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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31지방선거 공천잡음 극심

    지방선거를 두달 앞두고 공천 탈락자들의 극단적인 행동과 음해성 루머가 난무하는 등 공천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2일 지역정가에 따르면 전남 화순 민주당 소속 김모 전 군의원은 최근 공천탈락에 반발, 지역위원회 사무실에서 자신의 왼쪽 검지를 잘라 당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지난달 29일 경북 경주 한나라당 정종복의원 사무실에서는 기초의원 공천에 탈락한 이모씨가 정 의원 앞에서 독극물을 마셔 현재 의식불명 상태다. 서울 중구청장 한나라당 공천을 신청했다가 탈락한 류재택 후보는 공천 탈락소식을 듣고 쓰러져 응급실로 후송되는가 하면 지지자 50여명이 가두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이들은 한나라당이 2004년 중구청장 보궐선거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출마해 낙선했던 인사를 공천하자 ‘비공개 밀실공천’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한나라당 경남 창원시의원 후보공천에서 탈락한 시의원 3명은 이주영 경남도 부지사 집으로 몰려가 “여론조사가 조작됐다.”며 소동을 벌이고 이 부지사의 사퇴를 요구했다. 전북 완주군에서는 열린우리당에 군수공천을 신청했다가 배제된 이종석 예비후보가 법원에 상대후보 공천에 대한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을 냈다. 민주당 광주 서구청장 신현구 예비후보는 전주언 광주시 기획관리실장이 공천후보로 내정되자 밀실공천이라며 유종필 광주시당위원장의 사퇴를 주장했다. 한나라당 공천에서 사실상 탈락한 부산 기초단체장 3명의 지지자 500여명은 지난달 31일 부산시당사로 몰려가 “야합·밀실 공천을 즉각 중단하라.”면서 소동을 벌였다. 앞서 26일에는 경남 진주의 한나라당 김재경 의원 사무실 출입문이 파손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은 공천에서 탈락한 사람의 소행으로 보고 있다. 대구에서는 모 공천신청자가 지역 국회의원 등에게 금품과 향응을 뿌린 의혹이 있다는 글이 한나라당 홈페이지에 올라와 검찰이 수사를 펴고 있다. 국민중심당 대전시장 후보공천을 신청했다 탈락한 최기복 범충청권하나로연합 상임의장은 지난달 29일 당을 떠났고, 심준홍 대전시의원도 탈당해 한나라당으로 입당하는 등 공천을 둘러싼 ‘철새행보’도 잇따르고 있다. 전국종합 대전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나비스코챔피언십] ‘다른 길’ 두천재 ‘같은 조’ 맞대결

    ‘1000만달러의 소녀’ 미셸 위(17)와 ‘일본의 아이콘’ 미야자토 아이(20)가 처음으로 맞붙는다. 31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란초미라지의 미션힐스CC(파72·6569야드)에서 개막하는 올시즌 미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첫 메이저대회인 나비스코챔피언십 1·2라운드를 단 둘이 함께 도는 것. 동양계로서, 각각 세계 랭킹 2위와 6위로 여자골프의 미래를 책임질 두 선수를 한 조에 편성한 것에서 세계적인 관심을 끌려는 주최측의 의도가 엿보인다. 미셸 위는 하와이, 미야자토는 오키나와 태생으로 두 선수는 어려서부터 골프에 천재적인 소질을 드러냈다. 미셸 위는 10살 때인 2000년 제니K윌슨인비테이셔널 우승으로 천재성을 보인 이후 2003년 US여자아마추어퍼블릭링크스챔피언십 최연소 우승 등 가는 곳마다 화제를 몰고다녔다. 4살 때 골프채를 처음 쥔 미야자토도 일본 아마추어 무대를 휩쓸던 2003년 일본여자골프 투어 던롭오픈에서 우승, 아마추어로는 30년 만에 프로대회 정상에 오르며 일본인들을 매료시켰다. 다른 점이 있다면 남자들과의 성대결을 즐기는 미셸 위가 LPGA 정규멤버가 되길 거부한 반면 미야자토는 지난해 말 치러진 LPGA 퀄리파잉스쿨을 수석으로 통과하며 올시즌 신인왕을 노리고 있다는 것. 물론 지금까지 LPGA 무대에서의 성적과 이번 대회에서의 기대치에서도 차이는 있다. 미셸 위는 2003년 첫 출전한 이 대회에서 공동 9위, 다음해에는 단독 4위를 차지한 경험과 실력으로 올해는 당당히 우승후보로 꼽힌다. 하지만 미야자토는 지난해 이 대회에 처음 출전해 공동 44위에 그쳤고, 올시즌도 필즈오픈 공동 24위가 최고의 성적일 정도로 아직 제기량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곽영완기자 kwyoung@seoul.co.kr
  • 中 ‘핑퐁외교’ 부활

    |베이징 이지운특파원|지난 1971년 미·중 수교의 물꼬를 텄던 ‘핑퐁외교’가 35년만에 재연된다. 25명으로 구성된 미국의 탁구 대표단이 핑퐁외교 35주년을 함께 축하하자는 중국탁구협회 초청을 받아들여 26일 베이징에 도착했다. 이어 다음달 1일에는 일본 대표단이 탁구 교류 50주년을 맞아 중국 땅을 밟는다. 중국은 현재 미국과 통상, 환율, 지적재산권 보호 등 경제 현안과 중국의 군사력 증강, 인권 문제 등을 둘러싸고 첨예하게 대립해 있다. 일본과도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 등의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 영토 분쟁 등으로 심각한 마찰을 빚고 있어 핑퐁외교가 중·미, 중·일간의 감정 대결을 누그러뜨리는 효과가 있을지 기대를 모으고 있다. 미 대표단은 셰리 소더버그 피트먼 미국탁구협회 회장을 포함해 모두 25명으로 구성됐으며, 이 가운데 지난 71년 중국 방문 멤버도 7명이나 포함됐다. 대표단은 다음달 4일까지 열흘동안 베이징, 상하이, 장쑤(江蘇)성 창수(常熟)시 등 3개 도시를 순방하면서 좌담회, 친선경기 등을 갖는다. 71년 4월 탁구선수 등 미국 대표단 15명과 기자 4명은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와 면담하고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 등을 순방함으로써 공산 정권 수립 이후 20년 이상 막혔던 양국 교류의 징검다리를 놓았다. 이 일을 계기로 그해 7월 헨리 키신저 당시 국가안보담당 보좌관의 극비 방중이 이뤄졌고 다음해 2월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방중, 양국관계를 정상화하는 ‘상하이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한편 40여명으로 구성된 일본 대표단은 다음달 4일까지 중국에서 양국 관계의 정상화를 지원하는 활동을 펼친다. 중국은 외교관계가 수립되지 않았던 1956년 도쿄에서 열린 23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국제 대회 사상 처음으로 선수단을 파견, 양국 스포츠 교류의 서막을 연 바 있다.jj@seoul.co.kr
  • [탐사보도] 대중문화 새코드 - 연예인 2세 전성시대

    [탐사보도] 대중문화 새코드 - 연예인 2세 전성시대

    요즘 세상에 연예인은 걸어다니는 1인 기업이다. 일년에 CF 몇편,TV드라마나 영화 두어편쯤 찍는 어지간한 스타라면 수십억원은 뚝딱 챙기기 일쑤다. 엔터테인먼트 시장의 파이가 갈수록 커지는 가운데 연예인 가업 승계의 실태와 그를 부추기는 토양, 연예계 진출에 미치는 부모들의 영향을 짚어본다. #2세 스타, 꼬리를 물다 연예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2세 연예인은 줄잡아 50여명이지만 PD 아나운서 작가 등 방송 관계자들의 자녀까지 합하면 60명을 넘는다는 게 업계의 관측이다. SBS 드라마 ‘사랑과 야망’의 리메이크작에 얼굴을 내민 새내기 탤런트 남승민.20년 전 원작의 주인공으로 안방극장을 누볐던 고 남성훈의 아들이다. KBS 1TV 일일연속극 ‘별난 여자 별난 남자’의 조연으로 연예계 첫발을 디딘 생초짜 탤런트 이상원은 이영하-선우은숙 부부의 아들. 극중 홈쇼핑 회사의 직원으로 한두번쯤 얼굴을 내미는 비중 약한 조연이다. 하지만 함께 출연하는 이영하의 아들이란 사실이 알려지면서 삽시간에 세인의 주목을 이끌어냈다. 한창 물오르는 연기를 구사하는 2세 연기자로는 최주봉의 아들 최규환을 빼놓을 수 없다.MBC 일일연속극 ‘사랑은 아무도 못 말려’에서 시나리오 작가로 얼굴을 내밀며 본격적으로 ‘연기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늘어나는 세습 연예인, 무엇이 그들을? 연예인 2세들이 급증하는 배경은 뭘까. 연예계 관계자들은 “연예인은 모두가 꿈꿔보지만 도전하는 방법 자체를 몰라 여전히 엄두내기 어려운 특수영역의 직업”이라며 “연예인 자녀들에겐 데뷔 노하우와 기획사 접근권 등이 부모를 통해 일상적으로 열려 있는 셈”이라고 입을 모은다. 연예인들의 사회·경제적 위상이 높아지면서 가업을 이으려는 스타 자녀들이 많아지고,2세 연예인 속출은 그에 따른 자연스러운 결과라는 분석이다. #홀로서기 전략 ‘폐쇄형’ vs ‘오픈형’ 연예계가 빠르게 기업화하면서 최근 2세 연예인들의 홀로서기 과정에도 치밀한 전략이 뒤따른다. 소속 기획사의 홍보 매뉴얼에 힘입어 대중과 접촉하는 이들의 방식은 주로 ‘전략적 폐쇄형’. 부모의 신분을 데뷔 초기의 한 시점에 짧게 효율적으로 노출시키는 띄우기 전략인 셈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덕화 최민수 독고영재 등 80년대 ‘세습 1세대’의 데뷔환경과는 사뭇 차별점을 찍는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무엇보다 2세 스타들을 평가하는 대중의 자세가 대단히 적극적으로 변했다는 지적들이다.“인터넷이 없었던 1세대들의 연예계 진출 당시에는 ‘안티’대중이 잠복세력에 그쳤던 반면, 요즘엔 ‘누구누구 자식’이란 꼬리표가 붙는 순간 ‘부모 잘 만나 호강하네.’식의 음해시비에 휩싸이기 십상”이라는 게 어느 가수 매니저의 말이다. 싫건 좋건 ‘폐쇄형’이 대세를 이룰 수밖에 없는 현실이란 얘기이다. 2세 연기자들 가운데 동급최강의 몸값을 자랑하는 김주혁. 소속사인 나무액터스의 담당매니저는 “김무생씨가 냉정할 정도로 주혁이의 데뷔과정(SBS 공채)에 객관적이었다.”며 “부모의 명성이 데뷔 초기에 대중의 이목을 끄는 데는 도움이 되겠지만, 그런 스포트라이트가 오히려 족쇄로 작용하는 게 이 바닥의 생리”라고 말했다. 대중과의 접근성에서 유리할 뿐 그들의 스타성은 결국 대중의 객관적 잣대로 저울질될 수밖에 없다는 것. 연정훈이 소속된 스타K의 윤성빈 실장은 “역량이 부족한 2세는 결정적 도약시점에서 대중에게 외면당한다. 대중의 평가는 무서울 만큼 엄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듯 장기적 손익을 따진 폐쇄전략은 대부분의 2세 연예인들이 선택하는 생존방식. 신인배우 임영식은 아버지 임하룡과 새 영화 ‘원탁의 천사’에 동반 출연키로 했다가 부자지간이 밝혀지자 도중 하차했다. 제작사 시네마제니스의 서정 기획이사는 “작은 역할이지만 임영식이 가명으로 출연하기로 했는데, 부자관계가 기사화되면서 곧바로 포기의사를 밝혀왔다.”며 “시작단계에서 본인 의지와 상관없이 아버지 이미지가 덧칠될까봐 부담스러웠던 것”이라고 전했다. 광고주들이 군침 흘릴 ‘그림’이 틀림없건만, 세습스타 가족들이 쇄도하는 거액의 CF를 마다하고 하나같이 자중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부연설명이다. 드물지만 대중의 적극적 관심을 유도하는 ‘오픈형’이 없진 않다. 백윤식-백도빈 부자는 영화계에선 이미 소문난 오픈형. 백윤식이 자신에게 들어오는 시나리오마다 아들을 패키지 출연시켜 달라는 직설적 주문으로 캐스팅에 나선 제작자들을 곤혹스럽게 했다는 후문이다. #가속화할 연예가(家) 전성시대 연예인이 선망의 직업으로 부상한 이상 연예가업을 잇는 사례는 앞으로도 꾸준히 늘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들어 수적으로 두드러지는 스타커플 역시 2세 연예인 증가와 맥락을 같이한다는 시각도 있다. 스타커플이 같은 소속사에서 한솥밥을 먹는 사례도 연예계의 새 풍속도가 됐다. 김주혁-김지수, 유준상-홍은희(나무액터스) 남성진-김지영(팬텀엔터테인먼트) 등이 그런 사례. 한가인도 연정훈의 소속사인 스타K 쪽과 물밑 접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이루 연예인2세 인지도 1위 “저요? 저도 ‘노예계약’이란 걸 했거든요.” 가수 이루(23)가 웃으며 하는 말이다. 남들과 다르지 않았던 자신의 데뷔를 알아달라는 뜻일 게다. 그러나 이루가 뭐라 하건 사람들은 여전히 그에게서 아버지 태진아를 떠올린다. 한국리서치 보고서에서 2세 연예인 하면 생각나는 사람 1위로 꼽힌 것도 한 예다. 이루는 최근 줄잇는 2세 가수 가운데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아가는 케이스.1집 ‘Begin to breathe’로 지난해 골든디스크 신인상도 받았고, 요즘 데뷔하는 고만고만한 ‘붕어떼’ 가수들과 달리 가창력과 작곡실력도 인정받고 있다. “부자지간이 위태로울 정도로 서먹서먹”했던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부모는 태진아 팬, 자식은 저의 팬인 경우가 많아 신기하고 재밌다.”고 밝힐 정도로 여유도 찾았다. 마음고생이 끝난 건 아니다.‘태진아가 뒤를 다 봐준다.’는 시선은 여전하다. 그래서 태진아와 함께 하는 인터뷰와 사진촬영 요청을 끝내 거절했다. 같이 나와야 출연시켜 주겠다는 방송 때문에 알게 모르게 불이익도 많이 받는다는 게 매니저의 귀띔이다. 그가 보는 2세 연예인은 어떨까. “2세라서 좋은 점요? 식당 같은 데서 서비스 주고, 어디 가면 알아봐 줘요. 그 외에는 없어요. 모든 게 단점이에요.” 외려 강심장이어야 한다.“광고주가 모델 시키려고 뒷조사했더니 나이트 죽돌이라는 보고가 올라와서 취소됐다더라는 식의…. 참 기도 안 찰 얘기들뿐이었죠.” 혼자라면 눈과 귀를 닫으면 그만인데, 아버지 얼굴이 떠올라 속깨나 태웠단다. 데뷔과정을 물었다.“아버지에게 받은 건 CD제작비밖에 없어요.” 노래부르고 싶어 버클리음대를 휴학하고 귀국한 뒤,1년 반 동안 40㎏을 빼고 보컬트레이닝에 매달렸다. 그러고는 작곡가마다 찾아가 열심히 오디션을 봤다.“열심히 부르고 또 불렀습니다. 제발 곡 좀 달라고요.” 그러다보니 이제 ‘비즈니스 화법’의 달인이 됐다며 웃는다.8월쯤 시작할 2집 작업에서는 자작곡도 많이 넣어 자신만의 색깔을 내겠다는 각오다. 태진아 역시 엄격하기는 매한가지였다.‘노예계약’ 얘기도 그래서 나왔다.“제가 음악한다 했을 때 아버지만 ‘30여년을 걸어온 내 인생인데 내가 돕겠다.’고 하셨어요. 그런데 그 도움이란 게 더 처절하게 현실을 겪어봐야 한다는 거였어요.” 오디션 보고, 앨범 만들고, 계약서 쓰는 것에까지 한치의 양보도 없었다 한다. 그래서 이루에게 연예인이란 ‘손쉽게 돈 벌어 폼나게 사는 직업’이 아니다.“대중을 위해 발가벗고 달려들지만, 선택받지 못하면 모든 게 끝이라는 연예계의 냉정함”에 익숙한 편이다. ‘2세 연예인’에 대한 이루의 바람은 간단했다.“그냥 한번 지켜봐주세요. 어떻게 하는지. 뭘 어떻게 하는지 보지도 않고 ‘아∼ 쟤는 누구누구 아들이지, 딸이지.’라고 말해버리는 건 정말 당사자한테는 소주 10병을 권하는 말이에요.” 글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사진 강성남기자 snk@seoul.co.kr ■ “누구누구 자식 꼬리표 캐스팅때 한번 더 보게돼” 부와 명예를 한손에 쥘 수 있는 요즘 대중스타는 말 그대로 ‘하늘의 별’. 별이 되고 싶은 연예인 지망생의 증가세는 시중 연기학원들에서 한눈에 확인된다. 송혜교 강혜정 김소연 감우성 등을 배출한 대표적 연기학원 MTM. 에이전시(탱크M)를 겸하고 있는 이 학원은 한달에 두 차례 오디션을 보는데,1회 지망생이 300명을 넘는다.2,3년 전과 비교하면 30%쯤 늘어난 수치이다.MTM 기획팀 배호진 부장은 “예쁘고 날씬해야 스타가 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얼꽝’‘몸꽝’은 물론 제2의 인생을 꿈꾸는 30∼40대도 많이 찾는다.”고 말했다. 이런 추세를 반영하듯 연기학원은 몇 년새 두배 가까이 늘었다.SM, 인스타즈, 한별 등 자체 아카데미 기능을 갖추고 조직화한 학원이 15개가 넘는다. ‘길거리 캐스팅’이 되지 않는 한, 일반인들이 연예계에 진입하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연기학원의 아카데미 과정을 밟으며 두각을 나타내는 것. 학원들이 별도운영하는 에이전시의 오디션에서 발탁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그러나 수백대 1의 경쟁을 뚫고 ‘낙점’되기도 하늘의 별따기이지만, 오디션 통과 이후 대중매체에 얼굴을 내밀기까지도 바늘구멍 들어가는 낙타가 되긴 마찬가지. 바로 여기에 힘의 논리가 끼어든다. 외주제작사나 연예기획사들의 막강파워에 휘둘려 방송사 공채가 사실상 무의미해진 현실에서 로비력이 센 기획사로 스타지망생들이 몰리는 건 당연한 이치이다.“실력으로 평가받을 뿐”이란 대세론에도 불구하고 연예인 2세들에게 부모 후광의 편견이 쏠릴 수밖에 없는 이유도 이 지점에서 찾을 수 있다. 유명 연예기획사의 한 관계자는 익명을 전제로 “‘누구누구의 아들(딸)’이란 수식어를 내세우면 캐스팅 과정의 방송사 PD들이 한번이라도 더 눈여겨보게 마련”이라며 “자녀의 캐스팅을 성사시키려 열심히 로비하는 스타부모 얘기도 자주 듣는다.”고 귀띔했다. 우회로 대신 지름길을 걷는 특혜가 2세 연예인들에겐 틀림없이 있다는 결론이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본지 설문조사 결과 서울신문이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조사한 연예인 2세에 관한 보고서에서는 최근 데뷔한 2세들의 ‘딜레마’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2세 연예인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을 말하라는 오픈형 설문을 준 뒤 그 사람이 부모 덕분에 성공했다고 보는지, 아니면 자신의 노력 때문에 성공했다고 보는지 물었다. 여기서 가수 이루는 2세 연예인 가운데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 1위를 차지했다. 그 뒤에 최민수(최무룡)·김주혁(김무생)·허준호(허장강)·연정훈(연규진)·송일국(김을동)처럼 브라운관이나 스크린을 통해 오랫동안 대중에게 노출됐던 연예인들이 차지했다. 이루가 갓 데뷔한 가수라는 점을 감안하면 놀라운 기록이다. 더구나 2·3위 최민수·김주혁(16.5%·15.0%)과 1위 이루(22.5%)간의 차이는 꽤 크다. 조사(3월17일) 직전에 ‘이루-태진아’가 언론에 많이 노출됐다는 점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왜 성공했느냐.´에 대해서는 인색한 평가를 받았다. 스스로의 노력으로 성공했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최민수·김주혁에 대해서는 72.9%와 79.2%에 이르는 사람들이 그렇다고 대답한 반면, 이루에 대해서는 그렇다는 대답비율이 그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35.0%에 그쳤다. 한국리서치측은 “이미 인지도를 확보한 사람과 최근에 데뷔한 사람에 대한 시각이 다르다.”고 지적했다. 또 부모의 인기도 중요한 변수다. 대체로 부모의 인기가 높았던 경우(태진아-이루, 신성일-강석현) 사람들은 자식의 인기도 부모 덕택이라고 보는 경우가 많았다. 부모의 인기. 그것도 높은 인기는 대중의 시선을 확 잡아 끄는데는 크게 도움을 주지만, 부모 덕이나 본다는 소리를 딱 듣기 좋은 상황인 셈이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儒林(565)-제5부 格物致知 제3장 天道策(1)

    儒林(565)-제5부 格物致知 제3장 天道策(1)

    제5부 格物致知 제3장 天道策(1) 1558년 명종 13년 겨울. 성균관의 문묘 뒤쪽에 설치된 명륜당(明倫堂)에서는 별시해(別試解)가 거행되고 있었다. 별시란 정기적으로 3년에 한번씩 열리는 식년과(式年科)라 불리는 과거시험과는 달리 세자의 탄생, 책봉과 같은 나라의 경사가 있거나 10년에 한번 당하관(堂下官)을 대상으로 한 중시(重試)가 있을 때 시행하던 일종의 부정기적인 과거시험이었다. 식년시에는 33명의 인재가 선발되고,10년 만에 한번씩 치르는 중시 때는 조의(朝儀)를 행할 때 당상의 교의(交椅)에 앉을 수 없는 서얼(庶孼)과 같은 특수한 신분의 낮은 계층사람들이 참석할 수 있었으나 이번의 별시는 주로 성균관 유생에 한정되어 치르는 별시문과(別試文科)였다. 율곡은 이 특별시험에 참석하기 위해서 강릉을 떠나 시험 이틀 전에야 한양의 수진방에 도착하였다. 그해 봄 퇴계를 만나 2박 3일의 짧은 상봉을 끝낸 후 율곡은 줄곧 강릉에 머물며 학문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율곡이 별시에 응시하기 위해서 한양으로 돌아온 것은 거의 10개월 만의 외출이었던 것이다. 율곡으로서는 세 번째의 과거시험이었다. 이미 율곡은 불과 13세의 어린나이로 진사과에 초시로 합격하였다. 두 번째 시험은 금강산으로 출가하였다 환속한 다음해였던 1556년 21세 때의 일이었다. 한성부에서 실시한 것으로 한성시(漢城試)라고 불렸던 초시였다. 이 시험에서 율곡은 장원으로 뽑혀 널리 문명을 떨쳤으나 최고 학부인 성균관에 유학할 수 있는 특권을 얻은 것에 지나지 않았을 뿐 여전히 백면서생에 불과하였던 것이다. 율곡에게 있어 세 번째 별시는 각별한 의미를 지닌 것이었다. 이제 율곡은 더 이상 홀몸이 아니라 아내까지 거느린 가장이었고, 양반의 신분으로 태어난 율곡이었지만 이제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이 과거에 급제한 뒤 입신양명함으로써 가족을 부양하고, 자신의 자아를 실현하기 위해서라도 과거제도에 얽매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뿐인가. 율곡은 스승 퇴계를 만나고 강릉으로 돌아간 10개월 동안 스승으로부터 점지 받은 ‘거경궁리’에 혼신의 힘을 다하여 몰두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율곡이 평생 동안 공부하였던 학문의 양보다 이 짧은 10개월 동안에 더욱 깊이 침잠하였던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율곡의 철학과 지적수준이 이 무렵에 거의 완성되었음을 뜻하는 것이다. 얼마나 많은 시간을 학문에 투자하느냐 하는 사실보다 비록 짧은 기간이더라도 얼마나 집중하고 몰두하느냐 하는 것이 학문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하는 사실을 율곡의 모습을 통해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장면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세 번째의 과거시험이었던 별시해는 율곡의 학문을 객관적으로 시험해 볼 수 있는 바로미터였던 것이다.
  • [2006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벽산그룹 김희철 회장家

    [2006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벽산그룹 김희철 회장家

    한때 18개 계열사를 거느리면서 30대 재벌그룹으로 명성을 떨쳤지만 외환위기(IMF)와 함께 구조조정을 겪으면서 벽산건설㈜,㈜벽산, 벽산페인트㈜,㈜인희, 동양물산 등 5개만 남은 미니그룹으로 축소된 게 오늘날의 벽산이다. 출자전환된 채권단의 주식을 되사들여 창업주 가문이 명맥을 잇고 있는 것은 불행중 다행이다. 벽산의 주력사는 벽산건설이다. 전체 매출 가운데 60% 이상을 차지할 정도다. 때문에 벽산 사람들은 그룹이라는 표현 대신 건설 전문업체라는 표현을 쓴다.3세 경영체제로 넘어가면서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GS가문·박정희 대통령 등과 혼맥 형성 고 김인득 창업주의 3남 2녀중 장남 김희철(69) 벽산건설 회장은 경기고 3학년이던 16세 때 미 캘리포니아로 건너가 15년간 유학생활을 했다. 한 달에 2∼3통씩 집으로 편지를 썼는데 아버지인 고 김인득 창업주는 틀린 한자를 교정해 보내주는 등 자식 교육에 애착을 보였다. 김희철 회장도 기대에 부응해 미국 퍼듀대 기계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경영학 석사·MIT대와 퍼듀대에서 각각 원자력공학 석·박사학위를 땄다. 이어 미주리주 롤라대학에서 조교수를 역임하다 1969년 정부의 해외우수인재 유치 계획에 따라 과학기술처 1급 연구관으로 초빙돼 귀국했다. 김희철 회장은 1965년 김인득 창업주의 3남이자 김 회장의 동생인 김희근(60) 벽산엔지니어링 명예회장과 김 명예회장의 경기고 동창인 허광수(60) 삼양인터내셔널 회장의 제의로 삼양통상 고 허정구 회장의 장녀 허영자(66)씨를 만났다. 허광수씨의 누나인 영자씨는 이대 불문과를 졸업한 뒤 미 노스웨스턴대 불문학과 석사 과정을 밟다 다음해 시카고에서 김 회장과 결혼했다. 김희철 회장은 1971년 건축자재 생산업체였던 ㈜벽산의 전신인 제일스레트 대표이사를 맡으면서 벽산 경영에 참여했고,1982년 그룹 부회장으로 오르면서 사실상 경영을 도맡았다. 하지만 김인득 창업주가 세상을 뜬지 반년도 지나지 않아 IMF 위기를 맞아 선친이 키운 기업을 구조조정해야 하는 불운을 맞기도 했다. 벽산은 3세 경영 체제에 안착했다. 김희철 회장의 장남인 김성식(39) ㈜벽산 대표이사 사장은 ㈜벽산페인트 대표이사도 겸하고 있다. 오하이오주립대 마케팅 학사,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석사를 졸업했다. 이후 보스턴 컨설팅에서 일하다 2001년 1월 ㈜벽산 전무로 입사했다. 지금은 부도로 쓰러졌지만 80년대 말 주택사업을 활발히 펼쳤던 ㈜동신 박승훈 회장의 장녀 박성희(36)씨를 학교 선배의 소개로 만나 결혼했다. 김희철 회장의 차남 김찬식(37)씨는 주력사인 ㈜벽산건설에서 경영수업을 받는 중이다. 경영지원실장(전무)으로 내부 살림을 챙기고 있다. 서울대 서양사학과를 졸업하고 조지타운대에서 MBA를 땄다. 한 살 아래인 장현주(36)씨를 대학(이대 동양학과)시절 소개팅으로 만나 연애 결혼했다. 장씨의 아버지 장경환(74)씨는 포항제철 전무이사, 삼성중공업 사장 등을 거쳐 포항제철(현 포스코) 경영연구소 회장을 지냈다. 장녀 김은식(35)씨는 서울대 음대 기악과를 나온 바이올리니스트. 양해엽(77) 전 재불 한국문화원장의 차남인 첼리스트 양성원(39·연세대 기악과 조교수)씨와 결혼, 음악가 집안을 꾸렸다. 이들의 결혼은 양가 어머니들의 오랜 친분으로 맺어졌다. 김인득 창업주의 차남인 김희용(64) 동양물산 회장은 미 인디애나주립대 출신으로 1987년부터 그룹의 모태이자 농기계전문업체인 동양물산 사장으로 취임,2001년부터 회장을 맡고 있다.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셋째 형인 고 박상희씨의 딸 설자(61)씨와 중매로 만나 결혼했다. 설자씨는 김종필 전 자유민주연합 총재의 처제이기도 하다. 이로써 벽산가 혼맥은 경제계 뿐 아니라 고위 정치권과 닿는 계기가 됐다. 장남 김희철 회장가와 차남 김희용 회장은 2004년 주식 교환을 통해 사실상 독립경영 체제를 갖췄다. 김희철 회장 집안이 벽산건설과 ㈜벽산 등을, 김희용 회장 집안이 동양물산 지분을 갖는 것으로 구도를 정리했다. 김희용 회장의 장남 김태식(33)씨는 동양물산 이사로 근무하고 있으며, 딸 김소원(28)씨도 동양물산에 몸을 담고 있다. 셋째 아들인 김희근(60) 회장은 지금은 정리된 벽산건설의 해외부문을 담당하는 등 줄곧 건설을 책임지며 벽산건설 부회장까지 역임했다. 미 마이애미대 출신으로 IMF 위기를 맞아 건설에서 손을 뗐고 지금은 계열분리된 벽산엔지니어링 명예회장 직함만 갖고 있다. 벽산건설 부회장으로 재직하면서 은행 대출을 받기 위해 재무제표를 조작한 사기 혐의로 검찰에 불구속기소된 상태다. 미 LA에 살고 있지만 결백을 입증하기 위해 귀국해 수사를 받고 있다. 김희근 명예회장측은 당시 대출은 만기연장이 대부분이어서 사기 혐의는 터무니없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고 이윤우 전 그린파크 회장의 4녀인 이소형(58)씨와 결혼했다. 고 김인득 창업주의 장녀인 김숙희(66)씨는 피혁전문 무역업체인 천마를 운영하는 정영현(72) 회장과 중매로 만나 결혼했다. 막내 딸 김연숙(57)씨는 원영종(59) 화인계기주식회사 대표이사와 사이에 치성(28)·치열(26) 두 형제를 두고 있다. ●고 김인득 창업주…소문난 근검절약가 고 김인득 창업주는 경남 함안군 칠서면 무릉리라는 작은 마을에서 4남2녀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농사를 지었지만 계절에 따라 포목상 일을 겸해 형편은 어렵지 않았다. 고향에서 보통학교(칠서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3수 끝에 열 네살이 되던 해에 마산상고에 입학했다. 성적이 좋아 우등생으로 졸업했고, 농구·탁구·축구 선수로 활약하는 등 운동도 잘했다. 남선주산대회에서 1등을 했고 서화전시회에 출품하면 항상 상을 받는 모범생이었다. 첫 직장은 1934년 봄 입사한 마산금융조합. 예금 권유부터 연체 독촉까지 항상 1등이란 팻말이 따라다녔다.‘남과 같이해서는 남 이상 될 수 없다.’는 철학은 이때부터 생겼다. 당시 월급 28원을 받던 그는 10년동안 1만원(현재 1억원)을 벌겠다는 목표를 세워 9년간 8900원을 모았다. 이 돈을 모으기 위해 숙직을 자청, 숙직비를 모았고 출장 갈 때면 새벽에 일어나 목적지까지 걸어가면서 출장비를 아꼈다. 투철한 절약정신만큼 가족 사랑도 깊었다.“1932년 1월11일 양가 부모와 일가친척의 축복 속에서 17세 신랑과 18세 신부는 결혼을 했어요. 신랑이 장남이라 결혼시켜 어린 5남매와 큰 살림을 맡기실 작정을 하신 모양이었어요.17세 신랑은 키도 크고 헌칠했어요. 결혼후 남편은 3년을 학생 신랑으로 지내고 저는 신랑 없는 시집살이를 했어요.” 고 김인득 창업주의 부인 고 윤현의 여사는 김 창업주의 첫 인상을 ‘벽산 김인득 선생 회갑 기념-남보다 앞서는 사람이 되리라’란 책을 통해 이같이 회고했다. 고 김인득 창업주의 동생인 고 김재동씨도 같은 책에서 창업주를 두고 애처가 중의 애처가라고 평했다. 평상시에도 “부인이 무슨 낙이 있겠어. 내가 아내의 종이 돼야지…”라고 말하며 부인에 대한 사랑의 표현을 아끼지 않았다는 것이다. 고 김인득 창업주는 일제 치하였던 만큼 기술자나 사업가가 아니면 한국인은 성공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라 1943년 진주상공회의소로 자리를 옮긴다.1949년 무역업을 하기 위해 상경했는데, 당시 외국 무역이나 한다는 사람들은 으레 호텔에 머물며 식사도 고급으로 하는 등 허세를 부리기 일쑤였지만 김인득 창업주는 삼류여관에 머물며 국밥 외엔 다른 음식을 입에 대지 않았다. 택시는 타지 않았고 걷거나 전차·버스를 이용했다. 모두가 멋쟁이 양복을 빼고 다녔지만 농구화나 군화를 신고 다녔으며 그나마 구두 뒷굽이 빨리 닳는다며 바닥에 말발굽 ‘징’을 박아 신고 다녔다. 호주머니에 쓸데없이 돈을 넣고 다니지 않았으며 필요한 돈만 명함꽂이에 넣어 다닐 만큼 근검절약이 몸에 배어 있었다. ●‘극장의 제왕’서 건자재·건설업으로 비약 부산 동아극장 지배인으로 일하다 6·25가 발발한 1950년 피란갔던 부산에서 오늘날 벽산의 효시인 동양흥산(현 동양물산주식회사)을 창업한다. 외국영화를 수입해 전국 영화관에 공급하는 일과 수입·무역업이 주종이다. 전쟁에 지친 사람들에게 당시 오락시설로는 극장이 전부인 시절이었고 동양물산은 외화의 60%를 수입했다. 중앙극장, 단성사 등 서울 주요 극장을 비롯해 부산 대전 대구 진주 등 전국에 100여개에 달하는 극장 체인을 형성, 극장 재벌로 부상하며 50년대 말 흥행업 왕좌에 올랐다. 산업의 본질은 생산업이라 여긴 김인득 창업주는 60년대 들어 ‘사업보국’을 내걸며 흥행업에서 점차 손을 떼고 제조업쪽으로 방향을 돌린다. 단성사와 반도극장(현 피카디리) 등을 판 돈으로 1962년 9월 한국스레트공업주식회사(현재 ㈜벽산)를 인수한 것은 제2의 도약기를 맞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 이 회사는 일제 당시 일본 아사노 스레트의 서울 공장으로 1929년 출범했지만 당시 부실화되어 개점 휴업상태인 회사였다. 인수 직전 9개월까지 실적이 3000만원에 불과했지만 주인이 바뀐 뒤 3개월간 6000만원의 실적을 올렸다. 이어 60∼70년대 새마을운동으로 시작된 전국적인 농어촌개량작업으로 슬레이트 사업은 번창일로를 맞는다. 이후 건자재 생산업체인 오늘날의 ㈜벽산으로 자라났다. 1964년 1월 한국스레트공업주식회사에 건설사업부를 발족하면서 건설업을 본격화했다.1968년 시공능력 33위에서 1971년에는 11위에 오를 정도로 덩치가 커지면서 같은 해 1월 한국건업주식회사로 떨어져 나와 지금의 벽산건설로 성장했다. 그룹의 모태인 동양물산은 고구마 절단기 등 농기계 생산업체인 ‘한국이기공업주식회사’(1964년)와 한국경금속(1968년)을 인수하면서 새 전기를 맞는다. 동양물산은 지금도 경운기 등 농기계와 스푼 등 양식기를 만들면서 과거 명맥을 잇고 있다. 1973년 스레트공업사 내 페인트공장을 신규 착공하면서 시작한 페인트 사업도 그대로 있다.1999년 구조조정과 함께 벽산화학㈜에 합병됐다 2001년 벽산페인트로 거듭났다. 이로써 벽산그룹은 벽산건설,㈜벽산, 벽산페인트, 동양물산,㈜인희 등 5개사를 거느리고 있다. ●IMF때 대대적인 구조조정 그룹명 벽산은 고 김인득 창업주의 아호를 따서 지은 것이다.60년대말부터 회사를 끊임없이 인수·합병하는 등 사세를 키워카며 통일성을 위해 붙인 이름이다. 그러나 유통 금융 방송 지하자원개발 등 전체 18개에 달하던 계열사는 IMF이후 구조조정을 겪으며 현재 5개로 줄었다. 1976년 설립한 건축내외장제 제조사 벽산산업개발㈜은 1998년 그룹 경영합리화 계획에 따라 ㈜인희에 합병됐다.㈜인희는 영화산업에 애착을 가졌던 김인득 창업주가 1952년 중앙극장을 세우면서 설립했던 회사. 영상산업회사로 키우기 위해 비서실내에 신규 영상 사업팀까지 두고 챙겼었지만 지금은 발코니 확장과 일부 건자재만 만들며 ㈜벽산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 1985년 벽산쇼핑㈜을 통해 유통업에 진출했지만 1999년 3월 구조조정계획에 따라 매각했고,1989년 인수한 정우개발㈜,㈜동부해양도시가스 등 정우 계열사들 역시 1999년 정리했다.1991년 유신상호신용금고를 인수해 금융업도 본격화했지만 1998년 대출금 마련을 위해 팔았고,㈜한국케이블TV 전남동부방송을 설립해 종합유선방송(SO)사업도 손을 댔지만 1999년 구조조정 과정에서 정리했다. 대부분의 그룹 사옥도 처분했다. 그룹 40주년 출범과 함께 서울역 앞에 지었던 시가 1100억원 연건평 900평 규모의 그룹 사옥인 ‘벽산 125빌딩’을 포함해 퇴계로 ‘인희빌딩’ 등이 모두 넘어갔다. 벽산 125빌딩은 유명한 건축가 김수근씨의 마지막 작픔으로 유명하다. 전주 백화점, 안양 벽산쇼핑, 부산 남포동 복합상가빌딩 등 유통 사업 관련 부동산도 함께 정리했다. ●3대를 잇는 기독교 사랑 고 김인득 창업주의 3남2녀중 막내딸 가족을 제외하면 지금도 매주 일요일 오전 고 김인득 창업주 때부터 다니던 인사동 승동교회에 나가 예배를 들이며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인다. 김인득 창업주가 6·25때부터 승동교회에 나갔고 장남 김희철 회장도 같은 교회 장로를 지낸 바 있다.3세인 김성식 ㈜벽산 대표이사 사장도 술·담배를 일절하지 않고, 매사 성경이 판단의 기준이 될 만큼 신앙이 깊다는 게 주변의 평가다. 벽산의 기독교 사랑은 가족에서 끝나지 않는다. 시무식은 물론 창립기념식 등 모든 공식행사가 예배로 시작되는 ‘기독교문화’ 회사다. 국내 처음으로 직장예배를 도입한 기업으로 창립 초창기인 1956년 서울 종로 단성사에서 첫 직장예배 이후 매주 금요일 아침 8시30분(일부 계열사는 다름)부터 1시간은 본사와 각 공장, 지점, 현장별로 직장예배를 보고 있다. 기독교를 통해 임직원을 통합해 나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란 평이다. 벽산건설이 1998년 워크아웃에 들어갔을 때에도 노사가 무분규로 일관, 회사 살리기에 힘을 합했던 것도 기독교 문화가 바탕이 됐다는 설명이다. jhj@seoul.co.kr ■ 오뚝이 정신으로 일군 ‘벽산 56년’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한복음 16장33절) 고 김인득 창업주의 장손자인 김성식 사장이 맡고 있는 ㈜벽산은 최근 수년간 이 회사 주식을 사들이며 끊임없이 M&A 위협을 해온 창투사 아이베스트와 ‘적과의 동침’을 선언했다. 지난해 말 아이베스트가 구주 매출을 통해 벽산 주식 100만주를 주당 1만 5000원에에 팔고 나간 뒤 주가가 1만 1000원대까지 빠지면서 아이베스트는 시세 차익을 얻은 반면 개인 투자자들은 손해를 입어 벽산에 대한 개미들의 원성이 높았다. 특히 벽산은 적대적 M&A를 막기 위해 아이베스트 보유 주식에 대해 의결권을 행사하지 못하게 해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내는 등 양측이 경영권을 둘러싸고 대립해왔다. 이처럼 수년간 벽산을 괴롭혀온 아이베스트가 최근 대주주의 우호 지분을 자청하면서 두 회사간 구원(仇怨)관계가 일단 봉합된 상태다. 벽산그룹은 56년을 헤쳐오면서 고난도 많았지만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내실을 다져온 기업이다. 1998년 구조조정에 들어갔을 때에도 노사간 분규없이 한마음으로 대처했던 혼연일체는 지금도 업계의 귀감으로 회자된다. 벽산건설의 경우 워크아웃 당시 채권단과 맺은 목표보다 50%가량 많은 244명이 명퇴했다. 자진해 나간 사람이 많다는 얘기다. 남은 직원들은 상여를 전액 반납해 떠나는 사람들에게 나눠줬다. 대주주도 4대1 감자를 단행하는 등 책임지는 모습을 보였다. 덕택에 2000년 회사가 흑자로 전환됐고 2002년 말 워크아웃에서 졸업했다. 김희철 벽산건설 회장은 풋백옵션을 행사, 출자전환된 채권단 주식을 2004년 되사면서 회사를 되찾았다. 이에 앞선 지난 1992년 7월. 당시 재계 25위이던 벽산건설은 자사가 시공한 신행주대교가 준공 4개월을 앞두고 붕괴하면서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았다. 부실공사가 원인으로 규명되면서 대대적인 이미지 실추와 함께 영업정지, 단자사 여신 동결 등 악재가 뒤따랐지만 불행중 다행으로 인명 사고가 없어 복구공사비 200여억원 등을 전액 부담, 재공사를 맡아 결자해지로 매듭지었다. 여전히 우환은 끊이지 않는다. 벽산건설 임원 2명이 1999년부터 2005년까지 각각 회사돈 수십억원을 빼돌려 부동산 구입과 주식투자 등에 쓴 혐의로 조사를 받는 등 집안 단속 문제가 붉어져 조사 중이다. 벽산건설 관계자는 “주택 사업 이외에 토목공사 등 포트폴리오를 확대하는 데 주력할 계획이다.”면서 “무엇보다 구조조정을 겪으면서 위축됐던 직원들의 사기와 자신감을 회복시키는 게 가장 큰 과제다.”고 말했다. 벽산그룹 5개 계열사의 2005년 기준 총 매출은 1조 2500억원이며, 이중 벽산건설의 매출이 전체의 61%를 차지한다. jhj@seoul.co.kr ■ 벽산을 만든 전문 경영인들 벽산그룹은 올해로 56년을 헤쳐오면서 가장 훌륭한 전문경영인으로 이 회사 부회장을 지낸 정종득(65) 목포 시장을 꼽고 있다. 워크아웃 조기졸업의 일등 공신으로 지목되는 정 사장은 서울대, 산업은행, 쌍용을 거쳐 1983년 벽산건설에 이사로 입사 1994년 사장이 되면서 워크아웃의 시작과 끝을 지키는 등 벽산과 고락을 함께해온 인물. 특유의 인화력과 결단력으로 조직을 이끌며 대주주인 김희철 벽산건설 회장과 호흡을 맞췄다는 평이다.2005년 5월 시장 출마를 위해 부회장으로 위촉된 뒤 당선과 함께 회사를 떠나 지금은 공직자로 일하고 있다. 김재우(62) 아주그룹 부회장은 1997년 2월 워크아웃에 들어가기에 앞서 ㈜벽산 사장에 취임해 3년 만에 경영을 정상화시킨 능력을 인정받아 아주그룹에 스카웃된 인물. 삼성물산 출신으로 2005년까지 ㈜벽산 부회장 등을 지내며 ‘누가 우리회사 망한다고!!’‘거봐!안 망한다고 했지!!’ 등 벽산 구조조정 성공사례들을 책으로 발간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광주고·건국대 출신의 신광웅(63) 신동아건설 사장도 벽산건설 출신이다. 한신공영을 거쳐 지난 1995년부터 2004년 6월까지 벽산에 적을 둔 바 있다. 벽산건설 부사장을 끝으로 회사를 떠났다. 한편 지난 2004년 뇌물수수죄 재판중 또다시 뇌물수수 의혹을 받아 감옥에서 자살했던 고 안상영 전 부산시장도 벽산건설에서 부회장직을 수행한 바 있다. jhj@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박건승 부장(반장) 정기홍·류찬희·최용규 차장 이기철·강충식·주현진·류길상·김경두·서재희 기자
  • [서울광장] ‘市長學’ 각론에 신경써야/한종태 논설위원

    [서울광장] ‘市長學’ 각론에 신경써야/한종태 논설위원

    #장면 1 지난 12일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 출사표를 던진 홍준표 의원이 염창동 당사에서 자신에 대한 음해와 날조로 점철된 자료를 맹형규 전 의원측에서 배포했다며 ‘뒷골목의 양아치들’이나 하는 짓이라고 흥분했다. 관련자 검찰 고발과 정계은퇴 얘기까지 꺼냈다. 맹 전 의원은 문건 책임자의 문책과 함께 사과했다. #장면 2 지난 6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열린우리당 지도부는 외부영입 인사의 지지율이 당내 인사들보다 현저히 앞설 경우 경선없이 전략공천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그러나 서울시장 후보 출마의사를 밝힌 이계안 의원은 즉각 반발했다.“당 지도부가 ‘노무현 정신’을 배반하고 있다.”면서 “우리당은 결국 명분과 실리를 모두 잃게 될 것이고 지방선거뿐 아니라 대선까지 실패할지 모른다.”고 일갈했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5·31지방선거에 올인하고 있다. 한쪽에서는 지방권력심판론을, 다른 쪽에서는 중앙정부심판론을 들먹인다. 지방선거 결과가 내년 말 대통령선거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요즘 여야의 돌아가는 모양새를 보면 과거와는 다른 양상이다. 후보 선정을 가급적 늦추려는 움직임이 대표적이다. 선거 결과의 상징성이 가장 큰 서울시장 후보의 경우엔 더욱 그렇다. 우리당은 도전장을 내민 당내 인사들은 아예 제쳐놓고 강금실 전 법무장관에게만 매달리고 있다. 장관 퇴임 후에도 여전히 높은 인기도를 유지하는 탓에, 한나라당 후보가 누가 되든 승리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다. 한나라당 역시 다수의 후보군이 출사표를 던졌지만 ‘외부영입’ 얘기가 끊이지 않고 있다. 후보들간에 이전투구가 심해지면서 박근혜 대표나 이명박 서울시장 등 당내 대주주들은 외부영입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눈치다. 지방선거가 70여일 남았음에도 여야의 서울시장 후보는 손에 잡히지 않고 있다. 다른 지역도 상황은 비슷하다. 이런 추세라면 4월말이나 돼야 여야 후보들의 라인업이 정해질 것 같다. 그러나 이는 분명 잘못된 것이라 생각한다.4년간 시정과 도정을 이끌 인물이라면 과연 그가 어떤 비전과 행정능력, 특히 강남과 강북의 균형발전을 이룰 통합의 리더십은 갖췄는지, 사람 됨됨이와 임기 만료 후 시·도의 변화된 모습은 어떨 것인지, 제대로 된 공약은 얼마나 되는지 등을 시민과 도민들이 파악할 시간을 줘야 하지 않겠는가. 단순한 인기도만으로는 안 되기에 하는 말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시장이나 도지사가 되겠다는 총론만 난무할 뿐 당선 이후에 어떤 일을 어떻게 하겠다는 각론은 잘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중앙당이 이런 기류를 조장하는 것 같아 씁쓸하기까지 하다. 물론 반대론자들은 일찌감치 후보를 띄워서 좋을 게 없다고 주장한다. 그래봐야 후보 흠집내기만 횡행할 것이고, 언론과 시민단체의 다양한 검증 대상이 되는 것도 전략적 마이너스라고 판단하는 것 같다. 인터넷 환경이 몰라보게 달라졌고, 웬만한 광역단체장 후보군은 유권자들이 잘 알고 있다는 점도 덧붙인다. 서울시와 경기도는 인구가 1000만명 수준의 매머드급 지자체다. 이 곳의 장(長)이 되려면 충분한 검증을 거치는 게 당연하다고 본다. 정책대결을 주문하는 목소리도 커져가고 있다. 상황이 이럴진대 후보 등록일(5월16∼17일)을 10여일 앞두고 군사작전하듯 후보를 확정한 뒤 유권자들에게 표만 달라고 해서야 되겠는가. 결국 내달초까지는 광역단체장 후보를 확정하는 게 유권자에 대한 도리일 것이다. 여야에 다시 한번 촉구한다. 한종태 논설위원 jthan@seoul.co.kr
  • 5년만에 ‘밤 미시령’ 펴낸 고형렬 시인

    5년만에 ‘밤 미시령’ 펴낸 고형렬 시인

    잠드는 속초 불빛을 보니 그는 가고 없구나 시의 행간은 얼마나 성성하게 가야하는지 생수 한통 다 마시고 허전하단 말도 저 허공에 주지 않을 뿐더러 -그 사람 다시 생각지 않으리 -그 사람 미워 다시 오지 않으리 -‘밤 미시령’中 시인의 고향은 집 앞마당에서 설악산 대청봉이 한눈에 들어오는 강원도 속초 바닷가 마을(사진리)이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는 바람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면서기로 일하면서 문학수업을 하던 중 1979년 ‘현대문학’의 추천으로 등단했고, 이듬해 서울로 상경했다. 고향을 떠난 사람들은 누구나 고향을 그리워한다. 그리고, 나이가 들수록 떠난 곳을 향한 그리움은 더 간절해진다. 중견 시인 고형렬(52)이 5년 만에 내놓은 신작 시집 ‘밤 미시령’(창비)에는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고향과 지난 시절의 기억을 담은 시편이 도드라진다. ‘나는 삶이 초라해서/지금도 가면 그 산을 돌아보거나 외면해도/내 맘 설악산은/이곳에서 다 살다 더 누추해야 돌아갈 곳’(‘단풍연어 매만지면서’중)이라거나 ‘찰칵, 플래시가 터지듯/아 빛이 쏟아져 나왔다!최초의 새 빛/부모와 손뼉을 치던 날/아직도 나는 잊지 못했네’(‘나의 최초의 빛’중)등에서 간절함을 엿볼 수 있다. 표제작 ‘밤 미시령’은 수년 전 고향 선배인 이성선 시인의 부음을 듣고 속초로 가는 와중에 느낀 시적 체험을 담고 있다.‘잠드는 속초 불빛을 보니/그는 가고 없구나/시의 행간은 얼마나 성성하게 가야하는지/생수 한통 다 마시고/허전하단 말도 저 허공에 주지 않을 뿐더러/그 사람 다시 생각지 않으리/그 사람 미워 다시 오지 않으리’(‘밤 미시령’중) 그러고 보니 죽음에 관한 시편들이 자주 눈에 띈다. 그에게 죽음은 삶과 대척 관계가 아니라 가까이서 흔들리고 밀착하는 일상의 관계다. “죽음은 우리 삶 속에 존재하는 회생의 법칙”이라고 여기는 시인의 눈에는 긴 겨울 끝에 오는 봄도 죽음의 환생으로 비쳐진다고 했다. 지난해 초 20년간 맡아온 창작과비평사의 시집 편찬 일을 접은 뒤 전업 시인으로 처음 내놓은 이번 시집을 그는 “내 문학 전반기를 결산하는 분수령”이라고 말했다. 삶의 쓸쓸함, 허무 등 묵직한 주제를 잔잔한 화법으로 써온 지금까지의 시작 스타일에서 벗어나 이제 새로움을 실험해 보고 싶단다. 그는 “쉰살이 넘으니 좋은 시를 쓸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는 위기의식이 들더라.”고 덧붙였다.‘자화상’이라는 부제가 붙은 ‘달려라, 호랑아’는 현실에 속박 당하지 않고 거침없이 시를 쓰고자 하는 강렬한 의지의 표현이다. 면서기 근무 8년을 포함해 30여년 직장생활을 해온 그는 “시인으로서 너무 성실하게 산 것 같다.”며 웃었다. 직장은 그만뒀지만 아직 온전하게 전업 시인은 아니다. 명지전문대에서 겸임교수로 강의를 하고, 계간지 ‘시평’의 편집도 맡고 있다. 6년 전 아시아 6개국 시인들의 교류를 목적으로 창간한 ‘시평’은 벌써 23호를 냈다. 각국의 시인들이 편집위원으로 참여하는 이 작업을 통해 “참 많은 것을 배운다.”고 했다. 1995년 광복 50주년을 기념해 출간한 장시 ‘리틀보이’의 일본어 출간도 ‘시평’으로 맺어진 인연의 결실이다. 원폭에 희생된 재일한국인의 삶을 소년의 시선으로 그린 ‘리틀보이’는 8월6일 히로시마 원폭기념일을 즈음해 일본의 시 전문계간지 ‘콜삭’에서 번역 출간할 예정이다. 글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사진 도준석기자 pado@seoul.co.kr
  • 자장면 원조 ‘공화춘’

    자장면 원조 ‘공화춘’

    한국인들이 하루 700만 그릇을 먹어 치운다는 ‘외식의 왕중왕’ 자장면. 맞춤법을 떠나 ‘짜장면’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자장면은 아이로니컬하게도 중국이 아닌 우리나라 차이나타운에서 탄생했다. ●첫선 101년만에 근대문화재 등록 자장면을 처음 선보인 중국음식점 ‘공화춘(共和春)’이 태어난지 101년만인 최근 근대문화재로 등록됐다. 인천시 중구 북성동과 선린동 일대 차이나타운에 위치한 공화춘(선린동 38번지)은 1905년 문을 열었다. 차이나타운에서 인천역 방향으로 난 샛길을 내려가다 보면 오른편으로 보이는 2층 건물이다. 일제시대와 6·25전쟁을 거치며 보릿고개를 넘어야 하던 시절에도 중절모 신사와 뾰족구두를 신은 부인은 물론 ‘외식’을 위해 몇달을 벼르고 벼른 서민들까지 설렘으로 문턱을 넘던 곳이다. 자장면을 먹는 순간만큼은 누구나 행복했다. 사람사는 이야기가 면발처럼 길게 이어졌으며, 아이들의 입가는 이내 꺼멓게 물들었다. ●중국인 부두근로자 위해 ‘개발´ 공화춘은 오래전 문을 닫아 지금은 을씨년스러운 모습이지만 안에서는 수많은 군상들의 웃음소리가 아직도 들리는 듯하다. 임오군란 다음해인 1883년 중국은 이 일대 5000평에 청국 조계지를 설정했으며 이후 자연스럽게 음식점들도 하나둘씩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 가운데 하나인 공화춘의 주인은 당시 인천항에서 일하던 중국인 노동자들이 값싸고 손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생각하게 됐다. 궁리 끝에 볶은 춘장(중국 된장)에 국수를 비벼 먹는 자장면을 발명(?)했다. ●1984년 문닫아 건물 비어 있어 자장면의 ‘신기한’ 맛은 곧바로 중국노동자뿐아니라 한국인들을 매료시켜 외식의 대명사로 자리잡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공화춘은 자장면을 개발한 덕에 중화루, 동흥루 등과 더불어 차이나타운을 대표하는 ‘3대 요릿집’으로 호황을 누렸다, 하지만 1984년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 주인이 화교들의 재산권 행사를 제한한 정부 정책에 불만을 품고 우리나라를 떠났다는 설도 있다. ●관할구청서 사들여 자장면박물관 추진 아무튼 현재는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빈 건물로 방치돼 있으며, 중구는 이 건물을 매입해 자장면 박물관을 만들 계획이다. 건물은 화교 2명의 공동소유로 되어 있다. 공화춘은 대지 581㎡, 연면적 846㎡에 화강석을 기초로 한 조적구조로 지붕은 슬레이트로 되어 있다.2층 창호는 목제창이며 1층은 아치형 장식창이다. 특히 눈목자(目) 형태로 앞뒤에 일(一)자형 건물이 있으며 그 사이 공간에 4개의 건물이 연결돼 각 건축물 사이에 중정이 있다. 이런 건축물 형태는 청 조계지 당시의 건축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어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하지만 영업중단 20여년째를 맞아 이제는 빛바랜 낡은 간판만이 이곳이 자장면의 발상지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4년 전부터 새로운 공화춘 영업 한편 2002년 공화춘에서 차이나타운 중앙통을 통과해 위쪽으로 200여m 떨어진 곳에 새로운 ‘공화춘’이 문을 열어 영업을 하고 있다. 화려한 중국풍의 4층 건물인 이 업소는 옛 공화춘에서 일하던 주방장을 데려왔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검증은 안 되고 있다. 인천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인천 차이나타운은… 인천 차이나타운은 화교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온 화교는 누구일까? 1882년 임오군란이 발발하자 청조는 한국을 돕는다는 핑계로 3000여명의 군대를 파견했다. 이때 군인들을 지원하기 위해 40여명의 중국상인들이 함께 들어왔는데, 이들이 한국 화교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군대가 철수한 뒤에도 우리나라에 계속 머물면서 음식업 등 각종 상업활동에 종사해왔다. 인천시 중구 북성동 경인전철 맞은편에 있는 1만 8000평의 차이나타운에는 한때 5000여명의 화교가 거주했으나 박정희 정권 이후 화교의 재산권 행사를 제한하는 정책에 불만을 품고 미국, 동남아 등으로 떠나 현재는 500여명만이 남아 있다. 그러나 참여정부가 들어서면서 화교자본 유치를 통한 차이나타운 활성화 정책이 펼쳐지자 떠났던 화교 2세들이 다시 국내로 들어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인천차이나타운에는 중국음식점 25개와 중국물품점 13개 등 40여개의 업소들이 자리잡고 있다. 아울러 파이러우(큰 대문 모양의 상징물), 삼국지벽화거리, 중국 사찰인 의선당, 한·중문화관, 화교학교 등이 둥지를 틀고 있으며 주변에는 맥아더동상이 있는 자유공원, 개화기 유물거리, 월미도 관광단지 등 볼거리가 많다. 차이나타운 내 25개 음식점 중 22곳은 중국인이, 나머지는 한국인이 운영하고 있다. 이들 업소 대부분은 비록 수타면은 아니지만 자장면 고향답게 2∼3대를 이어온 나름의 비법을 지니고 있다. 업소별 자장면 값은 2000∼3500원. 인천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15만명 참여 그룹 인터넷신문 ‘삼성저널’ 발간

    ‘외치(外治)에서 이젠 내치(內治)로’ 삼성그룹이 그룹내 분위기 쇄신에 나섰다. 그 첫걸음으로 15만명의 임직원들이 함께 참여하는 인터넷신문 ‘삼성저널(Samsung Journal)’을 발간키로 했다. 삼성그룹은 13일 그룹 통합 인트라넷인 ‘싱글’을 통해 전계열사 임직원들에게 그룹내 주요 현안과 소식을 한데 모은 그룹인터넷신문 ‘삼성저널’을 발간한다고 공지했다. ‘삼성저널’은 이날부터 하루에 한번씩 일간 신문 형태로 제작되며 ▲그룹 주요 경영활동▲경영일정 및 기념일▲그룹 관련 주요 이슈 해설 등 심층 정보▲기획성 기사 및 내외부 기고▲임직원 미담 사례 등을 다룬다. 삼성그룹은 15만명의 임직원들로부터 직접적인 기사 및 제보 등을 받아 ‘삼성저널’을 꾸려나갈 예정이다. 재계에선 이건희 회장 일가의 8000억원 사회헌납, 구조조정본부의 축소 개편 등 ‘반(反) 삼성’ 여론을 해소하기 위한 일련의 굵직한 대책을 발표한데 이은 그룹내 분위기 쇄신책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학수 전략기획실장(부회장)은 이날 ‘삼성저널 발간을 즈음해’에서 “그룹 관련 제반 현안과 이슈를 종합적이고, 직접적이며, 신속하게 공유할 수 있게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류찬희기자 chani@seoul.co.kr
  • [깨미동과 떠나는 생각여행] (2) 화이트 데이의 진정한 의미

    [깨미동과 떠나는 생각여행] (2) 화이트 데이의 진정한 의미

    [생각열기] 화이트 데이의 ‘white’는 하얀색이다. 그럼 화이트 데이와 사탕은 무슨 상관이 있을까? 조금 있으면 화이트 데이다. 그래서인지 벌써부터 팬시점이나 마트에서는 화이트데이를 위한 상품들이 즐비하다. 기껏해야 사탕인데 하지만, 가격을 보면 10만원이 넘는 것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고 사탕값보다 포장비가 가격의 대부분을 차지할 정도로 화려한 사탕들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색을 보면 하얀색과는 거리가 있다. 빨간색, 파란색, 노란색 등 다양한 색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럼에도 왜 우리는 화이트데이라고 하는 것일까? 정답은 원래 화이트데이는 사탕을 주는 것이 아니라 마시맬로를 주는 마쉬맬로 데이가 바뀐 것이다. 일본의 한 제과업체에서 밸런타인데이에서 착안하여 남자도 여자에서 사랑을 고백하는 날을 만들고, 사랑을 고백할 때 마시맬로를 주도록 홍보하였다. 마시맬로는 초코파이 속에 들어있는 하얗고 부드러운 부분이다. 그래서 초기에는 마시맬로 데이라고 했었고, 마시맬로의 하얀색 때문에 화이트데이로 불리기도 했다. 그러나 마시맬로가 판매되지 않는 우리나라에서는 이를 대체하기 위한 상품으로 사탕을 선택하게 된 것이다. [생각에 날개달기] 우리는 언제부터인지 사랑을 표현할 때 돈의 가치가 중요하게 생각되었다. 얼마나 비싼 선물을 하느냐가 상대방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표현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그래서 초콜릿이나 빼빼로, 사탕의 값들이 점점 비싸져 가고 있으며, 값이 비싼 상품들이 잘 팔린다고 한다. 연인에게 뿐만 아니라 스승의 날이나 어버이날에 감사의 마음을 표현할 때도 어느 수준 이상의 적당한 가격의 선물을 찾기에 골몰한다. 그러나 청소년기부터 사랑의 마음이나 감사의 마음을 돈으로 표현하는 것은 잘못된 태도이다. 첫째 이유는 사람의 마음은 돈을 주고 살 수 없기 때문이다. 둘째 이유는 청소년기부터 감사와 사랑의 마음을 돈으로 표현하는 습관을 기르게 되면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습득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셋째 이유는 이런 기념일의 대부분이 상업적인 목적에서 제과업체의 이윤을 높이기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밸런타인데이나 화이트데이, 빼빼로데이날 선물을 받았을 때 기쁜 것은 먹고 싶은 마음 때문이 아니라, 내가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받고 있고,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 때문에 기쁜 것이다. 따라서 내가 사랑하는 마음이 있을 때 그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은 값비싼 물질 이외에도 다양한 방법들이 있다. 예쁘게 종이를 만들어서 편지를 쓴다든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멋진 휴대전화 문자를 보낸다든지, 아름다운 시를 낭송해서 테이프에 녹음해서 주는 등 아주 다양한 방법들이 있다. 시간과 노력은 조금 더 들겠지만 값비싼 선물의 인스턴트식 사랑고백보다 더 많은 감동과 함게 오래도록 기억에도 남을 수 있을 것이다. 최근에 사랑을 고백한다는 밸런타인데이나 화이트데이, 빼빼로데이에 즈음해서 팔리는 제과 매출액이 각각 수백억원을 훨씬 넘는다고 한다. 그리고 해마다 이 금액은 엄청난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결핵환자들의 생명을 살리는 크리스마스 실의 판매량은 1997년 3811만장 팔리던 것이 2004년 2640만장으로 1200만장 가까이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사랑을 고백하는 데에는 많은 돈을 쓰면서도 정작 우리 주위의 생명을 살리는 데 쓰여지는 돈은 줄어들고 있는 것을 보면서 안타까운 생각을 가지게 한다. [생각주머니 넓히기] 1. 아래는 우리 전통민속 기념일이다. 날짜에 해당하는 명절 이름을 적어 보자. 그리고 이런 민속명절과 제과업체에서 만든 기념일 중에서 어떤 것이 더 의미있는지 생각해 보자 2. 사랑을 고백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을 찾아보자. 그리고 부모님이나 스승님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고 이를 실천해 보자.
  • [이지운특파원-베이징은 지금] ‘뛰는 民度’ 따라잡을까

    베이징에서 3일 개막돼 진행 중인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와 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이른바 양회(兩會)에서 가장 강조되고 있는 용어 가운데 하나가 `투명성´이다. 높아지는 국민적 정치 욕구와 민도(民度)에 부응하려는 중국 정부의 노력을 과시하는 표현이다. 각종 관영 매체들을 통해 대대적으로 선전되고 있다.8일에는 `이번 양회가 투명성이 높아졌다.´고 소개한 서방 언론의 보도 내용이 주요 인터넷 사이트에 올라 관계자들을 흐뭇하게 했다. 물론 가시적인 조치들도 뒤따르고 있다. 최근 몇년새 잦아진 기자회견은 물론이고 법안 공청회가 열리는가 하면,`휴대전화로 알려주는 양회 소식´이 등장했다.지난 7일에는 정협 베이징대표단의 회의가 기자들에게 전격 공개되고, 즉석 기자회견이 진행됐다. 일사천리로 거수(擧手) 회의가 진행되던 인민대회당에 무기명 비밀 전자투표가 시연된 것도 맥을 같이한다. 하지만 최근 각종 언론 보도와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드러나는 민도는 이같은 노력을 무색케 할 정도로 빠르게 상승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의료, 교육, 주택 문제 등 민생과 관련한 각종 민원과 불평·불만, 문제제기 등이 양회를 즈음해 쏟아져 나오고 있는 것이다.이 가운데 의료난을 뜻하는 `칸빙난(看病難)´이라는 표현은 모든 민생고를 압축하는 단어다. 의사 만나기가 하늘에 별따기인 상황에서 `홍바오(紅包·돈봉투)´를 챙기는 의사를 고발한 기사가 공분을 자아내고 있다. 입원 68일만에 132만위안(약 1억 6000만원) 병원비가 청구되고, 약값이 20만위안(약 2400만원)이나 부풀려졌다는 기사는 `칸빙구이(看病貴)´ 즉, 과도한 의료비의 전형이다. 전인대 및 정협 대표 등을 통해 전달되는 사회적 민원들도 적지 않다.`새벽 2시 이후 위락업소 영업 금지´ 조치에 대해 “`새벽 2시 이후 새로운 손님 입장 불가´로 고쳐달라.”는 제안이 정식으로 제출됐다. 지난해 9월 중국노동사회보장부 소득조사소는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1000∼3000달러(약 100만∼300만원)인 시기에 중국 사회에 혼란이 유발될 수 있다.”고 경종을 울린 적이 있다. 지난해 중국의 1인당 GDP는 1703달러. 중국 정부가 뛰는 `민도´를 따라잡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jj@seoul.co.kr
  • [프로배구 V-리그] 현대캐피탈 ‘매직넘버1’

    현대캐피탈이 LIG에 진땀승을 거두며 정규리그 2연패의 9부 능선을 밟았다. 현대는 7일 구미에서 벌어진 프로배구 경기에서 숀 루니의 오른쪽 강타와 막판 백승헌의 알토란 같은 굳히기 득점으로 LIG에 3-2로 재역전승, 첫 30승(3패) 고지에 올랐다.2위 삼성화재(27승5패)와의 승점차를 ‘3’으로 다시 벌린 현대는 남은 2경기 중 11일 상무전을 낚을 경우 남은 경기에 관계없이 정규리그 두번째 우승을 확정한다. 반면 모처럼 풀세트 접전을 펼치며 투혼을 불사른 LIG는 15승(18패)으로 제자리 걸음해 ‘3강 전쟁’ 중인 대한항공(13승91패)에 바짝 쫓겼다. 양 팀 최다 득점(38점)을 올린 이경수는 빛바랜 프로 첫 1000득점 고지에 올랐다.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해외연수 = 고시출신’ 관행 깨진다

    ‘해외연수 = 고시출신’ 관행 깨진다

    과거 외교관에 국한됐던 해외 체류 기회가 모든 공무원으로 확산되고 있다. 공무원 국외훈련제도를 적극 활용하면 개인은 물론 정부의 경쟁력을 향상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된다. 하지만 해외연수의 ‘좁은 문’을 통과하려면 적잖은 준비와 단단한 각오가 필요하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공무원 국외훈련제도는 1977년 도입됐다. 이후 지난 30년 동안 5000여명이 장·단기 연수를 다녀왔다. 지난해 선발되어 올해 최장 2년 6개월의 장기 유학을 떠나는 국가공무원은 224명이다. 직급별로는 5급 공무원이 98명으로 43.7%를 차지했다. 눈길을 끄는 것은 6∼7급도 24.5%인 55명이 관문을 뚫은 것.‘해외 연수=고시 출신’이라는 등식이 깨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 4급이 51명, 경찰·소방 등 특정직 공무원과 연구·지도직 공무원이 20명이다. 대상 국가는 25개국으로 과거보다 특정 국가 편중 현상이 완화되고 있다. 하지만 미국·영국·캐나다·호주·뉴질랜드 등 영어권 국가가 150명으로 전체의 70%로 여전히 많다. 중국이 20명, 일본이 18명으로 만만찮은 인기를 과시했다. 지구 반대편에 위치한 브라질, 아르헨티나, 칠레 등으로 떠나는 공무원도 있다. 중앙인사위원회 관계자는 “국외훈련의 무게중심을 학위 취득에서 직무 개발로 옮겨가고 있다.”면서 “소속 부처에서 업무 기여도 등을 감안하기 때문에 직위에 상관없이 일한 만큼 연수 기회는 커진다.”고 강조했다. ●안일한 연수는 조귀복귀의 지름길 중앙인사위는 그동안 해외연수가 정부의 성과 향상으로 이어지지 못했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따라서 선발 및 훈련과정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해 나가는 추세이다. 때문에 한국을 떠났다는 이유로 경거망동하거나, 연구에 소홀히 했다가는 큰 코 다치기 십상이다. 연수기간 동안에도 ‘공무원 복무규정’이 적용되는 데다, 훈련목적에서 벗어나면 복귀명령을 받게 된다. 실제 2003년 영국으로 떠났던 A서기관은 성실하지 못한 생활 때문에 2년의 유학기간을 3분의1이나 남겨둔 상황에서 조기 소환됐다. 2004년 중국으로 파견됐던 B주사는 연구 진행과정을 제때 보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1년 6개월이나 빨리 돌아왔다. 이같은 불이익은 개인적 차원을 넘어 조직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중앙인사위 관계자는 “모든 해외연수자들은 ‘공무원교육훈련정보센터’를 통해 교육 진행상황을 주기적으로 보고해야 하며, 국내로 복귀하면 연구결과물을 반드시 등록해야 한다.”면서 “연수결과가 좋지 않으면 해당 부처에 해외연수 인원을 배정할 때 불이익을 줄 수 있도록 평가지표도 개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방공무원 해외연수, 제도 보완 필요 해외연수 기회가 국가공무원에게만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지방공무원도 해외 자치단체와 자매결연, 선진업무 벤치마킹, 투자 유치활동 등을 위해 연수 기회가 확대되고 있다. 일부 지자체는 해외연수에서 얻은 내용을 지방행정에 반영, 성공한 사례도 있다. 하지만 지방공무원은 해당 지자체에서 선발 등을 책임지고 있으나, 심사위원회나 관련 조례가 없는 곳도 있다. 또 실무 공무원보다 고위 공무원에 상대적으로 많은 기회가 주어지고, 관행적인 ‘위로 여행’의 성격이 짙은 것도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준비 어떻게 하나 공무원 국외훈련제도는 다양한 종류가 운영되고 있지만, 해외생활을 만끽하고 재충전의 기회로는 단연 장기 국외훈련이 돋보인다. 국가직 4∼7급 공무원을 대상으로 하는 장기 연수는 최대 2년 6개월까지 해외에서 체류할 수 있다. 학자금은 물론, 공무원 기본급 수준의 급여와 체재비, 의료보험비, 생활준비금, 항공료 등도 뒷받침된다. 메리트가 큰 만큼 경쟁도 치열하다.1997년 외환위기 직후 100명대까지 떨어졌던 연간 대상자가 200명 이상으로 회복된 것이 그나마 위안이다. 우선 중앙인사위원회는 매년 2∼3월 각 부처를 대상으로 연수 희망자에 대한 수요조사를 벌인다. 이어 중앙인사위는 부처별 수요를 근거로 연수자를 배정한 뒤 6∼7월 대상자를 추천받는다. 연수 희망자가 통과해야 하는 ‘1차 관문’은 부처별 국외훈련심의위윈회. 외국어 능력과 연구과제 등을 고려해 개인별 추천 순위를 매긴다. 중앙인사위 관계자는 “토플 성적 530점(CBT 213점) 이상이면 지원이 가능하다.”면서 “하지만 지난해 모 경제부처 선발인원은 토플성적이 630점(CBT 267점)에 달했으며, 적어도 500점대 후반(CBT 240점 이상)은 돼야 합격권”이라고 귀띔했다. 7월에는 중앙인사위가 주관하는 ‘2차 관문’인 선발시험도 치러야 한다. 미국이나 영국 같은 영어권 국가 연수 희망자는 서울대 어학검증시험을, 유럽연합(EU)과 일본 등 비영어권이나 중국과 중남미 등 특수지역 선택자는 한국외대 어학검증시험을 보게 된다. 중앙인사위 관계자는 “영어권 국가 지원자는 어학능력 70%, 소속부처 평가 30%를 반영해 심사가 이뤄진다.”면서 “비영어권과 특수지역 지원자는 어학능력으로 대상자를 선정한다.”고 설명했다. 이같은 선발과정을 거쳐 연수 대상자는 8∼9월쯤 확정되며, 선발 다음해에 연수를 떠나게 된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세계인-우리는 이렇게 산다] 미리 가본 베이징 ‘다산쯔 국제예술축제’

    [세계인-우리는 이렇게 산다] 미리 가본 베이징 ‘다산쯔 국제예술축제’

    |베이징 이지운특파원|중국 현대예술의 최전선,‘다산쯔(大山子)’. 지난달 말, 이곳은 ‘베이징 다산쯔 국제예술축제’ 준비에 막 돌입한 모습이었다. 오는 4월로 세번째를 맞는 이 축제에는 세계 각지에서 10여만명이 몰려들 것으로 예상된다. 첫해 1만명 가량이던 관람객이 지난해에는 8만명으로 늘었고, 올해는 그 보다 더 큰 증가세를 보일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지난해 봄만 해도 ‘개발이 시작돼 아파트가 들어선다.’는 소문이 흉흉했던 이 곳이, 중국 최초의 ‘문화특구’로 지정된 것도 이같은 성과에 힘입은 것이다. 아름드리 나무들 사이로 늘어선 대형 공장 건물들. 당초 대규모 공장터였던 탓에 아직도 곳곳에 남아있는 옛 흔적이 도리어 현대 예술과 어우러져 보인다. 잘 구획된 골목마다 미술전시장이 늘어서 있는가 하면, 여러 실내·외 공연장이 눈에 띈다. 실내 벽면에 ‘마오쩌둥주석 우리 마음의 붉은 태양’(毛澤東主席我們心中的紅太陽) 등의 선전문구가 그대로 남아 있는 ‘스페이스(時態空間)’란 갤러리는 이미 명소가 됐다. 한 서점에 들어서니 곳곳에 사진기를 든 젊은이들로 붐빈다. 잘 진열된 현대 건축·미술 관련 각종 해외 잡지와 서적을 찍어대고 있다.‘볼 것’에 목마른 예술지망생들이다. 서점 점원 리우제(劉杰)는 “현대 예술에 관한한 베이징의 어떤 대형 서점보다 풍부한 서적을 보유하고 있다.”고 자랑했다.“그런만큼 많은 외국인과 학생들이 이곳을 찾는다.”고 한다. 한 허름한 작업실을 찾으니 갖가지 인형 가운데 눈에 익은 ‘인민복을 입은 용’이 보인다. 이른바 ‘용머리 큰형님’(龍斗老大)’이다. 마오쩌둥 주석을 우화한 이 인형을 처음 제작한 진쩡허(金增鶴)는 제법 많은 양을 국내·외에 팔았다. 들여다 보기 어렵다는 작업실을 구경할 행운도 얻었다.20여평 남짓 공간에 가로, 세로 각 2m,3m짜리 창문이 2개.2층 길이가 넘는 높이의 돔형 천장에도 비슷한 크기의 유리창이 있어 채광이 뛰어나다. 공장 건물의 이점이다. 문 밖으로 대낮에도 컴컴한 복도 천장에 백열등 10여개를 켜놓은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 복도는 유명 영화의 촬영장소로도 쓰였다고 한다. 다산쯔는 더이상 ‘중국’만의 공간은 아니다.100여개의 화랑 가운데 절반은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일본, 타이완 등 외국에서 왔다. 이 가운데 한국문화공간으로 ‘이음’이 들어선 것은 반갑다. 그리 멀지 않은 ‘지우창(酒廠)’이란 곳에도 한국 화랑과 예술가들이 몰려드는 중이다.“전 세계 유명 갤러리들과 예술 관계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인 만큼 한국의 또 다른 국제예술 교류의 거점이 될 것”이라는 게 이음의 컨설턴트 정수영씨의 설명이다. 이런 점에서 다산쯔가 한국인 밀집촌인 왕징(望京)과 인접한 건 묘한 인연이 아닐 수 없다. 한 대형 갤러리의 중국인 관계자는 “이번 3회 예술축제가 끝나면 그림 값도, 작가의 명성도 뛰고 국제 무대에서 다산쯔의 영향력도 크게 확대될 것”이라고 기대감을 보였다. 그는 “외국인과 전문 수집인들이 주요 고객인데 그림의 매매가 지금도 대단히 활발하다.”고 귀띔했다. 다만 다산쯔의 임대가격도 덩달아 오르는 게 문제이긴 하다. 이곳에 온지 2년 됐다는 한 중견작가는 “임대료가 딱 2배 올랐다.”고 전했다. 가난한 예술가들을 끌어모았던 유인책이 매력을 잃어가는 양상이다. 가난한 화가의 거리에서 ‘보보스’촌으로 변한 파리의 몽마르트 언덕이나, 전위예술의 전진기지였다가 지금은 명품 숍의 전시장이 된 뉴욕의 ‘소호’처럼 다산쯔도 어떤 변신을 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산쯔는 활기에 넘친다. 분위기 좋은 카페와 음식점이 있고, 가구점과 패션샵이 공존한다. 주말 밤이면 각종 클럽 행사와 파티가 열리고 어떤 공연장은 나이트 클럽으로 변신하기도 한다.4월부터 한달간 열릴 축제가 다산쯔를 어떤 모습으로 바꿔놓을 지 궁금하다. jj@seoul.co.kr ■ 다산쯔의 어제와 오늘 |베이징 이지운특파원|다산쯔를 ‘문화동물원’으로 부른 중국의 한 원로 예술인이 있다. 또한 그는 이 곳을 “중국전자공업의 ‘역사박물관’”이라고도 했다. 다산쯔는 흔히 ‘798’로도 불린다. 공장지대에 붙여진 번호다. 과거 동독의 기술지원으로 1954∼57년 세워진 중국 전자산업의 요람이었다. 중국의 핵 프로그램과 위성발사기술, 대형 군사 및 산업 프로젝트의 주요 기술 거점이었던 곳이다.58년 공장 준공 이후 마오쩌둥(毛澤東) 국가주석으로부터 ‘휘호’를 받았을 때 노동자들의 사기와 자부심은 다른 곳과는 비교할 수 없었을 정도라고 당시 공장 노동자는 전했다. 그랬던 이곳에 예술가들이 모여들기 시작한 것은 90년대초다. 이 대형 국유기업은 80년대초부터 이익을 내지 못해 다른 공장으로의 노동자 이동이 시작됐고, 베이징의 도심 확대 등과 맞물려 사실상 폐업 상태에 빠지게 됐다. 비어가는 공장은 가난한 예술가들의 작업장과 숙소가 되기 시작했다. 다산쯔가 현대예술의 거점이 되기 시작한 것은 93년 무렵부터 해외에서 활동하던 중국 현대미술가들이 이곳에 돌아온 것과도 맞물린다. 물론 중국 최고의 미술계 대학인 ‘중앙미술학원’과 화가들의 집단 거주지였던 ‘화자디(花家地)’가 인근에 위치한 점과도 무관치는 않다. 특구로 지정되진 않았지만 베이징에는 이밖에도 ‘예술구(藝術區)’로 불리는 지역이 몇 곳 있다. 숭좡(宋莊) 등 자생적인 예술인 집단 거주지와 쒀자춘(索家村), 페이자춘(費家村) 등 화랑 밀집지역 등이 여기에 꼽힌다. 베이징 인근에 이같은 문화예술촌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이다. 가장 오래된 것은 위안밍위안(圓明園)으로 알려진다. 중국 개혁개방 이후에 형성된 곳이지만 곧 정부에 의해 폐쇄된다. 이후 형성된 예술촌이 숭좡과 베이징 남동쪽 퉁저우(通州)현의 건물밀집지역이다. 숭좡은 대표적인 화가 거주촌으로 다산즈의 많은 화가들이 이곳에서 옮겨왔다. 이 곳에선 지금도 일반인과 화가들이 작품세계를 교감할 수 있는 ‘화가 캠프’도 종종 운영된다. 뒤이어 둥춘(東村), 상위안(上苑), 란산(籃山) 등이 유명 예술가의 거주지와 작업실 밀집지역으로 자리잡는다. 이후 다산쯔에 엄청난 수의 예술가가 집결하면서 예술과 경제분야 모두에서 커다란 성과를 내자, 쒀자춘과 페이자춘 등에 갤러리와 복합 창작 및 전시공간들이 들어서 오늘날 예술촌이 구성됐다. 이렇게 형성된 예술촌은 해외 예술을 빨아들이는 흡입구요, 중국 현대예술을 키우는 밑거름이 되고 있다.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즈음해 중국의 최대 문화행사로 자리잡을 것으로 예상되는 ‘베이징 다산쯔 국제예술축제’도 이 예술촌간의 활발한 교류의 결과로 성장한 것이다. jj@seoul.co.kr ■ 작가 진쩡허가 말하는 다산쯔 |베이징 이지운특파원|“주류(主流)가 아니면 살 수도 없었던 중국 예술계에 한줄기 숨통을 틔워 줬다.” 다산즈에서 1년여간 작은 작업실과 전시공간을 갖고 있는 진쩡허(金增鶴·30).‘다산쯔가 무엇을 주었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중국에는 엄청난 수의 예술가가 있다. 능력도 많지만 생존이 어렵다. 주류만이 겨우 살아나갈 수 있다. 어느 나라든 상황은 비슷하겠지만 중국의 현실은 대단히 심하다.”는 것이다. 특히 현대미술 작가들은 중국내에서 활동 공간을 찾지 못했다고 한다. 그는 “그나마 현대미술의 주류는 서양미술의 모방에 치우쳤다.”고 질타했다. 작품판매의 활로가 외국에 한정됐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지적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화랑을 찾아가서 전속 계약을 해야 생활과 활동을 보장받을 수 있지만 “100명이 가서 5명도 계약을 따내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내 것은 작품의 재료 자체가 비주류적인 것이어서 다산쯔가 아니었다면 활동 공간을 찾기 어려웠을 것”이라면서 “한국은 전통을 잘 보존하고 있지만 중국엔 많이 남아 있지 않아 아쉽다.”는 말도 덧붙였다. ‘런(仁) 예술센터’ 매니저인 황이(黃毅)씨는 “쇼든 전시든 작품이든 표현에 대한 정부의 규제가 없는 것이 최대 장점”이라고 꼽았다. 물론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중국 다른 지역에 비하면 없는 것이나 다름 없다는 얘기다.“그래서 전위적이고 실험적이고 특색있는 작품이 나올 수 있고, 외국인들로부터 호응을 받을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홍콩에도 예술센터를 운영하고 있다는 그는 “심지어 홍콩보다도 훨씬 현대적인 작품들을 이곳에 전시하고 있다.”고도 소개했다. 유럽에서 여러 차례 전시회를 가졌다는 중견 화가 스신닝(石心寧)씨는 “많은 수의 예술가들이 모여 있다는 점에 매력을 느낀다.”고 했다.“가까이서 다른 이들의 작품 활동을 지켜 보며 새로운 영감을 얻을 수 있고, 전람회 등을 보면서 경쟁심리도 느낄 수 있다.”는 얘기다. jj@seoul.co.kr
  • 美·佛 긴 허니문 예고 왜?

    ‘프랑스와 미국이 밀월관계를 누릴 수밖에 없는 10가지 이유는?’ 뉴욕타임스(NYT)는 1일 불편한 관계였던 미·프랑스 두나라가 우호적인 분위기속에 협력관계를 다져나가고 있으며 앞으로 상당기간동안 ‘밀월관계’를 누릴 것으로 분석했다. 그동안 프랑스는 미국의 독주를 견제하는 등 나름대로의 목소리를 내왔다. 이라크전쟁을 둘러싸고 심한 반목을 겪었던 두나라는 지난해 조지 W 부시 2기 행정부 출범에 즈음해 관계를 회복한 뒤 끈끈한 관계로 발전하면서 국제정치적 지형을 바꿔가고 있다. 이같은 상황은 양국 관계개선 차원을 넘어 미국과 유럽간의 관계회복, 유럽의 친미정책으로의 복귀조짐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NYT는 두나라가 지난해 레바논 주둔 시리아군의 철수, 이란 핵개발 등에서 긴밀한 협조관계를 과시했다고 지적했다. 미국을 겨냥,‘다극화 세계건설의 필요성’을 부르짖던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도 지난주 인도 방문에서 이같은 표현을 자제했다. 미국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서다. 귀국 뒤 부시 대통령에게 전화까지 해가면서 이란 핵개발 문제에 대한 ‘국제적인 공조’를 협의한 것도 진전된 관계를 보여준다. NYT가 ‘왜 두나라는 굳건한 동반자가 됐나’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밀월 관계가 지속될 수밖에 없는 10가지 이유를 제시한 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 중국, 인도 등 아시아 신흥국들의 부상에 따라 이들의 도전에 대응해야 한다는 공통 이해관계를 프랑스와 미국은 공유하게 됐다. 둘째, 이슬람 테러 위협이 더 커져가면서 미국과의 협력이 더 절실해졌다. 셋째,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취임 후 독일이 반미에서 대미 관계개선에 힘을 실으면서 독일과 유럽연합(EU)내 주도권 경쟁을 해 온 프랑스로서도 미국과의 관계에 더 신경을 쓰게 됐다. 넷째, 프랑스에서 EU 헌법비준이 부결되는 등 유럽통합 일정이 지연·표류하자 미국이란 대안을 생각하게 됐다. 다섯째, 프랑스도 ‘핵 선제공격가능’ 등 국가안보측면에서 미국과 유사한 정책을 쓰게 됐다. 시라크 대통령은 프랑스에 테러 공격을 감행하는 국가에 핵무기 등 비 재래식 무기로 반격할 수 있다고 공언했다. 여섯째, 제2기 부시행정부의 외교정책이 동맹국과의 협력을 보다 강조하는 방향으로 변화했다. 이에 따라 미국의 독단에 대한 프랑스의 거부감이 줄고 관계개선의 여지를 넓히게 됐다. 일곱째, 시라크와 부시의 안보보좌관들이 친밀한 관계를 수립하면서 원활한 대화 통로를 갖게 됐다. 모리스 G 몽테뉴 프랑스 안보보좌관은 스테판 해들리 미 안보보좌관은 물론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과도 잘 통하는 관계다. 여덟째, 내년 대통령선거를 앞둔 프랑스에서 도미니크 드 빌팽 총리나 니콜라스 사르코지 내무장관 같은 우파적인 후보들이 강세를 보이는 등 사회적인 우경화 바람도 미국과의 유대강화에 일조하고 있다. 아홉째, 아프가니스탄에서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역할 확대에 대해 프랑스가 묵인해주면서 미국의 대테러전쟁 확대를 용인한 것도 협력의 선례를 만들면서 관계 진전을 촉진시켰다. 열번째, 미국내에서 영화 등 프랑스문화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면서 우호·협력 분위기를 띄우고 있다. 이석우기자 jun88@seoul.co.kr
  • [한승원 토굴살이] 꽃들의 사업

    [한승원 토굴살이] 꽃들의 사업

    나의 92세 노모께서 강건한 ‘늙은이’이므로 그분의 아들은 예의상 싱싱한 ‘풋 늙은이’여야 한다. 나이 들면서 일과 꽃들을 더 사랑하게 되었다. 집착이고 탐욕인지도 모른다. 꽃을 보면 허기진 듯 코를 대고 향을 맡곤 한다. 색을 밝히는 남자들은 사랑해야 할 여인이 없으면 꽃이라도 희롱한다는 말이 있다. 그렇다면 여성들이 꽃을 탐하는 것은 무어라 흉허물해야 하는가. 나는 그것을 꽃들의 사업 사랑하기라고 말한다. 꽃 한 송이 피는 것을 보고 우주의 변환을 헤아린다. 꽃들이 하는 사업처럼 화사하고 치열하게 살아야 한다.‘우주 율동의 원리에 따라 천하 인민들에게 베푸는 것을 사업이라 한다.’고 주역은 말한다. 강진에서 18년 동안 유배살이를 한 다산 정약용 선생은 실사구시적인 글쓰기가 사업이었다. 사업을 통해 정심(깨달음)에 이르곤 하신 그분의 한 권 한 권의 결과물들은 거대한 꽃 타래이다. 꽃들의 사업은 열정으로 자기를 불태우듯이 터뜨리는 것이고, 세상을 황홀하게 장식하는 것이고, 향기 퍼뜨리고 꿀벌에게 화분 주고 꿀 주고, 열매 맺어 번식한다. 세상을 온통 자기 꽃으로 덮으려 하고, 자기가 언제 떨어져 썩어 없어질 것인가를 알고 스스로 땅에 떨어진다. 꽃은 사람으로 치자면 생식기인 것인데, 사람의 그것과는 정 반대쪽에 향기롭고 화사한 모습을 드러낸다. 사람이 자기의 꽃을 몸의 아래 땅 쪽(陰)의 깊숙한 옷 속에 감춘다면 그들은 몸 위의 하늘(陽)을 향해 드러내어 장엄하다. 나무의 뿌리와 사람의 머리털은 모양새가 비슷하다. 뿌리는 땅 속에 숨어 영양소를 빨아들이고, 머리털은 하늘 쪽으로 뻗어 신령스러움을 빨아들인다. 식물과 사람은 정 반대의 삶을 살면서 서로 교통하고 교감한다. 가장 불가사의한 것들은, 초봄에 잎사귀보다 먼저 꽃을 터뜨리는 족속들이다. 상식적으로는 줄기와 잎사귀들이 나온 다음에 꽃을 터뜨리는 순서여야 하는데, 그들은 발가벗은 몸으로 겨울철을 보낸 다음 꽃망울을 키웠다가 펑펑 터뜨린다. 입춘 훨씬 전, 눈보라 치는 소한·대한 때부터 나는 매화나무 산수유나무의 꽃망울들을 살피며 기다려왔다. 시인 김영랑이 한 해의 모란꽃잎 떨어져 시드는 5월의 어느 날부터 다음해 그 꽃 피는 찬란한 슬픔의 봄을 내내 기다렸듯이. 내 기다림에 보답하듯 매화나무는 입춘이 지나면서부터 좁쌀만하던 꽃망울들을 참새의 검은자위만하게 키우고 다시 녹두알만하게 키우고 콩알만하게 키웠다. 그리고 바야흐로 폭죽처럼 터뜨릴 준비를 하고 있다. 내 토굴 앞 정원의 매화 꽃망울 커지는 것을 보면서 한 원로 영화감독의 사업을 생각한다. 소설가에게는 소설쓰기가 사업이고 영화감독에게는 영화 찍는 일이 사업이다. 사람이 치열하게 자기 사업을 하면서 영육을 소진시킨다는 것은 얼마나 즐거운 행운인가. 또 그 사업을 하지 못한다는 것은 얼마나 슬픈 불행인가. 나는 살아 있는 한 내 사업을 할 것이고 사업을 하는 한 살아 있을 것이라고 말하곤 한다. 그것은 무엇인가. 사업을 하지 않는 나의 생물학적인 생명은 무의미 그 자체라는 것이다. 그가 찍으려 하는 영화가 돈이 안 될 것이라며 처음의 제작사가 매정하게 그를 배반했을 때, 그를 아는 많은 사람들은 각박한 인심에 분노하고 슬퍼했었다. 그런데 감격적이게도 그는 다른 제작사의 도움으로 그 영화를 다시 찍게 되었고 그의 영화는 천년 동안을 기다려 온 신화 속의 학처럼 비상을 꿈꾸고 있다. 청매화 꽃망울들은 가장자리가 진한 옥색으로 변하고 홍매화 꽃망울들은 붉은 빛을 띠고 있다. 그의 마음은 지금 광양의 매화 꽃 지천으로 피는 마을에 가 있을 터이다. 젊은 시절에 그가 영화 찍는 것을 따라다니며 구경한 적이 있다. 그는 한 장면을 찍기 위하여 하루 혹은 며칠을 허비하곤 했다. 허비한다는 것은 잘못된 표현이다. 찍을 대상에 내리는 빛과 어리는 그림자가 마음에 들 때까지 참고 기다리는 것이었다. 한 차례 봄비가 내린 다음에는 날씨가 연일 따스할 거라고 한다. 올해의 매화꽃들은 넉넉하게 그의 사업을 도와주는 향기로운 사업을 하게 될 것이다. 매화 꽃망울들아, 그의 천년학의 비상을 위해 한사코 곱고 예쁘게 터져라.
  • 복권당첨은 불행의 시작?

    복권당첨은 불행의 시작?

    |워싱턴 이도운특파원|복권 당첨은 행운이 아니라 비극의 시작일 수도 있다고 미국의 USA투데이가 2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 신문은 복권 당첨자들의 삶을 분석한 결과 행복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고 전하며 “누구도 그같은 횡재를 거절하진 않겠지만 그것이 천국에 이르게 하지는 않는다.”고 지적했다. 1988년 펜실베이니아주에서 1620만달러(약 160억원)짜리 복권에 당첨된 윌리엄 포스트는 유산을 노린 형제로부터 살해 위협을 받고 갖가지 음해에 시달리다가 결국 재산을 모두 날리고 말았다. 포스트는 말년에 사회보장 연금에 의존해 연명하다 지난달 쓸쓸하게 삶을 마감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1997년 텍사스주에서 3100만달러(약 310억원)짜리 복권에 당첨된 빌리 하렐은 2년여만에 자살했다. 하렐은 고급 자동차와 부동산을 사고, 가족과 교회·친구들에게 마구 돈을 뿌렸으나 정작 죽고난 뒤에는 유산으로 남겨진 부동산 세금을 낼 돈조차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2001년 남편과 함께 1100만달러(약 110억원)의 복권 당첨금을 탄 빅토리아 젤은 재산을 다 날리고 미네소타주 교도소 신세를 지고 있다. 젤은 2005년 3월 약물과 술에 취한 상태에서 운전하다 한 명을 숨지게 하고, 다른 한 명에겐 중상을 입히는 사고를 낸 혐의로 구속됐다. 1985년과 1986년 두 차례에 걸쳐 총 540만달러(약 50억원)어치의 복권에 당첨된 뉴저지주의 이브린 애덤스는 도박으로 돈을 다 날리고 2001년부터 트레일러에서 살고 있다. 이밖에 2001년 4100만달러(약 410억원)짜리 복권에 당첨된 메인주의 패트리샤 부부는 직장 동료들로부터 이 복권은 공동구입한 것이라는 소송을 당했다. 또 알지도 못하는 친구라는 사람들과 투자회사 등의 공세에 시달리고 있다. 복권당첨자나 운동선수, 연예인 등 갑작스럽게 떼돈을 번 사람들을 연구해온 텍사스공대의 게리 바이어 교수는 “돈을 다 써버리면 빈털터리가 된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깨닫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dawn@seoul.co.kr
  • “중소기업 활로 책임질겁니다”

    “직접판매(다단계판매) 시장은 독과점 폐해가 우려될지도 모르는 대형 할인점에 맞설 첨단 유통산업이자 중소기업의 활로까지 책임질 ‘해결사’ 역할을 할 것입니다.” 정재룡 직접판매공제조합 이사장은 23일 취임 2개월에 즈음해 다단계 판매 시장을 미래 유통산업으로 정착시키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내보였다. 미국에선 ‘암웨이’하면 최고의 직장으로 여기고 세계 각지에서 초고층 빌딩을 세울 만큼 능력을 인정받지만 유독 우리만 그렇지 못하다고 했다.●“유사수신행위 강력히 단속해야” 그는 국내 시장규모가 8조∼10조원, 판매회원 수가 300만명에 이르지만 부정적 인식이 강한 것은 불법 ‘유사수신행위’ 때문이라고 했다. 따라서 다단계 판매는 재화와 용역의 거래가 뒤따르는 합법적 상거래인 반면 유사수신행위는 “얼마 투자하면 얼마 돌려준다.”는 일종의 사기라는 사실을 명확히 알릴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다단계 판매가 일본을 거쳐 들어오면서 시장이 왜곡된 측면도 없지 않다. 정 이사장은 국내 40여개의 직판조합 회사들이 법을 성실히 지키고 소비자에게 올바른 정보를 주겠다는 ‘윤리강령’을 채택한 만큼, 공정거래위원회와 금융감독원, 경찰 등도 불법행위에 말 뿐이 아니라 강력히 대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직판조합도 법을 어기는 회원사에는 이미 영업을 정지시키는 등 시장감시자 역할을 하고 있다고 했다.●할인점과 경쟁… 소비자 이익 증진 정 이사장은 다단계 판매의 최대 장점은 사무실과 광고가 없고 생산자와 소비자를 직접 연결함으로써 질 좋은 상품을 싸게 파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재래시장을 초토화시킨 대형 할인점과 앞으로 경쟁을 벌여 소비자 이익을 증진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중소기업 제품을 다단계 판매로 파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재정경제부 차관보와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사장을 지낸 정 이사장은 “업계에서 나를 추천한 것은 캠코 사장 시절 부실채권시장을 정리한 경험을 인정한 것으로 생각한다.”면서 “부실하지만 다단계 판매 시장은 형성돼 있으며 따라서 부실만 떼면 시장은 성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대에서 ‘부실채권 정리를 위한 법적기반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정 이사장은 상명대 석좌교수로 1주일에 이틀씩 강단에 선다. 감독과 보증보험 역할을 하는 직판조합은 방문판매법에 따라 특판조합과 함께 설립됐지만 대규모 업체를 관리하고 있다.그 결과 직판조합은 암웨이 등 외국업체 회원사 비중이 80%에 이르지만 특판조합은 국내 60여업체를 회원사로 두고 있다. 다단계 판매회사는 직판·특판조합 회원사만 영업을 할 수 있다.백문일기자 mip@seoul.co.kr
  • “인터넷서 본 조국 체험하고 싶어요”

    해외입양 쌍둥이 경찰관이 모국을 찾았다. 20일 경찰청을 찾은 노르웨이 경찰관인 슈타인 리 호브·오드 리 호브 형제. 생모의 품을 제대로 느껴 보지도 못한 채 노르웨이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지 32년 만에 어엿한 가장으로 고국을 방문했다. “한국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인터넷에서 본 정보가 전부죠. 머무는 동안 남대문 시장도 가보고 거리도 다니면서 진짜 한국을 느껴보고 싶습니다.” 형제가 고국 방문을 하게 된 동기다. 동생 오드는 10년 전 방학 동안 한국을 찾은 적이 있지만 형은 처음이다. 함께 모국을 찾은 만큼 한국 경찰 도움으로 친부모를 만나고 싶지 않으냐는 질문에 “개인적인 일이라 말하지 않겠다. 이해해 달라.”며 대답을 피했다. 신문과 방송을 통해 자신들의 모습을 본 친부모가 알아볼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질문에도 쓸쓸한 눈으로 웃기만 할 뿐 역시 답하지 않았다. 각각 다른 경찰서에서 형 슈타인은 범죄수사 업무를, 동생 오드는 외사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형이 1999년 3년제 국립경찰학교를 먼저 졸업했고 다음해 동생이 뒤를 이었다. 다른 입양인들과 달리 쌍둥이라서 늘 서로에게 힘이 돼 주고 최고의 친구로 자란 이들이 같은 길을 걷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노르웨이 대사관을 통해 모국의 경찰견학을 요청해 성사된 이번 방문은 24일까지 5박6일 일정으로 진행된다. 이택순 경찰청장을 면담하고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 서울경찰청, 경찰박물관, 경찰대학 등을 견학할 예정이다.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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