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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슨 영화 볼까

    ■ 요가학원(공포, 드라마/15세 관람가) 감독 윤재연 줄거리 홈쇼핑 쇼호스트 효정(유진)은 매력적인 후배의 등장으로 입지가 좁아진다. 열등감에 시달리던 어느 날 효정 앞에 동창생인 선화(이영진)가 나타난다. 학창시절 볼품 없던 선화는 몰라보게 미녀가 돼 있다. 미모의 비법이 간미희 요가학원의 심화훈련에 있다는 얘기를 듣고 그곳을 찾아간다. 하지만 수련을 받는 도중 기이한 일이 일어나는데…. 감상 작위적 주제와 설정의 지루한 반복. 공포가 끼어들 자리가 없다. ■ 퍼펙트 겟어웨이(스릴러/15세) 감독 데이빗 토히 줄거리 결혼식을 올린 클리프(스티브 잔)와 시드니(밀라 요보비치) 커플은 신혼여행으로 하와이에서 스릴 넘치는 모험을 즐기기로 한다.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자신들이 숙원하던 파라다이스에 당도했다고 생각하지만, 곧 해변에서 다른 신혼부부의 시체가 발견되자 불안해한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은 미심쩍기만 하고 생존 위협에 대한 두려움은 커져만 간다. 감상 범인을 추리하는 재미에 마지막 반전까지…. 그럭저럭 볼 만하다. ■ 라르고 윈치(액션, 스릴러/18세) 감독 제로미 샐레 줄거리 세계 5위의 기업, 윈치그룹의 창업자인 네리오 윈치가 암살당한다. 그에게 공식적인 후계자는 없다. 그러나 그에게는 비밀이 있었으니, 30년 전 두 고아를 입양해 한 명을 후계자로 키운 것이다. 그 아이는 라르고 윈치(토머 시슬리)다. 그러나 라르고는 레아라는 여성을 만난 뒤 마약 밀매 혐의로 감옥에 수감된다. 가까스로 탈옥해 본사로 가지만 그를 기다리는 것은 회사를 뺏으려는 음모들이다. 감상 4부작 시리즈의 첫 번째 편. 얽히고 설키는 두뇌게임이 재미있다. ■ 약속해줘!(코미디/18세) 감독 에밀 쿠스트리차 줄거리 15살 소년 차네(우로스 밀라바노비치)는 할아버지와 함께 시골에 산다. 어느 날 죽을 뻔한 사고 위기를 넘긴 할아버지는 차네를 불러 말한다. “내가 죽으면 너 혼자 남게 될 테니 도시로 가서 소를 팔고 그 돈으로 세 가지를 가져오너라.”고. 할아버지는 성화, 기념품, 그리고 참한 신부를 구해오라고 말한다. 차네는 혼자 도시로 떠난다. 감상 거장 감독이 매너리즘에 빠졌을 때…. 마술적 리얼리즘이 더 이상 새롭지 않다.
  • [김대중 前대통령 국장] “사형선고 받고도 소신 안굽힌 분 감사원장 임명뒤 일절 간섭안해”

    [김대중 前대통령 국장] “사형선고 받고도 소신 안굽힌 분 감사원장 임명뒤 일절 간섭안해”

    “인간으로서 감내하기 힘든 고난을 오직 강인한 의지로 극복해 오셨다.” 20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입관식을 지켜본 한승헌(75) 전 감사원장은 평생 동지의 마지막 모습을 이처럼 뼈에 사무치게 기억했다. 김 전 대통령은 생전에 한 전 감사원장에 대해 “한승헌 변호사는 무슨 일을 맡겨도 안심된다.”고 자랑했다. 김 전 대통령과 격의없이 농담을 주고 받은 몇 안 되는 인사 가운데 한 명이라고 한다. 한 전 감사원장은 1970년 월간지 ‘다리’의 필화사건을 변호하며 김 전 대통령과 처음 인연을 맺었다. 74년 김 전 대통령이 선거법 위반혐의로 기소됐을 때 변호를 맡았고 80년 5월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때는 육군교도소에서 같이 복역했다. 93년 ‘김대중씨 납치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시민모임’ 공동위원장, 98년 국민의 정부 초대 감사원장을 역임했다. 지금은 ‘김대중 자서전 편찬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한 전 감사원장이 김 전 대통령을 처음 만났던 것은 월간지 ‘다리’ 창간 1주년 기념식이다. 민주주의를 역설하는 강연이었는데 가는 곳마다 청중이 초만원이었다. 정치인으로서 소신과 패기에 마음이 끌렸다고 한다. 73년 8월 일본으로 납치됐던 김 전 대통령이 생환하자, 정부는 67년 대선 때의 발언을 문제삼아 선거법 위반혐의로 김 전 대통령을 기소했다. 한 전 감사원장은 “가택연금으로 운신이 자유롭지 않았던 김 전 대통령 대신 이희호 여사가 나를 찾아와 변호를 의뢰했다. 매일 아침 동교동으로 가서 대책을 상의했다. 그러던 중 내가 75년 3월 반공법 위반혐의로 구속되자 김 전 대통령은 갈현동 집에 찾아와 어머님과 아내를 위로하셨다.”고 전했다. 80년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은 ‘신군부의 정권탈취에 가장 큰 장애물인 김대중을 제거하기 위한 사건’이라고 한 전 감사원장은 못박았다. 공소장 낭독에 걸린 시간만 해도 1시간27여분. 그런데도 “사형 선고를 받고 소신을 굽히지 않을 정도로 생사에 초연했다.”고 회상했다. 감사원장 취임 초기 때 대통령이 감사원을 간섭할 경우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모범 답안’을 만들었지만 결국 그 답안을 한번도 쓴 적이 없었다고 한다. “김 전 대통령은 민주주의와 남북 화해를 이끌어 내며 노벨평화상까지 받은 한국인의 자랑이다. 아직 나라에 걱정거리가 많은데 그 분의 빈자리가 너무도 크다.”며 말문을 잇지 못했다. 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 [김 전대통령 서거] 판결문으로 본 DJ

    ‘피고인 김대중 사형’ 1980년 9월17일, 김대중 전 대통령은 육군계엄부의 보통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1980년 5·18 광주민주항쟁을 배후 조정했다는 내란음모 및 계엄법 위반 혐의였다. 이른바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이다. 불복해 항소했지만 11월3일 고등군법회의에 이어 1981년 1월23일 대법원에서도 항소가 기각돼 사형이 확정됐다. 당시 판결문에 따르면 김 전 대통령은 1980년 5월17일 밤 11시30분 집으로 들이닥친 중앙정보부 수사관에 의해 남산 중정 대공수사국으로 끌려가 고문을 받았다. “옷을 벗기고 모욕감을 주던 일, 며칠씩 잠을 안재우고 같은 질문은 반복하던 일 등은 참을 수 있었다. 그러나 나 때문에 끌려와 고문받는 민주화 동지들이 비명을 지르는 것은 견딜 수가 없어 ‘내가 빨리 죽어야겠구나.’라고 생각했었다.”고 김 전 대통령는 회고했다. 이 같은 고문은 구속영장이 발부돼 7월9일 육군교도소로 갈때까지 계속됐다. “피고인 김대중 무죄” 2004년 1월29일, 김 전 대통령은 재심을 통해 서울고법에서 내란음모와 계엄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대법원 사형확정 판결 이후 23년 만이다. 국가보안법 위반, 반공법 위반, 외국환관리법 위반죄에 대해서는 특별사면을 받았다는 이유로 면소가 선고됐다. 법률적으로 처벌이 불가능하다는 의미다. 재판부는 “1979년 12·12 군사반란 이후 1980년 5·17 비상계엄 확대, 1981년 1·24 비상계엄 해제 등 전두환 등이 저지른 일련의 행위는 내란죄로 헌정질서 파괴 범죄에 해당한다.”면서 “이에 반대한 피고인 김대중의 활동은 헌법의 존립과 헌정질서를 수호하려는 정당한 행위로 범죄라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김 전 대통령은 최후진술에서 “그들(신군부)의 야심은 절대 용서할 수 없다.”면서도 “개인적으로 아무런 원망이 남아있지 않으며 마음으로부터 용서했다.”고 말했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열린세상] ‘트랜스 DJ’의 시대를 열어야/김진 울산대 철학과 교수

    [열린세상] ‘트랜스 DJ’의 시대를 열어야/김진 울산대 철학과 교수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해 국민이 비통에 잠겼다. 운명적으로 비슷한 두 분의 전직 대통령을 한꺼번에 떠나보내게 된 충격이 클 수밖에 없다. ‘빨갱이’ ‘좌익 용공분자’ ‘후광’(後廣) ‘인동초’(忍冬草) ‘토머스 모어’ ‘동교동’ ‘행동하는 양심’ ‘아시아의 만델라’ ‘2000년 노벨평화상 수상자’ ‘햇볕정책’ ‘대한민국의 위대한 지도자’ 등은 김 전 대통령을 지칭하는 수사(修辭)들이다. ‘빨갱이’와 ‘좌익 용공분자’는 여운형 선생이 구성한 ‘건국준비위원회’에 일시 몸담았던 인연으로 평생의 꼬리표가 되었다. 그러나 6·25 전쟁 중 오히려 그는 우파 반동세력으로 몰려 복역한 바 있다. 1957년 가톨릭 교회의 영세를 받았으며, 세례명은 토머스 모어였다. 15세기말 영국의 대법관과 하원의장으로 활약했고, ‘유토피아’(1516)의 저자이기도 한 토머스 모어는 헨리 8세가 이혼 문제로 로마 교황청으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한 데 불응, 반역죄로 처형된 인물이다. 토머스 모어는 1935년에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시성(諡聖)됐으며,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그를 정치가의 수호성인으로 선언했다. 우리 역시 김 전 대통령이 한국 민주주의의 수호성인으로 시성되기를 희망한다. ‘빨갱이’에서 ‘제15대 대한민국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김 전 대통령의 인생역정은 파란만장했다. 1971년 선거 지원유세서 그는 의문의 교통사고를 당하여 다리에 부상을 입었으며, 1973년 유신독재 치하 정보요원들에게 납치되어 두 차례의 죽을 고비를 넘겼다. 군사정권이 사형선고를 내릴 때마다 그는 불굴의 투지로 일어섰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 ‘인동초’(忍冬草)였고, ‘행동하는 양심’과 ‘아시아의 만델라’가 덧붙여졌다. 그리고 5·18 내란 음모사건으로 전두환 정권에 의하여 또 한 번 사형선고를 받았다. 1987년 ‘서울의 봄’과 6월 민중항쟁으로 얻어낸 민주정권의 수립 기회를 야권의 단일화 실패로 지연시킨 책임은 작다고 할 수 없다. 5년 후 노태우 정권 후계자로 지명된 김영삼 후보에게 패배하고 정계은퇴를 선언한 그를 영국으로 떠나보내면서 지지자들 역시 오열하고 세상을 등졌다. 우여곡절 끝, 1997년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는 제15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이후락과 전두환은 죽은 목숨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뇌리에 사무친 정적(政敵)의 이름들을 지우기 시작했다. 그 같은 용서와 화해의 노력은 서거 직전 병상에까지 계속되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우리 역사상 가장 성공한 대통령이었다. 1998년의 외환 위기사태를 3년 만에 극복했으며, 우리나라를 인터넷 강국으로 육성하고 각종 인권정책을 적극적으로 도입하였다. 2000년 6월, 분단 55년만에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하였으며, 햇볕정책으로 남북간 화해와 협력의 시대를 열었다. 그리고 노벨평화상을 수상함으로써 대한민국의 이름을 세계에 빛나게 했다. 그러나 햇볕정책에 정권의 명운을 걸었으면서도 북한의 핵 개발을 저지하지 못했던 것은 실책에 속한다. 자신의 햇볕정책을 전방위로 수행했던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을 노무현 정권으로부터 끝까지 지켜주지 못한 것도 실책이었다. 또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이념적으로만 해석하여 민주당을 거리투쟁으로 내몰았던 것도 구시대의 이념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탓이었다. 독도문제를 지나치게 양보하고, 오는 9월3일로 100년이 만료되는 청·일 간도협정에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던 것도 한계가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이제 고(故) 김대중 대통령의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계승·발전시키기 위하여 그를 넘어서지 않으면 안 된다. ‘트랜스 DJ’, 그것은 바로 김대중 대통령의 서거를 통하여 그의 유지를 존중하되 그의 실책과 한계를 지양하면서, 내일의 삶에 필수적인 새로운 지혜를 창조하는 ‘희망의 변증법’을 펼치는 일이다. 김진 울산대 철학과 교수
  • [김 전대통령 서거] 자서전 사후출간 앞두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세 아들에 대한 절절한 심경과 1987년 대통령 후보 단일화 실패를 “가슴에 가장 걸리는 부분”이라며 자서전에 추가할 것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마지막 구술작업은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하기 6일 전인 지난달 7일 서울 동교동 자택에서 이뤄졌다. 김 전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는 19일 “김 전 대통령은 아들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으면서 둘째아들 홍업씨가 지난 2002년 6월 구속됐던 것은 억울한 측면이 많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김 전 대통령은 “당시 보수언론이 지나치게 (홍업씨를) 몰아가는 등 혹독하게 비난받았던 부분이 없지 않다.”고 말했다고 한다. 장남 홍일씨에 대해서는 “아비로 인해 너무 고생을 많이 했다. 죄책감이 든다.”며 애틋한 부정을 드러낸 것으로 전해졌다. 막내 홍걸씨에 대해서는 “1980년 7월 내란음모죄로 사형을 선고받고 청주교도소에서 복역하면서 홍걸씨가 고려대 불문과(82학번)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 보살펴 주지도 못했는데 너무 대견하다며 말할 수 없이 기뻤다고 말했다.”고도 했다. 김 전 대통령은 세 아들에 대한 심경을 밝히는 동안 감정이 북받쳐 자주 눈물을 흘렸다고 이 인사는 전했다. 김 전 대통령은 특히 1987년 13대 대선을 앞두고 당시 김영삼 통일민주당 총재와 후보단일화에 실패한 뒤 쏟아졌던 비판에 대해 “나만 혹독하게 몰아붙였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전 대통령은 구술에서 “후보단일화 이야기가 나올 때 김영삼씨가 먼저 ‘김대중씨로 단일화돼야 한다.’고 말했는데 당시 여론은 단일화 실패의 책임을 나에게만 돌렸다.”고 털어놓았다고 한다. 김 전 대통령은 이어 “1986년 건국대 항쟁으로 학생 1200여명이 구속된 뒤 더 이상 애국시민들의 피해를 막기 위한 차원에서 내가 직선제 개헌과 언론 자율화를 정부가 받아들이면 대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했다.”면서 “그때는 자기 희생이라는 측면에서 했던 말인데 (여론은) 후보단일화 실패로 군정종식을 이루지 못한 모든 책임을 나에게만 물었다.”고 구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건형 김민희기자 kitsch@seoul.co.kr
  • [김 전대통령 서거] 내란음모 연루 정동년씨 술회

    “DJ는 올바른 역사관을 지닌 정치 지도자였습니다.” 1980년 이른바 ‘김대중 내란 음모사건’에 연루돼 모진 고초속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을 겪었던 정동년(66·당시 전남대 복학생 대표)씨는 “국민의 정신적 지주로서 더 오래 살아 주시길 바랐는데 안타깝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정씨는 이 사건 이후 DJ와 광주 재야·시민단체의 가교역할을 했다. 정씨는 1980년 5월18일 자정무렵 집으로 들이닥친 5~6명의 남자에 의해 보안사 지하실로 끌려갔다. 시내에서는 시위 군중과 계엄군이 치열한 공방전을 펼치고 있었다. 그는 군인들의 발길질과 각목 세례를 받고 김대중 전 대통령으로부터 500만원을 받은 사실과 사용처를 추궁받았다. 합수부의 계속되는 고문에 상무대 영창 화장실로 들어가 군용 숟가락으로 자해까지 했다. 1주일째 이어진 고문으로 그해 5월 말쯤 DJ로부터 500만원을 받아 박관현 당시 전남대 총학생회장 등에게 나눠 줬다고 ‘진술’하면서 고문은 끝났다. 서울의 봄 기간인 1980년 4월 전남대 복학생 대표 자격으로 정씨는 DJ의 강의 초청을 위해 동교동을 방문했다가 방명록에 이름을 남긴 것이 화근이었다. 이 사건으로 DJ와 함께 내란음모죄로 사형 선고를 받았다. 그런 인연으로 정씨는 재야활동을 하면서 DJ와 광주 지역사회의 가교역할을 했다. 정씨는 “1987년 대선에서 야당후보 단일화 실패로 노태우 후보에게 패배하면서 평민당과 DJ는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졌다.”며 “이 때 광주지역 재야도 이탈 조짐을 보였다.”고 회고했다. 정씨는 “돌이켜 보면 우리가 그분의 큰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많은 쓴소리와 비판을 가했다.”며 “15대 대통령에 취임한 뒤 남북문제와 대미 외교 등을 지켜 보면서 그가 정말 위대한 지도자란 걸 새삼 느꼈다.”고 말했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김 전대통령 서거]홍일씨 파킨슨씨 병 앓아 수척

    [김 전대통령 서거]홍일씨 파킨슨씨 병 앓아 수척

    풍채 좋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남 김홍일(61) 전 의원의 초췌한 모습이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고문 후유증으로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홍일씨는 부친 임종 직전 “아·버·지”란 세음절을 힘들게 토해낸 것으로 전해졌다. 빈소에서 아버지의 영전에 꽃을 바치려고 했지만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모습도 보였다. ●홍일씨 고문 후유증으로 병 얻어 최경환 비서관은 19일 브리핑에서 “5·18 내란음모사건 때 중앙정보부가 ‘(DJ는) 빨갱이’라고 불라고 했지만 그렇게 할 수 없다면서 몸을 던져 허리 등을 많이 다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남편을 잃은 이희호 여사도 이날 슬픔을 이겨내지 못하고 하염없이 울다가 끝내 탈진해 링거를 맞았다. 이 여사를 곁에서 지키고 있는 성인숙(61)씨는 “강단있고 의연한 여장부”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성씨는 2000년 청와대 제2부속실장으로 재임한 뒤부터 이 여사의 곁을 지키고 있다. 성씨가 이 여사의 눈물을 본 것은 지금까지 딱 세번이다. 성씨는 김 전 대통령이 대북송금 특검 후유증으로 2005년 입원했을 당시 이야기를 꺼냈다. 김 전 대통령이 가택연금을 당하고 심지어 도쿄에 피랍됐을 때도 흔들리지 않았던 이 여사가 하느님께 살려달라고 기도하며 눈물을 흘렸다는 것이다. 이 여사의 첫 번째 눈물이었다. 이 여사는 지난 12일 김 전 대통령의 도쿄피랍 생환 36주기를 기념하기 위해 열렸던 기도회에서 눈물을 보였다고 한다. 두 번째 눈물이었다. 어린 아이처럼 펑펑 울었다고 한다. ●“강한믿음 보였던 의연한 여장부가…” 성씨는 “김 전 대통령이 서거하기 전 보좌진들이 불안해하자 이 여사는 ‘걱정마라. 반드시 쾌유하실 거다.’며 강한 믿음을 보였다.”고 전했다. 그런 이 여사였기에 성씨는 이 여사의 약한 모습이 낯설지만 그간 인고의 세월이 한꺼번에 몰려왔을 것이라고 말했다. 성씨는 “이번이 이 여사의 마지막 눈물이었으면 좋겠다.”며 이 여사의 손을 따뜻하게 잡았다. 이재연 오달란기자 oscal@seoul.co.kr
  • 수척해진 김홍일 전 의원 모습 ‘슬픈 역사’

    수척해진 김홍일 전 의원 모습 ‘슬픈 역사’

    휠체어에 의지해 조문객을 맞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남 김홍일 전 의원(61)의 모습에 네티즌들이 충격과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김 전 의원은 전남 목포에서 태어나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으로 구속돼 징역 3년형을 받은 바 있다. 이후 1995년 국민회의 소속으로 전남 목포·신안갑에서 출마해 제15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국회의원으로 활동 당시 풍채 좋은 모습으로 기억되던 김 전 의원이었기에 투병 생활로 수척해진 모습은 충격일 수 밖에 없다.  김 전 의원이 앓고있는 병은 파킨슨씨 병으로 90년대 발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생활에서 행동뿐 아니라 언어에도 상당한 장애를 겪고 있다고 하는데 이는 1980년 안기부에 체포돼 3년형을 받으면서 생긴 고문 후유증으로 추정된다. 최경환 비서관은 19일 오후 브리핑을 통해 “당시 조사기관에 끌려가 허리와 등, 신경계통이 많이 다쳤다. 이에 파킨슨병을 얻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최근까지도 침대에 누워 생활하다가 근래에 조금 좋아져 앉아 생활했다.말씀을 거의 못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김 전 의원은 부친이 입원해 있는 동안 세 차례 찾아왔는데 두 번째 병문안 때 이희호 여사가 김 전 대통령을 향해“너무 좋은 소식이 많다. 홍일이도 건강이 좋아져서 이렇게 병원까지 왔다. 빨리 일어나라.”고 말했다고 최 비서관은 전했다. 김 전 의원은 또 부친의 임종 직전,오랫 동안 닫혔던 말문을 열어 “아버지”를 세 차례 불렀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도 김 전 의원은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상황이었으며 18일 오후 헌화를 하려고 움직이지 못하는 몸을 휠체어에서 일으키려 안간힘을 쏟아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김 전 의원은 1972년 공군 중위로 만기 전역할 만큼 안기부에 끌려가기 전에는 건강에 이상이 없었다. 이때문에 아버지인 DJ는 정치활동을 돕다가 몸이 상한 큰 아들을 항상 연민했다고 한다.  네티즌들은 “어릴 때는 아버지 때문에 핍박받고 성인이 되어서는 고문까지 받은 우리의 역사가 슬프다.”며 개탄했다. 인터넷서울신문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김형준 정치비평] 선거제도 개편의 효과와 성공 조건

    [김형준 정치비평] 선거제도 개편의 효과와 성공 조건

    이명박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정치 선진화’를 위한 개혁 방향을 제시했다. 고질적인 지역감정을 해소하고 생산적인 정치문화를 이룩하기 위한 특단의 조치로 선거제도와 행정구역 개편 방안을 제안했다. 선거제도 개편은 이번만이 아니라 역대 정권에서도 주기적으로 제시된 단골 메뉴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중대선거구제 개편을 제의하면서 한나라당이 받아들이면 조각권도 주겠다.”는 파격적인 제안까지 했었다. 분명, 선거제도 개편은 정치적 공감대가 큰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의 이해관계 때문에 매번 실패로 끝났다. 이를 의식해서 이 대통령은 대변인을 통해 “여당이 좀 손해를 보더라도 꼭 이뤄내야 할 일”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선거제도란 일종의 게임의 룰과도 같은 것으로 어떻게 짜여 지느냐에 따라 대표성과 공정성이 보장되는 중요한 요인이다. 우리나라는 1988년 제13대 총선 이래 한 선거구에서 한 사람만을 선출하는 소선거구제를 채택하고 있다. 지역구 선거에서는 한 표라도 더 많이 얻은 후보가 당선되는 ‘단순 다수제’와 전국 수준의 정당투표 득표 비율에 따라 비례대표 의석을 배분하는 1인2투표제를 채택하고 있다. 지역구 선거구를 획정할 때는 농촌과 도시지역 선거구 간에 최대 3대1의 인구 편차를 인정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지역주의를 해소하기 위한 방안으로 한 선거구에서 2명에서 5명까지 뽑는 중대선거구제나 권역별 비례대표제 등을 고려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18대 총선 결과를 독일식 권역별 정당명부제 방식으로 시뮬레이션해 보면, 정당 투표에서 총 431만 3645표를 획득한 민주당은 전체 299석 중 82석을 배당받게 된다. 그런데, 영남 지역에서 41만 194표를 얻어 약 8석을 얻게 된다. 민주당이 이 지역에서 2석밖에 얻지 못한 실제 결과와 비교해 보면 큰 차이라 할 수 있다. 한편, 정당 투표에서 총 642만 1727표를 획득한 한나라당은 전체 299석 중 122석만을 배당받게 되고, 충청과 호남에서 각각 10석과 3석 정도를 획득하게 된다. 한나라당이 호남에서 한 석도 얻지 못하고, 충청에서는 1석만을 얻은 것과 비교해 보면, 권역별 정당명부제는 확실히 정당의 특정지역 편중 현상을 완화시키는 데 기여할 수 있다. 하지만 선거제도 개편이 국민의 전폭적인 신뢰를 받고, 정치권의 합의 도출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정당과 국회의원의 이해관계가 직결된 선거제도 개혁을 이해 당사자인 국회의원에게만 맡겨서는 안 된다. 스웨덴의 경우, 정치개혁을 담당하는 위원회는 의석수와 상관없이 정당은 한 명의 대표자만을 파견하고 과반수 이상은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다. 더욱이 이 위원회에서 결정된 사항은 의회가 무조건 받아들이도록 규정하고 있다. 영국의 경우 선거구 획정은 의회 외부의 비정파적 기구에서 담당하도록 하고 있다. 정치권이 진정 선거제도 개혁을 원한다면 자신의 기득권을 과감히 버릴 수 있는 용기와 결단이 필요하다. 둘째, 선거제도 개혁이 가져올 정치적 효과에 대한 과학적인 분석이 필요하다. 바람직한 변화와 개혁을 위해 가장 창의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을 찾더라도 실증적인 분석 결과를 토대로 여야간에 합리적인 협상을 할 수 있어야만 개혁이 성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청와대가 절대로 정치개혁을 주도해서는 안 된다. 과거 정부가 시도한 선거제도 개혁이 모두 실패한 이유는 청와대가 구체적인 개혁안을 제시하고, 야당은 이를 음모론적인 시각에서 반대를 위한 반대를 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선거구제 개편과 관련해 “정부는 국회에 정부의 입장을 설명하고 국회의 결론을 존중할 것이다.”라는 의사 표시는 매우 적절했다. 대통령의 이러한 초심이 유지되어 비생산적인 한국 정치의 뿌리인 지역주의가 청산되는 계기가 마련되기를 간절히 기대해 본다. 김형준 명지대 정치학 교수
  • [김대중 前대통령 서거] 사선 다섯번 넘어… 민주주의 유토피아 꿈꿨다

    [김대중 前대통령 서거] 사선 다섯번 넘어… 민주주의 유토피아 꿈꿨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인동초’, ‘행동하는 양심’으로 불리며 반세기 한국 정치사를 풍미했다. 한국 정치사에서 ‘3김(金)시대’의 한 축이었던 고인(故人)은 1997년 겨울, 반세기만에 ‘선거혁명’을 통한 정권교체를 이뤘다. 3전4기로 대통령에 당선된 뒤에는 외환위기를 극복했고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켜 한반도 정세의 패러다임을 바꿨다. 5차례의 죽을 고비와 5년여의 감옥생활, 6년여의 가택연금, 3년의 망명생활 등 고인의 삶은 견디기 어려운 시련으로 점철됐다. 가톨릭 세례명인 ‘토마스 모어’처럼 고행하는 구도자의 삶을 이어온 셈이다. “정이 많은 분이다.” 영원한 비서실장인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김 전 대통령을 이같이 묘사했다. 말년에도 거의 매일 서울 동교동 자택을 드나든 박 의원은 “지난 1월 민주당 정세균 대표가 방문해 용산참사에 대해 말을 꺼내자 이내 김 전 대통령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면서 “평소에도 드라마 속 (비참한) 사람들을 보며 눈시울을 붉힐 만큼 평소 인정도 많으셨다.”고 전했다. 말년에는 미국의 버락 오바마 행정부 등장과 맞물려 케네디 전 대통령과 관련된 책을 탐독하고 여론주도층을 만나 서민과 비정규직을 위한 사회 안전망, 생산적 복지를 강조했다고 한다. 전남 목포에서 뱃길로 150리. 김 전 대통령은 1924년 매서운 바닷바람을 등진 하의도라는 작은 섬에서 3남2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신안군 하의면 후광리에는 지금도 생가터가 남아 있다. ‘후광’(後廣)이라는 호(號)도 여기서 따왔다. 중농의 아들이었던 그는 목포상고(현 전남제일고)에 수석 입학한 수재였지만 반일운동으로 학적부에 ‘시찰계요’라고 적힐 만큼 반골기질을 드러냈다. 1945년 약관의 나이에 ‘건국준비위원회’와 조선 신민당에 입당했지만 8개월 만에 탈당한다. 이어 3단계 통일방안(1972년)과 광주 민주화운동(1980년) 등을 거치면서 색깔론에 휘말렸다. 고인은 1946년 첫 부인 차용애 여사와 가정을 꾸리고 해운회사를 경영, 큰돈을 모은다. 뛰어난 상술로 목포일보를 인수한 뒤 주필을 겸하기도 했다. 자금을 끌어대고 경쟁상대를 꺾으며 사람의 마음을 낚는 장사와 정치는 닮은꼴이다. 1950년 한국전쟁 때는 우익단체 참여를 빌미로 인민군에게 처형될 위기에 몰렸지만 이송 중 극적으로 탈출, 첫 죽음의 고비를 넘긴다. 1954년 3대 민의원 선거에서 목포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하며 본격적으로 정치에 뛰어들었다. 3대를 포함, 4차례 낙선의 쓴잔을 연거푸 마셨다. 1958년 강원도 인제군 민의원 선거 때는 후보등록이 취소됐고, 1959년 보궐선거에선 색깔론에 휘말렸다. 4·19혁명이 일어난 1960년 선거에서도 낙선했다. 1961년 인제군 보궐선거에서 당선의 첫 기쁨을 누린 김 전 대통령. 하지만 사흘 만에 5·16을 맞아 반혁명사건에 연루돼 교도소로 직행한다. 토머스 모어의 교훈은 오히려 고난 극복의 힘이 됐다. “늦어도 100년 뒤면 (토머스 모어처럼) 역사에서 재평가받을 것”이라며 고통을 이겨냈다. 1962년 이희호 여사와 재혼한 고인은 이듬해 목포에서 민주당 후보로 공화당 후보를 제치고 당선됐다. 1964년 5시간20분간 행한 ‘필리버스터’ 발언과 6개월간 13차례 본회의 발언 등은 지금도 기록으로 남아 있다. 1971년 7대 대선은 기회이자 시련의 계기였다. 1970년 45세의 나이에 ‘40대 기수론’의 라이벌 김영삼(YS) 전 대통령을 물리치고 신민당 후보로 나섰지만 이듬해 선거에선 94만표 차로 패배했다. 이후 20년간 혹독한 시련이 밀려왔다. 일본 망명 중인 1973년 ‘김대중 납치사건’을 시작으로 전두환 군사정권까지 55차례의 연금생활, 5년반 동안의 감옥생활, 2차례의 망명생활을 겪었다. 1976년 명동 3·1구국선언으로 구속(긴급조치 9호 위반)됐고, 1981년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으로 사형선고를 받았다. 훗날 고인은 “솔직히 죽는 것이 두려웠지만 영원히 사는 길을 택했다.”고 회고했다. 가톨릭계의 구명운동 덕에 목숨을 건진 고인은 1982년 도미, 두 번째 망명길에 오른다. 한국인권문제연구소와 민주화추진협의회를 이끌며 민주화 운동의 외로운 무게중심이 됐고, ‘인동초’란 별칭도 얻게 된다. 1985년 12대 총선을 앞두고 전격 귀국한 고인은 김포공항에서 연행돼 가택연금에 처해졌다. 하지만 김영삼 전 대통령과 함께 만든 신한민주당이 2·12총선에서 109석을 확보, 1987년 6월 항쟁의 기틀을 마련한다. 사면복권 뒤 1987년 13대 대선에 출사표를 던졌지만 3위에 머무르며 김영삼 전 대통령과의 후보 단일화 실패에 따른 비난에 휩싸였다. 1988년 총선의 평민당 ‘황색 돌풍’으로 일선에 복귀했지만 1992년 12월 대선에서 패배한 뒤 정계은퇴를 선언한다. 고인은 “40여 년의 파란 많았던 정치생활에 사실상 종막을 고한다고 생각하니 감개무량한 심정을 금할 길이 없다.”며 대선 낙선의 소회를 곱씹었다. 막을 내릴 것 같던 정치인생은 영국으로 건너간 지 6개월만에 다시 불꽃을 살렸다. 1993년 귀국해 아태평화재단을 설립했고, 빗발치는 비판 여론을 무릅쓰고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했다. 이듬해 총선에서 제1야당으로 올라서자 대선 4번째 출마를 선언한다. ‘대통령병 환자’라는 비난이 일었지만 단 1.6%포인트의 표차이로 이회창 후보를 누르고 색깔론과 지역감정의 벽을 넘었다. 보수세력인 자민련과의 DJP연합이 힘이 됐지만, 역설적으로 색깔과 지역의 부조화스러운 조합이기도 했다. 고인의 대표 브랜드는 ‘햇볕정책’이다. 반세기 동안 닫혔던 북쪽의 문을 열게 하는 열쇠로, 서독 빌리 브란트 총리의 동방정책과 궤를 같이한다. 이를 바탕으로 이뤄진 역사적 남북정상회담은 한반도가 ‘레드 콤플렉스’를 벗어던지고 탈냉전체제로 진입하는 촉매제가 됐다. 고인을 한반도 유일의 노벨상 수상자로 만든 일대 사건이었고, 퇴임 뒤에도 논쟁이 있는 사안에 대해 비중있게 언급할 수 있는 유일한 지위를 부여했다. 고인은 대통령 임기말 측근들의 비리가 뒤늦게 터진 데다 아들들이 구속되는 등 마음고생도 적지 않았다. 6·15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해 북한과 밀거래한 사실은 안타까운 기록으로 남게 됐다. 또 완벽주의와 제왕학적 리더십은 권위주의적 통치라는 오명도 남겼다. 오상도 허백윤기자 sdoh@seoul.co.kr
  • 알천 ‘낭장결의’…덕만 “신라 먹어버릴 것”

    알천 ‘낭장결의’…덕만 “신라 먹어버릴 것”

    덕만의 든든한 지원군 알천랑이 ‘낭장결의’를 했다. ‘낭장결의’란 화랑들이 화장을 하고 대의를 위해 죽음을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세우는 일. 지난 14일 용인 MBC ‘선덕여왕’(극본 김영현 박상연ㆍ연출 박홍균 김근홍) 세트장에서 알천랑 이승효의 낭장결의 촬영이 진행됐다. 천명공주(박예진 분)를 제대로 보호하지 못한 것을 자책하고 공주의 죽음이 누군가의 음모라고 주장하며 그 배후를 찾아내기 위해 알천랑은 단독 낭장결의를 한다. 알천랑은 머리를 풀고 눈가와 입술을 붉게 칠함으로서 결의의 비장함을 강조했다. 한편 17일 방송된 ‘선덕여왕’ 25회에서는 천명의 죽음에 크게 절망했던 덕만(이요원 분)은 신라를 먹어버리겠다고 말하며 서라벌로 향한다. 비담(김남길 분)은 덕만을 돕고자 따라나서고 미실(고현정 분)과 진평왕(조민기 분)은 쌍생아의 비밀을 조용히 덮기로 합의한다. 사진제공 = MBC 서울신문NTN 우혜영 기자 woo@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조선독립 꾀했으니 내란죄”

    “피고인들이 자산가에게 금전을 강탈하고 살해하더라도 독립을 위한 것이 아니라면 내란죄로 논할 것이 아니지만, 구한국의 독립을 달성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내란죄의 음모 또는 예비를 한 것에 해당한다.” 3·1 독립만세운동이 있은 지 꼭 1년이 지난 1920년 3월1일 ‘대한광복회’를 만들어 독립운동을 한 박상진·채기중 선생 등이 조선고등법원에 섰다. 재판부는 “독립을 꾀했으니 내란죄가 성립한다.”는 해괴한 논리를 내세웠다. 3·1운동 직후 일제의 잔학상이 14일 대법원 법원도서관이 발간한 ‘조선고등법원 판결록’ 7권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법원도서관은 2004년부터 모두 30권 36책 2만여쪽에 달하는 ‘조선고등법원판결록’에 대한 국역 사업에 착수했으며, 7권에서는 1920년 조선고등법원의 민·형사 판결문을 번역했다. 식민지 관리는 되지 않겠다며 판사직을 버리고 독립운동에 나선 박상진 선생의 판결문에는 당시 대한광복회가 군자금 모금을 위해 부호들에게 보낸 포고문의 내용도 일부 판시됐다. 포고문에는 “우리 2000만 민족은 노예로 변했다.” 등 고국을 잃은 슬픔이 드러나 있다. 일제의 언론탄압 사례도 눈에 띈다. 동경의 조선유학생들을 모아 ‘조선청년독립단’을 만들고 ‘신조선(新朝鮮)’이라는 신문을 발간, 신문지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된 이달 선생에게 법원은 “조선의 독립을 기도하게 하려는 것과 같은 기사는 국헌을 문란하게 하는 것”이라며 유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달·화성에 외계 유적 있다?

    전 세계가 지켜보며 환호했던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그런데 미 항공우주국(NASA)이 세트장에서 날조한 것이라는 음모론도 끊이지 않았다. 공기가 없는 곳에서 성조기가 펄럭이며, 찍어온 사진에는 당연히 있어야 할 별도 보이지 않고, 우주인들의 그림자도 이상하다는 등 이유도 각양각색이다. 한때 NASA의 컨설턴트였던 리처드 호글랜드와 항공우주공학자인 마이클 바라는 달 착륙 조작설은 낭설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면서도 ‘나사, 그리고 거짓의 역사’(이재황 옮김, AK 펴냄)에서 커다란 음모론을 불쑥 들이댄다. 이미 오래 전에 NASA는 초고대 외계 유적의 존재를 파악하고 있었으나 계속 비밀로 해왔다는 것. 저자들은 NASA가 발표한 수많은 사진, 일부 전직 NASA 직원들의 증언과 이들이 빼돌린 자료에 돋보기를 들이대며 외계의 인공 건조물을 찾아낸다. 화성에는 사람 얼굴 모양의 인공물을 비롯해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를 닮은 건축물이, 달에는 유리로 만든 돔이나 거대한 탑·성채·로봇 머리 같은 건축물이 있다고 말한다. 대개 화질이 떨어지는 사진들이라 진위를 가리기 쉽지 않지만 이마저 외계 유적의 존재를 감추기 위한 편집이라는 게 저자들의 주장이다. 저자들은 실제로는 국방 안보의 필요성에 따라 설립된 준군사조직인 NASA가 외계 문명 존재 사실이 알려지면 사회가 풍비박산날 것을 두려워해 이를 숨기는 것이라고 추정하기도 한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죽음에 NASA가 관여했다는 주장도 눈길을 끈다. 케네디 대통령은 옛 소련에 달을 함께 탐사하자고 제안했는데, NASA를 좌지우지하던 프리메이슨들이 달의 외계 유적을 소련 등 외부에 알리지 않으려고 암살했다는 것이다. 2만 8000원.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문병 온 전두환 “DJ 집권때 제일 행복”

    문병 온 전두환 “DJ 집권때 제일 행복”

    1970, 80년대 신군부의 수장과 민주화의 상징으로 대척점에 섰던 전두환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이 병상에서 해후했다. 전 전 대통령이 14일 서울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 중인 김 전 대통령을 병문안하면서다. 1979년 10·26사태 이후 12·12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거머쥔 전 전 대통령은 이듬해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의 배후로 김 전 대통령을 지목했다. 김 전 대통령은 내란음모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았다. 죽음의 위기에서 옥고를 치른 김 전 대통령은 2년 만에 형 집행정지로 풀려났고, 2004년 재심에서 24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았다. 그러나 김 전 대통령은 전 전 대통령에 대해 “종교적 용서”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입원 전까지 준비하던 자서전에서 전 전 대통령에 대해 “죽음 직전의 고초까지 안겨준 그를 신앙적으로 용서하려고 노력했다.”고 밝혔다. 김 전 대통령은 평소 ‘용서는 최대의 용기이고, 관용은 정치의 최대 덕목’이라고 강조해왔다. 실제로 김 전 대통령은 1996년 12·12 및 5·18과 관련, 사형을 선고받은 전 전 대통령을 위해 당시 김영삼 대통령에게 “전직 대통령의 불행한 역사가 되풀이돼선 안 된다.”며 사면을 건의하고, 자신이 집권했을 때 이를 단행했다. 그는 또 국민의 정부시절 전 전 대통령을 수차례 청와대로 초청해 국정 현안을 논의하기도 했다. 이날 병세가 위중한 김 전 대통령 대신 부인 이희호 여사를 만난 전 전 대통령은 김 전 대통령의 재임시절 각별한 보살핌을 회고했다. “자꾸 상태가 나빠지는 것 같아 휴가 중에 올라왔다.”는 전 전 대통령은 “김 전 대통령 때 전직 (대통령)들이 제일 행복했다.”고 밝혔다. 그는 “(김 전 대통령이) 외국 방문 후 꼭 전직 부부를 청와대에 초청, 방문 성과를 설명해주며 만찬을 성대하게 준비해주고 선물도 섭섭하지 않게 해주셨다.”고 했다. 그는 “연세가 많아 시간은 걸리겠지만 틀림없이 완쾌해 즐거운 마음으로 나가게 될 것”이라고 쾌유를 기원했다. 홍성규기자 cool@seoul.co.kr
  • DJ 자서전 곧 출간… “정치보복은 절대 안된다”

    “한국에 민주주의가 정착하려면 반대세력끼리 정치보복만큼은 절대 안 된다.” 곧 출간될 것으로 알려진 김대중 전 대통령 자서전의 한 대목으로 1980년 내란음모사건으로 사형선고를 받고 법정에서 한 말이다. 2년여에 걸친 김 전 대통령의 자서전 구술작업에 참여한 유시춘 전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은 이를 두고 “김 전 대통령의 한평생을 관통하는 말”이라고 전했다. 오는 13일은 김 전 대통령의 도쿄피랍 생환 36주년을 맞는 날이다. 내년은 6·15 남북정상회담 10주년이다. 김 전 대통령은 해마다 두 기념일을 각별히 챙겼다. 자서전도 모진 역경을 거친 세월에 대해 상당 부분 할애했다고 한다. 김 전 대통령이 1980년 광주 민주화운동의 배후로 지목돼 최종 선고를 앞둔 당시 신군부세력은 “대통령만 빼고 원하는 대로 다 해주겠다.”며 회유한 구절도 있다. 그러나 김 전 대통령은 “국민을 속일 수 없다.”며 사형을 택했다. 정적에 대한 소회도 빠뜨리지 않았다. 고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유신 때 차지철 경호실장이 번번이 박 전 대통령과의 대면 일정을 잘라 버렸다.”며 아쉬워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1988년 7·7선언(대북정책 6개항 특별선언)에 대해선 ‘남북관계를 진전시킨 공로’라고 평가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에 대해선 “87년 대선 때 후보 단일화를 못 이룬 게 빚으로 남아 있다.”고 고백했다. 다만 전두환 전 대통령에 대해선 “죽음 직전의 고초까지 안겨준 그를 신앙적으로 용서하려고 노력했다.”며 다소 복잡한 심경을 드러냈다. 자서전은 상하 2권이다. 김 전 대통령은 유 전 상임위원이 하권의 원고를 탈고한 뒤 감사의 뜻으로 몽블랑 만년필을 선물했지만 아직 최종 감수를 보지 못한 상태다.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다른기사 보러가기] 축구 보여주다 여자 ‘볼일’ 장면 수시1차 논술 이렇게 박지성,호날두 단골임무 맡나 수리점 시계가 늘 10시10분을 가리키는 이유 조각? 그림? 틀 깬 신기한 사진들 국내 인터넷 뱅킹 뚫은 조선족 해커 22조원 투입 38조원 효과…강따라 돈이 흐른다
  • “영화로 진화하는 ‘이끼’ 저도 몹시 궁금”

    “영화로 진화하는 ‘이끼’ 저도 몹시 궁금”

    흥부와 춘향이를 비틀어 바라본 ‘연씨별곡’과 ‘춘향별곡’. 서울 아현동 가스폭발 사고, 성수대교 붕괴, 삼풍백화점 붕괴 등을 통해 우리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했던 ‘야후’. 노인들의 사랑을 익살스럽게 다룬 ‘로망스’. 그리고 한국 만화에서 보기 드물게 스릴러 장르를 내세우며 독자들의 소름을 돋게 했던 ‘이끼’…. 뜨거운 관심 속에서 지난달 ‘이끼’를 마무리한 윤태호(40) 작가를 7일 서울 신사동 누룩미디어 사무실에서 만났다. 누룩미디어는 강풀, 양영순, 윤 작가 등이 뭉쳐 설립한 만화 전문 에이전시다. ‘이끼’에는 사소하게 보일 수도 있는 정의를 고집하다 모든 것을 잃은 주인공이 나온다. 산골마을에서 떨어져 살던 아버지의 부고를 접하고는 그곳에 내려가 아버지의 죽음과 마을 사람들에 얽힌 음모를 파헤치게 된다. 사회가 허용하는 용납이나 관용의 폭이 어느 정도인지 다뤄보고 싶었다는 게 윤 작가의 설명이다. ‘이끼’는 씨줄날줄로 촘촘하게 엮은 스토리, 섬세한 심리 묘사, 영화 같은 장면 구성,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연출력, 밀도 있는 대사로 큰 인기를 끌었다. 독자들이 댓글로 해설하고, 토론을 벌일 정도. ‘이끼’를 비롯해 그의 작품 전반에는 사회 고발적인 시선이 관통하고 있다. 윤 작가는 “예민한 사춘기 시절에 6·29선언 등 민주화 과정을 경험했죠. 비슷한 나이의 작가 가운데 대한민국의 사회성이 각인되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 같아요. 그러한 시대를 거쳐온 사람으로서 당연히 갖고 있는 자세와 트라우마입니다.”라고 설명했다. 그의 작품에서 실패한 사람에 대한 관심과 실패하게 만든 사람들에 대한 분노가 읽혀지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인지 모른다. 편하고 친철하게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는 것도 윤 작가의 특징. 내러티브보다 캐릭터에 집중하며 인물 내면의 변화무쌍함과 다양성을 보여준다. 어떻게 보면 명쾌하지 않고 모호해 독자들은 익숙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겉으로 드러나는 선명한 사건만으로는 요즘 독자층에게 감동을 이끌어내기가 힘들다고 말한다. 풍성한 그림체와 스토리텔러로서의 능력을 과시해 스승인 허영만 작가의 뒤를 이어 한국 대표 만화가가 될 것이라고 평가받으면서도, 스승과 확연하게 구별되는 지점이다. 윤 작가가 자신과 스승의 스타일을 비교하는 이야기가 흥미를 끈다. “선생님이 불끈 튀어나온 힘줄을 그린다면, 저는 그 밑에 깔린 실핏줄을 탐닉합니다. 불륜 사건으로 치면, 선생님은 3자가 대면하는 커피숍에서 일어나는 사건으로 시작할 것 같아요. 그러나 저는 세 명이 각각 커피숍에 나오기 전까지 어떤 마음이 들었는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를 그리죠.” 그는 출판만화 시장이 열악해지며 힘겨운 시기를 거쳤다. 3~4년 정도 눈에 띄는 작품 활동을 하지 못하고 독자들과 멀어졌던 것. 웹툰은 새로운 돌파구가 됐다. “‘이끼’가 출판만화였다면 소수만 아는 안타까운 작품이 됐을 것 같아요.”라고 토로하는 그는 출판만화에 견줘 소재와 표현의 폭이 넓은 점을 웹툰의 장점으로 꼽았다.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는 곳이라 퀄리티가 보장되지 않은 아마추어적인 작품도 많다는 지적에 대해 윤 작가는 “독자와 시장이 판단해야 할 몫”이라면서 “독자가 자신들의 의견을 정확하게 표현해 좋은 작가를 살아남게 하는 풍토를 만들어야 합니다.”라고 강조했다. 이미 알려졌다시피 ‘이끼’는 영화로도 진화한다. 강우석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조만간 크랭크인한다. 정재영, 박해일, 유선 등이 나온다. 독자들 사이에서는 강 감독이 연출을 맡은 게 적절한지, 정재영이 이장 역에 어울리는지 갑론을박이 무성하다. 그만큼 기대가 크다는 이야기. 윤 작가는 “영화가 만화와 동일하거나 엇비슷하다면 별 의미가 없지 않을까요. 감독이나 출연진 모두 제가 상상할 수 있는 조합을 넘어섰죠. 그래서 더욱 궁금하고,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결과가 기다려집니다.”라고 말했다. 이제 그의 독특한 시선은 어디로 향할까. 바둑과 인천상륙작전이다. 바둑의 경우 아직 아이템만 있고 아이디어는 영글지 않은 상태. 요즘 열심히 바둑 관련 책을 들여다 보고 있다. 2년가량 구상했다는 인천상륙작전은 2년 정도 뒤에 독자들에게 꺼내놓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제가 바라보는 한국 근대사를 만들고 싶은 욕구가 있어요. 한국전쟁을 겪은 세대가 생존해 있을 때는 힘들었겠지만 이제는 세대가 교체돼 이승만, 맥아더 등의 인물을 객관화·기호화시켜 저만의 시선으로 담아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글ㆍ사진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특파원 칼럼] 베이징올림픽 ‘그 후 1년’/박홍환 베이징특파원

    [특파원 칼럼] 베이징올림픽 ‘그 후 1년’/박홍환 베이징특파원

    베이징의 시민단체인 이런핑(益仁平)에서 활동하는 류샤오위안(劉曉原) 변호사의 써우후(搜狐) 블로그는 지난달 28일부터 접속불가 상태다. 20 06년 2월25일 개설해 3년반 동안 400만명 이상의 네티즌이 다녀갔고, 그가 작성한 1400여편의 글에 달린 댓글만 10만개가 넘을 정도로 인기 블로그였다. 그동안 그가 올린 글을 써우후 측이 임의로 삭제해 몇 차례 법정공방까지 가긴 했지만 이번처럼 아예 블로그 문을 닫아버릴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는 “어떤 이유로도 블로그 공간에서의 언론자유를 침해할 수는 없다.”며 써우후 측에 명확한 답변을 요구하고 있다. 중국의 대표적인 시민단체 가운데 하나인 공멍(公盟) 홈페이지도 지난주부터 막혀 있다. 공공이익과 법치주의 구현 등을 주요 이념으로 내세운 공멍은 지난해 멜라민 분유 파동 당시 피해부모 등에 대한 법률지원에 나서는 등 중국 내 사회적 약자에 대한 지원군 역할을 자임해왔다. 최근 사무실을 압수수색당하고, 단체 대표가 체포되는 등 수난을 겪고 있다. 중국은 8일로 베이징올림픽 개최 1주년을 맞는다. 올림픽 이후 많은 긍정적인 변화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대기환경 개선을 위해 1500억달러나 쏟아부은 탓에 베이징의 공기는 과거와는 확연히 대비될 정도로 좋아졌다. 몇 년만에 베이징을 찾은 사람들은 “이곳이 진짜 베이징이냐.”고 반문할 정도다. 공공장소에서의 줄서기 등 시민의식도 눈에 띄게 개선됐다. 무엇보다 큰 변화는 국민들의 자신감 회복이다. 장이머우(張藝謀) 감독의 총지휘 속에 진행된 올림픽 개막식은 19세기 중반 제국주의 세력의 침탈 이후 움츠러든 중국인들의 가슴에 ‘대국의 부활’이라는 희망을 던져줬다. 올림픽 직후 찾아온 글로벌 금융위기는 이런 희망을 현실화시키는 계기가 됐다. 전 세계가 중국 경제를 주목하면서 중국은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사실상의 ‘G2’ 반열에 올랐다. 중국인들이 150년만에 대국의 지위를 되찾았다고 기뻐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과연 긍정적인 변화만 있는 것일까. 중국 내 민족주의 경향 확대를 지켜보면서 외부 세계에서는 ‘중국위협론’이 또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원자바오(溫家寶) 총리까지 나서서 ‘음모론’이라고 항변하고 있지만 최근 중국의 행보를 지켜보면 중국위협론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는 느낌이다. 달라이 라마나 레비야 카디르 등 중국에 걸끄러운 인사들과 관련된 국가들을 힐난하는 모습이나 비축한 외환으로 전세계 자원을 싹쓸이하는 풍경 등은 아이로니컬하게도 19세기 중국이 제국주의 열강에 억압당했던 모습을 연상시킨다. 내부적으로는 또 어떤가. 최근 들어 부쩍 시민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대량해고, 환경오염, 비인도적 처우 등에 대해 시민들은 더 이상 침묵하지 않는다. 곳곳에서 시정을 요구하는 집단행동이 터져나오고 있다. ‘삶의 질’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의 대두는 우리도 이미 1980년대 말 올림픽 직후 겪은 바이다. 문제는 중국 정부의 대응이다. 툭하면 인터넷 등 언로를 봉쇄하고, 시위를 매끄럽게 처리하지 못한 관료들을 문책하는 땜질식 처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막는 데만 급급하다 보니 상처는 속으로 곪아터질 지경이다. 중국 중앙 정부는 최근 각 지방 정부에 오는 10월1일 국경절까지 지방 민원인들의 베이징 입성을 저지하라는 지시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성대하게 치러야 할 건국 60주년 행사가 민원인들로 인해 방해를 받아서는 안 된다는 심산일 것이다. 베이징올림픽 1년, 중국은 안팎으로 큰 도전에 직면해 있고, 세계는 중국의 행보를 주시하고 있다. 박홍환 베이징특파원 stinger@seoul.co.kr
  • 엔씨소프트 ‘아이온’ 신규 콘텐츠 내달 적용

    엔씨소프트 ‘아이온’ 신규 콘텐츠 내달 적용

    온라인게임 ‘아이온’의 여름이 ‘용족의 그림자’로 새로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게임업체 엔씨소프트는 오는 8월 5일 ‘아이온’에 ‘용족의 그림자’ 콘텐츠를 적용한다. 이에 따라 ‘아이온’은 12개 이상의 인스턴트 던전과 함께 중·저 레벨 게임 이용자들을 위한 100여종의 신규 콘텐츠를 새롭게 선보이게 됐다. 또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용족’의 실체와 음모가 이번 콘텐츠 적용으로 베일을 벗게 됐다. 한편 엔씨소프트는 ‘용족의 그림자’ 콘텐츠를 기념해 휴면 고객에게 무료 체험권(15일 30시간)을 증정하는 행사를 진행한다. 서울신문NTN 최승진 기자 shaii@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종편채널 구체안 새달 발표”

    최시중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이 최근 강행처리된 미디어법과 관련해 26일 기자회견을 열고 “야당이 제기한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결정과 관계없이 8월 중에 종합편성채널(종편) 및 보도전문채널 도입을 위한 구체적인 정책 방안을 발표한 뒤 사업자 승인 신청접수와 심사 절차를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최 위원장은 “개정 미디어법은 3개월 내에 모든 규정이 시행되도록 일정이 짜여져 있다.”면서 “차질 없는 법 시행을 위해 시행령 및 미디어다양성위원회 구성, 매체합산 영향력 지수 개발 등의 방안을 빨리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 위원장은 특히 “3개 사업자가 경쟁을 벌이는 통신시장처럼 종편, 보도채널도 3개는 돼야 바람직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면서 “처음 도입되는 종편채널은 단계적으로 사업자를 늘려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올해 내에 종편채널 2개, 보도채널 1개가 각각 새로 생길 전망이다. 보도채널은 YTN과 MBN이 이미 있기 때문에 1개만 추가해도 3각 경쟁구도가 형성되고, 종편채널은 초기 투자비용이 막대한 만큼 우선 2개로 출발한 뒤 추가 사업자를 기다리겠다는 것이다. 최 위원장은 유력 신문사가 종편 및 보도채널에 뛰어들 경우 10, 12 등 이른바 ‘황금채널’을 차지할 것이라는 지적에 대해 “특정 신문이나 기업에 대한 특혜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새로운 사업자가 기존 지상파 방송과 경쟁할 수 있도록 합법적 테두리 내에서 지원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나라당 김성조 정책위의장도 이날 기자간담회를 갖고 “방송업에 대한 세제우대 조치를 강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최 위원장은 “MBC는 방송문화진흥회 이사들이 새로 선임되면 공영이냐 민영이냐를 선택해야 하며, KBS는 수신료를 올려주는 대신 시청률 경쟁에서 자유로운 진정한 공영방송으로 거듭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 위원장의 회견에 대해 언론노조 최상재 위원장은 “헌법재판소 판결이 날 때까지 미디어법은 시행하지 않는 게 당연함에도 불구하고 관련 시행령을 서둘러 진행하는 것은 날치기 악법을 기정사실화하려는 음모”라면서 “이날 언급한 8월 정책 시행 문제는 노조가 물리적 힘을 동원해서라도 막겠다.”고 밝혔다. 이창구 주현진기자 window2@seoul.co.kr
  • 세일의 위력일까? 폴로의 힘일까?

    세일의 위력일까? 폴로의 힘일까?

    세일의 위력일까? 폴로의 힘일까? 폴로 3일 파격 세일에 몰린 인파 현장 취재 역시 세일의 위력은 대단했습니다. 아니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외국 패션 브랜드인 폴로의 힘이 대단한 것인지도 모르죠. 딱 3일간, 최고 50%. 폴로의 유례 없는 세일 행사는 한 마디로 아수라장 그 자체였습니다. 세일을 하지 않는 브랜드로 명성을 굳혀온 폴로의 이번 세일은 시작 전부터 세간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한국 수입선이 계약 만료를 앞두고 파격 세일을 거듭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논란이 일던 차였죠. 세일 이틀째인 25일 토요일 정오. 볼 일이 있어 서울 을지로 입구의 롯데백화점을 찾았습니다. 그러다 문득 화제의 세일 현장이 궁금해졌습니다. 도대체 어떤 모습일까? 기자로서의 호기심이 동한 것이었죠. 7층의 폴로랄프로렌 매장을 찾았습니다. 예상과 달리 한산하더군요. 약간은 실망하기까지 했습니다. 언론이 너무 앞서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했습니다. 아니면 백화점이 개장한 지 얼마 안 돼서 그런 건가? 그 순간 매장 종업원이 눈치를 보던 내게 말을 건넸습니다. “세일 상품을 찾는 거라면, 9층 이벤트 홀로 가보세요.” 매장이 혼잡해질 것을 우려해 층을 옮겨 세일을 하는 중이라는 얘기였습니다. 9층 1천5백㎡(약 5백평) 남짓한 이벤트 홀에 들어서자, 그야말로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엄청난 인파가 몰려 있어서였습니다. 광란의 백화점 세일 현장을 몇 차례 봤지만,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습니다. 일단 얼핏 보기에도 족히 1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몰려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벤트 홀 중심부와 가장자리는 사람 수 면에서 차이가 컸습니다. 홀 중심부, 그리고 다른 한 편에서는 해외 명품 대전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명품 브랜드 재고나 이월 상품 할인 행사였습니다. 할인 행사라고는 해도 가격이 만만칠 않았습니다. 상대적으로 연배가 높은 사람들이 군데군데 모여 있을 뿐이었습니다. 가장자리를 둘러 쌓아놓은 폴로 할인 행사에는 전연령대의 인파가 빽빽하게 밀집해 있었습니다. 어깨를 비집고 들어가 상품을 구경할 수조차 없을 정도였습니다. 인파도 인파였지만, 백화점측에서 미리 만들어 둔 통제선도 가관이었습니다. 다른 해외 명품 브랜드와 달리 폴로의 경우는 판매대 출입을 통제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정도 인원이 차면 통제선을 막아서 추가 출입을 막는 방식이었죠.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은 길게 줄을 늘어서서 사람들이 줄어들 때까지 부러운 눈초리를 보내는 수밖에는 없었습니다. 대기자 행렬은 화장실을 한 바퀴 돌아 아래층 계단까지 이어졌더군요. 백여명은 넘어 보였습니다. 이들은 10명 단위로 입장이 허용됐습니다. 해외 여행 성수기 공항 내의 항공사 체크인 라인을 연상하게 하는 광경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미로 같이 이어진 줄 사이로 발걸음을 옮기다, 종종 제지당하곤 했던 거죠. 오후 1시쯤 어디선가 ‘꽈당’하는 굉음이 들렸습니다. 안전사고 가능성마저 점쳐지던 상황이라 많은 사람들이 불안감에 동요하는 분위기가 역력했죠. 이벤트 홀 가운데 통로에 세워둔 마네킹이 쓰러진 것이었습니다. 소리만 요란했을 뿐,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 시간에도 인파는 계속해서 9층으로 꾸역꾸역 몰려들었습니다. 시간이 없거나 인내심이 부족한 사람 몇몇이 서 있던 줄에서 빠져나와 백화점 아래층으로 내려갔습니다. 이들은 세일 현장에서 세일 상품이라고는 구경조차 못해본 사람들이었습니다. 백화점 아래층은 여느 때보다도 훨씬 한산했습니다. 에스컬레이터에서 누군가가 중얼거렸습니다. “별 볼 일 없는 백화점 고객들을 다 9층으로 몰아넣고, 알짜배기 고객들은 여유 있게 쇼핑하라는 백화점측의 배려야.” 평상시였으면 웃고 넘겼을 음모론에 슬쩍 공감하게 될 무렵, 고개를 치켜든 생각이 있었습니다. 세일이나 폴로가 대단한 것이 아니라, 정작 고객은 뒷전이어도 여전히 고객으로부터 사랑받는 백화점이 굉장한 것이 아닐까 하고요. 서울신문NTN 이여영 기자 yiyoyong@seoulntn.com / 사진=이여영 기자@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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