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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폐공사 파업유도 청문회-세풍 조기매듭 안팎

    여권이 이른바 ‘세풍(稅風)사건’을 이달 초 사실상 매듭지으려는 배경에는 여야관계 개선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깔렸다는 분석이다.검찰은 세풍사건을 ‘국기를 뒤흔든 사건’으로 규정하고 진상규명을 위해 강도높은 조사를진행해 왔다.결국 1년여 동안 불편한 여야관계의 주요 축이 돼왔다.민감한현안을 둘러싸고 여야는 대치와 충돌을 거듭했으나 이면에는 세풍의 앙금이충돌의 강도를 높이는 동인(動因)이 됐던 게 사실이다. 여권 일각에서 지난해 말부터 김대중(金大中)대통령 취임 1주년에 즈음해마무리짓는 게 좋겠다는 건의가 꾸준히 이어진 것도 이를 감안한 때문이다. 어쨌든 여권은 김 대통령이 국민회의 중앙위원회에서 천명한 ‘여야관계 개선’의 첫 단추로 세풍의 조기 매듭을 택한 게 분명해 보인다.여기에는 이사건의 핵심인물 중 한명인 이석희(李碩熙)전 국세청차장의 귀국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어서 더 이상 진척될 수사내용이 없다는 현실적 한계도 작용한 것 같다. 여권의 이같은 방향 선회는 대야 전략 수정으로 이어질 전망이다.검찰은 ‘중간발표’라는 형식을 취할 예정이지만 정치적으로는 사실상 종결을 의미하는 것이어서 더욱 그러하다.검찰은 현재 한나라당 서상목(徐相穆)의원만을불구속 기소하고 나머지 관련 의원들은 불기소 처리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여기에는 국회·선거법 등 정치개혁 논의를 가속화하려는 김 대통령의 의지가 깔려 있다.야당의 협조 없이 김 대통령이 최우선의 국정개혁 과제로 삼은 정치개혁을 이루기는 어려운 형국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야간 불신의 골이 깊어질 대로 깊어진 상태여서 당장 개선으로 연결될 가능성은 희박하다.한나라당이 여권의 방침이 흘러나오자 기다렸다는듯이 정치공세를 강화한 데서도 이를 엿볼 수 있다.나아가 사건의 유야무야(有耶無耶)에 따른 여론의 비판도 극복해야 할 과제다. 양승현기자 yangbak@
  • 조폐공사 파업유도 청문회-정치권 반응

    여야는 31일 검찰의 세풍사건 수사 일단락 방침에 엇갈리는 반응을 보였다.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신중한 자세를 취하면서도 수사 장기화에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는 입장이다.반면 한나라당은 ‘야당 흠집내기’라며 반발하고 있어 정국 경색이 우려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조치가 여야관계의 ‘걸림돌 제거’ 역할을 할 가능성도 있어새로운 여야관계 정립과 정국정상화의 계기가 될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공동여당 국민회의는 공식 논평을 자제하면서 야당의 ‘반발’을 진화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박상천(朴相千)총무는 “검찰이 그간의 수사결과를 밝히는 수준이 될 것”이라며 “최근 의혹이 제기됐던 의원들에 대한 수사도 없고,새로 사법처리하는 것도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한화갑(韓和甲)사무총장은 “개인적으로 이 사건이 빨리 마무리됐으면 좋겠다”며 수사 일단락 방침을 환영했다. 자민련의 심양섭(沈良燮)부대변인은 비공식 논평에서 “정기국회를 앞두고여야관계가 정상화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정국정상화를 기대했다. 한나라당 강력하게 반발하면서 소속 의원 10여명에 대한 혐의사실 발표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하순봉(河舜鳳)총장은 “세풍을 빙자해 다시 한나라당을 음해하고 정치적압박을 가할 술책으로 이용하려 한다면 모든 수단을 동원,단호히 대응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발전적 관계’를 위해 이뤄진 조치일 수도 있다고 분석하면서 여권의 진의 파악에 부심하고 있다. 최광숙기자 bori@
  • 봉급자 신용카드 소득세 공제 오늘부터

    1일부터 신용카드 사용에 따른 소득공제가 시행된다.문답으로 알아본다. 봉급생활자의 신용카드 사용금액 소득공제란. 연간 총급여액의 10%를 초과할 경우 초과 사용금액의 10% 또는 연간 300만원 중 적은 금액을 소득에서 공제해 주는 제도다.가령 연봉이 3,000만원인봉급생활자는 연간 카드 이용금액이 300만원이 넘어야만 초과한 금액의 10%에 대해 소득공제를 받는다.그러나 올해에 한해 9월부터 11월까지 사용분에대해서는 100만원까지 공제해 준다. 공제대상 기간은. 매년 12월부터 다음해 11월까지 사용한 카드금액이 공제대상이 된다.할부로 물건을 샀을 때는 매달 내는 할부금이 아니라 구입시점의 금액 전체를 카드 사용 금액으로 본다. 공제대상 카드사용자 범위는. 배우자나 주민등록표상 동거가족인 직계존비속,배우자의 직계존속이 사용한 카드 사용 금액도 공제대상에 포함된다. 공제대상 신용카드는. 여신전문금융업법상의 신용카드·직불카드·백화점카드 등이 포함된다.그러나 선불카드와 외국에서 발행한 신용카드는 포함되지 않는다. 공제대상에 포함되지 않는 것은. 각종 보험료·공제료,유치원·초·중·고·대학 및 대학원 수업료와 등록금,국세·지방세,전기료·수도료·전화료(전화료와 함께 고지되는 인터넷 정보사용료 등 포함)·가스료·TV시청료 등이다.외국에서 사용한 금액도 포함되지 않는다.개인카드로 회사 접대비를 쓴 경우도 포함되지 않는다. 공제금액 확인 및 공제신청 절차는. 신용카드회사는 매년 12월 전년 12월부터 그해 11월까지의 신용카드 사용액이 적힌 ‘신용카드 등 사용금액 확인서’를 사용자에게 통보해 준다.신용카드 사용자는 확인서를 ‘신용카드 소득공제 신청서’와 함께 연말정산때 회사에 제출한다. 김균미기자 kmkim@
  • 잇단 응시자승소판결 파장

    국가고시에 관련된 다툼에서 법원이 잇따라 수험생 손을 들어주자 수험생들은 크게 고무돼 있고,시험을 주관하는 행정자치부는 무척 당혹스러워 한다. 문제출제 잘못으로 불합격 처리된 사법시험 수험생을 구제하라는 대법원 확정판결이 나오자 마자 답안지와 채점결과를 공개하라는 행정법원 판결이 나왔기 때문이다.행자부는 행정법원 판결에 항소의 뜻을 밝히고 있어 대법원판결까지 기다려야 하지만 행정법원 판결은 수험생들이 승소하는 분위기를반영한다. 행자부에서는 “법원이 요즘은 수험생들 편을 들어주고 있다”는 볼멘 소리가 터져 나온다.소송에서 수험생들의 연승행진은 수험생들의 권리찾기가 많아진 탓도 있지만 국가고시가 그동안 행정부의 편의대로 관리돼 왔다는 애기다. 까닭에 법원 판결은 약자일 수 밖에 없는 수험생들의 권리를 인정하는 동시에 국가시험 출제 및 관리 전체에 문제점과 개선점이 많다는 지적으로 받아들여진다.대법원 판결에 행자부는 ‘허를 찔렸다’는 분위기다. 행자부는 ‘1차 시험 합격자는 다음해에 한해 1차시험을면제한다’는 사법시험시행령 8조 규정에 따라 수험생들이 승소하더라도 2차시험 응시기회를주기는 어렵다는 내부적인 사전 판단을 내렸다.이런 탓에 이달 초까지만 해도 행자부측은 “수험생들이 승소해도 현행법상 규정으로는 2차시험을 보게할 근거가 없다”며 다소 느긋한 입장이었다. 하지만 두차례에 걸쳐 2차시험을 보도록 하라는 대법원의 판결은 ‘원고승소’라는 통상적인 판결에 그치지 않고 구체적인 방향 제시를 했다는 점에서 법조계에서도 이례적으로 받아들인다. 행자부의 대책은 잘못된 문제출제로 불합격처리된 수험생들의 전원 구제로모아진다.국가는 잘못된 행정행위로 국민들이 불이익을 받았다면 스스로 이를 시정해야 하기 때문이다.소송을 제기하지는 않았으나 불합격된 수험생 가운데 잘못된 문제출제로 아깝게 탈락된 수험생들을 가려내야 한다.이들을 가려내는 작업은 상당한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행자부는 200여명으로 추산되는 대상자에 대해 ‘불합격처분 직권취소’를해야 한다.직권취소로 생기는 문제도 간단치 않다.내년 2차응시생이 그만큼 늘어나게 되고 경쟁률도 높아지기 때문이다. 올해와 내년 1차시험을 통해 내년 2차 시험을 봐야하는 수험생들이 불이익도 예상된다.지난해에 이어 올해 700명으로 동결된 사법시험 선발인원을 늘리는 해결책도 있으나 선발인원 증원은 사법개혁위원회,법무부 등과의 협의사항이어서 그리 간단하지 않다. 최여경기자 kid@
  • [옷로비 청문회] 호피코트 반환문제

    옷로비 의혹의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는 문제의 밍크코트를 둘러싼의문점이 풀려야 한다.라스포사의 밍크코트가 김태정(金泰政) 당시 검찰총장부인 연정희(延貞姬)씨에게 전달된 시점과 규모, 연씨가 이를 되돌려준 날짜등이 핵심이다. 연씨가 주장한 옷 전달 시점은 98년 12월26일이다.반환 날짜는 다음해 1월5일.11일 동안 옷을 갖고 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신동아그룹 최순영(崔淳永)회장 부인 이형자(李馨子)씨와 강인덕(康仁德)전통일장관 부인 배정숙(裵貞淑)씨의 말은 다르다.우선 옷 전달 시점이 12월19일이다.“직접 목격하지 못했지만 19일 저녁 정씨가 ‘연씨에게 코트를 전달했다’는 전화를 걸어 왔다”고 밝혔다.반납 날짜도 차이가 난다.배씨는 “김정길(金正吉)전행자부장관 부인 이은혜(李恩惠)씨에게서 1월8일 돌려줬다는 말을 들었다”고 진술했다.“이은혜씨에게서 1월7일 연씨가 호피반코트를 입고 기도원에 갔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연씨의 착용 의혹도 제기했다. 박찬구기자 ckpark@
  • 금융소득 종합과세 내용

    금융소득종합과세 제도가 97년 12월 유보된 지 3년 만에 오는 2001년 부활된다.이로써 ‘가진 자’의 전체 금융소득액이 파악되고 이들에 대한 누진과세가 이뤄져 공평과세가 실현될 전망이다. 실시내용 현재 개인의 금융소득에는 분리과세와 종합과세가 함께 적용되고 있다.분리과세는 이자소득에 비과세 또는 10% 원천징수되는 세금우대저축을 제외하고는 22%의 원천징수세율을 적용하고 있다.또 상장법인,코스닥 등록법인으로부터 지급받는 배당소득도 20% 원천징수로 분리과세하고 있다.그러나 사채이자는 25% 원천징수 후 종합과세하며 발행주식의 1% 이상,액면가 3억원 이상을 보유한 대주주의 배당소득과 비상장법인으로부터 지급받는 배당소득은 20% 원천징수 후 종합과세하고 있다. 2001년부터는 분리과세가 적용됐던 부분이 모두 종합과세로 돌아간다. 부부의 이자·배당소득 등 금융소득을 합해서 4,000만원이 넘는 경우 초과금액을 부부 중 사업·근로소득 등 다른 소득이 많은 쪽의 소득에 합해 다음해 5월 관할세무서에 종합소득세를 신고,납부해야한다.이때는 종합소득 과표에 따라 10∼40%의 누진세율이 적용된다. 다만 금융소득 중 만기 5년 이상 장기저축과 장기채권의 이자는 30%,10년이상의 경우 25%의 세율로 분리과세하는 쪽을 선택할 수 있다. 국민부담 부부 합산 연 금융소득이 4,000만원 이하인 국민들은 금융소득이 종합과세되지 않는다.오히려 이자·배당소득에 대한 원천징수세율이 22%에서 15%로 내려 세금이 줄게 된다.원천징수만으로 납세의무가 종결돼 신고납부 등 다른 절차도 필요없다. 종합과세되는 경우에도 종합과세는 4,000만원을 초과하는 부분에만 적용되므로 원천징수세율의 인하와 종합과세에 따른 기본공제(4인 가족 460만원)의 적용으로 세금이 줄어드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부부 합산 1년간 금융소득이 4,000만원을 훨씬 초과하고 합산되는다른 소득이 많은 경우에는 원천징수세율이 인하되더라도 종합과세되는 금융소득에 20∼40%의 세율이 적용되므로 전체적으로 세금이 늘게 된다. 초과대상 종합과세 신고자는 96년 3만197명에 금융소득이 모두 2조4,139억원이었다.97년에는 4만4,276명에 3조7,752억원이었다.97년의 경우 금융소득금액별로 4,000만원 이하는 9,340명,4,000만∼8,000만원은 2만4,131명,8,000만∼1억2,000만원은 5,087명,1억2,000만원 초과는 5,718명이었다. 98∼99년에는 금융저축이 과거보다 증가했지만 금리가 크게 떨어져 종합과세 대상자수는 4만∼5만명 수준이 될 것으로 추산된다.이중 1만5,000∼2만명 가량이 현재보다 세금을 더 낼 전망이다. 김균미기자 kmkim@
  • ‘도쿄 대재판’ ‘일본문화사’등 실체 밝힌 책 출간 봇물

    “일본은 왜 망언을 되풀이할까” “일장기는 언제부터 사용됐을까” “천황은 어떤 존재일까”. 일본의 역사와 정신을 다룬 각종 책들이 8·15를 즈음해 봇물을 이루고 있다.이들 서적은 새로운 세기의 시작을 앞두고 한일간의 상호이해를 높이자는 뜻에서 발간되고 있다. 망언이 거듭되는 배경은 중국인 황허이(黃鶴逸)가 쓴 ‘도쿄 대재판’(백은영 옮김,예담출판사)은 2차대전 직후 일본 전범에 관한 처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탓에 일본이 여전히 군국주의의 망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분석한다.이 책은 모두 4,019명의 증인이 출석하고 4,336부의 증거문서가 제출된 극동국제군사법원,즉 2차대전 전범처리를 위해 열린 도쿄재판의내용을 자세하게 적고 있다.아울러 재판 이후 전범들이 미국의 비호를 받으며 지배층으로 재부상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일장기와 기미가요의 뿌리는 홍윤기 외국어대 교수는 ‘일본문화사’(서문당)에서 기미가요의 원형으로 서기 912년경 완성된 20권짜리 시가집 ‘고킨와카슈’(古今和歌集)에 실린 와카를 꼽는다.‘와카’란 우리의 향가나 시조에 해당되는 일본 고유의 시가.다이고천황(재위 897∼930) 칙령으로 편찬된이 시집은 와카 1,111수를 모아놓은 것으로,343번째 노래가 바로 현재의 기미가요 원형이라는 것.홍 교수는 “기미가요의 어머니격인 이 노래는 고려가요인 ‘정석가’와 너무 비슷하다”면서 “1880년대 노래 첫머리가 일부 바뀌어 지금의 기미가요가 됐다”고 말한다. 일장기는 에도(江戶)막부 때인 1811년 이후 일본 국기로 공식 사용됐다.이전 일본 무장들이 지휘용 부채 등에 집어넣던 그림이었는데 메이지(明治)시대때 국기로 굳어졌다는 것이다. 천황은 누구인가 이규배 탐라대 교수는 ‘누가 일본의 얼굴을 보았는가’(푸른역사)에서 “‘조선왕조실록’ 없이 조선을 이해하지 못하듯 천황을 빼놓고는 일본을 바로 보기 어렵다”고 말한다. 책에 따르면 천황은 1192년경 처음 등장해 1868년 700년만에 절대군주로서위치를 굳혔다.현재 3부 요인을 임명하는 등 절차상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이 교수는 “천황은 시대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면서 “천황을 객관적으로 보아야 일본을 알 수 있다”고 말한다.이밖에 일본 곳곳에남아있는 한국역사의 흔적을 모은 김정동 목원대 교수의 ‘일본을 걷는다·2’(한양출판),비교문화연구가 김명학이 일본 여고생에게 특유한 행태인 원조교제 등을 살펴본 ‘나,일본여고생’(이채)등의 책도 잇달아 출간돼 독자를기다리고 있다. 박재범기자 jaebum@
  • 교사들 교단 抗日투쟁 54년만에 ‘햇빛’

    일제때 청년교사들이 교원노동조합을 결성,조선인 위주의 교육을 주창하며교단에서 항일운동을 벌였던 사실이 밝혀졌다. 잃어버린 조국을 되찾기 위해 국내외에서 독립군이나 의병으로 활동한 선열들의 활약상은 많이 소개됐으나 교단에서의 항일운동 사실이 발굴되기는 처음이다. 반세기가 넘도록 묻혀있던 청년교사들의 항일운동은 항일투쟁사 연구가인 추경화(秋慶和·48·경남 진주시 신안동)씨에 의해 광복 54년 만에 빛을 보게 됐다.추씨는 최근 부산 정부기록보존소에서 이들에 대한 판결문을 찾아냈다. 일제 강점기였던 28년∼33년 사이 진주사범학교를 졸업한 김두영(金斗榮·하동군 하동읍 두곡리)·이명상(李明祥·창원군 웅천면 북부리)·강용운(姜龍雲·함안군 군북면 소포리) 등 청년교사 18명이 우리 고대사를 가르치며민족의식을 고취하고,우리말의 중요성을 일깨우다 일본경찰에 체포돼 옥고를치렀다. 이들은 1932년 경남 교원노동조합을 결성,노동운동을 통한 항일운동을 전개했으며, 같은해 진해 동양제사공장의 파업을 지원하고,공장노동자 동맹파업을 유도하는 전단을 등사해 배포하기도 했다. 이들은 일경에 체포된 뒤 각각 징역 1년∼4년까지 선고받고 복역중 다음해 6월 가출옥으로 풀려났다. 진주 이정규기자 jeong@
  • “베를린 장벽 희생자 28년간 943명”

    [베를린 연합] 지난 1961년부터 1989년까지 동서 베를린을 가로막고 있던베를린 장벽과 기타 동서독 국경을 넘다가 희생된 동독인은 당초 알려진 것보다 훨씬 많은 943명에 이른다고 베를린 장벽연구단체인 ‘8월 13일회’가11일 밝혔다. 이 단체는 베를린 장벽설치 기념일에 즈음해 발표한 보고서에서 독일정부의 공식 통계는 동서독 국경 희생자를 270명으로 잡고 있으나 이는 국경 경비병에 의해 사살된 숫자만 기록한 것이며 발트해를 통해 동독을 탈출하려다익사한 사람들과 체포를 두려워해 자살한 사람들을 포함한 결과 사망자 수가 크게 증가했다고 전했다. 베를린 장벽이 세워진 1961년 8월 13일을 명칭으로 사용하고 있는 이 단체는 희생자중 40명은 어린이고 가장 어린 희생자는 1살이며 최고령 희생자는86세라고 밝혔다. 동서 냉전시대의 상징인 베를린 장벽은 지난 89년 11월 9일 동독인의 탈출러시에 밀려 동독정부가 국경통과를 허용하면서 일거에 무너졌다.
  • [해양한국 장보고에서 21세기까지](13)고구려와 수나라의 전쟁

    598년 2월 영양왕이 이끄는 1만명의 고구려와 말갈 혼성부대가 요서지방의중심지였던 영주(營州)를 공격한다.이어 수나라의 문제(文帝)가 이끄는 30만 대군이 고구려를 수륙양면으로 침공한다.이렇게 시작된 전쟁은 나라를 바꾸어가며 거의 쉬지 않고 진행되다가 거의 80년만인 676년에 이르러 대단원의막을 내린다. 동아시아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전쟁이었던 이 전쟁에는 모든 종족과 국가들이 직접 간접으로 참여한 국제대전이었다.전쟁의 목적도 영토확장이나 단순한 힘의 과시가 아니라 이 지역 양대질서의 대결이었고,문명의 충돌장이었다.특히 숱한 해양전이 벌어졌으며,해양질서가 본격적으로 작용한 동아지중해의 국제대전이었다. 3단계로 이루어진 이 국제대전의 서막은 고구려와 수나라의 전쟁이었다.광개토대왕과 장수왕 이후 고구려는 대륙과 한반도 중부이북,동해와 황해의 중부해상권을 장악하였다.이러한 힘을 바탕으로 분단된 중국을 대상으로 실리추구를 하는 세련된 등거리외교를 추진하였고,백제 신라 가야 왜 말갈 등 주변의 국가들의 대외정책에 영향을 끼치는 등 동아지중해의 중핵조정역할을충실히 수행하였다. 또 경제적으로 요동을 중심으로 만주의 동부지역과 흥안령 산맥 등 북부지역,요서지역 등을 이어주면서 북방교역망을 형성하였고,해양을 통해서 일본열도,양자강유역의 남조정권과 교역을 하는 등 해상교역망을 운영하였으며북방과 남방을 이어주는 해상네트워크를 이용해 중계무역도 활발하게 하였다. 그러나 수나라가 분열된 중국을 통일하면서 세계질서는 뿌리채 변화하기 시작했다.수나라는 운하를 파고,남방교역을 활발하게 추진해 국가의 경제를 튼튼히 하고,정치적으로도 개혁을 추진하였다.그러면서 동아시아 세계의 종주권을 회복하고,동남아,동중국해,황해,대한해협을 이어주는 등 교역의 물류체계를 장악하여 강국이 되고자 하였다. 두 강대국간의 대결은 피할 수가 없게 되었고,서서히 전쟁의 기운이 싹터가기 시작했다.전쟁을 일으키려는 당사자는 새로운 질서를 수립하려는 수나라였다.강력한 국력을 지닌 고구려는 사절을 파견하는 등 외교적 제스처를 취하는 한편,내부적으로는 전쟁준비를 하였다. 598년 2월 영양왕은 친히 고구려와 말갈 혼성군을 거느리고 요하를 넘어 공격을 개시하였다.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수문제는 598년 6월 30만의 수륙군을 발진시켜 고구려를 침략하였다.수나라의 육군은 요하를 돌파하지 못한채퇴각하였다.주라후(周羅侯)가 이끄는 6,000명의 수군은 육군과 합동작전을목표로 산동반도 동래(東萊:현재의 래주)를 출발,요동반도를 우회하여 평양성으로 향하였다.그러나 중간에 풍랑을 만나 대부분의 전선들이 침몰하였다고 한다.그러나 그보다 주라후의 수군은 요동반도일대에 구축된 고구려의 해양방어체제에 걸려 풍비박산이 났을 가능성이 크다. 그 후 수양제(煬帝)는 대 고구려전을 더 본격적으로 추진하였다.먼저 남방의 임읍(林邑:현재의 베트남 동남부) 유구(琉球:대만)등을 정벌하고,돌궐을분할시켰으며,고창국 등 서역국가들을 지배하에 넣었다.그러는 한편 고구려에 적대적이던 백제와 신라를 끌어들이고 왜와도 외교관계를 맺는 등 고구려를 국제적으로 고립시켰다.국내에서는 대운하를 완성해 남북을 연결시킴으로써 군수물자와 노동력의 징발을 용이하게 했고,해양전을 위한 엄청난 규모의 조선공사를 벌였다. 612년 드디어 수양제가 이끄는 세계전 사상 유례없는 113만3,800명의 대군이 북경 근처의 탁군( 郡)을 출발했다.그런데 당시 수양제는 해양전에 많은비중을 할애하였다.원정군을 좌우 총 24군 편제로 구성하였는데,그 가운데 11개 군이 수로군 편제이다.수군의 작전범위를 보면 압록강하구,대동강 하구는 물론,심지어는 한강하구인 황해중부 전체를 작전범위 속에 넣고 있다.이로서 수군은 이제 군량미의 보급뿐 아니라 직접 전투에 참여하고,장거리 이동 상륙작전을 감행하여 배후를 치는 독립작전까지도 한 것이다. 이를 위해 수양제는 적함(赤艦) 루선(樓船)등 수만척의 배들을 건조하였다. 특히 주력전선인 오아(五牙)는 루(樓:다락)가 5층이고,군사 800명을 태울 수가 있었다고 한다.래호아(來護兒)가 이끄는 이러한 군선들의 규모는 길이가수백리에 이를 정도로 대규모였다.얼마나 해양전을 중시하였는가를 알수 있다. 수의 친정군은 요하전선의핵심 거점인 요동성(현재의 요양시)을 공격하였다.엄청난 군대와 신무기 등을 동원하여 치열한 공방전이 펼쳐졌으나 수양제는 끝내 함락시키지 못한 채 퇴각하였다.한편 우중문과 우문술이 이끄는 30만명의 별동대는 을지문덕의 고구려군에게 살수(薩水:압록강설과 청천강 설이 있다.)에서 대패,전멸했다.래호아가 이끄는 수군은 황해를 건너는데 성공하고,대동강을 거슬러 올라갔다.대담하게 수군을 이용해 후방 깊숙이에 있는 평양성으로 직공작전을 감행한 것이다.하지만 평양성 60리밖에서 고구려군에게 궤멸당하였다.결국 고구려와 수나라간에 벌어진 격돌은 고구려의 대승으로 끝났다. 다음해인 613년과 614년에도 수나라는 고구려를 침공해왔으나 별 소득이 없었고,618년에는 당나라에 멸망하고 말았다.동아지중해의 종주권과 교역권을둘러싸고 벌어진 수나라와 고구려의 1차전쟁에서 고구려가 대승을 거두었으며 국제적인 위상이 더욱 강화되었다.만약 고구려가 이 전쟁에서 졌다면 우리민족의 생존권은 이때 상실되었을 수도 있다. 이 전쟁은 해양질서가정치 외교적으로 얼마나 중요했는가를 확인시켜 주었고,이미 대규모의 선박이 동원되고,상륙작전이 수행되는 등 본격적인 해양전쟁시대에 접어들었음을 알려준다.이와같은 양상은 수나라를 이어받은 당과고구려의 전쟁에서 보다 분명하게 드러난다./윤명철 동국대겸임교수
  • 공기업 고객만족 순위 매긴다

    ‘공기업의 서비스를 민간기업 수준으로’ 정부는 공기업의 서비스 수준을 높이기 위해 매년 정기적으로 고객만족도조사를 실시,그 결과를 다음해 예산편성에 반영하기로 했다. 기획예산처는 19개 경영혁신대상 공기업을 중심으로 갤럽·한국생산성본부등과 함께 공기업 고객만족도 평가에 착수,올해부터 매년 연말에 고객만족순위를 발표할 계획이라고 6일 밝혔다.평가는 미국 미시간대학이 개발한 국가고객만족지수(NCSI) 모델을 활용한다. 대상 공기업은 한국전력 광업진흥공사 석탄공사 석유공사 무역투자진흥공사 토지공사 주택공사 도로공사 수자원공사 농어촌진흥공사 농수산물유통공사조폐공사 관광공사 지역난방공사 한국통신 가스공사 담배인삼공사 송유관공사 한국감정원 등이다. 기획예산처는 고객만족도 평가결과를 민간기업과 비교,벤치마킹을 통해 서비스의 질을 획기적으로 높인다는 방침이다. 예컨대 한국도로공사의 경우 톨게이트가 출입에 편리하도록 돼 있는지,휴게소 직원들의 청결과 친절도,고속도로의 노면상태,안내표지의 적절성 등을 호텔이나 음식점 등 민간 서비스업체와 비교,평가할 계획이다. 한국통신은 전화연결의 용이성이나 통화품질,전화요금 납부편리성을 데이콤이나 온세통신,미국 민간전화서비스업체 등과 비교한다.담배인삼공사는 담배의 전반적인 맛과 필터의 성능을 미국 담배제조업체와 비교,분석해 부족한부분에 대한 벤치마킹으로 서비스의 질을 크게 높인다는 것이다. 기획예산처 박종구(朴鍾九)공공관리단장은 “공기업은 독점적 지위 때문에민간기업에 비해 서비스의 질이 낮은 게 사실”이라며 “정부가 적극적인 유인책을 써서 서비스의 질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상연기자 carlos@
  • 본회의 5분발언 설전 팽팽

    2일 개회된 국회 본회장에서 여야는 세풍(稅風)문제를 놓고 한바탕 공방을벌였다.국민회의,한나라당 2명씩이 나선 5분 발언을 통해서다. 국민회의 의원들은 “이제는 한나라당이 세풍의 고리를 끊고 야당의 모습으로 나오라”고 촉구했다.한나라당 의원들은 “한나라당과 이회창(李會昌)총재 죽이기를 중지하라”면서 “여야 모두 대선자금을 조사하자”고 맞받아쳤다. ■한나라당 의원들이 먼저 공세를 펼쳤다.안택수(安澤秀)의원은 “대선자금을 갖고 야당을 파괴하고 음해하는 공작을 하는 것은 대통령의 지시가 없이는 이뤄질 수 없다”고 전제한 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야당파괴 공작을 즉각 중지하라”고 주장했다.안 의원은 “김대통령은 내각제 연내 개헌유보에 대해 정중하게 사과하고 연내에 국민에게 신임을 묻는 투표를 하든지 그렇지 않으면 내년 1월1일부터 대통령직을 사임하든지 선택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같은 당 이규택(李揆澤)의원은 “DJP정권은 정권이 위기에 몰릴 때마다 이총재의 대선자금을 끌어내 전가의 보도(寶刀)처럼 휘두르고 있다”며 “대선자금을 투명하게 수사하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즉각 특별검사제를 도입하고 DJ비자금의 전모와 97년 대선자금 등 여야 모두의 대선자금을 공평하고 투명하게 수사하라”고 촉구했다.잇따른 중부권 수해와 관련해 안전불감증에 걸린 김종필(金鍾泌)총리 등 내각 총사퇴를 주장하기도 했다. ■국민회의 의원들도 정공법으로 맞받아쳤다.정동영(鄭東泳)의원은 “검찰이 세풍 잔금 유용사건에 대해 수사를 진행중이므로 이 사건은 검찰에 맡기고여야는 정쟁을 중지해야 할 것”이라고 반박했다.정 의원은 “요새 문제가되는 사건은 한나라당 금고에 들어가지 않고 개인 금고에 들어가 개인이 멋대로 쓴 것에 대한 의혹”이라며 “(국세청을 동원해 모은 돈이) 정당 금고로 들어간 것도 나쁘지만 개인이 썼다면 어떤 파렴치한 범죄보다도 더 심한것”이라고 공격했다.정 의원은 “여야 대선자금을 같이 조사하자고 하는 것은 (본질을 희석시키려는) 물타기”라고 반격했다. 김경재(金景梓)의원은 “한나라당 의원들은 이제 세풍고리를 끊는 게 건전한의정을 위해 바람직할 것”이라면서 “세풍에 관련된 사람은 한나라당에극히 일부인데도 이것 때문에 그동안 방탄국회라는 말을 들은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라고 꼬집었다.김 의원은 “ 한나라당은 세풍은 세풍이고,국정은국정이라는 생각을 해야 할 것”이라며 “이제 진심으로 고유한 야당의 자세와 명분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여야 의원들이 5분 자유발언을 할 때 의석에서는 5∼6차례 야유가 나오는등 소란스러웠다.국민회의 박상천(朴相千)총무는 운영위원장 투표에서 출석234표중 148표의 찬성을 얻는 데 그쳐 한나라당 의원들이 상당수 반대표를던진 것으로 집계됐다. 곽태헌기자 tiger@
  • 유점사 53불상 어디로 갔나

    금강산 유점사의 53불상은 어디로 갔을까.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8월29일까지) ‘아름다운 금강산전’에서유점사 53불이 사진으로 처음 일반에 공개되면서 불상의 소재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 사진들은 일제가 우리나라의 문화재를 조사하기 위해 1912년부터 1943년까지 찍어두었던 유리원판의 일부로 중앙박물관이 소장해 왔었다. 국립전주박물관 학예연구관 곽동석씨의 논문 ‘금강산 유점사 53불’에 따르면 유점사 능인보전에 봉안돼 있던 53불은 한국동란으로 절이 소실되면서함께 없어진 것으로 전해진다. 높이가 30㎝를 넘지않는 금동불은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되기 시작했으며 이후 도난과 화재 등의 사고로 훼손된 불상들은 그때 그때 추가로 보충된 것으로 추정된다.사진으로 전하는 53불 가운데 통일신라 금동불은 47구(여래상 42구,보살상 5구)이고 나머지는 고려와 조선시대의 불상인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곽씨는 대부분의 53불에는 통일신라 최성기의 양식 또는 그 여운이 반영돼있어 제작 시기를 8세기 중엽에서 8세기 후반으로추정할 수 있다고 말한다. 불상은 유점사의 부침에 따라 시련을 겪게 된다.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유점사는 단종 원년(1453년)에 불에 탄 뒤 세조 13년(1467년)에 다시 세워지고 성종 18년(1487년)에는 불상을 도난당한 것으로 전해진다.그러나 그후 불상이 어떻게 재조성되거나 보존돼 왔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한 기록이 전해지지않는다. 유점사 53불은 최초의 조사가 이루어졌던 1912년 이미 3구가 망실된 상태였다고 한다.1916년 3월에는 50구 가운데 15구가 도난당했다 7구가 반환되기도 한다.이후 53불에 대한 새로운 조사와 기록은 1935년 당시 조선총독부 촉탁으로 근무하던 일본인 2명에 의해 이루어지는데 이들은 조사후 사진을 첨부한 복명서를 작성,유점사 53불에 대한 전모를 전하게 된다. 유점사 53불 가운데 42구 정도는 해방되던 1945년과 그 다음해 초까지는 훼손없이 안치되어 있었다고 하지만 한국전쟁 때 유점사가 전소된 이후 이들금동불에 대한 소식은 더 이상 전해지지 않는다. 불상전문가들은 그러나 아무리 전쟁중이라 해도 불상 53개가 한꺼번에 없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일부는 어딘가에 남아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첫째의 추정은 북한에 남아 있을 것이라는 것.북한 당국이 훼손이 안된 불상중 일부를 평양에 옮겼다는 입소문을 근거로 한 것이지만 사실로 확인되지는 않고 있다.다음은 해외로 유출됐을 가능성.북한의 문화재가 해외로 밀반출된 사례가 많은 것으로 미루어 일본 등 제3국에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남한에 있을 가능성도 있다.불상이 일제시대에 도난되는 등 수난을 겪었기때문이다.박물관 관계자들은 이러한 점을 들어 혹시 이번 전시기간중 유점사53불상이라고 주장하는 불상이 나타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임태순기자 stslim@
  • 국립무용단 ‘한국,천년의 춤’ 7·8일 귀국특별공연

    ‘한국,천년의 춤’을 해외 순회공연해 큰 성과를 거둔 국립무용단(단장 국수호)이 오는 7∼8일 국립극장 대극장에서 귀국특별공연을 갖는다.오후4시.(02)2274-1173. 지난 6월25일에서 7월9일까지 터키·이집트·헝가리 3나라,4도시에서 펼친공연의 성공을 국내 팬과 주한 외국인들에게 다시 한번 소개하는 자리이다. 따라서 외교사절과 외국인 상사 임직원들을 대거 초청,국내팬들과 어울려 우리춤을 즐기도록 할 계획이다. 국수호단장은 해외공연에서 거둔 성과를 거침없이 자랑했다.터키는 매년 6∼7월에 열리는 세계적인 문화축제 ‘아스펜도스’에 국립무용단을 초청하겠다고 했고,이집트에서는 무바라크대통령의 부인이 관람한 뒤 국영TV로 방영하라고 지시할 정도였다는 것. 국단장은 “한국무용이 국제적인 문화상품으로 정착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전했다. 국립무용단은 창단후 매년 1∼2차례 해외공연을 갖고 있다.지난해에는 프랑스 월드컵 폐막식전에서 ‘한국,천년의 춤’을 공연,전세계 TV로 생중계됐다. ‘한국,천년의 춤’은 국립무용단이 우리 춤의 역사를 시대별로 구분,원형을 정립하고자 기획한 시리즈물.지난 97년 시작했다. 첫해는 ‘조선시대 민속춤’,지난해에는 ‘신라의 춤’,올해는 원형이 알려지지 않은 ‘백제의 춤’을 재현해 냈다.내년에는 ‘고구려의 춤’을,그 다음해에는 ‘원시시대 춤’을 되살릴 계획이다. 이번 공연은 지난 5월 정기공연때 무대에 올린 ‘한국,천년의 춤Ⅲ-백제의춤’을 토대로 했다. 1·2부로 나누어 1부에서는 ‘종묘제례악무’(佾舞·일무)와 궁중 춤의 백미로 꼽히는 ‘춘앵무(春鶯舞)’등 조선시대 춤을 보여준다. 2부에서는 불교 정신을 가득 담은 ‘향(香)’,강강수월래인 ‘대동무(大同舞)’와 농민들의 춤인 ‘탁무(鐸舞)’,‘공후' 등을 올린다. 강선임기자 sunnyk@
  • [대한매일을 읽고] 여성특위 홈페이지에 음담패설 웬말

    요즈음 PC통신에 올라온 글들을 보면 연예인 유명인사들에 대한 각종 루머나 근거없이 상대방을 비난하는 공격성 글들이 많다.‘여성특위 인터넷 홈페이지 수난’ 기사(대한매일 7월28일자 27면)는 바로 이런 ‘사이버 테러’가 결코 간과할 만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일부이긴 하지만 익명의 남성들이 여성특별위원회 인터넷 홈페이지에 여성비하 발언 및 음담패설을 써 보내는 행위는 표현자유의 남용을 넘어서 여성에 대한 인권침해라고 보여지기 때문이다. 상대방의 면전에서 직설적으로 모멸감을 주는 행위도 나쁘지만 자신의 얼굴과 이름을 밝히지 않은 채 함부로 상대방을 음해하는 것은 더욱 치사한 행동이라는 생각이 든다.건전한 통신문화의 확립을 위해 통신인 스스로가 통신예절을 지켜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임선미[모니터]
  • [대한시론] 새 천년을 향한 創黨

    수년전 선진국에서는 탈냉전과 21세기 현상에 직면하여 당 개혁과 정당파괴를 통해 신당이 창당되거나 노선혁신이 벌어졌다.소련·동유럽의 사회주의권이 붕괴하자 자본주의 선진국들의 국제관계만 아니라 냉전수행에 맞춰졌던국내 정치관계도 변화가 불가피했고 전통적인 계급관계와 가치관이 지식기반 산업화 과정에서 급변하면서 정당들도 소멸·변화·재건이 불가피했던 것이다.우리나라에서도 바야흐로 21세기와 새천년의 16대 총선을 앞두고 신당과정계혁신의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1990년 초에 이탈리아에서는 공산당이 당 노선을 공산주의에서 사회민주주의로 전면 혁신하여 ‘민주좌익당’으로 재창당되었다.이후 반공주의의 보루였던 중도 보수적 기독교민주당이 분열되어 ‘전진이탈리아’당으로 재집결하였다.그러나 이 정당은 정경·정언 유착의 구악(舊惡)이 들통나 다시 사분오열되었다. 그러다 1996년 중북부의 민주좌익당과 남부 소외지역의 지역·계급 동맹체인 ‘올리브동맹’이 총선에서 승리,71년 만의 정권교체를 달성하자 잔여 기독교민주주의 세력이 좌익과 남부 소외지역의 연합정권에 저항하는 ‘북부리가’라는 패권적 지역주의 세력에 의해 괴멸당하는 정치격변이 일어났다.유사한 변화는 일본에서도 진행되어 자민련과 사회당이 분열·재창당을 거쳐일본의 정당관계가 50년 만에 처음으로 일신되었다. 영국,미국,독일 등에서도 보수세력은 신자유주의를 기치로 이른바 ‘신우익’ 노선으로 당을 혁신하였다.진보세력들은 이에 맞서 21세기 지향의 ‘제3의 길’ 또는 ‘신중도’ 노선에 따라 ‘새 정치’를 표방하며 당개혁을 단행,전통적 중산층과 화이트칼라 신(新)중산층의 이익을 표방하는 ‘신노동당’,‘신민주당’,‘신중도 사민당’으로 재탄생했다. 이런 정당변화의 근본 원인들은 탈냉전,세계화,지식기반 산업화,이에 따른노동자·농민의 급감과 신중산층의 급성장,탈(脫)물질적 가치관과 지식·정보·문화 등 무형(無形)의 신(新)국부 개념의 주도현상,노령화,여성·환경문제 등 21세기 현상이다. 우리나라 정당들은 그간 산업화와 민주화 등 ‘근대화’ 문제에만 전념하느라 미처 이런 21세기적 변화에 적응하는 자기혁신을 이루지 못하였다.중산층의 21세기 ‘새정치’를 표방한 중도통합 이념의 ‘새정치국민회의’가 4년전 창당되긴 했으나 당시 야당으로서의 입지,지역주의,북풍음해 등 신(新)냉전 기류에 막혀 뜻을 펴지 못하였다. 그러나 이제 한국정당들이 변신에 실패하면 정치권 전체가 공망(共亡)할 지경에까지 왔다.새 천년의 격변에도 불구하고 그 면면에 구태의연한 정쟁,새천년 비전과 개혁권력의 부재로 국민의 정치불신은 극에 달해 신문의 정치면 구독률이 급감했다.국민은 ‘식물국회’와 더딘 개혁에 대해 격분하고 있다. 이제 여야가 제각기 새 천년을 향한 대혁신을 단행해야 할 때이다.여당이먼저 신진세력 영입과 구 인물의 대폭교체,자당해체를 통한 신당(新黨)창당을 선언하여 이런 방향으로 변화의 물꼬를 텄고 야당도 ‘양심세력’ 영입을 통해 당을 일신할 것으로 선언하였다. 국민회의가 모색하는 신당은 새 천년 국정개혁을 수행할 초지역적인 중도통합(中道統合)의 개혁신당이다.신당의 정체성(正體性)은 중산층을 중심으로서민과 개혁적 보수집단을 양측으로 포용하는 계층연합적 국민정당,전(全)지역세력이 통합된 전국정당,극좌·극우노선을 배제한 전(全)방향의 정치노선(온건진보노선,민주화노선,자유주의 중도노선,개혁적·민주적 보수노선,시민운동노선,21세기 신지식인적 전문역량 등)이 중도통합된 ‘무지개’ 정당,노장청(老壯靑) 연합정당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신당 시도의 성취정도는 미지수지만 아무튼 야당은 여당의 새 천년 도전에 대해 응답해야 할 차례이다.야당은 이념적 정책지향이 불분명한 상태에서 대선을 위해 결합한 ‘한지붕 세가족’식 임시 결사체이기 때문이다. 黃 台 淵 동국대 교수·정치학
  • “음해공작” 한나라당 부인

    한나라당은 30일 ‘이회창(李會昌)총재의 핵심측근 10여명이 97년 대선 당시 모금한 세풍자금 10억여원을 선거운동에 사용하지 않고 보관하고 있다’는 문화일보의 보도와 관련,“전혀 사실과 다르다”고 부인했다. 한나라당은 이날 오후 신경식(辛卿植)사무총장 주재로 긴급대책회의를 열고 이번 사건을 “한나라당에 대한 음해·파괴공작”이라고 결론을 내렸다.이와 함께 문화일보에 대해서는 민·형사상 소송을 제기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안택수(安澤秀)대변인은 “사정 고위관계자가 허위정보를 흘린 것은 한나라당을 분열·파괴하기 위한 책동”이라며 “이총재에 대한 수사가 벽에 부딪히자 총재의 측근들에게 불명예스러운 누명을 씌워 이총재와 한나라당을 궁지에 몰아넣기 위한 책략”이라고 주장했다. 오풍연기자 poongynn@
  • 발칵 뒤집힌 한나라당

    한나라당이 30일 발칵 뒤집혔다.국세청을 동원,모금한 대선자금 일부를 이회창(李會昌)총재 측근들이 유용했다는 보도가 터져나왔기 때문이다.당은 충남 수덕사에서 휴가중인 이 총재의 지시로 오후 긴급대책회의를 열었다.회의는 “야당 음해·파괴를 위한 악의적인 책략”이라고 규정했다.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대선자금도 수사하라며 맞불작전도 폈다.거론된 신경식(辛卿植)사무총장 등은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과 손해배상 청구소송 등 법적 대응을 하기로 했다. 안택수(安澤秀)대변인은 회의가 끝난 뒤 “야당을 골탕먹이는 분열책동을즉각 중지하라”고 촉구했다. 한나라당은 ‘다목적 의도’에서 이번 사건을 흘렸다고 분석했다.우선 여권이 정계개편을 위해서 한나라당을 분열·파괴하기 위한 책략으로 보고 있다. 또 이 총재에게 도덕적으로 치명타를 주기 위해 측근들에게 ‘누명’을 씌웠다고 주장했다. 대선 당시 후보비서실장이었던 신 총장은 “당으로부터 받은 선거자금이 수표라 가까운 사람들에게 부탁해 현금으로 바꿔 사용했다”면서 “당시 내가현금화한 돈은 언론에 발표된 1억6,000만원보다 많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세본부장이었던 박명환(朴明煥)의원은 “당에서 받은 선거자금 1억원은 100만원짜리 수표라 사용하기 곤란해 대선 전 동교동 부친의 집을 판 돈 가운데 현금 1억원을 대신 사용했다”고 해명했다.하순봉(河舜鳳)총재비서실장은 “단돈 10원이라도 분산·보관한 적이 없다”면서 “형사·민사상의 법적대응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당 지도부는 이번 사건이 탈당가능성이 있는 의원들에게 ‘집 나가는 명분’을 주고 이 총재의 리더십을 허물어뜨리는 촉매제가 될 것으로 우려하고있다.비주류의 한 의원은 “대선때 돈 없다고 해놓고 자기들끼리 챙겼는데당 지도력이 발휘되겠느냐”고 주류측에 ‘의혹’의 눈길을 보냈다. 최광숙 박준석기자 bori@
  • 예산절약·稅收증대 기여한 공무원 성과금 받는다

    공무원이 예산을 절약하거나 국고 수입을 늘릴 경우 개인당 최고 2,000만원을 성과금(인센티브)으로 받게 된다. 기획예산처는 29일 예산절약에 대한 공직자들의 창의와 경쟁을 유도하기 위해 예산절약 및 수입증대에 인센티브를 지급할 수 있도록 예산성과금 규정(대통령령)을 마련했다. 이 규정에 따르면 성과금 지급범위는 헌법기관과 행정부를 포함한 각 중앙관서이며 1인당 2,000만원까지 주기로 했다.정원감축의 경우 감축정원의 1년분 인건비,경상적 경비 절감의 경우 절약액의 50%,주요사업비 절감은 절약액의 10%(1억원 한도내)를 성과금으로 지급할 수 있도록 했다. 성과금 지급 후에는 정원감축의 경우 다음해 예산에 그대로 반영되며 경상적 경비 절약액은 30%가 삭감돼 다음해 예산에 반영된다.예산절약의 파급효과가 클 경우에는 성과금의 30%까지 더 지급된다. 정부는 예산성과금 심사업무를 공정하고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기획예산처,재정경제부,행정자치부 등의 1급 공무원을 위원으로 하는 예산성과금심사위원회(위원장 기획예산처 차관)를설치,운영키로 했다. 지난해 이 제도를 시범적으로 시행한 결과 철도청 등 9개 중앙행정기관에서 126억원의 예산을 절약해 43억원을 성과금으로 받았다.올해 상반기에는 7개부처 319억원의 예산절약분에 대해 심사하고 있다. 기획예산처는 수입증대분에 대해서도 10%를 성과금으로 지급토록 했다.그러나 이는 새로운 세입원의 발굴 또는 제도개선을 통한 국고 증대를 전제로 하고 있어 현실적으로 적용이 어렵다는 지적이다. 박선화기자 psh@
  • [무대뒤 사람들] 색소폰연주자 이인권·신경숙부부

    8월15일까지 서울 대학로 학전 그린소극장에서 공연하는 뮤지컬 ‘모스키토’의 인기 비결 중에는 밴드의 몫도 크다.소극장으로서는 처음으로 밴드를무대에 노출시켜 생생한 느낌을 더해준데다 멜로디가 경쾌하다. 배우처럼 무대에 서서 신나는 ‘생음악’을 터뜨리는 주역은 5인조밴드 ‘노 코멘트’.이중 브리지(막간)음악이 흐를 때 ‘톡톡 튀는’음색으로 눈길을끄는 색소폰 연주자가 있다.28세 동갑내기 부부인 이인권과 신경숙이 번갈아 출연한다. “지난 95년 ‘지하철 1호선’으로 학전과 인연을 맺은 뒤 전부터 알고 지낸 경숙씨를 다음해에 합류시켰죠.”(이인권)“클래식을 전공했기 때문에 호흡과 주법이 다른 뮤지컬에 적응하느라 힘들었습니다.인권씨가 많이 도와주었어요.”(신경숙)인간의 음색에 가장 가깝다는 색소폰을 ‘브리지’(매개)로 만난 이들은 ‘연인 겸 사제’로 지내오다 지난해 학전 그린소극장에서 결혼했다.주례는 소극장 대표 김민기가 맡았다. “무대기술 파트에 계신 분들이 고생을 많이 했지요.공연기간이어서 밤샘작업으로 결혼식장으로 꾸민 뒤 식후에 즉시 철거해야 했거든요.”고교 밴드부 이력마저 비슷한 이들이지만 음색은 다르다.남편이 힘 있는 소프라노라면 아내는 섬세한 앨토에 가깝다.성격은 반대다.남편이 자상하고 부드럽다면 아내는 독립심이 강하고 ‘털털하다’고 한다. 하지만 뮤지컬의 매력을 말할 땐 한목소리다.“뮤지컬은 종합적 공연이라 음악적 완성도가 높습니다.혼자 연주하는 것보다 줄거리에 따라 자신의 음색을 낼 수 있고 배우와 함께 호흡하는 과정이 너무 재미있습니다.”비록 배우 중심으로 흐르지만 그들의 흥을 돋구거나 극상황에 따라 변화를줄 수 있고 솔로 파트에선 맘껏 애드립도 넣을 수 있어 좋다고 말한다.번갈아 무대에 서므로 다른 한명은 짬짬이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라고 귀띔한다. 이종수기자 vie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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