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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민회의企調委長 鄭東采의원

    국민회의총재인 金大中대통령은 16일 내각제 관련 발언으로 물의를 빚고 사의를 표명한 薛勳기조위원장의 사표를 수리하고 후임에 鄭東采의원을 임명했다.또 수석부대변인에 金忠一의원을 임명했다.
  • 국민회의 정책의장 張永喆의원

    국민회의총재인 金大中대통령은 17일 오전 청와대에서 한나라당 李會昌총재와 조찬을 겸한 단독회담을 갖고 경제회생과 정치개혁 등 국정 현안 전반과정국 정상화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金대통령은 이어 18일 오전 자민련 朴泰俊총재와 조찬 단독회담을 갖는다. 여야는 총재회담에서 경제회생과 민생안정을 위해 초당적으로 협력키로 하고 지난해 11월 총재회담에서 합의한 경제회생을 위한 초당적 경제협의기구를활성화하는 한편 실업대책기구를 구성하는데 의견을 모을 전망이다. 총재회담에서는 또 선거법개정 등 정치개혁 입법 일정과 남북관계,한·일어업협정 등 외교문제에 대한 협력 문제도 논의할 예정이다. 金대통령은 특히 동서화합을 위한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 도입의 필요성을역설하고 야당의 협조를 당부할 것으로 보인다.이에 대해 한나라당 李총재는 여권의 ‘야당파괴 및 정계개편 포기’를 거듭 요구하고 권력구조 논란을조기에 매듭지어야 한다는 견해를 피력할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회의 鄭均桓·한나라당 辛卿植사무총장은 15일 오전 국회에서 회담을가진 뒤 “총재회담에서는 정국안정,경제회생,안보외교 강화 등 제반 현안에 대해 광범위한 의견교환이 있을 것”이라며 “이번 회담은 여야간 신뢰회복의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金正吉청와대정무수석은 16일 한나라당 李총재와 자민련 朴총재를 각각 당사로 예방,총재회담 개최의 뜻을 전달할 예정이다. 朴承玖 ckpark@
  • [제2공화국과 張勉] (6) 尹潽善과의 갈등(上)/장면·윤보선

    1960년 8월19일 오후 1시24분 ‘張勉총리 인준’투표를 막 끝마친 민의원 본회의장에는 긴장과 흥분이 감돌았다.두번째로 총리 지명을 받은 장면이 인준에 성공해 취임할 것인가,아니면 그마저 실패해 정국이 계속 표류할 것인가. 1시37분 郭尙勳 민의원의장이 결과를 발표했다. “총투표수 225,가(可)에 117,부(否)에 107,기권 1.가가 정족수인 과반수이상이므로 가결된 것을 선포합니다.”4·19가 일어난 지 딱 4개월 만에 민주혁명 수행의 대임(大任)이 장면에게맡겨지는 순간이었다.총리가 된 장면은 곧바로 그를 지명해준 尹潽善대통령을 청와대로 찾아가 취임인사를 한다. 장면과 윤보선의 이날 만남은 유쾌해야 마땅한 자리였다.통합야당인 민주당을 창당한 지 5년 만에 ‘李承晩 독재정권’을 무너뜨리고 새 정치의 주역이 된 두 사람이었다.같은 당의 오랜 동지인 총리와 대통령은 ‘4·19정신’을현실정치에 구현하고자 서로를 격려하고 협조를 다짐했을 법했다. 하지만 둘 사이의 분위기는 어색하다 못해 냉랭하기까지 했다.‘총리 지명’을 둘러싸고 치열하게 전개된 민주당 신·구파간 갈등이 앙금으로 짙게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4월혁명으로 자유당정권이 무너진 뒤 정권을 맡을 정치세력으로는 민주당이유일했다.민심도 이를 인정해 7월29일 치른 민의원·참의원(상원)선거에서민주당은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민의원 219개 선거구에서 민주당은 무려 172석(78.5%)을 차지했다. 문제는 민주당 신·구파가 우열을 가리지 못할 정도로 팽팽한 의석 분포를이룬 사실이었다.따라서 신·구파 모두 내각책임제에서 국정을 실질적으로책임지는 국무총리를 차지하려고 암투에 들어갔다. 그즈음 민주당 지도층의 면면을 보면 장면이 단연 으뜸이었다.그는 56년 선거에서 부통령으로 선출됐고,‘3·15선거’에서는 자유당의 부정 탓에 낙선했지만 민주당의 대표주자였다.게다가 59년 11월부터 당수인 대표최고위원을맡아왔다. 반면 구파쪽은 조병옥 서거 후 명확한 리더가 없었다.당시 구파였던 高興門(국회부의장 역임,98년 작고)은 회고록에서 다음과 같이 술회했다. “조병옥이 없는 민주당은 곧 신파인 장면의 천하가 될게 분명해 보였다.민주당 내에서 국민적 인기로 보아 그에 맞설 수 있는 인물은 없었다.평소 말이 없는 윤보선과 고집이 센 金度演이 있었으나 장면의 맞수는 아니었다.”국민 여론이나 당내 인식이 이같았는데도 구파는 윤보선을 대통령으로,김도연을 총리로 밀어 두 자리를 독점한다는 전략을 세웠다.그 까닭은 국회 부의장선거에서 표대결로 신파를 누른 적이 있어 자신을 가진 데다 구파 내 세력이 윤보선·김도연으로 양분돼 양쪽을 함께 배려해야 했기 때문이다. 반면 신파는 윤보선을 대통령으로 추대해 구파에게 일단 한 자리를 준 뒤 총리는 자파의 장면이 차지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8월12일 열린 민·참의원 합동회의에서 윤보선은 208표(재석 259명)를 얻어당선된다.이제 관심은 윤대통령이 누구를 총리로 지명할 것인가에 쏠렸다.신파의원들이나 국민 대다수는 ‘설마 구파가 총리까지 차지하겠느냐’는 막연한 기대를 품었고 구파 내에서도 鄭憲柱·閔寬植의원 같은 이들은 정치 도의를 내세워 독점에 반대했다. 8월16일 윤대통령은 김도연을 총리로 지명한다.통보를 받은 민의원의장 곽상훈은 장면을 지명하리라는 믿음이 깨지자 즉시 청와대로 쫓아가 항의한다.윤대통령의 해명을 들은 그는 “아마 김도연씨는 안 될거요” 라고 말하고는물러나와 김도연의 총리 인준을 적극 방해한다(회고록에서 발췌). 김도연은 다음날 총리 인준 투표에서 정족수보다 3표 모자라게 득표해 인준에 실패한다.8월18일 윤대통령은 장면을 총리로 2차 지명했고 장면은 다음날 인준을 받는 데 성공한다. 60년 8월 민주당의 선택은 마땅히 장면이어야 했다.그런데도 당내 파벌의 이익을 앞세워 김도연을 1차로 총리 지명하는 바람에 신·구파의 갈등은 깊어졌다. 그렇다고 신·구파 갈등이 장면총리와 윤보선대통령에게 그대로 옮겨갈 이유는 없었다.내각제 하에서 대통령은 당적(黨籍)을 떠나 국내정치에 초연하게끔 자리매김돼 있었다. 하지만 윤대통령은 이후에도 구파의 지도자처럼 행세하며 장면총리와 팽팽한긴장관계를 유지한다.그리고 그 긴장은 정치불안의 주요소로 작용한다. 이용원- 張勉과 尹潽善 장면과 윤보선은 제2공화국의총리와 대통령으로 만날 때까지 외형상 비슷한 삶을 살아온 듯 보인다.둘 다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일제강점기에 해외유학을 다녀오고 광복 후에는 정치인으로서 차근차근 위상을 높여나간다.그러나 그같은 과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근본적인 차이가 있음을 알게 된다. 장면은 인천세관 간부인 張箕彬의 맏아들로 출생해 21살때 카톨릭측의 주선으로 도미,뉴욕 맨해튼대에서 교육학·종교철학 등을 공부한다.귀국해 잠시카톨릭 평양교구 일을 보다 서울 동성상업학교에서 교직을 시작,그 학교 교장으로서 광복을 맞는다. 윤보선은 구한말 중추원 의관을 지낸 尹致昭의 장남으로 충남 아산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성장한다.본인말고도 6촌 이내에 집권당 당의장서리,장관,서울대총장 등 장·차관 이상만 13명이 나온 대표적인 명문가 출신이다.영국 에든버러대에서 고고학을 배웠다. 둘은 1948년 제헌의원 선거에 출마하지만 장면만 당선된다.윤보선은 54년 3대 의원 선거때 비로소 국회에 진출한다. 대한민국이 출범하자 장면은 UN총회 한국수석대표,초대 주미대사,제2대 국무총리를 잇따라 하며 건국의 기초를 닦는 데 큰 공을 세운다.이 기간 윤보선은 4대 서울시장,2대 상공장관을 지내지만 각각 재임기간이 1년도 안돼 물러난다. 두 사람은 55년 출범한 민주당에서 한식구가 된다.장면은 처음부터 최고위원 5명 가운데 하나였고 신파의 지도자였다.56년 부통령으로 당선된 데 이어 59년 전당대회때는 대통령후보 경쟁에서 조병옥에게 지지만 대표최고위원 선출에서는 조병옥을 누른다.윤보선은 이 대회에서 조병옥의 구파 몫을 이어받아 처음으로 최고위원이 된다. 60년 8월 제2공화국이 출범할 때까지 정치적인 경력에서 장면은 단연 윤보선을 앞선다.하지만 본질적인 차이는 다른 데 있다. 장면은 삶의 어느 시점에서 무슨 일을 했건 ‘성실하고 근면했다’는 점에이의를 다는 사람은 없다.반면 윤보선은 달랐다.이는 66년에 발표한 회고록(‘사실의 전부를 기술하다’에 수록)에서 스스로 밝힌 심경을 보면 명확하게 드러난다. 윤보선은 상공장관에 취임해 “업무를 거의 파악한 서너달 후엔 벌써 입맛이 떨어져 버렸다”고밝혔으며,국회에 진출해 원내총무를 맡고는 “사임을 해도 안받아줘 병 난 것을 기화로 부산에 내려가 요양하며 겨우 수리시켰다”고 회상했다.심지어 대통령 시절 청와대를 찾은 민원인들로부터 들은 여러가지 하소연 내용을 설명하고는 “이같이 되풀이되는 고통은 하루빨리 청와대를 떠나야겠다는 생각만 굳혀줄 뿐이었다”고 술회했다. 그러던 그가 5·16쿠데타 후에는 애매모호한 태도로 열달 동안 대통령직을유지한다.청와대를 떠난 뒤 반(反)朴正熙 투쟁의 선봉에 서지만 박정희 사후 또 한차례 변신한다.全斗煥정권을 인정하고 87년 대선에서 盧泰愚를 지지한 것이다. 이같은 윤보선의 정치역정을 두고 학자들은 ‘명사(名士)정치’의 한 행태로 풀이한다.劉載一 대전대 정외과교수는 “명사정치의 특징은 시대적 과제를고민하기 보다 권력 획득,품위유지에 더 집중하는 데 있다”면서 “따라서명사 정치인들은 종종 기회주의적 속성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비슷한 궤적을 걸은 듯한 장면과 윤보선의 삶에는 이처럼 본질적인 차이가있었다.이는 제2공화국 붕괴의 책임을 재조명할 때 필히 고려해야 할 대목이기도 하다. 이용원
  • 李노동 현안보고 위해 주1회꼴로 청와대 방문

    李起浩노동부장관의 청와대 발길이 잦아졌다.민주노총의 노사정위 탈퇴로인한 노·정 갈등과 실업률 급등 등 현안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金大中대통령은 실업문제와 노사관계에 각별한 관심을 갖고 있다.金대통령스스로도 토로했지만 IMF체제 이후 구조조정의 여파로 실업자가 증가하는 데 대해 가슴 아파하고 해결책 마련을 위해 고심하고 있다.따라서 李장관이 자주 金대통령의 부름을 받는 것은 그만큼 어려운 고비를 넘기고 있다는 이야기다.李장관이 金대통령을 독대(獨對)해 보고하고 직접 지시를 받는 ‘주례보고’는 지난해 4월부터 시작돼 11월까지 매주 계속됐다. 그 후 실업률이 감소추세로 돌아서는 등 진정 기미를 보이면서 올 1월까지격주로 바뀌었다. 그러나 대졸자 등 취업인구가 한꺼번에 쏟아지는 등 계절적 요인으로 실업자가 200만명에 육박하면서 지난달부터 수시보고로 다시 강화됐다.이달만 해도 11일까지 두차례 보고가 있었다.다음 보고는 17일로 예정돼 있다. 金대통령에게 ‘주례보고’를 하는 인사는 그다지 많지 않다.정치권 인사로는 金鍾泌국무총리와 朴泰俊자민련총재,趙世衡국민회의총재권한대행 등이 있으며,李鍾贊국가정보원장은 업무의 특성상 주례 및 수시보고한다.각료로는李揆成재경부장관과 李장관이 있고,최근 金元基노사정위원장이 추가됐다. 보고형식은 5분 보고,5분 지시,20분 토론방식으로 진행되는 것으로 알려졌다.金重權비서실장이나 金有培복지노동수석이 배석한다.칭찬과 격려가 있기도 하지만 매서운 질책도 뒤따르는 것으로 전해졌다.
  • 총재회담 뜸들이기 ‘場外신경전’

    총재회담을 앞두고 여야의 장외 ‘신경전’이 누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이에 따라 지난 주까지만 해도 이번 주에는 성사될 것으로 보이던 총재회담이 늦춰질 전망이다.여야는 여전히 “가급적 빠른 시일안에 연다”는 원칙만 거듭 강조한다.하지만 여러 정황으로 볼 때 다음 주로 넘겨질 공산이 크다. 주말을 넘기고도 여야간 조율이 신통치않자 청와대도 한 발 뺐다.朴智元대변인은 8일 “청와대로서는 여야 총재회담을 주중에 꼭 하도록 서두르지는않는다는 입장”이라고 ‘뜸’을 들였다.朴대변인은 이어 “야당이 총재회담의 필요성을 인정하고,또 필요하기 때문에 열리는 게 바람직하다”고 전제,“아직 당(국민회의)에서 진척상황에 대한 보고가 없으나 건의를 해오면 수용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민회의 鄭均桓사무총장도 “한나라당이 급할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나 우리 역시 조급해 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이 여권에 요구하고 있는 것은 크게 세 가지다.▒야당파괴 및 정계개편 중단 ▒국회 529호 사건 시인·사과 및 재발방지 ▒‘총풍(銃風)사건’ 고문을 파헤치기 위한 특검제도입 등이다.야당의원에 대한 사정(司正)을 중단하고,나아가 ‘세풍(稅風)사건’의 종결을 요구하고 있음도 물론이다.徐相穆의원의 체포동의안 건은 세풍사건과 함께 일단락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같은 현안의 ‘일괄타결’을 요구하고,총재회담 뒤 발표할 합의문에도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는 게 한나라당의 기본 전략이다.한나라당이 이처럼 강하게 나오는 것은 총재회담의 ‘모양새’와 ‘득실’을 저울질한 결과다.“밥만 먹고 사진이나 찍는 총재회담은 하지 않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그러나 총재회담이 무산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李會昌총재는 오후에 열린 한나라당 의총에서 “총재회담이 국정의 모든 현안을 논의할 수 있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면서 “총재회담으로 경색정국을 풀어야 한다는데는 이견이 없다”고 강조해 총재회담 의지를 거듭 피력했다. 吳豊淵 poon
  • 여권, 3·30 재보선 “한곳도 양보못해”

    구로을과 경기시흥 재보선과 안양시장의 보선 등 3·30 재보선을 앞두고 여권이 ‘윈-윈 전략’을 가다듬고 있다.이번 선거가 현정부의 중간평가 성격이 짙고 내년 총선까지의 정국 주도권을 가늠한다는 점에서 여권은 공동전선 구축으로 필승체제를 다지는 분위기다.야권이 후보정리를 못하고 비틀거리는 틈을 타 일찌감치 앞서겠다는 전략이다. 양당은 연합공천 원칙을 견지한다는 차원에서 조만간 발족될 3개지역 선거대책위를 가급적 국민회의·자민련 공동위원장 체제로 구성한다는 방침이다. 이 때문에 내각제를 놓고 마찰을 빚고 있는 양당은 오는 12일쯤 공천장 수여식을 겸한 공동 출정식을 갖는다.13일부터 시작되는 공식 선거운동에 앞서 지도부는 물론 하부조직의 양당공조를 독려한다는 차원이다.각 선거구마다50∼60%에 이르는 호남·충청표 결집을 바탕으로 현정부의 개혁드라이브를이어가면서 초반부터 승세를 굳힌다는 전략이다. 구로을 여권 후보로 낙점된 국민회의 韓光玉 부총재는 ‘정치거목(巨木)’의 이미지에 승부를 걸었다.노사정위원장과민화협의장으로서 경제회생과 남북문제 해결에 물꼬를 텄다는 점을 집중 부각,지역개발의 적임자로서 표심을 파고들 계획이다. 선거·조직 전문가인 朴光泰 제2정조위원장이 선거 실무총책을 맡아 당의총력지원을 뒷받침할 것으로 보인다. 경기시흥에 자민련 간판으로 나설 金義在 전보훈처장은 환경전문가와 ‘민생해결사’로서 승부수를 던질 계획이다.환경관련 박사 학위를 가진 金전보훈처장은 최대 선거쟁점인 시화지구 오염 문제에서 전문가의 식견을 바탕으로 해결책 위주의 선거공약을 제시한다는 복안이다.서울시 부시장과 3개 구청장을 역임했다는 점도 민생해결사로서 상대적 우위를 점할수 있다는 판단이다. 반면 안양시장을 놓고 아직도 양당 신경전이 치열하지만 내심 국민회의쪽으로 기우는 분위기다.李奭鎔 전시장에게 93표차로 석패한 李俊炯 경기만안지구당위원장이 재기를 다지는 가운데 愼重大현 정무부시장도 국민회의 옷을입고 출마할 의향을 비추고 있다. 吳一萬 oilman@
  • [오늘의 눈] 교포사회에도 변화의 바람

    국민의 정부 1년을 평가하는 교포들의 목소리는 다양했다.“추락 경제를 회생의 반석에 올렸다”고 평가하는가 하면 “경제개혁은 성공했는데 정치개혁은 이루지 못했다”는 평가도 나왔다. 대체적으로는 “국민의 정부가 경제위기를 잘 극복해 위기를 넘겼다”며 평가하는 쪽이 다수였다.교포들 가운데는 의외로 金大中대통령 정부의 대북정책을 평가하는 이도 적지않았다.이들은 “대북정책이 전향적이며 일관적으로 추진되고 있다”면서 DJ정부의 ‘햇볕정책’에 큰 관심을 나타냈다. 27일 워싱턴과 뉴욕에서 열린 趙世衡국민회의총재권한대행의 ‘교포지도자초청간담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워싱턴간담회에서 이곳 문인협회 한 관계자는 “추락 경제가 반전되고 있다는 이곳 언론의 보도에 눈시울이 붉어지기까지 했다”며 ‘국민의 정부 1년’을 되새겼다. 교포들의 ‘후한 정부 평가’는 “이전 권위주의 정부에서도 흔히 있었던일이 아니냐”고 반문할는지 모른다.하지만 기자가 교포들의 모임을 여러차례 지켜보며 교포들의 평가가 진솔한 것이라는 생각을갖게 됐다. 우선 교포사회 구성·모임에 변화가 일고 있었다.과거처럼 끼리끼리만 모이는 ‘악마의 주술’ 같은 지역감정의 양상은 찾아보기 힘들었다.워싱턴간담회 관계자는 “출신 지역을 떠나 모이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고 전했다. 굳이 말하자면 국민회의 대표단 일행 ‘환영준비위원장’도 영남출신이었다. 참석자가 당초 초청 대상 50명의 두배가 넘은 것도 이전에는 못보던 풍경이었다.지역 한인회회장을 지낸 黃玉性씨는 “이전에는 한 사람에게 두세차례전화를 걸어도 잘 나와주지 않았다”며 모임의 패턴 변화를 실감했다는 반응이었다.국민의 정부에 대한 교포들의 기대와 관심을 반영한 듯했다. 간담회에서는 또 껄끄러운 질문들이 마구 쏟아졌고 각론에 있어서는 정부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적지않았다.“평통위원 선정을 공관측이 자의적으로 한다” “정부가 훈장을 남발하는 것같다”“정부 민원창구의 답변이 불성실하다”거나 세부적 교포정책을 질책하기도 했다.행사 주최자들도 이전의 정부가 그랬던 것처럼 질문할 사람이나 순서를 미리정하지 않았다.국민의 정부1년.바깥 교포사회에도 변화의 바람은 불고 있었다.유민 정치팀차장 /뉴욕에서 rm0609@
  • 「3·1운동-臨政수립 80돌」주요 기념행사

    오는 3월 1일은 일제에 맞서 세계만방에 ‘조선독립’을 선포하고 만세운동을 펼친 지 80년이 되는 날.이날을 맞아 정부 및 자치단체,관련 단체·기관들은 다양한 기념행사를 갖고 백척간두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하려고 독립선언을 선포했던 3·1정신을 되살려 제2의 건국운동으로 계승할 것을 다짐한다. 이날 경복궁 덕수궁 창경궁 등 전국의 고궁(창덕궁 제외)과 능·원,현충사,칠백의총 등이 무료로 개방된다. 3월 1일 오전 10시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는 3부 요인,광복회원 및국가유공자 단체장,정당대표,시민대표 및 청소년 등 4,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국가보훈처 주관으로 기념식이 열린다. 상오 11시 서울 남산 국립국장 입구 공원에서는 광복회(회장 尹慶彬) 및 3. 1독립운동기념탑건립위원회(위원장 李壽成) 주관으로 3.1독립정신을 기리기위해 21억2,000만원의 국민성금으로 건립된 높이 19.19m(1919년 상징)의 기념탑이 제막된다.이어 33인 유족대표와 광복회원 등 4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3·1운동 희생선열 합동 추모제전이 거행된다. 서울시는 낮 12시 서울 종로구 종로2가 보신각에서 3·1운동의 주역이었던독립유공자 대표와 후손 등을 초청,타종행사를 갖는다. 만세운동 재현행사는 충남 천안시 아우내장터를 비롯,경기도 화성군 발안장터,강원 횡성군 3·1공원,제주 북제주군 조천만세동산 등 전국 10개 시·도15개 지역별로 3월1일부터 4월까지 80년전 만세운동이 일어난 날에 맞춰 펼쳐진다.독립운동서 낭독,햇불시위,봉수제,봉화제 등의 행사는 물론 길놀이,마당굿,대동놀이 등 민속행사가 함께 펼쳐져 애국심과 공동체의식을 함양하는 축제의 한마당이 될 전망이다. 특히 80년전 ‘조선독립만세’를 앞장서 외쳤던 종교지도자들은 2월부터 8월까지를 ‘범종교 3·1정신 현창(顯彰)기간’으로 정하고 ‘제2의 3·1운동’을 펼친다. 국내 7대종교지도자들의 모임인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는 우선 3월1일 80주년 기념식을 80년전의 모습대로 성대히 꾸민다.각 종단 관계자들은 견지동조계사,저동 영락교회,경운동 천도교 중앙대교당,원불교 원남교당,천주교 명동성당,명륜동 성균관,사직단 장충단등에서부터 가두행진을 하며 종로3가탑골공원에 집결,오전 11시 팔각정 앞에서 기념식을 갖는다.기념식에서는 기미독립선언서와 ‘제2의 3·1선언서’가 낭독되고 각 종단의 3·1운동 80주년 메시지도 발표된다.‘극단 모시는 사람들’과 염광여상 취주대의 선열 추모공연과 김덕수패의 사물놀이도 펼쳐진다. 이날 정오 전국의 사찰과 성당,교당,교회,향교 등에서도 일제히 ‘제2의 3·1선언서’를 낭독하는 한편 전국 200여곳에 종단별 가두홍보대를 설치,3월 1일을 전후한 3∼4일 동안 대국민 알림운동을 전개한다. 종교지도자협의회는 또 3·1독립정신을 기리는 기념조형물을 제작,오는 27일 ‘기미독립선언서’를 인쇄했던 서울 종로구 수송동 보성사(普成社) 터에서 제막식을 갖는다. 이밖에 3·1정신 계승을 위한 범종교인 학술발표회를 비롯,청소년 국토순례,연극 ‘우리로 서는 소리’ 공연,3·1정신 계승방안 공모,3·1정신 현창도서 간행,3·1정신 현창미술전시회 등의 행사가 잇따라 열린다. 이어 4.13 임시정부수립 기념일을 맞아 4월 13일 서울 및중국 상해,중경에서는 제80주년 기념식 및 학술토론회 등이 열린다. 4월11일∼17일 7박8일간의 일정으로 해외거주 독립유공자 후손 및 사료연구위원 등 30명을 국내로 초청,기념식 및 학술회의를 개최한다.
  • 국회환란특위 국정조사결과 보고서(요지)

    국회 ‘국제통화기금(IMF) 환란조사 특위’ 보고서작성 소위는 12일 국정조사 결과보고서 초안에 대한 검토작업을 벌였다.다음은 초안 요지.▒경제위기 발생과정 97년 1월 한보그룹이 부도를 낸 데 이어 삼미 진로 대농 기아 등 대기업 연쇄부도가 발생,금융기관의 자본회수가 시작돼 자금난이 가중됐다.많은 기업들이 흑자도산에 직면하고 중소하청기업의 연쇄부도를 야기하는 등 ‘기업위기’가 발생했다.대기업 연쇄도산으로 금융기관 부실채권이 급격히 증가했으며 일부 금융기관은 유동성 부족에 직면하는 등 금융불안이 가중됐다. 97년 7월 태국 바트화 폭락에 이은 동남아 위기가 확산되면서 외국 금융기관들이 우리나라 금융기관의 대외지불능력을 믿지 못하게 됐다.97년 하반기부터 대출회수가 본격화돼 외화부도 사태에 직면했다.기아사태 처리가 지연돼 정부의 위기 대처능력에 대한 대외신뢰가 떨어졌다.▒경제위기의 원인▩관치경제와 정경유착=민간경제주체의 정부 의존이 심화되고 기업 및 금융기관의 경영혁신 노력이 미흡한데다 공기업 등 정부부문의비효율성이 심화돼 고비용 저효율 경제구조가 고착됐다.정치권의 개입이 빈번해지면서 정경유착과 책임소재 불분명에 따른 공무원의 무사안일주의가 만연,종금사 감독부재 등 정부의 역할이 소홀해졌다.▩기업의 부실화=대기업들은 외형 위주의 차입경영과 선단식 경영을 지속해비효율적인 자본투자와 금융비용 부담으로 재무구조가 불건전해지고 계열기업간 상호지급보증이 크게 늘어 계열기업 전체의 부도위험이 증가했다.▩금융기관의 부실화=관치금융으로 특정기업에 대한 대출이 급격히 증가,금융기관의 자산건전성이 나빠졌고 외부압력의 작용으로 기업의 중복과잉투자및 지나친 차입의존을 사전에 견제하지 못했다.▩국제수지의 적자증대=정부의 수출진흥책 부재와 맞물려 경상수지 적자가지속됐다.특히 93년 이후 일본 중국 대만 등에 비해 원화가치만 높은 수준을 유지해 가격경쟁력이 약화되면서 경상수지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외채증대와 외채관리 부실=金泳三정부 출범 당시 428억달러였던 외채규모가 97년 11월 말 1,569억달러로 증가했고,기업들의해외 현지금융을 포함한총외채는 2,100억달러를 넘었다.이 중 63%가 만기 1년 이내의 단기외채여서외채구조도 나빴다.▩외부적 원인의 작용=97년 10월의 홍콩 주가 폭락 이후 한국의 외환위기 발생 우려가 확산돼 신용등급이 하락되고 외국의 투자비중 축소,달러화 환수등이 환란을 재촉했다.▒정책의 실패▩원화의 고평가=96년 경상수지 적자가 237억달러에 이르렀으나 자본시장 개방을 추진,자본수지 흑자를 통해 환율상승(원화가치 하락)을 억제하는 등 환율관리에 실패했다.97년에는 원화의 평가절하 기회를 놓쳐 외환위기를 방지할 수 있는 기회를 잃었다.▩외환보유고의 소진=97년 1월 한보사태 이후 외환수급 불균형이 심화됐으나 환율방어를 위해 달러를 쓰면서 외환보유고가 97년 1∼3월 46억달러가 줄었다.환율변동폭 확대 및 시장개입 자제 등을 통해 환율상승 압력을 수용할 필요가 있는데도 정부는 무리하게 환율을 방어하려고 달러를 소모했다.97년 12월 18일에는 가용(可用) 외환보유고가 39억달러로 급감했다.▩금융감독의 소홀=국제결제은행(BIS)기준자기자본비율 등 금융기관의 건전성에 대한 평가기준을 국제기준보다 완화하거나 유가증권 등 고위험 자산에대한 투자제한 등 건전성 감독기준이 없었다.종합금융사 등 제2금융권의 경우 건전성 감독기준도 제대로 돼 있지 않았다.▩종금사 인허가 남발 및 감독소홀=30개의 종금사가 난립,부실 및 파산의 원인이 됐다.정부는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투자금융사(단자사)들이 종금사로전환하는 것을 변칙적으로 허용했다.불법 로비 없이는 전환이 이뤄질 수 없었던 것으로 판단된다.재정경제원(현 재경부) 감독책임자들이 종금사에 대한 감사를 허술히 했다.▩조급한 대외개방 정책=96년 정부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을 성급히 추진했다.해외여행 및 해외유학 급증,사치성 소비재 수입의 증가,과소비 조장 등으로 외환위기 발생의 요인이 됐다.OECD 가입조건으로 추진된 자본자유화 확대와 외환거래 자유화로 금융기관 및 기업의 해외차입이 급격히 늘었지만 외환보유고를 충분한 수준으로 확보하는 노력이 미흡했다.▩뒤늦은 위기인식과 정책 실기=97년들어 대기업 연쇄도산과 금융기관 부실화에 따른 금융위기를 정부가 인식하지 못했고 근거없는 낙관론에 집착,기아사태 처리가 장기화되는 등 위기대처 능력이 없음을 여실히 드러냈다.정부의 초기 대응 실패의 주요 원인은 ▦정책담당자의 시장상황 인식 등 전문성부족 ▦姜慶植전경제부총리,金仁浩전청와대경제수석,李經植전한국은행총재 등경제정책 책임자들의 실력부족과 안이한 판단 ▦金泳三전대통령의 국정파악능력 부족 ▦金전대통령에게 국가부도 위기의 위험성에 대한 늑장 보고 및사후대책의 혼선 등 국가 위기관리 체제의 미비 등을 꼽을 수 있다. IMF행 한달 정도 전에 위험성을 느꼈으나 金전대통령에게 보고도 하지 않았다.金전대통령이 외환위기의 심각성을 인식한 것은 97년 11월 10일이었다.경제부총리나 경제수석 등에 의해 보고받은 것이 아니라 洪在馨전경제부총리의 전화를 받고 처음 알게 됐다.특히 재경원은 문서로 金전대통령에게 국가 부도위기의 위험성을 보고하지도 않았다.외채상환능력을 상실했지만 외환보유고가 어느정도 있었던 10월 중에 정부가 IMF와 협상을 시작했더라면 협상조건에서 유리한 입장 확보가 가능했을 것이다.▒국정운영시스템의 결함▩국가위기관리체제의 결함=정부내에 위기발생 가능성을 사전에 감지하는 조기 경보체제가 없었다.金전대통령이 비공식적인 조언을 통해 국가 경제위기를 처음으로 감지한 뒤에야 경제부총리가 보고(97년 11월 14일)했다.▩정부조직구조의 문제=金泳三정부는 경제기획원과 재무부를 통합,재경원을출범시켜 일사불란한 정책의 수립을 꾀했으나 견제와 균형이 작동할 수 있는 여건을 봉쇄,재경원장관 등 소수 정책책임자들이 독주했다.특히 국제금융에 대한 정부의 관리와 대응이 필요했지만 재경원 국제금융 담당국을 축소하는 등 정부조직 개편이 불합리했다.금융감독 권한이 재경원,한은,은감원,증감원,보험감독원,신용관리기금 등으로 분산돼 체계적 감독이 이뤄지지 않았다.▩정책담당인력의 전문성 취약=경제위기를 위기 발생 1개월 전에야 겨우 알았다는 姜전부총리의 증언이 사실이라면 당시 그를 보좌하던 전문 공무원의전문성과 판단력이 부족하다고 볼수 있다.▒경제위기의 책임▩정부 책임=정부는 정책의 투명성 및 일관성의 부재,만성적 경상수지적자방치 및 환율정책의 실패,단기외채 누적 방치 등 외채관리의 실패,관치금융의 지속,금융감독의 소홀,기업의 중복·과잉투자 방치 등의 정책적 잘못을범했다.▩기업의 책임=국내외적 경쟁 심화에도 전문화를 통한 경쟁력 강화보다는 차입에 의존한 사세확장 등 외형확대 위주의 차입경영을 지속한 것을 비롯,중복 과잉투자,경영투명성의 미흡 등의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금융기관의 책임=편중대출에 따른 위험 증가를 사전에 예방하지 못한데다수익성을 무시한 무분별한 외형성장을 추구하는 등 책임경영체제를 이루지못했다.▩정치권의 책임=정치권이 은행장 및 정부 고위관리의 선임 등에 관여해 정경유착을 초래했다.정치권의 필요에 따른 특정지역 대형산업 투자 등 지역이기주의를 조장했다.기아사태 처리지연 조장,경직적 노동시장 개선을 위한 노동법 개정의 당리당략적 추진,금융개혁입법의 무산 등 대외신인도 추락의 계기를 제공했다.▩국민의 책임=90∼96년 무분별한 임금인상을 요구,일본의 6배,대만의 2배에 달하는 급속한 임금상승으로 이어졌다.고비용 저효율 경제구조의 한 원인이다.사치성 과소비 등으로 외화를 낭비해 경상수지 적자 및 외채누적의 원인을 제공했다.▒부도발생 원인▩외부차입에 의존한 무리한 기업확장=기아특수강 기산 등 자동차 외 업종에서 무리한 차입투자를 강행했다.97년 5월 기준 그룹의 총차입금 9조4,000억원 중 47.8%인 4조5,000억원이 제2금융권으로부터 빌린 것이다.▒자금조달의 어려움 97년 대기업 연쇄부도로 인한 자금시장 경색으로 자금난이 가중됐다.▦李信行전기산사장이 94년 9월부터 97년 7월까지 총 24억9,000만원의 비자금을 조성한 사실이 확인됐다.정치권 로비 등의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91년부터 97년까지 기아의 총 분식결산 규모는 4조5,736억원에 이르며 金善弘전회장은이같은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증언했다.▦金전대통령은 97년 9월 4일 한 행사장에서 카폰으로 姜전부총리에게 기아를 부도내지 말도록 지시,대통령의뜻에 따라 기아처리가 지연됐음이 확인됐다.▒정치권 로비 종금사 인허가 과정에서 정치자금이 제공됐다는 의혹이 제기됐으나 洪在馨전부총리는 “대선 등 정치적 문제와는 관계가 없었고 청탁이나 압력도 없었다”고 증언했다.94년 전환된 9개 종금사중 4개사가 부산·경남지역에 편중됐다는 지적이 제기됐다.▒무더기 전환의 문제점 시장규모를 감안하지 않은 채 2차에 걸쳐 24개 종금사를 무더기 전환해줘외화차입 등 과당경쟁을 유발했다.▒만기불일치에 대한 대처 미흡 단기외채를 빌려 장기 설비투자 자금으로 운용하는 등 만기불일치의 문제가 있었지만 정부의 적절한 대응조치가 없었다.▒주요관련사항 당진제철소 투자비 중 노무비로 과다 계상된 7,332억원이 최소 비자금 규모로 판단되나 鄭泰守전한보그룹총회장은 ‘비자금이 아니라 합법적으로 증빙처리할 수 없는 부분을 노임으로 처리한 것뿐’이라고 답변했다.그러나 이자금은 음성적인 비자금 등을 위한 은닉자금으로 사용됐을 것으로 판단된다.92년 대선을 전후해 鄭전총회장은 92년 12월 12일 하얏트호텔에서 당시 金泳三후보에게 100억원을 수표로 직접 전달하는 등 모두 150억원을 전달했다고시인했다.▒PCS사업 인허가에서 나타난 문제점▩심사기준의 변경에 따른 공정성 문제=사업자 선정과정에서 당초 심사기준이 변경되면서 LG텔레콤과 한솔PCS가 사업자로 선정되는 혜택을 받아 엄격하고 공정해야 할 심사기준의 공정성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과잉중복 투자로 인한 낭비=이동전화시장 규모에 비해 PCS사업자를 과다선정,전국단위의 5개 사업자가 과당경쟁했다.기지국의 공용화를 위한 정책적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 기지국 설치 등에 있어 과잉투자를 초래했다.▒‘사직동팀’의 불법 계좌추적 金相宇 전 은행감독원 검사6국장과 朴在穆 전 경찰청 조사과장에 대한 증인신문과정에서 사직동팀이 계좌추적을 불법적으로 행한 사실이 확인됐다.국민회의가 창당된 95년 10월쯤부터 대선이 임박한 97년 8월까지 당시 金大中국민회의총재의 친인척계좌(소위 ‘DJ비자금계좌’)를 추적했다.이 계좌추적은 법원의 영장 없이 은감원과 증권감독원의 직원을 활용해 불법적으로 이뤄졌다.당시 청와대 비서실의 裵在昱사정비서관이 사직동팀을 지휘했다.97년 10월 7일 당시 신한국당 姜三載사무총장이 발표한 ‘DJ비자금계좌’와 관련,朴在穆전과장은 ‘발표내용이 우리가 팀을 동원해 조사한 내용과는 상당히 달랐다’고 증언했다. [정당팀]
  • 민화협 후원회 결성식

    민간통일기구의 구심점 역을 자임하는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상임의장 韓光玉)이 27일 오후 각계 저명인사들로 후원회 결성식을 가졌다. 후원회 결성식에 이어 첫 후원회 행사도 趙世衡 국민회의총재권한대행,李富榮 한나라당총무등 각계 인사들이 대거 참석한 가운데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렸다.후원회장으로 추대된
  • “지역감정 악용세력 不容”金대통령, 거듭 강조

    金大中대통령은 27일 “터무니없는 유언비어로 의도적으로 지역감정을 부추기고 악용하는 세력들이 있다”며 “이는 국민을 이간하고 분열을 조장함으로써 나라를 허무는 망국적 행위이기 때문에 절대 용납해선 안될 것”이라고 밝혔다. 국민회의총재인 金대통령은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국민회의 개혁추진위(위원장 金令培부총재) 출범식에서 柳在乾총재비서실장이 대독한 치사를 통해 “우리의 정치발전과 국가발전에 가장 큰 걸림돌이라 할 수 있는지역감정 문제를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 총경이상 특정지역 출신 편중 해소안돼

    총경급 이상 경찰 고위간부는 여전히 특정지역 출신이 우위를 점하고 있으며 연공서열식 인사가 계속된다면 앞으로도 몇년간은 이같은 지역별 격차가크게 바뀌지 않을 것으로 분석됐다. 25일 현재 경찰 고위간부들을 출신지역별로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전국의총경 이상 간부 462명 가운데 영남 출신은 204명으로 호남 출신 111명의 2배 가까이나 됐다.충청 출신은 64명이었으며 기타지역 출신은 83명이었다. 계급별로는 경무관 이상 62명 가운데 영남 24명,호남이 14명이었다.총경은모두 400명 가운데 180명이 영남 출신인 반면 호남은 97명이었다. 이같은 지역간 불균형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경찰개혁 및 후속 인사에서 40년 이전에 출생한 간부들이 퇴출되는 등 물갈이가 이뤄지더라도 크게 해소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금명간 단행될 경찰 고위간부 인사에서 40년 이전에 출생한 간부들이 퇴임할 경우라도 총경급 이상 간부는 영남이 173명,호남이 96명,충청 52명 기타72명 등으로 추산된다.같은 추세로 2000년에 이르면 총경급 이상 간부는 영남 162명,호남 90명,충청 49명,기타 65명 등으로 예상된다.또 2001년에는 영남 148명,호남 84명,충청 42명,기타 159명 등으로 지역간 불균형은 상당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따라서 경찰 일각에서는 총경급 이상 고위간부의 경우 획일적인 연령 기준보다는 개인능력이나 비리 소지 등에 의한 선별적인 인사가 지역불균형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한 경찰 관계자는 “지역 인구수를 감안하더라도 경찰 간부 중 영남쪽은 다수 젊은층인 반면 상대적으로 호남쪽은 소수 고령층”이라면서 “이를 시정하는 데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金炅弘 honk@
  • 국민회의 경북도지부개편대회 안팎

    국민회의는 22일 경북도지부 및 안동지구당 개편대회를 계기로 ‘동서화합’을 통한 전국정당화 작업에 박차를 가할 방침이다.최대 취약지구인 TK(대구·경북)지역에 교두보를 확보함과 동시에 원내 제1당을 겨냥한 동진(東進)전략에 나선다는 복안이다.5월 전당대회를 통해 전국정당화의 골격을 완성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경제청문회가 끝나는 시점을 택해 본격적인 정계개편을시도할 것으로 보인다.하지만 국민회의는 ‘TK 연대’ 없이 동서화합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판단,이날 개편대회를 통해 적극적인 ‘TK민심 달래기’를 병행했다. 국민회의총재인 金大中대통령은 “국민화합이야말로 우리민족의 절대적 명제”임을 거듭 지적했다.趙世衡총재권한대행은“‘전라도에는 실업자가 없다’는 근거없는 소문이 횡행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지역갈등 해소를 역설했다. 權魯甲전부총재는 지난 연말 귀국후 처음으로 공식행사에 참석,“지역대립구도 타파를 위해 나의 모든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밝혀 동서대통합을 정치재개의 명분으로 삼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이날 도지부장 및 안동지구 위원장으로 선출된 權正達의원은 “올 상반기에는 모든 계층과 정치인들이 참여하는 국민통합 정당이 필연적으로 탄생할 것”이라고 전국정당화를 예고했다.
  • 민화협 신년교례회

    통일운동의 민간 구심체임을 자임하는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가 2일 하오 신년 하례식을 가졌다.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행사에는 민화협의 韓光玉 姜萬吉 李愚貞 상임의장등을 비롯한 각계인사들이 참여,성황을 이뤘다.趙世衡 국민회의총재권한대행,朴泰俊 자민련총재,康仁德 통일부장관,鄭元植 적십자사총재,金成勳 농림부장관,薛勳·李錫玄·韓英洙의원 등이 주요 면면들이었다. 韓光玉상임의장은 인사말에서 “지난 반세기 통일의 꿈이 추상화로 그려졌다면 이제부터는 사실화로 그려야 한다”고 강조했다.이어 북한당국에 남북기본합의서 실천과 이행을 촉구했다. 이날 행사에서는 지난해 재일동포단체인 민단과 조총련이 공동참여한 통일음악제 공연으로 모은 수익금 25만엔 중 일부가 북측 결식아동돕기 기금으로 민화협에 전달됐다.
  • 韓和甲 국민회의총무 반응

    국민회의 韓和甲원내총무의 요즘 심기는 말 그대로 착잡하다.두가지 때문이다.하나는 ‘국회 529호실 사태’로 협상 ‘파트너’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한나라당 朴熺太전총무의 사퇴소식이 알려지자 그는 “매우 합리적인 분^274”이라면서 아쉬워했다는 후문이다. 경제청문회 조사계획서와 개혁법안들을 단독처리,원칙론자로서 ‘모양새’를 못갖춘 아쉬움도 크다고 한다.정치 대의명분이나 정도를 강조해온 그로서는 단독처리가 주는 개인적 고통이 크지않았을까하는 해석이다. 그런 韓총무에게 새 ‘도전장’이 날아들었다.한나라당측이 李富榮의원을 새 총무로 내정했다는 것이다.이 소식이 전해지자 韓총무는 12일 “누가돼도 괜찮지만 내가 ‘총무로서’사람을 상대하는것이지^274”라며 불편한 심기를 내비쳤다. 韓총무의 이같은 반응은 당 차원의 반응과 크게 다르지 않다.鄭東泳대변인은 “청구사건에 연루된 李의원을 총무에 내정했다”면서 “법관출신인 李會昌총재가 법의 존엄성을 무시하고 있다”고 비난했다.대여 협상창구로 李의원의 임명은 ‘부적절하다’는 시각이다. 韓총무등 국민회의 일각에서 李의원을 탐탁찮게 보는 데는 그의 정치역정과도 무관찮다.개인 이미지 제고에 과민한 ‘돌출형’ 처신을 해왔다는 지적이다.87년 ‘대선후보 단일화’과정에서 ‘YS로의 단일화’를 주창했고 92년통합민주당때 역시 ‘DJ불가론’을 퍼뜨렸다.98년엔 우여곡절끝에 한나라당에 입당했다. 일각에서는 원칙주의자인 韓총무와 “융통성이 없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李예비총무간 협상은 순탄하지못할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인내 국제특허’인 韓총무가 어떤 모습으로 새 협상파트너를 상대해 나갈지 주목된다.柳敏 rm0609@
  • 與수뇌부 오늘 청와대만찬

    金大中대통령은 9일 오후 6시 청와대 관저로 金鍾泌국무총리,朴浚圭국회의장,趙世衡국민회의총재권한대행,朴泰俊자민련총재를 부부동반으로 초청,신년만찬을 할 예정이라고 朴智元청와대대변인이 8일 발표했다.이날 만찬은 새해를 맞은데다 金대통령의 74회 생일(1월6일)축하 모임을 갖는게 좋겠다는 여권인사들의 희망에 따라 이뤄졌다.梁承賢yangbak@
  • 與 단독 국회본회의 안팎

    ‘국회 529호실 사태’를 놓고 정면 충돌로 치닫는 여야는 5일 민생법안 처 리를 놓고도 한치 양보없는 ‘힘겨루기’를벌였다.여권은 한나라당의 본회의 불참속에서 은행법 개정안 등 68개 법안의 단독처리를 강행,정국은 급속히 냉각되는 형국이다. ●본회의 한나라당 불참 속에서 열린 이날 본회의에서 여권은 계류 법안 68 개를 15분만에 전격 통과시켰다.朴의장 대신 의사봉을 쥔 金琫鎬국회부의장 은 법안명을 하나하나 거명하면서 “의의가 없으면 가결됐음을 선포합니다” 라며 종결을 선언.金부의장은 법안통과를 마친후 “인내심을 갖고 기다린 의 원 여러분에게 감사한다”며 신속히 산회를 선포했다. ●여권 이에앞서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의원총회와 양당 대책회의를 잇따라 열어 단독처리를 재확인하고 ‘전원 대기령’을 내렸다. 국민회의 趙世衡총재권한대행은 인사말을 통해 “이번 사건은 정치적으로 협상하고 흥정할 대상이 아니다”라고 못을 박고 “민주국가 최후의 보루인 법질서 확립을 위해 산적한 의안들을 회기내에 처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韓和甲총무는 “한나라당이 본회의를 방해한다면 밤 12시까지라도 본회의장 에서 대기할 각오를 하자”며 강경방침을 확인했다. 비공개로 열린 자민련 의총에서 具天書총무도 “법안처리를 위해 연락가능 한 곳에서 전원 대기해 달라”고 당부했다.金鍾泌총리는 이날 李健介의원 등 8명의 ‘529호실 사태’ 대책위원들과 오찬을 함께하며 굳건한 ‘양당공조 ‘를 과시했다. ●한나라당 안기부 정치사찰 의혹을 본회의 민생법안 처리와 연계,끝내 본회 의 참여를 거부했다.“여권이 안기부장을 파면하고 안기부 정치사찰을 시인 ·사과하지 않으면 민생법안 처리에 참여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당 지도부는 총재단회의와 의원총회를 잇따라 열어 정치사찰 의혹에 대한 강경 대응 방침을 재확인했다.여당쪽에 ‘6일 긴급현안에 관한 대정부질문 이후 민생법안 처리’방안을 제의,지연작전도 시도했다. 그러나 구체적인 투쟁방법에 대해서는 의원총회에서 내부 이견이 불거졌다. 金德龍부총재와 金文洙 安商守 李在五 金映宣의원 등은 “민생의 발목을 잡 는다는 비난이 두려워 우리의 요구가 관철되기 전에 본회의에 참여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선(先)요구사항 관철,후(後)법안처리’를 주장했다.반면 孟亨奎 李相培의원 등은 “투쟁의 명분을 찾기 위해 민생법안 처리에 참여하 자”고 맞섰다.이과정에서 金부총재가 “소심한 패배감에 젖을 필요가 없다 ”고 발언하자 李相培의원이 고성으로 항의한 것을 비롯,몇몇 의원들 사이에 투쟁방법을 둘러싼 설전이 벌어졌다. 이에 李會昌총재가 본회의 불참쪽으로 최종 결론을 내렸다. ●총무회담 본회의에 앞서 朴浚圭국회의장 주재로 열린 총무회담에 한나라당 朴熺太총무가 불참했지만 배석한 辛相佑국회부의장은 “민생법안은 회기내 처리해야 하지만 인내심을 갖고 단독처리는 보류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여 권은 거부의사를 분명히 했다. [朴찬玖 吳一萬 ^ckpark@]
  • 검찰,529호 진입사건 참고인자격 국회직원 8명 소환조사

    한나라당의 국회 정보위 529호실 강제진입 사건을 수사중인 서울지검 남부지청 형사1부(부장검사 表晟洙)는 4일 국회 사무처 의사국장 林鍾煇씨(47)등 사무처 직원 8명을 참고인으로 불러 당시 상황을 조사했다. 검찰은 한나라당 의총에서 안기부의 정치사찰 의혹을 제기했던 한나라당 李信範의원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안기부의 崔모씨(54)와 安모씨(40) 등고소인과 참고인 25명을 5일까지 불러 기초조사를 끝낼 예정이다. 또 현장감식 때 529호실에서 발견된 사과상자 1개 분량의 서류뭉치에 대해이날 오후 압수영장을 발부받아 추가로 지문을 채취,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분석을 의뢰했다. 한편 서울지법 남부지원 민사합의1부(부장판사 金大彙)는안기부가 한나라당을 상대로 제기한 문서배포 및 공개금지 가처분 신청과 관련,한나라당 李會昌총재와 金道彦·李揆澤·梁正圭·洪準杓의원 등 5명에게6일 오전 11시까지 출두하라는 심문기일 통지서를 보냈다.안기부는 지난 2일 “李총재 등이 국회 529호실에서 탈취한 문건은 국가기밀인데다 개인의 비밀사항이므로 배포·공개해서는 안되며 즉각 반환해야 한다”는 내용의 가처분신청을 냈다.
  • 朴泰俊총재·趙世衡대행 선거법 위반 재정신청 기각

    서울고법 형사10부(재판장 金大煥부장판사)는 3일 지난해 지방선거 당시 선거의 자유를 방해했다며 한나라당이 朴泰俊 자민련 총재와 趙世衡 국민회의총재권한대행을 상대로 낸 선거법위반 재정신청 사건에 대해 “이유없다”며 기각했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선거자유 방해행위는 선거운동 및 투표에 대한 직접적인 방해인 만큼 피의자들이 연설회 등에서 정경유착 의혹이 있는 사안에대해 정치적 의견을 표시한 것은 비록 선거인의 판단의 자유를 방해했다 할지라도 선거운동 및 투표에 관한 행위를 방해한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명예훼손죄 부분에 대해서는 재정신청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판단에서 제외했다. 姜忠植 chungsik@
  • 국회정상화대책 논의

    안기부의 국회 사무실운영 문제를 둘러싸고 국회가 파행을 겪고 있는 가운 데 31일 열린 국민회의 의총에서 韓和甲총무(오른쪽)와 金仁泳정보위원장(가 운데)이 국회 정상화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李鐘遠 Jong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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