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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넷 ‘대안언론’ 급부상

    올 한 해도 언론계는 안팎의 여러가지 일들로 분주하고 소란스러웠다.남북관계의 진전으로 언론사 사장단이 북한을 다녀왔고,언론노조가산별노조로 전환하였으며,또 ‘안티조선운동’이 새로운 시민운동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금년 언론계의 핫 이슈 가운데 하나는 인터넷신문의 약진을 들 수 있다.인터넷인구 1,000만명 시대를 맞아 인터넷은 전자민주주의 실현과 함께 대안언론으로 발돋움했다.금년들어 ‘머니투데이’‘i비즈투데이’‘i뉴스24’‘오마이뉴스’ 등이 창간돼 선을 보였다.이 가운데2월 22일 창간된 ‘오마이뉴스’는 ‘광주386 술판사건’,‘이정빈외교통상부장관 폭탄주발언’‘국회의원회관 욕설출처 보도’등의 특종보도로 기성언론을 긴장시켰다.이밖에 10여개의 웹진,언론사의 인터넷 홈페이지 등도 새로운 대안언론으로 부각되고 있다.10월 ‘시사저널’이 창간기념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인터넷이 ‘가장 영향력있는 언론’의 제4위에 랭크되기도 했다. 지난 4·13총선에서 총선시민연대의 낙천·낙선운동이 정치권을 강타한데 이어 1월 9일 인터넷 사이트에 등장한 ‘안티조선 우리모두’는 1년 내내 언론계의 주목을 끌었다.조선일보의 고려대 ‘최장집교수사상검증사건’을 계기로 네티즌들이 주축이 돼 전개한 안티조선운동은 급기야 대학교수 등 지식인들의 참여와 소설가 황석영씨 등의 ‘조선일보 인터뷰·기고 거부선언’으로 사회전반으로 확산됐다.신동아,월간말 등에서 특집으로 다뤘는가 하면 ‘MBC 100분토론’에서 이를 토론주제로 다뤄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시민단체의 활동도 두드러진 한 해였다.총선 당시 언론대책특별위원회가 가동돼 총선보도를 감시하였으며,언론개혁시민연대·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등 시민언론단체에서는 정간법 개정과 국회내 언론발전위원회 구성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전개했다. 권력집단과 언론간의 갈등 역시 없지 않았다.‘조폐공사파업유도 의혹사건’을 수사한 검찰의 감청의혹을 제기한 조선일보 사설을 놓고검찰과 조선이 맞붙은 가운데 국제언론인협회(IPI)가 이 사건과 관련,김대중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내 논란이 됐으며,이에 대해 국정홍보처가 반박 서한을 보내기도 했다.12월에는 한나라당 기획위원회가 작성한 ‘대선전략문건’에서 언론장악음모가 드러나 한나라당이 언론계의 집중공격을 받기도 했다. 회사경영·인사문제를 둘러싼 노사갈등으로 파행을 빚은 언론사도 적지 않았다.사장의 파행경영으로 시작된 CBS의 파업사태는 아직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며,연합뉴스는 김근 사장의선임문제를 놓고 노사가 마찰을 빚기도 했다.연합뉴스와 함께 대한매일 등 정부소유 언론사의 소유구조 개편문제에 대해서도 각계에서 다양한 의견이 개진됐으나 아직 별다른 진척은 없는 상태다.이와는 별도로 동아일보 김병관 회장은 ‘고대앞 음주추태’로 물의를 빚기도했다. 80년대 민주화운동의 산물로 태어난 언론사노조가 11월 24일 산별노조로 전환한 것도 언론계로선 한 획을 그은 사건으로 기록될만 하다. 8월 국내언론사 사장단의 방북은 남북관계의 개선이 가져다 준 선물로 평가된다. 통합방송법에 의거,연말쯤 신설문제가 가시화된 민영미디어렙은 방송광고시장의 독점체제를무너뜨리는 동시에 신문광고시장의 잠식이 예상돼 신문업계의 긴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지난 8월 서울고법이 “반론보도 청구내용이 객관성이 없을 땐 안해도 무방하다”고 판결한것은 무분별한 반론보도 청구에 제동을 건 것으로 언론계가 주목할만한 판결이다. 정운현기자 jwh59@
  • ‘남매피살’막을수 있었다

    경찰이 지난 10월 이후 전북 고창에서 잇따라 발생한 연쇄살인 사건을 철저히 수사했으면 지난 19일의 박모양 남매 피살사건은 막을 수있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연쇄 살인사건을 수사중인 전북 고창경찰서는 21일 남매 살해사건의 피의자 김모씨(31·무직)에 대해 정모양(11·초등학교 5년)을 강간·살해한 혐의를 추가,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21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김씨는 지난 10월25일 오후 6시30분쯤 고창군 해리면 평지리 청룡산 인근 도로에서 면소재지 양품점에서 인형을 사가지고 혼자 귀가하던 정양을 성폭행하기 위해 산으로 끌고가던 중 손으로입을 틀어막는 바람에 정양이 질식사하자 옷을 벗기고 사체를 훼손한 뒤 달아났다. 경찰은 당시 목격자 진술 등을 토대로 범인이 신장 170㎝ 가량,30∼40대의 다소 뚱뚱한 남자라는 사실을 밝혀냈다.또 현장에서 범인의것으로 보이는 족적과,머리카락,음모 등이 발견됨에 따라 인근의 우범자 및 정신질환자 등 50여명을 용의선상에 올려놓았다. 경찰은 용의자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과 비디오까지확보해 목격자등을 상대로 탐문수사까지 벌였다.물론 김씨도 당시 용의선상에 올랐다.하지만 경찰은 김씨에 대해 방문조사 등 추가 수사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남매 피살사건이 발생한 이후 정양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족적과 머리카락 등에서 채취된 혈액형 등이 모두 김씨의 것과 일치하는 것으로 확인됐다.이에 대해 경찰은 “당시엔 증거가 너무 약해 김씨를 유력한 용의선상에 올리지 못했다”고 말했다. 고창 조승진기자 redtrain@
  • 30일 개봉 ‘자카르타’

    흥행하든 못하든,30일 개봉하는 ‘자카르타’(폭력조직의 은어로 완전범죄를 의미)는 감상포인트가 많은 작품임에는 틀림없다.먼저 하나.충무로 영화치고 이렇게 반전이 많기는 드물었다.결정적으로 또 하나.주인공이 일곱명이나 되는 한국 액션영화를 본 적이 있었나?“충무로의 친구들이 겁을 줍니다.영화가 잘못되는 날엔 ‘그냥 프로그래머나 하고 있을 일이지…’하고 사람들이 다들 한마디씩 할 거라고.” 범죄액션을 데뷔작으로 들고나온 정초신(丁楚信·38)감독은 인터뷰를 시작하자마자 불쑥 이 말부터 하고본다.그렇잖아도 특이한 이력에 대해 물어볼 참이었다.뉴욕대 영화매체학 석사→광고대행사 PD→영화 프로듀서(95년부터)→부천영화제 프로그래머.신인감독이라면십중팔구 붙어다니는 낯익은 이력,‘연출부’나 ‘조감독’이 그에겐 없다. 순제작비 10억7,000만원.최근작들의 덩치에 비하면 소품이다.직접 쓴 시나리오의 아이디어에 승부수를 띄우기로 했다.그래서 ‘자카르타’는 누가 뭐래도 ‘감독의 영화’다. “56일만에 촬영을 마쳤어요.딴 이유가 아니라 배우들의 바쁜 스케줄 때문에.당초 1,000컷 정도의 속도감 넘치는 액션물을 만들 요량이었는데,700컷선에서 그쳐야 했습니다.그건 지금도 아쉬워요” 그는 “하다보니 김세준(화이트 역)을 뺀 나머지 배우 6명의 등장 신(Scene)과 대사 횟수가 똑같더라”며 웃는다.실은,팽팽한 지능전을 연출하려는 계산된 욕심에서였다.그러나 그 욕심때문에 캐스팅 작업은 몇배나 더 힘들었다.배우 입장에서야 생색안나는 공동주연을 반길 리 없는터.오죽했으면 김상중을 제작발표회 이틀전에 캐스팅할 수 있었을까. 영화에서는 무려 7명의 배우가 공동주연으로 물고물리는 두뇌싸움을벌인다.300만달러의 뭉칫돈을 손에 넣으려고 서로의 이름도 모르고뭉친 레드(진희경),블루(임창정),화이트.아버지 회사의 돈을 빼돌리려고 은행털이를 음모한 방탕아 사현(윤다훈)과 그의 정부 은아(이재은).거기에 형제 은행털이(김상중,박준규)까지 가세한다.이들이 묘하게 얽혀 돈가방을 놓고 벌이는 코믹 시소게임이 극의 얼개다. 감독이 스스로 밝히는 ‘입봉작’의 약점.“반전을너무 쉽게 눈치채게 만들어놓지 않았냐고들 꼬집어요.결론부터 잡아놓고 시나리오를써가는 버릇탓이기도 한데,힌트가 많은 퍼즐게임을 꿰맞춰가는 재미도 괜찮잖아요,왜?”“이번 영화가 웬만큼만 되면 다음에 배우잡기는 좀 수월하지 않겠냐”고 엄살피운다.손수 시나리오를 쓴 차기작은 악마주의 냄새 물씬나는 섹스스릴러.이번에 돈을 댄 투자사(필름지)가 또 투자하기로 했고,내년 여름쯤 크랭크인한다. 황수정기자 sjh@
  • 23일 개봉 ‘6번째 날’

    당신과 똑닮은 ‘또다른 당신’이 눈앞에서 당신의 아내 혹은 남편과 감쪽같이 키스를 나누고 있다면? ‘007 네버다이’를 만들었던 로저 스포티스우드 감독이 복제인간 ‘클론’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액션물을 찍었다.아놀드 슈왈츠제네거가 따뜻한 가장과 복제인간 사이에서 고뇌하며 1인2역하는 ‘6번째날’(원제 The 6th Day·23일 개봉)이다. 레이저 면도기에 다마고치처럼 키가 자라는 인형이 인기폭발인 ‘가까운’ 미래.수수한 점퍼차림의 아놀드는 아내와 딸을 끔찍이도 아끼는 전직 전투기 조종사 아담 역이다. 전투기 탑승을 위해 안구와 지문 검사를 받은 생일날 밤,그의 행복은 산산조각난다.불법복제된 또다른 아담에게 속수무책으로 가장의 자리를 뺏긴 채 음모의 배후자인 마이클(토니 골드윈) 일당에게 납치된다. 복제양이 현실이 된 마당에 영화속 기술도 진일보할 밖에.‘데몰리션 맨’에서 실베스타 스탤론의 가상섹스가 화제였던 게 엊그제같은데,이번엔 단추만 누르면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는 홀로그램 미녀가 등장한다. 신이 인간을 만들었다는‘6번째 날’에서 아놀드는,죽음을 정복하려는 욕망의 윤리성과 가족애를 블록버스터급 액션에 버무려 단숨에 웅변하려 했다.하지만 그가 늙은 걸까.어째 액션에 힘이 빠져보인다.또 아쉬움.DNA복제의 윤리성을 놓고 구구하게 설명하려는 배려는 오히려 SF액션스릴러의 긴장감을 꺾어놓은 듯한 느낌이다. 황수정기자
  • 부쩍 는 언론공작 사례/ 언론 장악해야 권력 잡는다?

    최근 공개된 한나라당 기획위원회 명의로 작성된 ‘대선전략문건’은 적대적인 언론인들의 비리를 수집,활용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어적잖은 충격을 던졌다.그동안 ‘언론대책문건’이 여당이나 언론사에서 작성된 것과는 달리 야당이 작성했다는 점도 특이할 뿐더러 언론장악음모가 역대 정권의 사례를 능가한다는 지적이다. 90년대 들어 첫 언론문건파동은 지난 92년 당시 연합통신(현 연합뉴스) 김정훈 부국장이 언론사 주요간부를 접촉한 결과를 ‘보고서’로만들어 당시 김영삼 민자당 총재에게 보고한 것이 이해 9월 기자협회보에 공개된 사건이다.이후 김씨는 ‘YS언론장학생’으로 지목돼 언론계를 떠나야 했다. 두번째는 지난 97년 10월 중앙일보 정치부 명의로 작성된 ‘이회창경선전략의 문제점과 개선방향’.소위 ‘중앙일보 언론문건’으로 통하는 이 문건은 이회창 총재의 신한국당 경선전략을 사내 ‘정보보고’형식으로 작성한 것으로 중앙일보가 이 총재를 공개적으로 미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샀다. 세번째는 지난해 10월 당시 정국을 들쑤셔놓았던,중앙일보 문일현기자가 작성한 언론대책 문건.‘성공적 개혁추진을 위한 외부환경 정비방안’이라는 제목의 이 문건은 문기자가 평소 가깝게 지내던 이종찬 전의원(당시 민주당 부총재)에게 ‘언론개혁’의 방향에 대한 개인적 의견을 작성,보고한 것으로 권언유착의 전형으로 지적됐다. 이번까지 모두 네 차례의 언론문건파동이 잇따르고 있는 셈이다. 앞의 세 문건이 언론계에서 작성된 것이라면 이번 문건은 여당의 언론정책을 비판해온 야당이 작성한 것이어서 주목된다. 한편 이번 문건을 통해 한나라당의 언론공작기도가 드러남에 따라반 DJ 성향의 언론들도 입을 모아 한나라당을 비난하고 나섰다. 가장먼저 열을 올리고 나선 곳은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이회창 총재를 우호적으로 보도했던 조선일보였다.조선은 13일자 ‘기자수첩’에서 “한나라당은 얼마전엔 현정권의 ‘25대 실정(失政)’을 발표하면서 ‘대(對)언론공작’을 주요 사례로 꼽았다”며 “자신들을 비판하는 언론은 무조건 ‘적’으로 몰아붙이느냐”고 한나라당을 공박했다.14일자‘한나라당의 공작(工作)정치’ 제하의 사설에서도 ‘적대적 언론인 비리 등 문제점 축적 및 활용’이라는 대목과 관련,“공분과 함께실소를 자아내는 작태” “음험한 공작적 발상” 운운하며 한나라당을 질타했다. 중앙일보 역시 한나라당을 비판하기는 마찬가지였다.중앙은 14일자사설에서 “적대적이니 우호적이니 하는 것 자체가 언론을 편가르기하겠다는 속셈 아니냐”며 “지난해 이 정부가 조세권을 동원해 언론길들이기 공작에 나선 것과 무엇이 다르냐”고 따졌다. 한나라당을질타하는 목소리는 조선과 같았다.그러나 ‘조세권’을 들먹이는 걸로 봐 ‘음색’은 조선과 다소 달라 보였다.사주의 구속사태로 이어졌던,지난해 ‘중앙일보 사태’에 대한 ‘앙금’이 아직 가시지 않은듯 했다. 정운현기자
  • [매체비평] 언론과 권력의 함수관계

    언론문건 망령이 나라를 어지럽히고 있다.지난해 신문기자의 손으로작성된 ‘언론대책문건’이 한 방송기자의 손에 의해 야당의원에게전달돼 사회를 뒤흔든 사건이 발생한지 거의 1년만에 유령처럼 다시나타난 것이다.‘신판언론문건’이 지난해와 다른 점은 출처가 ‘권언유착’의 단맛을 아는 언론인이 아니라 한나라당이라는 공당으로부터 나왔다는 사실이다.그것도 지난해 언론문건사건 때 ‘대통령 하야’까지 주장했던 야당이 스스로 만든 ‘차기 대권전략문건’에서 언론과 언론인을 공작대상으로 분류,집권 시나리오를 만들어 놓았다는점이다.구체적으로 이 문건은 적대적 논설진에 대해서는 비리와 문제점을 캐서 자료를 모아두고 우호적 언론인에 대해서는 조직화 방안전략을 세우도록 한 것이다. 도대체 이 땅의 언론과 권력은 어떤 사이길래 언론문건이 여야를 오가며 시도때도 없이 망령처럼 나타나는가? 반복되는 언론문건사건이던지는 시사점은 무엇인가? 먼저 민주주의 사회에서 언론은 권력을감시,견제,비판하는 역할을 그 존재의 이유로 삼고 있다.따라서 언론과 권력의 관계는 적대적이거나 우호적인 관계를 거부한다.‘적당한’ 긴장관계 유지가 서로의 기능을 인정,보호한다는 점에서 필요하다.그러나 한국언론사를 통해 살펴보면 군사정권,문민정권가릴 것 없이 권력자,정치인들은 한국언론을 지배도구 수단이나 집권의 방편으로 삼아온 사실을 알 수 있다.때로는 언론 스스로 ‘대통령을 만든 신문’‘대통령을 만들고 싶은 언론’으로 둔갑,여론을 왜곡,호도시켰다.그 결과로 얻어진 열매는 달콤했다.언론사들은 차관이나관세 등 각종 금융특혜와 불법의 온상이 됐다. 그 공훈의 일등 주역언론인들은 장관으로 국회의원으로 청와대 수석으로 변신했다.‘언론장학생’이라는 신조어도 그래서 나온 것이다.물론 이 과정에서 국민의 알권리와 역사의 진실은 종종 훼손되거나 변질됐다. 언론대책문건에서 나타나듯이 한국에서는 집권 시 여야를 막론하고언론의 지지 획득을 최우선 과제로 삼는다는 사실을 볼 수 있다.선거가 임박하면 이런 언론문건은 여·야당에서 수도없이 만들어진다.다만 그것이 공개가 안될 뿐이다.이미 언론을 너무나 잘 아는 언론인출신 정치인들이 여·야당에 수두룩하게 진을 치고 있다.이런 문건은언론의 영향력을 반증하는 사례이기는 하지만 동시에 이런 식의 음모적 언론플레이가 통용된다는 현실을 시사하기도 한다.언론은 정치권의 이런 ‘불온문건’에 부끄럽게 생각하고 분노해야 하지만 일부에서는 스스로 권력의 구애를 즐기며 권력의 하부구조로 편입됐다. 여당과 야당이 이처럼 언론을 자기필요에 따라 공작대상으로 간주할때 언론 바로세우기는 공염불에 그치고 만다.언론이 권력과 거리 유지를 위해 노력해도 그 기능을 다하기가 힘든 판국에 이처럼 문건이판칠 때 국민은 또 다시 배신의 계절을 맞게 된다.불행한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권력과 언론의 위치를 제자리로 돌려놓아야 한다.그 몫은 언론과 정치권,시민단체의 것이다. 김창룡 인제대교수 언론정치학
  • 권노갑의원 사퇴 발표까지

    권노갑(權魯甲) 민주당 최고위원의 17일 저녁 최고위원 전격 사퇴는 여권의 2인자로서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을 위한 ‘고독한 결단’으로 알려졌다.그는 이날 측근들과도 일체의 연락을 끊고서 혼자 ‘2선 후퇴’를 최종 정리했다. 사태는 지난 2일 김 대통령이 직접 주재한 청와대 최고위원회의에서 정동영(鄭東泳) 최고위원이 그의 ‘2선 후퇴’를 제기하면서 공론화됐다.권 최고측은 ‘배후론’ ‘음모론’,또 ‘한나라당 2중대론’까지 펴면서 강력 반발,당이 ‘친권(親權)’대 ‘반권(反權)’으로 갈렸다. 사태가 당분열 양상으로 전개되자 김 대통령이 6일 권 위원과 한화갑(韓和甲) 최고위원에게 경고의지를 전달했다.이에 갈등은 봉합국면으로 접어드는 듯했다.권 위원은 7일 기자회견을 통해 유임 의지를천명하려던 계획을 취소,성명을 통해 당의 단합을 호소하는 데 그쳤다. 이어 권·한 위원과 의원 등 동교동계 11명은 노벨평화상 시상식이열리던 10일 밤 모여 “초심(初心)으로 돌아가 김 대통령의 국정 수행을 적극 뒷받침하자”고 결의했다.본격 2선 후퇴 수순을 밟기 시작한 것으로 비쳤다.이날 모임에서 나온 “뒤에서 김 대통령의 국정 수행을 돕는다”는 말을 놓고 권 위원 진영과 한 위원 진영은 해석을달리 했으나,후퇴론에 무게가 실려 갔다. 결국 김 대통령이 14일 귀국,국정쇄신을 위한 여론을 수렴하는 작업에 들어가면서 ‘권노갑 2선 후퇴’론이 파상적으로 나돌았다.그리고 한 위원과 가까운 민주당 소속 의원 10여명이 13일 조찬을 함께 하면서 분위기가 더욱 묘하게 흘렀다. 지난 15일 오전 한 위원이 청와대에서 김 대통령을 1시간여 동안 면담하고,한 위원이 측근들과 함께 17일 오전 출국한 뒤 권 위원의 퇴진론이 급격히 확산됐다. 이춘규기자 taein@
  • 당정개편‘說’풍년

    여권의 당정개편 내용과 시기에 대해 백가쟁명(百家爭鳴)식으로 각종 설(說)들이 쏟아지고 있다.그러나 정작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지금까지 세부 내용에 대해 공식 언급하지 않고 있다.청와대와 민주당에서도 마찬가지로 공식 언급이 없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설은 날마다 양산되고 있다. 지금까지 여권에 유포된 설 가운데 대표적인 것은 ‘당 지도부 전면교체’ ‘빅4(총리·청와대 비서실장·국가정보원장·민주당 대표)중3명 교체’ ‘인적 개편 최소화’ ‘연말 당정 대(大)쇄신’ ‘동교동계 2선 후퇴-임명직 배제’ ‘연말 당·청와대 쇄신-내년 봄 개각’ 등이다. 설 하나가 유포되면 곧바로 이를 부인하는 설이 나오고,또 다른 설이꼬리를 무는 양상이다.“음모가 있다” “대통령을 생각하지 않고 보신에만 신경을 쓴다”는 비판도 많다. 당정개편과 관련한 복잡한 설이 나도는 이유는 김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이 대체적 견해다.김대통령은 취임 후 언론보도를 통해 여론을 수렴하고,보도내용을 인사에 충실하게 반영해왔기 때문이다. 취임 때 조각(組閣)이나 청와대 비서진 구성,당정개편 때마다 김대통령이 언론보도를 중시하는 경향이 잘 드러났다.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이 분위기 쇄신을 위해 ‘깜짝 인사’를 자주 했던 것과 대조적이다.김전대통령이 언론에 보도되면 원래 인사안(案)을 취소했던 것과도 정반대다. 따라서 김대통령의 이같은 인사 스타일을 잘 아는 여권 인사 및 세력들이 김대통령의 구상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자신에게 유리한 시나리오를 만들어 언론에 보도되도록 하는 것이 ‘백가쟁명’의 가장 큰이유로 꼽힌다.언론사 간의 보도 경쟁 등 다른 요인도 있다. 이춘규기자 taein@
  • 金대통령 ‘오슬로 구상’ 뭘까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오슬로 구상’을 언제쯤 풀어놓을까. 김 대통령은 오슬로나 스톡홀름 방문 중 국내문제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박준영(朴晙瑩)대변인 등 청와대 참모들도 “대통령이귀국하면 각계 인사들을 두루 만난 뒤 국정개혁을 단행할 것”이라는원론적인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하지만 김 대통령이 지난 8일 출국할 때 “밖에서도 국정의 중요 사항은 차질 없이 챙기고,귀국 후 여러분이 바라는 국정개혁을 단행하겠다”고 말해 ‘밑그림’을 대강 그렸을 것으로 짐작된다. 방문 중에도 김 대통령의 최대 관심사는 역시 국내 경제문제였다.이기호(李起浩)청와대경제수석 등으로부터 매일 국내 상황을 보고받고지시사항을 꼼꼼히 챙겼다는 전언이다. 진념 재경부장관을 비롯한 경제팀 교체 여부와 관련해 주목되는 대목이다. 어쨌든 김 대통령의 구상은 연말쯤 당정개편으로 이어질 것 같다.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13일 “김 대통령이 출국 인사말에서 ‘여러분이바라는 국정개혁’을 강조한 점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을 것”이라며“‘개혁’에는 ‘쇄신’보다 더 강한 메시지가 담긴 것이 아니냐”고 말해 김 대통령이 모종의 결단을 준비 중임을 시사했다. 김 대통령은 ‘오슬로 구상’을 풀어놓기 앞서 각계 인사들을 두루접촉할 계획이다.김 대통령은 출국 전 민주당 최고위원들과 만났을때 다시 만나기로 약속했다.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자민련 김종필(金鍾泌)명예총재도 만나 의견을 들은 뒤 최종 결심을 할 것으로예상된다. 그러나 시기는 다소 늦춰질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여권 핵심 관계자는 “임시국회 상황에 따라 국정개혁 단행 일정은 유동적일수밖에 없다”며 당정의 면모 일신을 위한 개편이 내년 초로 미뤄질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다. 또 “내각 개편은 당과 청와대 보좌진 개편 후 단행될 가능성도 있다”고 단계적 개편 가능성을 시사하기도했다. 스톡홀름 오풍연특파원 poongynn@. * 金대통령 행보 결산. [스톡홀름 오풍연특파원] 스웨덴을 방문 중인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13일 노벨재단 방문,팔메 전 총리 부인 접견 등 일정을 모두 마치고 서울행 비행기에 올랐다. [방문 성과] 김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이 가져올 유·무형의 파급효가는 예상보다 훨씬 클 것 같다.박준영(朴晙瑩)청와대대변인은 “성과 가운데 국가 이미지의 국제화를 첫번째로 꼽을 수 있다”면서“앞으로 대외관계에서 여러 가지로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국내 초청 인사로 동행한 손병두(孫炳斗)전경련 상근 부회장은 “우리기업들이 노벨상 이미지를 상품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노벨재단 및 국왕 방문] 김 대통령은 오전(이하 현지시각) 노벨재단을 방문,올해 노벨상 수상자 12명과 환담했다. 김 대통령은 마이클 솔맨 노벨재단 사무총장에게 ‘노벨상 100주년기념전시회’에 출품할 ‘옥중 서신’ 원본과 수의(囚衣) 등을 전달했다. [팔메 여사 접견] 김 대통령과 부인 이희호(李姬鎬)여사는 오후 숙소인 그랜드호텔에서 고(故) 올로프 팔메 전 총리의 부인 리스벳 팔메여사와 그 가족을 만났다. 김 대통령은 89년 스웨덴을 방문했을 때 팔메 여사를 만나 80년 구명운동에 대해 뒤늦은 감사의 뜻을 전했다.팔메 여사는 94년 아·태재단 창설때 방한했다. 팔메 여사는 99년 ‘옥중 서신’ 스웨덴판(版)의 서문을 썼으며,김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이 결정된 뒤 축하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스웨덴 복지정책의 ‘대부’격인 팔메 전 총리는 73년 김 대통령의도쿄(東京) 납치사건때와 김 대통령이 80년 내란음모사건으로 사형선고를 받았을 때 구명운동에 적극 나서는 등 김 대통령에게 각별한 관심을 표명해 왔다.김 대통령과 팔메 전 총리의 인연은 팔메 총리가 86년 2월 영화 관람을 마치고 귀가하다 암살당할 때까지 돈독하게 이어졌다.
  • 내년 한약사 시험 약대생 무더기 지원

    약대생이 내년 1월말 치러지는 한약사시험에 또다시 무더기로 지원하면서 의·약 분쟁에 이어 이번엔 한·약 갈등이 재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대한한의사협회는 지난 9일 오후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약학과 졸업생의 이중면허 취득음모 저지를 위한 전국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한약사시험 응시자를 한약학과 졸업자로 엄격히 제한해야 한다”는데 의견을 모았다고 11일 밝혔다. 비대위는 “계절학기와 유급을 통해 소정의 한약관련 과목을 이수한 양약학 전공자는 한약사시험 응시자격이 없다”며 “이를 즉각 확인하라”고 보건복지부와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국시원)에 요구했다. 한약사시험은 지난 97년3월 개정된 약사법과 시행령을 통해 현재 전국에 3군데 설치돼 있는 한약학과를 졸업했거나 법개정에 따른 경과규정으로 소정의 한약관련 과목(95학점)을 이수한 95,96학번 약대생에 한해 한정적으로 응시할 수 있도록 명시돼 있다. 강동형기자 yunbin@
  • 김대중대통령 노벨평화상 수상연설 전문

    국왕 폐하,왕세자와 공주 등 왕실가족 여러분,노르웨이 노벨위원회위원 여러분,그리고 내외 귀빈과 신사 숙녀 여러분. 노르웨이는 인권과 평화의 성지입니다.노벨평화상은 세계 모든 인류에게 평화를 위해 헌신하도록 격려하는 숭고한 메시지입니다.저에게 오늘 내려주신 영예에 대해서 다시 없는 영광으로 생각하고 감사를 드립니다.그러나 저는 한국에서 민주주의와 인권,그리고 민족의 통일을 위해 기꺼이 희생한 수 많은 동지들과 국민들을 생각할 때 오늘의 영광은 제가 차지할 것이 아니라 그 분들에게 바쳐져야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우리 국민의 민주화와 남북 화해를 위한 노력을 아낌없이 지원해 주신 세계의 모든 나라와 벗들에게도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이 노벨평화상을 저에게 주신 이유 중의 하나는 지난 6월에 있었던 남북 정상회담과 그 이후에 전개되고 있는 남북 화해·협력 과정에 대한 평가라고 알고 있습니다. 존경하는 여러분. 노벨위원회가 긍정적으로 평가해 준 최근의 남북관계에 대해 몇 말씀 드리겠습니다.저는 지난 6월에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을 가졌습니다.북한에 갈 때 여러 가지 걱정이 많았지만 오직 민족의 화해와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일념으로 출발했던 것입니다. 회담이 잘 된다는 보장도 없었습니다.남북은 반세기 동안 분단된 가운데 3년에 걸친 전쟁을 치렀으며 휴전선의 철책을 사이에 놓고 불신과 증오로 50년을 살아 왔습니다. 이러한 남북관계를 평화와 협력의 방향으로 돌리기 위해 저는 98년 2월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 햇볕정책을 일관되게 주장했습니다.그것은 첫째, 북에 의한 적화통일을 용납하지 않는다.둘째,남에 의한 북한의 흡수통일도 결코 기도하지 않는다. 셋째, 남북은 오로지 평화적으로 공존하고 평화적으로 교류·협력하자는 것이었습니다.완전한 통일에 이르기까지는 얼마가 걸리더라도 서로 안심하고 하나가 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 저의 생각이었습니다. 북한은 처음에는 우리 햇볕정책을 북한을 전복시키려는 음모로 여기고 강하게 반발했습니다.그러나 우리의 일관되고 성의있는 자세와 노르웨이를 비롯한 전세계 모든 나라의 햇볕정책에 대한 지지는 마침내 북한의 태도를 바꾸게 만들었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남북 정상회담은 예상했던 대로 참으로 힘든 협상이었습니다.그러나 우리 두 사람은 민족의 안전과 화해·협력을 염원하는 입장에서 결국 상당한 수준의 합의를 도출해 내는 데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첫째,우리는 조국의 통일을 자주적이고 평화적으로 이룩하자,또 통일을 서두르지 말고 우선 남과 북이 평화적으로 공존하고 평화적으로 교류 협력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자는 데 합의했습니다. 둘째,종래 남북 간에 현격한 차이가 있었던 통일방안에 대해서도 상당한 합의점을 도출하는 데 성공했습니다.북한은 우리가 주장한 통일의 전 단계인 ‘1민족 2체제 2독립정부’의 ‘남북연합제’에 대해 ‘낮은 단계의 연방제’라는 형태로 접근해 왔습니다.분단 반세기 만에 처음으로 통일에의 제도적 접점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셋째,한반도에 미군이 계속 주둔해서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안전을 유지하도록 하자는 데에도 합의했습니다. 북한은 지난 50년 동안 남한에서의 미군 철수를 최대 쟁점으로 주장했습니다.저는 김정일 위원장에게 강조했습니다.“미·일·중·러의 4강에 둘러싸여 세계에서도 유례가 없는 특수한 지정학적인 위치에 있는 우리로서는 미군의 한반도 주둔은 필수불가결하다.미군은 현재뿐 아니라 통일 후에도 필요하다.유럽을 보라.당초 ‘나토’의 창설과 미군의 주둔은 소련과 동구 공산권의 침략을 막는 것이 목적이었다.그러나 공산권이 멸망한 지금도 ‘나토’와 미군이 있지 않느냐. 유럽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서는 그 존재가 계속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해 김정일 위원장은 뜻밖에도 종래의 주장을 접고 적극적인 찬성의 뜻을 나타냈는데,이는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참으로 뜻 깊은 결단이었습니다. 그 외에도 우리는 이산가족이 만나는 데 합의했으며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 원만하게 실천에 옮겨지고 있습니다.경제협력에 대해서도 합의를 했습니다.이미 투자보장,이중과세방지 등 4개의 협정을체결하는 합의서에 서명했습니다.우리는 그 동안 북한에 대해 인도적 차원에서 비료 30만t과 식량 50만t을 지원했습니다.그리고 사회·문화 교류에 대해서도 합의해 스포츠,문화예술,관광 교류 등이 점차 활기를 띠고 있습니다. 또한 남북 간 긴장 완화와 평화 정착을 논의하기 위한 남북 국방장관회담이 열려 ‘다시는 전쟁을 하지 말자’는 데 합의했습니다.남북간의 분단된 철도와 도로를 다시 연결하기 위해 양쪽 군이 협력하는 데에도 합의했습니다. 한편 저는 남북관계의 개선만으로는 한반도에서 평화와 협력을 완벽하게 성공시킬 수 없다는 판단 아래,북한이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하고,나아가 일본과 다른 서방국가들과도 관계를 개선할 것을 적극 권유했습니다.그리고 서울로 돌아와서 ‘클린턴’대통령,‘모리’총리등 미·일 양국의 정상에게도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권고했습니다. 또한 저는 지난 10월에 서울에서 열렸던 제3차 ASEM 정상회의에서 유럽의 우방국가들에게도 북한과 관계 개선을 하도록 권고했습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바와 같이 지금북·미 관계와 유럽·북한 관계는 상당한 진전을 보이고 있습니다.이러한 일들은 한반도의 평화에 결정적인 영향과 진전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존경하는 귀빈 여러분. 제가 민주화를 위해서 수십 년 동안 투쟁할 때 언제나 부딪힌 반론이 있었습니다.그것은 아시아에서는 서구식 민주주의가 적합하지 않으며 그러한 뿌리가 없다는 주장이었습니다.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릅니다.아시아에는 오히려 서구보다 훨씬 더 이전에 인권사상이 있었고,민주주의와 상통한 사상의 뿌리가 있었습니다.‘백성을 하늘로 삼는다.’‘사람이 즉 하늘이다.’‘사람 섬기는 것을 하늘 섬기듯 하라. ’이런 것은 중국이나 한국 등지에서 근 3,000년 전부터 정치의 가장 근본요체로 주장되어 온 원리였습니다. 또한 2,5000년 전에 인도에서 시작된 불교에서는 ‘이 세상에서 내 자신의 인권이 제일 중요하다’는 교리가 강조되었습니다. 이러한 인권사상과 더불어 민주주의와 상통되는 사상과 제도도 많이 있었습니다. 공자의 후계자인 맹자는 ‘임금은 하늘의 아들이다.하늘이 백성에게 선정을 펴도록 그 아들을 내려보낸 것이다.그런데 만일 임금이 선정을 하지 않고 백성을 억압한다면 백성은 하늘을 대신해 들고일어나 임금을 쫓아낼 권리가 있다’고 했습니다.이것은 존 로크가 그의 사회계약론에서 설파한 국민주권사상보다 2,000년이나 앞선 것입니다. 중국과 한국에서는 이미 기원 전에 봉건제도가 타파되고 군현제도가 실시되었습니다. 공무원을 시험에 의해서 뽑는 제도는 1,0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이와 병행해서 임금을 포함한 고관들의 권력 남용을 감시하는 강력한 사정제도도 존재했습니다.이와 같이 민주주의에 대한 풍부한 사상과 제도의 뿌리가 있었던 것입니다.다만 아시아에서는 대의적 민주제도의 기구는 만들어 내지 못했습니다.그것은 서구사회의 독창적인 것으로서 인류의 역사에 크게 기여한 훌륭한 업적이라고 할 것입니다. 서구의 민주제도는 민주적 뿌리가 있는 아시아에서 이를 채택할 때 아시아에서도 훌륭하게 기능하고 있는 것입니다.한국·일본·필리핀·인도네시아·태국·인도·방글라데시·네팔·스리랑카 등 수 많은 사례들이 있습니다.동티모르에서 주민들이 민병대의 혹독한 학살과 탄압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가지고 독립을 지지하는 투표에 참가했습니다.지금 미얀마에서 아웅산 수지 여사가 고난의 투쟁을 계속하고 있습니다.아웅산 수지 여사는 미얀마 국민과 민심의 폭 넓은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저는 언젠가 미얀마에 민주주의가 반드시 회복되고 국민에 의한 대의정치가 다시 부활하는 날이 오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존경하는 여러분. 민주주의는 인간의 존엄성을 구현하는 절대적인 가치인 동시에 경제발전과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민주주의가 없는 곳에 올바른 시장경제가 존재할 수 없습니다.또한 시장경제가 없으면 경쟁력 있는 경제의 발전은 기대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저는 민주주의적 기반이 없는 국가경제는 사상누각일 뿐이라고 확신했습니다.그래서 98년 대통령으로 취임한 이후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과 함께 ‘생산적 복지’정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지난 2년 반 동안 민주주의와 시장경제,그리고 생산적 복지의 병행 실천이라는 국정철학 아래 국민의 민주적 권리를 적극 보장하고 있습니다.금융·기업·공공·노동 부문의 4대 개혁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왔습니다.복지의 중점을 저소득층을 포함한 모든 국민의 인력 개발에 둠으로써 이제 상당한 성과를 올리고 있습니다. 한국의 개혁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이러한 개혁을 조속히 마무리함으로써 전통산업과 정보산업,생물산업을 삼위일체로 발전시켜 세계 일류경제를 실현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21세기는 지식정보화시대로서 부(富)가 급속히 성장하는 시대입니다.동시에 정보화시대는 부의 편차가 심화되어 빈부격차가 급격히 확대되는 시대이기도 합니다.국내 뿐만 아니라 국가 간의 빈부격차도 커져 갑니다.이것은 인권과 평화를 위협하는 또 하나의 심각한 현상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우리는 21세기에 있어서도 계속해서 인권의 탄압과 무력의 사용을 적극 반대해야 합니다.아울러 정보화에서 오는 새로운 현상인 소외계층과 개발도상국의 정보격차를 해소함으로써 인권과 평화를 저해하는 장애요인을 제거해야 합니다. 존경하는 국왕 폐하,그리고 신사 숙녀 여러분. 마지막으로 제 개인에 대해서 잠시 말씀드릴 것을 허락해 주시기 바랍니다.저는 독재자들에 의해서 일생에 다섯 번에 걸쳐서 죽을 고비를 겪어야 했습니다.6년의 감옥살이를 했고,40년을 연금과 망명과 감시 속에서 살았습니다. 제가 이러한 시련을 이겨내는 데에는 우리 국민과 세계의 민주인사들의 성원의 힘이 컸다는 것은 이미 말씀 드렸습니다.동시에 제 개인적인 이유도 있습니다. 첫째,저는 하느님이 언제나 저와 함께 계신다는 믿음 속에 살아 오고 있으며,저는 이를 실제로 체험했습니다.1973년 8월 일본 동경에서 망명생활을 하고 있을 당시 저는 한국 군사정부의 정보기관에 의해 납치되었습니다.전 세계가 이 긴급뉴스에 경악했었습니다.한국의 정보기관원들은 저를 일본 해안에 정박해 있던 그들의 공작선으로 끌고 가서 전신을 결박하고 눈과 입을 막았습니다.그리고 저를 바다에 던져 수장하려 했던 것입니다.그때 저의 머리 속에 예수님이 선명하게 나타나셨습니다.저는 예수님을 붙잡고 살려 줄 것을 호소했습니다.바로 그 순간 저를 구원하는 비행기가 와서 저는 죽음의 찰나에서 구출되었던 것입니다. 또 하나,저는 역사에 대한 믿음으로 죽음의 위협을 이겨 왔습니다.1980년 군사정권에 의해서 사형 언도를 받고 감옥에서 6개월 동안 그집행을 기다리고 있을 때 저는 죽음의 공포에 떨 때가 자주 있었습니다.그러나 이를 극복하고 마음의 안정을 얻는 데는 ‘정의필승’이란 역사적 사실에 대한 저의 확신이 크게 도움을 주었습니다. 모든 나라 모든 시대에 있어서, 국민과 세상을 위해 정의롭게 살고 헌신한 사람은 비록 당대에는 성공하지 못하고 비참하게 최후를 맞이하더라도 역사 속에서 반드시 승자가 된다는 것을 저는 수 많은 역사적 사실 속에서 보았습니다.그러나 불의한 승자들은 비록 당대에는 성공을 하더라도 후세 역사의 준엄한 심판 속에서 부끄러운 패자가 되고 말았다는 것도 읽을 수 있었습니다.거기에는 예외가 없었습니다. 국왕 폐하,그리고 귀빈 여러분. 노벨상은 영광인 동시에무한한 책임의 시작입니다. 저는 역사상의 위대한 승자들이 가르치고 알프레도 노벨 경(卿)이 우리에게 바라는대로 나머지 인생을 바쳐 한국과 세계의 인권과 평화,그리고 우리 민족의 화해·협력을 위해 노력할 것임을 맹세합니다.여러분과 세계 모든 민주인사들의 성원과 편달을 바라마지 않습니다. 감사합니다.
  • [대한광장] 박정희기념관 논쟁에 마침표를

    최근 박정희기념관에 관한 논란이 뜨겁다.그러나 정작 이에 대한 공개토론은 잘 열리지 않고 있다.반대측 토론자로 참여할 분은 아주 많지만 찬성측 토론자를 찾기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란다.이것만 보더라도 기념관 건립에 대한 시시비비는 이미 가려진 셈이다. 무릇 특정 사람에 대한 기념관은 그가 남긴 업적이 후대에 귀감이되고 역사교훈으로 기릴 만할 때 건립된다.그러나 박정희는 청산의대상이지 귀감의 보기는 아니다.그의 일생을 일본군 장교로서,해방후 한국군 장교로서,대통령으로서,또 인간으로서 각기 나누어 평가해보자. 먼저 일본군 장교로서 박정희 평가는 의문사를 당한 장준하 선생께서 그의 반민족적 친일행위 때문에 “대한민국 누구도 대통령이 될수 있지만 박정희만은 안된다”고 이미 내려주었다.그런데도 굳이 기념관을 건립한다면 우리는 천안의 독립기념관을 허물어야 한다.민족해방과 독립을 위해 투쟁하거나 돌아가신 선열들,곧 독립군과 의병을기리고 그 정신을 이어받자고 지어놓은 기념관인데, 이들을 죽이는데앞장선 일본군 장교의 기념관을 세운다면 논리적으로 천안기념관은마땅히 허물어야 한다. 다음 한국군 장교로서 박정희는 여순사건때 숙청 제1호였으나 그가가진 한국군내 좌익계의 비밀명단을 넘겨주는 조건으로 목숨을 건질수 있었다.또 막 출범한 4·19 이후의 장면 민주정권을 총과 칼로써무너뜨리는 반역의 쿠데타를 감행했고 이 땅에 군사독재라는 악의 씨앗을 뿌렸다.그 스스로도 “나 같은 불행한 군인이 우리 역사에 있어서는 안된다”고 역설했다. 대통령으로서의 평가는 일반적으로 정통성을 기반으로 한다.정통성은 역사적 정당성,권력창출의 정당성,권력행사의 정당성을 두루 갖추어야 한다.그러나 역사적 정당성은 그가 일제의 황군장교였던 사실만으로도 이미 상실됐다.또 그가 초기에는 총과 칼로,유신시대에는 체육관 선거라는 요식 행위로 종신 대통령 자리를 차지했기에 권력창출의 정당성도 없다.마지막 권력행사에서는 인권,통일,민주화,경제성장,법치주의,부정부패 일소,도덕성 등 다양한 요소에 걸쳐 평가를 해야하는데 어느 한 분야에서도 정당성을 찾을 수없다. 민주주의에서 박정희는 유신독재·군부독재의 원조였고 대통령이 국회의원 3분의 1을 임명하는 반의회주의자였다.인권에는 인혁당사건등 수많은 간첩단 사건을 조작해 귀중한 생명을 앗아간 반인권의 세계적 명사였다.법치주의에서는 내각이나 국회가 아니라 중앙정보부와경호실이 통치 핵심이 되고,대통령의 긴급명령이 헌법보다 우위를 차지하는 등 반법치주의의 연속이었다. 부정부패에서는 그가 죽자 청와대 특수 비밀금고에서 발견된 현금 9억원,가족 중 최측근이 관리한 스위스은행 비밀계좌가 말한다.더 나아가 심복이던 김성곤·김형욱 등에 이르기까지 최소한 1억달러 이상부정축재를 취했다고 미국 프레이즈 청문회는 밝힌 바 있다. 인간으로서 박정희는 채홍사인 중정요원 박선호 대령이 매일 연예인·가수 등을 대령하는 일이 가장 괴로웠다고 실토할 정도로 난봉꾼에다 변절·배신·기회주의·음모·타락으로 뒤범벅된 일생을 살았다. 한 인물에 대한 평가는 한 가지 업적이나 사실만에 의존한 단편적평가가 아니라 여러 요소를 함께 포괄하는총체적 평가를 해야 한다. 박정희의 경우 모든 잘못에도 불구하고 단지 하나 경제성장을 이루어냈기 때문에 기념관을 지어야 한다고들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마저도박정희 때문이 아니라 누가 집권을 하더라도 냉전의 대결 속에서 남한은 그 정도의 경제성장을 하게 돼 있던 점을 고려하면 그에게 기릴것은 하나도 남지 않는다. 만약 10·26 직후 민주정권이 들어섰더라면 박정희의 전모는 샅샅이밝혀지고 그 평가는 이미 오래 전에 끝났을 것이다. 기념관 건립이란말조차 꺼낼 수 없게 됐을 것이다. 늦었지만 이제 우리는 박정희기념관 논란에 마침표를 찍어야겠다. 강정구 동국대 교수·사회학과
  • 金大中대통령 노벨평화상 수상/ 노벨위원회가 밝힌 수상 이유

    김대중 대통령은 동아시아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기울인 평생의노력, 특히 북한과의 평화와 화해를 위한 노력으로 이 상을 수상하게됐습니다. 이제 막 시작된 것에 불과한 화해의 절차를 위해 상을 수여하는 것이 시기상조가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어 왔습니다.그에 대한 대답으로 김 대통령의 인권을 위한 그 동안의 노력이 최근 남북한 관계의진전과는 별도로 수상후보로서 충분한 가치를 지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그러나 북한과의 화해를 위한 강력한 김 대통령의 다짐 및 이행,특히 지난 1년 동안 이룩한 업적이 이번 수상에 새롭고 중요한 몫을더한 것도 역시 명백합니다. 평화상은 지금까지 이룩해 온 조처에 대해 수여되는 것입니다.그러나 노벨평화상의 역사에서 자주 보아 온 것처럼 올해도 역시 평화와화해를 위한 머나먼 길에 더욱 진척이 있기를 격려하는 뜻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이는 넓은 범위에서 용기의 문제입니다.김 대통령은 고착화된 50년의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아마 세계에서 가장 중무장된 전선 너머로협조의 손길을 뻗으려는 의지를 지녀왔습니다.그의 의지는 개인적,정치적 용기이며 유감스럽게도 다른 분쟁지역에서는 너무 자주 결여되어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현재 김대중씨는 민주한국의 대통령입니다.김 대통령의 집권까지의노정은 멀고도 먼 길이었습니다.수십년 동안 그는 권위주의 독재체제와 승산이 없어 보이는 싸움을 했습니다. 가혹한 교도소 환경 속에서도 김대중씨는 삶을 바쳐서 해야 할 일을찾아내게 되었습니다. 불굴의 낙관적 태도를 가지고 그는 교도소 안에서 발견한 ‘즐거움’에 대해 썼습니다.동양과 서양의 모든 종류의서적 통독이 그것입니다.신학·정치학·경제학·역사 그리고 문학 서적들입니다.가족과의 짧은 면회시간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갖가지방해 시도가 있었음에도,그와 가장 가까웠던 인사들로부터 편지를 받고 답장을 쓸 수도 있었습니다.그리고 마지막으로 정원에서 꽃을 돌보는 일도 허용되었습니다. 김대중씨의 얘기는 몇몇 다른 평화상 수상자,특히 넬슨 만델라와 안드레이 사하로프의 경험과 공통되는 점이 많이 있습니다.상을 받지는않았지만 수상할 자격이 있었던 마하트마 간디의 그것과 함께 말입니다.김대중씨가 간직한 불굴의 정신은 국외자들에게 거의 초인적인 것처럼 보일지 모릅니다.이런 점에서 이번 수상은 보다 진지한 면이 있습니다. 김대중씨는 한국의 전면적인 개혁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며 ‘햇볕정책’을 통해 북한과 적극적인 협조관계를 추진하고 있습니다.‘햇볕’이라는 말은 이솝우화에 나오는 햇볕과 바람이한 나그네의 옷을 벗기는 내기를 한 데서 따온 것입니다.‘햇볕정책’은 바람을 막지 않더라도 남북한이 공동의 이익을 서로 나누고 이를 강화함으로써 최소한 추위를 누그러뜨리자는 것입니다.김대중씨는남한이 북한을 합병하거나 흡수할 의도가 전혀 없음을 분명히 했습니다.시간이 걸리고 아주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목표는 통일입니다. 김대중씨가 현재 진행 중인 해빙과 화해의 주동자라는 점은 의심할여지가 없습니다.아마 그의 역할은 동서독 간의 관계 정상화에 아주중요한 동방정책 추진으로 노벨평화상을 받은 빌리 브란트에 비교될수 있습니다.남북 이산가족 상봉장면은 전세계에 깊은 인상을 주었습니다. 세계 대부분의 지역에서 냉전의 빙하시대는 끝났습니다.세계는 ‘햇볕정책’이 한반도의 마지막 냉전 잔재를 녹이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 과정은 시작되었으며 오늘 상을 받는 김대중씨 보다더 많은 기여를 한 분은 없습니다.시인의 말처럼 “첫 번째 떨어지는물방울이 가장 용감하노라”. ◆ 김대중대통령 연보. ■1925년 전남 신안군 하의도에서 아버지 김운식(金雲植)씨와 어머니장수금(張守錦)여사의 4형제 중 차남으로 출생■1933년 하의도보통학교 입학,목포 북교초등학교로 전학해 수석 졸업■1939년 목포상업학교 입학■1945년 4월 차용애씨와 결혼해 홍일(弘一)·홍업(弘業) 두 아들 둠■1954년 목포에서 민의원선거에 출마해 낙선■1956년 10월 민주당 입당■1959년 6월 강원도 인제 재선거에서 낙선■1961년 5월14일 인제 보궐선거에서 당선됐으나 5·16 쿠데타로 수감■1962년 5월 이희호(李姬鎬)여사와 재혼■1963년 11월 목포에서 6대 국회의원에 당선■1967년 7대 의원 당선■1970년 9월 신민당 대통령후보 당선■1971년 5월 대통령선거에서 박정희(朴正熙)후보에게 패배■1973년 8월 도쿄에서 중앙정보부 공작원에게 피랍■1976년 3월 명동성당 ‘민주구국선언’으로 구속■1980년 5월 내란음모죄로 구속■1981년 1월 대법원에서 상고가 기각돼 사형 확정■1982년 12월 미국 망명■1985년 2월 귀국한 뒤 동교동 자택에 감금■1987년 12월 13대 대통령선거에서 낙선■1992년 12월 14대 대통령선거에서 패배한뒤 정계 은퇴를 선언하고유학차 영국으로 향발■1993년 7월 귀국■1994년 1월 아·태평화재단 설립■1995년 7월 정계 복귀■1997년 12월 15대 대통령 당선■2000년 6월 평양에서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정상회담■2000년 12월10일 노벨평화상 수상
  • 민주당 내분 진정국면…각 진영 움직임

    권노갑(權魯甲) 최고위원의 ‘2선 후퇴론’으로 촉발된 민주당 내분이 진정되는 양상이다.하루 만에 국면이 빠르게 전환된 것은 사태의장본인들이 서둘러 진화에 나선 때문이다. 그러나 내홍(內訌)은 수면 밑으로 잠시 가라앉았을 뿐,연말 당정개편을 즈음해 재연될 가능성이 크다.이 때문에 현재 개회중인 정기국회와 이어 열릴 임시국회 기간 중 의원들의 관심은 산적한 경제·민생 법안 처리보다 당내 각 진영의 정중동(靜中動)에 초점이 맞춰질공산이 짙다. ◆각 진영의 움직임 정동영(鄭東泳) 최고위원은 7일 “충정과 소신에는 변함이 없다”면서도 “당 단합을 위해 모두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권최고위원도 전날 강경한 입장에서 급선회,“지금은 정기국회가 잘 마무리되도록 단합해야 할 시점”이라는 ‘평범한’ 성명을 냈다.김대중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식 축하행사 참석차일본에 머물고 있는 한화갑(韓和甲) 최고위원 역시 “초선의원들을자제시켜 당의 단합된 모습을 보인 뒤 정기국회를 마치고 김대통령의당 재편을 도와야 한다”고말했다. 그러나 사태를 진화한 일등 ‘소방수’는 김대통령이다.김대통령은 6일 오후 권노갑·한화갑 두 최고위원에게 전화를 걸어 조속한 수습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변의 대응 민주당 최고위원들은 이날 오전 서영훈(徐英勳) 대표주재로 회의를 열고 현 단계에선 당의 단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데 의견을 모았다.초선 개혁그룹의 대표격인 이재정(李在禎) 의원은“(이번 파문은) 전혀 권력투쟁이 아니며 그렇게 몰아가면 정말 큰일”이라면서 “초선 의원들은 정말 진지하고,당을 쇄신해야 한다는충정에서 파벌을 깨자고 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재연 가능성 여진(餘震)은 계속되고 있다.중앙당 전·현직 부위원장 80명은 이날 정최고위원을 비난하는 성명을 냈다.이들 중 30여명은 정최고위원과의 면담을 요구했다.김근태(金槿泰) 최고위원은 “주요 인사들에 대한 평가와 책임 문제가 분명하게 논의돼야 한다”며당정쇄신 필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이지운기자 jj@. *'동교동 2선 후퇴' 파문의 핵심 4人의 심경.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분란행위 자제 경고에 영향을 받은 듯 민주당 ‘동교동 2선 후퇴’ 파문의 핵심 당사자로 비쳐진 권노갑(權魯甲),이인제(李仁濟),정동영(鄭東泳),김근태(金槿泰) 최고위원 등 ‘4인방’은 7일 기자간담회 등을 통해 확전 자제 의지를 분명히 했다.이들은 예리한 발톱은 깊이 숨겨둔 채 ‘당단합 우선’이라는 원론적인목소리를 크게 냈다. 그러면서도 은밀한 공세와 방어,미묘한 신경전을 이어가 불씨는 여전히 남아있는 형국이다. ◆권노갑 최고위원은 7일 정동영 최고위원이 제기한 ‘2선 후퇴론’에 대해 “충정으로 받아들인다”고 밝혔다. 권위원은 이날 무척 조심스러운 표정이었다.전날 청와대의 자숙하라는 메시지 때문인 것같다.당에서 기자간담회를 가지려던 계획을 취소하고,자택에서 약식 간담회와 성명서 발표로 대체했다.보도진의 끈질긴 간담회 요청도 단호하게 뿌리쳤다. 권최고위원은 성명에서 “최근 과정에 한화갑(韓和甲) 최고위원과갈등이 있다는 일부의 이야기는 전혀 사실이 아니며,우리는 당의 발전과 국민의 정부의 성공을 위해 서로 협력할 것”이라고 당 단합을강조했다.자신의 거취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아침에 자택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선 “내부 알력과 투쟁으로 비치는 것은 불만”이라고 말했다.또 “당에 남아 당의 화합과 단결을 위해 수습해야 할 의무가 있어 노벨상 수상식에 가지 않기로 했다”고‘자의반 타의반’설을 해명했다. ◆정동영 최고위원은 당 내분이 봉합 양상을 보이자 모처럼 밝은 표정을 지었다.7일 대구파크호텔에서 열린 경북도지부 후원회에서 “지금까지 할 말은 다 했으며 충정과 소신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정최고위원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고 그 동안의 심경을 밝히면서 “그러나 깊이 생각한 끝에 (대통령에게)말씀드렸기 때문에 후회는없다”고 밝혔다.‘권노갑 최고위원에게 사과나 유감을 표명할 용의가 있느냐’는 질문에도 “사과할 성질의 일이 아니다”라면서 ‘2선후퇴론’이 소신에서 비롯된 주장임을 분명히 했다. 정최고위원은 배후설,음모설에 대해 자신의 ‘2선 후퇴론’ 발언이김대중 대통령과 권최고위원 면전에서 나왔음을 상기시키면서 “명색이 (내가) 당의 최고위원인데 무슨 배후이고 음모인가”라고 일축했다. 정최고위원은 그러나 “7일 최고위원회의가 끝난 뒤 권최고위원에게 ‘제 충정을 오해하지 말라’고 했더니,권최고위원이 ‘정의원을 믿는다’면서 악수를 청했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이인제(李仁濟) 최고위원은 이날 목소리를 낮췄다.이틀 전 권노갑최고위원쪽에 가세한 듯한 발언을 했던 입장과는 크게 다른 모습이었다.그는 이날 최고위원회의가 끝난 뒤 기자들이 끈질기게 간담회를요청했으나 이를 물리치면서 “당사자들이 해명하고 있는데 주변에서코멘트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더이상 얘기하지 않겠다”며 서둘러 당사를 떠났다.이틀 전 비공식적인 자리서 “동지들끼리 사람을 직접겨냥해 공격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권위원을 옹호하고,정최고위원에게 공세를 취했던 것과 비교됐다. 그러나 이위원의 침묵은 다분히 정치적 계산이 깔려있는 것으로 해석됐다.이틀전 발언이 대선 고지를 향한 당내 세력간 힘겨루기 양상으로 확대해석되자 불필요한 오해를 부를 것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실제 이위원 발언이 알려지면서 당내에서는 “이위원이 최근 자신에게 소원한 인상을 준 권위원을 위한 지원사격을 가해 우호적인 기류를 다잡아두려는 포석”이라는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김근태(金槿泰) 최고위원은 7일 ‘2선 후퇴론’ 파문과 관련,그 동안의 침묵을 깨고 최고위원회의가 끝난 뒤 기자간담회를 자청했다.김최고위원은 간담회에서 “당내 갈등이나 권력투쟁으로 비쳐지거나,특정 개인의 문제로 돌려서는 안된다”고 말했다.그러나 “당과 청와대,정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을 평가해 누가 어떻게 책임을 져야하는지 논의해야 한다”고 당내 주류인 동교동계를 겨냥했다. 또 ‘파문을 어떻게 수습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문제의 핵심은당정쇄신”이라며 “당정쇄신을 통해 난국을 극복하고 국민의 참여를유도할 수 있는 일대 전환기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파문이권력갈등이 아니라,당정쇄신 방안을 도출할 수 있는 계기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김최고위원은 “이제 논의의 시작”이라면서 ‘2선 후퇴론’의 불씨를 살리려고 애쓰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그는 “중요한 책임이 어느부분에 있는지 규명해 누가 책임지지 않으면 정치는 희화화(戱畵化)된다”고 말했다. 이춘규 이종락 진경호 이지운기자 jade@
  • [사설] 집권여당 內紛 안된다

    민주당 권노갑(權魯甲)최고위원의 ‘2선 후퇴론’을 싸고 당내 파워게임 양상까지 보이던 집권여당내 분란은 당총재인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자제 당부에 이어 7일 최고위원회가 당의 단합을 강조함으로써 다소 진정기미를 보이고 있어 다행이다.그러나 ‘후퇴론’을 제기했던 정동영(鄭東泳)최고위원이 “충정에서 한 말”이라며 유감을 표명하면서도 ‘당의 전면 쇄신’ 등 소신을 굽히지 않고 있는 데다 중앙당 전·현직 부위원장들이 정 최고위원을 회의장에까지 찾아와 거세게 항의하는 등 파문의 여진이 계속되고 있어 우려된다. 최근 난국 타개를 위한 국정쇄신의 필요성이 강력히 제기되고 있는가운데 공론화된 이번 ‘후퇴론’은 당내 언로의 활성화나 여권의 새로운 국정운영 틀의 모색 차원에서 볼 때 긍정적인 측면이 없는 것은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파문이 비록 당을 아끼는 충정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지라도 당내 세력간의 향후 대권과 관련한 권력투쟁의 양상으로 국민의 눈에 비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지금 나라 전체가 경제난 속에 허덕이는데 집권여당이 내부 혼란상을 보인다는 것은 무책임한 처사다.현 시점에서 정치권이 가장 먼저해야 할 일은 국회에서 새해 예산안을 심의,처리하고 각종 민생·개혁 법안을 입법하는 것이다.비록 원내 소수당이지만 국정을 책임진여당으로서 여기에 전념해야 한다.예산 심의에 정기국회의 회기도 모자라 임시국회까지 소집하기로 한 마당에 당내 돌출 변수로 국민을불안케 해서는 안된다.국정쇄신을 위한 여당의 내부적 정리는 국회를끝낸 뒤에, 그리고 김대통령이 국가적 영예인 노벨평화상을 받고 귀국한 뒤에 난상토론을 해서라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일에는 선후(先後)가 있고 완급(緩急)이 있는 것이 아닌가. 그동안 당 안팎에서는 집권여당의 국정운영 능력이 미흡하고 정국주도권을 야당에 빼앗기고 있다는 지적이 자주 제기되었다.또 당이시스템에 의해서가 아니라 특정 인사들을 중심으로 한 인치(人治)에의해 움직인다는 비판도 적지 않았다.이같은 문제가 당내 회의체를통해 제기되고 토의되는 것 자체는 정당 민주주의의 활성화나 당론결정 과정을 투명하게 한다는 점에서 ‘독(毒)이 아니라 보약(補藥)’이 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논란은 특정인 배제를 겨냥한 듯한 ‘후퇴론’에 ‘음모론’으로 맞불을 놓는 등 당내 실력자간 혹은 소그룹간 권력 쟁탈전 양상으로 비쳐 집권당 스스로가 해당(害黨)행위를 한 셈이 됐다. 민주당의 지도부와 소속 국회의원들은 국정운영 후반기에 치러야 할마지막 ‘개혁의 결전’을 위해 다시 한번 흐트러진 전열을 가다듬어야 할 것이다.
  • 印尼 여성운동가 술라비여사 지학순주교 정의평화상 수상

    지학순 정의평화기금(이사장 윤공희 대주교)은 제4회 지학순주교 정의평화상 수상자로 인도네시아 여성운동가인 이부 술라비 여사를 선정했다고 7일 발표했다.술라비 여사는 지난 65년 인도네시아에서 200만명 이상이 살해된 ‘공산당 쿠데타 음모사건’에 연루돼 양심수로20여년간 복역했으며,84년 석방 후 학살사건 진상 규명을 위해 노력해 왔다.시상식은 20일 오후6시 한국일보 건물내 송현클럽에서 열린다.
  • 청와대·민주당 움직임/ 金대통령 경고 받고 한발씩 물러나

    민주당이 권노갑 최고위원 2선 퇴진론으로 불거진 내부갈등을 이틀째 이어갔지만 갈등의 수위는 낮아지는 모습이었다. 실제 오전까지만 해도 ‘통제 불능’으로까지 비치던 여권이 오후들어 갈등의 당사자들이 목소리를 낮추기 시작,“봉합국면으로 접어든 것이 아니냐”하는 인상을 주기 시작했다.2선 후퇴론에 대해 ‘한나라당 2중대론’‘음모론’을 제기하면서 강력 반발했던 권 최고위원측은 오후로 접어들면서 “자칫하다간 여권이 갈등의 모습을 보이게 돼 국민을 불편하게 만들 수 있다”며 강경방침에서 한발 후퇴했다. 일본에 가있는 한화갑 최고위원도 비슷한 생각을 전해왔다. 앞서 평소 중립적인 태도를 취해온 서영훈(徐英勳)대표도 이날 당 4역회의에서 더 이상의 논란 확산을 경계하는 목소리를 전했다.김근태(金槿泰)최고위원과 장영달(張永達)·이창복(李昌馥)·이재정(李在禎)·이호웅(李浩雄)·심재권(沈載權)의원 등 개혁그룹 인사 6명은 오전 모임에서 개혁입법의 지지부진함을 지적했으나 ‘퇴진파문’에 대해서는 언급을 삼갔다. 이같은분위기는 6주만에 재개된 주례보고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박병석(朴炳錫) 대변인은 “오늘 주례보고에서는 최근 당내 갈등과논란에 관한 얘기는 없었다”고 밝혔다.또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한다는 다짐에서 일괄 사표도 내지 않았다”고 박 대변인이 전했다. 그러나 양진영간 갈등의 골이 깊은 데다 당 소장파 일부는 정 최고위원의 문제 제기가 정당하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어 ‘동교동계2선 퇴진’은 언제든 갈등을 재연시킬 소지가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진경호 이지운기자 jade@
  • 權魯甲퇴진론…갈등인가, 충정인가

    ‘지금은 국회 전념할 때’라는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당무보고당부가 전해지면서 ‘권노갑(權魯甲) 최고위원의 2선 후퇴론’을 둘러싼 당내 갈등이 급속히 봉합국면에 접어들고 있다.특히 김 대통령의 자제 지시가 권 최고위원과 일본을 방문중인 한화갑(韓和甲) 최고위원에게 전달되면서 양 진영의 자제 움직임이 뚜렷하다. 이 문제를 처음 제기한 정동영(鄭東泳) 최고위원 역시 더 이상의 확전을 피하는 모습이다.초선의원들도 대세를 따르는 움직임이다. 다음은 정 최고위원의 지난 2일 최고위원회의 발언요지다. 나는 최고위원직과 의원직에 연연하지 않는다.오늘 이 자리에서 가감없이 이야기하겠다.사건만 터지면 여권 실세가 관련돼 있다는 얘기가 유포되고 있다.어떤 식으로든 해결책이 모색돼야 한다.권 최고위원은 결백하나,온갖 소문이 나돌고 있다.권 최고위원이 임무를 받아과거 고생했던 사람들을 무마한다고 하지만,그 과정에서 모든 것을좌지우지하는 것으로 비치고 있다.국민 눈에는 마치 YS정권 때의 김현철(金賢哲)처럼 보이고 있다.당내 초선의원들이 어제 모임을 가졌다.이 자리에서 초선의원들은 권 최고위원이 뒤로 물러나야 한다는의견들을 많이 내놓았다.지금 이 시간에도 우리 당 의원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다.나에게도 청와대에 들어가면 권 최고위원이 용퇴해야 한다는 건의를 해 달라고 했다. ●權魯甲위원. 권노갑 최고위원측은 6일 자신에 대한 ‘2선 퇴진’ 주장에 대해 측근들과 함께 대책을 논의하는 등 강경대응 움직임을 보이기도 했으나,김대중 대통령이 자제를 지시한 사실을 전해듣고 사태를 조기 수습하는 쪽으로 입장을 바꿨다. 권 최고위원측은 당내 논란이 ‘권력투쟁’ 양상으로 비치는 것을막고 국회에서 민생·개혁 법안을 통과시키고 예산을 처리하는 등 단의 단합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키로 의견을 모았다.다음은 권 최고위원과의 일문일답. ■2선 후퇴론이 한화갑 최고위원과의 권력투쟁으로 비치고 있는데…. 그렇게 보지 말라. ■지금 상황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모든 것을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처리해야 할 때이다. 민생과 개혁입법 문제에 집중해야 한다.국민이경제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국회에서 원만하게 예산을통과시키는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당내에서 똘똘 뭉쳐 협력해야 할때이다. ■이미 논의가 표면화된 단계 아닌가. 모든 것은 국회가 정상적으로운영되고 또 김 대통령이 노벨평화상 시상식에 다녀온 후에 시간을갖고 논의해야 한다. ■정 최고위원과 통화했나. 정 최고위원이 청와대 만찬이 끝나고 미안하다고 전화했었다. ■정 최고위원이 왜 그런 말을 했다고 생각하는가. 그 사람한테 물어보라.내 생각은 7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밝히겠다. ■음모설,배후설이 나도는데…. 그런 일 없다.사필귀정이다.다 밝혀질 것이다. 이종락기자 jrlee@. ●鄭東泳위원. 권노갑 최고위원의 ‘2선 후퇴론’을 처음 제기한 정동영 최고위원은 6일 자신의 언급이 ‘당내 권력투쟁’으로 비화하는 양상을 보이자 조심스런 태도를 보였다.누군가에 의해 지난 2일 최고위원회의 발언이 공개되면서 화제의 중심에 서게된 그는 “김대중 대통령께 가감없이 얘기하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했다”고충정임을 강조했다.그러면서도 “사태가 좋지않은 방향으로 흘러가선 안되며 수습돼야 한다”며 “이번 사태가 권력암투 등 센세이셔널하게 다뤄지는 것을 원치않으며 이는 나의 진정한 의도를 훼손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초선의원의 대표급인 의원에게 (사태확산) 자제를 요청했다”고 강한 수습의지를 내비쳤다.다음은 정 최고위원과의 일문일답. ■발언 뒤 당내 갈등이 증폭되고 있는데…. 소속 의원들의 생각을 수렴해 대통령에게 전달하는 것이 당을 진정으로 생각하는 것 아닌가. ■청와대 회의 내용이 외부에 유출돼 이같은 사태가 촉발된 것 아닌가.나는 입을 연 적이 없다. ■음모론,배후론이 나온다. 천부당만부당하다.개인의 인격과 당을 파괴하는 행위로 중단해야 한다. ■동교동계 의원들 가운데 정 최고위원에게 배신감을 느낀다는 사람도 있다. 배신감 운운하는 사람이 오히려 권 최고위원을 망치는 사람들이다. ■권 최고위원을 김현철씨에 빗대어 말했다는데. 김현철과 똑같다는뜻이 아니다.한빛은행,동방금고 사건에 권 최고위원 이름이거명됐지만 아무 것도 없었다.그러나 국민들에게 그렇게 인식되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이춘규기자 taein@. ●韓和甲위원.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축하행사 참석차 일본 오사카(大阪)를방문중인 한화갑(韓和甲) 최고위원은 6일 권노갑 최고위원측이 자신을 ‘퇴진론’의 배후로 거론한 것에 대해 강력 부인했다.그는 국회의원을 수십명씩 움직일 수 있는 힘이 없고,배후설은 당내 갈등으로비화되기를 원하는 불순세력의 책동이라고 주장했다.다음은 한 최고위원과의 일문일답. ■권노갑 최고위원측이 한 최고위원을 퇴진론의 배후로 거론하고 있는데. 나는 가톨릭 신자다.지금까지 정치하면서 자부하는 것은 거짓말을 못한다는 점이다.사실과 다르다. ■권 최고위원측이 오해하고 있다는 말인가. 지난번 당내 초선의원 13명이 모였을 때도 나더러 배후조종했다는 얘기가 나왔다.그 자리에서 나는 힘이 없다고 해명했다. ■이번 사태의 해결책은. 정동영 최고위원이 초선의원을 자제시켜 당의 단합된 모습을 보여야 한다.정기국회를 마친후 김 대통령이 당을재편할 수 있도록 협조해야 된다. 이종락기자
  • ‘권노갑 퇴진론’ 민주 들썩

    민주당이 동교동 2선 퇴진론으로 들썩이고 있다.지난 2일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주재한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정동영(鄭東泳)최고위원이 권노갑(權魯甲) 최고위원의 2선 퇴진을 요구한 사실이 밖에알려지면서 당내에 여러 갈래의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특히 초선의원 11명도 4일 동교동계의 2선 후퇴를 김 대통령에게 건의,파장의 진폭을 더욱 키우고 있다. 정 최고위원의 발언이 전해지자 당내에서는 즉각 여러 갈래의 분석이 불거져 나오기 시작했다.동교동계의 갈등으로 보는 시각이다.권최고위원측은 5일 “당내 특정세력의 음모가 개입돼 있는 것 아니냐”며 당의 핵심이 아닌 비주류측에 의혹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그러나 정 최고위원은 “내가 누구의 사주를 받고 말할 사람이냐.당을 위한 충정에서 한 말로,갈등설은 가당치 않다”고 일축했다.또 다른 최고위원도 “정 최고위원의 발언은 당을 위한 충정에서 나온 것이지,주류·비주류 갈등설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가세했다. 당의 한 관계자는 정 최고위원의 발언에 대해 “권 최고위원을 중심으로 한 당내 주축세력이 당 운영에 있어서 다소 경직성을 불러온 데 대한 문제제기가 아니겠느냐”며 권력투쟁설로 비화하는 것을 우려했다.김 대통령도 당시 회의에서 “자칫 당내 갈등으로 비쳐질 수 있다”며 최고위원들에게 신중한 언행을 당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발언의 진의가 어디에 있든 당내 상황은 일단 권력투쟁설이보다 설득력을 얻는 쪽으로 전개되는 양상이다.그리고 이는 김 대통령이 구상하고 있는 당정쇄신방안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권노갑 퇴진론’은 김 대통령의 구상에 상당한 제약요인으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는 지적이다.김 대통령의 결단과 동교동계 전체의위기 돌파력이 주목된다. 이춘규기자 taein@
  • 金대통령 청주교도소 복역사진 6점 공개

    청와대는 3일 김대중 대통령이 지난 80년 ‘내란 음모’사건 주모자로 몰려 육군형무소에서 사형이 확정된 뒤 지난 81년 1월31일부터 이듬해 12월16일까지 청주교도소에서 복역하던 당시의 사진 6장을 공개했다. 법무부는 김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이 발표된 뒤 보관 중이던 사진들을 이희호 여사에게 전달했으며,청주교도소는 당시 김 대통령이사용하던 침상,나무 책상·의자 등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오풍연기자 poongy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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