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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법 “동덕여대 학교법인은 조동식·이석구 공동설립”

    대법원이 “동덕여대 학교법인은 조동식 전 이사장과 이석구 전 종신이사가 공동 설립했다”고 최종 판결했다. 다만 조 전 이사장만 설립자로 밝힌 학교 홈페이지 등은 반드시 수정할 필요는 없다는 의견을 내놔 결과적으로 조 전 이사장 측 손을 들어줬다. 조 전 이사장은 비리 의혹으로 물러났다가 지난해 복귀한 조원영 이사장의 조부다. 대법원 1부(주심 이기택 대법관)는 24일 이 전 종신이사의 손자인 이원(58)씨가 “설립자 기재를 정정해 달라”며 학교법인 동덕여학단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동덕여학단은 동덕여대와 동덕여중·고교 등을 운영하는 학교법인이다. 재판부는 “동덕여학단은 조 전 이사장이 교육이념을 확립하고 독지가의 도움을 구하는 등 대내외적으로 노력하고 이 전 종신이사가 거액의 재산을 출연해 재정적 실체를 갖추게 되면서 설립됐다”며 “둘 다 설립자 지위에 있다고 본 원심은 정당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동덕여대 홈페이지 등에 조 전 이사장만 설립자로 적었다고 해서 이 전 종신이사나 후손의 인격권이 침해되지 않는다며 설립자 기재 정정 청구를 기각한 원심 판단도 받아들였다. 동덕여학단의 뿌리는 1908년 개교한 동덕여자의숙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 전 이사장은 이 학교 교장으로 재직하면서 건학 이념을 세웠다. 천도교가 재정 지원을 끊자 이 전 종신이사의 도움을 받았다. 동덕여학단 설립 당시 정관과 1956년 법인 등기부등본 등에는 이 전 종신이사가 설립자 또는 교주(校主)로 적혀 있다. 반면 조 전 이사장은 1959년 설립자에 자신을 추가해 정관을 변경했다. 이두걸 기자 douzirl@seoul.co.kr
  • 大法, “계좌이체도 현금영수증 발급 해줘야 한다”

     계좌이체도 현금거래의 일종이기 때문에 현금영수증 의무발급 대상에 포함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이기택 대법관)는 변호사 A씨가 낸 과태료 처분 이의신청 재항고심에서 원심 결정을 깨고 “과태료 부과는 정당하다”는 취지로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에 돌려보냈다고 24일 밝혔다.  재판부는 소득세법에 ‘현금’의 명확한 정의가 없더라도 현금영수증 의무발급 제도의 취지를 고려하면 계좌이체도 현금으로 간주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현금영수증 발급의무 조항은 고소득 전문직 사업자 등 고액 현금거래가 많은 사업자의 과세표준을 양성화해 세금탈루를 방지하고 공정한 거래질서를 확립하기 위한 것”이라고 전제했다. 이어 “제도의 도입목적 등에 비춰보면 소비자로부터 인터넷뱅킹·폰뱅킹 및 무통장입금 등을 통해 은행계좌로 대금을 입금받는 것은 현금을 수수하는 방법에 불과해 ‘대금을 현금으로 받은 경우’에 포함된다고 봐야 한다”고 판시했다.  소득세법은 변호사 등 사업자가 ‘거래금액 10만원 이상인 재화 또는 용역을 공급하고 대금을 현금으로 받은 경우 상대방이 요청하지 않아도 현금영수증을 발급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변호사와 공인회계사·세무사·건축사·감정평가사 등 전문직이 의무발급 대상에 포함되며 어길시 미발급 금액의 50%가 과태료로 부과된다. A씨는 2014년 수임료 1억1000만원을 계좌이체로 받고 현금영수증을 발급하지 않았다가 적발돼 서초세무서로부터 5500만원 과태료 처분을 받았다. A씨는 법원에 이의신청을 냈으나 과태료 처분이 정당하다는 결정이 나오자 항고했다.  2심은 “현금은 일반적으로 중앙은행에서 발행하는 지폐나 주화를 의미한다”며 계좌이체는 현금영수증 발급대상이 아니라는 A씨 주장을 수용했으나 대법원은 1심과 같은 취지의 결정을 내렸다.  이두걸 기자 douzirl@seoul.co.kr
  • “혼외자식 챙겨라” 뻔뻔 남편의 이혼 청구

    “혼외자식 챙겨라” 뻔뻔 남편의 이혼 청구

    바람을 피워 딴살림을 차린 것도 모자라 아내에게 혼외자식까지 챙겨달라고 요구한 남편에 대해 법원이 이혼을 허용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대법원 제1부(주심 이기택 대법관)는 A(58)씨가 아내 B(54)씨를 상대로 낸 이혼 등 청구 소송에서 “혼인생활 파탄에 주된 책임이 있는 남편이 제기한 이혼 청구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22일 밝혔다. A씨는 1987년 B씨와 결혼해 1남 1녀를 두었으나 2001년 다른 여성인 C씨와 만나 불륜 관계를 맺고 이듬해 아이까지 낳았다. A씨의 외도는 2003년 아내에게 발각됐다. A씨는 ‘다시는 어떤 여자와도 업무 외적 만남이나 통화를 하지 않는다’는 각서를 쓰고 결혼생활을 이어갔다. 그러나 2012년 B씨는 승용차 블랙박스에 녹음된 A씨와 지인의 대화를 통해 남편이 여전히 C씨와 연락을 하고 지낸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블랙박스에는 “혼외자녀에게 꾸준히 선물을 해왔고, 같이 살고 있는 아내(B씨)와는 마주치지도 않고 서로 무시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부인의 추궁에 A씨는 “이메일만 주고받았을 뿐 만나지는 않았다”고 주장하며 B씨가 혼외자녀에게 선물 등을 챙겨줄 것을 요청했다. 거절당한 A씨는 얼마 후 “별거를 하자”며 짐을 싸서 고시원으로 갔다. B씨는 현관문 비밀번호를 바꾸고 자신 명의로 된 토지에 근저당권을 설정했다. 남편에게 받은 생활비를 모아 10여년 전 사뒀는데 땅값이 10배 이상 오른 상태였다. A씨는 부동산 처분 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고 이혼소송을 제기했다. 1심은 “부부 관계가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파탄 나지는 않았다”며 이혼청구를 기각했다. 2심은 “남편의 잘못으로 혼인 관계가 파탄 났기 때문에 이혼청구를 받아들일 만한 예외적인 사정도 없다”고 봤다. 재판부는 “부인이 혼인을 계속할 의사가 없으면서도 오기나 보복적 감정으로 이혼에 응하지 않는다고 보기에 부족하다”며 이혼청구를 기각했다. 대법원은 2심 판결을 확정했다. 이두걸 기자 douzirl@seoul.co.kr
  • 대법 “춤추는 아이 귀엽다고 손 잡아끌면 폭행죄”

    아이가 귀엽다며 손을 잡아끌었다 해도 당사자 의사에 반하는 행동이라면 폭행에 해당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이기택 대법관)는 폭행 혐의로 기소된 이모(74)씨에게 벌금 5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6일 밝혔다. 이씨는 2012년 4월 경남 지역의 한 리조트 공연장에서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있던 A양(당시 10세)의 양손을 잡아 끌어당겼다. 이씨는 옆에 있던 A양의 어머니로부터 제지를 받고 행동을 멈췄다. 검찰은 “이씨가 A양을 잡아끌어 입을 맞추려고 했지만 어머니 등의 제지를 받아 미수에 그쳤다”며 이씨를 강제추행 혐의로 기소했다. 1심 재판부는 “제출된 증거만으로는 이씨가 A양을 강제로 추행하려는 의도가 있었음을 인정할 수 없다”며 강제추행 혐의는 무죄로 판단했다. 그러나 폭행 혐의에 대해서는 유죄로 봐 벌금 50만원을 선고했다. 이씨는 “아이가 귀여워서 무의식적으로 손을 잡았을 뿐 폭행의 의도는 없었다”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폭행은 사람의 신체에 물리적 힘을 가하는 것으로 수단과 방법에는 제한이 없고, A양이 적지 않은 정신적 충격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고 판시했다. 2심도 이씨의 폭행 혐의를 유죄로 보고 항소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A양의 손을 잡아끈 행위는 객관적으로 인정되는 유형력 행사인 폭행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대법원도 “원심의 판단이 정당하다”며 이씨에 대한 형을 확정했다. 이두걸 기자 douzirl@seoul.co.kr
  • 故 이기택 전 민주당 총재 4·19묘지에 영면

    故 이기택 전 민주당 총재 4·19묘지에 영면

    박관용 장례위원장이 24일 서울 강북구 국립4·19민주묘지에서 거행된 고(故) 이기택 전 민주당 총재 ‘4·19 민주사회장’ 영결식에서 헌화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 이기택 전 총재 빈소 찾은 이명박 전 대통령

    이기택 전 총재 빈소 찾은 이명박 전 대통령

    이명박 전 대통령이 23일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이기택 전 민주당 총재의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 연합뉴스
  • 낙태 시술받다 쇼크사한 미성년자…의사는 집유

    미성년자에 낙태 시술을 하다 쇼크사에 빠뜨린 의사가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대법원 1부(주심 이기택 대법관)는 낙태 시술을 하다 환자를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된 산부인과 의사 이모(38·여)씨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자격정지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24일 밝혔다.  이씨는 2012년 11월 당시 미성년자인 A양의 23주차 태아를 낙태하다가 자궁 천공과 저혈량성 쇼크로 A양을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 모자보건법은 강간으로 임신한 경우,본인 또는 배우자에게 특정한 전염성 질환이나 유전학적 정신장애·신체질환이 있는 경우 등에 한해 예외적으로 낙태를 허용한다.  이씨는 A양 어머니에게 “다운증후군이 의심된다”며 “법적으로는 안 되지만 그래도 해주겠다”며 승낙을 받은 뒤 기본검사도 없이 시술 중 사고를 낸 것으로 조사됐다.  A양이 숨지자 이씨는 문제를 숨기기 위해 진료기록부를 허위로 기재했다. 이씨는 ‘무호흡증,저혈압 쇼크 등 유산치료 부작용을 설명했다’거나 ‘강간에 의한 임신’이라고 썼다. 또 이미 사망한 태아를 낙태한 것처럼 조작한 혐의(의료법 위반)도 유죄로 인정됐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4·19 주역’ 잠들다

    ‘4·19 주역’ 잠들다

    지난 20일 세상을 떠난 이기택(79) 전 민주당 총재는 부패한 이승만 정권의 장기집권을 종식하고 제2공화국 출범을 끌어낸 ‘4·19세대’의 상징적 인물로 꼽힌다. 고인은 1960년 고려대 상대 학생위원장 시절 자유당의 3·15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4·18 고대 의거’를 주도, 이튿날 학생 총궐기의 도화선이 됐다. 1967년 만 30세에 신민당 전국구 의원으로 7대 국회에 입성한 뒤 7선 의원을 지냈다. 하지만 15대 총선에서 고배를 마신 뒤 여의도 재입성에 실패했다. 또한 고 김영삼(YS)·김대중(DJ) 전 대통령과 함께 야권을 이끌었지만, 양김의 그늘에서 끝내 대권의 꿈에 다가서지 못했다.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대선 후보를 둘러싼 양김의 갈등 국면에서 YS를 지지했던 고인은 1990년 3당 합당을 계기로 YS와 결별했다. 이후 노무현, 홍사덕 당시 의원 등과 함께 민주당(꼬마민주당)을 창당했고, 이듬해 DJ의 신민주연합당과 합당했다. 대선에서 패배한 DJ가 정계은퇴를 선언하자 민주당 총재에 올라 대권을 꿈꿨지만, 1995년 DJ의 정계복귀로 물거품이 됐다. 2002년 대선 때 부산상고 후배 노무현 후보 지원유세에 나섰지만, 2007년 17대 대선에선 노 전 대통령을 비판하며 고려대 및 고향(포항) 후배인 이명박 전 대통령을 지지했다. 야당 정치인으로 대부분을 보냈지만, 정작 야권에선 추모 논평을 내지 않은 까닭이다. 21일에도 조문 행렬은 이어졌다. 정의화 국회의장과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국민의당 안철수 공동대표, 박원순 서울시장 등이 서울 서초구 가톨릭대학교서울성모병원 빈소를 찾았다. 정 의장은 “저에게는 하나의 사표(師表)와 같은 분”이라며 “김영삼 전 대통령, 이만섭 전 의장, 이 전 총재 같은, 어른들이 떠나는 게 안타깝고 슬프다”고 말했다. 새누리당 김 대표는 “국가적 손실이고 후배들의 마음에 공허함을 주시고 가셨다”고 했고, 같은 당 이재오 의원은 “개인적으로 아껴 주셨고, 친형처럼 모셨는데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 전 총재는 전날 오후 1시쯤 심장마비로 숨졌다. 지난 19일 자서전 원고를 탈고할 만큼 건강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 시절 비서실장으로 보좌했던 박계동 전 의원은 “19일 밤 6년간 준비해 온 자서전 원고 탈고를 마치고 나오며 ‘아… 큰일을 마쳤네’라고 흡족하게 말씀했다고 들었다”면서 “아침 늦게까지 주무셨고 식사 때문에 깨우러 방에 들어가 보니 돌아가신 상태였다더라”고 전했다. 유족으로는 이경의 여사와 세 딸인 우인·지인·세인씨와 아들 성호씨가 있다. 지난해 별세한 태광그룹 공동창업주인 이선애 전 상무와는 남매지간이다. 고인의 비서관으로 정계 입문한 박관용 전 국회의장이 장례위원장을 맡아 ‘4·19 민주사회장’으로 치러진다. 24일 국회와 방배동 생가를 마지막으로 돌고 4·19 국립묘지에서 영면한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 [서울포토] 정의화 국회의장, 이기택 전 총재 빈소 조문

    [서울포토] 정의화 국회의장, 이기택 전 총재 빈소 조문

    21일 서울 강남성모병원에 마련된 이기택 전 민주당 총재의 장례식장에서 정의화 국회의장이 고인을 애도하고 있다.정연호 기자 tpgod@seoul.co.kr
  • [서울포토] 이기택 전 민주당 총재 빈소 조문

    [서울포토] 이기택 전 민주당 총재 빈소 조문

    21일 서울 강남성모병원에 마련된 이기택 전 민주당 총재의 장례식장에서 조문객들이 고인을 애도하고 있다. 정연호 기자 tpgod@seoul.co.kr
  • [서울포토] 이재오 의원, 이기택 전 총재 빈소 조문

    [서울포토] 이재오 의원, 이기택 전 총재 빈소 조문

    21일 서울 강남성모병원에 마련된 이기택 전 민주당 총재의 장례식장에서 새누리당 이재오 의원이 고인을 애도하고 있다. 정연호 기자 tpgod@seoul.co.kr
  • 15대 총선 與 분당에도 승리… ‘분열=패배’ 항상 통한 건 아니다

    15대 총선 與 분당에도 승리… ‘분열=패배’ 항상 통한 건 아니다

    안철수 의원의 탈당에 이은 연쇄 탈당으로 야권이 분열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이번 4·13 총선은 ‘일여다야’(一與多野) 구도가 불가피해졌다. 새누리당에는 ‘어부지리’의 기회가, 제1 야당의 위세가 무너지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에는 위기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하지만 과거 정치사를 되짚어 보면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명제가 항상 통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통합과 분열’을 통해 흥망성쇠를 되풀이해 온 여야의 ‘총선사(史)’를 반추하며 이번 총선을 전망해 본다. 1996년 15대 총선은 다자구도로 치러졌다. 김영삼 당시 대통령이 총재인 집권 신한국당과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새정치국민회의, 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자유민주연합, 이기택 전 총재의 통합민주당이 진검 승부를 펼쳤다. 이 다자구도는 분열의 산물이었다. 새정치국민회의는 DJ를 비롯한 동교동계가 이 전 총재와의 공천권 갈등으로 민주당에서 분열돼 나온 정당이었고, 자민련은 ‘3당 합당’으로 탄생한 민주자유당 내에서 계파 갈등을 겪었던 공화당 인사들이 탈당해 만든 정당이었다. 현재 분화 중인 정당 구도와 흡사한 점이 있다. 분열의 결과는 냉혹했다. 신한국당이 299석 가운데 139석(46.5%)을 가져가면서 승리를 거뒀지만,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하면서 ‘여소야대’ 국면을 극복하지 못했다. 새정치국민회의는 79석(26.4%), 자민련은 50석(16.7%), 통합민주당은 15석(5.0%)을 차지하는 데 그쳤다. 특히 야권은 수도권에서 참패했다. 하지만 분열의 여진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1997년 대선에서 DJ는 자민련과 손을 잡으면서 정권교체에 성공했다. 이후 총선은 모두 양자구도로 치러졌다. 하지만 양당 체제 속에서도 분열과 통합은 계속됐다. 2000년 16대 총선 직전 다수당인 한나라당과 집권 여당인 새천년민주당에서 탈당한 인사들이 ‘민주국민당’을 창당했다. 공천 탈락으로 인한 분열이었다. 김윤환, 이수성, 조순, 이기택, 박찬종 전 의원 등이 합류했지만 선거에서 총 3석(지역구 1석, 비례대표 2석)을 얻는 데 그쳤다. 반면, 2003년 11월 새천년민주당과 한나라당 탈당파 의원들이 주축이 돼 창당한 열린우리당은 2004년 총선에서 1987년 체제 출범 이후 처음으로 과반 의석(152석)을 확보했다. 이때부터 의회가 여대야소(與大野小)로 전환됐다. 분열을 통해 ‘대박’을 터트린 셈이다. 한나라당은 121석(40.5%)에 그치며 처음으로 1당 자리를 내줬다. 탄핵 역풍과 한나라당의 ‘차떼기 악몽’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2007년 대선을 앞두고는 열린우리당과 손학규 전 의원을 비롯한 민주 세력들이 ‘대통합민주신당’이라는 이름으로 ‘통합’했지만, 그해 12월 대선에서 패배하면서 분위기는 급반전됐다. 2008년 4월 ‘통합민주당’으로 재통합해 총선에 나섰지만 81석(27.1%)를 얻는 데 그쳤다. 한나라당은 친이(친이명박)계가 휘두른 공천학살로 인한 ‘친박연대’ 분열 사태에도 불구하고 153석(51.2%)을 확보하며 4년 만에 1당 자리를 되찾았다. 이후 친박연대가 한나라당과 합당을 하면서 한나라당은 170석에 육박하는 거대 정당이 됐다. 분열이 곧 여권 세력의 확장으로 이어진 결과다. 2011년 ‘디도스 사태’로 인한지도부 붕괴와 당명까지 바꾸는 위기 속에서 새누리당이 2012년 19대 총선에서 152석(50.7%) 과반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도 과거 분열로 인한 세력 확장이 동력이 된 것으로 분석된다. 이처럼 통합이 성공만을, 분열이 실패만을 안겨 주진 않는다는 게 실증된 셈이다. 이번 총선을 앞두고 탄생할 ‘안철수 신당’의 파괴력에 따라 국회는 2004년 이후 12년 만에 여소야대 국면으로 전환될 수도, 16년 동안 여대야소 국면을 지속할 수도 있다. 단기적으로는 야권의 분열이 새누리당의 총선 승리로 이어질 가능성이 적지 않다. 하지만 그 분열의 양상이 중도층 흡수를 통한 야권 세력의 확장으로 이어진다면 2017년 대선에서 새누리당에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 “올해도 힘차게!” 시민사회단체 합동 신년회

    “올해도 힘차게!” 시민사회단체 합동 신년회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5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2016 시민사회 합동 신년회’에 참석해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오른쪽부터 김을동 새누리당 최고위원, 이기택 전 민주당 총재, 김 대표. 박윤슬 기자 seul@seoul.co.kr
  • 회식 후 만취해 사고당했다면 업무상 재해일까

    회식 후 만취해 사고당했다면 업무상 재해일까

    #1. 공군 하사 A(당시 22세)씨는 2013년 1월 말 서울 세곡동의 한 식당에서 열린 부대 회식에 참석했다. 얼큰하게 취한 A씨는 집에 가기 위해 택시를 탔지만 집에서 조금 떨어진 서하남 나들목 근처에서 내렸다. A씨는 전화로 여자친구에게 “여기가 어딘지 잘 모르겠다”며 횡설수설했다. 걱정이 된 어머니는 “빨리 들어오라”고 채근했다. 하지만 밤 10시쯤 A씨는 서울 오륜동의 왕복 10차선 도로를 무단횡단하다 차에 치여 불귀의 객이 됐다. A씨의 가족은 유족연금을 달라고 청구했지만 국방부는 이를 거부했다. 사고 지점과 집과의 거리가 3㎞ 정도여서 통상적인 귀가 경로로 보기 어렵다는 게 이유였다. A씨 가족은 국방부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2. B(당시 47세·여)씨는 2012년 7월 서울 용산의 한 고깃집에서 직장 동료 30여명과 회식을 갖고 많은 술을 마셨다. 술잔을 돌리는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B씨 등 상당수 팀원이 만취했다. B씨는 다른 팀원 13명과 함께 옆 건물 노래방으로 2차를 갔다. B씨는 화장실을 찾다가 비상구 아래로 떨어져 골반 등에 큰 부상을 입었다. 김씨는 근로복지공단에 요양급여를 신청했지만 ‘업무와 사고의 인과관계가 없다’며 거부당하자 소송을 냈다. 회식 뒤 사고라는 공통점을 가진 두 사례에 대해 8일 대법원은 다른 판결을 내렸다. A씨의 경우 재해로 인정했지만 B씨는 재해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A씨 사건에 대해 1심 재판부는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A씨가 원래 집으로 가려고 했는지 불분명하다는 것 등을 근거로 들었다. 현행법상 공무원이 출퇴근 도중 사고 등을 당하면 공무상 재해로 인정된다. 하지만 2심은 “A씨가 밤늦은 시간에 사고 지점에 갈 만한 다른 이유를 찾을 수 없다”며 1심 판결을 뒤집었다. 사고 지점과 A씨의 집은 불과 10분 거리라는 점도 감안했다. 대법원 1부(주심 이기택 대법관)도 원고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반면 B씨의 경우 대법원 1부(주심 이인복 대법관)는 원고 패소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 1심은 근로복지공단, 2심은 B씨 손을 들어줬다. 2심 재판부는 “B씨가 술을 자제하지 않은 과실이 있더라도 회식과 사고 사이의 인과관계를 부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팀장이 술잔을 돌리지 않은 점으로 미뤄 업무상 재해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B씨의 자발적인 음주가 사고로 연결됐다는 뜻이다. 법원은 지금까지 회식비가 법인카드로 결제되거나 술자리 목적이 직원 단합 등이었다면 과음으로 인한 사고도 산재로 판단해왔다. 하지만 회식이 끝나고 몇몇 직원들끼리 자발적으로 술자리를 가진 경우에는 산재로 보기 어렵다는 게 기존 판례다. 한 직장인이 2~3명의 동료와 2차를 갔다가 술에 취해 넘어져 다친 사례에 대해 대법원은 2009년 ‘(1차가 아니기 때문에) 공식적인 회식이 아니었다’며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지 않았다. 박영기 노무사(노무법인 사람 대표)는 “회식 사고의 경우 모임이 사업주의 지배·관리를 받는지 여부와 회식 분위기, 사고 당사자의 일탈 행위 여부 등이 법원의 업무상 재해 판단의 기준이 된다”고 말했다. 이두걸 기자 douzirl@seoul.co.kr 송수연 기자 songsy@seoul.co.kr
  • [대법원 관용 판결] “0시 10분 체포된 시위자 무죄”

    [대법원 관용 판결] “0시 10분 체포된 시위자 무죄”

    시위 허용 시한인 밤 12시를 약간 넘겨 체포된 집회 참가자에게 대법원이 무죄 판결을 내렸다. 실제로 시위를 벌였는지 엄격히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대법원 1부(주심 이기택 대법관)는 야간 도로 점거 시위로 기소된 박모(46)씨에 대해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는 무죄로, 일반교통방해 혐의만 유죄로 인정해 벌금 5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30일 밝혔다. 박씨는 2008년 6월 28일 오후 7시부터 서울 중구 대한문 앞에서 열린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에 참가했다. 1만명 넘게 참가한 촛불집회는 경찰과 밤샘 대치하는 시위로 바뀌었고 박씨는 시위대 강제 해산에 나선 경찰을 피해 달아나다 29일 밤 12시 10분쯤 붙잡혔다. 검찰은 이듬해 박씨를 집시법 위반 등의 혐의를 적용해 기소했지만 야간 시위 금지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이 제청되면서 재판이 중단됐다. 1심 재판부는 “밤 12시부터 10분 동안 야간 시위를 한 것은 현행법 위반”이라는 검찰 주장을 받아들였으나 2심 재판부는 “검거를 피해 도망가다 넘어져 거리에 앉아 있던 상태에서 현행범으로 체포된 사실이 인정된다”며 “자정 이후 박씨의 행동은 시위대에서 벗어나는 과정일 뿐 시위하고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 대법 “인사평가 따른 업적연봉도 통상임금”… 근로자 손 들어줘

    대법 “인사평가 따른 업적연봉도 통상임금”… 근로자 손 들어줘

    인사평가에 따라 근로자마다 차등 지급되는 ‘업적연봉’도 통상임금에 해당한다는 대법원의 첫 판단이 나왔다. 통상임금이 시간외수당 등 다른 임금의 기준이 되는 만큼, 근로자들이 더 많은 월급을 받을 수 있게 됐다는 뜻이다. 다만 대법원은 앞서 “통상임금을 추가로 지급할 때에는 경영 상태를 고려해야 한다”는 판결을 이미 내린 바 있어 월급봉투가 실제로 두툼해질지는 회사 사정에 따라 결정될 전망이다. 대법원 1부(주심 이기택 대법관)는 26일 한국GM 직원 1025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임금지급 청구 소송에서 업적연봉과 가족수당 등을 통상임금으로 인정한 원심 판단을 대부분 유지했다. 다만 귀성여비, 휴가비, 개인연금보험료, 직장단체보험료를 통상임금으로 판단한 부분은 다시 심리하라며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2007년 한국GM 근로자들이 회사의 임금 산정 방식에 반발해 시작된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업적연봉이 ‘정기성·일률성·고정성’을 특징으로 한 통상임금에 해당하는지였다. 회사 측은 2000~2002년 연봉제를 도입하면서 일률적으로 지급하던 상여금을 직원들의 인사평가에 따라 변동되는 업적연봉으로 전환했다. 전년도 평가 결과에 따라 기본급을 차등 지급하고, 월 기본급의 700%를 이듬해 12개월분으로 나눈 업적연봉으로 줬다. 업적연봉과 조사연구수당, 휴가비 등은 통상임금에서 제외됐다. 대법원 재판부는 “업적연봉은 해당 연도에는 액수 변동 없이 고정적으로 지급되며 해당 연도의 근무성적에 따라 지급 여부나 액수가 달라지지 않아 고정성 있는 통상임금에 해당한다”면서 “전년도 인사평가 결과는 이후 정해지는 업적연봉의 산정 기준일 뿐 지급 조건이 될 수 없다”고 판시했다. 또 사측이 통상임금에서 제외한 조사연구수당·조직관리수당·가족수당 등도 통상임금으로 인정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귀성여비 등은 특정 시점에 재직하지 않은 노동자에게는 지급되지 않는 등 고정성이 인정되지 않아 통상임금이 아닐 수 있다고 판단했다. 앞서 1심은 업적연봉을 “인사평가 등급에 따라 금액에 상당한 차이가 발생한다”며 통상임금에서 제외했다. 하지만 2심은 “업적연봉도 해당 연도 근무성적과 상관없이 결정되고, 액수가 고정돼 있으므로 통상임금에 해당한다”며 근로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은 2013년 12월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을 초래하는 경우 추가 법정수당 청구는 신의성실의 원칙에 어긋나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이 판결 이후 파기환송심에서는 회사마다 통상임금 지급 여부가 엇갈렸다. 서울고법은 지난 2일 한국GM 근로자들이 회사를 상대로 낸 ‘정기상여금 등을 통상임금에 포함시켜달라’는 청구를 기각했지만 한국남부발전 직원들이 낸 같은 내용의 소송에서는 근로자 편을 들었다. 한국GM의 경우 통상임금 포함에 따른 추가 수당 부담을 견딜 수 없지만 남부발전은 이를 감당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 ‘민주화·큰 인물’ 부각 속 정치적 함의 압축

    ‘민주화·큰 인물’ 부각 속 정치적 함의 압축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빈소에서는 ‘방명록 정치’가 한창이다. 특히 정치권 인사들이 김 전 대통령의 서거를 애도하며 남긴 메시지에는 정치적 함의가 가득했다. ‘사자성어형’, ‘업적 칭송형’, ‘명복 기원형’, ‘에피소드형’ 등 그 형태도 다양했다. 어떻게 하면 남다른 메시지를 남길까 고민한 흔적도 엿보였다. 여권 인사들은 대체로 김 전 대통령이 ‘큰 인물’이었다는 점을 부각했다. 이인제 새누리당 최고위원은 ‘역사의 거인, 영면하소서’라고 남겼다. 박찬종 변호사는 ‘直情徑行(직정경행·생각한 것을 꾸밈없이 행동으로 나타냄)의 신념의 지도자’라고 적었다.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길 없는 곳에 새 길을 열고 문 없는 곳에 큰 문을 여신 시대의 큰 별께 바칩니다’라고, 홍준표 경남지사는 ‘담대함으로 대한민국을 개혁하신 업적을 우리 국민들은 모두 기억합니다’라고 썼다. 야권 인사들은 주로 ‘민주화’라는 업적을 기리는 데 초점을 뒀다. 한화갑 한반도평화재단 총재는 ‘각하의 정치 역정은 한국 현대사의 한 부분입니다’라는 글을 남겼다. 이기택 전 민주당 총재는 24일 ‘영원한 민주주의 지도자’라고 적었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이 땅에 민주화의 역사를 만든 큰 별’이라고, 같은 당 안철수 의원은 ‘고인의 민주화에 대한 신념과 헌신은 국민들 가슴속에 오랫동안 기억될 것입니다’라고 썼다. 천정배 의원은 ‘군정 종식의 역사적 위업을 남기신…’ 이라며 민주화를 강조했다. 여권으로 정계에 입문했다가 지금은 야권에 몸담고 있는 손학규 전 새정치연합 상임고문은 ‘민주 정신과 개혁 정신은 우리 역사에 영원히 빛날 것입니다’라는 방명록 글귀로 김 전 대통령의 업적과 인물 됨됨이를 동시에 칭송하기도 해 눈길을 끌었다. ‘미스터 쓴소리’ 조순형 전 의원도 ‘한국 민주주의를 지켜 낸 우리 시대 거인’이라고 쓰며 양쪽을 아울렀다. 방명록은 개성 넘치는 내용들로 넘쳐났다. 수천명이 펜을 잡았지만 똑같은 글귀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는 ‘음수사원’(飮水思源)이라는 사자성어로 강렬한 울림을 던졌다. 물을 마실 때 그 물이 어디서 왔는지 생각하라는 의미로,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민주주의가 김 전 대통령을 비롯한 선대 정치인들의 투쟁과 희생의 산물임을 잊지 말라’는 정치적 메시지를 단 네 글자에 압축해 담았다. 양승태 대법원장은 ‘민주주의를 일으킨 천하장수’라고 표현했다. 안희정 충남지사는 ‘통합과 화합의 그 말씀을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쓰며 김 전 대통령의 유훈을 되새겼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김 전 대통령의 좌우명을 인용해 ‘大道無門(대도무문)의 그 길 우리가 따르겠습니다’라고 적었다. 자신의 이름 외에 가장 짧은 메시지를 남긴 인사는 이명박 전 대통령으로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라고만 썼다. 일반 시민인 박종숙씨는 애도의 편지로 방명록의 한 페이지를 가득 채웠다. 권철현 전 주일대사는 ‘저를 정계로 이끌어 주셨던 각하. 감사합니다’, 이낙연 전남지사는 ‘아침에 가면 사모님의 시래깃국, 밤에 가면 대통령님의 와인을 주셨던 상도동을 기억하며 감사드립니다’라고 추억담을 기록했다. 이 밖에 박근혜 대통령과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 등 방명록 작성을 하지 않은 정치권 인사도 적지 않았다.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 국회엔 검은색 대형 애도 현수막… 지방 200여곳 6만여명 조문

    국회엔 검은색 대형 애도 현수막… 지방 200여곳 6만여명 조문

    쌀쌀해진 날씨에도 불구하고 24일 고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은 정·재계 주요 인사와 일반 시민의 추모 행렬이 사흘째 계속되며 ‘문전성시’를 이뤘다. 저마다 김 전 대통령과의 인연을 소개하며 ‘그의 정신을 받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까지 사흘간 서울대병원 빈소를 찾은 조문객은 총 2만여명을 훌쩍 넘겼다. 홍준표 경남지사는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많은 국가 개혁을 하신 분인데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때 많은 국민이 비난하는 것을 보고 가슴이 아팠다”며 “새롭게 다시 한번 재조명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과거 검사로 활약하며 ‘모래시계 검사’라는 별칭까지 붙었던 홍 지사는 1996년 김 전 대통령의 권유로 정치에 입문한 ‘YS키즈’다. 1990년 3당 합당 당시 김 전 대통령과 결별하고 노무현 전 대통령, 홍사덕·이철 의원과 함께 꼬마 민주당을 창당했던 이기택 전 의원도 빈소를 찾아 유족을 위로했다. 이 전 의원은 “김 전 대통령은 오늘의 이 대한민국을 민주주의 국가로 만드는 데 누구와도 비견할 수 없는 가장 탁월한 공을 세운 분”이라며 “이분의 민주주의 정신을 따라서 이 나라가 더욱 성숙한 국가로 발전돼 나가길 빈다”고 말했다. ●김기춘 “민주화 과업 이룩한 역사적인 국가원수” 안희정 충남지사는 “반독재 민주화 운동을 이끌었던 지도자를 잃어 매우 애통하게 생각한다”며 “우리에게는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야 할 책무가 맡겨진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조문록에 ‘고인께서 반독재 민주화 투쟁의 선두에 계실 때, 저는 이제 막 민주화 운동에 합류한 꼬마 대학생이었습니다. 고인으로부터 큰 은혜를 입고 삽니다’라는 글을 남겼다. 1992년 14대 대선을 이틀 앞두고 부산 초원복집에서 지역 기관장들과 김 전 대통령에 대한 지원방안을 논의하며 ‘우리가 남이가’라는 건배사를 외쳤던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도 유족을 위로하면서 한동안 빈소에 머물렀다. 김 전 비서실장은 “김 대통령께서는 산업화 토양 위해서 민주화의 역사적 과업을 이룩하신 역사적인 국가원수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의 ‘정치적 아들’을 자처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서청원 최고위원, 손학규 전 새정치연합 상임고문 그리고 ’상도동계’ 김수한 전 국회의장, 홍인길 전 청와대 총무수석도 사흘째 빈소를 지켰다. 재계에서는 손경식 CJ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등이 발걸음을 했다. 손 회장은 “고인은 우리나라 민주화와 금융실명제 등 선진 제도를 도입한 훌륭한 지도자”라며 애도를 표했다. 벳쇼 고로 주한 일본대사는 ‘일본 국민과 정부를 대표해서 마음 깊이 조의를 표한다’라고 조문록에 쓴 뒤 “큰 위인을 잃었다”고 말했다. 가족들은 애써 슬픔을 참아가며 문상객을 맞이했다. 차남인 현철씨는 아침 일찍 나와 빈소를 지키며 문상객의 손을 하나하나 잡아가며 예를 표했다. 이어 오전 11시쯤 휠체어를 탄 채 빈소에 등장한 손명순 여사는 여전히 충격이 가시지 않은 모습으로 눈물을 흘리며 조용히 슬퍼했다. 손 여사는 좋지 않은 건강에도 불구하고 4시간가량 빈소를 지켰다. 김 전 대통령의 처남 손성환(82)씨는 빈소를 찾아 “새해마다 상도동에서 세배를 해서 이번에도 가게 될 줄 알았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김 전 대통령과 크고 작은 인연을 가진 시민들의 발길도 이어졌다. 정수선(61·여)씨는 태극기에 싼 액자를 소중히 안은 채 장례식장을 찾아 “1970년 부산의 한 선거 유세장에서 김 전 대통령을 만나 사진에 사인을 받았는데 그것을 액자에 넣고 태극기에 싸서 여태까지 보관하고 있다”고 말했다. 당시 정씨가 “꼭 대통령이 되세요”라고 소리치니 김 전 대통령이 “꼬맹이가 귀엽다”며 사인을 해줬다는 것이다. 정씨는 “살아 계셨을 때 다시 한번 직접 뵙고 싶었는데, 돌아가시고 나서야 이렇게 찾아왔다”며 눈물을 보였다. ●통일민주당 창당 방해 주범 김용남씨도 빈소 찾아 일명 ‘용팔이 사건’으로 알려진 1987년 통일민주당 창당 방해 사건의 주범인 김용남(64)씨도 김 전 대통령의 빈소를 찾았다. 홍인길 전 청와대 총무수석은 김씨를 만난 뒤 “(김씨가) 목사가 됐다더라. 조문을 길게 하진 않았으나 기도하고 묵념을 오래 했다”고 전했다. 서울 여의도 국회에 마련된 정부 대표 분향소에는 이종걸 원내대표를 비롯한 새정치연합 의원 30여명은 국회 분향소를 찾아 단체로 헌화와 분향을 했다. 정부 분향소가 위치한 국회 본관 전면에는 ‘근조, 김영삼 전 대통령의 서거를 삼가 애도합니다’라고 적힌 검은색 대형 현수막도 새로 내걸려 한층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추모가 이뤄졌다. 전국 자치단체에 설치된 200여곳의 분향소에도 이날 오후 6시 현재 6만명이 넘는 조문객이 방문해 김 전 대통령의 서거에 애도를 표했다. 특히 김 전 대통령의 고향인 경남 거제시 대계마을 생가 옆에 마련된 분향소에는 사흘 동안 3000여명이 방문했다. 이곳 분향소에는 김 전 대통령이 졸업한 장목초등학교 재학생 67명 전원이 찾아 고인을 추모했다. 거제가 지역구인 김한표 새누리당 의원도 “1990년대부터 김 전 대통령의 경호 담당으로 인연을 맺어 왔다”며 하루 종일 분향소를 지켜 눈길을 끌었다.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 설치된 분향소에서는 동교동계(김대중 전 대통령 가신 그룹) 권노갑·김옥두·이훈평 전 의원과 상도동계 정병국 의원, 김덕룡·박희부 전 의원 등이 상주를 자처하며 조문객을 맞았다. 2009년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때도 상도동계가 함께 서울광장 분향소에서 조문을 받으며 품앗이한 전례가 있다. ●반기문 “국제사회 존경받는 나라 노력” 해외 주요 도시에 마련된 분향소에서도 추모 행렬은 계속됐다. 주한 미국대사 출신인 성 김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 겸 부차관보는 23일(현지시간) 워싱턴 DC 소재 주미대사관에 마련된 분향소에 미국 정부 대표 자격으로 찾아 조문을 했다. 김 부차관보는 헌화와 묵념을 한 뒤 “우리는 한국의 발전을 위해 중요한 기여를 한 김 전 대통령을 매우 존경한다”며 “(김 전 대통령은) 한국이 민주주의로 기적적인 변모를 하는 데 가장 중심적 인물 중의 한 명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뉴욕 대한민국 유엔대표부에 마련된 분향소를 찾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고인의 뜻을 따라 대한민국이 잘 살고 국제사회의 존경을 받는 나라가 되도록 노력하자”고 말했다. 정부는 해외 주재 우리 공관에 분향소를 마련해 공관원들과 교민들이 찾을 수 있도록 했다.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사법 신뢰도 위해선 당사자 말에 귀 기울여야”

    “사법 신뢰도 위해선 당사자 말에 귀 기울여야”

    민일영(60·사법연수원 10기) 대법관이 32년간의 법관 생활을 마무리하고 16일 법원을 떠났다. 민 대법관은 재임 중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유죄 파기, ‘안기부 엑스파일’ 보도에 대한 유죄 선고 등에서 보수적인 입장의 판결을 주로 이끌었다. 이날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에서 열린 퇴임식에서 “사법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법관들이 성의를 다해 당사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이를 토대로 올바른 결론을 내린 뒤 알기 쉽게 작성한 판결문으로 선고해 당사자로 하여금 승복케 해야 한다”고 후배 판사들에게 당부했다. 경기 여주 출신으로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민 대법관은 사법연수원 교수와 서울지법 부장판사, 법원도서관장 등을 거쳐 2009년 대법관에 임명됐다. 민사집행법 전문가로 유명한 그는 미래에 받게 될 퇴직연금이나 퇴직금도 이혼 때 재산 분할 대상이라는 전원합의체 판결을 이끌어낸 바 있다. 앞으로 2년 임기의 사법연수원 석좌교수로서 사법 연구와 연수생의 강의를 맡을 예정이다. 민 대법관 후임인 이기택(56·사법연수원 14기) 대법관은 17일 취임한다. 이두걸 기자 douzirl@seoul.co.kr
  • [사설] 또 민생 저버린 국회

    국회의 약속, 여야의 합의는 세간의 그것을 훨씬 초월하는 무게감을 갖는다. 대의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우리 정치 체제에서 전체 국민을 상대로 한 약속이자 합의이기 때문이다. 어떤 ‘악조건’ 속에서도 반드시 지켜져야 함은 물론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국회, 여야는 어떤가. 그제 19대 국회의 마지막 정기국회 첫 번째 본회의가 열렸지만 바로 전날 여야 원내대표가 서명한 합의문은 휴지 조각이 되고 말았다. 달랑 이기택 대법관 후보자 임명동의안과 2014 회계연도 결산안만 처리했을 뿐이다. 합의사항 중 하나였던 민생법안 처리는 지켜지지 않았다. 앞서 새누리당 원유철, 새정치민주연합 이종걸 원내대표는 지난 7일 회동을 갖고 다음날 본회의에서 처리할 안건에 합의했는데 여기에는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된 민생법안 중 법사위 통과가 가능한 법안도 포함됐었다. 민생법안 처리 불발 사유가 가관이다. 정작 법사위가 열리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새정치연합 소속 이상민 법사위원장이 “국회는 벽돌 공장이 아니다”라며 법사위 소집을 거부했다니 그럼 여야 원내대표 간 합의는 뭐란 말인가. 현재 법사위에는 각 상임위를 통과한 120여개의 각종 법안이 계류돼 있는데 서민의 실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 등 민생법안이 다수 포함돼 있다. 이 위원장은 “국정감사 중에라도 날짜를 잡아 법안을 철저히 심의하도록 하겠다”고 밝혔지만 현실적으로 민생법안 처리는 국감 이후로 미뤄질 게 뻔하다. 국회가 도대체 민생을 걱정이나 하고 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입으로는 늘 민생을 외친다. 국민만 속는다. 오늘부터 시작하는 국감에 임하면서 새누리당은 ‘민생 챙기기’ ‘경제 살리기’ 등을, 새정치연합은 ‘안정민생’, ‘경제회생’ 등을 내세웠다. 하지만 민생을 챙기고, 민생을 안정시키겠다면서 민생법안은 뒷전으로 내팽개치는 국회의 이율배반적 행태에 국민은 이제 신물이 날 지경이다. 되풀이되고 있는 식언과 파행을 지켜보면서 국민은 19대 국회의 성적표에 최악의 점수를 매길 수밖에 없다. 사실 그제 본회의에서 대법관 후보자 임명동의안과 결산안이 통과됐지만 두 안건 모두 법정 시한을 넘겨 늑장 처리된 것이다. 특히 결산안의 경우 19대 국회는 출범 첫해인 2012년부터 내리 4년 연속 법정 시한을 넘겨 처리했다. 정기국회 시작 이전에 처리하도록 규정한 국회법을 입법부 스스로 무시해 온 것이다. ‘위법국회’라는 오명을 듣는 이유다. 올해 열린 6차례의 임시회는 모두 아무런 성과 없이 끝났다. 정쟁으로 아까운 혈세만 낭비한 꼴이다. 이제 19대 국회는 사실상 90일 남짓 남았다. 국감 기간과 휴일 등을 빼면 사실상 마지막 정기국회는 50여일밖에 안 남았다. 정기국회가 끝나면 여야 공히 내년 4월 치러질 20대 총선 체제로 돌입할 것이고, 공천이다 뭐다 해서 각종 민생 현안은 더욱더 뒷전으로 내동댕이쳐질 공산이 크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도 변함없이 민생을 외면하고, 구태를 되풀이한다면 국민은 절대 용서치 않을 것이다. 이제라도 전심전력을 다해 민생을 챙기는 국회가 되길 바란다. 민생에 관한 한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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