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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브라폰·퓨전 어우러진 재즈 쇼케이스

    비브라폰·퓨전 어우러진 재즈 쇼케이스

    14~15일 밤 12시 35분 EBS ‘스페이스 공감’은 특별기획 재즈 쇼케이스 1·2부를 차례로 방영한다. 자기만의 세계를 추구하는 음악인들을 많이 소개해왔던 프로그램답게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실력파 재즈뮤지션들의 무대다. 아시아 시장을 겨냥한 프로모션까지 겸하고 있기 때문에 EBS 뿐 아니라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 LIG아트홀, 월간 ‘재즈피플’이 함께 꾸민 무대로 28개팀 가운데 선발된 4개팀이 연주를 선보인다. 1부에는 ‘파스칼 슈마허 쿼텟’, ‘디에고 피게이레두 트리오’가 오른다. ‘파스칼 슈마허 쿼텟’은 벨기에, 룩셈부르크, 독일 등 다국적 출신으로 구성된 팀이다. 이들은 비브라폰이라는 특이한 악기를 쓴다. 리듬악기로 분류되는 타악기인데도 음을 낼 수 있다. 거기다 의외로 탁하지 않고 특유의 영롱한 음색을 낸다. 재즈의 초창기 시절부터 아주 드물게 쓰인 이 비브라폰이라는 악기로 작가주의적 음악을 선보이는 파스칼 슈마허 쿼텟은 이미 5장의 앨범을 발표한 경력도 가지고 있다. ‘디에고 피게이레두 트리오’는 브라질 출신 기타리스트 피게이레두가 이끄는 팀이다. 우리에겐 익숙지 않은 이름이지만 일찍부터 팻 메스니, 조지 벤슨 등으로부터 크나큰 찬사를 받은 신예 기타리스트다. 브라질의 보사노바, 브라질리언 팝에다 클래식과 재즈를 섞어넣은 독특한 퓨전 스타일의 음악을 펼쳐보인다. 정확한 운지법에서 시작해 뚜렷한 전개를 선보이는 그의 무대는 많은 기대를 낳는다. 2부에는 ‘조남열 쿼텟’과 ‘지울리아 바예 그룹’이 등장한다. ‘조남열 쿼텟’은 국제적인 팀이다. 지난해 ‘유러피언 킵 온 아이 재즈어워드’에서 1위를 차지한 인도네시아의 스리 하누라가, 네덜란드 왕립음악원에 재직 중인 야노스 브뤠넬, 벨기에의 신예 색소포니스트 다니엘 메스터, 그리고 안정적 리듬을 제공하는 한국의 조남열로 구성됐다. 지난해 네덜란드에서 우연히 만나 의기투합 끝에 결성된 이 팀은 첫 앨범 ‘스케치 오브 디 올드 월드’로 균형감 있고 수려하다는 극찬을 받아냈다. ‘지울리아 바예 그룹’은 베이시스트 지울리아 바예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팀이다. 베이스는 늘 묵직하고 규칙적이고 정확하게 음을 내는 조연으로 활동하게 마련인데, 이 팀에서는 베이스가 테마와 즉흥, 혼란과 정리를 쉼 없이 선보인다. 수많은 재즈 음악가와 재즈 매체들이 이 팀을 눈여겨보는 이유다. 베이스 외에도 색소폰, 플루트, 건반, 드럼으로 구성된 5인조 그룹이 펼칠 이번 공연이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종교플러스]

    불교음악상 신청 23일까지 접수 대한불교 조계종은 불교 음악인들을 격려하고 사기를 진작하기 위한 ‘제1회 불교음악상’ 행사를 진행한다. 지원 분야는 ▲불교음악 개발(작사·작곡·편곡)과 ▲보급(연주·가창) 등 2개 분야로, 참가 희망자는 조계종 홈페이지(www.buddhism.or.kr)에서 추천서와 공적사항 증빙서류 및 후보자 이력서 양식을 내려받아 조계종 문화부로 접수하면 된다. 접수 마감은 23일 오후 6시. 시상식은 12월 18일 오후 3시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전통문화예술공연장에서 있다. (02)2011-1779. ‘대선과 종교’ 16일 학술대회 한국종교사회학회와 한국사회역사학회는 16일 오후 1시 이화여대 사회과학대학(포스코관) 262호에서 ‘리더십 전환기의 대통령 선거와 종교’라는 주제의 학술대회를 공동으로 개최한다.
  • 거장과 신예의 앙상블 바로크 선율에 홀리다

    거장과 신예의 앙상블 바로크 선율에 홀리다

    2008년 6월. 케임브리지대학 시절부터 단짝인 바이올리니스트 앤드루 맨지와 첫 내한공연을 한 영국 고음악 연주단체 아카데미 오브 에이션트 뮤직(AAM)의 음악감독 리처드 이가(49)는 한국의 젊은 연주자들을 만나보고 싶어 했다. 2005년 크리스토퍼 호그우드의 뒤를 이어 AAM 음악감독을 맡은 그에게는 ‘고음악계의 (레너드) 번스타인’이란 별명이 따라다닌다. 번스타인(1918~1990)은 명지휘자·피아니스트로도 유명했지만, 뉴욕필하모닉 청소년음악회 시리즈 등 후학 양성과 젊은 음악인과의 교류에도 남다른 관심을 보였다. 이가 또한 그라모폰상과 미뎀어워드 등을 받을 만큼 오르간과 하프시코드(쳄발로), 포르테피아노 같은 바로크 건반악기에 능통한 연주자인 동시에 AAM의 음악감독으로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또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음악원 교수로 재직하면서 브리튼 페어스 재단·네덜란드 오페라 아카데미 등에서 정기적으로 젊은 연주자들과 교류했다. ●2008년 첫 만남부터 느낌이 통하다 2005년 10여명의 젊은 연주자들이 의기투합한 바로크 전문연주단체 ‘카메라타 안티콰 서울’과 이가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다. 독특한 팀 이름은 옛것(antiqua)을 함께 모여 연구하고 연주하는 단체(camerata)란 뜻이다. 바이올린과 비올라, 첼로, 더블베이스, 오보에, 바순, 하프시코드 연주자로 꾸려졌다. 당시 2시간쯤 이어진 마스터클래스에서 카메라타 안티콰 서울은 로카텔리의 콘체르토 그로스를 이가 앞에서 연주했다. 연주를 지켜본 이가는 무대에 올라가 음악에 대한 아이디어를 주고받고 직접 하프시코드를 연주해 보였다. 카메라타 안티콰 서울의 리더 김지영(바로크 바이올린)은 “시간 가는 줄 모르게 흥미진진한 시간이었다. 이가는 젊고 신선한 아이디어로 가득했고, 그러면서도 대가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연륜이 전해졌다. 계획하고 준비하는 것도 좋지만, 무대 위에서 놀고 즐기고 커뮤니케이션을 하면서 즉흥성을 길러내야 한다는 조언이 기억에 남는다.”고 떠올렸다. 이가 또한 “창단한 지 1년여밖에 안 되었다는 걸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갖춘 젊은 앙상블을 만나 즐거웠다. 이들에게서 젊음의 에너지와 넘치는 의욕을 느꼈다.”며 흐뭇해했다. 이 때문에 이가는 지난해 소프라노 조수미와의 공연을 위해 한국에 왔을 때에도 카메라타 안티콰 서울의 쳄발로 주자 박지영을 따로 만나 원포인트 레슨을 했다. ●바흐 하프시코드 협주곡 C장조 등 선봬 4년에 걸친 인연이 작은 결실을 본다. 바로크 음악 거장 이가와 한우물을 파는 카메라타 안티콰 서울이 오는 25일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에 함께 오른다. 1부에서는 바로크 시대 가장 중요한 협주곡 형식인 합주협주곡을 집대성한 아르칸젤로 코렐리(1653~1713)의 콘체르토 그로소 1번, 현을 튕기거나 활로 거칠게 긁는 등 전투장면을 생생하게 묘사한 하인리히 비버(1644~1704)의 바탈리아(전투) 등을 선보인다. 메인요리는 2부에서 서빙된다. 하프시코드의 은밀한 대화가 돋보이는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1685~1750)가 1739년쯤 작곡한 ‘두 대의 하프시코드를 위한 협주곡 C장조’를 이가와 박지영이 함께 들려준다. 쓸쓸한 듯한 울림의 하프시코드의 음색만큼 이 계절엔 딱맞는 악기도 드물다. 3만~7만원. (02)2005-1114.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Pan Music Festival(범음악제)’ 40주년 축제 10월28일~11월 1일

    국내 최장의 역사를 지닌 현대음악제인 “Pan Music Festival(범음악제)”가 올해 40주년을 맞이하여 서울 예술의 전당서 10월 28일부터 11월 1일까지 5일간 다채로운 음악 축제를 펼친다. 올해는 특히 Pan Music Festival이 40주년 기념으로 201’2 Pan Music Festival Ensemble’ 을 비롯하여 한국과 독일, 미국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게 있는 작곡가와 연주자를 초청하여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10월 28일(일 )첫째날에는 “Trio HAAN 초청연주회”(오후 5시, 올림푸스홀), 10월 29일(월)에는 “2012 Pan Music Festival Ensemble”(오후8시 예술의 전당 IBK쳄버홀), 10월 30일(화)에는 미국에서 활동중인 “Beaubliss Quartet 초청연주회”(오후8시,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 10월 31일(수)에는 독일의 “Ensemble SurPlus 초청연주회 I”(오후8시,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 11월 1일(목)에는 “Ensemble SurPlus 초청연주회 II”(오후8시, 예술의전당 IBK쳄버홀)가 펼쳐질 예정이다. 국제적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Pan Music Festival은 그간 전세계에서 연주되고 있는 최신의음악 정보와 동향을 국내에 소개하는 일을 비롯하여, ‘한국’의 지역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세계적보편성을 추구하는 음악언어를 창조하기 위한 다양한 경험의 장을 마련해왔다. 또한 전통과 현대가 조화를 이루는 창작음악의 가능성을 모색해왔으며, 타 예술 분야와의 융합과 교류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등 40여 년 동안 국내외 수많은 작곡가와 연주자들을 초청하여 작품을 연주하고토론하며, 현대음악의 현 주소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왔다. Pan Music Festival의 전신은 1969년 열린 ‘서울비엔날레’이다. ‘서울비엔날레’는 건국 이래 한국의 젊은 작곡가들이 세계음악의 동향에 관심을 갖고 세계의 많은 음악인들과의 교류 대열에 동참하면서 개최된 국내 최초의 현대음악 페스티발로서, Pan Music Festival은 지금까지 40여년간의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이번 Pan Music Festival 40주년 기념 공연은 한국 현대음악의 수준을 한층 제고시키는 실험의 장이 될 것으로 보인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강남스타일이 한국브랜드 높여”

    “‘강남스타일’이 한국 브랜드의 위상을 높였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9일(현지시간) 가수 싸이(본명 박재상)의 강남스타일로 정점에 올라 있는 한류 열풍이 한국 국가브랜드 향상에 크게 이바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FT의 기사는 이날 워싱턴포스트 인터넷판에도 전재됐다. FT는 지난주 서울광장에서 열린 싸이의 무료 콘서트에 8만명의 팬이 몰린 사실을 전하며 “서울시는 시청 앞 광장에서 공연하는 것을 기꺼이 허가했고, 주변의 교통을 통제했다.”면서 “이 같은 이례적인 행동은 싸이의 세계적인 성공에 대한 한국 정부의 기쁨을 반영하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이명박 정부가 출범할 때부터 국가의 ‘소프트파워’ 강화를 통해 국가브랜드 높이기에 주력해 온 만큼 “강남스타일은 대중 음악인의 국제적 성공에 정부까지 지원하는 흔치 않은 사례를 이끌어 냈다.”고 지적했다. FT는 “한국의 걸그룹들이 해외에서 큰 인기를 끄는 등 ‘K팝’으로 통칭되는 한국의 대중음악이 ‘한류 열풍’을 이끌고 있다.”면서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그 정점에 이르렀다.”고 강조했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등의 브랜드 파워에 대해서도 조명했다. FT는 “삼성전자의 경우 스마트폰 시장에서 애플과 투웨이(판매와 특허소송) 전쟁을 치르고 있다.”면서 “그러나 삼성전자의 갤럭시S3는 지난 3개월간 전 세계적으로 2000만대 판매를 돌파했다.”고 평가했다. 현대차에 대해서는 아우디나 BMW와 경쟁하는 고급차로 여기는 시선도 있다고 전했다. 이와 함께 김기덕 감독의 영화 ‘피에타’가 베니스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한 사실과 소설가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가 올해 글로벌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는 소식도 상세히 소개했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기타와 색채의 어울림…그남자, 그여자의 하모니

    기타와 색채의 어울림…그남자, 그여자의 하모니

    ‘더 스토리 오브 프레이야 밸리’ 展 열려… 음악 사운드에 색채의 옷을 입혀 눈에 보이는 소리를 전시한다? 즉, 청각의 시각화라는 독특한 시도로 기대를 모으는 ‘더 스토리 오브 프레이야 밸리(The Story of Freyja Valley)’ 기획전이 관객들을 찾아간다. 오는 21일부터 다음 달 5일까지 삼청동 카페 길로 유명한 서울 종로구 팔판동 ‘룩 앤 이트 갤러리 카페’(Look & Eat Gallery Café)에서 개최되는 이번 미술전시회는 화가 아내인 박캔디 씨와 음악가 남편인 홍정현 씨, 두 부부의 아름다운 하모니가 만들어낸 작품들로 채워진다. 특히 이번 전시회가 시작되는 21일에는 오프닝 행사가 진행되며, 특별히 아나운서 이숙영 씨의 축사 및 뮤지션들의 공연과 축하파티 등이 예정돼 있다. 서울대학교 약학대학을 졸업하고 현재 Juan뮤직 음향연구소 소장으로 오랜 시간 음악가로 활동해 온 홍정현 씨가 직접 깎고 다듬어 제작한 순수 수제기타에, 인하대학교 사범대학 미술교육과를 졸업하고 현재는 프레이야 아뜰리에를 운영하며 작품활동에 매진하고 있는 박캔디 씨의 그림이 더해져, 볼 수 없는 소리를 눈으로 보고 느끼게 해줄 이번 전시회는 ‘아름다움, 사랑, 풍요, 전투’를 상징하는 여신 ‘프레이야’의 이야기를 담는다. 홍정현 씨가 악기의 공명원리를 이용해 놀라운 소리를 만들어 냈다면, 박캔디 씨는 그 공명이 들려주는 소리를 통해 그녀의 작품 세계를 그려낸다. 박캔디 씨의 ‘기타 그리기’ 과정이 고스란히 담긴 작가노트는 이번 작품들이 어떻게 탄생하게 됐으며, 또 그를 통해 어떤 메시지를 던지고자 하는지 서언(序言)을 전하고 있다. 그 다음 이야기는 모두 앞으로 전시될 작품들에 고스란히 녹아있을 것이라고. 국내 대표적인 락밴드 디아블로의 기타리스트 락(최창록), 김수한 씨는 “지금은 미술 작품으로 그 가치를 높이 평가받고 있지만, 기타라는 악기로서의 성능도 매우 뛰어나다.”면서도 “다양한 장르에서 범용적으로 쓰이기에 좋을 듯 하다. 이 핸드메이드 기타의 매력인 빈티지한 사운드에서 퀸의 ‘브라이언 메이’를 연상케 하는 그런 느낌의 기타다.”라고 직접 연주 소감을 전했다. 또한 류영열 음악감독(GS홈쇼핑)은 “공명구조의 독창성만으로 이처럼 놀라운 소리를 만들어낸 홍정현 씨에게 찬사를 보내며, 미술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음악인의 관점에서 바라봤을 때 이처럼 다양하고 아름다운 색채로 표현된 기타는 그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의 감성과 듣는 사람의 감동까지 보다 예술적인 모드로 이끌어주는 힘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프레이야 밸리 전(展)은 이들 ‘부부의 하모니’ 그리고 ‘빛(색채)과 소리의 조화’를 통해 탄생했다. 이 위대하고 아름다운 어울림이 ‘분열과 단절, 양극화’로 대변되는 현대 대한민국 사회에 커다란 울림이 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해 본다. /인터넷뉴스팀
  • 종합불교예술제 해남 미황사서 새달 13일 열려…불교회화·음악·음식 체험 기회

    종합불교예술제 해남 미황사서 새달 13일 열려…불교회화·음악·음식 체험 기회

    다음 달 13일 ‘땅끝 마을 아름다운 절집’으로 소문난 전남 해남 미황사에서 종합불교예술제가 열린다. ‘미황사의 소리’라는 타이틀 아래 오후 1시부터 시작하는 괘불재가 그것. 불교회화와 불교음악에 곁들여 불교음식을 함께 체험하고 싶은 이에겐 놓칠 수 없는 자리다. 행사는 괘불재와 음악회로 나뉘어 열릴 예정. 먼저 있을 괘불재는 원래 백성들의 한을 달래고 고혼을 천도하기 위해 열렸던 행사의 재연이다. 미황사 스님들과 불교학자들은 이 괘불재가 임진왜란(1592년) 이전부터 미황사에서 열렸을 것으로 추정한다. 실제로 지난 4월 미황사 약사여래불 복장에서 1568년 판본 ‘수륙무차평등재의촬요’(바다와 육지의 고혼들을 달래기 위해 평등하게 공양하며 재를 올릴 때의 의례서)가 발견돼 그런 주장을 뒷받침했다. 보물 제1342호인 미황사 괘불탱화는 높이 12m, 폭 5m의 대형불화. 1727년 스님 7명이 조성한 이 괘불은 1년에 단 한번 이 괘불재를 통해 일반에 공개된다. 이 괘불은 예전부터 큰 법회에 빠지지 않고 등장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0년 일본 규슈박물관에 미황사 괘불재가 초대되어 1달 동안 토픽전이 열리기도 했다. 이날 괘불재에선 전통방식으로 불단을 차려 무려 1500여명이 이운, 고불문 낭송, 만물 공양, 통천, 법어, 음악 공양 등에 참여한다. 이 가운데 조계종 중앙종회의장 보선 스님의 법어와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흥보가 보유자 박송희 명창의 음성공양이 들어 있어 눈길을 끈다. 괘불재를 마치고 오후 6시부터는 ‘미황사 음악회’가 이어질 예정이다. ‘미황사 음악회’는 사실상 국내 산사 음악회의 시초나 다름없는 행사. 2000년 가을 시작한 이래 한 해도 빠짐없이 줄곧 열려왔다. 올해 행사는 해남 지역에서 활동하는 음악인과 남도 들 노래를 발굴해 소개하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인간문화재 박양애씨의 강강술래, 이인자씨의 민요며 동네 소리꾼들의 무대가 차례로 펼쳐질 예정이다. 가수 백창우와 굴렁쇠아이들이 초청됐으며 관람객들이 동참할 만한 프로그램도 준비됐다. (061)533-3521.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뉴질랜드 퀸스타운(Newzealand Queenstown) 거친 자연을 원초적으로 즐기는 법

    뉴질랜드 퀸스타운(Newzealand Queenstown) 거친 자연을 원초적으로 즐기는 법

    Newzealand Queenstown 거친 자연을 원초적으로 즐기는 법 뉴질랜드 남섬의 퀸스타운Queenstown. 트레킹, 번지점프, 스키, 스카이다이빙 등 사계절 즐길거리가 무궁한 이 작은 마을에서 걷고, 뛰고, 날았다. 퀸스타운을 겪고 나니, 스포츠, 레포츠, 어드벤처로 이름지어진 세상 모든 것들이 시시해졌다. 글·사진 최승표 기자 취재협조 뉴질랜드관광청 www.newzealand.com 퀸스타운에서는 뉴질랜드 3대 트레킹 코스 중 하나인 루트번트랙을 하루 코스로 체험해 볼 수도 있다. 우거진 숲 속을 걷다가 만난 협곡의 풍경이 황홀하다 Trekking Routeburn Track 산소의 농도가 다른 숲을 걷다 뉴질랜드 남섬은 두 발로 구석구석 걸어야 제 맛을 느낄 수 있다. 세계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트레킹 코스가 퀸스타운에서 시작되니 이를 놓칠 수는 없는 일. 유럽의 알프스, 캐나다의 로키와는 다른 어떤 매력이 있길래 전세계 등산광들이 버킷리스트로 뉴질랜드 남섬을 꼽는지 직접 체험해 보고 싶어 가벼운 등산 장비를 챙겼다. 뉴질랜드 3대 트레킹 코스로 꼽히는 밀포드 트랙Milford Track, 루트번 트랙Routeburn Track, 케플러 트랙Kepler Track의 관문 도시가 바로 퀸스타운이다. 가장 짧은 코스라 해도 40km가 넘고, 완주를 위해서는 최소 3일이 필요하다. 3대 인기코스 중 퀸스타운에서 가장 가까운 루트번 트랙을 선택했다. 초행길인 데다 모든 등산 코스를 개방하는 여름철이 아니었던 만큼 산악 전문 가이드와 함께하는 1일 트레킹 코스를 선택했다. 퀸스타운에서 와카티푸 호수를 끼고 1시간쯤 달려 루트번 트랙 진입로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시작하는 40km의 등산로는 서쪽의 피오르국립공원 테아나우Te Anau에서 끝이 난다. 16세기 마오리족이 그린스톤을 찾기 위해 개척했던 길이 이제는 뉴질랜드에서 가장 대중적인 등산로가 된 것이다. 기자가 도전한 코스는 비교적 경사가 완만한 루트번 플랫 코스로, 가이드 숀Shaun과 천천히 이야기하며 왕복 14km를 약 3시간 30분 동안 걸었다. 이끼에 뒤덮여 가지까지 초록으로 물든 너도밤나무, 허리춤까지 자란 고사리, 잎사귀에서 매운 맛이 나, 마오리족 여성들이 아기 젖을 뗄 때 가슴에 붙였다는 페퍼트리, 연중 노란 잎사귀를 떨어뜨리는 취목 등, 우거진 숲길을 걷노라면 휘황찬란한 풍경이 없어도 좋았다. 등산길 중간중간 나타나는 계곡의 물빛은 몰디브의 에메랄드빛 바다보다 더 영롱했다. 등산 중에는 방울새가 나타나 앙증맞은 소리로 지저귀고, 유유히 상공을 가르는 매가 시시로 나타나 루트번 트랙의 때묻지 않은 매력을 증명했다. 드넓은 평원 루트번 플랫에서 숀과 함께 샌드위치로 가볍게 요기를 마쳤다. 숀은 루트번 폭포를 가리키며 바로 폭포 옆에 산장이 있다고 말했지만 더 이상 허락된 시간이 없어 아쉬움을 머금은 채 발길을 돌렸다. 지금까지 밟아 보지 못한 루트번트랙의 나머지 26km가 아련하기만 하다. Crusing Milford Sound 주름진 바닷길에 압도당하다 여행지 중에는 이름만으로 사람의 마음을 혹하게 하는 곳들이 있다. 바이칼, 마추픽추, 샹그릴라, 마다가스카르 같은 곳들 말이다. 이곳들이 여행지의 이미지와 결부되어 사람들에게 동경을 일으킨다면, 마치 록음악의 한 장르 같은 ‘밀포드 사운드’는 이름만으로 끌리는 그런 곳이다. 좁은 해협, 그러니까 바닷물이 숲과 언덕, 산 사이로 비집고 흘러든 풍경은 우리에게는 꿈에서나 봄직한 그런 풍경이 아니던가. 호주 방향의 태즈먼해로 나가는 배를 타고 가다가 고래가 수면 위로 떠오르는 장면을 볼 수만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었다. 그,리,고, 밀포드 사운드를 한바퀴 둘러보는 크루즈 안에서 이 모든 꿈꿨던 풍경들이 눈앞에 펼쳐지고야 말았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1 퀸스타운에서 밀포드사운드로 가는 길, 천장까지 유리로 된 버스를 타고 파노라마로 경치를 즐길 수 있었다 2 태즈먼해에서 육지 방향으로 비집고 들어온 15km의 해협, 밀포드사운드는 흡사 칼데라 호수를 연상시킨다 3 밀포드사운드 크루즈를 타면서 돌고래, 물개 등 야생 동물을 마주치는 것도 또 하나의 재미 4 크루즈는 절벽 가까이 붙어 운항한다. 해협 속에 배 한 척 떠가는 풍경은 물개잡이 어선이 이곳을 처음 발견한 19세기를 연상케 한다 돌고래가 사는 육지 속 푸른 바다 퀸스타운에서 4시간. 버스를 타고 밀포드 사운드까지 가는 길은 다소 지루했다. 풀 뜯는 양떼들의 풍경은 ‘복사하기+붙여넣기’를 한 것처럼 무한반복됐고, 비를 뿌릴 채비라도 하듯 잔뜩 찌푸린 하늘은 밀포드 사운드의 장관을 허락하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바위산을 관통하는 호머터널을 지나자 전혀 다른 색의 하늘이 펼쳐졌다. 기어이 도착한 밀포드 사운드의 선착장. 거대한 산봉우리에 둘러싸인 해협은 흡사 백두산 천지 같은 칼데라 호수처럼 보였다. 배에 올라타지 않아도 그 풍경만으로 황홀했다. 여행 가이드북과 뉴질랜드 여행깨나 했다는 이들이 했던 말들, ‘남섬에서 날씨는 기대하지 말라’거나 ‘갈 때마다 비가 와서 실망했다’는 말들은 모두 나를 비껴갔다. 다양한 국적의 관광객과 함께 배에 올라탔다. 허기부터 달래려 뷔페 식사(중국식 요리에 김치까지 나오는 걸 보면 관광객의 상당수는 아시아인인가 보다)를 하고 있는데 사람들이 괴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창밖을 보니 돌고래 두 마리가 지나가는 것 아닌가. 브이자 모양의 꼬리를 치켜 올린 범고래는 아니었지만 동물원이 아닌 야생에서 돌고래를 본 것 자체만으로 흥분할 만했다. 유람선은 절벽 가까이 붙어 태즈먼해로 천천히 나아갔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겹겹의 봉우리들이 모두 걷히는 순간 눈앞에 보이는 것은 태즈먼해의 수평선뿐이었다. 배는 갔던 길을 돌려 다시 해협으로 접어들었다. 절벽을 타고 돌아오는 길, 바위 위에서 일광욕을 즐기고 있는 물개들과 인사를 나눈 뒤, 배는 수직으로 떨어지는 스털링 폭포 쪽으로 바싹 다가갔다. 150m 높이에서 쏟아붓는 폭포는 갑판 위에서 기념사진을 찍던 관광객들의 전신을 적셨다. 선착장으로 돌아오는 길, 밀포드 사운드를 굽어보고 있는 산봉우리에는 토성의 고리 같은 모양의 얇은 구름이 걸려 있었다. 지구 밖 풍경처럼 밀포드 사운드의 모습은 끝까지 경이로웠다. 리얼 저니 밀포드 사운드 크루즈는 다양한 일정의 상품을 운영하는 관광업체인 리얼저니Realjourneys를 이용하는 게 가장 좋다. 퀸스타운과 밀포드 사운드까지 왕복 버스를 포함한 크루즈 상품은 198뉴질랜드달러, 크루즈만 이용할 경우는 95뉴질랜드달러다. 버스 대신 왕복 경비행기를 이용할 경우, 약 425뉴질랜드달러. www.realjourneys.co.nz Skydiving Queenstown 4,500m 상공에서의 아찔한 추락 퀸스타운에서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할 단 하나의 액티비티를 꼽으라면 주저하지 않고, 스카이다이빙이라 말하겠다. 고소공포증 때문에, 안전에 대한 걱정 때문에 4,000m 상공에서 추락하는 쾌감을 유보한다면 평생을 후회하게 될 것이다. 1 상공 1만5,000피트(약 4,500m)에서 수직 하강하는 순간. 엄청난 굉음과 함께 와카티푸 호수로 빨려들어가는 기분이었다 2 스카이다이빙 포인트까지는 경비행기를 타고 올라간다. 다이빙을 하기 바로 전, 최고의 긴장감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다 3 낙하 조교와 한몸이 되어 뛰어내려 약 50초간 직하강을 하며, 함께 다이빙을 한 포토그래퍼 앞에서 포즈를 취해 보았다. 물 속에서 헤엄치는 듯한 기분이었다 4 지상에 착지하는 순간, 아쉬움과 함께 가벼운 현기증이 느껴졌다. 땅 위에 중력을 받고 서 있는 기분이 오히려 어색했다 하늘에서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 세어 볼까 먼저 밝혀 두자면 본 기자는 테마파크에 가도 바이킹이나 롤러코스터를 타지 않는다. 약간의 고소공포증이 있는 데다가 돈을 써가면서 기계한테 고문당하는 느낌이 퍽 유쾌하지 않은 까닭이다. 테마파크의 성지라 할 수 있는 미국 올랜도의 디즈니랜드에서도 놀이기구를 거들떠 보지 않았다. 허나 스카이다이빙, 이건 좀 많이 다르다고 생각했다. 번지점프를 포기하고 스카이다이빙을 선택한 것도 왠지 이 이상의 극한 체험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다. 버스를 타고 다이빙 출발지로 갈 때까지도, 신상명세를 기입하는 등록절차를 하고 안전복장을 착용할 때까지만 해도 별 느낌이 없었다. 그리고 간단한 안전교육을 받았다. ‘다이빙 하는 순간 팔다리를 개구리처럼 만들어라’, ‘안전띠를 꽉 잡아라’, ‘착륙할 때 다리를 높이 들어라’ 이것이 전부였다. 4,000m에서 떨어지는 것에 대한 안전교육치고는 너무 단순해서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함께 착륙할 조교 닉Nick과 악수를 하고 일행과 함께 경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지금까지 7,000번 이상 다이빙을 했다는 닉은 집 앞 산책을 나가듯 휘파람을 불며 함께 비행기에 올랐다. 경비행기는 마음을 가다듬을 여유도 주지 않고 짧은 활주로를 달려 순식간에 와카티푸 호수 위로 날아올랐다. 경비행기의 안전장치는 상당히 허술해 보였다. 1번 주자로 뛰어내릴 내 옆의 문은 구멍가게 셔터처럼 닫혀 있는 게 전부였다. 지금까지 12만명 이상이 안전하게 뛰어내렸다니 믿는 수밖에 없었다. 1만5,000피트(4,572m) 상공. 사진 촬영을 위해 함께 탄 리키Ricky는 주저없이 비행기의 셔터를 올리더니 먼저 뛰어내렸다. 심장이 터질 듯한 긴장이 절정에 달한 순간이었다. 거침없이 나를 출구 쪽으로 내몬 닉은 원, 투, 쓰리를 외쳤고, 닉과 나는 하나의 점이 되어 약 50초 동안 시속 200km의 속도로 수직 하강했다. 와카티푸 호수와 산맥에 빨려들어가는 듯한 기분을 느끼며 연신 탄성을 내질렀다. 반면 닉은 덤덤히 미소를 지으며 리키가 찍는 사진에 7,000번 다이빙을 하면서 익숙해진 포즈를 취해 주었다. 해발 1,000m 정도 높이가 됐을 때 닉은 낙하산을 펴겠다는 신호를 보냈다. 이내 속도가 급감했고, 귀가 떠나갈 듯한 소음도 사라져 그야말로 평화로이 발 아래 풍경을 유유히 감상하는 시간이 펼쳐졌다. 약 5분간의 낙하 시간, 목장에서 풀 뜯는 양도 또렷이 보였고 호숫길 따라 산책 중인 사람도 보였다. 안전하게 착지를 마치고 나니 미세한 현기증이 느껴졌다. 하늘을 자유로이 날다가 두 발로 중력을 받으며 걷는 게 오히려 어색했나 보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스카이다이빙 NZONE은 남섬 퀸스타운과 북섬 로토루아에서 스카이다이빙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가격은 낙하 높이에 따라 269~429뉴질랜드달러. 사진과 비디오 촬영은 각각 179뉴질랜드달러가 추가되고, 사진과 비디오를 함께 신청하면 219뉴질랜드달러. www.nzone.biz Driving Queenstown 빙하가 훑고 간 길을 달리다 퀸스타운은 빅토리아 시대의 여왕이 살면 어울릴 법한 풍경을 지녔다 하여 이름지어진 마을이다. 그러나 마을이 형성된 과정은 올림픽 개막식에 등장한 영국 여왕의 우아한 이미지와 상반된, 거칠기 짝이 없었는 것이다. 수만년 전, 산보다 더 큰 빙하가 훑고 지나간 길에 물이 고여 와카티푸 호수가 생겼고, 19세기 금광 채취를 위해 모여 든 유럽인들은 뗄감을 얻기 위한 무분별한 벌목으로 호수 주변을 모두 민둥산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런 마을이 전세계인들이 열광하는 액티비티의 천국이 됐으니 어떤 여행지의 숙명이란 이다지도 아이러니한 것이다. 퀸스타운의 거친 자연풍광을 만끽하려면 4륜구동 RV차를 타고 곳곳을 누비는 것이 가장 좋다. 특히 영화 <반지의 제왕>이 촬영된 장소들은 영화보다 더 SF적인 풍광으로 여행자를 압도했다. 퀸스타운 드라이브 여행은 낭떠러지길을 달리며, 번지점프 장소로 유명한 카와라우Kawarau 다리를 지나 금광개발 시대의 풍경을 고스란히 간직한 애로우타운Arrowtown으로 향했다. 강가에서 금이 발견되기 시작하면서 급속도로 상권이 형성됐던 마을은 생각보다 일찌감치 쇠락해 지금은 박물관 같은 모습으로 남아 있다. 애로우강에서 내려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직접 사금 채취도 해보았다. 엄마뻘 되어 보이는 가이드는 겨자씨만한 금을 채취하는 시범을 보였고, 이곳이 <반지의 제왕>에서 악당들이 말을 타고 등장한 ‘그 장면’의 배경이라 설명했지만 금도, 영화도 상상으로 즐길 수밖에 없었다. 다음 코스는 스키퍼스 캐니언Skippers Canyon. 차 한 대가 간신히 지나갈 수 있는 절벽길은 그 자체로 음산했다. 날씨 때문이었을까? 낮게 구름이 깔려 있는 주름진 바위산 어느 틈에 골룸이 숨어있을 것처럼 스산하기 짝이 없었다. 전망대에 서자 퀸스타운과 와카티푸 호수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양떼가 한가로이 풀을 뜯는 풍경이 빙하와 사람의 손으로 쓸어내린 지형과 묘하게 교차됐다. 퀸스타운의 거친 자연 풍광을 만끽하려면 와카티푸호수와 숏오버Shotover강과 카와라우Kawarau강을 제트 보트를 타고 온몸으로 체험하는 방법도 있다. 배가 뒤집힐 듯 거친 물살을 가르며 호수와 강, 계곡으로 이어지는 물길을 질주하는 쾌감이 짜릿하다. 노매드 사파리 <반지의 제왕> 촬영지 투어, 19세기 마을 풍경을 간직한 애로우타운Arrowtown, 글레노키Glenorchy 등 퀸스타운 주변의 명소를 4륜구동 자동차로 여행할 수 있다. 가격은 성인 165뉴질랜드달러. www.nomadsafaris.co.nz 카와우라 제트 퀸스타운 선착장에서 출발해 카와우라강, 숏오버강을 가로지르는 제트보트. 가격은 코스에 따라 245뉴질랜드달러부터. www.kjet.co.nz 1 제트보트를 타고 카와라우강과 숏오버강을 질주하면서 퀸스타운의 광활한 풍경을 감상했다 2 번지점프는 뉴질랜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액티비티. 보는 것만으로도 아찔한 기분이다 3 스키퍼스 캐년에서 내려다본 퀸즈타운의 풍경. 수만년 전, 빙하가 거칠게 훑고 간 자리에 물이 고이고, 사람이 살고, 양이 풀을 뜯으며 살고 있다 Walking Around Queenstown 호수가 보이는 언덕에서의 달빛 정찬 연간 200만명 가량의 관광객이 방문하는 퀸스타운은 인구 2만명에 불과한 소도시다. 도심의 규모도 도보로 10분 이내에 모든 곳을 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아담하다. 이 작은 도시에도 쇼핑과 다이닝을 즐길 만한 매력적인 곳들이 많아 평화로운 호반의 풍경과 잔디밭에 누워 한가로이 즐기는 사람들 사이에서 함께 여유를 누리다가 아담한 다운타운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금세 지나간다. 퀸스타운 가든에서는 주말마다 장터가 펼쳐진다. 미술 작품, 수제 공예품이 전시되며, 히피 같은 음악인들의 라이브 공연도 펼쳐진다. 이곳 타운에서는 뉴질랜드산 아웃도어 제품, 옥으로 만든 액세서리 등을 구매하면 좋다. 특히 양모 중에서도 메리노울Merino wool로 만든 옷들은 땀 배출이 잘 되면서도 보온력이 뛰어나다. 퀸스타운에서 가장 근사하게 저녁식사를 즐길 수 있는 장소로는 케이블카를 타고 봅스힐Bob’s Hill로 올라가 와카티푸호수를 조망할 수 있는 스카이라인Skyline을 꼽을 수 있다. 저녁을 기다리면서 마오리족의 전통공연을 보거나 창가에 앉아 너른 호수 풍경을 감상하는 것도 좋다. 누가 익스트림 스포츠의 메카가 아니랄까 봐, 이곳에서도 패러글라이딩, 언덕썰매, 산악자전거 등 다양한 액티비티를 체험할 수 있다. 스카이라인 퀸스타운 다운타운에서 곤돌라를 탑승하고 산에 올라 다양한 액티비티와 식사를 즐길 수 있다. 곤돌라 탑승은 성인 25뉴질랜드달러, 뷔페 식사와 곤돌라 탑승 패키지는 성인 72뉴질랜드달러. www.skyline.co.nz 4, 5 봅스힐에 자리한 스카이라인에서는 원주민의 전통공연을 관람한 뒤, 석양을 마주보며 근사한 저녁식사를 즐길 수 있다 6 호반에 위치한 주민들의 쉼터, 퀸스타운 가든에서는 라이브 공연과 다양한 수제품을 파는 노천시장이 주말마다 열린다 ▶travie info 항공 뉴질랜드 퀸스타운까지 가려면 최소한 한 차례 이상 환승을 해야 한다. 대한항공이 북섬의 오클랜드에 취항하고 있지만, 국내선 항공을 별도로 구매해야 한다. 도쿄에서 출발하는 에어뉴질랜드를 이용하면 북섬의 오클랜드, 남섬의 크라이스트처치를 경유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문의 에어뉴질랜드 02-737-4025 기후 퀸스타운은 남반구에서도 남쪽에 위치해 한국과 계절이 정반대다. 우리의 여름철인 6~8월 퀸스타운은 스키의 메카로 변신하고, 11월부터 4월까지는 온화한 날씨로 등산객이 많이 찾는다. 환율 1뉴질랜드달러 = 914원(8월 기준). 물가는 우리나라에 비해 높은 편이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위 기사는 기사콘텐츠 교류 제휴매체인 여행신문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에 관한 모든 법적인 권한과 책임은 여행신문에 있습니다.
  • ‘아리랑 광고’ 도쿄 중심가에 떴다

    ‘아리랑 광고’ 도쿄 중심가에 떴다

    지난 7월 미국 뉴욕 타임스 스퀘어에 올린 아리랑 광고가 17일부터 일본 도쿄 중심부에서 방영된다. 한국 홍보 전문가 서경덕 성신여대 교양교육원 교수는 “하루 유동인구 5만명에 달하는 도쿄 신오쿠보역 주변 K-프라자 대형 전광판에 ‘두 유 히어?’(DO YOU HEAR)라는 아리랑 광고를 하루 50번, 한달간 총 1500번 상영한다.”고 이날 밝혔다. 이 전광판은 음향도 지원해 오가는 사람들에게 아리랑을 직접 들려줄 수 있다. 이 광고는 지난 6월 경기도와 수원시, 경기도문화의전당이 공동 주최한 ‘또 하나의 애국가-아리랑 아라리요’ 페스티벌에서 펼쳐진 장면을 활용해 제작됐다. 경기도 등이 광고비 전액을 후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배우 차인표와 안성기, 야구 선수 박찬호 등 문화·체육계에서 활약하는 인사들이 다양하게 출연해 아리랑을 부르는 게 특징이다. 차인표는 “K팝이 전 세계에 널리 퍼지고 있을 때 우리 음악인 아리랑을 함께 알린다면 우리나라의 문화 이미지를 상승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광고 참여 배경을 전했다. 서 교수는 “이번 아리랑 광고 2탄은 유튜브와 트위터 등을 통해서도 세계 젊은이들에게 실시간 알리고 있다.”면서 “독도, 동해, 비빔밥, 아리랑 등 6차례 진행한 광고를 모아 내년에는 국가 단위로는 세계 최초로 타임스 스퀘어에 ‘대한민국 전용 광고판’을 세우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폴 매카트니 佛 최고훈장 수상

    비틀스의 멤버 폴 매카트니(70)가 음악 활동의 업적을 인정받아 8일(현지시간) 프랑스 최고의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를 받았다.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은 이날 파리 엘리제궁에서 매카트니에게 훈장을 수여했다고 AP·AFP통신이 보도했다. 수여식에는 매카트니의 가족이 함께 참석했으며, 이후 매카트니는 올랑드 대통령이 주재하는 기념행사에 참석했다. 그는 트위터에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맞춰 봐?”라는 사진설명을 단 엘리제궁 등을 담은 사진 몇 장을 올렸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음악인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매카트니는 ‘헤이 주드’와 ‘예스터데이’ 등 다양한 히트곡으로 대중들의 사랑을 받았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선수’가 인정하는 진짜 기타 고수 내한

    ‘선수’가 인정하는 진짜 기타 고수 내한

    등수 매기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세계 3대 기타리스트’ 같은 말을 곧잘 만들어낸다. 하지만 가수나 연주인 등 동종업계에서 인정하는 숨은 고수는 따로 있다. 기타 실력만큼은 둘째 가라면 서러울 궁극의 고수들이 이달 한국을 찾는다. 퓨전재즈와 블루스, 록의 경계를 넘나드는 래리 칼튼(64)은 전설적인 가수들이 스튜디오 녹음과 순회공연 때 0순위로 찾았던 기타리스트로 꼽힌다. 1968년 데뷔앨범 ‘어 리틀 헬프 프롬 마이 프렌즈’로 주목 받은 칼튼은 1970~80년대 주로 세션맨으로 활약했다. 한해 레코딩 숫자만 500장에 이를 만큼 러브콜이 끊이지 않았다. 스틸리 댄, 조니 미첼, 빌리 조엘, 마이클 잭슨, 퀸시 존스,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와 함께 했다. 솔로 앨범을 꾸준히 발표하는 한편, 1970년대 재즈록 그룹 더 크루세이더스의 멤버로, 1998년부터 리 릿나워에 이어 재즈그룹 포플레이의 기타리스트로 활약했다. 칼튼을 흘러간 뮤지션으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20여차례 그래미상 후보에 올랐고 4개의 트로피를 수집했는데 그중 마지막은 지난해였다. 2010년 일본의 인기그룹 B´z의 기타리스트 마츠모토 다카히로와 함께 작업한 ‘테이크 유어 픽’ 앨범으로 지난해 그래미에서 최고 팝 연주 부문 상을 받았다. 2010년 포플레이를 탈퇴하기 전까지 네 차례 내한공연을 했던 칼튼이 이번에 첫 단독공연을 갖는다. 8일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 삼성카드홀 무대에서 분신과도 같은 깁슨 ES335 기타로 ‘룸 335’를 비롯한 명곡을 들려준다. 9만9000~11만원. (02)3143-5156 팝, 록, 재즈 등 장르의 구속을 당하지 않는 음악인 웨인 크랜츠(56)는 국내에선 기타리스트들의 기타리스트로 통한다. 피아노로 시작해 기타로 전향한 그는 1991년 데뷔작 ‘시그널스’를 시작으로 여러 장의 라이브 앨범을 선보였고, 1995년부터 2007년까지 뉴욕의 라이브클럽 ‘바55’에서 공연을 했다. 같은 시기 버클리음대(보스턴) 등 미국 동부지역에서 유학했던 한국의 실용음악 유학생들 사이에 ‘바55에 가면 기타 귀신이 있다’는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2010년 첫 내한공연 당시 한국에서 기타 좀 친다는 사람은 다 모였다는 얘기가 나온 것도 같은 이유였다. 가장 오랫동안 트리오의 구성원으로 크랜츠와 호흡을 맞춘 멤버는 베이시스트 팀 르페브르와 스팅 내한 공연 때 드러머로 참여했던 키스 칼록이다. 하지만 27일 서울 대흥동 마포아트센터 무대에는 칼록(드럼)과 네이트 우드(베이스)가 함께한다. 르페브르의 일정이 맞지 않은 탓에 아시아·미국투어의 드러머로 우드를 긴급 섭외한 것. 우드는 요즘 미국 재즈계에서 가장 주목 받는 밴드 가운데 하나인 니바디(Kneebody)의 멤버로 주로 드럼을 두드리지만, 베이스·기타는 물론 앨범 믹싱과 마스터링까지 주무르는 만능 음악인이다. 지난 4월 발표한 신작 ‘호위 61’을 비롯한 크랜츠의 대표곡을 들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4만~6만원. (02)941-1150.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성악 인생 50년 테너 박인수 교수

    [김문이 만난사람] 성악 인생 50년 테너 박인수 교수

    세계인이 가장 좋아하는 오페라는 과연 어떤 것일까. 아마도 ‘라보엠’이라는 말에 별로 토를 달지는 않을 터. 가난한 보헤미안 연인들의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라보엠’의 백미는 단연 ‘그대의 찬 손’이다. 한 대목 잠시 음미해 본다. ‘그대의 조그만 손이 왜 이다지도 차가운가요! 내가 따뜻하게 녹여 줄게요~ 저는 시인입니다. 비록 가난하지만 마음만은 백만장자랍니다. 저는 꿈이 많답니다. 시와 노래의 아름다운 낭만적인 낙원에서 살지요. 그러나 갑자기 그대의 눈길이 내 마음을 흔들어 놨습니다. 자 이제 이름이 무엇인지 말씀해 주시겠어요.’ 이 아리아는 성악을 하는 테너 가수라면 누구나 ‘로망’으로 여기고 있다. 이 노래, 그러니까 오페라 ‘라보엠’에 100여회 출연, ‘그대의 찬 손’을 수없이 불러 ‘한국의 도밍고’, ‘전설의 스텐토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50인의 목소리)라는 별명이 붙은 성악가가 있다. 1938년생, 우리 나이로 치면 74세임에도 불구하고 무대 위에서 쩌렁쩌렁하게 여전히 감동을 선사한다. 오는 10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데뷔 50주년 기념음악회를 연다. 성악가가 50주년을 기념한다는 것은 실로 드문 일이다. 그에 걸맞게 김성빈, 김성준, 김성진, 류정필, 박현재, 신동원, 양인준, 왕승원, 윤상준, 이병삼, 이상규, 이성민, 정규남, 정의근, 정호윤 등 내로라하는 테너 성악가 제자들이 참여해 스승의 50주년을 기념한다. 누굴까. 클래식과 가곡을 접목한 ‘향수’로 대중들에게도 유명한 테너 박인수 백석대학교 석좌교수가 주인공이다. 서울대 음대를 졸업하고 미국 줄리어드 스쿨과 줄리어드 오페라센터를 거쳐 미국과 캐나다, 남미와 유럽에서 주역 테너로서 성공을 거두었다. 20여년간 모교인 서울대에서 제자들을 양성했고 300여회의 오페라 주역과 2000회를 훌쩍 넘는 콘서트로 오늘날까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하여 우리나라 테너 음악계의 큰 스승으로 여겨진다. 소낙비가 내리던 지난 4일 오전 서울 방배동 백석대학교 연구실에서 박 교수를 만났다. 50주년 기념 음악회 얘기부터 나왔다. “그러니까 1962년 대학교 다닐 때였지요. 슈만의 연가곡 ‘시인의 사랑’으로 첫 독창회를 했습니다. 낭만주의 예술가곡의 시대를 연 슈만의 사랑과 서정적 선율이 돋보이는 노래를 불렀던 당시가 지금도 생생합니다. 참 좋은 노래입니다.” 50주년을 맞는 소감을 물었다. 편안한 웃음으로 대답한다. “구약성서에 ‘희년’(禧年)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50년마다 돌아오는 것이지요. 말 그대로 복되고 기쁩니다. 인생에 채무가 있다면 그것을 청산하는 홀가분한 마음도 있고요. 살아오면서 알게 모르게 쌓은 업보를 내려놓는 기분입니다. 아울러 노래 인생 50년을 맞이하면서 제자들과 같이 무대에 선다는 것 또한 매우 의미가 있습니다.” 이번 공연에 대한 설명이 더 이어진다. 모두 1, 2, 3부로 나뉘어지는데 1부에서는 박 교수의 제자들이 나와 ‘그대의 찬 손’, ‘별은 빛나건만’, ‘남몰래 흐르는 눈물’ 등을 부른다. 2부에서는 박 교수가 독창으로 ‘클레멘타인’, ‘메기의 추억’, ‘아 목동아’ 등을 부른다. 3부에서는 제자들과 함께 ‘그리운 금강산’, ‘향수’, ‘새타령’, ‘진도아리랑’ 등 우리의 가곡과 민요를 열창한다. 2년 전부터 제자들이 앞장서서 준비한 무대여서 성악계에서는 큰 잔치로 이미 소문 나 있다. 그는 제자들에게 각별한 사랑을 베푼다. “성악 하는 사람들은 원래 나이 50대면 끝난다고 하지요. 하지만 저는 70이 넘었는데도 노래를 하잖아요. 벨칸토 창법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저는 거기에다 나름대로 터득한 플러스알파까지 제자들에게 가르칩니다. 제 나이 60대에 많은 고민을 하면서 알게 된 것이지요. 그래서 다들(제자) 노래를 잘합니다.” 그는 순수와 대중음악의 벽을 허물면서 진정한 화합의 목소리로 주목을 받아 왔다. 까닭에 지금도 후학 양성과 끊임없는 콘서트로 노익장을 과시한다. ‘테너 박인수’ 하면 생각나는 것이 국민가요 ‘향수’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로 시작되는 이 노래는 1989년 당시 파격적으로 대중 가수 이동원씨와 함께 불렀다. “그 노래를 불러 잃은 것도 많고 얻은 것도 많습니다. 당시 이동원씨와는 일면식도 없었는데 재즈하는 김준의 소개로 만났지요. 이동원씨가 정지용의 시집을 갖고 와서 ‘향수’를 처음 접했습니다. 시가 너무 좋더군요. 이미 김희갑씨가 작곡을 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바로 녹음하자고 승낙했습니다.” 하지만 의욕과는 달리 오페라 가수가 대중가수와 함께 음반을 냈다는 이유로 비난과 질타를 받았다. 당시 몸담고 있던 국립오페라단에서 ‘성악을 모독했다’는 말까지 들었다. 온갖 시련을 견디다 못해 결국 그는 국립오페라단을 제 발로 걸어나와야 했다. 그런 과정에서 ‘향수’ 음반이 1년 만에 130만장이 팔리는 흥행기록을 세우면서 그의 이름을 대중들에게 확실히 각인시켰다. “지금도 전혀 후회하지 않습니다. ‘향수’는 좋은 시이자 훌륭한 노래입니다. 문학적으로 보나 음악적으로 보나 가치 있는 일이라고 판단했지요. 저 개인적으로 ‘향수’를 부르고 나서 얻은 것이 훨씬 많다고 생각합니다. 성악가로서 대중적인 인지도가 높아졌잖아요(웃음).” 그는 음악의 본질에 대해 “100% 듣는 사람 위주로 가야 한다. 마음에 감흥이나 즐거움, 감동을 받는 음악이 돼야 존재 가치가 있다.”고 말한다. ‘향수’ 이후 그는 가수 이문세, 안치환 등과 함께 노래를 하고 음반을 냈다. 클래식을 대중화시키는 일, 많은 사람들에게 음악을 듣게 하는 일이라는 점에서 기꺼이 대중가수들과 합류했던 것. 화제를 과거로 돌렸다. 어떻게 해서 성악을 했을까. 그러자 “성악은 첫 번째도 소리요, 두 번째도 소리, 세 번째도 소리”라고 강조하면서 잠시 회고한다. “아버지가 노래를 아주 잘하셨습니다. 트로트, 발라드, 이탈리아 민요까지 불렀어요. 저도 따라 불렀는데 ‘울려고 내가 왔던가’란 노래는 지금도 생각납니다. 이것저것 부르다 보니 자연스럽게 노래가 좋아지더군요. 초등학교 5학년 때 합창반 오디션도 보고 중학교 때에는 교회 성가대에서 활동했지요. 고등학교 때 멋과 낭만이 있는 마도로스 영화를 감상하고 난 뒤 친구와 함께 마도로스의 꿈을 실현시키려고 부산으로 갔습니다.” 노래와는 담을 쌓으려고 했지만 ‘박인수는 노래를 해야 한다.’는 주변의 권유가 빗발쳤다. 결국 마도로스의 꿈을 접고 1년 동안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노래 레슨을 받아 서울대 음대에 진학했다. 하지만 그의 인생은 순탄치 않았다. 1967년 대학을 졸업할 무렵 국립오페라단에서 오페라 ‘마탄의 사수’ 주인공으로 출연했으나 너무 잘하려고 욕심을 내는 바람에 크게 실패했다. 방송과 여러 신문에서 혹평이 쏟아졌다. 음악을 그만둘 생각으로 전 재산을 투자해 간장 대리점을 차렸다. 장사가 신통치 않자 시장통에 음식점을 냈다. 그것도 얼마 못 갔다. 돼지와 양송이도 길러봤지만 사업과는 인연이 없었다. 그러다가 고교 시절 친구를 만나 고민을 털어놓은 것이 계기가 돼 리어카 하나를 사서 서울 신촌 뒷골목에서 동생과 함께 포장마차를 운영했다. 찾아오는 손님이 없어 동생과 함께 술 마시는 날이 더 많았다. “언젠가 리어카를 장만해 준 친구가 찾아왔어요. 술 한잔 하더니 ‘야, 너는 음악해야 돼. 포장마차 장사하기엔 너무 아까워’라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75만원이 든 통장을 주더라고요. 친구의 진심어린 권유로 용기를 얻고 1969년 시민회관(현재 서울시의회)에서 라보엠을 공연했습니다. 예상밖에 대박을 터뜨렸지요. 혹독하게 비판했던 언론에서도 찬사가 쏟아졌습니다. 다음 해에 미국에서 초청을 받는 등 사실상 새로운 음악인생을 시작했지요.” 이후 미국과 캐나다, 남미 등 순회공연에서 오페라 주인공을 맡으면서 이름을 널리 알렸다. 아울러 국내에서는 ‘박인수와 음악친구들’이라는 타이틀로 매년 200회의 공연을 하면서 대중들과 함께했다. “성악은 조물주가 준 훌륭한 악기입니다. 잘 사용하면 최고가 되고 잘못하면 악성이 나오지요.” 인터뷰를 마치면서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우리의 민요와 판소리를 오페라에 접목시켜 세계화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대의 찬 손’이 아니라 ‘그대의 따뜻한 손’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선임기자 km@seoul.co.kr ■ 박인수 교수는 오페라 ‘라보엠’ 주인공만 100회 넘어… ‘향수’로 대중적 인기 1938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경동고를 나와 서울대 음대를 졸업했다. 이후 미 뉴욕 줄리어드 음대, 맨해튼 음악대학원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서울대 음대 성악과 교수를 지낸 뒤 현재 백석대학교 석좌교수로 있다. 1962년 슈만의 ‘시인의 사랑’으로 데뷔했으며 1967년 국립오페라단 ‘마탄의 사수’ 주인공을 맡아 열연했으나 쏟아지는 혹평을 견디다 못해 간장 대리점, 음식점, 포장마차 등의 사업을 했다. 1969년 서울 시민회관에서 라보엠 공연으로 재기했다. 이후 현재까지 라보엠 주인공으로만 100여회 출연했다. 1989년 성악가로서는 보기 드물게 대중 가수 이동원과 함께 ‘향수’를 불러 인기를 끌었다. 70대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매년 200여회의 공연을 할 만큼 식지 않는 열정을 과시하고 있다. 1997년 문화체육부 한복애용자 표창 대상, 2011년 은관문화훈장 등을 수상했다.
  • [김문이 만난사람] ‘소리인생 60년’ 국악인 신영희씨

    [김문이 만난사람] ‘소리인생 60년’ 국악인 신영희씨

    인생을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은 후회하지 않을까. 그게 처절하든 아니든 말이다. 그런데 후회라는 단어를 한 번도 떠올려 보지 않고 외길 인생을 꿋꿋하게 살아온 한 여인이 있다. 지난 18일,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토요일 오후였다. 서울 송파구 방이동에 위치한 ‘신영희 국악 연습실’에서 20여명의 젊은 여인들이 목청을 가다듬고 있었다. ‘저 처량한 새 울어 울어, 평생 낭군을 못잊어 이팔 청춘 과부되어, 공방 적적 홀로 뚝~’ 가만히 들어 보니 새타령 가락이긴 한데 처음 듣는 가사내용이었다. 하지만 곱디고운 목소리에 내면 깊숙한 한이 곳곳에 서려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들은 다름 아닌 새달 15, 16일 이틀간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리는 ‘신영희 소리인생 60주년 콘서트’에 출연하는 사람들이다. 국악인 신영희(70)씨는 2002년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50주년 기념공연을 한 이래 10년 만에 대형무대를 마련한다. 함께 연습 중인 신씨와 잠시 만났다. 방금 전 불렀던 노래에 대해 먼저 물었다. “조선 말기 5명창 중 한 사람으로 알려진 전설의 소리꾼 이동백 선생의 새타령입니다. 1900년 고종 황제 어전에서 판소리를 불러 통정대부(通政大夫)라는 벼슬을 얻었지요. ‘춘향가’, ‘적벽가’에도 뛰어났는데 특히 ‘새타령’은 독보적인 존재였습니다. 그의 새타령에는 온갖 상상의 새들이 다 등장합니다. 가사나 가락이 아주 재미있습니다.” 소리 인생 60년을 맞는 감회가 남다를 터. 소감을 물었다. “세월이 무상하지요. 10살 때 소리를 시작했는데 벌써 많은 세월이 흘렀네요. 하지만 한번도 후회한 적이 없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자기 본분에 충실하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고 있지요. 뒤돌아보니 그동안 고생도 있었지만 많은 제자를 길러낸 것을 가장 보람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60년 국악인생’ 처음으로 무대 올려 제자 자랑이 계속 이어진다. 지금까지 대통령상 수상자 8명, 국무총리상 수상자 20여명, 장관상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수두룩하다며 웃는다. “저는 제자들에게 항상 주문하는 것이 있습니다. ‘먼저 인간이 돼라. 그 다음에 소리다’라고 말입니다. 소리가 조금 부족하면 연습해서 도달하면 되지만 인간이 안 되면 연습해도 소용이 없잖아요. 효제사상, 그러니까 덕을 갖추고 윗사람을 공경하고 아랫사람을 사랑하라고 늘 강조합니다. 이런 관계로 20년, 아니 30년된 제자들도 여럿 있지요.” 다시 공연 얘기로 화제를 돌렸다. 그러자 신씨는 “이상벽(방송인)이랑 누나 동생하며 지내는 사이인데 이상벽이가 그래요. ‘누나, 올해가 60주년인데 그냥 있으면 되겠습니까. 멋진 공연 한번 해 보시지요. 송해 선생님도 하는데 못할 게 뭐 있습니까’라고 해서 이번 무대를 마련하게 됐어요.”라고 말했다. 하여 이씨가 사회를 보고 친구인 배우 사미자, 김형자, 윤문식씨가 함께 출연한다. 한때 개그 프로그램에서 명콤비를 이루었던 ‘쓰리랑 부부’의 김미화와 김한국씨도 무대를 빛낸다. 김미화씨는 신씨의 딸과 오랜 친구이다. 신씨의 애제자 30여명도 함께 출연한다. 60주년인 만큼 퓨전 국악무대로 꾸민다. 1부에서는 신씨의 60년 일대기가 드라마 형식으로 펼쳐진다. 사미자, 김형자씨가 어머니 역할로 번갈아 출연하고 명창 김일구씨가 아버지 역할을 맡는다. 신씨의 제자 둘이 10~30대 연기를 하고 40대 이후 역할은 본인이 직접 맡는다. 2부에서는 쓰리랑 부부와 함께 흥겨운 마당놀이로 꾸며지며 옹헤야, 뱃노래, 새타령, 물레타령 등 신나는 노래를 직접 들려준다. “지난 60년 세월, 그러니까 제 인생을 무대에 올리는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이영민, 이주희 작가가 대본을 썼는데 그걸 읽고 세번이나 울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와 제가 소리하면서 고생했던 대목에서 울었지요. 이래저래 이번 무대에서 진정한 저의 모습을 보여 드리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목소리가 조금 잠긴 듯했다. 몸 상태를 물었더니 감기 기운이 있는 것 빼고는 컨디션이 좋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매일 아침 스트레칭을 하고 저녁에는 올림픽 공원에서 걷기 운동으로 컨디션을 조절한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자신에게는 식지 않는 패기와 정열, 그리고 용기가 있으니 좋은 무대가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국악은 내 팔자이자 생명 그 자체입니다. 다시 태어나도 국악을 할 것입니다. 국악이 서양음악에 비해 훌륭한 이유를 아시나요. 서양음악은 소프라노, 메조 소프라노, 바리톤, 테너 등으로 나눠 부르지만 국악은 이 모든 것을 함께 아우르며 고저 장단의 음을 다 소화해내지요. 외국에 공연가면 서양음악인들은 바로 이런 점을 매우 놀라워합니다.” 그가 국악을 하게 된 계기는 판소리 명인 아버지(신치선)의 영향을 받았다. 10살 때인 어느 날 아버지가 제자들을 가르치는데 가만히 들어 보니 제자들이 자신보다 못하다는 것을 알고 소리를 배우겠다고 아버지한테 졸랐다. 그러나 아버지는 “여자로 태어났으니 살림이나 하라.”고 반대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어머니가 “노래 솜씨가 영 없는 것은 아니니 한번 가르쳐 보라.”고 설득해 그날부터 소리를 배우기 시작했다. “사실 저는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부터 들은 것이 소리였습니다. 아버지는 소리를 한다는 것이 너무 힘드니까 반대하셨지요. 그렇게 시작된 것이 어느덧 60년이 됐네요.” 신씨가 16살 되던 해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고 어머니마저 병환으로 드러눕는 바람에 소녀 가장이 됐다. 고등학생인 오빠, 그리고 초등학생인 동생의 학비를 벌기 위해 어린 나이에도 열심히 판소리를 했다. 권투를 하는 오빠와 공수도를 하는 남동생 사이에서 자라 자연스럽게 권투와 역기, 아령 등을 익힌 것도 이때였다. 이에 대해 신씨는 “대학에서 연극영화과를 졸업하고 교육자로 살아가는 오빠를 볼 때마다 늘 자랑이고 보람을 느낀다.”고 술회했다. 고생했던 일도 기억한다. “15살 때인가 그래요. 연습을 너무 많이 해서 어혈이 심하게 생겼습니다. 목과 배가 너무 아파 식초와 섞은 계란 흰자를 1년 넘게 먹으면서 견디기도 했지요. 좀 고생이 되더라도 후회하지 않고 정의롭게 살아야 한다고 다짐했습니다.” 소녀 가장이던 그는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나중에 검정고시를 거쳐 동국대 대학원에서 무대예술을 전공하는 열정을 보이기도 했다. 따라서 그가 출연하는 무대는 대부분 직접 무대감독과 안무까지 한다. 국악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적은 “우리 국민들이 우리 것을 외면할 때, 남의 나라 음악을 추구할 때였다.”고 말한다. “관객을 울리고 웃기는, 국악 중의 꽃은 바로 소리입니다. 장단과 몸놀림까지 합쳐진 종합 예술이지요. 그런 자부심으로 1979년부터 유럽, 미국, 일본 등으로 해외공연을 다녔습니다. 특히 독일 공연 때 함성소리와 함께 기립박수를 받았던 일은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우리의 판소리가 인간의 생명 그 자체임을 실감했지요.” ●“국민들이 국악 외면할 때 가장 힘들어” 우리 문화가 살아야 나라도 산다고 강조하는 그는 세 가지 실천 덕목을 지킨다. 음식을 손수 만들어 먹고, 꾸준한 운동으로 몸관리를 하고, 긍정적인 사고를 항상 유지하는 것이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봉사활동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알고 보니 그는 1976년부터 교도소와 수녀원 등을 다니면서 36년째 매년 남 모르게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었다. 지난 6월에는 육군교도소와 영월교도소에서 1시간 넘게 공연을 했고 7월에는 나자로마을에서 봉사활동을 했다. 국악하는 지인, 그리고 제자들과 함께 간다. 이럴 때면 좋은 쌀을 사다가 절편 등 직접 떡을 만든다. 대개 1시간 20분 정도 무료공연을 하는데 판소리와 가야금 병창 등을 곁들인다. 올가을에만 4곳에서 예정돼 있다. “제가 국악인의 딸로 태어나 국악인으로 사랑을 받았으니 당연히 사회에 봉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번 무대의 수익금도 봉사활동을 하는 데 쓰일 것입니다. 나이 70인 제가 늙지 않는 것도 이런 즐거움과 보람이 있기 때문이지요(웃음).” 선임기자 km@seoul.co.kr [신영희씨는] 박봉술·김소희 선생 등에 익혀… 판소리 준문화재 지정 1942년 전남 진도에서 태어났다. 10살 때 판소리 명창인 아버지한테 소리를 배우기 시작했다. 16살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고 어머니마저 병환으로 드러눕는 바람에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판소리를 불러 오빠와 동생을 뒷바라지했다. 이후 안기선, 김준섭, 박봉술, 강도근, 김상룡, 김소희 선생한테 판소리를 익혔다. 1975년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김소희 선생 전수장학생에 선정됐다. 1976 중앙 국립창극단에 입단했으며 1992년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춘향가) 준문화재 지정을 받았다. 검정고시를 거쳐 동국대 대학원에서 무대예술 과정을 수료했다. 현재 한국 판소리보존회 이사와 원광대학교 국악학과 교수 등을 맡고 있다. 남원 춘향제 명창부 최우수상(1977)과 2005년 문화훈장 등을 받았다.
  • [저자와 차 한 잔] ‘한국 음악의 거장들’ 펴낸 서울대 한국학연구원 송지원

    [저자와 차 한 잔] ‘한국 음악의 거장들’ 펴낸 서울대 한국학연구원 송지원

    오선지에 익숙하다. 음악가 이름을 대라면 모차르트와 베토벤, 바흐 등 서양음악 작곡가가 튀어나올 것이다. ‘한국 음악의 거장들-그 천년의 소리를 듣다’(태학사 펴냄)는 이와 다른 우리 음악이 있음을 보여 준다. ●국악 이야기 쉽게 풀어내 “산책을 하듯 썼어요. 산책을 하다 보면 계절의 변화를 느끼고, 어느 날 안 보이던 것을 발견할 때도 있잖아요. 국악연구는 그런 경험과도 같아요. ” 지난 1일 서울 태평로 서울신문 본사에서 만난 송지원(53)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은 책에 차곡차곡 담은 음악가 이야기를 이렇게 표현했다. 음악가를 빠끔히 들여다보다가 그들에게 인생역정을 듣는 듯 몰두하게 됐다고 했다. “우습게 들릴지 모르지만, 그들이 ‘이런 내 이야기를 해 줘’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리기도 한다.”면서 살포시 웃었다. ‘한국 음악의 거장들’은 2009년에 출간한 ‘마음은 입을 잊고, 입은 소리를 잊고’의 확장판이다. ‘마음은 입을 잊고’에는 세손 시절부터 악학 연구에 조예가 깊었던 정조와 절대음감의 소유자 세조, ‘악학궤범’을 남긴 성현, 해금 명인 유우춘, 여성 음악가 계섬과 석개, ‘오디오형 가수’ 남학 등 음악가 28명을 담았다. 이번 책은 여기에 24명을 덧댔다. 저자는 “군주나 사대부 출신은 기록이 많지만 대다수 인물들은 고서에 한두 줄 정도 흔적만 있다. 그런 기록들을 모아 음악학적으로 해석하고 당시 사회상을 바탕으로 상상력을 더해 풀었다.”고 설명했다. 책은 새로 추가한 조선 후기의 문인 오희상으로 시작한다. 거문고 연주를 “삿된 마음을 금하고 자신을 이기는 방법”이라고 여긴 인물이다. 거문고를 탈 때는 안정된 자세와 고정된 시선, 한가로운 생각, 맑은 정신, 견고한 지법을 유지하는 오능(五能)을 강조했다. 거문고를 연주하지 말아야 할 조건(오불탄·五不彈)도 지켰다. 그가 연주를 마칠 즈음이면 “고니가 조용히 하늘로 날아오르는 듯했고, 고요하고 한가로워” 사람이 절로 빠져들었다고 전해진다. 손가락 끝이 아닌, 마음 깊이 우러나오는 음악을 한다고 평가받은 오희상은 송 연구원이 우리 음악을 바라보는 시선과 맞닿아 있다. “선비들은 학문을 닦다가 마음이 답답하면 거문고를 타면서 어지러운 생각을 내려놓기도 했습니다. 음악을 생활의 일부, 삶의 포괄적 개념으로 본 풍류가 있었죠.” ●거문고 연주에 고니 날고 노랫소리에 학 춤춰 학이 움찔움찔 춤추고 싶도록 노래한 가객도 있다. 김수장의 ‘해동가요’에 열거된 명창 56인에 속한 김중열(숙종~영조 대)이다. 거문고 실력도 “덤불 속의 난초, 까마귀와 까치 속 봉황새”라고 칭찬받을 만큼 출중했던 그는 18세기 가객으로 활약했다. “궁상각치우를/ 주줄이 잡혔으니/ 창밖에 엿듣는 학이/ 우줄우줄하더라.”는 노래를 남기기도 했다. “장가 먼저 들고 가야금을 배워라.” 하던 스승의 말을 듣지 않았다가 평생을 홀로 산 가야금 명인 민득량이 있는가 하면, 젊은 시절 인기를 누리며 아내를 멀리했다가 “늘그막에 비로소 짝이 있는 즐거움을 알았노라.”고 노래한 거문고 거장 이원영도 있다. 정간보 창안이나 편경 제작법을 이룬 세종부터 소현세자를 따라 망국의 한을 안고 조선으로 들어온 명나라 사람 굴저까지 신분과 성별을 초월해 우리 음악사에 한 획을 그은 인물들을 줄줄이 만날 수 있다. 석사까지 서양음악을 전공했지만 저자는 서울대 음대에서 한국음악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양 음악과 문학을 폭넓게 넘나드는 이유다. 산책하듯 연구했다더니, 산책길의 수다처럼 책도 재미있다. “1990년대에 KBS 국악 프로그램에서 대본을 쓰고 진행하기도 했다.”는 그의 이력을 듣고 나니 과연 그 ‘글솜씨’를 제대로 녹였구나 싶다. “우리는 서양음악을 많이 알고 있지만 국악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해요. 우리 음악을 만들고 발전시킨 음악인을 계속 발굴하고 흥미롭게 풀어내면 우리 문화를 보는 시선도 자연히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요.” 그가 우리 음악인들과 함께하는 산책을 소홀히 할 수 없는 이유이다. 글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사진 이언탁기자 utl@seoul.co.kr
  • [길을 품은 우리 동네] (13) 광주 육판서길 & 대구 북성로

    [길을 품은 우리 동네] (13) 광주 육판서길 & 대구 북성로

    단편소설 ‘큰 바위 얼굴’의 주인공 소년 어니스트는 마을 바위 골짜기에 새겨진 큰 바위 얼굴을 닮은 훌륭한 인물에 대한 얘기를 어머니로부터 듣고 자란다. 마을 사람들 역시 평생에 걸쳐 훌륭한 인물의 출현에 대한 기대감을 갖고 실망하기를 반복한다. 19세기 중반 미국의 얘기다. 고단하고 남루한 삶을 사는 이들에게 부와 명예, 권력 등 출세에 대한 욕망은 이렇듯 지역과 시대를 가리지 않았다. 대구 중구 북성로와 광주 동구 육판서길 역시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부와 출세에 대한 갈망의 얘기를 담고 있다. 타관으로 떠나 출세한 이는 마을의 자랑이다. 하지만 구불구불한 고향 길을 따라 대처로 떠난 이 대부분은 으리번쩍하게 출세하기보다 여전히 퍽퍽한 삶 속에 고향을 그리워하고 있다. ■광주 육판서길 깜빡이는 30촉 전구를 올려다보며 박수를 치고 처음으로 전화를 들여놓은 집에 모여 감격스러워했던 것이 20년 남짓 전의 일이다. 지하수가 아닌 수도꼭지에서 졸졸거리는 수돗물에 감격했던 것은 불과 7, 8년 전이다. 광주 도심에서 20분 안쪽 거리에 있는 마을이건만 발전은 더뎠다. 온 나라가 난리던 6·25전쟁 때도 아무런 피해가 없었을 정도였다. ‘전라도판 동막골’ 같은 곳이다. 광주에서 화순 쪽으로 가다보면 오른쪽으로 접어드는 길 입구에 커다란 바윗덩어리 표석이 보인다. ‘六判里’(육판리)라고 쓰여 있다. 여기서부터 육판서길이다. 시멘트로 닦인 길이긴 하지만 쉬 사람 사는 마을이 나오지 않을 것 같은 구불구불한 산길, 논길, 밭길이다. 다른 곁길도 없다. 육판서길 중간쯤 왼쪽으로 들어가면 작은 절(법림사)이 하나 있어 육판서길 143번길이 하나 따로 나와 있는 정도다. ●평산 신씨·광산 김씨 집성촌 시작점에서 2004m를 가니 거짓말처럼 마을이 하나 나왔다. 500년 정도의 나이를 자랑하는 느티나무가 마을 어귀에서 한껏 팔을 벌리고 있다. 행정구역명은 광주 동구 내남동 내지마을이다. 하지만 내지마을이 아닌 육판마을로 흔히 쓰인다. 풍수지리학적으로 3정승 6판서가 나올 지세라고 해 붙은 이름이다. 정승에 판서라니…. 정승은 요즘으로 치면 총리급이고 판서면 장관급인데 진짜 판서를 여섯 명이나 배출했던 것일까. 아니면 대처를 꿈꿔 온 궁벽한 마을의 바람이 담겼던 걸까. 이 마을은 평산 신씨와 광산 김씨가 모여 사는 집성촌이다. 육판서길을 도로명 주소로 쓰는 집은 모두 82곳이 있지만 외지로 많이 떠나 빈집이 20곳 가까이 된다. 마을에서 가장 젊어 이장을 맡고 있다는 김성중(64)씨는 “아주 옛날부터 지관들이 마을을 보고 나면 한결같이 풍수지리학적으로 지세가 아주 좋아 3정승 6판서가 나올 곳이라고 했다.”면서 대처로 나간 육판마을 출신 인사들의 이름을 줄줄이 읊는다. 어디 병무청장, 어느 지역의 지법원장에 4성 장군, 큰 리조트를 운영하는 사업가…. 광주에서 언론인 생활을 하다 은퇴하고 귀향한 신현덕(70)씨도 “풍수지리학에서는 길지의 조건 중 ‘산진수회 필유음택’이 있는데 우리 마을이 딱 들어맞는다. 외지인들도 묘를 쓰기 위해 여기로 들어온다.”고 거들었다. 산진수회 필유음택(山盡水回 必有陰宅)은 산으로 막히고 물이 감아 도는 곳에 묘를 쓴다는 뜻이란다. ●내지천 마을 감싸고 분적산 병풍처럼 실제로 마을을 찬찬히 둘러보니 무등산 자락에서 뻗어 내린 분적산이 병풍처럼 든든히 버티고 있고 내지천이 마을을 감싸며 흐르고 있다. 총리, 장관까지는 아니라도 궁벽한 마을에서 출세한 사람이 많이 나올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 곁들여졌다. 마을회관 앞에서 삶은 감자를 먹으며 마을 내력을 살펴보니 꼭 풍수지리학적 지세만은 아니겠구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비밀은 육판마을의 놀라운 교육열이었다. 단순히 자식들의 교육열이 아니라 어른, 아이 가릴 것 없는 배움의 열기 그 자체였다. 그저 먹고사는 것에만 매달려야 했던 1955년부터 육판마을에서는 한문서당을 운영했고 1961년에는 문맹 퇴치를 위해 야학을 열었다. 공식 학력은 보잘것없는 촌로들이 문자속이 기특할 수밖에 없는 것도, 마을회관 벽마다 마을의 크고 작은 역사를 빼곡히 기록해 놓은 것도 그에 따른 당연한 이치였다. 이런 환경에서 자란 자식들이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하는 것도 순리에 가까웠겠다 싶다. 소설 ‘큰 바위 얼굴’에서 큰 바위 얼굴을 닮은 훌륭한 인물의 출현을 기다렸던 어니스트와 마을 사람들이 말년에 이르러서야 새삼 깨달았듯이 육판마을 역시 마찬가지 가르침을 준다. ‘출세’는 돈이나 권력 그 자체가 아니라 성찰할 줄 아는 겸손한 성품과 순결한 노력에 따른 부수적 산물이다. 글 사진 광주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대구 북성로 일제강점기 때 대구 읍성이 헐리고 일본인들이 몰려들었다. 허물어진 읍성 자리에 신작로를 냈다. 북쪽에 낸 신작로가 북성로다. 대구역 사거리 대우빌딩에서 달성공원 입구까지 1.42㎞ 구간이다. 지역 최초로 포장된 도로였을 뿐만 아니라 북쪽에 경부선 철로가 나면서 제일 먼저 일본 사람들이 토지를 매입하기 시작한 도로이기도 하다. ●대구 읍성 헐고 낸 신작로 1.42㎞ 구간 자연스럽게 북성로 일대는 일본인들의 상점으로 채워졌다. 조경회사인 스기하라합자회사, 목재회사인 구로가와 재목점, 대구 최초의 목욕탕인 조일탕, 대구 곡물회사, 마쓰노 석유회사, 철물점 등이 생소한 일본어 간판을 내걸고 늘어섰다. 식당, 요릿집, 영화관, 여관 등이 있던 무라카미초(향촌동)와 연결돼 대구 최고의 번화가를 이뤘다. 특히 이곳에 자리 잡은 미나카이 백화점(현재 대우 주차장 자리)은 대구 본점을 시작으로 한반도 전역과 만주, 일본 도쿄에 이르기까지 18개 지점을 거느린 백화점 그룹으로 성장했다. 1940년 당시 종업원 4000여명에 연 매출이 1억여엔인 공룡 기업이었다. 미나카이 백화점은 5층으로 지어질 당시 대구 최고층 건물이었다. 기둥 사이에 붉은 벽돌을 쌓고 타일을 붙였으며 안에는 유일하게 엘리베이터까지 설치했다. 꼭대기 층에는 카페가 있어 지방의 재력가들이 드나들었다. 최근 이 백화점을 내용으로 한 ‘북성로의 밤’이라는 소설이 출간됐다. 일본이 식민지 수탈을 목적으로 부설한 철도도 북성로를 당시 최고의 번화가로 만드는 데 일조했다. 철도가 멈추는 대구역 주변에는 물류가 모이고 빠져나가는 대형 창고들이 줄줄이 들어섰다. 거래량도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주식인 쌀의 거래는 일제의 수탈 강화와 함께 투기성을 띠는 지경에 이르렀다. 해방 이후 북성로는 사교와 문화의 거리로 변모한다. 백조다방은 당시로는 파격적인 그랜드 피아노가 있어 향토 음악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향토 음악인의 연습 공간으로 애용되기도 했다. 6·25전쟁 시절에는 북성로 일대에 이름난 다방이 많이 있었다. 모나미, 청포도, 백조, 백록, 호수, 꽃자리 등이다. 모나미다방은 문인들이 즐겨 찾았으며 꽃자리다방에선 구상 시인의 시집 ‘초토의 시’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상권이 변하면서 1970년대 들어 북성로에는 공구 골목이 들어섰다. 북성로 거리 양쪽에 500여개 점포가 빼곡히 들어서 있다. 공구, 호스, 농기구, 베어링 등의 산업용품을 판매한다. 이곳에서 대구 경북 산업이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3산업공단, 이현공단 등 도심 산업단지가 들어선 1970년대 후반 전성기를 맞았다. ●30년 넘은 여인숙·쪽방 다닥다닥 이후 공구 골목은 부침을 거듭했다. IMF 외환 위기와 금융 위기를 거치면서 큰 타격을 입었다. 1998년에는 검단동 유통단지로 상당수 업체가 빠져나가면서, 최근에는 인터넷 쇼핑몰이 생겨나면서 큰 위기를 맞았다. 이렇게 반복되는 위기에도 굵직한 회사들이 여전히 북성로를 지켜 공구 골목은 건재하다. 하지만 공구 골목 주변은 개발에서 소외돼 도심의 빈촌으로 전락했다. 북성로에는 아직도 30년이 지난 낡은 여인숙과 쪽방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마치 시간이 멈춘 듯 30년 전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그래도 북성로에서 변화한 곳이 있다. 1904년 건설된 대구역사다. 당시 오두막 형태의 임시 역사였지만 1913년에 다시 지어졌다. 목조 2층으로 일본, 서양 절충형의 르네상스 양식 건물이었다. 역 앞 광장은 민중 집회와 축제, 선거 유세 때 가장 먼저 꼽히는 장소였다. 대구를 드나드는 사람들과 만나고 이별하는 추억을 시민들에게 남겼다. 그 광장은 2002년 대구역이 롯데백화점 민자역사로 바뀌면서 시민들의 품을 떠나고 말았다.북성로에서 50년째 살고 있다는 김정규(75)씨는 “북성로는 대구의 모든 돈과 쌀이 모였던 곳이었다. 이제는 대구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으로 전락해 세월의 무상함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글 사진 대구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14회는 제주 서귀포시 ‘이어도로’를 소개합니다.
  • 미모의 탈북 女가수, 누구 딸인가 알고보니…

    미모의 탈북 女가수, 누구 딸인가 알고보니…

    평양음악무용대학 출신으로 탈북해 남쪽에서 트로트 가수로 활동했던 명성희(30)씨가 파페라 가수로 변신해 화제다. 탈북자 인터넷 매체 ‘뉴포커스’(www.newfocus.co.kr)는 1일 새로운 인생의 출발점에 선 명씨와의 인터뷰를 실었다. 명씨는 북한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영화방송음악단에 들어가 영화 오리지널사운드트랙(OST) 가수로 활동하며 ‘스승과 제자’, ‘당찬 처녀들’ 등 주제가를 부르며 인기를 모았다. 2005년 어머니, 동생과 함께 탈북한 그는 적지 않은 나이에 서울예술대학 실용음악과에 입학했고, 졸업 뒤 음반 회사의 권유로 명가람이라는 이름으로 트로트계에 입문했다. 명씨는 북한에서 유명한 체육인과 예술인을 부모로 둬 주목받기도 했다. 아버지는 북한 남자 국가대표 축구팀을 20년 동안 지휘했던 고(故) 명동찬 감독이다. 북한에서 ‘인민 체육인’ 호칭을 받았던 명 감독은 1990년 남한과 북한에서 번갈아 열린 통일축구 대회에서 북한 사령탑을 맡아 한국에도 잘 알려져 있다. 어머니 또한 북한 최고 예술단으로 꼽히는 조선인민군협주단에서 가극 배우로 활약했던 박윤희씨다. 현재 홀로서기를 하는 명씨는 파페라 가수로서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3옥타브의 음역대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그는 올 가을 새 앨범을 낼 예정이다. 다음은 뉴포커스와의 인터뷰 전문. →우선 한국 생활이 어떠신지 궁금하다. -남한사회에서 가수로서 처음 데뷔하기가 어렵네요. 북한에 있을 때 영화방송 음악단 가수로 활동을 했는데, 한국 음악을 너무 하고 싶었어요. 그나마 북한에선 영화 음악에서나 자유스럽게 발성을 낼 수 있어요. 물론 영화 음악에도 김일성, 김정일의 사상이 들어가 있죠. 지금은 음반 회사와 결별하고 혼자서 가는 중이에요. 그 길이 쉽지만은 않죠. 하지만 어렵게 이 땅에 왔기에 가수로서의 저의 꿈을 이루지 못하면 후회할 것 같아요. 남한에서 가수 활동을 준비 한 게 5년 남짓 되는데, 얼마 전 일본 활동도 하고 왔어요. 반응이 좋아요. →특별히 파페라 가수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있는가? -한국에 왔을 때 제 나이 25세였는데 당시 가요계엔 리듬앤블루스(R&B) 음악이 주류를 이뤘어요. 그러던 중 음반 회사의 권유로 트로트 가수로 활동하게 됐어요. 정의성 작곡가님에게서 ‘얄리얄라’, ‘어금니’, ‘어 그래’ 등의 곡을 받기도 했었어요. 회사와 결별한 이후로 파페라 가수로 활동하고 있어요. 생각보다 반응이 좋아서 감사해요. 사실 남한에 앞서 북한에 있었을 당시 파페라 가수로 데뷔했었거든요. 크로스오버 음악인 파페라 가수가 되는 것이 어렸을 때부터 꿈이였어요. →탈북을 결심하게된 배경은? -22살, 영화방송음악단 소속 가수로 활동하는데 우울증이 찾아왔어요. 자유롭게 음악을 하고 싶었거든요. 북한 음악은 주체 발성법으로 노래해야 해서 심적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어요. 그러던 중 자살 시도도 했었고요. 지금 생각해보면 운명인지, 자살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어요. 다시금 마음을 진정시켰죠. 하지만 그때부터 매일 남한으로 가서 자유롭게 노래할 생각만 했어요. 그러던 중 브로커를 통해 남한으로 올 기회를 잡은 거죠. 행운이었어요. →모친 또한 북한에서 유명한 공훈가수로 활동했던 걸로 알고 있는데 가수의 길을 걷는 데 있어, 아무래도 부모님의 영향이 크지 않았나 싶다. -물론 어머니의 영향이 컸어요. 제가 처음 노래할 때 진성 소리를 많이 썼거든요. 그래서 평양음악무용대학에 입학했을 당시, 교수님들이 북한 음악하기 힘든 목소리라고 그러셨어요. 그런데 공훈가수 출신인 어머니께 소리 내는 법을 배운 후 단기간 내에 발성이 클래식에 적합한 창법으로 바뀌었어요. 지금도 어머니는 제 노래의 스승이세요. →가족이 북한에서 중산층 이상의 삶을 살았는데, 탈북을 결심했을 때 부모님의 반대도 컸을듯하다. -제일 먼저 어머니하고 상의했어요. 아버지가 간암으로 돌아가신 후 어머니가 북한에서 아이스크림 공장을 크게 하고 있었거든요. 사실 어머님은 가도 좋고 안가도 좋고 그런 입장이었어요. 자유롭게 노래를 하고 싶던 제 꿈에 어머님도 결국 감복하셨죠. →꿈을 찾아 한국에 어렵게 왔는데 소회가 어떠한가. -사실 처음 한국에 왔을 땐 무척 힘들었어요. 북한하고 시스템이 다르니까요. 북한은 예능단체들을 당 차원에서 관리하고 밀어주는데, 남한은 다르더라고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자기 힘으로 해야 했어요. 사기를 당하는 몇 번의 절망적인 과정에서 언제나 스스로 되새긴 건 나는 꼭 성공할 것이라는 믿음이었어요. 지금도 이런 희망을 품고 매일 믿음으로 걷고 있어요. →한국사회에 바라는 점이 있는가. -예술 분야 탈북자들에 대한 지원이 없어서 아쉬워요. 탈북 예술인들을 키워낼 수 있는 제도, 시스템이 절실해요. 능력이 검증된다면 재능 있는 탈북 학생들을 남한 사회의 멘토들과 연결해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지원 시스템과 정보가 없는 탈북 학생들이 정상 궤도에 오르려면 5~6년 이상 걸리거든요. →예술인을 꿈꾸는 탈북자들에게 조언을 부탁한다. -아무래도 예능 쪽은 길이 좁다 보니 유혹들도 많거든요. 남한 사회와 자기 분야에 대해 더욱 거시적인 안목과 지혜가 필요한 것 같아요. →끝으로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 -자신만의 색깔이 있는 파페라 가수가 되고 싶어요. 조수미, 임태경, 임형주씨를 존경하고요. 저도 이들처럼 자신만의 스타일이 있는 음악인이 되고 싶어요.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미모의 탈북 女가수, 누구 딸인가 알고보니…

    미모의 탈북 女가수, 누구 딸인가 알고보니…

    평양음악무용대학 출신으로 탈북해 남쪽에서 트로트 가수로 활동했던 명성희(30)씨가 파페라 가수로 변신해 화제다. 탈북자 인터넷 매체 ‘뉴포커스’(www.newfocus.co.kr)는 1일 새로운 인생의 출발점에 선 명씨와의 인터뷰를 실었다. 명씨는 북한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영화방송음악단에 들어가 영화 오리지널사운드트랙(OST) 가수로 활동하며 ‘스승과 제자’, ‘당찬 처녀들’ 등 주제가를 부르며 인기를 모았다. 2005년 어머니, 동생과 함께 탈북한 그는 적지 않은 나이에 서울예술대학 실용음악과에 입학했고, 졸업 뒤 음반 회사의 권유로 명가람이라는 이름으로 트로트계에 입문했다. 명씨는 북한에서 유명한 체육인과 예술인을 부모로 둬 주목받기도 했다. 아버지는 북한 남자 국가대표 축구팀을 20년 동안 지휘했던 고(故) 명동찬 감독이다. 북한에서 ‘인민 체육인’ 호칭을 받았던 명 감독은 1990년 남한과 북한에서 번갈아 열린 통일축구 대회에서 북한 사령탑을 맡아 한국에도 잘 알려져 있다. 어머니 또한 북한 최고 예술단으로 꼽히는 조선인민군협주단에서 가극 배우로 활약했던 박윤희씨다. 현재 홀로서기를 하는 명씨는 파페라 가수로서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3옥타브의 음역대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그는 올 가을 새 앨범을 낼 예정이다. 다음은 뉴포커스와의 인터뷰 전문. →우선 한국 생활이 어떠신지 궁금하다. -남한사회에서 가수로서 처음 데뷔하기가 어렵네요. 북한에 있을 때 영화방송 음악단 가수로 활동을 했는데, 한국 음악을 너무 하고 싶었어요. 그나마 북한에선 영화 음악에서나 자유스럽게 발성을 낼 수 있어요. 물론 영화 음악에도 김일성, 김정일의 사상이 들어가 있죠. 지금은 음반 회사와 결별하고 혼자서 가는 중이에요. 그 길이 쉽지만은 않죠. 하지만 어렵게 이 땅에 왔기에 가수로서의 저의 꿈을 이루지 못하면 후회할 것 같아요. 남한에서 가수 활동을 준비 한 게 5년 남짓 되는데, 얼마 전 일본 활동도 하고 왔어요. 반응이 좋아요. →특별히 파페라 가수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있는가? -한국에 왔을 때 제 나이 25세였는데 당시 가요계엔 리듬앤블루스(R&B) 음악이 주류를 이뤘어요. 그러던 중 음반 회사의 권유로 트로트 가수로 활동하게 됐어요. 정의성 작곡가님에게서 ‘얄리얄라’, ‘어금니’, ‘어 그래’ 등의 곡을 받기도 했었어요. 회사와 결별한 이후로 파페라 가수로 활동하고 있어요. 생각보다 반응이 좋아서 감사해요. 사실 남한에 앞서 북한에 있었을 당시 파페라 가수로 데뷔했었거든요. 크로스오버 음악인 파페라 가수가 되는 것이 어렸을 때부터 꿈이였어요. →탈북을 결심하게된 배경은? -22살, 영화방송음악단 소속 가수로 활동하는데 우울증이 찾아왔어요. 자유롭게 음악을 하고 싶었거든요. 북한 음악은 주체 발성법으로 노래해야 해서 심적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어요. 그러던 중 자살 시도도 했었고요. 지금 생각해보면 운명인지, 자살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어요. 다시금 마음을 진정시켰죠. 하지만 그때부터 매일 남한으로 가서 자유롭게 노래할 생각만 했어요. 그러던 중 브로커를 통해 남한으로 올 기회를 잡은 거죠. 행운이었어요. →모친 또한 북한에서 유명한 공훈가수로 활동했던 걸로 알고 있는데 가수의 길을 걷는 데 있어, 아무래도 부모님의 영향이 크지 않았나 싶다. -물론 어머니의 영향이 컸어요. 제가 처음 노래할 때 진성 소리를 많이 썼거든요. 그래서 평양음악무용대학에 입학했을 당시, 교수님들이 북한 음악하기 힘든 목소리라고 그러셨어요. 그런데 공훈가수 출신인 어머니께 소리 내는 법을 배운 후 단기간 내에 발성이 클래식에 적합한 창법으로 바뀌었어요. 지금도 어머니는 제 노래의 스승이세요. →가족이 북한에서 중산층 이상의 삶을 살았는데, 탈북을 결심했을 때 부모님의 반대도 컸을듯하다. -제일 먼저 어머니하고 상의했어요. 아버지가 간암으로 돌아가신 후 어머니가 북한에서 아이스크림 공장을 크게 하고 있었거든요. 사실 어머님은 가도 좋고 안가도 좋고 그런 입장이었어요. 자유롭게 노래를 하고 싶던 제 꿈에 어머님도 결국 감복하셨죠. →꿈을 찾아 한국에 어렵게 왔는데 소회가 어떠한가. -사실 처음 한국에 왔을 땐 무척 힘들었어요. 북한하고 시스템이 다르니까요. 북한은 예능단체들을 당 차원에서 관리하고 밀어주는데, 남한은 다르더라고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자기 힘으로 해야 했어요. 사기를 당하는 몇 번의 절망적인 과정에서 언제나 스스로 되새긴 건 나는 꼭 성공할 것이라는 믿음이었어요. 지금도 이런 희망을 품고 매일 믿음으로 걷고 있어요. →한국사회에 바라는 점이 있는가. -예술 분야 탈북자들에 대한 지원이 없어서 아쉬워요. 탈북 예술인들을 키워낼 수 있는 제도, 시스템이 절실해요. 능력이 검증된다면 재능 있는 탈북 학생들을 남한 사회의 멘토들과 연결해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지원 시스템과 정보가 없는 탈북 학생들이 정상 궤도에 오르려면 5~6년 이상 걸리거든요. →예술인을 꿈꾸는 탈북자들에게 조언을 부탁한다. -아무래도 예능 쪽은 길이 좁다 보니 유혹들도 많거든요. 남한 사회와 자기 분야에 대해 더욱 거시적인 안목과 지혜가 필요한 것 같아요. →끝으로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 -자신만의 색깔이 있는 파페라 가수가 되고 싶어요. 조수미, 임태경, 임형주씨를 존경하고요. 저도 이들처럼 자신만의 스타일이 있는 음악인이 되고 싶어요.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올림픽과 나-김학선] ‘역사의 진보’ 자부심 드러난 개회식

    [올림픽과 나-김학선] ‘역사의 진보’ 자부심 드러난 개회식

    경기 이천에 있는 지산밸리에서 열리는 록페스티벌을 지켜보면서 28일 런던올림픽 개회식을 봤다. 지난 27일 메인 무대의 주인공이었던 라디오헤드를 비롯해 스톤 로지스, 제임스 블레이크, 비디 아이 같은 유명 음악인들이 경기도의 한 작은 도시를 음악의 공간으로 바꾸어 놓고 있다. 어젯밤 블레이크의 음악을 들으며 생각해보니 메인 무대를 장식하는 음악인들이 우연찮게 다 영국 출신이었다. ●음악으로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지산밸리 록페스티벌에 이어 2주 뒤 인천에서 열리는 펜타포트 록페스티벌의 ‘헤드라이너’(간판 출연자) 매닉 스트리트 프리처스와 스노 패트롤 역시 영국 출신이다. 특히 매닉 스트리트 프리처스는 런던올림픽 폐회식 무대에 서는 영광 대신에 약속을 지키겠다며 한국의 록페스티벌을 택해 화제가 됐다. 이렇듯 영국은 음악에 있어서만은 여전히 ‘해가 지지 않는 나라’다. 해서 필자와 같은 음악 애호가들은 올림픽 경기보다 개회식과 폐회식 공연에 더 관심이 갈 수밖에 없다. 그런 기대를 안고 지켜본 3시간 30분의 개회식 공연은 기대했던 만큼 훌륭했다. 무엇보다 재미가 있었다. 올림픽 개회식을 지루하지 않게 처음부터 끝까지 본 건 이번 런던올림픽이 처음이었던 것 같다. 대니 보일 감독이 연출한 행사는 흥미로웠고 때로는 감동적이기도 했다. 물론 중간중간 좋아하는 음악가들을 볼 수 있었다는 게 큰 매력이었다. 마이크 올드필드 같은 거장부터 디지 라스칼 같은 새로운 얼굴까지, 영국 음악은 이번 개회식의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같은 제목의 영국 국가에서 제목을 따 와 왕실과 여왕을 조롱한 노래 ‘신이여 여왕을 구하소서’(God Save The Queen)를 부르기도 했던 섹스 피스톨스와 무장폭동을 선동했던 클래시의 노래가 ‘정부’ 주도 행사에 울려퍼지는 것 역시 흥미로웠다. 에릭 클랩턴, 퀸, 펫 숍 보이스, 블러, 케미컬 브러더스, 프로디지 등 위대한 제국의 음악들은 행사 시작부터 선수단 입장까지 함께했다. 폴 매카트니가 선창하며 경기장 안 모든 이들이 함께 부른 ‘헤이 주드’(Hey Jude)가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한 것도 벅차오르는 장면이었다. 하지만 개회식의 인상적인 요소가 음악만은 결코 아니었다. 여러 흥미로운 장면 가운데 산업혁명 때부터 자신들의 역사를 보여 주며 그 폐해까지도 축제의 장에 담으려 한 솔직함이 도드라졌다. 그런 시행착오의 과정을 거치며 생겨난 여성참정권 운동과 자본주의 국가 최초의 국민건강의료제도(NHS)를 개회식 공연에 담아낸 것은 영국이 산업화와 민주주의의 주역이었음을 내세우는 자부심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노동자, 영국을 상징하는 계급 그 자부심은 곧 건강한 노동자성으로 연결된다. 산업혁명, 여성참정권, 보모, 국민건강의료제도 등은 모두 ‘노동’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노동자는 영국을 상징하는 계급이 됐다. 성화가 주경기장으로 들어설 때 입구에서 성화를 맞이한 건 주경기장 건설에 참여한 노동자들이었다. 영국은 이번 개회식 행사를 통해 대중문화와 함께 (자신들이 주도한) 역사의 진보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다시 영국에서 올림픽이 개최되려면 적어도 50년의 시간이 흘러야 할 것이다. 그때 세계의 음악은, 세계의 역사는 어떻게 변해 있을까. 팝 칼럼니스트 studiocarrot@naver.com
  • 北 김정은, 어린 아내 출산 후에도 일 시키며…

    北 김정은, 어린 아내 출산 후에도 일 시키며…

    북한이 25일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부인으로 전격 공개한 리설주가 지난 2005년 남한을 방문한 적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국가정보원은 26일 국회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리설주가 지난 2005년 9월 인천에서 열린 아시아육상대회에 응원단으로 참석한 것을 공식 확인했다.”고 보고했다. 국정원에 따르면 리설주는 1989년생으로 지난 2009년 김 제1위원장과 결혼했다. 일각에서 제기한, 장성택이 중매한 것이 아니냐는 설에 대해서는 확인된 바가 없으며 평범한 가정 출신으로 평양 금성 제2중학교를 나와 중국에서 성악을 전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은 북한이 리설주의 존재를 공개한 이유가 김 제1위원장의 안정적인 면모를 과시하기 위해서인 것 같다고 분석했다. 김정은과 리설주 사이에는 자녀가 1명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국정원은 밝혔다. 지난 2005년 인천 아시아육상대회에 북한은 선수단을 포함해 총 124명을 파견했고, 리설주라는 여성은 청년학생협력단 단원 100명 가운데 포함돼 있었다. 당시 이 소녀는 남측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금성학원 소속 17살(만 16세) 리설주로 자신을 소개하고 국가 예술극단에서 활동하고 싶다는 꿈을 밝히기도 했다. 리설주가 지난 2003년 3월 금강산에서 열린 ‘남북청소년적십자 우정의 나무심기’ 행사에 참석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인물사진분석 전문가인 조용진 한남대 객원교수는 “북한이 25일 공식 발표한 리설주의 사진과 예술단 공연 사진, 그리고 2003년 금강산에서 찍은 사진을 비교하면 모두 동일인물임에 틀림없다.”고 말했다. 리설주가 김 제1위원장과 어떻게 결혼하게 되었는지도 관심이 쏠린다. 전문가들은 이를 북한의 ‘음악 정치’에 따른 것으로 분석한다. 리설주는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이후에도 올 1월까지 은하수관현악단에서 활동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국정원은 밝혔다. 지난해 1월 평양에서 열린 신년 경축음악회에서 북한 가곡 ‘병사의 발자욱’을 불렀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가 주연급 가수로 일했던 ‘은하수관현악단’은 100여명의 단원으로 구성돼 있으며 이탈리아, 프랑스, 중국 등지에서 유학한 엘리트 연주자와 가수로 구성돼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사망 전인 지난해 7월 은하수관현악단 공연을 관람한 뒤 “모든 예술단체들이 따라 배워야 할 본보기”라고 극찬하기도 했으며 김정은을 대동하고 수차례 이 악단 공연을 관람했다. 이는 김 제1위원장과 리설주의 접촉이 쉽게 이뤄질 수 있었음을 시사한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북한에서 음악은 단순한 예술이 아니고 강성대국을 건설하기 위해 주민들을 결속시키는 정치수단”이라며 “북한 고위층과 음악인의 만남은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김정은의 부인 리설주와 은하수악단에서 독창을 한 가수 리설주는 서로 얼굴 윤곽도 다르고, 치아 모양과 턱살에서 차이점이 많다.”며 리설주가 은하수악단 출신 가수가 아닐 가능성을 제기했다. 그는 또 “조선중앙통신 중문사이트를 보면 김정은 부인 리설주(李雪主)와 가수 리설주(李雪珠)의 한자표기가 다르다.”고 했다. 한편 국가정보원은 이날 정보위원회 비공개 전체회의에서 북한의 리영호 군 총참모장의 해임은 김정은이 군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는 과정에서 비협조적 태도를 취한 데 대한 문책성 인사인 것으로 보고했다. 하종훈기자 artg@seoul.co.kr
  • 2005년 16세의 리설주, 南에 왔었다

    2005년 16세의 리설주, 南에 왔었다

    북한이 25일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부인으로 전격 공개한 리설주가 지난 2005년 남한을 방문한 적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국가정보원은 26일 국회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리설주가 지난 2005년 9월 인천에서 열린 아시아육상대회에 응원단으로 참석한 것을 공식 확인했다.”고 보고했다. 국정원에 따르면 리설주는 1989년생으로 지난 2009년 김 제1위원장과 결혼했다. 일각에서 제기한, 장성택이 중매한 것이 아니냐는 설에 대해서는 확인된 바가 없으며 평범한 가정 출신으로 평양 금성 제2중학교를 나와 중국에서 성악을 전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은 북한이 리설주의 존재를 공개한 이유가 김 제1위원장의 안정적인 면모를 과시하기 위해서인 것 같다고 분석했다. 김정은과 리설주 사이에는 자녀가 1명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국정원은 밝혔다. 지난 2005년 인천 아시아육상대회에 북한은 선수단을 포함해 총 124명을 파견했고, 리설주라는 여성은 청년학생협력단 단원 100명 가운데 포함돼 있었다. 당시 이 소녀는 남측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금성학원 소속 17살(만 16세) 리설주로 자신을 소개하고 국가 예술극단에서 활동하고 싶다는 꿈을 밝히기도 했다. 리설주가 지난 2003년 3월 금강산에서 열린 ‘남북청소년적십자 우정의 나무심기’ 행사에 참석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인물사진분석 전문가인 조용진 한남대 객원교수는 “북한이 25일 공식 발표한 리설주의 사진과 예술단 공연 사진, 그리고 2003년 금강산에서 찍은 사진을 비교하면 모두 동일인물임에 틀림없다.”고 말했다. 리설주가 김 제1위원장과 어떻게 결혼하게 되었는지도 관심이 쏠린다. 전문가들은 이를 북한의 ‘음악 정치’에 따른 것으로 분석한다. 리설주는 지난해 1월 평양에서 열린 신년 경축음악회에서 북한 가곡 ‘병사의 발자욱’을 불렀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가 주연급 가수로 일했던 ‘은하수관현악단’은 100여명의 단원으로 구성돼 있으며 이탈리아, 프랑스, 중국 등지에서 유학한 엘리트 연주자와 가수로 구성돼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사망 전인 지난해 7월 은하수관현악단 공연을 관람한 뒤 “모든 예술단체들이 따라 배워야 할 본보기”라고 극찬하기도 했으며 김정은을 대동하고 수차례 이 악단 공연을 관람했다. 이는 김 제1위원장과 리설주의 접촉이 쉽게 이뤄질 수 있었음을 시사한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북한에서 음악은 단순한 예술이 아니고 강성대국을 건설하기 위해 주민들을 결속시키는 정치수단”이라며 “북한 고위층과 음악인의 만남은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김정은의 부인 리설주와 은하수악단에서 독창을 한 가수 리설주는 서로 얼굴 윤곽도 다르고, 치아 모양과 턱살에서 차이점이 많다.”며 리설주가 은하수악단 출신 가수가 아닐 가능성을 제기했다. 그는 또 “조선중앙통신 중문사이트를 보면 김정은 부인 리설주(李雪主)와 가수 리설주(李雪珠)의 한자표기가 다르다.”고 했다. 한편 국가정보원은 이날 정보위원회 비공개 전체회의에서 북한의 리영호 군 총참모장의 해임은 김정은이 군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는 과정에서 비협조적 태도를 취한 데 대한 문책성 인사인 것으로 보고했다. 하종훈기자 artg@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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