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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법원장, 피고인석에 서다-56회] ‘변론재개→선고연기’ 행정처가 정한 재판 진행방향… “보기 따라 부적절”

    [대법원장, 피고인석에 서다-56회] ‘변론재개→선고연기’ 행정처가 정한 재판 진행방향… “보기 따라 부적절”

    “보기에 따라서는 애매한데…”, “말 그대로 애매한데…” 마스크에 가려진 증인의 말끝이 조금 흐려졌다. 특정 사건의 진행상황에 대해 법원행정처가 입장을 정한 뒤 법원장을 통해 해당 재판부에 이를 전달한 것이 재판 개입으로, 재판의 독립성을 침해하는 중대한 사항이 아니냐는 검찰의 질문에 답변을 하면서다. “(행정처에서 법원에 지시를 하는 것이) 애매하다 생각했지만, 그렇게까지…”라며 머뭇거리던 증인은 이어 “보기에 따라서는 애매하지만 부적절한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다만 위법한 것은 아니라는 취지로 선을 그었다. 11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부장 박남천) 심리로 열린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법원행정처장)의 55회 재판에는 2016년 2월부터 2018년 2월까지 법원행정처 윤리감사관을 지낸 김현보 변호사가 증인으로 나왔다. 지난해 12월 증인으로 출석한 김세윤 수원지법 부장판사의 후임으로 윤리감사관을 지낸 김 변호사는 임 전 차장의 직속으로 법관 비위 및 징계 등과 관련된 업무를 맡았다. 검찰은 김 변호사에게 우선 2015년 조현오 전 경찰청장에게 뇌물을 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던 부산 지역의 건설업자 정모씨 사건에 대해 물었다. 양 전 대법원장 등은 당시 문모 부산고법 판사가 피의자인 정씨와 교류하며 16차례 골프 및 유흥접대를 받은 비위 사실을 알고도 언론에 보도되지 않도록 무마하고 정씨의 항소심 선고를 문 판사의 퇴임 이후로 미룬 혐의를 받고 있다. 앞서 김 부장판사가 윤리감사관으로 재직 당시 임 전 차장은 검찰 고위 관계자를 통해 문 전 판사의 비위사실을 접했지만 문 전 판사에게 법원장이 구두경고 조치를 하는 선에서 마무리지었다. 이와 같은 상황에 대해 김 변호사는 “‘언론에 보도되면 파급력이 커 부산 법조계가 혼란에 빠질 것이다’, ‘사법부의 신뢰가 무너진다’는 임 전 차장의 생각에 따라 구두경고 조치가 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문 전 판사를 정식으로 조사하지 않은 것에 대해선 “깊이 생각해보지는 않았다”고 했다. 김 변호사의 재직기간인 2016년 11월 양 전 대법원장과 당시 법원행정처장이던 고 전 대법관은 정씨의 뇌물사건 재판에 개입한 혐의도 받고 있다. 정씨는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는데 항소심 재판부도 두 차례 공판을 한 뒤 곧바로 선고기일을 정했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과 고 전 대법관, 임 전 차장이 정씨가 항소심에서도 무죄 판결을 받게 되면 검찰이 반발하고 언론이 관심을 갖게 돼 앞서 행정처가 문 전 판사의 비위를 은폐한 사실이 드러나는 등 파급력이 클 것을 우려해 재판부에 선고 연기를 요청하기로 했다고 공소장에 적시했다. 고 전 대법관이 당시 윤인태 부산고등법원장에게 전화해 이 같은 설명을 하며 문 전 판사가 사직한 뒤에 정씨의 항소심 선고를 하도록 해달라는 부탁을 했고, 윤 전 법원장도 항소심 재판장을 불러 이를 전달했다. 실제로 정씨 사건을 맡은 항소심 재판부는 2016년 11월 24일로 정했던 선고기일을 연기해 재판을 다시 열고 두 차례 더 진행한 뒤 다음해 2월 16일 선고했다. 1심과 달리 일부 뇌물 부분을 유죄로 보고 정씨에게 징역 8개월을, 조 전 청장에게 징역 2년 6개월을 각각 선고했는데 법정구속은 하지 않았다. 항소심 선고가 있기 일주일 전 문 전 판사는 사직했다. 김 변호사는 이 과정에서 임 전 차장의 지시로 변론을 종결한 정씨 사건의 항소심 관련 진행상황 및 재판부가 직권으로 변론을 재개했을 때 앞으로의 상황 등을 정리한 보고서를 작성했다. 누구에게까지 보고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보고서를 썼는지를 묻는 검찰에 김 변호사는 “처장님께 보고할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임 전 차장이 “검찰에 ‘절차적 만족감’을 줘야 한다”는 말을 했다고도 설명했다. ‘절차적 만족감’은 일제 강제징용 손해배상 소송 사건의 재판거래 및 재판개입 의혹과 관련해서도 임 전 차장이 외교부가 대법원에 의견을 제출할 기회를 줘야 한다면서 사용한 표현이기도 하다.“행정처에서 변론이 종결된 사건에 대해 향후 진행사항을 정한 뒤 해당 재판부가 그에 따라 재판하도록 법원장을 통해 행정처의 요망사항을 하달한 것은 재판 개입으로, 재판의 독립성을 침해하는 중대한 지시인데 부당하거나 헌법과 법령상 허용되지 않는 조치라고 판단하지 않았습니까?” (검찰) “그렇게까지 생각하지 못했고… 하달까지는… 요청드리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이런 상황이고 이런 게 필요하지 않겠냐는.” (김 변호사) “상급관청으로부터 지시하달을 한 게 아니고 요청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부적절하지 않다는 겁니까?” (검찰) “애매하다 생각했지만, 그렇게까지…” (김 변호사) “부적절할 수 있다는 겁니까, 아니라는 겁니까?” (검찰) “말 그대로 애매합니다.” (김 변호사) “어떤 게 애매하다는 겁니까?” (검찰) “보기에 따라서는 애매한데… 어떻게 보면 부적절한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김 변호사) “어떻게 보면 부적절할 수 있고, 아닐 수도 있다고 판단했다는 겁니까?” (검찰) “네.” (김 변호사) “전에도 이런 조치를 한 적이 있습니까?” (검찰) “없었습니다.” (김 변호사) “처음이라면 이런 조치사항이 과연 부적절하지 않을까, 이런 판단도 하셨을 것 같은데요.” (검찰) “그냥 서로 잘 아는 사이에서 편하게 얘기하는 걸로 생각했습니다.” (김 변호사) 김 변호사는 이어 실제 정씨 사건의 항소심 선고가 미뤄지고 변론이 재개된 뒤 문 전 판사의 사직한 뒤에 선고가 이뤄진 것과 관련 검찰이 “행정처가 원하는 방식으로 재판이 진행된 것으로 보이는데 어떻게 생각했는가“ 묻자 김 변호사는 “(행정처 입장을) 전달했을 것이라 생각했다”고도 답했다. 다만 자신은 보고서를 작성한 뒤의 재판상황은 잘 몰랐고 나중에 검색해서 알게 됐을 뿐이라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정운호 게이트’와 관련해 검찰의 수사기록이 유출된 의혹에도 연관이 돼있다. 당시 신광렬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이 임 전 차장의 지시를 받아 영장전담 법관이었던 조의연·성창호 부장판사에게 영장심사 과정에서 확보한 검찰 수사기록들을 다시 행정처에 보고했다는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지난달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김 변호사는 임 전 차장이 신 부장판사에게 전달받은 수사기록을 넘겨받아 정리했다. 김 변호사는 정운호 게이트 관련 수사상황을 파악해서 양 전 대법원장에게도 보고한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다만 양 전 대법원장이 수사 관련 구체적인 지시를 하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서울신문은 전직 대법원장이 법정에 피고인으로 선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를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2019년 5월 29일부터 매주 최소 두 차례 이상 열리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재판을 지면 제약에서 벗어난 온라인을 통해 글로 생생하게 중계합니다.
  • 영업은 장사가 아니다… 나를 먼저 팔아라

    영업은 장사가 아니다… 나를 먼저 팔아라

    ‘망우동 정주영’고객과 신뢰 쌓기 우선 불편하게 만들지 말 것차 살 필요 없는 고객은안 사게끔 해야 진정성 ‘15년 연속 판매왕’태권도 사범서 용접공한결같이 열심히 일해쉐보레 조 지라드처럼기네스북 오르고 싶어 ‘영업’은 꽁꽁 닫힌 소비자의 지갑을 열게 하는 일이다. 약 2만 5000여개의 부품으로 이뤄진 수천만원짜리 자동차를 파는 일이라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자동차 딜러를 흔히 ‘영업의 꽃’이라고 부른다. 이런 고가의 자동차를 무려 15년 동안 단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팔아 치운 영업사원이 있다. 정송주(49) 기아자동차 망우지점 영업부장이 그 주인공이다. 지난 5일 서울 중랑구 기아차 망우지점에서 정 부장을 만났다. 새신랑처럼 정장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정 부장이 건넨 명함에는 ‘정주영’이라고 적혀 있었다. 정 부장은 그동안 15년 연속 판매왕 비결에 대해 “업무 시간에 한눈팔지 않고 집중했다. 100m를 뛰는 속도로 마라톤을 뛰고 있다”는 교과서적인 답변만 해 왔다. 그래서 이번 인터뷰를 통해 판매왕의 영업비밀과 영업철학을 더 구체적으로 물어봤다.-차 살 마음이 없는 사람이 차를 사게 하는 특별한 비법이 있나. “차가 아니라 나 자신을 먼저 팔아야 한다. 나를 먼저 팔고, 내가 팔리면 물건이 팔린다. 고객과 신뢰가 쌓이면 아무런 언쟁 없이 계약이 진행된다. 차 한 대 파는 데 일희일비하는 건 영업을 장사로 보기 때문이다. 아직 구매를 결정하지 않은 고객이 즉흥적으로 차를 사도록 유도하는 건 일회성이다. 자동차 영업은 장사가 아니다. 굳이 차를 살 필요가 없는 고객이라면 안 사게끔 하는 게 진정한 영업이다.” -그렇다면 정 부장만의 고객 마음 사로잡는 법은. “저는 그럴듯하게 포장해서 부풀려 얘기하지 않는다. 영업사원 말만 듣고 차를 샀다가 후회하는 사람이 꼭 생기기 때문이다. 저에게 구매 과정을 다 맡기는 고객에게도 반드시 가격표를 보내고 품목에 대해 하나하나 설명한다. 요즘에는 영업사원보다 차에 대해 더 많이 아는 고객도 많다. 고객의 질문에 답을 제대로 못 하는 영업사원은 신뢰를 얻기 어렵다. 그래서 신차가 나오면 차량 정보뿐만 아니라 구매 절차까지 완벽하게 숙지한다. 그리고 고객이 결정을 내릴 때까지 충분한 여유를 준다. 차량 인도와 등록 절차를 마치고 나서도 고객을 직접 찾아가 구매 과정에서 하지 못했던 얘기를 나누고, 신차에 문제는 없는지 꼭 확인한다.” -판매왕의 입사 초반 모습은 어땠나. “1999년 6월 영업직으로 넘어와서 첫 3개월 동안 차를 딱 1대 팔았다. 다른 직원보다 1시간 먼저 출근해 전단을 돌리고, 밤에는 내일 돌릴 전단을 만들었지만 참 쉽지 않았다. 영업 실적이 바닥이면 압박받기 마련인데 당시 지점장은 ‘정 부장은 혼자 할 수 있도록 내버려 둬라. 실적도 묻지 마라. 저렇게 열심히 하는 사람은 조금만 기다리면 반드시 성과가 나타난다’며 믿어 줬다. 그 덕분에 첫해에는 34대 파는 데 그쳤지만 다음해 99대를 팔아 지역 판매왕에 올랐고, 영업직 전환 6년 만인 2005년 235대를 기록해 처음으로 전국 판매왕이 됐다.” -모르는 사람에게 영업하는 게 어려운 일인데, 신규 고객은 어떻게 유치했나. “상가나 사무실을 돌면서 명함을 건네고 제가 어떤 사람인지만 알렸다. 굳이 말을 많이 하지 않았다. 모르는 사람이 사무실을 돌아다니면 누구나 의심하고 경계한다. 사람이 없는 자리에 명함만 두고 나오면 자리 주인이 불쾌해할 수 있다. 그래서 사람이 있는 자리에만 가서 명함을 주고 인사했다. ‘불편한 사람이 되지 말자’는 생각으로 일하는 데 방해가 되지 않으려고 애썼다. ‘기아차 누굽니다’라고 해도 처음엔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았다. 그런데 자주 찾아가서 인사하니 차에 대해 물어보는 사람이 하나둘씩 생겼다. 질문을 받으면 영업사원이 끈질기게 달라붙는다는 느낌이 들지 않도록 물어보는 것만 정확하고 짧게 답했다. 역시 사람은 자주 만나는 게 답이다.”-지금은 영업 방식이 많이 바뀌었나. “새로운 고객을 발굴하는 노력은 계속하고 있다. 하지만 고객 네트워크가 확장되고 나면 무작정 나서는 건 에너지 낭비다. 기존 고객이 차를 살 마음이 있는 새로운 고객을 소개해 주는 방식이 가장 효과적이고 확실하다. 현 고객이 만족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면 인맥은 저절로 넓어진다. 최근 코로나19 확산으로 고객을 많이 만나지 못하지만, 전화와 편지로 영업 활동을 꾸준히 하고 있다. 차를 사신 분들과도 꾸준히 연락을 주고받으며 궁금해하는 내용에 대해 알려 준다.” -차를 하루에 최대 몇 대까지 팔아 봤나. “개인 고객과 하루 7대까지 계약한 적이 있다. 법인 고객은 한 번에 660대까지 팔아 봤다. 이럴 때 개인 판매 실적은 30대만 산입되고 나머지는 회사 실적이 된다. 수백대에 달하는 법인 고객 물량은 주로 특판 가격에 판매되기 때문에 손실률을 고려해 30대까지 노력을 인정해 준다.” -자동차 한 대를 팔기 위해 이런 일까지 해 봤다. “금전 사정이 좋지 않아 10만~20만원 탁송료를 아끼려고 차를 직접 가지러 간 고객이 있었다. 서울에 사는 30대였다. 그 고객이 경남의 한 지점에 있는 전시차를 계약했고, 직접 차를 가지러 간다고 해서 불안한 마음에 따라갔다. 당시 무궁화호를 타고 내려갔는데, 새벽에 도착해 사우나에 함께 갔고, 아침 일찍 지점으로 가 차를 인도받은 뒤 서울로 돌아왔다. 열차삯, 기름값 드는 것을 생각하면 무모한 짓이었지만 그래도 고객이 원하는 대로 최선을 다했다. 결국엔 고객도 미안해했다.” -최근 온라인 계약이 늘어나면서 영업사원의 필요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온라인 계약 확대로 자동차 영업사원 수가 주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장점도 있다. 온라인 계약이 늘어나는 만큼 영업사원은 ‘맨땅에 헤딩식’ 신규 고객 유치 활동을 하지 않아도 돼 기존 고객 관리와 소개 판매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할 수 있다. 자동차 구매는 복잡한 블록이나 퍼즐을 맞추는 것과 같다. 다양한 트림과 품목, 각종 세금 등 복잡한 선택 과정을 거쳐야 한다. 보험상품에 가입하는 것보다 절차가 훨씬 더 까다롭다. 고객이 아무리 잘 안다 해도 차를 구매하는 주기가 길고, 각종 기능이 지속적으로 발전하기 때문에 새 차를 살 때쯤이면 앞서 차를 구매할 때 익힌 학습 효과는 사라지게 된다. 그래서 전문 영업사원의 도움이 없으면 필요 없는 품목을 넣거나, 할인 혜택을 받지 못하고 차를 사는 일이 생길 수밖에 없다. -자동차 영업을 하면서 감동받은 일이나 잊지 못할 추억은 없나. “징크스를 무척 싫어한다. 감정에 기복이 생기면 영업을 오래하지 못한다. 그래서 추억이라 할 수 있는 것들을 굳이 인상 깊게 남기려 하지 않는다. 고객의 고마움 표시와 외부 칭찬도 속으로는 무덤덤하게 받아들인다. 매월 공개되는 영업 실적은 언제든지 나빠질 수 있는데, 좋았던 기억에 휩싸이면 나빠졌을 때 극복하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영업 활동 이름을 ‘정주영’이라고 정한 이유는. “관심이 없는 사람의 이름을 기억하는 건 참 힘든 일이다. 고객들도 뇌리에 박히는 이름 위주로 기억한다. 가명은 영업사원이 인지도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 하지만 이름을 빌린 유명인이 유명을 달리하거나 범죄에 연루되기라도 하면 낭패다. 그래서 저는 사회적으로 유명하고, 덕망과 업적을 쌓았고, 앞으로도 위험성이 없는 분이 누굴까 고민하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을 택했다. 지금도 저를 ‘정송주’보다 ‘정주영’으로 부르는 고객이 더 많다.” -어떤 계기로 자동차 영업사원이 됐나. “전남 강진에서 태어나 고등학교까지만 졸업했다. 어릴 때부터 운동을 좋아했고 태권도 공인 4단을 획득했다. 군대 가기 전 체육관 관장을 목표로 체육관에서 태권도 사범으로 일했지만 그 급여로는 체육관을 차리기가 어려울 것 같았다. 군 전역 후 군대 선임의 소개로 1994년 기아차 화성공장에 입사했고 자동차 철판을 용접하는 일을 했다. 하지만 당시 뻔히 보이는 공장 월급으로는 부모님을 봉양하기가 어려워 입사 5년 만에 영업직으로 옮겼다. 세상을 배우고 평생 함께 살아갈 친구를 사귄다는 생각으로 영업에 뛰어들었다. 어느 정도 돈을 벌면 일을 그만두려고 했는데 계속 판매왕에 오르면서 그만둘 시점을 잡지 못했다.” -앞으로의 목표는. “시장의 규모는 다르지만 미국 쉐보레의 전설적인 자동차 영업사원 조 지라드가 세운 12년 연속 판매왕은 뛰어넘었다. 조 지라드처럼 기네스북에 오르고 싶다. 그리고 제가 살아온 인생의 굴곡을 담은 한 편의 영화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또 제 개인 역량을 계속 발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후배 영업사원들이 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영업 노하우를 전수해 줄 특강을 할 기회가 생겼으면 한다.” 이영준 기자 the@seoul.co.kr
  • “군 생활·자살 인과관계 있다면 보훈보상대상자로 인정해야”

    구타와 폭언 등 직접적인 가혹행위가 없었어도 군 생활과 극단적 선택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다면 보훈보상대상자로 인정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김상환)는 육군에서 복무하다 숨진 A씨의 유족이 경북북부보훈지청장을 상대로 낸 국가유공자 및 보훈보상대상자 비대상 결정 취소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대구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9일 밝혔다. 2014년 6월 육군에 입대한 A씨는 다음해 5월 휴가를 나갔다가 부대로 복귀하는 날 사망한 채 발견됐다. A씨 어머니는 선임병의 언어상 가혹행위와 지휘관의 관리·감독 소홀 등으로 과도한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견디지 못해 A씨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며 국가유공자 및 보훈보상대상자 신청을 했다. 그러나 보훈청은 “A씨의 사망은 군인 직무수행 또는 가혹행위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며 거절했고 A씨 어머니는 이에 불복해 소송을 냈다. 1·2심은 보훈청의 결정이 옳다고 판단했다. 대법원도 직접적인 인과관계는 없다며 A씨를 국가유공자로 인정하지 않았다. 다만 대법원은 A씨가 보훈보상대상자는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A씨의 개인적 취약성이나 군 생활로 인한 정신적 스트레스, 소속 부대의 부적절한 대처 등이 복합적인 원인이 되는 등 사망과 군 생활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어 보이니 A씨 사안을 좀더 면밀히 따져 보라는 것이다. 대법원은 “망인이 직무상 스트레스와 정신적 고통으로 우울 증세가 악화해 정상적인 인식능력 등이 저하된 상태에서 사망에 이르게 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홍준표 “지금 탈당하진 않겠다…이번주까지 기다려볼 것”

    홍준표 “지금 탈당하진 않겠다…이번주까지 기다려볼 것”

    “김형오 위원장, 사감 겹쳐 궁지 몰아넣은 막천”“지지자들과 아름다운 이별” 고향출마는 선그어홍준표 전 자유한국당(현 미래통합당) 대표는 9일 경남 양산시에 있는 자신의 선거사무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자신의 공천 탈락과 관련해 “이번 공천은 원천무효로 황교안 대표가 직접 나서서 이 막천을 바로 잡아달라”고 밝혔다. 다만 “모욕과 수모를 더는 참기 어려우며 이번 주까지 기다려 보고 그때 가서 이후 계획을 이야기하겠다”며 “만약 끝까지 침묵한다면 그때 가서 꺼내 들 ‘비장의 카드’가 있다”고 말했다. 홍 대표는 “이번 공천은 경쟁자 쳐내기와 김형오 공천관리위원장의 사감이 겹쳐 저를 궁지로 몰아넣은 ‘막천’”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김형오 위원장으로부터 수모와 모욕을 참아가면서 면접을 당하기도 했고 당내 특정 세력들로부터 경쟁자를 제거해야 한다는 음해도 수차례 받기도 했다”며 “40여일간 모욕과 수모를 주면서 내팽개친다는 것은 정치 이전에 인간이 할 도리는 아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고향 출마를 막기 위해 나동연 전 양산시장을 시켜 저를 고향에서 빼내고 또 나 전 시장을 추가 공모한 뒤 저를 컷오프 했다”며 “이런 공작 공천을 한 달 이상 진행할 줄 전혀 몰랐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김형오 위원장이 저에게 전화해 ‘나 전 시장을 양산에 추가 응모케 설득하지 못하면 당신을 컷오프하고 아니면 같이 경선을 시켜 주겠다’고 협박해 나 전 시장에게 양해를 구했다”며 “내 손을 꼭 잡으며 절대 배신하지 않겠다는 나 전 시장은 서울에 다녀온 뒤 돌변해 경선에 반드시 이기겠다는 것을 보고 아연실색했으나 저는 묵묵히 경선만 준비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경선 발표 당일 김형오 위원장에게 ‘의장님 지시에 순응하고 나 전 시장과 경선 하겠습니다’라고 문자 보냈다”며 “그러나 이후 전화로 김형오 위원장이 ‘이번 총선은 쉬어라, 컷오프’라고 말해 하도 어이가 없어 ‘양산 무소속 출마를 검토하겠다’고 답했다”고 덧붙였다. 또 이번 공천에 대해 중앙당이 조속히 답을 주지 않으면 취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다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홍 전 대표는 다만 “저는 300만 당원들이 눈에 밟혀 지금은 탈당할 수가 없다”며 “쉬운 길로 가려면 내 고향으로 돌아가면 선거에 자신 있으나 배지 한 번 더 달기 위해 그런 쉬운 길을 택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구 수성을 등 무소속 출마 가능성에 대해서는 “당의 태도에 달려 있으나 경선이라도 좋으니 정당한 절차를 거쳐 양산에 나가고 싶다”며 “섣부른 판단일지 모르겠으나 제가 아니면 문재인 정권을 심판하고 김두관 의원을 잡기 어렵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그는 “(황 대표가 끝까지 침묵할 경우) 모욕과 수모를 더는 참기 어려우며 이번 주까지 기다려 보고 그때 가서 이후 계획을 이야기하겠다”며 “만약 끝까지 침묵한다면 그때 가서 꺼내 들 ‘비장의 카드’가 있다”고 주장했다.이어 “(지난) 20대 총선 공천이 망한 이유가 독식공천·친박공천을 했기 때문”이라며 “지금 공천도 보면 양아들·수양딸 공천, 측근 내리꽂기로 하면서 국민에게 표 달라고 하는데 이걸 바로잡을 사람은 황 대표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잠재적 대권 경쟁자인 황 대표가 도움을 주겠느냐는 지적에 “종지만 한지 아니면 큰 그릇인지 황 대표의 그릇을 한번 보자”며 “양산을 공천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보면 그걸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고향으로 돌아갈 가능성에 대해서는 “주말에 밀양·의령·함안·창녕을 다 돌며 지지자들과 아름다운 이별을 했다”며 “지지자들이 고향으로 오라기에 ‘배지 한 번 더 달려는 게 아니다’고 말씀드렸다”고 일축했다. 이날 그는 통합당 상징색인 분홍색 점퍼를 입고 기존 선거 현수막을 그대로 부착한 채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앞서 홍 전 대표는 수도권 험지 출마를 요구하는 공관위와 신경전을 벌이다 당초 자신의 고향이 포함된 경남 밀양·의령·함안·창녕에서 양산을로 출마 선거구를 옮겼다. 이후 통합당이 양산을 지역구 후보자 추가 모집에 나서 홍 전 대표와 나 전 시장이 신청서를 접수해 경선을 치르는 형태로 출마 후보를 결정할 것으로 관측됐지만 홍 전 대표는 경선까지 가지도 못하고 탈락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관악구 모자 살인사건, 40일 만에 체포된 용의자는 ‘아빠’

    관악구 모자 살인사건, 40일 만에 체포된 용의자는 ‘아빠’

    2019년 8월 22일, 어머니와 함께 집을 보러 가기로 한 은정 씨가 온종일 연락이 되지 않았다. 친정 식구들은 전날 밤 보냈던 문자에도 답이 없던 은정 씨가 걱정되어, 밤 9시경 은정 씨 빌라를 찾아갔다. 하지만 불은 모두 꺼져있었고, 안에서는 아무런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밤 11시경, 우여곡절 끝에 문을 열고 들어간 가족들. 후덥지근한 공기로 가득 차 있던 집안에서 묘한 서늘함이 느껴졌다. 그렇게 은정 씨(가명)와 여섯 살배기 아들 민준 군(가명)은 낯선 방문자가 다녀간 밀실에서 살해된 채 발견됐다. 참혹한 모자의 상태에 누구도 말을 잇지 못했다. 발견된 은정 씨는 아이 쪽을 바라보며 모로 누워있었고, 거꾸로 누운 어린 아들의 얼굴 위에는 베개가 덮여있었다. 부검 결과 두 사람의 사인은 모두 목 부위의 다발성 자창. 은정 씨는 무려 11차례, 민준이는 3차례에 걸쳐 목 부위를 집중적으로 피습 당한 상태였다. 몸에 별다른 방어손상이 발견되지 않았고, 둘 다 잠옷을 입은 채 발견된 점으로 보아 누군가 잠든 모자의 목 부위만을 고의로 노려 단시간에 살해한 것으로 추정됐다. 7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관악구 모자 살인사건 미스터리를 파헤쳤다. 전문가들은 살해할 의도를 가지고 강력한 힘으로 찔렀을 것이라 분석했다. 또 “똑바로 누운 상태에서 위에 올라타 찔렀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고 말했다. 은정씨는 반팔 티셔츠에 속옷만 입은 상태였고 민준이도 얇은 내의 차림이었다. 수사가 거듭될수록 이상한 점이 발견됐다. 외부침입의 흔적이 없었던 것. 현관문을 억지로 연 흔적도, 베란다나 창문으로 침입한 흔적도 없었다. 물건을 뒤진 흔적이나 사라진 귀중품도 없었다. 피해자들이 피를 엄청나게 흘렸지만 침대 밖 어디에도 피 묻은 손자국이나 발자국이 없었다. 지문이나 족적 하나 남기지 않고 범인은 어디로 들어와 어떻게 빠져나간 것일까. 10월 초, 사건 발생 40여 일 만에 용의자가 체포됐다. 그날 아내의 행방을 모른다 했던 은정씨의 남편이자 6살 민준이의 아빠 조 모씨였다. 지난해 10월 구속된 후 조씨는 일관되게 무죄를 호소하고 있다. 이 사건은 현재 치열한 법적 공방을 이어가고 있다. 남편 “나가기 전까지 두 사람 살아있었다” 살해 당하기 전 8월 21일 오후 은정씨는 근처에 사는 언니 집에 잠시 놀러 갔다고 한다. 민준이의 하원 시간에 맞춰 어린이집에 들렀던 민정씨. 모자는 오후 4시28분 집으로 들어갔다. 지인들은 메시지 등을 보여주며 저녁까지도 이상한 낌새가 없었다고 했다. 평소 아침부터 밤까지 서로의 일상을 공유해왔다는 친구들. 은정씨까지 9명이 함께 한 단체 채팅방에서는 저녁 메뉴 이야기가 한창이었다. 출판 일을 하던 은정 씨는 오후 8시40분께 업무 관계자와도 대화를 나눴다. 언니, 오빠와의 채팅방에서도 오후 8시49분까지 일상적인 대화가 오갔다. 그 이후 은정씨는 자신에게 온 메시지를 읽지 않았다. 빌라 이웃들은 그날 밤 수상한 차량을 봤다고 말했다. 수요일 밤에 있었는데 날이 밝았을 때는 보이지 않았다는 차량. 가끔씩 보였던 검은색 SUV 차량. 그런데 전에는 보였던 블랙박스 불빛이 그날 따라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방범CCTV에 차량의 모습이 포착됐다. 은정씨 남편 조씨의 검은색 SUV였다. 조씨는 그날 오후 8시56분 집으로 돌아왔다. 조씨의 차량은 다음날 새벽 1시35분께 집을 떠났다. 조씨는 자신의 작업장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평소 집에 거의 오지 않았다는 조씨는 경찰 조사에서 “아침에 아내에게 문자가 와 민준이가 만든 것을 가져다 달라고 해서 시간 맞춰서 갔다. 밤 9시쯤 도착해 아이와 놀다가 배가 고파 혼자 밥을 먹었다. 밤 10시쯤 침대에 누워 다 같이 잤다. 새벽에 잠이 깨 작업장에 가겠다고 집을 나섰다”고 말했다. 당시 아내와 아이가 살아있었다는 것이 남편 조씨의 주장이다. 조씨가 살인 용의자로 체포되자 가족들과 지인들 모두 놀랐다고 한다. 그러나 은정 씨의 유가족들은 사건 당일 조씨의 행동이 이상했다고 주장했다. 조씨는 처가 식구들이 돌아가며 은정 씨 안부를 확인했지만 크게 반응하지 않았다고 한다. 딸의 죽음을 확인한 후 아버지는 “제일 알아야 될 사람이 사위인 것 같아서 전화했다. ‘은정이 갔다’ 이렇게 말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장인과의 통화 후에도 조씨는 응답 없는 은정씨에게 문자 메시지만 보냈다고 한다. 당시 경찰과 온 그를 봤던 이웃 역시 조씨의 모습이 의아했다고 했다. 은정씨 친구들도 “장례식장에서도 잠깐 왔다 갔다고 하고 제대로 못 봤다”고 밝혔다. 모자의 빈소에 잠시 방문했을 뿐 상주로서의 역할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반면 조씨 부모는 “갑자기 어저께 만나고 온 자식 마누라가 오늘 죽었다고 한다. 멍해져 버리는 거다. 무엇을 어떻게 하라는 거냐”고 항변했다. 조씨는 ‘은정이가 갔다’는 말이 죽었다는 의미인지 꿈에도 몰랐고 모든 것은 은정 씨 가족의 오해와 음해라고 했다. 상주 역할을 못한 것에 대해서도 조씨 부모는 “아들이 갔었는데 못 들어가게 제지하고 막아버린 거다. 장례식장에 나도 갔다. 아들을 못 들어오게 하더라. 무슨 권한으로 그러는지. 살벌해서 전날 장지를 먼저 갔다. 가서 다 보고”고 주장했다. 범인은 모자 살해 후 욕실에서 손을 닦았다 사건 현장에서는 새로운 흔적이 나왔다. 감식 결과 욕실 세면대 배수구, 빨래 바구니 수건에서 피해자들의 혈흔이 발견된 것. 범인은 침실에서 모자를 살해 후 욕실에서 손을 닦은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수건에서는 조씨의 DNA가 함께 검출됐다. 조씨 부모는 “집에 갔는데 샤워를 했다. 같이 자고 같이 밥 먹는데 DNA가 안 나왔다는 게 (더 이상하다)”며 집안에서 아들의 DNA가 검출됐으나 조씨의 차량이나 작업장에서는 어떤 흔적도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현장을 분석한 프로파일러는 “여성과 아이만 있다. 늦은 시간이다. 이 정보를 알고 있지 못한다면 남편이나 다른 가족이 귀가할 가능성이 충분히 존재한다. 좁은 동선을 빠르게 들어 와서 저항하지 않는 피해자들을 일방적으로 살해하고 도주하는 과정에서도 침착하게 문을 닫아놓고 간 행동이 면식범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어 “피해자들을 공격하고 도망가면 되는데 불구하고 아들의 얼굴을 베개로 덮었다는 것은 순간적으로 느끼는 어떤 감정 때문에, 아이에 대한 죄책감이나 미안함이 있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재택근무를 하며 대부분의 일상은 민준이 엄마로 살았다는 은정씨. 사건 발생 무렵 은정씨와 남편 조씨의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한다. 일정한 수입이 없는 조씨를 대신해 생활비는 물론 작업장 운영비까지 부담했다는 은정씨. 육아도 그녀의 몫이었다고 한다. 신혼 초부터 작품 활동을 이유로 외박이 잦았던 남편은 몇 년 전부터 집에 거의 오지 않았다고 한다. 아들을 보러 집에 오라고 사정을 해왔던 은정씨. 두 사람의 메시지를 확인해보니 2018년 10월엔 이혼 얘기까지 나왔다. 가족에 무관심한 남편에게 서운함을 표하자 조씨가 먼저 이혼하자고 말했다. 반면 조씨 부모는 아들이 가정에 일부 소홀했더라도 사건 발생 무렵에는 부부 사이가 좋았다고 주장했다. 실제 세 식구는 사건 발생 몇 달 전부터 물놀이를 가거나 함께 시간을 보냈다. 경찰이 남편 조씨를 범인으로 만들었다는 조씨 부모의 주장은 무엇일까. 경찰은 조씨의 차량과 작업실에 있던 옷까지 꼼꼼하게 조사했지만 직접 증거는 찾지 못했다. 증거를 찾지 못했다. 조씨가 새벽 1시 35분 이후 집에 들어가 모자를 살해했을 가능성도 있다는 의미이다. 그는 이 집을 찾은 마지막 방문자였을까. 조씨는 그날 새벽 1시 35분 집을 떠났다. 경찰은 교통 CCTV를 뒤져 그의 차량이 어디로 이동했는지 확인했다. 조씨는 곧바로 작업장으로 향했다. 세 식구가 함께 자다 혼자 잠에서 깨 작업장으로 돌아갔다는 조씨. 조씨는 작업실에서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고 오전 11시가 넘어서 외출했다. 가장 중요한 증거물인 범행 도구는 현재까지도 발견되지 않은 상태다. 그런데 가족과 경찰이 범행 도구와 관련해 주목한 부분이 있었다. 은정 씨 집에 있던 칼 하나가 사라진 것이다. 8년 전 어머니가 스페인 여행에서 사온 6개짜리 칼 세트였다. 제일 작은 과도는 친정집에서 사용했고 현장에서 발견된 건 네 자루 뿐이었다. 전문가는 “한쪽만 날이 있는 칼 같고 길이도 좀 있고 폭도 있다. 부엌칼 형태와 비슷하다”고 분석했다. 칼날 길이는 15cm 전후, 폭은 4cm 이하일 것으로 추측된다고 했다. 피해자 몸에 남은 자창의 형태를 볼 때 칼날은 매우 예리할 것이라고 한다. 또 범행 도중 몸에 피가 묻거나 발로 밟은 흔적 같은 게 남기 마련인데 범행 현장에는 그런 것이 없었다. 조씨 측은 사건 무렵 부부관계가 회복됐다며 범행동기가 없다고 주장했다.잠들었다는 남편, 경마 관련 어플 접속 살인범의 공격에 큰 저항 한 번 하지 못하고 사라진 은정씨 모자. 수요일 밤 남편이 도착했던 9시께 모자는 살아있었을 것이다. 조씨는 경찰 조사에서 밤 10시가 넘어 함께 잠이 들었고 1시에 잠에서 깨 작업실로 갔다고 했다. 그런데 밤 12시 다 된 시간, 10시에 잠들었다고 한 조씨가 4분간 경마 관련 어플에 접속한 흔적이 발견됐다. 조씨 부모는 “아들은 접속한 적 없다고 한다. 은정이가 하지 않았나 싶다”고 말했다. 조씨와 부모의 주장에 대해 전문가들은 “세 명이 있는데 아이는 이걸 할 수 없을 거다. 자기가 안 했으면 부인이 했다는 거다. 부인은 12시에 깨어있었다는 거다”, “일상적으로 휴대폰 어플에 접속할 수 있다. 기록이 있는데 굳이 자기는 자고 있었다고 한다는 건 그 시간에 자기가 깨어있었다는 걸 감춰야 할 이유가 있다는 거다”고 분석했다. 경찰 수사 결과 조씨가 결혼 전부터 한 여성과 만남을 가졌고, 사건 3개월 전부터는 경마 배팅으로 상당한 돈을 사용하고 있었다. 조씨 가족들은 이에 해당 여성이 아들을 일방적으로 좋아했고 외도를 했다 하더라도 살해 동기는 아니라는 주장이다. 반면 이 여성은 조씨가 아내와 화해했던 7월과 8월초까지도 그녀에게 곧 이혼할 거라 말했다고 밝혔다. 또 이 여성은 “아이 보러 안간다고 하고. 부부 사이가 안 좋아서 애도 별로 안 좋아하나 생각했다. 아이에 대해 친자 확인을 해야겠다고도 했다”고 말했다. 조씨가 아들에게 별다른 애정을 보이지 않았다며 친아들이 맞는지 의심하는 발언도 여러 번 했다는 것이다. 범죄심리학자들은 “7월에 화해하고 사과했을 땐 금전적으로 급했던 거 같다. 부인이 자기한테 아이 학원비라도 매달 30만 원씩 달라고 했을 때는 놀라고 황당해했다. 본인한테 효용 가치가 없고..”라고 분석했다. 조씨가 자신의 아내 은정씨를 어떤 존재로 생각했는지가 이 사건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한다. 1심 재판 중인 조씨는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재판에서 중요 쟁점이 되고 있는 것은 두 피해자의 사망 추정 시간이다. 부검 당시 은정 씨와 민준이의 위에서 죽 상태 음식물이 발견됐다. 통상적으로 식후 6시간 내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지만 사람에 따라 편차가 커 논란이 되고 있다. 수요일 저녁 언니가 싸준 스파게티를 먹었던 두 사람. 식후 6시간 내에 사망했다면 조씨가 집에 머물 때와 겹친다. 전문가는 “위 내용물은 참 부정확하기는 한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소화가 잘 안된다. 그런데 두 명의 변사자가 동시에 돌아가셨을 때는 범위를 좁힐 수 있다. 한 명이면 단정하기 어려운데 두 사람이다”고 분석했다.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서울시의회, 감염병 예방조례 긴급 처리

    서울시의회, 감염병 예방조례 긴급 처리

    「서울특별시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조례 일부개정조례안」이 3일 서울특별시의회 제291회 임시회 보건복지위원회 제1차 회의에서 처리되었다. 조례가 오는 6일 서울시의회 본회를 거쳐 공포되면 서울시의 감염병 대응이 더 신속해지고 한결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서윤기 의원(서울시의회 운영위원장, 보건복지위원회)은 “국가적 재난 사태인 코로나19 확산에 즈음해 법 개정 취지를 살려 지방의회가 조례를 신속히 개정함으로써, 서울시가 코로나19 확산 방지에 더 적극적으로 대응토록 지원에 나섰다”라고 밝혔다. 이번 개정 감염병 예방 조례안은 서 의원이 조례 개정안을 위원회에 제안하여 위원회 안으로 긴급 상정, 처리하였다. 개정 조례는 감염병 예방 및 관리를 위한 시행계획을 수립할 때 감염병에 대비한 의약품·장비 등의 비축과 관리에 관한 사항을 포함하도록 하여 감염병이 발생하였을 때 마스크와 같은 의약품과 장비 등이 부족한 상황을 사전에 대비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감염병에 대한 선제적 대응을 위해 시장이 감염병 예방과 관리 현황에 대해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공포할 수 있도록 근거를 마련하였으며, 감염병 예방 및 방역에 대한 업무를 담당하는 방역관을 임명하도록 하고 역학조사관 임명 시 1명 이상 의사를 임명하도록 하여 감염병 예방부터 방역, 역학조사까지 서울시가 감염병 대응 전문인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한편, 서울시가 경찰청과 지방경찰청 등에 감염병 환자와 감염이 우려되는 사람의 위치정보를 요청할 수 있도록, 근거 규정을 마련하여 즉각적으로 감염병 예방과 감염 전파를 차단할 수 있게 되었다. 서 의원은 “감염병 예방 개정 조례안의 신속한 발의와 처리는 서울시의회가 서울시민과 함께 적극적으로 감염병 예방과 확산 방지를 위해 일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사례”라며, “이외에도 코로나19 방역을 위한 일이라면 서울시의회 차원에서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라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안철수 측, ‘의료봉사는 쇼’ 주장에 “국민께서 단죄해달라”

    안철수 측, ‘의료봉사는 쇼’ 주장에 “국민께서 단죄해달라”

    계명대 대구동산병원에서 사흘째 의료봉사安측 “사투에 가까운 노력 중…안타깝다”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3일 대구 계명대 대구동산병원에서 사흘째 의료봉사를 이어갔다. 이런 가운데 일부 온라인 사이트에 ‘의료봉사는 쇼’라는 의혹이 제기되자 안 대표 측은 “음해하는 그 분들을 국민께서 직접 단죄하고 처벌해 주시길 바란다”고 밝혔다. 안 대표 측은 3일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일부 온라인 사이트에는 (안 대표가) ‘환자 근처에도 가지 않는다’ 등 사실관계를 왜곡하며 공격을 일삼는 분들이 있다”며 “현장에서는 국민의 생명·안전의 저지선을 지켜내기 위한 민간 자원봉사자들이 사투에 가까운 노력을 하고 있다.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일부 온라인 게시판에는 ‘안 대표가 환자 근처에도 가지 않고 있으며, 수술복이 땀에 젖은 것은 방호복을 입었기 때문’이라는 출처가 불분명한 소문이 퍼지고 있다. 이에 대해 안 대표 측은 “자신의 위험을 무릅쓰고 현장에서 의료활동을 하는 모든 분들에게 깊은 감동도 받고 박수도 보내고 싶다”며 “오늘 새벽 동산병원에서 코로나19 확진자였던 29번째 희생자가 나왔다. 더 안타까운 희생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기원한다”고 밝혔다. “사실관계 왜곡하며 공격 일삼는 분 있다” 김도식 대표 비서실장에 따르면 안 대표는 이날까지 사흘간 오전 10시쯤 출근해 당일 환자의 특이사항 등 의료지원 활동에 대한 오리엔테이션을 받은 뒤 방호복을 입고 코로나19 환자들이 입원한 병동을 찾았다.통상 자원봉사에 나선 의사가 1일 1회 2시간가량 진료를 보는 데 반해 안 대표와 부인인 김미경 서울대 교수, 국민의당 코로나19 태스크포스 위원장인 사공정규 동국대 의대 교수는 오전과 오후 한 차례씩 2회 진료를 본다. 오전에는 검체 채취, 오후에는 문진을 주로 하고 있다는 것이 국민의당 측의 설명이다. 김 실장은 “방호복을 입고 하루 4시간 정도 일하면 거의 녹초가 된다”며 “안 대표는 퇴근 후 병원과 가까운 모텔로 이동해 일찍 잠을 청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김 실장은 안 대표의 의사면허 유효 여부에 대해서도 “의사면허 소지자가 의료 봉사를 하는 것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의료업 종사자가 아닌 사람은 3년마다 면허신고를 할 필요가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의사협회 등록이 말소되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의료법상 의사면허 정지 또는 취소되지 않는 이상 의사면허는 유지된다”고 설명했다. 당초 비공개 봉사를 원했던 안 대표는 의료 봉사 사실이 알려진 뒤에도 별다른 발언 없이 진료에만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3일 ‘전동식 호흡장치’ 착용하고 진료 나서 한 병원 관계자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안 대표는 동료들에게 ‘고생하십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등의 말만 할 뿐 별다른 말을 하지 않는다”며 “함께 온 사공 교수가 ‘안 대표의 활동이 다른 의료진에게 응원이 되고, 봉사를 망설이는 의료진들에게는 동기부여가 됐으면 좋겠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고 전했다. 안 대표는 이날 의료 봉사 중 처음으로 공기를 공급받을 수 있는 전동식호흡장치(PAPR)를 착용했다. 병원 관계자는 “방호복에 PAPR을 부착하면 숨쉬기가 훨씬 편하기 때문에 기존 2시간보다 훨씬 긴 시간 진료를 볼 수 있다”며 “안 그래도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이런 물품이 지원되면 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길섶에서] 17년 전 사스/오일만 논설위원

    2002년 12월 중국 광저우 시내는 불온한 기운이 감돌았다. 길거리에 삼삼오오 모인 사람들은 수군댔다. ‘무서운 역병이 돌고 있다’는 소문은 ‘카더라 통신’을 타고 중국 전역을 떠돌았다. 사망자가 속출했지만 당국과 언론은 침묵으로 일관한 채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발병 사실을 숨겼다. 원인을 알지 못한 사람들은 사스를 이상한 병이란 뜻의 괴질(怪疾)이라 불렀다. 사스는 다음해 2월 민족 대이동으로 불렸던 춘제(설날)를 통해 급격하게 전파됐다. 당국은 연중 가장 큰 정치행사인 3월 양회기간에도 끝까지 함구했다. 이 괴질이 사방팔방으로 퍼져가도 당국은 그저 쉬쉬했고 흉흉한 민심은 분노로 돌변했다. 중국 당국은 2003년 4월 10일에야 사스 창궐 사실을 발표했다. 전년 11월 광둥성 포산에서 첫 발병 이후 5개월 만이다. 당시 봉쇄당한 베이징은 참혹했다. 치료도 받지 못한 사망자가 쌓였다. 시장과 백화점은 물론 모든 골목식당까지 폐쇄됐다. 자욱한 스모그 연기 속에서 음산한 불신의 공기가 퍼져 나갔다. 간혹 거리에서 마주치는 시민들은 불안에 떠는 표정이 역력했다. 17년 전 베이징 특파원으로 경험했던 그 참상을 2020년 2월 대한민국 서울에서 다시 본다. 착잡한 심정이다. oilman@seoul.co.kr
  • 英가수 더피 10년 동안 안 보이더니 “약물, 강간, 감금”

    英가수 더피 10년 동안 안 보이더니 “약물, 강간, 감금”

    “약물을 먹여 강간하고 며칠 동안 감금했다. 회복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진실은, 제발 날 믿어달라, 지금 난 괜찮고 안전하다.” 그래미상을 수상한 영국 가수 더피(35, 본명 에이미 앤 더피)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갑자기 이런 글이 올라와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다고 BBC가 2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웨일스 출신으로 2008년 ‘머시’로 영국 차트 1위를 비롯해 12개국 차트 1위를 기록했으며 팔로어만 3만 3000명인 더피는 데뷔 앨범 ‘록페리’이 700만장 팔리며 6개국 차트 1위를 기록했다. 브릿 어워드 세 부문과 그래미 한 부문 수상의 영예도 누렸다. 2010년 두 번째 ‘엔들리슬리’를 발매하고 영화 ‘파타고니아’로 배우로 데뷔했다. 디음해 2월 세 번째 음반 작업을 들어가기 전 휴식한다고 발표한 뒤 10년 동안 아무런 활동을 하지 않아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더피는 “이 글을 쓰기로 마음 먹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는 점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라며 “왜 지금이 (공개하기) 적당한 때이고, 무엇이 나로 하여금 말하도록 한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설명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많은 이들이 내게 일어난 일, 내가 어디로 사라졌고, 왜 그랬는지에 대해 궁금해 할 것이다. 한 기자가 내게 연락을 해왔고, 지난해 여름 이 모든 것들에 대해 그 기자에게 말했다. 그는 친절했으며, 드디어 이야기하게 됐다는 점이 굉장히 놀라운 느낌이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면서 “지난 10년 동안, 수천 수천 날들 동안 난 내 가슴 속에 다시 햇살이 들기를 원했고, 지금은 다시 햇살이 비추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동안 공개하지 못했던 이유에 대해선 “내 눈 속의 슬픔을 세계에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며 “심장이 부서진다면 어떻게 노래할 수 있을지 스스로에게 물었다”고 고백했다. 또 지난해 기자와의 “인터뷰 내용을 몇 주 안에 포스팅하겠다”고 덧붙였다. 그녀는 “궁금증이 있으면 인터뷰 내용으로 답했으면 한다. 오랜 세월 여러분이 보여준 친근함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성스럽게 사랑해왔다. 여러분은 친구였다. 이 모든 것에 감사드리고 싶다”면서도 “가족을 끌어들이고 싶지는 않다. 이 일을 긍정적 경험으로 만들게 도와달라”고 끝맺었다. BBC는 더피의 계정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접촉을 시도하고 있다고 전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2·8독립선언서 국내 반입, 3·1만세 시위… 평생 독립 위해 싸운 ‘열사’

    2·8독립선언서 국내 반입, 3·1만세 시위… 평생 독립 위해 싸운 ‘열사’

    “너희들은 왜 죄 없는 사람을 핍박하느냐.” 취조관의 질문에 김마리아는 되받아쳤다. 왜경은 가죽 채찍과 대나무봉을 휘두르고, 양팔을 엇갈리게 결박해 천장에 매달아 놓고 팽이처럼 돌리며 때렸다. 옷을 벗기고 쇠갈퀴로 가슴을 찌르고 불로 지졌다. 살이 터지고 온몸이 피로 물들었다. 일본에 유학 중이던 마리아는 2·8독립선언서를 허리띠에 숨기고 국내로 들어와 고향 황해도로 자금을 모으러 갔다가 3·1운동 소식을 들었다. “여학생들도 바라만 보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마리아는 황에스터, 나혜석 등 11명이 모인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3월 5일 서울역광장 등에서 대규모 만세 시위가 벌어졌고 마리아와 모교인 정신여학교 학생들도 목청껏 만세를 불렀다. 다음날 학교에 왜경이 들이닥쳐 마리아를 포승줄로 묶어 끌고 갔다. “선생님!” 학생들은 울부짖었다. 마리아는 고문으로 코와 귀에 고름이 고이는 등 만신창이가 됐다. 지옥 같은 서대문형무소로 옮겨졌다가 그해 7월 24일 증거 부족으로 석방됐다.김마리아는 1892년 7월 11일 황해도 장연군 대구면 송천리에서 태어났다. 13살 때 어머니마저 여읜 마리아는 1906년 6월 서울로 가 서울 연동여학교(정신여학교로 개명)에 입학했다. 마리아의 작은언니 미렴과 오현관·오현주 자매 등은 누룽지를 함께 먹으며 공부했다고 해서 ‘누룽지방 형제’라고 불렸다. 1910년 6월 졸업한 마리아는 모교 교단에 섰다. 정신적 지주였던 교장 루이스는 마리아에게 유학을 권했다. 1915년 5월 마리아는 일본 도쿄여자학원에 입학했다. 졸업이 다가올 즈음 민족자결론이 무르익었다. 1919년 1월 모임에서 황에스터는 “국가의 대사를 남자들만이 하겠다는 것인가”라고 열변을 토했다. 2·8독립선언서에 서명한 사람은 남학생 11명이었지만 도쿄 조선기독교청년회관에는 마리아와 황에스터 등 여학생들도 참석했다. “최후의 일인까지 자유를 위하는 열혈을 유(流)할지니….”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자 일본 경찰이 습격해 회관은 아수라장이 됐다. 마리아도 끌려갔다가 풀려났다. ●애국부인회 결사부 만들어 직접 독립운동 3·1만세 시위 주도로 악랄한 고문을 받은 몸에서는 고름이 흘렀다. 그사이 숙부 필순이 이역만리에서 일본인 의사가 준 우유를 마시고 숨졌다. 틀림없는 독살이었다. 마리아는 분루를 삼키며 또 다른 길을 모색했다. 몸도 성치 않은 마리아의 의지는 놀라웠다. 석방된 지 석 달도 안 된 1919년 10월 19일 뜻을 같이하는 여성 16명이 모여 대한애국부인회를 결성했다. “부녀들도 남자들처럼 혁혁한 독립운동을 해야 한다”고 마리아는 말했다. 마리아는 회장이 되고 시도 지부장을 뽑는 한편 결사부를 만들어 직접 독립전쟁에 참여하고자 했다. 한 달 만에 회원이 2000여명으로 늘어나고 현재 가치로 수억원인 6000원을 상하이 임시정부에 보냈다. 그러던 11월 어느 날 ‘누룽지방 형제’ 오현주가 불쑥 찾아왔다. 오의 안내로 임정 밀사를 자칭하는 사람을 만났는데 부인회의 활동을 캐묻는 것이었다. 10여일 후 마리아가 수업을 하고 있을 때 종로경찰서 왜경들이 들이닥쳤다. 마리아는 수갑이 채워져 연행됐다. 오현주의 배신이었다. 마리아는 붙잡힌 동지들에게 “어떤 고통을 당해도 비밀을 알려 주지 말자”고 당부했다. 간부들은 포승줄에 묶여 서울역으로 끌려갔다. 그 밀사는 대구경찰서 소속 경찰이었다. 군중은 “여성독립단이여, 용기를 내시오. 대한독립 만세!”라고 외쳤다. 대구로 붙잡혀 간 간부는 52명이었다. 끔찍한 고문이 자행됐고 회장인 마리아에게 더 혹독한 고문이 가해졌다. 장작개비를 두 무릎 사이에, 쪼개진 대나무를 두 팔 사이에 끼우고 몸을 빨래 짜듯이 비틀어 댔다. 마리아는 신음도 내지 않고 고통을 견뎌 냈다. 그러자 고무 호수를 코에 끼우고 물을 넣었다. 마리아의 얼굴과 입에서 핏물이 흘러내렸다. 대구 검사국에 송치된 마리아는 깜짝 놀랐다. 만세 시위 때 심문한 가와무라 검사가 자진 전근을 해온 것이었다. 가와무라가 생년월일을 묻자 마리아는 “서력 1892년…”이라고 했다. “어째서 대일본제국의 연호를 쓰지 않는가”라고 하자 마리아는 “일본 연호를 배운 적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다”고 말했다. 고문에 고문이 더해져 마리아는 몸이 퉁퉁 부었고 정신 이상 증세도 보였다. 일제는 마지못해 병보석을 허가했다. 가와무라는 ‘일본의 국적(國賊)’이라며 징역 5년을 구형했고 1심에서 징역 3년이 선고됐다.●임시의정원 의원 임명… 中서도 항일운동 마리아는 중국 망명을 결심했다. 몰래 병원에서 빠져나와 배를 타고 서해를 건너 1921년 7월 21일 중국 땅을 밟았다. 고문 후유증은 여전해 몇 달 동안 치료를 받아야 했다. 마리아는 1922년 임시의정원 황해도 의원에 임명됐고 대한여자청년회를 조직하는 등 항일 의지를 버리지 않았다. 상하이 임시정부는 창조·개조·옹호파로 분열돼 있었다. 1년에 가까운 통합 노력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실망스러운 상황에서 마리아는 미국 유학을 선택했다. 1923년 7월 12일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지만 건강은 계속 나빠 병석에 눕는 날이 많았다. 힘들게 미주리주 파크대학을 졸업하고 시카고대학 연구학생을 거쳐 뉴욕 컬럼비아대 사범대학원에 진학, 1929년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마리아는 뉴욕에서 황에스터 등 옛 동지를 만나 근화회를 조직했다. 혈혈단신 마리아의 유학 생활은 몹시 고달펐다. 점원, 행상, 보모 등을 전전하며 학비를 벌었다. 연민과 애정을 느끼고 혼인을 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마리아는 “이미 대한의 독립과 결혼했다”며 거절했다.1932년 7월 마리아는 11년의 외국 생활을 정리하고 고국 땅을 밟았다. 일제는 감시와 협박을 계속하면서 거주지와 직업을 제한했다. 마리아는 다음해 함남 원산 마르타윌슨 여자신학원 교수로 부임했다. 신사참배를 거부해 탄압을 받았고 신학원도 폐교당했다. 악독한 고문의 후유증은 전신을 짓눌렀다. 마리아는 쓰러졌고 1944년 3월 13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일제와 맞섰던 52년 인생을 마감했다. 언니 미렴은 유골을 대동강에 뿌렸다. 정부는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열사의 모교 정신여학교는 정신여중고로 바뀌어 1978년 서울 송파구 잠실동으로 이전했다. 종로구 연지동에는 옛 교사(校舍)와 수령 550여년의 교목(校木) 회화나무가 그대로 남아 있다. 교정 한쪽에는 서울보증보험 건물이 들어서 있다. 서울보증보험과 종로구청의 노력으로 지난해 회화나무 옆에 열사의 흉상을 건립하고 탐방로를 조성했다.●유품은 치마저고리·수저 한 벌이 전부 잠실종합운동장 옆 정신여중고 교정에 들어서면 또 다른 흉상과 ‘김마리아관’(대강당)이 눈에 들어온다. 교장실에서 만난 최성이 정신여고 교장은 “열사는 평생 독립운동을 했고 사실상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의원”이라면서 “사단법인 김마리아기념사업회 주도로 추모 사업을 펴고 있는데 업적에 비해 낮은 훈격을 높이려는 노력이 무산돼 아쉽다”고 말했다. 한평생 외롭게 살다 간 열사의 유품은 치마저고리와 수저 한 벌이 전부다. 그런데 치마저고리를 자세히 보면 오른쪽 섶 길이가 짧다고 한다. 최 교장은 “고문으로 열사의 한쪽 가슴이 없어져 양녀 배학복이 한쪽 섶을 짧게 해서 손수 만들어 드린 한복”이라고 설명했다. 몇 안 되는 유품은 강당 1층의 작은 공간과 동창회 사무실에 전시돼 있다. 숙원 사업인 기념관 건립은 진척이 없다. 그래도 올해 두세 교과서에 열사의 이야기가 실린 것은 성과라면 성과다. 글 사진 논설고문 sonsj@seoul.co.kr
  • 박상혁 김포을 예비후보 재심인용 통과

    박상혁 김포을 예비후보 재심인용 통과

    더불어민주당 박상혁 경기 김포시을 예비후보는 24일 “중앙당에서 제가 신청한 재심이 최종 인용됐다는 결과를 통보 받아 경선 후보로 다시 선택됐다고 밝혔다. 박 후보는 재심 결과에 대해 “이 모든 것은 김포 시민 여러분들과 당원 동지들의 성원과 지지 덕분”이라며, “특히 박상혁은 음주운전 전력 하나 없이 깨끗한 사람이고 박원순 시장과 문재인 대통령이 실력을 보증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중앙당에 호소를 해준 당원 동지들이 많았다는 얘기다. 이어 그는 “하지만 제가 기뻐하고만 있을 때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지금 선거운동보다 중요한 게 대한민국이 큰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우리 김포에도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해 우리가 힘을 모으고 서로를 믿고 이겨내야 할 때”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박 후보는 “국가적 위기 상황을 대통령과 정부를 흔들려는 기회로 삼으려는 일체의 정치적 음해에 대해선 단호하게 대처해야 할 때”라고 말하고 “박상혁은 서울특별시와 청와대에서 일했던 사람으로 더 책임감을 가지고 한없이 겸손하게 임하겠으며 엉뚱한 음해와 정치 공세에 대해선 단호하게 대처하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로써 민주당 김포을 예비후보 경선은 이회수·김준현·박진영·박상혁 등 4명의 후보가 오는 3월 초에 치를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지난 15일 민주당은 김포을 경선자로 김준현, 박진영, 이회수 등 3명을 발표한 바 있다. 이에 낙선한 3명의 후보가 재심을 청구해 민주당 중앙당 공직선거후보자추천재심위원회가 지난 19일 오전 심의위원회를 개최했다. 이날 재심위원회에서 김포을 지역을 보류지역으로 결정하고 이후 재심의를 진행해 박상혁 후보가 인용통과됐다. 이명선 기자 mslee@seoul.co.kr
  • 옥천군 노인분들 칫솔질까지 챙긴다

    옥천군 노인분들 칫솔질까지 챙긴다

    충북 옥천군이 경로당 노인분들의 이(齒) 건강을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17일 군에 따르면 올해 청성·청산면을 대상으로 ‘그 이(齒)까지도 튼튼하게’ 사업이 추진된다. 군은 노인들이 모여 점심 등을 해결하는 경로당에 공동칫솔걸이를 비치해 서로가 식사 후 양치질을 권유하는 분위기를 만들 계획이다. 칫솔걸이에는 노인분들 이름과 번호가 표시돼 각자의 칫솔을 찾기 쉽게 했다. ‘점심식사 후 꼭 이를 닦아요’, ‘60세 이상은 1년에 한번 꼭 기억력검사 받으세요’ 라는 문구도 들어가 있다. 틀니 개인보관함도 제공하기로 했다. 3개월마다 칫솔 교환, 틀니 세정제 지원, 틀니 방문소독도 진행된다. 입 안의 침 분비량을 늘리기 위한 입 체조 교육도 이뤄진다. 입 안이 건조하면 구내염 등이 발생하기 쉽고 틀니를 뺄때 통증이 심할 수 있다. 두 지역 경로당은 모두 73곳이다. 경로당에 나오시는 노인분들은 800여명이다. 군은 전문인력을 통한 금연, 영양, 치매, 걷기운동 교육도 병행할 예정이다. 군은 내년에는 동이면, 이원면, 군서면, 다음해에는 군북면, 안남면, 안내면으로 계속 확대해 나갈 방침이다. 군이 이런 사업을 추진하는 것은 관내 주민들의 칫솔질 실천율이 낮기 때문이다. 2018년 진행된 조사에 따르면 충북지역의 점심식사 후 칫솔률이 58.6%이지만 옥천군은 이보다 낮은 51.9%다. 청성면과 청산면은 옥천에서 가장 낮은 30% 내외다. 군 관계자는 “건강취약계층인 노인분들을 위해 사업을 마련했다”며 “지역 간 건강격차 해소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옥천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 여자탁구 갈등 사태 ‘화해’로 매듭...전지희 ‘견책’

    여자탁구 갈등 사태 ‘화해’로 매듭...전지희 ‘견책’

    유남규 전 대표팀 감독, 전지희 사과로 오해 풀어대표팀 훈련 방식 등으로 갈등 과정에서 녹취 논란대한탁구협회, 유사 사례 재발시 엄중 조치하기로여자탁구 국가대표팀의 에이스로 활약했던 전지희(포스코에너지)와 유남규 전 대표팀 감독 사이에 불거진 갈등 사태가 화해로 일단락됐다.대한탁구협회는 12일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파크텔에서 스포츠공정위 원회(위원장 이장호 변호사)를 열고 이번 갈등 사태에 대해 논의한 결과, 전지희에게 가장 낮은 수위의 징계인 ‘견책’을 주기로 결정했다. 또 유사 사례가 재발하면 엄중하게 조치하기로 했다. 탁구협회는 이날 전지희와 유 전 감독을 불러 소명을 들었다. 전지희가 전날 유 전 감독을 찾아가 사과했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전지희는 이날 공정위에 나와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 나쁜 의도는 없었더라도 지시 내용을 녹음한 건 잘못이며, 반성하고 있다”고 밝혔다. 유 전 감독도 “전지희 선수와 오해를 풀었고, 선수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전했다. 이번 사태는 전지희와 유 전 감독 사이의 ‘녹취 공방’에서 비롯됐다. 전지희가 지난해 대표팀 훈련 과정에서 유 전 감독의 지시 내용을 허락 없이 녹음해 탁구협회 임원진에 제출하면서 둘 사이의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전지희는 대표팀 훈련 방법 등을 놓고 유 전 감독과 갈등을 빚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유 전 감독이 지난해 12월 대표팀 감독직에서 물러났고, 전지희는 이후 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해 지난달 포르투갈에서 열린 올림픽 세계예선에 출전하지 못했다. 내홍에 휩싸였던 한국 여자탁구는 패자부활 토너먼트를 거친 끝에 도쿄올림픽 본선 티켓을 따냈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정봉주, 당 결정 수용 “원통하지만…영원한 민주당원”

    정봉주, 당 결정 수용 “원통하지만…영원한 민주당원”

    “원통하고 서러워 피토하며 울부짖고 싶다”“무죄 받아 음해세력 발 못 붙이게 하겠다”더불어민주당 4·15 총선 예비후보 부적격 판정을 받은 정봉주 전 의원은 11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당의 결정을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눈물을 흘리며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결국 “영원한 민주당 당원”이라는 말을 끝으로 당 결정에 승복했다. 정 전 의원은 기자회견에서 “납득할 수 있는 법적 근거와 규정은 없지만 (당이) ‘국민적 눈높이와 기대’라는 정무적 판단 아래 ‘감정 처벌’을 단행한 것으로 보인다”며 “원통하고 서러워서 피를 토하며 울부짖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2년 전 이른바 미투라는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저의 민주당 복당이 막히고 서울시장 출마도 불허되는 ‘정치적 처벌’을 받았다”며 “이후 약 2년 가까이 혹독한 재판을 거쳤고 완전하게 무죄 판결을 받았다”고 주장했다.정 전 의원은 “저는 또 이렇게 잘려나간다. 처음엔 이명박 정권에 의해, 그리고 이번에는 어려운 시절을 함께 해왔던 동료들의 손에 의해…”라면서도 “저는 영원한 민주당 당원”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그는 “상급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아 저를 모함하거나 음해하는 세력이 더 이상 다시는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민주당은 전날 최고위원회에서 성추행 사건과 관련한 명예훼손 재판 중인 정 전 의원에 대한 4·15 총선 예비후보자 부적격 판정을 확정했다. 민주당은 당초 부동산 투기 의혹을 받은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과 마찬가지로 본인의 결단을 기대했지만 정 전 의원이 입장을 굽히지 않자 결국 부적격 결정을 발표하면서 총선 논란 조기 차단에 나섰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흑색선전 도넘은 상대방측 당에 징계 요청·검찰고발하겠다”

    “흑색선전 도넘은 상대방측 당에 징계 요청·검찰고발하겠다”

    더불어민주당 경기 광명시을 국회의원 양기대 예비후보는 5일 광명을 선거구 강신성 예비후보 선거대책위원장인 유모 위원장 등의 허위사실 유포에 대해 엄중한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또 양 후보 측은 “이번 사건이 강신성 예비후보 측의 조직적인 음해·해당행위라고 보고 더불어민주당 중앙당에 강 후보측 행위에 대해 진상조사와 함께 제재를 촉구하는 조사요청서를 제출했다”고 덧붙였다. 강 후보 측이 제기한 미투 관련 내용은 대부분 2019년 5월 더불어민주당 중앙당 윤리심판원에서 무혐의로 결정된 사항이다. 당시 이를 제기했던 김모 광명시 전의원은 당원자격정지 2년의 중징계를 받았다. 또 중앙선관위는 이 같은 내용을 인터넷 상에 유포하고 있는 성명 미상의 A씨에 대해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결론짓고, 문제의 페이스북 계정과 인터넷 커뮤니티 허위 글을 삭제하도록 했다. 이와 함께 양 후보에 대해 악의적인 허위보도를 하고 ‘가짜뉴스’를 유포한 J 인터넷언론사 대표 겸 발행인 김모씨에 대해서도 광명경찰서에 고발해 수사가 진행 중이다. 앞서 중앙선관위 인터넷선거보도심의위원회는 양 예비후보를 비방한 J 인터넷언론사에 대해 ‘경고문 게재’라는 철퇴를 내렸다. 그동안 양 예비후보는 더불어민주당의 분열과 갈등을 우려해 상대후보측의 끈질긴 음해에도 공정한 경선과 아름다움 경선을 생각해 공개적으로 대응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기자회견은 양 예비후보의 명예뿐만 아니라 양 예비후보를 지지하고 사랑하는 광명시민의 자존심까지 훼손한 행위라고 판단했다. 이에 양 예비후보는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흑색선전을 하고 있는 강 예비후보 측에 대해 민주당에 징계를 요청했으며 향후 검찰에도 관련자들을 고발할 예정이다. 민주당은 지난 1월 30일 악의적인 허위사실 유포 등 상대후보에 대해 네거티브를 벌이는 후보는 최대 공천배제 등 공천 시 불이익을 주겠다는 네거티브 금지 방침을 밝혔다. 양기대 예비후보는 “당 중앙당에 강 예비후보의 네거티브 선거에 대한 강력한 제재와 유모씨 등의 해당행위에 대한 조사를 요청하는 바”라며, “네거티브만으로는 선거를 이길 수 없음을 확신하고 공명선거를 위해 선거가 끝날 때까지 지난 17년간 그랬듯 오직 광명시민과 바라보며 함께 나아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명선 기자 mslee@seoul.co.kr
  • 동료 교수·제자 성추행 전주대 교수 구속

    동료 교수와 제자를 성추행한 혐의로 기소된 전주대 교수가 법정 구속됐다. 전주지법 형사2단독 오명희 부장판사는 5일 강제추행,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 혐의로 기소된 교수 A씨에게 징역 1년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재판부는 40시간의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와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 3년간 취업 제한도 명령했다. A씨는 2014년부터 2015년까지 동료 교수와 학생 등 2명을 추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승용차와 사무실 등에서 피해자들을 상대로 강제로 신체 접촉하고 추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피해 고백이 잇따르자 A씨는 지난해 3월 초 결백을 주장하며 극단적 선택을 하기도 했으나, 그 이후에도 폭로는 끊이지 않았다. 한 피해자는 “A씨에게 성추행당한 후 입막음용으로 5만원이 든 봉투를 받았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교수라는 지위를 이용해 자신이 연출하는 연극의 배우나 스텝으로 참여하는 학생, 교수를 상대로 범행했다”며 “피고인은 피해자들이 자신을 악의적인 의도로 음해한다고 주장하면서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피해자들로부터 용서도 받지 못해 실형이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전북여성인권지원센터 등 50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전북여성문화예술연대’는 기자회견을 열고 “A 교수는 처음부터 끝까지 성폭력을 인정하지 않고 가해자를 기만하는 태도로 일관했다”며 “피해 여성의 아픔에 위로를 전하는 법원의 판결을 환영하며 문화예술계의 반성과 성찰이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천연두·콜레라·독감… 전염병이 역사를 바꿨다

    천연두·콜레라·독감… 전염병이 역사를 바꿨다

    임진왜란 때 조선 수군에 전염병 확산 사망자 속출 속 이순신 장군 위기 면해 숙종이 천연두 걸려 결국 ‘장희빈 탄생’ 고대 아테네선 전염병에 전쟁 양상 변화 전염병으로 아메리카 원주민 90% 몰살#장면1 임진왜란이 발발한 다음해인 1593년 3월 남해안 일대에 전염병이 번졌다. 이순신 역시 12일간 고통을 겪어야 했다. 좁은 배 안에서 함께 생활하던 조선 수군에선 전염병으로 인한 사망자가 전투 중 전사자보다 몇 배 더 많았다. 1594년 4월 이순신이 조정에 올린 보고서를 보면 전염병 사망자가 1904명, 감염자는 3759명으로 전체 병력 2만 1500명의 40%가량이 전투력을 상실한 상태였다. 다시 전염병이 창궐한 1595년 수군 병력은 4109명까지 감소했다. 당시 이순신이 전염병에 쓰러졌다면 임진왜란은 어떻게 끝났을까? #장면2 숙종 10년(1683) 숙종이 천연두에 걸렸다. 첫 부인인 인경왕후 김씨를 천연두로 잃은 숙종을 살리기 위해 숙종의 어머니 명성왕후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무당이 알려 준 황당무계한 처방에 따라 한겨울에 소복 차림으로 물벼락을 맞았다. 이로 인해 병을 얻어 12월 5일 사망했다. 명성왕후는 숙종이 총애하던 중인 출신 궁녀를 궁궐에서 쫓아낸 적이 있는데 명성왕후가 죽자 숙종은 그 궁녀를 궁궐에 다시 데려왔다. 그 궁녀가 나중에 경종을 낳은 장희빈이다. 숙종이 천연두에 걸리지 않았다면 오늘날 사극의 단골 소재인 인현왕후와 장희빈 이야기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몽골제국 몽케칸, 남송 원정 도중 병사 역사를 바꾼 결정적인 순간에 전염병이 있었다. 지금처럼 보건위생 개념이 발달하지 않고 상하수도 시설과 화장실 설비가 부족했던 전근대사회에선 대규모 전염병이 빈발했으며 그때마다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때로는 역사의 물줄기까지 바꾸는 일도 잦았다. 고대 아테네에서 기원전 430~428년 발생한 전염병은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양상을 바꿨다. 당시 아테네 성벽 안에 있던 주민 가운데 3분의1이 사망했고 그중에는 페리클레스도 있었다. 특히 아테네가 자랑하던 해군력에 큰 타격을 입혔다. 칭기즈칸의 손자로 몽골제국 네 번째 칸이었던 몽케칸은 남송 원정을 이끌던 1259년 여름 지금의 쓰촨성 지역에서 갑작스레 사망했다. 페르시아어로 기록된 몽골제국사인 ‘집사’(集史)는 몽케를 쓰러뜨린 전염병을 ‘바바’라고 표현했다. 정확히 어떤 전염병이었는지는 지금도 불분명하다. 일부에선 흑사병이었을 것으로 짐작하기도 하지만 확실하진 않다. 몽케칸이 갑작스럽게 사망하는 바람에 몽케의 그늘에 가려 있던 동생 쿠빌라이가 몽골제국의 칸이 됐다. 몽케칸을 만나러 가던 도중 그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고려로 되돌아가던 고려 태자 일행은 쿠빌라이와 만나면서 쿠빌라이와 고려 태자 사이에 일종의 밀약이 이뤄진다. 고려 태자는 훗날 고려 원종이 되고, 원종과 쿠빌라이는 사돈 관계로 이어진다. 전염병은 때로 제노사이드보다 더한 비극을 초래하기도 했다. 유럽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에 상륙한 뒤 발생한 대규모 전염병은 원주민 인구 가운데 90%를 몰살시켰다. 오늘날 미국에 해당하는 지역만 해도 인구가 1500년 500만명에 달했지만 1800년에는 6만명으로 줄었다. ●인도 풍토병인 콜레라 전 세계 휩쓸어 조선 중종 19년(1524) 7월 평안도관찰사 김극성의 보고서가 국왕에게 도착했다. 평북 용천군 지역에 전염병이 돌아 670명이 사망했다는 내용이었다. 평안도 전역과 황해도까지 전염병이 전파되면서 이듬해 가을까지 사망자는 2만 3000여명에 달했다. 중종대 인구가 400만명 내외로 추정되니까 전체 인구의 0.5% 이상이 사망한 것이다. 현재 남북한 인구 7000만명을 대입해 보면 35만명가량이 전염병으로 사망한 셈이다. 이 전염병은 ‘티푸스’로 추측되고 있다. 17세기는 세계적으로 소빙하기였다. 각종 전염병이 빈번했다. 특히 천연두가 많았다. 천연두는 조선에선 두창, 마마, 손님 등으로 불렀다. ‘백세창’이라고도 했는데 평생 한 번은 겪고 지나가야 하는 질병이라는 뜻이었다. 공기로 전염되는 바이러스성 질환인 천연두는 일단 감염되면 고열과 발진이 일어나고, 두통과 구토 등을 일으킨다. 얼굴, 손, 몸통에 발진이 생긴다. 증상이 일어난 지 8~14일이 지나면 딱지가 앉고 흉터가 남는다. 그 흉터를 흔히 마마 자국이라고 부른다. 1886년 제중원에서 작성한 ‘조선 정부 병원 1차연도 보고서’에서 4세 이전의 영아 40~50%가 두창으로 사망한다고 할 정도로 무서운 전염병이었다. 치료법도 발전했다. 일종의 백신을 활용한 치료법인 인두법이 대표적이다. 1821년(순조 21년) 조선은 듣도 보도 못한 새로운 전염병인 ‘콜레라’로 치명상을 입는다. 그해 8월 평양감사 김이교가 작성한 보고서는 이렇게 시작한다. “갑자기 괴질이 발생해 구토와 설사와 가슴이 막혀 타는 듯한 고통을 호소하다 잠깐 사이에 사망한 사람이 1000여명이나 되었습니다. 의약도 소용없고 구제할 방법도 없으니 눈앞의 광경이 매우 참담합니다.” 인도 풍토병이었다가 1817년 콜카타에서 본격 발병한 콜레라는 말 그대로 전 세계를 휩쓸었다. 콜카타에 있던 영국 군인 5000명을 1주일 만에 몰살시킨 콜레라는 1819년에 유럽, 1820년에는 중국에 상륙했다. 조선에 상륙한 콜레라는 1821년 9월 17일 황해감사 이용수가 “사망자가 8000~9000명에 이르며 한창 앓고 있는 무리는 그 수를 다 셀 수 없는 상황”이라고 보고할 정도로 확산됐다. 콜레라는 중부지방을 통과해 제주도까지 퍼졌다. ●전염병 때마다 등장하는 소수자 혐오 전염병이 번질 때마다 등장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소수자 혐오다. 질병의 원인을 ‘저들’에게 돌리는 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의 오랜 못된 버릇이다. 19세기 콜레라가 한창일 당시 청나라에선 반체제 성향 신흥종교인 백련교도들에게 혐의를 돌리기도 했다. “백련교도들이 우물에 독약을 뿌리고 오이밭에 독약을 뿌려 생긴 질병”이라는 유언비어가 난무했다. 1918년 처음 발병해 감염자 5억명에 사망자가 최소 2500만명에서 최대 1억명으로 추산되는 ‘스페인 독감’만 해도 최초 발생지인 미국에선 “독일인 때문에 생겼다”, “동유럽 이민자 때문에 생겼다”, “흑인 때문”이라는 등 소수자에게 원인을 돌리는 각종 소문이 횡행하기도 했다. 강국진 기자 betulo@seoul.co.kr
  • 홍준표 “황교안의 험지는 뜨거운 아이스커피”

    홍준표 “황교안의 험지는 뜨거운 아이스커피”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는 지난 30일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의 ‘험지’ 출마에 대해 “뜨거운 아이스 커피라는 놀림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홍준표 전 대표는 페이스북을 통해 “우리당은 당 대표 출마지를 두고 말도 되지 않는 ‘될만한 험지’를 찾으면서 민주당 의원으로부터 뜨거운 아이스 커피라는 놀림을 받고 있다. 수도권 각지로부터 야당 대표를 두고 서로 자기 지역으로 오라는 비아냥을 받는 수모를 당하고 있다”며 이렇게 전했다. 홍준표 전 대표는 “전직 당 대표를 음해하고 헐뜯기에 바쁘다. 마구잡이 쳐내기 공천에만 주력하는 마이너스 전략만 세우고 있다. 공천을 줘도 되기 어려운 밥그릇 싸움에만 골몰하면서 유승민당에 놀아나는 소통합에만 골몰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홍 전 대표는 “이제부터라도 서로 헐뜯는 공천은 그만하고 플러스 공천에 주력해야 한다. 경쟁력 있는 인물을 중심으로 이기는 공천을 해야 한다. 스타일리스트 공천은 참패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지적했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文대통령의 친구’ 송철호 당선 위해 靑·여권·경찰·공무원 동원

    ‘文대통령의 친구’ 송철호 당선 위해 靑·여권·경찰·공무원 동원

    청와대, 송철호의 정적 김기현 수사 하명 백원우, 가공한 비위 첩보 울산경찰청 보내 송 시장은 황운하에 수사 개시 청탁 혐의 한병도 前수석, 당내 경쟁자 제거에 개입 靑 공약도 지원… 공무원 내부 자료 유출 송 시장 “짜맞추기 수사… 명예회복 할 것” 김 前시장 “권력형 부정선거… 즉각 사퇴를” 검찰이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의 주요 피의자인 청와대 출신 인사 등 전현직 공무원 13명을 지난 29일 전격 기소했다.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청와대와 여권 인사들이 한꺼번에 재판에 넘겨진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검찰은 2018년 6·13 지방선거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오랜 친구인 송철호(왼쪽·71) 울산시장을 당선시킬 목적으로 청와대와 여권 인사들, 울산 경찰과 공무원 등이 집단적으로 동원된 것으로 보고 있다.검찰이 1차로 기소한 주요 피의자는 사건의 중심에 있는 송 시장과 송 시장을 보좌해 온 송병기(58) 전 울산시 경제부시장, 백원우(54)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과 박형철(52) 전 반부패비서관, 한병도(53) 전 정무수석, 장환석(59) 전 균형발전비서관실 선임행정관, 황운하(58) 전 울산지방경찰청장, 문모(53) 전 민정비서관실 행정관(현 국무총리실 사무관)과 울산시 공무원들 등이다. 공소사실은 크게 ▲하명수사 ▲당내 경쟁자 제거 ▲공약 지원 등 세 갈래다. 하명수사와 관련해서는 지방선거 전후로 송 시장의 정적인 김기현(오른쪽) 전 울산시장에 대한 수사를 청와대가 하명했고, 이에 울산 경찰이 표적 수사를 벌였다는 것이다. 검찰은 2017년 10월 송 전 부시장이 김 전 시장 측근의 비위 첩보를 문 전 행정관에게 제공하고, 문 전 행정관은 이를 가공해 백 전 비서관에게 올린 것으로 보고 있다. 백 전 비서관은 이 첩보를 박 전 비서관을 통해 경찰청과 울산경찰청에 내려보냈고, 김 전 시장에 대한 수사가 개시됐다. 송 시장은 이 수사가 시작되도록 황 전 청장에게 청탁한 혐의를 받는다. 울산청과 경찰청은 지방선거를 마칠 때까지 청와대에 수사 상황에 대해 여러 차례 보고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황 전 청장은 하명수사를 진두지휘한 혐의를 받는다. 또 수사에 미온적인 경찰관들을 부당하게 인사 조치했다는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도 추가됐다. ‘당내 경쟁자 제거’는 송 시장의 당선을 위해 임동호 전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제거에 청와대가 개입했다는 혐의다. 여기엔 한 전 수석이 얽혀 있다. 한 전 수석은 선거를 4개월 정도 앞두고 임 전 최고위원에게 해외 공사직 제공 등을 빌미로 출마 포기를 권유한 혐의를 받는다. ‘공약 지원’은 송 시장 측 공약 지원을 위해 청와대가 나섰고 울산시 공무원 등이 내부 자료를 유출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송 시장과 송 전 부시장이 2017년 10월 장 전 행정관에게 김 전 시장의 공약인 ‘산재모병원’ 예비타당성(예타) 조사 발표를 연기해 달라고 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산재모병원 예타 탈락 결과가 당시 지방선거를 열흘 앞두고 발표돼 선거에 영향을 미쳤다고 판단했다. 당시 송 시장 측은 ‘산재모병원’에 대응해 ‘공공병원 유치’를 선거 공약으로 제시했다. 이 외에도 울산시 공무원 등이 송 시장 공약 등을 지원하기 위해 2017년 8월부터 다음해 4월까지 울산시청 자료 등을 송 전 부시장에게 전달한 혐의로 기소됐다. 검찰은 이번에 기소하지 않았지만 이광철(50) 청와대 민정비서관은 하명수사에, 임종석(54)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당내 경쟁자 제거와 공약 지원에 관련됐다는 의혹으로 수사를 이어 가고 있다. 한편 사건의 중심에 있는 송 시장은 기소된 다음날인 30일 울산시청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의 정치적 목적을 가진 왜곡·짜맞추기 수사, 무리한 기소에 분노한다”며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이어 “검찰의 무리한 기소에도 불구하고 추호의 흔들림 없이 울산시정을 안정적으로 이끌어 갈 것”이라며 “법정에서 진실을 가려 울산시민과 저에 대한 명예회복을 반드시 이뤄 내겠다는 약속을 한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12월 11일 “때가 되면 속 시원히 밝히겠다”고 한 송 시장이 자세한 입장을 낸 건 처음이다.이에 김 전 시장도 같은 날 울산시의회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2018년 6·13 지방선거는 청와대와 여당, 부패한 일부 경찰, 송 시장, 송 시장 측근이 한통속이 돼 저지른 희대의 권력형 부정선거 사건”이라며 “송 시장은 책임 있는 행정수장으로서 즉각 사퇴하라”고 촉구했다. 이혜리 기자 hyerily@seoul.co.kr 진선민 기자 jsm@seoul.co.kr
  • 30대 순정男…알고보니 ‘양다리’ 6000만원 챙겨

    30대 순정男…알고보니 ‘양다리’ 6000만원 챙겨

    여성 2명과 동시 교제하며 결혼하자고 속여 6000만원이 넘는 돈을 챙긴 30대 남성이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인천지법 형사1단독 박희근 판사는 사기 혐의로 기소된 A씨(34)에게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고 120시간의 사회봉사를 선고했다고 30일 밝혔다. A씨는 2017년 5월부터 다음해 5월까지 결혼을 전제로 교제 중이던 여성 2명에게 “돈이 필요하다”며 6400만원을 받아 챙긴 혐의로 기소됐다. A씨는 2017년 5월부터 11월까지 B씨와 같은 해 6월부터 2018년 1월까지는 C씨와 교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B씨에게 “결혼을 전제로 진지하게 교제하고 싶다”고 말하며 910만원을 받아 챙긴 것으로 전해졌다. 또 C씨에게는 “일만 해서 연애할 시간이 없었는데 너와 결혼하고 싶다”며 5500만원을 빌려달라고 요구했지만 갚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피해자들로부터 편취한 금액이 많고 피해자들로부터 용서받지도 못했다”며 “다만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고 있으며 상당액을 변제했다고 소명자료를 제출한 점 등을 참작해 형을 정했다”고 밝혔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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