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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시의회 권미경의원 “정신건강증진센터 종사자 고용안정 절실”

    서울시의회 권미경의원 “정신건강증진센터 종사자 고용안정 절실”

    서울시의회 권미경 의원(더불어민주당, 보건복지위원회)은 더불어민주당 민생실천위원회 부위원장 자격으로, 현재 7일째 파업 중인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서울시정신보건지부와 함께「서울시정신건강증진센터 실태를 통해 본 지역정신건강센터의 공공성 강화과제」긴급 토론회를 주최했다. 서울시 정신건강증진센터 종사자들은 서울시민의 13.5%, 약 1백 40만 명으로 추정되는 정신건강 위험인구의 정신건강을 일선에서 책임지는 막중한 임무를 담당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과중한 업무량, 감정노동과 열악한 근로조건, 민간위탁으로 인한 불안정한 고용상태 등의 문제로 인해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 토론회에서는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서울시정신보건지부 김성우 지부장이 종사자들의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한 현장증언을 통해 종사자들이 놓인 어려운 상황에 대해 증언했다. 이어서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김소윤 교수가 전 세계적인 탈시설화 추세에 맞는 지역정신건강증진센터의 역할과 향후 발전방향에 대해서 발표했다. 이날 발제를 담당한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김소윤 교수는, “다른 OECD 국가들과 비교를 해보면 한국의 정신보건예산은 2005년 기준 선진국들의 10분의 1에서 3분의 1수준에 불과하기 때문에 탈시설화라는 세계적 추세를 감당하기에는 양적, 질적으로 턱없이 부족하다. 지역정신건강증진센터가 앞으로 이 역할을 맡아나갈 수 있도록 정부의 추가적인 지원과 운영 거버넌스 구조 개편이 필요하다”라고 지적했다. 이날 토론회를 주최한 권미경 의원은, “서울시 정신보건사업은 시민들의 정책수요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사업이고, 지역정신건강증진센터의 종사자들은 시민들의 정신건강을 위해 최일선에서 뛰고 있는 정신보건 전문인력임에도 불구하고 민간위탁과 재위탁 과정에서 발생하는 고용불안정 문제에 시달리고 있다”라고 밝혔다. 또한 “위탁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나, 열악한 근로조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파업을 하는 와중에도 민간위탁 구조 때문에 마땅한 협상상대가 없는 것이 매우 안타깝다. 정신보건전문인력의 고용안정 보장과 근로조건 개선은 시민을 위한 정신건강서비스의 질 향상을 위해 시급한 과제인 만큼 서울시가 대승적 결단을 내릴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마지막으로 권의원은 “향후 시의원으로서 지역 정신건강증진센터 종사자들의 고용안정과 정신보건사업의 전문성, 공공성을 제고하기 위한 새로운 운영형태를 만들어나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라고 강조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인간의 최대 수명은 몇 세?…125세 이상은 불가능 (연구)

    인간의 최대 수명은 몇 세?…125세 이상은 불가능 (연구)

    역사가 시작된 이래 인간의 가장 큰 소망 중 하나는 무병장수였다. 진시황이 그토록 찾아해메던 불로초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지만 의료기술의 발달은 인간의 평균수명을 대폭 올려놓았다. 그렇다면 과연 인간은 최대 몇 세까지 살 수 있을까? 최근 미국 알버트 아인슈타인 의과대학 연구팀이 '인간은 최대 125세 이상 살 수 없다'는 흥미로운 연구결과를 유명 과학저널 네이처(Nature)에 발표했다. 이번 연구는 인간의 최대 수명이라는 오랜 질문에 대한 답을 내렸다는 점에서 큰 관심을 모은다.   19세기 이후 인간의 평균 수명은 계속 늘어났다. 1900년의 평균 수명이 50세였던 반면, 오늘날 태어나는 아기의 기대 수명은 81세다. 이는 물론 의료 등 과학기술의 발전 덕인데 이 때문에 인간의 수명 역시 계속 늘어날 것이라는 주장이 일각에서 제기돼 왔다. 이같은 주장을 알아보기 위해 연구팀은 전세계 41개국 사람들의 인구통계와 사망기록 등을 분석했다. 그 결과 예상대로 인간의 평균수명은 계속 늘어나는 것이 확인됐다. 그러나 최대수명의 증가는 1990년 대에서 상승세가 뚝 멈췄다. 1960년 대 111세에 달했던 장수 노인의 최대수명이 1990년 대 115세로 조금 늘었으나 그 흐름은 여기서 끊겼다. 곧 연구팀은 현재 인간이 살 수 있는 최대 평균수명은 115세이며 125세는 결코 넘을 수 없다고 결론지었다. 125세의 근거는 프랑스 출신의 역대 최장수 노인 장 칼망의 사례 때문으로 그녀는 '인생은 짧다'라는 명언을 남기고 지난 1997년 122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연구를 이끈 잰 비그 교수는 "인간의 평균 최대수명은 115세이며 125세가 최대 한계치일 것"이라면서 "인간의 수명이 이미 천장에 도달해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인간의 수명을 더 늘리기 위해서는 수명과 관련된 유전자를 획기적으로 변화시키는 기술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임상통증학회장에 서정환 교수

    임상통증학회장에 서정환 교수

    전북대병원은 서정환(54) 재활의학과 교수가 대한임상통증학회 제13대 회장으로 취임했다고 6일 밝혔다. 서 교수는 연세대 의과대학을 졸업한 뒤 미국에서 신경 근육 전기진단의학 전문의를 취득했다. 대한재활의학회 이사, 대한척수손상학회 이사 등을 맡고 있다.
  • [사고] 국민참여형 ‘제3회 정책포럼’ 엽니다

    서울신문이 주최하는 제3회 정책포럼이 오는 14일 오후 5시 30분 서울 중구 세종대로 프레스센터 앞 서울마당에서 ‘저출산·고령화 시대의 가족정책 어디로 가야 하나’라는 주제로 토크콘서트 형식으로 열립니다. 이번 포럼은 시민들이 자유롭게 참관하고 질문도 할 수 있는 시민참여형 공개 토크콘서트로, 팟캐스트 형식으로 서울신문 온라인 홈페이지와 페이스북에 생중계됩니다. 저출산과 고령화 문제는 더이상 늦출 수 없는 국가 최대 명제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영애 월간지방자치 대표 편집인의 사회로 진행될 이번 토크콘서트에는 신의진 연세대 의과대학 세브란스 병원 교수, 오규석 부산시 기장군수,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등이 참여하며 시민들과 폭넓은 소통을 하게 될 것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참석을 바랍니다. ■일시:2016년 10월 14일(금) 오후 5시 30분 ~ 7시 ■장소:서울 중구 세종대로 124 프레스센터 서울신문 사옥 앞 서울마당 ■주최:서울신문 ■후원:문화체육관광부 ■문의:서울신문 문화사업부(02-2000-9755) jisunny@seoul.co.kr
  • ‘115세’ 인간이 살 수 있는 최장 나이

    20세기 의학의 발달로 인간의 수명이 조금씩 연장됐지만 최장 115세 이상을 넘어가기는 어렵다는 분석이 나왔다. 미국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의과대학 얀 페이흐 박사 연구팀은 5일(현지시간) 과학기술 전문지 네이처에 게재한 논문을 통해 인간은 115세 이상 살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뉴욕타임스(NYT) 등이 보도했다. 연구팀은 40개국의 연령대별 인구증가율을 비교해 이 같은 결과를 도출했다. 예를 들어 1920년대 프랑스에서 가장 인구 증가가 빠른 나이는 85세였지만 1990년대에는 102세였다. 이 속도로 가면 현재 인구 중 가장 두드러지게 증가한 연령 그룹은 110세여야 하지만 1990년대 이후 증가세가 멈췄다는 것이다. 1968년 당시 세계에서 나이가 가장 많은 사람은 111세였고 1990년에는 최고 연령이 115세까지 올라갔지만, 이후 예외적인 1명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115세보다 오래 살지 못했다는 것이다. 공식 출생증명서로 나이를 인정받은 인류 역사상 최고령자는 1997년 122세로 세상을 떠난 프랑스 여성 장 칼망으로, 이후 기록은 깨지지 않고 있다. 페이흐 박사는 “칼망은 예외적인 사례로 한해에 115세보다 더 나이가 많은 사람이 나올 확률은 1만분의1 수준”이라며 “의약품이나 생체 이식 등이 평균 수명을 늘리는 데는 효과가 있지만 인간의 수명은 115세라는 ‘천장’을 뚫기 힘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115세’… 인간이 살 수 있는 최장 나이

    20세기 의학의 발달로 인간의 수명이 조금씩 연장됐지만 최장 115세 이상을 넘어가기는 어렵다는 분석이 나왔다. 미국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의과대학 얀 페이흐 박사 연구팀은 5일(현지시간) 과학기술 전문지 네이처에 게재한 논문을 통해 인간은 115세 이상 살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뉴욕타임스(NYT) 등이 보도했다. 연구팀은 40개국의 연령대별 인구증가율을 비교해 이 같은 결과를 도출했다. 예를 들어 1920년대 프랑스에서 가장 인구 증가가 빠른 나이는 85세였지만 1990년대에는 102세였다. 이 속도로 가면 현재 인구 중 가장 두드러지게 증가한 연령 그룹은 110세여야 하지만 1990년대 이후 증가세가 멈췄다는 것이다.  1968년 당시 세계에서 나이가 가장 많은 사람은 111세였고 1990년에는 최고 연령이 115세까지 올라갔지만, 이후 예외적인 1명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115세보다 오래 살지 못했다는 것이다. 공식 출생증명서로 나이를 인정받은 인류 역사상 최고령자는 1997년 122세로 세상을 떠난 프랑스 여성 장 칼망으로, 이후 기록은 깨지지 않고 있다.  페이흐 박사는 “칼망은 예외적인 사례로 한해에 115세보다 더 나이가 많은 사람이 나올 확률은 1만분의1 수준”이라며 “의약품이나 생체 이식 등이 평균 수명을 늘리는 데는 효과가 있지만 인간의 수명은 115세라는 ‘천장’을 뚫기 힘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인간 최대 수명은 115세...그 이상은 살기 어렵다”

     ‘100세 시대’를 맞이한 요즘에도 인간의 최장 수명이 115세 이상을 넘어가기는 어렵다는 분석이 나왔다.  미국 앨버트 아인슈타인 의과대학 얀 페이흐 박사 연구팀은 전 세계 다양한 연령대의 사망률과 생존율을 분석한 결과 인간은 115세 이상 살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리고, 이를 과학기술 전문지 네이처에 게재했다고 뉴욕타임즈(NYT) 등이 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연구팀은 40개국의 연령대별 인구증가률을 비교해 이같은 결과를 도출했다. 예를 들어 1920년대 프랑스에서 가장 인구 증가가 빠른 나이는 85세였지만 1990년대에는 102세였다. 이 속도로 가면 현재 인구 중 가장 두드러지게 증가한 연령 그룹은 110세여야 하지만 1990년대 이후 증가세가 멈췄다는 것이다. 아울러 1968년 세계에서 나이가 가장 많은 사람은 111세였고 1990년에는 115세까지 올라갔지만, 이후 예외적인 1명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115세보다 오래 살지 못했다는 것이다. 공식 출생증명서로 나이를 인정받은 인류 역사상 최고령자는 지난 1997년 122세로 세상을 떠난 프랑스 여성 장 칼망으로, 이후 기록은 깨지지 않고 있다.  얀 페이흐 박사는 “장 칼망은 예외적인 사례로, 한해에 125세보다 더 나이가 많은 사람이 나올 확률은 1만분의 1 수준”이라며 “평균 기대 연령이 오랫동안 상승한 끝에 지금에서야 인간이 주어진 수명의 천장에 도달할 만큼 오래 살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학계에서는 이번 발표에 대해 반대하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시카고 일리노이대의 제이 오샨스키 교수는 “기술로 생명을 더 연장하는 데 성공한다면 수명의 한계는 깨질 것”이라며 “얼마나 많이 깨질지는 혁신이라는 (인간의) 본성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반대 목소리에 대해 페이흐 박사는 “의약품이나 조직공학(생체이식)이 평균 수명을 늘리는 데는 효과가 있다”며 “하지만 인간의 수명이라는 것은 일일이 조치를 취할 수 없을 만큼 수많은 유전자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115세라는 ‘천장’을 뚫기는 힘들 것”이라고 반박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인간 최대 평균수명은 115세…125세 이상은 못산다” (네이처)

    “인간 최대 평균수명은 115세…125세 이상은 못산다” (네이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인간의 가장 큰 소망 중 하나는 무병장수였다. 진시황이 그토록 찾아해메던 불로초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지만 의료기술의 발달은 인간의 평균수명을 대폭 올려놓았다. 그렇다면 과연 인간은 최대 몇 세까지 살 수 있을까? 최근 미국 알버트 아인슈타인 의과대학 연구팀이 '인간은 최대 125세 이상 살 수 없다'는 흥미로운 연구결과를 유명 과학저널 네이처(Nature)에 발표했다. 이번 연구는 인간의 최대 수명이라는 오랜 질문에 대한 답을 내렸다는 점에서 큰 관심을 모은다.   19세기 이후 인간의 평균 수명은 계속 늘어났다. 1900년의 평균 수명이 50세였던 반면, 오늘날 태어나는 아기의 기대 수명은 81세다. 이는 물론 의료 등 과학기술의 발전 덕인데 이 때문에 인간의 수명 역시 계속 늘어날 것이라는 주장이 일각에서 제기돼 왔다. 이같은 주장을 알아보기 위해 연구팀은 전세계 41개국 사람들의 인구통계와 사망기록 등을 분석했다. 그 결과 예상대로 인간의 평균수명은 계속 늘어나는 것이 확인됐다. 그러나 최대수명의 증가는 1990년 대에서 상승세가 뚝 멈췄다. 1960년 대 111세에 달했던 장수 노인의 최대수명이 1990년 대 115세로 조금 늘었으나 그 흐름은 여기서 끊겼다. 곧 연구팀은 현재 인간이 살 수 있는 최대 평균수명은 115세이며 125세는 결코 넘을 수 없다고 결론지었다. 125세의 근거는 프랑스 출신의 역대 최장수 노인 장 칼망의 사례 때문으로 그녀는 '인생은 짧다'라는 명언을 남기고 지난 1997년 122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연구를 이끈 잰 비그 교수는 "인간의 평균 최대수명은 115세이며 125세가 최대 한계치일 것"이라면서 "인간의 수명이 이미 천장에 도달해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인간의 수명을 더 늘리기 위해서는 수명과 관련된 유전자를 획기적으로 변화시키는 기술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고 백남기씨 사망진단서, 일반적인 지침과 다르지만…” (일문일답 전문)

    “고 백남기씨 사망진단서, 일반적인 지침과 다르지만…” (일문일답 전문)

    지난달 사망한 고(故) 백남기 씨 사망진단서 논란이 불거지자 서울대병원이 3일 기자회견을 열고 직접 해명에 나섰다. 서울대병원은 서울대학교의과대학과 합동 특별조사위원회 회의 결과로 백씨의 사망진단서가 일반적인 작성형태와 다른 것은 사실이지만, 내용과 작성 경위 등에서 외압은 없었다는 점 등을 강조했다. 이 과정에서 백씨의 주치의였던 백선하 신경외과 교수는 백씨의 사인을 ‘병사’로, 이윤성 특별위원장은 ‘외인사’로 규정해 서로 이견을 나타내기도 했다. 다음은 이윤성 특별위원장, 주치의였던 백선하 신경외과 교수의 일문일답. -- 백 씨의 사망진단서에 문제 있나. ▲ (이윤성 위원장) 주치의가 일반적인 사망진단서 지침과 다르게 작성했다는 점을 확인했고 보고서에도 기재했다. 사망진단서 지침은 사망원인에 심장마비, 심장정지, 심폐정지와 같은 사망에 수반된 징후는 기록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사인으로 쓰지 말라고 한 심폐정지를 사인으로 적은 것은 지침에 어긋난다. (백선하 교수) 당시 환자 가족들은 적극적인 치료를 원치 않아 체외투석 등의 치료가 시행되지 않았고 그것 때문에 사망했다고 봤다. 환자가 최선의 진료를 받은 후에도 사망에 이르렀다면 ‘외인사’로 표기했을 것이다. -- 유가족이 적극적인 치료를 원치 않았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 (이윤성 위원장) 임상의사로서 최선의 진료를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가족들이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해 아쉬움이 있다는 표현이다. 7월 17일, 9월 6일 백 씨 가족들이 원치 않는 일부 치료 내용을 담은 연명의료계획서를 제출한 바 있다. (백선하 교수) 급성신부전의 경우 고칼륨증 등 합병증 동반되는데 약물치료로 효과가 없으면 체외투석을 해야 한다. 가족들은 평소 고인의 의지대로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는 상태로 손상이 있다면 적극적인 치료를 하지 말라는 뜻을 밝혀 체외투석이 시행되지 않았다. -- 사망진단서 논란에 대한 특위 판단은 무엇인가. ▲ (이윤성 위원장) 특위에서 사실 여부만 확인할 것인지, 판단할 것인지를 논의했다. 사망진단서 지침에 따르면 옳지 않았다고 본다. 내가 작성했다면 ‘외인사’로 작성했을 것이다. 그러나 주치의는 이에 대해 다른 판단과 소신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이번 특위 활동에서 확인했다. -- 사망진단서 수정 권고할 예정인가. ▲ (이윤성 위원장) 사망진단서는 의료기관이 작성하는 것이 아니고 의사가 작성하는 문서다. 작성된 사망진단서에 대해 비평할 수는 있지만, 사망진단서를 이렇게 써라, 저렇게 써라 강요할 수는 없다. -- 사망진단서 작성 과정은. ▲ (이윤성 위원장) 백 씨가 사망한 당일 담당 레지던트가 주치의에게 연락을 취했지만, 연락이 잘되지 않아 부원장에게 연락했다. 부원장은 보고를 받았을 뿐 사망진단서 작성 등 어떠한 지시도 내리지 않았다. (백선하 교수) 사망진단서는 내가 쓴 것이다. 주치의인 내가 내용을 불러줬고 이를 레지던트가 받아서 작성한 것이다. -- 백 씨의 부검이 필요하다고 보는가. ▲ (이윤성 위원장) 부검 논란에 대해서도 논의했지만, 부검 여부는 의학적 판단이 아니라고 본다. 다만, 우리나라 법률을 보면 변사사건의 경우 검사가 부검 여부를 결정하고 유가족이 반대할지라도 법원이 영장을 발부하면 시행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법의학적 입장에서는 사회적으로 관심이 몰린 사건은 부검해야 한다고 본다. -- 향후 특별위원회 활동은. ▲ (이윤성 위원장) 보고서를 작성해 병원장에게 전달했다. 이것으로 특위 활동은 종료됐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전국 의과대학생 809명 “고 백남기 농민 죽음은 명확한 외인사” 공동성명 (전문)

    전국 의과대학생 809명 “고 백남기 농민 죽음은 명확한 외인사” 공동성명 (전문)

    서울대병원이 별도의 위원회를 꾸려 고 백남기 농민의 사망진단서를 재검토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전국의 의학도 809명이 “백씨의 죽음은 외인사임이 명확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15개 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 학생 809인은 3일 ‘같이. 우리의 길을 묻습니다’ 라는 제목의 성명문을 내고 이같이 밝혔다. 이들은 “의료는 무엇보다 신뢰를 바탕으로 이루어진다”며 “의학적인 오류 의문을 남긴 채 부검 가능성을 열어준 사망진단서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합니까”라고 반문했다. 이들은 법원이 발부한 고 백씨에 대한 부검영장에 대해서도 비판을 이어갔다. “외인사임이 명확한 故 백남기씨의 죽음에 대한 잘못된 진단서로 의사 전체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는 상황을 저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합니까”라며 “의사들조차 해당 사망진단서를 비판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이에 근거한 부검영장을 신뢰할 수 있는가” 라고 말했다. 이들은 앞서 성명을 발표한 서울대 의과대학 학생들과 연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아울러 “신뢰와 긍지, 환자와 양심을 외면하게끔 만든 권력의 칼날 앞에 장차 대한민국 의료를 책임져야 하는우리마저 침묵한다면 걷잡을 수 없이 커진 의료에 대한 불신이 이 사회를 덮쳐올 것”이라 경고하며 선배들에게도 목소리를 내 줄 것을 당부했다. 해당 성명문은 각 학교 학생회 단위가 아닌 개인 학우 단위로 작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다음은 성명문 전문이다. <같이. 우리의 길을 묻습니다.> 지난 9월 30일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학생들이 <선배님들께 의사의 길을 묻습니다.>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발표했습니다. 故 백남기 씨의 사망진단서가 의학적으로 어떠한 오류를 품고 있는지에 대한 설명이었습니다. 이제 우리들은 이번 사건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반추하고 선배님들과 동기들에게 연대를 요청해보려 합니다. 의료는 무엇보다 신뢰를 바탕으로 이루어집니다. 이에 의료인들은 돈이나 명예, 정치적 상황을 비롯한 그 무엇보다도 진리와 자신의 직무를 중요시하는 태도를 배우며 다른 직업들보다 높은 도덕성을 요구받습니다. 이는 그것이 단순한 인격도야의 길이어서가 아니라 그 자체로 국민보건과 의료체계를 유지하는 의사의 핵심적인 역할이고 사회적인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히포크라테스 선서가 의사의 상징이 된 것 역시 이런 이유 때문이며 앞서 나아가신 선배님들로부터 정치색과 이념으로 편을 가르기 전에 환자를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환자의 자율성을 존중하라 배워온 것도 이 때문입니다. 작금의 상황은 이러한 가르침을 되돌아보게 만듭니다. 의학적인 오류와 의문을 남긴 채 부검 가능성을 열어준 사망진단서를 저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합니까. 외인사임이 명확한 故 백남기 씨의 죽음에 대한 잘못된 진단서로 의사 전체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는 상황을 저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합니까. 의사들조차 해당 사망진단서를 비판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이에 근거한 부검영장을 신뢰할 수 있으며, 나아가 어떻게 환자들에게 의사들을 믿고 스스로를 맡기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혹여 단순한 실수가 아닌 다른 이유 때문에 해당 사망진단서가 이런 오류를 범하게 되었다면 의사와 의료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를 무너뜨리고 결국 국민 보건에 커다란 악영향을 끼칠 것입니다. 참된 의료인이라면 응당 이에 침묵하지 아니하고 자신의 직업적 양심을 지켜야하지 않겠습니까. 신뢰와 긍지, 환자와 양심을 외면하게끔 만든 권력의 칼날 앞에 장차 대한민국 의료를 책임져야하는 우리마저 침묵한다면 걷잡을 수 없이 커진 의료에 대한 불신이 이 사회를 덮쳐올 것입니다. 하여 저희는 선배님들께 배운 사회적 책무를 이행하고자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학생들과 연대하려 합니다. 또한 선배님들께 고개를 돌려 감히 청합니다. 서울대 학생들의 물음에 동문 선배들이 답했듯, 저희가 앞으로 걸어 나갈 길이 결코 혼자 걷는 가시밭길이 아님을 보여주십시오. 우리가 선배님들의 품에서 배운 지식이 현실의 권력과 위협 앞에서도 당당할 수 있음을 보여주십시오. 면면한 걸음으로 이어 오신 선배님들의 신뢰의 발자취가 한순간의 외압과 회유에 흔들리지 않음을 보여주십시오. 기로에 선 저희가 의사로서의 사회적 책무를 다할 수 있도록, 선배님들, 부디 목소리를 내 주십시오. 2016년 10월 3일 15개 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 학생 809인 ※ 위 성명문/공동서명은 각 학교의 학생회 단위가 아닌 개인 학우 단위로 작성되었습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울대 의대생들 질문에 선배들 답변…“백남기 농민, 병사 아닌 외인사”

    서울대 의대생들 질문에 선배들 답변…“백남기 농민, 병사 아닌 외인사”

    지난 30일 서울대 의대생들이 서울대병원 측에 고(故) 백남기 농민의 사인을 ‘병사’로 적은 것에 대해 ‘선배님들께 의사의 길을 묻습니다’라는 제목의 성명서로 공개질문을 던지자 선배들이 공개 답변을 내놨다. 서울대 의대 동문 365인은 1일 ‘서울대 의과대학 동문들이 후배들의 부름에 응답합니다’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전날 서울대 의대 학생회가 재학생 102명(1일 현재 서명자 218명)의 서명을 받아 낸 성명에 대한 선배 의사로서의 답이다. 동문 365명은 성명에서 서울대병원이 작성한 백씨 사망진단서에 직접사인을 기반으로 사망 종류가 ‘병사’로 분류돼 있는 것에 대해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서울대 동문들은 “고 백남기씨의 사망진단서는 통계청과 대한의사협회에서 제시한 원칙에서 어긋난다”고 밝혔다. 졸업생 동문들은 “외상의 합병증으로 질병이 발생하여 사망하였으면 ’외인사‘로 작성하도록 배웠다”고 강조했다. 이어 “외상으로 인한 급성 경막하출혈이 원인이 되어 급성신부전으로 사망하더라도 병사가 아닌 외인사가 된다”며 “또한 심폐정지는 사망에 수반되는 현상으로 사인에 기재할 수 없다. 최고의 공신력을 가진 기관일수록 이러한 원칙이 철저하게 지켜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울대 동문들은 “국민들이 가장 신뢰하는 국가중심병원에서 배운 경험은 저희의 자긍심이고 기쁨이었지만 현재의 상황은 우리의 믿음을 의심하게 한다”며 “서울대병원에 간절히 청한다. 서울대병원의 역사를 이어 온 의사로서의 전문성과 소명의식으로 학생들과 동문들의 부름을 외면하지 말아달라”고 촉구했다. 앞서 서울대병원이 작성한 백씨의 사망진단서는 ‘선행사인 급성 경막하출혈, 중간선행사인 급성 신부전증, 직접사인 심폐기능정지’라고 기재했다. 직접사인만으로 사망 종류를 ‘병사’로 분류했다. 사인이 불명확하단 이유로 부검이 필요하다는 경찰의 주장에 근거가 된 것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울대 의대생들 성명 발표에 네티즌 “병원은 후배들에게 부끄러워하라”

    서울대 의대생들 성명 발표에 네티즌 “병원은 후배들에게 부끄러워하라”

    지난 25일 사망한 백남기 농민의 사망진단서에 서울대병원이 사인을 ‘병사’로 기재해 논란이 되자 서울대 의대생들이 성명을 발표하며 해명을 요구했다. 서울대 의과대학 재학생 102명은 30일 ‘선배님들께 의사의 길을 묻습니다’라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했다. 학생들은 이어 “물대포라는 유발 요인이 없었다면 백씨는 혼수상태에 빠지지 않았을 것이므로 고인의 죽음은 명백한 외인사에 해당한다”며 “직접 사인으로 심폐정지를 쓰면 안된다는 것은 국가고시 문제에도 출제될 정도로 기본적인 내용”이라고 말했다. 이 소식을 접한 네티즌들은 재학생들의 용기에 지지를 보내고 있다. 네이버 아이디 ‘mywo****’는 “상식적이고 정의로운 서울대 의대생들 너무 고맙습니다. 응원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다음 이용자 ‘악녀에전설’도 “저들이 대한민국 미래다. 화이팅”이라며 학생들을 응원했다. 서울대병원 측에 강한 질타를 보내는 사람도 많았다. 네이버 아이디 ‘icoo****’는 “후배들에게 부끄러워 하시기를”이라고 말했고 다음 아이디 ‘대때’는 “모든 사망은 심폐정지 때문이다. 의사가 왜 필요한가?”라고 비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백남기씨 유족 부검반대…서울대 의대생들도 동참 “의사의 길을 묻습니다”

    백남기씨 유족 부검반대…서울대 의대생들도 동참 “의사의 길을 묻습니다”

    지난 25일 사망한 백남기 농민의 부검을 둘러싼 논란과 관련해 서울대병원이 작성한 사망진단서에 대한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서울대병원이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 가운데,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학생 102명이 30일 “선배님들께 의사의 길을 묻습니다”라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했다. 서울대병원이 작성한 백씨 사망진단서에는 직접사인을 기반으로 사망 종류가 ‘병사’로 분류돼있다. 하지만 이는 대한의사협회 규정을 위반한 방식이라는 지적이다. 경찰은 사망진단서의 병사 판정을 토대로 부검 추진을 강행하고 있다. 의협 ‘진단서 등 작성·교부 지침’에 따르면 사망의 종류는 대개 원사인에 따라 결정된다. 백씨의 경우 직접사인이 심폐기능정지이더라도 사망에 이르게 된 궁극적 원인으로서 선행사인 ‘급성 경막하출혈’에 따라 ‘외인사’로 분류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대 의과대학 학생들은 성명에서 “물대포라는 유발 요인이 없었다면 백씨는 혼수상태에 빠지지 않았을 것이므로 고인의 죽음은 명백한 외인사에 해당한다”며 “외상의 합병증으로 질병이 발생해 사망했으면 외상 후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더라도 사망의 종류는 외인사라는 것은 모두 저희가 법의학 강의에서 배운 내용”이라고 밝혔다. 학생들은 이어 “직접 사인으로 심폐정지를 쓰면 안된다는 것은 국가고시 문제에도 출제될 정도로 기본적인 원칙이지만 버젓이 기재되었고 사망의 종류는 외인사가 아닌 병사로 표기돼있었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서울대병원은 전문가 집단으로서 걸맞지 않은 태도를 보이고 있다”면서 “어떤 이유에서 이런 논란이 빚어지게 되었는지 해명을 듣고 싶다. 전문가 윤리를 지켜오신 선배님들께서 이 사안에 대해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좋겠다”라고 촉구했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인요한 세브란스 국제진료센터 소장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인요한 세브란스 국제진료센터 소장

    “나가 서울신문이랑 인연이 아주 깊지라. 대학교 1학년 때 문무대를 들어갔는데 서울신문에서 파란 눈 외국인 학생이 입소했다고 나를 대문짝만 허게 써줘붑디다. 그래서 나가 지금도 서울신문을 상당히 좋아허요.” 190㎝ 장신에 정말로 솥뚜껑만 한 손.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실린 전라도 사투리가 위에서 아래로 내리꽂히는 듯하다. 지난 9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국제진료센터 소장실에서 만난 인요한(57)은 대뜸 벽에 걸린 붓글씨를 가리키며 “무슨 뜻인지 아느냐”고 물었다. ‘地不如順天’(지불여순천). “기름지고 풍성한 땅은 순천만 한 곳이 없다”며 흥선대원군이 썼던 표현이다. 전라도 출신이라는 사실에 그렇게 자부심을 느끼고, 그렇게 소리높여 말하기로는 그만한 사람이 없을 성싶었다. 그는 기자를 만나서도 첫마디를 예의 “전라도 순천 촌놈 인요한입니다”로 시작했다. -“거짓으로 신고한 게 탄로 나면 나는 어떻게 될까. 그냥 추방당하는 걸로 끝날까, 혹시 남조선 첩자로 몰려 정치범 수용소 같은 데 끌려가는 건 아닐까.” 1997년 1월 21일 중국 선양을 떠나 북한으로 들어가는 기차 안. 창밖으로 보이는 하얗고 차가운 풍경처럼 내 마음도 스산하기 그지없었다. 남한에서 의사로 일한다고 하면 못 들어오게 할까 봐 선양 주재 북한대표부에 ‘미국 거주자’라고 허위 신고를 해 겨우 방북 허가를 받은 터였다. 한참을 달려 북·중 국경인 압록강에 다다르자 강둑에서 북한 아이들 네댓 명이 드럼통에 불을 지펴 놓고 앉아 까르륵거리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얼굴의 시커먼 검댕도 지우지 못하는 어린아이들의 해맑은 웃음. 갑자기 왈칵 눈물이 솟았다. 순천에서 천둥벌거숭이로 지냈던 나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기 때문이기도 했고, 북한에도 남한과 똑같이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데서 솟구친 가슴 벅찬 느꺼움 때문이기도 했다. -우리 집안은 1959년 전북 전주에서 내가 태어나자마자 순천으로 터를 옮겼다. 내 이름이 한국어로 인요한, 영어로 존 린턴인데 사람들은 내 영어 이름 ‘존’을 따서 ‘짠이’라고 불렀다. 어린 시절 매곡동 일대를 내 집 마당처럼 휘젓고 다녔는데, ‘매곡동 짠이’라고 하면 모르는 동네 사람이 거의 없었다. 생김새가 다른 서양 아이여서도 그랬지만, 워낙 동네 구석구석을 망아지처럼 훑고 다녔기 때문이다. -나는 스코틀랜드 장로교 가문의 후손임을 자랑스럽게 여기지만, 더욱 분명한 내 정체성은 전라도 사람이라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순천 촌놈입니다”라고 하면 사람들을 웃겨 보려고 일종의 개그를 하는 걸로 생각하는 이도 없지 않지만, 그건 나의 진정성을 전혀 모르는 탓이다. -둘째 형 스티븐 린턴(인세반)은 진외조부의 이름에서 딴 북한지원단체 유진벨재단의 이사장을 맡고 있다. 김일성 주석을 세 차례나 만났으며 대북 의료 지원에 앞장서 왔다. 셋째 형 제임스 린턴(인야곱)은 건축가로서 다양한 형태로 북한을 지원하고 있다. 우리 형제가 이렇게 북한 지원 활동을 하는 데는 아버지의 영향이 컸는데, 아버지가 이 땅에서 했던 활동을 보고 자연스럽게 그 일을 우리의 숙명으로 인식하게 됐다. -우리 집안과 한국과의 인연은 동학농민혁명 이듬해인 189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 남장로교회 선교사 유진 벨이 27세의 젊은 나이에 조선으로 파송됐는데, 이분이 나의 외증조할아버지다. 그는 조지아 공과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좋은 직장에 첫 출근을 하러 기차를 타고 가다가 ‘이것은 나의 길이 아니다’라는 생각에 선교에 뛰어들었다. 벨 할아버지는 광주와 목포 지역을 중심으로 교회와 학교를 짓고 병원을 열었다. 그의 사위 윌리엄 린턴은 선교와 의료를 넘어 항일운동에도 뛰어들었다. 3·1만세운동에 참여하고, 국제사회에 조선 독립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기도 했다. 일제강점기 말에는 신사참배를 거부하다 추방되기도 했다. 그분의 아들이자 나의 아버지인 휴 린턴도 부친의 뜻을 좇아 평생을 전라도 농촌과 도서지역에서 선교 활동을 하며 당시 심각했던 결핵 퇴치 운동으로 많은 생명을 구했다. -부모님의 가장 큰 고민은 우리들의 교육 문제였다. 형들은 순천에서 초등학교를 다녔는데, 한국말보다 영어를 더 못했다. 아버지가 장로교 안식년을 맞아 미국에 들어가 형들이 잠시 미국 학교에 다니게 됐는데, 그때 초등학교 3학년이던 형의 담임선생이 어머니를 불러 “이 댁 아이들의 영어 수준이 유치원생만도 못하다”고 한 데 충격을 받고서 한국에 돌아와 막내인 나는 학교에 보내지 않고 동료 선교사의 부인에게 일대일 개인지도를 받도록 했다. 그래서 나는 미국의 통신학교 교재를 이용해 영어, 수학, 사회 등을 배웠다. -열세 살 때인 1972년 9월 나는 커다란 가방 두 개를 들고 뜨거운 늦여름 햇빛을 받으며 대전으로 가는 열차를 탔다. 대전외국인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처음으로 고향을 떠난 것이다. 대전외국인학교는 당시 대전대(지금의 한남대) 뒤편에 있었다. 학교생활은 지겹기 짝이 없었다. 대전외국인학교는 아주 엄격하고 보수적인 기독교 학교였다. 아마 사관학교 생도들보다도 지켜야 할 규칙이 더 많았던 것 같다. -‘매곡동 짠이’ 시절만 해도 ‘크면 엿장수가 돼야지’ 하고 생각했었다. ‘맛있는 엿을 마음껏 먹을 수 있고 가위질로 박자를 맞추는 저 직업은 얼마나 멋진가.’ 염소를 매어 두려고 박아 놓은 꼬챙이들을 뽑아서 엿장수에게 몽땅 가져다주고 엄청난 양의 엿을 얻었다가 혼찌검이 난 적도 있었다. 그러다 생각이 바뀐 건 열 살 무렵이었다. 염소가 개에게 물려서 치료하는 과정을 고개를 받치고 지켜보는데, 당시 아버지 친구이자 내가 존경하던 장로 선생님께서 “불쌍하지? 염소도 이런데 돈도 없고 아픈 사람들은 얼마나 불행하겠니”라고 말씀하셨다. 그제야 비로소 의사라는 직업에 대해 생각을 해 보게 됐다. 좀 더 나이를 먹고는 어머니 로이스 린턴(인애자)의 결핵 퇴치 사업을 곁에서 지켜보며 마음을 완전히 굳혔다. 내 목표는 연세대 의과대학이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조국인 미국을 경험하지 않고서는 반쪽짜리밖에 되지 않는다”며 미국 대학에 들어갈 것을 권했다. 나는 노스캐롤라이나대학에 진학했지만, 생활이 영 편치 않았다. 어서 빨리 공부를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일단 한번 지내 보기로 아버지와 약속했던 1년간의 미국 생활이 끝나고 나는 미련 없이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한국어를 체계적으로 배우기 위해 1979년 연세대 한국어학당에 등록했는데, 6개 레벨의 수업 중 나에게 맞는 단계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글쓰기는 형편없는데 말은 너무도 유창하게 하니 어느 수준에 맞춰야 할지를 정하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1980년 연세대 의예과에 정원외 입학을 했다. 한국 나이로 스물두 살. 동기들보다 두어 살이 많았다. 나의 대학 입학은 한국의 신군부 독재와 함께 시작됐다. 대한민국은 기나긴 박정희 시대가 끝났지만, 새로운 독재의 터널 속으로 들어가려 하고 있었다. 몇 달 전 10·26이 터졌을 때 한국이 민주화를 이룰 것이라는 나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그해 5월 친구와 함께 남해에 놀러 가는 중이었다. 버스가 광주 근처에 도착했는데, 갑자기 한 청년이 차에 올라탔다. 청년은 “여러분,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선량한 사람들이, 아주 많은 사람이, 계엄군에게 죽었습니다. 이럴 수는 없는 겁니다. 여러분!” 그의 말은 두서가 없었지만 간절했다. 정든 고향 순천의 거리 역시 흉흉했다. ‘대체 무슨 일이 터진 거지?’ 조선대와 전남대에 다니던 친구들이 끔찍한 얘기를 들려줬다. 믿을 수가 없었다. 나는 내 눈으로 사실을 확인하고 싶어 광주에 갔다. 만약 검문에 걸리면 나는 주한 미국대사관 직원이고, 한국인 친구는 나의 통역이라고 말하기로 했다. 광주는 도시 전체가 거대한 장례식장 같았다. 파괴된 도시, 분노로 일그러진 시민들의 얼굴. ‘왜? 그리고 대체 누가 이런 짓을 했나?’ 전남도청 앞 상무관에는 60구 정도의 시신이 안치돼 있었고 시신을 확인하려는 사람들이 수천 명 모여 있었다. 한 아주머니는 확성기를 들고 “왜 내 아들이 국군의 총에 죽어야 했나요”라며 사람들에게 호소하고 있었다. 한 외신기자가 나를 보고는 통역을 요청했고 나는 흔쾌히 응했다. 이를 본 워싱턴포스트, 뉴욕타임스 등 각국 기자들이 줄줄이 내게 통역을 부탁했다. 시민군 대표는 기자회견에서 “북으로 향해야 할 총부리가 남으로 향해 우리의 가족과 선량한 시민을 죽였다”며 분노했다. 나는 그들의 말을 영어로 옮겼다. 또 외신기자들의 질문을 한국어로 전했다. 그 일 때문에 나는 신군부로부터 ‘권고추방’ 명령을 받았지만, 당시 문무대 입소를 자원하면서 간신히 추방을 면했다. -“요한아…빨리 순천으로 내려와야겠다…아버지께서…돌아가셨다.” 1984년 4월 어느 날 오후 어머니의 전화를 받았다. 당시 나는 연세대 의대 본과 2학년이었다. ‘아버지가 위독하신 것도 아니고 돌아가셨다니.’ 아버지는 당시 짓고 있던 농촌 교회 건축에 쓰일 자재를 싣고 차를 몰고 오시는 길에 관광버스와 정면충돌하는 사고를 당했다. 관광버스 기사는 음주운전 상태였다. 사람들이 아버지를 부축해 병원에 도착했을 때 다행히 아버지는 의식을 되찾았다. 아버지는 계속 물을 찾았고 고통을 호소하며 진통제 주사를 놔 달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의사는 큰 병원에 가야 한다고 했고 광주기독병원으로 가기 위해 택시를 불렀다. 지금 생각하면 어처구니없는 일이지만 당시 순천은 물론이고 서울의 몇 군데 큰 병원을 빼면 앰뷸런스가 없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울화통이 터졌다. 응급환자를 대하는 의료체계가 이렇게 엉성하다니.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8년이 흐른 1992년 나와 가족은 3200여만원을 밑천 삼아 ‘한국형 앰뷸런스’ 개발에 착수했다. 15인승 승합차를 광주에서 주문해 순천으로 옮겼다. 순천기독결핵재활원 앞에 차를 세워 놓고 목수와 용접공, 자동차 정비공을 불러 개조에 들어갔다. 환자를 눕힐 공간과 환자 머리맡에 의사가 앉을 수 있는 자리를 만들었다. 침대 밑과 천장에 응급장비를 설치할 수 있도록 했다. 일이 착착 진행돼 1주일 만에 개조된 앰뷸런스를 완성했다. 처음으로 한국형 앰뷸런스가 만들어진 것이었다. 병원보다는 소방서가 인명을 구조하는 데 우선이라는 판단에 소방서에 줬다. 올바로 활용하는 방법도 미국 텍사스에서 응급구조 일을 하고 있던 외삼촌에게 도움을 청해 가르쳤다. 순천소방서의 앰뷸런스는 활동 첫해 1000회의 출동 건수를 기록했고, 이 중 62건은 앰뷸런스가 없었더라면 사망했을 사람을 구조한 출동이었다. 나는 내가 우리나라 응급의료체계의 기틀을 다지는 일에 미력이나마 보탬이 됐다는 데 큰 자부심을 갖고 있다. -1997년 1월의 첫 방북은 우연한 계기로 이뤄졌다. 1996년 어머니는 40년 의료봉사의 공을 인정받아 삼성문화재단이 주는 ‘호암상’을 수상했다. 어머니는 상금 5000만원의 용도를 ‘북한에 앰뷸런스 기증’으로 지정했다. 한국에서 직접 북한을 지원할 방법이 없어 선교단체인 유진벨재단의 이름으로 기증하기로 했고, 그 실무 작업을 위해 들어갔던 것이다. 얼마 후 유진벨재단에 북한 보건성의 통지문이 날아들었다. 결핵 퇴치 사업에 나서 달라는 요청이었다. 북한에서도 이미 1970년대 결핵 환자가 거의 자취를 감췄지만 1995~1996년 잇따른 홍수 피해와 1997년 가뭄으로 다시 결핵이 확산돼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결핵환자요양소를 방문해 환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의약품을 분배하고, 검진차 사용 방법을 일일이 알려 주고 다녔다. -나는 4년 전 한국인으로 특별귀화를 했다. 어머니가 미국 국적을 포기하지 못하게 해서 ‘미국인’으로 살아왔지만, 2012년 정부에서 다른 나라 국적에 더해 ‘한국인’ 국적도 추가로 취득할 수 있도록 특별귀화제도를 만들었다. 지금 우리나라에 가장 필요한 것은 ‘온돌방 문화’의 부활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온돌방에서 어른들께 지식을 배웠고, 도덕을 배웠고, 소통을 배웠다. 남과 북, 동과 서, 진보와 보수. 지금 한국은 너무 찢어져 있다. 어린 시절 순천에서 가족들,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했던 온돌방 아랫목이 너무도 그립다. 김태균 경제정책부장 windsea@seoul.co.kr 윤수경 기자 yoon@seoul.co.kr ■인요한 세브란스 국제진료센터 소장 구한말 우리나라에 들어온 미국 선교사의 후손으로, 연세대 의과대학을 나와 현재 세브란스병원에서 국제진료센터 소장을 맡고 있다. 1997년부터 29차례에 걸쳐 방북, 결핵으로 고통받는 북한 사람들을 돌봤으며 1980년대 ‘한국형 응급차’를 개발하고 보급시켜 당시 낙후된 국내 응급구조 시스템의 선진화에 크게 기여했다. 우리나라 의술의 국제화를 통해 ‘의료 한류’의 주역으로 자리매김했다. 이런 공로들을 인정받아 지난해 6월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 총재에 임명됐다. 1895년 한국에 파송돼 광주 수피아여학교·숭일학교, 목포 정명학교·영흥학교, 광주기독병원 등을 설립한 호남 기독교의 아버지 유진 벨(한국명 배유지) 선교사가 그의 진외증조부(친할머니의 아버지)다. 스물두 살 나이에 한국에 와 48년 동안 의료와 교육 선교 활동을 벌인 윌리엄 린턴(인돈) 선교사가 할아버지, 군산에서 태어나 전남 지역을 중심으로 600개가 넘는 교회를 개척한 휴 린턴(인휴) 선교사가 아버지다. ▲1959년 전북 전주 출생 ▲대전외국인학교, 연세대 의학과, 고려대 의학 석·박사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국제진료센터 소장, 재단법인 순천기독결핵재활원 이사, 한국국제협력단(KOICA) 자문위원·전문위원, 제4대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 총재 ▲2005년 국민훈장 목련장, 2014년 홍조근정훈장
  • 국현 교수 등 3명 화이자의학상

    국현 교수 등 3명 화이자의학상

    대한민국의학한림원과 한국화이자제약은 27일 ‘제14회 화이자의학상’ 수상자로 기초의학상에 국현(왼쪽·48) 전남대 의과대학 교수, 임상의학상에 홍명기(가운데·54) 연세대 의과대학 교수, 중개의학상에 남도현(오른쪽·52) 성균관대 의과대학 교수를 선정했다. 국 교수는 혈관의 석회화를 제어할 수 있는 새로운 치료 방법에 대한 연구 공로를 인정받았고, 홍 교수는 관상동맥 질환 치료에 혈관내초음파를 활용할 경우 치료 효과가 우수하다는 점을 밝혀 수상자가 됐다. 남 교수는 악성뇌종양의 치료와 유전체에 따른 내성을 규명해 정밀의료의 중개연구 방향을 제시한 점을 인정받아 올해 처음 추가된 중개의학상을 받는다. 시상식은 오는 11월 2일 열린다.
  • “류머티스성 관절염약, 원형 탈모에도 효과”

    “류머티스성 관절염약, 원형 탈모에도 효과”

     류머티스성 관절염 치료제인 ‘젤잔즈’(Xeljanz)가 원형탈모증을 치료하는 데 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해열제 용도로 개발된 아스피린이 ‘준 만병통치약’처럼 쓰이고, 발기부전 치료제인 비아그라가 미세혈관 확장 효과 덕분에 긴급 상황의 미성숙 신생아를 살려낸 것처럼 젤잔즈도 새 용도를 찾게될 지 주목된다.  미국 예일대 의과대학 피부과 전문의 브레트 킹 박사가 원형탈모증 환자 66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임상시험에서 이 같은 사실이 밝혀졌다고 헬스데이 뉴스가 22일 보도했다.  ‘젤잔즈’ 5㎎을 매일 2회씩 3개월 동안 투여한 결과 참가자의 절반 이상이 모발이 다시 자라났고 3분의 1은 빠진 머리의 50% 이상이 채워졌다고 킹 박사는 밝혔다.  다시 새로 난 모발이 그대로 붙어있을 것인지 또 얼마나 오래 이 약을 먹어야 하는지까지는 아직 알 수 없다고 그는 말했다. 이 약이 가장 흔한 형태의 탈모인 남성형 탈모증(대머리)에 대한 효과에 대해서는 연구가 더 진행되야 하지만 현재까지 특별한 부작용은 없었다고 그는 덧붙였다. 이 결과에 대해 뉴욕 레녹스 힐 병원 피부과 전문의 도리스 데이 박사는 원형탈모가 시작된 지 5년이 넘은 환자도 한 달 만에 모발이 상당히 다시 자랐다는 것은 대단한 효과라고 평가했다.  류머티즘 관절염은 퇴행성 관절염과는 달리 면역세포의 일종인 T세포가 팔목, 손가락, 발가락, 발목, 무릎 등 신체의 관절이 있는 부위를 공격해 발생하는 자가면역질환이고 원형탈모증 역시 면역세포가 모낭 세포를 공격해 발생하는 자가면역질환의 일종이다.  원형탈모증은 두피에서 주로 발생하지만 눈썹 같은 다른 모발 부위에서도 나타날 수 있다.  화이자 제약회사 제품인 ‘젤잔즈’(화학성분명: 토파시티닙 시트레이트)는 염증유발 물질인 사이토킨이 사용하는 세포 내 신호전달경로를 억제한다. ‘젤잔즈’는 1년 치 약값이 4만 달러로 꽤 비싸다.  이 연구결과는 미국 임상연구학회 학술지 ‘JCI Insight’ 최신호(9월 22일 자)에 실렸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고대 수시 경쟁률 22대1

    4년제 일반대학이 올해 대입 수시모집을 21일 모두 마감한 결과 서울 주요 대학 평균 경쟁률이 지난해보다 전반적으로 소폭 하락했다. 수시모집에서 3040명을 선발하는 고려대에는 6만 6975명이 지원해 22.03대1을 기록했다. 지난해 수시 평균 경쟁률(23.63대1)보다 다소 떨어졌다. 전형별로는 1040명을 모집한 일반전형(논술)이 47.20대1로 가장 높았다. 융합형인재전형은 14.71대1, 학교장추천전형은 5.90대1, 국제인재전형은 7.00대1, 과학인재전형은 8.60대1이었다. 모집단위 가운데에는 일반전형 의과대학이 30명 모집에 2393명이 지원해 79.77대1로 경쟁률이 가장 높았다. 서강대는 1143명 모집에 3만 9002명이 지원해 34.12대1의 경쟁률을 나타냈다. 지난해 37.46대1보다 소폭 하락했다. 논술전형이 75.74대1로 가장 높았다. 성균관대의 수시 전체 경쟁률은 2701명 모집에 6만 6924명이 지원해 24.78대1을 나타냈다. 지난해 27.47대1보다 하락한 것으로, 전형별로는 논술우수전형이 51.07대1로 가장 높았다. 논술우수전형 의예과는 5명 모집에 1444명이 지원해 288.80대1을 기록했다. 2099명을 모집하는 이화여대는 3만 488명이 지원해 14.53대1이었다. 모집단위 가운데 논술전형 의예과가 10명 모집에 1511명이 지원해 151.10대1의 경쟁률을 보였다. 한양대는 2172명 모집에 5만 6897명이 지원해 26.20대1을 나타내 지난해 31.56대1보다 하락했다. 서울시립대는 1000명 모집에 1만 4952명이 지원해 14.95대1을 나타냈다. 지난해 16.49대1보다 하락했다. 다만 서울과학기술대는 15.38대1로 지난해 13.74대1보다, 숙명여대는 16,78대1로 지난해 14.02대1보다 다소 올랐다. 중앙대의 올해 수시모집 경쟁률은 23.84대1이었다. 지난해에는 22.56대1이었다. 오종운 종로학원하늘교육 평가이사는 “올해 고3 수험생이 지난해 대비 2만 4000여명 감소하면서 서울의 주요 대학은 물론 수시 전체 경쟁률도 지난해보다 감소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고대 수시 경쟁률 22대1

    4년제 일반대학이 올해 대입 수시모집을 21일 모두 마감한 결과 서울 주요 대학 평균 경쟁률이 지난해보다 전반적으로 소폭 하락했다. 수시모집에서 3040명을 선발하는 고려대에는 6만 6975명이 지원해 22.03대1을 기록했다. 지난해 수시 평균 경쟁률(23.63대1)보다 다소 떨어졌다. 전형별로는 1040명을 모집한 일반전형(논술)이 47.20대1로 가장 높았다. 융합형인재전형은 14.71대1, 학교장추천전형은 5.90대1, 국제인재전형은 7.00대1, 과학인재전형은 8.60대1이었다. 모집단위 가운데에는 일반전형 의과대학이 30명 모집에 2393명이 지원해 79.77대1로 경쟁률이 가장 높았다. 서강대는 1143명 모집에 3만 9002명이 지원해 34.12대1의 경쟁률을 나타냈다. 지난해 37.46대1보다 소폭 하락했다. 논술전형이 75.74대1로 가장 높았다. 성균관대의 수시 전체 경쟁률은 2701명 모집에 6만 6924명이 지원해 24.78대1을 나타냈다. 지난해 27.47대1보다 하락한 것으로, 전형별로는 논술우수전형이 51.07대1로 가장 높았다. 논술우수전형 의예과는 5명 모집에 1444명이 지원해 288.80대1을 기록했다.2099명을 모집하는 이화여대는 3만 488명이 지원해 14.53대1이었다. 모집단위 가운데 논술전형 의예과가 10명 모집에 1511명이 지원해 151.10대1의 경쟁률을 보였다. 한양대는 2172명 모집에 5만 6897명이 지원해 26.20대1을 나타내 지난해 31.56대1보다 하락했다. 서울시립대는 1000명 모집에 1만 4952명이 지원해 14.95대1을 나타냈다. 지난해 16.49대1보다 하락했다. 다만 서울과학기술대는 15.38대1로 지난해 13.74대1보다, 숙명여대는 16,78대1로 지난해 14.02대1보다 다소 올랐다. 중앙대의 올해 수시모집 경쟁률은 23.84대1이었다. 지난해에는 22.56대1이었다. 오종운 종로학원하늘교육 평가이사는 “올해 고3 수험생이 지난해 대비 2만 4000여명 감소하면서 서울의 주요 대학은 물론 수시 전체 경쟁률도 지난해보다 감소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코앞으로 다가온 ‘수능’, 철분으로 뒷심 발휘해볼까

    코앞으로 다가온 ‘수능’, 철분으로 뒷심 발휘해볼까

    수능이 50여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조급한 마음을 갖는 수험생과 학부모들이 늘고 있다. 이에 학생들 중에는 보건소 등에서 수험생활로 인한 스트레스, 우울증 등을 해소하기 위해 심리상담을 받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 수험생들에게 필요한 것은 평소 하던 대로 생활패턴을 유지하는 것이다. 또한 억제로 잠을 줄여 공부하기보다 하루 6~7시간 정도의 수면시간을 갖는 것이 좋다. 학부모들 역시 비싼 건강보조식품보다는 균형 잡힌 식단으로 자녀의 건강을 신경 써주는 것이 좋다. 더불어 수험생의 두뇌회전을 위해 매 끼니 철분이 많은 음식을 챙겨 주는 것도 추천할 만하다. 체내에 철분이 부족하면 학습능력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 로체스터 의과대학 질 홀터만 박사는 6~16세 학생들을 철분 결핍 정도에 따라 3그룹으로 분류한 뒤 학업 점수를 살펴보는 실험을 통해 유의할 만한 결과를 도출해냈다. 그는 아이들을 ▲빈혈 증세가 있으면서 철분 결핍증이 있는 그룹 ▲빈혈은 없지만 철분 결핍증이 있는 그룹 ▲철분이 충분한 그룹으로 구분한 뒤 이들의 수학점수를 비교했다. 그 결과, 빈혈군의 수학 점수는 86.4점, 결핍군은 87.4점으로 비슷했지만, 철분이 충분한 그룹의 수학 점수는 93.7점으로 다른 그룹에 비해 약 9%나 높게 나타났다. 실험 결과에 대해 홀터만 박사는 “철분이 부족하면 학습 능력과 관련된 효소 및 영양전달체계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학업 성적에 영향을 줄 수도 있는 철분은 다양한 음식에 들어 있다. 철분이 많은 대표적인 음식으로는 김과 굴, 새우 등이 있다. 그러나 먹는 음식만을 통해 일일 철분 섭취량을 채우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철분은 조리 과정에서 파괴되는 양이 많기 때문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음식과 철분 보충제를 함께 챙겨줄 것을 추천한다. 철분제는 보건소나 약국, 대형마트 등에서 상담 후 구입할 수 있다. 국내 온라인 사이트나 아이허브 등 해외 직구 사이트에서도 천연원료 철분제, 합성철분제 등 다양한 특장점을 내세운 철분제를 구입할 수 있다. 최근에는 철분제의 대사성을 높이기 위해 첨가물을 사용하지 않고 모든 원료를 과일과 채소 등 자연물에서만 추출해 사용하는 것은 물론 이산화규소와 스테아린산마그네슘 등 화학 부형제를 전혀 넣지 않은 ‘無부형제 공법’으로 안전성을 더욱 높인 100% 천연원료 철분제도 있어 학부모들이 천연 철분제를 구매할 수 있는 선택의 폭이 훨씬 넓어지기도 했다. 천연원료 비타민 브랜드 뉴트리코어는 “수능이 얼마 남지 않은 요즘, 부모가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마음 편히 공부에 매진하게 해주는 일”이라며 “균형 잡힌 식사와 함께 천연 철분제로 마음을 전해보길 바란다”고 말했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뜨거우면 강해져요… 열대성 감염병

    뜨거우면 강해져요… 열대성 감염병

    말라리아부터 콜레라까지 최근 우리나라에서 후진국형 질병이 잇따라 발생하는 원인으로 전문가들은 기후변화를 꼽는다. ‘기후변화 정부 간 협의체’(IPCC) 보고서에 따르면 1906년부터 2005년까지 100년간 지구의 평균 기온은 0.74도 상승했으며 우리나라만 해도 2001~2010년 연평균 기온(13.3도)이 1971~2000년 평년값인 12.7도보다 0.5도 상승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환경전망보고서는 온실가스 배출로 2050년 지구의 평균 기온이 산업화 이전 수준보다 2.0~2.8도 증가하리라 예측했다. 질병관리본부는 이번 콜레라 환자 발생이 기후 변화와 무관치 않다고 본다. 연이은 폭염으로 해수 온도가 올라 콜레라균이 이상 증식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해외 유입 콜레라 환자에서 배출된 균이 연안해 플랑크톤에 증식해 해산물을 오염시키고, 이 해산물을 먹은 사람들이 연이어 감염됐을 가능성이 있다. 기온이 지속적으로 오르고 있어 내년에도 콜레라 발생이 되풀이될 수 있다. 기후변화에 따른 감염병 증가는 비단 우리나라만의 일이 아니다. 순천향대가 질병관리본부의 연구용역을 받아 작성한 ‘기후변화에 따른 매개체 전염병 관리 대책 수립’ 보고서를 보면 캐나다는 설치류와 곤충이 옮기는 질병이 증가했고, 인도는 말라리아 분포가 북쪽으로 더 이동했다. 네덜란드는 진드기가 옮기는 라임병이 증가했고 포르투갈은 수인성 매개 질환 관련 사망자가 늘었다. 신호성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기후변화에 따른 전염병 감시체계 개선 방향’ 연구에서 우리나라 온도 변화에 따른 감염병 발생을 예측한 결과 평균 기온이 1도 상승하면 쯔쯔가무시, 렙토스피라, 말라리아, 장염비브리오, 세균성이질 등 5가지 감염병의 평균 발생률이 4.27% 증가할 것으로 예측했다. 실제로 털 진드기가 옮기는 발열성 질환인 쯔쯔가무시증은 2009년 이후 매년 증가해 2013년 국내 환자가 처음으로 1만명을 넘어섰고, 2014년 8130명으로 감소했다가 지난해 전년 대비 17.0% 늘어난 9513명의 환자가 발생했다. 주로 한반도 남서부에서만 발생했지만 점차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기후변화로 매개체인 진드기의 서식지가 북상하고 있는 것이다. 말라리아는 2007년 이후 꾸준히 감소하고 있으나 지난해(699명)는 전년(638명)에 비해 환자가 증가했다. 국내 말라리아 환자가 갑자기 늘기 시작한 2014~2015년 말라리아 매개 모기 개체 수도 크게 늘었다. 질병관리본부의 ‘말라리아 매개 모기 감시현황’ 자료를 보면 2014년 4~10월 채집된 말라리아 매개 모기 수는 291마리로, 전년도 98마리보다 무려 196.9% 증가했다. 2015년에 채집된 말라리아 모기는 417마리로, 2014년보다 43.3% 늘었다. 우리나라에서 말라리아 감염을 일으키는 종은 삼일열 말라리아로, 치사율이 높은 열대 지방의 열대열 말라리아보다는 증상이 약하다. 아직 우리나라에는 열대열 말라리아 매개 모기가 없으나 항공기를 통해 들어올 수 있다. 지카바이러스와 뎅기바이러스를 옮기는 이집트숲모기를 비롯해 주로 아열대 지역에서 활동하는 매개 모기들은 겨울철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는 우리나라에서 살기 어렵다. 하지만 기온이 계속 상승하면 조만간 이런 모기들을 국내에서 맞닥뜨리게 될지도 모른다. 정해관 성균관대 의과대학 사회의학교실 교수는 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 전문가리포트 ‘기후변화 관련 감염병 동향’에서 “이집트숲모기는 겨울철 평균 기온이 10도 이상인 지역에서만 증식할 수 있어, 21세기 후반에는 기온이 높은 제주지역에서부터 정착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보건당국은 기후변화로 진드기나 숲모기 등이 점점 북상하면서 동남아시아에서 주로 발생하는 아열대성 질환이 국내에 토착화할 가능성을 가장 우려한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11일 “지금 가장 걱정되는 감염병은 뎅기열이며, 국내 토착화는 시간문제”라고 말했다. 올 들어 지난 7월까지 해외에서 뎅기열에 걸려 입국한 환자는 244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유입된 뎅기열 환자 95명보다 3배 가까이 늘었다. 질병관리본부가 정해관 교수와 함께 개발한 ‘뎅기열 국내 토착화 예측 모형’에 따르면 올해 해외 유입 뎅기열 환자 수는 300~700명 수준일 것으로 예측됐다. 엘니뇨와 같은 기후현상으로 동남아시아 국가에서 뎅기열이 증가하고 발생 지역도 확대되면서 국내 유입 뎅기열 환자도 늘고 있다. 뎅기열에 걸리면 발열, 심한 두통, 관절통 등의 증상이 나타나며, 감염자의 75%는 증상이 없다. 하지만 약 5%의 환자는 뎅기출혈열, 뎅기쇼크증후군 등의 중증 뎅기열로 악화해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면 사망할 수 있다. 뎅기열은 이집트숲모기와 흰줄숲모기가 옮기는데, 우리나라에는 흰줄숲모기만 서식하고 있고 아직 이 모기에서 뎅기바이러스가 검출되진 않았다. 흰줄숲모기는 이집트숲모기에 비해 뎅기열 전파력이 떨어지긴 하지만 국내 환자 수가 계속 늘어나면 이 모기가 뎅기 바이러스에 감염돼 국내에서 자체 유행이 이뤄질 가능성이 작지 않다. 2014년 여름에는 도쿄 중심부의 요요기공원을 중심으로 뎅기열 환자가 113명 발생한 바 있다. 일본에도 흰줄숲모기가 서식한다. 싱가포르는 이미 뎅기열이 토착화했다. 오는 12월 부산에서 열리는 한·중·일 보건장관 회의에서도 지구온난화에 따른 아열대성 감염병의 토착화 문제 등이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질병관리본부 관계자는 “전에 없던 콜레라 등 후진국형 질병의 발생은 이제 시작일 뿐”이라고 경고했다. 세종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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