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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것이 알고싶다’ 5억원대 소송...은수미 ‘조폭 유착설’ 보도 파장

    ‘그것이 알고싶다’ 5억원대 소송...은수미 ‘조폭 유착설’ 보도 파장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이 5억 원대 손해배상 소송에 걸렸다. 11일 서울남부지법에 따르면 SBS 시사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을 상대로 은수미 성남시장이 손해배상과 정정 보도 청구 소장을 냈다. ‘그것이 알고 싶다’ 측은 앞서 지난 7월 21일 ‘조폭과 권력 - 파타야 살인사건, 그 후 1년’ 편을 통해 조직폭력배와 유력 정치인의 유착관계를 파헤쳤다. 제작진은 은수미 시장이 2016년 조직폭력배 출신 사업가로부터 자동차와 운전기사 등을 후원받았다는 의혹을 제기, 코마 트레이드 대표이자 성남 국제마피아파 일원이었던 이준석과 이재명 경기도지사, 은수미 시장의 연관성을 되짚었다. 이날 방송 이후 논란이 일자 은 시장 측은 “선거기간 해명한 내용 외에 말할 것이 없다”며 의혹을 부인했다. 이어 “정치공작이자 음해”라며 제작진에 정정 보도 등을 요구했다. 사진=SBS 뉴스팀 seoulen@seoul.co.kr
  • 은수미 성남시장,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 5억 손배소 제기

    은수미 성남시장,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 5억 손배소 제기

    은수미 성남시장이 자신의 ‘조폭 유착’ 의혹을 제기한 SBS ‘그것이 알고 싶다’를 상대로 손해배상과 정정보도 청구 소송을 냈다. 11일 서울남부지법에 따르면 은수미 시장은 지난달 27일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 등 3명을 상대로 총 5억원의 손해배상과 정정보도를 청구하는 소장을 제출했다. ‘그것이 알고 싶다’는 지난 7월 21일 방송을 통해 은수미 시장이 2016년 폭력조직 ‘국제마피아파’ 출신 사업가로부터 자동차와 운전기사 등을 제공받는 등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더불어 조폭과 결탁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은수미 시장은 지난 6·13 지방선거 기간 자신이 조폭 출신 사업가로부터 운전기사와 차량 유지비 등을 지원받았다는 의혹에 대해 “당시 운전기사가 자원봉사 차원에서 도운 것으로 알고 있었다”면서 “특정 회사가 급여를 지급했다는 사실은 몰랐다”고 해명했다. 방송 이후 은수미 시장 측은 이미 선거 기간에 해명한 내용 외에 더 밝힐 것이 없다면서 제기된 의혹이 정치 공작이자 음해라고 일축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대법 “육군3사관생도, 외박 중 술 마셨다고 퇴학은 위법”

    금주 의무를 어기고 외박 중에 술을 마신 육군3사관학교 생도를 퇴학시킨 것은 위법하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9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권순일)는 퇴학당한 3사관학교 생도 김모씨가 학교를 상대로 낸 퇴학처분 취소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원고 승소 취지로 사건을 대구고법에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모든 사적 생활에서까지 예외 없이 금주의무를 이행할 것을 요구하는 ‘사관생도 행정예규’는 생도교육의 특수성을 고려하더라도 생도의 일반적 행동자유권, 기본권을 과도하게 제한하는 것으로 무효”라면서 “기본권 제한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전혀 강구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김씨는 사관생도이던 2014년 중순 동기와 함께 외박 중에 소주 1병을 나눠 마셨고 다음해 4월 동기를 집으로 초대해 가족들과 함께 저녁식사를 하면서 소주 2~4잔을 마시는 등 4차례 음주를 한 사실이 적발돼 2015년 11월 퇴학 처분됐다. 사관생도 행정예규에는 ‘생도는 음주할 수 없다. 단 부득이한 부모님 상, 기일 등으로 음주를 해야 할 경우 훈육대장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앞서 1, 2심은 “육군3사관학교 특유의 ‘3금(禁)제도’(금주·금연·금혼)가 있음을 인식하고 이로 인해 기본권이 일부 제한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모두 수용하기로 하고 입학했음에도 조항을 명백히 위반했다”면서 “퇴학처분으로 김씨가 받게 될 불이익이 학교가 이루고자 하는 공공목적보다 현저하게 크다고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그 끝이 씁쓸할지라도… 사랑하고 잃는 게 낫다

    그 끝이 씁쓸할지라도… 사랑하고 잃는 게 낫다

    연애의 기억/줄리언 반스 지음/정영목 옮김/다산책방/384쪽/1만 5000원“수전은 모든 사람에게는 자기만의 사랑 이야기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것이 대실패로 끝났다 해도, 흐지부지되었다 해도, 아예 시작도 못했다 해도, 처음부터 모두 마음속에만 있었다 해도, 그렇다고 해서 그게 진짜에서 멀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이 단 하나의 이야기였다.”(341쪽) 2011년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로 맨부커상을 수상한 영국 대표 작가 줄리언 반스가 신작 장편소설 ‘연애의 기억’에서 말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결국 이 문장일지도 모르겠다. 누구나 사랑을 하지만 그 모양새가 같을 리 없다. 사랑을 나눴던 나와 너의 기억조차 서로 같지 않다. 시작도 못하고 홀로 끙끙 앓았더라도, 참혹한 결말을 맞았다 하더라도 내가 경험한 ‘그 사랑’은 더없이 특별하다. 반스가 쓴 ‘연애의 기억’은 모두가 가지고 있는 ‘단 하나의 사랑’에 대한 찬란한 기록이다. 책은 반스의 개인적인 경험이 바탕이 됐다. 반스는 10대 후반에 50대 초반의 여성 라우리언 웨이드에게 강렬하게 이끌렸다고 한다. 좀처럼 속내를 털어놓지 않는 내성적인 반스가 자신의 오랜 친구들에게 그녀와의 관계를 숨기지 않을 정도였다. 반스가 자립을 하고 런던 문학계에서 활동을 시작하면서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2008년 아내 팻 캐바나가 세상을 떠나 비애에 젖어 있던 반스는 그 다음해 웨이드의 사망 소식을 접하면서 깊이 침잠하게 됐다고 한다.반스의 오래된 기억을 반영하듯 책 속 주인공인 열아홉 살의 폴 역시 여름방학 때 본가로 돌아와 테니스 클럽에 다니면서 우연히 마흔여덟 살의 주부 수전을 알게 된다. 사랑이 늘 그렇듯 두 사람은 특별한 이유 없이 서로에게 깊숙이 빠져든다. 수전의 남편이 그녀에게 폭력을 수시로 휘두르는 사실을 알게 된 폴은 그녀와 함께 각자의 가족을 떠나 둘만의 보금자리까지 구한다. 또 늘 그렇듯 영원할 것 같던 뜨거운 사랑은 서서히 열기를 잃는다. 특히 폴은 수전이 알코올 중독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내내 무력해한다. 연인이 자신과 함께하면서도 행복하기는커녕 고통 속에 허우적거리는 모습 앞에 사랑을 회의할 뿐이다. 작가는 폴이 자신의 인생을 뒤흔든 첫사랑의 기억을 되짚으면서 느낀 복잡다단한 감정을 드러내기 위해 시점을 혼용한다. 작품 속 화자인 폴은 ‘나’이기도 했다가 ‘너’이기도 했다가 ‘그’가 된다. 폴은 수전과의 행복한 순간을 떠올리며 흡족했던 자신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가 하면 자신과 그녀가 겪게 된 파국을 최대한 거리를 둔 채 담담하게 바라본다. 수전의 인생을 지탱해 주지 못했다는 자책과 수전이 자신에게 남긴 깊은 상처로 점철된 불행한 과거를 떠올리기 힘든 탓이다. 수전에게 서서히 중독된 폴은 다른 여인들과 새로운 만남을 이어 가지만 끝내 자신의 삶에서 그녀를 떨치지 못한다. 그래서 결심한다. “설사 그게 다락방이라 해도”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그의 마음속에 수전을 위한 자리를 남겨 두기로. “한 번도 사랑해 본 적이 없는 것보다는 사랑하고 잃어 본 것이 낫기” 때문이다. 노작가가 담백한 어조로 읊조린 옛 사랑의 뒷모습은 마음 한켠에 깊게 자리잡은 사랑의 추억을 일깨운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우리가 늘 “최종적으로 이야기할 가치가 있는 것은 단 하나뿐”이다. 바로 나의 유일한 사랑 이야기.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단독] 변양균 “퇴직연금 감액분 돌려달라” 항소심도 패소

    [단독] 변양균 “퇴직연금 감액분 돌려달라” 항소심도 패소

    2007년 ‘신정아 사건’으로 공직에서 물러난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특별사면된 뒤 “감액된 퇴직급여를 돌려달라”고 낸 소송이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패소했다. 7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행정3부(부장 문용선)는 변 전 실장이 공무원연금공단을 상대로 낸 퇴직연급 지급청구 소송 항소심에서 전날 변 전 실장의 항소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변 전 실장 측이 ‘재직 중 범죄행위로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된 공무원은 퇴직급여를 감액해 지급한다’는 공무원연금법 조항이 특별사면 및 복권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별하지 않아 헌법상 과잉금지 및 평등원칙에 위배된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변 전 실장은 과거 동국대에 예산 특혜를 내세워 신정아씨를 임용하게 하고 신씨가 큐레이터로 있던 성곡미술관에 기업체 후원금을 모아준 혐의(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로 2007년 수사를 받고 청와대에서 퇴직했다. 이어 다음해 3월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죄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의 유죄 판결을 받았고, 2009년 1월 대법원에서형이 확정됐다. 신씨와 연관된 혐의들은 무죄 판단을 받았지만 개인 사찰인 흥덕사 등에 특별교부세가 배정되게 압력을 넣은 혐의가 유죄로 인정됐다. 변 전 실장은 2010년 광복 65주년을 맞아 특별사면됐다. 변 전 실장은 지난해 11월 “사면·복권으로 유죄 선고의 효력이 상실됐으니 그동안 감액한 연금을 돌려달라”며 행정소송을 냈다. 공무원연금공단은 ‘공무원 재직 중의 범죄 행위로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되면 퇴직연금의 2분의 1을 감액해 지급한다’는 공무원연금법 규정에 따라 2012년 11월부터 변 전 실장의 퇴직연금을 50% 감액해 지급했다. 지난해 10월까지 감액된 금액은 1억 3916만여원으로 변 전 실장은 이 액수를 돌려달라고 소송을 냈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공무원의 신분·직무상 의무를 다하지 못한 공무원과 성실히 근무한 공무원을 동일하게 취급하는 건 불합리하다”면서 “사면·복권으로 유죄 선고의 효력이 소멸했다고 해서 형을 선고받은 범죄사실 자체가 부인되는 건 아니다”라며 퇴직연금을 감액 지급한 처분이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항소심 재판부도 이 같은 1심의 판단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변 전 실장 측은 항소심에서 “쟁점 조항(공무원연금법 64조)이 획일적으로 퇴직급여 청구권을 제한하고 있어 헌법상 과잉금지 원칙, 평등원칙에 위배된다”는 주장을 추가로 제기했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이 주장 역시 기각했다. 재판부는 “이 조항은 공무원 범죄를 사전에 예방하고 공직사회의 질서를 유지하는 데 목적이 있다”면서 “조항의 내용 및 사면법 규정 취지 등에 비춰볼 때 형 선고의 효력상실 특별사면 및 복권을 받은 사람을 그렇지 않은 사람과 구별하지 않은 채 퇴직급여 등의 감액 대상에서 제외하지 않았다고 해서 과잉금지의 원칙을 위반해 퇴직공무원의 재산권을 침해한다거나 합리적 근거 없이 평등원칙을 위반했다고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유영재 기자 young@seoul.co.kr
  • [간병살인 154인의 고백] 장애 아들 돌본 40여년, 살아도 산 게 아니었어

    [간병살인 154인의 고백] 장애 아들 돌본 40여년, 살아도 산 게 아니었어

    발달장애 아들 둔 허강원씨의 삶그날 힘없이 무너져 내린 건 아들의 몸뚱이만이 아니었다. 허강원(73·가명)씨의 실낱같은 희망도 함께였다. 발달장애(지적장애 1급·다운증후군)로 불혹의 나이에 키가 150㎝에서 멈춰버린 큰 아들은 질뚝거렸지만 걸어는 다녔다. 아들이 혼자 걷는다는 건 그 이상의 의미였다. 대소변을 혼자서 가리고, 밥이 있는 곳까지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노부부가 감당할 수 있는 돌봄의 한계치이기도 했다. 허씨는 여느 날과 다름없이 “밥 먹자”고 큰아들을 불렀다. 큰아들은 기우뚱하더니 서지 못하고 엎드렸다. 식탁으로 기어 오기 시작했다. 역설적이게도 그 순간 밤잠 못 이루며 끙끙댔던 고민들이 명쾌해졌다. ‘그래 같이 죽자’. 한씨는 2015년 4월 15일 집 안방에서 자던 큰아들(당시 41)의 머리를 망치로 내리쳤다.“지나고 보니 사는 게 그늘이 많았어. 안 해 본 사람은 몰라. 간병이라는 게 매스컴에 나오는 그런 것과는 많이 달라.” 유난히 태양이 뜨겁던 지난 7월 31일, 허씨를 서울 그의 집 앞에서 마주했다. 사건이 발생한 지 3년이 흘렀지만, 세상과 등진 그의 삶이 달라진 건 크게 없어 보였다. “이젠 눈에 보이지 않잖아. 노력도 많이 했고…. 지나간 일이니까”라며 애써 태연했다. 긴 설득 끝에 그의 집 앞에서 지난 삶에 대해 들었다. 아내는 강남구의 한 빌딩에 청소일을 하러 갔고, 작은아들은 결혼 후 따로 살고 있어 때마침 그는 혼자였다. 허씨는 이미 끝난 일이라며 얘기하고 싶지 않다고 했지만, 한편으로 여지는 남겼다. 노인의 얼굴에 쓴웃음이 내려앉았다. “그래. 그때 예감했어. 차라리 죽었어야 했어.” 큰아들은 아내가 임신한 지 9개월째 되는 날 태어났다. 수술할 돈이 없어 산파에게 부탁했다. 어렵사리 아이는 엄마의 자궁 밖으로 나왔지만, 한동안 숨을 쉬지 못했다. 산파는 도망갔고, 아내가 급한 맘에 아이의 발을 잡고 들어 올려 엉덩이를 때렸다. 기적처럼 큰아들은 울음을 터뜨렸다. 어렵게 살아났지만 아이는 약했다. 갑자기 숨을 쉬지 않는 등 죽을 고비를 수차례 넘겼다. 다섯 살이 됐지만 서지 못했다. 다운증후군, 지적장애 1급이라고 했다. “요즘 눈으로 생각해 보면 장애를 둔 아이를 키우는 게 짜증 날 일도 아니잖아. 근데 사는 재미가 없었어. 희망이 조금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그게 없었지.” 허씨는 강원도 대관령에서 나고 자랐다. 25살 경기 동두천 내 미군부대에서 군생활을 했고, 전역하고 서울에 정착했다. 28살 아내와 혼인해 다음해 큰아들을 가졌다. 찢어지게 가난했다. 서울 중랑구 근처 면도칼 공장에서 일했는데, 벌이가 시원치 않았다. 가진 기술이 없으니 막노동이나 다름없었다. 없이 살았지만 큰아들의 장애가 나을 거라는 희망은 버리지 않았다. 집 근처에 장애인 특수학교가 없어 수소문 끝에 인천 부평에 있는 학교에 보냈다. 그때만 해도 먹고살기 어렵다는 이유로 적지 않은 부모들이 발달장애 아동의 교육을 포기하던 때다. 10개월쯤 지나서였을까. 특수학교를 찾아가 선생님에게 밥을 대접했다. 조금이라도 나아지는 게 있느냐고 물었다. 대답은 야속했다. “나아지는 것 없다”는 말에 작은 희망조차 사라졌다. 없는 살림에 매달 쌀 한 가마니 값을 치러 가며 학교를 보냈지만, 그럴 이유도 사라졌다. ‘발달장애는 질병과 달리 낫지 않는다’, 이 사실을 모르는 부모는 없다. 머리는 알지만, 가슴은 이해할 수 없었다. 첫 겨울방학을 기점으로 아이는 집으로 돌아왔다. 첫째가 잘하는 건 집에서 텔레비전 보기였다.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텔레비전을 틀어 주면 온종일 봤다. 말은 대충 알아들었고, 간신히 걸어 똥오줌은 가렸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아이가 흘린 김칫국물을 닦고, 국물이 묻은 옷을 벗기고, 발버둥 치는 몸을 씻기는 일은 40여년을 해도 즐겁지 않았다. 큰아들을 돌보느라 나들이 한 번 제대로 가 본 적 없었다. 아이를 돌봐야 하니 일을 마치고 퇴근해도 직장 동료나 친구들과 어울리지도 못했다. 큰아들이 어렸을 땐 집에 놀러 오는 사람도 있었지만, 아이가 성인이 되고 나선 이웃도, 친구도 모두 사라졌다. “또래들이 태권도복 입고 태권도장 가는 모습을 보잖아요. 우리 아이는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찔찔찔 하는데, 사람 눈 뒤집히지. 행복할 수가 있나.” 우울증이 찾아왔다. 술만 마시면 눈물을 흘리며 비관했다. 남들한테 추한 꼴을 보이기 싫어 술도 담배도 끊었다. 이게 벌써 수십년 전이다. 언제나 단정하게 보이려고 했지만, 남들은 늘 추하게만 보는 것 같았다. 사실 큰아들 밥 차려 주고 거두는 건 힘들지 않았다. 그냥 큰아들을 바라보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였다. 공원에 가서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다 보면 얘기의 끝은 늘 아들, 딸, 며느리 얘기였다. 그럴 때마다 할 얘기가 없어서 소심해졌다. 5살 터울인 작은아들에게도 형은 굴레였다. 장애를 둔 형 때문에 파혼을 당하기도 했다. 부모가 죽고 없으면 형을 돌볼 수 있는 가족은 동생뿐이지 않냐며 상대편 부모가 반대했다. 부모의 마음은 미어졌다. “부모들 모임도 여유 있는 사람들이나 가는 거야.” 그는 인터뷰 도중 자주 엄지와 검지를 말아 쥐었다. 돈을 뜻하는 손짓이었다. 결국 돌보는 노동에서 벗어나고자 아이를 센터에 보내는 것도,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도 경제적 기반이 필요하다는 의미였다. 허씨 내외는 경제적으로 늘 허덕였다. 맞벌이를 해 봐야 시원치 않았다. 아내는 아이를 낳고 빌딩 청소일을 해 왔고, 허씨는 여러 공장을 전전하다가 60세에 환경미화원을 끝으로 은퇴했다. 이후 빌딩 경비 일도 했지만, 2교대 근무 탓에 큰아들을 돌봐 줄 사람이 없어 금방 그만뒀다. “밥 먹다가 숟가락을 딱 떨어뜨렸어.” 그 사건이 발생하기 약 1년 전 허씨는 뇌출혈 선고를 받았다. 식사를 하다가 손에 힘이 없어 자기공명영상(MRI)을 찍었더니 뇌경색이 발견됐다. 이미 고혈압과 협심증, 류머티즘 관절염, 척추 디스크, 수면장애 등을 앓고 있었지만 뇌출혈은 느낌이 달랐다. 곧 죽을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큰아들은 누가 돌봐야 할지 걱정부터 앞섰다. 잘못된 생각이 들었다. 큰아들과 함께 죽는 게 모두를 위해 최선이 아닐까 하는 믿음도 생겼다. 고민이 깊어질 무렵, 걷지 못하는 아들의 모습을 봤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팽팽하던 긴장의 사슬은 톡 끊어졌다. “아들을 망치로 내리쳤소. 규남이는 내가 데리고 갑니다. 정선희 당신을 만나 한평생 잘 지냈소. 규남이에겐 입이 열개여도 할 말이 없소이다.”(유서 전문) 2015년 4월 15일 새벽 6시쯤, 아내가 일을 나간 것을 확인하고 망치로 아들의 머리를 힘껏 내리쳤다. 회한이 몰아치기 전에 유서를 썼다. 그리고 미리 준비한 수면제 수십알을 들이켰다. 정신을 잃기 전에 아파트 복도 밖으로 뛰어내리려고 했다. 중간쯤 갔을까. 허씨는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그렇게 질긴 목숨은 끝나지 않았다. 일을 마치고 돌아온 아내가 남편을 발견했고 곧바로 병원으로 옮겼다. 허씨는 3일간 혼수상태를 오갔지만, 끝내 깨어났다. “피고인을 징역 3년에 처한다. 다만 5년간 형의 집행을 유예한다.” 법원은 허씨가 지적장애를 가진 아들을 수십년간 정성 들여 보살펴 온 점을 인정했다. 고령이고 지병이 있고, 남은 가족을 생각해 맏아들을 살해했다는 점 등도 참작했다. 그는 돈 때문에 큰아들을 마음껏 못 가르친 게 한이 된다고 했다. 그래서 많지 않지만 월 1만~2만원씩 발달장애 아동 단체에 기부금을 낸다. “내가 어려움을 겪어 봤으니까. 그런 애들 불쌍하잖아…. 집사람이 일을 그만두면 이나마 못 하겠죠.”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 [간병살인 154인의 고백] 불혹의 장애아들 돌보던 뇌경색 부친 “가자, 같이”

    [간병살인 154인의 고백] 불혹의 장애아들 돌보던 뇌경색 부친 “가자, 같이”

    ●발달장애 자식에게 둔기 든 애끊는 父情 그날 힘없이 무너져 내린 건 아들의 몸뚱이만이 아니었다. 허강원(73·가명)씨의 실낱같은 희망도 함께였다. 발달장애(지적장애 1급·다운증후군)로 불혹의 나이에 키가 150㎝에서 멈춰버린 큰 아들은 질뚝거렸지만 걸어는 다녔다. 아들이 혼자 걷는다는 건 그 이상의 의미였다. 대소변을 혼자서 가리고, 밥이 있는 곳까지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노부부가 감당할 수 있는 돌봄의 한계치이기도 했다. 허씨는 여느 날과 다름없이 “밥 먹자”고 큰아들을 불렀다. 큰아들은 기우뚱하더니 서지 못하고 엎드렸다. 식탁으로 기어 오기 시작했다. 역설적이게도 그 순간 밤잠 못 이루며 끙끙댔던 고민들이 명쾌해졌다. ‘그래 같이 죽자’. 한씨는 2015년 4월 15일 집 안방에서 자던 큰아들(당시 41)의 머리를 망치로 내리쳤다. “지나고 보니 사는 게 그늘이 많았어. 안 해 본 사람은 몰라. 간병이라는 게 매스컴에 나오는 그런 것과는 많이 달라.” 유난히 태양이 뜨겁던 지난 7월 31일, 허씨를 서울 그의 집 앞에서 마주했다. 사건이 발생한 지 3년이 흘렀지만, 세상과 등진 그의 삶이 달라진 건 크게 없어 보였다. “이젠 눈에 보이지 않잖아. 노력도 많이 했고…. 지나간 일이니까”라며 애써 태연했다. 긴 설득 끝에 그의 집 앞에서 지난 삶에 대해 들었다. 아내는 강남구의 한 빌딩에 청소일을 하러 갔고, 작은아들은 결혼 후 따로 살고 있어 때마침 그는 혼자였다. 허씨는 이미 끝난 일이라며 얘기하고 싶지 않다고 했지만, 한편으로 여지는 남겼다. 노인의 얼굴에 쓴웃음이 내려앉았다. “그래. 그때 예감했어. 차라리 죽었어야 했어.” 큰아들은 아내가 임신한 지 9개월째 되는 날 태어났다. 수술할 돈이 없어 산파에게 부탁했다. 어렵사리 아이는 엄마의 자궁 밖으로 나왔지만, 한동안 숨을 쉬지 못했다. 산파는 도망갔고, 아내가 급한 맘에 아이의 발을 잡고 들어 올려 엉덩이를 때렸다. 기적처럼 큰아들은 울음을 터뜨렸다. 어렵게 살아났지만 아이는 약했다. 갑자기 숨을 쉬지 않는 등 죽을 고비를 수차례 넘겼다. 다섯 살이 됐지만 서지 못했다. 다운증후군, 지적장애 1급이라고 했다. “요즘 눈으로 생각해 보면 장애를 둔 아이를 키우는 게 짜증 날 일도 아니잖아. 근데 사는 재미가 없었어. 희망이 조금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그게 없었지.” ●장애 아들 돌본 40여년, 살아도 산 게 아니었어허씨는 강원도 대관령에서 나고 자랐다. 25살 경기 동두천 내 미군부대에서 군생활을 했고, 전역하고 서울에 정착했다. 28살 아내와 혼인해 다음해 큰아들을 가졌다. 찢어지게 가난했다. 서울 중랑구 근처 면도칼 공장에서 일했는데, 벌이가 시원치 않았다. 가진 기술이 없으니 막노동이나 다름없었다. 없이 살았지만 큰아들의 장애가 나을 거라는 희망은 버리지 않았다. 집 근처에 장애인 특수학교가 없어 수소문 끝에 인천 부평에 있는 학교에 보냈다. 그때만 해도 먹고살기 어렵다는 이유로 적지 않은 부모들이 발달장애 아동의 교육을 포기하던 때다. 10개월쯤 지나서였을까. 특수학교를 찾아가 선생님에게 밥을 대접했다. 조금이라도 나아지는 게 있느냐고 물었다. 대답은 야속했다. “나아지는 것 없다”는 말에 작은 희망조차 사라졌다. 없는 살림에 매달 쌀 한 가마니 값을 치러 가며 학교를 보냈지만, 그럴 이유도 사라졌다. ‘발달장애는 질병과 달리 낫지 않는다’, 이 사실을 모르는 부모는 없다. 머리는 알지만, 가슴은 이해할 수 없었다. 첫 겨울방학을 기점으로 아이는 집으로 돌아왔다. 첫째가 잘하는 건 집에서 텔레비전 보기였다.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텔레비전을 틀어 주면 온종일 봤다. 말은 대충 알아들었고, 간신히 걸어 똥오줌은 가렸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아이가 흘린 김칫국물을 닦고, 국물이 묻은 옷을 벗기고, 발버둥 치는 몸을 씻기는 일은 40여년을 해도 즐겁지 않았다. 큰아들을 돌보느라 나들이 한 번 제대로 가 본 적 없었다. 아이를 돌봐야 하니 일을 마치고 퇴근해도 직장 동료나 친구들과 어울리지도 못했다. 큰아들이 어렸을 땐 집에 놀러 오는 사람도 있었지만, 아이가 성인이 되고 나선 이웃도, 친구도 모두 사라졌다. “또래들이 태권도복 입고 태권도장 가는 모습을 보잖아요. 우리 아이는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찔찔찔 하는데, 사람 눈 뒤집히지. 행복할 수가 있나.” 우울증이 찾아왔다. 술만 마시면 눈물을 흘리며 비관했다. 남들한테 추한 꼴을 보이기 싫어 술도 담배도 끊었다. 이게 벌써 수십년 전이다. 언제나 단정하게 보이려고 했지만, 남들은 늘 추하게만 보는 것 같았다. 사실 큰아들 밥 차려 주고 거두는 건 힘들지 않았다. 그냥 큰아들을 바라보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였다. 공원에 가서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다 보면 얘기의 끝은 늘 아들, 딸, 며느리 얘기였다. 그럴 때마다 할 얘기가 없어서 소심해졌다. 5살 터울인 작은아들에게도 형은 굴레였다. 장애를 둔 형 때문에 파혼을 당하기도 했다. 부모가 죽고 없으면 형을 돌볼 수 있는 가족은 동생뿐이지 않냐며 상대편 부모가 반대했다. 부모의 마음은 미어졌다. “부모들 모임도 여유 있는 사람들이나 가는 거야.” 그는 인터뷰 도중 자주 엄지와 검지를 말아 쥐었다. 돈을 뜻하는 손짓이었다. 결국 돌보는 노동에서 벗어나고자 아이를 센터에 보내는 것도,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도 경제적 기반이 필요하다는 의미였다. 허씨 내외는 경제적으로 늘 허덕였다. 맞벌이를 해 봐야 시원치 않았다. 아내는 아이를 낳고 빌딩 청소일을 해 왔고, 허씨는 여러 공장을 전전하다가 60세에 환경미화원을 끝으로 은퇴했다. 이후 빌딩 경비 일도 했지만, 2교대 근무 탓에 큰아들을 돌봐 줄 사람이 없어 금방 그만뒀다. “밥 먹다가 숟가락을 딱 떨어뜨렸어.” 그 사건이 발생하기 약 1년 전 허씨는 뇌출혈 선고를 받았다. 식사를 하다가 손에 힘이 없어 자기공명영상(MRI)을 찍었더니 뇌경색이 발견됐다. 이미 고혈압과 협심증, 류머티즘 관절염, 척추 디스크, 수면장애 등을 앓고 있었지만 뇌출혈은 느낌이 달랐다. 곧 죽을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큰아들은 누가 돌봐야 할지 걱정부터 앞섰다. 잘못된 생각이 들었다. 큰아들과 함께 죽는 게 모두를 위해 최선이 아닐까 하는 믿음도 생겼다. 고민이 깊어질 무렵, 걷지 못하는 아들의 모습을 봤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팽팽하던 긴장의 사슬은 톡 끊어졌다. “아들을 망치로 내리쳤소. 규남이는 내가 데리고 갑니다. 정선희 당신을 만나 한평생 잘 지냈소. 규남이에겐 입이 열개여도 할 말이 없소이다.”(유서 전문) 2015년 4월 15일 새벽 6시쯤, 아내가 일을 나간 것을 확인하고 망치로 아들의 머리를 힘껏 내리쳤다. 회한이 몰아치기 전에 유서를 썼다. 그리고 미리 준비한 수면제 수십알을 들이켰다. 정신을 잃기 전에 아파트 복도 밖으로 뛰어내리려고 했다. 중간쯤 갔을까. 허씨는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그렇게 질긴 목숨은 끝나지 않았다. 일을 마치고 돌아온 아내가 남편을 발견했고 곧바로 병원으로 옮겼다. 허씨는 3일간 혼수상태를 오갔지만, 끝내 깨어났다. “피고인을 징역 3년에 처한다. 다만 5년간 형의 집행을 유예한다.” 법원은 허씨가 지적장애를 가진 아들을 수십년간 정성 들여 보살펴 온 점을 인정했다. 고령이고 지병이 있고, 남은 가족을 생각해 맏아들을 살해했다는 점 등도 참작했다. 그는 돈 때문에 큰아들을 마음껏 못 가르친 게 한이 된다고 했다. 그래서 많지 않지만 월 1만~2만원씩 발달장애 아동 단체에 기부금을 낸다. “내가 어려움을 겪어 봤으니까. 그런 애들 불쌍하잖아…. 집사람이 일을 그만두면 이나마 못 하겠죠.”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탐사기획부 유영규 부장, 임주형·이성원·신융아·이혜리 기자
  • 삼성전자 기흥사업장 이산화탄소 누출 3명 사상

    소방감지시스템 교체 작업중 배관 터져 이재명 “늑장 신고…긴급 조사 실시” 경기 용인시 기흥의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 사업장에서 4일 오후 2시쯤 소화용 이산화탄소가 누출돼 20대 협력업체 직원 1명이 숨지고 2명이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다. 이날 기흥사업장 6-3라인에서 지상 12명, 지하 1층 3명 등 모두 15명이 소방감지시스템 교체 작업을 하는 중이었다. 지하 1층에서 소화용 이산화탄소 저장 탱크와 연결된 배관이 갑자기 터지면서 이산화탄소가 유출돼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 발생 후 삼성전자 자체 소방대가 현장에 출동해 협력업체 직원 A(24)씨 등 3명이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 곧바로 용인 한림대병원으로 옮겼다. 하지만 A씨는 1시간 40여분 만인 오후 3시 40분쯤 숨졌고, 함께 옮겨진 B(26)씨 등 2명은 오후 7시 현재 의식을 찾지 못한 채 치료 중이다. 이들은 작업이 끝나자 A씨 등 피해자 3명만 현장에 남아 자재를 밖으로 옮기던 중 사고를 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고가 난 현장에는 50㎏짜리 소화용 액화 이산화탄소 탱크 133개가 저장된 곳으로 이 중 배관 1개가 터진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 과학수사대와 소방 관계자 등이 현장에 출동해 사고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한편 이재명 경기지사는 삼성전자 반도체 이산화탄소 누출사고와 관련해 해당 사업장에 대한 긴급조사를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이 지사는 이날 오후 6시 35분쯤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산업단지에서 사망사고가 발생했는데 경기도재난안전본부에 신고된 게 이 시각까지도 없었다”며 “소방기본법 19조에 명시된 사고현장 신고 의무를 위반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경기도는 사고 발생 2시간이 지나서야 환경부 화학물질안전원의 사고상황 문의를 받고 인지했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삼성전자 측은 “사고를 당한 협력사 직원들과 가족께 깊은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고 밝혔다. 2013년 1월 삼성전자에서 불산 누출사고로 1명이 사망하고 5명이 부상당했다. 같은 해 5월 재차 불산 누출사고가 발생해 직원 3명이 부상했다. 다음해 3월에는 이날 사고와 비슷한 이산화탄소 질식 사고로 1명이 숨지기도 했다. 이듬해인 2015년 11월 3일 기흥사업장에서는 황산 공급장치 배관 교체작업 중 황산이 누출됐다. 이명선 기자 mslee@seoul.co.kr
  • 삼성전자 기흥사업장서 이산화탄소 누출…1명 사망, 2명 중태

    경기 용인시 기흥의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 사업장에서 4일 오후 2시쯤 소화용 이산화탄소가 누출돼 20대 협력업체 직원 1명이 숨지고 2명이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다. 이날 기흥사업장 6-3라인에서 지상 12명, 지하 1층 3명 등 모두 15명이 소방감지시스템 교체작업을 하는 중이었다. 지하 1층에 이산화탄소 저장실이 별도로 있는데 소화용 이산화탄소 저장 탱크와 연결된 배관이 갑자기 터지면서 이산화탄소가 유출돼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 발생 후 삼성전자 자체 소방대가 현장에 출동해 협력업체 직원 A(24)씨 등 3명이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 곧바로 용인 한림대병원으로 옮겼다. 하지만 A씨는 1시간 40여분 만인 오후 3시 40분쯤 숨졌고, 함께 옮겨진 B(26)씨 등 2명은 오후 7시 현재 의식을 찾지 못한 채 치료 중이다. 이들은 작업이 끝나자 A씨 등 피해자 3명만 현장에 남아 자재를 밖으로 옮기던 중 사고를 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고가 난 현장에는 50㎏짜리 소화용 액화 이산화탄소 탱크 133개가 저장된 곳으로 이 중 배관 1개가 터진 것으로 파악됐다. 현재 경찰 과학수사대와 소방 관계자 등이 현장에 출동해 사고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한편 이재명 경기지사는 삼성반도체 이산화탄소 누출사고와 관련해 해당 사업장에 대한 긴급조사를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이 지사는 이날 오후 6시35분쯤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산업단지에서 사망사고가 발생했으나 경기도재난안전본부에 신고된 것은 지금 이 시각까지도 전혀 없었다“며 ”소방기본법 19조에 명시된 사고현장 신고 의무를 위반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경기도는 사고 발생 2시간이 지나서야 환경부 소속 화학물질안전원의 사고상황 문의를 받고 인지했을 뿐이라고 이 지사는 설명했다. 사고와 관련, 삼성전자 측은 “사고를 당한 협력사 직원들과 가족께 깊은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고 밝혔다. 2013년 1월 삼성전자에서 불산 누출사고로 1명이 사망하고 5명이 부상당했다. 같은해 5월 재차 불산 누출사고가 발생해 직원 3명이 부상했다. 다음해 3월에는 이날 사고와 비슷한 이산화탄소 질식 사고로 1명이 숨지기도 했다. 2015년 11월 3일 기흥사업장에서는 황산 공급장치 배관 교체작업 중 황산이 누출됐다. 이명선 기자 mslee@seoul.co.kr
  • 내년 근로장려금 약 5조 지급… 올해보다 3.6배↑

    내년에 근로장려금(EITC)이 5조원 가까이 지급될 전망이다. 올해보다 3.6배 늘어난 지급액이다. 기획재정부가 2일 국회에 제출한 2019년 조세지출계획서를 보면 내년 EITC 지급액은 4조 9017억원으로 전망된다. 올해 1조 3473억원보다 3조 5544억원 늘어났다. 정부는 지난 7월 EITC 개편 방안을 발표하면서 내년부터 근로장려금 지급 대상은 2배로, 규모는 3배 이상으로 대폭 확대해 334만 가구에 3조 8000억원을 지급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실제 조세지출계획서에 반영된 지급액은 당초보다 1조 1000억원 이상 많다. 지급액이 당초 정부 발표보다 늘어난 이유는 EITC 지급 방식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올해까지 1년에 한 차례 지급되다가 내년부터는 지급 방식을 앞당겨 6개월마다 주는 형태로 개편하기로 했다. 상반기 소득분은 8월 21일에서 9월 20일까지 신청을 받아 12월 말 지급하고, 하반기 소득분에 대해서는 다음해 2월 21일에서 3월 20일까지 신청을 받아 6월 말에 지급한다. 다음해 9월 말에는 정산을 한다. 다만 올해 소득분에 대해서는 내년 5월에 신청을 받고 9월에 지급한다. 내년에는 올해 소득 1년치와 내년 상반기 소득분까지 합쳐 1년 반 동안의 EITC를 지급하게 되는 것이다. 내년부터는 올해 소득 기준 단독가구는 연소득 2000만원 미만, 홑벌이가구는 연소득 3000만원 미만, 맞벌이가구는 연소득 3600만원 미만이면서 재산 2억원 미만이면 가구 구성원 수와 소득에 따라 차등 지급된다. 최대 지급액은 단독가구는 현행 85만원에서 150만원으로, 홑벌이가구는 200만원에서 260만원으로, 맞벌이가구는 250만원에서 300만원으로 각각 늘어난다. 세종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 근로장려금 내년 5조원 육박…올해보다 3.6배 증가한 이유는

    근로장려금 내년 5조원 육박…올해보다 3.6배 증가한 이유는

    일하는 저소득 가구에 지급하는 근로장려금이 내년 5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보인다. 내년부터 지급방식이 바뀌면서 9월에 올해 소득분에 대한 근로장려금을 지급하고, 12월에 내년 상반기 소득분에 대한 근로장려금을 앞당겨 지급하기 때문에 당초 발표된 3조8000억원을 훌쩍 넘긴 것이다. 2일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2019년 조세지출계획서를 보면 내년 근로장려금 지급액은 올해 1조3473억원보다 3조5544억원 늘어난 4조9017억원에 달할 것으로 내년 지급액이 올해 대비 3.6배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는 지난 7월 근로장려세제(EITC) 개편방안을 발표하면서 내년부터 근로장려금 지급대상은 2배, 규모는 3배 이상으로 확대해 334만 가구에 3조8000억원의 근로장려금을 지급하겠다고 발표했다. 가구별로 근로장려금을 받을 수 있는 재산과 소득요건을 대폭 완화하고 최대지급액을 인상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에 따라 지급대상이 지난해 기준 166만 가구에서 내년 334만 가구로 확대되고, 지급 규모도 1조2000억원에서 3조8000억원으로 늘어난다고 발표했다. EITC 체계 개편에 따라 내년부터는 올해 소득 기준 단독가구는 연간소득 2000만원 미만, 홑벌이가구는 연 소득 3000만원 미만, 맞벌이가구는 연소득 3600만원 미만이면서 재산 2억원 미만이면 근로장려금을 받을 수 있게 됐다. 내년부터는 연령요건이 폐지돼 30세 미만 단독가구도 받을 수 있다. 최대지급액은 단독가구는 150만원, 홑벌이가구 260만원, 맞벌이가구 300만원으로 대폭 인상한다. 그러나 실제 조세지출계획서에 반영된 내년 정부의 근로장려금 지급액이 정부가 발표한 총액 3조8000억원보다 1조1000억원 이상 많은 이유에 대해 정부는 근로장려금 총액 4조9017억원은 지난해 소득에 대한 올해 지급분 1조3473억원에 자연증가분과 EITC 개편으로 올해 소득분에 대한 내년 지급액 증가분 2조6000억원, 내년 상반기 소득분에 대한 내년 지급액 8400억원을 더했을 때 산출된 것이라고 밝혔다. 근로장려세제는 저소득 근로자나 자영업자 가구에 가구원 구성과 총급여액 등에 따라 산정된 근로장려금을 지급해 근로빈곤층의 근로를 장려하고 실질소득을 지원하는 근로연계형 소득지원제도다. 우리나라에는 2006년 도입돼 2009년부터 장려금 지급이 시작됐다. 내년부터는 근로장려금 지급방식도 앞당겨 6개월마다 주는 형태로 개편된다. 다음연도 5월에 신청해 9월 연 1회 지급에서 당해연도 반기별로 지급하는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상반기 소득분은 8월 21일에서 9월 20일까지 신청을 받아 12월말에 지급하고, 하반기 소득분에 대해서는 다음해 2월 21일에서 3월 20일까지 신청을 받아 6월말에 지급한다. 다음해 9월 말에는 정산을 한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2030 세대] 선택할 권리/한승혜 주부

    [2030 세대] 선택할 권리/한승혜 주부

    나는 두 아이의 엄마다. 하나로 끝내려다 오랜 고민 끝에 둘째를 낳았고, 아이들이 있어 행복하지만 셋째는 언감생심으로 늘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인생이란 장담할 수 없기에 언제 ‘실수’를 하게 될지 모른다. 몸의 주기가 바뀔 수도 있고 피임기구가 불량일 확률도 있다. 그렇게 만에 하나 계획에 없는 임신을 한다면.낙태를 반대하는 많은 사람이, “낙태가 허용되면 부도덕하고 무절제한 성관계로 인하여 무책임한 임신이 증가하고, 뱃속 태아를 간단히 없애려는 시도가 늘어날 것”이라 우려한다. 정말 그럴까? 회사에 다니던 시절에 매년 건강검진을 받았다. 한 번은 가슴에서 무언가 발견되었고, 정밀검사가 필요하다는 소견을 들었다. 찜찜하지만, 그냥 넘어갔다. 치과에 가는 걸 미루는 아이처럼. 하지만 다음해에 조금 커졌다고 하여 결국 맘모톰 수술(유방에 구멍을 뚫어 조직을 제거?검사하는 것)을 받게 되었다. 간단한 수술이었지만 매우 겁이 났고, 생각보다 더 아팠다. 아마 피할 수 있었으면 피했을 것이다. 커지지만 않았다면 지금까지 그대로 두었을지도 모른다. 수술은 불가피한 상황에서 최후의 수단이다. 하물며 ‘혹’을 떼낼 때조차. 낙태도 엄연한 수술이다. 몸과 마음에 영향을 준다. 볼에 난 뾰루지를 짜거나 정수리의 새치를 뽑듯이 즉흥적으로 가볍게 할 행위가 아니다. 낙태가 허용된다고 하여, “어라, 임신이네, 낙태해야지”하면서 단숨에 병원으로 향하여 수술을 받고 상쾌한 기분으로 나올 여성은 없을 것이란 이야기다. 지난 17일 보건복지부는 낙태를 비도덕적 진료행위로 규정한 행정처분 개정안을 발표했다. 불법 낙태를 집도한 의사는 1개월간 자격을 정지하는 내용이다. 의사들은 강하게 반발하며 수술 자체를 전면거부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렇다면 수술을 받아야만 하는 사람들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질병의 사회역학을 다룬 책 ‘아픔이 길이 되려면’에서 저자 김승섭 교수는 이야기한다. “낙태를 규제한다고 원치 않는 임신을 한 여성의 수가 줄어들 리는 없습니다. 결국 법을 우회하는 길을 찾을 수밖에 없겠지요. 낙태수술은 과거보다 더 높은 비용으로 은밀히 진행될 것이고, 많은 여성이 위험하기 그지없는 낙태 방법에 의존하게 되겠지요.” 1965년, 루마니아에서는 낙태를 전면 금지하면서 여성들의 임신과 출산을 통제했다. 이후 불법시술을 받은 많은 여성이 합병증을 앓다가 사망하였고, 원치 않은 임신으로 태어난 아이들 중 적지 않은 수가 방치돼 죽거나 불행한 생을 보냈다. 잠시 증가하는 것처럼 보인 출산율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고, 시민들은 후에 혁명을 일으켰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만에 하나 또다시 임신을 하게 된다면. 곤란한 이유가 수백 가지는 있지만, 그렇다고 그리 간단히 결정하지만도 못할 것이다. 다만 어떤 쪽이든 ‘스스로’ 선택하고 싶다. 나의 몸은 나의 것이며, 나의 인생을 책임지는 것도 결국 나이기 때문이다.
  • 서울시 적십자회비 납부율 갈수록 저조

    서울특별시의회 김기덕 의원(더불어민주당·마포4)이 30일 서울시에서 제출받은 ‘최근3년간 서울시 25개 자치구별 적십자회비 납부실적’ 자료를 분석한 결과, “서울시 총 납부율과 대다수의 자치구별 납부율이 동시에 급속도로 감소하고 있어 대책마련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자료에 따르면 서울 지역 적십자회비 2016년도 총 고지금액 653억여원 가운데 납부금액은 82억여원에 그쳤고, 2017년도는 총 614억여원의 고지금액 중 75억여원이 납부됐다. 납부율은 2012년 21.7%에서 5년만에 12.3%로 반토막 가까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납부율 상위 50%에 든 각 자치구도 공개됐다. 2016년에는 서울시에서 은평구(16.7%), 도봉구(15.6%), 노원구(15.2%), 강동구(15.2%), 강북구(14.7%), 중랑구(14.3%), 동작구(14.3%), 양천구(14.2%), 성북구(13.9%), 서대문구(13.5%), 광진구(13.4%), 성동구(13.3%)가 상위 1위부터 12위까지 차지했다. 다음해인 2017년에도 은평구(16.5%), 도봉구(14.9%), 노원구(14.4%), 강동구(14.4%), 강북구(14.0%), 중랑구(13.7%)가 전년도와 동일하게 상위 1~6위였고, 양천구(13.6%), 성북구(13.4%), 동작구(13.2%), 서대문구(13.1%), 광진구(12.8%), 동대문구(12.8%)가 납부율 상위 50%안에 드는 자치구로 기록됐다. 아울러 최상위권 자치구와 최하위권 자치구의 평균 납부율 차이가 6.8%로 분석됐다. 이에 김기덕 의원은 “적십자회비는 자발적인 참여로 이뤄지는 국민성금이지만 자치구별 순위권에 변동이 없다는 점 등을 비추어 볼 때 자치구의 참여도에 따라 납부실적의 차이가 발생하는 것으로 보여진다”며 “자치구가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모금 홍보활동과 다양한 정책적 노력을 기울여야한다”고 강조했다. 김 의원은 또 적십자회비가 이재민 구호와 홀몸노인, 빈곤아동, 의료소외환자 등 어려운 이웃을 위하고 해외 취약계층 구호, 이산가족 유전자 검사 등 다양한 분야에 지원되고 있다며 “서울시민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적십자회비 납부에 적극 동참해달라”고 당부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이호준의 시간여행] 미시령휴게소, 추억이 되다

    [이호준의 시간여행] 미시령휴게소, 추억이 되다

    눈을 부비고 다시 한번 바라보았다. 여전히 황량한 풍경만 가득했다. 공터를 둘러싼 철조망과 돌무더기들만 그곳에 건물이 있었다는 것을 부득불 말해 주고 있었다. 미시령휴게소가 있던 자리에서 마주친 풍경이다. 휴게소 건물이 철거된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설마설마했었다. 하지만 설마는 냉정한 현실이 돼 있었다.‘멀쩡한 모습’의 미시령휴게소에 마지막으로 다녀온 것은 2010년 7월이었다. 그때 이미 휴게소는 쇠락의 기운이 역력했다. 생의 끄트머리를 그러쥐고 버티는 노인처럼 마지막 숨을 헐떡거리고 있었다. 나는 그때의 삭막한 풍경을 이렇게 적었다. “세월이 할퀴고 지나간 흔적은 건물 밖이라고 다를 게 없었습니다. 나무 기둥과 계단은 삐걱삐걱 비명이라도 지를 것처럼 낡았고, 지붕 역시 손을 보지 못한 지 오래인 것 같았습니다. 건물 뒤로 가보니 더욱 참혹했습니다. 곳곳에 잡초가 무성했고, 한때 화려함을 자랑했던 것들이 세상과의 이별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외출중’이라는 팻말이 걸린 만남의 집 녹슨 자물쇠는 주인이 영원히 외출했음을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낡은 모습으로라도 시간의 심술을 견뎌 주길 바랐지만, 그런 간절함을 외면이라도 하듯 미시령휴게소는 2011년 1월 31일 문을 닫았다. 내가 다녀온 다음해였다. 그리고 사람의 온기가 시나브로 식어 가면서 휴게소 건물은 흉물이 돼 갔다. 그러다가 2016년 8월 건물이 완전히 철거되고 지금의 공터만 남은 것이다. 미시령휴게소는 많은 사람들의 추억이 배어 있는 곳이다. 아름다운 건물로도 유명했다. 동해안으로 피서를 가는 이들이 주로 거쳐 가던 곳이었다. 미시령 길은 ‘곡예운전’의 대명사였다. 급커브 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곳곳에서 아찔한 순간을 만나고는 했다. 숙달된 드라이버도 조상님 찾으며 납작 엎드려야 통과시켜 준다는 길이었다. 하지만 고행길이 언제까지 계속되는 건 아니었다. 고갯마루에 닿을 무렵 자동차가 느닷없이 구름 속으로 쏙 빨려 들어가는 것 같은 경험은 특별했다. 구름인지 안개인지 모호한 것이 들개 떼처럼 몰려다니고, 그 안으로 들어서면 천상을 거니는 듯 황홀하기까지 했다. 휴게소는 대형 식당과 간이음식점, 특산물 매점, 기념품 가게 등을 갖추고 있었다. 그 넓은 곳이 늘 인파로 북적거렸다. 밥을 먹으며 차를 마시며, 그저 담배 한 대 태우며 ‘특별한’ 풍경을 만끽하고는 했다. 맑은 날은 바다가 잡힐 듯 가까웠다. 한계령ㆍ진부령과 함께 동해로 가는 고개 중 하나이자 속초로 가기 위한 관문. 그곳 미시령휴게소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추억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1990년에 지어진 미시령휴게소가 문을 닫게 된 결정적 계기는 2006년 미시령터널이 뚫리면서부터였다. 애써 미시령을 오르는 차량이 없다 보니 휴게소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급격하게 줄고, 결국 경영난에 허덕일 수밖에 없었다. 옛 추억이 그리운 사람들이 부득불 고갯마루까지 오르고는 했지만, 그들만으로는 휴게소를 유지할 방법이 없었다. 결국 미시령휴게소는 세월 저쪽으로 걸어 들어가고 말았다. 시간이 불러왔다가 데려간 것이다. 다시 똑같이 지을 리도 없겠지만 설령 복원된다고 해도 그 옛날 추억의 장소는 아니다. 휴게소가 있던 자리에 백두대간생태홍보관을 지을 계획이라고 하지만 공사를 시작할 기미는 아직 없다. 그래서 빈터가 더욱 황량하다. 그 무엇도 영원히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 진리다. 하지만 사라지는 것의 뒷모습은 늘 안타까움을 남긴다. 사연이 깃들어 있는 곳은 더욱 그렇다. 다시 볼 수는 없지만, 가슴에는 미시령휴게소가 화석처럼 오랫동안 남아 있을 것이다.
  • 허익범 특검 “청와대의 ‘아리랑TV 감사’ 역제안, 불법성 없어”

    허익범 특검 “청와대의 ‘아리랑TV 감사’ 역제안, 불법성 없어”

    허익범(59·사법연수원 13기) 특별검사팀은 27일 경공모 변호사에 대한 청와대의 ‘아리랑TV 감사’ 역제안 역시 불법성이 없다고 봤다. 허익범 특검은 이날 서울 서초구 특검사무실에서 지난해 11월쯤 김경수 당시 국회의원이 경공모 경공모의 법률자문인 윤모 변호사를 청와대 행정관으로 추천하고, 이에 청와대가 올해 3월 윤 변호사에게 전화해 아리랑TV 비상임감사를 제안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불법 요소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특검팀은 “경공모 내부에서 윤 변호사를 청와대 행정관으로 추천하자는 논의가 있었던 흔적은 있으나 실제 외부로 표출된 증거는 전혀 없다”며 “청와대 관계자가 윤 변호사에게 아리랑TV 비상임감사를 제안한 것은 사실이나 바로 윤 변호사가 거절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아리랑TV 비상임감사의 경우 1년에 4~5회 있는 회의에 참석시 회의비로 20만원을 지급받는 것 이외에는 특별한 대우나 혜택이 없어 선거운동에 대한 대가로 제안할만한 직위로 보기 어렵다”며 “위 제안과 김경수 지사와의 관련성도 확인되지 않고 그 외 불법요소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또 특검은 김정숙 여사의 “‘경인선’에 가자”는 발언에 대해 불법행위로 보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 드루킹 김모씨(49) 일당이 만든 경인선(경제도사람이먼저다)은 지난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당시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는 오프라인 조직이다. 김 여사는 지난해 4월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 투표일에 참석해 지지자들을 찾아 인사하면서 지지그룹 중 하나인 경인선과 관련해 “경인선도 가야지. 경인선에 가자”고 말했다. 이같은 내용을 담은 동영상이 확산되면서 김 여사가 경인선과 드루킹, 경공모의 불법활동에 대해 알고 있었다는 의혹이 확산된 바 있다. 이에 대해 특검팀은 “경인선은 경공모가 주축으로 조직한 외부 선거운동 조직으로 경선장에서 (문재인)대선후보를 지지하는 경선운동을 활발히 진행했다”면서도 “(문재인)후보의 배우자(김 여사)가 지지그룹인 경인선 회원들과 인사를 하고 같이 사진을 찍은 사실만 확인되나 이 사실만으로는 불법행위라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외에 특검팀은 경공모가 운영자금으로 29억8000만원 상당을 지출했다고 확인했다. 하지만 이 비용은 경공모의 자체 수입으로 충당했고 이 과정에서 외부 자금 유입 내역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허 특검은 수사와 관련, 그간 정치권으로 부터 지속된 비난에 대해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적법하고 정당한 수사일정 하나하나마다 정치권에서 지나친 편향적 비난이 계속돼온 것을 심히 유감으로 생각한다”고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허 특검은 이날 “개인적 소회를 말씀드리겠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수사팀 개인에게 억측과 근거 없는 음해가 있었던 점을 유감으로 생각한다”며 거듭 정치권의 ‘특검 흔들기’에 거듭 불만을 표하면서 “품위 있는 언어로 저희 수사팀의 정치적 중립과 수사 독립을 촉구하며 건설적 비판을 해주신 많은 분들께는 감사드린다”고 했다. 허 특검은 불법 정치자금 관련 수사망이 좁혀오자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故) 노회찬 전 의원 별세와 관련해선 “수사기간 중 유명을 달리하신 고인에 대해 유가족에게 위로의 말씀을 다시 드리고 싶다”고 고개를 숙였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수제맥주 핸드앤몰트와 함께하는 가을의 특별한 캠핑

    수제맥주 핸드앤몰트와 함께하는 가을의 특별한 캠핑

    국내 최고의 크래프트 맥주 양조장으로 인정받고 있는 ‘핸드앤몰트(The Hand & Malt)’가 오는 9월 1일, 2일 양일간 경기 남양주에 위치한 더드림핑 캠핑장에서 ‘2018 핸드앤몰트 비어캠프 코리아’를 개최한다. 선선해진 날씨에 맞추어 기획된 ‘핸드앤몰트 비어캠프’는 캠핑을 즐기며 시원한 수제맥주를 맛볼 수 있는 핸드앤몰트만의 새로운 형태의 맥주 축제다. 맥덕(맥주 애호가)들의 기대는 물론, 크래프트 맥주와 관련된 다채로운 콘텐츠와 프로그램으로 맥주와 캠핑을 사랑하는 소비자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이미 진행된 얼리버드 1, 2차 티켓이 10분 만에 매진될 정도로 맥주 애호가들 사이에서 관심이 뜨겁다. 이번 ‘핸드앤몰트 비어캠프’에서는 크리에이티브한 기획력으로 주목받고 있는 고막컬쳐와 함께하여 ‘비어 에듀케이션’, 인디 아티스트 버스킹 공연, ‘비어&코어 필라테스 클래스’, 책과 맥주를 함께 즐기는 ‘모바일 북펍’, ‘캠프파이어’ 등 숙박 참가자를 대상으로 마련된 타임어택 프로그램을 추가적으로 운영해 캠프 참가자들이 보다 다양한 콘텐츠를 즐길 수 있도록 했다. 뿐만 아니라, 핸드앤몰트의 상징인 ‘손’을 주제로 직접 손으로 체험하는 ‘핸드앤몰트 DIY 코스터 만들기’와 ‘우드 카빙 클래스’를 열어 크래프트 정신과 부합하는 이색 액티비티도 함께 선보인다. 특히, 비어 에듀케이션에서는 수제맥주 입문자를 위한 크래프트 비어 ‘베이직 클래스’와 나만의 맥주 취향을 알아보는 ‘퍼스널 비어 클래스’, 핸드앤몰트의 다양한 수제맥주를 시음해보는 ‘블라인드 비어 테이스팅’과 참가자들이 직접 푸어링(Pouring) 해보는 ‘퍼펙트 푸어링 클래스’, 핸드앤몰트의 브루어와 함께하는 ‘브루어리 투어’ 등으로 맥주에 대한 소비자들의 경험치를 확장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핸드앤몰트의 브랜드 로고를 형상화한 포토존을 마련해 SNS 해시태그 이벤트와 인디 아티스트 최낙타, 오늘의라디오가 참여하는 버스킹 공연으로 잔잔한 음악과 어우러지는 여유로운 시간을 제공할 예정이다. 현재 일일 당일권을 티켓몬스터, 인터파크 등의 예매처에서 구입할 수 있으며, 오는 8월 30일까지 판매된다. 당일권과 일일 숙박권 모두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3종의 맥주를 무제한으로 즐길 수 있는 타임어택 이벤트를 진행하여, 고객들의 관심도를 집중시키고 있다. 핸드앤몰트 마케팅 담당자는 “맥주와 캠핑 그리고 아웃도어 액티비티가 어우러진 비어캠프를 통해 맥아와 손맛의 진정성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핸드앤몰트의 다양한 맥주를 선보이고, 소비자들에게 보다 친근하고 신뢰할 수 있는 브랜드로 거듭나길 바란다’며, “앞으로도 핸드앤몰트는 수제맥주와 어울리는 이색적인 프로모션들로 고객과 공감하고 소통할 수 있는 지속적인 기회를 만들어나갈 것”이라 전했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죽창을 든 조선의 노비, 폭압에 맞선 분투의 기록

    죽창을 든 조선의 노비, 폭압에 맞선 분투의 기록

    조선에 반하다/조윤민 지음/글항아리/400쪽/1만 7000원숙종 26년인 1700년 겨울, 얼마 전 천민 신분을 벗어난 이명과 이가음이(李加音伊) 형제는 경북 상주 읍내의 한 기와집에 잠입했다. 이날만 기다리며 13년간 절치부심하던 형제는 사랑채에 머물고 있던 한 양반을 살해했다. 그는 세상을 떠난 노비 출신 아버지의 옛 상전이었다. 철종 11년인 1860년에는 경희궁과 인근 관청에서 보수 작업을 하던 목수들이 포도청에 난입해 닥치는 대로 시설을 때려 부수고 관원과 하졸들을 마구잡이로 구타했다. 그 다음해인 1861년에는 30대 중반의 조만준이라는 남자가 왕실 사당에 행차하는 임금의 가마에 주먹만 한 돌멩이를 느닷없이 던져 가마 꼭대기의 황금 봉황 장식을 부러뜨렸다.신분 차별이 엄격했던 조선시대, 밖으로 뛰쳐나온 하층민들이 감행한 이 같은 행위를 보면 절로 떠오르는 속담이 있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 괜히 꿈틀한 건 아니었을 것이다. 힘없고 보잘것없는 미물이라도 극심한 횡포 앞에서는 절로 분노하게 되는 법이다. 신간 ‘조선에 반하다’는 조선시대 주류 흐름과 지배 세력에서 벗어나 있었던 ‘외부자’ ‘이탈자’ ‘탈락자’들이 싸우고 분투한 기록이다. 책은 도대체 왜 이들이 자신과 가족의 목숨을 내던지면서까지 반역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속사정을 들여다본다. 저자에 따르면 “살아야 한다는 절박함은 순응하던 백성을 시위와 난동의 주역인 난민(亂民)으로 만들었다”. 미천한 신분인 아버지를 채찍으로 매질해 죽인 양반 상전에 복수하기 위해서, 관청에 차출돼 일하면서 품삯을 제대로 받지도 못하는데 푼돈마저 포졸에게 탈취당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 관료의 부정부패가 횡행해 백성이 도탄에 빠져 있지만 사명을 다하지 못하는 군주에게 의문을 제기하기 위해서 백성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생존 투쟁’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난동을 주도한 백성들이 바라는 것은 단 하나, “권세를 앞세운 폭압을 중단하고 행정과 법을 빙자한 수탈을 멈춰 달라는 것”이었다.파편처럼 곳곳에서 일어났던 개인들의 저항은 시간이 지나면서 지배층에 전면적으로 맞서는 집단적인 움직임으로 거듭난다. 17세기 미륵과 생불이 새로운 세상을 열어 줄 것이라고 굳게 믿었던 사람들이 승려와 무당의 통솔 아래 정치변란을 일으키고, 조선 왕조의 몰락을 희구하며 ‘정감록’ 같은 예언서에 기댄 반란을 모의하기도 했다. 19세기에는 진주민란, 홍경래의 난 등 탐관오리들의 횡포에 맞서기 위해 농민들을 규합한 대규모 항쟁 바람이 전국 곳곳에서 불었다. 반란을 주동했던 사람 중 홍경래(1771~1812)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는데, 평안도 지역의 세도 정치를 비판하면서 농민 반란을 일으킨 그의 봉기 의지는 반란의 후예들에게 두고두고 이어졌다. 오죽하면 그가 죽고 난 후인 1817년 전북 장수에 ‘홍경래 생존설’이 퍼졌고, 그로부터 9년 뒤인 1826년 청주에 걸린 괘서에도 홍경래가 거병을 도울 것이라는 내용이 등장했다. ‘홍경래 불사설’이 끈질기게 이어진 것은 그만큼 새로운 세상이 도래하길 바라는 백성들의 마음이 간절했다는 방증일 터다. 저자는 “명징과 미혹이 교차하고 진전과 좌절이 함께하는 역사의 난장판에서 제대로 발언할 기회를 갖지 못한 이들에게 외칠 자리 하나를 마련하려 한다. 압제의 대상에서 저항의 주체로 거듭난 이들의 몸짓을 헤아리면서 조선 지배층이 구축한 억압과 착취의 사회구조 한 자락이나마 들여다볼 수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때로 격렬하고 폭력적이었던 시위들이 단순히 지배 세력에 대한 저항의 발로였다고 정당화될 수는 없다. 다만 “반항은 한순간 한순간마다 세계를 재고할 대상으로 문제 삼는다”는 알베르 카뮈의 말처럼 분노와 투쟁의 기록을 살피는 일은 자못 중요하다. 부당함에 순응하지 않았던 인간의 의지를 확인하는 동시에 지금 이 시대의 이면을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데스크 시각] 다시 열려야 할 그 길, 금강산/조현석 산업부장

    [데스크 시각] 다시 열려야 할 그 길, 금강산/조현석 산업부장

    금강산이 또 한번 눈물바다가 됐다. 지난 20일 금강산호텔에서 피난길에 잃어버린 네 살배기 아들을 67년 만에 다시 만난 이금섬(92) 할머니는 백발이 성성한 아들 리상철(71)씨의 얼굴을 매만지며 오열했다. 1951년 1·4 후퇴 때 아내와 헤어진 유관식(89) 할아버지도 태어난 것조차 몰랐던 딸 유연옥(67)씨를 만나 회한의 눈물을 흘렸다. 남측 이산가족 89명은 꿈에 그리던 북측 가족을 만났고, 한평생을 가슴속에 묻어 두었던 그들의 이야기는 2박3일의 상봉 기간 내내 금강산에 메아리쳤다.금강산은 분단의 아픔을 치유하는 이산가족 상봉의 상징적인 곳이다. 금강산에서는 2002년 4월부터 2015년 10월까지 모두 17차례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졌다. 2008년 금강산 관광이 중단된 뒤에도 네 차례나 상봉이 이뤄졌다. 그동안 남북한 3512가족 1만 6031명이 그리운 가족과 만났다. 2008년 금강산에 이산가족면회소가 준공돼 상봉 정례화 기반이 마련되면서 이산가족들의 희망이 이어지고 있다. 올해는 금강산 관광이 시작된 지 20년, 중단된 지 10년이 되는 해다. 그동안 금강산은 남북한 소통과 민간 교류의 장으로 활용됐다. 1998년 6월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소떼 방북을 계기로 금강산 관광사업에 관한 합의서가 체결됐고, 같은 해 11월 동해항에서 금강호가 출항하면서 금강산 관광의 막이 올랐다. 금강산 관광 활성화를 위해 2003년 2월 육로 관광길이 열렸고, 다음해 11월 남북 동해선 본도로가 완공됐다. 2006년 화진포 아산휴게소가 개소한 데 이어 2007년 6월 내금강 관광이 재개됐다. 금강산 관광에서 구축된 남북한 신뢰는 2000년 남북 정상회담(6·15공동선언)을 견인했고, 개성공단 등 남북 경협 및 남북 교류협력 활성화를 추동했다. 금강산 현지에서는 장관급 회담과 적십자회담, 철도 및 도로연결 실무회의 등 중요한 당국 회담이 개최돼 남북 관계 개선에 기여했다. 금강산에서는 청소년과 대학생, 여성, 노동자, 농민 등 각계각층의 다양한 남북 공동행사가 열렸다. 영농, 축산, 농림 등 다양한 남북 협력사업이 실현되면서 민간 교류의 장으로도 자리매김했다. 2009년 9월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금강산을 방문했다. 금강산 관광객은 해마다 급증하면서 2007년 한 해에만 34만 8263명이 금강산 관광을 하면서 정점을 찍었다. 하지만 2008년 7월 관광객 피살 사건이 발생하면서 중단됐다. 1998년부터 2008년 관광이 중단될 때까지 10년간 금강산을 방문한 관광객은 195만 5951명에 이른다. 2008년 관광이 중단되기 전까지 금강산 관광에 북한 관련 종사자 1000여명이 근무하면서 남북한 작은 통일 공간으로 활용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5일 광복절 경축식에서 남북 경제협력을 강조하며 금강산 관광 재개 의지를 내비쳤다. 또 지난 20일 수석보좌관 회의에서는 금강산 이산가족 면회소 상시 운영을 강조했다. 물론 유엔의 북한 제재와 선 비핵화를 요구하는 미국의 반대 등 넘어야 할 산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정착이라는 큰 틀에서 볼 때 금강산 관광 재개는 한반도 평화를 위한 선결 과제다. 금강산 관광이 중단된 이후 북한이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재개하는 등 대화와 교류 단절로 인해 오히려 남북 관계가 경색됐다. 다음달 제3차 남북 정상회담이 평양에서 열린다. 또 다음달 열리는 유엔총회에 김정은 국무위원장 참석 가능성 얘기가 나오고, 제2차 북·미 정상회담까지 거론되고 있다. 이산가족의 아픔을 보듬고, 민족의 번영을 위해 금강산 관광은 하루빨리 재개돼야 한다. 정부도 국제사회의 공감대를 얻기 위해 적극 나서야 한다. 내년 봄에는 남북 화해의 디딤돌이 될 금강산을 꼭 볼 수 있었으면 한다. hyun68@seoul.co.kr
  • 연회비 30만원 내면 ‘35만원 항공권’ 받는다고?

    연회비 30만원 내면 ‘35만원 항공권’ 받는다고?

    호텔 뷔페권·백화점 상품권 등 혜택 카드 이용실적 조건 꼼꼼히 따져봐야연회비가 비싸도 차별화된 서비스를 받길 원하는 고객들이 늘어나면서 프리미엄 신용카드가 인기다. 가맹점 수수료 인하 등으로 경영 여건이 어려워진 카드사들이 혜택을 줄이기 전에 미리 발급받으려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연회비 이상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알면 돈 되는’ 프리미엄 카드 정보를 모아 봤다.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현대카드는 최근 10년 만에 프리미엄 카드 신상품을 내놓았다. 온라인으로만 신청할 수 있는 ‘더 그린’ 카드는 모집 비용을 절감해 고객 혜택으로 되돌려 주는 게 특징이다. 기존 프리미엄 카드인 ‘더 레드’보다 연회비가 절반으로 줄어 15만원으로 책정됐다. 현대카드 관계자는 “프리미엄 카드에 ‘가성비’를 더한 상품으로 소비를 즐기면서도 경제성을 따지는 젊은층을 겨냥했다”고 설명했다. 출시 행사로 이달 말까지 발급하면 15만 포인트를 적립해 주기 때문에 이미 연회비 부담을 상쇄하는 혜택을 받는 셈이다. 월 이용 금액 50만원을 넘으면 여행, 해외쇼핑 분야에서 5%를 적립해 준다. 프리미엄 신용카드들은 연회비에 버금가는 쿠폰이나 상품권 같은 ‘바우처’를 제공한다. 신한카드는 바우처 혜택을 강화한 ‘더 베스트-F’를 대표 주자로 내세운다. 연회비가 캐시백형은 20만 5000원, 마일리지형은 22만 5000원인 이 카드를 발급받으면 15만원 상당의 신세계·갤러리아 백화점 상품권 혹은 17만원 상당의 패밀리레스토랑 상품권 중 하나를 고를 수 있다. 삼성카드의 대표적인 프리미엄 카드 ‘더 원’은 15만원 상당의 백화점 상품권, 아시아나항공팩, 호텔 식사권, 여행 15만원 할인 중 한 가지 바우처를 제공한다. 아시아나항공팩은 1만 마일리지 적립 등 혜택을 담았다. 하지만 바우처를 목적으로 프리미엄 카드를 발급받았다면 이용실적 조건을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바우처는 보통 정해진 이용 금액 이상을 쓰면 연 1회 받을 수 있다. 신한의 더 베스트-F는 첫해는 20만원 이상 사용 후, 다음해부터는 전년 이용실적이 300만원 이상이면 바우처를 신청할 수 있다. 삼성의 더 원은 첫해는 50만원 이상 사용, 다음해부터는 전년 이용실적 600만원 이상이 조건이다. KB국민카드가 자랑하는 ‘베브 파이브’ 카드는 VIP 고객들이 선호하는 업종에서 적립률을 높인 게 특징이다. 전월 이용실적이 50만원 이상이면 호텔, 골프장, 면세점 이용 금액의 3%를 포인트로 적립해 준다. 바우처는 국내 호텔 숙박, 25만원 상당의 호텔 뷔페 이용권, 22만원 상당의 백화점 상품권, 22만 포인트 중 하나를 택하면 된다. 연회비는 국내 전용은 29만 5000원, 해외 겸용은 30만원이다. 해외여행이나 국내 호텔에서 보내는 ‘호캉스’(호텔+바캉스)를 즐긴다면 맞춤 혜택을 주는 프리미엄 카드들을 눈여겨볼 만하다. 우리카드의 ‘로얄블루’ 카드는 연회비가 30만원으로 높은 편이지만 이를 뛰어넘는 항공권 혜택을 줘 여행을 자주 가는 고객들에겐 쏠쏠하다. 중국, 일본 등 아시아지역 왕복 항공권을 본인과 동반자 1인에게 제공한다. 35만원 한도다. 최선을 기자 csunell@seoul.co.kr
  • [서울신문 보도 그후] 박근혜 靑·경찰, ‘백남기 수술’에도 조직적 개입

    [서울신문 보도 그후] 박근혜 靑·경찰, ‘백남기 수술’에도 조직적 개입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5년 11월 14일 민중총궐기 집회에 참석했다가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쓰러진 백남기 농민이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숨진 것으로 최종 결론이 내려졌다. 아울러 당시 경찰이 백 농민의 수술 과정에 개입하고 의료 정보를 편법으로 수집해 온 사실이 새롭게 드러나 비판이 일고 있다.경찰청 인권침해 사건 진상조사위원회는 21일 이런 내용의 ‘백남기 농민 사망 사건’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재발 방지와 인권 증진을 위한 제도 개선을 경찰청에 권고했다. 조사위에 따르면 당시 의료진은 백 농민이 서울대병원으로 옮겨졌을 때 회생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혜화경찰서장은 오병희 서울대병원장에게 전화를 걸어 “신경외과 전문의가 수술하면 좋겠다”고 협조를 구했다. 청와대 고용복지수석실 행정관도 병원장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파악했다. 이후 병원장은 백 농민의 사인을 ‘외인사’가 아닌 ‘병사’로 기재해 논란의 중심에 섰던 백선하 교수에게 “적절한 조치를 취하라”고 지시했고, 백 교수는 다음날인 11월 15일 0시 10분부터 3시간 동안 수술을 집도했다. 백 농민은 연명 치료를 받다 다음해 9월 25일 숨졌다. 유남영 위원장은 “수술을 하는 데 의료적 동기만이 작동하진 않았을 것”이라면서 “백 농민을 살리려는 뜻도 있었겠지만, 사망하면 급박한 상황이 될 것이라는 판단도 있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진상조사위는 또 경찰이 백 농민 부검 영장을 발부받으려고 ‘빨간 우의 가격설’을 이용했다고 판단했다. 빨간 우의는 백 농민이 쓰러질 때 영상에 등장하는 인물로, 당시 일베 등 극우 성향 커뮤니티에서 “백 농민은 물대포가 아니라 빨간 우의에게 폭행당해 뇌사 상태에 빠졌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하지만 조사 결과 ‘빨간 우의’의 혐의점은 발견되지 않았다. 진상조사위는 집회 당시 경찰의 차단선 설정, 봉쇄 작전 진행, 차벽 설치, 살수 행위까지 모든 과정에서 인권침해 요소가 있었다고 결론지었다. 이와 함께 “경찰이 장비 손실 등을 이유로 집회 주최자 등을 상대로 제기한 3억 8670만여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도 취하하는 것이 맞다”고 권고했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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