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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불 키운 뒷산, 전복 죽는 바다… 민서네·순주네 울리는 온난화

    산불 키운 뒷산, 전복 죽는 바다… 민서네·순주네 울리는 온난화

    “우리 집이 불타고 있다. 당신들이 좀 무서워했으면 좋겠다”며 세계 지도자들을 질타한 스웨덴의 청소년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 불타고 있는 건 툰베리의 집만이 아니다. 우리 아이들의 집이고 미래다. 환경학자들은 “미래 세대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직면했고, 당장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공존을 장담할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더 많은 것을 가지려는 욕망과 이기심을 위해 지구를 계속 채찍질한다면 우리 아이들은 언제든 인류의 ‘마지막 세대’로 전락할 수 있다. 오는 31일부터 열리는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를 앞두고 기후위기 시대를 살아가는 어린이들의 생존 보고서를 통해 해결책을 찾는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과 그린피스가 함께했다.‘강원 동해안 및 산간지방은 우리나라 대설 다발지역으로 1, 2월에 많은 눈이 내린다.’ 지리 교과서는 강원도를 이렇게 소개한다. 그러나 강원도에 눈이 많이 온다는 말은 이제 옛말이 됐다. 온난화로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눈 쌓인 태백산맥을 보기 어려워졌다. 눈이 귀해지면서 강원도의 산은 바싹 말랐다. 건조해진 산은 불쏘시개다. 2019년 강원 고성과 속초를 휩쓸었던 산불은 도로변 전신주 고압전선이 끊어지며 시작된 인재였지만 수분기 없는 낙엽들이 불을 화마로 키웠다. 고성에 사는 정민서(15)양도 2019년 산불의 피해자다. “민서 아빠와 결혼해서 이 동네 처음 왔을 때만 해도 겨울에 눈이 참 많이 왔어요.” 민서 엄마 엄미숙(56)씨는 32년 전을 떠올렸다. 민서는 기억하지 못하는 일이다. 폭설이 생소한 민서는 엄마의 기억과 다른 강원도에서 살아간다. 가족과 함께 집에서 쉬고 있던 민서는 저녁임에도 이상하리만큼 붉은 하늘을 보며 의아하게 생각했다. 얼마 후 산불이 발생했다는 긴급재난문자가 휴대전화를 울렸다. 집 밖으로 나가니 하늘은 더 붉어졌고 멀리서 시뻘건 불길과 연기가 보이기 시작했다. 큰일은 아닐 거라고 믿으며 민서네 가족은 자동차에 몸을 실었다. 불길이 확산되는 속도는 점점 거세졌다. 삽시간에 집과 차 안까지 매캐한 냄새가 가득 퍼졌다. 부모님 지인의 펜션으로 몸을 피했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민서 가족은 뼈대만 남기고 흉측하게 타 버린 집을 보고 망연자실했다. 민서 가족은 리조트, 연수원, 조립주택으로 피난민처럼 떠돌았다. 엄씨는 충격으로 안면에 마비가 왔다. 학교에서는 민서가 산불 피해로 불안지수가 높게 나왔다며 심리 치료를 권했다. 2년간 불안정한 생활을 하던 민서 가족은 올해 2월 새집을 지어 이사하면서 겨우 안정을 되찾았다. 지난 5일 민서 가족과 함께 둘러본 고성·속초는 산불의 흔적을 말끔히 지워 내지 못한 모습이었다. 속초고등학교에서 1㎞만 걸어가면 뼈대만 남은 2층짜리 건물이 덩그러니 서 있다. 내부는 까맣게 그을려 이전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불이 났을 당시 열기로 폭발해 깨진 유리창 조각만 바닥에 흩뿌려져 있었다. 영랑호 인근 리조트 펜션 20여채도 모두 불탄 그대로 남아 있었다. 불이 났을 땐 멀쩡해 보였던 나무들은 2년 반 동안 서서히 죽어갔다. 산불이 이렇게 커진 데에는 건조해진 기후와 강한 바람의 영향이 컸다. 엄씨는 “눈이 많이 왔을 시절에는 한겨울에 쌓인 눈이 봄까지 꽁꽁 얼어 있고, 천천히 녹으니까 상대적으로 습했다”면서 “요새는 눈이 많이 안 오고, 눈이 와도 금방 녹으니 낙엽이 말라서 바삭바삭하다. 불이 나면 잘 탈 수밖에 없는 조건”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산불 발생 빈도는 10년 전과 비교해 크게 늘었다. 산림청에 따르면 2011년 산불 발생 건수는 277건, 피해 면적은 1090㏊ 수준이었지만 지난해에는 발생 건수 620건, 피해 면적 2920㏊로 2~3배씩 증가했다. 피해액도 2011년 290억 6300만원에서 1581억 4100만원으로 5배 이상 급증했다.●전복 때문에 깊어진 아빠의 한숨 박수자(52)씨가 김순주(10)양을 품었던 해, 순주 아빠 김동연(58)씨는 전남 완도군 청산도 먼바다에 나가 전복을 키우기 시작했다. 어두컴컴한 새벽부터 배를 타러 나가는 부지런함 덕에 연매출은 8억원까지 올랐다. 순주를 먹이고 입히고 가르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순주에게 전복은 웃음꽃이자 힘의 원천이고 부모님의 사랑이었다. 하지만 올해는 마냥 웃을 수가 없다. “전복 잘 키우기로 소문난 아빠, 엄마가 한숨 쉬는 소리를 자주 들었어요. 날씨 때문에 전복이 많이 죽고 잘 자라지도 않아서 그런가 봐요. 아빠가 힘들게 고생했는데 너무 속상해요.” 순주는 지난여름 작은 배를 타고 아빠의 전복 양식장을 구경하러 갔다가 엄마를 따라 손가락으로 바닷물을 찍어 혀끝에 댔다. 어째 짠기는 안 느껴지고 맹맹했다. “엄마는 ‘소금 타야겠다’고 하세요. 몇 년 사이에 바다가 싱거워져서 전복들이 비릿해지고 잘 죽는대요. 진짜 소금 포대라도 사다가 뿌려야 할까 봐요.” 순주 엄마 박씨는 “올해는 최악의 여름이었다”고 고개를 흔들었다. 푹푹 찌는 더위가 7월부터 찾아왔다. 전복은 수온과 염분에 예민하다. 섭씨 15~20도에서 가장 잘 자라고 더우면 먹이인 미역과 다시마를 먹지 않는다. 어민들은 양식장 수온이 23~24도일 때까지만 먹이를 주고 25도가 넘어가면 먹이 공급을 중단한다. 고수온이 계속되면 먹이를 안 주는 날이 늘어난다. 먹이를 안 주면 폐사량은 적지만 전복에 살이 차지 않는다. 생계가 달린 어민들은 양식장에서 기후변화 적응을 위한 실험을 하고 있다. “우리는 전복 양식장을 ‘아파트’라고 불러요. 아파트 한 칸에 100㎏은 나와야 300만~400만원을 받을 수 있어요. 너무 더우면 먹이를 주지 말라고 하는데, 더위가 길어지면 언제까지 굶길 순 없잖아요. 수온이 26도일 때 몇 칸에만 미역을 줘 보는 거예요. 먹이 준 칸에서 폐사율이 60%가 넘기도 했는데 살아남은 애들은 또 굵기가 실한 거예요. 온난화에 적응하려고 이것저것 다 해보는 거죠.” 박씨는 이렇게 말했다.●기후변화 대응 실험장이 된 양식장 완도 상황은 그나마 낫다. 올여름 전남 고흥 바다 수온은 30도를 넘어 전복 양식어가 등 102가구가 피해를 봤다. 전복 290만 4000마리가 죽었고 어류, 굴·가리비도 폐사해 약 45억원의 손해가 발생했다. 국립수산과학원 남해수산연구소 연구관은 “수온 변화가 적은 바다 밑에 사는 전복을 인위적으로 끌어올려 사육하니 온도 변화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며 “28도가 넘으면 전복의 절반이 죽어 고수온 폐사로 본다”고 설명했다. 싱거운 바다도 순주 부모님의 근심거리다. 기후변화로 바다에도 예측하기 어려운 집중호우가 쏟아지면서 바닷물이 점점 싱거워지고 있다. “더운 여름 좀 버텼나 싶었더니 9월에 비가 깜짝 놀랄 정도로 많이 쏟아졌어요. 염도 떨어지면 전복이 스트레스를 받거든요. 비 온 직후는 괜찮아 보여도 시름시름 앓다 결국 죽더라고요.” 전남 강진만 마량 해역에선 지난 7월 5~7일 3일간 집중호우가 쏟아져 전복 2300만 마리가 집단 폐사했다. 민물이 바다에 유입돼 염분이 5~15pus(해수 1㎏에 든 염류의 양(g))로 평소의 절반 이하로 낮아진 탓이다. 한 해 전복 농사의 시작인 가을에 찾아온 불볕더위 역시 순주네를 괴롭혔다. “9월 말이면 전복 먹이가 되는 미역 포자(씨)를 줄에 붙여 키워야 하는데 수온이 높으면 포자가 다 녹아 버려요. 어쩔 수 없이 일주일 정도 미뤘는데 하루이틀만 늦어도 미역 성장 속도가 더뎌서 손해가 크죠. 올해는 발 뻗고 자는 날이 없네요.” 고성 손지민·서울 오달란 기자 sjm@seoul.co.kr
  • 산불 키우는 바삭한 낙엽… ‘소금 응급처방’ 부르는 바다

    산불 키우는 바삭한 낙엽… ‘소금 응급처방’ 부르는 바다

    “우리 집이 불타고 있다. 당신들이 좀 무서워했으면 좋겠다”며 세계 지도자들을 질타한 스웨덴의 청소년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 불타고 있는 건 툰베리의 집만이 아니다. 우리 아이들의 집이고 미래다. 환경학자들은 “미래 세대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직면했고, 당장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공존을 장담할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더 많은 것을 가지려는 욕망과 이기심을 위해 지구를 계속 채찍질한다면 우리 아이들은 언제든 인류의 ‘마지막 세대’로 전락할 수 있다. 오는 31일부터 열리는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를 앞두고 기후위기 시대를 살아가는 어린이들의 생존 보고서를 통해 해결책을 찾는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과 그린피스가 함께했다.‘강원 동해안 및 산간지방은 우리나라 대설 다발지역으로 1, 2월에 많은 눈이 내린다.’ 지리 교과서는 강원도를 이렇게 소개한다. 그러나 강원도에 눈이 많이 온다는 말은 이제 옛말이 됐다. 온난화로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눈 쌓인 태백산맥을 보기 어려워졌다. 눈이 귀해지면서 강원도의 산은 바싹 말랐다. 건조해진 산은 불쏘시개다. 2019년 강원 고성과 속초를 휩쓸었던 산불은 도로변 전신주 고압전선이 끊어지며 시작된 인재였지만 수분기 없는 낙엽들이 불을 화마로 키웠다. 고성에 사는 정민서(15)양도 2019년 산불의 피해자다. “민서 아빠와 결혼해서 이 동네 처음 왔을 때만 해도 겨울에 눈이 참 많이 왔어요.” 민서 엄마 엄미숙(56)씨는 32년 전을 떠올렸다. 민서는 기억하지 못하는 일이다. 폭설이 생소한 민서는 엄마의 기억과 다른 강원도에서 살아간다. 가족과 함께 집에서 쉬고 있던 민서는 저녁임에도 이상하리만큼 붉은 하늘을 보며 의아하게 생각했다. 얼마 후 산불이 발생했다는 긴급재난문자가 휴대전화를 울렸다. 집 밖으로 나가니 하늘은 더 붉어졌고 멀리서 시뻘건 불길과 연기가 보이기 시작했다. 큰일은 아닐 거라고 믿으며 민서네 가족은 자동차에 몸을 실었다. 불길이 확산되는 속도는 점점 거세졌다. 삽시간에 집과 차 안까지 매캐한 냄새가 가득 퍼졌다. 부모님 지인의 펜션으로 몸을 피했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민서 가족은 뼈대만 남기고 흉측하게 타 버린 집을 보고 망연자실했다. 민서 가족은 리조트, 연수원, 조립주택으로 피난민처럼 떠돌았다. 엄씨는 충격으로 안면에 마비가 왔다. 학교에서는 민서가 산불 피해로 불안지수가 높게 나왔다며 심리 치료를 권했다. 2년간 불안정한 생활을 하던 민서 가족은 올해 2월 새집을 지어 이사하면서 겨우 안정을 되찾았다. 지난 5일 민서 가족과 함께 둘러본 고성·속초는 산불의 흔적을 말끔히 지워 내지 못한 모습이었다. 속초고등학교에서 1㎞만 걸어가면 뼈대만 남은 2층짜리 건물이 덩그러니 서 있다. 내부는 까맣게 그을려 이전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불이 났을 당시 열기로 폭발해 깨진 유리창 조각만 바닥에 흩뿌려져 있었다. 영랑호 인근 리조트 펜션 20여채도 모두 불탄 그대로 남아 있었다. 불이 났을 땐 멀쩡해 보였던 나무들은 2년 반 동안 서서히 죽어갔다. 산불이 이렇게 커진 데에는 건조해진 기후와 강한 바람의 영향이 컸다. 엄씨는 “눈이 많이 왔을 시절에는 한겨울에 쌓인 눈이 봄까지 꽁꽁 얼어 있고, 천천히 녹으니까 상대적으로 습했다”면서 “요새는 눈이 많이 안 오고, 눈이 와도 금방 녹으니 낙엽이 말라서 바삭바삭하다. 불이 나면 잘 탈 수밖에 없는 조건”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산불 발생 빈도는 10년 전과 비교해 크게 늘었다. 산림청에 따르면 2011년 산불 발생 건수는 277건, 피해 면적은 1090㏊ 수준이었지만 지난해에는 발생 건수 620건, 피해 면적 2920㏊로 2~3배씩 증가했다. 피해액도 2011년 290억 6300만원에서 1581억 4100만원으로 5배 이상 급증했다.●전복 때문에 깊어진 아빠의 한숨 박수자(52)씨가 김순주(10)양을 품었던 해, 순주 아빠 김동연(58)씨는 전남 완도군 청산도 먼바다에 나가 전복을 키우기 시작했다. 어두컴컴한 새벽부터 배를 타러 나가는 부지런함 덕에 연매출은 8억원까지 올랐다. 순주를 먹이고 입히고 가르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순주에게 전복은 웃음꽃이자 힘의 원천이고 부모님의 사랑이었다. 하지만 올해는 마냥 웃을 수가 없다. “전복 잘 키우기로 소문난 아빠, 엄마가 한숨 쉬는 소리를 자주 들었어요. 날씨 때문에 전복이 많이 죽고 잘 자라지도 않아서 그런가 봐요. 아빠가 힘들게 고생했는데 너무 속상해요.” 순주는 지난여름 작은 배를 타고 아빠의 전복 양식장을 구경하러 갔다가 엄마를 따라 손가락으로 바닷물을 찍어 혀끝에 댔다. 어째 짠기는 안 느껴지고 맹맹했다. “엄마는 ‘소금 타야겠다’고 하세요. 몇 년 사이에 바다가 싱거워져서 전복들이 비릿해지고 잘 죽는대요. 진짜 소금 포대라도 사다가 뿌려야 할까 봐요.” 순주 엄마 박씨는 “올해는 최악의 여름이었다”고 고개를 흔들었다. 푹푹 찌는 더위가 7월부터 찾아왔다. 전복은 수온과 염분에 예민하다. 섭씨 15~20도에서 가장 잘 자라고 더우면 먹이인 미역과 다시마를 먹지 않는다. 어민들은 양식장 수온이 23~24도일 때까지만 먹이를 주고 25도가 넘어가면 먹이 공급을 중단한다. 고수온이 계속되면 먹이를 안 주는 날이 늘어난다. 먹이를 안 주면 폐사량은 적지만 전복에 살이 차지 않는다. 생계가 달린 어민들은 양식장에서 기후변화 적응을 위한 실험을 하고 있다. “우리는 전복 양식장을 ‘아파트’라고 불러요. 아파트 한 칸에 100㎏은 나와야 300만~400만원을 받을 수 있어요. 너무 더우면 먹이를 주지 말라고 하는데, 더위가 길어지면 언제까지 굶길 순 없잖아요. 수온이 26도일 때 몇 칸에만 미역을 줘 보는 거예요. 먹이 준 칸에서 폐사율이 60%가 넘기도 했는데 살아남은 애들은 또 굵기가 실한 거예요. 온난화에 적응하려고 이것저것 다 해보는 거죠.” 박씨는 이렇게 말했다. ●기후변화 대응 실험장이 된 양식장 완도 상황은 그나마 낫다. 올여름 전남 고흥 바다 수온은 30도를 넘어 전복 양식어가 등 102가구가 피해를 봤다. 전복 290만 4000마리가 죽었고 어류, 굴·가리비도 폐사해 약 45억원의 손해가 발생했다. 국립수산과학원 남해수산연구소 연구관은 “수온 변화가 적은 바다 밑에 사는 전복을 인위적으로 끌어올려 사육하니 온도 변화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며 “28도가 넘으면 전복의 절반이 죽어 고수온 폐사로 본다”고 설명했다. 싱거운 바다도 순주 부모님의 근심거리다. 기후변화로 바다에도 예측하기 어려운 집중호우가 쏟아지면서 바닷물이 점점 싱거워지고 있다. “더운 여름 좀 버텼나 싶었더니 9월에 비가 깜짝 놀랄 정도로 많이 쏟아졌어요. 염도 떨어지면 전복이 스트레스를 받거든요. 비 온 직후는 괜찮아 보여도 시름시름 앓다 결국 죽더라고요.” 전남 강진만 마량 해역에선 지난 7월 5~7일 3일간 집중호우가 쏟아져 전복 2300만 마리가 집단 폐사했다. 민물이 바다에 유입돼 염분이 5~15pus(해수 1㎏에 든 염류의 양(g))로 평소의 절반 이하로 낮아진 탓이다. 한 해 전복 농사의 시작인 가을에 찾아온 불볕더위 역시 순주네를 괴롭혔다. “9월 말이면 전복 먹이가 되는 미역 포자(씨)를 줄에 붙여 키워야 하는데 수온이 높으면 포자가 다 녹아 버려요. 어쩔 수 없이 일주일 정도 미뤘는데 하루이틀만 늦어도 미역 성장 속도가 더뎌서 손해가 크죠. 올해는 발 뻗고 자는 날이 없네요.”
  • 폭설 사라진 강원, 싱거워진 바다… 우리 아이들은 다른 기후에 산다

    폭설 사라진 강원, 싱거워진 바다… 우리 아이들은 다른 기후에 산다

    “우리 집이 불타고 있다. 당신들이 좀 무서워했으면 좋겠다”며 세계 지도자들을 질타한 스웨덴의 청소년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 불타고 있는 건 툰베리의 집만이 아니다. 우리 아이들의 집이고 미래다. 환경학자들은 “미래 세대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직면했고, 당장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공존을 장담할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더 많은 것을 가지려는 욕망과 이기심을 위해 지구를 계속 채찍질한다면 우리 아이들은 언제든 인류의 ‘마지막 세대’로 전락할 수 있다. 오는 31일부터 열리는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를 앞두고 기후위기 시대를 살아가는 어린이들의 생존 보고서를 통해 해결책을 찾는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과 그린피스가 함께했다.‘강원 동해안 및 산간지방은 우리나라 대설 다발지역으로 1, 2월에 많은 눈이 내린다.’ 지리 교과서는 강원도를 이렇게 소개한다. 그러나 강원도에 눈이 많이 온다는 말은 이제 옛말이 됐다. 온난화로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눈 쌓인 태백산맥을 보기 어려워졌다. 눈이 귀해지면서 강원도의 산은 바싹 말랐다. 건조해진 산은 불쏘시개다. 2019년 강원 고성과 속초를 휩쓸었던 산불은 도로변 전신주 고압전선이 끊어지며 시작된 인재였지만 수분기 없는 낙엽들이 불을 화마로 키웠다. 고성에 사는 정민서(15)양도 2019년 산불의 피해자다. “민서 아빠와 결혼해서 이 동네 처음 왔을 때만 해도 겨울에 눈이 참 많이 왔어요.” 민서 엄마 엄미숙(56)씨는 32년 전을 떠올렸다. 민서는 기억하지 못하는 일이다. 폭설이 생소한 민서는 엄마의 기억과 다른 강원도에서 살아간다. 가족과 함께 집에서 쉬고 있던 민서는 저녁임에도 이상하리만큼 붉은 하늘을 보며 의아하게 생각했다. 얼마 후 산불이 발생했다는 긴급재난문자가 휴대전화를 울렸다. 집 밖으로 나가니 하늘은 더 붉어졌고 멀리서 시뻘건 불길과 연기가 보이기 시작했다. 큰일은 아닐 거라고 믿으며 민서네 가족은 자동차에 몸을 실었다. 불길이 확산되는 속도는 점점 거세졌다. 삽시간에 집과 차 안까지 매캐한 냄새가 가득 퍼졌다. 부모님 지인의 펜션으로 몸을 피했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민서 가족은 뼈대만 남기고 흉측하게 타 버린 집을 보고 망연자실했다. 민서 가족은 리조트, 연수원, 조립주택으로 피난민처럼 떠돌았다. 엄씨는 충격으로 안면에 마비가 왔다. 학교에서는 민서가 산불 피해로 불안지수가 높게 나왔다며 심리 치료를 권했다. 2년간 불안정한 생활을 하던 민서 가족은 올해 2월 새집을 지어 이사하면서 겨우 안정을 되찾았다. 지난 5일 민서 가족과 함께 둘러본 고성·속초는 산불의 흔적을 말끔히 지워 내지 못한 모습이었다. 속초고등학교에서 1㎞만 걸어가면 뼈대만 남은 2층짜리 건물이 덩그러니 서 있다. 내부는 까맣게 그을려 이전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불이 났을 당시 열기로 폭발해 깨진 유리창 조각만 바닥에 흩뿌려져 있었다. 영랑호 인근 리조트 펜션 20여채도 모두 불탄 그대로 남아 있었다. 불이 났을 땐 멀쩡해 보였던 나무들은 2년 반 동안 서서히 죽어갔다. 산불이 이렇게 커진 데에는 건조해진 기후와 강한 바람의 영향이 컸다. 엄씨는 “눈이 많이 왔을 시절에는 한겨울에 쌓인 눈이 봄까지 꽁꽁 얼어 있고, 천천히 녹으니까 상대적으로 습했다”면서 “요새는 눈이 많이 안 오고, 눈이 와도 금방 녹으니 낙엽이 말라서 바삭바삭하다. 불이 나면 잘 탈 수밖에 없는 조건”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산불 발생 빈도는 10년 전과 비교해 크게 늘었다. 산림청에 따르면 2011년 산불 발생 건수는 277건, 피해 면적은 1090㏊ 수준이었지만 지난해에는 발생 건수 620건, 피해 면적 2920㏊로 2~3배씩 증가했다. 피해액도 2011년 290억 6300만원에서 1581억 4100만원으로 5배 이상 급증했다.●전복 때문에 깊어진 아빠의 한숨 박수자(52)씨가 김순주(10)양을 품었던 해, 순주 아빠 김동연(58)씨는 전남 완도군 청산도 먼바다에 나가 전복을 키우기 시작했다. 어두컴컴한 새벽부터 배를 타러 나가는 부지런함 덕에 연매출은 8억원까지 올랐다. 순주를 먹이고 입히고 가르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순주에게 전복은 웃음꽃이자 힘의 원천이고 부모님의 사랑이었다. 하지만 올해는 마냥 웃을 수가 없다. “전복 잘 키우기로 소문난 아빠, 엄마가 한숨 쉬는 소리를 자주 들었어요. 날씨 때문에 전복이 많이 죽고 잘 자라지도 않아서 그런가 봐요. 아빠가 힘들게 고생했는데 너무 속상해요.” 순주는 지난여름 작은 배를 타고 아빠의 전복 양식장을 구경하러 갔다가 엄마를 따라 손가락으로 바닷물을 찍어 혀끝에 댔다. 어째 짠기는 안 느껴지고 맹맹했다. “엄마는 ‘소금 타야겠다’고 하세요. 몇 년 사이에 바다가 싱거워져서 전복들이 비릿해지고 잘 죽는대요. 진짜 소금 포대라도 사다가 뿌려야 할까 봐요.” 순주 엄마 박씨는 “올해는 최악의 여름이었다”고 고개를 흔들었다. 푹푹 찌는 더위가 7월부터 찾아왔다. 전복은 수온과 염분에 예민하다. 섭씨 15~20도에서 가장 잘 자라고 더우면 먹이인 미역과 다시마를 먹지 않는다. 어민들은 양식장 수온이 23~24도일 때까지만 먹이를 주고 25도가 넘어가면 먹이 공급을 중단한다. 고수온이 계속되면 먹이를 안 주는 날이 늘어난다. 먹이를 안 주면 폐사량은 적지만 전복에 살이 차지 않는다. 생계가 달린 어민들은 양식장에서 기후변화 적응을 위한 실험을 하고 있다. “우리는 전복 양식장을 ‘아파트’라고 불러요. 아파트 한 칸에 100㎏은 나와야 300만~400만원을 받을 수 있어요. 너무 더우면 먹이를 주지 말라고 하는데, 더위가 길어지면 언제까지 굶길 순 없잖아요. 수온이 26도일 때 몇 칸에만 미역을 줘 보는 거예요. 먹이 준 칸에서 폐사율이 60%가 넘기도 했는데 살아남은 애들은 또 굵기가 실한 거예요. 온난화에 적응하려고 이것저것 다 해보는 거죠.” 박씨는 이렇게 말했다.●기후변화 대응 실험장이 된 양식장 완도 상황은 그나마 낫다. 올여름 전남 고흥 바다 수온은 30도를 넘어 전복 양식어가 등 102가구가 피해를 봤다. 전복 290만 4000마리가 죽었고 어류, 굴·가리비도 폐사해 약 45억원의 손해가 발생했다. 국립수산과학원 남해수산연구소 연구관은 “수온 변화가 적은 바다 밑에 사는 전복을 인위적으로 끌어올려 사육하니 온도 변화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며 “28도가 넘으면 전복의 절반이 죽어 고수온 폐사로 본다”고 설명했다. 싱거운 바다도 순주 부모님의 근심거리다. 기후변화로 바다에도 예측하기 어려운 집중호우가 쏟아지면서 바닷물이 점점 싱거워지고 있다. “더운 여름 좀 버텼나 싶었더니 9월에 비가 깜짝 놀랄 정도로 많이 쏟아졌어요. 염도 떨어지면 전복이 스트레스를 받거든요. 비 온 직후는 괜찮아 보여도 시름시름 앓다 결국 죽더라고요.” 전남 강진만 마량 해역에선 지난 7월 5~7일 3일간 집중호우가 쏟아져 전복 2300만 마리가 집단 폐사했다. 민물이 바다에 유입돼 염분이 5~15pus(해수 1㎏에 든 염류의 양(g))로 평소의 절반 이하로 낮아진 탓이다. 한 해 전복 농사의 시작인 가을에 찾아온 불볕더위 역시 순주네를 괴롭혔다. “9월 말이면 전복 먹이가 되는 미역 포자(씨)를 줄에 붙여 키워야 하는데 수온이 높으면 포자가 다 녹아 버려요. 어쩔 수 없이 일주일 정도 미뤘는데 하루이틀만 늦어도 미역 성장 속도가 더뎌서 손해가 크죠. 올해는 발 뻗고 자는 날이 없네요.”
  • 눈 귀한 강원도에 사는 민서, 덥고 싱거운 바다에 사는 순주

    눈 귀한 강원도에 사는 민서, 덥고 싱거운 바다에 사는 순주

    [편집자주] “우리 집이 불타고 있다. 당신들이 좀 무서워했으면 좋겠다”며 세계 지도자들을 질타한 스웨덴의 청소년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 불타고 있는 건 툰베리의 집만이 아니다. 우리 아이들의 집이고 미래다. 자연은 기후변화를 통해 지속적으로 경고를 보냈지만, 어른들은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외면했다. 환경학자들은 “미래 세대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직면했고, 당장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공존을 장담할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더 많은 것을 가지려는 욕망과 이기심을 위해 지구를 계속 채찍질한다면 우리 아이들은 언제든 인류의 ‘마지막 세대’로 전락할 수 있다. 우리가 함께 불을 꺼야 하는 이유다. 오는 31일부터 열리는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를 앞두고 기후위기 시대를 살아가는 어린이들의 생존 보고서를 통해 답을 찾는다. 기획에는 초록우산어린이재단과 그린피스가 함께했다.‘강원 동해안 및 산간지방은 우리나라 대설 다발지역으로 늦겨울인 1, 2월에 많은 눈이 내린다.’ 지리 교과서는 강원도를 이렇게 소개한다. 그러나 강원도에 눈이 많이 온다는 말은 이제 옛말이 됐다. 온난화로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눈 쌓인 태백산맥을 보기 어려워졌다. 눈이 귀해지면서 강원도의 산은 바싹 말랐다. 건조해진 산은 불쏘시개다. 한 번 불이 붙으면 크게 번져 인간이 사는 마을을 집어삼키는 재앙이 됐다. 2019년 강원 고성과 속초를 휩쓸었던 산불은 도로변 전신주 고압전선이 끊어지며 시작된 인재였지만 수분기 없는 낙엽들이 불을 화마로 키웠다. 고성에 사는 정민서(15)양도 2019년 산불의 피해자다. “민서 아빠와 결혼해서 이 동네 처음 왔을 때만 해도 겨울에 눈이 참 많이 왔어요.” 민서의 엄마 엄미숙(56)씨는 32년 전을 떠올렸다. 민서는 기억하지 못하는 일이다. 폭설이 생소한 민서는 엄마의 기억과 다른 강원도에서 살아간다.● 건조한 강풍 타고 순식간에 번진 화마 가족과 함께 집에서 쉬고 있던 민서는 저녁임에도 이상하리만큼 붉은 하늘을 보며 의아하게 생각했다. 얼마 후 산불이 발생했다는 재난 알람 문자가 휴대전화를 울렸다. 집 밖으로 나가니 하늘은 더 붉어졌고 멀리서 시뻘건 불길과 연기가 보이기 시작했다. 큰일은 아닐 거라고 믿으며 민서네 가족은 자동차에 몸을 실었다. 불길이 확산되는 속도는 점점 거세졌다. 삽시간에 집과 차 안까지 그은 냄새가 가득 퍼졌다. 부모님과 가깝게 지내던 분의 펜션으로 몸을 피했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민서의 가족은 뼈대만 남기고 흉측하게 타버린 집을 보고 망연자실했다. 민서 가족은 리조트, 연수원, 조립주택으로 피난민처럼 떠돌았다. 민서 엄마 엄씨는 충격으로 안면에 마비가 왔다. 학교에서는 민서가 산불 피해로 불안지수가 높게 나왔다며 심리 치료를 권했다. 2년간 불안정한 생활을 하던 민서의 가족은 올해 2월 새집을 지어 이사하면서 겨우 안정을 되찾았다. 화마가 할퀸 상처가 다 나은 것은 아니다. “저녁 하늘이 조금 붉으면 그때가 떠올라요. 또 산불 아닐까, 우린 어디로 피해야 하나…. 가슴이 벌렁거려요.”● 불 먹은 나무들…2년 지나도 씻기지 않은 상흔 지난 5일 민서 가족과 함께 둘러본 고성·속초는 산불의 흔적을 말끔히 지워 내지 못한 모습이었다. 속초고등학교에서 1㎞만 걸어가면 뼈대만 남은 2층짜리 건물이 덩그러니 서 있다. 내부는 까맣게 그을려 이전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불이 났을 당시 열기로 폭발해 깨진 유리창 조각만 바닥에 흩뿌려져 있었다. 영랑호 인근 리조트 펜션 20여채도 모두 불탄 그대로 남아 있었다. 불이 났을 땐 멀쩡해 보였던 나무들은 2년 반 동안 서서히 죽어갔다. 조경업계에서는 이를 ‘불 먹었다’고 표현한다. 고성 토성면 인근 나무들은 불을 먹어 껍질이 벗겨지고 매끈한 심만 남아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산불이 이렇게 커진 데에는 건조해진 기후와 강한 바람이 큰 몫을 했다. 엄씨는 “눈이 많이 왔을 시절에는 한겨울에 쌓인 눈이 봄까지 꽁꽁 얼어 있고, 천천히 녹으니까 상대적으로 습했다”면서 “요새는 눈이 많이 안 오고, 눈이 와도 금방 녹으니 낙엽이 말라서 바삭바삭하다. 불이 나면 잘 탈 수밖에 없는 조건”이라고 말했다. ● 국내 산불 피해액 10년새 5배 증가 실제로 우리나라의 산불 발생 빈도는 10년 전과 비교해 크게 늘었다. 산림청에 따르면 2011년 산불 발생 건수는 277건, 피해 면적은 1090㏊ 수준이었지만 지난해에는 발생 건수 620건, 피해 면적 2920㏊로 2~3배씩 증가했다. 피해액도 2011년 290억 6300만원에서 1581억 4100만원으로 5배 이상 급증했다. 권원태 APEC기후센터 원장은 “우리나라의 겨울철 온도가 높아지면서 토양 수분이 빠르게 말라버리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그러면 봄철 가뭄이 더 심해지고 산불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소금 타야겠다” 싱겁고 뜨거운 남해 청정 바다 박수자(52)씨가 김순주(10)양을 품었던 해, 순주의 아빠 김동연(58)씨는 전남 완도군 청산도 먼바다에 나가 전복을 키우기 시작했다. 어두컴컴한 새벽부터 배를 타러 나가는 부지런함 덕에 연매출은 8억원까지 올랐다. 순주를 먹이고 입히고 가르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순주에게 전복은 웃음꽃이자 힘의 원천이자 부모님의 사랑이었다. 하지만 올해는 마냥 웃을 수가 없다. “전복 잘 키우기로 소문난 아빠, 엄마가 한숨 쉬는 소리를 자주 들었어요. 날씨 때문에 전복이 많이 죽고 잘 자라지도 않아서 그런가 봐요. 아빠가 힘들게 고생했는데 너무 속상해요.” 순주는 지난여름 작은 배를 타고 아빠의 전복 양식장을 구경하러 갔다가 엄마를 따라 손가락으로 바닷물을 찍어 혀끝에 댔다. 어째 짠기는 안 느껴지고 맹맹했다. “엄마는 ‘소금 타야겠다’고 하세요. 몇 년 사이에 바다가 싱거워져서 전복들이 비릿해지고 잘 죽는대요. 진짜 소금 포대라도 사다가 뿌려야 할까 봐요.”● 일찍 찾아온 더위에 전복 폐사 늘어 순주 엄마 박씨는 “올해는 최악의 여름이었다”고 고개를 흔들었다. 푹푹 찌는 더위가 7월부터 찾아왔다. 전복은 수온과 염분에 예민하다. 15~20도에서 가장 잘 자라고 더우면 먹이인 미역과 다시마를 먹지 않는다. 어민들은 양식장 수온이 23~24도일 때까지만 먹이를 주고 25도가 넘어가면 먹이 공급을 중단한다. 고수온이 계속되면 먹이를 안 주는 날이 늘어난다. 먹이를 안 주면 폐사량은 적지만 전복에 살이 차지 않는다. 김병학 국립수산과학원 남해수산연구소 연구관은 “수온이 올라가면 4년산 전복의 40~80%, 2년산 20~40%가 산란을 한다”며 “고수온에서 산란하면 면역기능과 대사가 현저히 저하돼 먹이를 계속 주면 폐사할 확률이 크다”고 말했다. ● 기후변화 대응 실험장이 된 양식장 순주가 사는 청산은 완도 12개 섬 중에서도 연육교를 놓지 못할 정도로 수심이 깊고 파도도 세 전복 양식에 적합하다. 청산 바다에서 자란 전복은 도매상인들이 마리당 2000원을 더 쳐줄 정도로 상품성을 인정받는다. 올해는 양식을 망친 어민들이 적지 않다. 양식장을 기후변화 적응을 위한 실험실로 이용한 결과다. “우리는 전복 양식장을 ‘아파트’라고 불러요. 아파트 한 칸에 100㎏은 나와야 300만~400만원을 받을 수 있어요. 너무 더우면 먹이를 주지 말라고 하는데, 더위가 길어지면 언제까지 굶길 순 없잖아요. 수온이 26도일 때 몇 칸에만 미역을 줘 보는 거예요. 먹이 준 칸에서 폐사율이 60%가 넘기도 했는데 살아남은 애들은 또 굵기가 실한 거예요. 온난화에 적응하려고 이것저것 다 해보는 거죠.” 순주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완도 상황은 그나마 낫다. 올여름 전남 고흥 바다 수온은 30도를 넘어 전복 양식어가 등 102가구가 피해를 봤다. 전복 290만 4000마리가 죽었고 어류, 굴·가리비도 폐사해 약 45억원의 손해가 발생했다. 신안 흑산도와 안좌도 바다도 28도가 넘어 전복 폐사가 일어났다. 김 연구관은 “수온 변화가 적은 바다 밑에 사는 전복을 인위적으로 끌어올려 사육하니 온도 변화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며 “28도가 넘으면 전복의 절반이 죽어 고수온 폐사로 본다”고 설명했다.● 고수온 잘 견디는 ‘슈퍼전복’ 개발 어민들은 기후변화에 살아남으려고 전복 사육기간을 줄이고 있다. 겨울부터 봄까지 3~4년 키운 성태(㎏당 6~8미)를 시장에 내놨지만 전복이 클수록 수온변화에 예민하고 폐사율이 높아 5~6년 전부터 2년~2년 6개월 키운 다음 판매한다. 고수온을 잘 견디고 사육기간이 더 짧은 ‘슈퍼 전복’ 종자도 시범적으로 키우고 있다. 싱거운 바다도 순주 부모님의 근심거리다. 기후변화로 바다에도 예측하기 어려운 집중호우가 쏟아지면서 바닷물은 점점 싱거워지고 있다. “더운 여름 좀 버텼나 싶었더니 9월에 비가 깜짝 놀랄 정도로 많이 쏟아졌어요. 염도 떨어지면 전복이 스트레스를 받거든요. 비 온 직후는 괜찮아 보여도 시름시름 앓다 결국 죽더라고요.” 전남 강진만 마량 해역에선 지난 7월 5~7일 3일간 집중호우가 쏟아져 전복 2300만 마리가 집단 폐사했다. 민물이 바다에 유입돼 염분이 5~15pus(해수 1㎏에 든 염류의 양(g))로 낮아진 탓이다. 바닷물 염분농도는 보통 30~33pus로 전복 폐사 기준은 22pus 이하로 본다. ● 비 멎기 무섭게 찾아온 가을 불볕더위 한 해 전복 농사의 시작인 가을에 찾아온 불볕더위 역시 순주네를 괴롭혔다. “전복 먹이가 되는 미역을 9월 말부터 키우기 시작해요. 모내기처럼 미역 포자를 긴 줄에 붙여야 하는데 수온이 높으면 포자가 다 녹아버리거든요. 어쩔 수 없이 일주일 정도 미뤘는데 하루 이틀만 늦어도 미역 성장 속도가 더뎌서 손해가 크죠. 포자값도 작년보다 2배 가까이 올랐고요. 11월에 아기전복(치패)도 입식해야 하는데 날씨가 도와줄지 모르겠어요. 올해는 발 뻗고 자는 날이 없네요.” 고성 손지민·서울 오달란 기자 sjm@seoul.co.kr ● 지난 겨울 고성·속초 강수량 고작 11.4㎜ 새로 관측되는 기상 데이터들은 우리 삶의 아주 가까운 곳에서 이미 기후변화가 시작됐다고 경고하고 있다. 메마른 봄부터 산불이 자주 나는 강원 영동지역은 겨울철 강수량이 눈에 띄게 줄었고, 비열(물질 1g의 온도를 1도 높이는 데 필요한 열량)이 높아 쉽게 데워지지 않는다는 바다의 여름 수온이 10년 평균치를 웃돈다. 18일 기상청의 기상자료개방포털을 활용해 강원 영동지역의 겨울철(12월~이듬해 2월) 강수량을 살펴본 결과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최근 10년 평균 113.8㎜였던 강수량은 최근 5년간 평균 100.1㎜로 12.0% 줄었다. 30년 평균 강수량(129.8㎜)과 비교하면 약 22.8% 감소했다. 지난해 이 지역의 겨울철 강수량은 11.4㎜에 그쳤다. 최근 10년 평균 강수량의 10분의1에도 못 미치는 극소량이다. 눈비가 오는 날도 크게 감소했다. 최근 10년간 강원 영동지역의 겨울철 평균 강수 일수는 16.1일이었으나, 최근 5년 평균은 11.7일로 4일 이상 줄어들었다. 이석우 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 산림환경보전연구부장은 “지구온난화로 겨울철 가뭄 경향이 짙어지고 있다. 온도가 올라가고 강수량이 적어지면서 산불이 일어나기 쉬운 조건이 됐다”고 설명했다. ● 올해 한반도 해역 여름 수온, 10년 평균치 1도 상회 전남 완도 앞바다는 올해 역대급 무더위를 기록했다. 국립해양조사원의 해양관측 월보를 분석해 보니 올 1~3월 수온이 통계월보가 작성되기 시작한 2005년과 비교해 평균 3.7도 올랐다. 따뜻한 겨울바다가 지속되면 아열대 어종이 출현하는 등 해양 생태계가 바뀐다. 지난 7월 평균 수온은 23.3도로, 최근 16년 새 가장 높았다. 수온 변화는 전복 양식 어가가 많은 남해만의 일이 아니다. 동해, 서해, 남해 등 3개 해역 10개 관측지점의 올해 7~9월 평균 수온은 2012년 이후 10년 평균치를 0.99도 웃돌았다. 특히 지난 7월 평균 수온이 23.86도로 10년 평균치(22.14도)보다 무려 1.72도 높았다. 수온이 3일 이상 28도를 넘거나 전일 수온 대비 5도 이상 상승하는 등 급격한 수온 변동이 있을 때 수산과학원이 발령하는 고수온 경보 횟수도 올해 다섯 번으로 기록돼 2017년 이후 가장 많았다. 국립수산과학원 기후변화연구과 관계자는 “바다가 함유할 수 있는 열 용량은 대기의 1000배로, 쉽게 달아오르지 않지만 한 번 수온이 오르면 잘 식지 않는다”면서 “표층뿐만 아니라 점점 깊은 바다로 고온 현상이 전이되고 있어 우려스러운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고성 손지민·서울 오달란 기자 sjm@seoul.co.kr
  • 이준석 “尹측 ‘손가락만 씻었다’ 해명 너무 해…메시지 관리해야”

    이준석 “尹측 ‘손가락만 씻었다’ 해명 너무 해…메시지 관리해야”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윤석열 캠프를 향해 “메시지 관리를 해야한다”고 주문했다. 이 대표는 5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진행자가 “윤석열 후보는 손바닥 왕(王)자도 그렇고 하루씩 뭔가 쏟아내고 있다”고 하자 “반 우스개소리로 이슈메이킹 능력은 탁월한 것 같다”고 받아쳤다. 이 대표는 “이런 식의 이슈메이킹은 지속되어서는 안 된다”며 “윤 후보가 우리 후보 중에서 지지율이 가장 잘 나오다 보니까 대중·언론의 관심도 뜨거운데, 윤 후보도 메시지 관리를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특히 손바닥 왕자와 관련해 ‘손가락만 씻었다’고 해명했다가 더 큰 후폭풍을 불어온 윤 캠프 대변인에 대해 이 대표는 “윤 캠프 대변인이 서너 분 되는 것 같은데 이분들이 종편 패널 활동을 많이 해 후보로부터 정확한 확인보다는 즉답을 해야 된다는 압박이 있는 것 같다”며 그렇지만 “임기응변으로 즉답을 하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해당 발언에 대해 “너무 하신 것 아닌가”라며 “후보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어떤 일인지 알고나서 입장을 대변해야 되는데 무슨 질문이 나와도 3초 내에 답해야 하는 버릇을 지금 하면 안된다”고 강조했다. 앞서 지난 4일 윤석열 캠프의 김용남 대변인은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손바닥 왕자 논란과 관련해 진행자가 왕자 글씨가 손바닥에 남아있는 것에 대해 “이것저것 다 떠나서 윤석열 후보는 손 안 씻는가”라고 묻자 “주로 손가락 위주로 씻으신 것 같다”며 어물쩍 넘겨 비난을 자초했다. 한편 이 대표는 전날 윤석열 후보가 ‘위장당원’ 발언을 해 구설수에 오른 것과 관련해선 “아마 윤 후보 측에서 그걸 분석하시는 분들이 굉장히 피상적인 통계만 본 게 아닌가 그렇게 생각한다”면서 윤석열 캠프일부 인사가 윤 후보에게 틀린 정보를 주는 것 같기에 윤 후보가 이러한 점 등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또한 이 대표는 이낙연 민주당 후보의 의원직 사퇴로 공석이 된 종로 출마설에 대해 “저는 국회의원이 되는 것보다 상계동 국회의원이 되고 싶어 한다”라며 “그냥 국회의원을 해 보려고 했으면 솔직히 지금까지 어렵게 정치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밝혔다.
  • 몸짱, 얼짱 그리고 실력짱… 꽃가마 타는 모래판 사나이

    몸짱, 얼짱 그리고 실력짱… 꽃가마 타는 모래판 사나이

    금강장사 17회… 태백·금강 통합장사 2회 기록역대 최다 타이틀은 ‘모래판 전설’ 이만기 35회씨름 지능 높고 기술도 좋고 장기전까지 능해 초등시절 형 기다리다 선생님 권유받고 입문고3때 첫 우승 후 3관왕… “재미 뒤늦게 알아”대학 땐 42연승 달리며 ‘제2의 이만기’ 찬사무릎수술 등 2016년부터 슬럼프 ‘3년간 무관’2019년 이후 제2전성기… “25회 채우고 은퇴”‘경량급 씨름 황제’ 임태혁(32·수원시청)이 한가위 연휴에 아주 특별한 순간을 맞았다. 지난 19일 충남 태안에서 열린 추석장사씨름대회 금강장사(90㎏ 이하) 결정전에서 개인 통산 19번째 타이틀을 따내며 같은 팀 선배이자 플레잉 코치인 이주용(38)을 뛰어넘어 민속씨름 현역 최다 타이틀 신기록을 세웠다. 경기대 4학년이던 2010년 민속씨름에 입문한 임태혁은 11년 만에 금강장사 17회, 태백·금강 통합장사 2회를 기록하며 이주용(금강 9회·한라 9회)을 제쳤다. 지난해 초 민속씨름 인기를 재점화했던 스포츠 리얼리티 방송 프로그램 ‘씨름의 희열’에서 태백급(80㎏ 이하), 금강급 에이스들과 겨뤄 태극장사를 차지한 것까지 포함하면 장사 20회를 채우지만 이벤트 대회라 공식 기록은 아니다.●명절대회 유독 강해… 설날·추석 5차례씩 우승 최다 장사 타이틀의 여운이 진하던 지난 23일 고향 충남 공주에서 서울신문과 만난 임태혁은 “모래판에서 누군가는 기억해 줄 수 있는 기록을 세워 너무 감사하고 뿌듯하다”고 기뻐했다. 그는 추석 대회에서 5차례, 설날 대회에서 5차례 꽃가마를 타는 등 명절 대회에서 유독 강한 면모를 보이고 있다. 임태혁은 “모든 대회에 최선을 다하지만 씨름에선 명절 대회가 메이저 대회나 마찬가지라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고 설명했다. 민속씨름 역대 최다 타이틀은 ‘모래판 전설’ 이만기(은퇴)가 갖고 있다. 천하장사 10회, 백두장사 18회, 한라장사 7회로 모두 35회다. 이만기가 활약했던 1980년대보다 대회가 많이 줄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임태혁의 기록도 쉽게 세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보다 더 많은 타이틀이 욕심날 법한데 임태혁은 “지난해까지는 적어도 30번은 할 수 있다,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욕심부리지 않고 마음도 많이 내려놔 25회로 낮췄다”며 웃었다. 같은 팀 이승호(35·금강장사 10회), 영암군민속씨름단의 최정만(31·13회)과 함께 금강 트로이카로 불리지만 임태혁이 그중 으뜸인 것은 자타가 공인하는 사실. 그러나 임태혁은 “어렸을 때부터 운동을 같이 해서 서로를 잘 알고 스타일도 비슷하기 때문에 머리싸움을 많이 해야 하는 가장 버거운 상대들”이라며 “라이벌이 있어 기록을 세울 수 있었고 또 그런 구도를 좋아해 팬들이 더 생기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임태혁이 씨름과 인연을 맺은 것은 한 학년 위 형 덕택이었다. 형이 먼저 초등학교 6학년 때 씨름부에 들어갔다. 함께 집에 가려고 형을 기다리다가 씨름 한 번 해보지 않겠냐는 선생님의 권유를 받았다. 지금이야 최고로 손꼽히지만 처음부터 잘했던 것은 아니다. ‘탱크’ 김용대(은퇴), ‘기술 씨름의 달인’ 장정일(은퇴) 등의 경기를 보고 자랐던 그는 고등학교 3학년 때에야 처음 우승을 해봤다. 그해 3관왕을 했다는 그는 “씨름의 재미를 뒤늦게 알았다”고 돌이켰다.●속고 속이는 수 싸움 즐기고 응용 기술 탁월 씨름 지능이 높고 기술 씨름은 물론 장기전에도 능한 것으로 정평이 난 임태혁은 어떠한 상황에도 대처할 수 있는 다채로운 기술을 자신의 강점으로 꼽았다. 속고 속이는 수 싸움을 좋아해 여러 상황을 가정해 놓고 다양하게 변주하는 응용 기술을 만들고 갈고닦은 결과다. 그를 대표하는 변칙 기술 중 하나인 ‘등샅바 밭다리’는 그런 과정에서 나왔다. 그렇게 늦깎이로 꽃망울을 터뜨린 임태혁은 대학 때 42연승을 달리며 ‘제2의 이만기’라는 찬사를 받았다. 그는 “정말 영광이었다”며 “앞으로 ‘제2의 임태혁’이라는 이야기를 듣는 후배가 나올 수 있도록 더 열심히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민속씨름 데뷔 무대였던 2010년 설날 대회에서 금강장사에 오르며 이제까지 승승장구했지만 부상으로 힘든 시기를 겪기도 했다. 마지막 프로씨름단이던 현대삼호중공업에 3년간 몸담았다가 수원시청으로 돌아온 직후였다. 2016년 설날 금강장사로 복귀 신고를 기분 좋게 했지만 이후 2019년 설날 대회에서 다시 정상에 설 때까지 3년간 무관이었다. 임태혁은 “무릎 수술을 받고는 좀처럼 성적이 따라주지 않았다”며 “팀에 저 아니어도 장사를 할 수 있는 능력 있는 선수들이 많다는 걸 위안으로 삼았던 시절”이라고 되돌아봤다. 사실 임태혁이 민속씨름에 데뷔했던 때는 씨름의 인기가 바닥을 쳤을 때다. 앞서 민속씨름은 2003년 금강급을 신설하고 2005년 태백급을 20년 만에 부활시키는 등 경량급 씨름을 통해 전성기를 되찾으려 했으나 프로씨름단이 잇따라 해체하며 무너졌다. 그런데 2019년 즈음 유튜브 등을 통해 경량급 경기 영상이 인기몰이를 하며 반등했다. 임태혁은 “데뷔 초에는 경기를 해도 하는지 안 하는지 몰라주니까 서운한 마음이 적지 않았다”며 “지금은 아플 때 이것저것 챙겨 주는 등 응원해 주는 분들이 많아 너무 좋다”고 했다. 특히 ‘씨름의 희열’이 불쏘시개가 돼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 ‘집사부일체’ 등 장사들의 예능 나들이도 늘고 있다. 임태혁은 이번에 추석 특집 ‘1박 2일’에 출연했는데 공교롭게도 현역 최다 타이틀 기록을 세운 날 방송됐다. ‘본방 사수’ 했냐는 물음에 그는 “아직 어색해서 내가 TV에 나오는 걸 잘 못 본다”며 웃었다. 일부에서는 대중의 관심이 씨름 자체보다 선수들 몸매와 얼굴에 쏠린 것 아니냐고 아쉬워하는 목소리도 있다. 임태혁은 “지금 인기를 얻고 있는 장사들은 몸짱, 얼짱뿐만 아니라 실력도 짱”이라며 “씨름을 더 널리 알리고 팬도 늘릴 수 있어 좋다. 나 또한 ‘씨름의 희열’을 거치며 인스타그램 팔로어가 1000명 정도에서 9000명 가까이 늘었다”고 했다. ●사촌 여동생 김다영 선수도 추석 때 첫 꽃가마 임태혁에게 이번 추석이 더욱 특별했던 까닭은 집안에서 장사가 또 한 명 배출됐기 때문이다. 임태혁은 친형이 대학 때까지 선수로 활동했고, 사촌동생 임대혁(27)은 광주시청에서 같은 금강급 선수로 뛰고 있는 씨름 가족이다. 여기에 22일 추석 대회 여자부 무궁화장사(80㎏ 이하) 결정전에서 고종사촌 동생 김다영(22·구례군청)이 생애 첫 꽃가마를 탔다. 한창 정상에 서 있는 임태혁이지만 최근 부상도 잦아지고 회복에 애를 먹으며 은퇴 고민도 조금씩 하고 있다. 이번 추석 대회도 부상 때문에 두 대회를 건너뛰고 나올 수 있었다. 임태혁은 “운동선수는 팬도 많고 응원도 많이 받아야 운동하는 재미가 있다”며 “후배들이 즐겁게 운동할 수 있는 좋은 환경을 만들어 놓고 떠나고 싶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러면서 “나로 인해 씨름을 보고 씨름 재미에 빠져 씨름을 좋아하게 되는 분들이 더욱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옆에서 인터뷰를 지켜보다 난데 없는 은퇴 이야기에 눈이 동그래진 사촌동생에게 임태혁은 “시대가 좋다. 씨름에 관심이 많아지고 또 이번에 장사까지 했으니까 꽃길만 갔으면 좋겠다”고 덕담을 건넸다. 그러자 김다영은 “올해 목표는 결승에 한 번 더가는 것”이라며 “언젠가는 오빠 뒤를 따라 씨름 여제가 되고 싶다”고 답했다.
  • 키울 사람들이 키워야 댕댕이도 행복합니다

    키울 사람들이 키워야 댕댕이도 행복합니다

    공중방역수의사 재직 시절 개발 착수회원 수 35만명… 매년 1만여명이 입양지자체 보호소, 입양 경로의 70% 차지반려견 등록제 의무화에도 허점 많아보호소 폐쇄적인 문화에 운영 어려움‘준비된 입양’ 확인 후 신청 절차 거쳐13만 401마리. 지난 한 해 동안 구조된 유기·유실 동물의 숫자다. 이 가운데 안락사 또는 자연사로 사망한 동물은 5만 9736마리(45.8%)였다. 반려인을 잃었거나 반려인으로부터 버려졌다가 가까스로 구조가 됐지만, 절반 가까이는 가족을 찾지 못하고 끝내 ‘무지개 다리’를 건너는 것이다. 기존 반려인에게 돌아가는 경우는 11.4%, 새 가족에게 입양되는 사례는 29.6%에 불과했다.국내 유일한 유실·유기 동물의 입양 플랫폼 ‘포인핸드’를 운영하는 이환희(35) 대표는 수의사로 일하면서 이러한 현실을 목격했다. 그가 있던 현장에선 따뜻한 새 가족을 만날 기회조차 받지 못한 채 사라지는 동물들이 너무 많았다. 구조 동물과 새 가족이 만날 수 있는 ‘창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 대표는 28일 서울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 “원대한 계획으로 시작한 건 결코 아니다. 단지 간절함이 있었을 뿐”이라며 “고민하고, 공부하고, 여러 시도를 하면서 버려진 동물들을 도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유기동물 입양 플랫폼을 만들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2013년 공중방역수의사(군 대체 복무) 시절 지방자치단체 동물보호소에서 일하면서 유실·유기 동물 문제를 겪었다. 생각보다 많은 동물이 구조된다는 사실도 놀라웠지만, 동물이 구조되고 나서도 제대로 알려지지 못해 안락사되는 경우도 많아 충격을 받았다. 입양 기회조차 받지 못하는 것은 잘못됐다고 생각했다. 당시에 정부 동물보호관리 시스템이 있었지만, 접근성이 좋지 않아 잘 알려지지 않았다. 유실·유기 동물을 알릴 수 있는 플랫폼이 필요하다고 봤고, 공중방역수의사로 일하는 동시에 포인핸드 개발을 시작했다.” -수의사 일과 플랫폼 운영을 병행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 “정말 쉽지 않았다. 이전에 없던 플랫폼이다 보니 개발부터 어려웠다. 2016년까지 수의사로 근무하면서 포인핸드를 운영했는데, 사용자가 10만명이 넘어가면서 병행이 불가능한 상황이 됐다. 병원에서 진료할 때 즉각적인 대응이 안 되니 이용자 불만이 커지고, 스스로도 만족하지 못했다. 오랜 고민 끝에 ‘임상 수의사는 언제든 할 수 있지만, 포인핸드는 지금 그만둬선 안 된다’는 생각에 플랫폼 운영에 전념하기로 하고 수의사를 그만뒀다. 2019년까지 혼자 운영하다가 최근 인원을 충원했다. 현재 실사용자는 35만명 수준이다.” -포인핸드에선 어떤 구조로 입양 절차가 이뤄지나. “기본적으로 각 지자체 보호소에서 사진과 성별, 발견 장소, 특이 사항 등을 담은 공고가 올라오고, 이용자들은 해당 공고를 읽고 보호소에 연락해 입양 절차를 진행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대부분의 보호소는 기한을 15~20일로 두고, 그 안에 새 주인을 찾지 못하면 동물을 안락사한다. 이외에도 동물을 임시 보호하면서 새 주인을 구하는 이용자들이 올린 글을 통해 입양이 이뤄지기도 한다.”-지금까지 포인핸드를 통해 얼마나 많은 유실·유기 동물이 가족을 찾았나. “1년에 1만~1만 2000명가량이 포인핸드를 통해 유실·유기 동물을 입양한다. 거기에 포인핸드에 올라온 공고를 읽고 따로 문의해 입양하는 사례도 있어 실제로는 더 많을 것이다. 지자체 보호소로 입양 문의가 가는 경로의 약 70%가 포인핸드를 통해 이뤄지고 있다.”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기업인데, 플랫폼 운영에 금전적 어려움은 없는지. “외견상 스타트업이지만 수익만을 추구하기 어려운 성격인 것도 사실이다. 애초에 돈을 벌겠다는 생각이 아니라, 유기 동물 입양을 위한 공익적 모델로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크라우딩 펀딩을 통해 포인핸드가 가진 의미와 가치를 사람들에게 알리면서 리워드도 제공하는 방식을 고민하고 있다. 예를 들어 캠페인에 참여해 굿즈 같은 리워드를 받는 방식이다. 지자체와 함께 진행하는 반려동물 교육도 확대하고 있다.” -버려지는 동물을 줄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일각에선 반려동물 입양 때 반려인 자격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반려인 자격 제도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다. 가장 큰 문제는 유기 동물을 키우지 말아야 할 사람들이 키운다는 점이다. 100% 예방할 순 없겠지만, 상당 부분 유기 건수를 줄일 수 있는 근본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나아가 키우는 사람뿐 아니라 동물 분양업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자격을 심사하는 등의 규제가 필요하다. 모든 단계에서 윤리 의식이 필요하다고 본다.”-다음달부터 반려견 등록 제도가 의무화된다. 효과를 어떻게 보는지. “자연스럽게 등록률이 올라가긴 하겠지만, 펫숍 등이 분양하는 단계에선 등록이 의무화되지 않아 사각지대는 여전히 남아 있다. 또 입양받은 뒤 등록을 안 하고, 산책도 안 시켜버리면 적발조차 힘들다. 결과적으로 보호자 자율에 맡겨야 하는 게 현실이다. 특히 내장형 인식칩과 외장형 인식표 가운데 하나만 된다는 점도 허점이다. 내장형 인식칩에 거부감을 느끼는 보호자도 있겠지만, 부작용이 없는 만큼 반려동물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다른 나라 상황은 어떤지. “반려동물 선진국은 동물을 사고파는 것 자체가 불법이고, 펫숍이나 브리더를 통한 분양에 대한 규제도 심하다. 선진국에선 보호센터를 통한 입양이 대부분이고, 입양 절차도 까다롭다.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법 개정 시도가 있었지만, 관련 산업과 연계돼 민감한 문제여서 무산됐다.” -반려견을 중심으로 얘기를 나눴는데, 반려묘는 어떤 상황이라고 보는지. “우리나라에서 고양이에 대한 인식은 아직 높지 않다. 아직까지 유기묘는 유기견에 비해선 드문 편이다. 길고양이는 이미 자생적으로 살아가는 동물로 인정돼 유기 동물 공고 대상이 아니지만, 어미에게 방치되거나 버림받은 새끼 고양이는 구조되고 공고에 올라오기도 한다. 다만 대부분 지자체 보호소가 개 중심의 환경이어서 새끼 고양이가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다. 결국 보호 기간이 끝나기도 전에 자연사하는 경우가 적지 않아 안타깝다.” -우리나라 지자체 보호소에 대한 생각은. “많은 지자체 보호소가 폐쇄적으로 운영된다는 점이 아쉽다. 보호소 대부분은 자원봉사자들의 봉사를 받지 않는다. 봉사자가 개입되면 이것저것 간섭하기 시작하고, 기대치를 충족하지 못하면 인터넷에 글을 올리는 등 운영에 어려움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공중방역수의사로 보호소에서 근무할 때도 감정만 앞세워 ‘그 어떤 동물도 절대 안락사를 시키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봉사자도 있었다. 그런 일을 겪다 보니 지자체 보호소들은 외부와 단절되고, 구조된 동물이 입양되기 쉽지 않은 사례도 많아진다. 운영이 잘되는 동물보호단체와 공조가 원활히 이뤄지면 구조 동물들이 입양될 가능성도 커질 텐데, 아쉬운 부분이 많다.” -포인핸드가 나아가는 방향은. “사용자가 많이 늘어난 만큼 보호소에서 양질의 입양 상담을 하기 어려워진 게 현실이다. 입양 공고를 읽고 보호소에 전화를 걸 텐데, 보호소에서 유기 동물을 담당하는 공무원은 대부분 한 명이다. 동물을 입양할 준비가 전혀 안 된 사람, 부모님의 허락도 받지 못한 미성년자, 깊은 고민 없이 충동적으로 전화하는 사람 등 다양한 사람들이 있어 상담하는 태도가 좋지 못할 때도 많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포인핸드 플랫폼 안에서 중재 역할을 하는 기능을 만들고 싶다. 예를 들어 포인핸드를 통해 입양신청서를 제출하고, 신청서에 입양할 준비가 됐다고 판단되는 사람만 보호소와 연결이 된다면 허수를 가릴 수 있을 것이다. 또 입양 이후까지 지원하기 위해 건강검진을 저렴하게 받거나 사료를 싸게 구매할 수 있는 멤버십을 구축하는 방향도 고민하고 있다.”
  • 또 역사 비튼 日… “교과서 속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사라졌다”

    또 역사 비튼 日… “교과서 속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사라졌다”

    2011년 중학 교과서 “자경단, 조선인 살해”2015년부터는 “경제 큰 타격” 위주 서술서종진 소장 “아베 정권서 경향 심해져”日교수도 “실증적이지 않은 학살 부정론”일제강점기 가해 책임을 외면하는 일본 역사수정주의 세력의 영향으로 최근 일본 역사 교과서에서 1923년 9월 간토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 사건 기록을 은폐하는 움직임이 두드러지고 있다. 서종진 동북아역사재단 한일역사문제연구소장은 31일 재단이 주최한 온라인 국제학술대회에서 일본이 역사 통계가 부정확하다는 점을 이용해 자국에 불리한 역사적 사건을 덮고 있는 현상을 분석했다. 서 소장은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 등 일본 역사수정주의 세력의 움직임을 짚으면서 “2010년 1월 보수 언론 산케이신문이 ‘간토 대지진 학살 희생자가 약 6600명이라는 수업 내용이 근거 없다’는 기사를 낸 이후 교과서에서 관련 기술을 축소시키는 경향성이 보인다”고 지적했다. 지유사의 2011년 중학교 교과서는 간토대지진에 대해 “이 혼란 속에서 ‘조선인과 사회주의자 사이에서 불온한 계획이 있다’는 소문이 퍼져서 주민 자경단 등이 조선인이나 조선인으로 오해받은 중국인과 일본인을 죽이거나…”라고 기술했다. 하지만 2015년과 지난해 교과서는 이런 내용 없이 “지진 결과 일본 경제는 큰 타격을 받았다”는 내용 위주로 서술했다. 명성사의 고등학교 역사 교과서도 2012년 판에는 “조선인에게 불온한 움직임이 있다는 유언비어에 영향을 받은 자경단에 의해서 조선인에 대한 살상사건이 빈발했다”고 했지만, 올해 판에는 이 내용이 사라졌다. 학살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 이쿠호사 지난해 중학교 교과서도 “교통과 통신이 끊어진 혼란 속에서 주민들이 만든 자경단 등에게 살해되는 사건”이라고 표현했다. 당시 학살의 주체를 자경단으로 한정해 정당방위로 묘사하고 일본군 등의 개입은 은폐한 것이다. 서 교수는 “아베 신조 정권하에서 2014년 1월 개정된 ‘교과용 도서 검정 기준’이 특정 사항을 지나치게 강조하지 말고, 학생이 오해할 우려가 있는 표현이 없을 것을 강조하자 이 같은 경향이 심해졌다”고 분석했다.일본군 위안부를 ‘자발적 매춘부’로 규정한 존 마크 램지어 하버드대 교수가 간토대지진 조선인 대량학살도 부정한 것에 대해 다나카 마사타카 일본 센슈대 교수는 “이는 종종 보이는 학살 부정론, 학살의 정당화를 모방한 것으로 실증적이지 않다”고 일갈했다. 이어 “램지어 교수의 입장은 늘 권력자나 다수자 편에 있으며, 피해자는 교육 수준이 낮거나 범죄자라고 본다”며 “자신의 주장에 합치되는 서술이나 이론은 이것저것 인용하면서도 그에 반하는 연구나 사료는 무시한다”고 꼬집었다.이진희 미국 이스턴일리노이주립대 사학과 교수는 “미국에서 강의하다 보면 일본 유학생이 이 같은 학살이나 전쟁 범죄에 대해 처음 알게돼 충격을 받았다고 말하는 사례가 종종 있다”면서 “일본이 식민주의 시기에 누렸던 지위에 대한 향수와 식민주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 “日교과서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은폐…역사수정주의 심각”

    “日교과서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은폐…역사수정주의 심각”

    일제강점기 가해 책임을 외면하는 일본 역사수정주의 세력의 영향으로 최근 일본 역사 교과서에서 1923년 9월 간토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 사건 기록을 은폐하는 움직임이 두드러지고 있다. 서종진 동북아역사재단 한일역사문제연구소장은 31일 재단이 주최한 온라인 국제학술대회에서 일본이 역사 통계가 부정확하다는 점을 이용해 자국에 불리한 역사적 사건을 덮고 있는 현상을 분석했다. 서 소장은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 등 일본 역사수정주의 세력의 움직임을 짚으면서 “2010년 1월 보수 언론 산케이신문이 ‘간토 대지진 학살 희생자가 약 6600명이라는 수업 내용이 근거 없다’는 기사를 낸 이후 교과서에서 관련 기술을 축소시키는 경향성이 보인다”고 지적했다. 지유사의 2011년 중학교 교과서는 간토대지진에 대해 “이 혼란 속에서 ‘조선인과 사회주의자 사이에서 불온한 계획이 있다’는 소문이 퍼져서 주민 자경단 등이 조선인이나 조선인으로 오해받은 중국인과 일본인을 죽이거나…”라고 기술했다. 하지만 2015년과 지난해 교과서는 이런 내용 없이 “지진 결과 일본 경제는 큰 타격을 받았다”는 내용 위주로 서술했다. 명성사의 고등학교 역사 교과서도 2012년 판에는 “조선인에게 불온한 움직임이 있다는 유언비어에 영향을 받은 자경단에 의해서 조선인에 대한 살상사건이 빈발했다”고 했지만, 올해 판에는 이 내용이 사라졌다. 학살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 이쿠호사 지난해 중학교 교과서도 “교통과 통신이 끊어진 혼란 속에서 주민들이 만든 자경단 등에게 살해되는 사건”이라고 표현했다. 당시 학살의 주체를 자경단으로 한정해 정당방위로 묘사하고 일본군 등의 개입은 은폐한 것이다. 서 교수는 “아베 신조 정권하에서 2014년 1월 개정된 ‘교과용 도서 검정 기준’이 특정 사항을 지나치게 강조하지 말고, 학생이 오해할 우려가 있는 표현이 없을 것을 강조하자 이 같은 경향이 심해졌다”고 분석했다.일본군 위안부를 ‘자발적 매춘부’로 규정한 존 마크 램지어 하버드대 교수가 간토대지진 조선인 대량학살도 부정한 것에 대해 다나카 마사타카 일본 센슈대 교수는 “이는 종종 보이는 학살 부정론, 학살의 정당화를 모방한 것으로 실증적이지 않다”고 일갈했다. 이어 “램지어 교수의 입장은 늘 권력자나 다수자 편에 있으며, 피해자는 교육 수준이 낮거나 범죄자라고 본다”며 “자신의 주장에 합치되는 서술이나 이론은 이것저것 인용하면서도 그에 반하는 연구나 사료는 무시한다”고 꼬집었다.이진희 미국 이스턴일리노이주립대 사학과 교수는 “미국에서 강의하다 보면 일본 유학생이 이 같은 학살이나 전쟁 범죄에 대해 처음 알게돼 충격을 받았다고 말하는 사례가 종종 있다”면서 “일본이 식민주의 시기에 누렸던 지위에 대한 향수와 식민주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 [포토] 이장원♥배다해, 손 꼭 잡은 커플샷 공개

    [포토] 이장원♥배다해, 손 꼭 잡은 커플샷 공개

    가수 겸 뮤지컬 배우 배다해가 예비 신랑이자 연인인 페퍼톤스 이장원과의 커플 사진을 공개했다. 배다해는 27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공연하면서 이것저것 준비하며 정신없는 하루하루를 보내느라 이제야 글을 남기네요. 결혼 발표에 축하해 주신 많은 분들 정말 너무 감사합니다”라며 “감사한 마음 안고 차분히 잘 준비하면서 공연소식도, sns 잘 하지않으시는 쟝님 소식도 틈틈이 전해보도록 할게요”라는 글을 남겼다. 배다해는 이와 함께 이장원과 다정하게 손을 잡고 찍은 사진을 공개했다. 이장원과 배다해는 최근 열애 사실과 함께 오는 11월 결혼할 예정이라고 밝혀 화제를 모았다.
  • 승부의 세계는 냉정… 스포츠도 정치도 이겨야 바뀌더라

    승부의 세계는 냉정… 스포츠도 정치도 이겨야 바뀌더라

    1973년 4월 유고슬라비아 사라예보에서 전설이 탄생했다. 만 열아홉의 나이로 제32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 19전 전승, 대한민국 구기 종목 사상 최초의 세계 제패를 이룬 이에리사(67). 라디오로 결승 중계를 들었던 국민들은 서울 광화문으로 뛰쳐나와 스포츠 영웅의 카퍼레이드에 환호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 여성 최초 국가대표팀 감독, 2005년 태릉선수촌 개촌 40년 만에 첫 여성 촌장, 2012년 새누리당 비례대표로 첫 여성 선수 출신 국회의원. ‘최초’라는 타이틀과 끝없는 승부를 펼쳐 온 이에리사 전 의원. 지난 23일 서울 서초구 이에리사 휴먼스포츠재단에서 만난 이 전 의원은 여전히 인생의 랠리를 이어 가고 있었다. 모든 승부는 이겨야 한다는 승부사 이 전 의원이 지켜본 후배들의 도쿄올림픽 관전평도 남달랐다. -사라예보 우승 당시 광화문 카퍼레이드가 인상적이다. “그때는 모두가 어려운 시기였다. 대한민국이 보유한 외화가 충분하지 않아 선수도 임원도 딱 100달러만 들고 시합에 나갔다. 그렇게 모두가 어려운 시기였다. 고된 삶에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게 마음뿐이었던 국민들이 카퍼레이드에 나와 환호하며 우리를 축하해 줬다. 그 따뜻한 마음에 늘 ‘잘해야 한다. 우리가 더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이번 도쿄올림픽에서는 젊은 선수들의 즐기는 모습이 주목받았다. “선수들에게 과중한 국가관이나 책임감을 주지 말자는 시대 변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어린 선수들이 승부를 초월해 즐기고, 자기감정을 표출하는 것을 보며 많이 달라졌다고 느꼈다. 하지만 승부는 이겨야 하는 것이다. 졌을 때와 이겼을 때는 전혀 다르다. 균형을 이뤄야 한다.” -스포츠 국가대항전의 의미도 달라지고 있는데. “미국이 왜 중국에 지지 않으려 하나. 왜 영국이 아테네올림픽 이후 다시 성적을 올리고, 1964년 도쿄올림픽 이후 쇠락해 온 일본이 엘리트 체육을 왜 다시 끌어올렸는지도 주목해야 한다. 이번 도쿄올림픽 성적은 아쉬운 게 사실이다. 성적 부진은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부터 예견된 일이었다. 도쿄에서 12개 종목에서 4위를 했다. 이번의 금메달과 4위가 다음 파리올림픽에서 메달을 딴다는 보장이 없다. 이기지 못한 게임에 대한 선수들의 피드백은 필요하다.”-생활체육 메달리스트에 대한 관심도 커졌는데. “생활체육에서 국가대표가 나와야 한다고 다들 앵무새처럼 하는 이야기에 동의하지 않는다. 영재는 국가가 키우는 것이다. 클럽이 종목별, 연령별로 탄탄하게 구축된 국가들과 비교해 왜 우리는 그런 선수가 나오지 않느냐는 비판은 맞지 않는다. 서독 FTG 프랑크프루트에서 코치 겸 선수를 할 때 유아부터 연령별로 클럽이 구축된 시스템을 봤고, 그런 시스템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엘리트 체육 중심의 학교 시스템에 비판도 많다. “선수 육성 시스템을 논할 때마다 ‘공부하는 선수’를 강요한다. 엘리트 스포츠는 필요한 연습량을 채우지 못하면 올림피언이 될 수 없다. 운동과 공부의 필요한 균형을 고민해야지 모든 선수들을 일반화해 교실에 다 집어넣고 주중에는 수업에 들어가고, 주말에 시합을 나가라는 것은 어린 선수들에게 가혹한 일이다. 경기장 시설이 부족한 현실에서 일반 학생들과 같은 일상을 보낼 수 없다. 신유빈 선수가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않고 바로 실업팀에 입단했다. 이런 현상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스포츠산업도 위기를 맞았다. “우리는 이제 건강한 운동을 즐기며 100세 시대를 사는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 스포츠가 건강과 여가를 책임지는 복지의 기능을 하는 시대가 됐다. 땀 흘리며 뛰는 운동을 못 하게 된 상황을 보며 유아부터 노인까지 스포츠 복지를 어떻게 지원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때가 왔다는 생각이 든다.” -19대 국회 정계 진출 과정은. “꾸준히 영입 이야기가 있었는데 내 마음에는 없었다. 나는 뼛속까지 체육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태릉선수촌장(2005~2008년)을 하며 여기저기 쫓아다니며 예산을 따고 시스템을 개혁하면서 국회에 체육인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수백명의 직원과 700~800명의 선수들을 책임지는 선수촌장으로서 만만치 않은 살림을 했다. 마침 새누리당에서 오라고 했을 때 두말하지 않고 갔다. 비례 몇 번이냐고 묻지도 않았다.” -4년의 의정 활동을 총평한다면. “여의도에 가면 무엇을 해야겠다는 계획이 있었다.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들이 준비돼 있었다. 가자마자 김연아 선수 등 만 24세 이하 스포츠 스타 및 연예인의 주류 광고모델 금지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국민건강증진법을 발의했다. 가장 보람 있는 일은 국민체육진흥법을 개정해 체육유공자 조항을 신설한 것이다. 86 아시안게임 금메달 유망주로 꼽히던 체조선수 김소영이 개막 20일을 앞두고 연습 중 목뼈가 부러지는 부상을 당했다. 사고 당시 겨우 열다섯이었다. 이후 자비로 미국 유학을 다녀오고 온 힘을 다해 새로운 삶을 살려고 노력했으나 체육계에서도 꺼리는 존재로 지내는 게 안타까웠다. 다른 부상 선수들 형편도 비슷했다. 국가의 명예를 높이기 위한 과정에서 생긴 장애라면 국가가 선수를 지켜줘야 한다. 2016년에는 골육종 투병 중 사망한 쇼트트랙의 노진규 선수가 유공자로 선정돼 유가족이 연금 혜택을 받게 됐다.” -국회의원 일상이 잘 맞았나. “당시 민주당은 체육인 국회의원이 없었는데 체육인 국회의원을 뽑지 않은 민주당이 후회하게 하고 싶었다. 국회 생활은 매우 흥미로웠다. 4년 내내 공부의 연속이었고, 용인대 기획처장을 했던 경험이 교육문화체육위 활동에 도움이 됐다. 솔직히 국회의원 생활은 선수나 지도자의 삶보다 힘들지 않았다. 왜 엘리트 체육에만 신경 쓰냐는 비판도 받았다. 체육인 출신 이에리사 1명이 해야 할 일에 집중했다.” -20대 총선 낙천 후 생활은. “나는 체육인 국회의원으로서 해야 할 일이 많았기에 어디에 줄을 서지 않았다. 한 중진 의원이 ‘당신은 왜 줄을 서지 않느냐’고 묻기도 했다. 그 부분이 한편으로는 매우 괴로운 일이었다. 내가 속했던 정당에서 대통령이 탄핵당하고, 그 시대의 국회의원으로서 국민에게 죄송한 마음, 또 대통령이 여전히 저렇게 있는 데 대해서도 무거운 마음이 겹쳐 쥐죽은 듯 살았다. 뜻하지 않게 대한체육회장 선거도 도전해 봤다. 어떤 자리가 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 늘 올바른 길에 힘을 보태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계 복귀 계획은 없나. “새누리당, 바른정당, 새로운보수당을 거쳤고 현재는 당적이 없다. 대선을 앞두고 여러분이 연락을 주셨다. 최근 국민의힘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고, 건강스포츠특위를 맡기로 했다. 라이벌이 있어야 선수가 더 발전하듯 정치도 견제 세력이 있어야 한다. 민주당이 앞으로 3년 더 180석을 갖고 가는데 대통령이라도 바뀌어서 견제 기능이 발휘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체육계 후배들의 정계 진출을 추천하나. “추천한다. 다만 국회는 준비해서 가야만 생명력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여의도의 삶은 가서 무작정 배우는 게 아니다. 모르면 허송세월이다. 조금 알 만하면 1, 2년이 지나고, 임기 말이 되면 부처에서도 소홀해지고, 마지막 1년은 선거 때문에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없다. 모든 걸 다 준비하고 임기 시작과 동시에 ‘요이땅’ 하고 출발해도 부족하다. 뜻이 있는 후배들이 있다면 나에게 많이 물었으면 좋겠다. 체육인 출신으로서 경험했던 의정 생활은 비밀이 아니다. 이것저것 모두 알려주고 싶다. 현재 국회에 있는 더불어민주당 임오경(전 핸드볼 국가대표) 의원, 국민의힘 이용(전 루지 국가대표) 의원의 의정 활동도 관심 있게 보고 있다.” -선수, 지도자, 스포츠행정가, 교육가, 국회의원 모든 선택에 후회가 없나. “어느 순간이나 결단할 때는 가장 안주하지 않을 선택을 했다. 끊임없는 변신과 도전을 했다. 인생은 매 순간이 승부다. 그 순간의 선택에서 이겨야 한다.”
  • 나만의 아이템, 한발 빠른 도전… 부실 딛고 ‘알짜’로 키웠다

    나만의 아이템, 한발 빠른 도전… 부실 딛고 ‘알짜’로 키웠다

    빚으로 하루하루를 연명하기보다 과감한 도전으로 위기를 기회로 바꾼 중소기업이 있다. 서울신문은 2일 심층 인터뷰를 통해 윤경식(50) 옥토아이앤씨 대표와 백옥희(56) 대풍EV자동차 대표의 부실기업 생환기를 재구성했다. 두 사람은 회사 경영이 어려워지자 사업 전환과 재창업으로 회사를 다시 일으켰다. 이들은 스스로 변화하는 것을 두려워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경험 없이 창업했다가 망한 뒤 다시 도전할 땐 ‘저만의 강점’을 찾으려 했어요. 큰 틀에선 같은 유아용품이지만, 층간소음을 아이템으로 잡고 들어간 게 적중했죠.” 윤 대표는 2009년 유아용품 유통업에 뛰어들었지만, 경험 부족으로 경쟁에서 밀리기 시작했다. 온갖 대출을 긁어 와 빚더미를 짊어진 건 사업을 시작한 지 3년도 지나지 않아서였다. 기업 대출은 물론이고 개인 대출에다 지인에게도 돈을 빌렸지만, 결국 2012년 회사문을 스스로 닫아야 했다. 하루하루 버틸수록 적자가 났기 때문이다. 윤 대표는 그날을 회상하면 아직도 마음 한구석이 아린다. “함께 일하던 사람들을 내보내야 했고, 지금까지 내 손으로 이뤄 낸 자산은 하루아침에 0원이 됐습니다.”한동안 다른 유아용품 회사에 들어가 월급받으며 원리금을 갚아 나갔지만, 더 늦기 전에 재도전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존에 쌓여 있던 빚 때문에 시중은행에서 대출받는 게 불가능했다. 하지만 중소기업진흥공단 재창업자금 지원 사업에 선정돼 2018년 시설자금과 운전자금 등 10억원의 정책자금 융자를 받아 사업을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이번엔 유아용품 유통업이 아닌 제조업으로 방향을 틀었고, 당시 사회적 관심을 끌었던 층간소음 문제를 파고들었다. 남들과 차별화된 전략 없이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경험 때문이었다. 3년이 지난 지금, 층간소음매트 ‘봄봄매트’를 바탕으로 매출 40억원을 내는 건실한 중소기업이 됐다.백 대표가 운영하는 소형 전기차 제조업체 대풍EV자동차는 불과 7년 전만 해도 전남에서 농업용 건조기와 같은 농기계를 만들고 유통하는 중소기업이었다. 2014년 농어촌 인구가 점점 줄어드는 데다 당시 태풍 탓에 매출이 반 토막 났다. ‘변화하지 않으면 망하겠다’는 생각이 백 대표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소형 전기차로 방향을 튼 건 우연한 계기였다. 주변에 부도난 기업의 전기차 재고를 들여다 팔면서 자체 기술력을 키웠고, 고민 끝에 전기차 시장에 뛰어들기로 했다. 중소기업으로서 큰 변화를 위해 필요한 자금을 빌리기가 쉽지만은 않았지만, 정부 사업전환 사업에 지원해 30억원대의 정책자금을 받아 새롭게 출발했다. 2016년 12억원이었던 회사 매출은 지난해 95억원으로 늘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수출길이 막혔고, 당장 빚을 갚아야 하는 날짜도 다가와 걱정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한발 빠른 변화 덕분에 코로나19 위기에도 버틸 수 있었다는 게 백 대표의 생각이다. 그는 “만약 회사가 아직도 농기계 제조업에 머물러 있었다면 이미 도산했을 것”이라고 털어놨다. 두 사람은 위기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던 원동력으로 ‘변화’를 꼽았다. 물론 대표 한 명, 중소기업 한 곳의 노력으로는 체질 개선과 같은 변화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정부의 정책 지원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백 대표가 도움을 받은 ‘사업전환 촉진’ 프로그램은 기존 사업만으로 경쟁력 확보가 구조적으로 어려운 기업들이 사업을 전환하면 심사를 통해 정책자금을 지원한다. 폐업을 했더라도 윤 대표처럼 7년 이내에 ‘재창업자금’ 사업에 지원할 수 있다. 백 대표는 “위기에 놓인 중소기업들이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이것저것 고려하다 보면 자칫 시기를 놓칠 수 있다. 과감하게 추진하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 “이렇게 살아남았다”…재창업·사업전환으로 생환한 중소기업들

    “이렇게 살아남았다”…재창업·사업전환으로 생환한 중소기업들

    [2021 부채 보고서-다가온 빚의 역습] (3회) 빚으로 연명하는 기업들 좀비가 되다재창업·사업전환으로 부실 딛고 ‘알짜’ 키운 중소기업 대표 2인 인터뷰옥토아이앤씨 “유아용품 유통 폐업 후 재창업”“한번 실패했지만, 층간소음 파고들어 히트상품”대풍EV자동차 “농기계에서 소형 전기차로 변신”“농어촌 인구 줄어들어 신산업 전환…체질 개선” 빚으로 하루하루를 연명하기보다 과감한 도전으로 위기를 기회로 바꾼 중소기업이 있다. 서울신문은 2일 심층 인터뷰를 통해 윤경식(50) 옥토아이앤씨 대표와 백옥희(56) 대풍EV자동차 대표의 부실기업 생환기를 재구성했다. 두 사람은 회사 경영이 어려워지자 사업 전환과 재창업으로 회사를 다시 일으켰다. 이들은 스스로 변화하는 것을 두려워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경험 없이 창업했다가 망한 뒤 다시 도전할 땐 ‘저만의 강점’을 찾으려 했어요. 큰 틀에선 같은 유아용품이지만, 층간소음을 아이템으로 잡고 들어간 게 적중했죠.” 윤 대표는 2009년 유아용품 유통업에 뛰어들었지만, 경험 부족으로 경쟁에서 밀리기 시작했다. 온갖 대출을 긁어 와 빚더미를 짊어진 건 사업을 시작한 지 3년도 지나지 않아서였다. 기업 대출은 물론이고 개인 대출에다 지인에게도 돈을 빌렸지만, 결국 2012년 회사문을 스스로 닫아야 했다. 하루하루 버틸수록 적자가 났기 때문이다. 윤 대표는 그날을 회상하면 아직도 마음 한구석이 아린다. “함께 일하던 사람들을 내보내야 했고, 지금까지 내 손으로 이뤄 낸 자산은 하루아침에 0원이 됐습니다.” 한동안 다른 유아용품 회사에 들어가 월급받으며 원리금을 갚아 나갔지만, 더 늦기 전에 재도전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존에 쌓여 있던 빚 때문에 시중은행에서 대출받는 게 불가능했다. 하지만 중소기업진흥공단 재창업자금 지원 사업에 선정돼 2018년 시설자금과 운전자금 등 10억원의 정책자금 융자를 받아 사업을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이번엔 유아용품 유통업이 아닌 제조업으로 방향을 틀었고, 당시 사회적 관심을 끌었던 층간소음 문제를 파고들었다. 남들과 차별화된 전략 없이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경험 때문이었다. 3년이 지난 지금, 층간소음매트 ‘봄봄매트’를 바탕으로 매출 40억원을 내는 건실한 중소기업이 됐다.백 대표가 운영하는 소형 전기차 제조업체 대풍EV자동차는 불과 7년 전만 해도 전남에서 농업용 건조기와 같은 농기계를 만들고 유통하는 중소기업이었다. 2014년 농어촌 인구가 점점 줄어드는 데다 당시 태풍 탓에 매출이 반 토막 났다. ‘변화하지 않으면 망하겠다’는 생각이 백 대표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소형 전기차로 방향을 튼 건 우연한 계기였다. 주변에 부도난 기업의 전기차 재고를 들여다 팔면서 자체 기술력을 키웠고, 고민 끝에 전기차 시장에 뛰어들기로 했다. 중소기업으로서 큰 변화를 위해 필요한 자금을 빌리기가 쉽지만은 않았지만, 정부 사업전환 사업에 지원해 30억원대의 정책자금을 받아 새롭게 출발했다. 2016년 12억원이었던 회사 매출은 지난해 95억원으로 늘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수출길이 막혔고, 당장 빚을 갚아야 하는 날짜도 다가와 걱정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한발 빠른 변화 덕분에 코로나19 위기에도 버틸 수 있었다는 게 백 대표의 생각이다. 그는 “만약 회사가 아직도 농기계 제조업에 머물러 있었다면 이미 도산했을 것”이라고 털어놨다.두 사람은 위기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던 원동력으로 ‘변화’를 꼽았다. 물론 대표 한 명, 중소기업 한 곳의 노력으로는 체질 개선과 같은 변화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정부의 정책 지원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백 대표가 도움을 받은 ‘사업전환 촉진’ 프로그램은 기존 사업만으로 경쟁력 확보가 구조적으로 어려운 기업들이 사업을 전환하면 심사를 통해 정책자금을 지원한다. 폐업을 했더라도 윤 대표처럼 7년 이내에 ‘재창업자금’ 사업에 지원할 수 있다. 백 대표는 “위기에 놓인 중소기업들이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이것저것 고려하다 보면 자칫 시기를 놓칠 수 있다. 과감하게 추진하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 [세종로의 아침] 코로나19, 국가의 존재 이유를 묻다/박찬구 정책뉴스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코로나19, 국가의 존재 이유를 묻다/박찬구 정책뉴스부 선임기자

    생계가 어려운 사람에게 최저생활을 보장하는 생활보호법이 기초생활보장법으로 대체된 것은 국민의 정부 때다. 1997년 말 외환위기로 실직자가 잇따르고 빈곤 문제가 심화하던 당시 최소한의 기초생활을 국가가 보장하기 위한 취지로 2000년부터 시행됐다. 기존 생활보호대상자는 기초생활수급권자로 명칭이 바뀌었다. 국가가 사회적 약자인 빈곤층을 보호대상으로 여겨 시혜와 보살핌을 베푸는 게 아니라, 사회 구성원의 일원으로서 빈곤층이 기초생활을 보장받는 당연한 권리를 지닌다는 의미다. 빈곤을 개인의 책임으로만 치부하지 않고 공동체가 책임져야 할 구조적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는 사회적 약속이기도 하다. 외환위기 못지않은, 어쩌면 당시보다 더 깊은 상흔을 공동체와 사회적 약자들에게 남기고 있는 코로나19 확산세가 끝을 모른 채 이어지고 있다. 고립감과 생활고로 극단적 선택에 내몰리는 이웃들도 있다. 황태연 생명존중희망재단 이사장은 현재의 상황을 ‘폭풍전야’에 비유했다. 과거 외환위기와 금융위기 당시를 보면 2~3년이 지난 뒤 극단적 선택이 늘어났다는 점에서 코로나19에 따른 이웃들의 고통이 갈수록 심해질 것이라는 우려에서다. 재난은 사람의 의지와 노력으로만 극복될 수 있는 게 아니다. 재난에 따른 공동체의 희생을 줄이고 피해를 당한 구성원의 삶을 구제하는 것은 국가와 공동체의 당연한 의무이자 존재 이유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생활고로 일가족이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례들에서 보듯 일선 현장의 복지지원 문턱은 높고 사각지대는 좀처럼 해소되지 않고 있다. 최근 관계부처에 접수된 민원사례를 보면 코로나19로 저소득층을 지원하고자 기초생활보장과 긴급복지지원 문턱을 낮췄지만 공적 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하거나 냉대를 경험하는 사례들이 적지 않다. 일선 공무원이 부정수급자를 걸러내지 못하면 감사를 받을 수 있다는 우려 탓에 힘들게 문을 두드린 저소득층 민원인에게 무리한 서류를 요구하는가 하면 민감한 개인 가정사를 캐묻기도 한다. 마음먹고 주민센터 문턱을 넘은 민원인으로서는 위로나 격려를 받기는커녕 빈손으로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는 처지다. 한 예로, 디스크로 일을 할 수 없게 된 한 일용직 노동자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주민센터를 찾았다가 자격지심에 모멸감까지 느꼈다고 했다. 70대 아버지를 홀로 부양해야 하는 처지로, 최근 12개월간 근로소득은 월평균 95만원 안팎이었다. 건설현장과 물류센터 일용직을 전전하며 월세와 생활비를 빠듯하게 맞춰 왔지만, 그마저도 허리를 다치면서 곤란한 처지에 놓였다. 1년치 수도세에 당장 월세도 해결하지 못할 상황이었다. 그는 ‘국가가 도움을 주는 것이 복지제도 아니냐. 꼬박꼬박 냈던 세금이 이럴 때 쓰이는 것’이라는 생각에 자신의 형편을 A4용지에 꼼꼼하게 적은 뒤 주민센터를 찾았다. 하지만 담당 공무원의 반응은 달랐다. 준비해 간 자료를 꺼내지도 못했다. 기초생활수급 신청 기준 등에 대한 어려운 설명을 쏟아내고 이혼한 어머니와 연락은 하는지 등 민감한 가정사까지 캐물었다. 옆자리 직원이 자신을 힐끗 쳐다보는 모습에 자격지심이 들었다고 했다. 그는 적어도 칸막이가 있는 부스에서 1대1 상담이 이뤄질 줄 알았는데 담당 직원은 모든 사람이 다 보는 공간에서 평소와 같은 목소리로 이것저것 꼬치꼬치 물어보더라고 하소연했다. 한 개인의 사례로 치부할 일이 아니다. 지원 대상인지 여부와 상관없이 코로나19로 더 힘들어진 빈곤층에게 일선 공무원들의 말 한마디는 삶의 용기를 줄 수도 있고 열패감을 안길 수도 있다. 신분이나 처지와 상관없이 최소한의 생계 유지는 공동체의 당연한 책무라 할 수 있다. 코로나19 위기 상황에서 국가와 사회의 존재 이유를 되새길 때다.
  • 물 타는 건 타고났어요… ‘벌크업 선우’ 기대하세요

    물 타는 건 타고났어요… ‘벌크업 선우’ 기대하세요

    도쿄올림픽에서 한국 수영은 물론 아시아 수영의 역사까지 바꿔 쓴 황선우(18·서울체고)의 첫마디는 “후련합니다”였다. 29일 오전 일본 도쿄 아쿠아틱스센터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경영 남자 자유형 100m 결선. 황선우는 47초82의 기록으로 5위를 차지했다. 예선부터 준결선과 이날 결선 등 세 경기 연속 0.58초의 출발 반응 속도로 물속에 뛰어든 황선우는 잠영에서 충분한 추진력을 얻지 못한 듯 전날 준결선 기록에 못 미친 성적으로 올림픽 첫 메달 사냥에 실패했다. 그러나 1956년 호주 멜버른 대회 다니 아쓰시(일본) 이후 아시아 선수로는 처음으로 이 종목 결선에 나선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일이었다. 황선우는 경기를 마친 뒤 “일단 주 종목인 자유형 100m와 200m 레이스를 모두 마쳐서 너무 후련하다”며 웃었다. 그는 “어제 준결선에 견줘 오늘은 아쉬운 부분이 있지만 그래도 멋진 선수들과 같이 뛴 것만으로도 영광”이라면서 “오늘 레이스 전략은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그냥 온 힘을 다하자’는 것이었다”고 털어놓았다. 황선우는 전날 준결선에 이어 이날 결선에서도 케일럽 드레슬(미국)과 나란히 레이스를 펼쳤다. 2017년 헝가리 부다페스트, 2019년 광주 세계수영선수권에서 각각 7관왕과 6관왕에 올랐던 드레슬은 47초02의 올림픽 신기록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는 “사실 자유형 200m 경기 뒤 계속 지쳐 있었다. 어제는 그나마 잘 잔 편이었다”며 최근의 몸 상태를 설명했다. 출발 후 돌핀킥으로 물을 헤쳐나가는 잠영에 다소 약점이 있다는 지적에는 “앞으로 훈련하면서 고쳐 나가야 할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그는 “자유형 100m는 결선에 오른 것만으로도 너무 만족한다”면서 “100m는 스피드감이 있으니 정말 재밌고, 200m도 좋아하는 거리라 두 종목 다 애착이 간다”고 밝혔다. “근력을 올리고 체격도 더 커지면 덩달아 기록도 나아질 것”이라고 포부를 밝힌 그는 “100m는 단거리여서 선수들의 몸이 다 엄청나게 크고 좋다”면서 “뒤처지지 않으려면 몸을 더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물을 잡고 물을 타는 능력이 좀 뛰어난 것 같다”며 자신의 수영 비결을 공개한 황선우는 “많은 분이 ‘제2의 박태환’ 등으로 불러 주시는데 같이 언급되는 것만으로도 너무 좋다. 하지만 저를 그냥 ‘황선우’로 기억해 주면 더 감사할 것 같다”고 주문했다. 이어 만나고 싶은 아이돌이 있는지 묻자 ‘있지’(ITZY)를 꼽으며 “SNS에 저를 응원한다고 올려주셔서 너무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황선우는 도쿄 대회 4개 종목 중 이제 자유형 50m 경기만 남겨 놓았다. 그는 30일 오후 7시 12분 이 종목 예선 여섯 번째 조에서 다시 역사에 도전한다. 그는 “50m는 많은 생각을 가지고 나온 종목이 아니다. 생각을 비우고 후련하게 뛰고 싶다”고 밝혔다.
  • [열린세상] 임시정부의 임시헌법과 ‘무진기행’/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열린세상] 임시정부의 임시헌법과 ‘무진기행’/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한국은 헌법의 나라다. 인용색인 사이트에서 검색되는 ‘헌법’ 관련 논문은 1만 5000여편이다. 그 중 5000여편의 논문은 제목에 ‘헌법’을 직접 표기했다. 대부분 한국연구재단 등재 학술지나 등재 후보지에 게재됐다. 학술지 제호에 헌법을 붙인 경우도 많다. 여러 학술단체가 이름에 헌법을 넣었다. 헌법학 교과서도 상세하다. 천여 페이지는 보통이고 이천 쪽을 넘기기도 한다. 헌법재판소의 산더미 같은 결정을 반영한 결과다. 헌재와 법원에서 헌법소송을 다룬 전문가들이 학계로 편입되고, 헌법 이론은 더욱 정교해졌다. 헌법 연구는 양과 질에서 괄목할 만하다. 한국의 헌법 역사는 100년이 넘는다. ‘대한민국 임시헌법’은 1919년 9월 11일 공포됐다. 전문과 8개 장, 58개 조문으로 구성했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대한인민 전체에게 있다고 천명했다. 종교의 자유와 재산의 보유, 거주 이전의 자유 등 기본권을 향유한다고 규정했다. 언론출판과 집회결사의 자유도 빼놓지 않았다. 임시헌법은 3권 분립과 대통령제를 도입했다. 현대의 여느 나라 헌법과 견주어도 전혀 손색이 없다. 임시헌법이 공포된 날은 블라디보스토크의 대한국민의회와 상하이의 임시정부와 서울의 한성정부가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통합된 날이기도 하다. 한국 헌법의 뿌리는 임시헌법보다 다섯 달 더 깊다. 1919년 4월 11일 ‘대한민국 임시헌장’이 공포됐다. 임시정부 법령 제1호다. 전문과 10개 조문으로 만들어졌다.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이다. 기본권은 제4조에 규정됐는데, 종교, 소유의 자유와 더불어 언론출판의 자유 등이 보장됐다.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에 빗대어 말하자면 ‘임시헌장’을 만들었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민주공화국을 표방했으므로 목숨을 건 독립운동은 더이상 황제의 나라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나라’를 되찾는 일이었다. 언론출판의 자유를 보장함으로써 허가나 검열이 없는 표현의 자유, 인위적인 조작과 권력의 부당한 개입에 오염되지 않은 민주주의 공론장이 예정됐다. 1919년 그때의 정부는 타국의 가난한 건물에 세든 ‘임시’였으나 표현의 자유와 민주공화제를 천명한 헌법은 강철보다 강했다. 가히 한국은 헌법의 나라다. 기미년 임시헌법부터 건국 후 제2공화국의 헌법은 언론출판의 자유를 법률로만 제한할 수 있도록 했다. 특히 4·19 직후에 개정된 헌법은 아예 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을 금지했다.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5·16 군사쿠데타 이후 개정된 제3공화국의 헌법은 언론출판의 자유에 이것저것 조건을 붙였다. 그 무렵 김승옥의 ‘무진기행’에 묘사된 대로 그야말로 밤사이에 진주해 온 적군들처럼 헌법 유보 조항이 언론출판의 자유를 삥 둘러싸 버린 것이었다. ‘공중도덕과 사회윤리’를 명분 삼아 영화와 연예에 대해 검열을 할 수 있다고 정했다. 신문과 통신의 발행 시설 기준, 옥외 집회의 시간과 장소 규제를 법률로 정했다. 언론출판도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와 ‘다른 사람의 명예나 권리’를 침해하지 않아야 했다. 권위주의 시절에 언론출판의 자유를 옥죄려고 만들었던 헌법 유보 조항이 무진을 짓누른 안개처럼 일상에 스며들었다. 5·17 군사쿠데타 직후에 개정된 헌법은 명예나 권리를 침해하는 언론출판의 손해배상까지 조문에 도입했다. 현행 헌법 제21조 제4항에 그대로 잔존해 있다. 언론에 대한 신뢰 수준이 낮고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의 찬성 의견이 높은 것을 이유로, 가짜뉴스나 허위조작 정보를 잡겠다면서 헌법 제21조 제4항을 들먹이는 조치들이 전개되고 있다. 남의 나라 땅에 임시로 정부를 세웠던 지난한 시절의 임시헌법에도 도입하지 않았던 헌법 유보 조항을 동원하겠다는 것이다. 경제적 이익을 얻고자 의도적으로 허위조작 정보를 유통시키는 것은 여론을 오염시키고 민주주의 공론장을 유린하는 행위다. 그렇다고 그 행위를 법으로 징벌하고 정부로 하여금 시정명령을 내려 징치하려는 발상은 성급하다. 비록 견해가 다른 언론이 성에 차지 않을지라도 언론과 여론의 깔때기가 이물질을 걸러낼 수 있다는 믿음을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 우리의 땅에 온전히 정식 정부를 세우고 정규 헌법을 가진 지금 언론출판의 이정표를 어디에 세울 것인가? 백 년 전 임시정부의 임시헌법에 답이 있다.
  • 김윤석 “모가디슈, 평범한 사람들의 탈출기라 더 매력적”

    김윤석 “모가디슈, 평범한 사람들의 탈출기라 더 매력적”

    “특수한 능력을 갖춘 사람이 거대한 모험과 맞서서 싸우는 내용이었으면 매력이 아마 덜했을 겁니다. 육체적 능력이 평범하거나 오히려 떨어지기까지 한 사람들이 머나먼 아프리카 오지에서, 고립된 상태에서, 한 발짝 나가면 내란인 살벌한 곳에서 탈출한다는 이야기가 매력적이었습니다.” 류승완 감독의 신작 ‘모가디슈’ 주연 배우 김윤석(53)은 영화 개봉을 앞두고 26일 기자들과의 화상 인터뷰에서 영화 참여 계기를 이렇게 밝혔다. 김윤석은 영화 속에서 1991년 남한의 유엔(UN) 가입을 위해 소말리아의 투표권을 얻고자 동분서주하던 한신성 대사 역을 맡았다. ‘타짜’의 아귀 역을 비롯해 ‘추격자’, ‘검은 사제들’, ‘남한산성’, ‘1987’, ‘암수살인’ 등에서는 강렬한 역을 주로 맡았지만, 이번엔 어깨에 힘을 많이 뺐다. 무게감은 덜하지만, 덕분에 오히려 여러 면을 보여준다. 특히, 티격태격하는 강대진(조인성 분) 참사관과 공수철(정만식 분) 서기관을 어르는 초반부 장면은 한 대사의 성격을 그대로 보여준다. 강 참사관이 없을 땐 강 참사관 욕을 하며 공 서기관을 달래고, 공 서기관이 없을 땐 공 서기관 욕을 하며 강 참사관을 위로한다. 림용수 북한 대사(허준호 분)에게 핏대를 올리며 따지기도 하지만, 림 대사가 식구들을 끌고 남한 대사관으로 왔을 때 대범하게 품어주기도 한다. “한신성 대사는 굉장히 똑똑한 것도 아니고, 어떨 때는 능구렁이처럼 얼렁뚱땅 넘어가기도 합니다. 때로는 경박스럽기도 하고, 말을 번복하거나 화도 냅니다. 그렇다고 해도 극한 상황에 몰렸을 때 독단적으로 판단하지 않고, 모두의 의견을 경청하고 판단합니다. 한신성의 장점이자 단점입니다. 이 캐릭터가 참 인간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남북 대사관 사람들이 생존을 위해 힘을 합치는 감동적인 스토리가 전개되지만, 김윤석은 남북 협력보다는 인간으로서 공감할 수 있는 지점에 주목하라고 설명했다. 그는 “오지에 남아있는 말이 통하는 유일한 두 무리가 만나서 모두가 함께 살기 위해 탈출하는 이야기”라고 영화를 설명하면서 “탈출 과정에서 참사관끼리 티격태격 싸우기도 하고, 뭔가를 진하게 주고받고 이런 것도 없다. 마지막 부분의 감동을 느끼는 것은 관객의 몫으로 두는 게 영화의 매력”이라고 말했다.영화 촬영에 얽힌 뒷얘기도 이날 인터뷰에서 털어놨다. 영화는 소말리아 현장을 그대로 살려내고자 모로코 현지에서 4개월 동안 촬영했다. 그는 긴장감이 폭발하는 후반부 카체이싱(자동차 액션) 촬영을 하면서 많이 고생했다고 했다. 특히, 구형 자동차에 책, 모래주머니 등을 달고 달리면서 자꾸 시동이 꺼져 애를 먹었다고 했다. “창문을 내리면 올라가지도 않고, 시트 밑에는 용수철이 튀어나와 있었다. 차가 막 달리면 모래주머니가 새서 차 안이 먼지 구덩이가 됐다. 미술·소품팀이 고생을 많이 했다”면서 “이런 게 다 굉장히 실감 나게 나왔다. 이 정도로 살벌하게 나올 줄 몰랐다”고도 했다. 류 감독과 배우 조인성은 앞서 시사회 때 “돼지고기를 먹을 수 없어 고생했다”고 밝힌 바 있다. 김윤석은 그러나 “모든 스태프와 배우들이 4개월 내내 삼겹살 이야기만 하던데, 나는 로컬 음식 탐방을 좋아해 지역의 유명한 음식인 타진과 쿠스쿠스를 오히려 즐겼다”고 말했다. 아프리카 지역이라 배우와 스태프들이 라면을 끓이는 전기냄비를 모두 가져온 것도 재밌는 일이었다. “밥 먹을 때면 다들 하나씩 전기냄비를 가져와 라면도 끓여 먹고 이것저것 다 끓여먹더라”며 웃었다. 현지에서 땀에 쩔어 있는 모습을 표현하고자 얼굴에 글리세린을 항상 바른 것에 대해서도 “글리세린을 항상 바르는데, 끈적거리고 냄새가 나 파리와 모기 들끓어 힘들었다”면서도 “그래도 영화 속에서 잘 표현이 됐다면 다행”이라고 소개했다. 김윤석은 배우이면서 영화 ‘미성년’(2018)을 연출하기도 했다. 직접 감독을 해본 그는 이번 영화에 대해 류 감독의 연출력을 높이 평했다. “사실 시나리오를 보고 (제작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거 무모한 도전 아니냐고 류 감독님에게 이야기했죠. 그런데 실은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유럽, 아프리카 각지에서 수백 명의 배우들을 캐스팅하고, 미술팀이 도시 전체를 세팅했는데, 그런 준비와 점검 등 제작 시스템 자체에 감탄했습니다.” 류 감독에 대해서는 “24시간 신발을 벗지 않는 것 같다. 크랭크인 이후 현장을 떠나지 않았다”며 “어마어마한 준비와 각 팀을 조각을 맞추듯 이어 맞추며 현장을 이끌어 가는데, 이건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다. 참 감탄스러웠다”고 엄지를 치켜들었다. 함께 한 배우 조인성에 대해서는 “영화 ‘비열한 거리’를 보면서 한번 만나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겉멋 안 부리고 진솔하게 연기를 한다 싶었는데, 만나보니 사람 자체가 원래 담백하더라. 상당히 좋았다”고 부연했다.
  • [문화마당] 신문읽기의 즐거움/유경숙 세계축제연구소장

    [문화마당] 신문읽기의 즐거움/유경숙 세계축제연구소장

    종이신문을 정기 구독해 본다는 사람을 만나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다시 보게 된다. 혹시 디지털 약자인가? 보기보다 연세가 좀 되셨나? 신문사에 아는 사람이 있어서 부탁받았나? 아니면 나처럼 신문에 대한 남다른 애정이 있는 사람인가 싶어 일단 그 사람이 궁금해진다. 내 신문읽기의 시작은 초등학교 시절이었다. 우리 학교의 선생님으로 계셨던 아버지는 학교에서 정기 구독하는 신문들을 죄다 모아 저녁마다 집에 가져오셨다. 학교 선생님들이 보고 난 신문은 나름대로 매일 색다른 흔적들을 남겼다. 누군가 자신이 필요한 기사만 가위로 오려간 신문, 신문을 가운데 두고 회의를 했는지 이것저것 지저분하게 메모가 돼 있는 신문, 배달음식 깔개로 쓴 듯 요리 국물이 너저분하게 떨어져 있는 신문 등 모양도, 상태도 가지각색이었다. 당시에는 신문에 어려운 한자가 많아 세심히 읽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우리 형제들은 그날 신문을 보고 선생님들이 짬뽕을 드셨는지, 짜장면을 드셨는지 점심메뉴 맞히는 게임을 했다. 신기하게도 그때의 ‘신문놀이’가 지금의 나에게 가장 소중한 자산이 됐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시작된 신문읽기 덕분에 많은 도움을 얻었다. 언젠가 다른 사업에 적용할 만한 아이디어, 우수 사례, 잘 몰랐던 해외 사례, 트렌드, 설득 논리와 핵심을 파고드는 카피 요령 등 20년간 신문을 스크랩한 파일이 지금껏 아이디어가 필요할 때마다 남몰래 꺼내 쓰는 보물 상자가 됐다. 늘 그런 건 아니지만, 일을 할 때 비교적 내가 제시한 아이디어가 채택될 때가 많았다. 사람들은 생각이 통통 튄다는 둥, 기발하다는 둥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제 와 고백하건대 실은 오랜 세월 신문에서 커닝한 내용을 시차를 두고 꺼냈을 뿐이었다. 편리한 디지털시대에 여전히 종이신문을 고집하는 이유는 또 있다. 일단 디지털 뉴스는 내가 접근하기 이전에 이미 다른 기준으로 편집된 형태가 많고 내가 자주 검색했던 알고리즘의 한계에 갇혀 미래의 내 정보환경을 더 좁게 가둔다. 반복된 나의 검색취향이 어떤 형태로 돌아올지 솔직히 겁난다. 미래의 나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분야를 궁금해할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반면 종이신문은 내 관심사가 아니라 세상의 관심사를 매일 아침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프린트까지 해서 현관문 앞에 놓아 준다. 마치 개인비서처럼. 신문으로부터 얻는 정보가치나 만족도는 매달 다르지만, 노력하지 않아도 매일매일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 이야기를 이토록 똑부러지게 브리핑해 주는 비서가 또 있을까. 그래서 한 달 2만원 안팎의 신문 구독료가 아깝지 않다. 특히 요즘처럼 과학기술이 급변하는 시기에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특성과 장점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흐름을 놓치고 싶지 않다. 레트로가 유행하고 한물 간 줄 알았던 상품들이 다시 인기를 모으는 것처럼 아날로그도 무조건적으로 소멸하는 것은 아닌데 그런 대중의 취향을 살피는 데는 신문만 한 게 없다. 요즘도 나는 신문읽기를 즐긴다. ‘꼰대’ 소리 들을까 봐 학생들에게 종이신문 읽으란 말은 못 하지만 노력 대비 얻는 게 많아서다. 요즘 학생들 표현을 빌리자면 ‘가성비 쩌는 투자’가 바로 신문이다. 20여년 전 직장생활이 전부였던 내게 세계일주라는 아이디어를 처음 줬던 것이 신문이었고, 책을 쓰는 데 필요한 멋진 제목 쓰기를 신문의 헤드라인을 보면서 배웠다. 신문이 매일 정리해 준 뉴스를 보면서 내 분야로 접목해 일 좀 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신문을 왜 읽냐고? 인생이 바뀌었는데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할까. 내 삶에 멋진 색깔을 넣고 싶다면 신문을 즐기자.
  • 고진영 ‘고진감래’… 7개월 쓰디쓴 골춘기 끝, 달콤한 우승 생일상

    고진영 ‘고진감래’… 7개월 쓰디쓴 골춘기 끝, 달콤한 우승 생일상

    카스트렌 1타차 따돌리고 통산 8승 일궈‘100주 여왕’ 내주고 한 주 만에 탈환 시동한국 女골프 7개 대회 무승 고리도 끊어김효주·박인비와 ‘도쿄 金 사냥’ 파란불고 “22일 에비앙 챔피언십 뛰고 도쿄로”‘골프 사춘기’를 겪으며 7개월 가까이 우승을 못했던 고진영(26)이 마침내 갈증을 풀었다. 생일을 이틀 앞두고 생일상을 푸짐하게 차린 것으로 도쿄 올림픽 청신호를 켰다. 고진영의 우승으로 한국 여자 골프의 7개 대회 연속 무승 고리도 끊었다. 고진영은 5일(한국시간) 미국 텍사스주 더 콜로니 올드 아메리칸 골프클럽(파71·6459야드)에서 열린 미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볼런티어스 오브 아메리카(VOA) 클래식(총상금 150만 달러) 최종 4라운드에서 버디 4개와 보기 2개를 묶어 2언더파 69타를 쳤다.최종 합계 16언더파 268타를 기록한 고진영은 마틸다 카스트렌(핀란드)의 추격을 1타차로 따돌리고 우승했다. 지난해 12월 CME그룹 투어 챔피언십 우승 이후 6개월 반만의 정상이자 투어 통산 8번째 우승이다. 올해 10개 대회에서 우승이 없던 고진영은 이 기간을 골프 사춘기에 비유했다. 버디를 잡으면 그다음 공의 바운드가 좋지 않거나 무엇인가 맞고 나가는 등 불운이 계속됐다. 스윙이나 공은 잘 맞고 퍼팅도 괜찮았는데 결과가 나오지 않으니 심리적으로 매우 힘들었다는 것. 이 때문인지 100주 동안 지켜오던 세계 1위 자리를 지난주 넬리 코르다(미국)에게 내줬다. 하지만 이번 대회 우승으로 사춘기 극복을 한 것 같다. 랭킹 포인트는 40점을 얻으며 세계 1위 탈환에 시동을 걸었다. 또 우승 상금 22만 5000달러를 받아 상금 7위(79만 1336달러)로 뛰어오르며 상금왕 3연패의 디딤돌을 놨다. 한국 여자 골프는 5월초 김효주(26)의 HSBC 위민스 월드 챔피언십 우승 이후 8번째 대회 만에 다시 LPGA 투어 정상에 섰다. 도쿄올림픽에 출전하는 4명 중 박인비(33)까지 3명이 시즌 3승을 합작하고 있다. 카스트렌에 1타 앞서 최종 라운드에 나선 고진영은 14번홀(파4) 티샷이 페어웨이에서 한참 벗어나 위기를 맞았으나 파를 지켜내며 위기관리 능력을 뽐냈다. 이정은(25)이 7위, 김효주와 김민지(24)가 공동 8위로 톱10에 올랐다. 넉 달 전 세상을 뜬 할머니가 생각나 울컥했다는 고진영은 “골프 사춘기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어떻게 하면 보다 업그레이드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면서 “10년 넘게 (하루) 18홀 이상 친 적이 없었는데 어제 32홀을 치며 체력 훈련을 많이 해야겠다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고진영은 22일 개막하는 메이저대회 아문디 에비앙 챔피언십만 뛰고 도쿄올림픽에 출전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에비앙 챔피언십에서 이것저것 시도를 해본 후에 일본으로 건너갈 생각”이라고 밝혔다.
  • “아빠가 통제하려 드는 건 10만% 분명” 스피어스 40년 만에 발언

    “아빠가 통제하려 드는 건 10만% 분명” 스피어스 40년 만에 발언

    “아버지는 절 통제하려고만 해요. 그 일을 좋아한다는 것은 10만% 분명해요. 하지만 이제 제 삶을 되돌리고 싶네요.” 친아버지와 후견인 지위 분쟁을 벌이던 미국 팝스타 브리트니 스피어스(39)가 23일(현지시간) 로스앤젤레스(LA) 카운티 고등법원과 화상으로 연결한 법정 진술을 통해 법적으로 완전히 독립하고 싶다는 뜻을 자신의 목소리로 밝혔다. 오는 12월에 만 40세 생일을 맞고 두 아이를 기르는 어머니지만 생전 처음 해보는 자기 주장이었다. 그녀는 13년째 부친 제이미 스피어스의 보호를 받아왔다. 진즉 독립했어야 할 나이에, 자신의 가정을 이루고도 재정적으로 독립하지 않은 것은 정신적으로 미숙하다는 것을 스스로 받아들인 것 아니냐는 지탄도 받았다. 팬들은 심리가 열리기 전부터 법원 밖에 모여 ‘브리트니를 해방하라(Free Britney)’ 집회를 열었다. 앞의 구호와 함께 ‘브리트니의 삶에서 나가’란 거친 구호의 플래카드도 눈에 띄었다. 법원 밖 시위대원 중에는 제니퍼 프레스톤이란 여성이 눈에 띄는데 원래 일간 뉴욕 타임스(NYT) 기자였다가 컬럼비아 저널리즘 스쿨 교수를 거쳐 NYT 온라인 뉴스 에디터가 됐다. 온라인에서도 같은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영국과 독일, 프랑스, 스웨덴에서도 집회가 열릴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스피어스 역시 최근 소셜미디어를 통해 “인생의 전환기에 있다”는 말로 법원 심리를 앞둔 각오를 다졌다. 미국에서는 본인이 직접 청해 법정에서 공개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토로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엄청난 진전이라고 평가했다. 어린 시절 가수로 데뷔한 딸을 보호한다며 제이미는 모든 것을 틀어쥐고 통제했기 때문이었다. 앞서 NYT는 “스피어스는 이전에 알려진 것보다 훨씬 더 일찍, 그리고 강하게 후견인 제도에 대해 반대 의사를 보였다”면서 2014년부터 시작됐다고 보도했다. NYT가 입수한 2016년 법원 조사관의 보고서에 의하면 그는 후견인 제도에 대해 “억압하고 통제하는 도구”라며 “데이트하는 사람부터 부엌 선반 색깔까지 모든 것을 제한한다”고 비판했다. 그녀는 이날 법정에서 “이것저것 따지지도 말고 이 후견인 제도를 끝내고 싶다. 이건 인권 유린”이라고 단언하면서 “이런 후견인 제도는 내게 좋은 일보다 해악만 끼친다. 난 삶을 누릴 자격이 있다. 일평생 일만 했다. 난 이삼년을 되돌릴 자격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난 누군가의 노예로 여기 있는 것이 아니다”면서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불행하고, 불면증을 겪고 있다. 나는 분노에 휩싸여 있고 매일 눈물을 흘린다”고 호소했다. 스피어스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듯 언성을 높이고 속사포처럼 발언을 쏟아내기도 했으며, “내 아버지와 측근들, 내 소속사는 감옥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브렌다 페니 판사는 스피어스가 법정 발언에 나서기까지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안다”면서 “앞으로 나와서 생각을 말해준 것을 치하하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후견인 지위 종결과 관련한 결정을 하기 전에 공식적으로 신청이 들어와야 한다며 구체적 결정을 내리지는 않았다. 스피어스는 1999년 데뷔하자마자 스타 반열에 올랐지만 파파라치와 가십기사의 단골 소재가 되며 약물 중독과 우울증을 앓았다. 갑작스레 삭발을 해 대중에게 충격을 줬고, 아이를 안고 운전하다 교통사고를 내 재활시설에도 들어갔다. 2008년 케빈 페덜린과 이혼하면서 두 아이의 양육권을 놓고 다투는 과정에 자연스럽게 제이미가 끼어들어 이 때부터 부친이 후견인으로 지명됐고 스피어스의 재산 5900만 달러(약 670억원)는 물론 의료와 세금 문제까지 관리했다. 스피어스는 지난해 8월 친부를 후견인 지위에서 박탈해 달라며 소송을 제기하고 새 후견인을 내세웠지만, 아버지의 반대로 법정 공방이 이어졌다. 제이미는 지난해 12월 CNN에 출연해 “소송 이후 브리트니와 한마디도 나누지 못했다. 나도 내 딸이 무척 그립다”며 후견인 역할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지난 2월 NYT가 13년째 친부에게 삶의 주도권을 빼앗긴 채 살고 있다는 내용의 다큐멘터리 ‘프레이밍 브리트니’를 제작해 공개하면서 더 거센 논란으로 이어졌다. 이 대목에서 떠오르는 궁금증. 왜 이제 와서야 스피어스는 자유를 되찾겠다고 나선 것일까? 무대로 복귀하고 싶은데 제이미의 손아귀에 있는 한 쉽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라고 영국 BBC는 분석했다. 그동안 조디 몽고메리란 상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았는데 제이미의 후견인 지위를 대신 그녀에게 부여할 만하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이게 사실이라면 그녀가 과연 하나의 인격체로서 독립할 만한 상황에 이르렀는지 재판부로선 판단하기 쉽지 않을 것 같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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