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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제 브리핑] 한은 경제전망 발표 4차례로 확대

    한국은행은 해마다 3차례 발표하는 경제전망을 올해부터는 4차례로 늘린다고 20일 밝혔다. 이에 따라 한국은행 경제전망 발표는 기존 4·7·12월에 10월이 추가됐다. 한은은 “경제 여건과 전망에 대한 정보를 충실히 제공하고 정책 결정과 전망 간 설명의 연계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상당수 기업이 매년 10월쯤 다음해 사업계획을 세우는 점도 감안했다.
  • 서남표 총장 “자진사퇴는 없다”

    서남표 총장 “자진사퇴는 없다”

    서남표 한국과학기술원(KAIST) 총장이 자신에 대한 이사회의 계약해지가 임박한 가운데 16일 입장을 밝힌다. 서 총장은 이날 오전 9시 30분 서울 종로구 서머셋팰리스호텔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거래나 협상 없이 해임당하겠다. 단 잔여임기 연봉을 주지 않을 경우 명예회복 차원에서 민사소송을 불사하겠다.”고 밝힐 예정이다. 최근 카이스트 이사회는 오는 20일 있을 이사회에 서 총장에 대한 계약해지 안건을 상정했다. 오명 이사장은 “과학계와 교수사회에서 서 총장에 대한 반대 여론이 높은 상황에서 더 이상 가만있으면 안 되겠다고 판단했다. 이제는 서 총장 거취를 공론화할 때가 됐다.”고 밝혔다. 오 이사장은 서 총장이 사진 사퇴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서 총장은 지난 14일 각 언론사에 편지를 보내 “해임당하더라도 내 길을 가겠다.”며 자진 사퇴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그는 편지에서 “나를 ‘대학 개혁의 아이콘’으로 부르는 이도 있지만 ‘카이스트를 나락에 빠뜨린 장본인’으로 부르는 이도 있다.”면서 “이제 77세인데 무슨 영광을 보려고 자리에 연연하겠느냐. 근거 없는 음해와 비난을 당하면서도 대학개혁이란 시대가치를 위해 이 자리를 지켜 왔다.”고 심경을 토로했다. 서 총장과 이사회가 자진 사퇴를 놓고 승강이를 벌이는 것은 계약해지를 둘러싼 명분 싸움으로 보인다. 총장위임 계약서에 ‘합리적인 이유가 없을 경우 계약해지 통보자는 상대방에 대해 그 손해에 상응하는 금액을 배상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어 이사회가 2014년 7월 13일까지인 서 총장의 잔여임기 연봉 72만 달러(약 8억원)를 지급할 경우 뚜렷한 이유 없이 계약해지했다는 비난을 살 수 있다. 또 거액의 국고를 낭비했다는 비난도 피할 수 없다. 학교 관계자는 “이사회가 해지 명분으로 내세우는 ‘소통 불통과 리더십 부재’는 주관적인 이유일 뿐이다. 해임이 아니라 계약해지라는 편법을 쓰는 것도 합리적 이유가 없다는 뜻 아니냐.”며 “서 총장이 잔여 연봉을 받겠다는 것은 돈보다는 불합리한 해임임을 입증하기 위해서고, 민사소송까지 생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카이스트 이사회는 전체 16명 중 서 총장 우호 이사가 3~4명에 그쳐 계약해지가 확실시되고 있다. 임기 4년으로 2006년 7월 취임해 연임까지 성공한 서 총장은 전과목 영어수업, 차등등록금제 등으로 ‘대학 개혁의 전도사’로 불렸지만 지난해 봄 학생 4명과 교수 1명의 자살로 사퇴 압박에 몰렸고, 결국 중도하차할 전망이다. 대전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김용 세계銀 총재 10월 한국 온다

    김용 세계銀 총재 10월 한국 온다

    아시아계 최초로 세계은행(WB) 수장 자리에 오른 김용(53) 총재가 오는 10월 한국을 공식 방문한다. 김 총재는 13일 오전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과의 전화통화에서 오는 10월 12~13일 일본 도쿄에서 열리는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 연차총회 참석에 즈음해 한국을 방문할 예정이라고 밝혔다고 재정부가 전했다. ●박재완 장관과 15분간 통화 재정부는 김 총재 방한 때 세계은행과의 협력방안을 논의할 계획이다. 김 총재는 후진국 개발 사업에 대한 한국정부의 참여 확대 등을 요청할 것으로 보인다. 이날 통화는 김 총재 측의 요청으로 약 15분간 이뤄졌다. 박 장관과 김 총재는 어려운 세계경제 환경에서도 빈곤국 경제개발에 대한 지원이 계속될 수 있도록 한국정부와 세계은행이 긴밀히 협력할 것을 약속했다. ●양측 빈곤국 지원 협력 약속 박 장관은 또 한국 정부와 세계은행이 추진하는 녹색성장기금과 서울금융자문센터 사업 등에 대한 김 총재의 관심을 당부하고, 경제개발경험공유사업(KSP) 등의 분야에서 세계은행과의 협력이 강화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김 총재는 세계은행 총재로 선출되기 전인 지난 4월 방한해 박 장관을 만났고, 총재 선출 직후에도 박 장관과 통화했다. 김 총재는 지난 1일 공식 취임했으며, 임기는 5년이다. 임주형기자 hermes@seoul.co.kr
  • ‘허위진술’ 진실게임

    ‘허위진술’ 진실게임

    검찰 조사에서 지인이 허위 진술을 강요받았다는 이해찬 민주통합당 대표의 주장과 관련, 이 대표의 ‘지인’으로 추정되는 박형선(59) 해동건설 회장을 변호했던 구본민·오해균 변호사가 “부산저축은행과 관련해 당시 수사 내용을 알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고 12일 밝혔다. 검찰은 이날 이 대표의 사과를 요구하는 공식 입장을 재차 확인했다. 이 대표는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았다. ●“조사 대부분 검사·박회장 간 이뤄져” 구 변호사는 “조사 과정을 전부 지켜본 것도 아니고 실제 조사에 참관한 적도 거의 없다.”면서 “조사 대부분이 검사와 박 회장 간에 이뤄졌다.”고 말했다. 또 “검찰이 다른 사람에게 로비를 했는지 물어본 것 같기는 하지만 오래전 일이라 기억이 확실하지 않다.”고도 했다. 오 변호사도 “검찰 조사 과정에 입회한 사실 자체가 없고 이 대표에 대해 들은 얘기가 없다.”고 했다. 그는 “이 대표에 대해서도 전직 총리라는 점만 알 뿐이지, 개인적으로 알지는 못한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와 검찰 간 진실 공방과 관련해 두 변호사 모두 사건 당사자가 아니라는 입장을 내놓은 것이다. ●‘檢에 사과요구’ 이대표 대응 주목 검찰은 전날 “검찰이 저축은행 비리 등 부정부패 수사에 매진하고 있는데 근거 없이 음해하는 것은 국가와 국민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며 이 대표에게 “실체와 근거를 밝히라.”고 공식 요구했다. 검찰 관계자는 “이 대표 측은 지인이 누구인지, 변호사가 누구인지 밝히지 않고 있다.”면서 “상황이 바뀐 것이 없고 입장도 전날과 달라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대표의 지인으로 추정되는 박 회장은 지난해 부산저축은행 관련 로비 혐의로 기소돼 징역 6년을 선고받고 현재 수감 중이다.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옥고를 치렀고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에도 참여한 인연 등으로 이 대표를 비롯한 참여정부 인사들과 막역한 관계인 것으로 알려졌다. 안석·이민영기자 ccto@seoul.co.kr
  • ‘강남 룸살롱 상납’ 경찰 1명 수사

    서울경찰청 수사과가 강남의 텐프로업소인 T룸살롱 대표로부터 금품을 받은 서울 시내 모경찰서 경찰관을 수사 중인 것으로 10일 확인됐다. 경찰에 따르면 C경사는 지난해까지 강력2팀에 근무하면서 업소 측에 단속 정보를 흘려주거나 편의를 봐 준 대가로 금품을 받았다. 업소 대표는 영업전무를 통해 C경사에게 400만원을 3~4개 봉투에 나눠 담아 전달했다. 경찰 관계자는 “같은 팀원이나 다른 팀 경찰관들이 400만원을 나눠 가진 것으로 보고 수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C경위는 경찰 조사에서 “돈 봉투가 아니라 서류가 든 봉투를 받았다.”며 혐의를 강하게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C경사는 수사가 진행되자 휴대전화 등 업소와의 관계가 드러날 만한 증거물들을 모두 폐기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 관계자는 “C경사는 형사 경력이 10년을 넘었다.”면서 “수사가 어떻게 진행될지 알고 미리 증거를 인멸했다.”고 설명했다. 한편 경찰의 유흥업소 유착 비리 수사를 총괄하고 있는 윤갑근 서울중앙지검 3차장검사는 이날 검찰에 대한 수사는 하지 않는다는 경찰 쪽의 표적 수사 주장에 대해 “그렇게 불안하면 경찰이 합동수사에 참여하라.”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또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들은 수사팀을 음해하는 것”이라면서 “경찰 쪽에 똑같은 지분을 줄 테니 수사에 참여하라.”고 말했다. “경찰에서 오겠다고 하면 지휘부에 보고하고 참여시키겠다.”고도 했다. 검찰이 최근 전국 최대 규모의 기업형 룸살롱 ‘YTT’의 웨이터 12명에 대해 체포영장을 청구했다가 법원으로부터 기각당한 사실이 알려지자 경찰 내부에서는 “검찰이 경찰관을 잡으려고 종업원까지 체포하려 한 게 아니냐.”는 말이 나돌았다. 김승훈·이영준기자 hunnam@seoul.co.kr
  • 노벨상 두 번 받았다, 그런데 틀린 논문 그대로다

    노벨상 두 번 받았다, 그런데 틀린 논문 그대로다

    기본적인 질문을 하나 던져 보자. “잘못된 논문은 왜 철회해야 하는가?” 당연한 얘기지만 잘못됐기 때문이다. 특히 과학에서 잘못된 논문을 바로잡는 것은 과학의 학문적 특성과 관련해서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 과학은 본질적으로 지식을 쌓아가는 분야다. 하나의 사실이 밝혀지면 이를 기반으로 또 다른 연구가 이뤄지고, 새로운 사실이 밝혀진다. 과학저널의 역사는 수백년에 이른다. 최초의 과학저널은 영국의 ‘왕립학회 철학회보’(Philosophical Transactions of the Royal Society)로, 1665년에 만들어졌다. 최초의 논문 철회 역시 이 저널에서 이뤄졌다. 1746년 벤저민 윌슨은 이 저널에 “1746년 발표한 ‘라이덴병’에 관한 논문은 벤저민 프랭클린의 최근 연구결과에 따르면 틀린 것으로 보이는 만큼 철회한다.”고 1756년에 썼다. 언급된 프랭클린은 바로 그 미국의 정치가이자 과학자인 프랭클린이고, 등장한 연구는 피뢰침의 발명으로 이어진 연을 이용한 번개 실험이었다. 과학적으로 완벽하다고 여겨지는 이론이나 실험이 추후에 잘못된 것으로 밝혀지는 사례는 무수히 많다. 천동설과 지동설, 창조론과 진화론이 그랬고 인체에 대한 신비 등 셀 수 없이 많은 분야가 과학적 발전에 따라 새롭게 쓰여진다. 위대한 과학자들 역시 잘못된 주장으로 역사에 오명을 남긴다. ●과거의 잘못된 논문 다 철회해야 하나 최근 해외 과학계에서는 ‘과거의 잘못된 논문은 무조건 철회해야 하는가?’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서로 다른 분야에서 노벨상을 두 차례나 받은 최초의 사람. 화학자이자 반전운동가 라이너스 폴링(1901~1994)이 1953년에 미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발표한 ‘DNA의 3중 나선구조’ 논문에 대한 얘기다. 폴링은 일찍부터 화학에 관심을 가졌고 특별한 재능을 보였다. 대학 졸업 전에 이미 원자의 전기적 구조와 분자의 화학결합에 대한 새로운 이론을 머릿속에 갖고 있었다. 졸업 후에는 유럽에 머물며 보어(1922년 노벨 물리학상), 슈뢰딩거(1933년 노벨 물리학상) 등 세계적인 석학들 속에서 꿈을 키웠다. 폴링은 1927년부터 오리건대의 화학 교수를 지내면서 분자의 구조가 물질의 화학적, 물리적 특성은 물론 인체내의 생리적 기능도 결정한다는 사실을 알아채기 시작했다. 결국 오랜 기간의 연구 끝에 폴링은 각 원자들이 모여 적절한 방법으로 서로 결합해 분자를 이루고, 분자가 모여 물질이 될 수 있는 원자의 가장 기본적인 결합 방법을 규명했다. 이 공로로 그는 1954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다. 폴링의 업적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원자와 분자구조에 대한 자신의 이론을 기반으로 단백질, 변성된 단백질, 엉긴 단백질 등 다양한 형태의 단백질 구조를 규명했다. 아미노산, 폴리펩티드 등 현재 알려진 단백질의 구조분석 기법이 바로 폴링에서 시작된 것이다. 현대 의약학의 아버지인 셈이다. 폴링에게 노벨상을 안겨 준 또 다른 업적은 핵무기와 관련이 있다. 1940년대 원자폭탄 개발을 위한 맨해튼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오펜하이머는 폴링에게 화학부문 책임자를 맡아 달라고 요청했지만 폴링은 이를 거절했다. 전쟁이 끝나자 폴링은 적극적인 반핵운동을 시작됐다. 폴링은 1955년 51명의 노벨상 수상자와 함께 전쟁종식 및 핵실험 금지 서명운동을 시작했고, 1958년 49개국 과학자 1만 1000여명의 서명을 받은 청원서가 유엔 사무총장에게 전달됐다. 이해 폴링은 ‘더 이상의 전쟁은 없어야 한다’는 책을 통해 과학이 전쟁의 도구가 되어 가는 과정을 고발했다. 이 같은 운동의 결과로 폴링은 1962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폴링은 노벨상을 두 차례 수상한 네명의 인물(나머지 셋은 마리 퀴리·존 바딘·프레데릭 생어) 중 한명이자 과학과 다른 분야에서 상을 수상한 최초의 인물이며, 두 차례 모두 단독 수상한 유일한 인물이다. ●“과거의 오류도 의미 있어 철회 반대” 폴링은 두 차례 부정적인 논란의 중심에 섰다. 가장 유명한 것이 현재까지 학계의 의견이 갈리고 있는 ‘비타민C 과다섭취’ 요법이다. 비타민C 신봉자였던 폴링은 1973년 직접 연구소를 차려 비타민C를 연구했고, 많이 먹을수록 건강해진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항암효과가 뛰어나며 필요량의 수백배를 섭취하면 20년에 이르는 경이적인 수명 연장이 이뤄질 것이라고 발표했다. 폴링은 94세로 세상을 떠나 충분히 장수했지만 그의 연구소가 진행한 비타민C 관련 임상실험들은 추후에 과장되거나 조작됐다는 것이 입증됐다. 폴링이 이를 알았는지 여부는 확실치 않다. 이보다 앞선 논란은 ‘20세기 과학계 최고의 경쟁’으로 불렸던 DNA에 관한 얘기로, 앞서 언급한 논문 오류 사건이다. 단백질과 분자 구조를 입증한 폴링은 DNA 구조 규명에서도 가장 앞서 있었다. DNA 구조를 발견한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 역시 폴링을 가장 강력한 경쟁자로 꼽았고, 폴링의 연구기법을 이용했다. 하지만 폴링은 DNA가 3중나선이라고 믿었고, 이 같은 믿음을 토대로 1953년 2월 PNAS에 논문을 실었다. 그러나 다음해 4월 왓슨과 크릭이 ‘2중 나선 DNA’ 논문을 네이처에 발표하면서 폴링의 주장은 불과 두달 만에 틀린 것으로 판명됐다. 폴링 역시 자신의 연구가 잘못된 정보에 기반했으며, 오류를 인정했지만 왓슨과 크릭의 노벨상에 대해서는 “너무 젊다.”면서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 지난 5월, 논문철회 및 조작 감시사이트인 리트렉션 워치는 아직까지 PNAS에 그대로 실려 있는 폴링의 논문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에 대해 화두를 던졌다. PNAS는 “너무나 당연히 틀렸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논문”이라는 이유로 지금까지 폴링의 논문에 대해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전세계에서 583명의 전문가들이 참여한 투표에서 47.17%는 ‘그냥 내버려 둬야 한다’, ‘잘못된 논문이라고 명시해 남겨둔다’가 36.88%였다. 반면 ‘온라인에는 남겨둔 채 철회됐다고 기재한다’(14.58%)와 ‘아예 철회하고 삭제한다’(1.37%)는 소수에 머물렀다. 로이터헬스 대표인 이반 오랜스키는 “잘못된 논문을 무조건 철회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나름의 의미를 되새기는 것도 중요하다는 교훈을 보여 주는 사례”라고 평가했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MACAU CUISINE-사흘간의 식도락 여행 “마카오는 맛있다”

    MACAU CUISINE-사흘간의 식도락 여행 “마카오는 맛있다”

    사흘간의 식도락 여행 “마카오는 맛있다” 마카오에 3일간 머물렀다. 짧은 일정이었다. 초점은 음식에 맞춰졌다. 중국 광둥요리, 매캐니즈 푸드, 일본 음식, 국수와 에그 타르트 등 미식 기행은 그야말로 끝이 없었다. 다른 출장에서 열흘간 먹은 음식보다 훨씬 다채롭고 풍성했다. 안 그래도 나온 배가 한결 더 빵빵해져서 돌아왔다. 다이어트에 관한 한 마카오는 ‘적성국’이다. 에디터 김기남 글·사진 Travie writer 노중훈 취재협조 마카오정부관광청 02-778-4402 kr.macautourism.gov.mo 1 도시형 통합 엔터테인먼트 리조트인 시티 오브 드림즈의 더 테이스팅 룸. 유럽의 정찬 요리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2 알티라 호텔의 일식당 텐마사. 일본의 유명 텐푸라 레스토랑인 텐마사의 해외 지점이다 3 아마 사원 가까이에 위치한 오 포르토 인테리어. 매캐니즈 푸드 전문 식당이다 4 마카오 타워에 자리한 광둥요리 레스토랑 루아 아줄. 5 바닐라 민트 아이스크림에 초콜릿 시럽을 얹어 먹는 더 테이스팅 룸의 디저트 6 포르투갈 특산물과 디저트 등을 선보이는 루시타누스. 포르투갈 전통음악인 파두 연주도 들을 수 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서로 다른 문화의 합작품 15세기와 16세기는 대항해시대였다.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고 새로운 대륙을 발견하기 위해 유럽의 배들이 눈에 불을 켜고 세상을 돌아다녔다. 포르투갈이 대항해시대를 선도했다. 바스코 다 가마와 마젤란은 모두 포르투갈 사람이다. 배를 보낸 나라의 입장에서 그들은 탐험가였고, 배가 도착한 나라의 관점에서 그들은 침략자였다. 포르투갈은 중국의 남쪽 끝 마카오에도 발을 디뎠다. 결과적으로, 세상의 중심이라 자부하던 두 세력이 말문을 트게 됐다. 1557년 포르투갈은 마카오에 거주할 수 있는 권리를 얻게 된다. 당시 명나라의 군대를 도와준 대가였다. 포르투갈 사람들이 이주했고, 자연스레 포르투갈의 음식과 음식 문화도 따라왔다. 문제는 식재료였다. 두 나라 사이의 거리는 너무 멀었고 운송 여건은 열악했다. 식료품은 마카오에 입성하기도 전 썩어버렸다. 마카오에 거주하는 포르투갈 사람들은 ‘현지화 전략’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조리법은 포르투갈의 것을 고수하되 재료는 마카오에서 나는 것을 이용했다. 여기에 포르투갈이 교역하던 다양한 기항지의 음식 재료와 양념 등이 보태졌다. 시간이 흐르면서 마카오 사람들도 점차 포르투갈 음식을 즐기게 됐고, 자연스레 중국의 요리법도 스며들었다. 이것이 바로 포르투갈과 마카오가 함께 절차탁마해서 만들어낸, 오직 마카오에서만 맛볼 수 있는 매캐니즈Macanese 푸드다. 삼각형 모양의 만두 매캐니즈 사모사는 주로 애피타이저로 먹는다. 고기, 양파, 고수를 잘게 다져 속을 채운 뒤 노르스름하게 튀긴다. 아프리칸 치킨, 덕 라이스, 커리 크랩 등은 메인 요리로 사랑받는 품목들이다. 닭고기에 10여 종의 향신료를 첨가한 다음, 오븐에 구워내는 아프리칸 치킨은 매콤한 맛에 자꾸만 손이 간다. 일단 먹고 나면 마치 아프리카에 있는 것처럼 몸이 더워진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하는데, 그 정도로 매운 것은 아니다. 덕 라이스는 말 그대로 오리고기를 넣어 지은 밥 위에 포르투갈 소시지를 얹은 요리다. 올리브유와 향신료가 곁들여진다. 커리 크랩은 마늘, 양파, 고추 등과 함께 볶은 게에 화이트 와인, 피시 스톡, 코코넛 밀크, 레몬즙 등을 넣어 익힌다. 게살을 발라 먹은 후 남은 소스에 밥을 비비면 금상첨화다. 디저트 메뉴 중에는 세라두라의 존재가 두드러진다. 부드러운 바닐라 크림과 고소한 쿠키 가루를 번갈아 쌓아 만드는데, 살짝 얼려 먹으면 더욱 좋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1 갓 구운 에그 타르트를 들고 카페로 이동 중인 로드 스토우스 직원의 모습 2, 5 로드 스토우스의 카페 간판과 이곳의 명물 에그 타르트 3 더 테이스팅 룸의 치즈 플레이트 4 모차르트의 음악을 듣고 자란 원두를 사용한다는 카페 싱잉 빈 커피 한입 베어 무는 순간 중독은 시작된다 영국의 지배를 받았던 홍콩에는 애프터눈 티를 내놓는 곳이 많다. 홍콩 ‘옆 동네’인 마카오도 마찬가지다. 분위기는 세련되고 가격은 생각보다 저렴하다. MGM 그랜드 마카오의 파티세리MGM Patisserie, 요새를 호텔로 개조한 산티아고 호텔 라운지의 라 팔로마La Paloma 등이 애프터눈 티 명소로 꼽힌다. 카페에서 즐기는 티타임도 사랑스럽다. 마카오 타워 4층의 싱잉 빈 커피Singing Bean Coffee는 모차르트의 음악을 듣고 자란 특별한 원두를 사용한다고 알려져 있다. 커피 맛도 준수하지만 아이스크림의 인기도 상당하다. 포르투갈의 수도인 리스본 외곽에서 가장 빛나는 곳은 테주 강변의 벨렘 지구다. 앞서 말한 바스코 다 가마가 잠들어 있는 제로니무스 수도원, 수중 감옥으로 악명 높았던 벨렘 탑, 1960년 엔리케 항해 왕의 사후 500주년을 기념해 건립된 53m 높이의 발견기념비 등을 두루 만날 수 있다. 벨렘 지구에 가면 꼭 맛보게 되는 음식이 에그 타르트다. 재정 자립을 위해 수도원에서 만들어 팔던 것을 상업화한 경우다. 너무 달다는 느낌도 들지만 커피와 함께 먹으면 감칠맛이 난다. 마카오 콜로안 섬의 로드 스토우스 베이커리Lord Stow’s Bakery는 마카오 에그 타르트의 간판스타다. 원조와 최고, 두 가지 모두 로드 스토우스의 몫이다. 이 집 에그 타르트를 맛보겠다는 일념으로 마카오를 찾는 사람이 있을 정도다. 폭신한 커스터드가 혀를 감싸는 순간, 중독이 시작된다. 1 다양한 차를 시음해볼 수 있는 마카오 차 이야기 2 국숫집 룩 케이. 반죽을 치대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3 루시타누스의 파두 기타리스트 4 루아 아줄의 딤섬 요리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차를 마시고 파두를 감상하다 마카오에서는 모든 중국 음식을 접할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연히 중국 요리의 ‘4대 천황’이라고 부를 수 있는 베이징·산둥·쓰촨·광둥 지역의 요리를 빠짐없이 즐길 수 있다. 그중에서도 지리적으로 가까운 광둥요리가 가장 발달했다. 광둥요리는 압축해서 설명이 불가능할 만큼 깊고 넓은 맛의 세계다. 산과 바다에서 나는 온갖 재료로 상을 차린다. 산해진미라는 표현이 조금도 과하지 않다. 딤섬은 광둥요리에 있어 상징적인 존재다. 쫀득한 찹쌀 피가 새우를 감싸고 있는 하가우, 육즙이 함초롬하게 고여 있는 샤오롱바우, 노란 만두피 안에 곱게 간 돼지고기와 게살을 넣은 슈마이, 부추와 새우로 속을 꽉 채운 고우초이가우 등은 우리에게도 꽤 친숙하다. 마카오에서 딤섬 잘하는 집을 찾기란 어려운 일이 아닌데, 그랜드 리스보아 2층에 자리한 중식당 더 에이트The Eight도 뒷줄에 서지 않는다. 맛도 맛이지만 크리스털 샹들리에와 비단잉어 벽면 등으로 멋을 부린 인테리어도 굉장히 인상적이다. 마카오 타워에 입점해 있는 루아 아줄Lua Azul도 평판이 좋은 광둥요리 레스토랑이다. 중국인들의 차茶 사랑은 유별나다. 생활의 일부분이다. 식사할 때도 차를 빼먹지 않는다. 중국 음식 특유의 기름기를 덜어줄 뿐만 아니라 입 안이 깔끔하게 정리되기 때문에 음식 본연의 맛에 집중할 수 있다. 녹차의 일종으로 은은한 향이 일품인 용정차, 차의 생잎을 발효 도중 볶아 만드는 우롱차, 숙취 제거와 소화 촉진에 좋은 보이차, 맛이 달짝지근한 철관음차 등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9월 문을 연 마카오 여행 문화 체험 센터CATC 2층에는 마카오 차 이야기Macau Tea Story가 들어서 있다. 중국의 차 문화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듣고 시음도 할 수 있는 공간이다. 같은 건물 아래층에는 포르투갈 스타일의 디저트를 맛볼 수 있는 루시타누스Lusitanus가 자리한다. 와인을 비롯한 특산품도 구입할 수 있다. 무엇보다 기타리스트가 포르투갈 전통음악인 파두를 연주해주는 점이 이채롭다. 애조 띤 선율이 우리네 정서에도 비교적 잘 맞는다. 숙명이란 뜻을 지닌 파두의 태생과 유입 과정에 대해서는 설이 분분하다. 뱃사람이나 죄수들이 입에 자주 올리던 노래, 다른 민요에서 파생된 노래, 브라질이나 아프리카에서 건너온 노래라는 등 여러 갈래의 주장이 옥신각신하고 있지만 명쾌한 결론에는 이르지 못한 상태다. 하지만 1,800년대 초 브라질에서 유행했던 도시풍의 감상적인 노래 ‘모디냐’, 그리고 아프리카의 콩고와 앙골라에서 기원한 춤과 노래인 ‘룬두’가 파두의 발생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설명은 무게감을 지닌다. ▶미식가를 위한 Travel to Macau 교통 에어 마카오가 인천~마카오 구간의 직항 편을 매일 운영한다. 비행시간 약 3시간 30분. 시차 한국보다 1시간 늦다. 레스토랑 매캐니즈 레스토랑으로는 아마 사원 부근의 리토랄Litoral, 오 포르토 인테리어O Porto Interior, 아 로차A Lorcha 등이 유명하다. 포르투갈 요리 타이파 빌리지의 안토니오 레스토랑은 정통 포르투갈 요리를 선보인다. 스타 셰프 안토니오 씨는 우리나라 드라마 <궁>에 출연해 화제를 모은 적이 있다. 리스보아 호텔의 레스토랑 귄초 아 갈레라Guincho a Galera도 포르투갈 음식을 내놓는다. 중국 요리 윈 리조트의 골든 플라워Golden Flower는 미슐랭 가이드로부터 별 한 개를 받은 중식당이다. 청나라 전통 요리를 제공한다. 샌즈 코타이 센트럴의 다이너스티 8 Dynasty 8은 청·한·수·당·송 등 중국 8개 왕조의 특징적인 음식을 모티브로 한 레스토랑이다. 그랜드 리스보아의 누들 & 콘지 코너Noodle & Congee Corner는 상호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다양한 종류의 국수 요리를 먹을 수 있는 곳이다. 주방장의 밀가루 반죽 퍼포먼스도 구경할 수 있다. 룩 케이Luk Kei는 서민적인 분위기의 국수 가게. 일본 요리 알티라 호텔의 텐마사는 다다미방을 마련해 놓은 일식 레스토랑이다. 와인 알티라 호텔의 프렌치 레스토랑 오로라Aurora는 마카오 최대 규모의 와인 컬렉션을 보유하고 있다. 기타 시티 오브 드림즈의 더 테이스팅 룸The Tasting Room에서는 유럽식 정찬 요리를 만끽할 수 있다. 만다린 오리엔탈의 비다 리카Vida Rica는 광둥요리에서부터 서양 요리까지 선택의 폭이 넓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위 기사는 기사콘텐츠 교류 제휴매체인 여행신문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에 관한 모든 법적인 권한과 책임은 여행신문에 있습니다.
  • 학자들의 신앙이 된 숫자 ‘임팩트 팩터(IF)’ 논란

    학자들의 신앙이 된 숫자 ‘임팩트 팩터(IF)’ 논란

    언제부턴가 학자들이 신앙처럼 떠받들게 된 숫자가 있다. 미국에서 만들어졌지만 유독 한국에서 더 그렇다. 조금이라도 오르면 환호하고, 혹여 떨어지면 자신이 갖고 있는 주식이 떨어진 것보다 더 슬퍼하는 사람들이 많다. 어느새 ‘절대적인 신앙’이 돼 버린 숫자. 학자들의 연구에 대한 가치를 매기는 점수. 인용지수 또는 임팩트 팩터(IF)로 불리는 지표다. ●의학저널 대거 상위권 포진 톰슨 로이터는 전 세계에서 발행되는 SCI 저널의 인용 통계 보고서(Journal Citation Reports 2011)를 최근 발표했다. 톰슨 로이터는 세계 규모의 출판사이자 사설 평가기관이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저널의 가치 평가는 SCI 등재 여부와 인용지수로 평가된다. 특히 한국의 경우 교수 임용이나 석박사 학위, 연구실적 평가 등에 ‘SCI급 논문’을 가장 중요한 지표로 삼고 있다.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연구자와 연구 결과의 수준을 따지는데 현재까지 SCI만큼의 객관성을 담보할 수 있는 잣대가 없기 때문이다. 톰슨 로이터의 보고서에 이름을 올린 SCI저널은 8200여개가 넘는다. 이 때문에 이 안에서도 어느 저널이 더 유력 저널인지를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이 필요하다. 바로 임팩트 팩터(IF)다. IF는 해당 저널에 실린 논문이 지난 한해 동안 다른 연구자들에게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쳤는지 보여주는 바로미터다. 중요한 연구 결과일수록 후속 연구를 하려는 사람들이 몰리게 마련이고, 그들의 논문에는 참조한 논문이 인용된다. 이를 수치로 나타낸 것이 IF인 셈이다. 학문 영역별로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IF가 높은 저널은 곧 영향력 있고 뛰어난 저널로 봐도 무방하다. 일반적으로 생물학의 경우 IF가 10 이상이면 유력저널로 평가된다. 지난해 기준으로 IF가 가장 높은 저널은 ‘임상의학의를 위한 암 저널’(A Cancer Journal for Clinicians)로 IF가 101.78에 이른다. 2위인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신’의 53.298과 비교해도 두배에 이른다. 의학저널의 IF가 유독 높은 것은 논문을 접한 의사들이 임상실험 등을 통해 검증하거나 적용하기 위해 애쓰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또 의학은 가장 많은 연구비가 투입되는 분야이기도 하다. 랜싯(Lancet) 등 IF 상위권에 의학저널들이 대거 자리잡은 가운데 한국인들에게 익숙한 네이처는 36.28, 셀은 32.403, 사이언스는 31.201을 기록했다. 최근 강수경 서울대 교수의 논문조작 의혹으로 주목받은 ‘산화환원신호전달’(ARS)은 8.456이었다. 반면 한국에서 발행되는 SCI급 저널들은 모두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SCI에 등재된 75편 중 IF가 가장 높은 저널은 대한생화학분자생물학회지로 2.481에 불과하다. 세계적 저널을 만들겠다고 정부가 지난 수년간 쏟아부은 지원에 비하면 초라하기 짝이 없는 수치다. 특히 40여개 저널은 0점대에 머무르고 있다. 저널에 실린 논문이 1년간 한번도 채 인용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IF의 부작용 목소리도 높아 IF가 학문간 우월성을 좌우하는 잣대는 아니다. 금종해 고등과학원 부원장은 “수학자가 1편의 논문을 쓰면 물리학자는 3~4편, 화학자는 5~6편, 생물학이나 의학자는 8~10편을 쓴다.”면서 “실험을 통해 논문이 많이 나올 수 있는 학문이 있고, 그렇지 않은 학문이 있는 만큼 IF를 비교하더라도 학문간 구분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IF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특히 수학의 경우에는 최상위 저널이라고 해도 IF가 1을 넘지 않는 경우도 있다. 학문 특성상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없기 때문이다. 물리학 역시 거대장비를 필요로 하는 경우가 많아 후속연구가 쉽지 않아 IF가 낮은 경우가 많다. IF로 학문의 가치를 판단하는 것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높다. 현재 국내에서는 연구자의 논문편수와 논문이 게재된 저널의 IF를 이용해 연구를 평가한다. 그러나 이로 인한 부작용이 만만찮다. IF를 높이기 위해 조직적으로 같은 학술지의 논문을 재인용하는 경우가 적발돼 2005년 국제적인 망신살이 뻗치기도 했다. 당시 톰슨 로이터 측은 급작스럽게 한국 학회지들의 IF가 높아지자 조사에 착수, 자기인용을 수치에서 제외하기로 결정했다. 그 결과 대부분 학회의 대표학술지 IF가 다음해 절반 가까이 떨어졌다. 2009년에는 김동욱 연세대 의대교수, 정형민 차바이오앤디오스텍 사장 등이 편집이사를 맡는 등 의학·줄기세포 학계의 유력자들이 대거 참여한 조직공학·재생의학회에서 발행한 저널 ‘조직공학과 재생의학’에서 무더기 논문표절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당시 이 학회지는 SCI등재후보지였으며 논문수와 IF를 높이기 위해 이 같은 일을 조직적으로 벌였지만, 사건이 불거지자 폐간 절차를 밟았다. 학계의 한 관계자는 “SCI와 IF가 처음 도입됐을 때는 객관적이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효과가 많았지만, 이제는 정량화된 방식에 대한 회의론이 나오고 있다.”면서 “연구자 개개인의 역량을 믿는 방향으로 평가기준 등이 바뀌어야 할 시점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고 밝혔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현장 행정] 성장현 용산구청장 16개동 순회 ‘현안소통’

    [현장 행정] 성장현 용산구청장 16개동 순회 ‘현안소통’

    성장현 용산구청장은 2010년 취임 직후부터 주민과의 소통을 강조하며 매주 목요일을 ‘구민과의 대화의 날’로 정해 운영했다. 이날은 보통 20여개 팀이 구청장실을 찾아와 지역의 문제를 제기하고 해법을 찾기 위해 함께 머리를 맞댔다. 취임 2주년을 즈음해서는 이를 ‘현장형’으로 업그레이드했다. 지난 5월부터 성 구청장은 관내 16개 동을 돌며 현장을 확인하고 답을 찾는 ‘동 현안 현장소통’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달 28일 성 구청장은 7번째 현안소통 현장으로 효창동을 찾았다. 그는 “대화의 날을 2년쯤 하니까 관내 오래 묵은 민원들이 대부분 해결돼 최근 방문 민원이 크게 줄었다.”며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어 직접 동마다 방문하기로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성 구청장은 이날 오전 7시쯤 배드민턴장 방문을 시작으로 오후 6시까지 종일 효창동 일대를 누볐다. 30도를 오르내리는 후텁지근한 초여름 날씨였지만 단 10분의 휴식도 없이 골목과 계단을 오르내렸다. 자치회관 회원 간담회, 어린이집 및 사회복지관·경로당 방문, 자원봉사단 간담회 등 무려 16개 일정을 모두 소화했다. 특히 일정 사이사이에는 간담회 등에서 나온 민원 현장을 빠뜨리지 않고 방문했다. 비탈길에 자동차가 다니다 사고가 났다며 계단을 만들어 달라는 민원이 제기된 효창1경로당 인근 언덕길에서는 효창동장, 담당 과·팀장들과 즉석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성 구청장은 여기에서 “계단을 만들면 자연스럽게 조성된 도로가 없어지는 것 아니냐.”, “자동차 사고가 구조적인 것인지 개인 실수인지 따져 보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성 구청장은 “현장을 보지 않고 민원만 들으면 더 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며 “그래서 현장 점검이 절실한 것”이라고 귀띔했다. 오후에는 임정로13길에서 열린 현안반상회에도 참여했다. 지붕 배수로에서 흘러내린 물이 골목길에 고여 통행에 불편을 준다며 대책을 마련하자는 자리였다. 아곳에서 성 구청장은 능숙한 언변으로 모임을 주도하며 피해 현황과 대책 등을 수합했다. 반상회에 참가한 양희숙(76·여·효창동)씨는 “이렇게 구청장과 마주 앉을 기회가 자주 있는 게 아닌데 하고 싶었던 말을 미처 다 하지 못했다.”며 “다음에 또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성 구청장은 10월까지 동 현안 소통을 이어 갈 예정이다. 이를 후반기 정책 구상에 적극 반영하는 것은 두 말할 나위도 없다. 성 구청장은 “다양한 주민들의 애로사항을 꾸준히 수렴해 나부터 현장 중시 업무 분위기를 확산시키고 주민 참여 의식도 높일 것”이라고 말했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경제프리즘] 美엔 ‘슈퍼볼 지표’… 여의도엔 ‘한국시리즈 지표’

    미국 월스트리트에 ‘슈퍼볼 지표’가 있듯이 우리나라에도 ‘한국시리즈 지표’가 있다는 흥미로운 주장이 나왔다. 한국시리즈 진출팀의 주가수익률이 코스피 지수 상승률보다 20.2%나 높다는 것이다. 27일 김영일 대신증권 애널리스트는 ‘올해 한국시리즈 누가 올라갈까?’라는 제목의 리포트를 내놓았다. 리포트에 따르면 2001년부터 10년간 프로야구 시즌 마감 이후 다음 시즌 시작 전인 10월부터 다음해 3월까지 한국시리즈 진출팀의 주가 상승률은 31.8%를 기록했다. 코스피 상승률보다 20.2%나 높은 수치다. 김 연구원은 “구단의 성적과 주가를 연결시키는 것은 무리가 있지만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프로야구 관중수와 여기서 파생되는 마케팅 효과 및 브랜드 충성심 등은 분명 해당 기업에 어느 정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증권가에서는 야구단을 가지고 있었거나 현재 보유 중인 삼성전자·SK·LG·두산·한화·롯데제과·기아차·하이닉스(현대 유니콘즈) 등이 모두 대기업이기 때문에 누가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든지 코스피 상승률은 넘어설 가능성이 높다는 설명도 나온다. 주식 및 스포츠 간의 관계에 대해 가장 많이 거론되는 미국의 ‘슈퍼볼 지표’는 올해도 순항 중이다. 슈퍼볼 지표는 미국 증시가 내셔널콘퍼런스(NFC) 우승팀이 슈퍼볼을 차지한 해에는 강세를, 아메리칸콘퍼런스(AFC) 소속팀이 우승한 해에는 약세를 기록한다는 통계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 기준으로 슈퍼볼 지표는 지난 45년간 35차례(78%) 적중했다. 올해는 NFC 소속인 자이언츠가 우승했으며 현재 S&P500지수는 4.46% 상승 중이다. 이성원기자 lsw1469@seoul.co.kr
  • [데스크 시각] 대선 후보자와 국제 통찰력/이기철 국제부 부장급

    [데스크 시각] 대선 후보자와 국제 통찰력/이기철 국제부 부장급

    #1. “서양 오랑캐가 침범하는 데 싸우지 않으면 즉, 화친하자는 것이요. 화친을 주장하는 것은 나라를 팔아먹는 짓이다(洋夷侵犯 非戰卽和 主和賣國).” 흥선대원군이 병인·신미양요 승리 이후 서울 종로 네거리를 비롯해 전국 곳곳에 세운 척화비 내용 일부다. 집권 이전 대원군은 안동 김씨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건달들과 어울리며 구걸을 서슴지 않는 파락호 생활을 했다. 서민과 생활하며 당시 조선사회의 모순을 뼈저리게 체험했다. 1863년 둘째 아들이 12살에 왕위에 오르자 그는 조선 최고의 실력자가 됐다. 당쟁의 근거지였던 서원을 철폐했고, 60년 세도정치에 가렸던 왕권의 위엄을 되찾고자 경복궁을 재건하는 등 국내문제 개혁에 치중했다. 긴박했던 국제사회의 움직임에 고개를 돌렸다. 자신의 권력 기반 약화를 우려해서다. 반면 중국은 1840년, 일본은 1854년 개방했다. 조선은 1860년대 프랑스·미국 등에 의한 통상교섭 즉, 개방 요청이 잇따랐지만 대원군은 빗장을 걸어잠갔다. #2. 원나라의 억압에 100여년간 신음하던 14세기 고려. 12살 때 원나라 연경에서 10년 볼모 생활을 했던 왕전은 1351년 고려로 돌아와 31대 공민왕이 됐다. 몽고 풍속을 없애고, 고려 조정 안팎을 장악했던 기씨 일족을 비롯한 친원세력을 제거했다. 내정을 간섭하던 쌍성총관부를 폐지해 자립 왕조로 다시 태어났고, 원나라에 빼앗겼던 서북면과 동북면 일대의 영토를 되찾았다. 세계를 호령한 원나라지만 남쪽에서 무서운 기세로 일어난 홍건적에 정신이 팔렸다는 공민왕의 국제적 통찰력이 없으면 펼 수 없는 정책들이었다. 홍건적은 얼마 후 원나라를 무너뜨리고, 지도자 주원장은 명나라를 세웠다. #3. “일본이 다음해(1592년)에 조선의 땅을 빌려 명나라를 정복하려 한다.”는 내용의 보고서가 조선 조정에 올라왔다. 보고서는 묵살당하고, 이를 보고한 관리는 파직당했다. 왜의 동태가 수상하다는 보고는 수시로 올라왔다. 대마도 도주 소 요시토시는 조선 조정에 몇 차례 전쟁 발발을 경고했다. 전쟁에 휘말리기 싫었던 그는 증거로 소총 2자루도 갖다줬고, 조선의 눈으로 일본의 정세를 보라고 통신사 파견도 요청했다. 통신사 황윤길과 부사 김성일의 보고는 엇갈렸다. 부산포에 살던 일본인들은 모두 철수하면서 전쟁 분위기가 완연했다. 국제정세에서 듣고 싶었던 것만 들었던 선조는 명나라를 향해 피란갔고, 경복궁은 불탔다. 선조가 최강국인 줄 알았던 명나라는 몇년 지나지 않아 지도에서 사라졌고, 조선은 전란으로 쑥대밭이 됐다. 과거 최고 지도자가 국제적 통찰력이나 감각이 없을 때와 있을 때의 우리의 판도가 달라진 대표적 사례들이다. 지금은 실시간으로 국제 소식이 전해지는 개방된 세계여서 국제문제 대처에서는 과거와는 전혀 다르다고 주장하는 이가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불과 9년 전인 2003년 미국이 요청한 이라크 파병을 두고 국론이 첨예하게 갈렸다. 이라크전 소식은 실시간으로 들어왔지만 국가 지도자들은 강 건너 불보듯했다. 지금 다시 그와 유사한 일이 벌어지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국제적 이목이 집중된 이란 핵프로그램에 대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이 겉돌았다는 것이 최근의 외신 보도다. 미국이 이란 핵시설에 대해 군사적 타격에 나서면서 한국에 동참을 요청하면 우리는 나서야 할까 말아야 할까. 이란 핵프로그램의 해결방식은 북한 핵문제에 대해 국제사회의 선례가 된다는 점에서 우리에겐 더욱 중요한 문제로 와 닿는다. 또 최근 법 개정을 통해 핵무장의 길을 연 일본에 대해서는 우리 정부의 말마따나 ‘예의주시’만 하면 될 일인가. 일본이 당장은 아니겠지만 현재의 관료와 정치인이 모두 바뀐 다음에는 핵무장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만은 없다. 중국, 북한에 이어 일본의 핵무장 여지는 동북아의 핵 도미노 우려를 가중시킨다. 6개월 앞으로 다가온 대선에 나서려는 이들에게서 우리를 옥죌 수도 있는 국제 문제에 대한 말도 듣고 싶다. chuli@seoul.co.kr
  • [선택! 역사를 갈랐다] (17) ‘실학거성’ 정약용 & ‘북학거두’ 김정희

    [선택! 역사를 갈랐다] (17) ‘실학거성’ 정약용 & ‘북학거두’ 김정희

    다산(茶山)과 추사(秋史)는 19세기를 대표하는 조선 최고의 지식인들이다. 한 사람은 조선 실학(實學)을 집대성한 인물로 추앙받고, 한 사람은 북학(北學)의 종장으로 일컬어진다. 중국은 한 번도 가보지 않았고 청나라의 학술과 문화에 우호적이지 않았던 다산, 청나라에 유학하여 중국인을 스승으로 삼고 청나라의 학술과 문화를 배우고 좋아했던 추사, 이런 사실만으로도 이들의 삶이 달랐으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여기에 당색(黨色)마저 달랐으니 애초부터 가까이 지내기엔 서로가 부담스러운 존재였다. 그럼에도, 추사는 다산의 아들 정학연과 가까운 친구였고 선배인 다산을 존경했다. 다산 사후에는 다산의 제자들이 추사의 문하를 수시로 출입하며 교유하였다. 이렇게 두 사람의 삶이 다르면서도 닿아 있는 것은 정치적인 이유로 죄인의 몸이 되어 유배형을 받았다는 공통점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유배의 설움 글로 푼 정약용 대대로 문한(文翰)을 숭상하는 집안에서 태어난 다산은 정조 임금의 총애를 온몸으로 받았던 신하이자 제자였다. 그런데 출세가도를 달리던 다산에게 시련이 닥쳤다. 젊은 시절 천주학(天主學)에 관한 책을 읽고 연구했던 게 화근이었다. 다산의 집안에는 형님과 매형을 비롯한 천주교도들이 많았다. 호기심 많던 다산이 천주학에 관심을 뒀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후에 다산은 성균관에 들어가면서 천주학과의 인연을 끊지만, 젊은 시절 그가 한때 마음을 두었던 천주학은 결국 인생의 항로를 바꾸고 만다. 정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젊은 시절 천주학에 몸담았던 사실은 점점 다산의 목을 겨누는 칼로 변해갔다. ●든든한 후원자 정조 죽자 유배생활 시작 상황이 악화되자 다산은 짐을 챙겨 고향으로 돌아갔다. 1800년 봄의 일이었다. 얼마 후 다산의 든든한 후원자였던 정조가 승하하자, 다산은 다음해 2월에 경상도 장기로 유배되었다. 10월에 상경하여 재조사를 받았지만, 이번에는 다시 전라도 강진으로 유배되고 만다. 죄인의 몸이 되어 강진을 찾은 다산을 반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1801년 겨울, 강진에 도착한 다산은 동문 밖 술집에 거처를 마련했다. 동천여사(東泉旅舍) 뒷골방인 사의재(四宜齋)였다. 이곳에서 1806년 여름까지 지냈다. 1805년 겨울은 승려인 아암(兒庵)의 배려로 아들 정학연과 함께 보은산방(寶恩山房)에서 지냈다. 1806년 가을에는 제자 이학래의 집으로 거처를 옮겼다. 이곳에서 1년 남짓 살았다. 이렇게 떠돌던 다산은 1808년 봄부터 1818년 유배에서 풀려날 때까지 다산초당(茶山草堂)에 머물렀다. 다산은 유배생활 대부분을 제자를 가르치고 저술하는 일로 보냈다. 누구보다도 승려들과 많은 교유를 하였고 차(茶)를 사랑했지만,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이었다. 강진에 도착한 다음해 봄부터 붓과 벼루를 옆에 두고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쉬지 않고 저술에 매달렸다. 그 때문에 왼쪽 어깨에 마비 증세가 나타나 폐인이 될 지경이 되었고, 시력은 나빠져 늘 안경을 끼고 살았다. 다산이 그렇게 저술에 매달린 것은 폐족(廢族)이 되어버린 자신의 가문과 자신을 구원할 길이 오직 저술에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저술을 통해 자신의 이름을 후대에 전하고, 이로써 죄인의 오명을 벗어 던지고 싶었던 것이다. ●폐족 벗어나기 위해 두 아들의 학문정진 강조 한편으로는 두 아들에게 수시로 훈계의 글을 써 보내 공부를 강조했다. 청족(淸族)은 공부를 하지 않아도 저절로 존경을 받게 되지만, 폐족이 된 마당에 학문에 힘쓰지 않는다면 사람들이 천시하고 세상에서도 버림을 받게 된다고 여겼던 것이다. 두 아들이 자포자기하면 자신의 저술이 후대에 전해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절박함도 있었다. 자신의 글이 전해지지 못한다면 후세 사람들은 단지 관청의 문서만 가지고 자신을 평가하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자신은 끝내 죄인의 오명을 벗을 수 없다고 여긴 것이다. 이런 절박함은 다산으로 하여금 500권이라는 방대한 저술을 남기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 ■유배의 恨 서화로 푼 김정희 김정희의 증조부는 영조 임금의 사위였다. 그런 집안에서 자랐으니 왕실의 한 구성원인 셈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남부러울 게 없는 생활을 하였다. 1810년 부친을 따라 중국 연경(燕京·지금의 베이징)을 다녀온 뒤로 북학의 종장으로 성장하였다. 연경의 지식인들은 김정희와 교유하기를 희망하였고, 김정희의 연구 논문이 나오기를 기다리곤 하였다. 이미 동아시아 최고의 석학으로 성장했던 것이다. ●‘親청’ 추사, 反청 다산 선배로 여기고 후학들끼리 교류도 그러나 김정희가 45세 되던 1830년에는 부친 김노경이 전라도 고금도(古今島)에 유배되었고,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1840년에는 그 자신마저 제주도로 유배를 떠나게 된다. 모두가 정쟁 속에서 빚어진 일들이었다. 평생 고생이란 걸 모르고 살았던 김정희에게 제주도의 유배생활은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음식은 거칠어 목에 넘어가지도 않았고, 날씨는 맞지 않아 걸핏하면 앓아누웠다. 제주도에 도착한 다음해, 추사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날아들었다. 가장 친한 친구 김유근의 부음이 전해졌던 것이다. 김유근은 추사를 유배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줄 가장 큰 희망이었는데, 이제 그 희망이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 김유근의 사망 소식을 들은 뒤로 추사는 미쳐버린 듯, 정신이 나가버린 듯하였다. 하늘을 향해 혀를 차고 밥상을 대하면 수저를 드는 것조차 잊어버릴 지경이었다. 돌멩이가 목구멍에 걸린 듯하고 대못이 가슴에 박혀 있는 듯하여 몰골은 날마다 말라가고 정신도 따라서 나가버린 것 같았다. 슬픔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추사는 두 번째 아내인 예안(禮安) 이씨와 사별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반대파들의 박해도 끊이지 않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서울의 친구들과는 소식도 점차 끊어졌다. 젊은 시절 그렇게도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마저 소식 한 통 전해오지 않았다. 그런 추사가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책뿐이었다. 역관이었던 추사의 제자 이상적은 그런 추사의 심정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있었다. 중국에 갈 때마다 최신의 서적들을 구해다 추사에게 보내주었다. 모두 쉽게 구할 수 없는 책들이었다. 그 덕분에 몸은 제주에 있었지만, 중국 소식을 손금 보듯 하며 지낼 수 있었다. 유배 가기 전이나 유배 간 뒤나 언제나 똑같이 자신을 대하는 이상적의 행동을 보면서 추사는 문득 ‘논어’의 구절을 떠올렸다. ‘자한’ 편의 ‘세한연후지송백지후조’(歲寒然後知松柏之後彫)라는 구절이었다. 공자께서는 겨울이 되어서야 소나무나 잣나무가 시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느꼈듯이, 사람도 어려운 지경을 만나야 진정한 친구를 알 수 있는 법이다. 어려울 때 친구가 진정한 친구라는 것도 이 때문이다. 추사는 이상적의 행동이야말로 공자가 인정했던 송백(松柏)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추사는 그 고마움을 그림에 담아 이상적에게 선물하였다. 그렇게 ‘세한도’가 탄생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추사체로 불리는 그의 글씨는 바로 9년간의 유배생활 속에서 탄생하였다. 추사 또한 평생 수많은 저술을 하였고, 유배기간에도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말년에 자신의 저술을 두 번에 걸쳐 불에 태워버렸다. 그가 남긴 것은 그의 혼이 담긴 서화뿐이었다. ●올해 다산 탄생 250주년… 활발한 학술행사 열려 18년 유배생활을 저술로 보냈던 다산, 9년 유배생활을 예술로 승화시킨 추사, 이들의 삶은 이렇게 같으면서도 달랐다. 한 사람은 가슴 속에 쌓인 것을 밖으로 풀어내 책을 지었고, 또 한 사람은 가슴 속에 쌓인 것을 붓 끝에 모아 서화로 표출했다. 올해는 다산이 세상에 태어난 지 250주년이 되는 해이다. 여러 곳에서 다양한 전시회와 함께 그의 삶과 업적을 조명하는 학술행사가 열린다. 다산의 바람대로 죄인이라는 오명은 오래 전에 씻어졌다. 이제 다산을 죄인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500권의 저술을 남긴 위대한 학자로서의 명성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다산의 치열했던 삶이 온전히 살아나기를 기대해 본다. 박철상(고서연구가)
  • 광고주協 ‘반론보도닷컴’ 만든다

    기업들이 유사 인터넷 언론의 음해성 보도에 맞서 반론과 해명을 싣는 웹사이트 ‘반론보도닷컴’을 개설한다. 22일 재계 등에 따르면 한국광고주협회는 다음 달 4일 운영위원회를 열어 이른바 ‘사이비 언론’ 보도에 대한 반론과 해명을 전문적으로 싣는 반론보도닷컴 개설을 위한 안건을 상정하기로 했다. 반론보도닷컴은 이르면 8월 말, 늦어도 9월부터 서비스를 시작할 예정이다. 협회 관계자는 “신문, 방송과 달리 온라인의 경우 잘못된 보도에 대해 정정하거나 반론을 제기할 수 있는 공간이 없어 반론 공간을 만들겠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협회는 미확인 및 음해성 보도에 대한 각 기업의 반박과 해명을 반론닷컴에 공개, 사실과 다른 정보가 확산되지 않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이는 기업 총수나 상품, 서비스와 관련한 음해성 보도로 광고와 협찬을 강요하는 사이비 인터넷 언론의 폐해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협회는 또 반박과 해명을 네이버와 다음 등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올려 반론닷컴의 효과를 극대화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이를 위해 반론닷컴을 인터넷 언론사로 등록해 포털과 제휴할 계획이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원더걸스 “언제까지 국민 여동생일 순 없어 이젠 걸그룹의 레전드 돼야죠”

    원더걸스 “언제까지 국민 여동생일 순 없어 이젠 걸그룹의 레전드 돼야죠”

    “언제까지 국민 여동생일 수는 없잖아요. 이제는 걸그룹의 레전드(전설)가 돼야죠.” ‘텔미’, ‘소핫’, ‘노바디’ 등 그간의 복고풍 콘셉트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신나는 힙합을 들고 돌아온 원더걸스. 일렉트로닉 사운드에 힙합 비트를 결합시킨 새 미니앨범 타이틀곡 ‘라이크 디스’로 가요계 각종 차트를 석권한 이들을 19일 서울 논현동의 한 호텔에서 만났다. 올해로 데뷔 6년차인 원더걸스가 변신을 시도한 이유는 무엇일까. “뭐가 달라져야 색다르게 느껴질까 고민을 하다가 해 보지 않은 장르를 떠올리니 자유로운 느낌의 힙합과 연결되더라고요. 이번 앨범의 디렉팅을 멤버인 예은과 선예가 맡아서 더 자유롭게 녹음했던 것 같아요.”(소희) “짜인 군무와 딱 맞춘 칼안무를 하다가 본인의 색깔을 살린 자유로운 안무를 하려니 좀 어려웠어요. 각자의 느낌을 살려서 연습을 하다 보니까 또 군무처럼 좀 비슷해진 면도 있긴 해요.”(유빈) ●“처음 개다리춤 출 땐 민망했는데…” 곡 자체가 신나고 즐거운 콘셉트라 의상도 본인들이 각자 입고 싶은 옷으로 하자는 아이디어를 냈고, 안무에는 경쾌함을 살린 개다리춤까지 들어갔다. 소희는 “처음 개다리춤을 출 때 민망했는데, 지금은 재밌다.”면서 웃었다. 특히 이번 앨범에 자작곡을 2곡 수록한 데 이어 JYP의 새 식구가 된 ‘K팝 스타’의 우승자 박지민을 위한 곡을 쓰고 있다고 밝힌 예은은 “자유로운 음악을 하고 싶어서 박진영 PD가 준 노래를 몇 곡 거절했다.”면서 “‘라이크 디스’는 노래 자체가 에너지가 넘치는 곡이기 때문에 듣는 사람이 신나고 몸을 들썩거릴 수 있도록 하는 데 중점을 뒀다.”고 말했다. 멤버들은 “보통 박진영 PD가 컴백하기 전 리허설을 보고 장·단점에 대해 지적을 하는데, 이번에는 칭찬만 받았다.”면서 환하게 웃었다. ●美 발표 정규1집 뮤직비디오 촬영 마쳐 한편 원더걸스는 최근 미국에서 발표할 정규 1집 타이틀곡 뮤직비디오 촬영을 마치는 등 미국 시장에 대한 꿈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이들은 “미국 시장에서 아시아 가수가 음악으로 성공한 전례가 없지만, 전혀 가능성이 없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다른 아티스트들에게 길을 열어 줄 수 있다면 미국에서도 열심히 활동하고 싶다. 정규 앨범용으로 녹음해 둔 곡들이 좋아 빨리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어느덧 방송사 대기실에서 인사하는 후배들이 눈에 띄게 늘어나는 등 중견 아이돌 그룹으로 성장한 원더걸스.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일까. “우리 모두가 성장한 것이 느껴집니다. 거창한 계획을 세우기보다 대중음악으로 원더걸스의 몫을 다하고 있다고 많은 분이 느끼도록 노력할 생각입니다.”(선예)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크레신, 여수 세계박람회 견학하며 창립 53주년 행사

    크레신, 여수 세계박람회 견학하며 창립 53주년 행사

    글로벌 이어폰·헤드폰 전문기업 크레신(www.cresyn.com)은 15~16일 이종배 회장을 비롯한 임직원 20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전남 여수 세계박람회에서 창립 53주년 기념행사를 가졌다. 크레신은 매년 창립일에 즈음해 등산, 영화·뮤지컬 관람, 바비큐 파티 등 이색행사를 벌이며 소통 경영을 하고 있다. 크레신 제공
  • 황우여 “일부 지자체 이념·편향적 행정” 박원순 “근거없는 사실로 서울시 음해”

    황우여 “일부 지자체 이념·편향적 행정” 박원순 “근거없는 사실로 서울시 음해”

    새누리당 황우여(왼쪽) 대표와 박원순(오른쪽) 서울시장이 북한 인권 관련 단체 지원 문제를 놓고 공방을 벌였다. 황 대표는 14일 최고위원회의에서 탈북자 문제를 거론하면서 “최근 지자체 일부에서 이념적, 편향적 행정을 한다는 지적이 있다. 이런 부분에 대해 시정을 요구하고 탈북 이주민들의 입국과 사회 적응, 재교육을 돕는 단체들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거명하지는 않았으나 최근 서울시가 북한 인권 관련 단체에 대한 재정 지원을 줄였다는 언론 보도와 관련해 박 시장에게 직격탄을 날린 것이다. 이에 박 시장이 발끈했다. 앞서 이날 새벽 자신의 페이스북에 “신청하지도 않은 단체를 탈락시켰다는 억지와 허위 주장을 하고 있다. 근거 없는 사실로 저와 서울시를 음해하고 있다.”고 해당 보도를 반박했던 박 시장은 오후 황 대표의 발언 내용을 전해 듣고 곧바로 트위터에 글을 올렸다. 박 시장은 “황우려 새누리당 대표 이념 행정 말라고요? 그동안 정부 여당이 정파와 이념으로 온 나라를 갈가리 찢어 놓고 이렇게 적반하장이니 맨 정신이신지요?”라고 맞받아쳤다. 새누리당 김영우 대변인은 다시 논평을 내고 “황 대표의 정당한 지적에 대해 막말 대응을 하고 황 대표의 이름을 잘못 표기하기까지 했다.”면서 “서울시장으로서 여당 대표의 이름을 제대로 표현하는 것은 기본 예의”라고 항의했다.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변호사·의사 등 70명 기획 세무조사 안팎

    변호사·의사 등 70명 기획 세무조사 안팎

    국세청이 성형외과 등 의사와 변호사, 회계사, 부동산 임대업자 70명에 대해 강도 높은 기획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국세청은 13일 “지난달 종합소득세 신고와 올해 처음 시행되는 성실신고 확인대상자 신고에 즈음해 불성실 신고 혐의가 큰 고소득 자영업자에 대한 기획 세무조사를 한다.”고 밝혔다. 특히 올해 2월 개정된 법률에 따라 금융정보분석원(FIU)의 고액현금거래 자료를 금융추적 조사에 적극적으로 활용키로 해 결과가 주목된다. 이번 조사대상 70명 중에는 불복청구·특허등록 대행수수료를 신고누락하고 비용을 가공계상한 회계사·세무사·변리사, 외국인 성형환자를 유치해 수술비를 현금으로 받아 차명계좌로 관리해온 성형외과도 포함된다. 국세청은 조사 결과, 사기 등 부정한 행위로 세금을 포탈한 사실이 확인되면 조세범 처벌법에 따라 엄정하게 처리할 예정이다. 김형완 국세청 조사2과장은 “앞으로 고소득 전문직, 부동산 임대업자 등에 대한 탈세정보 수집 및 분석을 강화해 탈루혐의자를 철저히 색출하겠다.”고 강조했다. 국세청이 지난해 고소득 자영업자 596명을 대상으로 기획 세무조사를 벌인 결과 누락세금이 3632억원, 소득 탈루율은 37.5%에 달했다. 즉, 100만원 소득 가운데 37만 5000원을 줄여서 신고했다는 것이다. 국세청이 이번에 적발한 고소득 자영업자의 돈 빼돌리기 사례를 보면 우리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도덕적 불감증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알 수 있다. 명문대학을 나와 공직에 있다가 개업한 변호사나 강남의 유명 성형외과 의사, 임대료로 호화생활을 하는 임대사업자의 탐욕이 우리의 상식을 넘어섰다. 변호사 A씨는 오랜 공직생활에서 터득한 법률지식을 악용해 세금을 빼돌린 사례다. 전관예우로 고액의 사건을 맡은 A씨는 재판에 이겨 12억원의 성공보수를 받았지만 이 돈을 아내의 친언니와 친구 이름의 차명계좌에 입금, 소득신고를 하지 않았다. 또 고용변호사를 공동 사업자로 허위 등록, 소득을 분산신고하는 방법으로 2억원을 빼돌렸다. 국세청은 A씨의 탈루소득 14억원에 대해 소득세 등 9억원을 추징하고 조세범 처벌법에 따라 벌과금 3억원을 부과했다. 서울 강남구에서 자신의 이름을 딴 성형외과를 운영하는 B씨는 외국인 성형관광객을 전문으로 하는 유명 의사다. B씨는 외국인 성형관광 브로커를 통해 외국인 환자를 끌어모으고서 수술비를 직원명의 차명계좌로 입금받아 3년간 28억원의 돈을 빼돌렸다. 병원 인근에 호텔을 세워 외국인 환자를 숙박하게 한 뒤 숙박료로 번 현금 수입 3억원도 누락시켰다. B씨는 탈루소득 38억원에 대한 소득세 등 16억원을 추징당했다. 강남구 유명 양악수술 전문 치과의사인 C씨의 파렴치 행각도 마찬가지다. 양악수술이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을 악용, 손님이 현금으로 내면 수술비를 깎아주고 이 돈을 직원 명의의 계좌에 입금했다. 국세청은 C씨가 빼돌린 소득 40억원을 찾아내 20억원을 추징했다. 오일만기자 oilman@seoul.co.kr
  • [프로축구] 이동국 빈자리 정성훈 채웠다

    [프로축구] 이동국 빈자리 정성훈 채웠다

    ‘라이언킹’ 이동국은 없었다. ‘일개미’ 김정우도 마찬가지였다. 제주는 에닝요와 드로겟을 집중마크했다. 그러나 이 선수를 간과했다. 잊혀진 에이스 정성훈. 정성훈은 13일 제주월드컵경기장에서 치러진 제주와의 K리그 원정경기에서 1골 1어시스트로 전북의 3-1 승리를 이끌었다. 루키 김현은 리그 데뷔골을 넣었다. 4연승을 달린 전북은 승점 30(9승3무3패)으로 단숨에 2위로 치솟았다. 올 시즌 안방불패(6승1무)를 달리던 제주의 상승세에도 찬물을 끼얹었다. 주인공은 정성훈이었다. 시즌 전 “아마 올해도 난 동국이의 백업일 것이다. 하지만 꼭 한 번은 기회가 올거다. 그 때 멋지게 뒤집겠다.”던 말이 현실이 됐다. 정성훈은 전반 10분 에닝요가 페널티지역 오른쪽을 파고들어 패스한 공을 받아 골망을 흔들었다. 올 시즌 마수걸이 골. 전반 39분에는 감각적인 패스로 황보원의 추가골을 도왔다. 제주는 후반 14분 송진형이 만회골을 터뜨리며 추격했지만, 전북은 후반 45분 김현이 쐐기골을 넣으며 승리를 지켜냈다. 사실 정성훈은 올 시즌 존재감이 별로 없었다. 주전 이동국이 7골3어시스트(13경기)로 워낙 기세가 좋았다. 정성훈은 이날 경기 전까지 K리그 10경기에 나섰다. 4번은 교체돼 나왔고, 4번은 교체로 들어갔다. 그나마 풀타임으로 뛴 두 경기는 팀원들의 줄부상 탓에 억지로 중앙수비수 자리를 맡았을 때였다. 올 시즌 0골 0어시스트. 부산의 에이스로 활약하던 2010년의 기록(31경기 출전, 11골4어시스트)과 비교하면 한없이 초라한 성적표다. 그러나 팀의 주축 이동국-김정우가 A대표팀 차출로 빠진 상황에서 공격포인트 두 개를 곁들이며 제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정성훈이 뾰족한 발톱을 드러내면서 이동국에 집중됐던 전북의 공격옵션도 한결 다양해질 전망이다. 한편 14일에도 서울-성남전 등 15라운드 7경기가 치러진다. 스플릿시스템이 도입된 올 시즌엔 플레이오프 없이 30라운드까지 16개팀이 홈앤드어웨이로 경기를 치른 뒤 8개씩 상하위 스플릿으로 나뉘어 우승-강등팀을 가린다. 반환점을 즈음해 K리그 순위경쟁은 후끈 달아오를 전망이다. 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 [김정은 기자의 백스테이지] 장르 불문 팔도 사투리 선생님, 황영희

    [김정은 기자의 백스테이지] 장르 불문 팔도 사투리 선생님, 황영희

    연극, 드라마, 영화 등 장르를 막론하고, 사투리 연기에 도전하는 배우들이 꼭 만나야 하는 사람으로 꼽는 이가 있다. 바로 전국 팔도 사투리의 달인, 연극배우 황영희(43)다. 그녀에게 사투리를 배운 ‘제자’들은 유명 배우부터 단역 배우까지 폭넓다. #신애라 ‘아이스께기’ 전라도 사투리 ‘전수’ 2008년 배우 고수가 공익근무를 마친 뒤 복귀 무대로 선택한 연극 ‘돌아온 엄사장’에서 보여준 맛깔나는 사투리는 황영희로부터 며칠동안 1대1 트레이닝을 통해 만들어졌다. 2006년 배우 신애라가 생애 첫 영화 ‘아이스께기’에서 보여준 정감있는 전라도 사투리 또한 황영희의 ‘가르침’이었다. 서울이 고향인 신애라는 지역별 사투리조차 구별하지 못했지만, 영화에서 보여준 사투리는 일품이어서 사투리 선생이 누구인지 궁금증을 낳았다. 전남 목포 출신인 황영희는 팔도 사투리를 현지인처럼 구사한다. 술을 마시면 전라도 말과 경상도 말을 뒤섞어 말하는 스스로가 신기하다고 너스레를 떤다. 그녀는 12일부터 서울 남산예술센터 무대에 오르는 재일동포 극작가 겸 연출가 정의신의 연극 ‘봄의 노래는 바다에 흐르고’의 사투리 작업에 참가했다. 가수들이 음반작업을 할 때 녹음 전 작곡가들이 가이드송을 불러주듯, 대부분의 대사가 사투리인 이 연극의 전체 대사를 휴대전화에 녹음해줬다. 황영희는 “경상도 배우에게 전라도 말을 가르치니 굉장히 어렵더라. 역시 전라도와 경상도의 벽은 높구나 싶었다.”면서 “몇 년 전부터 극단이나 사투리 연기로 오디션을 받아야 하는 배우들이 찾아와 저에게서 사투리를 배워가곤 한다.”고 말했다. 배우 봉태규의 여자친구로도 유명한 배우 이은 등이 드라마 오디션을 앞두고 그녀에게 속성으로 사투리를 배웠다고 한다. 사투리를 지도하거나 표준어로 된 대본을 사투리로 바꿔준 작품도 수십 개에 이른다고. 얼마 전 두산아트센터 무대에 올랐던 연극 ‘목란언니’에선 북한 여성 조대자 역을 맡아 북한 사투리까지 멋들어지게 구사해 눈길을 끌었다. 그녀가 다양한 사투리를 구사하는 비결은 무엇일까. 황영희는 “사투리 연기를 위해 틈날 때마다 각 지역의 재래시장을 찾아 말투를 익히려고 한다. 이 방법은 사투리를 배우는 데 효율적”이라면서 “지역 사람들이 많이 나온 다큐멘터리도 분석하며 본다. 꼭 사투리가 아니더라도 특이한 말투를 지닌 사람들은 면밀하게 관찰해 특징을 뽑아낸다.”고 설명했다. #각 지역 재래시장 돌며 연구 ‘사투리의 달인’이란 소문이 나면서 곳곳에서 자문 역할을 했지만, 정작 서운할 때가 있단다. “배우들에게 사투리를 가르치라고 할 게 아니라 저를 캐스팅하면 다른 배우들에게도 공짜로 사투리를 가르쳐 줄 수 있을 텐데 말이죠. 캐스팅은 안 한다.”며 익살도 부린다.. “작은 재주이지만 저만의 장기를 살려 연극에 도움을 주는 자체로 행복하다.”는 그녀의 웃음이 정감 깊다. kimje@seoul.co.kr
  • [만화는 내 사랑] (6)‘미수다’ 미르야 말레츠키

    [만화는 내 사랑] (6)‘미수다’ 미르야 말레츠키

    이건 정말 운명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방송 프로그램 ‘미녀들의 수다’를 통해 널리 알려진 독일 여성 미르야 말레츠키(35) 이야기다. 지금은 자타가 인정하는 ‘한국 문화 전도사’. 처음부터 한국에 대한 ‘로망’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어렸을 땐 일본 만화와 비디오 게임을 좋아했다. 그래서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일본으로 건너갔다. 일본을 동경해서다. 그런데 그가 홈스테이로 머물던 집의 주인 부부가 이혼을 해 두 달 만에 발길을 돌려야 했다. 이듬해 함부르크대에 입학해 일본어를 전공으로, 한국어를 부전공으로 선택했다. 부전공 선택에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일본을 떠날 당시 한국이 잘될 거라는 이야기를 들어서였을 뿐이다. 2000년 3월 우연히 장학금을 받아 한국에 교환학생으로 오고 나서야 알았다. 한국에도 재미있는 만화가 있다는 것을. “한국에 대해 아는 거라곤 태권도 정도였어요. 그런데 와서 보니 한국의 문화와 사람들이 대단하더라고요. 1학기 일정이었는데 2년이나 머물게 됐습니다.” 한국 만화는 일본 만화와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처음 접했던 한국 만화 가운데 가장 기억에 선명한 게 조운학의 학원 무협물 ‘니나 잘해’다. “가장 나이 많은 외국인 누나로 태권도 도장을 다녔는데 한국 남동생들이 말하고 행동하는 게 만화 내용과 맞아떨어져 무척 재미있었어요.” 사서 보는 걸 즐겨 한국 만화를 수백권은 족히 모았다고 한다. 미르야는 한국 만화로 가득 채워진 독일 집 책장 사진을 휴대전화로 보여줬다. 독일 본대학 한국어번역과에 편입해 다닐 때는 같은 과 교수부터 모르는 사람까지 한국 만화책을 빌려 갈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고 귀띔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통역으로 활동하다가 귀국길에 올랐다. 여기서 또다시 운명을 만나게 된다.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 잠시 들렀던 것. 일본 만화를 번역 출판하는 독일 출판사 부스를 찾아가 한국 만화도 재미있는데 혹시 출간할 계획이 없는지 물어봤다. 그렇게 맺은 인연으로 이듬해 3월 그가 번역한 한국 만화가 독일에서 처음 나왔다. 고야성의 ‘유리달 아래서’다. 지금까지 그녀가 독일어로 옮긴 한국 만화는 ‘프리스트’ 등을 포함해 줄잡아 200여권이다. 2005년을 즈음해 번역했던 이명진의 ‘라그나로크’와 이윤희·카라의 ‘마왕일기’는 독일에서 최고 인기 있는 일본 만화 ‘원피스’보다 더 잘 팔렸다. “제가 번역한 작품이 베스트셀러가 돼서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 특히 ‘마왕일기’는 한국보다 오히려 독일, 프랑스, 미국서 더 인기를 끌었죠.” 가장 번역하고 싶은 만화책으로는 박소희의 ‘궁’을 꼽았다. 독일 출판사에 추천했더니 현지 만화 시장에선 그림체가 아직 시기상조라고 했단다. “사실 외국에서는 중국, 일본을 많이 알면 알았지 한국에 대해선 잘 몰라요. ‘궁’ 같은 작품을 통해 한국 역사와 문화에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마음이 컸죠.” 2006년 한국에 정착해 독일과 한국을 오가며 살고 있는 그는 ‘아이온’ 등 한국 온라인 게임을 영어로 번역하는 일도 많이 한다. 미르야의 꿈은 한국에서 어서 빨리 노벨상 작가가 나오는 것이다. 번역가로서 한국 작품을 해외로 널리 알려 한국에서도 노벨상 작가가 탄생하는 데 밑거름이 되고 싶다고 했다. “제가 번역한 작품이 노벨상을 받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알고 보면 한국에는 좋은 게 너무나도 많은데 외국에서는 그걸 잘 모르는 것 같아 많이 아쉬워요.” 글 사진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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