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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재명 성남시장 인터뷰] “文보다 중도층 포션 더 많아… 국민들 ‘변화’ 부합하는 사람 지지”

    [이재명 성남시장 인터뷰] “文보다 중도층 포션 더 많아… 국민들 ‘변화’ 부합하는 사람 지지”

    이쯤되면 ‘이재명 현상’이다. ‘최순실 게이트’가 정국을 강타하기 전인 10월 초순, 이재명(54) 성남시장은 지지율 5% 안팎의 ‘언더독’(이길 확률이 적은 선수)이었다. 하지만 여의도의 구태에 실망한 대중들은 이 시장의 거침없는 화법·행동에 열광했고, 어느새 15~17%의 지지율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 반기문 유엔사무총장과 함께 ‘빅3’의 반열에 올라섰다. 6일 여론조사기관 디오피니언에 따르면 지난 4일 전국 19세 이상 유권자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1% 포인트)한 결과 이 시장은 17.2%로 문 전 대표(18.6%)를 턱밑까지 추격했다. 반 총장은 15.2%,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는 5.1%에 불과했다. 전날 리얼미터 조사에서 이 시장은 14.7%로 문 전 대표(20.8%)와 반 총장(18.9%)의 바로 뒤였다. 김종인 민주당 전 비대위원장도 이날 방송인터뷰에서 “이 시장이 민의를 재빠르게 읽었다. 앞으로 더 약진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이 시장은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국민이 정치에 동원되는 종적(從的) 존재였다면 이젠 주체가 됐다”면서 “필리핀의 극단적 사례부터 영국, 미국을 보고 우리 국민도 (변화가) 가능하다는 확신이 커지고 있고, 국민 의사에 가장 부합하는 사람을 찾기 시작했는데 경륜도 부족하고, 변방에 있지만 국민과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을 찾으려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상승세의 원인으로 ▲거칠고 정제되지 않았지만, 해석이 필요 없는 서민의 언어 ▲성남시정 공약 이행률이 96%에 이르는 언행의 일관성 ▲불평등·불공정에 대한 끊임없는 문제 제기와 기득권에 대한 저항을 꼽았다. 이 시장과의 인터뷰는 성남시청 시장실에서 이종락 서울신문 정치부장과의 대담으로 이뤄졌다. ‘과격한 좌파’ 이미지에 대해 이 시장은 “여론조사 결과를 분석해 보면 문 전 대표보다 중도 성향 지지층의 포션이 많다”며 ‘확장성’을 자신했다. “중도층 내지 부동층은 정치적 지향이 정해지지 않았다. 무조건 (기호)1번, 2번이 아니다. 이익에 들어맞는지를 합리적으로 판단한다. 개혁 진영이 개혁 정책 들고 나와야지, 중간쯤에서 애매하게 포지션 이동하면 믿겠는가. 아양 떠는 방식으로 나오면 똑똑한 중도는 의심한다. 국민을 바보로 알지 마라.” 이 시장은 법인세를 예로 들었다. 그는 “중도층을 설득하려면 ‘우클릭’이 아니라 ‘개혁정책을 통해 당신들이 득을 본다’고 설득해야 한다”면서 “법인세를 영업이익 500조원 이상 440개 기업을 대상으로 30%까지 올린다면 15조원의 추가 세수가 발생한다. 소득세도 과세표준 10억원 이상은 3700명 정도뿐인데 세율을 50%로 올리면 2조 5000억원의 세수가 더 생긴다. 이 재원으로 모두에게 혜택을 준다면 왜 안 찍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재벌을 기득권으로 규정해 온 이 시장은 ‘재벌 해체’가 아닌 ‘재벌 체제의 해체’를 주장했다. 이 시장은 “5%의 지분도 갖지 못한 소수 재벌 가문이 특권적 지위를 누리지 못하도록 부당한 지배구조를 개혁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시장을 ‘전국구’로 만든 건 청년배당 정책을 둘러싼 중앙정부 및 보수진영과의 갈등이다. 청년배당이란 성남에 3년 이상 거주한 만 24세 청년들에게 분기당 12만 5000원 상당의 ‘성남사랑상품권’을 지급하는 정책이다. 이 시장은 청년배당을 대선 공약으로 확대시킬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전국적으로 확대해야 한다”면서 “지금은 만 24세에게만 지급하지만 만 22~23세를 포함해 지급 대상을 넓혀야 한다. 전국적으로 65만명에 1조 8000억원이면 된다”고 강조했다. 정치권 일각에서 끊임없이 거론되는 개헌론에 대해서는 “혁파 대상인 기득권자들이 회귀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탄핵이 일단락되기까지는 반대라는 뜻이다. 그럼에도 개헌 자체에는 찬성했다. “개헌은 필요하다. 한국 사회의 70년간 누적된 불평등을 뜯어고칠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다. 건국을 완성하고, 헌법에 나온 민주공화국을 만들 수 있는 계기인데 의회 중심 구조(내각책임제)로는 기득권 구조를 바꿀 수 없다. 수평·수직적으로 분권을 강화하는 4년 중임제가 적절하다. 대선 후보들이 공약을 걸고 국민 선택을 받아야 한다.” 최근 ‘사이다(이재명)-고구마(문재인)’ 비유로 화제가 된 문 전 대표와의 관계에 대해 이 시장은 “경쟁하되, 적이 아닌 동지”라고 규정했다. “‘고구마·사이다’ 얘기는 원래 음식 종류를 말한 게 아니라 기능에 대한 비유였다. 인터넷 등에서 ‘이재명은 핵 사이다(시원시원하다는 뜻)’라는 얘기가 있다. 이에 문 전 대표가 ‘사이다는 마셔도 배부르지 않다’며 음식의 종류인 것처럼 프레임 전환을 시도했는데 잘 안 됐다. 재미있으려고 한 이야기인데 오히려 고구마가 돼 버렸다. 조지 레이코프(미국 인지언어학자)가 했던 ‘코끼리’(‘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라고 하면 오히려 코끼리를 떠올리는 것처럼 최악의 대응은 공격을 반복하면서 방어하려고 하는 것이란 뜻) 비유처럼 상대 프레임에 빠져선 안 된다. 아무리 변명이 좋아도 딱 걸린다. 아무 (나쁜)뜻은 없었다.” 반면 반 총장에 대해 “후보 명함도 못 낼 것”이라며 평가절하했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의 ‘흙’이 너무 많이 묻었고 공직을 하는 동안에 남긴 실적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 시장은 야권의 불모지인 경북 안동 출신이란 점을 ‘기회요인’으로 만들 수 있다고 자신했다. 실제 여론조사에서 이 시장은 수도권은 물론, 호남과 영남에서 고른 지지를 받고 있다. 그는 “영남 출신의 가능성과 호남의 민주주의 정신을 살리면 양쪽으로부터 (지지를) 다 얻을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영남에도 합리적 보수, 개혁 세력이 상당하다”면서 “호남도 국민의당으로 지지가 갈렸지만 안철수 전 대표가 가진 몫(지지율) 이상으로 가져올 수 있다”고 자신했다. 외교 안보 분야는 아직 공약을 가다듬는 단계는 아니지만, 원칙은 단단해 보였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등장으로 한·미 관계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데 대해 ‘등거리 균형외교’를 강조했다. “한·미 동맹은 확대 발전시켜야 하지만 미국에 경도돼선 곤란하다. 미·중 사이에서 ‘고래 등에 낀 새우’처럼 이쪽저쪽 붙으면 망한다. 중심을 분명하게 잡고 등거리로 풀어야 한다. 중국에 필요한 부분은 미국 핑계를 대고 얻어야 한다. 반대로 중국이 부당한 요구를 하면 미국을 받침대로 거절할 수 있다.” 트럼프 정부에서 방위비 분담 증액을 요구한다면 주한미군이 미국의 전략적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만큼 합리적 배분을 당당하게 요구해야 한다고 밝혔다. 장기적으로는 전시작전권 환수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다. 또한 “미국의 미사일방어체계(MD)를 완성시켜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은 국회 비준을 받지 않으며 안 된다. 헌법 위반”이라며 “1년 단위로 갱신을 해야 하니까 내년에 안 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는 되돌리기 쉽지 않을 수도 있다”면서도 “만약 설치 전 단계면 한·미 연합훈련이나 유사시에만 이동식으로 설치하는 정도로 타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악의 상황인 남북관계에 대해서는 “세계에서 (북한이) 이런 좋은 자원과 인력과 잠재력을 가진 시장이 없다”면서 “국가의 최우선 가치는 평화다. 이기는 전쟁보다 더러운 평화가 낫다. 더럽고 자존심이 상하고 돈이 많이 들더라도 평화가 낫다”고 강조했다. ‘뜨거운 감자’인 ‘모병제’ 논란에 대해선 “직업군인, 즉 전투전문요원 10만명을 운용하면 의무복무병을 현재 43만명에서 23만명으로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장진복 기자 viviana49@seoul.co.kr
  • [열린세상] ‘출포검’과 ‘지포대’/민만기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열린세상] ‘출포검’과 ‘지포대’/민만기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검사들 사이에 통용되는 용어로 ‘출포검’이란 말이 있다. ‘출세를 포기한 검사’를 뜻한다. 출포검이 세상에서 제일 무섭다고 한다. 출포검은 승진이나 좋은 보직에 관심이 없기 때문에 윗사람에게 잘 보일 필요가 없다. 따라서 업무 성과는 뒷전이 되기 십상이고 사건 처리에서도 상사의 눈치를 보지 않는 소신파가 된다. 막강한 검찰권을 맘대로 휘두르기 때문에 세상에 무서울 것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우스개로 하는 소리고 현실에 그런 출포검은 없다. 최순실에 의한 국정 농단의 실체가 드러난 이후 대통령의 지지율이 최근 4%대에 머물고 있다. 역대 대통령 가운데 최저라고 한다. 광화문광장은 연일 대통령의 하야를 외치는 시민들의 함성과 촛불의 바다가 된다. 아마 한반도에서 역사가 시작된 이래 자발적으로 이렇게 많은 인파로 뒤덮인 광경은 일찍이 없었을 것이다. 세계사적으로 보아도 일국의 지도자가 이처럼 국민에게 지탄과 조롱의 대상이 된 경우를 찾기 어려울 것이다. 내치든 외치든 대통령이 관여할 국정의 공간은 완전히 사라졌다. 여론은 대통령의 즉각 사퇴를 요구하고 있지만 대통령은 최근 담화에서 임기 단축을 포함한 진퇴 문제를 국회에서 합의한 결정에 맡기겠다고 했다. 여야 정치권이 논의해 국정 혼란과 공백을 최소화하고 안정되게 정권을 이양할 방법을 만들어 주면 그 일정과 법 절차에 따라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겠다고 한다. 여당에서는 ‘4월 퇴진, 6월 대선’의 질서 있는 퇴진을 주장한다. 자고로 국민의 지지를 잃고 정치적 위기에 빠진 지도자는 비난 여론을 잠재우고 국민의 관심을 딴 곳으로 유도하기 위한 방편을 찾는다. 이른바 왝더독(wag the dog) 현상이다. 개의 꼬리가 몸통을 흔든다는 의미로 한마디로 본말이 전도된 비정상적인 상황을 일컫는다. 영화 ‘왝더독’에서는 대통령이 성추행 사건으로 여론이 들끓고 재선이 어려워지자 정치 해결사를 백악관 내 밀실로 불러들여 계책을 꾸민다. 그리하여 국민에게 생소한 알바니아를 적대국으로 포장하고 반알바니아 정서를 조작하는 한편 전쟁 발발의 위기를 조성해 국면 전환에 성공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금까지 위기에 처했던 여느 대통령과도 확연히 다른 처지에 있다. 단순히 국민의 지지를 잃은 대통령이 아니라 아예 국민의 지지를 포기한 대통령(지포대)이 되고 말았다. 일시적으로 지지를 상실한 대통령은 언젠가 회복을 기대할 수 있겠지만 지포대는 그런 희망조차 없다. 따라서 지포대는 더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는 유혹에 빠질 수가 있다. 우리 정치사에도 위기에 처한 대통령이 여론을 호도하기 위해 상황을 조작한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특히 과거 권위주의 정권하에서 툭하면 터졌던 간첩단 사건은 후일 무고한 시민을 고문해 간첩으로 몰았고 심지어 사형까지 집행한 야수적인 인권 유린임이 밝혀지기도 했다. 최순실 사태로 국정이 마비되고 있다고 한다. 얼마 전 페루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역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이 참석하지 못하고 총리가 대신 참석했다. 다음달로 예정된 한·중·일 정상회담도 대통령의 참석이 불투명하다고 한다. 경제부총리가 내정됐지만 취임도 못 하고 어정쩡하게 있다. 최순실 사태로 국내 기업들이 코리아디스카운트에 시달린다고도 한다. 대기업 총수들이 뇌물 혐의로 줄줄이 검찰에 소환되는 상황이 연출되면서 세계 시장에서 우리 기업의 이미지가 저하되고, 해외에서의 공공 입찰에도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국가가 기업을 지원하기는커녕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 그런데 정작 지포대 리스크는 국정 마비나 경제 침체로 끝나지 않는다. 지포대의 위험성은 출포검과 비교할 바가 아니다. 대통령은 작금의 현상을 타개하기 위해 어떤 모험이라도 감행하고 싶어질 것이다. 심지어 전쟁이라고 났으면 하는 심정일 수도 있다. 온 국민의 생명과 직결되는 중대한 결정이 아직 지포대의 손아귀에 놓여 있다. 이런 급박한 상황에서 4월 퇴진 운운은 너무 안이한 현실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쥐가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 지포대가 국민을 물어 버릴 수도 있다. 하야든 탄핵이든 한시가 급하다.
  • [데스크 시각] 말 한마디에 빚 짊어진다/송한수 정책뉴스부 차장

    [데스크 시각] 말 한마디에 빚 짊어진다/송한수 정책뉴스부 차장

    “빨갱이 만세~.” 6·25 전쟁 때 어느 산골 마을에서 벌어졌다는 ‘웃픈’ 장면이다. 집으로 들이닥친 북한군 앞에서 만세를 목이 터져라 외쳤는데도 일가는 총탄에 몰살을 당했다. 도대체 무슨 죄일까. 따지고 보면 알 만하다. 60여년 전에도 ‘빨갱이’란 부정적인 이미지를 대표하던 최악(?)의 명사였다. 그렇다. 아무리 만세를 삼창한들 환영한다는 뜻을 거스르고도 남는다. 두 손을 들어 만세를 부른 이들에게 몹쓸 해코지를 가한 편협함은 별개 문제다. 말은 그래서 중요하다. 말은 마음의 거울이다. 글은 그 버금이다. 말은 정신과 흔적 사이의 소통에서 징검다리 노릇을 한다. 예로부터 얼, 말, 글을 강조했던 까닭이 아닐까. 말과 글은 얼의 반영이기도 하지만 앞뒤를 견줬을 때 참뜻은 곧바로 드러난다. 어떻게 풀이하느냐에서 품격을 엿볼 수 있다. 듣는 입장이든 뱉는 입장이든 지위에 걸맞아야 한다. 결코 지위를 떠받들자는 게 아니다. 누군가 최근 ‘잠이 보약’이란 비유로 말썽을 빚었다. “잠을 못 이루면 의사를 통해 수면 유도를 해서라도 맑은 정신으로 지혜롭게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권유에 그는 “다른 좋은 약보다 사람한테는 잠이 최고인 것 같다”고 대꾸했다고 한다. 언론들은 “잠이 보약”이라고 말한 것으로 보도했다. 편히 잠을 이룰 수 없는 처지에 놓였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어깨에 짊어진 이슈로 보나 책임감으로 보나 그렇다. 이에 내놓은 변론이 걸작이다. “전체 대화 내용을 보면 보약이라는 단어를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잠이 보약’이란 표현과 과연 무엇이 다른가. 그렇지 않다. 이렇게 맥락을 헛짚으니 결국 중대사를 그르치고 만다. 언젠가 한 취재원이 도마에 올랐다. 광역의회 상임위원장이었다. 고교생 입시학원 심야 교습을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면서였다. 현실적으로 막을 수 없다는 데는 꽤 동의를 얻던 문제였다. 그런데 말 한마디가 무덤을 팠다. 가뜩이나 초·중·고교 교육 현장이 과열경쟁 체제인데 더 부추긴다는 집단 공격을 받은 터였다. 그는 “공부하다가 죽었다는 얘기를 듣지 못했다”고 맞받아쳤다. 당초 꺼냈던 정책 제안은 금세 묻히고 말았다. 사실이라고 함부로 밝혀선 매우 곤란하다는 교훈을 남긴 게 소득의 전부다. 그렇다고 “고맙다”는 인사를 듣는 것도 아니다. 너무나 비싼 대가를 치른 셈이다. 당사자뿐 아니다. 그것으로 그친다면 도리어 불행 중 다행이다. 피할 수 있었던 격론으로 허비한 시간은 사회에, 숱한 국민들에게 셈할 수 없는 기회비용을 지불하게 만들었다. 크든 작든 리더라면 한마디 말에는 ‘보통 사람’과 견주기 힘든 무게가 실렸다. 거꾸로 ‘보통 사람’의 말엔 관대해야 옳다. 지나간 일에 매몰되지 않아야 한다. 잘못 내뱉은 말을 돌이킬 길은 없다. 그러나 때로는 곱씹어야 한다. 똑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일종의 ‘실패학’ 공부다. 위기 속에서 한층 필요하다. 어제를 기억하지 않으면 내일을 만날 수 없는 법이다. 오늘의 불행은 언젠가 저지른 잘못의 보복이다. 진리다. 진실을 따질 문제가 아닌 것이다. 책임이 무거울수록 더욱 그렇다. 대선 후보로 손꼽히는 누군가는 외친다. 발을 내딛기 전에 무엇을 밟게 되는지 잠시라도 생각하자고. 엊그제 한 후배의 말은 아프게 다가왔다. “대통령 하면 재미있겠죠?” onekor@seoul.co.kr
  • 위기의 OPEC 감산합의 가능할까…이란·이라크·러시아 동의가 관건

    위기의 OPEC 감산합의 가능할까…이란·이라크·러시아 동의가 관건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몇 달째 논의 중인 산유량 감산 최종합의 가능성이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오는 30일(현지시간) 정례회의가 코앞이지만 여전히 이란과 이라크가 감산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어 합의가 물 건너가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과 파이낸셜타임스(FT) 등이 28일 보도했다. OPEC 맹주인 사우디아라비아는 지난달 자국 원유 생산량을 4.5%를 줄이는 대신 이란에 현 생산량을 동결하라고 제안했다. 다른 나라에는 OPEC이 제시한 감산 가이드라인을 일괄적으로 받아들이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28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10시간에 걸친 마라톤 회의에서 이란과 이라크는 반대 의사를 굽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은 경제 회복을 위해 서방제재 이전의 원유 수출 점유율을 회복하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이 때문에 유럽 정유업체와 아시아 고객과의 관계 회복을 위해 지금의 저유가가 오히려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다만 이란은 하루 평균 생산량 한도를 397만 5000배럴로 잡아주면 OPEC에 동의하겠다고 밝혔다. 이란의 지난달 하루 평균 산유량은 368만 배럴보다 20만 배럴이 많다. 이라크는 자국 북부 지역을 장악한 이슬람국가(IS)와 맞서고 있어 전쟁비용 충당을 위해 많은 원유를 생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여기에 OPEC 회원국은 아니지만 미국, 사우디와 함께 세계 3대 원유 생산국인 러시아도 걸림돌이다. 러시아는 동결은 할 수 있어도 감산은 불가하다는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주요 산유 시설이 혹한 지역인 시베리아에 있어 한 번 가동을 멈추면 타격이 크다는 이유를 들고 있다. OPEC 내 2위 산유국인 이라크와 3위 이란, 비회원국 가운데 가장 큰 몸집을 자랑하는 러시아 등이 모두 감산에 합의하지 않는다면 사우디가 굳이 자신의 시장점유율을 내주며 감산합의에 나설 가능성은 크지 않다. 영국 원유중개업체 PVM의 데이비드 허프턴은 “만약 OPEC이 신뢰할만한 감산합의를 못 내놓는다면 국제유가는 올해 말에 배럴당 40달러 선 아래로, 내년 초에는 30달러로 떨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OPEC이 감산에 합의하면 유가는 배럴당 60달러대까지 오를 수 있다고 시장전문가들은 내다봤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CIA 634회 암살 시도說… 권총소지, 공산혁명 연설 땐 어깨에 비둘기 앉아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피델 카스트로는 뒷이야기도 많이 남겼다. AFP가 ‘피델 카스트로 : 인생의 여섯 가지 스냅숏’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카스트로의 비화들을 전하는 등 외신들은 특이한 그의 에피소드를 26일(현지시간) 소개했다. 1926년 부유한 사탕수수 농장주의 아들로 태어난 카스트로는 변호사로 활동하다 투사로 변신했다. 1953년 풀헨시오 바티스타(1901~1973) 독재정권을 타도하려고 몬카다 병영을 습격했다가 실패했다. 당시 그는 가까스로 목숨을 부지하고 멕시코로 건너갔다. 망명 중이던 멕시코에서 ‘혁명가’ 체 게바라를 만났다. 결국 그는 1959년 1월 바티스타 정권을 무너뜨리고 ‘쿠바 혁명’을 시작했다. 쿠바의 공산혁명은 냉전 시대 미국으로선 코앞에서 ‘붉은 위협’을 마주한 모양새였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을 중심으로 카스트로를 암살하려는 시도가 모두 634회 있었다는 얘기도 나온다. 암살 방법도 독약이나 독극물이 든 담배에서부터 화학 물질이 묻은 다이빙복 입히기 시도까지 다양했다. 카스트로는 만약을 대비해 브라우닝 권총을 거의 항상 차고 다닌다고 한때 고백하기도 했다. 방탄조끼를 입는다는 설은 부인했다. 카스트로는 “올림픽에 암살에서 살아남기 종목이 있다면 내가 금메달을 땄을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그는 1979년 기자들에게 가슴을 까 보이면서 “나는 힘이 센 ‘도덕의 방탄조끼’를 갖고 있다. 그것은 항상 나를 보호해 준다”고 말했다. 강인한 인상의 카스트로는 특히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그를 직접 두 번 본 한 여성은 “너무 깊은 인상을 받았다”며 “그의 얼굴을 보고 ‘그를 사랑한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카스트로는 공식적으로 두 번 결혼을 했고 3명의 여성과의 사이에서 7명의 자식을 뒀다. 그가 비밀스러운 불륜을 했고 더 많은 자식이 있다는 소문도 있다. 카스트로는 1992년 “사생활은 홍보나 정치를 위한 도구가 돼서는 안 된다”며 사생활 보호를 강조했다. 카스트로는 스스로 “미 제국주의”의 반대자라고 강조했다. 그는 친미 정권을 무너뜨리고 쿠바에 공산주의 정권을 세우면서 미국과 대립을 반복했다. 가장 극한 대립은 핵전쟁 위기까지 갔던 1962년에 있었다. 그해 10월 14일 미국은 정찰기를 통해 소련이 쿠바에 핵미사일 기지를 설치하려는 움직임을 포착했다. 뒤통수를 맞은 미국의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1962년 10월 22일 미 해군에 쿠바를 봉쇄하라는 명령을 내리고 14만명의 병력을 준비했다. 그해 10월 26일 구소련은 미국과 협상을 했다. 극한의 대치까지 갔던 쿠바사태는 결국 구소련이 미사일 기지를 철거하고 미국이 쿠바 해상의 봉쇄를 풀면서 타결됐다. 카스트로의 아디다스 체육복 사랑도 남다르다. 그는 올해 9월 쿠바를 찾은 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와 자신의 집에서 면담할 때 파란색 바탕에 흰 줄무늬가 있는 아디다스 체육복을 입었다. 올해 프란치스코 교황과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을 만날 때도 카스트로는 아디다스 체육복을 ‘예복’으로 착용했다. 카스트로는 최장 유엔 연설 기록 보유자이기도 하다. 유엔 웹사이트에 따르면 그는 1960년 9월 26일 4시간 29분 연설해 유엔에서 가장 연설을 오래 한 사람으로 남아 있다. 그는 1998년 2월 24일 쿠바에서 국가평의회 의장직에 재선출된 후에 7시간 30분간 연설을 한 기록도 갖고 있다. 카스트로가 1959년 공산혁명을 선언하는 연설을 할 때 그의 어깨에는 하얀색 비둘기가 내려앉았다. 그 이후 그는 쿠바인들에게 신화적 인물이 됐다. 쿠바인들은 카스트로가 신의 보호를 받는다고 여겼다. 카스트로가 불멸의 존재라고 말하기도 했지만 그도 결국 인간이었고 지난 25일 90세의 나이로 세상을 등졌다. 워싱턴 김미경 특파원 chaplin7@seoul.co.kr
  • 바람이 머문 풍경, 쉬엄쉬엄 달린다

    바람이 머문 풍경, 쉬엄쉬엄 달린다

    가나자와에서 북쪽을 향해 거슬러 오르면 우리 동해를 향해 뿔처럼 불쑥 솟은 반도가 나온다. 여기가 노토반도다. 들쭉날쭉한 반도의 해안을 따라 풍경의 보물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우리의 동해는 해가 뜨는 곳이지만 노토반도가 접한 동해는 해가 지는 곳이다. 그래서 어느 지역을 가도 우리 서해의 포구처럼 고즈넉한 저물녘 풍경과 마주할 수 있다. 노토반도엔 일주도로가 잘 닦여 있다. 대표적인 것이 249번 국도다. 한반도의 등뼈를 타고 가는 우리 7번 국도처럼 줄곧 해안길을 따라간다. 249번 국도는 풍경의 보고다. 여행자들이 할 일이란 그저 해안도로를 달리다 멋진 곳이 나오면 차를 세워 자연을 보고, 그 소리를 듣고, 상큼한 대기의 향기를 맡고 즐기는 것뿐이다. 그렇게 머리를 헹구고 가슴을 비울 수 있는 곳이 노토반도다. 서쪽 해안을 따라 북상하다 가장 먼저 만나는 명소는 ‘지리하마(千里浜) 나기사(渚) 드라이브 웨이’다. 우리말로 풀면 ‘천리 해안 드라이브 길’쯤 되겠다. 거리는 8㎞ 정도. 백사장은 표면이 무척 단단하다. 해변 위로 버스가 달릴 수 있을 정도다. 우리 백령도의 사곶도 이와 비슷하다. 단단하기로는 외려 사곶이 한 수 위다. 한국전쟁 당시 실제 천연 비행장으로 쓰였을 정도다. 이에 견줘 지리하마의 해변길은 풍경이 장쾌하다. 가늠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너른 바다와 하늘 닮은 물빛이 황토빛 모래사장과 멋드러지게 어울렸다. 지리하마에서 북쪽으로 30분 정도 더 올라가면 ‘노토 곤고’(金剛)가 나온다. 나라에서 지정한 국정공원이다. 이름에서 느껴지듯, 우리의 해금강처럼 다양한 모습의 기암과 해안 절벽이 펼쳐져 있다. 주민들은 이를 ‘천변만화하는 암초미’라 표현했다. 실제 이 지역 관광안내 책자에는 “바다로 뻗어나간 북한의 금강산에서 이름을 따왔다”고 적혀 있다. 우리 금강산의 명성이 바다 건너까지 전해진 셈이다. 노토 곤고에 들면 응소암이 이방인을 맞는다. 매가 둥지를 튼 바위라는 뜻이다. 노송 몇 그루를 머리에 이고 바다를 딛고 우뚝 선 자세가 굳세다. 가장 눈에 띄는 곳은 간몬(巖門)이다. 30m 높이의 바위 벼랑 아래쪽이 파도의 침식을 받아 동굴처럼 뻥 뚫렸다. 구멍의 규모는 폭 6m, 높이 15m, 깊이는 60m에 이른다. 이 구멍 너머로 파도가 쉼 없이 넘실댄다. 간몬 옆으로 난 동굴을 통과하면 암반지대가 나온다. 여러 개의 포트 홀과 검은빛 암반이 어우러져 있다. 포트 홀 속엔 푸른빛의 바닷물이 들어찼다. 이 작은 공간에서 다양한 빛깔의 작은 물고기들이 유영하고 있다. 암반 위를 걸을 수도 있다. 발 아래로 파란 바닷물이 찰랑대고 멀리 ‘돼지코’라 부르는 곶과 동해의 만경창파가 어우러져 막힌 가슴을 뻥 뚫어 준다. 바위 벼랑 사이에 놓인 다리 위에 서면 노토 곤고의 전경을 굽어볼 수 있다. 하쿠이군의 시가마치 해안에는 ‘한때 세계에서 가장 길었던’ 벤치가 있다. 노토 곤고에서 30분 거리다. 벤치의 길이는 약 461m. 너른 바다를 굽어볼 수 있는 언덕 위에 조성돼 있다. 기네스북에 ‘세계에서 가장 긴 벤치’로 등록돼 있다가 최근 지위를 잃었다. 하지만 안내판엔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긴 벤치’로 표기돼 있다. 벤치에 앉으면 너른 바다가 품에 안긴다. 언덕 아래에선 포근한 바람이 불어와 머리를 빗질한다. 이만한 풍경 가진 바닷가 언덕 만나기도 쉽지 않다. 언덕엔 경관 조명을 위해 수천개의 전구가 박혀 있다. 달빛이 밤바다 위로 내려앉을 때 수많은 전구들이 별처럼 반짝이겠지. 그 상상만으로 즐겁다. 벤치 뒤엔 수천 개의 손도장이 음각돼 있다. 이 지역 어린이들이 찍은 것이다. 아이들의 재잘대는 소리와 웃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노토 반도 북단의 소도시 와지마엔 아침시장이 열린다. 1000년 넘도록 이어져 오는 시장이다. 갓 잡아 올린 해산물과 신선한 채소 등을 어부, 농부가 직접 들고 나와 판매한다. 그릇이나 수저에 화려한 장식을 넣은 와지마 칠기도 만날 수 있다. 우리처럼 떠들썩한 흥정이 오가지는 않지만, 일본인 특유의 얌전한 목소리로 ‘호객 행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시장 한편엔 ‘마징가 제트’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40~50대의 장년층이라면 난데없이 뛰쳐나온 풍경에 유년 시절로 소환되는 듯한 느낌을 받을 터다. 와지마는 추억의 만화영화 ‘마징가 제트’의 작가 나가이 고의 고향이다. 그가 어린 시절을 보냈을 아침시장 중간에 그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박물관이 조성돼 있다. 노토 반도 동쪽엔 와쿠라 온천마을이 있다. 역사가 1200년을 헤아리는 곳이다. 에도시대부터 바닷속 원천(源泉) 주변에 인공 섬을 만들어 이용했다고 한다. 이 지역 온천수는 짠맛이 난다. 바닷물이 섞였기 때문이다. 낭만적인 나나오만(灣)을 감상하며 온천욕을 즐길 수 있다. 취재 협조 일본정부관광국(JNTO) www.jroute.or.kr 글 사진 이시카와(일본)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 →이시카와까지는 고마쓰 공항을 통해 들어간다. 인천에서 비행 시간은 약 1시간 40분 정도. 고마쓰 공항에서 가나자와까지는 버스로 40분 정도 걸린다. →호시 료칸은 무려 1300년의 역사를 가진 료칸이다. 718년에 세워진 이래 46대째 가업으로 전승되고 있다. 이 덕에 한때 ‘세계 최고(最古)의 숙박업소’로 기네스북에 등재되기도 했다. 일본 내에서는 가장 오래된 료칸으로 꼽힌다. 고마쓰시에서 10㎞쯤 떨어진 아와즈 온천 지구에 있다. 료칸의 입구와 별채는 일본의 국가 지정 문화재다. →노토반도의 쓰지구치 히로노부 미술관 안에 있는 제과점은 일본에서도 이름난 파티셰가 만든 달달한 먹거리들로 가득하다. 도쿄까지 이름이 알려져 있다고 한다. 와쿠라 온천단지에 있다.
  • [함혜리 기자의 미술관 기행] 자연 속에 ‘심플’하게 자리잡은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함혜리 기자의 미술관 기행] 자연 속에 ‘심플’하게 자리잡은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자그마한 화면 속에 아름다운 색채와 아기자기한 이미지들이 어우러진 장욱진(1917~1990)의 작품을 보고 가장 먼저 떠 오르는 단어는 단순함이다. 산, 집, 아이, 호랑이, 산, 까치, 나무 등 평면적이고 단순한 도상들은 어린 아이의 그림처럼 순수해서 들여다 보면 마음이 맑아지는 느낌이다. 그렇다고 그저 맹숭맹숭하게 단순한 것은 아니다. 인생을 달관한 선승의 그림처럼 작은 화면 속에는 깊은 내면의 세계와 현실의 경계를 허무는 드넓은 이상의 세계가 공존해 있다.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계명산 자락에 자리잡은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http://changucchin.yangju.go.kr/)은 박수근,이중섭과 함께 한국 근·현대미술을 대표하는 화가 장욱진의 정신과 업적을 기리기 위해 양주시와 장욱진미술문화재단이 손을 잡고 설립한 미술관이다. 서울시내 중심에서 북쪽으로 1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미술관은 온전히 자연 속에 자리잡고 있어 찾아가는 것 만으로도 저절로 힐링이 되는 기분이다.  매표소 건물을 나오면 야외 조각공원을 지나고 구름다리를 건너야 미술관이다. 미술관 개관(2014년 4월) 당시에는 개천 건너편 미술관 오른쪽이 주 출입구였는데 지난 해부터 조각공원이 통합운영되면서 조각공원의 매표소를 이용하고 있다. 봄 여름에 나무가 우거졌을 때엔 잘 보이지 않을 테지만 나뭇잎이 다 지고 난 늦가을인지라 언덕 위의 흰색 건물이 파란 하늘 아래서 비현실적으로 도드라져 보인다. 외관은 현대와 전통이 적당히 버무려진 모습으로 군더더기 없이 매끈하고 심플하다. 알싸한 공기를 들이마시며 미술관으로 들어서니 벽면에 커다란 장욱진의 흑백사진이 반겨준다. 평생 자연과 더불어 살면서 원없이 그림만 그리더니 죽어서도 이렇게 훌륭한 자연 속에 자신의 이름 석자를 단 미술관을 가졌으니 참 복이 많은 예술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1917년 충남 연기군에서 대지주의 아들로 태어난 장욱진은 시·서·화에 안목을 지닌 부친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그림을 가까이 했다. 가족과 함께 상경한 뒤 공부보다 그림에 열중했던 그는 1926년의 보통학교 3학년 시절에 전일본소학생미전에 까치그림을 출품해 1등상을 받았다. 이 때 상품으로 유화물감을 받아 유화를 처음 시작했다. 경성 제2고등보통학교(지금의 경복 중·고교)에선 미술반 활동을 하며 동경미술학교 출신 미술교사인 사토 구니오의 수업을 통해 입체파와 피카소의 미술세계를 접할 수 있었다. 일본인 역사교사에게 대들었다가 3학년에 중퇴한 그는 수덕사에서 3년간 수양의 시간을 보내고 양정고등보통학교에 편입학한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의 가족은 미술을 본업으로 하는 것을 극구 반대했지만 제 2회 전국학생미전에서 특선을 하면서 집안의 반대도 수그러들었다.이듬해인 1939년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제국미술학교(지금의 무사시노 미술대학) 서양화과에서 공부했다.  제국미술학교를 졸업하고 귀국한 후 얼마 안되어 해방을 맞은 그는 1945년 가을 국립박물관 진열과에 취직했다가 1947년 사직하고 김환기, 백영수, 유영국, 이중섭 등과 함께 신사실파를 결성해 미술운동을 하기도 했다. 그의 나이 34세에 6·25전쟁이 발발했다. 전쟁은 그의 작품에 이상세계에 대한 염원을 촉발시킨 계기가 된다. 전쟁과 함께 닥쳐온 불안과 공포, 육체적 고달픔 속에서의 그는 오히려 자신의 꿈꾸는 삶을 그렸다. 유학시절을 포함한 그의 초기 그림 색상, 형태 면에서 토속적인 특성이 강했지만 1·4후퇴 때 고향인 충남 연기에서 작업하는 동안 색감이 선명해지고 형태가 더욱 간결하게 정돈된다. 이 시기의 대표작이 누런 황금들판 사이를 연미복 차림으로 걸어가는 모습을 담을 ‘자화상’이다.  전쟁이 끝난 후 1954년 장욱진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교수로 취임하지만 재직 6년만에 교수직을 사임하고 1963년 덕소에 화실을 마련하고 장장 12년동안 혼자 자취생활을 하며 중년의 시대를 보냈다. 자연 속에서 밤 산책과 새벽의 신선미를 즐기며 고요와 고독 속에서 그는 그림과 씨름하다 건강을 해쳐 사경을 넘나들기도 했다. 덕소시절의 마지막 3년간 삶에 대한 깊은 통찰과 한결 절제된 작품을 많이 그렸다. 1975년 봄 그는 덕소생활을 청산하고 서울 명륜동으로 작업실을 옮겨 79년까지 머물렀다. 명륜동 시절 그의 작품에는 시골남자와 여자, 가족, 정자와 원두막, 산과 동산 등이 화면에 등장하고 색채는 동양화의 담채풍으로 묽어지고 단순해진다. 그는 서울의 번잡함을 벗어나 수안보로 다시 작업실을 옮겼다가 1986년 봄부터 마지막 5년을 경기도 용인군 구성면 마북리의 고택에서 보냈다. 자연과 더불어 창작에만 몰두하는 심플한 삶을 원했던 장욱진은 따뜻하고 정감어린 작품들을 남기고 1990년 12월 27일 7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80년대와 90년에 유난히 많은 작품을 제작했다. 특히 용인에서 지낸 마지막 5년간은 평생에 걸쳐 그린 720점의 작품 중 3분의 1에 해당하는 220여점을 그렸다. 마지막까지 얼마나 철저하게 화가로서의 삶을 살려고 노력했는지를 알 수 있다.  장욱진은 그림을 그리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천생의 화가임을 글과 말을 통해 자주 고백하곤 했다. “나의 지나간 40년은 오직 그림과 술 밖에 모르고 살아온 인생이었다. 그림은 내가 살아가는 의미요, 술은 그 휴식이었던 것이다.” “산다는 것은 소모하는 것, 나는 내 몸과 마음과 모든 것을 죽는 날까지 그림을 위해 다 써버려야겠다. 남는 시간은 술로 휴식하면서. 내가 오로지 확실하게 알고 믿는 것은 이것 뿐이다.”(샘터 1974년 9월호)  장욱진의 작품들은 대부분 작다. 그가 끝까지 30호미만의 그림을 고집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장욱진 자신은 ‘세대’ 1974년 6월호에 이렇게 쓰고 있다. “회화에 있어서의 회화성은 30호 이내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 그러냐하면 규모가 커지면 그림이 싱거워지고 화면을 지배할 수 있는 힘이 약해지기 때문이다. 한면을 지배하지 못하고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것은 내게 어려운 일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다.” 그는 작은 화면에 세상에서 가장 보편적인 이미지들을 가장 단순하게 표현해 냈다.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은 장욱진의 작품처럼 작고 심플하지만 깊이가 있다. 장욱진의 그림 ‘호작도’와 그의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집’의 개념을 모티브로 최-페레이라 건축에서 설계한 건물은 중정과 각각의 방들로 구성된 독특한 구조다. 대지면적 6204㎡에 연면적 1852㎡에 이르는 미술관은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로 각층에 위치한 두개의 전시실 외에 영상실, 강의실, 아카이브 라운지를 갖추고 있다. 매끈한 흰색 외관부터 내부의 마무리까지 현대적인 감각과 전통적인 디테일이 조화롭게 설계돼 있는 건물은 미술관이 개관한 2014년에 김수근 건축상을 수상했고 한국건축가협회 올해의 베스트7, 영국 BBC의 2014년 8대 신설 미술관에 선정되기도 했다.  외양은 단순한데 호랑이를 평면으로 그린 듯한 구조인지라 내부 공간은 단조롭지 않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것처럼 공간이 이어져 나타나는 1층 전시실을 지나 가파른 각도로 꺾어진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가면 영상실이 있다. 그 입구에 커다란 벽화가 그려져 있다. 소 돼지 개 닭 등 동물을 그린 ‘동물가족’이란 제목의 벽화는 덕소화실에 그려졌던 것을 그대로 옮겨와 미술관에 영구기증한 작품이다. 장욱진은 덕소시설 우시장 구경가기를 즐겼는데 소 그림에는 실물 쇠 코뚜레와 워낭을 걸어놓아 웃음을 자아낸다. 1층에서 지하로 내려가는 층계참의 벽면에는 덕소 작업실의 부엌 벽에 그려져 있던 ‘식탁’이 설치돼 있다.  미술관은 벽화, 유화, 판화, 먹그림 등 장욱진의 다양한 작품 230여점을 소장하고 있다. 2014년 봄 개관 이후 소장작품을 중심으로 국내외 근·현대 미술에 대한 다양한 주제기획 전시를 열었다. 지난 9월부터 내년 1월까지 ‘행복’이라는 주제로 장욱진과 민화를 보여주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변종필 관장은 “개관이후 지금까지 장욱진 예술세계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특정 주제를 중심으로 한 기획전시를 다양하게 진행해 왔다”면서 “2017년 장욱진 탄생 100년이 되는 뜻깊은 해를 맞아 장욱진의 삶과 예술세계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줄 수 있는 상설관을 개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경기 북부의 유일한 공공미술관인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은 2년 6개월밖에 안된 신생 미술관이지만 탄탄한 기획전시 외에도 시민들을 위한 교육, 공공프로젝트, 미술창작스튜디오(777레지던스), 전국 대학생 대상 드로잉 공모전 등의 운영을 통해 지역 문화의 구심점으로 자리잡고 있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 일제·독재정권 시퍼런 서슬…남산골 곳곳 인권 옥죈 사슬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 일제·독재정권 시퍼런 서슬…남산골 곳곳 인권 옥죈 사슬

    서울신문은 ‘서울미래유산’을 시민과 공유하기 위해 서울시·문화지평과 함께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을 매주 토요일 진행한다.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 홈페이지(futureheritage.seoul.co.kr)에서 답사 코스 확인과 참가 신청을 할 수 있다. 오는 26일 19회차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은 세종대로 일대를 전상봉 서울미래유산해설사의 설명으로 오전 10시부터 2시간가량 살펴본다. 이 지역은 최근 ‘박근혜·최순실 국정 농단 게이트’에 분노한 100만 시민이 모여 대통령 퇴진을 외치며 민주주의 새 성지로 떠오른 곳이다. 6개월 전 기획한 코스가 우연치 않게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뜨거운 장소이다 보니 답사가 숙연히 기다려진다. 광화문광장을 중심으로 세종대로 일대에 역대 최대 규모의 시민들이 모인다고 하니, 이번 답사는 사상 최대 규모(?)가 예상된다. 광화문광장은 이런 국민들의 공통의 기억 속에 민주주의 가치를 실현한 곳으로 향후 서울미래유산이 될 가능성이 높다. 서울시가 서울미래유산을 지정하는 이유는 급속한 사회 변화로 인해 근현대 서울 시민의 생활상이 담긴 문화유산이 사라지거나 훼손되고 있다는 우려에서 출발했다. 미래세대에 물려줄 문화유산을 시민 스스로 보전하는 사업이 서울미래유산 지정·보존 사업이다. 이 사업은 문화유산의 획일적 보전을 위한 규제가 아니고,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를 통한 유연한 보전 방식을 강조한다. 서울에는 현재 372개의 미래유산이 지정돼 있다. 11월 초입 남산골 한옥마을은 가을 한가운데 푹 빠져 있었다. 오색 물감을 풀어 놓은 듯 울긋불긋한 단풍과 마지막 안간힘을 쓰고 있는 푸름이 어울려 도심 한가운데서 가을 정취를 물씬 느끼게 했다. 지난 5일 16회차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은 남산 둘레길을 걸으며 ‘인권’을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남산골 한옥마을에서 시작해 한양공원비까지 이필용 서울미래유산해설사의 해설을 들으며 역사 공부와 남산 일대 단풍 구경까지 일거양득이었다. 그러나 이날 우리가 맞닥뜨린 역사는 그리 녹록하지 않았다. 이 해설사는 “남산 둘레길은 두 개의 역사적 시각으로 접근해야 한다”며 “하나는 일제가 할퀸 역사의 생채기이고, 또 하나는 분단의 비극이 가져온 ‘반공’이 국시(國是)이던 시절 유린된 인권”이라고 말했다. ‘딸깍발이’ 서생 모여 살던 남산골 조선통감부 관저·일본인 집단 거주촌 생겨나 남산은 국권을 일본에 빼앗긴 경술국치의 현장이자 일제강점기 무단통치의 전초기지였고 ‘인권의 블랙홀’ 중앙정보부와 부속 건물들이 진을 치고 있던 곳이다. 한옥마을 언저리는 필동으로, 원래는 부동(部洞)이었던 곳이 붓동으로 불리다 와전돼 정착된 이름이다. 조선시대에는 서울을 수비하는 금위영의 별영인 남별영이 있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인 집단 거주촌인 왜성대(倭城臺)와 조선통감부(후일 조선총독부), 통감(총독) 관저가 자리잡고, 경복궁을 내려다보며 민족 정기를 짓눌렀다. 조선에 대한 무단통치와 독립운동 탄압에 혈안이 됐던 일본군의 조선헌병사령부도 남산에 있었다. 이같이 짙게 드리운 ‘억압의 그림자’가 후일 중앙정보부가 남산에 자리잡는 단초를 제공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해방 후에는 국군 수도경비사령부, 헌병사령부 등이 있다가 각각 남태령(1991년)과 용산(1972년)으로 이전했다. 합동참모본부 역시 이 동네에 있었고 1965년 주월한국군사령부가 이곳에서 창설됐다. 옛날엔 가난한 ‘딸깍발이’ 서생들이 모여 살았던 남산이 총포가 난무하는 무력 기지로 변한 것이다. 딸깍발이는 청렴과 결백을 생명으로 삼는 선비를 상징하는 우리말이다. 한옥마을 한쪽에는 국어학자 일석 이희승 선생의 추모비가 있다. 일석이 생전에 남산골 선비를 ‘딸깍발이’라고 했다. 한옥마을 안에는 순정효황후 윤씨 친가와 해풍부원군 윤택영 재실, 부마도위 박영효, 오위장 김춘영, 도편수 이승업 가옥을 옮겨다 놨다. 순종비인 순정효황후는 1910년 친일파들이 순종에게 한일합병 날인을 강요하는 것을 엿듣게 되고 옥새를 치마에 숨겨 내주지 않았다. 끝내 백부인 친일파 윤덕영(벽수산장 주인)에게 빼앗겼다는 일화가 전한다. 한옥마을 전통정원 남쪽에는 서울 정도(定都) 600년을 기념하는 타임캡슐이 있다. 이 해설사는 “김영삼 대통령 시절인 1994년 11월 29일 지하 15m 지점에 타임캡슐을 묻었는데, 보신각종 모형의 캡슐 안에는 서울의 도시 모습, 시민생활사회문화를 대표하는 각종 문물 600점을 넣었다”며 “400년 뒤인 2394년 11월 29일에 후손들에게 공개된다”고 말했다. 교통방송, 서울애니메이션센터, 소방방재본부 등이 있는 곳은 예장동으로 불린다. 조선시대 5군영 군사들의 무예훈련장이 있던 곳을 줄여서 예장이라고 한 것이 지명으로 이어졌다. 경복궁이 내려다보인다고 해서 백성들이 살지 않고 공터로 남아 있던 것을 일제가 1876년 강화도조약 이후 쓰나미처럼 밀려들면서 이곳을 장악했다. 1592년 임진왜란 당시에는 왜장 마스타 나카모리가 진을 쳐서 왜장대로 불렸다는 설도 있다. 영화 ‘장군의 아들’에서 ‘긴또강’(김두한)과 세력을 다퉜던 일본 건달들이 살았던 곳도 이곳이다. 정부는 1946년 일본식 동명 정리 작업을 하면서 왜색을 지우기 위해 이곳 도로 이름을 충무로로 했다. 남산에 안중근 의사 동상이 있는 것도 같은 이유다. 애니메이션센터 앞 통감부 표지석총독부에 폭탄 던진 김익상 의사 표지석도 남산을 본거지로 삼았던 일제는 예장동에 경성신사(대성궁)를 세우고 근처에는 일본군 헌병사령부를 지었다. 또 한양공원을 조성하고 조선신궁도 지었다. 조선통감부는 현재 서울애니메이션센터 앞에 표지석으로 남아 있다. 일제는 처음에는 광화문 육조거리의 대한제국 외부(外部) 청사를 통감부 건물로 사용하다가 1907년 2월 28일 예장동 8번지 일대 남산 왜성대에 르네상스 양식의 2층 목조 건물로 신청사를 건립했다. 신청사는 1910년 8월 29일 을사늑약 후에는 조선총독부 청사로 사용됐다. 1920년 조선 총독과 총독부를 암살·파괴하려는 계획이 있었지만 미수에 그쳤고, 1921년에는 의열단 김익상이 전기수리공으로 위장해 총독부 청사에 들어가 폭탄을 던진 사건이 있었다. 김익상 의사의 의거를 기리기 위한 표지석이 통감부 표지석 옆에 나란히 서 있다. 이 건물은 조선총독부가 이전하자 광복 전후 과학관으로 사용되다가 한국전쟁 때 소실됐다. 통감부 관저는 현재 서울종합방재센터로 들어가는 길목에 위치한 다목적 광장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서울유스호스텔 오른쪽 동산에 있는 통감관저 표지석에는 ‘일제침략기 통감 관저가 있던 곳으로, 1910년 8월 22일 3대 통감 데라우치 마사다케와 총리대신 이완용이 강제병합 조약을 조인한 경술국치 현장이다’라고 새겨져 있다. 글씨는 고 신영복 선생이 경술국치 100주년이 되던 2010년에 쓴 것이다. 이곳에는 또 일본군 위안부를 위한 ‘기억의 터’ 조형물이 있고, 고종을 겁박해 을사늑약을 강요한 하야시 곤스케의 동상 잔해를 거꾸로 처박아 놓은 ‘거꾸로 세운 동상’도 놓여 있다. 이날 답사에 나온 방송통신대 국문학과 동기 오남희(69)·황정례(65)·장종영(59)씨는 “서울 시내 한복판이지만 그동안 말로만 들었지 한 번도 와 본 적이 없었다”며 “이곳에 남겨진 가슴 아픈 조선의 역사를 들으니 감회가 새롭다”고 말했다. 심우용(47) 서울대병원 복지팀장은 “구한말 역사에 관심이 많은데 인터넷 검색 중 이번 답사를 알게 됐다”며 “해설사 설명을 들으며 답사를 하는 게 재밌고 유익해서 주위에도 많이 알리고 있다”고 전했다. ‘인권의 블랙홀’ 중앙정보부지금은 유스호스텔·종합방재센터 등 활용 명동에서 바라본 남산 북쪽 기슭은 대공 수사의 본실인 옛 중앙정보부 본관과 부속 건물이 두루 포진한 곳이다. 음습한 북쪽 기슭, 설계자인 건축가 김수근식의 작은 창문으로 들어오는 다람쥐 꼬리만 한 햇볕 한줌에 끌려온 이들이 목숨을 부지했던 엄혹한 시절이 있었다. 1961년부터 1995년까지 중앙정보부, 국가안전기획부란 이름으로 국가 권력에 의해 자행된 인권 유린의 시대가 얼마 전이다. 한옥마을을 벗어나자 소릿길이 나왔다. 길이 84m의 터널로 시내에서 옛 중정 제5별관(대공수사국)으로 가는 유일한 통로였다. 영문도 모르고 두 눈을 가리운 채 이곳을 지났던 이들은 얼마나 큰 두려움에 떨었을까. 환청처럼 들렸던 철문 소리, 타자기 소리, 물소리, 발걸음 소리, 노랫소리가 지금도 들린다. 이는 ‘네 개의 문’이란 서울도시갤러리 프로젝트 작품으로 버튼을 누르면 여러 가지 소리가 뒤섞여 나온다. 터널을 지나면 지금은 서울시청 남산별관으로 쓰이던 중정 제5별관이 나온다. 멀쩡한 사람도 간첩단에 엮여서 산 송장이 돼 나왔던 곳이 이곳이다. 서울종합방재센터는 옛 중정 제6별관이다. 지상 구조물이 없고 지하 3층으로 이뤄진 ‘지하고문실’이다. 이 해설사는 “1973년 서울대 최종길 교수는 이곳에서 고문을 받던 중 사망했으나 투신 자살한 것으로 조작됐고, 1974년 인혁당 재건위 사건 관련자들도 이곳에서 무지막지한 고문을 당하는 등 1970~1980년대 수많은 간첩 사건들이 이곳에서 조작됐다”며 “특히 많은 정치인과 언론인들이 끌려와 모진 고초를 당한 곳”이라고 설명했다. 제6별관은 옛 중정 본관(서울유스호스텔)과 지하로 연결돼 있다. 중정 본관은 오랫동안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돼 있다가 유스호스텔로 변신했다. 유스호스텔 오른편 문학의 집은 중앙정보부장(안기부장)의 공관이었다. 1961년부터 1981년까지 이곳을 관저로 사용했던 중앙정보부장은 모두 11명이다. 그 옆 산림문학관은 경호원 숙소였다. 문학의 집에서 명동 쪽으로 내려오면 ‘주자파출서 터’가 있다. 이 파출서는 안기부에 끌려온 이들의 가족들이 소재 파악을 위해 몸부림치던 곳으로 극소수 시민들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숭의여대 한편엔 경성신사 참배 터1938년 신사 참배 거부·자진 폐교 역사 서울시청 남산별관, 서울유스호스텔, 교통방송, 문학의 집 등이 모두 서울미래유산이다. 2009년 서울시가 이 일대 국가안전기획부 건물을 모두 철거하고 ‘남산르네상스 마스터플랜’을 추진하려 했으나 통감부 터가 발견되면서 무산됐다. 지난 8월 박원순 서울시장은 교통방송청사·남산2청사 등 건물 4개 동 철거를 시작으로 남산 예장 자락 2만 2833㎡를 도심공원으로 종합 재생하는 ‘남산 예장 자락 재생사업’을 본격화한다고 발표했다. 코스 후반부인 리라초등학교를 지나 숭의여대에 다다랐다. 운동장 한쪽에는 1898년 경성신사 참배 터의 흔적이 남아 있다. 경성신사는 서울의 일본 거류민단이 주도해 남산 왜성대에 세운 신사다. 1903년 평양에 세워진 전신 숭의여학교는 신사 참배를 거부하고 1938년 자진 폐교를 했다. 해방 후 정부로부터 경성신사 부지를 불하받아 재개교할 수 있었다. 초등학교 동창을 따라 나왔다는 민병홍(54)씨는 “오늘 걸었던 길은 생전 처음 걸어 본 길이어서 첫사랑으로 기억될 어느 가을날이 될 것 같다”고 했다. 이 해설사는 “남산 둘레길은 일제와 국가 폭력이 민중을 어떻게 유린했는지 극명하게 보여 주는 상징적 공간”이라며 “남산을 오르내릴 때 이런 역사적 사실을 잊지 말고 주변 사람들과 의견을 나눠 보시라”고 마무리했다. 한양공원비 앞에서 답사 마무리를 하는 도중에도 관광객을 태운 삭도(케이블카)는 쉼 없이 오가고 있었다. 글 사진 유성호 ‘문화지평’ 대표
  • 남경필 경기지사 “서청원 조폭처럼 회유·모욕···정계 은퇴해야“

    남경필 경기지사 “서청원 조폭처럼 회유·모욕···정계 은퇴해야“

    22일 새누리당 탈당을 선언한 남경필(51) 경기지사가 친박계 좌장 역할을 맡고 있는 8선의 서청원(73) 의원을 강하게 비판했다. 남 지사는 이날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의 탈당 기자회견 이후 가진 기자 간담회에서 서 의원을 향해 “(서 의원이 날) 모욕도 주고, 다음날은 회유도 하고, 이런 모습으로 새누리당에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면서 “밤의 세계에서 조직 폭력배들이나 하는 그런 모습”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어 그는 “후배 의원들에게, 몇몇 지도부 최고위원들 말씀을 보면 (서로) 조율됐고, 짜 맞추고 편가르기 하는 듯한 행동대장처럼 지시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남 지사는 서 의원과의 구체적인 통화 내용과 시점에 대해서 밝히지는 않았지만, 직접 서 의원으로부터 회유·협박 등을 받은 것이냐는 질문에는 “그렇다”고 답했다. 남 지사는 “협박이란 표현보다는 모욕이 가깝다”며 “구체적인 말 하나하나까진 밝히고 싶지 않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남 지사는 “이 시점에 정당에서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 암암리에 진행되고 있다”면서 “그런 일을 뒤에 숨어서 조직적으로 하고 있는 (친박의) 선두에 있는 서청원 대표에게 정계 은퇴 선언을 요청한다”고 말했다. 또 “(서 의원이) 우리(비박)에게 말하고, 당 대표가 이걸 받아서 또 말하고, 최고위원들이 또 말하는 게 조직적이란 판단”이라며 “우연히도 그분들이 말하는 걸 뵐 기회도 있었다. 그러니 합리적인 의심을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남 지사는 지난달 31일 국회의장 주재 중진 만찬 회동 자리에서 서 의원이 비박계 정병국, 나경원 의원에게 ‘전쟁하자는 것이냐’고 말한 보도를 언급하며 “지금 이 시대 새누리당 지도자들이 서로 간에 할 말은 아니다. 조직폭력배들에게나 있을 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트럼프 국방장관에 ‘미친개’ 매티스 유력… 북핵 대응 논의

    트럼프 국방장관에 ‘미친개’ 매티스 유력… 북핵 대응 논의

    도널드 트럼프 정부의 초대 국방장관으로 유력시되는 제임스 매티스(66) 전 중부군사령관은 풍부한 전쟁 경험과 직설적인 화법으로 ‘미친개’(mad dog)라는 별명이 붙은 명장이다. 트럼프 당선자는 지난 19일(현지시간) 뉴저지주 배드민스터의 트럼프 내셔널 골프클럽에서 매티스를 만난 뒤 이튿날 트위터에 “국방장관으로 검토되는 제임스 매티스 장군은 무척 인상적이었다”며 “진정한 장군 중의 장군”이라고 추켜세웠다. 트럼프 정권인수위는 “트럼프 당선자와 매티스 전 사령관은 국가 안보에 관한 계획을 놓고 매우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눴다”며 “그 대화 내용에는 이슬람국가(IS)와 중동, 북한, 중국, 나토, 그리고 세계의 다른 분쟁지대가 포함됐다”고 밝혔다. 매티스는 이란과 러시아 등 미국의 잠재적 적국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갖고 있는 ‘매파’로 분류된다. 오바마 정부는 중동 지역을 관할하는 중부군사령관인 매티스가 이란과 군사적 충돌을 일으킬 우려가 있다며 2013년 그를 전역시켰다. 그는 오바마 정부의 이란 핵합의를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러시아에 대해서도 나토를 부수려 한다며 경고한 바 있다. 매티스는 한편으로는 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미국 대통령이 동맹국을 미국에 더부살이하는 사람으로 비하하는 건 미친 짓”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매티스는 현역 시절 병사들과 함께 참호에 직접 들어가 전투를 지휘하고 ‘해병대원은 패배라는 단어를 말할 줄 모른다’ 등의 구호로 병사들의 사기를 고취시킨 것으로 유명하다. 마린코즈타임스는 매티스를 “이 시대의 가장 존경받는 해병대원”이라고 평가했다. 매티스는 하지만 2003년 제1해병사단장으로 이라크전에 참전했을 때 진격 속도가 늦다는 이유로 예하 제1전투연대단의 조 다우니 단장(대령)을 전격 해임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 그는 2005년 공개토론회에서는 “아프간에서 여성을 학대하는 남자들을 쏘는 게 너무나 재밌다”고 발언해 질타를 받자 사과했다. 매티스는 베트남전이 한창이던 1969년 19세로 해병대에 자원입대했다. 제대 후 센트럴워싱턴대의 학군단(ROTC)을 거쳐 1972년 해병대 소위로 임관했다. 그는 제1차 걸프전, 아프간 침공, 이라크 전쟁에 참전하며 주로 중동에서 군 경력을 쌓았다. 전역 후 7년이 지나야 국방장관에 오를 수 있다는 규정이 있어 매티스가 상원의 인준을 받지 못할 것이라는 목소리도 있다. 트럼프는 인준을 담당하는 존 매케인 상원 군사위원장을 설득해 이 규정을 적용하지 않게 한다는 방침이다. 매케인 역시 매티스를 지지하고 있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新국토기행] 소백산 자락·낙동강 물길… 마음 쉬어 가는 영주

    [新국토기행] 소백산 자락·낙동강 물길… 마음 쉬어 가는 영주

    경북 영주는 힐링 1번지다. 2014년 전국 최초로 중소기업청의 ‘힐링특구’로 지정됐다. 누구나 찾고 싶어 하는 소백산국립공원과 우리나라 전통 건축의 백미로 꼽히는 부석사, 최초의 사액서원인 소수서원, 조선 시대 예언서인 정감록의 10승지 중 1승지 등 때묻지 않은 천혜의 자연환경과 풍부한 인문자원 등을 간직한 관광의 보고다. 특히 의상대사가 창건한 한국 화엄종의 근본 도량인 부석사는 몸과 마음을 닦고 수양한 곳으로, 오늘날 ‘몸과 마음의 치유’로 육체적, 정신적 건강을 되찾는다는 의미인 힐링의 원류쯤으로 여겨진다. 사람의 체온과 같은 북위 36.5도에 있는 국토의 중심 영주는 1500년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명품 인삼의 본고장이기도 하다. 조선 왕실에서 영주 풍기 인삼만을 고집했을 정도로 최고의 품질과 명성을 자랑한다. 최근엔 전국 최초로 국립산림치유원이 문을 열었고 고택과 템플스테이, 힐링투어 등 특별함도 즐길 수 있다. 또 전국 최초로 문을 연 산양산삼·산약초 홍보관과 국립녹색농업치유단지 등을 갖춰 치유 농업의 미래를 엿볼 수 있다. 한국 정신문화의 고장 영주는 힐링이 살아 숨쉬는 현장으로, 건강을 찾고 찬란했던 옛 역사와 전통문화도 함께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볼거리 ●국립산림치유원 ‘다스림’ ‘다스림’은 한국형 산림 치유의 허브 기능을 담당하기 위해 지난달 영주시 봉현면 옥녀봉지구(두산3리 주치골) 부지 2889㏊에 152㏊(중심시설지구) 규모로 개원했다. 산림 치유 국가시설로는 세계 최대 규모다. 치유원의 구심점인 건강증진센터와 단체형 숙박 치유 공간인 산림치유수련원, 물을 활용한 치유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수치유센터, 장단기 체류시설, 치유숲길 등을 갖췄다. 체류시설은 산림치유동과 숙박치유동, 연립형숙박동, 단독형숙박동 등 총 180실을 갖췄다. 치유 효과를 경험할 수 있도록 개인형, 아동과 청소년형, 성인형, 가족형 등으로 생애주기별 치유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목적별로는 단체형, 지역의 문화자원을 활용한 테마형, 원예와 운동 등 생활습관 개선형, 질환별 특화 프로그램형 등으로 나눠 운영된다. ●1300년 애환 간직한 화엄종찰 부석사 부석사는 676년 신라 문무왕 16년에 의상이 왕명을 받들어 창건했다. 부석면 봉황산 중턱에서 13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숱한 애환과 사연을 간직한 채 한국 불교의 융성을 이끌어 왔다. 해 뜨기 전 안개가 차오르면 봉황산 봉우리만 둥둥 떠다니는 육지 속의 섬으로 변해 바닷속 용궁과도 같다고 한다. 그래서 그 속에 용이 산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사찰은 국보 5점, 보물 6점, 유형문화재 2점을 보유하고 있다. 부석사는 오랜 역사만큼 숨은 이야기가 많다. 1956년 부석사를 방문했던 이승만 전 대통령이 자신이 쓴 친필 현판 ‘浮石寺’(부석사)를 뒤늦게 바꾸도록 한 이야기, 의상조사와 선묘 아가씨에 얽힌 사랑 이야기, 석룡으로 변한 선묘 아가씨 이야기, 극락세계에 숨은 부처 ‘공포불’ 이야기 등을 간직하고 있다. ●한양 가는 선비 넘던 소백산자락길 영주의 힐링 관광명소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소백산자락길이다. 모두 12자락으로 나뉘며 약 158㎞에 달한다. 1자락길(선비길·구곡길·달밭길)은 소수서원에서 시작해 죽계구곡, 초암사를 거쳐 삼가리까지 이어지는 13㎞ 구간이다. 2자락길(학교길·승지길·방찬길)은 삼가주차장에서 금계바위를 지나 소백산역까지 이어지는 16㎞ 구간이다. 3자락길(죽령옛길·용부원길·장림말길)은 소백산역에서 시작해 죽령주막을 지나 충북 단양군 대강면으로 이어지는 11㎞ 구간이다. 이 중 죽령옛길은 소백산역(희방사역)을 출발해 죽령주막까지 이어지는 2.8㎞ 구간으로, 그 옛날 영남에서 한양으로 가는 선비들과 보부상이 넘던 길로 유명하다. ●소백산, 하늘이 내린 꿈 같은 풍경 소백산은 고산 철쭉 산행의 백미로 이름난 산중화원이다. 매년 5~6월 소백산릉에 분홍색 철쭉이 피면 실로 장관을 이룬다. 산 중턱 해발 700m 지점의 희방폭포(높이 28m)가 시원한 물줄기를 내뿜는다. 소백산 영봉 중 하나인 연화봉에서 발원, 희방계곡을 이루며 흘러내리는 물줄기다. 조선 전기의 학자 서거정(1420~1488)은 ‘천혜몽유처’(天惠夢遊處), 즉 ‘하늘이 내려 준 꿈에서 노니는 듯한 풍경’이라고 노래했다. 비로봉 정상(1439.5m) 인근에는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을 산다는 주목이 군락을 이룬다. 수령 200~500년 된 고목 1000여 그루가 붉은 줄기를 자랑하며 빽빽이 들어차 있다. 연화봉, 비로봉, 국망봉 등 세 봉우리는 절집도 거느린다. 연화봉 아래에는 희방사, 비로봉 아래에는 비로사, 국망봉 아래에는 초암사가 있다. ●삼면이 물로 둘러싸인 무섬전통마을 무섬전통마을은 안동의 하회마을, 예천의 회룡포, 영월의 선암마을과 청령포처럼 마을의 삼면이 물로 둘러싸인 대표적인 물돌이 마을이다. 문수면 수도리에 있다. 영주에서는 2011년 소백산자락길, 2012년 선비촌에 이어 세 번째로 지난해 한국 최고의 관광지인 ‘한국 관광의 별’로 선정됐다. 낙동강 지류인 내성천과 영주 서천이 만나 태백산과 소백산 줄기를 끼고 마을의 삼면을 감싸듯 휘감고 돈다. 강변의 넓은 백사장과 외나무다리는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됐다. 반남 박씨와 선성(예안) 김씨 집성촌인 이 마을에는 고색창연한 50여채의 고가가 자리잡았다. 350여년간 무섬마을과 강 건너를 연결해 준 외나무다리가 이채롭다. 길이 150m, 폭은 30㎝에 불과한 이 외나무다리는 최근 관광상품으로 주목받는다. ●500년 풍기 인삼 시작된 풍기읍 금계리 풍기읍 금계리는 정감록의 십승지(十勝地) 중 첫 번째로 언급된 곳이다. 정감록을 해석하는 사람들은 금계1리와 백1리 희여골 일대를 십승지의 중심 마을로 본다. 소백산이 감싸 안은 명당 중의 명당이란다. 소백산 삼가매표소로 향하는 길목에 있다. 마을 입구에는 한자로 ‘鄭鑑錄第一勝地 豊基人蔘始培地’(정감록제일승지 풍기인삼시배지)라고 적힌 큰 비석이 서 있다. 이 마을은 1542년 당시 풍기군수이자 소수서원 설립자인 주세붕이 이곳에 인삼을 심도록 장려해 풍기 인삼을 처음으로 생산한 곳이기도 하다. ●퇴계 이황 자취 서린 소수서원 소수서원은 조선 중종 37년 풍기군수 주세붕이 국내에 주자 성리학을 처음 전한 성리학의 비조(鼻祖·시조) 회헌 안향(1243~1306)을 제향할 목적으로 건립했다. 명종 3년에 퇴계 이황이 풍기군수로 부임한 후 명종 5년 소수서원이란 사액을 받아 사액서원의 시초가 됐다. 1871년 대원군의 서원철폐 때에도 철폐를 면한 47개 서원 가운데 하나로, 지금도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소수란 ‘무너진 유학을 다시 이어 닦게 한다’는 의미로, 소수서원은 ‘학문의 중흥’이란 큰 임무를 띠고 탄생했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초상화인 회헌영정(국보 111호)은 소수서원의 자랑거리다. 서원 옆으로 낙동강의 작은 젖줄인 죽계수가 흐르고 개울 건너편 아담한 바위에는 주세붕이 직접 쓴 ‘경’(敬)자가 붉게 새겨져 있다. 영주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먹거리 ●청정 소백산록 풍기 인삼 영주가 자랑하는 대표 명품 먹거리다. 글로벌 시장에서도 통한다. 청정 지역 소백산록의 유기물이 풍부한 사질양토와 천혜의 자연조건에서 재배돼 육질이 단단하고 향이 강하며 유효 사포닌 함량이 36종으로 미국산 19종, 중국산 15종에 비해 월등히 높다. 약탕기에 끓여 재탕, 삼탕해도 풀어지지 않는다. 같은 분량을 달여도 다른 인삼보다 농도가 훨씬 진해 약효도 뛰어나다. 풍기 인삼은 수삼과 홍삼, 홍삼 가공제품인 홍삼농축액, 홍삼에 벌꿀을 입힌 홍삼정과, 홍삼절편, 홍삼진액, 홍삼뿌리제품 등 다양한 가공식품으로 생산된다. 인삼떡, 인삼튀김, 인삼막걸리 등 인삼으로 만든 각종 요리도 선보인다. ●껍질 얇고 당도 높은 영주 꿀사과 영주는 제1의 사과 생산지다. 소백산록의 과원에서 생산되는 영주 사과는 풍부한 일조량과 큰 일교차, 깨끗한 공기, 오염되지 않은 맑은 물 등 천혜의 자연조건에서 재배돼 맛과 향이 뛰어나다. 껍질이 얇고 향기와 당도가 높으며, 단단한 과육과 신선도가 오래가는 게 특징이다. 일명 소백산 꿀사과로도 불린다. 우수농산물 인증제(GAP), 선플러스 등을 통해 저농약 유기농법으로 재배돼 껍질째 먹을 수 있다. 최신식 비파괴 당도선별기 등으로 과중, 빛깔, 체형, 당도별로 사과를 등급화하는 엄격한 선별 과정을 거쳐 유통된다. 영주 사과는 냉장고에서 4도 내외로 저장하면 맛과 향을 오래 유지할 수 있다. 한국능률협회인증원으로부터 9년 연속 웰빙인증을 획득했으며, ‘아이러브 영주사과’는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여성 소비자가 뽑은 프리미엄브랜드 대상에 선정됐다. ●전국 최고 품질의 영주 한우 영주 한우는 2003년 브랜드 출시 후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한국능률협회인증원으로부터 8년 연속 웰빙인증을 획득했다. 소비자시민모임이 주관한 우수축산물 브랜드로 2007년부터 10년 연속 선정됐다. 일반 한우보다 불포화지방산과 올레산 함량이 높고 맛이 뛰어나 전국 최고의 품질을 자랑한다. 1등급 한우 출현율도 전국 최고다. 영주 한우는 전북 남원과 강원 평창 대관령 한우시험장을 오가며 수정란을 공급받아 지역 번식우에 이식하는 방식으로 개량됐다. 우리나라를 대표할 만한 ‘슈퍼 한우’도 탄생시켰다. 일반 한우보다 태어날 무렵 평균 10~20㎏ 더 무겁고 성장 속도가 빠르며 성질이 온순하고 질병에 강한 게 특징이다. 소백산록에서 생산되는 양질의 원료로 만든 특수사료를 먹여 맛과 영양이 최고다. 콜레스테롤 함량이 낮은 대신 불포화지방산 함량은 높아 성인병 예방 효과도 탁월하다. ●30년 전통·합성 첨가물 없는 생강 도넛 생강 도넛은 30년 전통의 영주 향토 음식이다. 국산 생강과 찹쌀, 팥 등을 주재료로 해 식용유에 튀겨 낸다. 합성 보존제나 반죽 연화제 등의 첨가물은 쓰지 않는다. 졸깃졸깃하면서도 생강 특유의 매콤한 성분으로 입안이 상쾌하고 식욕을 돋우며 소화도 도와준다. 살균 효과에다 암을 예방하는 효과도 있다. ‘정도너츠’는 인삼과 사과, 호박씨, 참깨 등 영주 특산물과 농산물을 부재료로 활용해 다양한 도넛을 개발, 상품화했다. ●조선 시대 장군들 보양식 영주 삼계탕 조선 시대 장군들이 전쟁터에 나가기 전 원기를 돋우기 위해 즐겨 먹었던 건강식인 영주 칠향계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전통 보양식이다. 3년 된 풍기 인삼과 그날 잡은 어린 토종닭에 산초열매, 도라지, 마늘, 생강, 간장, 식초, 참기름 등 몸에 좋은 일곱 가지 재료를 넣고 푹 고아 낸다. 국물이 구수하면서도 새큼한 게 특징이다. 허해진 체력 보강에는 최고다. 칠향계 요리를 제대로 맛보려면 풍기에 있는 ‘영주 칠향계 삼계탕’을 찾으면 된다. 이 집은 영주 삼계탕 요리 경연대회에서 대상을 차지했다. 영주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카터 美국방 “北, IS만큼이나 美 안보에 심각한 위협”

    카터 美국방 “北, IS만큼이나 美 안보에 심각한 위협”

    美 연구기관 “미군 철수 땐 전쟁” 애슈턴 카터(62) 미국 국방부 장관이 핵과 미사일 개발에 매진하는 북한이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만큼이나 미국 안보에 심대한 위협이라고 평가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가 선거 기간 한국과 일본 주둔 미군의 철수 가능성을 언급했지만 미국 조야는 한반도 방위공약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어 향후 트럼프 정부의 기조가 주목된다. 미국 국방부는 15일(현지시간) 카터 장관이 전날 시사잡지 애틀랜틱의 제프리 골드버그 편집인과 대담하면서 ‘미국이 앞으로 5년간 직면할 가장 심각한 안보 위협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IS, 북한, 이란, 중국, 러시아 등”이라고 답변했다고 홈페이지를 통해 밝혔다. 카터 장관은 대담에서 “미군은 한반도에 수십년간 주둔해 있었고 북한의 공격을 막아내기 위해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있다”면서 “북한에 대한 우리의 구호는 ‘파이트 투나이트’(Fight Tonight·오늘 밤이라도 싸운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새로운 군 통수권자인 트럼프에게 질서 있게 행정부의 업무를 인수인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미국은 여전히 혁신적이고 튼튼한 경제력을 보유한 국가로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70여년간 다른 나라들이 번영하는 것을 도왔고 앞으로도 영향력 있는 국가로 남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카터 장관은 지난달 20일 한·미 연례안보협의회(SCM)가 끝난 뒤 기자회견에서 “미국의 한반도 공약은 변함이 없고 위협에 맞서 미군의 모든 전력을 사용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어 차기 행정부에서도 세계 경찰로서 미국의 역할은 계속돼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한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 정책연구기관인 아시아파운데이션은 이날 발표한 ‘아시아 지역에서 미국의 역할에 대한 아시아의 시각’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통해 “미국이 아시아에 대한 안보 공약을 지키지 않으면 북한이 이를 오판해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할 가능성이 있다”면서 “차기 미국 행정부는 동북아에서의 미군 철수가 이 지역에서 미국과 이 지역 국가들의 이익을 크게 저해할 것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고 권고했다. 보고서의 필진 가운데 한 명으로 참여한 윤영관(전 외교통상부 장관) 서울대 명예교수는 “미국이 북한에 대해 ‘전략적 인내 정책’을 펼쳤지만 북한 비핵화에 실패한 만큼 미국은 한반도 문제의 종합적인 해결책을 찾기 위해 비핵화는 물론 정전체제를 영구적인 평화체제로 바꾸는 문제 등을 포함해 북한과 대화를 재개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 지하철 노선 첫 키재기 기억… 영화골목 달군 추억을 찾아서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 지하철 노선 첫 키재기 기억… 영화골목 달군 추억을 찾아서

    서울신문은 ‘서울미래유산’을 시민과 공유하기 위해 서울시·문화지평과 함께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을 매주 토요일 진행한다.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 홈페이지(futureheritage.seoul.co.kr)에서 답사 코스 확인과 참가신청을 할 수 있다. 오는 18일 18회차 답사는 박광규 서울미래유산해설사의 안내로 종각에서 안국동 사거리로 이어지는 우정국로를 좌우로 훑어 보는 ‘종로 종축(남북) 탐방’이다. ‘서울미래유산’이란 서울 시민들이 근현대를 살아오면서 함께 만들어 온 공통의 기억과 감성이 들어 있는 유·무형의 문화유산을 말한다. 특히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가치를 미래세대가 수용할 수 있어야 미래유산으로 인정된다. 기존 문화재에는 지정문화재, 등록문화재, 예비문화재가 있다. 지정문화재는 문화재보호법과 시·도 조례에 의해 지정된 유물·유적이다. 지정문화재는 50년 이상 지난 문화재 중 역사·문화적으로 상징성이 있는 것들을 대상으로 정한다. 예비문화재는 50년이 지나지 않은 문화재 중 미래가치가 있는 것들이 지정 대상이다. 이들 문화재는 미래유산의 ‘선배’인 셈이다. 종로 보신각 앞 지하철 수준점 3·1운동 중심지에서 찾은 숨은 보물 ‘최순실 사태’로 온 나라가 어수선한 10월의 마지막 주 토요일인 지난달 29일, 열다섯 번째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이 시작되는 보신각 앞에는 시국을 반영하듯 형광색 파카를 걸친 경찰들이 늘어서 있었다. 미래유산 플래카드를 펼쳐 달자 아니나 다를까, 잔뜩 긴장하고 다가온다. 한 경찰이 답사 취지를 묻는 새 다른 이는 사진을 찍고 무전으로 상부에 보고한다. 1주일 전 웃대 답사 때 검문검색보다 긴장감이 더 팽팽했다. 종로 보신각 앞에 물대포에 맞아 숨진 고 백남기 농민을 추모하는 가벽이 서 있었다. 고인을 추모하며 시민들이 쓴 수많은 메모지도 붙어 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국화꽃 20송이를 바칩니다’란 서촌 꽃집 ‘MOMO BLOOM’의 메모가 눈에 띈다. 마음으로, 꽃으로 고인을 떠나보내는 시민들의 마음이 진하게 느껴지는 추모벽 앞에서 답사가 시작됐다. 맑은 가을 날씨 덕에 최근 답사 참가인원이 30명을 훌쩍 넘기기가 예사다. 박광규 서울미래유산해설사는 미래유산인 지하철 수준점에 대한 설명으로 해설을 시작했다. 보신각 앞 잔디밭에 마치 야간조명쯤으로 여겨지는 작은 사각형 돌덩이가 있다. 카메라 망원렌즈로 당겨 보면 ‘수도권 고속전철 수준점’이라고 새겨져 있다. 커다란 카메라를 메고 답사에 참여한 시민 윤치영씨는 “그동안 서울 생활을 오래 했음에도 무심코 지나쳤는데, 오늘 탐방으로 지하철 수준점을 발견하니 마치 숨겨진 보물을 찾은 듯하다”며 “많은 사람의 만남의 장소인 이곳에 이런 유산이 있다니 그저 놀랍다”고 말했다. 윤씨는 이날의 답사 기록을 서울 미래유산블로그 포스팅 공모전에 출품해 우수상을 받았다. 지하철 수준점을 사진에 담기란 쉽지 않다. 보신각이 문화재인 탓에 출입이 엄격히 제한돼 있기 때문이다. 마침 문화재 관리인이 안에 있기에 사진을 대신 찍어 달라고 부탁했더니 흔쾌히 응해 주셨다. 그래서 귀한 사진을 두 장 얻었다. 또 보신각 앞에는 1919년 3·1운동 중심지였다는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첫 종교방송 ‘옛 기독교 방송국’ 건물세계 명곡과 서양고전음악 보급에 기여 박 해설사가 설계한 코스는 ‘다이내믹’하기로 유명하다. 이날도 종각에서 출발해 을지로와 충무로를 종횡무진 걸어가며 길 위에 남은 기존 문화재와 미래유산을 콕콕 집어냈다. 보신각에서 큰길 동쪽으로 조금 걸으면 옛 기독교방송이 있던 누런색의 서양식 빌딩이 나온다. 지금은 기독교서회가 자리잡고 있는 이 건물은 1954년 기독교방송이 있던 자리다. 전파는 연희동 송신소에서 내보냈고, 이곳에는 연구소와 사무실이 있었다. 우리나라 최초 종교 방송국이 있던 장소이자 민간방송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됐다. 박 해설사는 “당시 기독교방송은 다른 방송에서는 듣기 어려운 서양고전음악, 세계명곡, 명가극, 성사극 등을 내보내 우리나라 서양고전음악의 보급에 커다란 기여를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바로 옆에 있었던 종로서적도 지금 있었다면 미래유산 감인데, 시대 변화를 감당하지 못하고 2002년 6월 최종 부도를 내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고 아쉬워했다. 종로 ‘젊음의 거리’를 따라 답사단은 뒷골목으로 스며들었다. 관철동은 종로 뒷골목의 대명사라고 할 만큼 종로를 대표하는 법정동이다. 관철동 골목길을 포함해 도시 조직 자체가 서울미래유산이다. 한국전쟁 직후 우리 자체의 기술력으로 토지구획정리사업을 실시한 곳이다. 내무부는 1952년 전쟁 복구를 위해 19개 토지구획정리사업지구를 고시하고, 이 중 시급히 시행할 5개 지구를 정했다. 그중 한 곳이 관철동 지구로 조선시대 구불구불한 실개천변을 따라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됐던 도시조직이 격자형 모습으로 변모하는 과정을 거쳤다. 관철동 삼일빌딩과 베를린 광장3.1운동 오마주와 통일 염원 담은 유산 요즘 관철동 골목은 또 다른 변화에 직면해 있다. 고공행진하는 임대료 탓에 기존 상인들이 떠나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을 막기 위해 건물주와 상인들의 공생 노력이 활발하다. 젊음의 거리 골목 사거리에는 ‘건물주와 세입자는 가족입니다. 임대료 인하하여 골목상권 활성화합시다. 갑이 도와야 을이 삽니다. 을이 죽으면 갑도 죽습니다’라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관철동문화발전위원회 명의로 걸린 플래카드는 현명한 ‘갑’의 자세를 보여준다. 골목 몇 개를 좌우로 돌자 어느새 삼일빌딩 아래 서 있다. 연세가 높은 분들의 입에서 70·80년대 삼일빌딩의 위용에 대한 이야기가 봇물 터지듯 나왔다. 이 빌딩을 보려고 일부러 시골에서 올라온 관광객도 부지기수였다고 한다. 삼일빌딩은 삼미그룹의 모태인 대일목재공업이 1968년 사옥으로 쓰려고 30억원을 들여 짓기 시작해 1971년 완공했다. 머릿돌은 1970년 3월 1일로 새겨져 있다. 삼일로에 31층 빌딩을 3월 1일 세운 것은 아마도 3·1운동 정신에 대한 ‘오마주’가 아닐는지. 그러나 정작 건축가 김중업은 설계비조차 받지 못했다고 한다. 지금은 1층에 KDB산업은행이 들어섰고, 건물 외벽에는 대우정보시스템이란 돌출글자로 된 간판이 붙어 있다. 삼일빌딩 건너편 한화빌딩에는 ‘베를린광장’이란 공간이 있다. 베를린시로부터 베를린 장벽 일부, 베를린 베어(Berlin Bear), 조명등과 의자를 기증받아 2005년 조성된 광장이다. 서울시와 베를린시 두 도시 간 우호의 상징이자, 대한민국 통일을 염원하는 장소로서 보존 가치를 인정받아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됐다. 관수동 명패·영화관·노가리 골목영화보고 안동장 짜장면 먹고 노가리 안주까지 이제 관수동 명패골목으로 탐사팀이 이동했다. 빽빽한 골목길 안에 상패, 명패, 트로피, 기념물을 만드는 명패사가 즐비하다. 대로변부터 골목 안까지 명패 상권이 실핏줄처럼 발달해 있는 곳이다. 1980년대부터 생겨나기 시작해 90년대에 명패골목으로 완전히 형성됐다. 직업군인으로 정년퇴직을 한 이용성(78)씨는 “군 생활 할 때 이곳에 명패를 맞추러 자주 들렀던 기억이 있다”고 회상했다. 명패골목은 30~40년 된 굴보쌈 골목, 생선구이집 골목과 연결돼 있었다. 필자 역시 “50년 서울살이 동안 종로 대로변만 다녀봤지 남쪽 뒷골목에 이렇게 맛집이 모여 있을 줄 몰랐다”고 거들었다. 곧이어 이번 답사의 한 축인 영화관 골목이 시작됐다. 답사팀은 종로 3가역 서울극장을 거쳐 충무로길을 따라 명보아트홀까지 걸으면서 충무공 이순신의 32전 전승이라는 전대미문의 해전사를 들었다. 중구청은 충무로 보도 위에 충무공 해전사를 기록해 놓았다. 서울미래유산인 서울극장은 합동영화사가 세기극장(1958년 개관)을 인수해 1979년 ‘서울극장’으로 개관했다. 대기업의 멀티플렉스가 들어서기 전인 1990년대까지만 해도 서울 시내 10대 개봉관이었다. 영화의 길을 가던 중간에 노가리 골목에 들렀다. 이 골목은 1980년대에 형성됐다. IMF 경제 위기가 닥치자 주머니가 가벼운 직장인들이 값싼 노가리 골목을 찾으면서 상권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2012년엔 을지로 노가리호프번영회까지 만들어졌을 정도다. 상인 번영회 중심으로 매년 5월이면 을지로 노가리 축제를 연다. 이때만큼은 생맥주 한잔이 1000원이다. 노가리는 한 마리 1000원으로 오래전부터 가격이 요지부동이다. 노가리골목 터줏대감 격인 만선호프에서 22년째 일하는 조이로(82)씨는 이날도 노가리를 다듬고 있었다. 조씨는 “금요일같이 잘 팔리는 날은 하루에 노가리 1000마리, 평소 때는 500~600마리 정도 팔린다”고 말했다. 만선호프는 조씨 조카가 운영하고 있다. 호프집 골목을 나서자 길 건너 빨간색 간판이 트레이드마크인 서울미래유산 ‘안동장’이 보인다. 1948년 피카디리 극장 근처에서 화교인 왕충요씨가 개업한 중화요리집이다. 1950년 현 위치로 이전해 2대 왕용성씨, 지금은 3대 왕홍덕씨 등 3대에 걸쳐 가업을 잇고 있다. 영화와 인쇄의 대명사 충무로 을지로 개발로 1984년 대거 이전 종로와 을지로를 거쳐 드디어 충무로에 들어섰다. 충무로 인쇄골목 입구에는 이순신 생가터 표지석이 있다. 충무로는 ‘영화와 인쇄의 대명사’이다. 영화판 경력에 대한 질문은 으레 “충무로에서 몇 년 일했냐”로 치환된다. 연말이 가까워지면 인쇄골목 인쇄기는 쉼 없이 돌아간다. 내년도 달력, 다이어리, 수첩을 한창 찍어내기 때문이다. 충무로 인쇄골목은 1980년대 시작됐다. 원조 인쇄골목은 을지로다. 1910년 우리나라 최초의 상설 영화관인 경성고등연예관을 시작으로, 경성극장, 낭화관, 중앙관 등이 을지로에 생기면서 영화 전단을 찍으려고 을지로에 인쇄소들이 생겼다. 그러다 1984년 을지로 개발로 을지로에 있던 인쇄업체 500여곳이 충무로로 이전하면서 충무로가 성황을 이뤘다. 충무로에서 영화와 인쇄산업을 서로 떼어내 생각할 수 없는 이유다. 중구청에 따르면 현재도 인가업체 1000여개, 미인가업체 3000여개에서 2만여명의 종사자가 일하고 있다. 시민에게 내어준 대한극장 옥상강북 전경 한눈에… 도시락 들고 소풍도 이번 답사는 대한극장에서 마무리했다. 대한극장 8층 옥상은 시민들에게 열려 있는 ‘공개공지’다. 대한극장이 서울시민을 위해 제공한 도심 쉼터로 화장실, 벤치가 갖춰져 있고 강북지역 서울 시내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볕 좋은 날엔 도시락을 싸들고 올라가서 까먹어도 좋은 곳이다. 답사에 참석한 홍정자(76)씨는 세운상가에 대한 해설사의 짧은 설명을 듣자 “1966년(실제 준공은 1967년) 세운상가 아파트 7층에 입주해 살았다”며 “전자상가에 점포도 하나 운영했었다”고 회상했다. 남편 이용성씨는 “차를 타고 지나쳤던 서울의 구석구석을 걸어가면서 우리 문화유산을 만나니 삶의 질이 높아진 것 같다”고 했다. 대한극장 옥상에서 세운상가를 바라보며 이 부부는 50년 전으로 시간여행을 떠난 듯 감회에 젖어 있었다. 글 사진 유성호 ‘문화지평’ 대표
  • 미국인 62% “트럼프, 실업률 줄이고 일자리 창출할 것”

    미국인 62% “트럼프, 실업률 줄이고 일자리 창출할 것”

     미국인 10명 가운데 6명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가 경제를 살릴 것이라고 믿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미국인들은 트럼프가 정치적 갈등을 해결할 것이라고는 크게 기대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론조사 기관 갤럽이 지난 10~11일(현지시간)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 조사 결과 응답자의 62%는 ‘트럼프 행정부가 실업률을 줄이고 일자리를 창출할 것을 믿는다’고 답했으며, 60%는 ‘트럼프가 경제를 살릴 것’이라고 전망했다고 폴리티코가 14일 보도했다.  트럼프 당선자가 테러리즘으로부터 미국을 보호할 것이라고 답한 응답자는 57%로 나타났다. 미국인 절반 이상이 트럼프의 향후 반(反)테러 정책을 신뢰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트럼프 행정부가 불법 이민자를 제한할 것이라고 전망한 응답은 59%로 나타났다.  그러나 소수자와 소득 수준이 낮은 계층의 환경을 개선시킬 것이란 전망은 44%에 불과했으며 인종 차별을 없앨 것이란 응답은 불과 35%였다. 환경 보호와 전쟁 억제에 대한 긍정적 전망을 내놓은 응답자도 각각 35%, 38%에 그쳤다.  트럼프가 미국내 정치적 갈등을 해결할 것이라고 보는 응답은 39%다. 이는 8년전 같은 질문에 응답자의 54%가 “오바마 대통령 당선자가 미국내 정치적 갈등을 해결할 것”이라고 답변했던 수치보다 훨씬 적은 것이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탈북 3만명 시대] “3개월 부딪쳐 자신감”… 은행원 된 탈북민, 근성으로 편견 깨다

    [탈북 3만명 시대] “3개월 부딪쳐 자신감”… 은행원 된 탈북민, 근성으로 편견 깨다

    KEB하나은행 통합1기 강원철씨 부족한 금융지식 실무 통해 습득 지난 11일을 기점으로 대한민국에 입국한 북한이탈주민(탈북민)이 3만명을 넘어섰다. 6·25전쟁 이후 1962년에 첫 귀순자가 남한으로 입국한 이후 탈북민들의 남한행은 끊이지 않고 있다. 1994년 대량 아사자가 발생한 북한의 ‘고난의 행군’을 계기로 ‘대량 탈북’이란 용어가 생겨났고, 2004년에는 동남아에서 전세기를 이용해 400명이 한꺼번에 국내로 들어온 적도 있다. 최근에는 한류(韓流) 등을 접하면서 더 나은 삶을 위한 ‘이민형 탈북’으로 이어지고 있다. 또 김정은 체제에 대한 염증,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동경, 자녀의 장래 문제 등 동기도 다양하다. “나의 꿈은 통일된 이후 남한에서 터득한 경험을 북한 주민들과 나누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에 정착해 살아가는 탈북민들에게 있어 취업의 문턱은 매우 높다. 그러나 이런 문제에 대해 불평만 하지 않고 도전하는 이들이 있다. 서울신문은 14일 ‘탈북민 3만명 시대’를 맞아 우리 사회에 정착해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들을 찾아 그들의 좌충우돌을 소개하고 있다. 지난해 KEB하나은행 통합 1기로 취업한 강원철(35)씨를 만나 남한 생활의 명암을 들어 봤다. 강씨는 남한에서도 손꼽히는 금융 대기업인 하나은행에 입사하는 기회를 잡았다. 그와 하나은행의 인연은 지난해 하나은행에서 진행한 탈북청년 멘토링에 참여하면서 시작됐다. 강씨는 “그전에 탈북청년단체 ‘위드유’(with-U)가 마련한 전직 대통령들의 업적을 소개하고 배우는 근·현대사 강좌를 하나은행의 후원으로 공동 작업하면서 인연을 맺게 됐다”며 “무엇보다도 하나은행이 남북 관계에 관심이 많고, 통일 이후 북한을 개발하려는 의지가 다른 기업들보다 높기 때문에 탈북민들을 뽑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현재 하나은행에서는 강씨를 포함해 3명이 일하고 있다. 그는 비교적 늦은 나이라 할 수 있는 34세에 회사에 들어갔다. 입사를 해 보니 동기들은 모두 은행권에 취직하기 위해 금융에 대한 공부를 많이 한 상태였다. 어떤 동기들하고는 띠동갑 차이가 날 정도였다고 한다. 이에 비해 그는 다른 직종에서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은행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것을 느꼈다. 입사하자마자 연수원에서 은행 업무에 대한 수업을 받는 도중 ‘내가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이에 대해 강씨는 “금융 관련 수업이 많았는데 정말 어려움이 많았다. 3개월간 부딪치다 보니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연수가 끝난 뒤 하나은행 고려대 지점에 발령받았다. 지점 창구에서 고객들한테 금융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데 솜씨가 서툴러 불편을 많이 줬다고 한다. 지점에서 처리하는 금융 상품 취급 시간도 오래 걸리고, 실수를 해서 고객한테 민원도 받았다.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점차 업무에 적응하게 됐다. 강씨를 포함해 탈북민들을 채용한 하나은행의 사회공헌에 있어서 최우선 사업은 통일 이후 남북한 사회통합이다. 하나은행은 그간 통일부, 남북하나재단을 통해 탈북민 정착지원사업을 꾸준히 해 왔다. 그는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내가 어떤 식으로든 통일에 기여해야 한다고 항상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트럼프시대와 한반도] 동맹보다 실익 챙기는 트럼프… ‘마초 4강’에 둘러싸인 대한민국

    中 견제 위해 러와 손잡을 수도 동북아 충돌 개입 여부 변수로 국방력·무역 놓고 중국과 갈등 ‘고립주의’를 표방한 도널드 트럼프가 차기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동북아의 역학 관계는 재조정에 들어가는 등 불안정성이 커지게 됐다. 강한 미국을 주창한 트럼프, 집단지도체제에서 1인 지배를 강화하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내정을 안정시키며 국회에서 개헌선까지 확보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전성기 러시아 제국주의 향수를 자극하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한반도를 둘러싼 4강 모두 경제와 군사를 바탕으로 한 첫 각축장이 될 가능성이 높다. 자칫 이들이 강하게 부딪힐수록 한국 외교는 설 자리가 좁아지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트럼프의 주장을 볼 때 한국, 일본 등 동맹국과는 물론 중국, 러시아 등과의 관계도 재조정을 거치며 요동칠 전망이다. 그의 주장인 ‘트럼프주의’는 미국 중심의 일방주의, 보호무역, 반세계화, 국제적 개입 축소 등을 골자로 한다. 그의 대외 정책의 출발점은 힘에 기반한 현실주의다. 그는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강한 미국 건설”을 외쳐 왔다. 가치, 규범, 제도, 심지어 동맹까지도 언제든지 휴지통으로 집어던질 기세다.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란 가치에 기반한 동맹은 위기에 처했다. 그의 두 번째 입장은 “‘세계 경찰 역할’을 이제 그만두겠다”는 것이다. 지역 분쟁에 개입하지 않고, 국제 평화란 명분을 위해 미국이 예산을 쓰며 국력을 소모하지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아시아는 아시아인이 지키라”는 1969년 당시 리처드 닉슨 미 대통령의 독트린과 일부 맥을 같이한다. 이는 미국이 세계 리더십을 발휘하는 데 기본 축이 됐던 동맹 관계를 평가절하하면서 일방주의로 가겠다는 것으로 동맹 관계가 느슨해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사업가답게 이해타산을 우선시하며 모든 것은 흥정과 거래가 가능하다는 식의 그의 태도는 동북아 동맹 관계를 흔들고 불안정성을 고조시키고 있다. 일본의 재무장과 동북아 군비경쟁을 재촉할 가능성도 높다. 동맹을 축으로 했던 ‘미국에 의한 국제 평화’인 ‘팍스아메리카’의 종말도 예상된다. 아·태 및 동북아 지역에서 미국의 역할 변화는 그동안 안정의 핵심 수단이던 미·일 및 한·미 동맹이 어떤 형태로 재조정될지에 좌우될 전망이다. 지역 안정과 중국 견제와 관련, 일본의 역할을 어느 정도 인정할 것인가. 센카쿠열도 등에서 중국과 영토 분쟁 중인 일본에 대해 미국이 중·일 충돌 상황에서 어디까지 개입하고 힘이 돼 줄 것인지 등도 변수다. 동북아에서 트럼프가 직면한 가장 큰 과제는 중국의 부상에 대한 대처이며 지역 동맹국들과의 관계 설정이지만 트럼프는 힘에 기반한 양자 협상에 치우쳐 있다. 한편 그는 중국을 ‘일자리 도둑’, ‘환율 조작국’이라면서 중국 제품에 높은 관세를 매겨 미국의 산업을 보호하겠다고 공언해 왔다. 강도 높은 무역전쟁이 예상되는 점이다. 또 그는 병력 증강 등 국방력 강화와 남중국해 해역의 미군 주둔 확대를 주장하고 있다. 이 점에서 남중국해 패권 장악을 핵심 국가이익으로 보는 중국과의 갈등 격화가 예상된다. 트럼프의 미국이 중국에 유화정책을 취하려 하지는 않겠지만 동맹의 신뢰 상실 및 갈등 확대로 인한 ‘아시아 재균형 정책’의 내적 붕괴 과정 속에서 중국과 러시아의 활동 영역과 영향력이 커질 가능성은 크다. 경제적·전략적으로 대중 견제 약화 등의 후유증을 가져올 수 있다. 반면 트럼프는 크림반도 합병부터 시리아·중동 문제까지 미국과 각을 세워 온 온 푸틴 대통령에 대해서는 훌륭한 지도자라고 치켜세우며 호의적으로 대해 왔다. 대러시아 관계 회복의 기대가 높은 상태로 러시아 중시 정책을 통한 중국 견제가 진행될 것이란 분석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도쿄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 中 언론 “트럼프 당선됐더라도 ‘투키디데스 함정’ 피해야”

    中 언론 “트럼프 당선됐더라도 ‘투키디데스 함정’ 피해야”

     중국 관영 매체들은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됨에 따라 미·중 관계에 불확실성이 커졌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특히 기존 패권 국가(미국)와 신흥 대국(중국)은 반드시 충돌한다는 ‘투키디데스의 함정’을 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당선인이 후보 시절 중국의 대미 무역 흑자 등을 비난하며 중국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여온 데 따른 불안감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10일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해외판은 ‘미국은 중국에 더 강경한 태도를 취할까’라는 제하의 분석 기사에서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성향이 점점 강해진 상황에 직면해 미·중 경제무역분야에서 마찰이 생기기 쉬울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면서 “사업가 출신 트럼프는 경제적 마음과 이념으로 외교 문제에 착수할 것으로 보이며 경제를 둘러싼 미·중의 각종 협상과 담판이 많이 재개될 것 같다”고 전망했다. 인민일보는 “미국의 중국 정책은 중국의 국제사회 지위와 미국의 중국에 대한 수요에 달려 있으며 중국 자신의 영향력이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면서 “미·중 관계에 있어 신형대국관계를 만들고 투키디데스 함정을 피하는 것은 시급한 임무 가운데 하나다”고 전했다.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란 펠로폰네소스 전쟁(BC 431~BC 404) 당시 신흥강국 스파르타가 기존 맹주 아테네를 누르기 위해 충돌한 역사적 경험을 일컫는 말이다.  이 매체는 “쇠락하는 미국은 지금 강한 상실감에 빠져 있으며 이는 미·중 관계의 큰 배경”이라면서 “미·중 관계에 가장 좋은 선택은 대항이 아니라 협력이다”고 주장했다.  관영 신화통신은 논평을 통해 “이번 미 대선은 미국사회를 심하게 분열시켰다”면서 “트럼프 출범 후 첫 번째 과제는 미국사회를 통합시키고 개인적 이미지를 보완하는 데 있으며 트럼프는 일련의 국내 및 국제 문제의 도전에 직면할 것이다”고 전망했다.  홍콩의 봉황위성TV는 논평을 통해 “북핵 문제의 경우 사업가 출신인 트럼프는 더욱 실무적인 방식으로 대응할 것으로 보인다”면서 “오바마처럼 북한과 대화를 하지 않는 고집을 포기하고 북미 간의 대화를 더 적극적으로 추진할 전망이다”고 예상했다.  경화시보는 “미·중간 협력하는 틀과 공통적 이익구조는 바뀌지 않을 것”이라면서 “트럼프의 가장 시급한 과제는 외교가 아니라 국내 문제며 중국과 미국은 모두 양측의 차이점을 관리 및 통제하는 능력이 있다”고 전망했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씨줄날줄] 대통령의 기밀 누설/임창용 논설위원

    [씨줄날줄] 대통령의 기밀 누설/임창용 논설위원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는 영국은 물론 세계사에 빛나는 영웅으로 꼽히지만 문필가로도 이름을 날렸다. 회고록 ‘제2차 세계대전’은 노벨문학상까지 그에게 안겼다. 처칠은 그에 앞서 1차 세계대전을 다룬 ‘세계의 위기’도 출간했는데, 국가 기밀을 기술했다가 훗날 구설에 오른다. 회고록에 따르면 그는 해군장관이던 1914년 좌초한 독일 군함이 암호책 2권을 납덩이를 매달아 바다에 던진 사실을 보고받고 잠수사를 동원해 건져내도록 한다. 연합군은 이를 기초로 정밀한 암호 해독 체계를 갖췄고, 독일군의 움직임을 손바닥 보듯 하면서 전쟁을 치렀다. 회고록 출간으로 이 사실을 알게 된 독일은 2차대전을 앞두고 당시로선 해독이 불가능하다고 평가받은 암호 ‘에니그마’를 개발, 연합군에 큰 피해를 줬다. 처칠의 회고록 사례는 군사기밀을 비롯한 국가기밀 유출이 얼마나 큰 피해를 가져올 수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 준다. 그 때문에 기밀 작성과 직접 관계된 사람이나 총리, 대통령 같은 통치권자 등 극소수만 접근이 가능하다. 하지만 간혹 일부 통치권자들은 스스로 기밀을 자랑스럽게 유출했다가 낭패를 보기도 한다. 최근 탄핵 위기에 몰린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이 대표적이다. 르몽드의 두 기자에게 화학무기로 민간인들을 학살한 의혹을 받던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 암살을 지시하는 등 재임 기간의 비화를 털어놓았기 때문이다. 사달은 기자들이 인터뷰를 엮어 대담집을 발간하면서 났다. 야당 의원들은 그가 헌법을 위반했다며 대통령 탄핵안을 발의하고, 기밀 누설 혐의에 대한 검찰 수사를 요청했다. 각종 구설로 국민 지지율이 바닥인 마당에 탄핵 사태까지 겹쳐 1년 남은 임기마저 위태롭게 됐다. 우리나라에선 이명박 전 대통령이 기밀 누설 논란에 휩싸인 적이 있다. 지난해 2월 ‘대통령의 시간’이란 회고록을 내자 일부 시민단체들이 대통령기록물관리법, 공무상 비밀 누설 등의 혐의로 고발한 것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 체결 때 이면계약서 존재, 북한이 제시했던 정상회담 조건 등에 대해 기술한 게 문제가 됐다. 정치권을 중심으로 논란이 뜨거웠다. 최순실 게이트로 박근혜 대통령도 공무상 비밀 누설 논란에 휩싸여 있다. 최순실씨가 대통령 연설문이나 국무회의 발언 자료를 사전에 본 정황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최종본이 아니어서 ‘대통령기록물법’ 위반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유출 자료에 기밀 사항이 담겼다면 공무상 비밀 누설죄 적용도 가능해진다. 법 위반 여부를 떠나 최고 통치권자가 사인(私人)에게 국가의 중요 기록을 건넨 행위는 납득하기 어렵다. 올랑드 대통령의 대담집 제목은 ‘대통령이 이걸 말하면 안 되는데’이다. 안 된다는 걸 알면서 말하고 누설하는 통치권자들의 입에 천근 납덩이라도 매달아야 할까. 임창용 논설위원 sdragon@seoul.co.kr
  • 트럼프 ‘美 우선주의’… 中과 무역 충돌땐 지역 안보까지 흔들

    트럼프 ‘美 우선주의’… 中과 무역 충돌땐 지역 안보까지 흔들

    IS 문제 해결에 러시아와 협조 북핵문제로 中과 갈등 커질 듯 안보비용 놓고 EU와 마찰 전망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가 8일(현지시간) 제45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미국의 새 경제정책과 안보정책에 대한 세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트럼프는 대선 공약으로 경제 분야에서는 보호무역주의를, 대외정책은 ‘아메리카 퍼스트’(미국 이익 우선주의)를 내걸었다. 한국 등과 맺은 자유무역협정(FTA)과 환태평양동반자협정(TPP) 등을 전면 폐기하고 미국이 더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게 무역 질서를 바꾸겠다는 것이다. 미국을 상징해 온 ‘세계 경찰’ 역할을 포기하고 동맹국과도 상호주의에 따라 관계를 재설정하겠다고 밝혔다. 한발 더 나아가 한국과 일본, 독일 등이 스스로 방어를 할 수 있게 핵무장을 용인하겠다는 취지의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시리아 내전과 수니파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러시아와 협조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유럽·중국·이란 등 갈등 고조 가능성 트럼프 시대의 미국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국가를 중심으로 한 ‘대서양 동맹’에 더 많은 안보 비용을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미국이 주도하는 ‘테러와의 전쟁’에도 적극적인 참여를 요구할 전망이다. 일부 유럽 국가의 반발이 불 보듯 뻔해 미국과 유럽 간 동맹 관계가 근본부터 흔들릴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중국과도 북핵 문제로 충돌할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는 미국을 겨냥한 핵·미사일 실험을 강행하는 북한 김정은 체제를 존속시켜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나 시진핑 중국 주석은 6자 회담 재개를 통해 북핵 문제를 대화로 풀겠다는 생각이다. 북한의 추가 핵실험을 두고 두 나라 간 갈등이 예상된다. 트럼프는 노골적인 친이스라엘 성향을 보이고 있어 교착상태에 빠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가 더 나빠질 것으로 보인다. 미국을 적국으로 간주하는 이란에서도 트럼프 집권 이후 강경파가 힘을 얻게 될 공산이 크다. 동중국해·남중국해 문제에서도 미국은 중국 견제를 목적으로 한 지금의 개입주의를 포기할 가능성이 높다. 최근 필리핀, 말레이시아 등의 친중 성향이 더욱 강해질 전망이어서 이 지역 패권싸움 판도도 새롭게 바뀔 것으로 보인다. ●亞 수출국에 대한 압박 크게 높일 듯 힐러리 클린턴와 트럼프 모두 대선공약으로 보호무역주의를 내세웠다. 하지만 트럼프가 훨씬 강력한 입장을 고수했기 때문에 취임 이후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수출 국가에 대한 압박 강도를 크게 높일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트럼프가 관세 부과 말고도 지적재산권 보호 관련 법 집행, 국가 안보를 명분으로 한 수입 규제 등 다양한 카드를 꺼내 들 것으로 예상한다. 당장 ‘FTA 폐기’를 볼모로 자국 이익을 극대화하는 쪽으로 유럽연합(EU) 등과 TPP 재협상을 요구할 것이 확실시된다. 세계무역질서의 근본인 세계무역기구(WTO) 지침을 더이상 따르지 않고 중국에 대해 독자적인 관세 장벽을 세우겠다고 밝힌 만큼 두 나라 간 무역전쟁도 예상된다. 트럼프 당선으로 세계 경제 불안감이 커지고 미국이 내년부터 금리 인상을 본격화하면 투자자들이 상대적으로 높은 이자를 받을 수 있는 미국으로 달러 자본을 대거 옮기면서 일부 아시아 국가에 ‘달러 가뭄’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3조 달러가 넘는 중국의 외환 보유고도 현저히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똑똑한 우리집, 로라·NB 누구한테 맡길까

    똑똑한 우리집, 로라·NB 누구한테 맡길까

    ‘SK텔레콤의 로라(LoRa) 대 KT·LG유플러스의 NB.’ 사물인터넷(IoT)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국내 이동통신사들의 시장 선점 경쟁이 본격화됐다. KT와 LG유플러스는 3일 광화문 KT사옥에서 공동 간담회를 열고 내년 1분기 ‘NB-IoT’ 상용화를 공동 추진한다고 선언했다. 지난 7월 SK텔레콤이 ‘로라-IoT’ 전용망 구축을 발표한 지 넉 달여 만에 로라가 아닌 NB로 맞불을 놓은 셈이다. 로라와 NB는 모두 글로벌 정보통신기술(ICT) 기업들이 구축 중인 IoT 기술 표준의 종류다. 이동통신 표준화 단체인 3GPP가 IoT 표준으로 삼은 NB 진영에 삼성전자, 노키아, 화웨이가 있다. SK텔레콤은 지난해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 때 출범한 로라 얼라이언스 진영에 섰다. 미국 컴캐스트, 일본 소프트뱅크, 프랑스 오렌지, 시스코, IBM 등이 로라 진영에 섰다. 두 방식 모두 저비용, 저전력, 저용량 서비스를 구현했다. NB는 기존 LTE망의 좁은 대역을 이용해 150kbps 이하 데이터 전송 속도와 8~15㎞ 장거리 서비스를 지원한다. 안정성이 높아 가스·수도·전기검침 등의 통신에 적합하다. 로라의 전파 도달 거리는 최대 20㎞에 달한다. SK텔레콤은 지난 6월 이미 로라 전국망 구축을 끝냈다. KT와 LG유플러스는 내년 안에 전국망 구축을 완료할 계획이다. KT와 LG유플러스는 또 ▲NB 네트워크 조기 상용화 ▲칩셋, 모듈, eSim, 단말 등 IoT 핵심제품의 공동소싱 ▲글로벌 기구 활동 대응 등에 협력하기로 했다. 안성준 LG유플러스 IoT사업부문장은 “LG유플러스는 홈, 공공, 산업 분야에서 IoT를 적극적으로 구축해 네트워크부터 플랫폼까지 총괄하는 종합 솔루션을 제공해 왔다”면서 “KT와의 사업협력을 통해 IoT 생태계 조기 구축과 시장성장 가속화를 유도해 국내 NB-IoT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겠다”고 말했다. 그간 또 다른 기술표준인 LTE-M 세계 최초 상용화 성과를 냈던 KT의 김형욱 플랫폼사업기획실장은 “NB 전국망을 조기 구축하고 KT의 500여개 파트너사와 협력해 혁신적인 서비스를 선보이겠다”고 밝혔다. 이통 3사의 IoT 전국망 구축이 활기를 띠면서 내년이 국내 IoT 대중화 원년이 될 것이란 관측이 많다. IoT 사업은 스마트공장, 스마트시티 등 다양한 분야로 확장이 예상되지만 가장 먼저 꽃피울 분야는 홈IoT가 될 것이란 전망이다. 특히 지난해 11월 기준 주택 1637만 가구 중 59.9%(981만 가구)가 아파트인 국내의 주거 환경이 홈IoT 인프라 구축에 최적화되어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현대건설 등 건설사와 협력하는 SK텔레콤은 2016~2017년 분양 예정 아파트 10만 가구에 스마트홈을 적용할 계획이다. SK텔레콤은 지난 2일 서울 강남구 도곡동에 위치한 현대건설 힐스테이트 갤러리에서 음성인식, 머신러닝(기계학습) 기술이 적용된 ‘지능형 스마트홈’ 서비스를 공개하며, 이미 목동·평택 송담 힐스테이트 2000가구에 지능형 스마트홈 솔루션을 선제적으로 도입했다고 밝혔다. 입주자들이 스마트폰을 통해 “불 꺼”, “가스 잠가”, “창문 닫아”와 같은 말로 명령을 하면 가전기기가 작동된다. 특히 머신러닝을 통해 입주자의 억양이나 발음 습관을 스스로 학습하기 때문에 95% 이상으로 자연어 인식률을 높일 수 있다고 SK텔레콤은 설명했다. 또 위치정보·수면·이동패턴 등 데이터를 분석해 입주자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추천할 수도 있고, 입주자가 잠이 들면 사용하던 가전제품을 끌 수도 있다. SK텔레콤 측은 “아파트 가구들이 와이파이망을 쓰기 때문에 지능형 스마트홈은 주로 와이파이망을 통해 사물 간 통신한다”면서 “다만 집 바깥이나 베란다에 있는 개량기와 통신할 때 로라망을 활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아웃도어 활동과 IoT가 결합할 수도 있다. KT는 이날 코오롱스포츠와 협력해 인텔의 NB-IoT 모듈을 등산용 재킷에 탑재한 ‘IoT 세이프티 재킷’(시제품)을 선보였다. 등산을 하다 조난을 당했을 때 재킷에 탑재된 센서가 조난자의 비정상적인 움직임을 감지, 최대 10㎞까지 닿는 통신모듈을 통해 조난 알림 메시지를 보낼 수 있다. 재킷 내 탑재된 알람용 발광다이오드(LED) 및 음향 센서가 자동으로 작동돼, 야간에도 구조대가 쉽게 조난자의 위치를 파악할 수도 있다. KT는 이 밖에 인체감지센서와 화재감지센서를 통해 텐트 내 도난, 화재 사고를 방지하는 ‘IoT 스마트 텐트’(시제품)도 선보였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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