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이구
    2026-06-21
    검색기록 지우기
  • 출국
    2026-06-21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4,667
  • [★들에게 물어봐] 뮤지컬배우서 영화로 박건형 인터뷰

    [★들에게 물어봐] 뮤지컬배우서 영화로 박건형 인터뷰

    ‘춤 잘 추는 뮤지컬배우’로 박건형(28)을 기억하는 이들에게 영화 ‘댄서의 순정’은 실망스러울지 모른다.‘토요일밤의 열기’에서 보여준 것 같은 멋진 춤 장면은 거의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그에게서 춤 이외의 다른 모습을 보고 싶어한 팬들이라면 충분히 기대해도 좋다. 겉으로는 툴툴대지만 누구보다 따뜻한 가슴을 지닌 남자의 내면을 섬세하게 표현할 줄 아는 ‘연기자’ 박건형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춤이 주가 되는 배역이라면 아마 사양했을 거예요. 춤보다 드라마가 강한 역할이라는 점에 끌렸어요.” 그가 연기한 영새는 한때 전도유망한 스포츠댄스선수였으나 경쟁자에게 파트너를 빼앗긴 뒤 실의에 젖어지내는 청년. 우연찮게 스무살 옌볜 소녀 채린(문근영)을 만나면서 춤과 사랑에 대한 열정을 다시 회복하는 인물이다. 기본 스텝조차 밟지 못하는 채린에게 차차차, 룸바, 삼바 등 고난이도의 라틴댄스를 전수해야 하는 트레이너 역할을 소화하기 위해 그는 3개월동안 하루 10시간씩 맹연습을 했다. 아무리 뮤지컬무대에서 갈고닦은 춤솜씨라고 해도 스텝이나 손동작 하나하나의 스타일이 다른 만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기분으로 춤을 배웠다. 그는 “뮤지컬 경험이 도움이 될 줄 알았는데 오히려 방해가 되더라. 마치 킥복싱 선수가 복싱을 할 때 발이 먼저 나오는 것처럼 기존의 습성들이 나도 모르게 나와 힘들었다.”고 말했다. 춤 못지않게 힘들었던 건 문근영과의 멜로 연기. 성인들의 로맨스가 아니다 보니 수위조절하기가 만만치 않았단다.“근영이가 처음 해보는 멜로연기에 부담을 많이 갖더라고요. 그런데 사랑은 옆에서 누가 가르쳐준다고 되는 게 아니잖아요. 촬영전에 감독님이랑 셋이 마주 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자주 했지만 결국 스스로 깨달아야 하는 건데 어느 순간 그런 느낌이 나오더군요.” 지난해 개봉한 이규형 감독의 ‘DMZ 비무장지대’에 이어 이번이 두번째 영화다. 차이가 있냐고 물으니 얼굴 가득 장난스러운 미소가 번진다.“아이구, 말도 마세요. 현장 분위기부터 하늘과 땅 차이지요.‘DMZ‘는 거의 야산에서 촬영하고, 촬영장에 남자들만 바글거려 살벌했는데,‘댄서의 순정’은 근영이만 나타나면 분위기가 어쩜 그렇게 화기애애한지…(웃음).” 일단 무대에 오르면 처음부터 끝까지 밀고가야 하는 뮤지컬에 비해 영화는 그때그때 흐름을 잘 파악하는 순발력이 우선이다. 두편의 작품을 통해 그는 영화라는 매체가 지닌 매력에 점차 빠져들고 있다고 했다. 그는 스스로 “복이 많다.”고 말한다. 보잘것없는 자신에게서 가능성을 발견하고 이끌어준 은인들이 아니었다면 이 자리에 올 수 있었을까 싶다. 그중에서도 ‘토요일밤의 열기’의 연출자 윤석화와 이규형 감독에게 늘 고마운 마음이다. 연기자로서의 욕심은 크지만 스타가 되고 싶은 욕망은 없다. 때문에 남보다 뒤처진다고 조급해하지도, 앞서간다고 우쭐해하지도 않는다.“지금 그리는 그림이 낙서가 될지, 명화가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잖아요. 지금은 그저 열심히 하는 길밖에는 정답이 없는 것 같아요.”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고성&아산, 충무공 구령맞춰 야야호호

    고성&아산, 충무공 구령맞춰 야야호호

    변함없이 충무공 이순신 장군은 존경받는 위인이다. 온갖 시련을 겪고 풍전등화의 조국을 구한 영웅으로, 세계 최초의 철갑선 거북선을 고안한 발명가로, 어린이들의 영원한 우상이자 어른들도 전략가로서 공의 리더십을 본받고자 한다. 독도와 역사왜곡 등 일본의 도발로 민족의 감정이 상한 요즘, 공의 나라사랑에 새삼스럽게 옷깃을 여미게 된다.28일은 충무공 탄신 460주년 기념일. 충남 아산과 경남 고성의 당항포 등 전국에서는 다채로운 행사를 준비했다. 어린이에겐 역사체험과 한민족 자긍심을 심어주기에도 좋다. 왜적을 수장시킨 공의 발자취를 따라 아산과 당항포로 떠나보자. 고성 이기철기자 chuli@seoul.co.kr 사진 김명국기자 daunso@seoul.co.kr 아산 글 사진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고성 고성읍에서 14번 국도를 따라 10여분 가면 나오는 곳이 배둔. 여기서 오른쪽으로 4㎞쯤 가면 당항포가 나온다. 현지 노인들은 당항포보다 ‘속싯개’로 더 많이 부른다. 꼬불꼬불한 들길과 야트막한 산을 넘어 언뜻언뜻 파란 바다가 길게 보인다. 국민관광지란 이정표가 잘 돼 있어 길 잃을 염려는 없다. 마산에서 같은 국도로 오면 30여분 걸린다. 햇살에 힘이 느껴질 만큼 봄볕이 짙다. 아지랑이처럼 흐릿한, 강인듯 싶은 좁고 긴 S자형 해안선이 따라온다. 차창을 열었다. 시원한 바닷바람에 청량감이 든다. 바다와 거의 같은 높이의 도로여서 찰랑거리는 물살소리도 들린다. 건너편의 거류산도 녹음이 벌써 짙어진다. 겨울철이면 ‘국민마라토너’ 이봉주가 내려와 훈련하는 곳도 보인다. 당항포 드라이브 코스가 절경이다. 4월 중순 어느날, 마침 고성 은혜어린이집 어린이 40여명이 실물 크기의 거북선에서 현장체험 학습 중이었다. 인솔 교사 황실씨가 “이게 뭐예요?”라고 묻자 어린이들은 “거북선요.”라고 일제히 답한다.“누가 만들었죠?”,“이신순장군요.” 어린이들이 거북선 안으로 들어가 노를 젓는가 하면 함포를 발사하기도 했다.“이순신 장군이 거북선을 왜 만들었죠?”라고 묻자 “나쁜 사람들 혼내주려고요, 일본을 무찌르려고요.”라고 병아리처럼 입을 모았다.“심심해서요”라는 엉뚱한 답도 나왔다. 충무공의 영정과 위패를 모신 숭충사와 함께 전승기념탑도 있다. 충무공 이순신이 이곳에서 왜적을 2차례 격파,57척을 수장시킨 곳이다. 임진왜란이 발발한 1592년엔 26척 가운데 25척을 격파했다. 왜적들이 상륙해 민간인을 해칠 것을 우려해 1척을 남겨두고 철수하는 척했다. 다음날 왜적 100여명을 싣고 철수하는 마지막 왜선마저 수장시켰다.2년 뒤인 1594년에도 도망치던 왜선 31척을 격파했다. 충무공이 유일하게 2차례 출전, 크게 이긴 대첩지이다. 당항포 해전의 승리에는 흥미로운 설화가 전한다.‘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전하는 기생 월이의 설화다. 대대적인 침공을 앞두고 일본은 밀정을 급파, 조선의 지도를 그려 오게 했다. 이를 눈치챈 무기정의 기생 월이가 밀정을 술에 곤드레만드레 취하게 한 다음 당항만이 바다로 연결되는 것처럼 지도를 조작했다는 것. 실제로 진해만쪽에서 보면 바다로 연결될 것처럼 길게 이어졌다. 이후 왜군을 속였다 해서 당항포를 ‘속싯개’로 부른다. 관과 민이 혼연일체가 된 셈이다. 해전관에는 이같은 설화와 해전 당시의 전략 등을 영상을 소개하고 있다. 또 지구의 역사와 생명의 진화, 조류 및 파충류 등의 자료 1700여점을 전시한 자연사관도 어린이들의 학습 공간으로 손색이 없다. 가장 특이한 것은 국내 유일의 자연석 조각공원인 수석 전시관. 세계에서 수집한 자연석이 모두 630여점이 있지만 현재 280여점이 전시되고 있다. 이런 만큼 주민들이 먼저 기념사업회를 결성하는 등 당항포에 대한 자부심이 높다. 긍지가 생길 일이 하나 더 있다. 내년 4월14일부터 6월4일까지 고성공룡엑스포가 열리기 때문이다. 당항포는 상족암만큼은 아니지만 공룡발자국 화석이 심심찮게 발견된 곳이다. 인구 5만∼6만의 조그만한 군단위에서 세계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여 자부심이 더욱 높다. 당항포의 입장료 어른 4000원, 어린이 1000원, 주차료 별도. 고성군관광지관리사업소(055-670-2801). 이밖에도 와룡산 향로봉 중턱의 운흥사는 충무공이 승병을 지휘하던 사명대사와 수륙 양동작전 논의차 세번이나 방문하기도 했다.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가 창건한 천년고찰이다.(055)835-8656. 경남 삼천포항에서 77번 지방도를 따라 10여분 들어가다 오른쪽으로 빠지면 상족암이다. 현지에선 ‘쌍발이’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당항포가 비교적 최근의 역사현장이라면 상족암은 ‘하늘이 열리’던 까마득한 선사 이전의 유적지다. 꼬불꼬불한 도로를 내려가면 바닷가 제전마을에 닿는다. 바닷가 자갈밭에 파도가 살랑거린다. 옆쪽에는 소나무 분재를 이고 있는 바위층이다. 바위층을 자세히 보니 모두 가로로 일정한 층을 이루고 있었다. 시대별로 형성된 흔적이다. 서재에 책이 켜켜이 쌓인 듯 지구의 역사를 기록한 지층이다. 공달용 공룡박물관 학예사는 “지구의 나이가 46억년인데 여기는 1억년 전의 지구의 모습을 기록하고 있는 ‘자연사박물관’”이라고 설명했다. 나무를 만든 산책로를 따라 걷다가 “저게, 공룡 발자국 화석”이라며 가리켰다. 자세히 보니 돌덩이가 둥글면서 움푹 꺼졌다. 조금 더 가니 마치 두 발로 걸은 듯이 발자국 화석이 길게 늘어섰다. 서울에서 새벽에 나섰다는 김상국(강남 청탑학원장)씨가 같이 온 자녀에게 “이게 공룡 발자국이야.”라며 설명했다. 아이들은 신기한 듯 자신의 발과 맞춰보다 공룡들의 이름을 들먹이곤 했다. 상족암 일대에는 이렇게 산재한 공룡 발자국 화석이 2100여개가 있다. 대표적인 공룡은 이구아노돈과 같은 조각류(발톱이 삼지창처럼 갈라진 공룡)와 브라키오사우루스와 같이 네 발로 걷는 용각류(목이 긴 초식공룡)다.2억∼6500만년 전에 지구를 지배했던 중생대 쥐라기와 백악기 공룡들이다. 지난해 11월 문을 연 공룡박물관에 들어갔다. 지붕 모양이 특이해서 물어보니 가장 많이 나타났던 공룡 이구아노돈의 몸체를 본떴단다. 진품 공룡 화석 4점을 비롯해 공룡화석 복제품 41점이 있다. 또 삼엽충, 물고기, 상어이빨 등 일반화석도 55종이 전시돼 있다. 공 학예사는 “지금부터 1억년 전인 공룡시대에는 지금은 바다와 산인 이곳이 거대한 호수였으며 공룡의 수도”라고 설명했다. 돌아오는 길에 생각하니 상족암의 진면목은 공룡발자국 화석도, 기암절벽도 아닌 ‘시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물관 입장료는 어른 3000원, 어린이 1500원. 고성공룡박물관(www.goseong.go.kr·055-670-2825). 공룡화석지에서 40여분이면 남해안 천혜의 조망지 문수암이다. 작은 사찰이지만 1400여년 전 의상대사가 세운 고찰이다. 절집은 볼품없다. 하지만 청담 대선사가 수도했던 도량으로 청담스님 사리탑이 안치돼 있다. 꼬불꼬불 산길을 오른 진짜 이유는 조망. 고성 토박이 이경균(42)씨는 “문수암은 남해안 최고의 조망지”라고 추켜세웠다. 왼쪽으론 통영까지 이어지는 고성반도의 산들이 첩첩이 겹쳤다가 구름 속으로 사라진다. 소나무 가지 사이로 보이는 오른쪽은 사량도·연화도·욕지도 등 큰 섬 사이에 올망졸망한 섬들, 징검다리같다. 쪽빛 바다가 호수인양 잠잠하다. 오가는 어선들도 한가하다. 문수암(055-672-0877). 이밖에도 울창한 숲과 계곡,10여개의 산봉우리가 연이은 연화산과 옥천사(055-670-2551), 소가야 왕릉인 송학동 고분군(055-670-2221) 등이 있다. ■ 여기도 가보세요 ●부안 ‘불멸의 이순신’ 세트 전북 부안 변산반도에 있는 KBS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세트장은 최근 관람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전라좌수영은 궁항, 왜군진지는 성천, 명군진지는 죽막, 조선군 진지는 위도 논금해수욕장, 선박들은 격포항에 각각 자리해 있다. 바다에는 판옥선과 거북선, 왜선, 명나라함 등 6척의 배를 볼 수 있다. 부안군 홈페이지(www.buan.go.kr)에서 드라마 촬영지 안내지도를 프린트해서 갖고 다니면 야외촬영장을 놓치지 않고 둘러볼 수 있다. 부안군청 문화관광과(063-580-4449). ●통영 한산도 ‘한산섬 달밝은 밤에/수루에 혼자 앉아 큰 칼 옆에 차고/깊은 시름 하는 차에/어디서 일성호가는 남의 애를 끊나니’경남 통영 한산도는 충무공의 고뇌를 느낄 수 있는 곳. 충무공 유적지(사적 113호)는 제승당 일원의 15만 9000평에 조성된 건물, 비석, 문화재, 광장, 조경물이 있다. 충렬사, 제승당, 수루, 한산정을 비롯하여 유허비 2기, 한글 유허비 1기, 통제사 송덕비 7기, 비각 5동과 5개문 등이 있다. 통영시 문화관광과(055-645-0101). ●남해 ‘노량해전승첩제’ 경남 남해군에서는 매년 이순신 장군의 노량해전 승첩을 기원하고 애국심을 고취하기 위해 충무공 노량해전승첩제를 연다.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하는 남해대교 등 남해의 경치를 감상하며 충무공의 얼을 기릴 수 있다. 남해대교를 건너 노량마을로 내려오면 충무공 이순신이 관음포에서 전사한 후 시신을 잠시 모셨던 충렬사와 바로 앞 바다에 떠 있는 실물 크기의 거북선이 있다. 남해 충렬사는 이순신 장군이 3개월간 묻혔던 자리에 아직도 가묘가 남아 있다. 남해군청 문화관광과(055-860-3228). ■ 아산 ●거북선 타고 왜군 격파 현장으로 ‘둥둥둥∼’ 힘찬 북소리가 울리자 충남 아산시 현충사 앞을 흐르는 곡교천에 400여년 전 이순신 장군이 왜군 적선 70여척을 격파했던 그 거북선이 힘찬 물살을 가르며 출현했다. 크기는 길이 4.5m, 너비 2m, 높이 1.8m로 실물의 7분의1로 축소됐지만 당시와 같은 위용을 뿜어냈다. 거북등 위로 뾰족하게 솟아난 창이며, 위용 넘치는 용머리는 주변 분위기를 압도했다. 28일부터 다음달 1일까지 ‘제 44회 성웅 이순신 축제’를 위해 모두 5척이 건조됐으며, 거북선에는 등에 만들어진 출입구를 통해 6명이 승선할 수 있다. 28일부터 충남중소기업센터 앞 곡교천에서 승선 체험이 가능하며, 곡교천 일대를 한 바퀴 도는 승선 체험료는 5000원이다. 축소 모형이어서 다소 비좁지만 직접 노를 저어 나아가는 승선 체험은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강 주변에는 이순신 장군과 조선 수병, 왜군 장수 복장을 한 사람들이 퍼포먼스를 벌여 왜군을 무찔렀던 전란 당시로 돌아간 듯 실감나게 만든다. 오디션을 통해 선출돼 축제기간 중 이순신 장군의 역할을 맡은 김한백(26·순천향대 연극영화과 4년)씨는 “최근 독도 영유권 문제와 역사왜곡 등 시기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때 거북선에 승선하면 전란 당시 승전의 쾌감을 다시 한번 맛볼 수 있다.”고 추천했다. 축제기간 저녁 7시부터 곡교천변 무대에서는 순천향대 학생들이 준비한 ‘한산섬 달밝은 밤에’라는 마당극이 열려 당시 군영 내 훈련과 순찰내용, 임진왜란 전투장면, 모함을 당하고 압송되는 광경 등이 연출된다. 인근에는 군영이 조성돼 당시 군영막사 내부를 볼 수 있으며, 거북선 조립체험과 탁본뜨기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도 마련된다. 곡교천변에 조성된 수천평의 유채꽃밭이 조성돼 강변을 따라 산책을 하면 봄기운도 흠뻑 느낄 수 있다. ●충무공의 발자취를 가슴에 담고 곡교천에서 10여분쯤 걸어 올라가면 이순신 장군의 영정이 모셔진 현충사를 만나게 된다. 개나리와 벚꽃 등 봄꽃이 활짝 피어 평일에도 가족단위 관람객들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현충사는 충무공이 1598년 노량해전에서 순국한지 108년이 지난 숙종 32년 사당을 세우고 현충사라는 이름을 내리면서 만들어졌다. 현충사 본전에는 이순신 장군의 영정을 모시고 있으며, 유물관에는 일생기록인 십경도와 국보 76호인 난중일기, 보물 326호 장검 등이 전시돼 있으며, 활터와 정려등, 경내등을 볼 수 있다. 유치원생인 아들과 현충사를 찾은 박상원(35·서울 영등포구)씨는 “충무공의 당시 활약상을 보고 나니 일본의 망언으로 쌓인 체증이 한꺼번에 내려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관람요금은 500원. 현충사 관리소(041-539-4600). 일반인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반드시 들러봐야 할 곳은 어라산에 있는 충무공 묘소(사적 112호). 현충사에서 서북쪽으로 9㎞ 거리에 있으며, 아산온천 방향으로 승용차로 10여분을 달리면 음봉면 삼거리에 위치해 있다. ■ 여기도 가보세요 아산은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들의 휴양을 겸한 나들이에도 손색이 없다. 세계 꽃식물원과 실내외 수영장을 갖춘 테마온천 아산 스파비스, 함상카페와 삽교호 놀이동산 등 놀거리와 즐길거리가 풍부하다. 지난해 문을 연 도고면 봉농리의 세계 꽃식물원(544-0746)은 사시사철 사람들에게 환한 웃음을 선사한다. 관람요금은 어른 6000원, 초등학생 4000원. 아산은 또 온양온천과 도고온천, 아산온천 등 온천 휴양도시로 유명하다. 이 가운데 최근 개발된 온천단지 아산온천 단지 내 아산 스파비스(539-2000)는 수영장 등 실내외 온천풀, 인삼탕 등 20여종의 이벤트 탕이 있다. 인근의 삽교천에는 또다른 재미가 있다. 밤이면 환하게 불을 밝히는 서해대교와 아산방조제가 한눈에 들어온다. 여기에 최근 문을 연 함상공원(363-6960)과 놀이공원(363-4589) 등은 한껏 재미를 북돋워준다. 함상공원에는 동양최대 군함테마파크로 상륙함과 구축함, 입체영상관이 있다. 어른 5000원, 초등생 4000원이다. ●여행정보 가는 길은 경부고속도로 천안IC에서 나와 1번 국도와 21번 국도를 번갈아 타면 시내로 들어갈 수 있으며, 서해안고속도로를 이용할 경우 서평택IC에서 아산호를 건너 39번 국도를 타면 된다. 버스는 강남 고속버스터미널에서 30분 간격으로 아산방면 버스가 있다. 아산시청 540-2221. 여행상품으로는 테마21(www.theme21.net)이 이순신 축제가 열리는 아산 당일 여행상품을 내놓았다.27일부터 5월1일까지 서울 덕수궁(시청 전철역 2번출구), 양재역 7번출구(서초구민회관앞)에서 매일 출발하며 도고세계꽃식물원과 아산 현충사의 행사를 관람하고, 아산 스파비스에서 온천욕을 한 후 서울로 돌아온다. 참가비 1인당 3만 9000원.549-9889.
  • [지금 지방에선] 경남 고성군 “공룡村으로 되돌아갑니다”

    [지금 지방에선] 경남 고성군 “공룡村으로 되돌아갑니다”

    1억년 전 사라진 공룡을 브랜드로 앞장세워 도약하려는 경남 고성군과 주민들의 노력이 치열하다. 지난 2000년부터 해마다 연 공룡나라축제가 올해도 이달 말부터 열리고, 내년 국내 최초의 자연사 엑스포로 열릴 공룡세계엑스포 준비로 전역이 ‘공룡천국’이다. 군 관문에 설치된 대형 공룡모형은 환한 불빛을 내며 고성을 찾는 방문객을 맞는다. 공룡축제와 내년 4월 국제 엑스포(2006 경남고성 공룡세계엑스포)를 앞두고 고성은 도처에 공룡 관련 시설물 건립이 한창이다. 고성을 공룡으로 처음 각인시킨 상족암 군립공원에는 지난해 8월 세계 최대의 공룡탑과 국내 유일의 공룡박물관이 건립돼 탐방객들을 맞고 있다. 이곳에서는 오는 30일부터 다음달 8일까지 제5회 공룡나라축제가 개최된다.‘사라진 공룡, 그 새로운 부활’이라는 주제로 열리는 이번 축제는 내년 공룡엑스포의 리허설 격이다. 공룡박물관은 지하 1층, 지상 3층, 연면적 3400여㎡ 규모로 이곳 공룡발자국의 주인공으로 추정되는 이구아노돈의 몸통을 형상화했다. 이 박물관에는 공룡이 번성했던 중생대 트라이아스기와 쥐라기·백악기 등에 살았던 시조새와 익룡, 아파토사우루스, 안킬로사우루스, 티라노사우루스 등의 전신 또는 부분 골격과 모형, 화석 등 96점이 전시돼 있다. 박물관 앞에는 백악기 초식공룡인 ‘브라키오사우루스’를 형상화한 공룡탑이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이 탑은 길이 34m, 너비 8.7m, 높이 24m로 그동안 일본이 자랑해온 후쿠이(福井)현립 공룡박물관에 세워진 공룡탑보다 2배쯤 크다. 상족암 해변의 공룡발자국은 영화 ‘쥐라기 공원’에 나오는 브론토사우루스와 브라키오사우루스, 알로사우루스 등이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길이 1m에 달하는 큰 발자국의 주인은 브론토사우루스와 같은 용각류로 짐작된다. 이놈들은 몸길이 30m에 무게는 30t쯤 된다. 길이 40㎝의 발자국은 이구아노돈과 같은 조각류의 것이고, 지름 20∼30㎝의 작은 발자국은 수각류인 티라노사우루스나 알로사우루스의 것으로 추정된다. 상족암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길을 걸으면서 동판에 본을 떠놓은 티라노사우루스의 발자국을 보면 마치 시속 50㎞로 초식공룡을 사냥하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내년 4월14일부터 6월4일까지 열리는 공룡엑스포의 주 행사장은 당항포관광단지에 4개의 마당으로 조성되고 있다. 첫번째 ‘교감의 마당’에 들어서면 세계의 공룡과 만난다. 세계 3대 공룡박물관(캐나다 로열티렐·중국 자공·일본 후쿠이박물관)에서 보내온 대륙별 공룡화석의 특징은 물론 공룡의 모든 것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체험의 마당’은 공룡과 친숙해질 수 있는 공간이다. 공룡시대를 함께 호흡하면서 즐겁게 체험하게 만들 계획이다. 세번째 ‘발견의 마당’은 ‘공룡을 통한 새로운 세계와의 만남’이라는 컨셉트로 짜여진다. 엑스포의 주제를 전달하고,1억년 전 고성의 모습을 재현한 장소로 주제관과 공룡놀이시설, 산책로 등이 조성된다. 특히 주제관에서는 공룡의 대결과 화산폭발, 관람객을 향한 공룡의 습격 등이 특수효과를 가미한 ‘디오라마’ 영상으로 연출된다.‘상상의 마당’은 ‘꿈과 즐거움’을 테마로 어린이들이 공룡과 친숙해질 수 있도록 수변무대와 자연사관·수석관 등으로 구성된다. 174억원을 들여 건립 중인 주제관은 오는 8월 완공목표로 차질없이 공사가 진행 중이다. 현재 공정은 60%. 기존 건물을 리모델링한 자연사관과 수석관은 벌써 단장을 마쳤다. 고성 이정규기자 jeong@seoul.co.kr ■ 고성과 공룡 인연은 고성이 ‘공룡의 고장’으로 내외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1982년 1월부터다. 경북대 양승영 교수와 부산대 김항묵 교수 등이 고성군 하이면 덕명리 상족암(床足岩) 일대 해안에서 처음으로 공룡발자국을 발견했다. 발자국 모양이 다양하고, 그 수가 5000여개에 달해 미국 콜로라도, 아르헨티나 서부해안과 더불어 세계 3대 공룡발자국 화석지로 부상했다. 특히 공룡발자국과 함께 새 발자국 및 거북알 화석도 다수 발견돼 국내외 학계의 관심이 집중됐다.. ●심벌 ‘고룡이’… 12개종 100개 품목 특허 상족암 공룡발자국은 중생대 백악기시대의 고생물 화석으로서 학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지난 99년 9월 천연기념물 제411호로 지정됐으며 초등학교 4학년 과학교과서에 수록됐다. 군은 상족암 공룡발자국 화석지가 문화재로 지정되자 심벌마크 ‘고룡이’를 상표등록했으며, 지난 2000년부터 공룡나라축체를 개최하고 있다. 이어 2002년 사업비 147억원으로 상족암에 세계 최대의 공룡탑과 공룡박물관 건립에 착수, 공룡엑스포를 유치했다. 공룡엑스포 개최를 기회로 고성의 지역적인 특성과 공룡발자국 화석지를 연계한 관광인프라를 구축하고, 새로운 지역산업을 창출, 지역경제를 활성화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엑스포 심벌마크와 캐릭터 등 12개 종류 100개 품목에 대해 6월 중 특허청에 등록할 계획이다. 공룡(恐龍)이란 중생대에 살았던 대형 파충류를 일컫는다.1842년 영국의 고생물학자 리처드 오언이 ‘무서울 정도로 큰 도마뱀’이라는 뜻을 가진 ‘디노사우르(Dinosaur)’라고 이름 붙였다. 동양에서는 이를 공룡이라고 번역, 사용하고 있다. 공룡이 살았던 중생대는 고생대와 신생대 사이 약 2억 4700만년 전부터 6500만년 전까지 1억 8200만년에 해당된다. 중생대는 다시 트라이아스기와 쥐라기, 백악기로 나뉜다. 공룡은 트라이아스기 후기에 출현, 백악기가 끝나면서 지구상에서 사라졌다. 공룡학자들은 공룡을 엉치뼈의 구조에 따라 용반목(龍盤目)과 조반복(鳥盤目)으로 나눈다. 그리고 용반목을 초식인 용각류와 육식인 수각류, 세그노사우리아 등 3종류로 다시 나눈다. 용각류는 대부분 큰 체구로 머리가 작고, 몸은 비대하며, 목과 꼬리가 길다. 반면 수각류는 두 발로 재빠르게 뛰어다녔고, 육식을 했지만 가끔 초식도 했던 것으로 보여진다. 세그노사우리아는 용각류와 수각류의 특성을 모두 갖추고 있으며 넓은 물갈퀴를 가져 능숙하게 헤엄치고 다녔을 것으로 추정된다. ●사람보다 1억년 전에 한반도에 살아 우리나라의 공룡화석은 공룡이 살았던 시기에 쌓인 퇴적층이 많이 분포된 경상도에서 대부분 발견되고, 최근 전남지방과 충북 영동, 경기 시화호 및 북한에서 발견되고 있다. 경남 고성군 덕명리 해안의 공룡발자국 주인은 백악기에 살았던 공룡으로 우리 조상보다 1억년이나 먼저 이 땅에 삶의 터전을 잡았던 셈이다. 고성 이정규기자 jeong@seoul.co.kr ■ 엑스포조직위원장 이학렬 군수 “미래를 책임질 어린이에게 꿈과 상상력을 키워주며, 모두에게 지구의 환경문제를 되돌아 보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내년 4월 고성에서 열리는 ‘2006 경남고성 세계공룡엑스포’ 준비를 진두지휘하고 있는 엑스포조직위원장인 이학렬 고성군수는 “고성군 내에 산재한 공룡발자국 화석이 가진 학술적·자연사적 가치를 세계에 알리기 위한 것”이라며 국내 최초로 자연사 엑스포를 유치한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자연사의 주인공은 공룡”이라며 “1억년 전 지구에 살았던 공룡과의 만남을 통해 지구의 역사를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성 공룡엑스포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세계 3대공룡박물관의 교류전을 유치했으며, 국제 화석·광물쇼도 개최할 계획”이라고 소개했다. 이를 위해 그는 지난 2월 미국 애리조나주 투산에서 열린 ‘투산 광물쇼’를 참관하고 돌아왔다. 그리고 “스티븐 스필버그 초청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비록 시골에서 열리지만 결코 ‘동네잔치’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겠다는 의지다. 이 군수는 “공룡엑스포는 고성이 ‘월드 브랜드’로 발돋움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농축산물도 제대로 된 얼굴을 갖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군민들이 국제행사를 성공시켰다는 자신감을 가지는 것은 물론 안목을 넓힐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군수가 예상하는 공룡엑스포의 기대효과도 만만찮다. 그는 “아시아를 비롯한 전 세계에서 150만명이 관람할 것으로 조사됐다.”며 “입장권 판매 등 직접수익이 132억원에 달하고, 간접수익은 25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행사기간 중 7500여명의 고용창출 효과도 기대된다. 공룡엑스포 예산이 320억원(국비 41억원, 지방비 279억원)임을 감안하면 분명 남는 장사다. 열악한 숙박시설문제에 대해서는 “인근 통영·마산·진주 등지는 30∼40분 거리이므로 충분하고, 군내 사찰과 교회, 민박을 활용하면 문제없다.”며 자신하고 있다. 고성 이정규기자 jeong@seoul.co.kr
  •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15) 변산 태진스님과 정감록 사건(下)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15) 변산 태진스님과 정감록 사건(下)

    1733년 7월 전라도 남원성벽에 괴벽보가 나붙었다. 머지않아 영조 임금이 쫓겨나고 새 세상이 열린다는 내용이었는데 벽보를 직접 작성한 사람은 남원 부자 김영건의 아들들이었다. 이 벽보에는 김씨들의 숙적인 이유성 일가의 이름이 도용돼 있어 이씨들을 모함하기 위해 그랬을 거라고 추측해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사건이 그처럼 단순하고 우발적이었을까? ●이여매와 이여진 형제의 이름으로 된 벽보 남원성벽에 내걸린 벽보는 이유성의 아버지 이여매와 숙부 이여진의 이름으로 되어 있었다. 이 형방은 문서를 읽고 나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세상에 이런 흉악한 문서에 제 이름 석자를 붙여 걸어둘 바보가 과연 있겠는가? 형방은 박 호장, 최 이방 등과 이 문제를 상의한 다음 이씨 집안과 다투고 있던 김영건 부자에게 혐의를 두었다. 일차로 김영건 부자를 연행한 다음 그 집안을 수색했다. 그 과정에서 벽보의 초안이 발견돼 사건은 싱겁게 마무리되는 듯했다. 김씨들이 괴문서의 말미에 이여매 형제의 이름을 적어 놓았다면, 그것은 어처구니없는 실수였다. 그러나 원수의 이름을 빌려 반역의 의지가 명백한 벽보를 붙일 만큼 김씨들은 무지몽매했을까? 벽보를 손수 쓴 김원팔로 말하면 제법 공부를 많이 한 사람으로 그 정도 계산도 못할 만큼 청맹과니는 결코 아니었다. 김원팔 형제가 남문 옆 성벽에 벽보를 붙여두고 집으로 돌아간 직후, 세 사람의 괴한이 그 자리에 나타났다. 둘은 좌우에서 망을 보았고 나머지 한 사람은 벽보의 맨 끝에 “이여매와 이여진 씀”이란 글귀를 추가했다. 그 글씨체는 영락없이 김원팔의 것이었다. 하지만 좀더 자세히 살펴 보면 왼쪽으로 좀더 비스듬히 올라간 것이 눈에 띌 만도 했다. 눈썰미가 남다른 이방 최정도는 그 점을 이미 정확히 짚고 있었지만, 그는 누구에게도 필체의 미세한 차이를 말하지 않았다. “사건은 이 정도로 마무리돼야 한다. 만약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게 된다면 남원은 헤어날 길이 없는 소용돌이 속으로 휘말려 들어간다. 지금 필요한 것은 사건의 근원적인 규명이 아니다. 확대 수사는 도리어 민심을 뒤흔들어 놓을 뿐이다. 여기서 종결시키자. 더 이상의 불필요한 잡음을 불러일으키지 말고 사적 원한에 근거한 우발적인 사건으로 마무리하자. 그것이 모두에게 좋다. 어차피 이 세상은 그런 것이다!” 이것이 남원의 사정을 누구보다 꿰뚫고 있던, 아니 18세기 한국사회의 물정을 정확히 파악했던 최정도 이방의 생각이었다. ●김영건 일가를 저버린 지하조직 따지고 보면 그랬다. 조직은 김원팔 일가를 희생양으로 삼기로 작정했다.18세기에는 하삼도만 해도 남원 운봉 함양의 지리산, 부안의 변산, 충청도 계룡산과 오서산, 합천의 가야산 등지를 잇는 지하조직이 결성돼 있었다. 조직원의 수가 얼마나 됐고 조직의 구성이 어땠는지 전모를 정확히 파악할 길은 없지만, 수십 수백 명이 가담한 비밀결사가 존재했던 것만큼은 사실이었다. 그런 지하조직의 최종 목표는 조선왕조를 전복시키고 용화세계 또는 미륵세상을 건설하는 것이었다. 동학에서 말하는 지상천국, 후천세계의 원형이 이미 18세기에 형성되고 있었다. 지하조직은 ‘정감록’을 비롯한 각종 비결을 앞세워 민심을 선동했다. 조직은 나라를 원망하는 각양각색의 인사들을 점조직으로 편성했다. 조직의 활동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각처의 부자들을 포섭하거나 도적질을 하기도 했다. 남원부자 김영건 같은 이는 지하조직의 입장에서 보면 무척 쓸모있는 인물이었다. 김영건은 천민출신이라서 기존의 사회질서를 반대했으며 자금력도 어느 정도 충분한 데다 김원팔과 같이 유능한 아들이 있어 지하조직의 한 귀퉁이를 맡길 만했다. 김영건 자신은 아마 짐작도 못했을 테지만, 지리산에 근거지를 둔 지하조직은 오래 전부터 김영건 일가를 포섭하는 데 큰 관심이 있었다. 일찌감치 지하조직의 지도부는 김영건의 비밀을 알고 있었다. 남원, 운봉, 함양 일대를 제 손금 들여다보듯 훤히 아는 탁발승들이 바로 조직의 중추였는데,17세기 후반 영건의 어머니 분금이 무작정 노씨 집을 뛰쳐 나왔을 때 지리산에서 굶어 죽지 않고 무사히 남원으로 진출할 수 있었던 것이 실은 어느 탁발 승려 덕택이었다. 그 인연은 영건이 모르는 사이에도 계속됐었다. 나중에 분금이 아들 영건에게 남긴 유언 가운데 부처님의 원력을 말한 것도 다 그런 사정이 있어서 나온 말이었다. 양반 정 노인의 신분시비 사건으로 김영건은 큰 충격을 받아, 현세를 지배하는 논리에 회의를 품게 된다. 하지만 그는 천품이 온화하고 조심성이 많으며, 이미 노년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조직을 위해 물불 안 가리고 희생을 바칠 사람은 못 되었다. 지하조직은 그런 판단을 했기 때문에, 그의 세 아들들에게 더더욱 큰 기대를 걸었다. 지하조직은 지도부에 속한 변산의 승려 태진과도 연줄이 있는 최봉희를 시켜 김원팔, 김원하, 김원택 3형제에 대한 접근을 시도했다. 최봉희는 우선 비결을 가지고 그들을 설득하려 했고, 가장 먼저 그 먹이를 문 사람은 김영건의 막내아들 김원택이었다. 그 덕분에 김원팔과 김원하를 조직에 가담시킬 수 있게 됐다. 그런데 1732년 가을부터 김원택은 조직을 이탈할 기미를 보이고 있었다. 김원택은 지하조직이 추구하는 목적이 지극히 비현실적이라고 판단했고, 조직 활동은 패가망신의 지름길이라고 생각해 김씨 일가의 담당인 최봉희 보기를 꺼려했다. 그는 형들과도 일정한 거리를 취하고 있었다. 조직은 김원택에 대해 다각도로 회유책을 폈으나 전혀 통하지 않을 것으로 판단됐다. 조직은 마지막 수단을 고안했다. 김영건 일가에게 괴벽보를 작성해 남원읍성에 부착하도록 지시했다.3형제가 공동으로 하라는 명령이었다. 이런 식으로라도 그들을 묶어두지 않으면 장차 조직을 관리하기가 어려울 것이란 게 상부의 판단이었다. 김원팔 형제가 벽보를 붙이는 순간에도 조직은 멀리서 그 광경을 감시하고 있었다. 그런데 현장에 나타난 것은 약속한 3형제가 아니었다. 김원택이 현장에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이 마음에 걸린 담당책 최봉희는 상부와 긴급히 상의했고, 그 처방은 간단명료했다. 김씨 일가를 희생시켜라! 그리고 최봉희 넌 멀리 도망쳐라! 우리 조직의 남원 지부는 당분간 활동중지다! 그러나 이 벽보를 계기로 민심을 한 번 뒤흔들어 놓을 것이다. ●김원택과 최봉희의 머리싸움 거슬러 올라가 살펴 보면, 남원의 일부를 담당한 최봉희는 부자 김영건이 가장 사랑하는 막내아들 김원택에게 접근했었다. 최는 세상 물정에 두루 밝은데다 붙임성이 대단히 좋았다. 게다가 남원에선 손꼽히는 양반가문의 후예였다. 집이 가난한 것만 빼놓으면 도무지 나무랄 데가 없는 선비였다. 출신이 미천해 고민하고 있던 김원택 일가로선 그런 최봉희와 사귀게 된 것이 큰 영광이었다. 최봉희의 지식에 매료된 김원택은 장형 원팔과 중형 원하에게 차례로 최를 소개했다. 김원팔 등은 매일 같이 최봉희를 만났고 그 때마다 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후의를 베풀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마치 최봉희가 김원팔의 식객(食客)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처음엔 정말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최봉희는 김씨 일가의 내면을 완벽하게 통제하기 시작했고, 김원택은 바로 그 점을 못마땅해했다. 그래서 원택은 최가 자기 형들과 함께 만든 필묵계에도 관여하길 거부했다. 그는 두 형과 아버지 김영건에게 최를 멀리하라고 몇 차례 간청하였으나 이미 소용없는 일이었다. 벽보를 붙이는 문제가 집안에서 거론되자 김원택은 최가 배후 인물임을 직감했다. 그래서 그는 가장 충직한 종 남산을 성밖으로 내보내 최봉희가 숨을 만한 곳을 미리 수소문하라고 했다. 만일의 경우 관가에 연락해 최봉희가 즉각 검거되도록 손을 써둔 것이었다. 김원택은 장차 아버지와 형들이 벽보사건의 주범으로 몰려 멸문의 화를 당할 게 너무 억울했다. 만일 집안에 화가 닥치면 최를 비롯한 지하조직도 분쇄되어야 마땅하다고 믿었다. 하지만 지하조직은 점조직이라 최봉희 위에 누가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원택은 그동안 최봉희에게 들은 이야기를 생각나는 대로 모두 정리해 보았다. 문득 변산 승려 태진의 이름이 뇌리에 떠올랐다. 가만히 생각할수록 태진과 최봉희의 관계는 예사롭지 않을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사건이 터졌을 때 원택은 배후조종자로 태진을 고발했다. ●‘정감록’ 사건의 마무리 김영건 4부자를 비롯해 최봉희, 태진 등은 제각각 검거된 장소와 시각은 조금씩 달랐지만 모두 서울로 압송되었다. 그들은 창덕궁의 정문인 인정문(仁政門)에 설치된 특별수사본부에 끌려가 엄한 취조를 받았다. 때로 국왕 영조가 직접 심문에 나설 정도였다. 제1급 시국사건으로 취급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사건에 연루되어 전라도에서 서울까지 끌려가 조사를 받은 사람이 삼사십 명이나 됐고, 전라도 각처에서 일시 검거돼 취조받은 사람은 수백을 헤아렸다. 인정문 앞에선 열흘 넘게 날마다 지독한 고문이 계속됐다. 몽둥이찜질은 기본이고, 인두로 몸 지지기, 정강이뼈 뒤틀기, 무릎 관절 부수기 등은 이를테면 선택사항이었다. 혐의자들은 차례로 단독 심리를 거쳐, 관련자와 대질 신문을 받은 뒤 다시 재심리를 받았다. 중간에 말이 바뀌면 모든 수사과정이 처음부터 되풀이됐다. 하루에도 여러 차례 거듭된 고문과 그 중간에 잠깐 끼어든 달콤한 회유, 그리고 교활한 유도신문이 연달았다. 머리 좋고 경험 많은 의금부 관리들을 비롯해 조정대신들 그리고 국왕 영조까지 직접 심문에 나섰기 때문에, 그 자리에 끌려 나온 사람은 여간한 배짱과 지능으로는 조금도 숨기거나 속일 수가 없었다. 며칠만 닦달을 하면 고분고분 모든 사실을 실토하게 되었다. 특히 사건 심리의 초기 단계에는 가능한 모든 범위로 수사가 확대되었다. 털끝만큼이라도 혐의가 있어 뵈는 사람은 연일 추가로 체포돼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았다. 김원팔과 그의 아버지 김영건은 고문을 견디다 못해 판결도 내려지기 전에 형틀에서 죽고 말았다. 실상 벽보 사건에 전혀 가담하지 않는 김원택도 맞아 죽었다. 고문을 잘 견뎌 용케 살아남은 이는 김원하였다. 그는 역적의 아들이란 죄로 또다시 두들겨 맞은 다음 변방으로 유배되었다. 이럴 때도 고수는 따로 있었다. 지하조직의 하급간부 최봉희는 사형을 받아 마땅하다는 수사관들의 의견이 있긴 했지만 그의 죄를 증명할 결정적인 단서가 나오지 않아 외딴섬으로 귀양가는 데 그쳤다. 본래 점조직으로 운영된 조직이다 보니 김영건 부자는 최봉희의 윗선이 누구인지 알지 못했다. 그들은 수사과정에서 최봉희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했지만, 특수 훈련을 받은 최봉희는 노련했다. 최는 갖은 고문에도 불구하고 지하조직의 비밀은 하나도 노출시키지 않은 채, 아무렇게나 생각나는 대로 많은 사람들의 이름을 불러제침으로써 수사본부를 피곤하게 만들었다. 나중에 수사본부는 최봉희를 미치광이로 규정함으로써 그에 대한 수사를 매듭지었다. 조직의 거물이자 당시 전라도내에서 이름난 승려였던 변산의 태진은 자신을 변호하기에 충분한 지혜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남사고 비결’을 소장했다는 점만 인정했을 뿐, 벽보 사건과 무관하다는 점을 끝까지 주장했다. 영조는 “태진의 대답이 범행을 자백한 것이나 마찬가지구나!”라고 하여 태진이 사건에 관련돼 있다고 보았지만 구체적인 물증을 확보하지 못했다. 결국 다른 방법이 없어 태진을 함부로 죽이지 못하고 섬으로 귀양보냈다. ●조정은 지하조직의 존재를 알고 있었는가? 당시 도승지 홍경보는 영조에게 이런 조언을 했다.“지금 영남 하도(下道, 경상남도)와 호남의 인심이 매우 험악합니다. 만약 수사를 여기서 멈춘다면 괴수들이 비웃을 것입니다. 각별히 헤아려서 연루자를 체포해야겠지만 마구잡이로 잡아들이면 안 됩니다. 그런 뜻으로 공문을 보내면 어떻겠습니까?” 영조는 홍경보의 말이 옳다며 민심을 자극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수사를 계속하라고 명령했다. 하지만 본격적인 수사는 불가능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지하조직에 음양으로 관련돼 있었던 데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사정이 조금만 더 악화되면 조직에 대거 참여할 기세였다. 이런 판국에 혐의자들을 함부로 붙들어다 고문하게 되면 조정이 정말로 우려하는 반란 또는 폭동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었다. 그야말로 혹 떼려다 혹 붙인다는 말처럼 될 수도 있었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관리들은 자신들의 임기에만이라도 그저 별일 없이 조용하기를 바랐다. 얼마나 애를 써서 얻은 벼슬자리인가. 아직 본전을 다 뽑지도 못했는데 만일 난리가 일어나 벼슬을 놓치게 되는 일이 생겨선 절대 안 될 일이었다. 그래서 그들 관리들은 이구동성으로 아뢰었다. “엄히 조사를 해봤습니다만 별탈은 없는 듯합니다. 백성들이 불안해서 생업을 소홀히 하는 일이 없도록 이제 수사를 종결해야 됩니다. 이번 사건은 배후에 무슨 특별한 조직 같은 것은 없습니다. 그저 시골의 무식하고 못돼 먹은 반역자 김영건 4부자가 사적인 원한으로 엉뚱한 짓을 벌인 것입니다.” ●영조의 선택 영조도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그 또한 알고 있었다.“역적 놈들은 과인의 목을 요구한다. 놈들은 이 나라가 망하기만 바라고 있다.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사건을 축소해 개인적인 차원의 문제로 처리하는 것이 제일이다. 이것은 일부 몰지각한 놈들의 소행이라고!” 결국 왕의 생각이나 조정대신들, 지방관들의 뜻은 남원 이방 최정도의 견해와 다를 것이 없었다. 그렇게 둘러대긴 했지만 왕의 마음은 께름칙했다. 하필 왜 남쪽 지방, 그것도 전라도에서 이런 고약한 무리들이 자꾸 나오는 것일까. 왕은 자기의 친어머니가 전라도 출신의 미천한 나인인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마음이 더욱 산란했다. 그는 불편한 심기를 완전히 눅이지 못한 채 목청을 돋워 각도의 관찰사들을 독려했다. “전라도는 우리나라에서 잡술을 가장 숭상한다고 들었다. 근래 태진이란 중놈의 예언서를 보면 그 폐해의 심각성을 알만 하다. 예언서를 엄금해야 한다. 너희들 휘하의 지방관들에게 명하여 어리석은 백성들이 일체 그런 불온서적에 관심을 갖지 못하게 하라. 삿된 경전(邪經)을 버리고 성리학에 힘쓰게 하라.” 왕은 ‘정감록’에 대한 이데올로기 전쟁을 선포했다. 그러나 낡은 성리학으로 ‘정감록’을 이길 수 있을까. (푸른역사연구소 소장)
  • [결혼이야기] 이철(28·서대문구 도시관리공단) 허정숙(27·덕산건설)

    [결혼이야기] 이철(28·서대문구 도시관리공단) 허정숙(27·덕산건설)

    저에게는 잊을 수 없는 날이 있습니다. 지난해 6월11일이었죠. 술 한잔 사달라는 학교 후배의 막무가내성 호소에 이끌려 술자리를 했습니다. 그 자리엔 녀석의 여자친구와 그 여성의 친구가 자리를 함께 했습니다.‘모르는 사람도 있는 자리였구나.’라고 생각하며 애써 무심해지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상대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며 호응하는 배려를 갖춘 그녀는 자꾸만 눈길이 가는 사람이었습니다. 자리가 길어져 술이 좀 오른 우리는 함께 찜질방으로 향했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한 사람씩 잠에 빠졌는데 먼저 누운 세 명의 베개와 이불을 정성스레 챙기며 거의 밤을 새우다시피 한 그녀를 보면서 ‘아 이 사람이구나.’란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뒤에 알고 보니 그녀는 일하는 틈틈이 독거노인을 방문해 빨래도 하고 청소도 해주는 봉사활동을 하는 ‘천사’였습니다. 우리 둘은 첫눈에 서로를 마음에 들어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두번 째 만남에서 대뜸 “결혼하자.”고 제안했습니다.“사귀자.”도 아니고 “결혼하자.”는 말에 그녀는 당황하며 “아직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답했습니다. 하지만 2주 동안 만날 때마다 진지하게 설득하는 제 마음을 그녀는 결국 받아주었습니다. 다음달 3일 제 어머니와 그녀의 부모님이 만나는 자리를 가졌고 그 자리에서 우리의 결혼은 결정됐습니다. 경기 구리에서 직장을 다니는 그녀와 서울 홍제동에서 일하는 저이기 때문에 우리는 주말밖에 만나지 못했지만 남들 다하던 연애는 훌쩍 건너뛰고 바로 결혼으로 뛰어든 겁니다. 남들은 연애하며 서로의 장단점을 모두 파악해 갔지만 우리는 결혼 준비과정에 그 과정이 포함됐던 터라 적잖은 의견 차이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서로가 없어서는 안될 사이라 그런 이견은 문제될 것이 없었지요. 우리는 지난달 19일 서로의 반쪽이 되었습니다. 요즘 생활은 행복 그 자체이지요. 몸이 조금이라도 아플라치면 그녀가 안절부절하며 걱정해 줍니다. 마치 또 다른 내가 나와 함께 사는 것 같은 느낌이지요. 그게 바로 행복 아닐까요. 마지막으로 그녀에게 한마디 하렵니다.“조금만 일찍 나타났더라면 돌아가신 아버님께 천사 같은 너를 보여줄 수 있었을 텐데…. 하지만 네가 있어서, 또 나와 결혼해 줘서 너무 고마워. 우리 건강하게 오래오래 같이 살자.”
  • [토요일 아침에] 다시 낙산사를 생각하며/원철스님 조계종 포교원 신도국장

    아! 성지가 저렇게 없어지는 것이구나. 복원능력이 없다면 그대로 폐사지가 되겠구나. 교통과 통신수단이 발달하지 못한 예전에는 없어지는 줄도 모르고 없어졌겠구나. 그 백두대간을 가로질러 칼바람이 미친 듯이 부는 날 텔레비전 화면을 바라보면서 넋두리처럼 내뱉은 말들이다. 공양간에서 ‘밥맛을 모르겠다.’는 노스님의 한마디는 그날 아픔의 또 다른 표현이다. 꽃을 피워야 할 봄바람이 소나무를 쓰러지게 하는 광풍이 되었고 낙가산은 산의 윤곽을 그대로 드러내는 개골산이 되어버렸다. 십여년 전에 스승을 모시고 도반들과 중국의 보타낙가산 불긍거 관음원을 참배한 적이 있다. 영파에서 배를 타고 들어가는 섬이었다. 그 바닷가는 우리의 낙산사 그리고 홍련암과 너무도 닮아 있어 남의 나라 땅임에도 불구하고 너무 익숙하게만 느껴졌다. 관음진신이 출현하였다는 글씨가 기록된 그 바위 근처에서 일부러 한참을 서성거리면서 바다 너머로 한동안 눈길을 떼지 못했다. 동쪽 끝에 있는 우리의 낙산관음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낯선 땅에서도 느끼지 못했던 낯섦을 지금 정말 느끼고 있다. 그건 현재 남아있는 낙산사가 나를 참으로 낯설게 했기 때문이다. 처음의 황망함은 시간이 지나가니 이제 좀 냉정해지고 모든 걸 차분히 돌아보게 된다. 정말 그 낙산사는 어디로 사라져 버린 것일까? 하지만 사실 달라진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다. 다만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상대적으로 더 도드라지게 드러난 성지로 모습을 바꾸었을 뿐이다. 그런 까닭에 오히려 지금 그 화려한 화장을 다 지워버린 맨 얼굴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이다. 더불어 이제 마음의 눈으로 성지를 바라볼 수 있는 정신적 여유가 생긴 것이다. 이제 육안(肉眼)으로만 성지를 바라보지 않아도 된다. 그동안 잊고 있었던 심안(心眼)으로 바라보고 싶다. 물론 지혜로운 이는 육안으로도 볼 수 있어야 하고 심안으로도 볼 수 있어야 한다. 성지라고 하는 것은 눈으로 보는 성지와 마음으로 보는 성지가 항상 동시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항상 육안으로 보는 것에만 너무 집착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걸 너무 당연히 여긴 나머지 그게 집착인 줄조차 몰랐다. 이제 저 타버린 까만 솔밭 속에서도 심안으로 성지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으니 또 다른 나의 눈이 존재하고 있음을 다시금 알게 되었다. 그날 인근 산과 모든 살아 있는 것들과 집과 논밭과 살림살이와 모든 것들이 타고 있었다. 중생이 아프니 나도 아플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들과 함께 했을 뿐이다. 이제 그들이 원래대로 몸과 마음과 생활기반이 복구되고 그들의 고통이 끝나면 우리의 고통도 자연스럽게 끝날 것이다. 수행자로서 신심이 바닥을 향해 달리고 또 공부길이 막힐 때면 늘 터만 남은 폐사지를 찾곤 했다. 그 자리에서 무상(無常)을 체험하고 또 발심(發心)의 계기를 통해 다시금 마음을 새롭게 하곤 했다. 그 옛날 저 큰 절터들의 탑과 당간지주만이 덩그러니 남아있는 그 황량함 속에서 ‘모든 것은 변해가는 것이니 절대로 방일하지 말라.’는 가르침을 마음에 새기고 또 새기곤 했다. 빈 마음은 모든 걸 원점에서, 다시금 순수함으로 바라보게 해준다. 우리는 잘나갈 때에도 항상 어려운 경우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삶의 화려함 속에서도 소박한 본래 모습은 잃지 말아야 한다. 넘쳐나는 물질의 풍부함 속에서도 모자랄 때를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삶의 평범한 진리를 우리는 잊고서 살기가 쉽다. 반대로 타버림의 절망 속에서도 미래의 희망들을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한다. 낙담 속에서도 꿈은 이루어진다는 믿음을 잃어서는 안 된다. 퇴굴심 속에서도 부단없는 용맹심을 일으켜야 할 것이다. 이제 마음의 눈으로만 볼 수 있는 성지를 많은 평범한 사람들이 육안으로도 볼 수 있도록 힘을 모아 가꾸어 내는 일만 남았다. 그동안 혹 군살이 있었다면 이번 기회에 과감하게 털어내야 한다. 그리고 성지가 가져야 하는 단순·절제의 미를 한껏 드러내는 그런 기회를 제대로 살려내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또 다른 문화적 전환점 위에 서있다고 하겠다. 원철스님 조계종 포교원 신도국장
  • [Love & Wedding]이정수(26·에임시스템) 염선협(29·LS전선)

    [Love & Wedding]이정수(26·에임시스템) 염선협(29·LS전선)

    2003년 크리스마스 그를 처음 소개받았습니다. 저는 제대로된 연애 한번 해보지 못했던 ‘숙맥’이었지요.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외로운 솔로 생활에 지쳐 있던 그 역시 결혼을 벼르고 있었답니다. 그의 첫 인상은 그냥 ‘둥글둥글 모나지 않게 생긴 사람’이었고, 조건보다 내면을 더 중시한다는 점에서 저와 이야기가 통했지요. 3주쯤 지나 롯데월드에 놀러갔을 때입니다. 갑자기 그가 “저…춥고 사람도 많아 잃어버릴지도 모르니까 손이나 잡죠?”라고 제안해왔어요. 웃음보가 터지기 직전이었지만 꾹꾹 눌러 참고 손을 내밀었습니다. 그렇게 ‘사귀자.’는 말도 없이 우리는 어느덧 커플이 되었지요. 100일이 되었을 즈음, 그가 독일로 출장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는 집에는 간단히 안부전화만 하고 제게는 동전까지 탁탁 털어 전화를 하는 불효를 저질렀습니다.100일을 챙겨주지 못해 미안하다면서요. 회사에 들어간 지 1년이 되던 날이던가요. 그는 갑자기 방안의 불을 다 끄라고 하더니 불빛이 나오는 작은 열쇠고리를 들고 ‘레이저쇼’를 해 주겠다고 나섰습니다. 기분이 가라앉아 있는 제 앞에서 온갖 코믹 댄스를 다 보여줬습니다. 회사 일로 지쳐만 있는 저를 어떻게든 즐겁게 해주려고 노력하는 모습에 비로소 ‘바로 이 사람이구나.’하고 마음의 결정을 내렸답니다. 지난 3월6일 우리는 결혼했습니다. 그리고 며칠 전 뱃속에는 벌써 우리 둘의 예쁜 생명이 자라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도 남편과 미소를 주고받으며 행복한 하루를 시작합니다.
  • 임직원에 또 죽비든 이구택회장

    포스코 이구택 회장이 또 ‘죽비’를 내리쳤다. 올초부터 쓴소리를 마다 않던 이 회장은 이번에는 임직원들을 향해 “각자의 글로벌 역량을 더 키우라.”고 주문했다. 지난 12일 열린 월례 ‘회사 운영회의’에서다. 한마디로 ‘공부하라.’는 요구다. 올해를 글로벌 원년으로 선언한 이 회장은 “지금 포스코는 전 임직원이 글로벌화의 필요성을 잘 인식하고 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면서 “그러나 진정한 글로벌화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나를 포함해 모든 임직원이 스스로의 역량을 더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 스스로의 역량이 곧 우리 회사의 역량 아니겠느냐.”고 반문한 뒤 “나를 포함해 임원들, 직책 보임자들 모두가 학습을 통해 스스로의 역량을 높여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 때문에 임직원들은 바짝 긴장한 채 사내 영어강좌를 더욱 열심히 수강하는 등 ‘학습 열기’가 높아졌다. 이 회장은 올초에도 임직원들을 향해 “지금의 성공에 취해 자만에 빠진다면 5년 뒤에 혹독한 시련을 맞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 데 이어 이달 초 사내 임원회의에서는 “근본적인 체질변화가 필요하다.”며 임직원들의 보수 성향을 강하게 질타했었다. 한 직원은 “포스코가 3분기 연속 순익 1조원을 돌파하는 등 사상 최대 실적을 거두고 있어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자만을 경계하고 미래를 대비하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면서도 “회장님의 말끝이 워낙 매서워 직원들이 바짝 긴장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전했다.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신문법 시행령 연속토론회

    언론개혁시민연대는 12일 오후 3시 서울 프레스센터 18층 외신기자클럽에서 ‘신문법 시행령 제정, 제대로 되고 있나’라는 주제로 첫번째 신문법 시행령 연속토론회를 연다. 김영호 언개련 공동대표의 사회로 진행될 이날 토론회에서는 이용성(한서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언개련 신문개혁위원장과 김순기(경인일보노조 위원장) 전국신문통신노조협의회 의장이 각각 ‘신문법 시행령의 핵심, 신문발전위원회와 신문발전기금 운영’과 ‘지역신문발전지원법 사례를 통해 본 바람직한 제정 방안’이라는 연구주제를 발표한다. 이밖에 김서중 성공회대 신방과 교수, 이재국 경향신문 미디어부 차장, 이준희 인터넷기자협회 사무처장, 이구현 한국언론재단 기획조정실장, 이재희 전국언론노동조합 신문특별위원장 등이 지정토론자로 참석할 예정이다.
  • [장일의 바스켓 굿] 프로농구 ‘젖줄’ 대학농구

    프로농구 04∼05시즌의 왕중왕을 가리는 챔피언결정전(7전4선승제)으로 농구 코트가 뜨겁다. 프로 챔프전에 가려 관심을 끌지는 못했지만 지난 8일에는 경기도 용인에서 MBC배 대학농구 결승이 열렸다. ‘디펜딩챔피언’ KCC와 TG삼보가 맞붙은 프로 챔프전과 비슷하게 이번 대학농구에서도 2년 연속 우승을 노리는 연세대와 지난해 준우승팀 중앙대의 ‘리턴매치’가 펼쳐졌다. 결과는 연세대의 우승. 필자는 공교롭게도 지난해 프로농구 코치였다가 올해 중앙대 감독을 맡아 1년 만에 프로와 아마를 모두 경험하게 됐다. 비록 관중석은 텅 비었지만 농구 관계자들이 꾸준히 이번 대회를 찾아 그들과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대학농구의 수준이 예전에 비해 현저히 떨어졌다고 말했다. 주된 이유는 역시 프로의 용병 제도로 모아졌다. 용병의 비중이 커질수록 국내 선수들의 설 자리가 좁아졌고, 그만큼 대학 농구도 위축됐다는 것이었다. 프로선수들은 시범경기를 포함해 한 시즌에 60경기를 소화하지만, 결승전까지 단판 승부로 치르는 대학농구는 경기수가 워낙 부족해 선수들이 풍부한 경험을 쌓을 수 없는 것도 한 원인으로 지적됐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필자가 프로에 있을 때 대학농구를 얼마나 홀대했는지 깊이 반성하게 됐다. 프로농구의 ‘젖줄’인 대학농구를 살려야만 한국농구의 앞날이 밝아진다는 평범한 진리도 새삼 느끼고 있다.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지 못한 프로 구단 감독들은 벌써부터 미국으로 속속 들어가 용병을 찾고 있다. 한 해 농사가 용병 선발에 달린 만큼 그 심정도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용병에게 쏟는 정성의 약간만이라도 대학농구에 나눠줄 수 있는 사려깊은 지도자가 보이지 않는 것도 현실이다. 한창 진행 중인 챔피언결정전이 사상 최고의 명승부가 되길 바라는 만큼이나 한국의 대학농구가 ‘3월의 광란’이라 불리는 미국대학농구 NCAA처럼 큰 인기를 구가하길 기대해 본다. 중앙대감독 jangcoach2000@yahoo.co.kr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66) 낙산사와 해수관음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66) 낙산사와 해수관음

    놀라운 일이 생기면 사람들은 ‘맙소사!’,‘아이구, 하나님!’이라거나 ‘어머나!’를 외친다. 그런데 예전 사람들은 ‘나무관세음보살….’이 입에 붙어 있었다.5일 식목일, 한국 관음도량의 진원지인 천년 고찰 낙산사가 화염에 휩싸인 장면을 보면서 ‘나무관세음보살’이라는 탄식이 절로 터져 나왔다. 관음보살은 화마도 물리친다는데…. 지난해 10월 낙산사를 답사했지만 ‘사람들에게 너무도 잘 알려진 곳’이라는 생각에 막상 글은 쓰지 않았었다. 그런데 그 낙산사가 잿더미로 변했다. 동해의 ‘관해 1번지’는 두 말할 것 없이 낙산사다. 교과서에도 나오는 곳이라 오히려 수학여행 코스에서 빠질 정도로 널리 알려진 낙산사가 쑥대밭이 되었으니, 고찰의 운명이란 이런 것인가. ●남해 보리암·강화 보문사와 함께 3대 관음도량 관음보살은 관세음, 또는 관자재보살이라 한다. 대자대비의 화신으로 사바세계의 중생들이 진심으로 부르기만 해도 고통과 번민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관세음보문품’에 부처께서 이르기를 “선남자여! 많은 중생이 온갖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없을 때 관음을 한 마음으로 부르면 그 소리를 들으시고 모든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주신다. 활활 타는 뜨거운 불길에 갇힌다 해도 타지 않으니, 관세음보살의 위력 때문이다. 큰 물길에 떠내려간다 해도 관음을 부르면 곧 안전한 땅에 이르게 될 것이다.”고 했다. 큰 일 닥쳤을 때 저절로 관세음보살을 외치는 것은 이런 관음 영력을 믿는 데서 비롯된 것이다. 낙산사는 남해 보리암, 강화 보문사와 더불어 한국 3대 관음도량이자, 세계 8대 보타성지다. 그 중 관음신앙의 원조는 아무래도 낙산사다. 의상조사가 세운 가람이기 때문이다. 순조시절의 범해(梵海)가 찬한 동사열전(東師列傳)에 다음 같이 의상의 행장을 밝히고 있다.“귀국하는 당나라 사신의 배에 실려 입당, 화엄의 2대 조사인 종남산 지엄의 방에 들어가 함께 화엄경에 관해 문답하였다. 화엄경의 오묘한 뜻을 논함에 있어 깊숙하고 은밀한 부분까지도 철저히 해부, 분석하니 가히 청출어람 격이었다.”이렇듯 해동 화엄종의 시조라 하여 그는 의상조사로도 불린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의상은 원효와 가까웠던 도반이다. 뜻을 같이 해 중국유학길에 오르다 원효는 되돌아오고, 의상은 건너갔다.661년에 산둥반도 끝에 있는 무역항 등주로 들어갔으니 이 때 그의 나이 이미 30대 후반. 오늘날까지 불교의식에서 빼놓지 않고 애송되는 그 유명한 법성게도 바로 의상조사의 창작이다. 화엄경의 심오한 진리를 7언시 30구로 응축시켜 놓았으니 본래 이름은 화엄일승법계도(華嚴一乘法界圖)이다. 의상은 일관되게 실천하는 삶을 살았으니, 철저한 신분제 계급사회인 당대에 거대한 토지와 노비를 거느린 사찰의 영화를 끝내 거부하였다. 그런 그가 세운 가람이 바로 낙산사이다. 설악산의 준수한 줄기가 양양쪽 동해로 흘러 내리다가 빚어낸 오봉산 품안에 넉넉하게 자리잡아 산은 작되 옹골지며, 산세가 수려하여 송림이 우거졌고, 동해를 벗하여 가히 해산(海山)의 격조를 말해 준다. 벼랑 때리는 파도를 벗삼아 잠들고, 다시금 파도 소리에 선잠을 깨는 가람이다. 오봉산은 본디 보타산 낙가산이었으니, 낙산이란 관음보살이 산다는 포타라카(Potalaka)의 음역으로, 낙가산 혹은 낙가로도 불린다. ●당에서 귀국한 의상, 관음 계시로 낙산사 지으니 당에서 귀국한 의상은 온 나라를 주유하며 뜻을 펼칠 마땅한 땅을 찾다가 이곳에 이른다. 해변 석굴에 관음 진신이 산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높이 100자가 넘는 해식 단애의 깎아지른 바위 틈으로 쉴 새 없이 파도가 드나드는 험한 곳. 그곳에서 관음 진신을 만나길 간구했으나 뜻을 못이루자 그대로 바닷물에 몸을 던진다. 마침내 관음이 그 정성에 감복하여 진신은 드러내지 않은 채 수정염주 한 꾸러미를 건냈으며, 동해 용왕도 여의보주 한 알을 내렸다. 그러나 의상은 다시 이렛동안 진심으로 기도하여 마침내 관음을 친견한다. 관음은 의상에게 굴 위 산꼭대기에 쌍죽이 솟아날 것인즉, 그곳에 절을 짓도록 계시한다. 낙산사를 이해하려면 반드시 중국 보타산을 알아야 한다. 관음도량인 보타산은 오대산 문수보살, 아미산 보현보살, 구화산 지장보살 도량과 더불어 중국 불교의 4대 성지다. 바다 가운에 꽃처럼 피어있는 보타산은 상해에서 쾌속선으로 1시간 반, 항주 이남의 영파에서는 4시간이 걸리는 곳이다. 불긍거관음원(不肯去觀音院)은 보타산의 여러 사원 가운데 중심이며, 조음동사원은 우리 낙산사와 주위 경관이나 지형이 너무도 흡사하다. 동해 일출의 관해지인 의상대와 바닷물이 절벽 아래까지 밀려들어와 절벽을 치며 동굴에서 파도를 일으키는 홍련암 관음굴이 너무 비슷해 하나의 의문이 풀린다. 의상이 일찍이 중국 보타산을 순례하고 그곳 지형과 거의 흡사한 동해안에서 바다로 돌출한 해식 동굴을 찾아내 그 위에 건물을 올렸던 것이 다양한 연기설화로 전해진 것은 아닐까. 그동안 불긍거관음원을 세운 유래를 불조통기(佛祖統記)란 자료를 통해 일본 승려 혜악(慧鍔)선사와 관련지어 설명하는 학설이 주류였으나, 신라 상인들이 지었다는 설이 강력하게 대두되고 있다. 북송 말 서긍은 고려도경(1124)에서 “석교의 산록 위에 양무제가 세운 보타원이 있고, 전각 안에는 영험한 관음상이 있다. 옛날에 신라 상인이 오대산에 갔다가 그 불상을 조성해 싣고 본국으로 돌아가려 했다. 바다로 나아갔으나 배가 암초에 걸려 더 나아가지 아니하므로 관음상을 바위 위에 내려 놓았다. 관음원의 승려 조악이 전각 안으로 모셨더니 해상으로 왕래하는 이들이 반드시 나아가 기도하매 감응하지 않음이 없었다.”고 적었다. 글은 보타산이 관음보살의 주도량이며, 항해를 위한 기도도량으로 조성된 사실을 알려준다. 실제로 관음원 앞바다에는 신라초(新羅礁)로 불리는 조그마한 암초까지 남아 있다. 의상을 비롯한 많은 고승들의 중국유학, 보타산과 비교되는 낙산사, 그리고 보타산의 신라인 흔적은 해로를 통한 중국과의 왕성한 교류를 잘 암시한다. ●중국 보타산과 주위경관·지형 흡사 낙산사에는 관음과 얽힌 여러 설화들이 전해진다. 삼국유사를 보면 원효 역시 낙산의 관음 참배에 나선다. 낙산 근처에서 흰옷 입은 여인이 벼를 베기에 원효가 다가가 장난삼아 벼를 달라고 하니 여인은 벼가 흉작이라 줄 수 없다고 답한다. 다리에 이르니 한 여인이 서답을 빨고 있기에 마실 물 좀 달라고 청하니 서답 빨던 더러운 물을 주는지라 원효는 냇물을 새로 떠마셨다. 그랬더니 들판의 소나무 위에서 파랑새 한 마리가 “휴제호와상아”라고 말하는데, 모습은 보이지 않고 소나무 밑에 짚신 한 짝만 남아 있었다. 절에 이르러 보니 관음상 아래에 방금 전에 보았던 짚신이 한 짝 있음을 보고서야 자신이 만난 여인이 관음임을 깨닫는다. 원효가 다시 암굴에 들어가 관음 진신을 보고자 했으나 풍랑이 크게 일어나 들어가지도 못한 채 낙산을 떠나야 했다. 원효의 관음 친견까지 더해 관음도량 낙산사의 격을 한층 높이는 설화다. 관음의 주장처이면서도 정작 낙산사는 늘 편치가 않았다. 고려시대 몽골군의 침략으로 초토화되어 관음상도 부서진다. 오대산에 자주 나다니던 세조는 원통전 석탑을 7층으로 늘리고 중창 불사를 단행한다. 그로부터 20년 뒤(1485)에 낙산사를 찾은 남효온의 유금강산기(遊金剛山記)를 보면, 그 때까지는 의상이 만들었다는 관음소상이 관음전에 안치돼 있었고, 관음굴에는 파도가 돌을 쳐대는 전각도 있었으며, 그 시대에도 낙산 일출의 장관을 보려는 발길이 끊이지 않았던 것 같다. 관동팔경의 하나인 낙산일출은 이미 조선시대부터 유명세를 치렀으니 최소한 600년이 넘는 전통이다. ●여러번 화마에 휩싸였던 낙산사 또 ‘고통’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절은 다시 무너진다. 광해 11년(1619)에 관음굴을 중건하며, 인조 9년(1631)에 재건하여 어느 정도 복원된다. 그 모습은 겸재 정선이 힘찬 필치로 그린 낙산사와 관음굴에 잘 남아 있다. 이후 낙산사는 중건을 거듭하며 1925년에는 의상대까지 세워 동해 일출의 적지로 자리매김한다. 그러나 삼팔선 근역에 위치, 한국전쟁의 격전지가 되면서 다시금 금석물과 원통전 앞 원문을 제외한 모든 당우가 불타버린다. 불자들이 가장 많이 찾아오는 고려시대 불상인 건칠관음보살좌상(보물362호)을 모신 원통보전도 전쟁 이후 새로 세운 것이다. 연꽃을 타고 바다를 건너는 관음이니, 낙산사 홍련암이란 검푸른 동해에 떠있는 붉은 연꽃, 즉 관음의 분신이렸다. 홍련암 마루바닥에는 10㎝ 가량의 구멍이 있어 파도가 들이치는 모습이 한 여름에도 전율을 느끼게 한다. 해일이 몰아쳐서 집채만한 파도가 몰아쳐도 홍련암만큼은 버텨 왔다. 의상이 관음을 친견하고 동해 용왕이 여의주를 내린 장소로 손색이 없다. 이상하게도 벼랑 위에 위태롭게 세운 홍련암은 온갖 병화에도 끄떡없다. 그것 또한 관음의 원력은 아닐런지. 그러나 이 모든 게 이번 산불로 다시 잿더미가 되고 말았으니 낙산사는 본디 애초의 출발지였던 관음굴로 되돌아 간 셈이다. 원통보전은 물론이고 해수관음을 상징하던 보타루도 사라졌다. 한가롭게 바다를 굽어보며 차를 마시던 솔숲이 흉물스럽게 그을렸다. 바닷가 홍련암 요사채도 사라지고 관음굴만이 화마를 피했으니 본디 낙산사의 원점으로 회귀한 폭이다. 붉은 장송이 하늘을 가린 아름다운 솔밭길을 올라가면 해수관음상이 있는 신선봉이 나오는데, 그 솔밭도 그만 타버렸다.1977년에 700여t의 돌을 들여 높이 16m로 세운 해수관음만이 남아있어 먼 동해를 굽어보며 서있을 뿐이다. 관음보살이 중생들의 원력을 시험하려고 하심인가. ●집채만한 파도 몰아쳐도 버텨온 홍련암 죽어 자빠진 소나무의 몰골들이 귀신을 부를 것만 같은데 화마가 훑고 갔어도 낙산의 일출만은 어제와 다를 바 없으니, 그 아름다운 관해의 1번지를 모두의 공력으로 다시 세울 일이다. 관해의 명당이어서 만은아니다. 역사적으로나, 규모로나 동해안 사찰의 태두 격인 낙산사의 화마 소식에 실로 안타까운 헌사를 바치지 않을 수 없다. 삶의 덧없음을 갈파한 낙산사 조신설화처럼 사람의 인생뿐 아니라 말 못하는 문화유산도 덧없는 것이런가. 아름다운 원장(垣墻)이 처참하게 불에 그을린 채 동해를 굽어보는 모습이 참으로 안쓰럽고 민망하다.
  • [안귀옥 가족클리닉 행복만들기] 재산분할 요구하는 바람난 아내

    결혼 10년차의 두 남매를 둔 사람입니다. 저는 10년을 오로지 가족을 위해 쉬는 날 없이 직장생활을 하면서 가정에만 충실했습니다. 저는 최근에 아내가 인터넷 채팅으로 만난 남자와 외도에 빠져서 아이들에게 밥조차 제대로 차려주지 않고 밖으로만 돌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미칠 것 같습니다. 아내에게 사정도 해보고 을러보기도 했지만 아내는 오히려 더 당당하게 저에게 이혼을 요구하면서 저의 재산의 절반은 자기 것이라고 합니다. 아내를 채팅에서 멀어지게 할 방법은 없을까요. 또 아내의 외도로 이혼을 하게 되는 경우에도 제가 10년 동안 번 재산의 절반을 주어야 하나요. -김철수(가명)- 철수씨의 심정은 이해가 갑니다. 인터넷 채팅으로 가정불화를 겪는 가정을 많이 상담했습니다. 특히 가정이라는 틀에만 묶여있던 아내들이 인터넷이라는 시공을 초월하는 매체를 통해서 만난 남성과 교제를 시도하다가 급기야 불륜에 빠져들어 헤어나지 못하는 사례가 종종 뉴스로 보도되는 것도 보았습니다. 인터넷 채팅은 일종의 중독증이어서 처음에는 단순한 호기심으로 시작하다 점점 재미를 붙이면서 나중에는 채팅을 하지 않으면 불안하고 초조한 정도가 극에 달한다고 합니다. 심리학이나 정신과 영역에서는 이러한 증세도 일단 치료가 필요한 병의 하나로 보고 있습니다. 어떤 남편은 아내를 컴퓨터에서 떼어 놓으면 나아질까 하는 생각에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고 아내에게 가족끼리 외식을 하자는 핑계를 대서 밖으로 데리고 나왔는데 밖에 나온 아내는 휴대전화를 통해 서로 문자메시지를 주고 받으면서 금단증세를 달래고 있었다고 합니다. 일단 채팅 중독증에 걸려 상황판단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무엇보다도 인터넷이라는 가상세계와 현실세계를 분리시키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러한 현실을 직시하도록 하는 작업이 이루어진다면 그 다음에는 가족들의 끊임없는 관심으로 채팅에서 멀어지게 해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물론 전문가의 조력을 받는 것도 필요할 것이구요. 만약 철수씨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내가 이혼을 요구할 경우, 우선 철수씨가 이혼할 생각이 없다면 협의이혼에 응할 필요는 없습니다. 나아가 아내가 재판상 이혼을 청구한다고 하더라도 아내의 귀책사유가 인정된다면 재판상 이혼은 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이혼재판에서는 혼인파탄에 책임이 있는 배우자의 이혼청구를 받아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만약 철수씨도 더 이상 가정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없는 아내와 혼인생활을 계속할 수 없다는 판단이 들어 이혼을 하려 한다면, 설령 혼인파탄에 책임이 있는 배우자라고 하더라도 혼인 중에 형성한 재산에 대해서는 재산분할을 해 주어야 합니다. 다만 어느 정도 재산을 분할해줄지는 법률이 정한 바는 없습니다. 참고로 우리 판례에서 재산형성의 기여도가 인정되는 것을 본다면 혼인 중에 직장생활이나 기타 소득이 없었던 주부의 경우에는 전체 재산의 25%에서 35%정도를 분할해 주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맞벌이 부부는 아내에게 45%에서 50% 정도를 나누어 주는 것이 보통입니다. 전업주부의 가사노동력을 전체 재산형성의 3분의1 정도로 보고 있다는 것이지요. 물론 재산분할의 비율을 각 사례마다 구체적인 내용을 참작해서 정하는 것이므로 고정적인 것은 아닙니다. 필자가 실제로 처리한 사건 가운데 아내 명의로 된 재산을 아내가 15년 동안 혼자 벌어서 형성한 사실이 인정되고 그동안 남편은 병중이어서 전혀 소득이 없었다면 남편에게 20%의 기여도를 인정한 사례가 있었습니다. 이 경우에는 남편이 가사노동조차 별로 기여한 것이 없다는 판단을 받은 경우라고 하겠습니다. 물론 이혼한 경우, 혼인파탄에 책임이 있는 배우자는 재산분할을 받더라도 위자료는 상대방 배우자에게 지급해야 합니다. 보다 구체적인 상담은 사단법인 한국행복가족상담소 032-862-7119에서 하시기 바랍니다.
  • “포스코, 근본적 체질변화 필요”

    “포스코, 근본적 체질변화 필요”

    포스코 이구택 회장이 또다시 목소리를 높였다.“근본적인 체질 변화가 필요하다.”며 임직원들의 보수적 성향을 질타한 것이다. 3일 포스코에 따르면 이 회장은 최근 사내 임원회의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철강회사가 됐다는 점에 만족해 회사 전 부문에서 보수적으로 안주하려는 경향이 깊어졌고 진취적인 정신도 퇴색하고 있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그동안 수많은 변화를 시도해 왔지만 근본 체질을 바꾸지는 못했다.”면서 “포스코는 이제 근본적인 체질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역설했다. 이 회장은 또 자동차산업에 집중하며 글로벌화를 통해 세계 최고가 된 일본 도요타자동차를 예로 들며 포스코는 도요타 같은 도전정신이 부족하다고 질타했다. 이 회장은 “세계화와 통합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국제 철강산업의 거대한 흐름에서 살아남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도전정신”이라며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정신을 기업문화로 뿌리내려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는 사상 최대 호황을 맞아 현실에 만족하려는 임직원들의 ‘성공 매너리즘’을 경계하고 해외제철소 건립 등 글로벌화 시대를 앞두고 도전정신을 고취하려는 의지로 풀이된다. 이 회장은 올 초에도 임직원들에게 “지금의 성공에 취해 자만에 빠진다면 5년 후에 혹독한 시련을 맞게될 것”이라고 경고했었다.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인사]

    ■ 국무총리비서실 △의전비서관 任承彬 ■ 문화일보 (편집국)△부국장 黃錫淳 崔范△정치부장 崔永範△산업부장 吳昌圭△사회부장 金在穆△전국부장 李相鎬△AM7편집장 金承炫(광고국)△광고영업부장 金俊台△광고영업부1팀장 李應學△〃 2팀장 金龍雄△AM7광고영업부장 蔡珉基 ■ 아이뉴스24 (편집국)△통신방송팀장 윤휘종△정보화팀장 백재현△글로벌-경제팀장(직무대리) 이구순△대기자 김익현(영업국)△사업마케팅부 부국장 조인 ■ 동부그룹 ◇부사장 선임 △동부건설 하진태 김용식 정주섭△㈜동부 전대진◇상무승진△동부아남반도체 서광하 정동호 최현수△동부제강 이성도 배흥준 박재종 이충녕△동부건설 제해찬 김일섭 김득한 장해룡 장준 김재경 문제환△동부정보기술 이한일 김헌성△㈜동부 이용호 박무열 ■ 일동제약 ◇승진 △전무 程鍊鎭△상무 郭泰文 金載龍 金重孝 尹雄燮 李銀國 田龜錫△이사 尹弼晧 李炳岸 李興稙 韓世鎔
  • ‘생태계 보고’ 갈라파고스 죽어간다

    ‘생태계 보고’ 갈라파고스 죽어간다

    1835년 9월 남아메리카 해안을 돌며 생태계를 연구하던 찰스 다윈은 에콰도르 서쪽 1000㎞ 지점에 있는 갈라파고스제도에 도착한다. 다윈은 이곳에서 다양한 생물들을 관찰하며 마침내 ‘진화론’을 탄생시키게 된다. 이처럼 ‘생태계의 보고(寶庫)’였던 갈라파고스가 인간에 의해 파괴되면서 희귀 동물들이 멸종위기에 놓였다고 영국 인디펜던트가 31일 보도했다. 갈라파고스는 위협받고 있는 전세계 생태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유네스코 10일 긴급 조사단 파견 환경단체 ‘갈라파고스 보존운동’(GCT) 등에 따르면 바다이구아나, 갈라파고스펭귄, 앨버트로스, 부비(가마우지의 일종), 갈라파고스거북 등 이 제도에 주로 서식하는 희귀한 동물들의 개체 수가 급감하면서 지구상에서 영원히 사라질 위기에 놓여 있다. 1978년 갈라파고스를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유네스코는 ‘긴급상황’으로 보고 오는 10일 대표단을 보내 조사를 벌이기로 했다.GCT는 적절한 보호조치가 없다면 갈라파고스에 서식하고 있는 2909종의 생물 가운데 척추동물의 50%, 식물의 24%가 머잖아 멸종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최대 위협요인은 인간 갈라파고스를 파괴하는 것은 다름아닌 ‘인간’이다.1960년 2000명에 불과했던 주민이 현재 2만 7000명으로 늘어나면서 생물들을 포획하고 서식지를 파괴했다. 관광객이 몰리고 있는 것도 생태계 파괴의 요인이다. 환경보호론자들은 특히 하나의 긴 낚싯줄에 여러 개의 바늘을 달아서 물고기를 잡는 ‘주낙’을 경계하고 있다. 갈라파고스 당국은 이를 금지하고 있지만 어부들은 생계를 위해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GCT의 레오노르 스트제픽 사무총장은 “지난해 시범적으로 주낙을 일부 허용한 결과 물고기뿐 아니라 멸종위기에 놓인 다른 동물들도 걸려드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말했다. 그린피스의 공동창설자 폴 왓슨은 “주낙이 사용된다면 갈라파고스는 죽음의 섬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세계 생태계 60% 파괴 생태계 파괴는 갈라파고스에 국한되지 않는다. 유엔 주도로 95개국의 과학자들이 참가,4년 동안의 연구 끝에 30일 발표한 ‘밀레니엄 생태계 평가보고서’에 따르면 물과 공기 등 전세계 생태계의 60%가 오염되거나 과잉개발돼 회복이 어려운 지경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인위적 개발은 자연적인 속도보다 1000배나 빠르며 1945년 이후 개간된 농경지 규모는 18,19세기를 합친 것보다 많다고 지적했다. 그 결과 전세계 양서류의 32%, 포유류의 25%, 조류의 12%가 이미 멸종위기에 놓여 있다고 분석했다. 장택동기자 taecks@seoul.co.kr
  • 7일 개봉 영화 ‘엄마’ 주연 고두심씨

    7일 개봉 영화 ‘엄마’ 주연 고두심씨

    “나는 어머니를 사랑합니다.” 지난해 KBS와 MBC 양 방송사에서 연기대상을 받은 고두심(54)의 수상 소감은 많은 이들을 숙연하게 했다.4년 전 돌아가신 친정 어머니를 ‘종교’라고 표현하는 그녀.33년 연기 인생의 대부분을 ‘한국 어머니’의 표상으로 살아온 고씨가 ‘인어공주’에 이어 영화 ‘엄마’(감독 구성주·7일 개봉)로 브라운관을 넘어 스크린에까지 강한 모성애을 전파하고 있다. ●어지럼증 때문에 차 못타는 68세 촌로役 “영화를 찍는 동안 우리 일곱 남매를 키우신 부모님 생각이 간절했어요. 어렸을 때 머리맡에서 ‘자식들 밥이나 제대로 먹여 키울 수 있을까’걱정하시던 모습이 새삼 떠오르더군요.” 영화속 ‘엄마’는 마흔 넘어 늦둥이 막내딸을 낳다가 어지럼증이 생겨 차를 타지 못하는 68세 촌로. 그러나 금쪽같은 막내딸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굳은 결심으로 전남 해남에서 목포까지 3박4일간의 도보여행을 감행한다. 차로 가면 1시간 남짓인 거리. 그러나 자식들과 함께 한발한발 내딛는 여정에는 어머니의 다사다난한 삶을 대변하듯 신작로, 황톳길, 산길 등이 굽이굽이 펼쳐진다. “작년 6월부터 두달 남짓 촬영했는데 뙤약볕 내리쬐는 길에서만 찍다보니 얼굴이며 목이 새까맣게 타서 말이 아니었어요. 그땐 그런 걸 몰랐지요. 나중에야 ‘아이구, 미쳤군’싶더군요. 여배우 얼굴이 이게 뭔가 해서요. 뒤늦게 오이 마사지며 팩한다고 고생 좀 했지요.” 배역에 몰입하면 앞뒤 안 재는 습관은 오래 전부터 몸에 배었다.1990년 드라마 ‘춤추는 가얏고’에서 허리 꼬부라진 할머니역을 할 때는 ‘앞으로 배우 못해도 좋다’는 생각으로 육신을 내던졌다. “처녀적부터 이상하게 어머니나 할머니역만 들어왔어요. 처음엔 그저 배우가 된다는 생각에 싫은 줄도 몰랐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좀 섭섭하기도 해요. 그 나이때에 할 수 있는 예쁜 역할들을 못해 본 것에 대한 아쉬움이랄까. 그래도 크게 후회는 안 해요. 내가 가는 길이 맞다고 생각하니까.” ●아이들에게 좋은기억 주는 엄마 되고파 세월이 흐를수록 ‘내리사랑’이란 말이 가슴에 사무친다. 영화에서 막내딸 주려고 품에 꼭 싸안고 가는 부적은 그런 ‘내리사랑’의 징표이다.“돈도 아니고 뭐 그렇게 중요한 거냐고 타박할 수 있는데 그게 바로 엄마의 마음이죠. 시집가는 막내딸이 측은해서 뭐라도 해주고 싶은 마음. 두 아이를 낳아서 키워보니 그 심정을 뼛속까지 알겠더군요.” 고씨는 문득문득 부모가 된다는 것에 공포감을 느낀다고 했다. ‘우리 부모가 나에게 해준 것만큼 자식들에게 해줄 수 있을까’하는 두려움이다.“아이들은 저보고 ‘좋은 엄마’라고 얘기하지만 다 믿지는 않아요. 그저 어머니가 나에게 그러셨던 것처럼 좋은 기억만 남겨준다면 더 바랄 게 없지요.” 봉사활동에 남다른 열정을 보이는 고씨의 생활 태도도 ‘열심히 살아라’‘눈높이를 낮춰라’는 어머니의 가르침에 따른 것이다. ●6~7월쯤 ‘친정엄마’로 연극무대 설 계획 드라마 ‘한강수타령’도 종방됐고, 영화도 곧 개봉하고 나면 당분간 쉬면서 숨을 고를 생각이다. 그러고 나서 6월이나 7월쯤 연극무대에 설 계획이다. 제목은 ‘친정엄마’. 드라마와 영화에 이어 무대에서 고씨가 보여줄 어머니의 모습이 궁금해진다. 글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사진 강성남기자 snk@seoul.co.kr
  • [시론] 독도에 일제식민 전시관 세우자/이숙영 방송인

    [시론] 독도에 일제식민 전시관 세우자/이숙영 방송인

    중국의 고전 한비자에 ‘반찰법(反察法)’이라는 게 있다. 어떤 상황이 벌어졌을 때 눈에 보이는 직접적 현상만 보려하지 말고 그 이면을 뒤집어보라는 충고이다. 이런 관점에서 독도문제를 되짚어 보자면 우리가 흥분하면 할수록 저들은 쾌재를 부를 수도 있다. 지난 주말, 진행을 맡고 있는 프로그램 3000회 특집으로 일본에 갈 기회가 있었다. 가서 보니 독도에 관심을 기울이는 일본인들이 그리 많지 않았다. 심지어 독도가 어디에 붙어 있는지 모르는 사람들도 꽤 되었다. 오히려 우리쪽 뉴스화면이 인용 보도된 뒤 그 문제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되는 사람이 생겨나는 듯했다. 잘 아는 것처럼, 일본인들은 혼네(진짜 속마음)와 다테마에(겉치레)로 두개의 얼굴이 있다고 하는데, 흥미로운 건 쓴 것을 먹게 하고 몰래카메라로 촬영한 뒤의 반응이다. 한국인은 백이면 백, 얼굴을 찡그리고 뱉어내는데 일본인들은 뱉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한다. 독도에 관해서만큼은 우리도 이런 이중전법이 필요하지 않을까?즉 민간차원에서 경제·문화교류는 계속하되, 정치·외교적으로는 독도소유권을 끈질기고도 이성적으로 주장하는 전법 말이다. 그런데 요즘 우리에게는 감정적 대응만이 존재하는 것 같다. 손자병법에 보면 가장 무능한 사람은 자신의 분노를 참지 못하고 오로지 돌격만 명령하는 사람이라고 되어 있다. 최근 독도 관련 보도나 정부 정책들을 보면 광분과 개탄만 있을 뿐이지, 정작 외교적 실리나 전략은 실종된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적의 의도를 정확히 간파해내고 그들의 내면을 읽어 공수양면을 자유롭게 구사할 줄 아는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가령 식당이나 골프장에 걸린 일본인 출입금지 팻말이 일시적 기분풀이는 될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일본인들은 아무도 한국에 오지 말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외교부는 전혀 몰랐고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작성했다는 강경 메시지 역시, 대통령이 아닌 주무장관 입에서 나오게 하고, 대통령은 슬쩍 빠져서 소위 외교적 발언이라는 걸 하였더라면 모양새가 훨씬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국민들의 흥분은 정서적으로 충분히 공감이 가나, 대통령의 흥분은 국민들을 불안하게 만든다. 또한 강경 일변도의 정책은 결국 그들을 도와주는 꼴이 될 수도 있다. 이번 도쿄 생방송 후 느낀 점은 한류가 아직은 대단하다는 점이다. 일본 내의 우익세력들은 한류가 빨리 사그라지기를 바라며 거품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나 본데, 현지에서 체감되는 한류 붐은 상상 이상이었다. 겨울연가에 이어 현재 일본 TV에서 방영중인 ‘천국의 계단’을 보려고 일찍 귀가하는 직장인이 늘고 있고, 도쿄 시내 음반 가게에는 보아는 물론이고 신승훈이나 신화 앨범을 찾는 사람들도 종종 눈에 띈다. 예전에는 한국인을 무시하던 중·장년층들도 겨울연가의 히트 이후에는 한국인과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180도 달라졌다고 한다. 한류로 인한 경제 효과가 4조 5000억원이라는 보도도 있고 보니, 실로 어머어마한 숫자가 아닐 수 없다. 당장 내 자신이 느끼는 것 중의 하나는 몇 년전만 해도 호텔 종업원들이 한국인들을 은근히 무시한다는 느낌이었는데, 이번에 가서 보니까 그들의 태도마저 바뀌어 있었다. 현재 일본에서 취업해 있는 많은 한국의 젊은이들, 교포, 유학생, 한류 연예인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건, 독도는 당연히 우리 것이므로 이 문제로, 모처럼 꽃핀 한류에 찬물 끼얹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정치인들을 비롯해 언론, 그리고 국민들에 이르기까지 상황을 입체적으로 보고 공수 양면을 자유롭게 구사할 줄 아는 융통성이 필요하다. 아 참, 이런 방법은 어떨까?어차피 실제 지배권이라는 측면에서는 우리가 유리하고, 마침 독도관광도 허용이 됐으니, 독도에다가 일제 식민시대의 만행을 알리는 전시관이나 위령탑을 세우면 어떨는지. 자기네들이 떠들면 떠들수록 부끄러운 과거가 회자될 테니까 결국은 조용해지지 않을까? 이숙영 방송인
  • 삼성전자, 인텔 잡는다

    삼성전자, 인텔 잡는다

    |타이베이 류길상특파원|삼성전자가 PC중심의 메모리반도체 업체에서 모바일 기기 중심의 ‘모바일반도체’업체로 변신한다. 이에 따라 지난 20여년간 PC의 중앙처리장치(CPU)를 주력으로 세계 반도체 시장을 주름잡던 인텔과의 ‘헤게모니’ 쟁탈전이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삼성전자 반도체총괄 황창규 사장은 22일 타이완 타이베이에서 열린 ‘제2회 삼성모바일솔루션포럼(SMS)’에서 지난해 30%대였던 삼성 반도체의 모바일 비중이 2008년이면 50%를 넘길 것이라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반도체 매출 160억달러(점유율 7%)로 인텔(14%)에 이어 세계 2위를 달렸지만 모바일반도체 분야에서는 강한 면모를 보였다. 앞으로 삼성전자가 모바일반도체 시장을 선도하게 될 경우 전체 반도체 시장 점유율도 크게 올라갈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는 1·4분기 좋은 실적을 바탕으로 올해 반도체 매출이 200억달러를 넘을 것으로 전망한 바 있다. 모바일반도체 시장은 지난해 465억달러에서 올해는 487억달러로 성장할 전망이다.2008년이면 623억달러로 급성장한다. 삼성전자의 지난해 모바일반도체 매출은 약 50억달러로 전체 시장의 10.2%를 차지한 것으로 추정됐다. 모바일반도체는 휴대전화, 디지털카메라, 디지털캠코더,MP3플레이어 등 휴대용 디지털기기에 사용되는 모바일D램, 플래시메모리, 모바일CPU, 디스플레이구동칩(DDI),CMOS이미지센서(CIS) 등을 의미한다. 황 사장은 “삼성전자는 반도체 업계 유일의 ‘토털 모바일 솔루션’ 업체로 모바일 컨버전스 시대에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경쟁력을 갖고 있다.”고 자신했다. 실제 삼성전자는 모바일기기에 주로 사용되는 플래시메모리는 2년 연속 세계 1위를 달리고 있고 DDI역시 3년 연속 세계 1위를 고수했다. 모바일용 LCD 또한 세계 1위다. 모바일 CPU와 CIS도 2007년까지 1위로 올려 놓을 계획이다. 삼성전자는 또 이날 포럼에서 세계최대 용량의 1기가비트 모바일 D램, 휴대전화용 시스템인패키지(SiP),AM OLED용 DDI,MP3플레이어용 LCD를 선보이며 모바일 핵심 부품 선두업체로서의 위상을 과시했다. 한편 업계 유일의 모바일 반도체 포럼인 SMS에는 에이서, 컴팔, 아수스텍 등 타이완 현지 130여개 업체 1000여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ukelvin@seoul.co.kr
  • 서울 동북부 환상의 나들이 코스

    서울 동북부 환상의 나들이 코스

    서울 동북부에 가족·연인과 함께 주말을 즐길 수 있는 트라이앵글 코스가 만들어진다.‘뚝섬 서울숲~한강시민공원 뚝섬지구~어린이대공원’을 잇는 삼각 코스다. 35만평 규모의 서울숲은 오는 6월 중순 개장할 예정이며, 한강시민공원 뚝섬지구에서는 매월 첫째·셋째주 토요일 약 10만명의 시민이 참가하는 국내 최대 벼룩시장이 열린다. 여기에 최근 어린이대공원도 가족테마공원으로 변신을 선언하고 적극적으로 관람객 유치에 나서고 있다. 서울숲에서 벼룩시장까지는 한강을 따라 3㎞이며, 벼룩시장(지하철 7호선 뚝섬유원지역)에서 어린이대공원까지는 지하철 7호선으로 두 정거장 떨어져 있다. 모두 벼룩시장을 중심으로 반경 3㎞ 이내에 위치하고 있다. 서울시가 이 세 곳을 각각 ‘서울숲-자연’‘벼룩시장-알뜰쇼핑’‘어린이대공원-가족’이라는 주제를 잡고 연계 전략을 세운다면 서울 성동구와 광진구를 중심으로 한 동북부의 새로운 테마형 주말 나들이 코스가 만들어 지게 된다. 시 고위 관계자는 “아직 구체적으로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세 지역을 연계할 경우 상당한 시너지 효과가 날 것으로 본다.”면서 “관련 국·실을 중심으로 안(案)을 구상 중”이라고 밝혔다. ●‘벼룩시장’과 서울숲 연결 관건 ‘트라이앵글’의 중심에는 ‘뚝섬 벼룩시장’이 있다. 지난 19일 올해 첫 개장한 벼룩시장에는 주최측 추산 9만여명의 시민이 참가했다. 지난해 회당 평균 6만∼7만명이 참가한 것에 비하면 크게 증가한 숫자다. 행사를 주최한 ‘아름다운 가게’의 조현경 팀장은 “지난해 처음 시작한 벼룩시장이 그동안 홍보가 많이 됐기 때문인 것 같다.”면서 “나눔문화가 확산되면 앞으로 더욱 많은 시민이 참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벼룩시장을 찾은 10만명에 가까운 인파를 서울숲과 어린이대공원 등으로 유도하기 위해서는 기반시설 정비와 적극적인 홍보전략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벼룩시장~서울숲’을 잇는 한강변 자전거도로의 정비가 절실할 것으로 보인다. 벼룩시장 행사를 준비한 시 환경국 이인근 재활용1팀장은 “10만명의 서울시민이 한꺼번에 모이는 행사는 드물다.”면서 “이곳에 나온 가족·연인들이 자전거를 타고 한강변을 따라 서울숲에 갈 수 있다면 벼룩시장과 서울숲 모두에 ‘윈윈전략’이 될 것”이라고 제안했다. 청담대교 아래에 있는 벼룩시장부터 성수대교 아래에 있는 서울숲까지는 현재 폭 2m 규모의 보행 및 자전거 도로가 마련돼 있다. 그러나 이 도로는 콘크리트 포장만 돼 있고 너무 좁기 때문에 많은 시민이 이용할 경우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이 때문에 강변북로의 청담대교∼성수대교 구간 바로 옆에 새로운 자전거 전용도로를 만들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타당성을 얻고 있다. 현재 청담대교∼영동대교 구간에는 폭 약 4m 규모의 도로가 만들어져 있으나 이곳에는 각종 차량들이 무질서하게 주차돼 있고, 자전거나 인라인스케이트에 알맞도록 포장되지 않아 시민들이 이용하기에는 어려운 상황이다. 뚝섬 벼룩시장 근처에서 자전거대여소 관리를 맡고 있는 고재홍(60)씨는 “지금은 한강변 자전거도로가 좁고 보행자가 많기 때문에 자전거를 빌려간 시민들이 주변을 돌아다닐 뿐 서울숲까지 가 볼 엄두는 못내는 실정”이라면서 “청담대교에서 영동대교뿐만 아니라 성수대교까지 자전거도로가 정비된다면 서울숲까지 자전거로 가고 싶은 시민들이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각종 이벤트 활용 시민에 다가가야 이에 대해 한강시민공원사업소 관계자는 “자전거도로 정비는 구상중이지만 강변북로(청담대교∼성수대교)확장공사 때문에 당장은 어려운 실정”이라고 언급했다. 강변북로 확장공사는 내년 10월까지 예정돼 있다. 뚝섬 벼룩시장에는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부모들이 눈에 많이 띈다. 이곳에서 아이들에게 경제개념을 이해시키고 재활용을 통한 환경의 중요성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다. 이같은 가족단위의 시민들을 인근 어린이대공원으로 유도하기 위한 홍보가 절실하다. 초등학교 3학년·1학년 두 딸을 데리고 벼룩시장을 찾은 강현주(38·주부)씨는 “어린이대공원이 옆에 있는 것은 알지만 주말에 어떤 이벤트가 있는지 잘 모르고 별로 재미가 없을 것 같다.”면서 “벼룩시장 내에 어린이대공원 이용방법과 이벤트 등을 홍보하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어린이대공원을 관리하고 있는 서울시 시설관리공단은 공원을 가족테마공원으로 전면 리모델링해 관람객들을 유치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또 봄∼가을 개장 시간도 밤 10시까지 연장하고 오는 4월부터는 봄꽃축제 등 다양한 이벤트를 여는 등 시민들에게 다가가기 위한 각고의 노력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불과 지하철 두 정거장 떨어진 곳을 찾은 가족단위의 시민조차 공원으로 이끌지 못한다면 공단의 노력은 결국 실패”라는 쓴소리도 만만찮다. 시 관계자는 “공단측이 뚝섬 벼룩시장을 찾은 시민들에게 먼저 어린이대공원을 적극적으로 홍보한다면 관람객 유치에 더욱 효과적일 것”이라고 조언했다. ■ 뚝섬 벼룩시장 이모저모 서울시가 주최하고 비영리 재단인 아름다운 가게가 운영하는 뚝섬 벼룩시장이 지난 19일 올해 처음으로 문을 열었다. 주최측 추산 이날 하루 동안 벼룩시장에 참가한 시민은 9만여명으로 지난해 평균 6만∼7만명이 참가한 것에 비해 크게 늘었다. 특히 이날 벼룩시장에는 ‘윤재·성재네 가게’‘가야네 가게’등 아이들의 이름을 딴 가게들이 많았다. 아이들에게 경제 개념을 이해시키고 재활용을 통한 환경의 중요성을 체험시키기 위한 교육의 장으로 벼룩시장을 활용하려는 부모들이 많은 것이다. 또 최근 국가적 관심사로 떠오른 독도문제도 벼룩시장에서 키워드가 됐다. 크레파스, 풀, 색연필 등 주로 학용품을 파는 서울 잠전초등학교 4학년 학생 12명은 독도를 자기들 땅이라고 우기는 일본의 행태를 빗대 가게 이름을 ‘주식회사 생뚱맞죠’라고 지은 것. 아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일본 사람들 생뚱맞아요.”라고 외치면서 “판매 수익금을 전액 독도 기금으로 내놓겠다.”고 말했다. 유명인의 물건을 경매에 부치는 ‘명사경매전’도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이명박 서울시장이 취임후 항상 지니고 다니며 이날 아침까지 결재용으로 썼던 몽블랑 볼펜은 15만원에 낙찰됐으며 가수 이효리씨의 모자는 4만원, 탤런트 김규리씨의 티셔츠는 2만원에 팔리기도 했다. 이날 장터에 전시된 청계천, 서울숲, 뉴타운 등의 완성후 모습을 보여주는 조감도는 서울 시정 홍보에 상당한 기여를 했다는 평가다. 서울 성북구에 사는 윤태호(28)씨는 “언론을 통해 청계천이나 서울숲의 조감도를 간헐적으로 봤지만 이렇게 한꺼번에 모아두니 느낌이 다르다.”고 말했다. 벼룩시장에서 판매에 참여한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수익금의 10%를 기증했으며 수익금은 결식아동돕기에 사용된다. 시는 지난해 매월 한 차례씩 토요일에 열어온 벼룩시장을 다음 달부터는 매월 첫째·셋째주 토요일에 개최하며 오는 9월부터는 매주 토요일 열 계획이다. 김기용기자 kiyong@seoul.co.kr
  • [길섶에서]심야의 벨소리/이용원 논설위원

    당신이 가장 싫어하는 소리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두 가지를 들겠다. 하나는 불자동차 소리처럼 느닷없이 거리를 울리는 비상 사이렌이다. 불자동차건, 경찰차건, 앰뷸런스건 모두 대형 사고·사건을 연상케 하는 불길한 소리이다. 또 다른 하나는 한밤중 집안에 울리는 전화벨. 밤 깊어 오는 전화치고 기쁜 소식을 전하는 예는 없다. 누군가 친척·지인이 세상을 떠났거나 크게 다친 일, 큰 사건이 터져 회사에서 급히 찾을 때, 잔뜩 취한 친구의 얼른 나오라는 독촉, 아니면 파출소(또는 경찰서)에 억울하게 잡혀 와 있으니 도와 달라는 부탁 등등이다. 그러니 한밤중에 벨이 울리면 가슴이 철렁하고 최악의 사태가 머리를 스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식구들에게는 저녁 9시가 넘으면 절대 남의 집에 전화하지 말도록 했다. 또 밤 10시 넘어 전화가 오면 싫은 티를 냈다. 하지만 이제는 각자 핸드폰을 써서인지 밤늦게 전화 오는 일은 거의 없다. 그런데 달포 전 밤 1시쯤에 벨이 울렸다. 허겁지겁 받아 보니 고교 동창이다.“우리 애 대학에 붙었다. 네가 궁금해할 것 같아서.” 속으로는 ‘이놈을 죽여?살려?’하면서도 대답은 달리 나갔다.“어이구 축하한다. 애한테도 전해 줘.” 이용원 논설위원 ywyi@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