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이란 전쟁
    2026-04-10
    검색기록 지우기
  • 남구청장
    2026-04-10
    검색기록 지우기
  • 협력관
    2026-04-10
    검색기록 지우기
  • 선거권
    2026-04-10
    검색기록 지우기
  • 물가 안정
    2026-04-10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1,277
  • <김규환 기자의 차이나 스코프> ‘파산 위기’에 내몰리는 중국 부동산개발 업체들

    <김규환 기자의 차이나 스코프> ‘파산 위기’에 내몰리는 중국 부동산개발 업체들

    중국 최대 부동산개발 업체 중 하나인 헝다(恒大)그룹이 채권시장에서 ‘투기등급’으로 떨어지는 굴욕을 당했다. 헝다그룹은 지난달 11일 신규 자금조달을 위해 모두 18억 달러(약 2조 300억원) 규모의 채권을 발행했다. 그런데 이중 2023년 만기가 돌아오는 5억 9000만 달러 규모의 채권 금리가 13.5%까지 치솟았다. 헝다그룹 창사 이후 가장 높은 금리다. 중국의 간판 부동산개발 업체의 채권이 투자부적격 등급이라는 ‘헐값’으로 거래되고 있는 것이다. 중국 부동산개발 업체들이 ‘파산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중국 금융당국의 ‘그림자금융’(Shadow Banking·비은행금융중개) 단속으로 자금조달에 극심한 애로를 겪으면서 다른 민간부문과 마찬가지로 현금 부족 사태에 시달리고 있다. 그림자금융이란 은행과 비슷한 기능을 하면서도 은행과 같은 엄격한 건전성 규제를 받지 않는 금융기관과 거래를 일컫는 ‘비은행금거래‘를 뜻한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 11일(현지시간) 중국 부동산개발 업체들의 채무 가운데 내년에 만기가 돌아오는 규모가 무려 965억 달러(약 79조 300억원)에 이른다며 이중 상당수 업체들이 디폴트(채무불이행) 상황에 놓여 있다고 보도했다. 글로벌 컨설팅업체 딜로직(Dealogic)에 따르면 내년 만기가 도래하는 부동산개발 업체들의 위안화 채무 규모는 3850억 위안(62조 6700억원)이고 이들이 해외에서 발행한 달러화 표시 채무 규모는 145억 달러(16조 3600억원)에 이른다. 더욱이 내년 1분기에 만기가 돌아오는 채무 규모도 181억 달러로 사상 최대치에 이를 것으로 보여 디폴트 공포가 ‘발등의 불’로 다가왔다. 중국 부동산 개발업체들의 부채총액 3550억 달러(400조 6000억원) 가운데 965억 달러 규모가 내년에 만기가 돌아오는 만큼 중국 경제가 ‘시한폭탄’을 끌어안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투자자들이 일부 채권에 대해 조기 상환을 요구하면 이들 부동산개발 업체들의 부담은 2배로 늘 수 있다고 블룸버그통신이 전했다. 부동산 시장에 디폴트가 현실화하면 중국 금융시스템에 상당한 충격파가 예상된다. 미·중 무역전쟁이 격화되면서 지난 3분기 성장률이 전년 동기 대비 6.5%로 주저앉는 등 중국 경제 상황이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저 수준으로 추락한 마당에 부동산개발 업체들의 도산 위기마저 뒤덮고 있기 때문이다. 알라 부세히리 BNP파리바자산운용 신흥시장 회사채 책임자는 “내년 걱정거리는 중국 부동산업계의 부채 문제”라고 단언했다. 중국 부동산은 중국 경제에서 성장의 한 축으로 지방정부 재정수입과 은행대출, 가계대출 등에서도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중국 경제가 고도성장을 지속하며 부동산 시장도 2000년대 이후 폭등세를 보이며 뜨겁게 달아올랐다. 중국에서 부자가 되는 가장 빠른 길은 집을 소유하는 것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베이징의 아파트 평균 가격은 2003년 1㎡당 4000 위안에서 이젠 6만 위안으로 15배나 수직 상승했다. 하지만 20년 가까이 지속된 중국의 ‘부동산 불패’ 신화가 흔들리고 있다. 중국 당국이 고질병인 과다한 국가채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림자금융에 대한 지속적인 단속으로 거래가 급격히 줄어들고 가격이 곤두박질치는 등 얼어붙고 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중국 내수 경기마저 꺾이면서 올해 9월 중국의 집값 상승률이 6개월 만에 처음으로 둔화되는 등 부동산 시장의 침체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내년 전망도 잿빛으로 가득찼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중국국제금융공사 애널리스트들은 내년 신규 주택 판매가 면적·금액 기준으로 모두 올해보다 10% 감소해 중국 주택시장이 5년 만에 처음으로 ‘후퇴의 해’를 맞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내년 신축 면적 역시 5∼10% 감소할 전망이다. 글로벌 신용평가사인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도 지난 7일 보고서를 통해 내년 중국 부동산 가격이 최고 5%까지 떨어질 수 있으며 주택시장 규모도 3∼7% 감소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크리스토퍼 리 S&P 기업 신용평가국장은 “현재 부동산 대기업이라 하더라도 달러화 자금조달 비용이 사상 최대 수준에 이른 상태이며 부동산 판매 전망도 약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통상적으로 9월이나 10월은 신규 주택 구입을 위한 거래가 활발하지만 올해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거래가 부진하자 일부 부동산 개발업자들은 최고 30%까지 가격을 할인하며 아파트를 내놓고 있다. 이에 제 값을 주고 산 기존 구매자들이 집단 항의에 나서는 등 분위기가 험악해지고 있다. 해마다 물가보다 몇 배씩 치솟기만 하는 아파트 가격에 익숙했던 중국 도시가구의 입장에서는 이 같은 가격 하락은 도저히 용납이 안 되는 것이다. 중국 도시근로자의 총 자산에서 부동산이 70%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 만큼 부동산 가격 급락은 중국사회 불안의 주요인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상황은 악화되고 있지만 중국 정부가 대책을 내놓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지난해 10월 공산당 19차 전국대표대회(당대회)에서 “집은 사람이 사는 곳이지 투기하는 곳이 아니다”며 주택 구매 규제 강화를 지시했다. 중국 당국은 이후 주택담보대출 조건 강화, 대출 금리 인상 등 30개가 넘는 조치를 시행해 왔다. 인민은행도 지난 9일 ‘2018년 3분기 통화정책이행 보고서’를 통해 “그림자금융과 다양한 금융 기관의 리스크를 관리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중국 경제가 침체 국면에 빠졌지만 과거처럼 정부가 나서서 부동산 경기를 살려 경기부양을 할 공산이 크지 않다는 얘기다. 부동산 경기가 급랭하다 보니 부동산 개발업체들이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ICE 뱅크오브아메리카 메릴린치(ICE BofAML) 지수에 따르면 올해 중국 고수익률 채권 발행업체들의 달러화 부채 금리는 11.2%로 2배 뛰었다. 올들어 부동산개발 업체들의 거절 당한 융자 규모만 1000억 위안에 이른다. 특히 3분기 이후 중국 내 신청한 융자를 대부분 거절당해 금리가 높은 해외 대출에 의존하고 있다. 푸리(富力)부동산이 대표적이다. 순부채 비율은 지난 3년 간 124.3%, 159.9%, 169.6%로 가파르게 증가해온 푸리부동산의 올해 상반기 순부채 비율은 187.5%로 급등했다. 이에 푸리부동산은 올 2월과 5월 각각 10억 위안 규모의 회사채 발행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최근에는 홍콩거래소에서 8억주의 신주를 발행해 100억 홍콩달러(약 1조 4000억원)를 추가 조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중국 부동산업계 최대의 업체들이 채권 발행을 위해 매우 높은 수익률을 제시해야 할 만큼 자금조달 환경이 악화된 것이다. 클레먼트 청 NN 인베스트먼트 파트너스 신용부문 선임 애널리스트는 “시장 심리가 바뀔 때까지 부동산개발업계의 자금조달 환경은 개선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때문에 부동산개발 업체들의 도산도 잇따르고 있다. 지난달까지 중훙(中弘)과 신광(新光), 우저우궈지(五洲國際), 상링(上陵) 등 6개 업체가 디폴트를 냈다. 그 규모만 107억 위안에 이른다. 리 기업신용평가국장은 “대규모 채권 만기가 돌아오는 상황에서 달러조달 비용이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고 소비심리도 악화됐다”며 “내년 중국 부동산개발 업체들의 부도가 증가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청 애널리스트도 “자금조달 비용이 계속 늘면 일부 부동산 개발업체들이 이런 상황에 휘말릴 것”이라며 “중국 역내에서 부도가 더 자주 일어난다”고 강조했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잔혹한 전쟁 성범죄 ‘침묵의 벽’ 허문 8주

    잔혹한 전쟁 성범죄 ‘침묵의 벽’ 허문 8주

    함락된 도시의 여자 : 1945년 봄의 기록/익명의 여성 지음/염정용 옮김/마티/344쪽/1만 8000원전쟁 중 민간인 여성들이 군인들에게 집단적으로 당하는 강간은 참혹한 아픔이다. 하지만 그 아픔은 대개 침묵의 형태로 감춰지기 일쑤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 여성들도 마찬가지였다. 전쟁을 일으키고 유대인 학살을 자행한 ‘가해자 독일’이란 이유로 독일 여성들의 아픔과 피해 들추기는 종전 후에도 줄곧 금기시됐었다. 이 책은 제2차 세계대전기 연합군, 특히 러시아군이 독일 여성들에게 가한 잔혹한 성범죄에 대한 ‘침묵의 벽’을 허무는 기록으로 눈길을 끈다. 전쟁 후반부, 러시아군의 베를린 입성 직전인 1945년 4월 20일부터 베를린 함락 이후인 6월22일까지 출판사 기자였던 30대 여성이 다락방에 숨어 매일 기록한 일기다. “어제까지만 해도 멀리서 우르렁거리던 소리가 오늘은 요란한 굉음으로 변했다. 우리는 사방에서 시시각각 조여 오는 포신들에 둘러싸여 지낸다.” 이렇게 시작해 8주간 지속된 일기에는 죽음과 굶주림, 절망, 그리고 생존 사이에 놓인 고통의 흔적이 역력하다. 특히 자신과 주변 여성들에게 저질러진 강간이 거의 매일 등장한다. “지금 내가 이토록 비참한 건 그 짓(강간) 때문이 아니다. 의지에 반해 몸이 능욕당하고 있는데도 살기 위해 묵살하고 있기 때문이다.” 생존을 위해 강간을 받아들이는 비참함은 비슷한 처지의 여성들이 나누는 슬픈 대화로 절절하다. 책은 살아남은 여자들끼리 묻는 안부의 첫마디가 “당신은 몇 번이나…?”였다고 쓰고 있다. 통계에 따르면 러시아군에 의한 강간 피해자는 독일 전체에서 50만~100만명, 베를린에서만 11만명에 달한다. 그 만행은 일기에 자주 등장하는 영국 철학자 토머스 홉스의 말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인간은 인간에게 늑대다.’ 그리고 슬픔은 마지막 일기에 절정을 이룬다. “나는 다만 살아남기를 원한다는 것만 알고 있다. 감정과 이성은 억누르고 짐승처럼 말이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헤라클레스 등대, 낯선 도시로 이끌다…순례자들 ‘부엔 카미노’

    헤라클레스 등대, 낯선 도시로 이끌다…순례자들 ‘부엔 카미노’

    # 현존하는 등대 중 가장 오래된 ‘헤라클레스 등대’ 인천국제공항에서 오전 10시 출발해 영국 런던 히스로 공항을 거쳐 라 코루냐에 도착했을 때는 밤이었다. 공항에서 버스를 타고 호텔까지 가는 동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창문을 살짝 열었다. 무르고 축축한 스페인의 가을 공기가 밀려들어왔다. 다음 날 아침 일찍 호텔을 나섰다. 자욱한 안개 속에서 사람들은 트레이닝복을 입고 달리고 있었다.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느티나무 아래를 느리게 걸어갔다. 안개 너머로 대서양의 파도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안개 속에서 가만히 서 있노라면 무언가를 조금씩 채워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아주 오랫동안 음악을 듣지 못하다가 어느 날 이어폰을 끼고 좋아하는 음악을 들었을 때 느끼는 기분과 비슷하다. 여행도 마찬가지. 여행은 어쩌면 안개 속에서 오랫동안 서 있기, 오랜만에 들어보는 음악인지도 모른다.스페인 북서부, 갈리시아 지방에 자리한 도시 라코루냐(La Coruna)는 갈리시아 일대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지만 우리에겐 아직 낯설다. 여행자들이 이 낯선 도시를 찾아오는 이유는 ‘헤라클레스 등대’(Torre de Hercules)를 보기 위해서다. 헤라클레스 등대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등대다. 스페인 지역을 점령했던 로마인들이 파룸브리간티아(Farum Brigantia, 갈리시아 지방의 옛이름)를 건설했을 때인 1세기 후반에 등대와 경계 표시용으로 설치했다. 카이사르가 이곳을 정벌한 후 등대는 로마 제국의 선단이 영국과 아일랜드로 가는 길목을 밝혔다. 만들어진 지 1900년의 세월 동안 전쟁과 약탈로 황폐해졌고 몇 차례 개축을 하면서 1791년 마침내 재점등했다. 구글맵이 등대에 다 왔다고 알리는데 자욱한 안개 때문에 등대는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문득, 갑자기, 불현듯, 눈 앞에 거대한 등대가 나타났다. 거인처럼 보였다. 왜 헤라클레스 등대라고 부르는지 이해가 됐다. 뱃사람들이 왜 안개를 그렇게 무서워하는지 약간이나마 이해가 됐다. 앞에 뭐가 나타날지 모른다는 두려움. 그들을 집어삼킬 어마어마한 크기의 문어가 안개 속에 숨어있을지 어떻게 알겠는가. 등대는 길을 안내해주는 역할을 넘어 그들에게 신앙과 같은 존재였을지도 모른다.# 높이 57m 거대한 등대 탑… 안개 자욱한 광경 한눈에 이름에 걸맞게 탑은 거대하다. 탑 자체의 길이는 55m인데 높이 57m의 암석 위에 서 있으니 더 높아 보인다. 수면으로부터 112m 높이에서 깜빡이는 불빛은 50㎞ 밖에서도 보인다. 등대가 위치한 ‘코스타다모르테’(Costa da Morte)의 뜻은 ‘죽음의 해변’이다. 그만큼 위험하다. 세계가 평평하다고 믿었던 고대 로마인들에게 이곳은 세상의 끝이었다. 등대 꼭대기에 올라갔다. 잠깐 물러갔던 안개는 기다렸다는 듯 다시 밀려왔다. 산등성이에 자리한 집들이 어렴풋해졌다. 안개 너머에는 뭐가 있을까. 바다가 있겠지. 세계는 평평하지 않아서 앞으로 계속 나아가도 떨어지지 않는다. 한때 수평선 너머가 궁금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였을까, 수평선 너머는 그냥 바다겠지. 여행을 다니며 깨닫게 된 건 살아가면서 여행자의 시선이 필요하다는 것.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이 세상을 보는 순간도 필요하다. 등대 아래 세상은 짙은 안개에 묻혀 있었다. 안개 너머엔 뭐가 있을까, 바다 너머엔 뭐가 있을까. 우리를 한 발 내딛게 하는 건 언제나 호기심이다.# 순례자들이 닿고 싶어하는 도시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 순례여행이란 게 있다. 종교적 의무 또는 신앙을 고취하기 위해 떠나는 여행을 말한다. 기독교에서는 4세기 경 예수 그리스도의 흔적을 좇아 이스라엘을 순례한 사람의 기록이 있다. 물론 지금도 많은 순례자들이 성지로 순례를 떠난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순례길 가운데 ‘산티아고 순례길’만큼 사람들의 열망을 불러일으키는 길이 있을까. 순례자들은 발에 생긴 물집과 상처를 산티아고 순례길이 자신에게 준 특별한 선물이라 생각하며 기꺼이 무거운 배낭을 메고 지팡이를 짚고 고행의 걸음을 내딛는다.산티아고 순례길은 예수의 세 제자 중 한 사람인 야고보가 복음을 전하려고 걸었던 길이다. 유럽 각지에서 출발한 길들이 그의 발자취를 따라 야고보의 무덤이 있는 스페인 북서부의 도시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로 향한다. 야고보는 어느 날 땅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라는 예수님의 계시를 받았는데, 당시 땅끝은 로마를 기준으로 했을 때 이베리아 반도였다. 야고보는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에서 순교를 당했고 그의 시신이 있는 자리에 별이 떴다고 한다. 그리고 그 별이 가리키는 곳에 산티아고 대성당이 지어졌다. ‘콤포스텔라’는 라틴어의 ‘별의 땅’(campus stellae)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별이 점지한 야고보의 시신이 묻혀있는 땅’이라는 뜻이다. 산티아고는 예루살렘, 로마와 함께 유럽 3대 순례지다. 순례자는 크레덴시알(Credencial)이라는 여권을 발급 받는다. 이 여권이 있으면 알베르게(Albergue, 순례자 숙소)에 묵을 수 있다. 하루에 2개 이상의 스탬프를 호텔과 알베르게, 성당, 순례자 사무실, 관광 안내소 등에서 받을 수 있는데, 사무국 직원은 이를 근거로 날짜와 순례거리를 산정해 증명서에 기입해준다. 증명의 기본 요건은 대성당으로부터 최소 100㎞ 이상 떨어진 곳에서부터 와야 한다는 것. 도보나 자전거, 휠체어 구별하지 않는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완주하면 순례완료증서(Compostela)를 받는다.# 야고보 유해 있는 산티아고 대성당 참배하며 여정 마무리 순례자들이 그토록 닿고 싶어하는 도시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 이처럼 많은 의미를 품고 있는 도시지만 도시 자체만으로도 많은 매력을 가진 곳이다. 가장 먼저 찾아야 할 곳은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 대성당이다. 성당 지하에는 야고보의 유해를 보관하고 있는데 순례자들은 이곳을 참배하면서 순례의 여정을 마감한다. 성당 앞에는 완주를 했다는 벅찬 감동과 희열에 들떠 울음을 터뜨리는 순례자들도 볼 수 있다. 산티아고 광장에는 가리비를 가방에 단 사람들이 많다. 야고보 사도의 문장이 가리비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배를 이용해 야고보의 시신을 스페인으로 옮길 때 풍랑 때문에 시신을 바다에 빠뜨리게 되었는데, 나중에 겨우 찾고 보니 가리비가 성인의 몸을 덮어 유해가 상하지 않았다고 한다. 대성당 왼쪽에 자리한 우아한 건물은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 파라도르 호텔이다. 파라도르는 스페인에서 가장 유서 깊은 국영 호텔로 스페인 전역에 80여 개가 운영되고 있다. 왕과 귀족계급이 거주하던 웅장하고 화려한 건축물답게 내부에는 기사의 갑옷과 투구, 당시의 가구, 화려한 샹들리에 등 볼거리가 많다. ‘부엔 카미노’(Buen Camino). ‘좋은 여행이 되길, 너의 길에 행운이 있길’ 이라는 뜻이다. 순례자들은 길을 걸으며 하루에도 수십 번씩 이 말을 길 위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전한다고 한다. 산티아고를 떠나는 날, 이 말을 중얼거렸다. 언젠가는 산티아고에 꼭 다시 올 것이다. ‘언젠가는 꼭’이라는 말이 없다면 우리 인생은 얼마나 허망할 것인가. 사랑도 마찬가지 아닐텐가. 언젠가 이 도시를 다시 찾을 날을 기다리며 ‘부엔 카미노’. 글 최갑수 (여행작가) ■여행수첩 →영국항공을 이용해 런던을 거쳐 라코루냐로 갈 수 있다. 유럽 여행은 유레일패스(02-775-1571, www.eurail.com/kr)가 편하다. 라코루냐에서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까지는 기차로 30분이 걸린다.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에서는 아바스토스 시장에 가보자. 아케이드 형식으로 만들어져 있다. 치즈, 생선, 고기, 채소 등을 파는 상점들이 구역별로 들어서 있다. 현지인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오전 7시에 열려 오후 2~3시에 문을 닫는다. 산티아고 데콤포스텔라 거리를 돌아다니다보면 이 지역에서 나는 검은 돌인 아자바체(Azabache)로 만든 다양한 엑세서리들을 볼 수 있다. 가리비나 묵주, 십자가 등 종교 관련 액세서리를 사서 선물로 주는 것도 좋다.
  • [황성기 칼럼] 제재가 만병통치라는 주술

    [황성기 칼럼] 제재가 만병통치라는 주술

    경제제재의 시초는 기원전 432년 아테네의 페리클레스가 내린 ‘메가라 법령’이다. 메가라 사람들이 아테네의 성역을 침범해 내려졌다. 살육이 따르는 군사제재 대신 무역금지라는 당시로선 신선한 방식으로 메가라를 압박했다. 장사로 먹고사는 메가라 사람에게 아테네와 인근 항구 출입을 못 하게 했으니 ‘벌주겠다’는 효과는 전쟁만큼이나 쏠쏠했다. 하지만 메가라 동맹인 스파르타의 법령 철회 요구를 아테네가 거부함으로써 펠로폰네소스 전쟁으로 이어지는 실패로 막을 내린다.제재는 성공보다 실패가 훨씬 많다. 21세기 들어 그 효과는 더욱 낮아져 성공한 제재는 10%대에 불과하다. 유엔 안보리 제재가 그렇다. 수출입, 금융거래를 틀어막아도 제재를 당하는 피제재국은 맷집 좋게 버틴다. 냉전시대 미국은 중남미 반미 국가들의 정국 불안을 야기시키려 제재를 가했다. 그러나 피제재국 국민이 고통을 당했지, 제재가 겨냥한 지도층은 멀쩡했다. 유엔은 피제재국 주민 생활이 어렵지 않도록 민생분야 교역은 허용하는 ‘스마트 제재’를 일찍이 도입했다. 하지만 밥줄을 죌 목적의 제재란 게 제아무리 스마트해도 메가라처럼 주민 생활을 피폐하게 만들 수밖에 없다. 이란이 딱 그 꼴이다. 미국이 국제사회의 반대에도 2015년 이란 핵합의를 준수하지 않는 ‘벌’로 협정에서 탈퇴하고 1차(8월)에 이어 2차(11월 14일) 제재를 단행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협정 탈퇴를 지난해부터 예고하면서 제재 해제의 기쁨도 잠시, 이란 국민의 생활은 다시 나락으로 떨어졌다. 이란인의 주식인 우유, 치즈, 요구르트, 버터 가격이 8~52%나 오르는 등 생활고가 심각하고 병원에는 장기를 판다는 벽보가 수도 없이 나붙는다. 미국이 유엔 무용론을 주장하면서 탈퇴 불사를 외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툭하면 유엔 안보리 제재에 의존하는 게 미국이다. 북한의 2006년 대포동 2호 발사, 1차 핵실험으로 안보리가 채택한 결의 1718호는 “핵실험, 탄도미사일 발사를 더 하지 말라”고 요구한다. 그러나 북한은 코웃음 치며 핵·미사일 개량을 거듭해 2017년 9월 6차 핵실험, 11월의 화성15형 미사일 발사를 통해 핵무력 완성을 선언했다. 핵 완성을 막지 못한 걸 보면 유엔의 대북 제재는 말만 요란했지 사실상 실패였다. 유엔 제재는 구멍이 많다. 193개 회원국 가운데 절반은 대북 제재를 이행하지 않는다. 북한의 핵·미사일과 전혀 관계없고 미국 입김이 안 미치는 아프리카, 중남미 국가가 특히 그렇다. 지난해 핵실험과 ICBM 발사 후 내려진 추가 제재는 구멍을 메우려는 역대급 제재다. 석유 공급에 제한을 뒀지만, 말이 제재이지 봉쇄에 가깝다. 미국의 제재가 무서운 것은 제3국에 대해 가혹한 벌을 내릴 수 있어서다. 유엔은 대북 제재를 시행하지 않는 나라를 벌줄 방법이 없지만 미국은 다르다. 핵·미사일이 아니더라도 별의별 명목을 들이대 대통령령이나 법률로 제재를 가한다. 2016년 미 의회에서 제정된 ‘북한제재강화법’은 북한의 돈세탁, 마약밀수, 대남 군사도발, 정치범수용소, 국제테러 지원 등 비군사 분야까지 걸고 넘어진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입버릇이 된 ‘선 비핵화·검증, 후 제재완화’로 북·미 협상이 멈춰 서 있다. 비핵화와 제재해제는 양측이 가장 갖기를 바라는 ‘물건’이다. 돈을 다 내야 커피를 내 손에 쥘 수 있는 거래가 있다면, 물건을 일단 받아들고 분할 결제하는 거래도 있다. 미국은 핵을 다 받아야 제재해제를 내주겠다는 방식을 요구하지만, 북한이 가혹한 제재를 견디며 만든 핵을 커피처럼 간단히 내주기는 어렵다. 미국의 대북 제재는 비핵화 수단이 아니라 목표가 된 듯하다. 제재가 만병통치약이 아닌 것은 역사가 증명한다. 통일부가 지난해 800만 달러의 인도적 식량지원 결정을 해놓고도 1년 넘게 썩히고 있다. 미국의 구호단체들도 대북 인도지원 제한을 풀라고 요구한다. 비핵화가 불가역적이라면 제재는 가역적이다. 비핵화가 신통치 않으면 제재를 풀었다가 다시 가하면 된다. 하다못해 제재완화의 신호라도 줘야 한다. ‘협상의 달인’이라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복안이 있기를 바란다. 부정적인 미국의 대북 여론에 포위된 트럼프가 힘을 받을 길은 비핵화밖에 없다. 비핵화를 받아 내려면 분할 결제 방식이 유일하다. 필자에게도 보이는 해법이 트럼프에게 안 보일 리 없다고 믿고 싶다. marry04@seoul.co.kr
  • [황규관의 고동소리] 김수영 생각

    [황규관의 고동소리] 김수영 생각

    올해는 김수영이 불의의 사고로 이승을 떠난 지 50년이 되는 해인데, 한국작가회의가 주최하는 사후 50주기 행사가 11월 들어 시작됐다. 정확하게는 지난 6월 16일이 그의 기일이었다. 심포지엄 같은, 재미는 좀 덜한 행사가 주이지만 사실 심포지엄을 통해 새로운 해석과 연구 결과를 접하는 것도 의미는 있을 것 같다. 일각에서는 일찍부터 ‘김수영 신화’를 지적했지만, 달리 말하면 김수영이 끼친 영향이 그만큼 지대하다는 뜻도 된다.새로운 해석은 언제나 환영받을 일이다. 하지만 해석이란 것 자체가 해석 대상에 먼저 충실해야 가능한 법이다. 그런 차원에서 김수영 해석이 오늘날 얼마만큼 시 자체에 충실했는지 자문해 볼 문제다. 또는 해석을 위한 해석이나 단순한 오마주에서 벗어나야 하는 것도 새로운 해석이 인식해야 할 과제다. 김수영 해석에서 이와 같은 것이 지켜지지 못할 때 신화를 조성한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김수영의 시는 적지 않은 작품이 명료하게 포착되지 않는 특징이 있다. 이 난해성이 연구자와 비평가를 끊임없이 매혹하는 원인 같다. 그 난해성을 조금 더 명료하게 밝혀 내는 것이 연구와 비평의 몫이겠으나, 김수영의 시는 자구 하나하나에 사로잡힌 독자를 집어삼키는 늪이기도 하다. 도리어 김수영 시가 어떤 상태에서 시작됐는지 접근해 가는 것도 다른 해석을 얻는 방법 중 하나다. 언어를 무시한 방자한 해석을 독려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김수영 ‘너머’다. 우리가 김수영을 읽는 이유에서 이 ‘너머’가 빠진다면 개인적인 소견으로는 반의 반도 그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김수영의 시는 현실의 ‘너머’를 끝끝내 꿈꾸기 때문이다. 김수영은 분명히 “시인의 스승은 현실이다”라고 했지만, 그의 시가 보여 주듯 시적 상상력은 현실을 단순히 재현하고 비판하는 것에 머물면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상이 필요하다고 김수영은 생각했다. 현실을 ‘바로 보고’, 자기 자신을 영원히 고쳐 가야 할 운명이란 이것과 통한다. 사상이 있어야 시의 형식도 가능하다는 인식은 김수영으로 하여금 독특한 시적 입장을 갖게 만들었다. 사상을 가지고 현실을 바로 보고 넘어가려는 과정은 김수영에게 결국 심각한 싸움을 안겨 주었다. 김수영이 말하는 사상은 언제나 현실에 발을 디딘 채 춤을 추는 동작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었다. 즉 그는 현실을 통해 사상을 구성했고, 그 사상을 가지고 현실과 싸웠던 것이다. 시에서 정치성은 특정 정파나 정권에 대한 어떤 입장이 아니다. 다시 말하면 시의 정치는 불의와 부조리에 대한 저항만이 아니라 지금과는 다른 시간을 향한 싸움이다. 이 싸움은 사실 사상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불가피하다. 사상 자체가 현실 너머를 지향하기 때문이다. 김수영 시에 아직 생명력이 살아 있다면 그것은 그가 이 현실과 사상의 변증법을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김수영은 5·16쿠데타로 심한 내상을 입었다. 5·16은 김수영에게 단순한 정치적 패배만 안긴 것이 아니라, 심각한 존재론적 위기도 안겨 주었다. 이때 김수영은 역사에 대한 인식에 새롭게 눈을 뜨게 된다. 그것은 먼저 한국전쟁 때 실종된 동생을 떠올리면서 희미하게 드러나지만, 훗날 실패한 혁명을 곱씹으면서 시간에 대한 인식을 겹쳐 놓기도 한다. ‘먼 곳’에 대한 꿈과 시적 투신은 지난 역사에 대한 재해석과 동시에 진행됐으며 그는 점점 눈의 밝기를 달리하면서 언어를 혁신해 갔다. 그 혁신의 과정에서 난해성이 필요 이상으로 부가됐다는 것은 조금 유감이지만, ‘언어의 간지’를 감안한다면 그렇게 책망할 일만은 아니다. 오늘날 시인들은 이 언어의 간지에 무지하거나 그것을 나태하게 대하지만, 그것마저 서늘하게 인식해야 진정한 새로운 시는 탄생하는 법이다. 그리고 이때 시인의 영혼에 죽음의 빛이 드리워진다. 죽음 없이는 새로 시작하는 사태는 오지 않기 때문이다. 아마도 김수영은 그것을 알았던 것 같다. 따라서 김수영이 언제나 머리맡에 두었던 ‘죽음’은 소멸로서의 죽음이 아니라 부활의 뜻을 가지게 된다. 그래서 나는 김수영을 ‘생명의 시인’으로 읽는다.
  • [2018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떠날 수도 머물 수도 없었다…해방촌, 찬미와 절망의 동거

    [2018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떠날 수도 머물 수도 없었다…해방촌, 찬미와 절망의 동거

    서울신문이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8 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28회 서울의 영화1(유현목의 오발탄) 편이 지난 10일 용산구 용산2가동 해방촌 일대에서 진행됐다. 서울미래유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영화인이 뽑은 ‘한국영화 100선’ 중 당당히 1위로 뽑힌 유현목 감독의 영화 ‘오발탄’의 무대를 누볐다. 영화의 원작인 이범선의 1959년작 단편소설 ‘오발탄’과 1961년작 영화 두 편 모두 서울미래유산 무형유산이다. 영화를 주제로 삼은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는 처음이다. 1950~60년대 한국전쟁 전후 오발탄의 무대인 해방촌이란 지명은 동네의 이미지일 뿐 행정지명이 아니지만 아직도 우리에게 익숙하다. 외국인 거주자와 젊은층을 중심으로 HBC(해방촌의 영문 이니셜)라는 전혀 다른 이름으로도 불린다.●한때 서울에만 20만채 판잣집 이날 오전 10시 지하철 6호선 녹사평역 2번 출구에 집결한 투어단은 해방촌 입구의 명물 한신옹기를 지나 보성여고~해방촌 성당~해방촌교회~해방5거리~신흥시장~108계단~용산중·고교 간을 2시간여 동안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내리며 해방과 한국전쟁 전후 시기의 삭막한 풍경을 상상했다. 해설을 맡은 김미선 서울도시문화지도사는 처음 시도한 영화투어에 현장감을 불어넣으려고 안간힘을 쏟았다. 설문응답자들은 “해설 없이 걸었다면 느끼지 못했을 감상에 빠졌다”, “몰라보게 변해버린 서울의 과거사를 떠올린 시간”, “불후의 소설과 영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다”는 소감을 남겼다.서울은 초거대 도시이다. 1000만명이 606㎢ 안에 살고 있다. 1㎢에 1만 7000명꼴이다. 국토의 0.6%에 인구의 20%가 몰려 있고, 인구의 절반 이상이 서울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 생활권역에 묶여 있다. 서울은 메가시티(Mega City)이면서 인접 대도시와 띠로 연결된 메갈로폴리스(Megalopolice)이기도 하다. 1935년까지 30만명 선에 머물던 서울인구는 일제강점기 대륙침략을 위한 거점도시화하면서 1942년 100만명까지 늘었다. 불과 반세기 만에 10배로 팽창했다. 해방과 한국전쟁 이후 100만명이 넘는 월남피난민, 중국과 일본으로 떠났던 해외동포의 귀환, 학교와 일자리를 찾아 상경한 농민들이 마구잡이로 유입됐다. 1959년 수용한도를 초과해 200만명이 몰려들면서 도심과 남산, 인왕산, 북한산, 관악산 아래와 한강 주변에 난민이 대거 자리잡았다. 서울 인구는 1972년 600만명을 돌파한 뒤 1988년 1000만명 시대에 접어들 때까지 ‘브레이크 없는 폭주기관차’ 마냥 마구 몸집을 불렸다. 판자촌은 북한에서 내려온 월남민들이 미군이 가져온 나왕, 미송 등 목재와 루핑, 깡통 등을 이용해 임시거처를 지은 데서 유래했다. 한때 20만채의 판잣집이 서울 곳곳에 달동네를 이루고 있었다. 한 맺힌 디아스포라의 절규이며 우리가 겪은 주거의 사회사이다. ●영화 속 판잣집 소통 불가의 현실 “해방촌 고개를 추어 오르기에는 뱃속이 너무 허전했다. 산비탈을 도려내고 무질서하게 주워 붙인 판잣집들이었다. 철호는 골목으로 접어들었다. 레이션 곽을 뜯어 덮은 처마가 어깨를 스칠 만치 비좁은 골목이었다. 부엌에서들 아무 데나 마구 버린 뜨물이, 미끄러운 길에는 구공탄 재가 군데군데 헌데 더뎅이 모양 깔렸다. 저만치 골목 막다른 곳에, 누런 시멘트 부대 종이를 흰 실로 얼기설기 문살에 얽어맨 철호네 집 방문이 보였다.…비틀어진 문틈으로 그의 어머니의 소리가 새어 나왔다. ‘가자! 가자!’” 원작 소설 속 해방촌 묘사이다. 그러나 백 마디 글보다 영화 한 컷이 더 웅변적이다. 영화에서 보여 주는 철호의 판잣집은 소통 불가의 현실이며, 안식처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공간이다. 로케이션 장면이 많은 영화는 근대적인 거리와 판자촌의 구불구불한 골목길, 공동수도 터, 푸세식 공동변소 등 당시의 모습을 생생히 눈앞에 펼쳐 보인다. 유현목 감독의 리얼리즘은 필설로 설명하기 어려운 해방촌의 가난과 절망을 영상으로 보여 준다. 영화는 군사혁명 당국으로부터 ‘상영 불가’ 판정을 받았다.●해방 후 이북·해외서 온 동포들 용산으로 당시 용산은 일본인의, 일본인에 의한, 일본인을 위한 도시였다. 한양도성 남산구간 바깥에서 한강까지 용산 전체의 20% 가까이 일본군영이 자리잡았고 나머지 지역은 철도부지와 일본인 거주지였다. 해방 이후 이북과 해외에서 들어온 동포와 월남민을 구제하기 위해 이 구역을 내줄 수밖에 없었다. 남산 서쪽 기슭인 용산2가동 일대의 국유림에 정착지를 조성했다. 이때 38선 이북에서 내려온 사람들을 ‘삼팔따라지’라고 냉대했다. ‘3·8’은 화투 도박에서 끗발이 가장 낮은 한 끗이므로 이를 비하해 한 끗짜리 인생이라는 뜻에서 따라지라고 한 것이다. 이들은 해방촌을 비롯해 이촌동, 용두동, 마장동 등지의 피난민촌에 모여 살았다. 해방촌이 자리잡은 남산 서쪽기슭은 인적이 없는 고요한 목장이었다. 김정호의 ‘경조 5부도’에 기록된 것처럼 갑오개혁 때까지 왕실 제사에 사용할 소와 양, 돼지를 키우던 전생서(典牲署) 터였다. 왕이 기우제를 지내던 남단(南壇)이 지척이었다. 이후 일제강점기 일본군 20사단의 사격장으로 변했다. 해방촌의 기원은 해방 직후 용산동 4가 일본군 관사에 무단 거주하던 월남 피난민 50여 가구가 서울에 진주한 미군에게 관사를 비워주고 미군 트럭에 실려 이곳에 내리면서 시작됐다. 1947년 평안북도 선천군 군민 400여 가구도 집단이주, 일본군이 관리하던 경성호국신사를 중심으로 피난살이가 본격화됐다. 일제가 패망하기 직전인 1943년 대륙침략전쟁 당시 전쟁전사자를 추모하고 승전 분위기를 고취시키고자 마지막 발악처럼 건설한 신사가 바로 108계단으로 남은 경성호국신사다. 판잣집은 호국신사 간판과 건물을 떼어다가 지었다고 한다. 당시 신문기사에 따르면 호국신사 자리에 대형 천막을 세워놓고 천막 1개에 5~6가구씩 들어가 생활하다가 한 가구당 5~6평씩 불하를 받았다.●서북청년단·영락교회 영향력으로 탄생 1949년 주민들은 용산동이라는 동명을 해방동으로 바꿨다. 반공으로 똘똘 뭉친 서북청년단의 기세가 해방촌 건설에 한몫했다. 서북청년단의 비호 아래 해방촌은 행정력이 미치지 않는 해방구가 됐다. 해방촌 형성과정에 영락교회의 영향력이 컸다. 영락교회는 분단과 전쟁 과정에서 월남민들 사이에서 ‘이북5도청’이나 마찬가지였다. “산등성이를 악착스레 깎아 내고 거기에다 게딱지 같은 판잣집을 다닥다닥 붙여 놓은 이 해방촌이 이름 그대로 해방촌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멀리 고향 쪽을 바라보며 떠날 수도 머물 수도 없는 철호 가족의 절망이 안타까운 영화에서 해방과 해방촌에 대한 역설이 등장한다. 당시 서울 인구의 반이 정부로부터 극소량의 식량을 배급받아야 하는 절대 빈민들이었다. 그러다 보니 해방촌이라는 지명은 해방을 맞아 몰려든 사람들이 만든 마을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주민들 스스로 이곳에서 벗어나는 걸 해방됐다고 표현할 정도로 터부시 됐던 마을이라는 이중적인 의미로 쓰였다. 해방촌은 디아스포라의 섬이다. 걸어다니는 사람들의 눈에는 차를 타고 풍경을 요약하는 사람들에게서 보이지 않는 것들이 들어온다. 골목길을 어슬렁거리는 도시의 만보객은 현대문명에 반하는 오래된 것들을 찬미함과 동시에 도시 근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낙오된 것들에 대해서도 절망감도 느낀다. 해방촌은 찬미와 절망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우리는 걸으면서 그 시간 속으로 걸어서 들어갔다가 나왔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 원장 사진 문희일 연구위원 ●다음 일정 : 가리봉동(구로공단의 신화) ●일시 : 11월 17일(토) 오전 10시~낮 12시 ●집결장소 : 1호선, 7호선 가산디지털단지역 7번 출구 ●신청·안내 : 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http://futureheritage.seoul.go.kr)
  • [흥미진진 견문기] 현실에 짓눌린 철호 만나…가을빛 위로해 주는 그 길

    [흥미진진 견문기] 현실에 짓눌린 철호 만나…가을빛 위로해 주는 그 길

    노란 은행잎이 수북이 쌓인 길을 걸어 영화 ‘오발탄’ 주인공 철호의 집이 있던 해방촌을 향했다. 해방촌 입구 오른편에는 ‘1945년 용산해방촌’이란 흰색 글자가, 왼편에는 미군 부대 담벼락을 촘촘하게 가득 쌓은 높다란 옹기들이 햇빛에 반짝였다.영화는 내러티브와 스펙터클로 구성된다. ‘오발탄’은 한국전쟁 직후인 1957년 돌아갈 수 없는 북쪽 고향을 그리워하다 미쳐버린 어머니와 전쟁에서 부상당해 은행 강도짓을 하다 체포되는 남동생 영호, 양공주가 된 여동생, 병든 아내, 영양부족의 딸아이를 가족으로 둔 계리사 사무실 서기로 일하는 주인공 송철호 가족의 이야기다. 철호의 판잣집이 있었음 직한 골목들을 기웃거리며 가파른 오르막을 올랐다. 바람에 낙엽이 무심히 뒹구는 이 길을 철호는 빈곤의 무게에 억눌려 무능과 죄의식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으리라. 미군 기지였던 담을 따라 오르다 보니 보성여고가 나타났다. 평안북도 선천에 세워졌던 ‘예수교 보성여학교’가 해방과 전쟁을 겪으면서 1955년 지금의 위치에 자리잡게 됐다. 오르막 위에 해방촌 성당이 있었다. 빨간 벽돌 위에 회색벽과 창문이 증축된 건물이다. 성모마리아 상과 오래된 종이 있는 성당 마당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후, 해방교회를 거쳐 해방오거리에서 소월길로 올라섰다. 남산을 뒤로하고 해방촌의 전체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미세먼지로 집과 건물들이 뿌옇게 번져 보였다. 낡은 건물들을 재단장하는 신흥시장과 에스컬레이터를 설치하는 108계단을 내려와 해방촌을 벗어났다. 사실 해방촌은 용산이나 광화문, 어디든 갈 수 있는 열린 동네이다.삶의 어두운 길을 인도하는 유일한 지팡이는 공감이라고 한다. 철호의 식구들이 불안한 현실과 타인에 대한 염려를 나눴다면, 혼자 괴로워하며 무너져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현실의 무게에 짓눌려 미래를 향해 한 발자국도 내딛지 못하는 철호에게 노란 은행잎에 가을 정취가 흠뻑 물든 해방촌을 보여 주며 위로를 전하고 싶다. 이소영(동화작가)
  • 시진핑, 中 지도자 최초로 태평양 도서국 간다

    시진핑, 中 지도자 최초로 태평양 도서국 간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15~21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기구(APEC) 정상회담 참석을 위해 중국 지도자로는 처음으로 파푸아뉴기니를 방문한다. 시 주석은 태평양 국가 방문을 통해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대응하는 ‘일대일로(육·해상 실크로드)’ 협력 방안을 강화할 전망이다.●두테르테와 회담… ‘남중국해 갈등’ 의제 15~16일 파푸아뉴기니를 국빈 방문하는 시 주석은 이 기간 피지, 사모아, 바누아투, 미크로네시아, 쿡제도, 통가, 니우에 등 8개 수교 도서국의 정상들을 만날 예정이다. 정저광(鄭澤光) 중국 외교부 부부장은 13일 “시 주석이 중국의 태평양 군도 국가들에 대한 정책과 섬나라 개발을 지원하기 위한 협력 방안을 발표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17~18일 APEC 정상회담에서 시 주석은 기조 연설을 하며 문재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일정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시 주석은 이어 18~21일 브루나이와 필리핀을 방문해 정상회담을 갖는다. 특히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과는 영유권 분쟁 대상인 남중국해 문제가 핵심 의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필리핀은 시 주석의 방문을 앞두고 국방장관이 미군 주둔을 환영한다고 밝히는 등 잇달아 남중국해와 관련한 민감한 발언을 내놓고 있다. 델핀 로렌자나 필리핀 국방장관은 13일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관련 정상회의가 열리는 싱가포르를 방문해 “필리핀은 지역과 남중국해에서의 안정세력으로서 미군의 주둔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두테르테 대통령도 지난 11일 “시 주석에게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 승소 판결을 언급하며 ‘우리 영토에서 석유를 시추할 계획이 있다’고 말했다”고 공개했다. 필리핀 정부는 2016년 7월 남중국해 대부분에 대한 중국의 영유권 주장이 법적 근거가 없다는 PCA 승소 판결을 받은 바 있다. 그동안 친중 노선을 띠며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에 대한 언급을 자제했던 두테르테 정부가 시 주석의 국빈 방문을 앞두고 관련 발언 수위를 높이는 이유로 고도의 협상전략이란 분석과 남중국해 원유 공동탐사 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다는 시각이 엇갈리게 나온다. ●트럼프, 수입 자동차 관세폭탄 잠정 보류 한편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수입 자동차의 관세폭탄 부과 방안을 잠정 보류하기로 해 주목된다. 이는 미·중 무역전쟁이 한창인 가운데 수입 자동차의 관세 폭탄으로 동맹국들과 갈등이 커지면 대(對)중국 공동전선 구축에 균열이 갈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블룸버그통신은 트럼프 대통령과 고위 통상관리들이 이날 백악관에서 상무부의 자동차 관세 관련 보고서를 논의한 후 이같이 결정했다고 전했다. 베이징 윤창수 특파원 geo@seoul.co.kr 워싱턴 한준규 특파원 hihi@seoul.co.kr
  • 유대 소녀를 ‘쓰담’하는 이 남자, 600만 유대인 죽음 내몰아

    유대 소녀를 ‘쓰담’하는 이 남자, 600만 유대인 죽음 내몰아

    천진난만한 소녀와 어울려 행복한 미소를 짓는 이 남자, 600만 유대인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아돌프 히틀러다. 이 소녀는 유대 혈통의 로사 베르닐레 니에나우로 당시 일곱 살이었다. 물론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한참 전인 1933년에 촬영한 사진인데 둘의 생일이 같아 로사는 어머니 카롤리네와 함께 저유명한 알프스 자락의 베르고프에 있는 히틀러 별장에 초청돼 사진을 찍었다. 모녀가 처음 이곳을 찾은 것은 1932년이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두 번째 초청 때 찍은 사진이 지금까지 전해진다. 또 둘의 생일은 4월 20일인데 아마도 베르고프 별장 주변이 여름은 돼야 눈이 녹아 이때 초청됐을 것으로 보인다. 히틀러는 얼마 뒤에 카롤리네가 유대계 혈통이란 사실을 알면서도 로사와 계속 인연을 맺고 싶어했다. 그는 사진 사본에다 “친애하는 뮌헨의 로사 니에나우에게 아돌프 히틀러가 1933년 6월 16일”이라고 적었다. 로사가 나중에 우표를 직접 붙이고 흑백 사진에 꽃을 그려 색칠한 것으로 보인다.미국 메릴랜드주에 있는 알렉산더 히스토리칼 옥션이 하인리히 호프만이 촬영한 사진을 13일(이하 현지시간) 경매에 내놓았는데 1만 달러에는 팔릴 것으로 내다봤다. 경매사 빌 파나고풀로스는 영국 데일리메일 온라인과의 인터뷰를 통해 “히틀러는 선전 목적으로 어린이들과 자주 사진을 찍었는데 이 사진은 그 역시 어린 소녀에게 순수한 마음을 갖고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며 “이렇게 총통의 서명이 들어간 사진도 좀처럼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로사는 1935년부터 1938년까지 적어도 17차례 히틀러와 참모 빌헬름 브루크너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이들 모녀는 히틀러의 비서 마르틴 보르만으로부터 다시는 히틀러와 접촉하지 말라는 말을 들었다. 히틀러는 보르만으로부터 이렇게 조치했다는 말을 듣고 무덤덤해 했다. 보르만은 책 ‘히틀러는 내 친구였다’에다 히틀러가 “나의 일상적인 즐거움을 누설하는 데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이들이 너무 많다”고 얘기한 일이 있다고 소개했다. 사진작가 호프만은 1955년에 발간한 책에 두 장의 사진을 실으면서 “따듯했던 히틀러-그녀가 순수 아리안 혈통이 아니란 사실을 알기 전까지 베르고프에서의 만남을 즐거워했다”고 썼다. 보르만이 둘의 접촉을 막은 이듬해 2차대전이 발발했다. 그리고 끝날 때까지 6년 동안 600만명의 유대인이 목숨을 잃었다. 로사 역시 전쟁 통에 세상을 떴다. 17세 때인 1943년 천연두로 뮌헨 병원에서 숨을 거뒀는데 이 사진을 찍은 지 10년 만의 일이었다. 히틀러는 1945년 4월 30일 권총으로 자살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미·러·北 빠진 채… 세계 51개국 ‘디지털 제네바협약’ 합의

    페북·구글·MS 등 PC기업 218곳 참여 공격용 프로그램 개발한 주요국은 외면 디지털 공간에서의 ‘헤이트스피치’(증오발언)와 해커 공격 등 이른바 ‘사이버 전쟁’에 따른 피해와 희생을 최소화하거나 차단하기 위한 국제적 이니셔티브가 등장할 전망이다. 12일(현지시간) 미국 악시오스 등에 따르면 프랑스에서 열린 파리평화포럼에서 헤이트스피치와 해커 공격을 규제하기 위한 이니셔티브인 ‘사이버 공간의 신뢰와 안보를 위한 파리의 요구’(약칭 ‘파리 콜’·Paris Call)에 한국, 일본, 프랑스, 독일 등 전 세계 51개국이 참여하기로 했다. 이는 전쟁 시 민간인 피해를 최소화하는 인도적 국제조약인 ‘제네바협약’을 디지털 공간에 적용하는 것과 유사해 일종의 ‘디지털 제네바협약’으로 이해된다. 장이브 르드리앙 프랑스 외무장관은 “우리는 재앙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사이버 공간의 전쟁을 피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유럽연합(EU) 회원국 전체와 주요국들이 참여 의사를 밝혔고, 페이스북,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 등 218개 컴퓨터 관련 기업과 93개 시민단체도 참여한다. 하지만 미국, 러시아, 중국, 북한, 이스라엘 등 이미 공격용 사이버 프로그램을 개발·보유했거나 공격 배후로 의심받는 국가들이 불참해 ‘시작부터 김이 샌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악시오스는 “50개국 이상이 참여한 이 체제에 ‘파이브 아이즈’ 소속인 미국과 호주와 이란 등 이미 사이버 전쟁 프로그램을 개발한 나라들도 다 빠져 있다”고 꼬집었다. 파이브 아이즈는 중국, 러시아의 사이버 공격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을 중심으로 호주, 영국, 캐나다, 뉴질랜드 5개국의 정보당국이 결성한 통신정보공유 연합체이다. ‘파리 콜’ 참여국과 기업·시민단체들은 앞으로 국가가 배후에 있는 사이버 공격의 형태와 범위를 규정하고 공격을 가한 상대국에 대한 반격 범위, 다수의 국가 간 사이버 전쟁으로 확산될 경우 민간 피해를 어떻게 최소화할지 등 구체적인 방안을 수립할 계획이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고려 라마탑형 사리함만 보면 가슴이 벌렁벌렁…빨리 환수해야지요”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고려 라마탑형 사리함만 보면 가슴이 벌렁벌렁…빨리 환수해야지요”

    미국서 우리 문화재 추적하는 김정광 이사장이 말하는 환수 운동 “부처님 세 분과 고승 두 분 사리, 한 사리함 모신 聖物”미술관 측 “사리만 반환”…韓정부 “전부 반환”에 무산“문정왕후 어보 환수 위해 美정계 실력자에 편지 전달”“알렌 후손 찾아다녀…15일 알렌 콜렉션 서울시 기증”“미국내 문화재 전수조사 위해 정부 차원 지원 필요”“미국 보스턴미술관에 있는 라마탑 모양의 고려 사리함 반환이 아직도 해결 못한 숙제로 남아 있습니다. 이걸 보면 가슴이 벌렁벌렁 뜁니다. 나이가 들고 교포라서 한국 유물을 보니 벅찬 감정도 있겠지만 티베트 양식의 불탑에 3명의 부처와 2명의 고승 사리를 한 자리에 안치한 사리탑은 세계적으로 유례 없이 특이합니다. 한국 불교에서는 성물(聖物) 중에 성물입니다. 꼭 찾아서 제자리에 돌려놓아야 하는 게 제 과제입니다.” 미국에서 우리 문화재 환수 운동을 펼치고 있는 김정광(75) 한국문화유산보존재단 이사장은 “‘고려 라마탑형 사리함’은 생각만해도 흥분된다”고 말한다. 32년째 미국에서 생활하는 그가 모처럼 귀국한 터에 지난 10일 만나 인터뷰를 했다. 김 이사장은 지난해 돌아온 문정왕후 어보 환수와 알렌 콜렉션 환수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미국에서 제법 성공한 사업가로 노후를 편안하게 보낼 법한 그에게 문화재 환수운동에 대해 들어봤다. 그는 1987년 사업 때문에 미국으로 건너가 팔리새이즈 파크(Palisades Park)에 살고 있다. “이 사리함은 특이합니다. 큰 사리탑에 5개의 작은 사리탑이 들어있습니다. 다섯 명의 사리가 들어있지요. 석가모니 부처님의 진신사리(眞身舍利), 과거 부처님인 정광불과 연등불, 인도 왕자 출신으로 당나라를 거쳐 고려에서 포교활동을 한 지공선사, 그리고 마지막으로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네”라는 시를 남긴 나옹선사의 사리지요. 한국 불교의 법맥입니다. 큰 사리함이 높이 22.5cm로 금은제입니다. 이 미술관은 한국관 한 가운데 전시하고 있지요. 가서 보면 가슴이 뛰고 벌렁거리지만 한편으론 약 오릅니다.”이 라마탑형 고려 사리함은 일본인이 개성의 화장사 또는 양주의 회암사에서 불법으로 도굴한 것으로 추정된다. 보스턴미술관은 이를 1939년 일본인으로부터 매입했다. 두 절은 모두 고려시대의 고승 지공선사(?~1363)와 나옹선사(1320~1376)가 주석한 곳이다. 고려 왕실과 관련있는 화장사는 비무장지대(DMZ)에 있어 지금은 폐허가 됐고, 양주 회암사에는 지공선사와 나옹선사, 무학대사(1327~1405)의 부도탑이 같이 있다. 조선 건국에 많은 역할을 한 무학대사가 조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부처님과 지공·나옹 선사로 이어지는 불교 법통을 무학대사가 자신이 이어받았다는 증표로서 부도탑을 한 자리에 모은 것으로 보인다. - 문화재 환수 운동에 뛰어들게 된 계기는.☞ 2008년쯤 뉴욕주 한국불교신도회장을 지내고 있을 때였지요. 그때 대한불교 조계종에서 문화재 관계로 뉴욕을 방문했는데 그때 만나서 이야기하고, 미국에서 유랑하는 우리 문화재를 보고 충격을 받았지요. 당시 조계종 중앙신도회 사무총장으로 왔던 이상근씨(문화유산회복재단 이사장)를 만났지요. 7명이 왔는데 용비어천가 2권을 소장한 컬럼비아대 도서관과 고려 사리함을 갖고 있는 보스턴미술관을 안내하면서 우리 문화재가 처한 현실을 보게 됐습니다. 환수운동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것은 한국과 미국에서 하던 수출, 수입 비즈니스도 다 닫고 난 다음이니깐 그렇게 바쁘지도 않았고. - 라마탑형 사리함, 그동안의 환수 추진 과정을 설명하면.☞ 이것에 대해 보스턴미술관이 “사리는 한국에 반환하겠다. 그리고 사리함은 한국에 6개월 또는 상당기간 대여해주겠다”고 했습니다. 대여 기간에 한국이 똑같은 모형을 만들고나서 돌려달라는 뜻이었지요. 한국 정부의 승인과 보증이 필요하다고 해서 이런 메시지를 문화재청에 전달하니 당시 이건무 청장이 안된다고 잘라버렸습니다. “사리함 전체를 반환해야지 일부 반환은 안된다”는 것이 이건무 청장의 논지였지요. 음미해 볼 대목은 있지만 해외 유물 가운데 일부만 반환된 사례들도 많습니다. 그 후 미술관 측은 한국 정부가 반대했으니 시민단체는 반환 요청을 할 권리가 없다는 허망한 말만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유해((遺骸)’인 사리도 결국 돌아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요즘도 계속 반환요청을 하며, 이를 위해 불법 유출을 입증할 사료를 찾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일부에선 미술관을 상대로 소송을 하자고 하지만 불법으로 취득했다는 입증 자료가 없어서 저는 반대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선 소송 비용도 만만찮고. “큰 박물관에서 장물아비처럼 절도품을 보관해서야 되겠나”며 여론의 압박을 가하고 있습니다.- 이 사리함이 어떻게 보스턴까지 갔을까.☞ 이게 화장사 것인지, 회암사 것인지는 학계에서 밝혀야 할 사안입니다. 보스턴미술관 토미타 고지로 보고서를 보면 일본인이 이 두 절에서 불법 도굴한 것들을 보스턴미술관이 1939년 매입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시기는 일본의 조선 골동품 판매회사인 야마나카 상회가 보스턴, 파리 등에 지점을 내고 우리 공예품을 대량으로 팔아치우던 시기죠. 5명의 작은 사리함 가운데 3명은 실존 인물이어서 사리가 들어있고, 정광불과 연등불 사리함에는 사리 대신 구슬이 들어 있었습니다. 사실, 사리는 시신의 일부 내지 인체의 연장으로서 국제법상 매매가 금지돼 있다는 것을 보스턴미술관 측에 계속 환기시키고 있습니다. - 그러면 지난해 문정왕후 어보는 어떻게 환수됐나.☞ 이 때문에 저는 뉴욕에서 어보를 소장한 LA 카운티 박물관(LACMA·라크마)까지 몇차례 왔다갔다 했습니다. 매릴랜드에 있는 미국 국립아카이브(NARA)도 수차례 가서 마이크로필름을 뒤지며 기초작업을 했지요. 제가 사는 곳인 뉴저지주 상원의원이자 친한파 외교분과위원장인 로버트 메넨데스 의원에게 국토안보부 장관에게 전달해달라며 반환을 요청하는 편지를 써서 주자, 그는 편지를 4통이나 더 썼더라구요. LA 상원의원 2명, 국토안전부 장관, 존 케리 당시 국무장관에게 전달한 것입니다. 미국 정계 실력자로 상원 외교분과위원장인 그의 편지가 주효했다고 믿습니다. 민간 차원의 운동을 넘어 미국 조야 차원으로 확대된 것이지요.이 건은 혜문스님이 2009년 뉴욕공립도서관에서 우연히 찾아낸 비밀문서 ‘아델리아 홀 레코드’를 열어보면서 시작됐습니다. 6·25한국전쟁 당시 인천상륙작전을 통해 서울을 수복한 미 해병대 1시단 병사들이 요충지인 중앙청·경복궁·방송국 등에 대해 경계근무를 서면서 종묘에서 조선왕실 어보 47개를 호주머니에 넣어 가져갔고, 당시 양유찬(1897~1975) 주미 한국대사가 미국 국무부에 분실신고를 한 기록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던 거죠. 이것을 라크마가 소장하고 있었던 거예요. 어보 옆에 쓰인 ‘6실 대왕대비(六室 大王大妃)’가 종묘 6실(중종의 방)에서 나온 것을 입증한 것이지요. 미국 병사의 절도품이란 것인데, 우리 정부가 되찾기 위한 노력으로 양유찬 대사가 볼티모어 선과의 인터뷰기사 1953년 11월 17일자에 실렸던거죠. 그 기사를 40달러를 주고 샀습니다. 그리고 2016년까지 환수운동이 이었졌고, 도난품이라는 것이 입증되니 미국이 돌려준 거죠. - 오바마 대통령도 국새와 어보 등 9가지 문화재를 돌려줬다.☞ 미국에서 2008년부터 민간 차원의 문화재환수운동이 시작됐고, 문정왕후 어보 사진과 환수 캠페인이 현지 신문에 조그맣게 실렸습니다. 미국 정부가 우리 캠페인을 눈여겨 보던 차에 한 미국인이 “우리집에 어보처럼 생긴 것이 있다”고 신고했고, 그게 다시 보도되니 “옆집에도 보니 그런 게 있더라”는 제보도 나왔습니다. 이런 것들을 미국의 국토안보부가 압수해 보관하고 있다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2014년 4월 한국을 방문할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을 통해 반환한 것이지요. 미국은 불법 문화재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숨기는 대신 반환을 하지요. 큰 결정입니다.- 알렌 콜렉션 반환에도 큰 역할을 했다.☞ 외교관과 선교사 등을 지냈던 호러스 뉴턴 알렌(1858~1932)의 후손을 찾아낸 거지요. 그가 고종의 주치의를 지냈던 만큼 좋은 문화재를 많이 가지고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알렌 후손을 찾아보자고 결심했지만 막연했습니다. 세브란스병원에서 10여년 전 그의 후손을 초청했다는 짧은 기사 한줄을 단서로 더듬어갔지요. 초청자를 찾아보니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에서 의료활동을 하는 허정 박사였습니다. 인적 네트워크를 총동원해서 허정 박사와 통화에 성공했고, 그분이 10여년째 해마다 한번씩 후손들을 초청해 만찬을 베푸시더라고요. ‘그 만찬에 저도 참석해도 되느냐’고 하니 오라고 해서 비행기 2시간 타고가서 후손들과 안면을 텄지요. 후손들을 설득해 매입도 했지요. 알렌과 그 후손들이 어렵게 사는 바람에 스미스소니언 박물관 등에 많이 팔아버렸던 거죠. 왕권의 상징인 부채인 ‘화조도접선’과 사진, 편지, 일기 등 30여점을 가져와 15일 서울시청서 기증식을 갖는다. 사실 알렌 증소녀보다는 그 사돈이 더 많이, 더 좋은 문화재를 갖고 있는 것을 파악했는데, 기증하지 않고 팔려고 해서…. 언젠가는 돌아와야 할 문화재입니다. - 문화재청은 미국 124곳에 우리 문화재 4만 4000여점이 있다고 기록했다.☞ 허허, 아무리 적게 잡아도 그 두 배는 될 것입니다. 정부가 미국에서 현장조사한 곳은 6곳 뿐입니다. 하버드대 옌칭도서관에 소장된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를 보러가면서 박물관 사서에게 물어보니 한국 고서 1만 2000여권 있다는 답을 들었습니다. 문화재청은 여기에 5000권이 있다고 기록했지만 배가 넘지요. 브루클린박물관의 도록을 문화재청이 지원해서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박물관 창고에 들어갈 흔치 않는 기회가 생겨서 가보니 그 안에는 우리 문화재가 수두룩했고, 투구와 갑옷도 있었습니다. 발톱이 3개인 투구로 미루어 왕족의 것으로 추정됩니다만 도록에는 없는 것들이었죠. 박물관 측도 아직 정리조차 못하고 있는데, 그런 것이 무척 많을 것으로 추산됩니다. 개인이 소장한 것은 전혀 파악을 못하고 있지요.- 우리 문화재의 소재 파악과 유출 경로 조사가 시급하다.☞ 먼저 이런 것을 제안합니다. 미국 공영방송 PBS가 하는 ‘앤틱 로드쇼’처럼 우리 교민을 상대로 하는 문화재나 유물의 가치에 대해 설명해주고 감정 가격도 평가해 주는 겁니다. 교민들이 미국에 이민오면서 가져온 가보나 유물을 조사해 파악하는 것이지요. 고위 관리를 지냈던 가문에는 이런 게 많을 겁니다. 교민들에게 한국 문화재의 가치를 재인식하게 해 주고, 대학이나 박물관 등에서 본 한국 문화재를 제보하게 하는 네트워크를 구축하려는 겁니다. 그 다음엔 미국의 큰 박물관이나 미술관이 소장한 한국 문화재를 전수조사하는 것입니다. 큰 프로젝트이니만큼 수년에 걸쳐 정부 차원의 예산과 전문가 지원이 필요할 것입니다. 도록도 만들어고 해야 하니 우리 정부와 해당 박물관과의 교섭도 필요할 것입니다. 하버드대도서관이나 스미스소니언박물관은 이런 제안에 구두로 “오케이”한 상태입니다. 그는 “부처님과 전생 부처님 둘, 두 명의 고승의 사리가 한 자리에 모여있는 것이 신기하지 않나요. 한국 불교 최고의 성물입니다”라며 “이 사리함을 들여와야 하는데…”라고 되뇌었다. 글·사진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곽병찬의 역사 앞에서 묻다] 나당동맹에서 한미동맹까지…‘빈틈없는 공조’의 그늘

    [곽병찬의 역사 앞에서 묻다] 나당동맹에서 한미동맹까지…‘빈틈없는 공조’의 그늘

    2015년 일본은 졸지에 ‘빨판상어’라는 듣기 거북한 별명을 얻었다. ‘미군이 시키면 무엇이든 하는 빨판상어’다. 국민감정이 안 좋은 한국이나 중국으로부터 얻은 것이 아니다. 자국의 학자들이 붙였다.2015년 8월 19일 야마모토 다로 의원은 참의원 전체회의에서 아베 신조 총리에게 물었다. “미군이 요구하면 헌법을 짓밟고라도, 국민의 생활을 파괴해서라도, 온 힘을 다해 따르는데…이런 나라를 독립국가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 아베 정권이 원전 재가동,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비밀보호법, 집단자위권에 이어 안보법제까지 강행하려는 것은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 구상 제3차 아미티지·나이 보고서(2012년)를 베낀 것 아니냐며 한 질문이었다. 아미티지 보고서에는 ‘일본이 2류 국가로 떨어지지 않으려면 일본이 자신에게 강제하는 (군사력 증강, 역내 개입 등의) 제약을 풀고, 아시아·태평양에서 미국이 수행하는 전략을 뒷받침해야 한다’는 주장과 함께 일본의 TPP 참여 등이 그대로 나와 있었다. 의석에서는 이런 야유가 쏟아졌다. “그런 것쯤은 국회의원이라면 다 알고 있다.” “알면서도 입 밖에 내지 않으니 국회의원 노릇도 정치인 시늉도 할 수 있는 것 아니냐.” “촌뜨기처럼 그런 얘기는 왜 하는가.” 여기서 ‘그것’이란 ‘미국의 속국’을 뜻했다. 일본은 한국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자율적인 동맹을 미국과 맺고 있다. 전시작전권이 주한미군에 있는 한국과 달리 일본의 작전권은 총리에게 있다. 그런데도 일본의 학자나 정치인들은 미국에 대한 속국론을 제기하는 것이다. 미국과 지구상에서 가장 예속적인 동맹을 맺고도 허구한 날 ‘더 강력한 동맹’을 촉구하는 한국의 정치인들과 사뭇 다르다.다로의 논쟁을 계기로 정치학자 우치다 다쓰루와 시라이 사토시는 대담 형식의 ‘속국 민주주의론’을 출간했다. 우치다는 이렇게 말했다. “속국의 입장을 수용하고, 맹세한 자만이 이 나라의 지배층을 형성할 수 있는 것이 지난 70년간 일본에 자리잡은 지배구조다.” 시라이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지금 일본의 천황은 미국”이라며 “존황양이가 아닌 존미양이가 일본의 깃발이 되었다”고 말했다. 우치다의 지적처럼 많은 한국의 엘리트 집단은 “미국 정부의 환심을 얼마나 사느냐가 정치적 능력으로 인정받는다”(박태균 서울대 국제 관계학부 교수)고 굳게 믿는다. 주요 정당의 대통령 후보는 만사 제쳐 놓고 미국으로 달려가 미국 대통령을 알현하고, 낙선한 자도 미국에서 소일하다 돌아온다. 김무성 의원이 미국 정치의 심장부인 워싱턴DC에서 ‘왜 미국의 심기를 건드리느냐’는 투로 최근 한국 대사를 몰아붙인 것도 그런 ‘환심사기’로 읽혔다. 족벌언론들은 틈만 나면 ‘미국과 한 몸이 되라’(일체화, 一體化)고 외쳤다. 5월 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1차 북·미 정상회담을 취소하자 이들은 환호하며 이렇게 주장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한반도 운전자석을 계속 유지하면서 비핵화와 평화를 달성하려면 미국과 강력한 한 팀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중앙일보, 5월 23일자) “지금은 한·미가 한 몸이 돼서 북을 설득하고 때로 압박해 가면서 이른 시일 내 핵 폐기를 결심하도록 해야 할 때이다.”(조선일보, 5월 27일자) 이런 일체화론(‘한몸론’)은 ‘빈틈없는 공조’ 등 때마다 여러 가지 수사로 나타나지만, 최소한 미국의 뜻에 어긋나서는 안 된다는 뜻에는 차이가 없다. ‘일체화론’은 미군이 한반도 남쪽에 들어오면서 처음 제기된 것은 아니었다. 그 뿌리는 신라가 당나라를 끌어들여 백제와 고구려를 패망시킨 나당동맹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은 이 동맹을 빌미로 신라를 사실상 속국으로 만들었다. 고려는 종주국인 원나라의 요구에 따라 새로 굴기하는 명을 치려다가 왕조 자체가 몰락했다. 명과 군신관계를 맺었던 조선은 인조 때 중원의 새로운 패자 후금(청)과 맞서다가 국민과 국토를 어육으로 만들었다. 조선 말 조미수호협상 때는 청의 이홍장이 교섭을 대신했으며, 이홍장은 ‘조선은 청의 속방이다’를 제1조로 한 초안을 미국에 제시했다. ‘일체화’라는 표현이 실제로 등장한 것은 1904년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면서부터였다. 이용구, 송병준 등 ‘일진회’가 제기한 ‘일한일체화론’이 그것이다. 절찬리에 방영됐던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제작진은 지난 7월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냈다. 구한말 실제로 존재했던 일본 흑룡회를 등장시켜 친일 미화 논란을 일으켰다는 것이었다. 흑룡회는 19세기 말부터 일찌감치 조선병합론을 주장했던 일본의 극우단체였다. 제작진이 이 단체의 한성지부장이란 인물을 영웅적인 무사로 등장시켰으니 그럴 만도 했다. 일본 군부와 정계에 넓은 인맥을 가진 흑룡회는 19세기 말 일본인보다 더 일본스러운 조선인들을 키워 조선 병탄에 앞세웠다. 이용구(진보회)와 송병준(일진회)이 1904년 12월 2일 ‘일진회’로 통합할 때 후견 집단이 바로 흑룡회였다. 통합 직전 두 사람이 내건 기치가 ‘일한일체화와 문명화’였고, 서약의 표시로 회원들에게 단발을 촉구했다. 일진회는 러일전쟁에서 ‘일본과 한 몸’임을 과시하기 위해 일본군의 병참 지원에 앞장섰다. 북진수송대를 조직해 1905년 6월부터 10월까지 무려 11만 4500명(연인원)의 회원을 동원했으며, 비용 대부분도 일진회가 부담했다.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자 일진회는 11월 5일 이런 성명을 냈다. “(외교의 권한은) 차라리 우방 정부(일본)에 위임하여 그 힘에 의지하여 국권을 보유하는 것도 폐하 대권의 선양이 아닐까.…그 지도 보호 아래 국가의 독립과 안녕, 행복을 영원무궁하게 유지하고자 이에 감히 선언한다.” 흑룡회의 실력자 우치다 료헤이는 당시 일진회 고문이었다. 성명 발표 후 12일 뒤 대한제국은 외교권을 빼앗겼다(을사늑약). 1909년 7월 6일 일본 정부는 병탄 방침을 확정했다. 이에 이용구는 일본과 정치체제의 통합을 추진하자며 ‘정합방론’을 제시하고, 12월 4일 일진회 이름으로 ‘일한합방성명서’를 발표했다. ‘우리나라 사직과 백성을 영원히 보전할 수 있는 길은 오직 일본과 한국이 합방하는 데 달려 있다.’ 일본은 이듬해 8월 대한국을 병탄했다. 일체화론의 귀결이었다. 지난 11월 2일 서울 용산 미군기지 부지가 공개됐다. 1905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군에 접수당한 뒤부터 한국인에게 금단의 땅이었으니 113년 만이었다. 그곳엔 주한일본군 사령부와 일본군 20사단이 주둔했고, 조선총독의 관저가 있었다. 해방 후엔 미군에 접수돼 총독 관저는 미군 병원으로, 일본군작전센터는 미군 벙커로, 일본군 장교 숙소는 주한 미합동군사업무단 건물로 쓰였다. 일본군 병기지창엔 미군 공병대와 시설대가 들어섰다. 1905년 일본군이 접수하기 이전에도 이곳은 ‘종주국’의 기지로 쓰였다. 고려 때는 몽골군의 병참기지가, 1592년 임진왜란 때는 왜군이, 1882년 임오군란 때는 청의 군대, 그리고 1895년엔 청일전쟁의 승자인 일본군이 주둔했다. 용산 기지 터는 더 강한 동맹을 앞세운 ‘일체화론자’들의 성지였으며 한국인에겐 ‘속국’의 상징이었다. 한·미동맹에 침을 뱉으려는 게 아니다. 한·미동맹은 6·25전쟁에서 대한민국을 지켰고, 이후에도 북한의 남침 의도를 저지하는 데 기여했다. 문제는 이 나라를 번방도 속방도 아니요, 아예 속국으로 하자는 일체화론자들이다. 전쟁 중에도 동맹의 그늘에 숨어 권력 쟁취에 여념이 없었고, 평시엔 미군과 미 정부에 충성하는 것으로 권세와 영달을 누리려는 자들 말이다. 그들은 요즘 북한을 ‘핵을 가진 적’에서 ‘핵과 침략 의도를 포기한 이웃’으로 바꾸려는 정부의 노력을 필사적으로 방해한다. 일부 국민을 선동해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며 미국과 한국이 한 몸이 돼야 한다고 외치도록 선동한다. 권력의 화수분을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구한말 이용구와 송병준이 일진회 회원들을 앞세워 일장기를 흔들며 일한일체화를 부르짖었던 것과 판박이가 아니고 무엇일까. 논설고문 kbc@seoul.co.kr
  • “美우선주의, 1차대전 혼란과 닮았다”… ‘공공의 적’ 된 트럼프

    “美우선주의, 1차대전 혼란과 닮았다”… ‘공공의 적’ 된 트럼프

    “오늘날의 국제 정세는 1차 세계대전 이후 2차 세계대전 직전까지의 전간기(1918~1939년)와 유사하다.”1차대전 종전 100주년을 맞은 11일(현지시간) 세계 주요 지도자들은 현재를 ‘불안정한 평화의 시기’로 규정하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가 자국우선주의와 일방적 대외정책 기조를 버리고 세계평화를 위한 미국의 전통적 역할로 회귀할 것을 촉구했다. 이날 행사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실명이 거론되지는 않았지만 트럼프 집권 후 굳어진 미 보호무역·고립주의에 대한 성토장을 방불케 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이날 프랑스 파리평화포럼 연설을 통해 ”현 정세는 1차대전 전후의 20세기 혼란기와 비슷한 점이 있으며 (2차대전 직전인) 1930년대와 닮은 점이 있어 예측할 수 없는 사태가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도 이날 포럼 연설에서 “1차대전은 고립주의가 얼마나 파괴적인지 보여주며, 편협한 국가주의자들의 관점이 힘을 얻을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고 다자적 국제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앞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이날 파리 개선문 앞에서 주최한 기념식에서 “배타적 민족주의는 애국심과 정확히 반대되는 것”이라며 “전쟁의 흔적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고 오래된 악령이 되살아나고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파리평화포럼에는 불참하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1차대전은 1914년 7월 세르비아 민족주의자가 오스트리아 황태자를 암살함으로써 우발적으로 촉발됐지만 본질은 서구 열강 간 제국주의와 배타적 민족주의가 충돌해 인류 최초의 총력전이 된 것으로 평가된다.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 집권 이후 보호무역을 강화하고 동맹국들에 안보 무임승차론을 제기하며 갈등을 일으키는 등 세계의 ‘균형자’ 역할을 포기하고 있다. 1차대전 후 1920년대의 미국이 국제연맹에 가입하지 않는 등 고립주의로 회귀하고 유럽을 휩쓴 파시즘 광풍을 제어하지 못해 2차대전 참화로 이어졌듯 현 시점에서도 포퓰리즘과 편협한 민족주의, 고립주의를 방치할 경우 또다시 국가 간 충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이날 바티칸에서 “1차대전은 여전히 세계 여러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피의 분쟁을 끝내기 위해 모든 적법한 수단을 추구하라는 모두를 향한 엄중한 경고”라고 말했다. 1·2차대전 당시 연합국으로 싸웠던 미국·프랑스·러시아는 트럼프 정부의 이란 핵합의 및 중거리핵전력조약(INF) 탈퇴 등을 놓고 대립하고 있다. 반면 전범국으로 낙인찍힌 독일은 1차대전 종전 100주년을 맞이해서도 사죄를 표현하며 인접 국가들과 우호를 다지고 있다.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은 이날 1차대전 당시 적국인 영국을 찾아 1·2차대전 전몰장병을 기리는 런던의 세노파트 기념비에 헌화했다. 그는 지난 9일에는 베를린에서 유대인 학살의 시발점이 된 1938년 ‘크리스탈나흐트’ 사건(나치의 유대인 상점·주택 공격)에 대해 반성하며 증오 등 민주주의의 적과 맞서 싸워야 한다고 역설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이종수의 헌법 너머] 저출산이 정녕 문제라면

    [이종수의 헌법 너머] 저출산이 정녕 문제라면

    1990년대 초 독일 유학 시절의 이야기다. 유학 초기에 잠시 어느 가정집의 3층 다락방에서 지냈는데, 아래 2층에는 40대인 독일인 부부가 살고 있었다. 이 맞벌이 부부에게는 아이가 없었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데 적지 않은 돈이 들어가니 차라리 그 돈으로 여행과 취미를 즐기며 여유롭게 사는 것이 낫다는 게 이 부부의 입장이란다. 독일에서는 아이를 낳으면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은 물론이고 매달 육아수당, 아동수당 및 부모수당을 지급하고, 심지어 대학까지 무상교육인 데다 의료보험공단이 모든 질병의 치료비를 전액 부담하는데도 많은 돈이 든다며 아이 갖기를 원치 않는 이 부부가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저출산이 문제이기는 오래전부터 독일도 우리와 다르지 않았다. 게다가 넉넉해 보이는 이 맞벌이 부부가 제 집을 장만할 법도 한데 내내 남의 집에 세 들어 사는 것 또한 다소 의아했었다. 나중에서야 안 사실이지만, 독일의 주택임대차제도는 우리와는 자못 다르다. 임대차계약서에 계약 기간이 아예 없고, 민법(BGB) 제566조는 “매매는 임대차를 깨트리지 못한다”는 원칙을 밝히고 있다. 주택 임차인을 보호하는 이 법 조항은 이미 100년 전부터 민법전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있다. 이로써 집주인이나 새 집주인이 세입자를 함부로 내보낼 수가 없게 돼 있다. 우리 같으면 사유재산권 침해라며 난리가 날 법도 하다. 세입자가 월세를 내지 않거나 집주인이 빌려준 집을 직접 필요로 하는 예외적인 경우에만 임대차 계약의 해지가 가능하다. 그래서 주택임대차 분쟁의 대부분은 집주인이 빌려준 집을 직접 사용해야 할 필요가 있다며 임대차 계약의 해지를 통보하고, 세입자는 집주인이 주장하는 직접 사용 필요성이 없다고 맞서면서 불거진다. 어쨌든 세입자가 집주인의 눈치를 볼 일이 별로 없다. 월세 인상에도 각 도시에 정해진 가이드라인이 있다. 다달이 내는 월세가 자신의 소득에 비해 많으면 따로 주거 지원비가 지급된다.제2차 세계대전에서 전쟁에 동원된 수많은 독일 남자들이 죽거나 다쳤다. 전쟁터에서 남편을 잃고서 폭격으로 폐허가 된 거리와 집을 자기 손으로 복구하고 혼자 갖은 역경 속에서 아이 다섯을 잘 키워 낸 한 어머니가 있다. 이런 여성들을 독일에서는 ‘트뤼머프라우’라고 부르는데, ‘폐허 더미 속에서 땀 흘려 일궈 온 여성’쯤으로 이해하면 되겠다. 익히 알고 있는 ‘라인강의 경제 기적’이 이들의 수고에서 비롯됐다. 그래서 손에 곡괭이를 든 모습의 이 여성들을 기리는 동상이 독일 전역 여러 도시에 세워져 있다.그런데 이 노모는 늙어서 아이 한 명당 고작 30마르크씩 도합 150마르크(약 10만원)의 연금을 받는데, 자신이 어렵사리 키워 낸 아이들은 직장에서 일하고 나중에 매월 기백만원씩 연금을 수령한다. 앞서 언급했던 아랫집 맞벌이 부부가 각자 나중에 받을 넉넉한 연금 역시 이처럼 여느 부모들이 공들여 키워 낸 아이들의 근로소득에서 공제하는 연금보험료로 충당된다. 이 할머니가 받고 있는 적은 연금 액수가 1992년 독일연방헌법재판소에서 사건으로 다루어졌다. 독일연방헌재는 연금법 개혁을 통해 가족에 대한 불이익을 최소화할 것을 입법자에게 명령했고, 이후 자녀 양육 기간을 연금 지급액 산정에 추가로 반영하는 연금법 개정이 있었다. 일각에서는 이 추가 연금액이 가족의 가치를 고려하자면 여전히 적다고 비판한다. 세계적으로 낮은 출산율과 이로 인한 인구절벽이 지금 우리 사회가 당면한 시급한 문제여서 그간 백가쟁명(百家爭鳴)으로 여러 방안이 강구되지만 백약(百藥)이 무효다. 국민 1인당 GDP가 3만 달러를 넘나드는데도 여전히 얄팍한 지갑과 높은 사교육비, 치솟는 집값, 고용불안정과 높은 청년실업률, 특히 여성들이 겪는 일과 가정의 양립 어려움 등 우리 사회의 삶이 그만큼 팍팍하고 고단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이 모든 것들이 달라져야 한다. 아이를 낳아서 키우는 일이 분명 큰 기쁨이고 많은 이들이 이 기쁨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다른 건 몰라도 아이를 낳고 키우는 일이 부모들에게 적어도 손해가 되는 것이 아니어야 한다. 글을 마치려 하니 지금쯤이면 훌쩍 칠순을 넘겨 어느덧 연금으로 노후를 보내고 있을 독일 시절의 그 아랫집 부부가 아이를 키우는 게 여전히 손해라고 여기는지가 문득 궁금해졌다. 글 사진 제공 이종수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이종수의 헌법 너머] 저출산이 정녕 문제라면

    [이종수의 헌법 너머] 저출산이 정녕 문제라면

    1990년대 초 독일 유학 시절의 이야기다. 유학 초기에 잠시 어느 가정집의 3층 다락방에서 지냈는데, 아래 2층에는 40대인 독일인 부부가 살고 있었다. 이 맞벌이 부부에게는 아이가 없었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데 적지 않은 돈이 들어가니 차라리 그 돈으로 여행과 취미를 즐기며 여유롭게 사는 것이 낫다는 게 이 부부의 입장이란다.독일에서는 아이를 낳으면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은 물론이고 매달 육아수당, 아동수당 및 부모수당을 지급하고, 심지어 대학까지 무상교육인 데다 의료보험공단이 모든 질병의 치료비를 전액 부담하는데도 많은 돈이 든다며 아이 갖기를 원치 않는 이 부부가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저출산이 문제이기는 오래전부터 독일도 우리와 다르지 않았다. 게다가 넉넉해 보이는 이 맞벌이 부부가 제 집을 장만할 법도 한데 내내 남의 집에 세 들어 사는 것 또한 다소 의아했었다. 나중에서야 안 사실이지만, 독일의 주택임대차제도는 우리와는 자못 다르다. 임대차계약서에 계약 기간이 아예 없고, 민법(BGB) 제566조는 “매매는 임대차를 깨트리지 못한다”는 원칙을 밝히고 있다. 주택 임차인을 보호하는 이 법 조항은 이미 100년 전부터 민법전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있다. 이로써 집주인이나 새 집주인이 세입자를 함부로 내보낼 수가 없게 돼 있다. 우리 같으면 사유재산권 침해라며 난리가 날 법도 하다. 세입자가 월세를 내지 않거나 집주인이 빌려준 집을 직접 필요로 하는 예외적인 경우에만 임대차 계약의 해지가 가능하다. 그래서 주택임대차 분쟁의 대부분은 집주인이 빌려준 집을 직접 사용해야 할 필요가 있다며 임대차 계약의 해지를 통보하고, 세입자는 집주인이 주장하는 직접 사용 필요성이 없다고 맞서면서 불거진다. 어쨌든 세입자가 집주인의 눈치를 볼 일이 별로 없다. 월세 인상에도 각 도시에 정해진 가이드라인이 있다. 다달이 내는 월세가 자신의 소득에 비해 많으면 따로 주거 지원비가 지급된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전쟁에 동원된 수많은 독일 남자들이 죽거나 다쳤다. 전쟁터에서 남편을 잃고서 폭격으로 폐허가 된 거리와 집을 자기 손으로 복구하고 혼자 갖은 역경 속에서 아이 다섯을 잘 키워 낸 한 어머니가 있다. 이런 여성들을 독일에서는 ‘트뤼머프라우’라고 부르는데, ‘폐허 더미 속에서 땀 흘려 일궈 온 여성’쯤으로 이해하면 되겠다. 익히 알고 있는 ‘라인강의 경제 기적’이 이들의 수고에서 비롯됐다. 그래서 손에 곡괭이를 든 모습의 이 여성들을 기리는 동상이 독일 전역 여러 도시에 세워져 있다. 그런데 이 노모는 늙어서 아이 한 명당 고작 30마르크씩 도합 150마르크(약 10만원)의 연금을 받는데, 자신이 어렵사리 키워 낸 아이들은 직장에서 일하고 나중에 매월 기백만원씩 연금을 수령한다. 앞서 언급했던 아랫집 맞벌이 부부가 각자 나중에 받을 넉넉한 연금 역시 이처럼 여느 부모들이 공들여 키워 낸 아이들의 근로소득에서 공제하는 연금보험료로 충당된다. 이 할머니가 받고 있는 적은 연금 액수가 1992년 독일연방헌법재판소에서 사건으로 다루어졌다. 독일연방헌재는 연금법 개혁을 통해 가족에 대한 불이익을 최소화할 것을 입법자에게 명령했고, 이후 자녀 양육 기간을 연금 지급액 산정에 추가로 반영하는 연금법 개정이 있었다. 일각에서는 이 추가 연금액이 가족의 가치를 고려하자면 여전히 적다고 비판한다. 세계적으로 낮은 출산율과 이로 인한 인구절벽이 지금 우리 사회가 당면한 시급한 문제여서 그간 백가쟁명(百家爭鳴)으로 여러 방안이 강구되지만 백약(百藥)이 무효다. 국민 1인당 GDP가 3만 달러를 넘나드는데도 여전히 얄팍한 지갑과 높은 사교육비, 치솟는 집값, 고용불안정과 높은 청년실업률, 특히 여성들이 겪는 일과 가정의 양립 어려움 등 우리 사회의 삶이 그만큼 팍팍하고 고단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이 모든 것들이 달라져야 한다. 아이를 낳아서 키우는 일이 분명 큰 기쁨이고 많은 이들이 이 기쁨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다른 건 몰라도 아이를 낳고 키우는 일이 부모들에게 적어도 손해가 되는 것이 아니어야 한다. 글을 마치려 하니 지금쯤이면 훌쩍 칠순을 넘겨 어느덧 연금으로 노후를 보내고 있을 독일 시절의 그 아랫집 부부가 아이를 키우는 게 여전히 손해라고 여기는지가 문득 궁금해졌다.
  • [특파원 칼럼] 북한 조계지에 대한 걱정/윤창수 베이징 특파원

    [특파원 칼럼] 북한 조계지에 대한 걱정/윤창수 베이징 특파원

    ‘아름답고, 낯을 가리며, 수줍어하는 조선 여성들을 당신은 잊지 못할 겁니다.’중국 최대 인터넷 기업 알리바바가 운영하는 여행 사이트 페이주(飛猪)에 게시된 북한 여행 광고 문구다. 중국 옌지에서 북한 경제특구인 나선시를 1박2일 방문하는 상품의 가격은 920위안(약 15만원)에 불과하다. 중국인들에게 1960년대를 떠올리게 한다는 북한 관광은 북한 어린이들의 공연 관람 및 김일성의 피서지였다는 나진과 선봉 중간의 섬 비파도, 김일성·김정일화 온실, 미술관, 서점, 수산물 상점 등으로 구성돼 있다. 중국인들이 북한 관광을 갈 때는 여권 없이 신분증과 통행증만 있으면 될 정도로 간편하다. 다만 휴대전화를 가져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북한 여행을 갔다 온 중국인은 댓글 후기를 통해 귀빈 대접을 받았다고 밝혔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통일된 한반도의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상상도 제기된다. 한 중국 학자는 수십 년 뒤 통일이 됐을 때 여전히 정치적으로는 젊은 나이인 김 위원장이 대통령 후보로 나설 수 있다고 전망했다. 긴 시간에 걸쳐 한국인의 신임을 얻은 김 위원장은 통일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돼 자신의 긴 정치 여정에 정점을 찍게 된다는 것이다. 남한 인구 5000만명, 북한 인구 2500만명이란 점 때문에 불가능하다는 생각에도 타당한 반박 근거가 있다. 한국전쟁 당시 북한에서 월남한 인구가 500만명이고 60여년이 지난 지금 이들의 후손은 어림잡아 1000만명이 넘는다는 분석이 나온다. 남북 인구 7500만명 가운데 북한에 뿌리를 둔 인구가 3500만명이므로 선거에서 지역성을 따지더라도 결코 북한이 꿀릴 게 없다는 것이다. 남북이 화해 분위기에 접어들고 김 위원장이 세 차례 중국을 방문하면서 북한에 대한 중국의 시선도 크게 바뀌었다. 베이징의 명동 거리라고 할 수 있는 왕푸징에서 김일성과 김정일 배지를 단 사람이 당당하게 활보한다. 유엔의 대북 제재 결의안이란 장벽이 남아 있긴 하지만 이미 중국에는 대북 투자 붐이 일고 있다. 집값이 싼 북한에 제2의 별장을 마련하라는 부동산 광고가 나오고 북한 투자 지도가 인터넷에서 인기리에 공유될 정도다. 이런 가운데 중국의 중요 관변 싱크탱크에서는 북한을 ‘조계지+자유무역구역’으로 개발하자는 논의를 속속 제기하고 있다. 중국 공산당 중앙대외연락부의 일대일로(육·해상 실크로드) 이사단체인 싱크탱크 반고지고(盤古智庫)의 위훙쥔(于洪君) 고문은 “북한의 저렴하면서도 높은 소질의 정보기술(IT) 인력, 중국 동북 3성의 자금과 기술을 결합하면 동북아 지역이 공동으로 발전할 수 있다”며 “황금평과 위화도에서 실행한 공동개발을 다시 활성화하면 새로 시작하지 않아도 된다”고 지난 8일 베이징에서 열린 4차 한·중 전략대화에서 밝혔다. 위 고문은 “핵을 어떤 방식으로 폐기하고 어디에 운반해 어떻게 처리할지는 세계 핵보유국이 협상할 문제”라며 “북한의 핵 문제 처리가 중국의 염원에 부합하지 않는 것을 반대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한반도가 통일되더라도 주한미군은 여전히 남아 있을 것이란 말은 무책임하다고 주장했다. 피와 살과 같은 영토인 홍콩과 마카오를 서방 열강의 조계지로 내주었던 중국이 북한 조계지 개발을 앞장서서 거론하는 것은 여러 모로 걱정스럽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한 뼘의 영토도 중국에서 떼어낼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이면서도 식민지나 별반 다를 게 없는 조계지로 북한을 개발해야 한다고 말하는 중국인들의 속내를 잘 들여다봐야 할 것이다. geo@seoul.co.kr
  • 사령관 솔레이마니, 이란의 영웅·미국엔 악마

    사령관 솔레이마니, 이란의 영웅·미국엔 악마

    외신 “중동 최강 장군·스파이 대장”미군 사령관 “그는 진짜 악마”트럼프와 거침 없는 설전 벌여미국은 그를 ‘악마’라고 부른다. 그는 이란인들의 영웅이다. 그는 거셈 솔레이마니(63), 이란 정예군 혁명수비대 최정예 부대인 쿠드스군 사령관이자 군부 최고 실세다. 미국 대테러센터(CTC) 최신 보고서는 “솔레이마니는 의심할 여지 없는 현존 중동 최강의 장군”이라면서 “그는 이란에서 최고로 사랑받는 사람이자, 유력한 대선 주자”라고 평가했다. 두바이 방송 알아라비아는 솔레이마니를 “어둠의 장군이자 스파이 대장”이라면서 “강력한 정치인이자 이란 민중의 영웅”이라고 묘사했다.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는 솔레이마니를 “혁명의 살아있는 순교자”라고 칭찬했다. 이란의 적국인 미국의 시선은 다르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최근 아랍에미리트(UAE) 매체 더내셔널과의 인터뷰에서 “솔레이마니가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면서 “그 때문에 우리는 돈을 더 써야 했다”며 부정적으로 평했다. 이라크 전선에서 솔레이마니와 대치했던 미군 사령관은 솔레이마니를 ‘진짜 악마’라고 불렀다. 솔레이마니는 책략과 모략에 능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1979년 이란 혁명이 일어났을 때 혁명 수비군에 가담하여 팔레비 왕조를 무너뜨리는 데 일조했다. 그리고 1980년부터 1988년까지 진행된 이란-이라크 전쟁에 참전해 수많은 작전을 성공으로 이끌어 명성을 쌓았다. 솔레이마니가 쿠드스군 사령관이 된 것은 1998년 3월로 추정된다. 솔레이마니는 이후 직접적 군사 개입보다 민병대 등을 활용한 대리전을 벌여 시리아와 이라크, 예멘 등 중동 전역에서 이란의 영향력을 키웠다. 레바논의 막강한 친이란 무장정파 헤즈볼라가 그 대표적인 예다. CTC는 “헤즈볼라는 무장 세력을 정치화한 독특한 전략”이라면서 “헤즈볼라의 건축가는 솔레이마니”라고 분석했다. 헤즈볼라는 국경지대에서 국지전을 벌여 이란의 적국인 이스라엘을 괴롭히고 있다. 솔레이마니는 2003년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했을 때 미군을 공격했다. 당시 솔레이마니가 미국을 공격한 것에 대해 CTC는 “이라크 다음 표적이 이란이 될 것이라고 계산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솔레이마니는 쿠드스군을 활용해 이라크에 수많은 시아파 민병대를 조직했다. 이 민명대들은 미군 수백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2006년 창설한 한 민병대는 2011년 미군이 이라크에서 철수하기까지 6000건 이상의 공격을 감행했다. 이는 하루 평균 3회씩 5년간 하루도 쉬지 않고 공격했다는 얘기다. 솔레이마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도 거침없는 설전을 벌여 화제를 일으켰다.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트위터에 “역사를 통틀어 아무도 경험해본 적 없는 중대한 결과를 겪고 고통받을 것”이라고 이란을 위협하자, 솔레이마니는 “당신은 도박꾼”이라면서 “당신이 전쟁을 시작할지는 몰라도 그것을 어떻게 끝낼지를 결정하는 쪽은 우리”라고 맞받았다. 미국의 대이란 제재 완전 복원이 임박한 지난 2일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전신사진과 ‘제재가 오고 있다’는 글을 트위터에 올리자, 솔레이마니는 자신의 옆모습 사진과 ‘내가 당신과 맞서겠다’라는 글을 인스타그램에 올려 응수하기도 했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 [서울광장] ‘진정한 양심’을 검증하려면/임창용 논설위원

    [서울광장] ‘진정한 양심’을 검증하려면/임창용 논설위원

    지난 1일 대법원이 종교적 신념을 내세워 병역을 거부한 여호와의 증인 신도 오모씨 사건을 무죄 취지로 파기 환송한 뒤 후폭풍이 거세다. 대법원이 논란을 종결지은 게 아니라 외려 불을 붙인 모양새다. 재판부는 “진정한 양심에 의한 병역거부라면 이는 병역법 제88조 1항의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이 조항은 입영 통지를 받고 정당한 사유 없이 응하지 않으면 형사처벌토록 규정하고 있다. 오씨에 대한 무죄 판단은 그의 신념이 진정한 양심에 포함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대법원은 양심적 병역거부의 처벌 여부는 대체복무제 도입과 별개란 의견까지 제시했다. 즉 대체복무 여부는 현역 입영과의 형평성 문제일 뿐 헌법상 양심의 자유 침해 여부와는 관련이 없다고 본 것이다. 헌법재판소가 3개월 전 대체복무제가 규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양심적 병역 거부자를 처벌하는 것은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고 헌법에 위반된다고 판단한 것에서 한참 더 앞으로 나갔다. 논란은 우선 재판부가 강조한 ‘진정한 양심’에서 출발한다. 헌법 제19조에 ‘양심의 자유’는 명시돼 있지만 진정한 양심이란 말은 없다. 진정하지 않은 양심은 이미 양심이 아니라는 점에서 굳이 대법원이 ‘진정한’이란 수식어를 붙인 것 자체가 억지스런 면이 있다. 양심적 병역거부에 반대하는 이들이 우려하는 ‘가짜 양심’과의 차별성을 내세우려 했겠지만, 그냥 ‘양심에 의한 병역거부’라고 해도 무죄 판단 취지를 전달하는 데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진정한 양심은 어떻게 판단할까. 앞으로 종교적 신념뿐만 아니라 전쟁 반대 등 다양한 신념을 내세운 병역거부가 쏟아질 수 있다는 점에서 이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이미 각급 법원에서 재판을 받고 있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만 989명이다. 대법원은 ‘진정한’이란 애매한 기준만 제시했을 뿐 그 내용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다. 소수의견을 낸 대법관들 사이에서 “양심을 심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나왔다는 걸 보면 앞으로 누가 그 역할을 맡든 양심검증 작업은 험난할 수밖에 없게 됐다. 그 과정에서 적지 않은 논란과 사회적 갈등이 빚어질 게 불 보듯 뻔하다. 양심적 병역거부는 국제적 인권 기준과 헌법에 명시된 양심의 자유를 위해 보장되는 게 마땅하다. 남북 분단이란 특수성을 고려하더라도 그렇다. 일각의 주장처럼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면 병역체계가 붕괴될 정도로 대한민국 국력은 허약하지 않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합리적인 대체복무제가 도입된다는 전제 아래서다. 헌재가 병역거부자에 대한 처벌 조항은 합헌으로 판단하고, 단지 대체복무제가 빠진 병역의 종류 조항을 헌법불합치 판단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대법원이 병역거부자 처벌과 대체복무제가 무관하다고 선을 그음에 따라 양심적 병역거부자 문제는 현실적으로 더 꼬일 가능성이 커졌다. 극단적으로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대체복무마저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처벌할 근거가 마땅치 않게 됐다. 대법원으로선 헌법상 양심의 자유를 보다 확실하게 보장하기 위한 판단을 내렸겠지만, 앞으로 국방부나 검찰, 법원에선 대체복무와 무관하게 진정한 양심을 판정하고 ‘가짜 양심’을 처벌해야 하는 난제를 떠안게 됐다. 그나마 혼란과 갈등을 줄이기 위한 방법은 대체복무제를 제대로 설계해 시행하는 일이다. 정부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교정시설에서 현역 복무 기간의 2배인 36개월간 복무하게 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 중이라고 한다. 이를 두고 “징벌적이다”, “더 길어야 한다”는 등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어떤 게 합리적인지는 시행해 보지 않고는 알 수 없다. 일단 헌재 결정의 취지와 해외 사례 등을 참고해 설계할 수밖에 없다. 한시적 시행 후 특정 종교 신도가 폭증한다든가, 아니면 너무 가혹해 병역거부자가 대체복무마저 거부하는 사례가 빈발한다든가 하면 그때 다시 제도를 손보면 된다. 병역거부 시 대체복무를 강제할 근거도 마련해야 한다. 대법원이 대체복무제 도입과 무관하게 양심적 병역거부를 정당하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어릴 때부터 필요한 ‘스펙’을 쌓는 등 교묘한 방법으로 ‘양심의 진정성’만 검증받고 대체복무까지 거부한다면 대처하기 어렵다. 자칫 병역기피 시비가 지금보다 더 심화되고 대다수 군 복무자들의 박탈감만 커질 수 있다. 대체복무제가 단순히 병역 대체 수단을 넘어 병역거부자의 양심을 검증받는 시험장이 돼야 하는 이유다. sdragon@seoul.co.kr
  • [논설위원의 사람 이슈 다보기] 비핵화 난기류… 北 양보된 입장 내놓고, 美는 유연성 발휘해야

    [논설위원의 사람 이슈 다보기] 비핵화 난기류… 北 양보된 입장 내놓고, 美는 유연성 발휘해야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과 ‘북한의 2인자’로 지목된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이 뉴욕에서 8일 회담을 가질 예정이었으나 하루 직전 무산됐다. 멈춰섰던 비핵화를 다시 나아가게 할 분수령으로 여겨졌던 만큼 아쉬움을 남긴다. 다시 날짜를 잡아 회담을 가진다면 미국의 ‘선 비핵화·검증, 후 체제보장·제재완화’의 두터운 벽을 북한이 뚫을 수 있을지가 최대 관심사다. 내년 초 이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2차 정상회담 향배가 달려 있다. 이종석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북한이 판단하기에 미국이 아무리 비합리적인 주장을 해도 협상에서 미국의 항복을 받아 낼 방법은 없다”면서 “북한이 양보된 입장을 내놓고, 미국도 상응하는 유연성을 발휘해 합의점을 찾아가야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음은 이 위원과의 일문일답 내용.→뉴욕 고위급회담이 일단 무산되고 북·미 교착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단기적으로 그런 측면이 있다. 북·미의 시소게임, 길항 작용은 과거 방식을 따르는 게 아니고 지금까지 안 해온 협상 문화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나타난다. 미국은 기존 공식을 고수하고 있다. 그것이 미국의 ‘선 비핵화, 후 제재해제’로 나타나는데 북한이 신뢰에 기초한 비핵화 조치를 했다면 미국도 거기에 부응해 선의의 상응 조치로서 종전선언, 그리고 북한의 후속 비핵화 조치와 그에 상응한 1단계 제재해제를 요구하니까 서로가 안 맞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이 말하는 ‘신뢰’를 트럼프 대통령이 인정한 것이 6·12 북·미 정상회담의 특징이다. 그런데 미국 조야는 못 믿겠다는 거다. 불신이란 틀에서 북한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강하게 압박하고 북한이 먼저 모든 것을 보여 주지 않으면 안 된다고 요구한다. 하지만 북한은 절대 먼저 다 보여 주지 않을 거다. 리비아 방식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다. 10·4 선언 11주년 기념 행사차 평양에 갔을 때도 북한 간부가 내게 물은 게 ‘리비아처럼 우리를 취급하는 게 아닌가’였다. 북한 지도부도 알고 있지만, 미국 방식을 일방적으로 거부할 수 없다는 점이다. 불신과 신뢰 사이에서 절충점을 찾아야 한다. 그 절충점이라는 게 북·미가 가보지 못한 지점이다. →우여곡절은 있겠지만 판은 안 깨질 거다? -김정은 위원장이 비핵화로 나오는 이유가 하루 세끼 굶어서, 경제난을 피하기 위해서 하는 게 아니다. 당장의 제재와 압박을 모면하려고 나선 것도 아닌 것이다. 그렇다고 체제안전 보장만을 위해 나온 것도 아니다. 북한식 버전으로 생각하면 체제보장은 핵무기 가진 게 가장 낫다. 역시 제재해제다. 중국 못지않은 고도성장을 이루고 경제부국에 대한 청사진 때문에 나온 거다. 그래서 북한이 비핵화 궤도에서 일탈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안 해 본 일을 하기 때문에 불신이 깔린 기싸움을 하는 상황에서 실리적이고, 신뢰를 주고받는 일을 하자고 하니까 쉽지 않은 것일 뿐이다. 낙관에 방점을 찍는 이유는 현재 구조가 과거와 다르기 때문이다.→11월 2일 북한 외무성 산하 미국연구소장이 4월에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폐기된 핵 병진노선을 언급했는데. -쉽게 말하면 당국자가 아닌 자의 하소연이다. 그래도 북한 정세 인식의 한 부분을 대변하고 있다. 협상이란 게 주고받기하는 것이지 미국 너희들처럼 일방적으로 껍데기를 벗기려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얘기하는 것이다. 유의할 점은 북한이 시장경제, 경제개방 쪽으로 가고 있어서 김정은이 뒤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며 미국 말을 들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반드시 그런 것 같지는 않다. 북한 발전 노선의 제1의 길은 제재해제를 통해 외국 자본을 유치하고 지원도 받아서 경제성장을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제3의 길이 있는 것 같다. 북한이 그동안 강조한 자립경제는 몇 년 전까지 허장성세로 들렸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자립경제는 어느 나라나 적정 수준으로 필요한데, 지난 4~5년 사이에 북한 소비재, 생산재의 국산화가 놀랄 만큼 이뤄지고 있다. 문제는 적정 수준을 넘어 국산화를 추구하고 있는 점이다. 왜냐면 제재에 대비해야 하니까. 제재 때문에 자기완결성을 갖는 경제를 만들어야 한다. 국산화 추구가 과도하게 이뤄지고 있다. →장기 제재에 대비한다는 것인가. -북한은 제재가 장기화됐을 때 빈곤을 벗어나긴 어렵겠지만, 최소한 세끼는 먹고 완만한 성장을 이루는 쪽으로 가고 있다. 그것이 걱정이다. 미국은 일방적으로 찍어 누르면 북한이 굴복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비핵화가 되면 제재해제, 체제보장을 해 준다는 믿음을 미국은 갖고 있지만 북한은 안 갖고 있다. 핵·미사일 발사를 중단하고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기하는 마당에 이 정도 하면 뭔가 조치를 취해 줄 것으로 알았는데, 북한의 이런 행동에 의미가 없다고 미국이 무시하고 있다. 북한이 마지막까지도 일방적으로 밀릴 것 같지는 않고, 결론은 미국이 북한에 대해 일정한 상응 조치를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대북 불신이 있다면 북한의 대미 불신도 있다. 미국은 북한의 조치에 대해 일정한 인정을 해야 한다. 당장 제재를 완화하라는 게 아니다. 북한이 동창리 엔진시험장을 폐기하면서 상응 조치로 본 게 종전선언이다. 선언이 나오면 영변 핵시설 폐쇄에 들어가고 또 다른 미국의 선의의 조치로 제재를 완화한다는 비전만 보여 줘도 되는데 미국은 전혀 그런 얘기를 안 하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김 위원장이 경제 청사진 때문에 나온 것이라면 그를 고무시키고, 격려하며 용기를 북돋아 줌으로써 핵을 버리는 결정이 옳았다고 판단하게 하고 더 나가게 할 수 있는 것이다. 나아가 북한 주민들에게 김 위원장의 판단이 옳고 경제 올인이 옳았다는 판단을 하게 해 준다고 본다. →지난해만 해도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정책은 혼선투성이였는데 지금은 어떤가. -과거에 비해 체계는 잡힌 것 같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과 폼페이오 장관이 신뢰의 코드를 가미해 북한과 협상하고 있다면, 대북 정책 유관 부서의 중간 간부 이하 사람들과 미국 조야에는 북한 불신이 만연돼 있다. 그들은 협상 무의미론을 얘기해 왔다. 상층부에서 합의되고 인식이 공유된 것에 대해 아래에서는 계속적으로 의문시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즉 물렁한 가래떡을 딱딱한 쇠꼬챙이로 만드는 작업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종전선언이 대표적이다. 중간 간부 이하나 그들을 뒷받침하는 미국 조야의 여론에는 엄격하고 기계적인 대북 협상의 분위기가 만연해 있어 상층 레벨의 정치적 합의를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경직화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미국의 이런 상하 부조화를 뚫고 절충점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북한도 양보적인 안을 내야 한다. 무역전쟁으로 미국과 붙은 중국도 절충할 수밖에 없는 게 국제정치의 냉혹한 현실이다. →비핵화 협의와 제재 이행을 위한 한·미 워킹그룹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있다. -비핵화가 톱다운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는데 굳이 실무 수준에서 방법을 논의해 북·미 회담에 반영한다는 발상이 이상하다. 남북 관계 하나하나에 미국이 간섭하는 의도라면 곤란하다. 제재가 아닌 남북의 일반적인 관계 개선까지 들여다보겠다는 것인데 남북 관계가 갖는 자율성을 인정받아야 한다. “북·미보다 남북이 너무 앞서면 안 된다”는 건 놀부 심보다. 반목과 갈등과 대결로 점철되던 남북 관계가 협력 관계로 바뀌면서 북·미 정상회담을 만들어 냈고 비핵화를 진전시켰다. 그걸 무시하고 미국이 “나만 따라오라”, “우리만이 비핵화건 한반도 문제건 결정할 수 있다”는 태도를 보이는 건 안 된다. 중간선거도 끝났으니 미국에 강력히 얘기해야 한다. 남북 관계의 일반적 개선까지 문제시하면 우리가 북한을 설득할 최소한의 밑천도 갖지 못하게 된다. →김 위원장이 말하는 비핵화 시한이 2년 1개월 남았다. 지금 속도로 비핵화를 이룰 수 있을까. -핵·미사일 발사를 중단하면서 미국 내에서 북한 핵 문제가 최대의 외교 관심사가 아닌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 그러다 보니 미국이 북핵 문제에 시간적 여유를 가지게 된 거다. 과거엔 트럼프가 급했는데 지금은 김정은이 급해졌다. 트럼프가 요즘 대북 상황을 관리 모드에 맞춰 놓고 즐길 수 있는 수준까지 되다 보니까 북한이 한 단계 더 조치를 취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북·미 셈법이 정확히 한 군데서 맞아떨어지는 게 아니고 약간 어긋나는 측면이 있다. 이런 것을 잘 맞춰 가는 게 비핵화 종료 시점일 텐데, 트럼프 임기 내에 될 수도 있지만 안 해 본 것을 서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장담하기는 어렵다. marry04@seoul.co.kr ■ 이종석 위원은 노무현 정권 말기 2006년 2월부터 12월까지 통일부 장관을 지냈다. 문재인 대통령과는 2003년 청와대에서 문 민정수석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차장으로 인연을 맺었다. 저서는 ‘북한-중국 국경: 역사와 현장’(2017), ‘칼날 위의 평화: 노무현 시대 통일외교안보비망록’(2014) 등.
  • 회담 앞두고 트럼프 회유?…中, 이방카 상표권 또 승인

    회담 앞두고 트럼프 회유?…中, 이방카 상표권 또 승인

    중국이 오는 30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양자회담을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의 장녀에게 상표권 예비승인을 무더기로 내줘 무역전쟁 회유책이란 의심을 사고 있다.●패션·반도체 등 16건 무더기 예비 승인 미국 뉴욕타임스는 6일(현지시간) 이방카 트럼프 백악관 선임보좌관이 신발, 셔츠, 선글라스, 핸드백, 웨딩드레스, 보석 등 패션 관련 아이템과 투표 기기, 반도체, 요양원, 소시지용 케이스 등과 관련해 중국에 신청한 상표권 16건의 예비승인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상표권은 ‘이방카 트럼프 마크스 LLC’가 2016년 중국 당국에 신청한 것으로 패션 관련 제품은 ‘이방카 트럼프’란 상표로 판매됐다. 이방카는 지난 7월 의류기업의 문을 닫았고 사업 복귀 시점은 유동적이다. 중국 특허청은 지난 5월에도 미국의 중국 통신장비기업 ZTE에 대한 제재 해제를 앞두고 이방카의 상표권 13건을 승인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도 중국에서 100건 이상의 상표권을 보유하고 있다. 지난해 2월 중국은 트럼프 대통령이 대만 문제에 대한 중국 입장을 용인한다고 밝힌 뒤 38건의 상표권을 승인해 이해 충돌 논란을 낳았다. ●왕이도 빌게이츠 만나 “중미 관계 힘써달라” 왕이(王毅)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이날 제1회 중국 국제수입박람회에 참석한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를 ‘중국 인민의 오랜 친구’라며 추켜세웠다. 왕 부장은 게이츠에게 “중·미 관계의 건강하고 안정적인 발전을 위해 긍정적인 역할을 해 주길 희망한다”고 요청했다. 이에 게이츠는 “중국의 개혁·개방 성과에 크게 감동했다”며 “게이츠재단은 농업, 빈곤 퇴치 및 보건 분야와 일대일로(육·해상 실크로드) 사업에서 중국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아프리카에서 삼자 협력을 확대할 것”이라고 화답했다. 베이징 윤창수 특파원 geo@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