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자내분 진화에 극적 돌파구/박정무 사표로 수습길 진입
◎청와대의 확전방지 “사석작전”/민주계,“성과” 자평…파상공세 예상/민정계,희생카드 활용,당주도 모색
박철언정무1장관이 13일 정무장관직에 대한 사표를 제출함으로써 민자당내분은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노태우대통령이 사표를 수리하는 것을 전제로,민정민주계분쟁은 그 표적이었던 박장관 거취문제가 민주계 요구대로 해결됨으로써 극적인 수습의 계기를 맞은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민정민주계가 분쟁을 대화와 타협으로 풀지 못하고 어느 일방의 「항복」으로 마무리지은 점은 양계파간의 감정악화라는 새로운 문제를 낳았다. 장기적으로는 결산이 아닌 새로운 분쟁의 시작을 가져다 줄 가능성도 있다.
박장관의 사표제출은 김영삼최고위원의 완강한 태도와 여론의 부정적동향을 감안한 청와대측의 「사석작전」으로 이해되고 있다. 지난 10일 박장관이 김최고위원을 정면비난했을 때의 의도와는 달리 내분수습의 도의적 책임이 노대통령에게 귀결될 조짐을 보임에 따라 내분의 불길이 노대통령에게 미치기 전에 「사퇴카드」로 이를 차단한것으로 해석된다.
박장관의 사표제출은 이번 분쟁의 또다른 대상인 당운영문제에 대한 청와대와 민정계의 입장이 보다 단호해질 것임을 예견케 하고 있다. 박장관측이 지난 10일 김최고위원을 정면 비난하고 나섰던 것은 자신에 대한 퇴진압력도 고려했겠지만 보다 중요한 배경은 김최고위원측이 합당 당시의 약속을 깨고 당정 분리론과 함께 당권장악의사를 피력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왔다. 당초 박장관은 김최고위원의 청와대 당직자회의 불참이 있은 직후 『내가 조용히 있고 당운영문제에 대해 민주계의 요구를 부분적으로 수용해 주면 문제가 풀리지 않겠느냐』는 입장을 피력한 바 있다. 그러나 8일밤 상도동 자택을 방문한 노재봉대통령비서실장에게 김최고위원은 당정분리론을 펴면서 노대통령이 당무에서 손을 떼도록 요구했고 이같은 요구가 박장관의 10일 발언을 촉발시킨 것으로 이해돼 왔다.
그러나 민정계가 박장관의 생존을 전제로 제시했던 당운영문제에 대한 양보의사는 박장관의 사표제출과 함께 사실상 철회된 것으로 여겨진다. 박장관의 사표제출을 「사석작전」으로 보는 것도 박장관을 내주는 대신 노대통령의 강력한 당장악을 고수하기 위한 것으로 보는 때문이다.
박장관의 사표제출은 청와대의 사표수리에 대한 유보적인 자세에서 알 수 있듯이 민주계의 「분쟁종식」화답이 있어야만 수리될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수정청와대대변인은 이날 박장관의 기자회견이 있은 직후 『당에서의 조정이 있어야만…』대통령이 처리할 것이라고 말해 민주계의 분쟁종식선언이 수리의 전제조건임을 분명히 했다.
아직 민주계는 박장관의 사표제출에 대한 입장을 명확히 하지 않고 있다. 민주계가 박장관의 사퇴를 요구한 것은 박장관도 문제지만 이기회에 당운영에 대한 김최고위원의 위상을 확고히 하자는 데 더 큰 뜻이 있은 것으로 여겨져온 터다. 때문에 박장관의 사표제출이 즉각적이고 적극적인 민주계의 분쟁종식선언으로 이어질 것 같지는 않다.
다만 이번 분쟁의 내막이야 어떻든 김최고위원과 박장관의 감정싸움으로 국민들에게 비쳐졌고 그 결과로 박장관이 여론의 부담을 졌던 게 사실이고 보면민주계가 박장관의 사표제출에도 내분의 연장을 요구한다면 여론의 향배가 바뀔 가능성이 크다. 때문에 민주계는 일단은 박장관의 「사표제출」에서 더이상 확전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선으로 후퇴하면서 동시에 당운영문제에 대한 꼬리표를 달아 놓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민주계가 박장관의 정무장관직 사퇴에 그치지 않고 국회의원직 사퇴라는 초강경카드를 고집한다거나 당운영에 대한 「새로운 보장」을 요구할 경우 박장관의 사표는 반려되거나 예상할 수 없는 상태로 내분이 확대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김최고위원 스스로도 정치적으로 상당한 상처를 입었음을 감안할 때 이번 싸움은 승자도 패자도 없는 소모전으로 성격을 규정지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청와대측은 민자당내분이 대화와 타협으로 어느 일방의 희생없이 종식되기를 희망해 온 것이 사실이다. 때문에 박장관에 대한 「읍참마속」형 내분수습은 결과적으로 민정민주계에 상당한 감정의 앙금을 남기는 것이 불가피하다. 특히 민정계가 막후협상을 통해 대통령의 「통치권 손상」을 들며 사실상 전당대회 당직개편때의 경질을 의미하는 「대통령에게 일임처리」를 호소했음에도 김최고위원이 끝내 거부함으로써 청와대와 김최고위원간에도 보이지 않는 벽이 생겼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민정계는 앞으로 당운영에 있어서 의석비율에 따른 권한행사를 보다 강력하게 요구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밀어 붙이기에서 나름의 성과를 거둔 것으로 자평하는 민주계 역시 당권과 관련해 파상공세를 멈추지 않을 것으로 보여 민자당은 계속 정면대립의 불씨를 안은채 불안한 동거를 유지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박장관의 사표제출이 새로운 분쟁의 시작이라고 보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