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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성전자 분기 매출 사상 첫 70조 넘을 듯… 반도체·스마트폰 ‘효자’

    삼성전자 분기 매출 사상 첫 70조 넘을 듯… 반도체·스마트폰 ‘효자’

    삼성전자의 올해 3분기 매출이 반도체·스마트폰 사업의 호조로 분기 사상 처음으로 70조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다음달 예정된 3분기 실적 발표를 앞두고 최근 증권가에서는 삼성전자가 역대 분기 최대 매출을 기록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가 집계한 삼성전자의 3분기 실적 컨센서스(증권사 전망치 평균)는 매출 73조원, 영업이익 15조 6800억원이고, NH투자증권도 최근 보고서에서 3분기 매출과 영업이익을 각각 74조 2600억원과 16조 400억원으로 예상했다. 이같은 전망대로라면 66조 9600억원의 매출로 분기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던 지난해 3분기 실적을 1년 만에 뛰어넘게 된다. 이 같은 예상의 배경에는 반도체·스마트폰 사업 호조와 원·달러 환율의 상승이 자리하고 있다. 반도체의 경우 메모리반도체 수요가 견고하고 파운드리(위탁생산) 주문량 증가 등의 호재로 역대급 실적이 예고된다. 시장조사업체 IC인사이츠는 삼성전자의 반도체 부문 3분기 매출이 2분기 대비 10% 증가한 223억 2000만달러를 기록해 인텔을 제치고 2분기 연속 업계 1위를 유지할 것으로 봤다. 매출 기준으로 지난 2분기에 인텔을 앞지른 삼성전자가 하반기에도 같은 흐름을 유지한단 것이다. 1분기 신제품 출시 효과가 사라지며 2분기에 잠시 주춤했던 스마트폰 부문도 반등이 예상된다. 지난달 ‘폴더블폰 승부수’를 던지며 출시한 ‘갤럭시Z폴드3’와 ‘갤럭시Z플립3’가 초반 흥행에 성공하며 물량 부족 사태까지 겪고 있다. 라이브커머스 방송을 통해 초반 물량이 매진되는 등 수년간 고전을 면치 못했던 중국 시장에서 폴더블폰 신제품이 호응을 얻고 있는 점도 호재다. TV·가전 부문에서는 코로나19 장기화로 억눌렸던 소비가 분출하는 ‘팬트업 특수’가 가라앉을 것으로 보인다. 호실적 예고로 삼성전자의 주가도 최근 외국인 매수세가 유입되며 반등세다. 이날 주가는 7만 7400원으로 마무리돼 추석 연휴전 상승세를 이어갔다.
  • 3분기 실적 시즌 앞둔 삼성전자, 첫 70조원대 매출 전망

    3분기 실적 시즌 앞둔 삼성전자, 첫 70조원대 매출 전망

    삼성전자의 올해 3분기 매출이 반도체·스마트폰 사업의 호조로 분기 사상 처음으로 70조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다음달 예정된 3분기 실적 발표를 앞두고 최근 증권가에서는 삼성전자가 역대 분기 최대 매출을 기록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가 집계한 삼성전자의 3분기 실적 컨센서스(증권사 전망치 평균)는 매출 73조원, 영업이익 15조 6800억원이고, NH투자증권도 최근 보고서에서 3분기 매출과 영업이익을 각각 74조 2600억원과 16조 400억원으로 예상했다. 이같은 전망대로라면 66조 9600억원의 매출로 분기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던 지난해 3분기 실적을 1년 만에 뛰어넘게 된다. 이 같은 예상의 배경에는 반도체·스마트폰 사업 호조와 원·달러 환율의 상승이 자리하고 있다. 반도체의 경우 메모리반도체 수요가 견고하고 파운드리(위탁생산) 주문량 증가 등의 호재로 역대급 실적이 예고된다. 시장조사업체 IC인사이츠는 삼성전자의 반도체 부문 3분기 매출이 2분기 대비 10% 증가한 223억 2000만달러를 기록해 인텔을 제치고 2분기 연속 업계 1위를 유지할 것으로 봤다. 매출 기준으로 지난 2분기에 인텔을 앞지른 삼성전자가 하반기에도 같은 흐름을 유지한단 것이다. 1분기 신제품 출시 효과가 사라지며 2분기에 잠시 주춤했던 스마트폰 부문도 반등이 예상된다. 지난달 ‘폴더블폰 승부수’를 던지며 출시한 ‘갤럭시Z폴드3’와 ‘갤럭시Z플립3’가 초반 흥행에 성공하며 물량 부족 사태까지 겪고 있다. 라이브커머스 방송을 통해 초반 물량이 매진되는 등 수년간 고전을 면치 못했던 중국 시장에서 폴더블폰 신제품이 호응을 얻고 있는 점도 호재다. TV·가전 부문에서는 코로나19 장기화로 억눌렸던 소비가 분출하는 ‘팬트업 특수’가 가라앉을 것으로 보인다. 호실적이 예고되며 삼성전자의 주가도 최근 외국인 매수세가 유입되며 반등세다. 이날 주가는 7만 7400원으로 마무리돼 추석 연휴전 상승세를 이어갔다.
  • 정의용 “한국을 反中 블록 넣는 것은 냉전적, 비핵화 보상 소심하면 안돼”

    정의용 “한국을 反中 블록 넣는 것은 냉전적, 비핵화 보상 소심하면 안돼”

    유엔 총회 기간 미국 뉴욕을 방문 중인 정의용 외교부 장관이 중국이 공세적 외교를 펼치는 것은 당연하다고 평가한 뒤 “20년 전의 중국이 아니다”거나 “한국을 반중(反中) 블록에 포함시키려는 것은 냉전적 사고”라고 밝혀 논란이 예상된다. 중국이 자국을 포위하는 미국의 안보동맹 구축 노력에 대해 거의 같은 평가를 내렸기 때문에 우리 정부가 지나치게 중국 눈치를 본다고 평가하는 보수 우파 진영을 자극할 여지가 있어 보인다. 정 장관은 22일(현지시간) 현지 외교·안보 분야 싱크탱크인 미국외교협회(CFR) 초청 대담회에서 중국이 최근 국제사회에서 공세적인 모습을 보인다는 파리드 자카리아 CNN 앵커의 지적에 이같이 답했다. 정 장관은 중국의 공세적 외교에 대해 “경제적으로 더욱 강해지고 있기 때문에 당연하다”며 “20년 전 중국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공세적’(assertive)이란 표현 자체에 대해서도 동의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그들은 국제사회의 다른 멤버들에게 중국의 목소리를 전달하고 싶은 것”이라고 해석하면서 “우리는 중국이 말하고 싶어하는 것을 듣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 장관의 발언에 대해 진행자인 자카리아 앵커는 중국이 공세적 외교를 펴고 있다는 호주 정부 인사들의 발언을 인용하면서 “한국은 호주와 다른 상황이냐”고 되물었다. 이에 대해 정 장관은 “다른 국가들의 우려를 잘 알고 있다”면서 자카리아 앵커가 태평양의 미국과 한국, 일본, 호주를 ‘반(反)중국’ 블록으로 규정하려 하자 “그건 냉전시대 사고방식”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한미동맹은 한국 외교의 중심축이고 중국은 가장 중요한 경제 파트너라면서 “미국과 중국이 더 안정적인 관계가 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정 장관은 진행자가 “북한이 실제 핵무기를 포기하리라 생각하느냐”고 묻자 “어려운 질문”이라며 유엔 등 국제사회의 제재와 보상 등 원칙론을 제시했다. 특히 그는 북한의 비핵화 진전을 위한 방안으로 북한의 합의 위반 시 제재를 복원하는 ‘스냅백’을 활용한 보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보상을 제안하는 데 소심할 필요가 없다”며 “덜 민감한 인도적 분야부터 지원을 시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정 장관은 진행자가 최근 북한의 미사일 발사 등 군사적 도발을 지적하자 “역사적 관점에서 사태를 봐야 한다”며 남북과 북미 정상회담을 언급했다. 또한 정 장관은 남북이 서로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하기로 한 9·19 군사합의를 소개한 뒤 “한반도의 긴장을 더욱 완화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정 장관은 이날 오후 롯데뉴욕팰리스 호텔에서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 모테기 도시미쓰 일본 외무상과 만나 한반도 문제는 물론 지역과 글로벌 현안에 대해 한 시간 가량 대화를 나눴다. 세 나라 외교 수장이 머리를 맞댄 것은 지난 5월 초 영국 런던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외교·개발장관회의 이후 4개월여 만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종전선언 제안,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진지한 외교를 추구하겠다고 밝힌 것, 북한의 최근 탄도미사일 발사, 영변 원자로 재가동 및 우라늄 농축 조짐에 대한 공동 대응, 인도적 대북 지원 문제, 바이든 행정부가 중국 견제를 강화하는 상황이어서 대중 대응 방안도 논의했을 것으로 보인다. 정 장관은 3자 회동을 마친 뒤 블링컨 장관과 곧바로 20분 이상 양자 회담을 이어갔다. 모테기 외무상과는 23일 뉴욕에서 다시 만나기로 했다.
  • 정무위 국감장에 호출되는 김범수… 농해수위도 이례적 빅테크 때리기

    정무위 국감장에 호출되는 김범수… 농해수위도 이례적 빅테크 때리기

    각 상임위, 카카오·네이버 등 총수 줄소환정무위, IT 관련 증인 작년보다 7명 늘어10월 국정감사에 주요 정보기술(IT) 기업 대표들이 줄줄이 증인으로 채택되며 정부·여당을 중심으로 제기된 ‘빅테크 때리기’가 가을 국회에서 최고조에 이를 전망이다. 빅테크 기업인의 국감 출석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올해는 이른바 ‘태크레시’(IT기업에 반발하거나 제제를 강화하는 현상)가 업계를 강타하며 정치권의 공세가 과거 어느 때보다 거셀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다음달 1일부터 열리는 국감에서 각 상임위가 네이버, 카카오, 쿠팡 등 주요 빅테크 플랫폼 기업 대표를 증인으로 채택했거나 신청할 예정이다.‘빅테크 국감’의 초반 하이라이트는 공정거래위원회를 대상으로 같은 달 5일 개최하는 정무위 국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날 국감에 신청된 전체 증인 15명 가운데 IT·플랫폼 기업 증인만 9명에 달한다.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과 강한승 쿠팡 대표이사, 김정주 넥슨 창업주, 배보찬 야놀자 대표 등이 나올 예정이다. 지난해 정무위 국감 때 증인으로 채택된 IT 관련 기업인은 2명이었다. 가장 큰 관심은 김 의장과 카카오에 쏠린다. 김 의장은 2018년 이후 3년 만에 다시 호출된 것으로, 문어발식 사업 확장과 골목상권 침해 논란에 대한 질의가 쏟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올해 국감에서는 빅테크 기업인을 부르지 않는 상임위를 찾기가 어렵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전방위적인 증인 채택이 이뤄지고 있다.코로나19 사태와 함께 최근 급부상한 배달앱과 숙박앱에 대해서는 정무위뿐만 아니라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등에서도 호출이 예상된다. 국토교통위에서는 카카오모빌리티의 독과점 문제가, 환경노동위에서는 IT기업 직장 내 갑질 문화에 대한 질타가 예고돼 있다. 상사의 괴롭힘으로 직원이 극단적인 선택까지 하는 등 몇달전 큰 홍역을 치렀던 네이버는 이번 국감에서 또다시 ‘직장 갑질’ 문제로 의원들의 호된 질타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이밖에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는 동물용 의약품 온라인 불법 거래 문제로 한성숙 네이버 대표와 여민수 카카오 공동대표를 증인으로 부를 예정으로, 업계에서는 IT와 연관성이 적은 농해수위까지 관련 기업인들을 부른 것에 이례적이라는 반응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빅테크 기업들이 약진하면서 과거 국감 때마다 기존 대기업들에 쏠렸던 관심도 이제는 빅테크로 옮겨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 전방위 국감 호출…‘빅테크 때리기’ 최고조 예고

    전방위 국감 호출…‘빅테크 때리기’ 최고조 예고

    10월 국정감사에 주요 정보기술(IT) 기업 대표들이 줄줄이 증인으로 채택되며 정부·여당을 중심으로 제기된 ‘빅테크 때리기’가 가을 국회에서 최고조에 이를 전망이다. 빅테크 기업인의 국감 출석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올해는 이른바 ‘태크레시’(IT기업에 반발하거나 제제를 강화하는 현상)가 업계를 강타하며 정치권의 공세가 과거 어느 때보다 거셀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다음달 1일부터 열리는 국감에서 각 상임위가 네이버, 카카오, 쿠팡 등 주요 빅테크 플랫폼 기업 대표를 증인으로 채택했거나 신청할 예정이다. ‘빅테크 국감’의 초반 하이라이트는 공정거래위원회를 대상으로 같은 달 5일 개최하는 정무위 국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날 국감에 신청된 전체 증인 15명 가운데 IT·플랫폼 기업 증인만 9명에 달한다.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과 강한승 쿠팡 대표이사, 김정주 넥슨 창업주, 배보찬 야놀자 대표 등이 나올 예정이다. 지난해 정무위 국감 때 증인으로 채택된 IT 관련 기업인은 2명이었다. 가장 큰 관심은 김 의장과 카카오에 쏠린다. 김 의장은 2018년 이후 3년 만에 다시 호출된 것으로, 문어발식 사업 확장과 골목상권 침해 논란에 대한 질의가 쏟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올해 국감에서는 빅테크 기업인을 부르지 않은 상임위를 찾기가 어렵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전방위적인 증인 채택이 이뤄지고 있다.코로나19 사태와 함께 최근 급부상한 배달앱과 숙박앱에 대해서는 정무위뿐만 아니라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등에서도 호출이 예상된다. 국토교통위에서는 카카오모빌리티의 독과점 문제가, 환경노동위에서는 IT기업 직장 내 갑질 문화에 대한 질타가 예고돼 있다. 상사의 괴롭힘으로 직원이 극단적인 선택까지 하는 등 몇달전 큰 홍역을 치렀던 네이버는 이번 국감에서 또다시 ‘직장 갑질’ 문제로 의원들의 호된 질타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이밖에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는 동물용 의약품 온라인 불법 거래 문제로 한성숙 네이버 대표와 여민수 카카오 공동대표를 증인으로 부를 예정으로, 업계에서는 IT와 연관성이 적은 농해수위까지 관련 기업인들을 부른 것에 이례적이라는 반응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빅테크 기업들이 약진하면서 과거 국감 때마다 기존 대기업들에 쏠렸던 관심도 이제는 빅테크로 옮겨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 창업자 등판한 카카오·엔씨, 추석 이후 ‘주가 반전’ 가능할까

    창업자 등판한 카카오·엔씨, 추석 이후 ‘주가 반전’ 가능할까

    ‘플랫폼 독과점’ 이슈로 홍역을 치른 카카오와 기대작 ‘블레이드앤소울2’의 혹평으로 위기에 처한 엔씨소프트의 주가가 곤두박질치고 있다. 기업이 뿌리째 흔들리는 지경에 이르자 카카오에서는 김범수 이사회 의장이 직접 대책 회의에 나서 골목상권 상생안을 발표하고, 엔씨에서는 김택진 대표가 구성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사과하기도 했다. 두 기업의 창업자가 나란히 사태 해결에 팔을 걷어부치고 나선 가운데 추석 연휴 이후 카카오와 엔씨의 주가도 반등에 나설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카카오는 추석 연휴 전 마지막 주식 거래일인 지난 17일 주당 11만 9500원에 장을 마쳤다. 전날 대비 1.65%(2000원) 떨어진 수치다. 카카오는 이번달 들어 문어발식으로 사업을 확장해 골목상권을 침범하고, 이용자들로부터 과도한 수수료를 챙긴다는 ‘플랫폼 독과점’ 이슈로 포화를 맞았다. 그 결과 지난 1일에 68조 9296억원으로 시작했던 카카오의 시가총액은 약 15조원 증발해 지난 17일에는 53조 1765억원까지 떨어졌다. 한때 3위까지 올라섰던 시총 순위도 현재는 5위(우선주 제외)까지 밀린 상태다.엔씨도 지난 17일 전날보다 0.34%(2000원) 떨어진 주당 58만 7000원에 거래를 마쳤다. 기대를 받았던 신작 게임인 블레이드앤소울2가 출시된 지난달 26일부터 시총이 5조 4885억원 빠졌다. 엔씨는 이전부터 지나친 과금을 유도한 ‘확률형 아이템’ 때문에 비판을 받아왔는데 블레이드앤소울2도 기존의 전략을 답습했다는 혹평을 받았다. 바로 직전에 나왔던 ‘트릭스터M’이 흥행에 실패한 가운데 블레이드앤소울2가 반전을 일으킬 것으로 기대했지만 엔씨는 오히려 위기에 빠졌다. 상황이 이러하자 카카오에서는 김 의장이 직접 대책 회의에 나서 지난 14일 골목상권과의 상생안을 내놨다. 골목상권을 침해하는 사업에서 철수하고, 향후 5년간 상생기금 3000억원을 마련하겠다는 것이 주요 골자다. 엔씨에서는 김 대표가 지난 17일 사내 구성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그간 당연히 여겨온 방식과 과정에 의문을 품고 냉정히 재점검하겠다”고 사과하면서 변화를 약속했다.업계에서는 두 기업 창업자들이 등판한 것을 놓고 엇갈리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김 의장이 직접 나서 문제로 지적된 점을 개선하겠다고 밝힌 만큼 조만간 사태가 진정될 것이란 시선이 있는 반면, 피해 당사자인 소상공인연합회나 택시·대리기사 단체가 성명을 내 “면피용 대책”이라며 여전히 반발하고 있기 때문에 사태가 오래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엔씨의 김 대표가 일련의 사태에 대해 사과한 것과 관련해선 “늦었지만 바람직하다”라는 평가가 있는 반면, “이용자들에게 사과해야지 엔씨 사내 구성원에게 사과한 것은 여론을 돌리는 데 의미가 없다”는 비판도 있다. 카카오와 엔씨로서는 창업자가 직접 나섰으니 비판 일변도였던 현재의 상황이 나아지길 원했으나 아직 이것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는 미지수이다.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과열됐던 두 회사에 대한 비판이 추석 연휴기간 좀 식는다면 주가가 회복할 수도 있을 것”이라며 “하지만 워낙 비판의 열기가 강했기 때문에 불과 며칠 사이에 쉽게 사그라들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 홍준표 “조국 수사, 부당하지 않지만 과했다…검사 때 수사 철학”

    홍준표 “조국 수사, 부당하지 않지만 과했다…검사 때 수사 철학”

    “가족 연루 범죄는 대개 대표만 구속 관례”“조국, 사내답지 못하게 빠져 나가려 해서부인·동생·사촌 줄구속하고 딸까지 문제돼”“누구 편드는 것 아냐…검사 관례상 과잉수사”국민의힘 대권주자인 홍준표 의원이 16일 진행된 국민의힘 대권주자 첫 TV토론회 등에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둘러싼 수사와 관련, “결코 조국 수사는 부당하지는 않지만 과했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홍 의원은 토론회를 마친 뒤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법이 아무리 엄중하다 해도 그렇게 한가족 전체를 짓밟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면서 “누구를 비난하고 누구의 편을 드는 것이 아니라 제가 검사를 할 때 가졌던 수사 철학이었다”고 강조했다. “조국, 내가 구속될테니가족 건드리지 말아달라 했어야” 홍 의원은 이날 토론회를 마친 뒤 자신의 페이스북에 “가족이 연루된 범죄는 대개 가족을 대표하는 사람만 구속하고 나머지는 불구속하거나 불입건하는 것이 제가 검사를 할 때 관례였다. 그래서 조국의 가족 수사는 과잉수사였다고 말한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홍 의원은 “조국이 사내답지 못하게 빠져 나가려고 하는 바람에 그를 압박하기 위해 부인·동생·사촌을 줄지어 구속하고 딸까지 문제 삼은 것”이라면서 “저는 그 사건을 그렇게 본다”고 판단했다. 대권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총장으로 재직할 당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조 전 장관을 잡기 위해 부인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 딸 조민씨 등 그의 가족과 친인척 비리에까지 수사를 확대한 것은 과했다는 지적으로 해석된다. 정 전 교수는 자녀 입시비리 의혹 등으로 기소돼 법정 구속됐으며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징역 4년형을 선고 받았다. 정 전 교수는 항소심에 불복해 상고한 상태다. 정 전 교수는 지난달 동양대 교수직에서도 면직 처리됐다. 부산대는 딸 조민씨를 허위 입시서류 제출 등의 이유로 부산대 의학전문대학원 입학 취소를 결정했고 현재 확정 처분을 위한 행정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부산대가 조민씨의 의전원 입학 취소를 확정하면 조민씨의 의사 면허도 폐기된다. 조 전 장관의 5촌 조카 조범동씨는 사모펀드 부당 투기 의혹으로 징역 4년이 확정됐다. 홍 의원은 “그 사건에서 조국(전 장관)이 내가 책임지고 구속될테니 내 가족들은 건드리지 말아 달라고 했다면 그 사건은 조국 구속으로 마무리 됐을 것”이라고 봤다.하태경 “洪, 조국 수사가 과잉수사?증거인멸·도주 우려 있으면 영장 쳐야” 이날 국민의힘 대권주자 8명을 대상으로 진행된 TV토론회에서 조 전 장관 수사와 관련 홍 의원은 “조국이란 사람이 내 가족의 모든 것을 책임질테니 가족은 건드리지 말라고 윤석열 (당시) 총장에게 얘기했으면 가족 전체가 (감옥에) 들어갈 필요가 없는 사건 아니냐”며 하태경 의원과 설전을 벌였다. 하 의원은 홍 의원의 이 발언을 두고 “‘조국 가족 수사는 과잉수사다, 정치수사 한 거다’ 이 이야기를 대놓고 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면서 “개인이 잘못했으면 개인이 책임져야 한다. 증거인멸, 도주 우려가 있으며 판사가 영장을 쳐야지 내버려 두느냐”고 비판했다. 홍 의원은 “조국 편을 드는 게 아니다”고 반박했지만, 하 의원은 해당 발언이 문제가 있다고 공세를 펼쳤다. 홍 의원은 지난 6월 청년 정책 토크쇼에서도 “나는 내 ‘각시’가 잘하든 잘못하든 무한 책임을 지고 있는 사람이다”라면서 “조국 사태 때 조국이 보고 ‘그 새끼 사내새끼 아니다’ (라고 생각했다)”면서 “잘못했으면 자기가 (감옥에) 들어가야지 각시가 들어가나”라고 말했다.
  • [기고] 시설물 안전 점검과 경험적 감각/윤홍렬 서울시 시설안전과 안전점검팀장

    모든 전문 분야에서 경험이란 매우 중요하다. 특히 건설 분야에서는 책상머리에서 배운 지식보다는 현장에서 손발로 만지고 걸어 보면서 익힌 지식이 중요한 판단의 근거가 된다. 독일의 어느 토목 엔지니어가 최근 건립된 콘크리트 옹벽을 점검할 때였다. 그는 완공된 옹벽이 안전한 지를 확인해야 했다. 물론 계측 결과 분석과 도면 검토뿐 아니라 시공 상황에 대한 상세한 설명도 들었다. 그 정도면 기술자로서 필요한 정보는 다 얻었다. 그러나 그가 최종적으로 안전 여부를 판단할 때가 되자, 옹벽에 가만히 손바닥을 댄 후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 행동은 그곳의 기운과 힘을 느껴 보는 듯했다. 그러고는 손을 떼면서 이 구조물은 안전하다고 최종 결론을 내렸다. 상세한 계측치, 설계 도면 그리고 시공 상황을 파악했지만 마지막 판단은 기술자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감각에 의존했던 것이다. 어쩌면 이는 경험과 초월적 감각을 숭배하는 과장된 일화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만큼 기술자의 경험과 감각은 중요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서울시에는 ‘어사대’라는 조직이 있다. 이 조직원들은 지난 수십 년간 공사 현장에서 소장, 안전 관리자 등으로 근무했던 사람들이다. 6개 반으로 편성된 이들은 건설 현장을 매일같이 방문해 안전 수칙을 제대로 지키는지, 안전시설을 규정대로 설치했는지를 점검하고 미비된 사항에 대해서 시정하도록 독려하고 있다. 이들을 공사장 안전 점검에 투입하는 것은 오랜 경험을 현장에 반영해 주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민선 자치 단체장이 선출되고부터는 지자체의 행정 비중이 공약 사업으로 기울어지는 경향이 있으나, 안전 점검과 같은 법정 업무의 중요성은 결코 경시될 수 없다. ●국가안전대진단은 전문가의 경험을 필요로 한다 세월호의 비극을 잊지 말자는 취지로 2015년부터 매년 2~4월까지 2개월 동안 시행되던 국가안전대진단을 올해는 코로나19의 여파로 8~11월 중 1개월간 지자체의 부담을 최소화하면서 내실 있게 실시하도록 결정 났다. 이에 따라 서울시와 25개 자치구는 추석 명절 다중이용시설 점검과 연계해 이달부터 다음달까지 국가안전대진단을 실시한다. 이번에도 민간 전문가와 합동으로 점검하게 되는데, 참여하는 전문가들에게 바라는 것은 그들의 전문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한 경험적 판단이다. 그것은 국가안전대진단이 장비를 이용한 정밀 점검이 아닌 육안 점검을 주로 실시하기 때문이다. 이번 국가안전대진단은 위험하고 노후화된, 그리고 과거에 안전사고가 발생했던 시설물을 중점적으로 점검한다. 정부와 자치단체뿐만 아니라 시설물 관리자의 자율적인 점검도 실시된다. 자율점검표를 이용해 일상생활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미리 차단하고 안전에 대한 의식을 고취해야 할 것이다. 국가안전대진단 결과, 개선이 필요한 시설은 빠른 시일 내에 보수보강을 추진하고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되겠다. 코로나19 사태는 쉽게 끝날 것 같지 않다. 건설 현장에서도 코로나19 방역에 행정력을 집중시키고 있지만, 안전 점검을 할 때도 코로나19 방역 지침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 예로부터 역병이 나돌면 수많은 민중들이 목숨을 잃고 경제 위기까지 닥치곤 했다. 예나 지금이나 위기가 닥쳤을 때 가난한 자의 설움은 더욱 크다. 우리 모두는 과거의 경험을 겸허히 받아들여 작금의 고난을 이겨 나가는 현명함을 길러야겠다.
  • 다시 못 볼 연예인이 이렇게 많아?… 中네티즌들 SNS에 명단 공유

    다시 못 볼 연예인이 이렇게 많아?… 中네티즌들 SNS에 명단 공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집권 3연임을 앞두고 사회 전반에 걸쳐 통제의 고삐를 강하게 죄는 가운데 중국 소셜미디어(SNS)에 연예계 ‘홍색 규제’로 (시 주석 집권 기간에) 다시 보지 못할 연예인들의 명단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마윈 알리바바 창업자의 친구로 알려진 여배우 자오웨이(45)와 ‘대리모 스캔들’로 물의를 일으킨 정솽(30)뿐만이 아니다. 중국 당국이 직접 거명하진 않았지만 성매매나 마약 복용 등의 혐의로 누가 봐도 퇴출이 확실시되는 이들을 누리꾼들이 찾아내 올리고 있다. 지금까지 언급된 이들만 해도 20여명에 달한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이들을 추려 봤다. 12일 웨이보(중국판 트위터)에 따르면 최근 시작된 연예계 정풍 운동을 계기로 ‘퇴출 1순위’로 꼽히는 이는 홍콩의 배우 겸 가수 천관시(진관희·41)다. 그는 2008년 여배우들과 함께 찍은 나체 사진과 동영상이 외부로 유출된 ‘염조문’(음란사진 스캔들)으로 중화권을 발칵 뒤집어 놨다. 장바이즈(장백지)와 질리안 청(종흔동), 옌잉스(안영사) 등 연예인과 신문사 기자 등 100명 넘게 연루됐다. 일부 여성은 자살을 시도했다. 한국 영화 ‘파이란’(2001)에 출연했던 장바이즈는 남편이던 셰팅펑(사정봉)과 헤어졌다. 천관시는 일련의 사태에 책임을 지고 “연예계를 떠나겠다”고 발표했다. 이후 그는 본토 출신 모델 친수페이와 결혼해 아이를 낳고 가족 사랑 캠페인도 펼치는 등 정신을 차린 듯 보였다. 그러나 최근 웨이보에 한 중국 여성이 “유부남인 천관시가 나를 두 번이나 유혹했다”는 폭로 글을 올려 재차 논란의 중심에 섰다.2008년 베이징올림픽 주제가 ‘베이징은 당신을 환영합니다’(北京迎)를 부른 ‘국민가수’ 만원쥔(52)도 누리꾼들의 입방아에 올랐다. 2009년 아내 리리의 40번째 생일을 축하한다며 베이징의 나이트클럽에 지인들을 불러 마약을 복용했다가 적발됐다. 그에 대한 이미지가 워낙 좋았기에 사건 초기만 해도 만원쥔의 범행을 믿지 않는 이들이 많았다. 그런데 중벌을 피하려고 법정에서 아내에게 죄를 모두 떠넘기려 한 것이 ‘악수’가 됐다. 당연히 이들의 결혼 생활도 끝이 났다. 그는 지금도 옛 명성을 회복하려고 노력하지만 ‘비겁한 남자’라는 꼬리표를 떼지 못하고 있다.한국에도 잘 알려진 대만 배우 커전둥(30)과 ‘월드스타’ 청룽의 아들 팡주밍(38)도 SNS에 재소환됐다. 이들은 2014년 베이징의 숙소에서 시끄럽게 파티를 벌이다가 주민 신고로 출동한 경찰에 체포됐다. 당시 공안국은 현장에서 대마초 100g을 압수했다. 중국이 마약 관련 범죄를 엄하게 벌하다 보니 ‘이들이 사형에 처해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지만, 청룽의 구명 노력 덕분인지 생각보다 일찍 풀려났다. 팡주밍은 자숙하며 지속적으로 연예계 복귀를 타진했지만 중국 당국의 압박으로 길이 막힌 상태다. 대만에서 활동하는 커전둥도 과거의 인기를 되찾지 못하고 있다.인기 배우였던 황하이보(45)는 2014년 베이징의 한 호텔에서 성매매에 나섰다가 붙잡혀 충격을 줬다. 그가 이전 작품에서 여러 차례 이상적인 남편 역할을 맡아 본토에서 ‘최고 사윗감’으로 불렸기에 파장이 컸다. 출소 뒤 황하이보는 여배우 취산산(39)과 결혼해 미국으로 이주했다. 황하이보는 더이상 TV에 출연하지 않고 있지만 아내 취산산은 지금도 중화권에서 활동 중이다.
  • [속보] 北 외무성 “미국, 아프간전 인권범죄 반드시 계산돼야”

    [속보] 北 외무성 “미국, 아프간전 인권범죄 반드시 계산돼야”

    “미, 아프간 인민 대량 살육 만행”“미군이 가닿는 모든 곳이 인권 불모지화”북한 외무성이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인권 범죄’라고 규정하면서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비난했다. 외무성은 12일 홈페이지에 ‘미국이 저지른 인권범죄는 반드시 계산되어야 한다’ 제목의 글을 싣고 “미국이 인권재판관의 너울을 쓰고 세계 도처에서 무고한 인민들을 살육한 범죄는 반드시 계산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외무성은 “세계적으로 미군이 무고한 이 나라(아프간) 인민들을 상대로 저지른 대량 살육 만행을 반드시 계산하고 범죄자들에게 준엄한 심판을 내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고조되고 있다”며 중국·일본·이란의 당국자 또는 현지 매체의 최근 아프간 관련 언급들을 소개했다. 그러면서 “아프간에서 20년간 감행한 미국 주도의 반(反) 테러전이 미군의 황급한 도주로 막을 내렸다”면서 “미군이 가닿는 모든 곳이 인권의 불모지로 화하였다는 것을 실증한다”고 비난했다. 외무성은 지난 5일에도 홈페이지에 글을 올리고 미국의 아프간 철군 사태와 인종차별 등을 싸잡아 비난하고 “미국은 인권과 민주주의 파괴자”라고 주장했다.
  • 뉴욕타임스가 ‘신의 선물’이라 극찬한 100원 택시란

    뉴욕타임스가 ‘신의 선물’이라 극찬한 100원 택시란

    미국의 유력 언론인 뉴욕타임스(NYT)가 ‘100원 택시’ 발상지인 충남 서천을 방문해 ‘신의 선물’이라고 극찬했다. NYT는 11일(현지시간) 서천군에서 최초로 100원 택시가 출현하자 각 지자체가 잇달아 이를 채택, 지금 한국의 시골에서는 100원 택시가 이동이 불편한 노인들에게 구세주가 되고 있다고 전했다. 서천군은 2013년 인구가 감소함에 따라 버스 승객 수도 감소해 수익성이 없는 노선이 전부 취소되자 노인들의 발이 묶이는 사태가 발생했다. 군은 콜택시를 부른 주민들은 100원만 부담하고 나머지는 군이 책임지는 방법을 생각해 냈다. 군은 희망택시 사업을 단순히 택시에 보조금을 지원해주는 방식이 아닌, 농어촌 마을의 ‘교통 복지’에 초점을 맞췄다. 군은 지난 2012년 말부터 2013년 3월까지 22개 마을 주민들을 대상으로 ‘이동 패턴표’를 만들었고, 이를 토대로 2013년 6월부터 희망택시의 첫 운행을 시작했다. 이 아이디어는 너무도 성공적이어서 중앙정부가 지원에 나섰고, 이제는 다른 지역도 이를 채택해 농촌 대중교통에 혁명을 가져왔다고 NYT는 설명했다.정부 관리들은 100원 택시 서비스를 지원하는 것이 마을에 버스를 배치하고, 이를 위해 더 넓은 도로를 건설하는 것보다 더욱 경제적이란 사실을 간파했다. 이후 일사천리로 이 제도가 도입됐다. 마을 주민인 나정순(85)씨는 “옛날에는 시장에 갈 때면 마을 앞 정류장까지 가방을 가지고 나가야 했지만 지금은 택시가 집 앞까지 태워다 줘 너무 편하다”며 “신의 선물”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리를 다쳐 불편하지만 젊은이들이 모두 도시로 빠져나가 나같은 노인을 도와줄 사람이 주변에 없다”고 덧붙였다. 정부 데이터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농촌에서 270만 명 이상이 100원 택시를 이용했다. 정부 조사에 따르면 100원 택시가 도입된 이후 농촌 사람들이 외출을 2배 이상 더 자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NYT는 한국의 성공사례를 다른 나라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평가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선거 운동 기간 중 정책발표 간담회에서 ‘100원 택시’를 전국으로 확대하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그러자 정책 원조 논쟁까지 생겨나 충남 아산시에서 2012년 10월부터 3개월 동안 배방읍 등 일부 지역에서 ‘마중 택시’를 운행한 것이 100원 택시의 원조로 이후 전남도나 충남 서천군에서 따라했다고 주장했다.
  • “숨이 막힌다” 텍사스 낙태금지법에 목소리 낸 美 연방대법관 [김정화의 WWW]

    “숨이 막힌다” 텍사스 낙태금지법에 목소리 낸 美 연방대법관 [김정화의 WWW]

    지난 1일(현지시간)부터 미국 텍사스주에서 시행된 새로운 낙태금지법을 놓고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임신 6주부터 예외 사항 없이 낙태 수술을 금지한 이 법이 여성 인권의 후퇴를 불러왔다는 것이다. 특히 시민단체 등이 연방대법원에 이 법의 시행을 막아달라며 가처분 신청을 했지만, 이게 기각되면서 보수 절대 우위로 구성된 대법원의 편향성을 놓고도 반발이 커지는 상황이다. 소니아 소토마요르(67)는 이 연방대법원을 구성하는 판사 9명 중에서 가장 진보적인 이로 손꼽힌다. 연방대법원 역사상 최초의 히스패닉계 법관이기도 한 그는 5:4로 기각을 찬성한 대법의 결정에 대해 “이번 판결은 놀랍다. 정말 숨이 막힌다”며 강하게 비난했다. 소토마요르는 텍사스주의 법이 “여성의 헌법적 권리 행사를 막기 위해 만들어진 명백히 위헌적인 법”이라며 “이를 강요하는 데 대다수의 재판관이 현실을 외면하는 쪽을 택했다”고 반발했다.알코올 중독, 가난, 당뇨…각종 불행 딛고 법관의 길로소토마요르는 1954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났다. 푸에르토리코 출신 이민자 부모는 결코 풍요로운 가정 환경을 만들어주지 못했다. 그가 자란 브롱크스는 강도나 약물 등 우범지역으로 유명했는데, 그중에서도 저소득층을 위한 공동 주택단지에서 생활했다. 소아당뇨를 앓아 목숨이 위험한 고비를 넘겼고, 어린 나이부터 매일 스스로 인슐린 주사를 놓아야만 했다. 아홉 살 땐 알코올 중독자인 아버지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을 겪기도 했다. 소토마요르는 훗날 자신의 회고록 ‘나의 사랑스런 세계’에서 자신의 어린 시절을 이렇게 묘사했다. “폭발적인 불화로 인한 끊임 없는 긴장 상태.” 그가 법조인의 꿈을 꾸게 된 계기는 법정 드라마 ‘페리 메이슨’ 때문이다. 간호사였던 어머니의 지원 등으로 결국 프린스턴대에 입학했지만, 이 역시 처음부터 쉽진 않았다. 당시 학교엔 여학생이 거의 없었고, 라틴계 학생은 더욱 적었다. 그에겐 항상 ‘브롱크스 출신 히스패닉’이란 꼬리표가 붙었다.하지만 프린스턴에서의 시간은 그의 인생을 완전히 바꿨다. 그는 대학 시절 라틴계 출신 교수나 강의, 연구가 없다는 데 문제제기했고, 학교가 결국 히스패닉 교수진을 채용하도록 하는 데 기여했다. 예일대 로스쿨까지 졸업한 후 그가 처음 근무한 곳은 뉴욕 카운티 지방검사실이었다. 뉴욕 검찰의 전설로 불리는 로버트 모겐소 전 검사장 밑에서 일했는데, 강도와 폭행, 살인, 소매치기 등 각종 무거운 사건을 맡았다. 모겐소는 이런 소토마요르에 대해 “똑똑하고, 열심히 일하며, 상식이 많은 사람”이라고 평하며 “겁 없고 효과적인 검사”라고 하기도 했다. 이후엔 로펌에 들어가 지적재산권과 국제법 등과 관련된 소송, 중재 업무를 맡았고, 회사 업무 외에 다양한 곳에서 재능을 펼쳤다. 1987년엔 뉴욕 모기지국(SONYMA) 이사회에 임명됐는데, 여기서 소토마요르는 저소득층이 저렴하게 주택 담보 대출을 받을 수 있게 돕기도 했다. 미 대법 최초 히스패닉 판사…트럼프에 제동, 인권 보장 앞장“나는 내 가슴을 부여잡고, 말 그대로 펄떡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려고 노력했다.” 2008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연방대법원 법관 지명에 소토마요르는 당시 심정을 이렇게 밝혔다. 로펌 근무 후 뉴욕 남부지방법원, 제2 연방 순회 항소법원에서 근무하던 소토마요르가 전국적으로 유명해진 건 연방대법관이 되면서부터다. 앞서 뉴욕주 최초의 히스패닉 판사, 푸에르토리코 여성으로서 미국 최초의 판사라는 타이틀을 얻었지만, 대법원까지 입성하면서 그는 또 다른 최초 수식어를 받아들었다. 소토마요르는 어린 시절의 비극과 아픔은 판사로서의 그의 역할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고 말한다. 그는 미 공영라디오 NPR과의 인터뷰에서 “알코올 중독으로 사망한 아버지, 마약으로 사망한 사촌은 항상 내 앞에 있는 피고인들이 잠재적으로 매운 나쁜 점을 가졌지만, 선한 인간이라는 걸 이해하도록 했다”며 “피고인이 끔찍한 짓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에게 의지하는 가족을 갖는 건 드문 일이 아니었다”고 설명했다.피고인의 배경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만큼, 보잘 것 없는 사람이 아닌 자신과 대등한 개인으로 보고 그 행동에 대한 책임을 물었다는 것이다. 실제 소토마요르는 피고인들에게 일반적인 평균보다 더 낮은 형량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고 무작정 무르기만 한 건 아니다. ‘매운 고추’라는 어린 시절 별명처럼, 소토마요르는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약자들을 위해 법정 안팎에서 싸우고 있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임기 중 공석이 된 연방대법관 세자리에 보수 인사를 채워 넣으며 6:3의 보수 편향적으로 변한 대법원 안에서 지속적으로 소신을 내세운다. 트럼프 행정부가 17년간 중단된 연방 사형집행을 부활시키고 6개월 간 무려 13건이나 집행시키자 소토마요르는 스티븐 브라이어, 엘리나 케이건 등 진보 성향으로 묶이는 다른 판사들과 함께 이의 제기했다. 이란, 북한, 소말리아 등의 입국자를 대상으로 트럼프가 여행금지명령을 내리자 이에도 반발하며 “국가 안보를 내세워 무슬림을 전면 차단하는 조치”라며 퇴행적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코로나19 사태와 관련해 연방대법원이 종교의 자유로 인해 실내 예배를 금지할 수 없다며 교회의 손을 들어주자, “법원은 과학을 믿지 않는가”라고 비판하며 전염병 사태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냈다. “좌절의 순간 크지만…결코 포기해선 안돼”이번 텍사스주 낙태금지법과 관련해서도 소토마요르의 목소리가 중요한 이유는 1973년 여성의 낙태권을 인정한 ‘로 대 웨이드’ 판결이 보수 진영의 공세에 아예 뒤집힐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이미 텍사스주 이후 10여개 주에서 임신 6주 이후의 낙태를 금지하는 법이 속속 마련됐다. 재판관 다수는 서명이 없는 설명문에서 이번 결정이 “텍사스주법의 합헌성에 관한 어떤 결론에 근거한 것이 아니다”라며 이후의 법적 이의제기를 허용했지만, 사실상 묵인하면서 여성의 권리는 점점 더 침해받고 있다. 소토마요르는 이에 대해 “이 법은 헌법은 물론 텍사스 전역에서 낙태를 시도하는 여성의 권리에 대한 숨막히는 반항 행위”라며 “법원은 헌법의 의무에 따라 판례와 법치주의의 신성성을 보호해야 한다”고 비판했다.소토마요르가 끊임없이 반대의 의견을 내는 건 다수결로 이뤄지는 판결의 결과엔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열심히 일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가 지난 5월 예일대 법대의 졸업 축사에서 한 말은 이랬다. “내 일은 확실히 절망스러울 때가 있다. 내가 이의 제기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 아마 당신은 놀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좌절의 순간이 당신이 정의라고 믿는 것, 이를 열렬히 주장하는 것을 결코 막아서게 둬선 안 된다.”◆소니아 소토마요르는 누구 · Sonia Maria Sotomayor1954 미국 뉴욕 출생1976 프린스턴대 수석 졸업1979 예일대 로스쿨 졸업1980~1984 뉴욕 지방검사 보조1992 뉴욕 남부지방법원 지명2009 버락 오바마 대통령 지명으로 연방대법관 재임
  • 전병주 서울시의원 “그린스마트 미래학교, 교육환경 개선 위한 친환경 교육사업”

    전병주 서울시의원 “그린스마트 미래학교, 교육환경 개선 위한 친환경 교육사업”

    서울특별시의회 전병주 의원(더불어민주당, 광진1)은 지난 7일에 열린 서울특별시의회 제302회 임시회 제4차 교육위원회에서 ‘그린스마트 미래학교’ 사업이 차질을 빚고 있는 것에 대해 쓴소리를 던졌다. ‘그린스마트 미래학교’는 지은 지 40년 이상 된 노후 학교를 개축 또는 리모델링하는 사업이다. 이는 교육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한국판 뉴딜사업 중 하나로 디지털 교육 기반을 갖춘 교육 공간으로 만들기 위한 친환경사업이다. 그러나 일부 학교 학부모들은 ‘그린스마트 미래학교’ 사업을 반대하며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그린스마트 미래학교 사업은 혁신학교 사업과는 별개의 교육환경 개선사업임에도 학부모들은 혁신학교와 동일하게 운영될 것이란 대한 불신을 드러내고 있다. 또 공사로 인한 교육환경 악화, 대상학교 선정절차의 정당성 문제를 지적했다. 한편, 혁신학교 사업은 입시 위주의 교육에서 탈피해 자유로운 토론 등의 활동을 통해 학생 중심의 교육이 주를 이루는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의 대표적 정책이다. 교육청은 위와 같은 문제점들이 ‘그린스마트 미래학교’에 대해 충분한 개념 설명과 관련 Q&A 등 교육청의 홍보부족으로 인해 빚어진 사태임을 감안해 이에 대한 대응책을 내놓았다. 전 의원은 “내 아이가 학교에 다닐 때, 손대지 말라는 협소한 생각을 가진 학부모들이 있다”는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의 발언을 인용해 “국민의 의견에 반대하는 것도 아니며, 국민과 대립하자는 것이 아니다” 라고 전했다. 본 사업은 교육환경 개선을 위해 정부가 내놓은 친환경 사업인 만큼 전 의원은 “교육청은 서울시 발전을 위해 본 사업을 소신껏 진행해주길 바란다”며 당부의 말을 전했다.
  • 광복절에 삶의 빛 빼앗긴 13세 소년 “우린 그곳에서 죽어갔다” [형제복지원 생존자, 다시 그곳을 말하다]

    광복절에 삶의 빛 빼앗긴 13세 소년 “우린 그곳에서 죽어갔다” [형제복지원 생존자, 다시 그곳을 말하다]

    12년간 수용인원 총 3만 8000여명, 공식 사망자 513명. 1970~1980년대 국가 최대 부랑인 수용시설이었던 ‘부산 형제복지원’에서 벌어진 인권 유린 사태는 1987년 처음 세상에 알려졌다. 34년이 지난 지금, 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이는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진상 규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더는 기다릴 수 없다”는 생존자들은 지난 5월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에 나섰다. 법원에 낼 진술서를 쓰는 과정 또한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반드시 쓰여져야 할 글이었다. 서울신문은 매주 1명씩 이들의 증언을 기록으로 남긴다.길 잃어 납치된 소년, 지옥 탈출 후 집마저 사라져 유동현(60)씨는 형제복지원을 ‘지옥’이라 했다. ‘깜상’이란 별명으로 불리던 유씨의 고통은 선명했다. 낮에는 걸핏하면 맞고, 밤에는 성폭행을 당했다. 형제원에서 간신히 탈출하던 날 유씨는 앞만 보고 달리다 나무에 머리를 박고 기절했다. 지옥을 탈출하고서도 마주한 건 죽음의 두려움이었다. 13살 중학생이던 유씨는 1974년 8월 15일 대전철도청에서 일하던 아버지 일터에서 목욕을 하려고 길을 나섰다. 아버지 일터는 그에게 익숙한 장소였다. 몸을 씻고 잠시 빈 열차에서 깜빡 잠이 들었다. 덜컹거리는 소리에 눈을 떠보니 기차가 달리고 있었다. 무서웠다. 서울에서 대전 집에 다시 가려고 하행선을 탔으나 또 잠이 들어 부산에 도착했다. 유씨가 부산역에서 서성이자 성인 남자들이 강제로 그를 차에 태웠다. 다짜고짜 몽둥이로 때리고 형제원으로 끌고 갔다. 형제원의 삶은 굶주림과 매질의 연속이었다. 식사는 보리밥과 건더기 없는 된장국이 전부였다. 자정 넘어 일이 끝난 날엔 원생들에게 건빵 한 바가지를 뿌렸다. 땅에 흩뿌려진 건빵을 한 개라도 주워 먹겠다고 수십 명이 서로 밟고 밀쳤다. 정신교육이라는 핑계로 밤에는 기합을 받았다. 하루 12시간 넘게 바늘과 구슬을 꿰도 손이 느리다고 또 맞았다. 성폭행도 당했다. 형제원에서 가까스로 탈출했지만 유씨가 돌아갈 집은 없었다. 탈출하던 날 밤도 유씨는 늦게까지 일했다. 새벽에 씻으러 가는데 높지 않은 담 앞에 경비가 없었다. 유씨와 원생 10여명은 탈출을 시도했다. 앞만 보고 무작정 달렸다. 사방이 깜깜해 나무에 머리를 박고 기절했다가 벌레와 바람 소리를 들으며 깼다. 그제야 살았다고 느꼈다. 대전 집에 찾아갔으나 아버지가 있던 집은 영문도 모른 채 사라졌다. 유씨는 지옥을 함께 견딘 원생의 이름을 가물가물 읊었다. 수길이, 벙구, 백사, 사또, 짜리. 그는 소대장 이름은 ‘현수’, 분대장 별명은 ‘반달’이라는 것도 선명히 기억했다. 그러나 함께 생활한 수백명 원생들의 이름은 세월 속에 잊혔다. “내 인생을 짓밟은 정부와 원장을 원망하며, 얼마나 고통 속에 살았는지 그 지옥을 알릴 방법이 없기에 더욱 한스럽다.” 빛을 되찾았다는 광복절, 13살 소년의 삶은 짓밟혀 여전히 어둠 속에 있다. 아래는 유씨의 진술서 전문. ※원문에서 일부 표현 등은 다듬어 옮겼습니다.[진 술 서] 제목: 형제복지원 피해자 진술서 성명: 유동현 진술내용: 저는 대전 소제동에 살았습니다. 아버지가 대전철도청에 근무했고, 저는 가끔 아버지 근무처에 목욕하러 갔습니다. 1974년 8월 15일 아버지 근무처에서 목욕하고 열차 빈칸에서 잠이 들었습니다. 덜컹거리는 소리에 눈을 떠보니 열차가 달리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서울에 가게 됐습니다. 겁이 많이 났습니다. 서울역에서 몰래 열차를 갈아타고 대전 집으로 가려고 했습니다. 그러다 열차에서 또 잠이 들어 부산까지 가게 됐습니다. 부산역에 내려 서성이다가 어떤 성인 남자들이 저를 강제로 차에 태웠습니다. 저는 놀라고 겁이 나서 “왜 이러냐”고 소리 질렀습니다. 그들은 다짜고짜 몽둥이로 저를 두들겨 팼습니다. 집 주소와 학교 말해도 돌아온 건 매질과 감금 한참 차가 이동하더니 갑자기 멈췄습니다. 뒷문이 열리면서 어떤 아저씨가 빨리 내리라며 소리 질렀습니다. 사무실에 끌려갔고, 제게 집이 어디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집 주소를 말하고, 대전 동명중학교에 재학 중이라고 했습니다. 이틀 후, 저를 다시 부르더니 “너 왜 거짓말했어!”라며 몽둥이로 사정없이 때렸습니다. “너는 집이 없어, 없으면서 있다고 거짓말한 거야, 알았어?!”라면서 마구 때렸습니다. 정신없이 두들겨 맞다가, 맞지 않으려고 “네, 집이 없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희망방’에 갇혔습니다. 희망방에서 정신교육이라는 핑계로 기합받고 매를 맞았습니다. 따귀를 얼마나 세게 맞았는지 귀에서 고름이 나왔습니다. 지금도 저는 귀가 잘 들리지 않습니다. 얼마 후에는 ‘낚시방’에 배치됐습니다. 낚시방에서는 아침 일찍 일어나 바늘과 구슬을 꿰는 작업을 했습니다. 어떤 날은 밤 12시가 넘도록 일했고, 손이 느리다는 이유로 기합 받고 맞는 날도 허다했습니다. 낮에는 일하면서 맞고, 밤에는 성폭행을 당했습니다. 낮과 밤 모두 지옥 같은 생활이었습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이런 고통을 견딜 수 있을까요? 몇 년이 흘러 저는 부산시 북구 주례동에 있던 ‘3소대’로 배치됐습니다. 얼마 후에는 ‘11소대’로 배치됐습니다. 주례에 와서 처음에는 풍선 공장에서 일했고, 그 뒤에 구두 공장에서 일했습니다. 11소대에서 저는 ‘깜상’으로 불렸습니다. 소대장은 ‘현수’라는 이름으로 기억합니다. 분대장의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별명이 ‘반달’이었습니다. 함께 생활한 수백 명의 원생 대부분의 이름은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몇몇 원생들의 별명만 가물가물 떠오릅니다. 벙구(벙어리), 백사(얼굴이 흰색), 다른 소대에 있던 사또, 짜리(이름은 종일이). 수길이와 박남수, 김성동이란 원생의 이름도 기억납니다.탈출 후 사라진 집…남은 건 지옥의 기억 구두 공장에선 자정 넘어 일했습니다. 새벽에 씻고 소대에 들어가기 위해 목욕탕을 들어가는데 얕은 담 앞에 경비가 없었습니다. 저와 원생 10여 명이 탈출을 시도했습니다. 어두워서 보이지 않던 길을 앞만 보고 무조건 달렸습니다. 그러다 나무에 머리를 박고서는 그대로 기절했습니다. 깨어났을 때 저는 제가 죽은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벌레 소리와 바람 소리가 들려 ‘살았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탈출에 성공해 대전 소재동에 있던 집을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집은 온데간데 없었습니다. 한참을 헤매다 대전 안녕동에 있는 큰집을 찾아갔습니다. 지금도 생각하면 저는 소름이 돋습니다. 형제복지원 안에서 일어난 일은 생각하고 싶지 않습니다. 내 인생을 짓밟은 정부와 원장을 원망하며 얼마나 고통 속에 살았는지 겪지 않은 사람들에게 그 지옥을 알릴 방법이 없기에 더욱 한스럽습니다. 원장은 저희에게 중노동을 시키며 인건비를 착취했고, 정부 지원금과 단체 후원금을 받아 돈을 많이 벌면서도 저희에겐 보리밥과 건더기 없는 된장국을 줬습니다. 우리는 빈혈과 영양 부족으로 죽어갔습니다. 낚시방에서 일할 때 납품할 제품이 너무 많아 새벽부터 자정을 넘긴 시간까지 일할 때가 있었습니다. 새벽에 끝나면 소대에 건빵 한 바가지를 뿌렸습니다. 건빵 한 개라도 주워 먹어 보겠다고 원생 수십 명이 서로 밟고 밀치면서 팔이 부러지는 일도 있었습니다. 할 말은 많지만 글로 표현하기에 제 자신이 부족해 이만 줄입니다. 저는 대한민국에 묻고 싶습니다. 내 자식과 부모, 형제가 저와 같은 인생을 살았다면 어찌하시겠습니다?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 맞습니까, 이런 게 민주주의입니까? 무너진 내 인생을 배상해줄 것을 간곡히 호소합니다.형제복지원 사건 어디까지 왔나 형제복지원을 운영한 고(故) 박인근 원장은 1989년 특수감금 혐의에 대해 무죄가 확정됐다. 2018년 문무일 전 검찰총장은 무죄 판결을 취소해 달라며 비상상고를 신청했지만 지난 3월 대법원에서 기각됐다. 다만 재판부는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인정했고 정부에서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당부했다. 형제복지원 사건과 관련해 국가를 상대로 첫 손해배상 소송에 제기한 형제복지원 서울경기피해자협의회는 현재 추가 소송 제기를 이어가고 있다. 1차 소송에 참여한 13명은 모두 입·퇴소 증빙자료가 준비돼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은 이러한 증거가 없어 피해사실 입증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형제복지원 서울경기피해자협의회는 비용 부담 때문에 소송 참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피해자들을 위해 후원금을 모금하고 있다.
  • 서구식 근대화로 도시·농촌 양극화… 탈레반, 대중의 분노 부추겼다

    서구식 근대화로 도시·농촌 양극화… 탈레반, 대중의 분노 부추겼다

    탈레반이 카불을 함락했을 때 서방 세계는 그 충격적인 광경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사람들은 여성에 대한 철저한 억압과 잔인한 통치가 꽤 규모 있는 나라에서 부활할 것을 걱정스러운 눈길로 지켜보고 있다. 이역만리 타국의 격변이 서방 세계 전체를 흔드는 이유는, 그것이 서구인들이 강고하게 갖고 있던 어떤 믿음을 거스르는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아프간의 상실로 서구인들 신념 ‘흔들’ 그 믿음은 3세기 전 즈음에 북대서양에서 태동한 계몽주의와 진보의 신화인데, 세계는 과학기술의 발전과 함께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끝없이 확대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교리를 핵심으로 한다. 그 믿음은 북대서양 네트워크를 통해 탄생한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꽃을 피워 세계를 제패했다. 한편 믿음의 신봉자들에게 중앙아시아의 험준한 산악 지대에 자리한 아프가니스탄은 북대서양에서 발원한 그 신화가 아직도 도달하지 않았던 ‘암흑의 심장’이었다. 따라서 아프가니스탄의 상실이 서구인들의 마음에 그토록 크게 울려 퍼지는 것은, 단순히 전략적이거나 재정적인 손실의 차원이 아니라 신념이 흔들리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아프가니스탄에서 서구식 계몽주의는 패배한 것일까? 세계 최강의 군대와 가장 효율적 기업으로 무장한 미국은 왜 아프가니스탄에서 20년이라는 시간을 쓰고도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을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2021년의 아프가니스탄이 아니라 더 긴 시간축 속에서 더 넓은 공간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카불이 함락되기 100년 전, 서쪽의 터키는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무슬림 세계에서 전통적 권위를 인정받던 오스만 제국이 제1차 세계대전의 여파로 멸망하려 하고 있었다. 연합국 주도로 이루어지는 제국의 분할에 맞서서, 청년 장교단과 민족주의자들을 중심으로 외세에 맞서는 봉기가 일어났다. 그러나 이들이 주장하는 것은 단순히 반외세가 아니었다. 그들은 전통과 구습에 묶인 제국을 구하기보다는, 근대 계몽주의의 가치를 받아들인 새로운 공화국을 건설하고자 했다. 1921년은 그렇게 모인 터키 독립전쟁의 주역들이 최초로 헌법을 통과시킨 해였다. 터키의 새로운 엘리트들은 가톨릭 교회를 억누르고 세속주의를 확립시킨 프랑스에서 깊은 영감을 받았다. 신헌법은 여러 개정을 거쳤고, 마침내 터키의 국체는 세속주의 공화국으로 확정됐다. 그 지도자인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의 이름을 딴 이념인 ‘케말주의’가 공식화되는 순간이었다.●이란·이라크 등 근대화 프로그램 시작 터키에서 시작된 케말주의는 이슬람 세계 전역에서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슬람 세계는 19세기 이래로 ‘유럽을 압도하던 우리가 왜 지금은 유럽의 지배를 받게 됐는가’라는 고통스러운 고민을 하고 있던 차였다. 케말주의가 제시한 답은 간명했다. 서구 계몽주의를 따르자. 종교와 구습에 얽매인 노인들을 몰아내고, 무지몽매한 대중을 계몽해 근대적 공화국을 건설하자. 그렇다면 민족은 얼마든지 강력하게 재탄생할 수 있으리라. 이 같은 비전은 이름을 달리한 채, 시차를 두고 여러 국가에서 시도됐다. 이란의 팔레비 왕조는 케말주의에 깊은 감명을 받아 나름의 근대화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계몽주의는 이집트의 영웅 나세르, 이라크와 시리아의 바스당 당원들, 파키스탄의 국부 무함마드 알리 진나가 모두 공유하는 신념이었고, 자민족을 부강하게 만들 약속된 도구였다. 신세대 엘리트 주도하의 근대화 프로그램은 여러 성과를 내었다. 근대적 고등교육과 기술교육의 혜택을 많은 이들이 누렸고, 그중에는 교육에서 오랜 기간 배제돼 온 여성들도 포함돼 있었다. 이슬람 전통법인 샤리아 대신 서구식 법체계가 자리를 잡았고 영화나 가요를 비롯한 현대적 도시 문화도 태동했다. 이 국가들의 근대화 프로그램을 지원하러 미국, 소련, 유럽에서 날아온 고문단은 이런 발전상을 보며 흡족해했다. ●‘이슬람주의’라는 이념 태동 하지만 근대적 발전상 이면에서는 다른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었다. 계몽주의에 기초한 서구 근대성은 많은 사람에게 선망의 대상이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반감의 대상이기도 했다. 그들은 서구의 힘에 굴복하고 전통과 신성을 내팽개친 새로운 엘리트를 혐오했고, 무기력하게 전통을 답습하는 전통 엘리트도 경멸했다. 이슬람 신학, 법학과 서구 학문과 공산주의 혁명론 등에 정통한 지식인과 활동가들은 근대적인 단체를 설립했고, 학술적 탐구와 정치적 구호를 담은 책들을 간행했으며, 세속주의 엘리트를 향한 저항을 선동했다. 세속주의가 이슬람 세계를 휩쓰는 것과 거의 비슷한 시간표에 따라 ‘이슬람주의’라는 이념이 태동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움직임에 주목하는 이들은, 이슬람 세계의 바깥은 물론이고 안에서도 그리 많지 않았다. 그들은 세속주의 엘리트가 추진하는 근대화가 충분히 진행되면 그런 ‘반동적’ 이념들은 금세 사그라들 것으로 예측했다. 따라서 1979년에 이란의 샤(황제)가 혁명의 물결에 밀려 퇴위하고, 아야톨라 호메이니가 주도하는 이슬람 공화국이 들어섰을 때 세계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란은 미국의 지원을 받으며 근대화라는 숙제를 착실히 이행하는 우등생으로 인식되곤 했다. 어쩌다가 근대화의 결과로 사라졌어야 할 이념이 새롭게 헤게모니를 잡게 됐을까? 사실 이에 대한 대답은 간단했다. 계몽주의와 세속주의를 주창한 엘리트들의 근대화는 사회를 충분히 바꾸어 놓기는커녕 서구식 근대화에 대한 극심한 반발만을 야기했다. 근대화의 혜택이 대부분 발전한 도시 지역에 집중되는 가운데, 내륙의 농촌에는 여전히 전통적 사회 질서와 문화가 잔존했다. 근대화에서 소외된 지역의 빈곤은 뿌리 깊은 문제였으나 도시 엘리트들은 촌락의 문제를 해결할 능력도, 의지도 부족했다. 한편 1945년 이래로 시작된 급속한 인구증가, 그에 따른 생태적 위기는 농촌 인구의 도시 이주를 부추기며 사태를 악화시켰다. 주요 도시의 화려함과 부유함, 그리고 서구식 생활양식은 도시에 유입된 빈민들에게 분노를 일으켰다. ‘문명적’ 생활양식을 향유하는 서구적 엘리트들은 여전히 종교라는 구습에 얽매이는 도시와 농촌의 빈민들을 깔보고 무시했다. 엘리트에게 빈민들은 ‘계몽의 빛’을 거부하며 무지에 속박된 이들이었다. ●이란 혁명, 파키스탄 이슬람화 자극 이슬람주의자들은 상황을 다른 각도로 보도록 도와주었다. 서구화된 엘리트들은 문명화된 것이 아니라 ‘타락한’ 것이었다. 미국은 소비자본주의와 성적 방종으로 문화를 더럽히는 국가였고, 소련은 무신론을 내걸고 이슬람을 탄압하는 국가였다. 따라서 타락한 엘리트들과 그들을 지원하는 외세를 몰아내는 투쟁을 시작하는 것만이 알라가 제시한 성스럽고 올바른 길이었다. 혜택이 편향됐던 서구식 근대화는 도시와 농촌, 엘리트와 대중의 분열을 부추겼다. 마침내 1970년대를 거치며 이슬람 세계 각지에서 근대화 프로그램의 초라한 성적이 드러나자, 힘의 균형은 이슬람주의 쪽으로 급격하게 쏠렸다. 분개한 대중이 보기에 현실을 더 잘 설명하는 언어는 계몽주의가 아니라 이슬람주의였다. 따라서 1979년 이란 혁명은 홀로 떨어져 있는 사건이 아니었다. 아랍 세계의 수니파 이슬람주의자들은 이란의 시아파 혁명을 불신했으나, 유사한 혁명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전망에 고무됐다. 그해 11월,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극단적 무장 단체가 메카의 대(大)모스크를 점거하고 타락한 사회에 대한 정화를 촉구하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났다. 충격을 받은 사우디 왕실은 대내적 불만을 잠재우고자 자신들 판본의 종교적 보수주의인 ‘와하비즘’을 더 강하게 선전하는 것으로 대응했다. 이란 혁명은 인접한 파키스탄이 이미 1977년부터 추진하고 있던 이슬람화를 더욱 급격하게 밀어붙이도록 자극했다. 쿠데타를 일으킨 지아 울 하크 장군은 이슬람주의 정책을 통해 대중의 지지를 확보할 수 있었다. 1979년의 마지막 나날에 소련군이 아프가니스탄으로 진격하자, 사우디아라비아와 파키스탄의 관계는 놀라운 속도로 진척됐다. 미국과 파키스탄의 지정학적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며 파키스탄은 소련군을 막아내는 방파제 역할을 맡으며 대규모 지원을 받았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지원은 지정학 이상이었다. 석유 파동 덕택에 부유해진 사우디는 파키스탄에 경제적 지원을 해줌과 동시에 이념적 지원도 해주었다. 사우디가 지원한 마드라사(신학교)가 파키스탄 각지에 세워졌으며, 이곳은 급진 이슬람주의 전사들을 키우는 훈련소가 됐다.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국경 양편에 거주하는 파슈툰족은 이런 공통의 경험을 통해 급진화됐다. 한편 사우디는 아랍 세계 각지의 지하드 전사들이 ‘무신론 제국’인 소련을 상대하러 아프가니스탄에 집결하는 것도 지원했다. 그렇게 아프가니스탄의 계곡에 들어간 전사 중에는 토목공학을 전공한 부유한 집안의 청년인 오사마 빈라덴도 있었다. 지역에 근거한 이슬람 무장 세력과 글로벌 테러리즘을 주창하는 성전주의자들 간 네트워크가 만들어지는 순간이었다. 이 네트워크의 영향을 받은 현지의 이슬람주의 전사들은 소련군이 물러난 뒤에도 아프가니스탄을 이슬람화하겠다는 신념으로 뭉치며 ‘탈레반’이 됐다. 탈레반은 꾸준히 시골을 공략했다. 그들은 도시의 부패와 ‘타락’을 몰아내고 마을 주민에게 질서, 안정, 이슬람의 회복이라는 언어로 호소했다. 탈레반의 힘은 무기와 아편 판매로 모은 돈만큼이나, 그들 고유의 언어와 약속에서도 나왔다.●미군이 탈레반에 패배한 이유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자. 미군은 왜 탈레반에 패배했을까? 그 이유는 탈레반의 신념을 형성하는 긴 역사와 배경에서 설명될 수 있다. 도시에 거주하는 세속주의 엘리트들은 배후지의 농촌, 혹은 도시의 빈민과는 유리된 삶을 살았으며 그들 사이의 문화적 분리는 크나큰 정치적 불만을 촉발했다. 승리와 패배를 결정한 것은 도시 바깥에 뻗어 있는 광활한 대지, 거기에 펼쳐진 수많은 마을의 동향이었다. 그 마을의 주민들은 애초에 계몽주의에 근거한 비전에 공감하지 못했으며, 천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누적돼 온 관습과 그와 유사한 깊이의 신앙에 오히려 더욱 공감했다. 카불과 헤라트에서 일어난 계몽주의의 패배는 그렇기에 일찍이 1979년의 이란과 2013년 무렵의 터키에서 벌어진 패배와도 일정하게 흡사한 점이 있다. 카불의 함락은 서구적 근대화라는 비전이 이 지역에서 국민적 발전을 가리키는 빛이 아니라 도시와 시골, 엘리트와 대중을 가르는 단층선에 불과했다는 고질적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또다시, 아주 극적인 모습으로 남긴 셈이다. 임명묵 작가
  • 조국 “윤석열의 ‘고발 사주’ 의혹은 국정농단 사태”

    조국 “윤석열의 ‘고발 사주’ 의혹은 국정농단 사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9일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게 제기된 ‘고발 사주’ 의혹에 대해 ‘국정농단 사태’라고 비난했다. 고발 사주 의혹이란 지난해 4·15 총선을 앞두고 당시 검찰총장이었던 윤 전 총장이 측근 검사를 통해 야당인 미래통합당 측과 접촉해 여권 인사를 고발하도록 했다는 의혹이다. 검사 출신인 국민의힘 김웅 의원이 지난해 4월 3일과 8일 당시 손준성 대검 수사정보담당관으로부터 범여권 인사 등의 고발장을 받아 당에 전달한 것으로 보이는 텔레그램 메시지가 공개되면서 불거졌다. 손 검사는 김 의원에게 고발장을 전달했다는 의혹에 대해 전면 부인했고, 김 의원은 전날 기자회견을 열어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아리송한 해명을 내놓았다. 윤 전 총장 역시 김 의원에 이어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번번이 선거 때마다 이런 식의 공작과 선동으로 선거를 치르려고 해서 되겠느냐는 한심스러운 생각이 든다”고 의혹을 공작이라고 반박했다. 조 전 장관은 윤 전 총장이 전날 연 기자회견에 대해 ‘겁박’이라고 지적했다. 조 전 장관은 “그가 국민들이 시청하는 기자회견에서 ‘내가 무섭냐?’고 언성을 높인 이유는 그에게 국민은 자신 앞에서 눈치 보고 벌벌 떨던 비루한 (잠재적) 피의자”라고 분석했다.이어 “그에게 기자는 ‘단독’ 구걸하고 술 얻어먹는 관리대상일 뿐. 하물며 ‘메이저 언론’도 아닌 한낱 ‘인터넷 언론’ 따위야”라며 “그는 국민과 언론을 무서워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무서워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 전 총장이 고발사주 의혹이 정치공작이란 점을 주장하면서 쓴 “제가 무섭습니까”라는 질문은 “날 무서워해야 할 것”이란 겁박의 다른 표현이라고 덧붙였다. 안도현 시인이 윤 전 총장의 기자회견에 대해 ‘저자거리 포악한 조폭의 언어’를 사용했다고 한 비판도 조 전 장관은 공유했다. 한편 조수진 국민의힘 의원은 ‘고발 사주 의혹’을 언론에 건넨 인사에 대해 대검찰청이 전광석화 식으로 공익신고자를 만든 것을 놓고 논란이 거세다고 비판했다. 대검찰청은 8일 언론 제보자가 공익신고자 요건을 갖췄다고 밝혔는데, 이는 신생 인터넷 매체 보도가 나온 지 엿새 만이라며 대검 감찰부가 ‘초특급’ 판단을 내렸다고 지적했다. 윤 전 총장 관련 의혹을 처음 보도한 인터넷 매체 ‘뉴스버스’는 TV조선에서 국정농단 사태를 보도하며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의 인터뷰를 최초로 했던 이진동 기자가 설립한 매체다. 이 기자는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고발장이 이상하다고 한 지적에 대해 “나도 고발장 내용이 처음부터 이상했다”며 “노골적으로 윤석열 공격을 하는 정치인에 불만이 쌓여 형사 고소를 하고는 싶은데, 할 수는 없는 상황에서 추미애 라인 검찰에 둘러싸여 장악력이나 운신의 폭이 좁아진 윤석열 검찰이 택한 ‘묘수’가 당시 ‘윤석열 지키기’에 나서던 미래통합당이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번 의혹이 ‘검찰권 사유화’라고 강조했다.
  • “절박함에 귀 기울여야”…정우성, 아프간 위해 1억원 기부

    “절박함에 귀 기울여야”…정우성, 아프간 위해 1억원 기부

    난민 응원하던 정우성아프간 실향민 위해 후원금 1억원 전달 배우 정우성(48)이 아프가니스탄인을 위한 후원금 1억 원을 유엔난민기구(UNHCR)에 기부했다. 8일 유엔난민기구 한국대표부는 “정우성씨가 폭력과 불안의 급증으로 위기에 처한 아프가니스탄을 위한 후원금 1억 원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정우성은 “최근 발생한 상황으로 집을 잃고 암흑의 시기를 보내고 있는 수많은 아프간인들과 이들을 위해 위험한 현장에서 활동을 지속하고 있는 유엔난민기구에 작은 보탬이라도 되길 바란다”며 기부금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이어 정우성은 “지금은 아프가니스탄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인도주의적 비극에 전 세계가 주목해야 하는 시기”라며 “각종 위험과 비극적인 상황에도 자국에서 피신할 수조차 없는 사람들의 절박함에 귀를 기울이고 이들을 위해 연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엔난민기구 관계자는 “아프간 인구의 절반에 가까운 1800만 명에게 생존을 위한 긴급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유엔난민기구는 현재 아프간에서 벌어진 상황으로 인해 올해만 59만 명이 넘는 국내 실향민이 발생했다. 또 수십 년 동안 이어진 내전으로 380만명이 집을 잃었다고 전했다. 아프간에서 국경을 넘은 난민의 90%가 이란과 파키스탄의 보호를 받고 있으며, 80%는 여성과 아동이라고 밝혔다.정우성 “난민들, 여전히 우리 도움 필요해” 호소 앞서 정우성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난민에 대한 도움을 호소한 바 있다. 정우성은 지난 5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제가 유엔난민기구와 함께 방글라데시를 방문했을 때, 그곳에서 사고 예방을 위해 도로를 정비하고 있는 젊은 로힝야 난민 자원봉사자들을 만났습니다”며 한 장의 사진을 올렸다. 사진 속 정우성은 난민 자원봉사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어 “이 난민들은 코로나19에 대응하기 위해 중추적인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들은 여전히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합니다”고 적었다. 한편 정우성은 2014년부터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로 활동 중이며, 그동안 국내외 난민을 위해 꾸준히 기부 활동을 벌여 왔다. 유엔난민기구에 따르면 그는 지난달에 미얀마 폭력사태로 인해 피신한 로힝야 난민을 위해 기부했으며 의료비로 인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내 난민 아동을 조용히 후원했다. 국내에서는 난민에 대한 반감 때문에 관련 소식이 나올 때마다 수시로 거론되는 정우성은 인터넷의 악성 댓글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난민의 어려움을 알리고 있다. 2018년 예멘 난민이 제주도에 머무르는 것을 두고 반대 여론이 거세게 일자, CBS방송에 출연해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그 문제를 같이 공감하고 같이 가져가야 된다는 말씀을 드리는 것이며 여러분의 삶의 질과 풍요를 뺏고자 말씀드리는 게 아니다”라고 밝혔다.
  • [단독] 중수본에 책상조차 없는 ‘방역 인권팀’

    코로나 사태 1년 반 지나 뒤늦게 설치팀장·팀원 2명 모두 다른 업무와 겸직전담 직원 없어 인권보호 방향 못 잡아외국인 혐오·시설 인권 등 여전히 방치 정부가 코로나19 사태 발발 1년 반이 지나서야 뒤늦게 ‘방역인권보호팀’을 신설했지만 인권을 보호할 실질적 권한과 인력을 두지 않아 ‘보여주기식 행정’이란 비판이 나온다. 7일 보건복지부 등에 따르면 방역인권보호팀은 코로나19 방역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각종 인권문제에 대응하는 팀으로 지난 6월 코로나19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에 설치됐다. 팀장은 복지부 양성평등정책담당관이 겸직하고 있고, 팀원 두 명도 다른 과 업무를 겸하고 있다. 전담 직원은 한 명도 없는 셈이다. 책임지고 일할 사람이 사실상 팀장뿐이다 보니 팀을 만든 지 3개월이 돼 가도록 코로나19 재난 상황에서 인권보호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방향성조차 잡지 못하는 실정이다. 지난해에도 국가인권위원회에 과장 한 명, 팀원 두 명으로 구성된 코로나19 인권 관련 태스크포스(TF)가 만들어졌으나 3개월 만에 해체됐다. 접촉자의 과도한 동선 공개 등으로 인권침해 문제가 제기되자 부랴부랴 팀을 만들었다가 슬그머니 사라진 케이스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황필규 변호사는 “인권단체들이 청와대 기모란 방역기획관을 만나 코로나19 상황에서 인권문제를 살필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고, 이 면담을 계기로 갑자기 만들어진 조직이 중수본의 방역인권보호팀”이라고 말했다. 그는 “방역인권보호팀이 생기자 청와대에서 이제 인권문제는 방역인권보호팀과 얘기하라고 하더라”면서 “그러나 이 팀은 중수본 사무실에 책상조차 없다. 팀 성원들의 열정과는 무관하게, 어떻게 일하게 해야 할지 전혀 고민하지 않은 무책임의 극치”라고 비판했다. 코로나19 방역의 긴급성에 가려 주목받지 못했을 뿐 인권문제는 끊임없이 발생해 왔다. 서울시·경기도 등은 외국인 노동자를 대상으로 코로나19 검사를 의무화해 근거 없는 혐오를 키웠고 지난해 5월 이태원에서 시작된 집단감염은 성소수자에 대한 심각한 혐오와 낙인을 불러왔다. 몇몇 환자의 경우 동선 공개로 사생활 침해를 겪고 인터넷에서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결국 감염 자체보다 혐오와 낙인이 두려워 숨는 결과를 불러왔다. 아동복지시설 아동들은 과도한 방역 지침 때문에 1년여간 사실상 감옥생활을 해 왔다. 방역 정책에 인권침해 요소는 없는지 사전 점검하는 ‘인권영향평가’를 도입하자는 목소리가 높지만, 국내 코로나19 발생 1년 5개월 만에 만들어진 조직은 이를 검토할 인력도, 권한도 없다. 유정미 방역인권보호팀장은 “방역 관련 인권침해 요소를 검토하려면 중수본보다는 주무부처인 질병관리청에 해당하는 인력이 세팅돼야 한다”며 “지속적으로 요청하고 있지만 지금 상황에선 쉽지 않다”고 털어놨다.
  • 뒤늦게 만든 ‘코로나 방역인권보호팀’, 전담직원은 0명…‘보여주기 행정’ 눈총

    뒤늦게 만든 ‘코로나 방역인권보호팀’, 전담직원은 0명…‘보여주기 행정’ 눈총

    정부가 코로나19 사태 발발 1년 반이 지나서야 뒤늦게 ‘방역인권보호팀’을 신설했지만 인권을 보호할 실질적 권한과 인력을 두지 않아 ‘보여주기식 행정’이란 비판이 나온다. 7일 보건복지부 등에 따르면 방역인권보호팀은 코로나19 방역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각종 인권문제에 대응하는 팀으로 지난 6월 코로나19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에 설치됐다. 팀장은 복지부 양성평등정책담당관이 겸직하고 있고, 팀원 2명도 다른 과 업무를 겸하고 있다. 전담 직원은 한 명도 없는 셈이다. 지난달까지는 겸직 팀원조차 1명에 불과했다. 책임지고 일할 사람이 사실상 팀장뿐이다보니 팀을 만든지 3개월이 돼가도록 코로나19 재난 상황에서 인권보호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방향성조차 잡지 못하는 실정이다. 지난해에도 국가인권위원회에 과장 1명, 팀원 2명으로 구성된 코로나19 인권 관련 태스크포스(TF)가 만들어졌으나 3개월 만에 해체됐다. 접촉자의 과도한 동선 공개 등으로 인권침해 문제가 제기되자 부랴부랴 팀을 만들었다가 슬그머니 사라진 케이스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황필규 변호사는 “인권단체들이 청와대 기모란 방역기획관을 만나 코로나19 상황에서 인권문제를 살필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고, 이 면담을 계기로 갑자기 만들어진 조직이 중수본의 방역인권보호팀”이라고 말했다. 그는 “방역인권보호팀이 생기자 청와대에서 이제 인권문제는 방역인권보호팀과 얘기하라고 하더라”면서 “그러나 이 팀은 중수본 사무실에 책상조차 없다. 팀 성원들의 열정과는 무관하게, 어떻게 일하게 해야할지 전혀 고민하지 않은 무책임의 극치”라고 비판했다. 코로나19 방역의 긴급성에 가려 주목받지 못했을 뿐 인권문제는 끊임없이 발생해왔다. 서울시·경기도 등은 외국인 노동자를 대상으로 코로나19 검사를 의무화해 근거 없는 혐오를 키웠고 지난해 5월 이태원에서 시작된 집단감염은 성소수자에 대한 심각한 혐오와 낙인을 불러왔다. 몇몇 환자의 경우 동선 공개로 사생활 침해를 겪고 인터넷에서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결국 감염 자체보다 혐오와 낙인이 두려워 숨는 결과를 불러왔다. 아동복지시설 아동들은 과도한 방역 지침 때문에 1년여간 사실상 감옥생활을 해왔다. 방역 정책에 인권침해 요소는 없는지 사전 점검하는 ‘인권영향평가’를 도입하자는 목소리가 높지만, 국내 코로나19 발생 1년 5개월만에 만들어진 조직은 이를 검토할 인력도, 권한도 없다. 유정미 방역인권보호팀장은 “인권영향평가 등을 검토하려면 중수본보다는 주무부처인 질병관리청에 해당하는 인력이 세팅돼야 한다”며 “지속적으로 요청하고 있지만 지금 상황에선 쉽지 않다”고 털어놨다.
  • [김기정 인터뷰 2] “아프간 사태 이후 미국이 이래라저래라 못할 것”

    [김기정 인터뷰 2] “아프간 사태 이후 미국이 이래라저래라 못할 것”

    7일자 지면에 미처 싣지 못한 김기정(65)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과의 인터뷰 내용을 싣는다. 김 원장은 문재인 정부의 통일 및 외교 정책 핵심인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설계자로 통한다. - 문재인 정부의 한계는 분명해 보인다. “5년제 단임제의 한계이기도 한데 한국이 주변 국가들과 미국에게 평화 공존으로 가야 하며 그래야만 이들 나라의 이익이 주어진다고 설득하는 데도 짧기만 한 시간이다. 한국인의 열망과 미래를 그리는 상상력이 아무리 커도 분단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자국의 이해를 추구하는 데 분단이 오히려 낫다고 판단하는 나라들을 설득하고 동참시키는 게 버겁다. 정권과 정부의 노력만이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성찰과 상상력이 응집돼야 한다. 우리는 2018년의 단초를 통해 냉전 질서의 끄트머리쯤에 있지 않은가 하는 희망을 품게 됐다.” - 차기 지도자는 어떤 사람이어야 하나. “분단과 통일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역사적 관점에서 통찰하며, 미래를 그리며, 한반도의 평화공존이 동북아 전체의 안정을 가져온다는 신념을 갖추고, 분단의 관성이나 냉전의 스테이스 쿠오에 짓눌린 정무적 판단으로 역사를 퇴행시키지 않고, 상상과 열망으로 이끌어가는 사람이 됐으면 한다.” - 아프가니스탄 사태 이후 미국이 한국을 더 성가시게 할 것이란 시각이 많은데. “안보와 자율성을 교환하는 구조가 한미정상회담 이후 완전히 달라졌다고 느낀다. 한국은 경제성장, 군사력 성장, 자긍심과 민도의 상승, 시민성에 기초한 방역 성공 등으로 미국이 국제사회에서 더 활용할 만한 가치가 높은 존재가 됐다. 일본은 미국이 생각하는 대중국 포위망의 정중앙에 자진해 들어간 반면, 한국은 한 발 물러선 위치에 서는 일을 미국으로부터 인정받은 것처럼 보인다. 일본과 달리 한국은 자유롭게 움직일 여지가 있게 됐다. 미·중 대립이 격화될수록 우리 외교의 유연성이 중요해진다고 본다. 워싱턴 정가는 한발 뒤로 물러선 한국을 충분히 활용하는 것이 미국의 국익을 위해 낫다고 판단하기 시작한 것 같다. 미국은 폴리티컬 게임을 하고 싶어하는데, 일부러 한국을 중국 쪽으로 계속 밀어대는 일본보다 중간에 위치한 미들파워(한국)를 강화시키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란 얘기다.나폴레옹 전쟁 이후 100년 동안 유럽이 안정된 것은 중부유럽을 강화한 덕분이었다. 물론 중부유럽이 너무 강해져 1차, 2차 세계대전이 촉발되는 부작용을 낳긴 했지만 말이다. 미국이 더 큰 폴리티컬 게임을 하고 싶으면 한국뿐 아니라 북한을 끌어들여야 하는데 헨리 키신저 같은 대전략가가 부재해 망설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자국의 영향력이 쇠퇴하고 중국이 급격히 부상하는, 초유의 상황, 코로나 이후 국제질서가 비정형적으로 풀려나갈 소지가 높아 방법을 찾지 못해 자꾸 냉전 초기의 담론을 차용하는 모습도 보인다. 키신저의 방법은 중국이 총구를 소련에 돌리게 한 것이었는데, 어쩌면 미국은 한국과 북한까지 중국에 총구를 돌리게 하는 빅게임을 하고 싶어하는데 아직 그 단계로 넘어가는 일을 망설이며 주저하는 것 같다. 미국이 과거처럼 ‘주한미군 빼버릴 거야’란 식으로, 한국의 불편한 심리적 의존성을 압박하는 식으로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기엔 한국이 너무 커져 버렸다. 한국이 미국에 너무 많은 이익을 제공할 수 있는 나라가 돼버렸다.” - 미·중 대립의 본질은 무엇인지. “두 국가의 권력 관계가 바뀌어 나타나는 갈등인데 상당히 오래 갈 것이다. 이념과 국제 분업 구조, 표준화 경쟁 등 층위가 다양할 것이다. 가장 기저에는 심리적 분노가 자리한다. 국민들의 반감이 권력과 구조의 경쟁을 증폭시키고 있다. 외교를 잘해서 봉합될 수는 있겠지만 부문별 각축에 의해 다시 전체의 경쟁으로 비화하는 일이 끊임없이 이어질 것 같다. 한국이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외교적 유연성을 갖추는 일일 것이다. 주관이 없어 왔다갔다 하는 것이 아니라 전술적으로 한 쪽에 기울더라도 다른 쪽을 놓치지 않고 나중에 선택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놓자는 얘기다. 미·중 관계가 격화되면 손해를 보는 국가들이 점차 늘어날 것이다. 유럽, 어쩌면 그런 척하지 않을 일본, 호주, 인도 등이다. 팔짱만 끼고 볼 수 없는 시점이 올 것이다. 중간국가 연합을 주도하거나 적극적 동참하는 것도 유연성을 키우는 일이다. 피봇팅하듯 한 발에 중심을 두고 몸을 이리저리 돌려 공격 방향을 찾는 일을 외교에 적용할 수 있겠다. 여러 나라에 전술적인 무게 중심을 둬 이런저런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창의적으로 움직이는 일이 현 시점에 준비됐으면 한다.” - 아프가니스탄 사태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2차대전 종전 이후 미국의 외교적 수단은 군사력이었다. 누군가는 미국 외교의 90%는 국방 예산에서 나왔다고 말하기도 한다. 미국의 대외문제를 군사력으로 해결하는 방식의부작용과 실패가 베트남, 이라크에 이어 아프간에서 나타났다고 본다. 아프간전 철군 결정을 내린 이유가 아프간인들이 ‘싸울 수 있는 의지(will to fight)’가 없다고 말했는데 1905년 미국이 조선과의 외교를 끊고 맨먼저 철수했을 때 시어도어 루스벨트 당시 미국 대통령이 조선인들은 스스로를 ‘방어할 의지(will to defend)’가 없다고 말했던 일을 연상시킨다. 외국의 지원과 돈에만 의존해 국민들과 괴리된 정부가 얼마나 힘없이 무너질 수 있는가를 보여줬는데 세계 6위의 군사력에 1910년의 수모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하나된 우리를 잘못 비교한 뒤 ‘미군 빠지면 저 꼴 난다’고 여기는 것은 굉장히 잘못된 얘기라고 생각한다. - 문재인 정부에서 한·일 관계가 정상화되기는 힘들 것 같다. 문 정부와 일본 어느 쪽에 더 잘못이 있었다고 보는지. “어느 정부나 국제관계, 국내관계의 균형점을 잘 찾는 게 중요하다. 김대중 정부 때 햇볕정책이 그나마 성공적일 수 있었던 것은 국내, 남북한의 관계를 재정립하기 전에 국제질서에도 부합한다는 점을 먼저 설명했던 것이 주효했던 것 같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남북관계를 발전시키는 게 더 급하다고 판단하고 나중에 설득하면 된다고 본 것 같다. 이때 가장 소외된 것이, 그렇게 느낀 것이 일본이었다. 이 때 일본에게도 이해를 구하고 북·일 관계를 진전시키는 방향으로 병렬해 나아가지 않은 것이 하노이에서의 훼방놀이란 값비싼 대가로 돌아왔다고 난 본다. 그런데 한·일 관계가 틀어진 근본적인 책임은 일본이 더 크다고 본다. 오래 전부터 혐한의 분위기가 있었고, 보수 정권은 우익과 결합하고 있었다. 아베 정권은 이를 정치적으로 악용했다. 일본의 19세기 역사관과 한국의 21세기 역사관으로 대립하고 있다. 한국은 분단됐지만 평화공존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믿는데 일본은 분단과 적대를 관리하는 것이 자국의 이익에 부합한다는 낡은 가치관에서 빠져나오고 있지 못하다. 화해할 수 없는 이격(離隔, 사이가 벌어짐)이 문 정부와 아베 내각 사이에 일어났다. 문 정부가 대일 외교를 잘못해 두 나라 관계를 망쳤다는 논리는 대단히 불공정한 비판이다.” - 한·일관계를 제대로 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두 나라는 1965년 체제의 끄트머리에 있으며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다. 65년 체제란 반공과 식민지 청산이란 두 연결고리를 풀고자 했는데 전자는 쉽게 합의한 반면, 후자는 도저히 풀지 못해 어그리 투 디스어그리(agree to disagree)하고 봉합한 것이었다. 그 기저에는 세계 분업구조에 일본의 하부로 편입되는 열망이 작용했다. 두 나라 정부가 원폭과 사할린 징용, 위안부 등을 풀어야 할 과제로 합의했는데 어느새 반공이란 고리가 사라져버렸다. 이를 대신할 전략적 공유 이익을 찾지 못했다. 식민지 청산이란 연결고리마저 정부가 아니라 민간에 의해 터질 지경에 이르렀다. 외교적 봉합으로 넘어갈 일이 아니다. 반공 대신 평화를 공동의 전략적 이익으로 삼아야 하는데 일본은 반중으로 합의하고 싶어한다. 식민지 청산을 포괄하는 역사적 화해로 나아가야 하는데 일본이 쉬 수용하지 못한다. 해서 마지막 몸부림으로 인한 고통을 경험하고 있지 않은가 본다. 일본이 한반도 평화에 기여해야 하며 그렇게 이익이 공유될 수 있다는 것을 일본이 이해해야 하는 일이 첫 걸음이 될 것이다.” - 우리의 국가전략은 어떤 것이 되어야 하는지. “대립을 공존으로, 두 국가 체제를 인정하면서도 하나로 움직이는 사실상의 통일(de-facto unification)이라고 부르고 싶다. 하나의 시장, 하나의 화폐를 갖게 되면 유럽처럼 되는 것이고, 다른 정부, 군대를 각자 갖고 있지만 군비 통제와 군사적 신뢰 구축이 되면 통일로 가는 가장 비용이 적게 드는 방식이라고 믿는다. 평화 공존을 제도로 보장하는 일을 다음 정부가 해야 한다. 적대 질서로 돌아가면 미래 세대에 부담을 떠넘기는 일이다. 평화 공존을 외교적인 틀에서 국제사회에 설득하고 인정받는 일을 국가전략으로 삼아야 한다. 양극화 해소를 통해 포용 국가 담론을 만들어야 하고, 각자도생의 생존 논리 대신 공동체를 존중하는 사회, 안보 개념을 더욱 확장해 여러 위기로부터 안전하고 안심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진정한 의미의 세이프티(safety) 개념을 만들어나가는 일이 국가전략이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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