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이구
    2026-06-11
    검색기록 지우기
  • 환상
    2026-06-11
    검색기록 지우기
  • 소품
    2026-06-11
    검색기록 지우기
  • 호위
    2026-06-11
    검색기록 지우기
  • 반군
    2026-06-11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4,664
  • 오재원, 승리 생일파티 루머 해명 “여친 따라간 것..접대 가능?”[전문]

    오재원, 승리 생일파티 루머 해명 “여친 따라간 것..접대 가능?”[전문]

    프로야구 두산베어스 내야수 오재원이 ‘승리 생일파티’ 관련 루머에 대해 직접 입을 열었다. 오재원은 17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재조정을 위해 열심히 훈련하고 있습니다. 제가 사랑하는 동료, 팀, 가족을 위해 매일을 노력 중입니다. 그래서 그 분 들에게 더이상 해가 끼치지 않게 바로 잡고 가야할것은 바로 잡아야할 거 같습니다”라며 장문을 글을 올렸다. 글과 함께 항공권 사진을 함께 올린 오재원은 “제가 항공권 티켓을 끊은 영수증입니다. 두장 다 제가 계산을 했고 왼쪽의 여자분은 제 전 여자친구의 영수증이고요. 정식초대는 그 분이 받은 거였고 전 리조트 제공이라는 성의가 너무 부담스러워 한사코 거절을 하다 따라가게 된 거였습니다”라고 당시 상황에 대해 구체적인 설명을 내놨다. 그러면서 “여자친구와 여행을 가는데 그런 접대를 받을 수 있을까요? 제 사생활을, 또 지난 얘기들을 이런 식으로 해야만 하는 이 상황이 너무 싫습니다”라며 “그래도 또 전 동료들 가족들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그러나 앞으로 더 이상의 왜곡들 참거나 방관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루머에 대한 강력 대응을 시사했다. 승리는 자신의 생일에 필리핀 팔라완 리조트를 빌려 초호화 파티를 열었으며 이 과정에서 유흥업소 여성들을 동원해 성접대를 제공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후 이 파티에 오재원이 참석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갖가지 루머가 확산됐다. 한편 오재원은 2018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동방신기 유노윤호, 승리의 사진을 올리며 “감사합니다 승츠비 회장님 열심히 살겠습니다. #승츠비 #승리 그리고 멋있는 #유노윤호 님”이라며 친분을 과시한 바 있다. <이하 오재원 공식입장 전문> 재조정을 위해 열심히 훈련하고 있습니다. 제가 사랑하는 동료,팀,가족을 위해 매일을 노력중입니다. 그래서 그 분 들에게 더이상 해가 끼치지 않게 바로 잡고 가야할것은 바로 잡아야할거 같습니다. 위에 사진은 제가 항공권 티켓을 끊은 영수증입니다 두장 다 제가 계산을 했고 왼쪽의 여자분은 제 전 여자친구의 영수증이구요 정식초대는 그 분이 받은거였고 전 리조트 제공이라는 성의가 너무 부담스러워 한사코 거절을 하다 따라가게 된거였습니다. 여자친구와 여행을 가는데 그런 접대를 받을수있을까요? 제 사생활을, 또 지난 얘기들을 이런식으로 해야만 하는 이 상황이 너무 싫습니다. 그래도 또 전 동료들 가족들 위해 최선을 다할것입니다. 그러나 앞으로 더 이상의 왜곡들 참거나 방관하지 않을것입니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법정 선 박근혜의 사람들… “내 책임은 아니다” 이구동성

    법정 선 박근혜의 사람들… “내 책임은 아니다” 이구동성

    이병기·안종범 “오래된 일… 기억이 안 나” 재판 참관 민변 “미안함 느끼지 않는 듯”세월호 참사 5주기로 전국에 노란 추모 물결이 인 16일에도 법정은 바삐 돌아갔다. 박근혜 정부의 요직에 앉았던 인물들은 이날 서울 동부지법에 출석해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 업무를 조직적으로 방해한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법정에 선 ‘박근혜의 사람들’은 특별한 날임을 의식한 듯 굳은 표정이었지만 “기억이 안 난다”, “문건 표현이 과장됐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동부지법 형사 12부(부장 민철기)는 이날 오전 세월호 특조위 업무방해사건 35번째 공판을 열었다. 청와대와 해양수산부 등이 연계해 세월호 침몰 원인과 부실 대응 의혹 등을 조사하던 특조위 활동을 방해했다는 게 혐의의 핵심이다. 참사 당일 박 전 대통령의 행적이 불분명한 ‘사라진 7시간’을 조사하려는 특조위를 막으려 했다는 의혹 등을 받는다. 검찰은 이병기(왼쪽·72)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안종범(가운데·60) 전 청와대 경제수석, 조윤선(오른쪽·53) 전 정무수석, 김영석(60) 전 해양수산부 장관, 윤학배(58) 전 해수부 차관 등 5명을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혐의로 기소했다. 이 전 실장은 신문 전 세월호 희생자에 대해 언급했다. “오늘이 마침 4월 16일”이라면서 “유명을 달리한 분들의 명복을 빌고 유가족에 위로 말씀을 전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신문에선 직권남용 등을 완강히 부인했다. 검찰은 이날 세월호 특조위가 활동하던 2015년 11월 작성된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 결과보고서 등 기록물을 증거로 제시했다. 보고서에는 “세월호 특조위가 사고 당일 VIP(박 전 대통령) 행적을 전원위원회(11.16)에서 조사 안건으로 채택하려고 하니 해수부가 책임지고 대응 및 제어할 것”, “세월호 특조위가 청와대 대응 5개 사항(VIP 7시간 행적 포함)을 조사하는 내용의 안건을 전원위원회에 상정하는 것은 명백한 일탈·월권 행위인 만큼 해수부 중심으로 강력한 대응조치를 취할 것(경제수석)” 등의 내용이 적혀 있다. 검찰이 이 내용을 이 전 실장이 지시한 것인지 묻자 그는 “오래된 일이라 기억이 안 난다”고 수차례 답했다. 이 전 실장은 보고서에 나온 ‘강력한 대응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표현에 대해 “알아보라고 지시한 것을 (홍남기 전 기록비서관이) 대응할 것이라고 썼을 수 있다”면서 “‘대응’이라는 표현만 반복하기 뭐할 땐 (홍 전 기록비서관이) 강한 표현을 쓴 것 같다”고 말했다. 안 전 수석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거나 “경제수석으로 업무가 많았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특조위 조사방해 재판을 꾸준히 참관한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태스크포스의 서채완 변호사는 “피고인들이 겉으론 반성한다고 하면서 본인 책임은 없다는 식으로 말한다”면서 “미안한 감정이 없는 것 같아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아쉽다”고 말했다. 고혜지 기자 hjko@seoul.co.kr
  • 법정 선 박근혜의 사람들...“내 책임 아니다” 이구동성

    법정 선 박근혜의 사람들...“내 책임 아니다” 이구동성

    5주기에도 ‘폭탄 돌리기’ 열띤 공방이병기·안종범 “오래된 일...기억이 안 나”재판 참관 민변 “미안함 느끼지 않는 듯” 세월호 참사 5주기로 전국에 노란 추모 물결이 인 16일에도 법정은 바삐 돌아갔다. 박근혜 정부의 요직에 앉았던 인물들은 이날 서울 동부지법에 출석해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 업무를 조직적으로 방해한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법정에 선 ‘박근혜의 사람들’은 특별한 날임을 의식한 듯 굳은 표정이었지만 “기억이 안 난다”, “문건 표현이 과장됐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동부지법 형사 12부(부장 민철기)는 이날 오전 세월호 특조위 업무방해사건 35번째 공판을 열었다. 청와대와 해양수산부 등이 연계해 세월호 침몰 원인과 부실 대응 의혹 등을 조사하던 특조위 활동을 방해했다는 게 혐의의 핵심이다. 참사 당일 박 전 대통령의 행적이 불분명한 ‘사라진 7시간’을 조사하려는 특조위를 막으려 했다는 의혹 등을 받는다. 검찰은 이병기(72)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안종범(60) 전 청와대 경제수석, 조윤선(53) 전 정무수석, 김영석(60) 전 해양수산부 장관, 윤학배(58) 전 해수부 차관 등 5명을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혐의로 기소했다. 이 전 실장은 신문 전 세월호 희생자에 대해 언급했다. “오늘이 마침 4월 16일”이라면서 “유명을 달리한 분들의 명복을 빌고 유가족에 위로 말씀을 전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신문에선 직권남용 등을 완강히 부인했다. 검찰은 이날 세월호 특조위가 활동하던 2015년 11월 작성된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 결과보고서 등 기록물을 증거로 제시했다. 보고서에는 “세월호 특조위가 사고 당일 VIP(박 전 대통령) 행적을 전원위원회(11.16)에서 조사 안건으로 채택하려고 하니 해수부가 책임지고 대응 및 제어할 것”, “세월호 특조위가 청와대 대응 5개 사항(VIP 7시간 행적 포함)을 조사하는 내용의 안건을 전원위원회에 상정하는 것은 명백한 일탈·월권 행위인 만큼 해수부 중심으로 강력한 대응조치를 취할 것(경제수석)” 등의 내용이 적혀 있다.검찰이 이 내용을 이 전 실장이 지시한 것인지 묻자 그는 “오래된 일이라 기억이 안 난다”고 수차례 답했다. 이 전 실장은 보고서에 나온 ‘강력한 대응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표현에 대해 “알아보라고 지시한 것을 (홍남기 전 기록비서관이) 대응할 것이라고 썼을 수 있다”면서 “‘대응’이라는 표현만 반복하기 뭐할 땐 (홍 전 기록비서관이) 강한 표현을 쓴 것 같다”고 말했다. 안 전 수석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거나 “경제수석으로 업무가 많았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특조위 조사방해 재판을 꾸준히 참관한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태스크포스의 서채완 변호사는 “피고인들이 겉으론 반성한다고 하면서 본인 책임은 없다는 식으로 말한다”면서 “미안한 감정이 없는 것 같아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아쉽다”고 말했다. 고혜지 기자 hjko@seoul.co.kr
  • [우리둘은1학년]채시라·고소영도 녹색어머니…근데 그게 뭔데

    [우리둘은1학년]채시라·고소영도 녹색어머니…근데 그게 뭔데

    [편집자주]올해 초등학교에 딸을 보낸 워킹맘이 학부모가 되면서 겪은 우여곡절을 연재합니다. 아는 동네 엄마 하나 없고, 사교육에도 문외한인 아웃사이더 엄마는 ‘인싸’로 거듭날 수 있을까요.녹색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색이다. 수술복 색깔의 녹색 원피스를 즐겨 입고 장롱에는 녹색 계열의 옷이 한가득이다. 둘째 아이 태명을 ‘초록이’로 지었을 정도다. 오죽하면 별명이 ‘녹색성애자’일까. 대학시절 친구는 이렇게 나를 놀린다. “녹색을 그렇게 좋아하더니 녹색어머니회까지 하는 거야?” 그렇다. 나는 녹색어머니회 회원이다. 그것도 ‘반 대표’라는 감투까지 썼다. 딸의 초등학교에서 학부모 총회가 열리기 며칠 전이었다. 학부모회, 명예교사, 녹색어머니회 등 학부모 단체 중 가입 신청을 받는다는 가정통신문이 날아왔다. 복수 신청이 가능하다는 안내는 적혀 있었지만,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아도 된다는 문구는 없었다. 녹색어머니회 옆에 동그라미를 그려 넣었다. 8차선 도로와 4차선 도로를 건너 학교에 다니는 딸 아이는 건널목을 지키는 녹색 어머니들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나도 그 정도 봉사는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 년에 3번만 나가면 된다고 하니 일하는 엄마의 부담도 적었다. 직장에 양해를 구하고 출근을 조금 늦게 하면 될 것이다.학부모 총회에 가는 길에 직장 선배들의 엇갈린 조언이 떠올랐다. 선배1: 눈치 게임이 시작될 거야. 절대 선생님과 눈을 마주쳐선 안 돼. 너 회사 다니면서 학부모 단체 생활 어떻게 하려고 그래? 가입해놓고 모임 안 나가면 더 욕먹는다.선배2: 녹색 어머니회는 꼭 해라. 거기서 알게 된 엄마들과 관계가 6년 내내 가더라. 애들 잘 챙기는 엄마일수록 학교 활동 열심히 하는 거 알지? 그런 엄마들이랑 친해지는 게 워킹맘 살길이야. ‘누구 말이 맞는지는 곧 알게 되겠지.’ 공개수업이 끝나고 본격적인 총회가 시작됐다. 딸 아이 책걸상에 안 맞는 몸을 우겨넣고 앉았다. 담임 선생님의 당부 말씀이 시작됐다. “이제 제일 어려운 일이 남았어요. 학부모 단체조직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녹색어머니회에는 7명, 급식모니터링에 2명, 명예교사에 1명이 손을 들어주셨습니다. 학부모회와 명예교사 한분씩만 더 지원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나서주실 분 계실까요?” 순간 교실이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아, 바로 이 타이밍이구나. 눈치 게임….’ 지원자가 없자 난처해진 선생님이 부연했다. 명예교사는 한두 번쯤 독서실에서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면 되고, 학부모회는 등록만 해도 된다는 거였다. 한쪽에서 “제가 할게요”라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를 비롯한 나머지 엄마들은 그 목소리의 주인공을 바라보면서 존경, 감사, 안도의 눈빛과 함께 박수를 보냈다. ‘이로써…, 총회를 무사히 끝냈다.’ 안도를 하던 찰나, 선생님의 부름을 받았다. 녹색어머니회 가입을 신청한 7명 어머니의 이름과 연락처가 적힌 명단을 녹색어머니회 학교 대표에게 제출해달라는 말씀이었다. 두 손으로 받아든 명단의 내 이름 옆에는 ‘(대표)’라고 적혀 있었다. 나: 선생님, 제가 반 대표인가요? 왜…왜죠?선생님: 어머니, 그냥 가나다순으로 한 거예요. 명단만 제출하시면 돼요. 딸 이름 초성이 ‘ㄱㄱ’이라 벌어진 일이다. ‘잠시만요 선생님, 이건 아닌 것 같은데…’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목구멍에서 나온 말은 “네”였다. 어려운 학부모회 대표를 자원한 분도 있는데, 가나다순으로 정한 반 대표를 거절하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았다. 어렵사리 녹색어머니회 회장을 찾아가 명단을 냈다. ‘포스’가 느껴지는 대표는 “반 회원을 모은 단체 카카오톡 채팅방(단톡방)을 개설해, 반 대표들이 모인 단체방에서 전달받은 사항을 반에 알리면 된다”고 말했다. 반 대표 방에는 곧 초대될 거라고도 했다.학부모 총회에 가기 전 학교 선배와 이런 대화를 나눈 터였다. 선배: 네 성격에 한자리하고 오는 거 아니냐.나: 에이, 저 그런 데 가서는 안 설쳐요. 조용히 입 닫고 있다가 나올 거예요. 장담했는데… 녹색어머니회 반 대표라니? 멍해져서는 선배에게 메시지를 날리자 돌아온 대답은 이랬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남편도 지인들도 뭐가 고소한지 깔깔 웃어댔다. 나는 심각해 죽겠구먼! 고등학교 때 반장인가 부반장 해보고선 얼마 만에 써보는 감투인가. 인간은 참 간사하다. 막상 감투를 쓰고 나니 잘 해내고 싶어졌다. 녹색어머니회, 결코 만만하게 볼 조직이 아니다. 반백 년 역사를 가진 초등학교 학부모 최대 봉사단체다. 짜임새 있는 운영체계도 놀랍다. 각 반 녹색 어머니 회원을 관리하는 반 대표, 각반 대표로 구성된 학년 대표가 있다. 학교마다 녹색어머니회 지회 또는 ○○초등학교 녹색어머니회가 구성되는데 대표는 회장이 맡는다.각 학교 녹색어머니회 회장과 부회장으로 구성된 △△경찰서 녹색어머니회연합회가 존재하고, 이 단체는 지방경찰청 소속 녹색어머니연합회에 귀속된다. 연합회 회장과 부회장은 조직의 최정점인 녹색어머니중앙회의 구성원이 될 수 있다. 녹색어머니중앙회는 경찰청 소속 사단법인이다. 중앙회 홈페이지(gmothers.kr)에 따르면 녹색어머니회의 기원은 1969년 6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초등학교 단위별로 ‘자모교통지도반’이 출범했다. 자녀의 등하굣길 안전을 위해 통학로에서 교통안전 봉사활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1971년 녹색어머니회라는 공식명칭이 등장했다. 처음에는 서울 등 6개 도시 위주로 결성됐다. 지금은 전국 17개 시도 4000여개 초등학교에 녹색어머니회가 운영되고 있으며 전국적으로 약 86만명의 회원이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이 거대한 조직에 발을 들여놓은 나는 그날 저녁, 1학년 대표님의 첫 지령을 받았다. 반 회원의 유니폼 치수를 파악해달라는 지시였다. ‘녹색어머니회 유니폼’을 검색하면 가장 먼저 나오는 게 ‘고소영도 피하지 못한 녹색어머니회’라는 제목의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물이다.지난 2017년 6월, 영화배우 고소영씨가 녹색어머니회 복장으로 건널목에서 교통안전 지도를 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된 것이다. 선글라스와 모자를 쓰고 청바지에 유니폼 셔츠를 입은 고씨의 자태는 남달랐다. 역시 배우는 배우였다. 그렇지만 딸 아이 학교의 녹색 어머니 복장 규정에는 어긋나는 차림새였다. 우리 학교 녹색어머니회는 교통지도 시 선글라스를 쓰지 말라고 했다. 배우 채시라씨가 학교 앞에서 녹색어머니회 활동을 하는 사진도 찾을 수 있었다. 채씨는 고소영씨와 같은 녹색어머니회 모자를 쓰고 있었지만 노란색 조끼 차림이었다. 학교마다 녹색어머니회 복장 규정이 다른 것 같았다. 궁금해서 녹색어머니중앙회 정관을 찾아봤다. 6장 제34조에 복장 규정이 있다. 녹색 어머니 제복은 감색 치마를 원칙으로 하되 겨울철에는 바지와 겉옷을 착용할 수 있다고 적혀 있다. 감색 넥타이, 감색 모자, 파란색 셔츠가 제복을 구성한다.구두는 장식이 없어야 하고 굽이 있는 검은색을 신어야 하며 스타킹은 살구색으로 한다고 돼 있다. 머리는 단정해야 하며 지나친 액세서리와 염색을 삼가라고 돼 있다. 지나치게 엄격하다는 생각을 했지만, 학교마다 차림새가 다른 걸 보면 이런 복장 규정이 의무는 아닌 것 같다. 고소영씨는 녹색어머니회 활동사진이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자 당시 일간스포츠와 한 인터뷰에서 “너무 민망하다. 다들 하는 건데…. 정말 재미있게 했다”면서 “선글라스는 다른 엄마들이 눈이 부시니까 꼭 쓰라고 해서 쓴 것”이라고 설명했다. 당시 고씨는 작품활동을 잠시 쉬면서 초등학교에 입학한 큰아들을 뒷바라지했다고 한다. 복장 외에도 녹색 어머니로서 주의해야 할 게 몇 가지 더 있다. 보행신호에 따라 안전 깃발을 제대로 열고 닫는 일이다. 지난달에 열린 녹색어머니회 소양교육에서 궁금점을 해결할 수 있었다. 깃발을 허리 높이에 들고 서 있다가 초록 불이 켜졌을 때 90도로 열어 차량의 진행을 막는다. 이때 호루라기를 한 번 분다. 보행신호가 빨간불로 바뀌면 호루라기를 두 번 불면서 깃발을 닫는다.교통안내를 하다가 간혹 차량과 접촉하는 사고가 발생하는 모양이다. 녹색어머니회 회장은 “봉사자의 안전은 스스로 챙겨야 한다”며 “빨간불 신호에서는 반드시 인도 위로 올라와야 한다”고 당부했다. 딸 학교 녹색어머니회 회장은 무려 3년차다. 학교 활동에 미적지근하거나 관심 둘 시간조차 없는 학부모를 위해, 어떤 분은 적극적으로 봉사해주니 대단하면서도 감사한 마음이 크다. 사실 녹색어머니회는 오랫동안 학부모와 언론의 ‘표적’이었다. “교통안전 지도를 왜 학부모가 해야 하는가”부터 “어머니회라는 이름을 바꿔라”까지 다양한 불만이 제기됐다. 등굣길 건널목에서 ‘녹색 아버지’와 ‘녹색 할머니’를 본 적이 있다. 심지어는 ‘녹색 삼촌’, ‘녹색 이모’도 있고 돈을 주고 녹색어머니 당번을 대신하는 ‘녹색 아르바이트’도 적지 않은 모양이다. 딸아이 반 회원 중에서도 “엄마 일정이 안 되면 아빠가 대신 봉사해도 되느냐, 그럴 때 아빠도 유니폼을 입어야 하느냐”라는 질문을 하는 분이 계셨다. (아빠들은 유니폼과 비슷한 감색 계열의 셔츠를 입으면 된다는 ‘유권해석’이 나왔다.)어떤 학교에서는 전교생 학부모가 교통 안전지도에 참여하도록 n분의1로 할당하는 곳이 있다고 한다. 어떤 학교는 노인복지관 어르신에게 교통안전 도우미 업무를 맡겨 노인 일자리를 창출한다고 홍보하기도 한다. 녹색어머니회를 언제까지 둘지, 명칭을 어떻게 바꿀지는 학교와 학부모가 논의해 결정할 문제다. 50년간 운영된 조직을 하루아침에 없애거나 바꾸긴 쉽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자원자가 줄어들면서 자연스럽게 사라질지도 모른다. 다만 누군가 도로 앞에 깃발을 들고 서 있다는 것만으로도 차량 운전자에게 이 주변이 통학로라는 경각심을 주고, 아이들의 안전한 등교를 돕는 역할은 분명해 보인다. 만약 녹색어머니회가 유지된다면, 손주 녀석 학교 갈 때 ‘녹색 할머니’로 나서게 될까.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다음 주 주제는 “스마트폰은 언제 사줘야 하나요?”입니다.
  • 강서구, 내달 3일 ‘제18회 어린이 솜씨 자랑대회’ 개최

    서울 강서구는 내달 3일 강서구민회관과 우장산공원에서 ‘제18회 어린이 솜씨 자랑대회’를 개최한다고 12일 밝혔다. 어린이 솜씨 자랑대회는 아이들 내면에 숨어있는 예술적인 잠재 능력과 창의력을 표현할 기회를 제공하기 마련됐다. 동요부르기, 그림그리기, 글짓기 등 3개 부문으로 치러진다. 지역 내 미취학 아동과 초등학생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별도의 참가비는 없다. 그림 그리기와 글짓기는 다음달 3일까지 강서구 어린이구청 홈페이지나 팩스(2620-0419)로 참가 신청을 받는다. 당일 현장에서도 참가 신청을 할 수 있다. 동요부르기는 개별 신청을 받지 않는다. 오는 19일까지 학교별 2개 팀 이내로 학교장 추천을 받는다. 수상자는 6월 12일 강서구 어린이구청 홈페이지에 발표되며, 같은 달 26일 구청에서 시상식이 열린다. 구는 수상 작품과 행사 사진이 수록된 작품집을 발간, 수상자를 비롯해 학교와 유치원에 배부할 계획이다. 구 관계자는 “5월 청소년의 달을 맞아 아이들이 주인공이 돼 끼와 재능을 발휘하는 시간을 마련했다”며 “꿈과 열정을 가진 강서 꿈나무들의 많은 참여를 기다린다”고 말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부고] 이병웅(한국전기공사협회 재해예방기술원 안전처장)씨 부친상

    △이구상씨 별세, 이병웅(한국전기공사협회 재해예방기술원 안전처장)·이은경(용인 현암중학교 교사)·이은영(포천 이동중학교 교사)·이병광(쉐보레자동차 포천대리점 대표)씨 부친상, 박현정·이선화씨 시부상, 임선문(경기도시공사 처장)·임우영(대기문구 대표)씨 장인상 = 10일 오전 5시21분께, 포천장례문화원 202호실, 발인 12일 오전 8시. 031-541-6936
  • 롯데월드타워에 사진 전문 매장 200평 규모 복합문화공간 ‘291…’

    롯데월드타워에 사진 전문 매장 200평 규모 복합문화공간 ‘291…’

    롯데백화점이 오는 11일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에 사진 전문 매장인 ‘이구일 포토그랩스’(291 photographs)를 연다. 월드타워 에비뉴엘 5층에 200평 규모로 입점하는 이구일 포토그랩스는 사진과 관련된 모든 제품을 만나고 경험할 수 있는 사진 관련 복합 문화 공간이다. 롯데백화점은 전시, 스튜디오, 서적·커뮤니티, 카메라 등 네 가지 섹션으로 매장을 구성했다. 카메라 섹션에서는 라이카와 현존 최고급 카메라인 핫셀블라드 등 20여종을 선보인다. 또 사진작가가 직접 찍어 주는 프로필 촬영과 고객이 원하는 작품을 즉석에서 출력해 주는 프린트 랩 서비스도 제공한다. 사진작가들이 지도해 주는 ‘카메라 클래스’와 ‘토크 콘서트’ 등 고객 참여형 이벤트도 함께 진행한다. 이주현 롯데백화점 테넌트 MD 팀장은 “사진 콘텐츠의 접근성 확대와 활로를 다각화하기 위해 준비한 이구일 포토그랩스는 백화점에서 최초로 시도하는 아트 비즈니스 플랫폼”이라며 “사진 커뮤니티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는 ‘하비족’과 다양한 연령대 컬렉터들의 천국이 될 매장으로 거듭날 것”이라고 말했다. 심현희 기자 macduck@seoul.co.kr
  •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난쟁이와 저녁식사를/신현정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난쟁이와 저녁식사를/신현정

    난쟁이와 저녁식사를 / 신현정 난 이때만은 모자를 벗기로 한다 난쟁이와 식탁을 마주할 때만은 난 모자를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이번 것은 아주 높다란 굴뚝 모양의 모자였다 금방이라도 포오란 연기가 오를 것 같고 굴뚝새라도 살 것 같은 그런 모자였다 사실 꼭 이런 모자를 고집하자는 것은 아니다 식탁 위에서 모자는 검게 빛났다 오라, 모자는 이렇게 바라보기만 하여도 되는 것이구나 식사를 마친 우리는 벽난로에 마른 장작을 몇 개 더 던져 넣었으며 그리고 식탁을 돌았다 나, 난쟁이 이렇게 둘이서 문 밖에서 꽥꽥 하는 거위도 들어오라고 해서 중간에 끼워 주고는 나, 거위, 난쟁이 이렇게 셋이서 모자를 돌았다. 아끼는 모자가 있는가? 그 모자를 언제 벗는가? 신현정은 말한다. 난쟁이와 함께 밥 먹을 때만 모자를 벗는다고. 높다란 굴뚝 모양의 모자는 권위와 명예와 부의 상징이다. 난쟁이는 누구인가. 가난한 자, 병든 자, 삶에서 소외당한 소수자들의 이름이다. 그들과 함께 밥을 먹으며 그가 지닌 최고의 명예들, 권위들을 스스로 내려놓을 수 있다면 세상은 충분히 살 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식사가 끝나면 나와 난쟁이는 손을 잡고 난로 주위를 돈다. 밖의 거위가 나도 끼워 줘 꽥꽥 소리치면 셋이 함께 손잡고 돈다. 이 윤무 신비하고 사랑스럽다. 곽재구 시인
  • [서울광장] 토착왜구가 애국자로 둔갑한 현대사의 비극/오일만 편집국 부국장

    [서울광장] 토착왜구가 애국자로 둔갑한 현대사의 비극/오일만 편집국 부국장

    역사란 민족의 정체성을 이어 주는 뿌리다. 과거의 역사는 현재의 우리를 만들고, 과거와 현재가 모여 미래의 역사를 창조해 나가는 이치다. 단채 신채호의 말처럼 역사는 민족의 혼이자 뿌리인 까닭에 왜곡된 역사는 국가의 존립마저 위태롭게 할 수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친일파’들이 자행한 근현대사의 역사 왜곡이다. 변신에 능하고 대세의 움직임에 민감한 이들 친일파는 해방 후 반공투사로 둔갑해 독립운동가들과 민족주의자들을 ‘빨갱이’로 탄압했다. 당시 해방 공간에서 숨죽이던 친일파들은 남한 사회에 몰아친 ‘빨갱이 타도’ 분위기에 편승해 출세 가도를 달렸다. 대표적인 예가 의열단을 이끌었던 약산 김원봉과 일제 악질 고등계 형사 노덕술의 사례다. 일제시대 친일파들의 민족 반역 행위를 조사·처벌하기 위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가 강제 해산된 이후 친일파들의 행동은 더욱 노골화됐다. 독립투사들이 치를 떨었던 노덕술은 당시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3개의 무공훈장을 받으며 완벽한 애국자로 둔갑했다. 이 즈음 해방 공간에서 몽양 여운형과 함께 좌우합작 운동에 앞장섰던 김원봉이 거꾸로 친일파들에게 조사를 받는 어쩌구니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임시정부에서 활약했던 정정화 여사의 ‘정강일기’에 당시 상황이 자세히 묘사돼 있다. “평생 조국 광복에 헌신했고 의열단의 의백이었던 그가 악질 왜경 출신자에게 조사를 받고 고문을 당했다. 약산은 사흘을 꼬박 울면서 ‘해방된 조국에서 왜놈 등살에 언제 죽을지 모른다’고 한탄을 했다.” 독립운동가 시절 단 한번도 잡히지 않았던 항일운동의 거두가 해방 후 악질 친일 경찰 출신에게 빨갱이로 몰려 고문을 당했다는 것 자체가 역사의 비극이다. 17세 여학생 유관순을 고문해 죽였던 정춘양(총독부 하급관리)이 해방 이후에도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악질 친일파들을 모아 반공투사·애국자로 세탁해 준 인물이 바로 이승만이다. 역사의 비극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관동군 헌병교습소 출신인 김창룡을 보자. 만주국 헌병보조원 시절 만주 항일 조직 체포에 혁혁한 공을 세워 헌병 오장으로 특진했다. 해방 후 고향(함경남도 영흥)에서 일제에 협력한 전범(戰犯)으로 체포돼 사형 선고를 받았지만 이송 도중 탈출해 남한으로 온다. 공산주의 척결에 공을 세운 그는 이승만의 ‘양자’로 권력을 전횡하다가 1956년 군 반대파의 손에 처단되지만 장례식은 최초의 국군장으로 치러질 정도로 애국지사 대접을 받았다. 이승만이 직접 묘주명(墓主名)이 됐고, 묘비명은 친일 역사학자의 거두였던 이병도가 썼다. 이병도는 당시 묘비에 “아! 이런 변이 있을까. 나라의 큰 손실이구나. … 그 혼은 기리(길이) 호국의 신이 될 것”이라고 기술했다. 대표적인 식민사관론자인 이병도가 반공투사로 변신한 친일파 김창룡의 묘비명을 썼다는 것은 반공을 호신술로 삼은 친일파들의 변신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다. 탐사보도 전문지인 뉴스타파에 따르면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훈장과 포장을 받은 친일 인사는 총 222명에 달한다. 일제강점기 친일에 앞장섰던 인물들이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반공’을 내세워 훈장도 받고 애국자로 둔갑한 것이다. 친일파라는 말은 원래 1894년 갑오개혁 당시 일본이 만든 용어이고, 당시 조선에서는 토왜(土倭·토착왜구)라는 말이 널리 통용됐다. ‘친일파’는 사리사욕을 위해 일제 침략에 협조했거나 일제를 등에 업고 동족들에게 위해를 가하거나, 국권 탈환을 위한 독립운동을 방해한 자들을 총칭하는 말이다. 21세기 글로벌 시대 친일파 청산이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일각의 주장도 있지만, 상황을 피상적으로 바라보는 단견에 가깝다. 대한민국이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친일파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것과 아직도 그 후손들이 여전히 주류 기득권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매국과 편법으로 쌓아 올린 부와 권력이 2대, 3대로 이어진 상황에서 사회 정의를 확립하고 민족 통합을 이룩하는 가치관 확립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 박근혜·이명박 정권을 거치면서 공동체 존립의 대원칙인 ‘공정과 정의’가 무력화된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귀결이다. 더 큰 문제는 이들이 일본 아베 정권의 군국주의를 지지하면서 한반도 냉전 해체를 반대하고 있다는 점이다. 청산되지 못한 친일파의 뿌리가 21세기 극우보수 세력의 온상이 됐다는 것 자체가 우리 현대사의 비극이다. oilman@seoul.co.kr
  • ‘밀반입할 만하군…’, 뿔 달린 살무사 포함된 ‘듣보잡’ 파충류

    ‘밀반입할 만하군…’, 뿔 달린 살무사 포함된 ‘듣보잡’ 파충류

    뿔 달린 뱀 본 적 있나요? 지난 25일(현지시각) 인도 남부 공항의 세관원들이 한 승객의 수화물에서 멸종위기에 처한 다양한 파충류와 양서류를 압수한 현장 모습을 뉴스플레어, 라이브릭 등 여러 외신이 전했다. 이 화물은 인도 타밀나두 주 첸나이 국제공항에서 발견됐는데, 태국 방콕발 승객의 수화물로 밝혀졌다. 만지기도 싫은 이 끔찍한 수화물 속엔 치명적 독을 가진 ‘뿔 달린’ 살무사를 포함한 멸종위기 파충류들이 다수 포함됐다. 태국 항공편 번호 TG337로 방콕에서 출발한 모하메드 압둘 마지드(22)란 첸나이 학생의 ‘귀중한 물건’들은 1962년에 발휘된 인도관세법 조항에 의해 압수됐다. 마지드는 즉시 당국에 억류됐고, 압수된 야생 파충류 들은 다시 방콕으로 돌려보내 질 것으로 전해졌다. 독사 외에도 그의 여객 가방 안 플라스틱 용기 안에서는 2마리의 코뿔소 이구아나, 3마리의 바위 이구아나, 22마리의 이집트 거북과 몇몇 양서류 종들이 발견되었다.사진=Indian Today Social 유튜브 영상부 seoultv@seoul.co.kr
  • 이낙연 총리, 몽골서 칭기즈칸 말 선물 받아…‘친형’ 호칭도

    이낙연 총리, 몽골서 칭기즈칸 말 선물 받아…‘친형’ 호칭도

    몽골을 공식방문 중인 이낙연 국무총리가 26일 오흐나 후렐수흐 몽골 총리로부터 칭기즈칸의 고향에서 공수한 말을 선물 받았다. 이날 후렐수흐 총리는 만찬 전 영빈관 옆 잔디에서 이 총리에게 직접 말을 건넸다. 이 총리는 몽골에서 우리나라를 가리켜 ‘솔롱고스’(무지개의 나라)라고 하는 것에서 착안해 무지개라는 뜻의 ‘솔롱고’라는 이름을 붙였다. 솔롱고는 몽골 전통 종자로 6살 수말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말의 상징적인 소유권은 이 총리에게 있지만 한국에 들여오지 않고 몽골 국경수비대에서 관리하게 된다. 후렐수흐 총리는 “이 총리의 말이 몽골에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라. 칭기즈칸이 이 말을 타고 세계를 점령했다. 다음번에 오실 때 타시라. 이 총리만 타실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총리는 “아이구, 잘 생겼다”라고 감탄하며 후렐수흐 총리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후렐수흐 총리는 만찬 자리에서 ‘영광 막걸리’를 선보이기도 했다. 전남 영광 출신인 이 총리가 막걸리를 좋아하는 것을 알고 몽골 측이 직접 한국에서 공수해 온 것이다. 후렐수흐 총리는 “친형을 만나는 느낌이다. 친형이 약속을 지켜 방문해주셨다”며 돈독한 관계를 표현했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대선 출마자가 “내 아내 될 사람 나와봐” 외치는 우크라이나

    대선 출마자가 “내 아내 될 사람 나와봐” 외치는 우크라이나

    오는 31일(이하 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대통령 선거에 모두 39명의 후보가 출마한 가운데 코미디 같은 일이 연일 벌어지고 있다. 기성 정당에 대한 환멸이 심하다고는 하지만 정치를 리얼리티쇼로 혼동하게 만들고 정치와 코미디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드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환경부 장관을 지낸 이호르 셰브첸코(48) 후보는 선거 구호를 “대통령의 아내가 되고 싶습니까“로 바꾸고 노총각인 자신의 신붓감 구하기 이벤트로 바꿔버렸다고 미국 일간 워싱턴 포스트가 전했다. 미국 미네소타 대학에서 법학 학위를 받은 그는 온라인 상으로 신청한 여성 300명 가량을 분과 토론시켜 이를 통과한 10~15명과 데이트를 해 그 중의 한 명을 선택, 대통령에 당선된 뒤 퍼스트레이디로 삼겠다고 했다. 이 과정을 모두 편집해 12분 분량으로 편집해 페이스북과 유튜브에 올리고 있다. 주말에 전체 에피소드를 처음 공개했고 31일 투표 날까지 계속할 계획이다. 셰브첸코의 광고 포스터에 대해 비난과 비판이 쏟아지지만 눈길을 붙잡는 데 성공하고 있다. 영국 런던에서 왕립 국제관계 연구소 우크라이나 포럼을 운영하는 오리시아 룻세비치는 “처음에는 잘못 들었나 싶었고, 여성 표 좀 깎아먹겠구나 생각했는데 지금은 이런 문제에 둔감한 우크라이나의 실정에 비쳐볼 때 천재적이구나 싶다”고 말했다. 이어 “우크라이나의 정치 엘리트들은 산 위에 앉아 있는 존재로 여겨지는데 그는 이 간극을 메우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여론조사에서 1%도 안되는 지지를 받는 그지만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데 성공해 이제는 토크쇼에 빈번히 불려 나간다. 우크라이나는 당연히 어려운 일이 산적해 있다. 군대는 동부 크림 반도 쪽에서 러시아가 지원하는 반군과 교전을 계속 벌이고 있다. 러시아 지지 성향의 정부를 축출한 지 5년이 넘었지만 경제 성장이나 정치 개혁 모두 더디기만 하다. 사실 셰브첸코는 싱가포르 리콴유 정부처럼 부패의 고리를 끊기 위해 전제적 권리를 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그는 “우크라이나에서는 진짜 민주주의를 가져본 적이 없다. 오직 페이퍼로만이었다. 과점, 부패한 과점이다. 그들은 유권자나 정치인 등 모든 것을 매수한다”고 말했다.사실 페트로 포로셴코 대통령을 탄핵하고 치르는 이번 대선 선두 주자 볼로디미르 젤렌스키도 정치적 경력이라야 인기를 끈 TV 미니 시리즈에서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해본 게 전부다. 또 2004년 오렌지혁명의 주역인 전직 총리 율리아 V 티모셴코의 이름을 그대로 본떠 유리 V 티모셴코로 등록한 후보도 있었다. 티모셴코 전 총리도 출마해 같은 이름의 후보가 둘이 동시에 등록했다. 속시원한 풍자로 정치와 권위를 무너뜨린 코미디언이 실제로 정치인으로 선출된 사례는 드물지 않다. 지난해 슬로베니아 최연소 총리로 당선된 마르얀 세렉, 이탈리아 연립정권의 주축인 포퓰리즘 정당 오성운동의 창설자 베페 그릴로, 앞서 2000년대 초 아이슬란드 수도 레이캬비크 시장을 지낸 욘 그나르 등도 코미디언 출신이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멕시코 호텔 수영장서 이구아나 난투극 소동

    멕시코 호텔 수영장서 이구아나 난투극 소동

    물놀이를 즐기던 수영장에 이구아나가 난입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지난 21일 영국 데일리메일에 따르면, 최근 멕시코의 한 호텔 수영장을 찾은 관광객은 이구아나 두 마리의 난투극에 혼비백산했다. 수영장 풀장 밖에서 싸움을 시작한 이구아나 두 마리가 풀장 안까지 뛰어들어 거칠게 싸움을 이어갔다. 풀장에서 여유롭게 물놀이를 즐기던 사람들은 이구아나의 등장에 놀라 황급히 몸을 피해야 했다. 이날 이구아나의 등장으로 한바탕 소동이 일었으나 다행히 큰 사고로 이어지지는 않았다.영상부 seoultv@seoul.co.kr
  • [인사] 중소기업중앙회

    <전보> ■ 임원 △ 경영기획본부장 이재원 △ 협동조합본부장 조진형 △ 혁신성장본부장 양찬회 △ 중소기업종합연수레저단지건립추진단장 소한섭 ■ 부서장 △ 기획조정실장 윤위상 △ 조합정책실장 박승찬 △ 조합지원실장 정경은 △ 정책총괄실장 최복희 △ 제조혁신실장 신상홍 △ 스마트공장지원실장 조동석 △ 인력정책실장 양옥석 △ 공제기획실장 권영근 △ 투자전략실장 안준연 △ 단체표준국장 박경미 △ 청년희망일자리국장 양갑수 △ 중소기업뉴스 편집국장 임춘호 △ 인사부장 서재윤 △ 사회공헌부장 조준호 △ 협업사업부장 황재목 △ 소상공인정책부장 김형락 △ 국제통상부장 김태환 △ 무역촉진부장 박미화 △ 교육지원부장 김종하 △ 공제가입부장 박호철 △ 공제운영부장 박용만 △ 공제서비스부장 이창호 △ 보증손해운영부장 강형덕 △ 금융투자부 부장 박찬정 △ 서울지역본부장 김종환 △ 부산울산지역본부장 김기훈 △ 대구경북지역본부장 최무근 △ 광주전남지역본부장 장윤성 △ 대전세종충남지역본부장 임승종 △ 경기지역본부장 정욱조 △ 강원지역본부장 최경영 △ 충북지역본부장 이원섭 △ 전북지역본부장 김정원 △ 경남지역본부장 황명욱 △ 경기북부지역본부장 김병수 △ 제주지역본부장 이충묵 △ 외국인력지원부장 문철홍 ■ 팀장 △ 기획조정실 재무팀장 심상욱 △ 협업사업부 표준원가센터장 박영훈 △ 국제통상부 남북경협센터장 이창희 △ 상생협력부 가업승계지원센터장 유지흥 △ 외국인력지원부 취업교육팀장 현준 △ 교육지원부 개발원운영팀장 강명구 △ 공제기획실 법무지원팀장 이구수 △ 공제가입부 마케팅팀장 이주만 △ 감사실 감사팀장 유형준 △ 서울지역본부 부장 홍정호 △ 부산울산지역본부 부장 민경일 △ 대전세종충남지역본부 부장 김승대 △ 경기지역본부 부장 박완신 △ 충북지역본부 부장 신승재 △ 경기북부지역본부 부장 홍종희 (이상 4월 1일자)
  • 민주당 “나경원 원내대표직 사퇴해야” 손학규 “羅대표 발언 정치 금도 넘어”

    민주당 “나경원 원내대표직 사퇴해야” 손학규 “羅대표 발언 정치 금도 넘어”

    孫대표도 비판 가세… “與 반응도 한심” 한국 “의회 장악”… 이해찬·홍영표 맞제소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지난 12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수석대변인으로 과격하게 지칭한 발언과 관련해 더불어민주당은 13일 나 원내대표를 국회법 146조(모욕 등 발언의 금지) 조항 등을 들어 국회 윤리특별위원회에 제소하고 이틀째 맹비난을 퍼부었다. 여기에 보수야당인 바른미래당의 손학규 대표도 나 원내대표 비판에 가세하면서 파문은 확산일로의 양상을 보였다. 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대통령과 국민을 모독하는 발언을 보면서 ‘자포자기하는 발언이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며 “한국당 전당대회에서 (후보들이) 극단적 발언을 하는 것을 원내대표가 (따라) 하는 것을 보면서 ‘앞길이 없는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설훈 최고위원과 표창원 의원 등은 원내대표직 사퇴를 요구했다. 과거 박근혜 전 대통령을 ‘귀태’(태어나지 않았어야 할 사람)라고 지칭해 논란에 휩싸였던 홍익표 수석대변인은 “그 발언으로 나는 원내대변인 자리를 내려놓고 사과하지 않았느냐”며 “나 원내대표도 사퇴하고 당 대표는 사과하는 게 당연하다”고 했다. 송영길 의원은 “나 원내대표한테 아베의 수석대변인이라고 하면 기분 좋겠느냐”고 힐난했다. 손 대표도 최고위원회의에서 “원내대표는 연설할 때 언어의 품격을 갖춰야 하는데 나경원 의원은 원내대표 발언으로서 정치적 금도를 넘었다”며 “‘김정은 수석대변인’이나 ‘좌파 포로정권’과 같은 언어는 국회의원이 써서는 안 될 말”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다른 한편 민주당의 반응도 도저히 지켜볼 수 없을 정도로 한심했다”고 했다. 반면 한국당은 민주당의 비판이 ‘적반하장’이라며 되받아치면서 민주당 이 대표와 홍 원내대표를 연설 방해 혐의로 국회 윤리위에 맞제소했다. 황교안 대표는 의원총회에서 “야당 원내대표가 교섭단체 대표 연설을 하는데 (여당 의원들이) 단상으로 뛰어가 아우성을 쳤다”며 “국회가 과거 독재 시절로 회귀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정말 놀랐다. 좌파독재 정권의 의회 장악 폭거”라고 했다. 당사자인 나 원내대표는 자신을 민주당이 국가원수 모독죄라고 비판한 것은 “국민에 대한 모독이자 왜 좌파독재인지 스스로 고백한 것”이라고 맞받았다. 그는 원내대표·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서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고 한 김영삼 전 대통령의 발언을 인용하면서 “정권이 아무리 국민의 목소리를 틀어막아도 국민의 분노는 분출되기 시작할 것”이라고 했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조선인 손으로 만든 ‘장화홍련전’… 첫 상업영화 시대 열다

    조선인 손으로 만든 ‘장화홍련전’… 첫 상업영화 시대 열다

    1920년대 전반, 드디어 조선 영화는 무성영화 시대의 막을 올렸다. 연쇄극 ‘의리적 구토’로 조선 영화의 첫발을 뗀 1919년부터 조선 무성영화의 대표작 ‘아리랑’이 개봉한 1926년 이전의 시기, 조선 영화계는 어떤 영화들을 만들면서 무성영화 시대를 개척해 갔을까. 주목할 부분은 식민지와 제국 구도에서 조선인들만으로 자유롭게 영화를 만들 수는 없었다는 사실이다. 일제강점 아래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당국의 정책뿐 아니라 재조선 일본인의 자본과 끊임없이 협상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물론 조선인 관객들을 위한 영화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역할은, 조선의 이야기를 다루는 조선인 감독의 연출과 조선 사람을 연기하는 조선인 배우들의 연기였다. 이 지점이 조선의 무성영화가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이었던 셈이다. 최초의 극영화 ‘월하의 맹서’(1923), 일본인 흥행사가 제작한 최초의 상업영화 ‘춘향전’(1923), 조선 영화인들의 손으로 제작된 ‘장화홍련전’(1924) 등의 작품을 통해 당시의 무성영화 제작 현장을 살펴보도록 한다.●조선인이 감독한 최초의 극영화 ‘월하의 맹서’ 1923년에 공개된 ‘월하의 맹서’는 온전한 극영화의 형식을 갖춘 최초의 작품으로 평가된다. 이 영화의 의미는 크게 두 가지다. 야외의 활극 장면만 영화로 표현했던 이전의 연쇄극과 달리, 기승전결의 스토리를 모두 필름 촬영으로 소화한 극영화라는 점 그리고 각본, 감독, 출연 모두 조선인의 손으로 이뤄낸 점이다. 당시 언론인이자 연극인으로 활동했던 윤백남(1888~1954)이 각본과 감독을 맡았고, 그가 이끌어 온 민중극단의 단원 이월화, 권일청, 문수일, 송해천 등이 출연했다. 신파극 무대에서 활약하던 이월화(1904~1933)는 이 영화를 통해 조선 영화 최초의 스타 여배우로 등극한다. 한편 영화 매체를 성립시키는 기술 파트까지 조선인이 해결하기는 힘들었는데, 촬영과 편집은 일본인 오타 히토시가 맡았다. 사실 이 영화는 영화관에서 개봉한 극영화가 아니라 조선총독부 체신국이 저축 장려를 목적으로 제작한 계몽영화였다. 다시 말해 영화관용 상업영화가 아니라 당국의 선전영화였다. 1923년 4월 9일 경성호텔에서 처음 상영했고, 이후 순회영사로 각 지역에서 공개되었다. 당시 매일신보 기사는 ‘월하의 맹서’의 분량을 ‘전 2권’, ‘2천척의 긴 사진’으로 기록하는데, 이를 상영시간으로 환산해 보면 33분 정도에 해당한다. 중편 길이의 영화였던 것이다. ‘월하의 맹서’ 제작 과정에서 볼 수 있듯이, 조선의 무성영화는 자본과 기술의 제공, 연출과 배우의 역할이 분리되어 시작될 수밖에 없었다. 영화 제작은 무엇보다 큰 자본이 필요한 작업이고 촬영, 현상 등의 근본적인 기술이 해결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반면 조선인 관객을 대상으로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각본, 연출 그리고 출연 영역에서 조선 영화인들의 역할이 반드시 필요했다. 이렇게 조선 무성영화는 첫발을 뗐다.‘월하의 맹서’ 공개 이전에도, 일본인 영화제작사가 만든 ‘국경’(1923)이 상영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나리키요 다케마쓰 등 재조선 일본인을 중심으로 한 극동영화구락부가 제작한 영화로, 촬영은 일본에서 온 나리키요 에이가 담당했다. 물론 출연은 박순일 등 조선인 배우들이 맡았다. 이 영화는 중국 국경 지대의 마적을 토벌하는 일본국경수비대의 활약을 묘사한 내용으로 전해진다. 흥미로운 점은 1923년 1월 13일 단성사에서 개봉한 첫날, 조선인 학생들의 야유로 영화 상영이 중단되었고, 이후 다시 상영되지 못한 것이다. 당시 ‘조선공론’의 문예담당 기자 마쓰모토 데루카가 “아무리 영화가 형편없는 것일지라도 직접적인 야유를 보내 중지시키는 것은 심히 좋지 않은 일이다”고 기록한 것에서, 조선인 관객들의 과격한 반응을 어느 정도 짐작해 볼 수 있다. ●학생들 야유로 하루 만에 상영 중단된 ‘국경’ 이 영화의 상영이 하루 만에 중단된 사정을 현재로서는 자세히 파악할 수 없지만, 당시 조선인 관객들이 모욕감을 느꼈던 것이 결정적인 이유로 알려진다. 조심스러운 추정이지만, 조선인 관객들의 입장에서는 영화에 등장하는 마적들이 만주에서 활약하던 무장독립군들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을까. 결론적으로 관객과 만나지 못한 ‘국경’은 상업영화로서 실패했지만, 조선인 관객들이 영화를 거부한 사건으로 영화사 기록에 남게 되었다. 조선 영화계가 본격적인 상업영화의 시대를 연 것은 일본인 흥행사 하야카와 마스타로가 설립한 동아문화협회의 ‘춘향전’(1923) 그리고 조선인 영화관 단성사가 영화제작을 위해 설립한 촬영부의 ‘장화홍련전’(1924)이 등장하면서이다. 하야카와는 1913년 경성의 일본인 거리에 고가네칸을 설립하며 조선 흥행계에 뛰어든 인물이다. 그는 조선부업공진회 개최에 맞춰 고전 소설 ‘춘향전’의 영화화를 추진하며, 하야카와 고슈라는 이름으로 직접 연출까지 나섰다. 영화는 전북 남원 현지에서 로케이션 촬영을 진행했고, 조선인 관객들을 위해 당대 최고의 인기 변사 김조성이 이몽룡으로, 기생 한명옥이 춘향으로 출연했다. 하지만 동아문화협회의 간부였던 김조성이 배우의 역할로만 머물지 않았을 것이다. 일본인 자본주가 감독에 나선 작품이지만, 조선 고전의 각색과 연출 과정에서 조선인 관객들의 취향을 파악하고 있던 그의 존재가 반드시 필요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완성된 ‘춘향전’은 조선부업공진회가 개최된 1923년 10월 5일 서울 단성사에서 개봉해 조선인 관객들의 큰 관심을 받았고, 18일부터 전북 군산의 군산좌에서, 21일부터 공진회 내의 활동사진관에서 연이어 상영되었다. 이 작품은 조선의 영화관에서 상영된 최초의 상업영화로 평가할 수 있다. 이후 하야카와는 ‘춘향전’의 성공을 기반으로 1924년 7월 인사동의 조선인 상설관 조선극장을 인수해 단성사의 라이벌로 나섰다.●‘장화홍련전’ 흥행에 日 ‘춘향전’ 재개봉 응수 당시 ‘춘향전’은 “이건 한 개의 슬라이드지, 영화에 대한 몽타주가 아무것도 없다”고 평가받기도 했다. 이러한 기술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조선인 관객들의 큰 호응을 얻고 흥행에 성공하자, 조선 영화계는 크게 두 가지 반응을 보였다. 첫 번째는 조선 흥행계의 유일한 조선인 경영자였던 박승필 역시 단성사에 촬영부를 만들고 조선 영화인들의 손으로 만든 ‘장화홍련전’으로 응수한 것이다. 두 번째는 극장 자본이 주도한 영화제작을 넘어 본격적인 영화사 설립이 추동된 점이다. 바로 부산에 설립된 조선키네마주식회사였다. 조선인 주도의 영화 제작은 바로 이듬해에 이어졌다. 하야카와의 행보에 자극 받은 단성사의 박승필이 1924년 7월 단성사 내에 촬영부를 설치하고, 역시 고전 소설인 ‘장화홍련전’을 극영화로 제작했다. 배우는 장화와 홍련 역에 기생 김옥희와 김운자, 원님 역에 인기 변사 우정식을 출연시켰다. 앞선 ‘춘향전’의 성공 요인을 기반으로 삼은 것이다. 하지만 이쪽은 연출 인력이 보강되었다. 각색은 단성사의 변사로 유명한 김영환이, 감독은 우미관 출신의 영사기사로 단성사의 전체 운영을 맡고 있었던 박정현이 나섰다. 훗날 감독이 되는 이구영도 당시 단성사 직원으로 각본과 연출에 관여했다는 기록이 있다. 사실 무성영화 현장은 지금의 프로듀서와 감독처럼 그 역할이 엄밀히 구분되지 않았던 시기였다. 가장 주목할 부분은 촬영 역시 조선인이 맡았다는 점이다. 조선 최초의 촬영기사로 기록되는 이필우(1897~1978)가 이 영화로 데뷔하게 된다. ‘장화홍련전’의 영화사적 의미는 제작, 연출, 출연 그리고 초창기 영화매체의 가장 중요한 성립 조건인 기술에서도 전부 조선인의 손으로 이루어진 점이다. “경성 천지의 키네마 팬이 한결같이 손꼽아 기다리던” ‘장화홍련전’이 1924년 9월 5일 단성사에서 개봉하자 조선에 영화상설관이 생긴 이후로 처음 맞는 대성황을 이뤘고, 이에 하야카와의 조선극장은 ‘춘향전’의 재개봉으로 응수한다. 이후 동아문화협회는 하야카와가 다시 감독으로 나선 ‘비련의 곡’(1924), 김조성이 감독으로 나선 ‘흥부놀부전’(1925)을 조선극장에서 개봉한 후, 경영난으로 해산했다. ●무성영화 개척해 간 조선영화인들 초창기 조선 영화계에서 극장의 산하가 아닌, 영화제작사로 처음 등장한 조직은 조선키네마주식회사다. 1924년 7월 11일 일본인 사업가들에 의해 부산에서 설립됐다. 촬영소는 복병산에 있던 러시아 영사관 건물을 임대해서 사용했고, 회사의 중심인물은 부산 묘각사 주지였던 승려 다카사 간초였다. 그는 왕필렬이라는 조선 이름으로 회사 창립작 ‘해의 비곡’(1924)과 원제가 ‘암광’이었던 ‘신의 장’(1925), ‘동네의 호걸’(1925)을 직접 연출했다. 촬영기사는 작품마다 일본에서 불러왔다. 동아문화협회에서 김조성의 역할처럼, 조선키네마주식회사에서도 조선 영화인의 역할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훗날 무성영화 감독으로 이름을 날리는 이경손, 안종화 등 당시 무대예술연구회 단원들이 합류했기 때문이다. ‘해의 비곡’의 경우 안종화, 이월화, 이채전 등 조선인 배우들이 출연했을 뿐만 아니라, 이경손이 조감독을 맡았다. 실질적인 감독 역할이었다. 규모를 키운 2회작 ‘운영전’에서는 ‘월하의 맹서’를 연출한 윤백남이 감독으로 초빙되었다. 조선키네마 역시 조선 영화인들의 적극적인 가담으로 제작이 진행되었다. 한편 무성영화의 스타 나운규가 조선키네마의 연구생이던 당시 ‘운영전’에서 처음 단역으로 출연하기도 했다.1923년부터 1925년까지의 무성영화 전기에 모두 12편의 조선 영화가 제작되었다. 1923년 2편, 1924년 3편, 1925년 7편이다. 이 작품들 중 다수는 일본인 제작자가 만들고 연출도 겸했다. 그리고 그 제작 현장에서 조선인 감독과 기술 스태프들이 성장했다. 다른 한편으로 단성사가 제작한 ‘장화홍련전’처럼 연출과 출연은 물론이고, 조선인 촬영기사가 전면에 나선 작품도 있었다. 이처럼 무성영화 시기, 제작, 연출 그리고 촬영 등의 기술 파트에서 일본인과 조선 영화인이 만들어내는 도제, 경합, 협업 등의 관계가 역동적으로 펼쳐지고 있었다. 정종화 한국영상자료원 선임연구원
  • 슈돌 장범준♥송승아, 21살에 혼전임신 “혹시나 해서 병원 갔는데..”

    슈돌 장범준♥송승아, 21살에 혼전임신 “혹시나 해서 병원 갔는데..”

    ‘슈돌’ 장범준♥송승아 부부가 혼전임신을 언급해 눈길을 끌었다. 장범준♥송승아 부부는 10일 방송된 KBS2 예능프로그램 ‘해피선데이-슈퍼맨이 돌아왔다(슈돌)’에 출연했다. 이날 두 사람은 지인의 소개를 통해 처음 만나게 됐다고 밝혔다. 두 번째 만남에서 바로 송승아에게 사귀자고 고백했다는 장범준은 “급하게 말해서 차였다”고 말했다. 송승아는 “그 이후에 어떤 사람인가 싶어서 노래를 찾아들었다. 노래를 듣고 선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마음이 넘어갔다”며 장범준의 마음을 받아들이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앞서 장범준 송승아 부부는 다소 이른 나이의 결혼과 혼전임신으로 화제를 모았다. 두 사람은 지난 2014년 4월 결혼해 같은 해 7월 딸 조아 양을 품에 안았다. 당시 장범준의 나이는 25세, 송승아의 나이는 21세였다. 송승아는 혼전임신에 대해 “귤이 자꾸 먹고 싶어서 혹시나 했다. 병원에 갔더니 맞다고 하더라”며 “잘 사는 모습을 보여드리면 될 것 같았다. 잘 살아야겠다 싶었다”고 밝혔다. 이어 “조아는 태어났을 때 완전 장범준이었다. 사람들이 이름표 안 봐도 ‘쟤가 장범준 딸이구나’하며 다 알았다고 한다”고 덧붙였다. 장범준은 “조아가 (우리의) 예쁜 점을 많이 닮았다. 이마는 예쁜 엄마를 닮았고, 뒤통수는 제가 예쁜데 절 닮았다”고 애정을 드러냈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사설] 양극화·고용부진 속 빛바랜 3만 달러 시대 진입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지난해 3만 달러를 돌파했다. 한국은행이 어제 발표한 ‘2018년 연간 국민소득´에 따르면 지난해 1인당 GNI는 3만 1349달러로 전년보다 5.4% 늘었다. 인구가 5000만명 이상이면서 국민소득 3만 달러를 웃도는 나라가 미국과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 이탈리아 6개국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놀라운 성취다. 하지만 선진국에 진입했다며 축포를 터뜨리기엔 찜찜한 구석이 적지 않다. 갈수록 심화하는 고용부진과 소득 양극화 탓에 3만 달러 시대를 체감하는 국민이 과연 얼마나 될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GNI는 기업소득과 정부소득도 합산되기 때문에 전체 수치가 아무리 높아도 가계소득이 따라주지 못하면 국민에겐 빛 좋은 개살구가 된다. 실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를 보면 2017년 기준 우리나라 GNI 가운데 가계 몫은 61.3%에 불과하다. 양극화가 심하다는 미국도 79%(2016년 기준)이고 선진국 대부분 가계 몫이 70%를 넘는다. 문재인 대통령도 올 초 신년사에서 “GDP 대비 기업소득 비중은 높아졌지만, 가계소득 비중은 낮아졌다”며 불평등이 극심하다”고 진단한 바 있다. 이를 개선하려면 기업들이 이익을 사내유보금으로 쌓아 둘 게 아니라 적극적인 투자로 일자리를 만들어 가계와 이익을 나눠야 한다. 정부도 수십조원의 초과세수를 적극적으로 풀어 이전소득 등으로 가계에 흘러들게 해야 한다. 이것이 고용부진과 소득 양극화도 개선하는 방안이다. 지난해 소득 5분위는 1분위보다 5.47배를 더 벌어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격차가 가장 크게 벌어졌다. 이 현상을 방치하면 3만 달러를 넘어 4만, 5만 달러 시대를 연들 체감층은 소득 상위층으로 제한된다. 소득 양극화는 고용 문제와 직결된다. 정부는 고용 참사를 타개하기 위해 공공부문 채용을 대거 늘리는 손쉬운 수단에 매몰된 듯싶다. 이는 지난해 ‘단기 알바’ 사례처럼 일시적인 효과만 낸다. 근본적이고 장기적 관점에서 재검토가 필요하다. 우리 경제가 12년 만에 3만 달러 문턱을 넘었지만, 4만 달러 고지를 향하는 길은 더욱 험난해 보인다. 반도체와 자동차, 조선 등 주력 산업의 엔진이 식어 가는데 새로운 먹거리는 보이지 않는다. 결국 정부 역할이 중요하다. 산업 구조조정을 통한 경쟁력 제고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말로만 혁신성장을 내세울 게 아니라 기업 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한 제도적 기반 마련에 모든 힘을 기울여야 한다. 가장 먼저 기업인들이 이구동성으로 비판하는 과도한 규제부터 완화가 아니라 파괴한다는 자세로 손질하기를 바란다.
  • 푸틴 ‘중거리 핵전력 조약 이행중단’ 대통령령에 서명

    푸틴 ‘중거리 핵전력 조약 이행중단’ 대통령령에 서명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4일(현지시간) 냉전시절 미국과 체결한 ‘중거리 핵전력 조약’(INF) 이행 중단을 지시하는 대통령령에 서명했다고 크렘린궁이 밝혔다. 푸틴 대통령은 이미 지난달 2일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과 면담하면서 “우리의 답은 대칭적으로 될 것이다. 미국 파트너들이 (INF)조약 참여를 중단한다고 했고 이에 우리도 참여를 중단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날 대통령령 서명은 INF 조약 이행 중단 선언을 공식화한 것이다. 이에 앞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지난달 1일 브리핑을 통해 “러시아가 (INF)협정 준수로 복귀하지 않으면 조약은 종결될 것”이라면서 미국의 INF 이행 중단과 6개월 후 탈퇴를 선언했다. 1987년 12월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지도자가 체결한 INF는 사거리 500~1000㎞의 단거리와 1000~5500㎞의 중거리 지상 발사 탄도·순항미사일의 생산과 시험, 배치를 전면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냉전 시대 미·소 군비경쟁을 종식하는 토대가 된 조약으로 평가받는다. 미국과 러시아의 조약 이행 중단 선언으로 INF는 폐기 수순을 밟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내 아버지 죽이지 않았다” 19년의 절규 그날의 진실은

    “내 아버지 죽이지 않았다” 19년의 절규 그날의 진실은

    아버지를 살해한 혐의를 받는 무기수 김신혜(42·여)씨에 대한 재심 첫 재판이 오는 6일 오후 4시 광주지법 해남지원 제1호 법정에서 비공개로 진행된다. 대법원은 재심을 지난해 9월 확정했다. 수사 과정에서 몇 가지 위법성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법 역사상 장기복역 중인 무기수에 대한 재심 확정은 처음이다. 재판부의 정당한 판결이었는지, 억울한 옥살이인지 친아버지 살해범으로 복역해 온 김씨에 대해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당초 지난해 10월 시작될 예정이었으나 김씨 측의 관할법원 이송 신청 등으로 연기됐다. 김씨는 현재 전남 장흥교도소에 복역 중이다. 2000년 용의자로 수사를 받을 때부터 줄곧 자신은 아버지를 살해하지 않았다고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교도소 수감 후 지금까지 모든 노역을 거부하고 있다. 노역을 하면 죄를 인정하는 셈이어서 무죄라는 것을 끝까지 밝히기 위해서다. 다시 법정에서 가려질 그날의 진실은 무엇일까.사건은 20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3월 7일 오전 5시 50분쯤 전남 완도군 정도리 외딴 버스정류장 앞 눈발이 내리는 도로에서 김재운(당시 53·완도읍 항동리)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더구나 3급 지체장애인이라 다리를 심하게 절 정도로 혼자 움직이기 어려운데도 자신의 집과 7㎞ 떨어진 지점이라 일부에선 의심하는 눈초리를 보냈다. 사고 현장에는 부서진 승용차 라이트 조각이 흩어져 있었고 시신이 도로 위에서 발견돼 처음엔 뺑소니 교통사고로 여겨졌다. 하지만 교통사고를 당한 사람치고는 외상의 흔적이나 출혈이 없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부검 결과 시신에서 혈중알코올농도 0.303%와 함께 수면유도제 성분인 독실아민이 13.02㎍/ml 검출됐다. 경찰은 누군가 수면유도제와 술을 이용해 살해한 후 시신을 유기한 것으로 보고 수사에 착수했다. 이틀 뒤인 3월 9일 오전 12시 10분쯤 용의자로 당시 23세였던 큰딸 김신혜를 전격 체포했다. 경찰은 아버지를 살해한 동기를 성추행이라고 봤다. 사건이 발생하기 2개월 전인 2000년 1월 김신혜의 이복 여동생이 아버지 김씨에게 성폭행을 당한 일이 있었는데 그 말을 들은 김신혜가 자신도 중학생 시절 아버지에게서 성추행을 당한 것을 떠올리고 범행을 결심했다는 것이다. 사망 보험금도 큰 이유였다. 김신혜가 아버지 명의로 8개의 상해보험에 가입한 사실을 이유로 들었다. 경찰에 따르면 김신혜는 아버지 보험금을 노리고 이날 새벽 1시 어렸을 때부터 자신을 성추행한 아버지에게 수면유도제 30알이 든 술을 ‘간에 좋은 약’이라며 마시게 한 후 함께 드라이브를 했다. 운전 중 정신을 잃고 쓰러지자 버스 정류장 앞 도로에 숨진 아버지를 내려놓은 뒤 교통사고처럼 꾸며 현장을 떠났다. 김신혜 고모부가 경찰에 진술했던 “여동생을 성추행한 아버지에게 앙심을 품고 살해했다는 김신혜의 자백을 들었다”고 밝힌 내용도 주요 증거로 삼았다. 김신혜가 오래전부터 아버지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데 앙심을 품고 보험금을 얻을 목적으로 저지른 존속 살인으로 결론을 내렸다. 2001년 대법원은 아버지를 살해한 후 사체를 유기한 혐의를 유죄로 인정한 1심과 2심 선고 형량인 ‘무기징역’을 확정했다. 친부를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 무기수 김신혜는 사건과 전혀 무관하다고 주장한다. 아버지가 성추행한 사실도 없다고 했다. 경찰 조사 당시 김신혜는 친척 어른인 고모부가 아버지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해야 정상참작으로 풀려날 수 있다고 강요를 받았다고 했다. 연극 생활을 하면서 서울에 살던 김신혜는 사건 발생 전날인 3월 6일 오후 6시쯤 렌터카를 타고 고향 완도로 내려갔다. 잠시 머물던 남동생(당시 19세)을 데리고 올라가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금세 용의자로 지목돼 폭행, 폭언 등 자백을 강요하는 강압수사를 받았고, 고모부에게 살인을 자백한 적도 없다고 했다. 3월 8일 밤 11시 20분쯤 고모부가 자신을 불러 남동생이 아버지를 죽인 것 같은데 네가 자백하지 않으면 남동생이 감옥 간다고 으름장을 놓는 바람에 허위로 자백했을 뿐이라고 호소했다. 보험도 3개는 이미 해지된 상태였다. 범행 도구인 수면유도제와 양주 등의 물증도 일절 발견되지 않았다. 그가 수면제를 갈 때 사용했다고 진술한 행주와 밥그릇에서도 수면제 성분은 검출되지 않았다. 김신혜에 따르면 경찰이 종이 한 장을 내놓더니 자신의 손가락에 인주를 묻혀 억지로 잡아 지장을 찍고, 서명을 하라고 닦달할 때도 머리와 뺨 등을 때렸다고 했다. 주민들에게 직접 탄원서를 받으며 구명운동을 했던 김신혜 할아버지 김정길(당시 86)씨는 사건 이후 친척들 도움을 멀리한 채 손수 시장을 봐 음식을 차려 먹으며 ‘억울해서 어떻게 눈을 감냐’ 며 통곡을 하다 2017년 가을 결국 눈을 감았다. 마을 사람들은 김신혜를 예쁘고 아주 착한 아이로 기억했다. 어렸을 때 부모가 선술집을 했는데 손님이 많았다. 다리가 불편한 아버지가 의처증이 있으면서 폭력을 행사하곤 해 엄마가 집을 나가버렸다. 아버지는 다시 결혼해 1남 1녀를 낳았다. 김신혜는 동생들 공부를 시키고 정성스럽게 챙기는 등 가장 노릇을 다했다고 얘기한다. 최병정(70·완도읍 정도리) 전 이장은 “숨진 김씨와는 중학교 동창으로 아이들을 잘 안다”고 되뇌었다. 이어 “예쁘기도 하지만 아주 상냥하던 신혜가 범행했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최씨는 “재판을 다시 받는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잘됐으면 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고 했다. 바로 이웃에 살고 있는 이규병(70)씨는 “마을에선 이구동성으로 공부도 잘하는 순하기만 한 아이로 안다”고 설명했다. 또 “신혜가 배우 황신혜처럼 예뻐 연예계 활동도 많이 했는데 이복동생 둘을 모두 살뜰히 챙긴 점을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씨는 아버지 장례식장에서 울던 김신혜를 떠올렸다. “사람이라면 통하는 게 있잖아요. 진짜인가 가짜인가. 거짓말로 나를 속이고 가짜로 우는가. 그런데 날 삼촌이라고 부르며 진심으로 하소연한 게 딱 직감이 오더라. 그럴 애가 아니라는 확신을 가졌지.” 김신혜는 재심 결정 이후 변호인을 바꿨다. 원래 참여했던 박준영 변호사 등 기존 변호인을 모두 해임했다. 지난 1월 새로 선임된 대한변호사협회 김학자(52) 인권이사는 “석방 상태에서 재심을 받을 수 있도록 법원에 형집행정지를 신청했고, 국가인권위원회도 지난달 초 불구속 재판을 권고 사항으로 내렸다. 적절한 방어권를 위해서라도 현명한 판단을 내리길 새 재판부에 기대한다”며 입을 앙다물었다. 완도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