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음해
    2026-04-13
    검색기록 지우기
  • YOON
    2026-04-13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6,407
  • 한나라 전국위 “경선승복” 결의

    한나라 전국위 “경선승복” 결의

    한나라당이 21일 서울 김포공항 컨벤션센터에서 전국위원회를 열고 당헌·당규를 만장일치로 개정,‘8월-23만명’을 골자로 한 경선규칙을 최종 확정했다. 이로써 지난 1월 말 경선준비위원회가 출범한 후 4개월 간 치열하게 공방을 벌여온 경선규칙이 매듭지어졌다. 이날 전국위에서는 건곤일척의 승부를 앞둔 대선주자들이 공정 경선 결의대회도 가졌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우리는 (당 내분사태에서)스스로 위기를 극복하는 자정능력을 보여줬다.”며 “저들이(여권)정치공학에 매우 능숙하지만 한나라당이 자생능력과 화합된 모습으로 이번 대선에 기필코 승리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고 말했다. 박근혜 전 대표는 “이번 대선이야말로 마지막 기회다. 이번 세 번째 기회를 살리지 못한다면 당은 문을 닫게 될 것”이라며 “국민과 후손을 위해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박 전 대표는 “경선이 끝나면 그날부터 모든 후보들은 오직 한사람, 우리 한나라당의 대선후보를 위해 싸우는 경선이 될 것이고 그런 한나라당이 될 것이다.”고 힘주어 말했다. 강재섭 대표는 인사말에서 “명실상부한 공정경선, 정책경선, 상생경선을 통해 아름답고 성공적 국보급 경선을 만들어야 한다.”면서 “당 최종책임자로서 치열하게 박진감 넘치는 경쟁은 얼마든지 보장하되 당을 흔들고 분열시키는 일은 누구라도 읍참마속하겠다는 결의를 분명히 천명한다.”고 밝혔다. 이날 전국위에는 대선주자들과 당 지도부 등 전국위원 9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당원 일동 명의의 ‘공정경선다짐 결의문’도 채택했다. 결의문에는 ▲선공후사의 정신으로 국가의 이익 우선 ▲어떠한 경우에도 당헌·당규상의 경선규칙을 철저히 준수 ▲음해나 비방은 지양, 투명한 경선 ▲경선결과에 승복하고, 선출된 후보자 중심으로 협력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경선규칙이 확정된 가운데 한나라당은 23일 당 선관위를 발족하고 28일 후보검증위를 발족시키며 경선일정을 차질없이 진행시킨다는 계획이다. 당 선관위가 출범하면 이 전 시장과 박 전 대표는 이달 말이나 다음달 초에 예비후보로 등록한다고 밝혔다.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 [안녕하셔요] 첫 딸 낳고 진짜 연기하겠다는 태현실(太賢實)양

    [안녕하셔요] 첫 딸 낳고 진짜 연기하겠다는 태현실(太賢實)양

    68년 10월 결혼과 함께 영화계를 떠났던 태현실(太賢實·30)양이 KBS-TV를 통해 연기자 생활로 되돌아왔다.『우선은 TV에만 나가고 좋은 영화 있으면 영화일도 해낼 생각』. 깡말랐던 체구가 몰라볼만큼 좋아졌는데『연기력도 전보다는 나아졌을거』라고 자신에 차있는 발언이다. ”멋을 아는 시아버지는 언제나 제편이랍니다” 태현실양의 연기생활 복귀가 TV 「드라머」에서 시작한다는 것은 퍽 재미있는 일이다. KBS-TV「탤런트」1기생이었던 그는 당초부터 TV가 출발점이었다. 그리고 2년전 연기생활을 중단할때의 최후 작품도 역시 TV극, TBC-TV의『부각하』였다. -다시 돌아온 기분은?(이 물음에 태현실은「컴·백」이란 단어가 자신에겐 어울리지 않는다고 이의를 달았다) 『제가 언제 은퇴했나요? 결혼당시엔 심신이 피로해서 출연을 못했을 뿐이지요. 이제 건강도 회복됐고 아기도 많이 자랐으니까 다시 해보는거죠』 아기는 3개월전에 첫돌을 지낸 첫 딸. 이름을 수연(修演)이라 했다. -부군께서는 반대하지 않으셨나요? 『결혼초엔 피차간에 가정생활에만 전념키로 약속을 했어요. 아기를 낳고 살림을 하려니 자연 그렇게 되더군요. 이제는 연기생활을 겸해도 집안일에 지장이 없으니까, 반대할 이유도 없어진거죠. 더구나 시아버님이 제편이거든요?』 태현실양의 부군은 청년실업가 김철환씨(金哲煥·31). 「플래스틱」계통의 공업사 삼도실업(三都實業)의 사장이다. 3남2녀의 맏이. 그러니까 태현실양은 이 김씨 집의 맏며느리. -시아버지께서 퍽 현대적이신가보죠? 『광산업을 하고계신데 해외에 자주 드나드시니까 젊은이들보다 멋을 아셔요』 후암동에 있는 태현실양의 집은 부자2대의 사장집답게 큼직했다. 2백평가량의 대지에 1백평의 일본식 저택. 정원에는 향나무와 등덩굴이 어울려 저택분위기를 한결 돋보이게 했다. -결혼생활은 예상했던것처럼 행복한 것인가요? (태현실양은 잠깐동안의 침묵끝에 입을 열었다) 『별 탈없이 평탄하게 지낼수 있었다면 그것으로 만족하는거 아녜요?』 -그렇게 행복한건 아니란 말인가요? 『천만에요. 저희들은 서로 오랫동안 교제하다가 결혼한걸요. 결혼전에 서로의 성격을 잘 이해하고 있었어요』 시간적인 여유 충분해 연기에 전념 하겠다고 태현실양의 말대로 그녀는 영화계에「데뷔」한 다음해부터 교제를 시작했다.「데뷔」작『아름다운 수의』가 62연도에 나왔고, 68년 10월에 결혼했으니까 사실이라면 6년간의 연애. 6년간 커다란「스캔들」없이 배우생활을 했던 것도 이「스테디」가 있었기 때문일까? 어쨌든 6년간의「스타」역정에서 그녀는『새드·무비』『가짜여대생』『용서받기 싫다』『길잃은 철새』등 1백50편의 영화를 해냈다.「톱·스타」로 영화계에 군림했던 엄앵란(嚴鶯蘭)양이 결혼하고「스크린」과 멀어질때 태현실은 가장 유력한 후계자로 여배우 판도를 주름잡을수 있었다. 문희(文姬), 고은아(高銀兒), 남정임(南貞妊)의 세 배우가 우후죽순처럼 쏟아져나오지 않았던들 태현실의 위치는 좀 더 달라졌을게 분명했다. 사실상 68년 결혼할 무렵에 그녀는『도중 하차하는 기분』이라고 자의반, 타의반의 은퇴(?)를 아쉬워했었다. -「스크린」에 대한 그리움 같은건? 『사실상 집에 묻힌 2년동안 잠시도 잊을순 없었어요. 남편이나 가정에 대한 집념과 연기생활에 대한 애착은 전혀 별개의 것임을 깨달았어요』 -가정생활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는 뜻인가요? 『그보다 항상 무엇인가 답답하고 허전한 것 같았어요. 제가 할 수 있고 몰두할수 있는게 있어야 했어요. 아이가 이만큼 자란 지금은 연기속에 파묻힐 수 있는 여유가 충분히 생길 것 같아요』그러면서 태현실양은 『진짜 연기는 이제부터 할것같다』고 덧붙였다. 처녀「스타」가 흔히 나타내는「여자로서의 행복론」에 그녀는 이미 불안해하지 않아도 좋은 때문일까? 『처녀때는 사실 시집간다는 문제도 연기 못지않게 마음을 불안케 해요. 저는 그런 일이 없으니까 한가지 일은 해치운 셈일까요?』 요즘의 국산영화는 거의가 좋지 않아요 -그동안 영화출연 교섭같은건 받아보지 않았는지? 『왜요, 어떤분이 각본을 가져왔어요. 읽어보니까 마음에 썩 들지 않아요. 좀 좋은 작품이 나오면 해보고 싶어요』 -좋은 작품이란? 『요즘의 국산영화는 거의가 좋지 않은 것같아요. 장난삼아 만드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헐렁할 수가 있어요? 영화의 질이 2년전보다 후퇴한 것 같아요』 그러면서도 그녀는 시간이 나는대로 새로 나오는 영화는 반드시 구경했다고 말한다. 재미를 찾기위해서가 아니라 영화와 멀어지지 않으려는 노력에서. 그리고 다시「카메라」앞에 설때를 대비한 공부였다고 다짐한다. 겹치기 출연 절대않고 작품다운 작품 골라서 -연기에 대한 자신은? 『건강이 좋아진 만큼 노력할 여유가 생겼다는 자신이죠』 단 겹치기 출연따위는 절대로 있을 수 없고, 하더라도 1년에 몇편 작품다운 작품에서 연기다운 연기를 하겠다고 못박는다. 『사실 겹치기에 쫓기는 연기자들, 한편으로 생각하면 불쌍해요. 한꺼번에 10여편씩 맡아가지고 밤잠 제대로 못자면서 이곳저곳으로 끌려다니며 중노동하듯 촬영을 하니 연기가 제대로 나올 수 있어요? 시간여유가 없으니까 공부도 못하고 건강은 자꾸 나빠지고』- 겹치기 얘기가 나오자 갑자기 말수가 많아진다. 『그렇게해서 큰 돈버느냐면 그렇지도 못해요. 받는 것은 연수표고 나가는 것은 현금. 그리고 쓰는데가 좀 많아요? 「스타」가 됐다면 몇십명씩 가족을 거느리게 되고 결국「스타」는 돈버는 기계가 되고 말지요』 -체중은 얼마나 늘었는지? 『결혼할때 45「킬로」였는데 지금 54「킬로」예요. 나이먹는 징조일까요?』 그러나 태현실의 얼굴은 2년전보다 훨씬 아름답게 가꾸어져있고 무르익은 여자다운 분위기를 풍겨주고 있었다. [선데이서울 70년 9월 27일호 제3권 39호 통권 제 104호]
  • [女談餘談] 그땐 그랬지/유지혜 기획탐사부 기자

    “참 어렸었지, 뭘 몰랐었지…. 시간아 흘러라 흘러 그땐 그랬지.”-카니발의 노래 ‘그땐 그랬지’ 중. 어제 거의 10년만에 내가 다니던 중학교를 찾았다. 그저 바람이 너무 좋아 그냥 집에 가기가 싫었다. 학교는 생각보다 많이 변해 있었다. 운동장 한 쪽에 있던 등나무 덩굴은 사라지고, 플라스틱으로 지붕을 댄 깔끔한 휴게실이 생겼다. 가건물 같던 매점도 번듯한 3층짜리 벽돌건물로 바뀌어 있었다. 변한 학교 구석구석을 돌며 내 흔적을 찾았다. 그때는 그렇게 지루하기만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매일이 기사거리였다. 보도블록 옆에 있는 나무는 내가 2학년 때 직접 심은 것이다. 당시 학교 이미지 쇄신을 위한 조경사업이 대대적으로 벌어졌고 학생들은 체육시간마다 ‘인부’로 동원됐다. 학교는 우리를 소녀장사라고 생각했던지 키보다도 훨씬 큰 나무를 뽑고, 더 큰 새 나무를 심게 했다. 운동장 주변 풀밭에 있는 잡초도 뽑아야 했다. 한 바구니를 한 번으로 쳐줬는데, 한 시간에 다섯 번을 채우지 못하면 실기점수를 감점당했다. 반 전체의 실적이 저조하면 반장이라는 이유 하나로 먼지나도록 맞아야 했다. 지금 그랬으면 아마 ‘잡초 동영상’이 인터넷을 떠돌았을 거다. ‘육체노동’이 전부가 아니었다. 종교 재단이었던 학교는 수시로 선생님들을 종교행사에 동원해 1주일의 절반 동안 자습만 했던 적도 있다. 이를 거부했던 한 선생님은 다음해 학교를 떠나야 했다. 어린 마음에도 뭐 이런 개판이 다 있나 싶었다. 하지만 다시 찾은 학교에서 떠올린 추억들은 그리 불쾌하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피식 웃음이 났다. 엄연한 내 ‘역사’의 일부인데, 이런 기억들을 잊고 살았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웠다. 언젠가 평생을 함께하고 싶은 사람이 생기면 함께 학교를 찾아 꼭 이런 이야기들을 들려줘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번 주말, 사랑하는 사람들의 손을 잡고 꼬맹이 적 다녔던 학교를 찾아가 보는 것은 어떨까. 사랑하는 사람들과 과거의 나를 함께 공유하면서 미래의 역사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유지혜 기획탐사부 기자 wisepen@seoul.co.kr
  • “올 대선 최대이슈는 경제”

    “올 대선 최대이슈는 경제”

    사회 각 분야 오피니언 리더들은 올 대선의 최대 이슈로 부동산 등 경제문제를 꼽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온국민이 염원하는 시대정신은 국민통합이라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이는 서울신문이 제17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구성한 대선 정책평가단 소속 전문가 12명의 진단이다. 서울신문은 최근 이들을 대상으로 올 대선에 대한 설문조사를 벌였다. 정책평가단은 정치, 경제, 외교안보, 교육, 사회, 문화, 여성분과 교수와 변호사 등 각 분야 전문가들로 이뤄졌다. ●경제문제와 양극화 해소가 관건 조사 결과, 올 대선의 최대 이슈로는 경제문제와 양극화 해소가 꼽혔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이번 대선은 경제문제가 핵심사항으로 등장할 것”이라면서 “경제문제가 거론되면 자연스럽게 사회 양극화 문제도 거론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영기 변호사는 조세저항의 문제점이 있는 부동산 문제가 가장 큰 관심사가 될 것으로 지적했다. 차영구 박사와 이철기 동국대 교수 등은 이와 관련, 경기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에 대해 국민들에게 호소력을 지닌 후보가 유리할 것으로 예상했다. ●통합의 시대정신 갈구 국민들이 이번 대선에서 바라는 시대정신으로는 사회통합에 대한 목소리가 많았다. 권영준 경희대 교수·황기돈 한국고용정보원 기획조정실장 등은 사회통합 및 국민통합이라고 지적했다. 변창흠 세종대 교수는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갈등, 개발과 환경의 갈등, 사회적 양극화 확대 등에 따라 국가적으로 극심한 갈등과 대립을 해소할 통합의 리더십 확보”라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변화순 한국여성개발원 여성정책전략센터 소장은 “후보자들간에 경쟁과 대립이 아닌 화합과 공존의 이념을 바탕으로 세부적인 공약을 세운다면 효과적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후보자 철저한 검증 필요 국정수행 능력, 재산형성 과정, 인간적 면모, 도덕성 등이 꼽혔다. 권영준 교수는 “후보자의 도덕성 검증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라고 도덕성 검증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철기 동국대 교수도 “국가최고지도자로서 갖춰야 할 기본적 소양인 노블레스 오블리주 가운데서도 재산축적과정에 대한 검증 등 도덕성에 대해 철저히 검증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양정호 성대 교수는 “비전제시, 지도력이 강조될 것이나 단순한 인신공격성 음해수준은 바람직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747, 경부운하 검증대상 공약 주된 검증대상 공약으로는 ‘747공약, 경부운하,3불정책’ 공약이 꼽혔다. 고승덕 변호사는 “경부운하 공약은 노동집약적 사업인데 선진한국에 맞는지, 운하가 한국 지형에 적합한지 등을 따질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창원 한성대 교수는 정부와 기업과의 관계에 있어 정부 역할 등에 대한 검증필요성을 제기했다. 박현갑기자 eagleduo@seoul.co.kr
  • 강대표가 밝힌 ‘여론조사 방안’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는 17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명박 전 서울시장측과 박근혜 전 대표측간 해묵은 논란거리인 검증문제와 새 쟁점으로 부상한 여론조사 방식에 대해 ‘교통정리’ 방안을 제시했다. 그는 여론조사 방식과 관련,“공정하고 정확한 국민여론을 반영할 수 있는 공인된 복수의 국내조사기관에서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그동안 박 전 대표측은 여론조사를 맡길 기관으로 시중 조사기관 대신 한나라당 부설 여의도연구소를 포함, 순수성이 보장되는 대학교 등 연구기관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은 셈이다. 양 진영간 또 다른 첨예한 쟁점인 여론조사 설문조사방법에 대해서는 다음주 중 출범 예정인 여론조사 전문가들로 구성된 ‘전문가 위원회’의 자문을 받아 선거관리위원회가 결정키로 했다. 전문가 위원회는 여론조사기관 선정을 비롯해 조사과정 참관 및 관리감독, 투표결과 반영 전 검증 등에 대해 선관위의 자문에 응하게 된다. 이와 관련, 이 전 시장측은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중 누가 대통령 후보가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느냐.”며 ‘후보 적합도 또는 선호도’를 묻는 방식을 주장하고 있다. 반면 박 전 대표측은 “오늘이 대통령 선거일이라면 어느 당의 누구를 대통령으로 찍을 것이냐.”는 식으로 ‘투표 의향’을 물을 것을 요구하며 맞서고 있다. 강 대표는 또한 후보검증위원회는 소수의 당직자를 비롯해 법조계, 종교계, 시민단체를 포함한 외부인사 등 10명 이내로 구성키로 했다. 경선준비위원회와는 달리 이 전 시장측과 박 전 대표측에 가담 중인 인사들은 무조건 배제할 방침이다. 후보검증에 대해서도 제출자의 실명을 밝히고 육하원칙에 따라 소명자료까지 붙여 비밀로 자료를 제출하면 검증 대상에 포함시킨다는 입장이다. 검증위의 논의 결과 제보내용이 상당히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청문회를 개최할 수도 있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나 제보자의 검증요구가 후보를 음해하기 위한 행위라고 판단되면 출당을 비롯해 제명, 당원권 정지 등 강력하게 제동을 걸겠다는 뜻을 밝혀 대선주자들간 논란이 일 전망이다. 이종락기자 jrlee@seoul.co.kr
  • [Local] 전북혁신도시 주차대란 우려

    전북 혁신도시의 주차면적이 작게 계획돼 주차대란이 우려된다.10일 한국토지공사의 전북 혁신도시 교통영향평가서에 따르면 2012년 도시 완공 시기에 법정 주차대수는 3만 6651대이다. 그러나 다음해인 2013년 예상 주차대수는 법정주차대수를 1만대 가까이 넘는 4만 5224대로 예상됐다. 특히 2017년에는 4만 8812대,2022년은 5만 3740대 등 해마다 주차예상대수가 급증하고 있다. 이같이 혁신도시 예상 주차대수가 늘어나는 것은 공공지구에 대규모 시설과 인력이 한꺼번에 몰리기 때문이다.
  • 정동영, 이번엔 ‘참여정부 포럼’ 맹공

    노무현 대통령과 ‘막나가는’ 공방을 벌여온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이 작심하고 청와대를 비판했다. 여기에 정동영계 인사들도 총공세를 펼치며 ‘노-정’ 갈등이 다시 확산일로로 치닫고 있다. 정 전 의장은 9일 청주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참여정부 평가포럼’은 2·14 전당대회 합의를 깨고 전직 관료 200∼300명과 함께 열린우리당을 사수하기 위한 진지를 구축하기 위한 것”이라면서 “즉각 해산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8일 청와대 정무팀이 “대통령은 통합을 반대하지 않는다.”고 밝힘에 따라 꺼져가는 것처럼 보였던 공방의 불씨에 정 전 의장이 기름을 부은 셈이다. 이는 수개월째 지지율 답보 상태를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이대로 그냥 무너질 수는 없다.’는 판단하에 대통령과의 대립 구도를 통해 정치적 반등을 노리는 시도로 볼 수 있다. 그는 또 “호남과 충청 연합의 지역주의 정당으로는 승리할 수 없다는 발언이야말로 지독한 지역주의”라며 “DJ(김대중 전 대통령), 노무현을 지지했던 호남·충청의 민심이 지역주의였다는 말이냐.”고 따져 물었다.이날 서울에서는 정동영계 의원들이 기자간담회를 자청, 정 전 의장의 청와대 공격에 보조를 맞췄다. 정 전 의장의 비서실장을 지낸 박명광 의원은 “현 지도부 중심이라면 수용하겠다는 이유가 지역주의(회귀 반대)도 포기하겠다는 것이냐.”면서 “청와대는 이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청와대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내밀었다. 이어 박 의원은 “그동안 곡해되고 와전되는 부분만 해명하고 대응했지 (대통령과의)정쟁 개념으로 생각 안 했다.”면서 “하지만 지킬 입장을 지키는 데 음해하고 도전하는 세력에는 응당 대응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청와대 정무수석 비서관을 지낸 김현미 의원은 “‘참여정부 평가포럼’은 이것은 명백하게 열당 사수 전위대”라면서 “반(反)통합 인적 자원 풀(pool)로 준비되고 있다.”며 참여정부 포럼이 정치세력화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2002년 대선 때 인터넷에서 ‘미키루크’라는 필명으로 당시 노무현 후보자를 적극적으로 지지했던 이상호씨는 ‘국민참여1219’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친노가)지금은 사수파로 변종되어 증오와 분열의 정치를 또 준비하고 있다.”며 “(대통령은)친노파들을 지금이라도 물리치십시오.”라고 적었다. 한편 정 전 의장의 주장에 대해 청와대 대변인을 지낸 참여정부평가포럼 김만수 집행위원장은 “정 전 의장도 참여정부의 통일부 장관이었던 만큼 아무런 오해 없이 참여정부가 올바로 평가받는 데 힘을 쏟아주길 바란다.”며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았다.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전북도 ‘1석3조’ 한우단지로 FTA 넘는다

    전북도 ‘1석3조’ 한우단지로 FTA 넘는다

    전북 서부평야지대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파고를 넘는 대규모 ‘자연순환형 한우브랜드 단지’가 조성된다. 8일 도에 따르면 김제, 정읍, 고창, 부안, 익산 등 평야지대에 4∼5개 한우브랜드 단지를 육성한다. 도는 축협, 한우영농조합, 농민들이 공동참여해 시·군별로 1만㏊ 내외의 초대형 한우생산단지를 만들기로 했다. 도가 평야지대에 한우단지를 조성키로 한 것은 전북이 드넓은 농지를 보유하고 있어 이 곳에서 값싸고 질좋은 유기농 사료를 생산해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고품질 한우를 기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김제시의 총체보리한우는 경쟁력을 인정받아 최근 재정경제부로부터 ‘한우산업특구’로 지정됐다. 전북도는 자연순환형 한우단지 육성에 들어가는 1500억∼1800억원의 사업비를 한·미 FTA대응기금으로 충당할 계획이다. 자연순환형 한우는 논에서 총체보리사료를 생산해 값싼 유기농 사료로 한우를 기르고 그 과정에서 나오는 축분으로 다시 친환경쌀을 재배, 농가소득을 올리는 방식이다. 총체보리사료는 가을철 벼를 추수한 다음 겨울철에 빈 논에 보리를 심어 다음해 보리알이 여물기 전 줄기까지 함께 베어 발효시켜 만든다. 농민들은 농지이용률을 높이고 값싼 유기농사료를 생산할 수 있어 한우생산 단가를 낮출 수 있다. 특히 총체보리사료를 먹인 한우는 육질이 좋아 수입쇠고기에 대응할 수 있는 고품질 한우로 각광받고 있다. 또한 한우를 기르는 과정에서 나오는 부산물인 축분을 퇴비로 만들어 화학비료 대신 사용함으로써 친환경 자연순환형 농업이 가능하다. 전북도는 총체보리사료를 먹인 한우는 일반 사료를 먹고 자란 소보다 육질이 좋아 700㎏짜리 큰소 한마리에 평균 52만원을 더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분석했다. 화학비료 대신 축분사료로 생산한 쌀도 소비자들로부터 각광을 받을 전망이다. 전북도 관계자는 “자연순환형 한우단지 조성이 농산물수입개방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농촌에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는 방안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면서 “고품질 한우와 친환경 쌀을 안전하고 맛 좋은 대표적인 우리 농산물로 육성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전주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데뷔 41년 괴짜가수 조영남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데뷔 41년 괴짜가수 조영남

    경우에 따라 군대 시절의 ‘보따리’가 무척 흥미진진하다. 그 주인공은 오늘날의 인기가수 조영남(62)이다. 대학 시절 그는 ‘딜라일라’를 불러 큰 인기를 얻었다. 그러자 꾀가 생겼다. 군 복무를 계속 연기했다. 여차 하면 ‘안가는 방법’까지도 궁리했다. 그러던 1970년 4월8일, 서울 마포구 노고산동의 와우아파트가 무너졌다. 세상이 요란스러워졌다.20여일 후 서울시민회관(현 세종문화회관) 무대에서 김시스터즈의 귀국공연이 열렸다. 김시스터즈는 국내 여성보컬 1호로 당시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도 큰 인기를 얻었다. 이 때문에 정권 고위층도 참석할 만큼 관심이 높았다. 여기에 조영남은 찬조 출연한다. 무대에 선 그는 무심코 노래 한소절을 바꿔 불렀다. ‘신고사니이∼우르르르 함흥차 떠나는 소리에∼’라고 해야 하는 데 ‘신고사니이 와르르 와우아파트 무너지는 소리에 얼떨결에 깔린 사람이 아우성을 치누나∼’라고 했다. 요즘 같으면 별 일이 아니겠지만 그때는 달랐다. 특히 다음해 대통령 선거에서 김대중 후보와 일전을 치러야 하는 박정희 정권으로서는 와우아파트 사건으로 심기가 매우 불편해 있었다. 이런 판에 조영남이 고춧가루를 뿌렸으니 분위기가 험악할 수밖에. 겨우 눈치를 챈 조영남은 무대 뒤로 간신히 빠져나와 평소 안면이 있던 서울신문사 사장 방에서 잠시 피신해 있다가 그날 늦게 집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다음날 새벽 4시에 두명의 형사가 집으로 들이닥쳐 “병역기피로 재판을 받아야 한다.”며 끌고갔다. 졸지에 재판에 회부된 조영남은 이화여대 법정대학장이자 최초 여류변호사인 이태영 박사의 도움을 받는다. 즉 이 박사가 조영남을 재판에서 빼내주었고 대신 군 입대를 조건으로 내세웠다. 평소 조영남이 이 박사가 잘 가는 소년원에서 무료로 위문공연해 준 인연이 작용했다. 결국 조영남은 이 박사의 보증아래 훈련을 받은 뒤 육군본부 합창대에서 근무했다. ●가사 바꿔 불렀다 여러번 ‘혼쭐´ 군복무 시절 다시 한번 아찔했던 순간을 겪는다. 바로 박정희 전 대통령 앞에서 노래를 부를 때였다. 조영남은 나름대로 민족의 애환이 깃든 노래를 한답시고 ‘각설이 타령’ 한곡을 ‘쭉∼’ 뽑았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 왔네∼얼씨구씨구 들어간다∼’. 노래가 끝나자 마자 조영남은 모처로 불려가 혹독한 ‘취조’까지 받았다. 비슷한 사연은 또 있다. 전두환 전 대통령 시절에는 노래 도중 하모니카를 빼다가 경호원들의 제지를 받았다. 또 노태우 전 대통령 앞에서 영부인 김옥숙 여사를 향해 ‘나 하나의 사랑’을 열창했다가 눈총을 받아 분위기가 썰렁해졌다. 하지만 그의 대표곡 ‘화개장터’는 공교롭게도 1997년 대선 때 선거바람을 타고 빅히트를 쳐 ‘운때 맞았던’ 경우도 있었다. 이 노래의 작사자는 김대중 정권 때 문화부장관을 지낸 김한길 의원이다. 조영남은 원래 즉흥적으로 가사를 바꿔 부르는 재치와 끼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탈리아 칸초네 ‘카사 비안카(Casa Bianca)’를 ‘하얀 집’으로 바꿔 부른 것도 여전히 회자된다. 닉슨 미국 대통령 시절(재임 1969∼74년)이다. ‘시커먼 하얀집/어쨌든 하얀집/누가 뭐래도 하얀집/좌우지간 하얀집/불이 나면 빨간집/꺼지면 까만집/∼/닉슨이 사는 The White House’. 결국 그가 지칭하는 하얀집은 ‘백악관’이었다. 지난 2일 서울시내의 한 음식점에서 조영남씨를 만났다. 올해로 데뷔 41주년이 된다. 예순이 넘은 나이에도 한달에 한번꼴로 콘서트를 가진다. 얼마 전에는 다시 방송에 복귀, 최유라와 함께 ‘지금은 라디오 시대’(MBC-FM 오후 4∼6시)를 진행하고 있다. 아울러 가수이자 문학인, 화가, 전방위 예술가로 푸짐한 삶의 영역을 넓히고 있다. 따뜻한 봄날, 문득 선문답을 나눠보고 싶다는 당돌한 생각이 들었다. ●음악·문학·그림? 그건 그냥 취미야 “노래는 왜 합니까?” 우문이었을까, 뿔테 안경너머로 살짝 째려보더니 “밥벌이”라고 소리지른다. 갑자기 오기가 생긴다. “그렇다면 시는 왜 씁니까?” “암호해독이지, 진실의 핵심을 푸는 재미라고나 할까.” 내공의 깊이가 이 정도?. 고개를 약간 갸우뚱거렸다. 노려보던 시선을 흐트려뜨리며 “보들레르, 랭보, 예이츠, 에드거 앨런 포, 결국 아무것도 아냐. 인간 존엄성이지.”라고 뱉는다. “하지만 한 가지 못 푼 게 있어, 이상의 ‘날개’, 음 정말 암호가 많아.” 이때 MC 임백천씨가 나타났다. 귀엣말을 주고받더니 잠시 일어선다. 저쪽 방에 정대철 열린우리당 고문 등 몇몇 정치인들이 눈에 띄었다. 정 고문의 어머니 고 이태영 박사가 앞서 언급된 병역기피 재판 때 조씨를 도와주었다는 사실이 잠깐 오버랩됐다. 인터뷰가 다시 진행된 것은 20여분 후. “인간 조영남은 음악인, 문학인, 화가 중 과연 어느 쪽을 좋아합니까?” “아무 것도 아냐, 그냥 취미일 뿐이지.” “그렇다면 사는 재미를 어디에서 찾나요?” “재미의 순서? 젊은 여자들과 밥먹고 수다 떠는 것이 제일 재밌지.” “수다가 가능합니까?” “가능하기 위해서 무진장 노력하고 공부하지. 공부 안하고 연구없이 재미있게 살 수는 없어. 시도 쓰고, 그림도 그리고, 노래도 하고 다 재미있게 살려는 것이지.” “젊은 여자를 만나면 어떤 내용으로 수다를 떠나요?” “그날 그날 다 달라. 어제는 여름 이불이 어느 정도 얇아야 하느냐, 어떤 천이 좋으냐, 이런 주제로 2∼3시간 수다를 떨었어.” ●젊은 여자랑 밥먹고 수다떠는 게 제일 재밌어 “그렇다면 인생은 수다인가요?” “재미있게 수다 떨다가 죽는 것이 최종목표지 뭐.” “수다 뒤에 찾아오는 허무는 무엇으로 채우나요?” “무엇을 해도 허무해. 허무는 가만히 있으면 지나가고, 잠들면 되고, 책 읽고, 그림 그리고, 또 수다 떨고….” “주변에서 인간 조영남은 고독하고 쓸쓸한 팔자가 아니냐고 합니다.” “말 같지 않은 얘기야, 고독하지 않은 것이 없어. 고독 반, 고독하지 않은 것 반, 기쁨 반, 슬픔 반, 인간사 다 그렇지 않은가.” “고독이 몸부림칠 때 음악을 만드나요?” “몸부림친 적도 없어…, 다 구라치는 얘기야.” 조씨의 대답은 거침이 없었다. 툭툭 내뱉는 단어들이었지만 조합을 해보면 매사에 솔직하고 일관된 소신을 엿볼 수 있었다. 그래서 최종답을 위해 인생철학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정운찬·정동영·손학규, 삼두 정치 어떨까 “주변에 대통령이 될 법한 친구들이 많아서 기분이 좋아. 정운찬, 정동영, 손학규…. 그러나 그 중 한명(정운찬)이 떨어져 나가 승률이 줄어들었어.”이어 “정운찬은 쓸 만한 물건이고, 정동영은 잘 만들어진 물건이고, 손학규는 쓰기 편한 물건이고, 다 괜찮아. 말 나온 김에 옛날처럼 삼두(三頭)정치를 제의하면 어떨까.”라고 되묻는다. 왜 혼자 사느냐고 다시 직설적으로 물었다. “여자를 구하는 데 큰 문제는 없어. 같이 살자고 하면 살아줄 여자도 몇명 있지. 안 하는 이유? 두번씩이나 둘이서 살아봐서 아는 데, 혼자 살아보니 훨씬 재미있어. 난 역시 독립군 체질이야. 성격이 변태 같은데 감당하고 들러붙어 살 여자가 쉽게 나타나겠어?”그는 자신이 불렀던 곡 가운데 가장 아끼는 노래에 대해 이제하씨가 가사를 쓴 ‘모란동백’, 그리고 방송작가 김수현씨의 시에 곡을 붙인 ‘지금’이라고 대답했다. ‘맞아 죽을 각오로 쓴 친일 선언’ 파문을 언급하자 “많이 아팠다. 아픈 만큼 성숙해졌다.”고 했다. 인생 앞날의 계획을 재차 물었다. “죽기 직전까지 산다는 것이야.”라고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인물전문기자 km@seoul.co.kr 사진 안주영기자 jya@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45년 황해도 남천 출생. ▲51년 1·4후퇴때 월남. ▲64년 서울 용문고 졸업. ▲66년 서울대 음대 시절, 미8군 무대데뷔로 노래인생 시작. ▲68년 첫음반 ‘딜라일라’ 발표. ▲74년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권유로 미 트리니티침례신학대학 입학. 이후 목사자격증을 받고 미국 생활. ▲81년 귀국후 가수활동 재개. # 대표곡 딜라일라, 제비, 물레방아 인생, 각설이 타령, 별은 빛나건만, 신고산타령, 화개장터, 웰컴투코리아, 사랑했기에, 겸손은 힘들어, 늘푸른 마을, 인생은 요지경, 무너진 사랑탑, 보리수. 내고향 충청도 등. # 주요 저서 어느 한국 청년이 본 예수(82년), 놀멘놀맨(95년), 조영남 예수의 샅바를 잡다(2002년), 길에서 미술을 만나다(03년), 맞아 죽을 각오로 쓴 친일선언(05년). # 그외 영화 서울에비타 등 출연.1990년 LA개인전을 시작으로 매년 미술 전시회를 갖는다.
  • 강대표 “내주초 경선룰 결정”

    강대표 “내주초 경선룰 결정”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는 3일 서울 염창동 당사에서 당 내분 사태 봉합후 처음으로 최고위원회의를 주재하면서 “늦어도 내주 초까지는 경선 룰을 결정하고 다음주 중 전국위원회를 열어 경선 룰 관련 당헌·당규 개정안을 통과시키겠다.”고 밝혔다. 강 대표는 “경선 룰 확정이 늦어지면 경선에 필요한 대의원 명단도 확정하지 못할 것”이라면서 “경선 룰 가운데 합의되지 않은 사항은 금주 내로 최고위원회서 논의해 제가 주도해 확정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4일로 예정된 자신과 이명박 전 서울시장, 박근혜 전 대표간 3자회동을 언급하면서 “대선주자들 미팅을 통해 상호비방, 음해행위에 대해서는 엄단할 방침을 밝힐 것”이라고 덧붙였다. 강 대표는 이어 “캠프에 사람들을 다 불러들여 당이 인사조차 제대로 할 수 없고 당 회의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이런 상황에 대해서도 제가 따끔히 말씀 드리겠다.”고 말했다. 이날 최고위원회의는 9명의 최고위원 가운데 단 4명만 참석해 반토막 회의로 전락했다. 이종락기자 jrlee@seoul.co.kr
  • 헌재·대법 ‘호적성씨 표기’ 올 상반기 결론

    헌재·대법 ‘호적성씨 표기’ 올 상반기 결론

    ‘이(李)·유(柳)·나(羅)’ 씨의 호적표기가 ‘리·류·라’가 가능해질까. 몇 해 동안 계속해서 논란을 빚어 왔던 한글맞춤법의 두음법칙에 따른 성씨 표기를 규정한 대법원 호적예규 문제가 올 상반기에 결론이 내려질 전망이다. 국립국어원, 헌법재판소도 상반기까지 각각의 결론을 내리겠다는 입장이다. ●10년 넘은 성씨 표기 논란 대법원은 1994년 이전까지 한자 이름만 적던 호적에 한글 이름을 같이 적는 내용의 호적예규를 만들었다. 한글 이름의 표기는 ‘한글맞춤법’을 따라야 한다고 정했다. 이같이 정한 것은 국어기본법 14조가 “공공 기관의 공문서는 어문 규범에 맞추어 한글로 작성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어기본법에서 어문규정 중 하나로 정하고 있는 한글맞춤법에는 성씨도 두음법칙을 따라야 한다고 돼 있다. 때문에 호적에는 ‘리’씨가 아니라 ‘이’씨가 될 수밖에 없었다. 대법원 관계자는 “대표적 공문서라고 할 수 있는 호적표기를 법을 어길 수는 없지 않으냐.”고 반문했다. 본인이 써오던 성씨를 사용할 수 없게 된 사람들의 생각은 달랐다. 호적표기가 바뀐 다음해인 95년 ‘李,柳,羅’씨를 ‘이·유·나’로 표기해야 한다고 대법원이 유권해석을 내렸다. 이를 ‘리·류·라’로 표기해 달라는 민원인들의 요구가 많아 혼선을 빚자 대법원이 이를 정리한 것이다. 이후에도 문화 류씨, 고흥 류씨, 하회 류씨 등의 문중에서는 “원래의 성씨를 표기해 달라.”며 호적예규를 고쳐달라는 민원이 쇄도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2004 11월 다시 버들 류(柳)씨 성의 한글 표기는 ‘류’가 아닌 ‘유’가 맞으며 리(李)·라(羅)도 ‘이’와 ‘나’로 써야 한다고 유권해석을 내렸다. 대법원의 이같은 입장에도 불구하고 성씨 변경을 요구하는 민원과 호적정정 신청은 끊이지 않았고 지난해에는 대전지법에서, 지난달에는 청주지법에서 각각 호적의 성씨 표기 ‘유’씨를 ‘류’씨로 정정하는 것을 허가하는 결정을 내렸다. 재판부들은 “개인의 성의 한글표기를 두음법칙으로 제한하는 것은 인격침해로 헌법에 위배된다.”고 밝혔다. 또 류모(37)씨는 2003년 2월 아들의 호적신고를 하며 ‘류’로 표기했는데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유’로 바뀌었다면서 이는 “버들 류(柳)를 성으로 사용 중인 국민들의 행복추구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며 헌법재판소에 ‘성표기 정정신청 거부행위 위헌확인´ 헌법소원을 냈다. ●“국민의견 모아지면 대법원 예규변경” 논란이 계속되자 대법원 등기호적국은 이달 29일 등기호적제도개선위원회에 국어학자를 초빙, 의견을 들을 예정이다. 또 성씨 문제를 공론화해 6월까지 이 문제를 해결한다는 계획이다. 대법원 임종헌 호적등기국장은 “논란이 계속되고 국민적 관심이 높은 사안인 만큼 국민들의 의견이 모아지면 올 상반기에라도 대법원 예규를 변경한다는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한글맞춤법을 담당하고 있는 국립국어원도 두음법칙의 성씨 적용문제에 대한 공청회를 갖는 등 조만간 결론을 내릴 예정이다. 대법원은 지난해 국립국어원에 성씨 표기에 대한 의견조회를 한 상태다. 국립국어원 언어정책팀 조남호 팀장은 “이 문제가 단순한 성씨 표기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글맞춤법의 위상과도 연관된 만큼 충분한 연구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라며 “사회적 파장 등 때문에 섣불리 결론을 내리지 못했지만 상반기 중 공청회를 갖는 등 결론을 내릴 것”이라고 말했다. 헌재도 올 상반기 중 4년 넘게 끌어온 헌법소원을 결론지을 예정이다. 전원합의체에서 진행하고 있는 사건은 현재 재판부에서도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기본권 중 인격권 그중에서도 자기결정권 침해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해 격렬한 논쟁을 벌이고 있지만 상반기 안에 결론을 내려 성씨 표기에 따른 혼란을 없애기로 했다.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서길수 교수 “고구려 아닌 ‘고구리’로 읽어야”

    서길수 교수 “고구려 아닌 ‘고구리’로 읽어야”

    고구려(高句麗)는 ‘고구리’, 고려(高麗)는 ‘고리’로 읽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서경대 서길수 교수는 3일부터 이틀간 ‘고구려의 시원과 족원에 관한 제문제’를 주제로 경성대에서 열리는 고구려연구회 춘계학술대회에서 “高句麗를 고구려라고 읽기 시작한 것은 겨우 100년밖에 안 됐다.”며 “高句麗의 표기를 원래의 발음인 고구리로 바꿔야 한다.”는 내용의 논문을 발표한다. 서 교수는 30일 미리 배포한 논문‘高句麗,句麗,高麗 국호의 소릿값에 관한 연구’에서 이같은 주장의 근거로 세가지를 제시했다. ●자치통감 등서 麗를 ‘리´로 읽어 우선 자치통감, 신당서 등 중국 고대사서에서 ‘麗’에 주석을 붙여 바로읽기에 대한 주의를 환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치통감에는 고구려, 구려, 고려에 쓰이는 ‘麗’의 소릿값에 대한 주석이 모두 69개나 등장하고, 신당서에도 7개, 책부원귀에는 1개가 있다. 자치통감 등에는 ‘麗’의 소릿값과 관련, 려(呂)·력(力)·린()자의 첫자음(ㄹ)과 지(支·知·之)자의 끝 모음(ㅣ)으로 발음해야 한다고 주석이 붙어 있다. 즉 고구려, 구려, 고려에 쓰이는 ‘麗’자를 ‘리’로 읽도록 돼 있다는 것이다. ●한·중·일 자전 등서 ‘고구리´ 강조 두번째 근거는 한·중·일 자전과 옥편의 기록이다. 청나라 시대의 ‘강희자전’, 우리나라 옥편의 시조격인 정조때의 ‘전운옥편’, 최남선의 ‘신자전’ 등에 ‘고려’를 ‘고리’로 읽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고, 광복 후 한글학회가 편찬한 ‘큰사전’에는 ‘고구리’라는 단어가 실려 있다는 것이다. 또 일본과 타이완에서 출판된 자전에도 ‘麗’자를 ‘려’와 ‘리’로 읽을 수 있으나 ‘리’로 읽는 사례로 ‘고구려’와 ‘고려’를 들고 있다고 역설했다. 마지막으로 조선후기 김정호의 대동지지 등에도 ‘高句麗’를 ‘고구리’로 읽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여 주를 달고 있는 기록이 있다는 점이다. 신채호, 이병도 등은 ‘高麗’의 소릿값을 ‘카우리’ 등으로 읽었는데 이때도 ‘麗’자는 ‘리’로 읽었다. ●서교수 “교과서 먼저 고쳐야” 서 교수는 “중국에서도 高句麗를 현대 중국어식으로 읽지 않고 고대 사서의 기록대로 읽고 있는데, 우리 역사에 나오는 중요한 나라 이름을 잘못 읽고 있는 것은 매우 부끄러운 일”이라면서 “학계의 깊이 있는 토론을 거쳐 교과서를 고치는 것이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주장했다. 서 교수는 또한 고구려가 고려로 국호를 변경한 시기가 서기 423년쯤이라는 주장도 제기했다. 학계에서는 그동안 고구려의 국호 변경시기와 관련, 서기 398년(양보융)∼581년(이병도) 등으로 다양한 의견이 나와 논란이 그치지 않았다. 서 교수는 장수왕11년(423년)부터는 공식적으로 高麗를 국호로 썼고, 그 뒤 한번도 高句麗가 등장하지 않기 때문에 423년쯤을 고구려의 국호변경 시기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구려가 국호를 바꾼 이유는 수도를 평양으로 옮긴 것(427년)과 무관치 않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 무예는 기본… 남녀귀천 구분않고 가무 즐겨 고구려 무용총의 수렵벽화 등을 통해 어렴풋하게 알려진 고구려의 이미지는 ‘무(武)’를 중시하는 사회라는 것이었다. 고구려는 과연 ‘무예’만 중시한 사회였을까. 동북아역사재단(이사장 김용덕)이 최근 출간한 두권의 책 속에 그 해답이 실려 있다. 고구려 문화사를 다룬 국내 최초의 단행본인 ‘고구려의 문화와 사상’은 고구려인의 문화·사상적 특성을 심도있게 분석하고 있어 주목된다. 동국대 고고미술사학과 강현숙 교수 등 10명의 연구진이 집필한 이 책은 1990년대 이래 고구려 고분벽화, 산성 등 고구려 유적 및 유물에 대한 접근이 부분적으로 이뤄지면서 촉발된 고구려 문화사 연구의 축적물이다. 연구진들은 고구려인의 문화적 특징을 ‘기백’ ‘웅장’ ‘낙천’ 등 세가지로 요약하고 있다. 우선 무예 못잖게 찬란한 문화를 꽃피운 고구려인들은 생활전반에서 활력과 기백이 넘쳤다고 한다. 걷는 것을 뛰는 것처럼 했기 때문에 반드시 허리띠를 매는 등 활동적인 옷차림을 선호했고, 격투기 연마나 사냥을 즐겼다는 것이다. 높이가 6.39m인 광개토대왕릉의 규모는 같은 시대의 비석 가운데 가장 높다. 왕릉급 적석총과 왕궁인 안학궁의 규모 또한 같은 시대 일본, 중국의 왕릉과 궁궐을 능가한다. 이처럼 고구려의 문화는 웅장하다고 연구진들은 주장하고 있다. 낙천적이라는 점도 특징이다. 남녀, 귀천을 구분하지 않고 노래와 춤을 즐겼고, 장례 때도 북을 치고 춤을 추는 등 낙천적인 인생관을 지녔다고 소개하고 있다. ‘고구려의 정치와 사회’에서는 중국과의 교류 속에서도 독자적인 체제를 마련한 고구려의 자주적 면모가 부각돼 있다. 정치의 자주성을 보여주는 사례로는 ▲전통적인 관습법을 시대상황에 맞게 변화시킨 율령의 반포 ▲역사서 ‘유기(留記)’ 100권 편찬 ▲독자적인 연호(‘영락’ 등)의 사용 등이 제시됐다. 박홍환기자 stinger@seoul.co.kr
  • [특파원 칼럼] 아베와 ‘아름다운 나라’/박홍기 도쿄 특파원

    일본은 4월 들어 두차례의 선거를 치렀다. 광역단체장 선거와 2곳의 참의원 보궐선거가 낀 기초단체장 선거다. 선거 때마다 눈에 띄는 문구가 있다면 다름아닌 ‘아름다운 나라, 일본’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해 9월 취임하면서 내놓은 야심찬 정치적 구호다. 이른바 ‘강한 일본’을 추구하는 아베 총리의 정치적 신념이자 철학이기도 하다. 아베 총리는 지난 22일 ‘아름다운 나라 만들기’를 위한 아이디어 공모에 나섰다. 분야에 제한을 두지 않고 의견을 모으는 이벤트이다. 내각에는 이미 ‘아름다운 나라 만들기 기획 회의체’까지 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부 정책마다 ‘아름다운’이라는 수식어가 붙고 있다.‘아름다운 나라’의 합창 소리가 더욱 커지는 실정이다. 아베 총리가 표방하는 ‘아름다운 일본’, 표현상으로는 정말 그럴싸하다. 그러나 막상 속내를 들여다보면 ‘섬뜩함’을 지울 수 없다.2차 대전 패전국이자 가해자로 낙인찍힌 오명의 역사를 스스로 덮고 ‘새로운 일본’을 일궈나가자는 게 목표이다. 간단히 말해 ‘전후 체제’의 청산이다. 아름다운 나라로의 화려한 비상을 위해 들고 나온 핵심 수단이 바로 헌법개정과 교육개혁이다. 아베 총리는 총리가 되기 전 펴낸 자신의 책 제목을 ‘아름다운 나라로’라고 붙일 정도로 일본의 새로운 자화상 그리기를 꿈꿔왔던 터다. 관방장관 때에는 “우리들 자신의 손으로 헌법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의원 시절, 역사교과서를 겨냥,‘자학(自虐)사관’은 일본의 치부만 드러낼 뿐 국가 발전이나 미래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논리를 펴기도 했다. 전후 세대의 첫 총리가 되자 “드디어 전후 세대가 사회의 중심이 됐다. 부모들이 남긴 숙제를 해결해야 한다.”며 ‘아름다운 나라’라는 기치 아래 본격적인 ‘꿈’의 실현에 나섰다. 5월3일 헌법 60주년 기념일에 즈음해 헌법 개정의 정당성과 함께 의지도 분명하게 피력했다.“현행 헌법을 기초한 것은 헌법을 잘 모르는 연합군사령부 사람들이었다. 성립과정을 따지지 않을 수 없다.(자위권 금지는) 시대에 맞지 않는다.”는 게 아베 총리의 헌법 개정의 논거다. 현행 평화헌법에서 금지한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겠다는 ‘포부’이다. 자칫 ‘군국주의의 회귀’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교육 개혁에 대한 아베 총리의 결의 또한 대단하다. 최근 “아름다운 나라 만들기의 기본은 교육이다.”라며 교육 개혁을 독려하고 있다.60년만에 처음으로 교육기본법도 손질, 완성 단계로 치닫고 있다. 개혁의 지향점은 국가주의 함양이다. 교육에 대한 국가의 관여 강화와 함께 애국심 고취에 역점을 두고 있는 까닭에서다. 아베 총리의 말마따나 뜻있는 국민을 길러 품격있는 국가를 만드는 ‘대업’인 것이다. 아베 총리의 아름다운 나라는 분명 추상적인 데다 정치적 색깔이 강하다. 마치 황국이니 신민이니 하던 과거 군국주의, 쇼와(昭和)시대의 초기를 연상케 하고 있다. 게다가 수순이 바뀌었다. 틀렸다. 과거 역사와의 단절이 아닌 정리에서부터 시작했어야 옳았다. 군국주의 시대의 과오에 대한 철저한 반성을 바탕에 깔아야 한다는 얘기다. 자학사관을 탓할 게 아니라 올바른 역사 인식 아래 새로운 일본을 그리는 것이 마땅하다. 아베 총리는 ‘아름다운 나라, 일본’을 편협한 민족주의로 귀착시켜서는 안 된다. 시대의 흐름을 정확히 읽어야 한다. 일본 안팎에서 제기되는 “자기 중심적, 자기 도취적이 아닌 ‘평화로운 나라 만들기’에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경고도 충분히 새겨들어야 한다. 단지 색깔만 덧칠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그러지 않으면 한·일 관계뿐만 아니라 동맹국들과도 냉전의 틀에 갇힐 수밖에 없다. 분명컨대 ‘반복해서는 안 되는 역사가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hkpark@seoul.co.kr
  • [지방시대] 돈많은 정부와 불편한 시민/임정덕 부산대 경제학 교수

    그동안의 경제성장을 반영하듯 공기업을 포함한 정부의 씀씀이가 엄청나게 커졌다. 물론 지방정부도 예외가 아니다. 예나 지금이나 예산을 따는 일이 쉽지 않지만 그 내용은 과거와 천양지차이다. 옛날에는 예산 자체가 비정상적으로 편성되어서 민간 부문에 손을 벌리게 되고 나아가 유착이나 부정부패로 발전하는 사례가 빈번하게 일어났다. 아직도 그런 사례가 더러 발생하지만 요즘 들어서는 공공적 감시가 강화돼 많이 줄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우리나라에서 정부 및 공공기업들만큼 예산을 풍족하게 쓸 수 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다. 정부가 투자하는 사업규모가 ‘조’단위를 넘는 것이 부지기수이고 이에 따른 부작용도 적지 않다. 특히 지방정부가 벌이는 각종 사업은 시민 생활과 관련된 것이 많은 편이어서 자연스레 눈에 더 띄게 된다. 우리는 일선 구·군에서 그해 배정된 예산을 소진하려고 연말을 전후해 멀쩡한 보도블록을 갈아 치우는 등 불필요한 곳에 예산을 낭비하는 사례를 쉽게 찾아 볼수 있다. 이는 지방자치단체들이 편성된 예산을 그해 집행하지 않으면 반납해야 할 뿐 아니라 다음해에는 예산 지원을 받지 못하는 불이익을 당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각 지자체들은 어렵게 따낸 예산을 반납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시급을 요하지 않는 사업인 보도블록 교체 등에 예산을 사용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다시 말해 예산이 편성돼 있으니까 써야 하고, 그러다 보니 시민 생활에 불편을 끼치더라도 상관하지 않기 때문에 집행을 하게 되는 것이다. 또 돈을 쓰면 좋으니까 큰돈이 들어가는 공공시설도 미리 짓는 등 일단 쓰고 보자는 식이다. 미리 해두면 나중에 문제가 생겼을 때 책임을 면하는 효과가 있고 예산을 많이 쓸수록 공무원의 업적도 올라가니까 쓰지 않을 도리도 없을 것이다. 부산 금정구 청룡동 범어사에서 부산대앞을 거쳐 미남로터리를 우회하는 ‘산복도로’가 그 대표적 사례중 하나이다. 신설도로인 이 도로는 아직 부산대학을 통과하는 구간의 공사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 얼마전만 하더라도 이곳에는 신호등이 설치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도로 양 옆으로 인도와 가로수가 있어 운치를 더해 주는 한적한 도로였다. 그런데도 지역이 점차 개발되고 주민과 통행량이 늘어나자 수년전부터 관청에서 곳곳에 신호등을 설치해 버린 것이다. 신호등은 교통 안전과 질서를 위해 꼭 필요한 장치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앞당겨 설치해 놓으면 시민 생활에 불필요한 규제를 주게 된다. 많은 운전자들에게 범법의 유혹을 조장하고 법을 지키려는 운전자들에게 심리적 압박을 가하는 도시의 괴물로 변한다. 범어사 출구 쪽에서 남산고등학교에 이르는 1.2㎞ 정도의 도로에는 신호등이 4개나 설치돼 있다. 이 도로는 인근 금샘초등학교 학생들의 등·하교 시간을 제외하면 보행자가 거의 없다. 그럼에도 차량들은 보행자가 한 사람도 없는 건널목에서 장시간 신호를 기다려야 하는 실정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성급한 일부 운전자는 아예 신호를 무시하고 운행을 하는 등 법규를 위반하고 있는 실정이며, 가끔 경찰이 숨어서 신호위반 차량을 적발하는 함정단속을 하는 좋은 길목의 구실만 한다. 규제는 어쩔 수 없이 필요한 때가 있지만 자율적인 능력이 한계에 이를 때 해야 효과가 있는 것이다. 시민의 혈세를 집행하는 관은 가로등 하나, 보도블록 한장을 설치하는 데에도 신중을 기해 예산이 낭비 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시민들에게 오히려 불편과 법규 위반을 조장하는 구태는 사라져야 할 것이다. 지금은 하드웨어뿐만 아니라 소프트웨어가 더 중요한 지식 경제시대이다. 정부에 돈이 너무 많아서 시민들이 불편하고 괴로움을 받아서는 안 된다. 임정덕 부산대 경제학 교수
  • AFP “대구·인천 유치가 평창엔 치명타”

    ‘우려가 현실로?’ 강원 평창의 2014년 겨울올림픽 유치에 대구와 인천의 잇단 국제대회 유치 성공이 ‘치명타’가 되고 있다고 AFP통신이 두 명의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 발언을 인용,22일 보도했다. 그러나 평창 유치위원회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는 ‘스포츠 어코드’ 개막을 하루 앞두고 프랑스 국적의 통신이 이같은 보도를 한 것은 일종의 ‘음해 캠페인’이 시작됐음을 의미하기도 한다고 우려했다. 익명을 요구한 아시아지역의 한 IOC 위원은 “인천이 여름 아시안게임을 유치함으로써 평창의 유치 노력은 끝장났다(killed).”고 단언했다. 그는 “아시아지역 IOC 위원들은 한국에 아시안게임과 올림픽 모두를 내줄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밝혔다.112명의 IOC 위원 중 아시아 위원은 20명이다. 역시 익명을 요구한 유럽의 한 위원도 “한국이 ‘해트트릭’을 해서는 안 된다. 이미 세계육상선수권(대구)과 아시안게임(인천)을 유치했기 때문에 겨울올림픽 유치에는 나쁜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정작 평창의 라이벌인 러시아 소치와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는 언급을 자제했다. 드미트리 체르니셴코 소치 유치위원장은 AFP와의 인터뷰에서 “떠도는 소문에 대해 말하기는 곤란하다. 평창은 현재까지 유치활동을 잘하고 있고 우리도 남은 3개월 최선을 다할 뿐이다. 선택은 IOC 위원들의 몫”이라고 말했다. 잘츠부르크쪽은 공식 코멘트를 사양했다. IOC 한 관계자도 “아시아지역 위원들이 그런 생각을 한다 해도 아시안게임 유치와 연결짓는 것을 마뜩찮게 여기는 위원들이 적지 않다.”며 한국의 잇단 쾌거는 각국의 대사관과 다국적기업들을 활용하는, 예술의 경지(a fine art)에 오른 유치 전략 덕이라고 설명했다고 통신은 전했다.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관련기사 30면
  •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 철학박사 가수 1호 하춘화Ⅰ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 철학박사 가수 1호 하춘화Ⅰ

    봄날 피어난 꽃, 하춘화. 우리나라 신민요와 대중가요의 장르를 넘나들며 모두 소화가 가능했던 실력파 가수인 이화자-황금심-박재란의 계보를 잇고 있는 인물. 현재 52세, 가수 활동은 어느덧 46년째. 그럼에도 데뷔 당시 상황들을 소상히 기억하고 있다. 부친 하종오(87)씨가 지난 46년간 관련자료를 빠짐없이 모아두었던 덕택이다. 일기쓰기는 물론, 스크랩 자료만도 자그마치 22권 분량이다. 이 기록은 개인사를 뛰어넘어 어느덧 우리 가요사의 소중한 자료이기도 하다. 하춘화씨와 부친을 한자리에서 만났다. 이들이 인터뷰 자리에 함께 한 것은 처음이라고.1961년 12월3일에 첫 취입한 데뷔앨범은 당시 최연소 독집음반으로 화제를 모았다.1963년 4월1일, 한국연예협회 가수분과 최연소 정회원이 된다. “제가 하춘화예요. 금년에 일곱살입니다.”라는 인사말로 시작되는 그의 첫 데뷔음반.“노래란 것은 우리 생활에 있어서 슬플 때나 즐거울 때나 꼭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나이 어린 제가 여러분의 생활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노래를 부를 수 있을까, 퍽 걱정이 됩니다. 아무튼 한번 불러 보겠어요.” 라는 앙증스러운 멘트가 이어진다. 이 독집음반엔 ‘효녀 심청 되오리다’를 비롯해 여덟 곡의 노래가 수록됐다. 모두 오종하 작사, 형석기 작곡의 노래다. 작곡가 형석기씨는 ‘대한팔경’ ‘맹꽁이 타령’의 유명 작곡가. 작사자 오종하는 바로 부친 하종오씨로 이른바 ‘로꾸거 이름표기’인 셈. “그 노래들의 작사자 표기가 제 이름을 거꾸로 표기했다는 것은 지금까지 생각지 못했던 부분입니다. 다만 당시 춘화가 너무 어렸기 때문에 사랑타령 같은 걸 부르게 할 수 없어 직접 가사를 손질했다는 기억만이 어렴풋할 뿐…. 아마도 작곡가 형석기씨의 제안이었을 것 같군요.” 부친의 회고다. 이 음반에 담긴 노래는 그밖에도 ‘비개인 서울거리’ ‘부산항 블루스’ ‘대구역 떠나는 완행열차’ ‘목포항 탱고’ 등으로 어린 춘화양은 노래로 전국 팔도를 순회한다. 마치 이후 전국을 누비며 ‘리사이틀의 여왕’으로 군림, 개인 최다 공연기록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될 것임을 예고하듯. 실제로 1991년 기네스북에 등재될 당시 공연기록은 1260회. 현재도 1년에 30∼40차례 콘서트와 디너쇼를 갖는다. “당시엔 악보는 물론 글씨조차 읽지 못하던 시절이었지요. 모두 외워서 했어요.”라고 말하는 하종오씨. 편집 없이 한번에 녹음해야 했던 시절임을 감안하면 ‘신동’이었음에 틀림없다. ‘하춘화’라는 이름이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노래는 1965년에 발표한 ‘아빠는 마도로스’. 불과 열살 때였다. 아울러 이 무렵 개봉된 영화 ‘아빠 돌아와요(임원직 감독)’에서 주연을 맡았고 주제가까지 취입했다. 서울수송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1971년 ‘물새 한 마리’, 이어 작곡가 겸 가수 고봉산씨와 함께 ‘영감타령’을 새롭게 편곡해 발표한 ‘잘했군 잘했어’로 대중 앞에 본격적으로 나타났다. 그녀 나이 불과 열여섯살, 일신여상 2학년 때였다. 이때 하춘화는 정상의 가수로 급부상했기 때문에 당시 엄격히 적용되던 ‘귀밑머리 1㎝’라는 교내 규정에서도 열외 되었을 정도로 특혜를 받았다. 대중음악평론가 sachilo@empal.com
  • [알쏭달쏭 건강보험 풀이] 4월 직장인 건보료에 전년 소득변동분 반영

    Q)직장 가입자인데 4월 국민건강 보험료에 전년도 정산분이 반영된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게 무엇인지. A)직장 가입자의 건강보험료는 그 해의 소득을 기준으로 부과하는 게 원칙이다. 그러나 연도 중에 임금 변동, 호봉 승급 등 소득이 달라질 수 있으므로 그 해의 소득이 연중에 확정되기 어렵다. 따라서 우선 전년도 소득으로 건강보험료를 부과하고 다음해 2월에 확정된 소득을 직장으로부터 신고받아 건강보험료를 다시 산정하게 된다. 이 경우 전년도에 이미 납부한 보험료와 차액이 발생하게 되는데, 바로 이 부분을 4월 보험료 납부시 정산분을 추가로 내거나 돌려받게 되는 것이다. Q)사용자(사업주)인데 직원의 월 보수액이 변경되었을 경우 신고하면 국민건강 보험료에 바로 반영이 되는지. A)직장보험료는 ‘표준보수 월액’ 기준에 따라 보험료가 산정되므로 사용자가 변경 신고하면 즉시 반영된다. 추가 보험료가 사용자에게 부담이 될 경우, 공단에서는 추가 보험료가 해당 사업장의 월 보험료의 30%를 초과하는 경우 10회 이내로 분할 납부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 네거티브 폭로전 ‘꼼짝마’

    한나라당은 당의 유력한 후보를 네거티브 공세로부터 보호할 수 있도록 하는 법률안 개정도 추진 중이다. 이미 ‘공정한 대선관리를 위한 정치관계법 정비 특별위원회(위원장 안상수)’를 구성했으며, 효율적 안건 심의를 위해 특위 안에 여러 개의 소위원회를 뒀다. 이 가운데 김정훈 의원이 ‘공작정치 방지 소위’ 팀장을 맡고 있다. 김 의원은 “대통령선거사범 관할 특별수사본부 설치를 골자로 하는 정치관계법 개정안을 만들었다.”면서 “좀더 세부적인 논의를 거쳐 곧 발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나라당이 이처럼 ‘대통령선거사범 특별수사본부’ 구성에 열을 올리는 것은 2002년 대선에서 정권교체가 유력했던 이회창 후보가 패한 가장 큰 이유가 ‘병풍(兵風)’‘세풍(稅風)’ 등 음해성 정치공작 때문이라는 판단에서 비롯됐다. 새 법안에 따르면 특별수사본부는 대검찰청에 설치되며, 대통령선거사범 관련 수사와 공소제기를 전담하게 된다.특별수사본부장은 법무장관의 제청으로 국회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하며, 검찰총장의 지휘·감독을 받지 않고 독립적으로 수사와 기소업무를 수행할 수 있게 된다. 이 개정안에는 또 선거일 180일 전부터 선거일까지 허위사실이 공표됐다고 판단하는 정당과 후보자가 이를 소명할 수 있는 자료를 중앙선거관리위에 제출해 허위사실 공표 금지를 청구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청구가 접수되면 중앙선관위는 24시간 이내로 허위사실을 유포한 자로부터 증명자료를 제출받는다. 만약 증명자료가 제출되지 않으면 중앙선관위는 즉각 보도금지 조치를 취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개정안에는 허위사실 유포로 인한 당선무효 조항까지 포함돼 있다. 허위사실을 유포한 사람이 징역형을 선고받고 그 허위사실이 선거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면 당선을 무효로 하고 재선거를 실시한다는 내용이다.김지훈기자 kjh@seoul.co.kr
  • [종교건축 이야기] (26) 화성 용주사

    [종교건축 이야기] (26) 화성 용주사

    경기도 화성시 화산 아래 야트막한 언덕에 자리잡은 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龍珠寺·화성시 태안읍 송산리 188). 조선 제22대 임금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을 양주 배봉산(지금의 서울 전농동)에서 화성(현륭원·지금의 융릉)으로 옮겨 모신 뒤 아버지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던 능침사찰(陵寺)이다. 사도세자와 사도세자비 혜경궁홍씨의 합장묘인 융릉(용주사에서 동북쪽으로 10여분 거리)을 수호하기 위해 지어 ‘효(孝)의 본찰’로 널리 알려진 도량이다. 능사의 사격 그대로, 다른 전통사찰과는 달리 산이 아닌 평지에 들어서 사찰보다는 오히려 궁궐과 사대부 가옥의 특징들을 더 많이 갖춘 독특한 가람이다. 능사란 왕이나 왕비의 능 근처에서 능침을 수호하고 명복을 비는 재(齋)를 지내기 위해 세운 사찰이다. 조선시대를 통틀어 모두 11곳이 세워졌다. 지금 남아 있는 것으론 용주사를 비롯해 세조의 광릉을 위한 봉선사, 세종의 영릉 수호사찰 신륵사, 중종의 정릉 능사 봉은사가 대표적이다. 이들 능사 가운데 용주사는 당파싸움의 와중에 억울하게 뒤주에서 목숨을 잃은 아버지 사도세자를 향한 정조의 절절한 효심이 그득한 ‘효 사찰’이란 차별성을 갖는다. 정조는 아버지의 묘를 화성으로 옮겨 조성한 뒤 능사를 짓기 위해 큰 공을 들였다고 한다. 각처에서 길지를 모색하던 중 신하들로부터 ‘천하제일의 복지’로 추천받아 낙점한 곳이 바로 옛 갈양사 터이다. 신라시대부터 사찰의 이름이 등장하는 갈양사는 한국불교 선종(禪宗)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구산선문의 하나인 가지산문(迦智山門)의 제2조 염거 스님이 창건하고 주석했던 선찰이다. 지금도 그 선풍을 이은 선원 서림당과 중앙선원엔 안거(安居)를 가리지 않고 참선수행하는 선승들의 정진이 이어진다. 신라기부터 고려기까지 왕실 원찰로 받들어졌으며, 물과 육지에서 헤매는 영혼과 아귀를 위로하기 위해 불법을 강설하는 ‘수륙재’가 처음 열린 곳이기도 하다. 갈양사는 이처럼 명성이 높았지만 어떻게 소실됐는지 알 수 없고, 다만 잦은 전란으로 사라져간 것으로 학계는 추정하고 있다. 용주사 대웅전 닫집에서 발견된 원문(願文)에 따르면, 정조는 사도세자의 묘를 화성으로 옮겨 봉안한 다음해인 1790년 2월 공사를 시작해 불과 7개월 만에 사찰 짓기를 모두 마무리했다.140여칸이나 되는 사찰 규모를 볼 때 정조가 용주사에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절을 지을 때 큰 시주를 한 관료의 명부인 ‘대시주진신안(大施主縉紳案)’에는 경기감사를 비롯한 각 도의 감사 9명, 군수·현감·부사·만호·첨사 같은 지방관료 87명 등 모두 96명의 관직명과 이름이 들어 있다. 중앙의 고위관리들도 당연히 시주했을 것이며 ‘용주사건축시각도화주승’에서 확인되었듯이, 용주사 창건을 위해 각 지방의 승려들이 책임을 맡고 나섰음을 볼 때 이 불사는 승속을 초월해 대규모로 진행된 유례없는 것이었다. 절 이름 ‘용주(龍珠)’는 ‘용이 여의주를 희롱하는 형국’이라는 지형에서 비롯됐지만, 절을 다 지은 뒤 낙성식이 있던 전날 정조가 여의주를 물고 승천하는 용 꿈을 꾼 뒤 붙여졌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가람의 큰 골격은 비교적 옛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조계종 총무원장을 지낸 고(故) 정대 스님이 주지 시절 새로 지은 불음각이며 중앙선원, 호성각, 천불전을 빼곤 창건 당시와 크게 다르지 않다. ‘경기제일가람 용주사’라고 쓴 일주문을 들어서 좌우에 ‘상구보리(上求菩提)’ ‘하화중생(下化衆生)’ 같은 불교 경전 속 경구들을 새긴 표석들을 바라보며 천왕문을 넘으면 좌우 양쪽에 행랑을 거느린 맞배지붕 양식의 삼문이 눈에 들어온다. 삼문이란 동서 옆문과 중앙 대문에 각각 문이 나 있어 부르는 이름. 전통사찰에선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공간인데 사도세자의 재궁(齋宮)으로 지어졌음을 보여준다. “용이 꽃구름 속에 서리었다가 여의주를 얻어 조화를 부리더니 절문에 이르러 선을 본받아 부처님 아래에서 중생을 제도한다.” 삼문 네 기둥에 ‘龍珠寺佛’의 네자를 각각 첫 글자로 딴 시구를 적은 주련이 인상적이다. 낙성식 전날 밤 정조가 꾼 꿈에서 비롯됐다는 사찰 이름과도 통하는 부분이다. 삼문과 주 전각인 대웅보전 중간에 서 있는 정면 5칸, 측면 2칸의 2층 누각 천보루(天保樓)도 왕실이 직접 지었음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일주문 쪽에서 보면 천보루요, 대웅전 쪽에서 보면 홍제루(弘濟樓)라고 쓰인 현판이 사찰 양식이 아닌, 꼭 궁궐 풍이다. “밖으로는 하늘이 보호하고 안으로는 널리 백성을 제도한다.” 여섯 개의 목조기둥을 떠받치는 거대한 장초석도 주로 궁궐 건축에 쓰이는 것들이다. 누각 좌우로 7칸씩의 회랑이 맞닿아 있고 동쪽에 나유타료, 서쪽에 만수리실이 회랑과 연결돼 있다. 나유타료와 만수리실은 모두 바깥 마당으로 출입문이 나 있고 툇마루가 달려 있어 절집보다는 오히려 대갓집을 연상케 한다. 창건 당시 각각 선원과 강원으로 쓰였는데 지금은 회의 때 사용하는 큰방과 스님들의 요사채로 바뀌었다. 왕실의 위엄을 세우기 위해 이 천보루와 나유타료, 만수리실을 대웅전과 연결해 ‘ㅁ’자형으로 도드라지게 꾸며 그 정점에 대웅보전을 놓았다. 대웅보전은 창건 때 세워진 주 전각으로 조선후기 사찰양식을 그대로 따라 정면 3칸, 측면 3칸에 팔작지붕을 얹었다. 대웅전에 들어서면 화려한 닫집이 눈에 들어오는데 마치 석가모니 부처님과 약사여래불, 아미타불의 삼존불과 후불탱화를 옹휘하는 듯하다. 삼존상 뒤 후불탱화의 아랫부분 중앙에 ‘주상전하 수만세(壽萬歲) 자궁저하 수만세 왕비전하 수만세 세자저하 수만세’라 쓴 축원문이 들어 있다. 부처님의 가피가 왕실에 미치기를 기원한 탱화인 것이다. 당대의 불화에선 전혀 보이지 않는 서양화법의 원근법·명암법을 쓴 게 특이하다. 오래 전부터 김홍도의 작품으로 알려져 왔으나 대웅보전 닫집에서 발견된 원문(願文)의 “민관 상겸 성윤 등 25인이 탱화를 그렸다.”는 기록을 앞세운 학자들이 김홍도가 아닌 다른 화승들의 작품임을 주장해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대웅전 앞의 회양목(천연기념물 제264호)은 정조가 직접 심은 나무다. 아버지 사도세자가 죽은 뒤 갖은 위협과 고난을 참고 견뎌냈던 지난날을 돌이키며 번뇌를 떨어내려 심었을까. 오래도록 사철 푸른 잎을 피웠지만 지금은 병이 들어 앙상하게 마른 모습이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한다. 정조는 용주사를 세운 뒤 융릉과 용주사를 틈나는 대로 들렀다고 한다. 아버지의 능을 참배한 뒤 귀경하다가 자꾸 뒤를 돌아보며 아쉬워해 일행이 걸음을 늦추곤 했는데, 바로 그곳이 서울로 향하는 1번 국도변의 ‘지지대 고개’이다. 정조의 효심이 담긴 때문인지 대웅전 앞의 회양목은 마른 가지에서도 힘겹게 꽃을 피워내고 있다. “나를 잉태하고, 쓴 것은 뱉고 단 것은 먹여 주시며, 나를 키워주고, 먼길 떠나는 자식을 걱정하신 부모님의 은혜는 부모님을 양어깨에 모시고 수미산을 수억만년 돌아다녀도 결코 다하지 못한다.” 마치 바로 옆 ‘부모은중경탑’의 경문에 화답하듯이…. kimus@seoul.co.kr ■ 용주사와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 정조는 즉위 초기에 조선시대 역대 왕들과 마찬가지로 억불정책을 폈던 것으로 전한다. 즉위하자마자 조선 초기부터 궁실에서 빈번하게 지어왔던 원당(願堂) 사찰 건립을 금지시켰고, 걸미승(乞米僧)들의 성내 출입을 엄금하는 조치를 취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런 정조가 어떻게 전 국민이 동참하는 불사인 ‘용주사 건립’의 뜻을 세웠을까. 다름 아닌 불경 ‘부모은중경(佛說大報父母恩重經)’ 때문이다.‘조선불교통사’에 따르면 정조는 전남 장흥 보림사의 보경 스님이 바친 ‘부모은중경’을 읽고 마음에 느끼는 바가 커 용주사를 창건토록 지시했다. ‘부모은중경’은 부모의 크고 깊은 10가지 은혜에 보답하도록 가르친 경전이다. 아버지 사도세자에 대한 효심이 컸던 정조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정조는 실제로 ‘부모은중경’에서 비롯된 용주사 창건을 전후해 불교에 대한 생각을 크게 바꾸었다. 해남 대흥사에 세워진 휴정 스님 사당의 편액 ‘표충’을 직접 썼으며, 안변 석왕사의 고사(古事) 내용을 담은 비문을 손수 지어 세웠다. 표훈사의 사찰 중수를 도왔는가 하면, 무학대사에게 ‘개종입교보조법안광제공덕익명흥운대법사’라는 법호를 내리는 등 고승들의 추존에도 열성을 보인 것으로 전해진다. 정조가 ‘부모은중경’을 얼마나 각별하게 생각했는지는 용주사의 숱한 유물들에서 그대로 읽힌다. 용주사 건물들에 걸린 많은 주련들은 정조가 당대의 명 문장가였던 이덕무에게 명해 쓰도록 한 것이다. ‘부처님과 용주사의 복을 빈다’는 내용의 게송 ‘어제화산용주사봉불기복게’는 직접 지은 것이며,‘부모은중경’의 내용을 한문·언문·그림으로 새긴 73매의 ‘부모은중경판’중 목판 42매(변상도·김홍도 그림)도 정조가 하사한 것이다.
  • 가스公, LNG값 인하 ‘모른척’

    한국가스공사가 천연가스(LNG)의 비탄력적인 도매가격 산정에 따라 전년도 초과 이득이 774억원이나 났는데도 다음해 가격을 내리지 않고 엉터리로 산정한 것으로 나타났다. 감사원은 지난해 9월 한국가스공사의 LNG 도입·공급 및 경영관리업무 전반을 감사한 결과 이같이 드러났다고 12일 밝혔다. 감사원에 따르면 가스공사는 원료비 단가의 경우 매월 산정, 조정하고 있어 수입 원가가 오르면 바로 반영된다. 반면 도매가격인 공급비용 단가는 예측치를 기초로 연 1회 산정해 수입 원가의 시세가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 특히 가스공사는 관련 규정에 따라 판매물량 증가로 추가 이익이 발생할 경우 다음 연도의 공급 비용에 이를 반영, 단가를 인하해야 하는데도 2006년 LNG 도매요금 산정 시 지난 2005년 발생한 추가 이익을 반영하지 않았다. 즉 2005년 판매량은 2275만 8000여t으로 예측 물량 2155만 1000여t보다 120만 7000t이 증가해 718억원의 추가 이익이 발생했는데 이를 다음해 도매가격에 반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가스공사는 또 지난 2005년 LNG 도매요금 산정시에는 지난 2004년 법인세 절감분 56억원도 반영하지 않았다. 이와 관련, 감사원은 발생한 추가 이익과 법인세의 절감액 774억원을 도매 가격에 반영해 단가를 인하하는 방안을 마련하라고 가스공사에 통보했다. 아울러 “LNG 도매요금을 실제보다 높게 산정하지 않도록 업무를 철저히 하라.”는 주의 조치도 내렸다. 가스공사의 LNG 도매요금 산정을 승인하는 권한을 갖고 있는 산업자원부 장관에 대해서는 “과다 산정된 LNG 도매요금을 그대로 승인하는 일이 없도록 업무를 철저히 하라.”고 주의 조치했다. 감사원은 또 가스공사가 지난 2005년 포괄적인 수의계약 집행기준을 만든 뒤 경쟁 입찰로 시행돼야 할 일반 공사를 대부분 수의계약을 통해 자회사에 맡긴 것으로 나타나 공정거래위원회에 조사를 의뢰했다고 밝혔다. 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