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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매일신보에서 서울신문까지(겨레의 맥박으로 89년:13)

    ◎매신과 한국문학/신춘문예 첫 도입… 민족문학 일궈/민간지발간속 유일한 작품발표 무대로/일 소설번안 「장한몽」,장안의 화제 4개월/한글보급 위해 소설 연재… 이광수 등 숱한 문재 배출 1904년 7월18일 창간된 대한매일신보가 항일구국언론 이라는 사실은 이미 알려진 대로다.그 뒤를 이은 매일신보는 부정적 측면이 강하긴 했지만 우리나라 신문학 발전에 기여한 업적은 긍정적으로 평가될수 있다. ○문학전문기자 채용 특히 매신이 유일한 우리말 신문으로 존재한 시기는 주목되는 대목이다.1910년대의 일제 무단통치 10년간과 1940년부터 해방직전 5년간 우리문화말살정책에도 불구하고 우리문학의 최종 수호자 역할을 다 해냈던 것이다. 이는 총독부기관지였던 매신이 정치기사등으로는 독자의 관심을 끌기 어렵다는 판단에서 비롯되긴 했다.학예기사에 중점을 두는 편집방침은 자연히 문학쪽에 비중을 둘수 밖에 없었다.그래서 신춘문예제도를 최초로 시도하는 한편 문학전문기자를 채용했다.그리고 독자문예란을 만들어 일반독자들의 글쓰기를 적극 장려하는등 문학발전을 위해 매신이 기울인 노력은 대단한 것이었다.더욱이 일제가 모든 민간지들을 강제 폐간시키고 한민족의 문화와 언어를 말살시키기 위한 정책을 펴는 시기의 매신은 유일한 한글신문이기도 했다. 당시 매신은 우리작가들에게 작품발표의 기회를 제공한 유일한 신문이었다.이인직 조중환 이해조 이상협 이광수 민태원 윤백남등 1920년대 이전부터 소설을 발표해온 작가들이 자주 등장했다.20년대 이후에 나온 이서구 이효석 염상섭 김동인 최서해 최정희 방인근 이상 박태원 전영택 박종화 박영준 장덕조 박계주 채만식 정비석 김내성등 초창기 우리문학의 대가들도 매신을 통해 작품활동을 해왔다.이러한 일련의 사실은 매신이 우리문학사에서 차지하는 자리를 가늠케 해주고 있다. 한말에서 일제시대에 걸치는 동안 대부분의 언론인들은 문인으로도 활약했다.또 문인치고 언론계에 몸담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정도로 언론인과 문인은 동일시 되었다.최준교수(전중앙대)는 그의 「한국신문사」에서 구한말에 창간된 민간신문들이 한글보급 차원에서 신문연재소설을 다투어 싣게됨에 따라 신문과 신문학이 뗄래야 뗄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고 설명했다. ○연재후 단행본 펴내 우리 국문학사에서 최초의 신소설로 알려진 이인직의 「혈의 누」도 저자가 만세보 주필로 있으면서 1906년 7월22일부터 10월10일까지 이 신문에 연재했던 작품이다.구한말 민간신문들의 신소설연재는 신문학운동이라는 목적의식에서 보다는 신문제작의 한 방편이었다고 볼수 있다.따라서 기자들이 쓰기 시작한 신소설은 처음에는 저자의 이름을 밝히지 않은 무기명이거나 이름을 밝히더라도 본명이 아니고 필명을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대한매일신보에 실린 최초의 소설형태 글은 1905년 11월17일자에 실린 3면5단의 「소경과 앉은뱅이 문답」이다.이글은 12월13일까지 실렸으며 그 다음날부터는 「이태리국 아마치전」이 시작돼 21일까지 계속되었다.그러나 정식으로 소설이라는 이름이 붙은 글은 이듬해인 1906년 2월6일자 3면4단의 「청루의녀전」이었다.이 소설은 12차례 연재된뒤 2월18일자에서 끝났다.20일부터는 3면2단에 「차부오해」가 시작돼 3월7일 완결되었다.이들은 모두 필자를 밝히지 않았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1910년대 들어서는 필자의 이름을 밝혔다.이해조는 합방이후 매신에 많은 소설을 썼는데 1910년의 작품 「화세계」를 비롯,「월하개인」「소양정」「춘외춘」등 많은 작품을 남겼다.그는 문학전문기자로 연재소설을 쓰고 그것이 끝나면 단행본으로 내는 일을 맡았었다.매신 경파(사건담당)주임이었던 조중환은 1912년부터 「쌍옥루」「장한몽」「국의 향」「단장록」「비봉담」「관음상」등 번안소설을 활발히 발표했다.특히 일본소설을 번안,주인공을 이수일과 심순애로 바꾸어 만든 소설 장한몽은 신파극으로도 오랜 인기를 끌었다.이인직은 「혈의 누」속편인 「모단봉」을 1913년 2월부터 6월까지 매신에 연재하기도 했다. ○조풍연씨가 대표적 이광수는 매신에 근무하지는 않았으나 그의 처녀작인 「무정」(1917년1월1∼6월14일)에 이어 「개척자」를 연재,명성을 드높였다.그는 후에 언론계에 투신,동아·조선에서 요직을 거친후 1942년에는 원숙한 경지에 이른 역사소설 「원효대사」를 매신에 다시 연재했다.윤백남 역시 매신을 통해 문명을 얻었다.1913년부터 매신에 근무한 그는 「기연」「시주」「몽사」「사변전후」등을 발표했다.동아·조선 창간전에 매신기자로 출발했던 「청춘예찬」으로 유명한 오보 민태원은 「애사」「세번째의 신호」「새생명」등을 연재했다. 매신은 1919년 8월 소설작품 현상모집을 최초로 실시했다.후에 민간신문들이 채택한 신춘문예의 효시가 된 이 현상작품모집의 현상금은 1등 1백50원,2등 1백원,3등 50원등이었다.여기에 입상한 것을 계기로 언론인으로 입사하는 사람도 많았는데 조풍연씨가 대표적인 케이스라 할 것이다. 1920년대 들어서는 일제의 문화정치 표방으로 민간신문들이 탄생하고 여러 잡지들이 발간되기 시작하자 작품발표의 무대가 넓어지게 되었다.이에따라 종전과는 달리 전문적인 문인들이 나오게 되었다.그들의 대부분은 역시 언론인들이었지만 과거 신문제작의 한 방편으로 소설을 쓰던 초기와는 달리 작가의식을 갖고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했던 것이다.이 시기 매신의 지면을 통해 명성을 날렸던 주요 작가및 작품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김동인=순정­부부애편·해는 지평선에·수평선을 넘어서·거목이 넘어질때·백마강 ▲김내성=태풍 ▲박계주=순애보·죽음보다 강한것 ▲박영준=교수성장기·사위 ▲박종화=금삼의 피·대춘부·다정불심·여명 ▲박태원=낙조·여인성장·원관 ▲방인근=방랑의 가인·홍운백운·새벽길·젊은 안해·동방춘 ▲염상섭=이심·무화과·모란꽃 필때·불연속선·향가 ▲이서구=고독에 우는 모녀·눈물에 젖는 사람들·사랑의 지옥 ▲이효석=황야·나는 말 못했다·마음의 의장·창공 ▲이태준=사상의 월야·왕자호동 ▲장덕조=귀여운 여자·은하수·여인도·새로운 군상 ▲전영택=곰·청춘곡·재출발 ▲정비석=화풍 ▲채만식=금의 정열·아름다운 새벽·여인전기 ▲최금동=해빙기·향수 ▲최상덕=가을의 봄 ▲최서해=호외시대 ▲최인욱=시드른 마을·산신령 ▲최정희=다란보 매신은 또 독자문예란을 설치해 독자들로부터의 문예작품 투고를 받아 신문에 게재하는 한편 우수한 작품에는 시상도 하였다.이 난을 통해 작가로 데뷔한 대표적인 인물은 석송 김형원과 춘성 노자영씨등이 있다. 매신은 문학사적 업적 외에도 신문에 최초로 스냅사진을 게재(1913),신문사진이 정적인 뉴스사진에서 동적인 뉴스사진으로 전환하는 획기적 계기를 마련했다.또한 종로통 화신백화점 옥상에 전광속보대를 설치(1937),시민들에게 빠르게 뉴스를 전달할수 있도록 하는등 미디어발달사적 측면에서도 선도적인 역할을 다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참고문헌:「한국언론사」(정진섞61990) 「한말의 신문소설」(이재선·1975) 「한국언론인물사화」상·하(대한언론인회·1992) 「언론비화50편」(한국신문연구소·1978) 「한국신문사진사」(최인진·1992)
  • 17개 정부투자기관 등 대폭인사 단행

    ◎기업은행 이우영씨/주택은행 박종석씨/수출입은 김영빈씨/토개공사장 김우석씨/주공사장 박부찬씨/수자공사장 이윤식씨/도공사장 박규열씨/관광공사장 지연태씨/국토연원장 이상용씨/건설연원장 이재명씨/농진공사장 조홍래씨/무공사장 박용도씨/한전사장 이종훈씨/광진공사장 조종익씨/가스공사장 박청부씨/석유공사장 장석정씨 정부는 26일 중소기업은행장에 이우영 한은부총재,주택은행장에 박종석재무부제2차관보,수출입은행장에 김영빈 재무부 기획관리실장을 각각 내정하는등 17개 정부투자·출연및 재투자기관장을 임명 또는 내정했다. 이날 인사에서 박종석증권감독원장·황창기보험감독원장등 15개 기관장은 유임됐다. 한국토지개발공사사장에는 김우석 전민자의원,대한주택공사사장에 박부찬 전부산시장,한국수자원공사사장에는 이윤식 한국기술연구원장,한국도로공사사장에는 박규열 전중앙토지수용위원회상임위원,한국관광공사사장에는 지연태 전민자의원이 각각 임명됐다. 정부는 또 국토개발연구원장에 이상용전건설부차관,건설기술연구원장에 이재명 전건설부2차관보를 임명하고 농어촌진흥공사사장에는 조홍래 전민주당의원을 내정했다. 무역진흥공사사장에는 박용도 전상공부차관,한전사장에는 이종훈한국전력기술사장,대한광업진흥공사사장에는 조종익 전민주당의원,한국가스공사사장에는 박청부 전보사부차관,한국석유개발공사사장에는 장석정 전동자부기획관리실장,한국수출보험공사사장에는 김태준 전특허청장이 각각 내정됐다. 정부는 임기만료된 이헌재증권위상임위원을 연임시키고 이규징국민은행장,이형구산업은행총재,황원오조폐공사사장,김기인담배인삼공사사장등은 사표를 반려,유임시켰다. 이밖에 유임된 인사는 ▲신대진 농수산물유통공사사장 ▲권순영 한국종합화학사장 ▲김종호 대한석탄공사사장 ▲김형배 중소기업진흥공단이사장 ▲황인정 산업연구원장 ▲박홍식 업기술정보원장 ▲이회성 에너지연구원장 ▲김영욱 생산기술연구원장등이다. 한편 김재기 주택은행장은 외환은행장에,이광수 수출입은행장은 산업은행이사장에,정영모 증관위비상임위원은 주택은행이사장에 각각 내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 명분을 최고의 가치로(한국정신의 원류를 찾는다:9)

    ◎민족 정체성 확립을 위한 캠페인/원한국인의 실천덕목 선비정신/실생활에서는 검약·절제·청렴을 미덕으로/역사의식에서는 춘추철학과 지조를 신봉 지난 대선은 여러모로 한국현대사의 이정표를 제시하였다.우선 「신한국인」이라는 용어를 탄생시켰고 우리사회가 아무리 자본주의화했다지만 돈만으로는 안되는 심리가 남아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었다.「신한국인」이라는 구호는 우리 모두 구태의연한 남루를 벗어 던지고 새롭게 태어나야한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우리가 한국인으로서 살아온 지난 세월이 결코 자랑스럽지도 떳떳하지도 못하다는 전제가 깔려 있는 것이다. ○돈아닌 가치관 보여줘 과연 우리민족이 살아온 지난 세월의 자취가 그렇게 초라하고 부끄러워 타기해버려야만 하는 대상일까? 그렇다면 강대국사이에서 민족고유문화를 지키고 오늘날까지 살아 남은 저력과 문화국가로서의 자부심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가? 오히려 현재의 한국인에 대한 전면적인 부정과 지나친 자기반성이 부작용을 초래하게 되지 않을까 일말의 걱정이 앞서는 것은 노파심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우리 역사상 미증유의 이민족 통치인 일제식민지시대에 잃어버린 민족적 자부심이 아직 회복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지난 몇년사이 매스컴을 통해서 전개된 한국인의 자기반성을 짚어 보는 여러 기획들이 일제치하에서 이광수가 부르짖은 민족개조론의 변형이 되지않을까 우려되기 때문에 「신한국인」논의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또 대재벌의 총수가 막강한 재력과 조직력을 앞세우고 돌풍을 일으키는듯 하더니 막상 선거결과는 예상득표수에 훨씬 못 미치는 15%에 불과하였다.『자본주의사회에서 돈이외에 무슨 기준이 있느냐』는 말이 교수사회에까지 공공연하게 통하는 현 시점에서 돈으로 승부하려던 재벌총수의 참담한 패배는 현한국인에게 잠재해 있는 다른 세계관과 가치관의 실마리를 확인하게 한다. 그러므로 신한국인상을 세우기 위해서는 현한국인상의 객관적인 이해·분석이 필요하고 현한국인의 원형이라할 역사속의 원한국인상을 재조명할 필요가 제기된다.흔히 전통을 단절시켰다고 진단되는 일제시대 전시기,다시 말하면 조선후기의 인간형이야말로 원한국인이며 그들의 세계관과 가치관을 재조명하고 그 시대의 시대정신을 밝히는 노력이야말로 한국정신의 원류에 접근하는 첩경이라 생각된다. 조선후기사회는 유교사회였다.유교는 시대에 따라 발전·변화하였는데 송나라 때에 이르러 형이상학적 우주론인 이기론을 성립시켜 성이학의 문호를 개창하였다.조선시대는 바로 이 성리학을 국학으로 수용하고 그 이념을 시대정신화한 시대였다.성리학을 공부하여 체질화시킨 학자들이 선비(사)이며 선비의 복수개념이 사림이다.이들은 수기치인을 기본으로 하여 수기의 단계에서 치열한 학문연마와 인격을 닦고나서 남을 다스리는 치인의 단계로 가는 사대부의 삶을 사는 것이 정석이었다.전자가 사의 단계라면 후자는 대부의 단계이므로 학자관료들이니 조선시대는 바로 학자관료들이 지배층이 된 시대였다.그들이 추구한 정신이 선비정신이라면 그 사회는 그것을 실천하는 장이었다. 선비정신은 의리와 지조를 중요시하는 정신이다.어떻게 인간으로서의 떳떳한 도리인의리를 지키고 그 신념을 흔들림없이 지켜내는 광조를 일이관지하게 간직할 수 있느냐가 최대 관심사였다.인간이 짐승의 무절제한 욕망이라는 차원에서 벗어나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기위한 방법론으로서의 인성론을 발전시킨 것도 그러한 맥락에서 이해된다.조선전기의 인심도심설이나 후기의 인물성동이론은 인간학에 대한 이론적 심화과정이며 정신적 가치에 대한 인식체계였다. ○조선 지식인들의 상식 인간의 본능과 물질을 최고가치로 인정하는 현대와 극명하게 대비되는 것이 조선시대이다.제2차 세계대전후 전세계가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자본주의체제와 소련을 주도국으로 하는 공산주의체제로 양분되었다고 하지만 자본주의든 공산주의든 물질·물적 기초를 우선가치로 인정한다는 점에서는 유물주의의 공통점을 내포하고 있다.특히 자본주의는 인간의 욕망을 극대화하고 그에 따른 경쟁을 부추김으로써 성장하여 왔던 것이다. 바로 이 물적 기초를 추구하고 그러한 체제의 유지논리인 공리주의나 실용주의에서 도출한 실리주의가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의삶의 기준이라면 조선후기사회는 명분을 최우 선으로 하는 명분주의 사회였다.어떤 일을 처리할 때 그것이 나나 내가족,내가 속해있는 집단이나 조직에 이득이 되느냐 해로우냐가 현대적 판단기준의 우선척도가 된 것이다.이러한 이해관계기준은 인간사이에도 그대로 적용되어 메마른 인간관계를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조선시대 사람들의 판단기준은 그 일이 명분에 맞느냐 안맞느냐가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그리고 명분을 얻느냐 잃느냐는 그 지식인의 사활이 달린 지식인사회의 상식이었다. ○실리사회 탁류 휩쓸려 그러나 현대적 실리주의 가치관은 조선시대의 가치덕목들을 하나같이 평가절하하였다.명분은 핑계로,의리는 깡패용어로,선비의 기개를 뜻하던 사기는 군대용어로 전락해 버렸다.소비가 미덕이 되고 청빈은 낡아빠진 구시대의 덕목으로 조소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동기나 과정보다는 결과만을 중요시하는 결과주의가 판을 치고 있다. 그 시대 지식인의 사명감과 책임의식으로 대변되는 선비정신은 실제생활에서 검약과 절제를 미덕으로 삼고 청렴과청빈을 우선 가치로 삼았다.시류에 영합하는 것을 비루하게 여겼고 역사의식에 있어서는 시시비비의 춘추정신을 신봉하였다.그들은 「청」자를 선호하여 청의,청백이,청요(현)직,청명등의 용어를 즐겨 썼다.이러한 가치관은 지식인사회에만 유효하였던 것이 아니고 사회저변에 확산되어 일반백성들도 「염치없는 놈」이란 말이 최악의 욕으로 인식하였고 예의와 염치는 인간으로서 갖추어야할 기본덕목이 되었던 것이다.또한 상부상조의 평화공존의 성리학적 이념은 개인생활이나 농촌공동체 뿐만 아니라 국가간에도 적용되어야 한다고 믿었고 그러한 논리로 편제되어 있던 동아시아 국제질서를 무력으로 흔들어 놓은 일본이나 여진족의 청을 「오랑캐」라 폄하하였던 것이다.또한 이미 망한 명나라가 임진왜란때 파병한 사실을 「재조지은」이라하여 국가간의 의리도 지켜야한다는 것이 그들의 세계관이었다.그것은 문화가치,특히 유교적 문화질서인 중화문화질서를 지키려는 의지로 표현되었고 조선이 명을 계승하여 그 문화의 정수를 답지하고 있다는 자부심으로 나타났다. ○국민적 자존심 찾을때 19세기 서세동점의 세계질서 재편과정에서 서양을 중심으로 하는 국제질서를 인정하고 거기에 적극 편입하려는 개화운동이 서양제국주의와 그에 편승한 일본세력을 인정하여 결국 친일파의 양산으로 종결되었다면,중화문화 보존논리인 위정척사운동은 시대의 흐름에 민첩하게 대응하지 못했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민족의 정체성을 보존하는 일관된 자긍성을 견지하였던 것이다. 조선이 미개하다는 암시를 깔고 있는 개화사상은 일제시대에 확고한 우위성을 확보하였고 광복후에는 서양에의 일방적 경도로 인한 근대화이론과 맞물려 대표적인 근대사상으로 각광받고 있다. 이제 세계가 제국주의적 힘의 논리에 회의를 품고 새로운 시대정신을 모색하고 있는 현시점에서 시급한 일은 손상된 국민적 자존심을 회복하여 한국인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그것을 토대로 민족문화를 선양하는 것이다. □약력 정옥자 서울대교수·국사학 ▲1942년 강원도 춘천출생 ▲서울대 문리대 사학과졸업 ▲동 대학원졸업(문학박사)▲현 서울대 교수 ▲저서 「조선후기문화운동사」 「조선후기문학사상사」 「조선후기지성사」 등 다수.
  • 수필가 피천득씨(이세기의 인물탐구:16)

    ◎티없이 순수한 글에 고결한 기품 가득/자연·인간심리의 섬세한 현상들 묘사 주력/황홀·찬란하지 않은 언어로 인생향취 음미/부모 일찍 여의고 도산·춘원 등에 문학·인생의 멋 배워 『난영이 잘 있나요?』하자 『그럼 잘있구 말구.세영이 엄마,난영이 데려와요』한다. 금예 피천득씨가 사는 구반포아파트에는 노부부와 난영이가 있다.어린 난영을 위해 그는 지금도 날마다 낯을 씻기고 머리에 빗질을 해주고 1주일에 한번씩 목욕을 시킨다.난영은 요즘 엷은 청회색 봄쉐터에 멜방이 달린 남색바지,그보다 더짙은 감색 양말을 신고 있다. 난영은 피천득씨의 또하나의 딸이다.그의 「새털같은 머리칼을 적시며」의 주인공인 딸 서영이 미국으로 가버리자 마음을 달랠 수 없던 그는 대신 난영을 돌보게 되었다. 난영은 지금부터 40년전,그가 하버드대 연구교수로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동생이 없는 서영을 위해 사온 서양인형이다.이제 금빛 머리칼은 퇴색한 브론드지만 천진하고 밝은 얼굴,푸르고 맑은 눈동자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것은 부모의 정성과 손길이 그만큼 자상했던 탓이리라.난영의 봄쉐터와 바지 골무만한 털 양말은 부인 임진호여사(78)가 부군이 시키는대로 손수 떠서 입힌 것이다. 우리는 고교 국어교과서에 실렸던 금예의 「인연」이란 수필을 잊지 못한다. 10대와 20대 40대에 걸쳐 세번 만나게된 한 소녀와의 운명적 인연을 짤막한 글속에서 산호와 진주처럼 표현하여 어른이 된 지금도 사춘기의 애잔한 추억으로 남게하고 있다. 그는 어느 글에서나 사람의 도리와 경우,삶의 기쁨과 행복을 전하면서 이른바 「동천년로항장곡 매일생한불매향(오동은 천년을 늙어도 항상 가락을 지니고 매화는 일생을 추어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의 절개와 기품을 꼿꼿이 지키고 있다. ○삶의 행복 글속에 담아 그의 시의 소재는 언제나 자연과 인간 심리의 섬세한 현상을 교차시키는 것이 특징이다.설움과 심사가 「구름같이」피어나고 「물결같이」일어난다.그리고 「저 바다 소리칠때마다」그의 가슴이 뛰고 「저 파도 들이칠때마다」그의 피는 끓으며 그의 마음은 바다로 하늘로 달음질친다. 그의 글들은 티없는 옥천이다.그는 정수만을 쓰기위해 혼신을 다하고 온오을 드러내는데 전력하며 그의 처신은 언제 어디에서나 경홀(경홀)과 당혹함이 없다.작은것을 말하면서 큰 것을 암시하고 비탄에 앞서 비장미의 감동을 담고 있다. 그가 「수필」에서 쓴 것처럼 그의 「수필은 청자연적이다.수필은 난이요,학이요 청초하고 몸맵시 날렵한 여인이다」 「수필은 청춘의 글은 아니요,서른여섯살 중년 고개를 넘어선 사람의 글」이며 「그속에는 인생의 향취와 여운이 숨어있고」「황홀찬란하거나 진하지 아니하며 검거나 희지않고」「언제나 온아우미」하다. 금예는 서울사람이다.종로 화신 건너편에서 신전을 열어 가죽신장사로 부자가 된 피원근씨와 김수성여사의 독자로 태어났다.그러나 7세때 부친을 잃은 그는 서화와 거문고에 뛰어난 어머니로부터 예능과 문장에 많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여름이면 모시,겨울이면 옥양목」,모시처럼 섬세하고 깔끔하고 옥양목처럼 깨끗하고 차가운 「엄마」가 그에게 있었던 것은 「타고난 영광」이라고 표현한다.「엄마같은 애인」「엄마같은 아내」를 갖고싶어했고 또하나 간절한 소망은 「엄마의 아들」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그는 어느 글에서나 그의 어머니를 「엄마」라고 부른다.그가 10세때 30세의 나이로 어머니마저 타계하자 어머니에 대한 한과 그리움이 시와 수필속에서 절절히 사무치게 된것같다.그래서 딸 서영을 「엄마가 하느님께 부탁하여 보내주신 귀한 선물」이라 생각하고 서영의 일거 일동을 섬세하게 지키는건 물론 유치원서 국민학교를 졸업할때까지 거의 매일이다시피 학교에 데려다주고 데려오곤 했다.딸도 아빠를 따르고 섬기고 아빠가 원치않는 것은 어기지 않는다.그런 서영이 서울대 화학과 졸업후 미국으로 가버렸을때의 허전함과 허탈은 누구도 쉽게 짐작할수 없는 아픔이었을 것이다. 딸과 어머니외에 그의 구원의 여상은 성모마리아와 단테의 베아트리체,헤나의 파비올라,「둘이서 걸어가기엔 좀 좁은 길이라고 여겨지는 알리사」,그리고 「자존심이 강하여 싱싱하면서도 수줍어할때가 있는 푸른나무와 같은 여성」「마음을 허공에 둘지언정 아무것으로나 채우지 않으며」신의 존재·영혼의 존엄성·진리와 사랑의 기도를 열심히 믿으려고 애쓰는 여성이다. 또 「평범하되 정서가 섬세하고 동정을 주는데 인색치않고 작은 인연을 소중히」여기는 미소같은 유머를 지닌 사람들에게 그는 친밀감을 느끼고 있다. 1926년 춘원의 권유로 상해유학을 결심한것은 공부도 공부지만 도산 안창호선생을 만날수 있다는 호기심과 기대도 그 하나의 이유가 된다. 큰 기대에는 환멸이나 실망이 따르게 마련이지만 도산을 처음본 순간의 기쁨은 마치 김강산을 처음 봤을때의 감격과 비슷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우렁차면서도 날카롭지않고 청아하면서도 부드럽고 위엄이 있으나 상대방을 억압하지 않는」용모와 풍채와 음성이 그랬다. ○16세때 상해로 유학 병들어 누웠을때 그를 상해요양소에 입원시켰고 겨울 아침마다 문병하는등 끔찍한 사랑을 받았음에도 32년 6월 도산이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고국으로 압송되고 그가 순국했을때도 일경의 감시가 두려워 장례식에 참석치 못한것은 「예수를 모른다고 한 베드로 보다더 부끄러운 일」로 자책하고 있다. 춘원 이광수역시 도산못지않게 그의 인생과 문학에 커다란 획을 그어준 잊을수없는 인물의 하나다. 상해에서 돌아와 3년간 춘원댁에 기거하고 있을때 춘원을 그에게 「금아」란 호를 지어 주었다.워즈워스,도연명을 읽게 했으며 마음가짐이 항상 밝고 맑은 「광풍명월」,어떤 경우에도 구애없이 순응하는 「행운류수」의 행동을 깨우쳐준 장본인이다.상해 호강대(호강=후장)선배인 용예(주요한) 여심(주요섭) 소년시대때부터의 치옹 윤오영과의 청담·청교도 빼놓을 수 없지만 이제 시간이 지나 그들은 먼길을 먼저 떠나버렸다. 그는 아침에 일어나면 소팽을 듣고 아파트 주변을 산책한다.전에는 곧잘 비원에 가곤 안내원의 인솔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싫어서 시내에 나오면 덕수궁에나 들르고 있다. 담배·커피는 물론 술은 입에 대지못한다.체질상 마시지는 못해도 「거품이 풍기는 맥주·빨간 포도주·환희소리를 내며 터지는 샴페인」등 술에 관한 이야기라면 수주의 「명정사십년」못지 않게 쓸 수 있을 것같다. 그의 생활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학자·문필가로서의 청빈을 면치않는다.39년 신혼초에는 성균관동재에 방한칸을 빌려 살았고 어느해엔 1년에 여섯번이나 이사,방둘짜리 영단주택,이 아파트로 이사오기 12년전까지만해도 버스가 15분마다 한번씩 오는 하남시 망월동 9평짜리 집에 살면서 강아지를 키우고 꽃과 나무도 심었다. 3남매가 결혼후 모두 미국으로 떠나자 집을 지닐수 없어 아파트생활을 하게 됐고 「학문하는 사람들이 찾아오면 비록 오막살이라도 누추하지 않다」는 옛글과 맞지않아 『늙은 아내탓을 하지만 기름때는 아파트로 온것은 분에 넘치는 노릇』이라고 얼굴을 붉힌다. 현관에 들어서면 휑덩그런 거실,커튼도 소파하나도 없다.그 흔한 붙박이 장식장도 없이 밥상겸 집필상으로 쓰는 오래된 교자상 하나,서재에도 옛날 딸이 쓰던 책상과 제자들이 돈을 모아 사다준 책상위에 캐나다에서 치과기공소를 경영하는 장남(세영씨·52·전연극인)미네소타의 소아과의사인 차남(수영씨·50)이제 MIT교수인 독일인 남편과 함께 세계적 물리학자이며 보스턴대 교수가된 딸 서영씨(48)가족사진들을 나란히 늘어놓고 도산과 아인슈타인,잉그리드 버그먼과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상사진,르노아르 세잔의 프린트 그림뿐.표구된 그림이 벽에 기댄채로 서있기에 『왜 그림을 걸지 않으시냐?』고 물으니 『벽에 못을 박기가 싫어서』라고 대답한다. ○작은 기쁨에도 만족 그는 언제나 필요한것만큼만 소유하며 작은 기쁨 작은 아름다움에 만족하고 있다.일찍이 그런 그를 가리켜 월탄이 『개결이 지나치다』고 한것은 그를 꿰뚫어 아는 명언에 틀림없다. 비오는 날이면 미술전시와 음악회 프로그램,묶어두었던 편지와 사진을 풀어보면서 『인생은 사십부터도 아니며 사십까지도 아니다.어느나이나 다 살만하다』고 확인한다. 이제 기쁨과 슬픔을 다 겪은후 맑고 침착한 눈으로 인생을 관조하려는 그는 여전히 『사랑과 슬픔은 남에게 보이지 않을것』을 원칙으로 지키려 한다. 요즘은 수필보다 시에 집착하여 최근에는 「아침이슬 같은/무지개 같은/그 순간이 있었으니/비바람 같은/파도 같은/그 순간이 있었으니…」지난 시간을 돌아본 시를 발표했다.밤에는 그의 곁에 난영을 재우고 새근새근 잠든 난영의 평화로운 숨결속에 그의 모든 그리움과 외로움과 시름을 묻는다.그리고 그는 이런 만년의 기쁨과 여유와 평화를 혼자 누리는것이 다른이들에게 송구스럽다면서 소년처럼 조용히 웃어보인다. □연보 ▲1910년 5월29일(음 4월21일) 서울 종로출생 ▲1932년 서울 제일고보 부속국민학교 졸업 ▲1923년 〃 제일고보 입학 ▲1926년 제일고보 4년 재학시 중국 상해로 유학.상해 공부국 Thomas Hanbury public school에서 수학. ▲1929년 상해 호강 대학교(University of shanghai)예과 수학.도산 안창호선생에 사사 ▲1931년 호강대학교 영문과 진학 ▲1933년 신동아에 「기다리는 편지」「나의 파일」 등 발표로 문필 생활시작 ▲1934년 재학중 수차 구국하여 춘원 이광수택 유숙 청교.(이무렵 현진건·이상범·이은상·인촌·고하교류) 금강산서 1년체류(시작 「단풍」외) ▲1937년 상해 오강대학교 영문과 볼업.서울 중앙고등학원 교원 ▲1945년 경성대학교 예과교수 ▲1951년 서울대 사대교수 ▲1954년 미 하버드대에서 연구 ▲1959년 「금아시문선」(경우사간) ▲1967년 서울대 대학원 영어영문학과 주임교수 ▲1969년 미 하버드대 등 여러대학에서 한국문와강의 British Council초청으로 영국방문.시집 「산호와 진주」(일조각간) 영문판 「A Flute Player」 출간 ▲1974년 서울대 퇴직후 미국여행 ▲1976년 수필집 「수필」(범우문고간) 세익스피어 「소네트시집」(정음문고간) ▲1980년 「금아문선」「금아시선」(일조각간) ▲1987년 「피천득시집」(범우문고간) 이후 시작 「새」 「너」 「기억만이」 「만남」 「그뒷 이야기」 「저 안개속에」 등 계속 발표중.
  • 전립선염/온좌욕·마시지도 효험(남성 신건강학:8)

    ◎항생제치료는 합병증 우려때만/급성/대장균이 주범… 고열·빈뇨증 등 동반/만성/아침소변 우유및… 요통·성욕 감퇴도 인체의 장기 가운데 정액을 만들어내는 전립선만큼 질병을 많이 유발하는 조직도 드물다. 회음부(항문과 음낭사이)에 주기적인 통증이 따르고 빈뇨·배뇨장애가 한꺼번에 나타나며 피로·권태감이 엄습하는 등 전립선질환의 증세 또한 매우 다양하다. 전립선은 남성의 방광과 요도사이,즉 방광 바로 밑에서 요도를 싸고 있는 조직,길이 2.5㎝ 폭 3㎝ 무게 20g가량으로 밤알모양을 하고 있으며 정낭과 함께 정액을 생산한다.전립선은 유아기땐 흔적만 있다가 성인이 되면 정상크기로 자라 기능을 하게 된다.이에따라 전립선질환은 대부분 30세이상의 성인에게서 유발되는데,대표적인 것이 전립선염 전립선비대증 전립선암이다. 이 가운데 40대의 중년남성을 괴롭히는 가장 흔한 질환이 전립선염.유병률에 관한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성인남성의 4∼5%가 이 병에 이환되며,재발성 요로감염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한다. 전립선염은 백혈구 등의세균검출 유무에 따라 세균성과 비세균성으로 나뉘며 세균성은 다시 급성과 만성으로 분류된다. 서울적십자병원 이광수박사(비뇨기과 과장)는 『급성은 과거 임질균이 주원인이었으나 최근 대장균이 주범으로 밝혀졌다』며 『고열과 함께 빈뇨증·배뇨곤란,그리고 회음부 통증이 수반된다』고 설명했다. 또 급성이 악화되면 전립선농양이 되는데 이는 특히 당뇨병을 가진 50,60대에서 많이 발생한다.전립선농양은 조직이 완전히 썩어 고름이 들어찬 상태로 전립선이 심하게 부어 요도를 협착,급성요폐(소변이 전혀 배출 안되는 상태)를 초래하기도 한다. 만성전립선염은 요통 좌골신경통 야뇨증 빈뇨 성욕감퇴 등 매우 다양한 증세를 보인다.그러나 실제로 아무런 증세가 없는 경우도 많다.만성은 보통 요도염 뒤에 오지만 급성전립선염 뒤에 생기기도 한다.아침에 첫 소변을 볼때 우유빛의 묽은 요도분비물이 나오거나,때로는 소변에서 퀴퀴하고 시큼한 냄새가 나기도 하며 배뇨 마지막 순간에 피가 섞여 나오기도 한다. 이박사에 따르면 만성전립선염은 사정관폐쇄나 역행성 사정으로 인해 무정자증및 감정자증이 초래되어 불임을 유발한다.또 전립선이 염증에 과민반응을 나타내 조루증이나 발기부전증세를 보이기도 하는데,이는 대부분이 심인성에 기인한다는 설명이다.특히 전립선염은 쉽게 낫지가 않기 때문에 병이 고질화되었다는 패배감과 성병이 잠복해 있지않나 하는 불안감등 정서적 장애가 온다.따라서 소화불량 무기력 두통증세가 나타나며 심할 경우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어렵다는 것이다. 전립선염은 세균이 원인이라고 생각되어 왔으나 원인균을 발견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와관련,이박사는 『전립선염은 추적검사에서 세균이 나타나지 않아도 재감염및 재발이 잘 된다』고 지적,『무턱대고 항생제에만 의존하는 치료는 금물』이라고 강조했다.항생제투여는 명백하게 세균성전립선염으로 믿명되거나,방광염및 부고환염의 합병증을 일으킬 염려가 있는 경우로 국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대신 만성전립선치료에는 전립선마사지나 온좌욕 규칙적인 성생활 등이 더 효과적이라는 지적이다. 특히 40∼43도 가량의 온수를 대야에 받아 취침전후 5분남짓 앉아있는 온좌욕은 회음부근육의 긴장을 풀어주고 전립선의 혈류를 증가시켜 약물침투효과를 높이는 역할을 한다.또 전립선마사지에 대해선 다소 논란이 있으나 성적 활동의 부족으로 인해 생기는 전립선부종을 가라앉히는데는 효과가 있다.이박사는 이밖에 과음·과로는 염증을 악화시키므로 충분한 휴식과 음주,고른 영양섭취가 치료와 함께 병행돼야 함을 강조했다.
  • CD위조범 재산 미 반출 협조/은행간부·동서 등 8명 구속

    ◎이광수소유 현금 등 95억 압수 서울지검 특수1부(이종찬부장판사)는 12일 해외도피중인 양도성예금증서(CD)위조범 이광수(41·사채업자)·황의삼씨(54·〃)의 국내재산을 국외로 반출하거나 가족들을 출국시켜 도피행각을 도와준 유재덕씨(33·월드아이디엔티부장·이씨동서)와 이상구씨(43·상업은행 삼일로지점차장)등 8명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위반및 범인도피등 혐의로 구속하고 이씨 소유의 CD및 현금등 95억여원을 압수했다. 검찰은 또 CD위조범 황씨에게 2억4천여만원상당의 여행자수표(TC)를 구입해준 정학주씨(76)를 외국환관리법위반혐의로 불구속입건하고 이근철씨(48·무직)등 5명을 범인도피등 혐의로 수배했다. 구속된 유씨등은 지난해 6월 이광수씨가 동남은행 광화문지점발행 명의 CD 10억원짜리 17장을 위조,한일투자금융 서울사무소에 팔아 1백57억여원을 가로챈 뒤 11월 미국으로 달아나자 미화 1만5천달러를 환전,이씨 자녀 3명을 통해 전달하려다 당국의 출국금지조치로 미수에 그쳤다. 이들은 또 이씨의 지시를 받고 입국한 재미교포강미심씨(40·여·수배)에게 88억원 상당의 CD와 자기앞수표등을 전달하고 이 가운데 12억여원을 현금화하도록 도와준 혐의이다. 함께 구속된 상업은행 삼일로지점 예금담당차장 이씨는 지난해 7월부터 위조범 이씨의 비밀구좌 9개를 만들어 자금을 관리해오다가 재미교포 강씨에게 4억4천만원어치의 수표를 받아 사채업자를 통해 자금세탁한뒤 이씨의 가명계좌에 입금,미국으로 송금하려다 당국의 수표추적으로 적발됐다.
  • 부도 중기 사장 자살기도 중태

    【마산=강원식기자】 9일 상오 6시쯤 경남 창원시 소답동 소재 대한정밀 공장내실에서 이 회사 대표 이광수씨(32)가 독극물을 마시고 자살을 기도,신음중인것을 이씨의 부인정순이씨(30)가 발견해 마산고려병원에 옮겨 치료중이나 중태다. 경찰은 에어컨 부품을 만드는 대한정밀을 경영해온 이씨가 최근들어 4백만원상당의 가계수표를 부도내는등 경영의 어려움을 비관해왔다는 가족들의 말에 따라 자살을 기도한 것으로 보고 있다.
  • 춘원작품 무단출판/3남 손배소송 패소/법원 “저작권 소멸”

    서울민사지법 합의12부(재판장 강병섭부장판사)는 21일 6·25전쟁당시 실종된 춘원 이광수의 3남 영근씨(66·미국 존스홉킨스대교수·미국 메릴랜드주 거주)가 춘원의 작품 「무정」「흙」「사랑」등이 저작권자의 허락없이 출판됐다며 문학사상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이유없다』며 원고패소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원고는 춘원이 납북됐으나 호적에 사망신고가 되지않은 이상 저작권이 춘원에게 남아있다고 주장하나 언론에 보도된 춘원의 묘지등을 볼때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묘비에 나타난 사망연도도 51년으로 저작권 소멸시효인 30년이 지난 것으로 돼있어 유족들에게 저작권이 상속·보존돼 있다고 인정키 어렵다』고 밝혔다.
  • 이광수­김말봉­최인호/통속소설 어제·오늘 조명

    ◎민족미학연,새해 문학강좌 개설/문학사속에서의 위치 가늠해볼 자리 우리 근·현대 문학사에서 각 시대를 대표하는 베스트셀러 작가의 작품과 그 작품이 베스트셀러가 될 수 밖에 없었던 시대적 배경과의 관계를 모색하는 자리가 마련됐다.민족미학연구소(74 5­ 62 71)가 내년 1월11일부터 2월27일까지 6주동안 매주 목요일 개설하는 문예 아카데미의 문학강좌인 「대중문학의 어제와 오늘」이 바로 그것이다. 이번 강좌는 어느 특정시기를 따로 떼어 분석하는데 그치지 않고 19 20년대 춘원 이광수에서부터 19 90년대 이문열에 이르기까지를 그 대상으로 하고 있다.지금까지의 대중소설 또는 통속소설에 대한 개념규정은 「동시대의 사회와 역사에 대한 진지한 문제의식 없이 단순히 이야기의 흥미만을 위해 씌어진 소설」.우리 문학사에서 대중소설은 「사랑」「재생」등을 쓴 춘원 이광수에서부터 「승방비곡」의 최독견,「찔레꽃」의 김말봉,「순애보」의 박계주,추리소설들을 주로 쓴 김내성등을 거쳐 70년대이후 최인호 박범신 김홍신 고원정 이문열등에까지 이어진다. 이번 강좌에서 문학평론가 서영채씨(시인)는 19 37년 조선일보에 연재됐던 김말봉의 장편소설「찔레꽃」을 중심으로 강의를 맡는다.그는 『근대소설이 출현한 이래로 통속소설은 소설의 「희화적 쌍생아」로서 매 시기마다 어김없이 진지한 담론으로서의 소설 곁에 나란히 존재해왔다』고 말한다.그러면서 『문학사가 진지하고 의미있는 작품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연대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문학적 현상의 이면에 감추어져 있는 시대정신의 흐름을 포착하는 것이라면 이들 통속소설의 내적 형식및 소설미학도 빠짐없이 다뤄야한다』고 이번 강좌의 의미를 부여했다. 이같은 시도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지난해 폐간된 문학 계간지 「사상문예운동」이 지난 90년부터 모두 5회에 걸쳐 80년대의 소설 수필 만화분야의 베스트셀러 작가들을 집중적으로 분석한 「대중문학작가연구」시리즈를 실어 문단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킨 바 있다.그 대상은 김수현 이문열 유안진 신달자 박범신 강철수 이현세등이 주축이 됐다. 그러나 이번 강좌는 보다 훨씬대중적인 기반위에서 우리 문학사 전반에 등장하는 대표적인 대중작가들을 시대별로 점검하는 자리.때문에 문학에 관심있는 일반인이 문학사의 흐름을 포괄적으로 가름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이번에 다뤄지는 대중작가들은 이광수 김말봉 최인호 김수현 고원정 이문열등 모두 6명.강의는 교원대 김철교수,시인 서영채,손경목,강영희,이성욱,김명인씨등 문학평론가 6명이 맡는다.
  • “이씨 자금압박 못견뎌 자살”/검찰,중간수사 발표

    ◎856억 사용처 못밝혀/가짜CD사건과는 무관/도주 황의삼·이광수에 사전영장 상업은행 명동지점장 이희도씨 자살및 가짜CD(양도성예금증서)사건을 수사중인 서울지검특수1부는 26일 이씨가 은행내부에서 개인적인 사금고를 운용,거액을 유용해오다 CD이중유통으로 발생한 거액의 자금압박을 받아 자살한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검찰은 숨진 이씨가 지난 3월 명동지점장으로 부임한 뒤부터 지난 11월14일까지 모두 8백56억원 상당의 CD매각대금과 고객예탁금을 횡령,만기도래하는 CD대금과 자신의 범행이 탄로날 것을 우려해 자살을 결심하게 됐다고 밝혔다. 검찰은 이씨가 유용한 자금 8백56억원은 ▲6백억원이 CD와 관련된 것이고 이 가운데 인천투금과의 CD거래가 5백억원에 달했으며 ▲사채업자 김기덕씨(43·구속)와의 거래에서 받은 CD발행자금 1백억원 ▲롯데쇼핑으로부터 매입한 은행보관용어음 1백50억원 ▲고객예탁금 6억원 등으로 밝혀졌다고 말했다. 검찰조사결과 이씨는 CD거래에서 정상유통된 CD를 만기일에 결제해 주면서 결제대금을이중매각한 CD대금으로 충당해 왔으며 인천투금은 이씨의 이같은 거래 속에서 CD분실을 우려 「받을어음추심 수탁통장」을 이씨로부터 받아 현물없이 CD를 발행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씨는 그러나 인천투금이 지난8월 갑자기 CD매입을 줄여 대금 1백80억원을 줘야할 입장에 처한데다 같은 방법으로 이중매각한 롯데건설CD에 대해 롯데측이 현금회수를 요청할 경우 1백억원을 갚아야 하는등 오는 12월까지 모두 2백80억원을 변제해야 할 긴박한 상황에 처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씨는 이처럼 엄청난 액수를 변제해야할 상황에서 자살직전인 지난 14일 사채업자 김씨를 통해 대신증권측에 CD 1백억원을 이중매각했으나 대신측이 공CD임을 항의해오자 거액의 손실과 함께 범행이 탄로날 것을 우려,자살을 결심하게 됐다는 것이다. 검찰은 그러나 이씨가 이처럼 거액을 유용하게 된 원인은 ▲수신고 제고를 위한 방법으로 한 CD거래에 따른 개인적 손실부담 ▲개인적인 사채거래 ▲거래기업의 자기부담 대출뒤 부도 ▲주식투자 손실 등으로 추정했으나 세부적인 사항은 수사를 계속해야 밝혀질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이와 함께 가짜CD 유통과 관련,현재까지 황의삼씨(54·미국도피)와 황의정씨(48·구속중)가 공모해 CD를 위조했으며 이광수씨(41·국외도피)와 유은형씨(44·구속중)도 각각 동남은행 CD와 서울신탁은행 CD를 위조해 유통시킨 것으로 이씨 자살사건과는 무관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검찰은 이와 관련,달아난 이씨와 황의삼씨에 대해 이날 사전구속영장을 발부받았으며 미국·일본의 사법당국과 이들의 신병인도를 위해 협조체제를 추진하고 있다.
  • 신탁은행명의 가짜CD 4백장 인쇄/35장 유통 유은형씨 구속

    ◎검찰,이희도씨 자살과는 무관 추정 서울지검특수1부는 23일 사채업자 유은형씨(44)에 대한 조사결과 유씨가 서울신탁은행명의의 가짜 CD 4백장을 인쇄해 이 가운데 35장 17억5천만원어치를 유통시킨 사실을 밝혀내고 유씨를 유가증권위조및 동행사·사기등 혐의로 구속했다. 검찰은 유씨가 유통시킨 가짜 CD 35장중 만기일이 돌아와 유씨가 회수,폐기한 17장을 제외한 나머지 18장과 위조에 사용된 서울신탁은행 영업1부장대리의 위조고무인 등 20여점을 증거물로 압수했다. 유씨는 5천만원짜리 위조CD 35장을 ▲해동상호신용금고에 9장 ▲사채업자 유모씨에 23장 ▲또 다른 사채업자 유모씨에 1장 ▲사채업자 김모씨에 2장을 유통시켰다. 검찰조사결과 유씨는 지난 1월 중순 서울 중구 수하동에 있는 한 인쇄소에서 서모씨에게 서울신탁은행에서 발행된 CD사본등을 주고 똑같이 인쇄를 부탁,CD용지 4백장을 오프셋인쇄기로 위조케 한뒤 이 가운데 35장에 자신의 실크인쇄기로 서울신탁은행 상호명과 심벌마크및 위조된 「영업1부 부장대리 신강현」이란 고무인을 찍어 액면가 5천만원짜리 가짜 CD 40여장을 만든 것으로 드러났다. 유씨는 지난 5월29일 해동상호신용금고로부터 1억5천만원을 대출받으면서 담보조로 위조 CD 6장을 제출한 것을 비롯,지난 2월부터 자금이 필요할때마다 계좌번호등을 기입해 모두 35장을 시중에 유통시켜왔다고 검찰은 밝혔다. 검찰은 이날까지 유씨등 가짜 CD관련자들에 대한 수사에서 상업은행 명동지점장 이희도씨 자살사건과 관련점을 찾지 못했다. 사채업을 하던 유씨는 86년 서울 명동에 동방채권투자주식회사를 설립해 어음·CD의 할인및 위탁매매등을 해오다 88년부터 자금압박을 받아 55억원의 빚을 지자 이를 갚기위해 CD위조에 나섰으며 동남·동화은행 발행으로 된 CD위조조직및 사채업자 이창식씨와의 공모여부는 드러나지 않았다고 검찰관계자는 말했다. 한편 검찰은 동남은행 광화문지점 명의의 CD 1백70억원어치를 위조한 혐의를 받고있는 이광수씨(41·일본도피)와 동화은행 논현동지점 명의의 CD 21억원어치를 위조한 혐의를 받고있는 황의삼씨(54·미국도피)등 사채업자 2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미리 발부받아 인터폴을 통해 신병확보에 나서기로 했다.
  • 대신증권·한일투금 특검

    은행 및 증권감독원은 23일 CD의 위조·불법유통사건과 관련,한일투자금융과 대신증권에 대해 특별검사를 실시키로 했다. 증권감독원 관계자는 25일쯤부터 CD중개규모가 많은 대신·고려·동양증권등 5∼6개 증권사에 대해 특검을 실시,영업점 이외에서 CD거래를 했는지 등에 대한 위규사항을 점검해 위규증권사에 대해서는 영업제한과 임원문책등의 징계조치를 내리겠다고 밝혔다. 은행감독원도 한일투금이 사채업자 이광수씨로부터 가짜 CD 1백70억원어치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관련규정을 위반했는지 등에 대해 특검을 실시키로 했다.
  • 사채업자 3인을 찾아라

    ◎황의삼/이씨 궁지로 몰은 위조진범 추정/김기덕/명동 큰손… 자살배경 알고 있는 듯/이광수/1백70억원 유통… 대금 직접 챙겨 상업은행 명동지점장 이희도씨 자살사건이 경찰에서는 자살여부만을 확인한뒤 단순변사로 종결됐으나 이씨가 빼돌린 금액이 8백56억원으로 눈덩이처럼 붙어나는등 사건의 사회적·금융적 파문은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 이에따라 검찰이 20일 직접 수사에 나서겠다는 뜻을 분명하게 피력,「CD파문」은 이제 검찰의 수사선상에 오르게 됐다.앞으로의 검찰의 수사방향은 ▲전문CD위조단검거 ▲이씨의 자살및 금융사고 재수사 ▲이들사이의 연계여부등 3갈래로 압축할 수 있다. 검찰은 특히 이씨도 이들 전문위조단들과 어떤 식으로든 관련을 맺고 있었을 것이 분명한 만큼 이씨의 자살배경과 8백56억원에 이르는 대형금융사고에 대해서도 전면 재수사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이씨가 금융가에 파문을 몰고온 동화은행 논현동지점 명의의 21억원어치 CD를 위조한 것으로 추정되는 사채업자 황의삼씨(미국 도피)와 오랫동안 거래관계를 맺어온 사실이 이들의 연계 가능성을 뒷받침하고 있다. 즉 이씨가 황씨등 위조범들에게 속아 가짜 CD의 중개역할을 맡았다가 황씨가 미국으로 도주하자 가짜CD를 산 사채업자들로부터 변제압력을 받아 자금을 유용하다 빠져나갈 수 없는 막판궁지에 몰리자 자살한 것으로 검찰은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황씨등이 현재 미국으로 도망간만큼 이씨가 자살하기 전날 이씨로부터 불법CD 10억원짜리 10장을 넘겨받아 증권사에 팔아넘겼으며 자살하던 날 점심을 함께 먹은뒤 잠적한 사채업자 김기덕씨의 검거가 이번 사건의 실마리를 푸는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19일 한일투자금융에서 발견된 CD 1백70억원어치가 지난 6월12일부터 4차례에 걸쳐 이광수라는 사채업자로 부터 매입한 것이라는 사실이 확인돼 이씨도 어떤 식으로든 이번 사건에 연루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 검찰,가짜 CD 본격 수사/서울지검 특수1부 배당

    ◎51명 대규모 전담반 구성/도피 사채업자 신병확보 나서/인터폴에 이광수부부 소재확인 요청 상업은행 이희도씨(53) 자살사건으로 비롯된 양도성예금증서(CD) 부정유통사건에 대해 검찰이 수사에 나섰다. 정구영검찰총장은 이에앞서 이날 상오 『최근 발생한 대형 금융사고는 우리 경제의 신뢰를 무너뜨리고 사회혼란을 야기시킬 우려가 있는 만큼 이 사건을 검찰이 철저히 수사해 한점 의혹도 없도록 하라』고 긴급 지시했다. 검찰은 이에따라 이번 사건을 서울지검 특수1부로 배당,검사 5명과 수사관 등 51명으로 전담수사반을 편성해 수사에 착수했다.검찰은 이날 은행감독원으로부터 관련 서류 등과 그동안 조사를 벌였던 자료들을 모두 넘겨받아 구체적인 혐의자 파악에 나섰다. 검찰은 또 이날까지 CD 인수과정에서 사건에 연루된 것으로 보이는 사채업자 이광수(41·도봉구 미아3동 258의311) 김광숙씨(36)부부를 비롯,류은형(44) 유재덕 김은영 김기덕씨등 6명에 대해 법무부에 출국금지를 요청했다. 검찰은 그러나 공항·항만·검문소등에서 신병을 추적한 결과 이·김씨부부는 각각 일본·미국으로 도피한 사실을 밝혀내고 국제형사경찰기구(인터폴)에 이들의 소재확인요청을 했다. 검찰은 이미 한국을 빠져나간 CD위조범 황의삼씨(54)와 이·김씨부부에 대해서는 외무부에 의뢰,여권무효조치를 요청해 미·일당국의 협조를 얻어 신병이 확보되는대로 불법 체류자 강제출국형식으로 인도받기로 했다. 검찰은 이와함께 시중에 유통되는 수백억원대의 가짜 CD사건도 아직 이 사건과 뚜렷한 연관성은 없지만 두 사건이 조직적으로 연결된 것으로 보고 함께 수사를 벌이기로 했다. 검찰은 현재까지 발견된 위조CD가 3개은행 것이고 각각 수법이 다른 점으로 보아 위조조직이 최소한 3개이상이며 유통액수가 수백억원대라는 금융기관의 조사를 토대로 수사를 시작했다. 한편 류은형씨는 이날 하오 서울 중부경찰서에 자진출두,『지난 5월 사채업자 이창원씨가 서울신탁은행명의의 5천만원짜리 CD3장을 갖고와 돈을 빌려달라고 해 1억3천만원을 빌려주었으며 지난달에도 이 은행명의의 5천만원 CD3장을 맡기면서 돈을 빌려달라했으나 은행측에 조회한 결과,가짜인 것으로 판명돼 거절했다』고 진술했다.
  • 「1백년 현대문학사」 자리매김 시도

    ◎고대 국어국문학연,국어·국문학사 서술방법 학술발표회/87년 해금된 카프계시인도 시사에 포함해야/소설경우 근·현 시대구분 구체적 언급없어 갑오경장이후 1백년에 이르는 우리 현대문학사를 점검하고 21세기에 우리 문학의 지향점을 제시하기 위한 학술발표회가 17일 상오10시부터 고려대 인촌기념관에서 열린다.고려대 국어국문학연구회(회장 서연호교수)가 「국어학사및 국문학사 서술방법의 반성과 새로운 모색」이라는 공동주제로 마련했다. 「현대시사 서술방법과 방향」이라는 주제로 발표에 나선 최동호교수(고려대·국문학)는 지금까지 독립된 장르사로서 현대시사가 통시적 전망을 가지고 서술된 예는 드문 것으로 보았다.그러면서 『시사서술은 하나의 중심점을 찾아나가려는 지적 노력이며 변화하는 것들 속에서 변하는 것들과 변하지 않는 것들의 끝없는 생성과정을 동적으로 포착하려는 것』이라는 견해를 내놓았다. 기존의 시사서술이 1920년대까지 머물러 우리시대의 시사서술에는 크게 영향을 못미치는 것이 결정적 약점이라고 지적한 그는지난 87년 해금된 카프계 시인들을 적절히 수용한 현대시사를 전체적으로 체계화한 시사기술이 절실히 요구된다고 주장한다.그는 이런 문제들은 그동안 우리가 「근대」냐 「현대」냐,좌파냐 우파냐 하는 이데올로기문제등에 집착,자유로운 시사서술을 제한해왔고 서구 모델을 지나치게 염두에 둔 데서 비롯됐다고 분석한다.따라서 앞으로의 시사서술은 「민족적 주체의 자기 각성」을 기본적 토대로 삼아야한다는 주장이다. 숭실대 한승옥교수의 발제는 「현대소설사 서술방법의 반성과 새로운 모색」.우리나라에서는 아직까지 근·현대문학이 분명히 구분돼 논의된 적이 거의 없다고 밝힌다.다만 한국현대문학의 기점에 대한 학계의 이견을 좁히고 남북분단으로 단절됐던 우리 문학의 통합에 대한 전망을 제시할 계기를 찾는 일이 중요하다는 입장을 보인다. 현대소설의 기점 문제를 둘러싸고 이광수의 「무정」과 홍명희의 「임꺽정」,1925년 등장한 카프문학등 학계에 이견이 많았다는 그는 1925년 전후가 타당하다고 주장한다.3·1운동을 계기로 시민정신이 대두되고 민족정기가 구현되면서 양식적인 측면에서 전통계승과 서구의 수용이 통합되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자신의 주장에 대한 근거로 든다. 소설사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문학사 전반에 걸쳐 문학을 역사나 정치·경제·사회적인 문제와 떼놓고 언급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한계를 내포한다는 것이 그의 문학사관.그리고 1백년이라는 우리나라 현대문학의 역사는 외국의 그것에 비해 너무 짧고 더군다나 일천한 현대문학사를 통해 거론되는 작품들이 한정돼있어 새로운 작품의 발굴과 작품평가에 더 많은 관심을 쏟아야 한다는 것이다. 「현대 희곡사 기술방법과 시기구분」을 발제로 한 서연호교수(고려대)는 우리의 유일한 희곡사인 유민영의 「한국현대희곡사」(1982)에 대한 고찰로 기존 희곡사서술의 문제점을 짚어나가기로 했다.「한국현대희곡사」는 신파극이 시작된 1911년을 기점으로 식민지세대가 끝막음하는 1969년까지 희곡형태로 쓰여졌거나 무대에 올려진 것을 선별하지 않고 모조리 서술대상으로 삼는데 중시했다.왜냐하면 모두가 「근대의식사적관점」에서 쓰여졌기 때문이라고 덧붙인다. 서교수는 이책이 몇몇 개별적인 작가들의 연구에서 실증주의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희곡사를 극작가 중심으로 서술한 것은 선구적인 업적이라고 평가한다.그러나 과거에 발표된 작품들 가운데 어떤 작품이 훌륭한 작품인가를 선별하고 규명하는 일이야말로 희곡사 기술의 일차적인 과제라는 견해.이는 시대구분과 서술관점등이 애매하고 구체성이 부족해 개별적인 작가론,작품론을 한데 모아놓은 작가및 작품 연대기적 성격이 짙은 희곡사일 뿐이라고 규정짓는다. 마지막으로 그는 시기구분의 문제에서 현대희곡의 시발은 1902년 협률사를 기점으로한 이두현의 주장에 동의했다.그리고 이를 세분해 제1단계(1902∼1920;신파극의 수용과 희곡 장르의 성립단계),제1단계(1921∼1944;리얼리즘의 대두와 대중극의 확산단계),제3단계(1945∼1959;이념의 대립과 리얼리즘의 수정단계),제4단계(1960∼현재;산업사회의 성립과 연극적 표현의 확대단계)로 구분하고 있다. 이번 학술발표회는 기존 국어학사및 국문학사 서술의 문제점들을 비판하고 앞으로의 바람직한 서술방법을 공동으로 모색하는 가운데 90년대 우리 문단을 강타중인 포스트모더니즘논쟁과 문학위기론 와중에서 문학사 서술을 점점할 수 있는 계기로 여겨지고 있다.
  • 인간소외/환경파괴/현대문학이 풀어야할 과제

    ◎유네스코·펜클럽 주최 아시아문학심포지엄/중·일·태국 등 14국서 3백여명 참가/21세기 대비 문화·문학의 문제점 점검 국제펜클럽 한국본부(회장 문덕수)가 유네스코와 공동으로 주최한 「아시아 문학의 주요쟁점에 관한 서울 심포지엄」이 지난 28일부터 30일까지 수유리 아카데미 하우스에서 열렸다.이번 서울 심포지엄은 유네스코가 세계를 5개권역으로 나눠 21세기에 대비한 지역별 문제점을 미리 점검해 정보를 수집하고 앞으로의 지원대책을 수립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번 심포지엄에는 아시아 지역 14개국 18개 펜센터에서 참가한 20여명의 주제발표자를 비롯,한국펜 회원 3백여명이 참석했다.한국과 중국 일본 대만등 동북아 국가들로부터 인도네시아 태국 필리핀 스리랑카 몽골등의 문인들이 총망라돼있다.발제내용도 각국이 처한 개별적인 상황이 반영돼 공통된 하나의 주제로 묶긴 어려웠지만 민주화문제,산업도시화에 따른 사회변화와 인간소외문제등이 폭넓게 거론되어 주목을 끌었다. 이형기교수(동국대)는 「산업사회의 도전과 한국시의 응전」에서 산업사회의 문제상황으로 황금만능주의와 과도한 자연수탈을 우선 지적했다.『인간소외를 포함한 산업사회의 소외상황전반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과 고발의식이야말로 현대시가 당면한 시대적 과제』라고 주장한 그는 시의 세속화를 요구하는 상업주의의 도전도 한국의 현대시가 극복해야할 중요한 갈등요인으로 지적했다.이교수는 이 논문에서 산업사회의 도전에 한국의 현대시가 어떻게 응전했는가를 보여주는 이승훈 신경림 최승호등의 시를 예로 들었다. 「한국소설에 나타난 남녀가족관계」를 발제로 가지고 나온 김우종교수(덕성여대)는 1917년 발표된 이광수의 「무정」에서부터 최근까지 발표된 소설속에 나타난 남녀관계중 「씨받이 여성」을 중점적으로 다루었다.김교수는 이 논문에서 『한국의 근대문학은 전통적인 가족제도와 윤리관에 대한 극단적인 파괴작업부터 해나갔다』고 분석했다.그러나 『남녀불평등의식이 타당성을 상실한 지금도 아들선호사상은 아무런 변화가 없어 한국의 작가들은 남아선호사상의 허구성부터 깨뜨려야 한다』는 김교수는 『진정한 남녀평등의식을 바탕으로 한 가족관계의 중요성을 표현하는 문학작품을 기대해본다』고 말했다. 한편 중국 상해펜센터 사무국장인 루오 루오씨는 「중국 신시 70년」을 통해 1919년 5월4일 신문화운동기간에 출현한 이른바 중국의 신시가 현대시의 주류를 이룬다고 소개했다.1949년 10월 신중국 창립과 1976년 문화혁명의 종식은 5·4운동과 함께 중국 신시사에 중요한 전기를 마련한 사건들로 꼽았다.이어 그는 1921년 1월 북경에 결성된 「문학연구회」와 같은해에 발행된 「시」를 중국 최초의 신문학협회,최초의 월간지로 보았다.그리고 30년대에는 프랑스 상징파의 영향을 받은 「신시파」와 「중국좌익작가연맹」이 결성됐다고 중국문학사를 재조명한 그는 50년대는 찬가의 시대로,그리고 문화혁명기였던 66∼76년은 애가의 시대로 분류했다. 이밖에 홍콩의 쉔운춘의 「97년을 직면한 홍콩의 인권에 끼친 문학의 영향」,필리핀의 F 시오닐 호세의 「차용언어로 쓴 시­아시아에서의 영어의 미래」등도 눈길을 끈다. 한편 이번 서울심포지엄동안김소월의 「진달래꽃」을 중국어로 번역한 대만의 여류시인 장 샹 후아(장향화)씨의 시집 출간을 기념하는 출판기념회가 열려 화제를 뿌리기도 했다.
  • 가장 좋아하는 작가·작품/이문열/「소설 동의보감」

    ◎출협,「독서주간」 맞아 독자·평론가·교수 대상 조사/이외수·조정래씨 등 베스트셀러작가 상위랭크/「소설 토정비결」「사람의 아들」「태백산맥」 10위권에 우리나라 독자들이가장 좋아하는 국내작가는 누구일까.또가장 감명깊게 읽힌 우리소설은 어떤 작품일까.대한출판문화협회는 제38회 독서주간(24∼30일)을 맞아 전국의애독자와 문학평론가,교수등 전문가 7백2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내가 좋아하는 우리작가,우리소설」설문조사를 통해 이같은 궁금증을 풀어준다. 이번 설문조사를 통해 거론된 작가는 총1백55명이었으며 작품집은 2백11편에 이른다.인기작가로는 이문열이 첫손에 꼽혔다. 작품으로는 「소설동의보감」(이은성)이 베스트소설자리를 차지했다.이가운데 5명이상으로부터 추천받은좋아하는 작가는 모두 53명.순위별로는 이문열 이외수 조정래 황석영 이청준 박완서 김홍신 한수산 박범신 최인호등 70년대이후 대중적 인기를 누려온 베스트셀러 작가들이 10위권안에 들어갔다. 여류작가로는 박완서씨가 6위를 차지한데 이어 박경리 양귀자 윤정모씨가 나란히 11∼13위에 오르는 저력을 보였다.「무정」의 춘원 이광수와 「소나기」의 황순원이 각각 15위와 18위에 오른 것도 특기할만한 현상으로 풀이됐다. 베스트셀러로는 「소설동의보감」(이은성),「잃어버린 너」(김윤희),「소설토정비결」(이재운),「벽오금학도」(이외수)와 같은 역사소설과 대중소설이 상위권을 형성,우리 독서계의 대중적 취향과 반응을 그대로 나타냈다. 그러나「태백산맥」(조정래),「장길산」(황석영),「임꺽정」(홍명희),「토지」(박경리)같은 우리 소설사에서 손꼽히는 대작들이 모두 10위권안에 들어 서사적 진폭이 큰 작품들이 여전히 독자들을 끌어들이고 있는것도 주목할만했다. 베스트작가로 꼽힌 이문열은 좋아하는작품조사에서도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사람의 아들」,「젊은 날의 초상」등 초기작품과 최근작 3편이 각각3,4,7위에 올라 작가적 인기도와 작품성을 함께 인정받았다.이문열은 이밖에 「영웅시대」,「금시조」등 무려 8편의 작품이 고루 인기작으로 지목되는 영예를 안았다. 조정래의 경우「태백산맥」한 작품만으로 좋아하는 작가 3위에 올랐고 한수산 박범신 최인호는 뚜렷하게 감명을준 작품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베스트작가10위안에 들어 고정적인 독자층 확보에 성공한 대중작가로의 입지를 보여줬다.이밖에 이병주 김동인 홍명희 고은등원로작가가 좋아하는 작가에 꼽혔으며 임철우 고원정 김영현 정도상 김한길등80년대이후 활발한 작품활동을 벌인 신세대작가들도 인기작가군에 합류했다. 문학평론가 권령민교수(서울대·국문학과)는 『이번 조사를 통해 나타난 특기할만한 사실은 우리 독자들이 작품내용이나 경향이 자신의 성향과 부합될 경우 특정작가를 좋아한다는 점』이라고지적한다.그러면서 『이같은 주관적 취향은 독자층의 개성이 점차 뚜렷해지고있음을 말해주는 근거』라고 설명했다. 출판문화협회는 다음달2일부터 8일까지 잠실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리는 「92서울도서전 특별기획전」코너에 이번에 선정된 작가의 모든 소설집을 전시할 계획이다.
  • 「흙」등 소설 무단 출판/「문학사상」에 손배소/미거주 춘원 3남

    소설가 춘원 이광수씨의 셋째아들 영근씨(64·미국 존스홉킨스대교수·미국 메릴랜드주 거주)는 23일 월간문학잡지 문학사상사(대표이사 박공근)를 상대로 『피고회사가 작가 가족의 동의없이 작품을 출판,배포했다』고 주장,저작권침해 금지가처분신청과 3천7백20만원의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서울민사지법에 냈다.
  • 「백범암살 재조명」 계기 책출간·연구모임 잇따라

    ◎“친일청산” 학계논의 활발/친일파 인명사전·역사강좌 등장/“일시적관심 아닌 현대사정립 계기로” 지적 백범 김구선생의 암살사건 배후에 친일경력을 지닌 지배세력이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친일청산에 대해 학계는 물론 일반인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백범의 일생과 친일문제를 다룬 책들을 찾는 사람들이 줄을 서고 있고 재야사학자 고 임종국씨가 정리한 친일관련자료집 「친일파 인명사전」「임종국전집」「친일파총사」등이 잇따라 발간될 예정이며 이문제를 특집으로 다룬 잡지가 발간되고 시민역사강좌가 열린다. 역사문제연구소(소장 이리화)는 오는 23일부터 6월4일까지 연구소 강연실에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친일파·민족반역자 열전」이라는 주제로 한국사교실를 개최한다.매주 목요일 하오 7시에 열리는 한국사교실은 모두 7차례에 걸쳐 친일파집단의 형태를 유형별로 나눠 대표적인 인물들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오는 23일 서중석교수(성균관대)의 「친일파를 다시 본다­친일파·민족반역자에 대한 역사적 평가」라는 제목의 강의로 시작되는 이번 「친일파강좌」는 이리화소장의 「영원히 씻을 수 없는 매국노의 오명­이완용·송병준」,문학평론가 임헌영씨의 「친일을 애국으로 착각한 지식인들­이광수·최남선」,박현채교수(조선대)의 「비행기를 헌납한 친일기업인들­박흥식·문명기」,미술평론가 윤범모씨의 「일제를 위해 붓을 잡은 화가들­김기창·김은호」,강정숙씨(영남대 강사)의 「이땅의 아들 딸을 전쟁터로 몰아낸 여성명사들­김활란·모윤숙」,그리고 방기중연구실장의「8·15이후의 친일파집단­이승만정권을 떠받친 경찰·관료·지식인들」순서로 진행된다. 서중석교수는 『근·현대사를 연구하는데 있어 친일파의 문제를 항상 걸림돌이 되어왔다』고 전제하고 『해방을 맞은지도 반세기가 되어가는 시점에서 과거사에 대한 처벌보다는 잘잘못을 학문적으로 정확히 분석하고 특히 이들이 친일행위를 하게 된 동기와 배경및 구체적인 과정을 규명해내는 일은 현대사를 제대로 이해하는 길』이라면서 이번강좌의 기획의도를 설명했다. 그동안 일본문제를 자주 다뤄온 격월간지 「순국」도 이와같은 맥락에서 3·4월호에 「한국현대사를 움직인 친일군상」이라는 특집을 실고 친일문인과 친일교육계인사,친일화가·음악가·영화인 그리고 언론인등으로 분야를 나눠 친일파문제를 다루고 있다. 지난 2월말 반민족문제연구소(소장 김봉우)가 주최한 「식민지배 청산문제의 민족사적 이해」라는 주제로 열린 3·1절기념학술심포지엄에서도 친일파문제가 본격적으로 논의됐는데 이 자리에서 참석자들은 친일파문제를 비롯,식민지배의 청산은 민족의 주체적·평화적 재통일의 방향을 설정하는데 불가결한 밑거름이라는데 의견을 모으고 연구에 박차를 가할 것을 다짐했었다. 그러나 친일파연구는 친일파의 대명사격인 이완용이라는 인물을 분석해놓은 논문 한편 없을 정도로 아직은 미진한 상태이다. 이에대해 서중석교수는 『현재 학계의 연구가 초보단계에 머물러있지만 관련자료도 풍부하고 연구의 필요성에 인식이 모아져 일단 연구만 시작되면 해방전후 우리 현대사에 대한 종합적인 연구의 기초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학계의 연구와 함께 최근 정신대문제와 MBC­TV에서 방영되고 있는 「분노의 왕국」등을 둘러싼 한일양국간의 외교적인 갈등,일본의 재무장·군사대국화의도의 표면화,그리고 백범 김구선생의 암살배후에 대한 새롭게 밝혀진 사실등이 맞물리면서 고조된 친일파와 일본에 대한 국민적인 관심은 일시적인 호기심의 차원이 아니라 진정한 과거청산의 계기가 되어야한다는 지적이 많다.
  • 이광수·김동인의 역사소설/“일제침략 합리화” 이색주장

    ◎역사학자 정두희교수,「역사비평」에 기고/「단종애사」「대수양」 세조즉위 정당화/1940년대 작가자신들의 현실관 반영 세조대를 배경으로 하는 춘원 이광수와 김동인의 역사소설이 당시의 시대상에 빗대 일제의 한국침략및 대륙침략을 합리화,이에 순응하는 친일역사관에 입각해 쓰여진 것이라는 비판이 한 역사학자에 의해 제기됐다.. 월간 대중역사지「역사비평」 봄호에 「단종과 세조에 대한 역사소설의 검토」라는 기고문을 발표한 정두희 서강대교수(한국사)는 이 논문에서 『당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지식인이요 작가였던 이들이 세조대에 대한 평가기준을 매우 잘못 선정하고 있었다는 것은 자신들의 현실문제를 그릇 판단하고 있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며 『소설을 통해 자신들의 현실관을 정당화하려는 목적을 지니고 있었는지도 모른다』고 주장했다. 단종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를 배경으로 삼고있는 「단종애사」(1928∼29년 동아일보연재)에서 작가 이광수는 자신의 현실과 단종­세조대의 역사적 현실을 대비,단종을 망국의 설움에 젖은 조국으로,수양을 야심만만한 일제로 보며 세조의 행위를 불의로는 인식하면서도 이를 철저하게 비판하지는 못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러나 이광수가 소설 「세조대왕」(1941)에 이르면 세조의 왕위찬탈을 불의가 아닌 「살신성인의 성불」로 간주,세조의 행위를 극적으로 합리화하고 나서 「단종애사」에서 미약하나마 드러났던 도덕적 판단마저 자취를 감췄다고 주장했다.그는 또 작가가 이작품을 통해 세조가 불교에 귀의해 자신의 다스림이 곧 중생을 구원하는 행위로 만든것에 대해 『불교적인 교리를 교묘하게 위장한 작가의 역사관은 그냥 묵과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또 이광수에게는 도덕과 조국보다는 현재와 미래에 펼쳐질 위대한 세상에 대한 희망과 염원만이 남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않고 현세의 권력을 장악한 존재를 모두 정당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김동인은 이광수와는 좀 다른 입장에서 「대수양」(19 40)을 썼다.그는 우선 「춘원연구」라는 글에서 『이광수의 「단종애사」가 남효온의 「추강집」「육신전」등 잘못된사실을 근거로 수양을 악의 대변자로 설정한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비판하고 대신 수양을 악의 화신이 아니라 처음부터 나라의 운명을 크게 열 원대한 계획을 가지고 행동한 뛰어난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정교수는 또 작가가 양녕대군의 입을 빌어 『국가의 안목으로 보자면 스라소니(세자)와 스라소니의 새끼(세손)는 제거해 버리는 편이 좋겠다』는 극단적인 표현을 한 것은 당시 역사적인 상황에 대한 작가의 무지를 드러낸 것이라고 지적했다.또 자신의 입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세종사후의 상황을 위기적인 상황으로 몰아가고 정무를 번거로워하는 단종이 왕위를 선양하겠다고 하도 간곡하게 졸라 세조가 더 이상 거절할 수 없어 왕위에 오르게 된 것으로 소설을 끌고가 결국 사육신의 죽음과 금성대군의 죽음은 물론 단종의 유배와 죽음에 대해 일체의 언급을 할 필요도 없이 소설을 끝내버린 작가의 몰가치적인 태도에 놀라움을 금할수 없다고 비판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정교수는 이어 『역사적인 자각이 더욱 요청되던 식민지시대에 살았던 작가의 입장을생각해본다면 「대수양」에서 나타난 그의 태도는 반역사적이며 그가 결국 적극적인 친일파로 전락하고 일본의 역사를 소재로 역사소설을 쓰는 지경에까지 가게된 것은 차라리 당연한 일처럼 느껴진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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