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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韓·뉴질랜드 자유무역협정 추진

    [웰링턴 양승현특파원] 뉴질랜드를 국빈 방문중인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15일 오전 웰링턴 국회의사당에서 제니 시플리총리와 한·뉴질랜드 정상회담을 갖고,21세기를 앞두고 전통적 우호·협력관계를 바탕으로 새로운 차원의 동반자적 협력관계를 확대·발전시켜 나가기로 합의했다. 두 나라 정상은 회담이 끝난 뒤 공동 기자회견을 갖고,올해 합의된 취업·관광 사증제도의 확대방안을 추진하고 자유무역 협정 체결을 검토키로 한다는 내용 등이 담긴 20개 항목의 공동성명을 채택,발표했다.두 정상은 상호보완적인 경제협력 관계를 토대로 첨단소재 임업 통신 생명공학 분야에서 협력관계를 모색하기 위해 기술대표단을 교환 파견하기로 하고 전자상거래시 관세를 면제하는 내용의 전자상거래 공동선언에 서명했다. 양국 정상은 또 한반도 및 이 지역 안정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북한미사일 문제와 관련,향후 미·북협상에서 좋은 결론을 내려주길 희망했다. 김대통령은 이날 오후 두번째 국빈 방문국인 시드니에 도착해 오스트레일리아 국빈방문 일정에들어갔다.김대통령은 17일 캔버라에서 존 하워드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는다. yangbak@
  • 獨의회 개원 50돌 기념식

    ?베를린 연합?독일 의회는 7일 베를린 제국의회 의사당에서 개원 50주년기념식을 거행했다. 볼프강 티르제 분데스타크(하원)의장은 이날 기념식에서 “인권과 개인의자유가 무비판적이고 맹목적인 복종에 빠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 「獨수도 베를린 이전」새달1일 첫 閣議“21세기 출발”

    오는 9월1일 독일의 새로운 21세기,이른바 ‘베를린 공화국’시대가 시작된다.바이마르 공화국 시대 민주주의헌법의 태동,히틀러의 나치즘과 독재,1·2차 세계대전을 통한 군국주의,그리고 동·서독 분단으로 대표되는 냉전 등세계 현대사의 영욕(榮辱)을 응축한 도시 베를린.지난 89년 베를린 장벽이무너진 뒤 시작된 ‘베를린 천도(遷都)’라는 세기적인 대역사가 종결을 눈앞에 두고 있다.게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는 23일 베를린 집무에 들어가는데 이어 다음달 1일 베를린 첫 내각회의를 주재한다. 독일 의회도 6일 제국의회(Reichstag)의사당에서 전체회의를 개최,바야흐로 통일독일의 수도이자유럽의 중심지로서의 베를린 재탄생을 공표한다. “과거를 보려면 로마로,미래를 보려면 베를린으로 오라” 베를린 시 홍보국장 볼커 하세메르시는 10년의 대역사 끝에 거듭나는 베를린을 이렇게 자랑했다.91년 베를린 수도 이전을 결정한 뒤 독일 정부가 베를린에 쏟아부은 비용은 200억 마르크(약 12조 2,000억원).옛 동독지역의 떼를 벗기고 미래의도시로 탈바꿈하기 위해 베를린은 그야말로 거대한 공사장이었으며 아직까지 크레인 소리는 계속 울리고 있다.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로 완전한 모습을 갖추기까지에는 향후 수년이 더 걸릴 것이란 전망이다. 정부 16개 부처 가운데 수도이전을 총괄한 교통부가 지난 6월말 50여년 본시대를 마감하고 베를린으로 이사한데 이어 10개 부처도 거의 이사를 끝냈다.150여개 외국 공관,언론기관 각종 이익단체도 이사에 여념이 없다. 본에서 베를린으로 향하는 인구는 수만명이다.일부 부처가 본에 남아 과도형태를 유지하긴 하지만 6,000명의 정부 관료와 그 식솔,그리고 국회의원 669명,보좌진 3,400여명 등이 베를린으로 옮겨 간다. 여기에 함부르크 프랑크푸르트 등에 근거지를 둔 많은 기업들과 21세기를 꿈꾸는 젊은이들이 베를린으로 속속 향하고 있다. 지난 5월 선출된 요하네스 라우 대통령은 이미 베를린의 새 대통령관저에머물고 있으며 슈뢰더 총리는 오는 2001년 새 총리관저가 완성될 때까지 옛동독 호네커 전 총리 관사에 임시로 기거한다. 베를린은 세계 유명 건축가와 아티스트들의 경연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로젠조 피아노,노먼 포스터 경 등 내로라 하는 건축가들이 새 베를린 건설에 참여했다. 가장 상징적인 건물은 베를린 장벽 서쪽에 위치한 제국의회 건물. 1894년 바이마르 민주 헌법이 탄생한 곳이자 히틀러가 선전포고를 한 곳이며 45년 연합군에 대한 독일 패전을 상징하는 곳이기도 하다.제국의회 건물을새단장한 주인공은 건축 거장,노먼 포스트 경. 민주주의와 투명성을 상징한 유리 돔,그대로 보존해놓은 과거 전쟁의 흔적들은 벌써부터 관광명물로 각광받고 있다. 이탈리아의 거장 로젠조 피아노가 지휘한 포츠담 광장엔 8억달러 규모의 소니 복합단지,다임러 벤츠 본사가 들어설 예정이다. 그러나 새 베를린은 유럽 전통양식을 고수하라는 건축규제 탓에 구태와 혁신이 어정쩡하게 얽혀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김수정기자 crystal@ - 천도의 의미 베를린 천도는 통일 독일의 숙원사업이자 89년 베를린 장벽 붕괴후 지속돼온 통일과정의 마무리라는 상징성을 담고 있다. 베를린이라는 도시가 독일에서 차지하고 있는 지위는 특별하다.비록 한때나치와 냉전시대의 무대로 독일 역사중 치욕의 한부분이 됐지만 독일과 독일인에게 베를린은 ‘영원한 수도’ 그 자체이다. 1871년 독일이 첫 통일된때부터 2차대전이 끝난 1945년까지 수도였으며 그이전엔 프로이센 왕국의 수도로,베를린은 늘 독일 역사의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이번 ‘베를린 천도’에 독일 전체의 기대가 큰 것도 바로 이때문이다. 일부 유럽국가에서 독일이 베를린 천도로 다시 권위주의,패권주의로 복귀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는 것도 이같은 분위기에 영향받고 있다. 특히 최근 독일의 영향력 확대를 별로 탐탁치 않게 여기고 있는 몇몇 국가들에서는 베를린 천도를 곧 ‘동진정책’의 하나로 보면서 우려를 숨기지 않고 있다. 한편 헬무트 콜 전 독일총리는 얼마전 본시대를 마감하는 의회연설에서 “독일은 신장된 국력을 함부로 과시하려는 유혹을 이겨내야 한다.우리는 새로운 수도 베를린으로 이사를 가는 것이지 새로운 공화국으로 옮기는 것이 아니다”라고 밝혀 베를린 천도를 바라보는 주변국들의 미묘한 입장을 배려했다. 이경옥기자 ok@ - 베를린한인회 교포중심 될듯 베를린 남정호특파원 주독 한국 대사관및 교민사회도 베를린 시대를 맞는 채비에 한창이다. 지난 6월 시내 중심가인 티어가르텐 남쪽 독일철도보험회사의 7층 건물중 4,5층(500평 규모)을 임대,막바지 사무실 개조작업을 벌이고 있는 한국 대사관은 독일 연방정부 및 의회 이전에 맞춰 오는 9월 1일부터 베를린 청사에서 업무를 공식 개시한다.베를린 주재 총영사관은 대사관 이전과 함께 폐쇄되고 본에는 영사업무 등을 관장하는 대사관 분관이 설치될 예정이다. 이기주(李祺周)대사는 “베를린 천도 이후 독일의 국제정치 무대에서의 위상과 외교 정책의 변화가 예상되는 만큼 이에 적절히 대응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독일 주재 문화홍보원도 베를린으로 확장 이전한다.교민사회의경우도 활동의 중심이 프랑크푸르트 등 중부 독일권 한인회에서 베를린 한인회(교민 3,000여명)로 옮겨질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 남북노동자축구 대표팀 귀환

    ‘평양 남북노동자 축구대회’에 참가했던 민주노총 축구선수단 37명이 14일 오후 5시22분 판문점 중립국감독위원회 회의실과 군사정전위원회 사이의군사분계선을 통과해 귀환했다. 방북대표단의 이갑용(李甲用)민주노총위원장은 도착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남북 산별 지역본부장들이 참여하는 ‘남북노동자 대토론회’를 갖자고북측에 제의해 합의했으며,김영남(金永南)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면담했다”고 밝혔다. 민주노총은 남북노동자 대토론회를 갖기에 앞서 북측과 실무협의를 갖기로했다.개최일시와 장소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이위원장은 “내년에 서울에서 남북노동자축구대회를 갖자고 북측에 제의해김영남 상임위원장으로부터 긍정적인 답변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14일 오전 김위원장의 초청으로 대표단 일행 가운데 10명이 만수대의사당에서 김위원장과 1시간30분 동안 면담했다”면서 “우리 대표단은 남북 노동자 교류에 대한 북한 당국의 협조 등을 요구,긍정적인 답변을 얻어냈다”고 소개했다. 이위원장은 대표단이 당초 방북 목적에서 벗어난 행동을 했다는 당국의 우려에 대해 “방북 목적대로 실천하려고 최선을 다했다”면서 “체육교류를위해 방북한다는 정부와의 약속을 깬 적이 없으며,북측은 15일 귀환하기를원했지만 대표단이 강력 요구해 14일 귀환했다”고 덧붙였다. 이창구기자 window2@
  • 축협 총파업 돌입

    축협과 농협 및 인삼협동조합의 통폐합과 관련한 축협의 반발이 거세지고있다. 축협 노조원 등 4,500여명은 13일 서울 여의도 의사당로를 점거,농업협동조합법의 폐기 등을 요구하며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국회와 국민회의 당사 진입을 시도했으나 경찰에 의해 제지당했다. 경찰은 현장에서 240여명을 연행했으며,시위 과정에서 50여명의 부상자가 생겼다. 축협중앙회는 이날 오전 10시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개개인이 모여 만든 조합을 정부가 강제로 통폐합하려는 것은 심각한주권 침해”라고 주장했다. 이범섭(李範涉·56) 부회장은 “축협과 농협을 통폐합하는 것은 농협과 축협이 사법인(私法人)임을 인정한 92년 헌법재판소의 판례를 무시한 명백한위헌”이라면서 “정부가 농업인협동조합안을 추진하면서 검찰과 감사원을동원해 조합 간부에 대한 계좌추적 등 압력을 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법률안이 통과되면 헌법소원 등 법적 대응과 함께 정권 퇴진 운동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축협중앙회와 전국축협노동조합은 이날 오후 2시 총파업을 선언했다. 한편 할복 자해 후 여의도 성모병원 4층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는 신구범(愼久範) 축협중앙회장은 빠르게 회복하고 있다.김응국(金應國·53) 외과과장은 “신회장의 수술경과가 좋아 10∼15일 정도 지나면 퇴원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수술부위에 감염의 위험이 있으나 현재는 큰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전영우 김재천기자 patrick@
  • 유가협 천막농성 280일째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유가협·회장 裵恩深) 회원 10여명이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건너편 장기신용은행 자리 앞길에서 해를 넘겨 ‘천막농성’을 계속하고 있다.지난해 11월 4일부터 시작해 10일이면 280일째다. 민주화 운동을 하다 숨진 자식들의 명예를 회복하고 의문사의 진상을 규명할 특별법을 국회에서 하루빨리 제정해야 한다는 것이 농성의 이유다. 지난 5일부터는 87년 6월 항쟁의 불길을 댕겼던 고 박종철(朴鍾哲)씨의 아버지 박정기(朴正基·70)씨,고 이한열(李韓烈)씨의 어머니 배은심 회장 등 7명의 회원들이 국회의사당 정문 앞에 따로 천막을 만들어 놓고 ‘단식농성’을 시작했다.회원들 대부분이 60∼70대의 고령으로 5일째 식사를 중단해 지칠 대로 지쳤지만 사생 결단의 각오로 매달리고 있다.더 이상 미뤘다가는 관련법의 제정이 아예 물건너갈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당초 의문사와 관련해서는 특별검사제를 통해 책임자를 색출,법적으로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었다.하지만 대통령령으로 만들어진 9명의 진상조사위원회에이 일을 맡기고 의문사 혐의가 있을 경우 수사기관에 고발 또는 수사의뢰를 하는 선까지 양보했다.‘민주화운동법’에서도 당초 국가유공자로 지정해야 한다는 요구를 철회해 한발짝 물러섰다. 배회장은 “처음보다 양보한 것은 관련법을 하루빨리 제정해 열사들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한 것”이라면서 “이번 임시국회에서는 반드시 제정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성수기자 sskim@
  • [발언대] 지방의원이 갖춰야할 德目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국민의 요구에 의해 지난 91년 소생된 지방자치제가희망적이던 출발과는 달리 주민과 거리가 멀어지고 냉소적으로 외면당하는듯한 느낌을 지방의원인 내가 피부로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방정부와 지방의원들이 주민 가까이에서 늘 무엇인가를 파악해 불편부당함을 없애며,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 욕구를 충족시켜 줄것으로 믿었던 기대가 무너지고 일부 의원들의 바람직스럽지 못한 행동으로 인해 거부감과 불신감이 팽배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이런 시각에서 지역과 국가,시대가 요구하는 지방의원상(像)과 개선돼야 할사항을 나름대로 정리해 본다. 우선 지방의원은 주민대표로서 직무 수행에 필요한 자질을 충분히 갖춰야한다.학력 뿐 아니라 합당한 경력,전문능력이 필요하다.항상 연구하고 노력하는 자세와 함께 주민들이 접하기 쉽도록 겸손과 예의를 기본적으로 갖춰야한다. 두번째는 실현불가능한 공약을 남발해 주민을 현혹시키고 우롱하지 않아야한다.지역주민들은 직능별로 대표를 구성해서라도 공청회나 토론회 등을 통해 지방의원 후보자들이 남발하는 공약의 허구성 여부를 철저히 검증한 뒤선택할 필요가 있다. 세번째로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고 주민대표를 올바르게 선출하기 위해서는 출마자들의 전과기록을 밝힐 수 있도록 법적·제도적 개선이 요망된다. 파렴치한 전과자들이 이기적이고 사리사욕이 가득한 속마음을 감춰둔 채 주민의 대표가 되어 열심히 하겠다는 말만을 앞세워 신성한 의사당에 접근할수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네번째로 지방의원의 선출만은 주민의 자율과 선택에 맡겨야 한다.선거때만되면 내천이니 공천이니 해서 금전 뒷거래 시비가 끊이지 않는다. 정당이 지방의회까지 공천권을 행사하고,돈만 있으면 공천을 따며,공천만 받으면 당선된다는 잘못된 등식을 근절시키기 위해서라도 통치권자의 의지와 결단이 필요하다.의원으로 출마할 사람들은 당에 의존하지 않고 지역주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지방의원들은 의원활동과 가정생활을 스스로 꾸려갈 수 있는 기본적인 재력을 갖추어야 한다고 본다.시작부터 끝까지 무보수명예직으로 만족하고 어떠한 이권 개입이나 알선에도 참여해서는 안된다. [羅 鍾 天 광주 남구의회의장]
  • 오늘 제헌절 51주년 기념식

    17일은 제51주년 제헌절이다. 오전 10시 국회의사당 중앙홀에서는 대한민국 헌법제정을 경축하는 기념식이 열린다.국회사무처가 주관하는 기념식에는 3부요인과 제헌의원,제헌의원유족회원,각계대표 등 1,000여명이 참석한다. 서동철기자 dcsuh@
  • [각료 에세이] 열린 마음으로-田允喆 공정거래위원장

    우리나라 가정의 고부(姑婦)갈등 요인 가운데는 ‘옛날’을 들먹이며 내핍을 강조하는 시어머니와 ‘오늘’을 내세우며 편리를 추구하는 며느리 사이의 견해 차이가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여름철을 맞아 IMF고통이 아득한 전설인 양 많은 사람들이 해외로 휴가를떠나는 모습을 보면서 물질적으로 풍요해지는 만큼 오히려 정신적으로 빈곤해지고 있는 것 같은 우리 사회를 되돌아보게 된다. 지난 60년대초 이른 봄 정오 무렵,목덜미를 스치는 꽃샘바람에 몸서리를 치며 한 가난한 법대생이 서울 동숭동의 어느 대학 도서관을 향해 걷고 있었다.검게 물들인 군복상의에 역시 군복을 염색한 바지를 입고 워커를 신은,요즘말로 ‘밀리터리 룩(military look)’패션의 이 서울 유학생은 두툼한 법서(法書) 두어 권을 옆구리에 끼고 학교 정문 쪽으로 다가가다 허름한 식당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끼니를 거른 탓에 배가 무척 고팠다. 식당 유리창에 쓰인 ‘설렁탕’이라는 글자를 보고 그는 재빨리 호주머니속의 돈을 세어 보았다.자취방이 있는 청량리로 돌아갈버스 삯을 제하고 나니 돈이 모자랐다.잠시 망설이다 그는 식당 안으로 용감하게 들어가 주인 아주머니에게 “설렁탕 반 그릇만 주십시오”라고 말했다.당황해 하는 식당주인을 애써 외면한 채 식탁에 앉아 음식이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그의 귀에 중년 남자 손님의 목소리가 들렸다.“아주머니,저 학생 설렁탕 곱빼기로주세요.계산은 내 앞으로 하고요.” 지난 89년 동화 한 편 때문에 일본 열도가 울음바다에 잠긴 적이 있었다.일본 국회의원들이 의사당에서 동료가 읽어준 구리 요헤이(栗良平)의 ‘우동한 그릇’을 듣고 흐느끼기 시작한 것을 신호로 이 작품은 일본 전역을 빠르게 ‘낙루(落淚)경쟁’으로 몰아 넣었다.한 신문은 독자들에게 “울지 않고배겨낼 수 있을 지 시험하기 위해서라도 한 번 읽어 보라”고 ‘우동 한 그릇’을 권했다. 줄거리는 단순하다.홋카이도(北海道)의 한 우동집에서 전후(戰後) 어려웠던 시절 섣달 그믐날 밤 허름한 옷차림의 세 모자가 머뭇거리다 우동 두 그릇을 시킨다.2인분을 주문 받은 식당 주인 내외가 오히려 더 안절부절못해 어떻게 하면 이들 세 모자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으면서 3인분을 줄 수 있을까 고민하다 끝내 우동 두 그릇을 곱빼기로 내 놓는다.이들 세 모자는 우동을 맛있게 먹고 돌아간다는 이야기다. 훈훈한 인간애는 적당한 가난 속에서만 피어나는지도 모른다. 전윤철 공정거래위원장
  • 농·축협 통합갈등 ‘점입가경’

    통합을 둘러싼 농·축협의 갈등이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다.두 조합을 통합하는 ‘농업인 협동조합법’의 국회 처리를 앞두고 대(對)국회 로비,대국민 홍보,대규모 장외집회 등을 통해 한치의 양보 없는 세대결에 나섰다. 지난 1일 축협이 서울 여의도에서 조합원 10만명(경찰추산 4만명)이 참여하는 통합반대 집회를 열어 선공(先攻)을 가하자 9일엔 농협이 역시 여의도에서 같은 규모의 통합촉구 집회를 통해 반격에 나선다.전국농민단체협의회 등농업인·시민단체들이 참여하는 이날 행사에서 농협은‘대통령께 드리는 글’,대국회 건의문,결의문 등을 통해 이번 국회에서 반드시 농·축협 통합을 마무리할 것을 촉구할 예정이다. 이에 맞서 축협은 1일 집회에서 통합 반대를 강력 주장한 데 이어 8일 신문광고를 통해 농협의 집회를 ‘유례없는 관제데모’라며 맹비난하고 나섰다.7일부터는 이종준(李鍾俊)축협개혁비상대책위원장 등 집행부 10여명이 여의도한나라당 당사에서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양측의 힘겨루기는 오는 16일 국회 폐회를 앞두고 남은 일주일간 최고조에이를 전망이다.농협은 이미 대세가 통합으로 기울었다고 보고 이번 회기에반드시 통합법 처리를 관철한다는 방침이다.반면 축협도 9일 신임회장 선출을 계기로 국회의원들에 대한 로비를 총력 전개,회기내 처리를 저지한다는각오다.당분간 여의도 국회의사당은 여야 정당간의 장내 대립과 농·축협의장외싸움으로 뜨겁게 달궈질 듯하다. 진경호기자 kyoungho@
  • 한나라 일각서 自省論“의사당 뛰쳐 나온건 잘못”

    대여(對與)투쟁 수위를 놓고 한나라당 내에 ‘자성(自省)론’이 일고 있다. 초·재선 그룹이 주도하고 당 지도부가 사실상 수용하는 형식을 밟아온 강경노선에 ‘제동’이 걸린 것이다. 6일 오전 열린 의총에서 표면화됐다.재선인 박주천(朴柱千)의원이 의총장의무거운 침묵을 깨며 ‘총대’를 메고 나섰다. 박 의원은 “국민이 우리 당을 정책 야당으로서 국회를 이끌어나갈 수 있다고 봐주는지 의심스럽다”면서 “의사당을 뛰쳐 나오고 의사일정을 거부하는게 왕도(王道)는 아니다”고 자아비판을 했다. 순간 대다수 다선·중진 의원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박 의원의 발언에 화답했다. 박 의원은 힘을 얻은 듯 “모든 사안은 의사당 안에서 여야가 같이 해결하는 진면목을 보여할 것”이라며 “여기에 다선·중진 의원들이 앞장서길 기대한다”고 주문했다.단상을 내려갈 때는 다른 발언자보다 박수를 더 받았다. 초선으로 당내 강경파의 ‘리더’격인 이재오(李在五)의원이 뒤이어 등단,그동안의 과정을 설명했다.이 의원은 “사사건건 강경하게 비쳐 선배 의원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면 이해해 달라”고 자세를 낮췄다.그러면서도 “의사일정을 합의했으면 지키는 최소한의 신의가 있어야 한다”고 전날 국회 보이콧에 대해 유감을 표시했다. 이 의원 또한 “우리 당에는 경험이 풍부한 선배들이 많다”면서 “이제 성숙된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고 대화정치를 강조했다. 이에 대해 이회창(李會昌)총재는 “강경론과 온건론이 있는 것은 우리 당의장점”이라면서 “냉·온탕을 들락거린다고 하는데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당의 불협화음을 잠재웠다. 오풍연기자 poongynn@
  • 金대통령 캐나다 행보/”국내정치 혼란 국민힘에 의해 극복될 것”

    [오타와 양승현특파원] 미국 방문을 끝낸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5일 상오(이하 한국시간) 캐나다 오타와에 도착,2박3일간의 국빈방문 일정에 들어갔다. ■단독 및 확대 정상회담 김대통령과 크레티앵 캐나다총리는 6일 새벽 국회의사당 총리집무실에서 20여분 동안 단독 정상회담을 갖고 양국간 특별동반자관계를 심화·발전시키기 위한 협력방안을 논의했다. 이에 앞서 김대통령은 캐나다측 듀도와 의전장의 안내로 총리집무실에 도착,입구에 서있던 크레티앵총리와 반갑게 악수를 나눴다.두 정상은 지난해 11월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정상회의에서 한차례 회담을 한 구면인 탓인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대북 포용정책,양국경제협력 등을 주제로 회담에 들어갔다. 캐나다측은 한국의 원자력사업에 캔두형 원자로를 가진 캐나다의 참여를 요청했으며,한국측은 시장원칙에 따른 공정한 처리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김대통령과 크레티앵총리는 특히 ‘인간 안보(Human Security)’측면에서 환경보전의 필요성을 비롯,인류의복지와 인권향상을 위한 양국간 협력에전폭 공감했다.이어 국무회의실로 자리를 옮겨 45분여 동안 확대정상회담을가졌다.확대정상회담에는 우리측에서 공식수행원이,캐나다측에서는 외무·통상장관 등 7명이 참석했다. ■한국전 참전용사 접견 및 전몰용사 기념관 헌화 정상회담에 앞서 김대통령은 국회의사당 2층 코먼웰스룸에서 한국전 참전용사를 접견했다.김대통령은질다 몰가 상원의장의 소개로 캐나다측 의회 영접인사들과 가볍게 악수를 나눈뒤 코먼웰스룸으로 입장,미리 설치된 연단 앞에 서서 참전용사들로부터 환영인사를 받았다.김대통령은 격려사를 통해 참전용사들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수호하려는 열망이 오늘의 한국을 만든 밑거름이 됐다며 이들을 위로했다. 김대통령은 고든 스트라디 회장과 레 피터 총무 등 참전용사회 임원들과 악수를 나눈뒤 의사당 3층에 있는 전몰용사 기념관으로 이동,헌화했다. ■공식환영식과 국빈오찬 김대통령과 이희호(李姬鎬)여사는 5일 밤 총독관저 광장에서 열린 공식환영식에 참석,따뜻한 환영을 받았다.김대통령은환영식에서 “캐나다 방문을 통해 국가간 협력의 모범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며 “우리 두나라는 앞으로 돈독한 우정을 바탕으로 태평양을 평화와 번영의 바다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양국 우의를 강조했다. 이어 김대통령 내외는 총독관저 볼룸에서 르블랑 총독내외가 주최한 국빈오찬에 참석,연설했다.소접견실에서 크레티앵총리 내외와 인사를 나눈 김대통령 내외는 총독내외의 안내를 받으며 오찬장으로 이동했다. 김대통령은 오찬 답사에서 “우리 두나라가 과학과 문화·교육 등 다양한분야에서 손을 잡을 때 새천년엔 평화와 번영을 향한 보다 많은 기회를 얻게될 것”이라고 말했다. ■동포간담회 김대통령은 5일 오전 오타와 샤토로리에 호텔에서 캐나다 교민 200여명과 간담회를 갖고 교민들을 격려했다. 김대통령은 자신의 자유메달 수상에 관해 설명하는 가운데 “한국에서 다시 독재정치가 나타나는 것은 꿈에도 상상할 수 없다”면서 “정치가 약간 혼란스럽지만 결국은 국민의 힘에 의해 극복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대통령은“국내에 있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해외에 나가 있는 사람들도조국이 잘되면 체면이 서고 희망을 갖게 된다”면서 “한국은 48년 건국 이래 지금과 같이 좋은 평가를 받은 적이 없다”며 자부심을 고취했다. 이어 김대통령은 국내의 경제회복 과정을 설명하고 “나는 임기중 경제를반드시 개혁해 (한국이) 세계 일류국가가 되는 기초를 만들어놓겠다”고 말해 열렬한 박수를 받았다.
  • 北-캐나다 관계개선 희망…정상회담 “햇볕정책 지지”

    [오타와 양승현특파원] 미국방문을 마친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캐나다 오타와에 도착,6일 새벽(한국시간) 국회의사당 총리집무실에서 장 크레티앵 캐나다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아시아·태평양지역의 중견국가로서 양국간 특별동반자관계를 지속적으로 확대·발전시켜나가기로 합의했다. 김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대북 포용정책과 포괄적 접근방안에 대해 설명했으며,크레티앵총리는 우리의 포용정책에 전폭적인 지지의사를 밝혔다. 김대통령은 캐나다의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사업과 대북식량지원 참여를 평가한 뒤 북한이 책임있는 국제사회의 일원이 되도록 북한과 캐나다의관계개선이 이뤄지길 희망한다는 의사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대통령은 크레티앵총리에게 가까운 시일내에 한국을 방문해 줄 것을 요청했고,크레티앵총리도 이를 수락했다. yangbak@
  • 美의회 “北미사일 대처” 한목소리/美의회 北지칭 용어

    워싱턴 최철호특파원 북한의 미사일 위협이 모처럼 미 민주당과 공화당이 한목소리를 내게했다.29일 미 의사당 건물계단에서 열린 국가미사일방위망(NMD)법안 상정식에 민주·공화 상·하 양원들이 한데모여 미국의 안보에관한 공감된 우려와 일치된 대응방안을 밝힌 것이다. NMD법안은 미국 본토를 위협하는 미사일공격을 막는 기술개발을 위한 법안으로 바로 지난 3월17일 상원을 통과한데 이어 다음날 하원도 통과,이를 반대해오던 클린턴 행정부가 찬성함으로써 사실상 확정됐었다. 지난 83년 공화당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주창했던 ‘스타워스’사업의 부분적 부활인 이 법안은 우주공간에 미사일탐지를 위한 위성을 배치,지상에서 이를 파괴시키는 내용을 골자로하며 전역미사일 방어망계획(TMD)와 함께 고위고도 미사일 방어망(THAAD)의 한축을 이루고 있다. 66억달러의 예산지원을 골격으로 지난 3월 상하양원을 통과한 이 법안은 그동안 코소보 전쟁으로 상정식이 늦어졌으나 이날 보기드문 행사와 함께 상정됐다. 스타워스 계획 반대는 물론 미사일방어망계획을 반대하던 민주당과 클린턴행정부가 찬성으로 돌변한 이유는 북한을 비롯한 이란 등 이른바 ‘불량배국가’의 미사일이 미국을 위협한다는 공감대가 확산,민주당 의원들도 찬성쪽으로 돌아선데다 중국 핵기술절취로 궁지에 몰린 클린턴이 거부권 철회방침을 밝히면서 압도적 표결로 입안됐다. 이면에는 러시아와 맺은 ABM조약 완화를 옐친이 약속한데다 지난 10일 뉴멕시코에서 5차례 실패끝에 성공한 요격미사일 실험이 이날 행사에 큰 자극제가 됐다. 해스터드 하원의장은 행사에서“이제 미국 안보의 새시대가 도래했다”고전제하고“냉전은 끝났으나 불량배 국가들과 테러단체들로부터 새로운 핵위협을 받고 있는 가운데 이제는 북한이 긴급히 우려(urgent concern)되고 있다”고 북한의 위협을 서두에서 지적했다. 또 상원인준위원회에 증인으로 나선 미사일방어망의 열렬한 지지자인 존 홀럼 국무부 군축·국제안보담당 차관은 “불량배 국가들의 핵공격 위협은 명백하다”고 지적,의원들의 우려에 동조했었다. - 美의회 北지칭 용어 미국의 북한을지칭하는 수식어는 다양하다.‘긴급히 우려하는 국가’(urgent concern)는 새로운 표현.또 자주 쓰이는 것으로 ‘불량배 국가’(rogue nation)가 있다.이는 극심한 경제난에도 불구하고 대량살상무기 개발에 엄청난 비용을 쏟아부어 그 무기로 이웃을 위협,댓가를 얻어내고 있어 얻은 별칭이다. 가장 흔한 용어로는 ‘최후의 스탈린식 통치국가’(Last Stalinist state)가 있고 그밖에 ‘테러국가’,‘여행 경고국’에도 끼어있다.
  • [특별기고] ‘민들레’들의 눈물과 손수건

    신록의 5월이 가고 녹음 짙은 6월이다.그런데 해마다 오가는 5월과 6월이왜 아직도 우리에게는 계절 이상의 무게를 지니고 찾아오는지…. 5월 하면 61년 5·16 군사쿠데타와 80년 광주 5월 민주항쟁이 떠오른다.한국 현대사에서 5월은 우리에게 두 번이나 민주주의에 대한 사망선고를 안겨준 달이다. 그리고 6월은 50년 6·25전쟁의 비극과 87년 ‘6월항쟁’의 환희를 교차시킴으로써 우리 가슴을 찡하게 울린다. 현재 우리는 6월항쟁 12주년을 맞고 있고 시민·사회단체 및 각계 인사들이시국선언과 기념식, 시민달리기 대회, 민주대합창 1999 등 갖가지 행사를 진행시키고 있다. 그러나 기념행사의 규모만큼이라도 우리가 지난날 민주화운동을 위해 목숨을 바쳤거나 젊음을 불사른 사람에 대해 기억하고 위로나 하고 있는지 되돌아볼 때가 된 것 같다. 민주화운동 열사들의 유가족들은 의문사 진상규명과 고인들의 명예회복을위한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면서 6개월 이상 국회의사당 앞 길거리에서 천막농성을 하고 있다. 이들의 농성투쟁을 담은 영상 다큐멘터리 ‘민들레-한많은 어버이의 삶’이최근 한 독립프로덕션에 의해 제작돼 필자는 이 영상물을 지난 8일 민언련회원들과 함께 명동성당 구내 땅바닥에 앉아 보면서 착잡한 심정을 금할 수없었다. 사랑하는 자식을 어느 날 갑자기 잃어버린 이후,음식을 먹어도 맛을 모르고,즐거운 일이 있어도 웃음을 되찾을 수 없게 된 열사들의 어버이와 유족들이그 ‘잿빛 삶’도 부족하여 아직까지도 노숙하는 모습을 우리 모두 찾아가그들과 함께 눈물을 흘리고,손수건을 꺼내 그들의 눈물을 닦아줄 때,비로소이 땅에 진정한 민주의 꽃이 활짝 필 것 같은 예감이 드는 것은 왜일까? 지금 이 메마른 땅에서는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가? 최근 잇달아 터져나오는 각종 의혹과 스캔들의 바닥에는 일부 상류계층의 개인주의와 출세주의가 깔려 있다. 최근 국민들의 여론을 들끓게 한 진형구 전 대검공안부장의 ‘조폐공사 노조 파업유도’ 발언만 해도 그렇다. 학생운동이나 노동운동을 아직도 ‘공안사건’ 차원으로 다루고 있는 어처구니 없는 발상은 접어둔다 하더라도 참으로개탄스러운 점은 그러한 ‘공작’이나 ‘탄압’을 마치 큰 공적이나 되는 것처럼 여기는 고위 공직자들의사고방식이다. 설사 구조조정이 불가피한 경우가 생긴다 할지라도,우리 사회는 해고에 대한 아픔을 함께 나누어야 할 것 아닌가? 이 ‘공안 공작’ 의혹에 대해 김대중대통령이 국정조사권 발동에 동의한것은 환영할 일이다.그런데 국정조사가 착수되기도 전에 언론들은 ‘용두사미’로 끝날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을 내리고 있다. 그러나 이번만은 그래서는 정말 안된다.여야 모두가 작은 절차로 티격태격하기에 앞서,누가 더 유리하고 불리한가를 저울질하기 앞서,이번에야말로 사건의 진실은 과연 무엇인가 한번 제대로 밝혀보자는 대승적인 합의부터 하라. 적당한 폭로와 적당한 은폐,또는 흥정,혹은 당리당략으로 국정조사가 요식행위로 끝난다면 국민들의 정치불신,국회불신은 회복불능에 빠질 것이다. 6월항쟁 12주년,지금 우리의 민주화는 민주화운동 때문이거나 IMF 때문이거나 간에 고통의 눈물에 젖은 무수한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줄 따뜻한 손수건이 필요한 것 같다. 그리고 이 사회의 온갖 음습한 모순과 비리구조에 대한 진실한 원인규명과처방을 동시에 필요로 한다. [成 裕 普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이사장]
  • 노총·민노총 철야농성 돌입

    검찰의 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의혹과 관련,한국노총과 민주노총 산하 전사업장 노조가 16일과 17일 시한부 파업에 돌입키로 하는 등 ‘총투쟁’을 선언해 산업현장에 위기감이 높아가고 있다. 한국노총 박인상(朴仁相)위원장은 14일 여의도 노총회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파업 유도 의혹의 진상이 규명되지 않고 구조조정 중단 등의 요구가 수용되지 않으면 현정부와의 정책연대를 파기하고 총파업에 나서겠다”고 선언했다. 한국노총은 이날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노동자대회를 열어 여당 단독의 국정조사권 발동에 반대하는 특별결의문을 채택한 뒤 지도부가 노총회관에서 철야농성에 들어갔다. 한국노총은 15일 산하 전 사업장 노조별로 총파업 결단식을 갖고 16일 시한부 파업을 강행한 뒤 26일부터 무기한 총파업 투쟁에 들어갈 예정이다. 민주노총 이갑용(李甲用)위원장도 이날 서울 명동성당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파업유도 의혹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구속처벌 ▲공안대책협의회 및 대검공안부 해체 ▲정리해고자 원직 복직 ▲대통령의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 등을요구했다. 민주노총은 이날 본부 임원과 산별연맹 지도부들이 단식 농성에 돌입한데이어 15일 단위노조 간부들이 철야농성에 들어간 뒤 17일 총파업 투쟁에 돌입키로 했다. 이에 대해 노동부는 이상용(李相龍)장관을 비롯 전 간부들이 양대 노총 지도부와 접촉,‘파업 유도’ 의혹에 대한 정부의 진상규명 의지를 전달했으나별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 [이세기 칼럼] 空超문학상

    이 시대를 살다 간 수많은 시인,작가,묵객들은 저마다 기상천외한 기행과호방한 일화들을 남기고 있다.그 중에서도 공초(空超) 오상순(吳相淳)시인의 무정처(無定處)·무소유(無所有)의 삶은 무절제한 탐욕에 사로잡힌 세속인들에게 매서운 화살촉처럼 가슴을 꿰뚫는 경고를 준다.삶과 죽음의 일체를공(空)으로 돌리고 한조각 뜬구름처럼 표박(漂泊)을 즐기던 그의 시인적 삶은 우리 문단에서는 방랑과 참선과 애연의 전설적 인물로 회자되고 있다. 그가 타계한 지난 63년 6월3일,지금의 한국프레스센터 건너편인 세종문화회관별관(구 국회의사당)에서 영결식을 끝내고 수유리 장지로 향하는 행렬은그야말로 전에도 후에도 볼 수 없었던 감동의 물결이 아닐 수 없었다.영정에는 잠들 때 외엔 손에서 놓지 않는다는 담배연기가 피어오르고 만장을 든 여학생들과 가사를 걸친 승려들의 독경,문인 음악가 화가로 이어지는 이 땅의모든 예술가들은 물론 일반 시민들까지 합세하는 이채로운 광경을 연출해내었다.그때 연도에서 이 행렬을 지켜보던 한 외국인이 “한국이 이처럼 문화국가인 것을 몰랐다”고 한 감탄은 우리에게 긍지를 주었다. 공초 시인은 하루가 끝나고 잠자리에 들 때마다 모든 것을 청산하고 정적의 세계로 돌아간다고 했고 다시 하루가 시작되면 그는 ‘반갑고 기쁘고 고마운’ 마음에서 날마다 새로운 삶을 맞이하고 있었다.불교에 심취하던 시절의 명찰순례와 고승들과의 고담준론,한때는 모던하고 진보적인 청년교사로서영어에 능통했으나 언제부턴가 삭발한 채 먹는 것,입는 것,잠자리를 걱정하지 않는 완전한 자유인이 되어 방황과 표랑의 생활에 안위하게 되었다.그의기인적 행각은 수주(樹州) 변영로 등과 술을 마시고 대낮에 벌거벗은 채 소를 타고 큰거리로 진출을 시도하는가 하면 기르던 고양이가 죽자 친구들에게 부음을 띄우고 무덤을 만들어 곡을 하면서 ‘천지가 곡(哭)을 한다’는 시를 지은 것이 후에 ‘짝잃은 거위를 곡하노라’로 발표되고 있다.한 손으로는 세수하고 한 손으로는 담배를 피우면서 밤낮없이 자욱한 담배연기 속에서,50년대 중반부터는 서울 명동의 청동다방에 칩거하여 195권의 ‘청동문학’을 남긴 것은 그만의 남다른 문학적 성취일 수 있다.예를 들어 ‘담배연기는 스러져 어디로 가나’라는 화두 아래 월탄(月灘) 박종화는 ‘늙지 않은 공초,늙을 수 없는 공초,늙어서는 아니될 공초’를 쓰고 있고 이은상도 ‘오고싶지 않은 곳으로 온 공초여,가고 싶은 곳도 없는 공초여’를 기록하고 있다.이를 두고 구상(具常) 시인은 ‘어느 현세의 시인이나 철인,사제나 선사 중에서도 이렇듯 끊임없고 헤아릴 수 없는 형이상학적 인생문답자를 찾지 못한다’고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우리의 서정시에 강렬한 사상성을 불어넣은 신시운동의 선구자이기도 한 그가 우리를 사로잡는 진정한 힘은 그의 문학보다 문학적으로 이룩한 삶의 체현에 있다는 것이 아마도 가장 옳은 평일 것이다.무상한 세태의 와중에서 언제나 행운유수(行雲流水)로서 그는 손에 잡히지않는 곳에 부동의 섬으로 떠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93년부터 공초숭모회와 대한매일신보사가 공초의 기일(3일)을 전후해서 그의 문학을 기리는 공초문학상을 시상하고 있다.오늘이 바로 7번째다.혼탁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오염과 시속기(時俗氣)가 없는 문학적 삶을 체현(體現)한 시인을 가졌다는 것은 여간 자랑스러운 일이 아니다.그러나 해를 거듭할수록 그의 묘소를 찾는 후학들의 발걸음이 뜸해진다는 소식은 아쉽다.일본에는 ‘사양(斜陽)’의 작가 다자이 오사무를 위한 ‘앵도기(櫻挑忌)’나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기(愚國忌)’ 등 시인·작가를 추모하는 모임이 많은것으로 알고 있다.시 한줄을 읽는 것보다 한 시인의 위대한 삶을 비춰보는추모의 마음은 시심보다 값지다.우리는 누구보다 앞장선 문화국가,문화민족의 긍지를 잊지 말고 이런 정감어린 행사를 키워가는 분위기를 생각해봐야겠다. [논설위원 sgr@]
  • [제2공화국과 張勉](26) 장면의 정치역정·생애(中)

    초대 주미대사로서 큰 공을 세운 장면(張勉)은 1951년 1월28일 귀국해 2월3일 국무총리에 취임한다.이 무렵 이승만(李承晩)대통령과 국회는 상극이라할 만큼 알력이 심해 장면 총리는 양쪽을 융화·조정하는 데 온힘을 기울였다.아울러 ‘국민방위군 사건’‘거창 양민학살 사건’ 해결에 앞장섰고,그해 11월에는 파리 제6차 유엔총회에 대표단을 이끌고 참석했다. 장면이 이승만 아래에서 총리직을 수행하는 동안 권한을 행사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그렇지만 정치적 위상은 한층 높아져,이승만을 몰아내고 그를대통령으로 옹립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난다. 50년 6월19일 개원한 2대 국회는 다양한 세력으로 구성됐다.자유당 창당 전이라 공인된 여당이 없었고 친(親)이승만 계열 의원은 대한국민당 24명을 비롯해 57명에 불과했다.반면 야당의원은 27명,무소속은 의원 정수의 60%인 126명에 달했다. 2대 국회는 개원 엿새 만에 6·25를 맞아 사망·납치·행방불명된 의원이 35명에 이를 정도로 큰 피해를 입었다.의원 대다수가 이승만의 ‘서울 사수(死守)’ 발언을 믿었다가 큰 곤욕을 치른 데다 이승만의 독재 성향이 이미두드러져 의회에서는 반(反)이승만 기류가 주를 이뤘다. 당시는 국회에서 대통령을 선출하는 간선제였고 이승만의 임기는 52년 7월23일까지였다.국회에서 재선할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하자 이승만은 51년 말두 가지 방안을 추진한다.하나는 여당을 만드는 것이고,또 하나는 대통령직선제로 개헌하는 것이었다. 여당 창당작업은 그러나 두 갈래로 나눠졌다.무소속 의원 중심의 원내자유당과 5개 사회단체를 뼈대로 한 원외자유당이 별도의 정당으로 등록했다.이가운데 원내자유당은 이승만의 뜻과는 달리 내각책임제로의 개헌을 은밀히추진하면서 대통령으로 장면을 추대하기로 야당과 합의한다. 당시 원내자유당을 이끈 오위영(吳緯泳)은 회고록에서 “일부 정치인들이이박사의 영구집권을 위해 활동하기 시작한 실정에서 재야의원들은 대부분강력한 야당을 조직해 다가오는 대통령선거에서 민주적인 지도자를 추대하자는 중론이 대두되고 있었다”고 밝혔다. 국회는 이승만정부가 발의한 ‘대통령 직선제’ 개헌안을 52년 1월18일 찬성 19,반대 143이라는 압도적인 표차로 부결했다.이어 개헌 정족수에 맞춰의원 123명의 서명을 받아 내각책임제 개헌안을 제출했다.4월 이 무렵 장면도 총리를 사임했다. 국회는 6월2일 제2대 대통령을 뽑기로 계획을 세웠다.그 날이 되면 장면은새 대통령으로 선출되고 내각책임제 개헌도 순조롭게 이루어질 터였다. 하지만 반격이 시작됐다.‘부산정치파동’이 발생한 것이다.이승만이 경남과 전남북에 계엄령을 선포한 다음날인 5월25일 계엄군은 버스로 등원하는의원들을 연행했다.그리고는 경찰이 국회를 포위한 상태에서 대통령직선제개헌안을 강제로 통과시켰다.이때 개정한 헌법이 ‘발췌개헌’이다. 부산정치파동후 장면은 가톨릭계인 경향신문의 고문으로 들어앉아 정치에는 일절 간여하지 않을 듯이 보였다.그러다 55년 9월 통합야당인 민주당이 출범하자 최고위원으로 정계에 복귀했다.오위영을 비롯해 김영선(金永善)·홍익표(洪翼杓)·이상철(李相喆) 등 신파의 핵심세력이 52년 그를 대통령으로추대하려던 원내자유당계였다. 장면은 56년 정·부통령 선거에 부통령으로 출마해 이기붕(李起鵬)을 누르고 당선됐다.국민의 투표로 검증받은 권력서열 2위가 된 것이다.더구나 이승만이 81세의 고령이어서 유고시 대통령 자리를 승계하는 부통령이란 위치는정치적으로 큰 의미를 가졌다. 그러나 부통령 재직 4년은 장면이 회고록에서 ‘죄없는 죄인’이라고 표현할 만큼 험난한 세월이었다.이승만은 강력한 정적으로 떠오른 그를 견제하느라 상식 밖의 행동을 예사로 했다.가령 56년 8월15일 열린 정·부통령 취임식에서 이승만은 내외 귀빈을 전부 소개하면서 정작 그 자리의 공동 주인공인 장면을 무시했다.남산 국회의사당 기공식에서는 다른 초청객의 자리는 준비하고도 부통령 좌석은 마련하지 않아 장면이 그냥 돌아갈 정도였다. 이 시기 장면의 처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두 가지 사건이 있었다.그에대한 암살 기도와 외국 원수와의 만남을 방해한 사례다. 부통령 취임 한달여 만인 9월29일 서울 명동 시공관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장면은 김상붕(金相鵬)이 쏜 총에왼손을 맞았다.이 저격사건의 배후는 김종원(金宗元)치안국장이라는 추측이 강하게 나돌았지만 훗날 장면정부 아래서 속개된 재판에서도 관련자는 김상붕,그에게 총을 준비해 준 이덕신(李德信·성동경찰서 사찰계 형사주임),두 사람 사이를 연결해 준 최훈(崔勳) 등 세 사람으로 한정됐다.장면은 사건의 배후를 철저히 파헤치는 대신이들을 감형하는 것으로 사건을 마무리지었다. 고 딘 디엠 베트남대통령이 공식 방한한 날은 57년 9월18일이었다.디엠의맏형은 가톨릭 사이공교구 대주교였고 본인도 독실한 신자였다.게다가 장면과는 미국에서 만나 돈독한 우정을 쌓은 사이였다. 디엠은 장면을 만나려고 했으나 이승만정권은 그의 방한 사실조차 장면에게 알리지 않았다.디엠은 개인적으로 노기남(盧基南)대주교에게 전화해 일요일 첫 미사때 명동성당에 들르겠다며 장부통령을 만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장면과 디엠은 결국 주교관 2층 노대주교 방에서 몰래 만나 우정을 재확인할수 있었다. 외국원수에 대한 의전마저도 무시할 정도로 장면을 철저히 배제한 이승만의 폭거는 4월혁명으로 쫓겨날 때까지 계속됐다. 장면이 순화동 부통령 공관에서 ‘창살 없는 감옥’ 생활을 하던 그 무렵을 이철승(李哲承)은 “참으로 견디기 힘든 세월이었지만 민주 염원의 상징으로서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고 회상하면서 “장박사가 사실은 남달리 외유내강한 분”이라고 평가했다. 장면은 총리·부통령을 거치면서 국가지도자로서 확고한 위상을 차지했다. 그런 까닭에 4월혁명으로 이승만정권이 물러나자 민심은 당연히 장면에게로쏠리게 됐다. 이용원기자 ywyi@**前비서관 李聖模·李泓烈씨가 본 장면 장면(張勉)에게는 10여년 동안 그림자처럼 수행한 비서관이 두 사람 있다. 이제는 70대가 된 이성모(李聖模·72)씨와 이홍렬(李泓烈·77·미국 거주)씨가 그들이다. 이들은 장면이 주미대사로 활동한 50년대 초부터 66년 타계하기까지 때로는 함께,때로는 엇갈리며 그의 곁을 지켰다.이들이야말로 가족이나 정계의 동료보다도 장면의 모든 것을 더 가깝게,더 오랫동안 지켜본 증인들이다.그들이 밝힌,알려지지 않은 이야기 몇 토막을 소개한다. 이성모씨는 1951년 초 피난지 부산에서 장총리를 만난다.경찰관으로 경호업무를 맡은 그는 인품에 감화해 곧 경찰복을 벗고 비서로 들어간다.그가 직접 본 부산 피난 시절 장면과 어머니 사이의 에피소드다. “장총리는 꼭 집에서 점심을 들었다.하루는 점심을 먹으러 집에 왔다가 모친(黃누시아)이 등 찢어진 삼베옷을 입은 것을 보고 흉하니 갈아입으라고 말씀드렸다.그랬더니 모친이 불같이 화를 내며 ‘자네가 이 나라 총리 맞는가. 지금 피난민이 곳곳에 우글거리는데 잘먹고 편히 있는 내 걱정할 땐가.’장총리는 무릎을 꿇고 한 시간이나 빌었다.모친 지시대로 범일동 고아원에 가아이들을 돌본 다음에야 용서받았다.장총리 부모도 매우 훌륭한 인격자였고,그는 부모 말씀에 절대 복종했다.” 이홍렬씨는 50년 4월 로스앤젤레스총영사관 부영사 때 장면 주미대사를 알게 된다.51년 총리로 내정된 장면의 부름으로 함께 귀국해 총리실 파견근무를 했고 그 인연으로 비서관이 된다. “장총리를 10여년 모셨는데 화내는 모습을 딱 한번보았다.60년 12월이었다.청와대로 전화하라고 해서 윤보선(尹潽善)대통령의 비서실장인 이재항(李載沆)씨를 바꿔주었다.장총리가 통화를 몇분 하더니 화난 표정에 목소리가높아졌다.대통령에게 긴히 할 말이 있는데 이재항씨가 자꾸 핑계를 대며 안바꿔주는 모양이었다.전화를 끊은 장총리는 ‘아주 고약한 사람이로군’하고혼잣말을 했다.그것이 그분이 할 줄 아는 가장 험한 욕이었다.” 이홍렬씨는 장면이 돈 문제에도 담백했다고 밝혔다. “51년 총리 시절 파리에서 열린 제6차 유엔총회에 대표단을 이끌고 가게돼 있었다.떠나기 열흘 전쯤 한국은행 총재가 나를 불렀다.‘외교활동을 하려면 가외비용이 많이 들 것’이라면서 돈가방을 주었다.얼핏 봐도 100달러지폐가 가득 들어 있었다.일단 거절하고 돌아와 말했더니 ‘잘했다’는 한마디뿐 더는 말이 없었다.돈을 챙기는 데는 관심이 전혀 없어 쿠데타후 명륜동자택으로 돌아가서는 생활비가 없을 정도였다.” 이성모·이홍렬 두 비서관은 군사정권 아래서 고된 삶을 살았다.이성모씨는 장면 집안일을 돌보는한편 정치에도 뛰어들었다.민주당 재건에 참여,섭외부장·조사부장을 역임했고 경북 영주·봉화 지구당위원장으로서 6·7대 총선에 출마하지만 거듭 실패했다.이후 사업을 하면서 장면 추모모임인 ‘운석회’의 궂은 일을 도맡아 해왔다. 이홍렬씨도 5·16쿠데타후 장면을 곁에서 모시다가 그의 타계후 정치에는일절 발을 끊고 생활인으로 돌아갔다.지난 88년 도미해 로스앤젤레스에 자리잡은 그는 본지에 ‘제2공화국과 장면’ 연재가 시작되자 일부러 두 차례 귀국해 증언하고 자료를 제공하는 열성을 보였다. 이용
  • [사설] 義人 기리는 사회를

    세태가 각박하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래서 대체로 불의를 보고 참지 못하거나 남을 위해 희생하는 일은 무가치할 뿐이라고 외면해버린다. 내가 제일이고 나만 잘살면된다는 가파른 이기심은 길에 쓰러져 죽어가는 사람을 보고도 못본체 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런 가운데에서도 어려움을 당할때마다감연히 나서서 약한 사람을 돕고 곤경에 처한 사람을 구해내는 의인들이 있다. 우리 사회는 이처럼 자신을 희생하는 의인들로 인해 뜨거운 감동과 희망을 가질수 있다. 전남 여수소방서 소속의 119 구조대원이 불길속에서 16명의 생명을 구하고자신은 불길에 갇혀 숨진 사고는 모든 사람을 안타깝게 한다. 아직 젊은 나이에,지난해 결혼해서 아들의 백일을 불과 5일 남겨둔채 순직했다니 뭐라 표현할 길이 없이 착잡할 뿐이다. 지난해 집중호우가 내린 경기도 남양주시에서도 하천범람으로 고립된 부부를 극적으로 구조하고 거센 물살에 휩쓸려간소방대원이 있었고 지리산 계곡 폭우참사때도 야영객을 구조하려던 구조대원들이 희생된 일이 있다. 어느 죽음이든 타인의 생명을 구하고 자신이 희생되는 죽음은 그의 주변과 가족의 입장에서는 여간 아깝고 억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구조대원으로서의 투철한 공무정신과 책임감 때문이라고 하더라도 다른사람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물속이나 불속에 뛰어드는 일은 아무나 쉽게실천할 수 없다. 우리는 그들의 희생이 있을때마다 훌륭하다고 칭송하지만과연 그들의 값진 희생이 합당한 대우를 받고있는지 진지한 자세로 돌아봐야 한다. 지난해 미국은 의사당 총기난사사건으로 숨진 두명의 경호원을 영웅으로 추대하면서 의사당 묘역에 안장하는 등 선진국에서는 국가나 공동체의 구성원을 위해 헌신한 사람들을 예우하는 관례가 확립돼 있다. 그러나 우리는 국민정신을 순화시키는 희생과 봉사정신에 대해 소극적이고 인색하다. 공직자의경우는 국가유공자로 지정돼 퇴직금에 약간의 보상금을 더 받고 있고 민간의 경우는 보상금만을 받는 것이 전부라고 한다. 지난해 서울시가 남을 돕다가 희생한 의사자(義死者)들을 안장할 의인묘지공원을 조성한다는 계획을 밝힌바 있으나 얼마나진전됐는지 실현가능한 일인지도 궁금하다. 희생과 봉사정신은 이웃과의 화합은 물론 사회전체에 평화를 가져다준다. 남의 희생을 아무것도 아니라는듯이 예사롭게 보아넘기면 값진 희생의 의미가 희석되어 비뚤어진 공동체 의식을 바로 잡기 힘들다. 의인들이 대우받고존경받는 사회는 건강하고 정의롭다. 의로운 죽음을 의롭게 대우하는 일이의로운 사회로 발전시키는 길임을 깊이 인식하고 정부는 이번 기회에 관련법규를 보완·제정하는 등의 대책을 마련토록 촉구한다.
  • 與野, 대화끊고 “제 갈길 가자”…이젠 ‘장외 명분대결’

    “이번에는 장외(場外) 대결이다” 여야가 지루한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의 밀고당기는 씨름에서 벗어나 ‘민생(民生) 속으로’ 파고든다.여당은 중단 없는 개혁의 추진을,야당은 의회민주주의 사수(死守)를 명분으로 내걸었다.당분간 접점 모색을 위한 여야 대화는 접어두고 ‘마이웨이’를 외치며명분쌓기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여당 국민회의는 전국의 민생현장을 잇따라 방문,현 정권의 개혁성과를 점검하고 바닥 여론을 정책에 반영할 계획이다.민생개혁에 전념하는 여당의 이미지를 심겠다는 생각이다. 김영배(金令培)총재권한대행을 비롯한 당 지도부가 5일 봉천동 ‘결식아동의 집’을 방문하는 것이 첫 일정이다.매주 2∼3차례씩 각종 현장을 방문하고 여론도 청취한다.다음주에는 경제 4단체와 실업극복 관련 기구 등 재계,노동계 현장을 찾아 간담회를 갖고 경제개혁 방안과 실업문제 해결책을 모색키로 했다. 정동영(鄭東泳)대변인은 4일 고위 당직자회의 직후 “개혁 현장으로 다가가 사회 모든 분야에서 진행되는 개혁 관련 민원을 수렴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민회의는 특히 오는 10일부터 지구당별 ‘개혁 보고대회’를 열어 국정개혁 진행상황을 국민에게 알리고 협조를 당부한다.정 대변인은 “야당의 발목잡기와 조직적인 방해로 개혁작업이 얼마나 늦어지고 있는지를 알릴 것”이라고 말했다.당 정책위 차원에서는 자민련과의 정책 공조를 강화하고 일선지구당과도 연계해 유기적인 정책개발시스템을 갖춰 나가기로 했다. 한나라당 여당의 국회 본회의 안건처리를 ‘날치기’로 규정,강력한 장외투쟁을 전개하면서 대국민 홍보에 나서기로 했다.6·3재선거가 채 한달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 여당의 날치기 처리를 국민에게 알리는 동시에 여야 관계를 대립 양상으로 몰고가 ‘반사이익’을 노리겠다는 전략이다. 당내 민주수호투쟁위원회(민투위·위원장 朴寬用)는 12일과 16일 서울 부산에서 날치기 통과를 규탄하는 국정보고대회를 열기로 했다.명칭은 ‘김대중정권 민주말살 규탄대회’로 정했다.6일에는 이회창(李會昌)총재가 현 정권의 성격을 규정하는 기자회견과 원내·외 지구당위원장 연석회의도 예정돼있다. 이 총재는 이날 특보단회의에서 “국민연금,교육개혁 실패,날치기 등은 현정권의 국정운영 능력과 의지를 의심케 한다”면서 “이 정권의 이런 운영에 대해 야당으로서 방치해야 하는지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박찬구 박준석기자 ck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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