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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종로의 아침] 처음부터 잘못 꿴 단추, 하나금융/안미현 경제부 전문기자

    [세종로의 아침] 처음부터 잘못 꿴 단추, 하나금융/안미현 경제부 전문기자

    하나금융그룹이 시끄럽다. 그룹 측은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을 빨리 합쳐야 살길이 열린다고 한다. 외환은행은 약속 위반이라며 노조 간부들이 삭발까지 감행했다. 2012년 2월 17일 김승유 하나금융 회장, 윤용로 외환은행장, 김기철 외환은행 노조위원장은 환하게 웃으며 하나금융의 외환은행 인수를 받아들이는 ‘2·17 합의문’을 발표했다. 그런데 여기에 의외의 인물이 한 명 더 등장한다. 김석동 당시 금융위원장이다. 그 무렵 외환은행 노조는 1년 넘게 ‘헐값 매각’이라며 거부투쟁을 벌였다. 김승유 회장이 ‘5년간 독립경영’을 약속하며 달랬지만 정부가 보증하지 않으면 합의서에 도장을 찍지 않겠다고 버텼다. 딜이 또 깨졌을 때의 우리 경제 부담 등 고충이 헤아려지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개별 사(私)기업의 노사 합의에 금융 당국 수장이 공개적으로 들러리를 선 것은 좋지 않은 선례였다. 첫 번째 잘못 꿴 단추다. 그 부메랑은 2년 뒤 고스란히 돌아왔다. 외환 노조는 2·17 합의서에 ‘입회인 김석동’이라고 명백히 나와 있다며 노사정 합의 위반이라고 공격한다. 하나금융 측은 합의문에 서명한 당사자는 지주와 외환은행, 외환 노조라며 노사정 합의가 아닌 노사 합의라고 반박한다. 그래 놓고 하나금융은 노조가 대화 자체를 거부한다며 답답해한다. 하나금융이 조기 합병을 언론에 흘린 것은 지난달 초다.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이 갑자기 밥을 사겠다며 출입기자들을 불러 모은 뒤 “조기 통합을 생각해 볼 때가 됐다”고 운을 뗐다. 그로부터 한 달여 만에 하나금융은 조기 합병 추진을 공식 선언하는 등 무섭게 몰아붙였다. 금융 환경이 급변하고 있어 빨리 합쳐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2·17 합의를 지키지 못하게 된 데 대해서는 어떤 사과도 하지 않았다. 두 번째 잘못 꿴 단추다. 하나금융의 주장대로 조기 합병만이 살길이라면 김 회장은 약속을 깨게 된 데 대해 먼저 고개를 숙이고 내부 실상을 조직원들에게 솔직하게 알려 이해를 구했어야 했다. 김 회장의 최대 장점은 솔직함과 소통이다. 스스로 표현하듯 ‘의리를 중시하는 촌놈’이라면 접근 방식을 달리할 필요가 있다. 화두만 던진 뒤 뒷일은 김한조 외환은행장에게 맡겨 놓는 것은 책임 있는 태도가 아니다. 아니할 말로 김 회장은 2·17 합의문에 서명한 당사자도 아니다. 약속 위반의 부담이 덜하다. 진정성이 느껴져야 노조도 대화의 장으로 나올 것 아닌가. 외환 노조도 생각을 달리할 필요가 있다. 약속은 신성불가침의 영역이 아니다. 하나금융의 간섭 때문에 외환은행의 실적이 더 나빠졌다고 주장하지만 이 말에 공감할 금융인이 얼마나 될까. 지난해 세계 1000대 은행이 전년보다 수익을 23% 늘리는 동안 국내 은행들의 수익은 되레 쪼그라든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하나금융도 수익이 34%나 급감했다. 과장된 위기론이라며 덮어놓고 배척할 게 아니라 노조도 외환의 현주소와 미래를 냉정하게 돌아봐야 한다. “어차피 합치기로 한 거, 몇 년 앞당긴다고 총파업까지 운운할 일이냐”며 혀를 차는 국민이 적지 않음도 계산에 넣어야 할 것이다. hyun@seoul.co.kr
  • [대입 수시모집] 동덕여자대학교

    동덕여자대학교는 2015학년도 수시모집에서 동덕창의리더전형, 동덕나라사랑전형, 일반전형(학생부교과), 일반전형(실기고사), 특기자전형, 특성화고졸재직자전형을 통해 총 630명의 신입생을 선발한다.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적성고사와 심층면접을 폐지하고 동덕창의리더전형(학생부종합전형) 내에 미술계열(회화과, 디지털공예과, 큐레이터학과)이 신설됐다는 점이다. 학생부종합전형인 동덕창의리더전형은 통찰적 사고력, 예술적 감성, 주도적 리더십, 전인적 품성, 사회적 공감력을 지니고 미래여성사회를 선도할 인재를 선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1단계 서류평가 100%로 모집인원의 3배수(회회과 5배수)를 선발한 뒤 2단계에서 1단계 성적과 면접으로 최종 합격자를 선발한다. 일반전형(학생부교과)은 학생부 교과성적(출석포함) 100%로 선발하는데, 학생부 교과성적의 실질반영비율이 올해보다 높아졌다. 또 수능 4개 영역 중 2개 영역의 합이 6등급 이내의 최저학력 기준이 있다.
  • [공직 파워 열전] 기획재정부 (2)경제정책국장

    [공직 파워 열전] 기획재정부 (2)경제정책국장

    기획재정부는 거시경제, 예산, 세금, 물가, 국제금융 등 나라 살림의 전반을 책임지는 명실상부한 한국 경제의 컨트롤타워다. 행정고시를 통과한 인재들 중에서도 최고의 엘리트만 모인다는 기재부 직원들의 자부심이 대단한 이유다. 이런 기재부 내에서도 모두가 인정하는 자리가 있다. 기재부 직원들이 ‘한국 경제의 얼굴’ ‘경제 대통령’이라고 부르는 경제정책국장이다. 기획재정부라는 이름 앞머리에 등장하는 ‘기획’이라는 단어도 경제정책국을 상징한다. 1994년 재무부와 합쳐져 재정경제원으로 이름이 바뀐 경제기획원(EPB)의 경제기획국이 경제정책국의 전신이다. 경제기획국은 1962~1996년 계속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만들어 경제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한강의 기적은 경제기획국장의 손에서 비롯됐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기재부 직원들은 가장 기억에 남는 경제정책국장으로 김재익 전 청와대 경제수석을 꼽는다. 1976년부터 4년 반 동안 국장직을 지킨 김 전 수석은 전두환 전 대통령 시절 정부 주도의 경제정책을 민간 주도의 시장경제 체제로 바꾸는 결단을 내렸다. 김 전 수석이 입안한 금융실명제, 물가안정 정책, 정보화 정책 등은 현재도 경제정책의 밑바탕이 되고 있다.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은 한번 하기도 어렵다는 경제기획국장을 2번이나 맡았을 정도로 경제기획원 내에서도 최고의 기획통으로 꼽혔다. 3~6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주도했다. 장관직에서 물러난 뒤 16~18대 국회의원으로 3선에 성공했다. 경제정책국으로 이름이 바뀐 뒤 첫 국장을 지낸 최종찬 국장은 합리적인 일 처리로 후배들에게 가장 인기가 좋았던 국장으로 꼽힌다. 기획예산처 차관을 지낸 이후 잠시 공직을 떠나 있었지만 후배들의 잇따른 추천으로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으로 복귀해 건설교통부 장관까지 지냈다. 현오석 전 경제부총리는 3대 경제정책국장이다. 현 전 부총리는 2001년 세무대학장 이후로 공직에서 물러났다가 13년 만에 부총리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한성택 5대 경제정책국장은 의리의 사나이로 통했다. ‘돌쇠’라는 별명답게 강한 추진력을 보였지만 국민경제자문회의 기획조정실장으로 자리를 옮긴 지 7개월 만에 과로에 의한 심장마비로 갑자기 별세했다. 이 사건 이후 기재부 내에서 경제정책국장의 업무 강도가 다소 낮아졌고 건강 관리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조원동 전 청와대 경제수석도 경제정책국장(9대) 출신이다. 조 수석은 기재부 내에서도 ‘천재’ ‘페이퍼 워킹의 달인’ 등으로 불릴 정도로 업무 능력이 뛰어났다. 국무총리실장을 거쳐 현재 NH농협금융지주 회장으로 있는 임종룡 전 국장은 사무관 시절부터 ‘국보급 사무관’으로 불렸다. 임 국장은 능력을 인정받아 노무현 정부에서 이명박 정부로 넘어가는 정권 교체기에도 국장 자리를 지켜 MB노믹스의 초석을 다졌다. 이찬우 현 국장은 경제정책국 복지경제과장, 경제분석과장, 종합정책과장, 미래전략정책관, 민생경제정책관 등을 역임한 정책통이다. 온화한 성격과 부하 직원의 의견을 귀 기울여 듣는 스타일로 선후배 사이에서 신망이 두텁다. 세종 장은석 기자 esjang@seoul.co.kr
  • 아이스버킷 챌린지 논란 속 유아인 페북 정의로 ‘올킬’…“찬반 대상 아니야”

    아이스버킷 챌린지 논란 속 유아인 페북 정의로 ‘올킬’…“찬반 대상 아니야”

    아이스버킷 챌린지 논란 속 유아인 페북 정의로 ‘올킬’…“찬반 대상 아니야” 아이스버킷 챌린지 캠페인이 국내에서도 빠르게 확산되며 열기를 더해 가는 가운데 참가자들의 진실성 등 논란도 확산되고 있다. 당장 가수 백지영은 자신의 SNS에 출연 프로그램 홍보를 곁들여 네티즌들의 비난에 직명했다. 지난 23일에는 톱스타 비가 소속사 큐브엔터테인먼트의 공식 유튜브 채널을 통해 아이스버킷 챌린지 얼음물 샤워 참가 영상을 공개하면서 루게릭병 신약 개발을 위해 1억 원을 기부하겠다는 의사도 밝혔다. 원래 아이스버킷 챌린지는 얼음물 샤워와 100달러(약 10만 원) 기부 중 하나를 선택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비는 1억원을 기부하기로 한 것이다. ‘의리의 사나이’ 김보성(본명 허석)도 초등학교 6학년 아들 허영우(12) 군과 함께 길거리에서 아이스버킷 챌린지 얼음물 샤워에 도전했다. 가수 윤종신도 자신의 자녀 라익,라오,라임 삼남매가 들이붓는 얼음물을 뒤집어쓰는 영상을 공개했다. 이 밖에 지드래곤,강호동,최강희,루나,이종석,한상진,이상윤,지진희,김원준 등이 이날 얼음물 샤워에 도전한 인증샷을 공개했다. 배우 유아인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아이스버킷 챌린지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논란에 대해 자기 소신을 밝혔다. 유아인은 “선행을 이루는 개인의 선의와 양심을 누가 감히 측량하고 검열할 수 있을까요.트랜드로 번지고 패셔너블하게 소비되면 또 어때요. 모든 행위의 진정성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는 것은 언제나 반길만한 일이나, 아이스버킷 챌린지가 찬반을 던질만한 일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라고 썼다. 그는 “사회 전반적으로 무관심했던 질병이나 소외된 이웃들이 이러한 캠페인을 통해 하나 하나 세상에 더 잘 알려지고 불충분하나마 도움의 손길이 전해질 수 있다는 것은 SNS를 통해 해낼 수 있는 아주 진취적인 일들 중 하나죠. 그림자를 드리우고,인상을 쓰고, 눈물을 쥐어짜야 경건한 진심인 건 아니에요. 웃으며 해요.도움이 필요한 분들도 그것을 더 반기지 않을까요? 기껍고 환한 도움”이라고도 했다. 배우 이켠도 자신의 트위터에 “유행처럼 아이스버킷 동영상이 올라온다. 그런데 루게릭병에 관해서 알고들 하는 건가? 차가운 얼음물이 닿을 때처럼 근육이 수축되는 고통을 묘사한 건데 다들 너무 재미삼아 즐기는 거 같다. 그럴 거면 하지마”라고 강하게 비판했다가 논란이 되자 해당 글을 삭제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아이스버킷 챌린지, 욕먹는 백지영·심각한 이켠...유아인이 최종 정리…“찬반 대상 아니야”

    아이스버킷 챌린지, 욕먹는 백지영·심각한 이켠...유아인이 최종 정리…“찬반 대상 아니야”

    아이스버킷 챌린지, 욕먹는 백지영·심각한 이켠...유아인이 최종 정리…“찬반 대상 아니야” 아이스버킷 챌린지 캠페인이 국내에서도 빠르게 확산되며 열기를 더해 가는 가운데 참가자들의 진실성 등 논란도 확산되고 있다. 당장 가수 백지영은 자신의 SNS에 출연 프로그램 홍보를 곁들여 네티즌들의 비난에 직명했다. 지난 23일에는 톱스타 비가 소속사 큐브엔터테인먼트의 공식 유튜브 채널을 통해 아이스버킷 챌린지 얼음물 샤워 참가 영상을 공개하면서 루게릭병 신약 개발을 위해 1억 원을 기부하겠다는 의사도 밝혔다. 원래 아이스버킷 챌린지는 얼음물 샤워와 100달러(약 10만 원) 기부 중 하나를 선택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비는 1억원을 기부하기로 한 것이다. ‘의리의 사나이’ 김보성(본명 허석)도 초등학교 6학년 아들 허영우(12) 군과 함께 길거리에서 아이스버킷 챌린지 얼음물 샤워에 도전했다. 가수 윤종신도 자신의 자녀 라익,라오,라임 삼남매가 들이붓는 얼음물을 뒤집어쓰는 영상을 공개했다. 이 밖에 지드래곤,강호동,최강희,루나,이종석,한상진,이상윤,지진희,김원준 등이 이날 얼음물 샤워에 도전한 인증샷을 공개했다. 배우 유아인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아이스버킷 챌린지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논란에 대해 자기 소신을 밝혔다. 유아인은 “선행을 이루는 개인의 선의와 양심을 누가 감히 측량하고 검열할 수 있을까요.트랜드로 번지고 패셔너블하게 소비되면 또 어때요. 모든 행위의 진정성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는 것은 언제나 반길만한 일이나, 아이스버킷 챌린지가 찬반을 던질만한 일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라고 썼다. 그는 “사회 전반적으로 무관심했던 질병이나 소외된 이웃들이 이러한 캠페인을 통해 하나 하나 세상에 더 잘 알려지고 불충분하나마 도움의 손길이 전해질 수 있다는 것은 SNS를 통해 해낼 수 있는 아주 진취적인 일들 중 하나죠. 그림자를 드리우고,인상을 쓰고, 눈물을 쥐어짜야 경건한 진심인 건 아니에요. 웃으며 해요.도움이 필요한 분들도 그것을 더 반기지 않을까요? 기껍고 환한 도움”이라고도 했다. 배우 이켠도 자신의 트위터에 “유행처럼 아이스버킷 동영상이 올라온다. 그런데 루게릭병에 관해서 알고들 하는 건가? 차가운 얼음물이 닿을 때처럼 근육이 수축되는 고통을 묘사한 건데 다들 너무 재미삼아 즐기는 거 같다. 그럴 거면 하지마”라고 강하게 비판했다가 논란이 되자 해당 글을 삭제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비, 아이스버킷 챌린지 얼음물 맞고 ‘1억원’ 기부 “루게릭병 홍승성 회장 위해..”

    비, 아이스버킷 챌린지 얼음물 맞고 ‘1억원’ 기부 “루게릭병 홍승성 회장 위해..”

    ‘비 아이스버킷 챌린지 1억원 기부, 홍승성 회장 루게릭병’ 가수 비가 아이스버킷 챌린지에 동참했다. 비는 얼음물을 맞고도 무려 1억 원을 기부해 눈길을 끌고 있다. 루게릭병을 앓고 있는 소속사 대표 큐브엔터테인먼트 홍승성 회장을 위한 것. 비는 23일 오후 큐브 엔터테인먼트 공식 유튜브 채널을 통해 아이스버킷 챌린지 영상을 공개하고 캠페인 동참에 나섰다. SBS 새 드라마 ‘내겐 너무 사랑스러운 그녀’의 촬영을 마친 새벽 캠페인에 동참한 비는 얼음물을 맞기 앞서 대중들에게 루게릭병에 대한 자신의 특별한 사연을 고백했다. 비는 “아이스버킷 챌린지에 동참하는 기분이 본질적으로 상당히 뜻 깊다. 내게 ‘비’라는 이름으로 데뷔 시켜주시고 만들어주신 제 스승이자 아버지 같은 분이 이 루게릭병으로 3년 째 투병 중이다. 늘 어떻게 하면 도와주신 은혜와 감사함을 표현 할 수 있을까 망설였다”며 현재 루게릭으로 투병 중인 홍승성 회장에 대한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비는 “현재 국내의 모 대학병원에서 루게릭병의 신약을 개발 중에 있다. 좋은 뜻으로 기부를 하고 싶다”며 “앞으로도 많은 관심으로 감싸줄 수 있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신약 개발 연구를 위한 1억 원의 기부 의사를 밝혔다. 비는 얼음물을 맞은 뒤 다음 도전자로 가수 싸이, 배우 이병헌, 할리우드 톱 여배우 메간폭스를 지목했다. 홍승성 큐브엔터테인먼트 회장은 루게릭병 진단을 받고 투병 중에 있는 와중에도 회사 안팎의 경영 시스템을 직접 돌보며 포미닛, 비스트, 지나, 비투비, 김기리, 신지훈, 노지훈 등 많은 아티스트들을 이끄는 수장이다. 네티즌들은 “비 아이스버킷 챌린지 멋지다”, “비 아이스버킷 챌린지 1억 원 기부, 의리 대단하다”, “홍승성 회장 루게릭병이었구나. 신약 꼭 개발되길” 등의 반응을 보였다. 사진 = 유튜브 캡처(비 아이스버킷 챌린지, 홍승성 회장 루게릭병)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영상)이국주 영화 ‘선샤인 온 리스’ 홍보영상 ‘폭소’

    (영상)이국주 영화 ‘선샤인 온 리스’ 홍보영상 ‘폭소’

    영화 ‘선샤인 온 리스’(Sunshine on Leith)를 홍보하는 특별한 영상이 공개돼 눈길을 끌고 있다. 바로 tvN ‘코미디 빅리그’의 인기코너 ‘10년째 연애중’ 팀(이하 10년째 팀)이 영화 ‘선샤인 온 리스’를 보러 가는 과정을 그린 영상이다. 10년째 팀은 최근 의리녀로 한창 인기를 얻고 있는 이국주를 비롯해 김여운과 김진아 세 사람으로 이뤄져 있다. ‘10년째 연애중’ 코너는 만난 지 10년 된 연인이라는 설정으로, 10년 전후 달라진 연예 모습을 다룬 코너다. 10년 전 모습은 김진아가, 10년 후 모습은 이국주가 담당한다. 이번 공개 영상 역시 ‘코미디 빅리그’ 코너와 같은 설정으로, ‘선샤인 온 리스’를 보러 가는 과정을 코믹하게 표현해 보는 이들의 웃음을 자아내고 있다. 한편 ‘선샤인 온 리스’는 영국 쌍둥이 밴드 프로클레이머스(The Proclaimers)의 음악을 배경으로 한 가족을 통해 젊은이들이 사랑을 찾아가는 과정을 담아낸 작품이다. 2007년 최고의 뮤지컬 상(TMA Award for Best Musical)을 받은 인기 뮤지컬을 영화화한 ‘선사인 온 리스’는 오는 9월 3일 개봉 예정이다. 사진·영상=팝엔터테인먼트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 이국주, “‘에이핑크’ 제7의 멤버 되다!?”

    이국주, “‘에이핑크’ 제7의 멤버 되다!?”

    큐레이션 쇼핑몰 G9(www.g9.co.kr)가 개그우먼 이국주, 가수 에이핑크가 출연하는 티져 광고를 22일 온라인을 통해 선공개한다. 의리 열풍을 시작으로 최근 식탐송까지 인기를 얻으며 핫 한 스타로 떠오른 이국주와 청순 걸그룹으로 수많은 남녀팬을 거느린 에이핑크의 만남은 노출된 바이럴 영상만으로 기대감을 증폭시키고 있다. 이번에 미리 공개된 광고 영상에서는 이국주가 에이핑크와 함께 화이트 의상을 입고 백옥 같은 피부와 청순한 미모를 뽐낸다. 또한 에이핑크의 ‘Mr. Chu’곡에 맞춰 청순하고 발랄한 댄스를 선보이는데, 이후 돌발적으로 이어진 이국주의 자유로운 댄스 애드리브 영상이 이어져 폭소를 일으킨다. 실제 TV 광고 촬영 현장에서도 환상적인 호흡을 보였다는 후문이다. 광고에 함께 출연한 것은 처음임에도 불구하고 돌발 애드리브와 뛰어난 댄스 실력을 자랑하며 카메라를 압도했다. 특히 이국주는 최근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자신의 식탐송을 자유자재로 개사해 CM송으로 내놓아 끊임없는 폭소를 유발했다. 이국주를 새 얼굴로 한 G9 TV 본편 광고는 29일부터 본격적으로 전파를 탈 예정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의리남’ 김종국, 아이스버킷챌린지 얼음물 다음 도전자는? 용띠클럽 “하하·차태현·장혁”

    ‘의리남’ 김종국, 아이스버킷챌린지 얼음물 다음 도전자는? 용띠클럽 “하하·차태현·장혁”

    의리의 사나이 김종국이 ‘얼음물 샤워(icebucket challenge)’ 캠페인에 동참해 화제가 되고 있다. 김종국의 소속사 얼반웍스이엔티는 21일 오전 미국 ALS협회가 진행 중인 릴레이 캠페인 ‘얼음물 샤워’에 참여한 김종국의 영상을 소속사 유튜브 채널을 통해 공개했다. 공개 된 영상 속 김종국은 ‘이광수씨 덕분에 이렇게 의미 있는 캠페인 참여하게 되어 너무 영광이라고 생각한다’며 곧바로 얼음물 샤워를 감행했다. 쏟아지는 얼음세례에 말문이 막히면서도 ‘많은 분들이 관심과 희망을 얻기를 바란다’는 메시지를 남겨 의리의 사나이다운 면모를 과시했다. 이후, 김종국이 다음 캠페인 동참자로 런닝맨 멤버인 ‘하하’를 지목하자 지켜보고 있던 하하가 깜짝 등장해 웃음을 자아냈으며, 다른 두 명의 동참자로는 ‘용띠클럽’의 구성원 ‘차태현’, ‘장혁’을 지목해 기대를 증폭시켰다. 한편 김종국의 얼음물샤워 동참소식을 접한 네티즌들은 “김종국답게 역시 시원시원한 얼음샤워네.”, “김종국, 멋지다.”, “뜻 깊은 일 참여하는 능력자, 김종국”과 같은 반응을 보이며 관심을 나타냈다. ‘얼음물 샤워’ 캠페인은 루게릭병으로 일컬어지는 ′ALS′ 치료법 개발을 위해 미국 ALS협회가 진행중인 모금운동에서 시작된 것으로 참여자는 얼음물 샤워를 하고 3명을 지목해 또 다른 참여를 도모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지목 받은 인물이 24시간 내에 얼음물 샤워를 해야 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100달러를 ALS 협회에 기부하도록 돼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임헌일, 정준일과 한솥밥 “5년간의 의리 이어간다”

    임헌일, 정준일과 한솥밥 “5년간의 의리 이어간다”

    가수 임헌일이 엠와이뮤직과 전속 계약을 체결했다. 임헌일의 소속사 엠와이뮤직 측은 20일 “임헌일이 지난 6월초 전소속사와 계약이 만료된 후 수많은 레이블로부터 러브콜이 있었지만 최근 엠와이뮤직에 합류함으로써 5년간의 의리를 이어가게 됐다”고 밝혔다. 엠와이뮤직은 밴드 메이트(임헌일 정준일 이현재)를 데뷔 때부터 함께 해왔던 매니저가 독립하여 설립한 레이블. 현재 정준일, 낭만유랑악단, 나인, 디어클라우드, 권영찬이 소속돼 있다. 엠와이뮤직 윤동환 대표는 “오랜 시간 함께 해왔기 때문에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다. 걱정 없이 음악에 집중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지원할 것이다”라고 전했다. 임헌일의 합류로 메이트 또한 엠와이뮤직 소속으로 이전됐다. 메이트는 최근 3년 만에 그랜드민트 페스티벌(GMF) 헤드라이너로 컴백한다. 멤버들은 “안타깝게도 멤버 이현재는 중국 영화촬영으로 함께 활동할 수 없지만, 팀 이름이나 멤버 변경 없이 함께 할 수 있을 때까지 메이트로 기다리겠다”고 전해 끈끈한 우정을 과시했다. 한편 엠와이뮤직은 8월 30일, 31일 양일간 올림픽홀 뮤즈라이브에서 레이블 콘서트를 개최한다. 소속뮤지션이 모두 참여하며, 양일간 다른 라인업으로 팬들과 만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유혹’ 최지우, 비디비치 립스틱으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이경민과의 의리 지켜

    ‘유혹’ 최지우, 비디비치 립스틱으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이경민과의 의리 지켜

    인기 여배우들의 메이크업을 창조하여 한류 뷰티를 이끌어온 비디비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D) 이경민과 최지우와의 깊은 우정은 SBS 인기 드라마 <유혹>에서도 빛났다. 최근 SBS 월화 드라마 <유혹>의 주인공 유세영 역으로 열연 중인 최지우는 바쁜 드라마 촬영 일정 탓에 지난 24일 열린 비디비치 리인벤팅 행사에는 참석하지 못했지만, 새로운 비디비치 제품을 먼저 만나보는 것으로 참석 인사를 대신했다. 최지우는 비디비치의 새로운 제품 중 특히 비디비치 루즈 엑셀랑스 인텐스 #쇼파홀릭 컬러에 큰 관심을 보였으며, 실제로 드라마 <유혹>에 직접 비디비치 제품을 바르고 출연하는 애정을 과시하기도 했다. 완벽한 명품 메이크업을 완성하며 시청자들의 주목을 받은 드라마 속 바로 그 립 메이크업이 최지우 pick으로 유명한 핫 핑크 컬러의 비디비치 루즈 엑셀랑스 쇼파홀릭이다. 10년의 우정을 담은 최지우의 아름다운 마음까지 느껴지는 최지우의 립스틱, 비디비치 루즈 엑셀랑스 제품은 오는 20일 출시예정으로, 전국 비디비치 매장에서 만나볼 수 있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야노시호 의리, 주먹 불끈 쥐더니..‘사랑이가 엄마를 닮았네’

    야노시호 의리, 주먹 불끈 쥐더니..‘사랑이가 엄마를 닮았네’

    야노시호 의리가 눈길을 끈다. 지난 17일 방송된 KBS ‘해피선데이-슈퍼맨이 돌아왔다’(이하 ‘슈퍼맨’) 40회에서는 ‘한 여름 밤의 꿈’이 방송됐다. 이날 야노시호는 한국어 공부에 심취한 모습을 보여 눈길을 끌었다. 야노시호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조응아침(조은 아침)’, ‘밤목쟈(밥먹자)’에 이어 추성훈에게는 ‘어듀카세요(어디 가세요)?’라고 말하는 등 어설픈 한국어를 남발하며 웃음을 자아내게 했다. 더욱이 야노시호의 한국말 쓰기에 추성훈은 오히려 더 난해한 발음으로 야노시호의 발음을 수정해줘 웃음을 선사했다. 특히 한국어 열공 중인 야노시호가 푹 빠진 단어가 있었으니 바로 방송인 김보성의 유행어인 ‘으리’. 야노시호는 격투기 연습을 위해 집을 나서는 추성훈에게 폭풍 한국어 애교를 선보였다. 이 과정에서 야노시호의 ‘으리 컬렉션’이 등장했다. 야노시호는 양 손은 주먹을 꼭 쥔 채, 양팔을 하늘 높이 올리고 “파파 힘내! 힘내! 으리!”라고 말하며, 추성훈을 응원했다. 야노시호는 사랑이에게도 함께 하자며 “으리!”를 외쳤다. 이외에도 ‘힘내! 으리!’, ‘바이 바이!으리!’등 말끝마다 ‘으리’를 붙여 폭소를 자아내게 했다. 야노시호 의리 소식에 네티즌은 “야노시호 의리, 저런 부인 있으면 매일 업고 다닐 듯”, “야노시호 의리, 너무 귀여워”, “야노시호 의리, 야노시호 그건 어디서 배운거야?”, “야노시호 의리..사랑이가 엄마 닮아서 이렇게 귀엽구나?”, “야노시호 의리..사랑스러워”등 반응을 보였다. 사진 = 서울신문DB (야노시호 의리) 연예팀 chkim@seoul.co.kr
  • ‘프리먼스’ 현아, 풀장서 비키니 입고 ‘빨개요’ 섹시 댄스 춰 ‘눈길’

    ‘프리먼스’ 현아, 풀장서 비키니 입고 ‘빨개요’ 섹시 댄스 춰 ‘눈길’

    현아가 ‘빨개요’ 활동을 같이 했던 크루들과 비키니 풀파티를 즐겼다. 18일 방송되는 SBS MTV ‘현아의 FREE MONTH’(이하 ‘프리먼스’)에서는 현아의 솔로 앨범 활동 마무리를 기념하는 수영장 풀파티 현장이 공개된다. 이번 파티는 이번 앨범을 위해 고생한 스태프들을 위해 현아가 직접 준비했다. 이날 현아는 레드립 메이크업과 섹시한 검은 비키니 패션을 선보이며 등장해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어 현아는 비키니를 입고 ‘빨개요’ 댄스를 추며 섹시 아이콘다운 매력을 뽐냈다. 파티 당일 비가 내리는 바람에 스태프들이 많이 못 올 것이라는 우려와 달리 전원 참석하여 현아와의 의리를 지켰다. 현아는 “크루들과 활동이 끝나가는 게 정말 아쉽다”며 “한 달간의 활동 기간 동안 많은 것을 배웠다”고 말하며 스태프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현아의 프리먼스’는 오는 18일 밤 11시 SBS MTV, 밤 12시 SBS funE를 통해 방송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시론] 기득권 버리는 진정한 리더십이 그립다/전찬일 영화평론가

    [시론] 기득권 버리는 진정한 리더십이 그립다/전찬일 영화평론가

    이쯤 되면 ‘신드롬’이니 ‘현상’ 등의 의례적 수사로는 부족하지 않을까. 김한민 감독의 ‘명량’이 불러일으키고 있는 흥행 광풍을 설명하기엔. 개봉 이후 연일 신기록을 수립한 영화는 15일째인 지난 13일 1200만명 선마저 가뿐히 넘고 1300만명대를 향해 질주 중이다. 개봉 3주차란 점을 감안하면 ‘아바타’가 보유하고 있는 1330만명의 역대 흥행작 1위 기록을 깨는 것은 시간문제일 터. 관심은 그 질주가 과연 어디까지 이를 것이냐 여부다. 걸작이든 범작이든 졸작이든, ‘명량’의 기념비적 흥행의 결정적 요인은 장수 이순신이요, 그의 독보적 리더십인 것만은 분명하다. 이 나라의 무능한 고위 지도층을 향한 백성들의 불만이 장군의 헌신적, 실천적 리더십에 열광하고, 그 열광이 영화의 기록적 박스 오피스로 표출된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는 진단이다. 하지만 문득 이런 의문들이 밀려드는 것도 사실이다. 지난 수십년 동안 왜, 돈이 되는 소재라면 혈안이 돼 달려들기 마련인, 대한민국의 숱한 기획·제작자들은 그 호재를 방치해 오다시피 한 것일까. 2005년 선보인 박중훈 주연의 ‘천군’ 같은 변종을 제외하면, 김진규 주연 장일호 감독의 1977년 작 ‘난중일기’ 이후 진지한 이순신 영화는 부재했었기에 던져보는 물음이다. 예의 그 영화들이 이렇다 할 재미를 보지 못하고, 이순신 이야기는 돈벌이감이 아니라고 판단해 왔기 때문 아니겠는가. ‘명량’이 걸작이라고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나 “장수된 자의 의리는 충을 좇아야 하고 그 충은 백성을 향해야 한다” 등 허구라지만 최상의 극적 효과를 발휘한 명대사들이 없이도, 대장선이 ‘회오리 바람’에 휘말려 침몰하기 직전 민초들이 작은 배들을 타고 자발적으로 나서 갈고리로 그 큰 배를 끌어 구해내는 결정적 드라마가 없어도, 최민식이 이순신 장군을, 류승룡이 적장 구루지마를 연기하지 않았어도, 때론 전면에 나서고 때론 후면에 머물러 있으면서 제 본분을 톡톡히 해내는 수준급 음악이 없더라도, 영화 속 ‘울돌목’처럼 정중동의 영화 리듬을 완벽하게 구현해낸 최상의 연출이 아니라도 ‘명량’이 지금과 같은 역사적 성공을 일궈낼 수가 있을까. 그저 이순신 스토리만으로? 그럼에도 이순신 변수가 ‘명량 광풍’의 으뜸 인자인 것만은 분명하다. 장군은 리더십이 무엇인지, 우리 시대가 요청하는 리더십은 어때야 하는지를 웅변적으로 보여준다. 이른바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의 경영대가적 리더십을, 목숨까지도 버릴 용단의 서번트 리더십을, 희대의 심리적 전략·전술로 절대 열세의 물적 토대를 극복하는 승부사적 리더십을, 일국의 장군이 일개 촌로의 조언을 경청해가며 작전을 구사할 줄 아는 소통·공감의 리더십을…. 상기 리더십 면 등에서, 4박5일간의 일정으로 14일 한국을 찾은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순신 장군과 연결된다. 역대 세 번째로, 요한 바오로 2세 이후 25년 만에 방한하는 ‘빈자의 벗’이다. 390여년간의 세월을 사이에 둔 이순신 장군과 프란치스코 교황은 ‘성웅’과 ‘성자’로 일컬어지기도 한다는 점에서도 닮은꼴이나, 무엇보다 기득권을 훌훌 떨쳐버리고 백성들, 즉 가난한 보통사람들의 편에 서서 살다 갔고, 살다 갈 거라는 점에서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이란성 쌍둥이의 모습이다. 지금 이 시점 바닷속에 잠겨 있는 세월호처럼 참혹하게 표류하는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세월호 특별법’이나, “이게 나라더냐!” 등의 자괴감·절망감을 안겨주고 있는 ‘윤일병 사건’ 속에서 우리 국민들이 간절히 체감하고 싶은 리더십이기도 하다. 한국의 지도자들이 기득권에 집착하지 않으며, 고통받는 이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안겨주는 이순신 장군과 프란치스코 교황의 ‘진짜 리더십’을 배우지 못한다면 영화의 흥행도, 교황의 방문도 그저 요란하고 허망한 이벤트로 그치지 않을까 걱정될 따름이다.
  •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낮은 교황님’ 지키는 ‘세계최강’ 용병들...그들의 이야기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낮은 교황님’ 지키는 ‘세계최강’ 용병들...그들의 이야기

    전 세계 가톨릭교회뿐만 아니라 비종교인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14일 성남공항에 도착해 박근혜 대통령의 영접을 받는 것으로 방한 일정을 시작했다. 아르헨티나 출신의 교황은 로마교회의 주교이자 예수 그리스도의 대리자이며, 가톨릭교회의 최고지도자, 바티칸시국의 국가원수의 지위를 가지고 있지만, 이러한 높은 성좌의 자리에 오른 이후에도 줄곧 소박하고 검소하며 낮은 자세로 연일 파격 행보를 이어가며 전 세계인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회를 이끄는 수장으로서 “신을 믿지 않거나 믿음을 추구하지 않은 사람들을 신이 용서할 것이냐”라는 한 무신론자의 질문에 “신앙이 없으면 양심에 따라 살면 된다”는 말을 남기며 무신론을 포함한 다른 종교들과의 화합과 화해를 위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어 그동안 가톨릭교회와 적대적이었던 이슬람 등 다른 종교인들에게도 깊은 감동을 던져주고 있다. 이렇듯 신의 대리인으로서 권위를 내세우지도, 파격적이라 할 만큼 소탈하고 검소하게 살며 한 인간으로서도 모범적인 삶을 살고 있는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위해(危害)를 가할 사람이 있을까?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살아서는 인간으로부터 용서받지 못할 것이고, 죽어서는 신의 용서를 받지 못할 테지만, 혹시 모를 ‘만약’을 위해 교황의 곁을 24시간 지키는 이들이 있다. 바로 세계 최강의 용병집단이라고 일컬어지는 ‘스위스 근위대(Guardia Svizzera Pontificia)’, 정식 명칭 교황청 근위대(Pontificia Cohors Helvetica)가 그들이다. -스위스 용병이 교황청을 지키게 된 사연 지금도 강대국들이 함부로 하지 못하는 강소국이자 영세중립국가인 스위스와 스위스인들의 용맹함과 감투정신은 이미 중세시대부터 전 유럽에 소문이 자자했다. 스위스는 국토 대부분이 알프스의 험준한 산맥이 차지하고 있는 산악국가다. 마땅히 키울 수 있는 산업이 없었기 때문에 목축이나 지리적 이점을 이용한 중계무역과 정밀 기계 가공 등에 종사할 수밖에 없었는데,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외침이 잦아 이마저도 안정적으로 발전이 어려웠다. 이러한 어려운 환경 속에 발달한 것이 용병산업이었다. 산악지형이라는 험준한 환경에서 자라온 스위스 청년들은 별다른 훈련 없이도 강한 체력과 정신력을 갖춘 훌륭한 전사들이었고, 중세 스위스의 역사 자체가 합스부르크 왕가로부터의 끊임없는 침략의 역사와 다름없었기에 이들은 어린 시절부터 전투에 너무도 익숙할 수밖에 없었다. 스위스 각 지방의 영주들은 필요에 따라 뭉치기도, 흩어지기도 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인접 영주에게 돈을 받고 군대를 빌려주는 거래도 자주 이루어졌는데, 영주가 돈을 받고 빌려주는 군대, 즉 용병들이 워낙에 용맹하다보니 인접한 프랑스와 독일, 이탈리아의 왕조나 지방의 힘 있는 영주들은 스위스 용병 단골고객이 되어 버렸다. 스위스인들은 용병이 되는 것에 대해 자랑스럽게 생각했고, 계약 기간이 끝날 때까지는 클라이언트에 대한 절대적인 충성과 의리를 보여주었다. 용맹함과 충성심, 그리고 의리는 스위스 용병을 국제 용병시장에서 명품(?)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이러한 스위스 용병들이 교황을 지키게 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50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제216대 교황인 율리오 2세(Papa Giulio II)는 스위스 연방에 바티칸을 지킬 병력 파견을 요청했고, 이에 스위스 연방이 150여 명의 병력을 파견하면서 스위스 근위대가 탄생했다. 이들의 진가는 1527년 5월, 신성로마제국의 카를 5세가 로마를 침략할 때 발휘되었다. 당시 복잡한 국제 정세를 제대로 읽지 못했던 클레멘스 7세(Papa Clemente VII) 교황은 카를 5세의 대병력 앞에 무너졌고, 로마는 신성로마제국군에 의해 불타올랐다. 카를 5세가 클레멘스 7세를 잡기 위해 병력을 보내자 189명에 불과한 근위대는 수천 명의 병력에 맞서 교황을 탈출시켰다. 교황 근접 경호를 맡았던 40명을 제외한 나머지 149명 가운데 147명이 전사했으며, 나머지 2명은 중상을 입고 포로가 됐다. 신성로마제국군의 항복 권유와 대병력도 이들의 의지를 꺾지 못했고, 이러한 충성심과 의리는 50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스위스 근위대가 교황을 지키는 교회의 수호자 역할을 하게 만들었던 밑바탕이 되었다. -21세기에 미늘창 든 군대? 바티칸에서 스위스 근위대를 본 경험이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들이 정말 교황청을 지키는 임무를 수행하는 군인이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도 그럴 것이 근위병들이 현대적인 군복과는 거리가 먼 알록달록한 복장을 입고 있고, 심지어 중세시대를 다룬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투구를 쓰고 총 대신 미늘창을 들고 있으니 과연 저들이 어떻게 교황을 지키고 바티칸을 경비하는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중세시대 복장과 미늘창을 든 병사들이 경비 임무를 맡는 이러한 전통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생겼다. 1943년 독일은 이탈리아와 동맹을 맺고 이탈리아에 병력을 파견했는데, 이때 전차와 장갑차, 야포로 중무장한 부대가 교황령을 포위하고 점령을 시도한 적이 있었다. 근위대는 즉각 소총과 기관총 등으로 무장하고 임전 태세를 갖췄지만, 당시 교황이었던 비오 12세(Papa Pio XII)는 근위대장을 붙잡고 “이런 무장을 한 근위대가 탱크를 밀고 들어오는 나치 독일군대와 싸우면 근위병들이 다 죽을 것”이라며 무장을 해제하고 미늘창과 전통 복장을 들고 경비 임무를 서되, 독일군과 충돌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이후 근위대는 교황청과 교황에 대한 경호경비 임무는 수행하되, 과도한 무장으로 오해를 살 소지를 없애기 위해 중세 군복과 미늘창을 들고 경비 임무를 수행해 왔고, 그것이 전통으로 굳어져 오늘날까지 이어져 온 것이다. - ‘군용 소총의 롤렉스’ 무장... 대전차 미사일· 휴대용 지대공 미사일도 물론 현재 국제질서에서는 이탈리아 내륙 한복판에 자리 잡은 바티칸 시국을 공격할 의지나 배짱을 가진 나라는 있을 수 없다. 바티칸을 공격하려면 이탈리아, 나아가 NATO와의 일전을 각오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황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지도자 가운데 한 명인만큼 테러나 각종 범죄의 표적이 되기 쉽게 때문에 엄중한 경호가 필요하다. 이 때문에 스위스 근위대는 중세 복장과 미늘창 뒤에 진짜 칼날을 숨기고 만일에 대비하고 있다. 현재 교황청 근위대 병력은 135명이다. 근위대원들은 모두 스위스군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으며, 174cm 이상의 건장한 체격과 강건한 체력, 그리고 독실한 가톨릭 신자라는 자격 요건을 충족한 인원들이다. 평상시 근무때는 미늘창을 들고 중세시대 군복, 그리고 흉갑을 걸치고 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그 복장 안에 방탄조끼를 입고 있다. 병영과 무기고에는 최신 장비들이 가득하며, 이들 장비와 현대적인 전술에 맞게 요인 경호와 근접 전투에 초점을 맞춘 엄격한 훈련이 매일 반복된다. 근위대는 1정당 1,000만원이 넘는 ‘군용 소총의 롤렉스’라고 불리는 스위스제 SIG550 소총과 P226 권총 등을 기본 무장으로 사용하며, 스위스 SIG와 독일의 H&K 등에서 생산되는 개인화기와 기관총 등을 갖추고 있다. 외곽 경비는 이탈리아군이 맡고 있지만, 영내 방어를 위해 대전차 미사일과 보병 휴대용 지대공 미사일도 보유하고 있다. 이런 근위대원들 가운데서도 최정예로 손꼽히는 근접 경호 요원들(장교)이 교황을 모시고 우리나라를 찾았다. 14일 서울공항에 내린 프란치스코 교황 주변의 건장한 청년들이 바로 그들이다. 세계 최고의 실력을 자랑하는 경호 요원들이지만 일반 대중들에게 워낙 격 없이 다가가는 프란치스코 교황이기에 이번 방한 기간 중 전례없는 고생길이 펼쳐질 것으로 보인다. 이일우 군사 통신원(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 [교황 방한] ‘낮은 교황님’ 지키는 ‘세계최강’ 용병들...그들의 이야기

    [교황 방한] ‘낮은 교황님’ 지키는 ‘세계최강’ 용병들...그들의 이야기

    전 세계 가톨릭교회뿐만 아니라 비종교인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14일 성남공항에 도착해 박근혜 대통령의 영접을 받는 것으로 방한 일정을 시작했다. 아르헨티나 출신의 교황은 로마교회의 주교이자 예수 그리스도의 대리자이며, 가톨릭교회의 최고지도자, 바티칸시국의 국가원수의 지위를 가지고 있지만, 이러한 높은 성좌의 자리에 오른 이후에도 줄곧 소박하고 검소하며 낮은 자세로 연일 파격 행보를 이어가며 전 세계인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회를 이끄는 수장으로서 “신을 믿지 않거나 믿음을 추구하지 않은 사람들을 신이 용서할 것이냐”라는 한 무신론자의 질문에 “신앙이 없으면 양심에 따라 살면 된다”는 말을 남기며 무신론을 포함한 다른 종교들과의 화합과 화해를 위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어 그동안 가톨릭교회와 적대적이었던 이슬람 등 다른 종교인들에게도 깊은 감동을 던져주고 있다. 이렇듯 신의 대리인으로서 권위를 내세우지도, 파격적이라 할 만큼 소탈하고 검소하게 살며 한 인간으로서도 모범적인 삶을 살고 있는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위해(危害)를 가할 사람이 있을까?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살아서는 인간으로부터 용서받지 못할 것이고, 죽어서는 신의 용서를 받지 못할 테지만, 혹시 모를 ‘만약’을 위해 교황의 곁을 24시간 지키는 이들이 있다. 바로 세계 최강의 용병집단이라고 일컬어지는 ‘스위스 근위대(Guardia Svizzera Pontificia)’, 정식 명칭 교황청 근위대(Pontificia Cohors Helvetica)가 그들이다. -스위스 용병이 교황청을 지키게 된 사연 지금도 강대국들이 함부로 하지 못하는 강소국이자 영세중립국가인 스위스와 스위스인들의 용맹함과 감투정신은 이미 중세시대부터 전 유럽에 소문이 자자했다. 스위스는 국토 대부분이 알프스의 험준한 산맥이 차지하고 있는 산악국가다. 마땅히 키울 수 있는 산업이 없었기 때문에 목축이나 지리적 이점을 이용한 중계무역과 정밀 기계 가공 등에 종사할 수밖에 없었는데,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외침이 잦아 이마저도 안정적으로 발전이 어려웠다. 이러한 어려운 환경 속에 발달한 것이 용병산업이었다. 산악지형이라는 험준한 환경에서 자라온 스위스 청년들은 별다른 훈련 없이도 강한 체력과 정신력을 갖춘 훌륭한 전사들이었고, 중세 스위스의 역사 자체가 합스부르크 왕가로부터의 끊임없는 침략의 역사와 다름없었기에 이들은 어린 시절부터 전투에 너무도 익숙할 수밖에 없었다. 스위스 각 지방의 영주들은 필요에 따라 뭉치기도, 흩어지기도 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인접 영주에게 돈을 받고 군대를 빌려주는 거래도 자주 이루어졌는데, 영주가 돈을 받고 빌려주는 군대, 즉 용병들이 워낙에 용맹하다보니 인접한 프랑스와 독일, 이탈리아의 왕조나 지방의 힘 있는 영주들은 스위스 용병 단골고객이 되어 버렸다. 스위스인들은 용병이 되는 것에 대해 자랑스럽게 생각했고, 계약 기간이 끝날 때까지는 클라이언트에 대한 절대적인 충성과 의리를 보여주었다. 용맹함과 충성심, 그리고 의리는 스위스 용병을 국제 용병시장에서 명품(?)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이러한 스위스 용병들이 교황을 지키게 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50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제216대 교황인 율리오 2세(Papa Giulio II)는 스위스 연방에 바티칸을 지킬 병력 파견을 요청했고, 이에 스위스 연방이 150여 명의 병력을 파견하면서 스위스 근위대가 탄생했다. 이들의 진가는 1527년 5월, 신성로마제국의 카를 5세가 로마를 침략할 때 발휘되었다. 당시 복잡한 국제 정세를 제대로 읽지 못했던 클레멘스 7세(Papa Clemente VII) 교황은 카를 5세의 대병력 앞에 무너졌고, 로마는 신성로마제국군에 의해 불타올랐다. 카를 5세가 클레멘스 7세를 잡기 위해 병력을 보내자 189명에 불과한 근위대는 수천 명의 병력에 맞서 교황을 탈출시켰다. 교황 근접 경호를 맡았던 40명을 제외한 나머지 149명 가운데 147명이 전사했으며, 나머지 2명은 중상을 입고 포로가 됐다. 신성로마제국군의 항복 권유와 대병력도 이들의 의지를 꺾지 못했고, 이러한 충성심과 의리는 50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스위스 근위대가 교황을 지키는 교회의 수호자 역할을 하게 만들었던 밑바탕이 되었다. -21세기에 미늘창 든 군대? 바티칸에서 스위스 근위대를 본 경험이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들이 정말 교황청을 지키는 임무를 수행하는 군인이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도 그럴 것이 근위병들이 현대적인 군복과는 거리가 먼 알록달록한 복장을 입고 있고, 심지어 중세시대를 다룬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투구를 쓰고 총 대신 미늘창을 들고 있으니 과연 저들이 어떻게 교황을 지키고 바티칸을 경비하는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중세시대 복장과 미늘창을 든 병사들이 경비 임무를 맡는 이러한 전통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생겼다. 1943년 독일은 이탈리아와 동맹을 맺고 이탈리아에 병력을 파견했는데, 이때 전차와 장갑차, 야포로 중무장한 부대가 교황령을 포위하고 점령을 시도한 적이 있었다. 근위대는 즉각 소총과 기관총 등으로 무장하고 임전 태세를 갖췄지만, 당시 교황이었던 비오 12세(Papa Pio XII)는 근위대장을 붙잡고 “이런 무장을 한 근위대가 탱크를 밀고 들어오는 나치 독일군대와 싸우면 근위병들이 다 죽을 것”이라며 무장을 해제하고 미늘창과 전통 복장을 들고 경비 임무를 서되, 독일군과 충돌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이후 근위대는 교황청과 교황에 대한 경호경비 임무는 수행하되, 과도한 무장으로 오해를 살 소지를 없애기 위해 중세 군복과 미늘창을 들고 경비 임무를 수행해 왔고, 그것이 전통으로 굳어져 오늘날까지 이어져 온 것이다. - ‘군용 소총의 롤렉스’ 무장... 대전차 미사일· 휴대용 지대공 미사일도 물론 현재 국제질서에서는 이탈리아 내륙 한복판에 자리 잡은 바티칸 시국을 공격할 의지나 배짱을 가진 나라는 있을 수 없다. 바티칸을 공격하려면 이탈리아, 나아가 NATO와의 일전을 각오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황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지도자 가운데 한 명인만큼 테러나 각종 범죄의 표적이 되기 쉽게 때문에 엄중한 경호가 필요하다. 이 때문에 스위스 근위대는 중세 복장과 미늘창 뒤에 진짜 칼날을 숨기고 만일에 대비하고 있다. 현재 교황청 근위대 병력은 135명이다. 근위대원들은 모두 스위스군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으며, 174cm 이상의 건장한 체격과 강건한 체력, 그리고 독실한 가톨릭 신자라는 자격 요건을 충족한 인원들이다. 평상시 근무때는 미늘창을 들고 중세시대 군복, 그리고 흉갑을 걸치고 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그 복장 안에 방탄조끼를 입고 있다. 병영과 무기고에는 최신 장비들이 가득하며, 이들 장비와 현대적인 전술에 맞게 요인 경호와 근접 전투에 초점을 맞춘 엄격한 훈련이 매일 반복된다. 근위대는 1정당 1,000만원이 넘는 ‘군용 소총의 롤렉스’라고 불리는 스위스제 SIG550 소총과 P226 권총 등을 기본 무장으로 사용하며, 스위스 SIG와 독일의 H&K 등에서 생산되는 개인화기와 기관총 등을 갖추고 있다. 외곽 경비는 이탈리아군이 맡고 있지만, 영내 방어를 위해 대전차 미사일과 보병 휴대용 지대공 미사일도 보유하고 있다. 이런 근위대원들 가운데서도 최정예로 손꼽히는 근접 경호 요원들(장교)이 교황을 모시고 우리나라를 찾았다. 14일 서울공항에 내린 프란치스코 교황 주변의 건장한 청년들이 바로 그들이다. 세계 최고의 실력을 자랑하는 경호 요원들이지만 일반 대중들에게 워낙 격 없이 다가가는 프란치스코 교황이기에 이번 방한 기간 중 전례없는 고생길이 펼쳐질 것으로 보인다. 이일우 군사 통신원(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 [세종로의 아침] 한은 총재와 금융위원장은 어디 있나/안미현 경제부 전문기자

    [세종로의 아침] 한은 총재와 금융위원장은 어디 있나/안미현 경제부 전문기자

    ‘청와대 서별관 회의 때 경제정책 협의의 단골 메뉴는 가계부채였다. 그때마다 등장한 게 총부채상환비율(DTI)이었다. 국토교통부 등 일부 부처들이 DTI 완화를 주장했지만 나는 반대했다. DTI를 완화하는 것은 빚내서 집 사라는 말과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가계부채는 지금도 한국경제의 먹구름이고 나에게도 무거운 짐으로 남아 있다.’ 이명박 정부의 핵심 실세였던 백용호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쓴 ‘반전’의 한 대목이다. 그렇게 묶여 있던 DTI가 박근혜 정부의 핵심 실세라는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취임하면서 단박에 풀렸다.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이라면 몰라도 DTI까지 손대기는 힘들 것이라던 일각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예나 지금이나 LTV·DTI 완화를 주장하는 목소리는 많다. 담보가치(집)를 얼마나 쳐줄지, 개개인의 빚 갚을 능력을 얼마로 측정해 얼마나 빌려줄지는 금융사가 판단할 몫이라는 논리에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 금융사들에 그런 위험분석과 심사능력이 충분히 있던가. 아니, 그 이전에 그런 능력을 키우도록 충분히 자율을 줬던가. 다행히 실력을 갖췄다고 할지라도 주택담보대출이라는 떼일 확률 낮고 이자 확실한 먹거리를 눈앞에 두고 과식의 덫에 빠지지 않을 만큼 우리 금융사들은 절제돼 있는가. 가계는 또 어떤가. 소득이 오르지 않으니 생활비는 늘 적자이고, 직장에서 떠밀려 나와 작은 가게라도 차리려는 데 목돈은 없다. 그럴 때 가장 쉽게 ‘잡히는’ 게 집이다. 그 집을 장만하느라 진 빚도 채 갚지 못했는데 어쩔 수 없이 또 빚을 진다. 빚으로 빚을 갚는 돌려막기 인생이다. 개인이든 금융사든 호된 시련(외환위기, 금융위기)을 두 번이나 겪었으니 과거와는 다를 것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그런데 돈을 쉽게 빌려주겠다고 끊임없이 유혹하면서 ‘의리’를 기대하고 주문하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 주가가 오르고 부동산 시장이 들썩인다며 여기저기서 ‘최경환 효과’를 얘기한다. 요즘 최 부총리는 입이 귀에 걸렸을 듯싶다. 그런데 누군가는 나중에 날아들지도 모를 청구서 걱정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와 신제윤 금융위원장이 못내 아쉬운 것은 그래서다. 경제는 심리이니 모든 부처가 하나 되어 뛰는 노력은 필요하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전체를 조망한 뒤의 합심이어야 한다. 돈을 풀어 경기를 떠받치기로 했다면 그에 따른 부작용도 면밀히 염두에 둬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정책 공조요, 팀워크다. 경제부총리를 부활한 이유이기도 하다. 한은 총재는 “금리는 내리더라도 가계 빚이 걱정되니 DTI는 풀지 않아야 한다”고 좀 더 강하게 주장해야 했다. 신 위원장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 총재는 엉거주춤이요, 신 위원장은 180도 돌변이다. 금융감독원은 한 술 더 떠 은행더러 왜 일괄 대출잣대를 적용하지 않느냐고 채근이다. DTI는 시작에 불과한 건지도 모른다. 대통령 앞에서 받아쓰기하는 장관들을 보지 않게 된 대신, ‘만사경통’(최 부총리) 앞에서 머리 조아리는 장관들만 보게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hyun@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40년간 화폭에 노송 담아 온 이영복 화백

    [김문이 만난사람] 40년간 화폭에 노송 담아 온 이영복 화백

    기품이 당당하다. 스스로 길지(吉地)에서 생기와 절개를 묵묵히 뿌리내린다. 천년 세월, 어떤 모진 비바람도 견딘다.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바람서리 불변함은 우리 기상일세∼’. 그랬다. 거친 우리 민족사를 도도히 지켜왔다. 조선시대에는 소나무를 ‘생명의 나무’로 여겼다. 퇴계 이황은 34세 나이에 이렇게 읊었다. ‘바위 위에 자란 천년 묵은 저 불로송/ 검푸른 비늘같이 쭈글쭈글한 껍질 마치 날아 뛰는 용의 기세로다/ 밑이 안 보이는 끝없는 절벽 위에 우뚝 자라난 소나무/ 높은 하늘 쓸어내고 험준한 산봉을 찍어 누를 듯~/ 한겨울 눈서리에도 까닭 없이 지내노라’ 소나무가 가진 장쾌한 기운이 그대로 살아있는 느낌이다. ‘추위가 온 뒤에 그 푸르름을 더한다’는 소나무는 예로부터 나무 중에 으뜸으로 여겼다. 소나무는 한자로 송(松)이다. 흥미로운 일화가 전해져 온다.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한 직후 군대를 이끌고 산길을 가다가 갑자기 소나기를 만났다. 진시황은 엉겁결에 주변에 있는 큰 나무 아래에서 비를 피했다. 비가 그친 후 나무를 자세히 쳐다보니 마치 용틀임하는 자세였다. 진시황은 소낙비를 가려준 고마움으로 공(公)이라는 벼슬을 내렸다. 그래서 나무 목(木)에 공(公)이 더해져 송(松)이 됐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벼슬을 받은 소나무는 ‘정이품송’으로 속리산에 있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부분 소나무를 좋아한다. 산야 어디를 가든 만날 수 있는 것이 소나무이기도 하고 풍광이 뛰어난 곳에는 항상 소나무가 보란 듯이 의연하게 고고한 자태로 뽐을 내고 있다. 소나무를 예로부터 정절과 기개의 표상으로 삼아왔다. 조선시대 사대부들의 주고받는 ‘시놀음’에 단골 소재로 등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어디 시뿐일까. 추사 김정희 ‘세한도’에 있는 소나무는 말 그대로 지조와 의리의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다. 창원(蒼園) 이영복(76) 화백은 40년 동안 전국의 고송과 노송을 찾아다니며 현장 스케치를 하고 그 기상과 기품을 오롯이 화폭에 담아와 우리나라의 대표적 ‘소나무 화가’로 알려져 있다. 그의 호 ‘창원’은 1970년대 초 이당 김은호 화백이 부채에 잉어 그림을 그려주면서 지어준 것이다. 그는 단순히 노송을 찾는 기행이 아니라 오랜 벗이나 스승을 찾아 떠나는 순례와 같은 여정을 통해 소나무와 교감을 이루어낸다는 점에서 쉽게 범접할 수 없는 경지의 화풍을 일구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소나무를 즐겨 그리는 화가들이 적지 않은 현실에서 철저히 사생에 의한 ‘이 화백의 소나무’라는 점에서 독보적이다. 그는 작화(作畵)에 있어서 사실적 묘사보다는 그때그때 의취(意趣)와 의경(意境)에 따라 심상의 표현에 중점을 두는 것이 그만의 독특한 화풍이다. 미술평론가 오광수는 “그의 그림에서 리얼리티가 높은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단순히 그렸다기보다 화면에서 살아 걸어나오고 있는 모습을 확인하게 된다”고 말한다. 이렇듯 뻗고 휘어지는 필법의 묘를 스스로 취하고, 자연과의 합일을 통해 소나무를 되살리는 구체적 실천을 일관되게 추구해왔다. 지금까지 13회 개인전, 그리고 수많은 단체전과 특별전을 통해 이를 입증했다. 특히 그는 1955년 중학교 3학년 때 제4회 국전에서 ‘홍성교외’라는 작품으로 입선, 당시 ‘천재 화가’라는 말을 들으며 화단을 깜짝 놀라게 했다. 이때 세운 국전 최연소 입선의 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다. 지난달 25일 오전 서울 종로구 필운동에 있는 작업실을 찾았다. 입구에는 부인 염지윤씨가 운영하는 작은 공방이 자리하고 있었다. 작업실로 들어서자 ‘쌍룡송’ 그림이 맨 먼저 눈에 들어온다. 크기가 500호(400×190㎝)나 됐으며 한 소나무에서 두 마리의 용이 서로 엉켜 포효하는 위용에 저절로 압도된다. 20년 전 경북 영주시 순흥면에 있는 소수서원 주변 노송군락지에 갔다가 쌍룡송을 발견하고 감동을 받아 그림을 그리게 됐다. 또 하나 눈길을 끄는 것은 ‘우둔하고 바보스러우나/ 격조 높은 운필(運筆)을/ 담대하게’라는 글귀였다. 구부러지고 휘어짐이 자유로워 마치 운필의 묘미를 창출해내는 이 화백의 ‘붓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소나무와 관련된 한시 100여편을 따로 정리를 해놓았으며 틈이 날 때마다 한 편씩 꺼내 다시 읽어 보며 되새기곤 한다. 그중 ‘오직 법도를 엄격히 지킨 뒤에라야만 초신진변(超神盡變)하는 것이니 유법(有法)의 극이 무법(無法)으로 돌아가는 것이다’라는 추사의 글을 좋아한다. 무법으로 돌아간다는 뜻은 이미 있어온 많은 법들을 부단히 연마하면 새로운 법이 생긴다는 뜻이라고 풀이한다. 가끔 여러 단체에서 초청을 받아 강연을 할 때 이 같은 내용도 함께 설파한다. “저에게 소나무는 어떤 가르침을 주는 스승이자 오랜 벗이기도 합니다. 충주 단호사에 있는 적룡송을 스승으로 여깁니다. 500여년이 된 소나무인데 노송이 갖고 있는 직선과 곡선이 잘 어우러지는 아주 훌륭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작년 개인전 때 ‘단호사 적룡송 서설’이라는 이름으로 첫선을 보였습니다. 1년에 한 번 꼭 스승을 만나러 단호사에 가지요.” 단호사 적룡송 같은 웅험한 노송은 그림이 커야 제대로 살아나기 때문에 작심하고 600호(420×200㎝) 크기의 대작을 그리게 됐다고 설명한다. 이는 그의 대표작이기도 하다. 어떻게 해서 소나무와 인연을 맺었을까. 그는 충남 홍성군 홍북면 중계리에서 태어나 자랐다. 아버지는 같은 마을 사는 고암 이응로 화백과 절친한 친구사이로 지냈다. 초등학교 때부터 그림을 좋아했던 그는 마을이 월산과 용봉산 사이에 있어 자연스럽게 산을 배경으로 그림을 자주 그리게 됐다. 그러던 중학교 1학년 때 학원사가 주최하는 전국 중고미술대회에서 장려상을 받았다. 중3 때에는 학교 교사와 주위의 권유로 국전에 입선했고 화가의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홍익대 미술대학에 진학하게 됐다. 대학 1학년 때 그는 잠시 이응로 선생의 원효로 집에서 유숙을 하게 된다. “그때가 1958년인가 그래요. 고암 선생이 후암동에 살다가 원효로 집으로 이사했지요. 고암 선생은 새벽에 일어나 대청에 앉아 늘 그림을 그렸습니다. 조금이라도 마음에 안 들면 그림을 다 찢어버리곤 했는데 그 광경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안타깝게도 고암 선생이 동백림 사건에 연루되는 바람에 더 이상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는 대학 재학 때 우리나라 화단의 큰 인물들을 차례로 만나게 된다. 고암에 이어 대학 3학년 때에는 이당 김은호와 함께 한국 동양화의 토대를 이룬 청전 이상범을 학부 담임교수로, 4학년 때에는 운보 김기창 화백을 지도교수로 모시게 된다. 졸업 후에는 이당을 좋아하는 모임인 ‘후소회’의 총무를 맡아 이당과도 자연스럽게 친분을 맺는다. 당시 ‘후소회’ 회장은 운보였다. 2001년 운보가 세상을 떠나자 운보를 사랑하는 모임인 ‘운사회’를 결성하는 일에 앞장서게 된다. 지금은 ‘운사회’의 명예회장을 맡고 있다. “운보 선생은 현장 수업을 많이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전통에만 얽매이지 말고 전통과 현대를 잘 조화있게 하라’고 말씀하셨지요. 제 그림에 큰 영향을 주신 분이 바로 운보 선생입니다.” 대학 졸업 후 그는 홍성 주변의 풍경, 억새 등 산수화를 주로 그렸다. 또 산수화 속에는 소나무가 들어가야 제맛이 난다는 것을 알고 산수에 소나무 그림을 그려넣었다. 어릴 적 왕솔밭에 황새가 날아오는 모습도 그렸다. 그러다가 소나무가 가지고 있는 의연함에 새삼 느낌이 꽂혀 본격적으로 소나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전국의 고송과 노송이 있다는 곳을 찾아다니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그럴듯한 노송을 찾게 되면 2~3일 민박하면서 스케치를 하곤 했다. 아침과 낮, 그리고 저녁 때 바라보는 노송의 느낌을 담아내기 위해서였다. 요즘 같으면 사진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 화백은 철저히 현장 위주로 노송과 교감을 했다. 이 같은 사생첩은 스케치북으로 수십권이나 된다. “소나무의 기상을 표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자칫 현대적으로 치우치다 보면 고절함과 기상을 잃어버릴 수가 있습니다. 소나무는 우연히 가늠하는 신묘한 몸체의 변화에 있습니다. 저는 사생을 통한 노송과 고송의 재구성에 역점을 두고 있지요. 복잡한 것보다 사유하는 철학적 소나무, 간결함과 고고함이 있는 소나무를 표현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늙어가면서 추하게 보이지만 소나무는 그 격조가 더욱 깊어집니다.” 이 화백은 사생을 전제로 하면서 온유하고 담백함을 일관되게 표출해왔다. 결국 자기만의 소나무를 창출해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지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대표적 소나무 작가로 꼽힌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작화 일기에 나오는 대목이다. ‘나는 오늘도 선현들께서 소나무를 의인화한 까닭을 생각하며 붓을 든다. 시도 때도 없이 내리는 빗줄기에도 노송은 오늘도 의연함을 잃지 않고 있다.’ 앞으로 변함없는 붓의 여정을 말해주는 듯하다. 선임기자 km@seoul.co.kr ■이영복 화백은 1938년 충남 홍성에서 태어났다. 홍성고를 나와 홍익대 미술대에서 동양화를 전공했다. 1955년 16살 때 국전에 최연소로 입선했다. 대학 때는 고암 이응로, 청전 이상범, 운보 김기창, 이당 김은호 등 당대를 풍미했던 화가들과 인연을 맺는다. 졸업 후에는 산수화를 그리다가 1974년부터 소나무 그림에만 몰두했다. 동아미술제 심사위원(1992·1998년), 서울 미술대전 추진위원(1998년), 대한민국 미술대전 심사위원 한국화 분과위원장(2001년), 대한민국 미술대전 심사위원 및 운영위원(2001·2008년), 남농미술대전 심사위원(2011년) 등을 역임했다. 주요 초대전으로는 서울신문사 기획 동서양화(1986년), 한국현대미술전 국립현대미술관(1987~1992년), 한국방송공사 특별기획 KBS-TV미술관 방영작가전(1989년), 예술의전당 전관개관기념(1993년), 서울정도600주년기념 서울국제현대미술제(1994년) 등이 있으며 13회 개인전과 수십 차례 단체전에 참여했다. 그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자운/음양), 영남대학교 박물관(반구대), 타이베이 화강박물관(부귀도), 서울시립박물관(알터), 크리스찬 아카데미하우스(도봉영산) LG인력개발원(환희) 등에 소장돼 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고문, 운사회 고문, 대한민국미술대전 초대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 [씨줄날줄] 영화 ‘명량’ & 이순신 열풍/문소영 논설위원

    “여러 장수를 불러 거듭 전투 작전 지시를 명확히 하고 닻을 올려 바다에 나가니, 적선 133척이 우리 배를 에워쌌다. 지휘선이 홀로 적선 속으로 들어가 포탄과 화살을 비바람같이 쏘아 대지만 아군이 합세하지 않아 장차 일을 헤아릴 수 없었다. 배 위 군사들의 얼굴빛이 질려 있었다.” 이순신은 1597년 9월 16일 전남 울돌목(鳴梁)에서 왜적 함대 330척에 맞서 싸우던 일을 난중일기에 이리 적어놓았다. 개봉 7일 만인 5일 오전 600만명을 돌파해 한국 영화사에 신기록을 쓰는 영화 ‘명량’은 이를 과장해 더 절박하게 그렸다. 적선 4척에 포위돼 백병전이 벌어질 위기처럼 말이다. 역사적 사실은 이순신이 탄 대장선을 왜적선이 멀찌감치 에워쌌고, 영화처럼 적선이 개미처럼 달라붙은 배는 뒤늦게 전투에 뛰어든 거제 현령 안위의 배였다. 이순신은 천자총통과 지자총통 등을 “마구, 또는 빗발치듯 쏘아대” 달라붙은 2척을 섬멸했고, 적선 30척을 부쉈다. 이순신도 ‘13대330’의 해전을 “매우 천행이다”고 기록했다. 자신을 고문하고 죽이려 했던 왕에게 이순신은 왜 군신의 의리를 지키며 전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일까? 영화에서 이순신은 이렇게 답변했다. “장수 된 자의 의리는 충을 좇아야 하고, 충은 백성을 향해야 한다”라고. 이어 “백성이 있어야 나라가 있고, 나라가 있어야 임금이 있는 법이지”라고 덧붙였다. 이는 조선의 설계자 정도전이 좋아했던 맹자에 나오는 구절과 비슷하다. 선조는 1597년 7월 칠천량 해전에서 대패한 뒤 그해 8월 백의종군 중이던 이순신을 다시 삼도수군통제사에 임명하며, “지난번 그대의 지위를 바꿔 오늘 같은 패전의 치욕을 당했으니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라고 변명했다. 영화 ‘명량’에서 이순신은 절체절명의 순간에 핑계나 변명 없이 불신하는 부하들을 다독여 전투에서 솔선수범하는 강인한 리더십을 보였다. 수백척의 배와 2만여명의 군사를 잃었지만, 이순신은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습니다”라며 불굴의 의지를 보였다. 적과 나의 상태를 정확하게 파악해 전술을 구사하는 용맹한 태도다. 최근 선거 참패 후 ‘강남 4구’ 같은 자본주의적 욕망에 유권자가 넘어갔다며 맹랑하게 변명하는 야당과 비교된다. 정실인사를 강직하게 반대하다 좌천했고, 과거급제 후 백의종군을 포함해 15년을 함경도 등 변방에서 근무했지만, 집안사람이자 이조판서 이율곡을 만나 인사청탁할 기회도 거부했다. 다행히 46살에 전라좌도 수군절도사가 돼 임진왜란에서 나라를 구했다. 리더는 황무지에서 희망을 그려내는 사람이다. 이순신은 명량해전에서 그것을 보여주었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박봄 디스 케미에 폭풍 분노, 박봄 코디-벤볼러 “은퇴하고 싶냐” 무서운 협박

    박봄 디스 케미에 폭풍 분노, 박봄 코디-벤볼러 “은퇴하고 싶냐” 무서운 협박

    ‘박봄 디스 케미에, 박봄 코디, 벤볼러’ 박봄 코디와 벤볼러가 박봄 디스 케미에 분노를 표했다. 박봄 코디는 4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케미의 포털사이트 프로필을 캡처한 사진과 함께 “요즘은 대나소나 힙합 한답시고 랩으로 디스한다고 XX을 하네. 주민등록증에 잉크도 안 마른 것이 어디 선배한테 반말 지껄이고”라며 박봄 디스 케미에 강한 비난을 보냈다. 이어 박봄 코디는 “간땡이가 붓다 못해 배 밖으로 튀어 나왔구나 데뷔하자마자 은퇴하고 싶어서 작정한 애야. 디스를 하려거든 얼굴 마주치고 밥 먹을 수 있는 정도는 돼야 하는 거란다”라고 덧붙였다. 미국 힙합계 셀레브리티로 알려진 ‘주얼리’ 회사 대표 벤볼러도 박봄 디스 케미에 비난하고 나섰다. 벤볼러는 투애니원, 빅뱅 등 YG엔터테인먼트 소속 가수들과 친분이 있다. 벤볼러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케미 그 애가 뭔데 확 불 싸질러 버릴까. 네가 그런 소리를 할 만큼 머리가 컸으면 맞아도 될 소리를 했다는 거 알겠네. 우리 팸한테 까불지 마”라는 과격한 글을 남겼다. 박봄 코디와 벤볼러가 분노한 이유는 앞서 지난 1일 힙합 걸그룹 에이코어 멤버 케미가 투애니원 멤버 박봄을 디스하는 내용의 곡 ‘두 더 라이트 씽(Do The Right Thing)’을 공개했기 때문. 박봄을 ‘밀수돌’로 지칭한 케미의 곡 가사에는 “젤리박스에 약이 빠졌어? 사라진 니 4정 누가 봐줬어? 검찰이 언제부터 이렇게 착해빠졌어?” “너는 좋겠다 팬들이 커버 쳐줘서. 부러워 대표가 소설 써줘서” “빽 좋은 회사 뒤에 숨어 있다가 또 잠잠해지면 나오겠지”라는 가사로 YG엔터테인먼트와 박봄을 디스했다. 케미 디스곡의 주인공인 박봄은 지난 2010년 필로폰류 암페타민을 젤리류로 위장해 밀수입하다가 적발됐으나 입건유예로 처리됐다. 박봄 마약사건은 이후 ‘봐주기 수사’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네티즌들은 “박봄 디스 케미에 화난 친구들, 무섭다”, “박봄 코디, 벤볼러, 박봄 디스 케미에 화날 만해”, “박봄 디스 제대로던데. 케미 용기도 대단하다”, “박봄 디스 케미에 박봄 코디, 벤볼러, 협박 날리네. 케미 떨고 있을 듯”, “박봄 코디 정말 열 받았네”, “박봄 코디의 의리” 등의 반응을 보였다. 사진 = 벤볼러 트위터, 박봄 코디 인스타그램(박봄 디스 케미에, 박봄 디스곡, 박봄 코디) 연예팀 seoule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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