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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앞 못보는 전제덕, 그가 연주하는 하모니카의 영롱한 선율

    앞 못보는 전제덕, 그가 연주하는 하모니카의 영롱한 선율

    마음으로 부는 하모니카. 육체적으로 시각장애우임은 분명하지만, 음악에 있어서만큼은 자신의 핸디캡을 절대 인정하지 않는다. 장애로 인한 연민보다는 자신의 음악으로 평가받고 싶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최초이자 최고의 재즈 하모니카 연주자 전제덕.2년 만에 2집앨범 ‘왓 이즈 쿨 체인지(What Is Cool Change)를 들고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1집은 하모니카의 청승맞은 이미지를 변화시키고, 대중과의 친밀감을 높이기 위해 멜로디 중심으로 만들었어요. 어쿠스틱한 사운드로 따뜻함과 정감 등을 강조했죠. 이에 반해 2집은 일렉트릭과 어쿠스틱을 결합한 하이브리드 음악으로 확 바꿨어요. 앨범 제목에서 느껴지듯, 음악과 음악가는 항상 변해야 하니까요. 간단한 리듬에 양념처럼 여러 악기의 소리를 얹은 펑키 사운드 등 리듬을 중시한 차가운 음악을 추구했죠.” 작은 악기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선물하는 그는 1974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생후 보름 만에 찾아온 원인모를 열병은 그의 시력을 앗아갔다.7살 되던 해, 시각장애자 특수학교인 인천 혜광학교에 입학한 그는 입학하자마자, 교내 브라스 밴드에서 북을 연주하며 음악과 처음 만나게 된다. 그러다 중학교 1학년때 재정문제로 밴드가 해체되자, 이번엔 사물놀이에 입문해 ‘장구잡이’로 활동하게 된다.“태생적으로 타악기에 관심이 있었나 봐요. 타악기는 리듬이고, 음악은 리듬으로 귀결되죠. 리듬의 변화는 곧 장르의 변화라는 말과도 같고요. 전 이 리듬에 일찍 눈을 뜬 것 같아요.” 하모니카에 천착하게 된 것은 단순히 취미 때문. 이후 재즈를 이해하면서부터는 점점 연주에 깊이를 더해가게 된다.“사실 처음엔 쉬운 악기라고 생각했고, 실제 그랬죠. 하지만 한 걸음 더 나가 보니 음악의 세계, 전문가의 영역이더군요. 쉽게만 생각했다가 큰코 다친 격이죠.”그의 하모니카 세계가 한단계 도약하게 된 계기는 1996년 라디오 방송을 통해 벨기에 출신 재즈 하모니카 연주자 투츠 틸레망의 연주를 듣고 나서부터. 투츠의 연주에 감동을 받은 전제덕은 그의 음반을 모두 섭렵, 스승도 악보도 없이 독학으로 재즈 하모니카를 익혀 나간다.“서적 등 자료를 통해 받아들이는 음악에 관한 정보가 남들보다 많이 늦죠. 일반인들은 텍스트 북을 한번 보면 금방 아는데, 전 볼 수가 없으니 몸으로 깨우칠 수밖에 없었어요. 전공서적 1권을 점자책으로 만들자면 수십권이나 될 테니, 그런 걸 만들겠다는 사람도 없었고요.CD를 사서 듣고 또 듣고, 라디오의 재즈 프로그램이라면 밤이건 새벽이건 기를 쓰고 들었죠. 녹음을 해서 다시 들어 보기도 하고요.” 그리고 마침내 2003년. 재즈 보컬 말로의 3집 음반 ‘벚꽃지다’에 음반 세션으로 참가해 평단과 언론으로부터 “영혼까지 흔들 만큼 짜릿하고 영롱한 소리”라는 극찬과 함께 ‘한국의 투츠 틸레망’이란 별명까지 얻게 된다.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한 장애우들의 고민을 일반인들은 상상조차 하기 어려워요. 저 역시 음악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안마사 등의 일을 하고 있겠죠. 후배들에게 성공한 역할모델이 되고 싶어요. 그러려면 내 자신이 먼저 치열한 삶을 살아야겠죠. 프로의 세계에 동정이 끼어들 여지는 전혀 없으니까요.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2006 희망 키우는 아이들] (3) 서울맹학교·한빛맹학교 학생들

    [2006 희망 키우는 아이들] (3) 서울맹학교·한빛맹학교 학생들

    마음으로 세상을 보는 아이들이 있다. 눈이 아닌 귀와 손으로 세상을 듣고, 느끼지만 아이들에게 세상은 희망이다.15일 오후 시각장애 아동들의 배움의 요람인 서울맹학교와 한빛맹학교를 방문, 세계적인 음악가를 꿈꾸며, 밝고 맑게 살아가는 시각장애 아이들을 만나봤다. ●“베토벤 같은 훌륭한 음악가가 될 거예요” “집도 보고, 자동차도 보고 싶어요. 그 중에서도 엄마 얼굴이 가장 궁금해요. 답답할 때마다 피아노 건반을 두드려요.” 서울 종로구 신교동 서울맹학교 교실에는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이 울려 퍼졌다. 이 학교 3학년생인 서인호(11)군이 빠르고 힘찬 손놀림으로 베토벤 소나타 15번 ‘전원’을 연주하고 있었다. “장애를 극복하고 세계적인 음악가가 된 베토벤을 존경해요. 엄마 아빠를 위해서라도 꼭 훌륭한 음악가가 되고 싶어요.” 인호는 선천성 녹내장을 앓아 유치원 다닐 무렵부터 눈앞이 흐릿해졌다.8살 때 각막수술을 받았지만, 양쪽 시력을 잃고 말았다. 지금은 간신히 빛만 느낄 수 있을 정도다. 인호는 손으로 어머니 얼굴을 더듬어 만진다고 한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어머니 모습이 떠오를 거라 믿기 때문이다. 특히 인호는 빠듯한 살림에 늘 바쁘지만 인호의 등·하교만큼은 하루도 빼놓지 않고 챙기는 엄마·아빠에게 늘 고마움을 느낀다. 실력도 예사롭지 않다. 올해 한 언론사가 주최한 ‘피아노 콩쿠르’에서 베토벤 소나타 15번을 연주해 당당히 3위에 입상했다. 같은 또래의 비장애 아이들과 겨뤄 거둔 성과이기에 더욱 뜻깊다. 인호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오는 27일 열리는 학교 음악제에 나가 또 한번 실력을 뽐내볼 생각이다. 인호의 취미는 축구. 방과후 친구들과 어울려 축구를 즐긴다. 축구공에 딸랑 거리는 방울이 들어 있다는 것을 빼고는 비장애 아이들과 다른 점이 없다. 승부욕에 넘치는 모습도 여느 아이들 못지않게 힘차다. 각막수술만 10여차례를 받았고, 모서리에 부딪혀 이마를 8바늘씩이나 꿰맨 적도 있지만 인호는 울지 않았다. 정작 인호를 힘들게 하는 것은 사람들의 이유없는 편견이다. 얼마 전엔 거리에서 “눈이 이상하게 생겼다.”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었을 땐 마음이 아팠다고 한다. 이인희(51) 선생님은 “아이들의 순수하고 해맑은 모습에 교사인 내가 더 많이 배운다.”면서 “아직도 우리 사회는 장애아를 동정심과 거부감 섞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 같아요. 장애아에 대한 편견은 분명 버려야 합니다.”라고 당부를 잊지 않았다. ●“소리로 세상을 보고 느껴요” “트럼펫은 저랑 성격이 비슷해요. 소리가 밝고 맑거든요.” 서울 강북구 수유1동 한빛맹학교 교실에는 안제영(11·5학년)군이 연주하는 은은한 트럼펫 소리로 가득했다. 제영이는 소안구증으로 선천적 시각장애 1급. 세상 풍경을 한번도 본 적은 없지만, 제영이가 연주하는 팝송 ‘마이웨이’ 선율은 그 어느 연주보다도 아름다웠다. 제영이는 ‘한빛브라스 앙상블’의 트럼펫 주자로 경력만 4년째인 베테랑이다. 한빛브라스는 2003년 만든 한빛예술단 소속 4개 단체 중 하나다. 성악과장 이기성(46) 선생님은 “제영이가 똑같이 배운 다른 아이들보다 실력이 좋다.”면서 “계속 전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제영이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흔든다. “고생하시는 아빠가 뒷바라지하시는 게 부담스러워요.” 애써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짓는 모습이 11살답지 않게 조숙하다. 제영이는 부산에서 태어나자마자 6개월 만에 창원에 있는 조부모에게 보내져 할머니 손에 자랐다. 같은 시각장애인인 아버지는 부산에서 안마사를 하다가 지금은 시각장애인연합회에서 행정사무일을 보며 생계를 꾸린다. 제영이는 ‘빛소리중창단’의 일원이기도 하다. 조승우의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를 감명 깊게 봤다는 제영이는 OST(오리지널 사운드 트랙)를 귀에 꽂고 지낼 만큼 노래를 좋아한다. 트럼펫 연습이 끝나면 중창단 연습실로 가 친구들과 손을 잡고 연습에 열중한다. 눈은 허공을 응시하고 있지만 얼굴빛은 진지하기만 하다. 서로의 눈빛을 볼 순 없지만, 잡은 손과 곁에서 느껴지는 숨결로 맞추는 화음은 그 어느 어린이 합창단보다도 아름답다. 중창단 지도교사 이명신(37) 선생님은 “아무래도 아이들이 귀가 예민하다 보니 음감이 대단하다.”면서 “제영이와 같이 음악에 재능이 있는 아이들이 경제적인 어려움 없이 꿈을 키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儒林(750)-제6부 理氣互發說 제4장 儒林(7)

    儒林(750)-제6부 理氣互發說 제4장 儒林(7)

    제6부 理氣互發說 제4장 儒林(7) 공자가 얼마나 비장한 각오 아래 춘추의 저작에 몰두하였는가는 춘추가 완성되자 그 누구의 도움 없이 혼자만의 힘으로 저술한 춘추를 제자들에게 보여준 후 공자가 하였던 다음과 같은 말을 통해 잘 알 수 있는 것이다.“후세에 나를 이해하는 사람은 춘추에 의해서일 것이다. 후세에 나를 죄 주는 것도 오직 춘추를 통해서일 것이다.(知我者 其惟春秋乎 罪我者 其惟春秋乎)” 맹자 역시 ‘등문공 하편’에서 공자가 후세에서라도 자신의 정치적 이상의 실현을 기대하고자 자신의 뜻을 담은 춘추를 지었음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에 도가 쇠미해지고 사설(邪說)과 폭행이 생겨나며, 신하로서 자기 임금을 죽이는 자가 생기고, 자식으로서 그 애비를 죽이는 일이 생겨나니, 공자는 두려워서 춘추를 지으셨다. 춘추는 천자로서의 할 일이다.” 이처럼 춘추가 공자가 직접 지은 유일한 경서라면, 나머지 경전들은 사마천의 ‘이미 주실은 쇠미해져 있었고, 예·악은 황폐해졌으며 시·서는 흩어져 없어졌다. 그래서 공자는 이를 안타깝게 여겨 하·은·주의 3대의 예를 주석하고, 고서·전기들을 정리하였다.’는 기록처럼 공자가 이를 안타깝게 여겨 그 무렵 전해 내려오던 시(詩)들과 노래(樂), 예(禮)와 서(書), 그리고 역(易) 등을 총정리하여 집대성 해놓은 경전들이었던 것이다. 그 중 ‘시경(詩經)’은 중국 최초의 시가집으로 중국문학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유가의 경전 중 하나인데 논어에 보면 이에 대해 공자 스스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내가 위나라로부터 노나라로 돌아온 뒤에야 음악이 올바르게 되고 아(雅), 송(頌)이 제각각 올바른 자리를 찾게 되었다.” 사기에 의하면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던 3000여편의 시 중에서 공자는 중복되는 것을 빼어내고 예의에 합당하는 305편의 작품만을 취하여 시경을 편찬했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공자는 평소에도 시의 중요성에 대해 논어 속에서 이렇게 술회하고 있지 않았던가. “그대들은 왜 시경을 공부하지 않는가. 시는 사람의 감흥을 일으켜주고, 사물을 올바로 보게 하여 사람들과 잘 어울릴 수 있게 하며, 은근히 불평을 할 수 있게 한다. 가깝게는 어버이를 제대로 섬기고, 멀리는 임금을 올바로 섬길 줄 알게 하며, 새나 짐승, 풀, 나무들의 이름도 많이 알게 한다.” 공자가 이처럼 시를 사랑하여 시경을 편찬하였던 사실은 훗날 시경이 유가의 가장 중요한 경전 중의 하나로 자리를 차지하는 결과를 낳게 한다. 이로 인해 중국에서는 일찍부터 시가 크게 성행하여 중국전통문학의 중심을 이루며 발전되는 문화 혁명의 교과서 역할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공자야말로 이처럼 위대한 사상가였을 뿐 아니라 정치가, 교육자, 역사가, 음악가, 그리고 문학가라고 불릴 만큼 전인적(全人的)인 세계인, 즉 코스모폴리탄이었다는 점일 것이다.
  • [어린이책꽃이]

    ●지붕위의 바이올린(고정욱 글·박영미 그림, 주니어김영사 펴냄) 가난과 장애를 딛고 훌륭한 음악가로 성장한 소년의 이야기를 통해 몸의 장애보다 마음의 장애가 더 불행하다는 진리를 일깨운다. 작가 자신의 체험에서 우러난 생생한 묘사가 장애우에 대한 우리 사회의 편협한 사고를 아프게 지적한다. 초등 4∼6년.8900원.●강치야 독도야 동해바다야(주강현 지음, 한겨레아이들 펴냄) 강치는 독도에 살았던 우리나라 토종 동물이다. 바다사자로도 알려져 있는 강치는 일제시대 가죽을 얻기 위해 마구잡이로 잡아들이면서 멸종됐다. 민속학자이자 해양문화전문가인 저자는 독도에서 사라진 강치의 목소리를 빌려 독도와 동해의 숨은 역사를 생동감있게 풀어냈다. 초등 3년 이상.9000원.●엄마는 나 때문에 아픈 걸까?(마르틴 에뉘·소피 뷔즈 글, 리즈베트 르나르디 그림, 이주희 옮김, 스콜라 펴냄) 아픈 부모를 둔 아이들이 흔히 겪는 심리적 불안과 마음의 상처를 다독여 주는 책. 벨기에 ‘암과 심리협회’에서 활동하는 아동심리 전문가 두명이 암환자의 어린이 가족을 위해 쓴 심리 성장동화다.8800원.●호랭이 꼬랭이 말놀이(오호선 글·남주현 그림, 천둥거인 펴냄) “꼬부랑 할머니가/꼬부랑 지팡이를 짚고/꼬부랑 고개를/꼬부랑 넘어갔더니….”처럼 전통적인 소재에 현대적인 표현과 유머감각을 조화시켜 새롭게 다듬은 말놀이 15편을 실어 흥미를 끌고 있다.3세 이상.9800원.
  • [강태규의 연예In] 신중현의 기타는 잠들지 않는다

    며칠 전 서점에서 신중현의 자서전 ‘내 기타는 잠들지 않는다.’를 샀다. 여기엔 칠순을 눈앞에 둔 한 대중음악가의 음악적 집념이 오롯이 담겨 있다.1954년 서라벌고를 중퇴하고 이듬해 미 8군 쇼단에 들어가면서 시작된 신중현의 음악사가 책장마다 촘촘한 활자로 박혀 있다. 이 활자들은 마치 ‘한국 록의 산증인’인 그가 육성으로 증언하듯 격변의 시대와 음악적 역경, 그 업적을 더듬고 있다. 이런저런 미공개 사진도 즐겁다. 요즘 대중음악 시장에는 음악적 성과도 없이 인기에 급급한 인스턴트 연예인들이 즐비하다. 그래서 이 책이 전하는 바는 옷매무새를 다시 만져야 할 만큼 남다르다. ‘질곡의 세월을 넘어 끝없이 새로운 음악을 추구하는 진정성’은 이제 대중음악의 길로 들어서려는 신인 음악인들에게 좋은 교과서다. 한 시대와 한 음악인을 이해하고픈 사람들에게는 물론이다. 신중현을 만난 건 지난 주 윤도현의 ‘러브레터’ 녹화 무대였다. 다음달 17일 데뷔 45주년 공연을 앞두고 시청자들과 만나는 자리였다. 필자가 굳이 ‘은퇴공연’ 대신 ‘데뷔 45주년 공연’이라 부르는 데는 이유가 있다. 무대에서 쏟아내는 그 소리, 그리고 여유와 관록이 넘치는 무대 매너…. 나이가 무색한 거장 기타리스트는 말 그대로 ‘소리의 유희’를 선보였다. 그런데 어찌 ‘은퇴’라 할 수 있을까. 소리는 삶이다. 모든 예술이 그러하듯 깊은 고민없이 새로운 무언가가 솟구치는 경우는 없다. 힘들고 어려웠던 세월, 삶의 유일한 탈출구가 음악이었고, 오직 음악만이 타는 목마름을 풀어줬다는 열정이 오늘의 그를 만들었다. 미 8군에서 음악적 토대를 쌓으며 모든 이의 눈길을 모았던 신중현이 늘 배고팠던 것도 어찌보면 우리 대중음악 발전의 힘이었다.1963년 발표된 ‘빗속의 연인’을 시작으로 ‘봄비’ ‘미인’ 등으로 이어지는 그의 음악행보는 ‘한국적 록’이라는 꽃을 활짝 피웠다. 68세의 나이라지만 소리만 들으면 노장이랄 것도 없다.‘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의 오마라 프로투온드는 70세를 훌쩍 넘기고도 생생한 목소리로 월드투어를 다닌다. 신중현의 손에서 기타가 내려지는 순간,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거라는 믿음은 그에 대한 경의와 자부심 때문이다.대중문화 평론가 www.writerkang.com   “봉선씨, 큐 들어가요.” “잠깐만요, 목청 좀 가다듬구요. 아아∼. 아휴, 아무래도 이 드레스는 좀 어색한데요….” 지난 16일 서울 강서구 가양동에 있는 연예뉴스채널 YTN스타 본사 녹화장. 하늘하늘한 분홍색 드레스를 땅에 끌며 등장한 VJ가 눈길을 확 끌었다. 요즘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는 신예 개그우먼 신봉선(26)이 주인공이다. 그는 이날 오전 9시부터 3시간 넘게 걸린 촬영 내내 쉬지 않고 넘치는 에너지와 끼를 분출해냈다.KBS ‘개그콘서트’의 3개 코너와 CBS·SBS라디오 게스트 출연에 이어 최근 YTN스타의 새 프로그램 ‘봉써니의 발악(發樂)쇼’의 사회까지 맡았다. 하루 24시간이 부족하다는 그를 촬영장과 분장실을 오가며 분주하게 만났다.●“단독프로 맡아 기뻐요” ‘봉써니의 발악쇼’는 뮤직비디오 순위를 재기발랄한 입담으로 소개하면서 연예계 소식까지 시시콜콜하게 전달하는 프로그램. 매일 오후 1시부터 50분간 방송되지만 바쁜 일정상 매주 목요일에 몇시간씩 한꺼번에 녹화를 하고 있다. 그동안 개그를 통해 갈고 닦은 애드리브는 물론, 강렬한 눈빛과 몸짓으로 시종일관 제작진의 폭소를 자아냈다. 그래도 첫 술에 배부를 수 없었다. 녹화 첫 주에는 잦은 NG 때문에 7∼8시간 촬영을 해도 끝나지 않았다고. 탈진 상태까지 갔지만 이를 악물었다. 그는 “제가 이래 봬도 개그 선배님들이 만든 뮤직비디오 ‘오빠잖아’와 ‘마징가쇼’에 출연했고, 트로트 뮤직비디오에 출연해도 어울릴 거 같아요(웃음).”라면서 “발악쇼가 제 이름을 걸고 하는 프로그램인 만큼 저만의 색깔로 시청자들을 중독시키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개그우먼은 경쟁자보다 친구”KBS 공채 20기로 지난해 4월부터 개그콘서트에 출연했으니 경력만 보면 2년이 채 안 된다. 그러나 요즘 가장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개그우먼이라는 데 토를 다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덕분에 2개월전 소속사와 매니저도 생겼다. 개그콘서트의 화제 코너인 ‘뮤지컬’과 ‘폭탄스’, 최근 시작한 ‘대화가 필요해’ 등에서 자신만의 독특한 색깔을 선보이고 있다. 특히 공채 동기 5명이 함께 만드는 뮤직개그 ‘뮤지컬’은 아이디어와 호흡이 중요해 거의 일주일 내내 연습한다고. 최근 ‘개그우먼 전성시대’라는 평가에 대해 그는 “개그우먼이 보조가 아니라 주도적으로 활동해 뿌듯하다.”면서 “개그우먼들이 라이벌이라기보다는 서로 배울 점이 많아 기회가 된다면 다른 방송사 개그우먼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새내기이지만 앞으로 조혜련·박미선·정선희 선배들처럼 전천후 방송인이 되고 싶다는 그는 “여성이라서가 아니라 실력으로 평가받아 개그 역사에 한 획을 긋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가 개그콘서트 ‘봉숭아학당’에서 외쳤던 ‘64억원의 가치’에 걸맞는 개그우먼으로 성장할지 주목된다.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책꽂이]

    ●뎅기(박정규 지음, 멘토프레스 펴냄) 고등학교 과학교사인 저자가 쓴 신과 진화에 관한 이야기. 저자는 “천상과 지상의 법칙이 같은 것처럼 과학과 종교는 같다.”고 주장한다. 멕시코의 ‘깃털 달린 뱀’인 케찰코아틀 신화, 비라코차라 불리는 신비한 존재들에 의해 세워진 잉카문명, 키체 족의 마야문명 등을 소개하며 불가사의한 문명의 배후에 외계인이 있었음을 시사하기도 한다. 뎅기는 ‘영원한 푸른 하늘’이라는 뜻의 옛 우리말.8500원.●임종국 평전(정운현 지음, 시대의 창 펴냄) 탁월한 인문학자이자 친일문제 연구가인 임종국의 삶을 다룬 평전. 스승인 조지훈의 아이디어로 시작한 서울신문의 ‘흘러간 성좌’ 연재는 임종국이 친일 문제를 연구하게 된 단초가 됐다. 거머리가 무서워 모심기도 못한 소심한 성격, 독서회 사건으로 경성사범학교를 중퇴한 일 등의 일화가 실렸다.1만 6500원.●아이의 인생을 결정하는 36가지 습관(탕웨이훙 등 지음, 전인경 옮김, 럭스미디어 펴냄) 중국 전국시대의 시인 굴원은 창공을 바라보며 ‘천문(天問, 하늘에 묻다)’이라는 시를 썼다. 그는 천지 변화와 날씨의 변화를 물었다. 이런 물음이 철학가들의 깊은 사고를 불러왔고, 당나라 시인 유종원은 ‘천대(天對, 하늘에 대답하다)’라는 글로 화답했다. 의문을 던지기 좋아하는 사람이 큰 업적을 이룬다.“교만한 사람은 교만더미에서 자기를 망친다.”는 셰익스피어의 말을 들려주며 겸손의 덕목도 강조한다.1만 3000원.●신기한 나라의 앨리스(루이스 캐럴 지음, 남기헌 옮김, 책세상 펴냄) 영국의 수학자이자 논리학자 동화작가인 저자의 대표작.1866년 출간 당시 2000부의 초판이 다 팔릴 정도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어린 오스카 와일드와 빅토리아 여왕도 이 책의 열렬한 독자였다. 앨리스가 꿈속에서 겪는 기이한 모험을 다룬 이 작품은 난센스, 은유, 언어유희 등 다양한 언어적 실험을 보여준다.5900원.●말이 먼저, 음악이 먼저(정준호 지음, 삼우반 펴냄) 베토벤은 실러의 시 ‘환희에게’를 평생 간직하고 있다가 최후의 교향곡인 ‘합창 교향곡’을 완성했고, 토마스 만은 베토벤의 32번 소나타에서 받은 감동을 소설 ‘파우스트 박사’로 표현했다.T S 엘리어트는 바그너의 서사극 ‘니벨룽의 반지’를 재해석해 명시 ‘황무지’를 썼으며, 스트라빈스키는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를 음악으로 번역하고자 했다. 이렇듯 음악가들은 문학작품을 통해 영감을 얻었고, 작가들 또한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경지에 도달하는 음악을 동경했다. 예술 장르간의 ‘교류’를 다룬 에세이.1만 2000원.●아이의 심리학(조혜수 지음, 아울북 펴냄) 선택적 함묵증이란 게 있다. 아이가 특정한 상황에서 말을 할 수 없는 증상으로, 소극적이고 내성적인 아이들에게서 자주 나타나는 증상이다. 이런 증상에는 인지 치료가 효과적이다.‘미운 네 살 죽이고 싶은 일곱 살’의 마음을 읽는 법,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긍정적인 마음의 틀을 만들어주는 상황별 대처법이 실렸다.1만원.
  • 안익태 선생 ‘리스트 음대’ 유학기록 첫 발견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은 애국가의 작곡가 고(故) 안익태(사진 아래·1906∼1965) 선생이 1938∼1941년 헝가리 유학 당시 코다이 졸탄 등 당대 최고의 음악가들로부터 지도받았음을 보여 주는 학적기록(사진 위)이 공개됐다. 특히 1938년 10월16일 작성한 것으로 돼 있는 1938∼1939년 학적기록에서 안익태 선생은 친필로 자신이 태어난 곳을 ‘조선’이라고 분명히 밝혀 주목된다. 부다페스트 리스트 페렌츠 음악예술대학(리스트 음대)은 12일(현지시간) 주 헝가리 한국대사관의 요청으로 수개월간 대학 문서보관소를 뒤진 끝에 최근 안익태 선생에 대한 학적부와 기숙사 명부, 콘서트 기록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안익태 선생의 유학시절 학적기록이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바타 안드라시 리스트 음대 총장은 “기록상으로 안익태 선생은 이 곳에서 첼리스트로도 활동했으며, 당대 최고의 기량을 갖춘 음악가로 대접받았음을 엿볼 수 있다.”고 말했다. ●당대 최고의 음악가 사사 학적기록표에는 선생이 작곡은 코다이 졸탄, 바이올린-첼로는 쉬페르 아돌프, 실내악은 바이너 레오, 합창 지휘는 웅게르 에르뇌로부터 지도받은 것으로 기록돼 있다. 헝가리 민속 음악을 집대성, 헝가리 민요의 아버지로 칭송받는 코다이와 안익태 선생과의 관계는 선생이 코다이로부터 사사했다는 얘기가 전해졌을 뿐 구체적인 물증은 전혀 발견되지 않았었다. 쉬페르는 당대 최고의 첼로 연주자 중 한 명이었고, 실내악을 가르친 바이너 역시 헝가리 최고의 실내악 전문가 및 작곡가였다. 또 코다이와 함께 헝가리 민속음악을 집대성한 바르토크 벨라의 수제자이자 당시 최고의 피아노 연주자 중 한명인 코샤 죄르지의 반주로 부다페스트에서 첼로 공연을 했던 콘서트 프로그램도 발견됐다. 콘서트에서 안익태 선생은 자작곡인 ‘백합’과 ‘목가곡’을 비롯해 헨델과 바흐,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등의 곡을 연주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안익태 선생은 1938∼1939년 친필로 작성한 학적부에서 국적과 모국어란에 일본과 일본어라고 적었다. 그러나 주소란에는 당시 일본 주소 위에 ‘조선’(Chosen)을, 괄호안에 ‘코리아’(Korea)를 써넣었으며, 출생지란에도 ‘재팬’(Japan) 앞에 ‘평양, 조선’(Pyeng Yang,Chosen), 괄호 안에 역시 코리아로 기록해 자신이 한국인임을 밝히고 있다. 생년월일은 1911년 12월5일로 기록돼 있는데, 이는 선생이 1906년생이지만 당시 나이가 많을 경우 입교하지 못할 것을 우려해 이렇게 표시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외국인 장학생으로 3년 머물러 관련 경력란에는 1930년 도쿄 아카데미뮤직 음악 학사,1936년 필라델피아 음악학교 음악 석사라고 표기돼 있으며, 헝가리내 주소는 부다페스트 6구역에 있는 ‘외트뵈시’(Eotvos) 학생 기숙사라고 적혀 있다. 선생은 이곳에서 외국인 장학생 자격으로 헝가리 정부의 지원을 받으며 3년간 머물렀다. 서울에 있는 안익태 기념재단의 박정미 사무국장은 “헝가리 유학생활을 상세히 알 수 있는 학적부가 발견된 점, 외국인 교환학생으로 장학금을 받은 점 등은 선생의 활동과 관련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면서 “학적부에 평양과 조선, 코리아를 기재한 점에 상당한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 함혜리기자 lotus@seoul.co.kr
  • ‘녹음 기술’이 음악에 끼친 영향

    클래식 음악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바이올린의 비브라토(vibrato, 진동음) 기술이 20세기의 산물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비브라토는 왜 20세기에 들어 널리 퍼지게 됐을까.‘소리를 잡아라’(마크 카츠 지음, 허진 옮김, 마티 펴냄)는 비브라토가 재탄생하게 된 배경을 ‘녹음’에서 찾는다. 바이올린 연주자들이 정기적으로 녹음을 하는 과정에서 비브라토가 점점 더 유용해졌다는 것. 저자는 그 한 예로 비브라토를 이용하면 연주자가 어떤 몸짓을 하며 어떤 표정을 짓는지 감상자에게 쉽게 전달할 수 있어 연주자의 존재감을 한층 높일 수 있다는 점을 든다. 레코드를 듣고 곡명을 맞히는 ‘음악 암기대회’가 미국 전역에서 열린 일, 레코드로 음악가들의 생계가 위태로워지자 ‘음악 러다이트주의자’들이 등장해 녹음된 음악을 ‘깡통 음악’이라고 비난했던 일 등 흥미로운 사실도 들려준다.1만 8000원.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뭉크 ‘해변의 여름밤’ 주인 품으로

    노르웨이가 낳은 표현주의 화가 에드바르트 뭉크의 작품이 나치 독일을 피해 오스트리아를 탈출한 유대인 원소유주의 후손에게 60년 만에 반환된다. 오스트리아 법원은 8일 벨데베레 궁전 미술관이 소장한 뭉크의 작품 ‘해변의 여름밤’을 마리나 말러에게 돌려주라는 승소 판결을 내렸다고 AFP통신이 보도했다.마리나 말러는 오스트리아의 세계적 음악가인 구스타프 말러의 손녀로 마리나의 할머니인 알마 말러가 1937년 벨데베레 궁전 미술관에 이 작품을 전시용으로 빌려줬다. 알마는 그러나 1년 후 나치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합병하자 유대인이었던 세 번째 남편을 따라 오스트리아를 떠났다. 그러자 나치 동조자였던 알마의 의붓아버지가 1940년에 뭉크의 그림을 벨데베레 궁전에 매각했다. 1946년 알마가 시작한 소송을 이어받은 마리나는 이날 “믿을 수 없다. 우리가 이겼다.”면서 환호했다. 오스트리아 문화교육부는 판결을 존중해 작품을 주겠다고 밝혔다.오스트리아 법원은 올해 초에도 나치 독일이 점유했던 구스타프 클림트의 명화 다섯 점을 원소유주인 유대인 후손에게 반환하라고 판결했다.박정경기자 olive@seoul.co.kr
  • “단풍 닮은 ‘낭만의 선율’ 연주할래요”

    “단풍 닮은 ‘낭만의 선율’ 연주할래요”

    “남자친구가 없네요. 아빠가 하는 농담이 ‘학교라도 가면 (남자친구가)생길텐데, 그래도 몇 년 뒤에 가게 되면 연하 친구가 생겨서 좋겠다.’고 해요.(웃음)” 오는 18일 금산을 시작으로 전국 7개 도시 순회 독주회를 갖는 첼리스트 장한나(23). 그는 8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로맨스가 없느냐.”는 질문에 활짝 웃으며 강하게 손사래를 친다. 활기찬 목소리, 거침없는 대답, 또렷한 눈망울이 마치 ‘국민 여동생’과 닮았다. 가을에 연주회를 위해 한국을 찾은 것은 처음이라는 장한나는 그래서 독주회 타이틀도 “단풍의 계절임을 생각해 ‘로만틱’이라고 지었다.”고 했다. 이번 독주회에서는 낭만시대 초기의 쇼팽과 슈만, 그리고 “그 질주하고 아파하는 열정을 존경한다.”는 쇼스타코비치의 곡들로 프로그램을 짰다. 그는 “벌써 거장 소리를 듣는데 어떤 기분이냐.”고 묻자 “언론들은 10대는 신동이나 천재라고 이름붙이고,20대는 거장의 반열에 들어섰다고 하고,30대면 거장이며 40대면 중견,50대만 되어도 마에스트로라고 한다.”고 좌중을 웃겼다.“2년 전 데뷔 10주년 연주회 소감을 물어봤을 때 ‘음악가로서 걸음마를 뗀 것 같다.’고 했는데, 자신이 혹독한 선생이자 열렬한 팬이 되어 끊임없이 발전해가는 것이 음악가의 소임이자 숙제”라고 겸손해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지휘자로 로린 마젤과 주세페 시노폴리 등을 꼽는 그는 “연주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믿음과 직감적인 대응이 있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빼곡한 연주 일정 때문에 하버드대 철학과를 휴학했던 장한나는 “철학은 곡을 해석하는 데 직접적인 영향은 주진 않지만 한 개인으로서 생활하고 생각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고 시야를 넓혀준다.”고 말했다. 그는 “당장이라도 학교에 달려가고 싶지만 당분간은 어렵다.”면서 5∼6년쯤 뒤 학업을 재개할 뜻을 비쳤다. 글 황성기기자 marry04@seoul.co.kr 사진 강성남기자 snk@seoul.co.kr
  • [박성서의 7080 가요 X파일] 국내 최초의 ‘허스키 보이스’ 송민도(2)

    [박성서의 7080 가요 X파일] 국내 최초의 ‘허스키 보이스’ 송민도(2)

    허스키한 알토의 저음으로 등장한 송민도씨는 KBS 전속가수 1기생으로 당시 KBS 전속악단의 가요방송 지휘를 전담하고 있던 작곡가 손석우씨와 손잡고 우리나라 드라마 주제가 1호인 ‘청실홍실’에 이어 ‘나 하나의 사랑’을 발표한다. 이 노래 첫 소절의 ‘나 혼자만이’는 당시 인기작가 박계주씨에 의해 소설화되고 이어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우리나라 히트가요가 영화화된 최초의 노래인 셈이다. 남자 이름 같다는 이유로 본인 의지와 상관없이 음반에 ‘송민숙’이라 표기되기도 했던 그는 주위의 권유로 한때 ‘백진주’라는 지극히 여성적인 예명으로 잠시 활동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송민도’로 돌아온 그는 50년대 낭만시대를 지나 60년대 개성시대를 주도하며 ‘목숨을 걸어놓고’ ‘여옥의 노래’ ‘서울의 지붕 밑’ ‘하늘의 황금마차’ ‘청춘목장’ ‘행복의 일요일’ 등 명곡들을 잇달아 발표한다. “방송활동과 더불어 계속되는 지방공연으로 매우 바쁜 나날을 보냈기 때문에 아이들을 대부분 일하는 아주머니에게 맡겨 키우다시피 했어요. 그래서 아이들이 아주머니에게 엄마라 부르고 내겐 심지어 아빠라 부를 정도였지요.” 송씨의 회고다. 아울러 63년,‘백만불쇼단’을 직접 결성해 단장을 맡으며 쇼단을 이끌었다. 가수 남일해, 고대원씨를 비롯해 무용단, 밴드 등을 합쳐 모두 25명 정도로 구성된 ‘백만불쇼단’은 가는 곳마다 인기가 높았지만 당시 여건에서는 늘 적자로 운영되어 고되고 힘들었다. 창립 5년 만인 68년, 송민도씨는 자신의 분신처럼 여기던 이 백만불쇼단을 접는다. 장남 서동헌씨 때문이었다. 당시 서동헌씨는 해병대에 입대해 월남 청룡부대로 파병되었는데 어느 날 부대가 베트콩의 습격을 받았다는 소식이 국내 언론에 크게 보도되었다. 연일 방송과 신문에서는 대서특필했지만 두 달이 지나도록 그 후 소식을 몰라 애태우던 송민도씨는 직접 아들을 찾아 월남으로 떠난다. 다행히도 아들은 무사했으나 임시여권으로 월남에 갔기 때문에 ‘오버스테이’, 즉 기한을 넘겨 불법체류까지 하게 된다. 곧 국방부가 나서서 해결해주었지만 전쟁터에 아들을 두고 올 수 없어 아예 사이공에 남는다. 송민도씨는 한국식당을 차려 3년 반 동안 사이공에서 체류한 뒤 곧바로 미국으로 거처를 옮겼고 서동헌씨는 귀국한 이후 월남 청룡부대 출신들로 결성한 6인조 그룹사운드 ‘드레곤스’에서 키보드를 담당했다. 당시 미국에 있던 송민도씨는 이러한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회고한다. “95년, 귀국해 아들과 함께 ‘빅쇼’에 출연했는데 그때서야 그룹사운드 활동을 했었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물론 음악 활동을 하겠다고 먼저 상의해 왔더라면 무조건 말렸겠지요.”이라고 웃으며 회고하는 송민도씨. 트롬본 연주인으로 KBS 경음악단장을 역임했던 작곡가 송민영씨가 바로 그의 남동생이다. 이들 남매는 함께 듀엣으로 노래를 발표하기도 했던 음악가족. 송민영씨는 안타깝게도 지난 2002년 미국에서 타계했다. 현재 LA 오렌지카운티에서 생활하고 있는 송민도씨는 5년 전 운전 중 팔이 부러지는 대형사고를 당했다. 그 후 2년 뒤 또다시 넘어져 척추를 크게 다쳐 제대로 거동할 수 없는 상태. 이 때문에 그 무렵 계획되어 있던 고국 방문을 지금까지 미룰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최근 KBS ‘가요무대’의 초청은 그 스스로도 마지막 귀국일 것이라 여기며 무리한 일정을 강행했다. 유독 ‘자존심 강하고 고집 센’ 그는 휠체어에 몸을 의지한 채 무대에 나서면서도 아무런 내색도 내비추지 않았다. 더구나 국내에 체류하는 동안 잠을 도통 못 이뤘다고 했다. 피로가 겹치기도 했겠지만 오랜 팬들을 만난다는 설렘도 한편 작용했으리라. “무대에 서니 심장이 멎는 것 같았어요. 하지만 박수소리 때문에 그 큰 무대에서 견뎠지요.” 고향초, 카츄샤의 노래, 나의 탱고, 나 하나의 사랑…. 송민도씨가 휠체어에 몸을 의지한 채 부르는 이 노래들을 따라 여기저기서 눈물을 훔치는 방청객들이 적지 않았다. 무대는 매우 감동적이었다. 모든 예술의 감동, 그 최고치는 역시 ‘눈물’이다. 그렇듯 가수 송민도씨는 많은 이들의 아픔을 여전히 아름다운 노래로 어루만져 주고 있었다. sachilo@empal.com
  • 20세기 사진예술 거장 만레이를 만난다

    20세기 사진예술의 최고 거장 만레이(1890∼1976)의 진수를 보여주는 대규모 특별전이 개최된다. 또 지난 150년 사진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진 예술가들의 작품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전시도 열린다. 11월4일부터 12월16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1·2관에서 열리는 ‘만레이 특별전 및 세계 사진 역사전’은 지금까지 세계 예술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만레이를 조명하고, 사진 역사의 흐름을 들여다볼 수 있는 보기 드문 전시다. 전시 작품 상당수가 작가가 생전에 직접 프린트하고, 친필 사인이 들어가 있는 빈티지 프린트(촬영 3년 이내에 인화한 것)로, 일부 빈티지들은 가격이 1억∼2억원에 달하는 등 작품 가격이 총 100억원대에 달한다는 게 주최측의 설명이다. 한·불 수교 12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열리는 이번 행사는 서울신문과 MBC, 김영섭 사진화랑이 주최하고 서울시, 문화관광부가 후원한다. 만레이는 1920년대에서 30년대 사이에 일어났던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 운동의 중심인물로 활약한 인물. 사진이 가진 화학적 물리적인 기능을 통해 무의식 세계로부터 초현실적인 이미지를 촉발시키는 작업을 했다. 따라서 그의 사진은 환상적이고 신비로우면서, 부드러운 정감과 유동적 리듬을 띠는 등 정서적 농도가 짙다. 솔라리제이션으로 불리는 네거티브 인화, 레이오그라피 등 획기적인 사진기법을 개발, 지금도 많은 사진가들이 사용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만레이 빈티지로는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남은 것으로 알려진 ‘Kiki Odalisque(1925년)’‘Portrait of Valeatine Hugo(1933년)’ 등 10점이 소개된다. 이밖에도 1980년대에 프린트된 작품 등 만레이의 대표작 120여점이 소개된다. 세계사진역사전은 1858년 세계 최초로 공중촬영을 한 나다르에서 몇 해전 타계한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까지 유명 작가 65명의 사진 330여점을 소개한다. 이중 프랑스 사진가인 에티엔 카르자와 피에르 페티트가 촬영한 시인 보들레르와 음악가 바그너의 초상화는 140년 이상 지난 희귀 사진으로 가장 주목을 끄는 작품이다. 이 밖에 브랏사이의 ‘커플’, 자크-앙리 라르티크의 ‘Simone’, 조엘 스턴펠드의 대형 컬러 풍경사진, 에드워드 머이브리지의 ‘라람의 움직임’, 밸로크의 뉴올리언스 창녀사진 등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대표작들이 포함되어 있다. 한편 이번 전시를 기념해 알란사이악 퐁피두미술관 부관장(4일)을 비롯, 이경률(10일) 최봉림(17일) 박주석(24일) 진중권(12월2일) 전영백(12월8일) 등 미술 및 예술 관련 전문가들이 한가람 디자인 미술관 세미나실에서 사진 컬렉션과 역사, 현대의 사진예술 등에 대한 강의를 갖는다. 또 4일 오프닝 특별공연으로 뉴욕타임스가 극찬한 ‘기타의 귀재’ 임정현이 ‘캐논변주곡’을 연주한다. 전시 관람료는 성인 1만원, 청소년 8000원, 어린이 6000원. 문의 김영섭사진화랑(www.manray.co.kr,02-733-6332).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사고] 2006 가을밤 콘서트

    [사고] 2006 가을밤 콘서트

    서울신문이 마련한 ‘2006 가을밤 콘서트’가 청중을 찾아갑니다. 올해로 7번째 개최되는 이번 공연에는 동서양의 경계를 허무는 창조적 음악활동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재일동포 음악가 양방언과 뮤지컬 ‘맘마미아’로 널리 알려진 열정적인 무대매너의 소유자 박해미, 한국을 대표하는 바리톤 김동규가 출연합니다. 특히 일렉트릭기타로 ‘캐논’을 연주하여 뉴욕 타임스로부터 극찬을 받은 천재 기타리스트 임정현이 공식 데뷔합니다. 여기에 박상현이 지휘하는 모스틀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서울 필하모닉 합창단이 더욱 화려한 무대를 만들어 드릴 것입니다. ●일시 : 2006년 10월29일(일요일) 오후 7시 ●장소 :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입장권 : VIP석 10만원,R석 8만원,S석 5만원,A석 3만원 (티켓링크, 세종 회원 20~10% 및 단체 할인) ●예매처 : 티켓링크(www.ticketlink.co.kr/1588-7890) ●공연문의 : 서울신문사 문화사업부(2000-9751~5) ●협찬 : KT&G· KT· KB국민은행
  • 농요(農謠)박사, 이소라

    농요(農謠)박사, 이소라

    글 최종민 철학박사·국립극장 예술진흥회 회장·동국대 문화예술대학원 교수 가수 최희준과 가야금 음악가 황병기가 서울법대 출신이라는 것은 꽤 알려진 사실이다. 젊은 또래로는 판소리와 타악을 잘하는 한승석이 서울법대 출신이다. 그런데 『한국의 농요』를 5집까지 내고 수많은 민요 논문을 발표하여 박사학위까지 받은 여류 국악학자 이소라가 또한 서울법대 출신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소라는 부산 출신으로 부산여중을 다닐 때 운영위원장을 할 정도로 활달하고 공부도 잘했다. 경기여고에 진학한 후에도 문과나 이과에 늘 좋은 성적을 따는 모범생이었는데 정작 대학의 진로를 정할 때에는 약간의 갈등을 겪었다. 어려서부터 기독교 집안에 자라면서 무엇인가 봉사하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처음에는 의과대학이나 농과대학을 갔으면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언니가 법대를 가는 것이 좋겠다고 권하는 바람에 법대로 진학하게 되었다. 서울법대에는 여학생이 많지 않아서 이소라는 늘 혼자 다니며 열심히 공부하게 되었는데 본인은 법학 못지않게 철학과 음악에 관심이 많아 문리과대학의 철학 강의를 거의 다 들을 정도로 열심히 했다. 음악도 어느 정도의 기능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하여 꾸준히 피아노 레슨을 받으며 생활했다. 그러면서 농업이나 농촌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고 공부했으니까 이소라의 대학생활은 다양한 학문의 바다를 두루두루 섭렵하는 그런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주위의 동창생들은 고시다 무슨 시험이다 하고 시험공부에 매달리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소라는 그런 시험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냥 더 공부해야겠다는 생각과 무엇인가 한 분야의 최고가 되어 인류와 사회에 기여해야겠다는 생각이 오히려 많았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음악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그것은 법대를 졸업한 후 서울음대 작곡과에 편입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면서 국악을 접하게 되었다. 국악은 그녀에게 새로운 도전의 대상이 되었다. 국악과 강의를 듣고 해금이나 장구를 배우고 가곡과 춤도 배웠다. 악기도 가야금, 거문고, 단소, 젓대, 피리 등 거의 다 배웠다. 배워도 그냥 배우는 것이 아니라 같은 악기를 여러 선생님들에게 철저히 배웠다. 해금 같으면 강사준, 김천흥, 김흥교, 김영재, 최태현 등을 사사하여 해금음악의 이것저것을 다 배우는 식으로 배웠다. 가곡은 전효준, 홍원기, 이석재에게 배우고 춤은 이동안, 박병천, 김유경에게 배우는 식이었다. 국악실기를 열심히 배우면서 서울대학교 대학원 국악과를 졸업했다(’83년). 그렇게 음악을 하기로 하고 음악 중에서 국악을 하면서 대학원을 졸업한 이소라는 1983년 문화재청에 상근 전문위원으로 취직하면서 본격적인 현장의 국악을 조사하고 연구하게 되었다. 처음 받은 과제가 제주와 고성 그리고 예천 통명농요를 조사하는 것이었는데 통명농요를 조사한 다음 군 직원으로부터 공처라는 곳에 통명농요와 다른 농요가 있다는 말을 듣고 비교해 볼 욕심으로 그 쪽도 조사하게 되었다. 같은 예천 지방인데 통명에도 농요가 있고 공처에도 농요가 있었다. 그런데 그 노래들의 음악적 특징이 다르다는 것을 발견하면서 본격적으로 농요를 연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 농요들은 한마디로 너무 좋고 너무 달랐다. 그래서 새로운 결심을 하게 됐다. 전국의 농요를 최대한 조사하고 가능한 한 농요가 잘 보존되도록 해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래서 농요보존회를 만들고 대학로에서 농요발표공연도 했다. 3년 동안 전국 각 시군에서 3개면 정도는 조사하는 전국민요조사를 추진하여 ‘89년 8월에 한 차례의 조사를 끝냈다. 전국 방방곡곡을 찾아다니며 농부들을 만나고 농촌 실정을 알아보면서 농요를 채집하는 일은 광부가 금광에서 금맥을 찾아 캐내는 것 같은 재미와 스릴이 있었다. 멋진 농요를 발견할 때면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을 것 같은 충만한 기쁨을 맛볼 수 있었다. 보람과 재미를 함께 맛보는 민요 조사는 이소라에게 새로운 열정을 갖게 했고 민요 연구는 끝없이 계속하게 되었다. 한국 농촌의 민요를 한 차례 조사한 이소라는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의 모심기소리를 조사하여 비교해 보았는데 역시 새로운 것을 많이 발견하게 되었다. 중국의 모심기소리도 조사해 보았다. 4개월 동안 쉬지 않고 많은 곳을 답사하며 조사했다. 앞으로는 동남아의 더 많은 나라 모심기소리도 조사했으면 한다. 하면 할수록 재미있고 의욕이 샘솟아서 끝없이 그 일을 하고 싶은 것이다. 이소라는 그 동안 채집한 농요를 분류하고 정리하여 다섯 권의 『한국의 농요』를 출판했다. 채집한 민요를 듣고 곡조는 5선보로 채보하고 가사는 정확하게 채록하여 실었다. 이 책들은 민요의 음악적 연구나 문학적 연구에 귀하게 쓰일 자료가 될 것이다. 30여 권을 낸 각 시군 단위의 지역 민요는 그 지역의 문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그리고 많은 민요 관련의 논문을 발표했다. 그러니 자연 그의 박사학위 논문도 민요를 내용으로 한 것이 되었고 그래서 민요박사라는 말을 듣게 된 것이다. 이소라의 생활은 온통 민요로 꽉 차 있다. 사람을 만나도 민요와 관련된 사람들을 만나고 공부를 해도 민요와 관련한 공부를 하고 글을 써도 민요에 대한 글을 쓴다. 본인이 생각한 보람 있는 일을 열심히 하느라 어느새 환갑을 훌쩍 넘겼지만 결혼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직장도 정년퇴직했고 민요 연구도 어느 경지에 다다른 터이지만 아직 정리할 것이 많고 연구할 것이 태산 같다. 자식 많은 부모가 자식들에게 발목 잡히듯 이소라는 민요에 발목이 잡히어 옴짝달싹 못하는 형국이 되었다. 내가 찾아간 그날도 이소라는 피아노가 있는 큼지막한 연구실에 앉아서 민요 관련의 글을 쓰고 있었다. 무엇엔가 홀려 사는 삶! 남들이 다 하는 세상적인 것들과 상관없이 자기가 생각한 무엇을 추구하며 사는 삶. 그렇게 열심히 노력하며 작업한 것들이 이 사회와 역사에 남을 것들이라면 그 또한 보람되고 값진 것 아닐까? 그런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 서울법대를 나온 이소라여서 간단히 적어보았다.         월간 <삶과꿈> 2006.10 구독문의:02-319-3791
  • “난 영원한 카멜레온”

    “난 영원한 카멜레온”

    곱게 기른 생머리에 찢어질 듯한 고음부의 샤우팅 창법으로 유명한 가수는?대한민국 록의 역사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그룹들인 시나위와 부활, 백두산 등의 보컬을 맡았던 가수는?에둘러 표현하지 않고 정답을 말하자면 바로 김종서다.1987년 록그룹 시나위의 보컬리스트로 ‘새가 되어가리’를 열창하며 데뷔했던 김종서가 어느덧 데뷔 20주년을 맞았다. 강산이 두번이나 바뀔 긴 시간. 그러나 정작 그의 반응은 심드렁하기 짝이 없다.“벌써요?별로 한 것도 없는데 후딱 지나가 버렸네요.” 경기도 일산의 한 주택가 지하연습실에서 땀에 흠뻑 젖은 채 목청을 가다듬고 있던 김종서를 만났다.10월20∼23일 서울 명륜동 성균관대학교 새천년홀에서 열리는 데뷔 20주년 기념 콘서트 ‘명작’을 준비하느라 바쁜 모습이었다.“연습할 때 실제공연처럼 철저히 준비해야 공연날에 관객들과 열심히 놀 수 있죠.”연습을 공연처럼. 김종서의 철학이다. 20년 동안 별로 한 것이 없다고 겸양의 미덕을 발휘했지만, 그가 대한민국 록의 역사에 새긴 족적의 깊이는 결코 얕아보이지 않는다.92년 솔로로 변신한 이후 발표한 음반만해도 9장. 특히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대답없는 너’를 비롯해,‘겨울비’,‘플라스틱 신드롬’,‘아름다운 구속’,‘희망가’ 등은 수많은 록팬들의 가슴을 유린한 록 발라드의 명곡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제껏 올곧게 로커의 길을 걸어 왔던 그가 최근들어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TV 오락프로그램에 출연해 시청자들을 웃기는가 하면,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에 유다역으로 출연해 연기에 도전하는 등 좌충우돌하는 모습이다. 개봉예정인 한 영화의 음악을 맡아 음악감독에도 도전한다.“(영화의)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은 새로운 음악을 하는 방법입니다. 대부분의 음악가들이 한번쯤 꿈꿔본 분야이기도 하고요. 뮤지컬이나 방송출연 등은 친근한 모습으로 대중들에게 인지도를 높여보자는 생각에서 시작했어요. 음반시장이 거의 붕괴된 상황에서 음악팬들을 흡수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보시면 됩니다. 앞으로도 활동영역을 넓혀 나가는 작업을 계속할 겁니다. 주변 사람들이 저만의 색깔을 잃어간다는 지적을 하기도 하지만,(저는)다양한 것이 좋은 것이라 생각해요.” 그의 입장에서 보자면 다양한 변신이 특별히 새로울 것도 없단다.“사람들이 알듯 ‘로커’의 길만 걸어오지는 않았어요. 노래는 한 부분이었고, 작사·곡은 물론, 음반 프로듀서 등 음악에 관련된 모든 분야를 섭렵해 왔죠. 그리고 앞으로도 변신에 능한 카멜레온처럼 음악과 관련된 모든 분야에 도전할 겁니다.” 이번 ‘명작’콘서트에서도 그의 다양한 관심영역이 유감없이 표출될 예정이다. 자신의 대표곡들로 간이 뮤지컬 무대를 꾸미는가 하면, 이효리의 댄스곡 ‘텐 미닛’을 록버전으로 바꿔부르기도 한다.“재밌잖아요. 이런저런 새로운 시도를 해본다는 것이요.‘김종서표 공연’의 원년이 되는 콘서트가 될 겁니다.” 최근 밝히길 꺼려 했던 결혼사실과 함께 기러기 아빠 신세를 토로하기도 한 ‘로커’ 김종서. 록, 그 이상의 비상을 꿈꾸고 있었다. 공연문의 (02)522-9933. 글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부고]

    ●계문순(사업)경순(전 현대백화점 부사장)용순(사업)덕순(시스코 기술자문)씨 부친상 18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0일 오전 9시 (02)3010-2292●이완호(전 코리아타임즈 광고국장)씨 모친상 오경자(한국문인협회 감사)씨 시모상 조철호(전 삼환기업 상무이사)씨 빙모상 이해준(일간스포츠 기자)씨 조모상 18일 신촌세브란스병원, 발인 20일 오전 6시 (02)392-0899●양성목(전 경향신문 편집부장)종목(자영업)씨 부친상 17일 대천종합병원, 발인 20일 오전 8시30분 (041)930-5642●이성호(서울수목원 명예회장)씨 별세 재근(동보철강 회장)상흔(자유상사 대표)윤근(세양 〃)수자(미국 거주)영순(효성약국 대표)씨 부친상 서경원(효성약국 대표)씨 빙부상 17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0일 오전 8시 (02)3010-2295●편창범(손해보험협회 부산부지부장)충범(캐나다 해법수학교실)씨 모친상 채병철(제니시스교역 대표)씨 빙모상 18일 서울대병원, 발인 20일 오전 8시30분 (02)2072-2016●박태일(대한생명 상품개발팀 과장)태환(현대엔지니어링 상하수도부 과장)정아(교보생명 종로지점 FP)씨 부친상 이현주(노량진 홈스쿨 간사)김성희(서울대병원 진단방사선과)씨 시부상 18일 서울대병원, 발인 20일 오전 9시 (02)2072-2035●서동현(군인공제회 과장)씨 부친상 18일 충남 부여군 중앙병원, 발인 20일 오전 10시 (041)836-3570●최수일(서울신학대 교수)재병(성남제이스산부인과 원장)수자(재미 의사)씨 부친상 송수일(재미 의사)김수복(한국노동연구소 이사장)씨 빙부상 17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9일 오전 10시 (02)3410-6915●강순철(음악가)상철(민주노총 홍보부장)씨 부친상 17일 경희의료원, 발인 19일 오전 7시 (02)958-9545●김홍식(전 제일제당 공장장)만식(STX엔파코 대표이사 사장)윤식(대한항공 부장)진식(사업)씨 모친상 18일 울산대학병원, 발인 20일 오전 7시 (052)250-8423●최원철(한국소방검정공사 차장)은숙(전동중 교사)씨 부친상 서재탁(대우조선해양 이사)씨 빙부상 이영미(구정중 교사)씨 시부상 18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0일 오전 8시 (02)3010-2237●홍문표(YTN 보도국 부국장)씨 부친상 이은복(서울경금속엔지니어링 회장)이춘봉(사업)송영문(〃)씨 빙부상 18일 원주 기독병원, 발인 20일 오전 7시 (033)741-1994●한정수(감사원 전략감사본부 제1팀장)씨 부친상 18일 미국 LA 로즈힐 추모공원, 발인 24일 오전 9시 001-1-213-798-9178●김은겸(화인사 대표)희겸(서울시 노원구의회 의원)영겸(김보석 대표)씨 부친상 18일 경희의료원, 발인 20일 오전 8시 (02)958-9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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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덕수(전 대한유도회 경기이사)씨 별세 영주(이디 부장·전 서울기능대 교수)영돈(브로케이드코리아 상무)영곤(현대정보기술 부장)씨 부친상 어경월(양서고 행정주사)김제마(한국오라클)이지연(봉화초등학교 교사)씨 시부상 16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9일 오전 7시30분 (02)3410-6914●남선우(주미 한국대사관 경쟁협력관 국장·전 공정거래위원회 홍보관리관)진우(SC제일은행 한강로지점장)씨 모친상 17일 대전중앙병원, 발인 19일 오전 7시 (042)634-8391●원명수(전 국무총리 공보비서관)씨 별세 15일 신촌세브란스병원, 발인 19일 오전 9시30분 (02)392-0699●장희진(전 국민은행 상무이사)양진(화신)씨 모친상 윤규호(세무사)김성현(자영업)이명수(암텍코리아)씨 빙모상 17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9일 오전 7시 (02)3410-6917●김용섭(경기지방공사 광교신도시사업처 조성팀장)봉섭(동방기공 대표)동섭(철도공사 역무과장)씨 부친상 17일 광명 성애병원, 발인 19일 오전 7시30분 (02)2689-9152●안성도(씨티은행 잠실중앙지점장)씨 모친상 김영규(대영케미칼 대표)한열(한모범약국 〃)씨 빙모상 17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9일 오전 8시30분 (02)3410-6903●박청(KBS 국제방송 작가)진(수림 대표)씨 부친상 김종욱(오픈솔루션 대표)씨 빙부상 16일 신촌세브란스병원, 발인 18일 오전 10시 (02)392-2899●권영선(풍산금속 과장)영일(대한적십자사 서울지사 대리)씨 부친상 조택래(태남계열 회장)이희호(명일여고 교사)씨 빙부상 이숙자(울산 화봉중 교사)씨 시부상 17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9일 오전 6시 (02)3010-2294●이준영(서울시립 서북병원장)관영(금호석유화학 이사)씨 모친상 이광희(서울관광고 교사)김은영(연세대 화공과 교수)씨 시모상 이지오(과학기술대 화학과 교수)씨 빙모상 17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9일 오전 (02)3410-6919●김광석(KBS 방송문화연구팀 연구위원)동주(자영업)상옥(〃)씨 모친상 17일 광주 무등장례식장, 발인 19일 오전 8시 (062)515-4488●이은숙(자양고 교사)씨 모친상 이상도(하이닉스 반도체 과장)박재서(현대증권 대리)양호석(광동중 교사)씨 빙모상 17일 건국대병원, 발인 19일 오전 6시30분 (02)2030-7901●이성호(서울수목원 명예회장)씨 별세 재근(동보철강 회장)상흔(자유상사 대표)윤근(세양 대표)수자(재미)영순(효성약국 대표)씨 부친상 서경원(효성약국 대표)씨 빙부상 17일 오후 6시 서울아산병원, 발인 20일 오전 8시.(02)3010-2295●강순철(음악가)상철(민주노총 홍보부장)씨 부친상 17일 오전 경희대 의료원, 발인 19일 (02)958-9545
  • 작사(作詞)·작곡(作曲)·노래하는 가요3부자(父子)

    작사(作詞)·작곡(作曲)·노래하는 가요3부자(父子)

    부자(父子)작곡가 집에 신인가수가 탄생하여 흔치않게 가요3부자(父子)의 이색가정을 이루게 됐다. 『차라리 꿈이라면』으로 가요계에 「데뷔」한 한정호(韓政浩·21)군. 아버지는 작사 겸 작곡가 한복남씨(韓福男·52)고 젊은 작곡가 하기송씨(河基松·본명 한정일(韓政一)·32)가 바로 맏형. 「레코드」사「도레미」가 바로 韓씨집의 것이고 보면 『작사에 아버지, 작곡에 큰 아들, 노래에 막내아들』, 취입까지 겸해서 완전한 자급자족이다. 「데뷔」곡부터가 그렇다. 한정호가 불러 요즘 상승의 인기를 보이고 있는 『차라리 꿈이라면』은 아버지 한복남씨의 작사·작곡이고 두번째 노래 『마음의 꽃』은 형 하기송씨의 곡이다. 아버지 작곡가는 작사·작곡 이외 가수로도 소문난 사람. 『엽전 열닷냥』『나그네 밤거리』『빈대떡 신사』등 왕년의 「히트·송」이 모두 한복남씨의 詞·曲·노래다. 지금도 술집거리에서 심심치 않게 흘러 나오는 『오동동 타령』『한많은 대동강』『페르샤 왕자』『처녀 뱃사공』등이 이를 테면 아버지의 대표작곡. 노래 재질은 하기송씨 역시 빠지지 않는다. 「히트」는 안됐지만 『푸른 수평선』이란 노래가 바로 하기송씨의 詞·曲·노래다. 대표곡은 『회전의자』(김용만(金用萬) 노래) 『둘이서 트위스트를』(박재란(朴載蘭) 노래) 『나룻배 처녀』(최숙자(崔淑子) 노래)등. 이렇게 보면 한정호의 노래 재질은 타고 난 혈통으로 볼 수 있다. 아버지가 작곡에 손을 댄 것이 5남매의 막내아들인 정호군이 출생한 해이고 그래서 그는 악기를 장난감 삼아 자라났다. 「피아노」, 「기타」 솜씨가 보통 이상. 혈통의 혜택이 아니라도 음악가가 되지 않을 수 없는 환경이다. 그래도 아버지 작곡가의 말인즉 『가수 시킬 생각은 전혀 없었다. 가난과 싸워야 하는 직업이기 때문에 아들들만은 다른 분야로 진출해주길』바랐단다. 그래서 정호군의 가수「데뷔」는 전혀 돌발적이다. 『작년 12월이었죠. 할머니에게 담배 20갑을 사다 드리기에 돈이 어디서 났느냐고 추궁했더니 방송 출연료를 받았다는 겁니다』 TBC의 『다이어먼드·쇼』에 「아마추어·싱어」로 출연한 것이 가수로서의 출발. 중앙대(中央大) 연극영화과 2년생으로 전공이 연예분야이기도하지만 내친 김에 가수로 「데뷔」를 시켰단다. 이런 경위는 큰 아들 하기송씨에게서도 볼 수 있다. 작곡가 생활을 시작한 것은 20세 때부터지만 처녀작 『제주 비바리』(황금심(黃琴心) 노래)를 내놓은건 17세때, 당시 서울高 1학년때다. 『어느 날 「기타」를 튕기고 있기에 야단을 쳤죠. 연예인 생활은 나로써 족하다고. 그런데 5선지 위에 끼적거려 내놓은 곡이 나보다 낫단 말예요. 할 수 없다, 하고 싶으면 해라. 그래서 예명도 하기 송(Song), 노래 하기 좋아한다는 뜻으로 지어줬죠』 언뜻 보아서는 3부자(父子)라기보다 3형제(兄弟)다. 부자간에 오갈 수 있는 성질 이상의 농담이 거침없이 튀어 나오고 서로 어깨를 치면서 박장대소를 한다. 취미도 똑같이 낚시와 당구. 당구실력은 아버지와 큰 아들이 2백이고 막내둥이 정호군이 3백. 시간이 나면 3부자는 나란히 당구장에 들어가 「게임」을 벌인단다. 일요일이면 온가족이 「닐」낚시를 떠나고. 『한때 사업이 부진해서 고민 많이 했죠. 그래도 불행하다는 생각은 안해봤습니다. 가정적으로 나만큼 복많은 사내도 없을테니까요』 - 이름도 복남(福男)인 아버지의 얘기. 그는 사업운영은 큰 아들에게 맡기고 좋은 곡을 만들어 정호군의 가수 진출을 힘껏 밀어 볼 생각이란다.[선데이서울 70년 2월 22일호 제3권 8호 통권 제 73호]
  • [CEO칼럼] 전문가의 조건/김인 삼성SDS 사장

    [CEO칼럼] 전문가의 조건/김인 삼성SDS 사장

    상대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잘 듣고 제대로 이해하며, 단순하고 간결하게 정리해 쉽게 전달하고, 어떤 경우라도 포기하지 않고 일을 성사시키는 실력, 이것이 전문가라면 반드시 갖추어야 할 조건이 아닐까.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 피터 드러커는 그의 저서 ‘프로페셔널의 조건’에서 “모든 지식 근로자들은 각자의 지식을 활용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전문가란 지속적인 자기 관리를 통해 높은 성과를 올리는 사람, 끊임없이 혁신을 꾀하면서 계속 발전하는 사람,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비중있는 사람”이라고 역설하고 있다. 사람마다 각자의 눈높이를 갖고 전문가를 정의할 수 있겠지만 필자는 진정한 전문가가 갖춰야 할 조건을 나름대로 생각해 본다. 먼저 진정한 전문가라면 상대방의 말을 잘 듣고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흔히 어느 한 분야의 전문 지식을 갖게 되면 능력을 과신한 나머지 귀 기울여 들으려는 노력이 적어지는 경향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뛰어난 의술을 지닌 의사라도 반드시 환자에게 증세를 묻고 경청하는 과정에서부터 치료를 시작하듯, 전문가라면 상대방의 의견을 꼼꼼하게 듣고 그 의미를 잘 이해해야 한다. 특히 필자가 종사하는 정보기술(IT) 서비스에서는 업(業)의 특성상 고객보다 더 고객을 잘 아는 ‘고객 선도력(Thought Leadership)’이 필수적인 만큼 무엇보다도 고객들의 요구를 잘 듣고 제대로 이해하는 능력이 진정한 전문가의 첫걸음일 것이다. 두번째는 이렇게 듣고 이해한 것을 간결하게 정리해 쉽게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세계적인 경영컨설팅사 매킨지가 인력을 채용할 때 실시한다는 이른바 ‘30초 엘리베이터 테스트’나 ‘한쪽짜리 제안서’ 같은 개념이 바로 이런 능력을 의미한다. 우리는 종종 자신의 분야에 해박한 지식을 가진 사람이 복잡한 개념과 수많은 전문 용어를 동원해 설명하는 내용을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마치 “당신들 알아서 들으라.”는 식으로, 무엇을 전하고자 하는 것인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을 때가 많다. 그러나 명필의 반열에 오르면 화려한 기교를 넘어 그 서체가 단순해지며, 세계적 대문호들의 글이 매우 간결한 데서 알 수 있듯 단순하고 명쾌하게 정리해 전달할 수 있는 능력, 이것이 바로 전문가의 또 다른 덕목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진정한 전문가라면 어떤 조건에서도 일을 성사시키고 마무리할 수 있는 의지와 실력을 갖고 있어야 한다. 두 다리가 불편한 소아마비 장애를 가진 바이올리니스트 ‘이자크 펄먼’은 뉴욕 링컨센터 연주회 중에 바이올린 줄 하나가 끊어지자 나머지 세 개의 줄만으로 연주를 계속했다. 원곡을 즉석에서 조옮김하고 재조합하는, 불가능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 준 것. 마지막 소절까지 중단없이 연주를 한 펄먼은 청중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때로는 모든 조건이 갖춰지지 않아도, 또 부족한 상황이 닥쳐도 제게 남은 것만으로 연주해야 한다는 것을 여러분께 보여주고 싶었다. 그것이 음악가인 제 사명이자 신조이다.” ‘무엇무엇 때문에 일을 완수할 수 없었노라.’라고 이야기한다면 동정과 위로를 받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결국 진정한 전문가라는 소리를 듣기 어려울 것이다. 주변의 모든 조건이 나의 성공만을 위해 준비되는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상대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잘 듣고 제대로 이해하며, 단순하고 간결하게 정리해 쉽게 전달하고, 어떤 경우라도 포기하지 않고 일을 성사시키는 실력, 이것이 전문가라면 반드시 갖추어야 할 조건이 아닐까. 김인 삼성SDS 사장
  • [딸자랑] 약사 이원실(李元實)씨 외따님 연내미(延奈美)양

    [딸자랑] 약사 이원실(李元實)씨 외따님 연내미(延奈美)양

    약사 이원실(李元實)씨는 주말(週末)을 맞는 기쁨이 남달리 크고 벅차다. 친구같고 자매(姉妹)같은 외따님 연내미(延奈美)양과의 「데이트」가 금요일에 시작되어 일요일까지 계속되기 때문. 이 주말을 즐기는 동안 영영 늙지않을 것같아 따님이 더욱 더 소중해지는 어머니의 심정이다. 『지금 성심여대(聖心女大)에 다니거든요. 불문과(佛文科)전공인데 이제 2학년 돼요. 전교생이 기숙사 생활이니까 주중(週中)에는 죽 춘천(春川)에 있어요. 1년내내 금요일이면 엄마랑 식구들을 만나려고 서울에 오죠』 전공이 불문학이지만 경기여고를 졸업한 「아마추어」음악가. 여러가지 기악(器樂)을 취미로 했고 노래는 엄마와 합창하는 것이 즐거운 일과다. 『그 중 어떤 것도 전공삼을 만큼 깊이 시키질 않았어요. 음악은 좋아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고 남의 앞에서 나대는 것이 얘가 아주 싫어하거든요』 서울大 대학원에서 건축을 전공하고있는 오빠는 「기타」의 명수(名手). 신이나면 내미양은 「바이얼린」, 오빠는 「기타」로 합주공연을 어머니께 보여드린다. 『아들 하나 딸 하나가 얼마나 의좋게 지내는지 생각해 보면 행복하지요』 내미양이 집에서 묵는 금,토요일밤이면 오빠까지 합쳐 세식구가 밤새도록 얘기를 나누기도 한다. 『아버지는 계시지 않고 죽 외조부모님이 보살펴 주고 계세요. 어른의 귀염을 싫도록 맛보면서 자란 셈이죠. 요즘도 칠순 되신 할머니께 「피아노」를 가르쳐 드리면서 재롱을 피우곤 해요』 우리나라에 TV가 처음 방영되던 시절 내미양은 꼬마 「탤런트」가 되어서 할머니를 기쁘게 해 드린 일이 있다. 『지금은 서울에 집집마다 TV가 있지만 그 때는 안그랬거든요. 구경을 하러 식구들이 TV방송국까지 가곤 했죠』 딸자랑은 끝이 없다. 『뜨개질을 곧 잘 해요. 작년에는 멋진 해수욕 모자를 떠서 내게 선사했죠. 친구들에게 꽤 자랑을 했어요』 요즘은 집에 오면 오빠에게 「기타」를 배우는 것이 일과. 할머니의 화초 가꾸기를 돕는 것도 또 다른 일과다. 성모병원 약사(藥士)로 근무하고 있는 어머니 이원실씨와 내미양은 10여년간 아침이면 같이 서두르는 「나가는 사람들」이었다. 『내미가 국민학교 2학년때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약사가 되었으니까요. 그때는 드문 엄마 학사(學士)였죠』 아침이면 엄마, 딸, 아들의 세학생이 나란히 집을 나서곤 했었단다. 『엄마가 나가서 일하는데 대해서 한마디도 불평을 안해요. 일하니까 엄마가 늙지 않아서 좋다나요』 직장엄마로서의 괴로움은 거의 없다. 『오히려 크면서는 엄마방의 장식물도 보살펴 주고 집안 일도 도맡고 나서는군요. 엄마보다도 집안일에는 더 환해요』 어머니 이원실씨는 정말 친구 같은 표정으로 내미양을 바라본다. 『엄마는 한 5년전부터 유화(油畵)를 그리셔요. 오빠랑 저는 엄마가 밖에서 일을 갖고 또 취미 생활을 하시는게 젊어져서 좋다고 생각하고 있죠』[선데이서울 70년 2월 22일호 제3권 8호 통권 제 7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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