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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달라진 사회상(IMF체제 1년:2)

    ◎‘생존경쟁시대’ 웃음을 잃었다/초유의 실직사태로 중산층 무너지고 동료의식 사라진 직장분위기 살벌/과소비 줄고 가족화목 중시 긍정현상도 “직장에서 웃음을 찾아볼 수 없는 게 가장 크게 달라진 모습입니다” IMF체제 1년,회사마다 살벌한 분위기가 사무실을 감돌고 있다. 구조조정과 정리해고가 잇따르면서 서로 존경하고 이끌어주던 ‘미풍양속’은 더 이상 찾을 수 없다. 모두가 경쟁자로 변한 느낌이다. D그룹 영업관리팀 金모씨(24·여)는 “다음 달 구조조정에서 팀원 1명 정도는 그만둬야 할 것 같다”면서 “동료들이 말도 잘 건네지 않는다”고 털어놓았다. 잇따른 중산층의 붕괴도 대표적인 변화다. 경제적 궁핍과 아울러 마음마저 황폐해지고 있다. 지난 1월 다니던 중소의류업체가 부도나면서 직장을 잃은 梁모씨(32). 1년 가까이 지난 현재도 놀고 있다. 직장생활 4년여만에 어렵게 장만한 1억원짜리 아파트는 남에게 전세를 주고 따로 2,500만원짜리 전셋집을 얻어 이사했다. 은행에 맡긴 퇴직금과 전세금에서 나오는 매월 60여만원의 이자로 근근히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생활이 어려운 것도 문제지만 목표나 희망이 없이 그저 세월을 허송하는게 더 견딜 수 없다. 하지만 긍정적인 현상도 적잖이 나타났다. 낭비와 방탕에 빠졌던 과거를 반성하고 근검 절약의 소중함을 되새기는 계기가 됐다. 과소비나 호화 해외여행 등도 상당히 줄어 국제수지가 개선되는 효과로 이어졌다. 가장들은 외식이나 술자리를 줄이고 가족끼리 오붓한 자리를 자주 갖게 됐다. 무엇보다 이번 IMF사태의 경험으로 앞으로 우리 스스로의 잘못으로 또다시 고초를 자초하지는 않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는 점은 큰 소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갑작스럽게 사회에서 밀려난 사람들은 분노와 좌절감 속에서 하루하루 고통을 참아내고 있다. 직장을 잃지 않은 사람들도 쪼들리기는 마찬가지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자유기업센터가 IMF체제 1년을 즈음해 최근 서울과 신도시 지역 25∼49살 주부 5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한 결과,응답자의 80%가 소득이 줄었다고 답했다. IMF 이전 월 평균 가구소득은 249만 9,000원이었으나이후는 185만 8,000원으로 60만원 이상이나 깎였다. 중하류나 하층에 속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크게 늘었다. 가장의 실직은 가족의 해체로 이어지고 특히 노인문제가 심각해졌다. 한국 노인의 전화 徐惠京 이사(40·여)는 “자살 충동을 호소하는 노인들의 절박한 전화,나이 든 부모님을 요양시설에 맡기고 싶다는 자식들의 문의전화가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어느 누구도 실업의 ‘안전지대’에 있지 않게 됐다. 대기업은 망하지 않는다는 ‘신화’는 깨졌다. 한보·삼미그룹에 이어 기아·진로·한라그룹까지 수많은 대기업들이 무너졌다. 안정된 직장으로 첫 손에 꼽히던 은행과 증권사 직원들도 갑자기 길거리에나 앉는 신세로 전락했다 .동남·동화은행을 비롯한 5개 은행의 퇴출 파동에 이어 대형 시중은행간 합병의 회오리속에 은행원들이 감원 한파에 떨고 있다. ‘철밥통’의 대명사인 공무원 사회에도 ‘칼바람’은 비켜가지 않았다. 올 상반기까지만 2,200여명의 공무원들이 명예퇴직했다. 졸업을 앞둔 대학 4년생들의 마음도 무겁기는 실직자에 못지 않다. 아직 직장을 구하지 못했다는 서울 K대 행정학과 4학년 金世英씨(26)는 “홀어머니 밑에서 어렵게 공부했는데 죄송할 뿐”이라면서 “4년동안 열심히 공부했는데 일자리가 없어 너무나 허탈하다”고 털어놓았다. ◎IMF 유행어/‘퇴출’ 등 일상어로/IMF=I’m ‘F’/부유층 빗댄 ‘이대로’/간큰 직장인시리즈 인기 IMF 이후 자조섞인 갖가지 유행어가 국민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퇴출’은 유행어를 넘어서 국민적 화두(話頭)가 됐다. ‘명퇴(명예퇴직)’나 ‘황퇴(황당한 퇴직)’는 일상어의 반열에 올랐고 ‘고개숙인 아버지’라는 유행어는 모두를 우울하게 만들었다. IMF의 F를 F(낙제),FIRED(해고),FIGHTING(싸운다),FREE(해고된 뒤의 자유) 등으로 비관적으로 해석한 단어들이 속출하는 가운데 FINE(그래도 괜찮다)이라는 자조섞인 표현도 등장했다. 또 I를 ‘아이고’로,M을 ‘미치고’로,F를 ‘환장하겠네’로 풀이한 ‘아이고 미치고 환장하겠네’라는 우스개 소리도 나돌았다. 공무원들의 무사안일을 꼬집는 ‘복지부동’은 한걸음 나아가 낙지처럼 책상에 매달려 일만 하는 ‘낙지부동’,바짝 엎드려 머리만 굴리는 ‘복지뇌동’ 등 숱한 신조어를 낳았다. ‘신토불이’는 ‘몸(身)이 땅(土)과 하나가 되도록 납작 엎드린다’는 뜻으로 사용됐다. 무더기 명퇴와 퇴출 사태로 모든 직장인들이 가슴을 조이는 가운데 ‘간큰 직장인’시리즈가 유행했다. 감봉과 전직배치를 불평하고 회식에 불참하거나 지각을 하는 사람,여직원에 커피 심부름을 부탁을 하는 직장인은 퇴출 1순위로 지목됐다. 극심한 취업난으로 대졸 초년병들은 ‘모라토리엄(지불유예)형 인간’으로 분류됐고 졸업하고도 학교 주위를 맴돌며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잇는 사람들은 ‘캥거루족’으로 불렸다. 술자리에서 ‘건배’ 대신 ‘이대로’가 유행한 것은 부익부(富益富)현상을 누리는 부유층을 빗댄 말이었다. 반면에 ‘소비자 파산’,‘전세대란’,‘깡통집’ 등은 갈수록 어려워지는 서민생활을 반영한 단어들이었다. ◎고통의 시대 생활지혜/일단 아끼되 가치있게 쓸때는써라 ‘100원을 1,000원처럼 쓰는 지혜’. 어느 공익광고의 문안은 IMF체제를 헤쳐나가는 요체(要體)를 잘 표현하고 있다. 무작정 아낀다고 해서 IMF체제가 극복되지 않기 때문이다. 너나 할 것 없이 고달픈 IMF시대. 사람들은 나름대로 갖가지 지혜를 짜내며 어려움을 극복하고 있다. 주부에서부터 회사원에 이르기까지 각자가 터득한 ‘IMF 극복비결 10가지’를 소개한다. ■재활용품센터를 활용한다=주부 朴모씨(44·서울 금천구)는 요즘 벼룩시장,교차로 등 생활정보지를 눈여겨 본다. 생활도구나 가구 등을 새로 구입하기보다는 물물교환을 하거나 중고품을 구입하는 습성이 어느덧 몸에 뱄다. ■원 포인트(One­Point) 식단을 짠다=결혼한 지 1년 남짓된 주부 李모씨(27)는 얼마 전부터 찌개,국,부침개 등 주요 반찬은 하나만 만들고 나머지는 김치 등 밑반찬으로만 내놓는다. 50% 가까이 음식쓰레기가 줄었다. 李씨는 이아이디어를 ‘원 포인트 식단’이라고 이름붙였다. ■퍼머,마사지 등 이·미용 비용을 줄인다=주부 金모씨(37·은평구 불광동)는 2만∼3만원 주고 한달에 한번 하던 퍼머를 두달에 한번으로 줄이고,1주일에 한번씩 하던 피부마사지도 끊었다. 커트기를 구입해 초등학교 5학년 아들의 이발도 손수 해준다. ■돈 안드는 취미생활 하기=컴퓨터 프로그래머 李모씨(30)는 한달에 6만5,000원씩 주고 아침마다 수영강습을 받았지만 요즘은 조깅으로 대신한다. 요즘 李씨는 조깅예찬론자가 됐다. ■승용차 운행을 자제한다=중소기업을 운영하는 金모씨(47)는 한달 전부터 교통비가 3분의 1로 줄었다. 매일 타고 다니던 자가용을 주말에만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내식당을 이용한다=대기업 과장 鄭모씨(35·경기도 고양시)는 1주일에 한 두번 이용하던 구내식당의 단골손님이 됐다. 습관적으로 밖에서 사먹을 땐 보통 5,000원 안팎의 돈이 들었지만 한끼에 1,600원이면 해결됐다. 시간도 절약돼 금상첨화였다. ■빚을 갚는다=대기업 대리 朴모씨(32)는 매달 50만원씩 나가던 은행이자를 지난 9월부터는 한 푼도 내지 않는다. 7,500만원짜리 전세를 5,000만원짜리로 이사해 은행대출금 2,000여만원을상환했기 때문이다. ■학원을 끊고 직접 가르친다=주부 金모씨(38)는 초등학교 6학년 딸이 다니던 속셈학원을 끊었다. 한달에 10만원씩 나가는 돈을 절약하고,본인이 직접 공부를 가르친다. ■커피숍 대신 집을 찾는다=공무원 李모씨(22·여)는 최근들어 커피숍에 가는 일이 거의 없다. 전에는 친구들과 거의 매일 카페나 레스토랑을 찾았지만 요즘은 서로의 집을 오가며 만난다. ■실력 향상을 게을리하지 않는다=회사원 蔡모씨(33)는 휴대용 카세트를 가지고 다니며 수시로 영어공부를 한다. 어려울 때일수록 실력만이 재산이라는 생각에서다.
  • 예산 많이 절약한 부처는 포상/金 대통령

    ◎“불용액에 인센티브제… 실업대책 비용 활용”/불필요한 공사 무더기 발주 등 폐단 막게 金大中 대통령은 5일 “정부 각 부처들이 정부 예산 불용액을 늘리도록 장려할 것이며 각 부처들은 정부예산을 절약해야 한다”면서 “예산 불용액 현황을 파악,예산을 절약해 불용액을 많이 남기면 포상하는 인센티브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말했다. 金대통령은 이날 오후 청와대에서 국민회의 趙世衡 총재대행과 당 3역으로 부터 주례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이같이 밝혔다고 鄭東泳 대변인이 전했다. 金대통령은 이어 “감사원이 예산불용액이 많은 부처에 대해 문책하는 감사 방식을 시정,각 부처의 예산불용액은 다음해로 전액 이월해 쓰도록 조치할것”이라고 강조했다. 金대통령은 “남은 불용액은 실업대책 비용 등으로 사용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금까지는 정부부처에서 불용액을 남기게되면 감사원 감사에서 지적되고,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질책을 받는등 좋지 않은 것으로 여겨져 왔다.이에 따라 연말이면 불용액을 줄이기 위해 불필요한 공사를 무더기로발주하는 등 악순환이 계속돼왔다. 金대통령은 또 “현재 당이 실시중인 공공근로사업과 직업훈련에 대한 실태조사는 전국을 대상으로 상설화할 것”을 지시했다. 이와 함께 “의문사 등 억울한 죽음에 대해서는 당에서 진실규명에 최선을 다하고 새로 제정될 인권법안은 유엔권고안을 중심으로 준비하라”고 당부했다.
  • 공무원 5시 퇴근 민원인 골탕/이달부터 1시간 앞당겨

    ◎“IMF시대에 관행만 고수” 비난 빗발/“민원부서만이라도 연장근무해야” 지적 많아 공무원들의 퇴근시간을 놓고 국민들 사이에 비판여론이 일고 있다.IMF시대에 해도 떨어지지 않은 하오 5시에 퇴근할 수 있는 직업은 공무원 밖에는 없지 않느냐는 것이다.공무원들이 경제위기의 책임을 느끼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국민들에게 허탈감을 주지는 말아야 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대통령령인 ‘공무원 복무규정’은 3월1일부터 10월 말일까지는 하오 6시까지,11월1일부터 다음해 2월 말일까지는 하오 5시까지 근무하도록 하고 있다.상오 9시에 출근하여 점심시간 1시간을 빼면 동절기에는 7시간,하절기에는 8시간을 근무하는 셈이다. 정부부처 가운데 일반민원이 가장 많은 부처로 손꼽히는 건설교통부에서는 지난 1일부터 공무원들의 퇴근시간이 하오 6시에서 5시로 1시간 당겨지자 하오 5시 퇴근제가 실시된 뒤 ‘민원인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다른 부서는 퇴근하더라도 민원상담실 등은 일반회사와 마찬가지로 하오 6시까지는 근무하는것이 바람직스럽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지난 3일 하오 5시30분쯤 민원상담실을 찾은 金모씨는 “경기도 안성에서 건축 인·허가 문제로 질의할 것이 있어 힘들게 찾아왔으나 헛걸음을 했다”면서 “다들 바쁘게 일하는 데 공무원들이 일찍 퇴근하는 것은 일종의 특혜”라고 말했다. 같은 날 서울시내 한 세무서는 업무시간이 앞당겨진 것을 모르고 찾아온 사람들을 위해 ‘선심쓰듯’ 15분 더 접수를 받았지만,시민들은 왜 앞당겨졌는 지 감히 물어볼 엄두도 못냈다.5시30분이 넘어 민원인 3∼4명 정도가 찾아왔지만 발길을 돌릴 수 밖에 없었다. 지난 1일부터 마감시간이 한시간 앞당겨진 서울 광화문 우체국에는 아직 시간변경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하루 10여명씩 몰려들고 있다.이들은 대개 후문으로 들어와 업무를 보고 돌아가는 실정이다.
  • 韓·中·日 잇는 유람선 추진/申 문화

    ◎日 차관 10억弗 문화관광산업 투입 문화관광산업에 앞으로 10억달러가 투입된다. 또 2002년 월드컵축구 개최에 즈음해 한·중·일 동북아 3국을 잇는 오리엔트 관광 크루즈(유람선)가 뜬다. 申樂均 문화관광부장관은 29일 아침 중견 언론인 모임인 관훈클럽 초청 조찬간담회에서 이같은 내용의 문화관광산업 육성방안을 밝혔다. 申장관은 우선 “일본 수출입은행이 장기저리로 제공키로 한 27억달러의 차관 중 10억달러를 문화관광산업에 절반씩 투자하는 방안을 재정경제부와 협의중”이라고 밝혔다. 분야별로는 문화산업 기반구축에 5억달러,호텔시설 건립에 2억달러,컨벤션센터 및 국제테마파크 등 국제회의산업 육성에 3억달러가 배정될 전망이다.
  • 카드판독기 제조사 경덕전자(경쟁력으로 승부 건다:4)

    ◎카드시스템 개발 외길 10년/수출­매출액의 60%나 차지.터키와 500만弗 계약.벨기에도 ‘판독기’ 공급/기술력­매출 10∼15% 개발비.직원의 23%가 연구원/최초로 품질인증 획득 카드자동판독기를 만드는 경덕전자(대표 尹學範·49)는 87년 설립 이후 오직 한 길만 걸어왔다.직원 수나 매출보다 기술로 승부수를 띄웠다. 카드판독기는 현금인출기 신용카드조회기 공중전화기 등에 쓰이는 카드의 데이터를 읽고 처리하는 장치다.국어사전 한 권 크기로 카드 공중전화기 한 대 값의 60%를 차지할 만큼 고부가가치제품이다. 보이지 않는 정보를 다루므로 정확도가 요구되고 기술 변화속도가 무척 빠르다.회사 설립후 10년간 숨가쁘게 첨단기술을 따라잡았다. 마그네틱카드 판독기술을 완성하면 IC카드가 튀어나오고 곧 비접촉식 카드판독기술이 얼굴을 내밀었다.살아남기 위해서라도 기술력에 온힘을 쏟을 수밖에 없었다.창업 다음해에 회사부설 연구소를 만들고 매출액의 10∼15%를 연구개발비로 썼다.직원 300명 중 70여명이 연구인력이며 올해도 15명의 연구원을새로 뽑았다. 이 과정에서 특허,실용신안권,의장등록 153종을 출원,40건의 등록을 받았으며 업계 최초로 94년 8월 ISO 9001품질인증을 얻었다. 생산관리 방식도 철저하다.소량을 제때 납품해야 하는 제품 특성에 맞춰 ‘CELL 생산방식’을 도입,2∼3명의 직원이 한 조를 이뤄 바이어의 까다로운 주문을 무난히 소화해 낸다. 93년부터 중소기업 최초로 사내 전산망을 구축,모든 업무처리를 컴퓨터로 처리함으로써 생산성 향상의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경덕전자의 이름은 해외에서 더 알아준다.지난해 매출액 337억원 가운데 수출비중이 60%에 이른다.올해도 해외시장에서 지멘스,파나소닉 등 세계 유수업체를 제치고 국제입찰을 따내 400억원의 매출을 올릴 전망이다. 지난 5월에는 터키의 앙카라,이스탄불,이즈미르 등 3대 도시의 버스요금징수시스템을 경덕의 카드시스템으로 바꾸는 500만달러어치 계약을 맺었다.징수기에 직접 카드를 대지 않고 스치기만 해도 요금이 정산되는 비접촉식 판독기술이 얻어낸 개가다.9월에는 벨기에 플랑드르 지역 지방자치연합이 주관하는 전자투표시스템 입찰에서 핵심장치인 모터구동형 카드판독기 공급업체로 선정됐다. 어려움도 많았다.창업 2년후 마그네틱헤드의 국산화에 성공할 때까지 매출은 없고 기술개발에만 진력했다.90년에는 칩(집적 회로)을 대주던 일본업체가 공급중단을 선언,완제품 수출에 위기가 왔다.다행히 삼성전자의 도움을 받아 국산화에 성공,고비를 넘겼다. 매년 100일 이상을 해외에서 보내는 尹사장은 “다른 분야에 한 눈을 팔지 않고 한 분야에 매달린 결과”라고 말했다.
  • 기업사냥 수법 총동원/항도종금 인수 뒷얘기

    ◎불법자금조성… 브로커 고용… 음해… 로비/김영일 前 재생공사감사 동원 관계 로비/항도노조위원장 매수… 경영진 비리 폭로 21일 검찰이 밝힌 항도종금에 대한 한효건설의 적대적 M&A(인수·합병) 시도과정은 불법 자금 조성과 전문 브로커 고용,상대방 매수,악성 음해,로비 등 ‘기업사냥’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한효건설의 실질적인 사주인 金重明 부사장은 지난 96년 4월 M&A 브로커 金聖集씨를 만나면서 항도종금에 대한 ‘사냥’을 시작했다. 브로커 金씨는 “500억원만 투자하면 1,000억원이 넘는 항도종금을 빼앗을 수 있다”고 유혹했다. “인수한 뒤 팔더라도 500억원의 차익을 남길 수 있다”고 덧붙였다. 金 부사장은 경영권을 지키려는 항도종금측의 반발이 거세지고 국세청과 증권감독원 등의 자금출처 조사가 진행되자 이른바 ‘실세 및 마당발’ 등을 활용하는 전(全)방위 로비전을 폈다. 전 한국자원재생공사 감사 金永一씨는 金부사장이 동원한 대표적인 로비스트였다. 金부사장은 金泳三 전 대통령의 서예교사이자 金 전 대통령의 고교동창회 총무를 맡았던 金씨에게 무려 3억5,000만원을 주며 공무원에 대한 로비를 맡겼다. 하지만 金씨는 로비자금을 ‘독식’한 것으로 알려졌다. 金씨는 장군 진급대상자로부터 5,000만원을 받아 지난 달 말 구속된 全道奉 전 해병대 사령관에게 건네는 등 군 인사에도 개입한 것으로 전해졌다. 브로커 金씨는 대학 선배이자 국세청·재무부 등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공인회계사 高孝國씨를 끌어들였다. 방위산업체인 (주)강남대표 安永泰씨에게는 인수합병이 성사되면 항도종금의 대표이사직를 주겠다고 약속했다. 로비자금도 1억1,000만원이나 건넸다. 도예계에서 널리 알려진 崔禎幹씨도 기용했다. 강남대표 安씨는 로비과정에서 항도종금 직원들에게까지 손길을 뻗쳤다. 항도종금 관리본부장 孫永坤씨에게는 서륭그룹의 내부 비리를 알려주는 대가로 이사직을 보장했다. 노조위원장 安熊基씨에게는 경영진의 부도덕성을 폭로토록 부추기고 2,000만원을 줬다. 게다가 비리내용을 국세청 등에 진정토록 해 감사를 받도록 했다. 언론 등에도 제보토록 했다. 그러나 金 부사장은 서륭그룹의 지분에 대한 판단 착오로 36.7%인 170만주를 샀지만 인수합병을 하지 못했다. 서륭그룹의 지분이 45%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결국 자본금 61억여원,96년 매출 406억원에 달하던 건실한 한효건설은 지난 해 12월 부도로 쓰러졌다.
  • “경제정책 일관성 없다”/李會昌 총재 경제 회견

    ◎“구조조정 과정 새로운 정경유착 소지”/銃風 특검제 도입 정치 사안도 언급 한나라당 李會昌 총재가 20일 여의도 당사에서 경제 관련 기자회견을 갖고 현 정부의 경제정책을 조목조목 비판했다.“원칙과 일관성이 없다”는 요지다.대안으로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한 여야 협의체 구성과 기업 구조조정 특별법 제정을 제시했다.그러나 뚜렷한 각론을 내놓지는 않았다. 형식은 경제회견이었지만 정치 사안도 빠뜨리지 않았다.판문점 총격요청사건과 고문 의혹 등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특별검사제를 하루 속히 도입하자”고 제안했다. 李총재는 특히 “국가 위기를 극복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 단합이며 이를 위해 대통령이 대승적 결단을 내려야 한다”며 “야당을 붕괴시키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표적사정과 야당 총재 음해를 계속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여야 총재회담의 필요성도 거듭 언급했다.李총재는 “아직 구체적인 협의는 없다”고 전제,“그러나 여야가 정국을 풀고 정상정치를 복원하는데 영수회담이 중요한 계기가 된다고 인식하고 있으므로 여당쪽에서도 합리적인 생각을 하지 않겠느냐”고 기대감을 피력했다. 경제문제에서는 현 정권의 구조조정 작업과 실업대책의 오류를 화두로 삼았다.李총재는 “경제파탄의 근본원인이 정경유착과 관치금융이라면 위기극복과정에서 새로운 유착과 정부관여의 소지를 남긴 것은 자가당착”이라고 주장했다.그는 “정부와 공공부문은 미룬 채 민간의 구조조정만 외치는 것은 도덕적으로도 온당치 못하다”고 꼬집었다. 李총재는 또 “현 정부의 실업대책은 일자리 창출을 위한 청사진 없이 추진되고 있으며 재원조달에만 급급해 할뿐 체계적 계획이 없어 지출이 비효율적이고 낭비적”이라고 지적했다.
  • 피노체트는 누구/73년 유혈쿠데타로 집권… 17년 철권통치

    ◎반대파 무자비한 탄압… 4,309명 사망·실종 【산티아고(칠레) 외신 종합】 아우구스토 피노체트는 73년부터 90년까지 칠레를 철권 통치한 독재자. 1915년 칠레의 항구 도시인 발파라이소에서 태어나 18세 때에 사관학교에 들어가 지정학을 공부했다. 73년 당시 아옌데 대통령에 의해 군 총사령관에 임명됐고 그후 한달만에 유혈 쿠데타로 아옌데 대통령을 축출하고 정권을 장악했다. 88년 집권 연장을 묻는 국민투표가 압도적 표차로 부결되자 마지못해 다음해 대통령 선거를 실시했으나 파트리시오 아일윈 후보가 당선되는 바람에 90년 3월12일 퇴임했다. 그러나 재임중에 개정했던 헌법에 따라 면책특권이 부여된 종신직 상원 의원에 취임하는 등 퇴임 후도 미리 대비를 해놓는 치밀함을 보였다. 피노체트는 칠레식 독재 모델로 경제성장을 달성해 부유층으로부터 강력한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경제건설과 공산주의로부터 칠레를 보호한다는 명분아래 좌파 등 반대파를 무자비하게 탄압해 악명을 떨쳤다. 관계 보고서에 따르면 그의 집권기간에 3,197명의정적들이 살해됐고 보안군에 의해 체포 구금됐다 실종된 사람도 1,102명에 달했다. 또 수십만명이 체포,고문당하거나 외국에 망명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 주부 80% “가계소득 줄었다”/전경련 500명 대상 조사

    ◎IMF전보다 월평균 25.7% 감소/보험·적금 등 해약… 의류·식비 절감 우리나라 가정의 80.4%가 IMF체제 이후 소득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IMF체제 1년을 즈음해 서울 및 신도시지역 25∼49세 주부 500명을 대상으로 조사,18일 발표한 ‘IMF 전후의 가정생활 변화 조사’에 따르면 조사대상자 전체의 월평균 가구소득은 IMF 이전 249만9,000원이었으나 이후에는 185만8,000원으로 25.7% 줄었다. 소득감소의 여파로 주부들의 49.4%는 보험 적금 주택청약 등을 해약했으며,의류비와 식비(외식비 제외)를 줄였다고 응답한 주부도 각각 85.6%와 52.0%로 나타났다. 부부간의 대화시간은 19.6%가 늘었다고 답했고 12.2%는 줄었다고 응답하는 등 31.8%가 변화가 있다고 밝혔다. 가장의 술약속에 대해서는 51.8%가 줄었다고 말한 반면,늘었다는 답변은 6.8%에 불과했다.이에 따라 가장이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은 25.8%가 늘었다고 응답했으며 14.8%만이 줄었다고 말했다. 16.6%는 기회가 주어지면 이민을 갈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 풍전등화의 대한제국과 창간(다시 태어난 ‘대한매일’:2)

    ◎‘排日護國’ 민족혼 일깨운 횃불/여론조작 친일紙 득세하던 1904년/치외법권 혜택 裴說 발행인 내세워/첫호부터 日 야욕 고발한 민족지로 대한매일신보(大韓每日申報·이하 대한매일)가 한국사 무대에 등장한 1904년은 일본의 한반도 병탄 야욕이 막바지에 달한 때였다.그해 2월8일 일제는 인천항에 정박한 러시아 군함 2척을 격침해 러일전쟁을 도발한다. 이를 빌미로 서울을 점령한 일본군은 한일의정서 체결을 강요,한반도에 주둔하면서 자유롭게 군사활동을 하는 권한을 획득한다.이어 7월20일에는 ‘군사경찰 훈령’을 공표해 ‘집회나 신문이 치안을 방해한다고 인정할 때는 그 정지를 명령하고 관계자를 처벌할 수 있다’는 규정을 마련한다. 배일(排日)민족언론의 숨통을 죌 근거를 마련한 것이다. 이같은 올가미가 드러나기 이틀 전인 7월18일 대한매일은 그 거대한 족적의 첫걸음을 내디뎠다.당시 국내에는 한국인과 일본인이 발행하는 신문이 뒤섞여 있었다.한국인 신문(민족지)으로는 ‘황성신문’‘제국신문’이,일본인 신문(친일지)으로는 ‘한성신보’‘대한일보’‘대동신보’가 대표적이었다. 그러나 민족지들은 일본군 주둔 이후 갖가지 탄압에 시달려 활기를 잃은 반면 수적으로도 우세한 친일지는 더욱 기승을 부렸다.일제는 19세기 말 한반도 침략을 시작하면서 여론 조작수단으로 일본인 경영의 신문을 많이 발간했다.1881년 이래 한반도 전역에서 발간한 한글·일본어·영자 신문이 총 30여종에 이를 정도였다. 이런 상황에서 대한매일 창간은 한민족에게 한줄기 빛과도 같은 희망을 주었다.발행인인 배설(裴說)이 치외법권을 누리는 영국인이어서 일제의 검열을 피할수 있을 뿐더러 발간 즉시 ‘한민족과 대한제국의 편에 서서 일제침략에 맞서는’태도를 분명히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한매일의 영문판인 코리아 데일리 뉴스(The Korea Daily News)는 당시 유일한 일간 영자지여서 한반도 정세를 국제사회에 널리 알려 지지를 받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도 크게 작용했다. 대한매일 창간 무렵 한민족의 관심이 집중된 사건은 일본의 ‘황무지 개간권 요구’였다.일본은 6월6일 ‘한국인이 명백하게이용·경작하는 토지를 제외한 전국토’를 개간해 50년 동안 경영하는 권리를 달라고 대한제국 정부에 요구했다.표면상 개간권을 요청한 자는 일본 각료 출신인 나가모리(長森藤吉郞)였지만 실제로는 일제의 치밀한 ‘식민지화’ 계획의 하나로 추진된 것이다. 이 일이 알려지자 한반도는 당연히 들끓었다.요구를 받아들이면 적어도 국토의 6분의 1(당시 일본 외상의 발언)에서 많게는 3분의 2(윤치호 주장)까지 일본에 넘어가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아울러 황무지 개간을 내세워 일본인들이 떼지어 한반도로 몰려올 것도 불보듯 뻔한 사실이었다. 민족지들은 일제히 일본의 야욕을 비난했고 농광회사(農鑛會社),보안회(保安會)등의 단체가 생겨나 조직적인 반대운동을 시작했다.이같은 상황에 제동을 걸고자 일제는 ‘군사경찰 훈령’을 공표하기에 이른 것이다. 대한매일도 당연히 ‘황무지 개간’건 보도의 일선에 나섰다.현재 대한매일의 창간호부터 15호까지는 남아 있지 않고 제16호(1904년 8월4일자)가 가장 오래된 지면이다. 그 날짜 영문판 톱기사는일본의 영자지 ‘고베 크로니클’의 논설 ‘프로텍팅 코리아(Protecting Korea)’를 절반 가까이 전재했다.‘일본 정부는 외국인의 토지 소유를 허용하지 않으면서 코리아에는 부당한 요구를 한다’는 기사를 자세히 소개한 뒤 대한매일은 ‘이같은 고발에 대해 일본 정부는 무슨 말로 대답할 것인가’라고 비판했다.이어 16일자에도 ‘나가모리 어게인(Nagamori Again)’(18일자 한글판 제목 ‘장삼씨의 문제 갱론이라’)이란 톱기사로 이 문제를 계속 거론한다. 대한매일이 배일 논조를 뚜렷이 하자 친일지들은 즉각 대한매일과 배설(裴說)을 비방하는 기사를 실었다.대한일보 10월5일자는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이 신문은 ‘영국인 배설이 경성에서 발행하는 대한매일신보는…번번이 일본이 패전한다는 설을 논하고,러시아의 제2군이 이미 일본군의 후방을 차단하여 포위했으므로 머잖아 일본군이 대패하리라는 등의 거짓말을 싣고 있다’고 비난했다.이어 ‘이 영국인은 (일본)고베에서 장사꾼으로 생활하던 천인(賤人)이기로 전국(戰局)을 알 리가 없다’고 인신공격을 달았다. 이 신문은 이밖에도 11월10일자,12월23일자 등에서 대한매일을 ‘일본에게 공정하지 못하다’거나 심지어 ‘친러시아 기관지’라는 등의 악의에 찬 비난을 거듭 퍼부었다. 창간하자마자 민족지의 대표로 떠오른 대한매일신보.민족과 국가의 명운을 두 어깨에 짊어진 대한매일이 6년여 동안 일본제국주의를 상대로 벌인 대전쟁은 이처럼 막을 올렸다. ◎대한매일신보 발행 체제/영문·순한글 6면 합쇄/타블로이드판으로 출발 대한매일신보(1904.7.18∼1910.8.28)는 6년여 동안 4가지 체제로 발행됐다.창간시에는 영문판인 코리아 데일리 뉴스(The Korea Daily News) 4면과 순한글판인 대한매일신보 2면 등 모두 6면을 합쇄 형태로 냈다.지면 비율로는 2대1일이지만 영문판 4면 가운데 2면은 광고였으므로 처음부터 한글·영문 기사의 비중은 같게 출발했다.판형은 타블로이드판이다. 그즈음 영문으로 나온 정기간행물은 미국인 헐버트(Homer B.Hulbert)가 내는 월간지 ‘코리아 리뷰(Korea Review)’뿐이어서 일간지인 코리아 데일리 뉴스는 처음부터 널리 주목받았다. 영문·한글판 합쇄 체제는 다음해 5월10까지 이어졌으나 인쇄시설에 문제가 생겨 다섯달 동안 휴간한다.1905년 8월11일 속간하면서는 영문판과 국한문혼용판을 분리해 발행했다.2년쯤 뒤인 1907년 5월23일에는 한글판을 부활해 영문판·국한문혼용판·한글판 세 가지가 동시에 나왔다.우리 언론 사상 유일한 사례다. 裴說이 영국인 만함(Alfred Weekly Marnham)에게 신문사를 넘긴 며칠 뒤 영문판 발행이 중단돼 1908년 6월1일부터는 국한문판과 한글판 2종만을 내었다.영문판은 이듬해 복간되지만 곧 사라진다. 이같은 발행체제의 흐름을 살펴보면 초기에는 독자층이 넓어지면서 국한문판·한글판으로 점차 확대하다가 후기에는 일제의 압박이 거세지면서 영문판이 사라짐을 알 수 있다.1900년대 초 시대요구에 부응해 다양한 독자층의 욕구를 수용한 대한매일의 발행체제는 진실로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 ◎대한매일신보 연구 현황/韓末 담아낸 시대그릇/각 분야별 연구 활발 대한매일신보에 대한 연구는 100여년 한국 언론사 연구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대한매일신보가 이같은 평가를 받는 이유는 첫째 정치적 압력에 굴하지 않고 언론의 소임을 다한,우리 언론사에 거의 유일한 신문이었다는 원론적 의미에서다.둘째는 한말 우리의 사회상과 국제정세를 가장 정확하게 알려주고 있었다는 점이다. 따라서 대한매일에 대한 지금까지 연구는 우리 언론사 연구에서 항일과 관련,독립적으로 다뤄져온 부분도 많다.언론 자체 문제뿐 아니라 한말 우리의 시가(詩歌),한글,산업진흥,광고,자주의식,국제 외교사 등 다양한 분야로 연구 영역이 확대돼왔고 특히 80년대와 90년대 들어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현재 대한매일신보만을 독립적으로 다룬 단행본은 △‘제국주의와 언론­배설·대한매일신보 및 한·영·일 관계’(구대열·이화여대출판부 1986) △‘대한매일신보 연구’(이광린 유재천 김학동 공저·서강대출판부 1986) △‘대한매일신보와 배설’(정진석·나남 1987) 등이 있다. 한말 저항시가연구서는 가장 많아 ‘대한매일신보 가사연구’(조현경·전남대 석사논문 1995),‘대한매일신보소재 가사문학연구’(유정선·이화여대 〃 1990),‘개화기의 저항시가연구’(박을수·경희대 박사논문 1984),‘우국가사 연구­대한매일을 중심으로’(김준태·고려대 석사논문 1980) 등이 있다.한글 신문에 대한 연구로는 ‘대한매일신보 국문판 연구’(오선화·이화여대 〃 1988)가 있다. 한말 대한매일신보가 산업진흥을 역설한 논설들에 대한 연구로 ‘대한매일신보의 논설에 나타난 실업진흥론’(이윤정·서울시립대 〃 1997)이,당시의 신문광고에 대한 연구로는 ‘대한매일신보에 나타난 광고에 관한 연구’(김영희·효성여대 〃)가 있다. 그밖에 ‘대한매일신보의 항일 자주의식연구’(김영애·성신여대 〃 1979),‘대한매일보에 나타난 의병 동향’(윤경숙·인하대 〃 1988),‘대한매일신보의 항일 언론활동’(권만용·건국대 〃 1993) 등이 있다. 또한 한말 국제관계를 다루는 논문들에는 특히 영국과 일본과의 관계에서 대한매일신보와 배설을 다루고 있다.
  • 방송인 서유석­가수 안혜경(금지문화 금지인생 이제야말한다:11)

    ◎현실비판·운동권 노래… 고난의 ‘언더’ 인생/가수·방송인 서유석/유신반대 ‘맷돌’ 공연중단 시련/심의 묶인 금지곡만 10여편/방송에서도 강한 정치풍자/‘윗분’에 밉보여 도중하차 가시밭길 “가는세월 그 누구가/잡을 수가 있나요/흘러가는 시냇물을/막을 수가 있나요/…/이내몸이 흙이돼도/내마음은 영원하리”(가는 세월). 70년대 텁텁한 목소리로 사회성짙은 노래를 부르던 청년문화의 기수 徐酉錫씨(53)의 대표곡이다. 가수와 방송인으로 순탄치 않은 삶을 살아낸 徐씨의 체념한듯 하면서 굽히지 않는 의지가 담겨 있는 노래이기도 하다. 徐씨가 부른 노래는 ‘가는 세월’ 말고도 창작곡만 70곡. 1985년 마지막 레코드 ‘뚝잘라 말해’를 발표할 때까지 낸 음반도 11집이나 된다. ‘타박네’‘파란많은 세상’‘세상은 요지경’‘대답은 없어라’ 등 심의에서 묶인 금지곡도 10여곡. 이가운데 녹음을 끝내놓고도 가사내용 때문에 레코드를 수거당했던 ‘마지막 노래’는 2년뒤 다른 가수가 불러 심의를 통과한 기막힌 사연을 담고 있다. 교통관련방송 프로그램 진행을 20년째 맡아 이젠 가수보다 방송인과 교통 전문가로 더 알려진 徐씨. 세월은 흘렀지만 사회성 짙은 ‘운동권 가수’로 찍힌뒤 극적으로 시작한 방송인 생활의 기억들을 결코 잊을 수 없다. 성균관대 졸업무렵 학교앞 카페 ‘카사노바’에서 지배인 일을 하고 있을 때였다. 통금직전 具鳳書씨가 徐永春씨(86년 작고)등 연예인들과 함께 들러 徐씨의 노래를 청해 듣고 다음날 다시 TBC 쇼프로듀서와 함께 들러 徐씨를 소개했다. 그 다음날 곧바로 쇼쇼쇼에 출연한게 가수 생활의 시작이다. 그러다가 대학시절 핸드볼선수 경력을 살려 한동안 직장 핸드볼선수로 활약하며 안양예술인학교에서 묵고 있던 70년도 봄이었다. 신세계레코드사 작사가가 찾아왔다.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을 같이 본뒤 주제가 ‘어타임포어스(A time for us)’를 번안해 레코드를 취입하자고 했다. 쟁쟁한 가수들을 제치고 옴니버스 레코드 타이틀사진으로 실렸다. 노래가 히트하면서 방송국 프로듀서들이 ‘徐씨 모시기’ 경쟁에 나섰다. 이때는 매일 YWCA강당에서 ‘청개구리모임’을 갖던 시절. ‘청개구리’가 알려지면서 통기타 언더그라운드 계열 가수들이 모인게 바로 ‘맷돌’이다. 매주 수요일 명동 코리아나백화점 강당에서 자작곡 공연을 가졌는데 ‘군사독재반대’‘유신반대’의 목소리가 높았다. 결국 14회 공연도중 중앙정보부 요원들이 들이닥쳐 끝이 났다. 그리고 73년 4월 TBC 심야 라디오프로 ‘밤을 잊은 그대에게’ 진행을 맡았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그해 가을 러스크 미국 국무장관이 제2차 한국군 월남파병 압력차 방한했을 때다. 방송도중 UPI 종군기자의 월남전 참전미군의 만행을 기록한 ‘추악한 미국인’을 죽죽 읽어내렸다. 즉각 중앙정보부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잡으러 온다”는 말을 듣고 방송국 앞 목욕탕으로 도망,4일간 숨어 지냈다. 그리고 3년간 모든 활동이 철저하게 금지됐다. 그때 당국이 대마초사건을 핑계로 대중가수들을 줄줄이 묶어 들여 빈사상태에 빠진 연예계의 대안을 찾던중 徐씨를 대상으로 삼았다. 중앙정보부 요원들이 대전까지 내려와서 상경을 권유해 일단 서울로 올라왔다.그리고 당국의 통제를 시험해보기 위해 취입한 노래가 ‘가는 세월’이다. 그때 MBC 라디오에서 ‘정오의 희망곡’ 진행 제의가 들어왔다. 물론 당국의 입김이었다. 같은 방송 라디오프로 ‘안녕하십니까 서유석입니다’와 TV프로 ‘여의도1번지’를 맡아 인기가 치솟기 시작했다. 77년 ‘푸른 신호등’을 맡아 진행한지 1년쯤 됐을 무렵 청와대로부터 진행자 교체지시가 떨어졌다. 프로 시작전 항상 정치판과 사회비리를 강도높게 비판한게 문제였다. 그후 동아방송으로 옮겨 ‘명랑 교차로’를 맡았다가 시사풍자 코너 ‘형님 이래도 됩니까’로 인해 79년 단명으로 끝났다. 81년 ‘푸른 신호등’을 맡았고 이후 지난 15대 총선에서 무소속 출마때까지 이 프로를 진행했다. 15대 총선이 끝난뒤 지금까지 줄곧 교통방송 ‘출발서울대행진’을 맡고 있다. 교통관련 논문도 2편을 발표하고 (주)다물대표로 교통관련 기기를 2건이나 상품화하는 벤처사업가로 변신했다. “지난 70·80년대의 언더그라운드 통기타 가수들은 현실과 벗어난 노래를 부르기가 어색했습니다. 사회적으로 만연한 부조리 부도덕을 보고 메시지를 전달하려 하니 당연 제약이 많았고 음악계로서도 퇴보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가수 안혜경/반체제로 옥고 아버지에 영향/성악도서 운동권 가수 변신/계엄령 속에서도 민중가요 배포/여성밴드 결성 ‘저항 노래’ 1970년대말부터 지금까지 대학가에서 변함없이 불리는 ‘민주’란 노래가 있다. 운동권 노래의 고전중 하나지만 정작 이 노래를 만든 이의 이름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5인조 여성 록밴드 ‘마고’를 이끌고 있는 安惠敬씨(41). 이화여대 성악과 재학시절 노래운동에 뛰어든뒤 노동·여성·환경과 관련한 메시지 강한 노래들을 쉼 없이 발표해오고 있는 개성파다. ‘까치길’‘민주’‘황혼’ 등 초기의 노래에서 우리 역사와 사회의 모순들을 담았다면 ‘커피카피 아가씨’‘일이 필요해’에선 여성 노동문제의 심각성을 부각시켰다. 또 ‘침묵의 봄’‘검은 민들레’ 등은 환경오염을 다룬 것이고 ‘평화공원’‘너희나라를 위해’등은 반전평화의 메시지가 강렬하다. 모두 현실비판과 역사의식이 흠씬 밴 자작곡이다. “70년대 사회 부조리와 부패에 불만의 목소리를 높이던 아버님의 영향이 컸지요. 반체제적인 발언으로 옥고를 반복하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당부는 제삶을 지탱하는 기둥입니다”. 대학 입시를 앞두고 수감중이던 아버지에게 음악대 진학의 꿈을 알렸고 “대중을 위한 진정한 예술인이 돼라”는 아버지의 편지글을 가슴에 깊이 새겼다. 성악과에 진학해 현실과 동떨어진 귀족적인 음악에 반발했고 자신이 할 일에 대해 고민하던중 金敏基씨의 노래극 ‘공장의 불빛’에 참여한 게 노래운동의 시초. 1학년때 사전 정보누출로 불발에 그친 집회때문에 줄곧 정보과 형사들의 감시를 받아야만 했다. 레슨을 받으러 교수 집에 갈때도 항상 검은 색 짚차에 태워져 갈 정도였다. 졸업음악회 대신 혼자 작업한 노래 16곡을 담은 불법테이프를 만들어 선후배 동료들에게 돌렸다. ‘민주’도 여기에 실려 있다. 이 노래들이 자신도 모르게 대학 노래패들을 통해 퍼졌다. 80년도 대학 졸업후 바로 교사생활을시작했지만 노래 만들기를 중단하지 않았다. “계엄령이 내려진 가운데 TBC 방송국에서 ‘횃불’‘해방가’‘농민의 노래’ 등 민중가요 20곡을 숨죽이며 녹음해 배포했는데 이때는 정말 힘들었어요”. 청계천 복사가계에서 복사한 테이프 20여개를 돌렸고 임진각에 가서 통일을 생각하며 이 테이프 1개를 던졌다. 온산 여천공단의 오염실태를 고발한 마당극 ‘청산리 벽폐수야’ 금지도 잊지못할 일. 공연윤리위원회에 심의를 냈는데 전면 공연금지 지시가 떨어졌다. 결국 워크샵 형식을 가장해 서울 아현동 애오개소극장에서 4회공연을 어렵게 가졌다. 87년부터는 여성 환경 시민단체와 연계해 대학 교회무대와 소극장 운동을 벌였다. 92년 첫 공식 음반 ‘여성 환경 노래’를 출반했는데 이때도 노래 ‘평화공원에서’가 탈락됐다. 그리고 95년 2집 음반부터는 비교적 편한 음악을 택해 실었다고 한다. 지난해 여성5인조 록밴드 ‘마고’를 조직해 전국을 다니고 있고 지난 91년 결성된 ‘여성문화예술’에도 기획위원을 맡아 문화운동을 계속하고 있다. 물론솔로로 전국의 공연장을 다니며 공연을 병행한다. 성악과 출신이면서 운동권 가수로 방향을 잡았고 일부러 고전악기를 배웠다는 安씨. 1남1녀의 자녀를 둔 주부 가수지만 남자들만의 영역이란 편견을 깨기 위해 베이스 기타를 배워 그룹 마고에서 베이스를 맡고 있는 고집센 여성이다. 앞으로 계획이 무엇이냐는 질문엔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원하는 것에 달려들 것”이란 말로 대신했다.
  • 총무원장 3선 “반대”·“지지” 양분

    ◎반­‘1차 중임’ 종헌 규정어긴 반개혁적 행동/찬­“신군부에 의해 강제 퇴임”… 3선 해당안돼 송월주 현 총무원장의 3선출마를 저지하기 위해 지난달 29일 발족한 ‘송월주 총무원장 3선출마 반대를 위한 범불교도연대회의’(공동대표 청화 실천불교전국승가회 대표)는 발족 기자회견에서 “29대 총무원장선거는 94년 이후 종단의 개혁불사를 평가하는 중대한 의미를 갖는만큼 개혁의 원칙에 입각한 여법한 과정이 돼야 한다”고 전제하고 “송원장의 3선출마는 ‘1차에 한해 중임할 수 있다’고 규정한 종헌을 짓밟는 반개혁적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연대회의는 이어 “94년 종단 개혁불사가 서의현 전 총무원장의 무리한 3선 강행에서 비롯됐음을 상기하고 송원장은 종단의 화합과 안정을 위해 불출마 의지를 내외에 천명할 것’을 요구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아적 이해에 집착해 3선을 강행한다면 전면적인 반대운동을 전개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한편 1일 불교신문에 연대회의측의 기자회견에 대한 반박 광고를 게재함으로써 실체를 드러낸 ‘송원장 추대준비위원회’(위원장 성타 스님.불국사 주지)는 이 광고에서 통해 연대회의의 주장을 “근거없는 음해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추대준비위는 “종헌의 중임 횟수 제한 규정은 장기집권에 따른 폐해를 막기 위한 것으로 80년 신군부에 의해 강제 퇴임됐던 송원장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전제한 뒤 “종단이 안정을 되찾고 사회적 위상을 높일 수 있었던 데는 현 집행부의 노력이 절대적”이었다고 주장했다.
  • 내년부터 바뀌는 공무원 보수체계

    ◎최고·최저액 정해 한도내 연봉 산정/올 총액 대비 4.5% 삭감 수준서 결정/직급별로 A·B등급 분류 직무평가/경찰·소방직도 포함 1,483명 대상 정부가 내년부터 바꾸기로 한 보수체계는 연봉제와 성과 상여금제로 크게 나뉜다.3급 국장급 이상에서 1급까지는 연봉제를,3급 과장과 4급 이하는 성과 상여금제가 적용된다.행자부가 준비중인 시안을 토대로 연봉제와 성과 상여금 제도가 어떤 것인지를 알아본다. ▷연봉제(3급 국장급 이상)◁ 3급 국장급 이상의 경우,직무급적 연봉제라 할 수 있다.계급적 요소를 현행처럼 인정한다는 것이다.직급이 높은 사람은 그만큼 하는 일도 중요하고 어렵다는 차원에서다. 시안에 따르면 이들 연봉제 적용 대상 공무원들의 99년 연봉은 정부가 올해 총액 대비 4.5% 삭감한 수준에서 정해진다.내년 연봉 산정의 기준이 되는 올해 업무실적을 평가할 만한 객관적 근거자료가 없기 때문이다.경찰 및 소방공무원을 포함,일반직 3급 국장급 이상은 5월 말 현재 1,483명이다. 그러나 이들의 연봉은 최저 및 최고 한계액을 설정,이 한도 내에서 결정토록 했다.무분별한 가감을 방지하겠다는 취지다. 또 직무평가제를 도입,맡고 있는 직무의 비중에 따라 연봉한계액을 차별화 했다.여기에다 현행 국가공무원법이 계급제를 토대로 하고 있는 점을 감안, 각 직급별로 A·B 2가지 등급으로 분류해 직무평가를 하기로 했다.높은 점수를 받은 자리는 A등급을 주고 나머지는 B등급을 주되,A등급으로 몰리지 않도록 5대 5로 배분할 방침이다. ○현행 계급적 요소 인정 그러나 같은 직급에서는 실제 받는 보수가 비슷해 각 등급별 연봉한계액은 약 80% 정도가 중복되도록 했다. 직무는 위원장을 각 부처 차관이나 청장으로 하고,소속 실국장급 이상 가운데 장관이 지명하는 사람을 위원으로 하는 직무평가위원회에서 평가한다. 평가 요소는 직급·직무성질이 45∼20% △부하직원과 예산의 규모 등에 따른 자원관리가 20% △책임성,판단력,영향력이 각각 10%씩 △자격·경험 정도가 5%로 각각 구성되어 있다. 이 가운데 직무성질은 점수가 직급에 따라 정해진다.현행 국가공무원법 4조에 계급제가 엄연히 있기 때문이다.1급은 40∼45점,2급은 33∼38점,3급은 20∼25점씩으로 차등 배정해 계급제 요소를 감안했다. 나머지 요소는 10점 만점을 기준으로 직위가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인지,국가전체에 미칠 정도로 포괄적인지 여부 등을 따져 10,8,6,4,2점씩 차등 배분토록 했다. 이렇게 해서 산정되는 직무평가 점수는 차관보와 실장 자리의 직무점수를 최고 100점까지 배정할 수 있도록 한 뒤,최저 30점까지 배정했다. 예를 들어 세제심의관 자리가 직무평가 결과,직무성질 20점에 부하직원과 예산규모 등에 따른 자원관리 점수가 10점 만점에 6점,책임성이 10점 만점에 4점하는 식으로 계산해서 50점이 나왔다고 가정해 보자. ○직무평가위서 결정 이럴 경우,세제심의관 자리는 3급 B등급에 해당돼 이 자리에 간 공무원은 3,500만∼4,500만원 한도내에서 성과에 따라 다음해 연봉이 결정되는 것이다. 2∼4급은 목표관리제에 의한 점수가 그대로 원용된다.목표관리제에 의한 점수가 자신의 연봉산정에 결정적인 작용을 하는 셈이다. 목표관리제에 의한 평가점수는탁월,우수,보통,미흡,부진 등 5단계로 나누었다. 이 등급 가운데 한 등급을 부여받으면 이에 따라 다음해 연봉이 결정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현재 4,500만원을 받는 洪길동이라는 2급 국장이 직무평가를 거쳐 2급 A등급에 속하게 됐다고 가정해 보자. 洪국장이 1년간 열심히 일해 내년 11월 말 목표관리제에 의한 점수로 ‘탁월’등급을 받았다고 하면 洪국장의 2000년도 연봉은 올해보다 높아질 수 있는 것이다. 행자부는 그러나 평가등급별 봉급인상의 가감폭을 몇 %로 할지 그리고 이 인상률을 직급별로 적용할 지,아니면 직급 구분없이 1∼3급 전체 공무원을 대상으로 할 지 여부는 아직 정하지 않은 상태다.나아가 가감폭을 기초급과 능력급(직무급) 가운데 어떤 것을 기준으로 할 지도 아직 정하지 못한 상태다. 한편 내년부터 보수명세서는 2종류가 된다.현재처럼 다달이 나오는 명세서 외에 연봉명세서가 추가되는 것이다. 연봉명세서에는 전년도 업무실적에 따라 새로 산정되는 내년도 연봉액과 전년도 연봉액이 표시된다.즉 3급 이상 공무원들은 오는12월 말이나 내년 1월 초에 올해 임금수준 대비 4.5% 삭감된 99년도 연봉명세서를 받는다.99년 12월이나 2000년 1월 초에 나갈 2000년 연봉명세서에는 전년도인 99년 연봉과 2000년 연봉액이 명시된다. 다달이 나오는 보수명세서의 경우,그 내용이 완전히 바뀐다. 현행 보수체계에 들어있는 가족수당,자녀학비 보조수당,연가 보상비,특수 업무수당만 그대로 수당으로 남고 나머지 기본급과 정액으로 지급되는 교통비·급식비 등은 모두 기초급과 능력급(직무급)과 가감급으로 이름이 바뀐다. ○2∼4급은 목표관리제 가감급은 연봉제의 핵심으로 연봉제 적용대상 공무원의 직무평가 점수에 따라 상위 몇 %는 올해 연봉보다 몇 % 인상하는 식으로 내년도 연봉산정의 기준이 된다. 한편 계약직에서 새로 1∼3급으로 들어오는 경우에는 각 직급의 최저연봉액을 지급한다.새롭게 공무를 수행하게 되는 만큼 능력검증에 시간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예를 들어 2급으로 들어올 경우,B등급의 최저액인 4,000만원이 된다는 얘기다. ◎성과 상여금/3급 과장급 이상 현재 호봉 그대로 적용/4급 이하 상위 10%에 특별상여 200% 3급 과장급 이하 공무원들에게 적용된다. 현재와 보수체계는 크게 바뀌지않는다. 현재처럼 호봉도 그대로 적용되고 기본급과 복리후생비, 각종 수당에다 성과 상여금만 대폭 추가된다고 보면된다. 현재의 특별상여 수당은 95년 1월부터 4급 이하 공무원 가운데 근무성적이 우수한 상위 10%에게 지급하되,상위 3%에게는 기본급의 100%를,4∼7%에게는 75%를,8∼10%는 50%를 지급하고 있다. 그러나 내년부터는 상위 10%에는 기본급의 200%를,11∼25%는 100%,26∼50%는 50%를 지급한다. 이에 따라 올해 120억원이던 특별상여수당은 내년에는 성과 상여금이란 이름으로 2,800억원 정도 지급될 예정이다. 나머지는 상여금이 전혀없다. 즉 부 이사관급 과장을 포함한 4급이하는 2명 가운데 1명은 성과 상여금을 못받게 되는 것이다. 평가는 직급에 따라 다르다.4급은 목표관리제에 의한 점수를 기준으로 특별상여금 지급여부를 결정한다. 반면 5급 이하는 여기에다 플러스 알파가 적용된다.목표관리제가 특정 목표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어 일상적으로 반복해야 할 일에 대한 근무태도 등을 따로 반영한다는 것이다. 행자부는 그러나 5급 이하의 경우,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이 플러스 알파를 적용할 지 정하지 않은 상태다. ◎준비상황/계급·직무 혼합한 ‘직무급적 연봉제’로/3급 이상 인상평정 없어 공정평가 무리 연봉제는 과연 제대로 시행될 수 있을까.정부는 내년부터 연봉제를 전격 시행한다고 밝힌 상태다. 연봉제는 연공서열 위주의 우리나라 공직사회에 A급 태풍과 같은 엄청난 파급효과를 가져올 전망이다.기본적으로 일을 잘하면 지금보다 돈을 더 많이 받을 수 있는 반면 못하면 적게 받게 되기 때문이다. 현재로서는 연봉제가 내년에 제대로 시행되기는 어렵지 않겠느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우선 실무적으로 먼저 해결돼야할 문제점이 많다는 지적이다.현행 계급제를 그대로 유지한 상태에서 연봉제를 실시한다는 게 무리라는 설명이다. 즉 사람 중심의 현행 계급제 아래서 일 중심의 직무평가를 제대로하기가 어렵다는 주장이다. 계급과 직무를 혼합한 어중간한 형태의 직무급적 연봉제가 과연 본래의 도입취지를 살리겠느냐는 의문이다. 이와 함께 최종 보수월액을 기준으로 연금을 지급한다는 현행 공무원연금법도 개정돼야 한다는 설명이다.보수월액을 산정하는 한 요소인 봉급은 기본적으로 계급과 호봉에 따라 산정되고 있어 연금법을 개정해야 제대로 된 연봉제를 시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연봉제를 성공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공정한 평가가 가장 중요하지만 이에대한 대비책이 없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연봉제가 적용될 3급 이상의 공무원에 대해서는 현재 아무런 인사평정을 하지 않고 있다. 현재는 4급 이하만 인사고과를 하고 있다.4급은 참모형 지휘형 등 자유 기술형으로 평정하고 5급 이하는 탁월·우수 등 점수제로 인사고과를 하고 있다. 이런 실정에서 3급 이상을 목표관리제에 의한 평가를 한다고 하더라도 과연 그동안의 동양적인 온정주의와 연공서열 위주의 사고방식을 떨쳐 버리고 객관적인 평가를 할 수 있을 지 의문시된다는 것이다.이 때문에 행자부 인사기획과의 담당자는 “그동안 아무런 평가를 하지 않다가 2∼3개월간의 시범운용만으로 공정한 평가를 하기란 쉽지 않아 연봉제를 차라리 2000년부터 시행했으면 좋겠다”고 말할 정도다. 행자부의 金明植 급여과장은 이에대해 “연봉제를 시행하려면 행정개혁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계급제를 없애야 하나 현행 체제로서는 계급적 요소를 감안하지 않을 수 없어 직무평가에 따른 연봉 한계액을 어떤 범위로 할 지 고민중”이라면서 “그러나 정부에서 내년부터 연봉제 도입을 하기로 한 이상 최대한 문제점이 생기지 않도록 준비하는 수밖에 없다”고 불가피성을 강조했다.
  • 적과 내통하는 반역아들/金三雄 주필(時論)

    매국노에는 여러 유형이 있다. 이완용과 송병준처럼 외적에게 나라를 판무리가 있는가 하면 적국에 빌붙어 모국을 침략하는 국적도 있다. 고구려 연개소문의 맏아들 男生은 대표적 국적의 하나다. 동생들과의 세력 다툼에서 밀리자 당나라로 도망쳐 적군을 이끌고 와서 형제를 치고 모국을 멸망시켰다. 내외의 정세를 간파한 연개소문이 사망하기 직전 아들 3형제에게 “너희 형제는 서로 사랑하기를 물과 물고기처럼 하거라. 화살이 합치면 강하고 이를 나누면 부러진다”(환단고기)는 유언까지 남겼지만 권력에 눈이 먼 자식들은 골육상쟁끝에 남생의 반역으로 가문과 나라의 멸망을 불러왔다. 조선조 연산군때의 姜弘立은 명나라 원군 요청을 받고 오도원수(五道元帥)에 임명된 장수였다. 임진란 당시 명나라의 은고를 입은 조정은 그를 원정군 사령관으로 삼아 후금(後金)의 징벌에 나섰다. 그러나 명(明)·조(朝)연합군은 일패도지하고, 강홍립은 후금에 투항했다. 일설에는 당시 정세를 꿰뚫은 연산군이 기회를 보아 후금에 합세하라는 밀지 때문이었다고는하지만, 문제는 그후 일어난 일이다. 후금 정벌에 나섰던 강홍립이 적군의 선봉장으로 모국을 친 것이다. 일신의 이해로 적국에 빌붙고 적병을 끌어 모국을 치는 반역행위는 그러나 옛 역사 이야기만은 아니다. ○용공음해 뒤편서 적과 내통 지난해 대선은 과거 어느 선거에 못지않은 이른바 ‘사상논쟁’으로 시종했다. 김대중 후보에 대한 용공음해가 핵심 쟁점이었다. 당시 여권이 총동원되어 융단폭격을 가했다. 북측과 가깝지 않으냐는 음해였던 것이다. 이런 이면에서 지금 재판중인 권영해 안기부장이 벌인 용공조작은 ‘적과의 동침’을 주제로 하는 한편의 첩보영화를 방불케 한다. 상대를 용공으로 매도하면서 뒤편에서 벌인, 적과 내통하는 파렴치성과 반국가행위는 용서받기 어려운 범죄다. 입만 열면 반공과 안보를 떠드는 자들이 권력을 잡기 위해 적과도 서슴지 않고 내통하는 범죄는 이적행위 바로 그것이다. ○북한군에 총격요청이라니 그나마 이런 행위는 ‘적대적 공조’ 관계의 고전적 수법이라 한다. 권력에 환장한 자들이 ‘선거용’으로북한군에게 판문점에서 총격을 요청했다니, 이들의 타락과 반국가 행위가 어디까지일지 망연할 따름이다. 그것도 이회창 후보의 친동생과 비선그룹에서 자행된 음모라는 데는 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 과거 선거때나 주요시국이면 어김없이 벌어진 안보사건이 모두 이렇게 북한과 내통하여 ‘짜고 친 고스톱’이었단 말인가. 김현희의 대한항공기 폭파사건과 15대 총선때 판문점북한군총격사건도 ‘적과 내통’한 각본이었는가? 검찰은 북한군총격요청사건을 한점 의혹 없이 규명해야 한다. 배후를 밝히고 사실로 드러나면 관련자 모두를 외환(外患)죄로 엄벌해야 한다. 단순히 선거에 이기기 위해 우리 아들 딸들에게 총을 쏘라고 거래한 반역자들, 자칫 전쟁으로까지 치달을지 모를 도박을 벌인 모험주의자들을 뿌리뽑아야 한다. 국기를 흔드는 엄청난 이적행위가 관련자들의 ‘고문’ 주장으로 희석되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노릇이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피의자들에게 고문을 했단 말인가. 고문이 자작극이거나 허위로 드러나면 그 교활성도 단죄해야 한다. 북한군총격요청사건은 매국 이적행위다. 결코 ‘고문’ 문제로 양비론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고구려 멸망의 아픔과 정묘호란의 비극을 되풀이할 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
  • 7·9급 공채 합격자 임용시기 고심

    ◎지금 발령내면 기존 잉여인력 재배치 곤란/행자부 “임용전 수습 등 활용방안 마련할 것” 정부가 지난해 국가직 공무원 공채시험에 합격한 ‘예비 공무원’의 임용시기를 정하는 데 고심하고 있다. 일부 직렬을 제외하면 대다수 임용대기자의 연내 발령이 가능한 상황이지만 이들을 임용하면 공직구조조정 과정에서 발생한 상당수 잉여인력의 재배치가 사실상 어려워진다.각 부처가 다른 부처 출신의 잉여인력보다는 신규임용자를 원할 것이 불을 보듯 환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국가공무원 공채에 합격한 사람은 7급이 512명,9급이 2,129명이다. 이 가운데 7급 330명과 9급 401명이 아직 임용되지 못하고 있다. 대기기간이 길어지자 임용후보자들은 “결원이 있는데도 발령이 안나는 것은 우리를 구조조정의 희생양으로 삼으려는 것이 아니냐”며 적지않은 불안감을 표시하고 있다. 이에 대해 행자부 관계자는 27일 “국가공무원 공채는 기본적으로 다음해 1년 동안에 걸쳐 임용할 사람을 전해에 선발하는 것”이라면서 “그러나 최근에는 다음해 봄에 일괄 소화한 경우가 많아 올 대기자들이 불안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난해 공채합격자는 산술적으로는 전원을 당장 임용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직권면직될 위기에 있는 잉여인력을 최대한 구제하기 위해 일단은 ‘임용전 수습’으로 활용할 것”이라면서 “합격자들이 임용되지 않는 일은 없을 것인 만큼 불안해하지 말고 임용준비에 힘써 달라”고 당부했다. 한편 지난해 공채 합격자로 현재 임용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을 직렬별로 보면 7급이 행정직 144명,철도행정직 20명,세무 26명,관세 16명,외무행정 9명,소년보호와 교정 각 2명,기계 28명,전기 18명,화공 3명,토목 30명,건축 24명이다. 또 9급 대기자는 세무 154명,정보통신 행정 23명,농림 행정 16명,교정 4명,소년보 82명,검찰사무 39명,출입국관리 64명,기계 6명,농업 11명 등이다.
  • ‘품바’ 제작·연출 김시라(금지문화금지인생 이제야 말한다:10)

    ◎따끔한 풍자 뜨끔한 군정 따가운 ‘압력’/‘광주’ 작품부터 당국서 험한 눈길/통일타령 ‘남바’ 막조차 못 올려/해외무대도 숱한 훼방 시련/‘18년간 4,000회’ 최다공연 금자탑 “어허 품바 잘도 헌다/어허 품바 잘도 헌다/일자나 한장 들고나 보니/일각이 여삼춘디/40분단이 웬말이냐/두이 이자를 들고나 보니/이화 도화는 만발헌디/이산민족이 슬피운다/…중략…/장하도다 우리민족/평화통일을 기다린다/어허 품바가 잘도 헌다/어허 품바가 잘도 헌다”(金詩羅작·연출 품바중 통일품바타령) 지난 81년 첫 선을 보인 뒤 18년간 꾸준히 무대에 오르고 있는 1인극 ‘품바’.전남 무안에서 시작돼 광주를 거쳐 서울과 해외까지 진출,공연회수 4,000회로 국내 최다 공연작이 됐다. 무안 거지촌인 ‘천사촌’의 거지대장이던 천장근의 일생을 연극화한 ‘품바’는 소외되고 억울한 사람들의 애환과 한을 통해 베품의 철학을 강조한 순 ‘우리 연극’.무대와 객석의 분리를 보이는 서양연극과 달리 관객과 배우가 하나가 되는 우리의 전통 연희(演戱)형식을 띠면서 비극을 희극으로 승화시키는 묘한 정서를 갖고 있다.광주 민중항쟁에서 억울하게 희생된 이들의 넋을 달래기 위해 만든만큼 그 기본정서는 틀림없이 ‘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품바’는 시대가 변하면서 노동자들의 외침을,때로는 의문사의 규명을,그리고 통일에의 꿈을 사설과 타령으로 절실하게 풀어내는 상황극으로 자리잡아갔던 것이다. ‘품바’의 성격이 그랬던만큼 이 작품을 처음 만들고 유지해 오고 있는 시인 겸 연출자인 金詩羅씨(53)의 삶도 평탄치가 않다.그는 25세때 서울서 대학생활을 하다 귀향해 대학생을 중심으로 ‘인의예술회’를 만들어 연극제를 열기 시작했다.해마다 연극제를 열던중 광주항쟁의 참상을 듣고 81년 3회 연극제때 무안군 일로면 공회당서 마을 사람들을 대상으로 무대에 올린 게 바로 ‘품바’다. 소문이 나면서 광주로 진출해 가진 소극장과 상공회의소 공연에서부터 공연장에 경찰과 정보원들이 들이닥쳤고 이후 적지않은 사연들을 겪게 된다.고향 문인들의 주선으로 서울 말뚝이소극장에서 공연을 갖던 84년 당시 재야민권운동가 咸錫憲씨(1989년 작고)를 만난뒤 큰 변화를 맞았다.공연장을 찾은 咸씨로부터 “이것이 우리 연극이다.자네가 우리 연극을 살렸네”라는 격려와 함께 ‘한쪽에 치우치지 말고 살라’는 당부의 말을 들었다.咸씨와 교류하면서부터 공연장에 ‘정체모를 사람들’의 출입이 더해갔다. 그리고 2년뒤인 86년 마침내 공연금지의 어려운 상황을 맞게 됐다.85년부터 일본과 미국 교포들의 공연 초빙이 잇따랐지만 공연내용을 문제삼은 당국의 방해로 번번이 좌절돼 고민하고 있던 참이었다.86년 4월 방언연극제에 출품할 ‘남바’ 공연에 앞서 공연윤리위원회(공륜)에 심사를 신청해 놓고 막바지 연습에 몰두하고 있었다.‘남바’는 우리 민족의 주체적인 통일운동을 남도사투리로 풀어내는 ‘품바’의 변형으로 金씨의 기대가 각별했었다. 공연을 1주일 앞둔 어느 날 괴 전화가 걸려왔다.‘남바’의 내용을 꼬치꼬치 물으면서 “아직 때가 아니다”라는 말을 남겼다.다음날 신원을 알 수 없는 두 사람이 극장에 들이닥쳐 “겁이 없다”며 욕설을 퍼붓고는사라졌다. 그리고 다음날 공륜으로부터 ‘전면 공연금지’ 판정을 받았다. 그리고 그 다음해 여름 서독공연이 좌절됐다.재독 교수클럽과 한인회가 주선한 초청공연이었다.현지에선 포스터가 나붙고 방송에서까지 예고방송이 나온 상태였다.출국 이틀전 느닷없이 기획자로부터 출국을 못하게 됐다는 말을 들었다.‘품바’ 공연을 놓고 주독 한국대사와 영사의 말다툼이 있었고 결국 공연이 좌절됐다는 말만을 나중에 전해들었을 뿐이었다.결국 ‘품바’ 대신 여류 무용가 金三眞씨가 현지 교민들을 위로하는 공연으로 대체됐다. 87년 12월부터 그 이듬해 2월까지 열렸던 미주공연에서 또 한번 씁쓸한 실망감을 가져야만 했다.미주 한인회의 주선으로 마련된 로스엔젤레스·뉴욕·하와이·샌프란시스코 등 9개 도시 순회공연이었다.기대감에 부풀어 서울을 떠나 LA공항에 도착했는데 입국 심사대에서 입국을 막는 것이었다.나중에 알고보니 한국 영사관의 조치가 있었다는 것이었다.결국 모 언론사 현지 총국장의 노력으로 통과는 됐지만 공연내내 허무한 마음을 달랠수가 없었다.계속되는 정보 요원들의 감시도 견디기가 힘든 것이었다. 金씨가 ‘품바’를 위해 만든 극단 이름은 ‘가가’.이 극단 명칭에 얽힌 사연도 복잡하다.86년 서울시청에 극단 창설에 따른 신청을 수차례 냈으나 번번이 거부당했다.요주의 인물로 낙인된 극단주의 이름 ‘金詩羅’가 문제였다.결국 정보 관련 기관에서 일했던 선배의 도움으로 해결됐다.내놓는 이름마다 퇴짜를 맞자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낸 명칭 ‘가가대소’의 줄임말이 바로 ‘가가’다. 18년간 공연 4,000회란 기록을 남긴 모노 드라마 ‘품바’.등장하는 각설이 품바도 1대 丁奎秀씨부터 시작해 지금은 11대 품바가 대를 이어 무대에 오르고 있다.세월의 변화에 따라 예리한 풍자와 걸죽한 입담으로 관객들을 울리고 웃겼던 ‘품바’ 연출자 金詩羅씨는 요즘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그동안 써놓은 시 180편을 시집으로 엮어냈고 내년 공연을 목표로 33명이 출연하는 대형 품바 놀이굿판을 구상하고 있다. “품바는 일제 식민지 시대부터 자유당 말기까지 살았던 실존인물 각설이대장의 일대기를 뼈대로 하고 있지만 억압받는 민중의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모습을 담아내려 애썼습니다.공연 과정에서 어려움이 많았지만 날카로운 비판이 담겼기에 장수하게 됐다고도 생각합니다.이제부터는 민중과의 일체감을 통일과 환경문제로 발전시킬 계획입니다” ◎그의 길 ▲1945년 전남 무안 출생. ▲64년 목포고 졸업. ▲69년 하나님의교회신학대 졸업. ▲81년 무안 일로 공회당서 ‘품바’ 초연. ▲82년 광주 소극장·상공회의소 공연. ▲83년 서울 말뚝이소극장 공연. ▲86년 ‘남바’ 공연 연습중 금지.극단 가가 창단. ▲87년말∼88년초 미국 9개도시 순회공연. ▲88년 한국백상예술대상 특별감독상 수상. ▲92년 품바전용극장 ‘왕과 시’ 마련. ▲93년 강강술래 소극장 개관. ▲98년 호암아트홀서 ‘품바’ 4,000회 기념공연.시집 ‘방언시집’‘상황시집’‘시민시집’ 출간.
  • 白堊館 포르노(林春雄 칼럼)

    70년대 후반,지미 카터 대통령 시절이다.카터 대통령의 결혼한 아들과 며느리가 백악관에서 얼마동안 함께 생활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져 문제가 됐다. 대통령과 부인,미혼 자녀들의 백악관 생활비는 정부가 지불할 수 있으나 결혼한 자녀의 생활비까지 국민의 세금으로 낼 수는 없지 않느냐는 의문의 제기였다.이 문제가 언론의 시빗거리가 되자 대통령이 기자들 앞에 나와 아들 가족의 생활비는 개인적으로 지불하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한 식탁에서 밥을 먹은 대통령과 아들의 식비를 어떻게 나누어 냈는지 후문은 전해듣지 못했으나 백악관은 그러고야 무사했다.석유파동때는 겨울을 앞두고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에너지 절약을 호소한 바 있었다.공교롭게도 그해 겨울 백악관 난방비가 전년에 비해 더 많이 지출됐다는 사실이 다음해 봄에 밝혀졌다.대통령은 이 문제에도 공개적으로 사과를 해야했다. ○사생활과 대통령직 수행 백악관이란 그런 곳이다.수백명의 기자들이 24시간 초롱초롱 눈망울을 굴리고 있고 세계의 촉각이 모아져 있는 매우 특별한 곳이다.이런 백악관에서 대통령이 백주,그것도 근무시간에 젊은 여직원과 일을 벌였다.대통령의 도덕성이 문제인 것은 무론(無論)이거니와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대통령의 판단력이다.그런 일을 하고도 무사하리라고 생각했다면 큰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다수 미국민들은 아직도 대통령의 사생활은 사생활이고 대통령직 수행은 별개라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이런 점은 항상 점잖은 한국 사람들로서는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일면이다.미국사람들이 얼마나 실용적인가를 보여주는 실례라 할 것이다.미국의 이같은 실용주의가 과연 언제까지 유효할 것인지 두고 볼 일이다. 이번 사건을 보고 어떤 칼럼니스트는 “미국식 자본주의의 종말”이라고 우려했다.미국의 상업주의가 사태를 이토록 키워놓았다는 것이다.백악관의 그 순결한 이미지는 어떻게 할 것이며 미국의 지도력은 또 얼마나 손상됐는가. 프랑스의 르몽드지는 ‘미국식 지옥’이란 사설에서 클린턴 대통령의 위증을 입증하기 위해 그토록 수치스럽고 혐오스런 성행위 내용을 세밀하게 묘사해야 하느냐고 반문하고 있다.케네스 스타 검사는 이같은 ‘백악관 포르노’를 제작해 내기 위해 물경 400만달러의 국민세금을 추가해 소진(消盡)했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악역을 한 것은 역시 언론이다.음란한 용어가 무려 5,000자나 포함된 보고서 내용을 그대로 보도한 것이다.공개하지 않기로 했던 클린턴의 대배심증언마저 끝내는 방송되고 말았다.이런 저런 변명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언론의 추악한 상업성이다. ○위험 천만한 언론 상업성 평소 어느 신문이 이런 유의 내용을 활자화했다면 “비열한 선정주의”라고 필시 펄펄 뛰었을 미국의 권위지들도 대통령의 일이란 이름으로 아무런 죄의식 없이 모든 것을 활자화했다.음란성 표현을 삼가야 한다는 것은 공익 언론의 기초적인 상식에 속하는 일이다.일반의 것은 안되고 백악관의 것은 괜찮을 성질의 일이 아니다. 한국언론도 마찬가지다.세계에서 가장 엄격한 신문윤리 규정을 갖고 있는 한국의 신문들은 한국의 문화적 현실을 고려해 적절치 못한 용어는 다소 완화해 소개한다는 단서를 달았지만 결국 쓸 것은 다 썼다. 이번 사건이 세계에 전하는 메시지가 적지 않다.특히 상업언론에 주는 경고를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 역사의 거울(金三雄 칼럼)

    역사를 옛 사람들은 통감(通鑑)이라 했다.과거사를 거울 삼아 오늘을 비춰 보고 내일을 설계한다는 뜻이었다.강목(綱目)이라고도 했다.역사에 역행하는 사람(일)을 놓치지 않는다는 교훈적 의미다. 불교의 정파리경(淨璃鏡)은 염라대왕의 궁전에 걸린 큰 거울이다.이 거울은 죽은 사람이 생전에 행한 선악의 소업(所業)을 빠짐없이 나타낸다고 한다. 노자는 천지도(天之道)에서‘천망론(天網論)’을 폈다.‘천망회회(天網恢恢) 소이불실(疎而不失)’즉 “천망은 하늘의 그물이니 옳고 그름을 심판한다.촘촘하지는 못하나 결코 놓치지는 않는다”란 뜻이다. ‘역사의 아버지’로 불리는 헤로도투스가 처음으로 사용한 그리어스 historia의 의미는‘진실을 찾아내는 일’이란 뜻이었다.허신(許愼)은 역사의 사(史)는 ‘사(事)를 기록하는 사람’으로 풀이,史의 뜻을‘바르게 기록하는 손’의 의미를 썼다. 역사의 산물인 인간은 역사의 엄숙성을 깨달아야 한다.‘역사의 엄숙성’과 관련,찰스 비어드는 “역사 서술은 일종의 신념 행위”라고 정의했다.어떠한 역사적사건이나 위대한 인물에 대한 기록이라도 시대가 달라지면 비판 대상이 되고 재평가하는 것이 역사의 신념 행위다. 역사처럼 무서운 존재는 다시 없다.평범한 사람은 죽어 정파리경에 비치는 죄업에 따라 심판을 받으면 되겠지만 지도자들은 이와 함께 하늘의 그물과 역사의 심판이 별도로 따른다. 과거에는 역사의 심판에 많은 시간이 걸렸는데 현대는 인지와 과학문명 발달로 기간이 아주 짧아졌다.‘10년 세도’도 옛말이 된다.그만큼 역사는 무서운 속도로 엄격한 심판관으로 우리 곁에 다가왔다. ○역사 우습게 아는 무리 역사를 우습게 아는 자들이 있다.이런 자들이 국민을 대수롭게 여길 리는 없다.‘당대주의자(當代主義者)’라 불러야 할 이들은 역사의식이나 사명 따위에는 담을 쌓고 철저한 출세주의와 동물적 쾌락을 탐닉한다. 국민의 피를 먹고 사는 독재자,주권을 농락하는 부패정치인,땀을 빼앗는 악덕 기업인,혼을 훔치는 사이비종교인·교육자,판단을 왜곡시키는 곡필언론인·지식인을 대표적 당대주의자라 할 것이다. 요즘 우리 정치 현상을둘러보면 새삼 역사 의미를 생각게 한다.군사독재 시절 민주인사들이 피와 땀과 눈물을 흘리면서 반독재 투쟁을 벌일 때 독재집단이었거나 양지쪽에서 이를 방관하던 이들이 반성도 없이 ‘민주수호’‘독재규탄’을 절규한다.국세청을 동원하여 세금을 도둑질하고 각종 이권에 개입하여 거금을 갈취한 부패정치인들까지 나선다.해방 후 친일파들이 반공과 안보를 내세우며 독립운동가들을 몰아치던 모습과 어쩌면 저리 닮았는지 실소를 금할 수가 없다.친일 언론인들이 독립운동가들을 음해하던 모습과도 비슷하다.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것은 교훈을 찾자는 데 있다.키케로가 역사를 ‘인생의 교사’라고 주장하면서 “우리가 만일 태어나기 전에 일어난 일들을 알지 못하면 영원히 어린아이로 머물러 있을 것”이라고 한 것도 이 때문이다. ○천망에 걸린 부패정치인 역사는 거울이고 그물이다.선악,정사,진위를 가르고 심판한다.국민의 생활을 가을걷이는커녕 쭉정이로 만들어 놓은 자들은 먼저 역사 앞에 참회해야 한다.돈 먹고 법망(法網)에 걸린 자들은 역사의 천망으로 깨닫고 반성해야 한다. 감옥의‘감(監)’자가 거울에서 비롯된 의미를 알아야 한다.사람이 누워서(臥) 그릇(皿)을 쳐다보고 있는 형상은 무엇을 뜻하는가. 항상 새롭게 쓰이고 평가되는 역사는 인간이 기대는 마지막 정의의 언덕이고 진실의 평원이다.‘역사의 거울’의 의미를 바로 알았으면 한다.
  • 제2건국 범국민운동­지향점

    ◎제도·의식·생활 3대 개혁 역점/자유·정의·효율 바탕 영파워 집결/‘모두 한형제’ 동서화합운동 병행 제2 건국의 최종 목표는 ‘기본이 바로 선 나라’에 있다.이를 위한 3대 원리는 자유·정의·효율이며,실질개혁과 국민주체,그리고 솔선수범이라는 3대 원칙속에서 진행하도록 규정되어 있다.분배적 평등에 기초한 정의를 추구하면서도 경쟁을 바탕에 둔 효율을 강조하고,국민 모두가 개혁의 주체여야 하는 아래로부터의 개혁이면서도 지도층이 솔선수범해야 한다는 어찌보면 상충된 가치체계이다.金大中 대통령의 국정운영 철학의 ‘완벽주의’를 엿볼 수 있는 대목으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과 연결된다. 관계자들은 그래서 제2건국을 개발독재시대의 낡은 패러다임을 변화시키기 위한 ‘한국판 르네상스 운동’이라고 통칭한다.즉 총제적인 제도 및 의식개혁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관행처럼 굳어진 권위주의와 평균주의·획일주의·연고주의를 청산하고 밑에서부터 개방성·다양성·유연성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역사적 대전환을 뜻한다.제도로써 미완의 과제를 완성하고,이를 정착시키기 위해서 의식·발상의 변혁을 이루어야 한다는 당위론이다. 이는 제2 건국이 당장 오늘이 아닌 21세기 신사회 건설을 목표로 하고있다는 반증으로,다시말해 교육개혁과 젊은이들의 참여가 유난히 강조되는 이유이기도 하다.관계자들이 “시대가 바뀌고 있는 만큼 과거의 인식과 틀로 재단하지 말아줄 것”을 주문하는 데서도 이를 엿볼 수 있다. 이와 함께 동서(東西)가 하나되는 지역감정극복 운동을 활발하게 추진할 예정이다.‘모두가 한 형제’라는 정신에 맞춰 정치·사회분야에서의 개혁이 총체적으로 이뤄진다. ‘제2건국 범국민추진위원회’는 앞으로 3가지 방향에서의 개혁을 지향하게 된다.정부차원에서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발전을 위한 제도와 공직자 의식개혁을,시민사회를 향해서는 대대적 생활과 의식개혁을 추진한다는 것이다. 생활과 의식개혁은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없이는 불가능하다.제2 건국위원회와 별도의 ‘제2건국 국민운동본부’ 구상을 갖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제도를 통해 제아무리 정치와 사회 민주화를 완성하고,나아가 민족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려 해도 실천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는 인식의 결과이다.제2건국위원회가 공동위원장 인선과 실무기획단 구성을 통해 젊은층의 주도적인 역할을 기대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실제 국정운영 6대 과제에는 창조적 지식국가,공생적 시민사회,협력적 남북관계라는 다양한 영역이 존재하고 있어 젊은층의 힘과 아이디어가 어느 때보다 절실한 상황이다. ◎민간단체 제2건국 일선에/새마을협·자유총련·바살협 동참 선언/경제난 극복·의식개혁운동 전개나서 새마을운동중앙협의회 등 전국적 조직을 갖춘 단체들이 ‘제2건국운동’에 발맞추기 위한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새마을운동중앙협의회는 ‘제2건국운동’과 관련,‘제2의 새마을운동’을 벌여 나갈 계획이다. 姜汶奎 새마을운동중앙협의회장은 “제2의 새마을 운동은 의식과 생활개혁 운동이다.이를 제 2건국운동과 연결해 개혁의 중추세력이 되겠다”고 밝혔다.특히 “IMF극복을 위한 국민자구 운동에 초점을 맞출 계획”이라며 “경제살리기 운동과 실업극복 운동을 벌여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또 “경제지상주의가 낳은 도농,계층,동서간 갈등을 해결해 나가는데 앞장 서겠다”고 강조했다.그는 “앞으로 환경운동 등을 추진해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고 통일에 대비해 북한동포돕기에도 나서겠다”고 덧붙였다. 한국자유총연맹도 건전한 시민육성을 통한 제2건국운동의 이념을 확산시킬 계획이다. 楊淳稙 자유총연맹총재는 “반공과 안보의식 교육 일변도에서 벗어나 건전한 시민육성을 주도함으로써 아래로부터의 개혁을 이루겠다”고 밝혔다. 이어 “관변단체의 굴레에서 벗어나 건전한 중립적인 국민운동을 벌이는 시민단체로 탈바꿈하는 것이 우선과제”라고 강조했다. 崔容碩 바르게살기운동중앙협의회장은 오는 24일 오후 2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국민생활문화운동의 방향과 과제’라는 주제의 세미나를 갖고 생활속의 개혁운동방안 마련에 나설 예정이다.崔회장은 “잘못된 틀을 고치고 바른 자리매김을 위한인식과 발상의 전환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각계 인사 제언/시민단체 능동적 참여·감시 필수/급격한 변화는 오히려 혼란만… 단계적 개혁을/지도층 솔선… 정치·경제 투명성 회복 선행돼야 ‘국민의 정부’가 건국 50주년에 즈음해 내건 제2건국운동의 성공 여부는 국민들의 자발적인 참여 여하에 달려 있다.70년대 새마을운동의 ‘잘 살아보세’보다 국민 피부에 와닿으면서 2000년대에 맞는 국민운동 캠페인 슬로건과 구체적 추진방법은 무엇이 좋은지 각계 지도급 인사와 전문가들의 의견을 모아 보았다. ◇李京子 한국방송개발원장=제2의 건국은 전쟁,군사통치,압축성장의 폐해등 지난 50년간의 비정상적이고 상처받은 역사를 극복하는 의미가 담긴 것이다.그 구체적 방법론으로 신뢰(trust)회복 캠페인을 제의한다.신뢰를 바탕으로 한 투명한 사회가 만들어지면 국제적 기준에 걸맞는 코리아를 창출할 수 있다.이를 위해 대중매체의 캠페인이나 어릴 때부터 신뢰를 배양하는 교육과정의 수립도 필요하다. ◇柳鍾星 경실련사무총장=제2의 건국의 성패는 국정개혁이 실질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개혁을 촉구,감시하는 시민운동을 활성화하는데 달려 있다.관주도가 아니라 자율적인 시민운동이 되도록 정부가 돕고 민간을 개혁의 파트너로 삼는 게 바람직하다.자유로운 시민단체활동을 가로막는 기부금품 모금규제법 등의 법률을 정비하고,공익적인 시민단체에 대해서는 기부금에 대한 세금공제를 간접적으로 지원하는 제도 등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李椿淵 한국영화제작가협회 회장(씨네2000 대표)=역대 정권마다 무슨 운동이니 하면서 화려한 구호와 깃발만 무성한 경우가 많았다.21세기 첨단시대를 목전에 둔 지금 전국민 운동에 대한 개념부터 바꿔야 한다.70년대 새마을운동 때만 해도 위에서 이끄는대로 국민들이 따라갔으나 이제 그런 시대는 지났다.제2 건국운동은 기본적으로 국민 개개인의 새마음,새정신 운동이 돼야 한다.이는 별게 아니다.일용 노동자부터 정치인까지 각자가 남을 탓하지 않고 제 자리에서 맡은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다. ◇金榮培 한국경영자총협회상무=‘밑바닥으로부터의 정신혁명’을 강조해야 한다.정치·경제 등 산적한 문제의 책임을 남에게 돌리기 이전에 국민 각자에 일정 부분의 책임이 있다는 점을 인식,나부터 스스로 변해야 한다는 범국민 캠페인이 필요하다.특히 적당히 경쟁했던 지금까지와 달리 모든 것을 드러내놓을 수 밖에 없는 글로벌시대를 맞아 제품 하나하나에도 철저히 임하는 국민정신 개조가 절실하다. ◇白重基 대한상의 기업구조조정센터소 장=막연하고 거창한 구호보다는 실생활에서 실천가능한 것부터 차근차근 목표를 정해 실행해 나가야 한다.특히 이번에야말로 오랜 구태를 버린다는 결연한 각오로 사회 지도층이 촌지 안주기,화장(火葬)문화 확산,고액 과외 금지 등을 앞장서 실천해야 한다.그러나 제2 건국이라는 명분에 너무 집착해 갑작스럽게 여러가지 급격한 변화를 꾀하다가는 오히려 혼란만 가중시킬 수 있다.사회적인 걸림돌을 한두가지라도 단계적으로 제거해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金國振 외교안보연구원교수=우리나라의 현재 정치·경제·사회·문화의모든 문제가 근원적으로 정직성이 부족한데서 기인한다는 점에서 ‘정직성을 높이자’는 것을 슬로건으로 삼아야 한다.특히 정치·경제에 있어 투명성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교통규칙 등 구체적 생활속에서 쉽게 지킬 수 있는 것부터 캠페인을 벌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金弘圭 외교안보연구원교수부장=제2건국운동의 슬로건으로 ‘다시 태어나자’ 또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는 구호가 괜찮을 듯 싶다.우리가 경제를 회복시키고 국력을 기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과학기술이 핵심이다.말로만 과학기술을 부르짖지 말고 이제야 말로 정말 과학중시 풍조를 불러일으켜야 한다.새 세기를 앞두고 ‘과학입국’이라는 구호도 검토해 볼만하다고 본다.언론이 인간성 회복을 위해 사회의 밝은 면을 부각시키는 미담 시리즈를 기획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특히 우리 사회의 건전성을 회복하기 위해 ‘가정을 되찾자’ 등의 시리즈를 기획하거나 관련된 국민운동을 펼치는 데 앞장서면 좋을 것같다. ◇金寓龍 한국외국어대 교수=‘정직한 사회를 만들자’라는 캐치프레이즈와 함께 각 분야에 만연한 부패의 사슬을 대대적으로 일소할 수 있는 개혁 캠페인을 벌이자.일제 때 펼쳐졌던 ‘민족개조론’과 같은 전국민적 의식개혁운동을 전개하는 게 바람직하다.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개혁을 주창했지만 ‘구두선’(口頭禪)으로 끝났던 점을 중시,총체적인 개혁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근원적이고 지속적인 실천 방안에 대해 국민들의 중지를 모아야 한다. ◇宋復 연세대 교수=제2 건국의 성공 여부는 시민단체가 얼마나 활발한 활동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현대 사회는 다원화 사회다.이는 시민단체의 목소리가 큰 사회를 말한다.시민단체는 돈으로 활성화되는 것이 아니다.金泳三 정부는 시민단체를 경제적으로 지원해 관변단체화했다.정부는 그들의 목소리를 관심있게 들어주면 될 뿐이다.시민단체도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서 시민들을 단체에 끌어들여야 한다.보험 설계사처럼 적극적으로 시민들을 모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 행정기관 연말 ‘예산떨이’ 차단/예산회계법 내년 개정

    ◎남은 예산 다음해 넘겨 사용할 수 있게 내년부터는 행정기관들이 연말에 남은 예산을 한꺼번에 쓰기 위해 쓸데없이 돈을 낭비하는 병폐가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또 수재를 당할 경우 정부로 부터 복구비를 지금보다 훨씬 빨리 지원받을 수 있게 된다. 예산청은 18일 재정집행의 탄력성과 경영 효율성을 위해 이같은 내용의 예산회계법 개정안을 다음달 중 정기국회에 제출,내년부터 시행키로 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연말에 각 행정기관의 예산이 남을 경우 지금처럼 자동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음해로 넘겨 사용할 수 있게 했다.사회간접자본 개발 사업과 관련,지역주민들과의 토지보상 협의가 연말까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확보된 예산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음해로 넘겨 쓸 수 있게 했다. 또 수해 등 재해발생시 재해대책본부의 복구계획이 최종 확정되기 전이라도 집계된 피해상황을 근거로 예비비에서 신속하게 복구비를 지원할 수 있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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