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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진흥은 “발전의 추동력”/김문환 서울대교수ㆍ미학(세평)

    ◎「계획수립」에 총의 모의는 정성을 필자는 지금 핀란드로부터 온 흥미로운 문서를 읽고 있다. 「문화발전을 위한 세계의 10년 1988∼1997 핀란드의 국가적 행동계획」이라는 문서이다. 그 취지는 다음과 같다. 『우리의 현대사회에서는 문화적 전망이 종종 경제적 정향과 경쟁을 벌이지 않을 수 없다. 유엔은 1988∼1997년을 우리 사회의 발전에서 문화적 차원을 강화하기 위해 문화발전을 위한 10년으로 선언했다. 이 10년은 전세계적으로 지켜질 것이고 그 목표는 문화적 협력의 증진이다. 핀란드에서는 그 10년이 문교부에 의해 설립된 위원회에 의해 준비되었다. 즉각적인 조치들은 물론 우리들의 사고방식에서의 변화들을 요구하는 그러한 문화적 정치적 문제영역들이 10년을 위한 핀란드의 행동계획속에서 초점을 이룰 것이다. 이 주요영역들은 예컨대 건전한 환경의 보존,소수문화의 지원,학교의 문화중심으로의 전환 등이다. 발전협력에서 이 문화적 국면들을 고려하는 것 역시 필요하다. 핀란드예술가들의 지위 또한 국가적 행동계획의 열쇠영역중의 하나이다. 행동계획은 문화부문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뿐 아니라 개개 시민들의 활용을 위해 의도된 것이다. ○핀란드의 계획을 보고 이 계획이 밝힌대로 인류는 현재 문화에 바쳐진 10년을 살고 있다. 1982년 멕시코시티에서 개화된 문화정책회의에서 그 구체적인 윤곽을 드러낼 때부터 이미 이 계획은 모든 발전에서 문화가 갖는 의의를 강조했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발전을 위한 노력들은 문화적 차원을 또한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전에도 문화가 발전계획들에서 모습을 나타내긴 했지만,그것은 오로지 분리된 정책영역으로서였다. 10년계획의 주요목표인 새로운 발전이념은 문화적 전망이 모든 계획과 정책결정에 침투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것은 새로운 형태의 통합된 사회계획을 뜻하는 동시에 그 목적은 특히 경제계획과 정책결정에 문화적 전망을 옮겨 다루려는 것이다. 주지하는 대로 유네스코는 이 10년계획의 주요목표들을 다음과 같이 규정한 바 있다. 발전의 문화적 차원에 대한 인정,문화적 정체성의 긍정과 확충,문화생활에의 확충된 참여,여러 예술에서의 창조와 창조성의 격려,그리고 국제적 협력의 증진. ○2년간의 토론거치며 핀란드는 행정부가 1982년 의회에 문화정책보고서를 제출한 이후 1986년에는 이미 행동계획의 초안을 마련하여 이를 많은 숫자의 조직ㆍ협회 그리고 기관에 보내어 논평을 구하였다. 그뿐 아니라 스칸디나비아 국가간의 협력체계도 구축하였다. 이와같은 준비를 바탕으로 1987년 봄에 이 계획에 관계된 대규모 세미나를 조직한 후,1988년 11월에 2년을 임기로 한 국가위원회를 설립했다. 예술가협회ㆍ예술행정 그리고 다양한 공공기구들을 대표하는 9명의 위원으로 구성된 이 위원회는 20회에 걸친 회합을 갖고 관계된 주요과제들을 다루어왔다. 그 주요과제중 첫째는 무엇보다도 국가적인 우선순위의 영역들을 규정하는 일이었다. 물론 앞으로도 다양한 시민조직과 기관이 다양한 우선순위를 제시하고 자신들의 입장으로부터 이를 보완할 수 있겠지만,현재로서는 앞에 인용한 다음의 열쇠영역들을 「10년」을 위해 규정한다. 문화중심으로서의 학교,발전협력에서의 문화적 차원의 강화,건전한 환경의 보존,문화적 사회에서의 예술가의 위치,소수문화의 위치와 다문화적 사회의 강화가 곧 그것이다. 만일 여기까지 함께 읽어준 독자들이 있다하더라도,더이상 이런 식으로 계속한다면 곧 다른 기사로 눈을 돌릴 것이 거의 틀림없다. 우리도 근자에 문화발전 10개년계획을 발표했는데 왜 딴나라 이야기만 늘어놓고 있느냐는 질책과 함께 이런 경우에 타산지석이라는 상투어를 사용할지 모르겠으나 필자의 소행은 다분히 의도적이었다. 문화부장관의 발표가 있은 후 언론의 반응은 대체로 다음과 같아 보인다. ①문화에 무슨 계획이 필요한가? ②그것은 자칫 문화를 획일화하지 않을 것인가?,실상 계획의 수립발표가 관주도적이지 않은가? ③자금조달계획이 서 있지 않은 상태에서 너무 황당하지 않은가? 등등. 첫번째에 대해서는 전세계적으로 문화의 역할을 발전의 추동력으로 강조하고 있음을 감안하라고 응수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모든 사회적 차원들 그리고 모든 정책영역에서 이루어지는 정책결정에 있어서 문화적 관점과문화적 구성요소들을 고려해야 한다는 요청이 더이상 묵살되어서는 안된다는 구체적인 표현이 바로 국제적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이러한 계획들의 기초가 된다. 따라서 세번째에 대한 답변도 별로 어렵지 않다. 그것은 곧 경제적ㆍ기술공학적 그리고 양적인 것을 내세우는 주장들에 맞서서 문화유산,쾌적한 환경,삶의 질 그리고 시민의 문화적 복지와 같은 가치들을 존중할 용의를 우리 모두가 얼마나 갖추고 있느냐 하는 반문으로 연결된다. 그러기에 두번째가 가장 어려운 질문에 해당된다. 이는 곧 우리의 경우에도 문화발전을 위한 정책들이 과연 핀란드처럼 공개적으로,그리고 거기에 관여된 개체들이 공적으로나 사적으로 책임을 느낄 수 있는 상태로 계획되고 수행되고 평가되어 왔던가 하는 질문과도 연결된다. 이번 계획의 수립에 많은 사람의 의견이 참작되었다고 하는 보도자료가 사실이라 할지라도 이것은 어디까지나 계획인 만큼 실천단계에서는 우선순위에 대해 좋은 의미에서의 문화관계인사들이나 단체뿐 아니라 다른 정책부문과도 연계된 검토작업이 부단하게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럴 경우라야 문화향상과 아울러 이 계획의 실현을 위한 구체적인 재정확보 방법의 일환으로 구상된 TV문화채널 확보라는 아이디어가 제1TV는 공보처,제2TV는 문화부,제3TV는 문교부,그밖의 민간TV는 기업의 지배아래 둠으로써 종국적으로는 문화퇴보를 결과하게 될 「음모」로 오해되지 않을 것이다. ○국제적 협력 증진도 6월29일자 서울신문의 해외화제는 참으로 참신한 소식을 싣고 있다. 소련 문화부가 문화예술부문에 대한 정부의 푸대접에 항의하기 위해 28일 전예술인과 협력해 소련 전역 모든 연주회장과 극장에서 각종 공연도중 공연을 일제히 5분간 동시에 중단하는 침묵시위를 벌일 예정이라고 니콜라이 쿠벤코 소련 문화부장관이 26일 선언했다는 것이다. 아직도 극장이나 박물관ㆍ전시회장이 없는 도시들이 있으며 문화관련 클럽이 없는 마을들도 있는 등 문화예술부문에서 「비극적인 상황」이 빚어지고 있다고 소련의 문화현실을 개탄하면서 문화예술사업부문에 대한 크렘린의 관심을 촉구하기 위한 항의집회도 동시에 개최할 계획이라는 쿠벤코장관의 예고가 그대로 실행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문화내용이 아니라 문화환경개선을 위한 이러한 발상이 먹혀들 수 있었다면 그는 내일 당장 장관직에서 물러나더라도 한이 없을 것이다. 우리의 문화발전 10개년계획도 이 정도의 결속에 의해 지지ㆍ실천되어야 하지 않을까? 주무장관은 이 안이 국민 모두가 자신을 위한,자신의,자신에 의한,그리고 자신과 함께 만들어진 공유재산으로 여길 수 있도록 계속 보완해 나가야 할 것이다. 그때에야 비로소 이의 실현을 위한 참다운 힘이 생겨날 것이다.
  • “남북대화 거부” 북한의 속사정

    ◎북방정책에 위기감… 한ㆍ소ㆍ중 접근 견제/남북 긴장감 조성,내부단속 겨냥/상식이하 용어로 한ㆍ소회담 노골적 비난/대화재개엔 북경태도가 변수로 한소 정상회담에 엄청난 충격을 받은 북한이 또 다시 남북대화를 거부하고 나섰다. 북한은 13일 남북 국회회담준비접촉과 고위급예비회담의 우리측 수석대표에게 전화통지문을 보내 앞으로 상당기간 남북회담에 불응할 뜻을 내비췄다. 북한은 특히 이날 전통문에서 노태우대통령을 「귀측 당국자」라는 상식이하의 표현을 사용하고 한소 정상회담에 대해서도 『우리의 내부문제를 밖으로 들고 다니며 청탁,구걸하는 식으로 분별없이 처신했다』고 원색적인 비난을 서슴지 않음으로써 그들의 불편한 심기를 직설적으로 드러냈다. 북한은 지금까지 노대통령을 지칭할 때 「최고 당국자」 또는 「최고위급」이라는 표현을 사용,어느정도 우리측 집권자를 예우해 왔었다. 북한의 원색적 비난은 이밖에도 전통문의 여러 군데에서 나타난다. 『민족 내부 문제를 남에게 의존하여 어느 한쪽으로만 끌고 가려는 것은참으로 민족의 장래를 위태롭게 하는 사대행위이며 동족간의 대화를 안중에 두지 않는 반민족적 분열행위』라고 한소 정상회담을 비난한 데 이어 유엔가입문제에 대해서도 『유엔 단독가입이나 동시가입은 현 분열상태를 합법화ㆍ고정화하여 두개의 조선을 만들기 위한 책동』이라고 강변했다. 북한은 이와관련,지난 5월24일 김일성의 최고인민회의 제9기 1차회의 시정연설에서 제기시 「남북 유엔단일의석 공동가입안」이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주장,사고의 편협성을 보였다. 결국 북한의 이같은 태도는 직접적으로 기존의 남북회담을 거부하고 간접적으로는 한소,한중간 관계개선에 제동을 걸려는 다목적용인 것으로 분석된다. 이를테면 북한은 정상회담까지 갖는등 급격히 가까워지고 있는 한소관계 발전속도에 커다란 위기의식을 느낀 나머지 한중 관계개선을 자신들이 저지할 수 있는 마지막 보루로 생각,이를 견제한다는 차원에서 대화를 거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면서 북한은 자신들의 체제가 세상에서 가장 우월한 사회주의제도라는 환상에서 「우리식대로 살자」는 폐쇄정책을 고집해 나갈 것으로 관측된다. 북한이 이날 전통문에서 『우리는 이미 오래전에 필요한 사회개혁을 성과적으로,그것도 철저히 수행해 우리사회를 개방했으며 지금도 우리식대로 사회를 계속 개조하며 완성해나가고 있다』고 거듭 밝혔는데 바로 이 대목이 북한측의 경화된 자세를 대변한다고 분석된다. 북한은 또 남북대화를 거부함으로써 한소 정상회담이후 우리내부에서 일고 있는 「대북개혁ㆍ개방유도정책」 「남북 정상회담실현」 「유엔가입추진」 등 후속조치 마련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동시에 이를 희석시키려는 속셈을 드러낸 것으로 짐작된다. 북한이 국가보안법철폐및 콘크리트장벽철거 등을 계속 주장하고 있는 것도 이런데서 연유한다. 즉,북한은 국가보안법철폐등을 공개적으로 언급하면서 남한내 반정부세력에게 투쟁과제를 제시한 것으로 통일원측은 분석하고 있다. 내부적으로도 대남강경노선을 견지,남북간 긴장감을 조성함으로써 사상투쟁을 강화하고 내부결속을 꾀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고 통일원의 한당국자는 설명한다. 한마디로 북한이 김일성시정연설의 다음 단계로 구체적인 대남제의를 연달아 발표하던 예년과는 달리 대화거부를 들고 나온 것은 예상치 못한 한소 정상회담의 여파로 대남전략궤도를 수정한 것으로 읽혀진다. 북한의 이러한 태도로 볼 때 당분간 남북대화의 재개는 기대하기 어렵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소련의 정치ㆍ경제적 대북압력과 오는 9월 북경아시안게임을 전후한 한중 관계개선등으로 인해 북한의 폐쇄정책이 장기간 지속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남북대화의 활성화는 북경아시안게임 이후에나 가능할 것으로 남북문제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그리고 소련은 대한관계정상화를 공식선언한 만큼 이제는 한중 관계개선에 임하는 중국측의 태도가 남북 대화재개의 중요한 변수로 떠오르리란 전망이다. 결국 남북대화재개 및 이에따른 한반도 긴장완화는 북한의 마지막 이념적 동지인 중국과 우리와의 관계개선 정도에 크게 좌우될 것으로 관측된다.
  • 「아메리카의 새진로」/포린 어페어즈지 진단

    미국은 냉전체제의 종식에 발맞춰 종래의 대외 전면개입 위주의 외교정책에서 벗어나 국내목표와 국제목표,현실과 이상사이에 조화를 갖춘 새로운 외교정책으로의 변화를 찾아야 한다는 주장이 대두되고 있다. 미국의 외교전문지 포린 어페어즈 90년 봄호에 실린 이 잡지의 편집장 윌리엄 G 하일랜드의 「미국의 새 진로」란 논문내용을 간추린다.〈편집자주〉 ◎「냉전의 틀」탈피 미외교 새좌표 선택 고심/이념ㆍ안보 퇴색… 경제문제 주요이슈로 부상/극단적인 고립주의ㆍ범세계적 십자군역 모두 배제해야/“자원한계”인식,현실에 맞는 정책도입 필요 2차대전 이후 지속돼 오던 냉전체제의 변화에 따라 미국은 해외주둔 미군의 대폭 감축을 추구하는등 대소 견제와 대외전면 개입을 근간으로 했던 지난 40여년간의 미외교정책에 새 변화를 모색하게 됐다. 새 외교정책을 모색하는데 있어 중요한 것은 미국의 막강한 힘과 풍부한 자원을 어떤 목표를 위해 쓸 것인가,새 외교정책의 우선순위는 어디에 둘 것이며 이를 위해 어떤 수단을 채택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 될 것인가 등을 결정하는 것이다. 이제까지 전면 개입을 위주로 한 미 외교정책은 동서 양극의 냉전체제 지속과 동측으로부터 제기되는 위협에 대처할 필요성에 따라 당연시됐었다. 그러나 유럽과 아시아의 여러나라들이 새로운 세력권으로 부상함으로써 미소 두 초강대국은 더이상 국제정치에서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기 어렵게 됐으며 또 동구 공산주의의 붕괴와 소련의 약화에 따라 동서 분단의 근본배경이 뒤흔들림으로써 냉전체제 자체가 무너지게 됐다. ○환경ㆍ테러에 큰비중 그리고 지정학적 요소와 군사적 대비태세를 중시했던 냉전체제가 무너짐에 따라 앞으로는 이념이나 군사적인 문제는 뒷전으로 밀려나고 경제적 요소가 주요문제로 부상하는 한편 환경이나 테러와 같은 문제들의 중요성이 커지게 될 것이다. 한편 미국이 아직은 강대국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고는 해도 이젠 과거와 같이 모든 일에 미국이 나서기에는 미국의 자원이 제한돼 있음을 미국은 깨달아야 한다. 따라서 과거 여러 형태의 반공산 동맹을 결속시켜 주던 위협이 점차 사라지고 보다 경쟁적으로 변모해 가는 세계에서 미국은 이제 제한된 자원만으로 보다 정상적(normal)인 외교정책을 펴나가는게 필요하다. 즉 외교정책이 추구하는 국제적인 목표와 점점 더 시급해져 가는 국내정책상의 목표 사이에 경중을 좀더 신중하게 가릴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최근 소위 「평화배당금」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논쟁은 이같은 국내정책과 외교정책간에 빚어질 갈등의 전조가 되고 있다. ○내ㆍ외정책 신중하게 냉전시대에는 국가안보가 모든 것에 우선했지만 이제 그 우선여부의 선택은 점점 더 복잡해지고 있다. 방위비 분담에 대한 미국의 요구가 거세지는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인데 방위비 분담 문제는 앞으로 미외교정책에 있어 중요사안이 될게 틀림없다. 그러면 힘의 균형와 경제안보,인권보장과 자유민주체제의 수호 등 여러 목표들 가운데 미국은 어떤 원칙아래 부담을 떠맡을 것인가. 미 역사에 있어 인권이나 민주와 같은 미국이 추구해온 가치와 지정학적 필요 사이에는 언제나 갈등이 존재했지만 냉전시대에는 인권이나 민주체제가 현실정치에 밀려 뒷전에 처져있어야 했던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그러나 냉전체제가 무너지는 것과 함께 목표와 현실간에 긴장이 다시 높아졌다. 이는 동구에서의 공산주의 몰락,니카라과 선거에서의 차모로의 승리,중국의 천안문사태 등을 놓고 벌어지는 이러한 결과를 가져온게 어떤 정책 때문인지,또 목표와 현실사이의 적절한 균형은 어느 정도인지에 대한 논쟁을 보면 잘 드러나고 있다. 동구의 대변혁과 니카라과 선거에 대한 한쪽의 입장은 대소 견제와 전면개입의 미 외교정책이 이같은 결과를 가져온 직접적 원인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따라서 아직 그 고삐를 늦춰선 안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다른쪽에선 자유와 인권을 향한 인간의 물리칠 수 없는 욕구 자체가 동구와 니카라과의 현상황을 가져온 것이지 미국의 외교정책이 그같은 결과를 부른 것은 아니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또 천안문사건에 대해서도 그것이 비록 야만적 인권탄압이긴 해도 미국의 국가안보를 위해선 중국의 전략적 가치가 너무 중요하다는 주장과 미국의 대중국 관계를 중국의 인권존중 여부에 연계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여기서 미국은 지금 외교정책을 재조정해야 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즉 국가안보와 지정학적 필요라는 이제까지의 우선순위를 인권과 민주체제라는 도덕적 가치로 대체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하며 민주라는 이름아래 외국에서의 반란등을 지원하는 것은 어디까지 가능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로는 지정학적 필요란 현실이 인권이란 이상에 밀리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또 미 외교정책에 그런 변화가 일어난다 해도 외교정책이 추구하는 궁극적 목표는 항상 도덕적 가치의 추구에 있는 것인 만큼 크게 놀랄 일은 아닐 것이다. 냉전시대에는 경제정책과 국가안보사이에 마찰이 빚어지면 항상 안보를 위해 경제가 희생돼야 했다. 그 결과 냉전이 끝난 지금 미국의 경제상태는 위험에 처하게 됐다. 미국경제의 위험한 상태가 어느정도인지에 대해선 여전히 논란이 있지만 현세계를 움직이는 주도적 힘은 군사력이나 정치이념이 아니라 바로 경제력이며 미국은 그 경제력에 있어 이제 주도권을 잃었고 이를 시정하기 위해선 미국경제가 재건돼야 한다는데는 의견이 일치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미국경제를 어떻게 재건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선 아무 처방도 나오지 못하고 있다. ○경제재건 우선 과제 미국 경제의 재건을 위해선 소위 쌍둥이 적자라는 재정적자와 무역적자의 감축이 관건이 된다. 그러나 재정적자의 경우 군사전략과의 마찰로 인해 적자삭감 노력이 지지 부진하며 무역적자의 경우도 대미 최대 무역흑자국인 일본과의 무역 마찰이 미일 동맹관계에 균열을 가져올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에 큰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따라서 미 경제의 재건을 위해서도 먼저 냉전이후 시대의 장ㆍ단기적인 대미 위협에 대한 현실적 평가와 미 외교정책에 있어서 대일 의존도를 어느 정도로 유지할 것인지에 대한 결정을 반영한 새로운 정책이 도입돼야 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중남미의 막대한 외채문제,미국의 외국산 원유에 대한 의존도 증가 등도 국가안보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되고 있다. 이같은 모든 것들이 합쳐져 미국은 결국 과거와 같은 많은 역할을 떠맡기엔 미국의 자원이 너무 제한돼 있으며 이런 경제적 어려움에 대처하기 위해서도 미국은 외교 및 방위정책을 재조정해야 함을 재확인하게 된 것이다. 2차대전 이후 미국의 정치ㆍ경제ㆍ군사적 행동은 소련과의 대결 양상이 언제까지라도 계속될 것이란 전제아래 이루어져 왔다. 그리고 미군의 대규모 해외주둔도 그 지역의 안정을 유지한다는 이름아래 정당화될 수 있었다. 그러나 냉전이 끝나감에 따라 미국은 한가지 근본적인 문제에 봉착하게 됐다. 그것은 바로 미국의 외교정책을 재조정하는데 있어 미국이 해외주둔군을 감축시키거나 대외 공약의 이행을 축소시켜 나갈 때 그로 인해 그 지역의 안정을 해치는 위험에 처하지는 않겠는가라는 것이다. 여기에 명쾌한 대답을 내려줄 원칙은 있을 수 없다. 독일 통일을 예로 들더라도 미국은 통일독일이 유럽의 균형을 깨는 것을 막기 위해 통일독일이 강대국으로 부상하는 것은 견제해야 할 필요성과 소련이 또다시 유럽에 대한 위협세력으로 등장하는데 대비,통일독일이 상당한 강대국이 될 필요성이란 두가지 상충되는 압력을 동시에 받고 있다. 요즘과 같은 화해의 시대에 이처럼 미묘한 문제를 일시에 해결할 정책을 찾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일 수밖에 없다. ○독일문제등 딜레머 지금 미국이 필요로 하는 것은 지난 50년 북한이 한국을 침공한 직후 트루먼대통령이 승인했던 것과 비슷한 새 외교정책일 것이다. 트루먼은 다양한 단계의 봉쇄를 상정해 놓고 여러 기준의 정책을 행할 수 있는 장점을 갖춘 정책을 승인했던 것이다. 미국의 새 외교정책을 모색하는 데 있어 절대적으로 경계해야 할 점은 결코 극단적인 고립주의나 무차별적인 세계적 개입주의에 빠져서는 안된다는 것이다.〈정리=유세진기자〉
  • 알바니아 마저 변하는데… /서병철 외교안보연구원 교수(세평)

    외부세계의 숨가쁜 변화가 국민들에게 알려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지구상에서 가장 고립되고 폐쇄적인 나라는 알바니아와 북한이다. 그런데 최근 알바니아에서 과거의 완고하던 태도를 바꾸어 개혁정책을 채택하고 변화가 나타나고 있어 북한의 개혁과 개방을 기대하는 마음에서 그 내용이 더욱 우리의 흥미를 끈다. ○고립정책 탈피 서둘러 공산당 제1서기 알리아는 지난 4월 중순 당중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알바니아가 유럽공동체와 외교관계를 수립함으로써 경제ㆍ정치 이익을 얻고자 한다고 선언한 바 있으며 이어 5월8일에는 유럽안보협력회의(CSCE)에 참가하기를 희망한다고 공식발표하였다. 알바니아가 고집해온 고립정책중에서 가장 특이한 것은 여러나라가 참여하는 국제기구 특히 경제정책을 공동으로 추구하는 다국 모임을 원칙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었다. 유럽공동체는 물론이고 공산주의 상호원조회의(코메콘)와의 공식접촉을 회피하고 심지어 주변국 모임인 발칸국가회의와 유럽안보협력회의 참여까지 거부해 왔다. 그 이유는 강대국들이 국제기구에서 지역문제에 간섭할 기반을 굳히며 강대국의 조작에 따라 회의가 운영되어 실효를 거둘 수 없다는 것이다. 이와같이 완강했던 알바니아가 국제기구와 관계를 맺기로 한 일이 북한으로 하여금 세계의 모든 나라가 참여한 기구에서 대화를 통하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유엔에 가입하도록 정책변화를 유도할 자극을 줄 것으로 기대해 본다. 알바니아의 국부 호사에 이어 1985년 집권한 알리아는 정책 기본골격을 변화시키지 않는 범위 안에서 외교 노선을 수정하여 모든 나라와 국교를 수립하겠다고 선언하면서도 오직 미국과 소련 두 초강대국과는 결코 타협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였다. 미국과 소련은 지구상의 모든 지역에서 패권 경쟁을 벌이며 군사력 뿐만 아니라 차관과 기술독점을 동원하여 세계 시장을 장악하고 물가를 조작하기 때문에 상종못할 대상이라는 것이다. 특히 소련이 인구 3백만의 조그만 이단국 알바니아에 경제 제재조치를 취하게 되자 이는 정치적 관계악화로 상승하였다. 그후 사회주의권의 결속을 이루고자 소련이 수차에 결쳐화해를 시도하였으나 알바니아는 『인간에게 고뇌를 가져오고 원자무기로 세계를 파멸시키려는 나라와 우호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없다』고 이를 단호히 거부해 왔다. 동서진영을 막론하고 어디서나 높이 평가받는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개혁)정책까지도 유독 알바니아에서만은 『흐루시초프의 수정주의를 발전시킨 것』으로 평가절하되었다. 고르바초프의 「신사고」는 레닌과 스탈린의 이념을 해치는 반사회주의적 발상이며 글라스노스트(개방)도 부르주아 이념을 완성하는 수단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알바니아는 최근 동서진영 강대국간에 성공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군비축소와 긴장완화 추세도 주기적으로 나타나는 일시적 현상에 불과하다고 보는 데 그 이유는 초강대국들이 패권주의와 군비경쟁이라는 못된 버릇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고집스럽던 알바니아가 주변 공산국가들이 앞을 다투어 채택하는 개방정책에 영향을 받아 변화하게 되었다. 알리아는 지난 4월19일 공산당중앙위원회 연설에서 동유럽공산국가에서 일어나고있는 사태를 고려할 때 미국및 소련과의 관계를 정상화하는 문제가 긴급한 의제라고 백기를 든 것이다. ○인권존중,종교도 허용 알바니아는 서방측 국가들과 관계를 수립하고 유럽안보협력회의에 참여하려면 자연히 문제가 될 인권존중에 관한 조치를 5월9일 미리 취하는 선수를 썼다. 알바니아 의회는 국민들에게 보다 많은 권한을 부여하기 위하여 형법규정을 완화시켰으며 폐지되었던 법무부를 복원하고 피의자가 법원에서 변호사와 상의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사형죄에 속하는 항목을 대폭 축소하였으며 연약한 여성에게는 사형이 적용되지 못하도록 배려하였다. 국민들은 해외여행을 위한 여권을 발급받을 수 있게 되었으며 종교의 자유도 허용되었다. 종교를 설파하는 서적이나 유인물을 배포하는 죄에 대한 항목이 형법에서 제외되었다. 알바니아는 1967년 예배와 종교모임이 법으로 금지외어 마르크스의 「종교는 민중의 아편」이라는 경고를 가장 충실히 받아들인 무종교 국가가 되어 왔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30%인 회교도,10%인 기독교는비공식적으로 계속 명맥을 유지하여 왔다. 폴란드와 헝가리등 동유럽국가에서와 같이 레닌의 동상이 녹여져 교회의 종으로 둔갑하는 일이 가까운 장래에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지만 오랫동안 금지되어 온 종교가 활기를 띠게될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개혁이 자리를 굳힌 일부 사회주의국가에서는 교회의 종 만드는 데 필요한 쇳물은 충분하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사람의 모양을 본떠 만든 동상은 불상이 가장 많고 다음이 레닌상이라고 하는데 동의 양으로 따지면 김일성의 것도 크게 뒤지지는 않을 것이다. 알바니아의 고립정책은 수백년에 걸친 이웃국가들의 위협과 침략에 시달린 역사적 교훈의 결과이며 특히 1912년에는 외세에 의하여 나라자체가 붕괴된 경험까지 갖고 있어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1944년이래 공산주의자들은 민족주의와 스탈린주의를 결속시켜 외부로부터의 위협을 근본적으로 단절시킨다는 명목으로 국민을 누르는 고유의 이데올로기를 형성한 것은 북한의 주체사상과도 일맥상통한다. 알리아가 호사에 이어 집권한 후에도 전임자의 노선을답습하고 그의 업적을 높이 찬양하였는데 이는 새로운 집권자가 정치기반을 굳히고 자신의 위치를 돋보이게 하기 위하여 과거의 잘못을 무자비하게 파헤치거나 추종자들을 숙청하는 공산세계의 일반적 경향과는 다른 특징이었다. ○북한의 태도 주목거리 알리아는 호사와 같이 고립주의및 스탈린주의의 대표적인 이론가로 알려져 왔으며 이에 곁들여 실용주의자로도 평가받아 왔다. 이제 알리아는 고립주의를 버리고 연간 1인당 국민총생산이 1천달러 미만에 조랑말과 자전거가 주 교통수단인 중세풍의 뒤떨어진 국민경제를 개발하기 위하여 실용주의를 선택하였다.
  • 중소의 「개혁이견」좁히기 여로/이붕의 모스크바행 안팎

    ◎공산권의 민주화ㆍ소수민족문제 주요의제로 부각/“사회주의노선 지속”이념적결속에 총력 기울일듯 중국 이붕총리가 오는 23일 모스크바를 공식 방문,26일까지 머물면서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과 양국 현안 및 국제정세 등에 관해 논의하게 된다. 이총리의 이번 방소는 지난해 5월 중소정상회담때 고르바초프의 요청에 의한 것이며 그의 양부이기도 한 주은래전총리의 지난 64년 방문이후 중국고위층 인사로는 처음 있는 일이다. 이의 이번 모스크바행이 큰 주목을 받는 것은 미소간 냉전시대 복귀가능성이 엿보이는 등 최근의 국제정세가 짙은 불확실성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데다 중소 모두 개방ㆍ개혁의 후유증을 심하게 앓고 있는 시점에서 이뤄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6ㆍ4천안문사건」이후의 국제적 고립에서 벗어나고 개혁의 부작용에 대해 소측과 공동처방을 모색하기 위해 이번 이의 나들이에 많은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고르바초프의 입장에서도 이번 기회에 중국과의 유대를 강화함으로써 5월말 워싱턴에서열리는 미소정상회담이나 다른 서방국가들과의 협상테이블에서 자신의 입지를 보다 유리하게 만들려는 의도를 지닌 것으로 분석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번 중소회담의 가장 중요한 의제는 소련ㆍ동구 등 공산국가의 민주화와 소수민족 독립 및 종교분쟁에 관한 것들이 될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이는 현실적으로 중소 두나라에 모두 해당되는 난제이기도 한 것이다. 중소가 점차 동병상련의 입장이 돼가고 있는 상황은 지난해 하반기까지만 해도 생각키 힘든 것이었다. 6ㆍ4사건으로 궁지에 몰렸던 중국은 동구에 개혁물결이 거세게 일고 소련도 공산당 일당통치를 포기한다는 방침을 밝히고 나서자 이같은 변화가 고르바초프의 섣부른 페레스트로이카 정책에 기인한 것이라는 비난을 서슴지 않았다. 때문에 지난해 5월 등소평ㆍ고르바초프 정상회담을 통해 정상화의 첫발을 내딛기시작 했던 중소관계를 적잖은 긴장상태로 몰아가기까지 했던 것이다. 그러나 최근 상황은 크게 달라지고 있다. 고르바초프가 리투아니아 공화국의 탈소독립선언에 의외의 강력한 수단으로 대응하고 있으며 미의 개입에 내정간섭이란 이유로 크게 반발하고 있다. 이밖에도 소련공산당은 당내 급진개혁파를 공격하고 나섰고 군부는 그들대로 리투아니아사태 강경진압을 주장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 실정이다. 관측통들은 요즘 고르바초프가 보여주고 있는 단호한 태도와 관련,『그는 공산당독재를 포기한다고만 했을 뿐 결코 마르크스주의와 사회주의를 없앤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면서 그의 개혁도 소의 공산당을 위기에서 건져낸 뒤 더욱 강화시키려는 전략이란 점에 의심할 여지가 없다는 견해를 모으고 있다. 이붕도 지난달 29일 북경에서 소련관영 타스통신 기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사회주의를 발전시키는데에 완전무결한 유일의 방법은 없다. 소련은 그들 나름대로,우리는 우리 현실에 맞는 방법으로 사회주의 완성을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소의 개혁이 사회주의를 버리는 것이라곤 생각지 않는다』라고 밝힌 적이 있다. 같은 맥락에서 볼때 이는 고르바초프와 갖게 될 회담때 리투아니아를 비롯한 다른 공화국들의 소연방탈퇴 움직임에대해 현재 모스크바 당국이 취하고 있는 강경책을 적극 지지할 것으로 보이며 중소 두나라는 이번 회담을 계기로 사회주의노선을 견지키 위해 내밀한 결속을 다짐하는 등 새로운 이념적인 공동전선을 구축하게 될것 같다. 중국은 또 미의 리투아니아 사태 개입으로 미소간에 틈이 벌어질 경우 미의 적극적인 대중접근이 예상되므로 어부지리를 취할 수 있을 것이란 분석도 가능하다. 이붕의 모스크바 방문기간중 중소 두나라는 국경선 철군및 경제협력,과학기술교류 방안등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협의를 하게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경협문제의 경우 두나라 모두 정책실패로 인한 곤경에 놓여 있기 때문에 큰 성과를 거두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 청와대ㆍ민자각계파 내분수습 움직임

    ◎“위험수위”판단…돌파구 모색에 부산/「선 박장관 퇴진­후 청와대면담」방침고수 민주계/「개인차원 얘기」강조…4자회동 성사 기대 청와대/「반민주계 범민정 연합론」대두속 진화작업 민정계/예상밖 파장에 당혹…후유증 최소하 전력 박정무 박철언정무1장관의 「폭탄발언」으로 증폭된 민자당내 민정ㆍ민주계간 내분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당 주요인사들의 수습노력이 가시화되고 있다. 청와대측은 노태우대통령과 김영삼ㆍ김종필최고위원,박태준최고위원대행의 4자회동을 주내에 성사시켜 이번 사태를 마무리 지을 것을 희망하고 있고 김종필최고위원을 비롯한 각 계파 중진들도 수습을 위한 막후절충을 시작했다. 그러나 민주계측은 박장관의 퇴진없이는 문제가 해결될 수 없음을 강조하고 있고 보다 근본적으로는 이번 사태가 향후 당권경쟁과 맞물려 있어 내분양상이 쉽사리 진정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청와대◁ ○…청와대측은 박철언정무1장관의 발언 파문이 조기에 수습되어 민자당이 정상가동 되기를 강력히 희망. ○노대통령 “수습”당부 이와관련,노대통령은 11일 저녁 박준병사무총장과 이종찬ㆍ김윤환ㆍ이춘구ㆍ이한동의원등 민정계 중진의원들을 청와대로 불러 만찬을 함께 하며 당내분 수습에 이들이 적극 나서 주도록 당부. 이날 청와대 회동은 노대통령과 중진들과의 만찬에 이어 중진 5인만이 따로 모임을 갖는 형식으로 2시간가량 진행됐는데 노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3당 통합후 일부 민정계 중진들이 당일을 모른채하고 뒷짐만 지고 있는 경향이 있다고 힐난조로 언급했다는 것. 노대통령은 그러나 내분수습의 구체적 방안은 적시하지 않은채 절충과 설득을 위해 최선을 다하라는 당부만 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박장관을 그만 두게 할 의사는 없는 것 같았다는 전문. 청와대측은 박장관의 발언에 『김영삼최고위원측이 대통령이나 정무장관을 적으로 몰고 간다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한 대목을 놓고 박장관이 사전에 노대통령과 어떤 형태로든 교감을 가진끝에 「포문」을 연 것이 아니냐는 일각의 분석에 매우 신경이 쓰이는 눈치. 노재봉비서실장은 이에대해 『박장관의 발언은어느 누구와도 협의 하지 않은 개인차원의 얘기』임을 강조하고 김최고위원에게는 박준병사무총장을 통해 이같은 뜻을 전달. 노대통령이 박장관의 발언에 진노했다거나 박장관을 엄히 문책하겠다는 얘기를 했다는 후문은 없으며 아무런 의사표시 없이 묵묵히 전말만 보고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박장관의 거취문제에 대해 이번주 내로 있을 노대통령과 김영삼ㆍ김종필최고위원과의 회동결과에 따라 다소 유동성은 있을 수 있으나 기본적으로는 『임명권자인 대통령이 알아서 할일』이라면서도 「퇴진」보다는 「역할축소」및 「근신령」수준일 것이라고 관측. 주내 청와대 회동과 관련,최창윤정무수석은 『최고위원들이 사안의수습을 위해 노력하고 있기 때문에 청와대회담은 그들의 의견을 듣고 당에서 요구하는 시기에 맞춰 이뤄질 것』이라며 『회담시기가 이번 주말을 넘기지 않았으면 한다』고 주내 회동성사를 희망. 최수석은 또 『이왕 청와대에서 최고위원들이 모인다면 박태준최고위원권한대행도 참석하는 것이 모양도 좋지 않겠느냐』고 피력. ▷민정계◁ ○…민자당의 내분이 박철언장관의 발언으로 급속히 확산되자 민정계중진들은 박장관과 민주계를 겨냥한 직접적인 언급을 삼간 채 당내결속과 화합을 거듭 강조하며 진화에 안간힘을 쓰는 모습. ○직접적인 언급은 삼가 박태준최고위원대행은 이날 경북 영양ㆍ봉화지구당 개편대회에서 치사를 통해 최근의 당내갈등 표출이 3당통합에 대한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하며 상호자제를 촉구했으며 박준병총장도 『당내에서 정책이나 이념문제 등을 놓고 논란이 벌어졌다면 그래도 모양이 나았을 텐데』라고 아쉬움을 표시하면서도 청와대 회동에서 해결의 실마리가 풀릴 것을 기대. 이종찬ㆍ김윤환ㆍ이춘구ㆍ이한동의원등 민정계 중진의원들은 이날 노대통령으로부터 직접 갈등해소를 위한 중재에 나서도록 지시받고 나름대로 대민주계 접촉을 시도할 움직임. 이중에서도 구민정총무시절 야권인사와 친분이 두터웠던 김윤환의원이 가장 적극적이며 김의원은 12일중 민주계의 김동영총무를 만나는 것을 시작으로 민주계 인사와의 연쇄접촉을 가질 예정. 지방에 머물다 청와대의 연락을 받고 급거 귀경한 이종찬의원도 당내분 수습을 위한 노력에 동참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있고 이춘구ㆍ이한동의원도 민주계와의 대화를 시도할 것으로 예상. 한때 박장관의 「독주」를 막기위해 공동보조를 취하기도 했던 이들 중진의원들 사이에서는 이번 내분에서 민주계가 승리할 경우 당권이 넘어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때문에 「반민주계 범민정연합」이 필요하지 않느냐는 의견도 대두 ▷민주계◁ ○…민자당내 민주계는 청와대와 민정계의 다양한 채널을 통해 『박장관 발언이 노태우대통령의 뜻이 아니다』는 요지의 해명을 접하고는 「선 박장관 퇴진 후 청와대 면담」쪽으로 전략의 방향을 잡아가는 인상. ○연합전선 구축을 모색 민주계측은 특히 그동안 중립적 위치를 지키던 김종필최고위원이 박장관 발언을 계기로 반박라인에 동참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판단,김영삼최고위원의 기자회견을 통해 청와대 3자회동 선호입장을 피력하는등 김종필최고위원과의 연합전선 구축을 모색. 김영삼최고위원은 청와대와 민정계 중진들로 부터 오는 「위무」전화를 일체 받지 않은 채 『내가 왜 이런 꼴을 당해야 하느냐』며 자신이 직접 강경대응 하겠다고 비분강개 했으나 측근들이 『직접 나서면 모양이 우습다』고 만류. 이에따라 김최고위원은 당기강 확립ㆍ개혁요구ㆍ공작정치근절 등 「일반론」만을 개진하고 측근들이 집중적으로 박장관에 대한 공세를 퍼붓는다는 전략. 황병태의원은 『김최고위원으로서는 이번 사태가 건곤일척의 싸움』이라고 문제의 심각성을 지적한뒤 『노대통령과 박장관간의 인간적 관계를 알고 있으나 이번은 노대통령이 선택을 강요받는 상황』이라며 박장관의 퇴진없이는 문제가 해결될 수 없음을 강조. 황의원은 이어 『김종필최고위원측과 접촉을 통해 김최고위원이 우리를 지원한다는 것을 알았다』면서 『천군만마를 얻은 격』이라고 피력. 민주계의 한 중진의원은 또 『표면에 박장관이 있으나 문제는 보다 근본적』이라고 노대통령에게까지 화살을 돌리며 『모든 정보를 박장관이 독점하고 노대통령의 주변을완전히 둘러싸고 있는 형국인데 이 같은 정보의 통로와 권력의 행사 방식을 고쳐야 한다』고 주장. 이 중진의원은 『아직도 청와대에서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는 것같다』고 청와대측의 각성을 촉구. 박장관의 발언해명과 인책을 요구했던 민주계 11명의원중 서청원의원은 13일로 예정된 자신의 서울 동작갑지구당 개편대회를 『이같은 분위기에서는 도저히 개최할 수 없다』며 무기연기토록 지구당에 지시하는 등 민주계일부에서 정상적 당무할동을 조직적으로 보이콧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주목. ▷박장관◁ ○…박철언장관은 자신의 발언이 예상 이상으로 증폭돼 일파만파의 조짐을 보이자 청와대ㆍ민정계중진 등을 비롯,각계에 발언의 진의를 해명하면서 사태수습에 도움을 요청하는등 후유증 극소화에 노력. ○측근들,심야 대책회의 박장관은 11일 상오 기자들에게 『새 정치체제의 확립을 위해 스스로 인내하고 자제할 것을 다짐한다』고 전제한 뒤 『김영삼최고위원을 정치 대선배로 잘 받들어 모시겠다는 나의 기본자세를 잘 인식 시켜 달라』고 당부.그는 『어제 저녁부터 부산에 있는 김동영총무와 통화를 하려 했으나 연결이 되지않아 황병태의원과 통화,발언의 진위와 보도배경 등을 설명했다』면서 『황의원은 「보도된 내용을 보고 매우 걱정했으며 당혹스러웠다. 박장관의 뜻을 김최고위원에게 전하겠다」고 답변했다』고 소개. 박장관은 또 『10일 하오 신문을 보고 곧바로 박태준최고위원대행,박준병총장,청와대 등에 발언의 참뜻과 경위 등을 설명하고 오해와 파문이 없도록 요청했다』고 전하고 『당권다툼이나 권력싸움을 하는 것 같아 국민들에게 송구스럽다』고 부연. 이에앞서 박장관은 10일 밤 강재섭ㆍ나창주의원 등 핵심측근들과 서울 양재동 자택에서 심야대책회의를 갖고 민주계측의 공세에 대한 대응방안을 논의한 뒤 우선 사태수습에 주력키로 결론을 내렸다고 한 참석자가 전언. 이 참석자는 민주계측을 성토하는 발언도 많았지만 서로 자제하는 것이 대국적 견지에서 바람직하다는데 의견을 모았다면서 『그러나 민주계 의원들이 공식ㆍ비공식 모임에서 박장관에게 공격을 가할 경우 박장관의 참모인 우리가 맞대응 하기로 했다』고 설명.
  • WT,「북한」관련 두 기고문 게재

    미워싱턴 타임스지는 22일 북한의 변화 가능성과 고립 탈피문제를 다룬 두 편의 기고문을 게재했다. 이 기고문에서 헤리티지 재단 객원 연구원 데릴 플렁크씨는 『김일성정권이 우려해야 할 것은 민중혁명이 아니라 쿠데타』라고 진단했다. 또 CSIS(전략국제문제 연구소) 부소장 월리엄 테일러씨는 『지금은 평양이 고립에서 벗어나기에 좋은 기회』라고 지적했다. ◎평양의 황금기회/월리엄 테일러(전략국제문제연 부소장)/선진경제ㆍ기술ㆍ문화 수용않을땐 고사 스페인의 유명한 작가 미겔 데 우나무노는 20세기초 『고립은 최악의 정책』이라고 말한 바 있다. 우나무노의 말이 오늘날 북한사회에서 실증되고 있는 듯하다. 북한은 국제환경의 급변과 통일을 향한 동ㆍ서독의 놀라운 변화를 목격하면서도 고립주의를 고집하고 시대착오적인 냉전시대의 사고를 포기할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북한은 한국이나 미국이 한반도 긴장완화를 위해 그동안 제의한 모든 대화와 신뢰구축 조치들을 거부해 왔으며 그들의 고립정책은 그들 스스로갈망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한반도 통일을 저해하고 있다. 북한은 자주와 자립을 국가 지도이념으로 자랑하고 있다. 그러나 국제적 경제ㆍ기술ㆍ문화의 교류를 외면한다면 북한은 점차적으로 고사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이나 일본ㆍ미국은 북한에 국제적 교류라는 자양분을 제공할 준비를 갖추고 있으며 중국과 소련도 북한사회의 개방을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북한은 지금 비교적 유리한 입장에서 개방을 위한 외교관계를 성사시킬 좋은 기회를 맞고 있다. 그러나 북한이 진정으로 한반도의 긴장완화와 통일 그리고 국제사회에 대한 문호개방을 원한다면 평양당국은 한국이나 미국에 그들의 선의를 확신시키기 위해 ▲테러리즘의 공식포기 ▲한국이 휴선전에 콘크리트 장벽을 설치했다는 등의 대남비방 선전활동 중지 ▲통상ㆍ합작투자 협상재개 ▲한국이 제의한 군사적 신뢰구축조치 수락 ▲핵시설검증 허용 ▲팀스피리트 훈련의 비방중단과 함께 모든 남북대화 재개 등 6가지 조치들을 취해야 할 것이다. 이같은 제의는 평양당국을 비난하기 위한것이 아니라 한반도 통일의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북한이 외교적 이니셔티브를 행사하도록 촉구하기 위한 건설적인 충고이다. 북한은 지금 자신의 이미지를 개선하고 경제를 발전시키며 특히 가장 중요한 한민족간의 화해를 가속화 시킬 수 있는 황금의 기회를 맞고 있다. ◎변화물결속 고도/데릴 플렁크(헤리티지재단 객원연구원)/김정일 권력승계후 군부쿠데타 위험 김일성의 전제정치에 항거하는 대중 봉기의 여건이 북한에 성숙했을까. 불행하게도 그렇지가 않다. 동구의 최근 사태는 정보ㆍ의사전달ㆍ매체 등이 지닌 정치적 영향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동독인의 85%가 서독의 텔레비전을 시청할 수가 있었고 그렇게 몇년을 지나면서 그들은 민주주의의 성공과 이점을 잘 알게 되었다. 루마니아에서 독재자 차후셰스쿠의 실각을 몰고온 티미시와라시의 시위도 따지고 보면 이 지역 주민들이 시청한 헝가리와 유고슬라비아의 텔레비전 보도가 부채질한 것이었다. 루마니아 내의 시위가 전국으로 확산되면서 반대세력을 조직하고 조종하는데 이용된 것은 단파 라디오였다. 김일성 통치에 반대하는 세력이 북한에 어느정도 있다는 것,특히 평양정권 아래서 탄압받고 있는 수백만명 가운데 그런 세력이 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김일성이 강요한 극도의 통제는 공산세계를 탈바꿈 시키고 있는 변화의 물결로부터 이 나라를 격리시키고 있다. 김일성은 그의 왕조의 생존능력에 관해 걱정할 까닭이 있다. 김일성정권이 우려해야 할것은 민중 혁명이 아니라 쿠데타다.정부ㆍ당ㆍ군부내의 불만을 품고 있는 엘리트들은 결국 동구에서 힌트를 받아 변화의 압력을 가할 것이다. 지금은 김일성에게 도전해서 아무도 살아남을 수 없다. 그러나 김이 사망하거나 무기력해질 경우 그의 아들김정일은 공격받기 쉬운 입장에 처할 것이다. 김일성의 정치적 후계 구도에 대한 반대가 당과 군부의 간부들 사이에 어느정도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 평양에 한 시대의 종말이 다가오고 있다. 그러나 김일성 이후의 순조롭고 안정적인 권력 이양에 관한 보장은 없다. 북한의 변화는 향후 수년에 걸쳐 올수도 있고 하룻밤 사이에 시작될 수도 있다. 어느 경우건 북한은 우리가 지금 다른 공산국가에서 목격하고 있는 사태와는 아주 다른 길을 갈것 같다.
  • 대중노선 강화… 당­인민 결속 도모/중국 6중전회 무얼 남겼나

    ◎경제긴축 완화… 개방정책 추진 재확인/개혁파 등용 전인대서 공개,「강성」탈피 지난 9일 북경에서 개막된 중국 공산당 제13기 중앙위원회 6차전체회의(6중전회)가 대중노선강화를 골자로 한 7개항의 성명서를 내놓고 12일 막을 내렸다. 중국관영 신화사통신은 이번 회의의 주요의제가 당과 인민의 결속을 다짐하는 것이었으며 강택민총서기등 당고위 간부들은 정직하고 깨끗한 사회주의국가 건설과 마르크스 사상교육의 강화를 거듭 강조했다고 전했다. 이 통신은 또 이번 6중전회는 국가경제발전이 최우선의 정책과제임을 재확인했다고 밝혔다. 이같은 신화사 발표내용은 비록 크게 눈길을 끄는 것은 아니나 북경당국이 소련ㆍ동구국가들의 민주개혁이 주는 충격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국내경제 여건을 개선,국민들이 보다 잘 살수 있게 하고 「6ㆍ4천안문 사건」으로 실추된 당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회복치 않으면 안된다는 사실을 깊이 인식하게 된 명백한 반증으로 풀이된다. 다시 말해 현 중국지도층은 과거 모택동주의로 복귀,민중속에서 살고 그들의 환심을 얻도록 부패를 척결하고 봉사정신을 발휘해야만 존립이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린 것 같다. 또 같은 맥락에서 볼때 중국당국은 과거 10년동안 경제개방ㆍ개혁을 추진해 오는 과정에서 국민들의 생활을 개선시켜야만 그들로 부터 지지를 받을수 있다는 사실을 깊이 인식한 것으로 분석된다. 천안문 사건이후 그동안 있었던 주요회의 때마다 조자양 전당총서기와 그가 시도했다는 자산계급 자유화에 대해 맹렬한 비난이 가해졌던 것과는 달리 이번 회의에서는 오히려 지난 78년 제11기 3중전회이후 추진해온 개방ㆍ개혁이 옳은 방향이었음을 확인,주목을 끌고있따. 이는 중국의 현실이 경제개방ㆍ개혁을 주도했던 조전당총서기를 더 이상 가혹하게 몰아 붙일 수 없도록 능동적인 경제정책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중국국민들은 이미 지난 10년동안 개방된 문호를 통해 바깥세상을 어느정도 살필 수 있었고 따라서 경제발전과 삶의 질적향상에 대한 기대감이 커졌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이번 6중전회에서 어떤 구체적인 경제개혁 시책이 결의된 것은 아니다. 다만 7개 성명 내용가운데 「모든 정책은 민주적ㆍ과학적으로 결정하고 인민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집행한다」라고 기본방향만 제시했을 뿐이다. 관측통들은 중국당국이 이번 회의에서 기본방향을 밝히는데 그치고 오는 20일 개막될 전국 인민대표대회(전인대)때 이붕총리의 정부업무 보고를 통해 경제긴축의 완화등 성장을 부추기는 시책내용을 설명하게 될 것으로 보고있다. 정치체제의 개혁은 당초 예상됐던 대로 언급되지 않았고 소련ㆍ동구개혁에 대한 논평도 일체 회피했다. 이는 동료사회주의 국가의 민주개혁에 관한 이념논쟁이 자칫 중국국민들에게 공산당 일당전제에 대한 회의와 반발심을 더욱 깊게 심어줄 우려가 있다고 판단한데 따른 것으로 볼수 있다. 이번에 채택된 7개항 성명이 ▲정책수립 민주화ㆍ인민이익 최우선 ▲당간부ㆍ지도급 인사의 민중접촉 강화 ▲사회주의 민주건설 ▲당내 부정부패 척결 ▲청렴한 당풍확립 ▲기층조직에 대한 봉사 ▲미르크스 사상학습으로 된것만 보아도 중국특유의 사회주의를 강조하는데온 힘을 기울였음을 알수있다. 한편 이번 회의에 있을 것으로 예상됐던 요직인사는 공표되지 않고 있으나 국가계획위원회 주임 추가화(저우지아화),광동성장 엽선평(예쉔핑),상해시장 주용기(주룽지)등 3명이 중앙정치국 위원으로 승격,부총리직 등을 맡게 될 것이란 소문이 그치지 않고 있다. 일부 관측통은 중국의 실질적인 최고실권자 등소평이 이들 3명의 요직기용을 주장했지만 강경보수세력의 반대가 워낙 거세 관철되지 않은 것으로도 분석하고 있다. 왜냐하면 추등 3명이 개방지향인데 반해 이들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실각하게 될 도의림부총리등은 중앙통제를 주장하는 강경파의 핵심소장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번 회의가 비공개로 진행된 만큼 어느정도 인사개편의 윤곽이 잡혔더라도 오는 20일 개막되는 전인대에서나 공개될 것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또 지난해 천안문광장 민주화 요구 시위가 4월중순 온건개혁파 호요방전당총서기 장례식을 계기로 발생한 점을 고려,그 이전에 강경파 인사들을 중도파 또는 개혁파로 대체시켜 대내외적인강성 이미지를 순화시킬 가능성이 적잖은 것으로 예측된다 【홍콩=우홍제특파원】
  • 중국 6중전회 폐막/이념교육 강화 천명/7개항 성명서 채택

    【홍콩=우홍제특파원】 중국공산당 제13기 중앙위원회 6차전체회의(6중전회)가 당과 민중의 결속강화를 골자로한 7개항의 성명서를 채택하고 12일하오 폐막된 것으로 중국관영 신화사통신이 보도했다. 그러나 이 통신은 관심의 대상이던 중국고위층 인사개편여부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을 하지 않았으며 관측통들은 이번 회의가 비공개로 진행된 점을 감안,부총리급등의 요직인사가 내정됐다 하더라도 오는 20일 열리는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를 통해 공표될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신화사는 7개항 성명서의 주요 내용이 ▲정책수립ㆍ집행의 민주화 ▲당간부와 국민기층조직의 정기적인 접촉 ▲청렴한 사회주의정부 건설 ▲마르크스주의 교육강화 및 당원들의 대민중 봉사활동전개 등이라고 밝혔다.
  • “타협의 신정치”… 안정통치 기반구축/6공 2년… 치적과 과제

    ◎「5공 멍에」 벗고 비능률적 4당체제 타파/부단한 경제개혁ㆍ민생치안 확립 급선무 노태우대통령이 25일로 취임 2돌을 맞았다. 지난 2년간이 6공화국의 기반을 닦은 통치토대 구축단계였다면 남은 임기 3년은 본격적인 통치에 가속력을 붙여 나가는 집권결실단계라고 할 수 있다. 노대통령의 집권 1기에 해당하는 지난 2년의 치적은 한마디로 민주주의의 하부구조라 할 수 있는 정치제도분야에 있어 민주화를 구축한 것이다. 6공출범과 함께 오랜 권위주의 통치체제는 점차 붕괴되기 시작했고 이 과정에서 국민들의 욕구는 엄청난 폭발력으로 분출했다. 역사의 전환기에 흔히 나타나는 사회기강 해이현상이 두드러졌고 이 과정에서 공권력은 무력화되었다. 과격한 노사분규가 빈발했고 급기야는 자유민주주의체제 도전ㆍ전복세력까지 등장했다. 더욱이 4ㆍ26총선으로 헌정사상 처음으로 초래된 4당체제의 여소야대는 정쟁과 5공청산문제로 일관,전환기적 혼란상황을 더욱 부채질했다. 노대통령은 이같은 상황을 맞아 인내와 자제 그리고 대반전의 결단으로 정치위기를 극복했다. 한동안은 무능과 방치로 여겨질 만큼 혼란상황에 대처를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힘에 의존하는 강경 대응수단을 선택하지 않고 국민의 각성과 공감대가 이뤄지는 때를 기다렸다가 전격적으로 통치의 기반을 구축했던 것이다. 6공출범의 원죄처럼 노대통령 정부의 멍에가 되어왔던 5공청산문제를 작년 「12ㆍ15」 여야 대타협으로 매듭을 지었다. 또한 정치가 생산적이 되지 못하고 걸핏하면 교착상태에 빠지게했던 여소야대의 4당구조 정국을 타파하여 민정ㆍ민주ㆍ공화 3당의 통합을 이룩해냄으로써 안정적인 통치를 위한 정치의 틀을 마련했다. 5공청산ㆍ3당통합을 통해 노대통령은 비로소 본격적인 집권구상을 실천에 옮길 수 있는 통치체제를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지난 2년은 또 6ㆍ29선언 실천의 연장선상에서 정치제도의 민주화는 물론 언론ㆍ인권분야에서도 괄목할만한 진전을 보였다. 6공정부의 최대 외교치적이라고 할 수 있는 북방정책도 헝가리 폴란드 유고슬라비아와의 수교,소련과 영사관계 수립,중국과의 교류,교역협력관계 구축 등 엄청난 성과를 거두었다. 노대통령의 집권5년이 앞으로 역사에 어떻게 기록되고 평가되느냐는 지금부터 시작되는 남은 임기3년 동안에 무엇을 이룩하고 무엇을 남기느냐에 달려있다. 그런 의미에서 집권결실단계의 과제는 크게 보아 민주ㆍ번영ㆍ통일의 목표에 얼마나 근접하게 다가가느냐 하는 것이다. 각종 법령ㆍ제도의 민주화와 함께 정치운영,경제,사회 각분야에 실질적인 민주화를 어떻게 정착시켜 나가느냐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예를 들어 흑백논리에 의한 투쟁과 대결의 정치를 대화와 타협의 정치문화로 끌어 올리고 자유민주주의의 바탕이 되는 건강한 시민사회를 뿌리내리게 하는 것이다. 번영을 위해서는 안정위의 개혁을 부단히 추구해야 한다. 또 지역간,계층간,세대간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모든 정책수단을 적극 강구해야 한다. 이미 노대통령은 경제정의 실현을 위해 토지공개념 확대,금융실명제의 단계적 실시,종합토지세제의 도입 등 경제적 개혁조치를 추진하고 있으나 과연 굴절없이 본래의 성과를 기대할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주택 2백만호 건설,서해안개발사업,농어촌종합대책,고속전철건설 등 전국의 반나절권 교통망 구축,교육개혁 등도 적극 추진하고 있으나 차질없이 이뤄질지 아직은 장담할 수 없다. 통일의 기반조성도 공산국가의 개혁,개방과 자유화 추세로 주변 여건은 좋아졌지만 북한의 고집스런 폐쇄성 때문에 계속적인 남북 신뢰회복의 노력이 요구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노대통령이 당장 해결해야할 당면과제도 결코 적지 않다. 3당통합으로 정치가 나라발전의 걸림돌이 되는 일은 없어질 것이라고는 하지만 현실적으로 특정지역의 고립화라는 문제를 안고 있으며 비록 민자당이라는 하나의 정당으로 모이긴 했지만 3정파가 얼마나 조화를 이뤄 결속될지도 불투명하다. 또 노사ㆍ이념간의 대립이나 갈등이 계속 내연하고 있고 경제의 하강은 좀처럼 회복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밖에 민생치안,교통난해소도 발등에 떨어진 불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노대통령은 집권 3년째를 맞아 우선은 당면 경제위기부터 풀어나가야 한다. 그리고 금년 6월까지는 실시될 것으로 보이는 지방의회선거를 어떻게 우리 민주주의의 한단계 도약의 계기로 만드느냐도 당면과제라 할 수 있다. 집권전반기의 노대통령이 「물대통령」으로 불리었다면 후반기의 노대통령은 확실히 국정을 장악,2천년대의 청사진을 실현할 수 있는 강력한 「불대통령」으로 불리기를 기대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노대통령이 지금까지 진실로 때를 기다렸다면 그 때가 바로 지금이라고 생각된다. 여소야대의 족쇄도 풀어졌고 나아가야할 목표도 분명히 정해진 이상 과감한 실천력만 뒤따르면 남은 임기 3년은 성공적으로 수행될 것 같다.
  • 27개월 만에 간판내린 공화당/여야 넘나들며 4당정국 “조정역할”

    ◎5공청산엔 강경… 3야 결속의 촉매역/중평반대… 평민ㆍ민주 선명경쟁 무력화/영을 재선거 때 한계 실감… “3당통합 산파” 자청 신민주공화당이 통합신당 창설의 삼각파트너인 민주ㆍ민정 양당에 이어 당의 깃발을 내렸다. 공화당은 5일 임시전당대회를 열어 민정ㆍ민주ㆍ공화 3당의 통합을 의결한 뒤 당정리를 위한 수임기구로 당무회의를 지정함으로써 사실상 당활동을 마감했다. 이른바 「박정희시대」로 상징되는 구공화당 이념과 유업의 계승자로 자임,지난 87년 10월30일 「재건」된 뒤 2년 3개월만에 스스로 당간판을 내린 것이다. 공화당의 짧은 이력은 80년 신군부세력의 등장 이후 7년 동안 「무위와 침묵을 강요당했던」 JP(김종필총재)의 정치재개와 이후 그의 정치적 입지를 확대해나가는 시기로 압축된다. 87년말 대통령선거와 이듬해 4ㆍ26총선이 구공화당시절에 대한 국민적 심판을 통해 지난날을 재평가받는 무대였다면 4ㆍ26총선 이후 1년 9개월의 기간은 새 정치 틀에 대한 JP구상과 당의 활로를 모색한 시험기였던 것으로 구분할 수 있다. JP는 87년 가을 정계복귀를 선언하면서 공화당을 창당,곧바로 대통령선거에 출마해 1백80만표를 얻음으로써 그의 정치적 앞날에 대한 가능성을 확인했다. 「1노2김」에 비해 득표율에서는 크게 뒤졌지만 구공화당의 전력이 일방적으로 매도당하고 「민주대 반민주」,「독재대 반독재」의 대결논리가 극에 달했던 당시의 상황을 감안해볼 때 상당한 선전으로 평가됐다. 공화당은 이어 4ㆍ26총선에서 원내교섭단체 구성을 위한 의석확보(20석)가 어려울 것이라는 당시 정가의 예상을 깨고 35석(전국구 7석 포함)을 획득,원내입지를 확고히 마련했다. 4당구조하에서 캐스팅 보트를 쥔 정당으로서 「시시비비론」을 내세워 때로는 야권공조의 대열에서 민정당을 견제하는 데 동참하고 때로는 여권과의 정책연합 등을 통해 평민ㆍ민주 양당의 투쟁일변도의 선명경쟁을 무력화시키는 「조정역」을 향유해왔다. 88년말과 89년초 정치권의 태풍의 눈이었던 중간평가를 반대했고 ▲전교조 결성반대 ▲서경원 문익환 입북사건 등 공안사건에 대한 엄정한 사법처리 요구 ▲통일문제에 대한 과도한 욕구분출 반대와 정부의 신중자세 촉구 등의 입장을 피력했던 부분들을 여권과 인식을 같이했던 현안들로 당관계자들은 분류하고 있다. 또 정호용의원의 공직사퇴와 두 전직대통령의 국회증언요구등 5공청산 방안제시와,경찰중립화법,국민의료보험법,지방자치법 등 쟁점법안처리를 위한 야3당안 마련 등을 통해 야권의 결속력을 과시했다. 요컨대 민주화 과정에서 정책정당의 위상을 확인하면서 여야간 극한대립을 해소,정국안정에 기여한 점 등이 공화당 족적의 밝은 면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공화당이 출범 당시부터 야당다운 자세를 포기,민주화작업을 더디게 하는데 「상당몫」을 했다는 비판적인 시각도 만만찮게 제기되고 있다. 기본적으로 여권성향을 가진 구성원들의 속성으로,국가보안법,안기부법 등 주요 정치성 법안처리 등에 항상 소극적인 태도를 취해 민주개혁을 그만큼 지연시켰다는 일부 야권의 비난이 그것이다. 공화당은 특히 지난해 여름 공안정국을 겪으면서 정부여당보다 더 보수적이고 강경한 입장을 고집,평민당과의 틈새가 회복 불능상태에까지 벌어졌고 영등포을 재선거에서의 참패를 통해 말석정당의 한계를 실감했다. 4당구도의 재편이 이뤄지지 않고는 당의 활로를 모색할 수도 정국안정을 기대할 수도 없다는 판단이 JP의 정계재편 추진작업을 가속화시킨 것으로 추론된다. 결국 JP는 지난해 9월 한달동안의 칩거기간을 거쳐 차기 정국구도에서 우선권을 YS(민주당 김영삼총재)에게 양보하는 방안을 민주당측에 제시,민정ㆍ민주ㆍ공화 3당합당의 시나리오를 완성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제 거대여당에 동승한 공화당이 정치적 안정과 민주화작업을 마무리하는 데 기여했던 정당으로 기록될지 지역간ㆍ계층간의 정치적 갈등을 심화시킨 부정적 이미지의 정치집단으로 평가될지는 앞으로 신당의 정치역량과 밀접한 함수관계를 가질 것으로 예상된다. 신여권인사들과 JP의 구상대로 건전야당이 자리를 잡아 정치적 안정의 틀이 잡힌다면 공화당의 긍정적 역할이 돋보일 것으로 보이지만 정개재편으로 새로운 정치적 격동과 갈등이 심화될 경우 민주화 흐름을 타고 탄생했다가 민주화 완성을 저해시키고 사라진 정당으로 평가절하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 벼랑에 선 공산주의/변혁물결 집중탐구:1

    ◎시장경제ㆍ다당제로의 전환 몸부림/「노멘크라투라」군림에 국민불만 폭발/레닌의 국가론에 반하는 개혁 불가피/동구 자유선거 실시땐 공산당 붕괴는 시간문제 동구와 소련의 격변이 거듭되고 있다. 그것을 바라보는 서방의 시각은 여러갈래며 또한 심상치 않다. 공산주의 내부 모순을 극복해 가는 개혁의 소용돌이라는 측면이 있는가 하면 상당히 위기적인 모습으로 평가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불확실성을 더해가고 있는 공산권의 변혁을 국내 학자들은 어떻게 보고 있는가. 서병철(외교안보연구원교수),박명호(국민경제제도연 연구위원),안정수(경희대교수),박영호씨(한신대교수)등 네분의 다양한 입장의 분석을 차례로 소개한다. 1,공산주의채택 이전으로의 복귀 공산주의국가들이 사회주의 이념을 국가의 통치원칙과 경제운영방식으로 채택한 것은 소련이 종주국가로서 1917년 볼셰비키혁명 때였던 것을 제외하고는 대개의 경우 2차대전이 종결된 1945년 이후 약 반세기 걸친 현실 사회주의 기간이다. 독일 제3제국과 일본군국주의를 패망시킨승전연합국중 하나인 소련은 전리품으로 할당받은 동유럽 국가에서 해방군으로서의 영향력을 행사하여 공산주의를 심는데 성공하였다. 전후 귀국한 런던망명정부 요인들과 기존브르좌 정당 및 공산주의자들이 참여한 첫번째 선거에서 소련에서 훈련된 공산당원들은 소수밖에 정계에 진출하지 못하였으나 소련은 이들을 보안담당 내무 및 국방등 주요부서에 심어 놓고 비공산세력을 제거하여 결국에는 친소정권이 수립되어 공산화되도록 하는 수법이 활용되었다. ○팽배한 반소사상 이와 같은 과정은 독일점령군에 저항하여 독립을 쟁취할 유고슬라비아와 내전을 통하여 공산화할 중국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든 동유럽국에서 예외없이 거치게 되었는데 국민들이 원치않는 공산체제를 외세에 의하여 불가항력적으로 채택한 결과가 되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보면 동유럽국가에서 발생하고 있는 민주화 추세는 본래의 희망이 충족되어 공산화이전의 상황으로 되돌아 가는 순리에 따른 역사적 흐름이다. 소련영향권에 속한 나라들에 있어 반소사상이 팽배해 있는 현상은공산주의를 강요한데 대한 적개심의 발로이다. 또한 프롤레타리아가 주인이라는 공산국에서 기대했던 「근로자의 열광된 노동」이 있어 본적도 없는 사실은 공산이념의 본질적 취약성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소련은 고르바초프의 선견지명때문에 난처한 입장에서 구제되었다고 보겠다. 그는 1987년 11월 볼셰비키혁명 70주년 기념연설에서 『소련공산당은 동맹국의 정책에 간섭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하고 소련과 다른 사회주의 국가간의 관계가 수직에서 수평으로 바뀌었음을 분명히 하였다. 그는 또한 1988년 12월 유엔총회에서 사회주의 국가들이 나라사정에 맞는 노선을 채택할 수 있다고 연설하여 페레스트로이카(개혁)정책을 재확인하였다. 이러한 정책변화를 선언해두지 않았던들 소련은 동유럽동맹국들이 시장경제와 다당제를 채택하여 고삐를 벗어나는 것을 허용할 명분을 찾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브레즈네프 독트린의 망령을 다시 불러들여 무력을 동원하여 간섭할 상황도 아니기 때문에 극히 난감한 입장에 처하게 되었을 것이다. 고르바초프는 긴장완화의 산파로서 서방진영에서 높이 평가받고 동유럽에서는 개혁을 허용한 유공자로서 「고르비선풍」을 일으킬 만큼 인기가 높고 소련에게는 체면을 살려준 선각자이다. 2,개혁의 복합적 원인 독일철학자 카를 마르크스는 공산주의 사상의 이론적 근거를 제시한 「역사적 유물론」을 통하여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로의 변천은 역사적 법칙으로 어느 누구도 중단시킬 수 없으며 자본주의는 몰락할 것이라고 단언하였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오늘날 공산권에서 현실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역사적인 사건들에 의하여 잘못된 예측의 결과이었음이 증명되고 있다. 정치이념으로 무장되어 전쟁까지도 불사하도록 만들었던 장본인인 마르크스가 수모를 피할 수 없게 된 이유는 정치ㆍ경제ㆍ사회 등 모든 분야의 복합적인 요인에서 찾아볼 수 있다. ○침체ㆍ낙후만 초래 공산주의 정치는 「프롤레타리아독재」를 실현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정당이 국가위에 군림하여 모든 권력을 장악한다는 제한성을 애초부터 갖고 있기 때문에 국민들의 뜻이 제대로 정치에 반영될 수 없다. 따라서 통제와 감시가 주된 통치수단이 되고 국민들의 불만은 축적되어 기회만 있으면 터질 수 있는 상태에까지 발전하였다. 경제적으로도 사회주의건설을 위하여 중앙계획통제체제속에서 당지도부에서 국민경제행위를 엄격한 규격속에 묶어 운영한 결과 침체와 낙후만을 초래하였다. 국민에게 생활의 질을 높여주기 위하여 과감한 경제개혁이 불가피하게 되었는데 이제는 자본주의와의 체제경쟁적 관점에서가 아니라 물질적 풍요를 바라는 국민들의 요구를 들어주기 위하여 시장경제를 채택할 수 밖에 없다. 사회주의국가에 있어 이론상의 지배계급은 노동자와 농민이며 이들이 나라의 주인으로서 공산주의 정당을 통하여 특권을 행사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근로자를 중심으로 한 일반국민은 하층계급을 형성하고 당간부 및 정치ㆍ경제 엘리트로 구성된 지배층에 대층되는 만년 서민역할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론과 실제가 다른 현실에 불만족하는 국민의 울분이 축적되어 과감한 개혁만이 문제해결의 방법이 되었고 신흥귀족으로 형성된 「노멘크라투라」를 혐호하는 국민감정은 개혁을 가속화시키는 촉매제가 되었다. 3,시장경제로의 변화 마르크스는 사회경제발전 이론속에서 자본주의가 사회주의로 변천하기 위한 조건을 제시하고 사회주의가 고도의 경제성장을 가져온다고 선언하였는데 레닌과 스탈린이 이를 바탕으로 공산주의 중앙계획통제 경제체제를 확립하였다. 일사불란한 지휘체제속에 움직이는 이제도는 제한된 자원과 노동력을 단기간안에 동원할 때에는 그런대로 효험이 있었으나 경제구조가 다양화되고 국제협력이 확대되면서 필요로하는 활력을 주지 못하여 침체만을 유발하는 제도로 탈락하였다. ○개인 창의성 결여 중앙계획제도가 풍부한 천연자원과 잠재노동력을 가진 광활한 땅 소련에서 조차 쓸모없는 것으로 낙인찍힌 것은 고르바초프가 집권한지 1년만인 1986년 2월 개최된 27차 당대회에서 과감한 경제개혁을 강조함으로써 비롯되었다. 계획된 수량생산에만 치중하고 시장ㆍ분배ㆍ서비스ㆍ판매에는 소홀하며 개인창의성을 높이려는 노력이 결여된 이 제도가 통용된 사회주의권 전체가 침체의 늪에서 허덕이고 있는 상황에서 신속히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적 시장경제를 도입하는 것이 유일한 처방으로 인식되게 되었다. 시장경제체제가 오늘날에는 모든 동유럽 국가에서 국민을 잘 살게 해 주는 특효약으로 받아들여지고 사회주의권 공동번영을 위하여 소련에 의하여 적극 권장된다. 시장경제 체제로의 개혁은 처음 헝가리에서 1968년 니에르쉬 사회당수(당시 경제연구소장)의 제창으로 시작되었는데 헝가리가 사회주의 국가중에서 최초로 작년 2월 한국과 국교를 수립하여 북방정책에 첫번째 결실을 맺게 했던 나라라는 점을 고려할때 헝가리의 진취성은 모든 분야에서 돋보인다. 4,다당제의 채택 공산주의 국가들이 일당독재 통치를 하면서 이론적 받침대로 삼아온 레닌의 국가론을 보면 국가는 사회주의 건설을 계획하고 완수하는 것을 목표로 하여 그 존재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국가는 지배계급인 노동자층의 전위기능을 가진 공산주의 정당의 교시에 따라서만 통치되도록 되어 비공식 정당의 정치참여가 사실상 금지된다. ○일당독재 쇠퇴 그러나 알바니아를 제외한 모든 동유럽 국가들이 금년 상반기안에 자유선거를 실시하여 작년에 시작된 정치개혁을 제도적으로 마무리 지을 계획을 세워놓고 있어 다당제 채택은 기정사실화되었다. 소련에서도 공산당의 지도적 역할을 명시한 헌법6조를 개정하기 위한 공산당 중앙위원회가 현재 개최중에 있다. 자유선거가 실시되면 공산주의정당은 자연 소멸하거나 최소한의 의석만을 갖는 군소정당으로 전락할 것이 분명하다. 폴란드에서 공산국으로서는 처음으로 작년 6월 하원의석의 35%만이 허용된 제한적 자유선거가 실시되었을 때 자유노조가 의석을 석권함으로써 국민들이 공산당을 발붙이지 못하도록 혐오한다는 사실이 나타난 바 있다. 이는 헝가리공산당이 사회민주주의적 정당으로 탈바꿈하게 하는 자극제가 되었고 동독ㆍ불가리아ㆍ체코에서도 공산당이 체질개선을 서두르도록 만들었다. 피를 흘린 혁명에 의하여 차우셰스쿠 정권이 타도된 루마니아에서도 총선거가 실시될 계획으로 있어 모든 동유럽 국가에서 다당제가 채택된다. 5,이념에서 떠나 군사ㆍ경제적으로 결속 동유럽국가 사람들이 「동유럽」이라는 표현을 싫어하고 「유럽」혹은 「중부유럽」으로 불려지기를 바라는 마음은 공산주의 체제가 열등한 것으로 일반적으로 인식되어지기 때문이다. 공산주의는 공동이익을 추구하는 집단을 결속하는 응집력을 상실했고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집착해 볼만한 이념으로서의 매력도 잃었다. 소련은 고르바초프의 「신사고」로 새로운 사태발전에 능숙히 대처하고 있듯이 공산권의 질적 변화를 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에 동조하는 것으로 수용할 것이다. 소련은 폴란드의 마조비에츠키 비공산내각이 바르샤바조약기구와 코메콘의 회원국으로서 의무와 책임을 다할 것이라고 서약한 예를 다른 동맹국의 새정권에도 요구할 것이다. 작년7월 부카레스트에서 개최된 바르샤바조약 군사자문위원회에서 소련은 통합의지를 강하게 부각시켰고 회원국의 탈퇴불가 원칙을 재확인한 바도 있다. 또한 경제적으로 코메콘회원국간 협조가 이루어지지 않고 나라별 개혁이 기구구조와 일치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 1992년 완성될 유럽공동체 시장단일화에 적응키 위한 공동시장 건설이 적극 추진된다. ○집단결속력 상실 동유럽국가들이 다투어 추진하는 시장경제와 다당제채택은 국민들의 열망을 배경으로 하기 때문에 후퇴란 있을 수 없다. 한번터진 봇물은 막을 수 없으며 만약 전체주의적 보수세력이 저항한다면 이는 역사적 추세를 거스르는 것이므로 루마니아에서와 같은 피를 흘리는 혁명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서병철 ■서울대독문과졸 서독쾰른대(정치학) 수학 ■서독 본 대학교 정치학 박사 ■서독 국제문제연구소 연구위원 ■서독 라인차이퉁(일간신문)기자 ■저서=▲자주외교론 ▲통일을 위한 동서독관계의 조명 ▲변모하는 공산권
  • “이젠 한길로”… 9시간 마라톤 대좌/청와대 통합회담ㆍ각당의 표정

    ◎노대통령 직접설명에 의총,박수로 환영 민정/중진들,신중속 이기택씨 합류 시사 민주/의원 대부분 “국민신뢰 얻는데 주력” 공화/“국민주권에 대한 반란행위” 신랄한 비난 평민 ▷청와대◁ ○…22일 상오 10시 청와대 대식당에서 열린 민정ㆍ민주ㆍ공화 등 3당합당을 위한 노태우대통령과 김영삼ㆍ김종필총재의 3자회담은 하오 7시까지 합당에 따른 세부문제등을 무려 9시간 동안 진지하게 논의해 청와대회담 가운데 「최장마라톤」 회의를 기록. ○…회담을 마친 노대통령과 두 김총재는 하오 7시 정각 기자들이 기다리고 있는 대접견실에 나란히 입장,이날 합의한 「새로운 역사의 항로를 위한 공동선언」을 노대통령이 TV와 라디오로 전국에 중계되는 가운데 낭독. 노대통령이 높이 10㎝의 연단에 올라서서 공동선언문을 읽어가는 동안 김영삼 민주총재는 노대통령의 왼쪽에,김종필 공화총재는 오른쪽에 서 있음으로 해서 공동발표 형식을 취했지만 이날 공동선언문 발표현장의 모습은 3인의 공동대표라기 보다는 노대통령을 좌장으로 「우 YS 좌 JP」의 분위기를 연출. 노대통령은 공동선언문을 통해 『현재의 정치구조가 오늘의 국가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 지난 2년간의 결론』이라며 『자유와 민주의 이념을 함께 나누며 정책노선을 같이하는 정치세력이 뭉쳐 정책중심의 정당정치를 실천하는 것이 시대적 요청』이라고 역설. 노대통령이 15분간에 걸쳐 공동선언문을 읽는 동안 김종필총재는 두 손을 앞에 모아 경청했고 김영삼총재는 뒷짐을 지고 시종 상기된 표정. 노대통령은 공동선언문을 모두 낭독한 뒤 옆에 서있던 두 김총재의 손을 마주 잡고 사진기자들을 위해 다정한 포즈를 잡기도. ○…공동선언문 발표가 끝나자 최창윤정무수석비서관은 『회담도중 자신이 4차례나 불려들어가 합당세부절차에 따른 세분의 확인사항에 대해 답변을 하거나 관계자료를 제시했다』고 밝혀 3자의 회담이 세부사항에 대한 논의까지도 이뤄졌음을 시사. 최수석은 노대통령이 총재를 맞고 김영삼총재가 대표최고위원을 맞는 안은 논의되지 않았느냐는 물음에 『지도체제 문제도 깊이 있게 논의됐으나 일단 전당대회까지는 3인이 공동대표로 하되 그 이후의 구체적인 문제는 15인 통합추진위가 결정할 것』이라고 말해 다소 이견이 있었음을 시사. ○…노대통령은 이날 회담이 끝난 뒤 청와대에서 열린 민정당 의원총회에서 『3당이 통합해 정계개편을 한 것은 우리 헌정사에 있어 처음있는 명예혁명』이라면서 『앞으로는 국민에 부담을 주고 나라발전에 장애를 주는 정치는 지양돼야 한다』고 강조. 노대통령은 또 『오늘의 3당합당으로 야당도 지역성을 탈피하게 돼 지역성문제는 90년대에 크게 개선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하고 『민정당은 낡은 껍질을 깨고 새로워져야 하며 오랜 야당의 길을 버리고 희생적으로 들어오는 새 동지를 포용,새 정치풍토를 이룩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고 역설. ○…노대통령과 두 김총재는 회담장인 대식당에서 2시간20분 동안 얘기를 나누다가 회담장을 나와 1백여m 떨어진 한옥연회장인 상춘재로 자리를 옮겨 낮 12시40분부터 하오 2시20분까지 1시간40분 동안 오찬회담을 계속. 노대통령과 양 김총재는 지금까지의 청와대회담과는 달리 피아가 아닌 같은 아군분위기 속에서 얘기를 나눴다고. ▷민정당◁ ○…청와대회담 시작시간에 맞춰 22일 상오 10시부터 중앙당사에서 민정ㆍ민주ㆍ공화 3당의 합당에 따른 당 중진들의 의견을 수렴했으나 이미 전날 자세한 내용을 통보받은 탓인지 합당원칙에는 이론을 제기치 않고 합당에 따른 문제점만을 보완해 줄 것을 요구하는등 당초 예상보다는 조용한 분위기. 민정당은 이날 하오 7시35분 청와대에서 당총재인 노대통령 주재로 의총을 열어 3당합당의 배경과 당위성에 대해 노대통령으로부터 직접 설명을 들었는데 참석의원들은 전혀 이의를 달지 않고 박수로 총재의 뜻에 환영을 표시. 민정당은 이처럼 소속국회의원들에 대한 당차원의 행동통일 「의식」과는 별도로 이날 낮 중앙당사에서 사무처요원들을 소집,박준병총장이 통합추진 경위를 설명한 데 이어 23일에는 상ㆍ하오에 걸쳐 사무처요원과 지구당위원장 결의대회를 잇따라 열어 당의 진로를 설명하기로 하는등 내부결속에 계속 신경을 곤두세우는 모습. 이에 앞서 민정당은 21일밤 서울 롯데호텔에서 확대당직자ㆍ고문연석회의를 긴급 소집,통합추진과정과 청와대회담 개최배경을 설명하고 곧이어 안가로 자리를 옮겨 통합에 따른 당의 입장을 최종 점검. ▷평민당◁ ○…신당창당이 발표된 이후 평민당은 김대중총재의 표현대로 「비장한 분위기」가 감싸여 있는 가운데 민정ㆍ민주ㆍ공화의 지도부에 대한 성토로 일색. 김대중총재는 22일 의원직 총사퇴와 내각제 개헌을 묻는 총선을 실시할 것을 요구하는 총재단회의의 결의를 이례적으로 기자들에게 직접 설명하면서 『3당통합은 대의정치와 선거제도에 대한 쿠데타이며 국민주권에 대한 반란행위』라고 비난. 평민당 당직자들은 『오늘부터 사실상 양당체제가 시작된 만큼 앞으로 김영삼ㆍ김종필씨의 상대역은 부총재급이 맡아야 하며 총무ㆍ총장회담에서도 평민당의 상대역은 각 1명씩으로 제한해야 할 것』이라고 비아냥. 특히 평민당에서 신당으로 갈 의원이 2∼7명이라는 소문과 관련,가능성이 있는 의원들이 거론되며 설왕설래하고 있으나 김대중총재는 『믿어지지 않는다』는 한마디로 일축. 김총재는 하오 4시쯤 『더이상 논평할 것이 없다』면서 당사를 떠나 동교동 자택으로 직행한 뒤 측근인사외의 일체면담을 사절,착잡한 심기를 노출. ▷민주당◁ ○…청와대회담을 마친 민주당 김영삼총재는 22일 하오 7시35분쯤 당사에 돌아와 상기된 표정으로 청와대회담의 경과를 설명. 김총재는 『민주자유당이란 명칭은 내가 제안했고 노대통령과 김종필총재가 좋다고 해서 채택됐다』면서 『약칭을 민주당으로 하자는 얘기까지도 했었으나 이견이 있어 나중에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고 소개. 김총재는 『앞으로 국정전반에 관해 깊이있게 의견을 나누게 될 것이며 3자가 1주일에 최소한 한번은 만나기로 했다』고 밝혔으며 『이 시간 이후 민주당이 여당이냐』는 질문에는 『국가경영에 책임지는 것』이라고 우회적으로 시인. 김총재는 이날 설명에서 『내각제문제는 잠시 논의했으나 내가 천천히 얘기해도 되는 문제라는 점을 주장,깊이 얘기하지 않았다』고 밝혀 알려진 것과는 달리 아무 결론이 나지 않았음을 거듭 강조해 눈길. 김총재는 『거국내각 구성 또는 민주당 입각문제를 논의했느냐』는 질문에 『함께 경영한다는 말에 모든 것이 포함되지 않았느냐』고 말해 부정하지 않는 태도. 한편 이날 이기택총무가 『신당 합류를 적극 검토중』이라고 김총재 노선에 대해 사실상 승복의사를 밝힘에 따라 민주당내에서 신당참여에 회의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인사는 최형우 김정길 노무현 장석화 김광일의원과 김상현부총재 정도로 압축되기도. ▷공화당◁ ○…이날 하오 7시45분쯤 마포 당사로 돌아온 공화당의 김종필총재는 당무회의실에서 기다리고 있던 대부분의 소속의원들과 일부 원외지구당위원장 출입기자들에게 밝은 표정으로 30여분 동안 회담내용을 설명. 김총재는 『특별히 말씀드릴 것은 없고 공동선언문에 담긴 내용이 주요 골격』이라고 운을 뗀 뒤 『9시간의 회담중 신당창당 이후 어떤 일을 하고 어떤 방법으로 해나가야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부분이 가장 길었다』고 소개. 김총재는 지자제실시 연기방안이 제기되고 있다는 보도등에 대해서도 언급,『당초 약속된 대로 시행키로 확인했다』고 밝히고 『거국내각 구성에 대한 논의는 전혀 없었다』고 지적. 김총재는 특히 신당창설 움직임 이후 지역감정이 다시 노골화 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에 대해 『고의로 어느 지역이나 특정인물을 배제한 적도 없고 제한을 둔 적도 없다』고 강조하고 『4당체제 자체가 지역적으로 분할돼 있었던 만큼 이번 신당창설이 단계적 치유방법이 될 것으로 믿는다』고 해석.
  • 「여대야소」 신 정국의 향방 긴급(대담)

    ◎신당 권력구도 적응,내부통합이 과제/외피적 통합… 대화ㆍ타협으로 극복해야/야 극한투쟁… 정국대립 첨예화 예상/중도 탈피,혁신정당화가 평민 활로/비호남ㆍ호남 대결 우려… 「지역감정 해소책」 기대 노태우 대통령과 김영삼 민주ㆍ김종필 공화당 총재가 22일 청와대에서 긴급회담을 갖고 민정ㆍ민주ㆍ공화당을 주축으로 하는 신당창당에 합의함으로써 앞으로의 정국이 숨가쁘게 돌아가게 됐다. 특히 2년여동안 지속되어 오던 4당체제가 신당의 출현으로 「여대야소」의 2당체제로 탈바꿈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정치풍토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신당창당 선언을 계기로 정계개편의 의의와 전망 및 문제점을 송복 교수(연세대) 신희석 교수(외교안보연구원)의 대담을 통해 알아본다. □참석자 송복 신희석 ▲송교수=민정ㆍ민주ㆍ공화 3당을 주축으로 한 신당 출현은 한국정치사의 물줄기를 바꿔놓는 대지진으로 받아들여집니다. 특히 통합신당은 정치지도자들의 담합합의에 의해 이루어진 정치적 행위의 소산이라는 점에서 한국정치사의 대사건이라 하겠습니다. 일본에서는 50년대 보수대연합이 이루어졌지만 우리와는 정치적ㆍ사회적 환경이 달랐다는 점입니다. 동경대에서 정치학을 전공한 신박사는 어떻게 보시는지요. ▲신교수=3당합당 선언에 따른 정계개편은 한국정치사에 있어 파격적이고 획기적인 의의를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기존정당의 통폐합은 적지 않게 이뤄졌지만 여당,야당세력들만의 통폐합에 불과했습니다. 이번과 같이 정치지도자,이념을 전혀 달리하는 3개정당이 동시 통합한 예는 이웃 일본정치사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대변혁입니다. 3당통합은 현 4당구조의 고질적 병폐인 지역감정이 탈피될 수 있다는 긍정적 측면과 함꼐 상당히 빠른 속도로 개편작업이 이루어진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3당통합은 여러모로 일본 자민당창당과 비교됩니다. 일본 자민당은 지난 55년 보수주류와 비주류간의 통합으로 결성된 이래 지금까지 정권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 일본 상황과 현재의 우리 사정을 살펴볼 때 크게 3가지 유사점을 발결할 수 있습니다. 첫째 양측 모두 획기적인 정계개편을 이뤘다는 점이고 둘째 이러한 개편이 국내정치의 전환기에서 나왔다는 점입니다. 셋째로는 학생운동 및 노동운동 등 이데올로기 투쟁으로 야기된 위기감을 보수정치권이 감지,이를 모면하겠다는 배경을 공통분모로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같은 유사점에도 불구,양측간에는 근본적인 차이점이 노정되고 있습니다. 먼저 일본의 통합은 내각책임제하에서 이뤄졌지만 우리의 경우 대통령중심제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또 일본은 당시 보수파간의 통합인 만큼 혁명적인 것으로 볼 수 없지만 우리는 전혀 이념을 달리하는 3당간의 통합이기 때문에 가히 혁명적이라 표현할 수 있습니다. 즉 일본은 주류와 비주류에 의한 보수통합인 반면 우리의 경우 보수여당과 중도야당간의 통합이라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당시 일본은 2차대전 종전 후의 과도기적 체제였지만 우리는 서울올림픽 개최등 국력향상과 민주화 물결속에 선진국으로 가는 길목에 있습니다. 국제정치상황도 50년대는 미소간의 대립냉전기였지만 현재는 신보수주의 물결속에서 경제제일주의를 추구하는 쪽으로 바뀌었습니다. 결국 일본은 당시 사회당ㆍ공산당 등 야당의 강력한 등장에 보수세력이 위기의식을 느껴 이에 대한 견제수단으로 통합을 추진했지만 우리는 민주정치 안정과 효과적인 정국운영이라는 측면에서 3당통합을 추진한다는 데 큰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송교수=2년전 국민들이 만들어준 4당체제를 정치지도자들이 자의적으로 바꾼다는 점이 이번 신당창당을 부정적으로 보는 일부 시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정계개편 추진이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고 받아들여지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때문입니다. 첫째 우리의 정치상황은 90년대를 맞았으나 60년대의 초기민주주의 구도 그대로이기 때문에 역사발전에 맞게 바뀌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1인당 GNP 80여달러에서 현재 50배가 되는 4천여달러로 급성장했으나 정치구도는 30여년전이나 똑같아 사회발전에 걸림돌이 되고 있어 대다수 국민이 정계개편의 필요성에 합의하고 있습니다. 둘째 지금까지의 4당체제는 각당의 이념ㆍ지향ㆍ정책이 다른데서 연유한 것이 아니라 지역성에 기인하고 있어 적어도 인위적이라도 4당구조는 전진적으로 개편되어야 한다는 점이고 셋째 평민당이 비교적 선명성을 내세우지만 혁신정당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4당 모두가 보수당이기 때문에 정책과 이념대립보다는 지역성ㆍ감정적 싸움으로 극한상황으로 치닫기 쉽다는 점입니다. ▲신교수=송교수 말씀에 기본적으로 동의합니다. 우리나라와 일본이 정치풍토ㆍ사회구조ㆍ정치문화 등에서 유사한 점이 많은 만큼 일본 자민당 모델에 의한 3당통합은 필요불가결하면서도 바람직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일본은 의원내각제ㆍ양원제ㆍ권력분산형태를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대통령중심제ㆍ단원제ㆍ중앙당중심체제로 짜여진 우리 정치상황과는 분명히 다릅니다. 또 야당의 존재양상도 서로 다른데 일본의 경우 사회당ㆍ공명당ㆍ민사당 등 야당지도자들이 대권에 도전하겠다는 야심을 갖고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들 야당은 정책이나 이념을 중심으로 구성됐고 총재직도 순환임기제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반면 우리 야당은 지도자들이 하나같이 대권도전 의사를 갖고 있으며 정책ㆍ이념이 아닌 인물ㆍ지역에 의해 정당이 만들어져 정당의 인물화ㆍ지역화 현상이 두드러지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파벌간 영수에 의해 대권교체가 손쉽게 이뤄지는 일본 자민당 정권모델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겠습니다. 사실 일본 자민당이 35년 이상 장기안정속에 정권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파벌정치를 통한 견제와 균형에 기인합니다. 그러나 우리 정치에서는 이러한 「뿌리」가 없기 때문에 자민당식으로 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송교수=신교수 말씀대로 50년대의 일본 자민당과 90년대의 우리 정치환경은 다르지만 이번에 민정ㆍ민주ㆍ공화 3당이 합의에 의해 개편하게 된 데는 나름대로의 정당성이 인정된다고 하겠습니다. 민정당이 집권당임에도 불구하고 「여소」라는 상황에서 정국을 열어가는 데 한계성이 있었으며 민주ㆍ공화당이 야당이라고는 하나 제1ㆍ제2당 싸움에서 제3ㆍ제4당은 정국운영의 뒷전으로 밀려나정치현장서 사라지지 않나 우려하고 있어 정계개편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됐다고 하겠습니다. 이로 인해 3당은 내각제 개헌의 필요성을 인정,개헌수준의 정계개편을 도출하기에 이르렀다고 하겠습니다. 미국 하버드대의 사무엘 헌팅턴이 『양당제는 영국과 미국에서만 잘 운영되어오나 고전적인 이 제도는 정치사적 측면에서는 현대적이지 못하다』고 말했듯이 2차대전 후 프랑스ㆍ영국ㆍ스칸디나비아제국 등 세계각국의 보편적 정치구도는 거대한 「통합정당」과 이에 대응하는 「0.5정당」이라는 사실입니다. 이 「0.5정당」이야말로 「통합정당」이 국정기능을 수행하지 못할 때 국민들의 거부로 쫓겨나게 된다는 점을 지적,경고적인 정당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하는 것입니다. 지난 50년 이후 일본에서는 자민당 이외의 여타정당은 경고적인 「0.5정당」이었으며 이번 3당의 할당도 전후 자유주의국가 정당의 보편적인 정당개편 유형에 속한다고 하겠습니다. ▲신교수=일본식의 정치구도 도입이 우리 정치상황에서 어떤 문제점을 노출시키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신당내부의 정치질서 재편성인데 지금까지 3당은 여야로 나뉘어 대립과 갈등을 반복했다는 사실을 두고볼 때 과연 외형적인 통합 뿐만 아니라 실제적인 통합을 이룰 수 있는지 의문시 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도 대립과 갈등이 아닌 대화와 타협에 의한 상호인정으로 해결될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다음으로 그동안 야당지도자로 군림해 왔던 김영삼총재와 김종필총재가 신당내에서 어떠한 지위를 차지할 것인지도 중요한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최근 일 자민당내에서 거론되고 있는 총재와 내각총리대신 분리론과 마찬가지로 신당의 총재와 국정최고책임자를 분리시키는 방안도 검토될 수 있을 것입니다. 신당창당에 이은 내각책임제 개헌은 대통령중심제보다 강력한 리더십이란 측면에서 뒤떨어지는 만큼 남북분단의 현실을 안고 있는 우리로서는 앞으로의 과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송교수=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3당이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한 개의 이름아래 3세력이 필요시에는 힘을 합치고 평소에는 떨어져 있는 「분권구도」라는 느낌입니다. 신당의 「분권구도」에 우리 정치인들이 얼마나 잘 적응할 지가 앞으로의 문제입니다. 조선조 이후 지금까지 우리 국민은 「집권화구도」에 익숙해 왔기 때문에 동업자적 조직운영인 「분권구도」에 정치인들이 얼마나 익숙해질 수 있느냐가 신당운영 성패의 관건입니다. 이에 비해 일본 사회는 분권화에 익숙하며 자민당을 중심으로 이같은 구도가 잘 이어져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 통합신당의 내부문제로는 그동안 3김이 정치자금의 센터역할을 맡아와 정치집단의 축을 이루고 있었는데 통합후에도 정치자금의 주축역할을 하게 되면 신당이라는 한 우산 아래에서 분열의 소지가 남아있다고 하겠습니다. 이밖에 신당출현이 호남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평민당을 고립시킴으로써 정국을 호남 대 비호남으로 갈라놓을 우려가 있습니다. ▲신교수=기존의 다당화에서 양당화 현상으로 이양돼 대립과 갈등이 첨예화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입니다. 또 평민당은 통합신당에 거의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이번의 3당통합이 자칫 호남세력과비호남세력으로 편가르기하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더욱이 신당의 장기집권이 예상되는 만큼 새로운 야당은 만년야당이 될 수밖에 없고 이로 인해 극단적인 대여투쟁을 전개할 것으로 점칠 수 있습니다. ▲송교수=신당이 나타나면 정계구도도 보혁구도로 탈바꿈되어야 합니다. 평민당은 앞으로 보혁의 양날개에서 탈피,혁신정당으로서의 외모를 보여줘야 하며 국민들도 이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평민이 중도 온건으로 남으면 우히려 운신의 폭이 좁고 존재 이유도 명확하지 못합니다. 평민당이 재야세력등 혁신을 대변하는 정당으로 탈바꿈할 때 평민의 구조도 튼튼해질 것으로 확신합니다.
  • 심층분석 신당과 내각제설의 반경

    ◎“개편태풍”… 정계 「지각변동」 어디까지 정계개편 바람이 정국을 강타하고 있다. 연초부터 정가를 뒤흔들기 시작한 정계개편 논의는 점차 구체화되면서 민족민주세력연합 또는 중도연합을 표방하는 거대신당 결성 움직임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고 이에 대한 반발세력의 활동도 적극성을 띠는 모습이다. 정계개편을 둘러싼 정치권 내부의 다양한 의견과 움직임 등을 점검하고 문제점과 전망을 진단해본다. ◎언제 어떻게 이뤄질까/외형은 “헤쳐모여”,내용은 “합당” 유력/통합추진세력,“지자제전 실현” 총력 ○개편 진도 정치권의 정계개편 행보는 중도세력연합을 표방하는 거대신당결성 움직임으로 점차 가시화되는 단계에 이르렀다. 신년초에 민주당 김영삼총재가 지자제전 정계개편 추진을 표명하고 공화당 김종필총재와의 골프회동을 통해 7개항의 발표를 한데 이어 민정당 박준병사무총장이 「내각제전제 정계개편」이라는 여권의 정계개편 추진의사를 밝히는 수순을 밟으며 점차 그 윤곽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이 거대신당의 결성을 추진하는세력들은 여권내의 일부 노태우대통령 측근인사들과 민주당주류,공화당 등으로 보여진다. 그리고 정치권이 그동안 정계개편을 위해 밟아온 수순을 되짚어 볼 때 이들 세력들 가운데 야권측은 개편의 당위성에 대한 공감대확산 등 분위기조성 작업에 주력하고 여권측은 이를 막후에서 후원하는 동시에 민정당을 중심으로 한 범여권 내부의 정지작업을 맡는 일종의 역할분담을 해온 것으로 여겨진다. 이같은 분석은 적어도 민정ㆍ민주ㆍ공화 3당의 주력을 망라하는 대연합이 어느 일방의 주도로 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점을 감안하면 충분히 뒷받침된다. 또 3당내의 중도연합신당결성을 추진하는 핵심인사들의 논리가 기묘할이만큼 똑같다는 점도 이같은 분석을 뒷받침해 주고있다. 이들 핵심인사들의 말에 따르면 중도연합 신당결성의 구성이라는 「틀」에 관한 내부합의는 분명히 이뤄진 것으로 보이나 이 구상이 현실화될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좀 지켜봐야 하는 상황으로 판단된다. 신당은 내각제개헌을 전제로 하고 있는 만큼 개헌선 즉 원내의석의 3분의2인 2백석이상의 확보가 필수조건이고 이에 대한 자신이 서지 않는 이상 민정당이 신당추진을 공식화할 것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개편구도 정계개편 추진세력들은 올 상반기에 실시될 예정인 지자제선거 이전까지 정계개편을 마무리짓는다는 방침을 정하고 여야4당의 중도세력을 대상으로 세력재편을 위한 사전정지작업에 본격적으로 착수한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이들은 ▲정국안정 ▲지속적인 민주발전 ▲지역ㆍ계층ㆍ세대간의 갈등의 극복을 통한 국민통합 ▲급변하는 국제정세와 남북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려면 이같은 시대적 요구에 공감하는 모든 민주민족세력이 총결집하여 중도세력 연합을 구성해야 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외형적으로는 이처럼 명분과 이념에 공감하는 세력의 「헤쳐모여」식 신당결성을 표방하고 있으나 실제 내용면에서는 민정­민주­공화 3당의 합당형식이 될 것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다만 현재 민주ㆍ공화당이 추진하고 있는 신당창당방식의 수순을 밟을 경우 「호남­비호남」으로 세력을 양분화시킨다는 비난을의식,여권은 야3당중 어느 정당도 정계개편의 파트너에서 배제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제시해 민주ㆍ공화당의 양해를 받아낸 것으로 보여진다. 즉 평민당이 김대중총재의 주장처럼 자의에 의하든 민주ㆍ공화당이 당초 계획했던 것처럼 타의에 의하든 신당참여세력에서 제외되더라도 그 선택은 어디까지나 평민당의 자의적인 선택에 따른 것이지 「야합」 차원에서 평민당을 정계개편 대상에서 제외시킨 것이 아니라는 대외적인 명분에 초점을 맞춰 대상을 확대시킨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한편 정계개편과 함께 거론되고 있는 권력구조 형태와 관련,신당추진세력들은 지금의 극단적인 지역감정과 4당구조도 근원적으로 대통령직선제에서 비롯된 것으로 인식함에 따라 권력구조를 내각제로 개편하는 작업을 병행하고 있다. 내각제로 개헌하기 위해 정계개편을 하고 있다는 선후 뒤바꿈도 가능할 만큼 개편과 개헌은 동전의 앞뒤와 같은 관계에 있다. 이같은 구도를 상정할 경우 내각제의 개편작업은 원내안정세력의 확보라는 안전판 마련을 위해 13대총선에서 채택된소선거구제도 당연히 중선거구제로 전환할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중도세력 연합­내각제개헌이라는 사상 초유의 「혁명적인」 개편작업이 완료되기까지에는 신당에 참여하는 각 정파간의 역할분담ㆍ정계개편 작업에 반발하는 세력의 향후 움직임등 예측할 수 없는 변수가 곳곳에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아직도 회의적인 시각이 만만찮은 실정이다. 그러나 민주ㆍ공화당의 합당논의 이후 정계개편의 필요성에 대한 여론이 급속히 확대되고 있는 점,정계개편에 반대하는 일부 야당및 정파의 논리에 대한 대응논리가 거의 체계화단계에 접어든 점 등을 볼 때 정계개편은 이제 도상훈련단계를 넘어섰다고 보는 것이 설득력 있을 것 같다. ○개편 시기 아직 변수가 많지만 민정ㆍ민주ㆍ공화 3당의 개편추진세력들은 한결같이 금년 상반기 지방의회선거전 정계개편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다. 조기개편론자들은 어차피 자연적 보혁구도 정립에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이므로 최근 민주ㆍ공화당의 합당추진을 축으로 개편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때 되도록 빨리 개편을 실현하는 것이 부작용을 최소화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또 정계개편없이 지자제선거를 치를 경우 선거과정에서 각 당간 감정대립과 지역감정 악화로 합당이나 연정의 분위기가 식을 우려가 있다고 지적한다. 정계개편 과정에서 소외된 원외인사 등의 불만을 지자제선거를 통해 해소할 수도 있다는 측면도 있다. 이에 따라 개편에 가장 적극적인 민주ㆍ공화당은 지자제선거공천 전인 오는 4월 이내에 신당결성을 마무리짓기를 희망하고 있으며 여기에 민정당이 동참하길 바라고 있다. ◎정지작업 부산한 4당/소외된 실세그룹 중간보스 설득 민정/“고사위기”… 「뒤집기 묘수」 찾기 부심 평민/­민주ㆍ공화,여권과 행보맞추기 “정중동” ○각당 동향 민정당의 주요 당직자등 여권 수뇌부들은 아직 정계개편방법ㆍ시기 등에 대한 명확한 방침은 밝히지 않고 있지만 개편이 「대세」임을 인지,노태우대통령이 개편에 대한 결단을 내렸을 때 「이탈자」없이 개편에 동참토록 범여권 결속에 분주하다. 현재 여권내 주요 세력중 조급한 정계개편에 회의적인 눈길을 보내고 있는 인사들은 이종찬ㆍ이춘구전총장,이한동전총무 등 민정당 중간보스들과 정호용전의원 지지서명파인 구TK의원들,그리고 구심력은 크지 않지만 정계개편시 지역구를 뺏길 가능성이 있는 일부 원외지구당 위원장들이다. 현직 고위당직자중에는 이한동전총무와 가까운 정동성총무도 신중론에 가세하고 있어 주목되고 있다. 특히 이종찬전총장은 정계개편을 성급하게 추진할 경우 평민당을 중심으로 한 야신당출현을 촉발시켜 개헌선확보에 실패할 가능성도 있다며 신중론을 펴고 있다. 이에 대해 박준병총장,박철언정무1장관 등 개편추진 핵심인사들은 이들 반발세력과 개별 또는 집단으로 만나 의견을 수렴하는 한편 반발의 강도를 누그러뜨리려 노력하고 있다. 박총장은 이종찬전총장뿐만 아니라 군출신인사ㆍ호남출신인사,그리고 박세직ㆍ배명인전안기부장등 범여권인사를 두루 접촉하고 있으며 최병렬공보처장관도 이춘구전총장에게 개편의 필요성을 조심스레 개진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평민당은 여권의 중도세력 연합구상이 궁극적으로 평민당을 고사시키려는 책략이라는 인식 아래 정계개편의 흐름을 오히려 역류시킬 수 있는 「막판뒤집기」 방안등 묘수를 찾기 위해 부심하고 있다. 당지도부는 그러나 통합 움직임에 대한 비난의 강도만을 한층 격화시켰을 뿐 적절한 대응책을 찾지 못해 고심하고 있는 듯한 눈치다. 당지도부는 현단계에서는 혹시라도 소속의원 가운데 몇명이 여권측의 구상에 말려들어갈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집안단속」에 열을 올리고 있다. 당지도부의 이같은 태도와는 달리 조윤형부총재와 이상수 이해찬의원 등 이른바 야권통합파 의원들은 여권의 정계개편 움직임을 오히려 「범민주세력 통합」으로 역이용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키 위해 수시로 접촉하고 있다. 이들이 거론하는 방안은 민주ㆍ공화의 통합움직임에 반대하는 의원들을 끌어들여 평민당을 주축으로 한 신당을 창당하거나 자신들이 평민당을 탈당해 별도의 교섭단체를 만든 뒤 다시 평민당과 합치는 것 등이다. 민주당은 정계개편의 흐름이 일단 궤도에 올라섰다고 보고 내부의 이탈방지에 주력하는 모습이다. 전통야당을 표방해온 민주당으로서는 거대중도신당에 민정당이 한 주체로 참여하는 것이 분명해지면 내부의 의원ㆍ당직자들이 갖게 되는 고민도 그만큼 증폭될 수 밖에 없는 특성을 갖고 있다. 때문에 민주당의 김영삼총재측으로서는 이들 동요 의원ㆍ당직자들의 설득문제가 향후 신당내에서의 지분및 주도권과 직결되는 중요한 문제인 것이다. 이는 정계개편 과정에서 민주당이 민정ㆍ공화 양당과는 달리 고유하게 갖게 될 수밖에 없는 고충이라 할 수 있다. 만일 민주당내의 이탈자가 예상 외로 많아 여당역할을 맡게 될 신당에서 상대역인 신야당의 세력이 개헌을 저지할 만한 규모가 되면 정계개편 자체가 어려워지게 되는 만큼 민주당의 내부설득작업은 중요한 변수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공화당은 김종필총재와 김용환정책위의장 2인체제 속에 수면 아래 작업의 마무리를 서두르고 있다. 김총재는 지난 6일 민주당 김영삼총재와의 골프회동 후 박준규전민정당대표,정치일선에서 떠난 구여야인사등과의 연쇄접촉등을 통해 범보수연합의 구상에 대한 교감을 나눈뒤 이제 결단의 시간만을 기다리는 듯한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지난 6일 골프회동에 동참했던 김정책위의장은 최근 여러 차례 민주당측 카운터파트인 황병태총재특보와 회동,오는 24일경으로 예정된 김종필ㆍ김영삼총재회담의 발표문에 담을 내용등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편 YㆍSㆍL의원 등 일부 소장파의원들은 의원회관 사무실등에서 수시로 만나 정계개편방향등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고 있으나 김총재의 함구령 탓인지 외부로 목소리를 돌출시키지 않고 개편윤곽이 드러나는대로 나름대로의 대응방안등을 모색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극복해야 할 난관들/노대통령의 결단이 방향을 좌우/지역감정ㆍ백담사움직임도 부담/민주ㆍ공화의 「소연합」 체제 오래갈 수도 ○전망 중도세력통합 신당의 창당까지에는 예상보다 훨씬 많은 난관이 있다. 때문에 3∼4월중에 민정ㆍ민주ㆍ공화당을 통합하는 대연합이 이루어지기보다는 민주­공화당이 우선 통합하고 이같은 3당체제가 상당기간 존속될 가능성이 크다.통합신당 출현을 거부하는 흐름은 두가지다. 하나는 민정당 내부의 신중파가 제기하는 것으로 정계개편에는 찬성하면서도 민정당 중심으로 추진할 것과 그 시기도 14대총선을 전후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하나는 평민당을 중심으로 하는 것으로 사실상의 신당창당이 의미하는 「보­혁구도」 개편에 반대하는 움직임이다. 신당이 민주ㆍ공화당만의 연합으로 이뤄질지 아니면 민정ㆍ민주ㆍ공화는 물론 평민당 일부까지 참여하는 대연합이 될 것인지는 이같은 반대흐름의 크기와 직접 연관돼 있다. 민정당이 계속해 구체적 입장공개를 유보하고 있는 것도 반대론자들 설득작업이 진행중인 상태에 있고 반대 강도측정작업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3당간의 통합을 위한 기술적인 난제들,예를 들어 지구당 조정문제,노대통령의 위상문제 등은 통합이 내각제를 전제해 이뤄질 것이기 때문에 생각보다 쉽게 타결될 수 있다. 예컨대 노대통령의 위상은 통합신당의 총재직을 갖게 하는 방법으로 해결될 수 있고 민주ㆍ공화당의 두 김총재 위상은 개헌 후의 역할분담으로 정립해 놓을 수 있다. 그러나 통합신당 출현에 반대하는 세력은 통합파에 못지않은 논리를 갖추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세에 있어서도 통합파에 뒤지지 않기 때문에 이들의 반발무마문제가 정계개편의 가장 큰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 평민당이 김대중총재를 후선으로 물러나게 하면서 집단지도체제로 당을 개편하거나 신당을 창당,민주당의 야당 신세대인 김상현ㆍ이기택ㆍ김현규부총재,최형우전총무 등을 흡수하는 데 성공할 경우 정계개편은 중도통합이 아닌 여야 양당구조로 방향이 뒤틀릴 가능성도 있다. 민정당내의 통합반발 움직임은 민주당의 그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세력 또한 거세다. 박준규전대표나 박철언정무1장관 등이 중도통합을 추진하는 세력이다. 이에 반해 이춘구전총장ㆍ이종찬전총장ㆍ정호용전의원 등 실세그룹들이 금년내 통합신당창당에 반대하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김윤환전총무도 정계를 호남과 비호남으로 양분하는 급격한 인위적 개편에는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여기에 백담사를 중심한 민정당 창당세력들도 당의 간판을 떼어내는 방법의 정계개편에는 반대하고 있어 이들에 대한 설득이 관심거리다. 정계개편의 최종방법과 시기는 2월말쯤에 있을 것으로 보이는 노대통령의 단안에 의해 결정될 것으로 관측된다. 그러나 현단계에서는 민주­공화당만의 신당창당 가능성이 가장 크고 다음이 민정­민주­공화 3당통합,그다음 가능성이 평민당 일부까지를 포함한 신당창당으로 볼수 있을 것 같다.
  • “정당연합ㆍ통합 검토한적 없다”/노대통령 연두회견 일문일답

    ◎보안법 개정 신중… 「광주」보상 서둘러야/교통난 해소위해 10년간 60조원 투입/「친인척 후계」 있을수 없어… 전당대회 통해 후보 선출 ­정계개편 움직임에 대해 어떤 방향으로 나가는 것이 바람직스럽다고 생각하시며 민정당과 평민당 간의 정치연합설의 진위와 가능성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시오. 『지금 주로 야권에서 논의되고 있는 정계개편이나 연합움직임은 4당구조가 지역적으로 편중되어 있고 지역감정을 불러 일으키는 바람직스럽지 못한 측면에서 국민들이 정치가 불안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점 등에 연유한 것으로 이해됩니다. 그러나 개편이나 연합이란 문제들은 인위적으로 급작스럽게 이루어질 수는 없는 것이고 신중을 기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이 문제에 관해서 내가 속해있는 민정당은 지금 뿐 아니라 전부터 문을 활짝 열어놓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여러분이 추측하듯 어느 특정야당과의 제휴는 검토하지 않았습니다. 국민여론을 더욱 신중하게 수렴하고 또 정치상황의 전개양상을 본후 이 문제에 대한 판단을 내려야 되겠다고 생각합이다』 ○「보혁개편」 어려워 ­보혁구도로의 정계개편,정당간의 연합과 통합방식중 어느쪽이 여권으로서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시며 정계개편은 언제까지 끝나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또 민정당의 활짝 열린 문으로 야당이 들어오도록 하기위해 민정당의 기득권이나 대통령의 총재직 포기도 고려하실수 있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어느 정당이건 기본적인 이념과 지향하는 노선을 기초로한 정책정당을 만들어나가야 할 것입니다. 어느 개인이나 특정인을 위주로 하는 정당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이런 입장에서 우리나라의 보혁구도를 말할때 보수는 그런대로 전통이 서있다고 생각하나 혁신세력은 아직 기반이 매우 미약하다고 생각합니다. 4당구조가 어려운 구도이지만 이런 타협으로 그 구도속에서 계속 나갈수도 있으며 국회에서의 법률통과나 정책문제등에 대해서 제휴를 할수도 있을 것입니다. 지금 연합 또는 통합문제에 대해 여러 얘기가 진전되어 나가는 듯한데 앞에 말한대로 아직까지 이 문제에 대해서 내가 구상이나 검토한 적은 없습니다. 시기문제도 구체적으로 구상하지 않았기 때문에 분명히 밝힐 수 없음을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연정구상 또는 야당인사의 내각기용을 고려한 바 있으신지와 국민의 심판없는 정계개편이 가능한 것인지에 대해 의견을 말씀해 주십시오. 『의원들이 당적을 옮기는 것은 법적으로 보장되어 있는 만큼 앞으로 정치상황발전에 따라 당간에 연합도 되고 통합도 되는 정계개편이 이룩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국민들이 원해서 여소야대의 상황이 된 만큼 그대로 지속되어야 한다는 주장에는 의견을 달리합니다. 다른 민주국가들에서도 처음 선거할때 모습이 발전과정에서 딴 모습으로 변화된 경우가 많습니다. 변화된 것이 잘됐느냐 못됐느냐는 다음 선거에서 국민의 심판 아래 되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여러가지 융통성을 가질 수도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헌법에 어긋나는 조기선거 등은 불가하며 이를 실시하지 않는다는 것이 나의 생각입니다』 ­금년 상반기중 지방의회 구성이 예정대로 이루어질지와 연합공천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를 말씀해 주십시오.잇따른 선거로 예상되는 금권타락 등을 막기위한 제도적 장치를 구상하고 계신 것이 있으면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지자제선거는 법대로 금년 상반기에 실시해야 되리라 봅니다. 연합공천 얘기가 나오고 있는데 현재 당의 구조가 지역성이 강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지역성을 배제하는 뜻에서 연합공천의 장점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지방화시대 및 권력의 지방분산이라는 차원에서는 중앙에서 연합공천 등으로 너무 관여하게 되면 지방의 특색을 약화시키는 단점을 가질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문제는 시행과정에서 여러가지 장단점을 고려해 대국적 차원에서 추진해나가야 되리라고 봅니다. 선거풍토에 관해서는 앞으로 지방자치에 대한 선거법을 여야합의로 만들어 낼 것이고 그 과정에서 여타 선거법에 미진한 점을 충분히 보완해 나갈 것입니다. 또 정치자금법도 새로이 개정되어 나갈 것입니다』 ○후보 1년전에 결정 ­집권중반기를 맞아 후계구도가 언제쯤 구체화되어야 하며 또 어떤 인물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아울러 차기대권경쟁자속에친인척도 포함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지금 대통령에 취임한지 2년밖에 되지 않았는데 벌써 후계자ㆍ후보자 하게 되면 우리 정치체제의 체질로 보아서는 좀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내 스스로는 대통령선거 1년전에 당의 전당대회를 통해서 후보자가 선출되는 것이 바람직스럽다고 생각합니다. 후보자는 미래의 변화에 대응력을 갖추고 국민에게 희망적인 비전을 제시하고 적절한 결단력을 갖춘 사람이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잡지ㆍ신문들이 후보자에 대해 별의별 억측을 하고 있습니다만 나의 친인척 중에서 후보자ㆍ후계자 운운하는 것은 나의 진심을 모독하는 것이며 대상이 되는 친인척에게도 불편함과 사생활을 제약하고 모독하는 등 침해를 주는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나의 친인척중에서 후보자가 나온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고 그런 일이 없다는 것을 이 자리에서 다시한번 강조합니다』(이 대목에서 노대통령은 계속 정치질문만 받는데 우리나라가 당면한 가장 큰 문제인 경제질문을 받아보자며 질문을 경제부문으로 유도.) ­선거때만 되면 여야를막론하고 당선을 위해 경제원칙을 무시하고 정치공약을 남발해 온 것이 사실인데 대통령께서는 정치우선의 경제현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정치가 경제발전에 걸림돌이 될수있는 영향을 미쳐왔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정치가 경제를 위시한 딴분야에 걸림돌이 되지 않고 90년도부터는 앞에서 끌고 옆에서 돕는 역할을 하자고 여야총재회담에서 굳게 다짐했습니다. 이런 원칙을 바탕으로 가능하면 돈 안드는 선거,경제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선거가 되도록 선거법도 고쳐나가야 할 것입니다. 정치를 운용하는 사람들도 국민뜻을 받들어 경제를 위시한 다른 분야에 지장을 주지 않는 방향으로 획기적인 개선을 해야하며 나는 여의 입장에서 그렇게 할 것이며 또 야도 그렇게 하리라 기대합니다』 ○내각 개헌논의 일러 ­임기중 내각제 개헌을 추진할 용의가 있으신지,국정 경험을 통해 현행 헌법의 개정을 검토해 보신적이 있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6ㆍ29선언때 대통령직선제가 국민의 뜻이란 차원에서 이를 수용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2년밖에 안된 상황에서 직선제에 단점이 있다고 해서 내각제 개헌논의를 하는 것은 시기상조라 생각합니다. 어느 시점에 가서 대통령중심제의 헌법을 고쳐야 할 일이 있다거나 딴 방향으로 나가야겠다는 전체국민의 뜻이 있다면 전혀 가변성이 없다고 잘라 말할 수는 없습니다. 국민의 뜻을 따라야지요. 그러나 이 순간에 국민의 뜻이 당장 헌법을 바꿔 내각제를 하자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여권내부의 결속을 위해서 어떤 구상을 갖고 계시며,결속차원에서 정부와 국회직의 개편은 언제쯤으로 계획하고 있습니까. 또 전두환 전대통령과의 면담 및 앞으로의 거취문제에 대한 견해를 말씀해 주십시오. 『당론을 정하기전까지는 여러 의견이 나올 수 있겠지만 일단 당론이 결정되면 모두가 흔쾌히 당론에 따라야 합니다. 그 당론을 따르는 문제에 있어서 약간의 잡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오히려 그런 과정을 통해 당의 체질이 훨씬 더 강해졌고 그런 과정을 겪지 않았던 과거보다 오히려 나은 결과를 가져왔다고 믿습니다. 전임대통령과의 면담문제는 이제는 이분과관련한 정치적인 모든 문제는 끝마무리 지어졌기 때문에 편리한 시기에,또 여건이 된다면 자유스럽고 평범한 시민의 입장에서 자연스럽게 만날 기회가 있으면 언제든지 만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내일부터 있을 청와대개별연쇄회담에서 정계개편ㆍ지자제문제들을 어떻게 풀어나가실 것인지와 보안법ㆍ안기부법 개폐문제 등 지난 청와대 회담대타협 후속조치는 어떻게 마무리 지을 것인지 말씀해 주십시오. 『지난시대의 문제는 작년 12월15일 역사적 대타협으로 종결되었으며 법률개폐등 후속조치도 여야협의정신에 따르리라 생각합니다. 이북이 국가보안법 개정을 제일먼저 주장하고 있는데 물론 남북교류 및 남북대화에 걸림돌이 되는 면은 개정을 해야 될 것이지만 이북이 대남노선을 변경하지 않는 상황에서는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남북대화를 해나가고 북한이 더욱 협력자세로 나올 수 있는 면을 염두에 두고 신중하게 개정해 나가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광주보상법에 대해서도 여야가 빨리 협상을 통해 결론짓고 하루속히 희생자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실질적인 생활상의 편의를 제공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내일부터 있을 연속 총재회담에서 3당중 어느 분도 과거문제를 가지고 씨름하고 갈등을 일으키려는 분은 한분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분들이 우리가 당면한 경제활력회복문제ㆍ산업평화를 어떻게 실질적으로 이룩할 것인가,지방자치제를 통해 어떻게 민주주의를 지방화할 것인가에 대해 허심탄회한 논의가 있으리라고 기대합니다』 ­기업은 정부정책이 때를 맞추지 못해 어렵고 경제정책 시행과정에서 부처간에 불협화음으로 사업하기가 어렵다는 얘기가 있는데 대통령께서는 긴급명령권이라도 발동해서 경제를 살릴 각오가 되어 있으신지요. 『경제의 어려움에 대해서는 정치불안ㆍ극심한 노사분규ㆍ심한 임금인상ㆍ환율등의 경제외적인 요인이 많은 것으로 여러전문가들이 분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경제를 과거 10년 20년 되돌아 봤을 때 70년대 1ㆍ2차 오일 쇼크,80년대 인플레가 무려 40%가 넘고 마이너스성장 6%라는 지금보다 훨씬 어려웠던 때가 많았지만 우리는 극복했습니다.이런 점에서 오늘의 상황은 대통령이 비상조치권을 내려야할 만큼 극복할수 없는 상황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근로자ㆍ기업인ㆍ정부ㆍ정치인 모두가 한마음으로 화합하고 단합만 한다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고 자신있게 말씀드립니다』 ○지하철 대폭 확충 ­국민들은 하루종일 교통지옥에 시달리고 있는데 교통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생각이신지 말씀해 주십시오. 『앞으로 정부시책의 우선 과제는 교통문제 해결에 두고 있으며 세계잉여금을 이곳에 집중투입한다는 것도 다 잘 아실 것입니다(이 대목에서 노대통령은 배석한 고건 서울시장에게 서울의 지하철 확장계획을 답변토록 했고 고시장은 현재 1백16㎞가 있고 앞으로 1백50㎞의 제2지하철 건설을 계획하고 있으며 제1단계로 47㎞를 공사중에 있다고 답변). 전철의 대폭 확충ㆍ서해안고속도로 등 고속도로의 망사형 건설ㆍ남북 및 동서간 고속전철건설문제 등 거대한 프로젝트들이 앞으로 10년간 60조원의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진행됩니다. 정부주도로 실천해 나가겠지만 차를 가진 사람과 자동차를이용하는 모든 사람들이 참고 양보하면서 노력해야만 우리가 이 어려움을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민정 새 대표 박태준의원 기용의 함축

    ◎「당 결속ㆍ정계개편」 겨냥한 다각 포석/“무색의 중립”… 대야창구로 적격/3김과 교분 두터워 「노대통령의 짐」 덜듯/취약한 당내 기반,후속인사로 보강 예상 노태우대통령이 5일 민정당대표위원에 포철회장으로 더 유명한 박태준의원을 기용한 것은 그의 다각적인 정치적 중립성을 높이 산 결과로 풀이된다. 당직개편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민정당내의 파워게임은 6일의 나머지 당직개편이 끝나봐야 분명해지겠지만 일단은 무승부로 가고 있는듯한 인상이 짙다. 노대통령이 이번 인선에서 고심했던 것은 5공청산 과정에서 심화된 당 분열을 해소할 수 있는 인화력과 정계개편 추진을 위한 돌파력을 동시에 갖춘 인물을 찾아야했기 때문이다. 노대통령은 박 신임대표의 철저한 당내 역학구조상의 중립성에서 당화합의 가능성을,포철을 세계 최일류기업으로 키워낸 경영능력에서 돌파력을 구한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박 신임대표는 노대통령이 『당의 결속과 융화,대야협조를 위해 가장 적임자로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임명이유를 밝혔듯이 적어도 네가지 부문에서 당내외 갈등을 해소하기 쉬운 입지를 가진 것으로 여겨진다. 첫째는 박 신임대표가 전두환 전대통령과 사돈간이라는 데서 드러나듯이 5공과 6공참여파 사이의 보이지 않는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적임자라는 점을 들 수 있다. 두번째는 지금껏 정치보다는 포철경영에 전념함으로써 당내 세력 어느곳에도 포함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며 세번째는 경남 양산에서 출생,성장은 일본 도쿄에서 함으로써 TK(대구ㆍ경북)나 SK(서울ㆍ경기) 등 지역적 분파성이 없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신임 박대표는 야당의 3김총재와 비슷한 연령대에 속하면서 이들과 비교적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 의회정치나 정계개편작업 과정에서 노대통령의 짐을 나누어 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신임 박대표가 지난 3공화국 시절부터 지금까지 여권의 비중있는 대야 막후대화창구로 가동돼 왔다는 점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평민당 김대중총재ㆍ김종필 공화당총재와의 관계는 알려진 것보다 훨씬 밀착돼 있는 것으로 민정당 관계자들은 설명하고 있다. 노대통령이박대표를 현재의 당위기상황과 관련해 「유일한 적임자」로 여기고 있음은 포철회장을 당분간 겸임토록까지 배려한데서 잘 드러난다. 당대표 인선과정에서 신임 박대표 외에 노대통령의 오른팔 역할을 하고 있는 김윤환 전총무,TK그룹의 원로인 유학성 당고문이 마지막까지 신임 박대표와 경합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당대표 인선문제는 그 성격이 당내 세력간 파워게임의 대리전으로 비약,그 결과에 비상한 관심이 모아져 온 것이 사실이다. 대표직 제의를 고사한 것으로 알려진 김전총무등 TK일각에서는 신임 박대표를 추천한 바 있다. 반면 이춘구총장ㆍ이한동총무 등은 오히려 유고문을 내심 추천하는 양상을 띠었었다. TK측이 친TK이면서 계파성이 없는 박 신임대표를 당의 얼굴로 앉히려고 든 것은 나머지 당의 요직을 장악하려는 정치계산으로 볼 수 있다. 「이­이라인」이 유고문을 내심 선호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TK를 얼굴로 함으로써 역시 총장ㆍ총무를 비TK로 할 수밖에 없도록 하려는 정치적 계산이었던 것으로 봐야할 것이다. 이한동총무가3일 밤과 4일 아침 공개적으로 「박태준대표­김윤환총장」 가능성을 미리 비토하고 나선 것은 당직개편을 둘러싼 당내 세력간의 갈등을 드러낸 상징적 일화로 여겨지고 있다. 박의원이 대표로 기용됨으로써 일단 김 전총무등은 거시적 구도에서는 정치적 운신의 폭이 크게 넓어진 셈이다. 그러나 당3역을 포함한 나머지 당직개편문제에서 현체제 유임 또는 중부권의원으로의 대체가 점쳐지면서 당직개편을 둘러싼 당내 파워게임은 승자도 패자도 없는 형국으로 갈 가능성이 커졌다. 물론 TK세력들의 구도대로 될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신임 박대표의 기용을 단순히 위기상황에 처한 당분열 치유를 위한 위기관리용이 아닌 노대통령의 후계구도와 관련된 포석일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즉 신임 박대표가 앞으로의 정계개편 방향과 상관없이 노대통령의 후계자로 낙점됐거나 대상인물중의 하나로 선정돼 첫 시험무대에 올려 진 것이 아니냐 하는 것이다. 이같은 지적은 일부 당내외 인사들에 의해서만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노대통령 이후의 후계자를 가시화시켜 나가야 할 시점이 되었다는 시간적 개연성과 다음 대권주자는 비TK일 필요성을 여권이 공동인식하고 있다는 점,신임 박대표의 이미지가 「한국의 아이아코카」란 별칭만큼 신선할 수 있다는 점등에서 그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이밖에도 신임 박대표가 군출신이면서 경영자로서의 이미지가 더 강하고 위기관리 능력이 뛰어나다는 점에서 그의 당대표 기용을 「확대해석」하려는 당내외의 욕구는 점차 강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신임 박대표는 그러나 당내에 뚜렷한 지지기반을 갖고 있지 않다. 이 점은 당대표로서 기용되기까지는 대단한 장점으로 작용했지만 당의 실제운영과 통솔에는 상당한 단점으로 작용할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특히 오는 3월쯤 시도지부장이 대의원들의 경선에 의해 선출될 경우 중집위가 실세화되고 상대적으로 당내 지지기반이 없는 신임 박대표로서는 당운영에서 주도권을 행사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때문에 6일의 후속인사는 신임 박대표의 당장악력을 높이는 방안이 우선적으로 고려될것이다. 당3역을 포함한 나머지 당직개편이 어떤 모양으로 이루어지든 정계개편 논의의 활성화와 함께 당내 중진들의 분파활동은 보다 활발해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 13대총선 낙천자그룹등 여권 외곽세력들의 움직임도 분주해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포항의 황무지에서 포철을 만들어 세계 일류기업으로 성장시킨 신임 박대표의 경영능력은 세계적으로 정평이 나 있다. 그의 정치적 수완이 어떤 것인지는 그러나 두고봐야 할 것 같다. ◎박태준 신임 민정 대표위원의 포부/“정계개편등 현안해결 주력/흐트러진 당내전열 재정비” 포항제철을 세계 초일류 철강업체로 끌어올리는 과정에서 탁월한 추진력을 과시,「철인 박」(아이언 박)이란 별명을 가진 박태준의원이 5일 민정당대표위원에 임명돼 『기왕 나선 이상 신명을 다해 국민들이 정치걱정없이 생업에 충실할 수 있게 하겠다』고 취임 일성을 밝혔다. 박 신임대표는 캐나다 밴쿠버를 떠나 일본 도쿄를 거쳐 이날 낮 귀국해 곧장 청와대로 노태우대통령을 면담,대표직 임명을 통보받고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가졌으나 전혀 피곤한 기색이 없었다. 박 신임대표는 한때 대표직을 고사했다는 얘기에도 불구,『일단 결심한 이상 최선을 다해 정치의 신뢰도를 회복하겠다』고 말해 5공청산 과정에서 다소 흐트러진 민정당의 전열을 굳게 다잡을 것임을 다짐했다. 박 신임대표는 『해외여행에서 돌아오자 마자 중책을 맡아 아직 생각이 정리 안됐다』면서 구체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했으나 당의 주요 시책방향을 미리 메모해와 참고하는등 용의주도한 면을 보였다. ­어려운 때 대표를 맡았는데 소감은. 『평소 정치의 신뢰도가 대단히 저하되고 있음을 느껴왔다. 동료 국회의원과 당원의 협조를 얻어 정치신뢰를 회복시켜 국민들이 정치에 대한 걱정없이 생업에 충실할 수 있도록 하겠다』 ­총재가 어떤 이유로 대표를 임명했다고 생각하나. 『총재가 아실 것이다. 나 자신은 전문정치인ㆍ직업정치인이 아니다. 당초 당을 대표하는 직을 나의 능력으로 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를 했었다. 무엇이 총재의 숙제인지 앞으로 깊이 생각해 실천에 빈틈이 없도록 하겠다』 ­5공청산을 둘러싸고 당내내분이 있었던 것처럼 비쳤는데. 『당정책과 방향은 민주화실천이나 당면 경제난국 타개,국가번영하의 통일기반 조성에 있다는 것은 변함없는 것 아니냐. 이런 목표들은 당총재의 뜻과 일치하는 것이며 이를 실천하면 된다. 5공청산 문제를 중심으로 마치 당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 당은 창당때부터 평생동지이므로 당의 융화라든가 결속이라든가는 별 문제가 없다고 본다』 ­당 내분수습이 어렵다는 것이 일반적 시각인데. 『이념이나 뜻이 같았기 때문에 민정당에 들어온 것이다. 개별사건에 대한 생각은 다를 수 있으나 그것이 단결ㆍ인화를 근본적으로 깬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일이 생기면 대화를 통해 당원으로서 동지의식을 돈독히 한다면 문제가 없을 것이다』 ­지금 당장 정계개편이 현안으로 등장하고 있는데. 『정계개편 발언으로 전임대표가 말썽난 것 같고 일부 야당총재도 비슷한 얘기를 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분들의 뜻이 어디 있는지 공부하고 직접 만나 들어 보겠다. 우리 당 생각도 어떤 것인지 알아보고 나중에 얘기하겠다. 이제까지는 경제분야에만 주력했으나 앞으로는 정계개편을 포함,정치에 대해서도 열심히 공부하겠다』 ­야당총재들에 대한 인식은. 『그분들은 평생동안 정치해온 분들이며 정치역량등 여러면에서 월등히 훌륭하다. 앞으로 배워나가겠다』 ­김종필 공화당총재와 특히 친하다는데. 『3김총재가 모두 존경하고 서로 얘기 나눌 수 있는 입장이다. 김종필총재는 포철만들 때 공화당직과 총리를 맡았기 때문에 친할 기회가 있었다. 지난 87년 대선때 3김 총재가 오랜만에 정치 일선에 나와 과거 안면도 있어 각각 만난 적이 있다』 ­포철회장직은. 『포철이 92년까지 생산량 2천만t이란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줘야하고 해외수주관계등 계속 사업 때문에 당장 그만 두긴 어렵다. 사임문제는 그런 일이 해결되는 대로 차차 생각하겠다』 ­나머지 당직개편은. 『당헌상 내가 건의토록 돼 있으므로 조금 생각해 본 뒤 내일이나 모레 대통령께 건의하겠다』 ­이번 대표임명을 대권후계와 연결시키는 시각도 있는데. 『5ㆍ16직후 정치는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해 정치 않겠다고 한지 오래다. 대표 맡은 것도 우연이며 그런 우연이 또 올 수 없다고 본다. 또 온다해도 그럴 위인이 못된다고 명확히 인식하고 있다』 경남 양산에서 출생한 박 신임대표는 일본 와세다대 수료후 육사6기로 임관,5ㆍ16이후 국가재건 최고회의의장 비서실장에 발탁되면서 정치와 인연을 맺었다. 이어 대한중석사장을 거쳐 67년 포철설립의 주역으로 등장하면서 경영의 귀재로 등장,「한국의 아이아코카」로 불렸다. 5공 들어와 11대 전국구의원으로 정계에 본격 입문,국회재무위원장을 역임했고 13대 전국구로 재선,3ㆍ4ㆍ5ㆍ6공화국에 걸쳐 재계와 정계의 실력자로 군림했다. 강력한 추진력,비타협적 성격으로 「카리스마적」 「불도저식」 이란 평가를 받고 있으나 한번 잘해주면 「화끈하게」 봐줘 아래사람의 신망도 두터운 편. 골프(핸디 18) 유도(2단) 등으로 단련된 다부진 체력에 소문난 독서가. 부인 장옥자씨(59)사이에 1남4녀를 두고 있으며 막내딸(경아ㆍ25)을 5공 당시 전두환대통령의 차남 재용씨에게 출가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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