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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규보
    2026-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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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매일신보에서 서울신문까지(겨레의 맥박으로 본 89년:14)

    ◎「매신」의 8차례 부록 발간/충무공 등 소개… 암흑기 민족의식 고취/광개토대왕의 기개·정몽주충절 상세히/이퇴계·정약용·김정희 등 석학·명필 망라 한일합방 이후 일제가 총독부 기관지로 새로 창간한 경성일보(일문판)에 흡수되어 국문판 자매지 성격으로 명맥을 유지해오던 매일신보는 1938년 4월16일 경영체제의 독립이라는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된다.이는 1936년 중일전쟁을 시발로 내선일체를 더욱 강조해가던 일제가 한국인들의 민심계도를 위해 보다 강력한 한글신문의 필요를 느꼈기 때문 이었다. 이에따라 사장 최린,부사장 이상협등 새경영진이 선임되고 편집국장에 김형원 논설부장 유광렬등이 새로 임명되었다.이들은 제호부터 신자를 신으로 고쳐,매일신보로 바꾸고 경영독립을 기념으로 대대적인 지면혁신및 기념사업을 추진하게 되었다. 당시 매일신보의 지면혁신 내용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부록판 발행.독립경영 2개월후인 6월30일자에 첫번째호를 발간했다.「역대명가유필진적」이라는 제목하에 한국의 역사적 인물들에 대한 필적을 소개한 이 부록판은 비록 이듬해 1월31일까지 매월 말일자로 여덟번 발간된후 중단됐으나 36년8월 동아의 일장기말소사건 이후 언론탄압이 극에 달했던 당시의 시대적 상황으로 볼때 획기적인 것이었다. ○당시론 획기적 기획 그 내용을 면밀히 살펴보면 이 부록판은 표면적으로는 선현들의 「글씨」소개를 내세우고 있지만 이를 통해 한국 역사인물과 역대왕조의 소개등이 자연스레 이뤄졌다는 사실에 주목하게 된다.일제하에서 역사를 빼앗긴채 「일본신민」으로 살고 있던 한국인들에게 높은 기상을 자랑하던 고구려와 광개토대왕을 알리고 고려말 충신들을 소개했다.또 이순신장군의 대첩,충절을 최고의 덕목으로 삼았던 조선조 유명한 선비들에 대해 소개했다.이는 민족의식을 일깨우고 민족문화의 중요성과 그 보존을 강조한 것이 틀림없다. 이 부록판 발간에 대해 매일신보는 첫호가 나가기 전날인 1938년 6월29일자 1면에 사고를 내고 『본사경영독립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조선서도의 금자탑인 역대명가의 유필진적을 애독자 제위에게 무료증정하게 되었다』고 대대적으로 알렸다.또 소개되는 작품들에 대해서는 『본사가 그동안 막대한 노력과 시일을 들여 수집망라한 것으로 글씨 한개마다 전문 사학가의 해설을 곁들였음』을 밝혔다.인쇄및 장정에 대해서는 『본사 특선의 고급당지에 석판이도쇄로 미려정교하게 인쇄,병풍을 만들어 영구히 보존할수 있도록 고급전아하게 만들었다』고 설명했다.사고는 또 이 부록판 발간을 『조선신문 초유의 희생적 사업』이라고 정의하고 『반드시 독자제위의 열광적 환영이 있을 것으로 믿고 있다』고 자신했다. 38년 6월30일자로 발간된 첫번째 부록판은 황해도 해주군 광조사지의 진철대사보월승공탑비등 고려전기의 탑비 6편을 수록했다.해설의 예를 보면 진철대사비의 경우 고려 태조 20년에 세운 것으로 작자는 최언위 필자는 이환상으로 구양순체임을 밝히고 있다. 7월31자로 발간된 두번째 부록판은 고려때 최고의 왕사였던 석탄연의 문수원비를 비롯,오늘날 지극히 귀한 것으로 알려진 이규보의 유묵과 안향 정몽주 문공유등 고려시대 석학들의 필적을 실었다.특히 포은 정몽주는고려말 절개를 지킨 굴지의 학자이자 정치가로 기술했다. 특히 세번째 부록판(8월31일자)은 광개토대왕비등 만주 안동성 집안현 일대에 있는 고구려시대의 비문들로 꾸며졌다.특히 광개토대왕비에 관해서는 『동양인이 쓰고 세운 비석 가운데 최고 최대의 비석』이라는 설명과 함께 자세하게 대왕의 업적을 소개했다.『고구려의 19대왕으로 아버지는 고국원왕,아들은 장수왕이며 18세에 즉위했다.왕은 천자영매하고 용병의 귀신이었으며 공격하면 반드시 점령하고 싸우면 반드시 이겼다.64개의 성과 1천4백개소의 촌락을 공략하여 국경을 넓혔다.이르되 호태왕이라 한다.…』 ○신라때 비석도 게재 네번째 부록판(9월30일자)은 함경남도 함흥군 하기천면소재 황초령 진흥왕순수비와 낭공대사탑비,신행선사비등 주로 신라시대 인물들의 탑비를 싣고 있다.진흥왕순수비는 한반도내 광개토대왕비에 버금가는 최고,신라 제일의 비로 소개했다. 다섯번째 부록판(10월31일자)은 박연 성삼문 서거정 김시습 안평대군 정란종 최흥효등 조선 전기 각분야에서 특출난 인물들을 소개했다.박연은 세종때 처음으로 아악을 연구 시행한 음악가로 이조판서와 대제악을 역임했으며 성삼문은 조선의 세종과 문종 그리고 단종 세임금을 섬겼으나 세조를 거부한 사육신의 한사람으로 세종대왕을 도와 훈민정음 창제에 공이 크다고 설명했다.또 김시습은 단종폐위사건에 반발하여 일평생 방랑생활을 했던 신동으로 일시적으로 금오산에 우거,금오신화를 남겼고 이율곡이 그를 백세지사로 극찬하였음을 소개했다. 여섯번째 부록판(11월30일자)은 일제가 가장 주목하는 인물인 이순신을 비롯,이황 양사언 한석봉 김구 등 조선중기 대가들의 유필을 수록했다.특히 임진왜란때 일제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혔던 이순신장군에 대해서는 그의 난중일기 일부를 소개하며 거북선 건조,옥포 당포 한산도 해전에서의 대첩등 큰 전공을 세운 내용들을 상세히 기록했다. 일곱번째 부록판(12월31일)은 허목 이광사 이숙 윤순거 송준길등 조선 중기 석학들에 대한 필적과 업적을 소개했다. 마지막회가된 39년 1월31일자 부록판은 김정희 조광진 정약용 이삼만 권돈인강세황등 조선말기의 명필 석학들의 글씨를 두루 실었다.특히 초서 해서 전서 예서에 통달,조선 최고의 명필인 추사 김정희를 자세히 소개했으며 남쪽의 김정희에 필적할만한 북쪽의 명필로 조광진을 내세웠다.또한 다산 정약용에 대해서는 뛰어난 학문과 저작을 칭송하고 그의 형 정약전 정약종과 함께 이들 형제의 천주교 귀의와 순교내용을 상세히 기술했다. ○「매신」 실체규명 계기 이같이 한국의 대표적 역사인물들을 두루 소개한 매일신보 부록판은 39년 1월 별다른 설명없이 중단되었다.그러나 이 부록판은 민족자각의 의도성 여부를 떠나 결과적으로 한국인들에게 잃어버렸던 역사를 되살리게 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따라서 이같은 매일신보의 새로운 측면은 그동안 친일 반민족 신문으로만 평가되어 한국언론사연구에서 제외되다시피 했던 매일신보의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역할을 규명할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 매일신보/부록 펴내 민족의식 일깨워/역사연구가 김보영씨 첫 공개

    ◎1983년 6월부터 월1회 8차례 발간/금기인물 이순신장군 소개/광개토대왕비 등 유적 실려 일제하 총독부기관지로서 친일논조의 반민족지 역할만 한것으로 알려진 매일신보가 부록을 통해 민족문화를 소개,자각을 일깨우려 했다는 새로운 사실이 밝혀졌다.이는 역사연구가인 김보영씨(65·서울 중랑구 중화2동 321)가 1938년 6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매월 1회씩 8차례에 걸쳐 발간,배포했던 매일신보 「부록」을 18일 공개함으로써 확인됐다. 부록에는 주로 한국의 역사인물 및 문화유적을 소개하는 내용이 실려있다.이들 부록에는 5∼6인의 저술 및 친필 휘호등을 싣고 그 인물에 대한 자세한 소개를 한문으로 기록했으며 작품의 소장자까지 밝혀놓았다.특히 소개된 인물 가운데는 일제시 한국인들에게 금기시되던 이순신장군이나 광개토대왕등도 포함돼있어 당시의 시대적 상황으로는 획기적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 부록은 희고 얇은 모조지에 매월 말일자로 발행됐으며 크기는 폭38·5㎝ 길이107·5㎝.그 하단에는 「소화13연 6월30일 매일신보 일만일천칠십오호 부록 발행인 이상협 편집겸인쇄인 김선흠 경성 종로 보진재 인쇄」라고 발행시기 및 지령 인쇄처등을 명백히 밝혀놓았다. 1938년 6월30일에 발행된 첫 부록에는 황해도 해주 광조사에 있는 고려초의 명승 진철대사의 보월승공탑비와 충북 중원군 정토사에 있는 신라말의 명승 법경대사의 자등탑비등 6편의 명승추모탑의 탁본을 싣고 자세한 해설을 곁들였다.그 내용을 보면 『이순신장군은 임진왜란때 전라좌수사로 옥포·당포·한산해전에서 대첩을 거두었으며 정유재란때 재기,통제사가 되었다』고 적었다.또 『전쟁지휘중 날아오는 탄환에 전사했는데 시호는 충무공』이라고 비교적 상세히 설명했다.이 부록에는 그밖에도 이퇴계 양사언 한석봉등 조선시대의 대학자들도 소개하고 있다. 한편 8월31일자로 발행된 세번째 부록은 고구려 광개토대왕비의 탁본등 만주에 흩어져 있는 고구려 유적들을 싣고 고구려와 광개토대왕에 대한 설명을 곁들였다.그밖에 이규보 정몽주 성삼문 안평대군 서거정 김시습 박▦ 정약용 김정희등 역사적 인물들을 자세히 소개했다. 이 자료를 검토한 언론사학자 정진석교수(한국외국어대)는 이 부록이 발간된 시기에 대해 우선 주목했다.1938년 4월 경성신문에 예속돼 있던 매일신보가 최린을 사장,이상협을 부사장으로 한 한국인 경영체제로 바뀌면서 제호도 매일신보에서 매일신보로 바꿔 새로 출발한 직후였기 때문이다.정교수는 『매일신보가 재출범하면서 새로운 기획으로 이 부록을 만들기 시작한것 같다』면서 『이제까지 친일 반민족신문으로 한국언론사연구에서까지 제외되다시피 했던 매일신보의 긍정적 측면을 엿볼수 있는 귀중한 자료』라고 평가했다.
  • 홍만종의 「시화총림」해제 발간/경상대 허권수·윤호진교수 작업

    ◎고려∼조선시대 시 24편을 비평 고려 중기로부터 조선 중기까지 24편의 시화집을 망라한 우리나라 비평문학의 집대성이라고 할수 있는 홍만종의 「시화총림」 해제가 최근 발간됐다.시화집은 우리 선조들의 시에 대한 사상,비평의 자세,창작방법등을 담고 있으며 나아가 민족정신을 파악할수 있는 국문학사에 근간이 되는 고전으로 알려져 있다. 1712년(숙종38년)편찬된 이 책은 고려시대 것으로는 이규보의 「백운소설」과 이제현의 「역옹패설」등 두편이고 나머지 22편은 조선시대의 작품들로 채웠다.저자는 기존 발행의 단행본들은 제외시키고 여러가지 잡록 필기류의 책등에서 시화를 뽑아 모아 다양한 작품들을 소개했다. 이 책은 저자의 일관된 저술이 아니고 다른 사람의 저술을 편자가 임의로 재편집했다는 측면에서 문제점이 없는것도 아니다.그러나 편자가 서문을 통해 밝힌바와 같이 우리문학의 우수성과 그 기록된 문헌을 보존한다는 차원에서도 그 가치는 충분히 평가될만하다는 것이다. 이 책은 필사본으로 전해내려오던 것이 지난 1961년 영인본으로 제작돼 배포되었으나 어려운 한문으로만 돼있어 일반의 접근은 불가능했다.그러던것을 이번에 경상대 한문학과의 허권수·윤호진 두교수에 의해 3년여의 공동작업 끝에 해제 상·하권과 원문등 3권으로 발간돼 전공자가 아닌 일반인들도 읽을수 있게 됐다. 허교수는 『이 책은 중국의 시화 집대성인 「역대시화」에 비견할만하다』고 말하고 『편자의 심오한 시학의 조예와 평론가다운 감식안은 현대인에게도 큰 교훈이 될뿐 아니라 우리 문학사에서 비평사를 엮게 할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된다』고 평가했다.
  • 최고의 고려때 시선집 발견/공민왕 4년 간행된 「동인지문오칠」

    ◎이규보등 26명의 시 1백59수 수록 현존 최고의 시선집이 발견됐다. 「동인지문오칠」이란 제목의 이 책은 고려 공민왕 4년(1355) 복주(안동)에서 간행된 목판본으로 삼성출판사 김종규 사장의 장서속 에서 최근 발견됐다. 이 책은 원래 9권3책으로 추정되는데 이번에 발견된 것은 그중 제7∼9권의 세 권을 담은 제3책이며 51장 가운데 맨 뒷장이 낙장된 잔본이다. 그러나 현존하는 최고의 시선집이라는 데서 문헌적인 가치가 큰 것으로 평가된다. 서지학자 신승운씨(민족문화추진회 편찬실장)는 ▲이 책의 판식이 고려시대의 특징을 갖고 있는 점 ▲내용 중에서 원조나 원의 황제를 언급할 때는 줄을 바꾸어 쓸 뿐 아니라 「원」자 앞에 「황」자를 덧붙이고 있는 점 등은 조선시대에는 있을 수 없는 체제라면서 이 책이 고려본임에 틀림없다고 단정했다. 특히 이 책의 간행연도를 공민왕 4년으로 보는 이유는 이 시선집과 함께 간행된 것으로 보이는 「동인지문사륙」에 그와 같은 간기가 적혀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고려 중기의 이규보·최자를 비롯,고려말기의 오한경 등에 이르기까지 26명 1백59수의 시가 작가별로 수록돼 있다.
  • 외언내언

    김치를 남쪽에서는 「짐채」 「짐치」라고 한다. 이 말을 조선 선조∼인조시대를 산 김치라는 사람과 결부짓는 민간어원론도 있다. 안동김씨 후손들이 조상의 이름을 피하기 위해 「김치ㆍ짐채」로 고쳐 불렀다는 것. 하지만 중종때 편찬된 「구급벽온」의 「침채」라는 표기가 김치를 이르는 첫기록이니 「짐채」쪽이 오히려 더 먼저가 아닌가. ◆중국 문헌에서는 김치류에 대한 기록이 「시경」(소아편)에 처음 나온다. 「저」라는 글자로. 그 다음으로 「제」 「혜」같은 글자로도 나오지만 물론 오늘날의 우리 김치와 같은 것은 아니다. 야채류를 소금에 절였다는 정도일 뿐. 우리 기록의 효시는 고려 이규보의 「가포육영」에서 순무에 대해 읊은 대목. 「지염」(소금에 절이면…)이라는 표현이 그것이다. ◆오늘날과 같은 김치는 임진왜란을 전후하여 고추가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이 통설. 1776년에 나온 「증보산림경제」에 고추ㆍ마늘이 언급되고 있고 「임원십육지」(1827년께)에는 고추ㆍ마늘ㆍ청각ㆍ생강ㆍ젓갈ㆍ조기가 양념으로 쓰인다고 기록된다. 여기에는 김치 담그는 법 92가지를 곁들여 놓기까지. 그 무렵 김치문화는 벌시 꽃피었음을 알게 한다. ◆가장 한국적인 음식이 김치.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는 그 냄새가 역겹다고 느껴지기도 하지만 한국사람으로서는 김치를 하루만 안먹어도 속이 개운치 않다. 외국에 나가는 운동선수들은 김치를 먹어야 힘이 솟아오르고. 이 김치가 또 훌륭한 발효식품임은 익히 알려진 일. 유럽쪽 사람들이 육류에서 요구르트같은 발효식품을 발달시킨 데 반해 우리 조상들은 곡류ㆍ야채에서 발달시켰다. 된장ㆍ간장ㆍ고추장도 물론 발효식품이다. ◆김치의 원료인 무ㆍ배추값이 엄청나게 뛰어올라 도시 주부들 마음을 어둡게 한다. 얼마가 올랐더라도 그게 농민한테 간다면 오죽 좋으랴. 엉뚱하게 중간상인 좋은 일만 한다니 더 속은 쓰리다. 이 현실을 당로자들은 벌로 넘겨선 안된다.
  • 오퍼상 차려 “접대부수출”/어학연수 위장,소녀12명 일에 넘겨

    ◎외국어학원장등 5명 구속 서울지검 동부지청 특수부(부장검사 조용국)는 9일 유령오퍼상 「한길상사」 총무부장 강대성씨(35)와 동경코스모어학원 서울지사장 오덕환씨(29)등 외국어학원 원장4명등 모두 5명을 직업안정법·여권법위반 및 공문서위조 등 혐의로 구속했다. 검찰은 또 「한길상사」대표 이규보씨(38)와 세명해외교육원 과장 남경우씨(44)를 같은 혐의로 수배했다. 강씨 등은 지난해 12월28일 강동구 천호동 425 화랑빌딩에 유령오퍼상을 차린뒤 강남 등지의 유흥업소 접대부들을 모집,이 가운데 박모양(16)등 10대소녀 12명을 고교졸업증명서·성적증명서 등을 위조해 유학비자를 발급,일본 유흥가에 취업시켜 주고 한사람당 1백20만엔씩 모두 1천4백여만엔(7천여만원)을 받아 챙긴 혐의를 받고있다. 오씨등 외국어학원 원장들은 강씨등의 부탁을 받고 접대부들이 어학연수명목으로 여권을 발급받는데 필요한 여고졸업증명서·성적증명서 등을 위조해주고 한장에 53만원씩을 받았다다는 것이다. 검찰수사결과 이들은 국내에서 퇴폐 및 심야영업에대한 단속이 강화되자 수입이 줄어든 유흥업소 종업원들을 골라 일본에 접대부로 취업시켜온 것으로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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