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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세대 「남·북한통합을 위한 선결과제 세미나」 지상중계

    ◎「통일의 길」 어떻게 닦아야 하나/경제/국민소득 맞추려면 8천억불 투자해야/교육/상호비방요소 청산,동질성 회복에 전력/사회/불평등·이념갈등 심화… 북은 체제위기에 냉전체제가 무너지면서 한반도의 통일기운이 무르익고 있다.그러나 통일이 아무런 준비없이 맞을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독일통일에서 보고 있다.그러면 남북한은 통합에 앞서 무슨 문제부터 풀어가야 할까.연세대학교 동서문제연구원(원장 정구현)이 11일 개최한 「남북한통합을 위한 선결과제」란 주제의 학술회의에서 논의된 「시안」들을 정리한다. ▷남북경제통합의 효과:이영선교수◁ 남한국민이 부담해야 할 통일비용과 북한주민들의 몫인 통일이득은 통일의 형태와 소요기간에 따라 달라진다.뿐만 아니라 통일비용과 이득을 어떻게 정의하는가에 따라서도 그 결과는 달리 나타난다.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가 남북한의 경제력이 비슷한 상태에서 통일을 이루기 위해 북한의 1인당 국민소득을 남한과 동일한 수준으로 끌어 올리려면 앞으로 42년간 8천4백18억달러의 통일비용을 쏟아부어야 한다.90년을 기준으로 국민총생산과 1인당 국민소득을 비교하면 남한은 2천3백79억달러와 5천59달러,북한은 2백39억달러와 1천95달러이다.남한이 7차 5개년계획상의 성장률 7·5%보다 다소 낮은 6·75%의 성장을 이룩할 것이라고 가정하고 매년 경제성장액만큼 북한을 지원할 경우 남한경제성장률은 6·35%로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그러나 북한의 경제성장률은 남한의 지원이 없을 경우 4·5%에 그칠 것이지만 남한의 이같은 지원이 이뤄질 땐 매년 10%이상의 고속성장을 하게 될 것이다.북한이 매년 받는 이같은 지원액을 모두 투자한다면 남북한의 1인당 GNP는 앞으로 42년후인 20 32년에 가서 5만8천여달러 수준으로 같아질 것이다.이 기간동안 남한에서 북한에 투입될 돈을 90년 현재가치로 환산하면 3천3백억달러가 된다.이 돈을 남한에 자체 투자한다면 남한의 GNP는 투자효과등에 의해 8천4백18억달러가 된다.따라서 남한이 지불할 통일비용은 북한에 대한 단순지원액 3천여억달러가 아니라 북한을 지원하느라 잃어버린 8천여억달러로 봐야한다.이같은 통일비용은 북한이 통일을 전제로 남한과 공존하며 중국식으로 점진적 사회개혁을 추진할 경우를 가정해 산출한 것이다.만일 북한정권의 급작한 붕괴로 통일시기가 앞당겨질 경우 북한의 낙후된 기존생산시설 대부분은 폐기처분해야 할 것이다.그리고 북한주민에 대한 사회보장비용등 엄청난 별도의 비용이 들 것으로 보인다.따라서 남북경제통합은 철저한 경제적 논리에 의거,점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남북한 교육의 과제:한준상교수◁ 통일비용은 경제에 국한될게 아니라 문화적인 측면에서도 언급돼야 한다.문화적 비용이란 통일후의 민족동질성 확립의 정도와 통일전의 문화적 갈등간의 차이를 수치화한 것이다.지금의 전쟁세대들로서는 물리적 통일보다 심리적 통일의 수용이 어려울 것이기 때문에 문화적 통합이 선행되도록 해야 한다.현 남북 교육체제는 상호비방의 개연성을 안고 있다. 또한 남북통합 최후의 순간까지 어느 한쪽에 의한 무력통합의 가능성과 그에 대한 국민적 불안감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남북 교육통합을 위해서는 교육통합과 교육통일간에 나타나는 개념적이고도 실천적인 구별과 정책적 대처가 필요하다.통합은 여러 요소를 한곳으로 모두 합쳐 놓은 물리적 상태인데 반해 통일은 다양한 여러 요소가 하나로 합치된 물리적이고도 정신적인 관계를 지칭한다.통합은 통일을 위한 필요단계이다.남북 교육교류가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교육통합과 교육통일을 갈라내어 생각해야 한다.통합교육은 교육자치와 교육자치의 연합및 조정이라는 상반된 일을 동시에 수행하는 교육정책이며 통일교육은 남북한 국민감정의 동질화와 민족감정의 회복을 위한 남북교육이념의 설정및 교육이념의 보편화를 뒷받침하는 작업을 말한다. 교육통합과 교육통일은 ▲교육개방화 추진 ▲교육 민주화 추진 ▲상호 이데올로기 공유경험 ▲통합교육 실시 ▲통일교육의 확립등 5단계를 거치게 될 것이다.이를 위해 첫째 군사분계선을 문화이음선으로 바꾸고 문화이음선의 남북 20㎞이내 지역을 남북 교육통합을 위한 공동지역으로 설정해야 한다.둘째 통일교육세를 신설,남북교류와 남북교육통합의 실험을 위한 재원을 확보하며 셋째 남북합의서에 명시된 남북문화교류조항을 구체화시킬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남북 교육문화통일연구 조정위원회를 설치,운영해야 한다.그리고 이 위원회에서는 일차적으로 ①남북 통합교육이념 ②남북 통합교육체제 ③남북 통합교육과정 ④남북 청소년문화의 통합육성모형등을 개발해야 한다. ▷북한사회의 갈등구조:전병재교수◁ 북한사회는 사회적 불평등현상과 경제적 어려움,정치적 부자유등의 갈등 유발요인을 갖고 있다.반면 이데올로기 통제를 통한 정당성 창출이라는 적극적 통제와 주민들의 조직적 감시를 통한 소극적 통제로 이루어진 갈등억제 요인을 동시에 갖고 있다.마르크스­레닌주의가 지향하는 무계급화 혁명사상이 북한에서 주체사상으로 변질되면서 평등주의보다는 전체주의가 강조되고 있다.이러한 사회계급화 현상은 주민들의 불만을 잠재울 수 있는 이데올로기 창출에 어려움을 겪게 되어 강압적 통제에 의존할 수 밖에 없게 되고 이러한 필요에 의해 북한주민들의 조직화가 생겨난다.조직적 감시체제는 복잡한 관료제화를 불가피하게 하고 이는 조직성원간의 불평등 현상을 심화시킨다.이러한 조직적 서열화가 사회통제를 위한 것일 때에는 정당성 확보가 더 어려워져 북한의 체제위기는 가중될 수 밖에 없다.현재 내부적으로 북한에선 보수적 이데올로기파와 개혁지향적 관료들간의 이념갈등이 심화되고 있다.또 김정일에로의 권력이양이라는 정치과제에 직면해 있다.따라서 북한사회가 자연발생적,인위적 불평등 현상에서 비롯된 사회갈등을 잠재울 수 있을지는 의심스럽다.북한사회가 루마니아와 비슷한 점이 많지만 루마니아보다 훨씬 더 폐쇄적이고 중국이라는 방파제가 외풍을 어느 정도 막아주고 있기 때문에 북한에서 루마니아식의 사태가 일어나리라 기대하는 것은 너무 안이하다.그러나 북한사회의 갈등유발요인과 갈등억제요인을 비교해 볼때 김일성 사후에도 북한의 현체제가 계속 유지될지는 의문이다.
  • 「변화처방」이 승리 이끌었다/미 대선레이스 승인과 패인

    ◎불황문제 등 집중 부각… 국민의 호응 얻어/인신공격 치중… 부시전략 되레 역효과 「클린턴의 승리와 부시의 패배」로 판가름이 난 11·3 미국대통령선거결과는 한마디로 『이대로는 안된다』는 미국민들의 변화요구를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빌 클린턴의 당선은 또한 12년만의 정권교체를 실현하는 것으로 미국의 정책노선이 그동안의 대외지향에서 대내지향으로 선회,신고립주의의 색채를 띨 가능성이 클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이번 선거 결과는 두가지 시각에서 그 원인을 분석할 수 있다.하나는 역사적 시대적 흐름에서 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게임으로서의 선거전략과 쟁점차원에서 보는 것이다. 시대적 흐름에서 승패의 원인을 찾는다면 무엇보다 냉전종식이후의 새로운 변화를 희구하는 미국사회의 조류를 들수있다.미국민들은 공산주의의 붕괴,핵위협의 소멸등으로 위기가 이미 사라진 시기에 더이상 「냉전체제에 걸맞는 대통령」이 필요치않다는 것을 투표로 말한 것이다.걸프전의 승전퍼레이드가 지나간 거리에 군수산업의 실업자들이 배회하고있는 현상은 「변화의 당위성」을 반증하고있다. 또 하나는 전후세대가 어느새 미국사회의 주역으로 등장,전통적인 보수주의에 안주하기보다는 새로운 도전과 개혁을 추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클린턴­고어의 40대 티켓은 바로 이같은 전후세대의 바람을 탔던 것이다. 참전세대인 부시는 선거과정에서 병역기피혐의와 함께 월남전 반전운동을 도모했던 클린턴이 어떻게 군통수권자가 될수 있느냐고 수없이 질문을 던졌지만 이들 세대는 『그게 대수냐』는 반응이었다. 지난 2월 예비선거이후 내내 계속되다시피한 선거과정의 쟁점과 전략을 중심으로 따져보면 클린턴은 경제문제를 최대쟁점으로 부각시켜 「국민 제1주의」(교육,직업훈련,의료보장제도등의 개혁)라는 나름대로의 「변화」처방을 제시함으로써 국민들의 기대에 일단 부응한 셈이다. 반면 부시는 국민들의 체감경제에 인식을 같이하고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기보다는 민주당지배의 의회때문에 경제시책이 가동될 수 없었다는 핑계로 일관했고 대신 클린턴의 자질문제와 클린턴의 경제정책을 집중적으로 공격했다.앞으로 4년의 2차 임기동안 펼칠 정책의 청사진은 보여주지않고 클린턴의 경제처방이 『세금을 더 거둬들이고 정부가 지출을 더 많이 하는것』이라고 비판만 했고 『교활하고 어릿광대같은 자』를 어떻게 미국의 대통령으로 뽑을수있느냐는 등 자질문제를 물고 늘어졌다. 공화당진영은 월남전 징병기피와 제니퍼 플라워양과의 스캔들등 흠이 많은 클린턴이기에 선거 막판에 이 문제를 집중공격하면 게임은 간단하게 끝날것으로 낙관했던것 같다. 그러나 그것은 중대한 실수였다.부시진영은 7월의 민주당전당대회를 계기로 클린턴의 인기가 의외로 급부상하자 비로소 사태의 심각성을 감지,인기만회작전을 구사했으나 지난주 초반 1∼2%포인트까지 클린턴과의 격차를 줄인것 말고는 지난 3개월동안 거의 줄곧 두자리숫자의 격차를 끝내 뒤집지 못했다. 한편 무소속 페로후보의 출현은 결과적으로 민주,공화 양당의 싸움에 별로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지 못했다고 할수있다. 그러나 페로가 초반에 여론의 각광을 받은 것이나 10월에 다시 선거전에 뛰어들어 TV토론직후 20%의 지지율을 획득한 것등은 부시행정부의 지난 4년동안 경제정책이 실패했다는 평가를 확산시켜주는데 크게 기여한 것으로 분석된다. 부시와 클린턴의 선택에 고민하던 유권자들을 두고 한 정치평론가는 「분노」(경제를 어렵게 만든 부시에 대한 감정)와 「두려움」(경륜과 자질이 부족한 클린턴에게 과연 미국을 맡길수있는가하는 의문)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다고 표현했다. 미국 현대사의 정치흐름은 보수와 혁신,경제성장과 사회정의,야경국가와 강한 정부,제국주의적 대외개입과 대내지향의 고립주의를 30년주기로 번갈아왔다.따라서 지금은 분명 대내지향의 변화(혁신)의 시대를 맞고있는 셈이다.1901년의 데오도르 루스벨트,1933년의 프랭클린 루스벨트,1961년의 존 케네디시대에 이어 1993년의 빌 클린턴시대가 바로 그렇다. 과거 30년주기의 대통령들이 혁신의 물결을 일으켜왔듯이 클린턴시대도 진보적 변화를 적극 추구할 것으로 보인다.다만 클린턴이 후보지명전당대회를 통해 전통적인 민주당의 이념인 자유주의,진보주의에서 보수주의쪽으로 다소 각도를 돌린 중도주의를 정책노선으로 표방했기 때문에 「케네디식의 혁신」과는 거리가 있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 김우중씨 “수락” 표명에 영입파 부산/후보옹립 혼선속의 새한국당

    ◎TJ·강 전총리 극구 고사… “대안 없다”/JC,“조건없이 추대땐 탈당” 갈등조짐 김우중 대우그룹회장의 12월 대선출마여부가 다시 혼선을 빚고 있다. 가칭 새한국당내에서는 박태준의원·강영훈전총리에 대한 막바지 후보추대교섭이 진전이 없자 김회장 영입찬성파들의 주장이 재차 힘을 얻어가고 있다. 김회장 자신도 27일밤 일본에서 귀국,김포공항에서 기자들과 만나 새한국당이 조건없이 대선후보로 추대한다면 수락할 뜻을 강력히 시사했다.불과 이틀전 광주에서 측근을 통해 밝힌 「불출마선언」을 뒤엎는 표리부동한 자세를 보인 것이다. 이에 대해 새한국당 인사중 이종찬의원등은 김회장과 대우와의 완전절연등의 전제조건이 사전충족되지 않는 가운데 김회장 영입이 결정된다면 신당불참도 불사하겠다고 밝혀 진통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새한국당이 김회장 「국민후보」추대를 적극 재검토하기 시작한 것은 김회장영입이 안될 경우 당이 창당도 되기 전에 「공중분해」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김회장에 앞서 대선후보 대상으로 상정되었던박태준의원·강전총리가 신당참여를 극구 고사하는 상황에서 김회장 이외의 대안이 없다는 인식이 당내에 확산되고 있다. 새한국당의 원내 인사중 박철언 유수호의원은 박태준의원을 「국민후보」로 선호했다.이들은 지난 26일 포항으로 내려가 27일 상오까지 박의원과 접촉을 시도했으나 박의원은 모처로 잠적,후보문제 논의를 위한 대면마저 회피했다. 강전총리 영입에 적극적이었던 이종찬의원도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이의원은 강전총리와 가까운 원로급 인사들을 동원,강전총리의 후보수락을 측면에서 촉구한뒤 27일에는 직접 접촉을 통해 신당참여를 설득했다. 그러나 강전총리는 이날 상오 기자들과 만나 『새한국당의 대선후보로 나설 생각이 전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에 따라 신당추진세력들은 현실적으로 김회장의 영입을 적극 추진하거나 이종찬의원등 당내 인사를 후보로 추대하는 방안중 택일을 강요받는 상황에 몰리고 있다. 이종찬의원이 후보로 나서는 방안에 대해서는 이영일 전의원등 일부 원외인사를 제외하고는 모두 부정적이다. 「국민후보」추대가 안돼 이종찬의원이 나설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면 대다수 인사들이 떨어져 나갈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자헌 김용환의원 등은 이러한 「위기의식」을 바탕으로 이종찬 박철언의원을 「압박」한 결과 상당한 성과를 올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때문에 만장일치가 안되면 다수결로라도 김회장추대를 결정하자는 이자헌의원등의 주장이 대세를 이뤄가고 있다. ○…김회장 영입추진세력들의 목소리가 커지는 가운데 김회장이 후보추대를 수락할지도 관심사이다. 이자헌 김용환의원 등은 『김회장이 대선후 정치발전에 보다 주목하고 있으나 신당이 모양을 갖춰 추대한다면 반드시 받아들일 것』이라고 장담한다. 신당 일각에서는 김회장의 일본방문이 스즈키자동차와의 기술협력논의 때문이 아니라 대우자동차를 삼성등에 극비 매각하는 협상을 위한 것이라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그만큼 김회장이 신당참여 결심을 굳히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이종찬 박철언의원등 김회장 영입에 소극적인 인사들은 김회장의 진의에 대한 의구심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다. 김회장이 지난 5월 민자당 대선후보경선당시 이종찬의원을 내밀히 지원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하지만 김회장은 태도를 바꿔 이의원을 당에 잔류하게 했다가 다시 돕겠다고 하는 등 일관성 없는 행동을 해왔다. 이번 신당관련 행적을 볼때도 「부실기업」인수와 비슷하게 「출마한다」「않는다」를 번복하며 신당인사들을 조바심나게 해 「싼값」으로 신당을 접수하려는 인상이 짙다고 보고 있다.그리고 설령 신당후보가 된다해도 자신의 이해에 의해 또 어떤 변신을 할지 예측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이자헌·김용환의원등 김회장 영입에 적극적인 인사들은 조건을 달지않아야 한다고 주장한다.조건을 제시할 경우 김회장이 후보추대를 고사할 염려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부분에 대한 이종찬의원의 입장은 확고하다.김회장의 영입자체가 「새정치이념」에 맞지않는데도 불구,우정과 현실을 감안해 몇개의 전제를 붙여 양보하려 했지만 이를 무시한다면 신당에 동참할 수 없다는 생각인 듯싶다. 김회장의 조건없는 후보추대가 기정사실화된다면 이의원이 신당불참선언후 독자노선을 갈 극한 상황까지 배제할 수 없다.
  • “정치권이 「한국병」 치유 앞장을”/민자당주최 토론회 지상중계

    ◎사회갈등 정치의 도덕성상실서 기인/위로부터의 총체적 개혁이 해결의 길/김 총재,“「윗물 맑기운동」 전개하겠다” 밝혀 민자당은 20일 하오 한국프레스센터에서 「한국병 어떻게 치유할 것인가」라는 주제의 토론회를 열고 한국병을 진단하는 한편 치유방안에 관해 각계의 의견을 들었다. 이날 토론회에서 윤영오교수(국민대)는 「한국의 병리현상과 치유방안」,이각범교수(서울대)는 「한국병의 원인과 대책」이라는 제목으로 주제발표를 했으며 한승수(전상공부장관) 이성춘(한국일보논설위원) 정행길씨(새마을부녀회중앙연합회장)등이 토론에 참가했다. 김영삼총재는 격려사를 통해 『정당하지 못한 집권과 정권의 도덕성 결핍으로 한탕주의와 편법주의가 이땅에 퍼졌고 급속한 산업화에 따른 전통적 가치관 붕괴,민주화 과정에서의 무절제한 욕구분출로 한국병이 발생했다』고 지적하고 『한국병치료를 위해 「윗물 맑기 운동」과 「온나라 맑기 운동」을 전개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날 토론회의 주제발표 요지와 토론내용은 다음과 같다. ▷윤영오교수◁ 한국병의 대부분은 정치에 기인한다.첫째 정당정치가 정착하지 못한게 한국병이다.무원칙한 정당의 생성과 소멸은 정치이념이나 정책보다 특정인 또는 그룹의 이해관계와 연고주의에 의해 이합집산이 이루어졌다.정당정치를 제도화하기 위해서는 정당간 경쟁및 당내 경쟁을 활성화해야한다. 둘째 부정선거가 한국병이다.공명선거를 통해서만 강력한 정부의 출범이 가능하다. 셋째 우리사회는 만성부패병을 앓고 있다.사회 엘리트들이 솔선수범하는 부패추방운동이 필요하다.독립적이고 자율적인 감사원 같은 상설기구가 필요하다. 한국의 병리현상을 치유하는 일차적 책무가 정치지도자에게 있다면 이에 호응할 책무는 각계각층의 양식있는 국민 모두에게 있다. ▷이각범교수◁ 한국병은 구조적 질환이다.병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군사문화주역들과 투기졸부들이지만 감염된 것은 우리 사회 전체다. ○한 푸는 사회만들자 군사문화에 의해 오랫동안 권위주의는 살아 있되 권위가 사라지는 현상이 생겼다.권위와 기강이 해이해진 현실이 우리에게 가장 큰 문제다.제조업을 경시하고 부동산과 금융투기로 일확천금을 꿈꾸는 풍조가 건전 근로풍토를 황폐화시키고 경제활력을 저상시켰다.힘있는 자와 가진자의 편법주의에 서민층과 없는자의 무정부주의가 대응하여 법질서를 무력하게 만들고 있다. 총체적 개혁만이 한국병에 대응할수 있으며 집권자의 한국병에 대한 인식과 척결의지가 중요하다.개혁의 방향은 위로부터 시작되어야한다.한국병에 대한 대책은 제도개혁과 의식개혁을 결합하는 것이다.궁극적으로 우리사회의 정한의 덩어리를 일소하고 사회가 합리적으로 운용될수 있도록 공정경쟁의 질서를 수립해야한다. ▲한승수 전상공부장관=6공 들어 경제분야에 나타난 「한국병」은 민주화의 대가로 지불해야되는 기회비용이다.경제분야에서 나타나는 「한국병」의 특징은 첫째 제조업부문의 위축과 서비스업부문의 팽창,둘째 노사분규의 빈발과 근로의욕 감퇴,셋째 88년을 고비로 소비성장률이 경제성장률을 앞지른 과소비,넷째 기업의 물자생산보다는 재테크와 부동산투기치중,다섯째 모든기업에 만연된 탈세,여섯째로 민간부문 생산자원의 정치권유입을 들수있다.특히 기업의 돈과 인력이 정치에 직접 투입되는 「경제의 정치화」는 「군사의 정치화」보다 사회에 미치는 악영향이 훨씬 크다. ▲이성춘논설위원=경제적으로 중진국에 들어서면서도 정치후진국을 면하지못한것은 전적으로 정치권의 책임이다.건국이후 집권여당 야당 누구도 질서·규칙을 안지켰다.정치가 사회전반에서 스승역할을 하는 우리나라에서 정치가 엉망이니 모든 사회가 법을 어기고도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게 큰 문제이다. ▲정행길 새마을부녀회중앙회장=교육의 잘못으로 「한국병」이 깊어졌다. 특히 가정에서마저 입시에 모든 수단을 동원,규칙을 어겨서라도 붙으면 된다는 생각을 갖고있는 현실이다. 「한국병」을 바로 잡으려면 교육문제부터 개선해야한다.
  • “전교위 불법행동 단호대처”/사립중고교장 결의

    ◎교육현장 혼란 방치못해/국공립과 차별없게 재정 지원/사립교원 퇴직수당 국고부담 건의 【이리=임송학기자】 전국 1천2백여 사립중·고교 교장들이 전교위의 불법적 집단행동을 즉시 중지할 것을 결의하고 나섰다. 전국사립 중·고교교장회는 8일 최근 전교위 참여교사들의 불법적인 집단행동으로 교육현장이 또다시 어수선해지고 있다고 지적,이에 단호히 대처할 것을 결의했다. 이날 원광대 학생회관 대강당에서 열린 전국 사립중고교 교장회 정기총회에서 이들 교장들은 『우리는 그동안 교원노조 사태로 인해 교육현장이 겪는 엄청난 갈등을 가슴아프게 생각한다』면서 『이러한 혼란이 다시는 재발하지 않도록 강력히 대응해 나갈 것』을 다짐했다. 교장들은 특히 사학발전을 위한 결의문을 통해 『모든 국민은 청순한 우리의 자녀가 이념적으로 일방적이고 편향된 가치관에 물드는 것을 원하지 않고 있다』고 천명하고 『정부는 국법질서를 문란케 하고 교단의 안정을 위협하는 불법적 집단 행동에 대해 일관성 있는 교육정책 수행이 유지되도록 해야하고정치권도 교육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것』이라고 촉구했다. 교장회는 이어 21세기 국제사회에 능동적으로 대응해 나갈 인력배양을 위해 정부가 장기적인 사학발전계획을 수립,사립학교에 대해 국공립 학교와 차별없이 교육비를 지원하고 사립학교 교원 연금법을 개정,사립학교 교직원퇴직수당 부담금을 국고에서 부담해줄 것을 건의했다. 엄규백회장(양정고교장)은 이에앞서 개회사를 통해 『교원노조활동은 전통적 국민정서에 어긋날뿐 아니라 학생들의 학습권과 국민의 교육권을 침해한다는 점에서 절대로 허용될 수 없다』고 역설했다. 이날 정기총회에서는 사립학교에서 30년이상 봉직해온 군산중앙여중 김기언교사등 4백88명에게 연공상을 수여하고 명지여고 황한창교사등 36명의 모범교직원에 대한 표창도 있었다. 이날 전국 사립중고교 교장회 정기총회에는 조규향문교부차관을 비롯,강상원전북도지사,임승래전북도교육감,김삼용원광대총장과 전국 사립중고교교장등 1천2백여명이 참석했다.
  • 노 대통령 유엔총회 연설문/요지

    ◎“동북아 안정은 세계평화의 초석/번영의 21세기는 한반도통일서” 나는 1988연과 지난해에 이어 세번째로 이 연단에 서면서,우리 모두가 지난 4년동안 얼마나 급격하고 엄청난 변화를 겪어 왔는지 절감합니다.이 세계에 이념의 대립과 갈등,권위주의와 독재는 역사의 장에서 사라지고 있습니다.평화와 번영은 인류의 머나먼 꿈이 아니라 우리가 이룰 수 있는 목표로 우리 앞에 있습니다. ○재래무기 확산 우려 동부유럽에서 희망봉까지,그리고 대서양에서 태평양까지 화해롭고 풍요한 세계를 열기 위한 우리의 노력은 알찬 열매를 맺고 있습니다.미국과 러시아는 본격적으로 핵무기 감축을 시작했고 냉전시대가 남겨놓은 지역분쟁도 하나씩 해결되고 있습니다.유엔 주도아래 캄보디아에도 평화와 안정이 이루어지고 있으며,12년에 걸친 엘살바도르 내전도 종식되었습니다.이제 유엔은 세계 곳곳에서 평화유지에 성공하고 있습니다.그러나 이 화해와 협력의 시대에도 폭력과 불법적 무력사용은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이라크문제,소말리아사태,남아프리카분쟁…이 모든 당면 문제는 우리가 평화의 닻을 내렸다고 자축하기에 앞서 부당한 희생을 방지하기 위해 더 큰 노력을 기울여야 함을 웅변하고 있습니다. 최근 옛 유고지역의 유혈사태를 지켜보면서,항구적인 세계평화에 이르기까지는 아직 멀고도 험난한 길이 남아 있음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대한민국은 유고사태의 조속한 해결을 위한 유엔과 유럽공동체의 외교적 노력에 지지를 보냅니다. 나는 이 유혈사태가 하루빨리 종식됨으로써 유엔의 평화유지 기능이 더욱 강화·발전되기를 기대합니다. 나는 작년 이 자리에서 유엔이 분쟁예방 노력과 불법적 무력사용에 대한 안전장치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사무총장이 최근 제출한 「평화를 위한 과제」는 매우 시의적절하고 의미가 크다고 믿습니다. 대한민국은 국제평화와 안전 그리고 인류의 장래를 위한 모든 유엔의 노력에 성실히 그리고 적극적으로 동참할 것입니다. 새로운 국제질서는 새로운 안보개념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대량파괴무기를 중심으로 구축된 군사력에안보를 의존하던 시대는 지났습니다. 최근 미국과 러시아는 두 나라가 보유하고 있는 지상발사 탄도미사일을 10년내에 전면 폐기하고 핵탄두 또한 대폭 감축키로 결정했습니다. 나는 이 결정을 전폭적으로 환영하며,이번 결정이 세계적으로 핵 군축을 더욱 가속시키는 역사적 전환점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날 국제안보에 있어서 가장 큰 불안요인은 핵무기 같은 대량파괴무기와 첨단 재래식무기가 분쟁지역과 분쟁 잠재지역에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현상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 정부는 핵확산금지조약과 국제원자력기구의 핵안전장치 강화에 커다란 중요성을 부여하고 있으며,1995년에 핵확산금지조약이 연장되는 것을 전폭 지지합니다. 이제 우리는 모든 나라와 지식과 정보를 나누고 교류와 협력을 촉진함으로써 남북사이에 교량역할을 해 가고자 합니다. 지난 6월의 유엔환경개발회의는 지구의 환경보전을 위한 새로운 시발로 기록될 것입니다.나는 모든 나라들이 「리우선언」정신과 유엔환경개발회의에 따른 국내적 조치와 아울러 국제적 협력을 조속히 실행해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대한민국도 이제는 환경보전이 국가목표의 하나가 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지난 6월 국가 차원에서는 최초로 「환경보전 선언」을 채택하고 정부차원의 환경대책 특별기구를 설치한 바 있습니다. ○한·중수교 디딤돌로 지난 몇년동안 유라시아대륙을 휩쓴 화해와 협력의 훈풍은 마침내 동북아시아에도 불어오기 시작했습니다.대한민국과 중화인민공화국은 지난달 외교관계를 수립하였습니다.그것은 전후 47년간 동북아시아 전체를 얼어붙게 했던 냉전의 멍에를 벗고,동족간에 피를 흘리게 했던 한국전의 아픔을 덜게 하는 큰 진전이었습니다.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려던 나의 북방정책에 대한 이 역사의 응답을 나는 겸허히 받아들일 뿐입니다.이로써 우리나라는 지난 4년반동안 39개국의 새로운 친구들을 얻으며,1백65개국과 외교관계를 갖게 되었습니다. 나는 한·중수교와 다음주 나의 중국방문이 한반도의 긴장완화와 동북아의 평화기착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4년전 나는 이 연단에서 「동북아 평화협의회의」를제안한 바 있습니다.이 세기에 들어 무려 다섯번에 걸쳐 나라 사이에 전쟁이 발발한 이 민감한 동북아시아에 항구적 평화를 위한 환경을 마련하는 것은 이 지역의 안정은 물론 세계평화를 위해서도 긴요한 일입니다. 나는 서로간에 이해를 증진하고 신뢰를 구축하면서 나아가 공동번영을 촉진하기 위해 이해를 갖고 있는 나라들 사이에 대화의 기회가 마련되기를 희망합니다. 대한민국과 북한은 2년전 양측 총리사이에 첫 대화가 시작된 이래 8차례에 걸쳐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남북관계의 개선을 위해 많은 현안을 논의했습니다. ○북한 핵은 평화위협 이 과정에서 지난 해 말 「남북간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기본합의서」와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이 채택되고 금년2월에 발효되었습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부적인 실천사항은 아직도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산가족 상호방문 등 인도주의적인 사업까지도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한반도 현실입니다.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통해 남북이 금년 6월 중순까지 실시키로 합의했던 상호핵사찰도 아직 실천에 옮기지 못하고 있습니다.나는 이것이 남북관계의 진전을 가로막는 최대의 장애요인이 되고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북한의 핵개발 움직임은 한반도의 장래를 어둡게 하는 먹구름이 되고 있습니다.그것은 동북아의 평화를 해치고 세계의 평화를 위협하는 새로운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나는 북한이 많은 나라들과 관계개선을 이룰 수 있게 되기를 충심으로 기대합니다. 북한이 이 지역의 모든 협력기구에도 참여하여 우리와 함께 평화와 공동번영의 새 질서를 창조해 가는 것은 모든 한국인의 소망입니다.나는 이제 유엔 회원국이 된 북한이 하루빨리 핵개발 의혹을 말끔히 씻고 국제사회의 책임있는 일원으로 나올 것을 다시한번 촉구합니다.지금 이 시각에도 한반도에는 1백70만의 중무장한 병력이 서로 대치하고 있습니다.나는 남북한의 젊은이들에게 왜 동족에게 총부리를 겨눈 채 긴장과 희생의 나날을 보내어야 하는지… 설명할 말을 찾을 수 없습니다.그러나 나는 믿습니다.우리 겨레는 반드시 하나가 될것입니다. 이제 우리 국민에게 마지막 남은 과제는 평화통일을 이루는 것입니다.강압에 의해 묶여진 민족은 독립하고,타의에 의해 분단된 나라는 다시 만나는 것이 역사의 순리입니다.동서냉전의 마지막 유산인 한반도의 허리를 가르는 경계선이 지도에서 사라질 때,세계는 비로소 냉전시대와의 완전한 결별을 축하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 세계는 반세기전 유엔 창설자들의 이상을 실현할 절호의 기회를 맞고 있습니다.나는 이 연단을 떠나며 여러분께 말씀드립니다.「평화와 번영의 21세기」는 한반도의 통일로 시작될 것입니다. 세계의 평화와 번영에 더 크게 기여하는 통일한국의 첫 국가원수가 이 자리에 설 때 우리 국민은 여러분의 가슴에서 울려나오는 더 큰 박수를 기대할 것입니다.
  • “국민은 온건개혁 원한다”/김 총재

    ◎일 「중앙공론」과의 인터뷰서 밝혀/「6·29」로 민주화 토대… 지속개선 필요/남북한 신뢰구축되 정상회담 추진/“우리경제 거품 걷히는 단계”… 재도약 기반 굳힐터 일본의 유력월간지 「중앙공론」이 10월호에 김영삼민자당총재와의 단독인터뷰기사를 게재했다.김총재는 8페이지 분량에 걸친 이번 인터뷰에서 『내가 정권을 잡으면 대일관계는 매사에 원만히 유지될 것』이라고 밝히는 등 국내문제와 외교문제등에 대한 폭넓은 견해를 밝혔다. ­야당본류의 지도자로서 일관해 왔던 김총재가 이번 대선에서는 여당 후보로 출마하고 있는데 대해 변절이라는 비판이 들리기도 하는데 이에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3당합당을 두고 변절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아직도 한국의 여야관계를 「민주대 반민주」라는 구시대의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과거 독재정권은 국민의 귀와 입을 틀어막고 대화와 타협을 가로막았으며 국민을 탄압했기 때문에 투쟁의 대상이었으나 6·29선언으로 탄생한 6공정부는 엄연히 국민의 직선을 통해 정통성을 확보,역대 독재정권과는 근본적으로 달랐다.그러나 과반수선 미달로 민주화 추진이 역부족이었기 때문에 3당 합당으로 민주화를 완성코자 한 것이다.3당합당은 민주발전과 통일을 위한 정당간의 통합이었고 그 이념은 충실히 실천될 것임을 지켜 보아주기 바란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어디까지 와 있다고 생각하는지. ▲한국의 민주주의는 과도기에 있다고 생각한다.6·29선언으로 민주발전의 토대는 마련되었고,제도적 또는 실질적 차원에서 민주주의는 상당한 발전을 이룩했다고 생각한다.그러나 어떤 면은 실질적 민주화가 더 요구되기도 하고 또 어떤 면은 지나치게 민주화되어 자유방임적 무질서까지 야기되고 있다.따라서 대폭적인 보완이 더 필요하며 앞으로도 지속적인 개혁을 견지해 나갈 때 민주주의가 완성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국의 민주발전을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다.먼저 민주화과정에 따른 집단 이기주의와 비능률,사회기강해이 등의 극복이다.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위해 집단행동을 능사로 여기거나 전체 국가발전에 무관심한 태도는지양해야 한다.성숙한 시민의식으로 민주화 시대의 시행착오를 줄여야 한다. ­차기 대선에 관한 각종 여론조사에서 김총재가 항상 선두를 달리고 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무엇보다 국민들이 민주적인 리더십으로 안정속에 개혁을 이룰 수 있는 정치인으로 평가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즉 온건개혁노선에 대한 기대인 것 같다.우리 국민은 권위주의적 통치도 싫어하지만 개혁에 따른 혼란을 되풀이하기를 원치않는다. 6공 초기에 나타난 사회적 혼란과 무질서가 되풀이된다면 나라의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30년동안 내가 야당생활을 해오면서 외쳐온 개혁의지에 2년간 집권여당의 경험을 합친다면 바로 이상적인 경력으로 생각할 만하다. ­최근 종군위안부 문제,PKO등을 둘러싼 한일양국간의 감정적 마찰이 심각해지고 있다.한국의 정권교체는 양국간의 감정적 앙금을 푸는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생각되는데 김총재는 이를 위해 어떠한 이니시어티브를 취할 생각인가. ▲한일관계는 정치·경제·안보 모든 면에서 대단히 중요한 상호 의존관계다.현재 양국간 인적교류는 연간 2백만명을 넘고 교역량은 연간 3백억달러를 초과하고 있으며 한국 안보는 일본 안보의 사활적 관건으로 인식되고 있다.따라서 한일관계는 양국의 이익뿐만 아니라 아·태지역,나아가 세계평화와 번영을 위해 앞으로도 계속 발전되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소신이다. 그러나 최근 불행했던 과거사와 관련하여 감정적 마찰까지 일고있어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양국민이 과거의 선입관이나 고정관념을 버리고 미래지향적인 화합과 협력이 절실히 요청되는 이 시점에 반일감정이나 반한감정이 고조된다면 우리 모두에게 불행한 일이다. ­현재 한국경제는 큰 벽에 부딪혀 있는 듯한 인상을 주는데 한국경제의 현황을 어떻게 진단하고 있는가. ▲급속히 고임금시대로 접어들면서 정부의 경제정책과 기업의 경영전략이 방향을 잃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거품경제가 해소되는 과정에서 또한 민주화의 흐름에서 정부와 기업,그리고 일반국민들의 행동윤리가 새롭게 형성되는 과정에서 과도기적인 부조화와 갈등을 빚고 있다.정책·행정체제및 정부·기업간 관계도 급격한 여건변화에 부응하지 못해 정책의 효율성의 저하는 물론 불필요한 긴장을 초래하고 있다. 기술발전과 사업발전에 부응하는 산업경쟁력의 재편을 위한 노력도 만족할 만한 수준이라 보기 어렵다. 대외적으로는 치열한 국제경쟁을 극복하고 우리경제의 한 단계 높은 도약을 위해서는 국제경쟁력의 강화가 필요한 시점에 와있다. ­한국의 대북정책 및 통일정책이 정권교체시마다 변화해 왔는데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했을 경우 김총재는 노태우정부의 대북정책을 계승할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정책을 표방할 것인지. ▲우리의 대북정책을 지금 크게 수정할 아무런 객관적 이유가 없다.특히 북한의 태도가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우리가 일방적으로 정책을 바꾼다는 것은 지극히 위험한 일이다. 우리는 통일문제 추진에 있어서 자주·평화·민주라는 원칙을 확고히 지킬 것이며 단지 방법론은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다.이러한 의미에서 「한민족 공동체 통일방안」을 발전적으로 계승,개선해 나갈 것이며 「남북합의서」와 「비핵화공동선언」을 철저히 준수하고 구체적 실천을 추진해 나가겠다. ­차기대통령 임기중 남북 정상회담이나 통일문제에 관해서 큰 진전이 예상되는데 김일성주석과의 정상회담을 추진하는 정책에는 변화가 없는가.만일 그렇다면 그것이 언제쯤 실현된다고 생각하는가. ▲남북정상회담은 남북양측이 사전에 충분한 실무협의를 거쳐 합의할 여건이 성숙되면 언제 어떠한 형태로든 개최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만일 대통령이 된다면 임기중 빠른 단계에서 정상회담 성사도 가능하리라 전망한다.여기서 여건 성숙이란 북한이 핵무기개발을 포기하고 이산가족 상봉을 허용하며 우리는 이에 대한 답례로 대북 경협을 실시하는 것등을 말한다. 정상회담 개최는 이와같이 사전에 충분한 신뢰구축을 위한 조치의 실시를 전제로 해야한다.정상회담은 남북협력과 통일시대를 여는 방향을 결정하는 역사적 전기가 될 것이므로 내가 집권하면 임기내 실현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 교과서부터 바로 잡아야한다(사설)

    역사적인 한중수교가 이뤄졌다.금세기에는 어려울 것으로 여겨졌던 일이 드디어 이뤄졌다.단순한 감회로만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큰 일이 이뤄진 것이다.국제관계에서는 영원한 우방도 영원한 적도 없다고는 하지만,마주보고 총을 겨눈 원한의 상대가,당해자의 상처가 아직도 아물지 않은 상태에서 서로 흔연한 친구관계를 맺게 된 것은 놀라운 변화이고 발전이다.한중수교는 그처럼 큰 수확이다. 어쨌든 두나라는 장한 일을 해냈다.어느 모로 보나 조그만 나라인 한국이 만리장성을 넘는 장정으로 거둔 이 성과를 우리는 소중히 여긴다.따라서 이를 훌륭히 결실시키기 위해 두나라가 이제부터 해야 할 일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한다.그리고 그 과제중의 하나로 우선순위를 앞세워야 할일은,이세국민들을 가르칠 교과서를 바로잡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거듭 말하지만 한국과 중국은 적대관계에 있던 나라다.그것도 직접 원한관계를 맺고 있었던,「전쟁의 갈등」을 지닌 가해자와 피해자의 사이였다.그런 관계의 나라들이 할수 있는 최상급의 적대요소를각급 교과서에 명시해온 나라인 것이다.이같은 내용이 하루빨리 바로잡혀야 한다. 교과서의 왜곡 정도는 양국이 거의 같은 수준이었다.우리 국민학교의 사회과 교과서에서는 세계주요국가의 국기를 기술하면서 「중화민국」의 청천백일기는 싣고,중국의「오성기」는 표시하지 않아왔다.이런 것이 당장 경과조치를 해서라도 바로잡아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그 밖에도 「미수교국」과 「수교국」간에 개입되는 각종 변화의 사안들이 현실적 수용을 요구하며 우리앞에 다가와 있다.당연한 일이지만 우리만이 그런 것이 아니다.중국측에도 그런 왜곡부분은 많이 있다.특히 친북한관계국가의 체제가 원인이 된 역사적 사실의 왜곡부분이 너무 많이 있다.그런 부분이 상호주의에 입각하여 수정보완 되어야 한다.사회주의체제를 아직도 국가적 명분으로 수용하고 있는 중국으로서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에 대한 기술이나 묘사가 실제 이상으로 편향 왜곡되어 왔다.6·25전쟁에 대한 표현의 경우는 정면으로 반대되는 왜곡기술을 해온 것이,북한을 한반도의 유일 우방으로삼아온 중국의 입장이었다.이런 터무니 없는 모든 기술까지가 바로잡히지 않으면 안된다. 지난날의 교과서로 아직도 공부하고 있는 오늘의 청소년 학생들이야말로 수교를 이룩한 두나라가 실제의 우호국으로 살아가는 시대의 실제적인 주인공들이다.그들의 가소성높은 두뇌속에 적대관계가 청산되지 않은채 남아있게 하거나 잘못된 지식을 넣어놓는다는 것은 두나라를 함께 불행케하는 일이다. 또한 세계가 탈이념의 시대에 공존하면서 우호를 창출할 수 있게 되는 일은 미래의 인류가 염원하는 이상이다.사회주의체제를 무너뜨리지 않은 채인 중국이 아직도 이념과 체제의 분단을 극복하지 못한 한국과 수교를 하게 된 관계야말로 미래의 인류가 원하는 평화공존의 표본일 수있다.그 실현의 관건이 될 세대에 대한 교육이 오늘 이시점의 교육이라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95년이후 개정될 교과서는 물론 그 이전에라도 경과조치의 보완이 있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 정치인의 「조변석개」/황진선 정치부기자(오늘의 눈)

    정치 지도자들의 성공은 그들이 국민들의 정서를 얼마나 잘 읽고 그에 부합하는 행동을 하느냐에 따라 판가름된다.그런 의미에서 민자·민주당의 김영삼·김대중대표는 30년이상을 국민적 여망에 따라 행동해오며 정치권의 거목으로 성장한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다. 그러나 17일 민자·민주당을 탈당한 이종찬·한영수의원의 경우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우리 정치사를 되돌아보면 변혁기,특히 대통령선거나 국회의원 총선을 얼마 앞둔 시점에서 자천 또는 타천으로 정치지도자가 되겠다며 정당을 창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하지만 그런 정치인과 정당은 국민들로부터 외면을 받고 선거가 끝난뒤 곧 정치무대에서 퇴장당했다. 그들이 정치권에서 사라질 수밖에 없었던 것은 국민들의 정서를 올바로 읽지 못했기 때문이다.국민들의 여망에 부응하기 위해 신당을 창당했고,대통령후보로 나섰다고 견강부회했지만 국민들은 그들을 믿지 않았다.그들이 그만한 일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과 책임감,자질을 갖추지 못하고 있음은 물론,그같은 주장을 펼 자격이 없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이종찬·한영수의원도 이른바 「개혁정치」와 「양금 구도의 타파」를 탈당의 변으로 내세우기는 했지만 과연 국민들이 그들에게서 새로운 정치를 기대할 수 있을것인지 의아스럽다. 오히려 더이상 당내에서 자신의 뜻을 세울 수 없거나,정치생명을 연장할 수 없는 한계 상황에서 소속정당의 집단적 가치보다는 사적 이기심에서 출발하고 있다는 것이 정치권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국민들이 기대를 걸기 어렵다는 것은 그들의 행적을 살펴보더라도 곧 알 수 있다. 그들은 한때 상당수 유권자들의 지지를 받기도 했으나 줏대없이 조변석개함으로써 그들 자신이 그같은 기대를 저버렸다. 한사람은 줄곧 양지에서 여당의 길을 걸어왔고,다른 한사람은 골수 야당의 길을 밟아왔다.여기에 정호용의원이 가세하더라도 3인3색의 사정은 변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들이 함께 신당을 창당한다하더라도 이념과 정책을 같이하는 것이 아니라 순전히 정치적인 이해관계에 따라 이합집산하는 것으로 밖에 볼 수 없을 것이다. 그같은 붕당적 성격의 정당은 국민들부터 외면을 받기가 십상이고,국민들에게 희망을 주기보다는 정치적 혐오와 무관심을 가중시키기가 쉽다. 현상황은 모든 정치인이 「갈등의 기수」가 아닌 「화해의 기수」로 행동해야 할 때이다.모든 것은 오는 12월 대통령선거에서 판가름나겠지만 역할분담과 상황을 분별할줄 아는 지혜가 아쉽다.
  • “6공 남은 7개월 내실다지는데 역점”

    ◎손공보,외신기자클럽서 「6공업적과 과제」연설/지방의회구성 「6·29민주화공약」완결/사회갈등 해소·소외분야 배려가 과제 손주환공보처장관은 30일 『노태우대통령의 남은 임기 7개월은 조용히 내실을 다지고 마무리함으로써 그 동안의 업적을 차기 정부에 확실하게 인계하는데 역점을 둘 것』이라고 밝혔다. 손장관은 이날 프레스센터 외신기자클럽에서 서울주재외국특파원,주한외교관및 외국상사임원등을 대상으로 한 「6공화국의 업적과 과제」란 연설을 통해 이같이 말하고 『우리 헌정사상 처음 있었던 87년2월의 평화적정권이양의 전통을 내년 2월에 다시 승계해 명실상부한 선진민주국가로서 손색이 없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손장관의 연설내용은 다음과 같다. 노태우대통령의 임기를 7개월 앞두고 있는 현시점에서 노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다소 엇갈린 견해가 있으나 민주발전,지속적인 경제성장,그리고 통일북방정책을 두드러진 성과로 요약할 수 있겠다. 노대통령의 87년 6·29 선언은 오늘의 한국인들이 향유하고 있는 민주화를 가능케 하는시발점이었다.6·29 선언은 바로 노대통령의 통치철학이며 신념이자 6공화국 국정운영의 기본핵심이 되어왔다. 6·29 선언의 8가지 민주화 약속사항이 착실하게 이행되어 왔음을 우리는 모두 잘 알고있다.이들 약속을 이행함으로써 지난 40년간 한국통치의 혼돈과 왜곡을 일으켜 온 가장 핵심적 문제였던 정권의 정통성 시비가 해소되고 과거의 권위주의 통치를 종식시키는 획기적 전기가 마련됐다. 사실 민주화의 결과로 언론계가 급속하게 확대됨에 따라 지금은 「언론의 책임」이 요청되고 있는 시기라고도 말할 수 있다. 6·29선언 제6항에서 8항까지에 언급한 사회 각 분야의 자치와 자율은 크게 확산되었고 예컨대 91년도에는 지방의회 구성으로 지방자치시대의 막을 올리게 되었다.6·29선언에서 공약한대로 지방의회가 차질없이 구성됨으로써 모든 6·29 민주화 공약은 완결되었다. 6·29 선언으로 비롯된 한국의 민주화 업적이 의식과 제도적인 측면에서 한국의 선진화를 앞당겼다면 6공의 북방정책은 「격동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외적 환경을 능동적으로개척한 평화와 화해의 드라마」였다고 말할수 있다. 이로써 북한과는 구시대적이고 소모적인 이념논쟁과 냉전적 적대행위에서 벗어나 새로운 협력방안을 모색하게 되었고 세계 반쪽만을 상대로 해야 했던 우리의 외교무대는 지구촌 구석구석으로 확대되었다. 노대통령의 남은 임기 7개월은 조용히 내실을 다지고 마무리를 하는 기간이 되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동안의 업적을 차기정부에 확실하게 인계할 것이다.지난 5년동안 급격한 민주화·자율화·국제화의 소용돌이속에서 대가를 지불해온 국민경제가 이제는 본연의 제모습과 새로운 활력을 되찾아야 한다고 본다. 이를 위해 정부는 기업활동이 정치권에서 독립,순수한 시장기능에 따라 영리추구 본연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그동안 지역간·계층간·집단간에 드높았던 자기주장도 확인된 상태이므로 이제는 자기목소리를 낮추고 이를 조용히 해소하는 실천이 필요한 시점이다. 정부는 사회갈등 해소 노력을 가일층 배가하고 소외된 분야에 대한 배려를 더욱 강화하도록 할 것이다.
  • 베를린문학교류회 창시 노시인 발터 휠러러(인터뷰)

    ◎“문학통해 동서이념장벽 해소 노력”/베를린을 독현대문학 중심지로 키운 문단의 대부 발터 횔러러.올해 70세의 노시인으로 독일 문단의 대부.저 유명한 4·7그룹의 창설멤버중 한 사람이자 최근 한국문학주간을 마련한 베를린문학 교류회(LCB)의 창시자로서 전후의 베를린을 독일 현대문학의 중심지로 만들었다.LCB의 활동터전인 반제하우스에서 그를 만나 통일후 독일문인의 내적갈등과 그의 문학관등에 관한 얘기를 들었다. ­LCB의 활동이 인상적이다.설립배경을 말해달라. 『지난 59년 베를린공과대학(TU)의 문학교수로 부임하여 61년 베를린장벽이 세워지는 것을 보았다. 공산국가의 한가운데 섬처럼 떨어져 있는 베를린에 내가 아는 동료작가들을 불러 학생들과 만나게 하고 방송을 통해 여러 사람과 만나게 하려한 것이 그 출발점이다.TU의 3010강의실에 한번에 2명씩의 작가를 초청했는데 성과가 좋아 「마의 3010호실」이란 말이 나올 정도였다.잉게보르크 바하만,하인리히 뵐,페터 바이스등 4·7그룹의 멤버들은 물론 막스 프리쉬,뒤렌마트등 독일어권 작가들이 초청됐다.61년 계간지「과학기술시대의 문학」을 발간하고 이때부터 비독일어권 문학도 소개하기 시작했다.3010강의실이 좁아져 쿠담의 빌 헬름교회 근처에 숙소없는 행사장만을 마련하고 63년 LCB를 정식 설립했는데 미국의 포드재단과 베를린 주정부가 재정지원을 해주었다.64년 옛 귀족의 성인 반제하우스로 옮겨와 13개의 객실을 갖추고 작품낭독회 뿐만 아니라 워크숍·창작강좌등 여러형태의 모임을 갖게됐다』 ­LCB의 근본 철학은 무엇인가. 『문학을 통해 공산권과 서방진영의 장벽을 부수고 베를린을 현대문학의 중심지로 만드는 것이었다.그래서 보즈네센스키(소련)와 로렌스 펠링(미국) 귄터 쿠네르(동독)와 귄터 그라스(서독)를 함께 초청하기도 했다.또 적대감·우월감을 불식하고 인간화의 길을 찾는 문학의 본분을 실천하고자 했다』 ­베를린장벽은 무너졌으나 독일의 진정한 내적 통일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말이 들린다.무엇이 가장 큰 문제이며 문제해결을 위한 문학의 역할은 부었이라고 보는가. 『문학인들 가운데 통일이 잘못됐다고 말하는이들이 있지만 극단적 비판과 낙관을 나는 모두 경계한다.어려움은 문학이 아니라 정치·경제에 있다.그러나 동 서독 사이엔 서로 접촉이 있었기때문에 북한과 남한처럼 나쁘지는 않다.경제적 문제가 해결되면 둘 사이의 괴리는 해소될것이다.물론 국가의 관리와 지원을 받아 온 동독과 자유경쟁 체제의 서독의 문학적 유통구조가 너무 달라 통일이후 동독출신작가들이 적응의 어려움을 겪고 있기는 하다.LCB가 해 왔듯이 생각을 달리하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자주 대화를 나누어야 할 것이다』 ­통일이후 서독 좌파지식인들의 위상에 어떤 변화가 있는가. 『우선 종전의 입장을 고집하는 고수파가 있는데 이들은 「싸움닭」으로 불린다(웃음).또한 「동독이 낙원이라고 말한바 없다」고 주장하는 전향자가 있고 통일된 새로운 현실을 바탕으로 통일의 잘못된 결과를 스스로 고쳐나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동독의 하이네 뮐러와 서독의 귄터 그라스가 바로 새로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작가의 범주에 속한다.이제 작가들은 진정한 민주주의가 과연 실현되고 있는가를 소재로하여 작품을 쓰고 통일을 새로운 문학의 계기고 삼아야 할것이다.문학은 다양성을 본질로 하기때문에 이런 현상은 문학을 위해 바람직한 일이다』
  • 유럽/「이민족 혐오증」 날로 심화(특파원코너)

    ◎독립요구등 잇단 민족분규에 적대감 고조/독일선 “외국인을 돼지처럼 취급”… 테러도 유럽인들의 타민족혐오증이 점점 심해간다.이민자와 소수민족에 대한 증오,민족분포와 일치하지 않는 국경으로 인한 대립과 마찰,곳곳서 솟구치는 독립열망과 이에 대한 강압등 유럽의 장래에 암울한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다. 유럽의 민족갈등은 미국의 흑백문제보다 훨씬 심각한 것으로 돼있다.미국 백인의 13%가 흑인을 싫어하고 7%가 유태인을 미워하는데 반해 체코슬로바키아인 91%가 집시를 혐오하며 폴란드인 세 사람중 한 사람은 유태인에게 적대감을 지니고 있다.이는 최근 로스앤젤레스타임스 신문의 모기업인 타임스 미러가 광범위하게 조사한 결과의 일부이다. 타민족에게 5세기 동안 시달려온 역사를 지닌 폴란드인들은 배타적 민족주의 성향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이들 네사람중 세사람이 『다른 종족 때문에 나라가 잘 안된다』는 말에 찬동한다.그들은 우크라이나인을 가장 미워하고 독일인과 유태인을 아주 싫어한다.흥미로운 것은 그들이 싫어하는유태인은 폴란드 인구중 0·03%에 불과,거의 없는 거나 마찬가지인데 폴란드인 3분의 1이 반유태적 감정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폴란드내의 독일인 우크라이나인등 소수민족 모두 합쳐봐도 전인구의 2% 정도다. 독일인 반수 이상이 집시와 폴란드인과 터키인을 미워한다.최근 독일을 다녀온 한국인 여행자는 『베를린같은 곳에서는 청년들이 「외국 돼지들은 나가라」고 설치고 다녀 겁이 나더라』고 전하고 『독일사람들이 또 무슨 일을 저지를 것만 같다』고 우려했다.특히 구동독지역에서는 네오나치즘이 일어나고 스킨헤드족들의 외국인에 대한 테러가 날로 심해지고 있다. 영국인과 프랑스인은 비교적 소수민족 혐오증이 덜한 편이다.그러나 요즘 프랑스인들은 급증하는 북아프리카인들(프랑스인들이 마그레브라고 부르는 모로코,알제리,튀니지등에서 이민온 사람들)을 특히 미워하기 시작했다.프랑스인들은 이슬람교도들인 이들의 다처주의를 못마땅하게 여길 뿐아니라 이들 때문에 국가재정이 축나고 범죄율이 높아지며 사회제도가 어지럽혀지고 있다고 불평하고 있다. 불가리아에서는 집시와 함께 터키인과 아랍인이 박해받고 있다.터키인은 불가리아 전인구의 10%를 차지하고 있으나 터키인 경찰관은 한명도 없다.『민주화 바람으로 딱 한가지 나아진 것이 있는데 그것은 거리에서 터키말로 이야기해도 벌금을 물지 않는 것 이라는 터키계 주민의 말은 이나라 소수민족의 처지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유고슬라비아의 민족분규는 치열한 내전으로 치달았다.독립을 선포한 크로아티아인과 이를 억누르려는 세르비아인 사이의 전쟁이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데 이어 지금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인종과 관련된 내전으로 목숨을 잃고 있다. 체코슬로바키아의 국민구성은 크게 체크족과 슬로바크족으로 돼있으며 수적으로 열세인 슬로바크인들가운데 분리주의자들이 독립을 꾀하고 있다.슬로바크측이 경제력 등에서도 열세인데다 스스로 독립할 경우 슬로바크내의 적지않은 헝가리인들에게도 같은 논리를 적용해야 한다는 문제가 생길 수 있어 간단하지 않다. 민족분포 상태를 무시한채 강대국들이 정치적으로 국경을 획정한 결과 복잡한 문제들이 생기고 있는 것이다.불가리아인 가운데는 인접각국의 불가리아인 거주지역을 합쳐 대불가리아를 만들어야 한다고 열을 올리는 이도 있다.두차례의 세계대전으로 이렇게저렇게 바뀐 영토를 여러 나라들이 다시 바로잡겠다고 나선다면 사태는 매우 심각하게 될 것이다. 이념은 뒷전으로 물러나고 국익우선주의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동유럽 세계에서는 그들을 하나로 묶던 공산체제의 몰락으로 과거의 형제국이 분쟁당사국으로 대립할 가능성이 커졌다.이러한 유럽의 현상들은 「대서양에서 우랄까지」라는 유럽통합의 이상 실현을 어렵게하고 있다.
  • 정치 무엇이 어떻게 달라졌나(「6·29」그후 5년)

    ◎「민주­반민주」 대결구도·권위주의 청산/다양한 이념포용… 「보통사람」의 시대로/국회권한 강화로 「과거청산」도 과감히/전방위외교 추진해 세계속 한국위상 높여/여당 대선후보 자유경선·지자제실시등 큰 성과 「오늘은 기쁜 날,찻값은 받지 않습니다」5년전 6·29선언이 있던 날 서울의 어느 찻집에 써붙였던 글귀는 당시의 전국민의 감정을 한마디로 나타낸 것이었다.사회 전반의 경직된 분위기를 일소하고 권위주의의 청산으로 민주화의 훈풍은 예고했던 6·29선언은 가히 코페르니쿠스적인 전환이었고 그 성과는 지금 우리 사회 전반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정치·경제·사회·문화등 각 분야에 6·29가 미친 파장과 앞으로의 과제를 정치부기자의 방담을 통해 엮어본다. ­민주화의 새 장을 열었던 6·29선언이 있은지 벌써 5년이 지났습니다.그동안 정치·경제·사회 각 분야에서 정말 엄청난 변화가 있었죠. ­그렇습니다.과거 권위주의시대에서는 감히 상상도 못했던 일들이 각 분야에서 벌어지고 있지요.우리 국민들은 너무 쉽게 과거를 잊는 경향이 있습니다.권위주의통치의 마감을 알리는 6·29선언이 있던 날,모두들 얼마나 감격했습니까.서울의 한 다방 여주인은 「오늘은 기쁜 날,차값은 무료입니다」라고 써붙이고 고객들에게 서비스함으로써 기쁨을 자축했지요. ○“오늘은 기쁜날…” ­6·29선언이 있었기에 오늘날과 같은 민주화가 이룩될 수 있었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되겠습니다.우리가 지금은 당연한 것처럼 여기는 민주적 정치행태들이 6·29정신의 영향아래 가꾸어진 것들이라는 점을 알아야하겠지요. ­노태우대통령은 6·29선언후 13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곧 6·29실천에 착수했습니다.「보통사람의 시대」개막을 주창했던 노대통령은 대통령당선자의 신분으로 직접 서류가방을 들고 다녔고 와이셔츠차림의 회의주재모습을 언론에 보이는등 그야말로 비특권인임을 과시했습니다. ­노대통령은 또 취임이후에도 「각하」라는 용어를 쓰지 말도록 지시했습니다.청와대를 개방하고 회의용 탁자를 전부 원탁으로 바꾼것도 권위주의시대를 청산하겠다는 의지를 반영한 것이지요. ­사전에 짜인 각본에 의해 진행되던 대통령기자회견이 콘티없이 이뤄져 아슬아슬했던 순간도 있었습니다.그밖에 대통령 외출시 몇시간씩 교통통제를 실시하던 것도 이제는 보기 어렵게 되는등 대통령의 일반적 움직임과 관련된 변화는 일일이 열거하기가 힘들 정도입니다. ­6·29선언이 우리정치에 미친 영향은 집권 여당의 민주화로 상징됩니다.도중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여당 사상 처음으로 대통령후를 자유경선을 통해 탄생시켰지요. ­집권당의 대통령후보 자유경선은 정말 정치사의 한 획을 그을만한 사건이었습니다.중도에 불미스러운 일이 없었다면 금상첨화였겠지만 일단 시도했다는 자체로서도 평가할만 하지요. ­여당내에 점차 비주류가 자리잡아가는 것도 특기할만 합니다.대통령의 명령에 따라 획일적으로 움직이던 과거 예를 들며 「통치권 누수」를 우려하는 의견도 있으나 너무 단편적 시각인 것같습니다.민주주의란 다양한 의견이 자유롭게 표출되는 가운데 최선의 정책을 찾아내는 것 아니겠습니까.대통령이 힘을 가지고있으면서도 그것을 절제하는 이유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정치권 분화 뚜렷 ­노대통령이 야권의 대표적 투사였던 김영삼 민자당대표에게 대권후보자리를 넘겨준 것도 쉬운 결단은 아니었을 겁니다.노대통령은 우리의 민주화를 위해서는 여야의 정권교체가 필요하나 그것을 한꺼번에 이루기보다는 단계적으로 이룩해야한다는 생각을 가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때문에 3당통합을 통해 김대표를 받아들여 여당 지도자의 면모를 가꾼뒤 후계를 삼았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지요. ­여야관계나 국회운영에 있어 민주와 반민주의 대결구도가 청산된 것도 커다란 변화입니다.과거에는 권위주의정권과 그에 항거하는 재야인사간의 갈등이 그야말로 사생결단 양상이었지요.6·29선언이후에는 이러한 여건이 상당히 달라졌습니다.민주화투쟁보다는 정책이나 이념에 따른 정치권의 분화가 이루어질 수 있는 상황이 조성됐다고 보여집니다. ­일부 야권 인사들이 아직 구태를 떨치지 못하고 간혹 극한 투쟁에 나서보기도 하지만 예전같은 국민호응은 없다는게 일반적관측입니다. ­군장성출신들이 대거 야당에 입당한다든지 극렬 재야 운동권인사들이 제도권 정당에 들어오는 현상이 빈번해진 것도 민주화가 진전되고 있다는 반증이지요. ­여야총재나 대표사이의 만남이 잦아진 것도 6·29선언이후의 변화입니다.대통령이 정치현안해결에 직접 나서 야당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보겠다는 자세를 보인 것으로 이해됩니다.이같은 타협적 태도가 여야 3당의 합당이라는 헌정사상 초유의 대사건을 가져오기도 했지요. ­국회 국정감·조사권이 부활되는등 국회의 권능이 대폭 강화된 것도 지적해야겠습니다.「청문회정국」이란 말을 낳으면서 부작용이 드러나기도 했으나 전직 국가원수의 국회증언이 이뤄지는등 국회활동을 통한 과거청산작업이 활발히 진행되었지요.정부의 추곡가결정에 국회동의를 받도록 하는등 주요 정책사안에 대한 국회심의권한도 강화됐습니다. ­지방의회 구성으로 풀뿌리 민주주의가 정착된 것도 6·29선언과 관련해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지요.일반 국민들의 의사가 정치에 반영되는 제도적 장치가 완비되어가고 있다고 볼수 있습니다.군림하는 정치인에서 봉사하는 정치인으로서 빠른 자세변환이 요구되는 시점이라고 할수 있겠지요. ­사회갈등을 해소하는 민주적 절차도 착실히 마련되어가고 있다고 보여집니다.6공초기 노사분규가 악화되면서 민주화가 잘못된 방향으로 진전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있었으나 과도기를 거친뒤 점차 노사간에도 화합·타협의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습니다. ○대통령 희화화 허용 ­학원자율화·해외여행자유화·문화예술인에 대한 제한없는 창작활동허용등 사회 각 분야에 있어서의 자율화조치도 정착되어가고 있는데 이의 바탕에는 6·29선언에 따른 정치민주화가 자리잡고 있다고 봐야겠지요. ­6·29선언으로 신문·방송등 언론매체도 상당한 변화를 체험했습니다. ­언론기본법을 폐지하고 매체의 등록개방으로 다양한 간행물과 방송이 출현,6·29선언이후 53개의 일간지와 5개의 방송,그리고 2천84개의 주간·월간지가 새로이 늘어난 거죠. ­더욱이 이같은 양적 팽창 뿐만아니라 언론의 보도기능에 있어서도 질적인 수준향상이 이뤄졌다는 게 특이할만 합니다. ­각 언론이 제한없는 보도와 비판,풍자를 통해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켜주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현직대통령을 코미디소재로도 활용하는 이른바 「대통령의 희화화」를 꼽을수 있죠.대통령을 마음대로 비판하고 또 대통령의 실수만을 소재로 한 책도 여러권 출판됐습니다. ­이러한 언론의 보도양태로 국민들은 어느 장소에서든 누구나 자유롭게 대통령과 정부를 비판할수 있는 새로운 환경을 맞이하게 됐죠. ­그야말로 언론의 자유를 만끽하고 있는 셈입니다.국회의원들도 이같은 매스컴정치시대를 맞아 자신들의 새 이미지창출에 온힘을 기울이고 있는 질정입니다. ○언론 보도기능 강화 ­그렇습니다.그 당시에는 중앙일간지의 경우 조·석간 각3사체제로 운영한 데다 지방지도 시·도별 1개씩으로 제한했었습니다.거기에도 정부의 입김이 많이 좌우되었던 형편이었지요.그러나 이제 공영방송도 독자성을 확보하고 있고 민방도 생겨났습니다. ­이제 우리 사회에서도 취재와 보도가 금지되었던 「성역」이 사라진 셈이지요.따라서 「유비통신」의 위력이 약화되었고 외신을 절대시하던 풍조도 없어졌습니다. ­6·29이전의 웃지못할 얘기를 소개해보죠.5공시절 한동안 현직대통령을 두고 「땡」대통령이라는 표현이 인구에 회자했습니다. ­정각9시 뉴스시작을 알리는 「땡」소리와 함께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 동정기사가 10여분 이상 계속됐던 것을 말하는 거죠.당시는 대통령기사에 대한 일정 지면과 방송시간 할애는 무조건적이었습니다. ­또 현직대통령과 외모가 너무 닮았다고 해서 탤런트 모씨의 TV출연이 장기간 금지된 실례도 있습니다. ­이처럼 상황을 비교해보니 언론계도 6·29이전에 비해 엄청난 지각변동을 경험한 셈이군요. ­이때문에 일부에서는 너무 변화속도가 지나쳐 언론의 「자유」가 아니라 「방종」으로 흐르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대두하는 실정입니다. ­6·29선언 이후 6공정부의 외교스타일도 많이 달라졌죠.6·29선언으로 우리 민주주의가 전세계로부터 정통성을 부여받았고 노대통령은 이를 바탕으로 활발한 전방위외교를 펼쳐 회기적인 성과를 거둔 것입니다. ­우리나라와 미수교국은 이제 중국,쿠바정도 뿐입니다. ­이러헌 북방외교의 성과는 그대로 남북관계진전으로 이어져 남북통일의 튼튼한 받침대를 마련했다고 평가됩니다. ▷정치부기자 방담◁ 김만호 정치부 차장 구본영 〃 김명서 정치부 기자 최철호 〃 김경홍 〃 유 민 〃 황진선 〃 문호영 〃 이목희 〃 윤승모 〃 양승현 〃 박정현 〃 유상덕 〃 김현철 〃 한종태 〃 이도운 〃
  • 「6·29선언」 5돌… 노 대통령의 소양

    ◎“국민의 시대적요구 전폭 수용한 시민혁명”/“권위주의 통치 벗고 「보통사람의 시대」열게 노력/인내와 자제로 어려움 견디어주신 국민에 감사”/「민주화 대가」겨레발전의 소중한 자산/“87년 역사순리따라 단안… 선진국 진입·통일시대 주도할 이념으로 승화되길” 지난 5년간 6·29선언에 담긴 국민의 열망을 실천해 나가는데 헌신적으로 일해주신 당과 정부의 여러분에게 충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또한 민주화 추진과정에서 온갖 어려움을 참고 견디어 주신 국민 여러분에게 감사드립니다. 우리 민주화의 과업이 성공할수 있었던 것은 우리 국민이 인내와 자제로 성숙한 민주시민의식을 발휘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5년전 당시를 회고하면 지금도 온갖 감회가 교차됩니다. 민주화를 열망하는 국민들의 함성이 거리를 메우고,온나라가 위기와 긴장감에 휩싸여 나라의 운명이 한치 앞을 내다볼수 없었습니다. 이러한 혼돈속에서 나는 민주화라는 역사의 도도한 흐름… 이것을 수용하지 않고는 정치와 경제의 안정은 물론 나라의 장래도 기약할수 없다는결론을 얻었습니다. 당시 나는 집권당의 대통령 후보로서 모든 기득권을 다 버리더라도 역사의 순리를 따라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으뜸정신은 「민주」 6·29선언의 내용은 국민이 원하는 8개항의 민주화 개혁방안을 담은 것이지만 8개항의 내용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이 선언에 담긴 정신입니다. 그 으뜸가는 정신은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민주정신입니다. 국민은 나라의 주인이며 국민의 뜻은 다른 모든 것에 우선한다는 매우 당연하면서도 헌정사에 일찍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정신입니다. 6·29선언이 지니는 또 하나의 중요한 측면은 화해·화합의 정신입니다. 지역간·계층간·세대와 집단간에 패인 골을 메워 국민화합을 실현하는 것은 민주주의 뿐아니라 겨레의 앞날을 위해서도 긴요한 과제라는 인식입니다. 6·29정신은 또 국민의 자율을 존중하고 모든 것을 개방하는 정신입니다. 6·29선언에 담았던 내용과 정신이 진정한 우리 국민의 염원이라 믿었기에 나는 대통령에 취임한후 이를 나의 통치철학,국가를 경영하는 기본이념으로 삼고 지난4년여동안 국민에게 약속한 8개항의 민주화 개혁과 선언의 정신을 구현하는데 최선을 다해왔습니다. 우리는 오랜 권위주의 통치를 청산하고 정치참여와 정치적 경쟁의 자유,사법권의 혁신,인권의 신장,지방자치제의 실시등 광범한 민주화를 추진했습니다. 경제·교육·노동등 사회 각 분야에 자유와 자율이 크게 신장되고 권위와 권력의 분산이 널리 이루어졌습니다. 6·29선언으로 우리 헌정사에 해묵은 「민주대 반민주」갈등구조가 해소되었기 때문에 여야의 노선을 같이하는 동지들이 정치안정,정치선진화를 위해 3당을 통합하여 민자당을 창당할수 있었던 것입니다. 집권여당으로서는 처음으로 대통령후보를 자유경선으로 뽑아 헌정사에 새 기원을 이루고 당의 민주화에 획기적 전기를 만든 것도 큰 보람입니다. 재야 정치권이 해체되어 제도권 정치로 통합된 것도 우리의 민주화가 어디까지 진척되었나를 보여주는 좋은 이정표입니다. 이와함꼐 모든 부문에서 갈등을 풀고,상처를 치유하고,마음에 패인 골을 메우고,잃었던 명예를 회복시키고,부당한 손해를 보상하는 일이 추진되었습니다. 야당정치인의 사면복권,시국사범의 석방,민화위의 구성·운영,광주민주화운동의 명예회복과 보상등이 이러한 차원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국민화합을 실현하려는 이러한 노력은 정치뿐 아니라 경제에서도 광범하게 이루어졌습니다.지역간 균형발전을 위한 대대적인 서해안 개발이 그러한 노력의 하나입니다. 작년 지방의회까지 구성함으로써 6·29선언 8개항의 민주화 개혁은 모두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6·29의 정신을 지속적으로 승화 발전시키는 일은 앞으로도 더욱 폭넓게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민주화 과정에서 대가를 가장 많이 치러야 했던 분야가 우리 경제였습니다. 사회의 민주화는 일시적으로 과격한 노사분규와 급격한 임금인상을 가져오고 근로분위기를 해쳐서 우리 경제의 경쟁력을 크게 약화시켰습니다. 여기에 개방화에 따른 우리 경제는 전반적인 구조조정의 국면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나 경제운영의 원리를 시장의 원리로 복귀시키기 위한 광범위한 개혁이 이루어지고 정부의 간섭과 규제가 대폭 완화된 것은 우리 경제의 장래를 위하여 유익한 일입니다. 우리 경제의 경쟁력을 강화시키기 위한 구조조정과 안정화 시책이 기업에는 견디기 어려울 때도 있고 국민들이 그 효과를 느끼는 데는 시간이 걸리지만 모두가 합심해서 참고 견디면서 밀고 나가면 반드시 좋은 결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역사의 줄기 바꾸고 6·29선언은 보통 사람들의 위대성을 재인식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당시의 열화같은 민주화 요구는 보통사람들의 결집된 의지였으며 6·29선언의 주체는 바로 보통사람이었습니다. 취임후부터 「보통사람들의 위대한 시대」를 열기위해 국민과의 벽을 허물고자했으며 그동안 하루평균 30명,연인원 4만7천여명의 보통사람들을 만났습니다. 보통사람들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경제운용도 많은 결실을 거두었습니다.전국민의료보험·국민연금·최저임금제가 도입되어 국민복지제도의 틀이 완성되었습니다. 국민복지분야의 예산만 보더라도 87년의 8천8백억원이 금년에는 2조9천억원으로 늘어났고 전체 예산의 비율도 5.3%에서 8.1%로 늘어 났습니다. 지난 4년간 경제성장의 열매에서 더 많은 몫이 노동자에게 돌아가게 된것도 반가운 일입니다. ○인식의 대전환 필요 6·29민주화는 국제사회에서 우리나라의 위상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전기가 되었습니다. 민주화가 성공했기 때문에 서울올림픽도 성공적으로 치를수 있었고 전통적인 선진 우방과의 대등한 동반자 관계도 가능하게 되었다고 믿습니다. 또한 국내적으로 민주·화합의 시대가 성공적으로 열렸기 때문에 우리는 북방정책을 통한 대외관계에서도 화합의 시대를 성공적으로 열어 나갈수 있었습니다. 민주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많은 대가를 치렀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우리는 나라와 겨레의 발전을 위해 더할수 없이 소중한 자산을 얻은 것입니다. 우리 사회에 민주화의 꽃을 활짝 피우기 위해 꼭 극복되어야할 과제중의 하나는 우리 국민들이 갖고 있는 민주화에 대한 모순된 인식입니다. 명분상으로는 자유와 민주주의를 내세우면서도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권위주의적 방식을 정부에 요구하는가 하면 다른 사람의 문제는 객관적·합리적 시각으로 바라보면서 자기 문제에 대해서는 아집과 이해관계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점등이 그 대표적인 사례들입니다. 진정한 자유와 자율이 정착하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 끊임없는 발상과 인식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6·29선언 이후 5년, 대통령 취임후 4년4개월이 지난 지금 아직도 미진한 일,보완되어야할 부분이 많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오늘 이자리에는 당정의 고위간부가 다 모였으니 아직 미흡한 부분에 대해서는 나의 남은 임기동안 보다 투철한 사명감으로 보완·발전시켜주기를 당부합니다. 특히 내 임기안에 못다한 문제들은 후임 대통령이 훌륭히 이루어 갈 것으로 믿습니다. 나라의 민주화와 보통사람들의 시대를 여는데 앞장서온 여러분의 노고를 치하하며 지난 5년간 저를 성원해주신 국민 여러분께 거듭 감사드립니다. □「6·29선언」 8개항 내용 1·여야합의하에 조속히 대통령직선제개헌을 하고 새헌법에 의한 대통령선거를 통해 88년2월 평화적 정부이양을 실현한다. 2·직선제 개헌이라는 제도의 변경 뿐만 아니라 이의 민주적 실천을 위해 자유로운 출마와 공정한 경쟁이 보장되어 국민의 올바른 심판을 받을수 있도록 대통령선거법을 개정한다. 3·모든 분야에 있어서의 반목과 대결을 과감히 제거,국민적 화해와 대단결을 도모하기 위해 김대중씨를 포함한 시국관련 사범을 대폭 사면·복권한다. 4·인간의 존엄성은 더욱 존중되어야 하며 국민 개개인의 기본적 인권은 최대한 신장되어야 한다. 5·언론자유의 창달을 위해 관련제도와 관행을 획기적으로 개선한다. 6·사회 각부문의 자치와 자율은 최대한 보장되어야 하며,이를 위해 대학의 자율화와 교육자치,지방의회 구성을 통한 지방자치를 실현한다. 7·정당의 건전한 활동을 통한 대화와 타협의 정치풍토 마련을 위해 국가는 정당의 건전한 활동을 보장한다. 8·밝고 맑은 사회건설을 위하여 과감한 사회정화 조치를 강구한다.이를 위해 폭력배를 소탕하고 강도·절도사범을 철저히 단속하는등 서민생활 침해사범을 척결하고 우리사회에 잔존하는 고질적인 비리와 모습을 과감히 시정한다.
  • 6·29선언 5돌 당정평가대회 보고내용

    ◎정치·경제·사회 민주화의 기틀 공고히/ 27일 청와대에서 열린 6·29선언 5주년 평가보고대회에서 민자당·국무총리실·법무부·공보처는 각각 해당 분야별 성과를 보고하고 남은 과제를 제시했다. 당정은 이날 6·29선언으로 우리 사회 각 분야에서는 기본 자유가 신장되고 권위주의가 청산됨으로써 민주화가 획기적으로 신장·확산되어 국가발전의 커다란 전기가 되었다고 평가했다.또한 앞으로 6·29정신을 계승·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사회풍토를 조성하고 각종 부조리를 척결해야한다고 강조했다.이날 당정보고내용의 주요 골자는 다음과 같다. ○자율화·사회질서의 확립/총리실 ◎지방의회 구성… 「풀뿌리 민주」 실현 ▷자치와 자율의 확대◁ 시·군·구의회와 시·도의회를 구성함으로써 다양하고 균형있는 지역개발추진등 효율적인 국가·사회발전의 토대를 구축,주민의 참여와 자율로 주변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현했다.지방자치법령·지방선거법령등 자치관련 법규의 대대적인 정비를 통해 지방자치의성공적인 착근과 이의 내실있는 발전을 위한 여건조성에 지속적인 노력을 경주하고 자치단체의 행·재정력 확충을 통한 자치능력의 보강을 이룩했다. 또 교육위원회에 심의·의결기능을 부여하고 교육청과 교육자치기관간의 독립성 유지로 교육자치의 틀을 마련하고 교육감과 교육위원도 지방자치 정신에 입각,선출하도록 제도화했다.대학도 교수와 학생이 주인이 되어 자율적으로 운영토록 국·공립대 총학장을 대학의 복수추천에 따라 임명하고 사립대의 총학장 임명승인제를 폐지했으며 교수회의 활성화와 대학평의원회 구성및 운영,학생자치기구 운영등으로 활기찬 학원분위기를 조성했다. 민간의 창의와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자율적 경제체제로의 전환및 노사간 화합,행정권한의 민간위탁확대와 행정규제의 완화등으로 사회 각분야의 민주화와 자율화의 토대를 구축했다.특히 통일논의의 개방,해외여행 자율화,자유로운 창작활동 보장등 각부문의 자율영역을 확충했다. ▷밝고맑은사회건설◁ 112순찰차 확대,인원·장비보강등 범죄대응체제를 강화하고 심야퇴폐유흥업소등에 대한 강력한 단속과 제도적 보완으로 민생치안 상황이 크게 호전됐으며 불법 주정차,음주운전,노점상,등산시 취사행위 등의 금지조치를 통해 자유민주시민의식을 제고시켰다.이와함께 「새질서·새생활운동」을 전개,사치·호화·낭비및 비능률·불합리 등을 추방하고 일더하기등 「5대 더하기운동」을 대대적으로 추진했다. 또 「특명사정반」「비리 수사부」운영을 통한 고위공작자등 사회지도층 비리의 예외없는 의법조치등으로 누적된 구조적·고질적 부조리에 대해 「성역없는 수술」을 전개했고 부동산투기,외화유출,금융부조리,탈세등 경제질서 문란행위에 대해서도 부단한 단속과 제도개선을 추진했다.재벌기업단체에 의한 경제력 집중억제,각종 불공정거래에 대한 규제강화로 건전한 경제질서를 확립한 것도 특기할만한 일이다. 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주택 2백만호건설등을 추진,전국 보유주택수의 33% 물량을 5년만에 건설했으며 2000년까지 42조원을 투입,잘사는 농어촌 기반조성을 위한 농어촌발전 종합대책을 수립,시행중이다. ▷반성과 다짐◁ 과도한 지역이기주의와 권한의 효율적 수용태세 부족으로 지방자치의 활성화가 미흡하며 중소기업의 창업과 경영등의 실제활동에 아직도 많은 간섭과 규제가 남아있다.어린이,여성대상 범죄 등에 대한 체감치안 수준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고 일선 대민행정행태에 대한 불만도 아직은 거센 상태다. ○기본권관련 법·제도 개혁/법무부 ◎시국사범등 1만여명에 사면조치 ▷인권보장의 제도적 장치 마련◁ 헌법을 개정,집회 결사의 허가제를 폐지함으로써 자유권을 확대하고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기 위해 범죄피해자구조권및 청구권과 모성보호규정을 신설했다. 국제인권규약과 국제노동기구(ILO)등 인권관련 국제규약에 가입함으로써 인권선진국을 지향했다. 헌법재판소법을 제정해 운영함으로써 인권보장의 체계를 완비하고 법원조직법과 검찰청법을 개정해 사법부와 검찰의 독립성·중립성을 강화했다. ▷보통사람들의 기본권신장◁ 대한법률구조공단을 설치해 서민들의 소송구조범위를 확대하고 민법및 남녀고용평등법을 개정해 여성의 지위향상에 노력했다. 쾌적한 생활권을 보장하기 위해 환경정책기본법을 제정하고 의료수혜권을 확충했다. 근로시간의 단축,최저임금법의 시행,산재보험법의 개정등을 통해 근로자의 생활권을 향상시켰다. ▷형사법상의 기본권 강화◁ 형법상의 국가모독죄를 삭제하고 구속적부심의 확대,피해자 진술권등을 보장했다. 범죄피해자구조법을 제정해 범죄로 인해 피해를 입은 사람에게 국가부조를 의무화했다. 사회보호법을 개정,필요적 보호감호처분을 폐지했으며 보호관찰대상을 축소하고 전과관리기록도 개선했다. ▷사면·복권및 공안관계법률 정비◁ 국민화합을 위해 87년 7월 2천3백35명을 사면·복권한 것을 비롯,3차례에 걸쳐 1만7백25명에 대해 사면·복권을 단행하고 2천6백97명의 시국사범을 석방했다. 논란이 되어온 국가보안법을 개정,반국가단체의 범위를 지휘통솔체제를 갖춘 경우로 한정하고 금품수수·잠입탈출등에 대한 불고지죄 폐지,국외공산계열관련 잠입·탈출 처벌조항의 삭제를 통해 오·남용소지를 없앴다.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제정,노동쟁의조정법의 개정을 통해 쟁의행위의 제한을 완화했다. ▷민주발전을 위한 참정권신장◁ 국정감사및 조사법을 제정하고 국민투표법상의 정당의 찬반활동을 허용했다. 공명선거 풍토를 조성하기 위해 사전선거운동,불법자금의 유입차단,과열및 타락방지등의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적극적이고 엄정한 수사를 전개했다. ▷평가와 향후과제◁ 갈등과 반목으로 야기된 국가적 위기와 사회적 혼란을 극복,국민통합을 이룩했고 각분야에서 국민의 기본권이 크게 신장됐다. 각종 법적·제도적장치의 개혁으로 민주발전의 기반·국제적 지위의 향상과 통일기반을 조성했다.그러나 자유와 권리의 신장에 따른 책임과 의무에 대한 인식이 따르지 못해 준법·질서의식이 미흡하다.일부 잔존하고 있는 공직사회의 권위주의,부조리,공복의식의 부족등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언론자유 창달·사회변화/공보처 ◎언기법 폐지… 신문·방송에 자율권 ▷언론자유보장법률·제도의 개혁◁ 언론기본법을 폐지하고 「정기간행물 등록등에 관한 법률」등 대체입법을 제정했다. 신문·통신·잡지등록을 전면 개방해 정기간행물이 6·29당시보다 3배로 증가했다.일간신문은 28종에서 92종(중앙지 18종→44종,지방지 10종→48종)으로 증가했고 총등록간행물은 6·29당시 2천2백36종에서 92년5월말 현재 6천2백16종으로 늘어났다.언론활동 제한제도및 관행의 개혁에 있어서 주재기자를 전면부활하고 프레스카드제도를 폐지했다.신문발행면수와 지가를 완전자율화했다.방송분야에서는 방송법을 제정해 공정성과 자율성을 보장하고 방송위원회기능을 대폭 강화했다.KBS·MBC의 공영방송체제를 확립하고 방송구조의 다원적 개편의 일환으로 민방인 서울방송을 신설하고 교육방송을 독립시켰다.교통방송을 신설하고 종교방송의 활성화 차원에서 기독교방송에 보도및 광고방송을 허용하고 평화방송과 불교방송을 신설했다. 뉴미디어방송시대 개척을 위해 91년말 종합유선방송법이 제정됐고 95년 인공위성방송준비및 고화질 TV연구가 추진중이다. 출판분야에서는 출판사등록을 전면개방하고 월북작가작품 출판허용및 공산권자료 개방도 이루어졌다. ▷언론자유시대의 도래◁ 언론자유의 철저한 보장으로 보통사람들이 마음놓고 말할수 있는 사회가 도래했다.언론은 국가권력과의 관계에서 간섭·성역없이 자유롭게 취재·보도했고 경영자와의 관계에서도 상당한 자유와 독립이 보장됐다.기자협회 자체의 여론조사 결과도 기자의 72.7%가 언론자유신장에 대해 긍정평가했다.IPI총회 한국언론대표 기조연설에서도 『기자들은 권력기관의 반응에 신경쓰지 않는 반면,이념적인 과격주의자들을 더 무서워한다』고 했다.국제언론계에서도 한국언론의 자유실태를 신뢰하며 93년 IPI 원탁토론회및 95년 총회의 서울개최결정이 이를 반증하고 있다. ▷평가와 교훈◁ 이제 언론의 자유는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공고한 기반이 구축됐다.신문지면의 획기적 증면이 이루어졌고 전국동시인쇄·전산체제구축·뉴미디어산업 개발착수등 제작기술의 혁신이 이루어졌다.신문광고는 91년 1조1백96억원으로 87년보다 3배 증가했고 방송광고는 91년 7천6백66억원으로 87년보다 1.9배 증가했다.매체종사자수도 88년 2만2천5백20명에서 91년 3만3천8백65명으로 폭발적인 증가가 있었으며 신문·방송업이 인기직종으로 부상해 입사경쟁률도 높고 고임금체제로 정착했다. 그러나 자유에 걸맞는 책임·윤리가 정착돼야 한다는 언론계내의 새로운 자성론도 대두됐다.신문의 양적팽창에 비례하는 질적향상을 기해야 한다는 것이 중론이다.언론사간 무제한 경쟁양상으로 인한 언론의 과소비비판 여론이 있으며 국제화시대에 대처하는 능력배양의 중요성도 강조되고 있다. ○민주화 계승·발전의 길/민자당 ◎평화적 정권이양에 중범/“여야합의” 직선개헌… 정통성 구축 ▷민주화시대의 개막◁ 1987년 6월29일은 대립과 갈등의 시대를 마감하고 대화와 화해의 시대를 활짝 연 역사적인 날이다.6·29 민주화 선언은 권위주의 체제를 청산,우리 정치사의 큰 흐름을 바꿔 놓았으며 비민주적이고 단절과 혁명의 과정을 겪었던 우리 헌정사를 일신했다. 정치적 경쟁의 자유,언론출판의 자유,사법부의 독립성 강화와 인권의 신장,지방자치 실시 등을 통해 보통사람들의 민주시민사회를 여는 일대 전기를 마련했다. ▷직선제 개헌과 정통성 확보◁ 국민의 여망이었던 직선제 개헌이 헌정사상 처음 여야합의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이로 인해 정통성을 확보한 제6공화국이 탄생했다.또 우리 선거 역사상 가장 자유로운 경선을 실현함으로써 평화적 정권이양의 선례를 마련했다. 여야가 자유경쟁을 통한 국민의 심판을 받아 정권을 이양할 수 있도록 하고 그 선거 결과에 승복하는 전통의 초석을 마련한 것이다. ▷의회와 정당의 활성화◁ 강력한 권한을 가진 국회는 행정부를 견제하고 국민의 뜻에 따라 입법권을 행사하게 되었다.국회는 진정한 정치의 무대가 됐으며 직선제에 의한 정권경쟁은 침체된 정당정치를 활성화시키는 획기적 계기를 마련했다.「거리의 정치」가 해소되고 제도권 정치의 틀이 마련됐다. ▷안정적 국정운영◁ 88년 4·26총선은 여소야대라는 새로운 정치판도를 만들어 사회가 혼란하고 민생이 불안하게 되었다. 이에 민정당과 민주당 그리고 공화당은 국민을 위한 민주화를 위해 3당합당이라는 대결단을내렸으며 그 결과 민주자유당의 창당으로 나라는 안정을 되찾고 국민은 안심할 수 있게 되었다. ▷지방자치의 실시와 자율성확대◁ 지자제는 5·16혁명에 의해 중단된 이후 30년만에 처음 실시되는 역사적 의의를 갖는다.지난 2차례의 지방의회 선거는 선거사상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공명정대하게 실시되어 선진 선거풍토조성에 대한 국민적 기대를 한껏 드높였다. ▷향후과제◁ 6·29선언 8개항의 약속이 모두 실현됐지만 앞으로 더욱 발전시켜 나갈 부분도 없지 않다. 먼저 정치권은 국민의 의식수준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으며 관에는 여전히 권위주의가 상존해 있다.때문에 민자당은 민주화과정에서 미흡했던 점을 보완하고 경제활성화등 국민의 여망을 수용함으로써 민주화를 보다 실질적인 차원에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또한 경제 사회적 측면에서도 정책적 배려를 강구해야 한다.
  • 6·25는 우리에게 무엇인가/참전·전후세대 좌담

    ◎“통일의지 가다듬는 「역사의 거울」삼아야”/「상잔의 비극」 잊으면 제2불행 초래/“젊은층 북한 몰라… 통일 접근 신중히”/깨어있는 젊은이 많아야 한반도 앞날 밝아 6·25동란 42돌을 맞았다.전쟁이 일어난뒤 강산이 네번이나 바뀌고 당시 태어난 사람들은 이제 장년이 되어 사회각분야에서 중견으로 활약하고 있다.전쟁을 경험한 세대는 아직도 동족상잔의 비극이 생생한데 젊은 세대에게는 6·25가 한낱 역사속의 「사건」으로만 여겨져 가고 있다.인공기가 내걸리고 북한의 상투적인 구호가 그대로 외쳐지는 현실에서 우리는 6·25를 어떻게 해석해야하며 또 무엇을 배울것인가.전쟁을 겪은 세대와 전후세대가 한자리에 모여 6·25의 참뜻을 되새겨본다. ▷참석자◁ ▲배명오씨(63·전 국방대학원 교수) ▲김용승씨(53·월간 「한사랑」 주필) ▲박현정양(21·동덕여대 의상학과 3년) ▲배명오교수=전쟁의 비참한 날들이 아직 생생하고 6·25의 상처가 다 아물었다 할 수 없는데 벌써 42년이 흘러갔습니다.저는 서울대 3학년 재학중 6·25가나 바로 육군종합학교에 입학했다가 참전했습니다.숱한 격전을 치르며 살아남은게 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그러나 해마다 6월만 되면 가슴이 답답합니다.6·25가 역사 속으로 묻혀가며 잊혀지는게 섭섭하고 우리 국민의 80%나 되는 전후세대들이 북한을 너무 모르는게 안타깝고 국민들의 성급한 통일욕구가 불만스럽기 때문입니다. ▲김용승주필=저는 국민학교 6학년때 전쟁을 맞았습니다.지긋지긋했던 피란살이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전후세대가 들으면 「또 고리타분한 이야기하는구나」하며 외면할지 모르지만 저는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갖자』는 것을 강조합니다.누가 누구를 위해 피를 흘린 것인가를 생각해야 된다고 믿습니다. 개인이 잘 되려면 웃어른을 잘 모셔야 되듯 나라도 공세운 유공자들을 위해야 잘되는 것입니다.이 말은 기성세대가 젊은 세대로부터 대접받자는 뜻이 아닙니다. 요즈음은 축구만 잘해도 국가가 예우해주고 있지 않습니까? 참전세대는 어림잡아 1백59여만명 되는데 이 가운데 47만명이 생존해 있습니다.특히 전쟁부상자 1백10명은 보훈병원에서 40여년을 보내고 있습니다.이들의 영예를 선양해 줄 때 국민적 구심점이 생긴다고 생각합니다. ▲박현정양=저는 솔직히 이런 자리가 어색해요.부끄러운 말씀이지만 6·25에 대한 인식도 매우 적었습니다. 과연 6·25를 어떻게 이야기할 것인지 저는 당혹스럽습니다.대학생활을 하면서도 이데올로기의 홍수에 혼돈을 느끼고 있습니다.난롯불에 직접 손을 덴 사람과 그저 막연히 「아,뜨겁겠지」라고 생각하는 사람과의 차이라고나 할까요. 국민학교때에는 학교에서 「상기하자,6·25」라며 표어를 만들고 포스터를 그리기만 했을 뿐입니다.그리고 대학에 들어와선 그런 막연한 개념들을 자연히 잊어버렸습니다. ▲배교수=지정학적으로 우리나라는 대륙과 해양세력의 중간에 위치,항상 그 영향을 받게 돼있습니다.우리가 한반도에서 생존하는 한 현재는 물론 2000년 이후에도 전쟁이 되풀이될 가능성이 항상 있습니다.이 때문에 우리는 6·25전쟁을 망각해선 안됩니다. 서울을 보십시오.「세계적 대도시」라고들 합니다만 그게 자랑거리가 안됩니다.많은 안보전문가들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서울은 너무 밀집되어 있습니다.그리고 자본주의의 좋은 점보다도 취약한 요소들이 도처에 많습니다. 안보·국방은 더욱 투철히 해두어야 하는데 참으로 안타까울 뿐입니다. ▲김주필=통계에서 보면 우리민족이 9백여차례나 외국으로부터 침략을 받았다고 합니다.여기에서 우리는 더이상 전쟁이 되풀이 되어선 안된다는 교훈을 배워야 합니다. 『자신의 과거를 설명할 능력이 없는 사람은 또 과거를 되풀이할 수 밖에 없다』는 인도속담은 우리에게 던지는 경구입니다.우리민족의 역사의식은 유감스럽게도 매우 약합니다.전쟁이 끝난지 불과 39년입니다.그런데 현재 우리국민의 분위기는 어떻습니까? 원자폭탄이 떨어진 일본 히로시마 평화의 집앞에는 이런 비문이 있습니다. 「그들을 용서할 수는 있어도 잊을 수는 없다」무서운 경구입니다.평화를 지키는 힘도 중요하지만 역사를 망각하지 않는 국민의식이 더욱 중요합니다. ▲박양=두분께서 저희 젊은 세대에 대한 지적을 많이 해주셔서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자본주의의 영향탓인지 물질만능에 젖어 정신적인 것을 많이 잃어가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대다수 젊은이들은 깨어 있는 정신을 갖고 있다고 자부해요.각자 개인들이 작은 일부터 질서를 지키고 건전한 시민의식을 갖고 생활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배교수=좋은 말입니다.민족혼을 갖고 있는 젊은 세대들도 많다고 봅니다.박수갈채를 보낼만한 훌륭한 젊은이들도 많아 한편으로는 마음든든합니다. 그들의 의식이 깨어 있는 한 우리민족의 통일에 대한 미래는 꽤 긍정적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렇다고 통일에 대한 지나친 환상을 갖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국민들을 공연히 들뜨게 해서는 안되겠지요. 그러나 최근 우리의 통일정책은 너무 양보하는게 아닌가 하는 느낌과 너무 성급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김주필=통일 문제를 논의할 때 우리 국민의 교육열이 높다는 사실도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높은 교육열을 잘만 활용하면 통일문제에 긍정적인 방향으로 접근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또 최근 우리 것을 찾자는 움직임이 각계에서 번지고 있는 데 이것도 제대로 방향을 잡아주면 민족통일문제와 접목을 시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박양=역사는 항상 되풀이된다고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6·25는 우리에게 역사적인 거울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젊은 세대들이 불행했던 과거를 배우고 익혀서 다시는 민족의 비극이 되풀이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것 찾기,우리 물건쓰기운동도 한창인데 이럴때 애국에 대한 가치관을 정립시키면서 국민의 정신력을 한데 모으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6·25가 우리에게 건전한 의식을 갖게 해주는 역사적 거울로 우리에게 다가설 수 있다고 봐요. ▲배교수=통일문제와 관련해 최근 우리 체제만을 고집하지 않겠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어 유감스럽습니다.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에게는 반론을 제기하고픈 생각이에요.우리의 현 자유민주주의 체제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반드시 지켜져야 합니다. 한반도에서의 통일은 대한민국 주도하에 이뤄져야 하며 체제와 이념은 자유민주주의에 바탕을 둬야 할 것입니다.▲김주필=우리에게 있어서 내부의 갈등이 더 큰 문제일 수 있습니다. 이 점 겸손하게 받아들이면서 내부의 갈등을 해소하고 순화시키는 노력에 앞장서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통일을 앞당길 수 있는 한 방법일 수도 있다고 봅니다. ▲배교수=젊은이들은 남북고위급 회담차 서울에 온 북한 대표단들의 미소와 유연한 자세를 보았을 것입니다.그러나 그 온화한 미소뒤에는 지난 5월22일 군사분계선을 넘어 비무장지대에 침투한 북한 무장침투조의 양면성이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박양=동족상잔의 전쟁은 다시는 없어야 합니다.그러기 위해서는 국가적인 힘의 축적이 필요하다고 보며 경제성장과 함께 정신적 가치관의 확립이야 말로 필수적이라고 생각합니다.
  • 걱정스런 교육현장의 새 갈등(사설)

    교육계가 또다시 갈등의 와중에 휩싸이게 되었다.「교육대개혁」과 「해직교사의 원상복직」을 표방하며 결성된 이른바 「전교위」가 공개적으로 「투쟁」의 움직임을 보이기 때문이다. 전교조 사태때를 기억하는 우리로서는 우선 불길하고 걱정스럽다.어떤 이유로든 교육현장이 『투쟁의 장』이 된다는 것은 그것만으로 불행한 일이므로 그 부당함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교육에 종사하던 사람들이 그들의 뜻을 중도에 좌절당하고 직업을 잃은 「해직교사」사태는 매우 유감스런 일이다.할수만 있다면 그들이 구제되어 교직의 길에 다시 설수 있기를 우리도 바라고 있다.그러나 그 방법은 어디까지나 정당하고 합법적인 것이어야 한다.그것이 또다른 소요와 갈등을 동반하는 것이라면 이제 겨우 아문 상처를 재발시키는 결과가 될 뿐이다. 「전교위」의 결성과 투쟁선언은 지금으로서는 교육현장의 옛 상처를 확대 증폭시켜 그 고통을 담보로 『쟁취의 결과』를 극대화하려는 데 있는 것같다.그점이 받아들일수가 없는 것이다.「전교위」가 「전교조」의 현장투쟁기지라는 사실은 여러모로 의심할 여지가 없으며 실제로 외각에서 전교조 조직이 원격조종하는 것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도 확실하게 드러나고 있다. 그들이 아름다운 교육적 명분을 내세웠다고 해서 그들이 그것을 실현시킬 능력은 없으며 그런 명분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투쟁』보다 교사 한사람한사람이 교육의 본분을 다하며 교직의 길에 임하는 이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음을 알사람은 다알고 있다.아무리 명분을 앞세워도 「투쟁」은 잘못이다.대부분 전교조 파란때 전교조에 가담하다가 탈퇴하고 교단에 남았던 사람들을 중심으로 하고 있는 전교위의 구성원들이,일터를 잃고 생계의 위협을 받고 있는 옛 동지들의 처지를 생각하거나 「이념」을 함께 했던 동료들에 대한 의리로 외곽에서의 강요를 좀처럼 떨치기 어려웠을 것은 충분히 짐작한다.그런 뜻에서 「전교위」의 결성이 상당부분 자의이기 보다는 타의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는 사실에 이해도 간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교육자가 교육현장을 어지럽히고 「대개혁」은 커녕 「대혼란」을 가중시키는 투쟁행동의 획책에 동조한다는 것은 안될 일이다.또한 그것이 옛 동료인 해직교사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지도 않는다.명백하게 불법으로 드러난 일을 또다른 불법의 집단행동으로 해결하려하는 발상자체가 온당하지 못한 일이다. 더구나 교총이라고 하는 합법적인 단체가 민주화시대에 걸맞는 방법으로 거듭 나 교권을 확립하고 교육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그 노력은 이른바 「참교육」의 어의적인 내용과 어긋나는 것이 없다.교육을 바로 세우는 것이 진정한 목적이라면 이 노력에 가담하여 이땅의 교육이 점진적으로 개선되어가는 일에 기여를 하는 편이 성과도 크고 확실하다. 그런 정황을 환히 알면서도 해직된 세력교조의 조종에 좌우당해 우리의 교육현장을 다시 한번 소요속에 몰아 넣는 것에 가담한다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다.그로써 발생되는 결과에 대해서는 모든 책임이 그들에게 돌아갈수 밖에 없다.그것을 명심하고 현명한 행동을 하도록 충고한다.
  • 남북 「장기공존뒤 흡수통일」바람직/「남북합의서 이후…」세미나 중계

    ◎북 개혁세력의 정치적 토대마련이 필수적/새 통합이념은 자유민주정신에 바탕둬야 통일한국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남과 북이 공히 지금까지 집착해온 이념과 체제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며 필요할 경우 일대 전환을 모색해야할 것으로 지적됐다.다음은 국민대 사회과학연구소(소장 김영작)가 19일 「남북합의서조인 이후의 과제와 해결방안」이란 주제하에 개최한 학술세미나에서 안청시교수(서울대)가 발표한 논문「바람직한 통일한국의 미래상」의 요지이다. 통일된 국가의 형태와 이념체제는 통일이 어떤 과정과 방법으로 달성되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지는데 현재 학계등에서는 조기통일론과 장기통일론,흡수통일론과 단계적·점진적통일론이 병행 거론되고 있다. 흡수통일론은 동서독의 경우처럼 한편이 내부모순 또는 경제파탄으로 자체붕괴,다른 한편에 결과적으로 흡수되는 통일방식으로 실제 조기통일을 예견하는 사람들이 가상하는 시나리오다. 이는 북한이 경제침체와 개혁부재등 내부모순의 심각성과 김일성주의를 대체할만한 이념적 기초의 부재로 스스로 붕괴,남한이 조기흡수통일할 것이라는 가정이다. 그러나 이 논리는 동서독과 남북한의 상이한 조건을 과소평가하는 등 몇가지를 간과하고 있다. 동독과 달리 북한은 사태예방에 모든 노력을 경주하고 있으며 그에 필요한 능력도 가지고 있다.또 루마니아 등에서 보듯 굶주림이 체제전복의 혁명으로 연결되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며 또 흡수통일에 따라 남한이 부담해야할 통일비용문제등을 감안할때 독일식 흡수통일은 가능하지도,바람직하지도 않은 방식이다. 단계적·점진적인 통일방식은 상호간 체제인정과 공존기틀을 확립한후 교류와 협력을 통한 신뢰와 호혜관계를 수립,끝으로 가치및 제도를 통일하는 것이다. 독일의 경우 이 과정을 통한 통일이 20년이 걸렸다는 것을 감안할때 한반도는 적어도 15년의 시간을 필요로 할 것이다. 북한은 국가기구가 사회부문을 완벽하게 통합,북한에 개혁 개방을 요구하는 앨리트들이 존재한다 하더라도 이들을 받쳐줄 사회세력이 존재하지 않는다.때문에 점진적 통일방안의 경우 공산당과 김일성의 개인적인 헤게모니구조로부터 개혁적 사회세력을,또 인민을 국가기구로부터 분리해내는 장기적이고 지구전적인 전략을 필요로한다. 또한 이러한 사회세력의 형성은 자본주의적 경제결과로 생겨나기 때문에 북한의 당과 국가주도의 경제개방이 어느정도 실효를 거둘때까지 기다려야 할지도 모른다. 따라서 남북한에 바람직한 통일방식은 「장기공존형 흡수통일」이다. 장기공존의 과정을 통해 남한은 자유민주주의 이념을 기반으로 대의민주주의를 완결,북한으로 하여금 변화해올 수있는 모델상을 제시해 주어야하며 대신 북한의 연방제안에 준하는 체제통합의 원리를 발전적으로 수용, 북한의 개혁개방의 새로운 정치세력이 물적 정치적 토대를 형성할 수 있는 예측가능한 과도기를 설정해줘야 한다.현재의 중국처럼 북한의 개혁개방이 장기공존 과정을 통해 성공한다면 이 기간에 형성된 상당한 수준에 이른 남북한합치점(Compatability)으로 통합에 큰 장애가 생기지 않을 것이다. 통일정부를 구성하는 방법및 정부형태와 관련,남한이 오랫동안 주장해온 인구비례에 의한 다수결의 원칙은 이질성과 다원성이 높은 사회일수록 그 갈등해결에 별 도움이 되지 않기때문에 앞으로 합의제 노선으로 바꿀 필요가 있으며 같은 이유로 정부형태 역시 대통령책임제보다는 의원내각제가 적합할 것이다. 이념통합방식의 하나인 절충형은 남북한이 고수하고 있는「현실적 존재양식」때문에 환상적 기대에 지나지 않는다.또 북한이념과 체제의 남한에로의 수렴 내지 흡수론은 아직은 완벽하게 정착되지 못한 남한의 대의제도,정치비리등 정상적인 자유민주주의부재와 취약한 구조의 자본주의로인해 이념통합의 모델로는 제한된 효용성밖에 가지지 못한다. 결과적으로 통일국가 수립을 위한 이념은 새로운 국가를 창설하는 정신으로 구상해가는 발전적 통합모형을 따라야한다.그것은 자유민주적 정치질서를 완성하고 시장원리의 이점을 그 본래의 정신으로 되살리는데서 출발해야한다. 일부 선진사회가 모색하고 있는 정치모델이 이를 암시해주고 있다.
  • 정주영씨의 해괴하고 무책임한 발언(사설)

    우리가 제5공화국이후 민주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겪었던 숱한 갈등과 이념의 혼돈속에서 근본적으로 가장 심각했던 것은 반공을 거부하고 반공의 행태 그것을 매도하고자하는 현상이었다.탈냉전 긴장완화라는 국제질서의 급변과 체제·이념의 우월성 논쟁으로 상징되는 우리 내부의 국민적 합의과정을 통해 그것이 슬기롭게 극복되는가 싶더니 이제 다시 그것이 한 정치인에 의해 또다른 갈등의 대상으로 제기되었다. 우리는 지금 이 단계에서 이미 국민적 합의와 그 정서의 타당성으로 하여 국민적 갈등요인이 될수 없는 반공논쟁으로 국론을 분열케하거나 국민적 화합을 그르치기를 원치 않는다.그러나 『공산당의 결성을 막을수 없다』는 정주영씨의 발언에 대해서는 자칫 그것이 몰고올 이념논쟁의 파장을 심각히 우려하는 측면에서 반박하지않을 수 없다. 정씨는 공산당 결성을 막을수 없다는 단순 논거로서 현행 헌법상 사상의 자유와 결사의 자유가 보장돼 있다는 점을 제시했다.정씨는 바로 여기에서 중대한 사고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헌법상의 사상결사의 자유에 유념하기 이전에 우리국민이 향유하고 헌법이 포괄하고 있는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수평적 이해를 결하고 있을뿐아니라 우리 헌법의 기본정신을 잘못 이해하고 있음을 지적하고자 한다. 우리 헌법은 제8조에 위헌정당 해산제도를 두고 있다.이는 기본적으로 자유민주주의 기본질서에 반하는 정당은 해체할 수 있다는 기본원리를 담은 방어적 민주주의 정신을 채택하고 있음을 이해해야한다.이는 다시말해 자유민주주의 원칙은 지키되 민주주의 기본 원칙을 파괴하고 제거하려는 정당까지 허용할 수 있도록 개방한다는 뜻은 아닌 상대적 제한적 의미를 갖고 있음을 모르는 무지의 소치로 우리는 본다. 정씨는 또한 그의 오늘이 있기까지 정치적 민주주의의 핵심인 자유시장경제체제의 혜택을 누구보다도 많이 받은 사람이다.그리고 그자신 사회주의 공산독재체제속의 경제형태가 얼마나 비능률·비창의적인가를 북한방문을 통해 피부로 느낀 사람이다.사회주의 경제체제가 갖는 한계성을 『잘 될래야 될 수가 없는 폐쇄성 때문』이라고 설명했던 터였다. 국가보안법의 문제점 지적에 대해서도 논의의 여지가 있지만 정씨는 공산주의 사상을 갖고 있는 것은 죄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우리는 여기서도 경제인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한 사고의 경직성과 정치적 경륜의 한계성을 느낀다.사상은 행동의 바탕이다. 공산주의 사상은 조만간 공산주의가 갖는 특성,즉 혁명성·파괴성·체제부정의 극단성 등의 형태로 구체화될 수밖에 없다.우리가 언제 어디서나 극단적인 좌경 반체제논리를 경계하고 극렬 운동권 학생들의 파괴적 행태를 묵과하지 않고 차단하는 것도 이 까닭이다. 민주당의 김대중대표도 지적했듯이 정씨의 발언은 국민적 정서에도 맞지 않는다.자유민주주의에 충실하고 시장경제체제에 동의하며 그 속에서 법과 질서와 사회제도·규범에 적응하고자 하는 민주시민이라면 그의 이 조시적인 현실인식에 놀랄 것이다. 정씨에게 묻고자 한다.왜 반공이 안되는가.반공은 공산주의와 공산화를 거부함을 뜻한다는 점에서 전혀 잘못이 아니다.자유민주주의 이념을 꽃피우려 민주화를 추진하는 우리에게 반공은 하나의 신념이며 국민모두가 공유하고자 하는 자유·민주·평등의 정서일 수밖에 없다. 우리에게 있어 공산당의 실존을 거부하는 반공정서는 지금 지상에서 소멸해가는 공산주의를 완벽하게 극복하기 위한 축적된 경험으로 남을 필요가 있다. 대선을 앞두고 이 나라의 대통령이 되고자 꿈꾸는 사람이 선거전략에,혹은 득표전략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고 어떤 무책임한 발언도 서슴지 않는 이같은 무분별한 행동은 그 자체가 기본적으로 헌법해석상의 법리를 넘어 이 나라의 책임있는 정치인이 될 수 없는 자질의 소유자임을 스스로 드러낸 처사로 해석된다. 정씨의 발언은 우리 헌법상 논리로 보나 한반도의 정치현실로 보나 국민정서 그 어디를 봐도 타당성을 찾을 수 없는 무책임하고 무분별한 행위임을 지적하며 정씨의 자중자애를 당부하는 바이다.
  • 민자·민주·국민당의 전략은(대선정국:5)

    ◎막오른 대권레이스… 개원협상이 “1차전”/범여권결속 통한 과반득표에 총력/YS/“집권호기”… 과격이미지 벗기에 주력/DJ/바닥표공략 역점… 당내분이 취약점/CY/민자­국민당 연합·「제4자」 출마여부가 최대 변수 민자·민주·국민등 주요정당의 대통령후보가 모두 확정됨에 따라 여야간 본격대권경쟁의 막이 올랐다. 대선정국은 김영삼(민자)김대중(민주)정주영후보(국민)의 3파전으로 일단 시작된 셈이다. 이제부터 각 당은 모든 정치행위를 연말 대선과 연계시켜 이들 후보를 부각시키는데 초점을 맞춰나갈 것이 분명하다.때문에 실질적 득표전이 벌써 시작됐다고도 볼수 있다. 이들 3인중심으로 전개될 「6개월 대선전」의 양상이 근본적으로 바뀔 변수가 아직은 몇가지 남아있다. 우선 민자·국민 양당의 연합가능성이다. 김영삼후보측에서 볼때 자신의 승리를 확실히 담보할수 있는 방안은 정주영후보의 지원을 얻어내는 것이다.정후보측은 그 가능성을 부인하고 있지만 현대그룹내에서 김·정합작 가능성이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다. 최근 김영삼후보측에서 내부추진중인 것으로 알려진 범보수연합구상과 국민당 조윤형최고위원의 심상치않은 움직임등이 민자·국민 연합을 통한 정계의 대지각변동가능성을 시사한다. 두번째 변수는 민자당 대권후보경선을 거부한 이종찬의원의 거취와 이미 출마의사를 표시한 신정당 박찬종후보의 선전여부이다. 이종찬의원이 대선독자출마를 결행한다면 이번 대선은 4∼5파전의 혼전으로 전개될 수도 있으며 양금중심의 지역대결구도에서 양금과 반양금의 대결구도로 바뀔 가능성이 있다. 이런 변수들을 일단 유보해 놓더라도 초반 3각구도아래서 민자당의 김후보가 가장 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김후보의 1차 목표는 범여권결집이다. 3당합당이후 끊임없이 이어진 정쟁으로 생겨난 갈등의 골을 얼마나 메우느냐에 따라 김후보의 대선전 순항여부가 결론나리라 관측된다. 김후보측은 범여권세력이 뭉친다면 지난 87년 대통령선거에서 노태우대통령이 얻은 36·6%의 여권고정표를 확보할수 있고 거기에다 당시 자신이 득표한 28%가운데 절반정도를 묶어 과반득표가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민자당이 6월초 구성할 예정인 「대선기획단」도 여권결속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김재순·권익현씨등 당원로와 김윤환·이춘구의원등 중진들을 망라한 대선기획단은 단순한 정책홍보업무를 넘어 범보수세력의 지지획득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와 함께 김후보 자신도 최규하·전두환전대통령을 예방한데 이어 신현확·노신영·이한빈·이현재·강영훈전총리등과 만났거나 면담을 추진하고 있는등 6공이전 세력들과의 연대에 힘쓰고 있다. 김후보측은 이어 무소속 영입으로 원내 안정세력을 구축한뒤 6월 14대국회 개원,9월 정기국회를 모양좋게 넘기는 정치력을 보여줌으로써 대선에서의 승리를 겨냥하고 있다. 하지만 야당측은 특유의 전략인 「소모적 정치공세」를 펼쳐 집권당의 국정수행능력에 대한 국민적 의구심을 불러일으킨다는 계획을 갖고있어 김민자후보의 앞날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다. 특히 14대 개원국회서두부터 국회직 할애문제와 자치단체장선거연기여부로 여야간 불꽃튀는 공방이 예상된다. 이 때문에 민자당은 김영삼후보의 대권주자 이미지메이킹에 있어 정책적 측면을 강조한다는 내부방침을 수립,대책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그동안 정치인으로서의 김후보의 인상은 국민에게 깊이 각인되었으나 행정관리자나 국정운영책임자라는 측면은 다소 홍보가 미흡했다는게 민자당측의 판단이다. 민자당은 김후보 이미지제고를 위해 미·일 「대권여행」도 추진하고 있으며 김후보 중심으로 각종 민생정책들을 적극 개발,공약으로 제시키로 했다. 민주당의 김대중후보도 지난 26일 후보경선 전당대회를 계획대로 매끄럽게 치름으로써 일단 순조로운 출발을 보이고 있다. 민주당은 이미 당내에 「당무기획실」을 구성,각종 선거전략을 구체화 하고 있다. 김후보의 최대선거전략은 과격·급진이미지의 불식이다. 이를 통해 지난 대선에서 얻은 27%의 득표율을 배가한다는 것이 목표이나 특정지역대표라는 유권자들의 「편견」을 극복치 못하면 현재의 좋은 분위기에도 불구,지지율을 제고시키기에는 어려울 것 같다는 관측이다. 국민당 정주영후보도 6월중 「대선기획단」을 만들어 당을 선거체제로 전환하고 득표작업에 나설 계획이다. 정후보 자신도 연일 시장방문 등 노골적 득표활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당내 이념 불재에다 정후보의 독선적 당운영 방식에 대한 내부의 불만이 높고 전국적인 조직 구축도 완결되지 않아 안팎으로 일사불란한 선거체제를 갖출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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