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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톰’ 서경배, 과학의 미래에 1조원 건다

    ‘아톰’ 서경배, 과학의 미래에 1조원 건다

    소년은 TV 만화영화 ‘우주 소년 아톰’을 즐겨봤다. 학창시절에는 생물 과목을 유독 좋아했다. 누구보다 과학을 사랑하던 소년은 이제 자라서 기업을 경영하고 있지만 여전히 과학의 힘을 굳게 믿는다. 과학을 포기하면 미래도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안다. 그래서 과감하게 1조원을 투자해 과학재단을 만들겠다는 청사진을 내놨다. 서경배(53)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은 1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서경배과학재단’ 설립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서 회장은 “3000억원으로 시작하지만 꿈은 사업을 잘해서 재단이 50년, 100년 이상 갈 수 있도록 (지원 규모를) 1조원까지 늘리는 것”이라고 밝혔다. 처음 시작하는 재단 출연금 3000억원은 아모레퍼시픽 우선주를 매각해 마련하기로 했다. 아모레퍼시픽은 그동안 창업자 고(故) 서성환 선대회장의 사재 등을 기반으로 ‘아모레퍼시픽재단’(학술·교육·문화 사업), ‘아모레퍼시픽복지재단’(저소득층 복지 사업), ‘한국유방건강재단’ 등을 운영해 왔다. 과학재단을 설립한 이유에 대해 서 회장은 “아버지가 기술과 과학에 늘 관심이 있었고 어렸을 때 만화 ‘아톰’을 보는 게 즐거움 중의 하나였다”면서 “회사가 어렵던 시절 과학의 힘으로 회사가 다시 일어나는 것을 보고 과학이 위대하다고 느꼈다”고 설명했다. 아모레퍼시픽은 1990년 총파업 등으로 위기에 처했으나 그 다음해에 세운 연구소에서 개발한 레티놀(노화를 방지하는 비타민 유도체) 제품이 불티나게 팔리며 위기에서 벗어났다. 아모레퍼시픽은 요즘도 매출의 3%가량을 연구·개발비로 쓴다. 이번에 출범하는 서경배과학재단은 기초과학, 특히 생명과학 분야의 국내외 한국인 신진 연구자를 지원할 계획이다. 생명공학에 관심을 두는 까닭에 대해 서 회장은 “어려서부터 생물이 재미있었다”면서 “좋아해야 관심을 갖고 도와줄 수 있고, 좋아해야 끝까지 밀고 나갈 수 있다”고 답했다. 자신의 이름을 따서 세운 이유에 대해서는 “빌게이츠재단도, 록펠러재단도 모두 자신의 이름을 걸었다”며 “잘못하면 자기 이름에 먹칠하는 것이기 때문에 책임지고 하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서 회장은 ‘천외유천’(天外有天·하늘 밖에 또 다른 하늘이 있다)을 언급하면서 “세계 최고의 연구 결과가 나올 수 있도록 창의적인 신진 과학자들을 발굴해 장기적으로 지원할 것”이라며 “재단이 (노벨상 등) 세계적인 결과물을 만들기를 바라고 그런 영광의 순간에 같은 자리에 있게 된다면 무한한 영광일 것”이라고 말했다. 재단은 매년 공개 모집을 통해 생명과학 분야 신진학자 3∼5명을 선발하고 과제당 5년 기준 최대 25억원의 연구비를 지원할 계획이다. 1차 연도 과제는 오는 11월 공고된다. 내년 1∼2월 과제 접수 후 심사 등을 거쳐 6월에 최종 선정자가 발표된다. 전경하 기자 lark3@seoul.co.kr
  • ‘아톰’ 서경배, 과학의 미래에 1조원 건다

    ‘아톰’ 서경배, 과학의 미래에 1조원 건다

    소년은 TV 만화영화 ‘우주 소년 아톰’을 즐겨봤다. 학창시절에는 생물 과목을 유독 좋아했다. 누구보다 과학을 사랑하던 소년은 이제 자라서 기업을 경영하고 있지만 여전히 과학의 힘을 굳게 믿는다. 과학을 포기하면 미래도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안다. 그래서 과감하게 1조원을 투자해 과학재단을 만들겠다는 청사진을 내놨다. 서경배(53)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은 1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서경배과학재단’ 설립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서 회장은 “3000억원으로 시작하지만 꿈은 사업을 잘해서 재단이 50년, 100년 이상 갈 수 있도록 (지원 규모를) 1조원까지 늘리는 것”이라고 밝혔다. 처음 시작하는 재단 출연금 3000억원은 아모레퍼시픽 우선주를 매각해 마련하기로 했다. 아모레퍼시픽은 그동안 창업자 고(故) 서성환 선대회장의 사재 등을 기반으로 ‘아모레퍼시픽재단’(학술·교육·문화 사업), ‘아모레퍼시픽복지재단’(저소득층 복지 사업), ‘한국유방건강재단’ 등을 운영해 왔다. 과학재단을 설립한 까닭에 대해 서 회장은 “아버지가 기술과 과학에 늘 관심이 있었고 어렸을 때 만화 ‘아톰’ 보는 게 즐거움 중의 하나였다”면서 “회사가 어렵던 시절 과학의 힘으로 회사가 다시 일어나는 것을 보고 과학이 위대하다고 느꼈다”고 설명했다. 아모레퍼시픽은 1990년 총파업 등으로 위기에 처했으나 그다음해에 세운 연구소에서 개발한 레티놀 제품이 불티나게 팔리며 위기에서 벗어났다. 아모레퍼시픽은 요즘도 매출의 3 %가량을 연구·개발비로 쓴다.이번에 출범하는 서경배과학재단은 기초과학, 특히 생명과학 분야의 국내외 한국인 신진 연구자를 지원할 계획이다. 생명공학에 관심을 두는 까닭에 대해 서 회장은 “어려서부터 생물이 재미있었다”면서 “좋아해야 관심을 갖고 도와줄 수 있고, 좋아해야 끝까지 밀고 나갈 수 있다”고 답했다. 자신의 이름을 따서 세운 이유에 대해서는 “빌게이츠재단도, 록펠러재단도 모두 자신의 이름을 걸었다”며 “잘못하면 자기 이름에 먹칠하는 것이기 때문에 책임지고 하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서 회장은 ‘천외유천’(天外有天·하늘 밖에 또 다른 하늘이 있다)을 언급하면서 “세계 최고의 연구 결과가 나올 수 있도록 창의적인 신진 과학자들을 발굴해 장기적으로 지원할 것”이라며 “재단이 (노벨상 등) 세계적인 결과물을 만들기를 바라고 그런 영광의 순간에 같은 자리에 있게 된다면 무한한 영광일 것”이라고 말했다. 재단은 매년 공개 모집을 통해 생명과학 분야 신진학자 3∼5명을 선발하고 과제당 5년 기준 최대 25억원의 연구비를 지원할 계획이다. 1차 연도 과제는 오는 11월 공고된다. 내년 1∼2월 과제 접수 후 심사 등을 거쳐 6월에 최종 선정자가 발표된다.전경하 기자 lark3@seoul.co.kr
  • 서울시의회 ‘살림포럼’ 월례회... 예산안 심의 대비 선제적 방안 논의

    서울시의회 ‘살림포럼’ 월례회... 예산안 심의 대비 선제적 방안 논의

    서울시의원 연구단체인 “서울살림포럼”(대표 김선갑 운영위원장)은 8월 30일(화) 서울시의회 의원회관 5층 회의실에서 2017년 예산안 편성에 즈음해 제15차 월례회를 가졌다. 이날 월례회는 다가오는 2017년 예산안 심의에 대비해 선제적 접근 방안에 대한 주제를 가지고 최민수 국회 의정연수원 교수의 강의와 포럼 소속 의원들의 열띤 토론의 시간을 가졌다고 밝혔다. 이 자리에는 포럼 소속 시의원 23명이 참여했다. 이날 월례회는 다가오는 2017년 예산안 심의에 대비해 지방의회 차원의 선제적 접근 방안에 대한 주제로 이뤄졌다. 김선갑 대표는 인사말을 통해, “제9대 시의회 4년차에 접어드는 2017년은 시의원 들이 지역 역점사업과 시민을 위한 공약사항을 마무리할 시기인 만큼 성공적으로 마무리될 수 있도록 예산 심의 준비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고 밝혔다. 강의를 맡은 최 교수는 “의회의 가장 강력한 견제・감시기능의 하나가 예산 심의”임을 강조했다. 이어“예산심의에서 중요한 것은 금액이 아니라 사업계획이라며, 서울시의회가 집행부가 추진하는 사업의 효과성을 면밀히 분석해 성과가 저조하거나 사업계획이 부실한 예산 사업들은 과감히 삭감하거나 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부실한 사업 설계, 중복 투자, 전시성 사업 등으로 인해 예산 낭비 소지가 있는 사업들은 더욱 철저히 검토해 주민들의 혈세가 낭비되는 일이 없도록 시의회가 앞장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 교수의 주제 발표 후에는 예산안 심사 전략과 대응 전략, 구체적인 예산 심사 방법 등의 주제로 의원 간 활발한 토론과 질의응답을 이어 갔다. 이날 서울살림포럼을 마친 김선갑 대표는 “의회 예산 심의에서 시민과의 약속을 지키고, 예산 낭비가 없는 ‘시민을 위한 예산’을 만들기 위해서는 의원들이 재정분야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야 한다” 면서 “의원들과 함께 지혜를 모아 시민과의 약속인 공약을 실천하고 서울시의 건전 재정을 견인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한편, “서울살림포럼”은 복잡다기한 지방재정 구조를 이해하고 분석해 서울시의 재정 건전화를 견인하기 위해 만든 서울시의원들의 최대 연구단체로 2015년 2월 설립해 지금까지 15차 월례회를 진행해 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 ○ 패치’ 운영자는 열등감女·우울증女

    금수저 질투나 ‘강남패치’ 운영 성형 부작용에 ‘한남패치’ 시작 “유흥업계의 실상을 파헤치겠다”며 일반인들의 사생활을 폭로해 온라인을 뜨겁게 달궜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강남패치’와 ‘한남패치’ 운영자들이 모두 평범한 20대 여성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 강남경찰서는 SNS 인스타그램에 계정을 만들어 놓고 신상 정보와 허위 사실 등을 유포한 혐의(명예훼손)로 회사원 정모(24·여)씨를 불구속 입건했다고 30일 밝혔다. 또 이날 서울 수서경찰서도 강남패치의 속칭 ‘남성 버전’인 한남패치 운영자 양모(28·여)씨를 허위 사실 유포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정씨는 지난 5월 인스타그램에 강남패치 계정을 열고 제보를 받은 뒤 6월 말까지 모두 100여명의 사진과 신상에 관련된 허위 사실 등을 유포해 명예를 훼손한 혐의를 받고 있다. 피해자는 주로 여성이었다. 정씨는 강남패치에 특정 여성의 얼굴 사진을 올려놓은 뒤 이 여성이 이른바 강남의 ‘텐프로’라고 허위 음해하는 식의 글들을 여럿 게시했다. 일반인뿐 아니라 연예·스포츠계 관계자 등 유명 인물도 게시물에 포함됐다. 정씨는 피해자들의 신고로 계정이 사용 정지되자 30차례에 걸쳐 계정을 바꾸며 운영을 이어 갔다. 그는 “평소 자주 가던 강남 클럽에서 한 기업 회장의 외손녀를 보고 ‘금수저’에 대한 박탈감에 범행을 시작했다”고 진술했다. 한남패치를 운영한 양씨는 계정 3개와 닉네임 11개를 사용해 추적을 피하면서 불특정 다수로부터 받은 허위 사실을 온라인에 유포한 혐의를 받고 있다. 피해자는 대부분 남성이었다. 양씨는 “2013년 강남의 한 병원에서 성형수술을 받은 뒤 부작용을 겪으면서 우울증에 시달렸고, 강남패치가 공론화되는 것을 보고 송사까지 벌인 남성 의사가 떠올라 범행을 시작했다”고 진술했다. 이 외 경찰은 강남패치와 한남패치의 게시글을 자신이 운영하는 사이트 4곳에 옮긴 뒤 삭제를 요구하는 피해자에게 200만원 상당의 비트코인을 요구한 혐의(공갈미수)로 인터넷 블로그 운영자 김모(28)씨도 불구속 입건했다. 김희리 기자 hitit@seoul.co.kr
  • 호란, 결혼 3년 만에 파경...이혼 사유는 무엇?

    호란, 결혼 3년 만에 파경...이혼 사유는 무엇?

    가수 호란(본명 최수진)이 결혼 3년 만에 이혼하게 된 소식이 전해졌다. 30일 TV리포트의 보도에 따르면, 최근 연예계 안팎으로 호란의 이혼 소식이 알려졌다. 이미 몇 달 전부터 두 사람은 이혼을 준비한 것으로 확인됐다. 호란은 지난 2012년 열애 사실을 공개한 뒤 다음해 3월 세 살 연상의 연인과 결혼식을 올렸다. 방송 활동을 하며 신혼 생활을 언급, 부부애를 과시하기도 했지만 성격 차이 등 이유로 남편과 불화를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두 사람은 지난 7월 이혼 서류를 제출하는 것으로 완전히 갈라선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호란은 SBS 파워FM ‘호란의 파워FM’을 진행 중이며, 오는 9월 중에는 클래지콰이 프로젝트 정규 7집을 발매할 예정이다. 임효진 인턴기자 3a5a7a6a@seoul.co.kr
  • 대구시, 미래형자동차 선도도시 구축 사업 ‘순항’

    대구시, 미래형자동차 선도도시 구축 사업 ‘순항’

    대구시가 자율주행 허브도시 및 전기차 선도도시 구축을 목표로 추진하고 있는 ‘미래형자동차 선도도시 구축사업’이 순항 중이다. 대구시는 29일 C-Auto 기획·추진단과 산학 연계를 통한 사업 추진 현황 등을 공개했다. 대구시가 ‘자율주행 허브도시 구축’을 목표로 진행하고 있는 사업은 주로 자율주행 자동차 기술 발전과 자율주행 기술 테스트를 위한 인프라 구축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올 2월부터 C-Auto 기획·추진단을 운영해 미래형자동차산업 종합계획 수립과 과제 발굴을 오는 10월까지 완료할 계획이다. 자율주행 자동차 기술 개발사업도 추진한다. 2017년부터 2021년까지 총 사업비 1455억 원을 투입할 예정인 이 사업은 지난 4월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해 다음해부터 본격 추진에 들어간다. 시는 기술 개발 후 테스트를 위한 환경 구축에도 힘쓰고 있다. 테크노폴리스, 국가산업단지 및 수성의료지구 일원을 ‘자율주행 규제 프리존’으로 지정, 국내 유일의 자율주행 원스톱 실증테스트 베드를 구축할 계획이다. 또 ‘전기차 선도도시 구축’을 목표로 다양한 산업체·학계와 협약을 체결하는 등의 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대구시는 전기차 비즈니스 모델 발굴과 실행게획 수립을 위해 테스크포스(TF)팀을 운영 중이며, 오는 11월까지 계획 수립을 완료할 방침이다. 산업체와의 업무협약도 활발하다. 대동공업은 르노삼성자동차와 LG전자 참여로 1톤급 경상용 전기차 개발사업(247억원)을 주관하고 있으며, 디아이씨는 대구국가산업단지에 입주해 국내 최초의 전기상용차 제조공장 준공을 앞두고 있다. 계명대는 6월 17일 에스엘 등의 지역 중견 기업과 상호협약을 맺어 기업 맞춤형 전문 인력을 양성하고 기업은 지역 인력을 안정적으로 채용할 수 있도록 했다. 대구시는 전기차 초기 수요 창출을 위해 시내에도 올해 전기택시 50대를 시범 운행하고 전기차 200대를 보급했다. 앞으로 보급 증가에 따른 이용편의를 위해 자체 예산과 한국전력·환경부의 지원으로 총 141기의 전기차 충전기를 구축할 계획이다. 권영진 대구시장은 “미래형 자동차는 피해 갈 수 없는 시대적 소명이기에 대구시는 자동차분야에 대한 예산지원, 우수 연구인력 투입, 지역 기업 연구역량 강화 등을 추진, 산업 발전을 위한 새 판을 준비하고 있다”면서 “미래형 자동차 산업 육성을 통해 자동차 산업의 구조 전환과 지역 경제 활성화란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지원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인턴 성추행’ 혐의 윤창중 전 대변인 자서전 발간…공식 활동 재개?

    ‘인턴 성추행’ 혐의 윤창중 전 대변인 자서전 발간…공식 활동 재개?

    박근혜 대통령의 미국 방문 중 인턴 여직원을 숙소로 불러내 성추행한 혐의로 물러난 윤창중(60) 전 청와대 대변인이 자서전 발간으로 공식 활동을 재개한다. 윤 전 대변인은 18일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다음달 3일 자서전 ‘윤창중의 고백-피정避靜’ 출간 북콘서트를 서울 서초구의 한 카페에서 연다고 밝혔다. 자서전은 블로그에 연재한 ‘내 영혼의 상처’ 등의 글들을 480페이지 분량으로 추린 것이다. 윤 전 대변인은 책 소개글을 통해 “나를 위로해주고, 사랑하고, 성원해주고, 신뢰했던 수많은 분들께 내가 살아온 지난 3년간의 이야기, 내가 살아온 인생 전체를 들려주고 싶어 다시 글을 쓰려 한다”고 전했다. 또 “대한민국 언론세력과 음해세력의 콜라보레이션! 하루아침에 수천, 수만리 낭떠러지 밑으로 추락시킨 ‘윤창중 생매장 드라마‘, 그리고 생매장 된 뒤 다시 낮은 포복으로 그 절망의 절벽을 타고 올라온 한 인간의 기적같은 생존기! 생생히 담겨져 있습니다”라며 책을 소개했다. 전화 주문시 윤 전 대변인이 사인해 택배로 배송된다고도 덧붙였다. 이날 윤 전 대변인은 ‘뼛속까지 우익이 다음 정권을 잡아야’ 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좌파와 종북세력의 어떤 기도에도 결코 흔들리지 않는 우익인사가 대통령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윤 전 대변인은 사건 발생 후 3년이 지나도록 미국 사법당국에서 부르지 않으면서 공소시효가 끝났으며 자신의 무죄가 입증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미국 워싱턴 경찰은 한 언론을 통해 “현재 진행 중인 유효한 수사로 오픈케이스”라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檢, ‘성완종 리스트’ 홍준표 지사에 징역 2년, 추징금 1억 구형

    檢, ‘성완종 리스트’ 홍준표 지사에 징역 2년, 추징금 1억 구형

    검찰이 고(故)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에게서 불법 정치자금 1억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홍준표 경남도지사에게 징역 2년과 추징금 1억원을 구형했다. 12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부장 현용선) 심리로 열린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이번 사건은 정치자금법의 입법 취지를 훼손하는 범행”이라며 이 같이 구형했다. 검찰은 “피고인은 과거 공천혁신을 얘기하면서도 은밀하게 기업 자금을 불법 수수하는 이중적 모습을 갖췄다”며 “양형에 고려해달라”는 말도 덧붙였다. 아울러 “책임 있는 지도자라면 잘못이 있다면 깨끗이 인정하고, 그런 사실이 전혀 없다면 합리적으로 소명하면 될 일이지만 합리적 소명이 이뤄지지 않았다”고도 강조했다. 검찰은 또 “피고인은 주변인을 통해 진실 은폐를 위한 조작을 시도했고, 이런 상황이 있었음에도 법정에서 개전의 정이 없었다”며 “오히려 변호인을 통해 수사의 정당성과 적법성을 음해하고 선정적, 자극적인 주장을 해오고 근거 없는 폭로를 계속해왔다”고 비판했다. 이날 홍 지사는 피고인 신문에서 “윤씨를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만난 적이 없고 돈도 받은 적이 없다”며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지인들을 통해 윤씨를 회유하려 하지도 않았다고 거듭 주장했다. 검찰은 돈 전달자로 지목된 윤씨에게는 징역 1년을 구형했다. 윤씨는 검찰 수사와 재판에서 내내 홍 지사에게 1억원을 전달했다고 자백하는 진술을 했다. 홍 지사는 2011년 6월 중하순쯤 자신의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성 전 회장의 지시를 받은 윤씨를 만나 쇼핑백에 든 불법 정치자금 1억원을 받은 혐의(정치자금법 위반)로 지난해 7월 불구속 기소됐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2016 공직열전 기획재정부(상)] 정책효과 극대화 이끄는 나라살림 ‘컨트롤타워’

    [2016 공직열전 기획재정부(상)] 정책효과 극대화 이끄는 나라살림 ‘컨트롤타워’

    기획재정부는 세제와 재정, 예산, 경제 정책 등 우리나라의 살림살이 전반을 다루는 명실상부한 ‘컨트롤타워’다. 그래서 기재부에서 ‘유능하다’는 건 ‘벌교에서 주먹 자랑, 여수에서 돈 자랑’처럼 큰 의미가 없다. “기재부, 진짜 깐깐하네.” 예산이나 정책 협의 등을 이유로 기재부를 처음 방문한 다른 부처나 산하기관 임직원들이 정부세종청사 4동 건물을 나가면서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다. 다른 부처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공들여 만든 예산안과 정책에 대해 생각하지 못했던 빈틈을 예리하게 파고드는 기재부 직원이 얄미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정책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지적만 하기 때문에 수긍하지 않을 수도 없다. 기재부는 신입 시절부터 이런 종합적이고 균형 잡힌 사고를 격의 없는 토론과 논쟁을 통해 훈련받는다. 서울 법대 82학번, 행정고시 29회 동기로 이런 과정을 30년간 밟아 온 1963년생 동갑내기 최상목 제1차관과 송언석 제2차관이 이 공룡 부처를 이끌고 있다. 최 차관은 경제정책과 금융 분야의 주요 보직을 대부분 거쳤다. 탁월한 관료라는 평가를 달고 다니는 그는 재경부(옛 기획재정부) 시절 증권제도과장, 금융정책과장을 지내면서 현재의 자본시장통합법을 만들어 낸 주역으로 꼽힌다. 그런데 그 바쁜 와중에 경제와 역사를 다룬 ‘경제와 역사, 그들의 동반 여행기’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다. 후배들은 “항상 최상의 퍼포먼스를 구현하려고 애쓰는 완벽주의자라서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다그치기보다는 차근차근 도와주며 잘 이끌어가는 스타일”이라고 평한다. 상대의 감정선 파악이 빠르고, 누구를 만나든 혼자 움직이는 걸 좋아한다. 송 차관은 공직생활 내내 예산과 재정 분야에서 일해 왔다. 예산총괄심의관 시절에는 보고를 받을 때 족집게 과외 선생처럼 미흡한 부분을 콕콕 짚어내며 혼쭐을 내는 경우가 많아 ‘호랑이’로 통했다. 예산실장 때인 2014년 12월 2일, 국회가 12년 만에 다음해 예산안을 법정기한 내에 통과시키는 데 이바지한 1등 공신으로 꼽힌다. 차관이 된 뒤에는 성과연봉제 도입에 반대하며 기재부 앞에서 노숙 농성을 벌이고 있던 공기업 노조 간부들을 직접 만나 담판을 짓기도 했다. 후배들은 “많이 부드러워졌다”고 한다. 사석에서는 격의 없이 솔직한 이야기를 터놓고 하며 분위기를 이끄는 스타일이다. 경제정책국, 정책조정국, 미래경제전략국 등을 지휘하며 대형 경제정책 생산을 주도하고 있는 이찬우(50·31회) 차관보는 경제·경영학 전공 및 재경직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기재부에서 정치학 전공에 일반행정직 출신인 드문 케이스다. 평소 과묵하지만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잘 제시하고, 실현 방안까지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업무 추진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일부 후배들은 “악센트가 거의 없이 경상도 사투리가 묻어나는 말투를 잘 못 알아 들어 힘들 때도 있다”고 한다. 송인창(54·31회) 국제경제관리관은 국제금융 분야 전문가로 국제금융정책국, 국제금융협력국, 대외경제국을 이끌고 있다. 해박한 업무 지식과 치밀한 추진 능력으로 여러 현안 과제의 해결능력이 탁월하고, 소탈하고 겸손한 성격으로 기재부 안팎에서 우호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매년 부하 직원들이 뽑는 ‘닮고 싶은 상사’에 세 번 이상 이름을 올려 2010년 신설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기도 했다. 흐트러짐 없이 술을 잘 마시기로 기재부에서 으뜸이라는 것이 후배들의 전언이다. 국고국, 재정관리국, 재정기획국, 공공정책국 등을 이끄는 노형욱(53·30회) 재정관리관도 명예의 전당에 이름이 올라 있을 정도로 후배들의 신망이 두텁다. 예산실 핵심 요직인 예산총괄서기관, 예산총괄과장 등을 거쳤고, 거시적인 안목에서 재정정책 및 전략의 중장기 비전과 큰 그림을 제시하는 정책 기획력이 탁월하다는 평을 받는다. 최근 공공기관 기능조정, 성과연봉제 등 저항이 만만치 않은 과제를 저돌적으로 추진해 업무 능력을 검증받았다. 최영록(51·30회) 세제실장은 실장 임명 뒤 2주 만에 올해 세법개정안을 완성해 발표했다. 조세기획관, 재산소비세정책관, 조세정책관, 국무조정실 조세심판원 상임심판관 등을 거친 세제통으로 새누리당 수석전문위원을 역임하며 국회와 사전에 긴밀히 협의하는 등 협상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후배들은 “우리나라에서 세제에 가장 정통한 사람이라는 게 장점이자 단점”이라고 한다. 기재부의 안살림과 대(對)국회 업무를 맡고 있는 고형권(51·30회) 기획조정실장은 민간금융회사, 몽골 재무부장관 자문관, 민관합동창조경제추진단장 등 이채로운 경력의 소유자다. 속정이 깊고 소탈하다는 것이 후배들의 평이고, 야당 관계자들은 고 실장이 야당과 매끄러운 관계를 이어가는 데 적지 않은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한다. 나라살림의 지출을 책임지는 박춘섭(56·31회) 예산실장은 걸어다니는 ‘예산 백과사전’이다. 각 분야 예산 담당 사무관과 과장도 외우지 못하는 통계를 줄줄 외워 직원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라고 한다. 28년 공직생활 대부분을 예산실에서 근무했다. 직원들과의 허심탄회한 술자리를 좋아하고, 어떤 일이 있어도 부하직원에게 화를 내지 않는 걸로 유명하다. 세종 장형우 기자 zangzak@seoul.co.kr
  •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 조선의 중심 ‘종로 뒷골목’… 계단 없어 휠체어 답사도 OK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 조선의 중심 ‘종로 뒷골목’… 계단 없어 휠체어 답사도 OK

    서울시는 2014년 근현대 서울의 추억과 발자취가 담긴 유·무형 자산을 발굴·관리하는 ‘미래유산 보전 종합계획’을 수립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이맘때 ‘미래유산 보존·관리 및 활용에 관한 조례’를 만들어 본격적으로 시민들과 미래유산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시는 미래유산 발굴보존 사업이 가능한 한 민간 주도로 진행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이번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 역시 서울신문, 문화지평과 함께 시민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한 목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 홈페이지(http://futureheritage.seoul.co.kr)에서 오는 9월 3일 장충단비, 국립극장, 장충체육관, 한양성곽, 족발 골목 등에 얽힌 이야기를 찾아가는 ‘장충단 성곽길’ 프로그램을 예약할 수 있다. 지난 7월 9일 오전 10시 보신각 앞에 한 무리 시민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빨간색 손수건을 하나씩 목에 두르거나 손목에 묶고 2회차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 출발을 기다리는 이들이었다. 이번 역사탐방로는 보신각부터 동대문까지다. 일직선으로 뻗은 대로가 아니라 잘 다녀 보지 않은 뒤안길이다. 보신각 길 건너 서울아트센터 공평갤러리에서 인사동을 거쳐 종로 뒷골목을 헤집는 코스다. 답사로는 발밑으로는 광화문역에서 동대문역으로 달리는 지하철 5호선과 거의 겹친다. 단 한 번도 대로로 나가지 않고 동대문까지 뒤안길만 누비는 오리지널 골목 답사다. 서울 종로 뒤안길 답사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뒷골목에 숨어 있는 수많은 근현대 역사 이야기와 미래유산을 만나는 것이다. 또 하나는 답사로 전체가 평지로 이뤄져서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들도 무리 없이 동행할 수 있는 ‘무장애 답사로’란 점이다. 이 답사로는 이날 해설을 맡은 박광규(55) 서울미래유산해설사가 개척한 코스다. 박 해설사는 “큰길에는 큰 역사가 존재하고 뒷골목에는 소소한 것만 있을 것이란 선입견을 날려 버리는 대단히 의미 있는 뒤안길”이라며 “특히 계단이 단 한 층도 없는 완벽한 무장애 코스로 장애인과 함께 역사와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답사길이라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날 답사팀 안전은 손안나 해설사가 맡았다. 이날 답사에도 어김없이 이경윤 나눔마켓 대표가 가장 먼저 나왔다. 장애인 콜택시를 타려고 일찍 서둘러야 해서 두 시간 전에 도착했다. 어릴 적 소달구지에 깔린 사고 때문에 전신마비로 이동장애를 가진 이 대표는 노원구 하계동 미성아파트 지하상가에서 책방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수많은 답사 활동을 했을 것이다. 이날은 무장애 코스라서 그런지 그의 표정이 유난히 밝다. 이 대표는 “이 코스를 두 번째 가 볼 기회를 얻어서 행복하다”며 “길 끝 창신동 골목길 ‘장가네 보리밥집’에서 쓱쓱 비벼 먹는 비빔밥이 일품이었던 기억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눔마켓은 책을 기증받아 온·오프라인을 통해 염가로 파는 책방”이라며 “기증은 책 종류와 수량에 관계없이 어떤 책이든 가능하다”고 깨알 같은 광고를 빼놓지 않았다. 박 해설사의 해설이 시작되자 모두 시선을 모으고 귀를 쫑긋 세웠다. “보신각 안 잔디밭에는 서울미래유산인 ‘지하철 수준점’이 있습니다. 지하철 1호선을 건설하려고 기준을 잡은 것인데요. 앞으로 놓일 모든 지하철의 높이를 정하는 기준이 됩니다.” 박 해설사가 손으로 지하철 수준점을 가리켰지만 잘 보이지 않았다. 사방 25㎝ 정사각형 표지석 한가운데 직경 7㎝, 길이 12㎝ 놋쇠 못이 박힌 수준점은 높이가 20㎝밖에 되지 않아 한여름에는 잔디에 묻혀 버리기 때문이다. 보신각이 보물 제2호로 지정된 문화재인 이유로 무작정 들어가 가까이 들여다보기가 어렵다. 박 해설사가 이해를 돕고자 아이패드를 꺼내 근접해서 찍은 사진을 보여 주자 그때야 시민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답사에 나온 배현철(40·두루EDS 대표)씨는 “보신각 앞에서 숱하게 약속도 하고 그 앞을 지나쳤지만, 이 안에 지하철 수준점이란 게 설치돼 있다는 사실을 오늘 처음 알았다”고 했다. 지하철 수준점은 1970년 5월 도심 교통난을 해소할 대책을 마련하라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당시 양택식 서울시장이 지하철을 도입하면서 같은 해 10월 설정한 일종의 기준이다. 우리나라 해발 기준점(수준원점)은 어디일까. 인천 앞바다를 기준으로, 수준원점 시설물은 인하대 교정 안에 있다. 박 해설사의 해설을 토씨 하나 놓칠세라 꼼꼼하게 받아 적는 답사객이 있다. 1회차 때 대한문 앞에서 출발하는 답사단 무리를 보고 2회차 때 무작정(?) 참가한 김청길(74)씨다. 김씨는 파워블로거다. 2013년부터 현재까지 문화와 답사 관련 포스트를 2200여개나 올렸단다. 김씨는 “일전에 대한문 앞에 갔다가 역사 탐방단이 출발하는 걸 보고 다음번 참석을 다짐했다”면서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앞으로 계속 나올 예정”이라고 예고했다. ‘무임 승차’를 공언한 것이다. 보신각에서 길을 건너 서울아트센터 공평갤러리 쪽으로 인사동 랜드마크 중 하나인 ‘동헌필방’이 보인다. 창업자 이동하씨가 1966년부터 반세기 동안 한자리에서 운영하고 있다. 원래 남계양행이라는 양판점이었다. 건물 자체가 1930년대 지어진 등록문화재감이다. 그런데 동헌필방만 미래유산으로 지정됐다. 동헌필방 앞에는 1926년 지어진 건물이 있다. 1933년부터 1937년까지 일제강점기 민간 3대 신문 중 하나였던 조선중앙일보의 사옥이었다. 박 해설사는 “동아일보와 함께 1936년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우승자 손기정 선수의 가슴에서 일장기를 지워 보도한 신문”으로 “여운형이 사장이었는데 정간을 당한 후 그 다음해 폐간됐다”고 설명했다. 1960년대는 자유당 중앙당사, 1970년부터는 농협중앙회 사옥으로 사용되다가 현재는 NH농협 종로지점이다. 건립 당시 모습이 비교적 양호하게 보존돼 건축사적 측면에서 보존 가치가 있다. 서울 근대건축물과 미래유산이다. 이들 건물은 자칫 옛 도시계획에 의해 멸실될 위기에 있었으나 상위법을 바꿔 운 좋게 살아남았다. 그래서 종묘에서부터 직선이던 골목이 이들 건물을 피해 종로 쪽으로 살짝 굽었다. 여기서 시민 한 분이 추가로 무임 승차성 답사에 나섰다. 종로 뒷골목은 서울미래유산이 유난히 많은 곳이다. 이미 지나온 열차집, 동헌필방, NH농협 종로지점 이외도 이문설농탕, 구하산방, 서울중심점, 허리우드극장, 낙원악기상가, 낙원떡집, 유진식당, 피맛골 등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건물과 랜드마크가 즐비하다. 마치 ‘미래유산 종합선물세트’ 같다. 부모와 참가한 백은솔(9)·은채(7) 자매는 이문설농탕 벽면에 붙어 있는 서울미래유산 동판 앞에서 현수막을 들고 인증 사진을 찍었다. 자매는 “답사가 약간 힘들지만 견딜 만해요”라며 의젓한 모습을 보였다. 섭씨 30도를 웃도는 더운 날이라 어린이들에게는 다소 버거울 수 있었는데, 이들 자매는 양볼이 발갛게 달아 올랐지만, 군소리 한마디 없이 동대문까지 완주했다. 이인선(52)씨는 “과거의 길을 오늘 걸으며 미래를 생각해 본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체험”이라고 말했다. 앞서 가던 박 해설사가 태화빌딩 앞에 멈춰 섰다. ‘서울 3대 요정’ 중 하나인 명월관 별관 태화관 자리다. 태화관 전엔 매국노 이완용이 살았고, 매국 친일파들이 을사늑약, 경술국치 등을 모의했던 장소다. 1919년에는 민족 대표 33인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자리다. 그 직후 총감부에 직접 전화를 걸어 자수를 한 탓에 3·1 운동은 구심점을 잃고 실패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태화관 건물은 매국과 독립, 진정성과 모호성이 뒤섞인 역사의 아이러니를 품은 장소다. 태화빌딩 옆 건물인 하나로빌딩에도 깜짝 놀랄 만한 미래유산이 숨어 있었다. ‘서울 중심점 표지석’이다. 1층 로비 한쪽에 사방 유리벽으로 둘러싸인 채 보존돼 있는 표지석에는 ‘1층 로비에 있는 네모꼴 화강석은 서울의 한복판 중심지점을 표시한 지표석으로 대한제국 건양원년(1896)에 세워진 것이다’라고 새겨져 있다. 윤정배(48)씨는 “지금껏 서울 중심점이 남산에만 있는 줄만 알았는데 종로에, 그것도 빌딩 1층 로비라니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 답사자 중에 누군가 “지난 1회차 답사 때 들렀던 도로원표가 서울 중심인 줄 알았다”며 거들었다. 박 해설사는 “이 중심석은 조선시대 서울이 확장되기 전 당시 기준점이고, 지금 사용하는 중심점은 2008년 최첨단 GPS 측량을 해 지정한 곳으로 남산정상 N타워 인근에 있다”고 설명했다. 답사단은 어느덧 익선동 한옥마을로 접어들었다. 100년 전인 1920년 당시만 해도 생소했을 법한, 도시형 한옥집단지구로 형성된 한옥촌이다. 지금은 카페와 술집, 레스토랑 등이 들어선 서울의 명소다. 익선동 골목 끝은 밤이면 불야성을 이루고, 고기 누린내로 진동하는 갈매기살 구이집이 즐비하다. 고깃집 담벼락에는 ‘조루증을 치료하고 회춘시켜 준다’는 한약방 광고지가 세월의 때를 묻힌 채 붙어 있다. 익선동 골목에는 과거가 현재와 공존하고 있다. 종묘 앞을 지나면서 남산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멀리 세운상가가 보인다. 1960년대 획기적 도시개발의 표본이자 근대 건축 1세대 김수근의 작품이다. 시대를 너무 앞서 나가서 실패한 도시계획의 표본으로 지적되기도 한다. 답사가 막바지에 이르렀다. 섭씨 33도 한증막 같은 날씨 속에 강행군한 답사팀은 어느덧 서울미래유산인 한국기독교회관을 지나 동대문으로 향하고 있었다. 한국기독교회관은 1969년 준공돼 1974년 민청학련사건 인사 석방 운동 전개, 1978년 동일방직 노조원 생존권 보장 농성, 1980년 5월 서강대생 김의기 투신 자살 등 민주화 운동 성지로 손꼽히고 있다. 종로꽃시장에서 길이 좁고 복잡해 답사팀은 두 패로 갈렸지만 다시 만났다. 박 해설사는 한양도성박물관 앞에서 동대문을 바라보면서 폭염 속 2시간 30분 동안의 답사를 폭염만큼 뜨거운 박수로 마무리했다. “점심은 장가네 보리밥집 가요.” 글 사진 유성호 ‘문화지평’ 대표
  • 외할머니 찾으려… 9년간 전국 뒤진 미국인 손자

    외할머니 찾으려… 9년간 전국 뒤진 미국인 손자

    한 한국계 미국인이 10년 가까이 자신의 뿌리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해 관심을 모은다. 주인공은 시카고에서 통역사로 일하는 로버트 홀로웨이(한국명 심철수·27). 어머니인 캐시 홀로웨이(심은주·52)가 평생 보고 싶어 하는 친정 엄마이자 자신의 외할머니인 심희선(82) 여사를 찾으려 2008년부터 전국 방방곡곡을 수소문하고 있다. 8일 대한사회복지회에 따르면 6·25전쟁 당시 중학생이던 심희선 할머니는 북한군에게 부모를 잃자 동생들의 생계를 위해 의정부 미군부대에서 일했고, 1963년쯤 주한미군이던 외할아버지(신원 미상)를 만났다. 그는 심 할머니가 임신을 하자 결혼 준비를 위해 한국과 미국을 오가다 64년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홀로 아이를 낳아 키우기 벅찼던 심 할머니는 결국 66년 대한양연회(현 대한사회복지회)를 통해 갓 돌을 지난 딸 은주씨를 미국에 입양보냈다. 철수씨는 어려서부터 어머니에게서 “나는 한국사람이니 너도 한국을 잘 알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끊임없이 들었다고. 그래서인지 늘 한국어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고 2007년 고교 졸업 뒤 하와이대 한국어학과에 진학했다. 그는 “지금처럼 한국어 통번역 회사를 운영하며 살게 된 것은 어머니 영향이 컸다”고 말했다. 철수씨가 외할머니를 찾아 나선 건 대학에 입학한 다음해부터. 한국을 방문해 대한사회복지회에서 어머니에 대한 신상자료를 받아 틈나는 대로 할머니가 살던 의정부를 중심으로 전국 곳곳을 찾고 있다. 그는 “한국에서 많은 분들이 도와주고 응원해줘 깊은 감동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철수씨는 딸 자마라에게 최근 한국식 돌잔치도 치러줬다. 그에게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각인시켜 주고 싶었단다. 그는 “할머니가 아니었으면 지금 이 자리까지 올 수 없었을 것”이라면서 “꼭 할머니를 찾아 (한국어를 못 하는) 엄마와 원 없이 대화할 수 있게 통역하고 싶다”고 전했다. 시카고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건축가 황두진의 무지개떡 건축을 찾아서] 고갯마루 정감 품은 벽돌 외벽…고급진 연희동 닮은 연보랏빛…골목길 동선에 맞춘 지그재그

    [건축가 황두진의 무지개떡 건축을 찾아서] 고갯마루 정감 품은 벽돌 외벽…고급진 연희동 닮은 연보랏빛…골목길 동선에 맞춘 지그재그

    한국 아파트 역사를 이해하는 여러 관점 중 하나는 거리형과 단지형 간의 대립과 복합이라는 구도다. 이것은 아파트라는 공동 주거가 주변 지역, 특히 거리와 어떠한 관계를 맺고 있는가에 대한 관심을 배경으로 한다. 상가 아파트는 거리형 아파트의 자연스러운 결론이다. 길에 면한 건물의 저층에 주거 보다는 상가를 넣는 것이 더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반면 상대적으로 저층부 거주 환경이 더 좋은 단지형에서 상가 부분을 어떻게 처리하느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다. 대부분 상가동을 따로 두는 방식으로 해결하지만 예외가 있다. 즉 거리형과 단지형이 복합된 경우다. 대표적으로는 이미 소개했던 반포 주공 1단지(1974)나 앞으로 소개할 동부 이촌동 한양맨션(1971) 등이 그렇다. 둘 다 대규모 단지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런데 이들보다 훨씬 규모가 작은 단지에서 유사한 사례들이 발견된다. 고은 아파트, 연화 아파트, 그리고 홍파 아파트가 바로 그런 경우다. # 모래내로 고개에 이름도 예쁜 고은 아파트 무악재를 따라 놓인 통일로는 홍제동을 둘로 나눈다. 지난번에 소개한 유진 상가, 원일 아파트, 안산 맨숀은 모두 통일로 북동쪽, 즉 인왕산 쪽의 홍제동에 있다. ‘고은 아파트’가 있는 곳은 통일로 너머 반대쪽, 즉 안산 쪽 홍제동이다. 지하철 3호선 홍제역과 무악재역 사이에 있는 삼거리에서 시작되는 모래내로에서 답사가 시작된다. 안산 중턱을 가파르게 경사져 오르다가 다시 홍제천 방향으로 내려가기 시작하는 그 고갯마루에 이름도 예쁜 고은 아파트가 있다. 외벽이 벽돌로 된 정감 있는 건물이다. 1975년 6월 17일에 사용승인을 받았고 2개 동 139가구의 오붓한 단지형 아파트다. 서로 마주 보고 있는 가동과 나동의 2개 동 중 상가가 있는 것은 가동이다. 전면 도로를 따라 건물이 ‘ㄴ자’로 꺾여 있는데 그 부분에 상가가 있다. 상가 비율이 높은 것은 아니지만 세탁소, 실버용품 상점, 염색 전문점, 신발 가게, 전자제품 상점 등 일상적인 삶을 위한 가게들이다. 마침 그 앞은 버스 정류장이다. 아파트단지 주민뿐 아니라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도 쉽게 상가를 이용할 수 있는 상황인 것이다. 인접한 광산 아파트가 역시 소규모 단지형 아파트이면서도 가로에 일체의 상가가 없는 것과는 대조된다. 벽에는 ‘고은 아파트’라고, 관리실에는 ‘고은 맨숀’이라고 씌어 있어서 이 당시 두 단어가 서로 약간의 긴장감을 이루며 함께 사용되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참고로 이 일대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거의 예외 없이 모래내로라는 정식 도로명 대신에 화장터길이라는 이름을 사용한다. 찾아보니 고은 아파트 고갯마루 바로 아래에 홍제동 화장장이 있었다. 일제 강점기인 1930년에 세워졌으나 점차 이 지역이 개발되면서 1970년 9월 1일 경기도 벽제로 이전한 ‘시립장제장’이 바로 그것이다. 화장장이 있던 시절에는 인근 안산의 나뭇잎에서 그을음이 묻어났었다고 하니 인근에 공동 주거가 들어서는 것은 생각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고은 아파트가 들어선 것은 1975년으로 이미 화장터가 옮겨간 지 몇 년이 지난 후였다. 새로운 지역에 일어나는 변화 뒤에는 항상 이렇게 사연이 있다. # 네 그루의 가로수가 리듬 맞춘 연화아파트 상가아파트에 대한 글을 쓴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종종 이런저런 제보를 받는다. ‘연화 아파트’도 그런 경우였다. ‘1970년대 지어졌고 이전에는 고급이었던 상가아파트가 연희 삼거리 근처에 있다’는 것이었다. 앞에서 이야기한 고은 아파트에서 모래내로를 타고 오면 자동차로는 5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 곳이다. 연희동의 중심을 종횡으로 가로지르는 길이 연희로와 증가로인데 이 두 길이 교차하는 지점이 바로 연희 삼거리다. 연화 아파트가 이 삼거리 북쪽 증가로 변에 들어선 것은 1975년 12월 6일이었다. 안산 너머의 고은 아파트가 지어지고 난 지 약 반년 후의 일이었다. 연희동은 원래 조선 시대 이궁의 하나였던 연희궁이 있던 곳이다. 구체적으로는 현재의 연가구학교 자리로 전해진다. 궁은 사라졌지만 그 존재는 거기서 다소 떨어진 궁동산(宮洞山)이라는 이름에 아직 남아 있다. 인천상륙작전 이후 서울을 수복하는 과정에서 치른 저 유명한 연희 104고지 전투가 벌어진 바로 그 산이다. 연가구학교 신촌 캠퍼스가 있어 이전부터 학생 인구가 많았고 또한 한국한성 화교중학교의 존재로 짐작할 수 있듯이 화교 인구도 상당하다. 정치인이나 고위 공무원, 교수, 외국인 등을 위한 고급 주택지가 많은 것도 연희동의 큰 특징이다. 결과적으로 서울 도심에서 그리 멀지 않으면서 약간의 이국적 분위기가 감도는 고급 동네, 이것이 연희동의 일반적인 이미지다. 그러면서 상업과 주거가 적절하게 공존하고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맛집 거리, 사러가 쇼핑 등의 존재가 이를 입증한다. 연화 아파트는 이러한 연희동의 다소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한껏 의식하고 자리잡은 것 같은 모습이다. 비록 세월의 무게가 다소 내려앉았지만 기본적인 성격은 변하지 않았다. 가로의 스케일을 전혀 거스르지 않는 적절한 높이와 폭, 보행자의 접근을 최대로 배려한 1층 상가, 정갈하고 차분한 외관. 특히 일반적으로 건물에서 잘 사용되지 않는 저 연보라색이 주는 독특한 느낌까지. 한마디로 참 깔끔한 아파트가 아닐 수 없다. 의도인지 모르지만 증가로변 정면의 가로수 네 그루는 마치 건물과 함께 리듬을 맞추는 것 같다. 정면에서 보면 그냥 단독 건물처럼 보이지만 연화 아파트도 엄연히 배치상으로는 단지형이다. 다만 한 동이 ‘ㄱ자’로 구부러지면서 마당을 품고 있는 형태다. 마당은 주차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현대자동차의 포니 1이 출시되면서 본격적인 마이카 시대가 열린 것이 바로 다음해 초인 1976년 1월 26일인 것을 감안하면 상당히 의미심장한 계획을 한 셈이다. 총 38가구의 매우 아담한 연화 아파트는 지상 5층, 지하 1층 건물이다. 현재 가로에 면한 지하실은 미용실로 사용되고 있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에는 방공대피시설 안내판이 아직 붙어 있다. 평수 16평, 수용인원 96명, 심지어 관리 책임자의 이름도 보인다. 이런 안보 관련 시설들을 둔감한 시선으로 보는 경우도 많으나, 육영수 여사 저격 사건, 남침 땅굴 발견,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들이 이 무렵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던 것을 감안하면 이런 시설의 필요성은 당시로서는 현실이었다. 민간의 공동 주거 또한 예외는 아니었던 것이다. # 태권도장? 주차장? 홍파아파트 지하 정체는 이 연재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거리형 상가아파트는 특정 지역 몇 군데에 몰려 있다. 충정로를 포함한 서대문 일대가 그렇고 홍제동이 또한 그렇다. 나중에 소개할 용산 지역 또한 예외가 아니다. 물론 사대문 안에도 여러 개가 존재한다. 반면 이 패턴에 잘 맞지 않는 경우도 있다. 동대문에서 한참을 더 간 제기동 길가에 홀로 우뚝 서 있는 ‘홍파 아파트’가 그런 경우다. 일반적으로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아파트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꽤 유명하다. 제기로를 따라 고려대 쪽에서 접근하면서 보면 홍파 아파트의 특징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정면이 강조된 디자인이지만 한쪽 면이 좀처럼 보기 드문 ‘지그재그’ 형이다. 꺾이는 곳마다 창문이 있는 것으로 보아 조형과 실내 공간 계획을 정확히 일치시켰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한 이유는 건물 주변을 돌아보면 쉽게 알 수 있다. 홍파 아파트의 정면은 제기로라는 넓은 도로지만 그 측면은 좁은 골목길이다. 서쪽 골목길은 제기로 13길로 불리는데 이 길은 45도 방향으로 비스듬히 나 있다. 이 골목길에 아파트의 배치를 맞추다 보니 지그재그형의 특이한 조형이 나온 것이다. 그것이 뭐 그리 대단한 일인가라고 질문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아파트가 주변 지역, 특히 좁은 도로와의 관계를 이렇게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자기 몸을 만드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정면뿐 아니라 골목길에도 1층에 상가를 넣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 보지만 아마도 좁은 골목길에는 상권이 형성되기 어렵다고 생각했던 듯하다. 그래서 담장을 쳐서 골목과 단절해 놓은 것은 다소 아쉽다. 다만 저층 단독주택과 아파트가 골목길을 따라 나름 연속성을 유지하면서 놓여 있는 모습은 지금 봐도 인상적이다. 주 출입구는 오른쪽 골목으로 형성된 마당 겸 주차장 쪽으로 나 있다. 즉 상가와 주거의 입구는 철저하게 분리되어 있다. 가능하다면 이것이 가장 좋은 해결 방법이지만, 정면에만 도로가 있는 경우는 불가능하다. 홍파 아파트는 대지의 깊이 덕분에 뒤에 마당을 만들 수 있어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정면에서 바라본 홍파 아파트는 폭 대 높이의 비가 거의 1대1로 상당히 홀쭉한 비례다. 그 덕분에 실제보다 높아 보이는 효과가 있다. 제기로 남쪽 일대는 홍파초등학교, 경동시장 등 기본적으로 낮은 건물들이 있는 지역이기 때문에 6층이라는 그리 높지 않은 건물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지역의 망루 같은 존재감을 갖는다. 입면을 보면 창호와 벽체 그리고 발코니가 이루는 독특한 리듬감이 있다. 6개 모듈로 좌우 대칭 구성을 했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은 점도 재미있다. 내부 평형과 측면 가구의 구성을 위한 고민의 결과다. 홍파 아파트는 지하 1층, 지상 6층이다. 48가구가 입주해 있으니 작은 규모의 아파트다. 특이한 것은 지하층의 용도다. 겉보기에는 주차장이고 실제로 차량이 들고 날 수 있는 램프가 두 군데나 있지만 건축물관리대장 상에는 주민운동시설인 태권도장으로 되어 있다. 공부상의 용도와 실제 용도가 일치하지 않는 경우는 흔하지만 홍파 아파트의 경우 이미 건립 당시부터 지하층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흥미롭다. 더구나 이 아파트의 사용승인일이 1971년 10월 7일로 앞서 소개한 고은 아파트나 연화 아파트보다도 시기적으로 몇 년 앞선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지하 공간은 만들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한번 만들어 놓으면 시대에 따라 다양한 용도로 사용될 수 있는데 홍파 아파트도 그런 경우의 하나인 것이다. 홍파 아파트는 장흥식이라는 사람이 지은 것이라고 한다. 회사가 아닌 개인의 이름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거대 자본이 아닌 개인 자본으로 지어진 건물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이 당시 아파트들의 규모가 지금보다 작고 각자의 개성이 살아 있는 것은 동원된 자본의 규모와 성격과도 관계가 깊다. 일부러 다양한 디자인을 만든 것이 아니라 상황 자체에 다양성이 있었던 것이다. 거대 자본에 의한 거대 단지로 공동 주거를 공급해 온 그간의 상황을 돌아볼 때가 되었다.
  • 역사학 전공… 일왕처럼 평화주의자, 전쟁 범죄 등 과거사 메시지에 주목

    역사학 전공… 일왕처럼 평화주의자, 전쟁 범죄 등 과거사 메시지에 주목

    올해로 재위 28년째인 아키히토 일왕이 생전에 퇴위하면 후계는 왕위 계승 서열 1위인 장남 나루히토(56) 왕세자에게 돌아가게 된다. 나루히토 왕세자는 개혁적이고 소탈한 데다 부왕 아키히토처럼 평화주의에 대한 강한 신념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미 아키히토 일왕을 대신해 왕실 업무도 상당 부분을 맡아 왔고, 외교 업무 등에도 경험이 많다. 아키히토 일왕의 재임 3년째인 1991년 2월 만 31세가 된 날에 왕세자로 책봉됐다. 그러나 그에 앞서 할아버지인 쇼와 일왕의 재위 62년 되는 1987년부터 지금까지 22회에 걸쳐 일왕의 위임을 받는 국사를 대행했다. 지난 1월 28일에는 아키히토 일왕을 대신해 처음으로 각료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는 인증식을 갖기도 했다. 그는 왕족 및 귀족들이 다니는 가쿠슈인대에서 역사학(유통사)을 전공했다. 지금까지 왕족들이 생물학 등 자연과학을 전공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1992년부터 가쿠슈인대 사료관 객원 연구원으로서 일본 중세사를 연구해 오고 있다. 유엔 ‘물과 위생에 관한 자문위원회’ 명예 총재로서도 활동했다. 일본 왕족이 유엔 등 상설 국제기관의 직책에 오른 것은 처음이다. 왕위 계승 순서는 나루히토 왕세자, 나루히토 왕세자의 동생인 아키시노 노미야(후미히토·51) 왕자, 아키시노 노미야 왕자의 아들인 히사히토(10) 순이다. 나루히토 왕세자는 지난해 2월 태평양전쟁 종전 70주년에 즈음해 “전쟁의 참혹함을 두 번 다시 반복하는 일이 없도록 과거의 역사를 깊이 인식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마음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내기도 했다. 그가 일왕이 된 뒤 ‘일본의 상징’으로서 전쟁 범죄 및 식민지배 등 과거사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하고 어떤 메시지를 전할지는 관심사 가운데 하나다. 도쿄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 젊어서 술~술~하다가… 50대 넘으면 肝 때문에 운다

    젊어서 술~술~하다가… 50대 넘으면 肝 때문에 운다

    우리나라 알코올성 간질환자 10명 가운데 3명은 50대 환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사회 활동이 가장 활발한 40대부터 10년 이상 과다한 음주를 해 결국 50대 이후 알코올성 간질환이 발생한 것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지난해 알코올성 간질환으로 병원 진료를 받은 환자 수를 분석한 결과 50대가 4만 2012명으로 전체 33.0%를 차지했고 60대 이상이 3만 9894명(31.4%)으로 뒤를 이었다고 7일 밝혔다. 50대 이상이 전체 알코올성 간질환자의 64.4%를 차지한다. 인구 10만명당 알코올성 간질환자 역시 50대가 516명으로 가장 많았으며, 60대 이상 442명, 40대 324명, 30대 167명 순으로 나타났다. 이천균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정신적·사회적 스트레스를 가장 많이 받는 40대 때부터 과음해 50대에 이르면 알코올성 간질환 등의 신체적 장애가 발생하고, 금주 등의 적절한 조절이 필요한데도 음주를 지속해 60대 이후에도 여전히 환자가 많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대상을 남성으로 좁히면 50대 환자는 더 많아진다. 인구 10만명 당 50대 남성 알코올성 간질환자는 900명으로 같은 연령대 여성 141명의 6.87배다. 60대 이상 남성환자는 896명, 40대 이상은 535명이다. 알코올성 간질환자는 전 연령대에서 여성환자보다 남성 환자가 6배 이상 많고 연령이 높아질수록 남녀 간 격차가 증가한다. 지난해 기준 알코올성 간질환으로 진료받은 환자는 남성 11만명, 여성 1만 7000명이다. 증상의 정도도 심해 지난해 알코올성 간질환으로 입원한 환자는 2010년보다 45.0% 증가했다. 알코올성 간질환의 원인은 ‘과도한 음주’인데, 이 기준은 유전적 차이, 남녀 성별에 따라 개인마다 다르다. 성인 남성은 통상 매일 소주 240~480㎖를 마실 경우를 과도한 음주로 친다. 소주 1병 용량은 360㎖다. 여성은 이보다 적은 소주 120㎖를 매일 마셔도 알코올성 간질환이 발생할 가능성이 커진다. 알코올 분해 효소가 남성보다 적어 알코올 대사가 떨어지기 때문에 적은 술에도 빨리 취하고 몸에도 더 큰 영향을 준다. 알코올성 간질환은 증상이 없어 대개 건강검진 중 초음파 검사나 혈액검사를 통해 뒤늦게 확인하는 경우가 많다. 치료 시기를 놓쳐 알코올성 간질환이 간부전으로 악화하면 간비대, 복수, 간성혼수, 위식도 출혈과 같은 증상이 나타나고 결국 목숨까지 위협받을 수 있다. 알코올성 간질환 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금주다. 금주 이외에 효과적인 방법은 없다. 알코올성 지방간은 대부분 음주를 중단하면 4~6주 내에 정상으로 돌아온다. 알코올성 간염도 음주를 중단하거나 적게 마시면 생존율이 상승한다. 하지만 음주로 알코올성 간염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면 간경변증으로 진행돼 회복이 어렵다. 영양상태가 좋지 않으면 음주로 인한 간 손상이 더 심해지므로 영양 관리도 중요하다. 만성 음주력이 있는 환자는 세균, 곰팡이,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이 떨어져 각종 감염성 질환을 앓을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하며, 심한 알코올성 간염 환자는 근육 위축이 발생할 수 있어 간단한 운동으로 근육을 단련할 필요가 있다. 세계보건기구에서 권고하는 적당한 음주량은 소주를 기준으로 남성 하루 5잔(소주잔) 이내(40g), 여성 하루 2.5잔 이내다. 맥주는 맥주잔(250㎖)으로 남성 4잔 이내, 여성 2잔 이내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사설] 추경 정치현안 연계, 협치 부합하나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정의당이 정부가 국회에 제출안 추가경정예산안의 처리와 조선·해운 구조조정과 관련한 청와대 서별관회의 청문회를 사실상 연계하기로 했다. 야 3당은 서별관회의 청문회를 기획재정위원회와 정무위원회에서 각각 이틀 동안 여는 것을 전제로 추경안을 처리하기로 합의했다는 것이다. 국회에 검찰개혁위원회와 사드 대책특별위원회를 구성하는 방안을 우선 추진한다는 데도 의견을 모았다. ‘국정 발목 잡기’라는 정부·여당의 비난이 아니더라도 앞뒤가 크게 뒤바뀐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침체된 민생 경제의 활력 회복을 위한 과감하고 신속한 추경의 필요성을 먼저 제기한 것은 야당이다. 그런데 막상 추경안이 제출되자 다른 정치 현안의 처리를 반대급부로 내세우고 있는 것은 심각한 자가당착이다. 우리 경제는 지금 청년 일자리 확충이 기대보다 더딘 상황에서 조선업 구조조정의 여파로 고용 여건은 더욱 악화되는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따라서 어느 때보다 서민 고통을 덜어주는 데 초점을 맞춘 추경은 신속히 집행돼야 효력을 발휘한다. 정부·여당은 추경안이 12일쯤 본회의를 통과한다면 ‘골든타임’은 놓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 추경안을 받아든 야 3당은 정부 여당의 다급함을 정치 현안 관철에 철저히 활용하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더구나 야 3당 원내대표가 그제 만나 사실상 추경안 처리의 전제로 내세운 것은 앞선 요구에 그치지 않는다. 세 사람은 내년 이후 예산 편성에서 누리과정 대책과 세월호 특조위 활동 연장을 위한 원포인트 국회, 민노총 시위 과정의 경찰 폭력 청문회, 어버이연합 불법 지원 청문회 등 8개항에도 합의했다고 한다. 추경안을 처리할 의지가 조금이라도 있는지 묻고 싶다. 야 3당 원내대표는 추경안과 정치 현안의 연계에 합의하고는 환히 웃으며 손을 맞잡았다. 하지만 추경안 처리가 미뤄진다면 돈만 쏟아붓고도 서민 경제 활력 회복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때는 결코 웃을 수 없다는 것을 야당도 모르지 않을 것이다.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11조 원 규모의 추경안은 민생 경제의 활력을 한꺼번에 일으켜 세우기에는 부족하다는 것이 경제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그럴수록 실기(失期)하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여야는 제20대 국회 개막을 즈음해 한결같이 외쳤던 ‘협치의 정신’을 되새겨야 할 것이다. 야 3당은 적어도 추경안만큼은 볼모로 삼지 말아야 한다. 새누리당도 줄 것은 준다는 자세를 갖지 않으면 안 된다.
  • 강만수 압력에… 남상태, 100억대 부당투자 지시

    강만수 압력에… 남상태, 100억대 부당투자 지시

    강만수(71) 전 산업은행장이 대우조선해양을 압박해 지인·종친 운영 회사에 총 100억원대 부당 투자를 지시한 정황을 검찰이 포착했다. 4일 검찰 부패범죄특별수사단(단장 김기동 검사장)에 따르면 강 전 행장은 남상태(66·구속기소) 전 대우조선해양 사장이 재임하던 시절, 자신의 지인이 운영하는 전남 고흥의 바이오업체 B사에 총 54억원을 투자하도록 압력을 행사한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남 전 사장과 대우조선 임직원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이 같은 진술을 확보, B사 대표 등 관계자들을 불러 조사 중이다. 대우조선과 자회사 부산국제물류(BIDC)는 2011년 9월과 11월에 4억 9999만 8000원씩을 B사에 지분 투자했다. 이사회의 승인을 거치지 않아도 되도록 5억원을 넘지 않게 쪼개 투자한 것이다. 다음해 2월엔 B사의 ‘해조류를 이용한 바이오에탄올 생산 기술개발’ 연구 사업에 50억원 지원을 결정했다. 2013년까지 44억원을 지원하고 강 전 행장 퇴임 후 끊겼다. 당시 대우조선 실무진들은 B사에 대한 투자를 강력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종이 무관한 데다 기술력과 사업성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강 전 행장은 남 전 사장에게 여러 차례 압력을 가하고 비서실 등을 통해 계속 지원 상황을 확인한 것으로 나타났다. B사의 연구는 제대로 된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 관계자는 “우뭇가사리에서 에탄올을 대량 추출해 원료로 쓰겠다는 것이었는데, 해조류에서 에탄올이 나오긴 하지만 선진국에서도 상용화에 성공한 데가 없다”면서 “당시 대우조선 내 과학기술팀은 검토 결과 개발이 어렵다고 했고 남 전 사장도 보고를 받았지만 그대로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강 전 행장은 자신의 종친이 운영하는 대구 수성구의 소규모 건설업체 W사에 대해서도 대우조선해양과 대우조선해양건설을 통해 50억원이 넘는 일감을 몰아준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B사와 함께 W사에 대한 수사도 병행하며 각 회사로 흘러간 자금의 용처를 집중 분석 중이다. 한편 검찰은 이날 남 전 사장의 최측근 중 한 명인 이창하(60·구속) 디에스온 대표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횡령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이 대표는 남 전 사장 재직 당시 오만 선상호텔 사업, 서울 당산동 빌딩사업 등 과정에서 대우조선에 177억여원의 손해를 끼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이 대표가 남 전 사장에게 부정청탁 명목으로 7억~8억원 상당의 금품을 공여한 혐의에 대해서도 추가 기소를 검토 중이다. 최지숙 기자 truth173@seoul.co.kr
  • [월요 정책마당] 한반도 평화통일의 길/김형석 통일부 차관

    [월요 정책마당] 한반도 평화통일의 길/김형석 통일부 차관

    한반도 평화통일은 국가적 책무이자 국민적 소망이다. 평화통일은 핵과 전쟁의 공포가 없고, 남북 주민 모두가 자유와 인권, 번영을 누리는 새로운 한반도를 만드는 길이다. 정부는 한반도 평화통일을 궁극적 목표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일관되게 추진하며 남북 간 신뢰를 형성하고 평화를 정착하며 통일기반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러나 북한은 핵개발을 고집하고 북한 주민들의 자유와 인권을 억압하면서 평화를 깨뜨리고 남북 관계를 불신과 대결에서 신뢰와 협력으로 바꾸려는 우리의 노력에 역행하고 있다. 북한은 지난 1월 6일 4차 핵실험을 감행한 데 이어 올해만 벌써 12차례의 탄도미사일을 발사해 한반도에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 ‘초강경 대응’, ‘무자비한 불벼락’ 등 거친 언사로 우리를 위협하고 있기도 하다. 이와 동시에 8·15를 계기로 ‘전민족적 통일대회합’을 개최하자고 제안하고 우리 정부, 국회, 정당, 민간단체 주요 관계자 수백명을 대상으로 이메일 공개편지를 발송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겉으로는 평화를 이야기하면서 안으로는 도발을 준비하고 대화를 하는 척하면서 군사적 긴장을 높이는 것은 북한의 전형적인 수법이다. 북한은 1948년 ‘남북 조선 정당·사회단체 대표자 연석회의’를 처음 제안한 이래 주변 정세가 북한에 불리하다고 생각될 때면 그때그때 명칭을 바꿔 가며 ‘연석회의’, ‘민족대회합’, ‘통일대회합’ 등을 개최하자고 제의해 왔다. 이러한 연석회의 등의 단골 의제는 연방제 통일, 한·미 군사훈련 중단, 국가보안법 폐지 등이다. 연석회의 등이 남북 관계 개선을 진지하게 논의하는 자리가 아니라 북한의 일방적인 체제선전의 장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 주는 대목이다. 북한이 오는 8·15를 즈음해서 개최하자고 주장하는 통일대회합도 예외가 아니다. 더욱이 북한은 6월 9일 통일대회합 개최를 제안하고 6월 22일 무수단미사일, 7월 9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7월 19일 스커드·노동 미사일 등을 연이어 발사했다. 다음날 노동신문을 통해 ‘전략군 화력타격계획’이라는 지도를 보란 듯이 공개하면서 북한 탄도미사일의 타격 목표가 우리라는 것을 명백하게 보여 주기도 했다. 우리를 겨냥한 미사일을 발사하면서 대화와 교류를 하자고 제의하는 것이다. 이러한 대화가 한반도의 평화와 남북 관계 개선에 기여할 것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지금 남북 간 대화와 교류가 중단되고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이 고조된 근본적 원인은 바로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과 거듭된 도발에 있다. 이제 북한의 핵개발로 인한 한반도 안보 위기를 근원적으로 해결하고 지난 70여년간 반복된 도발·타협·도발의 악순환을 끊어야 할 때다. 정부는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변화를 선택할 때까지 강력한 대북 제재·압박을 지속해 나갈 것이다. 남북 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 그리고 통일을 위해 무엇보다 시급한 것이 바로 북한의 비핵화와 변화이기 때문이다. 북한이 핵개발을 고집하는 한, 북한 주민의 자유와 인권에 대한 탄압을 중단하지 않는 한, 우리가 꿈꾸는 한반도 통일의 비전은 실현될 수 없다. 지금 우리가 확고한 안보태세를 유지하면서 유엔 및 우리의 대북 제재를 철저하게 이행해 북한이 핵을 포기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것이야말로 남북 관계 발전과 한반도 평화를 만드는 길이다. 북한이 즐겨 사용해 온 화전양면 전술은 우리가 방심하거나, 남남 갈등으로 국론이 분열되어 있을 때 성공한다. 우리가 이번에는 반드시 북한의 비핵화와 변화를 이뤄 한반도 평화통일의 토대를 마련하겠다는 확고한 의지로 단합된 대응을 한다면 북한은 결코 우리를 흔들 수 없다. 이제 북한의 낡은 수법이 우리 사회에 더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줄 때다.
  • [데스크 시각] 우 수석, 진 검사장 비리 의혹과 ‘공수처’ 신설/문소영 사회2부장

    [데스크 시각] 우 수석, 진 검사장 비리 의혹과 ‘공수처’ 신설/문소영 사회2부장

    ‘입만 열면 거짓말인가?’ 하는 의혹이 생긴다.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말이다. 우 수석은 지난 18일 한 언론에서 2011년 3월 18일 넥슨과 처가의 1300억원대 부동산 거래 비리 의혹을 제기하자 “처가 소유의 부동산 매매에 전혀 관여한 바가 없다”고 부인했다. 또 관련한 보도를 한 언론사를 명예훼손죄로 고소했다. 사실 이러면 평범한 ‘개돼지’들은 멍청하게도 ‘우 민정수석이 음해를 당했군’ 하고 착각한다. 그러나 그 거짓말이 화근이었다. 우 수석에 대한 각종 의혹이 봇물 터지듯이 쏟아지고 있다. 처가와 넥슨의 부동산 거래 의혹은 가짓수도 내용도 풍부하다. 특히 ‘관여한 바 없다’던 넥슨과 처가의 부동산 거래 현장에 우 민정수석이 있었다는 추가 보도가 하이라이트다. 이어 추가된 의혹들은 넥슨으로부터 ‘슨넥’이란 이름으로 송금받은 4억 2000여만원으로 주식을 사서 120억원대의 대박을 친 진경준 검사장의 인사검증 부실 의혹, 전관예우로 얼마의 돈을 벌었는지도 가늠이 되지 않는 오피스텔만 123채인 홍만표 변호사와 ‘몰래 변론’한 의혹, 의무경찰인 아들을 꽃보직으로 이동시키는 등의 권력남용 의혹 등이다. 참으로 버라이어티하다. 일이 이 지경이 되자 우 민정수석이 지난 20일 청와대 출입 기자들을 불러 적극적으로 해명했다. 우선 그는 18일 해명을 뒤집었다. “살림만 하던 장모님이 불안해하며 와 달라고 해 가서 장모를 위로했다”고 했다. 평범한 집안의 사위 같다. 그러나 장모를 위로했다는 해명도 우 수석이 부동산 매매 계약이 이루어진 방에 동석했다는 추가 폭로로 또 뒤집어졌다. 게다가 2011년 3월 18일은 수십만 명의 예금자 피해가 발생한 부실 저축은행에 대한 압수수색이 진행되던 때로 우 수석은 수사의 총괄 지휘자였다. 그런 책임자가 사적 업무로 3~4시간 자리를 비운 것이다. 우 민정수석은 20살에 최연소 사시 합격자로, 엘리트 검사로, 중견 기업의 사위로 1%의 삶을 살았다. 그는 검사로 범죄자들의 작은 거짓말이 나중에 얼마나 불리하게 작용할지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우 민정수석은 이날 “정무적으로 책임질 일이 없다”며 사퇴하지 않았다. ‘개돼지’에 속한 다수는 여러 의혹이 제기된 사실만으로도 사과하고 자진 사퇴하는 일이 적지 않다. 1%의 낯 두꺼움을 생각하게 된다. 민정(民正)수석실은 고위공직자 인사 검증과 법무부·검찰을 총괄하지만, 가장 핵심적인 업무는 민심을 관리하고 책임지는 것이다. 그런데 ‘의혹 백화점’이 된 우 민정수석이 여론과 민심을 관리할 수 있을까 싶다. 우 수석은 자신이 관할하는 검찰에 자신의 수사를 맡겼다. 그런 검찰이 어떤 수사 결과를 내놓는다고 국민이 공정한 수사라고 믿을까. 검찰도 우 민정수석의 사건을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에 배당했다가 조사1부로 바꿨다. 심우정 형사1부장이 심대평 대통령 소속 지방자치발전위원회 위원장의 아들이라는 점이 고려됐다는 분석이 검찰 쪽에서 나온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포괄적 뇌물죄로 걸어 핍박했던 3인의 검사 중 2명이 응징됐다. 이제 남은 사람은 한 사람이다’라며 좋아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이런 ‘복수극’에 환호하기보다 노무현 정부 때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를 공약대로 설치했더라면 하고 반성하길 바란다. 이런 비리 의혹들이 확실히 줄어들었을 것이다. 다행히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에서 판검사와 국회의원 등을 대상으로 하는 ‘공수처’ 신설을 추진한다고 한다. 여소야대 국회를 활용해 꼭 실현해 보길 바란다. symun@seoul.co.kr
  •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전통음악연주가 김덕수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전통음악연주가 김덕수

    지난 15일 서울 사직동 언덕배기의 호젓한 곳에 자리한 광화문아트홀. 김덕수(64)는 그날 저녁 여의도에서 있을 공연을 앞두고 제자들 지도에 한창이었다. “안녕하십니까.” 무대에서 객석 쪽으로 사뿐사뿐 걸어나오며 건네는 그의 인사가 공연장을 쩌렁쩌렁 울렸다. 그가 소리에도 능하다는 사실이 비로소 생각났다. 그는 요즘 조급증이 든다고 했다. “어느덧 내년이면 교수 정년입니다. 우리 제자들을 위해 제가 뭔가를 좀더 남겨야 할텐데….” -“왜 아이를 광대로 키우려고 하세요. 그냥 보통 아이들처럼 살아가도록 해주자고요.” 1957년 가을 추석날 밤, 어머니와 아버지는 잠들어 있는 내 옆에서 대판 싸움을 벌이셨다. 할아버지의 대를 이어 남사당 예인이셨던 아버지는 자식들 중 한 명에게 ‘가업’을 물려주려 하셨고, 그 대상을 당신과 가장 닮아 있던 나로 점찍으셨다. 그 계획을 두고 아버지 편을 드는 사람은 집안에 아무도 없었지만, 그 고집을 꺾을 수 있는 사람 또한 아무도 없었다. -추석 다음날 아침, 나는 아버지 손을 잡고 대전의 집을 나서 조치원 난장으로 향했다. 남사당 공연에서 고깔 쓰고 무동 타며 꼭대기에서 재주 부리는 꼬마인 ‘새미’가 나의 첫 역할이었다. 전날 딱 2시간 연습한 게 전부였다. 다섯 살 아들이 당신 곁을 떠나 광대의 길로 떠나는 것을 어머니는 차마 바라보지 못하시다 대문을 막 나서는 순간 달려와 목도리를 정성껏 둘러주셨다. 어른이 될 때까지 모든 기억을 가져갈 수 있는 나이가 아니었지만 집을 떠나는, 좀더 정확히는 엄마를 떠나는 데 대한 두려움과 더 큰 세상 속으로 나아간다는 설렘 같은 것이 교차하며 마음이 요동쳤던 것만큼은 또렷이 머리에 남아 있다.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아홉 남매 중 여섯 번째이자 아들로는 둘째로 태어난 나는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끼와 신명을 형제들 중에 가장 뚜렷하게 물려받았다. 어머니께서 과일 등을 파는 잡화상을 하셨는데 네 살 때부터 “사과가 싸요, 싸”하는 식으로 춤을 추며 큰소리로 호객을 해서 동네에서 일찌감치 유명했다고 한다. 그래서 아버지의 동료 남사당 어른들이 “덕수를 제대로 한번 키워보자”고 말들을 많이 하셨는데, 내가 1957년 추석 직후 갑자기 조치원 난장에서 데뷔하게 된 것도 명절을 쇠러 집에 오셨던 아저씨들이 아버지 옆에서 부채질을 한 결과였다. -남사당의 일과는 고됐다. 아침에 해 뜰 때 의상을 입으면 한밤중이 돼야 일이 파했다. 하지만 나는 힘든 줄을 몰랐다. 하루 종일 장구와 상모 같은 것들을 갖고 놀았는데 그저 좋을 뿐이었다. 누구에게 레슨을 받은 것도 아니고 보고 듣고 만진 것들이 모두 내 머릿속에서 융합돼 몸으로 말로 발현이 됐다. 얼마 후 나는 가(歌),무(舞),악(樂),극(劇)에다 ‘살판’이나 ‘땅재주’로 불린 곡예까지 통달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남사당은 어떠한 곳에 얽매이지 않고 왕성하고 자유분방하게 다양한 레퍼토리를 갖고 서민과 함께 그들 속에서 애환을 달래주고 시대의식을 갖고 살아간 전문 예인 집단이다. 최고의 예인이 모여 있기 때문에 레퍼토리가 화려하고 다양했다. -어려서 내가 유명해진 직접적 계기는 일곱 살 때인 1959년 9월 동대문운동장에서 열린 전국농악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을 받으면서부터였다. 당시에는 전국 팔도 대표들이 면 단위부터 예선을 거쳐 군 대표, 도 대표가 돼서 실력을 겨뤘는데 해마다 출전을 했다. 보통은 대전이 속한 충남 대표로 출전했지만, 경기 대표로 나간 적도 있었다. 그때는 도민증이란 게 있어서 그걸로 어느 도 출신인지를 확인했는데 어느 해 우승에 목이 마른 경기도 수뇌부에서 “충남의 김덕수에게 경기도민증을 줘서 우리 팀에 합류시키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들의 삼고초려에 못 이겨 그해 경기 대표 완장을 찼다. 물론 두둑이 용돈을 벌었다. -“나도 다른 애들처럼 엄마가 싸주는 도시락 갖고 평범하게 학교 다닐 거예요.” 1965년 친구들이 다들 중학교에 들어갈 때 나는 재수를 시작했다. 지역 명문인 대전중학교에 꼭 가고 싶었다. 초등학교는 6년 동안 전체 출석 일수가 300일도 안될 정도로 다니는 둥 마는 둥 했는데, 이젠 그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아버지는 초등학생 아들이 학교 교육을 너무 못 받는 게 걱정스러워 국어책이나 산수책을 들고 나를 틈틈이 지도했지만, 그걸로 대전중 입시를 통과하기는 역부족이었다. -하지만 ‘엄마의 도시락’은 내 팔자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집에서 중학교 시험 준비를 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그해 4월 말 어느 날 저녁 아버지가 나를 부르셨다. “서울 남산에 있는 국악예술학교(현재 국립전통예술중고) 교장 선생님을 만났다. 너 입학하면 정말 잘 키워주시겠단다.” -국악예술학교 입학과 동시에 재일교포 위문과 같은 해외 공연이 시작됐다. 초등학교 때까지는 국내를 유랑했지만, 중학교 때부터는 외국을 돌았다. 학교 소속으로도 나갔고 한국민속가무악예술단이나 리틀엔젤스 소속으로도 나갔다. 그중에서도 리틀엔젤스는 지도자 겸 단원으로 들어갔다. 나이가 많았지만, 무대에서는 어린이처럼 보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당시에는 그 또래가 만져보기 어려울 만큼 큰 액수를 월급으로 받았다. 리틀엔젤스의 경우 월 300달러를 줬다. 1960년대 중반 가치로 엄청난 금액이었다. 간장 한 통이 30원이던 때였다. -해외 공연이 마냥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그 시절 한국은 다른 나라에서 보기엔 ‘전쟁의 나라’, ‘고아의 나라’였다. 공연장이라고 해서 그런 정서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그들에게 뭔가를 보여주기 위해 어린 나이에 더 이를 악물고 열심히 했다. 1968년 멕시코 올림픽에 즈음해 국립민속예술단이 결성된 후부터는 해외 공연이 더욱 늘었다. 국제 박람회나 해외 한국상품 전시회 등을 위해 일본이나 미국은 물론이고 아프리카, 중동, 중남미까지 각지를 누볐다. -“공연무대를 어떻게 만들어주면 좋겠니?” 당대의 건축가 김수근 선생님이셨다. 1970년 일본 오사카 엑스포에서 한국관의 설계를 맡은 선생님에게 나는 “실내이긴 하지만 마당 분위기로 만들어주시면 더욱 신명 나게 놀아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고, 그때부터 선생님과의 깊은 인연이 시작됐다. 나중에 내가 ‘사물놀이’라는 새로운 장르의 첫선을 보인 곳도 선생님이 만드신 소극장 ‘공간사랑’이었다. 1983년에는 미국 뉴욕 맨해튼 록펠러재단의 ‘아시아소사이어티’ 공연에서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 선생과 처음 만나 인연을 맺었다. 천경자 선생님이 1968년 카페 떼아뜨르를 열었을 때 개관 공연을 했던 것도 나였다. 그렇게 시대를 풍미했던 예술가들을 만나고 교류할 계기들을 가진 것은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나의 소중한 자산이었다. 그런 속에서 광대로서의 기질이 더욱 깊어지기도 했다. -“우리 학교의 이름으로 전통예술 공연을 해주십시오. 4년 전액 장학금을 드리겠습니다. 학과는 마음대로 선택하시면 됩니다.” 단국대의 제안을 받아들여 요업과에 71학번으로 입학했다. 전통예술 전공이 당시 단국대에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나는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을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도자기였다. 하지만 그건 내 적성이 아니었다. 그러다 2학년이 되자 학교 측과 갈등이 생겼다. “우리가 원할 때 활용하기 위해 장학금을 드리는 건데, 이렇게 학교에 붙어 있지를 않으면 의미가 없잖아요. 장학금 지급을 중단하겠습니다.” 사실 나는 대학 들어가서도 해외 공연을 다니느라 국내에 있는 날이 별로 없었다. 가뜩이나 학교 생활에 심드렁해 있던 터였는데, 학교 측 조치가 차라리 잘됐다 싶었다. -대학을 중퇴하고 이듬해 국악인 박귀희 선생님이 한국민속가무예술단 단장직을 나에게 물려주셨다. 우리 예술단 10명이 오대양 육대주를 돌며 무용, 연주, 농악 등 전통공연을 했다. 일본 도쿄, 오사카, 나고야 등지에서 2년여에 걸쳐 춘향전, 심청전 등 뮤지컬 공연도 했다. 나는 단장으로서 연출도 함께 맡았다. 우리 고전 스토리를 바탕으로 대본을 만들되 노래와 춤은 일본과 합작으로 구성했다. 우리 쪽에서는 영화배우 최은희씨와 김희갑씨 등이 공연에 참여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 전통예술에 위기가 찾아왔다. 서커스 등 다양한 외국문화와 TV 방송 프로그램, 스포츠 등이 확산되면서 과거에 비해 상품성이 크게 떨어진 것이다. 어르신 세대들이 갖은 노력을 했지만 대세를 돌이키기는 힘들었다. -이러다간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뭔가가 필요했다. 그래서 만들어낸 것이 사물놀이였다. 국악예술학교 2년 후배인 김용배(꽹과리)와 최태현(징), 이종대(북)와 뜻을 모았다. 그때까지 꽹과리, 장구, 북, 징의 4가지 필수 전통예술 타악기를 뜻하는 ‘사물악기’나 이를 다루는 사람을 뜻하는 ‘사물잽이’ 같은 말은 있었지만, ‘사물놀이’라는 명칭은 없었다. 우리 넷은 1978년 2월 공간사랑 공연장에서 웃다리 풍물가락으로 첫 연주를 했다. 미친 듯이 신명 나게 소리를 만들어냈다. 사람들의 반응은 반반으로 갈렸다. “놀랍다”라는 찬사와 “이단이다”라는 비난이 함께 쏟아졌다. 어느덧 사물놀이가 탄생한 지 곧 40주년이다. 그동안의 공연 횟수는 국내외 5500회에 이른다. -서양과 동양의 음악적 구조가 다르다. 서양이 직선적이라면 우리는 곡선적이다. 저쪽이 ‘템포’, 즉 리듬의 빠르기의 개념이라면 우리는 굿거리장단과 같은 ‘장단’의 개념이다. 그 속에 북방민족 계열의 신명과 남방민족 계열의 신명이 녹아 있다. 사물놀이는 그래서 다양한 음악과 어우러질 수 있다. 다양한 형태로 콘체르토(협주)를 했고 이를 바탕으로 세계로 빠르게 뻗어나갈 수 있었다. 서울시향과 처음으로 세종문화회관에서 오케스트라 콘체르토를 했고 그다음에 피아노, 실내악, 현악4중주, 브라스(금관) 등으로 협주 영역을 넓혔다. 재즈의 전설로 통하는 마일스 데이비스, 오넷 콜먼과도 협연했다. 세계에서 유명하다는 재즈나 로큰롤 축제에도 두루 참가했다. -요즘은 많은 시간을 전공 교재 만들기에 쏟아붓고 있다. 공연은 일회성에 그치지만 교육은 길이 남기 때문이다. 이론적인 것을 정립하는 게 지금의 나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도 연평균 70회 정도는 공연을 하고 있다. 내년은 나의 남사당패 데뷔 60년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연희과 신설 2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가장 천시받던 연희를 아름다운 신명으로 체계적으로 가르칠 수 있도록 연희과를 만들었고, 그 결과 세계로 도약할 수 있는 훌륭한 전통예술 인재 양성의 기반이 되고 있다는 데 더없는 보람을 느낀다. 김태균 경제정책부장 windsea@seoul.co.kr 윤수경 기자 yoon@seoul.co.kr ■김덕수는… 한국을 대표하는 전통음악 연주가다. ‘글로벌 광대’라고 불리는 걸 스스로 좋아한다. 다섯 살에 남사당 ‘새미’로 데뷔한 후 남사당패의 일원이 됐다. 일곱 살에 전국농악경연대회에서 ‘장구를 귀신같이 친다’는 평가를 받으며 대통령상을 받았다. 1978년 소극장 ‘공간사랑’에서 꽹과리, 징, 장구, 북만으로 구성된 전통 타악기 연주회를 갖고 이를 ‘사물놀이’라고 명명했다. 현재 사물놀이패 한울림의 예술감독과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연희과 교수로 있다. ▲1952년 대전 출생 ▲대전 신흥초, 국악예술학교(중·고교), 단국대 요업공학과 중퇴 ▲후쿠오카아시아문화상, 은관문화 훈장 ▲대표곡 ‘어우름’, ‘길’, ‘덩더쿵’ 등 ▲음반 ‘난장-뉴호라이즌’, ‘김덕수 사물놀이 결정판’, ‘풍물 데뷔 40주년 기념 앨범-미스터 장고’ 등 ▲저서 ‘사물놀이 교착본 1, 2, 3’, ‘신명으로 세상을 두드리다’ 등
  • 아관파천 현장 옛 러시아공사관 복원

    아관파천 현장 옛 러시아공사관 복원

    덕수궁 선원전 영역도 살리기로 아관파천 120주년을 맞아 사건 현장인 서울 정동 옛 러시아공사관이 원형 그대로 복원된다. 문화재청은 서울 중구청과 함께 사적 제253호인 ‘서울 구(舊) 러시아공사관’을 복원·정비하는 사업을 내년부터 2021년까지 진행한다고 20일 밝혔다. 러시아인 사바틴이 르네상스 양식으로 설계해 1890년 완공된 이 건물은 한국전쟁 때 심하게 파괴돼 16m 높이의 탑과 28㎡ 면적의 지하 밀실만 남아 있는 상태다. 아관파천은 고종이 명성황후가 시해된 이듬해인 1896년 2월 11일 경복궁을 벗어나 러시아공사관(아관·俄館)으로 거처를 옮긴 사건이다. 당시 고종은 러시아공사관에서 약 1년간 머물며 친위 기병대 설치·지방 제도와 관제 개정에 대한 안건을 반포했고, 민영환을 특명전권공사에 임명해 영국·독일·러시아로 보냈다. 또 대한제국 선포에 앞서 천자의 나라임을 알리기 위해 환구와 사직 등에 지내는 향사(享祀·제사)를 옛 역서(曆書)에 근거해 지내도록 조령을 내리기도 했다. 고종이 아관파천 때 통과했던 미국대사관 관저와 덕수궁 선원전(璿源殿) 사이의 좁은 길인 ‘고종의 길’도 내년까지 복원된다. 약 110m 길이의 이 길은 대한제국 시기에 미국공사관이 만든 지도에 ‘왕의 길’(King‘s Road)로 표시돼 있다. 앞서 미국 국무부 재외공관관리국은 지난 6월 고종의 길 설계안을 최종 승인했고, 이에 따라 문화재청은 9월부터 공사를 시작할 예정이다. 아울러 고종의 길 옆에 있는 덕수궁 선원전 영역의 복원도 본격화된다. 왕의 초상화인 어진을 봉안하던 선원전은 고종이 대한제국 황제로 즉위하기 전에 지은 건물로, 고종이 승하한 다음해인 1920년부터 일제에 의해 철거됐다. 문화재청은 선원전을 비롯해 왕과 왕후가 승하하면 시신을 모셔 두는 흥덕전, 발인 이후 신주를 보관하는 흥복전, 선원전 배후에 있는 숲인 상림원 등을 2039년까지 복원할 방침이다. 문화재청은 “덕수궁과 정동은 경복궁 못지않게 중요한 곳으로 대한제국의 역사가 깃들어 있다”며 “서구 열강에 의해 분할됐던 덕수궁을 옛 모습으로 되돌리는 작업이 시작됐다”고 평가했다. 이어 “옛 러시아공사관과 고종의 길이 복원되고, 환구단과 덕수궁 선원전 영역이 정비되면 자생적인 근대국가를 이룩하고자 했던 고종의 삶을 이해하는 좋은 자료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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