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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지윤, 첫 솔로 활동 “포미닛 해체 가슴 아파”

    전지윤, 첫 솔로 활동 “포미닛 해체 가슴 아파”

    걸그룹 포미닛 해체 후 전지윤이 활동에 기지개를 켰다. 새 소속사 JS E&M에 둥지를 튼 전지윤은 11월 2일 0시 데뷔 이래 첫 솔로 음반 ‘낮 앤드(AND) 밤’을 발표한다. 이와 관련 전지윤은 “멤버들과 오랜 시간 상의했고 각자의 진로를 고민했다”며 “우리도 마지막까지 해체란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다 보니 지금에 이르렀다. 당황스러웠을 팬들에게 너무 미안했고 멤버들도 가슴이 많이 아팠다”고 떠올렸다. 그는 직접 프로듀싱한 이번 싱글에 타이틀곡 ‘내가 해’와 수록곡 ‘자석’ 등 두 곡의 자작곡을 담았다. 그간 포미닛 앨범에서 작곡 재능을 보여준 그는 자신의 역량을 제대로 펼쳐 보였다. 그는 “지금 내가 바로 홀로서기를 할 수 있는 것도 포미닛 덕”이라며 “포미닛은 내 경험의 뼈대이고 이제 스스로 살을 붙여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포미닛은 2009년 데뷔 이래 불화설 한번 없던 팀이었고 올해 2월에는 새 앨범도 낸 터여서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결정이었다. 소속사 큐브엔터테인먼트와 7년의 전속계약 만료와 함께 팀이 해체하면서 멤버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큐브와 재계약한 현아를 제외하고 새 소속사를 찾은 네 명의 멤버 중 전지윤이 가장 먼저 활동을 알렸다. 사진 = 서울신문DB 연예팀 seoulen@seoul.co.kr
  • 파이스트무브먼트X박재범 ‘SXWME’ 19금 뮤직비디오

    파이스트무브먼트X박재범 ‘SXWME’ 19금 뮤직비디오

    힙합그룹 파이스트무브먼트(Far East Movement)와 가수 박재범의 콜라보레이션 곡 ‘SXWME’의 뮤직비디오가 지난 24일 공개됐다. 제목부터 이상야릇한 이 곡의 뮤직비디오에는 뇌쇄적 매력을 지닌 미녀 두 명이 속옷차림으로 등장한다. 이들은 다양한 자세로 박재범을 유혹하는가 하면 서로 뒤엉켜 사탕을 함께 먹는 등의 장면을 연출한다. 이처럼 노출뿐만 아니라 동성애적 코드가 담긴 뮤직비디오는 19금 딱지를 피할 수 없게 됐다. 앞서 음반 발매를 앞두고 진행된 생중계 방송에서 제시와 몬스타엑스 아이엠은 ‘SXWME’의 뮤직비디오를 보고 나서 “뮤직비디오가 너무 야해서 공개할 수 없다. 나의 리액션으로 확인해달라”, “우유가 흘러내린다. 뭘 빨고 있는거냐”고 거침없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21일 발매된 파이스트무브먼트 정규 앨범 ‘아이덴티티(IDENTITY)’에 수록곡 ‘SXWME’는 AOMG의 수장 박재범이 참여한 1990년대 사운드의 느낌을 낸 힙합, 알앤비 바운스 트랙이다. 정규 앨범에는 이 밖에도 윤미래, 효린, 어반자카파등의 국내 감성 아티스트와의 콜라보가 담겼다. 한편 파이스트무브먼트는 일본-중국계 혼혈인 케브 니시, 재미교포 프로그레스, DJ버맨 등으로 구성된 다국적 힙합 그룹이다. ☞ ‘SXWME’ 뮤직비디오 보러가기 (성인인증 후 시청가능) 영상팀 seoultv@seoul.co.kr
  •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 모래톱 위에서 뛰는 자본주의 심장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 모래톱 위에서 뛰는 자본주의 심장

    서울미래유산은 정치역사, 산업노동, 시민생활, 도시관리, 문화예술 등 5개 분과로 나뉜다. 문화예술분과 세부 선정 기준에 따르면 서울 문화예술사에 한 획을 긋는 주요 인물의 가옥이나 작업공간을 미래유산으로 선정할 수 있다. 주요 인물이라 함은 생전에 서울에서 왕성한 작품활동을 펼치고 사후 20년이 지났거나 1930년대 이전에 출생한 사람이어야 한다. 또 작품 제작에 관련된 구체적 장소들이 지속성을 갖고 있어야 한다. 상징성이 높은 작품도 선정 대상이다. 음악, 문예, 연극, 영화, 팬터마임, 무용 등은 무형의 예술적 가치를 따져서 정한다. 회화, 조각, 공예품은 순수 창작품을 대상으로 한다. 장소나 건조물의 경우 40년 이상 역사를 지녀야 한다.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은 이런 기준으로 선정된 미래유산을 시민들과 공유하기 위해 서울신문이 서울시, 문화지평과 함께 매주 토요일 진행하고 있다.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 홈페이지(futureheritage.seoul.co.kr)에서 답사 코스 확인과 참가신청을 할 수 있다. 흔히 세상 일이 크게 변한 상황을 일컬어 ‘상전벽해’(桑田碧海)라고 한다. 이 말은 뽕나무밭이 변해 바다가 된 것을 의미한다. 조선시대와 비교하자면 서울시도 상전벽해처럼 변했을 뿐 아니라 여러모로 확장됐다. 특히 한강 한가운데 모래가 쌓여서 만들어진 여의도(汝矣島)야말로 ‘창상’(滄桑·상전벽해의 줄임말)의 대표적인 장소라고 할 수 있다. 79년 여의도에 터 잡은 한국거래소증권사들 본점 잇따라 옮겨와 조선시대 한강 하류에는 강북 쪽으로 용산·마포, 강남 쪽으로는 노량진 일대에 넓게 형성된 백사장이 있었다. 비가 많이 와서 물이 불어날 때면 물밑으로 사라졌다가 비가 그치면 다시 물 위로 나타나는 모래톱이었다. 이 때문에 정확한 넓이를 재는 게 불가능했다. 1880년 일본 육군측량부가 측량한 지도로 추측해 볼 때 당시 백사장의 넓이는 8.3~9.9㎢(약 250만~300만평) 규모였다. 그런데 홍수가 나도 물에 잠기지 않는 두 개의 섬이 있었다. 바로 서강 쪽 밤섬(栗島)과 영등포 쪽 여의도였다. 열두 번째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은 모래톱에서 한국의 월스트리트로 변모한 여의도 일대를 돌아봤다. 지난 8일 오전 10시 여의도우체국 앞에 모인 답사팀은 서울미래유산인 한국거래소를 시작으로 국제금융로에 있는 지하 벙커, 여의도공원, 만남의 광장, 국회의사당과 헌정기념관, 윤중제 등을 손안나 서울미래유산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걸었다. 한국거래소는 유가증권의 안정적 거래를 위해 설립된 우리나라 자본시장의 중추기관으로 여의도 일대에 증권가가 형성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1979년 한국거래소가 명동에서 현재의 자리로 이전하자 증권사들이 여의도로 본점을 발 빠르게 옮기면서 한국의 월스트리트로 자리매김했다. 이날 답사는 제방인 윤중제를 가장 마지막에 둘러봤지만 사실상 여의도 개발의 시작은 이 윤중제의 준공이었다. 손 해설사는 “박정희 정권 당시 ‘불도저 시장’으로 알려진 김현욱 서울시장이 여의도 개발을 진두지휘했다”며 “그는 1966년부터 만 4년간 재임하면서 세종로·명동 지하도 건설, 청계고가도로·남산터널 건설, 서울시내 빈민 주거지 철거 및 외곽 이주 등 박정희 정권의 밀어붙이기식 개발사업을 주도했다”고 말했다. 브레이크 없이 과속 페달만 밟던 김 전 시장은 결국 1970년 와우 아파트 붕괴사고로 시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윤중제 완공 후 홍수로부터 해방 여의도 주위 제방 쌓고 도로 건설 윤중제 공사는 1968년 서울시 한강개발계획에 따라 여의도 주위에 제방을 쌓고 그 위에 도로를 낸 것이다. 높이 16m, 둘레 7.6㎞, 폭 35~50m의 제방이다. 윤중제가 완공되면서 여의도는 홍수로부터 해방된다. 더불어 택지와 상업용지 개발로 여의도 시범아파트와 국회의사당 등 건축물이 들어서면서 개발이 본격화된다. 국회의사당은 원래 중앙청(옛 조선총독부) 건물이 사용됐으나 한국전쟁 때 경남도청 무덕전으로 옮겨갔다가 전후에는 부민관(현 서울시의회 의사당 본관)으로 이사 왔다. 이승만 정권 때는 남산 백범광장 근처에 국회의사당 건립 계획을 세우고 설계 공모를 했는데, 건축가 김수근이 당선됐다. 하지만 4·19혁명으로 이승만 정권이 무너지면서 공사도 지지부진해졌고, 결국 여의도로 자리를 옮겨 1975년 현재 국회의사당이 완공됐다. 처음에는 돔이 없이 직사각형 건물의 설계안이 당선됐지만, 당시 권력자들에 의해 원안이 어깃장이 나고 결국 콜로니얼 스타일의 돔이 얹어졌다. 일설에는 박 전 대통령이 “돔이 없으니 마치 상여처럼 생겼다”고 지적해 설계가 바뀌었다고는 하나 확인된 바는 없다. 이날 답사에는 공시족(공무원 시험준비생) 5명이 나왔다. 이들 중 인천대 행정학과 선후배 사이인 4학년 박재현(24)·3학년 양승목(24)씨가 국회의사당을 배경으로 서울미래유산 인증샷을 남겼다. 박씨는 “서울미래유산 탐방을 통해 과거 세대와 현재 세대 사이 공감대를 늘리고 또 미래 세대에게 역사를 알려주기 위해 공부하려고 나왔다”며 “미래유산 정보를 덤으로 얻을 수 있기 때문에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데도 곁가지로 도움이 된다”고 참여하게 된 이유를 전했다. 여의도에서는 2005년 5월 국제금융로 버스환승센터 공사를 하던 중 지하 벙커가 발견됐다. 버스환승센터에 있는 출입구는 지금은 철판으로 덮여 있다. 언론에 개방했을 당시 기사에 따르면 출입구를 통해 가파른 계단을 내려가면 화장실과 소파, 샤워장을 갖춘 약 66㎡의 작은 공간과 왼편으로 약 595㎡ 넓이의 공간이 있다. 이 벙커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은 관계로 지금까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과거 국군의 날 기념식과 관련해 대통령 비밀 경호시설이 아니었겠느냐는 추측도 나온다. 손 해설사는 “1976년 11월 이 지역 항공사진에는 없었던 벙커 출입구가 1977년 11월 사진에서 확인되는 점으로 미뤄 볼 때 1977년 즈음 공사가 이뤄졌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이날 답사팀은 벙커 입구가 육중한 철판으로 굳게 닫혀 내부를 구경하지 못해 못내 아쉬워했다. 지하 벙커는 내년 5월 미술관으로 단장해 개관한다. 서울 강남구 중산고등학교 이봉규 교사는 “학생들에게 다양한 테마가 있는 역사적인 길을 걸으며 해설을 해주는데 여의도는 처음”이라며 “서울은 다양한 역사 이야기를 담은 거대한 문화유산의 집합체”라고 말했다. 83년 이산가족찾기 방송 138일간 생방송…사연 담은 소자보 흘러넘쳐 ‘여의도’ 하면 우리 현대사에서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한 편의 드라마가 펼쳐졌던 장소다. 다름 아닌 ‘이산가족 찾기’다. 한국방송공사(KBS)가 1983년 6월 30일 밤 10시 15분부터 11월 14일 새벽 4시까지 장장 138일, 방송 시간 453시간 45분 동안 생방송으로 내보냈던 연속특별기획 ‘이산가족을 찾습니다’는 4000만 국민을 울리기에 충분했다. 이는 텔레비전을 활용한 세계 최초, 최대 규모의 이산가족 찾기 프로그램이었다. 민초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발발한 전쟁과 분단으로 인해 헤어진 가족을 만나기 위한 구구절절한 사연이 생생한 영상으로 소개됐다. 이 방송으로 인해 1985년 9월 남북이산가족 상봉이 최초로 이뤄지는 등 남북한 냉전체제 해소에도 상당히 기여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손 해설사는 “비디오 녹화 원본 테이프 463개와 담당 프로듀서의 업무수첩, 이산가족이 직접 작성한 신청서, 일일 방송진행표, 큐시트, 기념음반, 사진 등 2만 522건의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고 설명했다. 대한민국의 이산가족은 일제강점기와 이후 한국전쟁으로 인한 남북분단으로 발생했고 그 규모를 다 합치면 약 1000만명에 이른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이산가족 10만 952건의 사연이 신청됐고 5만 3536건이 방송에 소개돼 1만 189건(성공률 19.03%)의 이산가족이 상봉했다. KBS는 전담 방송인원 1641명을 투입해 9개 지역 방송국을 동시에 연결하는 다원생방송을 진행했다. 여의도에서 이산가족 찾기가 무리 없이 진행된 데는 지금은 여의도공원으로 조성된 당시 여의도 광장(옛 5·16광장)의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수많은 사연을 적은 소자보와 인파를 여의도 광장이 넉넉하게 받아주며 소리 없이 이산의 슬픔을 함께했다. “여의도 광장의 일부인 KBS 본관 앞 일대는 ‘만남의 광장’이라는 이름으로 서울미래유산에 지정됐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이산가족 찾기 프로그램이 범국민적인 형태로 진행된 장소라는 점이 선정 이유입니다.” 손 해설사는 만남의 광장을 지나며 이렇게 설명하고 국회의사당과 헌정기념관을 거쳐 하늘이 탁 트인 서강대교 쪽 윤중제로 답사팀을 이끌었다. 서강대교는 ‘불도저 시장’이 여의도를 개발하기 위해 폭파했던 밤섬 위를 지나고 있다. 지금은 철새보호 지역으로 지정돼 야간에도 밤섬을 지나는 부분에는 다리 조명을 켜지 않는다. 엄마 손을 잡고 나온 박민선(9·여·도림초2) 어린이는 “걸어다니면서 이것저것 구경하는 게 좋았다”며 “특히 헌정기념관에 전시된 사진을 보는 게 가장 신기하고 재밌었다”고 소감을 말했다. 답사팀은 윤중제에서 한강변으로 내려와 강변길을 따라 당산역까지 걸었다. 시야가 넓게 열린 한강변에서 바라본 강북 쪽의 경치는 건물 스카이라인이 가까이는 남산, 멀게는 북한산·도봉산·수락산·불암산의 산등성이와 어울려 멋진 풍광을 자아냈다. 서울은 문화유산뿐 아니라 자연유산도 멋들어진 곳이다. 유성호 ‘문화지평’ 대표
  • 한예슬·테디, 교제 4년만 결별...SNS도 탈퇴

    한예슬·테디, 교제 4년만 결별...SNS도 탈퇴

    연예계 대표 커플 한예슬 테디가 결별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24일 스포츠동아의 보도에 따르면, 연예계 한 관계자는 “최근 배우 한예슬과 YG 작곡가 테디가 교제 4년 만에 결별했다”고 언급했다. 그는 “스타의 사생활인 만큼 이별 이유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지만 관계를 마무리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2013년 11월 연인 관계임을 공개한 한예슬과 테디는 서로를 응원하는 모습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며 연예계 대표 스타커플로 인정받았다. 결별에 대한 반응을 의식한 듯 한예슬은 현재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삭제했다. 한예슬은 현재 드라마 출연을 논의 중에 있으며, 테디는 YG 소속 가수들의 음반 작업에 주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서울신문DB 임효진 인턴기자 3a5a7a6a@seoul.co.kr
  • 엑소 유닛 첸백시 헤이 마마 ‘첸+백현+시우민’ 31일 음원 공개 “기대 폭발”

    엑소 유닛 첸백시 헤이 마마 ‘첸+백현+시우민’ 31일 음원 공개 “기대 폭발”

    엑소 멤버 첸, 백현, 시우민이 EXO-CBX(엑소-첸백시)로 전격 출격한다. 첸백시는 오는 31일 0시 전 음원사이트를 통해 첫번째 미니앨범 ‘Hey Mama!’(헤이 마마) 전곡 음원을 공개하며 데뷔한다. 첸백시 조합은 엑소 팬들에겐 이미 낯익다. 이들은 지난 해 고척돔에서 진행된 엑소 단독콘서트에서 유닛 무대를 선보이는 등 팬들 앞에서 보컬 호흡을 보여준 바 있다. 이후 뜨거운 호응에 힘입어 첸백시 프로젝트가 급물살을 타게 됐다. 이후 첸백시는 23일 부산 아시아드주경기장에서 진행된 ‘2016 부산원아시아페스티벌’ 폐막공연 원아시아드림콘서트에서 대중 앞 첫 유닛 무대를 선보이며 기대감을 모았다. 첸백시는 엑소의 첫 유닛인만큼 관심도 높다. 이미 엑소는 트리플 밀리언셀러, 3년 연속 가요대상 수상, 음원 음반차트 1위, 연기 및 예능서 활발한 개인활동에 성공하며 가요계에 한 획을 그었다. 그런 이들의 첫 유닛 출격이 과연 어떤 성적을 거둬들이게 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특히 박효신, 샤이니, 방탄소년단, 아이오아이, 트와이스 등이 연달아 출격한 10월은 ‘가요대전’이라 불릴 정도로 그 열기 뜨거웠던 터. 이 가운데, ‘헤이 마마’를 발표하는 첸백시가 10월 가요대전의 마지막 승자가 될 수 있을지 여부도 관심이 모아진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방치된 울릉군 ‘7080 문화관’

    방치된 울릉군 ‘7080 문화관’

    70억 사업 6개월째 문 못 열고 통기타 가수 자료 전시 등 부진 주민들 “선심성 행정… 혈세 낭비” 울릉도에 ‘세시봉’으로 대표되는 7080 가수들의 문화관이 국비 등 수십억원을 들여 건립됐지만, 6개월째 개관조차 못 한 채 방치되고 있다. 연간 운영비와 운영 주체 선정 등이 문제다. 19일 경북 울릉군에 따르면 지난 4월 예산 70억원(국비 및 도비 각 35억원)을 들여 북면 현포리 일대 1652㎡에 ‘7080 문화관’(가칭)을 준공했다. 연면적 1150㎡의 지상 4층 규모다. 공연장과 전시장, 카페테리아, 휴게실 등도 갖췄다. 이 사업은 김관용 경상북도지사가 2011년 11월 ‘경북도민의 날’ 기념식에 도민상 수상을 위해 참석한 7080 가수 이장희(69)씨에게 ‘7080 문화관’ 건립을 적극 지원하기로 약속해 시작됐다. 1970년대 ‘그건 너’,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등을 노래한 이씨는 2004년부터 울릉도에 ‘울릉천국’이란 농장을 마련해 살면서 음악회를 여는 등 재능 기부를 해 왔다. 이씨는 땅 500㎡도 내놨다. 군은 ‘7080 문화원’을 건립해 통기타 가수들의 콘서트를 유치하는 등 복고문화의 중심지로 활용하기로 했다. 그러나 문화원은 송창식, 조영남, 윤형주 등 서울 무교동 음악감상실 ‘세시봉’에서 이씨와 함께 활동한 동료의 밀랍인형과 당시 유행했던 음반, 통기타 등을 전시할 예정이었으나 이를 확보하지 못했다. 운영 주체 선정 및 연간 1억원 정도에 이르는 운영비 확보도 문제다. 군은 이씨 측이 설립한 법인을 통해 민간 위탁한다는 방침이었지만, 몇 차례의 협의에도 합의에는 실패했다. 무엇보다 이씨가 울릉도에 거주하는 기간이 많지 않다는 사실이 문제다. 지역 주민과 관광객들 사이에서 7080 문화원이 ‘앙꼬 없는 진빵’이라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울릉 주민 등은 “즉흥적인 선심성 행정으로 엄청난 혈세가 낭비됐다”면서 “7080 문화원이 애물단지가 되지 않도록 대책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군 관계자는 “7080 문화원을 원활히 운영하려면 경북도가 직영하든지 아니면 울릉군에 위탁해 운영비를 지원하는 것이 최선책인데 경북도가 이를 거부하고 있다”면서 “차선책으로 이씨 측에 운영을 맡기려고 하는데 추가 협의를 통해 빠른 시일 내에 운영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울릉군은 2011년 북면 현포리 이씨 소유의 농장 ‘울릉천국’에 이씨의 자작곡 ‘울릉도는 나의 천국’ 시비를 세웠다. 시비는 조영남, 송창식, 김세환, 윤형주, 김민기씨 등 세시봉 출신 가수들과 방송인 이상벽, 이두식, 김중만, 전유성, 강근식씨 등의 친필 사인이 새겨진 석주가 에워쌌다. 울릉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단독]울릉도 70억짜리 ‘7080 문화관’ 애물단지 전락

    [단독]울릉도 70억짜리 ‘7080 문화관’ 애물단지 전락

    울릉도에 ‘세시봉’으로 대표되는 7080 가수들의 문화관이 국비 등 수십억원을 들여 건립됐지만, 6개월째 개관조차 못 한 채 방치되고 있다. 연간 운영비와 운영 주체 선정 등이 문제다. 19일 경북 울릉군에 따르면 지난 4월 예산 70억원(국비 및 도비 각 35억원)을 들여 북면 현포리 일대 1652㎡에 ‘7080 문화관’(?사진?·가칭)을 준공했다. 연면적 1150㎡의 지상 4층 규모다. 공연장과 전시장, 카페테리아, 휴게실 등도 갖췄다. 이 사업은 김관용 경상북도지사가 2011년 11월 ‘경북도민의 날’ 기념식에 도민상 수상을 위해 참석한 7080 가수 이장희(69)씨에게 ‘7080 문화관’ 건립을 적극 지원하기로 약속해 시작됐다. 1970년대 ‘그건 너’,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등을 노래한 이씨는 2004년부터 울릉도에 ‘울릉천국’이란 농장을 마련해 살면서 음악회를 여는 등 재능 기부를 해 왔다. 이씨는 땅 500㎡도 내놨다. 군은 ‘7080 문화원’을 건립해 통기타 가수들의 콘서트를 유치하는 등 복고문화의 중심지로 활용하기로 했다. 그러나 문화원은 송창식, 조영남, 윤형주 등 서울 무교동 음악감상실 ‘세시봉’에서 이씨와 함께 활동한 동료의 밀랍인형과 당시 유행했던 음반, 통기타 등을 전시할 예정이었으나 이를 확보하지 못했다. 운영 주체 선정 및 연간 1억원 정도에 이르는 운영비 확보도 문제다. 군은 이씨 측이 설립한 법인을 통해 민간 위탁한다는 방침이었지만, 몇 차례의 협의에도 합의에는 실패했다. 무엇보다 이씨가 울릉도에 거주하는 기간이 많지 않다는 사실이 문제다. 지역 주민과 관광객들 사이에서 7080 문화원이 ‘앙꼬 없는 진빵’이라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울릉 주민 등은 “즉흥적인 선심성 행정으로 엄청난 혈세가 낭비됐다”면서 “7080 문화원이 애물단지가 되지 않도록 대책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군 관계자는 “7080 문화원을 원활히 운영하려면 경북도가 직영하든지 아니면 울릉군에 위탁해 운영비를 지원하는 것이 최선책인데 경북도가 이를 거부하고 있다”면서 “차선책으로 이씨 측에 운영을 맡기려고 하는데 추가 협의를 통해 빠른 시일 내에 운영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울릉군은 2011년 북면 현포리 이씨 소유의 농장 ‘울릉천국’에 이씨의 자작곡 ‘울릉도는 나의 천국’ 시비를 세웠다. 시비는 조영남, 송창식, 김세환, 윤형주, 김민기씨 등 세시봉 출신 가수들과 방송인 이상벽, 이두식, 김중만, 전유성, 강근식씨 등의 친필 사인이 새겨진 석주가 에워쌌다. 울릉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로큰롤의 시조 척 베리 90회 생일 맞아 “내년 초 새 앨범 낸다”

    로큰롤의 시조 척 베리 90회 생일 맞아 “내년 초 새 앨범 낸다”

    90세 어르신이 음반을 낸다. 1950년대 리틀 리처드, 제리 리 루이스, 엘비스 프레슬리 같은 빛나는 록의 전설들과 어울려 활동했던 로큰롤 1세대 척 베리(미국)가 내년 초 앨범을 낼 계획이라고 밝혀 놀라움을 안기고 있다. 시사주간지 타임에 따르면 베리는 지난 18일(이하 현지시간) 90회 생일을 맞아 웹사이트에 게재한 성명을 통해 38년 만에 앨범 ‘척’을 출시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출시 시기에 대해서는 여유를 뒀다. ‘내년 초’라고도 했고 ‘내년 어느 때’라고 모호하게도 표현했다. 그는 “이번 음반은 내 사랑하는 토디에게 헌정된다”고 68년 동안 해로한 테메타를 언급했다. “내 사랑. 나도 나이가 먹어가네! 이 음반 작업을 오랫동안 해왔어요. 이제 일을 그만 둘 수 있어요!”라고 덧붙였다. 이 마지막 문장은 제리 리 루이스의 히트곡 ‘Hang Up My Rock & Roll Shoes’을 따온 것으로 보인다. 앨범 제작에는 아들 찰스 베리 주니어(기타), 딸 잉그리드(하모니카)를 비롯해 40년 동안 그와 호흡을 맞춰온 지미 마르살라(베이스기타), 로버트 로르(피아노)와 키스 로빈슨(드럼)으로 구성된 밴드가 참여했다. 이 밴드는 세인트루이스의 블루베리힐 클럽에서 20년 넘게 연주하며 그를 뒷받침해왔다. 찰스 베리 주니어는 “이 새로운 음악의 일부분이 된 것을 영예로 받아들인다”며 “이 (음반에 수록된) 노래들은 거친 록음악부터 인생의 정수를 담은 타임캡슐을 여는 영혼이 충일한 생각들까지 스펙트럼이 넓다”고 말했다. 척 베리의 새 LP 앨범은 그의 대표 앨범이었던 ‘Johnny B. Goode’이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 루이 암스트롱의 ‘멜랑코리 블루스’ 앨범과 함께 태양계 무인 탐사선 보이저 호에 실려 우주로 발사된 지 거의 40년 만에 세상에 빛을 보게 된다. 기타 연주자로서 사운드와 스타일 면에서 수많은 세대의 뮤지션들에게 영향을 미친 록음악의 개척자인 척 베리는 1984년 그래미 평생공로상을 수상했고 2년 뒤 로큰롤 명예의전당이 출범하자마자 입회했다. 록 전문지 ‘롤링스톤스’가 ‘역대 가장 위대한 예술인 100명’을 뽑았을 때 톱 5에 들었고 최고의 가사에 주어지는 PEN 어워드의 첫 수상자이기도 했다. 영국 록밴드 비틀스가 그의 ‘롤 오버 베토벤’과 ‘로큰롤 뮤직’을 리메이크했으며 록그룹 롤링 스톤스는 아예 그의 커버곡 ‘컴온’을 데뷔곡으로 삼았다. 비치 보이스의 최대 히트곡으로 서프 뮤직의 상징과도 같은 ‘서핑 U.S.A.’가 그의 ‘스윗 리틀 식스틴’을 모방했다는 것도 그가 얼마나 후대 음악인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음을 보여준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새 음반] ‘기타의 신’ 지미 헨드릭스, 밴드 공연 실황 앨범

    [새 음반] ‘기타의 신’ 지미 헨드릭스, 밴드 공연 실황 앨범

    기타의 신 지미 헨드릭스의 밴드로서 마지막 숨결을 담은 ‘밴드 오브 집시스’의 공연 실황을 담은 앨범이 발매됐다. 헨드릭스가 자신의 주도하에 처음 결성한 밴드는 베이시스트 노엘 레딩, 드러머 미치 미첼과 함께했던 3인조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 이들이 기념비적인 데뷔 앨범 ‘아 유 익스피어리언스드’를 낸 것은 1967년인데 활동은 무척 짧았다. 3집 ‘일렉트릭 레이디랜드’를 발매한 이듬해인 1969년 초 해산한 것. ‘밴드 오브 집시스’는 헨드릭스가 군대 시절 친구인 빌리 콕스(베이스), 버디 마일스(드럼)와 함께 결성한 두 번째 그룹이다. 이들이 1969년 12월 31일과 1970년 1월 1일 이틀에 걸쳐 뉴욕 필모어 이스트 공연장에서 열었던 네 차례 공연은 다양한 형태로 발매됐는데 이번에 나온 ‘머신건’ 앨범은 첫 회 공연의 레퍼토리 11곡을 완벽하게 수록했다. 헨드릭스가 이 공연 이후 몇 달 지나지 않아 세상을 뜨는 바람에 밴드 오브 집시스는 밴드로서 그의 마지막 활동이 됐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새 음반] ‘비지스 맏형’ 배리 깁 32년 만에 두 번째 솔로 앨범

    [새 음반] ‘비지스 맏형’ 배리 깁 32년 만에 두 번째 솔로 앨범

    1970년대 디스코의 전성시대를 이끌며 20세기 팝 음악 역사상 가장 대중적으로 성공한 형제 그룹으로 꼽히는 비지스 팬들에게 희소식이다. 2003년 막내 모리스 깁이 사망하며 공식 해체됐고, 쌍둥이 형제 중 한 명이자 둘째인 로빈 깁 또한 2012년 세상을 뜨며 더이상 비지스 사운드는 접할 수 없을 것으로 여겨졌다. 그런데 최근 맏형 배리 깁이 생애 두 번째 솔로 앨범을 발매했다. 삼형제 중 싱어송라이터로도 이름이 높았던 그의 솔로 앨범은 ‘나우 보이저’(1984) 이후 32년 만이며, 비지스 사운드로 기준을 넓히면 마지막 앨범 ‘디스 이스 웨어 아이 케임 인’(2001) 이후 15년 만이다. 곡 작업은 배리 깁의 두 아들이 함께했다. 펑키 록부터 컨트리 팝 발라드, 루츠록, 블루스까지 서정적이면서도 대중적인 감성의 비지스를 떠올리게 하면서도 또 다른 느낌이 묻어나는 트랙들이 담겼다. 한국에서 발매된 디럭스 버전에는 보너스 트랙 3곡까지 포함해 모두 15곡이 담겼다. 영국 차트에서 첫 주 2위를 차지하는 저력을 과시했다.
  • 라미란 신혼시절 생활고 고백 “남편 실직+경찰 체포..지금도 빚 갚는 중”

    라미란 신혼시절 생활고 고백 “남편 실직+경찰 체포..지금도 빚 갚는 중”

    배우 라미란이 신혼시절 생활고를 고백했다. 14일 방송된 KBS2 ‘언니들의 슬램덩크’에서 라미란은 홍진경, 제시, 김숙, 민효린과 함께 15년 전 자신이 살던 신혼집을 방문했다. 라미란은 이 집에서 힘들었던 신혼시절 이야기를 꺼냈다. “15년 전에 여기서 신혼생활을 시작했다”고 말문을 연 라미란은 “뮤지컬 ‘드라큘라’를 할 때 남편이 신성우 매니저였다. 매일 대기실에서 친구처럼 만났다. 어느날 내가 목부상을 당해 피멍이 들어 목소리가 안 나왔다. 응급실에 갔다왔는데 남편이 괜찮냐고 챙겨주고 그랬다. 그 날 밤에 ‘날 좋아한다’고 전화가 왔다”고 남편과의 만남을 회상했다. 그와 결혼을 하게 된 라미란의 신혼시절은 힘들었다. “음반 사업이 불황이어서 남편이 일자리를 잃었고, 나도 임신을 하는 바람에 연기를 할 수 없어 경제적으로 어려웠다”며 “만삭의 몸으로 벼룩시장에서 물건을 팔아 생계를 유지했다. 결국 신혼집을 정리하고 친정에 들어가서 살았다”고 밝혔다. 이어 라미란은 “술 안마시고 착실했던 남편이 게임머니를 불법으로 팔던 친구와 함께 일을 하다가 경찰에 체포됐다”며 “그때 떠안은 빚을 지금도 갚고 있다”고 밝혀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연극에서 영화계로 활동무대를 옮긴 라미란은 “내 연봉이 100배 늘었다고 하던데 사실 100배 넘게 늘었다. 무명시절 연봉이 몇 십만 원이었다. 그때 1년에 20만 원 벌다가 관둔 애도 있었고, 아예 못 버는 애도 있었다”고 털어놨다. 라미란은 “드라마에 예쁜 애들이 하는거라고 생각해 영화계에 지원했는데 연락이 없었다. 어느날 ‘노출신이 있는데 괜찮겠느냐’고 연락이 와서 무조건 하겠다고 했다. 그 영화가 박찬욱감독의 ‘친절한 금자씨’였다”고 출연 비하인드를 공개하기도 했다. “현재 섭외를 거절할 위치까지 왔는데 소감이 어떠냐”는 질문을 받은 라미란은 “너무 급하게 올라왔다. 가늘고 길게 가는 게 내 목표인데 너무 튀어나왔다. 이러다 망치질 당하는 거다”라고 인기를 경계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날 라미란은 “내 꿈은 남은 곗돈 다 쓰기다. 215만 원 남은 곗돈을 ‘집 짓기’에 쓰겠다”고 밝혔다. 사진=KBS2TV ‘언니들의 슬램덩크’ 캡처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자서전·음반은 다시 열풍… 정작 밥 딜런은 말이 없다

    자서전·음반은 다시 열풍… 정작 밥 딜런은 말이 없다

    대중가수로는 사상 처음으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밥 딜런(75)을 향한 전 세계의 관심은 뜨겁지만 정작 당사자는 상에 관해 일절 언급을 하지 않아 궁금증을 더하고 있다. ●수상 직후 콘서트… 팬들 “노벨상” 환호에도 묵묵부답 AP통신은 수상 발표 이후인 13일 밤(현지시간) 딜런이 미국 라스베이거스 코스모폴리탄 호텔의 첼시극장에서 열린 콘서트에서 관객들과 만났으나 공연에만 집중할 뿐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관객들이 “노벨 수상자!”를 연호하며 박수와 함성을 보냈지만, 딜런은 이를 모른 척했다. 그는 11월 말까지 예정돼 있는 전미 투어 중이다. 원래 딜런은 언론 등과의 접촉을 즐기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2010년 3월 한국 공연 당시에도 국내 언론과 일절 인터뷰를 하지 않았으며 무대에서도 별다른 말 없이 음악에 몰두했다. 이번 노벨 문학상 수상과 관련해서도 반나절이 지나서야 공식 트위터에 수상 소식이 짧게 올라왔을 뿐이다. ●“내 초창기 음악, 마법에 걸린 듯 한번에 써내려가” 이에 따라 매우 드물었던 과거 인터뷰가 재조명되고 있다. 미국 CBS는 20년 만에 처음 진행된 언론 인터뷰였다며 2004년 만남을 소개했다. 당시 딜런은 노벨 문학상 수상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이는 초창기 음악에 대해 “앉아서 곡을 쓰려고 하면 꿰뚫어보는 듯한 마법이 있어서 한 번에 곡을 써내려 갈 수 있었다”고 밝혔다. 또한 “선지자나 구세주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다”며 ‘시대의 대변자’ 등의 타이틀이 거북하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미 공영방송 NPR도 딜런이 과거 인터뷰에서 “(시대의 소리라는) 표현은 그저 곡을 쓰고 노래하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는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이런 거대한 칭찬과 타이틀을 갖는 것은 방해가 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국내에서도 딜런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지고 있다. 주요 온·오프라인 서점에서는 유일하게 번역 출간된 자서전 ‘바람만이 아는 대답’의 판매가 급증세를 나타냈다. 멜론, 벅스, 지니 등 국내 주요 음원사이트에서도 ‘녹킹 온 헤븐스 도어’, ‘블로잉 인 더 윈드’, ‘메이크 유 필 마이 러브’ 등 그의 대표곡들이 차트에 재등장하고 스트리밍이 늘어났다. 인터넷교보문고에서는 수상 직후부터 14일 오후 3시까지 ‘바람만이 아는 대답’ 154권이 판매됐다. 온라인서점 예스24에도 210권의 주문 물량이 들어왔다. 손광수 작가가 쓴 ‘음유시인 밥 딜런’도 53권이 주문됐다. 자서전을 발간한 문학세계사 김요안 기획실장은 “주문이 밀려들어 200~300부 정도 남아 있던 재고를 우선 풀었다”면서 “고민 끝에 1만부 규모 중쇄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그의 삶은 물론 노랫말과 노랫말이 쓰인 배경까지 담긴 자서전은 음악애호가들을 중심으로 7000~8000부가량 판매됐다. 딜런의 음반·음원 유통을 맡고 있는 소니뮤직 관계자도 이날 “주문이 밀려들고 있다”며 “재고 소진 추이를 보며 추가 제작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밥 딜런 “나는 ‘사회에 대한 위협’, 선지자 아니다”

    밥 딜런 “나는 ‘사회에 대한 위협’, 선지자 아니다”

    대중음악 가수로는 최초로 포크록의 전설인 밥 딜런(75)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밥 딜런에 대한 세계적인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그는 좀처럼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래서 과거 인터뷰 내용들이 재조명되고 있다. 미국 CBS뉴스는 13일(현지시간) ”(당시) 거의 20년 만에 처음 진행된 인터뷰“라고 설명하며 2004년 방송된 밥 딜런과의 인터뷰 내용을 소개했다. 그는 자신의 초기 음악에 대해 “마법처럼 쓰여졌다”며 “앉아서 곡을 쓰려고 하면 꿰뚫어보는 듯한 마법이 있어서 한 번에 곡을 써내려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딜런은 오래된 포크 뮤직에 영감을 받아 ‘하드 레인스 고나 폴(A Hard Rain’s A-Gonna Fall)‘처럼 통찰력 있고 시적인 가사를 썼다. 그의 노래들은 시민권, 1960년대 반전 운동의 긴장과 불안을 반영했고 ‘시대의 목소리’, ‘선지자, 구세주’로 불렸다. 이 같은 호칭에 대해 그는 “나에 대한 대중의 이미지는 작곡가나 가수가 아니라 ‘사회에 대한 위협’ 쪽에 가깝다”며 “선지자나 구세주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엘비스 플레슬리가 되는 내 모습은 쉽게 상상할 수 있었지만, 선지자는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하는 일은 노래이지 설교가 아니다. 내 노래를 자세히 살펴보면 내가 누군가 혹은 무엇인가의 대변인이라고 말한 적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국 미네소타 덜루스의 유대인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19살 때 뉴욕 맨해튼 남부의 예술가 거주 지역인 그리니치 빌리지로 터전을 옮겨 이곳에서 라디오를 듣고, 레코드숍을 돌아다니고, 기타와 피아노를 치면서 노래와 세상을 배웠다. 그리고 수개월 후 콜럼비아 레코드와 음반 발매 계약을 맺었다. 인터뷰 내내 ‘운명’이라는 단어를 강조한 그는 당시(그리니치 빌리지 거주 시절) 자신이 “‘음악 레전드(전설)’가 될 운명이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딜런은 “나는 환상적인 빛을 향해 가고 있었다. 운명이 다른 사람들이 아닌 나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고 표현했다. 그는 운명에 대해 “남들은 아무도 모르는 자신의 무언가에 대해 스스로 알고 있다고 느끼는 것”이라고 말하며 “이는 깨지기 쉬운 감정이기 때문에 비밀로 간직해야 한다. 만약 밖으로 내놓으면 남들이 없애버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나는 운명과 오래전에 계약을 맺었다”며 “지금처럼 순회공연을 하고 노래를 부르며 끝까지 이 계약을 지키고 있다”고 덧붙였다. 다른 미국의 공영방송 NPR도 이 매체와 딜런의 과거 인터뷰 내용을 공개하며 그가 자신이 ‘시대의 목소리’로 불리는 것에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이런(시대의 소리라는) 표현은 그저 곡을 쓰고 노래하고 싶어하는 사람에게는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이런 거대한 칭찬과 타이틀을 갖는 것은 방해가 된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밥 딜런, 노벨문학상 선정…반전운동 기수에서 20세기 대중음악 상징으로

    밥 딜런, 노벨문학상 선정…반전운동 기수에서 20세기 대중음악 상징으로

    2016년 노벨문학상은 미국 싱어송라이터 겸 시인 밥 딜런에게 돌아갔다. 밥 딜런은 세계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한 명으로 꼽힌다. 본명은 로버트 앨런 지머맨으로 1941년 미네소타 주 덜루스에서 러시아계 유대인 중산층 자녀로 태어났다. 밥 딜런은 영국 시인 딜런 토머스의 영향을 받아 평생 사용한 예명이다. 10살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한 그는 1959년 미네소타 대학교에 입학했으나 1961년에 중퇴했다. 이후 자신의 우상인 포크 가수 우디 거스리를 만나기 위해 뉴욕으로 향했으며, 그리니치 빌리지 주변의 클럽들을 전전하며 연주를 하다 음반 제작가 존 하몬드의 눈에 띄어 데뷔하게 된다. 1963년 발표한 앨범 ‘더 프리휠링 밥 딜런’(The Freewheelin‘ Bob Dylan)은 밥 딜런에게 개인적 성공을 안겼을 뿐 아니라 대중음악 역사에 날카로운 빗금을 그은 작품이다. 시적이면서 정치적 깊이가 있는 가사와 모던 포크의 간결함을 수용한 이 앨범은 곧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블로잉 인 더 윈드’(Blowin’ In The Wind), ‘돈트 싱크 트와이스’(Don‘t Think Twice), ‘잇츠 올 라이트’(It’s All Right) 등 수록곡들이 줄줄이 명곡의 반열에 올랐다. 특히 잭 케루악, 앨런 긴즈버그 등 비트 세대 작가들의 영향을 받은 그의 시적인 가사는 대중음악의 가사 수준을 시적 수준으로 끌어 올렸다. 아울러 ‘더 타임스 데이 아 어 체인징’(The Times They Are A-Changin)과 ‘블로잉 인 더 윈드’와 같은 노래는 미국 내 반전운동을 확산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는 노래하는 음유시인이자 반전운동의 기수였다. 밥 딜런은 당대의 슈퍼스타였던 비틀스와 교류하며 서로에게 영향을 끼쳤다. 비틀스의 존 레넌은 딜런의 깊이 있는 가사에 영향을 받았으며 밥 딜런은 비틀스의 로큰롤이 가진 에너지에 매료됐다. 이에 밥 딜런은 단조로운 정통 어쿠스틱 포크 사운드에서 벗어나 일렉트릭 사운드로의 전환을 시도했다. 1965년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The Newport Folk Festival) 무대에 오른 그는 일렉트릭 사운드를 선보여 수많은 포크 팬들의 야유와 반발을 샀다. 하지만 밥 딜런은 아랑곳하지 않고 ‘브링 잇 올 백 홈’(Bringing It All Back Home), ‘하이웨이 61 리비지티드’(Highway 61 Revisited), ‘블론드 온 블론드’(Blonde On Blonde) 등의 앨범을 발표하며 포크록의 영역을 확장해나갔다. 1966년에는 오토바이를 타다 의문의 교통사고를 당한 뒤 록 밴드 더 밴드와 함께 잠적해 루츠 록(Roots Rock) 장르의 음악을 만들기도 했으며 1967년에는 앨범 ‘존 웨슬리 하딩’(John Wesley Harding), ‘내슈빌 스카이라인’(Nashville Skyline)을 발표하며 컨트리 록의 유행을 이끌기도 했다. 1982년 작곡가 명예의 전당에, 1988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다. 1999년 타임스지는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밥 딜런을 선정했다. 2012년 밥 딜런에게 ‘자유의 메달’ 훈장을 수여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그는 음악을 통해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했고, 미국 대중음악 역사에서 딜런 같은 거인은 없었다”라고 치켜세웠다. 2000년대 들어서도 그의 음악 여정은 멈추지 않았다. 2009년 4월 28일 그는 33번째 스튜디오 앨범 ‘투게더 스루 라이프’(Together Through Life)를 발매했으며 이 앨범은 빌보드 차트와 영국(UK)앨범 차트 1위를 거머쥐며 변함없는 영향력을 자랑했다. 또 지난해에는 새 앨범 ‘섀도우즈 인 더 나이트’(Shadows In The Night)를 발표하기도 했다. 이 음반에는 밥 딜런이 직접 선곡하고 재해석한 프랭크 시내트라의 명곡 10곡이 담겨 눈길을 끌었다. 밥 딜런이 한국을 찾은 것은 딱 한 번뿐이었다. 2010년 3월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콘서트를 열고 ‘라이크 어 롤링 스톤’, ‘블로잉 인 더 윈드’ 등 히트곡을 선보여 6000여명의 관객을 감동으로 몰아넣었다. 한국에서 기자회견, 인터뷰 요청에 일절 응하지 않아 아쉬움을 남기기도 했지만, 허례허식 없는 소탈한 모습으로 화제가 됐다. 경호, 통역 인원을 최소화하고 환영 행사도 정중하게 거절했다. 당시 그가 대기실에 요청한 것은 화이트 와인 한 병, 재떨이 그리고 물뿐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중음악평론가 임진모는 “로큰롤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두 뮤지션이 밥 딜런과 비틀스”라며 “비틀스의 노래가 시적인 가사로 바뀐 것은 밥 딜런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이어 “밥 딜런은 20세기 대중음악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을 뿐 아니라 2000년대에도 꾸준히 앨범을 내며 여전히 젊은 사람들 못지않은 실험적인 음악을 선보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또 밥 딜런의 시적인 노랫말에 대해 “밥 딜런 이전의 대중음악은 ‘보이 미츠 걸’(Boy meets girl) 수준의 사랑과 이별 노래가 주를 이뤘다. 그런데 밥 딜런의 노래는 반전과 평화, 시대 의식과 자유의 메시지가 있었다”고 높이 평가했다. 그러면서 “미국인들에게도 밥 딜런의 노랫말을 해석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심지어 밥 딜런 노래를 풀이하는 전문 강좌가 미국 대학가에 생기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재닛 잭슨 임신설 사실로 …

    재닛 잭슨 임신설 사실로 …

    미국 팝스타 재닛 잭슨이 나이 50에 첫 아이 출산을 앞두고 있다. 잭슨은 배가 부푼 사진을 공개하면서 “축복에 감사한다”며 임신 사실을 공식 확인했다고 미국 대중매체 피플이 1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지난 4월 잭슨이 “남편과 함께 가족계획에 집중하고 싶다”며 콘서트 투어 연기를 발표하자 임신한 게 아니냐는 추측이 불거졌다. 최근 몇 달간 잭슨은 세간의 이목을 피해왔으나 영국 런던에서 아기용품을 사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잭슨 가족과 가까운 한 측근은 “잭슨은 임신에 굉장히 기뻐하고 있으며 관리를 매우 잘하고 있다”라고 피플에 전했다. 1966년생으로 올해 50세인 잭슨은 카타르 출신의 9살 연하 억만장자 사업가인 위삼 알 마나와 2010년부터 교제하다가 2012년 결혼식을 올렸다. 앞서 그는 1984년 가수 제임스 드바지와 결혼했으나 이듬해 파경을 맞았고, 1991년 재혼한 뮤직비디오 감독 르네 엘리존도와는 1999년 갈라섰다.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의 여동생으로도 유명한 잭슨은 전 세계에서 1억 장 이상의 음반 판매량을 기록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하정우 판타지오와 결별, “멀리서도 늘 응원할 것” 12년 동거 했지만..

    하정우 판타지오와 결별, “멀리서도 늘 응원할 것” 12년 동거 했지만..

    하정우가 판타지오와 결별한다. 소속사 판타지오는 6일 공식 입장을 통해 판타지오와 배우 하정우가 재계약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판타지오와 하정우는 지난 달 계약이 종료되었으나 양측 모두 심사숙고하고자 의견 조율을 추진한 바 있다. 이 과정에서 판타지오와 하정우 측 모두 서로의 의사를 존중하고 각자의 길을 응원하기로 했다. 판타지오 관계자는 “오랜 시간 함께한 만큼 멀리서도 늘 응원할 것”이라며 “판타지오와 배우 하정우가 만나 함께 성장한 것에 대해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편 판타지오는 염정아, 주진모, 김성균, 국내 최초 배우 그룹 서프라이즈(서강준, 공명, 유일, 강태오, 이태환), 김새론, 아스트로, 헬로비너스, IOI 최유정 김도연 등 배우 매니지먼트, 음반 제작, 영화, 드라마 제작, 해외 공연 사업 등 활발하게 사업 영역을 넓히고 있는 국내 종합 엔터테인먼트사다. 사진 = 서울신문DB 연예팀 seoulen@seoul.co.kr
  • LP 음반 디지털 음원으로 즐겨요

    LP 음반 디지털 음원으로 즐겨요

    11일 서울 중구 프란체스코회관에서 열린 소니코리아 HRA 레코딩 턴테이블 PSHX500 출시 행사에서 모델들이 LP 음반을 듣고 있다. PSHX500은 LP 레코드의 아날로그 음악을 원음에 가까운 디지털 음원으로 저장해 어디서든 LP 레코드를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연합뉴스
  • 비틀스·오아시스 그들이 온다 스크린 속 라이브로…

    비틀스·오아시스 그들이 온다 스크린 속 라이브로…

    ‘비틀스 : 에잇 데이즈 어 위크’오아시스 젊은 날 ‘슈퍼소닉’ 30년 세월을 사이에 두고 세계 대중음악계에서 ‘브리티시 인베이전’을 주도했던 두 밴드가 한국을 찾는다. 비틀스와 비틀스 이후 최고의 영국 밴드로 꼽히는 오아시스다. 각각 축구 라이벌인 리버풀과 맨체스터 출신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50년 전과 20년 전, 비틀스와 오아시스가 당대 팝 음악계의 거인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가 잇따라 국내에서 개봉한다. 오는 20일 스크린에 걸리는 ‘비틀스: 에잇 데이즈 어 위크-투어링 이어즈’는 ‘스튜디오 이어즈’에 들어서기 전, 일주일이 8일이라도 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전 세계를 돌며 라이브 공연에 몰두했던 비틀스의 에너지를 조명한다. 1962~1966년 15개국 90개 도시 815회 공연을 펼친 족적을 좇는 것. 비틀스는 1966년 라이브 활동을 중단하고 창작 작업에 몰두한다. 또 ‘서전트 페퍼스 론리 하츠 클럽 밴드’(1967)를 시작으로 흔히 화이트 앨범으로 불리는 ‘더 비틀스’(1968), ‘애비로드’(1969) 등으로 이어지는 명반을 줄줄이 발매하며 아이돌 밴드에서 아티스트로 거듭난다. 다큐는 이에 앞선 아이돌 시절을 조명한다.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간다고 자리를 뜨면 손해다. 1965년 8월 메이저리그 뉴욕 메츠의 홈구장 시스타디움 라이브 공연 실황이 30분간 이어진다. 사상 최초의 대형 스타디움 공연이다. ‘뷰티풀 마인드’ 등으로 널리 알려진 론 하워드 감독이 연출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그는 2013년 힙합 뮤지션 제이지의 공연 실황 다큐를 연출하며 음악 분야에도 애정을 드러낸 바 있다. 1990년대 전 세계적인 브릿팝 열풍을 대표하는 오아시스의 젊은 날을 담은 ‘슈퍼소닉’은 11월 개봉 예정이다. 노엘·리엄 갤러거 형제를 주축으로 결성된 이 밴드는 1994년 데뷔 앨범 ‘데피너틀리 메이비’에 이어 이듬해 2집 ‘(왓츠 더 스토리) 모닝글로리?’가 대성공을 거두며 우뚝 섰다. 1996년 8월 영국 넵워스에서 열린 이들의 이틀짜리 공연이 다큐의 모티브다. 무려 25만명이 운집한 기념비적인 공연이다. 티켓 구매 신청을 한 사람만 250만명으로, 당시 영국 인구 20분의1에 해당하는 수치라고 한다. 다큐는 맨체스터 변두리 지하 연습실에서 출발해 넵워스 공연에 이르기까지 3년여의 시간을 담는다. 갤러거 형제를 비롯한 그들의 가족과 멤버들이 증언대에 선다. 형제의 불화로 2009년 밴드가 전격 해체했기 때문에 오아시스 팬들로서는 이번 다큐가 반갑다. 얼굴을 마주하는 것도 꺼린다는 이 두 형제는 인터뷰도 따로따로 진행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노엘의 인터뷰에서는 동생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다고. 장외전도 흥미롭다. 영화와는 별도로 음반 발매와 공연 등이 뒤따른다. ‘비틀스…’와 관련해서는 이미 지난 주말 트리뷰트 공연이 열렸다. 또 절판된 지 오래인 비틀스의 유일한 공식 라이브 앨범 ‘더 비틀스 앳 더 할리우드 볼’의 리마스터 버전이 지난 9일 재발매됐다. 1964년과 1965년 8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의 공연 실황이 담긴 이 앨범은 비틀스 시대를 구분 짓는 분수령 격 앨범이다. 국내에선 전량 수입 판매된다. ‘슈퍼소닉’과 관련해서도 홍대 클럽데이와 조인트 공연을 추진 중이다. 다큐는 1, 2집 시기를 다루고 있는데 공교롭게도 3집 ‘비 히어 나우’(2007)의 리마스터 버전이 재발매된다. 보너스 트랙까지 실린 디럭스 버전은 수입, 스탠더드 버전은 라이선스로 발매된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로비스트에서 약쟁이까지’ 파란만장 인생史, 린다김은 누구?

    ‘로비스트에서 약쟁이까지’ 파란만장 인생史, 린다김은 누구?

    문민정부 시절인 1996년 무기 구매에 영향력을 행사한 ‘로비스트 린다 김’(본명 김귀옥·63·여)이 채권자를 폭행한 데 이어 최근 필로폰을 투약한 혐의로 구속돼 다시 주목 받고 있다. 린다 김은 한때 영화에 출연하거나 음반을 내면서 연예인으로 지내다 로비스트로 변신, 화려한 삶을 살았다. 그러나 지난 7월 채권자를 폭행하는 등 ‘갑질 논란’ 속에 형사입건됐다가 결국 ‘약쟁이’로 전락하는 파란만장한 인생스토리를 보여줬다. 그는 1996년 국방부 통신감청용 정찰기 도입 사업인 백두사업의 납품업체 선정과정에서 등장한 로비스트로, 당시 그의 로비는 ‘애정 스캔들’로 비화했다. 당시 그와 연서를 주고받은 A 장관이 언론 인터뷰를 통해 “린다 김과 두 차례에 걸쳐 부적절한 관계를 가졌다”며 “린다 김이 돈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로비한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깨달았다”고 말해 파문이 일기도 했다. 그는 1995∼1997년 군 관계자들로부터 공대지유도탄, 항공전자 장비 구매사업 등 2급 군사비밀을 불법으로 빼내고 백두사업과 관련해 군 관계자에게 뇌물을 건넨 혐의(군사기밀보호법 위반)로 2000년 재판에 넘겨졌다. 1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으나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풀려났다. 린다 김은 2001년 출간한 자서전을 통해 실패로 끝난 재벌 2세와의 첫사랑, 화장품 광고모델을 계기로 연예계와 인연을 맺은 뒤 당시 정권의 실세였던 박종규 경호실장과 이후락 비서실장을 호텔에서 만났던 일, A 장관 등과의 관계, 무기중개상이 된 사연 등을 공개했다. 그는 A 장관에 대해 자신으로 인해 가장 오해를 많이 받았다며 안타까워하면서 ‘부적절한 관계’는 아니었다고 밝힌 바 있다. 또 첫사랑이던 12년 연상의 재벌 2세 남성과는 여고 2학년 때 만나 삼청동에 살림을 차렸다가 3년 만에 유부남인 것을 알고 헤어지는 아픔을 겪었다고 회고했다. 린다 김은 1973∼74년 ‘김아라’라는 예명으로 영화 ‘교장선생 상경기’ ‘청바지’ 등에 단역으로 출연했고, 1977년 무렵엔 유명 레코드사에서 ‘그땐 몰랐네’를 타이틀곡으로 한 음반을 내며 잠시 연예계와 인연을 맺었다. 이어 화장품 광고모델을 거쳐 20대 중반에 도미, 친구의 소개로 터키 출신의 거물급 무기거래상을 알게 돼 그를 한국에 소개하면서 무기거래 로비스트의 길을 걷게 됐다. 세간의 뇌리에서 잊히던 그 이름이 다시 대중 앞에 나타난 것은 ‘폭행’ 사건 때문이었다. 린다 김은 지난 7월 5000만원을 빌려 쓰고도 갚지 않고 오히려 채권자를 폭행한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다. 린다 김은 이번엔 마약에 손을 대 경찰에 구속됐다. 린다 김은 지난 6∼9월 서울 강남 한 빌라에서 커피에 필로폰을 타 마시는 수법으로 수차례에 걸쳐 필로폰을 투약한 혐의를 받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젝스키스 16년 만에 신곡 발표, ‘팬들이 음반발매까지?’ 남다른 조공

    젝스키스 16년 만에 신곡 발표, ‘팬들이 음반발매까지?’ 남다른 조공

    젝스키스 16년 만에 신곡 발표 소식이 화제인 가운데 젝스키스의 남다른 팬 사랑이 재조명됐다. 젝스키스는 최근 방송된 tvN ‘명단공개 2016’에서 역조공 스타 3위를 차지했다. 젝스키스의 팬들은 1990년대부터 현재까지 뜨거운 사랑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젝스키스가 해체한 후, 팬들이 음반을 발매하기도 해 눈길을 끌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자신들을 여전히 사랑해주고 있는 팬들에게 젝스키스는 역조공을 펼치고 있다. 은지원은 팬들과 캠프를 떠나고, 장수원과 이재진은 팬들과 소규모 팬미팅 자리를 가졌다. 한편 젝스키스는 오는 7일 자정 신곡을 발표한다. 사진 = 서울신문DB 연예팀 seoule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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