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이란 전쟁
    2026-04-05
    검색기록 지우기
  • 충북지사
    2026-04-05
    검색기록 지우기
  • 올해 환율
    2026-04-05
    검색기록 지우기
  • 삼성 합병
    2026-04-05
    검색기록 지우기
  • 엔하이픈
    2026-04-05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1,197
  • [문화마당] 무기와 악기/이진상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피아니스트

    [문화마당] 무기와 악기/이진상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피아니스트

    중국의 무협영화에서는 악기와 무기가 한 장면에 담기는 장면을 자주 찾아볼 수 있다. 중정에서 용호상박 무기가 부딪치며 무예를 겨루는 순간에 툇마루에서는 단순하고 나른하기 그지없는 단선율의 멜로디가 홀로 흘러나온다. 더 나아가서는 악기를 연주하는 행위 자체가 무예로 묘사되기도 한다. 피리를 연주하다 피리를 무기 대신으로 사용한다든지 심지어는 가야금 같은 악기를 뜯으면 충격파가 나가는 장면이 꽤나 비현실적이면서도 충분히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한계를 벗어난 초인적인 기예에 대한 동경을 누구나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피아노를 폭발적인 에너지로 연주한 다음 떨리는 현에 담배를 갖다 대면 불이 붙는 장면은 말도 안 되지만서도 통쾌하기까지 하다. 문명의 발달은 도구의 발달과 그 역사를 함께한다. 도구나 기계는 보다 편리하고 안전하고 효율적인 에너지 활용을 위해 존재한다. 자신보다 크거나 강한 동물로부터 보호하거나 그런 동물들을 사냥하기 위해 도구를 사용하는 그때부터 무기의 역사는 시작됐다. 무기를 제작하고 활용하면서 전쟁이 발발했고, 도시와 국가의 경계가 생겼다. 대규모 전쟁을 눈앞에서 겪어 보지 않은 우리들이 현재 만끽하는 도구와 기술 문명은 언제나 인간을 보다 더 풍요롭게 해 주고 우리를 안전하게 해 주는 선의 가치로만 여겨지지 그것이 전쟁을 위한 도구로 느껴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원자력, 정보통신, 비행기 등 모든 우리가 누리는 현대 문명의 발전사는 사실 영토 확장과 전쟁의 승리를 위한 데에 그 본래의 목적이 있었다는 것을 완전히 부정할 수 없다. 농경사회에 들어서면서 인간이 아닌 자연에 상처를 입히기 시작하는 시대를 열게 된다. 자연은 인간보다 너그럽고 놀랄 만한 치유력을 가지고 있어 우리는 매번 용서받고 터전을 허락받는다. 사냥하고 전쟁하고 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방법과 무용담을 다음 세대에 전해 주기 위해 벽에 그림을 그리고 글자를 새긴다. 농경을 시작한 뒤에 곡식을 담고 저장할 수 있는 그릇을 만들고 덮고 입을 수 있는 천을 짠다. 문명이 문화로 우리 삶에 녹아들기 위해서는 여가를 즐길 수 있는 여유 시간과 치유하고 소통하려는 이타적인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기술과 물질을 정신적인 상호작용과 인격의 완성으로 사용할 때 문명이 문화로 거듭난다. 문명(文明)은 눈이 떠지고 깨이는 순간 곧바로 새 시대로 전환되지만, 문화(文化)는 체득되고 생활에 적용되는 데 긴 시간을 필요로 하며, 그것이 어떠한 문화라고 받아들여질지에 대한 판단은 다음 세대의 몫이다. 무기와 악기는 그런 차이에서 같은 아버지에게서 태어났지만 다른 어머니에게서 길러진다. 무기는 문명의 이기고 악기는 문화의 산물이란 뜻이 아니다. 모든 기술과 도구는 사용하는 사람에 의해 무기가 될 수도 있고, 악기가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승전을 알리기 위한 뿔피리를 깎아 불고, 가죽을 펴서 빈 통에 이어 붙여서 북을 두드린다. 망치를 두들기는 대장장이에게서 배음의 음률이 발견됐고, 활을 만드는 기술로 현악기가 만들어진다. 저장과 수납을 담당하는 가구를 만드는 가구장인이 여가 시간에 부인을 위해 만든 놀이형 가구가 최초의 피아노가 됐으니, 전쟁 시에는 같은 기술로 전투기가 또한 만들어지게 된다. 우리가 두드리는 키보드 역시 악기가 될 수 있는 동시에 무기가 될 수도 있다. 보기 드문 평화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생각이 들지만, 우리는 너그러운 자연에게 몹쓸 짓을 한 상태이고, 그 경고를 돌려받고 있다. 우리가 오늘날 생산해 내는 모든 문명의 도구들이 대량살상무기가 될지 대량치유악기가 될지는 훗날 미래의 후손이 판단하게 될 것이다.
  • 부산한 비탈길 골목길 하늘길…테스형 경규형 맛있는 이바구

    부산한 비탈길 골목길 하늘길…테스형 경규형 맛있는 이바구

    서울신문은 13일부터 ‘이우석의 미시(微視)여행’을 3주에 한 번 연재합니다. 국내 여행지를 매우 좁게 설정해 현미경처럼 샅샅이 훑어보자는 취지의 코너입니다. 연재를 담당할 이우석 놀고먹기연구소장은 ‘언어유희의 달인’이란 별명을 갖고 있는 여행전문가입니다. 글 곳곳에 심어 놓은 저자 특유의 ‘유머 코드’에 즐겁고 놀라운 경험을 하시게 될 겁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부산에 초량동이 있다. 부산역 바로 앞이다. 서울로 따지면 서울역 앞 청파동, 아니 산비탈로 올라서야 하니 후암동쯤 되겠다. 가파른 건 비슷하다. 생각해 보니 목포역 앞에도 유달산이 있다.(왜 역 앞엔 늘 산이 있을까.) 아무튼 초량에 올라가면 부산 역사를 볼 수 있다. 부산역 역사(驛舍)도 보인다. 지명에 산(山)자가 들어가는 부산의 속살이 초량이다. 목포가 항구라면, 부산은 산이다. 부산은 도시 곳곳이 바다에서 수직으로 치솟은 산들이 빼곡하기 때문이다. 부산 산복도로는 그 산(山)의 배(腹)를 가른다. 천국의 계단(stairway to heaven)이랄까. 고개를 들고 엉덩이는 빼고 하늘을 향한 계단을 딛고 하염없이 걸어야만 오를 수 있던 동네에 차로 오르내릴 하늘길이 생겨났다. 산복도로는 멀리 바다를 내려다볼 수 있는 산을 휘휘 감으며 마을을 가르고 하늘과 땅을 나누고 있다. 약 반세기 전 생겨난 부산의 허리띠 산복도로, 그중에서도 초량의 이야기다. ●왜구 침입 잦던 목초지서 19세기말 개항도시 초량은 부산의 원도심이다. 근대도시 부산이란 곳이 생겨나면서 가장 먼저 발달한 마을이다. 지금이야 대한민국 제2의 도시이자 국제도시로 위용을 당당히 과시하고 있지만 부산은 확실히 조선시대까지는 변방이었다. ‘가마메’란 이름의 부산이 조선 성종 때 부산(釜山)이란 이름으로 문헌에 처음 등장했고 동래(동래, 해운대, 수영 등)와 동평(지금의 부산 도심), 기장현으로 나뉜, 그야말로 촌구석 취급을 당했다. ‘왜구’랬을까? 잦은 왜구의 침입 탓이었다. 16세기 동래도호부로서 경상좌수영과 왜관이 부산포에 설치된 다음에야 부산(사실은 동래)은 뭔가 그럴싸한 도시 기능을 하게 됐다. 조선 후기 들어 조정은 사중면 초량에 왜관과 객사를 세웠고 이곳에서 왜와 외교를 했다. 초량은 그저 교통이 좋은 목초지대일 뿐이었지만 19세기 말 갑자기 주목받았다. 1876년 강화도 조약 이후 개항장에 속했던 까닭이다. 일제(메이드 인 재팬이 아니다)와 청(효녀 아니다)이 들어와 살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초량은 국제도시의 이미지를 줄곧 지켜오고 있다. 팽창을 노렸던 일제는 철도와 선박편으로 한반도, 대륙과 연결하기 위해 부산을 주목했고 교통 주거 인프라 등 도시개발을 서둘렀다. 간척을 통해 넓어진 초량 일대는 항만(북항)과 철도를 연결하는 교통과 물류의 중심지가 됐다. 청 역시 중앙부두와 철도 건설로 생겨난 일자리를 찾아온 자국민 ‘쿨리’(苦力)를 위해 청관을 세웠다. 지금도 초량 부산역 앞에는 차이나타운이 남아 과거 조계지 시절의 근대사를 엿볼 수 있다. 처음엔 ‘남의 문화유산답사기’였지만 지금은 우리 역사가 됐다. 한국전쟁은 부산에 인구가 대거 유입되는 엉뚱한 결과를 낳았다. 10만여명에 불과하던 부산에 피란민이 몰려들며 무려 140만명이 모여 사는 대한민국 임시수도가 되니 당장 거주지가 태부족이었다. 산기슭밖에 없었다. 너도 나도 산에 올라가 판잣집을 지었다. 물론 초량 뒷산에도 올라갔다. 하늘까지 층층 이어진 달동네가 생겨나게 된 사건이다.●백제병원·남선창고… 사람·돈 돌던 이바구길 높이 올라가면 그 역사가 자세히 보일까 싶어 초량을 올랐다. 해발 0m 근처인 부산항, 부산역에서부터 400m 남짓한 구봉산으로 오르는 길. 그 옆이 초량(草粱)이다. 부산역에서 길을 건너면 ‘초량 이바구길’이 시작된다. 부산시와 동구청이 부산의 옛 ‘이바구’(이야기의 사투리)를 들으며 시티투어를 하는 관광 코스로 지정했다. 재미나고 놀라운 이야기가 많이 숨어 있다. 지금 하늘을 찌를 듯한 마천루가 득실한 해운대와 비교하자면 낡은 원도심 마을이겠지만 애초 초량은 사람도 돈도 돌던 곳이다. 한국전쟁 전에는 함흥과 원산 바다에서 내려온 배가 초량(그때는 이 일대가 바다였다) 앞에 대고 명태며 고등어를 쏟아냈다. 그래서 이곳에 있던 수산물 창고를 북선(北船) 창고라 불렀다. 선창 일거리만 해도 넘쳐났다. 전국에서 생선 장수들이 몰려들고 청요릿집엔 손님들로 바글바글했다. 전쟁 후 북선 창고는 남선 창고로 이름이 바뀌지만 여전히 대한민국 최대 수산물 유통 중심지 역할을 톡톡히 했다. 일제가 물러가고 미군이 상륙하면서 ‘빠’니 ‘비어-홀’이라고 부르는 술집들이 가득한 ‘텍사스촌’이 초량에 생겨났다. 말하자면 서울 이태원 격이다. 이곳을 통해 나온 달러와 군수물자가 부산 국제시장은 물론 전국을 돌았다.‘이바구길’은 초량 외국인 골목에서부터 출발한다. 차이나타운 아래로 러시아 키릴문자와 필리핀 간판이 가득한 유흥가를 그냥 지나치려고(정말이다) 했지만 이곳에 ‘이바구’가 숨어 있다. 1927년 최용해가 지은 첫 근대식 개인종합병원 구 백제병원(국가등록문화재 제645호)이 초량 외국인 거리에 있다. 김해 출신인 최용해는 일본에서 의대를 나와 일본인 아내와 함께 부산으로 건너왔다. 동양척식회사로부터 돈을 빌려 당시 부산에서 최고 높은 5층 벽돌건물을 짓고 백제병원(그런데 왜 신라병원이 아닐까?)을 열었다. 처음엔 병원이 잘됐지만 돌연 사건이 터졌다. 관리들이 데려온 행려병자 시체를 병원 4층에 보관했던 것이 들통났다. ‘돈 없는 환자가 가서 죽으면 시체를 병원에 두고 표본으로 쓴다’는 소문이 돌았다. 겁을 먹은 환자들이 외면하며 급격히 상황이 어려워졌다. 결국 최용해는 일본으로 야반도주했다. 이후 백제병원은 대형 청요릿집과 예식장 등으로 바뀌었지만 모두 사라졌다. 그나마 여지껏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것은 차라리 다행이다. 현재는 1층에서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건물은 일부 허물어진 역사의 잔흔 그대로이지만 그 안을 채우는 커피향만큼은 세련되고 파릇하다. 부산시는 백제병원을 문화공간으로 운영하고 있다. 한때 부귀영화를 누렸던 남선 창고는 현재는 사라지고 없다. 창고를 가득 채웠던 명태처럼 온데간데없지만 상업과 물류의 지력(地歷)만큼은 여전하다. 우연인지 그 자리엔 현재 할인마트가 생겼는데 옛 창고의 담벼락 일부만 남았다. 1900년대 생겨난 국내 최초의 근대 물류 창고였던 남선창고는 노르웨이 베르겐의 ‘브뤼겐’(한자동맹 중심지)처럼 당시로선 엄청난 규모의 물류조합을 운영하며 명성을 떨쳤다. 전국에 명태를 공급하던 곳이지만 직접 명태를 서울로 공급하는 경원선이 개통되고, 초량 앞바다가 매립된 후 해운 물류 중심이 부산항으로 옮겨가며 몰락의 길을 걸었다. 그 누가 알았으랴, 바다가 사라질 줄은. 상전벽해(桑田碧海)가 반대가 되니 좋은 뜻만은 아닌 듯하다. 여기까지만 평지다. 이제 산길을 올라야 한다. 초량초등학교 담벼락에는 옛 마을의 서정성을 노래한 이야기들이 그려져 있다. 초량초교는 전통이 오랜 곳이다. ‘소크라테스의 아우’인 가수 나훈아와 코미디언 이경규, 음악감독 박칼린이 이 학교를 다녔다. 아, 나훈아의 ‘테스형’은 다른 곳을 나왔다. 아테네 아고라에서 토론을 통해 공부했다. 초량초교 동문 선후배인 이들은 각각 1947년생, 60년생, 67년생이니 시대는 달랐지만 초량의 변화 속 눈앞에 펼쳐진 바다를 내려다보며 꿈과 재능을 키웠을 것이다. 대체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지만 초량에는 ‘명태 눈깔을 빼먹으면 노래를 잘한다’는 말이 전해진다. 남선 창고가 있던 곳이니 예능인을 많이 배출한 것은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 노래를 잘 부르는 미래의 가수를 위해 누군가는 눈깔이 없는 명태를 먹었다.●168계단 줄기 삼아 작은 골목 가지처럼 연결 길가에는 1893년 지어진 초량교회가 있다. 일제강점기에 신사 참배 반대를 이유로 죽임을 당했던 주기철 목사가 있었던 교회로 개신교에선 뜻깊은 장소로 알려졌다. 한강 이남 최초의 교회로 무려 130년 가까이 됐다. 초량은 얼마나 신식 문물이 빨리 들어온 곳이었나. 길은 가파르지만 그리 힘들지는 않다. 이따금씩 부는 바닷바람이 땀을 식혀 준다. 제주 올레길처럼 이바구길에는 곳곳에 쉼터가 있다. 쉼터 역시 옛 분위기가 오롯이 남아 있다. 딱 추억 속 ‘점빵’ 풍경이다. ‘이바구 정거장’에선 국수나 음료를 팔고 ‘168 도시락국’에선 시락국밥과 추억의 도시락을 판다. 쉬어 가며 감성도 충전할 수 있다. 168이란 숫자의 의미는 가게에서 나오면 바로 알 수 있다. 하늘까지 뻗었다고 해도 믿을 만큼 높은 계단길이 쉼터 앞에 펼쳐진다. 고개를 끄덕여야 할 만큼 눈에 꽉 들어찬다. 우물가부터 산복도로까지 이어진 계단이 아찔하다. 168개의 계단이다. 페루 마추픽추의 계단과 닮았다.계단을 큰 줄기 삼아 양옆으로 작은 골목이 가지처럼 이어진다. 초량사람들이 물을 긷기 위해 오르내리던 168계단은 초량 마을을 이어 주는 동맥이며 소통의 통로다. 지금은 모노레일이 생겨나 ‘도가니’에게 미안하지 않다. 기계 레일 탓에 정취는 덜하지만 인정은 여전하다. 이곳에서 만나는 이웃들은 어김없이 인사를 나눈다. 관광객들도 인사를 하지 않으면 어색할 만큼 모노레일 캐빈 속 공간은 따스하다. 소통이란 이처럼 자연스러워야 한다. 중간에 내리면 168빵카페가 있다. 고소한 빵과 커피 향에 이끌려 저절로 내리게 된다. 일명 ‘홍신애빵집’이라 불리는 곳이다. 요리연구가 홍신애씨가 차렸다. 홍씨는 초량 여행을 많이 다닌 듯하다. 테라스에 의자를 놓고 갓 구워 낸 빵 조각을 씹는 그 순간이 초량 이바구길 여행의 딱 중간쯤 된다. 영락없는 전망 휴게소 역할이다. 옆길로 새면 김민부 전망대가 나온다. 고교 1학년 때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천재 시인 김민부를 기린 이름이다. 그는 이 집에 살았다. 전망대는 실로 근사한 풍경을 간직하고 있다. 푸른빛을 띠는 바다를 두고 아래에 다닥다닥 이어진 작은 집들의 지붕을 통해 ‘부싼 싸람’의 진면목을 내려다볼 수 있다. 그는 지금 보이는 저 바다를 그리며 “일출봉에 해 뜨거든 날 불러주오, 월출봉에 달 뜨거든 날 불러주오”라고 ‘기다리는 마음’을 노래했을 것이다.●블록 쌓아 올리듯… 만화같은 산동네 지붕들 옥상마다 놓인 파란색 물탱크, 허공을 가르는 목욕탕 기둥들 사이로 하늘을 향해 난 계단, 블록을 쌓아 올린 듯 차곡차곡 이어진 집들이 만화 같은 산동네 풍경을 이루고 있다. 우리 집 지붕이 남의 집 마당이 되고 또 우리 마당은 아랫집 지붕으로 이어진 길이 되는 반도체처럼 집약된 집 더미. 전란을 피해 내려와 산에 살기 시작한 사람들, 반세기가 지나니 말씨도 마음씨도 진짜 부산 사람이 되었다. 높이 오르니 부산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가 보였다. 여기서 좀더 오르면 산복도로가 나온다. 수직적인 길로 이뤄진 산동네를 모두 수평으로 꿰는 넓은 신작로. 비행기처럼 높은 길을 달리는 버스는 뒤뚱뒤뚱거리며 부산의 허리를 연결한다. 산복도로 곳곳에 수려한 전망이 펼쳐진다. 산복도로에서 바라본 경치란 도저히 외면할 수 없는 매력이 가득하다. 바다와 항구, 마을과 철도, 교량과 배가 한눈에 들어오는 풍경이란 것은 어디서 또 찾을 수 있을까. 여기다 ‘유치환의 우체통’ 등 곳곳에 깃든 이야깃거리는 서정성과 낭만까지 곁들여 있다. “여봐요, 백신은 맞았나요?” 1년 후 나의 미래로 보내는 편지를 썼다. 과거 추억이 서린 풍경을 바라보며 현실 속 걱정을 함께 적었다. 세상을 내려다보며. 좀더 눈을 가늘게 뜨고 보면 마음속 무엇이 현실에 투영돼 겹쳐 보인다. 산복도로에서 보는 세상은 초고층 마천루 호텔방에서 담는 ‘근사한 풍경’과는 사뭇 다르다. 우체통 앞에선 상상의 나래가 활짝 펴진다. 늘 힘들게 오르내리지만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먼 바다를 바라보며 꿈을 키웠을 어느 이름 모를 초량의 아이를 떠올려 본다. 그 아이는 어떤 감상을 마음속에 쌓아 가며 자랐을까. 부산에 대한 추억이란 것이 전혀 없다 할지라도, 무슨 영화 속 이야기일지라도 상관없다. 연인과, 가족과 함께 이곳 이바구길을 함께 걸으며 초량이 지켜온 반세기의 이야기들을 듣고 살며시 뭔가를 상상해 본다면? 그 포근한 이야기란 차가운 유리투성이 도시의 것보다는 썩 좋을 듯하다. 바다로 열린 청마의 우체통에선 많은 상상들이 미래로 전송되고 있다. 글 사진 놀고먹기연구소장 demory@naver.com■초량 여행 체크리스트 뭘 먹지? 50년 부산 중심지 초량엔 먹거리가 많다. 부산에 사는 이도 부산을 오가는 이도 초량을 찾아 대선 소주잔을 기울여 온 세월이 켜켜이 쌓인 까닭이다. 산복도로에서 더 올라가면 360도 전망의 구봉산 초량공원, 길을 따라 내려오면 돼지불고기를 파는 기사식당 거리와 만난다. 일명 ‘불백거리’인데 값싸고 푸짐한 식사를 즐길 수 있어 택시 기사뿐 아니라 많은 시민과 관광객들이 찾는다. 좀더 내려오면 이름난 초량 돼지갈비 골목도 있다.은근히 잘하는 고깃집이 많은 곳도 부산이다. 그렇다. (서울 사람들이 생각하듯) 부산 사람은 아침에 회를 먹고 점심에 생선구이, 저녁에 곰장어 등 생선만 먹고 살진 않는다. “집이 부산이세요? 그럼 집에 배 있겠네요?” 식으로 사고하는 것에 대해 부산 시민들은 매우 어이없어 한다. 구석구석에는 돼지국밥집, 시락국밥집, 유명한 밀면집도 있다. 전국 민물 양식장에서 ‘부산 갈메기’들을 죄다 쓸어 왔는지 문전성시를 이루는 메기탕집도 있다.168빵카페=부산 동구 영초길 191번길 8-1. (010)9330-8544. 168도시락국=부산 동구 영초길 191. (051)714-2619 소문난불백=부산 동구 초량로 36. (051)464-0846 초량밀면=부산 동구 중앙대로 225. (051)462-1575. 은하갈비=부산 동구 초량중로 86 (051)467-4303. 우리돼지국밥=부산 동구 초량로 27-1번길 (051)468-5623. 초량메기탕=부산 동구 초량로 15. (051)464-3398. 어딜 가지? 초량은 범일동, 보수동, 중앙동 등과 이어진다. 영화 ‘아저씨’ 촬영지로 유명한 범일동 매축지 마을은 좌천역에서 나와 육교를 건너면 된다. 격렬하게 매운 떡볶이와 조방낙지로 유명한 곳도 범일동이다. ‘범죄와의 전쟁’ 촬영지인 중앙로는 부산역 쪽으로 건너면 나온다. 어쩐지 익숙하다 할 거다. 맞은편에는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서 등장한 보수동 계단이 있다. 헌책방 거리와 자그마한 카페들이 있어 요모조모 둘러볼 것이 많다. 여행상품은? 반값 할인을 뜻하는 ‘반할부산’은 열차와 연계한 다양한 부산여행상품 ‘진짜부산트레킹’을 판매한다. 원도심투어를 비롯해 흰여울마을과 달맞이고개, 황령산 등 다양한 지역 투어 프로그램이 있다. 1899-2550. 초량 이바구길 투어는 부산여행특공대(busanbustour.co.kr)에서 당일(반나절) 버스투어 상품으로 판매한다. 일정은 오전 9시 50분 부산역 이바구버스 정류소 앞 집결 후 증산전망대, 유치환의 우체통, 초량 168계단&모노레일 탑승, 초량 1941, 초량전통시장(불백골목) 경유 낮 12시 30분 부산역으로 돌아오는 일정이다. 2만원. (051)469-4113.
  • 난마처럼 얽힌 동예루살렘, 이스라엘 공습에 가자 13층 건물도 와르르

    난마처럼 얽힌 동예루살렘, 이스라엘 공습에 가자 13층 건물도 와르르

    이스라엘 동예루살렘의 구시가지 지도다. 연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로켓포 발사와 이스라엘 군의 공습 충돌 소식이 들려오는 곳이다. 보통 3대 종교의 시원으로 알려져 있다. 기독교와 유대교, 이슬람교가 모두 이곳에 뿌리를 두고 있다. 아울러 남서쪽 아르메니아 정교 구역까지 4대 종교가 바로 이웃하고 있다. 철천지 원수들이 등을 맞대고 있다. 무력 충돌의 도화선이 된 알아크사 사원은 동쪽 끝 성전산 구역 안 가장 아래에 있다. 서쪽 담이 유대인 구역의 이른바 통곡의 벽이다. 마침 10일(이하 현지시간)은 이스라엘이 1967년 3차 중동전쟁을 통해 동예루살렘을 점령한 것을 기념하는 ‘예루살렘의 날’이었다. 매년 이날 정통 유대교도들은 이스라엘 깃발을 앞세우고 보란 듯이 구시가지를 행진했다. 알아크사 사원에 모인 팔레스타인인들은 종교 활동의 형평성을 요구했다. 또 구시가지에서 북쪽으로 2㎞ 떨어진 셰이크 자라 정착촌 관련 소유권 판결을 똑바로 해달라고 요구했다. 팔레스타인인들의 항변은 이렇다. “이스라엘 경찰은 정통(사실 극단이다) 유대교도들의 종교 활동은 방관하며 우리 무슬림들이 알아크사 사원에서 뭐라도 하면 제지하고 방해한다.” 이스라엘 경찰은 최루탄과 섬광탄 등을 쏘며 사원 내 시위대를 해산하고 일부를 체포했다. 사태 악화를 우려한 당국은 유대인들의 구시가지 행진을 불허했고 정착촌 판결을 미루는 유화책을 썼지만 팔레스타인인들의 분노를 잠재우지 못했다. 유대인들은 통곡의 벽에서 집회를 가졌다. 무력 충돌은 이틀째 더욱 격렬해졌다. 11일 새벽부터 가자지구에서는 이스라엘 남부 지역을 겨냥한 로켓포 공격이 산발적으로 이어졌다. 하마스는 이번 작전을 ‘예루살렘의 검’으로 명명했다. 이스라엘군도 ‘성벽의 수호자’란 작전명을 내걸고 전투기 등을 동원해 가자지구 내 수백개 목표물에 보복 공습을 이어갔다. 공습 목표물 중에는 하마스 부대 지휘자와 정보기관 본부, 무기 생산시설, 하마스 등 무장 정파들의 군사기지, 터널 등이 포함됐다고 군은 설명했다. 특히 이날 저녁 가자지구에 있는 13층짜리 주거용 빌딩을 폭격해 무너뜨렸다. 팔레스타인 뉴스통신 와파 등은 보건당국 관리를 인용해 이스라엘의 공습 때문에 아동 10명을 포함해 28명이 숨졌고 152명이 부상했다고 전했다. 사망자 가운데는 15명의 하마스 및 무장단체 지휘관이 포함됐다고 조나탄 콘리쿠스 이스라엘군 대변인이 밝혔다. 이스라엘군에 따르면 하마스 측이 이틀간 이스라엘을 겨냥해 발사한 로켓포는 800발이 넘는다. 다수가 이스라엘 방공망에 요격됐지만, 일부는 남부의 아쉬도드, 아슈켈론, 브네이 아비시 등의 민간인 거주지와 학교 등을 강타했다. 하마스는 또 이스라엘의 고층빌딩 폭격에 대응해 130여발의 로켓포를 중부 텔아비브 인근 리숀 레시온, 홀론, 기바타임 등지에 쏘았다. 하마스의 로켓포 공격으로 남부 아슈켈론에서 처음으로 이스라엘측 사망자 2명이 나왔고, 이어 리숀 레시온에서도 여성 1명이 사망했다. 수십명의 부상자가 발생했으며, 대부분 경상이지만 일부 위중한 사례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슈켈론과 엘라트를 잇는 국영 석유회사의 연료용 파이프가 폭파되기도 했다. 자국민 사망 소식을 접한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오전 중 “이제 공격의 강도를 높일 것”이라고 경고했고, 텔아비브 인근 도시가 공격을 받은 뒤에는 “하마스가 무거운 대가를 치를 것이다. 그 공격에는 시간이 걸린다”며 보복 의지를 불태웠다. 베니 간츠 국방 장관도 “지금까지의 공격은 시작에 불과하다. 테러단체는 큰 타격을 입었고 우리는 계속 공격을 가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스라엘은 추가적인 공격 등에 대비해 남부에 아이언 돔 요격미사일과 2개 공수여단을 추가로 배치하는 한편, 예비군 5000명에 대한 동원령도 내렸다. 또 국내전선사령부는 가자지구로부터 반경 40㎞ 이내의 학교에 휴교령을 내렸다가, 중부지역까지 공격 당하자 휴교령을 전국으로 확대했다. 아랍연맹(AL)은 이날 이스라엘의 공습이 무차별적이며 무책임하다고 강력 비판했다. 아흐메드 아불 케이트 AL 사무총장은 성명에서 “이스라엘은 예루살렘에서 규칙을 어겼다. 또 극단주의 유대교도의 행동은 용인하고 팔레스타인 주민과 아랍계에는 적대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57개 회원국으로 구성된 이슬람협력기구(OIC)도 성명을 통해 이스라엘 점령군이 무슬림들의 이슬람 사원 접근을 막고 야만적인 공격을 감행했다고 비난했다. 이란 의회도 성명을 내고 “이스라엘 점령 정권의 범죄를 강력히 규탄하며 이란 의회는 팔레스타인인들과 연대하며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터키 외무장관은 “이스라엘을 비판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팔레스타인을 보호하기 위한 국제보호군을 보내는 등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럽연합(EU) 행정부 격인 집행위원회 피터 스타노 대변인은 성명을 통해 예루살렘 긴장 완화와 이스라엘, 팔레스타인의 자제를 촉구했다. 이집트와 카타르 그리고 유엔은 중재를 시도하고 있다고 로이터 통신이 전했다. 유엔 안보리도 소집됐지만 뾰족한 방법이 있을 리 없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하마스의 공격을 비난하면서도 양측 모두에 자제를 촉구했다. 또 예루살렘이 ‘공존의 공간’이 되어야 한다며 이스라엘을 압박하기도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최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인 마무드 압바스에게 서신을 보냈다고 한 고위 관계자가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의 대선 승리 직후 압바스가 축하 서신을 보낸 데 대한 답장이었다. 이 관계자는 “서신 내용을 공개하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폭력 사태를 누그러뜨리고 안정을 회복하기 위한 지속적인 노력 등 상호 관심사에 대한 팔레스타인 지도부와의 지속적인 활동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성명을 내고 바이든 행정부의 대(對)이스라엘 지원 부족이 동맹에 대한 새로운 공격을 이끌고 있다고 비난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김대영의 무기 인사이드] ‘지구종말무기’ 러시아 대륙간탄도미사일 브예보다

    [김대영의 무기 인사이드] ‘지구종말무기’ 러시아 대륙간탄도미사일 브예보다

    러시아 전략미사일군이 운용중인 R36M2 ‘브예보다'(воевода)는 현존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 가운데 가장 강력한 위력을 자랑한다. 러시아어로 ‘군사령관’이라는 명칭을 가진 이 미사일은 나토 즉 북대서양조약기구에서는 사탄(Satan)으로 불린다. 지난 1988년부터 소련군에 전력화된 브예보다는 현재 40여 발이 배치되어 있다. 지난 1974년부터 소련군에 배치된 R36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업그레이드한 브예보다는, 2단 추진 형식으로 되어있으며 무게 211t에 지름은 3m 그리고 길이는 34.3m에 달한다. 대륙간탄도미사일 브예보다는 액체추진방식으로 비행한다. 연료는 UDMH 즉 비대칭디메틸히드라진을 사용하며 산화제는 사산화질소를 쓴다. 액체연료를 사용함에도 불구하고 장기간 보관이 가능한 동시에 언제든지 발사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러시아 전략미사일군은 브예보다 대륙간탄도미사일이 15년간 정비 없이 운용 가능하다고 밝히고 있다.브예보다 대륙간탄도미사일의 탄두중량은 8t 이상으로 10개의 멀브(MIRV) 즉 다탄두 각개목표 재돌입체가 탑재된다. 이들 멀브에 내장된 핵폭탄의 위력은 최소 550에서 최대 750 kt으로 현재 미군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이나 대륙간탄도미사일에 장착된 그 어떤 핵탄두보다 강력하다. 지난 2009년 퇴역했지만 브예보다 대륙간탄도미사일은 한때 20Mt에 달하는 핵탄두를 장착하기도 했다. 20Mt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 리틀 보이의 위력 15kt의 1333배에 달하는 위력이다.20Mt의 핵탄두는 미국과의 핵전쟁 발발 시, 고고도에서 폭발해 막대한 전자기펄스를 만들어 미군의 지휘체계와 통신망을 마비시키는데 사용될 예정이었다. 브예보다 대륙간탄도미사일은 발사방식도 특이하다. 사일로 즉 미사일 지하 격납고에서 발사되는 브예보다는 거대한 크기에도 불구하고 콜드 런치 방식으로 발사된다. 콜드 런치란 수직으로 발사된 미사일을 공중에서 점화 및 비행시키는 방식으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발사에 주로 사용된다. 러시아는 브예보다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대체하기 위해 현재 RS-28 '사르맛'(Сармат)을 개발 중이다. 지난 4월 21일(현지시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의회 국정연설에서 사르맛 대륙간탄도미사일로 무장한 러시아 전략미사일군 부대가 내년 말에 전투준비태세에 들어갈 것이라고 소개한바 있다. 브예보다보다 사거리가 7000km 이상 늘어난 사르맛은 마케예프 로켓 디자인 설계국이 만들었다. 사르맛에는 최소 10개에서 최대 15개의 멀브가 탑재되며 명중률은 10m로 전해진다. 이밖에 러시아어로 아반가르트(авангард) 즉 전위 혹은 선봉이란 뜻을 가진 극초음속비행체도 탑재될 예정이다.아반가르트는 마하 20 이상으로 비행하며 고 기동성으로 미군의 미사일 방어체계를 무력화시킨다. 또한 무게는 2t에 달하며 최소 0.8에서 최대 2Mt의 핵탄두가 탑재된 것으로 전해진다. 사르맛 대륙간탄도미사일의 위력은 최소 6.75에서 최대 7.5Mt으로 알려지고 있다. 막대한 파괴력 때문에 나토에서는 브예보다에 이어 사르맛에 ‘사탄-2’라는 식별코드를 부여했다. 김대영 군사평론가 kodefkim@naver.com
  • [시론] 한일 간 국제소송전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다/이석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시론] 한일 간 국제소송전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다/이석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한국의 현대사에서 국제소송이란 용어가 요즘과 같이 언론에 빈번하게 오르내리는 경우가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동안 다른 나라의 일로만 간주돼 오던 국가 간 소송이 한일 간의 각종 현안에서 문제 해결의 대안으로 제기되고 있다. 일제강점기에서 비롯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와 강제징용 판결 문제를 둘러싼 한일 양측의 원칙적인 입장은 여전히 평행선을 긋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국제사법재판소(ICJ) 회부와 한국의 강제징용 재판 결과에 따른 한국 법원의 가해기업 자산 현금화 조치 및 이에 대한 일본의 대응 조치를 둘러싼 국제법적인 논쟁은 현재진행형이다. 이에 더해 지난 4월 13일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사고 원전에 보관 중인 방사능 오염수를 방류한다는 기본방침 발표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이 이 사안의 국제해양법재판소(ITLOS) 제소 및 잠정 조치 요청을 검토하도록 지시함에 따라 한일 간의 국제소송 역사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됐다. 주지하다시피 그동안 한일 간에는 일본이 1954년 외교상의 구상서를 한국에 보내 독도 영유권을 국제사법재판소에 회부할 것을 제안한 독도 문제와 1974년 체결, 1978년 발효된 동중국해의 공동 개발을 위한 한일대륙붕공동개발협정의 만료 시한이 2028년으로 다가옴에 따라 야기될 수 있는 추후의 법적인 분쟁까지를 포함하면 국제법상의 주요 쟁점을 망라하는 한일 간의 국제소송전(戰)을 예감해야 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이러한 한일 간 다양한 현안의 국제소송 가능성을 놓고 보면 한국은 제소국 지위에 있기도 하고, 응소국 지위에 있기도 하다. 이와 관련해 몇 가지 유의해야 할 사항이 있다. 첫째, 복잡 다양한 한일 간의 모든 사안이 상호 연동돼 있는 것은 아니다. 상관관계가 존재하지 않는 경우 지나친 외교적인 관계의 고려는 불필요하다. 그러나 주권국가 간의 소송은 그 준비, 절차 진행 과정, 결과에 따른 파장이 큰 법이다. 필리핀과 중국 간의 남중국해 중재재판을 포함해 최근의 국제소송에서는 전쟁 무기로서 법의 사용을 의미하는 로페어(lawfare)란 용어가 빈번하게 사용되고 있다. 주권국가 간의 국제소송이 전쟁으로 간주되는 이유이며, 다양한 분쟁해결 수단의 방법 가운데 하나로만 평가하기에는 부담스러운 부분이다. 둘째, 칼은 뽑았을 때보다 칼집에 있을 때 그 효용성이 큰 경우가 많다. 즉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는 것과 실제 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큰 차이이고 별개의 문제다. 소송 진행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반사적 이익, 소위 낙수(落水)효과를 기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국제해양법재판소가 잠정 조치를 결정하기 위해서는 중재재판소의 관할권이 추정되고, 제소국인 한국의 권리에 대한 급박한 위험과 심각한 위해(危害)가 있어야 한다. 일본 정부는 방사능 오염수를 2022년 10월부터 30년에 걸쳐 태평양에 방출하겠다는 입장이다. 즉 실제로 사안이 전개되는 시점은 아직 도래하지 않았다. 따라서 정부의 대응 방안 강구에 있어 추구하고자 하는 목적이 분명해야 한다. 세심한 준비가 없다면 국제해양법재판소의 잠정 조치를 통해서 통상적인 사전 통보나 정보 제공 등의 국제협력을 강조하는 수준에서 재판 결과가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현 단계에서는 해당 방류와 관련된 자료 수집 및 증거 조사를 위한 각종 국제위원회 및 조사기구에 참여할 권리를 강하게 주장하고, 일본의 실질적인 협력이 가능하도록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셋째, 사안에 따라 공수(攻守)는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 방류 조치와 관련한 일본의 국제법 위반 여부는 사전 통보나 정보 제공 등 국제협력, 환경영향평가 실시 등 해양환경 보전 의무와 관련된 절차적 의무 이행을 태만히 한 점에 있다. 국내에서는 독도종합관리대책으로 계획된 독도종합해양과학기지가 육상 건축을 완료했음에도 불구하고 해양환경 보전 의무 위반 여부에 대한 일본의 소송 제기 가능성에 따라 여러 가지 논란 끝에 2014년 서해상의 소청초로 이동 설치된 바 있다.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는 것과 실제 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큰 차이이고, 별개의 문제라는 명제는 한국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일본에도 적용된다. 필연적인 한일 간의 국제소송전(戰) 시대에 국제소송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이제 한일 관계의 안정적 관리에 필수적인 요건이 됐다.
  • 7년 전과는 다르다… 분리독립 목소리 커진 스코틀랜드

    7년 전과는 다르다… 분리독립 목소리 커진 스코틀랜드

    선거 이긴 스터전, 존슨 총리와 통화“분리독립 주민투표 이제 시기의 문제” 7년 전엔 찬성 45%·반대 55%로 부결 브렉시트 이후 스코틀랜드 경제 타격 분리독립 후 독자적인 EU 가입 추진영국 스코틀랜드에서 분리독립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다시 커졌다. 2014년 9월 분리독립 여부를 묻는 투표가 찬성 44.7%, 반대 55.3%로 부결된 지 7년 만이다. 스코틀랜드 분리독립을 최우선 공약 중 하나로 내세우는 스코틀랜드국민당(SNP)이 지난 6일(현지시간) 치른 스코틀랜드 지방선거에서 총 129석 중 과반에 한 석 모자란 64석을 확보했다.●영국 사법부, 분리독립 투표 여부 결정할 듯 스코틀랜드 분리독립의 논쟁 구도는 7년 전과 닮았다. SNP는 요구하고, 영국 정부는 난색을 표하는 중이다. SNP 대표이자 스코틀랜드 자치정부 수반인 니컬라 스터전은 9일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와의 통화에서 “스코틀랜드의 두 번째 분리독립 주민투표의 쟁점은 이제 실시할지 여부가 아니라 언제 실시할지 시기의 문제”라며 독립 의지를 강하게 내비쳤다. 2년 뒤인 2023년에 스코틀랜드 분리독립 투표를 실시하겠다는 게 스터전의 공약이다. 그러나 스코틀랜드 독립 관련 논의에 질색했던 7년 전 데이비드 캐머런 전 총리처럼 존슨 총리는 이날 통화에서 스코틀랜드 분리독립 투표 반대 입장을 피력했다. 존슨은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의 314년 연합이 유지되는 현재 상황이 양쪽에 모두 좋은 일”이라면서 “코로나19 백신 수급 국면에서도 대규모 백신을 조달할 수 있는 영국 정부의 역량 덕분에 스코틀랜드가 혜택을 입지 않았느냐”고 설득했다. 존슨은 영토 문제에 관한 투표는 최소 한 세대(30년)가 지난 뒤 하는 게 혼란이 덜하다는 입장 또한 밝혀 왔다. 존슨 총리가 스코틀랜드 분리독립 투표 실시를 반대한다면 사안은 영국 사법부에서 다루게 된다. 그런데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의 병합이 ‘피 흘림 없이’ 합의로 이뤄진 역사 때문에 스코틀랜드의 국민투표 청원을 영국 사법부가 수용하지 않을 근거가 충분치 않다는 전망이 나온다. 스코틀랜드 왕국은 834년에 성립됐다. 1296년 잉글랜드가 스코틀랜드를 침공했지만, 두 나라의 전쟁은 1328년 잉글랜드가 스코틀랜드 독립을 보장하는 조약을 체결하며 마무리됐다. 그러나 1603년 스코틀랜드 국왕인 제임스 6세가 잉글랜드 왕위를 계승하면서 두 나라 왕실이 통합됐고, 이후 1707년 스코틀랜드 의회가 영국 의회에 흡수되는 역사를 겪었다. 문화와 기질이 다른 두 왕국이 합의와 조약을 통해 합쳐진 뒤 스코틀랜드 독립 논의는 영국이 패권을 쥔 시기엔 잠잠하다가도 영국 경제가 불황을 겪으면 곧 다시 제기돼 왔다. 게다가 역사적으로 잉글랜드에 비해 인구가 적고 산업 발달이 더딘 곳으로 분류되던 스코틀랜드의 경제적 위상은 1970년대 북해유전구가 발견되면서 달라졌다. 만일 독립한다면 영국이 통제하는 북해유전은 스코틀랜드의 몫이 된다. 분리독립 뒤 스코틀랜드 몫의 ‘당근’이 있는 셈이다. 게다가 올해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가 정식 발효되면서 ‘스코틀랜드의 분리독립=스코틀랜드 독자적인 EU 가입’이란 다른 수준의 이야기로 비화되게 됐다.●EU 선택할까, 영국 선택할까 스코틀랜드 주민들의 분리독립 지지율은 SNP의 의석수 추이에 따라 가늠해 볼 수 있다. 1934년 스코틀랜드민족연맹(SNL)과 스코틀랜드민족정당(NPS)이 통합해 탄생한 SNP는 EU 탄생 전까지 영국과 EU 양쪽으로부터의 독립, 즉 이중독립을 주장했다. 그러나 영국 내 EU 가입 찬성이 우세해진 1980년대 후반부터 EU에 일단 가입해 유럽 통합의 혜택을 입는 동시에 이를 지렛대 삼아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추구하자는 ‘EU 내 독립’ 기조가 SNP의 주요 목표가 됐다. 결국 1997년 스코틀랜드 자치의회 설치를 계기로 성장하기 시작해 2011년 자치의회 선거에서 승리한 SNP는 2014년 스코틀랜드 독립 투표를 관철시켰고, 이 투표를 기회로 SNP 지지자 규합에 본격 나설 수 있었다. 2015년 영국 총선에서 SNP는 5.3%를 득표해 사상 최다석인 59석을 확보했다. SNP의 의석수는 2017년 39석으로 줄었지만, 지난 6일 지방선거에서 다시 자치의회를 장악하며 스코틀랜드 지역에서의 건재함을 알렸다. 스코틀랜드 분리독립 투표와 브렉시트 투표는 2010년대 중반 영국의 모든 이슈를 삼킨 ‘블랙홀’과 같은 정치 이벤트였다. 정치·외교·사회·경제 체계 전반을 아우르는 내용의 투표였고, 브렉시트의 경우 찬성 투표 이후에도 수년간의 후속 협상이 필요했다. 지금은 두 투표 중 브렉시트는 실현됐고, 스코틀랜드 분리독립은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EU 내 독립’을 줄곧 주장해 온 SNP 관점에서 보자면 얻은 게 없는 상황이다. EU에는 잔류하지 못했고, 영국에는 소속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브렉시트 투표 당시 스코틀랜드 지역에서의 찬성 비중은 38.0%, 반대 비중은 62.0%로 브렉시트는 스코틀랜드가 원하지 않은 길이었다. ●스코틀랜드 독립 논의, 영국 경제 악영향 브렉시트 직후 비명이 먼저 터져 나온 곳 중 한 곳 역시 스코틀랜드였다. 물론 브렉시트 직후 EU로의 통관 절차가 엄격해지면서 직격탄을 입은 지역은 유럽으로의 물류 관문인 도버항이다. 최근엔 도버해협에 위치한 저지섬 주변에서 영국과 프랑스 간 조업권 분쟁이 발생, 영국 해군 함정 2척이 파견되는 대치 분위기가 조성되기도 했다. 이 지역들에 가렸지만 스코틀랜드의 수산·낙동 사업도 타격을 입었다. 서류 검토 시간이 길어져 통관이 걸핏하면 지연됨에 따라 상품 가치가 떨어져 수산물·어패류·낙농제품 수출 기업들의 피해가 막대했다. 브렉시트 직후인 지난 1월 영국에서 EU로 수출하던 해산 물량은 1년 전에 비해 83% 급감한 것으로 집계됐었다. 금융·공업이 발달한 잉글랜드 지역이 외국인 노동자가 유입되는 지역인 반면 스코틀랜드는 주변 아일랜드 등지로 젊은 노동력이 유출이 활발한 지역이라는 점도 두 지역 간 이해관계가 갈리는 지점이다. 2년여 뒤 스코틀랜드 분리독립이 성사될지 여부를 벌써 점쳐 보기엔 너무 이르다고 해도 스코틀랜드 분리독립 투표를 둘러싼 논쟁이 이번 지방선거를 계기로 점화된 점은 분명하다. 투자금융업계는 논의가 시작된 것 자체가 영국 경제의 불확실성을 키우는 악재가 된다고 평가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선거를 이틀 앞둔 시점인 지난 4일 기사에서 “불확실성과 혼란이 커진다는 점에서 스코틀랜드 독립 논의는 브렉시트 이상으로 영국 경제에 악영향을 줄 여지가 크다”고 전망했다. 코로나19 이후 혹시나 영국이 양적완화 정책을 편다면 스코틀랜드의 중심 도시인 에든버러에 본점을 둔 은행도 지원 대상이 될지, 스코틀랜드가 독립한다면 새로 탄생할 독립 스코틀랜드가 영국 국채의 얼마를 책임지게 될지, 스코틀랜드가 독립한다면 이 나라는 유로화 또는 새로운 화폐를 쓸지 등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고민들이 쏟아질 것이라고 이 통신은 전했다. 일단 지방선거로 스코틀랜드 분리독립 논의는 촉발됐고, 의회정치의 종주국인 영국은 과거처럼 ‘피 흘림 없이’ 합의와 사법부 결정과 투표로 문제를 풀어 갈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브렉시트에 이어 스코틀랜드 분리독립 논쟁까지 민주적인 절차를 갖췄다고 파국적 결론을 피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점을 영국 정치가 또다시 보여 줄 전망이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70년 전 오늘 스코틀랜드에 추락한 전투기에 나치 2인자가 홀로

    70년 전 오늘 스코틀랜드에 추락한 전투기에 나치 2인자가 홀로

    1941년 5월 10일(이하 현지시간) 독일 공군기 메서슈미트 Bf 110이 스코틀랜드 이글샘의 플로어스 농장 근처에 추락했다. 조종사가 낙하산을 펼쳐 목숨을 구했지만 쇠스랑을 든 농부들에게 생포됐다. 조종사는 스스로를 알프레드 혼 대위라며 해밀턴 공작에게 전달할 중요한 메시지가 있으니 그를 만나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다음날 아침 추락 지점에서 16㎞ 떨어진 둥가벨 하우스에 있던 공작을 만나게 해줬더니 그는 아돌프 히틀러 총통의 친구이자 제3 제국의 부총통인 루돌프 헤스라고 털어놓았다. 그는 에르만 괴링 다음으로 나치 정권의 적통을 이을 인물이라며 영국과 독일의 평화협상을 중재하고 싶다고 했다. 리버풀에 있는 존 무어스 대학의 국제역사학 전공자인 제임스 크로스랜드 박사는 “짐작할 수 있듯 해밀턴 공작조차 그 말을 듣고 움찔할” 정도로 뜬금없는 협상 제의였다고 말했다. 영국 BBC는 이 일을 2차 세계대전을 통틀어 가장 괴이쩍은 얘기 중의 하나라고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날은 나치가 소련을 침공하기 하루 전이었다. 왜 나치 고위직이 전쟁이 한창인데 홀로 적진 한 가운데, 1600㎞를 날아갔을까? 도대체 헤스는 어떻게 해밀턴 공작이 히틀러가 수락할 수 있는 평화협상안을 중재할 수 있다고 확신하고 비행에 나서게 된 것일까? 크로스랜드 박사는 수십년 동안 이어진 음모론을 들먹이기도 했다. 영국 안에서 윈스턴 처칠 총리를 전복시키고 평화협상을 이끌기를 원하는 그룹이 촉발한 책동이란 얘기다.하지만 기밀이 해제된 문서들을 연구하면 헤스는 평화 협상이 지지를 받고 있다고 오해해 환상에 젖어 이런 필사적인 비행에 나선 것이란 분석이다. 대전 초기에도 이런 중재 노력이 상당히 있었으며 처칠이 권력을 장악한 1940년 5월 이후 사그라들었다. 영국인과 독일인 사이에 혈연 관계가 있으며 소비에트 러시아를 공통의 적으로 여긴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1940년 늦여름 그는 접촉선을 통해 영국 정부가 평화 협상에 나설 용의가 있는지 물었다. 전쟁 전 베를린에서 해밀턴 공을 만났던 헤스의 친구 알브레히트 하우쇼퍼가 해밀턴 공작이라면 믿고 협상을 맡겨볼 만하다고 했다. 하우쇼퍼는 해밀턴에게 한 번 봤으면 좋겠다고 편지를 보냈지만 답장이 오지 않았다. 그 편지는 영국 해외정보부 MI5 가 가로챘다. 이때쯤 헤스는 절박했다. 비행기 조종 연습에 몰두하며 해밀턴이 준비됐다는 전언만 해오길 기다렸다. 하우쇼퍼에게 재촉했더니 그는 평화를 원하는 영국인들이 많다고 했다. 헤스는 직접 담판을 해야겠다고 오판해 영국까지 날아가기로 했다. 크로스랜드 박사는 “헤스의 관점으로는 처칠의 입장에 반대하는 이들이 존재한다면 이들이 처칠의 전복에 나서 히틀러와 평화를 이뤄낼 준비가 돼 있다고 볼 수 있었다”면서 “헤스는 안달이 나 있었고, 순진하기도 해 환상에 빠졌고 이 모든 일이 세상을 위해 좋은 일이라고 믿었다”고 말했다. 그러면 왜 헤스는 안달이 나 있었을까? 그는 히틀러의 초기 충복이었다. 히틀러가 란스베르크 교도소에 수감됐을 때부터 1923년 비어홀 푸시까지 그를 따라다녔다. 그 때는 히틀러와 둘이 진정한 친구라고 믿었다. 하지만 제3제국이 전쟁을 일으키자 이너서클에서 그는 밀려나기만 했다. 대놓고 그를 따돌리고 조롱하는 이들까지 생겨났다. 히틀러의 믿음을 다시 얻겠다는 욕심이 과했다. 크로스랜드 박사는 음모론은 역사적 진실과 상당한 거리가 있지만 기밀 해제된 문서들을 살펴보면 상당한 거리가 좁혀진다고 했다. 예를 들어 헨리 딕스 박사가 체포 직후 헤스를 만난 뒤 적은 첫 인상은 “피해 망상에 젖은 사이코패스”라고 했다. 대화가 진행될수록 그는 자신과 히틀러가 영국을 존경해 전력으로는 독일이 우위에 있지만 영국이 더 이상 파괴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했다. 딕스 박사는 영국을 좋아한다는 것만이 헤스가 홀로 스코틀랜드까지 날아오게 만든 원동려이라고 생각했다. 히틀러는 헤스가 이런 일을 시도할줄 몰랐다. 해서 나치 당은 그가 미쳤다고 선언했다.헤스는 저유명한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종신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1987년 스판다우 교도소에서 숨을 거뒀다. 93세로 천수를 누렸다. 다른 나치 고위직들은 1966년 석방됐는데 그는 홀로 독방에서 21여년을 더 지냈다. 이 때문에 나치 지도자들이 헤스의 비밀이 세상에 알려지는 것을 감추고 싶어 했다는 추측이 나왔다. 그러나 2017년 배포된 문서들에 따르면 영국 정부는 여러 차례에 걸쳐 소련 정권에 헤스를 석방해 달라고 간청했다. 크로스랜드 박사는 이 일을 더 밝혀내고 싶은데 역사학자들의 전쟁 관련 연구에서 두 문단 정도만 언급하고 말아 한계를 많이 느낀다고 털어놓았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방화풍선·수류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주말 내내 충돌

    이슬람교와 유대교, 기독교의 성지인 예루살렘에서 주말 이틀 동안 이스라엘 경찰과 팔레스타인 주민들 간 충돌이 벌어져 수백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고 BBC가 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주변 아랍국은 이스라엘의 강경 진압 기조를 비난했고, 서방은 우려를 표시했다. 이스라엘 당국이 동예루살렘 셰이크 자라 지역의 팔레스타인인 수십명을 이주시키려는 계획을 추진하며 양측의 긴장이 고조되던 가운데 라마단(이슬람 금식주간)이 끝나던 지난 7일 저녁에 충돌이 일어났다. 메카, 메디나에 이어 이슬람교의 세 번째 성지로 꼽혀 이날 약 7만명이 예배를 위해 모였던 예루살렘의 알아크사 모스크 주변에서 대치가 벌어졌다. 이스라엘 군경이 최루액을 뿌리며 강경진압에 나선 결과 팔레스타인 주민 최소 220명과 이스라엘 경찰 17명이 다쳤다. 팔레스타인 부상자 가운데 88명은 이스라엘 경찰이 쏜 고무탄과 기절수류탄 파편을 맞았다고 팔레스타인 적신월사(이슬람권 적십자)가 전했다. 충돌은 다음날에도 이어졌다. 팔레스타인 적신월사는 8일 셰이크 자라 지역에서 돌을 던지는 시위대를 강제해산시키는 과정에서 최소 90명이 다쳤다고 집계했다. 이스라엘 경찰관 1명도 머리를 다쳤다. 가자지구 경계에서는 시위대가 이스라엘 쪽에 불을 내려고 3개의 ‘방화 풍선’을 날려 보냈고, 경찰은 최루가스로 맞섰다고 AFP통신이 전했다. 갈등이 커지자 이스라엘 정착촌의 유대인이 셰이크 자라 지역 부동산 획득을 위해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상대로 벌인 법적 분쟁 심리도 예정일(10일)에서 미뤄졌지만, 이스라엘 정부가 이날 ‘예루살렘의 날’ 행사 진행을 승인하며 긴장은 이어지고 있다. 주변 아랍국들은 이스라엘의 강경진압을 성토했다. 터키 외무부는 8일 “알아크사 모스크에서 팔레스타인 민간인을 다치게 한 이스라엘 보안군의 공격을 강하게 규탄한다”고 성명을 냈다. 사이드 하티브자데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이 전쟁범죄는 다시 한번 불법적인 시온주의 정권의 범죄성을 입증했다”고 맹비난했다. 유럽연합(EU)은 “폭력과 선동은 용납할 수 없으며 가해자는 누구든 책임을 져야 한다”면서 “예루살렘의 긴장을 완화하기 위한 즉각적인 조처를 촉구한다”고 했다. 네드 프라이스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극도로 우려하고 있다”면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측이 긴장을 완화하고 폭력을 중단하기 위해 단호하게 행동할 것을 촉구한다”고 했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에너지 新패권지도의 경고… 한국은 어떻게 살아남을까

    에너지 新패권지도의 경고… 한국은 어떻게 살아남을까

    국민 게임 ‘스타크래프트’를 떠올려 보자. 게임을 시작하면 우선 에너지부터 확보해야 한다. 자원이 있어야 건물을 짓고 병사도 만들어 상대방과 맞설 수 있다. 이런 모습은 인간의 활동, 나아가 국가 운영과 무척 닮았다. 케임브리지 에너지리서치 어소시에이츠에서 고문으로 일하는 대니얼 예긴은 ‘에너지’라는 붓으로 지도를 그린다. 빌 클린턴부터 도널드 트럼프까지 미국 4개 행정부의 에너지부 자문위원회에 몸담았고, 현대사와 자본주의의 흐름을 석유로 풀어낸 ‘황금의 샘’으로 퓰리처상을 받았다. 10년 만에 신간 ‘뉴 맵’으로 돌아온 그는 이번엔 분석을 좀더 확장했다. 셰일 혁명으로 에너지 강국으로 올라선 미국, 이에 맞서는 에너지 대국 러시아와 중동, 그리고 신흥 강국인 중국 사이의 갈등과 경쟁을 살핀다. 국제사회의 거의 모든 지정학적 갈등의 중심에 에너지가 자리하고 있다. 2000년대 초만 해도 미국은 석유에 이어 천연가스마저 수입에 의존할 처지였다. 그러나 2008년 셰일 암석층 사이에서 엄청난 양의 천연가스와 석유가 발견되면서 역사는 다른 방향으로 흐른다. 텍사스주 한 곳에서만 사우디아라비아를 제외한 모든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의 생산량을 능가할 석유량이 배출되면서 더는 산유국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어진 미국은 자신감 있게 외교에 나섰다. 이란 핵협상이 좋은 사례다. 미국은 2012년부터 핵 문제를 두고 이란 경제 제재에 나섰다. 예전대로라면 이란이 석유 수출을 중지하고, 이에 불평하는 다른 나라들이 미국에 반발하는 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됐을 터다. 그러나 시나리오와 다른 일이 벌어졌다. 석유 카드가 먹히지 않게 되자, 이란은 2015년 버락 오바마 정부가 주도권을 잡은 핵 협상장에 나올 수밖에 없었다.미국을 제치고 세계의 중심이 되려는 중국에 반드시 필요한 것도 에너지다. 최근 ‘신냉전’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미국과 사사건건 충돌하는 일도,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내세우며 남중국해를 비롯해 세계 곳곳에서 긴장 상태를 유발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미국과 사사건건 충돌하며 펼치는 동진 정책도 마찬가지다. 사우디아라비아가 2조 달러 가치를 지닌 알짜배기 국영기업 아람코를 증시에 상장해 위기를 돌파하려는 일도 같은 맥락에서 설명할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는 석유 자동차를 위협하는 전기차와 석유 사용을 줄이려는 기후 협약도 에너지 전쟁의 주요 변수가 됐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석유가 완전히 고갈되는 상황을 염려했던 세계가 지금은 수요를 줄이고 2차 전지와 풍력,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로 다각화할지 고민한다. 여기에 코로나19 상황으로 국가별 부채가 뛴 것을 고려하면 에너지 문제는 더 복잡해진다. 한국은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큰 석유 수입국이자, 천연가스 수입은 세계 3위, 석탄 수입은 세계 4위다. 저자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2050년까지 탄소 순배출 제로´를 외친 문재인 대통령의 목표가 실현하기 어렵고, 한국의 풍력, 태양광 발전 분야가 예상만큼 빠르게 성장할지 불확실하다고 평가한다. 다만 배터리와 연료 전지, 수소를 비롯한 신기술 분야에서 앞서 나가는 점을 높게 산다. 그러면서 “전 세계적인 에너지와 지정학적인 지도에서 한국의 위치, 새로운 지형에서 한국이 살아가는 방법을 고민하라”는 충고도 잊지 않는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글로벌 In&Out] 세계시민의 곤란 함께 풀어야 강대국이다/알파고 시나씨 아시아엔 편집장

    [글로벌 In&Out] 세계시민의 곤란 함께 풀어야 강대국이다/알파고 시나씨 아시아엔 편집장

    마스크를 쓴 채 두 번째 여름을 보낼 상황이다. 당선된 지 얼마 안 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랑 연락한 세계 각국 정상이 당선을 축하하고 나서 경제나 군사적인 이슈를 꺼내지는 않았다. 제일 핫한 이슈는 백신이다. 현재 출시된 백신 중 가장 호평을 받는 백신은 미국에서 개발된 백신들이다. 미국이 세계 초강대국이 된 것은 오직 경제력이나 군사력만이 아니다. 미국이 전 세계에서 모여든 인재들을 통해 지구상에 거주하고 있는 전 세계 시민의 문제들을 풀어주는 해결 방안을 제안하고 실행하기 때문에 지도자가 되어 초강대국으로 뜬 것이다. 한국은 백신 개발과 확보에서는 그렇게 좋은 성적을 기록하고 있진 않지만, 코로나19 초기엔 철저한 방역정책으로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았고 소위 말하는 ‘K방역’이란 단어까지 탄생했다. 많은 나라가 한국의 방역정책을 연구했고, 따라했다. 그리고 마스크나 비슷한 방역 필수품들의 필요성이나 다양화를 미리 파악한 한국은 대대적으로 생산했고, 국내나 해외 시장에 빠르게 보내면서 글로벌 방역에 그 나름대로 크게 이바지했다. 국제적인 무대에서 튼튼하게 쓰려면 강한 군사력이나 굳건한 경제력이 필요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세계 시민이 겪는 글로벌한 문제를 극복하는 데 큰 역할을 해야 한다. 그래야 국제적인 행위자가 되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오늘날 한국인들이 외국인들에게 제일 먼저 자랑하는 것은 정보기술(IT)이다. 맞다. 오늘날 한국이 그 어느 나라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인터넷과 강력한 정보통신기술(ITC)로 시민들을 편리하게 하는 국가라는 것을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국제적 평판과 지위를 얻을 수 없다. 언제부터 얻을 수 있냐면, 세계 시민과 공유할 수 있는 노하우가 생길 때부터이다. 즉 높은 수준의 정보기술은 우리에게 수많은 장점들을 가져다준다. 하지만 그로 인한 단점도 있다. 가장 대표적인 단점은 독서율의 감소이다. 최근 한국의 성인 독서율이 매년 감소하고 있다는 사실이 여러 번 언론에 보도되었다. 전문가들의 분석에 따르면 성인 독서율 감소의 원인은 스마트폰 이용 시간의 증가이다. 인터넷도 빠르고 스마트폰 역시 가장 뛰어난 기술로 만들어지다 보니 성인들이 인터넷 서핑을 하는 데 여유 시간의 대부분을 사용하고 있다. 당연히 성인 독서율이 감소하게 된다. 자,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국민이 독서를 멈춘 나라는 식물인간과 같다고 할 수 있는데, 이 문명적인 문제를 우리는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이 과정에서 우리가 개발한 노하우를 공유해야 하고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이 문제를 우리 주도하에 극복해야 한다. 미국의 백신 개발과 한국의 성인 독서율 감소가 같은 급이냐고 물을 수도 있다. 나는 장기적으로 봤을 때 독서율 감소를 더 심각한 문제로 여기니까 제일 먼저 여기서 언급하게 되었다. 그래서 독자 여러분을 위해 다른 예를 들어 보려고 하지만, 필자 눈에 보이는 문제들이 남들이 봤을 땐 작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사실상 중요한 문제들이다. 군대 문제도 있다. 한국이 북한과 대치하니 징병제로 군기가 강한 군대가 필요하고, 민주주의 국가이다 보니 장병들의 인권도 지켜야 한다. 징병제가 있는 모든 나라에서 입대한 군인들의 인권이 늘 큰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그러나 큰 변화들이 없다. 그 와중에 한국 군대를 보면 비교적 많은 문제를 극복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국방 관리 노하우가 세계 시민에게 필요하다는 말이다. 1948년 분단돼 한국전쟁을 겪는 등 많은 우여곡절 끝에 오늘날을 만든 대한민국은 세계 시민에게 필요한 다양한 노하우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세계 시민의 문제들을 앞장서 지구 거주자들과 함께 풀어야 더 행복한 한국, 세계의 리더가 될 것이다.
  • 바이든 ‘아르메니아 집단학살’ 인정… 터키 ‘친러’로 등돌리나

    바이든 ‘아르메니아 집단학살’ 인정… 터키 ‘친러’로 등돌리나

    터키 전신 오스만 제국 때 150만명 희생NYT “나치 만행과 동일시한 상징적 무게”터키, 美대사 초치 “양국관계 상처” 항의아르메니아 “인권의 우월성 재확인” 환영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4일(현지시간) 100여년 전 오스만제국의 아르메니아인 학살을 ‘집단학살’(genocide)로 공식 인정했다. 바이든은 “우리는 오스만제국 시대에 아르메니아인 집단학살로 숨진 모든 이들의 삶을 기억한다. 미국 국민은 106년 전 오늘 시작된 집단학살로 목숨을 잃은 모든 아르메니아인을 기리고 있다”고 했다. 미국 대통령들은 4월 24일 아르메니아 집단학살 추모일마다 성명을 발표했지만, 바이든의 ‘집단학살’ 표현은 이례적이란 평가가 나왔다. 전임인 버락 오바마는 “20세기 최악의 참사 중 하나”로, 도널드 트럼프는 ‘20세기 최악의 집단 잔혹 행위의 하나’라고 표현했었다. 바이든 이전에 집단학살이란 표현을 쓴 대통령은 1981년 로널드 레이건이 마지막이다. 뉴욕타임스가 “바이든의 발표는 나치의 만행과 아르메니아에 대한 폭력을 동일시하는 상징적 무게를 지니고 있다”며 외교적 파장을 예상했다. 미 언론들은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동맹국이자 전략적 중추국가인 터키가 러시아와 더 밀착되는 계기가 될 가능성을 제기했다. 바이든이 이날 언급한 ‘집단학살’은 터키의 전신 오스만제국이 해체될 때 벌어진 일이다. 1차세계대전에서 독일과 손잡은 오스만제국은 인종과 종교가 상이했던 아르메니아인들이 대거 러시아군 지원 단체를 결성하자, 1915년 4월 24일 수백명의 아르메니아 지식인을 체포해 살해했다. 이어 1915~1923년 살해되거나 추방돼 기아로 숨진 아르메니아인들이 150만명으로 추산된다. 가까스로 살아남은 아르메니아인 약 50만명은 러시아, 미국 등지로 흩어져 세계에서 가장 광범위하게 퍼진 디아스포라의 한 사례를 형성했다. 조지아, 아제르바이잔과 함께 코카서스 3국으로 분류되는 아르메니아는 이후에도 구소련 위성국가 편입, 독립 등을 겪으며 주변국들과 갈등 관계를 이어 왔다. 지난해 9월에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 간 무력충돌 당시엔 아제르바이잔과 민족적 뿌리가 같은 터키의 참전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했다.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간 충돌은 지난해 11월 러시아가 개입해서야 무마되는 등 아르메니아와 주변국들 간 갈등은 현재 진행형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날 바이든의 ‘집단학살’ 언급에 니콜 파시냔 아르메니아 총리는 “국제관계에서 인권의 우월성을 재확인하는 것”이라며 감사의 뜻을 표시했다. 그러나 터키 외무차관은 미국대사를 초치해 “양국관계에 치료하기 어려운 상처가 났다”며 항의했다. 터키는 당시의 일들을 전쟁 중 벌어진 쌍방 충돌의 결과로 규정하며 ‘1915년 사건’이란 용어를 쓴다. ‘학살’이란 표현은 ‘터키인의 품위를 떨어뜨리는 행위’로 보고 형법 301조로 기소한다. 이지운 전문기자 jj@seoul.co.kr
  • 정의선 회장, 미국 전기차 시장 확대 선봉 나서나

    정의선 회장, 미국 전기차 시장 확대 선봉 나서나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내달 말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을 한 달 앞둔 시점에 미국 전기차 시장을 직접 둘러보고 왔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 이후 활짝 열린 미국 친환경차 시장에서 현대차·기아가 전기차 영토를 확장하는 계기가 될지 주목된다. 정 회장은 지난 24일 일주일간의 미국 방문을 마치고 귀국했다. 지난해 10월 회장에 취임한 이후 미국을 찾은 건 처음이다. 지난해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국제가전제품박람회(CES)에 참석한 것이 마지막 방문이었다. 해외 출장은 지난 1월 싱가포르를 방문한 데 이어 두 번째다. 정 회장은 바이든 정부의 친환경 정책에 맞춰 현지 시장 판매 전략을 재검토하고자 미국 방문을 결정했다. 정 회장은 앨라배마주 현대차 공장을 찾아 최근 출시한 전용 플랫폼(E-GMP) 전기차 ‘아이오닉 5’를 생산할 여건을 갖췄는지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기존 생산 라인을 활용할지, 아니면 라인을 신설할지를 점검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 전기차 시장을 제대로 공략하려면 현지 생산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바이든 정부도 ‘친환경차 산업 100만개 일자리 창출’ 공약을 이행하기 위해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이 미국에서 전기차 생산 체제를 갖추길 바라고 있다. 정 회장의 미국 방문 시점도 다양한 해석을 낳고 있다. 한미 정상회담을 한 달 앞두고 국내 기업의 미국 친환경 시장 진출 문제가 백신 공급과 함께 주요 안건으로 떠오르자 정 회장이 직접 현황을 파악하기 위해 미국을 방문했다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회담에서 “현대차·기아를 비롯해 미국에서 배터리 전쟁을 벌인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 등 국내 기업이 미국 전기차 시장을 확대하는 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지원책을 펼쳐달라”고 바이든 대통령에게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현대차가 미국 현지에서 전기차를 생산하려면 노조와 협의를 거쳐야 해 당장 추진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노조 측은 해외 공장 생산량이 늘어날수록 국내 생산량이 줄기 때문에 해외 일감을 국내로 돌려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정 회장은 이번 미국 방문길에 미래차 기술 관련 기업 관계자와 만나 다양한 협업을 모색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물류 기업 아마존과 ‘라스트마일 모빌리티’ 협업을 타진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라스트마일 모빌리티는 차량에서 내려 최종 목적지까지 남은 ‘1마일’(1.6㎞)을 이동할 때 쓰이는 ‘전동킥보드’와 같은 교통수단을 뜻한다. 이영준 기자 the@seoul.co.kr
  • “쥐만 잘 잡으면 되지, 고양이 털 색깔 무슨 상관”…이재명, 러시아 백신 도입 촉구

    “쥐만 잘 잡으면 되지, 고양이 털 색깔 무슨 상관”…이재명, 러시아 백신 도입 촉구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24일 러시아산 코로나19 백신 ‘스푸트니크 브이’의 장점을 열거하며 국내 도입을 촉구했다. 이 지사는 이날 페이스북에 ‘쥐 잡는데 흑묘 백묘 없다’는 제목의 글을 올리고 “스푸트니크 백신은 화이자나 모더나에 비해 비용도 절반에 불과하고, AZ보다 면역율이 높으며, 국내생산중이라 조달이 쉽다는 이점이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어 그는 “이미 접종 중인 AZ이상의 안전성만 검증된다면 러시아산이라고 제외할 이유가 없습니다. 쥐만 잘 잡으면 되지, 고양이 털 색깔이 무슨 상관이냐”고 강조했다. 또 이 지사는 “코로나19와의 싸움은 국민 생명이 달린 안보 문제이고, 적을 막는 군대처럼 제1방어선 뒤에 제2, 제3의 방어선이 필요하다”며 “입에 배다시피 한 ‘늑장대응보다 과잉대응이 낫다’는 말처럼 국민생명을 지키는 방법이라면 부족한 것보다 비록 예산낭비가 되는 한이 있어도 남는 것이 차라리 낫고 안전하다”며 백신 추가 확보 필요성을 역설했다. 아울러 이 지사는 백신문제 논의 시에는 국민생명을 지키는데 유용한 지에 집중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일각에서 ‘한미동맹’이 중요하니 스푸트니크 백신 도입이 부적절하다거나, K방역을 어떻게든 깎아내리려고 이스라엘이 남긴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이라도 가져오자는 식으로 불신을 부추기고 있다“며 ”국민 생명이 달린 백신 문제를 놓고, 타국의 진영 패권논리에 휘둘리거나 정략적으로 접근하여 국민 혼란을 초래하고 방역에 지장을 초래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다음은 이재명 지사 페이스북 글 전문 <쥐 잡는데 흑묘 백묘 없다> 백신문제 논의시에는 국민생명을 지키는데 유용한 지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일각에서 백신 패권전쟁에 편승하여 ‘한미동맹’이 중요하니 스푸트니크 백신 도입이 부적절하다거나, K방역을 어떻게든 깎아내리려고 이스라엘이 남긴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이라도 가져오자는 식으로 불신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AZ와 같은 계열이라 부작용이 우려된다며 스푸트니크V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이스라엘이 남긴 AZ를 사 오자니 참으로 딱합니다. 국민 생명이 달린 백신 문제를 놓고, 타국의 진영 패권논리에 휘둘리거나 정략적으로 접근하여 국민혼란을 초래하고 방역에 지장을 초래해서는 안됩니다. ‘망치 증후군’이란 심리학 용어가 있습니다. 망치를 들면 모든 게 못으로 보인다는 것으로 특정한 가치관이나 편견에 따라 현실을 재단하는 습성을 잘 표현한 말입니다. 편향적 사고에 빠지면, 해야 할 일이 못 박는게 아닐 경우엔 손에 든 망치가 오히려 문제 해결을 어렵게 할 것입니다. 코로나19와의 싸움은 국민 생명이 달린 안보문제이고, 적을 막는 군대처럼 제1방어선 뒤에 제2, 제3의 방어선이 필요합니다. 입에 배다시피 한 ‘늑장대응보다 과잉대응이 낫다’는 말처럼 국민생명을 지키는 방법이라면 부족한 것보다 비록 예산낭비가 되는 한이 있어도 남는 것이 차라리 낫고 안전합니다. 스푸트니크 백신은 현재 개발된 백신들 가운데 화이자나 모더나에 비해 비용도 절반에 불과하고, AZ보다 면역율이 높으며, 국내생산중이라 조달이 쉽다는 이점이 있습니다. 이미 접종중인 AZ이상의 안전성만 검증된다면 러시아산이라고 제외할 이유가 없습니다. 쥐만 잘 잡으면 되지, 고양이 털 색깔이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경기도는, 신속한 안전성 검증으로 백신 도입 다양화의 길을 열고, 지방정부의 백신 접종 자율권을 확대해주시라고 중앙정부에 건의했습니다. 백신생산 가능 기업 발굴, 생산설비 신규확충이나 기존 설비 전환에 따른 행정적 재정적 지원 등 지방정부가 할 수 있고 해야 할 일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경기도는 하루속히 코로나19를 극복하고 국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 중앙정부와 긴밀하게 협력하고 발맞추는 한편 지방정부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끊임없이 찾아나갈 것입니다.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금요칼럼] 신지식인 최한기를 꺾은 조선 사회/백승종 한국기술교육대 겸임교수

    [금요칼럼] 신지식인 최한기를 꺾은 조선 사회/백승종 한국기술교육대 겸임교수

    철종 4년(1853) 가을, 서울에 사는 생원 최한기가 충주의 선배 학자 이규경을 찾아갔다. 이규경의 할아버지는 실학자로 이름난 이덕무였는데, 최한기는 이덕무의 책 ‘사소절’이 서울에서 간행됐다는 소식을 가지고 왔다. 선비와 여성 그리고 아이들이 배워야 할 교양 지식이 듬뿍 담긴 책이었다. 이규경은 언젠가는 이 책을 꼭 간행해야 하겠다고 결심했으나 재력이 달렸다. 그런데 최성환이란 선비가 판서 박종보가 소유한 동활자를 빌려다가 책을 찍은 것이었다. 이규경은 활자본 ‘사소절’을 읽어 보고 싶었으나 마땅한 방법이 없었다. 그런 사정을 잘 아는 최한기는 곧 그 책을 구해서 충주로 보냈다. 책을 받은 선배의 기쁨이 얼마나 컸을지는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이규경 자신은 ‘분류 오주연문장전산고’를 썼다. 그 책을 읽다가 나는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 최한기는 선배 이규경에게 최신의 지식정보를 제공했다는 점이다. 시골에 살던 이규경은 신간 정보를 놓칠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규경은 최한기를 “속된 선비(俗士)와는 비교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칭찬했다. 19세기 중반, 동아시아에 전운이 감돌았다. 제1차 아편전쟁(1840~1842)에서 참패한 후 중국의 식자들은 서양 사정을 본격 탐구했다. 자연히 관련 서적이 잇달아 출간됐다. 국내의 선각자들은 중국의 신간서적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는데, 대표적인 이가 바로 최한기였다. 고관 중에도 영의정 조인영 같은 이가 큰 관심을 두고 있었다. 그들은 세상이 장차 어떻게 변할지 몰라서 고뇌했다. 북경을 오가는 역관을 통해서 최한기는 중국 신간을 거의 모두 구입했다. 거질의 ‘해국도지’도 그중 하나였는데, 이 책은 여러 대륙의 인문지리를 상세히 기록했다. 또 ‘영환지략’도 구입했는데 역시 세계지리에 관한 책자였다. 역관 오경석도 자신의 벗 유대치에게도 이 책을 권유했고, 그 결과 드디어 조선에서도 개화사상이 움텄다. 이규경은 시골에 살았으나, 후배 최한기의 글을 통해서 세상일을 환히 알았다. 1860년대 중반이 되자 최한기는 자신이 쓴 책을 직접 중국 북경에서 간행했다. ‘기측체의’를 북경의 인화당(人和堂)에서 출간했다. 유학 철학서로 사물에 대한 사고를 과학적인 방법으로 하자며 이를 인간의 신체를 분석해 비유한 책이다. 이 책에서 최한기는 이름 뒤에다 ‘패동’(浿東)이라고 명기해, 그가 패수의 동쪽 곧 조선사람임을 밝혔다. 그는 이제 중국이 제공하는 지식정보의 소비자가 아니라 생산자로 발돋움한 셈이었다. 최한기는 왜 ‘기측체의’를 중국에서 간행했을까. 그는 제국주의가 판치는 세상을 바로잡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그는 문제의 근본적 해결책을 제시했다. 즉 ‘조민유화’(兆民有和)가 그것이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나라와 나라가 이익을 둘러싸고 싸우는데, 싸움을 중단하고 서로 화합하기에 힘쓰자는 말이었다. 최한기는 세계평화를 통해서 제국주의 침략을 벗어나고 싶었다. 그러나 저술가 최한기에 대한 조선사회의 평가는 싸늘했다. 김헌기라는 선비는 편지를 보내어 이렇게 타일렀다. “책을 쓰는 것은 학자가 서두를 일이 아니네. 우선은 성리학의 고전인 ‘사서’와 정자 및 주자 선생의 글을 더욱 열심히 읽고 배우기 바라네.”(‘초암선생전집’, 권4) 세상은 항상 바뀌는 법이다. 새로운 것이 늘 옳지는 않지만 기성의 낡은 관념으로 움트는 새싹을 꺾어서는 안 된다. 19세기 후반에 우리는 최한기를 살리고 성리학을 낮췄어야 했다. 그런데 다들 거꾸로 달려갔다. 지금은 과연 어떠한가. 누구는 여성가족부를 없애자고 주장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남성이 역차별받고 있다며 억울함을 호소하기도 한단다. 과연 세상이 이래도 좋은지 나는 모르겠다.
  • [서울광장] 광주와 41년 뒤 미얀마/임병선 논설위원

    [서울광장] 광주와 41년 뒤 미얀마/임병선 논설위원

    “광주민주화항쟁 때 고교 2학년이었어요. 제 눈으로 많은 것을 봤지요. 어린 나의 눈에도 광주 시민은 패배를 직감한 것처럼 보였어요. 그에 견주면 미얀마 사람들은 대단히 용기 있고 낙관적인 것 같아요. 그 이유가 뭔가요?” 지난달 말 경기도의 한 소도시에서 재한 미얀마인들의 정신적 버팀목이라 할 수 있는 A를 만나 던진 첫 질문이었다. 그는 한국에서 일하는 미얀마인들이 민주 회복을 기원하며 모은 자금을 고국에 송금하는 일을 지휘했다는 이유로 군부에 수배된 외국 거주 미얀마인 가운데 한 명이다. 한국에서 26년 넘게 살아 한국인만큼 말을 잘했다. 지난 2월 1일 쿠데타를 일으킨 군부는 여전히 총질을 멈추지 않고 있다. 집에 있던 어린아이들이 무턱대고 쏴대는 흉탄에 스러지고 있다. 어제는 군부에 끌려간 청년 지도자와 여성의 고문 전과 후 사진이 공개돼 공분을 샀다. 이런 잔학상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데도 용감한 미얀마 국민들은 오늘도 거리로 나서 세 손가락 경례로 민주주의를 염원하고 있다. A 역시 처음에는 조국의 젊은이들이 이렇게도 용감히 맞서 싸우는 것을 보고 어리둥절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리고 아웅 산 수치 정부가 군부의 손아귀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해 한계가 있었지만, 그 정부 아래 자유와 민주주의의 맛을 봤기 때문에 지금 침묵하면 암흑 천지로 돌아가고 말 것이란 두려움, 이따위 세상을 물려줬느냐는 후세들의 질책을 들을까 두려워 과감히 떨쳐 일어선 것이라고 했다. 그가 조심스럽게 꺼낸 세 번째 이유는 준비돼 있어 미얀마인들이 승리에 대한 확신을 갖고 있다는 것이었다. 수치 정부와 민주 진영은 오랫동안 군부의 헌법을 대신할 새 헌법을 논의해 왔으며 그 과정에서 소수민족 반군 대표들과도 신뢰를 쌓으며 연방국가 구상을 미리 충실히 해 놓았다. 그렇기에 전쟁을 벌일 각오까지 돼 있다고 했다. 500명 정도의 젊은이가 군사훈련을 받고 있다고도 했다. 군부는 더이상 합법 정부가 아니며 수치 정부와 소수민족 반군 대표들이 새 헌법에 따라 합의해 출범한 국민통합정부가 유일한 합법 정부라고 주장했다. 수세에 몰린 민주 진영이 당장의 화력 지원이 필요해 반군들에게 손을 벌렸으며 쿠데타 세력이 물러나도 민주 진영에서 분쟁과 갈등이 일어날 불씨를 키우는 셈이라고 보는 시각이 국내에도 존재하는데 그는 완전히 잘못된 얘기라고 못박았다. 자신들은 1988년 8·8항쟁 이후 오랜 시간 준비해 왔고 이를 잘 알고 있는 군부가 최악의 발악을 한 것이 쿠데타이며 승리할 수밖에 없는 싸움이니 한국 국민도 자신감을 갖고 미얀마와 국민을 지지하고 응원해 달라고 주문했다. 광주는 어떠했나 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나는 “전두환 군부의 꼼꼼한 기획으로 완전히 고립무원이 된 광주와 소셜미디어와 인터넷으로 세계와 실시간으로 연결된 미얀마 현 상황은 완전 다르다”면서 “지금 미얀마 군부는 겉으로는 힘이 넘쳐나는 것 같지만 역사의 심판대에서 이미 패배했으며 오늘날 전두환 전 대통령이나 그 세력이 걷는 길을 미얀마 군부도 똑같이 걷게 될 것이란 점을 인식하고 당장 물러나야 한다”고 말했다. A는 제발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면서 “외교나 경제협력 관계 등을 볼 때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 한국 정부가 바로 이웃한 어느 나라보다 더 빨리 적극적으로 민주 진영을 지지하고 최루탄을 비롯한 무기 수출과 공적개발원조(ODA) 지원을 중단하겠다고 밝힌 것은 대단히 용기 있었다. 여기에다 많은 한국인이 십시일반의 마음가짐으로 미얀마에 정성을 보내고 있어 놀랍기 그지없다. 한 스님은 익명으로 1억원을 기부했다”며 고마움을 표했다. 그는 미얀마의 10개 소수민족 가운데 카친족 수십만 명이 군부의 보복 공격에 떠밀려 태국 국경 지대로 피신했다며 한국 정부의 ODA를 전용해 독자적으로 난민 캠프를 운영하는 방안을 검토해 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 인터뷰를 한 지 3주가 흘렀다. 그가 예고한 대로 국민통합정부가 출범했으니 우리 정부가 발빠르게 승인하는 것이 마음으로나 물질적으로 지원하는 것보다 수백 배는 힘도 있고 가치도 있는 일일 것 같다. 41년 전 광주의 저항이 열흘 만에 송두리째 짓밟혔을 때 항쟁 내내 침묵하던 지미 카터 미국 행정부가 전두환 일당을 승인한 일이 얼마나 광주 시민들을 깊이 좌절시키고 마음의 상처를 헤집었는지 돌아보면 새 합법 정부를 승인하는 일의 무게는 실로 작지 않은 것이다. bsnim@seoul.co.kr
  • 성평등 외친 신생 정당, 2030 여성을 깨우다

    성평등 외친 신생 정당, 2030 여성을 깨우다

    ‘성차별 심판’이라던 선거에서 ‘성평등 실현’은 달성됐는가.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비위로 치러진 4·7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결국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의 승리로 돌아갔다. 그러나 ‘성평등’을 기치로 내건 후보가 5명(신지혜·오태양·김진아·송명숙·신지예 후보), 이들이 얻은 표가 9만 3843표(득표율 1.91%)였다. 선거 출마 경력만 7회인 국가혁명당 허경영 후보에 이어 여성의당 김진아 후보가 4위(0.68%, 3만 3421표), 기본소득당의 신지혜 후보가 5위(0.48%, 2만 3628표)에 올랐다. ‘여자 혼자도 살기 좋은 서울’이라는 강력한 슬로건, ‘페미시장 신지혜가 무상 생리대 미프진 책임지겠습니다’라는 민트색 현수막의 기억을 여성들이 공유했고, 그 결과 20대 이하 여성의 소수정당·무소속 후보에 대한 지지가 15.1%(방송 3사 출구조사 결과)로 도드라졌다. 창당 1년 남짓한 신생 정당들이 거둔 쾌거다. 선거의 여진이 가시기 전인 지난 13일 김진아·신지혜 후보를 서울 중구 서울신문사에서 만났다. 당 대표로 낙선 인사에 여념이 없는 신 후보와 그동안 소홀했던 생업(페미니즘 공간 ‘울프소셜클럽’ 대표)으로 돌아간 김 후보는 경쟁자이자 레이스 동반자로서의 소회를 풀어나갔다.-선거 결과를 평가하신다면요. 신지혜 원래 목표는 다들 그랬다시피 3등이지 않았을까요. 3등 전쟁이었던 거 같아요. 거대 양당이 합쳐서 97%를 득표해서 나머지 3%를 어떻게 나누느냐의 차이였어요. 특히나 더불어민주당이 약세일 때 소수정당에 더 표가 안 오거든요. 그런 상황에서 정말 용기 있게 선택해 주신 분들의 힘으로 ‘다른 서울’의 모습을 그려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김진아 선거 결과만 놓고 봤을 때 이번 선거가 어떻게 시작됐는지 모두가 공유하는 상황에서 여성 서울시장을 내지 못했다는 지점은 굉장히 아파요. 야당에서야 선거를 정권 심판으로 몰아가려고 했겠지만, 이번 선거의 성격은 비단 정권 심판만이 아닌 고착화된 성폭력, 성차별에 대한 심판이 돼야 했거든요. 그 지점에서는 많이 안타깝고요. 신 대표님이 얘기하신 것처럼 자신의 뜻을 소신 있게, 사표가 될 걸 알면서도 던지기 쉽지 않은데 15.1%라는 수치로 20대 여성의 소신을 확인한 것은 성과예요. 저는 선거 비용을 거의 들이지 못했는데 4위라는 성적을 내 나름 뿌듯한데요. 허 후보보다 현수막만 많이 걸 수 있었어도 3위는 하지 않았을까 싶어요(웃음). -말씀하신 것처럼 20대 이하 여성의 기타 후보 지지가 15.1%로 나타났고 30대 여성도 5.7%로 뒤를 이었고요. 이들 젊은 여성의 지지를 어떻게 보시는지요. 신 거대 양당의 정치에 가장 지치고, 정치 변화에 대한 열망이 가장 강한 사람들이 10~30대 여성이 아닐까 싶어요. 이번 선거가 성폭력으로 발생한 선거이기도 했고 2010년대 중반부터 불거진 디지털 성폭력, 불법촬영, n번방 사건, 낙태죄 폐지 등이 모두 그들 문제이기도 하고요.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서는 후보들에게 한 표를 주는 게 실제 내 삶을 낫게 하는 거라고 생각한 사람들이 10~30대 여성인 거죠. 김 20대 이하 여성 40.9%가 오세훈 후보를 지지했다는 것에 언론이 초점을 맞추고, 이것이 20대의 보수화·우경화를 상징한다고 몰아가고 있는데 저는 그렇게 보지 않아요. 정말 이들이 보수화됐기 때문에 오 후보를 지지한 게 아니라 민주당에 대한 적극적인 반대를 표시한 것입니다. 이 중에 다음 선거에서는 ‘15.1%’ 쪽으로 넘어올 분이 많다고 생각해요. 소수정당과 여성의제 후보들에게 투표한 15.1%라는 숫자는 지금이 가장 적은 때이고 앞으로 커질 일만 남았어요. 이번 선거야말로 지금까지 정당들과 정치인들이 호명하지 않았던 20·30대 개별 시민 여성의 잠재력을 보여 준 시작점으로 기억될 거 같습니다. -‘성폭력 심판·성평등 실현 선거’가 될 것이란 전망과 달리 실제 젠더 이슈는 실종됐다는 평가가 많아요. 시민들에게서 느낀 분위기는 어땠나요.신 현장에서는 청년 여성들의 지지를 많이 느낄 수 있었어요. 박영선 후보 측, 오 후보 측과 한 번씩 선거 운동 장소가 겹친 적이 있었는데요. 선거 바람이 계속 바뀌면서 박 후보 측에서는 내곡동 이슈를 밀고 싶어 하고, 오 후보 측은 청년 얘기를 하는 걸 보면서 실제로 이 선거에서 다뤄져야 하는 지점들이 덜 이야기돼 속상해하는 청년 여성들이 많더라고요. 성평등을 이야기하는 유세에서 특히 많은 지지를 보내 주시고 장미꽃을 주고 가는 분들이 계셨어요. 김 국민의힘 후보가 나경원 후보로 결정됐었다면 이렇게까지 성폭력 심판, 젠더 이슈가 실종되지는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나 후보가 경선 과정에서도 가장 강력하게 얘기하고 정책이나 공약도 그랬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의힘 당원들, 지지자들은 오 후보를 최종 후보로 선출했죠. 그 시점부터 급격하게 선거판에서 젠더 이슈가 사라졌고 언론의 관심도 거대 양당에 초점이 맞춰졌어요. 우리 후보들이 아무리 얘기해도 마이크가 전혀 돌아오지 않고, 지면이 할애되지 않는 언론 환경 속에서 사실 한계가 있었어요. 지난해 창당한 신생 정당의 후보였던 이들이 부닥쳤던 현실적인 문제는 역시 돈과 사람이었다. “벽보는 선관위에서 만들어 주는 줄 알았”(김진아)지만 실제 제작부터 배달에 이르기까지 후보들이 해야 했다. “유급 선거 사무원은 꿈도 못 꾸는 처지라 지지자들을 최대한 모아서 하고, 선거구마다 당협이 있는 거대 양당과 달리 유세차량 이용을 위해 서울 49개 선거구마다 지인 찬스로 선거 연락사무소를 마련”(신지혜)하기도 했다. 벽보 훼손, 선거 운동원들에 대한 시비 등 페미니스트 후보를 향한 혐오 범죄에도 노출됐지만 실상은 훼손될 현수막조차 없다시피 했다. “현수막을 서울 전역에 16개밖에 못 걸었거든요. 선거송 저작권을 지불할 돈이 없어 아이패드로 노래를 만들고 앰프도 없어 블루투스 스피커를 앞에 두고 생목으로 랩을 했어요.”(김진아) 이들은 거대 양당이 후보 선출 때부터 여러 번의 토론회를 거치지만, 군소정당 후보에게는 똑같이 기탁금으로 5000만원을 내고도 딱 한 번, 후보당 10분씩만 TV 토론회에서 발언할 기회가 주어지는 불합리함은 시정돼야 한다며 ‘배리어프리 선거’를 외쳤다. -3년 전 지방선거에서 ‘페미니스트 서울시장’이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던 신지예 당시 녹색당 후보가 8만 2874표, 득표율 1.67%로 4위에 올랐습니다. 이번 선거에서 성평등을 주장한 후보는 5명이고, 득표수는 1만여표 늘었어요. 후보들 수가 늘어난 건 고무적이지만 ‘왜 단일화하지 않는가’라는 의문도 있었습니다. 신 정당들이 출마 선언을 시작할 즈음인 2월 초 ‘독자·진보·미래를 원칙으로 하는 제3지대’를 형성하자고 제안하면서 후보님들을 만나 뵀었어요. 선거가 임박하기도 했지만, 집중하고자 하는 의제가 다들 달라 거대 양당이 했듯 후다닥 될 문제는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정당들을 보면 작년에 창당한 신생 정당들이고 선거에 참여하는 것 자체의 의미는 ‘이런 대안이 여러분 곁에 있어요’라고 서울시민들께 홍보하는 효과가 커요. TV 토론회 한 번 주최하지 못하는 단일화 과정이라면 그 어떤 정당에도 좋지 않은 선택이었을 거고요. 단일화 자체는 지금의 선거법으로 어떻게 하면 더 많은 표를 얻을 수 있을지 전략의 문제인데, 각자의 경험이 쌓인 정당들이 다음 선거에서는 공동대응 방안을 논의할 수 있을 거라 봐요. 기회가 된다면 의제별로 토론회도 열고, 내년엔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있으니까 어느 지역에 누가 나갈지 사전에 논의할 수도 있을 거 같아요. 근데 얼마 안 남았네요(웃음).김 신 대표님이랑 생각이 크게 다르지 않아요. 기본소득당, 여성의당은 모두 지난해 총선을 앞두고 창당한 정당이어서 이번 보궐선거에서는 당선되면 좋지만 그에 못지않게 여성의당이라는 이름 네 글자를 서울시민, 전국의 시민들에게 알리는 것이 중요한 목표였어요. 지금 이 시점에서의 단일화는 효과적이지 않다고 판단했고요. 신 대표님 말처럼 다음 번에는 뭔가를 할 수 있는 여지가 있겠지만요. -이번 선거로부터 얻은 것, 배운 것은 무엇인가요. 신 1월 말부터 두 달 동안 46개 시민사회단체를 만났는데 선거에 큰 기대를 갖고 계시더라고요. 그런데 선거판이 시작되면서 이번 선거는 틀렸다고 생각했어요. 단일화에만 관심이 집중되면서, 정책이 아예 사라져 버린 선거였으니까요. 앞으로 시민사회단체와의 만남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이들의 요구를 실현할 수 있는 정책을 만들어 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김 전국 단위의 큰 선거들이 다가오는데 우리가 그만큼 인력 풀을 채울 수 있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어요. (지지자들이) 주로 20·30대인데, 이분들은 취업을 준비하거나 일을 막 시작해서 경력관리 면에서 중요한 시기거든요. 젊은 여성 정치인 당사자가 ‘올인’해서 정치 활동을 하는 게 쉽지가 않아요. 한 사람의 인생을 거는 것이니까요. 당이 충분히 지원을 해줄 수 있다면 직업으로 삼고 밀어붙이겠는데, 그런 기반이 다져지지 않은 상태에서는 선뜻 나서기 힘든 상황 자체가 아쉬워요. 20대 여성 이야기를 20대 여성 당사자가 하면 더 잘할 수 있잖아요. 소수 정당에 대한 국가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신 독일은 비례대표 선거에서 득표한 만큼, 당비를 내는 만큼 국가에서 지원해 주거든요. 김 그런 시스템에 대한 고민이 필요해요. -앞으로의 활동 계획이 궁금합니다. 신 저는 이번에 ‘기본 소득’, ‘기본 서울’이라는 슬로건으로 선거를 치러내면서 기본소득과 각각의 의제가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 알리는 새로운 정치 전략을 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대통령 선거는 창당 주역들이 나이가 안 돼서(만 40세 이상) 어려울 거 같은데 후보를 모셔 오든 어떤 게 가능할지 고민해 봐야 할 거 같아요. 대선에 제가 직접 출마는 어렵고, 이번에 서울시민께 인사드렸던 만큼 내년에도 다시 한번 도전해 볼까 합니다. 김 이번 선거 때문에 미뤄졌던 책 작업을 할 계획입니다. 여성의당 창당 과정, 이번 선거에 관한 얘기 등으로 9월 출간 예정이에요. 여성의당도 이번 선거를 계기로 개선해 나가야 할 것들이 발견돼 재정비가 필요하고요. 제가 할 수 있는 한 도움을 드릴 계획입니다.
  • 배민·위메프오, 결국 단건 배달… 배달업계도 쿠팡발 ‘출혈 경쟁’

    배민·위메프오, 결국 단건 배달… 배달업계도 쿠팡발 ‘출혈 경쟁’

    쿠팡발 ‘출혈 경쟁’이 유통업계에 이어 배달 애플리케이션(앱) 시장에서도 일어날 조짐이다. 쿠팡이츠가 ‘한 번에 한 집 배달’을 내세운 ‘단건 배달’로 점유율을 빠르게 확대해나가자 배달의민족(배민), 위메프오 등 동종 업체들도 잇따라 단건 배달 서비스를 도입한다. 위메프오는 위치기반 서비스 개발 업체인 LK ICT와 업무 협약을 맺고 음식 주문과 배달 라이더를 일대일로 연결하는 시스템을 구축해 연내 단건 배달 서비스를 시작한다고 15일 밝혔다. 후발주자 쿠팡이츠가 단건 배달로 점유율을 확대하자 후발주자인 위메프오도 이 시장에 뛰어든 것이다. 배달플랫폼 업계 1위인 배민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도 오는 6월 1일부터 단건 배달을 하는 ‘배민1(one)’을 출시해 서울 일부 지역에서 서비스를 시작한다. 배민은 그동안 배달원 1명이 비슷한 위치에서 여러 주문을 묶어 처리하는 방식을 고수해왔으나 쿠팡이츠가 단건 주문을 앞세워 서울 강남권을 중심으로 시장을 확대하며 배민을 앞지르자 맞불 작전에 나선 것이란 분석이다. 실제로 쿠팡이츠는 후발주자임에도 출범 초기부터 단건 배달을 앞세워 1년 만에 점유율 10%를 넘기는 등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빅데이터 플랫폼 기업 아이지에이웍스에 따르면 지난 2월 기준 배달 앱 시장은 배민과 요기요가 각각 60%, 23%로 1, 2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쿠팡이츠 점유율은 13%로 나타났다. 사용자 수도 파죽지세로 늘고 있다. 지난해 하루 평균 모바일 기기 4000만개의 데이터 20억 건을 분석한 결과 쿠팡이츠의 하루 평균 사용자 수는 지난해 1월 2만 9800명에서 같은 해 말 46만 235만명으로 15배나 늘었다. 업계는 배달원 규모가 단건 배달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만큼 사실상 업체 간 ‘쩐의 전쟁’이 가속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배달원이 많아야 배달량이 많아져 빠른 속도를 유지할 수 있는데다 묶음 배달보다 수익이 줄어드는 단건 배달에 대한 배달원의 불만도 해결할 수 있어 결국은 업체 간 비용 싸움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상장으로 실탄을 모은 쿠팡이츠와 딜리버리히어로에 올라탄 배민 간의 출혈 전쟁이 예상된다”고 했다. 한편 매각을 앞둔 요기요도 경쟁력 확보를 위해 돈을 쏟고 있다. 요기요는 인공지능을 통해 배달 시간을 20분으로 줄인 ´요기요 익스프레스´ 배차 기능을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IT 관련 인력을 1000명까지 확대한다고 발표했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 음식 배달도 쿠팡발 ‘속도 전쟁’…위메프오도 ‘단건 배달’

    음식 배달도 쿠팡발 ‘속도 전쟁’…위메프오도 ‘단건 배달’

    쿠팡발 ‘출혈경쟁’이 유통업계에 이어 배달 애플리케이션(앱) 시장에서도 일어날 조짐이다. 쿠팡이츠가 ‘한 번에 한 집 배달’을 내세운 ‘단건 배달’로 점유율을 빠르게 확대해나가자 배달의민족(배민), 위메프오 등 동종 업체들도 잇따라 단건 배달 서비스를 도입한다.위메프오는 위치기반 서비스 개발 업체인 LK ICT와 업무 협약을 맺고 음식 주문과 배달 라이더를 일대일로 연결하는 시스템을 구축해 연내 단건 배달 서비스를 시작한다고 15일 밝혔다. 후발주자 쿠팡이츠가 단건 배달로 점유율을 확대하자 후발주자인 위메프오도 이 시장에 뛰어든 것이다.배달플랫폼 업계 1위인 배민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도 오는 6월 1일부터 단건 배달을 하는 ‘배민1(one)’을 출시해 서울 일부 지역에서 서비스를 시작한다. 배민은 그동안 배달원 1명이 비슷한 위치에서 여러 주문을 묶어 처리하는 방식을 고수해왔으나 쿠팡이츠가 단건 주문을 앞세워 서울 강남권을 중심으로 시장을 확대하며 배민을 앞지르자 맞불 작전에 나선 것이란 분석이다.실제로 쿠팡이츠는 후발주자임에도 출범 초기부터 단건 배달을 앞세워 1년 만에 점유율 10%를 넘기는 등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빅데이터 플랫폼 기업 아이지에이웍스에 따르면 지난 2월 기준 배달 앱 시장은 배민과 요기요가 각각 60%, 23%로 1, 2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쿠팡이츠 점유율은 13%로 나타났다. 사용자 수도 파죽지세로 늘고 있다. 지난해 하루 평균 모바일 기기 4000만개의 데이터 20억 건을 분석한 결과 쿠팡이츠의 하루 평균 사용자 수는 지난해 1월 2만 9800명에서 같은 해 말 46만 235만명으로 15배나 늘었다. 업계는 배달원 규모가 단건 배달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만큼 사실상 업체 간 ‘쩐의 전쟁’이 가속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배달원이 많아야 배달량이 많아져 빠른 속도를 유지할 수 있는데다 묶음 배달보다 수익이 줄어드는 단건 배달에 대한 배달원의 불만도 해결할 수 있어 결국은 업체 간 비용 싸움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상장으로 실탄을 모은 쿠팡이츠와 딜리버리히어로에 올라탄 배민 간의 출혈 전쟁이 예상된다”고 했다. 한편 매각을 앞둔 요기요도 경쟁력 확보를 위해 돈을 쏟고 있다. 요기요는 인공지능을 통해 배달 시간을 20분으로 줄인 ‘요기요 익스프레스’ 배차 기능을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IT 관련 인력을 1000명까지 확대한다고 발표했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 美, 9월 11일 아프간 완전 철군… 미완의 ‘20년 전쟁’ 끝낸다

    美, 9월 11일 아프간 완전 철군… 미완의 ‘20년 전쟁’ 끝낸다

    미군 등 4만명 희생·2조弗 쏟아부었지만탈레반 건재… 치안·방위 등 자립도 멀어美, 전쟁 부채 이자 670조원도 부담해야“중·러·북 등 실질적 위협에 집중 전략인듯”트럼프보다 미룬 기한에 탈레반은 반발미국이 2001년 9월 11일 알카에다의 뉴욕 세계무역센터 빌딩 테러공격으로 시작한 아프가니스탄(아프간) 전쟁을 정확히 20년 만에 끝낸다. ‘이길 수도, 멈출 수도, 떠날 수도 없는 전쟁’으로 불리던 테러조직과의 대결에 미군 2400명과 무고한 시민 3만 8000명이 희생됐지만 탈레반 반군은 건재하다. 전쟁과 아프간 재건에 2조 달러를 쏟아부었지만 투명성·치안·여성인권 등 자립은 멀다. 명분이 없어진 전쟁은 4명의 대통령의 손을 거쳤고, 조 바이든 대통령이 ‘조건 없는 철군’을 선언하면서 드디어 끝을 보게 됐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13일(현지시간) 브리핑에서 “바이든이 14일 백악관에서 아프간 미군 철수 일정 등을 연설한다”며 “바이든은 아프간에 대한 군사적 해결방안이 없고, 너무 오래 있었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갖고 있다”고 밝혔다. 또 고위 당국자는 “9월 11일까지, 가능하면 그전에 아프간 미군을 ‘제로’(0)로 만들겠다고 약속할 것”이라고 했다. ‘조건부 철군’은 영원한 아프간 주둔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무조건 철수를 못박기도 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해 ‘2021년 5월 1일 철수’를 탈레반 반군과 합의했었고, 바이든은 이를 4개월여 미뤘다. 트럼프의 합의를 뒤집고 탈레반과 전쟁을 이어 가기보다 중국·러시아·이란·북한 등 실질적 위협으로 대응의 축을 옮기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은 2001년 알카에다를 괴멸시킨 뒤 알카에다에 은신처를 제공한 탈레반을 공격하겠다고 아프간을 침공했지만, 미국 역사상 가장 긴 전쟁인 베트남전쟁(14년)을 훌쩍 넘기면서도 끝을 보지 못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도 2014년 종전선언을 하고 철군 계획을 밝혔지만, 테러조직의 공격 재개로 철회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칼럼에서 “바이든은 그렇게 말하지 않겠지만 아프간 철군은 미국의 패배를 인정하는 것”이라며 “(철군) 시한은 이미 오래전에 지났다”고 평가했다. 탈레반 공격이라는 목표는 온데간데없어졌다. 테러 분석매체 ‘롱 워 저널’에 따르면 전성기의 90%까지는 아니지만 여전히 아프간 영토의 67.8%가 미군·탈레반의 경합지역이거나 탈레반 점령지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미국은 탈레반의 돈줄인 아프간 마약 재배 근절을 위해 100억 달러(약 11조 1550억원)를 쏟아부었다. 하지만 전 세계 불법 마약의 80%가 여전히 아프간에서 생산된다. 아편 양귀비 재배지는 2010년 12만 3000ha에서 2018년 26만 3000ha로 2배 이상으로 늘었다. 아프간 군대 육성과 경제 지원에도 1110억 달러(약 124조원)나 투입했지만 자체 치안 및 방위는 불가능하고, 빈곤 상황은 여전하다. 국제 투명성 지수도 2020년 165위로 최하위 수준이다. 미국은 전쟁 부채 이자로 2023년까지 6000억 달러(약 670조원)를 부담해야 한다. 참전 군인의 의료비, 장애수당 등으로 2059년까지 지출할 1조 4000억 달러(약 1563조원)는 아프간 전쟁에 투입한 총 2조 달러의 지출과 별도다. 미군 철수 소식에 아프간은 혼란스럽다. 탈레반의 정권 찬탈 가능성, 이슬람국가(IS)의 세력 확대, 이슬람 종교법에 따른 여성 인권 악화 등이 우려된다. 반면 탈레반은 이날 미군 철수가 약 4개월 늦어진다는 소식에 “모든 미군이 완전 철수할 때까지 어떤 (평화)회의에도 참석하지 않을 것”이라며 반발했지만, 시간은 탈레반 편인 상황이다. 바이든이 철군 계획에 어떤 아프간 지원책을 넣었는지가 관건이다. 현재 아프간에는 공식적으로 미군 2500명과 나토군 7000명이 주둔하고 있다. 워싱턴 이경주 특파원 kdlrudwn@seoul.co.kr
  • [박철현의 이방사회] 30년 전의 일간지가 그립다

    [박철현의 이방사회] 30년 전의 일간지가 그립다

    두 개의 일간지를 구독하고 있다. 집에서는 종이로 된 ‘아사히신문’, 인터넷으론 ‘니혼게이자이신문’을 받아 본다. 아사히신문은 정기구독한 지 벌써 만 5년이 지났다. 직접적 계기는 이 신문사에 다니는 지인이 부탁해 왔기 때문이지만, 원래부터 리버럴 성향이 강한 편집 방침과 기풍을 좋아했다. 지금은 아이들이 나보다 더 즐겨 본다. 소학생신문까지 세트로 구독한 이유도 있지만, 주말판이나 문화면에 한국 관련 뉴스가 매우 많이 등장한다. 아이들은 한국영화, 케이팝 아이돌, 한국어 서적 관련 뉴스는 물론 최근에는 복잡한 한일간의 정세까지 읽고 있다. 아이들은 아직 사고의 체계가 정립되지 않은, 즉 백지와 같은 상황에 놓여 있다. 그들이 혐오의 감정을 때때로 내뱉는 산케이신문을 보느냐, 아니면 사회적 약자 편에 서고 차별과 혐오를 배격하는 아사히신문을 읽느냐를 놓고 보자면 아무래도 후자에 손이 간다. 하얀 종이에 뭐든 마구잡이로 입력된다면 산케이의 편협보다 아사히의 사해동포주의가 훨씬 낫다.올해 고등학교에 들어간 큰딸은 얼마 전 구입한 휴대폰을 사용해 때때로 정치적 사안에 관한 질문을 해 오기도 한다. 나도 일본 정치를 잘 모르긴 하지만 아는 범위 내에서 성의껏 문답을 주고받는데, 간혹 그가 “아! 어제 신문에서 봤어”라는 말을 할 때마다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며칠 전엔 고(故) 이학래 선생에 대해 물어왔다. ‘전범이 된 조선청년’이란 회고록을 펴낸 그분을 말하는 거냐고 되묻자 그렇단다. “아니, 네가 이학래 선생을 어떻게 알아?”라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신문에 나왔던데?”라고 답한다. 집으로 귀가하자마자 바로 신문을 펴 보았다. 아무리 찾아봐도 기사가 없길래 어디 있냐고 물어보니 아이가 한 장을 넘긴 후 손가락을 가리킨다. 기사가 아니라 사설로 제목은 ‘이학래 선생 사거(死去)-일본의 정의, 묻고 또 물어’였다. 태평양전쟁 당시 식민지 조선에서 징병돼 일본군 군속으로 일했던 선생이 전쟁 후 BC급 전범으로 기소돼 1956년에 출소한 이후 일본 정부와 벌여 온 투쟁을 나열했다. 물론 선생이 한국에서 받은 푸대접과 차별도 기술했다. 사설은 선생의 요구와 투쟁은 결국 이루어지지 못했다며 “이 나라를 소중히 생각하기에 일본으로 인해 인생이 망가진 이들이 남긴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싶다”고 끝맺었다. 선생도 선생이지만, 태평양전쟁을 대동아전쟁으로 미화시키려는 역사수정주의자들이 세력을 확장해 가는 요즘의 사회 분위기 속에서 일본 정부와 60년간 투쟁해 온 재일한국인의 부고를 무려 사설로 추념한 아사히신문의 품격과 배짱에 감복했다. 그러고 보니 아사히신문은 에티오피아 내전 특집을 1면 톱기사(4월 4일자)에 싣기도 했다. 에티오피아 내전이 왜 발생했고, 현재 에티오피아가 어떠한 상황에 처해 있는지에 대한 심층분석이 돋보이는 르포기사였다. 잠시 한국 일간지, 특히 보수언론으로 포장돼 유통되는 몇몇 일간지들을 떠올려 본다. 정파성이 뚜렷한 ‘국내용’ 기사들이 1면 헤드라인과 사설을 장식한다. 사풍으로 대변되는 올곧은 신념과 품격까진 바라지도 않고, 또 굳이 일본신문을 배우자는 말을 하는 것도 아니다. 일본 역시 정통 일간지나 읽을 만하지 낮 시간대 버라이어티 뉴스 방송으로 넘어가면 도긴개긴이니까. 하지만 적어도 정부광고비를 더 많이 받기 위해 발행부수를 부풀린 행위나 인쇄하자마자 바로 폐지공장으로 직송돼 계란판용 종이로 재판매되는 현상에 대해서는 종사자들의 뼈를 깎는 반성이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며칠 전 딸아이의 신문기사 스크랩북을 훑어 봤다. 새롭게 고 이학래 선생의 사설과 에티오피아 1면 톱기사를 가위로 오려 A4 용지에 붙여 파일링해 놓은 것을 발견했다. 이번 기사는 왜 넣어 놓은 거냐고 물어보니 이렇게 답한다. “아빠랑 라인 메시지로 대화한 건 다 붙여놔. 나중에 다시 보면 아빠와 나눈 대화가 기억날 것 같아서.” 문득 삼십여 년 전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내가 집에서 정기구독했던 동아일보를 통해 아버지와 대화를 하고, 글쓰는 법과 체계적 논리를 배우고 여러 사회문제를 알아갔던 시절이 떠올랐다. 그 시절은 과연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