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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린세상] 인권콘서트와 아물지 않은 상처/최광기 전문 MC

    참많은 사람들을 만났다.10년 동안 그 무대에 서면서 세상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국가 권력 앞에서 자신의 소중한 인권을 짓밟히며 살아왔는지를 그저 안타까운 마음으로 목격해야만 했다. 세계인권선언이 발표된 지 57년을 맞은 올해, 그리고 20년의 세월을 한결같이 고통 받는 이들과 함께하며 살아있는 인권 지킴이로 우리 사회의 양심과 민주주의를 위해 싸워 오신 민가협 어머니들과 함께 열입곱번째 ‘인권콘서트’를 지난 10일 열었다. 해마다 세계인권선언 기념일에 즈음하여 민가협이 열어온 ‘인권콘서트’는 인권을 주제로 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공연이다. 올해도 역시 많은 사람들이 공연장을 가득 메웠다. 특히나 많은 사람들을 숙연하게 만든 사람은 바로 함주명씨였다. 1983년 이근안 등 남영동 대공분실 수사관에게 끌려가 간첩으로 만들어진 뒤 16년 동안 감옥살이를 해야 했던 사람,‘간첩 누명을 쓰고는 죽을 수도 없다.’던 사람과 ‘또 다른 함주명들’이 무대에 선 것이다. 5·6공 군사독재정권은 필요에 의해 간첩 사건을 만들었고, 반공 지상주의 사회는 ‘만들어진 간첩’과 그 가족들의 삶을 송두리째 빼앗았다.22년의 세월을 우리 사회에서 ‘천형’과도 다름없는 ‘간첩’으로 살아야 했던 사람들, 고문을 당하며 겪어야 했을 고통과 좌절 그리고 분노가 그대로 전달되는 듯했다. 만약에 내가 그랬다면 나는 그 세월을 견딜 수 있었을까? 살아낼 수 있었을까? ‘나는 간첩이 아닙니다.’라는 말 한 마디는 100여명이나 되는 조작 간첩 당사자들이 지금도 겪고 있는 고통과 상처를 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무거움으로 다가왔다. 그들이 지금도 겪고 있는 상처를 공감하는 과정이야말로 우리 사회에 뿌리박힌 레드 콤플렉스를 치유하는 과정이 될 것이다. 한편 국가 권력은 돌이킬 수 없는 한 인간과 그의 가족들에게 빼앗긴 삶을 위해 더 늦기 전에 사죄를 서둘러야 할 것이다. 공연장에 모인 많은 사람들을 바라보며 우리에게 있어 인권이란 무엇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은 누구나 행복하고 자유로울 권리가 있다. 따라서 인권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정체성을 지켜주는 것이라 믿는다. 그러나 지금 우리 인권의 현주소는 어디에 머물고 있는가? 여전히 겨울 칼바람 앞에서도 절박한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장애인 차별 금지법’ 제정을 위해 장애인들이 여의도에서 천막을 치고 있다. 심지어 농민들과 빈민들은 죽음을 이어가며 절규하고 있다. 사상과 견해가 다르다는 이유로, 성적 취향이 다르다는 이유로,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이 시대의 두꺼운 차별의 벽 앞에서 그들이 느끼는 절망감을 무엇에 비교할 수 있을까? 그 벽이 얼마나 크고 높은지 아마 우리는 상상도 할 수 없을 것이다.30년이 넘도록 자신의 집의 작은 문턱을 넘지 못하는 장애인에게 세상은 늘 높기만 하다.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노동의 기쁨과 인간답게 살 권리가 있다지만 현실은 늘 그들을 외면하고 있다. 또한, 다름은 비정상이 아니라 그저 차이일 뿐이라고 말한다. 다름을 인정하는 세상, 그것은 아마도 차별과 냉대 속에 시들어가는 이주노동자들과 총 대신에 다양한 사회봉사의 기회를 열어주기를 바라는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 모두가 바라는 세상이 아닐까 싶다. 이제 우리는 우리 사회 인권의 현주소를 비춰주는 소수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이다. 또한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피맺힌 절규를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누구나 차별받지 않는 평등한 세상, 서로를 존중하며 행복할 수 있는 자유로운 세상, 그런 세상이 그리 멀지 않기를 오늘도 간절히 바란다. 최광기 전문 MC
  • [씨줄날줄] 공소시효/우득정 논설위원

    1986년 9월부터 1991년 4월까지 10명의 희생자를 낸 화성연쇄살인사건 중 9번째 여중생(당시 13세)살인사건의 공소시효가 어제 끝났다. 나머지 1건은 내년 4월2일 공소시효가 완성된다. 잔혹한 흉악범에게 15년이라는 시효는 너무 짧다는 여론이 비등하다. 고문기술자 이근안 사건, 수지 김 간첩조작사건, 김영삼 정부 시절 안기부 도청사건 등 공소시효로 ‘처벌 불가’라는 결정이 내려질 때마다 항상 도마에 올랐던 것이 공소시효의 적합성 문제다. 현행 형사소송법 249조(공소시효의 기간)는 사형에 해당하는 범죄는 15년, 무기징역은 10년, 장기 10년 이상 징역은 7년, 장기 10년 미만의 징역은 5년, 장기 5년 미만 징역이나 10년 이상 자격정지 또는 1만원 이상 벌금은 3년으로 공소시효를 규정하고 있다.5·18특별법처럼 공소시효 특례를 규정한 법률이 몇 차례 제정되기는 했으나 이 땅에서는 아무리 잔혹한 범죄를 저질러도 15년만 피하면 법의 소추를 받지 않는다. 범행 후 오랜 시일이 경과해 증거가 멸실·산일(散逸)되어 진실 발견이 어렵고 범죄행위로 초래된 사회질서의 파괴가 상당히 회복되었으며, 범죄인 자신도 형벌에 상응하는 고통을 받았으므로 범인의 법적·사회적 안정도 존중돼야 한다는 것이 공소시효 설정 이유다. 그래서 열린우리당 의원 145명이 찬성한 ‘반인권적 국가범죄의 공소시효 등에 관한 특례법안’에 대해 법무부는 ‘법리가 너무 포괄적’이라는 이유로 신중한 접근을 요청했다. 대법원은 특례법에 포함된 ‘단순살인죄나 가혹행위까지 공소시효를 배제하는 것이 국제협약에 부합하는지’ 의문을 표시했다. 대한변협은 과거의 특정사건을 이유로 특례법을 제정할 필요가 있는지에 회의론을 제기하면서 헌법에 규정된 과잉금지원칙과 소급입법금지 취지에 반할 수 있다는 의견을 냈다. 법적 안정성을 해친다는 게 바탕에 깔려 있다. 하지만 가해자도 있고 피해자도 있는데 처벌할 수 없는 불합리한 상황은 시정돼야 한다. 자료나 증거보관, 수사기법 발전속도, 수명 연장 등을 감안하면 공소시효 15년 상한선은 재조정돼야 한다. 세계적인 추세에 맞춰 반인도범죄에 대해서는 공소시효 배제, 중죄인에 대해서는 지금보다 공소시효를 늘리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우득정 논설위원 djwootk@seoul.co.kr
  • 이근안씨 가석방 부적격 결정

    법무부는 25일 가석방심사위원회를 열고 5·6공 시절의 고문기술자인 이근안씨의 가석방에 대해 부적격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법무부 관게자는 “형량은 가석방 요건이 되지만 행형 성적이나 범죄를 고려할 때 가석방이 부적합하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고 밝혔다.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고문기술자 이근안 가석방심사

    5·6공 시절의 고문기술자인 이근안씨가 가석방 심사대상에 올라 있는 것으로 10일 확인됐다. 법무부는 이씨가 지난달 복역 중인 여주교도소 내 가석방 예비심사를 통과, 오는 25일 법무부 가석방심사위원회(위원장 김희옥 법무부 차관)에서 가석방심사를 받을 예정이라고 전했다. 이씨는 1999년 11월 구속기소돼 2000년 9월 대법원에서 징역 7년을 확정선고받고 현재까지 5년 11개월가량 복역하고 있다. 여주교도소 관계자는 “이씨가 가석방 요건에 해당되기 때문에 예비심사를 통과한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다.하지만 그의 가석방을 두고 시민단체 등에서 반발하는 등 논란이 일고 있다.박지윤기자 jypark@seoul.co.kr
  • “부끄러운 역사 직시해 인권경찰로 거듭나길”

    “불행했던 과거를 뒤로 하고 경찰 앞에서 인권을 말하게 돼 정말 감개무량합니다.” 1980년대 국가권력에 의한 인권탄압의 대표적 희생자였던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이 17일 서울 미근동 경찰청을 찾아 ‘평화와 복지국가 시대의 경찰’을 주제로 강연했다. 지난 85년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 의장 시절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이근안(당시 경감)씨로부터 23일간 온갖 고문을 받은 민주화 운동가가 20년만에 장관으로 경찰 앞에 다시 선 것이다. “경찰이 나를 인권강사로 초청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솔직히 조금 놀랐습니다. 하지만 경찰로서 쉽지 않은 결정이라고 생각해 모든 일정을 미루고 이곳에 왔습니다.” 김 장관은 경찰이 지난달 남영동 대공분실 자리에 인권기념관을 세우기로 한 데 대해 남영동 피해자의 한 사람으로 높이 평가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부끄러운 역사도 직시할 줄 알아야 한다.”면서 “독일이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원형 그대로 보존한 것처럼 경찰도 당시의 고문 현장을 그대로 보존해 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는 자신을 고문했던 이근안씨에 대한 소회도 덧붙였다.“올초 여주교도소에 있는 이씨를 면회하기 전 두렵고 고통스러운 심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씨도 암울했던 군사독재 시절의 또다른 희생자임을 알기에 이제는 용서할 수 있습니다.” 김 장관은 “국민들의 인식 속에는 독립투사들을 탄압한 일제 경찰이 우리 경찰의 뿌리가 됐다는 역사적인 오해와 불신이 남아 있다.”면서 “이런 시선을 털고 가는 것이 경찰의 정통성 확립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강연에는 허준영 경찰청장 등 경찰 수뇌부와 직원 등 700여명이 참석했다.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21년만에 벗은 간첩누명

    21년만에 벗은 간첩누명

    서울고법 형사4부(부장 이호원)는 15일 위장 귀순해 간첩활동을 한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던 함주명(74)씨의 재심청구 사건에서 함씨에게 무죄판결을 내렸다. 조작간첩 사건에 대한 재심청구에서 무죄가 선고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다른 간첩사건도 재심 받아들여야” 재판부는 “1983년 함씨가 위장간첩으로 귀순했다고 자백한 내용은 당시 수사관이었던 이근안씨의 고문에 의한 허위자백이었으므로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면서 “함씨를 간첩으로 지목한 홍모씨의 진술도 시간이 흐르면서 엇갈리는 등 신빙성이 없다.”고 밝혔다. ●아들 혼사 막히고 집안 전체가 고초 겪어 국가보안법상 반국가단체 찬양 혐의에 대해서는 “함씨가 고향 친구들에게 사회에 대한 불만을 토로한 적은 있지만, 이를 두고 북한을 찬양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함씨는 “간첩누명을 쓴 아버지 때문에 아들의 혼사길이 막히는 등 집안 전체가 어려움을 겪었다.”면서 “이제 무죄를 선고받아 그동안의 내 말이 진실이었음을 인정받게 됐다.”며 눈물을 흘렸다. 그는 “신규영, 이장형, 박동운씨와 1985년 구미유학단 사건의 김성만·황대건씨 등 다른 조작간첩 사건의 희생자들에 대한 재심 청구는 아직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면서 “정부가 피해자의 누명을 벗기는 데 나서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자신을 고문한 이근안씨에 대해서는 “더 이상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며 말을 잘랐다. 그는 최후변론 당시 “1999년 서울지검에서 이씨와 대질신문을 했는데, 그가 미안하다고 했다.”고 밝힌 바 있다. ●위장자수 간첩조작에 16년간 옥살이 1954년 남파간첩으로 내려온 함씨는 “남한에 있는 가족을 만나기 위해 왔다.”며 자수하고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의 판결을 받았다. 그는 1983년 남파되자마자 위장자수를 하고 고정간첩으로 활동해 온 혐의로 기소돼 이듬해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뒤 수감 16년 만인 1998년 8·15 특사로 풀려났다. 이듬해 이근안씨가 함씨에게 자백을 이끌어내기 위해 고문을 했다고 검찰에 자수하자, 함씨는 2000년 사건에 대해 재심청구를 했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이근안 가석방 탄원서’ 金복지 인터뷰

    ‘이근안 가석방 탄원서’ 金복지 인터뷰

    “이근안씨의 가석방을 위해 도와주겠다.” 김근태(58) 보건복지부 장관은 7일 과천 복지부 장관실에서 만난 기자에게 홀가분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이는 지난달 7일 여주교도소에 수감된 이근안씨를 만난 사실이 보도된 11일 이후 기자들과 이씨에 대해 발언하는 것을 피했던 태도와는 사뭇 달라졌다. 김 장관은 “85년 가을 남영동 대공분실 5동 15호실에서 각각 10차례의 물고문·전기고문으로 심신이 만신창이가 돼 무릎으로 엉금엉금 기면서 항복한다고, 차라리 곱게 죽여달라고 애걸복걸했던 ‘38살의 김근태’를 이제 과거의 시간 속으로 떠나보낼 때가 됐다.”고 ‘화해와 용서’의 메시지를 던졌다. ‘이근안에 대한 용서’는 2002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 때도 참모들과 기자들로부터 직·간접적으로 또 공개적으로 압박받았지만,“준비가 되지 않았다.”며 우물쭈물 피해오던 일이었다. 지난해 9월 김 장관의 팬클럽이 고문당하던 시절의 기록인 책 ‘남영동’을 300부 한정판으로 찍어 나눠가졌을 때도 책 내용은 들여다보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날은 “용서는 힘있는 사람이 하는 것인데, 실은 나는 그를 계속 무서워했고 겁을 먹었던 것 같다.”고 말한다.3선의 국회의원이자 보건복지부 장관, 여당의 차기 대권후보로 불리는 그이지만 ‘이근안’은 그에게 극복되지 않는 ‘외눈박이 거인’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씨를 만났을 때 김 장관의 첫 자각은 “눈높이가 나와 엇비슷한 것이 키도 비슷해. 맘먹고 싸우면 대거리할 만하겠군.”이었단다. 김 장관이 이씨를 만난 것은 설 이틀 전. 여주 교도소에 수감된 이상락 전 의원과 후배인 전 도봉구청장을 만나러 간 길에 이씨를 만나지 않을 수 없었다. 명절을 앞두고 감옥살이가 얼마나 어려운지 스스로 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렇게 어렵게 만나서 이씨에게 “용서한다.”고 폼나게 말하지 못했다. 간신히 “용서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왔다.”고 찜찜한 마음을 표현했다. 30분의 면담 내내 이씨는 ‘눈 감을 때까지 사죄한다.’고 했고, 무릎을 꿇고 사죄했지만 김 장관에겐 탐탁지가 않았다. 김 장관은 “눈물을 흘리지 않으면서 과연 참회가 되는 것일까. 고문에 대한 공소시효가 지난 시점에서야 자수한 저 사람을 믿을 수 있을까, 혹시 가석방을 받고 싶어서 나를 이용하는 것이 아닐까하는 식으로 의구심이 솟아났었다.”고 토로했다. 그래서 속좁게도 “‘가석방’을 언급하지 않은 채 “도울 일이 있으면 말하라.”고만 하고 일어섰다고 털어놨다. 스스로 이씨를 용서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고통받던 김 장관은 2월21일 ‘해방’을 맞았다. 한 목사가 그에게 “훌륭하다.”고 대뜸 칭찬을 한 것이다. 김 장관은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을 붙잡는 심정으로 목사에게 복잡한 심사를 다 털어놓았다. 조용히 고백을 들은 그 목사는 자신의 경험을 들려줬다. 사회적으로 꽤 유명한 어떤 목사가 수십년 전에 ‘교회 지을 돈이 부족하다.’고 하소연해 집을 저당잡혀 자금을 마련해줬는데 아직도 한마디 말이 없어 용서가 잘 안 된다는 내용이었다. 그 대화 이후 김 장관은 ‘임금님은 당나귀 귀’라고 외친 것처럼 속이 시원해졌다고 한다. 그날 이후 김 장관은 “이씨가 진심으로 뉘우치고 사죄를 하느냐보다, 그가 현재 ‘사죄’하고 있는 현실이 더 중요한 것이라는 점을 깨달았다.” 면서 “이씨의 가석방에 내 탄원서가 필요하다면 도와주겠다.”고 말했다. 이어 김 장관은 “‘김근태의 용서’가 사회적으로 크게 취급된 것은 참여정부가 과거사 청산을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 뒤 “인권이 유린된 과거사에 대한 국민적 용서가 가능하려면, 이근안씨가 나에게 사죄했듯이, 당시의 가해자들이 국민들에게 심각한 피해를 줬던 것을 먼저 사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일 과거사에 대해선 “일본도 가해자로서 사과하고 보상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 국민들이 아직도 용서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김근태장관 ‘홈피정치’

    김근태장관 ‘홈피정치’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이 ‘편지·홈피 정치’에 나서 눈길을 모으고 있다. 김 장관의 편지행정은 지난해 말 ‘한약학과 6년제’를 요구하며 과천 정부청사 앞에서 160여일간 장기 농성 중이었던 원광대와 우석대 한약학과 학생들의 집으로 일일이 편지를 보내면서 시작됐다. 그는 편지에서 한발 더 나아가 최근에는 인터넷 개인 홈페이지에 잇따라 글을 올리고 있다. 사회적 이슈나 개인적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글을 띄워 대중에게 접근하는 방식이다. 처음 한두 번 장관의 글을 접한 대다수 네티즌들은 ‘사회적 약자군’을 대상으로 글을 쓰는 것에 대해 “정치적인 감수성이 있다. 신선하다.”는 등의 평가를 내렸다. 하지만 요즘은 “식상하다.”는 의견과 함께 비판하는 글도 자주 눈에 띈다. 지금까지 홈페이지에는 5차례 글이 게재됐다.30대 영세민의 아들이 굶어죽은 것을 계기로 공무원들에게는 ‘코페르니쿠스적 사고전환’이 필요하다고 요구했다. 올 들어서는 20년 전 자신을 고문했던 이근안 전 경감을 면회한 소감을 감상적인 편지글 형태로 홈페이지에 올렸다. 이어 복지부의 명예 호스피스 홍보대사였던 영화배우 이은주씨 사망과 관련,“35년 전 전태일이 생각났다.”며 남다른 애도를 표하기도 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네티즌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전 열사의 분신을 연예인 죽음에 비유한 것을 두고 몰매를 맞았다. 김 장관은 이런 비판에 굴하지 않고 1일 또다시 개인 홈피에 ‘담배에 대한 추억’이란 글을 게재했다. 그는 담뱃값 인상을 계기로 “이참에 담배를 끊어버리자.”고 제안했다. 특히 금연확산을 위해서는 담뱃값 인상이 가장 유력한 방법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흡연율을 낮추기 위해 하반기 또 한 차례 담뱃값을 올리는 정책을 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 네티즌은 “김 장관의 글을 놓고 왈가왈부하고 싶지 않다.”면서 “다만 국민의 복지행정을 책임지고 있는 장관이라면 감수성에 의존하기보다 좀 더 공격적인 정책대안을 제시해 달라.”고 주문했다. 유진상기자 jsr@seoul.co.kr
  • [뉴스플러스] “이근안과의 만남 고통스러웠다”

    “이근안씨와의 만남은 고통스러웠다.”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이 20년 전 자신을 고문했던 ‘고문기술자’ 이근안 전 경감을 면회했던 당시의 복잡한 심경을 털어놓았다. 김 장관은 복지부 홈페이지에 띄운 ‘여주교도소를 다녀와서’라는 제목의 글에서 “내키지 않았던 만남이었지만, 용서할 수 있도록 간절히 기도한다.”는 바람을 피력했다. 김 장관은 지난 7일 이씨와 만났다. 김 장관은 “이씨를 만나 용서한다는 말을 전했지만 마음속까지 흔쾌해지지는 않았다.”면서 “이씨의 사죄가 진심일지 의구심이 끊이지 않았다.”고 인간적인 고뇌도 털어놨다. 이어 “솔직히 조금 아쉽지만 이제 지나가고자 한다.”면서 “마음을 추스르고 있다.”고 덧붙였다.
  • 김근태 복지 “이근안 다 용서했다”

    김근태 복지 “이근안 다 용서했다”

    “다 용서했다.” 김근태 보건복지부장관이 20년전 자신을 고문했던 이른바 ‘고문기술자’ 이근안 전 경감이 속죄하자 용서와 화해의 말을 던졌다. 김 장관은 지난 7일 이상락 전 의원을 면회하기 위해 경기도 여주 교도소를 방문하던 중 한참 고심하다가 수감중인 이 전 경감을 30분 정도 면회했다고 측근이 10일 밝혔다. ‘가해자’ 이 전 경감은 이날 면회에서 과거 자신의 고문행위에 대해 용서를 구했고,‘피해자’ 김 장관은 이미 이 전 경감을 “다 용서했다.”고용서의 뜻을 밝혔다. 김 장관은 “감옥에 들어간 지 5년정도 됐고 인간적으로 안된 측면도 있어 면회를 했다.”면서 “본인이 무릎을 끊고 용서를 빌면서 사죄하는 마음으로 살겠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지난 99년 도피했던 이 전 경감이 자수하자 “살고 싶지 않을 정도로 고통스럽고 모욕적인 상황이어서 기억하고 싶지 않았다.”고 밝혔던 김 장관이 이 전 경감을 면회하고, 용서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무엇보다 자신을 고통스럽게 했던 ‘과거’와의 화해를 통해 ‘국민통합’이라는 시대적 화두를 던졌다. 여권의 대선 주자인 점과 맞물리는 대목이다. 가혹했던 고문으로 인해 지금도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는 김 장관은 당초 면회 사실이 밝혀지는 것조차도 꺼려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전 경감은 지난 85년 치안본부 남영동 분실에서 민추위 사건과 관련, 사를 받던 김 장관에게 10여차례 전기고문과 물고문을 가하는 등 인권 유린행위로 지난 2000년 징역 7년형을 선고받고 복역중이다. 김준석기자 hermes@seoul.co.kr
  • [2일 TV 하이라이트]

    ●꼭 한번 만나고 싶다(오후 7시20분) 언니와 형부가 맞벌이를 해 조카 세호를 보살펴 준 기순씨.세호가 다섯 살 되던 해 언니 일순씨는 연탄가스 중독으로 세상을 떠났다.기순씨는 안타깝게도 형부·조카와 헤어졌다.늘 아버지처럼 의지하던 형부와 언니의 분신인 조카 세호를 만나고 싶어하는 기순씨의 사연을 들어본다. ●라이프n조이(오전 8시30분) 봄은 여자의 계절이라는 말도 있듯,봄이 되면 유독 여자들의 기분이 좋아지는 이유는 무엇인지 의학적으로 밝혀본다.휴대전화로 통화만 하던 시대는 지나갔다.전자사전부터 모바일 뱅킹,교통카드, 호신기능과 엠씨스퀘어 기능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고 실속있는 만물박사 휴대전화에 대해 알아본다. ●생방송60분-부모(오전 10시) 빡빡한 육아 일정 속에서도 만학도의 길을 걷는 부모가 늘고 있다.전문화시대,자기 계발이라는 측면에서도 부모는 끊임없이 배우고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된다.자녀 교육비 못지 않게 부모 자신을 위한 교육비 항목을 당당하게 설정해놓고 있는 부모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눠본다. ●코미디쇼 4막5장(오후 10시50분) 졸업생과 낙제생의 차이는 오직 청력에 의해서만 결정된다.노래를 완성해야 졸업할 수 있고 실패하면 무시무시한 벌칙이 기다린다.졸업이냐 벌칙이냐.이번주에는 필리핀 민요 ‘아낙’에 도전해본다.‘NG는 없다’코너에서는 제작진이 제시하는 엉뚱한 상황에 도전한다. ●이경규의 굿타임(오후 10시5분) 한 번도 공개되지 않은 숨겨진 이야기를 소개한다.에피소드는 ‘화장실 사건’.수업 중 급해서 화장실로 뛰어 들어가 볼일을 봤지만 휴지가 없을때 어떻게 해야하나.이경규와의 추억을 폭로한 이휘재,이성진과 김성수의 숨겨진 사연,입만 열면 얼굴이 빨개지는 김진수의 모습을 지켜본다. ●부부클리닉,사랑과 전쟁(오후 11시20분) 가게 임대료를 올려달라는 집주인을 만나 사정해보려던 은영은 사귀자며 추근대는 집주인 상필을 보고 기겁을 한다.다시 만나기가 겁이 난 은영은 남편을 내보낸다.그런데 상필은 바로 남편의 절친한 친구다.아무것도 모르는 명호는 상필과 함께 있는 술자리에 은영을 불러내고…. ●인물현대사(오후 10시) 80년대 이름 모를 ‘전기 고문기술자’로 악명을 떨쳤던 대공수사관 이근안.사실상 국가에 의해 ‘고문’이라는 범죄행위가 생산됐던 우리의 70,80년대는 도대체 어떤 사회였는가.이근안의 예를 통해 자기 정당성 없는 국가권력이 어떻게 ‘폭력’과 ‘공포’로 국민을 길들여 가는가 살펴본다. ˝
  • 편집자에게/ “국가기관에 의한 범죄도 포함해야”

    -‘집단살해,성폭행,고문,전범 공소시효 없앤다’ 기사(대한매일 9월16일자 1면)를 읽고 ‘로마규정’을 위한 특별법을 만들어 반인도적 범죄에 대해 공소시효를 배제토록 한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다만 국제형사재판소(ICC)가 관장하고 있는 집단살해,반인도적범죄,전쟁범죄 등을 국내법에 맞게 입법화하는 과정에서 구성요건이 애매한 조항도 있다.죄형법정주의에 맞게 일부 조항을 다듬을 필요가 있다. 법무부는 이번 특별법 초안을 만들면서 범죄의 관할권 문제와 관련해 진일보한 자세를 취했다고 평가된다.예를 들어 외국인이 외국에서 저지른 반인도적 범죄도 국내에서 처벌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다만 법무부는 외국에서 반인도적 범죄를 저지른 외국인이 국내에 있을 경우에만 처벌할 수 있도록 제한한 것은 외교적 마찰을 감안한 조치로 풀이된다. 아쉬운 점도 있다.초안에는 국제적으로 저질러지는 반인도적 범죄만 처벌토록 했을 뿐 국가기관에 의한 살인,고문,가혹행위 등은 빠져있다.이 범죄들의 공소시효를 배제해야 이근안 사건이나 최종길교수 사망사건의 관련자를 처벌할 수 있는 것이다.법무부는 관계기관의 의견을 들어 특별법을 입법예고하기에 앞서 국가기관에 의한 살인,고문 등 이른바 ‘반인권적 범죄’에 대해서도 처벌이 가능할 수 있도록 입법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박찬운 변호사
  • 집단 살해 - 성폭행·고문·전범 / 공소시효 연내 없앤다

    집단살해·전쟁범죄 등 반인도적 범죄는 공소시효를 없애 끝까지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특별법 초안이 마련됐다.법무부는 15일 이같은 내용을 골자로 하는 ‘국제형사재판소에 관한 로마규정을 위한 특별법’ 초안을 마련,관계기관의 의견조회를 거쳐 이르면 올해 안에 입법하기로 했다고 15일 밝혔다. 이는 지난해 11월 정부가 반인도적 범죄의 공소시효를 없애도록 하는 로마규정을 비준한 데 따른 후속조치다.이 법이 발효되면 인종·종교적 차이로 빚어지는 집단살해는 물론 국가가 개입한 고문,집단적 성폭력 등의 범죄는 공소시효가 없어지게 된다.법안에 따르면 공소시효가 배제되는 범죄는 크게 집단살해와 반인도적범죄,전쟁범죄 등으로 나눠지는 것으로 전해졌다.집단살해죄는 국민·민족·인종·종교적 집단의 전부 또는 일부를 파괴할 목적으로 저질러진 살해 등으로 규정하고 있다.2차대전 당시 나치의 유대인 학살이나 90년대 유고내전 당시의 종교·민족간 학살 등이 대표적이다. 반인도적범죄는 민간인에 대한 광범위한 살해,고문을 비롯해 집단적강간이나 낙태,성적 노예화 등 성폭력범죄 등이 포함됐다.국내의 경우 과거 유신시절 국가기관에 의한 저질러진 일부 유형의 범죄가 반인도적범죄의 유형에 해당될 것으로 전망된다.전쟁범죄는 국제적 무력충돌로 빚어지는 범죄로 규정돼 있다. 그러나 이번 특별법 초안은 과거의 범죄는 소급해 처벌하지 않도록 돼 있어 이근안씨의 가혹행위 사건이나 최종길 교수 사망 사건 관련자 등에 대한 처벌은 불가능하다. 이와 별도로 지난해 한나라당 이주영 의원 등 24명의 국회의원은 ‘반인륜적범죄의 공소시효 배제를 위한 형사소송법개정안’을 제출했고,참여연대 등 13개 시민·인권단체들은 ‘반인도범죄의 시효 등에 관한 특례법’ 등 2개의 법안을 국회에 입법청원했다. ●로마규정 반인도적범죄를 저지른 개인을 처벌할 수 있는 국제형사재판소(ICC)를 설립하기 위해 지난 98년 6월 채택된 다자조약.현재 비준국은 82개국으로 우리나라는 지난해 11월 비준했다. 그러나 미국·러시아 등은 비준을 미루고 있으며,일본·중국 등은 서명조차 하지 않고 있다.서울대법대 송상현 교수가 18명인 ICC 초대 재판관 가운데 아시아 대표로 선출돼 활동하고 있다. 강충식기자 chungsik@
  • 참여정부 첫 내각/화제의 장관 4인

    ◆강금실 법무부장관 첫 여성 법무장관,첫 여성 법무법인 대표,서울지역 첫 여성 형사단독판사,첫 여성 민변 부회장,첫 부장검사급 법무장관.강금실 신임 법무장관에게 따라 다니는 수식어는 여성으로서 남성 중심의 제도권과 투쟁해 얻은 표창과도 같다.참여정부의 개혁을 상징하는 강 장관의 과거는 소수의 인권을 위한 삶이었다. ●93년 사법파동때 평판사회의 설립 지난 93년 ‘제3차 사법파동’때 ‘평판사 회의’ 설립을 주도,당시 김덕주 대법원장에게 ‘사법개혁 건의서’를 전달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군사정권의 서슬이 퍼렇던 5,6공화국 때는 형사단독 판사로 재직하며 집시법 위반으로 검거된 대학생들의 구속영장을 잇따라 기각하거나 무죄 석방하기도 했다. 96년 5월 서울고법판사를 끝으로 현직에서 물러난 강 장관은 개업하자마자 인권변호사의 길로 들어섰다. 99년 9월 민혁당 사건 변호인을 맡은 데 이어 11월에는 납북 귀환어부 함주명씨를 고문한 혐의로 이근안 전 경감에 대한 고발을 주도하는 등 열성적인 활동 덕분에 2000년 5월 여성으로선 최초로 민변 부회장에 선임됐다. 57년 제주에서 출생해 경기여고 문과를 수석졸업하고,서울대 법대에 진학한 강 장관은 대학시절 교내 탈춤반 활동을 하면서 사회현실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81년 사시23회에 합격했고 사법연수원 성적도 7등으로 뛰어났다. 강 장관은 대학을 졸업한 뒤 서울 광화문 민중문화사 서점 주인의 소개로 만난 서울대 철학과 출신 김태경씨와 4년 동안 열애한 끝에 결혼했다.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자주 투옥되던 김씨를 판사의 신분으로 뒷바라지한 일화는 유명하다. ●차세대 한국인 리더 18명에 선정 그러나 김씨가 부도를 내면서 3년전 헤어졌다.그는 2000년초 벤처기업 컨설팅 전문 로펌인 법무법인 지평을 설립해 불과 2년만에 변호사 60여명을 거느린 중견 로펌으로 키워내는 사업수완도 발휘했으며 지난해 8월에는 세계경제포럼이 선정한 ‘아시아의 미래를 짊어질 차세대 한국인 리더’ 18명에 선정되기도 했다. 대전고법 김영란 부장판사,민주당 조배숙 의원과 고등학교,대학교 동기동창이다.김 부장판사는 “강 장관은 드러나지 않은 곳에서도 항상 정의로운 길을 선택해왔다.”면서 “뛰어난 판단력과 탈권위주의적 인화력으로 직책을 잘 소화해낼 것”이라고 말했다. 홍지민기자 icarus@kdaily.com ◆이창동 문화부장관 이창동 신임 문화관광부 장관은 말 그대로 문화예술인이다.이어령(문학비평가)·김한길(소설가) 전장관도 있지만 이들은 임용시 교수·정당인 이미지가 강해 문화현장과는 멀어보였다. 반면 이 장관은 소설가와 영화감독 등 땀냄새 나는 문화현장에서 주로 활동해 업무추진도 형식보다는 내용을 중시할 것으로 보인다.그를 증명하듯 취임 첫날부터 캐주얼풍 양복에 검정색 산타페를 직접 운전해 문화부에 도착,의례적인 취임식도 취소하는 등 잇단 파격행보로 눈길을 끌었다. 그의 삶의 여정을 찬찬히 뜯어보면 노무현 대통령과 닮은 점이 많다.찢어지게 가난한 집안,고비마다 발휘한 뚝심 그리고 잔수보다는 정공법으로 돌파해온 점 등은 그를 임용하는데 큰 요인이 됐을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첫번째 도전-전업 작가로 81년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경북 영양고에서 교편을 잡던 그는 82년 결혼과 함께 서울로 왔다.그리고 8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문단의 문을 두드렸다.유행과는 담을 쌓고 우직스러운 소설을 쓰다 87년 전업작가로 나섰다.안정된 직장을 버리고 자신의 꿈을 찾아 나선 것이다.이후 작품집 ‘소지’‘녹천엔 똥이 많다’를 내고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해 소설가로서의 입지를 탄탄히 했다. ●두번째 도전-영화속으로 그러던 그가 93년 ‘그섬에 가고 싶다’의 각색과 조감독이란 타이틀로 영화판에 뛰어들어 주위를 놀라게 했다.본인은 연극에 심취했었고 영화감독이 꿈이었다지만 40세라는 나이에 직업을 바꾼다는 것은 웬만한 열정이 아니면 힘든 결정이었다. 그러나 그는 ‘인생 바꾸기’를 감행했고 탄탄한 극적 구성과 짜임새 있는 연출로 나름의 영화세계를 구축해 왔다.작품수는 ‘초록 물고기’(97)‘박하사탕’(99)‘오아시스’(2002) 등 3편에 불과하지만 그 작품성과 작가주의 정신은 비평계의 주목을 끌고도 남았다.“테크닉에 집착할 생각이 없다.”는 그의 정통파식노력은 청룡영화상과 대종상,베니스영화제에서 감독상등 국내외에서 잇단 수상으로 보상받았다. ●세번째 도전-제도속으로? 그가 펼칠 문화정책의 구체적 청사진은 미지수다.하지만 취임 첫날 “경제·경쟁논리를 떠오르게 하는 문화산업이 전부가 아니다.”라는 말은 시사적이다.시장주의를 경계하면서 그 토대가 되는 순수예술에도 무게를 둘 것으로 보인다. 이종수기자 vielee@kdaily.com ◆김화중 복지부장관 간호사 출신인 김화중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해 대통령선거 당시 노무현 후보의 보건의료 특보를 맡으면서 해박한 전문지식을 발휘했다.16대 국회에서 전국구로 등원한 간호계의 대부로 온화한 성격이지만 일단 결정된 일에 대해서는 상당한 추진력을 갖고 있다는 평이다. ●시민단체, 개혁성 미흡 지적 대선에서 권양숙(權良淑) 여사의 정무 특보를 맡기도 했다.하지만 그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시민단체들은 내정설이 나돌 때부터 전문성과 개혁성이 떨어진다는 점을 들어 “건강보험 재정통합 등 난마처럼 얽힌 현안을 풀어나가기 어려울 것”이라며 반대해 왔다.임명된 27일에도 국민추천과 검증을 무시한 처사라며 반발수위를 수그러트리지 않고 있다. 하지만 김 장관이 개혁적인 성향을 지닌데다 보건의료 전반에 대해서 폭넓은 지식을 지녔기 때문에 ‘적임자’라는 평가도 있다.노무현 대통령은 “당선 전부터 (복지부)장관에 임명하겠다고 마음먹었다.”며 그의 능력에 전폭적인 신뢰를 보냈다.노 대통령은 김 장관이 권 여사의 추천으로 입각한 게 아니냐는 항간의 소문을 의식한듯 “(김장관 임명이)아내와는 관계가 없다.”고 강조했다. ●남편은 고현석 전남 곡성군수 그의 입각은 ‘군수·장관 부부’가 처음으로 배출됐다는 점에서 화제다.남편은 고현석(高玄錫) 전남 곡성 군수.분야는 다르지만 남편은 지방자치단체에서,부인은 중앙 부처에서 각각 행정을 책임지는 수장(首長)이 된 것이다. 두 사람은 서울대 재학시절 처음 만났다.고 군수가 법대 학생으로 농촌봉사활동모임의 회장을 할 때 간호대에 다니던 김 장관이 모임에 합류하면서 연애감정이 싹트기 시작,결혼에 이르렀다.고 군수는 지난 95년 3월 명예 퇴직할 때까지 만 26년 동안 ‘농협 맨’으로 일해오다 98년 민선2기 군수에 당선됐다.고 군수가 관사에 혼자 살기 때문에 두 사람은 5년째 ‘주말부부’다. 고 군수는 종가집 맏며느리인 김 장관이 70년대 후반 미국 컬럼비아대학으로 아이들을 떼어놓고 혼자 유학을 떠난다고 할 때 “아내는 살림만 할 사람이 아니다.”라며 친척들을 앞장서 설득하기도 했다. 김 장관은 임명통보를 받자마자 휴대전화로 고 군수에게 가장 먼저 ‘기쁜’소식을 전했다.네딸 중 막내(이화여대 의예과 2년)가 김 장관의 뒤를 잇고 있다. 곡성 남기창 김성수기자 sskim@kdaily.com ◆진대제 정통부장관 반도체 신화의 주인공 진대제(陳大濟·사진) 삼성전자 디지털미디어 총괄사장이 정보통신부장관에 임명됐다. ●장관보다 삼성 사장이 좋다(?) 삼성은 진 장관의 ‘입각 가능성’이 점쳐지자 ‘득실’을 따지느라 분주했다.특히 진 장관이 삼성전자의 ‘차기 전문경영인’으로 이건희 회장의 총애를 받아와 그의 입각에 따른 인적 손실을 우려했던것으로 알려졌다.삼성 내부에서는 입각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삼성은 진 장관의 입각에 따른 손해를 고민한 것으로 전해진다.사업상 정통부와 밀접한 관련을 맺을 수밖에 없는데,오히려 ‘역차별’을 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삼성맨이었던 남궁석(南宮晳)의원의 정통부장관 재직시 통신사업 진출과 관련,불이익을 당한 경험이 있다.그러나 삼성은 새 정부의 재벌개혁 추진 강도가 예상외로 강력하자 자사 출신 인사의 입각이 정책 방향 등을 판단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쪽으로 내부 결론을 내렸다. ●금전적으로 손해 막심 진 장관은 입각으로 60억여원의 스톡옵션(주식매수선택권) 손해를 감수해야 할 처지다.9일을 남겨두고 7만주에 대한 자격이 상실되기 때문.2000년과 2001년 각각 7만주의 스톡옵션을 부여받았는데 이 중 2001년도분은 ‘2년근무’ 조건에 9일 모자라 권리를 행사할 수 없게 됐다.행사 가격이 19만 7100원이기 때문에 현재 시가(28만여원)만 계산해도 60억여원이나 된다. 2000년에 부여받은 스톡옵션(행사가 27만 2700원)은 향후 7년동안 행사할 수 있기 때문에 기간내에 주가가 지금까지의 최고가(43만여원)까지 오른다면 112억원을 벌 수 있게 된다. 한편 진 장관이 삼성전자 사장때 받은 연봉은 30억여원인 것으로 알려져 장관 연봉이 9600만원인 것을 감안하면 수입이 30분의1로 삭감당하게 됐다.스톡옵션 포기분까지 합치면 100억원대에 이른다. ●수원시향 지휘봉 잡기도 미국 스탠퍼드대학 전자공학 박사 출신으로 휼렛패커드,IBM에서 반도체를 연구하다 85년 삼성전자에 전격 스카우트돼 ‘세계 최초’의 반도체를 잇따라 개발해낸 주역.별명은 ‘미스터 칩(반도체)’ ‘미스터 디지털’이다.화려한 이력의 엔지니어 출신이지만 제품설명회 때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등장,수원시향 지휘봉을 잡기도 하는 등 ‘이벤트’에도 강하다.부인 김혜경(金惠卿·50)씨와의 사이에 1남2녀를 두고 있다. 정기홍 박홍환기자 hong@
  • [사설] ‘고문 살인’ 진상규명이 먼저다

    살인 용의자 사망사건과 관련해 김진환 서울지검장이 사직을 포함한 어떤 문책도 감수하겠다는 ‘대국민 선언’을했다.이유야 어찌됐든 서울지검 청사에서 가혹행위가 벌어져 피조사자가 사망한 것에 대해 기관장이 비통함과 자책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그러나 문책보다는 진상규명이 선행되어야 한다.사망한 조모씨는 허벅지 등에서 피하출혈이 발생해 쇼크를 일으켰으며,뇌출혈도 있었다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소견은 충격적이다.순간적으로 피하출혈이 과다하게 발생하면 온 몸에 흐르는 피의 양이 급감해 심장에 쇼크를 일으킨다는 설명이고 보면,구타가 얼마나 심했기에 피가 돌지 않는다는 말인가. 구타의 정도뿐 아니라 물고문 여부도 투명하게 밝혀야 한다.물고문은 일제시대 만행과 ‘고문 기술자’ 이근안씨 등을 떠올리게 한다.더욱이 ‘인권국가’ 구현을 최대 치적의 하나로 삼고 있는 김대중 정권 아래서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했단 말인가.조씨와 함께 조사를 받은 두 사람이 물고문 부분만 허위 주장을 했다고는 보기 어렵다.서울지검은 11층조사실을 공개하면서 욕조는 없다고 했으나 이번 사건은 박종철씨 고문치사 사건과는 다르다.박씨사건은 욕조에 머리를 밀어넣은 것으로 밝혀졌지만 공범 박모씨는 얼굴에 수건을 씌워 물을 부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 지검장의 사퇴 표명으로 진상 조사가 유야무야되어서는 안된다.조직폭력배의 살인사건을 조사하다 보니 의욕이 지나쳐 실수를 저질렀다고 하나,적법 절차를 준수해야 할 검찰이 할 수 있는 얘기는 아니다.홍모 검사를 비롯해 지휘 라인이 ‘고문’을 방치했는지를 철저하게 가려 사법처리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법무부장관·검찰총장의 진퇴도 진상을 규명한 뒤에 거론할 문제다.이번 사건은 모든 수사 기관의 거울이 되어 고문의 망령을 뿌리뽑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 [사설] 이 시대에 ‘물 고문’ 이라니

    그래도 대명천지(大明天地)이려니 했는데 아닌 것 같다.정녕 음습한 고문의 망령은 떨치기 어려운 것인가.‘고문기술자’ 이근안,박종철씨 고문치사,김근태씨 고문,부천서 성고문 사건이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았는데 서울지검에서 물고문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검찰에서는 수사관들의 말을 인용해 부인하고 있으나 살인 사건 용의자의 공범 박모씨와 참고인인 또 다른 박모씨의 주장은 지어낸 것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구체적이다. 공범 박씨는 허벅지,다리,뺨 등을 마구 얻어맞았으며,얼굴에 수건을 씌우고 물을 부어 기절했고,목이 졸려서도 기절했다고 주장한다.참고인 박씨도 물고문 위협을 당했다고 한다.더 주목되는 것은 앞 방에서 조사받던 살인 용의자 조모씨가 “숨을 못쉬겠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는 점이다.그는 또 ‘우당탕’ 소리가 난 뒤 수사관들이 복도에 나와 “숨을 안 쉰다.”,“인공호흡을 해봐라.”라고 말하는 것도 들었다고 주장한다.이는 스스로 벽에 머리를 받은 것이 직접적인 사인이라 하더라도 고문을 견디다 못해 자해했을 수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구속된 수사관들도 허벅지 등을 때린 것은 인정하고 있다.더욱이 검찰 직원들은 조씨 유족에게 합의금으로 1억원을 준것으로 밝혀졌다. 김대중 정권은 국가인권위원회를 만든 ‘인권 정부’다.그런 정부 아래에서 인권의 보루여야 할 검찰이 고문을 저질렀다면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이다.최근에는 고문은 반인륜적 범죄로 보아 공소시효를 없애야 한다는 주장이 더욱 힘을 얻어가고 있다.지금까지 고문사건은 피해자들이 재정신청 등을 통해 끈질기게 문제 제기를 함으로써 간신히 실체가 인정됐다. 이번 사건은 과거의 전철을 밟으면 안 된다.만에 하나 검찰이 고문 당사자를 비호하려 한다면 재판을 통해 사건의 파장이 길어지고 신뢰도 더 떨어질 것이다.수사를 지휘한 홍모 검사는 소환에 응해야 한다.국가인권위원회도 검찰의 조사가 미진하다고 판단되면 직권으로 조사하겠다고 한 만큼,검찰은 명명백백하게 조사한 뒤 책임이 있는 사람은 모두 처벌해야 한다.
  • “이근안 석방탄원 용의”

    이태복(李泰馥) 청와대 복지노동수석은 16일 자신이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받은 것과 관련,“기쁘게 생각한다.”면서 “고문 관련자 이근안(李根安)씨 등을 이미 용서했으며,구속돼 있는 이씨의 석방을 탄원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이 수석은 보도자료를 통해 “인간의 기본적 권리를 되찾고 국민의 고통과불행을 덜기 위한 활동이 뒤늦게나마 명백히인정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면서 “앞으로도 변함없는마음으로 조국의 운명과 겨레의 밝은 미래를 개척하기 위해헌신하겠다.”고 말했다. 이 수석은 지난 70년대 말 전국민주노동자연맹과 전국민주학생연맹을 조직했다가 81년 6월 남영동 대공분실에 끌려가 두달동안 영장없이 감금돼 이근안씨로부터 고문을 당했으며,이후 국가보안법 및 계엄법 위반 등의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은 바 있다. 오풍연기자
  • 80년대 ‘간첩’ 재심청구 잇따라

    80년대 간첩사건 연루자들에 대한 재심청구가 활기를 띨전망이다. 천주교인권위원회는 30일 제주시 삼도동 천주교제주교구청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사업차 일본을 오가다 84년 제주항에서 불법 연행된 뒤 이근안에게 고문을 받아 간첩이 된 이장형씨(70)와 86년 조총련계 간첩으로 몰린 강희철씨(42)에 대해 다음달 서울지법과 제주지법에 각각 재심을 청구할계획”이라고 밝혔다.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이들은 지난 98년 8·15특사로 가석방됐다. 인권위원회는 또 지난 99년 옷로비 사건 특별검사였던 최병모 변호사를 소송대리인으로 서울지법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할 방침이다.이씨 사건을 수사한 이근안(구속기소)과 지휘검사였던 전 한나라당 국회의원 이사철씨에 대해서는 국가보안법 제12조(증거날조죄) 위반혐의로 대검에 고소할 예정이다.간첩 사건에 대한 재심은 지난 95년 부산지법과 고법이 간첩죄로 복역한 신귀영씨(65)의 청구를 받아들였지만 이후 대법원의 파기환송 결정으로 별다른 진전을 보이지 못했다. 인권위원회는 “당시의 진술은 고문으로 인한 거짓진술이었다”는 연루자들의 진술과 당시 수사기록,강씨 사건의 경우 물증이 부족했다는 전 대법관 박우동씨(67)의 자서전 등을 증거자료로 제출할 계획이다. 인권위원회 정은성(鄭銀星)간사는 “자체 조사한 17명의 ‘조작간첩’ 사건도 재심청구를 통해 진상을 밝힐 예정”이라고 말했다. 류길상기자 ukelvin@
  • [씨줄날줄] 국가보안법과 민주화 운동

    우리나라 헌법은 무려 아홉번이나 바뀌었다.자유당 독재를비롯해 5·16,5·17 구데타 정권들이 자기들 편의에 따라 신발에 발 맞추듯 바꿔버린 결과다.천만다행인 것은 그렇게 수난을 당하면서도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는 헌법 제1조는 무사했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 ‘천만다행’ 때문에 오히려 불행을 겪은 사람들이 있다.있는 정도가 아니고 너무나 많다.총칼로 헌정을 뭉개버린 사람들도 겉으로는 ‘민주주의’를 표방한 것이 불행의 시초인 것이다.차라리 이들이 스스로 독재를 표방했더라면 민주 인사들의 죄목이 엉뚱하게 국가보안법 위반은 아니었을 테니까 말이다. ‘민주화운동보상심의위’가 국가보안법 관련자들에 대한민주화 운동 판정 문제로 고심하고 있는 모양이다.이들이 지난 6개월 동안 1000여건의 심의를 하면서 국가보안법 관련사건은 한 건도 손대지 않은 것을 보면 고심의 흔적이 역력하다.아마도 이들의 고심은 국가보안법 관련자를 일률적으로 민주화 운동으로 규정하는 것은 물론 선별적으로 한다 해도 실정법상 국가보안법이 엄존하는 현실에서 기준이나 범위를 정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으로 짐작된다.관점에 따라 하늘과 땅만큼이나 차이가 날 수 있는 것이 바로 이 문제이기 때문이다. ‘민주화운동보상심의위’에 신청된 국가보안법 관련 건은무려 900여 건이나 된다고 한다.물론 엄정하게 가려 봐야 알겠지만 이들 대부분은 적용 범위가 너무 포괄적이어서 담당자의 자의적 해석이 얼마든지 가능한 ‘고무,찬양’그리고‘불고지죄’ 피해자들이다.그나마 이들은 혹독한 고문 끝에 거짓 자백을 했거나 공안기관의 조작에 따라 용공의 굴레를 뒤집어 쓴 사람들이다. 양심수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던 이근안이라는 인물이 실재했듯이 과거 공안기관이 무수한 간첩 사건을 조작했다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일이다.따라서 ‘심의위’는 옥석 구별이 지난한 개별사안을 다루기 앞서 몇 가지 원칙이라도 먼저정해야 한다.그것은 첫째 고문 등으로 조작된 사건,둘째 개정 내지 폐지에 대해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된 ‘찬양,고무,불고지죄’ 관련자,셋째 사회주의자임을 자칭하지 않고 북과 내통한증거도 없는 보안법 관련사건 등은 민주화 운동에포함시킨다는 원칙이다. 김재성 논설위원 jsjskim@
  • 병역비리 박노항 검거/ 검거 순간과 도피행각

    “박노항” “예” 단 두마디였다. 잠적 2년11개월 동안 군·검·경수사관들의 애간장을 태웠던 ‘병역비리의 몸통’ ‘마지막 도망자’ 등으로 불리던박노항(朴魯恒·50) 원사의 검거 순간은 허망했다.은신처에들이닥친 수사관들이 이름을 부르자 얼굴에 머드팩을 한 그는 모든 것을 체념한 듯 순순히 수갑을 받았다. 25일 오전 10시 정각.서울 동부이촌동 현대아파트 33동 1113호 은신처 거실에서 얼굴에 마사지용 머드팩을 한 채 잠옷 차림으로 드러누워 있던 박 원사는 곧바로 국방부 검찰단으로 압송됐다.오전 11시 핼쑥한 얼굴로 사진기자들 앞에선 그는 “죽고싶은 심정입니다. 자수를 해야 할지,자살을할지 고민했습니다.죽을 죄를 지었습니다”란 말만 남겼다. 박 원사는 도피생활의 어려움 때문인지 눈에 띄게 살이 빠졌고,자주 이발을 할 수 없었던 탓인지 흰머리가 희끗희끗한 장발이었다.성형수술을 한 흔적은 없었지만 수사기관이박 원사의 변장에 대비,4가지 모습을 컴퓨터로 합성해 전국에 돌린 50만장의 수배전단에 나온 사진과는 딴판의 평범한중년 남자의 모습이었다. [검거작전] 박 원사의 꼬리는 전화 한 통화에서 잡혔다.지난 15일 박 원사의 누나 박모씨(57)와 형 박모씨(63)가 “부산으로 내려간다”는 알쏭달쏭한 말을 주고받은 것이다. 수사팀은 이날 의정부에 살던 누나 박씨의 뒤를 열차와 승용차편으로 나눠 밟았다.박씨는 충남 서천에 살고 있는 오빠 박씨의 집으로 갔다.이 때부터 수사방향을 가족중심으로 틀었다. 누나 박씨는 지난 24일 집에서 나와 서울 영등포역에서 택시를 타고 동부이촌동으로 향했고 이를 뒤쫓은 수사팀은 아파트 부근에서 택시를 놓쳤지만 끈질긴 탐문수사를 통해 박씨가 들어간 아파트동이 33동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수사팀은 33동 전체를 대상으로 아파트의 불이 켜지지도 않은 채배달된 신문이 없어지고 현관 앞에 달린 가스계기판을 통해가스를 사용하는 ‘문제의 집’을 수색한 끝에 결국 은신처를 찾아낼 수 있었다.누나 박씨가 아파트단지 안 은행에서관리비를 내는 모습이 찍힌 폐쇄회로TV 필름을 구한 것이결정적인 단서가 됐다. [검거순간] 문제의 집이 박 원사의 은신처임을 확신한 수사팀은 전담수사팀 10명과 국방부 검찰단 수사요원 30명 등 40명을 총동원,‘D데이 H아워’를 25일 오전 10시로 정했다. 박 원사가 투신할 것에 대비,이삿짐센터에서 사다리차를빌려 베란다로 수사요원 2명을 투입하고,열쇠수리공을 동원한 수사관 8명은 현관문을 열고 들어갔다.나머지는 아파트주위에 배치됐다.박 원사가 은신해온 방 3개짜리 32평형 아파트는 김모씨(70) 명의였으며,박 원사는 지난해 1월 1억5,000만원에 전세를 든 이후 이곳에서 1년3개월동안 칩거해온것으로 확인됐다. [도피행각] 박원사는 신창원(申昌源),이근안(李根安)과 함께 ‘3대 도망자’로 불릴 만큼 신출귀몰한 도피솜씨로 수사팀의 애를 먹였다.신창원은 지난 99년 7월 검거됐고,이근안이 같은 해 10월 자수했지만 박 원사의 행적은 묘연했다. 연인원 800명이상을 조사했고,소환조사자도 70명에 달했다. 수사팀은 박 원사의 친·인척집 11곳에 대한 잠복수사에주력하면서 불교신자인 그가 은거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은전국의 암자를 뒤졌으나 허탕을 쳤다. 노주석기자 joo@. *검거이후 수사 전망. ‘병역비리의 몸통’ 박노항(朴魯恒·50) 원사가 2년 11개월 만에 검거됨에 따라 그가 개입했던 병역비리의 실체와안개속 도피행적 등의 전모가 드러날 전망이다. 특히 박 원사가 개입한 병역비리의 대상이 주로 군장성을비롯,정·관·재계 유력인사,사회지도층 인사들의 자제인것으로 알려져 있어 조사결과에 따라 정치권은 물론,사회전반에 엄청난 ‘핵폭풍’을 예고하고 있다. 지금까지 확인된 박 원사의 비리는 병역비리 1차수사 당시원용수 준위(56)로부터 1억7,000만원을 받고 12명을 불법으로 면제시켜 준 것을 포함해 대략 100여건에 달한다.이과정에서 챙긴 돈도 100억원 이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군주변에서는 이는 ‘빙산의 일각’일 뿐,박 원사가 입을 열면 총체적 비리액수 및 비리연루 대상자 규모는예측을 불허할 것이라는 말이 공공연히 나돌고 있다. 박 원사가 CT 필름 바꿔치기를 통한 병역면제,카투사 선발,보직조정 등 ‘병역비리의 백화점’이라고 불릴 만큼 다양한 신종 병역비리를 저질러 왔고 군장성 및 정·관계 고위층 자제가 주 대상인 것으로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그동안 지지부진했던 고위층 자제에 대한 병역비리 수사가 활기를 띨 것으로 보인다. 박 원사의 검거는 정치권에도 긴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여야는 박 원사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면서 “우리당은 문제 없다”며 병역비리 척결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촉구했다. 하지만 여당은 정치인 등 사회 지도층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강조한 반면,야당은 편파사정을 경계해 미묘한시각차를 드러냈다. 민주당과 자민련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벌에 처해야한다”고 강조했으나 한나라당은 “병무행정이 바로잡히는계기가 되길 바란다”면서도 “지난해 총선 직전 터진 ‘병풍(兵風)’처럼 야당 의원을 겨냥한 기획·편파사정의 수단으로 악용돼서는 안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어쨌든 국방부 검찰단과 검찰은 지난 2월 해체된 합동조사단을 재구성,박 원사를 상대로 그동안 개입한 병역비리와도피기간 중 행적을 밝히는 데 수사 초점을 맞출 것으로 보인다. 노주석 김상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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