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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등병’ 재희 “연예인이라고 특혜는 없다”

    ‘이등병’ 재희 “연예인이라고 특혜는 없다”

    지난 8월 4일 입대해 100일 휴가를 나온 배우 재희가 군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전했다. 2일 오후 서울 삼성동 코엑스 메가박스에서 열린 영화 ‘맨데이트:신이 주신 임무’의 무대 인사 후 가진 언론 인터뷰에서 재희는 홀어머니에 대한 걱정을 드러냈다. 군복 차림으로 참석한 재희는 군대에 가 있는 동안 가장 생각나는 사람은 누구냐라는 질문에 “어머니 혼자 계셔야 하기 때문에 생각이 많이 난다. 혼자 계시면 심심할 것 같아서 걱정이 많이 된다.”고 전했다. 이어 “군대에 있으면 추운 것 빼고는 특별히 어려운 건 없다. 밖에서 누렸던 생활과 비교하면 힘들다고 할 수 있지만 적응하면 힘든 것 없다.”고 설명했다. 혹시 연예인이라고 특별 대우를 해주는 것은 없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같은 군인이기에 연예인이라고 해서 특별 대우를 받는다거나 그러지 않는다. 워낙 잘해주셔서 군대 생활이 즐겁다.”고 덧붙였다. 한편 드라마 ‘쾌걸춘향’, ‘마녀유희’, 영화 ‘빈집’, ‘싸움의 기술’ 등으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던 재희는 지난 7월 29일 ‘맨데이트’ 쇼케이스를 마친 후 군에 입대했다. 재희는 2박 3일 휴가 중 하루는 서울에서 벌어지는 ‘맨데이트’ 무대인사로 나머지 하루는 홀어머니와 함께 오붓한 시간을 보낼 예정이다. 서울신문NTN 정유진 기자 jung3223@seoulntn.co.kr / 사진=조민우 기자@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이등병’ 재희, 100일 휴가 중 무대인사 나서

    ‘이등병’ 재희, 100일 휴가 중 무대인사 나서

    ‘육군 이등병’ 재희(28, 본명 이현균)가 꿀맛 같은 100일 휴가를 무대인사로 보낸다. 지난 8월 4일 입대 후 육군 모 부대에서 복무 중인 재희는 신병에게 주어지는 신병위로휴가를 받게 되자 자신이 주연한 영화 ‘맨데이트:신이주신임무’(감독 박희준)의 개봉시기가 자신의 휴가와 맞아 떨어지게 되자 흔쾌히 무대인사에 합류하게 된 것이다. 재희는 내달 2일 휴가 중 하루를 서울에서 벌어지는 ‘맨데이트’ 무대인사로 뜻 깊게 보낼 예정이다. 드라마 ‘쾌걸춘향’, ‘마녀유희’, 영화 ‘빈집’, ‘싸움의 기술’ 등으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던 재희는 지난 7월 29일 ‘멘데이트’ 쇼케이스를 마친 후 군에 입대했다. ‘맨데이트’의 연출을 맡은 박희준 감독은 “이번 영화의 홍보활동을 하면서 재희의 공백을 많이 느꼈다. 뒤늦은 감은 있지만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라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서울신문NTN 김경민 기자 star@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광주상무 선수들도 ‘군대리아’를 먹을까?

    광주상무 선수들도 ‘군대리아’를 먹을까?

    흔히들 우스갯소리로 여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이야기가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라고 한다. 확인 불가능한 이야기이기에 그 누구도 자신의 군대 시절 축구 실력을 솔직히 고백하는 이는 없다. 하지만 이들 앞에서는 그 어떤 이도 자신의 군대시절 ‘축구 무용담’을 함부로 할 수가 없다. 그렇다 진짜 군대에서 축구만 한 광주상무의 이야기다. 우리는 과연 광주상무에 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상무의 프런트는 모두 군인일까? 아니다. 상무 구단에서 군무원 신분으로 4급 공무원 대우를 받는 이강조 감독과 이수철 코치를 제외하면 모두 일반인이다. 구단의 사소한 업무를 맡은 직원부터 나무석 단장까지 모두 축구가 좋고 광주가 좋아 자발적으로 모인 이들이다. 광주상무 구단 사무실은 여느 프로팀 구단 사무실과 마찬가지로 화기애애하다. 군기 같은 건 없다. 경기 외에는 일반 사병과 똑같이 생활할까? 리그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상무 선수단은 해당 지역의 호텔에서 숙식을 해결한다. 하지만 경기가 없는 날에는 성남의 국군체육부대에서 다른 종목의 상무 선수단과 똑같이 생활한다. 아침 점호를 받고 구보 후 에어로빅을 한 뒤 오전 일과, 점심 식사, 오후 일과 순으로 하루를 보낸다. 이들에게 일과란, 물론 공을 차는 일이다. 외곽근무는 없지만 불침번은 전투복을 입고 일반사병과 똑같이 선다. 오늘도 박규선 병장은 일과가 끝난 후 내무실에 누워 달력에 X표를 한다. 구단 버스는 운전병이 몰까? 2003시즌, 구단 버스를 몰던 운전병이 전역했다. 하지만 이 운전병은 전역 후 취업 형태로 다시 구단에 입사해 지금도 그대로 구단 버스를 운행하고 있다. 구단 측에서도 이 운전사의 능력을 인정해 흔쾌히 그를 다시 받아들였다. 광주상무 선수단은 ‘고조 할아버지 군번’이 운행하는 버스를 타고 있는 셈이다. 팀닥터는 의무병일까? 아니다. 현재 상무의 팀닥터는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명의’다. LG트윈스 프로야구단에서도 트레이너로 활동했던 전문가를 모셔온 상무는 선수들의 부상 치료에 여느 K-리그 구단 못지않게 신경을 쓰고 있다. 상무는 축구 뿐 아니라 모든 종목에 의무병이 아닌 전문 트레이너를 두고 있다. 승리 시, 포상은 어떻게 이루어지나? 군 팀의 특성상 이들에게 승리 수당은 없다. 다만 휴가와 외박이 있을 뿐이다. 원칙적으로는 국군체육부대 경기 대장의 승인이 있어야 하지만 상무 구단의 포상 휴가와 포상 외박은 이강조 감독이 큰 영향력을 차지한다. 이강조 감독은 선수단의 경기력에 따라 휴가증과 외박증을 건의하고 경기 대장으로부터 승인을 받는다. 23경기 동안 한 번도 못 이겨서 포상 휴가증 못 받았지? 그거 누가 그랬을까? 경고나 퇴장 등에 따른 벌금은? 대부분의 K-리그 구단은 선수가 경고나 퇴장 등 경기력을 저해하는 행위를 했을 경우 자체적으로 벌금을 부여한다. 하지만 상무에는 벌금 제도가 없다. 몇 푼 되지 않는 월급으로 생활하는 이들에게 벌금까지 부과한다면 그건 너무 잔인한 짓이다. 상무는 큰 잘못으로 프로축구연맹에 벌금을 내야하는 선수가 있다면 이를 구단 차원에서 대신 내주기도 한다. ‘짬밥’과 ‘군대리아’도 먹을까? 운동 선수라면 풍부한 영양은 생명. 이들은 ‘짭밥’과 ‘군대리아’는 먹지 않는다. 성남에 위치한 국군체육부대에서 생활하는 축구 선수를 포함한 모든 상무 선수들은 균형 잡힌 식단으로 식사를 한다. 이들이 ‘짭밥’을 먹을 기회는 1년에 단 한 번, 연말 전방부대 체험 행사 때 뿐이다. 상무에도 계급이 존재할까? 첫 한 달 동안만 계급이 존재한다. 아무리 나이가 많은 선수라도 입대 후 훈련소를 거쳐 상무로 자대배치를 받으면 이등병이 할 일을 해야 한다. 말투도 무조건 ‘다’나 ‘까’로 끝낸다. 하지만 자대배치를 받고 한 달이 지나면 계급이 아닌 축구계의 선후배 순으로 계급이 바뀐다. “XXX 병장님”의 호칭도 자연스레 “XXX형”으로 바뀌고 말투도 “~요”로 변한다. 말년 병장 조재진 역시 “이등병 김상식이 더플백을 메고 자대에 들어와 꼬인 말년을 보냈다”고 상무 시절을 회상했던 바 있다. <사진=광주상무 구단 제공> 기사제휴/스포츠서울닷컴 김현회기자@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구석구석 훑은 독도의 생태계

    일본의 영유권 주장으로 전국민적 관심사로 떠오른 독도. 최근 하루평균 관광객 수는 1880명이나 된다. 하지만 독도를 제대로 돌아보는 건 꿈도 못 꾼다. 고작 20여분 동안 제한된 구역만 공개될 뿐이다.2일 오후 7시50분에 방송되는 EBS ‘리얼실험프로젝트X-5인의 독도 특공대’편에서는 독도 생태 지도를 만들기 위해 투입된 5인의 탐사과정을 소개한다. 실험에 참가한 5명은 5박6일 동안 독도에 머물며 각자의 임무를 수행한다. 독도 지도 제작자인 안동립(52)씨는 독도 지도를 완성해야 하고, 야생화 전문가 이명호(50)씨는 독도 식물도감을 만들어야 한다. 또 ‘이등병의 편지’의 작곡가 김현성(47)씨는 ‘2008 독도 노래’ 작곡, 건축가 최재호(38)씨는 독도 상징물 설계, 대학생 김수현(21)씨는 독도 UCC 홍보자료 제작 등의 임무를 각각 맡았다. 독도 주민 김성도(69)씨의 안내로 어민 숙소에 짐을 내리고 곧바로 섬 탐사에 들어간 대원들은 독도 식물군에서 확인되지 않은 섬초롱꽃을 발견한다. 술패랭이, 땅채송화, 까마중, 도깨비고비, 왕호장근 등 야생화의 보고인 독도는 하나의 거대한 식물도감 그 자체다. 어민 숙소 뒤편의 계단에서 시작되는 490m의 ‘물길’은 경사가 87도나 돼 밧줄에 의지하지 않고서는 오르내리기조차 힘들다. 독도 주민들은 식수를 얻기 위해 늘 이 험난한 길을 걸어야만 한다. 물길을 따라 힘겹게 도착한 물골은 독도에서 유일하게 물이 나는 곳. 하루 평균 7∼8드럼의 물이 고인다.원시의 아름다움으로 가득한 독도지만, 구석구석 어디에나 사람들의 발길이 다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 수직 절벽, 거센 물살로 유명한 미역바위 같은 곳은 접근할 수가 없다. 제작진은 “장기간 머물며 독도의 세밀한 부분까지 탐사하기는 방송 사상 이번이 처음일 것”이라며 “사람의 발길을 쉽게 허용하지 않는 독도를 구석구석 훑으며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모든 것을 담아내려고 했다.”고 밝혔다.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여성&남성]직장에서 성별을 바꾸고 싶을 때

    [여성&남성]직장에서 성별을 바꾸고 싶을 때

    무한 경쟁사회에서 살아 남기 위해 고된 직장 생활을 견뎌야 하는 것은 여자나 남자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남의 떡이 더 커보인다는 말처럼 직장 내에서 내가 더 힘들고, 상대가 부러운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이치다. 남자는 여자보다 더 힘든 일을 하는 것 같아 짜증나고, 여자는 남자가 더 대접받는 것 같아 아쉽다는 게 공통된 목소리. 여자와 남자가 같은 직장에서 근무하는 한 ‘상대적 박탈감(?)’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직장 생활에서 어떨 때 여자는 남자가 부럽고, 남자는 여자가 부러울까. 각각 다른 직종에 몸담고 있는 여(女)와 남(男)의 솔직한 속마음을 들어봤다. ■ 눈치보는 퇴근시간 답답하君 ● 회식자리 상사대접 골치 아파 기업 연구원에 근무하는 김모(31)씨는 퇴근이나 회식 때만 되면 그저 여자로 변신하고 싶다. 오후 6시만 되면 눈치볼 것 없이 짐 싸들고 휙 일어서는 여직원이 부럽기 때문이다. 회식 때도 여직원은 술을 잘 마시지 못한다는 핑계로 ‘상사 접대 노동’에 남자만 동원되기 일쑤다. “남자는 아무래도 군대에서부터 스스로 주눅드는 게 몸에 배다보니 상사가 눈치를 주지도 않는데 ‘칼퇴근’을 못하고, 회식 때도 미적거리다 빠지겠다는 말도 못하죠. 여직원이 주말에 휴가를 붙여서 해외여행까지 다녀오는 걸 보면 나도 차라리 여자가 됐으면 싶어요.” 지난해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서울의 한 구청에서 일하고 있는 윤모(30)씨는 같이 일하고 있는 여자 공무원이 마냥 부럽다. 어렵다는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기만 하면 인생에 꽃이 필 줄 알았던 윤씨였다. 하지만 일은 늘 산더미처럼 쌓였고,‘출세’를 위해선 남보다 한 시간이라도 더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압박감이 몰려왔다. 상사와의 회식 자리도 절대 빠질 수 없고 결혼을 준비하기 위해 집을 장만하려면 재테크에도 신경써야 한다. “요즘 여자 공무원이 신붓감 1위라고 하니 동료 여직원은 합격 이후에는 승진에 별로 신경쓰지 않고 ‘칼퇴근’한 뒤에 자기계발이나 여유있는 취미생활을 즐기면서 살더라고요. 이상한 짓만 하지 않으면 평생 해고당할 염려도 없으니 마냥 부럽기만 합니다.” ● 직업상 여자가 훨씬 더 유리하다고 느낄 때 영업사원 이모(29)씨는 업무상 여성이 훨씬 유리한 위치에 있다는 점이 부러워 여자가 됐으면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 평소 남성을 대상으로 영업을 다니는 이씨는 최대한 부드럽게 고객을 대하지만 아무래도 상대가 딱딱하게 느끼는 때가 많다. 하지만 동료 여성은 같은 사람과 만나도 좀더 길게 대화하고, 보다 쉽게 식사 자리도 갖는 등 관계를 잘 풀어나갔다.“아무리 열심히 해도 여자만이 할 수 있는, 묘한 그런 게 있더라고요.” 광고 회사원 나모(30)씨도 마찬가지다. 광고를 제작하기 위해 배경으로 깔게 되는 영상 제작이나 상황에 걸맞은 카피를 만들 때 여성이 훨씬 더 세련되고 감각적이라는 생각이 든 게 한 두 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화장품이나 패션 쪽 광고 제작 의뢰가 들어왔을 때 남자 직원은 거의 꿀먹은 벙어리처럼 있어야 할 때가 많다. “아무래도 감성적인 측면에서는 여성이 훨씬 뛰어난 측면이 있다는 걸 인정해야 할 것 같아요. 그럴 땐 여자로 태어났으면 지금보다 더 잘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곤 하죠.” ● 시험에 유리한 예쁜 글씨, 도저히 안나올 때 변호사 서모(34)씨는 사법시험을 준비할 때 가끔 여자였으면 좀더 유리하지 않을까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손글씨로 시험을 치러야 하는 사법시험의 특성상 예쁜 글씨체가 점수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생각에 펜글씨로 필체 연습까지 했다. 하지만 이미 손에 익은 글씨체는 별 발전이 없었다. 주변의 여성 고시준비생은 대부분 예쁜 글씨로 답안지를 써내려가 그저 부러움만 안겨줬다.“법조인은 일의 분량에서나 사건의 까다로움에서 남녀 차별없이 동등하게 일을 하는 편이지만 시험준비 때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니 글씨 잘 쓰는 여자가 돼 시험을 치르고싶다는 생각이 굴뚝 같았죠. 어릴 때부터 예쁘게 보이고 싶어하는 여성의 꾸준한 글씨 연습을 뒤늦게 따라가려니 이미 늦었더라고요.” 경찰 공무원 김모(35)씨는 자기가 맡은 업무 외에 유명 인사 경호나 집회 시위 폴리스라인 등의 동원 업무를 나가야 할 때 여직원이 마냥 부럽다. 주요 경호 업무가 주어졌을 때 형사계에 있는 여경이라도 동원되지 않는 일이 많은데다 최근 여경들로 폴리스라인을 만드는 ‘립스틱라인’이 사실상 폐지되면서 폴리스라인 동원 업무도 고스란히 남자 경찰만의 일이 돼버렸기 때문이다.“주업무는 아니지만 경찰관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기 때문에 불평하기 힘들고, 괜히 치사해 보이기도 하니까 말을 꺼내지도 못하죠. 그럴 땐 차라리 여경이 되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또 다른 경찰 공무원 서모(33)씨는 여성 범죄자를 심문할 때 여자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고 털어놨다. 최근엔 지능범이 많아 피의자 심문 조서를 꾸밀 때 머리 굴리는 소리가 다 들리지만 여성의 마음 속을 읽기가 쉽지 않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범죄란 게 남자 여자 차이가 있겠습니까만, 가끔 여성 범죄자와 머리 싸움을 할 때 내가 여자라면 이들의 심리를 좀더 꿰고 한 발 앞서나갈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죠.” ● 여자가 아니라 다행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남자로서 이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직업도 있다. 항공사 파일럿인 김모(34)씨는 오존층 위로 비행하는 시간이 많아 걸러지지 않은 방사능에 그대로 노출되기 때문에 늘 건강 관리에 신경을 쓴다. 여성 파일럿에게 처음 비행을 배워 섬세한 항공 운항술에 여성이 유리한 것 아니냐는 생각도 했지만 방사능이 자칫 잘못하면 ‘불임’이라는 불행을 낳을 수가 있다는 점이 마음에 걸린다.“몇몇 여성 동료가 위험에도 불구하고 자기 일을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짠할 때가 많죠. 어쨋든 제가 남자로서 이 일을 하고 있다는 게 다행이란 생각이 들어요.”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꽉 조이는 유니폼 괴로운 Girl ● 머리부터 발끝까지 규제받다니… 은행원 김모(26·여)씨는 유니폼을 입고 있는 자기 모습을 볼 때마다 남자 행원이 되고 싶다. 남자 행원과는 달리 여자 행원은 꼭 유니폼을 입어야 하기 때문이다. 은행은 여자 행원의 복장과 두발을 엄격히 단속(?)한다.“물론 고객에게 신뢰를 줘야 하는 직업의 특성상 남자 행원도 항상 정장을 입어야 하죠. 그러나 남자 행원에게는 여자 행원 만큼 까다로운 복장 규정을 적용하지 않습니다. 여자 행원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든 것을 다 규제받고 있죠.” 김씨는 예쁜 정장을 입고 일반 회사에 다니는 친구들이 여간 부럽지 않다. 모두 같은 유니폼을 입고 일한다는 사실이 마치 고등학교를 다시 다닌다는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은행에서 여자 행원에게만 유니폼 규정을 두다 보니 여자 행원은 황당한 일을 겪기도 한다. 은행원 강모(26·여)씨는 고객이 유니폼을 입고 있는 여자 행원과 그러지 않은 남자 행원을 대하는 태도가 크게 다르다고 울분을 토한다.“같은 직급이라도 여자는 유니폼을 입고 있으니 직급을 낮게 봅니다. 그러니 무시하거나 함부로 대하는 고객이 많죠. 어떤 손님은 유니폼을 입은 제 모습을 보고 ‘고등학교 밖에 안 나와 은행일 하고 있냐.’고 비웃기도 합니다. 고객에게 화를 낼 수도 없죠. 그냥 웃는 얼굴로 ‘아닙니다. 고객님’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유니폼 하나에도 ‘남녀차별’이 깊숙이 배어 있는 겁니다.” ● “남자처럼 편한 자세로 일하고 싶어요” 대기업 회사원 김모(27·여)씨는 편한 자세로 일하는 남자 동료를 볼 때마다 남자가 되고 싶다. 여자 사원은 남자 사원과는 달리 조신하고 품격 있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여성스럽지 못한 여자’로 눈밖에 나기 때문이다.“남자는 모를 거예요. 직장에서 여자가 행동에 얼마나 많은 제약을 받는지. 남자는 괜찮지만 여자는 안 되는 행동이 수도 없이 많아요. 대표적인 게 앉아 있는 자세죠.” 평소 다리를 떠는 버릇이 있는 대기업 회사원 조모(27·여)씨는 상사에게 ‘여자가 다리를 떤다.’고 가끔 지적을 받는다. 그러나 다른 남자 직원은 다리를 떨어도 별로 지적을 받지 않는 게 의아하다. 칸막이가 쳐 있기 때문에 주변 사람이 불편하게 여길 이유가 전혀 없다. 그러나 왜 여자는 남자와 달리 행동 하나하나를 통제받고 조심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조씨는 모르겠다고 한다. 조씨는 이를 ‘군대 이야기’에 비유한다.“남자들 군대 얘기 많이 하잖아요, 이등병 때 고참 눈치보느라 ‘각잡고’ 앉아 있었다고. 그래야 ‘이등병다운 자세’라고요. 여자는 평생 이등병입니다. 항상 ‘여자다운 자세’로 앉아 있어야 하잖아요.” 회사에서 영업직으로 근무하는 주모(27·여)씨는 결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할 때마다 남자가 되고 싶다. 결혼 후에도 계속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앞선다.‘생명’이 짧은 영업직원의 특성상 결혼은 큰 ‘타격’이 된다.“여자는 결혼하면 남자보다 더 가정에 헌신해야 하잖아요. 아이도 낳아 길러야 하고 신경쓸 게 많죠. 일을 계속하고 싶은데 결혼하면 제 꿈이 물거품이 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주씨는 뛰어난 영업실적으로 우수 사원만 갈 수 있는 해외연수까지 다녀왔다. 하지만 주변에서 ‘여자는 결혼하면 영업직으로 계속 성장하기 어렵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최근 임신 때문에 영업을 그만두고 내근직으로 근무하는 여자 동료에게 쏟아진 뒷말도 주씨에게 교훈 아닌 교훈이 됐다. 계속 일하고 싶지만 여자라는 이유로 이를 걱정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제가 원하는 영업직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남자라면 이런 걱정 하지 않고 일에만 전념할 수 있을 텐데요.” ● 그 ‘좋다는’ 전문직도 여자는 서럽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산부인과 전공의로 일하는 이모(31·여)씨는 전공을 선택했을 때 정말 남자가 되고 싶었다고 털어놨다. 아무래도 ‘여자’라는 굴레 때문에 산부인과를 선택한 이유가 강했다.“경쟁력을 따지는 시기에 그래도 남자보다 유리한 게 산부인과밖에 없더라고요. 안과나 피부과 같은 인기 직종은 여자를 잘 뽑지 않는다는 말도 있고요.” 이씨는 인턴시절에 황당한 경험을 했다. 지난해 7월 응급실에서 근무하던 중 치료를 받으려던 환자가 ‘남자 의사 없냐.’고 물었던 것. 이씨는 이 날의 충격이 꽤나 컸다.“아직 우리 사회에는 의사와 같이 중요한 직업은 남자가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나봐요. 적어도 산부인과 환자는 이렇게 면박을 주지 않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나마 직장내 여성 차별이 적다는 교사도 할 말은 많다. 인천의 한 고등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는 김모(26·여)씨는 아이들을 맘껏(?) 혼내지 못할 때 남자 교사가 되고 싶다는 마음이 절실하다. 평소 학생이 남 교사와 달리 여 교사를 무시하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아이들이 남자 선생님은 무서워하지만 여자 선생님은 우습게 봐요. 반항 때문에 불쾌한 일도 겪고 상처도 많이 받아요.” 지난해 12월에도 김씨는 당황스러운 일을 겪었다. 수업시간에 떠드는 학생들에게 “조용해”라고 말했지만 “떠들지 않았다.”,“선생님이 잘못 들은 것이다.”라며 투덜거리는 소리만 들려왔다.“남자 선생님이라면 그런 반응이 나오지 않았겠죠. 무서워 하니까요. 여자 선생님을 무시하는 아이들이 커서는 어떻겠어요.”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軍, 15년만에 부자상봉 도와

    軍, 15년만에 부자상봉 도와

    15년 전인 6살 때 부모와 헤어져 보육시설을 전전하다 군에 입대한 이등병이 부대 간부들의 도움으로 아버지를 찾았다. 육군 제17사단 미추홀 부대 이윤우(사진 왼쪽) 이병. 이 이병이 혈육을 찾는 데는 대대 주임원사인 김영구 원사의 도움이 컸다. 이 이병으로부터 사연을 듣고 직접 나섰던 것. 유일한 단서는 이 이병이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는 15년 전 큰 집의 전화번호였다. 몇 차례 시도 끝에 김 원사는 이 이병의 큰 어머니와 통화에 성공했고, 아들의 소식을 들은 아버지는 부대까지 한 걸음에 달려왔다. 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 1세대 내부고발자 3인

    1세대 내부고발자 3인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그룹 비자금 조성 의혹을 제기한 지 37일이 지났다. 사람들은 그가 받았다는 120억원이나 부인과의 불화를 거론하며 진정성을 폄훼하기도 한다.‘1세대 내부고발자’인 이문옥 전 감사관, 현준희 전 주사, 이지문 전 중위를 만났다. 내부고발에 따른 심적 고통과 부패 없는 세상을 위한 대책 등을 들어봤다 ■‘제1호 내부고발자’이문옥씨 지난달 12일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 성당. 김용철 변호사와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3차 기자회견이 진행 중이다. 빼곡히 들어찬 취재진 사이로 김 변호사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이문옥(68) 전 감사관은 발길을 돌린다.“(사제단이)만나게 해준다더니, 연결이 잘 안 된 모양이네.” 그는 김 변호사에게 꼭 하고싶은 말이 있었다.“고맙다고. 어느 정권이 들어와도 못 바꿀 삼성을 건드렸잖나. 정부나 기관이 연막작전을 펴느라 이혼 같은 개인사를 들먹이지만, 그런 것에 마음 상하지 말고 힘내라고 말하고 싶었다.”고 했다. 이 말은 17년 전 자신에게 다짐한 것이기도 했다.1990년 5월 대기업의 비업무용 토지 보유실태를 조사하다 감사 중단 압력을 받은 그는 “삼성 로비로 감사가 중단됐다.”며 양심선언을 한다. 파면에 구속이 이어졌고 6년의 법정싸움 끝에 공무상 비밀누설죄의 누명을 벗었다. 복직 후 감사교육원 교수로 있다 1999년 정년퇴직했다. 사실상 ‘제1호 내부고발자’다.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인데, 삼성의 로비력은 변하지 않았다고 이 전 감사관은 말한다. 그는 “층층이 쌓인 떡에 고물 뿌리듯 아래부터 위까지 철저히 관리한다. 이렇게 하는 곳은 삼성밖에 없다. 내 경험으로 봤을 때, 지금 김 변호사는 목숨 걸고 내부고발한 거다.” 그는 ‘공익제보자와 함께하는 모임’ 등과 함께 ‘부패청산국민연대(가칭)’ 출범을 준비 중이다. 내부고발에 대해 일회성 문제제기가 아닌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기 위해서다.“부패도 부익부 빈익빈이다. 부패를 저지르면 특권층에게만 이익이 가고 손해는 고스란히 서민들에게 돌아간다. 이를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는 것은 내 평생의 업”이라고 했다. ■‘끝나지 않은 11년 고통’ 현준희씨 지난달 29일 현준희(54) 전 감사원 주사가 운영하는 서울 종로구 계동의 게스트하우스를 찾았다. 한옥을 개조해 만든 이 집에서 삽살개 두 마리를 벗삼아 놀고 있던 그는 평온해보였다. 하지만 이야기를 나눈지 얼마 되지 않아 잔잔하던 그의 눈빛은 흔들리기 시작했다.“이렇게 일하면서도 계속 일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 때가 가끔 있다. 빈 라덴처럼 비행기로 대법원 건물을 들이받고 싶다는 생각도 한다.” 무엇이 그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1996년 4월 그는 효산그룹이 경기 남양주 서울리조트 스키장 근처에 콘도를 지으려는 과정에서 김영삼 대통령의 아들 현철씨 사단을 이용해 건교부 등 주무기관에 압력을 행사했다는 제보를 받는다. 건교부에서도 잘못을 시인, 감사가 끝난 상황에서 그 내용은 국장 지시에 의해 묻혀버린다. 이후 효산그룹 비리가 언론에 보도되자 감사원은 관련 서류를 찢어버리라는 지시를 한다. 하지만 그해 6월 그는 그 서류를 갖고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에서 양심선언을 한다. 기자회견 직후 그는 파면되고 감사원으로부터 명예훼손으로 고발당해 구속에 이르게 된다. 그때부터 11년에 이르는 지난한 법정싸움이 시작된다.1996년 1심,2000년 2심에서 승소한 그는 2002년 대법원에서 패소했다. 그러나 파기환송심에서 다시 승소해 재판은 지난해부터 대법원에 두 번째로 계류돼 있다.1·2심에서 이긴 사건이 대법원에서 패소하고, 그 사건이 고등법원에서 다시 승소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이제는 감사원보다 대법원이 더 밉다.”는 그는 “내부고발자들을 보상하는 것보다 비리를 저지른 당사자를 처벌하는 것이 더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강조한다. ■‘고발자 보호운동 앞장’ 이지문씨 1992년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양심선언 이후, 이지문(39) 전 중위는 현재 공익제보자와 함께하는 모임에서 내부고발자 보호운동에 앞장서고 있다.1992년 3월 고려대를 졸업하고 학사장교로 갓 부임한 육군9사단에서 군 부재자투표 부정을 고발한다. 무단이탈죄로 바로 구속돼 그해 5월 이등병으로 불명예 제대했고,3년간의 재판 끝에 1995년 승소해 중위로 전역할 수 있었다. 그의 궁극적 목표는 내부고발에 부정적인 한국 사회의 문화를 바꿔가는 것이다. 지난달 30일 만난 그는 “1세대 내부고발이 정치권력에,2세대 내부고발이 공공분야에 치우쳤다면 3세대 내부고발은 일상적인 문제가 대상일 것”이라면서 “하지만 이렇게 내부고발이 활성화되려면 이로 인한 부패척결이 우리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의 말처럼 우리 사회는 이 내부고발자들에게 진 ‘빚’이 많다. 이문옥 전 감사관, 현준희 전 주사, 이지문 전 중위 같은 1세대 내부고발자들은 공익을 위해 ‘사회적 자살’을 감수해야 했다.2세대 내부고발자들도 보호받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였다.2000년 7월 인천국제공항 건설 과정에서 부실한 내장재 사용과 부적절한 설계변경을 감리단이 묵인했다고 양심선언한 정태원(45) 전 감리원은 업으로 삼았던 건설업계로 다시는 돌아가지 못했다. 이 전 중위는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했다.“설문조사를 해보면 시민들은 내부고발로 인한 보복이나 불이익을 가장 두려워한다. 언론에서 내부고발이 우리 모두의 이익이라는 긍정적인 측면을 부각시켜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 [스포츠 라운지] ‘KPGA 50년 개근’ 뒤 아름다운 은퇴 한장상 고문

    [스포츠 라운지] ‘KPGA 50년 개근’ 뒤 아름다운 은퇴 한장상 고문

    ‘한국 골프의 살아있는 전설’,‘한국의 아널드 파머’ 등 화려한 수식어를 단 한장상(69)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고문. 이제 더이상 정규대회에서 그의 모습을 볼 수 없다. 지난 21일 경기 용인 코리아골프장(파72·6440m)에서 개막한 제50회 KPGA선수권대회를 끝으로 50년의 화려했던 선수생활을 마감했기 때문.1958년 이 대회가 시작된 이후 50회를 맞는 동안 단 한 차례도 거르지 않고 출전했던 대회였던 만큼 아쉬움도 컸다. 더욱이 68년부터 71년까지 4년 연속 우승을 포함해 모두 7차례나 우승컵을 들어올려 대회 최다 우승 기록을 보유한 그다. 지난 22일 오후 경기 남양주시 ‘장현그린골프클럽’에서 만난 한 고문은 여전히 후배들을 지도하느라 여념이 없었다.“팔로스윙에서도 힘이 남아 있잖아. 팔로에선 힘이 완전히 빠져 있어야 돼. 클럽을 그냥 들었다 놓는 기분으로 치란 말야.” 칠순의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기력이 왕성했다.“몸은 필드를 떠나지만 마음은 죽는 날까지 필드에 남아 있을 것”이라고 했다. 좀 쉴 때도 됐지만 골프 발전과 후진 양성을 위해 자신이 해야 할 일들이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이란다. 한 고문은 1954년 집 근처 군자리골프장 (현 서울컨트리클럽)을 드나들다 캐디가 되면서 골프와 연을 맺었다. 이듬해 골프장을 자주 찾던 손님으로부터 낡은 아이언 두개(5번과 7번)를 얻어 골프를 시작했다. 한 고문은 “그 손님이 준 채를 들고 남들 흉내를 내가면서 열심히 연습했던 게 뒷날 ‘아이언 샷의 달인’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 것 같다.”고 돌아봤다. 1958년 프로에 입문한 그는 통산 22승을 쌓아올렸다. 시니어투어까지 포함하면 통산 25승.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골프장이 생긴 게 1900년쯤이었으니 골프사의 절반은 그와 함께했던 셈. 프로골프 1세대로서 한국프로골프협회와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를 출범시킨 산파이기도 하다. 그는 50년 선수생활 동안 잊을 수 없는 장면을 회상했다.“66년 일본 도쿄 요미우리CC에서 열린 월드컵 18번홀(파4·420야드)에서 친 세번째 샷은 잊을 수 없어. 비바람이 몰아치는 탓에 핀에 붙인다는 생각으로 쳤어. 그런데 벙커샷이 핀을 지나 3m 지점에 떨어지더니 백스핀을 먹고 그대로 홀컵에 들어간 거야. 내 인생 최고의 샷이었지.”1972년 일본오픈에서 우승했을 때와 같은 해 한국오픈에서 65타를 쳐 코스레코드를 경신했을 때, 그리고 73년 마스터스대회에 출전했을 때도 잊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특히 마스터스 출전은 한국인 최초였다. 그는 아널드 파머를 가장 존경한다고 했다.“아널드 파머와는 마스터스대회 때 처음 만났고,82년 서울컨트리클럽에서 라운딩을 함께 했어. 실력도 실력이지만 인격적으로 훌륭한 분이었다.”고 말한다. 한 고문에게 레슨을 받은 사람 가운데 거물도 적지 않다. 특히 육군 이등병 시절엔 박정희 전 대통령을 가르쳤고, 프로 입문 후에는 삼성그룹 창업주인 이병철 회장의 ‘스승’도 했다. 쌍용그룹 창업주 김성곤 회장, 두산그룹 박두병 회장 등 정·재계의 유력자들이 그의 제자들이다. 일본에서 활약 중인 장익제·구옥희 프로를 수제자로 둔 한 고문은 후배들에게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기량이야 좋아졌지만 근성이 부족해. 골프는 자신과의 싸움이야. 스스로 정신과 육체를 꾸준히 관리해야 하는데 잘 쳤다고 우쭐대고, 못 쳤다고 주눅들어서야 좋은 선수가 될 수 없지.”라고 강조했다. 한장상, 그도 세월의 무게에 겨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가겠지만 ‘한국 골프의 자양분’인 그의 열정과 근성은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글 남양주 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사진 이언탁기자 utl@seoul.co.kr ■한장상 프로필●출생 1938년 3월28일 서울생 ●체격 167㎝,67㎏ ●학교 경동초-피란으로 천막학교에서 중학과정 이수-한영고 중퇴 ●가족 부인 박의순(67)씨와 사이에 아들 성욱(40)씨, 딸 지수(38)씨와 지희(35)씨 ●취미 바둑 ●경력 개인통산 25승(국내 정규대회 19승, 해외 3승, 시니어 투어 3승).1968∼71년 KPGA선수권 4연패 등 대회 통산 7승.1965∼67년 한국 오픈 3연패 등 대회 통산 7승 .72년 일본 오픈 우승.73 년 한국인 첫 PGA 투어 마스터스대회 출전.2007년 8 월21일 KPGA선수권대회 5 0번째 출전. 초대 한국여자프로 골프협회(KLPGA) 회장. 제 6대 한국프로골프협회 회장, 현 한국프로골프협회고문
  • [녹색공간] 환경도 안보다/김제남 녹색연합 정책위원

    얼마 전 강원도 원통에 위치하고 있는 군부대에 환경교육을 하고 온 적이 있다.12사단 신병교육대대 4백여 명의 신병과 간부들이 참석하였다. 한낮에 이루어진 환경교육은 훈련에 지친 신병들에게는 모처럼 주어지는 휴식시간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졸음을 이기며 환경교육을 경청했던 신병들에게 감사한다. 이들은 곧 이등병 계급장을 달고 본격 국방의 의무에 들어갈 것이다. 이곳 부대에 정성들여 만들어 놓은 여러가지 환경시설을 둘러보며 군기지 환경문제 해결의 시사점을 얻을 수 있었다. 최근 반환미군기지가 심각하게 오염되어 있고 미군의 책임 있는 환경정화 없이 한국 정부가 돌려받음으로써 사회문제가 되었다. 이처럼 그동안 군기지는 환경정책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반환미군기지처럼 환경오염 실태가 공개되지 않고 접근조차 어려웠다. 환경문제 해결의 중요한 원칙이라고 할 수 있는 정보공개와 오염자부담 원칙은 군사기밀과 국가안보가 우선되면서 외면되었다. 국방부는 물론 환경부조차 전국의 군기지 환경오염 실태를 조사한 자료가 없으며 군기지 환경문제가 국가정책으로 수립되어 있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지난 시기 ‘안보’라 하면 외부로부터의 군사침입에 대응하는 국가안보를 일컬었으나 유엔개발계획과 같은 국제기구가 인간안보라는 개념을 마련하면서 정치, 사회, 경제, 문화영역은 물론 환경권을 지키는 것까지 시대의 요구에 맞게 변화하고 있다. 국가안보를 이유로 환경정화의 의무를 회피하려는 태도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양심과 정의에서 한참 뒤처져 있는 것이다. 백두대간이나 상수원보호구역처럼 생태계보호지역에도 군 주둔지와 진지가 위치하고 있으며 군부대는 전국에 걸쳐 주민들이 살고 있는 마을과 연계되어 있다. 군사시설이나 군사훈련으로 발생한 환경오염이 방치되어 쌓이면 주변 자연환경과 인근 주민의 건강과 생활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며 회복이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게 된다. 부산 문현지구 옛 육군정비창 토양복원사업이나 원주 1군수지원사령부 토양오염 복원사업처럼 복원에 많은 시간과 예산이 들어가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또한 군부대의 오폐수가 인근 마을의 논밭으로 흘러들어 농경지가 오염된 사례, 군부대 기름탱크에서 새어 나온 기름이 마을의 우물과 하천을 오염시킨 사례가 언론을 통해 실상이 드러나곤 한다. 얼마 전 인천녹색연합은 수도권의 생태축인 백두대간 한남정맥 환경조사에서 폐타이어와 같은 군부대 폐기물로 몸살을 앓는 실태를 알리기도 하였다. 이처럼 군기지 환경문제는 주민이 오랫동안 민원을 내거나 환경단체의 조사활동으로 그 실태가 알려졌고 군 당국은 사후수습조차 소홀했던 것이 사실이다. 최근 들어 환경대대를 창설했다는 소식도 들리고, 녹색마인드를 갖는 부대가 늘어나고 있는 것은 참으로 반갑고 다행스러운 일이다. 앞서 다녀 온 신병교육대대는 환경부대를 창설하려는 정성과 수고가 돋보였다. 작은 생태연못을 만들고 옥상과 벽면에 식물로 녹화를 하고, 인공습지를 거쳐 처리한 오수를 최종 방류하고,10여 가지 종류별 재활용 분리수거함을 설치했다. 그것만으로도 신병들에겐 좋은 환경교육 체험장이었다. 폐자원인 고무가루를 재활용하여 사격장의 탄두회수시설을 설치한 것은 참 기발해 보였다. 흙벽돌로 만든 진지는 폐타이어 진지를 대체하여 쓰레기를 남기지 않고 자연으로 순환하도록 하고 있었다. 그리고 토양오염의 가장 큰 원인이 되고 있는 기름유출을 막기 위해 유류탱크와 배관을 지하에서 지상으로 노출하여 관리하고 있었다. 이 모두 발상을 전환하면 가능한 일이다. 한국의 국방부와 군부대가 녹색마인드를 가지고 군사시설과 훈련으로 훼손된 국토를 복원하고 사전 예방형 환경정책을 세우는 발상의 전환을 기대한다. 김제남 녹색연합 정책위원
  • 나의 엽기 가족 이야기

    나의 엽기 가족 이야기

    박세회. 그의 가족 이야기를 한 번이라도 들어본 사람들은 안다. ’재미있어’라는 말로는 부족할 만큼 정말 ‘독.특.한’ 가족이라는 사실을…. 그래, 그의 가족에게는 뭔가 특별한 매력이 있다. 라이프 스타일이 남다른 거침없이 당당한 박세회 가족. 철저히 그의 시각에서 바라본 가족들의 일상을 들여다본다. ●첫 번째 이야기 나는 외계인 엄마와 살고 있다 ”나는 외계인 엄마와 살고 있다.” 그러면 다들 ‘허허, 나이도 있는 사람이 아직도 엄마라니. 거기다가 외계인은 좀….’하고 심기가 불편해질 테지만 나는 실생활에서 부모님을 아빠 엄마라고 부르기 때문에 내가 여기다가 점잔을 빼며 아빠를 아버지, 엄마를 어머니라고 쓴다면 그건 첫 줄부터 거짓말을 하는 격이다. 그리고 외계인이라는 것은 이제부터 내가 풀어놓을 이야기들이 충분히 설명해 줄 것이다. 먼저 모두가 공감할 만한 얼마 전에 있었던 짧은 이야기 한 토막. ”엄마! 엄마!” 다급하게 엄마를 부르는 동생의 목소리와 팝콘 튀기는 듯한 소리가 요란하게 들린다. 깜짝 놀라 잠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부엌으로 뛰어간다. 찰나의 순간, 방문을 여는 그 순간, 프라이팬 위에서 사방 팔방으로 널뛰던 기름에 불이 올라붙는다. 동생은 무서워서 지켜보고만 있다가 깜짝 놀라 나를 쳐다본다. 순식간에 재난 영화가 된 집안의 시간은 슬로모션처럼 흐른다. 잠시 후 불을 끄고 보니 타고 있던 건 고등어였다. ‘대체 고등어를 불 위에 올려놓고 이 아줌마는 어디 간 거야?’ 그렇게 슬슬 화가 나기 시작 할 무렵 엄마가 그 난리통에도 태연히, 느긋한 걸음으로 화장실에서 나온다. 한 손에는 신문을 들고. ”어? 다 타버렸네.” 순간적으로 숨이 탁 막히며 외계인 아줌마가 저지른 범우주적이고 인간 배타적인 일련의 행동에 혼과 얼이 분리된다. ‘아니 그럼 이 외계인 아줌마는 바깥에서 고등어가 타고 있는데 볼일을 보며 느긋이 신문을 읽고 있었다는 것인가?’ 잠시 후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본다. 거실 바닥에는 양말이며 수건들이 마치 모내기 때 씨 뿌리듯 바닥에 다 말라비틀어진 채로 널부러져 있고 싱크대에는 설거지가 잔뜩 쌓여 있다. 식탁에는 의자마다 티셔츠며 남방 속옷 등이 걸려 있다. 물론 다 마른 채로. 우리 집이 전형적인 24평형 다세대 주택으로 거실과 부엌의 경계가 없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그러니까 방금 전까지 생선이 타다만 냄새가 진동하는 같은 공간에 빨래들이 널려 있는 것이다. 외계인 엄마는 겨울에는 베란다에 빨래를 널면 추워서 잘 마르지 않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우리는 다 알고 있다. 단지 귀찮아서 마루에 던져 놓는다는 것을. 이런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우리 집에서는 종종, 그러니까 ‘하루에도’ 몇 번씩 일어난다. 물론 난 화를 낸다. 매번, 거르지 않고 정성껏 엄마의 잘못된 점을 소리 높여 지적한다. 이번에도 바닥에 이미 말라버린 양말들을 치우며 생선을 구울 때는 프라이팬에 기름을 살짝만 두르고 신문지를 올려놓고, 옆에서 불이 나나 안 나나 지켜봐 주는 수고 정도는 해야 한다고 말해준다. 그것도 귀찮으면 타이머가 있는 오븐을 기백이나 주고 샀으니 한 번쯤 서보라고도 권해본다. 빨래를 왜 생선 냄새나는 거실에 던져놔서는 안 되는지도 조리 있게 설명해 준다. 하지만 외계인 엄마는 내 말에는 관심이 없다.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고등어는 타버렸으니…, 라면 물을 올려놓는다. 대체 이 집은 어떻게 흘러가는 것일까? 물론 일상이라는 주제가 무겁기는 하지만 가사분담에 한해 설명해 보자면, 가족 구성원의 역할 분담을 나누어 설명하기보다는 엄마가 하는 일의 여집합을 따지는 편이 더 빠를 것이다. 일단 엄마는 의식주와 관련된 가사는 연간해선 하지 않지만 ‘가끔 기분이 내키면 뭔가를 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내일 그녀가 어디 가야 하는데 꼭 입고 싶은 옷이 있다면 그녀는 세탁기를 돌려 자신이 입을 옷을 꺼내 넌다. 그리고 나머지 빨래는 세탁기에 방치하거나 바닥에 뿌려놓는다. 가끔 날씨가 좋거나 흥이 나면 설거지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날씨가 오라지게 좋지 않거나 엄마가 아주 흥이 나지 않는 나머지 날들의 가사는 엄마의 여집합인 ‘우리’가 한다. ‘너희 엄만 뭔가 사회생활을 하시겠지’ 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물론 전업주부의 일상으로는 리얼리티가 떨어진다는 것은 알고 있다. 한국의 남성 가장 중에 하루 종일 돈 벌러 나갔다가 집에 들어와서 고참인 엄마의 개인 정비까지 손수 해줘야 하는 이등병 막내 같은 결혼 생활을 28년 동안 견딜 수 있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으니까. 있다면 거짓말이겠지…. 하지만! 젠장! 나는 그런 거짓말 속에서 이미 27년째 살고 있다. 언젠가 이런 이야기를 친구에게 해줬더니 나중에 그 친구가 우리 집에 와서 우리 엄마를 만나보고 하는 말이 한동안 우리 어머니를 샤론 스톤처럼 다이너마이트 같은 성적 매력을 가진 중년 부인 혹은 메릴 스트립 같은 정서적 카리스마를 가진 예술가로 상상했단다. 물론 그 편이라면 이야기가 훨씬 더 타당성 있고 설득력도 있겠지. 하지만 정말 미안하게도 우리 엄마는 전혀 그렇지 않다. 일단은 외견상 보통 ‘아줌마’일 뿐이며 어떤 예술적인 것도 만들지 않는다. 가끔 겨울에는 뜨개질을 해서 아무도 입지 않는 스웨터나 목도리를 만들기도 하고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이상한 조리법을 보고는 키위가 들어간 된장찌개 같은 전위적인 창조도 하지만 매번 성공적이지는 않다. 키위된장찌게는 카리스마는 있긴 했지만…. 여튼 친구는 우리 집을 떠나면서 이렇게 말했다. ”너희 아버지가 어머니를 정말 사랑하시나 보구나.” 그 말을 듣자 ‘아냐 그런 낭만적인 말로 요약할 수 없어. 이 거짓말 같은 “가족”이란 일상 속엔 좀더 무서운 논리가 숨어 있어.’ 바로 그때, 나는 이 글을 쓰기로 결심했다. <첫 번째 이야기 끝>     월간 <삶과꿈> 2007.03 구독문의:02-319-3791
  • “입대전 시국사건 처벌 이유 이등병 강등제대 인권침해”

    군 입대 전에 시국사건 등에 연루돼 형사 처벌을 받았다는 이유로 강등 제대시킨 것은 인권 침해라는 결정이 나왔다. 국민고충처리위원회는 2일 김모씨 등 2명이 제기한 민원에 대해 이같이 결정하고,“김씨 등이 사회 생활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병적 기록을 정정하고 명예회복 조치하라.”고 국방부에 권고했다. 김씨 등은 지난 1992년 집회·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전주지법에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은 뒤 1993년 8월 방위병으로 입대했다. 그러나 1995년 2월 방위병을 제대할 당시 상병에서 이등병으로 강등돼 제2국민역에 편입됐다. 이에 김씨는 “부당한 강등 조치로 인해 취업 등 사회 생활에 불이익을 당했다.”면서 병적기록 정정 등을 요구하는 민원을 제기했다.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20&30] ‘3분의 위안’… 내 마음의 비타민

    [20&30] ‘3분의 위안’… 내 마음의 비타민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내뿜은 담배연기처럼/작기만 한 내 기억 속엔 무얼 채워 살고 있는지/점점 더 멀어져 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비어 가는 내 가슴속엔 더 아무것도 찾을 수 없네/계절은 다시 돌아오지만 떠나간 내 사랑은 어디에/내가 떠나 보낸 것도 아닌데 내가 떠나 온 것도 아닌데’고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는 젊은 영혼들의 영원한 주제가다. 누구나 삶이 괴롭고 고단할 때, 혹은 인생의 터닝 포인트에서 힘이 돼 주는 노래 한 곡쯤은 있다. 요즘 ‘20&30’들의 삶의 나침반을 끌어당기는 노래는 무엇인지 들어봤다. ●노래는 고단한 삶의 동반자 최모(32·여)씨는 캐나다에 온 지 얼마 안 돼 오랜 연인과 이별했다. 최씨는 이민을 원했지만 남자친구는 한국에서 살기를 희망했던 것. 낯선 타향에서의 향수병과 이별의 고통까지 겹쳐 길고 춥기로 유명한 토론토의 겨울은 정말 길게 느껴졌다. 이때 우연히 한인 타운의 술집에서 들은 노래가 자우림의 보컬 김윤아가 부른 ‘봄이 오면’이었다. ‘봄이 오면 하얗게 핀 꽃 들녘으로 당신과 나 단 둘이 봄 맞으러 가야지…/봄이 오면 연둣빛 고운 숲 속으로 어리고 단 비 마시러, 봄 맞으러 가야지’ 최씨는 “CD를 구해 듣고 또 들으면서 봄이 오면 나는 뭘 하고 싶은 지 노트에 빽빽하게 적어 나갔죠. 봄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이별의 아픔과 겨울의 시림, 외국 생활에서 오는 향수도 극복할 수 있었어요.”라면서 지금도 봄이 오면 이 노래를 즐겨 듣는다고 털어놓았다. 회사원 김모(27·여)씨의 동반자는 윤상의 3집 앨범에 실려 있는 ‘달리기’다. 어학연수 갔을 때 김씨는 한여름 집에서 역까지 30분 거리를 돈을 아끼기 위해 걸어 다녀야 했다. 햇볕이 쨍쨍 내리쬐고 그늘도 없는 고통스러운 거리였지만 속으로 ‘달리기’를 흥얼거리면 편하게 걸을 수 있었다.‘1등 아닌 보통들에겐 박수조차 남의 일인 걸/단 한 가지 약속은 틀림없이 끝이 있다는 것/끝난 뒤엔 지겨울 만큼 오랫동안 쉴 수 있다는 것’이란 가사가 마치 인생의 진리처럼 느껴졌다고 김씨는 말했다. 대학생 장모(29)씨의 MP3에는 언제나 바뀌지 않는 노래가 있다. 신해철의 ‘민물장어의 꿈’이다. 장씨가 제대하고 의대에 진학하기 위해 한 평이 조금 넘는 고시원에 틀어 박혀 책과 씨름하던 2002년 주위는 온통 월드컵 분위기로 달아올랐다. 당시 단과학원 선생님은 “너희가 지금은 맘 놓고 월드컵도 보지 못하는 재수생 신분이지만 4년 후에는 멋진 인생이 기다리고 있으니 힘내라.”고 했지만 장씨에게는 되레 비수가 됐다. 군대에 가기 전인 98프랑스월드컵 때 다니던 재수학원 선생님이 같은 말을 했었기 때문이다.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울적했던 장씨는 혼자 맥주를 마시며 손바닥만 한 창문 밖으로 밤하늘을 보고 있었다. 이때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곡이 신해철의 ‘민물장어의 꿈’이었다. ‘저 강들이 모여드는 곳 성난 파도 아래 깊이 한 번만이라도 이를 수 있다면/나 언젠가 심장이 터질 때까지 흐느껴 울고 웃다가 긴 여행을 끝내리 미련 없이/아무도 내게 말해 주지 않는 정말로 내가 누군지.’ 장씨는 “성난 파도 아래 깊은 곳에 한 번만이라도 이르기 위해 외롭게 헤엄치며 아무도 말해 주지 않는 자신의 존재를 깨닫는다는 가사에서 큰 깨달음을 얻었죠. 지금도 힘든 일을 마주할 때면 처음 ‘민물장어의 꿈’을 들으며 흘렸던 눈물을 기억하고 힘을 얻습니다.”라고 나지막이 말했다. 프로골퍼 허모(30)씨는 황규영의 ‘나는 문제없어’를 들으면 축 처진 어깨가 으쓱 올라가는 것을 느낀다고 말했다.‘나의 사람들과 나의 길을 가고 싶어/많이 힘들고 외로웠지 그건 연습일 뿐이야/넘어지진 않을 거야 나는 문제없어’란 가사가 구구절절 가슴에 와 닿는다고 한다. 체육을 전공하기는 했지만 다른 사람들보다 골프를 늦게 시작한 그가 클럽을 내던지고 싶은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이 노래를 듣고 힘을 냈다.“조금 늦었지만 결국에는 좋은 날이 올 거라는 희망이 생깁니다.”라며 활짝 웃었다. ●인생의 나침반을 돌려놓은 노래 초등학교 교사인 강모(28)씨가 교직의 길을 걷게 된 계기는 고등학교 2학년 어느 날 영어 시간에 일어났다. 평소 학생들의 마음을 잘 헤아려줘 인기가 많았던 영어 선생님이 “너희는 공부를 왜 하니?”라며 ‘화두’를 던졌다. 이 질문에 당당하게 대답할 수 있는 친구는 아무도 없었다. 강씨는 “그때야 그냥 남들이 하니까,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공부를 했을 뿐이죠. 특별한 공부의 목표를 입시지옥에 시달리는 학생에게 요구하는 것 자체가 우습게 느껴지던 시절이니까요.”라고 떠올렸다. 그때 선생님은 사이먼 앤드 가펑클의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Bridge over the troubled water)’를 들려 주셨다. 강씨는 “선생님께서 ‘언제나 사람들에게 어려움이 있을 때 험한 물결 위의 다리처럼 자신을 낮추어 사람들을 도와 주기 위해 공부했고, 교사가 됐다.’면서 ‘너희들도 무슨 일을 하든 험한 물결 위의 다리처럼 되기 위해 공부하길 바란다.’고 말씀하셨죠.”라고 회상했다. 결국 강씨는 교대에 입학했고 지금은 초등학생들을 가르치며 인생의 징검다리를 놓아 주고 있다. 최모(29·회사원)씨가 중요한 결정의 순간마다 찾아 듣는 노래는 천지인의 ‘청계천 8가’다. 대학 1학년 때 동아리 선배가 기타를 치며 가르쳐준 이 노래는 난생 처음 들어 보는 민중가요였다. “‘파란 불도 없는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들’로 시작해 ‘우리들의 가난한 사랑을 위하여’로 끝을 맺는 가사는 세상에 나와 다른 세계에서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느끼게 해 줬습니다. 보이는 것만 보던 내 시야를 넓게 만들어준 셈이죠.”라고 최씨는 고백했다. 그는 지금도 이 노래를 들으면 고난을 딛고 일어설 수 있는 뱃심과 다른 사람들을 배려할 수 있는 지혜가 생긴다고 한다. ●‘어쩜 그리 내 상황과 똑 같은지’ 누구나 한 번쯤 유행가 가사가 자신의 처지와 너무나 비슷하다고 느낀 적이 있을 법하다. 요즘 젊은 술꾼들에게 사랑을 받는 노래는 남성 듀엣 바이브의 ‘술이야’다. 시스템 통합(SI) 업체에 근무하는 김모(31)씨는 “‘난 늘 술이야∼ 맨날 술이야∼ 널 잃고 이렇게 내가 힘들 줄이야’란 부분은 정말 딱 저랑 들어맞는 것 같습니다. 내 생활을 그대로 담은 노래 같아 좋아하게 됐죠.”라고 말했다. 김씨는 “처음에는 장난처럼 불렀는데 점차 가사처럼 술에 찌들어 살고 있는 것 같아 불안하기도 합니다.”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회사원 오모(30)씨는 싸이의 ‘연예인’ 덕분에 결혼까지 이르렀다. 지난해 여름 세 살 어린 신부를 맞이했는데 연애할 때부터 ‘그대의 연예인이 되어 평생을 웃게 해줄게요.’란 가사에 힘을 주어 불렀다고 한다. 오씨는 “지금도 내 마음은 그 노래 가사처럼 평생 아내를 웃게 해주고 싶습니다. 지금도 가끔 둘이 같이 노래방에 가면 항상 이 노래를 불러 주곤 하는데 아내도 너무 좋아합니다.”라고 수줍게 말했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김광석 노래의 힘 그의 노래를 들으며 눈물 흘리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최루가스에 녹다운된 대학생들은 ‘아스팔트 열기 속에서’를 부르며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고, 먼지 구덩이 연병장을 구르던 이등병은 그의 노래 편지를 받고 찔끔거렸다. 어설픈 사랑에 가슴 찢어진 청춘은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며 통곡했다. 고 김광석.‘서른 즈음’이던 32세의 나이로 먼 길 떠난 지 11년. 그의 이름 석 자와 그가 토해낸 노랫말을 사람들은 왜 아직도 잊지 못할까.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김광석의 이야기’ 회원들로부터 그의 노래에 대해 들어 봤다. 아이디 ‘msk204’는 “형의 노래는 삶이다.”라고 한마디로 정의했다. 그의 노래가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삶에 끼어들어 삶 자체가 됐기 때문이다. 김광석처럼 사람들의 인생에 풍성한 이야깃거리를 남긴 가수도 흔치 않다. 아이디 ‘09zzz’는 “대학 1학년 때 대학로 ‘학전’에서 처음 광석 오빠의 콘서트를 본 후 오빠가 떠나기 전까지 마치 중독처럼 콘서트를 다녔던 때가 늘 그립다. 마치 대화를 하는 듯한 작은 소극장 안에 웃음과 눈물이 가득 고일 때면 광석 오빠와 그리고 옆에 앉은 사랑하는 이와 한 하늘 아래 살아 간다는 게 참 행복했다.”고 회상했다. 그런 그도 김광석이 떠난 뒤부터는 누구의 콘서트에도 가본 적이 없다. ‘햇살나무’는 군대 이등병 시절 훈련 복귀 도중 선임병이 노래를 시켰던 때를 기억했다.“고민하다가 ‘이등병의 편지’를 불렀다.1절을 부를 때는 혼자였는데,2절을 부를 때는 동행했던 선임병이 따라 불렀고,3절을 부를 때는 트럭 안에 타고 있던 모든 병사들이 같이 불렀다. 노래가 끝나자 병사들 모두는 가슴에 품고 있던 초코파이를 하나씩 꺼내 내게 줬다.” 김광석이 살았다면 43세. 그의 노래를 따라 불렀던 이들도 그만큼 나이를 먹었다. 이젠 그의 노래를 들어도 눈물나지 않을 만큼 딱딱하게 굳은 심장이지만, 사람들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그를 보내지 못할 듯하다.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어둔 저 능선 너머 걸어라 내 젊음아

    어둔 저 능선 너머 걸어라 내 젊음아

    취재 글 : 강성봉 기자 | 사진 : 한영희 ...행군 준비 끝! “지금쯤 아버지는 회사에서 일하고 계시고, 어머니는 학교에서 아이들 가르치고 계실 거예요. 여동생은 학교에서 공부하고, 친구들은 동아리활동을 하거나 데이트하고 있겠죠.” 같은 시간, 57사단 220연대 소속 전상훈 병장은 경기도 불암산 유격훈련장에서 전술복귀행군을 준비하고 있었다. 반합, 수통, 야삽, 판초우의, 활동복, 천막… 20kg이 넘는 군장을 꾸리고 전투화를 손질했다. 발에 물집이 안 잡히게 하기 위해 전투화에 깔창을 깔고 발바닥에 반창고를 붙였다. 오후 3시가 되자 병사들은 군장을 매고 계곡 아래에 모였다. “연대본부 행군 인원 보고, 총원 이십육, 열외 무, 현재원 이십육, 행군 준비 끝!” 오전부터 간간이 흩뿌리던 비는 멈췄고 계곡을 타고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병사들 말마따나 행군하기 딱 좋은 날씨였다. ...힘찬 걸음 내딛고 “불암산 차렷!” 우렁찬 구호와 함께 행군이 시작되었다. 흰색 탄띠를 둘러맨 첨병이 선두에 서고 각 중대의 기수들이 파란 깃발을 펄럭이며 뒤를 따랐다. 유격훈련장 입구에서는 운전병들이 이온 음료수와 껌과 사탕 등을 나눠주었다. 앞으로 열댓 개의 껌과 사탕으로 심심한 입을 달래며 40km를 걸어가야 한다. 훈련 후 복귀행군이라 발걸음은 가벼워 보였다. 오랜만에 하는 바깥구경이라 병사들은 설렌다고 했다. “이게 무슨 꽃이야?” “아까 말해줬잖아!” “목련화?” “아니, 내가 아까 뭐라 그랬나… 음… 연산홍, 연산홍!” 선연하게 붉은 연산홍 꽃잎 아래를 지날 때 병사들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 논두렁을 지나 들꽃이 흐드러지게 핀 강둑을 걸었고, 강물은 병사들의 발걸음을 따라 유유히 흘러갔다. 마을 어귀를 지날 때면 개와 닭이 짖어대느라 온 동네가 시끌벅적했다. “행군은 제 자신과의 싸움이에요. 체력적으로 얼마나 튼튼한지, 정신적으로 얼마나 강인한지 한번 테스트 해보는 거죠.” 멀리 떨어진 도로에 수학여행 버스가 줄줄이 지나갔다. 여고생들이 창밖으로 손을 흔들자 병사들은 침묵에 잠겼다. ...잠시 멈추어 서서 퇴뫼를 지나 병사들은 군장을 벗고 들길에 주저앉았다. 10분간 휴식 시간. 병사들은 담배를 꺼내 물고 군화를 벗고 땀에 젖은 양말을 말렸다. 수통을 돌려 물을 마셨고 어디선가 건빵도 나왔다. 힘들어서 퍼진 이도 있고 아직 쌩쌩한 듯 장난을 거는 이도 있다. 이번이 아홉 번째 행군이라는 강덕윤 상병은 그다지 힘들지 않은 눈치였다. “시간도 잘 가고 재밌어요. 제가 촌에서 살아서 그런지 발이 워낙 튼튼하거든요.” 행군 출발 준비 신호가 들렸다. 병사들의 움직임이 부산스러워졌다. “가스마개 점검!” “수통!” “하이바!” 장구류 점검을 복창하며 병사들은 군장을 매고 일어섰다. 어느새 사위는 어둑해졌다. 저 멀리 험난한 비륵고개가 나타났다. 산으로 올라가니 어둠이 먼저 찾아오고 발소리가 뒤따랐다. 군화에 툭툭 차이는 나무뿌리와 돌덩이. 산새 소리, 나뭇잎 바스락거리는 소리, 총 철걱거리는 소리. 군장 삐걱거리는 소리.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산길엔 거친 숨소리만 들려왔고 조심스러운 걸음마다 부모님 생각, 친구 생각, 헤어진 애인 생각, 갖가지 상념들이 펼쳐졌다. “후반기교육 때부터 여자 친구한테 편지가 안 오는 거예요. 전화하니까 목소리도 예전 같지 않아서 친한 형한테 물어봤더니 다른 남자가 생겼더라고요. 한 달 정도 힘들었지만 그렇다고 제가 맡은 일을 놓을 순 없었어요.” “대학 동기 여자애들은 4학년이 되어 진로 걱정할 때인데 난 나가서 뭐해야 하나 걱정이 많아요. 일, 이등병 때는 그런 생각을 할 시간도 없었는데 이젠 제대가 백 일 정도밖에 안 남다 보니 슬슬 압박감이 들어요. 군대 오기 전에 시간을 헛되이 쓴 게 후회되기도 하고요.” 산마루에 오르니 발밑으로 도시의 불빛이 깔렸다. 흔들리는 불빛에 상념은 멈췄다. 병사들의 입에선 짤막한 탄성이 터졌다. ...낙오는 없다 비륵고개에서 갓바위로 내려와 한 병사가 비틀거렸다. 다른 병사가 재빨리 달려와 부축했지만 둘은 대열의 맨 뒤로 쳐졌다. 체력이 고갈된 병사는 ‘앰비카(앰뷸런스)’에 실려 갔고 그를 부축하던 동료는 흘긋 뒤돌아보더니 바지를 추스르며 대열에 합류했다. 똑같은 군장을 매도 각각의 체력이 다르기 때문에 낙오하는 병사가 생긴다. 이럴 때 병사들은 전우애를 발휘하여 군장을 들어주고 서로를 부축한다. 이 사람이 저런 면이 있었구나. 평소에 무섭기만 하던 선임이 사뭇 달라 보이는 계기가 된다. 부대가 가까워질수록 발걸음은 빨라졌지만, 길은 끝이 없었다. 병사들은 앞사람의 뒤꿈치만 보며 걸었다. 군장은 점점 무거워지는 것 같고 어깨는 마비될 듯 저렸다. 땀으로 가득 찬 군화는 찌걱거리고 발바닥은 뜨거웠다. “지금 제가 느끼는 피곤함과 갈증, 어깨에 둘러 맨 군장보다 훨씬 무거운 짐을 부모님은 짊어지고 걸어오신 것 같아요. 말썽만 부리던 못난 아들 남부럽지 않게 해주기 위해 직장에서는 상사에게 온갖 스트레스 받으면서도 제 앞에서는 힘든 내색 한 번 하지 않으셨어요. 고작 행군하면서 힘들다고 요령 피우려는 지금 제 모습이 부끄럽기만 합니다.” 즐거운 표정을 짓자고 말하는 전상훈 병장, 힘들 때면 노래 가사를 중얼거린다는 김일 일병, 거리의 네온사인을 보며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자신에게 되물었던 이윤직 이병도 마지막 힘을 다해 순화궁고개를 넘었다. 고개를 넘어가는 자동차들이 경적을 울려 병사들의 힘을 북돋아주었다. 곧이어 부대에 도착한 병사들이 외치는 “파이팅! 파이팅!” 소리가 행군의 선두에서 후미로 이어졌다. 가족들과 친구들의 박수와 환호는 없었지만 뿌듯한 성취감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다 왔어요. 다 왔어. 낙오하지 않고 행군을 무사히 마쳐서 기뻐요. 우리 분대원들도 낙오하지 않고 무사히 마쳐줘서 고맙고요. 안전하게 통제해주신 대대장님께도 감사드립니다.” 머릿속으로 무수히 집을 짓고 다시 부수곤 하지만 지금의 집은 바로 이곳. 뜨거운 젊은 시절, 먼 길을 돌아 이제야 집으로 돌아왔다. 고된 행군 중에도 취재와 사진촬영에 협조해주신 57사단 장병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월간<샘터> 2006.07
  • [희망 2007 새벽을 여는 사람들] (3) 응급실 근무 인턴 의사 박현주씨

    [희망 2007 새벽을 여는 사람들] (3) 응급실 근무 인턴 의사 박현주씨

    2007년 새해를 축복하는 축제가 벌어지던 구랍 31일과 지난 1일 새벽 사이. 서울 양천구 목동 이화여대 의과대학부속 목동병원 응급의료센터는 ‘야전 병원’을 방불케 했다. 응급센터 밖에는 긴박함을 알리는 구급차 사이렌 소리가, 센터 내부에는 분주하게 움직이는 의료진의 다급한 목소리와 환자들의 신음 소리만이 감돌았다. 전국이 새해를 맞느라 들떠 있었지만 응급센터는 1분 1초의 여유도 느껴지지 않았다. ●“1주에 비번은 단 7시간 뿐” 응급센터에서는 긴장된 표정으로 정성껏 환자를 돌보는 한 의사가 유달리 눈길을 끌었다.6년 과정의 이화여대 의과대학을 막 졸업한 박현주(27)씨. 그는 지난해 2월 인턴 생활을 시작한 새내기 의사다. “죽을 것처럼 힘들다가도 혼수 상태에 빠져 있던 할아버지가 호전돼 저에게 손 흔들며 일반 병실로 옮기실 때, 보호자 분이 제 손을 꼬옥 쥐고 고맙다고 할 때는 쌓인 피로가 싹 사라지죠.” 그는 응급센터 생활에 대해 조금만 방심해도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전쟁터에 떨어진 이등병과 비슷한 심정이라고 말했다.1주일에 세 번은 ‘24시간+α’ 근무를 하고 나머지 세 번은 15시간을 일하는 살인적인 스케줄이다.1주일에 한 번인 ‘오프(비번)’도 7시간뿐, 밀린 잠을 보충하기에도 부족한 시간이다. 밤이 깊어지자 응급센터는 아비규환으로 변했다. 소아 응급실의 갓난아기 울음소리는 안쓰럽도록 계속됐다. 성인 응급실에는 구급차가 쉬지 않고 환자들을 토해냈다. 밤 10시 45분,119구급차가 들어오자 또다시 긴장감이 감돌았다. 다행히 배에 가스가 차고 혈변이 나오는 평범한(?) 50대 환자로 밝혀지자 “말리그네.”라며 담당의를 제외한 나머지는 고개를 돌렸다.“원래 이 날씨에 119차 타고 오면 심근경색 환자 정도인데…”라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말리그는 ‘악성(malignancy)’에서 나온 은어로 ‘별 것 아닌데 유난을 떠는 환자(혹은 캐릭터)’를 뜻한다. 자정이 되자 곳곳에서 문자메시지를 알리는 ‘삐리릭∼’소리가 울렸다. 병원 안에서 종일 사투를 벌이는 그에게도 바깥 세상과 이어진 끈이 있었던 셈이다. 짬을 내 문자 메시지에 대한 답장을 보내던 그는 “제일 친한 친구도 3주일 전에 만난 게 전부예요. 물론 다른 친구들이 부럽진 않아요. 제가 좋아하는 건데요.”라고 말했다. ●“두경부암 권위자가 되는 날까지 잠은 아껴둘래요.” 이날 오전 10시부터 자정까지 응급실에서 발바닥이 퉁퉁 부르트도록 뛰어다닌 그는 1시간 동안의 꿀 같은 휴식을 뒤로하고 내과로 올라갔다.1일 오후 6시까지 당직근무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병동에서 호출이 오면 총알처럼 튀어가야 해서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쏟아지는 잠을 쫓아 가며 환자를 돌보던 그는 “가장 힘든 기억이요?내과를 돌 때였는데 새벽 4시에 호출받아 두 시간 동안 심폐소생술하고 나서 저도 모르게 펑펑 울었어요. 왜 아무도 알아 주지 않을까란 생각에 서럽기도 했고요.”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날로 그의 응급실 근무는 끝났다.1월부터는 내과로 옮기게 된다. 응급실에서 일한 지난 한 달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은 누구였을까. “배 아파서 오신 분을 ‘배돌이’‘배순이’라고 불러요. 신경은 많이 쓰이지만 괜찮은 편이에요. 문제는 ‘술탱이(술에 취해 온 환자들)’들이죠. 링거를 놓으면 맘대로 주사 바늘을 빼버리고 행패를 부리니 기피 대상 1호예요.”라고 귀띔했다. 그의 꿈은 아직까지 국내에서 미개척 분야에 해당하는 ‘두경부암(頭頸部癌·구강이나 후두에 발생하는 암)’의 최고 권위자가 되는 것. 유난히 도전 정신이 강한 그에게 딱 떨어지는 목표란 생각이 들었다. “새해 소망이요.2월말부터 인턴 딱지 떼고 레지던트 1년차가 되는데 더 열심히 뛰어야죠. 이제 꿈을 향한 첫 계단에 올라섰을 뿐인데요.”라며 활짝 웃었다. 글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산 사람은 살아야”… 진실은폐 악순환

    “동료대원들의 양심선언으로 아들의 죽음에 대한 진실이 이나마라도 풀려 다행스럽다. 이런 일이 다시는 발생해서는 안 된다.” 1996년 강원도 모 교도대에서 자살한 박모(당시 21세) 이교(이등병에 해당)의 아버지는 12일 이 짧은 두 줄의 말로 지난 10년간 한결같이 품어온 한을 달랬다. 이날 대통령 직속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박 이교 사건과 함께 1982년 강원도 제1야전군사령부에서 복무 중 사망한 김모(당시 20세) 하사 사건이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야 진실을 드러낸 것은 부대 관계자들이 진실을 은폐하고 사망원인을 왜곡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군의문사위는 김 하사의 동료로부터 부대 인사계 간부인 B상사가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고 산 사람은 살아야 하니 다른 방법으로 처리하자. 잘 알아서 처리할 테니 함구하고 있어라.”고 말했다는 증언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당시 군수사기관이 김 하사의 사망에 대해 심도있는 조사를 벌이지는 않았다고 지적했다. 박 이교의 자살에 대해서도 “부대 관계자들이 김 하사가 구타로 인해 사망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서도 암묵적으로 침묵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군의문사위는 밝혔다. 결국 처벌이 두려워 진실을 은폐·묵인하는 ‘관행’이 처벌에 대한 감각을 무디게 함으로써 갈수록 폭력을 일상화시키는 악순환 구조를 형성하는 셈이다. 군의문사위는 박 이교 사건에 대해 법무부에 순직 처리를 요청하게 된다. 법무부가 이를 받아들이면 박 이교는 국립묘지에 안장되고 가족에게 보상금과 함께 유족 연금이 지급된다. 하지만 법무부가 군의문사위 결정을 수용하지 않는다면 법률상 강제할 수 있는 수단이 없다. 군의문사위 관계자는 “군의문사위의 결정에는 법적 강제력이 없다는 한계가 있다.”면서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순직처리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 하사 사건의 경우는 사망 당시 이미 순직처리됐다. 하지만 군의문사위는 국방장관에게 사망원인에 대한 재심의를 요청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두 사건의 경우 이미 공소시효가 만료돼 가해자의 형사처벌은 불가능하다. 다만 민사적으로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해 위자료를 받을 수는 있다.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단순死 2건→구타사망’ 첫 규명

    1998년 2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내 벙커에서 권총상(傷)을 입고 숨진 채 발견돼 자살이냐, 타살이냐의 논란을 빚었던 김훈 중위의 사망원인에 대한 진상규명 작업이 다시 이뤄진다. 또 올 1월 대통령 직속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이하 군의문사위·위원장 이해동)가 출범한 이후 처음으로 과거 군 수사당국에서 단순사망으로 처리했던 의문사건 2건이 구타에 의한 사망으로 정정됐다. 군의문사위는 11일 김훈 중위 사건과 관련,“당시 군 수사기록 등을 검토한 결과, 권총의 출처 같은 기초 조사도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자살로 단정해 언론에 발표하는 등 의혹제기 이유가 상당해 조사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앞서 김 중위의 부친 김척(64·예비역 중장)씨는 올해 5월24일 아들의 사인을 밝혀달라며 군의문사위에 진정을 냈다. 유엔군사령부 조사단은 당시 사건 발생 직후 김 중위의 사인을 자살로 상부에 보고했으며, 한·미 군당국과 육군 검찰부도 1998년 4월29일과 11월27일 각각 권총 자살로 결론을 내렸었다. 군의문사위는 이와 함께 1982년과 1996년 각각 복무 중 사망한 김모(당시 20세)씨와 박모(당시 21세)씨의 사인을 조사한 결과 선임자의 구타로 숨진 사실을 규명했다고 이날 밝혔다. 의문사위에 따르면, 사망 당시 육군 제1야전군사령부 예하 전방부대에서 하사로 근무한 김씨는 선임자의 구타로 숨졌으나 당시 군 헌병대는 김씨가 술을 마시고 자던 중 토하는 과정에서 음식물이 기도를 막아 사망한 것으로 처리했었다. 그러나 이 사건을 현장에서 목격한 한 부대원이 24년간 가슴앓이를 해오다가 올해 초 의문사위에 당시 사건 정황을 제보, 진실 규명의 단서가 됐다는 것이다. 또 전환복무자로 강원도의 한 교도소에서 복무한 박씨(당시 계급 이교·이등병에 해당)는 여러 명의 선임자로부터 구타와 심한 욕설 등을 견디지 못하고 목숨을 끊었다. 소속 기관에서는 박씨가 우울증을 앓았고 소심한 성격으로 자살했다고 유가족에게 통보했으나, 의문사위는 “조사 결과 해당 기관에서 사망원인을 축소 은폐한 사실을 밝혀냈다.”고 말했다.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깔깔깔]

    ●백일장 히트작 백일장 끝나고 국어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이번 백일장에 나왔던 글들을 하나씩 평가하던 중 교무실에서 난리가 났다.” “왜요?” “어떤 녀석이 쓴 시 때문이지.” 선생님은 그 시를 정확히 또박또박 읊어 주었다. “제목, 산. 산을 올라가며 오빠 동생, 산을 내려오며 여보 당신.”●이리 와서 파좀 썰어라 김병장이 대원들을 소집시켰다. 김병장:“여기서 검도한 놈 누구야?” 강이등병:“네. 제가 사회에 있을 때 검도 좀 했습니다.” 김병장:“몇단인데?” 강이등병:“이…이단입니다.” 김병장:“이단도 검도냐? 다른 애 없어?” 이일등병:“네. 제가 검도 좀 배웠습니다.” 김병장:“몇단인데?” 이일등병:“5단입니다.” 김병장:“그래?그럼 이리 와서 파 좀 썰어라”
  • ‘복무중 病死’ 30년만에 명예회복

    군 입대 후 얻은 질병으로 사망한 이등병의 죽음이 30년 만에 규명돼 피해자의 명예회복과 유가족에 대한 보상의 길이 함께 열렸다.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2일 “1976년 입대 6개월 만에 숨진 권오석(당시 21세) 이병 사건은 군대에서 훈련도중 생긴 폐결핵이 원인이었다.”는 내용의 중간결정을 내리고 권 이병의 유족들에게 ‘순직군경’에 해당하는 보훈 혜택을 주도록 정부에 요청하기로 했다. 이는 올 1월 의문사위가 활동을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내려진 결정이다. 이에 따라 권 이병처럼 군 복무 중 병사했으면서도 순직 처리가 안 돼 있던 5500여명에 대한 조사가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 위원회에 따르면 권 이병은 76년 3월 제3하사관학교에 입대해 교육훈련을 받다가 폐결핵에 걸려 국군부산통합병원으로 긴급 후송돼 치료를 받았으나 같은 해 8월 ‘중증활동성폐결핵’으로 숨졌다. 병원측은 처음에는 육군본부에 ‘순직’으로 보고했으나 부관감실에서 ‘사망구분 재검토 지시’를 내리자 단순한 ‘병사’로 처리했다. 위원회는 “당시 군은 병사로 처리된 경위를 설명하지 않은 채 고압적인 태도로 유족들에게 이중고통을 안겨줬으며 30년 동안 어떠한 보상도 해주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권 이병의 아버지 권원길(86)씨는 지난 4월 “아들의 사인이 밝혀지지 않았다.”며 진정을 했다. 진상규명위 이해동 위원장은 “89년 개정된 ‘전공사상자처리규정’(국방부훈령 제392호) 이전에 발생한 군 복무 중 병사자 중 순직 처리가 안된 5534명에 대해서도 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마음까지 아물게 한 핸드 크림

    마음까지 아물게 한 핸드 크림

    막 자대에 들어와 모든 것이 낯선 이등병 시절이었다. 11월에 있을 호국훈련을 위해 하루가 멀다 하고 전투준비태세(이하 전면전)를 실시했다. 온몸이 지친 상태에서 나는 백일휴가만을 상상하며 하루하루 힘겹게 버텨나가야 했다. 그날도 어김없이 전면전이 걸렸고 이른 아침부터 소대원들은 군장 꾸리기에 바빴다. 그러나 보직이 무전병인 나는 군장 외에도 통신장비까지 챙겨야 하는 상황이었다. 평소 동작이 그리 빠른 편이 아니라 꾸중을 듣지 않기 위해 나는 능숙하고 재빠른 손놀림으로 준비를 마쳤다. ‘오늘은 욕을 안 먹어서 다행이다’ 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쉰 것도 잠시, 오른쪽 검지손가락의 갈라진 틈으로 피가 흐르고 있는 것이 보였다. 매서운 추위 때문에 늘 부르터 있던 문제의 그 손가락이었다. 통증이 느껴졌지만 난 이를 악물고 훈련에 임했다. 훈련이 끝난 저녁때가 되어서야 상처 부위를 자세히 볼 수 있었다. 꽤 심했다. ‘선임에게 말해서 의무대에 가볼까’‘아니야 지금 훈련 준비 상황이니까 꾹 참고 아물기를 기다리자’ 이 두 가지 생각이 교차된 시점에 내가 택한 것은 후자 쪽이었다. 그 상태로 샤워를 하고 관물대에 앉아서 정리정돈을 하는데 누군가 내 자리에 가만히 다가와 앉는 것이다. 평소 내색을 하진 않았지만 마음속으로 내가 가장 믿고 따랐던 ‘말년병장’이지호 병장이었다. 이 병장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상처 부위에 자신의 핸드크림을 정성껏 발라주었다. 연고가 아니어서 미안하다는 말을 덧붙이며.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이것이 전우애구나, 참 선임의 모습이구나.’ 군대도 사람 사는 곳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 그 순간 뭐라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감동을 받았다. 이젠 이지호 병장도 전역했고, 손가락도 깨끗이 아물었다. 그러나 이등병 시절의 그 일은 지금까지도 나의 가슴속에 영원히 잊지 못할 고마움으로 남아 있다. 한상익_육군 상병, 강원 고성군 죽왕면 월간<샘터>2006.10
  • [클릭이슈] 軍 총기사고 급증…실탄지급 계속 해야하나

    “순간적인 충동으로 총을 쏠 수 있다면, 군에 아들을 보낸 가족들이 어찌 맘 편히 지낼 수 있나요?” “군인은 군인다워야 합니다. 군인이 보이스카우트입니까?” 최근 총기사고로 병사들이 숨지거나 다치는 사건이 잇따르면서, 국방부 홈페이지 등 국민들 사이에서 실탄 휴대를 둘러싼 찬반 논란이 뜨겁다. 초점은 합동참모본부가 올해 4월 중순쯤부터 전방뿐 아니라 후방부대 경계병에게도 실탄 휴대를 의무화하는 ‘경계작전 지침’을 하달한 이후 총기사고가 급증했다는 데 맞춰져 있다. 실제 4월 중순 이후 지금까지 적어도 17건의 총기사고가 발생해 12명이 사망하고 7명이 다쳤다. 반면 올 1월부터 4월 중순까지의 총기사고는 모두 2건에 2명 사망으로 나타나 실탄 휴대 의무화를 전후로 사고 빈도가 확연히 대비됐다. 건수로는 8.5배, 사망자는 6배나 늘어난 셈이다. 실탄 휴대 의무화 조치는, 지난해 몇몇 부대에 민간인이 난입해 경계병들의 총을 탈취해간 사건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런데 막상 지침을 시행해 보니 실탄휴대가 자살이나 탈영의 도구로 악용되는 부작용이 돌출한 것이다. ●“언제 사고날까 살얼음판” 자살하려고 작심한 사람은 실탄이 없더라도 막기 힘들다는 얘기가 있지만, 총기는 본인은 물론 주변 사람까지 피해를 입힐 위험성이 크다는 게 문제다. 더욱이 사병들은 ‘자원’이 아니라 ‘징집’의 형식으로 입대하기 때문에, 군대에 끌려왔다고 느끼는 사병일수록 사고를 칠 가능성이 큰 형편이다. “현실적으로 민간인에게 발포하기도 힘들고, 공비가 출몰하는 시대도 아닌데 굳이 실탄을 나눠줘 위험을 초래할 필요가 있느냐.”는 목소리는 시민들뿐 아니라 일부 장교들 사이에서도 나온다. 한 영관급 장교는 “실탄 휴대 이후 언제 사고가 터질지 모르는 살얼음판”이라며 지침 철회를 희망했다. ●“긴장도 높아져 안정적 병영 생활” 그러나 합참은 지침을 바꿀 뜻이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합참 관계자는 “괴한들이 부대에 난입해 총기를 탈취하면 더 큰 범죄에 악용될 우려가 있다.”며 “군인으로서 최소한의 자위 수단”이라고 말했다. 군 소식통은 “실탄 휴대는 ‘군인정신’을 남달리 강조하는 이상희 합참의장의 소신”이라고 전했다. 장기적으로 실탄 휴대가 병영문화 개선에 촉진제가 될 것이란 주장도 있다. 군 관계자는 “실탄을 휴대하면 긴장도가 높아져 선임병이 후임병을 괴롭히는 일이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합참 “정신교육 강화 부작용 최소화” 합참은 장병들에 대한 정신교육 강화 등을 통해 부작용을 최소화한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이런 의지가 무색하게도 일선 부대에서는 지휘관들이 사고를 우려해 지침을 편법 운용하고 있다는 얘기가 들린다. 경계병의 탄입대(탄창 지갑)를 테이프로 봉인하거나 자물쇠로 잠가 놓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이를 놓고 네티즌들은 “위기상황에는 쓸 수 없고 자살할 때나 사용하라는 뜻”이라고 비아냥거린다. 나아가 어떤 부대에서는 지휘관이 아예 탄창을 모조리 수거해갔다는 제보도 들어오고 있다. 합참 관계자는 “지침 위반 사항이 있다면, 철저한 조사를 통해 시정하겠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대부분의 총기사고가 이등병에 의해 저질러진다는 점을 들어 2명의 경계조 가운데 ‘고참병’에게만 실탄을 지급하는 방안 등 다양한 아이디어가 현역 군인이나 네티즌들 사이에서 제기되고 있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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