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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죽의 장막’ 中사회주의 그 ‘속살’ 사진에 담아

    ‘죽의 장막’ 中사회주의 그 ‘속살’ 사진에 담아

    스탈린 때문에 사회주의에 대한 희망의 불꽃이 사그라질 무렵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 중국이었다. 희망은 실상을 실제보다 부풀리기 마련. 중국 사회주의는 과연 어떤가라는 문제가 관심사가 됐을 무렵, 서양사람 가운데 제일 먼저 중국에 들어가 사진을 찍어온 작가가 있다. 프랑스 사진작가 마크 리부(89)다. 그의 작품들이 ‘에펠탑의 페인트공’이라는 전시제목으로 8월 5일까지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열린다. ‘죽의 장막’을 헤치고 1957년 중국을 방문한 리부는 핵심 권력층과의 친분과 호의에 힘입어 다양한 사진을 남겼다. 지금은 문화예술의 거리로 탈바꿈됐으나 그 시절에는 빈민가에 불과했던 베이징의 류리창거리, 최고 권력자의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자그마하고 차분한 마오쩌둥의 침실, 프랑스 유학파 출신으로 언제나 신중한 모습으로 서양인들이 크게 호감을 가졌던 저우런라이가 파안대소하는 모습 등이 인상적이다. 1957년은 중국에서 반우파운동, 그러니까 시들기 시작한 혁명의 열기를 되살리기 위한 마오쩌둥의 강공드라이브가 펼쳐지던 때다. 그 시절 중국 풍경이 세세하게 담겨 있다. 전시는 모두 6부로 구성됐는데 작가의 출세작 ‘에펠탑의 페인트공’(1953년), 베트남전 당시 반전평화시위의 기폭제가 됐던 ‘꽃을 든 여인’(1967년)은 특별히 제작된 대형작품으로 선보인다. 노년의 작가가 프린트 하나하나 꼼꼼히 챙겼다고 한다. 1만 2000원. (02)532-4407.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전남, 은퇴의사 초빙 섬주민 진료… 완도 노화도 ‘행복의원’ 1호 정우남씨

    전남, 은퇴의사 초빙 섬주민 진료… 완도 노화도 ‘행복의원’ 1호 정우남씨

    지난 23일 오후 4시 전남 완도군의 섬인 노화도에 위치한 노화보건지소. 엄마 손을 잡고 보건지소를 찾은 어린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가운데 의사 정우남(69)씨가 ‘행복의원’이라 쓰인 소아·청소년과 진료실 문을 활짝 열고 나왔다. 정씨는 “평일에는 아이들을 진료하고, 주말에는 등산을 하는 섬 생활이 즐겁기 그지없다.”며 웃었다. 행복의원은 전남도에서 섬지역의 열악한 의료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만든 병원으로, 은퇴한 의사를 초빙해 섬지역 주민들을 진료하도록 하고 있다. 행복의원 1호는 지난해 10월 완도군 노화읍 노화보건지소 안에 들어섰으며 정씨가 소아·청소년을 대상으로 청진기를 들었다. 전남 담양 출신인 정씨는 전남대 의대를 졸업한 뒤 미국에서 30여년간 소아과 의사로 근무했다. 은퇴 후 고국의 의료 사각지대에서 봉사활동을 하려던 참에 전남도의 행복의원 사업을 전해듣고 선뜻 지원했다. 정씨는 “나와 아내 모두 전남 출신이라 고향에서 봉사활동을 한다는 의미가 컸다.”고 말했다. 행복의원 1호가 담당하고 있는 노화읍과 보길면, 소안면 지역은 최근 들어 전복양식업이 활기를 띠면서 젊은 층 유입인구가 증가했다. 자연스레 어린이들도 늘어 전체 인구 5000여명 중 15세 미만이 30%에 이른다. 그러나 이 지역의 병원 2곳과 보건소 1곳에 소아과 전문의가 없어 어린이들은 아파도 마땅히 갈 곳이 없었다. 행복의원은 개원 이후 지금까지 800명이 넘는 환자가 찾았다. 처음에는 정씨의 진료 방식을 주민들이 쉽게 이해하지 못해 애를 먹었다. 정씨는 “약을 최소한으로 처방하고 되도록이면 식습관 등을 조절해 치료하려고 하지만, 부모들은 ‘약을 먹어야 낫는 것 아니냐’면서 이런 방침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8개월이 지난 지금 주민들은 정씨의 진료 방식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다. 정씨는 “이제 주민들은 15분이 넘는 설명도 주의깊게 듣는다.”며 웃었다. 전남도는 섬이 많은 지역적 특성을 고려해 병원이 부족한 섬지역에 행복의원을 확산시킬 계획이다. 보건복지부 역시 농어촌 등의 열악한 의료 여건을 개선하기 위한 대책으로 행복의원을 주목하고 있다. 그러나 집과 생활비 정도의 지원만으로 은퇴한 의사를 외딴섬으로 ‘모시기’가 쉽지 않다. 전남도 관계자는 “행복의원 설립을 준비할 때는 은퇴 의사들의 문의전화가 많았지만, 조건을 듣더니 모두들 망설이더라.”면서 “투철한 봉사정신 없이는 쉽지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 행복의원 하나만으로 섬 지역의 보건 상황이 쉽게 개선되는 것은 아니다. 응급환자를 섬에서 육지로 데려다 주는 응급의료 헬기는 야간에는 운항이 불가능하다. 공중보건의사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섬지역에는 결손가정이나 다문화가정도 적지 않은데 이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지도 함께 고민하고 있다.”는 그는 “처음엔 적응하기 쉽지 않지만 섬생활에 맛 들이면 떠나기도 어려울 것”이라면서 넉넉한 웃음을 지었다. 완도 김소라기자 sora@seoul.co.kr
  • [시론] ‘글로벌 리더십’ 후속조치가 중요하다/정서용 고려대 국제학 교수

    [시론] ‘글로벌 리더십’ 후속조치가 중요하다/정서용 고려대 국제학 교수

    우리나라는 최근 몇 년 동안 다양한 정상회의를 통하여 국격과 리더십을 높여왔다. 유엔 창설 이래 뉴욕 이외 지역에서 개최된 역대 최대 규모 정상회의로 기록되었던 2009년 코펜하겐 기후변화 회의에서 우리는 저탄소 녹색성장의 성과를 내세우면서 지구사회에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였다. 이후 올해 조약에 기반을 둔 국제기구로의 전환을 추진하고 있는 글로벌녹색성장 연구소를 수도 서울에 유치하여 지구사회의 기후변화 대응과 녹색성장의 자산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2010년에는 개도국 중에서는 처음으로 ‘주요 20개국(G20) 서울정상회의’를 유치하여 선진국과 개도국 간에 성공적인 가교역할을 해 내었다. 특히 우리가 만들어 낸 개발 의제는 선진국과 개도국이 개발 이익을 공유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주었다. 이러한 바탕에서 최근에는 부산원조개발총회로 이어가면서 지구 사회의 개발 문제에서 리더십을 한껏 발휘하고 있다. 그동안 지구사회에서 안보분야에서는 별다른 역할을 해오지 못한 우리가 지구사회 안보분야 최대 정상회의인 ‘2012 서울 핵안보정상회의’를 성공적으로 개최하면서 명실공히 안보분야에서도 리더십을 발휘하는 국가로 자리 잡을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선진국과 개도국, 핵보유국과 비보유국 간의 중간자로서 역할을 잘해 내면서 제1차 워싱턴 회의 이상의 성과를 이끌어 내었다. 특히 워싱턴 회의에서 다뤄진 어젠다에 집중하기를 원하던 미국과 달리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제기된 원자력 안전문제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이 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합의를 이끌어 내어 핵 안보와 원자력 안전의 상관관계를 서울 코뮈니케에 성공적으로 담아냈다. 의제뿐만 아니라 회의 진행 면에서도 G20 회의 개최 시에 비하여 턱없이 부족한 예산과 인력에도 50여개국 정상에게 감동의 의전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제는 선진국을 따라가는 국가가 아니라 전 세계의 중심에서 논의를 이끌어갈 수 있는 능력을 한껏 보여준 회의였다. 그러나 여기가 끝이 아니다. 서울 정상회의에서 이뤄낸 성과를 바탕으로 더 많은 일을 해야 하는데, 총선에 이은 대선 정국 분위기에 휩쓸려서 핵안보정상회의는 우리 기억 속에서 빠르게 사라져 가는 듯하다. 우리는 2014년 제3차 네덜란드 핵안보정상회의에서 서울 회의 성과를 지속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준비를 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제1차 개최국인 미국과 다음 개최국 네덜란드와 함께 트로이카 체제를 구축하여 네덜란드 회의 의제 개발에 공동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다뤄야 할 많은 이슈가 있겠지만 핵안보정상회의가 지속되고 좀 더 제도화될 수 있도록 프레임워크 협약을 비롯한 핵 안보 거버넌스에 대한 논의를 촉발시켜야 한다. 동북아 지역은 한·중·일 3국이 모두 매우 많은 원자력 발전소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동북아 원자력 안전은 물론 핵 안보 관련 논의를 계속할 필요가 있다. 특히 이번에 우리가 핵 안보 교육센터를 설치하면서 3국 공히 핵 안보 교육센터를 갖게 되었다는 점에 초점을 두고 이들 간의 협력 메커니즘 개발을 통한 지역 협력 방안을 적극적으로 찾을 필요가 있다. 또한, 한국과 베트남 핵 안보 기술 협력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의 발전한 핵 안보 및 원자력 안전 기술을 개도국에 전수하는 공적원조 개발정책도 새롭게 개발하여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앞으로 이러한 노력은 북한 핵 문제에 대한 대응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는 서울 회의에서 공식 의제가 아닌 북한 핵 문제에 대한 우려를 중국과 러시아를 포함한 지구사회 정상들이 표명하는 것을 이미 잘 지켜보았기 때문이다. 이 모든 계획을 추진하려면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 미국 국무부 규모의 35분의1에 불과한 외교부의 해당 조직규모와 예산을 현실화해야 한다. 또한, 관련 산업계와 전문가 집단과의 효과적인 협력 및 대응이 가능한 최소한의 기반이 갖춰질 수 있도록 적절한 지원이 이뤄질 필요도 있다. 우리의 진정한 글로벌 리더십 발휘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 노타이 근무 OK… 지자체 ‘에너지 다이어트’

    노타이 근무 OK… 지자체 ‘에너지 다이어트’

    지방자치단체들이 ‘쿨 비즈룩’(복장 간소화) 도입에 앞장서고 있다. 2010년 정부가 여름철 냉방기준을 27도에서 28도로 올린 뒤 넥타이를 매지 않는 ‘노타이 운동’을 벌였지만 공무원사회의 동참이 저조하자 올해부터는 연중 편안한 복장으로 근무하도록 복무조례를 개정하는 지자체도 생겼다. 행정안전부는 지난달 30일 하절기 공무원 복장 간소화 지침을 확정하고 각 부처와 지자체에 넥타이를 매지 않는 간편 복장을 권장하도록 전달했다. 행안부 자체적으로는 장·차관실을 방문할 때 상의재킷을 입지 않도록 했다. 지자체들은 여기에 더해 여름으로 분류되는 5~9월뿐만 아니라 시기를 따지지 않고 연중 복장 간소화 제도를 적극 도입하고 있다. 부산시는 지난 11일 시청과 시 산하 모든 공무원을 대상으로 하절기에 진행하는 복장 간소화 제도를 연중 캠페인으로 전환하기로 결정했다. 서울 동작구는 매월 마지막 주 금요일 하루 간편 복장으로 근무하는 ‘프리 패션데이’ 제도를 1년 내내 운영하기로 했다. 경기 고양시의 경우, 연중 자유롭고 편안한 복장을 입도록 ‘지방공무원 복무조례’를 개정했다. 공식행사 참석 등 반드시 필요한 장소 외에는 넥타이를 아예 착용하지 못하도록 했다. 면바지나 남방, 노타이 정장을 입어 더운 날씨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유도하는 한편 편안한 복장으로 창의적인 사고를 갖도록 한다는 목적이다. 서울시는 다음 달부터 8월까지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시기를 ‘슈퍼 쿨비즈 기간’으로 정해 민원 담당자를 제외한 나머지 공무원에게 반바지 및 샌들을 허용하기로 했다. 슈퍼 쿨비즈룩은 2004년 일본에서 처음 도입한 에너지 절약 운동이다. 이달 초 내부회의에서 박원순 시장은 “다리 털이 많은 공무원은 반바지를 입으면 보는 이나 본인 모두 부담스럽지 않나.”라고 지적하기도 했지만 범국민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에너지 절약 운동 차원에서 이를 적극 도입하기로 입장을 선회했다. 다음 달 5일에는 한국패션협회와 공동으로 ‘쿨비즈 패션쇼’를 열고 박 시장이 직접 모델로 참여하기로 했다. 서울 성동구는 이달부터 9월까지 전 직원이 노타이 정장, 남방, 면바지 등을 입는 간편 복장 근무를 한다. 넥타이는 공식회의와 손님접대 등 의전상 필요할 때만 착용하도록 했다. 하지만 이 같은 복장 간소화 분위기가 제대로 정착될 지 의문이라는 지적도 적지않다. 서울시는 25개 자치구에도 공문을 보내 샌들을 신고 반바지를 입는 슈퍼 쿨비즈룩 보급을 유도할 방침이다. 하지만 대다수 자치구들은 난색을 표하고 있다. 민원인들을 많이 만나는 업무특성상 샌들신고 반바지를 입는 게 부담스럽다는 것이다. 정현용기자·전국종합 junghy77@seoul.co.kr
  • [김문이 만난 사람] ‘음악 인생 60주년’ 대중가요 작곡계의 살아있는 전설 김희갑

    [김문이 만난 사람] ‘음악 인생 60주년’ 대중가요 작곡계의 살아있는 전설 김희갑

    ‘사랑아 내 사랑아’ ‘진정 난 몰랐네’ 등으로 존재를 처음 알렸다. 추억의 노랫말을 잠시 음미해본다. ‘그토록 사랑하던 그 사람/잃어버리고/타오르는 내 마음만/흐느껴 우네/예전에는 몰랐었네/진정 난 몰랐네’에 이어 세월이 지나 ‘그 겨울의 찻집’으로 옮겼다. ‘바람 속으로 걸어갔어요/이른 아침의 그 찻집/마른 꽃 걸린 창가에 앉아/외로움을 마셔요/아름다운 죄 사랑 때문에’…. 이번에는 ‘킬리만자로의 표범’으로 변신했다. ‘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를 본 적 있는가/짐승의 썩은 고기만을 찾아다니는 산기슭의 하이에나 나는 하이에나가 아니라 표범이고 싶다’…. 어디 이뿐이랴. ‘사랑의 미로’와 ‘향수’ 등 수많은 히트곡마다 한국의 대표적 정서를 담아냈다. 하여 이루 다 말할 수가 없다. 대중가요 3000여곡, 영화음악 300여편, 뮤지컬 3곡 등 우리나라 대중음악계에 커다란 획을 ‘쫘악’ 긋는다. 그래서 대중 가요계의 살아 있는 전설이자 불후의 명품 작곡가라고 한다. 김희갑(76)씨. 중학교를 졸업하고 미8군에서 기타 연주를 시작했으니 올해로 음악 인생 60년을 맞는다. 또 1967년 ‘사랑아 내 사랑아’로 작곡 앨범을 처음 낸 지 45년이다. 그는 올해 새로운 대중음악의 한 장르를 준비하고 있다. 어떤 것일까. 지난 21일 오전 경기도 용인 자택에서 김씨를 만났다. 확 트인 창가를 배경으로 부인 양인자씨가 커피 한 잔을 권한다. 양씨에게 ‘그 겨울의 찻집’의 가사는 아무리 들어도 감미롭다고 했더니 남편 김씨가 “요즘에는 그런 찻집이 없어요.”라고 대신 대답을 한다. 김씨는 여전히 모자를 쓰고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 미8군 부대에서 연주할 때 빡빡머리를 감추기 위해 모자를 쓰기 시작한 것이 습관이 돼 60년 동안 거의 벗어본 적이 없다. 김씨는 칠순인데도 얼굴 피부색은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였다. 둘은 잉꼬부부로 소문나 있기도 하지만 작사·작곡계의 명콤비로 알려져 있다. 둘은 1985년에 만나 2년 뒤에 결혼했다. 마침 부부의 날이었다. 양씨는 “안 그래도 다음 달 결혼 25주년을 맞아 기차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며 웃는다. 김씨는 “알 만한 사람 부부 여섯쌍이 함께 간다.”며 즐거운 듯 활짝 웃는다. 김씨 부부는 원래 경기도 분당에 살았다. 그래서 언제 이사 왔는지부터 먼저 물었다. “한 4년 됐나요. 원래는 여기보다 더 조용한 곳인 강원도 문막 정도로 가려고 했어요. 그랬더니 우리 집사람 친구들이 멀리 이사 가면 아예 인연을 끊겠다고 협박(?)을 하더군요. 그 바람에 여기에 머물렀습니다(웃음). 사실 내년이면 다시 판교 쪽으로 이사를 갈 겁니다. 그곳에 아파트를 하나 장만했거든요.” 양씨가 주방에서 떡과 차 한 잔을 꺼내오며 권한다. 김씨는 “고맙습니다.”라고 깍듯이 인사한다. 늘 반말이 아닌 존대어를 쓰는 모양이다. 김씨에게 올해가 작곡가로 데뷔한 지 45년째라고 했더니 “(가요사 등) 일부 기록에는 1967년으로 나와 있는데 레코드사에 알아봤더니 1965년이라고 하더군요. 그거나 이거나 그렇게 세월이 흘렀네요.” 기타 연주는 고등학교 때부터 시작했다. 그렇다면 그의 음악적 환경은 어떠했을까. 평양에서 태어난 김씨는 의사 집안에서 자랐다. 할아버지는 한의사, 아버지는 의사였다. “아버지는 독자였고 저는 맏아들로 태어나 할아버지한테 귀여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어릴 때부터 보약을 자주 먹었던 기억이 지금도 선합니다. 아마 12살까지 매일 먹었지요(웃음). 아버지는 의사였지만 음악을 무척 좋아했습니다. 제가 6살 때 평양에서 40여리 떨어진 평남 강동에서 아버지가 병원장을 맡았습니다. 사택이 있었는데 아버지는 시간 날 때마다 대학 때 음악 활동을 같이 했던 친구들을 불러 음악 연주를 자주 했습니다. 나중에는 악단을 조직해 시골 여러 곳에 다니면서 공연을 하곤 했지요. 8·15 광복 이후에는 의사라는 신분을 감추고 국가 지정 음악당, 그러니까 남한으로 치면 예술의전당 같은 곳을 맡아 운영을 했습니다. 아버지는 아코디언 같은 것을 잘 연주했습니다.” 김씨는 원래 축구 선수가 되고 싶어 했다. 초등학교 때 레프트윙 포지션으로 학급 대표로 출전했을 만큼 축구 실력이 남달랐다. 내친김에 학교 대표로 출전하고 싶었다. 그 무렵 음악 활동을 하는 아버지를 보고 음악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6·25전쟁이 발발했고 1·4후퇴 때 김씨 집안 식구들은 임진강을 거쳐 대구까지 월남하게 된다. 먹고사는 것이 어려워졌다. 대구에 있던 미 25야전병원에 취직하려고 했으나 아버지가 갖고 있던 의사면허는 인정이 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아버지는 미군부대 장교 식당에서 접시닦이로, 아들 김씨는 친구와 함께 하우스보이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됐다. “오후 2시 30분쯤이 쉬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때마다 같이 일을 하는 친구가 주머니에서 작은 하모니카를 꺼내 연주했습니다. 그 모습이 너무 좋아 아버지한테 음악을 배우겠다고 했지요. 흔쾌히 허락을 하신 아버지한테 악보 읽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때 처음 만진 악기가 만돌린이었습니다. 중고품이었는데 선이 끊어지면 미군들이 사용하는 전화선을 연결해 사용하곤 했지요. 6개월 정도 하니 웬만한 연주가 가능해지더군요.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한테 김영순(김트리오 부친)씨가 놀러 왔는데 트럼펫과 기타 연주를 기가 막히게 했습니다.” 이후 김씨는 ‘바로 기타야, 기타!’라고 생각하며 기타에 푹 빠지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가르쳐 주는 대로 가사를 적고 노래를 배웠다. 말 그대로 밥숟가락만 놓으면 새벽 4시까지 기타를 배웠다. 또한 작곡가 박시춘 선생과의 만남 등을 통해 장차 훌륭한 음악인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중학교를 졸업한 지 2년 세월이 지나서야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때마침 고등학교에 악단이 하나 생겼는데 김씨는 곧바로 악단장을 맡았다. 웬만한 편곡은 그의 손을 거칠 정도로 음악 실력을 인정받았다. 자신감을 얻은 그는 고등학생 신분으로 미 공군 클럽에서 기타 연주를 했다. 사실상 프로 생활을 시작했던 것.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대구에서 ‘음악 연주자 베스트 7’에 뽑혀 서울로 올라와 ‘록쇼’ 악단에 합류했다. “그때 오산에 있는 미군부대에서 주로 활동하면서 전국 곳곳을 다녔습니다. 그러던 1년 뒤에는 제가 직접 악단장을 맡게 됐지요. 악단 명칭도 록쇼에서 ‘A1쇼’로 바꿔 활동 무대를 넓히게 됩니다. 운 좋게도 미8군 클럽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연주자로 소문이 나기도 했지요. 이후 7년 동안 A1쇼 악단을 이끌었습니다.” 그가 미군부대와의 인연을 접은 것은 1962년이었다. 다시 음악 공부를 하고 싶은 열정이 생겼기 때문이다. 당시 해군 군악단 단장을 지냈고 작곡가로도 유명한 이교숙 선생을 찾아가 작곡과 편곡 등을 강도 높게 배웠다. 그렇게 2년 정도 시간이 흘렀을 무렵 작곡가 박춘석씨를 만나게 됐다. 박씨의 곡을 녹음할 때 기타 연주를 해주고 박씨에게 편곡을 더 배우게 됐다. 아울러 작곡가 김영광씨의 부탁으로 편곡을 해주면서 이 방면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섬세한 작곡 솜씨가 일품이라는 소문까지 자자했다. “하루는 오아시스레코드 손진석 사장이 찾아와 작곡 앨범을 내자고 하더군요. 처음에는 건성으로 대답했는데 거의 매일같이 집요하게 부탁을 했습니다. 특히 대중가요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작곡의 명분론으로 설득하더군요. 그래서 ‘사랑아 내 사랑아’(태원), ‘불타는 연가’(남진), ‘진정 난 몰랐네’(김상희), ‘모래 위를 맨발로’(이시스터즈) 등 12곡을 4명이 3곡씩 나눠 부른 이른바 ‘김희갑 작곡 제1집’이 탄생하게 됩니다.” 이후 본격적인 작곡 활동을 하면서도 ‘김희갑 악단’을 계속 이끌어오다 드라마 주제가를 작곡하면서 크게 히트를 친다. 1983년 KBS 주말드라마 ‘청춘행진곡’에서 노주현과 정윤희의 ‘러브송’을 하나 만들어 달라는 요청을 받고 최진희를 발탁, ‘그대는 나의 인생’을 작곡했던 것이다. 이 노래는 가수 최진희를 탄생시키고 우리나라 최초의 뮤직비디오 음악이라는 찬사를 받을 만큼 많은 인기를 끌었다. 이어 ‘사랑의 미로’ ‘우린 너무 쉽게 헤어졌어요’ 등이 담긴 제2집 작곡 앨범이 나오면서 악단을 해체하고 작곡과 연주 등 솔로로 활동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앞서 언급했듯이 그가 지금까지 작곡한 노래만 무려 3000곡이 넘는다. 이 가운데 부인 양씨와 함께 작사·작곡을 한 것은 400여곡에 이른다. 예를 들어 ‘킬리만자로의 표범’ ‘그 겨울의 찻집’ ‘서울 서울 서울’ 등 조용필의 히트곡을 포함해 ‘타타타’ ‘우리도 접시를 깨트리자’ ‘립스틱 짙게 바르고’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대는 나의 인생’ ‘하얀 목련’ 등이 대표적인 부부 합작 국민 애창곡이다. 얼마 전에는 TV프로그램 ‘불후의 명곡’에서 젊은 가수들에 의해 불려 다시 한번 주목을 받았다. 요즘 대중가요계의 흐름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음악적으로 재능이 대단한 가수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그룹 쪽으로 치우친 것이 아쉽습니다. 재즈, 댄스, 트로트 등 다양한 장르를 통해 듣는 사람이 좋아하는 음악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하거든요. 앞으로는 ‘대중음악을 감상하는 시대’가 올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김씨는 요즘 모종의 작업을 하고 있다. 발성의 기본기를 확실히 갖춘 남자 3명, 여자 1명으로 이뤄진 중창단을 만들어 대중음악의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는 일이다. 40대 중후반 한 팀, 20~30대 젊은 성악가 한 팀 등 두 팀을 만들어 실내악 분위기의 대중음악을 올가을쯤 선보일 예정이다. 필생의 역작이나 다름없다. 새로운 꿈과 희망, 식지 않은 열정으로 그 일에 집중하고 있다. km@seoul.co.kr ●김희갑은 고교 졸업 후 ‘록쇼’ 멤버 활동… 대중가요 3000여곡 작곡 1936년 평양에서 태어났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의사인 아버지에게 음악을 배웠다. 대구에서 대성고등학교에 다닐 때 학교 악단장을 맡아 발군의 음악 실력을 발휘했다. 아울러 미8군 부대에서 프로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서울에 있는 ‘록쇼’ 악단 멤버로 활동했다. 이후 ‘A1쇼’ 악단장으로 7년 동안 활동했다. 1962년 미군부대 위주의 활동 무대를 접고 본격적으로 작곡 공부를 시작했다. 5년 뒤 오아시스레코드사에서 ‘김희갑 작곡 제1집’ 앨범을 냈다. 1983년 KBS 주말드라마 ‘청춘행진곡’ 주제가를 작곡해 크게 히트쳤다. 1985년 이후에는 김희갑 악단을 해체하고 솔로 활동에 전념했다. 지금까지 3000여곡을 작곡했으며 1987년에 양인자씨와 결혼한 뒤 함께 400여곡을 작사·작곡했으며 300여편의 영화음악과 뮤지컬 ‘명성황후’ 작곡 등으로도 유명하다. 취미는 골프와 분재.
  • 6월, 여성을 위한 ‘반값 공연’

    서울시는 다음 달 한 달 동안 육아와 가사, 경제적 부담으로 문화예술공연 관람을 하지 못하는 여성을 대상으로 다양한 공연을 반값에 제공하는 ‘여성행복객석’ 서비스를 실시한다고 20일 밝혔다. 오는 31일까지 시 공공서비스예약 사이트(yeyak.seoul.go.kr)에서 신청받는다. 대상은 서울 거주 여성으로, 동반 가족 6명까지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우선 세종문화회관에서는 다음 달 23일 유럽의 유명 파이프 오르간 연주자 페레티·로방의 듀오 콘서트를 반값에 즐길 수 있다. 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서는 매주 토요일마다 국악과 클래식의 하모니를 선사하는 ‘토요명품공연’이 열린다. 27일에는 이곳에서 가수 유열이 진행하는 차(茶)와 함께하는 토크콘서트 ‘다담’이 열려 주부들의 눈길을 끌 전망이다. 예술의전당에서는 14일과 16일 각각 ‘11시 콘서트’와 ‘토요콘서트’가 열려 여성들이 클래식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영어 뮤지컬 ‘구름빵’을 비롯해 ‘어린이 난타’, ‘오즈의 마법사’, ‘꼬마돼지 삼형제’ 등 가족과 함께 관람할 수 있는 공연도 다양하게 마련된다. 정현용기자 junghy77@seoul.co.kr
  • [보고 듣고 즐기세요]

    [대중음악] ●2012 이승철 콘서트 ‘LOVE CROSS’ 6월 1~2일 서울 용산전쟁기념관 평화의광장. 아프리카 차드의 학교 건립을 위한 콘서트로 계단식 좌석을 설치하고, 5.1 서라운드 시스템을 구축하는 등 야외 공연의 정취를 보여줄 예정이다. 7만 7000~16만 5000원. 1544-4997. ●이승환 회고전 6월 22~7월 1일 서울 숙명아트센터 씨어터S. 가수 이승환이 아티스트로 보낸 지난 23년을 정리하고 되돌아보는 의미의 소극장 공연. 전석 9만 9000원. 1544-1555. [연극·뮤지컬] ●뮤지컬 ‘결혼’ 19일부터 27일까지. 서울 흥인동 충무아트홀 중극장 블랙. 조건에 목매는 현대 남녀의 결혼관을 풍자한 뮤지컬로 결혼이라는 과정을 빌려 인생의 철학적 의미와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되새기는 작품이다. 4만~5만원. (02)775-7775. ●연극 ‘레슬링 시즌’ 29일부터 6월 10일까지 서울 서계동 국립극단 백성희 장민호 극장. 왕따, 성 정체성, 동성애 등 민감한 이야기들을 끄집어 내는 맹랑한 문제극으로 8명의 고등학생이 지름 9m 원형 매트 안에서 끊임없이 겨룬다. 3만원. 1688-5966.. [국악·클래식] ●시로 노닐다, 주시유락(奏詩遊樂) 21일 오후 7시 30분 서울 신사동 윤당아트홀. 이상의 시 ‘오감도‘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창작곡 6곡을 국립국악원 창작악단의 가야금 연주자 이주인이 선보인다. 무료. 010-5496-9294. ●막심 코시노프 바이올린 리사이틀 6월 3일 오후 5시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독일 함부르크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수석악장 막심 코시노프가 화려하고 섬세한 색채로 차이콥스키의 ‘추억’, 브람스 ‘헝가리 무곡’ 1번, 드보르자크의 ‘유모레스크’ 등을 연주한다. 3만~15만원. (02)461-6712. [미술·전시] ●‘새벽여행 길에서 길을 묻다’ 27일까지 서울 통의동 갤러리드팔레. 중국 베이징 중앙미술학원 출신 신동철 작가는 맑고 투명한 담채로 수묵화 자체의 맛을 잘 살리는 작가로 유명하다. 전시된 80여점의 작품들은 제목 그대로 작가가 우리 산하 곳곳을 답사하면서 머리에 그려 두었던 소나무와 농가의 소소한 풍경들을 담았다. (02)730-7707. ●‘로맨티시즘과 에로티시즘 사이’ 얀 샤우덱 사진전 26일부터 7월 15일까지 서울 관훈동 인사아트센터 5·6전시장. 문학에 카프카, 음악에 스메타나가 있다면 사진에는 얀 샤우덱이 있다. 체코가 자랑하는 사진작가 샤우덱은 인간 누드에 몰입해 왔다. 그의 누드는 그대로의 육체를 고스란히, 그것도 지극히 풍자적인 시선을 가지고 찍어냈기 때문에 인간에 대한 깊은 연민을 느껴볼 수 있다. 8000원. (02)722-4414.
  • 여전히 거래 실종… 가격은 오히려 약보합세로

    여전히 거래 실종… 가격은 오히려 약보합세로

    “문의전화는 이따금씩 옵니다. 투기지역 해제에 재건축 심의안까지 통과됐지만 거래는 더 두고 봐야죠.”(서울 개포동 P중개업소 관계자) 지난 18일 재건축을 추진 중인 서울 강남구 개포 주공2·3단지 인근의 중개업소들은 여전히 한산했다. ‘5·10 부동산대책’의 최대 수혜지로 꼽히는 강남3구에 자리한 데다, 지난 16일 개포 주공2·3단지의 재건축정비구역 계획안이 서울시 심의를 통과하면서 분위기 반전이 예상됐으나 의외였다. 개포동 믿음공인 오일심 대표는 “5·10대책의 효과가 나타나기는커녕 오히려 호가를 중심으로 약보합세만 보인다.”면서 “정비구역 계획안 통과 이후에도 문의전화가 늘거나 매수하겠다는 사람이 찾아오는 일은 거의 없다.”고 잘라 말했다. 개포주공 2단지 주민인 이모씨는 “아직 분담금이 얼마가 될지, 재건축이 언제 시작될지 알 수 없다.”며 “조합설립 뒤 착공까지 최소 3년이 걸린다는데 방 1개짜리 집에서 세 식구가 살기는 빠듯하다.”고 하소연했다. 부동산 거래활성화 등을 위한 정부의 5·10대책 발표 뒤 열흘이 지났지만 시장은 여전히 거래 실종 상태를 이어가고 있다. 20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살던 집을 줄여가는 ‘1대1 재건축’의 수혜단지인 서울 강남구 도곡동 삼익아파트 등 일부 단지를 제외하면 오히려 가격은 약보합세로 돌아섰다. ●최대 수혜지 강남3구 흔들… 양천구 거래 멈춰 개포 시영(40㎡)은 당초 7억원 선이었으나 최근 6억 4000만원대에 거래가 성사됐을 뿐, 이후 거래가 중단된 상황이다. 최근 재건축 추진위가 시영아파트의 분담금을 추산한 결과 당초 예상보다 크게 높아진 것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 16일 재건축 정비계획안이 서울시 도시계획위 심의를 통과한 개포 주공2·3단지도 가격은 약세다. 52㎡의 경우 1주일 전만 해도 8억원을 호가했으나 7억 7000만원대로 하락했다. 다만 대치동 은마아파트(102㎡)는 1대1 재건축의 수혜단지로 꼽히며 1000만원가량 오른 8억~8억 6000만원에 시세가 형성됐다. 최대 수혜지인 강남3구가 흔들리면서 소강 상태를 보여온 양천구는 아예 거래가 멈춰버렸다. 목동의 H중개업소 관계자는 “신시가지5단지(99㎡)는 1주일간 무려 2500만원가량 가격이 떨어졌다.”고 전했다. ●분당·용인 등 신도시도 대부분 보합세 강남의 영향권에 놓인 경기 용인과 분당신도시는 상황이 더 안 좋다. 용인시 상현동의 주부 진모(41)씨는 “아이 엄마들끼리 만나 차라도 마시면, 정부정책에 대한 실망감 탓에 집값 반전은 없을 것이란 얘기가 돈다.”고 말했다. 상현동 상현마을 금호베스트빌 1차(218㎡)는 대책 발표 뒤 3000만원 가까이 하락해 4억 5000만~4억 9000만원 선을 형성했다. 신도시도 대부분 보합세다. 분당신도시 서현동의 K중개업소 관계자는 “잠재 고객들이 규제 완화의 강도가 약해 집 구입 시기를 더 늦춘 것 같다.”고 말했다. 정자동 정든한진8차(195㎡)는 대책 발표 뒤 호가가 무려 5500만원이나 떨어져 8억~9억원 선을 지탱하고 있다. 양지영 리얼투데이 팀장은 “부동산 거래는 심리적 영향을 많이 받는데 이번 대책은 대출이나 세금 측면에서 (완화가) 부족하다는 느낌”이라고 평가했다. 일각에선 시장 반응이 모두 부정적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보금자리주택의 7년 전매제한, 5년 의무거주 규정을 각각 4년, 1년으로 단축한 5·10대책의 영향으로 미분양이 넘쳐나던 보금자리지구인 수원 호매실지구의 경우 반짝 상승세를 탔다. ●수원 호매실 보금자리지구는 반짝 상승세 한국토지주택공사(LH) 관계자는 “지난 3월 1710가구를 분양했지만 단 406명만 청약했던 호매실지구에 최근 무순위 추가접수 첫날에만 688명이 몰렸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76%에 달했던 미분양률도 50% 밑으로 떨어졌다. ‘이 같은 분위기는 다음달 5000가구 이상 쏟아지는 동탄2신도시의 청약 결과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김성곤·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공직열전 2012] (5) 총리실 (중)‘국정현안 해결 중추’ 국장급

    [공직열전 2012] (5) 총리실 (중)‘국정현안 해결 중추’ 국장급

    총리실 국장들은 “국정 현안 해결의 중추로서 최일선에 서 있다.”고 자부한다. 정책 현안의 이견과 갈등을 조정, 조율된 정책과 대안을 잉태시키는 산파 역할을 한다. 총리실 보직 국장은 28명. 이 가운데 4명만 총리실에서 공직을 시작했다. 업무 특성이나 인적 구성면에서 학연, 지연에 대한 편향성은 엷다. 서울 8명, 대구·경북 7명, 호남 5명, 부산·경남 4명 등 고른 편이다. 서울대와 고려대가 각각 5명씩으로 제일 많지만 외국어대(3명) 등 13개 대학 출신들로 구성돼 있다. 주요 사안들이 거쳐 가는 길목에는 오균 기획총괄정책관이 버티고 있다. 부드럽고 조용하지만 쉴 새 없이 일을 챙기고 독려하는 정책통으로 다양한 업무를 거쳤다. 외교부의 대표적인 브레인이자 다자문제 전문가 오준 싱가포르 대사가 친형이다. 임찬우 일반행정정책관은 교육, 복지 등 사회 갈등 현안에 침착하게 대처했다. 김충호 개발협력정책관은 여러 차례 총리 청문회를 총괄·지휘하면서 위기대응 능력을 발휘했다는 평을 받았다. 공적개발원조(ODA)를 둘러싼 부처 간 갈등을 합리적으로 조정해 국내외 ODA 전문가들로부터 좋은 평을 받고 있다. 김원득 사회총괄정책관은 ‘정책의 종말처리장’이란 사회통합정책실 선임국장. 사회갈등처리 조정 업무에 경험이 많고 일처리도 안정적이다. 참여정부에선 승진이 늦었지만 원만한 일처리와 성실성으로 만회했다. 너무 조심스러워 진취적인 정책 개발이 아쉽다는 지적도 있다. 윤창렬 교육문화여성정책관은 비서실 쪽에서 출발했지만 정책 분야로 옮겨와 뿌리내린 차세대 선두주자 중 한 사람이다. 검·경 수사권 갈등에서 조정 능력을 보였다. 까다롭기로 소문난 이해찬 전 총리 시절 지근 거리에서 보좌, 신임을 독차지하며 고속 승진을 거듭했다. 김황식 국무총리와는 사돈 간이다. 김 총리의 딸이 처남댁이다. 최병환 규제정책총괄관은 의전관으로 김 총리를 보좌하며, ‘총리실 부총리’란 별명을 얻었다. 업무 처리의 눈높이가 높고, 직원들에게도 가혹할 만큼 엄격하지만, 일을 떠나서는 소탈하다. 정무·공보 총괄 업무를 오래 다뤄 현안의 종합 분석에 능하다. 박장호 평가총괄정책관은 상관들에게 “치밀하게 일을 처리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궂은 자리를 거치지 않은 채 경제규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파견 등 ‘꽃보직’을 두루 거쳐 주위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최창원 평가관리관은 배려와 매너로 여성 직원들에게 인기 높은 ‘미스터 총리실’. 빠릿빠릿한 일처리와 매끈한 대인관계로 현 정부 들어 행정고시 선배, 동료들을 제치고 고속 승진했다. 김성환 의전관은 시시비비를 엄정하게 따지는 깐깐한 스타일로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때에는 조사심의관실 등에 근무하며 힘을 받았다. 현 정부에 와서 고전하다 규제개혁실 선임국장을 거치며 다시 궤도에 올랐다. 이철우 총무비서관은 원만한 처신과 업무 처리로 무난한 평을 받지만 특허청, 농림부 등 밖에 나가서 근무한 ‘외도’ 기간이 길어 내부 인지도가 낮다는 평도 있다. 지난 17일 인사로 ‘문고리 권력’을 잡게 된 김 의전관과 인사·살림을 손에 쥐게 된 이 비서관이 모두 호남 출신이라 ‘호남 인맥의 부활’이라는 입방아도 없지 않지만 무리 없는 인사라는 평이 더 많다. 이석우 선임기자 jun88@seoul.co.kr
  • 세계적 첼리스트 조영창, 새달 7일 10년만에 국내 리사이틀

    세계적 첼리스트 조영창, 새달 7일 10년만에 국내 리사이틀

    지난해 10월 독일 크론베르크 페스티벌의 피날레는 첼리스트 조영창(54·독일 엣센 폴크방 국립음대, 연세대 교수)의 몫이었다. 그런데 그의 연주를 지켜본 파블로 카잘스(1876~1973)의 미망인 마르타가 “조영창을 그냥 두어선 안 된다.”며 펄쩍 뛰었다. 활을 잡은 오른쪽 어깨가 심상치 않음을 알아챘기 때문. 동료 음악가들은 최고의 의사를 수소문했고, 12월초 조영창은 수술대에 올랐다. 자기공명영상(MRI) 촬영을 한 의사는 “오른쪽 어깨인대 5개 가운데 4개가 끊어져다. 그것도 아주 오래전에 훼손됐다.”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오른쪽 어깨인대 끊어진 줄도 모르고 연주 “10대 때 야구를 워낙 좋아했다. 이래 봬도 강속구 투수였다(웃음). 그때 어깨를 다친 것 같다. 언젠가 아이들을 데리고 스키를 타러가서 또 (인대) 하나를 해 먹었다. 매번 다치고 며칠 끙끙 앓다가 다시 활을 잡는 일이 반복됐다. 결정적으로 3년 전쯤 물건을 옮기다가 삐걱했다. 그 즈음 바흐의 무반주 첼로모음곡을 하려니까 (팔을 안으로 끄는) 업보(upbow) 동작이 전혀 안 됐다. 왼 어깨 인대도 농구를 하다가 끊어졌다. 신기한 게 그런데도 수술 전까지 공연하고 다녔다. 근육이 알아서 방법을 찾아내곤 했던 모양이다.” 최근 서울 낙원동의 한 호텔에서 만난 조영창 교수는 반소매셔츠의 오른쪽을 걷어 보이며 수술 부위를 설명했다. 어깨를 7곳이나 짼 흔적이 고스란히 있었다. 인대이식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그래도 오른 어깨의 회전반경은 정상적인 왼팔의 절반 수준. 처음에는 오른팔을 뒤로 돌리지 못해 일상의 불편함도 겪었지만, 꾸준한 재활로 그나마 회복됐다. 그는 “어릴 적에 음악을 안 했다면 운동선수가 됐을지도 모른다. 전부 내 팔자 아니겠나.”라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수술 후 복귀무대는 지난달 27일 독일에서 열린 스승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1927~2007)의 추모공연이었다. 20세기 가장 위대한 첼리스트로 꼽히는 스승과의 각별한 인연은 1981년 파리에서 시작됐다. 두 누이(피아니스트 조영방, 바이올리니스트 조영미)와 함께 트리오로 출전한 뮌헨 콩쿠르가 그해 9월 말. 불과 열흘 뒤 열리는 로스트로포비치 첼로 콩쿠르는 별 준비도 안 했다. 그저 경험 삼아 출전했을 뿐. 본선을 앞두고 호텔 엘리베이터에서 우연히 로스트로포비치를 만났다. “중국인이냐.”라는 질문에 “아뇨, 한국인입니다.”라고 답한 게 대화의 전부였다. 콩쿠르에서 조영창은 4위 입상을 했고, 그걸로 둘의 인연은 끝인 듯했다. 하지만, 2년이 흐르고서 연락이 왔다. 미국 망명 뒤 워싱턴 국립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를 맡은 로스트로포비치가 아시아 투어에서 협연할 솔리스트로 그를 점찍은 것. “선생님은 런던과 스위스, 뉴욕, 워싱턴 등 전 세계 7곳에 집이 있었는데 모든 전화번호와 함께 2년치 일정표를 주셨다. 당신께서 전화하면 언제든 함께 공부하자고 했다. 레슨비는 안 받겠지만, 비행기값이 많이 들 테니 스폰서를 구해놓으라고 했다(웃음). 그렇게 7~8년 동안 1년에 5~6번씩, 선생님과 같이 공부했다. 한 번 만나면 3~4시간은 훌쩍 지났다. 어떤 제자에게도 이만큼 시간을 준 적이 없었다. 그리고 부족한 나를 36세의 나이에 로스트로포비치 콩쿠르 심사위원으로 불렀다.” ●로스트로포비치와 인연 있는 곡만 골라 조영창에 대한 로스트로포비치의 애정은 남달랐다. 1984년 첫 내한 당시 기자들에게 “이솝우화를 아느냐. 여우는 새끼가 여러 마리지만 사자는 딱 한 마리만 키운다. 그게 조영창이다.”라고 말했던 일화는 유명하다. 그가 새달 7일 예술의전당에서 10년 만에 리사이틀을 연다. 1987년 독일 엣센 폴크방 국립음대 교수에 임용됐고, 연주활동과 콩쿠르 심사 등 유럽을 중심으로 활동했기 때문이다. 그간 국내에서는 ‘7인의 음악인들’ 같은 합동공연에만 간간이 모습을 드러냈을 뿐이다. “리사이틀이 뜸했던 특별한 이유는 없다. 꼭 하고 싶은 곡이나 기념하고 싶은 일이 있어야 하는데 이번에 스승의 5주기를 기념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스승과 인연이 있는 곡들 만을 골랐다. 프로코피예프 소나타는 로스트로포비치가 미국 망명 후 처음 열린 독주회에서 연주한 곡이다. 당시 커티스음악원에 유학 중이던 16세 소년 조영창은 현장에서 지켜봤다. 그랑탱고는 아스트로 피아졸라가 로스트로포비치에게 헌정한 작품. 그리그 소나타는 스승이 한국에서 첫 리사이틀 때 연주했던 곡이다. (02)720-3933. 3만~10만원. 글 사진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씨줄날줄] 서열/곽태헌 논설위원

    현행 헌법 제66조 제1항에는 ‘대통령은 국가의 원수(元首)이며 외국에 대하여 국가를 대표한다.’는 조항이 있다. 제66조 제4항은 ‘행정권은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는 정부에 속한다.’는 내용이다. 대통령제 국가인 한국의 의전서열 1위는 당연히 대통령이다. 2위는 국회의장, 3위는 대법원장, 4위는 헌법재판소장, 5위는 국무총리, 6위는 중앙선거관리위원장, 7위는 감사원장이다. 헌법과 정부조직법 등을 기초로 한 것이지만, 대통령을 제외하고는 행사의 성격에 따라 다소 차이도 있다. 지난주 민주통합당 박지원 원내대표는 “권력서열 4위인 ‘왕차관’(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이 구속됐고 권력서열 3위인 ‘방통대군’(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도 이미 구속됐다.”면서 “이제 권력서열 1위인 형님(이상득 전 국회부의장)과 2위인 이명박 대통령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두려운 마음으로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 원내대표는 의전서열과는 다른 실제 파워를 나타내는 권력서열을 나름의 판단에 따라 내린 것이다. 현직 대통령이 처음으로 권력서열 2위로 밀린 것은 그만큼 ‘만사형통’으로 불린 이명박 대통령 친형인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의 파워가 세다는 뜻이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 시절 ‘부통령’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권력서열 2위로 통했던 박 원내대표가 현 정부의 권력서열을 거론한 것도 아이러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의전서열은 있지만, 권력서열은 있을 수도 없고 알 수도 없다. 3권분립에 따라 견제와 균형이 이뤄져야 한다. 공식적인 기구와 기관·직위를 근거로 서열이 정해지고 역할을 해야 하는 곳에서 권력서열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은 그만큼 문제가 많다는 뜻이다. 박 원내대표의 말이 100% 맞지는 않다고 해도,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과 박영준 전 차관처럼 현 정부에서 호가호위(狐假虎威)한 사람들은 한둘이 아니다. 북한이나 중국과 같은 곳에는 권력서열, 당서열이 공식화돼 있다. 북한의 경우 지난해 12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에 따라 구성된 장의위원회 명단이나, 지난달 김일성 주석 100회 생일 때의 주석단 명단 등 중요한 행사 때 발표되는 순서를 통해 권력서열을 알 수 있다고 한다. 10월로 예정된 중국 18차 당 대회를 앞두고 권력서열을 알 수 있는 정치국 상무위원 후보 명단이 벌써부터 흘러나오고 있다. 오는 12월 19일 대통령선거 이후 들어설 차기 정부에서는 권력서열이라는 말만 나오지 않아도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지 않을까. 곽태헌 논설위원 tiger@seoul.co.kr
  • [이종원 선임기자 카메라 산책] 경북 상주·서울 구로 ‘여성 예비군 훈련장’을 가다

    [이종원 선임기자 카메라 산책] 경북 상주·서울 구로 ‘여성 예비군 훈련장’을 가다

    때 이른 초여름의 날씨로 신록이 제 빛깔을 온전히 드러낸 5월 초순. 경북 상주시 육군 50사단 상주대대 예비군 훈련장에서는 군복을 입은 한 무리 아주머니들의 구호 소리가 요란하다. “충성! 신고합니다. 강영숙 외 00명은 훈련 입소를 명 받았습니다!” ●아줌마 특유의 억척스러움·진지함… 현역 장병들도 박수 갈채 여성예비군 소대 훈련 입소식이다. 구호와 대열은 엉성해 보여도 표정만은 여느 장병들 못지않게 군기가 바짝 든 모습이다. 훈련은 안보교육, 응급 처치술, 화생방, 모의전투 순으로 빡빡하게 진행됐다. 하지만 특유의 억척스러움과 진지함으로 ‘아줌마 부대’의 진가를 발휘하고 있었다. 특히 서바이벌 장비를 활용한 모의전투에서는 평균 나이 50대 중반의 전업 주부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기민한 움직임을 보여 현역 장병들도 박수갈채를 아끼지 않았다. 연령은 4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하지만 훈련에 대한 열정과 봉사정신은 한결같이 뜨거워 농번기인데도 전원이 입소했다. 군에 입대한 아들을 둔 강영숙(51) 상주여성예비군 소대장은 “군복을 입어 보니 오히려 아들에 대한 걱정이 줄어든다.”며 “아들을 생각해서라도 예비군 활동에 적극 참여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대원들 중 ‘고참병’ 격인 김삼순(63)씨는 “총을 든 순간 여자라는 생각은 사라지고 군인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며 “기력이 닿는 대로 향토 방위에 힘을 보탤 생각”이라며 의욕을 내보였다. 서울 구로구 여성예비군은 창설된 지 4년째인 도시 여성예비군이다. 평시 급식 지원 활동을 하는 날, 남자예비군들에게 줄 간식을 챙기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농촌 지역에 비해 연령대가 낮아서인지 군복을 입었지만 꽃핀을 꽂은 파마머리에 귀고리를 착용한 모습 등이 사뭇 이채롭다. 사진을 찍어야 한다고 하니 모두 작업을 멈춘 채 거울 보고 화장을 고치기에 바쁘다. 여성의 부드러움과 섬세함 속에는 ‘금녀(禁女)의 벽’을 허물고 남자들의 아성에 도전한 ‘맹렬 여성’의 패기가 배어 있다. 처녀 시절 여군이 되는 것이 꿈이었다는 신혜숙(39)씨는 “총을 들고 직접 싸우지는 않아도 여성으로서 국방의 의무를 하는 것 같아 보람 있다.”며 “군복 입은 모습이 잘 어울려요?”라며 수줍어했다. 여성예비군은 향토예비군설치법(1961년 제정, 1968년 전면 개정)에 따른 ‘지원 예비군’으로서 각 지역 군부대가 지자체에 협조하여 소대 1개씩을 편성하고 있다. 1989년 인천 백령도에 첫선을 보인 후 5월 10일 현재 전국적으로 139개 소대에 5382명이 활동 중이다. 국방부 예비전력과 조병철 과장은 “평시에는 향방작계훈련 참여는 물론 재난 재해 구호 활동과 각종 사회 봉사활동을 통해 민·군의 가교 역할을 하고 전시에는 동원 및 향방작전 간 급식 지원, 응급 구호, 후송 지원, 선무 활동 등을 담당한다.”고 설명했다. ●1989년 인천 백령도에 첫선… 전국 139개 소대 ‘가동’ 노인요양원에서 봉사활동을 마치고 나오는 구로구 여성예비군 김옥휘(46)씨는 “각 가정의 버팀목인 여성들이 국가 안보와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예비군 활동에 많이 동참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녀의 바람처럼 여성예비군이 여성 국방 안보 참여의 모범적인 모델로 정착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글 사진 jongwon@seoul.co.kr
  • [사설] 이참에 공연좌석에 낀 ‘거품’을 걷어내자

    뭔가 파격이 용인되고 예외가 가능할 법한 문화·예술 쪽에서도 자본주의 논리는 예외 없이 적용된다. 경계하고 타기해야 할 싸구려 자본의 논리가 기승을 부린다. 문화를 내세우며 돈, 돈, 돈타령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희망은 없다. 정부의 문화 혹은 예술기관도 ‘책임운영’의 멍에를 떠안은 지 오래다. 그러나 아무리 탁월하게 문화를 경영해 ‘이문’을 남긴들 ‘배부른 돼지’ 이상은 되기 어렵다. 늘어나는 우리 영혼의 주름은 회복이 불가능하다. 그것이 문화의 숙명이요 속성이다. 그럼에도 이를 망각한 채 우리는 빈 껍데기 사이비 문화의 길로 내닫고 있다. 문화의 이름으로 문화를 죽이는 현실이 안타깝다. 엊그제 모철민 예술의전당 사장이 주목할 만한 조치를 내놓았다. 7월부터 모든 경연장과 전시장의 대관료를 5%가량 인하하고 전 공연장에 표준좌석등급제를 실시한다는 것이다. 더 이상 P석(프레지던트석) 같은 초고가 좌석을 허용하지 않고 각 등급당 좌석 수도 제한한다는 방침이다. 그의 지적대로 예술의전당은 공공성과 사회적 책임을 강화해 나가야 할 책무가 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조치는 적절하다. 그동안 터무니없는 공연좌석 등급 인플레이션의 폐해를 감안하면 때늦은 감마저 있다. 하지만 우려 또한 없지 않다. 이번 조치로 P석 등 ‘옥상옥’ 등급 좌석의 폐해는 사라질지 모르지만 기존 좌석 등급의 가격은 오히려 오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상대적인 문화 향수 소외층을 더욱 낭떠러지로 모는 일은 없어야 한다. 공연 좌석의 거품은 걷어내야 한다. 티켓 가격구조의 합리화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그러나 좌석 등급 제한이 민간기획사 등이 책정하는 공연티켓 가격의 적정화까지 담보하는 것은 아니라는 데 문제가 있다. 공공이든 민간이든 돈벌이가 된다고 해서 반문화의 유혹에 빠져서는 안 된다. 요컨대 문화의 본질에 충실하는 것 외에 답이 없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 [인사]

    ■국무총리실 △새만금사업추진기획단장 권태성△규제총괄정책관 최병환△평가총괄정책관 박장호△의전관 김성환△총무비서관 이철우 ■특허청 △청장 비서관 김명섭△대변인 김시형△운영지원과장 백흠덕△기획조정관실 규제개혁법무담당관 최대순△산업재산정책국 산업재산인력과장 박주연△상표디자인심사국 상표3심사팀장 어용호△〃 디자인2심사팀장 송병주△특허심판원 심판관 박진환△서울사무소장 오영덕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 △감사 이병용 ■대한상의 인력개발사업단 ◇신규 임용 △충남인력개발원장 박종남 ■서울대치과병원 △관리부장 원광연 ■KT 스카이라이프 △부사장 이성수
  • [공직열전 2012] (4) 총리실(상)

    [공직열전 2012] (4) 총리실(상)

    총리실 사람들은 샌님 같다. 부처 간 정책 조정과 총리 보좌가 주 업무이다 보니 앞에 나서기보다는 막후에서 조용하게 일을 풀어 나가려 한다. 정부 정책 전반을 조율하고 통괄하기 때문에 상반된 입장과 뒤엉킨 정책들 사이에서 중재하고 조정하는 역할이 몸에 배어 있다. 정책을 만들고 이를 관철시키려 나서는 다른 부처 분위기와는 확연하게 다르다. 전체 정원의 40%가량이 다른 부처로부터 파견 나온 직원들인 것도 이런 조직의 특성 때문이다. 임종룡 총리실장(장관급)은 기획재정부 출신의 금융통으로 국정 전반의 조정 업무에 정통하다. 육동한 국무차관은 과장 때 총리실로 전입, 정부 부처 심사·평가를 맡았다. ‘친정’ 기획재정부로 돌아갔다가 실장급으로 재입성해 ‘정책 차관’에 올라 각 부처 조정 업무를 총괄하고 있다. 조정업무 경험과 경제관료의 안목 등 종합적인 시각을 갖췄다는 평을 받는다. 총리 보좌 기능을 총괄하는 김석민 사무차관은 몇 안 되는 ‘토종’ 총리실맨. 직원들의 ‘사돈의 팔촌’까지 꿰고 있을 정도로 스킨십이 두텁다. 정책과 총리 보좌 업무를 두루 거쳤고, 프랑스 유학파로 의전에도 정통하다. 총리실장과 두 차관은 행시 동기(24회), 부드럽고 원만한 성격, 꼼꼼하고 부지런한 스타일이라는 점도 같다. 홍윤식 국정운영1실장은 정책·기획통으로 외교·안보 조정 업무로 잔뼈가 굵었다. 각종 문화재 반환 등에 기여했다. ‘건강사회·공정사회 만들기’ 사업과 공적개발원조(ODA) 사업의 기틀을 세우는 등 큰 가닥을 잡아 가는 능력을 보였다. 이호영 국정운영2실장은 최근까지 사회통합정책실장을 맡으며 친서민대책, 무상보육 등 사회갈등현안 조정에 솜씨를 보였다. 일에 열정적이고 좋은 대인관계에 정무 능력이 빼어난 마당발이다. 넓은 시야에 종합적인 판단력을 갖췄다. 심오택 사회통합정책실장은 규제, 평가 등 총리실 고유 업무들을 다뤄 온 전문가다. 직원들 사이에서 푸근하고 자상한 선배로서 덕망이 두텁다. 부처 간 첨예한 정책적 대립을 합리적인 설득력으로 조율해 관련부처 직원들로부터 평가가 높다. 이병국 규제개혁실장은 공보과장 출신에 입담 좋고, 머리 회전이 빠른 쾌남 스타일. 한승수 전 총리 때 ‘기후변화기획단’ 국장으로 일하며 높은 점수를 받아 동기들보다 앞서 실장 자리를 꿰찼다. 싱글 핸디의 골프 실력, 뛰어난 순발력의 재주꾼으로 화제를 몰고 다닌다. 강은봉 정책분석평가실장은 한 전 총리의 의전관으로 신임을 얻어 1급 반열에 진입했고, 비서실 등 지원 파트에 오래 있었다. 규제개혁실장을 거치며 업무 능력을 발휘했다. 지나칠 정도로 조심스럽고 신중하다. 새만금사업추진기획단 단장을 17일부터 새로 맡게 된 권태성 총무비서관은 총리실 내 대표적인 경제통. 총무비서관을 지내며 ‘예측가능한 인사시스템’ 구축에 공을 들였다. 새만금과는 과장, 국장에 이르는 4차례 보직과 인연을 갖고 있다. 김대현 정무실장은 옛 한나라당 사무처에 오래 근무해 여권 정치인들과 두루 가까우면서도 호남 출신으로서 민주당 의원들과도 소통 창구를 연결하는 대의회 창구다. 최형두 공보실장은 임 총리실장의 권유로 지난 2월 말 총리실에 합류한 신문 기자 출신. 진중하면서도 추진력이 있다. 이석우 선임기자 jun88@seoul.co.kr
  • “공공성 키워드로 국민 문화향유 기회 확대”

    “공공성 키워드로 국민 문화향유 기회 확대”

    지나치게 수익성을 추구한다는 비판을 받던 예술의전당이 공공성 강화 카드를 꺼내 들었다. 모철민(54) 예술의전당 신임 사장은 15일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내년 개관 25주년을 앞두고 우리나라의 대표 복합문화예술 공간으로서 공공성을 키워드로 국민의 문화향유 기회 확대에 주력하겠다.”고 밝혔다. 예술의전당은 공연·전시 단체(혹은 개인)의 부담을 덜어주고자 오는 7월부터 모든 대관료를 5% 내려 2008년 금융위기 이전 수준으로 돌려놓을 계획이다. 하루 660만원가량인 오페라극장의 경우 33만원 정도의 대관료가 인하된다. 개인과 중견작가의 작품발표 공간인 갤러리 7의 대관료는 43%나 큰 폭으로 내린다. P석, VVIP석 등 상위등급 좌석 수를 늘리기 위한 대관공연 기획사들의 꼼수도 발붙일 수 없게 된다. 모 사장은 “예술의전당 전 공연장에 5~6단계의 표준좌석등급제(R석·S석·A~C석)를 실시하는 한편, R석의 비율을 전체 좌석의 25% 수준으로 묶을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2300~2500석 규모의 오페라극장과 콘서트홀의 경우 R석은 최대 800~900석을 넘지 못하도록 한다는 얘기다. 자체 기획공연과 국립예술단체 및 협력 기획사의 공연에 대해 관람료의 40~50%를 할인해주는 청소년 싹틔우미 회원의 연령제한을 현재 19세에서 24세로 넓혔다. 또 비싼 티켓 값 탓에 공연관람을 못하던 청소년(24세 이하)과 문화바우처를 소지한 저소득층을 위해 하반기부터 ‘스탠바이 티켓’을 판매한다. 공연 당일까지 매진되지 않은 좌석에 대해서는 공연 당일 3시부터 5000~1만원의 싼값에 표를 팔 계획이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열린세상] 아시아 문화중심도시에 거는 기대/모철민 예술의전당 사장

    [열린세상] 아시아 문화중심도시에 거는 기대/모철민 예술의전당 사장

    올해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인 관광객은 1000만명이 넘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방문 동기는 나라마다 차이가 있지만 쇼핑, 음식, 명소 탐방 등을 주요 요인으로 꼽는다. 최근에는 한류 붐을 탄 공연 등의 문화예술도 빼놓을 수 없다. 프랑스 파리는 매년 1500만명이 넘는 관광객이 방문한다. 뉴욕타임스는 파리가 외국인을 끄는 매력 중 하나로 분위기 있는 동네문화를 들었다. 카페, 치즈가게, 빵집, 푸줏간 등이 전통적 영업과 형태로 도시 미관을 보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명 ‘라파랭법’으로 불리는 제도가 대형 유통업체로부터 작은 상점들을 보호하고 있다. 그러나 파리의 매력은 누라 뭐라 해도 문화예술이다. 세계 문화의 수도답게 사람들은 문화예술 명소를 순례하듯 다닌다. 파리 체류 당시 필자는 이 도시만의 특별한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숨은 명소를 추천해 달라는 지인들의 요청을 종종 받곤 했다. 그때 안내한 곳 중 하나가 자크마르 앙드레 박물관이었다. 이곳은 19세기 은행가이며 미술수집가였던 에두아르 앙드레와 그의 부인 넬리 자크마르의 저택으로 티에폴로의 천장벽화와 이탈리아 르네상스 그림, 18세기 프랑스 회화와 당시 풍요로웠던 귀족의 삶을 엿볼 수 있다. 또한 전시와 공연 등 풍성한 볼거리도 있다. 프랑스가 세계문화의 중심이 된 핵심 요소는 세계 각지의 문화예술인들이 몰려들 수 있게끔 그 판을 만들어 준 것이라 생각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프랑스 출신의 세계적 예술인은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미술 분야의 경우 주요 인상파 작가를 제외하면 근현대 미술 사조의 프랑스 작가를 찾기가 쉽지 않다. 프랑스 도처에서 피카소와 고흐의 작품을 만날 수 있지만 이들은 프랑스인이 아니다. 명품 패션분야는 어떤가. 샤넬의 제2전성기를 연 수석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는 독일 출신이고, 150년이 넘는 전통의 루이뷔통에 새로운 감성을 불어넣어 역시 루이뷔통이라는 찬사를 듣게 한 사람은 뉴욕 출신인 마크 제이컵스였다. 파리 오케스트라의 현 지휘자는 에스토니아 출신의 파보 예르비다. 국립 라디오프랑스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은 정명훈씨가 맡고 있다. 이처럼 프랑스 문화예술의 강점은 개방성과 다양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예술인들이 마음껏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고 이들을 지원한다. 국적은 의미가 없다. 이들의 창작품은 프랑스에서 전시 공연되고 프랑스에 남으며, 메이드 인 프랑스로 판매된다. 이를 보고 즐기고 사기 위해 전 세계인들이 프랑스를 찾는다. 지금 광주에는 아시아 문화전당 건립이 한창이다. 5·18 민주화운동을 기념하여 광주를 아시아의 문화중심도시로 만든다는 국책사업의 일환이다. 무려 7000억원이 넘는 재원을 투입하여 2014년 개관을 목표로 진행되고 있다. 아시아 문화예술의 공연·전시·연구·교육 등의 기능을 포괄하는 복합문화예술기관을 지향하며, 다양한 아시아문화 원형자원을 수집 보존하고 창조적으로 활용하는 아시아 예술커뮤니티를 조성할 것이라고 한다. 아시아 문화중심도시는 아시아뿐 아니라 아시아 문화에 관심이 있는 전 세계 예술인들의 작업장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들이 함께 고민하고 작업하며 새로운 문화예술을 창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세계적 예술가도 배출되고 이것이 다시 전 세계 예술인을 불러 모으는 동력이 될 것이다. 더불어 세계 각지에서 관광객도 찾아올 것이다. 아시아 문화중심도시의 핵심 키워드는 바로 여기에 있다. 프랑스는 복합문화공간인 퐁피두센터 운영재원의 80% 가까이를 국가에서 지원한다. 아시아 문화중심도시 사업은 단순히 전당의 건립과 운영에 그치지 않는다. 당연히 전당과 연계한 도시의 문화예술적 환경을 조성하고 문화관광산업도 육성해야 한다. 광주비엔날레가 궤도에 올랐지만 아직도 작품의 유통을 담당하는 변변한 갤러리조차 없고 방문객을 위한 숙박시설도 태부족인 현실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다문화사회로 진입하고 있는 현재 아시아 문화중심도시가 지닌 의미는 각별하다. 이를 계기로 광주가 아시아 문화예술을 포용하고 융합하는 거대한 판이자 진정한 중심이 되기를 기대한다.
  • 담담한 강남… “DTI·취득세 빠져 아쉽다”

    담담한 강남… “DTI·취득세 빠져 아쉽다”

    “저번에 개포주공 1단지 50㎡를 8억 2000만원에 내놓았는데 혹시 연락 온데 없나요.” 정부의 ‘5·10 주택거래 정상화 방안’이 발표된 10일 오후 3시 서울 강남구 개포동 믿음공인에 걸려온 전화 내용이다. 이날 이 중개업소에 걸려온 전화는 전·월세 문의가 4건, 대책 발표 이후 동향을 묻는 전화는 3건이 전부였다.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구)가 투기지역에서 해제됐지만 정작 개포 주공과 시영아파트 등이 몰려 있는 개포동 일대 중개업소는 평상시보다 더 한가했다. 오일심 믿음공인 대표는 “대부분의 대책이 이미 알려진 데다 1대1 재건축 완화 역시 개포동에는 해당되는 아파트가 거의 없어 반응이 덤덤하다.”면서 “다만, ‘집값 하락세가 멈추지 않겠느냐’는 기대감은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개포주공 1단지 50㎡는 총선 전까지만해도 7억 3000만~7억 4000만원쯤 했으나 총선 뒤부터 뛰기 시작해 8억 2000만원까지 호가가 올랐다. 인근 스타공인 송보경 대표도 “이미 대책 발표 전에 거래가 다 이뤄져 이제는 가격이 하락하고 있다.”고 말했다. 재건축 단지가 많은 경기 과천의 주택시장 분위기도 마찬가지다. 과천시 별양동의 보석부동산 유순배 대표는 “실수요자들이 2년 미만 주택 보유자에 적용되는 양도세 중과세율 완화가 현행 세율과 큰 차이가 없다고 판단한 것 같다.”면서 “지난해 12·7대책 발표 때는 하루 10여통의 문의전화가 왔지만 오늘은 아예 없다.”고 말했다. 또 “4명의 고객이 계약금을 들고도 재건축은 1000만원, 일반 아파트는 2000만원가량 가격 차이가 나 계약을 미루고 있다.”고 말했다. 유씨에 따르면 현재 과천시에서 영업 중인 110여곳의 중개업소 가운데 지난달까지 단 1건의 거래도 성사시키지 못한 곳이 55%에 이른다.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거래활성화를 위해서는 총부채상환비율(DTI) 완화와 취득세 감면이 필요한데 이게 빠져 아쉽다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만만치 않았다. 비록 DTI와 취득세 감면 부활이 무산됐지만 이번 대책에 의외로 강도 높은 내용이 많이 포함됐다는 것이다. DTI에 묻혀 강남 3구 투기지역 해제와 양도소득세 중과세율 완화, 분양권 전매 제한 완화 등의 대책이 빛을 보지 못하고 있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이들 대책이 효과를 발휘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실제로 부동산 114 조사에 따르면 양도세 비과세 수혜가 예상되는 아파트만 해도 무려 13만 1200가구(2010년 이후 입주)에 달한다. 한 대형 주택업체 관계자는 “강남 3구가 주택거래신고제에서 풀려 거래 때 자금 조달 계획서 등을 내지 않게 되면 기존 주택은 물론 오피스텔 등의 거래가 활발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입주를 시작, 전매제한 완화의 헤택이 기대되는 경기도 수원시 광교신도시의 경우 전매제한 완화의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권병세 광교부동산 대표는 “아직은 반응이 없지만 호재인 만큼 2~3일 지나면 반응이 나타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성곤·오상도기자 sunggone@seoul.co.kr
  • 주벨기에EU 대사에 김창범씨

    정부는 9일 주벨기에유럽연합(EU) 대사에 김창범(52) 대통령실 의전비서관을 임명했다. 김 신임 대사는 1981년 외무고시 15회로 외무부에서 입부해 주일본 서기관, 주미국 서기관, 북미3과장, 주인도네시아 참사관, 혁신인사기획관 등을 거쳐 6자회담을 담당하는 한반도평화교섭본부 내 2007년 신설된 평화체제교섭기획단 초대 단장을 맡았다. 이명박 정부 출범과 함께 2008년 3월 청와대 의전비서관으로 자리를 옮겨 4년 2개월 동안 이 대통령의 ‘그림자’ 의전을 맡아 두터운 신임을 얻었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정약용 탄생 250주년 맞은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

    [김문이 만난사람] 정약용 탄생 250주년 맞은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

    누구나 출생의 비밀은 있다. 이름을 빛낸 위인의 경우에는 더욱 관심이 쏠린다. 그 비밀의 문으로 잠시 들어가보자. 다산 정약용은 1762년(영조 38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꼭 250년 전인 음력 6월 16일, 아버지 하석 정재원(荷石 丁載遠)과 어머니 해남 윤씨(海南 尹氏) 사이에서 출생했다. 태어난 곳은 지금의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이다. 아버지는 대과에 급제하지 않았지만 영조 임금의 특별한 지시로 연천현감, 화순현감, 예천군수 등 고을 수령을 지냈다. 조정에 들어와서는 호조좌랑과 한성서윤을 지내고, 다시 수령으로 나가 울산부사를 거쳐 진주 목사까지 지냈다. 어머니는 고산(孤山) 윤선도의 후손이요, 공재 윤두서(恭齋 尹斗緖)의 손녀였다. 윤선도의 증손자인 윤두서는 한국 회화사에 유명한 자화상을 남긴 화가로 잘 알려져 있다. 아버지는 세 부인 사이에 모두 5남 5녀, 그러니까 10남매가 있었다. 첫 부인은 24세로 요절한 의령 남씨. 소생으로 큰아들 약현(若鉉)이 있다. 둘째 부인 해남 윤씨와 사이에 약전(若銓), 약종(若鍾), 약용(若鏞) 3형제와 딸을 두었다. 딸은 나중에 조선 최초의 영세교인인 만천(蔓川) 이승훈에게 시집간다. 다산 정약용의 나이 9세 때 어머니 해남 윤씨가 세상을 뜨고 말았다. 12살 때 서울에서 20세의 김씨(1754~1813)를 데려왔다. 어린 다산을 친자식처럼 돌봐준 그가 바로 서모(庶母) 김씨다. 서모 김씨는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지낸 김의택(金宜澤)의 딸로 슬하에 3녀 1남(약횡)을 두었다. 다산의 작은형 약종은 형제보다 뒤늦게 천주교를 접했지만 그 믿음이 독실하여 신유사옥 때(1801) 희생됐다. 전도에 힘쓰다가 책롱사건(册籠事件)으로 마흔 둘의 젊은 나이에 순교했다. 형 약전과 막내(다산)가 믿음을 함께하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면서도 형제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했다. 엄혹한 탄압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배교하지 않은 약종의 아들 철상(哲祥), 하상(夏祥), 딸 정혜(貞惠) 역시 천주교로 인해 요절했다. 형 약전은 학문적으로 뛰어난 사람이다. 다산과 한배에서 태어난 형제의 인연뿐만 아니라 다산의 학문을 알아주는 지기(知己)이기도 했다. 1801년 11월 하순 함께 귀양길에 올라 나주 율정점(栗亭店)에서 눈물로 헤어진 후 16년 동안 서로 한번도 보지 못했다. 약전은 그의 나이 59세인 1816년에 유배지에서 세상을 떴다.(다산연구소 자료 참조) 올해 정약용 탄생 250주년을 맞아 다산의 생애와 학문, 사상을 재조명하는 행사가 풍성하게 열린다. 국립박물관과 실학박물관의 전시회, 음악제, 국제학술대회 등이 잇따른다. 지난 3월부터 올 12월까지 계속된다. 이 가운데 가장 눈여겨볼 대목은 다산의 일대기가 처음으로 판소리로 다시 태어난다는 것이다. 다산연구소 주최로 열리는 이 행사는 오는 9월4일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정해석 명창에 의해 1시간 20분동안 진행된다. 창본은 김세종씨. 특히 영문판 CD까지 제작, 세계 각국에 보급할 예정이다. 그동안 부분적으로 다산을 기리는 판소리 무대는 있었지만 75년 생애를 오롯이 담기는 처음이다. 이 밖에 다산이 직접 쓴 글씨와 그림을 전시하는 ‘한국 서예사 특별전-다산 정약용 탄신 250주년 기념전’이 다음 달 9일부터 7월 23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열린다. 또 다산 기념 음악회가 8월 24일 남산골한옥마을에서 열린다. 다산연구소의 박석무(69) 이사장. 그는 요즘 이 같은 행사 준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그는 올해로 다산 연구에 몰두한 지 40년째가 된다. 지난 7일 오후 서울 순화동 사무실에서 만났다. 박 이사장은 연구소 설립 이후 ‘풀어쓰는 다산이야기’ 편지를 지금까지 700여회 쓰고 있다. 자리에 앉으면서 최근에 쓴 편지에 대한 얘기가 먼저 나왔다. ‘대군(大君)이다, 멘토다, 실세 중의 실세다라는 사람들의 감옥행이 줄을 잇고 있습니다. 보기에도 딱하고 국가 체면도 구겨질 대로 구겨져 버렸습니다.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라고 큰소리치면서, 그들을 그런 직위에 임명했던 임명권자의 입장도 딱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중략)화려했던 권력의 시절은 지나가고 이제 부와 권세를 놓치고 감옥에 앉아서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있는 분들, 그런 기회에 목민심서라도 읽으면서 반성의 시간을 가지면 어떨까요.’ 이명박 대통령 측근들의 감옥행을 보면서 다산의 시선으로 글을 썼다. 또 있다. ‘정약전·약용 형제는 세상에 없는 지기지우인 동포 형제였습니다. 두 분이 주고 받은 편지나 학문적 토론의 글들을 보면 부럽기 그지없는 사이였습니다.(중략)오늘의 세상에야 사촌이 남이 된 것은 오래 전의 일이고 친형제조차도 재산 싸움에 남보다 더 원수지간이 되고 있음은 예사로운 일이 아닙니다. 재벌가의 왕자난이나 쟁송(爭訟)의 보도를 읽다보면 다산 형제의 우애가 세상을 바로잡을 청량제로 여겨집니다. 오늘에도 그런 형제애를 복원할 수는 없을까요.’ 이런 편지의 내용은 전국 35만 4000여명에게 이메일로 보내진다. 일주일에 주말을 제외한 4~5차례 꼬박꼬박 쓴다. 어리석은 질문 하나, 박 이사장은 목민심서를 몇 번이나 읽었을까. “몇 번 읽었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사회 현상을 보면서 문득문득 목민심서나 논어를 다산적으로 해석한 글들을 생각날 때마다 다시 뒤적이고 그 뜻을 가슴에 담지요. 수시로 읽는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편지 쓸 때에도 다산의 눈으로 비판하는 것입니다. 대학이나 단체 등에 강의 나갈 때도 다시 목민심서를 읽고 가지요. 성균관대에서 ‘다산과 21세기’라는 교양과목 강의를 하고 있는데 아주 명품강좌로 소문났다지요(웃음).” 지금도 틈 날 때마다 다산을 연구한다는 그는 대학 시절부터 ‘반계수록’ 등 실학에 관심을 두었으며 1971년 대학원 때 ’다산 정약용의 법사상’이라는 석사 학위논문을 쓴 것을 계기로 다산 연구와 인연을 맺었다. 1973년 유신에 항거하다 투옥됐을 때에 다산의 책을 여러 차례 읽었고 이후 8개월 수배 생활 동안에도 다산을 공부했다. 1982년 3월 복권됐을 때 비로소 7년 동안 공부한 내용을 바탕으로 책을 쓰기 시작해 다산의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를 편역,발간했다. 이 책은 지금까지 50여쇄나 찍을 정도로 꾸준히 인기를 끄는 스테디셀러가 됐다.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 “다산은 학문의 깊이가 끝이 없는 최고의 학자이자 사상가입니다. 다산은 520여권의 방대한 저술을 통해 정치, 행정, 법학, 경제, 지리, 의학, 공학 등을 아우르면서 인간존중 사상, 개혁정신, 실사구시의 철학 등을 펼쳐 시대정신으로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학자로서 사물의 본질을 꿰뚫는 안목과 방대한 지식을 섭렵하고 있지요. 특히 유배지에서 가까운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에는 그의 인간성과 철학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다산이야말로 칠흑같이 어두운 봉건시대에 실낱같은 한 줄기의 민중적 의지로 75년동안 치열하게 살다 간 역사적 인물이지요.” 가난에 찌들어 굶어 죽어가는 이웃의 아픔을 견디다 못해 공동 경작에 의해 공동분배하도록 하자고 혁명적인 전론(田論)을 주장하기도 했고 부정부패와 착취를 일삼는 관리들을 어떻게 해야 올바른 생각으로 돌아서게 할 수 있을까 해서, 관리들의 지침서인 ‘목민심서’를 저술한 것, 그리고 시를 통해서 백성들을 일깨워 보고자 했던 그의 생애는 250년이 지난 지금에도 따르고 연구하려는 학자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설명한다. “다산은 22세때 진사과에 합격했는데 정조임금이 답안지를 직접 읽고 휼륭한 인재임을 알고는 근처에 있도록 하면서 자주 교류가 이루어졌습니다. 모든 시문행사때마다 항상 1등을 차지하는 다산을 늘 아꼈고 기쁨을 누렸습니다. 정조는 다산을 통해서 사실상 정치를 바로 할 수 있었고 그런 다산은 정책 보고서를 임금에게 직접 올리게 됩니다.” 박 이사장은 가정의 달을 맞아 “요즘처럼 가족윤리가 무너지고 사제 간의 의리도 깡그리 파괴된 때, 우리는 다산의 사상과 철학을 통해 가족의 중요함과 사제간의 정다운 의리를 복원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다산의 효제(孝悌)사상을 새삼 강조했다. 다산의 탄신일과 관련해서는 “1762년 6월 16일에 태어났는데 그날이 양력으로 8월 5일이어서 생일 기념은 매년 8월 5일에 하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도 그날에 회혼례, 산신제 등 다양한 행사가 펼쳐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선임기자 km@seoul.co.kr >> 박석무 이사장은 1942년 전남 무안에서 4대째 한학을 공부해온 집안에서 자랐다. 전남대 법과대학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1964년 한일회담 반대시위로 구속되는 등 민주화 운동에 투신, 4차례 옥고를 치렀다. 1971년 ‘다산 정약용의 법사상’이라는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하면서 다산 연구에 집중했다. 1973년 유신반대 유인물인 전남대학교 ‘함성’지 사건에 연루돼 1년 동안 복역하면서 감방 안에서 본격적으로 다산 저술에 대한 연구의 시간을 가졌다. 출옥후에는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를 발간했다. 지금까지 50쇄나 찍을 정도로 꾸준히 읽히고 있는 명저가 됐다. 1980년 광주항쟁 때는 관련 주모자로 몰려 오랜 수배생활 끝에 붙잡혀 1년 3개월여를 또다시 복역했다. 1988년 13대 국회에 진출한 후 14대 국회의원 시절에는 국회다산사상연구회를 조직, 간사를 맡아 활동을 펼쳤다. 한국학술진흥재단 이사장과 명지대학교 객원교수, 연세대학교 초빙교수, 전남대학교 초빙교수와 단국대학교 이사장, 한국고전번역원 원장 등을 지냈다. 현재 성균관대학교 석좌초빙교수이자 (사)다산연구소의 이사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주요 저술로는 ‘다산기행’, ‘우리 교육을 살리자’, ‘풀어 쓰는 다산 이야기1,2’, ‘다산 정약용 유배지에서 만나다’가 있으며, 편역서로는 ‘흠흠신서’, ‘애절양’, ‘다산산문선’, ‘나의 어머니, 조선의 어머니’ 및 ‘다산 논설선집’, ‘다산 문학선집’(공편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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