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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립군가·겨레의 노래 함께 불러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90주년을 맞아 13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겨레의 노래뎐’이 열린다. 국립국악관현악단이 9년째 이어온 ‘겨레의 노래뎐’은 독립운동선열의 뜻을 기리고 한민족이 사랑하는 겨레의 노래를 함께 부르는 자리로, 올해는 임정수립 90주년을 기념하는 음악회로 꾸몄다.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와 국립극장이 공동 주최하고 서울신문이 후원하는 이날 공연에선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인 ‘대한제국 애국가’를 비롯해 많은 우리의 음악을 새롭게 편곡해 선보이고, 오랫동안 잊혀졌거나 기록으로만 전해진 많은 노래를 발굴해 재현한다.1부는 역사적 의의를 담은 겨레의 노래들로 채워진다. 독일 음악가 프란츠 에케르트가 작곡한 ‘대한제국 애국가’가 장엄하게 울려퍼지며 연주회의 시작을 알린다. 이어 일제에 항전하여 부르던 독립군가와 항일가요, 광복군가를 연주한다. ‘새야새야’, ‘쾌지나 칭칭나네’, ‘담바귀 타령’으로 엮은 의병가, ‘국기가’, ‘자주독립가’, ‘독립군가’, ‘거국행’, ‘압록강 행진곡’, ‘앞으로 행진곡’ 등으로 구성된 임시정부군가 연곡을 관현악과 합창으로 들려준다.2부에는 어린이 합창단인 ‘노래패 예쁜 아이들’이 ‘파란마음 하얀마음’, ‘노을’, ‘그날을 위해’, ‘참 좋은 말’ 등 동요를 맑은 목소리로 노래한다. 애국심과 선행으로 사랑 받는 가수 김장훈이 출연해 자신의 히트곡인 ‘난 남자다’, ‘나와 같다면’, ‘오페라’, ‘사노라면’ 등을 부른다. 이날 연주회는 방송인 김병찬의 사회로 진행된다. 2만~5만원. (02)2280-4115~6.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영월 신씨 문중자료 등 도난문화재 595점 회수

    문화재청과 대전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전북 전주의 한 골동품 가게에서 도난문화재를 유통시키려던 강모(55)씨 등 문화재절도범 3명을 붙잡고, 영월 신(辛)씨 고문서와 문중자료 등 도난문화재 595점을 회수했다고 6일 밝혔다.되찾은 영월 신씨 문중자료 548점은 전라남도 민속자료 26호인 ‘영광 신호준 가옥’ 에 보관하고 있다가 지난 3월13일 한꺼번에 도난당한 것들이다. 여기에는 제문(祭文), 노비문서, 편지글 등 영월신씨 문중 자료 외에도 한말 독립운동가들의 문집도 여럿 남아 있다. 특히 의병장 기우만(1846-1916)이 쓴 신굉규(1815-1886)의 행장은 의병장의 친필 저술이라는 점에 가치가 높다. 독립운동가 면우 곽종석(1846-1925)과 그의 문하생 회봉 하겸진(1870-1946)의 문집도 들어 있다. 함께 되찾은 고문서 47점은 조선후기나 일제강점기에 제작된 서예작품을 모은 병풍이나 그림첩 등이다. 역시 호남지역에서 훔쳐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문화재청은 보고 있다.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김문 전문기자 인물 프리즘] ‘토지 한국사학교’ 여는 고창영 박경리문학공원 관리소장

    [김문 전문기자 인물 프리즘] ‘토지 한국사학교’ 여는 고창영 박경리문학공원 관리소장

    ‘글기둥 하나 잡고, 내 반평생, 연자매 돌리는 눈먼 말이었네, 아무도, 무엇으로도 고삐를 풀어주지 않았고, 풀 수도 없었네, 영광이라고도 했고, 사명이라 했지만, 진정 내겐 그런 것 없었고, 스치고 부딪치고 아프기만 했지, 그래 글기둥 하나 붙잡고 여기까지 왔네.’ 강원도 원주시 단구동에 있는 ‘박경리문학공원’ 입구에 새겨진 고 박경리 선생의 시(詩)다. 잔잔하게 들려오는 음악소리와 함께 고인의 영혼을 새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작품속 인물·사건 중심으로 역사여행 오는 5월5일이면 타계한 고인의 1주기가 되는 날이다. 이를 기념해서 내달 4일 대하소설 ‘토지’를 통해 배우는 ‘토지 한국사학교’를 개설한다. 1897년 시작되는 소설 토지의 시작을 기점으로 1945년 광복에 이르는 시기까지 작품속 인물과 사건을 중심으로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되돌아볼 예정이다. 주제는 동학농민운동과 의병운동, 항일 독립운동, 일제 침략기의 경제침탈과 토지조사 사업 등이다. 이와 함께 5월에는 ‘2009 소설 토지학교’를 개강해 작품의 깊이를 다시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한다. 이를 기획하고 준비한 주인공이 ‘박경리문학공원’ 관리소장으로 있는 고창영(41) 시인이다. 박경리문학공원에서 고 시인을 만났다. 그의 안내를 받으면서 공원을 잠시 둘러봤다. 공원은 원주시 흥업면 매지리에 위치한 ‘토지문화관’과는 별도로 1999년 5월 완공됐다. 1만여㎡의 부지에 고인의 옛집과 정원, 집필실 등 원형대로 보존하고 있으며 주변에는 소설 ‘토지’의 배경을 옮겨놓은 3개의 테마공원, 즉 평사리마당과 홍이동산, 용두레벌로 꾸며져 있었다. 1980년 서울을 떠나 이곳 단구동으로 이사 와 ‘토지’의 4, 5부를 집필하면서 1994년 8월15일 대단원의 막을 내린 곳으로 고인이 손수 가꾸던 텃밭과 나무 등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특히 고인이 집필실에는 토지의 마지막 육필원고와 함께 1994년 8월15일 새벽 2시 탈고 당시 시계가 벽에 걸려 있어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번 행사를 하게 된 계기는 어떤 것인가요. -‘토지’를 좋아하는 독자들과 직접 그 배경을 체험해 보고 또 ‘토지’를 가지고 우리의 근현대사를 제대로 짚어보자는 취지입니다. 아울러 ‘토지’와 함께 주변 세계사도 같이 공부할 수 있도록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박 선생님과는 어떤 인연이 있습니까.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대문호께서 이곳에 사신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저는 1969년 9월26일 추석날 아침에 태어났어요. 공교롭게도 선생님은 그날 처음으로 ‘토지’ 1부의 원고를 탈고하고 현대문학에 연재하기 시작했지요. 고등학교 재학때도 선생님을 먼발치에서 보면서 그 숨결을 느끼곤 했습니다. 제가 시인으로 등단한 것도 선생님의 모습에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지요. ●지난해 7만7000여명 공원 다녀가 →선생님과는 언제 처음 만났는지요. -2005년 5월 제가 박경리문학공원 관리소장을 맡게 되면서 직접 만나게 됐습니다. 열무가 한참 익어갈 즈음이었지요. 선생님은 저를 뚫어지게 보시더니 ‘인상이 참 좋다!’를 여러번 말씀하시더군요. 그때가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그에게 고인과 인상이 비슷하다고 하자 “(집필실 벽에 걸린 사진을 보면서)그런가요.” 하면서 미소를 짓는다. →공원 내방객은 어느 정도 됩니까. -지난 해에는 연간 7만7000여명, 올해는 현재까지 전국에서 5000여명이 다녀갔습니다. 고 시인은 원주 출생으로 1986년 불휘문학회, 1990년 토요시동인으로 활동하면서 2001년 ‘예술세계’로 등단했다. 개인 시집으로는 ‘그리운 것은 그리운 대로’ ‘힘든 줄 모르고 가는 먼 길’을 냈으며 4월초 ‘살면서 가끔은 울어야 한다’는 세번째 시집을 출간한다. km@seoul.co.kr 사진 최해국기자 seaworld@seoul.co.kr
  • [전국플러스] 경기도 14일 행주대첩 기념행사

    임진왜란 3대 대첩 가운데 하나인 행주대첩 416주년 기념행사가 14일 경기도 고양시 행주산성 일대에서 열린다. 민속놀이와 고양 들소리보존회의 공연을 시작으로 오전 10시 권율 장군의 영정이 모셔진 충장사에서 호국 선열의 충정을 기리는 전통제례가 1시간 동안 진행된다. 어린이들을 위해 문화관광 해설사의 설명과 함께 행주산성 역사기행이 이뤄지며, 대첩 당시의 장군복과 병졸복 시연 등 다양한 문화행사도 마련된다. 행주대첩은 조선 선조 26년인 1593년 2월 행주산성에서 관군, 의병, 승병, 부녀자로 구성된 2300여명이 왜적 3만여명을 물리친 것으로 한산대첩, 진주대첩과 함께 임진왜란 3대 대첩으로 불린다. 윤상돈기자 yoonsang@seoul.co.kr
  • 의병장 허겸선생 손부의 ‘씁쓸한 3·1절’

    의병장 허겸선생 손부의 ‘씁쓸한 3·1절’

    “이번에 돌아가게 되면 언제 다시 한국에 올 수 있을까요?” 3·1절 아침 김순옥(60·여)씨는 씁쓸한 기분으로 할아버지의 나라에서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아침을 맞았다.김씨는 의병장인 허겸 선생의 손자며느리다. 허겸 선생은 을사늑약이 체결된 1905년 반대 상소를 올리고 400명을 규합해 경기도 연천 등에서 의병활동을 했다. 1912년 만주로 망명해 중어학원·부민단 설립 등의 독립운동을 하다가 옥고 끝에 1939년 생을 마감했다. 허겸 선생의 동생은 1907년 서울진공작전을 편 뒤 옥사한 왕산 허위 선생이다.(본지 2006년 8월14일자 보도)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 왕산로가 허위 선생의 호에서 유래했다. 중국 국적으로 독립유공자의 후손인 김씨는 특별귀화 신청을 내기 위해 지난해 12월1일 3개월 단기비자를 받아 한국에 왔다. 할아버지의 나라에서 맞은 첫 국경일인 3·1절은 김씨에게는 의미가 남달랐다. 바로 발급받은 비자가 만료되는 날이기 때문이다. 김씨는 입국하자마자 국적 회복을 위해 동분서주했지만 중국공적서류를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받아줄 수 없다는 정부 당국의 답변만 들었다. “지난해 5월 아들이 국적을 회복했어요. 당시에는 족보에 이름이 오른 걸 보고 중국공적서류가 없어도 특별귀화를 받아 줬는데… 이번에 신청한 저는 안 된다고 하네요.” 평생 나라탓을 해 본 적이 없는 집안의 며느리답게 김씨는 담담하게 말했지만, 지난 3개월 동안 귀화 신청을 위해 한 노력을 설명할 때에는 절박함이 묻어 났다. 법무부가 요구하는 중국공적서류를 받으려면 한국돈으로 1000만원 이상이 들 것으로 추산되고, 그나마 그 돈을 내도 받을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상황이어서 다른 방법을 찾았다고 한다. 우선 한국 국적을 회복한 아들과의 의학적 친자 확인을 통해 자신이 허겸 선생의 손부라는 점을 입증할 수 있는지 문의했다. 정부는 불허했다. 한국 국적을 가진 부모의 자녀가 한국 국적을 원할 경우에만 유전자 검사에 의한 증명이 가능할 뿐, 반대의 경우에는 안 된다는 설명이 돌아왔다. 족보 원부를 어렵게 공수했다. 만주에서 운명한 허겸 선생의 묘를 돌본 게 김씨와 남편 허준도씨였기에 이미 족보에는 이들의 이름이 모두 올라 있었다. 역시 정부는 불허했다. 김씨의 아들이 국적을 회복하던 지난해까지만 해도 증거로 활용됐던 족보였지만, 이제는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지난 2006년부터 매년 광복절을 즈음해 법무부는 중국·러시아·일본 국적으로 살아온 독립유공자 후손들에게 특별귀화 허가증을 줬다. 2006년에는 33명, 2007년에는 32명, 지난해에는 22명이 이렇게 국적을 회복했다. 김씨의 시누이인 허금숙씨를 비롯한 친척들도 이 때 특별귀화 허가증을 받았다. 정부는 이들이 조상의 묘소와 생가를 찾는 사진까지 배포하며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하지만 이들보다 늦게 특별귀화를 신청한 김씨는 시할아버지가 1968년에 받은 대통령표창과 1991년에 추서된 건국훈장 애국장 사본만 만지작거리며 정부의 결정을 기다리는 처지가 됐다. 김씨는 지난해 한국에 들어올 때 중국내 한국 영사관에서 받았던 비자에 선명하게 찍힌 ‘유공자 후손’이라는 글귀를 한참 쳐다본 뒤 힘없이 말했다. “한국 영사관도 정부 기관 중 하나일 텐데 여기서 해 준 ‘유공자 후손’ 인정도 한국에서는 효력이 없군요. 다음 번에는 이 인정조차 받지 못하는 건 아니겠죠?”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내일 3·1절 90주년 기념 특별한 음악회에 오세요

    내일 3·1절 90주년 기념 특별한 음악회에 오세요

    3월1일 아주 특별한 공연이 열린다.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90주년을 맞아 독립운동 선열의 뜻을 기리는 기념음악회 ‘임시정부가 꿈꾼 나라’가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무대에 펼쳐진다. 국가보훈처와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가 주최하고, 서울신문과 문화체육관광부, 독립기념관, 민족문제연구소, 김구재단, 류관순열사기념사업회, 안중근기념사업회, 순국선열유족회 등 독립운동단체가 대거 나서 후원하는 이번 공연은 아름다운 음악으로 공존과 상생의 역사를 창조하자는 의미로 기획됐다. 공동주최자의 하나로 창단 15주년을 맞은 서울내셔널심포니오케스트라(S NO)의 연주로 3·1운동 90주년과 임시정부 수립 90주년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다양한 음악을 준비했다. ‘임시정부가 꿈꾼 나라’는 여느 오케스트라 연주회와 프로그램이 크게 다르다. 전체는 1부 ‘고난의 시간, 우리의 노래’와 2부 ‘내일에게 건네는 희망의 대화’, 3부 ‘평화와 통일의 대합창’으로 구성했다. 고난을 이겨낸 우리의 역사를 돌아보며 평화통일을 이룬 아름다운 미래를 위해 다함께 힘을 합치자는 메시지를 담았다. 1부는 최성환의 관현악곡 ‘아리랑’이 연주되는 가운데 성우 유강진이 시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를 낭송하는 것으로 막을 연다. 이어 테너 박성원이 작가미상의 ‘용진가’와 ‘독립군가’ ‘의병아리랑’을, 소프라노 김수정이 최영섭 작곡 ‘남들의 고개’를 부른다. 2부는 백범 김구 선생의 생전 활동 모습을 담은 민족문제연구소의 영상이 상영되며 백범의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를 명창 박윤초가 판소리로 엮어 펼친다. 윤석중 작사, 김동진 작곡의 나라사랑 노래 ‘동해물과 백두산’은 바리톤 강기우가 들려준다. 3부는 성동춘·황병기가 공동으로 작곡한 ‘통일의 길’을 서울내셔널심포니가 연주하고 소프라노 김인혜와 바리톤 강기우가 이중창 ‘통일이여 어서 오소서’를 부르면 모든 출연진이 나서 김민기의 ‘내 나라 내 겨레’로 평화와 통일의 대합창을 이뤄낸다. 피날레는 차이콥스키의 ‘1812년 서곡’. 김자동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회장은 “독립운동선열의 뜻을 기리고 국민 모두의 마음 속에 깃들어 있는 뜨거운 애국심과 나라사랑의 정신을 되새기고자 한다.”면서 “아울러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화합의 음악으로 공존과 상생의 역사를 만들어 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서울내셔널심포니 관계자는 “한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성악가 네 사람과 판소리 명창, 그리고 오케스트라가 진정한 애국심 고취와 국민 대화합의 시간을 마련할 것”이라면서 “새로운 힘과 하나된 마음을 나누는 최고의 무대를 만들어 낼 것”이라고 다짐했다. 1만~7만원, SNO운영국 (02)2163-8588.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필적으로 본 항일과 친일

    필적으로 본 항일과 친일

    어떤 사람은 목숨을 바치며 불의에 맞서고, 또 어떤 사람은 자신의 안위와 이익만을 좇는가? 평소 의문이 있었다면, 흰 종이를 꺼내 놓고, 친구들에게 보낼 편지를 적어보자. 적어도 한 열 줄 정도는 죽 써 내려가야 할 것 같다. 그런 후에 ‘필적은 말한다’(구본진 지음, 중앙북스 펴냄)를 읽어보자. 그 열 줄의 편지를 통해 35년의 일제 강점기 동안 자신이 과연 항일 투사가 되었을 것인지, 아니면 친일파가 되었을 것인지 실마리를 보여줄 것이기 때문이다이 책은 ‘글씨는 뇌의 지문’이라는 필적학의 주장을 전제로, 항일 운동가와 친일파의 글씨를 비교분석한 보기 드문 책이다. 필적학에서 글씨는 사람의 인격과 기질, 성격을 모두 반영하는 총체적인 인격으로 본다. 현직 검사인 저자(현재 법무연수원 교수)는 조직폭력, 마약, 살인 등 강력범죄 수사를 20여년 해오던 중 10여년 전부터 간찰을 모으기 시작해 범죄 수사하듯 글씨와 인격과의 관계를 탐색해 나갔다. 간찰이란 선인들이 주고받았던 편지이다. 일반적으로 공들여 쓰는 서예 작품에 비해 솔직하게 심성을 드러냈기에 쓴 사람의 정서를 파악하기 쉽다는 장점이 있다. 무엇보다도 값이 쌌다. 그가 수집을 시작하던 10여년 전만 해도 이같은 간찰은 2만~3만원, 구한말 역사적 인물인 곽종석, 기우만 등의 글씨도 10만~20만원이면 구할 수 있었단다. 그 결과 김구, 안중근 등 항일 운동가 400여명이 남긴 600여점, 이완용 등 친일파 150여명이 쓴 300여점의 친필을 수집했다. 그 결과 ‘시체는 말을 한다.’는 법의학의 격언과 똑같은 알레고리로 ‘유묵이 말을 한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저자는 거실 바닥에 간찰과 서예 작품 200여점을 섞어 놓고 항일 운동가인지 친일파인지를 직감에 따라 분류도 해봤는데, 놀랍게도 직감은 90% 적중했다고 했다. 글씨 크기, 자간, 행간, 글씨가 주는 카리스마에서 확연한 차이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항일운동가의 필체는 안진경체와 흡사하다고 한다. 안진경은 안녹산의 난을 평정하기 위해 의병을 지휘한 강인한 인물이다. 불의에 타협하지 않는 강직함과 기개가 배어 글씨체가 반듯하고 각이 져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안중근 의사, 김구 선생 등의 글씨다. 항일 운동가는 작은 글씨를 느리게 쓴다고 한다. 글씨는 작게 쓰면서 행간은 넓게 벌려 놓아 조심스럽고 타인에 대한 배려를 드러낸다. 반면 친일파는 글씨를 빠르고 크게 쓰면서 행간이 넓지 않고 다른 글자를 침범하곤 한다. 저자는 ‘적극적인 친일파는 일제의 탄압과 수탈에 민족이 고통받는데 아랑곳하지 않았는데, 이런 배려심 없는 성향이 글씨에서 특징적으로 드러난 것이 아니겠느냐.’고 반문하고 있다. 항일 운동가는 행간이 넓은 반면 자간은 좁다. 글자 사이가 좁은 사람은 문제를 스스로 판단하고 자의식이 강한 사람들이다. 결국 항일 운동가는 일본의 무력에 복속되는 것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던 자의식을 드러냈다는 것이다. 반면 친일파의 글씨는 자간이 넓다. 넓은 자간은 자신에게 관대하고 외향적이며 새로운 환경에 대한 적응력이 강한 것을 보여준다. 저자는 ‘친일파는 국가와 민족을 배반하는 일을 스스로 수용했을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하고, ‘일본의 지배’라는 새로운 환경에도 무리없이 잘 적응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극단적인 친일파의 경우는 글씨가 들쭉날쭉하며, 도저히 읽기가 어려운 수준인데 이는 일제시대의 사회지도자나 지식인들의 극단적인 정신분열상태를 반영한다고 설명한다. 당대의 명필로 평가되는 이완용을 두고 저자는 그가 중국의 미불이나 동기창과 같은 명인의 서법을 깊이 연구했고 실제로 달필이지만 획의 운용이나 글씨의 구성에서 보이는 세련된 기교에 비해 전체 글씨의 격은 떨어진다고 평가한다. 반면 김구의 글씨는 큰 기교는 오히려 서툰 것처럼 보인다는 대교약졸(大巧若拙)로 달빛에 매화 향기가 떠다니는 것처럼 은은한 맛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인자하고 후덕한 인품이 엿보인다는 것이다. 그 결과 미술시장에서 두 사람의 글씨에 매기는 가치는 130×30㎝ 반절지를 기준으로 백범의 글씨는 1000만~1500만원이고, 이완용의 글씨는 30만~50만원이다. 책의 앞부분은 친일파와 항일 운동가의 필적을 비교 분석하는 데 공을 들이지만, 책 중반 이후부터는 수집한 개별 간찰의 내용을 소상히 소개한다. 의병장 양한규의 쌀 한 섬을 빌려 달라는 편지나, 의거를 앞두고 가족을 부탁하는 김지섭의 편지, 일제 침략을 규탄하는 곽종석의 포고문, 정경태의 ‘창의통문’, 의병장 유인석이 최익현에게 보낸 간찰로 유배 소식에 눈물로 걱정하는 내용 등등을 읽을 수 있다. 국내 최초 공개되는 서찰들로 역사적 자료로서의 의미도 크다. 1만 7000원.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제천의병사 다룬 만화책 발간

    충북 제천시는 25일 9900만원을 들여 제천의병사를 만화로 엮은 ‘팔도에 고하노라’를 발간했다고 밝혔다. 이 책은 제천의병의 창의이념과 간추린 제천의병사, 주민참여, 주요 제천의병 인물 소개 등으로 구성됐다. 한국만화가협회 추천을 받은 전세훈 작가가 글과 그림을 그렸고 구완회 세명대 교수, 장인우 인천대 교수 등이 자문을 맡았다. 시는 1000여권을 제작해 학교와 관공서 등에 배포할 계획이다. 시 관계자는 “제천의병에 대한 연구 자료가 대부분 한자로 돼 알기 쉽고 재미있는 만화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제천 남인우기자 niw7263@seoul.co.kr
  • [전국플러스] ‘임진왜란 청주성 탈환’ 재현

    임진왜란 직후 왜군에 빼앗긴 성을 처음으로 되찾았던 ‘청주성 탈환’ 전투가 재현된다. 청주시는 오는 9월6일 의병과 승병이 왜군과 전투를 벌여 청주성을 되찾는 역사적 장면을 재현할 계획이다. 청주성은 1592년 7월 왜군에 빼앗겼으며 의병장 조헌, 박춘무와 승병장 영규대사가 의병, 승병 3500여명을 규합해 그해 8월2일 탈환했다. 임진왜란 초기 왜군에 빼앗겼던 성을 의병 등이 되찾은 것은 청주성이 처음이다. 시는 1920년 이후 명맥이 끊겼던 ‘청주 줄다리기’도 같은 날 재현한다. 청주 줄다리기는 전국적으로 규모가 큰 것으로 유명했으나 일제에 의해 강제 중단된 이후 88년만인 지난해 10월 문화체육관광부가 ‘2008 문화의 달 행사’의 하나로 재현했다.청주 남인우기자 niw7263@seoul.co.kr
  • 안중근 의사의 옥중 저술 ‘동양평화론’ 아시나요

    정확히 100년 전인 1909년.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다. 안 의사는 이듬해 여순감옥에서 순국했다. 하지만 요즘 중·고등학생들은 안중근 의사의 존재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니, 올해가 의거 100주년을 맞은 해라는 것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의 ‘안중근 평전’(시대의창 펴냄)은 이같은 시기에 큰 의미를 지닌다. 그는 ‘백범 김구 평전’, ‘단재 신채호 평전’, ‘만해 한용운 평전’ 등에 이어 7번째로 이 평전을 펴냈다. 안중근 의사를 안다고 자처하는 사람들도 그가 국채보상운동, 교육사업, 의병전쟁, 단지동맹 등 수많은 구국운동을 벌였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안 의사가 옥중에서 저술한 ‘동양평화론’은 세계평화주의자로서의 면모를 여실히 보여주는 논문으로 남아 있다. 사형 집행 날짜를 연기해 주겠다던 일제가 약속을 어기는 바람에 비록 미완성에 그치고 말았지만 말이다. “동아시아 현재와 미래의 평화구도와 공동체의 모델로 인식되는, 대단히 선구적인 제안으로 평가받는다.”는 저자의 말처럼, ‘동양평화론’은 일본의 속성에 대한 진단, 제국주의의 침략논리 등을 기술하고 있다. 하지만 동양평화의 주체를 일본으로 보는 등 사상적 한계점 역시 드러낸다. 그럼에도 안중근 의사가 주창한 동양평화에 대한 지론은 현 시점에서 적용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한·중·일이 공동으로 동양평화회의를 구성할 것, 국제분쟁지인 여순을 중립화해 동양평화회의 본부지로 삼을 것, 3국 공동 개발은행을 설립해 공동화폐를 발행할 것 등 그가 제안한 주장들은 유럽공동체 EU를 연상시킬 정도이다. 안 의사는 사형을 언도받고서도 항소하지 않았다. 이는 “구차하게 목숨을 부지하고 싶지 않을 뿐”이라는 자신의 의지와 “큰일을 하였으니 목숨을 아끼지 말라. 일본 사람이 너를 살려줄 까닭이 없으니 비겁하게 항소 같은 것은 하지 말라.”는 어머니의 뜻이 맞물렸다고 한다. 선각적 지도자가 탄생할 수 있었던 인간적 배경, 암흑의 시대 한 가운데서도 잃지 않은 고결한 의지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무엇보다, 안 의사를 객관적·사실적으로 알 수 있게 하는 점이 이 책의 미덕이다. 하얼빈 의거와 이후 공판투쟁 때의 행적, 처형 전후에 대한 여러 사람의 증언 등을 역사적 사료와 기록을 통해 보여준다. 순국 이후 국내외에서 쏟아진 전기, 시문 등도 그의 영향력을 짐작케 한다. 1만 7800원.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친일파 건국공로자 인정에 반발

    광복회가 29일 건국훈장 반납을 결의하고 대규모 시위까지 경고한 것은 문화체육관광부가 ‘건국 60년’ 홍보 책자에서 임시정부의 법통을 부정하고 1948년 친일 부역세력 등이 포함된 이승만 대통령 정부 수립 인사들을 건국 주역이자 건국의 가장 중요한 공로자로 인정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광복회는 문화부 의뢰로 만들어진 ‘건국 60년 위대한 국민-새로운 꿈’이란 제목의 책자에서 “건국한 공로는 1948년 8월 정부 수립에 참여했던 인물들의 몫으로 돌리는 것이 마땅하다.”는 부분을 특히 문제 삼았다.일제 치하 민족 독립운동에 대한 역사적 고려 없이 당시 이승만 정부에 참여한 인사들을 건국 주역으로 기술하고 있다는 점을 심각하게 보고 있다. 광복회가 “ ‘가짜 훈장’이 되어 버린 독립선열들의 건국훈장을 국가에 반납하겠다.”고 예고한 것도 친일 부역세력을 건국 공로자로 인정하는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음을 강조한 것이다.홍보 책자의 논리대로라면 친일파들도 대거 건국훈장을 받고 건국공로자로서 추앙받게 된다고 광복회 관계자들은 지적했다.1948년 당시 이승만 대통령 정부에는 남북 대치와 반공 분위기 속에 친일 부역세력들이 적지 않게 참여했다. 게다가 “임시정부는 자국의 영토를 확정하고 국민을 확보한 가운데 국제적 승인에 바탕을 둔 독립국가를 대표한 것은 아니었고 실효적 지배를 통해 국가를 운영한 적도 없다.”며 “이런 점에서 민주주의의 실제 출발 기점은 1948년 8월 대한민국 건국이라고 보아야 한다.”는 홍보 책자의 기술도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있다고 반발했다. 광복회 남만호 부회장은 “이같은 논리는 독립운동의 50년 역사를 부정하고 의병투쟁에서 시작해 3·1운동과 해외 무장 독립운동을 거치며 30만명이 순국하고 60만명이 희생된 선열들의 독립운동과 희생의 의미를 헛되게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이날 오후 서울 여의도 광복회 사무실로 김영일 회장 등 광복회 이사들을 찾아가 “논란이 됐던 책의 서술 부분은 정부 뜻과 다르다.”며 “필자들이 여러 명이다 보니 다르게 서술한 부분을 꼼꼼히 살피지 못했다.”고 이해를 구했다.또 광복회가 추천한 학자들이 참여한 가운데 대한민국이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받았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정리한 책을 내년에 발간하겠다고 약속했다. 광복회 임종선 문화부장은 “광복회가 요청한 책자 회수·폐기 및 정정에 대한 문화부의 후속조치를 지켜 보고 유 장관의 약속을 공문 형식으로 확인한 뒤 훈장 반납 문제 등을 정리하겠다.”고 밝혔다. 광복회의 반발은 지난 8월15일 광복절 기념식 명칭을 둘러싸고 벌어진 건국절 명칭 논란과도 맥을 같이한다.이명박 정부의 주요 지지세력인 뉴라이트 운동 단체와 학자들은 건국의 기점을 1948년 이승만 정부수립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을 강력하게 펼치고 있어 건국 기점 및 주체 등을 둘러싼 논란과 마찰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석우 선임기자·문소영기자 jun88@seoul.co.kr
  • “장애인 잘 이해하는 공무원 되고 싶어”

    “장애인 잘 이해하는 공무원 되고 싶어”

    8년 전 불의의 군 사고로 장애인이 된 의병제대자를 기억하는 군수가 그를 직원으로 채용해 화제가 되고 있다. 조윤길 옹진군수의 배려로 지난 15일부터 옹진군청 주민생활지원과에서 근무하는 박원배(29)씨는 “군수가 오래 전 사고를 기억하고 일자리를 줘 너무 감사하다.”면서 “저와 같은 장애인을 잘 이해하는 공무원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박씨는 장애인단체의 보조금 지원 및 장애인 편의시설 관리 등 장애인과 저소득층을 지원하는 업무를 맡고 있다. 2000년 11월 옹진군 백령도 해병부대에서 근무하던 박씨는 추수기 대민 봉사활동을 하던 중 높게 쌓인 벼 포대들이 박씨를 덮쳐 허리뼈가 부러지는 사고를 당해 의병제대를 했다.체육대학 2학년 재학 중 입대한 건장한 청년이었지만 집에 돌아왔을 때는 장애인의 몸이었다. 이후 박씨는 재활 의지로 휠체어 테니스를 시작,지난 10월 전국장애인체육대회에서 금메달을 딸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았지만 연금으로 이어가는 생활 형편은 빠듯하기만 했다. 그러던 박씨에게 “옹진군청에 기능직 자리가 하나 비었는데 일해보지 않겠느냐.”는 전화가 걸려 왔다. 박씨의 사고 당시 옹진군 기획감사실장으로 근무해 사고를 기억하고 있던 조윤길 군수가 올 초부터 박씨의 특별채용 여부를 법률적으로 검토한 뒤 10급 기능직 공무원으로 채용키로 한 것이다.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충주호 인공 독도 조성 무산위기

    충주호 인공 독도 조성 무산위기

    충북 제천시가 충주호(청풍호)에 인공 독도(조감도)를 만들려던 계획이 무산위기에 처했다. 16일 제천시에 따르면 시의회가 최근 인공 독도 설계비 8000만원 가운데 1000원만 남기고 모두 삭감했다. 시의회 측은 “국·도비 확보가 안 됐고 주민들의 의견도 수렴하지 않았다.’고 삭감 이유를 밝혔다. 제천시는 국제제천한방바이오엑스포가 열리는 2010년 9월 이전까지 모두 16억원을 들여 청풍면 교리 청풍호반에 독도 조형물을 설치할 계획이었다.사업비는 국비 8억원,도비 5억원,시비 3억원이다. 인공 독도는 최고 높이 8.7m,폭 50m 규모로 실제 독도의 50분의 1 크기다.재질은 모두 부력식 FRP(유리섬유 보강 플라스틱)로 호수변 100~150m 전방에 만들어진다.이 독도 조형물은 ‘의병의 고장’인 제천의 이미지와 잘 맞는 데다 관광객 유치에 큰 도움을 줄 것으로 보고 추진돼 왔다. 제천시는 시일이 촉박해 국·도비 확보 전에 설계부터 하기 위해 관련 예산을 의회에 상정했었다.하지만 예산삭감과 국비확보 어려움으로 사업이 추진될지는 미지수다.지방균형특별회계인 국비는 1년 전에 신청해야 한다.내년 상반기에 신청을 해도 2010년에야 확보할 수 있다.문화체육관광부와 기획재정부의 심의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국비확보 여부도 장담할 수 없다.이근하 관광팀장은 “1000원만 남긴 것을 두고 ‘국비확보에 주력하라는 채찍질이다.’ ‘인공 독도 사업이 사실상 어렵다는 뜻이 담겨 있다.’ 등 해석이 분분하다.”면서 “사업이 불투명하다.”고 말했다. 제천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27일 TV 하이라이트]

    ●생로병사의 비밀(KBS1 오후 10시) 기억을 잃으며 서서히 죽음에 이르는 공포의 질병,치매.치매는 노화로 인한 막지 못하는 질병일까. 알츠하이머 치매 다음으로 흔한 혈관성 치매는 예방이 가능하다.그러나 내 몸의 신호를 간과해,건강한 노년의 기회를 놓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건강한 노년을 위한 작은 실천의 길을 제시한다. ●아침드라마 아내와 여자(KBS2 오전 9시) 준하는 여진이 어머니 의 병원비를 어디서 구했는지 원무과를 캐고다니는 병구가 못 마땅하다.여진 앞에서만 위하는 척하는 병구.준하는 여진 몰래 여진의 어머니가 살 집을 알아본다.한편 희수는 종미를 위해 그림이 들어갈 머그컵을 부탁 받고,근삼은 이것을 다시 연하에게 부탁한다. ●종합병원2(MBC 오후 9시55분) 한기태 교수는 휘플씨 수술로 유명세를 타면서 외과학계의 권위자로서 그 명성을 더욱 높이게 됐다.진상은 맹장 수술후 한기태 교수 라인에 서겠다고 선언하며 줄을 대려고 노력한다.췌장암 재발 환자가 성의병원에 들어온다.한기태 교수와 김도훈 교수는 서로 다른 진단을 내린다. ●연애시대(SBS 오후 11시5분) 데이트 4시간 만에 전격 커플 체인지.이성진,장미인애 그리고 이지훈,이현지.치솟는 물가와 떨어질 줄 모르는 기름 값 속에서 경제 불황을 이겨내려는 두 커플의 초저렴 데이트.시간은 많이 남았고 돈은 얼마 안 남았다.이성진과 이지훈의 다음 데이트 코스는 어딜까.최종 결정의 시간,과연 그들의 선택은. ●극한직업(EBS 오후 10시40분) 날씨가 나아지자,어업조사선은 재출항해 24시간 비상근무에 들어간다.11월 동해 밤바다를 밝히고 있는 오징어배의 불법 어업을 단속하기 위해서다.오징어를 잡기 위해 밝히는 백열전등의 밝기와 개수는 법적으로 제한돼 있다.한배만 지나치게 밝을 경우,다른 어민들이 피해를 볼 수 있기 때문인데…. ●글로벌 코리안(YTN 오전 10시35분) 한국을 대표하는 전통 예술인들의 작품이 런던에 전시돼 영국인들의 감탄을 자아냈다.옥을 깎아 만든 섬세하고 은은한 빛깔의 옥 주전자.자수로 장식된 반짇고리와 골무.일필휘지로 한국적인 정신세계를 표현한 수묵화,현대적인 디자인의 나전칠기 가구의 색다른 아름다움에 관객들은 눈을 떼지 못한다.
  • [Let’s Go]지리산 숨겨진 비경 의신계곡

    [Let’s Go]지리산 숨겨진 비경 의신계곡

     오랫동안 용케 사람들의 시선에서 비켜서 있었다.경남 하동군 지리산 자락의 의신계곡 얘기다.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오지인 데다 주변에 쟁쟁한 관광 명소들이 즐비해 구태여 사람들이 그곳에까지 눈길을 줄 까닭이 없었던 게다.되짚어보면 지리산의 여느 자락에 견줘 태곳적 풍경을 비교적 온전하게 담아 둘 수 있었던 것도 그 덕이라 여겨진다.소수의 전문 산꾼들만이 눈길을 주던 그곳,용소와 쿵쿵소 등 비경을 품고 있는 의신계곡을 다녀왔다. ●우람하면서도 교태로운 계곡 풍경  88고속도로를 이용해 의신계곡을 찾아갈 때는 반드시 지리산 나들목을 이용할 것을 ‘강추’한다.지리산 성삼재와 구례,하동 등을 거치는 동안 ‘한국의 아름다운 길’로 선정된 길들과 함께하는 즐거움이 여간 각별하지 않기 때문이다.구례와 하동을 잇는 섬진강변 861번 지방도로며 벚나무가 터널을 이룬 1023번 지방도로 등 자체로 여행 목적지가 될 만한 명소들이 줄을 섰다.그 길에서 만나는 화개장터 등 지리산 산간마을들은 풍경의 덤. 의신계곡은 지리산의 중심부,벽소령 아래에 있다.행정구역은 하동군 화개면 대성리.화개장터를 에둘러 온 1023번 지방도로가 끝나는 곳에 자리하고 있으니 지리산의 여러 계곡 중에서도 오지에 속하는 편이다.   이곳에서 시작되는 등산코스만 줄잡아 20여개쯤 된다.삼정마을을 거쳐 벽소령으로 향하거나 대성계곡을 끼고 세석평전까지 오르는 등산로가 대표적인 코스.이렇듯 산행 들머리로만 여겨진 탓에 사람들의 시선에서 살짝 비켜서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의신계곡을 즐기는 방법이야 저마다 다를 터다.산악자전거를 타고 한국전쟁 당시 조성됐던 군사 작전도로를 따라 한 바퀴 돌아보거나,조붓한 임도를 따라 여유있게 등산을 즐길 수도 있다.하지만 의신계곡 특유의 풍경과 제대로 마주하려면 계곡 트레킹에 나서는 것이 좋겠다.웅장한 바위들과 계곡수가 어우러지며 만들어 낸 빼어난 아름다움은 내 나라 안 어디서고 쉽게 접할 수 있는 풍경이 아니다.다만 출발 전 의신마을이나 국립공원관리공단에 꼭 출입신청을 해야 한다.출입제한 지역이기 때문이다.  트레킹은 의신마을을 들머리 삼아 용소와 쿵쿵소 등을 거쳐 빗점골까지 다녀오는 게 일반적이다.거리는 7㎞ 남짓.왕복 6~7시간 정도 소요된다.중간중간 주변의 임도를 이용할 경우 3~4시간이면 다녀올 수 있다.  의신마을에서 임도를 따라 10분 정도 오르면 왼쪽으로 개인 소유의 암자가 나온다.한 무속인이 의신계곡으로 향하는 길을 막은 뒤 불법적으로 불상 등을 설치해 놨다가 최근 철거가 진행되고 있다.의신마을 주민들이 암자 주변에 우회로를 만들고는 있으나,아직까지는 암자 옆 담장을 넘어서 갈 수밖에 없다.개인의 욕심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지를 여실히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암자에서 한 굽이 돌아가면 거대한 암석군과 만난다.의신계곡 최대의 볼거리 용소다.당당하게 하늘을 이고 선 바위들의 규모도 그렇거니와 계곡수가 서너 굽이 휘돌아가며 만들어 놓은 작은 소와 폭포들이 절묘하고 아름답다.하나같이 범상치 않은 모습들이다.용소 오른쪽 바위 위편의 소나무를 꼭 기억해 두시라.주민들이 ‘참남배기’라 부르는 곳으로,하산길에 들러 의신계곡 전체를 조망하기 딱 좋다. ●늘 마지막 전쟁터였던 곳  용소에서 계곡길을 따라 20분 남짓 오르면 쿵쿵소에 닿는다.오랜 세월 쏟아져 내린 폭포수가 바위를 깎아 움푹 파인 공간을 만들었고,폭포 소리가 그 공간에 부딪치면서 ‘쿵쿵’ 하는 소리를 내게 된 것.단풍나무가 바위와 계곡수를 덮고 있는,전형적인 늦가을 풍경과 마주할 수 있는 곳이다.  쿵쿵소에서 빗점골까지는 임도를 따라가는 게 좋다.빗점골로 향하는 길과 벽소령 등산로가 갈라지는 삼정마을에 들러 숨 한 자락 내려 놓으면 넉넉한 지리산이 가슴 가득 차오름을 느낄 수 있다.  삼정마을 왼쪽편은 빗점골로 향하는 등산로다.오래전엔 삼남의 상인들이 자주 오가던 길이었고,근대에 이르러서는 군사 작전도로로 활용됐던 길이기도 하다.산행을 함께한 의신마을 김형택 이장에 따르면 1970년대까지 빗점골에만 주막이 세 곳이나 운영됐을 만큼 사람들의 내왕이 빈번했다고 한다.   빗점골은 ‘마지막 빨치산’ 이현상이 국군 토벌대에 의해 최후를 맞았던 곳이다.안내판에 따르면 이현상은 무려 6년 동안 빗점골 내 배나무평전에서 수력발전기를 돌려가며 생활했다고 한다.배나무평전 400m 위쪽에 이현상의 아지트가 지금까지 남아 있다.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모든 전란의 마지막 전적지가 바로 이곳이었다.지리산 자락까지 몰린 동학농민군과 갖은 전쟁에 참여했던 의병,한국전쟁 당시 군인,빨치산 등이 모두 이곳 산자락에서 최후를 맞이했다.”는 김 이장의 설명이 이어졌다.아름다운 풍경이기는 하나 어딘가 처연한 분위기가 감도는 것은 아마 그런 까닭이었을 게다. ■여행수첩(지역번호 055) ▶가는 길:호남고속도로 또는 대전~통영간고속도로→함양 분기점→88고속도로→광주 방향→지리산 나들목→인월→성삼재→구례→화개→의신마을.   ▶주변 볼거리:칠불사와 쌍계사는 오가는 길에 반드시 들러볼 것.단풍이 곱다.청학동,삼성궁,악양면 최참판댁,하동송림,평사리공원 등도 지척이다.하동군청 문화관광과 880-2375. ▶맛집:섬진강 하면 역시 재첩국.하동원조할매재첩식당이 소문났다.884-1034.개화식당은 참게탕을 잘한다.883-2061.동이주막(882-7069)은 대롱밥,산골산장(883-2028)은 녹차냉면으로 알려졌다. ▶잘 곳:의신마을 40여가구에서 민박을 친다.크기에 따라 3만~15만원을 받고 있다.김형택 이장 884-6463,010-5333-3680. 글 사진 하동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병자호란 다시 읽기] (95) 三學士의 최후

    [병자호란 다시 읽기] (95) 三學士의 최후

    인조의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로 상징되는 치욕적인 항복과 함께 전쟁은 끝났다. 하지만 귀천을 막론하고 조선 사람들의 참혹한 고통은 이제 막 시작되고 있었다. 인조를 대신해 볼모로 끌려가는 소현세자와 봉림대군, 화친을 방해하여 전쟁을 불러왔다는 ‘죄목’으로 연행되는 삼학사, 경향 각지에서 청군에 붙잡힌 수십만의 포로. 그들은 청군의 엄중한 감시 속에 심양(瀋陽)을 향해 걷고 또 걸어야 했다. 그들 앞에는 과연 어떤 운명이 기다리고 있을까? 고통 속에 끌려가는 사람이나, 슬픔을 삼키며 그들을 보내는 사람이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현실 앞에서 통곡했다. 그리고 곧바로 삼학사의 죽음 소식이 날아들었다. ●홍익한, 윤집, 오달제 삼학사 가운데 가장 연장이었던 홍익한(洪翼漢·1586~1637)은 당시 52세였다. 그의 본관은 남양(南陽)으로 진사 홍이성(洪以成)과 안동 김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원래 이름은 습( )이었는데 뒤에 익한으로 개명했다. 이정구(李廷龜)의 제자였던 그는 1615년 소과(小科)를 거쳐,1624년 이괄의 난이 일어났을 때 공주에서 정시(庭試)에 급제했다. 이후 언관직을 두루 역임하고 병자호란 직전 사헌부 장령(掌令)으로 재직하고 있었다. 윤집(尹集·1606~1637)은 당시 32세였다. 본관이 남원이었던 그는 현감 윤형갑(尹衡甲)과 황씨의 소생으로 일찍이 백형 윤계(尹棨)에게 수학했다.1627년 소과에 급제하고 1631년 별시(別試) 문과에 급제했던 그는 1636년 당시 홍문관 교리(校理)였다. 윤집은 김상헌의 조카딸과 결혼하여 3남을 두었는데, 후일 증손녀가 홍익한의 손자에게 출가하여 사후에 홍익한과 사돈 관계로 인연이 이어졌다. 오달제(吳達濟·1609~1637)는 당시 29세였다. 그는 해주가 본관으로 오윤해(吳允諧)의 셋째 아들이자 영의정을 지낸 오윤겸(吳允謙)의 조카였다.1627년 소과를 거쳐 1634년 별시 문과에 급제했고, 병자호란 당시 홍문관 수찬(修撰)으로 재직하고 있었다. 병자호란 당시 조정에는 삼학사 말고도 많은 척화신들이 있었다. 윤황(尹煌), 유철(兪 ), 이일상(李一相), 유계(兪棨), 정온(鄭蘊), 조경(趙絅) 등이 그들이었다. 그럼에도 이 세 사람이 청군에 넘겨지는 ‘희생양’으로 낙점된 까닭은 무엇일까?그것은 홍타이지의 칭제건원(稱帝建元) 사실이 알려진 직후 이들이 누구보다 격렬하게 홍타이지의 ‘참월(僭越)’을 비난하고 주화신(主和臣)들을 성토했기 때문이다. 홍익한은 1636년 2월 ‘홍타지이가 보낸 사신의 머리를 베어 명나라에 보내든가, 그것이 싫으면 나의 머리를 베라.’는 극렬한 내용의 상소를 올렸다. 오달제는 1636년 10월 ‘공론을 두려워하지 않고 방자하고 거리낌없이 화친을 시도하는 죄를 다스려야 한다.’고 최명길을 겨냥하여 직격탄을 날렸다. 윤집은 더 나아가 ‘명나라의 은혜를 배신하고 오랑캐와 화친을 주도하는 최명길은 진회(秦檜)보다 나쁜 자’라고 극언을 퍼부은 바 있었다. ●홍익한의 절개 청군이 철수할 때, 홍익한은 평양서윤(平壤庶尹)으로 있었다. 조정은 2월12일 증산현령(甑山縣令) 변대중(邊大中)을 시켜 홍익한을 적진으로 압송토록 했다. 변대중은 홍익한을 결박하여 심한 모욕을 주었고, 음식물도 제대로 주지 않았다. 홍익한이 음식을 먹을 수 있게 결박을 풀어 달라고 호소했지만 그는 듣지 않았다. 조정은 청의 질책을 피하기 위해 그를 신속하게 압송했는데, 2월20일에 벌써 만주의 통원보(通遠堡)에 도착했다. 통원보의 청인들은 그가 끌려온 사연을 듣고 음식물을 내어 후히 대접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나만갑은 ‘병자록’에서 ‘개돼지 같은 청인들이 변대중 같은 조선 사람보다 훨씬 나았다.’고 통탄했다. 심양에 이르러서도 홍익한은 의연했다. 용골대가 그에게 ‘너의 나라 신료들 가운데 척화를 주장한 자가 퍽 많은데, 어찌 유독 너만 끌려왔는가?’라고 묻자 홍익한은 ‘작년 봄에 네가 우리나라에 왔을 때 소를 올려 너의 머리를 베자고 청한 것은 나 한 사람뿐’이라고 응수했고, 용골대는 웃으며 가버렸다고 한다. 홍타이지는 홍익한을 회유하기 위해 그를 별관에 가두고 연회도 베풀어 주려고 시도했다. 과거 수많은 명나라 이신(貳臣)들을 받아들인 경험이 있는 홍타이지의 입장에서 홍익한은 ‘전향’시켜야 할 중요한 대상이었다.‘조선의 골수 척화파까지도 결국 홍타이지의 은덕에 감화되었다.’는 소문은 향후 조선을 제어하는 데 커다란 힘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홍익한은 단호했다. 그는 글을 써서 자신을 회유하려는 홍타이지의 기도를 정면에서 반박했다.‘대명조선국(大明朝鮮國)의 잡혀온 신하 홍익한은 말을 알아듣지 못하므로 감히 글로써 밝힌다. 지난해 봄 금나라가 맹약을 어기고 황제라 칭한다는 말을 들었다. 맹약을 어겼다면 이는 패역한 형제이고, 황제라 칭했다면 이는 두 천자(天子)가 있는 것이다. 한집안에 어찌 패역한 형제가 있을 수 있으며, 천지간에 어찌 두 천자가 있을 수 있는가. 그리하여 본래 예의를 숭상하고 직절(直截)을 기풍으로 삼는 언관으로서 맨 먼저 이 논의를 주장하여 예의를 지키려고 한 것이다. 하지만 상소 한 장을 올림으로써 가정과 나라에 패망을 초래하였으니 만 번 도륙당한다 할지라도 진실로 달게 받을 뿐, 달리 할 말은 없다. 속히 죽여 주기를 바랄 뿐이다.’ ‘대명조선국의 신하.’이 말 속에 이미 홍익한의 의지가 오롯이 담겨 있었다.‘나는 조선의 신하이자 명의 신하이니 그대들 오랑캐와는 타협할 수 없다.’는 것이 홍익한이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였다. 홍익한의 의지를 확인한 홍타이지는 곧바로 그를 처형했다. ●윤집과 오달제의 최후 윤집과 오달제는 청군 후발대에 이끌려 1637년 4월15일 심양에 도착했다. 홍타이지는 두 사람도 회유하려고 시도했다.4월19일 용골대가 두 사람을 앉혀 놓고 홍타이지의 말을 전했다.‘너희들이 척화를 외쳐 두 나라의 틈이 생기게 했으니 그 죄가 매우 중하다. 죽여야겠지만 특별히 살려주고자 하니 처자를 데려와 이곳에서 살겠는가?’ 윤집은 ‘난리 이후 처자의 생사를 알 수 없다.’고 했고, 오달제는 ‘고통을 참고 이곳까지 온 것은 만에 하나라도 살아서 돌아가면 우리 임금과 노모를 다시 보기 위해서였다. 고국에 돌아갈 수 없다면 죽는 것만 못하다. 속히 죽여 달라.’고 응수했다. 격분한 용골대는 그들을 묶어다 심양 서문 밖에서 죽였다. 청인들은 시신을 수습하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다. 뒷날에도 뼈들이 쌓여 있는 형장에서 두 사람의 시신을 찾을 길이 없어 집안의 종들을 시켜 초혼(招魂)하여 온 것이 전부였다. 오달제에게는 노모와 임신한 아내가 있었다. 심양으로 끌려갈 때 그가 남긴 시구(詩句)들은 눈시울을 적시게 만든다. 그는 인조와 노모를 생각하면서 “외로운 신하 의리 바르니 부끄럽지 않고/임금님 깊으신 은혜에 죽음 또한 가벼워라/이생에서 가장 슬픈 일이 있다면/홀로 계신 어머님 날 기다리는 거라오”라고 읊었다. 아내에게 부치는 시도 절절하다.“부부의 은정 중한데/만난 지 두 해도 못 되었구려/이제 만리에 이별하여/백년 언약 헛되이 저버렸구료/땅 멀어 편지 부치기 어렵고/산이 첩첩하여 꿈조차 더디오/나의 살길 점칠 수 없으니/뱃속의 아이나 보호 잘하오” 윤집 집안의 사연도 처절하다. 병자호란 당시 남양부사(南陽府使)로 있던 윤집의 형 윤계 또한 전란 중에 순절했다. 그는 의병을 일으켰는데 기습을 받아 붙잡히는 몸이 되고 말았다. 윤계 또한 청군 앞에서 무릎 꿇기를 거부하다 혀가 잘리는 등 참혹한 죽음을 맞았다. 후손들은 왜란 당시 순절한 할아버지 윤섬(尹暹)과 윤계, 윤집의 글을 묶어 ‘삼절유고(三節遺稿)’를 펴낸 바 있다. 어쩔 수 없이 죽이기는 했지만 청조는 이후 삼학사의 절의를 인정했다. 그들은 삼학사를 기리는 사당을 짓고 비석을 세웠다. 강희제(康熙帝)는 훗날 ‘조선이 명나라 말년에도 끝까지 배신하지 않은 것은 본받을 만한 일’이라고 찬양한 바 있다. 삼학사로 대표되는 조선의 ‘절의’는 청인들이 보기에도 분명 이채로웠던 것이다. 한명기 명지대 사학과 교수
  • 한방 국수·약주 드시러 오세요

    한방특구인 경북 영천시는 2일부터 5일까지 나흘간 영천 금호강 둔치에서 ‘한약축제’를 연다. 6회째 맞는 올해는 ‘한방의 과학화, 한방의 산업화, 한방의 대중화’를 모토로 정했고, 축제의 주제는 ‘아토피’로 삼았다. 최근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시달리는 아토피 문제를 한방과 연계해 풀어 보자는 의도에서다. 아토피는 전국 9세 이하 어린이의 16%가 앓고 있을 정도로 심각하다. 측제에서는 대구한의대 의료진이 ‘아토피 주제관’을 운영한다. 또 영천시 한의사협회는 진료비(침, 뜸 제외)를 20% 할인해 준다. 포청천의 고장이자 자매도시인 중국 카이펑(開封)시의 중의병원 전문의 4명이 발 치료도 한다. 한방제품 및 한방먹거리도 풍성하게 선보인다. 국내 16개 제약회사와 20여개의 한방식품 제조업체가 심혈을 기울여 개발한 한방국수, 한방아토피비누, 경옥환, 산삼배양근, 한방차, 쌍화차 등 다양한 한방제품이 나온다. 산삼배양근 및 경옥환 등은 무료 시식도 한다. 산삼비빔밥과 보현산 산채비빕밤, 한방약주 등 한방먹거리도 맛볼 수 있다. 볼거리·체험거리도 지난해보다 푸짐해졌다.‘황성옛터’의 작사자 왕평을 기념하는 제13회 왕평가요제를 비롯해 제2회 영남아리랑 전국경창대회, 전국한방음식경연대회, 제8회 영천포도아가씨 선발대회가 열린다. 또 금호강 잉어·은어 잡기 및 희망의 배 띄우기, 전통등과 함께 하는 주·야간 포토존 체험 행사가 마련되고, 육군3사관학교의 군악대가 유명예술인들과 함께 ‘강변 열린 음악회’를 펼친다. 김영석 영천시장은 “이번 축제는 명실상부한 한방특구도시 영천의 이미지에 걸맞게 손색없이 마련됐다.”면서 “축제장을 찾으면 그윽한 한방의 세계를 한껏 맛보고 즐기게 될 것”이라고 추천했다. 영천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어린이 책꽂이]

    ●용감마을의 두 친구(한영식 글, 홍시영 그림, 한림출판사 펴냄) 주인공은 의병벌레와 병대벌레. 누가 더 용감한지 게임을 하다 우정을 발견하는 과정에 두 곤충에 대한 정보가 푸짐하다. 초등저학년.8500원. ●허둥지둥 바쁜 하루가 좋아(리처드 스캐리 글·그림, 보물창고 펴냄) 세상에는 얼마나 다양한 직업이 있는지, 저마다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서로 도와가며 사는지 그림으로 말해주는 그림책. 초등저학년까지.1만 3000원. ●여우야, 뭐 하니?(박경진 글·그림, 미세기 펴냄) 여우를 찾아나선 두 꼬마. 다 사라진 줄 알았던 여우를 기적처럼 만나면서 진심으로 원하면 믿음이 이뤄진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가을풍경 삽화가 기막히다. 초등저학년까지.9000원. ●장날(이윤진 글, 이서지 그림, 한솔수북 펴냄) 풍속화가 이서지 화백이 4m짜리 병풍그림을 접어 넣었다. 그 옛날 5일장은 어땠을까. 전통 장터의 풍경을 속속들이 붓끝으로 되살렸다. 초등생.1만 5800원. ●도둑 쫓은 방귀(윤동재 글, 김미아 그림, 지식산업사 펴냄) ‘개똥이’‘지렁이 총각과 노래기 처녀’ 등 옛이야기를 동시 43편으로 바꿔 담았다. 초등생.9000원.
  • 진주 남강유등축제의 유혹

    세계 각국 각양각색의 등(燈)이 다음달 진주 남강에 집결해 화려한 모양과 불빛을 뽐낸다. 진주시는 22일 남강 일대에서 다음달 1∼12일 ‘2008 진주 남강 유등 축제’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아름다운 남강과 진주성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빛의 축제인 남강 유등축제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올해까지 3회 연속 전국 최우수 축제로 지정할 정도로 세계적인 축제로 발돋움하고 있다. 유등(流燈)은 강물 위에 띄워지는 등불을 일컫는다. 진주 남강에 유등이 사용된 것은 1592년 임진왜란 때로 임진왜란 3대첩의 하나인 ‘진주성 대첩’에서 진주성을 지키던 조선 군사들은 유등과 하늘에 풍등(風燈)을 띄워 성밖의 가족에게 안부를 전했다. 특히 유등은 남강을 건너 진주성을 침략하는 왜군의 남강 도하를 막는 군사전술 및 진주성 밖의 의병과 연락하는 군사신호로도 사용됐다. 그 뒤 진주성 전투때 순국한 7만여명의 민·관·군의 영혼을 달래는 진혼의식과 가정·국가의 안녕을 비는 기원의식으로 개천예술제에서 유등띄우기가 행사가 비롯됐다.2002년부터는 밤의 축제로 특화·발전됐다. ‘물 불 빛 그리고 우리의 소망’을 주제로 열리는 올해 축제에서는 6만여개의 갖가지 등이 남강 일대에 전시된다. 갖가지 소망을 담은 2만 3000여개의 소망등과 자유의 여신상, 트로이 목마, 제우스신, 풍차, 인어공주, 스핑크스 모양을 한 세계 22개국의 풍물등 및 한국 전통등을 비롯한 3만여개의 유등,3000여개 창작등 등이 행사기간 내내 화려한 남강의 밤을 연출한다. 행사기간에 남강위로 사랑의 다리라는 이름의 부교 2개가 가설된다. 남강 유등축제의 모든 프로그램은 등이 소재다. 행사장 안내판에서부터 쓰레기통까지 등으로 만들어진다. 유등축제기간에 우리나라 지방예술제의 효시인 제 58회 개천예술제를 비롯해 제115회 진주 전국민속 소싸움대회,2008 진주실크박람회, 제1회 진주가요제, 시민의 날 종야 축제도 열린다. 진주시는 전국 유일의 밤의 축제인 남강 유등축제에 해마다 국내외에서 300만명이 넘는 관광객이 찾아 1000억원의 경제 시너지 효과도 올리고 있다고 밝혔다.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경북, 동해안 1000리 길 관광자원화

    경북 동해안 천릿길에 서린 역사와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탐방코스가 개발된다. 17일 경북도에 따르면 428㎞에 이르는 도내 동해안을 따라 생태ㆍ탐방로를 조성하고 이를 역사문화 자원(사찰·정자·사당 등) 등과 연계한 ‘해안 문화 탐방코스’를 개발하기로 했다. 도는 동해안의 전설, 풍속(풍어제, 별신굿 등), 인물, 지명유래 등과 관련한 역사문화 자원을 조사해 명승지를 비롯한 유ㆍ무형의 관광자원과 연계하는 등 다양한 탐방코스를 조성할 계획이다. 현재 도가 구상 중인 주요 해안관광 테마로는 ▲민족시인 이육사 선생의 작품 ‘청포도’의 배경이 된 곳(포항 오천읍 포도밭) ▲정약용 선생의 유배지(포항 장기곶) ▲구한말 의병장 신돌석 장군 생가(영덕군 축산면 도곡리) ▲울릉ㆍ독도를 지킨 안용복 장군의 발자취 등이다. 도는 이를 위해 이달 중 대경연구원 및 (사)우리땅걷기 신정일 대표에게 동해안 문화탐방코스 개발을 위한 연구용역을 발주해 내년 2월까지 준비작업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도는 결과가 나오는 대로 본격 사업에 착수한다. 김남일 경북도 환경해양산림국장은 “경북 동해안의 유서 깊은 역사·문화와 수려한 자연경관이 지금껏 사장되다시피 했다.”며 “경북의 브랜드 가치 제고와 관광 활성화를 위해 자원화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대구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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