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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경지역 북 경비병 대폭 증강/중국서 본 북한의 움직임

    ◎탈북자 검거·밀수단속 강화 추측/이달들어 중­북 인·물적 교류 감소/북 “김 추모위해 7월엔 관광객 안받아” 김일성사망 1주기를 맞는 요즘 중국·북한 국경지역은 평온속에 여름을 맞고 있다. 6월부터 시작된 「백두산참관」길에 나선 한국관광객들이 단동과 도문시등 중·조 접경지대에 몰려들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7월들어 두나라간 인적 왕래는 크게 줄고 있다.중국인 대상의 북한관광이 중단됐고 국경무역에 대해서도 북한세관의 조사가 엄격해져 외면적으론 인적·물적왕래가 급격히 줄고 있다는 것이다. 북경·심양·단동등의 여행사들은 요즘 북한사정을 묻는 전화에 『북한측이 8일 김일성주석 1주기 추모를 위해 7월 한달동안은 여행객을 받지 않겠다고 전해왔다』고 밝혔다.단동시 관광국의 한 관계자는 『지난달 단동을 통해 3천여명에 가까운 중국인들이 신의주를 거쳐 평양∼개성∼묘향산∼판문점등을 여행하고 왔지만 이번 달에는 단체관광이 없다』고 말했다. 3박4일에 2천1백위안(20여만원상당),6박7일에 3천4백위안(32만원상당)의 비용중 상당부분을 얻는 북한이지만 아직은 외화보다는 추도행사가 더 중요한 것 같다고 이 관계자는 토를 달았다. 단동시 보산촌 조선족 집성촌에 살고 있는 한 조선족은 『북조선에서 오는 친척방문은 거의 끊어졌다』고 지적했다.조선족 자치주 주도인 연길시 주민들도 『최근 북에서 오는 친척방문은 찾아볼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대신 국경지역에 북한 경비병의 수가 부쩍 증가했으며 대규모 군대이동도 눈에 띄고 있다고 한다.중국으로 넘어오는 북한탈출자들이 끊이지 않은데다 밀수 단속을 위해 이같이 경비를 강화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느냐는 것이 이들 주민들의 판단이다. 그렇다고 북경과 동북지역 조선족 사회가 북한과 멀어졌냐하면 결코 그렇지만은 않은 듯하다.현재 연길에는 평양 만수대 예술단이 와 있고 인민예술가들의 작품이 연길시 하남지역 문연 미술전시관에서 전시되고 있다.또 지난 6월에는 중앙음악가동맹위원회가 발표회를 갖는 등 외면적인 왕래감소에도 불구,실제적인 교류는 꾸준히 진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외면적인 한국열풍에도 불구,북한에 대한 정서적인 친근감과 연대의식도 여전한 모습이다.중국의 조선족사회는 일부 친한·친북의 편이 갈리면서도 대부분은 무역·교류의 거간꾼 역할을 하기위해 양쪽을 오가며 남북의 화해물결을 기다리면서 한 건을 준비하고 있다.이들 조선족기업들은 김일성사망 1주기를 맞아 기업및 개인이름으로 된 화환을 준비해 북경의 북한대사관과 심양영사관등에 보내기에 여념이 없다. 유례없이 활발한 남북「무역일꾼」들의 물밑접촉도 「중·조」국경지역의 외면적인 왕래 감소와는 또다른 김일성사후 1년간의 남북관계의 진전으로 평할 수 있다.북한의 대외경제협력추진위원회는 물론 각 지방 무역총국의 무역일꾼들도 예전과 달리 중국내 「남조선」기업사무실에 먼저 전화를 하거나 찾아와 임가공이야기와 투자문제등에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는 것도 지난해 등 예전과 다른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고 관계자들은 전한다.이같은 접촉을 통해 요즘 평양에서는 주택난등을 이유로 직장별로 10만명가량이 평양밖으로 이주됐고 앞으로도 대대적인 이주가 있을 것이라는 소문이 끊이지 않아 평양시민들이 불안해하고 있다는 얘기도 전해지고 있다. 단동시의 한 관계자는 『신의주를 바라보고 있는 압록강변 개발구에 최근 아파트단지가 세워지고 급속히 개발되고 있는 것도 올 7월이 지나면 북한이 많이 변할 것이라는 일반적인 예측과 무관치 않다』고 말하고 있다.
  • 바이올리니스트 김남윤(이세기의 인물탐구:74)

    ◎독주회·협연 한해 15회꼴… 쉬지않는 연주자/9세때 이대실내악단 연주에 매료 입문/“남다른 정열·힘있는 음악” 평… 고정땐 많아/소중한 악기 「과다니니」 제자에게 흔쾌히 빌려주기도 사랑을 하게 되거나 혹은 참혹한 현실에 부딪칠때 사람은 울부짖거나 통곡하거나 희열과 유열에 몸부림치게 된다.니체는 이런 종류의 광기를 「디오니소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예술가가 만약 디오니소스적 광기에 몰입 할 수 없다면 얼마나 불행한가.『디오니소스적 광기에 도취하여 자기라는 이성과 관습과 틀과 형식을 박차고 훨훨 창공을 날아오르는 이가 바로 김남윤』이다.이는 지휘자 김만복씨의 말이다.그는 과연 고뇌와 좌절의 여러 파란을 지나 참으로 조용히 예술의 정점을 응시하려는 예술가다.더 더욱 최근들어 영감에 가득찬 흐르는 듯한 연주는 「모든 음악에는 컬러가 있고 분위기가 있다」는 시게티의 방식을 실천시킨다.특히 그가 들려주는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파르티타 2번은 절후의 명작다운 심오한 감정과 고고한 기품,바흐의 풍부한 환상을 유연한 선율로 이끌어낸다.경쾌한 쿠랑트(주)와 장중한 폴리포니(복음락),저음테마와 고음이 교차되는 5악장 샤콘은 마치 「꽃잎이 피어나는 넋의 개화」로 평받고 있다.그는 과연 음악을 캐내기 위해 까마득한 터널을 달려가는 고독한 자의 비애와 고뇌를 절창으로 성취해 낸 것이다. ○악보에 생명력 불어넣어 「그의 레퍼토리는 모든 작곡가를 두루 꿰고 있지만 악보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음악을 살아 숨쉬게 하는 매력이 특징이다.특히 그의 모차르트는 이따금 너무나 격정적이며 비브라토의 처절성이 모차르트에 어울리는 것이 아니라해도 그의 백열하는 열정 때문에 청중은 온통 열광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고 유신씨는 평한바 있다. 김남윤의 연주회에 가보면 당장 느낄수 있는 것이 그에겐 고정팬이 확보돼 있다는 점이다.그러니까 알만한 사람들이 인사치레로 온다든가 학교 인맥등으로 동원된 관객과는 전혀 그 유가 다르다.그의 미국 매니저인 테어 디스페커는 일반관객이 김남윤의 연주회 입장권을 구매하는 것을 여간 자랑스러워 하지 않는다.예를 들어지난 85년 일본 도쿄의 사보회관과 무사시노 문화시민회관 독주회가 대단한 성공을 거두자 도쿄 인터내셔널 뮤직코퍼레이션은 다음해 앙코르연주를 요청해왔고 이미 정해진 스케줄로 인해 2년후로 계약을 미룬 일 등이 이를 증명한다. 그는 78년 미국서 귀국후 지금까지 한해도 거르지 않고 독주회를 여는가하면 실내악과 오케스트라 협연등 연평균 15회 이상의 왕성한 활동을 벌이는 연주가로 유명하다.그래서 국내의 비중있는 평론가인 유신 이상만 서우석 한상우들로부터 「그해의 음악인」으로거듭 선정되는등 음악과 관련된 모든 상을 혼자서 휩쓸다시피 했다. 그는 부친 김희룡씨와 음악을 좋아하는 정경선 여사 사이의 2남2녀중 막내로 태어났다. 은행지점장이던 부친의 임지를 따라 전주 대전등지에서 유아기를 보냈고 처음은 피아노를 치다가 9살되던해 이대 실내악단의 순회연주를 보고 섬세한 선율에 이끌려 바이올린으로 악기를 바꿨다.바이올린을 시작한지 3년만에 이화·경향음악 콩쿠르 특상,이화여중 3학년때 동아음악콩쿠르 1등에 입상하면서 스승과 부모의 기대를 받으며 그는 누구보다 행복하고 순탄한 음악의 길을 걸어왔다. 줄리아드 음악원시절에는 김영욱 정경화를 길러낸 저명한 이반 갈라미언교수를 사사,또하나의 스승인 펠릭스 갈리미어교수는 「남윤의 남다른 정열과 힘있는 음악」을 유독 편애하여 그가 스위스 티보바가 국제콩쿠르에서 우승하자 줄리아드 오케스트라의 솔리스트로 발탁했었다.이후 정상의 연주가,서울대 교수의 신분에도 불구하고 그는 방학이면 미국의 지도교수들에게 자신의 음악의 진취를 확인하는데 게으르지 않았다. 따라서 그는 한시도 쉬지않고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연주회에 가고 친구들을 만난다.실제로 연습이나 강의가 없을땐 그의 손에는 라디게나 랭보나 이문열이 들려있다.원만한 대인관계로 폭넓게 사람들을 사귀지만 그중에서도 한국종합예술학교 음악원장인 이경숙과의 그림자같은 우정은 음악계에서 널리 부러움을 사고 있다.일상생활에서는 학생들과 격의없는 대화를 즐기고 아끼는 제자가 연주를 앞두고 악기 때문에 걱정하면 자신의 소중한 과다니니를 선뜻빌려주기도 한다. ○요즘도 새벽녘에 연습 요즘도 연주 교섭이 들어오면 아무리 스케줄이 빡빡해도 일단 「하겠다」고 승낙해 버린다.이를테면 자선음악회는 자선음악이기 때문에 거절할 수 없으며 지방연주는 지방인들을 위해서 당연히 외면할 수 없다는 식이다.유학시절에는 1시간의 독주회를 위해 1년동안 꼬박 하루 10시간의 연습을 지켰고 요즘은 새벽 1시이후 2∼3시간씩 바이올린을 잡는다. 그로선 빗발치는 박수갈채와 타인들의 시선속에서 어텐션을 받는 입장이다.사람들은 곧잘 그를 향해 「액티브하다」느니 또는 「슈퍼 우먼」으로 부르고 있지만 그것은 아마도 그의 음악성이 「강하고 적극적이며 곡전체를 장악하고 있다」는 뜻에 더 가깝다.간혹 엉뚱한 오해와 매도의 그물에 걸려 깊은 상처를 받는 경우에도 그는 상대방의 언어의 자유와 판단에 맡길뿐 「시간의 해결」을 믿고 동요하지 않는다.강한 정신력과 책임감,음악에 대한 사랑과 집념이 강인한 음악인으로 자신을 완성시켰고 그래서 정상에 우뚝 선 자의 자랑스러움이나 오만이 한낱 부질없음을 터득한바 오래다. 겉으로는 밝고 명랑하고 소녀처럼 들뜬 모습이지만 그와 오래 사귄 사람은 그의 내면 깊숙이 감춰진 실낱같은 섬세함을 알고 있다.실제로 이런 면은 연주에서도 자주 노출되어 악보의 한소절에도 한치 소홀함이 없다.각 소절이 갖는 의미와 정감을 세밀하게 따져본 다음 자신이 느낀 것을 청중이 그대로 느낄수 있도록 농현(농현)의 현란을 멈출줄 모른다. 『세상물정 모르던 어린시절엔 어머니가 시켜서 음악을 공부했고 음악을 하다보니 걷잡을 수 없이 음악에 빠져들었으며 이제는 「운명」처럼 음악없인 한시도 살수 없을 것이다.음악은 나의 피가 되고 살이 되어 나 자신이 음악자체라해도 과언일 수 없다』고 말할수 있게 되었다. ○“세속의 희열 초월” 극찬 그는 압구정동 현대아파트에서 어릴때부터 끝없이 그의 음악을 뒷바라지해왔고 지금도 변함없이 딸의 연주회장에 모습을 나타내는 80노모와 외아들(윤주영·17·미국유학중)과 함께 음악 못지않게 사랑과 정성으로 가족을 지키며 단란하게 살고 있다.여전히 의욕적인 연주활동을 늦추지 않아 올 상반기에 벌써 「이야기와 영상음악」청소년소녀 교향악단등 3차례의 연주,오는 6월4일 예술의 전당 독주회를 비롯,8차례의 연주 스케줄을 잡아놓고 있다. 언젠가 뉴욕타임스가 평했듯이 「그의 음악은 일체의 세속의 희열을 초월하여 자신의 생애를 보석타래로 엮어내듯」 악절마다에서 향기로운 화현마저 흘러나온다.더이상 정열에 넘치거나 솟구치는 법없이 캄캄한 어둠을 뚫고 흐르는 지하수처럼 방울방울 맺힌 영롱한 리듬은 듣는 이의 가슴속에 진한 각성을 던진다. 그가 친애해 마지않는 모차르트는 더 더욱 눈부시고 베토벤 프랑크는 장엄미가 두드러지면서 「시가 그 자체로서 존재하는 언어」이듯이 그의 음악은 「음악자체로서 존재하는 언어」로서 날이 갈수록 성숙한 차원을 성립하고 있다.이제 그는 멀고 긴 아득한 터널을 지나 햇빛 찬란한 푸른 벌판에 나선듯 예술가로서의 최상의 절정기를 지금 맞고 있는 그 순간이다. □연보 ▲1949년 전주 출생 ▲59년 이화·경향콩쿠르 특상,백운창 김용윤 양해엽 사사 ▲64년 동아음악콩쿠르 1등 ▲67년 서울예고 졸업,미 줄리아드 음악원 입학 ▲69년 워싱컨 메리워더 포스트 컴피티션 입상 ▲70년 워싱턴 내쇼널심포니 오케스트라협연 데뷔 ▲71년 줄리아드 차이코프스키 콘체르토 컴피티션 우승,줄리아드 오케스트라 협연 ▲72년 LA 영뮤지션스 파운데이션 컴피티션 캐리어그란트상 ▲73년 허드슨밸리 영아티스트·스위스 티보바가 국제음악콩쿠르 1등 ▲77년 줄리아드음악원 졸업 ▲78년 귀국,제1회 독주회(서울시민회관)이후 해마다 독주회,경희대 음대조교수 ▲80년대 싱가포르 심포너 오케스트라,자그레브방송 교향악단 협연 ▲82년 서울대 음대교수 ▲83년 서울쳄버 오케스트라 창단 ▲85년 일본 독주회 ▲미국 시카고및 뉴욕 독주회,테어디스페커 매니지먼트사 소속계약,전주및 지방 6개도시 순회연주 ▲87년 미국 독주회(카네기홀) ▲90년 제1회 대만 국제콩쿠르및 싱가포르 롤렉스콩쿠르 심사위원 ▲92년 미국 보드윈 서머페스티벌 객원교수,도쿄 국제콩쿠르 심사위원,영국 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지휘 라카르도 사이)협연 ▲93년 상트 페테르부르크(구 레닌그라드)심포니 오케스트라(지휘 알렉산더 드미트리예프)협연 ▲94년 상하이 필하모니 오케스트라 협연(서울·중국) 등 5백여회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교수 한국음악페클럽상 난파음악상 올해의 음악가상 월간음악상 채동선 음악상 한국음악평론가상 예음상
  • 북TV 이노키 레슬링경기 생중계/「평축」 뒤풀이 이모저모

    ◎거친공격·이상한 옷차림에 열광 북한은 「국제문화체육축전」 공식일정이 끝난 하루뒤인 지난달 30일에도 「조선의 날」·「평양의 밤」등 다양한 행사를 가졌다.평양에서는 오는 5일까지 각종 문화행사와 관광홍보행사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계속된다. ○15만관중 메워 ○…국제문화체육축전 공식일정을 마감하는 폐막식이 지난달 29일 평양 5·1경기장에서 열렸으며 이에앞서 일본의 프로레슬러 출신 참의원의원 안토니오 이노키와 미국 레슬러간에 프로레슬링경기가 벌어졌다. 5·1경기장을 가득 메운 15만명의 북한관중들은 레슬링 시범경기의 하이라이트로 벌어진 이 경기를 지켜보며 환호와 갈채를 보냈으며 북한TV는 북한에서 처음 벌어진 프로레슬링 경기를 28일에 이어 이날도 생중계. ○…프로레슬링을 관람한 북한인들은 프로레슬링 특유의 거친 공격기술과 선수들의 이상한 옷차림에 열광적인 흥미를 표시. 천은희라는 여성은 『저렇게 공격을 당한 선수가 어떻게 끄떡없이 서있을 수 있느냐』고 놀라면서 프로레슬링에는 사전에 짜고하는 부분이있다거나 선수들이 내지르는 소리가 관중들의 재미를 북돋기 위해 과장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좀처럼 믿으려 하지 않아 눈길. ○…평양에서 발간되는 영자지 「평양 타임스」지는 29일 시범경기를 벌인 미국과 일본의 프로레슬링 선수들이 북한의 체육사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 찬양하면서 『평화는 이 시대의 절박한 요구』라고 강조. 이 신문은 또 『세계정세는 냉전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긴장된 상태에 있다』고 주장. ○…이날 5·1경기장에서는 미국과 일본의 가수와 연예인 및 음악가들의 공연도 선보여 그동안 단절된 생활을 해온 북안인들에게 서방의 문화를 맛볼 기회를 제공. 행사를 지켜보던 평양중심가의 한 서점에서 일하는 문옥숙이라는 여성은 『통일이 돼 양쪽 동포들이 함께 구경을 할수 있었더라면 더욱 아름다웠을 것』이라고 대답. ○교류확대 희망 ○…평양축전에 귀빈으로 초대받은 프로복싱 전 세계헤비급 챔피언 무하마드 알리는 자신이 북한인과 기타 국가의 행복에 공헌할수 있는 교류확대의 디딤돌이 될 재단의 설립을 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 「뮤지컬」서 순수음악거리로 탈바꿈 추진(브로드웨이“새바람”:13)

    ◎링컨센터,MET개관 30돌 맞아 국제페스티벌 준비/클래식·현대음악 총망라… 미대표적 문화행사로/각공연장 대대적 보수,개인용 좌석자막 설치도 브로드웨이의 봄은 하나의 얼굴로 나타나지 않는다.거리마다 다른 특징을 지닌 수많은 얼굴로 나타난다.그렇기 때문에 이들 많은 얼굴들은 브로드웨이가 「뮤지컬」이라는 하나의 얼굴로 대표되는 것에 거부감을 표시한다. 뉴욕의 대표적 공연장인 링컨센터를 중심으로한 「클래식」음악의 세계는 그 가운데서도 가장 큰 거부감을 나타내는 얼굴이다.뉴욕이 세계적으로 자랑하는 오케스트라와 오페라의 거점이 엄연히 브로드웨이에 연해 있는데 브로드웨이가 뮤지컬의 거리로만 불리는 것은 말도 안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최근 링컨센터측이 밝힌 대규모 국제공연예술행사인 「인터내셔널 아트 페스티벌」청사진은 뉴욕을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영국의 에든버러 못지않은 국제적인 페스티벌의 도시로 부상시키려는 바람에서 나온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브로드웨이의 주도권을 뮤지컬측으로부터 되찾자는 클래식측의 대공세로 해석하는 이들도 많다. 링컨센터내 중심 공연장인 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하우스(MET)의 개관 30주년을 맞는 내년 여름부터 시작을 목표로 하고 있는 이 페스티벌은 클래식음악뿐 아니라 현대음악,무용등을 총망라 하고 있다. 링컨센터에서 기존에 개최해오던 콘서트인 모스틀리 모차르트,시리어스 펀 페스티벌,째즈 앳 링컨센터,그레이트 퍼포먼스 시리즈등을 모두 이 새로운 페스티벌에 흡수시켜 미국을 대표하는 대규모 국제 문화행사로 만든다는 계획이다.이를 위해 1천4백만달러의 예산까지 세워놓고 있다. ○클래식측서 대공세 펴 링컨센터측은 이 페스티벌을 위해 뉴욕타임스의 음악평론가였던 존 라크웰씨를 예술감독으로 임명했으며 산타 페 오페라의 매니저였던 니겔 레던을 총감독으로 스카우트 하는등 전열도 완벽하게 갖춰놓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최근 연방정부의 긴축정책으로 예술지원 예산도 대폭 삭감된 상황에서 엄청난 돈이 들어가는 또하나의 페스티벌을 할 필요가 있는가 혹은 준비과정이 너무 짧아 졸속의 우려가 있다는등 비판적인 의견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문제제기에 대해 링컨센터의 나탄레벤살 회장은 『청중이 없다지만 실제로 청중은 우리 주위에 있게 마련』이라고 전제하며 『어려울수록 움츠러들기 보다는 새로운 가능성을 향해 과감한 투자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센트럴파크가 시작되는 서쪽끝인 콜럼버스서클 북쪽의 브로드웨이 62스트리트에서 66스트리트까지 걸쳐 있는 링컨센터는 오페라의 전당인 MET를 중심으로 뉴욕필하모니의 거점인 에이브리 피셔홀,뉴욕시티발레와 뉴욕시티오페라의 본거지인 뉴욕스테이트극장,비비안 보몬트극장,그리고 세계적 음악대학인 줄이아드스쿨등 다섯개의 대형 공연장과 여러개의 작은 공연장들로 이뤄져 있는 명실공히 순수음악과 무용의 중심지 역할을 해오고 있다. 더욱이 링컨센터는 57스트리트에 있는 카네기홀과 함께 뉴욕음악의 중심지역을 형성해왔으며 60스트리트의 포댐대학,77스트리트의 국립자연사박물관과 함께 센트럴파크 서부지역을 문화지대로 발전시키는데 공헌을 해왔다. 슬럼화 돼있던 이 지역은1957년 존 D 록펠러3세가 4천5백만달러를 기증,새로운 뉴욕음악의 중심지로 개발이 시작되어 마침 카네기홀에 거점을 두고 있던 뉴욕필하모니와 오랫동안 39스트리트의 뮤직홀에 있던 메트로폴리탄오페라가 새로운 장소를 물색하게 되자 더욱 급속히 추진됐다.59년 공사를 시작,62년 필하모니홀(후에 에이브리피셔홀로 개칭)이 최초로 완성됐으며 64년에는 뉴욕스테이트극장이,66년에는 MET가 개장되었고 다른 공연장들도 속속 들어섰다.92년 오늘날 공연예술도서관과 기타 사무실로 쓰이는 링컨센터 노스의 개관으로 링컨센터는 완공을 보게됐다. ○준비과정 졸속 우려 링컨센터측은 새로운 페스티벌 개최와 함께 각 공연장의 시설도 대대적인 보수를 계획하고 있다.이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MET에 설치될 등받이 자막이다.오페라를 관람할때 무대옆에 설치해놓는 동시번역 자막 대신 좌석 뒷면에 스크린을 설치,관객들이 앞좌석 뒤에 설치된 개인용스크린을 통해 번역자막을 보게 하는 것이다. 이는 개인의 필요에 따라 스위치로 껐다 켰다 할수가 있어보기에도 편한것은 물론 다른 사람에게의 피해도 최대한 줄일수 있는 장점이 있다는 것이다.MET는 그동안 무대관람에 지장을 주고 번역이 필요치 않은 관객들에게는 혼동을 준다는 이유로 자막설치를 반대해 왔으나 최근 공연중인 오페라 「나비부인」에서 시험 가동해본 결과 관객들의 호응이 좋아 2백만달러의 예산을 들여 올여름까지 설치할 계획으로 있다. 특히 링컨센터를 자타가 공인하는 미국내 공연예술의 총본산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줄리아드 음악학교의 존재다.교육과 실연이 한자리에서 이뤄지는 환상적인 교육환경을 이뤄내고 있는 것이다.1905년 미국 음악도들에게 유럽의 음악학교에 필적할만한 교육제공을 목표로 세워진 음악예술학교를 전신으로 하는 이 학교는 1919년 이 학교에 천문학적 액수인 2천만달러를 기부한 거상 아우구스투스 줄리아드의 이름을 따서 줄리아드로 개칭됐다. 51년 무용학부가 개설되고 68년에는 연극학부가 개설돼 종합예술학교가 된 이 학교의 최대 강점은 세계 최대의 교수진이다.세계적인 대가들을 배출한 이들 2백20여명에 달하는 교수진이 철저하게 1대1 레슨을 통해 교육을 시킨다. 줄리아드를 빼고는 한국음악을 얘기할수 없을 정도로 줄리아드는 많은 세계정상급 한국인 음악가를 키워내기도 했다.박인수(성악·서울대) 김남윤(바이올린·한국예술종합학교) 한동일(피아노·보스턴대)등 대학에서 후진양성에 힘을 쏟고 있는 사람들은 물론 백건우 정명훈 서혜경 강동석등 세계 권위의 콩쿠르에 입상,세계무대에 진출한 음악도도 많다.줄리아드는 미래 음악도를 양성하기 위한 예비학교로도 유명해 바이올린의 장영주양,첼로의 장한나양등도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 ○줄리아드 존재 우뚝 센트럴파크의 서쪽에 위치해 웨스트사이드라고도 불리는 이 지역은 57년 레오나드 번스타인에 의해 제작된 뮤지컬 「웨스트사이드 스토리」의 주무대로 주먹이 판치던 것으로 유명했던 지역이다.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본떠 이 지역 양대 갱단 자녀들의 사랑을 다룬 이 뮤지컬은 61년 영화로도 상영됨은 물론 68년과 80년 두차례 뮤지컬 리바이벌 공연을 가질 정도로 인기를 모았다. 이 지역은 이제 링컨센터를 중심으로 문화예술의 거리로 바뀌었으며 센트럴파크 혹은 허드슨강 쪽으로 전망이 좋은 곳에 들어선 값비싼 아파트들에는 많은 인기인들이 모여살고 있다.더스틴 호프먼,데미 무어,말론 브랜도,미아 패로,마돈나등 세계적 스타들이 이 동네의 이웃들이며 세계적 패션디자이너 캘빈 클라인,인기 앵커우먼 코니 정도 이 부근에 살고 있다. 다양한 브로드웨이의 얼굴들은 이처럼 저마다의 독특한 모습으로 브로드웨이에 풍요를 선사하고 있으며 변신의 몸부림을 계속하고 있다.
  • “클래식 대중화”/지역음악회 활발

    ◎음악협회·아케데미 심포니 「문화풀뿌리 운동」 전개/17일 「서초주민과 음악가의 만남」 개최/송파구 「어머니합창단」 강남구 「실내악단」 창단/지방자치 시대와 맞물려 연주단체 게속늘듯 클래식 음악의 대중화를 위한 지역 음악회가 본격적인 지방 자치시대와 맞물려 활성화할 전망이다. 한국음악협회(이사장 백낙호)와 아카데미 심포니오케스트라(음악감독 장일남)는 고급문화의 저변확대를 위해 연주장 위주의 공연문화에서 탈피,생활권 중심의 문화공간을 활성화해 나가기로 했다.이른바 「문화 풀뿌리운동」 프로그램을 전개키로 한 것. 그 첫번째 사업으로 기획된 행사가 오는 17일 하오 8시 서초구민회관 대강당에서 열리는 「서초주민과 음악가들의 만남」콘서트로 서초구 출신 음악인들과 지역주민들이 한자리에 모여 음악적 공감대를 나눈다. 가장 먼저 서울 서초구를 선택한 이유는 연주가들이 가장 많이 거주하고 있는데다 그동안 구민회관에 상설 음악감상실을 개설하고 정기적으로 금요음악회를 개최하는 등 활발한 문화운동을 전개해왔기 때문. 지역주민들을 무료로 초청하는 이 콘서트에는 서초구에 근거지를 둔 서울아카데미 심포니오케스트라와 서초구에 사는 성악가 김성길(바리톤),신동호(테너),최인애(소프라노)씨와 바이올리니스트 김의명,오보에 주자 목완수,첼리스트 백청심씨등이 출연해 이웃들에게 음악을 선사한다. 연주곡은 마스네의 「타이스의 명상곡」,엘가의 「사랑의 인사」,포레의 「비가」,사라사테의 「치고이네르바이젠」 등 대중성이 높은 곡들이며 음악평론가 탁계석씨가 곡 해설을 곁들여 이해를 돕는다. 음악회의 스폰서도 다른 음악회처럼 대기업에 의뢰하지 않고 지역 상권내에서 구해 이윤을 지역주민들을 위해 환원하도록 유도할 계획이다. 이번 음악회를 기획한 탁계석씨는 『무대에서만 멀리서 바라보던 음악가들이 가까운 이웃으로 다가와 음악을 들려주는 지역음악회를 통해 클래식 음악을 보다 가깝게 느끼게 될 것』이라면서 『다른 지역의 주민들이나 구청에서 지역 음악회를 개최할 의사가 있으면 연주인력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지역 특성에 따라서 국악,무용등 다른 장르의 문화와 연계 프로그램도 구상하고 있다. 한편 지난 2월 15일 헝가리 바르토크 현악4중주단을 구민회관에 초청,구민들을 위한 무료 연주회를 가진바 있는 송파구는 지난달 20일 어머니 교향악단을 창단하고 기념 연주회를 준비중이다.강남구도 이 지역 출신의 음악인 20명으로 구성된 실내악단을 만들 계획이다.서울윈드앙상블 지휘자인 서현석 교수(성신여대)를 중심으로 하는 이 실내악단은 이달 말께 창단식을 갖고 5월중 지역주민을 위한 연주회를 가질 예정이다. 음악계에서는 앞으로 지방 자치제도가 정착되면 이같은 지역 음악회나 지역중심의 연주단체 창단이 붐을 이뤄 클래식 대중화에 큰 몫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 안익태(외언내언)

    일제때도 우리민족에겐 애국가가 있었다.그러나 그때의 애국가는 오늘의 애국가가 아니었다.가사는 지금 것과 같지만 곡은 스코틀랜드의 민요 「올드 랭 사인」으로 남의 것이었다. 일본에서 음악공부를 하던 24살의 청년 안익태가 커다란 첼로 하나만 들고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나타난 것은 1930년.당시 이곳에서 살던 교포 30여명이 이 청년음악도를 환영하는 모임을 갖고 슬프디 슬픈 남의 곡조에 맞춰 애국가를 합창했는데 이 때부터 이 청년은 장중하면서도 힘찬 우리의 애국가를 작곡하기로 결심했다. 오늘의 애국가가 완성된 것은 그로부터 6년뒤인 1936년.그것이 대한민국의 애국가로 공식지정된 것은 정부가 수립되던해인 1948년.그러나 스페인의 한 교향악단을 지휘하고 있던 안익태선생이 이 사실을 안 것은 1950년 6·25전쟁이 일어난 직후였다.한국에서 전쟁이 터졌다는 라디오뉴스와 함께 울려퍼진 애국가가 바로 자신의 곡임을 알고는 하염없이 울었다고 한다. 세계 각국의 2백여교향악단을 지휘하면서 극동의 숨겨진 나라 코리아를 빛냈던 그는 1965년 9월16일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에서 한많은 일생을 마감했다.생전에 고국에 돌아가기를 그렇게도 열망했던 안익태선생은 세상을 떠난지 12년만인 1977년 6월15일 이땅에 안장됐다.그가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에 묻히던 날 시인 모윤숙은 이렇게 읊었다.「넋이여/들으소서/민족의 한목소리를/정든땅에 울려퍼지는 영원한 애국가를」 광복50돌과 안익태선생서거 30주기를 맞아 그의 애국열정과 음악세계를 기리는 행사가 잇따라 펼쳐진다.10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리는 「코리아환타지­4월의 대향연」과 14일 같은 곳에서 열리는 「안익태음악제」가 그것이다. 애국가에 담겨 있는 나라사랑의 뜻과 한 위대한 음악가의 파란만장한 생애를 오늘에 되새겨 보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다.
  • 「파리넬리」/카스트라토(거세된 남자소프라노)의 비극적생애(이영화)

    ◎250여개 음 소화한 18세기 실존인물/새달 개봉… 한 여인과 형제 사랑하는 장면은 충격적 카스트라토(CASTRATO).거세된 남자소프라노 가수를 뜻하는 이 낮선 음악용어가 올봄 우리 영화관객들의 입에 부쩍 오르내릴 것같다. 18세기 바로크시대 유럽인들의 비명섞인 환호를 받았던 한 카스트라토의 비극적 예술혼을 그린 음악영화 「파리넬리」(FARINELLI)가 4월초 국내 개봉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어찌보면 「패왕별희」와도 분위기가 흡사한 이 작품은 카스트라토들 가운데 최고의 인기를 누리며 목소리 하나로 유럽을 평정했던 실존인물 카를로 브로스키(일명 파리넬리)의 뒤틀린 운명과 사랑,음악열정을 그린 에로틱 예술영화.3옥타브 반의 음역을 자유자재로 넘나 들었을뿐 아니라 한 악구에서 2백50여개의 음을 소화해냈다는 파리넬리의 전설적인 목소리가 「음악적 오르가슴」을 느끼게 하며,오페라 작곡가 형과의 기묘한 인연이 극적이면서도 감동적으로 펼쳐진다. 중세 교회음악이 융성하던 시기,교회에서는 여성가수들이 무대에 설 수 없었기 때문에이들을 대신할 고운 음색의 남성가수가 필요했다.그래서 탄생한 것이 6∼12세 변성기 이전 남자아이들을 거세해 만든 카스트라토.이를 소재로 한 작품인 만큼 이 영화 전편에는 「거세공포증」의 어두운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무대에서만큼은 카리스마적인 위용과 노래로 관중을 압도하지만 무대를 내려서면 이내 「잃어버린 남성」에 대한 열등감으로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하는 파리넬리.그의 파리한 영혼과 육체의 방황이 이탈리아출신 성격배우 스테파노 디오니시의 섬세하면서도 강한 연기력에 힘입어 더욱 애절하게 느껴진다. 당시 여인들이 카스트라토의 노래에 매료돼 기절한채 실려 나갔다든가,파리넬리가 동시대 음악가 헨델과 음악적 애증을 주고 받았다는 등의 일화도 영화속에 그대로 재현된다.파리넬리가 자신의 아픔을 극복하고 신이 내린 목소리로 헨델의 아리아「카라 스포자」를 부르는 장면이 압권. 한편 이 영화에는 일부 충격적인 장면도 담겨 있어 논란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형과 아우가 한 여인과 동시에 사랑을 만드는 장면이나 성적 콤플렉스에 시달리는 파리넬리를 마약으로 위로하는 것 등이 대표적인 예.하지만 이 장면들에서는 단순히 변태적인 성심리나 인간 내면에 감춰진 추악한 마성보다는 차라리 저항할 수 없는 운명의 힘같은 것이 읽혀져 영화전체의 씁쓸한 기운을 더해준다.
  • 연극연출가 임영웅(이세기의 인물탐구:71)

    ◎56년 「환절기」로 입신… 「완벽 무대」추구/작자의도 밀도있게 접근… 깊이있는 연기 도출/「고도를 기다리며」 초연땐 하루 19시간 맹연습/집팔아 지은 산울림소극장 개관 10돌 맞아 기념공연 막 올려 마른나무 한그루가 텅빈 공간에 물음표처럼 서있는 무대,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가 이 공허한 대지위에서 무엇인가를 기다리고 있다.그들은 일정한 간격을 두고 「우리는 고도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한다.그들이 기다리는 고도란 무엇인가.신인가 죽음인가 행복인가.고도는 그 무엇도 아니면서 동시에 모든 것일 수도 있다.시간과 공간이 단절된 상황속에서 이 연극은 언제나 시작되고 끝나면서 또 어디서나 생길수있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다. 69년 12월,한국일보 소극장에서 「고도를 기다리며」가 초연됐을 때 그것이 베케트의 난해한 부조리극이라는 이유만으로 관객은 이미 긴장되어 있었다.그러나 우려는 기우였다.연출가 임영웅은 관념과 현학이 넘치는 난삽의 「고도」를 시감의 템포로 도해시켰고 객석은 시종 웃음을 터뜨리며 서구 연극의 새로운사조에 자연스럽게 흘러들수 있었다.이후 「고도」는 「손색없는 명작」으로 정착되어 89년 프랑스 아비뇽과 다음해 고도의 본고장인 더블린 연극페스티벌에서 「한국의 고도는 과연 기다릴만한 가치가 있었다」는 호평을 받았다.이보다 앞서 88올림픽 문화예술축전에 왔던 세계적인 극평가 마틴 애슬린(미스탠퍼드대 교수)은 「베케트의 희극성과 비극성이 섬광처럼 교차된 마지막 장면은 특히 작가의 의도에 밀도있게 접근하고 있음」을 지적하여 진작부터 세계무대의 진출과 입신을 예고해 주었다. ○속물근성 찾을 수 없어 널리 알려지다시피 임영웅의 연출에선 잡다한 상업성이나 분칠한듯한 속물근성은 찾아볼수 없다.관객을 의식한 연희성과 상투적인 작위성은 배제된다.부조리극이든 블랙 코미디든 혹은 뮤지컬이나 관념적인 추상언어라 할지라도 인간 심리의 바닥없는 심연에 끈질기게 파고들어 캄캄한 내부에 도사린 모순과 갈등을 명징하게 그려낸다.예를들어 77년 화사한 비애가 전신에 스며드는 베르코르의 「바다의 침묵」이나 87년 「영국 애인」등은지금도 잊을수없는 정미한 무대로 기억된다. 그에게선 예술가 특유의 동심과 기벽과 기행은 찾아볼 수 없다.번뜩이는 재치나 직감력을 기대할 필요도 없다.만약 그런 의외성과 파격을 지녔다 하더라도 「보수적인 체질속에 숨겨진 진보적 감각」은 그의 탄탄한 자존심의 틀에 갇혀 쉽사리 노출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연출가 임영웅을 떠올릴 때마다 프랑스 연극계의 거장이며 「황소의 뿔」로 불리는 장 루이바로를 연상케 되는 것은 전혀 우연이 아닐것 같다.바로가 그의 부인이자 연극 동반자인 마들렌 르노와 그들의 소극장을 세워 레퍼토리 극단으로 활동한 것처럼 그도 그의 부인인 오징자 교수(서울여대 불문과)와 함께 소극장운동의 전범으로 존재하면서 오교수는 극단 산울림의 희곡번역과 기획등에 참여하고 있다.그리고 연극을 「인간에 의한 공간예술」로 승화시킨 점과 비록 작은 일도 그대로 지나치지 않는 섬세한 감지,한번 결심한 것은 집요하게 밀어붙이는 황소고집등은 바로와 비슷한 노선을 그려나가고 있다.연극의 문제는 무엇보다 「얼음덩어리와도 같은 객석의 침묵」을 깨뜨리는 일이며 결국 얼음을 녹여 강물처럼 도도히 흐르는 그의 연극을 보면 관객은 원로 여석기씨의 말이 아니더라도 「단순한 인사가 아닌 진심의 경의」와 진정한 감동으로 박수갈채를 보내게 된다. 그의 연극행로는 물흐르는듯 순조롭진 않았다. ○음악가부친 재능 이어 휘문고시절 동랑 유치진의 「사육신」연출을 계기로 연극연출을 지망하게 되었고 56년 극단 신협의 「꽃잎을 먹고 사는 기관차」(임희재작)로 연출데뷔,박진 이해랑에 이은 국립극단 연출을 거쳐 「정서적인 플롯과 사실적인 언어가 거부된」 오태석의 「환절기」를 「오서독스하면서도 감각적인 논리성」으로 형상화하여 연출가로서의 극명한 위치를 다졌다. 그의 예술적 재능은 음악가였던 부친 임태식씨와 음악계의 원로 지휘자인 숙부 임원식씨로부터 물려받았다고 할수 있다.13살에 부친을 잃은 창백한 기억을 가지고 있으나 조모와 숙부의 따뜻한 보호아래 그는 음악 문학 연극에 접할수 있었고 동랑 유치진 이해랑과의 만남이 실질적인 연극의 촉진제가 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아무리 비극적인 작품이라도 그는 작품속에 숨어있는 아름다운 별빛 희망과 인간미의 향기를 절차탁마로 가꾸어낸다.그런만큼 탐구정신과 선별의 명철로 작품분석에 침몰하여 자신이 완전히 이를 소화해야만 비로소 배역을 정하고 스태프를 구성한다. 연습때는 연기자의 동선 하나 조명의 밝기,음향의 정확성에 주도면밀하게 주의를 기울이고 자로잰듯 확실하고 투명해야만 다음 장면으로 넘어간다.완벽주의는 결벽과 맞먹게 마련이어서 그의 연출노트는 개칠한 흔적없이 추가사항들을 빈틈없이 정리해 놓고 있다.「고도」초연때의 하루 19시간의 연습 강행군으로 「사자」란 별명이 따르기도 했으나 그의 속마음은 만년소년에다 청담을 잃지 않는 순수성이 두드러진다.혹독한 연습과 훈련에 의해 수많은 배우들이 그의 연극을 거쳤고 관객이 그의 연극에 안심하는 것처럼 그들도 극단 산울림 출연을 자랑삼고 있다. 그러나 영광의 이면은 언제나 어두운 곡절과 고뇌가 감춰진다.연극이 생계를 해결하는 직업이 될수 없다는 실망과회의에 빠져 그는 한때 연극을 포기하고 방송 프로듀서로 돌아간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어쩌면 「마지막 작품」이 됐을지도 모를 「쥬라기의 사람들」(이강백작)로 82년 대한민국 연극제에 참가,연출상 수상기념으로 2개월간의 해외연수길에서 그는 연극은 세계 어디서나 힘들다는 사실을 확인했고 귀국길에 오르자 남들의 조소에도 불구하고 소극장을 짓는다는 참으로 엉뚱한 결단을 내려 주위를 놀라게했다.집을 팔고 빚을 얻어 누구라도 감히 꿈꿀수 없는 소극장 신축을 서둘렀고 85년 3월 숱한 수난끝에 탄생된 것이 지금의 홍대앞 산울림소극장이다.1년여 이상 극장을 짓느라고 가뜩이나 과로로 균형을 잃은 몸이 더욱이나 기울어진 자세가 되자 그와 절친한 평론가 유민영은 「걸어다니는 피사의 사탑」으로 부르고 있지만 그런 그의 모습은 실제로 움직이는 연극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하여 묘한 「시니컬 포퍼먼스」가 느껴진다. ○연극상 수상만 43차례 이제 극단 창단 25주년과 소극장 개관 10주년을 맞은 그의 감회는 남다르다.피와 땀과 노력의 결정인그의 아지트에서 10년을 하루같이 앙코르 공연을 제외한 26편의 신작공연과 43차례의 연극상 수상,40만 관객을 동원하고 있으나 남보기완 달리 극장운영에 따른 고충속에서 마음 편할 날이 없었다.그때도 그를 격려하듯 동랑연극상이 주어졌고 상을 받는 자리에서 그는 다시는 마음이 약해지는 것이 두려운듯 「죽을때까지 연극을 하겠다」고 재삼재사 스스로에게 다짐하고 있었다. 개관 10주년기념공연으로 지난 16일부터 윤석화의 일인극 「딸에게 보내는 편지」(아놀드 웨스커작)를 필두로 극단 산울림의 신작 창작시리즈를 차례로 선보이고 맨 마지막에 명편 「고도」를 무대에 올리게 된다. 비튜겐슈타인의 말처럼 그는 수많은 남의 인생을 연출하고 있지만 자기자신의 인생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으며 그 자신의 인생은 결국 연극일 수밖에 없음을 알고 있다.그렇다면 그에게 있어 「고도」란 무엇인가.그가 살고있는 현재이며 또는 불확실성의 미래이고 영원한 의문부호일 수도 있다.그러나 지난 25년간 고도와의 외로운 투쟁끝에 「임영웅식 연극」을 성취한그로서는 아마도 고도가 무엇인지 그가 누구인지를 가장 잘 알고 있는,그래서 앞으로도 끊임없이 「고도」를 기다리는 사람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연보 ▲1934년 서울출생 ▲1948년 휘문고를 거쳐 서라벌예대 연극영화과 졸업 ▲1956년 극단 신협 ‘세일즈맨의 죽음’(아더밀러)조연출겸 무대감독, ‘꽃잎을 먹고사는 기관차’(임희재작)데뷔연출 ▲1958년부터 세계일보 조선일보 문화부 기자 ▲1963년 동아방송 드라마프로듀서 ▲1966년 예그린악단 뮤지컬연출 ‘살짜기 옵서예’등 ▲1968년 국립극단연출 ‘환절기’등 ▲1969년 ‘고도를 기다리며’(사무엘 베케트)초연 연출 ▲1970년 극단 산울림 창단 ▲1973년 한국방송공사 입사 ▲1985년 산울림 소극장 신축개관 ▲1989년 프랑스 아비뇽페스티벌 ‘고도를 기다리며’초청참가 ▲1990년 더블린 연극페스티벌 참가 ▲1991년 한국연극연출가협회 회장 ▲1992년 한국연극협회 이사장 백상예술대상 연출상및 특별상(69·72·86·95년),서울신문 문화대상및 연출상(70년),서울연극제 최우수연출상(82·85년),한국 연극영화 예술상 특별상(85년),대한민국연극제 대상(82·85년),김수근문화상(86년),동아연극상 연출상(86년),서울시 문화상(87년),대한민국문화예술대상(87년),이해랑연극상(92년),동랑연극상(94년)등 ‘전쟁이 끝났을 때’‘환상살인’‘인종자의 손’‘덤웨이터’‘위기의 여자’‘홍당무’‘코뿔소’‘꽃피는 체리‘‘블랙 코미디‘‘마리테레츠는 말이 없다’‘밤으로의 긴여로’‘여우와 포도’‘하늘만큼 먼나라’ 뮤지컬 ‘배비장전’‘꽃님이’‘대춘향전’등
  • 거문고 명인 김영재(이세기의 인물탐구:69)

    ◎흐트러짐 없는 연주… 이론·작곡 밝아/신쾌동씨에 귀사… 피나는 연습끝 정상 올라/정규교육 1세대… 가야금·아쟁에도 일가견/93년 지하실에 상설무대 설치… 발표할곳 없는 동료들에 개방 송강 정철은 거문고 대현을 타는 데 있어 그 소리를 「얼음에 막힌 물 여흘에서 우니는 듯」하다 했고 영조때의 풍류객 송계연월은 「북창송음에 거문고줄을 얹어두니 바람이 줄을 건드려 타지 않는데도 스스로 우는 소리야말로 참으로 듣기 좋다」고 노래한 바 있다. 거문고의 명주실로 꼰 여섯줄 중에서 선율을 타는 유현은 소리가 맑고 부드러운 반면 대현은 줄이 굵고 투박하여 해죽으로 만든 술대를 단단히 거머쥐고 내리쳐야만 짙푸른 소리를 얻을 수 있다.거문고의 고매한 자태와 음률은 남성적인 화평정대와 악기 중의 으뜸인 백악지장에 비유되어 연주자는 아무리 어려운 대목도 고뇌어린 표정을 짓거나 박자를 맞추거나 몸을 흔드는 일이 없어야 한다.귀에 듣기 좋게 하는 것은 저속하며 음악 자체에 몰두하는 것도 금물이다. ○지영희씨에 해금 배워 거문고연주에서 한올 흐트러짐 없이 엄격한 법도를 지켜가는 이가 바로 명인 김영재다. 그는 『음악성이 비범하여 거문고 주자로서 일급일 뿐만 아니라 지영희 문하에서 오랫동안 학습한 해금도 그를 따를 이가 없다』는 평을 받고 있다.백낙준에서 신쾌동으로 이어진 그의 「거문고 산조」는 비감과 청정을 떠나 무념무상의 흐름속에서 극청 극탁을 끌어낸다. 느린 장단인 진양조로 괘를 짚어 먼저 장엄한 우조로 소리를 울리고 슬픈 느낌의 계면조와 화평스런 우조를 교차시키다가 중모리·엇모리,마지막 자진모리에 이르기까지 가슴 한복판을 후빌 듯 두들기는 장탄식은 절묘하다.손과 줄이 얽히고 풀리면서 흥청거리는 기교와 기량으로 천변만화를 농현하면 남자가 울분을 참듯 한을 안으로 다스리듯 듣는 이도 켜는 이도 어느 샌가 눈가에 눈물이 스미는 감동에 젖는다. 우리 음악은 일시에 피어오르는 장미꽃과는 달리 부단하게 변화되기 때문에 그 선율을 일사불란하게 파악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그러나 그의 연주는 『교묘하게 꾸며진 말과 보기 좋게 꾸민 표정에는 인이 드물다』고 한 것처럼 정 가운데 동을 감춘 정중유동의 자세다. ○처음엔 무용으로 입문 또 스승으로부터의 피나는 훈련과 연습으로 전수되던 우리 국악현실에서 처음으로 정규교육을 받은 일세대이며 가야금·양금·아쟁을 고루 다루고 작곡과 이론에도 밝아 우리 고전악기가 갖는 가능성을 다양하게 타진해왔다. 그는 처음엔 「춤추는 사람」이 될 것을 꿈꾸고 있었다.경기도 용인에서 태어났으나 변호사사무실에서 일하던 부친(김세종씨)을 따라 일찍이 서울로 이사,마포구 합정동에 정착하면서 마포 강나루터에 산재해 있던 남사당패들의 굿판에 정신이 팔려 그곳에서 하루해를 보낼 때가 많았다.이런 그를 안쓰럽게 여긴 어머니(차은식 여사)가 부친 몰래 김천흥 전통춤연구소에 보내준 것이 국악에 입문하게 된 동기다.그러나 무용특기자가 되어 국악예고에 진학하자 이번엔 「승무」를 가르치던 벽사 한영숙이 『얼굴이 예쁘고 춤태가 곱긴 하지만 춤보다 악기를 해보라』고 권했다.거문고·해금은 「연잎에 지는 빗소리」처럼 아름다운 가락을 엮지만 『악기 다루기가 너무 어려워 이를 이어갈 인재가 없다』는 것이었다. 뒤늦게 거문고산조 인간문화재인 신쾌동과 해금의 대가인 지영희를 만나 거문고의 유현한 가락과 섬뜩할 정도로 생생한 해금의 음률에 숙명처럼 잦아들어갔다.학교에서 배우는 외에도 스승의 개인연구소에 따라가서 이를테면 「스승들을 모시고 살다시피」하면서 그는 멀고 아득한 음악의 길을 걸어왔다.남성적인 거문고는 특히 연주법이 까다로워 술대(시)끝을 현침 가까이 내려치거나 거슬러 쳐도 원하는 소리를 얻을 수 없었다.무릎이 저리고 손가락에 피멍이 들어도 그는 제소리를 낼 때까지 몸에서 악기를 떼어놓지 않았다. 국악의 「국」자도 모르고 시작한 음악이지만 초기엔 스승의 열성에 감동되어 한음 한가락도 놓치지 않았고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배우는 자세로 자신이 악기가 되기를 주저치도 않았다.특히 남모를 내력이 굽이굽이 숨겨져 있는 해금을 속속들이 파고들어 손아귀의 혈맥이 악기에 이어지고 기맥이 통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런 제자를 기특히 여긴 스승이 하루는 자신이 못 배운 것을 한탄하며 『너희들은 어떤 일이 있어도 대학에 가야 한다』고 충고했다. 『우리 민속악은 무대에서 왕인데 제대로 배운 사람이 없어 서러운 대접을 받고 있다.너희 세대에선 제자리를 찾아 반드시 무대의 주역이 되라』는 절규였다. 행운의 여신이 미소짓기 시작하더니 벌써 고교 2학년때 서울시립 국악관현악단 최연소단원이 되었고 당시 이름을 날리던 리틀엔젤스의 무용반주자가 되어 세계 45개국 순회공연에 따라나섰다.돈을 벌면서 세계무대에 서는 동안 그는 우리 음악만의 특성과 미감에 눈떴고 그때부터 체계적으로 작곡에 손대기 시작했다. 서라벌예대 졸업후 경희대 작곡과에 편입,대학원과정에서 서양음악의 발성법·지휘법·화성악을 공부하고 고전악기와 현대악기를 대비시킨 「거문고와 해금」 「해금과 기타」 「해금과 하프」등 이중주곡·독주곡·관현악곡들을 창작하여 국악의 연주영역을 넓혀나갔다. 82년 국립극장 소극장에서 열린 개인발표회에서 그의 「거문고 즉흥곡」을 들은 황병기(이대교수)는 『마치 진흙의 뿌리에 내린 연꽃의 심도를 느끼게 하는 신기오른 솜씨』라고 호평했고 국악평론가 한명희도 『손끝의 느낌으로 음을 고르고 소리를 찾아내며 활대 아닌 눈짓만으로도 해금을 부리는 귀신 같은 실력』을 찬양해 마지않았다.그의 거문고산조가 심연과도 같은 무변광대를 누빈다면 그의 해금은 장자가 일컫듯이 「하늘의 소리처럼 신기하고 땅의 소리처럼 투박하며 인간의 속소리처럼 즐겁고 애절하여」 희비애락의 인생사를 꾸밈없이 담아낸다. ○“신기같은 솜씨다” 호평 그의 성격은 완고하다 못해 차분하다.어느 자리에서나 나대지 않아 예인 특유의 신기나 광기가 넘쳐 보이지도 않는다.한천의 난처럼 고절한 기상으로 연주에 임할 뿐 연주장이 아닌 장소에서 그를 만나기란 쉽지 않다.『겉으로는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마음이 상할 듯 섬약해 보이지만 참으로 오랫동안 방대한 학습경륜을 쌓아온 사람이라 속을 들여다보면 태산준령 같다』고 한 이보형씨(문화재전문위원)의 말은 과장이 아닐 것 같다. 남과의 번거로운 교류는 외면하지만 연주활동에는 열의가 대단하여 지난 93년 마포구 합정동 그의 집 지하층에 국악상설무대 「우리소리」를 개설,발표장을 구하지 못한 동료들에게 이를 개방해왔고 오는 3월에는 개관 2주년 기념무대를 갖는다.가족은 그의 음악을 이해하고 협조하는 부인 최광희 명지대교수와 남매. 이제 그는 스승들이 물려준 모든 것을 보존하고 계승시키는 위치다.그리고 「단순히 줄을 고르는 것만으로 이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가장 우아한 거문고 연주자는 선비의 그것과 다를 바 없다」는 무위자연의 경지에서 검은 학이 날아와 춤을 추었다는 현학금의 대도에 입신하는 일만이 남았다. □연보 ▲1947년 경기도 용인출생 ▲1959년 김천흥 전통춤연구소 입소 ▲1965년 서울시립 관현악단 단원 ▲1967년 서울국악예술학교 졸업,신쾌동 지영희사사,난계예술제특상 ▲1966∼75년 리틀엔젤스와 미국 유럽등 세계45개국 순회연주 ▲1971년 서라벌예대졸업 ▲1972 일본 삿포로 동계올림픽·뮌헨올림픽 세계민속예술제 참가 ▲1977년 경희대 작곡과졸업 ▲1980년 동 대학원졸업,일본 산게이홀과 한국문화원서 독주회 ▲1982년 제1회 국악발표회(국립극장 소극장),대한민국국악제 참가 ▲1985년 제2회 김영재 작곡발표회 ▲1986년 아시안게임 문화예술축전 국악제 해금독주자 ▲1988년 중요무형문화재 16호 (거문고산조)준인간문화재 지정 ▲1990년 동아일보 창사 70주년기념 소련공연 창극 「아리랑」작곡및 연주,미국 링컨센터 연주 ▲1991년 환일본해 국제예술제참가 ▲1993년 「해금명인 김영재의 밤」(국립극장 소극장) 전남대 국악과 교수,도립남도국악단 상임지도위원 「조명곡」「비」「아리랑연곡」「현금곡」「가야금 병창곡」「거문고 즉흥곡」「대금과 가야금을 위한 2중주」,창극 「수궁가」,무용곡 「그날이 오면」등 1백여곡 「현금곡전집」「가야금 병창곡집」 「남도의 창」「줄풍류 거문고 가락의 비교관찰」「한국근현대사의 음악가 열전」 국민훈장석류장(73년)KBS국악대상 작곡부문수상(89)
  • 창작활동 통해 환경중요성 계도/예술인 모임 「예인」 자연보호 동참

    ◎「깨끗한 산하」 주제 19일 시 낭송회/새달엔 「환경연극」·책자 발간계획 예술인들이 창작활동을 통해 환경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정신적인 계도활동에 나섰다.「예술인의 텃밭 예인」(회장 안경재 시인)은 오는 19일 서울 노원구 상계동 동일상가 지하 소극장에서 환경을 주제로한 시낭송회를 갖는다.문예인들이 작품을 통해 환경운동을 벌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자연과 더불어 창작활동을 하고 있는 우리로서는 환경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항상 느껴왔다.그러던중 서울신문사가 펼치고 있는 깨끗한 산하지키기 운동의 취지에 부합돼 회원들의 결의로 동참키로 하면서 작품을 통한 정신운동으로 확산시켜 나가기로 운동방향을 정했다』고 안회장은 동기를 밝혔다. 문인·화가·음악가·연극인 등으로 전국에 5백명의 회원을 갖고 있는 「예인」은 회비로 운영돼 왔는데 지난해 연말 서울신문사 깨끗한 산하지키기 운동 환경감시위원에 가입하면서 아담한 문화공간을 마련,「예술인의 텃밭 예인」(이하 예인)이란 간판을 내걸고 예술로 환경운동을 벌이기로 했다.이에따라 그동안 정립한 기금에서 2천만원을 떼내 동일상가 지하 1층의 40여평을 전세로 얻고 개장과 함께 회원들로부터 공모한 20편의 시낭송을 시작으로 환경의 무대로 활용키로 했다. 『그동안 복합적인 공간이 없어 회원들이 마음놓고 문화·예술활동을 할 수가 없었다』는 안회장은 이번 개장을 신호탄으로 오는 3월에는 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연극무대를 가질 계획이다. 「예인」은 기성인이나 아마추어 구분없이 폭넓게 참여시키고 있으며 우열을 가리는 시상제도를 취하지 않는게 특징.모아진 작품으로 환경책자를 발간할 방침이다. 「예인」이 자연보호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지난 92년 4월 셋째주였다.회원들의 친목겸 자연속에서 작품활동을 하자는데 의견을 모아 서울 근교의 계곡을 찾아 나섰다.그러나 그곳은 행락객들이 버린 쓰레기로 오염돼 도무지 예술의 기분을 낼 수가 없었다.이들은 작품활동을 포기하고 이날 하룻동안 쓰레기수거에 시간을 보냈다.그뒤로 1년에 2회씩 야유회겸 유원지 청소를 결의했고 3회에 걸쳐 물고기 방류도 실시했었다.그러던 중 서울신문사 깨끗한 산하지키기 운동의 취지를 알게된 「예인」은 예술작품을 통한 정신적인 국민환경운동에 나서기로 한 것이다.
  • 독 마틴 에버라인 작곡 발표회/국악과 서양음악의 접목 시도

    ◎5일 독일문화원서 국악과 서양음악의 접목을 시도해 온 독일인 작곡가 마틴 에버라인씨(28)가 15일 하오 7시 독일문화원에서 작곡 발표회를 갖는다. 「세계속의 우리 음악」이란 부제로 열리는 이번 발표회에서 에버라인씨는 「비올라 산조」작품 28,해금과 하프를 위한 「어느 여름 날 아침의 춤」 작품 34,현악 4중주 2번 작품 30,21현 가야금과 현악 4중주를 위한 「가을 폭풍과 꿈틀거리는 빛」 등이 연주된다. 연주는 비올라 강창수(코리안심포니 수석주자),해금 김영재(전남대 예대 교수),가야금 지애리(국립국악원 단원),하프 키르스텐 에케(융거 슈데체필하모닉 단원)씨 등이 맡는다. 에버라인씨는 독일 뮌헨음대와 대학원에서 작곡을 전공한 젊은 음악가로 지난 91년부터 한국음악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다 현재는 국립국악원에서 우리 전통음악을 배우며 국악기와 양악기를 융화시키는 실험성 짙은 음악을 발표해 왔다.문의 742­5480.
  • 3개부문 음악상 수상/정명훈씨에 축전보내/김 대통령

    김영삼 대통령은 8일 「94년 최고의 음악가상」을 비롯,프랑스 「음악의 승리협회」가 시상하는 3개 부문의 상을 수상한 정명훈씨에게 축하전문을 보냈다.
  • 「월드스타」강수연/「돌아온 명배우」명계남/연극무대서 자존심 대결

    ◎강/「메디아」서 복수의 화신역 훌륭히 소화/명/10년만에 무대 컴백… 「콘트라…」 주연 맡아 「월드스타」와 「돌아온 명배우」가 동숭동에서 자존심 대결을 벌이고 있다. 화제의 주인공은 베니스영화제(87년)와 모스크바영화제(89년) 여주주연상을 수상,세계적인 스타가 된 영화배우 강수연씨(30)와 불혹을 넘긴 나이에 전업배우로 돌아와 의욕적인 무대활동을 펼치고 있는 명계남씨(43).「월드 스타」와 「명배우」라는 수식어가 붙는 이들은 문예회관 대극장에서 3일 막을 올린 극단 무천의 「메디아」(김윤미 작,김아라 연출)와 극단 완자무늬가 소극장 학전에서 4일 무대에 올린 「콘트라베이스」(파트릭 쥐스킨트 작,김태수 연출)에 각각 주인공으로 출연중이다. 두 작품 모두 연극의 참 맛을 느낄 수 있는 정통극으로 상업적 색채가 강한 감각적 연극들이 득세하는 요즘 연극계에 신선한 자극제가 되고 있다. 「메디아」는 고대 그리스 비극작가 유리피데스의 대표작 「메디아」와 독일의 현대작가 하이네 뮐러의 삼부 단막극 「황폐한 강변,메디아 소재,아르고 선원들이 있는 풍경」을 토대로 연출가 김아라씨와 작가 김윤미씨가 재창작한 작품.콜키스의 공주 메디아는 사랑하는 남편의 성공을 위해 살인과 계략을 서슴지 않지만 남편으로부터 버림받자 그 복수로 남편의 연인은 물론 자기가 낳은 자식까지 살해한다.유리피데스는 사랑과 증오의 관계를 파헤쳐 인간의 숙명적 비극을 그렸지만 이번 연극에선 생산력과 파괴력의 대비를 통해 여성의 무한한 생명력이 상징적으로 그려진다. 이 연극에서 강수연씨는 발성과 호흡에 다소 문제가 보이지만 특유의 강렬한 눈빛을 번득이며 질투와 증오에 불타는 복수의 화신 역을 훌륭히 소화해 내고 있다.극의 전개에 맞춰 무대에서 두드리는 현대 음악가 임동창씨의 피아노 연주,기억속의 풍경을 보는듯한 독특한 무대도 볼만한 이 연극은 오는 5월 덴마크 프렌자페스티벌에 참가한다. 한편 독일의 은둔작가 파트릭 쥐스킨트의 대표작인 모노드라마 「콘트라베이스」에서 오케스트라의 콘트라베이스 주자로 출연,세상에 대한 환멸과 절망감을 지닌채 살아가는 소시민의연약한 모습을 연기하는 명계남씨(43)는 연세대 연희극예술연구회 출신의 배우. 73년 연극활동을 시작,극단 창고극장·사조·세실·사계 등에서 배우로 활동하다 85년 연극활동을 중단하고 광고회사 카피라이터,이벤트 기획자로 일하다 뜻한 바 있어 지난 93년 무대로 돌아왔다.연극 「북회귀선」「불좀 꺼 주세요」외에도 영화 「그 섬에 가고 싶다」「너에게 나를 보낸다」 등에 단역으로 출연하며 존재를 알리는데 성공한 그가 정말 연극다운 연극으로 관객을 사로잡겠다는 일념으로 30년 지기인 김태수씨와 손잡고 만든 것이 이번 작품이다. 복수의 화신으로 질투와 분노로 절규하는 강수연,자기 몸만큼이나 커다란 콘트라베이스를 들고 나타나 인생의 의미를 묻는 명계남.이들의 열정이 신춘 연극계를 뜨겁게 달군다.
  • 설연휴 극장가/신작영화 “봇물”

    ◎영원한…/「정조개혁」 둘러싼 당파 갈등 그려/불멸의…/베토벤의 음악열정·인간적 고뇌/「밴디트 퀸」은 인도 계급사회의 모순 다룬 화제작 올해 설 연휴에는 어떤 영화를 보아야 할까.극장가 최대대목인 구정을 앞두고 신작영화들이 대거 쏟아져나와 영화팬들을 즐거운 선택의 고민에 빠지게 하고있다. 28일 하루에 개봉될 영화만도 예닐곱편.이 가운데 특히 화제를 모을만한 작품으로는 한국영화「영원한 제국」을 비롯,할리우드영화「불멸의 연인」,인도영화「밴디트 퀸」등 3편을 우선 꼽을 수 있다. 이인화의 동명소설을 영상으로 옮긴 「영원한 제국」(감독 박종원)은 「조선의 르네상스」로 불리는 18세기,정조 집권시대를 배경으로 왕권과 신권의 정치적 갈등을 그린 작품.정조가 부르짖었던 개혁의 명분과 실체를 한 규장각 사서의 의문의 죽음을 파헤치는 미스터리극 형식을 빌려 해부한다.정조를 따르는 남인은 붉은 옷을,심환지를 정점으로 한 노론파는 푸른 옷을 입는 등 적대적인 두 세력의 대립을 색상의 대비로 상징처리한 점이 돋보인다.영조대왕의 비서「금등지사」의 행방을 쫓는 「역사의 퍼즐게임」이 추리극의 묘미를 느끼게 하지만 중첩된 갈등구조가 좀 지루한 감을 주는 것이 흠.성군이자 야심가였던 정조역에 안성기,노회한 노론총수 심환지역에 최종원,작품의 화자인 이인몽역에 조재현,명쾌한 논리로 사건을 규명하는 정약용역에 김명곤,인몽의 처 상아역에 김혜수가 열연했다. 「불멸의 연인」(감독 버나드 로즈)은 악성 베토벤의 음악적 고뇌와 열정을 다룬 전기영화다.소리를 잃어가는 처절한 고통속에서 그가 겪었던 사랑하는 여인과의 만남,격정적인 사랑과 파경을 베토벤 자신의 심경이 담긴 교향곡,협주곡,소나타 등의 음악을 매개로 풀어나간다.영화는 베토벤이 「나의 천사,나의 모든 것,나의 분신」으로 불렸을만큼 사랑했던 여인 조안나(요안나 테르 슈테게)와의 운명적인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주변과의 끝없는 불화를 통해 한 음악가의 천재적 괴퍅성이 한꺼풀씩 드러나면서 관객은 인간 베토벤의 참모습과 만나게 된다.헝가리 최고의 지휘자 게오르그 솔티경의 지휘로 펼쳐지는 기돈 크레머 바이올린,요요마의 첼로,머레이 페라이어의 피아노 선율이 음악영화로서의 리얼리티를 한껏 살려준다.베토벤 역은 「JFK」「드라큘라」「트루 로맨스」등에서 강렬한 연기를 보여준 연기파배우 게리 올드만이 맡았다. 「밴디트 퀸」은 지난 88년「신상」이후 두번째로 국내에 소개되는 인도영화.「인도의 잔다르크」로 불리는 전설적인 여자산적 두목 풀란 데비의 실화를 토대로 한 작품이다.지난해 타임지가 선정한 세계10대 영화에 들기도 한 화제작이지만 인도 계급사회의 모순을 정면으로 건드리는 인화성 강한 내용때문에 지금까지 인도내 상영이 금지돼 있다.인도영화의 고전「미스터 인디아」를 연출한 세카르 카푸르 감독 작품.인도의 인텔리 배우 시마 비스와스가 풀란 데비로 나온다.
  • 「95 신년 국제음악회」를 보고/이상만 음악평론가(음악평)

    ◎슬라브 음악가들 기교·진지함에 감명 신년 국제음악회라고 제목이 붙여진 슬라브 음악가들의 혼성 그룹이 새해 벽두 서울 세종문화회관 무대를 훈훈하게 하였다.헝가리의 코다이 현악사중주단,작년도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에서 한국의 제니퍼 고와 함께 1위 없는 2위에 입상한 아나스타샤 체보타레바,그리고 불가리아의 플로보디프 오페라 합창단이 장장 세시간이 넘는 긴 음악회를 가졌다.그래도 인내심 많은 청중들이 진지하게 자리를 지켜 주었다.욕심을 말하자면 각기 다른 연주장에서 3일간을 연속해서 축제를 가질만한 음악회의 분량과 내용이었다. 동구의 사회주의체제가 붕괴된후 물밀듯 동구음악가들이 서울뿐 아니라 서구여러나라에 몰렸다. 이제는 그 홍수속에서 동구음악가들에 대한 호기심도 상업적인 의미에서는 퇴색한 감도 없지 않다.그러나 오랜 사회주의 체제를 버티게 해주었던 그 나라 예술가들의 역할는 지금에 와서도 빛을 잃지는 않고 있다.그들은 어떤 체제가 되었든 예술가들의 진지함,그리고 직업정신의 철저함을 버리고 있지 않는 것같다.어떻게 보면 순박하고 또 기술에만 철저한 이들의 태도는 서구 자본주의 체제에서 오염되고 지나치게 청중들만을 의식하는 예술가들의 약점을 오히려 보안하는 것 같다.단지 이들이 연주한 곡목들은 대로마,그리고 합스부르크 왕조시대의 음악들을 소중하게 간직하며 그것이 예술지상주의를 지키는 첩경이라고만 생각하는,우리가 보면 아직도 폐쇄된 정신세계를 고수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헝가리의 근대 거장 음악가의 이름을 딴 코다이 현악사중주단은 이름 그대로 국제적 수준의 현악사중주단이다.하이든의 연주에서 이들의 순도를 점검케 했다.슈베르트의 「숭어는 한국인 김정아,불가리아의 콘트라 베이스주자를 영입해서 2악장을 빼고 연주,이들의 기량을 오히려 반감하는 쪽이었다.현악사중주를 세종문화회관에서 연주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되었다. 바이올린의 아나스타샤는 대단한 기교와 기질을 갖고 있었다.단지 음악을 수용하는 그의 해석은 아직도 가능성을 기대하게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그도 충분히 세계악단을 누빌 자질을 갖고있다.단지 그 말썽많은 차이코프스키 콩쿠르를 상기할때 나같으면 당연히 제니퍼 고에게 1위를 안겨 주었을 것이다. 이날 연주회에서 깊은 인상을 심어준것은 불가리아의 플로보디프 오페라 합창단이었다.긴 여로에 아직도 피곤이 가시지 않은 목소리였고 베르디 푸치니의 오페라 합창에 거의 한정되어 그들의 참모습을 평가하기는 어렵지만 직업합창단으로 고도의 훈련과 가능을 인식하기는 어렵지 않았다.앙코르로 부른 「그리운 금강산」은 청중들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하였다.이 노래가 궁극적으로 음악회의 뒷맛을 좋게했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 감미로운 음율에 청중 “환호”/동구정상 음악가 혼신의 연주·열창

    ◎서울신문 주최 신년국제음악회 서울신문 창간 50돌 기념 「95 신년국제음악회」가 13일 하오 7시30분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성황리에 개최됐다. 3시간동안 펼쳐진 이날 음악회에서는 헝가리 코다이 현악4중주단,우크라이나 출신의 바이올리니스트 아나스타샤 체보타레바,불가리아 플로브디프 오페라합창단 등 동유럽을 대표하는 연주자 및 단체들이 세계 정상급 연주를 선사해 객석을 가득 메운 3천여 관객을 감동시켰다. 부다페스트 음악원 출신 멤버로 구성된 코다이 현악4중주단은 20년 넘게 맞춰온 호흡을 바탕으로 하이든의 현악 4중주 작품 64의 5와 슈베르트의 피아노5중주 「송어」,모차르트의 현악4중주 K465를 연주했다. 지난해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에서 1위없는 2위에 입상한 체보타레바는 크라이슬러 편곡 타르티니의 소나타 「악마의 트릴」과 사라사테의 「비제의 카르멘 주제에 의한 환상곡」을 연주,뛰어난 기량을 과시했다. 「포로들의 합창」「집시들의 합창」등을 연주한 플로브디프 오페라 합창단은 중후한 저음을 바탕으로 강하면서 부드러운 동구권 합창단 특유의 음색을 자랑했다.특히 이들은 앙코르곡으로 우리가곡 「그리운 금강산」을 두차례나 불러 청중으로부터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 “신세계 열자” 상업성 벗기 힘찬 몸짓(브로드웨이 “새바람”:1)

    ◎뮤지컬·미술·춤·패션… 창조의 수도/1백년 영화거부,인간성 회복 도전/문화·경제적 흡인력 바탕… 뉴욕의 심장으로 자리매김 미국의 심장이자 세계의 심장을 자처하는 뉴욕 맨해튼의 브로드웨이에 새시대를 맞는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세계금융의 중심인 월스트리트를 시발로 하고 있는 브로드웨이는 1894년 첫 뮤지컬 아도니스의 대히트 이래 미술·건축·뮤지컬·영화·오페라등을 꽃피우며 「20세기 세계문화」의 중심으로 자리잡아 왔다.이제 1995년으로 문화의 꽃밭으로서 새세기의 원년을 맞은 브로드웨이.그 약동의 현장을 나윤도 뉴욕특파원의 취재로 약 20회에 걸쳐 싣는다. 『나를 살게 해주오 모든 불빛이 붉게 빛나는 브로드웨이에/오가는 사람 모두가 행복에 넘쳐 보이는 그곳에/사람들은 어리석은 꿈을 말하며 그 꿈의 실현을 기도하는/꿈이 헛됨을 알아도 결코 떠날수 없는 마을에//브로드웨이 불빛마다에 상심한 가슴들이 달려있고/불빛들은 수많은 슬픔을 이야기 하네/머리위의 불빛은 당신에게 아무것도 아닌 것을/무엇인가를 갚아야 할것은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인데』(하워드 존슨 「브로드웨이 불빛」) 브로드웨이의 새세기는 서설로 시작된다.세계인의 꿈과 기대,사랑과 동경,그리고 이별과 슬픔,절망과 좌절을 한데 받아온 브로드웨이 1백년을 「아메리칸 드림의 부활」로 승화시키는 대서사시의 첫장은 현란한 불빛보다도 고즈너기 내려앉아 제막을 기다리는 하얀 광목천 처럼 소담스런 백설축제로 와닿는다. ○정형의 구속 거부 새세기를 여는 오늘 브로드웨이의 첫아침은 지난 1백년의 역사를 거부한다.상업성을 지상최고의 덕목으로 쌓아온 브로드웨이의 영화(영화)는 또 하나의 바벨탑에 불과한지도 모른다.뮤지컬 1백년,영화 1백년으로 응축돼온 브로드웨이에 『인간은 어디로 갔는가』의 외침이 메아리져 온다.그러나 새세기는 인간상실에서 벗어날 설렘에서 어느때 보다 힘찬 발걸음으로 다가온다.신성과 인간의 모독을 청산하고 신성과 인간의 경건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브로드웨이는 맨해튼의 남쪽끝 배터리파크에서 북으로 북으로 뻗어올라가 맨해튼섬을 종단하여 브롱스까지 30여㎞ 길이로 이어져 있으며 지난 1백년동안 수많은 가지에 자양분을 공급해온 맨해튼의 척추이자 뉴욕의 심장으로 자리매김해 왔다. 브로드웨이는 그 길의 생김새부터 정형의 구속을 거부하고 변형의 자유를 추구한다.남북으로 뻗은 애브뉴와 동서로 뻗은 스트리트로 바둑판 처럼 구획된 맨해튼 한복판을 굽이굽이 헤치며 남북으로 달리는 브로드웨이는 많은 애브뉴들과 만나면서 스퀘어(광장)라는 독특한 공간을 창출해왔다. 이는 결국 도전의 역사이고 그 숱한 도전 속에서도 브로드웨이는 새로운 만남에 대해 질시와 반목보다는 관용과 융화를 통해 거대한 용광로처럼 포용해 나감으로써 브로드웨이의 신화를 만들어왔다. 자유의 여신상을 마주하는 배터리파크 북쪽의 1번지 「볼링 그린」공원을 출발한 브로드웨이는 왼쪽으로는 월드트레이드센터,오른쪽으로는 월스트리트를 거느리며 국제 금융의 중심가로 당당하게 시청앞 광장까지 북상한다. 여기서 브로드웨이는 미술의 거리이자 패션의 발상지인 소호로부터 첫번째 도전에 직면한다.차이나타운과 리틀 이태리도 작은 도전이다.미로처럼 퍼져나간 구시가의 골목들로부터 끊임없이 제기되는 도전을 모두 포용하여 브로드웨이는 4번가와 만나는 워싱턴 스퀘어에서 하나의 용광로를 이룬다. 히피들의 퍼포먼스 혹은 반전주의자들의 반전집회는 물론 몰려드는 관광객들을 상대로한 스트리트 퍼포먼스의 본고장인 워싱턴 스퀘어는 백남준의 굿판을 주제로한 비디오 아트 예술도 훌륭하게 융화시킨다. 워싱턴 스퀘어를 떠나 또 북상하던 브로드웨이는 예술의 도시 그리니치빌리지를 지나며 14번가에서 파크애브뉴(4th.)와 만난다.이는 두번째 도전이며 거대한 유니언 스퀘어를 만들어낸다.이어서 23번가에서는 세번째 도전인 피프스(5th.)애브뉴와의 만남이 이뤄지며 여기서 만들어진 매디슨 스퀘어는 남부 브로드웨이 최대 오아시스인 메디슨 스퀘어 파크를 이루고 있다. ○수많은 인파 몰려 네번째 도전은 아메리카스 애브뉴(6th.)와 만나는 34번가에서 이뤄지며 헤럴드 스퀘어를 창출한다.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으로 이어지는 이곳은 맨해튼 상업문화의 표본인 메이시백화점의 생스기빙(추수감사절) 퍼레이드의 종점이기도 하다. 다섯번째 도전은 브로드웨이에 가장 큰 충격을 주었으며 세븐스(7th.)애브뉴와 만나는 42번가의 타임스 스퀘어가 바로 그 현장이다.맨해튼의 40여개에 달하는 뮤지컬극장이 몰려있는 이곳은 브로드웨이 생명력의 원천으로 늘 수많은 인파로 밤낮없이 북적댄다. 여섯번째 도전은 에잇스(8th.)애브뉴와 만나는 59번가로 맨해튼 최대의 오아시스인 센트럴파크가 시작되는 곳이기도 한 이곳에는 콜럼버스 동상이 높이 받들어진 콜럼버스서클이 자리잡고 있으며 교통의 요지를 이루고 있다. 일곱번째 도전은 콜럼버스 애브뉴(9th.)와 만나는 65번가에 위치한 링컨 스퀘어에서 이뤄진다.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하우스,뉴욕주립극장을 비롯,줄리어드음대 등으로 구성된 링컨센터는 타임스 스퀘어의 뮤지컬에 비길수 있는 미국음악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여덟번째 도전은 암스테르담 애브뉴(10th.)와 만나는 72번가로 이탈리아 음악가 베르디의 동상이 서있어 베르디 스퀘어라고 불린다.부근에 미국자연사박물관이 위치하고 있으며 바브라 스트라이센드,아놀드 슈와르제네거등 수많은 인기스타들이 몰려 살고 있다. 브로드웨이는 베르디 스퀘어를 지난후에는 107번가에서 웨스트엔드애브뉴(11th.)와 만나면서 줄곧 함께 올라간다.모닝사이드 하이츠라는 지역으로 불리는 이곳은 콜럼비아대학이 중심에 위치하고 있어 브로드웨이의 다른 곳과는 전혀 다른 학구적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이어서 브로드웨이는 할렘의 중심가인 125번가와 만나 랩과 힙합등 흑인음악과 만난후 줄곧 북상하여 168가에서 세인트 니콜러스 애브뉴와 만나면서 미첼 스퀘어를 형성한후 폭도 좁아지고 조용한 거리로 변하여 브롱스로 연결된다. 전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을 끊임없이 모여들게 하는 브로드웨이의 엄청난 흡인력은 오늘날 맨해튼을 인간의 창조력으로 만들어낸 모든 것들의 수도로 만들었다.뮤지컬의 수도,오페라의 수도,출판의 수도,건축의 수도,미술의 수도,박물관의 수도,고전음악의 수도,춤의 수도, 재즈의 수도, 패션의 수도, 광고의 수도, 금융의 수도, 법률의 수도, 경영의 수도, 신문의 수도, 잡지의 수도가 되고 있으며 또 다이아몬드의 수도, 레스토랑의 수도이기도 하다.혼잡함의 수도,범죄의 수도,세금의 수도,오만의 수도,경멸의 수도등 악명도 따라다닌다. ○상업주의 중병 앓아 맨해튼이 이같은 수도로서의 역사가 시작된 것은 17세기 중반 신성모독의 도시로 신대륙의 타도시들과 차별화되면서부터였다.청교도의 도시 보스턴, 퀘이커의 도시 필라델피아에서 볼때 맨해튼섬에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건설한 뉴암스테르담은 신성보다도 이윤이 최고의 가치가 되는 신성모독의 수도였던 것이다. 1643년의 한 선교보고서에는 당시 뉴암스테르담의 5백명 거주자들의 언어가 18개에 달할 정도로 뉴암스테르담은 국제적 성격을 띠고 있었으며 이들의 유일한 공통가치는 상업이윤이었다고 적혀 있다. 그후 17세기말 네덜란드 세력이 밀려나고 영국의 지배권이 강화되면서 맨해튼은 뉴암스테르담에서 뉴욕으로 이름이 바뀌고 해적의 수도로 변모했다.당시 부패한 영국 총독은 세계각국의 보화를 강탈해 오도록 해적활동을 장려했기 때문이다. 이후 맨해튼은 조선의 수도,산업의 수도로 발전해왔으며 1830년 대에는 금융의 수도로,1860년 대에는 공업의 수도로,19세기말에는 문화의 수도로 변해왔다.2차대전 이후에는 유럽세의 약화로 맨해튼은 유엔의 수도가 되면서 명실공히 세계의 수도로 등장했다.그러나 극도의 상업주의를 바탕으로 구축된 맨해튼은 최근 십수년간은 세기말의 중증을 앓아왔다. 이제 새세기를 맞는 맨해튼은 브로드웨이를 중심으로 인간을 회복하는 인간의 수도로,절망의 도시가 아니라 소망의 도시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새해아침 브로드웨이는 누구보다 먼저 스스로 잠에서 깨어나 서설의 의미를 깨닫는다.이제 브로드웨이 구석구석을 찾아 심연에서 우러 나오고 있는 재탄생의 벅찬 고동과 몸짓을 생생하게 독자들과 함께 느끼고 싶다.
  • 서울신문 50돌 기념 「95 신년국제음악회」를 기다리며

    ◎실내악/바이올린/합창/다양한 음악 접할 귀한 기회 지난 94년은 다시 떠올리기도 싫은 고통의 기억들을 우리들에게 남겨 주었다.그런데 그 고통스러운 기억들은 따지고보면 모두가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데서 비롯된 것이며 더 분명히 말한다면 남을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욕심만을 채우려는 속된 욕심으로부터 시작된 재난이 아니었나 한다. 그래서 말이지만 95년 새해를 맞는 시점에서 생각되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아름다운 마음을 간직하는데 관심을 가짐으로써 마음의 여유를 얻고 이러한 정신적 여유를 바탕으로 세속적인 욕심에서 해방될 수 있다면 세상이 얼마나 달라질 것인가 하는 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볼때 새해 벽두에 차원 높고 아름다운 고전 음악의 세계속에 마음을 묻고 한해를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참으로 귀한 경험이 아닐 수 없다고 생각된다.특히 이번 무대는 한무대에서 다양한 음악의 세계를 섭렵할 수 있을뿐 아니라 고전음악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도 친숙하게 느껴질 수 있는 대중적으로 널리알려져 있는 작품들을 연주함으로써 무언가 95년이 기분좋은 한해가 되리라는 기대감 마저 갖게 한다.현악 4중주와 바이올린 독주 그리고 합창단이 함께 꾸미는 무대는 우리가 흔히 접하기 어려운 무대인데 코다이 현악4중주단은 현악4중주의 명문이라고도 할 수 있는 항가리를 대표하는 실내악단으로서 이미 전세계적으로 그 이름을 떨치고 있는 4중주단인 만큼 실내악의 진수를 보여주리라 믿는다.이들은 이번 공연에서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4중주와 슈베르트의 피아노 5중주 「송어」를 연주하게 되는데 아름다움의 극치를 이루는 고전의 향기는 오랫동안 우리들 마음속에 살아 숨쉴 것이라 생각한다.바이올리니스트 이나스타샤 체보타레바는 많은 음악가들을 배출한 러시아의 오뎃사 출신으로 94년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에서 1등 없는 2등을 한 젊은 여류 연주가로서 세계 악단이 주목하고 있는 재원인 만큼 젊음의 열기가 듣는 이들을 감동시킬 것이라 생각되며 후반부를 장식하게될 불가리아의 프로브디브 오페라 합창단은 프로브디브 오페라극장의 전속합창단으로서 특히 오페라 합창의 전문 단체인만큼 오랜만에 오페라 합창의 진면모를 느껴볼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특히 불가리아는 러시아와 같은 슬라브 민족으로서 슬라브의 독특한 저음과 강렬한 음악적 힘을 가지고 있어 독특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으리라 믿는다. 1995년 새해는 무엇보다도 문화민족으로서의 긍지를 가지고 정신의 차원을 높이는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할것으로 생각되는 바로 이러한 첫 순간에 고전음악의 다양한 맛을 한 무대에서 감상할 수 있게 된것은 무언가 95년이 우리 모두에게 정신을 더 중요시 여기는 한 해로 다가 오리라는 강한 예감을 갖게 한다.아름다운 음악이 넘쳐 흐르는 가정·사회·국가로 변화하는데 오늘의 이 음악회가 이바지 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95 신년국제음악회」 연주곡 해설/「종달새」… 종달새가 하늘 나는듯 가볍고 경쾌/사라사테의「카르멘 환상곡」현란한 기교“백미”/「포로들의 합창」,히브리 노예의 고국향한 향수 서울신문 창간 50주년을 기념하는 「95 신년국제음악회」(13일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강당)는 음악적 전통이 깊은 동구권의 정상급 음악인과 음악단체들이 출연하는 본격적인 새해 첫 음악회로 한국 음악계의 주목을 끌고 있다.이 음악회에 대한 음악평론가 한상우씨의 기대와 연주곡 설명을 함께 싣는다. ◇하이든의 현악4중주 D장조 작품64의5 「종달새」 하이든은 일생동안에 현악4중주곡만도 83곡을 남기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대중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종달새」는 종달새가 하늘을 나는 모습을 연상케 한다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슈베르트의 피아노5중주 A장조 작품114 「송어」 피아노5중주 하면 흔히 현악4중주에다 피아노를 합한 것으로 이해되지만 슈베르트의 피아노5중주 「송어」는 바이올린·비올라·첼로·더블 베이스·피아노로 이루어져 흥미를 갖게 한다.그런데 이곡에 「송어」라는 이름이 붙게 된 것은 슈베르트가 18 17년 봄에 작곡한 가곡 「송어」를 5중주의 4악장에 주제와 변주곡으로 넣었기 때문이다. ◇모차르트 현악4중주 19번 C장조 K465 「불협화음」 모차르트는 23곡의 현악4중주를 남겼는데 대개 6곡씩 묶어 출판되었고 그중 19번은 「하이든 4중주곡」이란 이름으로 출판된 6곡의 마지막에 해당된다. 이 곡은 18번을 완성한 지 4일만에 작곡되어 17 85년1월14일에 하이든을 초대한 자리에서 초연되었는데 모차르트의 후기 4중주곡 10곡 가운데에서 서주부기 붙어 있는 곡은 이곡 한곡뿐이다. ◇타르티니의 바이올린 소나타 G단조 「악마의 트릴」 이탈리아 출신의 작곡가 타르티니는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이기도 했는데 그는 언제나 새로운 연주기법을 연구하던 차에 어느날 밤 꿈속에서 들려준 악마의 연주를 듣고는 꿈에서 깨어나 이 곡의 3악장에서 그 트릴을 사용함으로써 「악마의 트릴」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사라사테의 「카르멘환상곡」작품 25 사라사테는 1844년 스페인 태생으로 10세때 마드리드의 궁전에서 연주할 만큼 소위 천재 바이올리니스트였다.그후 6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그는 당대를 풍미한 연주가로 파가니니에 버금가는 연주가로 인정받았고 많은 작곡가들은 그를 위해 작품을 쓰기도 했다. 그중에서 「카르멘환상곡」은 프랑스의 작곡가 비제가 작곡한 걸작 오페라 「카르멘」중에 나오는 유명한 아리아들을 바이올린의 유려한 기교위에 올려놓음으로써 듣는 이들을 매혹시키고 있다. ◇모차르트의 「이베 베룸 코르푸스」 K618 1791년 바덴에서 요양중이던 아내 콘스탄체를 돌보아주던 합창 지휘자 안톤 시톨을 위해 씌어진 이 곡은 불과 46마디의 짧은 합창곡이지만 종교적 깊이와 너무나도 경건한 음악적 여운이 흘러넘처 고금의 명곡으로 많이 연주되고 있다. ◇베르디 오페라 「일 트로바토레」중에서 「집시의 합창」 일 트로바토레의 제2막 1장 처음 비스키아산중에서 집시들이 대장간의 철판을 두드리며 힘차게 부르는 노래로 「대장간의 합창」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는 곡이다. ◇베르디 오페라 「나부코」중에서 「포로들의 합창」 베르디의 초기작품에 해당하는 나부코는 구약성서의 예레미야·열왕기하·다니엘서 등에 나타나는 나부코도노조르의 사적을 근거로 한 것인데 특히 3막2장 처음에서 히브리 포로들이 유프라데스강변에서 강제노동에 시달리며 고국을 그리워하며 부르는 합창은 ◇보로딘 오페라 「이고리공」중에서 포로베츠인의 춤과 합창 러시아 국민악파 5인조 중의 한사람인 보로딘의 오페라 「이고리공」은 소위 국민주의 오페라를 대표하는 곡중의 하나. ◇차이코프스키 오페라 「에프게니 오네긴」중에서 왈츠. 차이코프스키는 파리에서 「카르멘」을 보고는 감동한 나머지 자신도 오페라를 쓰려고 결심했는데 마침 가수이던 엘리자베타의 권유로 푸슈킨의 작품 「에프게니 오네긴」을 오페라로 작곡하게 된 것이다. ◇푸치니 오페라 「나비부인」중에서 허밍 코러스. 일본을 무대로 하는 푸치니의 걸작 오페라 「나비부인」중 2막1장의 마지막 부분.스즈키와 아이는 어느덧 잠든 채 나비부인이 홀로 앉아 핑커턴을 생각하며 밖을 응시할 때 멀리서 들려오는 허밍으로 된 합창은 보는이로하여금 눈물을 적시게 한다.
  • 지휘자 원경수(이세기의 인물탐구:66)

    ◎완벽한 화음 연출… 타고난 예술가/탁월한 재능… 악보속 숨겨진 작고고가 의도 읽어내/미·영·러·독무대 활약… 작년 서울시향 맡아“새바람”/부친 반대하자 음악위해 가출… 미·오스트리아서 지휘공부 위대한 지휘자의 한 사람인 카를 뵘은 『지휘자란 손의 움직임 보다는 내면적인 접촉으로 철학적 사상과 정신을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토스카니니처럼「악보에 적힌 것을 그대로 소리로」옮기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푸르트벵글러처럼「악보뒤에 숨겨져 있는 음표」를 세밀하게 파헤치는 거장도 있다.어쨌든 지휘자가 지적인 음악의 전달자가 되기 위해서는 음악뿐만 아니라 인생과 예술전반에 걸쳐 해박한 지식과 철학적 사고를 고루 갖추지 않으면 안된다.그런 의미에서 지휘자 원경수는 지휘자의 가장 바람직한 조건중에서 한치의 흠도 찾아볼 수 없는 완벽주의자에 틀림없다. 한번 들으면 악보를 줄줄이 외우는 비상한 두뇌의 소유자인 그는 전문가 뺨치는 편곡실력에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직접 다루고 어떤 악기군이 작곡자가 의도한 악보대로 음악을 연주하지 못하면 이를 귀신같이 잡아내는 예민한 귀를 가지고 있다.첼리스트였던 토스카니니가 암보로 지휘하는 것은 지독한 근시였기 때문이지만 원경수는 악보속에 숨겨져 있는 번뜩이는 예술성을 끄집어내어 재창조의 기적을 만들어낸다.뿐만 아니라 콧대 높은 세계적인 연주자일지라도 원경수 예술의 질서속에 그의 소리를 몰아넣음으로써 오케스트라 단원이나 청중 모두를 일시에 침묵시키고야 만다. ○세상물정엔 어두워 원경수는 한마디로 음악의 화신과 같은 존재다.그와 오랫동안 많은 연주를 해냈고 또 그를 경원대 음대 대우교수로 초청한 피아니스트 신수정은『그의 일생은 음악이 바로 종교』라고 단적으로 단정해버린다.평소의 그는 마치 어린 소년과도 같이 천진무구하다.이해타산도 모르고 세상물정에도 어둡다.그러나 음악에 관한한 어떤가.그 자신이 어릴때부터 그래왔던것 처럼 음악에서만은 만능이며 천부적 재능의 소유자다.기라성같은 세계 정상급과의 협연에서도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을 지적하고 작곡가의 의도를 이해시키기 위해열의에 찬 정열을 식히지 않는다.그래서 처음 그를 만난 사람은 피곤할 수 밖에 없게 된다.그러나 그를 만남으로써 음악이 향상되고 있음을 스스로 실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또 투철한 실험정신으로 좀더 새로운것,실험적인 것에 도전하기를 주저치 않는다.그의 특징은 행사적인 타성에서 벗어나 그때마다 새롭고 경이로운 것을 지향하는 타입이다.초연 작품을 즐겨 선택하는 것도 그런 이유의 하나다.윤이상에 대한 탁월한 해석과 영국 에든버러대 배리쿠퍼교수가 찾아낸 베토벤 10번 1악장,에네스코의 루마니안 랩소디 2번,그리고 모차르트의 새교향곡 a단조(K16a)초연등은 우리 음악사에 길이 남을 만한 감동적인 명연주들이다. 미국 스탁톤 심포니 음악감독이자 지휘자였던 그가 지난해 서울시경 상임 지휘자로 취임했을때 정재동이후 키를 잃고 방황하던 시향에 뭔가 범상치 않은 바람이 불 것같은 예감에 음악계는 긴장과 생기가 감돌았다.그리고 그의 시향은 지난 1년간 어느때보다 활기차고 싱싱한 전열을 가다듬었다.과연 그의 송년음악회는 해마다연주되던 베토벤 9를 과감하게 버리고 「전원」과 「운명」으로 「평화롭고 엄숙하게」 막을 내렸다. 원경수는 서울 종로구 내자동에서 태어났다.당시 화신백화점 전무로 있던 원대참씨와 김계복여사의 3남매중 장남으로 어릴때부터 피아노를 쳤고 한번 들은 곡은 오선지에 채보하거나 피아노로 방금 옮겨 칠만큼 섬세예민한 음감을 타고났다.부친은 상당히 현대적인 사고방식을 지닌 인텔리임에도 아들의 음악만은 완강히 말렸다.만약 음악을 계속할 경우 부자의 연을 끊겠다고 말했다.그도 『굶어죽더라도 음악을 포기할수 없다』고 선언하고 집을 나와버렸다.그때가 경복고를 졸업하던 47년이었다. ○레코드 한장들고 낭와 그런 결심을 하게된데는 성장과정에서 그가 자기자신에게 해온 하나의 질문이 있었기 때문이다.끝없이 소리내며 돌아가는 시계의 초침을 바라보면서 「나는 장래 무엇이 될것인가.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살게 될것인가」를 자문했고 그리고 무엇이 되든지간에 「주말이나 월급날을 기다리는 틀에 박힌 인생은 절대로 만들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메뉴인이 연주한 레코드 한장만을 달랑 들고 집을 나온 그는 장래 하이페츠나 오이스트라흐를 능가하는 연주자가 될것을 꿈꾸며 혼자서 독학한 실력으로 서울대 음대에 진학했고 부산 피란시절에는 이화여대 임시강당에서 바이올린 독주회,이를 인연으로 후에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가 된 김영욱의 바이올린 레슨을 맡아 종로구 운니동에 있는 김영욱의 집에 기식한 시기도 있다.그후 선배 지휘자인 임원식씨의 소개로 김생려씨가 지휘하는 고려교향악단에 들어가 브람스 베토벤 모차르트 뵈탕의 솔리스트로 활약하다가 54년 한국을 방문했던 신시내티 교향악단의 도어 잔슨의 눈에 띄어 미국으로 유학하기에 이른다. 그가 지휘자의 길을 걷게 된것은 미국 신시내티 뮤직콘설바토리와 인디애나대 졸업후 빈의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에서 지휘를 전공,61년 디아길레프 러시아 발레단 지휘자였던 피엘 몽퇴가 주관한 행커크 서머스쿨에 참여하면서부터다.피엘 몽퇴의 제자의 대열에 서게된 그는 뉴올리언스 교향악단 부지휘자를 거쳐 67년 10월 미국 캘리포니아 중심지역인 스탁톤에서 40년 역사의 스탁톤 오케스트라를 지휘,다음날「스탁톤 저널」은 『이 오케스트라는 일찍이 이처럼 훌륭한 연주를 한적이 없다.특히 피아니시모의 처리는 섬세한 연주의 심벌이었다』고 대서특필했다.그날 강당을 가득 메운 청중은 기립박수로 앙코르를 외쳤고 그는 60여명의 후보자 가운데 당당히 새지휘자로 발탁되었다. 런던 로열 페스티벌홀에서 영국의 세계적인 교향악단인 런던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지휘로 국제무대에 오른 그는 76년 베를린 라디오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빈의 저명한 퉁퀸스틀러(음악가협회)오케스트라를 지휘.당시 빈 아카데미에 유학하고 있던 시향의 김영목씨 편지에 따르면「그의 연주 티켓은 며칠전에 매진됐으며 동양에서 오는 한 지휘자에 대한 이곳 음악애호가들의 관심은 대단하다」고 전한 적이 있다.「베토벤과 모차르트는 빈 사람들의 긍지와 자존심 자체」였으나 그의 연주는 「그들의 자존심을 완전히 만족시켰다」고. 퉁퀸스틀러 오케스트라 연주에 앞서 그해 서울시향에서 베토벤 교향곡7번과 모차르트 아이네 클라이네 나하트 무지크를 연주했을때 음악평론가 이성삼은 『원경수의 지휘로 매너리즘에서 탈피하지 못하던 서울시향은 오랜만에 융합된 화음과 투명한 톤으로 생기에 찬 발랄한 연주를 들려주었다』고 호평했다.이는 그의 국제적 성공을 예고하는 팡파르가 되었다. ○그림솜씨도 뛰어나 아마추어를 능가하는 그림솜씨 또한 유명하다.전람회를 열만큼은 아니지만 흑석동에 있는 그의 집에는 그가 그린 추상계열의 작품들이 벽면마다 장식되어있다.이 그림취미는 그가 지휘할때마다 눈앞에 떠오르는 색채의 멜로디를 그대로 캔버스에 옮긴 것이다.베토벤이 마치 구름처럼 또는 폭포수처럼 곡조의 환상을 이루는 화면속의 장엄미사는 문자 그대로 장관이 아닐수 없다.패션디자이너인 부인 서혜자여사와의 사이엔 알리사(27·재미 변호사)와 저스틴(26·MIT박사학위중)남매, 현재 서울엔 부인과 둘이 살고 있고 건축가 원정수씨가 실제다. 강한 추진력과 한치의 오차도 없는 정교하고 날카로운 지휘,그의 피아니시모는 그 누구의 것보다도 작고 청려하며 그의 포르티시모는 웅대하고 장쾌하다.어느 한군데도 흠잡을 수 없이 유연하고 세련된 흐름이 원경수 예술의 진수일 것이다. 봄과 함께 시작되는 서울시향의 교향곡축제는 그가 편애해 마지않는 말러 심포니로 시작된다.「말러를 가장 말러답게」로 평가되는 바로 그 말러다.말러 자신이 말한대로 「초원의 꽃이 천국의 속삭임을 전달하는」 환상적인 묘사풍은 「음악은 너무 흘러넘치지 않을 때가 가장 아름답다」는 것을 한눈에 보여주게 될것같다.언젠가 런던 익스프레스지가 『마에스트로 원과 함께 악보뒤에 숨겨져 있는 음표를 파헤쳐 함께 즐긴다』고 지적한 것처럼 한 예술가의 인생의 경륜과 예술혼이 깃든 지휘는 수준높은 청중의 자존심을 완벽하게 만족시켜줄 것에 틀림없다. □연보 ▲1929년 서울출생 ▲1945년부터 바이올린 독학 ▲1952년 서울대 음대졸업 ▲1952∼54년 고려교향악단 단원 ▲1954∼61년 메인주 행커크서머스쿨 피엘몽퇴,심포니 오브더 에어의 월터 핸더슨에게 지휘법 사사 ▲1957∼65년 인디애나주립대 작곡·바이올린·지휘전공,신시내티 뮤직콘설바토리 도어 잔슨에게 지휘및 바이올린전공,신시내티심포니 필리핀 마닐라심포니 인디애나주립대 교향악단 지휘 ▲1963년 중서부지역 바이올린 독주순회,뉴올리언스 교향악단 부지휘자 ▲1965년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 지휘전공 ▲1967∼94년 모데스토 심포니,스탁톤 심포니 음악감독겸 상임 지휘자 ▲1970∼72년 서울시향 음악감독겸 상임 지휘자 ▲1970∼78년 캘리포니아 스탁톤뮤직콘설바토리및 패시픽유니버시티 강의 ▲1976년 런던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지휘(런던 로열 페스티벌홀) ▲1975∼89년 빈 퉁퀸스틀러(음악가협회)오케스트라 지휘 ▲1976·80년 베를린 라디오 오케스트라 지휘 ▲1978년 런던 필 지휘(런던 화이어 버드홀) ▲1981년 베를린 괴테 인스티튜트 수학 ▲1982·87·89년 에이레 국립 오케스트라와 칠레 아르헨티나 연주 ▲1984년 서울시향과 미순회 연주 ▲1985년 런던 필 지휘(런던 바비컨센터),KBS교향악단 상임 지휘자 ▲1986년 빈 서머뮤직 페스티벌.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지휘(바비컨)▲1988·89년 체코슬로바키아국립 라디오 오케스트라,렉싱턴 필하모닉오케스트라,베를린심포니 오케스트라 지휘 ▲1992년 경원대 대우교수 ▲1994년 뉴모스코 스테이트 필하모니 지휘(차이코프스키홀),스탁톤 심포니 명예 지휘자및 서울시향 상임 지휘자
  • 정명훈·조수미·금난새/대중스타로 부상/94음악계 결산

    ◎공연때마다 매진… 청중 사랑 한몸에/기업메세나협 출범… 문화인식 전환/장한나양,로스트로포비치 콩쿠르 우승도 화제 「음악계의 스타들이 비로소 대중속의 스타로 파고들어가기 시작한 해.음악을 보는 기업의 새로운 시야가 열리기 시작한 해」.올해 음악계는 이 두마디로 뭉뚱그릴 수 있을 것 같다. 1994년은 정명훈이 바스티유오페라와 결별하고 소녀첼리스트 장한나가 로스트로포비치 콩쿠르에서 우승했으며 작곡가 윤이상이 국내에서 열린 윤이상음악제 참가문제로 뉴스의 인물이 되는 등 어느 해보다 다양한 화제가 양산됐던 것도 사실.그러나 이같은 음악적 사건들은 앞서 제시한 두가지 새로운 판도에 오히려 그 비중이 밀리는 듯한 인상이다. 대중을 음악당으로 끌어들인 대표적인 스타는 정명훈과 조수미,그리고 금난새를 들 수 있다.정명훈은 지난 4월 바스티유오페라를 이끌고 서울오페라극장에서 「살로메」를 공연했다.「살로메」는 비교적 접근하기 어려운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작품이다.공연에 참석한 사람의 대부분은 「살로메」를 관람하기위해서라기보다는 정명훈과 바스티유오페라라는 세계 최고 수준의 음악적 조합을 구경하려 했던 사람들.결국은 「살로메」가 아닌 정명훈이 사람들을 끌어들인 것이었다.대한항공은 이같은 보통사람들의 욕구를 간파해 10억원이라는 거금을 이 공연에 투자했다.이 공연을 통해 관객들은 처음 참석한 이유가 어떤 것이었든 오페라가 도달한 어떤 경지를 맛볼 수 있었고 대한항공은 투자한 돈 이상의 성과를 회수할 수 있었다. 조수미는 이미 대중적인 스타라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7월18일과 20일 서울에서 있었던 공연은 10일전에 입장권이 매진됐고 예정에 없던 23일의 앙코르 공연은 발매 4시간 만에 모두 팔렸다.더하여 이 공연내용을 레퍼토리로 한 음반은 출반 3개월도 안되어 10만장이 넘게 팔리는 기록을 세웠다.조수미 팬의 분포는 평소 음반을 사는 소수의 「클래식 음악 애호가」의 영역과 전혀 관계가 없다는 것을 증명한 대목이다. 예술의전당이 기획한 「금난새와 함께 떠나는 세계의 음악여행」은 흔히 말하는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음악가」와는 다른 차원의 스타가 음악의 대중화를 위해서는 필요하다는 사실을 증명했다.금난새가 지휘와 해설을 맡아 한달에 한번 열린 이 공연은 매 공연때마다 다음달 공연의 입장권이 동이 나 버렸고 그 표를 산 사람들이 바로 청소년들이었다는 점에서 뜻깊었다. 한편 한국기업메세나협의회의 발족과 예술의전당이 한해 50억원의 기업 투자를 유치하겠다고 나선 것은 꼭 기록해야 할 대목이다.기업메세나협의회는 사실 기업인들 자신에 의해서라기보다는 오히려 정부의 의지가 기업에 작용해 출범됐다는 한계가 있었다.기업의 문화예술에 대한 인식이 아직 그런 정도였던 만큼 예술의전당이 구상한 계획도 기대에는 못미친다는 후문이다.그러나 이 두개의 움직임이 아직 기업의 생각을 바꾸어놓지는 못했을지라도 기업이 생각할 기회를 주었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출발로 기억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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