국이 될 잠재력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다만 중동 지역 다른 국가들(수니파 이슬람)과 비교해 민족과 언어가 다르고 종파도 소수인 시아파여서 중동의 중심 국가 역할을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분석도 있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심재억 기자의 헬스토리 31] 노인들이 자살하는 나라의 이야기

    [심재억 기자의 헬스토리 31] 노인들이 자살하는 나라의 이야기

    글의 제목을 ‘노인들이 자살하는 나라의 이야기’라고 적고 보니 왠지 느낌이 이상합니다. 자살을 미화하려는 것도 아니고, 권장하려는 건 더더욱 아닌데, 그런 나라의 이야기라니 이상하게 여길 법도 합니다. 세상 일 다 보고, 생각하기 나름이듯 이 글도 ‘노인이 자살하지 않는 나라’ 쯤으로 하면 좋으련만 그런 식상한 접근이야 우리 사회에서 다른 주제로도 이미 일반화 돼있고, 또 사회적으로 수도 없이 다뤄져 온 자살의 실상을 제대로 전달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그냥 처음 생각 대로 가려 합니다. 바로 우리의 이야기이니까요.  모든 생명이 희구하는 본원적인 가치는 삶입니다. 삶이란 생물학적 관점에서 보면 생명활동을 이어가는 것이기도 하고, 권리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본질적이고 천부적 권리인 생존권의 실체이기도 합니다. 당연히 한 사회의 법과 제도, 윤리와 관행이 망라된 모든 역량이 개개의 삶을 지지하고, 보호하고, 신장해야 합니다. 이는 중세 이후 인본주의의 태동으로 인간 자체에 절대적인 의미를 부여하면서 비로소 시작된 가치체계이지만, 그렇다고 그 전에 인간에 대한 성찰이나 인식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가장 간명하게 설명할 수 있는 요소가 바로 종교라고 생각됩니다. 서양의 기독교는 물론 동양의 불교와 유교 등 거의 모든 종교는 인간에 대한 배려를 근본으로 삼고 있으니까요. 역사학자들이 암흑기라고 말하는 그런 시대에 비하면 확실히 지금은 인본주의의 절정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상, 어떤 이념도 인간이라는 주체적 가치를 뛰어넘지 못합니다. 인간의 의미는 절대적입니다. 누구도 훼손할 수 없고,변질시킬 수도 없습니다. 이전의 시대와 비교하면 놀라운 변화이지만, 아무도 놀라워 하지 않습니다.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이러니칼하게도 스스로 목숨을 끊는 자살 사례는 늘어가고 있습니다. 왜 이런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생기는 것일까요? 비단 자살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100년 전, 200년 전, 그보다 더 오래 전에 비해 지금이 비자연적인 사망자가 더 많습니다. 물론 시대마다 절대 인구가 달라서 단선적인 비교는 어렵지만, 한 개인이 태어나 천수를 다하고 죽는 것을 자연적인 사망이라고 한다면, 자살이나 전쟁 등으로 죽는 소위 비자연적인 죽음이 많다고 여겨지는 것은 또 무엇 때문일까요. 많은 사람들이 “옛날에 비하면 정말 살기 좋다”고들 말하는 세상인데 말이지요. ●더는 ‘사람의 것’이 아닌 세상 많은 전문가들은 그 이유 중 하나로 인간 소외를 꼽습니다. 자살이란 절망의 극단적인 표현 방법입니다. 절망이란 더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인데, 문제는 한 사회의 구성원들이 집단적으로 절망을 느끼는 상황에 처해 있는 지금의 상황입니다. 예전에 비해 국부는 엄청나게 늘었고, 시민 권익에 대한 개념이 정립되면서 아동이든, 노인이든, 여성이든 누릴 수 있는 다양한 복지정책이 준비돼 있습니다. 살려고 하면 어떻게든 살 방법이 있는 세상이지요. 그런데도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절망하고, 그 절망을 이겨내지 못해 무참하게 스러지고 마는 것일까요? 이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견해를 내놓고 있습니다. 우울증 등 신경정신 분야의 질병을 말하는 사람도 있고, 죽음을 죄악이 아니라 선택의 문제라고 믿는 사회문화적 풍조를 드는 사람도 있습니다. 인간 소외가 자살을 부른다는 주장도 설득력 있게 들립니다. 필자의 생각에는 모두 다 맞는 진단이라고 여겨집니다. 그러나 자살의 원인을 중요도에 따라 서수화할 수 있다면 저는 사람과 사람, 사회와 사람 사이에 형성된 관계의 해체와 새로운 관계의 재구성이 주는 문제를 가장 앞머리에 두고 싶습니다. 관계의 해체란 레고를 재조립하듯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일종의 변혁입니다. 나이가 한 사오십 쯤 된 사람이 어떤 이유 때문에 지금까지 자신을 중심으로 형성된 모든 인간관계를 해체, 정리한다고 생각해 보면 거기에서 오는 파장이 얼마나 클지 상상하기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사실, 관계란 아무리 개인적이라도 사회적인 특성을 갖습니다. 왜냐고요? 개인이란 혼자를 말하지만, 그런 개인과 개인이 어떤 형태로든 관계망을 형성한다는 것 자체가 바로 사회를 구성하는 일이기도 하고, 또 사회라는 게 관계의 관점에서 보자면 그런 개개인의 관계가 확장된 단위일 뿐이니까요. 그런데, 한국전쟁 이후 급속한 산업화를 거치면서 베이비부머를 중심으로 한 앞뒤 세대들이 바로 이런 관계의 해체에 직면하게 됩니다. 대가족제도의 해체에 따른 가족의 분화, 여기에서 비롯된 부양체계의 붕괴와 노후 소득의 중단, 도시화에 따른 생활방식의 변화 등은 필연적으로 부적응의 문제를 낳고, 전통적인 삶에서 떨어져 나온 사람들을 고립무원의 상태로 몰아 넣습니다. 이 세대에게 세상은 예전처럼 외로울 때 누군가가 보듬어 주고, 힘들 때 누군가가 부축해 주는 생활공동체, 운명공동체가 아니라 걸핏하면 뒤통수를 호되게 얻어맞거나 진흙 구덩이에서 짓밟히고 마는 전쟁터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먹고 자고 입고 쉬고 노는 일이 모두 자신이 체득해 왔던 그런 일들이 아니게 되었고, 누군가와 소통하고 교류하는 일이 모두 벽에 막히게 되었습니다. 그 세대에게 익숙한 방식으로 되는 일은 아무 것도 없는 세상이 되고 만 것이지요. ‘사람 나고 돈 났지, 돈 나고 사람 났냐’는 격언이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 세상, 예전에는 ‘사람의 세상’이었지만, 어느 새 ‘세상의 사람’이 되었고, 그렇게 삶의 주체와 객체가 바뀐 세상에서 그들은 선택의 여지가 거의 없이 외길로 내몰리게 됐지요. 그래서 그들은 가장 극단적이이만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믿는 선택을 한 것입니다. ●‘자살공화국’의 실상 필자는 시골에서 낳고 자랐습니다. 시골이라도 100호쯤 되는 제법 큰 동네였는데, 당시는 대가족이 대세여서 한 집당 식구가 보통은 5∼6명, 많은 집은 10명도 넘었으니 어림잡아도 족히 수백명이나 되는 주민들이 어우러져 함께 살았지요. 생각해보면, 집집마다 조부모, 부모, 자식 등 3대는 보통이었고, 더러는 자녀들이 결혼해 애를 낳은 4대 집안도 있었습니다. 사람이 많으니 별별 일들이 많았지요. 더러는 다투기도 했고, 그러다 화가 받쳐 목을 매거나 농약을 들이키는 ‘아주 놀랍고 특별한’ 사단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만, 살림살이가 어려워 먹고 사는 일에 지쳤다고, 의지가지가 없어서 외롭다고, 술이나 도박에 빠져 패가망신했다고 함부로 목숨을 버리는 일은 없었습니다. 그 때만 해도 제가끔 받아서 태어난 명(命)은 다 하고 가는 게 사람의 도리라고들 여겼고, 사는 일 바빠서 그럴 짬이 없었는지 우울증처럼 자칫 죽음을 부르는 병을 가진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런 우리나라가 최근 10년이 넘도록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 가장 높은 자살률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연간 자살인원은 인구 10만 명당 29.1명이나 됩니다. 세계 평균인 12.4명을 두 배나 넘는 규모이지요. 이 중에서 노인 자살률만 따로 떼어서 보면 더 놀랍습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2014년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는 70세 이상 노인 10만 명당 116.2명이 자살로 생을 마감했더군요. 이런 자살 규모는 최소 5.8명에서 최대 42.3명에 그치고 있는 다른 나라의 노인 자살률과 비교하면 최대 20배가 넘습니다. 필자가 왜 ‘노인이 자살하는 나라’를 제목으로 특정했는지 이제 이해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아시겠지만,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고령화가 가장 빨리 진행되는 나라입니다. 노인 인구가 상대적으로 많고, 그래서 노후를 고립된 상태로 맞는 사람들이 많다는 뜻입니다. 게다가 노인의 자살은 치명적이라는 특성도 갖고 있지요. 젊은 층과 달리 노인들은 첫 자살 시도로 생명을 잃을 가능성이 훨씬 높습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우리나라의 노인자살 문제는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이지만, 어찌된 일인지 이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 지지부진하고, 사회적 관심사에서도 한참 벗어나 있습니다. 우리나라를 ‘자살공화국’이라고 말하면 실상을 모르는 사람들은 “도대체 얼마나 죽기에…”라거나 “다른 나라라고 크게 다르겠어?”라고 말하기 쉽지만, 앞서 제시한 자료를 보면 젊은 층이라도 막연하나마 위기감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노인 자살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노인 자살에는 나름의 사회적 함의가 응축돼 있기 때문에 그 심각성을 가볍게 여기지 말고, 이제는 원인을 찾아 방책을 마련하자는 것입니다.  ●자살을 생각하는 노후 이런 조사 결과를 보면 또 어떤 생각이 들까요? 분당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기웅 교수팀이 이런 조사를 했습니다. 연구팀은 우리나라 노인 자살 문제의 원인을 심층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국내에서 처음으로 코호트(cohort)조사를 통한 전향적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코호트 조사란, 특정 집단(코호트)을 미리 정한 뒤 이후의 경과와 결과를 조사해 미래에 발생할 현상을 예측하는 전향적 조사방법을 말합니다. 예컨대, 한 마을을 조사 대상으로 정한 뒤 이 마을에서 발생하는 현상들을 종합적으로 취합, 분석해 향후 일어날 일들을 예측해 내는 방식이지요. 세계기분장애학회 공식 학회지(Journal of Affective Disorders) 최신호에 실린 이 조사 결과에는 주목할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연구팀은 경기도 오산시에 거주하는 60세 이상 노인 655명을 대상으로 2010년 2월부터 2013년 1월까지 국제신경정신분석도구(Mini-international Neuropsychiatric Interview)를 이용해 개별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이를 통해 노인의 자살 성향, 자살 시도 등의 문제와 원인을 분석하기 위해서였지요. 인터뷰에는 숙련된 간호사를 투입, 노인별로 1개월에 걸쳐 자살 행동경향을 인터뷰하고, 이들의 일상을 추적 관찰했습니다. 그렇게 수집한 자료를 연령·성별 보정과정을 거쳐 표준화한 결과, 한 달 간 자살 충동을 느낀 노인을 연간으로 환산하니 1000명당 70.7명이나 됐습니다. 더 충격적인 것은 실제 자살을 시도한 노인이 연간 1000명 당 13.1명에 달했고, 자살을 시도한 노인 9명 중 1명은 사망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런 점을 보면, 길거리에서 또는 공원이나 지하철에서 우리 곁을 무심히 지나치는 많은 노인들이 실은 남모르게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들일지도 모르는 일이고, 그래서 그들을 더 따뜻하게 보듬어주고, 이해해 주고, 관심을 가져줘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됩니다. 물론 노인 자살이 갖는 사회적 함의 역시 간과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그들도 국민인데, 왜 국가는 그들의 죽음을 거의 방치 수준으로 외면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도 통렬한 반성과 성찰이 있어야 합니다. 정부는 나름대로 많은 노인정책을 시행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좋은 정책이란 선거 때 공약으로 제시했다가 나중에 적당히 물을 타서 생색만 내거나, 결국 흐지부지 되는 그런 공약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그들의 삶을 껴안을 수 있는 것이라야 합니다. 정부가 ‘그래도 주어진 여건 하에서 우리는 최선을 다 하고 있다’거나 ‘재정 여건이 그런데 어쩌라는 말이냐’고 항변하는 건 후안무치한 일입니다. 사람의 목숨과 무관한 일에는 아까운 줄 모르고 돈을 펑펑 써대는 정부가 한다는 변명이 이 정도라면, 이는 정책이 노인복지의 최소한에도 못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에 다름 아니니까요. 물론 아무리 잘 해도 자살 없는 사회를 만들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조금만 관심을 갖고 노력하면 자살률 세계 1위라는 부끄러운 오명에서는 벗어날 수 있고, 오명의 문제보다 더 값진 사람의 목숨을 살릴 수 있습니다. 자살률이라는 게 많은 사회지표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지만, 이것이야 말로 정치인과 고위 관리들이 입에 달고 사는 국격의 중요한 잣대이기도 하다는 점을 잊지 말기를 바랍니다. ●노인들이 자살하지 않는 나라를 위해 자살은 무서운 일입니다. 이유가 무엇이든 누군가가 자신의 삶을 통째로 지우고 없애려 한다는 것은 아픔입니다. 사회적 또는 경제적 관점의 ‘손실’ 때문만은 아닙니다. 하나의 공동체로 형성돼 있는 우리 사회에서 누군가가 ‘더는 살아낼 수가 없다’거나 ‘죽는 게 낫다’고 판단해 자살을 선택한다는 것은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더할 수 없는 충격이고 상실입니다. 한 사람의 죽음을 실체적으로 받아들이든, 그렇지 않든 이는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중요한 점은 이렇게 자살로 야기되는 충격과 상실을 상당 부분 예방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김기웅 교수팀의 조사 결과, 자살 성향의 발생은 우울증이 있는 노인이 그렇지 않은 노인보다 3배 이상 높았습니다. 자살의 상당 부분이 실은 우울증과 관련이 있는 셈이지요. 우울증에 대한 조기 발견과 조기 치료를 강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의료인들의 주장은 그래서 설득력이 있습니다. 물론, 모든 우울증 환자가 상시로 죽음을 생각하고, 자살을 시도하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주변 여건이 한 개인을 삶보다 죽음 쪽으로 내모는 측면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타이완의 허우샤오시엔 감독의 1989년 영화 ‘비정성시(悲情城市)’에서 드러나는 비인간적인 도시화의 한 단면이기도 할텐데, 여기에서 중요한 요인이 바로 경제적으로 자활 능력이 없다는 점과 자신이 구축해 온 관계의 해체입니다. 관계의 해체야 익히 아는 일이지만, 경제적 요인이 노인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는 사실 역시 충분한 근거가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취약한 노인은 일단 자살 성향이 발생하면 만성화될 위험이 2배 이상 높았으며, 자살 성향이 있는 노인들 중 혼자 살거나 알코올 남용에 빠진 경우 자살 시도의 위험이 무려 6배 이상 높게 나타나기도 했으니까요. 그렇다고 대책이 없지는 않습니다. 먼저, 자살에 취약한 노인 계층의 빈곤 대책이 있어야 합니다. 꼭 노인이 아니더라도 먹고 사는 일에 지치면 누구나 죽음을 생각합니다. 홀로 사는 노인들에 대한 사회관계망 형성도 중요한 숙제입니다. 자살은 자기 곁에 아무도 없다거나 의지처가 없다고 느낄 때 주로 결행하니까요. 고독한 노후의 외로움을 술로 달래는 노인들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관리도 당연히 필요하겠지요. 일상적으로 수행하는 적절한 운동이 이런 자살 성향을 3분의 1 수준으로 낮추는 효과가 있다는 보고도 있습니다. 따라서 지역사회에서 개별 노인들의 신상을 정확히 파악해 적절한 운동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도 의미있는 자살 예방책이 될 수 있겠지요. 그렇지 않고 지금처럼 선거 때만 되면 난무하는 노인정책 공약이 실은 푼돈으로 노인문제를 덮겠다는 방식이라면 ‘자살공화국’에서 벗어나는 일이 쉽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다시, 김기웅 교수의 제언을 듣습니다.“안타깝게도 높은 노인 자살률이 떨어지지 않고 있는데, 이는 홀로 사는 노인과 빈곤한 노인의 증가와 이에 따라 발현율이 점점 더 높아지는 우울증에 대한 소극적 대처와 자신의 삶에 대한 애착의 상실이 주요인이다. 따라서, 노인에 대한 경제·사회적 안전망 강화와 함께 일상적으로 운동을 지속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노인 자살을 예방하는 효과적인 해법이 될 수 있다.” jesh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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