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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로벌 In&Out] 130년 전의 한일 관계와 현재의 한국 사회/알파고 시나씨 아시아엔 편집장

    [글로벌 In&Out] 130년 전의 한일 관계와 현재의 한국 사회/알파고 시나씨 아시아엔 편집장

    지방에 있는, 나름대로 큰 회사에서 일하는 외국인 친구와 얼마 전에 만났다. 그는 평범한 회사원인데도 꽤 놀라운 통찰력을 자랑한다. 그의 이번 분석은 현재 한국 정치에 관한 것이다. “알파고! 현 정부가 그 누구의 눈치도 안 보고 최저임금을 확 올려 주고, 분양가 상한제를 도입하고 대기업들을 힘들게 하는데도 흔들리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냐? 현 정부 뒤에는 젊은층으로부터 나온 어마어마한 분노의 민심이 있어. 그래서 조국 후보 사태 하나만으로 쉽게 힘들지도 않고, 대기업들에 쌀쌀(살살) 하지도 않을 것 같아.” 대충 이해가 됐지만, 선택한 단어 때문에 중간에 우왕좌왕했다. 그래서 물었다. 조금 전에 지적한 “젊은층으로부터 나온 어마어마한 분노”는 무슨 말인가? 그는 일단 자기 회사 경험을 제시해 설명을 시원하게 했다. “우리 회사 사장님이 말 그대로 예의가 없다. 얼마 전에 모두들 앞에서 누구에게 욕을 한 다음에 우리 보고 “내가 준 그 봉급에는 나의 욕설도 담겨 있어”라고 했다. 회식하러 가면 그는 늘 “내가 돈을 내서 마음껏 처먹어라” 하면서 우리 자존심을 상하게 만든다. 물론 나는 외국인이니까 영향을 덜 받지만 한국인 회사원들에겐 큰 스트레스가 쌓일 수밖에 없다. 조금 전에 말한 분노는 바로 이렇게 쌓인 스트레스다.” 한국 노동시장은 예전보다 물론 많이 변해서 선진국 수준으로 달려가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 특히 수도권 쪽에 있는 회사라면 인기 드라마 ‘미생’에서 지적된 수많은 노동환경 문제가 해결돼 있다. 그러나 아직도 곳곳에 이런 직장환경 속에서 정신적인 고통을 겪으면서 일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특히 6월 민주화 항쟁의 기억이 생생한 부모 밑에서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에 태어난 사람들은 부모님으로부터 ‘귀중한 자식’ 대접을 받다가 갑자기 그러한 비우호적 환경에 들어가면서 심리적인 갈등이 더 심해진다. 이렇게 직장 갑질에 노출된 젊은이들의 강력한 지지를 받는 현 정부는 경제정책을 만들 때 기업들과 동등하게 협상 테이블에 앉는 것이 아니다. 보수인 야당이 현 정부를 자꾸 사상적으로 비판할 정도로 기업들은 비교적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세대 간에 정치·경제 충돌이 진행 중인 가운데 한국은 예상치 못한 위기에 노출됐다. 바로 한일 경제전이다. 지금의 한일 관계의 그림이 약 130년 전과 비슷한 부분이 있다. 개항기에 한반도에 욕심이 생긴 일본이 정확한 타이밍을 기다리고 있던 상황에 조선은 급진 개화파와 극단 보수파 사이에 왔다 갔다 했다. 통합을 못 한 왕권과 신료들이 결국 조선을 일본이 쉽게 먹을 수 있는 나라로 만들었다. 지금과 뭐가 다를까? 삼성이 주도한 기술력으로 세계적으로 시장을 장악하려고 한 한국의 정보기술(IT) 기업들, 그리고 그 시장을 탐내는 일본. 물론 한일 경제전쟁의 배경에는 다른 정치적 요인들도 있다. 하지만 한국의 정치적인 주목에 일본이 경제적인 칼을 휘둘렀다면 경제적인 면을 무시할 수가 없다. 이 위기 상황에서 한국이 통합됐는가. 아니다. 한국의 직장환경을 한꺼번에 싹 바꿔 버리고 싶은 급진세력과 현 상황을 유지하면서 아주 천천히 개혁하자는 세력이 함께 존재하며 서로 충돌하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한일이 경제전쟁을 한다면 한국이 이긴다고 해도 큰 피해를 볼 것이다. 필자는 지난 글에서 한일 무역갈등에서 일본을 상대하는 방식에 대해서 길게 설명하며 국내 통합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했다. 그러나 그 글에선 좌우의 이념적 통합을 의미했었다. 이번 글에서 필자가 아주 중요하게 어필하고 싶은 것은 시민과 기업의 계층 통합이다. 일본이 경제적 칼을 들고 나섰다면 경제전쟁이 끝날 때까지라도 두 계층이 잠시 휴전에 들어가야 된다고 생각한다.
  • 日야당, “아베 정권 타도” 외치며 정권교체 연대 나섰지만…

    日야당, “아베 정권 타도” 외치며 정권교체 연대 나섰지만…

    1955년 일본 자유당과 민주당의 합당으로 자유민주당(자민당)이 창당됨으로써 이른바 ‘55년 체제’가 구축된 이후 64년간 자민당이 정치권력의 정점에서 내려와 있던 기간은 6년이 채 되지 않는다. 자민당은 1993년 8월~1996년 1월(2년 5개월), 2009년 9월~2012년(3년 3개월)을 제외하고는 늘 집권여당이었다. 이런 상황은 당분간 변할 가능성이 없다. 지난달 니혼게이자이신문이 실시한 정당별 지지도 여론조사를 보면 연립여당을 구성하고 있는 자민당과 공명당이 각각 37%와 4%로 41%의 지지를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은 11%, 제2야당인 국민민주당은 1%에 불과하다. 국민민주당의 경우 반올림을 안한 상태에서 지지율이 0%대로 나온 적도 있었다. 특히 전체의 32%에 이르는 ‘지지정당 없다·모른다’ 등 응답을 제외하고 지지정당이 있는 사람들의 응답만 갖고 다시 계산하면 집권여당 지지율은 60%에 이른다. 과거 야당 집권 시절의 실정(失政)에 넌더리를 냈던 기억이 일본 국민들의 머릿 속에 강하게 남아있는 게 일반적으로 얘기되는 야당이 신뢰를 잃은 이유다. 이를 빌미로 아베 신조 총리는 ‘악몽과 같은 민주당 정권’이라는 원색적인 표현을 공식석상에서 버젓이 구사하며 야권의 심기를 자극하고 있다. 가뜩이나 존재감 없는 야권은 최근 들어 아베 총리가 추진하는 헌법 개정을 놓고 분열되는 양상까지 내보였다. 아베 총리가 헌법 개정을 위해 국민민주당과 협력할 뜻을 시사하자 국민민주당 대표가 즉각 반색을 하는 듯한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다. 이런 일본의 야권이 전열을 다시 가다듬고 새로운 차원의 연대를 하기로 결정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영원히 집권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위기감에서다. 에다노 유키오 입헌민주당 대표와 다마키 유이치로 국민민주당 대표는 지난 20일 국회에서 회담을 갖고 중의원과 참의원에서 각각 공동으로 ‘회파’를 결성한다는 데 합의했다. 회파는 교섭단체를 말하는 것으로 국회에서 의정활동을 함께 하는 의원그룹을 말한다. 현재 전체 465석인 중의원에서 입헌민주당은 70석을, 국민민주당은 39석을 갖고 있다. 전체 245석인 참의원에서는 각각 각각 32석과 21석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자민당 의석 수에 비하면 중의원, 참의원 모두에서 절반도 되지 않는다. 교도통신은 “두 정당이 가을 임시국회에서 거대 여당에 대항하려는 의도를 갖고 회파를 함께 결성하기로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단일 회파 결성을 발표하면서 에다노 대표는 “국민민주당의 지혜로운 결단에 경의를 표한다”고 했고 다마키 대표는 “자민당에 대항할 수 있는 선택지를 국민에게 제시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두 정당의 뿌리는 일본의 정통 야당인 민주당과 이를 계승한 민진당에 있다. 정치적 이해관게와 이념성향의 차이 등으로 이합집산이 이어지다가 현재와 같은 구도로 분화됐다. 일본 정치권에서는 옛 민주당 세력이 다시 뭉쳤다는 점에서 향후 일본공산당과 사회민주당 등을 아우르는 야권연대 추진에 힘이 실릴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세부적으로는 입헌민주당과 국민민주당의 컬러가 달라 화학적 융합에 성공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나오고 있다. ‘수의 결집’을 명분으로 한 이질적인 조합의 회파가 얼마나 제 기능을 발휘하겠느냐는 것이다. 특히 국민민주당은 0~1%대의 여론조사 지지율에서 나타나듯이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 보수 또는 진보의 사이에서 이념적 지향점이 모호하다는 게 1차적 이유다. 일본의 정치담당 중견기자는 “보수적인 유권자는 자민당을, 진보적인 유권자는 입헌민주당을 지지하는 양분 구도에서 이도 저도 아니라는 인식을 주고 있는 국민민주당은 설 자리가 없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국민민주당이 아베 총리의 숙원인 헌법 개정에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점이 당장은 가장 큰 갈등의 불씨로 거론되고 있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아사히신문 “아베, 과거사 반성 표명해야”

    요미우리 1면엔 “한국에 반응하지 말자” 아베 외교 브레인 호소야 교수 칼럼 실어 일본 내 발행부수 1, 2위인 요미우리신문과 아사히신문이 각각의 이념적 성향에 기반해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한 각기 다른 의견을 개진했다. 상대적으로 진보 색채가 강한 아사히는 지난 17일 조간 사설을 통해 아베 신조 일본 정권이 과거사에 대한 반성의 뜻을 한국에 표명해야 한다고 밝혔다. 아사히는 ‘일본과 한국을 생각한다-차세대에 넘겨줄 호혜관계 유지를’이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한국을 냉대해서는 안 된다”며 “아베 정권에는 과거에 대한 반성에 소극적이라는 평가가 따라다니고 있으며, 여기에 한국의 씻을 수 없는 불신감이 자리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또 “이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는 아베 정권이 다시 한반도에 관한 역사 인식을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문재인 정부는 위안부 합의에 대해 재평가하고 아베 정권은 (진전된) 역사 인식을 표명하는 데 함께 협의하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아사히는 일본군 위안부의 강제성을 인정한 1993년 ‘고노 담화’와 한국에 대한 식민지 지배를 사죄한 2010년 ‘간 나오토 전 총리 담화’를 언급하며 “아베 총리가 이런 견해에 대해 주체적으로 존중하는 자세를 보이면 한국에 (한일 청구권협정 등) 약속 준수를 요구하는 데 있어 설득력이 높아질 것”이라고 했다. 반면 요미우리는 18일자 1면에 미국과 중국의 ‘2강’이 중요하니 한국에는 반응하지 말자는 주장을 담은 기고를 게재했다. 아베 총리의 외교 브레인으로 꼽히는 호소야 유이치(48) 게이오대 교수는 ‘한일 관계 악화-감정론보다 냉철한 시점’이라는 제목의 기고에서 “미중과 비교하면 한국의 중요도는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며 “한국과의 관계에 막대한 외교적 자원을 투입해 과도하게 질질 끌거나 필요 이상으로 반응하는 것은 현명한 판단이라고 말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한국과의 추가적인 갈등을 피하자고 하면서도 한국과 협의와 화해를 하자는 게 아니라 중요도가 적은 만큼 무시를 하자는 것이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서울광장] 열린 사회와 그 ‘내부의’ 적들/박록삼 논설위원

    [서울광장] 열린 사회와 그 ‘내부의’ 적들/박록삼 논설위원

    1960년대 미국 사회는 물질적 풍요로움 속에서도 세대 간의 갈등, 이념 간의 대립이 제어할 수 없이 커 갔다. 소련과 좌우 체제 경쟁을 비롯해 쿠바 미사일 위기, 베트남전 패배, 흑인 민권운동과 같은 사회문제는 미국의 대문호 필립 로스(1933~2018)의 장편소설 ‘미국의 목가’ 속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아메리칸 드림의 전형인 성공한 중산층 가정은 반전운동과 극단적 생태주의에 빠진 딸과의 갈등 속에서 송두리째 파괴되고 만다. 다양성이 존중되는 ‘열린 사회’로 가기에 당대 미국 사회가 극복해야 할 현실의 모순은 컸고, 희망을 찾는 몸부림에는 좌충우돌의 시행착오가 컸다. 칼 포퍼(1902~1994)의 ‘열린 사회 이론’은 헤겔, 마르크스 등의 역사주의, 사회주의를 철저히 부정하며 논쟁의 복판에 섰다. 포퍼는 그의 대표적 저서 ‘열린 사회와 그 적들’(1945)을 통해 전체주의와 독재가 인류에 끼치는 해악을 낱낱이 지적하며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보장되는 사회를 ‘열린 사회’로 규정했다. 이는 포퍼가 삶으로 깨달으며 이론화한 내용이기도 하다. 청년 포퍼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던 즈음 “평화와 인도주의를 위해 전쟁을 거부한다”는 트로츠키의 연설에 감명받아 사회주의자가 됐지만, 현실 사회주의 속 개인의 자유와 생명에 대한 존중 결여를 접한 뒤 돌아섰다. 한때 운동권 학생들을 점잖게 꾸짖는 내용으로 흔히 언급되던 ‘젊어서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면 바보, 나이 들어서도 마르크스주의자로 남아 있으면 더 바보’라는 얘기도 포퍼가 남긴 말이다. 1980년대 한국 사회에서 포퍼는 철저히 왜곡됐다. 그가 그토록 부정했던 독재정권은 그의 이론을 체제 유지 수단으로 악용했다. 반면 그의 지향과 같이 자유와 민주를 위해 몸부림쳤던 대학생, 노동자, 농민들은 오히려 포퍼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반감을 가졌다. 물론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은 ‘마르크스’가 언급됐다는 이유로 1982년 이전까지 금서로 지정되기도 했지만 말이다. 5·18 학살과 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씨가 외신 인터뷰에서 자신이 가까이 두고 읽는 책을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라고 소개하던 시절이었고, 독립군 때려 잡던 일본군 장교 박정희가 대통령이 돼 사후까지 추앙받는 세상이니 더이상 말이 필요 없었다. 온갖 부조리와 모순이 정상의 껍데기를 쓰고 행세하던 때였다. 독재에만 열린 사회일 뿐이었다. 2019년 한국 사회는 달라졌다. 전 대통령 이명박씨, 전 대법원장 양승태씨 등은 자신들이 유린했던 민주주의 질서와 제도에 의해 비교적 자유로운 몸으로 재판을 받고 있다. 광복절에 버젓이 성조기를 흔들어 대거나 ‘안티 반일’ 깃발을 흔드는 이들이 서울 한복판을 자유로이 휩쓸고 있다. 시민단체를 자임하는 극우 인사는 ‘평화의 소녀상’ 옆에서 “아베 수상님, 죄송합니다. 문재인 정부는 일본에 사과하라”고 부르짖고 있고, 어떤 목사는 교단에서 “한국은 일본과 함께 전범국가이며, 일본이 한국을 독립국으로 인정해 줬다”는 희한한 주장을 펴고 있다. 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일관되게 “일제강점기 강제동원도, 성노예화도 없었고 반인권적 반인륜적 만행 또한 없었다”고 역사를 정면으로 부정하고 있다. 한 일베 회원은 대통령을 암살하겠다며 불법으로 총까지 구매했다는 글을 버젓이 인터넷에 올리고 있다. 공동체의 가치를 부정하고, 생명과 인권, 민주를 경시할 뿐 아니라 극우적 가치로 헌법을 부정하는 이들이다. 모두 형식과 절차를 뛰어넘는 실질적 민주주의를 만끽하는,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의 수혜자들이다. 대통령 비판 포스터 하나 붙였다고 저인망식으로 경찰력 동원해서 체포하던 몇 년 전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다. 참으로 ‘활짝 열린’ 사회다. 민주와 정의, 이성과 합리의 가치를 공고히 하는 열린 사회는 바깥에서 교류할 뿐 결코 공격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하지만 ‘내부의 적’들이 발밑을 야금야금 갉아 먹을 때 그들과 교감하는 외부의 적은 이를 공격의 기회로 삼는다. 일본의 경제보복이 본격화하는 이 즈음 누가 한국 사회 내부의 적들인지 똑똑히 목도하고 있다. 이들을 제거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라면 그들이 추앙하는 과거 정권처럼 붙잡아 고문하고 재판을 조작해 감옥에 집어넣으면 끝일 게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다. 철저히 사법정의 차원에서, 정의로운 공공사회의 지속 차원에서, 열린 시민사회의 힘, 이성과 합리의 가치를 믿으면서 대응해야 한다. ‘내부의 적’ 없는 진짜 ‘열린 사회’를 만드는 기본이다. youngtan@seoul.co.kr
  • [전문]문대통령 광복절 경축사 “일본, 대화의 길 나오면 기꺼이 손 잡을 것”

    [전문]문대통령 광복절 경축사 “일본, 대화의 길 나오면 기꺼이 손 잡을 것”

    문재인 대통령이 일본의 무역도발과 관련해 “지금이라도 일본이 대화와 협력의 길로 나온다면 우리는 기꺼이 손을 잡겠다”고 밝혔다. 북미 비핵화 협상에 대해서는 “불만스러운 점이 있다 하더라도 대화의 판을 깨거나 장벽을 쳐 대화를 어렵게 하는 일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며 북미가 협상 테이블 위에서 대화를 통해 문제를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이 15일 충남 천안 독립기념관에서 열린 제 74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일본에 과거사 성찰을 요구하면서도 화해의 손길을 내밀었다. 문 대통령은 “과거를 성찰하는 것은 과거에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딛고 미래로 가는 것”이라며 “일본이 이웃나라에게 불행을 주었던 과거를 성찰하는 가운데 동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함께 이끌어가길 우리는 바란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국제 분업체계 속에서 어느 나라든 자국이 우위에 있는 부문을 무기화한다면 평화로운 자유무역 질서가 깨질 수밖에 없다”며 “먼저 성장한 나라가 뒤따라 성장하는 나라의 사다리를 걷어차서는 안 된다”고 일본의 무역 도발을 비판했다. 그럼에도 문 대통령은 일본과 대화를 통해 양국 갈등을 해결하고 싶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그는 “지금이라도 일본이 대화와 협력의 길로 나온다면 우리는 기꺼이 손을 잡을 것”이라며 “공정하게 교역하고 협력하는 동아시아를 함께 만들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북한과 아시아 이웃나라와의 경제 협력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다음은 문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 전문이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독립유공자와 유가족 여러분,  해외동포 여러분,    3.1독립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년이 되는 올해,  광복 74주년 기념식을 특별히 독립기념관에서 갖게 되어  매우 뜻깊게 생각합니다.    오늘의 대한민국은  어떤 고난 앞에서도 꺾이지 않았고, 포기하지 않았던  독립 선열들의 강인한 정신이 만들어낸 것입니다.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을 갈망하며  모든 것을 바쳤던 선열들의 뜨거운 정신은  이 순간에도 국민들의 가슴에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 독립 선열들과 유공자, 유가족께  깊은 경의를 표하며  광복의 그날, 벅찬 마음으로 건설하고자 했던 나라,  그리고 오늘, 우리가 그 뜻을 이어 만들고자 하는 나라를  국민들과 함께 그려보고자 합니다.    우리가 원하는 나라는 ‘함께 잘사는 나라’,  누구나 공정한 기회를 가지고,  실패해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나라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나라는 완도 섬마을의 소녀가  울산에서 수소산업을 공부하여 남포에서 창업하고,  몽골과 시베리아로 친환경차를 수출하는 나라입니다.  회령에서 자란 소년이 부산에서 해양학교를 졸업하고  아세안과 인도양, 남미의 칠레까지  컨테이너를 실은 배의 항해사가 되는 나라입니다.  농업을 전공한 청년이 아무르강가에서  남과 북, 러시아의 농부들과 대규모 콩농사를 짓고  청년의 동생이 서산에서  형의 콩으로 소를 키우는 나라입니다.    두만강을 건너 대륙으로, 태평양을 넘어 아세안과 인도로,  우리의 삶과 상상력이 확장되는 나라입니다.  우리의 경제활동 영역이 한반도 남쪽을 벗어나  이웃 국가들과 협력하며 함께 번영하는 나라입니다.    “용광로에 불을 켜라 새나라의 심장에  철선을 뽑고 철근을 늘리고 철판을 펴자  시멘트와 철과 희망 위에  아무도 흔들 수 없는 새나라 세워가자”    해방 직후,  한 시인은 광복을 맞은 새 나라의 꿈을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아무도 흔들 수 없는 새나라’  외세의 침략과 지배에서 벗어난  신생독립국가가 가져야 할 당연한 꿈이었습니다.    그리고, 74년이 흐른 지금 우리는  세계 6대 제조강국, 세계 6대 수출강국의  당당한 경제력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국민소득 3만 불 시대를 열었고,  김구 선생이 소원했던 문화국가의 꿈도 이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는  아직 이루지 못했습니다.  아직도 우리가 충분히 강하지 않기 때문이며,  아직도 우리가 분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오늘  어떤 위기에도 의연하게 대처해온 국민들을 떠올리며  우리가 만들고 싶은 나라,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를 다시 다짐합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우리는 자유무역 질서를 기반으로  반도체, IT, 바이오 등  우리가 잘할 수 있는 산업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국제 분업체계 속에서  어느 나라나 자신의 강점을 앞세워 성공을 꿈꿀 수 있었습니다.    근대화의 과정에서 뒤처졌던 동아시아는  분업과 협업으로 다시 경제발전을 이뤘습니다.  세계는 ‘동아시아의 기적’이라고 불렀습니다.    침략과 분쟁의 시간이 없지 않았지만,  동아시아에는 이보다 훨씬 긴 교류와 교역의 역사가 있습니다.  청동기 문화부터 현대 문명에 이르기까지  동아시아는 서로 전파하고 공유했습니다.  인류 역사에서 가장 오랜 교류와 협력이 이루어졌고,  함께 문명의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광복은 우리에게만 기쁜 날이 아니었습니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만주사변과 중일전쟁, 태평양전쟁까지  60여 년간의 기나긴 전쟁이 끝난 날이며,  동아시아 광복의 날이었습니다.  일본 국민들 역시 군국주의의 억압에서 벗어나  침략전쟁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우리는 과거에 머물지 않고  일본과 안보·경제협력을 지속해 왔습니다.  일본과 함께 일제강점기 피해자들의 고통을  실질적으로 치유하고자 했고,  역사를 거울삼아 굳건히 손잡자는 입장을 견지해왔습니다.    과거를 성찰하는 것은 과거에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딛고 미래로 가는 것입니다.  일본이 이웃나라에게 불행을 주었던 과거를 성찰하는 가운데  동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함께 이끌어가길 우리는 바랍니다.    협력해야 함께 발전하고, 발전이 지속가능합니다.  세계는 고도의 분업체계를 통해 공동번영을 이뤄왔습니다.  일본 경제도 자유무역의 질서 속에서  분업을 이루며 발전해왔습니다.    국제 분업체계 속에서  어느 나라든 자국이 우위에 있는 부문을 무기화한다면  평화로운 자유무역 질서가 깨질 수밖에 없습니다.  먼저 성장한 나라가  뒤따라 성장하는 나라의 사다리를 걷어차서는 안 됩니다.    지금이라도 일본이 대화와 협력의 길로 나온다면  우리는 기꺼이 손을 잡을 것입니다.  공정하게 교역하고 협력하는 동아시아를  함께 만들어갈 것입니다.    지난해 평창동계올림픽에 이어 내년에는 도쿄하계올림픽,  2022년에는 베이징 동계올림픽이 열립니다.  올림픽 사상 최초로 맞는 동아시아 릴레이 올림픽입니다.  동아시아가 우호와 협력의 기틀을 굳게 다지고  공동 번영의 길로 나아갈 절호의 기회입니다.    세계인들이 평창에서 ‘평화의 한반도’를 보았듯이  도쿄 올림픽에서 우호와 협력의 희망을 갖게 되길 바랍니다.    우리는 동아시아의 미래 세대들이  협력을 통한 번영을 경험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주어진 책임을 다할 것입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오늘의 우리는 과거의 우리가 아닙니다.  오늘의 대한민국은 수많은 도전과 시련을 극복하며  더 강해지고 성숙해진 대한민국입니다.    저는 오늘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  우리가 만들고 싶은 ‘새로운 한반도’를 위해  세 가지 목표를 제시합니다.    첫째, 책임 있는 경제강국으로  자유무역의 질서를 지키고  동아시아의 평등한 협력을 이끌어내고자 합니다.    우리 국민이 기적처럼 이룬 경제발전의 성과와 저력은  나눠줄 수는 있어도 빼앗길 수는 없습니다.  경제에서 주권이 확고할 때  우리는 우리 운명의 주인으로, 흔들리지 않습니다.    통합된 국민의 힘은 위기를 기회로 바꿨고,  도전은 우리를 더 강하고 크게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중동의 열사도, 태평양의 파도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경제를 성장시켰습니다.  경공업, 중화학공업, 정보통신 산업을 차례로 육성했고  세계적 IT 강국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5G 등 세계 기술표준을 선도하는 국가가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선진국을 추격해 왔지만,  이제 앞서서 도전하며 선도하는 경제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일본의 부당한 수출규제에 맞서 우리는  책임 있는 경제강국을 향한 길을 뚜벅뚜벅 걸어갈 것입니다.    우리 경제구조를 포용과 상생의 생태계로 변화시키겠습니다.  대중소 기업과 노사의 상생 협력으로  소재·부품·장비 산업의 경쟁력 강화에 힘을 쏟겠습니다.  과학자와 기술자의 도전을 응원하고, 실패를 존중하며  누구도 흔들 수 없는 경제를 만들겠습니다.    우리의 부족함을 성찰하면서도  스스로 비하하지 않고 함께 격려해 나갈 때,  우리는 해낼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우리는 경제력에 걸맞는 책임감을 가지고  더 크게 협력하고 더 넓게 개방하여  이웃 나라와 함께 성장할 것입니다.    둘째, 대륙과 해양을 아우르며  평화와 번영을 선도하는 교량 국가가 되고자 합니다.    지정학적으로 4대 강국에 둘러싸인 나라는  세계에서 우리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초라하고 힘이 없으면,  한반도는 대륙에서도, 해양에서도 변방이었고,  때로는 강대국들의 각축장이 되었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겪었던 지난 역사였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힘을 가지면 대륙과 해양을 잇는 나라,  동북아 평화와 번영의 질서를 선도하는 나라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정학적 위치를 우리의 강점으로 바꿔야 합니다.  더 이상 남에게 휘둘리지 않고 주도해 나간다는  뚜렷한 목표를 가져야 합니다.    일찍이 임시정부의 조소앙 선생은  사람과 사람, 민족과 민족, 국가와 국가 사이의 균등을 주창했습니다.  평화와 번영을 향한 우리의 기본정신입니다.    우리 국민이 일본의 경제보복에 성숙하게 대응하는 것 역시,  우리 경제를 지켜내고자 의지를 모으면서도  두 나라 국민들 사이의 우호가 훼손되지 않기를 바라는  수준 높은 국민의식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정부가 추진하는 ‘사람중심 상생번영의 평화공동체’는  우리부터 시작해 한반도 전체와 동아시아,  나아가 세계의 평화와 번영으로 확장하자는 것입니다.    신북방정책은 대륙을 향해 달려가는 우리의 포부입니다.  중국과 러시아뿐 아니라 중앙아시아와 유럽으로 협력의 기반을 넓히고  동북아시아 철도공동체로 다자협력, 다자안보의 초석을 놓을 것입니다.    신남방정책은 해양을 향해 달려가는 우리의 포부입니다.  아세안 및 인도와의 관계를 주변 주요국들 수준으로 격상시키고  공동번영의 협력관계로 발전시켜 나갈 것입니다.    올해 11월에는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와  한-메콩 정상회의가 부산에서 열립니다.  아세안 및 메콩 국가들과 획기적인 관계발전의 이정표가 될 것입니다.    남과 북 사이 끊긴 철길과 도로를 잇는 일은  동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선도하는,  교량국가로 가는 첫걸음입니다.  한반도의 땅과 하늘, 바다에 사람과 물류가 오가는 혈맥을 잇고  남과 북이 대륙과 해양을 자유롭게 넘나들게 된다면,  한반도는 유라시아와 태평양, 아세안, 인도양을 잇는  번영의 터전이 될 것입니다.    아시아공동체는 어느 한 국가가 주도하는 공동체가 아니라  평등한 국가들의 다양한 협력이 꽃피는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셋째, 평화로 번영을 이루는 평화경제를 구축하고  통일로 광복을 완성하고자 합니다.    분단체제를 극복하여  겨레의 에너지를 미래 번영의 동력으로 승화시켜야 합니다.    평화경제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위에  북한이 핵이 아닌 경제와 번영을 선택할 수 있도록  대화와 협력을 계속해나가는 데서 시작합니다.    남과 북, 미국은 지난 1년 8개월, 대화국면을 지속했습니다.  최근 북한의 몇 차례 우려스러운 행동에도 불구하고,  대화 분위기가 흔들리지 않는 것이야말로  우리 정부가 추진해온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큰 성과입니다.  북한의 도발 한 번에 한반도가 요동치던 그 이전의 상황과  분명하게 달라졌습니다.  여전히 대결을 부추기는 세력이 국내외에 적지 않지만  우리 국민들의 평화에 대한 간절한 열망이 있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지난 6월 말의 판문점 회동 이후  3차 북미 정상회담을 위한  북미 간의 실무협상이 모색되고 있습니다.  아마도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 구축을 위한 전체 과정에서  가장 중대한 고비가 될 것입니다.  남·북·미 모두 북미 간의 실무협상 조기개최에  집중해야 할 때입니다.    불만스러운 점이 있다 하더라도,  대화의 판을 깨거나 장벽을 쳐 대화를 어렵게 하는 일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불만이 있다면 그 역시 대화의 장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논의할 일입니다.  국민들께서도 대화의 마지막 고비를 넘을 수 있도록  힘을 모아주시기 바랍니다.    이 고비를 넘어서면  한반도 비핵화가 성큼 다가올 것이며  남북관계도 큰 진전을 이룰 것입니다.  경제협력이 속도를 내고 평화경제가 시작되면  언젠가 자연스럽게 통일이 우리 앞의 현실이 될 것입니다.    IMF는 한국이 4차산업혁명을 선도하며,  2024년경 1인당 국민소득 4만 불을 돌파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남과 북의 역량을 합친다면  각자의 체제를 유지하면서도  8천만 단일 시장을 만들 수 있습니다.  한반도가 통일까지 된다면  세계 경제 6위권이 될 것이라 전망하고 있습니다.  2050년경 국민소득 7~8만 불 시대가 가능하다는  국내외 연구 결과도 발표되고 있습니다.    평화와 통일로 인한 경제적 이익이  매우 클 것이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남과 북의 기업들에게도 새로운 시장과 기회가 열립니다.  남북 모두 막대한 국방비뿐 아니라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무형의 분단비용을 줄일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저성장, 저출산·고령화의 해답도 찾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광복의 그 날처럼 우리 민족의 마음에 싹틀  희망과 열정이 중요합니다.  희망과 열정보다 더 큰 경제성장의 동력은 없을 것입니다.    부산에서 시작하여 울산과 포항, 동해와 강릉, 속초,  원산과 나진, 선봉으로 이어지는 환동해 경제는  블라디보스톡을 통한 대륙경제,  북극항로와 일본을 연결하는 해양경제로 뻗어 나갈 것입니다.    여수와 목포에서 시작하여 군산, 인천을 거쳐  해주와 남포, 신의주로 향한 환황해 경제는  전남 블루이코노미, 새만금의 재생에너지 신산업과  개성공단과 남포, 신의주로 이어지는 첨단 산업단지의 육성으로  중국, 아세안, 인도를 향한 웅대한 경제전략을 완성할 것입니다.    북한도 경제건설 총노선으로 국가정책을 전환했고  시장경제의 도입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국제사회도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경제성장을 돕겠다 약속하고 있습니다.    북한을 일방적으로 돕자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의 체제 안전을 보장하면서  남북 상호 간 이익이 되도록 하자는 것이며,  함께 잘 살자는 것입니다.  세계 경제 발전에 남북이 함께 이바지하자는 것입니다.    평화경제를 통해 우리 경제의 신성장동력을 만들겠습니다.  우리의 역량을 더 이상 분단에 소모할 수 없습니다.  평화경제에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부어  ‘새로운 한반도’의 문을 활짝 열겠습니다.    남과 북이 손잡고  한반도의 운명을 주도하려는 의지를 가진다면 가능한 일입니다.  분단을 극복해낼 때 비로소 우리의 광복은 완성되고,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가 될 것입니다.    ‘북한이 미사일을 쏘는데 무슨 평화 경제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보다 강력한 방위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의주시하며  한반도의 긴장이 높아지지 않도록 관리에 만전을 다하고 있지만,  그 역시 궁극의 목표는 대결이 아니라 대화에 있습니다.  미국이 북한과 동요 없이 대화를 계속하고,  일본 역시 대화를 추진하고 있는 현실을 직시하기 바랍니다.  이념에 사로잡힌 외톨이로 남지 않길 바랍니다.    우리 국민의 단합된 힘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국민들께서 한마음으로 같이해주시길 바랍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독립유공자와 유가족 여러분,  해외동포 여러분,    저는 오늘 광복절을 맞아  임기 내에 비핵화와 평화체제를 확고히 하겠다고 다짐합니다.  그 토대 위에서 평화경제를 시작하고 통일을 향해 가겠습니다.    북한과 함께 ‘평화의 봄’에 뿌린 씨앗이  ‘번영의 나무’로 자랄 수 있도록  대화와 협력을 발전시켜나갈 것입니다.    2032년 서울-평양 공동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하고,  늦어도 2045년 광복 100주년에는  평화와 통일로 하나된 나라(One Korea)로  세계 속에 우뚝 설 수 있도록,  그 기반을 단단히 다지겠다고 약속합니다.    임시정부가 ‘대한민국’이라는 국호와 함께  ‘민주공화국’을 선포한 지 100년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100년 동안 성찰했고 성숙해졌습니다.  이제 어떤 위기도 이겨낼 수 있을 만큼 자신감을 갖게 되었고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를 이루기 위한 국민적 역량이 커졌습니다.  우리는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를 만들 수 있습니다.    남강 이승훈 선생의 말을 되새겨봅니다.    “나는 씨앗이 땅속에 들어가 무거운 흙을 들치고 올라올 때  제힘으로 들치지 남의 힘으로 올라오는 것을 본 일이 없다.”    우리 힘으로 분단을 이기고 평화와 통일로 가는 길이  책임 있는 경제강국으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우리가 일본을 뛰어넘는 길이고,  일본을 동아시아 협력의 질서로 이끄는 길입니다.    한반도와 동아시아, 세계의 평화와 번영을 이끄는  ‘새로운 한반도’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끝>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오늘의 눈] 자사고 폐지 열정, 공교육에 쏟았더라면/임송학 사회2부 기자

    [오늘의 눈] 자사고 폐지 열정, 공교육에 쏟았더라면/임송학 사회2부 기자

    전북 상산고의 자율형사립고(자사고) 지위 유지 여부를 둘러싼 교육부와 전북도교육청 간의 갈등이 결국 법적 싸움으로 번졌다. 전북도교육청은 지난 12일 교육부를 상대로 대법원에 상산고의 자사고 부동의 처분 취소소송’을 청구했다. 상산고 사태가 2라운드로 접어든 것이다. 김승환 전북도교육감은 “법령을 위반하지 않는 한 지방자치단체(전북도교육청)의 권한은 존중돼야 하는데 그 부분을 교육부 장관이 무리하게 부동의 처리했다”며 소송 의지를 불태웠다. 앞서 교육부는 상산고가 구 자립형사립고로 사회통합전형 선발 의무가 없는데도 선발 의무 비율을 적용한 점이 위법하다고 판단해 상산고의 손을 들어줬다. 전북도만 유일하게 재지정 기준 점수가 80점으로 타 지역(70)보다 10점 높다는 점에서 여론도 김 교육감의 편을 들지 않았지만 앞으로도 계속 싸우겠다는 것이다. 그는 소송과 별개로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 심판’을 청구하는 것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상산고의 자사고 폐지 시도 과정에서 정작 그의 아들은 영국 입시기관을 거쳐 명문인 케임브리지대에 들어갔다는 사생활까지 파헤쳐져 ‘내로남불’식 행태를 보인다고 공격당했지만 물러설 기색이 없다. “김 교육감이 공식 사과하고 자진 사퇴하지 않으면 주민 소환에 나서겠다”고 목청을 높이는 지역 교육계 원로들의 호통에도 귀를 닫고 있다. 교육부의 최종 판단이 나온 이상 김 교육감은 상산고 자사고 폐지 시도가 왜 실패했는지를 먼저 돌아봐야 한다. 상산고 죽이기 해프닝을 통해 법학자 출신으로서 ‘법적 사고력’과 ‘법 인식론’이 한쪽으로 경도되면 부작용이 크다는 점을 몸소 보여 줬다. 향후 대법원 소송에서도 이전처럼 법규를 아전인수(我田引水)식으로 해석해 소송비만 날리고 행정력을 낭비하는 결과를 초래할 공산이 크다. 특정 개인의 ‘사적인 이념’보다 ‘보통의 상식’이 세상을 이끌어 간다는 것은 평범한 진리다. 김 교육감이 자사고 폐지 열정을 공교육 정상화에 쏟아부었더라면 전북 교육의 현주소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크다. 대법원 소송 대신 전북 공교육 강화에 매진하길 바란다. shlim@seoul.co.kr
  • 국가 폭력에 의한 ‘간첩죄’… 58년 만에 무죄 판결 “기쁘지만 억울”

    국가 폭력에 의한 ‘간첩죄’… 58년 만에 무죄 판결 “기쁘지만 억울”

    1961년 5·16 군사정변 직후 아버지는 간첩 누명을 쓰고 사형 위기에까지 몰렸다가 2년간 옥살이 끝에 풀려났다. 아버지가 끌려가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던 국민학교 1학년 막내딸의 꿈은 이때부터 ‘아버지의 억울함을 풀어 드리는 것’이 됐다. 오랜 세월이 걸렸다. 군사정권이 물러나도 ‘빨갱이’의 굴레는 무거웠다. 여전히 국가를 믿을 수 없었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아버지가 한을 품고 세상을 뜬 지 30년이 넘어서야 재심을 청구할 수 있었고 지난 5월 16일, 58년 만에 무죄 선고가 내려졌다. 그렇게 막내딸의 힘으로 명예를 되찾은 아버지는 해방 후 서울대 법대 학장을 지내고 한글로 된 최초의 민법학서를 남긴 진승록 교수다. 지난 23일 서울 서초동 자택에서 만난 막내딸 진미경(64) 한국외대 초빙교수는 인터뷰 2시간 내내 눈물을 흘렸다. 재심 준비 과정이나 앞으로의 계획은 힘주어 말했지만, 과거를 돌이킬 때마다 눈물을 쏟았다. 그는 “재심에서 무죄를 받고 나니 아버지의 인생이 더 억울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뒤늦게 재심을 청구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아버지가 국민학교 1학년 어느 날 새벽에 끌려가던 모습이 생생히 기억나요. 3학년이 돼서야 집으로 돌아오셨죠. 중학교 1학년 때였는데 아버지가 잠들지 못한 채 홀로 탄식하는 걸 우연히 들었어요. ‘억울하다. 원통하다’ 그러시더라고요. 그 말씀을 들으면서 ‘내가 아버지 한을 풀어 드려야겠다’고 거듭 다짐했지요.” “어느 날 신문을 보는데 간첩 누명을 썼던 죽산 조봉암 선생님이 무죄 판결(2011년)을 받아서 따님이 인터뷰한 기사가 나오더라고요. 그때 따님 나이가 여든이 넘었어요. ‘저렇게 연세가 많은 분도 하는데 나는 이게 뭔가´라는 자책감이 들었죠. 2014년 서울대 법대에서 6·25전쟁 관련 세미나를 열었는데, 아버지 이야기를 해 달라는 요청이 왔어요. 거기서 아버지의 서울대 법대 제자들을 만났는데, 그분들이 ‘서울대 법대 학장이 빨갱이라는 게 말이 되냐. 재심을 청구하라´고 적극 권유했어요. 그분들 이야기를 듣고 용기를 내게 됐어요.” 진승록 교수는 6·25전쟁 당시 서울대 법대 학장으로 교정을 지키다 납북됐고, 넉 달 만에 탈출해 고시위원장 등을 지냈지만 1961년 5·16 직후 간첩으로 몰려 사형을 선고받았다. 이듬해 항소심에서 간첩방조죄만 인정돼 징역 10년으로 감형, 1963년 가석방됐지만 1985년 80세로 작고할 때까지 누명을 벗지 못했다. 진미경 교수는 정치학을 전공했지만 국가를 믿지 않았다. 2005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만들어졌을 때도 그런 이유로 아버지 사건을 신청하지 않았다고 한다. 아버지가 국가 폭력에 의해 억울하게 희생당했는데 국가가 다시 심사해서 밝혀 준다는 걸 믿을 수 없었다. 국가가 진실을 밝혀 줄 리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재심 과정에서 어떤 점이 힘들었나요. “판결문 이외에는 자료가 남아 있지 않았어요. 진실화해위원회에서 일했던 김윤경 조사팀장이 자료를 찾는 방법을 알려줘서 도움이 많이 됐어요. 판결문 외에 재소자 인명부를 챙겼죠. 수사기록을 국가정보원이나 군에 요청했는데 처음에는 수사한 적 없다고 답하더라고요. 아는 국회의원을 통해 정보공개를 요청했더니 그제서야 수사는 했지만 기록이 없다고 말을 바꿨어요. 증언해 줄 사람을 찾기 위해 강원 원주, 전남 순천, 부산 등 안 가 본 곳이 없어요. 너무 오래전 일이라 대부분 돌아가셨거나 살아 있어도 증언을 거부했어요.” 서울고법 형사2부의 재심 판결문에는 “이 사건에 대해 육군고등검찰부, 국가정보원, 국가기록원 등에 기록 송부와 보존 여부 확인을 요청한 결과 그 어디에도 수사기록이나 재판기록이 보존돼 있지 않았다”고 명시돼 있다. 진 교수는 아버지에게 사형을 구형한 군검사를 어렵게 만났지만, 아버지를 모른다고 부인했다. 그는 나중에야 ‘진 학장의 딸이 나를 찾아올 줄 몰랐다. 상부의 지시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놨다. 결국 재심 재판부는 “피고인이 불법구금 상태에서 수사를 받았음을 인정할 수 있고, 수사 과정에서 가혹행위를 당했다고 볼 개연성이 있다”며 “불법구금과 가혹행위 등으로 임의성 없는 진술을 한 후 임의성 없는 심리 상태가 법정에서도 계속된 것으로 보인다”며 무죄를 선고했다.-재심 준비 5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은 기분은 어땠나요. “선고 전부터 법정에 앉아서 남편이랑 계속 울었어요. ‘간첩´이란 말이 얼마나 무서운지 요즘 사람들은 모를 거예요. 정말 가슴이 터질 것 같더라고요. 재판장인 차문호 부장판사가 ‘너무 늦게 무죄를 드려서 미안하다. 지금이라도 무죄를 받게 돼서 다행´이라고 말했어요. 처음엔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 드디어 아버지 한을 풀어드렸구나. 아버지의 법대 제자들이 축하연도 열어 주셨어요.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더 슬프고 억울한 느낌이 들어요. ‘돌아가신 아버지가 살아서 무죄 판결을 봤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살아 돌아오시지도 못하고, 아버지의 억울한 삶은 되돌릴 수가 없구나´ 이런 생각만 커지네요.” 진승록 교수는 1905년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나 일본 와세다대 법학부를 졸업하고 보성전문학교(고려대) 교수와 서울대 법대 학장 등을 지냈다. 1947년 ‘민법총칙’을 시작으로 민법총론, 물권법, 담보물권, 채권총론, 채권각론 등 6권의 저서를 남겼다. 1952~1955년 지낸 고시위원장은 당시 정부 서열 4위로, 진 교수는 기술고시를 도입했다. -간첩죄에 휘말린 뒤 아버지는 어떻게 지냈나요. “엄마가 먼저 집에 왔는데, 또렷이 기억나요. 언니와 함께 학교 앞에서 떡볶이를 사 먹고 있었는데 입주 도우미 언니가 달려와서 ‘엄마가 오셨다´고 말했어요. 많이 남은 떡볶이를 그냥 내려놓고 놀라서 뛰어갔어요. 이듬해 여름에 아버지가 오셨어요. 풍채 좋던 아버지가 굉장히 수척해지셨어요. 고문 때문에 수저도 들어 올리지 못하셨어요. 벽에 금을 단계별로 그어 놓고 조금씩 올리면서 나름의 재활운동을 하셨지요.” “학자로서 활동은 전혀 못하셨어요. 한동안은 몸이 안 좋아서 그랬고, 박정희 사후 전두환 군부가 이어지니까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죠. 형사들이 툭하면 찾아왔어요. 잡혀갈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늘 사로잡혀 있었던 것 같아요. 글조차 쓰지 못하셨죠. 유머가 많은 분이셨는데 성격도 변했고요. 1978년에 사면을 받고 변호사 등록을 하려고 했는데 법무부가 안 내줬어요. 변호사 등록 업무가 대한변호사협회로 이관된 1983년에야 변호사 재등록이 됐어요. 제대로 활동도 못하고 2년 후 돌아가셨죠.”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요. “아버지 제자들은 저보고 효녀라고 하지만, 스스로 자랑스럽다는 생각은 안 들어요. 아버지 간첩 누명 때문에 1980년에 미국으로 유학을 가려는데 외무부에서 여권을 안 내줬어요. 아버지 제자들이 신원보증을 서서 어렵사리 유학을 떠났죠. 저도 그런 일을 겪으면서 아버지에 대한 원망 비슷한 게 있었던 것 같아요. 너무 죄송하죠. 아버지가 사면받고 변호사 등록하려고 백방으로 알아보셨을 때도 도와드리지 못했어요.” “아버지의 업적을 재평가하는 작업을 하고 싶어요. 학술 세미나도 하고요. 아버지 고향인 강릉 옥계면의 이름을 따서 기념사업을 계획 중이에요. 아버지의 민법이론과 고시위원장 당시 하신 일을 재조명할 거예요. 저는 아버지 때문에 정치학 교수가 됐어요. 어렸을 때부터 ‘국가란, 정치란, 이데올로기란 무엇인가’라는 고민을 많이 했거든요. 다시는 이념 갈등으로 인해, 국가폭력으로 인해 희생되는 사람이 없으면 좋겠습니다.”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
  • 교육부 장관 부동의 결정은 사필귀정

    전주 상산고가 교육부 장관의 자사고 지정취소 부동의 결정은 당연한 결과로 미래사회에 필요한 인재육성에 더욱 정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박삼옥 전주 상산고 교장은 25일 교육부의 자사고 지정취소 부동의 결정 발표 직후 낸 보도자료를 통해 “이번 결정은 전북교육청의 평가가 형평성, 공평성, 적법성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인정한 당연한 결과이자 사필귀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자사고 평가는 교육이 인재양성과 사회 발전 등 삶의 터전으로부터 분리되어 생각될 수 없음을 다시금 확인시킨 계기였다”며 “노정된 갈등과 불통의 교육현실을 개선하고 미래로 나아가는 교육을 위해 서로 협력해야 한다”고 김승환 전북교육감과 전북교육청의 자세 변화를 촉구했다. 특히, 박 교장은 “더 이상 교육에 대해 이념적·정치적으로 접근하여 학생과 학부모를 불안하게 하고 학교의 자율적 운영을 저해하는 일이 있어선 안될 것”이라며 “지난 17년 동안 진보오아 보수 정부를 거치면서 뿌리내려온 학교에 대하여 모든 악의 근원인양 존폐를 운운하는 식의 정책은 학교뿐 아니라 교육과 국가의 장래를 위해서도 부적절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 교장은 “상산고는 본연의 학교 운영에 힘을 집중하여 우리나라 미래사회에 필요한 인재육성을 위해 지혜를 모으고 정진해 나가겠다”면서 “자사고 지정목적을 온전히 감당해 실천하기 위해 부족한 점들을 보완하고 잘 해온 점들을 계승하는데 진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사설] 참의원 선거 치른 아베 총리, 한일 갈등 풀어라

    아베 신조 총리 정권의 중간평가 성격을 띤 일본 참의원 선거 투표가 어제 끝났다. 이날 오후 8시 NHK가 발표한 출구조사에 따르면 아베 총리가 이끄는 집권 자민당과 공명당이 개선(신규) 의석(124석)의 과반을 확보했다. 또 헌법 개정에 긍정적인 일본 유신회 등을 합쳐 개헌 발의선인 3분의2 의석(164석)에 근접할 것으로 보도됐다. 아베 총리는 이번 선거에서 개헌 발의 가능 의석을 확보하기 위해 한국에 대한 경제보복 카드를 들고나왔다. 정치와 무역 등 경제 활동은 분리하는 것이 지난 수십년간 국제경제를 발전시켜 온 근간이었는데 아베 총리가 이를 무시했다. 일본 정부가 무역을 보복 수단으로 들고 나온 것은 자유무역의 이념을 훼손한 것이다. 아베 총리는 지난달 오사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자유롭고 개방된 경제가 국제 평화와 번영의 기반”이라고 선언했지만, 이틀 만에 한국 반도체산업에 핵심적인 부품에 대한 수출 규제 조치를 발표했다.  세계 경제는 품질과 가격에서 비교우위를 가진 품목을 각자 생산한 뒤 무역으로 주고받는 공존 시스템에 의존하고 있다. 소니와 파나소닉 등 일본 TV 제조사의 상당수는 한국제(디스플레이) 패널을 사용하고 있다. 애플의 아이폰 등 미국과 중국의 기업들도 스마트폰과 컴퓨터에서 한국제 반도체와 패널을 사용하고 있다. 한국의 반도체 생산이 줄면 일본에 부메랑으로 돌아오는 것은 물론 각국 기업의 생산에 지장이 발생하면 일본이 국제사회에서 비판을 받게 된다.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최신호(7월 20일자)에서 “넓게 보면 일본의 자해는 무모하다”면서 “일본의 수출 규제는 경제적으로 근시안적”이라고 보도했다.  일본이 수출 규제를 포괄적으로 완화해 주는 ‘화이트 국가 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하면 한국 정부는 대항 조치로 다음달 말에 만료되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파기 카드를 꺼내들 가능성이 높다. 양국 정부의 지루한 감정싸움은 결국 양국 기업들에 피해를 입히고, 상대 국민에 대한 혐오만 키울 뿐이다. 일본 소재 업체들은 주가 하락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서울신문이 전국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18일 공개한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불매운동에 참여하겠다’는 응답이 72%였다. 한국은 제조기술, 일본은 소재기술을 발전시키며 동반자적 관계를 맺고 성장했다. 양국의 갈등이 심화하면 공멸밖에 없다. 참의원 선거를 마친 만큼 아베 총리는 강제징용에 대한 해법을 한국 정부와 성실한 협상을 통해 찾아야 할 것이다.
  • [자치광장] 지속가능발전 새로운 출발이 필요하다/이동진 도봉구청장

    [자치광장] 지속가능발전 새로운 출발이 필요하다/이동진 도봉구청장

    30여년 전 세계는 미래를 향한 가치의 전환을 시작했다. 1987년 세계환경개발위원회가 유엔에 제출한 ‘우리 공동의 미래’라는 보고서에서 지속가능발전 개념을 본격적으로 제시했다. 지구환경 문제로부터 출발한 지속가능발전의 개념은 이 보고서를 계기로 사회·경제적 영역을 포함한 인류사회가 나아가야 할 보편적 가치이자 지향점으로 확장됐다. 2015년 세계는 또 한 번 담대한 도전을 시작했다. 제70차 유엔총회에서 양극화와 사회갈등, 기후변화로 몸살을 앓고 있는 지구촌이 지향해야 할 공동의 목표로 17개의 지속가능발전목표와 169개의 세부목표를 설정했고, 각국은 목표 실현을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이런 국제적인 흐름과는 달리 우리 정부의 준비와 노력은 매우 더디다. 노무현 정부는 경제, 사회, 환경의 통합정책을 지향하며 지속가능발전기본법을 제정했다. 이명박 정부는 이 법의 위상을 기후환경과 산업분야로 국한한 저탄소녹색성장기본법으로 대체하며 일반법으로 축소시켰다. 국제적으로 상위개념인 지속가능발전이 실행수단에 불과한 녹색성장과 위상이 뒤바뀐 것이다. 대통령 직속기구였던 지속가능발전위원회는 환경부 소속으로 격하됐고, 저탄소녹색성장위원회는 현재 국무총리 소속이다. 경쟁과 효율을 우선적 가치로 삼는 시장경제체제가 일반화된 사회에서 지속가능발전의 가치를 실현하려면 정부를 비롯한 공공부문의 강력한 의지가 중요하다. 현행 관련법령과 추진기구는 정부의 의지를 담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국제사회의 일관된 흐름과는 달리 우리는 권력 교체기마다 정치적 이념지향에 따라 관련 정책이 크게 흔들렸고, 아직도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지난 4월 18일 지속가능발전법 개정과 지속가능발전위원회의 대통령 직속기구로의 환원 등을 골자로 지속가능발전지방정부협의회가 발표한 결의문은 지속가능발전과 관련한 아래로부터의 움직임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지금이라도 정부와 여야가 협력해 파편화된 법령을 지속가능발전기본법으로 일원화하고, 지속가능발전위원회를 대통령 직속으로 환원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시민사회와 산업계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함께 손잡고 나아갈 수 있기를 희망한다.
  • 문 대통령 ‘이순신’ 언급에 조국 수석 ‘죽창가’ 소개

    문 대통령 ‘이순신’ 언급에 조국 수석 ‘죽창가’ 소개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로 한일 양국의 갈등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동학농민혁명을 소재로 한 노래인 ‘죽창가’를 소개했다. 조 수석은 13일 밤 페이스북에 노래와 함께 글을 올려 “SBS 드라마 ‘녹두꽃’ 마지막 회를 보는데 한참 잊고 있던 이 노래가 배경음악으로 나왔다”고 말했다. 녹두꽃’은 1894년 동학농민혁명 당시 일본에 맞선 의병과 민초들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다. 죽창가는 고(故) 김남주 시인이 작사한 것으로 “이 두메는 날라와 더불어 꽃이 되자 하네 꽃이 피어 눈물로 고여 발등에서 갈라진 녹두꽃이 되자 하네/ 이 산골은 날라와 더불어 새가 되자 하네 새가 아랫녘 웃녘에서 울어 예는 파랑새가 되자 하네/ 이 들판은 날라와 더불어 불이 되자 하네 불이 타는 들녘 어둠을 사르는 들불이 되자 하네/ 되자 하네 되고자 하네 다시 한번 이 고을은 반란이 되자 하네 반란이 청송녹죽 가슴에 꽂히는 죽창이 되자 하네” 라는 가사를 담고 있다. 조 수석은 지난 12일에도 한 칼럼을 인용해 “우리 정부와 국민을 농락하는 아베 정권의 졸렬함과 야비함에는 조용히 분노하되 그 에너지를 내부 역량 축적에 쏟아야 한다”며 “이념과 정파를 떠나 구호가 아닌 실질적 극일(일본을 이기는 것)을 도모하자”고 말했다. 그는 “문제도, 해결 방법도 안다면 남은 건 실행뿐이다”라며 “우리에겐 그럴 만한 능력과 경험이 있다. 그건 자부할 만하지 않은가”라고 덧붙였다. 한편 문재인 대통령도 12일 전남 지역경제투어에서 “전남 주민들이 이순신 장군과 함께 불과 12척의 배로 나라를 지켰다”고 말했다. ‘12척의 배’는 당초 원고에는 없던 내용이었다. 문 대통령은 연설문에서 이순신 장군을 3차례 언급해 정부와 국민이 한마음으로 일본의 경제보복에 대응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은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서울광장] 종북 콤플렉스, 그리고 트럼프/박록삼 논설위원

    [서울광장] 종북 콤플렉스, 그리고 트럼프/박록삼 논설위원

    지난달 18일 대법원은 임수경 전 의원이 제기한 명예훼손 손해배상 청구소송 원심을 파기해 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그 내용인즉슨 “‘종북의 상징’이라는 표현은 명예훼손에 해당하지 않는다”였다. 대법원은 이에 며칠 앞서 이정희 전 통합진보당 대표 등에게 ‘종북 부부’라 칭한 표현 역시 명예훼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정치적 논쟁이나 의견 표명과 관련해 표현의 자유를 넓게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 두 판결의 주요 취지다. 마치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는 듯한 진보적 판결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는 한국 사회의 역사적 특성과 정치 사회의 문화적 특성을 철저히 외면한 판결이다. 판사들이 수십년 묵은 이념 갈등에 여전히 사로잡혀 있거나, 아니면 그들의 삶이 국민 정서와 너무 동떨어져 있는 탓일 수도 있다. ‘종북’(從北)은 학문적으로 정리된 개념도 아니다. 아마 북한을 무비판적으로 따르고 좋아하는 이들을 일컫는 지칭 같다. 종북 이전에는 파르티잔에서 파생된 ‘빨갱이’가, 1990년대에는 ‘주사파’가 있었다. 뭐라 부르든 남북이 서로 총부리를 맞댄 살육의 역사가 있었고, 그 결과물인 분단이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상황이기에 비합리와 야만의 언어들이 난무했다. 한번 이렇게 분류되면 한국 사회에서 법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공존하기 어려운 왕따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심지어 세력 내에서도 ‘종북’이라는 낙인이 찍히면 함께 진보적 가치를 도모할 수 없는 이로 전락한다. 평범한 이들 사이에서도 관계가 어색해지고, 말 섞기가 괜스레 꺼려진다. 예컨대 술자리 화제로 남북 간 화해와 협력의 가치를 얘기라도 할라치면 단어 하나, 비유 하나 들 때도 조심스러워진다. 설령 농담 비스무레하게라도 “너, 종북 아냐?”라는 대꾸가 나오는 순간 당사자는 운신과 발언의 폭이 확 좁아질 수 있다. ‘종북 딱지’ 붙이기는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빨갱이 콤플렉스’의 21세기 버전이다. 이는 군사독재 정권이 오랜 시절 써온 전가의 보도였다. 누군가의 사회적 공민권을 빼앗거나 축소시키는 방법은 간단했다. ‘빨갱이’라고 부르면 끝이었다. 야당 정치인을 탄압할 때도 물론이었다. 민주와 통일을 얘기하는 노동운동, 학생운동을 진압할 때도 거침없이 활용됐다. 구체적 증거가 없어도, 증거를 조작해도 ‘빨갱이’라는 이름 하나만 붙이면 이들을 고문하고 감옥으로 집어넣고 간첩으로 만드는 데 아무런 장애가 없었다. 거기에 의심을 품거나, 감싸안아 주는 이가 있다면 그 역시 똑같은 혐의와 손가락질을 받아야 했다. 이런 역사적 배경과 현실에도 불구하고 누군가가 상대방에게 ‘종북’이라 칭하는 것이 표현의 자유로 보장된다면 이는 법원이 앞장서서 이념적 갈등과 대립, ‘빨갱이 콤플렉스’를 부추기고, 극단적 막말 풍조를 조장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물론 대법원 탓만 할 것도 아니다. 이미 우리 스스로 ‘종북 프레임’에 갇혀 있는지도 모른다. ‘종북’의 기원은 놀랍게도 진보 진영 내부에서 처음 나왔다. 2004년 한국 진보정당 사상 처음으로 의회에 진출한 민주노동당 내부 정파 싸움 속 저명한 정치인들은 ‘종북 프레임’을 당내 입지 강화의 수단으로 적극 활용했다. 당시에는 어느 정도 성공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2019년 7월 광화문광장에서 성조기, 이스라엘기, 태극기를 흔들어 대는 극우세력은 그 진보 정치인들을 향해 서슴없이 ‘종북 좌빨’이라 불러 대고 있다. 전쟁은 가깝고 평화는 아득한가 싶은 상황에서 최근 벌어진 ‘세계사적 이벤트’는 성조기 흔들던 세력들을 동요하게 했고, 균열시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판문점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나 남북 경계를 함께 오르내린 장면과, 문재인 대통령까지 세 사람이 한 자리에서 정담을 나누던 모습은 세계 인류와 한반도가 더이상 전쟁과 대결이 아닌, 평화와 공존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당위와 의지가 만들어 낸 일대 사건이었다. 문 대통령이야 지금껏 ‘종북’이라는 비난을 밥 먹듯이 들어 왔으니 차라리 논외다. 극우논객들은 “미국에 더이상 의존할 수 없다”는 탄식과 함께 “결국 트럼프도 종북인가”라는 말까지 내뱉으며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종북몰이자들’의 혼란이 커질수록 전쟁과 대결에 종지부를 찍는 시기는 더 가까워 온다. 비록 조금은 더디고 방법적으로 힘겹더라도 ‘평화와 공존’으로 우리 사회를 대전환해야 한다. ‘종북 콤플렉스’가 판치는 야만의 시대는 자연스럽게 종식될 것이다. youngtan@seoul.co.kr
  • [사설] 자사고 탈락, 객관성·투명성 확보해야 정당성 얻는다

    서울시교육청이 어제 13개 자율형사립고(자사고) 재지정 평가에서 기준 점수인 70점에 미달한 8곳에 대해 지정 취소 결정을 내렸다. 자사고 지지 세력이 주장해 온 ‘무더기 탈락 우려’가 현실화한 것이다. 이로써 전북 상산고, 경기 안산동산고, 부산 해운대고에 이어 올해 전국 재지정 평가 대상 24개 학교 가운데 자사고 탈락 위기 학교는 총 11곳에 이른다. 평가는 끝났지만, 후폭풍은 이제 시작이다. 청문회를 거쳐 교육부 동의 여부가 나올 때까지는 물론이고, 그 결과에 따라 자사고든 해당 교육청이든 법적 대응이 불가피한 상황이어서 논란은 갈수록 가열될 것으로 보인다. 자사고 재지정 평가는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에 따라 5년마다 받도록 돼 있다. 교육 다양성과 자율성이라는 설립 취지대로 운영하고 있는지 법과 규정에 따라 객관적이고, 공평하게 평가해 그 기준에 못 미친다면 자사고 지위를 회수하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재지정 평가 때마다 공정성과 형평성 시비가 끊이지 않았다. 그 배경에는 정권의 교육 이념에 따라 기준 점수나 평가지표가 오락가락하는 등 제도를 자의적으로 운용한 탓이 크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4년 첫 번째 재지정 평가에서 교육부의 권고 기준 점수는 60점이었다. 그러나 당시 자사고 상당수가 60점 미만을 받고도 취소 유예 결정으로 살아남았다. 올해 교육부는 권고 기준 점수를 70점으로 올렸다. 전북교육청은 재량권을 발휘해 점수를 80점까지 올려 상산고가 79.61점을 받고도 취소 절차를 밟는 일이 벌어졌다. 문재인 정부는 ‘자사고의 일반고 전환’을 국정과제로 삼았다. 고교 서열화, 일반고 황폐화 등 자사고의 부작용과 해악을 방치하고선 공교육 정상화가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그러나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등 진보 교육감들이 주장하는 ‘일괄전환’은 정부도 동의하지 않는다. 현재로선 재지정 평가를 통한 ‘점진적 전환’이 공약을 실현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때문에 이 과정에서 소모적 갈등이나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하도록 교육청과 교육부가 각별한 노력을 기울일 의무가 있다. 평가위원과 심사과정을 공개하지 않고 결과만 일방통보한다면 자사고 탈락을 순순히 수용하기 어렵다. 지난해 한국교육개발원 조사에서 자사고 폐지 여론은 찬성 47.2%, 반대 15.2%였다. 찬성 여론이 우세해도 교육감들이 자사고 폐지를 맘대로 좌지우지할 수는 없다. 객관적이고 공정한 평가가 투명하게 공개돼야 결과의 정당성이 확보된다. 그래야 5년마다 반복되는 자사고 재지정 평가 논란에서 벗어날 수 있다.
  • 국민들 “사회갈등 중 이념 가장 심각”

    우리 국민은 여러 사회갈등 유형 중 보수·진보 간 이념갈등을 가장 심각한 것으로 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일 한국행정연구원이 지난해 8~9월 만 19~69세 성인 8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발표한 ‘2018 사회통합실태조사’에 따르면 보수·진보 간 이념갈등에 대한 인식은 4점 만점에 3.3점으로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어 계층갈등과 노사갈등(이상 각 3.0점), 환경갈등(2.9점), 세대갈등(2.8점), 지역갈등, 종교갈등(각 2.7점), 성별갈등(2.6점) 순으로 나타났다. 이념갈등은 2016년 3.2점에서 지난해 3.3점으로 격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환경, 세대, 종교, 성별갈등도 전년에 비해 심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 사회의 이념갈등이 어느 정도인가에 대한 질문에 ‘심하다’(매우 심하다+약간 심하다)는 답변이 87.3%로, ‘심하지 않다’(12.7%)에 비해 7배 이상 많았다. 이러한 사회갈등이 발생하는 원인으로는 ‘개인·집단 간 상호 이해 부족’이 27.5%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최광숙 선임기자 bori@seoul.co.kr
  • [데스크 시각] 2019년 6월은 어떻게 기억될 것인가/김미경 국제부장

    [데스크 시각] 2019년 6월은 어떻게 기억될 것인가/김미경 국제부장

    미국 오하이오주 출신 마음씨 좋은 90살 할아버지 헤즈키아 퍼킨스는 6·25전쟁 참전용사였다. 미국의 수많은 참전용사들처럼 그도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자원 입대해 참전했다. 퍼킨스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지난달 말 CNN 등 미 언론을 통해서였다. 그가 결국 노환으로 숨을 거둔 뒤 마련된 장례식에 멀리 사는 유가족이 건강상 이유로 참석하지 못하게 되자 장례식장 측이 장례식을 불과 하루 앞두고 SNS에 “젊은 시절 한국을 위해 싸운 미군의 상주 역할을 해 달라”는 특별한 안내문을 올린 것이 계기가 됐다. 지역 일부 주민들의 관심 정도를 기대했던 장례식장 측은 깜짝 놀랐다. 고인과 아무런 인연이 없는 시민 수천명과 제복을 차려입은 전현직 군인들이 몰려들어 그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고 함께 추모하는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들 중에는 참전용사인 그에게 조의를 표하기 위해 수백 마일을 운전해서 온 사람들도 있었다. 장례식장 측은 “참석자들에게 감사하고 너무나 자랑스럽다”고 사의를 표했다. 호국보훈의달인 6월을 보내며 퍼킨스의 장례식 사연이 떠오른 것은 나라를 위해 싸운 참전용사들에 대한 미국 사회의 예우에 부러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미국우선주의’를 앞세우며 좌충우돌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도 참전용사 앞에서는 작아진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5일 데이비드 벨라비아 예비역 육군 하사에게 생존한 이라크전 참전용사로는 처음으로 최고 무공훈장을 수여했다. 2016년 워싱턴 특파원 시절 만났던 미 보훈부 관계자는 “미국이 초강대국 자리를 지키며 하나로 뭉칠 수 있는 저력은 참전용사 등 애국자들에 대한 예우로부터 시작된다”며 “애국자들을 영원히 기리고 후손을 챙김으로써 애국심은 더 고취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의 상황은 어떠한가. 해마다 찾아오는 6월 6일 현충일과 6·25전쟁 기념식은 나라를 위해 몸과 마음을 바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희생정신을 기리는 자리이지만, 언제부터인가 좌우 이념 대립과 여야 정쟁의 장으로 얼룩지면서 그들에 대한 예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나라를 위해 몸바친 영웅들에 대한 기억도 희미해지면서 과연 ‘애국’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저마다 각자의 자리에서 애국하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출신 학교 이름이 써진 깃발을 들고 매주 광화문에 모이는 60~70대 ‘태극기부대’들도, 그동안의 젊은이들과는 무엇인가 다르다는 평가를 받는 90년대생들도 말이다. 그리고 이들 사이에 ‘낀 세대’로 양쪽을 다 짊어지고 가는 듯한 30~50대들도 나라를 위해 일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나라를 위해 피 흘려 싸운 애국지사도, 참전용사도 잊혀지고 그들과 유족들에 대한 예우도 기념식에서나 빤짝 이뤄지는 나라를 위해 몸을 바쳐 일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만큼 올해로 100주년이 된 3·1운동과 6·25전쟁 등 희생의 역사를 분명히 기억하고, 제대로 기록하고, 그에 맞는 평가를 하는 것이 절실하다. 그래야 진정으로 나라를 위해 일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런 애국이 후손에게 얼마나 자랑스러운 것인지 알게 될 테니 말이다. 마침 6월의 끝자락에 한반도 운명에 영향을 미칠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계기 한중, 한미 정상회담 등 각종 정상회담이 이어진다. ‘총성 없는 전쟁터’인 외교무대에서 문재인 정부는 북한 비핵화와 남북 화해를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이 역시 정쟁과 갈등의 대상이 되고 있다. 나라의 앞날을 위해 애국하는 마음으로 중지를 모아야 할 때다. 이 또한 역사로 기록돼 후손에게 물려질 것이기 때문이다. 부끄럽지 않은 역사를 만드는 것도, 기억하고 평가하는 것도, 후대에 물려주는 것도 결국 우리의 몫이다. chaplin7@seoul.co.kr
  • 노무현 추모비 청남대 이전 또 좌절

    노무현 추모비 청남대 이전 또 좌절

    시민성금으로 제작된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비를 청남대에 설치하자는 청주시의원 제안을 충북도가 수용하지 않기로 했다. 시민단체에 이어 시의원까지 나섰지만 도는 기존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도의 결정이 당연하다는 의견과 우리사회의 이념적 갈등 때문에 노 전 대통령 추모비가 제자리를 찾지 못해 안타깝다는 반응이 충돌한다.도 청남대 관리사업소는 김영근 청주시의원의 건의로 추모비 이전설치를 검토했지만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27일 밝혔다. 김 의원은 지난달 22일 청주시의회 본회의 5분자유발언을 통해 “10년째 쓸쓸히 방치되고 있는 추모비를 청남대에 설치하자”며 “역대 대통령 기념관과 조형물이 설치된 청남대는 추모비가 있어야 할 최적의 장소”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한범덕 청주시장이 청남대에 추모비가 설치될수 있도록 나서달라”고 당부했다. 그러나 청남대 관리사업소는 민간이 만든 조형물이 청남대에 설치된 사례가 없어 다른 대통령들과의 형평성 논란이 우려되고 보수단체 반발도 예상된다며 반대입장을 시에 전달했다. 청남대 관계자는 “이번에 추모비를 이전할 경우 다른 대통령 지지자들이 조형물을 가져와 설치해 달라고 하면 다 허용해야 한다”며 “그러면 청남대가 혼란스러워질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노 전 대통령 추모비는 문의면 마동 창작마을 조각공원에 잘 전시돼 있는데, 인근 주민과 방문객들에게 반응이 좋아 굳이 옮기지 않아도 된다”고 덧붙였다. 노 전 대통령 추모비의 청남대 이전 요구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동안 2009년 등 3차례 정도 시민단체들의 건의가 있었으나 청남대는 같은 이유로 난색을 표했다. 박우양(자유한국당) 도의원은 “청남대의 결정을 지지한다”며 “박근혜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조형물을 가져오면 설치해줄 수 있겠냐”고 했다. 그러나 충북참여자치시민연대 공동대표인 남기헌 충청대 교수는 “노 전 대통령은 최고권력자의 전용별장이던 청남대를 민간에게 돌려준 인물”이라며 “그의 추모비를 청남대에 설치할 명분이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남 교수는 이어 “청남대는 충북을 대표하는 명소가 됐다”며 “도는 충북을 위해 큰 일을 한 노 전 대통령을 지금보다 적극적으로 알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추모비는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추모기간에 걷힌 시민성금 300여만원으로 2009년 7월 제작됐다. 크기는 높이 75㎝에 너비 60㎝다. 노 전 대통령 청주시민 추모위원회는 당시 분향소가 차려졌던 청주 상당공원에 추모비를 세울 계획이었으나 청주시와 보수단체 반대에 부딪혔다. 추모비는 처음부터 제자리를 찾지 못하며 한동안 떠돌이신세로 전락하다 2011년부터 마동 창작마을에 보관 전시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이시종 충북지사 시대가 열리면서 청남대 이전 기대감이 커졌지만 충북도는 수년 째 기존입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청주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 中국무원 펴낸 무역백서, 보름 만에 발빠르게 번역 출간

    中국무원 펴낸 무역백서, 보름 만에 발빠르게 번역 출간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 여파로 글로벌 경제위기에 대한 경고가 잇따르는 가운데 지난 2일 중국 국무원이 발표한 무역 관련 백서가 국내에서 신속하게 번역, 출간돼 눈길을 끌고 있다. 커뮤니케이션북스(대표 박영률)가 지난 17일 ‘무역백서: 중미 무역협상에 관한 중국의 입장’을 발간해 중국어 원문과 영문판이 부록으로 함께 실렸다. 지구촌을 쥐락펴락하는 양대 강국의 갈등은 ‘강 건너 불’이 아닌 ‘발등의 불’인 우리에게 이 백서는 시사점이 매우 크다. 안보는 미국에, 경제는 중국에 의존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입장이 매우 난감한 상황에 미중 무역마찰의 원인과 해결 방안에 대한 중국 측 입장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박영률 대표는 “한반도 평화 문제와 중첩된 현실에 한미, 한중 관계를 되돌아보고 한국 경제의 탈출구를 찾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신속하게 번역 출간했다”면서 “중국의 입장을 가감 없이 전달함으로써 가치 판단은 독자들의 몫으로 남겨두었다”고 말했다. 이렇게 번역본이 빨리 출간됨으로써 기업들에게 작지 않은 도움이 될 전망이다. 화웨이와의 거래 제한에 동참하라는 미국의 요구와 거래 금지 조치에 협조하면 심각한 결과에 직면할 것이라는 중국의 경고에 삼성과 LG, SK 등 관련 기업들은 당장 어느 장단에 발을 맞춰야 할지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특히 한반도 비핵화 문제와 결부돼 엉킨 실타래를 풀어야 할 우리 정부로서는 난감한 상황이 가중되고 있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것은 필연이고 사후 수습책까지 마련해야 하는데 방책이 있을지 의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우리의 기업과 경제단체, 정부와 정치권이 혜안을 찾는 데 돌파구가 될 것이라고 출판사는 설명했다. 중국 정부는 백서를 통해 “미국의 무역 횡포가 전 세계에 화를 미치고 있다”면서 “미국과의 무역전쟁을 원하지 않지만 두려워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단호한 입장을 취했다. 미국은 동맹국을 동원해 총 공세를 펼치면서 이번 무역전쟁의 성격을 세계 패권전쟁으로 바꾸고 있다. 타이완을 국가로 지칭하는 등 중국의 역린을 건드리는 것도 불사하고 있다. 백서를 신속하게 우리말로 옮긴 성균중국연구소 이희옥 소장의 분석이 날카롭다. 그는 “미중 무역전쟁은 단순한 ‘무역’이 아니라, 이념전쟁, 담론전쟁, 제도경쟁, 체제경쟁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말한다. 미국은 “지금 여기서 밀리면 중국의 패권적 부상을 억제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놓치기 쉽다”고 보고 있다는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미중 간 무역불균형을 시정하는 것이지만 근본적으로는 미국의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어떤 형태로든 중국 부상의 속도를 줄이거나 주저앉힐 필요” 때문에 벌어지고 있는 일이라는 분석이다. 중국 정부는 “두 나라의 유일하게 올바른 선택은 협력뿐이다. 경제무역 분야에서 양측의 차이와 마찰은 결국 대화와 협상을 통해 해결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지만 과연 미국과 중국 두 나라가 윈윈할 수 있는 합의를 달성하는 것이 가능할지 미지수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서윤기 서울시의회 운영위원장, 민주시민교육조례 전부개정안 토론회 개최

    서윤기 서울시의회 운영위원장, 민주시민교육조례 전부개정안 토론회 개최

    서윤기 서울시의회 운영위원장(더불어민주당, 관악2)은 지난 10일 민주시민교육의 체계적, 안정적 실시를 위해 전문성을 갖춘 서울시 차원의 전담기구 설립 등을 규정한 「서울특별시 민주시민교육조례 전부개정안」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토론회는 신원철 서울시의회 의장,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 곽노현 전 서울시 교육감이 참석하였고, 한태식 행정자치위 수석전문위원과 류홍번 전국민주시민교육네트워크 운영위원장의 주제 발표와 김경우 서울시의회 행정자치부위원장, 정하윤 성공회대 교수, 김희은 여성사회교육원 원장, 장화영 서울시 평생교육과장의 토론 순으로 진행됐다. 신 의장은 “2014년 서울시는 「서울특별시 민주시민교육에 관한 조례」를 제정해 서울시민 누구든 민주시민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해 왔으며, 이제는 시민교육의 저변을 확대하기 위한 새로운 제도적 기반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조 교육감도 “서울시 교육청은 그동안 학생인권 보장과 학생자치활동 확대로 학교공동체의 민주적 변화를 위해 노력해왔지만, 학생들이 학교를 벗어나면 비민주적 위계문화와 이념적 갈등과 공격의 장벽에 부딪히는 문제를 민주시민교육조례 전부개정안이 해결해주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류 공동운영위원장은 “2014년 서울시의회의 민주시민교육 조례 제정이 전국 지자체의 모범이 되어 민주시민교육 확산에 기여했지만, 현재 조례는 교육센터 미규정, 자문형태의 위원회, 종합계획 기간 미설정, 단순 사무위탁, 평생교육 산하 업무 배치, 거버넌스체계 부재 등의 한계를 안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토론자들은 전부개정안에 민주시민교육의 원칙에 교화와 주입 금지, 학습자 이해 상관성, 공적 연대의 원칙 등이 포함되고, 민주시민교육원을 서울시 산하의 공법인으로 설치하도록 한 규정에 공감하면서도 세계시민 규정, 교사 양성, 교육 공공성 확보 방안에 보완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文의 한반도구상 패러다임 전환…왜 ‘국민을 위한 평화’인가

    文의 한반도구상 패러다임 전환…왜 ‘국민을 위한 평화’인가

    문재인 대통령은 12일(현지시간)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비전이나 선언이 아니다”라면서 “서로에 대한 이해와 신뢰를 깊이 하는 것이고, 이를 바탕으로 대화 의지를 더욱 확고히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또 “남북한 주민들이 분단으로 인해 겪는 구조적 폭력을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국민을 위한 평화’란 개념을 구체화했다. 노르웨이를 국빈방문 중인 문 대통령은 6·12 북미 정상회담 1주년인 이날 오슬로 대학에서 가진 ‘국민을 위한 평화(Peace for people)’란 제목의 오슬로포럼 기조연설에서 거창한 ‘로드맵’, ‘선언’보다 국민 개개인의 일상을 바꾸는 평화로의 발상 전환이 한반도의 불가역적이고, 항구적 평화를 위해 본질적이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마침 오늘은 ‘제1차 북미 정상회담’ 1주년을 맞는 날”이라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담대한 의지와 지도력이 큰 기여를 했다”고 평가했다. 이어 “1년 전 오늘, 역사상 최초로 북미 정상이 싱가포르에서 손을 맞잡았고 두 정상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새로운 북미관계, 한반도 평화체제의 큰 원칙에 합의으며 지금 그 합의는 진행 중”이라며 “2차 북미 정상회담 이후 대화가 교착상태를 보이고 있지만, 그것은 서로를 깊이 이해하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며 지난 70년 적대해왔던 마음을 녹여내는 과정”이라고 말했다.문 대통령은 노르웨이 국제평화연구소 창설자로 평화라는 화두에 천착해온 정치학자 요한 갈퉁의 저서 ‘평화적 수단에 의한 평화’를 인용해 폭력이나 분쟁이 없는 상태를 뜻하는 ‘소극적 평화’가 아닌 구조적 폭력을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적극적 평화’가 절실하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서로 등 돌리며 살아도 평화로울 수 있지만, 진정한 평화는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평화이며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이익이 되고 좋은 것이 되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평화가 내 삶을 나아지게 하는 좋은 것이라는 긍정적인 생각이 모일 때 국민들 사이에 이념과 사상으로 나뉜 마음의 분단도 치유될 것”이라고 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국민이 참여하지 않는 정치권 만의 통일 논의로는 색깔론이나 남남갈등을 넘어설 수 없다. 우리 사이의 갈등을 더 키울 것”이라면서 “평화를 통해 국민 개개인의 삶이 어떻게 좋아지고, 달라지는지를 느낄 수 있어야 한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우선 분단이란 구조적 제약으로 국민들이 겪는 피해부터 해결하자고 했다. 문 대통령은 “남과 북은 국경을 맞대고 있을 뿐 아니라 함께 살아야 할 ‘생명공동체’이며 함께 한 역사는 5000년이고 헤어진 역사는 70년에 불과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접경지역에서의 산불이나 병충해, 가축전염병, 바다에서 어민들의 조업권을 남북한 국민이 분단에 따른 구조적 폭력의 예로 들었다. 1970년대 동서독이 ‘접경위원회’를 설치해 화재, 홍수, 산사태, 전염병, 병충해, 수자원 오염에 공동대처했던 사례를 거론했다. 문 대통령의 언급은 지난 2017년 4월 문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 제시한 한반도 평화구상의 ‘민생 통일’ 개념과도 맥을 같이한다.문 대통령은 아울러 이웃국가의 분쟁과 갈등 해결에 기여하는 평화가 돼야 한다고 제시했다. 문 대통령은 “항구적 한반도 평화정착은 동북아에 마지막 남은 냉전구도의 완전한 해체를 의미하며 역사와 이념으로 오랜 갈등을 겪어온 동북아 국가들에게 미래지향적 협력으로 나아갈 기회가 마련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문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의 여정이 결코 쉽지는 않을 것이며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만년설이 녹아 대양으로 흘러가듯 서로를 이해하며 반목의 마음을 녹일때 한반도의 평화도 대양에 다다르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노르웨이 외교부와 스위스 제네바 소재 비정부기구(NGO) ‘인도주의 대화를 위한 센터’가 2003년부터 해마다 공동주최해온 오슬로 포럼은 국제분쟁 중재와 평화정착 문제를 다루며 안토니우 구테레쉬 UN 사무총장과 코피 아난 전 사무총장,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 등이 연사로 초대된 바 있다. 이날 연설에는 하랄 5세 노르웨이 국왕을 비롯해 이네 에릭센 써라이데 외교장관 등 주요인사들과 600여명의 청중이 함께했다. 연설 장소인 오슬로 대학은 1947~1989년까지 노벨 평화상이 시상된 유서깊은 곳이기도 하다. 오슬로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김경우 서울시의원 “민주시민교육 강화 위해 독일 사례 참고해야”

    김경우 서울시의원 “민주시민교육 강화 위해 독일 사례 참고해야”

    김경우 서울시의회 행정자치부위원장(더불어민주당, 동작2)은 지난 10일 서울시의회가 개최한 「서울특별시 민주시민교육조례 전부개정안」 토론회에서 “독일 시민교육의 정당성과 내용의 질은 정당간의 정치적 견제와 시민사회의 공론장에 의해 유지되었으며, 시민교육의 존재 가치를 재확인하는 국가 차원의 주기적인 선언에 의해 공고화되었다.”라고 평가하면서 민주시민교육 강화를 위해서는 독일 시민교육이 중요한 참고 사례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는 신원철 서울시의회 의장,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 곽노현 전 서울시 교육감이 참석하였고, 한태식 행정자치위 수석전문위원과 류홍번 전국민주시민교육네트워크 운영위원장의 주제 발표와 김경우 서울시의회 행정자치부위원장, 정하윤 성공회대 교수, 김희은 여성사회교육원 원장, 장화영 서울시 평생교육과장의 토론 순으로 진행됐다. 신원철 의장은 “2014년 서울시는 「서울특별시 민주시민교육에 관한 조례」를 제정해 서울시민 누구든 민주시민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해 왔으며, 이제는 시민교육의 저변을 확대하기 위한 새로운 제도적 기반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조희연 교육감도 “서울시 교육청은 그동안 학생인권 보장과 학생자치활동 확대로 학교공동체의 민주적 변화를 위해 노력해왔지만, 학생들이 학교를 벗어나면 비민주적 위계문화와 이념적 갈등과 공격의 장벽에 부딪히는” 문제를 민주시민교육조례 전부개정안이 해결해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류홍번 공동운영위원장은 “2014년 서울시의회의 민주시민교육 조례 제정이 전국 지자체의 모범이 되어 민주시민교육 확산에 기여했지만, 현재 조례는 교육센터 미규정, 자문형태의 위원회, 종합계획 기간 미설정, 단순 사무위탁, 평생교육 산하 업무 배치, 거버넌스체계 부재 등의 한계를 안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주제 발표에 이어 토론자로 나선 김경우 부위원장은 독일의 시민교육 거버넌스를 소개하면서 “연방정치교육원을 중심으로 정치재단, 시민사회단체, 교회, 노동조합, 청소년단체 등 다양한 시민교육 주체들이 독일 전역에서 세미나, 워크숍, 강연회, 토론회 또는 혁신적인 모델 프로젝트를 만 16세 이상 시민을 대상으로 학교 밖에서 실행하는” 사례를 참고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른 토론자들은 전부개정안에 포함된 “민주시민교육의 원칙에 교화와 주입 금지, 학습자 이해상관성, 공적 연대의 원칙 등이” 포함되고 “민주시민교육원을 서울시 산하의 공법인으로 설치하도록 한” 규정에 공감하면서도 세계시민 규정, 교사 양성, 교육 공공성 확보 방안에 보완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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