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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사교육 대책, 학원 폭리부터 바로잡길

    서울시내 대치동, 중계동, 목동 등 3개 대표적 ‘사교육 특구’에 위치한 학원들이 해당 교육청에 신고한 수강료보다 최고 4배까지 폭리를 취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29일자 서울신문 탐사보도에 따르면 이들 3개 지역 40여곳의 학원과 교육청으로부터 입수한 학원별 수강료 신고현황을 분석한 결과 학원들은 수강료를 높이기 위해 수업시간을 조작하고, 이중장부를 작성해 왔다고 한다. 관할 교육청에 구성된 학원 수강료조정위원회는 수강료 산정에 제 역할을 하지 못해 무용지물로 전락했다. 서울시교육청이 지난해 12월 서울대에 의뢰해 만든 ‘학원별 적정 수강료 산출시스템’은 낮잠을 자고 있다고 한다.우리는 이 보도의 신빙성이 매우 높다고 본다. 실제 서울시교육청이 지난 18일 발표한 사교육비 경감 세부실천계획에는 수강료 산출시스템이 되레 학원들의 수강료를 높일 여지가 있다며 적용하지 않은 것이 방증이다. 수강료조정위원회도 몇몇 학원장들 중심으로 운영하고 있어 학부모들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았다. 학원들이 불법으로 폭리를 취해도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관련 조례상 수강료를 초과 징수한 학원은 행정처분을 받도록 돼 있지만 단속은 시늉에 그치기 일쑤다.불황 속에서 다른 씀씀이를 줄이더라도 사교육은 끊지 못하는 게 우리의 교육현실이다. 학부모들은 이구동성으로 정상적인 가계살림으로는 사교육비 감당이 힘들다고 하소연한다. 정부가 미래기획위원회 주도로 7대 대책을 내놓고 사교육비 고삐죄기에 나섰다. 증시 자료에 의하면 참여정부 5년 동안 학원 등 사교육 업체들의 시가총액이 14배 늘어났고, 매출액은 20% 늘었다고 한다. 갖가지 불·탈법으로 배를 불린 학원들의 수강료를 정상화시키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 ‘눈물의 여왕’ 신세경 “눈물연기 어려워” (인터뷰①)

    ‘눈물의 여왕’ 신세경 “눈물연기 어려워” (인터뷰①)

    “서태지가 누군지도 몰랐어요. 초등학교 2학년이었는데 너무 어렸으니까요.” 대중은 신세경을 서태지 5집 앨범 ‘Take 5’의 포스터 속 ‘서태지소녀’로 처음 소개받았지만 당시 본인은 서태지가 누군지도 몰랐다. 더구나 겨우 9살. 감정 연기가 힘들지 않았느냐는 말에 신세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 눈물연기는 지금도 어려워 “눈물 연기는 지금도 어려운데 그땐 더 했죠. 오디션 미팅 때는 너무 떨려서 제대로 울지도 못했구요.” 촬영 당시 슬픈 음악을 틀어놓고 할아버지를 생각하며 하루 종일 울었던 게 기억난다고 했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눈물의 여왕’이란 별명까지 얻은 신세경이 눈물 연기가 어렵다고 할 줄은 몰랐다. “‘선덕여왕’을 하고 나서 감정의 변화를 좀 더 빨리 잡을 수 있게 됐어요. 어린 천명공주 역은 저에게는 특히 많은 공부가 됐던 경험이었죠.” 신세경은 지난 16일 방송을 마지막으로 천명공주 역의 바통을 박예진에게 넘겼다. ‘선덕여왕’에 어린 천명공주 신세경이 없으니까 허전하다는 말에 “나도 아직 천명공주를 다 떠나보내지 못했다.”고 답했다. “마지막 방송 직전인 15일까지 촬영했어요. 드라마 일정이 정신없이 진행되다 보니까 ‘이제 끝이구나, 섭섭하다’는 생각도 제대로 못했죠.” ◆ ‘미실’ 고현정과의 기싸움에 밀리지 않아 신세경은 2004년 15세에 SBS 드라마 ‘토지’를 통해 사극 연기에 도전했고 5년 만에 ‘선덕여왕’으로 돌아왔다. 한동안 영화 작업에 몰두했던 신세경은 영화와는 다른 드라마 작업 환경에서 적잖은 고충을 겪었다. “영화와 드라마는 연기 방식뿐만 아니라 현장도 많이 다르잖아요. 영화에 비해 드라마는 정말 여유가 없어요. 감정도 빨리 잡고 몰입도 빨라야 해요. 덕분에 공부도 많이 했죠.” 어렵기는 천명공주의 캐릭터 역시 마찬가지였다. 초반에는 바보같이 착해 미실에게 당하는 공주를 표현해야 했고 후반에는 카리스마 넘치는 확실한 변화를 보여줘야 했다. “‘토지’의 서희는 무조건 당당하고 고집스런 캐릭터를 연기하면 됐어요. 하지만 천명은 변화를 겪는 모습이 드러나야 하는데 그 경계를 넘나드는 게 쉽지만은 않더군요.” 신세경이 보여준 천명공주의 변화는 확실했다. 덕만과 함께 어려움을 이겨내고 궁으로 돌아온 천명공주는 예사롭지 않은 카리스마로 미실과의 기싸움에서 밀리지 않았다. “천명은 미실에게 대항할 준비를 하고 돌아온 거니까 더 이상 미실에게 주눅들 필요가 없었어요. 여기서부터는 숨은 독기를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죠.” 시청자들의 극찬을 예상치 못했다는 신세경은 “대 선배인 고현정과의 대면에 부담이 컸는데 결과가 좋아서 기뻤다.”며 수줍어했다. 서울신문NTN 박민경 기자 minkyung@seoulntn.com / 사진=강정화 기자@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신세경 “베드신? 조금도 두렵지 않아” (인터뷰②)

    신세경 “베드신? 조금도 두렵지 않아” (인터뷰②)

    신세경에게는 숨 돌릴 틈도 없었다. MBC 월화드라마 ‘선덕여왕’으로 새로운 모습을 각인시킨 신세경은 곧바로 영화 ‘오감도’(제작 데이지엔터테인먼트)로 관객들을 만날 준비를 모두 마쳤다. ◆ ‘오감도’ 예쁘고 농염한 사랑이야기 “‘오감도’ 촬영은 ‘선덕여왕’보다 먼저 끝났어요. 하지만 아직 완성된 영화를 못 봐서 기대가 커요.” ‘오감도’는 ‘에로스’라는 하나의 주제를 다섯 감독이 다섯 개의 이야기로 풀어낸 옴니버스 영화다. 신세경은 오기환 감독의 에피소드에 출연해 커플 바꾸기를 시도하는 여고생의 도발적인 사랑을 보여줄 예정이다. “‘오감도’는 그저 야한 영화가 아니에요. 특히 제가 찍은 오기환 감독님의 에피소드는 고등학생의 이야기라서 아주 자극적으로 그리지 않고 느낌만 예쁘게 연출했어요.” 영화 속 베드신이나 농도 짙은 연기가 두렵지 않았냐는 질문에 신세경은 “전혀 겁이 나지 않았다.”고 답했다. “저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았고 꼭 도전해보고 싶다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제가 너무 무덤덤해서 사람들이 저를 이상하게 생각하면 어떡하나 걱정이 되기도 하네요. (웃음)” ◆ 자연스러운 성장의 과정 신세경의 첫 성인연기에 본인보다도 주변사람들이 더 조심스러워 했다. 베드신이 포함된 ‘오감도’의 시나리오가 신세경에게 도착하기까지 3번의 수정이 가해졌다. “소속사에서 저는 항상 막내였으니까요. 다들 ‘막내 세경이가 놀라면 어떡하지, 막내 세경이는 이런 연기 못할 텐데’하고 생각하셨던 거죠.” 한번 읽어나 보라며 소속사에서 건네준 ‘오감도’의 시나리오를 펼쳤을 때 신세경은 정말 재미있다고 생각했고 역할에 욕심도 생겼다. “부모님도 시나리오를 보시고는 해 보라고 격려해 주셨어요. 특히 엄마가 너무 흔쾌히 허락해주셔서 오히려 제가 ‘엄마는 걱정도 안 되나’ 싶기도 했다니까요. (웃음)” 신세경은 ‘오감도’라는 영화의 작업이 즐거움 그 자체였다고 했다. 이 영화를 통해 신세경은 진정한 성인연기자로 변신하게 됐다. “어떤 사람은 제게 성인연기자로 발돋움하기 위해 ‘오감도’를 택한 것이 아니냐고 묻기도 해요. 하지만 여배우에게 성인과 아역의 경계는 분명한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나이에 맞게 성장해 이 역할을 맡게 됐을 뿐이구요.” 이제 스무 살. 이토록 어린 여배우의 한마디 한마디가 자못 어른스러웠다. 부쩍 성장한 여배우 신세경을 담은 영화 ‘오감도’는 오는 7월 9일 개봉해 관객의 감각을 자극할 예정이다. 서울신문NTN 박민경 기자 minkyung@seoulntn.com / 사진=강정화 기자@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내 몸에 흐르는 한국인의 피 실감”

    “내 몸에 흐르는 한국인의 피 실감”

    “43년 동안 쿠바인이란 정체성으로 살아왔는데 경복궁과 국립민속박물관을 3시간이 넘게 돌아다니면서 ‘내가 한국인이구나. 나에게 어머니의 한국 피가 흐르고 있구나.’하고 느꼈습니다. ” 쿠바 출신의 화가로 서울 종로구 삼청동 갤러리 반디에서 개인전을 여는 한인 3세 알리시아 데 라 캄파 팍(43). 그는 지난 19일 한국에 도착한 이후 문화적 충격으로 인한 ‘정신적 몸살’을 앓고 있다. 한국과 쿠바는 정식 수교가 안 된 탓에 그의 외할머니의 고향인 한국에 대한 정보는 빈약했다. 일제때 나라 잃은 설움을 뒤로하고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멕시코 유카탄 반도의 사탕수수 농장(애니깽)에 노동을 팔기 위해 1919년 출국했고, 당시 한국은 아주 가난한 나라였다는 정도다. 그에게 한국에 대한 강한 인상은 흑백사진으로 남은 전통혼례 장면이다. 1921년 멕시코에서 쿠바로 이주한 뒤 태어난 어머니는 한글을 읽고 쓸 수 있었지만, 한국을 잘 알지는 못했다. 그러니 한국인 어머니와 스페인계 쿠바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알리시아는 더 말할 것이 없었다. 스페인어로 말하는 그녀는 그러나 이제 자신의 이름 맨 끝에 붙어 있던 어머니의 성씨 박(Pak)을 이해할 것만 같다. 그는 “이번 방문에서 받은 한국의 느낌을 기억해 한국을 테마로 한 작품을 하겠다.”고 말했다. 수도 아바나의 산 알레한드로 예술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수로 일하다가 전업작가로 돌아선 그녀의 이번 국내 개인전은 2004년 쿠바를 방문한 구자훈 LIG손해보험 회장의 약속이 실행된 것이다. 그녀의 그림은 날개달린 남녀, 물위에 떠 있는 두상 등 초현실주의적인 중남미 미술의 특징을 특유의 색감으로 표현하고 있다. 한국의 국기인 태극문양을 추상화해 표현한 작품도 전시한다.(02)734-2321.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김태호 참사’ 오토바이 동강 난 채 30m 날아가

     25일 오토바이 충돌 사고로 숨진 탤런트 겸 모델 김태호(30)의 끔찍했던 사고 현장 사진이 공개됐다.  현장에서 사진을 촬영해 강원일보에 제공한 안광수(51) 씨는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데 갑자기 스키드마크 소리가 ‘끼이익’하고 크게 나면서 ‘퍽’하는 굉음이 들려 나가보니 오토바이 사고가 나 있었다.시계를 보니 오전 10시43분이었다.”고 증언했다.당시 그가 타고 있던  안씨는 이어 “길가에 세워둔 냉동탑차에서 불길이 치솟았고 이어 김태호씨의 오른쪽 다리에 옮겨붙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김씨를 옮기고 다리에 붙은 불을 껐다.”며 “119(응급차)가 사고난 지 5분도 안돼 도착했는데 이미 그때 김씨는 숨져 있었다.”고 말했다.  또 “김씨가 타고 있던 오토바이가 두동강 나서 앞쪽 부분은 냉동탑차에서 30여m 앞에,뒷부분은 60여m 뒤로 날아갔다.”며 “김씨도 처참한 상태로 널부러졌다.”고 전했다.  안씨는 “당시에는 오토바이 동호회 사람들이구나 생각했는데 오후에 인터넷을 보니 내가 사진 찍은 사람이 탤런트 김태호씨인 것을 알았다.”고 덧붙였다.  당시 고인은 1000㏄급 오토바이(S2R 1000)를 타고 동호회 회원 3명과 함께 소양댐을 구경한 뒤 아침식사를 하러 가다 강원도 춘천시 우두동 도로에 주차해둔 1톤 냉동탑차에 그대로 충돌,사망했다.  경찰에 따르면 그는 2종 소형면허가 벌점 초과로 정지된 상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 민주 전의원에 비상대기령

    민주 전의원에 비상대기령

    ■ 로텐더홀 농성 안팎 “여당의 단독 국회는 독재 선언이다.” 민주당 의원들이 23일 다시 국회 본회의장 앞 로텐더홀에 모였다. 당내 강경 개혁파 의원모임의 궐기 형식이다. 하지만 이들의 행동은, 그동안 강경파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온 정세균 대표 등 지도부의 암묵적 지지를 얻고 있어 당 차원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행동에 나선 의원들의 요구사항도 한나라당의 단독 개회 방침 철회, ‘MB악법’ 강행처리 시도 중단,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에 따른 이명박 대통령의 사과와 국정쇄신, 미디어관련법 강행 처리 포기 등으로 당론과 맞닿아 있다. 주류 초·재선 모임인 ‘다시 민주주의’와 비주류 소장파가 주축이 된 ‘국민 모임’은 이구동성으로 ‘여권의 소통 없는 폭주’를 규탄했다. ‘다시 민주주의’ 소속 조정식 의원은 농성 직전 의원총회에서 “이명박 정권은 국민 요구를 무시하고 있고 한나라당은 이에 편승해 국회를 통법부로 만들고 의회독재를 하겠다고 선전포고했다.”면서 “이명박 정권 및 한나라당의 독주와 ‘MB악법’ 처리를 저지하기 위해 먼저 행동에 들어가기로 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국민모임’ 소속 이종걸 의원은 “위기상황일수록 여야가 국정을 함께 논의해야지 단독으로 처리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날 의원총회에서 민주당은 한나라당의 단독 개회를 ‘1당 독재 국회’로 규정하고 결사항전의 의지를 다졌다. 이강래 원내대표는 “(여당의 단독 국회 소집 요구는) 국민과 야당을 무시하고 민주주의의 후퇴를 가져온 어처구니없는 처사”라고 말했다. 그는 “철회를 요구해도 한나라당은 ‘소 귀에 경 읽기’식으로 갈 것 같다. 참으로 어렵고 긴 싸움을 할 수밖에 없다.”고 예고했다. 당 지도부는 이날 소속 의원 전원에게 해외 출장과 지역구 활동을 자제하고, 지도부가 행동지침을 내리는 문자메시지를 24시간 확인할 것을 당부하는 등 비상대기령을 내렸다. 민주당의 강경 기류는 정국 주도권 싸움과도 맞물려 있다. ‘조문정국’에서 여권에 요구한 5대 조건과 미디어관련법 포기 요구에 대해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한 채 빈 손으로 등원한다면 백기투항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돌아온 지지층’을 붙들기 위해서라도 강한 야성(野性)의 복원이 필요하다는 강경파의 목소리도 힘을 얻고 있다. 정 대표도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죽을 각오로 싸워야 할 것”이라며 강경파의 구심점을 자청했다. 하지만 강경 투쟁에 대한 당 안팎의 거부감을 떨쳐내야 하는 부담감도 만만치 않다.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는 민주당의 행동을 ‘나쁜 관행’으로 몰아세우며 “실업대란을 앞두고 한 달째 등원을 거부하면서도 세비를 받는 민주당의 직무유기에 분노한다.”고 말했다. 민주당 내 원로인 박상천 의원이 원내대책회의에서 “시급하고 어려운 일을 협상을 통해 결론낼 때 국회의 존재 가치가 부각된다. 막기에만 급급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한 것도 여론의 악화를 우려한 때문이다. 홍성규 허백윤기자 cool@seoul.co.kr
  • “내가 못하는 것도 잘 하도록 격려해 주셨죠”

    “내가 못하는 것도 잘 하도록 격려해 주셨죠”

    “저희 아버지, 최고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 빌 게이츠(사진 왼쪽·53)의 성공 뒤에는 그의 최고의 멘토인 아버지 빌 게이츠 서(오른쪽·83)가 있었다. 두 사람은 현재 275억달러(약 35조원) 규모의 세계 최대 자선기구 ‘빌&멜린다 게이츠 재단’의 공동회장이다. 작년 6월 MS에서 물러난 빌 게이츠와 1998년 시애틀의 유명 법률회사 프레스톤 게이츠&엘리스에서 물러난 아버지. 이젠 부자가 함께 어깨를 겯고 역사상 최대의 부를 사회에 환원하는 데 ‘제2의 인생’을 바치고 있다. CNN머니는 21일(현지시간) 수십년 간 서로 동지애 어린 조언을 나눠온 이 ‘특별한 부자’를 조명했다. ●가족이 함께 저녁식사하며 생각 나눠 빌 게이츠는 아버지가 건넨 최고의 조언으로 “내가 잘하지 못하는 것을 하도록 격려해 준 일”을 꼽았다. “부모님들은 제가 어렸을 때 밖에 나가서 수영, 축구, 풋볼을 하도록 했어요. 그땐 왜 그러는지 몰랐어요. 부모님은 제가 편한 일만 고집하는 대신, 잘하지 못하는 일도 많다는 걸 깨닫게 하고 리더십을 키우게 하려는 것이었죠. 정말 환상적인 조언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일요일 가족 만찬의 중요성과 성탄절에 같은 잠옷을 입는 것 등 가족의 전통을 일구는 데 애썼다. 아들은 아버지의 그런 가르침을 높이 샀다. “가족이 함께 여행을 다니고 저녁식사를 하며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전통은 정말 큰 차이를 만들어 냈어요.” 여느 아버지와 아들처럼 불편한 순간도 있었다. 빌 게이츠 자신도 “내가 키우기 편한 아이는 아니었다.”고 자인했다. 하고 싶은 일은 고집을 세워서라도 기필코 해야 하는 천성 때문이었다. 아들은 특히 고등학교 마지막 학년 때 학교를 그만두고 일을 하겠다던 자신의 결정에 아버지가 흔쾌히 찬성해준 일을 잊지 못했다. “아버지는 교장 선생님을 만나고 사정을 알아 보고는 ‘그래, 네가 가서 해볼 만한 일이구나.’하셨죠. 부모님들은 진실로 제 편이셨어요.” 아버지의 믿음은 그가 명문 하버드대를 그만둘 때도 이어졌다. ●자식의 품위 떨어뜨리지 않도록 노력 아버지 게이츠는 화목한 가정을 이뤄온 비결을 귀띔했다. “아내와 나는 우리가 다니던 교회에서 연 ‘부모교육’에 참가한 적이 있어요. 거기서 강조한 게 자식의 품위를 떨어뜨리지 않도록 하라는 것이죠. 자녀와의 관계에서 이 말의 중요성을 염두에 둔다면 정말 좋은 출발을 할 수 있어요. 나는 내 아들의 열렬한 팬입니다. 아들은 훌륭한 시민인 동시에 탁월한 사업가예요.”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파리 잡은 오바마 “인상적이지 않나요”[동영상]

     ’파리 하나는 잘 잡는 지구방위대 사령관’  이명박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뒤인 16일 오후(이하 현지시간) 백악관 이스트룸에 진짜 훼방꾼 하나가 나타났다.그 정체는 파리.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CNBC-TV 제작진과 인터뷰를 진행하던 중 파리 한 마리가 나타나자 여지없이 손바닥으로 내리쳐 잡는 재주를 뽐냈다.처음엔 얼굴을 향해 날아드는 파리를 향해 손을 내저은 뒤 “썩 꺼져!”라고 장난스럽게 얘기했지만 파리가 말을 들을 리 없었다.결국 그는 파리가 왼손 등에 앉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오른손으로 내리쳐 단번에 파리를 ‘때려죽였다’.  옆에서 지켜보던 방송 관계자들이 “나이스”라고 외친 것은 물론이다.오바마 대통령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CNBC의 존 하우드 기자에게 “자,어디까지 얘기했더라.”고 말한 뒤 “상당히 인상적이지요.그렇지요?”라고 은근히 자랑했다.    그는 이어 바닥에 널부러진 파리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어때,찍히고 싶어?”라고 물은 뒤 화장지로 감싸서 버렸다.이 파리는 백악관에서 인터뷰 도중 사망한 최초의 파리로 생생하게 기록됐다.  그런데 오바마 대통령이 이렇게 파리를 매몰차게 죽일 수밖에 없었던 구원(舊怨)이 있었다.지난해 9월18일 네바다주의 NBC 계열 방송사와 인터뷰 도중 파리 때문에 무려 네 차례나 인터뷰가 중단됐던 터.  유일 초강대국으로 위상을 드높인 지구방위대 사령관이 파리에 진 원한을 되갚기 위해 큰 손을 내저었다.”어이구 무서워라.” 인터넷서울신문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장미의 화가’ 김재학 작품전

    ‘장미의 화가’ 김재학 작품전

    20세기의 추상화를 넘어서 설치·영상 작품들이 홍수를 이루는 21세기 현대미술에서 아직도 17세기 네덜란드에서 유행한 사실주의 화풍의 정물화(Still life)가 작품으로서 가치가 있겠느냐? 하고 작가 김재학(57) 씨에게 묻는다면 그는 ‘그렇다.’고밖에 답할 수 없다. 초등학교 5학년 시절부터 ‘이발소 그림’과 탤런트 태현실 등의 얼굴을 완벽하게 묘사해 주변에서 감탄을 받았던 그는 정규 미술 교육도 없이 독학으로 화가의 길을 걸어온 국내에서 몇 안되는 작가다. 인천 남중 2학년 때 미술반에서 활동하던 중 가정형편이 어려워 학교를 그만두어야 했다. 김 작가는 “사실주의 화풍에 대해 지적들이 있지만, 내가 가장 잘하는 분야를 떠날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정주영, 이구택, 홍라희, 이건희, 김보경, 박정구, 박성용 등 대기업 총수들의 초상화 작가로도 유명하다. 최근 몇년 사이에는 ‘장미의 작가’로 더 알려진 김 작가가 극사실주의적 화풍으로 그려낸 꽃그림 30여 점을 20일까지 서울 인사동 선화랑에서 전시한다. 그의 꽃그림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일부에서는 “국민소득 2만달러 전후로 꽃그림들이 팔린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반면 김 작가는 “30분만 바라보고 있으면, 다른 작가들의 정물화와 달리 내 그림에서 품위를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한다. 배경을 완전히 삭제하고, 빛의 반사를 다소 과장해서 그린 그의 꽃그림 정물은 선명하고 영롱하다. 사진을 찍어 포토숍으로 ‘뽀샵’처리를 해도 그런 느낌을 만들어 내기 어려울 정도다. 모델이 될 예쁜 꽃을 찾아 꽃시장을 열 바퀴 이상 돌아본다는 그의 꽃그림은 아마도 ‘Best of Best of Flower’ 일 수도 있겠다. (02)734-0458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피리에 마술을 걸다, 신세대 연주가 강효선

    피리에 마술을 걸다, 신세대 연주가 강효선

    피리는 작지만 강한 음색을 가진 악기다. 신세대 피리 연주자 강효선(33)은 피리를 닮은 가녀린 외모지만 피리에 숨겨진 강한 음을 이끌어내는 야무진 연주자다. 섬세한 감성과 탁월한 해석력을 지닌 피리 연주자로 국내외, 동서양을 넘나드는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현대 국악계의 차세대 선두주자 강효선이 콘서트 연다. ‘가민의 마술피리’라는 제목의 토크 콘서트를 앞두고 강효선과 그녀의 피리를 만났다. ●피리, 늘 내 옆에 있어준 악기 강효선이 피리를 잡은 지 올해로 20년 째. 솔직히 맨 처음부터 피리 소리에 반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초, 중학생 때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배우면서 클래식 음악을 먼저 접했다. “운명적으로 피리를 만난 건 아니었어요. 초등학생 때는 바이올리니스트가 되는 게 꿈이었죠. 진로에 대한 고민을 하던 중 우리나라 음악을 접하게 됐고 ‘막연한 호기심’에 국악고등학교 시험을 봤어요.” 서양 음악에 익숙했던 강효선 역시 처음엔 국악이 생소하고 낯설었다. 또 피리는 체력적으로 부담이 많아 남자들도 하기 힘든 악기라 중간에 그만두고 싶었던 때도 있었다. “다른 악기를 생각 하다가도 이게 아니지 싶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면 피리는 언제나 저를 기다려줬어요. 쉽게 버릴 수도 떠날 수도 없는 소울메이트 같은 존재라고 할까요.” ●노력이 만든 음악 천재 강효선의 수상과 연주경력은 화려하다. WCO 세계문화오픈 전통소리부문 전통소리 부문에서 1위를 차지했고, 한국 예술평론가협의회가 선정한 올해의 신인예술가상 외에 다수를 수상 하며 국내외에서 많은 공연을 했다. 원래 피리라는 악기는 크기도 작고 음역도 좁다. 연주할 수 있는 음역과 레파토리에 한계가 있다 보다 다양한 소리를 만들고자 연습에 매진하고 태평소 같은 다른 악기도 배웠다. “정말 열심히 연습 했어요. 원래 꿈이 연주자였고 제가 하고 싶었던 일을 하면서 최고가 되야겠다는 생각뿐이었죠. 하루의 대부분은 피리 연습을 할 정도로 정말 독하게 열심히 연습했습니다.” 막연한 독기, 욕심만으로는 이루어 지지 않는 세계적인 연주자가 되겠다는 ‘꿈’을 쫓아 쉬지 않고 달려왔다. “국악에는 한계가 없어요. 저 역시 국악인이 아닌 연주자, 세계적인 음악인이 되고 싶어요. 전통음악에 한정되지 않고 세계무대에서 인정받는 연주가가 되기 위해 노력합니다.” ● 대중과 가까이, 새롭게 시도하는 토크 콘서트 강효선이 추구하는 음악은 정형화된 전통음악이 아니다. 현대 음악처럼 그녀는 작곡가에게 곡을 받아 연주한다.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 강효선의 음악은 독특하지만 생소할 수 있는 부분도 있다. 그래서 이번 공연에서 그녀는 친절하게 음악을 설명해 관객의 이해를 돕기로 했다. “국악을 많이 접해 보지 않은 분들은 처음엔 우리 악기 소리나 음악을 어려워하세요. 그래서 제가 연주하는 중간 해설을 하는 형식의 콘서트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다른 연주자들과 작곡자를 무대로 불러 이야기 하면서 간단한 질의응답 시간도 가질 예정이구요. 이번 콘서트는 관객과 동떨어지지 않은 친숙하고 가까운 콘서트가 될 것입니다.” 끝으로 국악을 어떻게 하면 편하게 즐길 수 있는지에 대해 묻자 “마음을 열고 들어주셨으면 좋겠어요. 국악을 생소하고 멀게만 생각하지 마시고 편안한 마음으로 즐기세요. 한국 사람이기 때문에 우리 안에 국악을 좋아할 수밖에 없는 무언가가 있는 것 같아요. 우리 몸과 마음속에 흐르고 있는 한국인의 정서를 음악에 담았기 때문에 공연을 보러 오시는 분들도 저의 음악을 편안하게 느끼실 수 있고, 또 좋은 감동을 받으실 수 있을 거에요.” 전통음악의 세계화에 앞장서고 있는 젊은 피리 연주가 강효선은 앞으로 전통음악을 많은 사람들이 즐겨 들을 수 있기를 소망한다. 또 우리 악기가 세계 무대에 진출하고, 음악과 함께 우리의 정체성도 알리고 싶은 그녀는 피리에 마술을 거는 욕심쟁이다. 한편 강효선의 토크콘서트 ‘가민의 마술피리’는 오는 17일 오후 7시 30분에 서울 서초동에 위치한 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서 펼쳐지며 콘서트에는 박동욱, 박정규, 정대석, 노은아, 박윤, 이슬기, 전명선 등 실력파 연주가들이 참여한다. 서울신문NTN 우혜영 기자 woo@seoulntn.com / 사진=유혜정 기자@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운전사 죽음과 여차장과 형사와…

    운전사 죽음과 여차장과 형사와…

    F=성북경찰서는 정보과 조(趙)모 형사(47)를 폭행치사 혐의로 자체 조사중인데, 피해자가 죽은 데다 사건이 까다로와 결말이 어떻게 날지 흥미거리야. 피해자 미망인의 고발로 사건화된 것인지라 직접 당사자가 아닌 데다가 조형사와 서로 주장이 엇갈려 경찰은 애를 먹고 있지. 미망인에 의하면 지난 8일 죽은 남편 조대식씨(趙大植·가명·40·운전사)는 조형사에게 맞아 코피를 흘린게 원인이 되어 죽었다는 거야. 지난 3월1일 밤 10시쯤 남편이 차장 조모양(24)과 함께 성북구 동선동 동선여관 독탕에서 목욕을 하고 있는데 느닷없이 조형사가 뛰어들어 남편에게 주먹질을 하여 코피를 흘리게 했는데, 남편은 그후 지혈제를 먹어 가며 일을 했으나 코피가 멎지 않아 7월12일 부터 18일까지는 고려대 부속병원에 입원까지. 퇴원하고 보니 별 효험이 없어 8월1일 다시 병원에 찾아가 진찰을 받아 본 결과 「재기불능빈혈증」의 진단을 받고 1주일 뒤 숨을 거뒀다는게 미망인의 진술이었어. B=사건에 관련된 3사람이 모두 조씨이구만. 목욕탕 속에서 그랬다니 운전사와 차장은 발거벗고 있었게? F=그런데 그 대목에서부터 조형사와 주장이 엇갈리지. 조형사는 이들이 여관에 있는 것을 경찰에 연행, 경찰에서 단지 한번 떠밀었을 뿐이라는 거야. 연행한 이유는 조양이 노조지부장 선거와 관련되는 무슨 연판장을 갖고 있었는데 그 배후인물이 조씨가 아닌가 하고 의심을 받았기 때문이지. 좌우간 사건 뒤 조양이 자취를 감춰 버려 엇갈린 주장을 판가름할 유일한 증인이 없어진 셈이지. 더구나 미망인은 남편이 죽기 며칠 전인 8월3일에야 처음 남편에게 자초지종을 듣고 사실을 알았다는 거야. 처음에는 깡패와 싸웠다고 하더라는군. 이밖에도 미망인은 남편이 매맞은 이틀 뒤에 사건해결에 필요하다며 돈 4만원을 갖고 나갔는데 이 돈도 조형사에게 뇌물로 줬다고 주장하고 있어. [선데이서울 72년 8월 20일호 제5권 34호 통권 제 202호]
  • 뚝섬 삼표부지 등 16곳 본격 개발

    뚝섬 삼표부지 등 16곳 본격 개발

    서울 성수동 뚝섬 삼표레미콘 부지와 서초동 롯데칠성 부지 등 도심 내 금싸라기 땅이 본격 개발된다. 서울시는 4일 토지활용 잠재력이 높은 1만㎡ 이상의 대규모 부지를 지역 특성에 맞게 개발하는 ‘신(新) 도시계획 운영체계’의 대상부지 16곳을 최종 선정해 발표했다. 이들 개발부지 16곳의 총면적은 69만 4300㎡로, 본격 개발될 경우 건축공사비만 5조원을 웃돌고, 공공기여 액수도 1조 93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시는 추산했다. 대상 부지에는 구의동 동서울터미널과 서초동 남부터미널, 상봉동 상봉터미널, 용산구 한강로 관광버스터미널, 동교동 홍대역사, 구로동 구로역사가 포함됐다. 또 상계동 한진도시가스, 고척동 백광화학, 장안동 동부화물터미널, 고덕동 서울승합차고지, 월계동 성북역세권과 성북역사, 용답동 자동차매매장, 대치동 대한도시가스 부지도 선정됐다. 하지만 ‘제2 코엑스몰’ 건설로 관심을 모았던 삼성동 한전 본사 부지와 대규모 아파트 단지 건설이 예상되던 구로동 CJ공장터는 개발 유보지역으로 남게 됐다. 이들 부지는 서울시와 해당 자치구 관계자, 땅 소유주, 도시계획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협상위원회를 통해 올해 안에 개발 계획 및 공공 기여 방안이 마련된다. 시는 지난해 12월 ‘신 도시계획체계’를 발표한 뒤 대상지 30곳에 대한 개발계획 신청을 받았다. 시는 이 중 16곳은 조건부 협상가능 지역, 10곳은 유보, 4곳은 협상불가 지역으로 분류했다. 이들 부지는 토지용도가 주거지역이나 준공업지역 등으로 묶여 있어 개발을 위해서는 상업지역 등으로 용도를 변경해야 했다. 하지만 시가 이를 허가할 경우 엄청난 개발이익이 발생하다보니 그동안 시는 특혜 시비 논란을 피하려고 개발 논의 자체를 원천봉쇄해 왔다. 송득범 서울시 도시계획국장은 “개발사업이 본격화되고 이익의 상당 부분이 공공에 환수됨으로써 새로운 도시발전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된다.”면서도 “하지만 개발업체들이 이구동성으로 내세웠던 초고층빌딩 건립은 협상위원회 등에서 좀 더 심도있게 허용여부를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류지영기자 superryu@seoul.co.kr
  • [데스크 시각] 용문객잔/김문 문화부장

    [데스크 시각] 용문객잔/김문 문화부장

    #장면1 한 영화를 추억한다. 영원한 무협 클래식이다. 세월만큼이나 내공의 깊이가 간단치 않다. 환관과 협객 서소지가 주고 받는 대화 한토막. “서소지가 누구냐?(환관)” “나다.” “건방진 놈이군.” “너한테만.” “무술실력이 대단하다고 들었다.” “좀 하지.” “그렇게 보이지 않는데?” “넌 내시같아 보이는군.” 무림의 고수끼리 맞짱뜨는 가시돋친 상황이지만 재치가 넘친다. 1965년 ‘대취협’으로 무협영화의 새로운 장을 연 호금전 감독이 만든 ‘용문객잔’(1967년)에 등장한다. 이 영화는 1450년대의 명나라를 배경으로 한다. 환관들이 정권을 장악하고 임금의 충신들을 차례로 처단한 뒤 자손들을 용문 밖으로 귀양보낸다. 하지만 후환이 두려워 자객들을 ‘용문객잔’으로 보내고, 자손들을 구하려는 협객들이 몰려들면서 숨막히는 결투가 벌어진다. ‘용문객잔’은 사천성 장강삼협의 용문협 근처에 있는 여관식 주막이다. 영화는 황량한 들판과 흙담집인 ‘용문객잔’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얼핏 보면 촌스럽고 절제된 출연진의 동작으로 영화적 흥미감은 떨어진다. 그러나 결투장면에 깔린 경극음악을 이용해 고도의 시지인(時地人)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다. 또 막강한 적 앞에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충의(忠義)의 로망’을 담고 있다. 객잔에 모인 무림의 고수들, 각기 다르지만 충성과 의리를 연고로 심오한 설정을 해 놓은 것이 매력이다. 여기에 또 하나, 호금전 감독이 ‘후한서’의 내용을 알고 ‘용문객잔’을 만들었다는 상상을 하면 더욱 흥미진진해진다. ‘후한서’의 이응전(李膺傳)에 ‘등용문’이 나온다. ‘士有被其容接者 名爲登龍門’(선비로서 그의 용접을 받는 사람을 등용문이라고 한다)이라는 글과 함께 주해(註解)에 ‘황하 상류에 용문이라는 계곡이 있어 고기들이 많이 모여들었으나 빠른 폭포수 때문에 오르지 못하고 있다. 만일 오르기만 한다면 용이 된다.’는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시공(時空)을 뛰어넘는 특유의 집중력으로 만든 작품이기에 지금도 무협영화의 고전으로 회자된다. #장면2 연분홍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5월의 비가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지천의 푸름이 더욱 짙어지니 말이다.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이기에 더욱 그랬다. 붉은 장미와 꽃그림 우산을 받쳐든 여인네의 뒷모습은 5월의 신부였다. 평소 친하게 지내는 선배의 집은 천년의 전설을 간직한 용문사 은행나무와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다. 선배는 몇해 전 이곳에 조그마한 텃밭이 있는 집을 하나 장만했다. 현역에서 은퇴한 뒤 여생을 농부로 살아가기 위해서다. 이곳에서 조촐한 행사가 열렸다. 시문(詩文)과 흙을 사랑하는 10여명이 모였다. 그동안 벼르고 별렀던 ‘용문객잔’ 문패를 다는 날이다. 선배는 워낙 무협영화를 좋아해 1967년 당시 ‘용문객잔’ 포스터까지 어렵게 구해 벽에 붙여놓고 감상할 정도다. 문패가 걸리고 즉흥 세리머니가 이어졌다. 참석자 중 한 사람이 나섰다. “오늘을 위해 칠언율시를 준비했습니다. 여운승우교정후(如雲勝友交情厚)=좋은벗들이 구름같이 모여 우정을 두터이하고, 성해현영의리숭(成海賢英義理崇)=바다를 이룬 어질고 뛰어난 인재들이 의리를 숭상하며…” ‘용문객잔’과 ‘칠언율시’를 안주로 올려놓고 하루종일 웃음꽃을 피웠다. 그 향기는 짜릿했다. 삶이란 이런 것이구나. 다들 ‘국영수’로 치열하게 살아온 사람들이다. 60을 넘거나 바라보는 나이에 ‘예체능’의 행복을 얘기한다. 문득 한 옛 시인이 읊은 시가 떠오른다. 得了愛情痛苦(득료애정통고)=얻었도다 애정의 고통을, 失了愛情痛苦(실료애정통고)= 버렸도다 애정의 고통을! 지혜라는 단어가 찬란한 5월의 비와 함께 새삼 가슴속에 젖어든다. 김문 문화부장 km@seoul.co.kr
  • [길섶에서] 명동 수복(收復) /노주석 논설위원

    30년 전 서울에 상경한 촌놈들의 약속장소는 서울역 주변이었다. 역마차다방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서울생활에 좀 익숙해지자 종로통으로 영역을 넓혀 호프집을 드나들었다. 향토장학금이 올라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코파카바나 나이트로 행차했다. 어느 날, 촌놈들은 명동 진출을 꾀했다. 그런데 명동이 어디 붙었는지 아는 자가 없었다. 물어 물어 명동을 찾았다. 소공로를 따라 옛 미도파백화점 앞에 이르렀을 때 우리는 확신했다. “명동이구나. 이름 그대로 ‘밝은(明) 동네(洞)’로다.” 우리는 길을 건너 명동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명동입구가 명동인 줄 알았다. 명동에 대한 첫 추억이다. 밥 먹으러 명동에 들렀다. 옛 명동국립극장이 ‘명동예술극장’으로 이름을 바꿔 근사한 모습으로 서 있다. 명치좌와 시공관을 거쳐 남산에 국립극장이 생긴 1973년까지 한국공연예술의 일번지로 군림했던 곳이다. 다음 달 5일 재개관을 축하하는 ‘맹진사댁 경사’가 막 오른다. 마치 외국인관광객들에게 점령당했던 고토(故土)를 수복한 듯하다. 노주석 논설위원 joo@seoul.co.kr
  • 이승엽, WBC영웅 다르빗슈ㆍ이와쿠마 넘을까?

    이승엽, WBC영웅 다르빗슈ㆍ이와쿠마 넘을까?

    5월들어 시즌 초반 부진을 뒤로 하고 본 궤도에 올랐던 이승엽(요미우리) 앞에 교류전이 기다리고 있다. 요미우리는 19일(화)부터 올시즌 퍼시픽리그 1위를 달리고 있는 니혼햄 파이터스와의 2연전(삿포로돔)을 시작으로 다음달 20-21일 치바 롯데 마린스와의 경기까지 팀간 4차전(홈&어웨이 2연전) 총 24경기의 리그 교류전을 펼친다. 이승엽은 2004년 일본진출 이후 교류전에 특히 강한 모습을 보였던 전례가 있었던만큼 올시즌 역시 그 기대가 크다. 치바 롯데 시절인 지난 2005년 12개의 홈런을 쏘아올리며 교류전 홈런왕을 차지했던 이승엽은 요미우리로 팀을 옮긴 2006년에도 16개의 홈런을 기록하며 2년연속 교류전 홈런왕에 오른바 있다. 2007년에는 고질적인 무릎부상 여파로 단 3개의 홈런에 그쳤고 지난해엔 손가락 부상 후유증으로 2군에 머물며 단 한경기도 출전하지 못했었다. 지난 15일 히로시마와 경기중 허리 통증을 호소하며 도중에 교체됐던 이승엽은 이후 이틀 연속 경기에 나서지 못하며 벤치만 달궜었다. 항간에서는 16일 경기에서 팀이 연장까지 가는 접전을 펼칠때 대타로도 들어서지 못한 이승엽을 두고 부상이 생각보다 심하지 않느냐 하는 우려도 있었지만 부상은 심각할 정도는 아닌것으로 보인다. 17일 도쿄돔 실내연습장에서 가벼운 배팅연습과 런닝훈련을 모두 소화했기 때문이다. 이승엽에겐 이번 교류전 활약여부가 올시즌 성적을 좌우할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몇년간 센트럴리그는 투고타저, 퍼시픽리그는 타고투저 현상이 두드러졌는데 올시즌 역시 예외가 아니다. 교류전을 앞둔 지금 현재 센트럴리그는 규정타석을 채운 타자 중 3할 이상을 기록한 타자는 사카모토(타율 .361 요미우리)-카네모토(타율 .308 한신)-라미레즈(타율 .305 요미우리)-아마야(타율 .300 히로시마) 단 4명뿐이다. 반면 퍼시픽리그는 3할 이상을 기록하고 있는 타자만 해도 무려 13명. 그중 3할3푼 이상의 고타율을 유지하고 있는 타자가 니혼햄의 카네코(타율 .373)를 비롯해 이구치(타율 .357 치바 롯데),하세가와(타율 .356 소프트뱅크) 등 9명이나 된다. 퍼시픽리그에선 타율 3할 정도로는 명함도 못내밀 정도로 타자들이 득세하고 있다. 그만큼 상대적으로 투수들이 힘겨워 하고 있다는 뜻이다. 세이부의 ‘좌완 팜볼 마스터’ 호아시 카즈유키가 평균자책점 4.06으로 이부분 12위에 겨우 올라와 있을 정도다. 물론 이와쿠마 히사시나 타나카 마사히로(이상 라쿠텐)가 1점대 평균자책점으로 발군의 활약을 펼치고는 있지만 이 선수들은 일본을 대표하는 선수들이다. 어느 리그를 가나 그 실력은 변함이 없다는 뜻이다. 공교롭게도 이승엽은 니혼햄과의 교류전 두번째 경기(20일)에서 선발등판이 유력시되는 다르빗슈 유(5승 1패 평균자책점 1.24)와 맞붙게 된다. 또한 라쿠텐과의 K스타미야기 원정 2연전(22-23일) 첫 경기에는 일본의 월드베이스볼 클래식(WBC) 영웅인 이와쿠마(5승 1패 평균자책점 1.65)를 만나게 될 가능성이 크다. 다르빗슈와 이와쿠마는 퍼시픽리그 다승 공동 2위(타나카 포함) 평균자책점은 각각 2위와 4위를 달리고 있다. 이승엽은 교류전 첫째주부터 일본이 자랑하는 톱클래스 에이스들과 피할수 없는 진검승부가 예약된 것이다. 3년만에 교류전 홈런왕을 노리는 이승엽 입장에서는 이들을 넘어서야 수월하게 목표점에 도달할수 있을것으로 보인다. 또한 교류전은 리그경기와는 달리 일주일동안 다섯경기만 열리기 때문에 컨디션 조절도 중요한 포인트다. 리그에서처럼 3연전이 아닌 2연전만 열리기 때문이다. 덧붙여 센트럴리그 경기에서 우천으로 취소된 경기는 시즌 막판 경기편성에 넣지만 교류전은 휴식일에 경기를 할수 밖에 없게 되어 있어 혹시 모를 비로 인한 컨디션 조절도 매우 중요하다. 요미우리 역시 이번 교류전이 올시즌 우승으로 가는 길목에서 만나는 아주 중요한 일정이다. 현재 25승 3무 10로 1위를 달리고 있지만 3.5 경기 차이밖에 나지 않는 야쿠르트의 추격이 예사롭지 않기 때문이다. 한편 타카다 시게루 감독의 철저한 관리로 13세이브(1위)는 물론 평균자책점 제로를 기록하고 있는 야쿠르트의 임창용은 19일 라쿠텐과의 첫경기부터 세이브 사냥에 나선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일본프로야구통신원 윤석구 rock7304@hanamil.net@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6집’ SG워너비, ‘6가지 키워드’로 말하다 (인터뷰)

    ‘6집’ SG워너비, ‘6가지 키워드’로 말하다 (인터뷰)

    ”6집에 들어서야 진정한 초심으로 돌아간 기분이에요.” 어느덧 6집에 닿은 그룹 SG워너비(김용준·김진호·이석훈). 그들이 인터뷰 내내 가장 많이 꺼낸 단어는 이구동성 ‘초심(初心)’이었다. 데뷔 6년차, SG워너비는 명실공히 ‘국가대표 보컬그룹’으로 자리 잡았다. 그런 그들이 이제와 ‘초심’을 운운하는 이유가 뭘까. ’SG워너비 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당신에게 던지는 SG워너비의 자아 찾기, 그 여섯 가지 키워드가 여기 있다. § ①. ‘Simon & Garfunkel’ ’SG워너비’는 자신들의 음악적 방향을 그룹명에 정확히 새겨 넣은 케이스. ”데뷔 때 이름에 관한 질문을 많이 받았어요. SG워너비는 한국의 ‘사이먼 앤 가펑클’이 되고 싶단 소망을 담았어요. (Simon & Garfunkel Wannabe) 일렉트로닉이 주를 이루는 현 가요계에서 포크송 장르는 올드(old)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향수를 담은 음악은 따뜻한 위로가 되죠.” § ②. ‘회귀’ 6집 ‘더 기프트 프롬 SG워너비(the gift from SGwannabe)’는 무려 13개월이란 긴 공백 끝에 나온 앨범이다. 이 기간에 대해 멤버들은 ‘성숙’과 ‘회귀’의 기로에 섰던 고충을 털어냈다. ”새로운 시도로 성숙함을 쫒을 것인가, 본래 그룹의 색을 되찾을 것인가의 고민에 빠지게 됐어요. 오랜 고심 끝 ‘노련한 초심’으로의 회귀를 택하게 됐죠. 지금껏 앞만 보고 달려왔다면 이제는 숨을 고르고 가장 ‘SG워너비 다운’ 음악을 들려드리고 싶었어요. 사이먼 앤 가펑클을 닮고 싶던 초심으로 말이죠.” § ③. ‘고집’ SG워너비는 고집 있는 그룹이다. 초심이 짙어진 6집 타이틀 곡 ‘사랑해’는 이런 SG워너비의 음악적 고집을 더욱 여실히 보여준다. 자극적인 가사도, 현란한 기계음도 없다. 하지만 7,80년대 멜로영화에나 어울릴 듯한 어쿠스틱 멜로디 속 세 멤버의 화음은 여전히 정겹다. ”다들 바쁜 디지털 세계에 살고 있지만 아날로그 감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슬프다면 저희 노래로 더 울어드리고, 기쁘다면 더 즐겁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아날로그적 그룹이 됐으면 합니다.” § ④ ‘음반 강자’ 이들의 고집이 외골수로 비춰지지 않는 것은 음반 판매량으로 입증되는 팬들의 굳은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SG워너비는 음반 시장의 불황 기류에 역행하는 그룹이다. 2004년 데뷔 앨범 1집 ‘타임리스(Timeless)’, 2집 ‘죄와 벌’과 ‘살다가’, 3집 ‘내 사람’, 4집 ‘아리랑’ 그리고 지난해 5집 ‘라라라’까지 실패작이 전무하다. 데뷔 후 매년 1장 이상의 앨범을 꾸준히 발표한 SG워너비는 앨범 모두를 10만장을 넘기는 판매고를 올렸다. 특히 2005년 ‘살다가’와 2007년 발표했던 ‘아리랑’은 음반왕의 입지를 굳힌 명반으로 꼽힌다. § ⑤ ‘소몰이 창법’ 최근 SG워너비의 노래는 기교를 빼고 편안해진 느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SG워너비 = 소몰이 그룹’이란 꼬리말이 따라붙는 이유는 뭘까. 이는 초기 히트곡인 ‘타임리스’와 ‘죄와 벌’을 통해 굳혀진 이미지가 강했던 까닭으로 분석된다. ”초기엔 ‘얼굴 없는 가수’로서 노래의 유명세가 앞서다 보니 얻은 수식어 같아요. 하지만 나쁘지 않아요. 발라드의 한 트렌드가 됐었고, 하나의 이미지를 구축했다는 뜻이기도 하고. 지금은 본연의 색으로 돌아가돼 화음을 중시하고 한결 힘을 뺐어요. 진솔한 느낌이 들도록.” § ⑥ ‘3 형제’ SG워너비는 자신들을 칭할 때 늘 ‘삼형제’란 단어를 사용했다. ”새 멤버 석훈 씨가 지난 번 ‘라라라’ 때부터 너무 노련하게 잘 해줬어요. 중간 합류했다는 느낌이 거의 없었어요. 처음부터 그냥 우리 멤버, 우리 형제였던 거죠. ‘삼형제’는 늘 하나입니다.” ’하나’라는 단어를 꺼냄에 망설임 없는 SG워너비. ‘하나된 화음’을 만들어 내는 이들의 돈독함이 바로 6년 째 대중에게 한결 같은 사랑을 받고 있는 진짜 이유가 아닐까. 서울신문NTN 최정주 기자 joojoo@seoulntn.com / 사진 = 유혜정 기자@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엄마와 읽는 동화] 허수아비와 들쥐/김소연

    [엄마와 읽는 동화] 허수아비와 들쥐/김소연

    너른 들판에 가득 찬 벼 이삭들이 가을바람에 춤을 춥니다. 논 한가운데 서 있는 허수아비의 낡은 저고리도 덩달아 나부낍니다. “허! 그 놈 참 험악하게도 생겼다.” 논두렁을 지나던 이웃 농군들이 허수아비를 보며 흉인지 칭찬인지 한마디씩 던집니다. 농부는 망태 할아범처럼 생긴 허수아비가 여간 마음에 드는 게 아니었어요. 허수아비를 세워 둔 후론 얄미운 참새들이 얼씬도 못했으니까요. “금쪽같은 내 곡식들, 잘 지켜야 한다.” 농부 말에 어깨가 으쓱해진 허수아비가 무서운 얼굴로 고함을 쳤어요. “어떤 놈이든 논가에 얼씬만 해라. 이 허수아비님이 가만 안 둔다!” 가을들판엔 허수아비 빼곤 개미새끼 한 마리 눈에 띄질 않았어요. “내 덕분에 올 해도 풍년이구나.” 허수아비는 한껏 으스댔지만 그 모습을 보아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어요. 아침에 한번 농부가 나와 둘러볼 뿐, 하루 종일 허수아비 혼자였지요. 따가운 햇살에 머리가 지끈거려도, 차가운 밤비에 옷이 젖어도 누구하나 얘기 나눌 친구가 없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요. 뒷산에서 들쥐 한 마리가 들판으로 내려왔어요. 벼가 다 익어가니, 겨우내 먹을 쌀을 장만하러 오는 게지요. 들쥐는 허수아비가 서 있는 논 한가운데로 들어왔어요. 잘 익은 벼 이삭 하나를 똑 잘라 물고 나가다 그만 허수아비에게 들키고 말았지요. “웬 놈이 남의 벼를 훔쳐 가느냐!” “아이고 깜짝이야. 간 떨어지겠네.” 천둥 같은 고함소리에 놀란 들쥐가 자리에 서서 사방을 두리번거렸어요. “에이, 난 또 뭐라고…. 허수아비잖아.” 들쥐는 허수아비를 보고는 어깨를 한번 으쓱거렸어요. 그리고 놓쳤던 이삭을 입에 물고 제 갈길을 갔어요. “아니, 네 이 놈! 내가 누군 줄 알고 이 논에 함부로 들어 온 게냐? 혼구멍이 나야 정신을 차리겠구나.” 허수아비는 큰소리로 으름장을 놓았어요. 자기를 보고도 놀라기는커녕 눈 하나 깜짝 안 하는 들쥐가 괘씸했거든요. 하지만 들쥐는 허수아비의 얼굴을 빤히 올려다보며 콧방귀를 뀌었어요. “어쩌려고요? 막대 팔로 날 잡으려고요?” “뭐, 뭐라고? 너는 내가 무섭지도 않느냐?” “무서워요? 그 우스꽝스러운 바가지 얼굴이 무서워요? ” 들쥐의 대답에 허수아비가 할 말을 잃었어요. “아저씨, 나는 겁쟁이 참새하고는 달라요. 허수아비가 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요.” 들쥐는 거침없이 말을 이었어요. “아저씨는 그저 속 빈 강정이에요. 저고리 속은 텅 비어가지고 논바닥에 쿡 박혀 꼼짝도 못하는 그야말로 허깨비, 그게 바로 허수아비죠.” ‘속 빈 강정? 허깨비?’ 허수아비는 생전 처음 듣는 말에 화 낼 생각조차 잊어버렸어요. “그럼, 이만. 내일 또 봐요.” 들쥐는 멍하니 서 있는 허수아비를 두고 벼 포기 사이로 유유히 사라져버렸어요. 다음날부터 생쥐는 제 멋대로 들판을 오가며 벼이삭을 물어갔어요. “도둑놈 같으니. 당장 나가지 못 해!” 허수아비는 들쥐를 볼 때마다 고함을 지르며 내쫓으려 했지만 들쥐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지요. 보다 못한 허수아비가 들쥐를 나무랐어요. “너는 남이 일 년 내내 공들여 키운 곡식을 허락도 없이 축 내는 게 부끄럽지도 않느냐?” 이 말에 들쥐가 발길을 멈추었어요. “우리 짐승들에겐 이 벼들도 산에서 나는 열매와 다를 게 없는 걸요.” “무슨 소리야? 이 논엔 엄연히 주인이 있는데.” “그거야 사람들끼리 하는 소리지, 어디 이 땅이 생길 때부터 농부 것이었나요?” “그래도 모를 내고 벼를 키운 건 바로 주인 농부라고.” 허수아비는 제가 마치 농부인 양 점잖게 말했어요. “산에 나는 열매는 저절로 큰 줄 아세요? 하늘이랑 바람이랑 산이 서로 도와가며 키운 것이지.” 들쥐는 반들거리는 코를 벌름거리며 대꾸했어요. “따져보면 사람도 마찬가지예요. 산에 올라와 마음대로 열매를 따가잖아요. 사람들이 언제 산이나 하늘에 허락받고 가져 간 적 있나요? 지난 봄에는 나무꾼이 다람쥐네 참나무를 통째로 베어갔어요. 하루아침에 집을 빼앗긴 다람쥐 가족이 얼마나 울었는데요.” 들쥐의 말에 허수아비가 입맛을 다셨어요. “다람쥐네 식구들한텐 안 된 일이군.” 잠시 침묵이 흐르더니 허수아비가 조그만 소리로 말했어요. “그래도 너무 많이 물어가진 말아다오. 내 체면도 있으니까.” “그럼요. 저도 염치가 있는데.” 들쥐가 방긋 웃으며 대답했어요. 다음날, 벼이삭을 물고 이랑 사이를 지나던 들쥐가 갑자기 허수아비 어깨위로 쪼르르 올라왔어요. “아저씨. 혼자 심심하지 않으세요?” “심심하다니. 난 지금 일하는 중인데.” 허수아비는 두 눈을 부릅뜨고 들판을 살피며 말했어요. ““근데, 며칠 다녀보니까 이 논에는 아저씨 말고는 메뚜기 한 마리도 안보여요.” “그야 당연하지. 너처럼 맹랑한 녀석이면 모를까, 다들 날 무서워하거든.” 들쥐는 잘난 체하는 허수아비의 얼굴을 올려다보았어요. “다들 아저씨를 무서워만 하는데, 슬프지 않아요? 친구 하나 없이?” “친구? 그런 것 보단 내 몫을 지키는 게 더 중요한 법이야.” 허수아비 말에 들쥐가 입을 쌜쭉거렸어요. “피~. 그런 게 어딨어. 아저씨, 그러지 말고 제가 아저씨 친구 할까요?” “친구랍시고 논에 있는 벼 맘 놓고 훔쳐가려고?” 허수아비가 어림도 없다는 듯 눈썹을 추켜세웠어요. “치! 아저씬 벼밖에 몰라.” 들쥐는 혀를 쏙 내밀더니 어깨에서 내려가 버렸어요. 들쥐는 그 후 며칠 더 왔다 갔다 하더니, 이후론 나타나질 않았어요. 허수아비는 벼를 훔쳐가는 들쥐가 사라지자 마음이 놓였어요. 그래도 혼자 심심할 때면 들쥐의 또랑또랑한 눈이 생각났어요. 얼마 후, 추수가 시작되었어요. 농부는 콧노래를 부르며 벼를 거두었어요. 그리고 허수아비를 벼 그루터기 사이에 던져놓고 가버렸어요. 이제 허허벌판엔 허수아비만 덩그러니 남았어요. “가을 내내 고생한 나를 쓸모없어졌다고 내버리다니….” 허수아비는 농부의 야속한 얼굴을 떠올리며 중얼거렸어요. 날은 갈수록 추워졌어요. 허수아비가 쓰던 벙거지는 늦가을 찬바람에 떠밀려 어디론지 날아가 버리고, 저고리도 비바람에 헤져 여기저기 찢겼지요. “이제 겨울이 닥쳐오면 얼어 죽겠지….” 허수아비는 힘없이 하늘을 올려다보았어요그때, 갑자기 머리 위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어요. “아저씨. 여기 누워서 뭐하세요?” 어느 틈에 왔는지, 들쥐가 머리맡에 서서 허수아비를 빠끔히 내려다보고 있질 않겠어요? “아니. 너 여기 웬일이냐?” 허수아비는 반가운 마음에 큰소리로 물었어요. 들쥐는 대답 대신 허수아비를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중얼거렸어요. “지나가는 길에 와봤더니…. 농부가 그예 버리고 갔구나!” 그 말에 허수아비는 두 볼이 벌게졌어요. “정말 이렇게 있다간 한 겨울에 얼어 죽겠어요.” “그게 허수아비 운명이라면 할 수 없지.” 허수아비가 체념한 듯 우물거렸어요. “가만있자…, 아! 좋은 생각이 났다.” 들쥐가 논두렁 쪽으로 쏜살같이 달려갔어요. 잠시 후, 볏짚을 잔뜩 물고 온 들쥐는 허수아비 저고리 속으로 쏙 들어갔어요. 들쥐가 저고리 안을 헤집고 다니는 바람에 허수아비는 간지러워 웃음이 터졌어요. “뭐하는 거야? 히히히….” “저고리 속을 짚이랑 마른 풀로 가득 채우면 바람도 막고, 추위에 끄떡없을 거예요.” 이 말에 허수아비는 웃음을 멈추고 멍한 눈으로 들쥐를 쳐다봤어요. 그러자 들쥐가 어깨를 으쓱해 보였어요. “우린 친구잖아요.” 들쥐는 하루 종일 쏘다니며 마른 풀들을 모아 저고리 속을 채웠어요. 덕분에 저녁노을이 질 무렵, 허수아비는 두툼한 외투를 걸친 것처럼 뚱뚱해졌지요. 들쥐는 손을 흔들며 산으로 돌아갔어요. 밤이 되자 첫 눈이 내렸어요. 밤새 내린 눈은 솜이불처럼 허수아비를 덮어 주었어요. 그래도 저고리 속은 휑하니 찬바람이 가득했어요. 그때였어요. “허수아비 아저씨! 어디 계세요?” 들쥐의 목소리가 눈 쌓인 들판에 울려 퍼졌어요. 허수아비가 서둘러 대답했지요. 들쥐는 허수아비에게 다가와 바가지 얼굴에 덮인 눈을 쓸어냈어요. 허수아비는 들쥐를 보자마자 두 눈이 커다래졌어요. 들쥐는 마치 큰 싸움이라도 한 것 같았어요. 콧등엔 할퀸 자국이 선명하고, 털은 땀과 흙이 범벅인데다 이마에는 멍까지 들었어요. “어떻게 된 거야? 겨우내 집에서 따뜻하게 지낸다더니.” 그 말에 들쥐가 훌쩍훌쩍 울기 시작했어요. “어젯밤, 난데없이 오소리가 쳐들어왔어요. 창고에 가득 채워둔 식량을 빼앗더니, 집까지 부셔버렸어요. 간신히 목숨만 구해 도망쳐 나왔어요.” 들쥐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허수아비를 바라보았어요. “아저씨한테 작별인사 하러 왔어요. 먹을 것도, 집도 잃었으니 이번 겨울은 나기 어려울 거예요. 아저씨 부디 안녕히 계세요.” 들쥐가 힘없이 뒤돌아섰어요. “무슨 소리야? 여기가 네 집인데.” 들쥐는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어요. “네? 어디가요?” “어디긴. 바로 내 저고리 안이지. 얼마나 따뜻하고 아늑한데.” 허수아비는 뽐내듯 가슴을 쭉 내밀었어요. “겨울동안 나랑 같이 지내자. 들판엔 농부가 떨어트리고 간 이삭도 제법 있으니 양식 걱정은 말고.” 허수아비가 왼쪽 눈을 찡긋하더니 한마디 덧붙였어요. “어때, 친구?” “아저씨!” 들쥐는 연못에 뛰어드는 개구리처럼 허수아비의 품으로 뛰어들었어요. 그제야 허수아비는 온 몸이 따뜻해지는 걸 느꼈답니다. ●작가의 말 힘겹게 농사지은 쌀을 훔쳐가는 들쥐는 얄미운 도둑이지요. 하지만 그렇게 따지면 사람이야말로 자연의 가장 큰 도둑일지도 몰라요. 사람들은 자연에게 한없이 베풀어 달라고 조르면서 막상 제가 가진 것은 쌀 한 톨도 그냥 내어주지 않으니까요. 곡식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눈을 부라리는 허수아비야말로 그걸 세워 둔 사람의 진짜 모습이 아닐까요? 혼자서 모든 걸 독차지 하려고 아무에게도 곁을 주지 않는, 그래서 밤낮 홀로 서 있는 허수아비. 그런 허수아비에게 친구를 만들어주고 싶었어요. ●약력 ▲2004년 단편 ‘행복한 비누’가 샘터문학상 동화부분에서 최우수상을 받으며 등단 ▲2007년 창비가 주관한 좋은 어린이책 공모에서 장편 ‘명혜’가 당선 ▲2008년 창작동화집 ‘꽃신’ 발표 ▲지은 책으로는 ‘명혜’ ‘꽃신’ ‘나불나불 말주머니’ ‘선영이, 그리고 인철이의 경우’등
  • [新귀거래사] 천연염색가로 변신 가수 은희씨

    [新귀거래사] 천연염색가로 변신 가수 은희씨

    “생각난다. 그 오솔길/그대가 만들어준 꽃반지 끼고/다정히 거닐던 그 오솔길….” 1970년대 초 ‘꽃반지 끼고’, ‘사랑해’, ‘연가’ 등의 히트곡을 냈던 추억의 가수 은희(58·본명 김은희)씨는 요즘 천연염색에 푹 빠져 있다. 서해 바다가 지척인 전남 함평군 손불면 교촌마을 입구에 이르면 소나무숲 언덕이 첫눈에 들어온다. ‘민예학당’이란 안내판을 따라 언덕을 오르면 폐교된 옛 손불 남초등학교 건물이 우뚝 서 있다. 본관에 이르는 길 양쪽은 갓 피어난 잔디로 푸르다. 옛 시골 학교 모습 그대로다. “어서 오시오~잉. 감 염색 옷을 세계적 브랜드로 키우는 게 꿈이지라.” 이 집의 안주인 은희씨는 익숙한 전라도 사투리로 기자를 맞는다. 그가 이곳에 둥지를 튼 것은 2003년. 염색의 주 재료인 감이 많이 나고, 기후와 산천이 고향인 제주도와 비슷한 점이 가장 맘에 들었단다. 전라도 사람들의 정서도 마음에 들었다. 이후 틈틈이 폐교 운동장에 잔디와 들꽃을 심고, 연못도 팠다. 학교 본관을 개조해 20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공연장과 염색 연구소, 디자인 작업실, 작품실 등을 갖췄다. 여기서 그는 ‘감 염색’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그가 한창 잘나가던 가수생활을 접고 결혼과 함께 미국 뉴욕행 비행기를 탄 것은 ‘새로운 세계’에 대한 동경 때문이었다. 뉴욕주립대 패션학과(FIT)에 입학한 그는 의상디자인과 메이크업 등 이른바 ‘토털 패션디자인’을 배우고 15년만인 1985년 귀국했다. 서울 압구정동 5층짜리 건물에 ‘코디네이션 센터’를 열어 처음으로 국내 공연·예술계에 ‘코디’란 개념을 전파했다. 또 ‘스톤 아일랜드 갤러리’를 마련하고, 흑백사진 초대전만 가졌다. 이를 계기로 문화계 인사들과 자연스레 어울리면서 ‘우리 문화’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그는 고향인 제주 모슬포 인근 재래시장을 지나다 좌판에 깔린 ‘갈중의(갈옷)’를 봤다. “바로 이것이구나.”란 생각이 뇌리를 쳤다. 갈옷은 예부터 땡감으로 염색해 제주 사람들이 즐겨 입던 작업·노동복이다. 땀 흡수력이 뛰어나고 감의 떫은 성분인 타닌이 방취, 방충, 방습이 뛰어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몸 냄새가 상대적으로 많은 서양인들에게 안성맞춤이란 생각이 들었다. 서양의 대중 옷인 블루진을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 1989년 그는 본격적인 감 염색 작업에 착수, “봅데강(보셨습니까라는 제주도 방언)”이란 상표로 갈옷 제품을 내놨다. 초등학교 동창인 탤런트 고두심, 살아 생전의 중광 스님 등 문화계 인사들이 힘을 보탰다. 갈옷을 국내 한 홈쇼핑에 올려 1000여벌이 순식간에 동나기도 했다. 외환위기 때 어려움도 겪었지만 관련 특허까지 따 내는 등 감 염색 연구에 몰입했다. 그럴수록 기능성에 확신을 갖게 됐다. 그는 최근 일본 도쿄, 나고야, 오사카, 교토 등 5대 도시를 순회하며 전시회와 발표회 등을 이어갔다. 지금은 일본의 유명 백화점이 입점을 요청할 정도로 갈옷의 우수성을 인정받았다. 재료를 구입하고 공동 작업하는 과정을 되풀하면서 동네 주민들과도 스스럼없이 지낸다. 그는 이제 함평 사람이 다 됐다. “봄바람이 살랑대는 초록 5월엔/꽃길따라 꿈을 꾸듯 나비따라 간다” 그가 함평 나비축제의 주제가를 작사, 작곡, 노래까지 할 정도로 이곳은 제2고향이 됐다. 글ㆍ사진 함평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대학 자취생 ‘장금이’들 만원의 행복

    대학 자취생 ‘장금이’들 만원의 행복

    13일 오후 서울 화양동 건국대학교 학생회관 앞. ‘자취생 요리왕 선발대회’ 현장이다. 대회에 참가한 6명의 학생들이 ‘ㄷ’자 형태의 탁자 앞에서 요리를 하느라 땀을 뻘뻘 흘린다. 하얀 손 장갑과 앞치마를 두른 채 능숙한 솜씨로 음식을 다듬는 모습이 현대판 ‘대장금’이나 다름없다. 학교 주변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아주머니 등 심사위원단 3명은 참가자들이 요리하는 모습을 보느라 바쁘게 움직였다. 요리왕 선발대회는 이 대학 총학생회에서 대학 축제행사의 하나로 마련했다. 불황 때문에 힘들어하는 학생들을 위로하기 위해서였다. 행사 취지에 맞게 재료비는 1만원으로 총학생회에서 제공했다. 총학생회 김가영(20·정외과) 정책국장은 “연예인 공연이나 주점을 여는 행사보다 학생들이 직접 참여하는 이벤트가 의미 있을 것 같아 진행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대회는 참가자들이 1만원으로 학교 근처 대형마트에 가서 각자 만들 음식에 필요한 재료를 구입하는 것으로 막이 올랐다. 참가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장 보는 일부터 만만치 않았다.”고 말했다. 오징어볶음에 도전한 이승혜(23·여·중문과3)씨는 “물가가 많이 올라 제한된 예산으로 필요한 재료를 모두 구입하기 어려웠다.”면서 “대파가 1kg에 1500원이나 하는 것을 보고 너무 놀랐다.”고 전했다. ‘도전 메뉴’는 치즈 떡볶이, 해물라면, 오징어볶음, 라면탕, 고구마 닭볶음탕, 일본식 카레 등 저렴하면서 학생들이 즐겨 먹는 먹거리가 대부분이었다. 능숙한 솜씨로 양파를 썰던 고태영(23·물리학과 3)씨는 “자취생활 2년 동안 팍팍한 살림살이에 한 푼이라도 아끼려 음식을 해먹다 보니 요리솜씨가 늘었다.”면서 “친구들에게 자주 만들어 줬던 치즈 떡볶이가 오늘의 도전 메뉴”라고 소개했다. 군대에서 취사병을 했던 남영웅(23·기계공학부3)씨는 해물 마늘 라면탕을 택했다. 마늘을 넣으면 라면의 느끼한 맛이 사라진다고 귀띔한다. 1위인 ‘대장금상’의 영예는 ‘5색 볶음밥’을 만든 자취 4년차의 관록을 자랑하는 이현필(24·사회환경시스템공학과4)씨에게 돌아갔다. 이씨는 참가자 가운데 유일하게 하얀 손 장갑과 앞치마를 두르고 나와 위생 부문에서 가산점을 받았다. 햄과 단호박, 계란, 마늘, 브로콜리 등이 버무려져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건국대 후문에서 ‘이모네 분식점’을 운영 중인 심사위원 한복순(62)씨는 “요즘 친구들끼리 1000원, 2000원씩 모아 떡볶이로 끼니를 해결하는 대학생들이 부쩍 늘었다.”면서 “내가 돈을 조금 덜 벌어도 좋으니 밥을 잘 먹고 다녔으면 하는 심정”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엄마와 읽는 동화] 우리 함께 별을 만들자/임나라

    [엄마와 읽는 동화] 우리 함께 별을 만들자/임나라

    새벽 6시30분. 깜깜한 성당 마당에 버스 한 대가 공룡처럼 버티고 서 있었다. “미래야, 얼른 올라타자. 날씨가 매섭네.” 엄마가 손을 잡았다. 미래는 살짝 손을 빼낸 채, 성큼 버스에 올랐다. 그러곤 운전기사 바로 뒷자리에 털썩 주저앉으며 모자를 푹 눌러써 버렸다. 엄마가 옆자리에 앉는 듯했으나 곁눈도 주지 않았다. 두툼한 겨울옷을 잔뜩 껴입고서도 추위에 발을 구르고 서 있던 사람들이 단숨에 모두 타자 버스는 이내 출발하였다. 맨 나중에 탄 아저씨가 마이크를 잡았다. “한 해가 저물어가는 이 섣달그믐에 태안 바다를 덮쳐버린 기름을 닦으러 새벽 추위를 무릅쓰고 달려오신 교우 여러분께 감사를 드립니다. 이 일이 마치 바닷물을 숟가락으로 퍼 담는 것과도 같겠습니다만….” 아저씨의 인사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뒤에서 한 아줌마가 앞으로 나오더니 랩에 싼 주먹밥과 우유 한 봉지씩을 나눠주기 시작했다. 엄마가 두 몫을 받아 한 몫을 미래의 손에 쥐어 주었다. “아직 따뜻하네. 우유 한 모금 먼저 마시고 나서 천천히 먹어.” 엄마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엄마 몫은 앞좌석 뒤에 매달린 그물망에 모두 넣어 두었다. ‘엄만 먹지도 않을 거면서 왜 나만 먹으래?’ 그냥 짜증이 났다. 풍선처럼 팽팽해진 가슴이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아이는 너뿐인 거 같구나? 몇 학년이야?” 버스 통로를 오가던 아줌마가 이제 서서히 동이 터 오는 동쪽 하늘만 뚫어져라 창밖으로 내다보고 있는 미래에게 물었다. 5학년요, 하려 하는데 말이 되어 나오질 않았다. 어젯밤부터 한마디도 말을 해 보질 않았기 때문에 입이 굳어 버린 걸까. “5학년인데, 몹시 추워하네요.” 엄마가 변명하듯 대신 말했다. “이렇게 모녀가 남을 위해 봉사를 떠나니 얼마나 보기 좋아요? 추워도 보람된 일이죠. 이 주먹밥 아줌마가 밤새 만든 거야, 먹어 봐.” 아줌마는 미래의 무릎에 놓인 주먹밥을 들더니 랩을 벗기곤 한 조각 떼어내어 미래 입에 넣어 주었다. 얼결에 입을 우물거렸다. “빈속이라 더 추울 거야. 우유도 마시고.” 우울한 기분과는 달리 새콤달콤한 주먹밥은 아주 맛이 있었다. “딸에게 나눔에 대한 추억을 심어주고 싶었어요.” 엄마도 그물망에서 우유를 꺼내 한 모금 마시며 이미 뒷자리로 가고 있는 아줌마에게랄 것도 없이 혼잣말처럼 말했다. 캑, 캑. 갑자기 사래가 들려 주먹밥이 목에서 넘어가질 않았다. 엄마가 황급히 등을 두드려 주었다. 하지만 미래는 아직도 숨을 고르지 못해 핵핵대면서도 엄마 손을 차갑게 밀어냈다. 엄마 손은 힘없이 무릎 위에 얹혀졌다. ‘뭐, 추억? 꽁꽁 얼어붙은 겨울 바다로 기름 닦으러 가는 게 추억이 될 거라고? 나를 먼먼 땅으로 내쫓고서 엄마 혼자 추억을 곱씹어 보시겠다는 거지?’ 미래의 속마음을 다 알고 있는지 엄마가 손바닥으로 가슴을 살살 두드리며 큰 숨을 몰아쉬었다. 미래는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씩씩거렸다. 아저씨가 백미러로 미래를 넘겨다보며 말했다. 아마 미래를 달래보려는 것 같았다. “엄마가 싫다는 너를 억지로 데리고 온 모양이구나? 기왕 온 거 참고 가 봐. 푸른 바다에 온통 기름덩이가 산처럼 둥둥 떠다니고, 해안의 바위와 수없이 깔린 돌들이 검은 기름으로 뒤덮여 있는 걸 보면 너도 그게 바로 인류의 재앙이라는 걸 느낄 수 있을 게다.” ‘인류의 엄청난 재앙이라는 것쯤 나도 안다고요. 그런데 지금 나는 그곳에 가기 싫어 화가 난 게 아니라고요.’ 미래는 답답한 마음에 의자 깊이 몸을 묻고 눈을 질끈 감아 버렸다. 바닷가 모래사장엔 외계인 같은 사람들로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자루같이 큰 노란 방수복, 파란 마스크, 빨간 고무장갑, 색색의 털모자와 챙 달린 모자를 제멋대로 삐뚤빼뚤 쓴 사람들이 옷을 있는 대로 껴입어 부풀어진 몸을 천천히 움직이며 콜타르 같은 기름덩이를 걸레로 닦아내고 있었다. 걸레의 종류도 가지가지였다. 수건, 내의, 마대포, 이불홑청, 두루마리째 돌 위에 산더미처럼 부려 놓은 하얀 무명천, 기름이 닦일 것 같지도 않은 나일론 의류 등 집집마다 쓸모없다고 생각되는 천들은 모두 모아진 듯했다. 커다란 바위에 매달려 기름을 닦아내는 사람들, 크고 작은 조약돌을 들고 하나하나 반짝반짝 닦아내는 사람들, 웅덩이를 파서 고여 든 기름을 플라스틱 바가지로 끝도 없이 퍼내는 사람들, 말할 시간도 아끼며 모두 묵묵히 자기들이 맡은 일들을 정신없이 해 나가느라 바빠 보였다. 행렬은 멀리 가물가물한 수평선 끝 해안에까지 길게 이어져 있었다. 미래도 얼굴에 땀방울이 송송 맺히도록 온 힘을 기울여 기름때를 닦았다. 미래보다 더 어린아이들도 많이 와 있었다. 한참 열중하다 문득 눈이 마주치면 고무장갑 낀 손을 높이 흔들며 서로 파이팅을 하기도 했다. “땀 좀 닦자. 여기 깨끗한 수건도 있네.” 엄마가 미래에게 다가와 수건을 몇 겹으로 접어 얼굴에 맺힌 땀방울을 꼭꼭 찍어내 주었다. 미래는 화들짝 놀라 뒷걸음을 치면서 짧고 매몰차게 말했다. “싫어. 손대지 마.” 팽 돌아서며 미래는 엄마의 슬픈 눈을 보았다. 얇은 칼날에 살을 베일 때처럼 가슴이 섬뜩해졌으나 미래는 짐짓 모른 체 저만치 달음질쳐 엄마와 멀어졌다. 파도가 천둥 같은 소리를 내며 바위를 덮치고 나선 까르르 멀어져 갔다. 사람들은 손놀림을 멈추지 않으면서도 잠깐씩 파도가 펼쳐내는 장관들을 구경하며 미소를 짓기도 하였다. “멀쩡한 바다에 기름을 쏟아 순식간에 물고기들을 떼죽음시키고…, 바다가 죽어 가네…, 온갖 해초들이 다 죽어가네에. 이런 참변이 어디 있을꼬? 두 번 다시 일어나선 안 될 악몽이여, 악몽. 조금만 조심했더라면….” 한 할아버지의 탄식 소리는 바위와 바위가 맞붙어 동굴처럼 파인 곳에 온 몸을 굽혀 검은 기름덩이를 한 움큼씩 파서 양동이에 옮겨 담을 때마다 끊겼다 이어졌다 반복되곤 하였다. “미래야, 어젯밤엔 네게 자세한 얘길 할 수가 없었단다. 사실은 엄마가….” 어느 결에 엄마가 다가와 옆에 서 있었다. “많이 아파. 너도 조금 짐작은 하고 있겠지만.” “아주 많이?” “응. 그래서 아빠에게 널 뉴질랜드로 데려가 달라고 부탁한 거야. 다행히 아빠도 이제 정신을 차려서 목수 일도 열심히 하고 계신대. 그곳엔 목조건축 일이 많아서 열심히만 하면 빌더로 인정받을 수도 있어 살기는 괜찮다는구나. 새엄마가 될 그 아줌마에게도 널 반갑게 맞아달라고 했어.” “누가 간댔어? 누가 부탁하랬어? 그럼 엄만 누구랑 살고 치료는 어떻게 할 건데?” 숨 가쁘게 쏘아대던 미래는 사람들이 쳐다보는 듯해서 둑방으로 올라왔다. 엄마도 숨을 할딱이며 따라 올라왔다. “수술을 해 봐야 안대. 엄마가 만약 살아서, 살아서 건강해지면 다시 널 꼭 데려올게. 지금은 너라도 가서 편하게 살아야지.” 미래는 야속한 엄마가 불쌍해 목이 메었다. 더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오후가 되자, 바다는 점점 더 짙은 회색빛으로 변해 갔다. 확성기의 소리가 들려왔다. “오늘은 이만 작업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만조 때까지 하려 했으나 곧 눈이 쏟아질 것 같으니 서둘러 마무리를 해 주시기 바랍니다. 먼 길, 안녕히 가십시오.” 그러더니 5분도 채 안 되어 눈발이 마구 흩날리기 시작했다. 버스에 올라타자마자 잠이 들었다. 자면서도 울었던지 가끔 흐느끼다가 놀라 깨기도 한 것 같았다. 그럴 때마다 따뜻한 엄마의 손길이 느껴졌다. 태안에 기름 유출 사건이 생긴 것만큼이나 미래에겐 아픈 엄마와 헤어져 살아야 한다는 사실이 견딜 수가 없었다. 어렴풋이 잠에서 깨어나면서부터 미래의 가슴은 또다시 방망이질을 해댔다.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기지개를 켜는지 끄응, 끄으응, 소리를 내며 버스 안이 부산스러워졌다. 추위에 일하느라 고단했던지 모두 미래처럼 버스에 오르자마자 잠이 들었던 모양이었다. 운전기사 아저씨가 텔레비전을 켰다. 미래는 창가에 앉은 엄마 쪽을 슬며시 돌아다보았다. 엄마는 잠도 자지 않은 듯 두 손을 맞잡은 채 입술을 달싹이고 있었다. 엄마는 무슨 기도를 하고 있는 걸까. 텔레비전에선 다큐멘터리가 방영되기 시작했다. 기후온난화로 인해 뉴질랜드와 가까운 조그만 섬나라가 해수면이 점점 높아져서 몇십 년 후엔 물속으로 가라앉게 되리란 내용이었다. 사람들은 수면이 높아진 파도가 갑자기 덮쳐들 것을 걱정하며 집 앞을 돌로 쌓기도 하고, 아예 해안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이사를 가기도 하였다. 모두 근심에 싸인 표정들이었다. 스텔라라는 여자아이가 화면에 나타나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막엔 이런 문구가 쓰여 있었다. ‘우리를 도와주세요. 세계의 선진국 모든 사람들이 연료를 덜 사용해 주시고, 자동차를 줄여 주세요. 매연을 줄여 주세요.’ 그리고 이어 순박해 보이는 스텔라 엄마의 모습이 비쳐지며 울음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갈는지는 몰라요. 하지만 스텔라는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슬프지만 뉴질랜드로 이민 보내려고 해요.’ 스텔라의 눈이 푸른 별처럼 크고 참 맑아 보였다. ‘스텔라야. 나도 뉴질랜드로 가게 될 거 같아. 그곳에서 널 만날 수도 있겠지? 우리 함께 별을 만들자. 그 별을 하늘 높이 띄워 보자. 그리움의 별을 말이야.’ 미래는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울고 있는 엄마의 손을 꼭 잡았다. ●작가의 말 태안 앞바다에 기름 유출사건이 났을 때 두 번에 걸쳐 기름을 닦으러 간 적이 있었다. 차마 맑은 눈으로는 바라볼 수 없는 처참한 환경파괴의 장이었다. 또 한편 지구 저쪽, 지구온난화로 인해 점점 바닷물에 잠겨가고 있는 조그만 섬나라를 기억하고 싶었고, 이런 소용돌이 시대 속에서도 묵묵히 변화를 받아들이며 살아가야 하는 아이들의 아픔을 그려보고자 하였다. ●약력 ▲대전일보 신춘문예 동화 당선(하늘마을의 사랑) ▲서울신문 신춘문예 동화 당선(파랑이의 구름마차) ▲동화집 : 하늘마을의 사랑, 무화과나무집 ▲현재, 한국조형예술원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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