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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희롱한 직장상사 해고 무효 판결

    성희롱한 직장상사 해고 무효 판결

    판사 경력의 절반 이상 행정·특허소송을 담당해 행정법 분야에 정통하다.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되는 행정사건들을 원만하고 합리적으로 해결해 왔다는 평을 듣고 있다. 서울고법 부장판사 재직 시절 ‘서울대 최종길 교수 의문사’ 사건과 관련해 국가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음악파일 교환 서비스 ‘소리바다’ 사건에서는 음악저작권자의 음반복제와 전송권이 침해됐다고 판결, 소리바다 측에 손해배상 책임을 물었다. 2007년 직장 내 성희롱 사건 재판에서는 직장 상사의 여직원들 성희롱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해고 처분이 지나치다고 판결해 논란을 일으켰다. 지난달 정기인사에서 서울고법원장에 임명됐다. 가족은 부인 안혜영(54)씨와 2녀가 있다. 최지숙 기자 truth173@seoul.co.kr
  • [새 음반] ‘왓 어바웃 나우’

    [새 음반] ‘왓 어바웃 나우’

    1983년 본 조비의 등장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교회 오빠처럼 수려한 외모에 팝적인 양념을 버무린 이들의 음악은 남성 전유물이던 헤비메탈 음악에 여성 팬을 끌어들였다. 데뷔 앨범 ‘본 조비’ 이후 통산 11장의 정규 스튜디오 앨범과 3장의 베스트 앨범, 2장의 라이브 앨범으로 1억 3000만장의 판매고를 달성했다. 30년 동안 장수할 수 있던 비결은 누적 관객 3400만명에 이를 만큼 탁월한 라이브 실력은 물론 섹스나 마약, 폭력 등 부정적인 내용보다 어려움 속에서도 용기를 불어넣는 밝은 가사가 많은 점이 한몫했다. 거물 밴드 본 조비가 4년 만에 정규앨범 ‘왓 어바웃 나우’(What About Now)로 돌아왔다. 리더인 존 본 조비를 비롯해 리치 샘보라(기타), 티코 토레스(드럼), 데이비드 브라이언(키보드)까지 30년째 호흡을 맞춘 밴드의 관록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최근작들이 그렇듯 더는 메탈밴드의 색깔을 찾아보기 어렵다. 명불허전인 본 조비의 보컬과 리치 샘보라가 이끄는 빈틈없는 사운드, 따뜻한 노랫말이 있을 뿐. 동명 타이틀곡 ‘왓 어바웃 나우’는 물론 현악 사운드가 어우러진 ‘픽처스 오브 유’, 슬로 템포의 ‘아임 위드 유’나 어쿠스틱 발라드 ‘아멘’ 등 버릴 곡이 거의 없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캥거루·돼지부터 무생물까지… ‘말춤’ 넘으려 다 시도 중이에요”

    “캥거루·돼지부터 무생물까지… ‘말춤’ 넘으려 다 시도 중이에요”

    “캥거루, 돼지 같은 생물은 물론, 무생물까지 다 시도 중이에요. ‘말춤’을 이겨야 하니까요.” ‘강남스타일’의 가수 싸이(36·박재상)가 17일 말레이시아에서 입국했다. 14개국, 40개 도시를 돌아다니는 9개월간의 일정을 마무리짓고 신곡 작업에 들어가기 위해서다. 싸이는 “신곡 준비는 끝났고 두 곡 중 한 곡을 고르는 일만 남았다”면서 “한 곡은 ‘강남스타일’ 풍이고 다른 한 곡은 전혀 다른 스타일이다. 후속곡이 비슷한 곡이면 좋을까, 다른 게 좋을까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다음 곡 제목이 ‘아싸라비아’라는 보도에 대해서는 “두 곡 가운데 한 곡인 것은 맞는데, 후반부 작업 중이라 제목도 바뀔 수 있다”고 말했다. 신곡 발표 예정일은 4월 12일. 싸이는 당초 두 곡을 동시에 발표할 생각이었지만 미국 음반유통사와 협의한 끝에 한 곡만 먼저 발표하기로 했다고 소개했다. 노래 못지않게 안무도 관심이다. ‘말춤’에 버금가는 안무가 준비됐느냐는 질문에 “두 곡 다 안무를 짜고 있다”면서 “´말춤’을 이겨야 하니 안무팀의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니다”라며 웃었다. 싸이는 신곡 공개 다음 날인 다음 달 13일 서울 마포구 성산동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해프닝’(HAPPENING)이란 이름으로 공연한다. 이 공연은 유튜브로 생중계된다. ‘강남스타일’ 후속곡에 대한 부담감은 없다고 했다. 싸이는 “신인일 때 이런 일을 겪었다면 ‘맛이 갔을’ 것 같은데 다행이다. 기사 댓글을 읽다보면 저보다 저의 성패에 대해 더 걱정하시는 분들이 많다”면서 “‘챔피언’, ‘새’ 같은 노래로 성공도 해보고 그 이후에 떨어져보기도 했기 때문에 결과에 상관없이 저는 괜찮다”고 말했다. 조태성 기자 cho1904@seoul.co.kr
  • 방송3사 가요프로 ‘순위제 부활’ 한다는데… 결과는?

    방송3사 가요프로 ‘순위제 부활’ 한다는데… 결과는?

    이번에는 제대로 정착할 수 있을까. 방송 3사의 가요 프로그램이 ‘순위제 부활’을 선언하면서 가요계가 술렁이고 있다. 오는 17일부터 순위제를 부활하는 ‘SBS 인기가요’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시청자 현장 투표를 대폭 강화했다. ‘SBS 인기가요’는 음원 및 음반 판매를 합산한 점수와 유튜브, 페이스북, 트위터, 미투데이 등 SNS 통합 점수, SBS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소티를 통한 시청자 투표 점수를 합산해 순위를 매긴다. MBC ‘쇼! 음악중심’도 다음 달 6일부터 순위제를 부활한다. 생방송 문자 투표를 반영해 현장성을 살렸다. MBC는 각 팀의 동영상 조회 수, 음원 및 음반 판매 점수, 방송 출연 점수를 합산해 매주 1위 후보를 선정한 뒤 최종 1위는 생방송 문자 투표로 결정할 계획이다. KBS는 2008년부터 ‘K-차트’라는 순위제를 운영하고 있다. ‘K-차트’는 디지털 차트 점수(디지털 음원+모바일) 65%, 방송 횟수 점수 20%, 시청자 선호도 점수 10%, 음반 차트 점수 5%를 더해 순위를 정하고 있다. 가요 프로그램은 가수들이 신곡을 홍보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인 데다 국내 가요계를 한눈에 보여준다는 점에서 큰 영향력을 지닌다. 특히 K팝에 대한 국내외의 관심이 높아진 상황에서 상징성이 더욱 커졌다. 하지만 국내 가요 프로그램은 영향력에 비해 2~4%대의 낮은 시청률에 허덕여 왔다. 가수 지망생들이 출연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이 합격과 탈락, 순위에 대한 결과를 중심으로 매회 뜨거운 이슈를 만들어 내는 데 반해 정작 기성 가수들이 실력을 뽐내는 가요 프로그램은 순위제를 폐지해 긴장감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방송사들이 앞다퉈 순위제 부활을 선언한 것은 이런 위기 위식의 발로다. 즉 순위제 부활을 통해 프로그램의 경쟁력을 높이고 궁극적으로 가요에 대한 관심을 끌어올리겠다는 것이 이번 순위제 부활의 목적이다. 물론 가요계도 가요에 대한 관심을 높인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하지만 문제는 투명성과 공정성이다. KBS ‘가요 톱 10’, MBC ‘생방송 음악캠프’ 등 과거 가요 프로그램은 대부분 순위제로 운영됐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공정성 시비로 얼룩지면서 모두 폐지됐다. 1위 선정을 놓고 팬들이 공정성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고 일부 기획사와 방송사의 불화로 번지는 등 부작용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방송사의 연말 가요 시상식이 폐지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이 때문에 국내 가요 산업이 음반에서 음원 중심으로 변화하고 가요 소비 방식이 달라진 현 시점에서 부활하는 순위제가 가요계의 공신력 있는 차트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인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에 대해 가요계는 홍보 마케팅 방식의 전략을 대폭 수정하는 등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지만 공정성에 대한 우려는 여전하다. 특히 SNS와 시청자 현장 투표를 강화한 SBS와 MBC의 경우 팬덤(열성 팬들)을 가진 대형 기획사에 상당히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 아이돌 그룹 소속사 관계자는 “이미 유명 포털사이트들과 제휴해 동영상 등의 서비스 시스템을 구축하고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 엄청난 팬덤이 있는 SM, YG 등의 대형 기획사들은 상당히 유리하겠지만 상대적으로 팬덤이 없는 신인 가수나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은 군소 기획사들에는 불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한 점수로 산출되기 전 집계 결과가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는다면 순위제 자체가 유명무실하다는 지적도 있다. 한 가요 기획사의 본부장은 “일부 가요 프로그램의 경우 회사에서 산출한 결과와 방송사에서 집계한 결과가 달라 순위에 변동이 생겼는데도 원래 데이터를 공개하지 않아 공정성에 의문을 품게 된다”면서 “아무리 여러 방식을 동원한다 해도 선정 결과를 외부에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는다면 그 과정에 대형 기획사의 입김이나 PD의 주관적인 의사가 전혀 개입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또 SBS에는 빠졌지만 KBS의 방송 횟수 점수나 MBC의 방송 출연 점수 등 자사 프로그램에 대한 기여도를 순위 차트에 반영하는 데 대한 불만이 높다. ‘뮤직뱅크’의 방송 횟수 점수는 KBS의 뉴스, 연예 정보·교양 프로그램, 버라이어티 쇼 등에서 해당 곡이 15초 이상 방송되면 집계 대상이 되는 방식이다. 한 걸그룹 소속사 이사는 “방송 횟수 점수를 높이려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뮤직 비디오나 배경음악(BGM)이라도 방송되도록 해야 한다”면서 “회사에서 산출한 결과와 방송 횟수 점수가 다른 적도 많았지만 항의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한 가요계 관계자는 “이를 위해 PD들과의 인맥으로 각종 방송 프로그램을 섭외하는 전문 매니저를 고용하는 회사도 있다”고 말했다. 방송계는 이번만큼은 순위제의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 특히 SBS는 지난 12일 각 기획사의 매니저들을 대상으로 순위제에 대한 설명회를 열고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렴했다. ‘SBS 인기가요’ 김용권 PD는 “음원 및 SNS에 대한 자료는 문화체육관광부의 정식 허가를 얻은 가온차트에서 자료를 받기 때문에 우리 쪽에서 손을 댈 수 있는 부분이 없다”면서 “모바일 집계 역시 1인 1회 투표만 가능하기 때문에 사실상 조작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팬덤을 지닌 일부 기획사가 유리할 것이라는 지적에 대해 김 PD는 “팬덤이 음악 산업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도 있다. 결국은 모든 기획사가 팬덤 있는, 영향력 있는 가수를 키우려고 하는 것 아니겠냐”면서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상당 기간 준비와 검토 기간을 거쳤고, 순위제의 목표는 가요에 대한 시청자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켜 가요계의 발전을 꾀하자는 것인 만큼 지켜봐 달라”고 말했다.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 [문화마당] 이문세의 무대/강태규 대중음악 평론가

    [문화마당] 이문세의 무대/강태규 대중음악 평론가

    지난 7년 동안 이문세의 무대는 막을 내리지 않았다. 총 648회의 콘서트, 누적 관객 82만명. 아직도 현재진행형의 뮤지션이다. 2005년 이전 기록은 집계되지 않았으니 어림잡아 100만 관객이 그의 공연을 보았을 것이다. 그의 골수 팬이 아니더라도 공연 내내 아는 노래가 흘러나온다. ‘광화문 연가’로 시작해 ‘붉은 노을’로, 혹은 ‘옛사랑’으로 시작해 ‘나는 아직 모르잖아요’로 여운을 맺는 그의 공연에는 세월의 숨결이 담겨 있다. 추억을 끄집어내 되씹는 시간의 연속이다. 2시간의 공연은 촌철살인의 무대다. 그때의 기억, 그 순간의 사람, 심지어는 그 찰나의 냄새까지도 떠오르게 한다. 세월을 버티는 노래의 감동은 잔잔한 격정을 불러일으킨다. 필자는 1996년 당시 이문세 공연 ‘짝짝이 신발’을 관람한 적이 있었다. 그의 노래를 듣고 성장한 사람에게는 경이로운 무대였다. 뮤지컬 형식이 가미된 공연이었는데 기존 가수들의 무대와는 판이했다. 연출, 음향, 조명이 일체를 이룬 차별화된 무대였다. 훗날 그 공연에 대해 물었더니 당시 각계 정상의 스태프들이 모여 만든 무대였다고 한다. 그의 노래를 놓고 준비된 각본 속에서 무대는 관객과 밀고 당기는 긴장의 연속이었다. 이문세의 무대는 오래전부터 그렇게 진화해 오고 있었다. 관객을 결코 방치하지 않는 무대 위에 집념이 고스란히 녹아 있었던 것이다. 그러한 공연 진화의 원동력에는 이문세의 세심함을 빼놓을 수 없다. 관객 입장에서 잠시도 자신을 가만히 놔두려 하지 않는 데서 출발한다. 그의 공연 스태프들은 기대 이상의 요구에 부합하는 데 이제 이골이 났다고 할 만큼 공연에 있어서 관대하지 않다. 어느덧 이문세는 가수 데뷔 30년을 맞았다. 그동안 방송 진행자로도 명성을 날려온 이문세지만 그는 여전히 우리 시대의 뮤지션이다. 이문세의 음악 행보는 대한민국 가요사에서 결코 누락될 수 없는 역사로 각인된다. 1987년 발표한 4집 앨범은 1980년대를 통틀어 최고의 명반으로 꼽힐 만큼 존재감을 갖는다. ‘사랑이 지나가면’ ‘그녀의 웃음소리뿐’ ‘이별이야기’ ‘가을이 오면’ 등 수록곡 전곡이 히트하며 285만장의 판매고를 올린 4집 앨범은 당시 사상 최다 음반 판매 기록을 뒤엎는 하나의 사건이었다. 가수에게 히트곡 한 곡 있다는 것이 그야말로 자부심이 되고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는 달리 설명이 필요가 없다. 하물며 하나의 공연을 오롯이 히트곡으로 채울 수 있는 뮤지션은 한 손에 꼽힌다. 이문세의 레퍼토리는 이미 국민가요다. 이문세는 공연 내내 관객에게 추억을 되새김질하고 그때 그 순간을 떠오르게 하는, 히트곡으로 시작해 히트곡으로 마감하는 독보적인 뮤지션이다. 30년의 세월을 버티며 국민들에게 사랑받았으며, 현존하는 후배 뮤지션들에게 교과서 같은 힘으로 각인되었다. 그의 히트곡이 임재범, 이승철 등 당대의 뮤지션들과 빅뱅 등 아이돌 가수들을 통해 리메이크되며 세대를 넘어 큰 사랑을 받았던 것은 그것을 방증하고도 남는다. 오는 6월 1일 이문세는 가수 데뷔 30주년을 맞아 올림픽 주경기장 무대에 오른다. ‘대한민국 이문세’라는 타이틀이 결코 거창하게 들리지 않는 이유는 이 같은 그의 음악 족적 때문이다. 5만 관객과 조우할 무대는 또 어떤 그림으로 채울까? 세월을 따라 사람의 가슴을 두드리는 그의 노래, 그의 무대가 뇌리에서 꿈틀거린다.
  • SBS 인기가요 차트 17일 신설

    SBS TV 생방송 음악프로그램 ‘인기가요’는 오는 17일 신설하는 ‘인기가요 차트’에 음원, 음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시청자 투표 점수를 반영한다고 11일 밝혔다. 음원 및 음반 판매를 합산한 점수와 유튜브·페이스북·트위터·미투데이 등 SNS 통합 점수, SBS 모바일 앱을 통한 시청자 투표 점수를 합산해 순위를 산출해 차트에 반영할 계획이다. ‘인기가요 차트’는 문화체육관광부 허가를 받은 사단법인 한국음악콘텐츠산업협회의 ‘가온차트’와 협력하여 순위를 매긴다.
  • 만화로 영화史의 숲을 거닐어 보다

    만화로 영화史의 숲을 거닐어 보다

    올해 영화를 관람할 국내 관객 수가 사상 처음으로 2억 명을 웃돌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그만큼 영화는 우리 삶의 일부가 됐다. 그런데 우리는 영화라는 장르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영화는 현대인에게 뗄래야 뗄 수 없는 대중 예술이자 오락거리가 됐지만 처음 등장했을 당시 박수만 쏟아졌던 것은 아니다. 화재로 인한 대형 참사가 일어나기도 해 ‘위험한 오락’, ‘죽음의 함정’이라는 비난도 끊이지 않았다. 영화라는 장르는 블록버스터 못지 않게 스펙터클하고 박진감이 넘친다. 그렇지만 영화에 대해 알고 싶어도 이론서의 두께와 딱딱함에 주눅들기 일쑤였다. 마침 영화의 역사를 보다 쉽게 이해하는 데 디딤돌이 되어줄 책이 나왔다. 재즈와 록 등 대중음악을 테마로 한 만화를 꾸준히 발표하며 교양 만화의 지평을 넓혀가고 있는 재즈 평론가 남무성이 이번에는 영화사를 만화로 풀어낸 것. 영화 전문지 ‘스크린’의 편집장을 지낸 영화 평론가 황희연과 함께 ‘만화로 보는 영화의 역사-라이벌 난장사’(오픈하우스 펴냄)를 내놓았다. 화려한 은막 뒤를 가득채운 감독과 배우들의 깨알 같은 에피소드가 궁금하다면 이 책을 펼쳐보는 것도 좋겠다. 한달음에 읽어내릴 수 있다. 영화 역사를 단순하게 나열해 놓지 않은 점이 매력이다. 사실상 최초의 영화 상영회를 열었던 뤼미에르 형제와 영화 초장기 문법을 만들어간 조르주 멜리아스, 영화 산업 헤게모니를 놓고 다퉜던 유럽과 미국, 코미디 지존 대결을 벌였던 찰리 채플린과 버스터 키튼 등 남무성이 풀어낸 라이벌 구도를 쫓아가다 보면 어느 새 100년이 훌쩍 넘는 영화 역사를 꿰뚫게 된다. 아련하게 기억에 남은 배우 스틸이나 영화 포스터, 명장면 등도 시선을 끈다. 곳곳에 들어가 있는 영화 토막 상식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무엇보다 남무성 특유의 위트와 유머 감각이 영화 역사의 숲을 헤쳐나가는 과정을 지루하지 않게 만들고 있다. 작가의 말에서 언급된 것처럼 작업 시간이 촉박했던 게 흠이라면 흠. 순수하게 만화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일부 장면의 완성도가 전작인 ‘재즈 잇 업! 만화로 보는 재즈의 역사’나 ‘페인트 잇 록-만화로 보는 록의 역사’에 견줘 다소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화적 재미는 결코 부족하지 않다. 남무성은 다방면에 재능을 뽐내고 재즈 평론가다. 국내 최초로 재즈 잡지를 만들었다. 다양한 재즈 페스티벌을 통해 공연 기획자로도, 여러 가수의 음반 프로듀서로도 활약하고 있다. 우리 재즈 1세대의 오늘날 현실과 라이브 무대를 담은 ‘브라보 재즈 라이프’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연출하기도 했다. 재즈바의 주인장이기도 하다. 만화 쪽에선 ‘재즈 잇 업!’과 ‘페인트 잇 록’이 대표작이다. 현재 포털 사이트에서 ‘만화로 듣는 올 댓 재즈’와 ‘올 댓 록’을 연재하고 있다. 요즘은 ‘페인트 잇 록’ 두번째 권 출간 준비를 하고 있다니 무척 기다려진다. 1만 5800원.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제 음악 묻지 말아요, 규정짓기 싫으니

    제 음악 묻지 말아요, 규정짓기 싫으니

    싱어송라이터 정란(31)의 이름은 아직 낯설다. 하지만 재즈 팬이라면 그의 목소리만 들어도 무릎을 탁 칠 것이다. 누군가는 재즈 탱고그룹 라벤타나와 라틴밴드 로스 아미고스의 객원 보컬로 기억할 것이다. 또 누군가는 2년 전 조윤성 챔버소사이어티와 함께 자라섬 재즈페스티벌 무대에 선 그를 떠올릴 것이다. 아니면 12년 전 서울 삼청동 라이브 카페 재즈스토리 무대에 선 소녀를 기억할지도 모른다. 음악 세계에 발을 담근 지 10여년 만에 직접 쓴 13곡을 빼곡하게 채운 1집 ‘노마디즘’을 내놓은 정란을 지난 4일 서울 중구 정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음반을 듣고선 한참 갸우뚱거렸다. 세번 거푸 들었다. 처음에는 겉돌았다. 그런데 들을수록 묘하게 감겼다. 장르를 구분 짓는 건 무의미했다. 인상을 늘어놓을 수 있을 뿐이다. 서늘하면서도 몽환적이다. 한없이 차갑다가 갑자기 뜨거워진다. 라벤타나와 로스 아미고스 시절 불렀던 라틴 재즈와는 달랐다. 언뜻 MPB(브라질 팝 음악) 느낌도 묻어나지만 잠시뿐. 초점이 흔들린 자신의 얼굴과 전신을 담은 앨범 재킷과 ‘노마디즘’이란 제목이 묘하게 어울렸다. “무언가를 규정짓기보다 애매모호함을 좋아해요. 초점이 흔들린 앨범 재킷이나 노마디즘이란 제목도 마찬가지죠. 평론가들이 이런저런 얘기를 할 순 있지만 제게 무슨 장르냐, 어떤 심정으로 노래했냐고 묻는다면 답하고 싶지 않아요. 음악을 던져 놓으면 해석하든 장르를 규정짓든 그건 듣는 사람의 몫이에요. 음악도 삶도 한곳에 정착하고 싶지는 않아요. 정착하다 보면 집착하고 무언가를 쟁취하려 아등바등하게 되거든요.” 앨범 프로듀싱은 네덜란드의 베이스 연주자 루번 사마마의 몫이다. 헤이그 왕립음악원 동문이자 정란의 음악 동료인 프로듀서 홍지현이 다리를 놓았다. 홍지현이 건넨 몇 개의 데모트랙을 들은 사마마는 정란의 음악 색깔에 매료돼 흔쾌히 프로듀서 제의를 수락했다. “기성 가수, 음악의 이미지와 겹쳐지는 걸 원치 않았어요. 신선함을 원했죠. 언어 때문에 겪는 어려움은 없었어요. 둘 다 돌직구 스타일이라 돌려 말하지 않았어요. 한국 사람들은 서로 상대가 제안하기를 기다리지만 사마마와 저는 서로 아이디어를 내놓기 바빴어요. 하하하.” 음반 제작·배급사 포니캐년코리아는 홍보 문구에서 그를 ‘한국의 제인 버킨’이라고 칭했다. 좀처럼 규정짓기를 싫어하는 정란의 반응이 궁금했다. “사람들은 낯선 음악을 들으면 편의상 기존 음악가과 비교해요. 처음엔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조그마한 스티커를 붙이는 정도는 괜찮겠다 싶었죠. 원래 버킨을 좋아해요. 영화, 연극, 음악을 구분짓지 않고 끊임없이 창작해 온 열정이 대단하죠. 다만 그 표현 때문에 틀에 갇히지 않을까 하는 걱정은 있어요. 대중들이 ‘한국의 버킨’이란 이미지를 떠올리면서 쉽게 접근하는 장점이 있지만 수식어가 붙는 순간 이미지가 고착되는 단점도 있잖아요.” 독특한 음색과 발성, 자작곡의 색깔은 제도권 음악 교육을 받은 적이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담임교사를 따라 삼청동 라이브 카페에 갔다가 사장의 권유로 노래를 불렀다. 그날 이후 운명은 바뀌었다. 그는 “다음 날부터 공연했다. 입소문이 나서 다른 클럽에서도 노래했는데 돈도 엄청 벌었다. 지금은 구경도 못 할 큰돈이다. 한달에 400만원쯤 벌었다”며 웃었다. 이어 “대학에 가서도 학교는 안 가고 공연만 하러 다녔다. 1주일에 3번씩 클럽에서 공연을 했다. 앨범 한장 안 낸 내가 ‘EBS 스페이스공감’에만 5번이나 출연했더라”고 덧붙였다. 또한 “대학에선 교수가 커리큘럼에 따라 어떤 책을 보라고 얘기해 준다면 난 알아서 찾아보고 연구할 뿐이다. 굳이 대학에서 음악 교육을 받을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라고 설명했다. 한곳에 정주하길 싫어하는 정란은 조만간 소프라노 임선혜에게 바로크 성악 발성을 배울 계획이다. 네덜란드의 기타리스트 크리스티안 구티에레스, 리코디스트 권민석과 함께 7월쯤 이탈리아 성가곡 레퍼토리로 하우스콘서트를 열기로 했기 때문이다. “원래 그레고리안 성가를 좋아해요. 운전할 때 누군가 확 끼어들어도 그레고리안 성가를 듣고 있으면 욕이 안 나와요. 지금은 이메일로 레퍼토리를 상의하는 단계인데 벌써 흥분돼요.”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문화마당] 스타를 권하는 사회/임형주 팝페라 가수

    [문화마당] 스타를 권하는 사회/임형주 팝페라 가수

    간만에 서재를 대청소했다. 언제 어디서 구입했는지도 모르는 음악 CD와 영화 DVD들 속에서 반가운 얼굴을 만났다. 필자와 같은 해(1998년)에 데뷔했고, 한 음반사에서 같은 장르로 활동했던 동갑내기 영국 팝페라 소프라노 샬럿 처치다. 샬럿은 재능 있는 아이들을 찾는 TV프로그램에 전화를 걸었고, 노래 하나로 스타가 됐다. 12살에 세계적인 음반사 소니뮤직에서 데뷔 음반 ‘천사의 음성’(Voice of an Angel)을 내면서 전 세계에서 수백만장에 달하는 판매고를 세웠다.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 미국 빌 클린턴 전 대통령,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등 세계 각국 유명인사에게 초청돼 공연하는 등 화려한 이력을 쌓아갔다. 그러나 그는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스타가 된 값을 톡톡히 치렀다. 10대 후반부터 타블로이드지를 장식했다. 하루 담배 2갑, 길거리 흡연 등 골초로 비쳐졌고, 어린 나이에 임신과 유산을 반복했다. 2005년 음반을 내고 섹시 콘셉트의 팝가수로 변신했지만 판매량과 평단의 평가, 흥행 모두 참패했다. 운동선수 출신인 연인과의 불화, 재결합, 결혼 등 숱한 기사를 쏟아내며 그의 애칭은 ‘천사의 음성’에서 ‘최연소 스캔들메이커’가 됐다. 2년 전 샬럿은 ‘백 투 스크래치’를 발표하면서 반짝 관심을 끌었지만 예전의 인기를 되찾기엔 역부족이었다. 그에게서 우리 대중문화계의 현실이 겹쳐 보였다. 요즘 오디션 프로그램이 정말 많다. 참가자격을 대폭 낮추거나, 아예 어린아이들이 대상이 된 오디션 프로그램도 있다. 한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면서는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제작진이 탈락하면 어떻게 할 거냐고 묻자 참가자는 “초등학교 들어가서 공부해야죠. 제 유년기의 마지막 오디션이에요”라고 대답했다. 아이는 참 귀엽고 똘똘했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을 보며 씁쓸했다. 어린 나이에 재능을 발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고 가치 있는 일이다. 특히 선천적 재능이 필요한 대중문화계에서는 더욱 그렇다. 일찍 재능을 꽃피울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행운이지만,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는 것은 생각하는 것보다 엄청난 고통을 수반한다. 무엇보다도 확고한 의지가 없다면 무척 힘든 일이다. 어린 나이에 데뷔한 필자도 어른들 틈바구니 속에서 실수하면 안 된다는 법부터 배웠던 것 같다. 어른의 눈치를 보고 어른들이 원하는 태도와 생각을 옮기면서 훈련받는 아바타가 된 느낌이었다.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무대 위에서는 나 자신과 끝없이 싸웠고, 무대에서 내려오면 상실감·외로움·고독과 마주했다. 이 모든 것들을 혼자 감당해 내야 했다. 자유를 찾아 반항과 일탈을 꿈꾸기도 했다. 하지만 제자리로 되돌아오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는 것을 알기에 앞만 보고 달렸다. 아이가 사람들 앞에서 천연덕스럽게 노래를 부르고 춤을 잘 춘다면, 그 재능을 키워주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할 것이다. 우리 아이가 방송이나 무대에서 재능을 펼치고 사랑을 받는 것이 어찌 행복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단순히 판을 벌여 맛을 보여주고, 아이들에게 스타가 될 수 있다고 부추기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아이들의 재능과 특성, 장점을 먼저 찾아주어야 한다. 그리고 아이가 그 험난한 길을 걸어가기 위한 열정을 갖추었는지 판단하는 것도 중요하다. 아이를 스타로 만들기 전에 해야 할, 어른들의 몫이다.
  • [책꽂이]

    내 러시아 할머니의 미제 청소기 (메이어 살레브 지음, 정영문 옮김, 시공사 펴냄) 이스라엘 초기 정착민 얘기다. 맨손으로 조국을 개척했다는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일가족이, 미국으로 건너가 양키 자본주의 아래 성공한 작은할아버지가 보내준 전기청소기를 냉대해버린 사연을 담았다. 닉슨과 흐루시초프 간 ‘키친 디베이트’를 떠올리게 하는 내용인데, 가족의 기억을 익살스럽게 재구성한 저자의 입담이 좋다. 1만 2000원. 아다지오 소스테누토 (문학수 지음, 돌베개 펴냄) 책 제목은 꾹꾹 한 음씩 눌러가며 천천히 연주하라는 뜻. 클래식 음악 애호가로서, 일간지 문화부 기자로서 맛난 칼럼을 꾸준히 써온 저자의 클래식 즐기기 비결이다. 클래식을 끊임없이 접해오면서 저자가 만났던 작곡가, 연주자, 지휘자 얘기를 인물 중심으로 버무려뒀다. 인물, 음반, 책 내용에다 취재 뒷얘기가 재미있다. 1만 8000원. 완벽한 날들 (메리 올리버 지음, 민승남 옮김, 마음산책 펴냄) 자신의 시를 “세상에 바치는 찬사” 혹은 “작은 할렐루야”라 부르는 미국 시인의 독특한 시집이다. 시집이면 시만 있을 것 같은데 산문이 죽 나열되다 간혹 가다 한 편씩 시가 나오는 방식이다. 수필집, 명상집 느낌이 강하게 드는 이유다. 가장 평범한 순간들이 가장 완벽한 날들임을 끊임없이 속삭여준다. 1만원. 일본 온천 료칸 여행 (이형준 글, 즐거운상상 펴냄) 여행 작가로서 추천할만한 일본 온천 30여곳을 골라뒀다. 온천은 그냥 따끈한 물에 몸을 담그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문화체험이기에 온천의 물 뿐 아니라 그 주변의 즐길거리들도 함께 소개해뒀다. 추천지가 일본 전역에 걸쳐있기 때문에 자기가 여행가려는 부근 온천을 찾아볼 수 있다. 1만 5000원. 새로운 천년의 터 (모성학 지음, 관음출판사 펴냄) 신라말 도선국사, 조선 초 무학대사에 이어 3세대 풍수가라 자임하는 저자가 풍수에 대한 얘기들을 한데 모아 정리했다. 2만 3000원.
  • [부고] 美·러 냉전 녹인 피아니스트 클라이번

    [부고] 美·러 냉전 녹인 피아니스트 클라이번

    미국과 러시아(구 소련)의 냉전이 절정을 이루던 1958년, 러시아가 창설한 제1회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해 세계를 놀라게 한 미국의 전설적인 피아니스트 밴 클라이번이 27일(현지시간) 지병으로 타계했다고 AP통신 등이 보도했다. 78세. 1934년 미국 루이지애나주의 슈리브포트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클라이번은 세계 최초로 인공위성 발사에 성공한 러시아가 의욕적으로 시작한 문화 프로젝트인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우승하면서 일약 미국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이 같은 인기에 힘입어 클라이번이 러시아 지휘자 키릴 콘드라신과 발표한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 음반은 클래식 음반 사상 처음으로 100만장이 팔리며 빌보드 차트에 125주나 머무는 기록을 남겼다. 클라이번은 냉전시대 긴장 완화를 위해 노력한 대가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으로부터 우호훈장(2004년)을 받았고, 조지 W 부시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으로부터도 각각 자유훈장(2003년)과 국가 예술훈장(2010년)을 받았다. 최재헌 기자 goseoul@seoul.co.kr
  • 경계, 넘어야 예술이지

    경계, 넘어야 예술이지

    우리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음악 발전에 대한 노력도 없이 예술가랍시고 잰 척하는 모습이 그렇게 싫었다. 국악계의 줄서기에 치가 떨렸다. 어떻게 우리 음악을 해 나가야 하는지 고민했다. 마음 맞는 사람들을 모아 연구 모임을 시작했다. 2006년, 아쟁 연주가 신현식(34)은 그렇게 친구들을 만났다. 추구할 음악 방향에 대해 어느 정도 가닥을 잡고 틀거리를 만들어 갔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출신 20대 연주자들이 의기투합해 프로젝트 국악그룹이 탄생했다. 신현식을 비롯해 하세라(가야금), 김진혁·김지혜(타악), 이봉근(소리), 정송희(피아노, 작·편곡)가 모인 ‘앙상블 시나위’다. 그게 2007년. 음악학원을 빌려 수업이 없는 새벽 시간에 연습을 하고, 근근이 음악을 만들며 공연하기를 2년. 눈여겨보던 공연기획자를 만나 음반을 내고 초청 무대도 조금씩 늘었다. 2011년 5월에는 서울 중구 흥인동 충무아트홀의 상주예술단체로 지정됐다. 충무아트홀을 기반으로 다양한 시도를 한 공연을 올리면서 지난해에는 KBS국악대상에서 연주(단체)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앙상블 시나위의 목표는 확고하다. “이 시대의 전통을 우리가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우리 음악이라는 양식을 바탕으로 지금의 이야기를 전달하면서 새로운 전통을 쌓아 가야 한다. 우리 것을 지키면서 다른 장르와의 융합을 시도하고 우리 음악의 현재와 변화하는 모습을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신현식) 연극, 무용, 재즈, 클래식 등 장르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눈이 번쩍 뜨이고 귀가 뻥 뚫리는’ 공연을 만들어 왔다. 2일 충무아트홀 중극장 블랙에서 여는 ‘시간 속으로-판소리, 통섭의 가능성’은 연극과 판소리 눈대목을 섞었다. 이미 지난 1월 서울 마포구 대흥동 마포아트센터에서 선보여 융합의 효과를 검증받았다. “우리 음악이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번 공연에서는 내용을 익히 알고 있는 판소리로 감동을 되새기는 시간이 되길 바랐어요.”(이봉근) 바람은 객석으로 확실히 전달됐다. 심봉사가 눈을 뜨는 ‘심청가’의 눈대목에서는 배우 고수희가 심청을 애틋하게 표현하고 이봉근이 절절하게 받아치면서 객석에 나직한 흐느낌이 퍼졌다. 월북 작가 박기동이 죽은 누이를 그리워하며 지은 시 ‘부용산’을 바탕으로 작곡한 음악과 앙상블 시나위의 새 음반 ‘시간 속으로’에 담긴 ‘하루 종일’을 엮어 선보이자 그립고도 짠한 마음이 밀려들어 왔다. 가야금과 피아노의 경쾌함과 아쟁의 묵직함, 장구와 북 등 타악의 박자감에 마음을 울리는 목소리를 가진 배우 고수희와 김주완의 연기가 덧대어져 공연 내내 희로애락이 휘몰아쳤다. 이번 공연은 극단 골목길의 박근형 연출가와 함께 하는 다섯 번째 작업이다. 2011년 앙상블 시나위 공연을 본 박 연출가가 신현식에게 “한번 재미있게 놀아보자”고 제안했고 그해 8월 연극 ‘햄릿 업데이트’에 참여했다. 9월 김덕수 한예종 교수와 소리꾼 오정해가 합세해 ‘전통에서 길을 찾다’를 선보였고 이후 김시습과 단종, 세조의 이야기를 시적으로 구성한 ‘전통에서 말을 하다’(2012년 2월), 현대무용·발레·씻김굿 등을 접목한 ‘전통에서 춤을 추다’(2012년 3월)를 연달아 올렸다. 경계를 넘나드는 융합의 시도는 앙상블 시나위에게 존재의 이유이자 음악의 지향점이다. 지난해 10월 프라임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공연한 ‘영혼을 위한 카덴차’에서 전통음악과 서양음악의 결합 가능성을 확인했다. 올해는 일본 아오모리 예술원의 국제교류기금 지원을 받아 한국과 중국, 일본 7개 도시에서 공연할 계획이다. 앙상블 시나위는 이 공연에서 음악감독을 맡았다. 매년 1~2월 전남 화순에서 충전 겸 음악 작업을 아우르는 ‘산공부’를 한다는 앙상블 시나위는 공연을 위해 지난 27일 서울에 도착했다. 오자마자 기자를 만났으니 피곤할 법도 한데 멤버들에게 생기가 돈다. 이 기간에 3집 음반에 들어갈 곡 일부를 준비했고 멤버들의 장기 계획까지 마무리했단다. 연습실에 들어가더니 주섬주섬 악기를 펼쳐놓고 또 연습이다. “앙상블 시나위는 즐거운 배움터이고 모든 것을 쏟아내는 삶”이라고 여기는 이들에게서 20~30대 젊은 세대의 전통음악에 대한 뜨거운 열정이 느껴진다. 최여경 기자 kid@seoul.co.kr
  • “시간 쪼개 하던 노래, 경찰복 벗고 원없이 할래요”

    “시간 쪼개 하던 노래, 경찰복 벗고 원없이 할래요”

    “35년 넘게 경찰로 사는 동안 노래가 있어 참 행복했습니다. 몇 달 후 정든 제복을 벗고 나면 제 소중한 인생 2막을 무대에서 마이크 잡고 열어 갈 생각입니다.” 환갑의 나이에도 한 달에 서너 번씩 음악실에서 노래 연습을 하는 가수가 있다. 그의 직업은 경찰이다. 서울서초경찰서 소속 우동하(60) 경정이다. 오는 6월 말 정년 퇴직을 하는 그는 얼마 전 서초경찰서 청문감사관을 끝으로 업무 일선에서 물러났다. 어려서부터 노래 하나는 자신 있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고향(경북 봉화) 노래자랑에서 ‘한 많은 대동강아’를 불러 우수상을 받았다. 다들 열 살배기 트로트 신동이 탄생했다고 놀라워했다. 악기에도 재능이 많았다. 육군 군악대에서 트럼본을 연주했던 아홉 살 많은 형은 그의 우상이었다. 성당에서 드럼, 기타, 피아노 등의 악기 주법을 두루 섭렵했다. 1972년 가수가 되려는 그의 꿈이 실현되는 듯했다. 대구 MBC 신인가요제에서 우수상을 탔다. 하지만 가난이 발목을 잡았다. “형이 복막염에 걸렸는데 의료보험이 없어서 논, 밭, 집을 다 날렸어요. 작곡가는 가수 하고 싶으면 돈을 가져오라고 하고…. 집에서도 가수로 밥벌이할 수 있겠냐고 엄청나게 반대했죠.” 현실의 벽에 부딪힌 청년은 결국 경찰이 됐다. 1977년 스물네 살 때였다. 정보·보안 형사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날들이 이어졌다. 그러다 1993년 운명처럼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격무 때문에 부인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동료를 보고 노랫말을 쓴 것이 계기가 됐다. ‘그럼 꿈이 있었지. 못다 했던 우리 사랑 어디에서 이룰까’라는 가사에 곡을 붙여 노래 ‘너를 보내며’를 만들었다. 이런저런 곡들을 모아 12곡짜리 음반을 냈다. “7000만원짜리 전세 아파트에 살 때였는데 음반 낸다고 적금 깨서 3800만원을 투자했어요. 아내와 엄청 싸웠죠.” 그래도 1만 2000장이 팔렸다. 본전치기는 됐다. 이후 입소문이 나면서 그는 각종 경찰 행사의 섭외 1순위가 됐다. 내부 행사는 물론이고 양로원, 독거노인 등을 위한 자선 무대 등 외부 행사에도 종종 나선다. 스스로 콘서트라고 이름 붙일 만한 행사가 지금까지 12차례에 이른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6년 전 석가탄신일에 서울 은평구 진관사에서 노래를 했을 때다. “2500명이 모인 큰 무대에서 사람들의 갈채를 받았어요. 그때 저 스스로 ‘나는 천생 가수를 해야 할 사람’이라고 말했어요.” 경찰이 너무 노래에 빠져 사는 게 아니냐는 주위의 시선도 물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결혼 생활 30년 중 집에 들어간 게 절반도 안 될 만큼 바빴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퇴직 하루 전날 경찰복을 입고 신나게 콘서트를 하고 싶어요. 그동안은 시간을 쪼개서 노래했는데 앞으로는 눈치 볼 일도 없으니까 마음껏 하렵니다.” 글 사진 조은지 기자 zone4@seoul.co.kr
  • [부고] 독일 명지휘자 볼프강 자발리슈

    독일 출신 거장 지휘자 볼프강 자발리슈가 지난 22일(현지시간) 남부 바이에른주의 한 소도시 자택에서 숨졌다고 AP통신 등이 24일 보도했다. 89세. 자발리슈는 뮌헨 바이에른 교향악단(1971∼92)과 미국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1993∼2003)를 오랜 기간 이끌어온 명지휘자이다. 오스트리아 빈 심포니 오케스트라, 영국 런던 필하모닉, 일본 NHK 오케스트라 등에서도 활동했다. 뮌헨 태생의 자발리슈는 1953년 사상 최연소인 30세에 베를린 필하모닉의 지휘봉을 잡아 세계 음악계에 이름을 알렸다. 그가 데뷔 무대를 가졌던 이탈리아의 국립 오페라하우스 ‘라 스칼라’는 1993년 외국인 음악가로는 처음으로 그에게 최고 영예의 ‘황금지휘봉 상’을 수여했다. 자발리슈는 1993년 재독 작곡가 윤이상의 음반 작업에 참여하고, 이듬해에는 바이올리니스트 장영주와 협연하는 등 한국 음악인들과도 인연이 깊었다. 바이에른 교향악단은 25일 주빈 메타의 지휘로 베르디의 ‘레퀴엠’을 자발리슈 헌정 공연으로 무대에 올렸다. 이순녀 기자 coral@seoul.co.kr
  • 그가 온다, 바로크 음악의 진짜 고수

    그가 온다, 바로크 음악의 진짜 고수

    마크 민코프스키(51)는 원래 바순 연주자로 출발했다. 지극히 동구권스러운 성(姓)은 폴란드계인 아버지 때문. 그는 파리에서 태어난 프랑스인이다. 바이올리니스트였던 외할머니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음악을 배웠고, 미국의 피에르 몽퇴 기념 학교에서 찰스 브룩을 사사했다. 그가 주목을 받기 시작한 건 스무 살 때 바로크시대 음악을 본래 형태로 연주하는 원전연주(原典演奏) 단체 ‘루브르의 음악가들’을 꾸리면서부터다. 발표하는 앨범마다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독일과 이탈리아 작곡가에 가려져 있던 프랑스의 바로크 작곡가 륄리나 라모, 마레, 몽동비유 등을 복권했다. 유독 한국과 인연이 없던 민코프스키가 새달 5일 경기 분당 성남아트센터에서 첫 내한공연 ‘마크 민코프스키&루브르의 음악가들’을 연다. 하이든과 모차르트 등 고전파를 넘어 슈베르트와 바그너 등 낭만주의 시대까지 탐험해온 민코프스키가 이번에 준비한 메뉴는 라모(1683~1764)의 ‘상상교향곡’과 글루크(1714~1787)의 ‘돈 주앙의 향연’. 웬만한 바로크음악 마니아가 아니라면 제목조차 생소할 터. 그럴 법도 하다. ‘상상교향곡’은 프랑스 작곡가 라모의 ‘이폴리트와 아리시’, ‘플라테’, ‘다르다노스’, ‘아나크레옹’ 등 11개 오페라 속 관현악 부분만을 따로 추려낸 교향곡이다. 관현악 천재로 평가받았지만, 별도의 교향곡을 남기지 않은 라모에 대한 민코프스키의 진심 어린 헌사인 셈. 2002년 ‘루브르 음악가들’ 창단 20주년을 맞아 그가 직접 편곡했다. ‘짜릿하고 환상적인 라모의 작품을 훌륭하게 해석했다’(뉴욕 타임스)는 호평을 얻자 2005년에는 ‘상상교향곡’ 음반도 발표했다. 2008년에는 비슷한 구성으로 ‘상상 교향곡 속편’ 연주회까지 열었다. 오스트리아 작곡가 글루크의 ‘돈 주앙의 향연’은 발레 곡이다. 춤 동작을 눈에 보듯 묘사했다. 단순히 춤만 있는 게 아니라 드라마가 담긴 발레다. 3악장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1761년 빈의 부르그시어터에서 초연됐다. 5만~15만원. (031)783-8000.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우린 ‘얼굴들’이었죠… 이제 정체성 찾아 떠나요

    우린 ‘얼굴들’이었죠… 이제 정체성 찾아 떠나요

    ‘인간이 존재의 시작을 찾아나섰다. 자신의 시작이 된 어머니, 그 어머니를 낳은 어머니, 그 어머니의 어머니…. 미토콘드리아 DNA를 분석하며 거슬러 가보니, 태초에 흑인 여성이 있더라. 같은 맥락으로, 음악을 실마리 삼아 시스터즈의 기원을 찾아보니, 숙자매와 펄시스터즈, 코리아키튼즈를 거쳐 김시스터즈에 다다르더라. 손녀뻘인 미미시스터즈가 시스터즈의 계보도를 그려 음악극으로 만들었으니, 이름하야 ‘시스터즈를 찾아서’라더라.’ 하늘거리는 빨간색 원피스에 빨간 빵모자와 검은 망사 장갑을 매치하고, 검은색 선글라스를 낀 채 표정은 무덤덤하게. 지난 20일 서울 마포구 동교동에 있는 한 카페에서 만난 미미시스터즈(이하 미미들)는 익숙한 그 모습으로, 자신들이 쓴 음악극을 조목조목 설명했다.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정이라고 할까요. 우리가 동경한 ‘시스터즈의 낭만과 유머’를 찾아가는 거죠.” 가슴 크기로 호칭을 정했다는 미미들 중 ‘작은’ 미미의 말이다. 미미들은 2008년 ‘장기하와 얼굴들’로 데뷔했다. 복고풍 의상과 덤덤한 표정, 요상한 춤으로 관심을 끈 ‘얼굴들’이었다. 잘 활동하는가 싶더니 2011년 초 별안간 독립하고 1집 ‘미안하지만… 이건 전설이 될거야’를 내놓았다. 그들은 이를 두고 ‘합의이혼’이라고 했다. “처음 무대에 섰을 때는 그저 재미있게 놀자는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관심을 무척 많이 가지시는 거예요.” “사람들에게 어떻게 비쳐질까 고민하게 됐죠.” 데뷔부터 1집까지 과정을 묻자 미미들은 한몸인 양 주거니 받거니 대답을 완성해 나갔다. “사람들이 미미들에게 원하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고 “선글라스에 가려진 채로 잊힐까 봐” 두렵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음악을 해보자”는 의지로 독립했다. 그런데 음반 반응이 엇갈렸다. 쟁쟁한 음악인들과 작업했더니, 미미들이 피처링해 준 느낌이라는 말도 들렸다. 덜 익은 채로 대중 앞에 나선 미미에게 필요한 것은 ‘존재의 이유’였다. 그즈음 만난 기획전에서 답을 찾았다. 한국영상자료원이 작곡가 김해송과 가수 이난영, 애자·숙자·민자로 구성된 김시스터즈를 조명한 ‘가문의 영광’전이다. “김시스터즈는 미국 슈프림스보다 먼저 데뷔한 걸그룹이에요. 부모에게 철저히 음악교육을 받아서 다룰 줄 아는 악기가 세 분이 합쳐 스무 개가 넘는 재능 집합체죠. 시스터즈 중에서도 독보적인 존재! 그런데 기억하는 사람이 많지 않으니….”(큰 미미) 선배 ‘시스터즈’를 연구하고, “뒷조사를 하듯” 여기저기 수소문을 했다. 펄시스터즈의 배인순, 코리아키튼즈의 윤복희와 전화 연결이 됐다. 유명을 달리하거나 해외에 있어서 연락이 닿지 않는 때도 있었다. 큰 미미가 한 모임에서 만난 남인우 연출이 취지에 ‘대공감’하면서 의기투합했다. 미미들이 일기처럼 쓴 글들을 극으로 다듬고, 키보드 연주자 고경천이 음악감독으로 참여하면서 음악극 형식이 됐다. 우리나라 여가수들의 역사를 따라가는 시간여행으로 확장했다. 두산아트센터의 신진작가 지원 프로젝트 ‘두산아트랩’에 선정돼, 새달 1~2일 서울 종로구 연지동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 무대에 올리게 됐다. 1시간 남짓한 공연에서 미미들은 자작곡 3곡을 부르고, ‘커피 한 잔’, ‘거짓말이야’, ‘첫사랑’ 등을 노래한다. “관객에게는 시대를 풍미한 시스터즈를 돌아보는 계기를 주는 것, 우리에게는 하고 싶은 것과 원하는 것을 알게 된 것, 이게 공연의 의미죠.”(작은 미미) “공연을 준비하면서 진짜 미미들을 찾았으니, 자신있게 2집을 내려고요. 1집에서는 뭣 모르고 호기롭게 전설이라고 했는데, 이젠 달라졌다는 뜻에서 2집은 ‘정신차렸어, 본격 1집’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큰 미미) 이번 공연은 미미들이 목적지로 가는 과정의 하나다. 최종 종착점은 ‘시스터즈 다큐멘터리’ 제작이다. “시스터즈들은 굉장히 매력적인 역사를 만들어냈죠. 이시스터즈는 멤버들이 출산을 번갈아가며 10년 동안 활동했고요. 이쁜 게 잘못인가, 누가 뭐 사랑해 달랬나(펄시스터즈의 ‘아저씨가 좋아요’)라고 당당하게 노래하기도 하죠. 이번 공연에서는 그런 시스터즈 전설을 맛보게 될 겁니다.” 최여경 기자 kid@seoul.co.kr
  • [명사가 걸어온 길] 4. 한국 록의 대부 신중현

    [명사가 걸어온 길] 4. 한국 록의 대부 신중현

    1960∼70년대 기타 하나 들고 혜성같이 나타나 한국 가요계를 풍미했던 신중현(75). 그에겐 ‘록의 대부’며 ‘록의 비조’ ‘6현의 연금술사’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한 세대가 지난 지금 많은 가수와 음악인들은 역사의 기억 너머로 묻혀졌던 그의 묵은 음악을 다시 꺼내든다. 그래서 사람들은 신중현을 ‘살아있는 전설’이라 부르길 주저하지 않는다. 당대의 숱한 히트곡과 스타들을 만들고 배출한 불세출의 명인이지만 정작 그의 삶은 굴곡으로 점철돼 있다. 그 질곡의 길을 걷게 한 단초는 배고픔과 외로움이라고 신중현은 말한다. 하지만 그의 삶과 분신인 음악에 담긴 메시지는 한 가지, ‘새로운 것들을 향한 멈추지 않는 열정’. 그래서일까, 한국 가요계의 이단아이자 진보주의자였던 그는 2006년 은퇴를 앞두고 내놓은 자서전 제목도 이렇게 썼다. ‘내 기타는 잠들지 않는다.’ 2006년 7월 신중현이 전격 은퇴 선언을 한 뒤 마지막 전국 순회공연을 준비할 무렵,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은 ‘한국 록의 대부’라는 제목으로 신중현의 살아온 이야기를 실었다. 최근 경기 용인시 양지면의 거처에서 만나 ‘월스트리트저널 기사를 기억하느냐’는 첫 질문에 신중현은 “나도 의외였다”고 했다. 유난히 작은 키에 ‘작은 거인’이란 별명이 겹쳤다. 신장이 얼마나 되느냐는 미련한 질문에 “한 번도 재 본 적이 없어 모른다”며 무심코 던진 한마디. “돌이켜 보면 내가 살아온 인생은 꼭 곡예 같다.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줄 위에서 움직이는 꼴이라고 할까.” 용인 거처는 은퇴와 함께 1986년부터 20여년간 음악 활동의 아지트로 썼던 서울 송파구 문정동 ‘우드스탁’ 생활을 마감하고 2007년 새로 튼 보금자리. 거처 겸 연습실, 작은 공연장을 갖춘 공간이다. 지금도 대패며 망치를 들고 구석구석을 다듬고 만들고 있다. 혼자 작업실을 꾸미느라 힘들지 않았느냐고 묻자 “어린 시절 그 험한 고생을 했는데 이까짓 거야”라며 초년 시절로 이야기를 돌렸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만주에서 이용업을 하며 큰돈을 벌었다고 한다. 6·25전쟁 통에 한 푼도 건지지 못한 채 충북 진천으로 옮겨 어렵게 살아야 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1년 새 아버지와 어머니를 모두 사별한 고아. 동생을 친척 집에 맡기고 상경해 제약회사를 하는 친척 집에 얹혀살았다. “공장 일이 너무 힘들고 서러웠어요. 판자 쪼가리에 군용 전화선을 매어 만든 기타를 치는 게 유일한 위안이었습니다.” 중학교 때 공장 일을 해 모은 돈으로 기타를 사서 혼자 연습하다가 고교 2학년 때 집을 뛰쳐나와 서울 종로 바닥을 전전했다. 당시 종로엔 ‘기타 잘 치는 신중현’이란 명망이 파다했고 미8군 무용수 눈에 띄어 오디션을 거쳐 미8군 플로어쇼에 데뷔한 게 음악 인생의 시작이다. “그때가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었어요. 보수도 당시로선 큰돈이었고 미군부대 공연 때마다 최상급 대우를 받았으니까요.” 언제부터인가 ‘재키’ ‘히키’ ‘스코시’라는 별명이 미군들 사이에 퍼졌고 공연이 끝나면 악수를 청하는 미군들이 줄을 섰다. 미군 정보부 요원들이 출입하는 용산역 건너편 ‘시빌리언 클럽’에서 1960년 가졌던 첫 기타 독주 공연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연주가 끝난 뒤 떨려서 인사도 못 하다가 얼떨결에 고개를 들어 보니 미군 전원이 기립박수를 치고 있는 게 아닙니까.” 미8군 스타 생활을 5년 정도 했을까. 베트남전이 터지고 주한 미군이 베트남으로 빠져나가면서 미군부대 쇼도 시들해졌다. 미8군 생활을 접은 건 단순히 그 때문만은 아니었다. “공연을 하면서 늘 외국곡을 그대로 따라 연주하고 부르는 데 회의가 들곤 했지요. 한국적인 음악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커져 가던 때였습니다.” 당시 한국 가요계는 남진, 나훈아로 대변되는 트로트의 세상. ‘한국 가요계를 바꿔보자’며 국내 가요시장에 뛰어들었지만 대중들은 그를 철저히 외면했다. 그가 천착했던 로큰롤이며 사이키델릭 록은 낯설기만 한 것이었다. “우리 가요계의 수준이 서방세계의 음악과 너무 차이 났어요. 당시 미군부대 공연 때 자신들의 문화를 지키기 위해 총을 든다는 미군들의 말은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왜 우리는 그토록 훌륭한 콘텐츠를 갖고 있으면서도 문화적 자부심을 갖지 못하는 걸까.’ 그 창피함과 문제의식은 이후 한국적 특성을 살린 록으로 뻗친다. 한국 최초의 록 밴드 ‘애드4’(Add4)를 시작으로 그룹 ‘조커스’ ‘던키스’ ‘퀘스천스’ ‘더 맨’ ‘신중현과 엽전들’을 결성해 실험적인 음악을 구가했지만 빛을 보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룹 활동을 하면서 발굴해 낸 스타들은 숱했고 음반사와 가수들은 그의 곡을 받기 위해 줄을 섰다고 한다. ‘빗속의 여인’이며 ‘커피 한잔’ ‘님아’ ‘떠나야 할 그 사람’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 ‘미인’…. 그리고 그 노래들을 부른 펄시스터즈, 김추자, 장미화, 장현, 박인수…. 인생의 굴곡은 사이클을 이룬다고 했던가. 전국에 ‘신중현표’ 음악이 깔리고 입을 통해 번져 갈 무렵, 그는 군사정권의 칼 앞에 무릎을 꿇고 만다. ‘괘씸죄’로 인한 세상으로부터의 격리다. “대통령 찬가를 만들어달라는 전화를 받았어요. 한마디로 잘라 거절했던 게 미운털이 됐던 것 같아요.” 죄목은 ‘대마초 공급책’이다. “미군부대 공연장엔 당시 월남전에 반대하는 히피들이 많이 모였어요. 대마초며 마리화나를 상습적으로 즐겼던 그들은 우리 집에도 드나들었고 집에 그런 환각제들이 널려 있었습니다.” 모진 고문과 심문 끝에 정신병원과 교도소 신세를 졌고 그가 만든 100여곡이 금지곡으로 묶였다. 그에겐 사형 선고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1987년에야 그의 곡들이 해금됐지만 ‘대마초 사건’은 지금 생각해도 억울하기만 한 생트집이다. “따져 보면 저를 지옥으로 몰아간 이벤트지요. 어떻게 그 일을 잊을 수 있겠어요.” 이후 소공연을 하면서 기타 산조 ‘무위자연’이며 ‘김삿갓’ 같은 한국적인 곡들을 발표했지만 회생 기미가 없었다. 마침내 2006년 은퇴선언을 하고 용인에서 사실상 칩거에 들어갔다. 그런 그를 다시 세상 밖으로 불러낸 건 2009년 미국 기타 전문 회사 펜더로부터 헌정 기타를 수여받은 일이다. 에릭 클랩턴, 제프 벡, 에디 반 헤일런 등 기라성 같은 음악인들만 받았다는 그 기타다. 세계에선 여섯 번째, 아시아에선 처음이라는 펜더 기타 헌정. “마치 신의 선물 같았어요. 아직 할 일이 남아 있다는 계시라고나 할까.” 그는 ‘신의 부름’이라는 그 사건 이후 또 다른 삶을 시작했다고 거침없이 말한다. 무엇보다 록 음악이 태동된 본향으로부터 이어진 그에 대한 관심이 놀랍기만 하다. 미국 음반사 ‘라이트 인 디 애틱’은 2011년 사이키델릭 록 모음집과 그가 제작한 김정미의 ‘나우’를 발매한 데 이어 ‘신중현과 엽전들’ 1집을 CD로 제작해 현지 시장에 내놓았다. 지난해 9월엔 미국 음반사의 초청으로 미국 로스앤젤레스 무대에도 섰다. 오는 10월 그 음반사의 초청으로 같은 장소에서 재공연도 예정돼 있다. 칩거에 들었던 황혼의 음악인을 다시 일으켜 세운 그 힘은 어디에서 나올까. “좀처럼 뒤돌아볼 줄 모르는 천성 때문인 것 같아요. 음악 하는 사람은 먼저 치열한 수양을 통해 실력을 쌓아야 하고 무엇보다 자신만의 확고한 철학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요즘 팬들을 몰고 다니는 젊은 아이돌 가수들을 보면 안타까운 생각이 들 때가 많아요. 인기가 하늘을 찌를 것 같지만 실력이 바탕이 되지 않는다면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사상누각이지요.” 실제로 신중현이 ‘6현의 연금술사’라는 별명을 얻게 된 바탕엔 뼈를 깎는 수행과 노력이 있다. 미8군 데뷔 전 기타 교습서며 주한 미군방송 AFKN을 통해 접한 곡들을 손이 갈라지도록 연습했다. 1960년대 초반엔 해군 군악대장을 지낸 이교숙 선생을 사사하며 화성법을 배웠고 그 덕에 작곡에 천착했던 것도 사실이다. 약지를 제외한 네 손가락 중 세 손가락으로만 연주하는 ‘3·3주법’이며 5음계를 적용한 화성법이나 곡 편성도 전 세계에서 그만이 할 수 있는 독창적인 기법으로 소문나 있다. 그러면 그가 말하는 철학은 또 무엇일까. 놀랍게도 노자와 장자 이야기를 불쑥 꺼낸다. ‘대마초 사건’으로 교도소에 수감됐을 때 두 살 연하인 부인 명정강씨가 가져다준 노자와 장자 책은 그의 음악과 인생의 바탕이 되었다고 한다. “낮은 자세로 살다 보면 다칠 게 없어요. 책을 보면서 마음을 비울 때 많은 것을 얻게 됐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세상에 많은 도움을 주면서도 낮은 데로 묵묵히 흐르는 물을 이길 것은 없지 않습니까.” 그에게 낮음의 철학을 깨우치게 한 책들을 소개한 부인은 미8군 시절 만난 여성 그룹 드러머 출신. 록밴드 시나위의 리더인 큰아들 대철, 기타와 키보드에 모두 능한 둘째 아들 윤철, 드럼 스틱을 잡은 셋째 석철은 모두 아버지 신중현의 길을 따르고 있는 내로라하는 음악인들이다. 4부자는 지난해 12월 함께 공연 무대에 서기도 했다. “대견합니다. 돈벌이에 매달리지 않는 음악을 하고 있다는 게 걱정스러우면서도 흐뭇하지요.” 모두가 부러워하는 한국 대중음악계의 실력자라는 세 아들을 포함해 가족들에겐 못난 가장이자 아버지였다고 말하는 신중현. “지금은 떨어져 사는 부인과의 사실상 별리도 음악에 대한 고집 때문이었다”는 말을 전하는 그의 얼굴 표정이 어두웠다. 그 숱한 히트곡과 스타들을 만들었으면서도 드러난 스캔들 한 번 없었다는 그의 꼿꼿하고 고집스러운 음악 인생이 고스란히 읽히는 대목이다. 그가 남은 생애에 꼭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일까. 평생을 받쳐 천착했던 한국적인 음악이다. 그래서 가장 애착이 가는 노래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미인’과 ‘아름다운 강산’을 입에 올린다. 각설이 타령조를 록에 얹은 ‘미인’과 국악풍의 전설 같은 노래. 그토록 열정을 쏟아 만들고 세상을 향해 외쳤지만 번번이 외면받았던 노래들을 요즘 젊은 가수들이 리메이크하고 다시 찾아 불러 신이 난단다. 요즘은 자신의 음악을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려 정리하는 작업에 매달려 있다. 작은 공연을 생중계할 수 있는 공연장 만들기도 한창이다. 6가닥의 기타 줄에 인생의 희로애락을 담아 살았고, 또 그렇게 살아갈 노장의 버팀목은 철석같은 의지일 것이다. ‘내 기타는 잠들지 않는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교보문고, 국내 첫 정액제 ‘샘’ 출시… ‘빌려보는 전자책’ 논란

    교보문고, 국내 첫 정액제 ‘샘’ 출시… ‘빌려보는 전자책’ 논란

    국내 최대 서점인 교보문고가 전자책을 대여해 주는 회원제 서비스를 내놓으면서 출판계와 정보기술(IT) 업계가 향후 파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모든 영역의 디지털화가 피할 수 없는 흐름인 만큼 이를 잘 활용하면 ‘전자책 업계의 아이튠즈로 키울 수 있다’는 낙관론이 있는가 하면, 과거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가 국내 음반 시장 몰락에 영향을 미쳤듯, 이 서비스가 출판 시장 전체를 위축시킬 수도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22일 출판계에 따르면 교보문고는 지난 20일 국내 최초의 회원제 전자책 서비스 ‘샘’(sam)을 공개했다. 샘은 전자책을 낱권으로 구매하는 기존 방식 대신 매달 일정 금액을 내고 전자책을 빌려볼 수 있다. 가장 저가인 ‘샘5’ 요금제의 경우 월 1만 5000원(12개월 약정 기준)으로 매달 5권을 빌릴 수 있다. 권당 대여기간은 6개월이며, 추가 요금을 내면 빌린 책을 살 수도 있다. 월 4000원을 추가(24개월 약정)하면 전자책 전용 단말기(아이리버 EB12-4GB·14만 9000원)도 제공받는다. 교보문고 측은 이 서비스가 전자책 가격을 권당 3000원대로 낮추는 효과를 내 도서 시장 활성화를 이끌어낼 것으로 보고 있다. 저가 메리트의 효용을 체감한 독자들이 대거 이 서비스에 참여하면 장기적으로 국내 출판시장도 커져 애플 ‘아이튠즈’나 ‘앱스토어’에서처럼 ▲사용자(독자) ▲콘텐츠 생산자(출판사) ▲플랫폼 제공자(교보문고) 모두가 이득을 보는 생태계가 구축된다는 논리다. 하지만 일부 출판계나 IT 업계에서는 이 서비스가 어렵사리 사회적 공감대를 이끌어 낸 도서정가제를 무력화시켜 안 그래도 힘든 출판업계를 더 어렵게 만들 것이라고 주장한다. 과거 음원시장에 ‘멜론’ 등 스트리밍 서비스(월 3000원 안팎에 전곡 무제한 듣기 가능)가 등장한 것과 같은 상황이라는 것이다. 공들여 생산한 콘텐츠가 헐값에 유통되는 상황이 가속화돼 양서는 사라지고 제작비가 저렴한 책들만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다. 이를 반영하듯 교보문고 샘 출시를 전후해 경쟁업체인 ‘예스24’와 ‘알라딘’도 초저가 전자책 패키지를 선보이며 맞불을 놓고 있다. 알라딘이 내놓은 ‘살림 지식 플러스 에디션’의 경우 권당 가격으로 환산하면 700원 정도에 불과하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전자책 문화가 발전하려면 콘텐츠 제공사와 유통사의 협력이 필수적인데, (샘 서비스는) 교보문고가 (협력 없이) 힘으로 밀어붙여 추진하고 있다”면서 “교보 측이 문화상품을 바라보는 안목이 크게 부족하다”고 말했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아이돌밴드‘씨엔블루’ 매력 탐구

    아이돌밴드‘씨엔블루’ 매력 탐구

    아리랑TV는 20일 오전 7시에 방송하는 ‘코리아 투데이’에서 다양한 매력을 가진 아이돌밴드 씨엔블루를 소개한다. 자작곡으로 채운 미니앨범 ‘리블루’(Re:BLUE)를 내고 국내 음악방송과음악차트 상위권에 오르는가 하면 일본 최대 음반 유통사인 타워레코트 판매차트에서 연일 1위를 기록하고 있다. 미국 빌보드 월드 차트 1위에 오르며 세계 진출 가능성도 입증했다. 음악, 연기, 예능 등 여러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는 씨엔블루의 솔직담백한 이야기를 들어본다.
  • [부고] ‘비틀스 음악적 스승’ 英 록가수 토니 셰리던

    영국의 전설적인 그룹 비틀스의 음악적 동료이자 스승 역할을 한 영국의 록가수 토니 셰리던이 지난 16일(현지시간) 독일 함부르크에서 별세했다고 AFP통신이 보도했다. 72세. 가수 겸 기타리스트인 셰리던은 1960년대 초 독일에서 존 레넌, 폴 매카트니, 조지 해리슨, 그리고 비틀스의 초창기 드럼연주자인 피트 베스트 등 4명을 만나 비틀스 초기 음반들의 녹음 작업을 함께했다. 당시 함부르크 클럽에서 유명 인사였던 셰리던은 비틀스 멤버들과 함께 ‘토니 셰리던과 비트 브라더스’라는 이름으로 ‘마이 보니’, ‘더 세인츠’, ‘에인트 쉬 스위트’ 등의 노래를 녹음했다. 매카트니는 셰리던이 비틀스 밴드에 준 영향력에 감화돼 그를 ‘스승님’이라고 불렀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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