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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美 미얀마 제재 일부 해제...민주화 위협하는 군부는 압박

    미국이 반세기 만에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룬 미얀마에 대해 경제제재의 일부를 해제했다. 아웅산 수치가 주도하는 새 정부의 경제발전을 촉진하기 위해 국영기업과 은행에 대한 제재를 푼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 재무부는 17일(현지시간) 미얀마 국영기업 7곳과 국영은행 3곳을 제재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재무부는 또 미얀마 금융기관과 자국 기업 또는 민간인의 금융거래도 일반제재 목록에서 해제하기로 했다. 이는 미국 기업의 현지 투자와 대(對) 미얀마 무역을 촉진해 경제발전을 유도하려는 조치다. 이번 조치로 업무나 관광 목적으로 미얀마에 거주하는 미국인의 금전 거래도 훨씬 쉬워졌다. 미국은 약 30년간 미얀마에 대한 경제제재를 유지해왔다. 다만 2011년 출범한 군부 출신 테인 세인 전 대통령 정부가 개혁·개방에 나서자 이듬해 일부 제재를 완화했다. 벤 로즈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부보좌관은 “제재 완화를 통해 독재에서 민주주의로 전환하면 보상이 있다는 점을 보여주려 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애덤 수빈 미국 재무부 테러·금융정보담당 차관대행도 “이번 조치는 제재 대상 이외의 업종에서 미얀마와의 교역을 촉진하고, 미얀마인과 미얀마 정부가 더 포용적이고 번영하는 미래를 맞도록 돕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미국은 상하원 의석의 4분의 1과 내무, 국방, 국경경비 등 주요부처를 장악한 채 미얀마 민주화의 잠재적 위협 요인이 되고 있는 군부에 대한 압박 수위는 오히려 높였다. 미 재무부는 미얀마 군부와 연계된 것으로 알려진 인물인 스티븐 로와 그가 운영하는 ‘아시아 월드’가 50% 이상 지분을 보유한 6개 기업을 특별지정제재대상(SDN)에 추가했다. 미국인은 제재 대상 기업이나 개인과 금융거래를 할 수 없다. 스티븐 로는 미얀마 독재자 네 윈의 묵인하에 아편과 헤로인 밀매로 부를 축적한 로 싱 한(2013년 사망)의 아들이다. 로 싱 한과 스티븐 로가 1992년 설립한 아시아 월드는 군부 통치 시절 항만, 건설 등 주요 관급 인프라 공사를 따내면서 미얀마 최대 재벌로 성장했다. 이런 아시아 월드 관련 기업에 대한 추가 제재에 대해 미 재무부는 “(미얀마의) 추가적인 민주개혁을 촉진하고 군부와 일부 개인 또는 단체에 대한 압력을 유지하기 위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미얀마에서의 정치개혁을 가로막거나 인권을 침해하는 행위뿐 아니라 ‘북한과의 군사적 거래 촉진’ 역시 미얀마에 대한 제재를 유지하는 근거라고 미국 재무부는 강조했다. 재무부는 “미국 정부는 필요한 제재를 유지하면서도, 미얀마에서의 정치개혁과 광범위한 경제 성장에 대해서는 계속 지지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미국의 이번 경제제재 일부 해제에 대해 미얀마 정부는 아직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군부 통치 시절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경제제재 조치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온 것으로 알려진 수치는 이번 조치 이전에도 제재 해제에 대한 언급을 피해왔다. 일각에서는 미얀마 문민정부의 최고 실권자지만 군부의 견제를 받는 수치가 의도적으로 미국의 제재를 군부 압박 수단으로 활용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임진강 군남댐 수위 늘어...北 ‘수공’ 의도?

    지난 16일 밤부터 17일 새벽까지 경기도 연천군 임진강 군남홍수조절댐 상류의 수위가 급격히 늘어난 사실이 드러났다. 이에따라 북한이 댐의 물을 의도적으로 방류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한국수자원공사 임진강 건설단은 “지난 15∼16일 북한지역에 100㎜가량의 비가 오며 수위가 높아질 것으로 예상했는데 16일 밤부터 17일 새벽까지 수위가 급격히 높아졌다”고 18일 밝혔다. 군남댐에서 남쪽으로 10㎞ 떨어진 필승교 횡산수위국 수위는 평소 30∼40㎝를 유지했다. 하지만 16일 오후부터 서서히 높아져 오후 10시쯤 1.0m를 돌파한 뒤 17일 오전 1시 20분께 1.97m로 정점을 찍었다. 이후 수위는 점차 낮아졌다. 군남댐 수위도 16일 오전 7시 31.26m에서 오후 9시 31.75m, 오후 10시 32.03m, 오후 11시 32.30m로 높아진 뒤 17일 오전 1시에서 2시 사이 32.71m까지 올라갔다. 이에 따라 임진강 건설단은 17일 오전 1시께부터 수문을 열고 초당 500t의 물을 방류했다. 앞서 연천군청과 군부대, 소방서, 연천 어촌계 등 유관기관에 통보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도록 했다. 다만 인명피해는 없었고 파주시와 연천군에 신고된 어민 피해는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정부 관계자는 “군남댐 상류 임진강 수위가 급격히 증가한 것은 사실이지만 북한이 댐을 방류했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면서 “물이 급격히 불어나 유관기관 통보 등 필요한 조치를 했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건축가 황두진의 무지개떡 건축을 찾아서] 1층은 상점·2층은 주거… ‘무지개떡 건축’의 탄생

    [건축가 황두진의 무지개떡 건축을 찾아서] 1층은 상점·2층은 주거… ‘무지개떡 건축’의 탄생

    좋은 도시란 무엇인가? 여기에 대해 나는 ‘무지개떡 건축’이 많아야 좋은 도시라고 답하고 싶다. ‘무지개떡 건축’이란 ‘중층 고밀도 주상복합 건축’을 다르게 표현한 것으로, 일단 ‘상가주택’으로 이해해도 큰 문제는 없다. 이런 유형의 건축은 가로를 활성화하여 걷고 싶은 거리를 만드는 데 기여한다. 그리고 일터와 집이 서로 가까이 있다는 의미인 직주근접(職住近接)을 통해 출퇴근에 걸리는 시간을 줄여준다. 나아가 옥상에 마당을 조성하면 도시 안에서도 경관을 즐기며 야외생활을 할 수 있게 해 준다. 도시건축의 범세계적 기본 유형인 것이 우연이 아니다. 흥미롭게도 한국 도시에서 이러한 유형은 오히려 예외에 속한다. 대부분의 건물들은 단일 용도를 갖는다. 주거면 주거, 상업이면 상업, 업무면 업무, 이런 식이다. 그 결과 한국 도시의 복합 지수는 매우 낮으며 이것은 다음 세대에게 부담을 줄 것이다. 이제 본격적인 고민을 할 시점이 되었다. 그간 흥미로운 시도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도시의 미래에 대한 귀중한 교훈을 줄 선례들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한국 ‘무지개떡 건축’의 사례들을 발굴하고 소개하고자 한다. 관련 있는 해외 사례들도 등장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지난해 말에 펴낸 ‘무지개떡 건축, 회색 도시의 미래’에서 일부 소개했던 내용을 확장하고 심화하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보행자 중심의 도시, 직주근접, 옥상의 재발견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염두에 두고 이 연재를 접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도시의 미래를 함께 고민하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 # 한국 건축史 최대 실험, 그 시작은 ‘가게’였다 한국 최초의 무지개떡 건축은 무엇이었을까? 이 간단한 질문에 자신 있게 대답할 수는 없다. 당장 조선 시대만 해도 기록이나 유구가 부족한 형편이며, 시간을 거슬러 고려나 삼국시대로 올라가면 상상력으로 채워 넣어야 하는 부분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정도 상업이 발달한 지역이라면 상점과 주거가 연결된 유형이 있었을 것이라는 정도는 추측할 수 있다. 즉, 삶의 절실한 필요에 의해서 사는 곳이 곧 일터가 되는 그런 상황 말이다. ‘가내수공업’이라는 단어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집안에 생산을 위한 공간이나 간단한 시설이 들어 있는 경우도 생겼다. 만들어진 물건은 장터에 나가 팔기도 했지만 거리에 면한 집의 한 구석에서 팔기도 했을 텐데, 이것이 가게라는 단어의 한 기원이 되었다. 이런 점에서 주거가 딸린 가게는 가히 무지개떡 건축의 시원적 사례라고 할 만하다. 사실상 이러한 ‘상가주택 1.0’ 유형은 지금도 우리 주변에서 종종 발견된다. 특히 여러 도시의 구도심에 가면 상점이나 식당의 안쪽에 주인의 가족들이 기거하고 있는 경우를 볼 수 있다. 그만큼 역사가 오래고 생명력이 질긴 유형인 셈이다. 동네가 완전히 재개발된다면 모를까, 이런 집들은 의외로 세상의 변화에도 잘 버틴다. 박지원의 ‘양반전’, 김주영의 ‘객주’ 등 역사소설에서 등장하는 객주의 집, 즉 객주가(家) 또한 이런 관점에서 볼 수 있다. 객주란 일종의 브로커인데 매매를 주선한 수수료를 받을 뿐 아니라 상인에 대한 숙박업, 화물의 보관 및 운반, 심지어 기본적인 금융 서비스도 제공했던 존재였다. 즉 객주가란 당시의 기준으로는 가히 복합건축의 결정판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은 음식점으로 사용하는 인천 중구 소재 월아천 등이 현존하는 객주가의 하나며, 19세기 말 기산 김준근의 풍속화인 ‘넉넉한 객주’는 당시의 객주가의 모습을 생생히 전하고 있다. 그러나 대체로 상업을 천하게 여기는 분위기에서 그 영향력은 제한적이었다. 그래서 중세 유럽의 상인주택이나 일본의 마치야(町屋, 혹은 町家) 등 상업이 발달한 나라들에서 흔히 보는 본격적인 다층 상가주택은 아직 찾아볼 수 없었다. 기원전 세워진 로마의 배후 도시인 오스티아의 경우 1층은 상가고 그 위에 주거가 있는 대규모의 상가주택이 보편적인 유형이었는데, 이러한 사례에 비하면 한국은 세계사적 관점에서 상가주택의 발전이 상당히 늦었다. 흥미로운 것은 규모나 형태는 다르더라도 이러한 복합적인 삶의 방식이 서서히 되돌아오고 있다는 것이다. 당장 우리 주변에서 흔히 듣는 ‘소호’가 그 대표적인 예다. 특히 컴퓨터나 모바일 기기 등의 보급이 이런 현상을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요즘 사람들은 일터에서만 일하지 않는다. 주거는 다시 생산과 작업의 공간으로서의 기능을 서서히 회복 중이다. 또한 이런 현상을 바라보는 시각도 달라지고 있다. 상업 활동이 보편화되고 도시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이런 현상들은 오히려 도시적 삶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여진다. 생존의 절박한 필요에서 시작된 직주근접이 오히려 도시적 삶의 매력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 2층 한옥, 주거·생산의 공존 ‘소호’로 진화하다 서울 서촌의 옥인동. 지금은 주거와 상업이 혼재된 지역으로 서울의 새로운 관광지가 되었지만 한때 이곳은 장동 김씨와 파평 윤씨라는, 당대 세도가들의 세거지였다. 겸재 정선이 이곳에 살면서 주변 풍광을 그렸을 정도로 도성 안에서도 유난히 아름다운 곳이었다. 옥인동이 그 남쪽의 누상동 및 누하동과 이루는 경계는 계곡을 따라 형성되어 있고 당연히 이를 따라 개울이 흐른다. 지금은 복개되어 그 존재를 알 수 없지만 서울시는 청계천처럼 언젠가 이 물길도 다시 햇빛을 보게 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갖고 있기도 하다. 인왕산 중턱의 수성동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이 개울이 통인시장 서쪽 입구 근처에서 동남쪽으로 방향을 선회하는 그 근처에 작은 2층 한옥 하나가 서 있다(자세히 보면 두 채지만 한 채는 심하게 변형되어 한옥으로 보이지 않는다). 1층에는 옷과 모자 등을 파는 패션 상점들이 있고 그 오른쪽에 작은 쪽문이 하나 있다. 궁금해서 물어보니 주인이 2층에 기거한다고 한다. 별것 아닌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여기에는 흥미로운 사실 두 가지가 담겨 있다. 우선 2층 한옥의 존재 그 자체다. 2층 한옥은 개화기에 등장한 새로운 유형의 한옥으로서 서울의 경우 20세기 초반에 주로 운종가, 즉 현재의 종로 등 기존의 상업 가로변에 세워진 것이었다. 그러다가 서서히 대상지의 범위를 넓히면서 급기야 도심에서 비교적 떨어져 있는 옥인동 계곡에까지 2층 한옥 상가가 들어선 것이다. 이 건물의 건립 연대가 1940년대라고 하므로 이 과정에 수십년이 걸린 셈이다. 보문동, 삼선교, 북아현동 등 사대문 밖 지역에도 수많은 2층 한옥 상가가 들어섰다. 2층 한옥 상가의 출현은 관점에 따라서는 한국 건축사 최대의 사건 중 하나로 봐도 좋을 듯하다. 그 이전에도 육안상 다층으로 보이는 건물들이 있었으나 주로 궁궐이나 사찰 등 일상적인 용도가 아니었고, 게다가 문루를 제외하고는 내부 공간은 단층으로 구성된 것이 대부분이었다(물론 덕수궁 석어당과 같은 예외는 있다). 일부 민가 건축에 2층으로 볼 수 있는 구조가 있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부분적인 경우이기 때문에 보통 중층(重層) 구조라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정말로 본격적인 2층 건물이 출현한 것이니 그 의미가 자못 크다. 또 다른 의미는 이것이야말로 의도적으로 계획된 최초의 본격적인 상가건축 유형이라는 것이다(위에서 이야기한 주거가 딸린 가게나 객주가 같은 것은 주거 건축에 있어서의 근본적인 변화라고 보기는 어렵다). 다만 가로에 면한 2층 부분은 위아래 모두 상가로 사용되었고, 주거, 즉 살림집 부분은 그 뒤에 따로 전형적인 단층으로 딸려 있었던 점이 흥미롭다. 즉 주거와 상업이 공존하되, 수직적인 방식이 아니라 수평적인 방식이었다. 그런데 이 옥인동 2층 한옥 상가의 또 다른 흥미로운 사실은 2층에 주거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건립 당시는 그렇지 않았을 것이고 후대의 개·보수에 의한 결과일 것이다. 그렇다면 왜 당초 2층 한옥의 2층에는 주거가 들어가지 않았던 것일까? 여기에는 기술적인 이유가 있었다. 바로 온돌 때문이었다. 주거가 들어가려면 온돌이 필수적인데 당시 기술로는 축열층이 수십㎝에 이르는 재래식 구들을 목구조의 2층에 올려놓을 수 없었다. 물론 이후 기술이 발달하여 현재와 같은 온수 혹은 전기 코일 방식 등이 개발되면서 드디어 주거와 상업은 처음으로 수직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되었다. 옥인동 2층 한옥 상가는 이러한 진화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보여주고 있는 사례인 것이다. 이것은 정세건의 건양사에 의해서 주도된 주거용 도시 한옥의 대량 보급 및 진화에 필적하는, 한옥 근대화의 큰 흐름 중 하나다. 지금은 이런 기술이 보편화되어 은평 한옥마을 등 전국 곳곳에서 본격적인 2층 한옥의 시대가 다시 열리고 있다. # 유럽·日선 흔한 상가주택… 도시건축이 가야할 길 그러나 2층 한옥 상가와 1층 살림집의 조합이라는 유형은 곧 그 한계에 부딪히게 된다. 상업의 밀도가 높아지면 2층으로는 도저히 그 압력을 감당할 수가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복잡해지는 도심에서 주거와 상업이 수평적으로 공존하면 주거 공간의 질이 급격히 나빠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현상이 가장 잘 드러난 곳이 바로 인사동, 관훈동, 낙원동, 청진동 등 종로변의 구도심 일대다. 이 일대에 있었던 수많은 2층 한옥 상가는 지금 거의 다 사라지고 없다. 예외적으로 남아 있는 것들도 외관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변형되어 있다. 특히 한때 주거 및 상업이 혼재되어 있던 지역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상주인구가 대폭 감소되어 있다. 1990년대 말 학생들과 함께 이 지역을 조사한 경험이 있었는데 특이하게도 이발소, 상점 등 지역 거주민을 상대로 하는 상업 기능이 건물의 3, 4층에 올라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즉, 이미 상주인구가 상당히 감소했으나 그나마 일부는 남아 있던 상황이었으므로 상대적으로 임대비가 싼 상층부로 일반 도시 기능이 올라간 것이었다. 지금은 이마저도 거의 남아 있지 않으며 인사동 일대는 완전히 상업화되어 대낮의 활기와 한밤중의 적막함이 공존하는, 서울의 대표적인 도심 공동화 지역이 되었다. 한때 2층 한옥 상가에 인접하여 살림집으로 사용되던 부분은 살던 사람들이 떠난 이후 마당을 유리로 덮은 한정식 집이 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2층이라는 낮은 밀도가 갖는 절대적인 한계, 그리고 주거와 상업 기능의 수평적 공존이 갖는 한계 등을 동시에 보여주는 것이다. 역사에 가정이 없다고 하지만 만약 한국에 5층 정도 규모로 주거와 상업이 수직적으로 공존하는 건축의 유형이 오래전부터 있었다면, 현재 구도심의 풍경은 지금과는 사뭇 달랐을 것이다. 즉 한국은 근본적으로 밀도와 복합이란 측면에서 유럽과는 완전히 다른 상황에서 본격적인 경제 성장기를 맞이한 것이다. 이에 부응하는 새로운 건축 유형의 탄생은 전통적인 구법이나 개념으로는 도저히 기대할 수 없었다. 그것은 철과 유리, 그리고 콘크리트라는 신기술을 필요로 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아마도 한반도 최초였을, 전통적 방식을 응용한 다층 상가건축 실험은 지극히 제한적인 성공만을 거두고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갔다. (*2층 한옥 상가에 대한 부분은 문정기가 쓴 서울시립대학교의 석사 논문 참조.) ■ 건축가 황두진은 건축가 황두진은 건축 작업과 글쓰기를 병행하고 있으며 현대 건축가지만 한옥 작업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주요 작업으로는 ‘춘원당 한방병원 및 박물관’, ‘캐슬 오브 스카이워커스’, ‘원 앤 원 빌딩’, ‘무카스 파주 사옥’, ‘통인시장 아트 게이트’ 등이 있다. 저서로는 ‘당신의 서울은 어디입니까’, ‘건축가 김수근’, ‘한옥이 돌아왔다’ 등이 있고, 최근 ‘무지개떡 건축’을 펴냈다. 건축문화대상, 서울시건축상, 대한민국 공공디자인 대상, 유네스코 아시아 태평양 문화유산상 등을 수상했다.
  • [생활정책 Q&A] “컴퓨터 배경화면 음란물 지속 노출도 성희롱”

    [생활정책 Q&A] “컴퓨터 배경화면 음란물 지속 노출도 성희롱”

    고용노동부가 집계한 직장 내 성희롱 진정 사건 접수 건수는 2010년부터 2014년까지 854건에 달한다. 성희롱 진정 건수는 2010년 105건이었지만 2014년에는 267건으로 크게 늘었다. 남녀고용평등법 제2조 제2항은 사업주나 상급자, 동료가 직장 내 지위를 이용하거나 업무와 관련해 다른 근로자에게 성적 언행으로 성적 굴욕감 및 혐오감을 느끼게 하는 행위, 요구에 불응했을 때 고용상의 불이익을 주는 행위 등을 직장 내 성희롱으로 규정하고 있다. 16일 고용부에서 직장 내 성희롱의 구체적인 기준에 대해 알아봤다. Q. 직장 내 성희롱 행위는. A. 일반적으로 성희롱이라 하면 ‘육체적 성희롱’만 생각하지만 ‘언어적 성희롱’과 ‘시각적 성희롱’도 성희롱의 큰 범주에 해당합니다. 육체적 성희롱은 ▲입맞춤이나 포옹, 뒤에서 껴안기 등의 신체적 접촉 행위 ▲엉덩이 등 특정 신체 부위를 만지는 행위 ▲애무를 강요하는 행위가 일반적입니다. 언어적 성희롱은 ▲옷차림·신체·외모에 대한 성적인 비유나 평가 ▲성적 사실관계를 집요하게 묻는 행위 ▲성적인 내용의 정보를 의도적으로 유포하는 행위 ▲음란한 내용의 전화통화 등이 있습니다. ▲외설 사진과 그림, 낙서 등을 보여 주는 행위 ▲음란한 편지나 그림을 보내는 행위는 시각적 성희롱에 해당합니다. 컴퓨터 배경화면에 음란물을 지속적으로 노출하는 간접적인 행위도 동료가 계속 불쾌한 감정을 표현한다면 직장 내 성희롱이 될 수 있습니다. Q. 커피 타기를 강요하는 것은. A. 업무와 관계없이 성 역할에 기반한 언어나 행위를 강요하는 것은 남녀고용평등법상 반드시 시정돼야 할 성차별 행위이지만 직장 내 성희롱에 해당하지는 않습니다. ‘아줌마’, ‘할머니’ 등으로 부르는 행위, 청소나 잔심부름을 강요하는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상호 간의 우정을 기반으로 한 교제도 성희롱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Q. 직장 내 성희롱은 직장 안에서만 성립하나. A. 직장 내 성희롱이 반드시 직장 안에서만 이뤄지는 것은 아닙니다. 회식 자리, 차량 안 등 모든 자리에서 직장 내 지위를 이용하거나 업무와 관련성이 있으면 성립합니다. 주로 여성 근로자가 대상이지만 남성도 피해자가 될 수 있습니다. 정규직이 아닌 아르바이트, 파트타임, 협력업체 직원은 물론 모집·채용 과정에서의 성희롱도 포함됩니다. 특정인을 염두에 두지 않았거나 친밀감을 표현한 것이라고 해도 상대방이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끼면 성희롱이 적용됩니다. Q. 성희롱 행위자를 징계하지 않는다면. A. 고용부는 성희롱 가해자에 대해 징계 등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으면 사업주에게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합니다. 또 피해자의 고소나 진정을 이유로 인사상 불이익을 주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을 수 있습니다. 아울러 고객의 성적 요구에 불응한 것을 이유로 근로자를 해고하거나 불이익을 주면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받을 수 있습니다. 세종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닛산 배기가스 조작” 한국發 디젤 스캔들

    캐시카이, 질소산화물 20.8배 배출 과징금 3억 3000만원·814대 리콜 한국닛산 측 “조작 안 해” 혐의 부인 지난해 폭스바겐에 이어 일본 닛산 경유차에서도 배기가스 저감장치를 불법 조작한 사실이 확인됐다. 닛산 차량의 배기가스 조작이 밝혀진 것은 우리나라가 처음이다. 일본 미쓰비시 자동차의 연비 조작에 이어 닛산차가 배기가스 조작 파문에 휩싸이면서 최고 품질의 대명사로 불리던 일본차의 신뢰에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환경부는 지난해 12월부터 지난달까지 국내에서 판매된 유로6 인증 경유차 20개 차종에 대해 실도로 조건에서 질소산화물 배출 실태를 조사한 결과 한국닛산㈜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인 ‘캐시카이’가 배기가스 저감장치를 불법 조작하는 임의설정을 한 것으로 판단했다고 16일 밝혔다. 임의설정은 제작사가 일반적인 주행 조건에서 배기가스 저감장치의 성능이 저하되도록 의도적으로 관련 부품의 성능을 제어하는 것이다. 환경부는 캐시카이 차량 실험을 통해 실내외 모두 배기가스 재순환장치의 작동이 중단되는 현상을 확인했다. 배기가스 재순환장치는 배기가스 중 일부를 연소실로 재유입해 연소 온도를 낮춤으로써 질소산화물 배출량을 줄이는 장치로 2010년 이후 경유차에 주로 장착됐다. 닛산 캐시카이의 임의설정 방식은 폭스바겐과 달랐다. 폭스바겐은 운행 시간 및 핸들 조작 여부 등 복합적인 요소로 배기가스 재순환장치 작동이 중단됐지만 캐시카이는 엔진 흡기온도가 35도 이상이면 작동이 중단되도록 설정됐다. 이로 인해 실내 인증모드 시험에서 20분까지는 정상 작동했지만 30분을 넘겨 엔진과 공기 온도가 상승하자 저감장치 작동이 멈췄다. 인증모드 반복(4회)과 에어컨 가동(엔진 과부하), 휘발유차모드(속도변화)뿐 아니라 실외 도로 주행시험에서도 지난해 임의설정으로 판정된 폭스바겐 티구안과 비슷한 수준으로 질소산화물을 과다 배출했다. 환경부는 행정절차법에 따라 이날 제작·수입사인 한국닛산에 임의설정 위반을 사전 통지했으며, 의견을 수렴한 후 이달 중 과징금 3억 3000만원을 부과할 예정이다. 판매되지 않은 캐시카이 차량에는 판매정지명령을, 국내에서 판매된 814대에 대해서는 리콜명령을 내릴 방침이다. 한편 한국닛산 측은 이날 입장 자료를 통해 “어떠한 차량에도 불법적인 조작 및 임의설정 장치를 사용한 적이 없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세종 박승기 기자 skpark@seoul.co.kr
  •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 이야기] 강력한 왕권의 상징 관음보살? 민초엔 혁명 지도자 미륵보살!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 이야기] 강력한 왕권의 상징 관음보살? 민초엔 혁명 지도자 미륵보살!

    논산(山)이라는 땅이름이 어디서 비롯됐는지는 논란도 없지 않다. 백제시대에도 충남 논산 일대는 황등야산군(黃等也山郡)이라 불렀다. ‘삼국사기’에는 황산지원(黃山之原), 조선시대 인문지리서인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황산지야(黃山之野)라는 표현이 보인다. 곧 ‘황산벌’이다. 삼국통일전쟁의 마지막 격전지이자, 후삼국통일전쟁의 마지막 격전지다. 황산(黃山)이 노랗다는 뜻이 아니라 넓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는 해석이 가장 그럴듯하게 들린다. 놀뫼라는 순수한 우리말 땅이름을 한자식 표현으로 고치는 과정에서 ‘누를 황(黃)’을 훈차(訓借)한 결과 황산이 됐다는 것이다. 훈차란 한자의 뜻을 빌려 우리말을 표기하는 방법이다. 같은 원리로 논산은 놀뫼를 음차(音借)해서 만들어진 지명이라는 주장이다. 음차는 한자의 음을 빌려 우리말을 표기하는 방법이다. ●38년 걸쳐 만든 높이 18.2m 고려 석불 실제로 현지에서는 논산의 우리말 이름이 놀뫼라는 것을 거의 정설로 받아들인다. 놀뫼유치원에 놀뫼아파트, 놀뫼새마을금고, 놀뫼신문까지 폭넓게 쓰이고 있다. 놀뫼가 넓은 벌판을 뜻한다는 것은 논산에 가보면 깨닫게 된다. 그 넓은 벌판 여기저기에 백제장수 계백의 무덤과 백제군사박물관, 후백제왕 견훤의 무덤,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한 기념으로 세운 개태사가 흩어져 있다. 관촉사는 이 황산벌이 내려다보이는 충남 논산시 은진면 반야산 중턱에 있다. 관촉사라면 흔히 ‘은진미륵’이라고 불리는 돌부처로 더욱 유명한 절이다. 높이 18.2m의 고려시대 거대불상은 실제로는 관음보살이지만 오래전부터 미륵불로 굳게 믿어졌다. 지금도 석불을 배례하는 전각에는 ‘미륵전’이라는 현판이 내걸려 있으니 이 돌부처가 장차 세상을 구원할 미륵이라는 확신은 오늘날까지도 지속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미륵·관음 논쟁… 도상적으론 관음 특징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문화유산이라면 글자 그대로 문화적 유산이다. 하지만 그것이 꼭 문화적인 이유로 이뤄졌는지는 한번쯤 생각해 봐야 한다. 대표적인 조선시대 문화유산인 경복궁과 숭례문 같은 궁궐과 한양성곽의 각종 구조물은 문화적 이유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은진미륵 또한 종교적 이유에서만 조성된 것은 아니다. 고려 같은 불교국가에서 대형 불사(佛事)는 너무나도 당연히 뚜렷한 목적이 있는 정치 행위였다. 은진미륵은 그동안 불상의 존명(尊名)을 둘러싼 논란이 적지 않았다. 미륵보살이냐, 관음보살이냐 하는 논쟁이었다. 그런데 은진미륵은 미술사학자들이 잘 쓰는 표현대로 관음보살의 도상적 특징을 너무나도 선명하게 갖추고 있다. 지금은 보이지 않지만 이마에 아미타불의 모습인 화불(化佛)이 새겨졌고, 손에는 연꽃가지를 들고 있었다는 기록이 그것이다. 둘 다 관음보살을 나타내는 대표적 특징이다. 그럼에도 미륵이라는 전칭(傳稱)에도 적지 않게 미련을 두었다. 하기는 기도하는 민초들에게 미륵부처와 관음보살의 구분은 중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기원을 이루어 주는 존재라면 어떤 부처님이든 무슨 상관인가. ●후백제민 회유·경고… 민초는 변혁 기원 은진미륵은 고려 광종 19년(968) 조성을 시작해 목종 9년(1006) 완성했다. 광종은 잘 알려진 대로 과거제를 도입해 지방호족의 자제가 칼 대신 붓을 잡게 만든 인물이다. 중앙집권국가의 체제를 공고히 하는 과정에서 후백제와의 마지막 결전지에 거대 석불을 조성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과거 적국 및 변방의 주민들에게 위세를 보여 주면서 관음보살의 권능처럼 현세의 고통을 덜어 주겠다는 일종의 정치적 약속을 담은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렇듯 강력한 왕조에 ‘딴마음’을 먹지 말라는 경고의 의미도 담겨 있음은 물론이다. 그럼에도 당대는 물론 이후에도 줄곧 미륵으로 믿어진 것은 고려왕조의 정치적 회유가 먹혀들지 않았음을 보여 준다. 권력은 지역민에게 고통을 견디며 순응하라는 상징성을 담아 관음을 조성했지만, 역설적으로 민초는 그 관음조차 새로운 세상을 가져다 줄 혁명의 지도자로 믿었다는 뜻이다. 그러니 은진미륵이라고 부른 것은 무지에 따른 오류가 아니라 관음도 미륵으로 믿으며 의지하고 싶은 민초의 적극적 해석에 따른 의도적 오류로 보고 싶다. 글 사진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인간 안에 웅크린 惡의 속살 벗겨내고 싶었다”

    “인간 안에 웅크린 惡의 속살 벗겨내고 싶었다”

    충격적인 패륜범죄가 ‘모티브’ 이번엔 악인이 객체 아닌 주체 “불편한 이야기 타협 않고 쓸 것” 다음 작품은 ‘재난 판타지’될 듯 인물을 벼랑 끝까지 몰아세우는 압도적인 서사로 독자들을 사로잡아온 정유정(50) 작가. 그가 이번엔 제대로 된 적수를 만났다. 3년 만에 발표한 새 장편 ‘종의 기원’(은행나무) 얘기다. ‘내 심장을 쏴라’, ‘7년의 밤’, ‘28’ 등 내는 작품마다 독보적인 상상력을 부려온 그에게 가장 어려운 과제란 ‘자기 갱신’일 터. 누적 판매 80만부라는 독자들의 달뜬 기대에 부응하려면 밀도는 더 치밀하게, 설정은 더 극단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그렇게 태어난 주인공이 ‘유진’이다. 상위 1%의 사이코패스. 정신의학자들 사이에선 ‘프레데터’(포식자)라 불리는 순수 악인이다. 전작에서도 전례 없는 악인의 얼굴을 빚어냈던 작가는 이번에는 ‘그’라는 3인칭에서 ‘나’라는 1인칭으로 악인을 자기 안에 불러들이며 악의 객체에서 주체가 됐다. “악의 속살을 벗겨내기 위해서”였다. “사이코패스의 눈으로 세상을 보려 안간힘을 썼어요. 이야기를 세 차례나 부쉈다 다시 쓴 것도 그래서였죠. 모든 인간의 마음에는 남에게 절대 말할 수 없는 어두운 숲이 있어요. 그게 어떻게 발현되는지 알면 내면의 악, 타인의 악, 사회의 악에 대해 이해할 수 있겠다 싶었죠. ” 11일 만난 작가는 이번 주인공이 전작의 악인 캐릭터를 모두 뭉친 ‘인생 최고의 적’이라 했다. “못되고 치졸한 ‘내 심장을 쏴라’의 점박이, 남성적이고 섹시한 ‘7년의 밤’의 오영제, 악동이지만 버림받아 짠한 ‘28’의 박동휘 등 이들의 성정을 여러 겹으로 둘러싸고 있는 복합적인 캐릭터예요. 그러다 보니 인생 최고의 적이 된 거죠.” 작가의 머릿속에 주인공 유진이 착상된 것은 1994년 박한상 사건 때문이다. 미국 유학에서 도박 빚을 지고 돌아온 스물셋 청년이 부모를 수십 차례 칼로 찔러 죽인 패륜 범죄. 그 이해할 수 없는 인물이 ‘악(惡)에 집착하게 된 이유’가 됐다. 적수를 제대로 만들어내려 작가는 6개월간 취재와 공부에만 매달렸다. 유영철, 정남규, 조두순 등 국내외 대표 사이코패스에 대한 자료 수집부터 프로파일러 인터뷰, 범죄·진화심리학 책 읽기까지 섭렵했다. 유령도시 같은 소설의 배경인 군도는 초창기 인천 송도와 최근 토막 시신이 발견된 안산 시화호를 합쳐 구축한 신도시다. 스물여섯 청년 유진은 비릿한 피냄새에 잠을 깬다. 약을 끊으면 찾아드는 발작을 기다리던 새벽, 전화벨이 울린다. 어머니를 찾는 의형제 해진이다. 유진은 주방 앞 피웅덩이에 잠긴 어머니의 시신을 발견한다. 이야기는 어머니를 살해한 ‘누군가’를 밝히는 사흘을 치밀하게 진술한다. 과거가 거듭 교차하며 실마리를 하나씩 던진다. 정유정은 부사, 형용사, 접속사 등을 허락하지 않는 특유의 짧지만 정밀한 문장으로 극한의 결말까지 치닫는다. 평범한 소년이 어떻게 잔혹한 포식자가 되었는지, ‘나’의 핍진한 서술을 따라가다 보면 개연성이 부여되고 연민마저 느껴진다.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고 타인의 감정도 귀신같이 알지만 타인과 공감하지 못하는 사이코패스의 서술이란 점에서 자기 합리화, 거짓말도 가능해요. 그런 왜곡 서술이 가능하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1인칭을 선택한 거고, 그에게 연민을 느낀다면 제가 능숙하게 거짓말을 잘 한 것이겠죠.”(웃음) 최상급의 악인을 만들어낸 작가는 “더이상의 사이코패스는 없을 것”이라 했다. 차기작은 재난 판타지라는 귀띔과 함께. 하지만 인간 본성을 꿰뚫는 특유의 불편하지만 마력 있는 그의 이야기는 계속될 예정이다. “독자들이 원하는 이야기가 뭔지 알아요. 행복하고 감동적이고 편안한 이야기죠. 하지만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는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이야기예요. 그건 절대 타협이 안 돼요. 2~3년 외롭게 쓰려면 제 가슴이 먼저 뛰어야 하거든요.”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기업들 죽이기? 책임감 살리기! 불매의 사회학

    기업들 죽이기? 책임감 살리기! 불매의 사회학

    우리나라 성공 사례 적은 보이콧 불모지 기업 매출은 하락해도 분위기 쇄신 없어 최종 목표는 퇴출 넘은 사회적 책임 고양 최근 SNS 통한 네티즌 불매운동 줄이어 소비자 주권 발휘 가능한 제도 도입해야 가습기 살균제 사태로 살균제 제조사인 옥시레킷벤키저(옥시)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이 힘을 얻고 있다. 네티즌을 중심으로 시작된 불매운동은 지난달 25일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가족 모임, 환경 관련 등 37개 시민 단체가 불매운동에 본격적으로 나서면서 들불처럼 확산되고 있다. 옥시의 점유율이 높은 표백제와 제습제의 경우 이마트에서 지난달 18일부터 이달 3일까지 판매량이 각각 28.9%, 41.3% 급감했다. 소셜커머스 티몬의 경우 최근 2주간 옥시 제품군의 판매량이 직전 2주보다 24%가량 줄었다. 불매운동에 동참하는 단체도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옥시에 대한 불매운동이 성공했다고 속단하기 힘들다고 했다. 옥시의 진정성 있는 사과가 없는데다 특정 기업의 퇴출을 넘어 기업 전체의 사회적 책임을 한 단계 고양시키는 것이 불매운동의 궁극적인 목표이기 때문이다. ●‘아동착취 논란’ 나이키 전세계 공장 환경 개선 “나이키가 파키스탄 및 인도네시아 아동에게 시간당 15센트만 주고 하루 11시간의 노동을 시켰다.” 1996년 6월 미국 잡지 ‘라이프’에 파키스탄 어린이들이 열악한 공장에서 축구공을 열심히 꿰매는 한 장의 사진이 실리자 사회 운동가의 폭로가 이어졌다. 아이들이 붙이던 것은 나이키의 로고인 ‘Swoosh’(스우시). 임금은 당시 환율로 시간당 120원꼴이었다. 나이키는 “파키스탄의 하청업체가 아동에게 노동을 시켰기 때문에 본사는 책임이 없다”고 밝혔다. 나이키의 어이없는 해명은 공분을 불러일으켜 전 세계적으로 나이키 불매운동이 일어나는 계기가 됐다. 매출은 절반으로 줄었다. 결국 나이키는 전 세계 공장에 소방시설과 비상구 등 안전시설을 갖추는 작업환경 개선에 나섰다. 아동노동 금지 규칙을 선포했고 이런 정책은 20년간 지속되고 있다. 1999년 코카콜라는 인도 남부 케릴라주에 16만㎡ 규모의 공장을 세웠다. 많은 물이 공장용수로 사용되면서 마을의 우물이 메마르는 부작용이 발생했다. 인도 주정부는 공장 가동을 중단시켰고 환경단체도 비판에 나섰다. 인도 곳곳에서 코카콜라 공장이 지하수를 고갈시킨다는 폭로가 계속됐고 농사를 짓기 힘들어졌다는 증언도 이어졌다. ●코카콜라 인도 식수 고갈 논란에 ‘재충전’ 캠페인 2014년에는 인도 우타르프라데시 주정부가 바라나시시(市)에 있는 코카콜라 공장에 같은 이유로 폐쇄를 명령했다. 이런 사례는 코카콜라를 압박했고 업체 측은 2007년부터 물을 자연에 돌려주겠다는 내용의 ‘재충전’ 캠페인을 시행하고 있다. 2014년 룩셈부르크의 아마존 유럽 본사는 막대한 매출을 올리는 런던지사에서 발생한 이익을 세율이 낮은 룩셈부르크 본사에서 집계하는 ‘꼼수’로 세금을 회피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2014년 영국법인의 매출은 53억 파운드(약 8조 8700억원)였지만 영국에 낸 법인세는 매출의 0.2%(1190만 파운드·약 199억 2000만원)뿐이었다. 영국에서 불매운동이 시작됐고 1년 만인 2015년 5월 아마존 본사는 영국에서 번 이득에 대해 영국에 세금을 내기로 결정했다. ●“우리나라 냄비근성 탓에 불매운동 금방 식어” 국내 소비자단체들은 우리나라에서는 외국과 같이 사회적 변화를 일으킨 소위 ‘성공한 불매운동’ 사례가 거의 없다고 말한다. 심지어 ‘불매운동의 불모지’로 부르기도 한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냄비근성이라는 말과 흡사하게 우리나라의 불매운동은 확 끓어올랐다가 금방 식는다”고 원인을 설명했다. 불매운동으로 특정 기업의 매출이 급락하지만 사회적 운동으로 번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최근 대표적인 불매운동 사례는 남양유업 갑질논란이었다. 2013년 5월 남양유업 본사 영업사원이 대리점 점주에게 폭언을 하는 녹취록이 인터넷에 공개됐다. 남양유업이 대리점에게 ‘밀어내기’식 불공정 영업을 한 사실까지 알려졌다. 소비자뿐 아니라 전국 편의점 등 판매처가 동참하면서 2012년 428억원이었던 남양유업의 영업이익은 2013년 140억 적자로 바뀌었다. 하지만 같은 해 상반기 남양유업의 커피믹스 시장점유율은 전년보다 0.9% 포인트 상승한 13.4%를 기록했다. 프리미엄 대용량 커피는 1년 만에 22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용두사미’라는 비판이 나왔다. 그나마 지난해 말 국회에서 일명 남양유업 방지법(대리점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이 힘겹게 통과된 게 성과다. ●‘황제경영’ 롯데, 불매운동에도 매출액은 상승 지난해 7월 오너가(家) 형제의 경영권 분쟁으로 시끄러웠던 롯데그룹은 황제경영 및 불공정 경쟁 등의 문제가 지적되자 불매운동 대상이 됐다. 하지만 불매운동이 진행된 7월 26일부터 8월 1일까지 1주일간 롯데마트의 매출액은 직전 2주와 비교해 오히려 15% 정도 상승했다. 여름 휴가철과 맞물리면서 불매운동이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 것이다. 국내 불매운동의 ‘흑역사’에도 불구하고 옥시 불매운동은 다를 것이라는 예측이 많다. 옥시 불매운동의 주도적 역할을 맡은 소비자단체협의회 임은경 사무총장은 “기업의 비윤리적 행태로 인해 소비자의 건강에 직접적인 위협이 생겼다는 점에서 공감대가 강하다”고 전했다. 그는 “최종 목표는 옥시의 진정성 있는 사과와 대책 마련”이라며 “다국적기업의 횡포에 소비자가 합심해 제동을 거는 전례를 세우겠다”고 말했다. ●삼양라면·OB맥주 업계 1위서 밀려나기도 오래되긴 했지만 우리나라에서도 국민의 건강에 직접적 위협을 주는 경우 기업에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준 불매운동 사례가 있다. 1989년 11월 검찰은 “삼양라면이 공업용 우지(소고기 기름)를 원료로 사용한다”는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소비자의 외면으로 국내 1위 삼양라면의 시장 점유율은 40%에서 5%까지 떨어졌다. 1997년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업계 1위 자리를 재탈환하는 데는 실패했다. 경상북도 구미공업단지의 두산전자에서 1991년 3월과 4월 페놀이 낙동강으로 유출됐다. 의도적 방류는 아니었지만 두산그룹의 안일한 대처로 시민과 슈퍼마켓연합회가 두산그룹의 주력 상품인 OB맥주에 대해 보이콧을 선언했다. 수십 년간 1위 맥주기업이던 OB맥주는 1위 자리에서 밀려났다. 이번 옥시 불매운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한 확산이 심상치 않다. ‘부도덕한 기업을 몰아내자’는 네티즌의 게시물이 급속도로 늘어나는 한편 옥시 제품의 검색을 제한하는 ‘옥시 블로커’(oxy-blocker)라는 프로그램도 등장했다. 김준호 동서울대 전기정보제어공학과 교수는 구글맵과 연동해 옥시 제품을 판매하는 매장의 정보를 공유하는 웹사이트 ‘옥시 보이콧’(oxy-boycott)을 만들었다. 소셜커머스 위메프는 지난 3일 옥시 제품 판매를 전면 중지했으며 티몬과 쿠팡도 4일부터 판매를 중단했다. 롯데마트는 지난 4일부터 옥시 제품의 신규 발주를 중지했다. 이마트와 홈플러스도 판촉행사를 중단했다. 손상희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 “옥시가 표면적으로라도 5년 만에 사과를 하겠다고 나선 것이 이미 불매운동에 위기감을 느꼈다는 증거”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옥시 불매운동이 단순히 기업의 매출 하락 운동에 그쳐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제미경 인제대 생활상담복지학부 교수는 6일 “불매운동의 궁극적인 목표는 단순한 보복성 징벌이 아니라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확산시키는 데 있다”고 말했다. 서정희 울산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피해자의 일부가 전체를 대표해 제소하고 판결의 효력은 모두에게 미칠 수 있도록 하는 미국의 집단소송제를 비롯해 소비자 주권을 발휘할 수 있는 제도의 도입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김희리 기자 hitit@seoul.co.kr
  • “성공했다던 SLBM 폭발”… 북한군 허위보고 가능성

    재촉에 쫓긴 북한군·기술자들 김정은에게 실패 숨겼을 수도 북한이 지난달 23일 시험발사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도 무수단 중거리 탄도미사일처럼 공중 폭발한 것으로 분석됐다. 특히 발사된 SLBM이 단 분리도 하지 못한 것으로 평가돼 북한 미사일 전력의 신뢰성에 의문이 제기되는 것은 물론 북한 군부와 미사일 기술자들이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에게 허위 보고했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군 관계자는 1일 “북한이 지난달 23일 동해에서 발사한 SLBM은 30여㎞를 비행했지만 최종적으로 공중에서 폭발해 2~3조각으로 깨진 것으로 분석된다”고 밝혔다. 군 당국은 당시 잠수함에서 사출에 성공한 SLBM이 300㎞ 이상 날아가 탄두와 추진체의 단 분리를 했어야 하지만 이를 성공시키지 못한 것으로 보고 있다. 북한은 발사 다음날인 24일 노동신문을 통해 이번 시험발사가 “계단 열분리(단분리)의 믿음성, 설정된 고도에서 전투부(탄두 부분) 핵기폭장치의 동작 정확성을 확증하는 데 목적을 두고 진행됐다”며 성공했음을 주장했다. 군의 다른 관계자는 “김 제1위원장의 재촉에 쫓긴 북한군과 미사일 기술자들이 성공한 것처럼 허위 보고했을 가능성이 있다”면서 “기본적으로 SLBM이 아직 핵 투발 수단으로 기능하지 못한다”고 평가했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30여㎞에서 의도적으로 폭발시킨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하지만 군은 북한이 SLBM을 발사하기 전 더 멀리 날아갈 것을 예상하고 해역에 관측선을 띄웠다는 점과 30㎞ 거리는 정상적 탄도미사일 수준이 아니라는 점을 들어 실패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 문제는 북한이 SLBM만큼이나 대표적 핵 투발 수단으로 내세운 노동 미사일과 무수단 미사일도 발사 후 공중에서 폭발했다는 점이다. 지난 3월 18일 발사한 2발의 노동 미사일 가운데 1발은 공중에서 폭발했고, 지난달 15일 첫 발사한 무수단 미사일 1발도 공중폭발했다. 같은달 28일 오전에 쏜 무수단 미사일 1발은 해안가에 추락했고, 오후에 쏜 나머지 무수단 1발은 공중에서 폭발했다. 무엇보다 SLBM과 무수단 미사일이 미국을 겨냥한 핵 투발 수단이라는 점에서 오는 6일 7차 당대회를 앞둔 북한의 고민이 커질 수밖에 없는 상태다. 설령 5차 핵실험을 감행한다 해도 핵무기를 운반할 미사일이 부실하면 국제 사회와 제재만 강화된 채 위협 효과는 반감되기 때문이다. 김동엽 북한대학원대학교 연구교수는 “북한이 무수단 미사일을 한 차례 더 발사할 가능성이 남아 있다”면서도 “북한 SLBM이 사거리 면에서 아직 완성된 단계가 아니라고 해도 과소평가할 수만은 없다”고 말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목소리 연금술사… 성우 양지운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목소리 연금술사… 성우 양지운

    그의 평소 목소리는 ‘인디아나 존스’의 해리슨 포드와 비슷할까, ‘보디가드’의 케빈 코스트너와 닮았을까. 아니면 ‘체험 삶의 현장’ 같은 TV 프로그램에서의 코믹 내레이션에 더 가까울까. 지난 22일 서울 여의도 KBS 본관 앞 카페에서 만난 성우 양지운의 목소리는 그가 연기했던 무수한 인물 중 누구와도 닮아 있지 않았다. 50년 가까운 성우 인생의 대부분을 주인공으로만 살아온 그가 실제 인생의 주연으로서 달려온 68년을 들어봤다. -“이봐, 손님한테 그렇게 따지듯이 말하는 웨이터가 어딨나? 그 짧은 대사 하나 제대로 못해서 어떻게 성우를 해.” 1970년 서울 서소문 TBC 사옥의 라디오 녹음실에 성난 PD의 호통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차갑게 나를 보는 선배들의 시선. 성우가 되고 나서 처음으로 대사 한마디를 얻었던 그날, 나는 얼굴이 벌게져 당장이라도 녹음실을 뛰쳐나가고 싶은 심정이 돼 있었다. 라디오 드라마 속 내 역할은 레스토랑 웨이터. 대사는 딱 한 줄 “뭘 드시겠습니까?”였다. 주인공에게 정중히 물어야 하는데, 긴장한 탓에 “당신 뭐 먹을 거야. 빨리 말해!”라는 식으로 따지는 것처럼 딱딱한 연기가 되고 말았다. 무수한 NG 끝에 넋이 완전히 나간 상태로 녹음을 마쳤다. ‘기회만 주어지면 신성일이나 찰턴 헤스턴(영화 ‘벤허’의 주연배우) 역할이라고 못 하겠나.’ 평소 가졌던 그 생각은 얼마나 만용이었나. 어쨌든 나의 단독 대사 데뷔전은 그렇게 엉망으로 끝이 났다. 이후로도 녹음실의 ‘고문관’ 노릇은 상당 기간 이어졌는데, 그 와중에 위안거리는 하나 있었다. “신참이 목소리 하나는 괜찮구먼”이라는 선배들의 평가였다. -나는 고등어와 고구마를 아주 싫어한다. 절대로 안 먹는다. 고등어 머리만 모아 끓인 국과 고구마를 먹으며 비린내와 복통에 잠 못 들었던 어릴 적 기억 때문이다. 1948년 내가 태어난 곳은 경남 통영의 두메산골이었다. 바닷가 쪽 어촌이라면 차라리 좀 나았을까. 논도 밭도 제대로 없는 곳에서 할 거라곤 고구마 농사뿐이었다. 어머니는 며칠에 한 번씩 부두에 나가 손질하고 버려지는 고등어 머리들을 받아와 가마솥에 넣고 끓여 주셨다. 방안을 가득 채운 고등어 비린내는 이불에 스며 들고 옷에 배어 나를 어디든 따라다녔다. -고향이 싫었다. 분명히는 가난이 싫었던 것이지만, 나에게 고향은 곧 가난이었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형님 세 분은 일찌감치 생계를 위해 고향을 떴기 때문에 어릴 적 우리 집은 부모님과 나, 이렇게 세 식구였다. 부모님은 무학(無學)이시기도 했지만, 끼니도 제대로 못 잇는 상황에서 막내아들의 미래를 생각할 여유가 없으셨다. 때가 됐는데도 학교에 보내지 않으셨다. 친구들이 국민학교(초등학교)에 가고 나면 혼자 남은 나는 산으로 바닷가로 마냥 쏘다녔다. 그러기를 2년. 울며불며 아버지를 졸라 열 살에 처음 학교에 들어갔다. -내 학력은 국졸로 끝날 뻔했다. 친구들이 중학교에 등교할 때 나는 농사를 지으러 갔다. 국민학교 때 나보다 공부를 못했던 아이들이 통영중 교복을 입고 다니는 걸 보면 어린 마음에 속이 뒤집어졌다. “사범학교 학생들이 가르치는 고등공민학교라는 곳이 있다던데 거기라도 가 볼래?” 마흔둘에 나은 늦둥이가 실의에 빠져 있는 걸 어머니 스스로 견디질 못하셨다. 그때 어머니의 배려가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어머니, 막내 데리고 같이 올라갈게요.” 어떻게 하면 이 지긋지긋한 집을 탈출할 수 있을까 궁리하던 차에 서울에 살던 둘째 형님이 같이 올라가자고 했다. 오랜만에 찾아온 고향에서 내 표정을 보곤 ‘저 놈을 여기에 계속 두면 안 되겠다’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다. 그게 또래들은 고1이던 만 16세, 1964년이었다. -손잡고 올라온 건 작은형이었는데, 어쩌다가 자리를 잡게 된 건 경기도 의정부 큰형님 댁이었다. 형과 함께 의정부중학교에 갔다. “저 통영에서 고등공민학교 1학년 다녔으니까, 여기서는 2학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학교에서는 고등공민학교는 정규과정이 아니니 1학년으로 입학하라고 했다. ‘안 그래도 친구들보다 3년이나 늦었는데….’ 내 한숨이 너무도 깊었던지 교무주임 선생님이 그 전해에 봤던 1학년 기말고사 시험문제지를 갖고 오셨다. “여기 문제들 풀어봐. 잘 보면 2학년으로 해주마.” 다음날 나는 2학년 교실에서 새로운 친구들을, 아니 세 살 어린 동생들을 만났다. -큰형님은 아이가 셋이었다. 가뜩이나 작은 단칸방에 다섯 식구가 사는데 내가 끼니까 여섯이었다. 신문배달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밥만 형님 댁에서 먹고 잠은 보급소에서 잤다. 공부는 쉬웠다. 경상도 말씨 심한 시골 형이 순식간에 공부에서 자기들을 따라잡자 아이들은 놀라는 눈치였다. 공부 좀 한다는 게 알려져 우연히 큰형님이 셋방 사는 주인집 국민학생 아이를 가르치게 됐다. 나한테 배우고 그 아이가 성적이 확 올랐는데, 그 덕에 과외 학생을 많이 소개받았다. 국민학교 5~6학년 15명을 가르친 적도 있었다. 한 달에 최고 5000원도 벌었는데 대졸 직장인 월급 수준이었다. 절반 정도를 떼어 형님 생활에 보탰다. -당시 내 유일한 취미는 라디오를 듣는 것이었다. 집안에 TV가 거의 없던 당시에 라디오 드라마는 최고의 인기였다. 저녁이면 동네 아낙들이 밥상 치우고 삼삼오오 라디오 있는 집으로 몰려들었다. 구민, 고은정, 이창환 같은 성우들은 톱스타였다. 우리 집에는 라디오가 없었지만, 과외 선생의 지위를 이용해 제자의 집에 가서 듣곤 했다. -중3 때에는 유도를 했다. 전국대회에서 우승도 했다. 그때 함께 운동했던 친구가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땄던 장은경(1996년 별세)이었다. 그런데 운동만 하기엔 학업 성적이 너무 좋았다. 은경이는 유도를 위해 인천 선인고에 갔고 나는 일반고인 의정부고에 진학했다. 의정부고는 학력이 꽤 좋은 편이었는데, 나는 전교 10등 밖으로 나가는 일이 없었다. 하지만 서울대에 대한 꿈 같은 건 없었다. 연기자가 되기로 마음을 굳히고 있었기 때문이다. 수업이 끝나면 의정부에서 서울까지 차를 타고 와서 명동국립극장과 영화관에 살다시피 했다. 배우들의 대사를 따라했고, 라디오 드라마 대사도 받아 적은 뒤 연습을 했다. 영화배우나 TV 탤런트도 생각해 봤지만 내 외모에 목소리만큼의 강점은 없다는 걸 알곤 빠르게 포기했다. -한양대 토목학과에 들어갔는데 얼마 다니지는 못했다. 대학 1학년 때인 1969년 10월 TBC에 입사(성우 공채 5기)했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성우로서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경상도 사투리였다. 나는 ‘경제’라고 말하는데 사람들은 ‘갱제’로 알아들었다. ‘쌀’이라고 하는데 사람들 귀에는 ‘살’로 들렸다. 고 김영삼 전 대통령에 대한 희화화 유머에도 등장하는 이런 상황은 당시 나에게는 심각한 핸디캡이었다. 그때 방송사에서는 표준어만 써야 한다는 인식이 유난히 강했다. ‘서울말’, 그러니까 표준어를 외국어 배우듯이 익혔다. 퇴근을 하면 매일 서울 사람들만 만났다. 경상도 사람은 의도적으로 피했다. 서울말을 듣고 통으로 외웠다. 그야말로 사투리와의 사투였다. -그러는 중에도 나의 사투리 억양에 대한 지적은 계속됐다. 당시 TBC의 인사 평가 시스템은 매우 가혹했는데, 어느 날 불쑥 해고 통지를 하는 식이었다. “고생 고생해서 성우가 됐는데 결국 사투리 때문에 잘리는 건가.” 불안한 날들이 이어지는데 뜻밖의 기회를 얻게됐다. 당시 ‘광복 20년’이라는 정치 드라마의 ‘이승만 시해미수 사건’ 편에 김시현이라는 분이 나왔다. PD가 경상도 말을 써야 하는 그 역할을 나에게 주었다. 방송이 나간 뒤 반응이 아주 좋았다. “저렇게 자연스럽게 연기하는 성우가 누구냐”는 격려 전화가 빗발쳤다. ‘퇴출’ 후보에서 갑자기 ‘TBC의 보물’이 됐다. -그러다 1976년 인생의 전기가 찾아왔다. ‘600만불의 사나이’의 주인공 스티브 오스틴(리 메이저스) 역을 맡게 됐다. 입사한 지 6년을 갓 넘겼을 때였다. 원래 ‘600만불의 사나이’는 길게 방영할 게 아니었다. 단발 편성이었다. 그래서인지 PD가 주인공을 나에게 맡겼다. 공군 조종사 출신 대령이 사고로 양쪽 다리와 한쪽 팔, 한쪽 눈을 잃었지만 최첨단 기술로 다시 태어나 차도 한 손으로 번쩍 들고 시속 100㎞로 달린다는 설정은 당시로선 충격이었다. 방송이 나가자 전국에서 난리가 났다. 드라마 자체도 그렇지만 주인공 목소리 성우가 너무 잘했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결국 ‘600만불의 사나이’는 장기 편성으로 바뀌었고 나의 역할도 계속됐다. 선후배 기수 개념이 강한 방송국에서 고참들을 제치고 고작 입사 6년에 주인공이라니. -드라마가 인기를 얻자 광고가 어마어마하게 들어왔다. 점심 먹을 시간도 없어서 별명이 ‘김밥맨’일 정도였다. 아침에 방송국으로 출근하면 밤 10시는 넘어야 퇴근할 수 있었다. 어린이들이 600만불의 사나이 흉내를 내면서 사고도 많이 났다.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다 사망하는 경우도 있었다. 한 아주머니는 방송국으로 찾아와 ‘주인공 흉내를 내다가 크게 다쳤다’고 하소연하기도 했다. ‘600만불의 사나이’가 인기를 모으면서 ‘두 얼굴의 사나이’, ‘소머즈’, ‘원더우먼’ 등 비슷한 장르의 미국 드라마가 속속 국내에 들어왔다. -과거 ‘주말의 명화’, ‘명화극장’ 등 주말 외화들이 방송사를 먹여살리던 시절이 있었다. 당시는 더빙이 시원찮으면 “성우 때문에 영화를 망쳤다”고, 반대로 괜찮으면 “성우가 영화를 살렸다”는 편지와 전화가 방송국에 쇄도했다. 로버트 드니로, 멜 깁슨, 해리슨 포드 등의 목소리가 내 단골이었다. TBC 전속에서 풀린 뒤 방송국마다 나를 붙잡기 위해 경쟁이 벌어졌고 내 인기는 그야말로 상한가였다. “극장에서 볼 때보다 더 낫다”는 것만큼 기분 좋은 말은 내게 없었다. -‘맥가이버’, ‘형사 가제트’를 맡았던 배한성 선배는 외부에서 필생의 라이벌로 꼽지만, 우리 둘 사이는 별로 그렇지는 않다. 배 선배는 나이는 두 살 위, 방송국 기수로는 3기 위(TBC 2기)다. 사실 서로 경쟁할 부분도 없었다. 배 선배는 부드러운 콧소리 음성이지만 난 쇳소리에 가깝다. 서로가 서로를 빛나게 해준다. 형사물인 ‘스타스키와 허치’도 함께 했다. 난 냉정한 독일계 형사인 허치를, 배 선배는 다혈질의 유태계 형사 스타스키를 맡았다. -나에게 목소리 관리는 기본 중의 기본이다. 목을 잘 관리하려면 잘 자고 잘 먹고 잘 쉬어야 한다. 피곤하면 목소리부터 변한다. 감기도 조심해야 한다. 목소리는 지문처럼 타고나는 것이지만, 과음을 하거나 흡연을 하면 망가지기 마련이다. 목소리 관리를 위해 물병을 갖고 다니며 하루에 2ℓ 이상을 마신다. -언제부턴가 ‘성우’보다는 ‘양심적 병역거부 운동가’로 더 많이 활동한 것 같다. 큰아들이 스무 살이 되던 2000년 입대영장이 나오자 종교적 신념에 따라 병역을 거부했다. 군사법원에서는 징역 3년형을 선고했다. 그 전까지는 내 종교를 드러내지 않았지만 아들이 그렇게 되니 양심적 병역 거부 문제에 앞장설 수밖에 없었다. 내가 ‘여호와의 증인’ 신자가 된 건 1987년부터다. 주변에서 “왜 하필…”이라는 반응도 나왔지만 “난 그저 내 길을 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아이들에게 종교를 강요한 적은 없었지만 자연스레 부모를 따라왔다. ‘양심적 병역거부자 가족협의회’ 공동대표를 맡아 청와대나 법무부 등을 쫓아다녔다. 세상이 날 싸움꾼으로 만든 셈이었다. 그 이후 광고 출연 요청 등도 완전히 끊겼지만 개의치 않는다. 사정은 다른 아이들도 비슷한데 둘째도 2011년부터 감옥살이를 했고 지금 스물네 살인 셋째는 재판을 받고 있다. 요즘 많이들 물어보는 게 ‘걸그룹 며느리’(‘카라’ 출신 김성희) 얘기다. 그 아이는 나에게 막내딸과 같다. 결혼한 지 5년이 다 돼가는데 아직도 그렇게 예쁠 수 없다. 김태균 사회부장 windsea@seoul.co.kr 이두걸 기자 douzirl@seoul.co.kr >>성우 양지운 1970년대 이후 중후하고 담백한 목소리로 늘 최고의 자리를 유지해 온 우리나라의 대표 성우다. ‘600만불의 사나이’의 리 메이저스(왼쪽·스티브 오스틴)를 비롯해 해리슨 포드(인디아나 존스, 도망자, 스타워즈), 로버트 드니로(오른쪽·히트, 대부2, 미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알 파치노(애니 기븐 선데이), 리엄 니슨(테이큰, 쉰들러 리스트), 멜 깁슨(가운데·리썰 웨폰, 브레이브 하트), 케빈 코스트너(보디가드, 워터월드), 러셀 크로(글래디에이터), 숀 코너리·로저 무어(007 시리즈), 크리스토퍼 리브(슈퍼맨) 등이 그의 목소리를 통해 한국 시청자들을 만났다. 2000년대 이후에는 양심적 병역 거부자 가족협의회 공동대표로 활동해 왔다. ▲1948년 경남 통영 출생 ▲경기 의정부중·고 ▲한양대 토목공학과 중퇴 ▲TBC 성우 5기 입사(1969년) ▲MBC 라디오 연기대상(1984년), KBS 최우수 외화 연기상(1999년), 한국방송대상 성우상(2010년) ▲한국성우협회 부이사장(2004년), 서울종합예술전문학교 겸임교수(2005년)
  • 소녀들 울린 ‘악마의 편집’ 계약서 불공정 약관 OUT

    소녀들 울린 ‘악마의 편집’ 계약서 불공정 약관 OUT

    ‘K팝스타’와 ‘프로듀스101’, ‘위키드’ 등 인기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방송사의 의도적인 ‘악마의 편집’에도 불구하고 참가자들이 이의 제기조차 하지 못했던 불공정 약관이 수정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6일 서바이벌 오디션 형태의 프로그램 출연 계약서상 불공정 약관 조항 12개를 발견해 고치도록 했다고 밝혔다. SBS와 CJ E&M은 그동안 오디션 프로그램 출연 계약서에 촬영 내용의 부당한 편집 등으로 피해가 발생해도 출연자는 일체의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고 명시해 왔다. ‘악마의 편집’으로 네티즌과 주변인으로부터 비난에 시달려도 출연자들이 항의할 수 없었던 셈이다. 이번 불공정 약관 시정에 따라 앞으로 출연자들은 권리가 침해당했다고 판단했을 때 방송사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게 됐다. 자작곡 음원에 대한 보호도 강화된다. 그동안 출연자들의 자작곡 관련 저작권은 독점적으로 방송사에 이전됐지만, 이제 방송사와 출연자가 별도의 합의를 통해 권리관계를 정해야 한다. 필요할 때마다 임의로 출연자들의 자작곡이나 안무 등을 이용했던 방송사들은 앞으로 저작권에 대한 대가를 따로 지불해야 한다. ‘프로듀스101’의 경우 출연자가 프로그램의 이미지를 손상하면 계약을 해지하되 일률적으로 3000만원을 배상하도록 했다. 3000만원보다 손해가 크면 그만큼을 더 배상해야 하는 조건도 있었다. 그러나 앞으로는 출연자로 인한 피해를 방송사가 입증해야 출연자가 입증 손해액만큼 배상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가족과 친지, 친구 등 주변인에 대한 인터뷰를 출연자가 보장해야 한다는 부당한 계약 조건도 수정됐다. 다음달 방송 예정인 ‘K팝스타 시즌6’과 오는 6월 예정인 ‘프로듀스101’의 후속작인 ‘소년24’에는 바뀐 출연 계약서가 적용될 예정이다. 세종 김경두 기자 golders@seoul.co.kr
  • 아듀!! 자하 하디드…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아듀!! 자하 하디드…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Aperta!!(아뻬르따, 열림)” 어느덧 서울의 랜드마크 중 하나가 되어버린,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를 설계한 자하 하디드(Zaha Hadid·1950~2016)의 명쾌하면서도 주저 없는 대답이었다. 그녀는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를 만들기 5년 전에 로마 플라미뇨 지구(Flaminio district)에 위치한 국립현대건축미술관을 2010년에 완공하였다. 실제 건축을 전혀 모르는 상상 속의 건축가, 혹은 ”종이 위의 건축가(Paper Architect)"로 자신을 폄하하던 분위기 속에서 열린 로마의 기자회견장. 건축철학을 대답해달라는 기자의 질문에 대한 답변은 바로 “Aperta!(아뻬르따, 열림)”였다. 동대문운동장을 헐고 다시 세운 건축물로서는 역사적인 배려가 부족하다는 혹평과 아울러 뉴욕타임스에 '세계의 가볼 만한 명소 52선'에도 포함될 정도로 아름다운 건축물이라는 찬사가 공존하는, 야누스의 얼굴 같은 공간이 바로 동대문디자인플라자, DDP다. 파란 하늘의 봄날이건만 미세먼지의 공습은 집요하다. 잠시 야외가 아닌, 실내 DDP로 '피신여행'을 떠난다. 6만2108㎡ 대지 위에 건축 총면적이 8만6574㎡에 달하는 DDP는 총 4800억 원이 소요된 거대한 복합 쇼핑몰과 문화광장이다. 원래 동대문지역은 두타, 밀리오레, APM 등 30여개의 복합 패션상가와 3만 5000개의 점포, 10만 명의 디자인 관련 종사자가 모여 있는 곳이며 하루 매출이 평균 400억 원대에 이르는 서울 디자인 패션산업의 집적지이기도 한 곳이다. 또한 연간 250만명, 방문객의 절반이 외국인일 정도로 밤에도 불을 밝힌 상가와 북적이는 인파로 인해 명동과 더불어 서울 패션 상권을 대표하고 있기도 하다. 바로 이곳에 DDP를 만든 이유는 기업과 기관들이 한 곳에 모여 시너지 효과를 도모하고자 함이었다. 디자인 집적단지인 디자인 산업 클러스터를 중심으로 자생 디자인, 패션 집적지로서의 잠재 가능성을 최대한 끌어 모으기 위함도 이곳의 일차적인 건립목적이었다. 그리고 그 목표는 어느덧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2015년 DDP개관 1년 후 재단의 발표를 기준으로 보자면 1년간 진행된 전시, 아트페어, 포럼, 런칭쇼, 이벤트 등은 117건으로, 이 중 전시 16건을 포함해 자체 콘텐츠는 전체의 약 33%다. 자체 전시 기준으로 관람객은 74만5557명(일 평균 2112명)이 다녀갔다. 또한 재정 현황은 수지균형을 통해 100% 재정자립 상황이라고 재단은 설명하고 있으며 수입이 약 223억 원이었고 지출은 213억 원이었다고 밝히고 있다. 이 중 수입 223억 원 중 대관과 임대 등 인프라를 이용한 사업이 전체의 50%정도를 차지했고, 입장이나 교육 등 콘텐츠 사업부문은 9%, 기타 36% 등 이었다. 막상 DDP를 여행지로서 명명하고 난 뒤 제일 처음 드는 생각은 바로 안팎, 층간의 구분이 없다는 건축물이라는 것이다. 건물 안인가 생각하다 보면 어느 순간 건물 밖으로 몸은 나와 있고, 고샅길 같은 복도를 걷다보면 1층과 2층의 경계가 모호해진다. 대개는 건물이 주는 감동과 디자인이 주는 감동은 일치하지 않는데 이곳은 의외다. 확실히 DDP는 분명 평범하지는 않은 공간이고 건축물이다. 여행이라는 것이 본디 낯선 공간을 친숙하게 만드는 의도적인 행위라고 가정한다면, 도심에서 이렇듯 ‘도시인들’에게 ‘낯섦’을 던져주기란 쉽지 않다. 무심한 도심의 일상에 던지는 의문표가 바로 동대문디자인플라자, DDP다. 보는 사람들의 느낌과 호기심을 시나브로 건드리는 건축의 원형에 대한 의문을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는 우리에게 던진다. 도대체 건축이란 무엇인가? DDP는 토지 위에 올린 건축물이 아니라 동대문 공기(空氣)의 단면을 다듬어가면서, 깎아가면서 재단하고 비집어 낸 빈 공간 사이에 건축물을 넣어 놓았다. 건물의 모든 바람벽들은 자하 하디드가 지니고 있던 선(線)과 면(面)에 대한 ‘열림’의 감각을 끝없이 밀고 나간 흔적이고 경계이다. 그녀는 건축자재를 다룬 것이 아니라 ‘공기’를 다룬 것이다. 모든 골조, 벽체, 기둥과 계단, 창틀의 이어짐은 결코 건축학적인 용어인 접합이나 연결로만 설명할 수 없다. 이는 붙어있고 따라가고 연결되고 어울리기 때문이다. 또한 DDP 절정의 미학의식은 바로 초가집 지붕 같은 야트막하게 내려앉은 겸손의 미학에 있다. 가장 현학적(衒學的)인 건축물이 가장 한국적 소박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는 아이러니이다. 한국의 주택들의 특성은 이어짐이었다. 안방이 주방으로 다락으로 연결되고 마루를 통하여 건넛방과 사랑방이 또 이어지는 구조. 마당과 길이 연결되고 이 길을 통하여 할아버지와 손자의 세대의 역사가 연결되듯 DDP는 모든 공간이 열려있고 연결된 특성을 지닌다. 70, 80년대부터 이루어진 본격적인 산업화가 만들어 낸 동대문 인근의 상업건물들은 대체로 아파트처럼 단절되고 블록형태로 격자성을 지닌 채 차별과 분열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 몇 층에 있는 점포의 가격이 한 층 위보다 더하고, 덜하고를 말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럼으로 모든 것은 나누어졌고 닫혀졌고 사람들은 돌아 앉았다. 하지만, DDP는 이런 주변의 어색한 폐쇄를 극복하고자 노력한 흔적들이 건물 곳곳에 깊게 배어 있고 이를 누구나 눈치 챌 수 있도록 배려해준다. DDP는 총 5개의 구역으로 나눌 수가 있다. 우선 ‘알림터’의 경우 PLUG &PLAY 개념의 트랜드 산업 발신지로서 런칭쇼, 패션쇼, 시사회, 영화, 극 제작발표회 등 다양한 행사 공간을 제공하고 있고 또한 통역실 및 VIP공간을 구비한 컨퍼런스 회의장이 있는 곳이다. ‘배움터’의 경우 세계의 트렌드를 조명하고 전시하는 디자인전시관이 있어서 전시, 체험, 교육의 장이 열리는 공간이다. ‘살림터’는 마켓과 전시, 교육, 편의시설 제공하는 디자인 샵으로 디자이너 프로모션 공간(디자이너 갤러리 샵)으로 의식주와 관련된 다양한 디자인 제품 전시를 통해 대중이 공감하고 흥미를 느끼며 물건을 구매할 수 있는 장터의 기능을 지니고 있다. 이곳에서 보고, 느끼고, 배우고, 소통하고, 사고 즐길 수 있는 디자이너 갤러리 샵이자 프로모션 공간이기도 하다. 밖으로 나오면 ‘어울림광장’을 만날 수 있는 데, 이곳은 DDP 앞마당에 위치한 가장 큰 광장으로 DDP 주요 공간에 접근할 수 있는 중심에 위치한 광장으로 디자인장터, DDP 안내센터가 위치한다. 마지막으로 ‘동대문역사문화공원’은 서울의 살아있는 역사를 만나는 역사문화 테마공원으로 조선시대의 서울성곽과 하도감터, 근대시대의 동대문운동장을 품고 동대문의 역사적 맥락을 살펴볼 수 있는 장소이다. 또한 디자인과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전시관 및 행사장을 품고 있으며 공원 곳곳에는 시민이 휴식할 수 있는 공간과 스트리트 퍼니쳐 등이 제공되는 곳이기도 하다. 여행은 힘이 들든, 즐겁든 간(間)에 ‘재미’가 있어야 한다. 자연이든 도심이든 재미가 빠지면 여행이 아니다. 바로 이 재미 속에서 의미를 발견할 때 우리는 여행의 보람을 느끼게 된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로의 발걸음은 어떤 의미를 지녀야 할까? <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 대한 사소한 여행 일문일답>1. 꼭 가봐야 할 곳인가?- 당신이 서울을 여행중라면 꼭!! 2. 누구와 함께- 사랑하는 연인들 3. 교통편?- 지하철은 2호선과 4호선, 5호선의 ‘동대문 역사 문화 공원역’이다.기타 http://www.ddp.or.kr/DI010018/getInitPage.do?MENULEVEL=8_5_1 로 알아보길. 4. 인근 편의시설, 주차장?- 종합안내소와 공간별 안내데스크, 물품보관소, 유모차/ 휠체어 대여, 수유실, 장애인 배려서비스가 이루어지고 있다. 참조 : http://www.ddp.or.kr/DI010014/getInitPage.do?MENULEVEL=1_4_1 //주차장의 경우 DDP공영주차장이 있다. 일반주차가격은 5분당 400원, 1시간 4,800원, 1일 최대 5만원이고 할인 주차 가격은 DDP내 전시관람, 체험, 상품 구입 등 당일 2만 원 이상 사용 고객이 B2층 주차고객센터(친절센터)에 영수증 지참하여 방문시 주차 요금 할인해 준다. 2만 원 이상 (1시간), 5만원이상(2시간) 5. 유명세에 비하여 실제 모습은?- 더 유명해져야 한다. 6. 관광지로서의 친절도?- 상업적인 공간이다. 당연히 고객응대는 기본적인 노하우가 있다. 7. 전문성은?- 일반인들이 범접하기 힘든 전문적인 공간이다. 여행지로서의 DDP는 많은 공부가 필요한 현대 건축의 대표작이고 세계적인 건축가의 유작이기도 한 공간이다. 그냥 가지 말고 http://www.ddp.or.kr/EP010008/getInitPage.do?MENULEVEL=4_1_1 에 있는 DDP투어를 신청해서 가는 것이 제일 낫다. 8. 관람시간과 입장료의 가성비?- 디자인 플라자의 경우 10시~21시이다. 그러나 각종 전시의 경우는 해당 전시회의 특성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일반 샵의 경우는 입장료가 당연히 없지만 각종 전시회의 경우 입장료가 해당 전시회의 성격에 따라 정해진다. 참조 : http://www.ddp.or.kr/EP010001/getInitPage.do?MENULEVEL=2_1_1 9. 감탄하는 점?- 미로 같은 건물에서 끝없이 연결되는 길과 조그만 핸드폰 고리의 놀라운 가격(?) 10. 아쉬운 점?- DDP 방문 고객들이 좀 더 자세하게 동선을 알 수 있도록 더 신경을 쓰면 좋을 듯 하다. 11. 운영진에게 한마디?- 안내데스크에 계시는 분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관람객 응대를 할 수 있도록 신경 써주시길. 멀뚱멀뚱 길을 찾지 못하는 중국인, 일본인 관광객들과 바로 앞에서 그들을 풍경으로 바라만 보는 안내데스크. 안내는 오히려 경비 서시는 분들이 더 잘 해 주는 듯. 먼저 다가가는 안내가 DDP에 어울리는 표정인 듯. 12. 여행 전 기대감과 후기?- 미리 http://www.ddp.or.kr/MA010001/getInitPage.do 에 들어가서 차분한 계획을 세운다면 기대이상의 만족. 생각보다 전시회나 체험행사, 투어가 많으니 몰라서 후회하지 않는 발걸음이 되지 않도록 반드시 방문 전에 위의 웹사이트에 접속하길 바란다. 13. 추천하고픈 사람?- 연인!! 연인!! 연인!! 14. 비추하고픈 사람?- 40, 50대의 인생의 별 감동이 없는 무료한 삶을 사시는 분들. 건물이 복잡해서 오히려 성질만 돋울 수가 있다. 이 비싼 땅에 이런 장난질(?)을 해 놓았냐하는 성토만 한 가득 나올 수도 있다. 15. 먹거리 정보- DDP 내에도 번화한 식당들이 1층에 있지만, 이 곳은 원래가 동대문 지역임을 감안해야 한다. 길 하나를 건너가면 광장시장과 온갖 먹거리 천국의 시장 뒷골목이 있다. 광장시장으로 10분만 걸어라! 16. 쇼핑매력도- 재미있는 디자인 제품들. 17. 숙박편의성- 서울이다! 이상 끝! 18. 인근 관광지 매력도- 주변이 진정 최강이다. 각종 쇼핑단지와 아울러 동묘벼룩시장, 황학동, 광장시장과 더불어 동대문성곽공원, 흥인지문 등이 있다. 19. 꼭 해봐야 할 것은- 반드시 DDP 자유 투어를 하든, 현장투어를 하든 참여할 것!! 현장투어를 적극 강추!! 8000원!! 어울림광장 종합안내소(살림터 -2층) 투어 매표소에서 참여 명단을 작성하면 된다. 20. 총평- 아듀! 자하 하디드(Zaha Hadid). 글·사진 윤경민 여행전문 프리랜서 기자 vieniame2017@gmail.com
  • 소방관 경력채용 합격자 발표 오류 “담당 직원 엑셀 오류 탓”

    소방관 경력채용 합격자 발표 오류 “담당 직원 엑셀 오류 탓”

    소방관 시험 합격자 발표 오류는 국민안전처 직원의 ‘엑셀’ 작업 실수에서 비롯된 것으로 잠정 결론 내려졌다. 국민안전처 중앙소방학교는 소방공무원 경력경쟁채용 1차 합격자 발표 오류 경위를 조사한 결과 담당 직원의 프로그램 작업 실수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고 25일 밝혔다. 중앙소방학교 인재채용 담당 소방장 A씨는 답안지 판독기에서 산출된 점수가 담긴 엑셀파일로 작업하다 실수를 저질러 합격자와 불합격자가 뒤바뀌는 일이 발생했다. 중앙소방학교는 응시자 2625명의 답안지를 재인식시켜 나온 점수로 합격자를 23일 수정 공고했다. 당초 21일 발표된 서울 지역 1차시험 남자 합격자 18명 중 2명과 여자 합격자 6명 중 2명이 불합격 처리됐다. 불합격자 중에선 점수가 합격선 이상인 남자 4명과 여자 2명이 새로 합격자에 포함됐다. 남자 응시생 중에는 동점자가 있어 합격자가 2명 늘었다. 합격자 명단 오류는 불합격자 3명이 이의를 제기해 확인하는 과정에서 밝혀졌다. 중앙소방학교는 채점실과 답안지 보관금고를 비추는 폐쇄회로 텔레비전(CCTV)에 별다른 흔적이 없어 외부인 침입 가능성은 배제했다. 또 채점실 전산망은 외부 네트워크와 분리돼 있어 해킹 가능성도 없다고 중앙소방학교는 설명했다. 안전처는 그러나 작업 실수를 저지른 담당자가 의도적으로 합격자 명단을 바꿨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판단, 감찰을 벌이고 있다. 윤순중 중앙소방학교장은 “현재까지 드러난 정황으로는 의도적인 조작 가능성은 없는 것으로 판단한다”면서도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 자체 감찰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사설] 폐 손상이 황사 때문이라는 뻔뻔한 옥시

    가습기 살균제 사망 피해의 최대 책임 기업인 옥시레킷벤키저(옥시)에 대한 소비자들의 원성이 자고 나면 더 커지고 있다. 사망자의 70%가 사용한 제품을 만든 책임이 밝혀졌는데도 무성의한 발뺌 대응으로 일관하고 있어서다. 이제라도 피해 수습에 소매를 걷어붙이고 나서도 시원찮을 판에 피해자들의 폐 손상이 황사 때문일 수 있다는 얼토당토않은 주장을 하고 있다. 검찰의 본격 수사로 꼼짝없이 책임을 물어야 할 상황이 닥치자 대형 로펌인 김앤장의 도움을 받아 이런 의견서를 새로 제출했다는 것이다. 소비자들은 “매를 번다”며 격분하고 있다. 영국에 본사를 둔 옥시의 무책임한 처사에 국내 소비자들은 온라인 불매 운동을 펼칠 조짐이다. 그런 사정을 모르는지 며칠 전에도 옥시는 무성의하기 짝이 없는 이메일 사과문을 내놨다. 그러면서 말 바꾸기를 하는 것은 책임을 최대한 회피하고 검찰 수사에 물타기를 하려는 꼼수라고밖에 볼 수가 없다. 옥시는 문제의 제품과 인체 피해의 연관성을 실험하는 연구용역을 진행하면서도 파렴치한 술수를 부린 의혹이 속속 불거지고 있다. 연구용역을 조작하게 뒷돈을 줬다는 의심을 받는 데다 인체에 치명적이라는 의견을 제시한 연구 결과는 의도적으로 외면했다는 의혹까지 터져 나왔다. 검찰은 영국 본사로 수사를 확대하고 전·현직 임원을 소환할 방침이다. 정화조 청소용으로 쓰는 화학물질이 소비자의 생명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서도 돈벌이만 생각했던 기업이라면 어떤 사정에서라도 면죄부를 줘서는 안 될 것이다. 정부 당국의 대응과 수습 태도에도 각성이 필요하다. 다국적 기업 옥시의 오만하고 몰염치한 태도가 그동안 우리 당국이 일관해 온 소심하고 수세적인 대처 탓과 무관하다고는 보기 어렵다. 안이한 대응으로 사태를 이 지경으로 만든 책임이 정부한테도 크다는 사실을 국민이 잘 알고 있다. 문제의 제품들을 오랫동안 사용한 소비자들의 걱정이 심각하다. 폐 말고 만성 비염, 천식 같은 호흡기 질환도 살균제 탓이 아닌지 불안에 떨고 있다. 환경부는 다음달부터 피해 사례를 추가로 접수하기로 했다. 폐질환 이외의 추가 피해 여부를 따져 피해 진단 기준과 지원책을 마련하는 데 속도를 내야 한다. 그래야 국민 집단 불안증을 조금이라도 덜어 줄 수 있다.
  • 옥시 “폐손상 원인은 봄철 황사” 검찰·법원에 77페이지 반박 의견 제출

    옥시 “폐손상 원인은 봄철 황사” 검찰·법원에 77페이지 반박 의견 제출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 관련 은폐·조작 의혹을 받고 있는 가습기 살균제 제조업체 옥시레킷벤키저(옥시)가 가습기 살균제 사용자들의 폐손상 원인에 대해 “봄철 황사 때문일 가능성이 있다”는 취지의 의견서를 검찰에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24일 뉴시스는 영국계 다국적 기업인 옥시가 가습기 살균제와 인체 폐손상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고 본 질병관리본부의 지난 2012년 역학조사 결과를 반박하는 총 77페이지 분량의 의견서를 서울중앙지검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 특별수사팀(팀장 이철희 형사2부장)에 제출했다고 보도했다. 옥시는 대형 로펌인 김앤장의 자문을 받아 검찰 수사가 시작된 직후 의견서를 제출했고, 관련 민사사건이 진행 중인 담당 재판부에도 제출된 것으로 알려졌다. 옥시는 이 의견서를 통해 “폐질환은 비특이성 질환임에도 보건 당국의 실험에선 제3의 위험인자를 배제하지 않아 문제가 있다”면서 “정부 역학 조사 결과 신뢰도에 의문이 제기된다”고 주장했다. 비특이성 질환이란 유전 등 선천적 요인과 음주·흡연 등 후천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생긴 질병이다. 통상 인과관계가 명확지 않은 질병의 원인을 분석할 때 이 같은 용어를 사용한다. 옥시는 이어 가습기 살균제 사용자들 중에서 폐손상이 발생한 원인의 하나로 “봄철 황사가 폐질환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또 가습기 자체에서 번식한 세균이 인체 폐손상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주장도 덧붙였다. 그러나 검찰은 국내 독성학과 의학·약학 분야 권위자 20명을 상대로 한 집단토론에서 질병관리본부의 역학조사 결과는 과학적으로 신뢰할 수 있다는 응답을 얻은 만큼 옥시 측이 제출한 의견서에 별다른 의미를 두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검찰은 오히려 옥시가 의견서를 제출하는 과정에서 자신들이 서울대와 호서대에 용역 의뢰한 실험 결과 중 일부 유리한 대목만 발췌했거나 내용을 왜곡한 부분이 있는지를 수사대상으로 판단하고 있다. 검찰은 수사 과정에서 옥시의 의도적 왜곡과 은폐가 적발되면 관련자를 형사처벌할 계획이다. 검찰 관계자는 “가습기 살균제와 인체 폐손상 간의 인과관계는 정부 조사에서 일찌감치 확인됐고 학계도 이를 인정하고 있다”며 “폐손상 발병 원인을 두고 왈가왈부할 단계는 이미 지났고, 옥시측이 그 같은 의견서를 낸 것은 검찰 수사를 흐리려는 것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옥시, 피해 알고도 허위 광고 가능성

    환경단체 “피해 알고 판 살인죄”… 온라인 중심으로 불매운동 확산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이 다음주 영국계 옥시레킷벤키저의 전 대표 소환을 앞두고 혐의 입증을 위한 막바지 조사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은 22일 옥시에서 광고·마케팅 업무를 담당했던 관계자 3명을 불러 ‘가습기 살균제가 안전하다’고 거짓 광고한 경위를 조사했다. 오는 25일에도 마케팅 담당 직원 3명을 추가로 불러 조사할 계획이다. 옥시는 ‘옥시싹싹 뉴가습기 당번’을 판매한 2001년부터 2011년까지 제품 용기에 ‘인체에 안전한 성분을 사용해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다’고 표시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문제가 불거진 이듬해인 2012년 옥시에 허위 광고에 대한 시정명령과 과징금 5100만원을 부과했다. 검찰은 제품 안전성을 제대로 검증하지 않았는데도 옥시가 의도적으로 허위·과장 광고를 낸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해당 제품이 판매된 2001년 전후 대표이사를 맡았던 신현우(68) 전 옥시 대표에 대해 업무상 과실치사상 외에 표시광고의 공정화에 관한 법 위반 혐의 적용을 검토하고 있다. 환경보건시민센터는 서울 대학로에서 의학·환경보건학·법학 등 각 분야 전문가가 참여해 제조사와 국가의 책임을 묻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환경보건시민센터는 “옥시는 사용자가 계속 피해를 보고 있는 걸 잘 알면서도 시장을 유지하기 위해 계속 제품을 판매했다”면서 “옥시에 살인죄가 적용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2013년 정부에서 꾸린 폐손상조사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았던 백도명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옥시는 자체 보고서에서 실험의 전체 내용은 내놓지 않고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내용만 제시했다”고 지적했다. 박태현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정부는 ‘유해성 심사에 잘못이 없으니 업체로부터 피해 보상을 받으라’며 방관해 왔다”면서 “피해 양산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엄격히 따져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온라인의 각 지역 주부 카페 등을 중심으로 표백제 ‘옥시크린’과 ‘물먹는 하마’ 등 옥시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이 번지고 있다. 소비자단체와 시민이 함께 조직적으로 불매운동을 벌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송수연 기자 songsy@seoul.co.kr
  • 미쓰비시 이틀 새 3조 증발… 추락하는 ‘메이드 인 재팬’

    주가 33% 폭락… 4년 만에 최저 폭스바겐 이어 車산업 신뢰 흔들 일본 미쓰비시자동차가 연비를 조작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충격이 커지고 있다. 미쓰비시차의 시가총액은 조작 인정 이틀 만에 2764억엔(약 2조 9000억원)이 증발했다. 폭스바겐 등 글로벌 업체들이 배기가스 양을 축소하다 발각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자동차산업에 대한 소비자 신뢰마저 흔들리는 상황을 맞았다. 미쓰비시차의 주가는 21일 도쿄증시에서 종일 거래가 되지 않다가 마감 때 전 거래일 대비 150엔(20.46%) 떨어진 583엔으로 마감하며 하한가를 기록했다. 2012년 7월 기록한 종전 최저가인 660엔을 밑돌았다. 미쓰비시차 주가는 전날에는 15.16% 떨어지는 등 이틀 새 33% 떨어졌다. 반면 경쟁사 주가는 5%가량 올랐다. 일본 국토교통성은 이날 아이치현에 있는 미쓰비시차 시설을 찾아 부정행위 경위 등에 대해 현장 조사를 벌였다. 앞서 미쓰비시차가 20일 발표한 내용을 보면 연비 조작을 통해 판매한 차량은 ‘eK 왜건’과 ‘eK 스페이스’, 닛산자동차 용으로 생산한 ‘데이즈’와 ‘데이즈 룩스’ 등 경차 4종, 62만 5000대다. 회사는 또 일본에서 2002년부터 일부 차량의 연비를 부적절한 방식으로 측정해 법규를 위반했다고 실토했다. 미쓰비시차는 연비에 큰 영향을 미치는 주행저항값을 의도적으로 조작했다고 털어놓았다. 주행저항값은 자동차가 달릴 때 받는 공기 저항과 도로 마찰을 수치화한 것이다. 이날 JP모건의 애널리스트 기시모토 아키라는 이번 조작 사태로 미쓰비시차가 500억엔(약 5200억원) 이상의 손실을 입을 것으로 예상했다고 로이터가 보도했다. 이는 소비자와 닛산에 대한 보상금과 부품 교체 비용을 포함한 금액이다. 조작이 이뤄진 자동차들이 정상적으로 테스트를 받았을 경우 연비가 5∼10% 정도 나빠질 수 있다고 회사 측은 인정했다. 미쓰비시차는 경차에 지원된 세금 혜택도 되돌려줘야 할 처지다. 블룸버그는 이번 미쓰비시차 사태로 자동차 업계에서 ‘조작’이 고질적인 문제로 떠올랐다고 전했다. 블룸버그는 운전자들이 실제 차를 몰 때 자동차 회사가 내세운 것보다 낮은 연비에 실망하는 일이 흔하다면서 메이커가 규정의 허점을 이용하는 악습을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도쿄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 日 미쓰비시 자동차, 62만대 연비 데이터 조작 “판매 중단…죄송하다”

    日 미쓰비시 자동차, 62만대 연비 데이터 조작 “판매 중단…죄송하다”

    일본 미쓰비시(三菱) 자동차가 생산 차량의 연비 테스트 결과를 조작했다고 시인, 사과했다. 아이카와 데츠로 사장은 20일 도쿄 국토교통성에서 진행한 기자회견에서 “국토교통성에 제출한 연비 테스트 데이터에서 연비를 실제보다 좋게 보이게 하기 위한 부정한 조작이 있었다”고 밝혔다. 미쓰비시는 타이어의 저항과 공기 저항의 수치를 의도적으로 조작하는 방식을 쓴 것으로 파악됐다. 조작을 거쳐 판매한 자동차는 미쓰비시사의 ‘eK 왜건’과 ‘eK 스페이스’, 닛산자동차용으로 생산한 ‘데이즈’와 ‘데이즈 룩스’ 등 경차 4종에 걸쳐 지난달까지 총 62만 5000대에 달한다고 아이카와 사장은 밝혔다. 조작이 시작된 시기는 지난 2013년 6월이다. 이 자동차들은 연비가 5~10% 정도 높게 조작된 것으로 조사됐다. 아이카와 사장은 부정이 있었던 4개종의 차량 생산과 판매를 이날자로 중단했다며 “고객과 모든 주주들에게 죄송하다”고 사죄했다. 그는 “연비를 좋게 보이게 하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은 확실하다”며 고의성을 인정했다. 이번 부정은 경차 개발에서 미쓰비시와 협력하는 닛산이 데이터의 불일치가 있다는 지적을 함에 따라 미쓰비시가 조사를 진행하면서 확인됐다. 아이카와 사장은 지난 13일 이 같은 부정을 알게 됐으며, 18일 ‘데이즈’ 등 2개종의 경차 발주처인 닛산에 보고했다고 밝혔다. 그는 “나는 부정이 있었는지를 (부정이 이뤄질 당시에는)몰랐지만 경영자로서 책임을 느낀다”고 밝히고 나서 거취와 관련한 질문에서는 “왜 부정을 하면서까지 연비를 좋게 보이려 했는지 원인을 밝히는 것이 선결과제”라고 말했다. 미쓰비시는 지난 2000년과 2004년에도 리콜로 이어질 클레임 정보를 은폐한 사실이 적발된 바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죽음의 살균제’ 알고도 팔았나… 檢, 업체들 은폐 규명도 관건

    ‘죽음의 살균제’ 알고도 팔았나… 檢, 업체들 은폐 규명도 관건

    ‘옥시싹싹 뉴가습기 당번’ 등 판매 당시 관련 책임자 등 확인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이 19일 영국계 기업인 옥시레킷벤키저 관계자를 소환 조사한다. 올 1월 말 특별수사팀이 구성된 이후 업체 관계자가 검찰에 직접 소환되는 것은 처음이다. 4년 넘게 지지부진했던 관련 수사가 본격 궤도에 올랐다는 뜻이다. 서울중앙지검 가습기 살균제 피해사건 특별수사팀(팀장 이철희 형사2부장)은 옥시 측 인사 담당 실무자를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한다고 18일 밝혔다. 검찰은 가습기 살균제 ‘옥시싹싹 뉴가습기 당번’이 판매될 당시 관련 책임자와 보고라인 등을 확인할 계획이다. 검찰 관계자는 “빠른 시일 내에 각 부서 책임자 등을 소환 조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폐 손상을 유발하는 가습기 살균제 제품군을 옥시 제품 외에도 ‘와이즐렉 가습기 살균제’(롯데마트 PB)와 ‘홈플러스 가습기 청정제’(홈플러스 PB), ‘세퓨 가습기 살균제’(버터플라이이펙트) 등 4개 제품으로 압축한 상태다. 가습기 살균제로 사망한 146명 가운데 103명이 옥시 제품을 쓴 것으로 알려져 있어 옥시가 검찰의 첫 타깃이 됐다. 검찰이 소환 조사를 통해 가장 먼저 밝혀야 할 부분은 업체들이 자사 제품의 인체 유해성을 인지하고 있었는지 여부다. 검찰은 옥시가 살균제의 주성분인 폴리헥사메틸렌구아디닌(PHMG)을 호흡기로 흡입했을 때 인체에 유해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을 예견하고서도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은 정황을 잡고 수사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제품의 위험성을 알고서도 안전성 검증이나 확보 노력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면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를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 가족들은 공소시효 등을 이유로 살인죄로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살인죄는 공소시효가 없지만 업무상 과실치사상의 공소시효는 7년이다. 때문에 사망자의 4분의1 정도는 과실치사상의 공소시효가 이미 끝난 상태다. 안성우 가습기살균제 피해 유족 대표는 “피해자들의 피해가 수사 이후에도 밝혀질 수 있는 만큼 관련자들을 살인죄로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인 이세섭씨도 “옥시 등 업체들이 SK케미칼로부터 원료의 유해성 경고가 담긴 자료를 제공받고도 이를 몰랐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옥시 측이 형사 책임을 피하기 위해 사후 증거 은폐를 시도했는지도 검찰 수사에서 밝혀져야 할 부분이다. 검찰은 옥시 측이 서울대 등에 실험을 의뢰할 때 자사에 유리한 조건을 내세워 실험을 했다는 관계자 진술 등을 토대로 대가성 여부에 대해서도 수사 중이다. 법적 처벌을 피하기 위해 법인을 고의로 청산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은 “검찰은 옥시 측이 서울대와 호서대의 연구 결과를 매수하고, 부작용을 호소하는 인터넷 게시글을 의도적으로 삭제한 정황 등에 대해 폭넓은 수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 소장은 이어 “검찰은 과거 정부 조사에서 사망자 등 피해자가 확인된 14개 제품의 24개 제조사 관계자를 모두 소환 조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송수연 기자 songsy@seoul.co.kr
  • 日 애니메이션 ‘원펀맨’에 세월호 노란 리본 등장… “의도적 연출 가능성”

    日 애니메이션 ‘원펀맨’에 세월호 노란 리본 등장… “의도적 연출 가능성”

    지난 16일 세월호 참사가 2주기를 맞이한 가운데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는 뜻의 ‘노란 리본’이 등장했던 사실이 재조명되고 있다. 지난달 25일 정식 발매한 일본 애니메이션 ‘원펀맨’ OVA 4화 초반에는 원펀맨의 등장인물 중 하나인 실버 팽(Fang)이 차량 뒤에 몸을 숨기고 있는 장면이 그려졌다. 특히 팽이 몸을 숨긴 차량의 창에는 노란 리본 그림이 그려져 있다. 이 장면은 시작한 지 4분 16초쯤 등장했다. OVA(Original Video Animation)의 약자로 TV 방송과 극장의 상영 없이 소매 전용으로 출시한 만화 비디오를 뜻한다. 이와 관련, 일본 매체인 라이브도어는 세월호를 추모하는 리본 장면이 의도적인 연출이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지난 2일 라이브도어는 “노란 리본은 한국에서 2014년 세월호 침몰 당시 '(승객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간절히 원한다는 의미로 사용됐다”면서 “해당 장면이 4분 16초에 등장하고, 세월호 침몰 사고가 4월 16일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의도적으로 삽입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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