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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은행 인사(외언내언)

    은행 주주총회 때가 되면 임원인사와 관련된 풍문이 꼬리를 문다.은행장을 비롯한 임원선임을 둘러싼 불미스런 소문은 제 3공화국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그 당시 『누구는 누구를 만나기 위해 집앞에서 밤을 새우다 시피했다』는 설이 있는가 하면 『누구는 어떤 실력자에게 청탁하여 임원이 됐다』는 풍문이 금융가에 심심치 않게 떠돌아 다녔다. 정부나 정치권의 얼마나 「높은 자리」에 있는 인사에게 인사청탁을 하느냐가 승진을 가름하는 척도가 되었다.그러나 그 당시는 은행임직원이 승진을 위해 청탁을 하러다니긴 했지만 경쟁상대자를 음해하거나 악성루머를 퍼뜨리는 일은 거의 없었다.당사자들의 인사 줄대기나 청탁으로 끝났다. 은행 임원인사를 앞두고 음해와 투서가 시작된 것은 유신정권 말기이다.그 시절 은행은 낙하산 대출이 성행했고 그런 과정에서 은행간부들은 「떡고물」을 챙기는 일이 흔히 있었다.이 금융비리를 이용해서 사정당국에 투서하는 일이 생긴 것이다. 제 5공화국에 들어서는 「금융황제」가 탄생해 금융계인사를 좌지우지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임원이 되려면 얼마를 건네 주어야 하고 임원연임은 얼마며,은행장이 되려면 어느 정도 돈을 건네주어야 한다』는 풍문이 금융가에 공공연하게 나돌기도 했다. 은행임원이 되기 위해서 학연과 지연을 총동원하여 인사청탁을 하고도 모자라 뇌물이 오가더니 최근에는 조직적인음해성 투서가 난무한다니 참으로 한심한 일이다.문민정부들어 인사청탁이나 뇌물을 주고 임원이 되는 것이 어렵게되자 경쟁상대자에 대한 투서와 악성루머가 성행하고 있는 것 같다. 은행인사에 있어 청탁과 음해는 금융비리 중에서 가장 고질적인 비리이다.이것이 정화되지 않고는 인사자율화나 금융자율화는 공염불에 그치고 만다.김영삼대통령이 12일 인사비리를 근절하라고 지시한 연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이번 주총을 계기로 은행감독기관과 은행은 일대 인사정풍운동을 펴 인사청탁과 음해를 추방하기 바란다.
  • “금융기관 인사청탁 엄단”/김대통령,나부총리에 지시

    김영삼대통령은 12일 나웅배경제부총리에게 전화를 걸어 『앞으로 금융기관의 인사와 관련해 공정하지 못한 정실인사 등의 사례가 발견될 경우 금융기관장 등 관계자에게 반드시 책임을 묻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윤여전청와대대변인은 이와 관련,『김대통령은 최근 금융기관의 임원인사를 앞두고 인사청탁과 음해성 투서 등의 구시대적 관행이 불식되지 않고 있다는 보고를 받고 이같은 지시를 했다』고 밝혔다.
  • “크렘린 다음 주인은 대머리”라고?(박갑천 칼럼)

    『크렘린의 다음 주인은 대머리』.지금 러시아에 번져나고있는 우스개라 한다.역대의 크렘린주인이 한사람 걸러 대머리였기에 나오는 말이다. 우선 소비에트연방을 건설한 레닌이 대머리였다.그를 이은 스탈린이 다보록머리였고 그다음의 흐루시초프는 대머리였다.다시 브레즈네프의 다보록머리에 이어 안드로포프 대머리,다보록머리의 체르넨코를 대머리 고르바초프가 잇고 그를 이은 옐친은 새하얀 다보록머리다.그런데 다음의 강력한 대통령후보 두사람(주가노프와 체르노미르딘)이 모두 대머리니 어느 쪽이 되든 대머리­다보록머리 전통은 이어진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기묘한 우연의 일치를 곧잘 찾아낸다.그러면서 망상스런 의미부여를 하며 즐긴다.미국대통령의 죽음을 두고 한때 나돌았던 입방아도 그것이다.그건 링컨대통령으로 거슬러오른다.그가 암살된건 재선된 다음해인 1865년이었다.한데 처음 당선된 해는 1860년.그해로부터 쳐서 20년마다 당선된 사람은 재임중에 죽어온다는 내용이다. 정말이다.1880년 당선된 가필드는 이듬해 20대대통령으로 취임하여 넉달만에 암살된다.25대 매킨리는 1900년 재선됐으나 다음해 무정부주의자의 저격으로 숨진다.1920년 당선된 하딩은 샌프란시스코 여행중에 급사하고 1940년에 3선된 루스벨트는 44년 4선된 다음 종전을 앞두고 병사한다.60년당선자 케네디도 암살된다. 그「법칙」대로라면 80년,70줄노령으로 당선된 레이건대통령도 이승사람이 아니어야한다.하지만 재선임기 마치고 퇴임하여 며칠전엔 85회생신을 맞고있다. 역시 호사가들의 언거번거한 주먹구구놀이엔 구멍이 뚫린다.그러므로 크렘린의 다음 주인으로도 남몰래 근사모아온 털북숭이가 들어설지 누가 알랴. 땅이름에 부여하는 예언성·신비성도 사람들의 그런 호기심과 맥이 통한다.가령 평양서쪽 30리에 있다는 부산현의 신비를 보자.그 왼쪽언덕에 석장군상이 있는데 임진왜란이 일어나기전 거기서 흐른 피가 부산현에서 멎었다.임란때 평양까지 온 왜군이 부산현을 못넘었으니 전해내려오는 비참­『왜놈들이 부산으로부터 쳐들어와 부산에서 멈춘다』가 그럴싸해진다(「국포쇄록」).남녘부산과 북녘부산을 꿰어맞춘 견강부회 전설이다. 흥미로운 우연의 일치에 상식과 논리를 뛰넘는 일들이 세상엔 많다.하지만 관심은 가져볼망정 별쭝나게 신비성에 빠져들 일은 아니다.생각하자면 이승을 영위하는 섭리의 뜻이 하나같이 신비 그것 아닌가.
  • KIST/오늘 창립 30돌… 그 발자취와 현주소

    ◎선진과기 산업화 경제도약 뒷받침/연구수행 6,184건… 아라미드섬유 개발 등 개가/5공땐 KIST에 통폐합·연구기능 박탈 위기도/모방·개량 탈피… 원천기술 연구로 재도약 모색 국내 최초의 정부출연연구기관인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원장 김은영)이 10일로 창립 30주년을 맞았다.한국과학기술연구원은 이날 상오 10시 연구원내 존슨강당에서 기념식등 다채로운 기념행사를 갖는 한편 2000년대를 바라본 웅비계획인 「KIST 장기비전」을 통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세계 초일류 종합연구기관으로서 도약을 다짐하고 있다. KIST는 1966년 2월10일 과학기술 불모지였던 우리나라 산업계에 필요한 산업기술개발과 기술지원이라는 사명을 갖고 설립됐다.당시 국민소득 1백25달러,국민총생산 2억5천만달러이던 시대에 정부는 1천만달러라는 거금을 연구소에 서슴없이 투자할 만큼 전폭적인 지원을 보냈다. KIST의 과학자들은 국민적인 기대에 부응해 밤잠을 자지 않고 선진기술을 국내에 전수시켰으며 60년대에서 70년대에 이르는 「개발의 연대」에 산업기술개발을통한 공업현대화를 뒷받침하고 과학기술기반을 확충하는데 기여함으로써 경제성장과 과학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담당했다. 또 경제발전이 궤도에 오른 80년대부터는 차세대 첨단기술 개발에 나서 기업의 국제경쟁력 강화를 뒷받침하고 있다. 30년동안 KIST가 개발에 성공한 기술은 인체에 무해한 최적의 석면대체 섬유로 97년부터 4억달러 규모의 세계시장에 도전할 아라미드섬유를 비롯,오존층 파괴물질인 CFC의 대체물질,다이아몬드 카본코팅 VCR헤드드럼,니켈·크롬·텅스텐을 주원료로 한 초내열 합금,공업용 다이아몬드 합성,항생제 네틸마이신 합성,인공신장용 막형 혈액투석기,인공수정체 개발등 열거할 수도 없을 정도로 많다. 그동안 연구수행과제 건수만 6천1백84건,기업화된 기술이 6백95건에 이르며 산업재산권 출원 1천7백83건,발표논문 4천2백39편등의 성과를 올렸다고 KIST는 집계하고 있다. KIST는 정부로부터 재정지원을 받으면서도 연구원처우와 연구소운영은 자율적으로 시행한 새로운 개념의 「정부출연 연구기관」의 첫 모델로서 국내 산업계의 수요에 따라 해당분야 전문연구기관을 분화시켜 나감으로써 많은 연구소 설립의 모태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KIST가 영광의 세월만을 보낸 것은 아니다.국방기술등 한국의 기술자립의지를 희생하고 미국에 접근한 5공정권 아래서 KIST는 한국과학원과 통폐합돼 이름이 없어지는 비운을 겪기도 했으며(81년∼89년),6공시절인 92년 재차 시도된 정부출연연구소 통폐합과정에서는 연구기능이 없어질 뻔한 위기를 맞기도 했다.5·6공시절의 10년은 KIST발전이 발목을 잡힌 시련의 시기였으며 이는 곧 정부출연연구소를 비롯한 국내 과학기술계 전체의 위상이 곤두박질친 시기로 평가된다. KIST가 탄생 30돌을 즈음해 채택한 장기비전은 이같은 과거의 손실을 복구하고 나아가 21세기 첨단산업사회를 대비하기 위한 도약의 다짐으로 볼수 있다.KIST 장기비전은 기존의 모방개량기술에서 탈피,원천기술 개발을 지향함으로써 2000년대까지 세계 초일류 기관인 일본의 이화학연구소,미국의 아르곤연구소,독일의 막스 프랑크연구소와 같은 국가를 대표하는 연구소로 발전시킨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개혁은 연구소 의지대로 되는 것만은 아니다.여기서 정부와 고위 정책결정자들의 의지가 가장 중요한 변수중의 하나가 된다. KIST개혁을 주도하고 있는 김은영원장은 『연구원들은 연구소내에서 저녁식사가 일상화됐을 정도로 연구분위기가 성숙돼 가고 있다』면서 『KIST육성특별법 제정등에 국가차원의 관심이 절실하다』고 털어 놓았다. ◎「한국두뇌의 요람」 어떤 인물 거쳐갔나/전문인력 3천6백명 산·학·연 맹활약 KIST는 한국의 꿈과 희망을 양어깨에 걸머졌던 국가 종합연구기관이라는 위상에 걸맞게 지난 30년동안 내로라하는 「한국의 두뇌」들이 모여들었던 곳이다. KIST 설립작업을 맡았던 최형섭박사(전과기처장관,산업과학기술연구소고문)는 국내는 물론 미국 등지로 날아가 우수한 과학자들을 끌어모았다. 그동안 KIST가 국내 산업계·학계·연구소에 배출한 고급 과학기술인력은 3천6백명에 이른다.국방과학연구소에서 미사일개발을 맡았던 이경서박사(국제화재 해상보험 부회장),국내 반도체기술의씨앗을 뿌렸던 정만영박사(금호그룹 고문),콩박사로 유명한 권태완박사(인제대 교수),한국기계연구소장을 지냈던 김훈철박사(한국기계연구원 연구위원) 등은 대표적인 유치과학자로 꼽힌다. 초창기 유치과학자들은 대학교수의 3배가 넘는 급여,구내아파트 제공 등 파격적인 대우를 받았다.이들 중에서도 이용태박사(삼보컴퓨터 회장),성기수박사(동명정보기술대 총장),경상현박사(전 정통부장관)등 당시 컴퓨터센터 「삼총사」는 국내 전자통신 기술의 선구자로 지금도 학계와 업계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밖에도 KIST출신 인사들로는 산업계에 여종기LG중앙연구소소장,이주형삼성전자전무,허수웅대륙정밀사장,안영옥OLIN사장,황규복한국부가통신회장 등 5백여명이 있다. 학계에는 전무식한국과학기술원석좌교수,유성재 중앙대교수,이동영서울대교수,김재관인천대교수,김춘수단국대교수,배무이대교수 등 9백명이 있고 연구계에 채영복한국과학기술한림원사무총장,한문희·민태익전생명과학연구소장 등 1천8백명이나 포진돼 있다. ◎KAIST와 어떻게 다른가/KIST 연구개발이 주목적·서울 소재/KIAIST 석­박사 교육기관·대덕 소재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과 「한국과학기술원」(KAIST)을 구별할 줄 알면 그 사람은 과학기술계에 정통하다고 자부해도 좋다.그만큼 두 기관을 놓고 어느게 어느 것인지 헷갈리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다. KIST는 66년 「KIST」육성법에 의해 산업기술연구기관으로 설립됐다.5년뒤인 71년에는 과학기술 인력양성의 필요성이 제기돼 석·박사 교육기관으로서 한국과학원(KAIS,Korea Advanced Institute of Science)이 설립됐다. 두 기관은 81년 5공정권에 의해 한국과학기술원(KAIST)이란 이름으로 강제 통폐합된다.이때 「한국과학기술원법」은 남고 「KIST육성법」은 자연스레 소멸됐다. 하지만 첨단 산업기술이 일본등을 통해 물밀듯이 들어오면서 첨단 원천기술을 개발하는 종합연구소 설립의 필요성이 재인식되기 시작했다.KAIST안에 「연구본부」를 차려 싹을 키우던 연구조직은 마침내 87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이란 이름을 찾아 독립하게 된다. 그러나 「KIST 육성법」은 복원되지 않았다.이것이 KIST가 KAIST에 대해 피해의식을 갖게되는 한 대목이다. 두 기관은 이름이 비슷할 뿐 아니라 경쟁하는 측면도 많다.KAIST는 교육기관이면서도 여느 대학과 마찬가지로 연구개발도 활발히 하며,KIST는 연구기관이긴 하지만 4백여명의 석·박사 학위과정 연구생을 받아들여 「서로 비슷해지고」 있다. 더욱이 KIST가 새로 바뀐 교육법에 따라 단설대학원을 설립하게 되면 대덕연구단지에 있는 KAIST에 비해 서울이라는 유리한 입지조건으로 우수한 학생들을 확보할수 있게 돼 요즘 두 기관의 신경전이 한창이다. 어쨌든 같은 정부출연기관으로서 「경쟁과 협조」관계에 있는 두 기관이 가장 싫어 하는 것은 상대방의 이름으로 잘못 불리는 일이다.영문으로 넉자인 KIST는 한글로는 아홉자인 한국과학기술연구원,영문으로 다섯자인 KAIST는 한글로는 일곱자인 한국과학기술원이어서 『영문으로는 짧은게 한글 이름으로는 길더라』는 한 언론계 인사의 구별법이 참고가 될수 있을 것 같다.
  • 미,삼성 D램 0.22% 반덤핑관세

    미상무부가 삼성의 D램에 대해 소폭의 반덤핑관세를 물리기로 확정했다.현대와 금성은 경우 각각 5.15%와 4.28%의 덤핑률 판정을 받았으나 이에 불복,앞으로 미연방 항소법원의 판정에 따라 반덤핑관세율이 최종 확정된다. 1일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워싱턴 무역관 보고에 따르면 미 상무부 국제무역국은 국제무역법원(CIT)이 삼성의 D램에 대해 내린 0.22%의 덤핑마진을 지난달 말 확정했다.이에 따라 삼성은 지난 92년 10월 상무부가 0.74%의 덤핑마진 예비판정을 내린 이후 물어왔던 예치금중 차액을 돌려받게 됐다. 한국산 D램은 지난 92년 4월 미업계의 제소로 다음해 3월 상무부로부터 현대 7.19%,금성 4.97%,삼성 0.74%의 덤핑예비판정을 받은 이후 수정판정과 항소를 반복하면서 미 상무부의 최종결정을 기다려왔다.
  • 두번째 창작집 「책」 펴낸 송경아씨(인터뷰)

    ◎하이텔 문학동우회 출신작가/“테크놀로지의 두려움 없어요” 『신세대 작가라구요.작품엔 아무런 공통점도 없는 이들을 단지 연령층이 비슷하다고 한데 묶어버리는 그런 말은 음해에 가깝다고 봐요』 최근 두번째 창작집 「책」(민음사)을 펴낸 송경아씨(25).연세대 전산과 4학년 때인 93년부터 하이텔 문학동우회에서 활동해온 이 「컴퓨터 세대」작가는 자신에 대한 속단을 똑부러지게 거절한다. 하지만 보통 독자들에겐 송씨의 작품은 어디가 달라도 다르게 읽힌다.인간의 구원문제를 탐구하거나 진실을 찾아헤매는 문학이 정석인 것처럼 돼있는 선배세대와의 차이는 표제작인 「책」에도 드러난다. 주인공 혜진이는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엄마가 어느날 책으로 변해 서가에 꽂혀있는 것을 발견한다.추억의 자기증식으로 나날이 두꺼워져 가는 책에서 그는 자신이 실은 젊은 날의 엄마가 「바람피워」 낳은 딸이라는 사실을 읽게 된다. 『이 작품에서 말하려 했던바는 언어와 의미가 끊임없이 서로에게서 미끄러지는 삶의 모순된 속성 같은 것이었어요.엄마가 죽었다는 사실은 갑자기 나타난 책=엄마로 부정되죠.책속의 언어는 다시 주인공의 삶을 통째로 부정해요.한편 주인공이 찾아간 생부는 딸의 존재를 거부하죠.결국 주인공은 자신의 연애관계를 전면 부인하면서 책을 쓰기로 결심하지만 그 책은 단하나의 「진실」을 담는 진본이 아니예요.단어 하나가 틀린 책,글자 하나가 틀린 책,문체가 다른 책 하는 식으로 무수한 복사본·위조본·파본이지요』 이 창작 집에 실린 또 다른 작품 「바리­길 위에서」는 바리공주 신화를 정보화 시대의 각도로 새롭게 해석하고 있다.모든 인간이 컴퓨터 정보체계로 짜여 유기적으로 돌아가는 율라국을 바리는 『그렇게 아름다운 세계를 본 적이 없었다』며 탄복한다. 『전공 때문인지 저는 테크놀로지에 대해 환상도 없지만 경외감이나 두려움도 없어요.컴퓨터 칩이 인간을 통제한다며 미래사회를 디스토피아의 대명사처럼 말하는 소설도 있지만 이는 기술을 너무 단순화한 견해 아닐까요』 송씨는 『환상과 현실은 완전 별개의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언젠가는 역사와 환상이 맞물리는 새로운 역사소설을 써보고 싶다』고 말했다.
  • 이주석국세청법인세과장·세정선진화 기획단 실무간사(폴리시 메이커)

    ◎“납세자료 우편신고… 비리 원천봉쇄”/세무서 타성 벗고 서비스기관으로 거듭날것 국세청이 최근 발표한 세정선진화 방안 가운데 세무직원의 업소방문금지라는 글귀가 유난히 눈길을 끌었다.세무직원들에게 시달려 본 경험이 있는 사람에게는 신선한 샘물같은 느낌을 줄 만한 조치였다. 국세청 이주석법인세과장(46)은 국세청 30주년에 즈음해 발족된 세정선진화 기획단의 실무책임을 맡은 간사로서 이 방안을 만드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다. 『앞으로 세무 종사 직원이 임의적으로 업소에 나가 직접 주인과 접촉하는 것은 금지됩니다.불가피하다고 판단될 때만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세무직원의 업소방문은 납세자와 직접 만남으로써 비리를 발생케할 소지가 많기 때문에 원천적으로 막겠다는 뜻이다. 따라서 세무직원이 아무런 목적없이는 물론이고 어떤 조사를 하다 알게된 정보를 갖고 업소에 나가거나 납세자를 세무서로 부르면 징계 등의 벌칙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제는 친절만으로는 안되고 납세자에게 서비스한다는 차원에서 납세자가 불편하게 생각하고 있거나 공감하지 못하고 있는 것,진정한 요구사항을 해결해 준다는 배경에서 이 방안을 마련했습니다』 업소방문 금지의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 우편신고제이다.납세자에게 사실을 확인하거나 자료제출을 요구할 때에는 우편으로 조회하고 회신을 받는 것으로 제도화할 것이라고 했다. 이과장은 그러나 『조세회피를 막는 장치로 법적으로 보장된 질문조사권을 금지하는데는 역기능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국세청 내부에서도 논란이 있다』고 말했다. 또 어떤 경우나 업소방문이 금지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세금 신고후 불성실 신고자로 판단된 납세자를 조사할 경우나 우편으로 요청했으나 명쾌하게 소명이 되지 않았을 경우에는 업소를 방문할 수 있다는 단서가 붙어있다. 『납세자나 세무공무원이나 보수적인 사람이 많다』고 말하는 이과장은 『양쪽 다 사고를 획기적으로 전환하는데 세정개혁안의 성패가 달려있다』고 강조한다. 그는 그래서 『세무서에 대한 좋지않은 인식을 씻어보고자하는 취지에서 마련된 이와 같은 제도가성공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타성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단언한다.과거와 같이 업소를 방문하며 개별지도를 하는 것이 업무적으로 편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했다. 성균관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이과장은 행정고시 13회에 합격,서울송파세무서장과 재산세 1과장·소득세과장 등 실무 요직을 두루 거치며 세정업무 개선에 기여해왔다. 그 공로로 지난해 12월 중앙관서별로 1명씩 수여하는 「올해의 공무원상」과 홍조근정훈장을 함께 받은 모범공무원이다.
  • 「월드컵 공동개최」 북 진의 뭔가/이대행체육부장(서울논단)

    북한이 국제축구연맹(FIFA)에 2002년 월드컵축구대회 공동개최의사를 타진하는 서한을 보냈다는 사실을 FIFA측으로부터 통보받은 우리정부와 대한축구협회는 북한측의 진의를 파악하느라 애를 쓰고 있다. 문화체육부 등 관계기관에서는 북한측이 남북대화사무국을 외면하고 뒤늦게 FIFA에 대회 유치의사를 밝힌 배경을 알아보느라 분주한 듯 보인다.그리고 이같은 사태가 우리의 월드컵대회 유치운동에 어떻게 작용할지를 차분히 분석하고 있다. 90년 북경아시안게임 때 일이다. 북한은 선수촌 옆에 옥류관이라는 식당을 개업,이른바 「외화벌이」에 나섰었다.평양에서 파견나온 곱상한 처녀접대원(종업원)들이 상냥한 웃음을 읏으며 손님들의 뒤치다꺼리를 했다. 냉면·된장찌개·신선로·잉어회·불고기가 주메뉴인 이 식당에는 맛보다는 값이 싸고 호기심이 동해 우리 선수와 임원,그리고 매스컴관계자들이 자주 찾아가 성황을 이뤘다. 이들 세련된 접대원은 짓궂은 젊은 기자들이 『결혼하자』고 농담을 걸면 『좋지요.그러나 95년 통일이 되면 그때에 결혼합시다』라고 받아넘기곤 했다. 이 처녀들은 김일성주석이 약속한 「95년 남북통일」을 철석같이 믿어 우리를 적지않게 놀라게 했다. 북경 아시안게임에 북한은 50여명의 신원을 알 수 없는 「기자」를 파견했었다.무료로 제공되는 호텔 아침뷔페에는 꾀죄죄한 모습으로 떼지어 몰려와 몇 접시씩을 먹어치우곤 했다.다른 나라 기자들은 이들의 너무나 왕성한 식욕에 몹시 놀라곤 했다.그러나 점심이나 저녁 때 호텔식당에서 이들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그나마 돈이 너무 많이 든다고 대회 중간에 핵심요인 3∼4명만 남기고 모두 북한으로 철수시켰다. 취재와는 거리가 먼 이들은 북한선수가 경기를 하는 체육관에 몰려다니며 응원에 열을 올리거나 「95년 북남통일」이라고 적힌 셔츠를 우리 선수단이나 응원단에게 나누어주는 데 주로 시간을 보냈다. 북한선수도 우리선수를 만나면 반갑게 인사하며 『95년 통일되면 그때 꼭 만나자』고 말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그전까지만 해도 국제대회에서 마주치면 슬그머니 피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태도여서 우리선수는놀라곤 했다. 북경대회가 끝나자 곧바로 평양에서 역사적인 남·북 친선축구대회가 열렸고 그 다음해인 91년에는 지바 세계탁구선수권대회,포르투갈 세계청소년축구대회 등에 남·북한단일팀이 출전,남·북화해무드가 무르익어갔다. 이때 우리정부는 북한이 「남북 스포츠교류」라는 일련의 기만전술로 「95년 통일」이라는 꿈을 북한주민들에게 심어주어 내부불만을 해소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도 실낱같은 희망으로 그들과의 교류에 응해야만 했다. 그뒤 몇차례의 문화교류를 끝으로 북한은 남한에 대해 맹비난으로 돌아섰다. 김일성의 주체사상에 심취한 이른바 「주사파」가 우리 정부의 통일의지를 비난하고 몇몇 대학생이 북한을 방문하는 등 우리정부를 곤욕스럽게 한 것도 바로 이 무렵이다. 이런 가운데 94년 김일성주석은 북한주민들에게 빈곤이라는 유산을 물려주고 세상을 떠났다.당연히 북한주민은 주석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다 이뤄진 통일의 꿈이 무산된 것으로 믿었을 것이다. 그뒤 문을 다시 굳게 닫은 북한은 홍수로 식량난이 가중되자국제사회에 구호의 손길을 내밀었으며 이어 애틀랜타올림픽 참가를 결정했고 이번에는 월드컵축구대회 공동개최의 뜻을 내비췄다. 서울올림픽 공동개최를 외면함은 물론 각종 테러로 올림픽개최를 방해하던 북한이 90년 북경 아시안게임을 기점으로 우리에게 각종 교류를 제의해왔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 시점에서 곰곰 되새겨야 할 것이다. 북한의 이번 제안이 우리의 월드컵유치운동에 도움이 된다면 그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대회의 경기 일부를 북한지역에서 할 수도 있을 것이다.그러나 FIFA의 현행규정으로는 공동개최란 불가능한 일로 돼 있다.그래서 북한의 의도가 더욱 궁금한 일이다.우리의 대회유치를 혼란스럽게 방해하려는 것이나 아니었으면 좋겠다.
  • 전씨 등 내란죄 기소­수사검사 문답

    ◎“「자위권」 선언직후 진압군에 실탄 지급”/“황영시씨 「탱크진압·헬기 위협사격」 지시/전씨 등 내란상황 계엄해제날까지 지속” 23일 5·17 및 5·18사건 관련자들을 기소한 서울지검 특별수사본부의 김상희부장검사는 기자들과의 문답을 통해 수사경위와 성과 등에 대해 설명했다. ­전두환씨 등 4명에 대해 내란목적살인을 적용한 것은 이들이 광주에서 발포명령을 내렸음을 스스로 인정했기 때문인가. ▲이들이 치밀한 사전계획에 따라 발포명령을 내렸다고는 볼 수 없다.그 누구도 발포명령을 명시적으로 한 사람은 없다.그러나 이희성계엄사령관이 TV연설을 통해 『자위권 보유를 천명한다』고 한 뒤 곧바로 계엄군에게 실탄을 지급했다.이와 함께 시위대에 대한 3회이상 경고,사전 위협사격실시,생명보호를 위한 하반신 조준 등 자위권행사요건의 준수여부에 대해 누구도 확인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는 내란목적살인의 「미필적 발동」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공소장에 따르면 명백한 지휘체계 이원화가 이루어졌다고 보긴 어려운데. ▲이원화여부를 한마디로 말하면 「없다」고 해야한다.이계엄사령관으로부터 광주지역 정웅30사단장 등에 이르는 정식 라인에 전·정호용씨 등이 중간에서 끼어들었기 때문에 사실상의 이원화는 있었지만 뚜렷한 이원화 체계는 없었다. ­불법진퇴,지휘관 계엄지역수소이탈 등의 혐의는 전·노태우씨에게만 적용됐는데. ▲이들의 혐의는 국무회의 병력동원과 김영삼씨 가택연금 등 두가지 범죄사실에서 발견했다.다른 사람들도 이같은 혐의는 인정되나 대통령재임기간동안 공소시효가 정지되기 때문에 전·노씨에게만 적용했다. ­내란목적살인에 황영시씨가 포함된 이유는. ▲당시 참모차장으로서 내란을 목적으로 한 시국수습방안 논의에 참여했으며 탱크진압을 지시했고 헬기기총위협사격을 전교사에 요청했다가 거절당하는 등 광주 강경진압에 주도적 역할을 담당했다. ­이들의 명령을 받고 실제 발포를 했던 군인들은. ▲계엄군은 명령을 받아 진압에 나섰던 생명 있는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따라서 계엄군 전체를 공범으로 해석할 수는 없다.또 단순살인은 공소시효도 지났다. ­구속과 불구속의 차이는 무엇인가. ▲주도적 역할 및 적극적인 행동 여부 등이 판단의 기준이 됐는데 차규헌씨 등 불구속자들은 관여정도가 다른 피고인들보다 떨어진다고 판단했고 이희성씨는 고령이 감안됐다.이외에 개전의 정과 범행후 정상 등이 참작됐다. ­전씨가 80년 9월 대통령에 취임해 사실상 내란의 목적을 완성했으면 이 때가 공소시효 출발점이 되는 것 아닌가. ▲전씨 등은 대통령 취임후에도 자신들의 위치에 대해 크게 불안을 느끼고 계엄을 해제했을 경우의 위험에 대해 꾸준한 논의를 벌여왔다.따라서 계엄을 다음해 1월에서야 해제한 것이므로 이때까지는 내란상황이 계속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지난번 수사때와 비교해 이번에 새로 드러난 사실은 무엇인가. ▲비상계엄해제시점까지가 신군부 폭동의 종료시점이라고 봤으므로 지난번 소홀했던 부분을 많이 보완할 수 있었다.초법적 비상기구를 설치하기 위해 대통령령으로 「국보위설치령」을 발동한 것을 비롯해 국무회의장에 병력을 배치하고 전화선을 끊어버려 분위기를 조성한 사실등이 새로 밝혀졌다.또 K공작과 시국수습방안은 물론,언론통폐합·국가보위입법회의 등의 실체도 이번에 드러났다. ­광주현지조사의 성과는. ▲수사가 다 끝나지 않아 말하기는 어렵다. □「12·12」 「5·18」 재수사 일지 ▲95년 11월24일=김영삼대통령,5·18특별법 제정 및 관련자 의법처리 지시. ▲11월29일=정동년씨 등 고소·고발인들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취하서 제출. ▲11월30일=검찰,12·12 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 발족. ▲12월1일=검찰 전두환씨 출두통보. ▲12월2일=전씨,대국민성명 발표직후 합천행.전씨에 대한 군형법상 반란수괴 등 혐의로 사전구속영장 발부. ▲12월3일=전씨 안양교도소에 전격구속수감,1차 방문조사. ▲12월5일=유학성국방부 군수차관보 소환. ▲12월7일=정승화육참총장 등 소환. ▲12월9일=허삼수보안사인사처장 등 소환. ▲12월10일=권정달보안사정보처장,황영시1군단장,정도영보안사보안처장,허화평보안사비서실장 등 소환. ▲12월12일=최규하전대통령 1차 방문조사 시도.장세동수경사30경비단장,정승화육참총장 등 소환. ▲12월16일=신현확국무총리,김진기육본헌병감 소환. ▲12월17일=장태완수경사령관 등 소환. ▲12월20일=전씨 경찰병원에 이감. ▲12월21일=전·노씨 반란수괴 등 혐의로 구속기소. ▲12월27일=광주현장조사단 구성. ▲12월28일=검찰,사공일·이상연·안무혁씨 등 39명 출국금지. ▲96년 1월9일=정호용특전사령관,소준렬전남북계엄분소장 소환. ▲1월10일=허문도중앙정보부비서실장,유학성국방부군수차관보,주영복국방장관,박영수통일주체국민회의사무총장 소환. ▲1월17일=장세동·황영시·최세창·유학성·이학봉씨 반란중요임무종사 등 혐의로 구속영장청구.전씨측,서울지법에 위헌제청신청. ▲1월18일=서울지법(당직판사 김문관) 전씨측 위헌제청 인용,장세동·최세창씨 영장기각. 황영시·유학성·이학봉씨 영장발부. 전씨측.5·18 재수사 헌법소원. ▲1월22일=노씨측,5·18 재수사 헌법소원. 헌재,「5·18특별법 위헌심판사건 및 5·18 재수사 헌법소원」 심리착수.
  • 서울대,동점자 모두 합격 처리/내년부터

    ◎초과인원만큼 다음해 정원 축소 서울대는 6일 내년도 입시부터 동점자 처리기준을 바꿔 합격선에 걸린 동점자는 전원 합격시키는 「모집유동제」를 실시키로 했다. 서울대의 이같은 방침은 내년도 입시부터 국·영·수 위주의 본고사가 폐지되고 수학능력시험과 내신성적만으로 신입생을 선발하게 됨에 따라 동점자가 대폭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에 따른 것이다. 서울대는 동점자 합격으로 모집정원을 초과해 선발한 인원은 다음해 해당 모집단위별로 같은수 만큼 정원을 줄여서 선발해 모집정원을 지켜나가기로 했다. 서울대 홍두승교무부처장은 『같은 점수를 받고도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불합격되는 등 현행 동점자처리 기준은 문제점이 많았다』고 지적하고 『내년도 입시부터는 합격선에 걸린 동점자는 모두 선발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서울대측은 그러나 올 입시에서는 1지망지원자,본고사,수능,내신,면접,연소자 순으로 합격생을 선발하는 동점자 처리기준이 그대로 적용된다고 밝혔다.
  • 북한관련 문서귀중…현대사 재조명붐(새로쓰는 한국현대사:50·끝)

    ◎미 문서보관서 자료엔 우리가 몰랐던 사실 많아/자료 지속적 발굴… 잘못된 역사기술 바로잡아야 □좌담 김용호 외교안보연구원 교수·정박 김학준 단국대이사장·정박 김광운 국사편찬위 연구원 서울신문이 광복 50주년을 맞아 올해 마련한 특집 연중 기획시리즈 「새로 쓰는 한국현대사」를 연말로 마감하게 되었습니다.우리는 현대사를 당대사라는 이유로 흔히들 기억되는 역사로 착각해 왔습니다.그러나 서울신문 특별취재팀이 미국 등지에서 발굴한 새로운 자료들을 통해 복원해 본 한국 현대사는 결코 기억의 역사만이 아니었습니다.그래서 이 시리즈가 거둔 역사재정립 성과와 발굴자료의 사료적 가치를 평가하는 전문학자들의 정담을 주선했습니다.꼬박 한해에 걸쳐 시리즈가 나가는 동안 자료발굴에 협조한 미 국립공문서보존관리국 등 외국기관과 미공개 자료를 선뜻 내놓은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김학준 단국대 이사장=올해는 해방 5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이에 맞춰 한국현대사를 재조명하는 작업들이 활발했습니다.한국 현대사 부문은 외국에서 쌓은 연구업적이 훨씬 많습니다.외국 학자들은 자료를 중심으로 객관적이고 수준높은 연구를 이루었기 때문이죠.그래서 거꾸로 국내에서 그들의 연구성과를 들여다 공부하는 학문적 역조현상이 벌어졌습니다.그러나 올해는 이를 극복하려는 노력이 국내에서 많았고 그 가운데서도 저는 서울신문의 「새로 쓰는 한국현대사」가 특히 좋았습니다.이 시리즈는 내용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새 자료를 많이 발굴하고 기사로 살려낸 점이 아주 돋보입니다. ▲김용호 외교안보연구원 교수=지난 1년동안 매주 월요일에 「새로 쓰는 한국현대사」기사를 볼 때마다 감회가 깊었습니다.시리즈를 통해 국내 뿐만 아니라 외국의 문서보관소에서 새 자료를 발굴했고 자료가치에 대한 주의도 환기시켰어요.학문하는 사람으로서 매우 반가웠습니다.이제 해방 전후에 활약한 인물들은 70세를 넘는 고령이 됐습니다.그들의 생생한 체험과 그들이 보관한 자료가 유실되기 전에 언론계와 학계가 이를 체계적으로 정리해야 합니다.서울신문은 이런 점에서 아주 훌륭한 일을 했습니다.▲김광운 국사편찬위 연구원=한국현대사는 격동기였고 굴곡이 심했기 때문에 신문사로서는 기획물을 내기가 주저됐을 겁니다.그런데도 1년에 걸쳐 새로운 자료를 발굴하고 증언을 채록해 이처럼 성공적인 연재를 함으로써 우리 사회에 현대사 붐을 일으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봅니다.제가 자료평가를 맡으면서 특별취재팀과 접촉이 잦아 알게 된 사실인데요.해방직후 미군이 인천항으로 입국할 때 환영나갔다 일본경찰에 피살된 권평근사건 관련자료,47년 트루만대통령특사로 웨드마이어중장이 내한했을 때의 포스터등 독자들이 제공한 자료가 적지 않았습니다. ▲김이사장=우리 모두 동의했듯이 이 시리즈는 참으로 시의적절했습니다.사실 이제까지 우리 언론계나 학계에서 한국현대사를 다룰 때 부분적인 병폐가 있었습니다.자료의 수집이나 검증을 게을리하고 풍설·가설들을 그대로 받아들여 쉽게 해석한 점이 그것이죠.이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자료를 철저히 발굴하고 실증적·학문적 검증을 거친 뒤에야 역사해석을 내릴 수 있는 겁니다.그래서 저는「새로 쓰는 한국현대사」가 철저한 자료 발굴과 검증을 시도한 점을 높이 평가합니다.자 이제는 서울신문이 발굴한 주요 자료를 하나하나 평가해 볼까요. ○재미있는 일화도 확인 ▲김연구원=시리즈를 쭉 보면서 느낀 점은 역시 한미관계가 한국현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의 하나라는 겁니다.한미관계의 실상을 객관적으로 정리해 볼만한 자료가 많았어요.현재 학계에 소개된 미국쪽 자료는 미군정기에 한정돼 있고 이후시기 것은 상대적으로 적습니다.그러나 서울신문은 대한민국 출범이후 자료들을 여럿 찾아냈습니다.예를 들면 1954년 작성된 미 국무성 자료 중에 「다스카보고서」는 학계의 통설을 완전히 뒤엎는 내용을 담고 있어요.그동안 경제사학자들은 당시 한국정부가 환율 실세화를 반대했고,미국은 이를 촉구한 것으로만 알았지요.그러나 보고서에는 한미 양국이 실세화를 미리 합의한 바탕에서 그 조정폭을 놓고 논의한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구체적인 자료인 회의록을 통해 이같은 사실이 확인된 겁니다. ▲김교수=50년대 주한 미대사관이 한국을어떻게 봤는가 하는 구체적인 자료로서 조인트위카가 몇번 소개됐고,정책수립처의 문서들이 공개되면서 50년대 한국정책 수립에 관계된 자료들을 살펴 볼 수 있었던 것도 성과였지요.또 CIC의 개인조사 기록철이나 CIA의 정보평가 보고서들을 통해서는 정계인사들에 관한 재미있는 일화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한국전 당시 전쟁포로문제를 다룬 POW문서도 귀중한 것입니다. ▲김연구원=현대사 연구자들이 지금까지는 미 국립문서보관소에만 관심이 집중돼 있었는데 서울신문이 그 산하에 있는 대통령기념도서관 문서들도 자주 공개해 자료발굴 통로를 다양화한 점도 의미가 큽니다. ▲김이사장=아주 좋은 지적입니다.우리가 미국에서 자료를 발굴할 때 대부분 워싱턴에만 매달려 왔습니다.그러나 이제 시야를 넓혀야 합니다.서울신문이 이번에 부분적으로 넓히긴 했지만 아직 멀었어요.예컨대 해방에서 한국전 휴전에 이르는 시기가 바로 트루먼대통령 집권기 아닙니까.제가 미주리주 인디펜던스시에 있는 트루먼대통령기념관에 갔을 때 많은 것을 느꼈어요.미국학자들은 지금도 트루먼대통령 당시 문서를 검토하고 있는데 우리 학자는 볼 수가 없습니다.이제는 미국 내에서 한국현대사와 관련된 기념관·연구소를 조사하는 범위도 확대해야 하겠고,러시아·중국쪽 문서 발굴에도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서울신문사에 건의할 게 있습니다.이러한 일을 일단 시작했으니까 그 폭을 더욱 넓히는 데 앞장서 달라고 당부드립니다. ○박헌영간첩사건 흥미 ▲김교수=북한 관련 자료들도 새롭고 귀중한 것이 많았다고 봅니다.예를 들면 북한의 토지개혁과 관련해 소련이 미리 각본을 짜놓고 진행함으로써 상당히 신속하게 이룰 수 있었다는 내용의 자료라던가,박헌영간첩사건과 관련한 이사민보고서,빨치산이 간행한 신문 「승리의 길」,남한출신 정치인들의 50년대 북한생활을 보여주는 일본 도쿄대 동양학연구소 책자 등등 다양합니다.이 자료들은 공산당 활동의 실체를 보여주는 중요한 것들입니다.저는 서울신문 특별취재팀의 북한자료 개발을 높이 평가합니다. ▲김연구원=무엇보다 독자와 학자들의 관심을 끈 부분이 북한관련 자료 발굴 소개였던 것 같습니다.방금 예를 든 것말고도 북한이 1947년 청진·나진·웅기 등 3개 항을 소련에 양도했었던 사실을 보여주는 문서 3종을 미국에서 발굴해 1면 머릿기사로 보도한 적이 있죠.이밖에 50년대 북한 권력의 부패상을 그들 스스로 보여준 「김열 출당조치」자료와 1955년 노동당중앙위 결정서도 상당히 흥미있는 것입니다.북한관련 자료는 한국전 때 미군이 평양에서 압수한 이른바 「노획문서」가 그동안 주종을 이루어 왔습니다.그런데 서울신문의 북한 현대사 자료 공개는 「노획문서」라는 벽을 허물어뜨리는 계기가 됐습니다.다시 말해 북한자료를 넓게 볼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 것도 큰 기여였습니다. ▲김이사장=지금까지는 시리즈가 거둔 성과를 주로 얘기했는데 물론 아쉬운 점도 있고 서울신문에 바라는 것도 있을 겁니다.저로서는 서울신문이 앞으로 이 작업을 계속해 주기를 원합니다.단발성으로 끝내지 말고 제목 그대로 한국현대사를 새로 쓴다는 뜻에서 이 작업을 이어나가 달라는 말입니다.그리고 새 연재를 시작할 때는 신문사하고 학계가 기획에서 부터 발굴조사,자료해석에 이르기까지 함께 일하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그래야 자료발굴도 더 전문적으로 할 수 있고 해석도 학문적으로 정리가 될 수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입니다.그리고 이번 연재물을 꼭 책으로 내서 현대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자료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이고 관심많은 국민이 두루 읽을 수 있게 해달라는 부탁도 함께 하겠습니다. ▲김교수=저도 제안이 있습니다.이번에 제3공화국 탄생까지만 다룬 게 아쉽습니다.적절한 시기에 제3공화국 이후도 계속 연재해 주길 바랍니다.새로운 자료를 많이 발굴한 것은 큰 성과지만 전문가 의견을 좀더 체계적으로 들어야 한다고 봅니다.그리고 새 자료를 다른 자료와도 비교하는 작업도 필요하고요. ○객관적 역사접근 중요 ▲김연구원=우리가 민족통일을 생각할 때 민족 동질성 회복을 생각지 않을 수 없고 그에 따르는 전제가 역사경험에 대해서 함께 인식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지금까지는 한국 현대사라고 했을때 대한민국사를 중심으로 이해해 왔지만 통일의또 한편인 북한 현대사에 대해서도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그들의 일차자료를 발굴해 민족이 동질적인 역사이해를 갖게 해나가는 작업이 상당히 중요하지 않은가 생각됩니다. ▲김이사장=역사를 기술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현대사를 쓴다는 것은 더더욱 어렵지요.한국현대사를 기술할 때 발생하는 문제는 이해당사자들이 많이 남아 있다는 점입니다.자기 입장에 불리한 기사가 나가면 항의나 불만토로,심지어는 음해가 뒤따릅니다.따라서 이 작업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자료의 수집·해석·기술에 이르기까지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편견에 사로잡혀서도,고의를 갖고 접근해서도 안되며 공정하고 객관적인 입장에서 역사에 접근하는 자세와 노력이 중요합니다.서울신문 특별취재팀이 거둔 성과를 다시 한번 치하하면서 앞으로 더 좋은 연재물을 만날 날을 기대하겠습니다.
  • 교포들의 겨울(외언내언)

    4년전 우리 교포들이 집중적으로 몰려사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흑인폭동이 일어났을 때 교포들의 절망과 좌절을 잊을 수가 없다.「아메리칸 드림」에의 꿈이 산산이 무너져 내리는 아픔이었을 것이다.교포들은 어느날 갑자기 나락에 서 있었다.그들의 표정과 몸짓에는 희망이 없어보였다.그리고도 로스앤젤레스에는 다음해 대화재가 휩쓸었고 또 대지진이 이어졌다. 이번에는 뉴욕이다.뉴욕일원에도 우리교포들이 30여만명이나 살고있다.93년 겨울 미동북부의 겨울은 참으로 혹독했다.중부 5대호 일대에서부터 동북부 전체가 4개월여 동안이나 동토였다.그렇지 않아도 경기가 나빠 생활이 어려웠던 교포들에게 혹한은 더욱 아픈시련을 안겨주었다.한해 걸러 올겨울 뉴욕은 벌써부터 유난히 춥다고한다. 뉴욕에서 우리교포가 또 참혹한 피해를 입었다는 뉴스를 접한다.지난 19일 뉴욕의 브롱스에서 우리교포가 경영하는 신발가게에 20대 갱단 2명이 침입해 권총을 난사,5명이 죽고 3명이 중상을 입은 참사가 벌어졌다.가게주인의 부인이 목숨을 잃었고 또 다른 교포손님 1명이 중상을 입었다. 지난 7월에는 북서부 시애틀 근교에서 교포 일가족 3명이 피살된 사건이 있었다.15세된 딸만 때마침 친구 집에 갔다 화를 면했었다.이보다 앞서 5월달에는 로스앤젤레스에서 교포들이 실종되는 사건이 연이어 그곳 교포들을 놀라게 한 일이 있다.금년들어 로스앤젤레스 지역에서만 모두 14건의 교포피살 사건이 발생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그런데 그중 완전히 해결된 것은 단 1건뿐이라고 한다. 교포들이 당하는 피해 패턴이 거의가 비슷해 더욱 마음 아프다.우리교포들이 갱단들의 표적이 되고있는 것은 널리 알려진 일.현금 소지율이 높고 영어가 서툴러 피해를 입어도 사건경위를 설명할수 없다는 약점을 미국의 불량배들이 간파하고 있기 때문이다.올겨울 미국의 우리교포들은 또 한번 더없이 추운 겨울을 나야할 것 같다.
  • 인사와 지역감정(이동화 칼럼)

    정기국회가 끝나자 곧바로 대폭개각이 단행되었다.이같은 주요인사가 이루어지고 나면 일반적으로 발탁된 사람의 출신지역과 학교,그리고 나이등을 살펴보게 된다.특히 지역감정이 거품처럼 부풀어 있는 요즘 같은 상황에서는 지역안배를 했느니,안했느니 하는 문제가 오르내리게 마련이다. 이번 개각에서는 비교적 지역안배가 이루어진 것으로 보이지만 정치적으로 역이용하려는 사람의 견해는 다를 수 있다.일부 정치인은 오히려 독식체제라는 억지비난을 서슴지 않을 것이다.실제로 일부 야당의 반응은 그렇다.그런 주장이 지역감정을 심화시키고 나라를 멍들게 할 수 있음을 지적한다. ○혈연·학연보다 심한 지연 지금 국제사회에는 민족이나 종교간의 갈등으로 분쟁과 전쟁이 끊임없이 지속되고 있다.그러나 우리에게는 그런 것이 없다.남북한의 대치는 민족대립의 문제가 아니며 다만 철지난 이념의 대립이라는 양상을 띠고 있을 뿐이다.수많은 종교가 있지만 그들간에 파괴적인 대립이나 갈등은 없다. 그런가 하면 우리나라의 파벌을 얘기할 때 흔히 거론되는 그 어떤 형태의 것보다 오늘날의 지역감정은 심각하다.혈연과 학연등의 파벌성에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것들은 워낙 다양하게 나누어져 있기 때문에 나라 전체로 보아서는 지연에 기초한 지역감정에 비해 사소한 문제라 할 수 있다. ○애향심 오도하는 정치인 다만 지연 자체도 여러 형태가 있다.조그만 군안에도 재나 강을 사이에 두거나 행정·상업중심이 나누어져 있는 지역간에 경쟁이 있다.그러나 이것 역시 나라 전체로 보면 아무 것도 아니다. 애향심 오도하는 정치인 오늘날 많은 사람이 공감하고 있는 지역감정의 문제는 영남·호남·충청 운운하는 것이며 PK다,TK다 하는 것이다.오랫동안 잘못된 정치에 오도되어 문제점과 부작용이 커진 지역감정의 문제인 것이다. 일부 정치지도자가 순수한 애향심에 불을 지르고 왜곡시켜 지지세력화하는 데에만 급급하다 보니 지역감정은 이제 당분간 돌이킬 수 없는 국가적 짐이 되고 말았다.아니,이제는 오히려 지역감정에 불을 질러야만 정치생명을 이어가게 되었으니 자신이 만들어놓은 함정에 스스로 빠진 꼴이 되어버렸다.늦었지만 바로잡기 위한 노력을 시작해야만 한다. ○뿌리깊은 영·호남경쟁 지역감정이란 원래 자기가 태어나고 살아온 고장을 사랑하고 아끼는,순수한 소속의식이다.그러나 이같이 맹목적이고도 논리가 전혀 없는 감정을 오도하여 정치적 기반으로 얽어매려한 것이 한국적 비극의 시작이었다. 특히 영남·호남간의 지역감정은 역사적 뿌리가 있다.조선조 5백년간 서울을 중심으로 하는 중앙정치에서 영·호남은 주류가 아니면서도 경쟁하는 관계를 지속해왔다.현대사를 보아도 지난 71년 박정희·김대중씨의 대통령선거는 지역감정이 표로 증명된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김씨의 87년과 92년 대선출마는 지역감정을 더욱 심화시켰다.호남에서의 지지율은 높아진 반면 다른 지역에서는 역작용을 불러왔다.87년과 91년 국회의원총선에서도 김씨가 소속한 정당은 호남을 석권했으나 수도권을 제외한 다른 곳에서는 빛을 보지 못했다. 이제 내년 4월총선을 앞두고 지역감정이나 지역갈등이 또다시 심각한 국가적 문제로 떠오를 것이 틀림없다.총선을 전후하여 더 심화될 가능성마저 적지않다.정치지도자들이나 사려가 깊지 못한 후보자들이 이를 부추길 것이기 때문이다.『서울의 어느 지역은 어느 특정지역 출신이 많이 살고 있어 어느 정당의 공천경합이 극심하다』는 보도는 희극인지 비극인지…. ○지역독점은 역풍맞아 또 3김씨중 일부는 내년총선을 그 다음해 대선의 징검다리로 활용할 생각이라니 지역감정을 최대의 무기로 활용할 것은 불문가지다.과연 국가적짐을 키우면서까지 대권을 추구해야 되는지 한심한 생각이 든다.그렇더라도 특정지역의 지지도가 높을수록 다른 지역에서 역풍을 맞아 목표에 다다르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았으니 이제는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깊이 인식해야 할 것이다.개각에 지역안배가 안되었다고 할 것이 아니라 출신지역에 다른 정당소속 의원이 몇명이라도 나올 수 있게 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 더 현명할지도 모른다.지역감정이라는 국가적 폐해를 줄여나갈 정치지도자의 출현을 고대한다.
  • 이달의 독립운동가 조병세 선생

    ◎“을사5적 처단” 궐밖서 상소항쟁/79세 노구 이끌고 “조약체결무효” 호소/국권회복 가망없자 유서남기고 자결 국가보훈처는 12월의 독립운동가로 충정공 조병세(1827∼1905년12월1일)선생을 선정,발표했다. 선생은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광무황제(고종)에게 을사5적의 처단과 조약의 무효를 각국에 밝힐 것을 요청하는 상소를 올린 뒤 자결,순국한 애국지사다. 서울 회동이 고향인 선생은 26세때인 1852년 관계에 나가 사간원 정언·헌납·홍문관교리 등 조선시대 대쪽 같은 선비가 거치는 삼사의 요직을 두루 역임했다. 1884년 김옥균·박영효 등 개혁파 인사가 주도한 갑신정변이 실패로 끝나고 1894년 갑오개혁이 실시되기까지 10여년간 선생은 이조·예조·공조판서를 거쳐 우의정·좌의정을 역임하면서 갈수록 커지는 외세의 간섭에 맞서 부국강병을 통한 자주적 국권수호에 힘썼다. 그러나 갑오개혁과 을미사변을 거치면서 일본의 국권침탈이 더욱 심화되고 일제를 몰아내기 위한 의병항쟁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자 선생은 이를 좌시하지 않았다. 1896년난국을 헤쳐갈 인재의 등용과 재정안정을 골자로 하는 19개조의 차자(상소의 일종)를 올려 서정개혁을 건의했다. 그럼에도 정국은 외세의 간섭 속에서 자주적 외교노선과 부국강병책을 강구하지 못했고 일본과 러시아에 각종 이권을 내주는 등 혼미를 거듭했다.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의 강압으로 1904년 한·일협정이 맺어져 일제가 추천하는 재정·외교고문관이 한국의 재무·외무관계의 모든 업무를 관장하고 다음해 2월 재외국공사들이 소환되어 한국의 외교활동이 중단되는 등 국권은 더욱 기울어갔다. 이렇게 조국이 백척간두의 어려움에 처하자 선생은 79세의 노구를 이끌고 시폐 5조의 상소를 올려 광무황제에게 개혁의 필요성을 간곡히 상소했다. 선생의 노력도 헛되이 1905년 11월17일 일제의 강권으로 황제의 윤허도 받지 않은 한국의 외부대신과 일본의 특명전권공사 사이에 을사조약이 체결됐다. 을사조약은 일본이 외무성을 통해 한국의 외국에 대한 관계 및 사무를 감리·지휘하고 한국의 개항장과 필요한 곳에는 일본인 이사관을 두어 모든사무를 관리한다는 치욕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조약으로 대한제국은 자주적 외교권을 상실한 것은 물론 내정조차 일본통감의 지휘를 받아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이 소식을 들은 선생은 『나라가 이미 망하였으니 신하로서 따라 죽음이 마땅하다』는 비장한 각오로 신병을 무릅쓰고 상경,광무황제에게 을사5적의 처단과 조약이 무효임을 각국에 밝힐 것을 요청하는 상소를 올렸다. 그러나 일제의 압력에 눌린 황제는 선생의 상소에 미온적이었다.선생은 다시 대신을 이끌고 의분에 찬 상소를 올리는 한편 영국·독일·미국·프랑스·이탈리아등 5개국 공사에게 공한을 보내 국제공법에 따라 합동회의를 열어 조약을 부인하는 성명을 낼 것을 호소하기도 했다. 일본측은 황제를 협박,이들을 궁궐에서 내쫓게 하였으나 선생은 대한문 밖에서 석고대죄하며 상소항쟁을 계속했다. 거듭된 상소에도 국난을 바로잡을 수 없음을 통분히 여긴 선생은 가마에서 극약을 마셔 자결한다. 자신의 목숨으로서 광무황제를 비롯한 국민 모두의 자각과 국가존망의위급함을 알리기 위함이었다. 선생은 자결하기 전에 써놓은 유언과 각국 공사에게 보내는 서한,국민에게 당부하는 피끓는 유서를 남기고 이날 하오6시쯤 세상을 떠나니 이때 나이 79세였다. 선생의 순국소식을 접한 조야의 수많은 인사가 국가의 장래와 더불어 선생의 죽음을 애통해 했다. 종로 네거리에서 거행된 장례식에는 유생은 물론 기생조차 참여한 수천명의 군중이 선생의 우국충정의 정신을 기렸다. 선생의 유서를 게재한 대한매일신보는 논설에서 「한마디 한글자가 사람으로 하여금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게 한다」고 선생의 죽음을 아쉬워했다. 선생의 유서를 요약하면 이렇다. 「신이 죽은 후에는 큰 결단을 내리시어 제순·지용·근택·완용·중현 등 5적을 대역부도로 처단하시고 각국 공사에게 교섭하여 위약을 깨끗이 없애버리고 국가의 명맥을 회복하신다면 신의 죽는 날이 사는 해가 되겠습니다」 그의 죽음이 곧바로 국권회복으로 나타나지는 않았으나 독립운동의 큰 거름으로 1945년 광복을 일궈낸 힘이 되었다.정부는 지난 62년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순국 90주기를 맞아 선생은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됐다.
  • 「인간의 존엄」위해 교회가 정치참여/김수환 추기경 세미나서 강연

    ◎의혹없게 비자금 수사 철저히 해야 김수환 추기경은 23일 하오1시 서울대 문화관 2층 국제세미나실에서 2시간30분동안 「교회는 왜 정치참여를 하였는가」라는 주제로 강연과 토론회를 가졌다. 김추기경은 강연이 끝난뒤 학생들과 가진 토론회에서 12·12사태와 5·18당시의 비사를 털어놓고 노씨 비자금사건의 철저한 규명을 주장했다. 다음은 강연과 토론요지. 12·12사태가 일어난 다음해인 1980년 정월 초하루 전두환 전대통령이 찾아왔다.누가 총을 먼저 빼드느냐에 따라 대권이 왔다갔다 하는 상황에서 정승화 계엄사령관을 체포한다는 것은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말했다.당시 전씨는 그저 아무 말없이 듣기만 했는데 나중에 다른 사람을 통해 대단히 섭섭했었다는 말을 한 것으로 전해들었다. 5·18이라는 끔찍한 사건을 접한뒤 80년5월20일 상오 어느 안가에서 전씨를 다시 만나 광주에 병력을 투입해서는 안된다는 말을 했지만 전씨는 『광주는 이미 내란상태다.국방부로 가봐야겠다』는 말만 남기고 그냥 자리를 떠났다. 전직대통령 비자금사건은 처리결과에 따라 국민적 혼란이 야기될 수 있는 만큼 국민들이 의혹을 갖지 않도록 철저히 수사해야 한다.정치권이 이번 사건이후 이전투구양상을 보이는 것은 개탄스러운 일이다. 지난 30년간 일어난 인권유린과 사회정의 부재는 너무나 많은 이를 좌절케 했고 권력형 부정부패를 만연시켰다.최근 드러난 전직대통령의 비자금사건이 이를 잘 대변한다.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간의 빈부격차,도농격차,지역간의 격차는 오늘까지도 국민적 단합을 해치고 정치의 안정과 국가의 경제발전에 큰 지장을 주고 있다.물질위주,황금만능주의의 전도된 가치관은 성수대교붕괴,도시가스폭발,삼풍백화점붕괴사고 같은 참극을 초래했다.외화내빈과 물신주의에 전도된 가치관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가치관에 대한 근본적 진단과 치료가 필요하다. 지난 세월 군사독재정권하에서 교회가 적극적으로 사회참여에 나선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다.교회는 이런 인간관과 세계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인간의 존엄성에 위배되고 인간의 삶의 목적에 위배되는 반인간적,반인륜적 모든 것을 배척한다.
  • 광양신금 이틀째 인출사태/“비자금사건 관련” 루머로 8억 빠져

    【광양=남기창 기자】 전남 광양시 광양읍 광양상호신용금고(대표 민병일)가 22일 「노태우 비자금 사건과 관련 있다」,「멀지않아 부도가 날 것이다」라는 악성루머가 나돌면서 이틀째 대거 인출사태를 맞았다. 상호신용금고는 광양읍 닷새 장날인 21일 하오 3시쯤 신용금고 점포에 재래시장 상인 아주머니 서넛이 찾아와 『금고가 노태우 비자금과 관련이 있고 곧 부도가 난다는 소문이 있더라』며 예금인출을 요구하면서 인출사태가 확산됐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지난 이틀동안 인출액은 60계좌에서 무려 8억여원을 웃돌고 있으며 이날 밤늦게까지 예금을 찾으려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회사는 이번 사태가 고의적인 음해를 목적으로 터무니없는 소문을 퍼뜨린 것으로 판단,경찰에 소문의 진원지 수사를 의뢰하는 한편 예금주들 설득에 나섰다.
  • 여야 비자금공방 가열

    ◎민자­“DJ 받은 20억원 구체경위 밝혀라”/국민회의­“여서 국민투표로 정국전환 모색” 비난 민자당측이 20일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에 대해 구속된 노태우 전대통령으로부터 받은 20억원과 관련,구체적 경위등을 공개토록 요구한데 대해 국민회의측은 여권이 국민투표를 통해 정국의 국면 전환을 꾀하려 한다는 설을 내세워 비난하는등 비자금파문에서 비롯된 여야 공방이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민자당은 이날 야당측의 대선자금 공개요구에 대해 검찰수사가 마무리되면 밝혀질 일이라는 입장을 거듭 확인한 뒤 김대중총재가 20억원을 언제,어떤 경로로 받았는지를 밝히라고 맞대응하고 나섰다. 민자당 김윤환 대표는 『국민회의측이 대선자금을 누구로부터 언제 얼마를 받았는지를 분명히 해야 할 것』이라며 김총재가 노전대통령으로부터 받은 20억원에 대한 경위와 내역을 구체적으로 공개할 것을 촉구했다. 손학규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김대중 총재는 92년 대선 직후 중앙선관위에 신고한 선거비용에 사조직인 민주연합청년동지회(연청)등의운영비,당원용 홍보물제작비,지구당 활동보조비 등 정당운영비로 사용한 선거자금을 포함시켰는지를 분명히 밝혀라』고 요구했다. 손대변인은 『김대중 총재는 우리당의 대선자금 공개요구에 앞서 자신의 선거에서 이같은 선거경비를 얼마나,어떻게 마련해 어디에 썼는지 먼저 밝혀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또 『당시 김영삼후보가 2백64억원을 선거비용으로 신고한 것은 선거법에 따른 것』이라면서 『국민회의는 이같은 당시 선거법의 맹점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국민정서를 교묘히 악용해 김후보가 선거비용을 축소보고한 것처럼 음해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국민회의측의 「여권 국민투표 추진설」에 대해 논평을 내고 『정국의 혼란을 부채질하려는 이성을 잃은 처사』라고 강도높게 비난했다. 국민회의는 이날 김대중총재 주재로 지도위원회의를 열고 오는 24일 중앙위원회를 소집,▲김대통령의 대선자금 공개 ▲6공청문회 개최와 국정조사권 발동 ▲이원조씨에 대한 철저한 조사 ▲5·18 관련법 제정등을 결의키로 했다. 국민회의는 이번 주에도 부천소사와 인천남갑,동작갑,고양갑,파주등 지구당 창당대회에 김총재와 지도부가 대거 참석하는 「준 장외투쟁」을 계속 벌여나가기로 했다. 한편 박지원대변인은 『여권 상층부가 국면전환을 위해 국민투표 실시와 중·대선거구제 도입을 골자로 한 구체적 문건을 만든 것으로 안다』면서 『대선자금을 합리화하는 것은 국민투표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 이제 판도라의 상자를 열자/임현진 서울대 교수(일요일 아침에)

    요즈음 우리 현실정치를 한마디로 개판이라고 한다면 지나친 표현일까. 정치를 스포츠에 비유한다면 게임의 규칙을 지키지 않는 정치는 더이상 스포츠가 아니다.그것은 피를 부르는 난투에 불과하다. 민자당과 국민회의가 92년 대선자금의 공개를 둘러싸고 서로 「너죽고 나살자」는 식으로 이전투구하는 모습에서 굳이 정명」을 들먹이기 전에 최소한의 양식이 있는지 의심스러울 뿐이다.이렇듯이 국민을 우롱하는 기성 정치권의 후안무치한 작태에 신물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이번 노태우 전 대통령의 권력형 부정축재사건으로 부실공화국에다 부패공화국이란 명예스럽지 못한 타이틀을 또하나 지니게 된 우리로서 뼈를 깎는 자성과 자정의 노력을 해도 모자라다고 본다.지금 민심은 들끓고 있다.사회지도층에 대한 신뢰도도 땅에 떨어져 있다.부정부패를 단순히 천민형 자본주의의 불가피한 속성이라고 변명하기엔 우리 사회가 썩어도 너무 썩어 있다는 여론이 빗발치고 있다.결국 이번 비자금정국은 체제자체의 정당성 위기로까지 전개될 소지를 안고 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제기된다. 동양사상에서 왕도정치는 도덕정치,패도정치는 권력정치의 의미를 지닌다.그런데 우리 정치의 현주소는 여전히 패도정치의 수준에 머물러 있다.세사람의 지역맹주에 의한 정벌이 정당기능을 대신하고 있는 실정에서 대권쟁탈을 위한 음해와 모략이 판을 치고 있기 때문이다.진정한 정치쇄신을 위해서 철저한 「정벌파괴」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노태우씨의 구속으로 이어진 「비자금 드라마」는 한 사람의 국민된 관람자의 입장에서 볼 때 픽션으로는 짜임새가 빈약하고 논픽션이라기에는 진실성이 떨어진다.헌정사상 초유로 대통령을 지낸 사람이 수감되었다고 해서 여야 지도자들의 지난날 정치자금을 둘러싼 모든 의혹이 일단 관심의 대상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바야흐로 우리는 정경유착아래 이루어져 온 금권정치의 실체를 밝혀야 할 출발점에 서 있다. 권력무상,사필귀정,인과응보.이 몇마디로 촌철살인한다고 비자금 드라마는 종막을 고할 수 없다.불법축재사건은 국가원수를 지낸 일 개인의 단죄로 끝내기엔 나라의 망신이며 국민의 수치이기 때문이다.노태우씨는 구속되기에 앞서 자신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 반성은 커녕 기업인의 분발과 정치인의 화합을 구하는 아리송한 발언을 했다.이번 사건의 경과를 지켜보면서 두가지 점에서 석연치 않은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첫째로 노태우씨 일가의 비리가 관계 당국에 의해 일찌감치 감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지금에 와서야 문제화되었는가 하는 점이다.이것은 결국 지난 지방선거에서 참패한 민자당이 내년 총선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한 방책으로 불법축재사건을 이용하고 있다는 세간의 의혹을 불러일으켜 준다.실제로 이번 사건은 구시대의 정치악습을 제거한다는 명분을 갖지만 종국적으로 김대중씨와 김종필씨의 동반퇴진을 겨냥한 김영삼대통령의 세대교체론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 현 정부가 5·18 헌정유린 세력에 대해서 면책을 해 준 마당에 유독 비자금사건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는 데 3김 사이의 파워게임의 냄새를 맡게 된다. 둘째로 권력형 부정축재를 근절하기위해서는 우리 사회의 먹이사슬을 구성하고 있는 정·관·경 유착관계를 타파하여야 한다는 점이다.이번 사건이 노태우씨 개인의 불법행위로 축소되어서는 결코 안된다.권력과 이권의 결탁이 이루어지는 배경에는 항시 비정상적인 정권창출이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5,6공 정치자금의 「원조」에 대한 수사없이 비자금의 기성 정치권 유입을 마무리하려는 정부의 태도는 지극히 편파적이다.성역없는 사정이 법치와 제도에 의해서 이루어져야만 문민정부로서 자격을 공인받을 수 있다. 이제 청와대는 「불명예의 전당」이란 오명에서 벗어나야 한다.현재의 난마처럼 얽힌 정치자금 정국을 풀기 위해서는 김영삼대통령이 솔선해서 허물과 치부를 정정당당하게 열어 보임으로써 알렉산더대왕의 지혜를 발휘할 수 있다.그리고 여야의 썩은 정치인들은 국민과 역사앞에 석고대죄하는 자세로 심판을 자청해야 한다.
  • 대선·비자금 싸고 “원색 공방전”/국회 본회의장 안팎

    ◎“김대중 총재 4년새 재산 10배 증가”/회의장 밖선 육탄전 일보직전까지 17일 속개된 국회 본회의에서 여야의원들은 전날에 이어 4분 자유발언을 통해 노태우 전대통령의 비자금과 대선자금을 둘러싸고 또다시 격돌했다. ○…여야의 마찰은 본회의 개회전부터 시작됐다.여야총무단은 발언자 수를 조정하는 문제를 놓고 대립,진통끝에 가까스로 민자당 6명,국민회의 4명,민주당 2명,자민련 2명으로 합의했다.이 바람에 본회의는 예정보다 48분 늦은 하오 2시48분에야 개회됐다. 첫 발언에 나선 국민회의 이석현 의원은 『92년 대선전 민자당 선거홍보단의 예산이 이미 알려진 5백35억원 외에 20억원이 더 있었다』면서 관련문건을 증거로 공개했다.이에 대해 당시 민자당 선전국장이었던 이수담 의원(민자)은 『92년 7월엔 홍보단이라는 조직이 있지도 않았다』면서 『이는 야당과 일부 언론의 악의적 음해로써 지나가던 소도 웃을 일』이라고 반박했다. 같은 당의 정창현 의원은 국민회의 김총재에게 직격탄을 쏘았다.『김총재는 지난 88년 14대 국회개원 때 3억4천만원의 재산을 신고했는데 92년 대선 때 신고한 액수는 43억원으로,4년 사이에 10배나 늘었다』며 그 이유를 따졌다. 이어 등단한 국민회의 박태영 의원은 『김대통령이 구국의 결단이라고 자랑하던 3당통합의 결과가 노씨의 부정축재냐』라며 『김총재가 적과 내통한 사람이라면 김대통령은 적과 동침한 사람』이라고 되받아쳤다.이어 『대선 때 민자당이 공조직을 통해 6천억원을 뿌렸으며 사조직을 통해서도 그 정도의 돈을 뿌린 것을 알고있다』고 주장했다. 자민련의 유수호 의원은 『민자당이 전총재를 잡아 넣었으니 과연 이 나라는 법치국가라고 자부할만 하다』고 비꼰 뒤 『그러나 전직대통령을 구속하려면 현대통령부터 깨끗해야 할 것』이라고 대선자금 공개를 요구했다. 이에 민자당의 이민헌 의원은 국민회의 김총재의 고해성사를 겨냥,『원래 그 내용을 밝히지 않는 게 교리』라면서 『그런데도 김대중씨는 면죄부를 받은 듯이 하나님까지 내세워 대대적인 대국민 홍보에 나서고 있다』며 『92년 신고한 43억원의 재산과 최근 일산에 짓고 있는자택의 자금조성내역을 밝히라』고 몰았다. ○…이날 본회의에서는 의원들의 발언이 끝날 때마다 원색적인 욕설과 비방이 난무하며 볼썽사나운 추태를 연출했다.국민회의의 김옥두의원과 박광태 의원 등은 본회의장 밖 현관에서 민자당 강삼재 총장에게 『이 ○○아,부모도 없느냐』는 등의 욕설을 퍼부으며 몰아세웠다.이에 민자당의 박희부 의원 등이 가세하면서 여야의원 6∼7명이 뒤엉켜 육탄전 일보 직전까지 가는 험악한 상황을 빚기도 했다.
  • 노씨 비리­여야 대응전략

    ◎여·야 「후속풍향」 경계속 정치공세 재개/“「짜맞추기 수사」 야 주장은 음해행위”­민자/“5공인사 등 수사 확대” 목소리 높여­야권 여야 정치권은 노태우 전 대통령 구속을 계기로 검찰수사가 본격화됨에 따라 대선자금 공방 및 제2정치권 사정 등 정국에 미칠 「후폭풍」을 예의주시하며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민자당◁ 노씨 구속이 깨끗한 정치를 출발시키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돼야 한다는 공식입장 아래 검찰의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는 한편 「짜맞추기 수사」라는 새정치국민회의측 주장을 「음해성 정치공세」로 치부했다. 손학규 대변인은 이날 고위당직자회의가 끝난뒤 『노씨가 수감되면서 진정한 반성의 모습을 보이지 못한 자세에 연민의 정을 금치 못한다』면서 『대선자금 지원을 포함한 비자금의 사용처에 대한 충분한 해명이 없어 유감』이라고 논평했다.손대변인은 또 『검찰수사가 본격적으로 진행돼야 할 마당에 국민회의가 음해성 발언을 계속하며 정국불안을 가중시키는 것은 수사와 진실규명에 방해가 될 뿐』이라고 비난했다. 강삼재 사무총장도 『국민회의는 구속을 계기로 검찰이 본격수사에 나선 마당에 우리 당을 모략하고 국민을 오도하는 발언들을 즉각 중단하라』고 하루 쉬었던 포문을 다시 열었다.강총장은 『노씨가 국민에게 사죄하는 심정으로 처벌을 감수해야 함에도 어제 군더더기 말을 덧붙여 국민과 함께 분노를 느꼈다』면서 『노씨 구속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며 검찰수사를 통해 노씨는 모든 의혹을 밝혀야 하고 밝힐 것으로 믿는다』고 강조했다. ▷야권◁ 국민회의는 우려한 대로 「짜맞추기 수사」라는 반응이다.따라서 검찰수사에 맡길 수 없으며 노씨의 구속 또한 비자금 파문의 끝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국민회의는 노씨가 수감 전에 『모든 불신을 안고 가겠다』고 한 말은 『김대통령과 노씨간에 이뤄진 합의사항을 김대통령이 어겼다는 뜻』이라면서 김대통령이 대선자금을 공개하는 것만이 현정국을 푸는 해법이라고 강조했다. 그런데도 여권이 「김대중죽이기」를 계속한다면 김대통령의 친인척 비리를 폭로하는 등 「맞불작전」을 지피겠다고 으름장을놨다.내년 총선까지 대선자금 등을 끝까지 물고 늘어져 김대통령의 도덕성에 치명타를 날리겠다는 주장이다. 민주당은 3김씨에게 공격의 화살을 돌렸다.『3김씨는 노씨와 더불어 부정과 부패의 「연결고리」였다』면서 함께 책임질 것을 촉구했다.나아가 전두환전대통령을 비롯해 이원조·김종휘·박철언씨 등 5,6공 실세에 대한 비리도 수사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이규택대변인은 노씨의 수감 전 발언과 관련,『3김씨간 정치적 흥정과 야합을 통해 진실을 은폐하려는 음모가 우려된다』면서 『3김씨는 정치적 책임을 통감하고 모든 진실을 국민앞에 밝혀라』고 3김책임론을 주장했다. 민주당은 또 향후 정국이 민자­국민회의의 양금 대결구도로 치달을 경우에 대비해 대선자금을 비롯한 5,6공 비리와 5·18문제등을 집중 거론하며 향후 정국의 주도권을 잃지 않겠다는 전략이다. 자민련은 여야간 대립은 자제하고 하루빨리 정국안정을 되찾아야 한다는 입장이다.이 점에서 민자당과 궤를 같이 한다.그러나 난국을 푸는 책임은 여권에 돌렸다.노씨가 검찰에서대선자금을 밝히지 않은 만큼,대선자금을 조달하고 사용한 집권여당이 밝히는 것이 순서라는 것이다.자민련은 그러면서 인위적인 세대교체와 정계개편에 대해서는 국민회의와 보조를 맞추겠다는 생각이다. ◎노씨 구속… 4당의 손익/개혁의지 확인·세대교체 공론화 수확­민자/전직 대통령 구속은 현 정부에도 부담­국민회의/“안전지대 아니다” 주변서 반사이익만­자민련/포문만 열고 주도권 내줘… 손해난 장사­민주 16일 노태우 전 대통령의 구속을 보는 정치권의 시각은 겉으로는 큰 차이가 없다.모두 대선자금 내역을 밝히지 않은 것에 대해 발끈하고 나섰다.『국민에 대한 마지막 봉사의 기회를 놓쳤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누구도 『우리의 승리』라고 외치는 당은 없다.열심히 주판알을 튕기며 각자 손익계산서를 쓰고 있지만,여전히 불안해 하는 모습들이다. 현재 대선자금과 관련해 밝혀진 것은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가 자백한 「20억원 수수」 말고는 아무 것도 없다.따라서 노씨의 구속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일 가능성이 높다. 노씨 구속이후 정치권이 더욱 강도높게 일종의 「양동작전」을 구사하는 것도 이 때문인 것 같다.「유리한 판짜기」와 상대방에 대한 공세 강화로 압축된다.특히 각당이 공세의 강도를 높이는 것은 검찰의 추가수사등으로 새롭게 전개될 상황에 대비,싸울 수 있는 한 교두보 확보의 성격이 강한 것으로 보인다. 먼저 민자당은 노씨의 구속이 김영삼 대통령의 개혁정치의 산물임을 강조한다.『단 한푼의 정치자금도 안받겠다』는 김대통령의 의지가 없었던들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결국 김대통령의 정치개혁 의지를 확고히 하고 깨끗한 정치,돈 안받는 선거의 일대 전기를 만들었다는 것이 민자당의 가장 큰 자평이다. 아직 끝나진 않았지만,정치권에 세대교체의 바람을 불게 하고 이 연장선상에서 이뤄진 국민회의 김대중·자민련 김종필총재에 대한 「흠집내기」도 수확의 하나로 여기고 있는 눈치다. 국민회의는 그러나 노씨의 구속이 결국 청와대와 민자당에 부담을 지울 것으로 판단한다.이는 「검찰수사에서 대선자금을 밝혀낸다고 해놓고선 아무 것도 없지 않느냐」는 여론에 기초한다.박지원대변인이 『검찰이 대선자금 내역을 밝혀내지 못한 것은 「짜맞추기」 수사 때문이 아니냐』며 공세를 편 것도 이 때문이다.즉 우리도 상처를 입긴 했지만,노씨가 대선자금에 대해 함구함으로써 김대통령과 민자당은 더한 내상을 입게 됐다는 것이다. 따라서 대선자금 공세와 김대통령의 친인척과 관련된 비리를 폭로하게 되면 국민이 이번 사건을 「정략의 싸움」으로 여길 뿐,개혁의 산물로는 바라보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나아가 민자당의 공세를 「김대중 죽이기」로 되받아친 점도 정치권의 세대교체를 잠재우는데 주효했다고 나름대로 평가한다.임채정의원이 『이제 우리의 공세만 남았다』고 말한 것도 앞으로의 전략이 「김총재 살리기」에 집중될 것임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자민련은 일정한 거리를 두려는 인상이 짙다.「김총재 1백억원 계좌설」로 자기들도 결코 안전지대가 아닌 만큼 이 싸움에 깊숙이 빠지는 것은 오히려 손해라는 계산이다. 김대통령의 대선자금과 관련된 자료를 확보하고 있는 것처럼 슬슬 흘리면서 반사이익을 챙기자는 심산으로 보인다.한영수 총무는 『우리는 아직 득도 실도 없다』고 말하고 있다. 가장 곤혹스러운 것은 민주당이다.첫 포문을 열긴 했지만,정국 주도권을 곧 민자당과 국민회의에 뺏겨 아무런 실익을 얻지 못했다는 스스로의 평가다.그래서인지 김대통령의 대선자금으로 이어질 「2라운드」에 더욱 비중을 두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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