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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란 전쟁
    2026-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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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성민의 게임체인저] 무역전쟁 시대… 기업은 누구 눈치를 봐야 하는가

    2017년 한국이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를 배치한 이후 사드 부지를 제공한 롯데의 중국 매장 112곳 중 87곳의 영업이 중단됐다. 사실 사드의 한국 설치는 한국 정부 의지보다 핵과 미사일 실험을 지속하는 북한을 견제하기 위한 미국의 의도가 강하게 반영된 것이다. 물론 미국의 의도에는 북한뿐 아니라 중국을 견제하려는 숨은 목적이 있었을 수도 있다. 사드 배치에 중국은 사드의 레이더가 중국까지 살펴볼 수 있다고 강하게 반발하며 한국 기업들에 보복했다. 사드를 배치한 2017년 3월부터 이듬해 말까지 롯데를 포함한 한국 기업의 피해 규모는 8조 5000억원 정도로 집계됐다. 한국 정부의 미비한 대응 속에서 한국 기업들이 한국과 중국 정부 눈치를 보는 동안 한류와 한국 상품 등에 대한 중국의 한한령(限韓令)이 확대됐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한국 기업들이 지게 됐다. 지난 28일 일본은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전략물자 수출심사 우대국)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범위를 전면적으로 확대했다. 한국은 일본 기업이 한국 기업에 대해 전략물자 수출 시 관련 절차 간소화 혜택을 받지 못하게 됐다. 한국도 일본을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하고,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을 파기했다. 한국은 사드로 인한 중국의 경제보복, 중국 통신장비업체 화웨이 보이콧에 대한 미국의 압박에 이어 한일 과거사 갈등에 따른 일본의 전방위적 경제보복 위협에 놓이게 됐다. 이 중 반(反)화웨이 전선에 동참하라고 미국이 기업을 압박함에도 한국 정부는 ‘기업이 자율적으로 판단할 부분’이란 애매모호한 입장만 되풀이하며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한일 갈등 국면에서 이전의 소극적 태도 대신 강경 대응을 택했지만 일본에 대한 우리 정부의 대응은 중국 사드 보복 때와는 다르게 강경하면서도 허술하다. 한일 경제협력이 악화되면 일본도 경제적 타격을 피할 수 없다면서 일본의 실제 경제보복 가능성을 낮게 평가, 대응책을 제대로 준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피해는 사드 사태 당시와 마찬가지로 한국 기업 몫이 되고 있다. 그런데 개별 기업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사드 보복 당시 롯데는 중국 내 매장에 사과문을 걸고 상황이 타개될 때까지 이른바 ‘버티기 전략’으로 대응해 봤지만 결국 중국 사업 철수를 결정해야 했다. SK이노베이션과 LG화학은 중국에서 전기차 배터리 보조금 중지 결정을 내린 뒤 중국 외 시장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손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사드 보복 당시 민간 교류 측면에서 활로를 찾은 기업도 있었다. 중국 선양시정부는 롯데월드 시공 재개를 허가했고, 바이오업체인 한국의 셀트리온과 중국의 테슬리는 중국 내에 바이오 의약품 생산 합작법인을 세우는 내용의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기도 했다. 민간 차원 교류가 정부 눈치를 보면서도 물밑으로나마 진행됐던 사례다. 현재 한일 갈등 와중에 반일 감정이 강해지면서 일본 제품 불매운동, 일본 여행 안 가기뿐 아니라 지자체 교류까지 중단되며 민간 교류도 단절되고 있다. 이 사태에 일본 측 과실이 크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반일 감정이 심화되는 이 상황에서 어느 한국 기업이 일본 기업과 협력하고 민간 교류를 활성화시킬 수 있을까. 지금 일본에 국가 간 갈등과 관계없이 한국과의 협력을 원하는 기업들이 있고, 이런 기업들과의 민간 교류는 정부 눈치를 볼 영역이 아니라는 것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배화여대 교수
  • 美, 호르무즈 호위연합체의 이름을 바꾼 이유는...흥행부진 때문

    美, 호르무즈 호위연합체의 이름을 바꾼 이유는...흥행부진 때문

    미국이 대이란 압박 전략의 하나인 ‘호르무즈 호위연합체’ 명칭을 ‘해양안전보장 이니셔티브’로 슬그머니 바꿨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 등이 28일 전했다. 이는 연합체에 대한 ‘흥행 부진’ 때문으로 풀이된다. 미국의 강권에도 이란의 보복 등 때문에 유럽 등 전통적인 동맹들이 참가를 꺼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군사행동을 연상시키는 ‘연합’이라는 명칭에서 슬그머니 빼버린 것이다. ‘해양안전보장 이니셔티브’는 미국이 지난 7월 19일 워싱턴에서 각국을 대상으로 개최한 설명회 때부터 쓰기 시작한 표현이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도 7월 25일 폭스뉴스에서 호르무즈 호위연합체 구상을 ‘해양안보 이니셔티브’라고 불렸다. 처음에는 그렇지 않았다. 미군 최고책임자인 조지프 던포드 합참의장은 7월 9일 일본 등 동맹국에 참가를 요청하면서 ‘연합’이라는 명칭을 사용했다. ‘연합’은 유엔 안보리 결의를 거치지 않고 목적을 공유하는 국가들이 군사행동을 일으킬 때 쓰는 명칭이다. 미국에 대한 동시다발 테러로 촉발된 2001년 아프가니스탄 군사작전과 2003년 이라크 전쟁, 2014년 시리아 ‘이슬람국가(IS)’ 소탕작전 등에 연합이 결성됐었다. 워싱턴의 한 소식통은 “미국은 호르무즈 호위구상에서도 무력공격을 염두에 두고 연합체를 결성하려 했지만 지지가 확산하지 않자 해양안전보장 이니셔티브로 명칭을 바꿨다”면서 “‘연합’ 명칭을 뺀 것 만으로 일본 등의 참여를 이끌어 낼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이 아베 신조 일본 총리에게 미 주도의 ‘해양안전보장 이니셔티브’에 참가하지 말 것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을 방문 중인 자리프 장관은 이날 요코하마시에서 아베 총리에게 “외국 부대의 주둔은 호르무즈 해협의 안전에 기여하기는커녕 중동의 안정을 위험에 처하게 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아베 총리는 자리프 장관에게 “(중동) 정세의 안정화를 위해 일본이 끈기 있게 외교 노력을 계속하겠다”고 말했다고 현지 언론이 전했다. 워싱턴 한준규 특파원 hihi@seoul.co.kr
  • 트럼프 금리 인하 압박에 연준 무역전쟁 개입 반대론

    트럼프 금리 인하 압박에 연준 무역전쟁 개입 반대론

    미국 2년물과 10년물 국채의 수익률 역전이 심화하면서 경기침체 우려가 확산되는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금리 인하 압박에 대해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가 이에 응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CNBC에 따르면 미 국채 2년물 금리와 10년물 금리는 지난 26일(현지시간) 역전된 채 장을 마친 뒤 27일에는 장중 한때 각각 1.526%와 1.476%로 격차가 0.05% 포인트까지 벌어졌다. 미 국채 2년물과 10년물의 역전된 금리 격차는 2007년 3월 이후 최대다. 이같은 장단기 금리 역전은 경기침체의 전조로 여겨진다. 경기둔화 시그널이 강해지는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은 27일 트위터에 “연준은 우리 제조업체들이 세계 다른 지역에서 이익을 위해 수출로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을 사랑한다”고 게시했다. 그는 이어 “거의 모든 다른 나라들이, 좋은 옛 미국을 이용하기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살펴본 사람이 있는가”라며 “우리 연준은 그걸 너무 오랫동안 잘못 말해오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정치전문매체 더힐은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에 부활을 약속한 주요 분야인 제조업의 최근 둔화를 연준 탓으로 돌렸다”며 “제조업 둔화는 그의 재선 도전을 복잡하게 만들 수 있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간 연준이 중국이나 유럽보다 금리를 상대적으로 높게 유지해 미 시장에 해를 끼쳤고 달러가 상대적 강세를 보여 미 기업 수출 경쟁력이 약화한다며 금리 인하를 주장해왔다.그러나 이같은 금리 인하 주장에 응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전 연준 위원이었던 윌리엄 더들리 전 뉴욕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27일 블룸버그 기고문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고조된 중국과의 보복관세 싸움을 계속할 것이라는 점에 근거해 연준 위원들이 단순히 금리를 내려서는 안 된다”며 “트럼프 정부가 무역전쟁 고조라는 재앙적인 길을 계속 가도록 하거나, 정부가 그렇게 하면 대통령이 다음 선거 패배 가능성을 포함한 여러 가지 위험을 감수할 것이라는 분명한 신호를 보내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중앙은행은 무역정책에서 나쁜 선택을 계속하는 정부를 구제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명시해야 한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행동에 대한 결과도 책임져야 한다고 분명히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런 가운데 ‘미스터 둠’으로 통하는 월가의 대표적 비관론자인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같은 날 마켓워치 기고문을 통해 미중 간 무역전쟁, 중국이 추격하는 기술전쟁, 이란과의 갈등 증폭에 의한 원유 공급 감소 등에 따라 미 잠재성장률 역시 계속 줄어들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는 “무역 냉전, 기술 냉전 등으로 인한 충격은 통화정책이나 재정정책으로 해결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이란·홍콩 긴장 완화 나선 G7… 아마존 산불 진화 돕는다

    이란·홍콩 긴장 완화 나선 G7… 아마존 산불 진화 돕는다

    홍콩 자치권 지지… 사태 진정 촉구 성명 이란 핵합의 유지 노력의 중요성에 공감 트럼프 “여건 조성 땐 이란대통령 만날 것 이번 회담 성공적… 마크롱이 엄청난 일 해” 아마존 산불 확산에 정상회의 의제 포함 “지구의 허파 살려야” 271억원 즉각 지원프랑스 비아리츠에서 열린 G7(주요 7개국) 정상회담에서 7개국 정상들이 이란 핵합의 유지 노력의 중요성과 홍콩의 자치를 지지한다는 내용의 성명을 채택했다. 이란과 홍콩 등 지구촌 곳곳에서 충돌 위기가 고조되는 상황에서 G7정상들이 갈등 회복을 위해 일정 부분 타협하며 의견의 접근을 이뤄낸 것으로 보인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26일(현지시간) G7 폐막 기자회견에서 이란 핵합의(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 파기 위기 해결을 위한 미국과 이란의 정상회담 여건이 조성됐다면서 앞으로 수 주 내로 회동이 성사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이번 G7 정상회담의 의장인 마크롱 대통령은 이날 비아리츠 G7 정상회담 폐막 기자회견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함께 진행하면서 이같이 밝혔다. 마크롱은 “(이란 핵 문제를 둘러싼 갈등 해소와관련해) 아직 어떤 것도 확정된 것은 없고 아직 강고하지 않지만, 기술적 논의가 시작됐고 일부 논의에 실효성 있는 진전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이란의 하산 로하니 대통령과 통화를 했다면서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받아들이면 합의가 도출될 수 있다고 믿는다는 뜻을 전했다”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마크롱의 이런 언급에 “여건이 올바르게 조성되면 이란 대통령을 만나겠다”고 화답했다. G7정상들은 길지는 않지만 한 페이지짜리 성명을 마련했다. G7은 성명서에서 이란 핵 문제와 크림반도의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 갈등 해법 마련의 중요성에 공감하고 홍콩의 자치를 지지한다는 내용을 포함했다. 특히 G7 국가들은 개방되고 공정한 세계 무역과 글로벌 경제의 안정을 위해 노력하기로 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또 지식재산권 보호 강화와 불공정 무역관행을 없애고 분쟁을 신속히 해결하기 위해 세계무역기구(WTO)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도 강조했다. 이외에 리비아 분쟁 해소의 중요성에도 공감했다. 다만 이번 성명은 공동선언 형식이 아니라 G7을 대표해 의장국인 프랑스 대통령이 발표한 성명이라는 점에서 G7 정상들 간에 이견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관측도 있다. 지난해 6월 캐나다 퀘벡 G7 정상회담에서 정상들 간의 극심한 이견으로 공동선언(코뮈니케)을 도출하는 데 실패한 것에 비하면 의미 있는 진전으로 평가된다. 트럼프는 이번에는 마크롱과의 공동 폐막 기자회견에서 “이번 회담은 정말 성공적이었다. 진짜 G7이었다. 마크롱 대통령이 엄청난 일을 했다”고 옆에 서 있는 마크롱을 치켜세웠다. 한편 G7 정상들은 아마존을 파괴하는 대형 산불 진화를 위해 2000만 유로(약 271억원)을 즉각 지원하기로 했다고 AFP·로이터통신 등이 전했다. 브라질 당국은 군용기와 4만 4000여명의 병력을 동원해 산불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지 진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브라질 정부는 산불 진화를 위해 3850만 헤알(약 115억원)의 긴급예산을 편성했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중동은 이미 드론 전쟁 중”

    “중동은 이미 드론 전쟁 중”

    중동에서 이스라엘과 무장세력 사이에 무인기(드론) 충돌이 빈번하게 발생해 이미 ‘드론 전쟁’이 일어났다는 시각이 있을 정도다. AP통신은 25일(현지시간) 최근 일어난 드론 충돌 사례를 정리하며 “더 넓은 중동 지역에 걸쳐 드론 전쟁이 일어나고 있다”면서 지난해 미국의 이란 핵협상 탈퇴 뒤부터 시작된 드론 충돌은 특히 지난 주말 이란과 미국의 동맹 사이에 빈도가 높아졌다고 설명했다.드론은 조종사 손실 위험이 없고 크기가 작아 방공망을 뚫기가 상대적으로 쉽기 때문에 최근 양측이 애용하고 있다. 하지만 드론 사용이 잦아질수록 군사적 긴장감이 높아지는 것도 사실이다. 지난 6월엔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에서 미군 드론을 격추한 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보복 공습을 명령했다 취소하기도 했다. 무인기 기술이 가장 발전한 나라 중 하나인 이스라엘의 경우 25일 두 대의 드론이 레바논 베이루트 상공에서 사라진 뒤 다른 기체를 추가 투입해 무장단체 헤즈볼라와 긴장감을 높이고 있다. 이날 헤즈볼라 지도자 하산 나스랄라는 연설에서 “최근 이스라엘의 드론 공격으로 2명이 사망했다”며 “앞으로 레바논에 진입하는 무인기는 모두 격추될 것”이라고 말했다.이스라엘은 레바논 외에도 시리아에서 드론을 사용하고 있다. 지난 24일에는 이란이 킬러 드론으로 자국을 공격하려는 시도를 막기 위해 시리아에 드론 선제 공격을 했다고 인정했다. 이스라엘이 시리아에서 공격했다고 설명한 드론은 이란이 예멘 후티 반군에게 지원한 것으로 알려진 것과 비슷하다. 이는 폭발물을 싣고 날아가 목표물 상공에서 자동폭발하거나, 목표물에 부딪쳐 폭발하도록 사전에 설계돼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9월 재선을 노리는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공격 뒤 “누군가가 당신을 죽이려 한다면 먼저 그를 죽이라”는 탈무드 구절을 패러디했다. 이날 이스라엘 군은 시리아로 향하는 이란의 드론 보급로를 담은 지도를 공개했으며, 시리아 아크라바 마을에 조성된 드론 비행장, 최근 발사를 준비하던 중 이란 공격으로 파괴된 다른 장소도 공개했다. 조너선 코니쿠스 대변인(대령)은 “최근 몇 주 간 활동을 감시해 오다가 (이란이 시리아에서) 드론을 발사할 것을 확신하고 선제 공격을 감행했다”면서 “드론은 공중에 뜨기 전에 파괴하는 게 쉽다”고 말했다.하지만 이란은 이스라엘의 공습이 자국 드론에 어떤 피해도 입히지 못했다고 반박했다. 이란 혁명수비대의 모흐센 레제이 장군은 “(이스라엘의) 거짓말”이라면서 “시리아와 이라크를 방어하는 세력이 곧 답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레바논 헤즈볼라는 이스라엘 드론이 거의 매일 영공을 침범하고 있으며, 25일 밤에도 무장하지 않은 드론이 헤즈볼라 매체 사무실이 있는 빌딩 지붕에 추락해 피해를 입혔다고 주장했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 北 “초대형 방사포” 김동엽 “신무기 시험 마무리, 29일 이후 변곡점“

    北 “초대형 방사포” 김동엽 “신무기 시험 마무리, 29일 이후 변곡점“

    “우리의 힘을 우리가 요구하는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굴함없는 공격전을 벌려 적대세력들의 가증되는 군사적 위협과 압박 공세를 단호히 제압 분쇄할 우리 식의 전략전술무기 개발을 계속 힘있게 다그쳐 나가야 한다.” 북한이 지난 24일 ‘새로 연구개발한 초대형 방사포 시험사격’을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지도 하에 성공적으로 진행했다고 북한 매체들이 25일 보도했다. 김 위원장은 앞의 말을 한 것으로 조선중앙통신이 전했다. 통신은 “국방과학기술자들과 군수공업부문의 노동계급은 나라의 국방력 강화에서 중대한 의의를 가지는 세계적인 최강의 우리식 초대형 방사포를 연구 개발해내는 전례없는 기적을 창조했다”고 밝혔다. 전날 새벽 함경남도 선덕 일대에서 동해 상으로 발사체 2발을 발사했는데 최고 고도는 97㎞, 비행 거리는 약 380여㎞, 최고 속도는 마하 6.5 이상으로 탐지됐다고 합동참모본부는 밝혔다. 북한이 최근 잇따라 단거리 발사체 발사에 나선 이후 북한 매체에 ‘초대형 방사포’란 무기 이름이 등장한 것은 처음이다. 지난 2일 시험발사한 단거리 발사체에 대해선 ‘대구경조종방사포’라고 밝혔다. 다만 이날 중앙통신이 홈페이지에 공개한 시험발사 사진을 보면 앞서 발사한 ‘대구경조종방사포’와 탄체의 외관이 비슷해 보인다. 대구경조종방사포 발사 당시 공개한 사진에서는 이동식발사대(TEL)가 무한궤도형이고 발사관은 6개로 분석됐지만, 이날 사진에서는 차륜형 발사대에 발사관 4개가 명확하게 식별됐다. 북한은 ‘대구경조종방사포’ 발사 당시 사진을 흐릿하게 처리했으나 이날은 다양한 발사 각도가 담긴 또렷한 사진을 여러 장 공개해 신무기의 위력을 과시했다. 마치 모든 것을 마무리했다는 느낌마저 안길 정도다. 통신은 “시험사격을 통하여 초대형 방사포 무기체계의 모든 전술 기술적 특성들이 계획된 지표들에 정확히 도달하였다는 것을 검증하였다”고 밝혔다. 이어 이번 무기 개발 과정에 대해 김 위원장이 ‘혁명의 최고 이익과 현대전의 특성, 조선반도(한반도) 주변에서 극도로 첨예화되는 군사정치정세’의 요구에 맞게 국방공업을 ‘세계 최강의 수준’에 올리려는 구상을 펼쳤다고도 언급했다. 통신은 “어떤 동란에도 끄떡없을 최강의 전쟁억제력을 마련해 주신 최고 영도자 동지의 불멸의 애국실록은 조선노동당의 백승의 역사와 더불어 천만년 길이 빛날 것”이라고 평가했다. 리병철·김정식·장창하·전일호·정승일 등 당 중앙위원회와 국방과학 부문의 지도간부들이 김 위원장의 시험사격을 함께 지도했다고 중앙통신은 밝혔다. 기사에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공개된 사진에는 김 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 모습도 눈에 띈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지난번 7월 31일과 8월 2일 시험발사한 신형 대구경 조종방사포와 비교해 봐야겠지만 일단 이름도 초대형이라고 하고 사거리나 고도, 속도 등 만으로도 다른 것으로 보이지만 사진 상의 발사체만 보면 업그레이드 버전일 가능성이 높다”면서 “초대형이란 표현이나 ‘세상에 없는’이라고 표현한 것을 보면 400㎜보다 직경이 커진 완전히 다른 무기체계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번 것이 WS-2B(200㎞)나 2C(300㎞)와 유사하고 이번 것을 WS-2D급이라고 봐야 할지 모르겠다며 400㎜인 중국의 WS-2D 사거리는 400㎞ 이상으로 알려져 있다고 소개했다. 특히 김 위원장이 “8월 24일은 정말 잊을수 없는 좋은 날이다. 3년 전 바로 오늘 우리는 세계적으로 몇 안되는 전략잠수함 탄도탄 수중 시험발사에도 성공”했다고 언급한 것도 의미가 있다고 지적했다. 북미대화 국면에서 실제로 발사를 할 수는 없지만 이런 무기도 있다는 것을 상기시킨 것이란 얘기다. 마지막으로 “오늘 보도한 내용은 한미연합훈련도 끝난 시점에 대미나 대남 관련 비난이나 언급이 없고 국방과학자,기술자들에 대한 격려와 내부 결속을 다지는 메시지가 주를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 동안 신형 미사일과 방사포 발사 의도가 대외보다는 대내에 있었음을 명확히 알 수 있다”면서 “군사 기술적 측면의 분석보다 로동신문의 한 구절 한 구절을 올바로 이해하는 것이 더 중요해 보인다. 오는 29일 최고인민회의를 기점으로 변곡점이 오지 않을까”라고 조심스럽게 내다봤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日정부 ‘親아베 보도’ 요구하며 TV방송국에 허가취소 압박

    日정부 ‘親아베 보도’ 요구하며 TV방송국에 허가취소 압박

    일본어의 관용표현 중에 ‘대본영 발표’라는 것이 있다. 원래는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 최고통수기관인 대본영에서 발표한 전황 소식 등을 가리키는 것이었지만, 지금은 권력자나 권력기관에서 내놓는 신뢰할 수 없는 정보를 뜻하는 말로 쓰인다. 전쟁에서 패색이 짙어진 일제 대본영에서 승리한 전투는 부풀려 발표하고 패배한 전투는 축소해 발표한 데 대한 풍자가 이런 의미로 발전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독주체제가 장기화하면서 일본 내 TV 방송국들의 대본영 발표 행태에 대한 우려가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아베 총리가 23일로 통산 재임 2798일을 기록하며, 전후 최장기간 재임 총리가 된 가운데 장기집권의 특성인 미디어 장악이 날로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TV 방송에 보수우익의 색채가 강해지면서 정치적 공평성은 온데간데 없이 돼버렸다는 지적들이다. 23일 도쿄신문에 따르면 회장을 비롯한 경영진이 아베 정권의 입김에 따라 결정되는 공영방송 NHK는 물론이고 니혼TV, TV아사히, TBS 등 민영방송에서조차 아베 정권 편향성이 뚜렷해지고 있다. 도쿄신문은 NHK가 지난 6월 아베 총리의 이란 방문 성과를 터무니없이 부풀린 것을 대본영 발표의 대표적인 사례로 들었다. 일본 총리로 41년 만에 이란을 방문한 아베 총리는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이나 하메네이 최고지도자와 회담을 갖고 미국과 대화에 나설 것을 제안했다. 사실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말을 그대로 전달한 것이다. 이에 하메네이 최고지도자는 아베 총리와의 회담 이후 성명을 통해 “미국은 믿을 수 없다”며 제안을 일축했다. 특히 그가 이란을 방문 중일 때 호르무즈해협에서 유조선 공격이 발생해 미국과 이란 관계는 방문 전보다 오히려 더 악화됐다. 일본 내에서도 “아무리 좋게 보려고 해도 성과가 ‘제로’(0)라고 밖에는 볼 수 없다”는 평가가 줄을 이었다. 미 월스트리트저널은 “중동 평화의 조정자로서 아베 총리의 데뷔는 매우 어렵게 끝났다”고 평했다. 프랑스 르몽드는 아베 총리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의 이란 특사’라고 비꼬기도 했다. 그러나 NHK는 이란 현지까지 동행한 해설위원이 저녁 뉴스에서 “하메네이가 외국 정상과 만나는 것은 흔치 않은 일”, “하메네이가 아베 총리의 조언을 중시했다”, “이란 측의 진의를 도출하는 데 성공했다” 등 아베 총리를 띄우는 데 열중했다. 곳곳에서 비판이 쇄도했음은 물론이다. 작가 히라노 게이이치로는 트위터에서 “일본이 지금 전쟁을 하게 된다면 NHK는 대본영 발표를 내보낼 것”이라고 비판했다. NHK뿐 아니라 민방TV들도 전에없이 아베 정권에 납작 엎드리는 자세로 일관하고 있다. 6월 말 오사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아베 총리는 TV에 나와 참의원 선거(7월 21일)를 겨냥한 사실상의 선거운동을 했다. G20 정상회의에 대해서 말해야 하는데도 사회, 경제 등 주제를 언급하며 야당을 공격했다. 입헌민주당이나 일본공산당 등에 대해 ‘의미 없는 의견’, ‘난폭한 논의’ 등 표현을 쓰며 비난했다. 그 정도가 너무 심해 일부 방송에서는 진행자가 발언에 신중을 기해줄 것을 아베 총리에게 에둘러 요청하기도 했다. 최근 TBS에서는 ‘우에다 신야의 토요저널’이라는 프로그램이 갑자기 폐지되기도 했다. 진행자인 개그맨 우에다 신야가 ‘정권의 변하지 않는 체질’ 등 표현을 쓰며 비판한 직후였다. 1950년 발효된 일본 방송법은 1조에서 ‘불편부당한 방송에 의한 표현의 자유’를, 4조에서 ‘정치적 공평성 및 다각적인 논점의 제시’ 등을 방송국에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아베 정권이 방송허가 취소 등 권한을 앞세워 TV 방송국에 대한 통제를 노골적으로 강화하면서 방송법 자체가 유명무실해지고 있다는 우려가 쏟아지고 있다. 실제로 2014년 중의원 선거를 앞두고 자민당이 NHK와 민방TV들에 대해 ‘보도 프로그램의 공평·중립’을 강조하며 출연자의 발언회수나 패널 선정방법, 거리 인터뷰 방법 등에 대해서까지 세세하게 주문해 물의를 빚었다. 자민당은 2015년에는 TV아사히 ‘보도스테이션’ 출연자의 정권 비판, NHK ‘클로즈업 현대’의 방송 내용 등과 관련해 방송사 간부들을 소환해 질책하기도 했다. 2016년에는 당시 다카이치 사나에 총무상이 “정치적 공평성을 결여한 프로그램을 반복하면 방송 허가를 취소할 수 있다”고 공개적으로 엄포를 놓기도 했다. 모두 아베 정권에 대한 비판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조치로 밖에는 해석될 수없는 것들이다. 글·사진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리용호 北 외무상 “폼페이오 훼방꾼..대화도 대결도 준비했다”

    리용호 北 외무상 “폼페이오 훼방꾼..대화도 대결도 준비했다”

    리용호 북한 외무상이 23일 담화문을 발표하고 폼페이오 미국 국무부장관의 최근 인터뷰 내용을 비판하며 “조선반도 핵 문제 해결을 어렵게 하는 장본인이 미국”이라고 했다. 리 외무상의 강경 발언으로 북미 실무 회담 재개가 예상보다 늦어지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온다. 리 외무상은 담화문에서 “폼페이오 장관이 미국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만일 북조선이 비핵화를 하지 않는다면 미국은 강력한 제재를 유지하며 비핵화가 옳은 길임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망발을 했다”며 “폼페이오 장관은 미국 외교의 독초”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폼페이오 장관을 겨냥해 “그가 평양을 여러차례 방문하여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접견을 받고 비핵화를 애걸하며 새로운 북미관계수립을 외워된 이가 맞느냐”고 지적했다.또 “일이 되만 하다가도 폼페이오 장관만 끼어들면 일이 꼬이고 결과물이 나아가곤 하는데 미국의 현 대외정책보다 앞으로의 보다 큰 ‘정치적 포부’를 실현하는 데 큰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이 틀림 없다”고 했다. 미국을 향해선 “6·12 북미공동성명 채택 이후 미국이 한 일이란 한반도와 주변에서 우리를 반대하는 전쟁연습을 벌이고 전략자산을 끌어들이며 문제를 복잡하게 만든 것 밖에 없다”고 비난했다. 리 외무상은 “우리는 이미 미국 측에 알아들으리만큼 설명도 했고 최대의 인내심을 베풀어 시간도 주었다”며 “미국이 대결적 자세를 버리지 않고 제재 따위를 가지고 우리와 맞서려고 한다면 오산”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대화에도 대결에도 다 준비가 되어있다”고 강조했다. 서유미 기자 seoym@seoul.co.kr
  • [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체르노빌, 후쿠시마, 우리 아이들

    [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체르노빌, 후쿠시마, 우리 아이들

    5부작 드라마 ‘체르노빌’을 봤다. 전 세계 각종 매체와 시청자들의 극찬을 받은 이 드라마는 고증이 거의 완벽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구소련 체르노빌에서 1986년 4월 26일 있었던 원전 폭발 사고를 다룬 이 드라마는 사건의 전개 과정과 피폭자들의 참혹한 모습을 여과 없이 보여 준다. 진실을 밝히려는 과학자들의 투쟁도 존경스럽지만, 노심의 완전 용해를 막고자 투입된 광부 400명의 헌신도 감동적이다. 방사선 피폭으로 그들 중 100명 이상이 40살을 못 넘기고 죽었다고 한다. 그들이 실패했더라면 방사능이 지하수와 강을 타고 흘러가 흑해가 오염됐을 것이다. 흑해는 지중해로 흐른다. 아찔하다. 많은 영화와 드라마를 봤지만, 보는 내내 이렇게 힘겨웠던 경우는 없었다. 귀신이 이보다 무서울까? 연쇄 살인마가 이보다 흉악할까? 나라와 나라 사이의 전쟁이 이보다 참혹할까 싶다. 이 모든 비극은 체르노빌로 대표되는 원전 사고에 비하면 오히려 시시해 보일 정도다. 종말론은 흔히 셋으로 나뉜다. 개인적 종말론은 개인의 죽음과 관련되며, 민족적 종말론은 국가나 민족의 멸망과 관계된다. 우주적 종말론은 전 지구 차원에서의 최후 멸망을 가리킨다. 영화 ‘터미네이터’ 등에서 다루어지는 주제다. 체르노빌 참사는 우주적 종말론에 가까운 사건이다. 민족과 인종을 가리지 않으며, 동물과 식물 등 생태계 전반에 가공할 파괴력을 휘두르기 때문이다. 그 귀결은 지구 멸망이다. 드라마를 보면서 내내 머리를 떠나지 않은 것은 아이들에 대한 죄책감이다. 기성세대가 감당할 능력도 없으면서 구축한 시스템 때문에 파멸적인 피해를 떠안는 아이들은 무슨 죄가 있단 말인가. ‘체르노빌’을 보며 후쿠시마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1~7등급까지 있는 국제원자력사고등급(INES)에서 최악인 7등급 사고는 인류 역사상 단 두 번뿐이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와 2011년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사고다. 미국 역사상 최악의 원전 사고인 스리마일섬 원전 사고조차 5등급이다. 그럼에도 아베 정부는 원전 오염수를 태평양에 방류할 계획이란다. 바다에 떠 있는 아이들이 위태로워 보인다. 현 세대는 아이들에게 무한책임을 져야 한다. 우석대 역사교육과 초빙교수
  • 통합축제 새 지평 연 보성… 발굴 의병만 777명 ‘의향’ 알린다

    통합축제 새 지평 연 보성… 발굴 의병만 777명 ‘의향’ 알린다

    철쭉·서편제·다향 등 4개 축제 함께 개최 율포 활어잡기 페스티벌 새달까지 열려 비수기없는 사철 관광으로 지역 활성화 8년 간 못 풀었던 도시가스 공급도 해결 김철우(55) 보성군수는 전남 22개 시군 중 가장 젊은 자치단체장이다. 그러나 정치 경력이 풍부해 최연소 정치인이란 타이틀과 인연이 많다. 1998년 제3대 보성군의원에 출마해 전국 최연소 당선이란 기록을 썼다. 3선을 하며 5대에는 전·후반기 의장을 지낼 정도로 정치력을 발휘했다. 그는 의리와 뚝심의 정치인으로 불린다. 198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창당한 평민당에 입당해 지금까지 32년간 민주당을 지키고 있다. 중앙당 부대변인, 정책위원회 부의장, 대통령직속 북방경제협력위원회 전문위원으로 활동해 중앙 인맥도 풍부하다. 김 군수는 지난해 취임 후 “꿈과 희망이 넘치는 보성을 만들겠다”는 목표 아래 녹차와 소리의 고장을 넘어 군민들이 활력을 느낄 수 있는 군정을 펴나가고 있다. 오랜 정치 경험으로 상황 판단과 추진력이 남다르다는 평가를 받는 김 군수는 부임 1년 동안 이전 군수들이 엄두도 못 냈던 걸쭉한 사업들을 해결해 지역 경제 활성화로 연결시키고 있다. 최근 일본의 화이트리스트(전략물자 수출심사 우대국) 한국 제외 조치에 따른 갈등과 맞물린 상황에서 예부터 충신열사가 많아 의향이라 불려온 ‘의병의 고장’ 알리기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지난 5월 통합 페스티벌 관광객 60만여명 보성군은 축제를 통합해 새로운 대한민국 축제 패러다임을 만들었다고 20일 밝혔다. ‘사계절 비수기 없는 지역’을 실현하기 위한 과감한 시도로 지역축제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매년 5월 봄철 축제 통합페스티벌로 지역 모든 축제를 통합했다. ‘5월 하면 보성으로!’라는 말을 연결 짓도록 했다. 지난 5월 축제를 통합 개최해 관광객 60만여명을 불러모았다. 이 기간 경제적 파급 효과는 766억원에 이른다. 군은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 최우수 축제로 선정된 보성다향대축제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판소리의 르네상스를 선도하는 서편제 보성소리축제를 동시에 열었다. 전국 최대 철쭉 군락지에서 펼쳐지는 일림산 철쭉 문화축제, 율포해변 활어잡기 페스티벌 등 4개 축제를 같이 개최했다. 군 전체를 하나의 축제장으로 만들어 관광객들에게는 다채로운 내용을 즐길 수 있게 하면 더 오랜 기간 방문객이 지역에 머무르게 하겠다는 게 전략이었다. 계절을 연결하는 ‘율포해변 활어잡기 페스티벌’은 지난 5월부터 다음달까지 매주 토요일 율포해변 일원에서 만날 수 있다. 상설화 결정에 대해 김 군수는 “지속적인 관광객 유치를 고민하던 중 청정 득량만의 제철 수산물을 활용하는 활어잡기 축제는 지역 음식점과 숙박업소뿐만 아니라 어민들에게까지 혜택이 돌아갈 것이라는 판단으로 상설화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김 군수의 판단은 적중해 성황을 이루면서 유료 참가자만 회차당 1000명을 육박했다. 보성읍 시내 활성화 성공사례는 진도 등 인근 시군부터 전북 무주군, 경북 예천군 등 축제 관계자들이 견학하러 올 정도다. ●보성읍 도시가스 사업 1100억원 투입 2023년이면 보성군 보성읍에 도시가스가 공급돼 주민 9000여명이 혜택을 받는다. 보성읍 도시가스 공급 사업은 2011년부터 시작돼 8년 넘게 경제성 미비 등의 이유로 지지부진한 상태로 표류해왔다. 김 군수가 취임 1년 만에 가시적인 성과를 내며 보성읍 에너지 복지 현실화가 코앞까지 왔다. 보성군 벌교읍은 지난해 8월부터 도시가스가 공급됐으나 보성읍의 경우 한국가스공사에서 예비타당성 조사 진행 등을 자진철회하면서 사업 무산 위기에 놓였다. 김 군수는 그동안 연료비 절감 등 경제적인 관점에서 접근하던 방식을 완전히 바꿔 문재인 정부 정책기조에 맞춰 생활 사회간접자본(SOC) 사업과 연계한 소외지역 에너지 복지차원으로 사업 논리를 바꿨다. 인적·물적망을 총동원해 사업당위성을 설명하고 설득하는 노력을 기울였다. 김 군수를 비롯한 군 직원들은 매주 1회 이상 중앙부처를 방문하고, 국회의원을 면담하고, 유관기관을 수시 방문해 보성군의 생각과 사업 논리를 피력했다. 결국 1년여 만에 국무회의 의결이라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김 군수는 “숙원사업 해소를 위해 국회, 중앙정부, 가스공사 등을 찾아다니며 보성읍 가스 공급의 당위성 설명과 건의를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며 “지난 2월 청와대 주관 전국시장·군수·구청장 초청 국정 설명회에서 보성읍에 도시가스가 공급될 수 있도록 대통령에게 건의한 게 밑거름이 돼 국무회의 통과라는 큰 성과를 거뒀다”고 말했다. 보성읍 도시가스 사업은 장흥~보성~벌교(58㎞)를 잇는 가스배관 주 관로 사업이다. 사업비 1100여억원이 투입된다. 도시가스 공급이 완료되면 주민들은 연간 연료비 80여만원을 절감하고, 연간 32억원(4000가구)이 절약될 것으로 예상된다.●임진왜란~광복 350년 의병사 종합판 조정래의 소설 ‘태백산맥’에서 언급됐듯 ‘보성 가서 주먹자랑 하지 마라’는 말은 일제강점기에 용감하게 싸운 보성군민의 용기와 패기에 붙여진 일본의 두려움이었다. 지난해 군은 ‘보성의병사’ 제작에 착수해 의병 777명을 발굴해냈다. 평민 중심의 의병들은 전장에서 살아남을 때만 기록되는 특성을 고려하면 이보다 훨씬 많은 보성사람들이 의병 활동에 가담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보성은 밀고자가 적어 일본이 의병을 찾는 데 큰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보성군민 전체가 의병을 지키고 의병활동에 도움을 주는 잠재적 의병임을 의미하기도 한다. 보성의 의병사는 임진왜란이 발발했던 1592년부터 광복한 1945년까지 약 350년간 세월을 모두 포용하는 우리나라 의병사의 종합판이라 할 수 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광해군의 스승이자 퇴계 이황의 제자 죽천 박광전 선생은 노령인 나이에 700여명의 의병을 일으켜 진주성 전투에 참전, 승리를 이끌었다. 보성에서 창의한 전라좌의병이 진주성 전투 등 전국구로 의병활동을 펼친 기록은 보성 의병이 지역방위를 넘어 전국적인 의병활동에 적극 나섰다는 것을 뜻한다. 호남에 가장 먼저 3·1 만세 함성이 울려 퍼진 장소도 보성이다. 보성은 6·25 전쟁 전후로 민족상잔의 아픔을 담은 소설 태백산맥의 주무대로 아픈 역사를 문학적으로 승화하는 등 의병역사와 함께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를 포괄하는 문화적 자원까지 겸비했다. 이순신 장군이 ‘신에게는 아직 열두 척의 배가 있습니다’고 선조에게 보낸 장계 ‘今臣戰船 尙有十二’(금신전선 상유십이)를 쓴 곳이 바로 보성의 열선루다. 이순신 장군은 보성에서 10일간 머물며 수군을 모병하고, 군량미를 확보해 명량해전에서 승리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보성의 선거이 장군, 최대성 장군 등과 함께 싸웠다.백범 김구 선생은 1898년 보성 득량면 쇠실마을에서 약 40일간 피신 생활을 했다. 광복 후 고마운 마음을 잊지 못하고 다시 쇠실마을을 찾아 보성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보였다. 서재필 선생은 외가인 보성 문덕면 가내 마을에서 보성군수 서광언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갑신정변에 참여했다. 홍암 나철 선생은 벌교읍에서 태어나 민족 대종교를 만들고, 만주에 이르기까지 독립운동을 전개한 호남 의병 정신을 계승한 인물이다. 김 군수는 “보성은 녹차의 고향 다향, 서편제의 본향 예향, 충신열사가 많은 의향으로 3보향의 고장이다”며 “국가 위급 시마다 구국활동을 펼쳐왔던 남도의병의 중심지역이라는 사실을 모든 국민들이 알 수 있도록 더 힘쓰겠다”고 밝혔다. 보성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법서라] 조국 발목 잡는 ‘사노맹 사건’...신문과 판결문의 재구성

    [법서라] 조국 발목 잡는 ‘사노맹 사건’...신문과 판결문의 재구성

    1989년 11월 ‘노태우 정권 타도’ 사노맹 결성조국 장관 후보자, 기관지 ‘사과원’ 제작 참여당시 조국 아내 “진보적 학자 붓 꺾을 속셈”대법원 “사노맹과 사과원은 구분해야” 판시[편집자주] 전국 최대 법원과 최대 검찰이 몰려 있는 서울 서초동에는 판사, 검사, 변호사뿐만 아니라 그들을 취재하는 기자들도 있습니다. 일반 국민의 눈으로 보는 법조계는 이상한 일이 참 많습니다. 법조의 뒷이야기와 속이야기를 풀어드리는 ‘법조기자의 서리풀 라이프’, 약칭 ‘법서라’를 토요일에 선보입니다.“자랑스러워하지도 않고, 부끄러워하지도 않습니다.”  국회 인사청문회를 앞둔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는 여러 가지 논란에 발목이 붙잡혀 있습니다. 이 가운데 정치권 이념 논쟁, 색깔론으로까지 번져가는 논란이 있죠. 바로 ‘남한사회주의노동자 동맹’, 소위 ‘사노맹’ 논란입니다. 엄밀히 짚고 넘어가면 조 후보자는 사노맹의 기관지 제작에 참여한 혐의로 재판을 받았습니다. 사노맹이란 무엇이며, 조 후보자는 정확히 어떤 위치에서 어떠한 활동을 한 것일까요. 당시 신문기사와 기고글, 그리고 판결문을 통해 당시를 재구성해보겠습니다. ■사노맹은…“사회주의 혁명의 불길로 살라버리겠다”“우리는 전 자본가 계급을 향해 정면으로 계급 전쟁을 선포한다. 부르주아 지배 체제를 사회주의 혁명의 불길로 살라버리고자 마침내 남한 사회주의 노동자 동맹을 조직해 11월 12일 역사적인 출범의 큰 걸음을 내딛는다.”1989년 11월 12일, 서울 시내 곳곳에 사노맹의 결정을 알리는 정체불명의 유인물이 뿌려집니다. 경찰은 유포와 동시에 즉각 수사에 나서 명동역 인근에서 유인물 400여장을 가지고 있던 성균관대 사회학과 2학년생 최인규부터 연행해 조사를 시작했습니다. 이후 각종 신문 사회면 한구석엔 『“사회주의 노동자연맹 결성” 유인물 3종 수사』, 『전노협 집회장에 ‘사노맹’ 유인물…계파 혁명을 선동』등의 제목으로 기사들이 실립니다. 사노맹이 수면 위로 처음 떠오른 순간입니다. 사노맹은 노태우 정권 타도와 민주주의 정권 수립, 사회주의 제도로의 변혁, 진보적 노동자 정당 건설 등을 목표로 내세우며 결성됐습니다. 당시 서울대 학도호국단장 출신인 백태웅과 노동자 시인 박노해 등이 중심이 됐죠. 경찰에서 시작된 수사는 국가정보원의 전신인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로 구심점이 옮겨집니다. 노태우 정권이 사노맹을 ‘반국가단체’라고 규정하면서 본격적인 공안 사건으로 번져갔기 때문이죠. 당시 언론에선 ‘제6공화국 최대 공안사건’이라는 별칭을 붙였습니다. 김영수 당시 안기부 1차장은 수사결과 발표 브리핑에서 “전국의 사노맹 조직원은 1600명에 이르고 있는데다 이들이 이름이 일부는 실명, 일부는 가명 등으로 돼 있어 실체를 파악하는데 커다란 애를 먹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결국 공안당국은 총 300여명을 재판에 넘겼고, 이들에 대한 검찰 구형량만 500년이 넘었습니다. 특히 핵심축인 박노해와 백태웅을 각각 1991년과 1992년 구속합니다. 이들은 국보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각각 무기징역과 징역 15년을 선고받았습니다. 당시 조 후보자는 사노맹 활동에 직접적으로 관여한 것은 아니지만, 사노맹 산하에 있던 기관지 ‘사회주의과학원’, 소위 ‘사과원’의 강령연구실장으로서 제작에 참여했습니다. 1993년 울산대 법대 전임강사로 교편을 잡고 있던 조 후보자는 국보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6개월 옥살이를 했다, 1995년 대법원 확정판결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습니다. 그리고 이듬해 사면을 받게 됩니다. ■조국 아내의 항변 “진보적 연구자 붓 꺾을 속셈” 1993년 7월 18일, 조 후보자의 아내인 정경심(현 동양대 교수)씨는 남편이 구속된 직후 한겨레 신문 독자 코너에 한편의 글을 기고합니다. 정씨의 글을 통해 조 후보자 측이 사과원 활동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가늠해볼 수 있겠습니다.“남편은 90년 7월과 10월 두 차례에 걸쳐 조직 가입 권유를 받았지만 이를 거절해 가입원서를 써준 바 없으며 (…) 그가 관여한 도움이라는 것도 학술적인 차원을 넘지 않았고, 총 횟수도 몇 회를 넘지 않았으며 법과 관련해 학문적으로 조언하는 정도에 불과했다고 합니다.”“사과원은 사노맹과는 무관한 것으로 90년 우리 사회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대학원생과 연구자들의 공동연구단체로 알고 있습니다. 90년 하반기에 사노맹과 무관한 합법적 연구단체를 지향하였다는 연구자들이 학습모임을 사노맹과 연결하고, 더욱이 이 두 모임과는 관계를 맺지 않은 남편을 조직 사건으로 구속한 것은 도저히 상식으로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그가 학문적 처지에서 합법성이 허락하는 한도 안에서 소신을 밝힌 것이 어찌 이적성을 띤다고 하겠습니까. (…) 그와 무관한 조직 사건과 연루시키는 것은 한 진보적 학술 연구자의 붓을 꺾기 위한 저의가 숨어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의심케 합니다.”- 1993년 7월 18일자 한겨레 10면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사노맹 조직은 가입원서를 쓴 적도 없으며, 단지 학문적인 도움을 몇 차례 줬을 뿐이라는 겁니다. 나아가 사과원은 사노맹과 무관한 합법적 연구단체이며, 사노맹과 연관지어 구시킨 것은 학술 연구자를 탄압하는 조치라는 겁니다. 최근 조 후보자는 논란이 가중되자 후보자 사무실 출근길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기도 했습니다.“과거 독재 정권에 맞서고 경제민주화를 추구했던 저의 1991년 활동이 2019년에 소환됐습니다. 저는 28년 전 그 활동을 한 번도 숨긴 적이 없습니다. 자랑스러워하지도 않고 부끄러워하지도 않습니다. 20대 청년 조국이 부족하고 미흡했습니다. 그러나 뜨거운 심장이 있었기 때문에 국민의 아픔과 같이 하고자 했습니다.”조 후보자는 당시 사과원 활동을 ‘독재 정권에 맞서고’, ‘경제민주화를 추구했다’고 표현했습니다.■당시 법원 “사과원과 사노맹은 구분 기준을 명확히 해야” 조 후보자가 사과원 기관지 제작에 참여해 유죄를 선고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사실관계는 분명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1995년 대법원 판결문은 사과원과 조 후보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습니다.“피고인 조국은 사과원이 반동적 파쇼권력을 타도하고 민중권력에 의한 사회주의국가를 건설하는 데 목적을 두고 설립된 것으로서 사노맹의 활동에 동조할 목적을 가진 단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서도, 반국가단체인 사노맹의 활동에 동조할 목적으로 사과원에 가입하고 (…) ‘우리사상’ 제2호를 제작, 판매하는 등 반국가단체인 사노맹의 활동에 동조할 목적으로 표현물을 제작, 판매했다고 판단한다.”- 대법원 94도1813 판결문 (선고일자 1995년 5월 12일)당시 재판부는 사과원이 ‘단순한 사회주의 이론에 관한 학술·연구단체’가 아니라 ‘반제·반독점 민중민주주의 혁명을 통한 노동자계급 주도의 사회주의 국가건설을 주장하는 이적 단체’라고 규정했습니다. 일종의 사노맹의 ‘싱크탱크’ 역할이었던 것이죠. 다만 사노맹과 사과원의 ‘성격’에 대해선 확실하게 선을 그었습니다. ‘이적 단체’인 사과원과 ‘반국가단체’인 사노맹은 다르다는 것이죠. 실제로 재판부는 “현행 국가보안법은 반국가 단체와 이 단체에 활동에 동조할 목적으로 구성된 이적단체를 구별하고 있으며, 처벌규정도 다른 만큼 두 단체의 구분 기준은 명확히 해야 한다”면서 사과원의 직접적인 1차 목적이 국가변란은 아니기 때문에 ‘반국가단체’로 볼 순 없다고 판시했습니다. 당시 기준으로 살펴봐도 법원은 사노맹과 사과원의 활동을 확실히 구분 지었기 때문에 “조 후보자가 반국가단체인 사노맹에서 활동했다”는 야당의 비판은 다소 사실과 다르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오신환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도 조 후보자가 이미 사면을 받은 점을 언급하며 “부적절한 색깔론”이라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죠. 조 후보자 역시 청문회에서 입장을 확실히 밝히고 넘어가야 할 필요는 있습니다. 오 원내대표는 “사회부의 계급 전쟁을 행동강령으로 내걸었던 사노맹 활동을 두고 경제민주화 운동이었다고 거짓말을 하는 것은 부적절한 태도”라고 지적했습니다. 조 후보자는 위장전입 의혹, 사모펀드 투자약정 의혹 등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논란을 하나 하나 소상히 설명할 준비를 해야겠죠. 나상현 기자 greentea@seoul.co.kr
  • 우리의 마지막은 왜? 병원이어야 하나

    우리의 마지막은 왜? 병원이어야 하나

    고령화가 가속화하면서 ‘웰 다잉’(well dying)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고 있다. ‘어떻게 잘 죽을 수 있을까’쯤으로 해석되는 그 말엔 간단치 않은 철학과 현실 문제가 숨어 있다. 생의 마지막까지 얼마나 인간답게 살다가 존엄한 최후를 맞을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다. 관련 책들이 숱하게 출판됐지만 새 책 ‘인간의 마지막 권리’는 조금 색다르다. 의사·법의학자등 과학자가 아닌, 철학자이자 윤리학자의 관점에서 풀어냈다는 점에서다. 특히 ‘수동적인 자세를 깨고 죽음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이 눈길을 끈다.●우리나라 100세 이상 노인 1만 7000여명 ‘생명의 종말이자 모든 관계의 정지’인 죽음은 문학과 철학, 종교의 영역에서 중대한 주제로 다뤄진다. 그리고 그 주제는 대개 죽음(death) 자체나 죽음의 대항개념인 ‘살아 있음’의 소중함에 치중한다. 하지만 저자는 죽어감(dying), 특히 어쩔 수 없이 생명을 의료진 등 타자에게 맡긴 채 수동적인 죽음을 마주한 사람들에게 집중한다. 수명이 짧았던 시대에 사람들은 죽음을 숙명으로 받아들였다. 죽음을 신의 섭리에 따른 운명적 징벌이나 사후 세계를 향한 새로운 여정의 출발점, 혹은 자연적인 과정으로 해석하는 상황에서 죽음의 거부나 저항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것이다. 하지만 의학기술의 발달과 환경 변화에 따른 생명 연장은 ‘죽어감’에 대한 일반의 관심을 늘렸고 실제로 생명 연장과 관련한 목숨의 자기결정권을 둘러싼 논쟁이 지구촌 곳곳에서 첨예하게 진행 중이다. 지난 세기만 해도 65세 이상 생존자는 전체 인구의 13%에도 못 미쳤다. 하지만 행정안전부 자료에 따르면 2007년 2179명에 불과했던 100세 이상 노인이 2017년 7월 1만 7468명으로 무려 8배나 증가했다. 2017년 전체 사망자의 44.8%는 80세 이상 고령 노인이었다. 저자는 특히 80%의 사람들이 삶의 마지막 단계에서 사랑하는 이들과 차단된 채 의료진 도움으로 연명하다가 한계에 달하는 순간 고립돼 죽는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바로 프랑스 역사학자 필리프 아리에스가 지적했던 ‘가려진 죽음’, 혹은 ‘보이지 않는 죽음’이다. ●죽어가면서도 인간의 존엄성 지킬수 있어야 고대 로마시대 전쟁에서 승리해 군중의 환호 속에 귀환하는 장군에게 노예들은 ‘메멘토 모리’(너의 죽음을 기억하라)를 외쳤다. 인간은 언젠가 스스로의 죽음 앞에 서게 된다는 점을 일깨우는 말이다. 그런가 하면 독일 실존주의 철학자 하이데거는 ‘죽음이 있기에 삶의 의미가 있다’고 했다. 저자는 “살아가면서나 죽어가면서나 인간다움과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도록 서로서로 자유와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평화로운 죽음’, ‘인간다운 죽음’을 고려하지 않은 낡은 생명윤리로는 지금의 ‘가려진 죽음’과 ‘보이지 않는 죽음’을 해결할 수 없다고 잘라 말한다. ●안락사 찾아 해외로 떠나는 사람들도 평화롭고 존엄하게 죽을 인간의 마지막 권리 찾기는 어떻게 해결할까. 저자는 삶과 죽음을 포괄하는 죽음의 윤리를 새로 구성한 뒤 사회적 합의를 거쳐 법제화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국에선 지난해 2월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돼 죽음에 대한 자기결정권이 커졌다. 하지만 ‘죽을 권리’를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히 첨예하게 엇갈린다. 올해 초 한국인 두 명이 2016, 2018년 조력자살을 돕는 스위스 비영리단체 디그니타스의 도움을 받아 안락사로 생을 마감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서울신문 3월 6일자 1면> 디그니타스에 따르면 한국인 107명이 같은 방법으로 죽기 위해 대기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고 한다. ●사망자 76%가 집 아닌 의료기관 등서 생 마감 2018년 사망자의 76.2%가 집이 아닌 의료기관 등에서 생을 마쳤다는 사실을 꼬집은 저자는 신학자이기도 하다. 가족과 함께 집에서 맞는 죽음이란 이미 낯선 것이 된 지 오래라는 그는 천주교를 포함한 종교계도 열린 마음을 갖게 되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이런 말을 남겼다. “지금 중요한 것은 누구와 어디에서 어떤 죽음을 맞이하고 싶은지 질문하고 죽음을 미리 상상하는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죽음을 제대로 알 때 이를 관리할 수 있으며 스스로 죽음을 관리할 때 의료화된 ‘낯선 죽음’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한일 우여곡절 끝 국교 재개 합의했지만… 기로에 선 ‘1965년 체제’

    한일 우여곡절 끝 국교 재개 합의했지만… 기로에 선 ‘1965년 체제’

    한일회담은 한국이 승전국이 아니라는 이유 등으로 샌프란시스코 대일강화조약의 서명국 참가가 좌절된 것으로부터 시작됐다 할 수 있다. 이승만 대통령은 미국이 한국을 대일강화조약 서명국에서 제외하겠다는 방침을 확정하자, 조약에 일본과의 양자협의를 개최할 수 있는 근거(제4조 a항)와 일본의 한국 내 재산의 포기를 확인하는 조항(4조 b항) 등을 추가해 줄 것을 미국에 요구했고, 결국 성사시켰다. 제4조 a항은 ‘재산 및 채무를 포함한 청구권의 처리는 일본과의 특별협정으로 결정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이 조항에 근거해 미국의 주선으로 마련된 예비회담이 1951년 10월 20일 일본 도쿄에 위치한 최고사령부에서 시작되었고 중단에 중단을 거듭하다 7차 회담을 통해 1965년 6월 22일 마무리됐다. 1개의 조약과 4개의 협정이 체결됐다. ▲기본관계에 관한 조약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 ▲재일 한국인의 법적 지위 및 대우에 관한 협정 ▲어업 협정 ▲문화재 및 문화협력에 관한 협정 등이다. 양국 국회에서 비준된 뒤 1965년 12월 18일 양국 정부가 비준서를 교환함으로써 정식 발효됐다. 이날부로 양국 국교가 재개되었고 이른바 1965년 체제가 성립된 것이다. ●1차 회담(1951~1952년) ‘대한(對韓)청구권’ 문제가 핵심 쟁점이었다. 해방 후 미 군정청은 ‘법령 33호’를 통해 한반도 내 일본 정부와 기관 등의 공공재산과 사유재산을 전부 몰수했다가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인 1948년 9월 11일 한국 정부와 ‘재정 및 재산에 관한 최초 협정’을 체결하고 인계했다. 회담이 시작되고 일본은 1907년 헤이그 조약 46조의 ‘사유재산은 몰수할 수 없다’는 규정을 근거 삼아 역(逆)청구권을 주장했다. 일본은 패망 시점 일본의 한반도 내 재산을 702억여엔(당시 환율로 대략 47억 달러)으로 집계해 이 재산으로 한국의 대일청구를 상쇄하고 연합국 배상에도 충당하려 했다. 역청구권 주장이 계속되자 한국은 “일본이 청구권을 철회하지 않는 한 회담은 계속하지 않는다”는 성명을 냈고, 일본은 무기연기를 제의했다. ●2차 회담(1953년) ‘어업 문제’로 인해 일본은 회담 재개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앞서 1차 회담이 시작되기 1개월 전 이승만 대통령은 해상에 ‘이승만 라인’을 설정하고 이를 침범한 일본 어선을 ‘마구잡이’로 나포했다. 일본은 나포된 어선과 선원들을 송환받기를 원했다. 1953년 4월 15일 도쿄에서 열렸지만 일본은 이승만 라인의 철폐를, 한국은 일본의 대한청구권 주장의 철회를 서로에게 일방적으로 기대하고 있었다. ▲기본관계 ▲재산청구권 ▲재일한인의 국적 처우 ▲어업 ▲선박 등에서 5개 위원회가 설치되어 돌아가던 중 6·25전쟁 휴전이 성립되자 서로 회담을 뒤로 미루기를 원했다. ●3차 회담(1953년) 구보타 망언 파문으로 양국 간 감정 대립이 격화하고 회담이 장기간 표류했다. 일본의 식민통치가 한국에 유익했다는 이른바 ‘식민지 시혜론’이 한국 여론을 들끓게 했다. 일본 측이 역청구권을 포기하지 않자 재산청구권 위원회에서 한국 측 홍진기 대표가 “일본이 36년간의 축적을 반환하라고 한다면, 36년간의 피해를 상각하라고 요구할 수밖에 없다”고 하자 일본 측 구보타 수석대표는 “한국에서 민둥산을 녹화한 일, 철도를 깔고 항만을 건설하고 논을 조성한 일, 대장성이 1000만~2000만엔을 지출해 한국 경제를 배양한 일을 한국 측 요구와 상쇄했을 것”이라고 한 데 이어 “(한반도에) 일본이 가지 않았다면 중국이나 러시아가 들어왔을 수 있다”고 말했다. “카이로선언에서 사용된 ‘조선인의 노예 상태’라는 단어는 연합국이 전시 흥분 상태였기 때문에 나온 표현”이라고도 했다. 회담은 개시 2주 만인 10월 21일 결렬됐다. ●4차 회담(1958~1960년) ‘재일조선인’의 북송 문제가 파란을 일으킨 회담이었다. 앞서 회담 휴지기에는 상당한 진전이 이뤄지기도 했다. 1954년 구보타 망언이 철회되었고, 미국의 강력한 개입으로 일본이 역청구권을 포기한다. 한일회담에서의 최초의 합의였다. 문화재도 일부 ‘인도(반환이 아닌)되었다. 1958년 4월 15일 회담이 개최되었지만 6월 북한과 일본이 북송에 합의하자 한국은 한일무역을 단절했다. 그럼에도 미국의 적극적 중재와 양측의 필요성이 회담을 추동해 4차례 본회의를 열었으나 1960년 4·19혁명과 대통령의 하야로 회담은 보류됐다. ●5차 회담(1960~1961년) 경제협력 방식을 통한 청구권 문제의 해결 방안을 일본이 본격 제기했다. 한국은 이 방안은 수용할 수 없었지만 비공식 관련 회담에는 응했다. 장면 내각은 적극적인 대일 정책을 천명했다. 한국의 경제건설을 위해 일본과의 경제 협력이 필요하다고 봤다. 일본도 1950년대 호황기를 지나 침체기에 접어들면서 한국을 생산기지 겸 시장으로 바라보고 경제협력 구축의 필요성을 느꼈다. 1960년 9월 6일 일본 외상이 친선사절단으로 방한, 회담 재개에 합의했다. 해방 후 일본 고위관리의 첫 한국 방문이었다. 5차 회담은 5·16을 맞으면서 중단된다. ●6차 회담(1961~1964년) ‘김·오히라 메모’로 청구권의 액수와 공여 방식을 결정했다. 앞서 양국은 실무협상만으로는 타결이 어렵다고 보고 고위급 정치회담을 개최, 1962년 3월 최덕신 외무장관·고사카 외상 간 이른바 제1차 정치회담을 열었다. 이때 청구권 금액은 한국 7억 달러 대 일본 7000만 달러(차관 2억 달러 제시)로 편차가 컸다. 1962년 10~11월 2차 정치회담에서는 김종필 부장과 오히라 외상이 만났다. 앞서 배의환·스기 수석대표 간 10차례에 걸친 예비회담을 통해 상대방이 염두에 두고 있는 수치가 무엇인지 탐색했다. 메모는 ‘무상공여 3억 달러, 유상원조 2억 달러, 자금협력 1억 달러+@’로 정리되었다. 김·오히라 메모 합의 후 오히라 외상은 그 명목을 “한일국교 정상화를 축하하고 한국의 경제발전에 기여하기 위하여”라고 주장했다. 이후 일본은 청구권이 아닌 경제협력을 위한 자금으로 할 것을 회담 내내 고집했다. ●7차 회담(1964~1965년) 회담이 마무리되기까지는 2년 반이 더 소요됐다. 어업 문제, 기본조약 문제 등 나머지 현안에 대한 교섭이 남아 있었는데 일본은 특히 어업 문제를 청구권 문제의 미해결 사안과 연계시켰다. 1963년부터 김·오히라 메모에 대한 극심한 반대로 한국이 큰 혼란을 겪은 탓도 컸다. 1964년 12월 7차 회담이 재개되었다. 1965년 2월 17~20일 방한한 시나 에쓰사부로 외상이 김포 도착 성명에서 “양국 간의 오랜 역사 중에 불행한 기간이 있었던 것은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로서 깊이 반성하는 바이다”라고 한 것은 회담 타결 분위기 조성에 도움이 되었다. 일본은 조인식 직전까지 몇몇 표현에 집착했다. 예컨대 ‘청구권’이라는 단어를 끝까지 거부했고, ‘문화재’라는 명칭을 피하려 ‘문화상 협력에 관한’이란 표현을 제시했다. 최종적으로는 ‘청구권 및 경제협력협정’, ‘문화재 및 문화협력 협정’ 등의 이름으로 타협됐다. 6월 22일 이동원 장관이 일본 총리관저에서 국교정상화를 위한 1개의 조약과 4개의 협정, 2개의 의정서에 조인한 뒤 총 27건에 이르는 조약, 협정, 부속문서가 조인되거나 교환됐고 각각 국내 비준절차를 거쳐 12월 18일 발효되었다. jj@seoul.co.kr
  • 中 양날의 칼 ‘위안화 포치 시대’… 美를 벨까 中을 벨까

    中 양날의 칼 ‘위안화 포치 시대’… 美를 벨까 中을 벨까

    지난 8일 오전 9시 19분(현지시간). 지난달 31일 이후 6일 연속 기준환율을 높여오던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이 결국 이날 기준환율을 전날(6.9996위안)보다 0.06% 오른 달러당 7.0039위안으로 고시했다. 시장에서 위안화 환율이 이미 달러당 7위안이 깨진 상황에서 중국 정부의 기준환율마저 7위안을 넘어섰다는 소식이 날아들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은 ‘패닉’(공황) 상태에 빠졌다. 기준환율이 7위안을 넘겨 고시한 것은 글로벌 금융 위기가 한창이던 2008년 5월 15일 이후 11년여 만이다. 위안화 환율은 5일 홍콩 역외시장에서 처음으로 7위안을 돌파하면서 위안화 가치의 약세를 뜻하는 ‘1달러=7위안 시대’가 열린 것이다. 미국의 환율조작국 지정 이후 이 위안화 약세 현상이 뚜렷한 만큼 미중 무역전쟁이 미중 환율전쟁은 물론 글로벌 환율전쟁으로도 옮아갈 수 있다고 블룸버그통신이 전했다. 중국에 1달러=7위안 선, 이른바 ‘포치(破七) 시대’가 개막됐다. 중국 정부가 7위안 선이 무너져도 시장 개입에 적극 나서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 바람에 지난 14일 현재 기준환율이 7.0312위안을 기록하는 등 ‘포치 시대’가 지속됨으로써 위안화 가치의 약세 기조가 완연해졌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가 위안화의 약세를 용인한 것은 중국 경제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라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7일 진단했다. 위안화의 소폭 절하만으로도 해외에 판매하는 중국산 제품의 가격을 낮추는 효과가 있는 덕분에 미중 무역전쟁으로 가뜩이나 어려운 중국의 수출업체에는 위안화 가치의 절하가 단비 같은 소식이다. 장밍(張明) 중국 사회과학원 연구원은 “만약 미국이 계속 무역 갈등을 고조시키면 중국 정부가 시장의 압박에 따라 위안화를 움직이도록 내버려 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렇게 되면 고율 관세의 충격을 상쇄해 중국 수출업체들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위안화 가치 약세 현상의 현실화는 미국의 3000억 달러(약 363조원) 규모의 추가 관세부과 예고 등 미중 무역전쟁 격화와 중국 경기 둔화로 시간문제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그동안 경제적 펀더멘털(기초체력)보다 ‘환율조작국 지정’이라는 카드를 들고 으름장을 놓는 미국의 눈치를 살피느라 위안화의 약세를 방어하기에 급급했다. 데이비드 로에빙거 TCW그룹 매니징 디렉터는 중국 지도부가 미국과 선의를 구축하기 위해 인민은행은 위안화 가치 하락 압박에 저항하면서 대세를 거슬러 왔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미국의 추가 관세 보복→ 중국의 위안화 7위안 선 돌파 용인→ 미국의 환율조작국 명단 등재 등 양국이 도박 같은 치킨게임을 벌이는 통에 이제 위안화 환율의 ‘고삐’가 풀려버린 것이다. 중국 정부가 위안화 평가절하를 ‘유도하는’ 것은 물론 미국과의 무역전쟁과 관련이 있다. 위안화 가치가 떨어지면 부작용도 있지만 수출 단가가 낮아지는 효과가 있는 만큼 미국이 추가 관세를 부과하더라도 관세 충격을 상당 부분 상쇄하는 까닭이다. 미국이 얼마만큼 중국산 제품에 관세를 부과하느냐에 따라 위안화의 환율 수준이 결정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뱅크 오브 메릴린치는 미국이 오는 9월 1일부터 중국산 제품 3000억 달러에 10% 관세를 부과할 경우 위안화 가치는 연말까지 7.3위안 수준으로 떨어지고, 25%까지 관세를 부과할 경우 7.5위안까지 떨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국 정부는 위안화가 약세현상을 보이더라도 맞대응할 수 있는 곳간인 중국의 외환보유고가 여전히 3조 달러가 넘을 만큼 든든하다는 점에 자신감을 보인다. 중국 인민은행에 따르면 7월 말 기준 외환보유고는 올 들어 310억 달러가 증가하며 3조 1037억 달러에 이른다. 중국 정부가 위안화 약세를 용인함으로써 대미 ‘반격 카드’로 활용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배경이다.하지만 위안화 약세 기조는 중국에 ‘양날의 칼’이다. 미국과 전방위 갈등이 장기화할 것이라는 관측이 고개를 드는 가운데 위안화 약세를 유지하는 것은 대규모 자본유출과 이에 따른 증시 폭락, 부채 급증 등 심각한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점에서 리스크도 크다. 대규모 자본유출을 촉발할 수 있는 게 가장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상하이 종합지수는 지난 1~4월 외국인 자금의 유입에 힘입어 30% 넘게 수직 상승했다. 하지만 무역협상이 결렬되면서 상하이 증시가 곤두박질치는 바람에 투자자들 사이에 볼멘소리가 나온다. 여기에다 위안화 가치까지 추가 절하된다면 환차손까지 우려한 외국인 자금이 급속히 빠져나갈 공산이 크다. 김경환 하나금융투자 팀장은 “달러당 7위안은 자본유출과 금융불안 등을 유발한다는 점에서 중국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은 위안화 약세 가능성만으로도 대규모 자본유출을 경험한 트라우마도 있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지난 4~5월 두 달간 중국 자본시장에서 이탈한 외국자본은 무려 120억 달러에 이른다. 미중 무역전쟁 여파로 위안화 가치 하락 우려감으로 외국자본이 이탈한 것이다. 상하이 소재의 자산운용사 MQ인베스트먼트의 존 저우는 “미중 무역전쟁과 위안화 환율이 7위안대가 깨질 수 있다는 우려감으로 외국자본이 썰물처럼 빠져 나갔다”고 설명했다. 위안화 가치의 7위안 시대는 국민경제 전반에 걸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중국 경제에 미칠 충격파는 작지 않다. 위안화 가치가 떨어지면 중국인들은 더 많은 위안화를 주고 달러화 제품을 사야 한다. 해마다 석유와 옥수수, 콩 등을 대량 수입해야 하는 중국으로선 국민경제와 직결되는 농산물 등의 가격이 폭등하는 인플레 위기에도 직면할 수 있다. 중국 기업들이 갚아야 하는 외화부채 부담도 커진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따르면 국제금융협회(IIF)는 1분기 중국의 총부채가 국내총생산(GDP)의 304%에 육박했다고 밝혔다. 중국 정부가 비공식 통로를 통한 차입, 즉 그림자금융(정부 관리감독 범위 밖의 비제도권 금융)을 통한 차입을 제한하면서 비금융부문에서의 기업부채는 줄었지만 다른 부문에서 대출이 급증하면서 그 규모는 40조 달러를 넘어섰다. 글로벌 총부채의 15%에 이른다. 중국 시장조사업체인 윈드는 올해 만기 도래하는 중국의 달러화 표시 부채가 1138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위안화 가치 하락으로 중국 현지에 생산 거점을 두고 있는 홍콩계 회사나 글로벌 기업들이 빠져나갈 경우 대량 실업 사태가 발생하면서 고용 기반마저 흔들릴 수 있다. 기업들로서는 위안화 가치가 하락해 대량의 환차손이 발생하면 생산 규모를 줄이는 방식을 택할 수밖에 없다. 위안화 가치 하락은 투자 심리도 냉각시켜 중국의 경제체질 전환에도 어려움을 주고, 위안화가 불안정해지면 금융 리스크나 금융위기 발생 가능성도 커져 장기 투자계획 등이 미뤄지거나 취소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대외 개방을 통해 경제성장 구조 전환의 돌파구를 마련하려는 중국의 전략에도 차질이 생기는 것이다. 위안화 약세 기조는 중국이 야심 차게 추진하는 ‘일대일로’(一帶一路·중국판 육·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데에도 독이 될 수 있다. 일대일로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중국은 막대한 달러화 자금을 각국에 투자하고 있는데, 위안화의 가치가 낮아지면 낮아질수록 달러 자금을 조달하기 어려워진다. 안유화 성균관대 중국대학원 교수는 “중국이 일대일로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해외에 막대한 자금을 투자한다”면서 “위안화 가치가 너무 떨어지는 것은 중국 정부 입장에서도 곤란한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아베 7년 연속 반성 외면…일왕은 “과거 깊은 반성”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올해 종전일에도 과거 일본이 전쟁을 일으킨 데 대한 ‘반성’이나 ‘가해책임’ 등의 표현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2012년 12월 두 번째 집권 이후 7년 연속이다. 그러면서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신사에는 또 돈을 보냈다. 지난 5월 즉위한 나루히토 일왕은 부친인 아키히토 상왕이 했던 것처럼 ‘깊은 반성’이란 표현을 썼다. 아베 총리는 15일 제74회 종전일을 맞아 도쿄 지요다구 부도칸에서 열린 전국전몰자추도식 기념사에서 “일본은 전후 일관되게 평화를 중시하는 나라로서 한길을 걸어왔다”, “전쟁의 참화를 두 번 다시 반복하지 않을 것” 등 일본의 역할을 강조하는 데 주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반면 한국, 중국 등 아시아를 전쟁의 참화로 몰고간 데 대한 반성이나 가해책임에 대한 언급은 일절 없었다. 1993년 호소카와 모리히로 정권 이후 일본 총리들은 모두 종전 기념사에서 자국의 가해책임을 언급해 왔다. 아베 총리도 1차 집권 때인 2007년 종전일에는 “많은 나라에 커다란 손해와 고통을 줬다. 전쟁의 반성에 입각해 부전의 맹세를 견지하겠다”고 발언했다. 하지만 2차 집권을 하고 나서 처음 맞은 2013년 종전일부터는 이런 표현을 쓰지 않고 있다. 아베 총리에 이어 발언에 나선 나루히토 일왕은 “소중한 목숨을 잃은 수많은 사람들과 유족을 생각하며 다시금 깊은 슬픔을 느낀다”며 “깊은 반성의 바탕 위에 두 번 다시 전쟁의 참화가 반복되지 않기를 간절히 기원한다”고 말했다. 아사히신문은 “(부친인) 아키히토 상왕이 2015년 추도식부터 사용해 온 ‘깊은 반성’이라는 표현을 똑같이 쓰는 등 상왕의 발언을 대부분 계승했다”고 평가했다. 이날 아베 총리는 측근인 이나다 도모미 자민당 총재 특별보좌관을 통해 야스쿠니신사에 돈을 보내면서 “우리나라의 평화와 번영은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영령들 덕분으로 이에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는 뜻을 전했다. 외교부는 이날 대변인 논평을 내고 아베 총리가 야스쿠니신사에 공물료를 봉납한 데 대해 “깊은 우려를 표한다”며 “일본의 정치 지도자들이 과거사에 대한 겸허한 성찰과 반성을 실제 행동으로 보여 줄 것을 촉구하며 이러한 자세가 바탕이 될 때 한일 관계가 미래지향적으로 발전하고 나아가 국제사회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고 했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위안부·징용 거론 안한 文… 한일 미래지향적 관계에 무게

    위안부·징용 거론 안한 文… 한일 미래지향적 관계에 무게

    비판 자제 수위 조절하고 평화시대 강조 치킨게임 양상 막고 외교해법 모색 판단 GSOMIA 연장 결정 등 변곡점 아직 남아 文 “세계 고도 분업체계 통해 공동 번영” 日의 경제보복 이율배반적 조치 지적 속 한국경제 체질 개선강국 발돋움 의지도 일본의 경제보복으로 한일 관계가 수교 이후 가장 얼어붙은 가운데 15일 문재인 대통령이 내놓은 광복절 메시지는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란 표현에 담긴 극일 의지와 더불어 “지금이라도 대화와 협력의 길로 나온다면 기꺼이 손을 잡을 것”이라는 대화의 손짓으로 축약된다. 과거사 문제는 국민적 공감대와 피해자 합의가 선행해야 한다는 원칙을 이어가되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를 지향한다는 ‘투트랙 기조’의 연장선인 셈이다. 특히 문 대통령이 일본에 대한 고강도 비판을 자제하고, 양국 간 민감한 현안인 ‘위안부’나 ‘강제징용’을 직접 거론하지 않는 등 수위 조절을 했다는 점에서 공동 번영의 길로 나아가기 위한 ‘대화의 문’을 열어 놓는 데 보다 무게를 둔 것으로 해석된다. 오는 23일까지 연장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등 몇 차례 터닝포인트가 남아 있지만, 향후 일본의 대응 기조에 따라 한일 갈등 국면이 전환점을 맞이할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거론된다. 이날 대일 메시지의 전반적 기조는 앞서 문 대통령이 지난 3·1절 기념사에서 “과거는 바꿀 수 없지만 미래는 바꿀 수 있다. 역사를 거울삼아 한국과 일본이 굳건히 손잡을 때 평화의 시대가 성큼 우리 곁으로 다가올 것”이라고 했던 것과 맞닿아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 8일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서도 “모두가 피해자가 되는 승자 없는 게임”이라고 규정하며 ‘치킨게임’ 양상으로 치닫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경제보복의 부당함과는 별개로 외교적 해결의 가능성을 닫아 놓아서는 안 된다는 판단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이번 사태의 도화선이 된 강제징용 문제를 한 번도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다. 대신 “일본과 함께 일제강점기 피해자의 고통을 실질적으로 치유하고자 했고 역사를 거울삼아 굳건히 손잡자는 입장을 견지했다”며 “과거를 성찰하는 것은 과거에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딛고 미래로 가는 것”이라고 했다. 2015년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전후 70년 담화에서 “전쟁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우리의 자손, 그리고 다음 세대의 아이들에게 사죄를 계속하는 숙명을 안겨 주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 데서 드러나듯 우익은 물론 일본 사회 내 팽배한 왜곡된 역사인식을 에둘러 비판한 것으로도 해석 가능한 대목이다. 또한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가 이율배반적이란 점을 지적하고, 단호하게 ‘극일’의 길로 나아가겠다는 점도 분명히 밝혔다. 문 대통령은 “세계는 고도 분업체계를 통해 공동번영을 이뤄 왔고, 일본 경제도 자유무역 질서 속에서 분업을 이루며 발전해 왔다”며 “국제 분업체계 속에서 어느 나라든 자국이 우위에 있는 부문을 무기화한다면 평화로운 자유무역 질서가 깨질 수밖에 없으며 먼저 성장한 나라가 뒤따라 성장하는 나라의 사다리를 걷어차서는 안 된다”고 했다. 아울러 일본의 경제보복에 따른 위기를 오히려 한국 경제의 체질 개선 기회로 삼고, 일본을 뛰어넘는 경제강국으로 발돋움해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를 만들자고 천명했다. 문 대통령의 인식은 “아직도 우리가 충분히 강하지 않기 때문에 아직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를 이루지 못했다”거나 “부당한 수출규제에 맞서 책임 있는 경제강국을 향한 길을 뚜벅뚜벅 걸어갈 것”이라는 대목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화해의 손 내민 문대통령…“원폭 피해자 희생” 강조한 아베

    화해의 손 내민 문대통령…“원폭 피해자 희생” 강조한 아베

    문 대통령 ‘일본’ 12번 언급 vs 아베 韓 언급 없어문 대통령 “日 과거 성찰하고 함께 평화 이끌자”아베 “자국민 전몰자 희생으로 평화와 번영 누려”나루히토 새 일왕, 부친 뜻 이어 “과거 깊이 반성”일본의 경제도발로 한일 갈등이 최악으로 치달은 가운데 맞이한 제74주년 광복절에 한일 정상은 각각 국민들에게 메시지를 내놨다. 문재인 대통령은 일본과 동아시아의 평화를 함께 이끌고 싶다며 화해 의사를 내비친 반면,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반성이나 가해자로서의 책임을 회피한 채 자국 전쟁 희생자의 피해를 강조하는 데 치중했다. 다만 지난 5월 새롭게 즉위한 나루히토 일왕은 부친 아키히토 전 일왕과 마찬가지로 과거를 깊이 반성한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이날 충남 천안 독립기념관에서 발표한 광복절 경축사에서 일본과의 경제 갈등을 대화로 풀어가겠다는 의지를 나타냈다. 그는 “우리는 과거에 머물지 않고 일본과 안보·경제협력을 지속해 왔다”며 “일본과 함께 일제강점기 피해자의 고통을 실질적으로 치유하고자 했고, 역사를 거울 삼아 굳건히 손잡자는 입장을 견지했다”고 언급했다.이어 문 대통령은 “과거를 성찰하는 것은 과거에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딛고 미래로 가는 것”이라며 “일본이 이웃 나라에 불행을 주었던 과거를 성찰하는 가운데 동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함께 이끌어가길 바란다. 협력해야 함께 발전하고 발전이 지속가능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경축사에서 ‘일본’을 모두 12번 언급하며 양국 관계 개선을 강조했지만 아베 총리는 달랐다. 철저히 한국을 외면했다. 아베 총리는 이날 도쿄 지요다구 닛폰부도칸에서 태평양전쟁 패전 74주년 기념행사인 ‘전국전몰자추도식’에 참석했다. 아베 총리는 자국민 전쟁 희생자를 분류해 언급했다. 그는 “이전 대전에서 300만여명의 동포가 목숨을 잃었다”며 “조국의 장래를 걱정해 전쟁터에서 숨진 사람들, 종전 후 먼 타향땅에 있다가 돌아가신 분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와 도쿄를 비롯한 각 도시의 폭격, 오키나와 지상전 등으로 무참히 희생된 분들”이라고 거론했다.아베 총리는 “지금 우리가 누리는 평화와 번영은 전몰자 여러분의 고귀한 희생 위에 세워진 것”이라며 “다시 한번 충심으로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바친다”고 했다. 그는 “우리는 전후 일관되게 평화를 중시하는 나라로서 한길을 걸어왔다. 역사의 교훈을 깊이 가슴에 새겨 세계 평화와 번영을 위해 힘을 다했다. 전쟁의 참화를 두 번 다시 반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아베 총리는 또 “세계가 직면한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제사회와 힘을 합쳐 최선을 다하겠다”면서도 한국과의 갈등을 비롯한 이웃나라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따로 언급하지 않았다. 교도통신은 2012년 말 총선에서 이겨 재집권을 시작한 아베 총리는 2013년 이후 지금까지 한 번도 8·15 종전 기념행사에서 가해자로서의 일본 책임을 거론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다만 지난 4월 퇴위한 부친 아키히토 전 일왕에 이어 5월 즉위한 나루히토 일왕은 과거를 깊이 반성한다고 밝혔다. 그는 전후 오랫동안 이어온 평화로운 세월을 생각하고 과거를 돌아보며 “깊은 반성”(深い反省)을 한다고 했다. 또 “두 번 다시 전쟁의 참화가 반복돼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간절히 원한다”며 세계 평화와 일본의 발전을 기원한다고 덧붙였다. 아키히토 전 일왕은 2015년 추도식 때부터 ‘깊은 반성’이란 표현을 사용해 왔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황성기 칼럼] ‘65년 체제’ 깨든가 고치든가

    [황성기 칼럼] ‘65년 체제’ 깨든가 고치든가

    지난 3월 일본 NHK에서 방송한 드라마 ‘부유하는 세상의 화가’는 2017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가즈오 이시구로가 1986년에 펴낸 같은 이름의 소설이 원작이다. 주인공인 노화가가 일본의 침략전쟁 와중에 일본 정신과 천황을 찬양하는 그림을 그려 부와 명예를 누렸으나, 패전과 동시에 미 군정에 의해 ‘전범’으로 몰려 붓을 꺾고 180도 뒤집힌 가치관 속에서 살아가는 내용이다. 일견 과거를 반성하고 고뇌하는 듯 흘러가던 드라마는 마지막에 충격적인 대사를 시청자에게 던진다. “스스로를 부당하게 비난할 필요는 없어. 적어도 우리들은 신념에 따라서 행동하고 최선을 다해 일했으니까.” 침략과 전쟁, 식민지배의 음습한 역사를 ‘신념’과 ‘최선’이란 말로 포장하거나 덮으려는 세력이 일본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이시구로는 ‘전범 화가’를 통해 암시하려고 했을지 모른다. 패전 70주년을 하루 앞둔 2015년 8월 14일 아베 신조 총리는 담화에서 이렇게 말한다. “전쟁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우리 아이들과 손자, 그리고 그다음 세대의 아이들에게 계속 사죄의 숙명을 짊어지게 해서는 안 된다.” 담화에는 분명 ‘통절한 반성’과 ‘진심 어린 사죄’란 옹색한 표현이 있긴 하다. 하지만 아베가 진정 말하고 싶었던 것은 사죄의 대물림을 끊겠다는 데 있지 않았을까. 노화가가 자신에게 던지는 과거의 합리화 궤변은 ‘전후 레짐(체제)의 탈피’를 역설해 온 아베의 모습과 그다지 다르지 않아 보인다. ‘사죄의 숙명’에서 벗어나려는 아베의 행동은 담화 발표 후 4년 뒤 강제동원 판결을 핑계로 한 백색 국가 제외라는 기습적 조치로 구현된다. 한국에 65년 협정을 지키라며 50여년 지켜 온 양국의 신뢰 관계를 허무는 경제보복은 사실상 ‘65년 체제’의 종언을 일본이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다. 1965년의 한일 청구권협정은 54년간 성역이었다. 성역이 뭔가. 들여다봐서도, 만져서도 안 되는 신성불가침의 영역이다. 지금도 한일협정을 깬다는 소리를 하면 기겁부터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비교적 진보 성향의 사람들조차 한일협정에 손상이 가면 나라가 결딴나기라도 하는 양 예민하게 반응한다. 일본과 관계를 끊어서 어쩌자는 거냐며 호들갑 떠는데 한일기본조약과 청구권협정을 맺은 ‘65년 체제’는 이제 더이상 성역과 동의어가 아니다. 민주화한 사법부가 2012년 5월 강제동원 피해자의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고, 2018년 10월 30일 그 판결을 확정했다. 이미 그들 판결로 협정은 협정일 뿐 성역이 아니라고 주문을 읽어 내린 것이다. 처음부터 협정에 결함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반세기 넘게 한일의 침묵 카르텔이 유지됐다. 그러나 일본의 경제보복 7·4(반도체 부품 3품목 수출규제), 8·2(백색국가 제외) 조치는 역설적으로 협정에 숨은 모순을 우리들에게 가르쳐 줬다. 이제는 그 카르텔이 깨졌다. 누더기로 변한 65년 체제는 기워서 재활용하기 어려운 지경이 됐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가 지난 3일 1965년 한일협정 체제의 청산을 제안했다. 심 대표는 65년 협정의 불평등한 요소를 수용해 우리 국민의 인권을 짓밟는 결정은 절대 해서는 안 된다면서 ‘65년체제청산위원회’를 대통령 산하에 구성하자고 말했다. 왜 이런 소리가 협정이 체결되고 50년이 더 지난 지금에서야 공당의 대표 입에서 나왔는지 놀라울 정도다. 87년 민주화에도 꼭꼭 숨어 있던 65년 협정 신화는 지상으로 내려와야 한다. 세상에 영원불멸은 없다. 국가끼리 맺는 조약, 협정도 예외가 아니다. 한미 군사훈련을 ‘터무니없고, 돈 든다’고 새털처럼 조롱한 트럼프야말로 협정·조약의 탈퇴·파기의 선수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폐기, 파리협정 이탈 그 모두 트럼프 작품이다. 이란 핵 합의를 내동댕이치고 러시아와 맺은 중거리핵전력조약(INF)도 서슴없이 깼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파기를 위협해 미국에 유리하게 개정하고, 일본의 아킬레스건 미일안보조약도 흔들어 댔다. 최강자가 부릴 수 있는 횡포이지만 탈퇴와 파기가 반드시 강자의 전유물은 아니다. 누더기가 된 65년 체제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이제 그 물음과 솔직하게 대면할 시간이 왔다. 더는 한국과 같은 편이 될 수 없다는 일본 횡포에 우리도 결기를 보여야 한다. 언제까지 피식민국 보는 듯한 무례한 언행을 참고 견뎌야 하나. 65년 체제를 깨든가, 고치든가 양단간에 결단을 내릴 때가 왔다.
  • “성탄절 소비 악영향 피하려 연기”… 中 관세 ‘타격’ 인정한 트럼프

    “성탄 잔치 재 뿌리는 악당되기 싫었을 것” 트럼프 후퇴, 中엔 ‘굴복 신호’로 보일 수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산 수입품에 대한 추가 관세 부과를 연기하기로 한 결정에 대해 “연말 크리스마스 시즌 쇼핑에 미국 소비자들에게 이전에 없던 악영향을 미치지 않기 위한 차원”이라고 13일(현지시간) 밝혔다. 워싱턴포스트(WP) 등 미 언론은 트럼프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을 놓고 “관세 부과로 인한 타격이 미국 소비자들에게 전가된다는 점을 결국 인정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펜실베이니아로 떠나기 전 기자들과 만나 대중(對中) 관세 부과 연기 조치의 배경에 대해 “우리는 크리스마스 시즌 때문에 이것(추가 관세 부과 연기)을 하는 것이다. 관세가 미국 소비자들에게 영향을 미칠 만일의 경우에 대비하기 위한 차원”이라고 답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지금껏 대중 관세 부과가 미 소비자에게 미친 영향은 사실상 없었다”면서 “유일한 영향은 중국으로부터 거의 600억 달러(약 72조 7800억원)를 끌어모았다는 점”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WP는 트럼프 대통령이 ‘만일에 대비해서’라는 식의 표현을 썼지만 관세는 전적으로 중국에 부담이 될 것이란 기존 주장과 크게 달라졌다는 점을 지적했다. 워싱턴의 싱크탱크인 경쟁기업연구소(CEI) 라이언 영 선임연구원은 “크리스마스 시즌 선물로 인기 있는 품목에 대한 관세를 연기한 것은 중국 생산자가 아닌 미국 소비자가 관세를 지불하고 있다는 사실을 암묵적으로 시인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 출신인 경제학자 필 레비는 WP에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성탄 잔치에 재를 뿌리는 악당이 되기 싫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이번 추가 관세 부과 연기 조치는 중국에 ‘굴복의 신호’로 비춰질 수 있다는 진단도 나왔다. 헤지펀드 헤이먼캐피털의 설립자 카일 배스는 미 경제전문매체 CNBC에 출연해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전쟁에 목소리를 높이다가도 주가지수가 몇백 포인트씩 떨어질 때마다 종전 입장에서 후퇴했다. 중국은 이런 현상을 주요 약점으로 해석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 무역대표부(USTR)는 이날 오전 다음달 1일부터 10% 관세를 부과하기로 했던 3000억 달러 규모 중국산 제품 중 일부에 대해 부과 시점을 올 12월 15일로 연기했다. 이번 관세 표적에는 스마트폰, 게임기, 노트북, 장난감 등 소비재가 대거 포함됐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번에 연기된 품목의 지난해 수입액이 1560억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했다. 애플의 아이폰과 맥북은 여기에 포함됐으나, 에어팟과 애플 워치를 비롯해 오토바이, 리튬이온 배터리 등은 예정대로 관세를 면치 못하게 됐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한국 가서 사죄해야 한다”…日할머니의 ‘마지막 여행’

    “한국 가서 사죄해야 한다”…日할머니의 ‘마지막 여행’

    올 3·1절 100주년 서대문형무소 방문 “고통받고 죽어 간 곳” 휠체어서 내려 소녀상 만난 뒤 귀국 10일 만에 별세한국에 대한 ‘가해의 역사’ 앞에 일본은 진심 어린 사죄를 해야 한다고 늘 말해 온 일본 할머니가 올 3·1절 100주년을 맞아 ‘생애 마지막 여행’을 서울에서 한 뒤 조용히 눈을 감은 사실이 알려졌다. 최후의 여행에서 할머니가 마지막으로 한 일은 옛 일본대사관 앞에 있는 소녀상과의 만남이었다. 할머니는 자신을 화장한 뒤 어릴 적 살던 북한 압록강변에 산골(散骨)해 달라고 유언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일본 가나가와현 요코스카에 거주해 온 에다 유타카 할머니. 1928년 함경남도 함흥에서 일본 군인의 딸로 태어나 유년기를 보내고 취학 직전 일본에 돌아갔던 에다 할머니는 올해 3·1절 한국을 방문해 자신에게 남아있던 마지막 힘을 소진한 뒤 10일 만에 세상을 떴다. 14일 장남 에다 다쿠오(64)에 따르면 할머니는 올해 3·1절을 앞두고 아들에게 “죽기 전에 나를 한국에 꼭 좀 데려가 달라”고 생의 마지막 부탁을 했다. 연로해지면서 심장병, 폐렴에 한랭응집소증이란 희귀병까지 나타난 90대 어르신을 모시고 비행기를 타는 게 겁이 났지만, 아들은 어머니의 청을 받아들였다. 스스로 건강을 자신하지 못했던 할머니는 만일의 경우 불필요한 연명치료는 하지 말아달라고 의료진에게 요청하는 ‘리빙윌’(종말기 의료에 관한 사전의향서)까지 준비했다. 할머니는 어릴 적 한국에서 있었던 일을 임종 때까지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때 ‘순남이’라는 조선인 식모가 나를 정말 예뻐하고 잘해 주었는데, 우리 어머니가 순남이를 얼마나 구박하고 괴롭히셨는지.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그게 마음에 걸려서 남북이 통일되면 꼭 순남이랑 살던 동네에 찾아가 용서를 빌려고 했지.” 할머니는 평소 1919년 3·1운동이 같은 해 중국 5·4운동의 산파 역할을 하는 등 제국주의에 맞선 아시아 독립운동의 뿌리라는 생각을 확고히 갖고 있었다. 한반도에 대한 애착에 더해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한 결과였다. 졸업 후 할머니는 일본 민속학의 태두인 미야모토 쓰네이치의 밑에서 민중생활사를 연구했다. 위안부 피해를 다루는 단체 일본의전쟁책임자료센터 회원으로도 꾸준히 활동했다. 이 단체는 위안부 강제동원에 대한 조사자료를 일본 정부에 제출하고 ‘일본의 군 위안부 연구’ 등을 펴낸 곳이다. 그러면서 야간고교 교사로서 학생들에게 일본의 조선 침략을 알리고 전쟁의 참화를 일깨우는 데에도 힘을 기울였다. 할머니는 지난해 3차례에 걸친 남북 정상회담에 큰 기대를 걸었다고 한다. “한반도가 남북으로 나뉜 것은 일본 때문”이라는 부채의식에서였다. 평소 할머니의 말. “1945년 2월 태평양전쟁에서 도저히 승산이 없게 되자 당시 고노에 후미마로 내각은 연합군에 항복을 하려고 했지. 그런데 그때 국가 지도부가 결단을 못내리면서 전쟁이 길어졌고 그 결과 오키나와전,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투하 등 막대한 추가 인명피해를 초래한 거야. 하지만 이뿐만 아니라 소련이 참전하게 되면서 남북이 나뉘고 말았지. 그러니 우리는 남북 분단에 막대한 책임이 있는 거야.” 지난 2월 28일 휠체어를 타고 서울에 도착한 할머니는 3월 1일 광화문 기념행사에서 온 힘으로 태극기를 흔들었고, 2일에는 임진각 망배단을 찾아 남북 통일을 기원했다. 경건한 마음가짐은 불편한 몸을 이끌고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3일 서대문형무소에 갔을 때 할머니는 갑자기 휠체어에서 내리게 해 달라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고 죽어간 이곳을 내가 앉아 갈 수는 없다”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한국에서 마지막 날인 4일 할머니는 위안부 소녀상 앞에 데려다 달라고 청했고, 비슷한 또래였을 소녀의 손을 잡았다. 회한과 미소가 한데 섞인 표정으로 소녀의 손을 어루만지고 또 어루만졌다. 그리고 귀국 비행기를 탔다. 마지막 바람을 다 이뤘다는 안도감 때문이었는지 할머니는 일본 도착 이틀 후인 6일부터 병상에 누웠고, 14일 운명했다. 장남은 “어머니께서 세상을 떠나면서 남긴 최후의 말은 ‘반자이’(‘만세’의 일본 발음)였다”면서 “마지막으로 3·1운동의 외침을 머릿속에 간직하며 돌아가신 것 같다”고 말했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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