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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원천 기자의 호모나들이쿠스] 아름답구나, 폭우의 상처도 품고 흐르니

    [손원천 기자의 호모나들이쿠스] 아름답구나, 폭우의 상처도 품고 흐르니

    미호천이란 이름을 들어 보셨는지요. 아마 올여름에 부쩍 많이 들은 이름일 겁니다. 미호천은 충북 청주와 진천 등의 주민들에게 젖줄 같은 강입니다. 삶의 터전이자 역사와 문화가 깃든 곳이지요. 올여름 미호천은 폭우로 큰 상처를 입었습니다. 그 탓에 지금은 물가의 생명들이 누추한 모습을 하고 있지만 곧 원래의 모습을 회복할 겁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시간을 그렇게 보내 왔으니까요. 그러니 지금 잠시 볼품없는 몰골이라 해서 그게 전부는 아닌 것이지요. ‘아름다운 강’ 미호천 일대를 돌아봤습니다. 상처 입은 강은 여전히 아름다웠고, 여전히 너른 품을 사람에게 벌리고 있었습니다.미호천(美湖川)은 이름 그대로 크고 작은 모래톱과 여울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하천이다. 나라 안 대부분의 하천이 준설, 모래 채취, ‘녹차 라테’ 따위에 시달리지만, 미호천에선 그런 구간을 찾기 어렵다. 사람의 간섭이 적었다는 뜻이다. ‘삽질’과 개발이 능사인 시대에 이는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다만 수질 오염의 소지는 여전하다. 하천 생태계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시설과 도시가 곳곳에 웅크리고 있어서다.●미호천, 마이산~금강 90㎞ 흐르는 하천 충북 음성의 마이산에서 시작된 미호천은 세종시에서 금강과 합류될 때까지 약 90㎞ 정도를 굽이굽이 흘러간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강의 원형을 곳곳에 펼쳐 놓는다. 이리 굽고 저리 휘는 동안 모래톱과 여울이 번갈아 나오고, 크고 작은 버드나무는 둑방을 따라 흐드러졌다. 이 강물에 미호종개(천연기념물 454호)가 산다. 1984년 미호천에서 처음 발견된 한국 고유의 어류다. 미호천에 많다고 해서 미호종개란 이름을 얻었지만 서식지 파괴와 수질오염으로 개체수가 급감해 절멸 위기에 놓였다. 우리 산하에서 사라진 것으로 알려진 황새 복원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곳도 바로 이 강의 상류 지역이다. 강이 사람에게 주는 선물이야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독특하기로는 ‘포플러 장학금’이 가장 앞줄에 설 듯하다. 옛 청원군(현 청주시 청원구)에서 운용했던 ‘포플러 장학금’은 가난했던 1960년대 1만 4000그루의 포플러를 강외면 궁평리 미호천 둔치에 식재한 뒤 이를 목재로 팔아 조성했다. 당시 2000여명 정도가 이 장학금의 혜택을 받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를 기리는 포플러 장학금 기념관이 옥화자연휴양림 안에 조성돼 있다. 미호천은 청주에서 세종시에 이르는 구간에서 강폭을 한껏 넓힌다. 증평의 보강천, 청주 무심천 등 여러 지류와 합쳐진 결과다. 한데 강폭과는 달리 웅숭깊은 풍경은 상류 쪽에 많다. 특히 진천군과 청주 오창읍 등의 구간에 빼어난 풍경을 빚어 놨다. 다만 강의 진면목을 살피기는 쉽지 않다. 접근로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도시 주변에 조성된 걷기 길이나 몇몇 관광지 등을 돌아보는 게 고작이지만, 이마저도 빼어나다. ●농다리 천년 이어온 비결은 지네 닮은꼴 모양 미호천 주변 볼거리 가운데 ‘전국구’ 관광지를 꼽으라면 단연 진천 농다리(충북유형문화재 28호)다. 국내 돌다리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꼽힌다. 고려 초에 축조됐으니 연혁이 천 년을 넘나든다. 미호천 상류의 농다리는 편마암의 일종인 자줏빛 자연석을 쌓아 만들었다. 길이가 얼추 94m에 달한다. 모양은 지네를 닮았다. 거대한 지네가 몸을 살짝 굽혀 물살을 가로지르는 형상이다. 현지 문화관광해설사는 이 같은 유연한 형태 덕에 미호천의 물살을 견디며 천 년을 이어 왔다고 설명했다. 농다리는 조성 당시의 상황을 엿볼 수 있는 사료가 딱히 없다. 이런저런 이야기들만 전설처럼 전해질 뿐이다. 일반적으로는 고려 개국공신인 임희 장군이 처음 조성했고, 고려 고종 때 무인 임연이 개보수한 것으로 전해진다. 진천군 태수를 지낸 신라 김유신의 아버지 김서현이 고구려에 전승을 거둔 것을 기념해 놓았다는 설도 있다. 오래된 다리일수록 이리저리 얽힌 사연도 많기 마련이다. 나라에 어려운 일이 닥치면 다리 일부가 소실된다고 하는데, 한국전쟁 당시 교각 5칸이 떨어져 나갔다고 한다. 올여름 청주와 미호천 등을 할퀸 물난리 때는 교각 일부와 상판 세 개가 유실됐다. 후대가 이를 어떻게 기록할지 궁금하다. 농다리는 현재 통행이 금지된 상태다. 유실된 부분의 보수 작업을 거쳐 이르면 9월쯤 다시 출입이 허용될 전망이다. 농다리 너머에 정자와 전망대가 조성돼 있다. 정자에 앉아 굽이치는 미호천과 물 위로 놓여진 ‘검은 지네’를 보는 맛이 각별하다. 전망대 뒤로는 산책로가 놓였다. 이른바 ‘초롱길’의 하나로 초평저수지까지 연결돼 있다. 초평지는 미호천의 지류를 막아 축조했다. ‘미호저수지’라고도 불린다. 산책로 끝자락의 전망대에서 굽어보는 초평지 풍경이 빼어나다.●김유신 탄생지 진천… 계양마을에 생가 복원 진천은 흥무대왕 김유신의 탄생지다. 신라 진평왕 17년(595)에 만노군(신라 때 진천군의 이름) 태수를 지내던 김서현과 만명부인 사이에서 태어났다. 진천 일대에 그와 관련된 유적지들이 몇 곳 있다. 미호천과는 거리가 있지만 역사 공부 삼아 찾아볼 만하다. 김유신 생가는 상계리 계양마을에 복원돼 있다. 김유신 탄생지 뒤편은 길상산이다. 산 정상 어름에 그의 태실지가 있다. 김유신의 위패와 영정을 모신 길상사는 탄생지에서 뚝 떨어진 벽암리 도당산 아래 있다. 초평지에서 좀더 아래로 내려가면 충북학생수련원이다. 이 일대에도 ‘인증샷’ 찍을 만한 곳이 많다. 이 앞을 흐르는 미호천의 다른 이름은 은여울이다. 은탄(銀灘)리는 이를 한문으로 쓴 행정 명칭이다. 이름만큼 맑고 고운 여울이 흘러간다. 팔결다리 주변엔 자전거 도로와 걷기 길이 조성돼 있다. 팔결다리는 청주와 옛 청원군 오창읍을 연결하는 다리다. 현재의 팔결교는 왕복 6차로의 도로를 이고 있는 큰 다리지만 옛 ‘팔결교’는 그보다 상류 쪽에 소박한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1970년대 옛 팔결다리는 청주와 오창 주민들이 즐겨 찾는 피서지였다. 마땅히 갈 곳이 없던 시절 주민들은 물이 깨끗하고 모래사장이 너른 팔결다리 인근에서 천렵이나 물놀이를 즐기며 여름을 보냈다. 요즘도 천렵을 즐기는 이들은 종종 눈에 띄지만 수영을 하는 이는 찾기 힘들다. 미호천이 청주에서 흘러온 무심천과 합류되는 곳이 까치내다. 미호천의 여러 물줄기 가운데 아름답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곳이다. 강가엔 버드나무가 많다. 시골에서 살았던 이라면 누구나 버드나무 잔가지로 만든 버들피리의 추억을 하나쯤은 갖고 있을 터다. 청주 일대에선 이를 ‘호드기’라 부른다. 매끈한 가지를 골라 자르고, 껍질을 비틀어 줄기와 분리시킨 다음 적당한 크기로 자르면 버들피리 완성이다. 겨우 삘릴리 소리나 낼 정도지만 둑방길 걸으며 추억을 소환하기에 이만한 도구가 없지 싶다. ●연인들 인생샷 남기는 까치내 정북동 토성 까치내를 따라 걷기 길이 조성돼 있다. 문암생태공원 등 주변에 돌아볼 만한 곳도 있다. 까치내 위쪽엔 정북동 토성이 있다. 미호천변의 평지에 축조된 사각형의 토성이다. 삼국시대 초기인 2~3세기쯤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남북이 약간 긴 방형의 형태로 전체 길이는 675m 정도다. 정북동 토성은 사진작가들이 자주 찾는 촬영지다. 해거름에 펼쳐지는 서정적인 풍경을 담기 위해서다. 최근엔 청주 등지의 젊은 연인들이 즐겨 찾는 데이트 코스로 급부상 중이다. 초록빛 성터를 도란도란 걷거나 성벽 위의 소나무 한 그루를 배경 삼아 ‘인생 샷’을 남기기도 한다. angler@seoul.co.kr■여행수첩 →가는 길:농다리와 초평저수지 등 미호천 상류를 먼저 보겠다면 중부고속도로 진천 나들목, 정북동 토성은 오창 나들목으로 나가는 게 빠르다. 까치내, 문암생태공원 쪽은 서청주 나들목이 다소 낫다.→맛집:공원당(255-3894)은 메밀국수(위)로 50년 넘게 명성을 이어 온 집이다. 중앙공원 옆에 있다. 남주동 해장국(256-8575)과 서문 해장국(224-5999)은 해장국으로 쌍벽을 이루는 집이다. 청주 사람들은 예부터 고추장 삼겹살을 즐겨 먹었다. 백로식당(273-0713)이 이름났다. 서문시장 안쪽에 삼겹살 거리(아래)도 조성돼 있다. 옛 방식대로 구워 내는 ‘시오야키’(삼겹살 소금구이)를 맛볼 수 있다. 진천 초평지 쪽에 붕어찜 집들이 몰려 있다. 송애집(532-6228), 배를 타고 들어가는 쥐꼬리명당(532-6647) 등이 알려졌다.
  • 아름답구나, 폭우의 상처도 품고 흐르니

    미호천(美湖川)은 이름 그대로 크고 작은 모래톱과 여울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하천이다. 나라 안 대부분의 하천이 준설, 모래 채취, ‘녹차 라테’ 따위에 시달리지만, 미호천에선 그런 구간을 찾기 어렵다. 사람의 간섭이 적었다는 뜻이다. ‘삽질’과 개발이 능사인 시대에 이는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다만 수질 오염의 소지는 여전하다. 하천 생태계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시설과 도시가 곳곳에 웅크리고 있어서다.●미호천, 마이산~금강 90㎞ 흐르는 하천충북 음성의 마이산에서 시작된 미호천은 세종시에서 금강과 합류될 때까지 약 90㎞ 정도를 굽이굽이 흘러간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강의 원형을 곳곳에 펼쳐 놓는다. 이리 굽고 저리 휘는 동안 모래톱과 여울이 번갈아 나오고, 크고 작은 버드나무는 둑방을 따라 흐드러졌다. 이 강물에 미호종개(천연기념물 454호)가 산다. 1984년 미호천에서 처음 발견된 한국 고유의 어류다. 미호천에 많다고 해서 미호종개란 이름을 얻었지만 서식지 파괴와 수질오염으로 개체수가 급감해 절멸 위기에 놓였다. 우리 산하에서 사라진 것으로 알려진 황새 복원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곳도 바로 이 강의 상류 지역이다.강이 사람에게 주는 선물이야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독특하기로는 ‘포플러 장학금’이 가장 앞줄에 설 듯하다. 옛 청원군(현 청주시 청원구)에서 운용했던 ‘포플러 장학금’은 가난했던 1960년대 1만 4000그루의 포플러를 강외면 궁평리 미호천 둔치에 식재한 뒤 이를 목재로 팔아 조성했다. 당시 2000여명 정도가 이 장학금의 혜택을 받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를 기리는 포플러 장학금 기념관이 옥화자연휴양림 안에 조성돼 있다.미호천은 청주에서 세종시에 이르는 구간에서 강폭을 한껏 넓힌다. 증평의 보강천, 청주 무심천 등 여러 지류와 합쳐진 결과다. 한데 강폭과는 달리 웅숭깊은 풍경은 상류 쪽에 많다. 특히 진천군과 청주 오창읍 등의 구간에 빼어난 풍경을 빚어 놨다. 다만 강의 진면목을 살피기는 쉽지 않다. 접근로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도시 주변에 조성된 걷기 길이나 몇몇 관광지 등을 돌아보는 게 고작이지만, 이마저도 빼어나다.●농다리 천년 이어온 비결은 지네 닮은꼴 모양미호천 주변 볼거리 가운데 ‘전국구’ 관광지를 꼽으라면 단연 진천 농다리(충북유형문화재 28호)다. 국내 돌다리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꼽힌다. 고려 초에 축조됐으니 연혁이 천 년을 넘나든다. 미호천 상류의 농다리는 편마암의 일종인 자줏빛 자연석을 쌓아 만들었다. 길이가 얼추 94m에 달한다. 모양은 지네를 닮았다. 거대한 지네가 몸을 살짝 굽혀 물살을 가로지르는 형상이다. 현지 문화관광해설사는 이 같은 유연한 형태 덕에 미호천의 물살을 견디며 천 년을 이어 왔다고 설명했다.농다리는 조성 당시의 상황을 엿볼 수 있는 사료가 딱히 없다. 이런저런 이야기들만 전설처럼 전해질 뿐이다. 일반적으로는 고려 개국공신인 임희 장군이 처음 조성했고, 고려 고종 때 무인 임연이 개보수한 것으로 전해진다. 진천군 태수를 지낸 신라 김유신의 아버지 김서현이 고구려에 전승을 거둔 것을 기념해 놓았다는 설도 있다.오래된 다리일수록 이리저리 얽힌 사연도 많기 마련이다. 나라에 어려운 일이 닥치면 다리 일부가 소실된다고 하는데, 한국전쟁 당시 교각 5칸이 떨어져 나갔다고 한다. 올여름 청주와 미호천 등을 할퀸 물난리 때는 교각 일부와 상판 세 개가 유실됐다. 후대가 이를 어떻게 기록할지 궁금하다. 농다리는 현재 통행이 금지된 상태다. 유실된 부분의 보수 작업을 거쳐 이르면 9월쯤 다시 출입이 허용될 전망이다.농다리 너머에 정자와 전망대가 조성돼 있다. 정자에 앉아 굽이치는 미호천과 물 위로 놓여진 ‘검은 지네’를 보는 맛이 각별하다. 전망대 뒤로는 산책로가 놓였다. 이른바 ‘초롱길’의 하나로 초평저수지까지 연결돼 있다. 초평지는 미호천의 지류를 막아 축조했다. ‘미호저수지’라고도 불린다. 산책로 끝자락의 전망대에서 굽어보는 초평지 풍경이 빼어나다.●김유신 탄생지 진천… 계양마을에 생가 복원진천은 흥무대왕 김유신의 탄생지다. 신라 진평왕 17년(595)에 만노군(신라 때 진천군의 이름) 태수를 지내던 김서현과 만명부인 사이에서 태어났다. 진천 일대에 그와 관련된 유적지들이 몇 곳 있다. 미호천과는 거리가 있지만 역사 공부 삼아 찾아볼 만하다. 김유신 생가는 상계리 계양마을에 복원돼 있다. 김유신 탄생지 뒤편은 길상산이다. 산 정상 어름에 그의 태실지가 있다. 김유신의 위패와 영정을 모신 길상사는 탄생지에서 뚝 떨어진 벽암리 도당산 아래 있다.초평지에서 좀더 아래로 내려가면 충북학생수련원이다. 이 일대에도 ‘인증샷’ 찍을 만한 곳이 많다. 이 앞을 흐르는 미호천의 다른 이름은 은여울이다. 은탄(銀灘)리는 이를 한문으로 쓴 행정 명칭이다. 이름만큼 맑고 고운 여울이 흘러간다.팔결다리 주변엔 자전거 도로와 걷기 길이 조성돼 있다. 팔결다리는 청주와 옛 청원군 오창읍을 연결하는 다리다. 현재의 팔결교는 왕복 6차로의 도로를 이고 있는 큰 다리지만 옛 ‘팔결교’는 그보다 상류 쪽에 소박한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1970년대 옛 팔결다리는 청주와 오창 주민들이 즐겨 찾는 피서지였다. 마땅히 갈 곳이 없던 시절 주민들은 물이 깨끗하고 모래사장이 너른 팔결다리 인근에서 천렵이나 물놀이를 즐기며 여름을 보냈다. 요즘도 천렵을 즐기는 이들은 종종 눈에 띄지만 수영을 하는 이는 찾기 힘들다.미호천이 청주에서 흘러온 무심천과 합류되는 곳이 까치내다. 미호천의 여러 물줄기 가운데 아름답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곳이다. 강가엔 버드나무가 많다. 시골에서 살았던 이라면 누구나 버드나무 잔가지로 만든 버들피리의 추억을 하나쯤은 갖고 있을 터다. 청주 일대에선 이를 ‘호드기’라 부른다. 매끈한 가지를 골라 자르고, 껍질을 비틀어 줄기와 분리시킨 다음 적당한 크기로 자르면 버들피리 완성이다. 겨우 삘릴리 소리나 낼 정도지만 둑방길 걸으며 추억을 소환하기에 이만한 도구가 없지 싶다.●연인들 인생샷 남기는 까치내 정북동 토성 까치내를 따라 걷기 길이 조성돼 있다. 문암생태공원 등 주변에 돌아볼 만한 곳도 있다. 까치내 위쪽엔 정북동 토성이 있다. 미호천변의 평지에 축조된 사각형의 토성이다. 삼국시대 초기인 2~3세기쯤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남북이 약간 긴 방형의 형태로 전체 길이는 675m 정도다. 정북동 토성은 사진작가들이 자주 찾는 촬영지다. 해거름에 펼쳐지는 서정적인 풍경을 담기 위해서다. 최근엔 청주 등지의 젊은 연인들이 즐겨 찾는 데이트 코스로 급부상 중이다. 초록빛 성터를 도란도란 걷거나 성벽 위의 소나무 한 그루를 배경 삼아 ‘인생 샷’을 남기기도 한다. angler@seoul.co.kr미호천이란 이름을 들어 보셨는지요. 아마 올여름에 부쩍 많이 들은 이름일 겁니다. 미호천은 충북 청주와 진천 등의 주민들에게 젖줄 같은 강입니다. 삶의 터전이자 역사와 문화가 깃든 곳이지요. 올여름 미호천은 폭우로 큰 상처를 입었습니다. 그 탓에 지금은 물가의 생명들이 누추한 모습을 하고 있지만 곧 원래의 모습을 회복할 겁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시간을 그렇게 보내 왔으니까요. 그러니 지금 잠시 볼품없는 몰골이라 해서 그게 전부는 아닌 것이지요. ‘아름다운 강’ 미호천 일대를 돌아봤습니다. 상처 입은 강은 여전히 아름다웠고, 여전히 너른 품을 사람에게 벌리고 있었습니다.천 년을 넘나드는 세월을 이어 온 진천 농다리(왼쪽). 미호천이 품은 풍경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여행지다. 오른쪽은 김유신의 영정과 위패를 모신 길상사다.
  • 트럼프 “북한, 미국 위협하지 말라…‘화염과 분노’ 직면할 것”

    트럼프 “북한, 미국 위협하지 말라…‘화염과 분노’ 직면할 것”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한을 향해 미국을 더 위협할 경우 ‘화염과 분노’에 직면할 것이라며 강력 경고했다.여름 휴가 중인 트럼프 대통령은 8일(현지시간) 뉴저지 주(州) 베드민스터에 있는 자기 소유의 트럼프 내셔널 골프클럽에서 기자들과 만나 “북한이 더는 미국을 위협하지 않는 게 최선일 것”이라며 “그렇지 않으면 지금껏 전 세계가 보지 못한 ‘화염과 분노’(fire and fury), 솔직히 말해 힘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는 “(김정은은) 정상 상태를 넘어 매우 위협적이었다”며 이와 같이 말했다. 이러한 트럼프 대통령의 ‘군사 경고’는 북한이 미 본토 타격이 가능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에 탑재할 수 있는 소형핵탄두 개발에 성공했다는 워싱턴포스트(WP) 보도에 대한 반응으로 나왔다. WP는 이날 낮 국방부 산하 국방정보국(DIA)이 지난달 북핵개발 프로그램에 대한 기밀평가를 통해 이 같은 결론에 이르렀다면서 북한이 ‘완전한 핵보유국’을 향한 도정에서 중대한 문턱을 넘어섰다고 평가했다. 특히 이 신문은 DIA 보고서 평가에 따르면 북한이 트럼프 정부의 ‘레드 라인’(한계선)에 과거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빠르게 근접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북한이 ICBM에 핵을 탑재할 수 있게 됨으로써 미 본토를 핵무기로 위협하기 위한 퍼즐의 절반을 풀게 됐다”고 강조했다. ‘퍼즐’의 나머지 절반은 ICBM 탄두의 대기권 재진입 기술 확보다. 의회전문매체 ‘더 힐’도 WP의 보도가 사실이라면 북한의 핵 개발 프로그램은 트럼프 정부가 용인할 수 있는 ‘레드라인’을 넘어섰다고 평가했다. 이로써 지난 1월 3일 트위터를 통해 “북한은 막 미 본토 일부에 도달할 수 있는 핵무기를 개발하는 최종단계에 있다고 밝혔다.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던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실로 난감한 상황을 맞게 됐다고 미 언론은 지적했다. ‘화염과 분노’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강력한 경고는 이러한 흐름 속에서 나온 것이다. 특히 그의 ‘군사 경고’가 미 국가안보 수장인 허버트 맥매스터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이 지난 주말 북한에 대한 ‘예방전쟁’ 가능성을 언급한 데 이은 것이어서 주목된다. 맥매스터 보좌관은 MSN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의 북한에 대한 예방전쟁 가능성을 질문받고 “북한이 핵무기로 미국을 위협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전쟁, 예방전쟁을 말하느냐”고 확인한 뒤, “물론이다. 우리는 그것을 위한 모든 옵션을 제공해야만 한다. 거기에는 군사옵션도 포함된다”고 말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은 그것에 대해 명확한 입장, 즉 북한이 미국을 위협할 수 있는 핵무기를 보유한다면 참을 수 없다고 말해왔다”며 “만에 하나 북한이 미국을 위협할 수 있는 핵무기들을 가진다면 대통령의 시각에서는 용납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예방전쟁’이란 적이 군사적으로 우위에 있다고 판단될 때 선제공격을 가함으로써 전면전을 막는 개념의 전쟁으로 ‘이라크 전쟁’이 이에 해당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美, 필리핀 내 ‘IS 추종세력’ 드론 공습 검토

    美, 필리핀 내 ‘IS 추종세력’ 드론 공습 검토

    두테르테 2개월 넘게 ‘마우테’ 토벌…반군 60여명, 민간인 인질로 저항미국 국방부가 필리핀에서 활동 중인 테러집단 ‘이슬람국가’(IS) 추종세력을 드론(무인기)으로 공습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NBC뉴스는 7일(현지시간) 미 국방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국방부가 이 같은 내용의 군사작전을 승인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번 공습은 집단적 자위권의 일환이며, 이르면 8일 공식 작전명이 정해질 예정이라고 NBC는 전했다. 집단적 자위권이란 자국과 동맹을 맺은 나라가 침략당할 경우 이를 자국에 대한 침략으로 간주하고 선제공격을 할 수 있는 권리다. 필리핀 남부 민다나오에 근거지를 둔 IS 추종세력과 교전을 벌이고 있는 필리핀군을 미군이 동맹으로서 돕겠다는 것이다.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은 지난 5월 23일 민다나오 마라위시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IS 추종 반군인 ‘마우테’ 토벌작전을 벌이고 있다. 2개월 이상 이어진 교전으로 지금까지 600명 이상이 사망했다. 처음에 500명에 달했던 반군이 지금은 60여명으로 줄어든 것으로 알려졌지만 100여명의 민간인을 인질로 잡은 채 저항하고 있어 필리핀 정부군이 진압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또 다른 IS 연계 반군인 ‘아부사야프’도 최근 벌목꾼 7명을 납치해 참수하는 등 소요를 일으키고 있다. 현재 미군은 소규모 특수부대 병력만 투입하고 있다. 앞서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은 7일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참석차 방문한 마닐라에서 “최근 몇 대의 세스너(미국산 경비행기)와 드론을 제공해 필리핀군이 더 많은 정보를 파악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고 밝혔지만 공습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두테르테 대통령의 ‘마약과의 유혈전쟁’을 계기로 급속히 냉각됐던 미국과 필리핀 관계는 최근 회복 조짐이 보이고 있다. 지난해 가을 버락 오바마 전 미 대통령이 필리핀 경찰이 마약 용의자를 즉결 처형하는 것을 “인권 유린”이라고 비판하자 두테르테 대통령이 “지옥에나 가라”며 막말을 퍼붓기도 했다. 그러나 8일 틸러슨 장관을 만난 두테르테 대통령이 “나는 미국의 변변치 않은(humble) 친구”라며 자신을 낮추고, 틸러슨 장관도 당초 거론할 것으로 알려진 마약 소탕전의 인권 유린 문제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 등 양국 관계가 해빙 모드로 접어든 모습이다. 필리핀이 올해 아세안(동남아시아국가연합) 의장국으로 역내외 현안 논의를 주도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이 대북 공조와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등의 문제에서 필리핀의 협조가 필요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아세안 외무장관회의를 앞둔 지난 2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을 향해 ‘바보’, ‘미치광이’라고 부르며 “위험한 장난감(핵·미사일)을 갖고 놀고 있다”고 강하게 비난했다. 김민희 기자 haru@seoul.co.kr
  • 또 ‘군사옵션’ 거론… 美, 대북 강경론 재점화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강력한 대북 제재 결의에 만족하지 않고 ‘군사옵션’을 계속 거론하며 대북 압박의 강도를 점점 더 높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측근인 허버트 맥매스터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5일(현지시간) MSN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의 핵 능력을 제거하기 위한 ‘예방전쟁’을 포함한 모든 옵션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 국가안보 수장인 맥매스터 보좌관이 ‘예방전쟁’ 가능성을 언급한 것은 처음이다. 그만큼 북한의 두 차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시험이 미국의 급박한 위협으로 떠올랐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예방전쟁이란 적의 군사적 우위 시설, 즉 북한의 핵과 미사일 시설에 선제공격을 가함으로써 전면전을 막는 개념으로 ‘이라크 전쟁’이 이에 해당한다. 니키 헤일리 유엔 주재 미대사는 이날 유엔 안보리의 새로운 대북 제재안이 통과된 뒤 “트럼프 정부는 이제까지도 그랬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북한이 무모하고 무책임하게 행동했으며, 이런 행동은 멈춰야 한다고 말할 것”이라고 군사적 대응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했다. CNN 등에 따르면 헤일리 대사는 “우리는 북한 문제를 해결했다고 착각하지 않을 것이며 미국과 동맹국 보호를 위해 필요한 모든 조처를 할 준비가 됐다”고 경고했다. 워싱턴 한준규 특파원 hihi@seoul.co.kr
  • 맥매스터 美 NSC 보좌관 “예방전쟁 포함 모든 대북 옵션 검토”

    맥매스터 美 NSC 보좌관 “예방전쟁 포함 모든 대북 옵션 검토”

    허버트 맥매스터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5일(현지시간) 북한의 핵 능력을 제거하기 위한 ‘예방전쟁’(preventive war)을 포함한 모든 옵션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맥매스터 보좌관은 이날 미 MSN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의 북한에 대한 예방전쟁 가능성을 질문받고서는 “북한이 핵무기로 미국을 위협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전쟁, 예방전쟁을 말하느냐”고 확인한 뒤 “물론이다.우리는 그것을 위한 모든 옵션을 제공해야만 한다. 거기에는 군사옵션도 포함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 “트럼프 대통령은 그것에 대해 명확한 입장, 즉 북한이 미국을 위협할 수 있는 핵무기를 보유한다면 참을 수 없다고 말해왔다”며 “만약에 북한이 미국을 위협할 수 있는 핵무기들을 가진다면 대통령의 시각에서는 용납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예방전쟁이란 적이 군사적으로 우위에 있다고 판단될 때 선제공격을 가함으로써 전면전을 막는 개념의 전쟁으로 ‘이라크 전쟁’이 이에 해당된다. 미 국가안보 수장인 맥매스터 보좌관이 ‘예방전쟁’ 가능성을 언급한 것은 처음으로 미 본토타격이 가능한 2차례의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시험이 급박한 위협으로 떠올랐음을 의식한 언급으로 풀이된다. 앞서 미 공화당 중진인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이 지난 1일 방송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장거리 핵과 미사일 개발을 내버려두느니 북한과 전쟁을 하겠다고 내 얼굴에 대고 말했다”고 주장하면서 ‘예방전쟁’ 개념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다만 맥매스터 보좌관은 “북한에 대한 어떠한 공격도 한국 국민에게 엄청난 고통을 낳는 값비싼 전쟁을 초래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군사옵션 사용 여부는 “법적 정당성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그 위험성의 본질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 위험성이 당신의 국민과 중요한 관심사를 방어하기 위한 행위를 정당화하느냐”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맥매스터 보좌관은 북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사정권과 관련해선 “미국 어디까지 도달하는지에 대해서는 확인하지 않겠다”며 “그러나 샌프란시스코,피츠버그,워싱턴DC 등 어디에 떨어지든 간에 얼마나 큰 문제냐.그것은 중대한 위협”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악랄하고 잔인한 정권과 관련한 위험을 과장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뉴스위크는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해 북한이 핵미사일로 뉴욕이나 로스앤젤레스 같은 미국의 대도시를 공격할 경우 최소 10만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앞서 맥매스터 보좌관은 지난 6월 미 안보 싱크탱크인 ‘신미국안보센터’(CNAS) 토론회에 참석,트럼프 대통령이 군사옵션을 포함한 다양한 대북 옵션을 준비할 것을 지시했다고 전한 바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백악관 안보보좌관, ‘대북 예방전쟁’ 가능성에 “모든 옵션 검토”

    백악관 안보보좌관, ‘대북 예방전쟁’ 가능성에 “모든 옵션 검토”

    허버트 맥매스터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5일(현지시간) 북한의 핵 위협과 관련한 능력을 제거하기 위해 ‘예방전쟁’(preventive war)을 포함한 모든 옵션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예방전쟁’이란 침략해 올 가능성이 있는 인접국가 또는 가상 적국의 전쟁 수행능력이 자국에 비해서 우위에 설 위험이 있을 때 선제 공격으로 상대국의 침략을 막는 전쟁이다. 맥매스터 보좌관은 이날 미 MSN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의 핵도발 능력 제거 등을 위한 ‘예방전쟁’ 가능성을 질문받자 “물론이다. 우리는 그것을 위한 모든 옵션을 제공해야만 한다. 거기에는 군사옵션도 포함된다”고 답했다. 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이 미국을 위협할 수 있는 핵무기를 보유한다면 참을 수 없다고 말해왔다”며 “만약에 북한이 미국을 위협할 수 있는 핵무기들을 가진다면 대통령의 시각에서는 용납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한편 미 공화당 중진인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이 지난 1일 한 방송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장거리 핵과 미사일 개발을 내버려두드니 북한과 전쟁을 하겠다고 내 얼굴에 대고 말했다”고 주장하면서 ‘예방전쟁’ 개념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故 최진실 딸 최준희, 외할머니 폭언·폭행 주장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다”

    故 최진실 딸 최준희, 외할머니 폭언·폭행 주장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다”

    故 최진실의 딸 최준희 양이 외할머니인 정옥숙 씨로부터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5일 새벽 최준희 양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페이스북 주소를 게재하며 “긴 글이지만 한 번만 읽어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제발”이라는 글을 올렸다. 링크된 주소에는 충격적인 주장이 담겼다. 최준희의 외할머니이자, 고 최진실의 어머니인 정옥숙 씨가 그간 준희 양에게 폭행과 폭언을 일삼았다는 것. 해당 글에서 최준희는 초등학교 5학년 시절부터 우울증을 겪었으며 유서까지 작성했다고 고백했다. 이어 미국 유학을 포기하고 다시 돌아온 후 할머니의 끊이지 않는 폭언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밝혔다. 또한 이 글을 게재한 5일 새벽 또 다시 폭행이 있었음을 암시한 준희 양은 “지금도 집안이 다 박살났습니다. 경찰들도 찾아오고 정신이 없습니다. 이 사실을 알리지 못하고 죽는다면 억울할 것 같아 남긴다”며 글을 마무리 지었다. 실제로 최 양은 전날 저녁 외할머니와 다툼을 벌였고, 오빠 환희 군의 112신고로 경찰관이 출동해 조사를 벌인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준희 양과 외할머니가 저녁밥을 먹고 뒷정리하는 문제로 시비가 붙어 끝내 몸싸움까지 벌였던 것으로 파악됐다”면서 “이번 건은 서로 처벌을 원하지 않아 정식으로 사건 처리를 하지 않고 현장에서 종결했다”고 전했다. 상습 학대 주장에 대해서는 “준희 양이 학대를 당했다고 주장한 만큼 본인과 주변인을 통해 사실관계를 조사할 계획”이라며 “현재 준희 양은 친구 가족과 함께 있으며 아직 심리적으로 안정이 되지 않았다고 해서 본격적인 조사는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다음은 최준희 양 SNS 심경글 전문] 안녕하세요 여러분이 잘알고 계시는 고 최진실의 딸이자 최준희 입니다. 제가 갑작스레 이글을 적게된 이유는 잘살고있었을것만 같던 제 일생에 대하여 폭로하고자 고민 끝에 용기내어 한글자 한글자써내려가려합니다. 현재 저는 중학교2학년이고 아마 제 일생이 꼬이기 시작한건 엄마가 하늘나라로 간이후부터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굳이 따지고보자면 초등학교 4학년때부터 인것같습니다. 엄마가 떠난 이후로 불행하게 살줄 알았던 저는, 다른 아이들과 똑같이 그저 지극히 평범하게 학교 다녀와서 스폰지밥을 보고싶어하는 초등학생이었습니다. 저에게 남은 가족이라곤 외할머니, 오빠, 이모할머니, 친가네 이정도 있었습니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할 것은 외할머니랑 살지 않고 같이 살고있는 이모할머니는 누구인가에 대해 에스크를 올렸을때도 그렇고 많은 분들이 궁금해하셔서 알려드리자면 이모할머니는 피가 섞인 가족은 아니지만, 제가 태어나자마 키워주셨고 다른 부모님들 못지않게 자랑스럽게 키워주셨습니다 하지만 외할머니는 사실상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항상 오빠만 이뻐하고 키우기 바빴습니다. 그런 저에게 사랑을 주고 저를 위해 15년이라는 긴 시간을 오직 저 최준희를 위해 살아오신분입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얘기를 이어가자면 외할머니는 이모할머니를 어렸을 때부터 무척이나 싫어했습니다 이유는 아직까지도 잘 모르겠으나 어른들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어보면 이모할머니가 제 재산을 노리고 키운다는 이유로 싫어한다 하시더군요 그렇게 11년동안 함께 살붙이며 살아온 이모할머니를 갑자기 강제로 못 보게 한것이 바로 초등학교4학년때부터 입니다. 그땐 너무 어려서 5일 자면 오겠지 10일 자면 오겠지 했지만 끝내 어느날부터 이모할머니가 집으로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11살이라는 나이에 제일 사랑하던 가족과 이별을 경험했고 몇일뒤에 외할머니는 충격에 빠져있던 저에게 뻔뻔하게도 “너랑 그년이(이모할머니)랑 같이 있는꼴을 못보겠어서 내가 그냥 집에서 나가라고 했어 , 너그년이랑 있으면 니인성 다망쳐 ” 라며 너무나도 어렸던 저에게 더 큰충격을 주었습니다. 그이후로 초등학교 4학년때 처음으로 우울증에 걸려 안우는 날 없이 밤마다 외할머니에게 들키지않으려 베게에 얼굴을 파묻고 목놓아 엉엉 울었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울다가 잠들고 하루일과라면 우는것밖에 없었습니다 너무 보고싶은나머지 큰 곰인형에 이모할머니가 들고 가지 못한 옷과 안경, 향수 양말들을 입혀 꼬옥 껴안고 잤습니다 그러나 외할머니는 잔인하게도 그인형을 집어던지며 이모할머니의 물건들을 바닥에 던지며 소리를 질렀습니다 전 너무 무서웠고 이모할머니랑 제가 뭘 이렇게 잘못했나 싶었습니다 그리고 몇일뒤 저는 정신적으로 멘탈이 다 산산조각났고 용기내어 이모할머니에게 연락을해보려 외할머니 몰래 카카오톡으로 연락을했습니다 , 운좋게도 이모할머니에게 연락이 바로 닿았고 이모할머니는 그저 내가 너를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며 니가 빨리 성인이 되고 커야 우리가 만날수있어 라며 답장을 했고 전 더 눈물을 쏟을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어느날 전 거실에서 낮잠을 자고있었는데 제핸드폰이 없어져있었습니다, 몇분뒤 외할머니는저에게 불만가득한 표정을 하시며 “너 비밀번호(패턴) 해놓는다고 못풀줄알아? 이모할머니랑 연락하는거 다알아” 라고 말씀하시며 수시로 제 핸드폰 검사를 하셨고 조금 의심의 여지가 있었을땐 그저 말없이 가져가서 돌려주시질 않으셨습니다 몇주뒤 전 당시 성악부였고 성악부 담당 선생님께서 제사정을 알아 이모할머니께 연락을 드려서 이모할머니가 학교로 몰래 찾아와 달고나,산딸기 등 제가 어렸을때부터 즐겨 먹던 음식들을 챙겨왔습니다 전 먹는 내내 이모할머니 앞에서 차마 눈물을 보일수없어 웃음으로 대신했고 행복은 그저 거기까지였습니다 몇일후 이모할머니가 학교로 찾아오는 건 외할머니가 어떻게 아신건지는 모르겠지만 학교 선생님들에게 연락을 해 준희랑 이모할머니 못 만나게 하라고 시켰고 선생님들께서도 제사정을 다아시지만 어쩔 수 없이 못 만나게 하셨습니다. 그때 이후 처음으로 자살이라는 단어를 생각했고 그저 이모할머니가 너무 보고 싶었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이 되었고 우울증은 더욱 심해져만 갔습니다 할머니의 윽박과 폭력은 날이 갈수록 늘어만 갔고 학교에서 전 자연스럽게 친구들에게 더 의지를 했습니다. 그러다가 좋아하는 남자애가 생겨 그나마 버틸만했습니다 그러나 외할머니는 저에게 남자에 미쳤냐며 상처를 주셨고 어느 날은 크게 말다툼이 일어나 저를 옷걸이로 때리려고 하셔서 필사적으로 막았습니다. 근데 갑자기 제 손을 무셨고 그래서 지금까지도 제 오른쪽 손가락 사이에는 흉터가 남아 있습니다. 하루하루가 사는 게 아니었고 정말 지옥 같았습니다. 죽는 게 더 편할 것 같았고 정말 그냥 죽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새벽에 유서를 썼습니다. 그리고 자해방법은 있는 데로 다해보았습니다. 커터 칼로 손목도 그어 보았고 샤워기로 목도 매달아보고 하지만 살고 싶은 의지가 조금 있었는지 항상 실패했고 그때마다 흉터만 남고 결국 전 죽지 못 했습니다. 몇 일뒤 할머니께서 제 유서를 발견하시고 저에게 유서를 왜 썼냐며 소리를 지르셨습니다. 전 그때까지 만해도 “아 할머니가 그래도 나를 걱정했구나” 라고 생각을 했으나 결코 그런 의미가 아니었습니다. 유서에 외할머니를 쓰지 않고 오빠와 이모할머니에게만 썼다는 이유로 화를 내셨고 또 폭행을 하셨습니다. 더 심했던 것은 북유럽으로 저랑 오빠랑 외할머니랑 가족여행을 갔었을 때 갑자기 외할머니가 저를 방으로 부르시더니 저는 엄마가 잘못 낳았다고 하시고 옷걸이로 절 때리시고 목을 조르셨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황당스러운 것은 외할머니께서 니가 그때 말을 안 들어서 훈육을 한 것 뿐이야 라고 할 때마다 학교폭력 가해자가 그냥 장난으로 그런거에요 라고 해명하는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유서이야기를 이어가자면 외할머니께서 절 못 키우겠다 하시면서 미국으로 갈래 이모할머니한테 갈래라고 2가지 선택권을 주셨습니다. 허나 이모할머니한테 갈 경우 생활비를 10원도 주지 않겠다 말씀하셨고 마음만은 이모할머니에게 가고 싶었지만 미래를 생각하여 미국으로 가겠다고 결정 했습니다 그 후 제가 엄마의 공로상을 받았고 아무도 모르게 유학준비를 차근차근 했습니다 제가 기억하기론 당시 MBC 다큐 사랑을 찍고 있었습니다 방송에는 정말 노력하고 행복 해보이는 장면으로 연출 됐을지 몰라도 전 정말 괴로웠습니다. 미국으로 떠나기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진경이모와 신라호텔에서 외식을 했고 전 몰래 진경이모에게 가기 싫은 눈치를 주었고 진경이모는 제 편을 들어주며 안 가면 좋겠다는 쪽으로 제 편을 들어 주셨습니다 하지만 외할머니는 그이후로 진경이모 욕을 하며 걔네가 뭔데 참견하고 지랄이냐는 말을 자주했습니다. 다음은 영자이모가 김대오기자 등 여기저기 얘기를 했고 준희를 어떻게 도울까 생각하다가 친가네로 연락을 했고 친할아버지께서는 “조씨도 아니고 우리 손자 손녀 아니니까 신경 안 쓸껍니다” 라며 무시를 했습니다. 그리고 미국으로 떠났을때 전 아는 집에 맡겨지기로 했으나 거의 입양수준이었고 더 심각했던 건 제가 머물러야했던 집은 자세히 말할 순 없지만 불안정한 상태의 가정이었고 전 우리나라가 아니라서 더 겁이 났습니다. 결국 미국으로 떠났고 가서도 휴먼다큐 사랑을 촬영 했으며 거기서 다닐 학교도 보니깐 이상한 사이비종교로 이루어진 학교였습니다. 전 더 겁이 났고 내가 과연 잘 살 수 있을까라는 의심만 커져갔습니다. 이건 정말 아닌 것 같아서 할머니한테 간절히 부탁했습니다 제발 한국으로 돌아가자고 이건 좀 아닌 것 같다고 그런데 왠일로 할머니가 오랜 고민 끝에 다시 한국으로 가자해서 모든 계획은 다 파토가 났고 전 정말 다행이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불행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온 뒤 전 할머니의 원망이란 원망은 다 들었고, 전 다시 숭의초등학교를 다니려했으나 유학절차가 아닌 퇴학절차로 해서 다시 초등학교를 재학 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전 몇 달 동안 학교를 가지 않았고 할머니는 절 오빠네 국제학교로 같이 보내려 했습니다 그동안 빡세게 공부를 시켰고 전 정신적으로도 힘들었으나 국제학교에 합격되야 한다는 주위의 큰 부담 때문에 더욱 힘들었습니다 하루하루가 힘들고 지치고 아플 무렵 할머니와 전쟁은 끝난 듯 했지만 다시 시작됐고 전 계속 공부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그리고 어느 일요일 아침에 전 토요일 저녁에 공부하느라 늦게 잤고 할머니는 교회 갈 준비를 하시며 화장을 하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자고 있는 저에게 자신의 아이라이너가 없어졌다며 저를 도둑으로 몰아갔습니다. 하필이면 제일 예민하고 피곤 했을 때 저를 도둑년이라 칭하며 넌 어렸을 때부터 도둑질만 했다면서 저에게 또 상처를 주었습니다 일단 여기까지 쓰겠습니다. 지금 2017년 8월 5일 토요일 새벽 1시 55분인 지금도 집안이 다 박살났습니다 경찰들도 찾아오고 정신이 없습니다 지금 이 실을 알리지 못하고 죽는다면 너무 억울할것 같기에 일단 올리겠습니다 긴 얘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 좀 살려주세요. 사진=최준희 인스타그램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사설] ‘코리아 패싱’ 운운, 국격 낮춰 뭘 얻자는 건가

    지난 일주일 문재인 대통령의 휴가와 맞물려 국내 정치권을 시끄럽게 했던 말이 ‘코리아 패싱’(korea passing)이다.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4형 2차 시험 발사 직후 대통령이 주변국과 소통을 하지 않고, 휴가에 들어가서도 트럼프 대통령과 전화 한 통 하지 않는다면서 야당이 들고 나선 게 코리아 패싱이다. 북한 핵·미사일을 비롯한 한반도 현안의 당사자인 한국을 제쳐 놓고 미국과 중국, 북한이 직거래를 한다, 혹은 ‘한국 건너뛰기’, ‘한국 무시’를 한다는 게 코리아 패싱이라고 한다. 즉 우리의 문제를 푸는 데 우리 의사와 관계없이 해법이 제시되고 해결되는 현상을 뜻할 것이다. 과연 이런 일이 실제로 2017년 여름 한반도에서 일어나고 있는지 코리아 패싱을 운운하는 이들에게 묻고 싶다. 코리아 패싱은 대선 정국 때 수차례 등장했다. 북한의 6차 핵실험 임박설, 사드 배치를 둘러싼 대선 후보 간 공방이 커지면서 우리 뜻에 반해 미국이 북한을 타격한다는 선제공격설이 나돌았다. 코리아 패싱론이 과도하게 부풀려져 한반도 ‘4월 위기설’을 낳고, 전가의 보도처럼 ‘안보는 보수 대통령’이란 시대착오적인 북풍에 편승해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가 자주 썼던 메뉴였다. 이번에는 헨리 키신저 미 전 국무장관의 발언이 전해지면서 코리아 패싱론이 확산됐다. 중국이 북한 붕괴에 협조하고 미국은 주한 미군을 철수할 수 있다는 키신저의 미·중 거래 아이디어가 단초였다. 한국당이 재빠르게 올라탔다. 한국당은 그제 “미·중이 강대국 논리에 따라 한국을 배제하고 한반도 문제를 결정하는 데 반대한다”고 주장했다. 한국당은 미국이 베트남전 때 남베트남 몰래 북베트남과 협상하고 미군을 철수한 사례를 들고 있다. 하지만 베트남전 말기 북베트남의 승리가 확정적인 상황에서 미국이 소모적인 전쟁을 끝내려고 했던 당시 상황을 지금의 한반도에 결부시키는 것은 비약이다. 오죽하면 마크 내퍼 주한 미국 대사 대리가 한국당 의원들에게 “한?미 동맹은 튼튼하며 코피아 패싱은 없다”고 강조했을까 싶다. 코리아 패싱은 수년 전 일본이 한·미·일 3각 동맹에 비협조적인 한국을 빗대 미·일·호주 동맹을 내세웠던 개념이기도 하다. 11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한국의 위상과는 안 맞는다. 스스로 국격을 낮추면서 우물 안 정치 공세를 벌이는 모습을 미·중·일·러 주변국들은 어떻게 보고 있을까. 정치권은 제 얼굴에 침 뱉기 격인 코리아 패싱론으로 무엇을 얻으려는 것인지 잘 생각해 봤으면 한다.
  • [씨줄날줄] 위르겐 힌츠페터/이순녀 논설위원

    [씨줄날줄] 위르겐 힌츠페터/이순녀 논설위원

    지난 2일 개봉한 영화 ‘택시 운전사’가 흥행하면서 영화 속 외신 기자의 실제 모델인 위르겐 힌츠페터(1937~2016)가 재조명되고 있다. 영화는 1980년 5월 19일 계엄령하의 광주에 잠입해 군부 독재가 저지른 참혹한 살상 현장을 카메라에 생생히 담아 처음으로 세상에 알린 그의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당시 독일 제1공영방송 ARD-NDR 동아시아 특파원으로 도쿄에 주재하던 힌츠페터는 녹음을 담당하는 동료 기자와 함께 서울에서 택시를 타고 광주로 향했다. 광주로 가는 길목이 모두 차단된 상태에서 택시 기사는 기지를 발휘해 샛길을 찾아 이들을 목적지까지 데려다줬다. 21일 광주에서 빠져나온 힌츠페터는 필름을 과자 상자에 담아 도쿄로 돌아왔다. 이튿날 독일에서 영상이 방송되자 큰 파문이 일었고, 이후 CBS 등 다른 외신들도 광주 취재에 나섰다. 영화에는 나오지 않지만 그는 23일 다시 광주로 돌아와 계엄군이 철수하고, 시민 자치가 된 해방 광주의 모습을 촬영했다. 그해 9월 독일에서 ‘기로에 선 한국’이란 제목으로 방영된 다큐멘터리는 1980년대 중반 ‘광주민중항쟁의 진실’이라는 이름으로 대학가 등지에서 상영되며 1987년 민주화운동의 기폭제가 됐다. 의대에 다니다 1963년 카메라기자로 입사한 힌츠페터는 1967년 홍콩 지부로 발령받아 베트남 전쟁 등을 취재했고, 1973년부터 1989년까지 동아시아 특파원으로 활약했다. 1986년 11월 광화문 시위 취재 중 사복경찰에 맞아 중상을 입기도 했다. 1970~80년대 한국의 안타까운 상황을 가까이서 지켜봤기 때문일까. 한국에 대한 그의 애정은 남달랐다. 2004년 심장병으로 쓰러졌을 때 가족에게 “광주 망월동 묘지에 묻히고 싶다. 몸이 못 가면 사진과 위패라도 광주에 보내 달라”고 했다. 건강을 되찾아 2005년 5·18 2주년 때 광주를 방문했을 당시 5·18기념재단에 직접 손톱과 머리카락을 맡기기까지 했다. 지난해 1월 25일 그가 세상을 떠난 뒤 이 유품은 망월동 5·18 옛묘역에 안치됐다. 힌츠페터는 광주까지 태워 준 택시 기사를 마지막 순간까지 그리워했다. 그가 2003년 송건호언론상 수상 소감에서 “1980년 5월 나를 안내해 준 용감한 택시 기사에게 감사한다”고 말한 게 영화의 모티브가 됐다. 영화 엔딩 크레디트에는 제작진이 생전에 인터뷰한 힌츠페터의 모습이 나온다. “당신을 꼭 한 번 만나고 싶다”고 말하는 힌츠페터의 떨리는 목소리가 큰 울림을 안겨 준다. 끝내 택시 기사를 만나지도, 영화의 완성을 보지도 못한 그를 대신해 부인이 오는 8일 방한한다.
  • 北, “북·러·이란 제재법, 우리에겐 안 통해”

    北, “북·러·이란 제재법, 우리에겐 안 통해”

    북한은 미국의 ‘북한·러시아·이란 제재 패키지법’이 발효된 것과 관련, 미국의 제재가 자신들에게는 절대로 통하지 않는다고 자신했다.외무성 대변인은 3일 조선중앙통신사 기자와의 문답에서 “미국의 제재 소동이 다른 나라들에는 통하겠는지 모르겠으나 우리에게는 절대로 통할 수 없다”고 밝혔다고 조선중앙통신이 4일 보도했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한과 러시아, 이란을 한꺼번에 제재하는 패키지 법안에 서명한 이후 북한이 처음으로 내놓은 공식 반응이다. 외무성 대변인은 “미국의 반공화국 제재법 조작은 우리의 다발적이며 연발적인 핵 무력 고도화 조치에 질겁한 자들의 단말마적 발악에 불과하다”라며 “걸핏하면 주권국가들에 대한 제재법을 조작해내고 제재 몽둥이를 휘둘러대는 미국의 책동은 국제법적으로도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깡패 행위”라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미국의 단독 제재를 강력히 규탄·배격하며 세계 모든 나라들 역시 미국의 불법·무법의 강도적 행위에 대해 심사숙고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변인은 “미국의 제재 책동은 우리 군대와 인민의 정신력과 자력자강의 무궁무진한 힘을 배가시키고 우리의 국방력이 더욱 강화되는 결과만을 가져왔다”라며 “우리를 상대로 한 미국의 전쟁 나발이나 극단적인 제재 위협은 우리를 더욱 각성·분발시키고 핵무기 보유 명분만 더해주고 있다”고 강조했다. 앞서 미국 상·하원은 북한의 원유 수입 차단 등 전방위 대북 제재안을 담은 북한·러시아·이란 제재 패키지법을 통과시켰고, 트럼프 대통령이 2일(현지시간) 법안에 서명하면서 공식 발효됐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사설] 위험한 트럼프 ‘전쟁론’, 대화가 답이다

    북한의 ‘화성14’형 미사일 2차 시험발사 이후 미국이 화전 양면 카드를 던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전쟁 불사’ 발언이 나온 직후 렉스 틸러슨 미 국무부 장관은 북한의 정권 교체와 체제 붕괴를 추구하지 않으며 38선 이북으로 군대를 보내지도 않겠다는 점도 강조했다. 미국 조야에서 불거지는 ‘북한 정권 교체론’ 등이 불필요한 오해를 일으키자 이를 진화하는 동시에 ‘압박과 대화’라는 기존의 대북 정책을 재확인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공화당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이 전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다. 그레이엄 상원의원은 최근 NBC방송 인터뷰에서 “‘전쟁이 나더라도 거기(한반도)서 나고, 수천 명이 죽더라도 거기서 죽는 것이지 여기서 죽는 것이 아니다’라고 내 얼굴에 대고 말했다”고 밝혔다. 북한의 도발을 결코 허용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 표현으로도 볼 수 있지만 미국 내 매파(강경론자)의 속내를 엿볼 수 있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하더라도 그 피해가 미 본토에 미치지 않기 때문에 군사적 대응 카드를 언제든지 쓸 수 있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정작 피해를 봐야 하는 동맹국 안위보다 미국의 국익을 최우선하겠다는 참으로 위험한 발상이다. 한반도에서의 군사 옵션은 곧 전쟁과 동의어다. 1994년 당시 클린턴 행정부가 영변 핵시설 폭격을 상정한 시뮬레이션 결과 남북한과 미군을 포함해 수십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할 것이란 예측이 나왔다. 엄청난 인명 피해는 물론 글로벌 시대 한국 경제가 받을 피해는 이루 말할 수조차 없다. 미국의 유력 언론들이 군사 대응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외교적 해법을 촉구하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워싱턴포스트(WP)나 CNN 등은 대북 무력 대응은 무고한 시민을 비롯한 수많은 인명 피해를 낳을 수 있으며 미국의 더 많은 비용과 책임·부담을 지우는 일이라고 경고했다. 대북 압박을 강화하더라도 최종적으로 북·미 대화를 통한 외교적 해법을 지지했다. 미국 언론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지난 6월 말 한·미 정상은 북핵·미사일 문제 해결을 위한 선제타격 등 군사적 옵션을 배제하고 대화를 통한 해법에 합의했다. 트럼프의 전쟁론이 미국의 대북 정책으로 채택되기는 어렵다는 의미다. 트럼프 대통령이 어제 북·러·이란 제재 패키지법에 서명하면서 원유 금수 등 강력한 대북 제재안이 발효됐다. 이달 하순엔 을지프리덤가디언(UFG) 한?미 합동군사연습이 시작된다. 한반도가 또 긴장 국면에 접어들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일부 미국 매파들의 주장을 침소봉대할 필요는 없지만 외교 당국은 엇갈린 대북 메시지를 내보내고 있는 트럼프 행정부 내 움직임을 예의 주시해야 한다. 북한 도발에 경각심을 잊지 않는 것은 필요하지만 왜곡된 메시지로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키고 국내외 투자 심리를 위축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 위안부 눈물·땀 밴 옷, 후손 손길로 되살아나다

    위안부 눈물·땀 밴 옷, 후손 손길로 되살아나다

    일본 나라현 야나기모토 해군비행장 내 위안소에서 발견된 의복 2점이 국가기록원에서 보존 처리돼 2일 부산 남구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으로 옮겨졌다. 일본 위안소에서 발견된 옷은 상의 2점으로, 작업복 1점과 일본식 속옷 1점이다.위안부들이 입었던 옷은 2007년 김문길(당시 부산외대 일본어학과 교수) 한일문화연구소 소장이 수습해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에 2016년 기증한 것이다. 옷이 발견된 곳은 태평양전쟁 말기인 1944년 9월 건설된 구야마토해군항공대 야마토기지(旧大和海軍航空隊 大和基地)다. 작업복의 재질은 면으로 옷 안쪽에는 당시 검정인이 ‘1942, 오사카지창’으로 새겨져 있다. 제작 규격과 검정인은 일본 육군피복청에서 제작·배포한 일본정부간행물 육군피복품사양집 부록에 실린 작업복(1종)과 도안 및 표기법이 일치했다. 일본식 속옷의 몸통 재질은 면, 깃에는 레이온을 썼다. 길이와 겨드랑이 구멍, 전체적인 패턴, 색을 입히지 않은 천 등으로 보아 일본식 짧은 속옷의 일종인 ‘한주반’(半襦袢)으로 추정된다. 한주반은 기모노의 안에 입는, 몸길이가 긴 나가주반(長襦袢)을 간략화해 짧게 입는 속옷이다. 국가기록원은 당시 시대상을 알 수 있도록 최소한으로 보존 처리를 해 달라는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의 요구에 따라 오염 및 먼지, 구김, 올 풀림 등으로 훼손된 의복에 보존 처리를 했다. 건·습식 클리닝을 통한 얼룩 세척, 주름 제거, 올 풀림 방지 등 제한된 범위의 보존 처리를 지난 2월부터 5개월에 걸쳐 끝냈다.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은 보존 처리가 끝난 위안소 수습 의복을 세계위안부의 날인 8월 14일과 광복절 등을 기념한 관련 전시에 적극적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김 소장은 야나기모토 해군비행장의 위안소뿐 아니라 조세이 해저 탄광에서도 자료를 발굴했다. 조세이 탄광에서 해저 갱도 수몰 사고가 발생해 많은 조선인이 사망했지만 제대로 유골 수습이 이뤄지지 못했다고 한다. 안전모, 수통 등 탄광에서는 광부들이 사용하던 도구를 발견했고 위안소에서는 옷뿐 아니라 대바구니, 도시락 등이 수습됐다. 특히 김 소장은 ‘돌격일번’(突擊一番)이란 문구가 포장 봉투에 인쇄된 복제 삿쿠(콘돔)도 일본 지인으로부터 얻어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에 기증했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압도한 무대 아쉬운 뒷심

    압도한 무대 아쉬운 뒷심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역사상 가장 강한 지도자의 자리에 오른 위대한 영웅. 가난한 자도 권력을 가질 수 있는 나라를 만들자고 앞장섰지만 결국 권력에 눈이 먼 세속적인 인간. 평생 한 여자에 대한 사랑을 잊지 못한 순정의 남자. 이렇듯 다양한 얼굴을 지닌 남자의 삶이란 얼마나 극적이었을지. 지금까지 역사의 아이콘으로 사람들 입에 불려나오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파란만장한 인생이 무대 위에 올랐다.뮤지컬 ‘나폴레옹’은 전쟁으로 혼란스러웠던 18세기 유럽에서 툴롱 전투, 이집트 원정, 마렝고 전투를 승리로 이끌며 스스로 프랑스 황제가 된 나폴레옹의 인생을 그린다. 900여편의 드라마, 영화, 뮤지컬을 집필한 작가 앤드루 새비스턴과 미 브로드웨이와 할리우드에서 활동한 작곡가 티머시 윌리엄스가 힘을 모은 작품이다. 1994년 캐나다를 시작으로 영국 웨스트엔드, 독일에서 공연되었으며 아시아 최초로 국내 무대에 올랐다. 제작비 60억원이 투입된 대작답게 화려한 배우진을 비롯해 나폴레옹 시대의 역사적 고증을 통해 제작한 무대와 의상, 오케스트라의 웅장한 음악, 앙상블들의 칼군무 등이 버무려져 3시간 내내 관객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한다. 극은 나폴레옹의 조력가였던 정치가 탈레랑의 시선에서, 뛰어난 리더십을 펼친 전략가와 혁명이 낳은 폭군이라는 논쟁적인 평가를 받는 한 남자의 복잡다단한 면을 고르게 풀어낸다. 1막에서는 코르시카 작은 섬의 하급 장교 출신인 나폴레옹이 신분 차별과 열등감을 딛고 절대왕정을 무너뜨린 프랑스 시민 혁명의 정신을 유럽에 전파하고자 고군분투한 모습을 들여다본다. 또 ‘영원한 연인’으로 불린 조세핀과 불같은 사랑에 빠지는 모습과 탈레랑의 도움을 받아 황제에 오르는 장면까지 숨가쁘게 진행된다. 특히 1막의 대미를 장식하는 대관식 장면에서는 나폴레옹을 찬미하는 작품을 여러 점 남긴 프랑스 고전주의 화가 다비드의 그림을 무대 위에 그대로 재현했다. 역사적인 인물을 다룬 작품이다 보니 대사를 통한 배경 설명이 제법 많은 편이지만 탈레랑의 보좌관인 푸셰와 가라우 등 조연들의 재치 있는 입담과 맛깔나는 감초 연기가 작품에 쉴 틈을 마련한다. 2막에서는 잇따른 승리에 도취한 나폴레옹이 러시아, 영국을 정복하는 데 실패한 뒤 점차 몰락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1막에 비해 극 전개가 어수선해 결론까지 나아가는 데 힘이 떨어지는 것이 아쉽다. 그 탓에 나폴레옹이 섬에 유배됐을 당시 심신이 미약해진 상태로 조세핀을 그리워할 때의 처절함이나 유배지를 탈출해 전장의 선봉에 선 그가 병사들을 독려하는 모습에서의 강인한 의지가 절실하게 와닿지 않는다. 하지만 무대를 장악한 배우들의 안정적인 연기와 가창력이 작품의 결을 살린다. 나폴레옹은 2년 만에 뮤지컬 무대로 복귀한 임태경을 비롯해 한지상, 마이클 리가 연기한다. 서로 다른 매력 덕분에 3인 3색의 나폴레옹을 감상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특히 임태경은 특유의 섬세한 보컬과 안정된 연기로 극의 중심을 잡으며 관객들을 몰입시켰다. 조세핀을 맡은 뮤지컬 디바 정선아와 탈레랑을 맡은 정상윤의 시원한 가창력 역시 돋보였다. 10월 22일까지. 서울 송파구 샤롯데씨어터. 6만~14만원. 1577-3363.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두테르테 “김정은 바보·개XX” 맹비난

    두테르테 “김정은 바보·개XX” 맹비난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을 향해 “바보(fool)”, “개XX(son of a bitch)”으로 부르며 강하게 비판했다.2일 AFP통신 등에 따르면 두테르테 대통령은 이날 전국에 방송된 TV 연설에서 “김정은은 바보”라며 “위험한 장난감을 갖고 놀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위험한 장난감’이란 북한이 개발 중인 핵·미사일 프로그램을 가리키는 것으로 풀이된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또 “그 통통하고 친절해 보이는 얼굴에 놀아나서는 안 된다”며 “그가 실수하면 극동은 불모지가 될 것이다. 이 핵전쟁을 멈춰야만 한다‘고 말했다. 이어 핵전쟁이 현실화한다면 토양과 자원을 고갈시키고, 필리핀에도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고 덧붙였다. 두테르테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은 오는 6∼8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리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을 앞두고 나온 것이다. 필리핀은 올해 아세안 의장국으로, 이번 ARF 행사에는 남북한을 비롯해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27개국의 외교수장들이 한자리에 모인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지난 4월에도 미국에 “세상을 끝장내려고 하는” 김정은 위원장의 손에 놀아나서는 안 된다며 북한을 다루는 데 자제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위안부들이 입었던 옷이 되살아나다.

    위안부들이 입었던 옷이 되살아나다.

    일본 나라현 야나기모토 해군비행장 내 위안소에서 발견된 의복 2점이 국가기록원에서 보존 처리돼 2일 부산 남구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으로 옮겨졌다. 일본 위안소에서 발견된 옷은 상의 2점으로, 작업복 1점과 일본식 속옷 1점이다.위안부들이 입었던 옷은 지난 2007년 김문길(당시 부산외국어대학교 일본어학과 교수) 한일문화연구소 소장이 수습해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에 2016년 기증한 것이다. 옷이 발견된 곳은 태평양전쟁 말기인 1944년 9월 건설된 구야마토해군항공대 야마토기지(?大和海軍航空隊 大和基地)다. 작업복의 재질은 면으로 옷 안쪽에는 당시 검정인이 ‘1942, 오사카지창’으로 새겨져 있다. 제작 규격과 검정인은 일본 육군피복청에서 제작·배포한 일본정부간행물 육군피복품사양집 부록에 실린 작업복(1종)과 도안 및 표기법이 일치했다. 일본식 속옷의 몸통 재질은 면, 깃은 레이온이 사용됐다. 길이와 겨드랑이 구멍, 전체적인 패턴, 색을 입히지 않은 천 등으로 보아 일본식 짧은 속옷의 일종인 ‘한쥬반(半??)’으로 추정된다. 한쥬반은 기모노의 안에 입는, 몸길이가 긴 나가쥬반(長??)을 간략화 하여 짧게 입는 속옷이다. 국가기록원은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의 당시 시대상을 알 수 있도록 최소한으로 보존처리를 해달라는 요구에 따라 오염 및 먼지, 구김, 올풀림 등으로 훼손된 의복에 보존처리를 했다. 건·습식 클리닝을 통한 얼룩 세척, 주름제거, 올풀림 방지 등 제한된 범위의 보존처리를 지난 2월부터 5개월에 걸쳐 끝냈다.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은 보존처리가 완료된 위안소 수습 의복을 세계위안부의 날인 8월 14일과 광복절 등을 기념한 관련 전시에 적극적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김 한일문화연구소 소장은 야나기모토 해군비행장의 위안소뿐 아니라 조세이 해저 탄광에서도 자료를 발굴했다. 조세이 탄광은 해저 갱도 수몰사고가 발생해 많은 조선인이 사망했지만 제대로 유골 수습이 이뤄지지 못했다고 한다. 안전모, 수통 등 탄광에서는 광부들이 사용하던 도구를 발견했고 위안소에서는 옷뿐 아니라 대바구니, 도시락 등이 수습됐다. 특히 김 소장은 ‘돌격 일번(突擊一番)’이란 문구가 포장 봉투에 인쇄된 복제 삿쿠(콘돔)도 일본 지인으로부터 얻어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에 기증했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단독] 강제이주 80년 세월 흘러도… ‘카레이스키’ 통한의 삶 계속된다

    [단독] 강제이주 80년 세월 흘러도… ‘카레이스키’ 통한의 삶 계속된다

    올해는 고려인의 중앙아시아 강제이주 80주년을 맞는 해다. 흔히 카레이스키라고 불리는 고려인은 1860년대부터 러시아 연해주지역에 정착해 살아온 우리 민족이다. 그들은 기근과 망국으로 조국을 떠났어도 두만강 건너 지척에서 민족공동체를 영위하며 살았다. 1937년 8월 21일 이들에게 청천벽력 같은 날벼락이 떨어졌다. 일제와 첨예하게 대립해 온 소련이 고려인에게 일제의 간첩이라는 누명을 씌워 “원동(遠東·극동)을 떠나라”는 추방령을 내린 것이다. 설사 고려인 사회에 소수의 간첩이 있었다 한들 주민 모두를 적성(敵性)민족으로 몰아 일시에 추방한 것은 가혹한 민족탄압이었다. 그전까지 조국과 인접해 살며 이산의 한을 달래던 고려인들은 강제이주로 말미암아 20세기 디아스포라로 전락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유라시아 대륙을 전전하는 유랑민 신세가 되었다.●지울 수 없는 상처 안고 살아가는 그들 강제이주로 인하여 얼마나 많은 고려인이 희생되었는지는 아직도 정확하게 규명되지 않았다. 숙청, 기근, 질병 등으로 인한 사망자가 9500명에서 2만 5000명에 이른다는 다양한 주장이 제기되고 있을 뿐이다. 고려인 강제이주는 해외 한인이 겪은 아픔 가운데 가장 큰 상처이자 결코 지울 수 없는 통한의 역사다. 그러나 강제이주가 고려인의 중앙아시아 정주(定住)로 이어짐으로써 한민족의 생활권역을 획기적으로 넓힌 계기가 되었다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강제이주에 앞서 스탈린 정권은 고려인 지도층 2500명을 체포해 고려인 사회를 미증유의 집단적 공포로 몰아넣었다. 그리고 그 공포가 절정에 달했을 때 강제이주를 강행했다. 투옥된 사람들은 “일제의 사주를 받아 연해주를 소련에서 떼어내려는 폭동을 음모했다”는 날조된 혐의로 대부분 처형되었다. 그들이 간첩이라고 증명된 경우는 거의 없다. 스탈린 정권은 간첩을 처형한 게 아니라 고려인의 민족적 저항을 제거한 것이었다.●소련의 잔인한 대국주의 정책이 낳은 슬픔 강제이주는 전 과정이 강압적이고 위협적인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다. 고려인들은 2~3일 전, 또는 1주일 전에 겨우 이동준비를 연락받았다. 최종 행선지가 통보되지 않아 다만 멀리 떠난다는 것과 출발 일자밖에 알지 못했다. 당국은 단 1명의 이탈도 허용치 않았다. 병원에 입원한 사람은 퇴원시켜서, 복무 중인 군인은 제대시켜서 열차에 오르게 했다. 이주민들은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창문 없는 컴컴한 화물열차에 갇혀 지냈다. 먼 길에 지쳐 모두가 앓았다. 질병에 약한 어린이와 노인들이 중도에 많이 숨졌다. 열차가 서면 이름도 모르는 철길 근처에 시신을 서둘러 묻으며 통곡하는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기차여행 3~4주 만에 그들이 도착한 곳은 초원과 바람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였다. 1937년 10월 말까지 이송이 완료된 고려인 수는 총 3만 6442가구 17만 1781명. 그중 9만 5256명이 카자흐스탄에, 7만 6525명이 우즈베키스탄에 각각 짐을 풀었다. 그 후 수송된 4700여명을 포함하면 강제이주된 고려인 수는 총 18만명에 이른다. 원동지역에는 더이상 고려인이 남아 있지 않았다. 고려인이 살던 444개 마을은 폐쇄되어 지도에서 영영 사라졌다. 강제이주는 1860년대 이래 고려인이 원동에서 온갖 역경을 딛고 쌓아 올린 모든 성과에 대한 전면적인 파괴행위이자 인종청소였다. 공산제국 소련의 안보와 국가이익 앞에 소수민족 고려인 사회는 철저히 망가졌다.●피맺힌 恨 가슴에 묻은 채 침묵의 삶 강제이주의 비극은 소련의 잔인한 대국주의 정책이 낳은 결과다. 하지만 주된 원인은 일·소의 적대적 대립에서 비롯되었다. 러·일전쟁 후 조선을 강점한 일제는 고려인까지 천황의 신민으로 간주해 부당한 간섭을 일삼았다. 일제는 정탐 활동에 고려인을 이용함으로써 소련의 고려인 불신과 안보불안을 부추겼다. 1937년 6월 아무르 강에서 관동군이 소련 군함을 격침시킨 데 이어 7월에는 루거우차오 사건을 계기로 중·일 전쟁이 발발했다. 우수리 지방에서 일·소 간 군사충돌이 빈발하자 고려인에 대한 스탈린의 적대적 경계심은 더욱 커갔다. 급기야 스탈린은 고려인을 일본 간첩으로 몰아 강제이주라는 전대미문의 폭거를 자행했다. 그런 의미에서 고려인 강제이주의 비극은 일본에 상당한 책임이 있다. 일·소 대립의 틈바귀에서 찢기고 짓밟힌 것이 나라 없는 백성 고려인이었다. 강제이주로 70년 정든 땅에서 쫓겨난 고려인들은 소련이 개혁·개방될 때까지 그 피맺히고 억울한 사연을 어디에도 호소하지 못하고 가슴속 깊이 묻은 채 침묵의 삶을 살았다. 소련공산당이 “강제이주가 반인도적이고 불법적인 범죄행위였다”고 시인한 것은 반세기가 지난 1989년이다. 그 후 러시아 정부는 “강제이주는 폭력적인 집단학살이었다”고 그 죄과를 분명히 하며 고려인에게 원래 거주지인 연해주로 귀환할 권리를 인정했다. 고려인들은 수십년간 그들을 짓눌렀던 적성민족의 불명예에서 벗어나 비로소 고향인 원동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낯선 땅에서 80년… 93%는 귀향하지 않았다 강제이주 당시 18만명이었던 고려인 인구는 지금 45만명(사할린 고려인 제외)으로 늘어나, 유라시아 대륙 곳곳에 똬리를 틀고 살고 있다. 세대마다 이주를 거듭해 온 ‘유랑민’ 고려인은 유라시아 대륙의 대표적인 분산민족이다. 대륙의 어디든 고려인이 없는 곳이 없지만 그렇다고 민족자치를 거론할 만큼 다수파로 밀집해 사는 곳도 없다. 고려인이 가장 많이 모여 사는 곳은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슈켄트 일대다. 이곳의 고려인 수는 약 13만명에 달한다. 한반도와 가까운 원동지구에 거주하는 고려인은 연해주의 1만 8800명을 비롯해 모두 3만 2000명(2010년 러시아 인구센서스)에 불과하다. 유라시아 고려인 45만명 중 겨우 7%만 원동으로 귀환해 살고 있다. 나머지 93%는 고향으로 돌아오지 않고 ‘타향살이’다. 지금은 하산군으로 이름이 바뀐 남우수리 지방은 고려인의 발원지다. 3년 전 그곳에서 필자가 확인한 고려인 귀환자는 단 2가구였다. 강제이주 전 고려인 수만명이 밀집해 살던 곳이 지금은 고려인이라곤 발견하기조차 힘든 낯선 땅이 돼버렸다. 이곳의 중·러 국경지대는 경비가 삼엄하다. 출입통제구역이어서 사전 신고 없이는 접근조차 허용되지 않는다. 고향을 찾은 고려인도 마찬가지였다. 80년이란 긴 세월이 지났어도 강제이주는 여전히 살아 있었다. 김호준 역사저널리스트
  • 열받은 트럼프, 中에 통상압박 시사

    열받은 트럼프, 中에 통상압박 시사

    안보리 이르면 주초 긴급이사회도널드 트럼프(얼굴) 미국 대통령이 중국에 대해 대북 제재에 미온적이라며 또다시 강하게 비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9일(현지시간) 자신의 트위터에 “중국에 매우 실망하고 있다. 우리의 어리석은 과거 지도자들은 (중국이) 무역에서 한 해에 수천억 달러를 벌어들이도록 허락했다. 하지만…”이라고 밝혔다. 이어 올린 트윗에서는 “그들(중국)은 말만 할 뿐 우리를 위해 북한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우리는 더는 이런 상황이 지속하도록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썼다. 이는 지난 6월 ‘중국이 노력했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며 압박했던 것보다 비판의 수위를 훨씬 높인 것이다. 한편으로는 한 해 수천억 달러의 대미 무역흑자를 내고 있는 중국이 대북 제재에 동참하지 않는다면 본격적인 통상 압박에 나설 것이라는 경고로도 풀이된다. 워싱턴의 한 외교관은 “이번 북한의 미사일 도발은 미·중 간 무역전쟁의 신호탄이 될 가능성이 크다”면서 “미국은 중국산 철강의 덤핑 판정, 그리고 환율조작국 지정, 중국 기업 독자제재 등 다양한 중국 압박 카드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말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도 빠르면 이번 주초 긴급이사회를 열기로 하는 등 긴박하게 움직이고 있다. 하지만 지난 4일 화성14형 발사에 대응한 미국의 강력한 제재결의안에 대한 합의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러시아가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미사일을 ‘중장거리탄도미사일’(IRBM)이라고 주장하면서 안보리의 새 대북 제재에 반대 의사를 분명히 하고 있다. 러시아는 지난 27일 미 하원에 이어 상원을 통과한 북한·러시아·이란 패키지 제재안에도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한편 미 국방부는 북의 미사일 발사 이후 조지프 던퍼드 합참의장, 해리 해리스 태평양사령관 등이 이순진 합참의장과의 전화통화에서 처음으로 북한에 대한 군사적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워싱턴 한준규 특파원 hihi@seoul.co.kr
  • 美 상원, 北 제재법 가결…트럼프 ‘사인’만 남았다

    미국 상원이 27일(현지시간) ‘북한·러시아·이란 제재 패키지법’을 찬성 98표, 반대 2표로 가결했다. 법안은 28일 백악관으로 이송될 예정이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서명을 거쳐 법률로 확정된다. 이번 패키지법안은 북한의 정권 붕괴로 이어질 수 있는 ‘원유 수입 봉쇄’뿐 아니라 김정은 정권의 돈줄을 죄는 북한 노동자 고용 금지, 북한 선박과 유엔 대북제재를 거부하는 국가의 선박 운항 금지 등의 전방위적 대북 제재안을 담고 있다.다만, 미국의 독자제재 실효성은 ‘중국’에 달렸다. 북한의 최대 무역 파트너인 중국은 여전히 인도적인 차원에서 북한에 대한 원유 공급과 북한 노동자 고용을 허용해야 한다고 본다. 북한에서 소비되는 유류(연간 약 150만t)의 절반 가까이를 공급하는 중국이 적극 나서지 않으면 효과를 내기 쉽지 않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이날도 북한의 핵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관련 경고음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미 정부 고위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나 “우리는 이것(북한의 핵 프로그램 완성)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야 할 시점”이라면서 북한 핵 ICBM 개발의 임박을 시사했다. 마크 밀리 미 육군참모총장도 북한의 ICBM급 미사일 발사를 언급하면서 “비군사적 해법으로 북한 위기를 해결할 시간은 여전히 있지만, 얼마 남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해리 해리스 미 태평양사령관은 “북한의 ICBM은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를 위협하고 있다”면서 “북이 평화적으로 비핵화하는 게 바람직하지만 앞으로도 트럼프 대통령이 제시한 군사적인 선택지를 준비해 가겠다”고 말했다.미국의 안보 싱크탱크인 신미국안보센터(CNAS)는 ‘새 대북제재의 청사진’이란 보고서에서 “새롭고 더 강력한 대북제재 최고의 모델은 2015년 ‘이란 핵 합의’ 체결 이전에 미국이 이란에 가한 제재(세컨더리 보이콧)”라고 강조했다. 워싱턴 소식통은 “새 대북제재에 중국이 계속 반대하면 미·중 간 무역 전쟁이 시작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일본 정부도 독자 대북제재로 중국 기업 2개를 포함해 모두 5개 단체와 개인 9명을 자산동결 대상에 추가하는 등 대북제재의 고삐를 바짝 죘다.한편 국제사회의 제재로 김정은 정권의 자금줄이 차단되면서 북한 사이버 부대가 외국 금융사의 자금을 빼돌리는 해킹 기법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전했다. WSJ는 “북한이 제재로 핵·미사일 프로그램 개발 자금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상징적 단면”이라면서 “특히 현금자동인출기(ATM)에 악성코드를 심는 방식으로 한국 대형금융기관에 해킹 공격을 시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워싱턴 한준규 특파원 hihi@seoul.co.kr
  •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노동자 땀 서린 어제… 다문화 상징의 오늘… 디지털 노마드 내일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노동자 땀 서린 어제… 다문화 상징의 오늘… 디지털 노마드 내일

    서울신문이 서울시,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7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9회 ‘구로공단, 나비로 날다’가 지난 22일 서울 구로구와 금천구에 걸친 구로디지털단지와 가산디지털단지를 오가며 진행됐다. 투어단은 해설을 맡은 전혜경 서울도시문화지도사의 조곤조곤한 안내를 따라 숨이 턱턱 막히는 폭염을 뚫고 2시간 30분 동안 가리봉동 일대를 누볐다. 참가자들은 ‘산업역군’들의 터전이던 ‘가리봉 벌집골목’과 굴뚝이 남아 있는 공장, 마리오사거리(옛 구로동맹사거리)와 가산디지털단지 오거리(가리봉 오거리) 곳곳에서 50년 전 수출 한국의 맥박, 노동운동과 야학의 열기를 온몸으로 느끼면서 그때의 기억을 떠올렸다.가리봉동은 산업화시대 수출 한국의 제1 전선이었다가 디지털시대 벤처산업 밀집 지역으로, 글로벌시대 다문화의 상징 공간으로 가파르게 진화했다. 가리봉은 누구나 아는 곳이기는 하지만, 정체성이 딱 떠오르진 않는다. 역사와 행정 단위와 생활공간이 불명확한 천의 얼굴 같은 복합공간이기 때문이다. 국내 최초의 공업단지인 구로공단이라는 이름이 오히려 친근하다. 1970년대와 80년대를 통틀어 가장 역동적이던 산업화와 도시화, 노동운동의 요람이었다는 점은 분명하다. 구로공단은 한국 산업사회의 출발점이다. 가리봉은 이 모든 것의 중심이지만 정작 자신의 이름은 없다. 구로, 가산, 독산이라는 주변부의 이름 뒤에 숨어 있다. 또 한국수출산업단지, 한국산업단지공단, 서울디지털산업단지, 가산디지털단지, 구로디지털단지, G밸리로 변신을 거듭했다. 가산이란 가리봉동+독산동의 합성 지명이고, G밸리란 가리봉·구로·가산의 영문 첫 이니셜이다. 지하철 역명도 1호선은 독산역·가산디지털단지역·구로역, 2호선은 구로디지털단지역, 7호선은 남구로역이다. 가리봉이라는 이름은 어디에도 없다. 서울 최대의 인력시장이 서는 7호선 남구로역은 가리봉동으로 들어가는 옛 버스 종점 자리였고, 가산디지털단지역은 1968년 200만명의 인파가 몰렸던 제1회 한국무역박람회 때 생긴 가리봉역의 다른 이름이다.1967년 구로공단이었다가 2017년 G밸리가 된 가리봉동은 어떤 곳일까. 백제와 고구려, 신라가 번갈아 점령한 한강 지천 안양천 변의 대촌, 골말, 모아래 마을에서 조선시대 이후 경기 시흥군 동면 가리봉리일 때까지 시간은 천천히 흘렀다. 그러나 1963년 서울 영등포구로 편입되고, 1995년 구로구와 금천구로 분구되면서 지형이 급변했다. 경부선 철도와 남부순환도로는 지역을 분절했고 사람들을 타자화했다. 산업화시대 고향을 떠나 서울로 온 팔도의 젊은이들이 집결한 대표적 이촌향도(離村向都)의 공장 굴뚝이 불과 50년 만에 정보기술(IT)과 정보통신의 아파트형 공장으로 업종 전환했다. ‘IMF 외환위기’ 이후 노동자들이 떠난 빈자리는 중국동포와 외국인 노동자들의 초기 정착지로 변했다. 교통 여건이 좋고, 집값이 싼 가리봉은 서울에서 등록 외국인 비율이 34%로 가장 높다. 한국 속의 중국이다. 나비가 허물을 벗듯 현기증 나는 변화를 하고 있다. 1975년에는 서울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동네였다. 80년 초 200개가 넘는 섬유·의류·봉제, 전기·전자조립, 가발·잡화 등 노동집약적 제조업체에서 11만명의 근로자들이 철야와 잔업을 밥 먹듯 했다. 전성기에 유동 근로자 40만명, 주민 40만명을 자랑하는 서울의 5대 상권이었다. 기숙사와 자취생활을 하는 10대 후반, 20대 초반 여성 근로자들이 주고객인 가리봉오거리 가리봉시장 우마길은 명동에 비교될 정도로 인파로 넘쳐났다. 구인과 구직 행렬이 끊이지 않았고, 부동산 시세는 강남과 엇비슷했다. 가리봉오거리는 이 모든 것의 중심이었다. 공단로와 구로동길 그리고 남부순환로가 만나는 다섯 갈래의 길이다. 구로공단의 노동자들이 ‘가오리’라고 불렀던 생활과 휴식처였다. 주말과 수요일이면 고고장 7개가 해방구의 불야성을 이뤘다. 지금은 옌볜말이 표준어인 ‘옌볜거리’이거나 가리봉의 라스베이거스인 ‘가리베가스’라고 불리는 코리안드림의 잉태지다.1단지와 2단지를 잇는 공단로 양쪽으로 벌집, 벌통집, 닭장, 비둘기집, 토끼장이라고 불린 방 한 칸에 부엌이 달린 2평짜리 다가구주택이 줄을 지었다. 가리봉동에만 1779개(1982년 통계) 동이 몰려 있었는데 전체 벌집의 64%였다. 화장실 대변기는 65명당 1개에 불과했다. 그러나 향학열로 끓어올랐다. 밤이면 작업복을 벗고 교복으로 갈아입었다. 야학과 위장취업 대학생들의 의식화 교육, 노동조합 가입과 탄압이 이어졌다. 지금의 마리오아울렛 사거리는 1985년 한국전쟁 이후 최초의 정치적 요구를 앞세운 지역정치 파업인 구로동맹파업과 노학연대투쟁의 현장이다. 노동자들은 가리봉오거리를 오가며 “인간답게 살고 싶다”고 외쳤다. 우리가 기억하는 구로공단은 500년 소비도시 서울에서 유일한 생산기지였다. 서울로 올라온 젊은이들이 수출의 10%를 담당해 ‘한강의 기적’을 일궈 냈다. 구로공단의 핵심 가리봉동 50년은 대한민국이 창조한 신도시 ‘강남 서울’의 역사 반백년과 맥을 같이한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장 사진 김학영 연구위원 다음 일정 < 은평의 어제와 오늘 > 일시: 29일(토) 오후 7시 연신내역 3번 출구 신청(무료):서울시 서울미래유산(futureheritage.seoul.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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