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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건국이후 인구변화(대한민국 50년:19)

    ◎49년 첫조사 20,188,641명… 96년엔 갑절로/55년 간이조사 전에는 추계… 정확성 의문/6·25전쟁기간 150만명 희생… 사망률 4%/60년대부터 공업·도시화 영향 대규모 이동 대한민국 정부 수립후 최초의 인구조사는 49년 5월1일에 실시된 ‘대한민국 제1회 인구조사’였다.이 때 인구는 2천18만8천641명으로 파악됐다. 한국전쟁 중인 50년과 51년에는 보건사회부의 발표가 남아있다.50년 2천35만6천명,51년 2천44만1천명이었다.그런데 이 인구조사 발표는 실제 조사를 한 것이 아니라 49년의 조사를 토대로 각도 도지사의 보고에 의한 추계였다. 52년과 53년에는 내무부의 추계가 남아있다.52년 2천52만6천명과 53년 2천1백54만6천248명이었다.53년의 인구가 전년도보다 1백만명 이상 급증한 것은 배급을 늘리기 위한 유령인구 때문으로 추측된다.54년 보건사회부의 인구통계는 2천1백91만3천명이었지만 이도 실제조사가 아니라 전년도에 기준한 추계이다.결국 정부가 발표한 50년부터 54년 사이의 인구 수는 정확하지 못하다. 55년 제1회 간이 총인구조사가 실시됐는데 상주인구가 2천20만2천256명이었다.이는 현역 군인과 형무소 수형자 등을 뺀 숫자이다.한국전쟁 시기의 인구 증가율은 1.1%였다.그러나 한국전쟁후 베이비 붐이 일어 55년 이후 66년까지 인구 증가율은 2.8%를 기록했다.그러다가 산아제한 정책이 실시된 66년부터 85년까지는 1.7%로 떨어졌다. ○증가율 2.8% ‘베이비 붐’ 정부 수립후 인구의 변동은 경제문제와 가장 밀접한 상관관계를 갖는다.1인당 국민소득은 44.5달러에 불과했다.따라서 국민총생산의 5분의 1에 달하는 미국으로부터의 원조액 1억7천9백59만3천달러는 기아를 막기 위한 것으로도 부족했다.한국전쟁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인구에 비해 보잘 것 없는 생산시설은 ‘저고용­저소득­저고용’의 악순환 고리를 이어갔다.폭발적인 인구문제의 해결은 60년대 경제개발을 통한 지속적 성장 밖에 해답을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한국전쟁의 인적 피해로 인한 가장 직접적이고 충격적 결과는 무엇보다도 특이한 인구구조를 형성시켰다는 점이다.우선 한국전쟁은 일시적 사망률의 상승과 출생률의 저하를 초래했다.한국전쟁으로 인한 인명 손실 중 사망자는 약 1백만∼1백50만명으로 추정되며 이로 인한 인구의 사망률은 1천명당 36∼47명,즉 4% 안팎으로서 평소 한국인의 사망률인 평균 2%의 2배나 됐다.이같은 현상은 60년과 66년의 인구 센서스에서 각각 30∼49세 및 35∼49세의 연령층에서 과부가 많은 것으로 조사된 것과 상통하는 것이다.반면 전쟁기간 동안의 0∼9세의 영아 및 아동의 사망자 가운데는 남아보다 여아가 더 많았다.이것은 새로 태어난 신생아들과 아이들의 경우 전통적 남아 선호사상으로 인해 남아를 되도록 보살핀 때문으로 사회학자들은 보고 있다. ○45만∼72만명 월남 추정 전쟁기간 중의 출생률은 극도로 저하돼 같은 기간의 높은 사망률과 더불어 인구의 절대 감소현상을 초래했다.이때의 출생률은 평상시보다 1%나 낮아졌으나 인구 증가율이 당시에는 1년에 1천명당 23명으로 늘어났었던 데 비해 전쟁기간 중이었던 49∼55년 사이에는 연평균 1천명당 11명 정도 밖에 늘어나지 않았다. 전쟁으로 인한 인구변동의 또다른 충격은 인구의 대규모 이동현상이다.한국전쟁 기간 동안의 월남인구의 추정치는 45만∼72만명에 이르고 있다.반면 남한에서 북한으로 강제로 납치되거나 그 밖의 이유로 넘어간 이들의 수도 대략 30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한편 우리나라에서 대규모 인구이동이 시작된 것은 60년대부터인데 60년대 이후의 인구이동은 물론 공업화의 영향을 받은 도시화의 결과였다. 61년 이후 인구 분포에 있어 가장 큰 변화를 경험한 지역은 수도 서울이었다.서울은 정부수립 직후인 49년에는 전인구의 7.1%를 차지했고 11개 시·도 중 인구 수로 따져 9위에 지나지 않았으나 75년에는 이미 전인구의 20%에 해당하는 6백90여만명의 인구를 갖게 됐다.또 오늘날에는 전인구의 22%가 넘는 1천여만명의 인구를 갖게 됐다. ○86년 도시인구가 65% 그러나 서울과 부산,그리고 경기도를 제외한 모든 도는 전국 인구에 대한 구성비에 있어 감소 추세를 보였다.인구이동을 도시와 농촌으로 구분하면 도시인구의 비율은 55년 25%에 불과했던 것이 80년에는 57%,86년에는 65%에 달해 도시인구가 급증했음을 알 수 있다.그러나 70년 이후 서울로의 인구집중은 어느 정도 둔화되는 추세를 보이기 시작했고 농촌인구가 서울 이외의 다른 도시로 이동하기 시작했다.특히 마산 울산 포항 등의 새로운 공업도시와 수도권의 성남 안양 수원 등에는 우리나라 전도시의 평균 인구증가율보다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 정부수립후 49년 첫 인구조사에서 남한의 인구는 2천18만8천여명이었으나 96년 조사된 인구는 4천6백43만4천여명으로 50년동안 두배로 불어났다. ◎日 전쟁 동원 인구 해방후 엄천난 逆유입/日帝와 美 군정 시기의 인구/도시주변 戰災民으로 반공체제 정착 큰 역할/46년 1,936만명 조사/이듬해 국민등록 실시 한국은 일제 식민통치 기간 동안 특히 37년 이후의 전시 총동원체제 아래서 대규모의 인구이동을 경험했다.가혹한 수탈로 인해 농촌을 떠나 일본과 만주 등으로 이주했다.또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으로 이어지는 전시체제 기간동안 이른바 노무 동원 또는 강제 징용 등에 의해 북한의 광공업지역과 일본으로 동원됐다.39년에서 해방 전까지의 기간에 국내외에 걸쳐 전시체제와 관련한 유동인구는 약 7백만명으로 45년 현재 국내 총인구 수의 약 30%에 달한다는 사실은 인구이동 규모의 방대함을 말해 준다. 일제 말기의 인구이동 현상은 해방직후에는 역으로 대규모의 인구유입 즉 귀환을 초래했다.여기에다 남북 분단의 체제대립적 성격을 반영하는 이른바 월남민들이 발생했다.해방 직후 남한사회는 단기간 안에 엄청난 인구유입을 경험했다. 이는 해방정국을 이해하는 데 몇 가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첫째는 유입인구가 자신의 성장지역인 농촌사회에 안정적으로 정착하지 못하고 그렇다고 도시지역의 경제활동 인구로 흡수되지도 못하면서 상당수가 도시 주변에 전재민(戰災民)으로 퇴적된 것으로 보인다.이는 해방정국의 사회적 불안정성과 긴장을 높이는 주요한 변수가 됐다. 둘째는 유입인구가 계급적 성격과 사회적 경험 등에 따라 비교적 뚜렷한 정치적 지향성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에 해방정국의 정치적 격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해방 직후 월남민들이 우익세력의 선봉대였으며 남한사회가 반공체제로 귀착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점은 역사가들이 입증하고 있다. 해방 후 최초의 인구조사는 미군정청에 의해 46년 8월25일 실시되었다.소련군이 진주한 북한은 제외됐다.이 통계는 44년 조선총독부의 국세(國勢)조사 인구에 미군측이 파악한 식량배급 인원과 외부로부터의 유입인구를 고려해 작성됐다.이 때 조사된 남한 인구는 총 1천9백36만9천270명이었다.따라서 이 통계는 실제 인구수를 넘는 것으로 평가된다.미군정청은 이어 47년 국민등록을 실시했다.등록 인구는 총 1천9백88만6천234명.다음해 다시 실시한 국민등록에서는 2천2만7천393명의 인구가 등록됐다.미군정청이 실시한 국민등록은 의식주 및 생활 필수품의 확보와 배급계획의 수행,앞으로의 선거 등을 대비한 것이었다.
  • 시급한 생활물가 안정(사설)

    생활물가가 크게 뛰고 있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최근 통계청이 밝힌 3월말 생활물가지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2.7%나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이는 같은 기간의 전체소비자물가상승률보다 3.7%포인트나 더 오른 것으로 국제통화기금(IMF) 한파가 몰아닥친 이후 특히 서민들의 물가고(物價苦)가 심각함을 가리키는 것이다.전체소비자 물가지수가 470개 품목에 대해 광범위하게 가격변동을 조사하는 반면 생활물가지수는 이 가운데서도 쌀·두부·밀가루 등 실생활과 보다 밀접한 관련이 있는 품목(154개)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서민 가계(家計)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더욱이 쌀을 비롯한 기초 음식품 등 생활필수품은 가격에 대한 수요의 탄력성이 매우 낮아서 값의 오르내림에 크게 좌우되지 않고 구입해야 하는 물품이어서 가격안정이 각별히 요청됨을 강조한다.따라서 환율이 내리고 있음에도 값을 낮추지 않는 업체에 대해 세무조사에 나서는 것은 물론 이번 기회에 원자재 수입(輸入)의존도가 높은 설탕·식용유·화장지 등을 대상으로 품목별 원가(原價)조사를 일제히 실시할 것을 당국에 촉구한다·이를 통해 각 원료투입 비율과 원가 구성비 등을 정확히 밝혀냄으로써 부당이득을 제거하고 개별 생필품의 적정가격을 다시 산정하는 정책수단을 강구토록 당부하는 바이다. 이와 함께 정부는 부품 등 중간재의 국산화시책을 강력히 추진해서 고환율시대의 수입대체(輸入代替)로 중간재 값 인하를 유도하고 무역수지개선도 뒷받침하는 이중효과를 얻도록 힘써 주기 바란다.외환부족과 은행의 수입신용장 개설기피에 따른 원자재난에 편승,유통과정의 폭리를 취함으로써 국내 물가는 물론 수출상품 가격상승을 부추기는 행위도 엄단해야 할 것이다.버스요금을 비롯한 각종 서민교통수단 이용료를 포함,공공요금은 경영합리화와 구조조정 등의 내부적 노력으로 인상요인을 자체 흡수토록 범(汎)정부적 물가안정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기업들은 과다한 부채비율을 낮추는 구조조정에 힘써서 은행대출금 이자등 금융비용부담이 생산품의 제조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줄여 가격인하를 추진해야 할 것이다.인플레 심리의 확산을 조장하는 무분별한 불로(不勞)·고소득층의 과시적 소비행태도 뿌리 뽑혀야 할 것이다.IMF한파로 가뜩이나 어수선한 사회분위기와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를 앞둔 행정공백을 틈탄 가격 기습인상도 철저히 단속돼야 한다.IMF시대에서는 무엇보다 최저 생계비수준의 의식주와 직결되는 생활물가안정이 이뤄져야 함을 거듭 강조한다.
  • 과학기술이 빚갚을 기회/이은웅 충남대 전기공학과 교수(굄돌)

    공기 물 그리고 의식주가 해결되면 그 다음으로 필요한 것이 문화생활이고,문화생활을 위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전기기술이다.그래서 우리는 전력을 와트(W),전압은 볼트(V),전류는 암페어(A),주파수는 헤르츠(㎐)로 표시하는 전기의 정량적 단위를 알고 있다.그러나 이와 같은 전기의 단위가 전기기술 향상에 획기적으로 공헌한 사람의 이름에서 비롯되었음을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 많은 단위나 용어 중에 우리나라 사람의 이름에서 비롯된 것은 하나도 없다.그러니까 개발비와 함께 시간과 노력을 쏟아 넣어 일구어낸 다른 나라의 전기기술을 우리는 111년동안이나 편리하게 사용하여 오늘의 공업국가로 성장한 것이다.그렇지만 WTO체제가 가동되고부터는 로얄티 없이 선진기술을 받아들일 수 없고 과학기술서적이나 소프트웨어 등의 복사가 불법이 된다.따라서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지름길이 가격경쟁력이 있는 제품을 수출하는 것이라면 우리의 기술이 선진기술이 되도록 개발하는 수밖에 없다. 수많은 위기를 극복하면서 반만년 역사를연연히 이어온 우리 민족이,흐트러져 있다가도 뭉칠 수 있었던 민족성은,우뚝 솟을 수 잇는 저력으로 생각된다.게다가 잘 교육받은 현명한 국민이 있으며,지난 30년 경이적인 국가발전을 이룩해 낸 산업역군과 기반이 있고 그들이 지닌 경험과 지혜가 있다. 이제는 다시 일어서고자 하는 불굴의 용기와,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슬기를 내놓아야 하며 모두의 단결이 요구된다.그리고 이 기회에 우리의 과학기술을 개발하여 지금까지 선진국에 지은 빚을 갚아야 한다. 따라서 아무리 근검절약이 필요하더라도 과학기술을 배양하는 데만은 투자를 아끼지 않아야 하고,그래야만 우리나라의 성이나 이름으로 불리는 과학기술의 용어와 단위가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시대가 올 것이다. ◎굄돌 필진이 바뀝니다 2∼3월에는 이갑수·이은웅·정진성·홍철씨가 맡습니다. ▲이갑수(39)=시인·도서출판 민음사 편집국장. 서울대 생물학과 졸.90년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91년 ‘오늘의 작가상’수상.시집 ‘신은 망했다’ 등. ▲이은웅(54)=충남대 전기공학과 교수·대한전기학회 부회장.한양대 전기공학과 졸,동 대학 박사.캐나다 맥길대 방문교수,전국 국립공과대학장 협의회장 역임. ▲정진성(여·45)=서울대 사회학과 교수.서울대 사회학과 졸,미 시카고대박사.도쿄대 초청연구원·덕성여대 교수 역임. ▲홍철(53)=국토개발연구원장.서울대 경제학과 졸,미국 펜실베이니아대 경제학박사.국방연구원 수석연구원·건설부 기획관리실장·교통안전공단 이사장 역임. 지난해 12월과 올 1월에 수고하신 김재홍·김희진·이융조·장석환씨께 감사드립니다.
  • ‘너덜너덜 패션’(송정숙 칼럼)

    흐느적거리는 천으로 속치마같은 드레스를 걸치고 아랫도리에는 흡사 옛날 우리네 할머니들의 단속곳같은 바지를 줄줄 흘리며 군화를 신고 머리에는 얄궂은 꽃핀을 꽂은 차림이 예사로 파티장을 누비고 다닌다.통은 넓고 길이는 질질 끌려서 보기만 하기에도 인내심이 필요한 바지에 여자아이같은 알록달록한 블라우스를 입은 남자가수가 무대위를 펄쩍펄쩍 뛰어다니기도 한다.청소년들은 그것을 흉내내고 거리를 휘젓는다.우리만이 아니라 온 세계가 그런 추세다. ○미제 헌 청바지도 수입 파리의 오토쿠뛰르나 프레타포르테 컬렉션에서 발표한 작품이 상업주의의 회로에 실려 지구를 반바퀴쯤 돌아 다음 시즌쯤 서울에 도착하던 시대는 이제 옛날이 되었다.지금은 분초를 다투며 파리와 런던과 뉴욕과 동경 그리고 서울이 ‘동시폭발’한다. 의식주에는 일정한 예도가 있다고 배우고 믿어온 기성세대에게는 넝마처럼 너덜너덜해보이는 이런 패션이 회오리바람처럼 우리 주변을 휘두르고 다니는 일이 생소하고 낭패스럽다.그러다보니 찢어진 패션이 유행이라고 미국의 어딘가에서 누가 입다 버린 것까지 넝마주이처럼 수거해 들여오느라고 외화를 잔뜩 썼다는 소식은 너무나 황당하게 느껴진다. ○패션은 시대 읽는 기호 패션이란 시대의 기호다.유럽 여인들에게서 페티코트를 벗긴 것은 가브리엘 샤넬이었다.1차세계대전이 종전된 직후였다.뻣뻣한 철사줄로 엮어진 속옷때문에 전쟁의 피해에서 도망치기 힘들었던 불행의 경험을 과감하게 벗어던지게 한 패션이다.비단(견)드레스와 속옷을 장만하는데 드는 비용도 함께 떨어버릴수 있었고 전화로 황폐해진 여성들의 냉소적 저항의지도 표현할 겸 이 패션은 단숨에 유럽을 풍미했다.때는 바야흐로 여성의 자아실현의 눈이 뜨이던 무렵.뜨거워진 여성의 참정권 열기를 부채질하며 예술가와 철학자들의 사상적 지원까지 받아 여성의 인간선언 기호로 안성맞춤이게 등장한 시대의 언어였다. 인간이 달을 정복하게 되었을때 파리의 앙드레 끌레쥬는 우주복을 패션의 주제로 삼았다.우주선 공간에서 지내기 편리하게 무게와 면적을 최소화한,그러면서 기능성은 최고로 살린 신소재의 소년처럼 경쾌한 패션.이 패션에서 빌미를 얻어 런던의 마리 퀀트는 ‘미니모드’를 거리에 등장시킨다.시골미용사 출신의 모델 ‘가느다란 나뭇가지’튀기는 그 전도사가 된다.당대의 산업은 마침 기능성을 최대의 덕목으로 하는 대량생산체제였다.‘미니모드’는 달의 신비를 벗겨내는 과학의 대담성과 기능주의의 합리성에 너무도 잘 합치되는 패션이었다. ○사라진 전통적 질서·규율 ‘미니모드’때부터 패션의 전통적 질서와 규율은 사라져갔다.파티복이 일상복이 되고 일상복이 파티복이 되어버린 것은 충격도 아니다.수공업으로 짠 자연섬유의 중세풍 패션과 외계인같은 복장이 동시에 어울리고 정장과 비정장을 섞어찌개처럼 함께 입고 남루와 예복을 동시에 연출한다.마침내 종아리를 쭈욱 찢어입는 청바지차림의 ‘너덜너덜 패션’이 군화에 배낭을 맨채 확고한 모드로 정착했다.그런 모습으로 광고에 등장하여 모시 고의적삼 차림의 꼬장꼬장한 영남 사림같은 노인과 파안대소하며 마주하는 장면도 아주 자연스러워졌다. 이런건 무슨 패션일까.모든 기성권위를 부정하고 모든 질서의 구애를 거부하며 어떤 이질끼리도 다양하게 공존할 수 있는 능력을 덕목으로 삼는 포스트모더니즘 패션이라고나 할 수 있을 것이다.싼 것도 아름다울수 있고 넝마도 예쁠수 있고 부조화에서도 조화를 찾을수 있고 자연과 화해하는 원초회귀도 발상할 수 있는 엄청난 자유와 무한한 다양성이 흥미있다. ○못난 젊은이에 얌체 상술 그러나 흥미는 있지만 그런 것에 빠져서 입다버린 미제 청바지를 외화를 내주고 들여온다는 것은 속상한다.그렇게 들여온 것을 한장에 10만원까지 줘가며 사입고 돌아다니는 젊은이가 있다는 것은 실망스럽다.못나 보이기때문이다.우리의 젊은이가 못나 보이는 것은 기분나쁘다.무역적자가 심각하고 환율까지 급등해서 불안한데 이런 젊은이가 있고 그것을 노려 이익을 챙기려는 상업주의가 판을 친다는 사실도 너무 밉다. 자부심이 강하고 온당하며 합리적인 젊은이들이 아니라면 우리에게 무엇이 희망일 수 있겠는가.걸핏하면 ‘슈퍼301조’를 전가의 보도삼아 휘두르는 나라에서 ‘입다버린’ 헌 청바지까지 들여와가며 장사하는 사람들의 행태를 용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당대의 패션에 담긴 뜻을 읽고 건강하게 즐기는 많은 젊은이들은 사랑하지만 ‘못난 젊은이’는 우리를 실망시킨다.〈본사고문〉
  • 경제난 해결 방안(김정일의 북한:12)

    ◎“위기의 경제 탈출구는 중국식 개혁·개방”/‘우리식 사회주의’란 방어·수동적 개념 생존전략/한시 외자유치도 미봉책… 닫힌 체제빗장 풀어야 김정일체제가 들어서면서부터 북한은 ‘우리식 사회주의 건설’이라는 구호 아래 독자적인 발전의 길을 모색해왔다.‘우리식 사회주의’란 동구 사회주의권이 해체돼 고립무원의 상태에 처한 북한이 종래의 공세적이고 능동적인 차원과는 달리,방어적이고 수동적인 차원에서 생존을 모색하는 하나의 시도라고 분석된다. ○성공 가능성 극히 희박 우리에게는 마지막 절규처럼 들리기도 하는 이러한 시도는 연이은 자연재해와 북한체제의 구조적인 모순이 겹쳐 이제 성공할 가능성이 극히 적다는 것이 국내외 북한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견해였으며,금번 서울신문사와의 접경지대 현지조사에서도 이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급변하는 국제환경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폐쇄정책을 버리고,체제를 개혁·개방하는 것 외에는 달리 왕도가 있을수 없는 것이다. 중국의 경우 등소평이 등장한 이후 ‘사회주의 시장경제’를표방하면서 불합리한 제도와 체제를 과감하게 개혁하고 외자를 적극 유치하기 위해 대대적인 개방정책을 취했다.이러한 정책이 결실을 거둬 이제 중국은 만성적인 식량부족 상태를 극복하고,의식주를 비롯한 기본적인 생활문제는 해결한 상태이다.이로 인해 중국은 사회주의체제에서 시장경제체제로 전환한 성공적인 사례가 됐으며,북한도 결국은 중국이 취했던 것과 같은 길을 밟지 않으면 체제 자체의 존속이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북한이 현재 취하고 있는 조치들은 이와는 거리가 멀거나,극히 제한적이라고 밖에는 할 수 없다.이중 어느 방식을 따르더라도 북한이 처하고 있는 현재의 위기상태를 슬기롭게 극복할 수 없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군부를 비롯한 강경파의 경우 ‘우리식 사회주의’를 고수하며 사회주의는 영원히 멸망하지 않는다고 애써 주장하고 있다.이들은 사회주의가 현재 곤경에 처한 것은 사실이나 사회주의는 과학이기 때문에 결국은 승리할 것이며,경제발전에서 가장 중요한 요인은 물질적인 자극이 아니라 인간의 사상 의식이라고 강조하는 김정일의 주장을 철석같이 믿고 있다.이에 따라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며,모든 것을 결정하는 철학적 원리’임을 역설한 주체사상의 학습이 중요한 과업으로 등장하고 있는 실정이다. ○구호보다 옥수수 원해 그러나 구호를 먹고 살 수는 없기 때문에,금번의 현지조사에서도 확인한 바와 같이 북한 주민들은 허황되고 거창한 구호보다는 허기진 배를 채울수 있는 한줌의 옥수수가루를 더 필요로 하고 있었다.한적한 중국거리가 교통체증을 일으킬 정도로 목재를 실은 차량들이 꼬리를 물고 북한으로부터 나오고 있었고,이들은 다시 옥수수나 밀같은 먹거리를 싣고 들어갔다.이로 인해 북한의 산들은 벌거벗은 민둥산으로 변하고 있으며,중국측 접경지대에는 산더미처럼 나무를 쌓아놓고 이를 가공하는 목재소들이 즐비했고,이들은 한껏 호황을 누리고 있었다.장백에서 만난 중국인 관리조차 북한이 나무를 다 베어내면 자신들의 경제가 위축될지 모른다고 우려할 정도로,엄청난 규모로 벌채가 이뤄지고 있는 형편이다. 극심한 식량부족으로 주민이 굶어죽어가는 절박한 상황에서 제시된 ‘우리식 사회주의’라는 구호는 식량난과 경제위기 타개의 비전이나 정책이 결코 될 수 없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 지도부가 개혁·개방을 외면하며 ‘우리식 사회주의’를 계속 고수할 경우,북한의 경제상황은 더욱 악화될 것이고 이럴수록 대외의존은 불가피할 것으로 분석된다. 의식개혁과 사상교육을 강화한다고 해서 식량과 교환할 산림이나 지하자원이 솟아나는 것도 아니며,공장을 가동시킬 에너지가 생기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따라서 주민들의 의식주 문제를 국제사회의 인도주의적 원조에 의존해 해결할 수 밖에 없는 딜레마에 처하는 것이다.이처럼 ‘우리식’을 강조하는 것이 결국은 더욱 많은 남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는 것은 지극히 역설적인 현상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그러나 이것도 임시방편일뿐 언제까지고 외부에 의존하고 있을 수는 없기에,‘우리식 사회주의’는 이제 한계에 봉착했다고 할 수 있다.또한 북한의 현 지도부도 무책임하고 무능하다는 국제사회의 비난을 계속 외면하고만 있을 수는 없는 상황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외부 사정에 비교적 정통하다는 온건파의 경우도 사회주의 체제의 유지라고 하는 대전제 아래 제한적이고 부분적인 개방만을 하려는데서 벗어나지 않고 있다.이의 전형적인 실례가 지난 91년12월 나진·선봉 자유경제무역지대 설치의 공표였다.이는 중국의 사례에서 나타난 것처럼 선진국의 자본과 기술의 도입 없이는 경제난 극복이 불가능하다는 현실적 판단에서 나온 조치였다.그러나 외자 유치에 따른 ‘자본주의적 오염’이 북한체제에 미치는 영향은 한사코 차단해야 한다는 전략으로 인해,그리고 남북관계의 경색으로 한국기업의 진출이 이뤄지지 않는 탓으로 인해,지금까지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신용도 낮아 투자 꺼려 이와 아울러 북한 사회는 당간부의 지시나 명령이 법이나 제도보다 우선시돼 장기적이고 합리적인 사업계획의 수립이 불가능한 데다,대외신용도 마저 낮고,나진·선봉지역 뿐 아니라 전반적으로 사회간접자본 시설에 대한 투자가 낙후돼 외국인들은 투자를 기피하고 있는 실정이다.투자를 기피하게 하는 또하나의 요인으로는 제도상의 미비점과 시행착오를 들수 있으며,이로 인한 피해도 적지 않아 커다란 문제점으로 부각되고 있다.이 분야에 정통한 연변의 한 조선족 교수는 초기에 나진·선봉지역에 투자했던 조선족 동포들이 7억원(한화 약 700억원)이나 떼였으며,이 과정에서 북한 역시 1억원(약 100억원)정도 사기를 당한 상태이기 때문에 북한에 대한 투자를 꺼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를 볼때 제한적인 범위내에서의 개방조치는 일시적인 미봉책에 불과하며,경제난을 근본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 방책이 될 수 없다고 분석된다.따라서 최악의 경제위기에 처해 있는 북한이 경제를 회생시키기 위해서는 대외 개방정책의 채택으로 선진기술과 자본을 도입하고,제도와 체제의 개혁으로 이를 효율적으로 운영해 나가는 중국의 방식을 취하는 것뿐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집필=심지연 경남대 교수·정치외교학〉
  • 함북 무산읍 외곽마을(김정일의 북한:2)

    ◎농약 절대부족… 농작물 ‘해충털기 운동’/옥수수 다락밭엔 ‘속도전 앞으로’ 푯말만/공장 가동중단 붉은빛 녹슨기계 그대로 북한과 접경한 중국쪽 숭선진 고성리마을은 북한의 무산시 외곽 삼장리와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지호지간에 위치하고 있다.지난 10일 하오 1시쯤 고성리 강변엔 일군의 조선족이 모여앉아 물맑은 장백산백 원류에서 잡아왔다는 산천어로 어죽을 끓여 회식을 하고 있었다.불원천리하고 찾아온 길이라 우리 일행은 술과 밥을 대접을 받으며 북한쪽 사정 이야기를 거리낌없이 들을수 있었다. ○성공한 개혁­실패한 수구 북한주민들의 살림살이는 목불인견이라며 얼마나 견딜수 있을지 동족으로서 걱정이 태산이란다.강변에 놓여진 한켤레 운동화는 북한제로 밤새 탈북한 북한주민이 버리고 간 것이 분명하다고 일러준다.이켠의 강가엔 조선족 아이들이 물장구치며 노느라고 여념이 없는데,저켠 북한쪽에선 유랑민인듯 행색이 초라한 일가가 미루나무 그늘에서 포식을 하고 있는 이쪽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다.성공한 개혁·개방과 실패한수구·쇄국정책의 극명한 대비를 실감케하는 접경지의 진면목이다. 고성리를 떠나올때 동행을 간청한 세사람의 조선족이 있었다.모녀와 그 어머니의 친정 조카딸이다.이모와 조카딸은 숭선을 떠나 모스크바에 돈벌러 가기 위함이고 11살짜리 딸아이는 외할머니댁에 맡기기 위한 출행이란다.딸아이의 아버지는 북한 무산읍에 나가 접경무역에 종사하고 있어 이 무남독녀를 돌보아줄 틈이 없다는 것이다. 외가마을에 먼저 내린 딸아이는 그때까지 참았던 눈물을 쏟아내고 어머니는 아이가 시선에서 사라질 때까지 서서 손을 흔들어 주고 있었다.이역만리 모스크바에서 한밑천 잡아 한국행 수속비를 만들기 위한 고행의 출발임을 어머니는 전해준다.겨울이면 강이 얼어붙어 남편과 지면이 있는 북한주민이 자기집에 와 식량이며 옷가지를 얻어간다기에 그만큼 살만한데,왜 모스크바까지 고생하러 가느냐고 묻자 사람이 먹고만 사느냐고 잘라 말한다.개방의 물결은 이곳 접경 벽지마을까지 깊이 침투하고 있다는 증좌다.의식주 다음엔 아이들 교육이고,그리고 문화생활이던가.중국의 조선족은 분명 개발도상기의 가치관을 듬뿍 받고 있음이 분명하다. 최근 북한을 다녀온 연변대학 동북아정치연구소의 조선족연구원이 밝히는 북한실상은 가히 충격적이다.물자부족의 실례로 농작물의 모종을 배양하기 위해 비닐을 덮어씌어야 하는데,비닐이 절대부족해 하루하루 고랑을 바꿔가면서 모종을 덮어주는가 하면,해충이 극성을 부리나 방제할 농약이 없어 농민들이 일일이 농작물의 해충털기 운동을 대대적으로 벌이기도 한다는 것이다.더욱이 수년간의 자연재해로 흉작에다 다락밭 조성으로 산림의 황폐화와 지력소모가 극심하여 금년에는 홍수나 가뭄이 아니더라도 소출은 기대하기 어렵고,산업활동이 마비상태인지라 적절한 비료공급조차 되지 않아 흉작은 정해진 이치란다. 이같은 절박한 사정을 국제기구나 민간단체에 긴급히 호소하고 북한실상을 직접 객관적으로 조사케 하여 인도적 차원의 위기상황 타개책 마련에 적극 나서줄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한여름이면 초근목피도 독이 오르고 질겨서 식용할 수 없게 되니 그 기아의 고통은 이루 형언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비료 공급안돼 흉작 반복 중국 연길시에서 중국과 합작회사 사장으로 있는 온성군 군수출신의 한 북한인사는 중앙정부의 식량배급에 지친 나머지 온성이 화급히 필요한 200t정도의 곡물을 공급하기 위해 만나는 중국인들마다 ‘200t,200t’하고 애걸하며 동분서주한다는 일화를 소개해준다. 연구원은 결론적으로 북한의 살길은 중국의 선례처럼 과감한 개혁·개방정책외에 대안은 없다고 말하면서,그런데도 북한 지도층과 당국은 북한의 경제난이 미 제국주의자와 남조선의 경제봉쇄에 기인한다고 선전하며 주민을 통제하는 구태의연한 수법을 행사하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라며 일침을 놓는다.그는 또 한국정부가 중국의 대북한 개방권유를 지원하고 그같은 분위기의 조성에 적극 나설 필요가 있다는 점을 덧붙인다.중국과 북한 사이를 이간시켜 한국측이 득볼게 없다는 사실이다.한·중 수교후 중국과 북한간의 미묘한 냉각기류를 한국측이 계속 조성하거나 방치하지 말고 오히려 양국간의 우호관계를 복원시키는데 일조하여,중국식 개혁·개방정책의 물결이 북한쪽으로 유입케 하는 것이 현명한 외교정책이라는 조언도 제시한다. 중국 용정시에서 대외경제합작국의 책임자인 조선족 이모국장은 수년전만해도 경제합작사업 관계로 북한을 방문하면 북한측 파트너인 고급관리들이 양담배를 수두룩하게 내놓으며 과시하고 음식대접도 융숭하게 했는데,작년과 금년 두차례에 걸쳐 방문해보니 양담배는 고사하고 조악한 북한산 담배조차도 옆구리가 터져 침을 발라가면서 피우는 지경이며,중국에서 자신들이 먹을 음식이며 술,그리고 안주감으로 소세지까지 휴대하고 들어갔다는 사실을 전해준다. ○“개방물결 북 유입 돼야” 북한의 혜산과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는 중국의 장백조선족자치현에서 지난 8일 상오내내 혜산 주민들의 동태를 조망할 수 있었다.이날은 바로 김일성주석의 3주기일이다.강폭이라야 좁은데는 20m도 채 되지 않은 곳이니 육안으로도 혜산을 속속들이 볼수 있는 입지이다. 상오 10시,추모행사를 마친 수만명의 인파가 대오도 정연히 ‘배움의 길’을 따라 걸어가는 모습이 포착된다.배는 곯아도 가슴 가득 숭배의 염을 안고가는 북한 주민들을 바라보며 착잡한 심정 금하기 어렵다.종교가 사회를 지배하던 중세의 한단면을 보는 듯한 착각에 사로 잡힌다. ○“북의 빈궁은 자업자득” 주택들은 초라하기 그지없고 공장들은 지붕조차 없이 내부가 하늘과 맞닿았고,기계들은 녹슬어 붉은 빛이 완연하다.해발 200∼300m의 산정상까지 옥수수를 심은 다락밭이 펼쳐진 가운데 대문자의 ‘속도전 앞으로’라는 푯말이 우뚝 서 있다.무엇을 위한 속도전인가.다락밭 조성을 위한 속도전이라면 기아상태로 돌입하기 위한 속도전일 것이며,해방전쟁 승리를 위한 속도전이라면 남한에까지 기아를 수출하기 위한 속도전일 것이다. 북한에서 중국으로 건너온 상당수 조선족의 후예들은 북한의 빈궁이 결국은 자업자득이라는 비판과 함께 동쪽에 대한 연민을 함께 가지는 애증의 갈등현상을 거의 공통적으로 가지는 듯했다.
  • GDP 세계11위 국민소득(눈높이 경제교실)

    ◎경제규모 국제적 위상 ‘실감안될 정도’ 부상 국제사회에서 우리나라의 경제적 위상은 생각보다 훨씬 높다. 96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은 1만548달러이고,나라전체의 경제규모(명목 GDP)는 4천8백46억달러로 세계 11위다.1인당 국민소득이 이정도 밖에 안되는데도 경제규모순위에서는 내노라하는 선진국을 젖히는 것은 인구가 많기 때문이다.자급자족사회에서는 경지면적에 비해 인구가 많은 것이 큰 부담이었지만 요즘같은 경제상황서는 인구가 많은 것도 큰 자산이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이 우리나라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을 일찍부터 권유했던 것도 이같은 우리의 경제규모 때문이다.우리나라는 지난해 12월에 세계에서 29번째로 OECD 회원국이 됐다.우리의 경제력을 OECD 국가군(군)과 비교하면 경제규모는 29개 회원국중 9위,1인당 국민소득은 23위다.경제규모는 전체 OECD 회원국 평균 규모의 55.9%,1인당 국민소득은 48% 수준이다.반면 수출입 규모인 교역규모는 OECD 회원국중 10위이다.부존자원이 부족해 수출로 경제성장을해온 결과다. 그러나 국민들은 우리나라의 경제규모가 세계 11위라는 사실을 잘 실감하지 못한다.초고속 성장을 해왔기 때문이다.실제로 최근 5년(91∼95년)간 우리의 평균 경제성장률은 7.5%로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이 기간동안 OECD 회원국의 평균 성장률은 1.4%였다. 우리의 과제는 경제규모상의 덩치보다 훨씬 뒤처져 있는 경쟁력을 끌어 올리는 것이다.겉모습과 달리 속이 꽉 차 있지 않으면 뼈대가 약한 비만아에 다름아니기 때문이다.전문가들은 경제규모에 걸맞게 국민의 의식과 기업가 정신을 고취시키는 등의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김영만 서울신문 경제부장〉 □통계 어떻게 내리나 한 나라가 선진국인지 개발도상국인지를 가늠하는 지표로 흔히 1인당 GNP를 이용한다.경기가 호황인지 불황인지를 판단하는 지표도 개개인 입장에서는 수없이 많지만 국가경제 전체로 볼때는 흔히 경제성장률(GDP성장률)의 높고낮음으로 평가한다. ○경제주체 생산한 상품·서비스 합산 이와 같이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유용하게 쓰는 1인당 GNP,경제성장률 등의 경제지표는 한국은행이 매분기 국민소득 통계를 작성함으로써 얻어낸 수치들이다. 국민소득 통계는 가계,기업,정부 등 한 나라의 모든 경제주체들이 생산해낸 상품과 서비스로부터 얻는 소득을 합한 것이다.이렇게 얻어진 소득은 다시 모든 경제주체들에게 분배되고 분배된 소득은 어떤 형태로든 지출되게 마련이다. 따라서 생산,분배,지출이라는 세가지 측면에서 계산된 국민소득은 원칙적으로 그 크기가 같아야 한다.이를 국민소득의 3면등가(등가)원칙이라고 한다.그러나 실제 추계하는 과정에서는 서로 다른 자료를 이용하기 때문에 다소 차이가 나는 것이 일반적이다.우리나라는 분배나 지출측면보다는 생산측면의 기초자료가 비교적 풍부하고 정확하기 때문에 생산측면에서 우선 국민소득의 규모를 확정하고 있다. ○총생산액에서 원재료비는 제외해야 생산측면의 국민소득은 “한나라의 경제주체가 일정기간동안 새로 생산한 상품과 서비스를 화폐가치로 평가하여 합한 것”이다.상품 또는 서비스의 화폐가치는 해당 상품 및서비스의 가격에 생산량을 곱해서 계산한다.여기서 중요한 점은 국민소득이 ‘새로 생산한 상품과 서비스의 화폐가치’ 즉 부가가치만을 합한 것이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서 1년에 승용차 한대만을 만든다고 가정하자.또 원재료로 철강재만 든다고 하자.철강회사는 2백만원 어치의 국산 철광석을 가공하여 자동차회사에 4백만원에 판매하고 자동차회사는 이 철강재를 투입하여 1천만원짜리 자동차를 만들었다고 치자.이때 우리나라의 국민소득은 철광석(2백만원),철강재(4백만원)와 자동차(1천만원)가격을 합친 1천6백만원이 아니다.철광석(2백만원)과 철강회사의 부가가치(2백만원),그리고 자동차회사의 부가가치(6백만원)을 더한 1천만원이 된다. □‘방대한 규모’ 집계 어떻게 국민 경제활동은 복잡 다양할 뿐만 아니라 국민소득의 추계에 이용되는 기초자료의 공급시기와 내용도 각 부문에 따라 상이하기 때문에 모든 산업의 부가가치를 동일한 방법으로 계산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따라서 각국은 기초자료 사정에 맞추어 다양한 방법으로 국민소득을 산출하고 있다.우리나라도 산업 별로 추계방법을 달리하고 있다. ○자료 사정따라 산업별 추계방식 달라 예를 들면 금융업,전기업 등은 금융기관 및 한국전력공사 같은 관련 기관으로부터 산출액과 중간투입액 자료를 구해 해당산업의 부가가치를 직접 계산한다.또 농업과 같이 금액 대신 생산량 및 중간투입량과 가격자료를 구할수 있는 경우에는 물량에 가격을 곱하여 산출액 및 중간투입액을 추계한다. 산업 전체의 금액이나 물량 자료를 쉽게 구할수 없는 경우도 있다.대표적인 예로 수많은 기업이 제품을 생산하는 제조업을 들 수 있다.그러나 무수히 많은 제조업체의 생산액 또는 생산량을 그때그때 조사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제조업 조사 애로… 생산·물가지수 이용 따라서 제조업 산출액은 매 5년마다 모든 제조업체를 조사하여 구한 기준년의 산출액을 통계청이 표본조사하여 작성하는 제조업생산지수와 한국은행이 편제하는 생산자물가지수 등 관련 가격지수를 이용하여 연장,추계한다.제조업의 부가가치는 이렇게 구한 산출액에 산업연관표 또는 기업경영 분석자료에서 구한 부가가치율(부가가치/산출액)을 곱하여 계산한다. 한편 국민소득은 화폐가치로 평가한 것이므로 상품과 서비스의 생산량변동 뿐만 아니라 가격변동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게 된다.추계 당시의 시장가격으로 평가한 것을 ‘경상가격기준 국민소득’이라 하고 가격변동분을 제거하기 위하여 기준년 가격으로 평가한 것을 ‘불변가격기준 국민소득’이라 한다.통상 경제구조나 경제규모,1인당 GNP 등은 경상가격 기준으로 작성하고 경제성장률은 불변가격 기준으로 계산한다. □허실 특정국가의 국력을 평가하는데는 그 나라의 국토면적,인구,부존자원은 물론 정치,군사력까지도 감안하기 때문에 경제적인 측면만을 반영한 국민소득의 크기와 국력과는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 특히 1인당 국민소득은 인구의 많고 적음이 반영되지 않으므로 이것만으로 한 나라의 국력을 평가하는 것은 무리이다.즉 1인당 국민소득이 가장 많은 룩셈부르크를 세계에서 국력이 가장 센 나라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또 국민소득의 절대적인 크기만으로 국가간의 복지수준을 비교할 경우에도 오류를 범할 우려가 있다.예컨대 일본의 1인당 국민소득은 우리나라의 4배에 달하지만 일본 국민들의 생활수준이 우리나라보다 4배 더 높은 것은 아니다.실제로는 평균적인 일본 가정의 의식주 및 소비수준이 우리와 비슷하거나 어떤 면에서는 오히려 더 낮다는 사실이 여러 조사에서 밝혀지고 있다. ○국력 반영·국민 삶의질 측정엔 한계 한편 국민소득의 증가는 국가는 물론 개인의 경제적 성장과 발전을 나타내는 유용한 판단근거가 되기는 하나 국민들의 삶의 질이 얼마나 나아졌는가를 정확하게 측정하는데는 한계가 있다. 지난 30여년 동안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은 130배 이상 늘어났으나 그에 비례해 국민들의 후생수준이 높아졌다고는 말할수 없다.예를 들면 중화학공업 위주의 성장정책에 힘입어 국민소득은 늘었지만 공해 등으로 환경은 크게 훼손되었다.또 도시 과밀화현상과 자동차의 급증에 따른 교통체증도 국민소득이 늘어나는 과정에서 드러난 부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이외에도 국민소득이 국민들의 후생수준을 정확하게 반영하지 못하는 사례는 여러가지가 있다. 일반적으로 노동시간이 늘어나면 생산이 많아져 국민소득이 커지나 반대로 여가를 즐길수 있는 시간은 줄어들게 된다.그러나 국민소득은 여가시간이 줄어드는데 따르는 후생의 감소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또 소득의 배분과 관련된 문제도 국민소득의 한계로 지적되고 있다.국민소득은 단순히 나라 전체의 소득이 얼마나 되는가를 나타내므로 소득이 어떻게 배분되는가에 대해서는 알려주지 못한다. ○분배과정 정보 못담아… 지표 보완필요 또한 최근에는 경제성장률이 기업들이 느끼는 체감경기를 정확하게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경제성장률은 생산활동수준을 측정하는 지표로서 순수한 생산물량의 변동분만을 반영하므로 수출가격이 떨어지거나 수입가격이 오르는 등 교역조건이 나빠질 경우 기업들이 느끼는 체감성장률과는 괴리가 커질수 밖에 없다. 이와 같이 국민소득은 국민복지수준을 정확히 나타내는데 한계가있기 때문에 최근들어 유엔,OECD 등을 중심으로 새로운 경제후생지표를 개발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환경문제를 고려한 ‘그린GNP’와 교역조건 변화에 따른 무역손익을 감안한 ‘실질국민총소득’(Real Gross National Income) 등이 그 예다.
  • 시인 구상(이세기의 인물탐구:138)

    ◎뿌리깊은 ‘시심’… 역사의식 음미/세속의 고달픔·분노·저항 시로 표현/50여년간 저서 30여권… ‘문단의 어른’ 시인에게 명징한 시정신을 요구하는 것은 세속에 시달린 고달픔과 분노와 저항이 순화되기를 기대하기 때문이다.우리 문단에서 사물의 현상을 감각적으로 포착하기 전에 맑게 열려있는 내부의 시선으로 시를 써온 구도자적 시인이 있다면 그가 바로 구상시인일 것이다. 그는 ‘사물에 대한 독자적 진실을 증거하기 위해’ 문학을 한다는 것이며 ‘만물은 감각이 아닌,존재론적 차원에서 음미하는것’이라고 말한다.그의 시는 존재론적 형이상학적 인식과 역사의식에서 출발하여 문단에 처음 나온 50여년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뿌리깊은 시심이 시들줄을 모른다. ○신부 되려 일 신학교 입학 한 시인이 펴낸 30여권의 저서는 문학에 대한 왕성한 열정과 강인한 정신력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어떤 시인 작가보다도 그는 수많은 태풍과 좌초와 시련을 겪었고 그로인해 구상문학의 심도는 그의 신앙과 관련된 어떤 헌사나 찬사도 한사코 거부한다. 본래 서울 종로 이화동에서 태어났으나 독일계 가톨릭 베네딕트수도원의 교육사업을 위촉받은 부친 구종진씨를 따라 4살 되던 해 원산시 근교인 덕원에 정착,그의 자전적 시집인 ‘모과나무 옹두리에도 사연이’에 그의 전 생애가 그림처럼 그려져있다.그는 부친이 쉰넷,어머니가 48세의 나이의 만득으로 노부모는 ‘심산의 동삼’처럼 애지중지하였고 장성할 때까지 의식주의 그리움을 모른채 그는 학문의 숭상과 인간의 구경이 현세에 있지않다는 참된 종교의 훈육을 받을수 있었다.그리고 부친이 돌아가실 무렵에 남긴 “너는 사물에 너무 기승을 하지 말아라.박빙인생인줄 알고 자신이나 자부를 너무 갖지 말라”는 것이 한평생의 좌우명이자 삶의 지침이 되었다. 소년시절부터 ‘미동’이란 소리를 들을 만큼 이목구비가 반듯했던 그는 ‘겉으론 신수가 훤하고 키도 작은 편이 아니어서’ 호주머니가 텅텅 비어있어도 친구들은 ‘기천금쯤이야 문제없겠다’고 했고 막걸리집에서 나와도 요정에서 취한줄 알았다.더구나 그의 집안 내력과 부모를 아는 사람들은 그의 역정이나 내정도 순풍에 돛단듯 귀공자나 행운아인줄 알고 있었다.그래서 그의 부드러운 외양만으로는 ‘옥고를 치렀다든가 북한에서 감옥탈출을 했다든가 폐결핵환자로 두번씩이나 폐수술을 했다’는 것을 아무도 짐작하지 못한다.말씨 역시 굼뜨고 어눌한 편으로 라디오나 텔레비전 좌담회에 나오면 말의 짝을 맞추는 철어방식이 제멋대로지만 긴장되고 조리가 서야 하는 교단에서는 능변에다 달변이요,문화행사의 연사나 사회자로 자주 초청될 정도다. 도쿄유학이란 것도 부모의 양해아래 대학진학을 목표로 정상적인 도항 수속을 밟은 것과는 달리 가톨릭 신부가 되기 위해 성베네딕트수도원 신학교에 들어갔다가 3년만에 환속을 했고 문학을 한답시고 ‘고향의 불령선인’들과 어울려 다니다가 걸핏하면 유치장 신세,‘스물 안짝에 교회에선 이단자,가문에선 불효자,마을에선 주의자 취급’을 당하다가 사회의 악의에 찬 눈길에서 벗어나고자 도쿄밀항을 시도하게 된것이다. 그간의 문학적 항해도 유유자적과는 전혀 거리가 멀다.널리 알려지다시피 그는 원산문학가동맹의 주동멤버였고 거기서 발간한 해방 1주년 기념시집인 ‘응향’에다 북한을 ‘까마귀와 불길한 아침,수상한 그림자가 배회하는 암흑지대’에 비유하여 ‘퇴폐적 악마적 반역사적 반민족적’등의 빗발치는 비난에 쫓겨 47년에 탈출하게 되었다. ○원산문학가동맹 주동멤버 6·25의 와중에서도 인간역사속의 오늘을 연작형태로 쓴 ‘초토의 시’로써 전쟁속에서도 섭리와 자유,선과 악,이념과 민족 등의 실존의식을 구상적으로 표출하였고 5·16이후 스스로의 행동적 현실참여에 허탈감을 느끼자 대학강단으로 전신하기에 이른다.이때 시작업의 휴면상태를 메우기 위해 연작 장시의 효시로 알려진 ‘밭일기’ 100편의 에스키스를 시작,‘나같은 사람은 어떤 일에 감동하는 촉발생심이나 그때그때 시류에 맞춘 시로서는 사물의 실재를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에’ 시작에서 존재의 무한한 다면성을 조명하기 위해서는 ‘한 제재로써 응시를 거듭함으로써 관입실재하려는 의도’를 밝힌 바 있다. 만년의 그는 문단의 어른으로서 지휘하고 통솔하는 위치지만 단한번도 공직을 맡지 않았고 자신의 범주를 더이상 과장하지 않는다.먼저 간 오상순선생을 기리는 공초문학상을 위한 기금마련을 했고 그를 원하는 곳에 가서 상도 주고 축사도 서슴지 않아 사회적인 대소사에서 그를 만나기란 어렵지 않은 일이다.그러나 막상 자신을 위한 자리는 극단적으로 마다하는 결벽과 괴팍스러움이 있다는 것은 주의깊게 살펴보지 않으면 짐작하기 어렵다. 지금도 그의 친지나 가까운 이들은 ‘진작 죽을 사람이 부인덕에 살게됐다’고 말한다.고향에서 중매로 결혼한 부인 서영옥씨는 수년전까지 영등포에서 순심병원을 경영하던 여의사로 그의 고질병인 폐결핵 치료의 주치의이기도 하다.자녀는 아들과 수필집 ‘딸 자명에게 보내는 글발’의 주인공이 있다.부인과 사별후 지금도 여전히 여의도 시범아파트,문을 열면 그와 절친했던 이중섭의 그림이 한눈에 들어오는 분위기에서 20년 이상을 하루같이 아침이나 낙일에 강변을 반원을 그리며 산책하고 그 바쁜 틈틈이에도 순백의 동심에 젖기 위해 어린이 놀이터에서 소일하기도 한다.선친의 유언대로 크게 두드러지지 않고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며 그 명성과 자신이 갖춘것에 비해 겸허하고 양보한다. 그런 그는 어딘지 모든 것이 무난하므로 탈을 부리지 않으려는 무사안일로 오해될 수도 있다.그러나 그의 파란이 중첩된 생애를 꼼꼼히 살펴보면 시인의 가슴에 담긴 슬픔의 무게야말로 생활철학과 종교와 깊은 시심에서 우러나온 평균적 수치임을 알게 된다.사물의 현상을 감각적으로 포착하기 전에 심안을 통해 사리의 세계를 구축한 그의 구상문학도 끝없는 시심과 모나지않은 인품의 결과이며 이제 우리는 세속의 고달픔과 분노를 씻는 이 구도자적 노시인에게 진정어린 경의를 보내는 것만이 예의다. □연보 ▲1919년 서울 출생·원산 성장 ▲1941년 일본대 종교과 졸업 ▲1942­45년 북선 매일신문 기자 ▲1946년 시집 ‘응향’필화사건으로 월남 ▲1948­57년 연합신문 문화부장,승리일보주간,영남일보 주필 ▲1957­61년 서울대 서강대 출강 ▲1970­74년 하와이대 교환교수 ▲1976­현재 중앙대 예술대 대우교수 ▲1979­현재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1986·93년 아시아시인회의 서울대 회장,국제펜클럽 한국본부 고문 ▷저서◁ 시집 ‘구상’(51년) ‘초토의 시’(56년) ‘까마귀’(81년) ‘개똥밭’(87년) 자전시집 ‘모과 옹두리에도 사연이’(84년) 사회평론집 ‘민주고발’(53년) 수상집 ‘침언부언’(60년) ‘실천적 확신을 위하여’(82년) ‘나자렛 예수’(79년) 시론집‘현대시 창작입문’(88년) 영역시집‘타버린 땅’(89년 런던) ‘밭과 강’(91년 런던) 등 30여권. ▷수상◁ 금성화랑무공훈장(55년) 서울시문화상(57년) 국민훈장동백장(70년) 대한민국문학상 본상(80년) 대한민국예술원상(93년)
  • 증가율 둔화 소비(눈높이 경제교실)

    ◎저상장시대 ‘길목’… 소비심리 급랭/경기침체·감량경영 여파… 1분기 소비증가율 5.2%에 그쳐 국내 근로자들의 소비심리가 꽁꽁 얼어붙었다. 오랜 경기침체로 소득이 크게 늘지 않고 있는 탓이지만 실제 소득증가둔화보다 더 큰 폭으로 소비증가율이 둔화되는 추세다.이번 경기침체가 다른 때의 경기순환과 달리,고성장시대에서 저성장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성격을 가짐에 따라 소비자들이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지출을 실제이상으로 줄이는 탓으로 보인다.특히 그동안 들어보지 못했던 명예퇴직,감량경영 등이 일반화되면서 소비자들의 불안감이 극대화되고 있고,이에따라 경기가 회복국면에 들어서더라도 소비지출은 급격히 늘어나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1·4분기중 도시근로자 가계수지동향’을 보면 소득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9.3%가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그러나 소비지출증가율은 5.2%가 증가하는데 그쳤다.그동안 집값이 크게 올랐다거나 크게 물가가 오른 부분이 없는 점을 감안하면 이같은 소비위축은 경제의 구조전환과 장래 불안감확산에 따른 심리적 요인외의 것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근로자들의 소비위축은 다른 통계에서도 나타나고 있다.이를테면 1∼5월중 소비재 수입은 1.5% 증가에 그쳐 4년만에 처음으로 증가율이 한자리수로 떨어졌다.소비재 수입은 94년 24.6%,95년 27.8%,96년 21.2%로 연 3년동안 20% 이상의 폭발적인 증가를 보인바 있다. 한동안 과소비의 상징적인 존재로 부각됐던 해외여행객도 5월 한달동안 지난해 5월보다 0.3%가 줄었다.출국자 수의 감소는 지난 91년 2월이후 6년 3개월만의 일이다. 이처럼 일반 근로자들의 소비는 급격히 위축되고 있다.그러나 여전히 일부 부유층의 과소비는 개선되지 않고 있다. ◎과소비 현상과 대책/사치성 소비재 수입·해외여행이 부채질/모방·과시 습관 시정… 절제 생활화해야 개인의 경우 일반적으로 소비증가율이 소득증가율보다 낮다는 사실은 국민경제 전체로 볼 때 소비증가율이 경제성장률보다 낮다는 것을 의미한다.실제로 우리나라의 민간소비율(민간소비/국민가처분소득)은 경제상황에 따라 다소의 기복은 있으나 경제성장과 함께 대체로 하락해 왔다.그러나 80년대말부터 90년대 초까지는 소비가 급속히 늘면서 과거와는 달리 소비증가율이 경제성장률을 앞질렀다.이에 따라 물가상승압력의 증대,국제수지적자의 확대 등 부작용이 나타나면서 과소비에 대한 우려가 높아졌다.이같은 과소비 현상의 원인으로서는 80년대 말 경제환경의 변화를 들 수 있다.첫째,80년대 중반 이후의 급속한 임금상승 및 부동산을 비롯한 실물자산가격의 급등으로 소비자의 구매력이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다.둘째,경제의 개방화 국제화와 함께 수입이 자유화되고 해외여행이 늘면서 소비가 고급화되고 다양화되었기 때문이다.셋째,신용카드이용 증대 및 신용대출 확대 등으로 가계의 자금 차입기회가 확대되면서 모방효과 등이 촉진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소비증가세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둔화되는 모습을 보이고는 있으나 전반적인 소비수준은 우리나라와 소득수준이 비슷한 나라에 비해 아직도 높다.더욱이 최근에는 경기침체가 지속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급승용차 호화가구 골프채 등 사치성 소비재의 수입이 크게 줄어들지 않고 단순 관광목적의 해외여행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따라서 우리나라는 소득수준과 비교한 소비수준 면에서나 소비내용 면에서 부분적으로 과소비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과소비에 따르는 부작용을 해소하여 우리 경제의 건실한 성장기반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국민 각자가 모방소비나 과시소비 등 불합리한 소비습관을 시정하고 소비를 절제함으로써 건전하고 합리적인 소비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정부는 소비주체인 가계가 계획적인 소비생활을 할 수 있도록 물가를 안정시켜야 할 것이다.물가불안은 경제의 불확실성을 높여 저축의욕을 감퇴시키고 소비를 자극하는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아울러 불로소득 기회를 차단하기 위해 부동산 등 자산가격 안정을 위한 시책도 지속 추진해 나가야 한다. □소비와 국민경제 사람은 누구나 의식주 문제를 해결하거나 여가를 즐기기 위해 소득의 많은 부분을 쓰면서 살아간다.소비란 일상생활에서 이뤄지는 일체의 지출행위를 말한다. 사람들이 직장에서 일을 하는 것은 소비를 위한 소득을 벌어들이는데 궁극적 목적이 있다.물론 사람들은 대개의 경우 미래를 대비해 번 돈을 다 쓰지 않고 일부 저축을 한다.그러나 저축 또한 미래의 소비를 위해 현재의 소비를 일시적으로 유보하는 행위라는 점에서 모든 경제활동의 최종 목적지는 소비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소비는 국민경제 전체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우리나라의 경우 소비는 국민소득의 2/3쯤 된다.그러나 경제문제를 이야기할 때 많은 사람들이 경제성장에 있어서 수출과 투자의 역할을 매우 중시하는 반면 소비에는 상대적으로 관심을 덜 가지려는 경향이 있다.국민경제에서의 비중이 가장 큼에도 불구하고 소비에 대한 관심이 적은 것은 소비가 수출이나 투자와 달리 경제여건이 바뀌더라도 그 규모가 크게 변하지 않는 특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소비가 안정적인 이유로는 두가지를 들 수 있다.첫째,전체 소비의 약 50%가 의식주 생활에 꼭 필요한 소비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필수적 소비는 소득이 늘거나 줄더라도 크게 변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둘째,필수적 소비를 제외한 나머지 소비,예컨대 냉장고 세탁기 등 내구 소비재나 문화·오락서비스 등에 대한 소비도 개개인의 소비습관이 갑자기 바뀌지 않는 한 소득이 늘거나 줄더라도 단기간내에 급격히 변화하지 않는 특성이 있다. ○수출·투자보다 경제성장과 더 밀접 이처럼 소비는 국민경제에서의 비중이 높고 비교적 안정적인 움직임을 나타내기 때문에 경기변동의 진폭을 완화해주는 역할을 한다.선진국들이 급속한 경기과열이나 경기침체를 비교적 덜 겪는 것도 그 나라 경제에서 차지하는 소비의 비중이 높은 것과 무관하지 않다.그렇다고 해서 소비가 많을수록 좋다고 말할 수는 없다.소비가 지나치게 커지면 이에 따른 부작용도 적지 않다. ○과소비땐 성장잠재력 잠식 부작용 소비 증가는 뒤집어 말하면 저축여력이 줄어드는 것이기 때문에 그만큼 국내에서 조달할 수 있는 투자 재원이 줄어드는 것을 의미한다.미래의 생산능력은 투자의 크기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에 과도한 소비는 장기적으로 경제의 성장잠재력을 잠식하여 국민의 생활수준 향상속도를 더디게 할 수 있다. 한편 소비가 늘어난 만큼 국내산업의 소비재 공급여력이 확대되지 못할 경우 인플레이션이 높아질 우려도 있다.또 물가상승을 막기 위해 국내생산으로 충당할 수 없는 부분을 해외에서 수입할 경우 국제수지가 나빠지게 된다.그렇기 때문에 소득수준이 낮고 경제체질이 취약한 개발도상국에서 소비는 악덕이고 저축은 미덕으로 여기고 있다.그러나 한 나라의 경제가 상당한 발전단계에 이르면 소비의 뒷받침없이 원활한 생산활동이 어려워진다는 점에서 소비는 미덕이 될 수도 있다. □소비의 결정요인 개인입장에서 볼 때 소비 크기를 결정하는 요인은 소득수준이다.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소득범위에서 소비하기 때문이다.물론 경우에 따라 자신의 소득 이상을 소비로 지출하는 경우도 있을수 있다.그러나 소득보다 소비가 많을 경우 결국 빚을 지게 돼 이같은 소비는 오래 지속될 수 없다.소득이 증가하면 소비도 늘지만 소비증가율이 소득증가율보다 낮은 것이 일반적이다.따라서 소비가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즉 소비성향은 소득수준이 높아질수록 점차 낮아지게 된다. ○일반적으로 개인소득에 비례해 증감 소득수준이 낮을 때는 그날 그날 살아가는데 급급하기 때문에 소득의 대부분을 생활필수품 구입에 충당할 수 밖에 없어 소비성향이 높다.그러나 소득수준이 높아져 의식주 문제가 해결되면 장래에 대비해 소득의 일부를 저축하는 여유가 생기게 돼 소비성향이 낮아진다. 소득 이외에도 기호나 앞날에 대한 설계 등 개인적인 성향도 소비에 영향을 준다.뿐만 아니라 소득수준이 어느 단계를 넘어서면 과시욕,모방본능 등 심리적요인이 소비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부유층 허영심리·모방심리가 변수로 고소득층의 사람들은 자신이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남보다 앞선 존재라는 사실을 과시하기 위해 고급승용차 다이아몬드반지 고급가구 등 값비싼 제품을 사는 경향이 있다.이러한 소비행태를 베블렌효과(Veblen Effect)라고 한다.베블렌효과는 대도시일수록,허영심이 많은 소비자일수록크게 나타난다.이같은 과시적 소비는 처음에는 일부 부유층을 중심으로 시작되는 것이 보통이지만 주위사람들이 이를 흉내내면서 사회전체로 확산될 수 있다.이를 모방효과(Bandwagon Effect)라고 한다.모방효과는 유행에 민감한 여성들의 의상수요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이 특정 상품을 많이 소비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 상품을 덩달아 구매하는 경우에 발생한다.한편 모방효과가 확산되어 과시소비가 신분이나 계급의 차별화를 위한 수단으로서의 효용을 상실하게 되면 일부 부유층들은 누구나 소비할 수 있는 상품의 구매를 중단하고 남들이 쉽게 살 수 없는 진귀한 상품만을 선호하는 경우도 나타난다.이를 스놉효과(Snob Effect)라고 한다.
  • 서울대 「조국사랑」(동아리 탐방)

    ◎“동포에 차원 북한연구 색안경 끼고 보지 마세요”/95년 시작한 모금운동 갈수록 호응 커 뿌듯 「북한 주민의 실상을 자세히 알고 싶으면 이리로 오세요」 서울대 동아리 「조국사랑」 회원들은 모두가 북한 전문가로 통한다. 국내 대학중 유일하게 북한주민의 삶을 연구하는 동아리다. 지난 89년 북한을 바로 알자는 취지로 만들어져 현재 10여명의 회원이 있다.3평 남짓한 동아리방엔 그동안 모아온 북한주민에 대한 폭넓은 자료와 사진이 가득하다.회원들이 신문에 게재된 것을 정성스레 하나 둘 모은 것들이다. 동아리 결성후 이렇다 할 역할을 하지 못했던 조국사랑은 95년 발생한 북한 홍수사태를 계기로 그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당시 회원들은 북한 주민들을 돕기 위해 다른 동아리와 연합,모금활동을 벌였다.동시에 학우들에게 북한주민의 실상을 전하기 시작했다. 지난해엔 관악구민을 상대로 모금운동을 벌였다.여기서 모은 돈은 전액 적십자사를 통해 북한측에 전달했다. 회장 황청연군(21·지질해양 3)은 『북한을 연구한다는 말에 모두들 색안경을 끼고 보기도 했다』면서 『조국사랑은 순수한 의미의 북한연구를 통해 북한 주민의 실상을 알고 동질감을 찾기 위해 결성된 동아리』라고 소개했다. 이들은 지난해 봄 축제때 소장하고 있던 북한 사진을 토대로 평양시 모형을 만들어 전시했었다.회원들이 1주일동안 꼬박 밤을 새워 만든 이 모형평양시는 당시 학생들로부터 많은 박수를 받았다. 그 뒤 모금액도 상당히 늘었다고 한다.이들은 앞으로도 모금운동을 지속적으로 해 나갈 참이다. 또 앞으로 북한주민의 의식주생활 등 기본적인 삶을 비롯해 법 테두리안에서 북한 문학작품도 소개할 작정이다.
  • 서독의 동독 인권개선 노력 배우자/옥태환(서울광장)

    얼마전 방한한 미국의 신임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이 북한에는 종교의 자유가 없는 등 인권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데 이어 한국으로 망명중인 황장엽 노동당 비서가 북한의 인권문제에 대하여 국제사회가 보다 더 큰 관심을 보여야 한다고 언급함으로써 북한의 인권문제에 대한 관심이 다시 고조되고 있다. 북한 당국이 저지르는 비인도적인 인권유린 실상은 매년 미국무성이 발간하는 각국 인권보고서에서 뿐만 아니라 국제사면위원회(AI),프리덤하우스,미네소타 변호사 국제인권위원회 등 국제인권단체들이 발표하는 인권보고서에서도 상당부분 밝혀졌지만,최근 귀순자들의 증언을 종합해보면 그 정도는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오늘날 북한이 세계인권 최빈국으로 전락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드러난 실상 “빙산의 일각” 첫째,북한은 통치이념인 주체사상에 따라 수령만을 유일신으로 숭배하는 몰인격화된 인간만을 양산하고 있으며,주민들에게 한국과의 경쟁에서 완전 승리할 때까지 정치적 부자유와 경제적 궁핍을 인내하도록 강요하고 있다. 둘째,북한의 법체계는 김일성·김정일 교시를 최고 상위규범으로 하여 그 아래에 노동당 결정이 있으며 헌법은 노동당 결정보다 하위규범으로 운용되고 있다.즉 북한에서 모든 법률은 장식물과 같은 「죽은 법」이며 김부자의 교시만이 진정 「살아있는 법」이기 때문에 북한은 법치국가가 아닌 대표적인 인치국가인 셈이다.따라서 주민들에 대한 인권유린이 용이할 수 밖에 없다. 셋째,북한은 김부자 체제유지 강화라는 일관된 정치목적에 따라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 등을 지속적으로 통제하고 있을뿐 아니라 국가안전보위부·사회안전부 등 방대한 정보 억압기구를 통하여 주민을 강압하고 있으며 이것도 모자라 인민반·5호담당제 등의 거미줄 같은 조직으로 개별주민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고 있어 제도적으로 인권침해가 자행될 수 밖에 없도록 되어 있다. 넷째,북한은 절대공급부족 상태인 물자를 효율적으로 통제하는 방안의 일환으로 전주민을 수시로 성분조사를 하고 또 그 결과에 따라 핵심계층·동요계층·적대계층으로 나누고 이를 다시 51부류로나누어 이를 바탕으로 의식주 배급 및 직장배치·학교배정·의료혜택 등 사회생활의 모든 부문을 차별화 시키면서 충성심을 경쟁적으로 유도하고 있다.따라서 주민들은 감히 자신들의 불이익을 감수하면서 인권문제를 제기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이와같이 북한주민에 대한 인권침해는 북한체제의 구조적인 문제에 기인하기 때문에 아무리 바깥에서 인권개선을 외쳐대도 결국 쇠귀에 경읽기로 될 수 밖에 없는 한계에 직면하게 된다.그렇다고 국제사회가 이를 외면하면 북한은 더욱 더 걷잡을수 없는 인권침해국으로 전락할 수 밖에 없는 안타까운 실정이다. 북한이 이렇게 인권 최빈국으로 전락한데 대해 우리들의 잘못이 없다고 단언할 수도 없다.지금까지 우리 사회에는 인권문제로 북한을 자극하면 그나마 좋지않은 남북관계가 더욱 악화되고,심한 경우 북의 도발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많았다.그러나 진정한 남북통합을 위해서는 인권개선을 전제로 한 북한의 민주화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점을 감안할때,현재 북한에서 자행되고 있는 인권유린에 대해 계속해서 침묵으로 일관할 수는 없다.적어도 북한주민들이 시민적·정치적 측면에서 최소한의 기본적 권리를 보장받을수 있도록 인도주의적인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인권유린 더이상 외면 못해 따라서 우리의 중·장기적 대북정책은 대동독 정책의 가장 중요한 목표를 동독주민의 인권개선에 두었던 서독의 사례에서 교훈을 얻어야 할 것이다.그래야만 통일이후 북한주민들이 인권탄압으로 가장 어려웠을때 같은 동포로서 당신들은 무엇을 했느냐고 물으면 우리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고 당당하게 대답할 수 있지 않겠는가.
  • 김정일과 북한의 운명/재미 북한전문가 서대숙 박사 지적

    ◎정치개편·지도사상·경제문제·외교혁신·군사개편/5대과제 해결에 달렸다/「우리식 사회주의」로는 더이상 생존 어려워/군 감축하고 경제문제는 정무원에 맡겨야 이른바 「수령의 나라」 북한에는 지금 수령이 없다.「어버이 수령」 김일성이 죽은 후 아들 김정일이 대를 이었지만 그는 그냥 지도자일 뿐 수령은 아니다.과거 김일성이 갖고 있던 당총비서·국가주석 자리는 2년5개월째 비어 있다.북한은 지금 명실상부한 수령­최고지도자가 없는 가운데 통치되고 있는 「이상한 나라」다. 북한의 수령과 지도자문제와 관련,미 하와이대학의 서대숙 교수는 최근 펴낸 일어판저서 「김일성과 김정일­혁명신화와 주체사상」에서 『수령이란 「인정하는 칭호」이지 「임명되는 자리」가 아니다』라고 전제,『북한에 있어서 수령은 김일성이지 김정일이 아니다.그 수령이 최고지도자를 의미한다면,김정일이 현재 어떻든 최고지도자이기 때문에 별문제될 것은 없다.그러나 김일성이 죽었는데도 김정일이 과거의 김일성처럼 수령이 된다는 데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서교수는 김정일이 명실상부한 북한의 지도자가 되려면 북한에 먼저 법치체제가 세워져야 한다고 말한다.북한에서 이른바 김정일시대가 열리려면 선거가 실시되고 헌법과 당규약이 지켜져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김정일의 입장은 생부인 김일성 치세때와는 다르다.그도 이미 50대중반에 들어섰고 장래 장기집권을 한다 해도 20여년남짓일 것이어서 그에게는 김일성에게 주어졌던 만큼의 시간도 없다.따라서 현재 「고난의 행군」을 할 수밖에 없는 김정일이 해결해야 할 과제 역시 한두개가 아니다.그런 과제를 해결하여 자신이 「지도자」임을 정치와 정책으로 입증하면서 새로운 출발을 하지 않는다면 김정일도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라는 게 서교수의 논리다. 이 대목에서 서교수가 지적하는 김정일의 첫번째 과제는 정치개편이다.김정일은 『우리식 사회주의는 필승불패다』라며 인민과 정부의 관계를 충성심과 인덕정치로 비유했다.김정일은 이상주의자가 아닌 실천론자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의 셰계에서 사회주의,그것도 「우리식 사회주의」에 귀기울일 사람은 없다.그리고 김정일을 둘러싼 지도세력도 구세대로부터 신세대로 바뀌고 있다.또한 군부통치에도 한계가 있다.따라서 앞으로 당·정·군 조직체계와의 관계를 여하히 개편,정립시키는가가 제일의 과제가 될 것이다. 김정일의 두번째 과제는 이른바 지도사상의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다.주체사상은 김일성 사후에도 아직은 유용하게 적용되고 있는 사상이다.그러나 그 사상의 유용도는 점점 떨어질 수밖에 없다.김일성이 주체를 내세운 것은 동서냉전과 한국전쟁,그리고 중·소분쟁 등에 기인했었다.오늘날 사회주의진영은 붕괴했고 소련도 사라졌다.이런 상황에서,더욱이 과거의 자주성이나 우리식 사회주의만을 추구한다는 것은 21세기엔 맞지 않는다.김정일은 이런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김정일은 국제정세와 북한의 현실을 냉정하게 파악하지 않으면 안된다.일방적으로 인민의 사랑이나 충성을 구하고 우리식 사회주의나 주체사상을 내세울 게 아니라 자신의 이념과 사상을 세워야 할 숙제를 안고 있다. 세번째로 김정일은 북한의 경제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된다.김일성 사망전후의 북한경제에 관해서는 누구의 설명도 필요없다.세상이 모두 다 아는 사실이기 때문이다.지난 95년의 수해로 민생은 도탄에 빠졌다.김정일은 과거의 김일성식 경제정책방향을 근본적으로 전환해야 한다.북한의 경제난은「재래식」 방식으로는 회복될 수 없다.군과 병사를 동원하고 200일전투니 속도전 같은 인해전술을 되풀이한다고 해서 경제침체가 해결되지는 않는다.우선 경제발전의 목표부터 바꿔야 한다.의식주해결은 물론 외국자본유치,첨단기술의 습득 등에 힘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경제정책의 체계도 문제다.김일성시대에는 당의 주도로 경제가 이끌어져왔다.그러나 경제는 정부(정무원)가 주도해야 한다.경제문제를 경제문제로 해결하는데 있어 경제를 잘 모르는 당간부에게 경제를 맡겨서는 안된다.경제는 철저하게 정무원의 경제관료에게 맡겨 시행하고 책임도 지워야 한다. 북한주민은 오랫동안 자신들이 자본주의로부터 피해를 받아왔다는 선입관을 지닌 채 자주성을 강조하고 배타적인 태도를 길러왔다.그러나 21세기는 그런 시대가 아니다.의식주해결과 자주성만을 강조하다 국제사회의 구제대상이 되어서는 집권은 물론 나라 자체를 유지하기가 힘들다. 김정일의 네번째 과제는 외교의 혁신이다.김일성은 조선노동당 제6차 전당대회에서 북한외교의 3대정책을 자주·친선·평화로 내세웠다.이 3대정책의 명목에는 별문제가 없다.그러나 그것만으로 다양한 외교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렵다.그것만으로는,또 제3세계 외교만으로는 세계 첨단기술을 보유하고 발전하는 자본주의국가와 외교를 할 수가 없다. 연대는 이제 21세기에 들어서 있다.21세기의 세계에서는 새로운 질서가 수립될 것이다.사정이 이러한데 우물안 개구리식으로 자신의 우월성이나 자주성을 소리 높여 외친들 북한의 경제발전이 이뤄질 수는 없으며 국제관계개선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북한이 우리식 사회주의를 아무리 주장해도 관심을 갖는 사람은 없다. 김정일의 다섯번째 과제는 군사문제다.북한군은 김정일의 권력승계를 보장했다.그리고 북한군은 김일성 사후로부터 김정일이 당과 정권기관의 직위를 차지할 때까지 북한의 질서와 국방,주민의 치안을 담당했다.북한의 군부에는 두개의 큰 사명이 있다.순수한 의미에서의 국방의 역할과 국내 정치체제유지가 그것이다.그러나 군의 국내적 역할 즉 정치체제유지역할은 김정일의 지도체제가 확립된 다음엔 점차 감소돼야 할 것이다. 김정일은 김일성시대와는 다른 안보체제를 정립하지 않으면 안된다.한반도를 둘러싼 군사·안보환경이 변했고 동서대결도 끝났다.북한이 무력으로 한반도를 통일하겠다는 의도를 갖고 있지 않다고 할 때 지금 군의 규모는 너무 방대하다.인민군을 경제건설에 동원하지 않으려면 상당수의 군인을 제대시켜야 한다. 북한경제가 부진한 가장 큰 이유중의 하나가 군사비임은 주지된 바다.21세기 김정일시대에는 북한과 같은 작은 나라에 핵무기는 필요없다.핵무기를 만들지 않겠다고 해서 한국과 미국·일본은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를 만들어 경제원조를 하고 있다.북한은 핵의혹을 풀고 군사문제는 군사문제로서,경제문제는 경제문제로서 해결해나가지 않으면 안된다.북한은 지금 해결해야 할 중요한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김정일과 새로운 세대 지도층이 그 문제를 모두 해결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분명치 않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정일은 이상의 다섯가지 과제를 풀어나가야 한다.왜.김정일과 북한의 명운이 5대과제의 해결여부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 스리랑카/찬란한 불교 유적… 섬 전체가 박물관

    ◎가는 곳마다 고대도시·궁전터·사원 등 즐비/「천혜의 낙원」… 관광·성지순례 발길 줄이어 인도대륙 남동쪽의 작은 섬나라 스리랑카의 여성지도자 찬드리카 반다란나이케 쿠마라퉁가 대통령이 12일 우리나라를 찾아와 14일까지 머물며 양국의 경제협력과 관광교류증진방안 등을 논의한다.찬란한 불교유적을 자랑하는 스리랑카는 특히 불교신자가 많은 우리나라의 특성을 고려해 불교성지순례여행 등을 집중겨냥하고 있다.따라서 이번 대통령일행 방한에는 관광 관계자들이 함께 와 한국관광업계·불교단체 등과 다각적인 접촉을 하고 있다.미국·유럽·동남아·중국·대양주 등에 치우친 우리나라 관광분야에서 스리랑카는 아직 미개척의 먼 나라로 남아 있어 더욱 이채롭다.이를 계기로 스리랑카의 불교여행코스등을 살펴본다. 스리랑카는 섬 전체가 박물관이다.면적 6만5천6백㎢로 남한면적보다 작으며 인구도 1천8백여만명에 불과한 소국이지만 발길 닿는 데마다 찬란한 역사의 숨결을 느낄 수 있으며 지구상에 몇 남지 않은 마지막 낙원으로 꼽힐 정도로 풍광이 아름답다. 또 1인당 연간 국민소득은 미화 7백달러정도로 낮지만 의식주를 별로 걱정하지 않아도 될 만큼 자연의 축복을 받은 땅이어서 인심이 좋기로도 유명하다. 이같은 조건에서 불교와 힌두교,그리고 기독교문화가 어우러져 스리랑카는 거대한 섬박물관을 이루고 있다. 가는 곳마다 고대도시와 궁전터·인공호수·공원·사원·수도원·조각 등이 즐비해 여행자의 탄성을 자아낸다. 기원전 3세기에는 당시 수도 아누라다푸라의 명성이 멀리 지중해까지 알려졌으며 기원 반세기 전에는 상할리족 교역대표단이 로마의 시저 황제에게 신임장을 제정했고 기원 300년 무렵에는 중국과 교역할 정도로 일찌감치 번성한 국가를 형성해 그만큼 문화유산이 많다. 기원전 247년에는 스리랑카역사상 가장 기념비적인 일이 발생했다.바로 인도의 독실한 불교도 아쇼카왕이 아들 마힌다왕자를 이 섬에 보내 불교를 전한 것이다.이때부터 상할라왕은 물론 일반에 이르기까지 불교에 귀의해 오늘날까지 줄곧 불교가 번성해왔다. 이 때문에 스리랑카는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불교성지가 되어 순례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불교전파와 비슷한 시기에 힌두교도인 드라비다족이 침입을 시작한 뒤 1천5백년동안 수없이 거듭해 힌두교문화도 크게 자리잡았다. 여기에 17세기초부터 네덜란드와 영국의 지배를 받아 기독교문화가 어우러졌다. ○기원전 4세기에 번성 ◇경이로운 고대문명도시 아누라다푸라=콜롬보 북쪽 2백㎞에 있는 최초의 수도로 기원전 4세기경부터 번성했다.당시의 계획도시로서 사냥꾼·청소부·외국인·이교도의 거주지역이 구분됐고 신분제도에 따른 묘지도 다르며 관개수로가 완벽하다. 6백년 수도의 영광을 누리면서 만들어진 돌기둥과 돌탑이 조용한 녹음속에서 한때의 영광을 말해준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보리수인 「스리 마하」보리수가 있으며 스리랑카에서 가장 오래된 탑 「투파라마 다가바」가 유명하다. ○69개 동굴승원 만들어 ◇최초의 불교전래지 미힌탈레=아누라다푸라 동쪽 13㎞에 있는 바위산유적으로 처음 불교가 전래된 곳이다. 바위산 여기저기에 대탑이나 동굴유적이 많으며 정상까지 1천8백40계단을 올라가면 멀리 아누라다푸라의 대탑이 보일 정도로 전망이 좋다. 마힌다 스님이 사냥중이던 티사왕을 만나 불교에 귀의케 했고 티사왕은 3천명의 승려를 위해 68개의 동굴승원을 만들었다. ○밀림속의 저수지 1천곳 ◇밀림속의 중세고도 폴론나루워=11세기초 남인도 타밀족의 침입을 받자 새로 만든 수도로서 콜롬보 동남쪽 2백여㎞에 있다. 도시는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공원과 정원이 많으며 근처에 1천곳 이상의 관개용 저수지가 있다. 남쪽 프라크라마 바후궁전은 1층 중앙홀이 2백평이 넘을 정도로 웅장한데 처음에는 7층이었으나 지금은 2층만 남아 있다. 북쪽의 갈 위하라 석가모니 와불상은 빼놓을 수 없는 명소.부처의 열반상이며 길이가 13m나 된다. ○바위속 궁전에 「미인도」 ◇바위요새궁전 시기리여=천민소생의 맏아들 카샤파가 정실소생의 동생이 왕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반란을 일으켜 부왕을 살해하고 동생을 추방한 뒤 고뇌를 이기기 위해 만든 바위속 궁전으로 섬 중앙에 있다. 부왕이 여기에 궁전을 만들려 했다는 얘기를듣고 스스로 궁전을 완성했다. 벽화 「시기리여 미인도」는 유네스코가 선정한 「세계의 문화유산」에 들 정도로 값어치가 평가된다.5백명 이상의 미인도가 있었다 하나 지금은 10개가 남아 있다.
  • 하수처리장부터 만들라(사설)

    시화호 대책은 4천억원을 투입,3곳의 대형정화시설을 설치하는 것으로 일단락되는 것 같다.이렇게라도 하는 것이 다행일 것이다.그러나 왜 그간 정화작업에 더 진력하지 않았는지 반성을 해야 한다.이곳에는 반월공단의 6백50개,시화지구의 4백여개 폐수배출업체가 있고 새로 들어선 대규모 아파트단지가 있다.이들 대부분이 우리 관행대로 오폐수정화는 적당히 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그러니 앞으로도 정화작업을 확실히 하지 않는 한 시화호문제는 계속될 것이다. 이점에서는 사실상 전국적으로 상황이 같다.지금 제기되고 있는 문제만도 한둘이 아니다.우선 부산 해운대해수욕장의 오염비상사태가 있다.해운대 신시가지는 하수처리장을 완공하지 않은 채 5월말부터 입주를 시작,현재 하루 3천t의 생활오수가 바다로 직접 방류되고 있다.당국은 9월초에나 시설이 가동된다 하므로 여름 해수욕장에 어떤 폐해가 생길지 심히 우려된다. 구리·남양주시에도 문제가 커지고 있다.이곳 대규모 아파트단지 생활하수는 하루 1만6천3백t으로 역시 정화되지 않은 채 한강으로 유입되고 있다.하수종말처리장으로 연결되는 차집관로와 중계펌프장이 설치되지 않아 2년간이나 이렇게 버려지고 있는데 이곳은 현재까지 예산마저 없으므로 더욱 막연한 것이다. 환경부 자료에 의하면 그나마 있는 하수처리장도 실은 제대로 가동되는 곳이 56%에 불과하다고 한다.노후된 시설을 보수하지 않고 방치하는 곳도 있다. 수질오염은 공장폐수만의 문제가 아니다.정화하지 않은 생활하수도 역시 같은 문제를 일으킨다.오늘의 일상생활은 의식주 모두에서 다량의 화학적 물질로 이루어지므로 생활하수 역시 독성을 갖고 있다.이 현실속에서 우리는 행정당국이 오수에 대한 근원적 처방에 무관심한 것이 오염의 가장 심각한 과제라고 본다.대규모 아파트든 공단이든간에 하수정화시설을 먼저 설치하고 뒤에 건물들을 사용토록 하는 원칙만이라도 지킨다면 물오염문제의 규모는 훨씬 축소될 것이다. 당국은 하수처리장의 선설치와 이의 실질가동에 책임을 지는 제도적 확인장치를 마련하기 바란다.
  • 작년 평양서 4∼5회 공개 총살/북 공개처형과 북송교포 실태

    ◎김정일 “살인·누범자 등 극형” 지시/친인척 송금없는 교포 극빈 생활 수해 등으로 최악의 식량난을 겪고 있는 북한에서는 흉악범은 물론 절도범까지도 공개처형 당한다.또 일본에서 북송된 교포들은 일본내 친·인척의 송금액수에 따라 대우가 달라진다. 북한 과학자 정갑렬씨와 방송작가 장해성씨는 7일 상오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가진 공동 기자회견을 통해 이같이 증언했다.북한 사회안전부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살인범·살인미수범·상습절도범·강도·재범자 등에 대한 공개처형을 시·도별로 확대 실시하고 있다.『살인자 및 누범자·재범자 등은 극형에 처해야 한다』는 김정일의 지시에 따라 주민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있다. 장씨는 평양시의 경우 중구역 등 중심가를 제외하고 구역별로 지난해 4∼5차례에 걸쳐 공개처형을 실시했다고 폭로했다.특히 지난해 7월에는 평양 대동강구역 건설건재대학 뒤에서 주민 수천명이 참석한 가운데 살인 및 강도를 저지른 처녀(27),유부남(40)과 그의 처(37) 등 3명을 동시에 공개 총살했다. 한편 9살때 조총련 간부였던 아버지를 따라 일본 오사카에서 북한으로 건너갔던 정씨는 『북한은 지난 80년대부터 일본내 친·인척의 송금액에 맞춰 북송교포의 생활수준을 결정하고 있다』고 전했다. 북송교포는 상·중·하 3개 부류로 나뉜다.일본내 친·인척이 북한에 투자를 하거나,연간 1만달러 이상을 송금하는 상류층은 평양시내 아파트에 거주하는 등 비교적 호화스런 생활을 보장받는다. 연간 3만∼5만엔을 송금받는 사람은 중류층으로 분류돼 기본적인 의식주 외에 한달에 1∼2차례 육류 및 수산물을 공급받는다. 송금을 전혀 받지 못하는 교포들은 노동자로 배치된다.전체의 절반에 이르는 이들은 식량배급과 부식물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어 북한 주민보다 더 궁핍한 생활을 한다. 또 북송교포들은 국경지역과 군수공장 밀집지역 등에는 거주할 수 없다.월경을 하거나 간첩활동이 우려되기 때문이다.취업도 제한을 받는다.정씨는 김일성대학 학부장 추천 등 교원 임용여건을 갖췄지만 교포 출신이어서 좌절되고 말았다. 그는 『북한 당국은 북송교포의 결혼·전직·거주지 변경 등을 철저히 파악하고 있으며 교포가정을 상대로 뇌물을 요구하는 사례도 많다』고 몸서리쳤다.〈김태균 기자〉
  • “「문화 세계화」 국가적 지원 따라야”/김문환(전문가제언)

    ◎문화정책개발원 정부기관 전환 바람직 문화·예술이라고 쉽게 말하지만 그 범위 설정에 어떤 일치된 의견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편의상 한국예술단체총연합회(예총)의 구성단위들을 참조한다면 거기에는 흔히 순수예술이라고 분류되는 분야들 외에도 연예와 같은 대중예술 분야도 포함되어 있다.그런가 하면 전통문화와 함께 이른바 주로 의식주와 연결된 생활문화가 국가경쟁력향상을 위해서도 날로 그 중요성을 더해가면서 인간생활 전체,쉽게 말해서 삶의 질 향상을 기여하기 위한 노력 전체가 문화라는 말로 표현되기도 한다.예컨대 통상산업부는 수출 1천억달러 달성을 기념하면서 앞으로의 지향을 「기술로,문화로,21세기」라는 표어로 요약한 바 있는데 이때 문화가 체화된 상품이란 실로 복합적인 뜻을 지닌다.이와 같은 맥락에서 국정 전반의 문화화가 이루어져야 하리라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좁은 의미의 문화와 상통하는 예술,그중에서도 순수예술 분야가 가장 집중적으로 관심가는 인간적 가치가 날로 고갈되어 가고,그 결과 국민생활전반이 비인간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 분야에 대한 정책적 대응이 갖는 비중이 날로 커지고 있다. 문화부문 예산이 전체 예산의 1%에도 못미치고 있다는 지적은 그런 의미를 지닌다.예컨대 문화공간조성법이나 문화기금조성법들의 입법제안은 이와 같은 상황의 개선을 위한 기본조처가 필요하다는 것을 뜻할 수 있다. 정부는 금년을 문화복지원년의 해로 선포하고 이를 위해 여러가지 정책을 개발하고 있는데 국회가 제도적으로나 재정적으로나 뒷받침해 줄 때에야 이와 같은 정책들은 실효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예컨대 문화체육부 산하 연구 기관중 유독 문화정책개발원만이 민법에 의한 재단법인의 상태에 머물고 있는데 문화정책의 중요성이 제대로 인식되어 있다면 이는 하루속히 국가기관 내지 출연기관으로 전환되지 않으면 안된다. 국민생활에 뿌리를 내린 채 아름답게 꽃필 때에 비로소 우리의 예술문화는 세계화를 위한 힘도 지닐 수 있게 된다.그러자면 이와 가장 밀접한 연관관계에 있는 교육과 방송이 문화와 접목되지 않으면 안된다.교육분야는 전인적인 인간을 위한 평생교육체제를 갖춰야 할 것이고,방송분야 역시 문화매체로서의 성격을 강화해가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통합방송법안」에 대한 기본적인 관점 역시 방송이 국민들의 알 권리를 신장하는 데 기여케 하자는데 있어야 할 것이지만 이와 같은 권리는 또한 일정하게 올바른 판단능력을 전제로 함으로써 문화를 내장하게 마련이다.거대자본의 참여문제는 소유와 경영의 분리가 가능케 하는 조처와 밀접하게 연관될 수 밖에 없는데 삼권분립의 원칙에 입각하여 제대로 된 감시체제를 확립해야 한다는 주장이 만일 이와 같은 문화적 발상에 근거한 것이라면 국민적 지지를 받을 수 있으리라고 본다. 15대 국회에서 문화예술계 인사가 여섯명에 불과하고 그들조차 딱히 좁은 의미의 문화예술 영역에서 의정활동을 전개할 것 같지 않다는 관측이 사실이라 해도,의정활동이 궁극적으로는 국민복지향상에 기여하고자 하는 목표와 연결되어 있는 한,그 기초가 되는 문화를 통한 삶의 질 향상이 결코 외면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기대해 본다. 끝으로 이번 국회에서 발전의 문화적 차원에 관한 세계적 합의가 우리 나라에서도 제대로 이해되어 우리나라가 문자 그대로 문화국가로서 21세기에 진입할 수 있기를 희망 한다.세계적 문화재로 등록된 보화들은 물론 그못지 않게 가치를 지닌 그밖의 문화요소들을 제대로 가꿔가는 문화정책이 그 좋은 시금석이 될 것이다.
  • “장애인 돌보기” 3대째/서울 천애원 허곤씨 일가 “큰사랑”

    ◎해방직후 권씨 시작… 부산피란도 함께/큰아들 이어 손자형제까지 「부축」 동참 『썩을 양식을 위해 일하지 말고,썩지 않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라.』 오늘은 제16회 장애인의 날.그러나 장애인에 대한 일반의 애정과 관심은 아직 미미한 형편이다.이같은 사회분위기 속에서,3대째 묵묵히 장애인들을 돌보는 가족이 있어 눈길을 끈다.웬만한 일을 대잇기도 어려운데,빛나지 않고 힘든 일로 「가업」을 이루었다는 것은 드문 일이다.서울 노원구 중계동 308의 1 사회복지법인 천애원(전화 930­4635)은 올 9월 창립 51주년을 맞는다.천애원은 장애인이라는 개념조차 없던 1945년에 처음 설립됐다. 당시 부산 가덕도 출신 허근씨 부부는 서울 서소문에서 「먹고 살만큼」의 개인사업을 했다.해방2년전 서울거리에는 간혹 걸인과 장애인들이 눈에 띄었다.천성이 좋은 허씨부부는 그저 아무 뜻 없이 이들 1∼2명을 먹여주고 재워줬다.그런데 그 숫자가 점차 늘어나기 시작했다. 사회에 적응을 못하는 이들을 겪으며 허씨부부는 『이런 사람들이 언젠가 사회문제가 되겠구나』라고 생각했다.그래서 서소문동 75에 장애인 및 고아수용보호소인 조선후생사업단 근화원을 창립했다.6·25때는 고아들과 함께 부산으로 피란을 갔다.여기에서 보육원을 분리운영하며 두아들이 참여했다. 큰아들 허원씨는 지금의 천애원을 맡았다.둘째 허홍씨는 현재 서울 송파구의 청암양노원을 운영하고 있다.할아버지 허씨가 89년에,아버지 허원씨가 95년에 작고하자 천애원은 지금 허곤씨가 이어받게 됐다.원장은 어머니 최김자씨(56)이나 총무인 허곤씨가 실질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의식주를 해결하는 수용보호 단계에서,재활하여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빨리 나가야 되는데 우리나라의 장애인보호단계는 아직 원시적 수용보호단계라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장애인들이 재활을 위해 제품을 생산해도,사회는 「불량품이겠지」「이미지가 나쁘다」며 구매를 꺼립니다.』 약관 27세로 가업(?)을 이어받은 허곤씨는 젊은이답지 않게 문제점을 지적한다.어려서부터 장애인들 속에서 자랐고,지난해 숭실대 사회사업학과를 나왔기 때문이리라.그의 친구 김목겸씨도 천애원에서 사회적응훈련프로그램·후원회 관리등 주요역할을 하고 있다.뿐만 아니다.강남사회복지대 사회사업학과를 나온 허총무의 형 허은씨(32) 역시 직책없이 천애원을 돕고 있다.천애원은 지난 3월말까지 목공예와 악세사리제품을 생산했다.그러나 판로가 막혀 생산을 중단했다.지금은 노원구청의 도움을 얻어 쓰레기봉투만 생산한다. 『장애인들은 「육체적 장애는 있으나,정신적 장애는 없다」고 스스로들 생각하고 있죠.정상인·장애인 구분없이 누가 썩은 양식이고,누가 썩을 양식인지는 각자 판단해야겠죠.』 최원장은 기독교인은 아니면서도 성경을 인용, 의미있는 화두를 「현재의 정상인」들에게 던진다.〈안병준 기자〉
  • 고속성장 2000년엔 소득 2만달러 돌파/GNP 1만달러 시대

    ◎「삶의 질」 변화/양보다 질위주… 건강·문화욕구 증대/민간자율 존중 등 선진행태 점차 정착 국민소득 1만달러시대에 국민의 삶의 모습은 어떻게 달라질까. 최근 한 민간연구소는 1만달러시대의 중산층을 「주말에 서울 근교의 전원주택을 찾아 벽에 걸려 있는 대형액정TV로 영화를 감상하는」 모습으로 묘사한 적이 있다. 1만달러시대는 한마디로 각 개인이 여가선용과 자기개발을 중시,삶의 질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행태와 욕구가 다양화된다.양보다 질을 따져 전반적으로 고급화추세를 보인다는 얘기다. 경제학자들은 국민소득 1만달러를 성장일변도시대에서 경제성숙기로 넘어가는 분수령으로 일컬는다.경제는 물론 사회전반에 총체적인 고부가가치화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일만 하는 시대」에서 「여가를 즐기는 시대」로 전환된다.과거의 「헝그리정신」이나 「잘 살아보세」식의 소득·수출증대를 위한 국민적 캠페인을 기대하기는 무리다. 수입이 생기면 저축하기보다는 여유 있고 고급스럽게 쓸 궁리를 하게 된다. 가계수입중 주식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 45년 29.8%에서 94년 현재 4.5%로 줄었다.같은 기간 자동차는 7천3백26대에서 7백40만대로 늘었다.생계유지를 위해 지출하는 비중은 줄고 안락한 생활을 위한 선택적 지출이 늘어나는 추세가 더욱 심화된다.도시가구 소비지출중 식료품이 차지하는 비중도 94년 29.7%로 감소추세다.물론 미국(12%)이나 프랑스(18.6%)·일본(20.1%)에 비하면 아직 높다. 소비패턴은 고급화·서구화·편의추구의 방향으로 급속히 변화된다.도시가구 지출중 여가활동비는 국민소득 1천달러이던 지난 77년 2만8천5백48원으로 1.7%에 불과했으나 94년 66만4천6백44원에 4.9%로 껑충 뛰었다.외식비와 교양오락비도 급증한다. 의식주에서 사치품과 일반상품의 개념이 모호해지고 국산품과 외제를 굳이 구분하려 들지 않게 된다.위스키·포도주·고급의류·신발 등의 수입과 내국인의 해외여행이 보편화된다. 고가품의 소비계층이 중산층이하로 확산된다.중대형승용차·개인용컴퓨터·휴대폰 등의 소비가 급증하고 가전제품의 대형·고급화가 가속화된다.위스키소비가 급증하는 반면 막걸리소비는 급감하고 골프·스키·헬스·볼링장은 인산인해를 이루는 반면 탁구장 등은 파리를 날린다.유통업체의 대형화·고급화도 가속화돼 백화점이나 대형할인매장은 매출급신장을 즐기는 반면 재래시장이나 영세소매점은 매출부진을 면치 못하게 된다.평균연령과 노령인구가 늘어나면서 조세부담과 보건의료비지출도 증가한다. 고부가가치화사회에서는 노동시간이 짧아지는 대신 단위시간당 노동의 생산성은 크게 높아진다.단순인력보다는 고급인력을 더욱 필요로 하게 되고,여성·노령인구의 취업이 증가한다.1만달러를 전후해 노사관계도 성숙화된다.문화적 수요가 증가된다. 기업은 1만달러 소득시대의 소비패턴변화를 파악하는 데 주력한다.신세대·취업주부·아동·독신자·노인그룹 등이 새로운 관심대상으로 떠오른다.소득불균형은 시정되지만 재산불평등에 대한 관심은 더욱 높아질 전망이다. 지방화시대의 도래와 함께 지역이기주의적 폐해가 심화되고,다원화사회가 전개되면서 지금까지의 중앙집권에 의한 획일적 성장도 점차 어려워질 전망이다.〈김주혁 기자〉 ◎향후 GNP 전망/2만달러 도약에 미 10년·독은 12년 걸려/총 GNP 4,517억달러… 42년간 327배로 배고픔에서 잊기 위해 숨가쁘게 달려온 우리경제가 마침내 1인당 국민소득(GNP) 1만달러시대를 열었다. 지난해말 현재 1인당 GNP는 1만76달러.광복후 정확히 50년,한국은행이 국민소득통계를 내기 시작한 지 42년만의 일이다.선진국에 비하면 자랑할 만한 성과는 아니지만 「보릿고개」가 멀지 않은 과거이던 우리로서는 대단한 일이다. 선진국의 1만달러 돌파시기를 보면 미국·독일·스웨덴·스위스가 78년,프랑스 79년,캐나다 80년,일본 84년,영국과 이탈리아는 86년이었다.싱가포르는 89년,대만은 92년에 1만달러를 달성했다. 53년의 1인당 GNP는 67달러,60년엔 79달러였다.그러다 70년대들어 경제개발이 본격화되면서 국민소득도 고속성장하기 시작했다.70년대초 박정희정부는 「80년 1인당 국민소득 1천달러」달성을 국민에게 약속했고,이 약속보다 3년 빠른 77년에 1천달러를 달성했다. 80년에는 1천5백97달러,89년에는 5천2백10달러로 5천달러고지에 올랐다.53년 이후 42년만에 1인당 GNP가 1백50배 성장한 셈이다.1인당 GNP순위도 70년 2백53달러로 80위에서 80년 61위,94년 32위로 뜀박질했다. 2만달러시대도 멀지 않았다.우리경제가 고성장·고물가구조인데다 원화가치가 오르는 추세여서 2만달러시대는 의외로 빨리 올 것 같다.1인당 GNP를 결정하는 요인은 경제성장률·GNP디플레이터·환율·인구증가율.경제성장률과 GNP디플레이터·원화절상폭이 높을수록 1인당 GNP는 올라간다.인구증가율은 반대다. 주목해야 할 변수는 환율.원화가치가 오르면 달러로 표시된 국민소득이 늘게 되는 환율의 마력이 숨어 있다.다른 요인의 변화가 없고(예컨대 성장을 하지 않더라도) 원화가 전년보다 평균 10% 절상되면 국민소득은 그만큼 늘게 된다. 이러한 원리에 따라 실현 가능한 연평균 경제성장률(불변가격기준·7%)과 GNP디플레이터(5.5%)·인구증가율(0.9%)·원화절상률(4%)을 가정해 1인당 GNP를 계산해보면 「2000년 2만달러」가 가능하다. 지난해의 1인당 GNP 1만76달러에 경제성장률과 GNP디플레이터를 반영해 각각 1.07과 1.055를 곱하고 원화절상률과 인구증가율을 고려한 0.96과 1.009로 각각 나누면 올 연말의 1인당 GNP는 1만1천7백40달러가 된다.이같은 율을 연차적으로 적용하면 2000년에는 2만1천6백60달러가 된다. 일본이 1만달러를 달성한 지 4년만에 2만달러를 기록한 것을 제외하면 2만달러대로의 점프는 세계에서 최단시간이다.1만달러에서 2만달러까지 걸린 시간은 스위스가 8년,미국 10년,프랑스 11년,독일이 12년이었다. 일본이 2만달러를 빨리 돌파한 것도 환율덕분이었다.엔화는 84년 달러당 2백37엔이었으나 88년에는 1백28엔으로 껑충 뛰었다.연평균 14%씩 엔화가 절상돼 가만히 있어도 이만큼 국민소득은 늘어난 것이다. 총GNP도 괄목성장을 했다.53년 14억달러였으나 지난해 4천5백17억달러로 42년간 3백27배나 커졌다.GNP순위도 70년 세계 33위에서 80년 27위로 올랐고 94년에는 12위가 됐다.지난해에는 이 보다 한 단계 오른 11위였다.2001년에 이르면 스페인과 캐나다·브라질을 제치고 세계 8위로,2010년에는 영국도 따돌려 7위에올라설 전망이다. 미국과 독일·일본은 1만달러를 달성했을 때 경제성장률이 3∼4%,독일과 일본의 소비자물가상승률이 2%대였다.반면 우리는 경제성장률이 9%,소비자물가상승률이 4.7%로 대조를 이룬다.그러나 국민소득은 늘지만 소득계층간 부의 불평등,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양극화현상,지역간의 성장격차,삶의 질 향상 등 해결해야 할 과제는 남아 있다.〈곽태헌 기자〉 ◎95년 경제성적표/작년 GDP 9% 성장/91년이후 최고 기록 지난 해 상반기에 경기 정점에 오랐던 경기활황 국면은 일단락된 것으로 나타났다.작년의 경제성적표는 양호한 것으로 나타났지만 문제는 연착륙이 가능하냐 여부로 모아지고 있다. 한은이 20일 발표한 「95년의 국민계정(잠정)」을 보면 지난해의 우리경제는 내용이 좋았다.먼저 GDP 성장률은 9%로 지난 91년의 9.1% 이후 가장 높았다. 설비투자와 수출이 성장을 이끌었다는 점이 우선 높은 점수를 받을수 있다.설비투자 증가율은 전년의 23.6%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15.9%나 돼 견실한 성장을 뒷받침했다.섬유기계 등 일부품목을 제외한 산업용 기계류 대부분에 대한 투자가 호조를 보여 22.6%의 높은 증가세를 유지했다.수출도 지난 86년 이후 가장 높은 24.1%나 증가했다. 건설업의 증가율은 9.8%로 지난 91년의 14.8% 이후 가장 높았다.민간건설은 설비투자 증가를 반영하여 공장 등 비주거용 건물건설이 호조를 보인데다 표준건축비 조기 인상,사회간접자본시설에 대한 투자가 큰 폭으로 확대돼 10.8%나 성장했다. 그러나 경기양극화에는 개선조짐이 전혀 없어 앞으로 정부의 정책이 양극화해소에 모아져야 될 것으로 보인다.제조업의 증가율은 10.7%로 지난 88년의 13.8% 이후 가장 높았다.중화학공업의 성장률은 14.8%나 됐지만 경공업은 음료생산이 마이너스 4.9%를 기록하는 등 부진해 마이너스 0.7% 성장으로 뒷걸음쳤다.중화학공업과 경공업의 양극화현상은 더욱 심화된 셈이다.민간소비 증가율도 7.9%로 아직은 그리 높지 않은 수준이어서 우려할 상황은 아니다. 지표상으로 나타난 지난 해의 실적은 전반적으로는 괜찮지만 문제는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이냐는 점이다.지난 해 4·4분기의성장률이 예상을 뒤엎고 잠재성장률인 7∼7.2%에도 미치지 않은 6.8%에 그쳤기 때문이다.당초 정부는 4·4분기의 실질성장률이 7.2%에 달한 것으로 판단,이를 경기연착륙의 주요 징후로 파악했었다.특히 4·4분기의 설비투자 증가율은 1.5%에 그쳐 연착륙이 쉽지 않을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지난해 3·4분기까지는 제조업 생산지수 증가율이 11∼15%선이었으나 4·4분기에는 7∼9%선으로 뚝 떨어졌다. 이와관련 김영대 한은 이사는 『4·4분기의 성장률이 낮아진 데에는 날씨가 좋지 않아 쌀 생산량이 2백50만섬 줄어 증가율이 0.5% 포인트 감소한 요인이 생겼기 때문』이라며 『경기 연착륙에는 이상이 없을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기는 하다.그럼에도 4·4분기의 의외로 낮은 성장율은 정부나 업계에 지금보다 훨씬 높은 긴장도로 경기흐름을 보도록 요구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지난 해 총저축률이 36.2%나 되는데다 총투자율은 37.5%로 세계에서 3위권이나 되는 점도 우리경제를 밝게보는 요인이다.〈곽태헌 기자〉
  • 식품안전은 초일류국의 첫 요건/불량돼지기름 식용화의 충격(사설)

    이번에는 돼지기름이 불량식품의 충격을 주고 있다.공업용에나 쓰이는 돼지가죽에 비닐 면장갑까지 섞어 만든 돼지기름이 그동안 대부분 중국음식점에서 쓰여 왔음을 보건복지부가 밝혀냈다.하지만 이런 불량식품은 지금 단속만 나서면 언제 어디서나 적발할 수 있을만큼 만연돼 있다.그래서 또 그 규모가 어지간히 크지 않으면 별로 놀라지도 않는 무감각상태에 있기도 하다. ○불양식품 이젠 결판낼때 그러나 언제까지 불량식품으로 살아갈 것인가.단지 「또 적발됐는가」,「이번에는 돼지기름 차례인가」라는 정도의 느낌으로 이 상황을 끌고 갈 것인가.이제는 이 막연함에도 단호히 종지부를 찍을 때가 되었다.결판을 내야할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는 불량식품을 가지고는 결코 우리가 세계화를 이루거나 일류국가가 될 수 없다는 점이다.부정부패나 부실공사만이 국제적으로 머리를 들수 없을만큼 창피한 상황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불량식품이 더 야만적 국가이미지를 만든다는 것을 우리는 인식해야 한다. 불량식품을 용인하는 사회를 찾기란 사실상 매우어렵다.불량식품은 선진국이냐 미개국이냐의 여건과도 관계가 없다.식품이란 삶의 기본요소인 의식주에 있어 생명과 직결된 최우선 항목이다.생태계를 살피면 어떤 동물도 독이 되는 먹이는 먹지 않음을 알수 있다.하물며 우리는 사람으로서 지금 오직 사익을 위해 불량식품을 생산하고 유통시키고 있다. ○동물도 독은 먹지 않는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약품에 엄격한 곳으로 인식되어 있지만 실은 기관 명칭 표시대로 식품에 더 엄격한 곳이다.80년대후반 FDA는 복어회를 식당에서 팔수 있는가 아닌가만을 가지고 몇년씩 논쟁을 하면서 실험을 했다.이러한 과정은 식품의 안전만이 아니라 안전한 국가란 어떻게 운영해야 하는 것인가에 대한 하나의 규범을 만들면서 국가위신과 신용도를 세계화하게 하는 것이다. 우리의 의식도 불량식품을 용인하는 것은 아니다.그러나 구체적으로 안전한 식품을 존재케 하는 일에 국민이나 당국 누구도 철처한 신념으로 참여하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불량식품이 적발되면 일정기간동안 그 식품을 기피하기는 하나 곧 잊어버리고 다시 먹는 경우가 적지 않다. 당국 역시 각종 불량식품 단속을 하기는 한다.하지만 그 뒷수습은 늘 확고하지도 투명하지도 않다.예컨대 현행법으로도 불량식품 제조업자나 판매업자는 제조정지와 영업정지의 벌칙을 받는다.그러나 사실로 보자면 영업소는 간판을 바꾸고 제조업자는 상표를 바꾸어 또다시 등장할 수 있다.이런 뒷수습의 유야무야는 들키지만 않으면 불량상태로 이런저런 이윤을 높이자는 행태를 오히려 조장해 주는 것에 불과하다. ○제조업자 영원한 추방을 따라서 불량식품 단속은 단속후의 책임추궁차원을 더 강력히 높여야 한다.한번 적발되면 최소한 식품영역에 다시는 발을 붙일 수 없는 종신형의 형량이 필요하다.뿐만아니라 불량식품의 단죄범위도 넓혀야 한다.식품 자체만이 아니라 유통기간의 허위표시,자가품질검사 미실시,성분배합비율 임의변경,허위과대광고 등도 업체대표가 사회적으로 책임을 지는 단계로 나가야 한다.단호할 정도의 형량도 갖지 않고 벌금이나 최소한의 일시적 체형으로 끝을 내니까 같은 사례들이 반복되는것이다. 식품을 위생적으로 만들고 유통시키는 것만큼 본질적인 보건·복지정책이 있을리 없다.더욱이 올해는 대통령이 연두연설에서도 밝혔듯이 「안심하고 편안한 생활」을 할 수 있는 생활개혁 추진의 해이다.「안전한 나라」는 물론 재난과 범죄로부터도 안전해야 하지만 식품에서부터 더 원천적으로 안전해야 한다. ○안전식품이 최상의 복지 우리는 많은 외국길거리에서 언제나 같은 맛을 유지하는 오래된 상표들을 신임하고 즉석으로 만들어지는 식품에서도 아무런 의심없이 마음 편하게 먹는 경험을 할수 있다.이것이 바로 일류국가의 출발점이다.불량식품을 뿌리뽑지 못하면 세계화도,선진화도 어렵다.혁명적 결의로 우리는 식품안전확립의 작업에 나서야 한다.
  • 주잠비아외교관 부인 망명으로본 실태

    ◎북한공관 본국지원 끊겨 “활동마비”/의식주 해결 “급급”… 마약·위폐제조에 손대/대사관 90년이후 19곳 폐쇄… 파행 운영 신화 북한의 경제난은 외교 활동에도 심각한 여파를 미치고 있다. 잠비아 주재 북한대사관에 근무하는 현성일 3등서기관의 부인 최수봉씨가 지난 7일 현지 한국대사관에 망명을 요청했다.일단 외교관 부인으로서는 처음 망명을 요청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지만,강성산 정무원 총리의 사위 강명도씨나,김일성대학의 교수 조명철씨등의 망명등에 비하면 그다지 충격적인 일은 아니다. 그러나 외무부내에는 이 사건이 최근 북한 해외공관내에서 벌어지는 총체적인 파행 운영으로 인해 나타난 것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북한은 90년대에 들어서면서 해외공관을 대폭 축소했다.경제난으로 해외공관에 대한 지속적인 재정지원이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북한은 지난 90년부터 93년까지 소말리아 시에라리온 몰타 가봉 기니비사우 니제르 중앙아프리카 수단 노르웨이 알바니아 코트디브아르 베냉 자메이카 나미비아등에서 14개의 공관을 폐쇄했다.지난해에도 헝가리 포르투갈 튀니지 부르키나파소 카메룬등 5개국의 대사관을 폐쇄했다.올해도 아프리카와 동구권에서 곧 7∼8국의 공관을 더 폐쇄할 예정이라고 외무부는 밝혔다.그렇게 되면 북한은 60개 정도의 해외공관을 유지하는 것이다.북한의 수교국이 1백32개국이므로 공관을 설치한 나라가 수교국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 된다. 또 남아있는 공관도 본국으로부터의 송금이 거의 중단됐다고 한다.현재 북한의 해외공관에서는 만찬주최등 일상적인 의전 행사가 중단된 것은 물론 기본적인 의식주 생활까지 위협받고 있다고 한다.이 때문에 북한의 공관원들은 외교보다는 현지인을 상대로한 돈벌이에 치중하는 곳이 많다는 것이다.북유럽이나 마카오 등지에서 잇따라 발생하는 북한 공관의 마약 밀매나 위조 달러 발행,불법 사냥등도 본국에 달러를 보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공관의 운영비를 조달하기 위한 행위라는 것이 외무부의 설명이다. 공관 사정이 이러하니 본국 외교부와의 정보 전달도 원활하지 못하다.지난 94년 김일성사망 사실을 북한이 공식 발표한 뒤에도 아시아 아프리카 지역의 북한외교관들이 사망사실을 부인해 웃음거리가 되기도 했다. 뉴욕대표부를 비롯한 몇개의 전략적으로 중요한 공관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공관이 파행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러한 북한 해외공관의 실정은 외교관 부인 최씨가 한국공관에 망명을 요청할 마음이 들도록 만들었으며,북한 대사관은 최씨의 행동을 미리 제어하지 못할 정도로 통제력을 잃은 것으로 보인다. 잠비아 정부는 국제관행에 따라 최씨의 망명요청을 곧 받아들일 것으로 보인다.다시한번 북한 특권 계층의 이반현상을 증명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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