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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 생생리포트] 마윈 경영 승계 발표 뒤 ‘정치적 음모론’ 그림자

    [특파원 생생리포트] 마윈 경영 승계 발표 뒤 ‘정치적 음모론’ 그림자

    중국 알리바바그룹 창업자 마윈(馬雲)은 지난 10일 자신을 ‘교사’라고 소개하는 새로운 명함을 공개했다. 이날은 그의 만 54세 생일이자 중국 교사의 날이었으며, 10년간 준비했다는 알리바바그룹의 경영 승계 계획을 밝힌 날이기도 하다.전문 경영인에게 1년 뒤 그룹 경영을 맡기겠다는 마윈의 발표는 경영 세습이 일반적인 아시아 기업에서는 드문 어려운 사례여서인지 적지 않은 음모론이 불거졌다. 특히 마윈이 소유한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보도와 관련지어 알리바바그룹의 정치적 위험을 제거했다는 분석도 등장했다. 약 1년 전 SCMP는 19차 당대회를 앞두고 있던 중국 공산당 지도부에 위협적인 기사를 게재했다가 곧바로 삭제했다. 칼럼의 내용은 현재 공산당 권력 3위로 북한 정권수립 70주년 기념일이었던 9·9절에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특별대표로 평양에 다녀온 리잔수(栗戰書) 상무위원에 관한 것이었다. 페닌슐라 등을 소유한 싱가포르 호텔 재벌 차이화보(蔡華波)가 홍콩과 상하이의 호텔 지분을 매입하는 과정에서 리잔수의 딸 리첸신(栗潛心)과 같은 주소를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이 SCMP를 통해 공개됐다. SCMP는 중국 국가지도자의 교체를 앞두고 반부패 정책을 강력하게 펼친 시 주석의 심복인 리잔수의 딸이 거액의 재산을 소유하게 된 과정에 대한 의문을 품었다. 하지만 ‘어떻게 페닌슐라 지주회사의 투자자가 시진핑의 오른팔과 연계됐나’란 제목의 기사는 ‘자사 기준에 맞지 않는다’는 석연찮은 이유로 삭제됐다. 그동안 중국 공산당에 비판의 날을 세웠던 SCMP는 2015년 알리바바에 인수된 이후로 중국에 부정적인 서방 언론을 무색하게 만드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알리바바의 조지프 차이 부회장은 “중국에 좋은 것이 알리바바에도 좋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게다가 알리바바는 중국이 아닌 미국 나스닥 증시에 2014년 상장했다. 알리바바를 비롯한 많은 중국의 인터넷 기업들이 미국에 상장한 이유는 중국의 외국 자본 유입 제한 정책 때문이다. 알리바바그룹의 지주회사인 알리바바홀딩스는 대표적인 조세 회피처인 케이먼 제도가 설립지로, 마윈은 지분이 아니라 계약관계로 그룹을 경영했다. 즉 미국의 야후, 일본의 소프트뱅크 등 외국자본이 대주주인 알리바바홀딩스는 따로 중국 법인과 계약을 맺어 경영권을 행사한다. 알리바바를 향해 “돈은 중국 인민을 상대로 벌고 배당과 주가 상승의 과실은 외국인이 딴다”라는 비난이 공산당에서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다. 마윈의 사퇴로 알리바바 지배구조의 위기 요소를 사전에 제거하고 기업의 미래에 날개를 달았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베이징 윤창수 특파원 geo@seoul.co.kr
  • [사설]쌍용차 전원복직 합의, 국가권력의 부당한 노사 개입 다시 없어야

    쌍용자동차 노사가 어제 해고 노동자 119명을 전원 복직시키기로 합의했다. 노사가 발표한 합의서에 따르면 70여명은 연내에, 나머지 인원은 내년 상반기 말까지는 업무에 복귀하게 된다. 지난 2009년 시작된 쌍용차 사태가 이로써 9년 만에 매듭지어진 셈이다.  쌍용차 문제는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의 가슴에 맺힌 응어리였다. 2009년 사측의 일방적 정리해고로 촉발된 사태는 지금까지 해고자와 그 가족 등 30명이 삶을 등지게 했다. 2015년 노사는 해고자 복직에 어렵사리 뜻을 모았으나 이후 합의가 제대로 이행되지 않아 지난해 5월에는 해고자의 부인이 목숨을 끊었고, 지난 6월에는 해고 노동자 김주중씨가 또 스스로 생을 포기했다. 그러니 이제라도 해결돼 다행인 것이 아니라 만시지탄의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는 것이다.  이번 합의는 복직 시점을 내년으로 못박은 데다 경영상황이 나쁘더라도 남은 해고자들을 전부 복귀시킨다고 명시한 점에서 2015년의 합의와 의미가 다르다. 회사가 합의사항을 위반하지 않는다면 노조도 2009년 정리해고 사태와 관련한 집회·시위를 앞으로 열지 않겠다는 약속도 했다.  자율적인 노사의 합의 결과는 환영하고도 남을 일이다. 하지만 쌍용차의 골깊은 생채기가 노사가 손을 잡았다고 말끔히 치유될 수는 없다. 지난달 말 경찰청 인권침해 사건 진상조사위원회의 조사 결과는 쌍용차 사태에 대한 국가폭력이 얼마나 야만적이었는지를 확인시켰다. 조현오 당시 경기지방경찰청장은 상급자인 강희락 경찰청장의 반대를 무시하고 이명박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 쌍용차 진압 작전을 승인했다. 대테러 장비인 테이저건과 다목적 발사기, 2급 발암물질을 섞은 최루액을 헬기로 노조원들에게 살포하기도 했다. 조 전 청장은 정부에 유리한 방향으로 여론을 조성하려고 경찰관 50여명을 동원해 ‘쌍용차 인터넷 대응팀’을 별도 운영했다는 의혹도 받는다. 국가가 작심하고 이런 음모를 기획했다면 해고 노동자가 설 땅이 없다는 사실은 불문가지다. 극렬 범법자로 내몰린 노조원들은 재취업이 불가능해 신용불량자로 전락하거나 비정규직을 전전할 수밖에 없었다.  쌍용차의 비극에 국가권력의 조직적 횡포가 개입한 흔적은 이것뿐만이 아니다. 양승태 대법원이 상고법원 추진을 위해 재판거래를 하면서 쌍용 사태도 먹잇감으로 활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마당이다. 쌍용차 정리해고는 무효라는 고법의 결정을 2014년 대법원이 뒤집은 배후가 과연 무엇이었는지 낱낱이 밝혀야 한다. 공권력 남용과 국가폭력 행위가 명백한 상황이라면 치열한 반성과 사과, 재발방지책이 뒤따라야 함은 말할 것도 없다.
  • 오반 악플러 100명 고소 “만만하니 계속 때려..차트 조작따위 없다”

    오반 악플러 100명 고소 “만만하니 계속 때려..차트 조작따위 없다”

    가수 오반의 소속사 측이 악플러들에 대한 고소장을 접수했다. 오반의 소속사 로맨틱팩토리는 14일 보도자료를 통해 악플러 100명 및 오반을 저격한 모 뮤지션에 대한 고소장을 접수한 사실을 밝혔다. 소속사 대표는 “소속 아티스트 ‘오반’의 신곡 발표와 더불어 말도 안되는 수준의 주장과 비난들이 난무하는 것을 더는 지켜볼 수 없다는 판단하에 오늘부로 서울 중앙 지방 검찰청에 100여 명의 악성댓글을 단 이들과, 아무 근거 없이 억지 주장으로 본사와 아티스트의 명예를 실추시키며 실제적인 피해를 입힌 게시물을 올린 모 뮤지션을 명예훼손, 업무방해, 모욕죄 등의 형사 고소장을 접수시키고 오는 길입니다”라고 밝혔다. 이어 “그 어떤 누구도 선처따위는 전혀 없을 예정이며, 저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근거없는 비방과 음모론으로 본사와 본사 소속 아티스트를 향한 무차별적인 악성 게시물들을 끝까지 고소할 예정이며, 형사 소송과 더불어 본사가 입은 여러가지 피해에 관한 손해보상과 관련된 민사 소송까지 진행할 예정입니다. 지금의 상황은 마치 만만하다 생각하니 계속 때리는 격으로 느껴지며, 우리는 그렇게 만만한 대상이 아니며, 조금도 맞아줄 생각이 없다는게 강력한 제 의지입니다”이라고 덧붙이며 강력한 의지를 내보였다. 일반적으로 기획사들이 지속적으로 악성댓글을 다는 소수의 인원을 상대로 고소를 하는 것에 반해, 로맨틱팩토리는 100여명 가량의 악성게시물을 게재한 이들을 고소함으로써 지금 벌어지는 근거 없는 논란에 강경하게 맞서겠다는 의사표시를 하고 있는 것으로 비추어진다. 더불어 “제가 강력히 말씀드릴 수 있는건 제 이름뿐만 아니라 제 목숨을 걸고 단언컨대, 소위 말하는 차트 조작 따위는 한 적이 없었고, 본사의 플랫폼에서 좋은 반응으로 높은 성과를 얻은 아티스트들 역시 차트 조작 같은 구차하고 더러운 행위는 하지 않았다고 확신합니다”며 현재 벌어지는 음원 조작 논란에 대해서 확고한 입장을 밝혔다. 또한 여러 의혹에 관해서는 “로맨틱팩토리는 리메즈, 디씨톰엔터테인먼트와 전혀 다른 회사입니다. 두 회사와는 지분 관계나 아티스트 소속관계등 실제적인 이해 관계가 전혀 섞여있지 않습니다. 본사가 긴밀히 협력관계를 가지고 있다가 사업 방향성과 비지니스 모델 전환에 관한 이슈로 본사 소속으로 흡수한 플랫폼인 ‘너만 들려주는 음악(너들음)’을 통해 실제적인 반응을 얻고, 이게 차트에 반영 되었다는 게 전부입니다” 라며 “본사가 너들음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현재 차트에 상위권에 있는 숀이 피처링했다는 이유만으로 꾸준히 2년여간 7장의 싱글을 발표하며, 올해 발표한 모든 음원을 소위 차트인을 시키고, ‘불행’이라는 나름의 히트곡으로 요즘 같은 시장에서 2달반 가량을 차트에서 버텼던 오반의 새 싱글이 발매날 고작 ‘40위권’으로 첫 진입을 했다는 이유로 온갖 의혹과 비난을 제시하는 부분에서 저희는 너무나 자존심이 상하고, 억울함을 넘어 분노하기까지 이르렀습니다. 우리가 해온 모든 것들이 이렇게 무시당하고 부정당하는 이 상황을 그냥 넘어가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계속해 때리겠구나 싶었습니다”라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특히나 “심지어 너희가 조작하지 않았다면 그걸 증명하라는 식의 논리로, 유죄추정을 원칙으로 삼아 마녀사냥을 계속 하고 있습니다. 마치 ‘너는 도둑질하게 생긴 관상인데, 네가 도둑질을 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가져와라. 그렇지 않으면 너는 도둑이다’ 의 논리입니다”고 말하며 “ 결국 상식적으로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우리는 누군가에게 찍힌 모양입니다. 공공연히 이번 사태로 인해 수많은 업계 사람들이나 언론들에 ‘불쾌하다’라고 표시하고 있는 모회사의 이야기나, 심지어 저에게 전화를 걸어 ‘기분 나쁘니 기사 좀 써드릴까요?’라는 협박하는 기자까지 겪으면서, 기득권에게 굴복하기를 강요하는 지금의 사태는 ‘내부자들’이나 ‘부당거래’등의 영화에서나 보던 일들이 저에게 벌어지고 있다고 느끼며, 저는 조금도 굴복할 생각이 없다고 대답하겠습니다. 계속 끝까지 싸워보겠습니다”라고 밝혔다. 이후에도 로맨틱팩토리는 음모론을 바탕으로 논란을 만드는 악의적인 글들을 쓰는 이들을 지속적으로 끝까지 고소하고 싸울 것이라고 전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문화마당] 사색은 멀고 검색은 가깝다/강의모 방송작가

    [문화마당] 사색은 멀고 검색은 가깝다/강의모 방송작가

    아침에 일어나 컴퓨터 전원을 켠다. 원두를 갈고 커피를 내리는 동안 부팅이 된다. 머그잔을 들고 모니터 앞에 앉아 인터넷 창을 연다. 메일을 확인하고 카페를 살피고 밤새 이슈가 된 뉴스들을 훑는다. 그리고 마침내 한글을 연다.긴한 원고를 써야 하는 날일수록 이 과정은 길어진다. 자신 없는 일은 어떤 핑계를 대서라도 자꾸 미루게 되는 법이니까. 멈칫거리며 몇 줄을 쓰다가 검색 창을 연다. 모호한 단어 뜻을 찾아보려고, 혹은 정확한 사실 확인을 위해. 어쨌든 이 단계가 특히 위험하다. 포털에 떠 있는 다양한 화제를 따라 무심코 이 창 저 창을 열다 보면, 애초에 무엇을 찾으려고 했는지를 잊게 된다. 종내는 급하지 않았던 원고조차 마감에 쫓기게 되고, 늘 바쁘다는 거짓말을 입에 달며, 부끄러운 글을 쓴다. 원인과 처방을 알면서도 못 고치는, 참 나쁜 병이다. 바쁘지 않은 시간을 쪼개 영화 ‘서치’(Searching)를 보았다. 영화 장면의 대부분이 모니터로 펼쳐진다는 말에 호기심이 동했다. ‘하나의 문이 닫히면 다른 하나의 문이 열린다’고 한다. 아빠와 대화가 단절되고 온라인에서 위로를 찾은 딸. 딸이 실종된 후 아빠는 딸이 드나든 문들을 끈질기게 추적하며 단서를 찾는다. 모니터에서 바쁘게 움직이는 커서, 컴퓨터와 스마트폰의 다양한 기계음. 이 두 가지로도 엄청난 긴장감을 만들어 내는 감독의 능력이 대단했다. 자식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아빠는 다른 영화에도 많이 등장한다. 그들은 대개 우람한 체구에 총과 주먹으로 악당을 응징하는 막강 캐릭터다. 그런데 이 아빠는 주로 스마트폰과 모니터, 키보드를 도구로 쓴다. 웹캠 앞에서 인상을 구기고 있는 그의 모습은 신경질적이고 나약해 보인다. 하지만 점점이 떨어져 있는 흔적을 모아 그림을 완성해 나가는 그의 활약은 어떤 액션보다 화끈하다. 자칫하면 영화의 메시지를 ‘험난한 세상에서 가족을 지키려면 디지털 천재가 되어야 한다’로 이해할 뻔했다. 하나 자식의 위기 앞에선 평범한 부모도 슈퍼맨으로 변신한다. 아이가 차에 깔린 것을 본 엄마가 순간의 괴력으로 차바퀴를 들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도 있지 않은가. 엔딩 크레디트를 보다가 한 사람이 생각났다. 취미도 특기도 검색, 음모론에 종종 심취하는 젊은 친구. 하나의 이슈를 붙잡는 순간 꼬리를 무는 검색으로 밤을 새우기 일쑤이다. 수면 부족에 시달리던 그는 결국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안과 질환까지 얻었다. 얼마 전 그 친구가 여름휴가를 떠났다. 눈 건강을 고려해 조용한 휴양지에서 무조건 쉬며 책을 읽겠노라 했다. 독서 준비도 철저한 검색으로 시작했다. 성향과 취향에 맞는 주제, 몰입도, 적당한 길이 등등을 조건으로 자신이 원하는 소설을 기어이 찾아 가방에 넣었다. 돌아온 그는 안타깝게도 실패를 고백했다. “책을 한 페이지라도 봤으면 계속 읽었을 텐데, 더 가까이 있고 더 가벼운 스마트폰을 먼저 잡은 게 패착이었어요. 뉴스 한 줄에서 시작된 검색을 절대 멈출 수가 없더라고요. 4박 5일 동안 책장은 열어보지도 못했어요.” 그에게도 어린 아들이 있다. 그는 영화 ‘서치’를 보며 어떤 생각을 할까? 어쨌든 가장으로서 그에게 가장 시급한 과제는 ‘검색의 왕’이 아니라 ‘건강’이다. 잔소리를 대신해 그에게 이 글을 읽어주기로 했다. ‘끊임없이 위급한 상황이 벌어지는 삶에서는 가상적인 관계들이 현실적인 관계의 가장 실질적인 부분을 마구 휘저어 버린다.’ - 지그문트 바우만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 중에서.
  • ‘1세대 인권 변호사’ 한승헌, 국민훈장 무궁화장 받는다

    ‘1세대 인권 변호사’ 한승헌, 국민훈장 무궁화장 받는다

    ‘1세대 인권 변호사’ 한승헌(84) 전 감사원장이 사법부 70주년을 맞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는다.대법원은 13일 오전 11시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에서 열리는 대한민국 사법부 70주년 기념행사에서 한 전 감사원장에게 국민훈장 중 최고등급인 무궁화장을 준다고 밝혔다. 시국 사건 1호 변호사로도 불리는 한 전 감사원장은 권위주의 정부 시절 동백림 사건, 민청학련 사건, 인혁당 사건 등 수많은 시국 사건의 변론을 맡는 등 국민 기본권 보장을 위해 헌신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 자신 또한 1975년 ‘유럽 간첩단 사건’으로 사형당한 김규남 의원의 죽음을 애도하는 글을 썼다가 구속되고, 김대중 내란 음모 사건의 공범으로 몰려 투옥되기도 했다. 김대중 정부 시절 감사원장을, 참여정부 시절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장을 맡는 등 사법 개혁과 법치주의 확립을 위해 애쓴 공로도 인정받았다. 한 전 감사원장 외에도 고 이영구 판사와 김엘림 한국방송통신대 법학과 교수가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는다.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
  • 미국 행정부 저격하는 ‘공포’ 출간 앞두고 트럼프 격분

    미국 행정부 저격하는 ‘공포’ 출간 앞두고 트럼프 격분

    ‘공포:백악관 안의 트럼프’ 출간을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은 10일(현지시간) 저자 밥 우드워드를 공격하는 트윗을 연이어 올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드워드는 민주당의 정보원 같은 거짓말쟁이”라며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음모를 꾸미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그의 저서에 대해서는 “사기” 또는 “소설”이라고 공격했다. 우드워드의 신작은 11일 발간될 예정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NBC방송 ‘투데이 쇼’에 출연한 우드워드에게 진행자가 “익명의 출처가 대부분인데 당신을 어떻게 믿느냐”고 질문한 것을 언급하며 그의 책이 거짓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우드워드는 NBC 인터뷰에서 자신의 책이 소설이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에 대해 “책 속에 거론된 사건은 날짜와 시간, 그리고 누가 참석했는지 여부가 드러나 있다”고 반박했다. 일부 공개된 책 내용을 살펴보면 매티스 국방부 장관은 “대통령이 초등학교 5, 6학년 수준의 이해력과 행동을 보인다”고 불평했으며 켈리 비서실장은 트럼프 대통령을 ‘멍청이’라고 비난한 적 있다고 적혀있다. 이들은 모두 책 속에 나온 발언 내용을 부인했다. 저자 밥 우드워드는 현재 워싱턴포스트 부편집인으로 1972년 ‘워터게이트’ 사건을 터뜨려 닉슨 대통령을 사임하게 만든 바 있다. 곽혜진 기자 demian@seoul.co.kr
  • 알리바바 마윈 석연찮은 퇴진 선언 배경···‘정치적 음모론’과 맞물려 증폭

    알리바바 마윈 석연찮은 퇴진 선언 배경···‘정치적 음모론’과 맞물려 증폭

    전격 사퇴를 선언한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알리바바그룹의 창업자인 마윈(馬雲·54) 회장이 정치적 소용돌이에 휘말렸을 것이라는 음모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마윈은 내년 9월 10일 회장 직을 최고경영자(CEO)인 장융(張勇·대니얼 장·46)에게 넘긴다고 발표했다. 마윈 회장의 내년 사퇴 발표와 관련해 자신의 ‘비명횡사’를 우려해 신변 안전을 위한 ‘결단’이라고 대만 자유시보가 11일 보도했다. 탈세 의혹이 제기됐던 중국의 세계적 스타 판빙빙(36)이 대중의 시야에서 사라진지 3개월이 넘으면서 갖은 억측을 낳는 것과 맞물려 있다. 마 회장은 전날 사퇴 이후 자신의 아름다운 꿈인 교사로 돌아가겠다고 밝혔다. 알리바바그룹의 공식 웨이보(微博)는 10일 “마 선생님의 새로운 명함이 나왔습니다”라며 명함 캡쳐 사진을 올렸다. 알리바바그룹 로고가 박힌 명함에는 ‘마윈 선생님’이란 직함과 영문 이름 ‘Jack Ma’가 함께 적혔다.하지만 그의 갑작스러운 은퇴 소식은 사전에 감지되지 않아 의구심을 더하고 있다. 중국에서 활동하는 애널리스트 일부는 그의 은퇴가 시기상조라고 보고 있다. 애널리스트 류딩딩은 글로벌타임스에 “일부 중국 기업이 큰 도전에 직면하고 있음이 현실”이라면서 “알리바바 같은 거대 기업이 이를 극복하지 못하는 것으로 시장이 인식한다면, 이는 중국 경제 자체에 대한 불안감 확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시장을 개척해 왔던 알리바바가 제품 및 서비스를 소비자와 연결시키는 플랫폼이 되면서 경영 자질이 바뀌었다는 것도 한 맥락으로 짚힌다. 그의 퇴진은 알리바바가 전성기를 지났다는 암시로 읽히기도 한다. 하지만 중국 경제가 성장에서 안정 단계에 접어들면서 시진핑 국가주석이 인터넷 규제를 강화하는 것과 연관을 짓는 분석도 많다. 마윈 회장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하기 전에 면담하면서 미국에 100만명 이상의 고용창출을 약속하기도 했다. 이런 마윈 회장을 시진핑이 손보기는 쉽지 않았던 터였다. 시진핑이 권좌에 오른 뒤 곧이어 장쩌민 전 총서기 인맥은 ‘부패 척결’의 미명 아래 숙청되기 시작했다는 취지로 자유시보가 전했다. 2014년 9월 뉴욕증권거래소에서 상장한 알리바바에 장 전 총서기의 계열 인사들이 대거 포함되면서 마 회장도 장 전 총서기 계열로 비쳐졌다. 2015년 5월 중국 증시 폭락사태를 두고 중국 당국은 마 회장이 태자당(太子黨·혁명 원로 자제 그룹)을 도와 시세 차익을 얻었다고 암묵적으로 비판했다. 이들 태자당은 결국 속속 제거됐다. 해외 도피 중인 중국 기업가 궈원구이는 마 회장과 마화텅 텐센트 회장을 지목, “(이들은) 비명횡사 아니면 감옥에서 여생을 보낼 것”이라면서 “이들은 너무 많이 알고 있다”고 폭로했다. 이같은 정치적 암투를 의식한 듯 마윈 회장은 중국에 대한 충성 발언을 자주 했다고 전했다.신문은 그러면서 마 회장의 이번 은퇴 선언은 시기적으로 매우 적절한 선언이었다고 논평했다. 자유시보는 또 시진핑 중국 주석은 성장 둔화와 채무 압력, 자금 유출에 미중 무역 전쟁까지 겹치면서 샤오젠화 밍톈 그룹, 우샤오후이 전 안방보험그룹, 왕젠린 완다 그룹 회장과 함께 천이 전 부총리의 아들 천샤오루, 왕젠 전 하이항 그룹 회장 등을 부패 척결의 이름으로 장 전 총서기 계열 기업 인물을 대거 숙청했다고 주장했다. 시 주석은 또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인터넷 통제를 한층 강화하면서 중국 최대 IT·게임 기업인 텐센트에도 손을 대기 시작했다고 신문은 덧붙였다. 알리바바를비롯한 중국의 기업들이 정부에 협조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마 회장은 중국을 대표하는 IT 기업인 BAT(바이두·알리바바·텐센트) 중 하나인 알리바바 설립을 주도한 인물로, 약 30%의 지분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7년 포브스 집계에 따르면 그의 재산은 386억달러(약 43조원)로 중국 내 3위의 거부로 알려져 있다. 알리바바가 지난달 23이 공개한 1분기 매출은 809억 2000만위안(약 13조 2790억원)이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고종 빼돌려 을사늑약 체결 막아라” 8

    “고종 빼돌려 을사늑약 체결 막아라” 8

    서울신문은 일제 침략 당시 독립운동가의 활약을 소재로 한 해외소설 두 편을 발굴했습니다. 글쓴이는 미국의 시나리오 작가 로버트 웰스 리치(1879~1942)이고, 두 소설의 주인공은 모두 대한매일신보와 코리아데일리뉴스(KDN)를 창간해 우리 민족 항일의식을 고취한 어니스트 토머스 베델(1872~1909·한국명 배설)입니다. 100여년 전 발간된 이 소설에는 베델뿐 아니라 ‘고종의 밀사’로 잘 알려진 호머 허버트(1863~1949), 노골적 친일 행보로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사살된 더럼 화이트 스티븐슨(1851-1908), 조선통감부 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1841~1909), 을사늑약 직후 자결한 충신 민영환(1861~1905) 등 역사적 인물이 모두 등장합니다. 최근에야 국내외에 알려진 고종의 연해주 망명 시도 등 극비 내용도 담겨 있어 학계에 관심을 모읍니다. 서울신문은 이 소설 가운데 하나인 ‘황제 납치 프로젝트’(1912년 12월 출간, 원제 : The cat and the king, 부제 : Billy and Bethell)를 번역해 연재 형태로 독자들에게 소개합니다. <8회>나는 그날 밤 진정한 조선의 애국자(민영환)와 불도 켜지 않은 방에서 가졌던 회의를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베델과 나는 한밤중에 도둑처럼 그 집에 숨어 들어갔다. 그의 방에 놓여 있던 책상 한 가운데 재떨이가 놓여 있었다. 호박 빛깔 돌로 만든 인장도 꽤 인상적이었다. 희미한 호롱불 하나만 사이에 둔 채 우리는 마주 앉았다. 밖에 있던 일본 스파이들이 우리 얘기를 엿들을까봐 최대한 숨죽여 밀담을 나눴다. 베델이 민영환에게 말했다. “연로하신 황제를 적군의 모든 위협과 횡포에서 구해낼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상하이에 있는 러시아 공사관으로 도피시킨 뒤 ‘군주가 일제의 강압을 견디다 못해 외국으로 망명했다’고 대대적으로 알리는 겁니다. 그러면 곧바로 왕은 전세계의 주목을 받을 수 있고 일본 또한 조선을 집어삼키려던 음모가 탄로나 다른 나라들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되겠죠.” 조선의 민족 투사가 된 이 영국인 신문 편집장은 마치 십자군이 된 것처럼 강렬한 열정으로 이 계획을 설명했다. 민영환은 그의 말을 끝까지 그리고 사려깊게 들었다. 그가 길다란 곰방대에 담배를 채워 넣으려고 팔을 뻗었다. 그의 손이 상당히 떨리고 있었다. “놀랍고 훌륭한 계획이긴 하오나...” 그가 낮은 소리로 답했다. ”우리가 황제 폐하를 설득할 수만 있다면 참 좋은 계획이 아닐 수 없겠소만...다만 조선 개국 이래 군주가 국경을 너머 도망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소. 특히 황제가 무당과 점쟁이들과 모든 일을 상의한다는 것은 다들 알고 계시지 않소...이들은 왕이 외국으로 도피하면 신성한 기운이 사라질 것이라며 반대할 것이 분명하오.”그러자 베델이 나섰다. ”그래서 그 사람들 모르게 이 일을 해야 합니다. 아시다시피 현재 궁안에 있는 거의 모든 이들이 일본에 매수돼 있어요. 지금 우리가 한 말이 단 한 마디라도 새 나가면 곧바로 하세가와(조선주차군사령관 하세가와 요시미치)가 1시간 안에 경운궁을 일본군으로 에워쌀 것입니다. 그래서 이 일은 반드시 대감 혼자만 알고 계셔야만 해요. 대감께서는 폐하에게 이 말을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반드시 찾아 주십시오. 미국에서 소녀가 이곳까지 찾아온 진짜 이유를 꼭 전해달라는 것이죠. 초상화를 그릴 때만큼은 왕과 그녀 단 둘만 있게 됩니다. 왕의 통역사이신 대감께서는 그 자리에 함께 하실 수 있죠. 그때 대감께서 폐하를 꼭 설득하셔야 합니다. 폐하가 초상화의 모델로 앉아있는 그 자리에서 구체적인 망명 논의가 모두 마무리돼야 하죠.” “알겠소. 그리 하도록 하죠.” 민영환이 짧고 단호하게 답했다. 우리는 다시 그의 집 담을 넘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감리교 선교회 건물(현 광화문 동화면세점 감리교 본부 빌딩)을 지나 애스터하우스 호텔로 향했다. 나는 걸어가면서 곰곰히 생각했다. 러시아가 조선 황제를 납치하려는 것은 일본의 조선 지배를 최대한 늦춰 한반도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키워 보려는 의도일 것이다. 베델 역시 이를 모를 리 없겠지만 당장 코 앞에 닥친 일본의 음모부터 물리치고자 러시아의 은밀한 제안을 받아들인 것일테고...나는 이런 저런 생각으로 좀처럼 잠을 이룰 수 없었다.다음날이었다. 정오가 되기 전에 조선 관리 한 명이 마차를 끌고 호텔로 찾아왔다. 황제가 소녀에게 보낸 친서를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거기에는 “당신처럼 뛰어난 미국 화가가 내 얼굴을 그리고 싶어해 매우 기쁘게 생각하오. 가능한 한 빨리 궁으로 들어와 주기를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겠소”라고 쓰여 있었다. 왕의 마음이 어지간히 급했던 모양이다. 소녀는 왕이 보내준 마차를 타고 경운궁으로 떠났다. 궁궐에서 나온 짐꾼들이 그녀의 이젤과 프레임, 그림물감 상자를 등에 지고 뒤따라갔다. 나와 베델은 호텔 바에 가만히 앉아 이 상황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태풍이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어. 천둥 소리도 점점 커지고...일본이 눈치를 채고 작업에 나선 것 같은데.” 베델이 심각한 목소리로 나즈막히 말했다. “오늘 아침 궁 내시에게 직접 전달받은 첩보인데...어젯밤 황제의 무당 2명이 급사했다고 해. 왕에게 저녁 음식으로 제공하려던 사슴고기에 독이 들었는지 살펴보려고 먼저 먹어 봤다던데...” 9회로 이어집니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트럼프, 마두로 정권 전복 모의했다

    트럼프, 마두로 정권 전복 모의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가 군부 쿠데타를 사주해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축출을 저울질했던 사실이 밝혀졌다. 미국은 그러나 실제 행동에 나서지는 않았다. 8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전·현직 미 정부 관리 11명이 지난해 가을부터 반군 지도부와 3차례 만나 쿠데타 가능성을 타진했다. 익명의 전 베네수엘라군 사령관은 “베네수엘라군 내부에 마두로 대통령에 대항하는 파벌이 최소 3개”라고 CNN에 말했다. NYT에 따르면 미 정부는 반체제 파벌 지도자들의 정치적 정당성, 도덕적 자질 등에 확신을 갖지 못해 ‘마두로 전복 프로젝트’를 중단한 것으로 보인다. 미 정부와 접촉한 반체제 파벌 수뇌부에는 부패 혐의로 미 정부의 제재 명단에 올랐거나, 민간인 학살, 정적 탄압, 마약 밀매 등 부적격자 다수가 포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CNN은 당시 회의에 참석했던 미국 관리를 인용해 “베네수엘라 반체제 인사들은 어떤 구체적 계획도 없이 미국이 방향을 제시해주기만 바랐다”고 전했다. 백악관은 이날 성명을 내고 “미국은 베네수엘라가 평화적인 방식으로 민주주의로 복귀하는 것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호르헤 아레아사 베네수엘라 외무장관은 “미국 정부가 베네수엘라를 겨냥한 군사 음모에 개입하고, 계획 수립 및 지원에 관여한 것을 전 세계에 고발한다”고 맹비난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베네수엘라에 대한 많은 선택지를 갖고 있다”며 “군사적 선택도 배제하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NYT는 “미국은 라틴아메리카 내정에 개입하는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면서도 “베네수엘라 쿠데타 논의는 미국에게 큰 도박”이라고 평가했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 ‘숨바꼭질’ 송창의, 결혼식날 신부 아닌 이유리와 키스 “충격 엔딩”

    ‘숨바꼭질’ 송창의, 결혼식날 신부 아닌 이유리와 키스 “충격 엔딩”

    ‘숨바꼭질’이 이유리와 송창의의 파격 키스신 엔딩으로 안방극장을 제대로 사로잡았다. 지난 25일 첫 방송을 시작한 이후, 배우들의 완벽한 캐릭터 싱크로율과 한 시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최강의 몰입도, 그리고 상상을 뛰어넘는 폭풍 전개로 안방극장의 시선을 단 번에 사로잡은 MBC 주말특별기획 ‘숨바꼭질’(극본 설경은, 연출 신용휘, 제작 네오엔터테인먼트)이 방송 2주 만에 역대급 레전드 드라마의 탄생을 예고했다. 본격적인 스토리가 진행되면서 캐릭터와 더욱 완벽하게 동화된 배우들의 존재감과 몰입감을 높이는 파격 전개가 시청자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내고 있는 것. 그 가운데 지난 8일(토)에 방송된 ‘숨바꼭질’은 드라마 역사상 길이 남을 역대급 파격 키스신 엔딩이 안방극장을 초토화시켰다. 결혼식 당일, 송창의가 신부인 엄현경이 아닌 이유리와 거침없는 키스신을 선보이며 시청자들을 충격에 빠뜨렸기 때문. 회사를 지키기 위해 태산그룹의 후계자 문재상(김영민)과 어쩔 수 없이 정략결혼을 해야만 했던 민채린(이유리)에게는 고난과 시련의 결혼생활이 시작됐다. 시아버지인 태산그룹의 회장 문태산은 계속해서 메이크퍼시픽을 인수하기 위해 은밀하게 음모를 세워 압박했고, 요리클래스에서는 자신을 따돌리며 막말을 퍼붓는 다른 재벌 며느리들과 격렬한 육탄전을 벌였다. 게다가 나해금(정혜선)은 진짜 손녀딸 수아가 돌아오기만을 바라며 채린의 모든 물건을 태운 것도 모자라 문전박대까지 하기도. 이 모든 것을 곁에서 지켜보고 그녀가 대용품에 불과하다는 것까지 알게 된 차은혁(송창의)은 채린이 위험에 빠진 순간마다 기지를 발휘해 구해냈고, 서로의 약점을 쥐고 있던 두 사람의 관계에서는 묘한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한편 하연주(엄현경)는 우연히 가게 된 해란(조미령)의 집에서 왠지 모를 익숙함을 느끼고, 해란 역시 연주에게 왠지 모를 친밀한 감정을 갖게 되면서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한 호기심은 최고조에 달했다. 여기에 은혁과의 결혼을 손수 준비하면서 설렘에 들떠있던 연주는 결혼식 당일,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신부가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지만 누군가의 손을 잡아 끌고 비상구로 향하던 은혁을 발견하고 쫓아간 그곳에서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하고 만다. 바로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한 남자 은혁이 누군가에게 키스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 것. 이처럼 채린과 은혁의 예상치 못한 파격 키스신과 이를 발견한 연주의 충격과 절망에 가득 찬 표정으로 끝난 ‘숨바꼭질’은 역대급 엔딩 장면을 완성해내며 다음 주 방송에 대한 기대감과 궁금증을 수직 상승시켰다. 무엇보다 한 시라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스피디한 전개와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는 예측불가 스토리는 안방극장을 점령하기에 충분했다. 방송 시작 단 2주 만에 2번의 결혼식 장면에 이어 엇갈린 러브라인의 시작과 함께 등장한 박력 넘치는 키스신은 역대급 레전드 드라마의 탄생을 알리며 많은 시청자들을 ‘숨바꼭질’의 매력에 단 숨에 빠지게 만들었다. 때문에 이제 막 출발점을 지난 ‘숨바꼭질’이 앞으로는 또 어떤 스토리로 시청자들을 깜짝 놀라게 할지, 이유리와 송창의, 엄현경, 그리고 김영민까지 이들에게는 또 어떤 앞날이 펼쳐지게 될지 벌써부터 그 결말에 귀추가 주목된다. 방송 단 2주 만에 안방극장에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MBC 주말특별기획 ‘숨바꼭질’은 지난 방송에서 3.9%, 7.0%, 6.8%, 8.7%로 첫 방송보다 상승한 시청률을 기록하며 시청률 퀸 이유리의 흥행 마법에 시동을 걸었다. 매주 토요일 밤 8시 45분부터 4회가 연속 방송된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고종 빼돌려 을사늑약 체결 막아라” 7

    “고종 빼돌려 을사늑약 체결 막아라” 7

    서울신문은 일제 침략 당시 독립운동가의 활약을 소재로 한 해외소설 두 편을 발굴했습니다. 글쓴이는 미국의 시나리오 작가 로버트 웰스 리치(1879~1942)이고, 두 소설의 주인공은 모두 대한매일신보와 코리아데일리뉴스(KDN)를 창간해 우리 민족 항일의식을 고취한 어니스트 토머스 베델(1872~1909·한국명 배설)입니다. 100여년 전 발간된 이 소설에는 베델뿐 아니라 ‘고종의 밀사’로 잘 알려진 호머 허버트(1863~1949), 노골적 친일 행보로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사살된 더럼 화이트 스티븐슨(1851-1908), 조선통감부 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1841~1909), 을사늑약 직후 자결한 충신 민영환(1861~1905) 등 역사적 인물이 모두 등장합니다. 최근에야 국내외에 알려진 고종의 연해주 망명 시도 등 극비 내용도 담겨 있어 학계에 관심을 모읍니다. 서울신문은 이 소설 가운데 하나인 ‘황제납치 프로젝트’(1912년 12월 출간, 원제 : The cat and the king, 부제 : Billy and Bethell)를 번역해 연재 형태로 독자들에게 소개합니다. <7회>사실 황제에게 있어 그녀의 요청은 매우 특별한 일이었다. 자신의 모습을 서양식 캔버스에 담을 경우 아프거나 죽는 것 아닌가 걱정이 컸다. 이런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그녀에게 초상화를 그릴 기회를 주려는 것은 그만큼 소녀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왕은 점쟁이에게 이 일을 어떻게 해야할 지 조언도 구했다. 결국 그녀가 중국 황후(서태후)의 초상화를 그렸음에도 별다른 변고가 없었다는 점을 감안해 이 아름다운 미국 여성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면서도 황제는 소녀에게 “내일 결정 내용을 알려주겠다”고 전했다. 그는 즉석에서 답을 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소녀를 한 번이라도 더 보고 싶어서 어린 아이처럼 뭔가 그럴듯한 구실을 찾은 것이다. 나는 황제가 이 곰팡이내 가득한 음모가 판치는 경운궁(덕수궁)에서 소녀가 가져온 햇살을 조금이라도 오래 간직하려는 것에 대해 비난하고 싶지는 않았다. 소녀는 미인계를 쓰는 첩보원답게 자신에게 빠져든 남성을 어떻게 다루는 지 알고 있었다. 그녀는 “제가 어찌 감히 천손의 자손이신 황제폐하에게 고민거리를 안겨드릴 수 있겠습니까. 아직 초상화를 그리실 확신이 없으시다면 그만 떠나고자 합니다”라며 우아하게 서운함을 밝혔다. 왕이 깜짝 놀랐는지 신하들에게 “저 미국인 화가에게 내 사슴 공원과 여름 휴양지를 보여주라”고 지시했다. 그녀의 상한 마음을 달래주려는 의도였다. 그러고는 그녀에게 다음날 궁궐에 들어올 수 있도록 채비를 갖추라고 명했다. 소녀는 조선 황제의 마음도 사로잡았다. 우리는 궁에서 나와 뒤쪽에 잘 가꿔진 숲으로 향했다. 뭔가 의욕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는 신하들은 우리에게 양쪽으로 멋드러지게 경사진 박공 지붕이나 해태의 기이한 아름다움 등에 대해 설명해줄 마음이 없었다. 그저 왕이 시켜서 따라 나왔을 뿐...그러자 하기와라(훗날 2대 조선총독이 되는 하기와라 슈이치)가 그 틈을 비집고 들어왔다. 이 작고 왜소한 일본인은 곧바로 소녀 옆으로 다가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나란히 걸어갔다. 나는 신하들 뒤에서 멀찌감치 거리를 유지하며 동태를 살폈다. 하기와라는 중간음을 생략한 채 세련되지 못한 영어로 그녀와 대화를 나눴다. 소녀의 거침없는 웃음 소리가 그의 조악한 영어 발음을 덮어버려 그나마 좀 나았다. 하기와라는 이 소녀에게 완전히 빠져 있었다. 숲 속에서 사슴을 본 뒤 소녀가 마차에 타고 호텔로 돌아가려 할 때였다. 하기와라가 붉어진 얼굴로 “다음주에 일본 공사관에서 열리는 정원 파티에 꼭 와달라”고 청했다. 일본 왕의 생일을 기념하는 행사가 있단다. 일왕 생일은 핑계일 뿐 실은 소녀가 보고 싶어서겠지...”하기와라, 요 작고 비열한 쥐새끼 같은 놈“ 그녀가 남대문을 지나 애스터하우스 호텔(현 서대문역 농협중앙회 터)으로 나오며 비웃듯 내뱉었다. ”맞아. 이 교활한 쥐 한마리가 이 나라 전체를 갉아먹고 있어” 나도 맞장구를 쳤다. “그놈은 우리에게 스파이를 보내고도 전혀 용서를 구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나중에 분명 내 앞에서 머리를 숙이고 무릎을 꿇게 될 겁니다. 내가 그를 가만 두지 않을 테니까...” 호텔에 도착하자 미국 공사 부인이 그녀와 점심식사를 하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부인은 그녀를 미국 대사관저로 데려갔다. 시간이 남자 나는 광화문 가구거리(지금의 태평로) 뒤편에 있는 베델의 낡고 작은 인쇄소(대한매일신보사)로 갔다. 그녀가 없는 시간동안 그와 머리를 맞대고 고종 망명 계획을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베델은 외부에서 경운궁에 몰래 들어갈 수 있는 비밀 통로를 알고 있었다. 조선인과 은밀하게 접촉할 수 있는 인적 네트워크도 갖고 있었다. 베델은 곧바로 왕을 호위하는 시종무관장인 민영환에게 전갈을 보냈다. 모든 위험을 무릅쓰더라도 오늘 밤 그의 집에서 꼭 만나 나눌 얘기가 있다고.(편집자주:덕수궁과 러시아 공사관까지 이어지는 비밀통로가 2003년에 발견됐습니다. 고종이 유사시 일본군을 피해 궁 바깥으로 나가기 위한 용도로 만들어졌습니다. 현재 ‘고종의 길’이라는 이름으로 조만간 일반에 개방될 예정입니다. 이 소설에서 언급한 비밀통로는 이 길을 뜻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작가가 최근에야 알려진 이 길의 실체를 알고서 쓴 것인지 매우 흥미롭습니다.) 어둠이 깔리자 우리는 각자 다른 길로 민영환의 집(현 견지동 조계사 터)에 찾아갔다. 그가 충신이라는 것은 조선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었다. 그가 어떻게든 일본의 음모를 저지하려 한다는 것 역시 새로울 게 없었다. 이 때문에 하기와라는 늘 그의 집 주변에 첩자를 심어두고 24시간 감시하게 했다. 결국 우리는 낮지 않은 그의 집 뒷담을 몰래 타고 넘어 가야만 했다. 8회로 이어집니다. 번역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낮에는 복서 밤에는 깡패, 전 WBO 미들급 챔피언에 10년형 선고

    낮에는 복서 밤에는 깡패, 전 WBO 미들급 챔피언에 10년형 선고

    조지아 출신으로 지난해 세계복싱기구(WBO) 미들급 잠정 챔피언으로 타이틀 매치를 준비하던 중 범죄조직에 연루된 혐의로 30여명의 다른 조직원과 함께 체포됐던 아브탄딜 쿠르트시제(38)가 끝내 징역 10년형을 선고받았다. 미국 뉴욕 연방법원은 지난해 4월 토미 랭퍼드(영국)을 꺾은 두 달 뒤 빌리 조 샌더스(영국)와 타이틀 매치 직전에 체포된 쿠르트시제가 옛소련 마피아를 계승한 범죄기업의 “주요 깡패”로 활동한 점이 인정된다며 최대 10년 징역형과 함께 만기 출소 뒤에도 2년 동안 보호관찰을 받아야 한다고 판결했다. 검찰은 그가 갈취와 전자사기 음모 등에 연루됐으며 때로는 이 범죄기업을 위해 완력을 휘두르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슐라야 엔터프라이즈로 알려진 이 범죄기업은 미국 전역에서 강탈, 전자시기, 불법 도박, 브루클린 사창가 운영 등을 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 법무부는 이들의 주 활동 무대가 뉴욕이긴 했지만 다른 대도시는 물론 해외에도 지부가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법무부 관리들은 조직원 다수가 옛소련 태생이며 쿠르트시제가 태어난 조지아와도 오랜 인연이 있다고 말했다. 검찰은 쿠르트시제가 습격을 수행하는 장면이 두 차례나 동영상으로 확보돼 있으며 이들 그룹의 멤버와 지도부에 “헤비급 깡패”로 불렸다고 전했다. 여기에다 카지노 슬롯머신의 알고리즘을 조작하는 복잡한 사기 음모에 가담해 2014년 라스베이거스에서 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를 납치하는 데 연루됐다는 내용도 공소장에 포함됐다. 전 프로모터였던 루 디벨라는 그가 체포된 뒤 ESPN과의 인터뷰에서 “그를 믿었던 많은 사람들을 다운시켰지만 무엇보다 스스로를 그렇게 만들었다. 낭비였을 따름이다. 어두움의 세계를 택한 것은 오롯이 그의 몫”이라고 털어놓았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조선을 사랑한 英언론인 베델의 히스토리] 日, ‘항일 기사’ 베델 고소… 英 두 번째 재판 후 中 감옥 수감

    [조선을 사랑한 英언론인 베델의 히스토리] 日, ‘항일 기사’ 베델 고소… 英 두 번째 재판 후 中 감옥 수감

    어니스트 토머스 베델(1872~1909·한국명 배설)이 만든 대한매일신보와 코리아데일리뉴스(KDN)는 조선에서 신문 이상의 위상을 누렸다. 국채보상운동(1907~1908)을 주도했고 항일단체 신민회(1907~1911)의 산파도 맡는 등 독립운동의 ‘인큐베이터’ 역할을 했다. 국제 여론에 민감했던 일본은 자신들이 벌이던 만행이 신보와 KDN을 통해 전 세계에 타전되는 사실이 매우 불편했다. 결국 베델을 조선에서 내쫓기로 하고 본격적인 공세에 나섰다.●베델, 英·日 모두에 ‘눈엣가시’ 베델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미국 작가 로버트 웰스 리치(1879~1942)의 소설 ‘황제 납치 프로젝트’(1912)에는 1905년 을사늑약 체결을 전후해 일본이 그를 얼마나 미워했는지 잘 묘사돼 있다. 일본이 조선에 황무지 개간권을 요구(1904년)하고 화폐개혁을 강제(1905년)할 때 베델은 신보와 KDN을 통해 음모를 폭로한다. 이때마다 조선주차군사령관 하세가와 요시미치(1850~1924)나 탁지부(재정을 담당하는 중앙관청) 고문 메가타 다네타로(1853~1926)는 베델의 기사에 화를 내고 괴로워한다. 아래는 베델이 실제로 1907년 9~10월 신보와 KDN에 게재한 항일 관련 기사의 일부다. “서울 용산에서 한 조선인이 어린아이를 업은 부인을 데리고 일본군 병영을 지나갔다. 이때 한 일본 군인이 장난삼아 이들에게 총을 쐈다. 탄환이 여인의 옆구리를 관통해 아이 엄마가 즉사했다. 아이의 한쪽 손도 산산조각이 났다. 아이 아빠가 일본군군 병영에 뛰어 들어가 장교에게 항의했지만 되레 길거리로 쫒겨났다.”(KDN 9월 3일자) “수원에서 10여㎞ 떨어진 곳에서 일본군과 조선 의병 간 전투가 벌어졌다. 30명의 의병이 일본 군대에 포위돼 대부분 잔인하게 사살됐다. 일본군 장교는 분이 덜 풀린 듯 생포한 이들을 모두 끌어내 목을 베었다.”(KDN 9월 26일자) “한국 국민들이여! 독립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지 않은가? 미국과 그리스, 이탈리아 독립을 위한 투쟁의 역사를 한 번 살펴보라. 지금 이들 세대가 누리는 행복은 바로 조상들의 피로 얻은 것이다.”(신보 10월 1일자)일본은 베델이 신보와 KDN을 창간할 때부터 진의를 의심했다. 그가 반일 논조를 고수하는 이유가 신문 창간 자금이 고종에게서 나왔기 때문일 것으로 봤다. 쉽게 말해서 그가 조선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고종과 러시아가 재정지원에 나서기 좋을 만한 신문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지금도 일본 학계에는 베델이 러시아 스파이였다고 의심하는 시각이 있다. 하지만 베델 연구 1인자인 정진석 한국외국어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명예교수는 “일본은 베델과 러시아 간 연관성을 찾고자 전방위적으로 나섰지만 어떤 증거도 잡아내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日, 본격적인 베델 추방 공작 추진 1906년 12월 영국 ‘트리뷴’지에 을사늑약이 무효임을 알리는 고종의 칙서가 게재됐다. 영국기자 더글러스 스토리가 목숨을 걸고 문서를 공개한 것이다. 그러자 베델도 이듬해 1월 신보와 KDN에 이 기사를 전재해 을사늑약의 부당성을 알렸다. “조선이 일본에 자발적으로 외교권을 넘겼다”고 주장해 온 통감부 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1841~1909)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 베델은 일본뿐 아니라 고향인 영국에서도 ‘골칫거리’ 취급을 받았다. 1902년에 맺은 영일동맹(영국과 일본이 동아시아 이권을 함께 나눠 갖고자 체결한 조약)으로 두 나라가 밀월관계를 유지하던 때여서 그의 행보는 영국 입장에서도 ‘눈엣가시’였다. 일본은 이런 상황을 잘 활용하면 그를 조선에서 추방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공작을 시작했다.일본은 1898년 태국에서 ‘태국자유신문’이라는 영자지를 발행하다가 추방된 J J 릴리라는 영국인 사례를 베델에게 적용할 수 있을지 살폈다. 릴리가 영국 정부의 동의하에 추방됐기 때문에 베델도 같은 절차를 거치게 될 것으로 본 것이다. 하지만 릴리 추방 당시 영국 하원이 이를 정쟁화했던 경험이 있어 영국 정부로서는 선뜻 베델의 추방을 묵인하기 어려웠다. 여기에 영국 외무부는 베델을 굳이 추방까지 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신보와 KDN이 재정난으로 휴간과 복간을 반복해 가만 내버려두면 곧 사라질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결국 일본은 영국의 불확실한 입장 등을 감안해 베델을 직접 추방하려던 계획을 접고 영국 사법당국에 그를 고소해 처벌받게 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영국 외무부는 “가능한 한 일본의 희망을 충족시켜 주겠지만 영국인이 조선에서 누리는 치외법권을 포기하지는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한 뒤 재판에 나섰다.●첫 번째 재판 ‘치안 방해’ 혐의 6개월 근신형 베델에 대한 첫 번째 재판은 1907년 10월 14일 서울 정동 주한 영국총영사관에 설치된 법정에서 열렸다. 한국인과 영국인, 일본인이 참석한 동북아 최초의 국제재판이었다. 일본은 “베델이 신보를 통해 조선인들의 폭동을 선동한다”면서 “신보의 논설이 그대로 의병대의 창의문으로 쓰인다”고 주장했다. 주한 영국총영사 헨리 코번(1871~1938)이 판사 자격으로 참석했다. 베델에게 적용된 혐의는 ‘치안 방해’였다. 코번은 베델의 행동에 큰 문제가 없다고 봤지만 본국의 제국주의 논리를 거스를 수는 없었다. 재판은 오전 11시에 시작돼 오후 4시 30분에 마무리됐다. 다음날 아침 코번은 베델에게 6개월 근신형을 명하고 보증금 300파운드를 납부하게 했다. 통감부 일간지 서울프레스는 이에 대한 보도를 최소화하고 어떤 논평도 내놓지 않았다. 영국 정부가 베델에게 지나치게 관대한 판결을 내려 실망했기 때문이었다. 첫 재판 판결 뒤 베델은 항일 논조를 더욱 강경하게 이어 갔다. 1908년 3월 더럼 화이트 스티븐스(1851~1908) 암살 사건 등을 대서특필한 것이 대표적이다. 일제는 영국에 “베델을 추방해 달라”고 대놓고 요구했다. 영국은 일본과의 관계 악화를 우려해 그를 다시 한 번 재판정에 세웠다. 이번에는 기존 ‘치안 방해’ 혐의에다가 ‘공금 횡령’을 추가했다. 그가 국채보상운동 과정에서 모은 의연금을 마음대로 썼다는 죄목이었다.●‘공금횡령’ 혐의 추가 두 번째 재판선 실형 두 번째 재판은 1908년 6월 15일부터 3일간 서울 주재 영국총영사관에서 열렸다. 이 재판은 미국 AP통신이 직접 참관하며 취재할 정도로 국제적 관심이 컸다. 이번에도 영국총영사 코번이 판사로 나섰다. 재판 마지막 날인 18일 코번은 베델에게 3주간 금고형(6개월 근신 포함)을 판결했다. 첫 실형이었다. 당시 조선에는 영국인을 구금할 시설이 없었다. 결국 영국은 베델을 중국 상하이에 있던 영사관에 마련된 감옥으로 보내기로 했다. 이틀 뒤인 20일 베델은 서울역에서 기차로 인천에 이송됐다. 판결 이후 장기간 서울에 있으면 군중이 몰려와 반대 시위에 나설 것을 우려해서였다. 당시 인천과 상하이 간 정기배편이 없었기 때문에 영국 군함 ‘클리오’호가 단 한 사람을 데리러 인천에 오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첫 번째 재판 때만 해도 별 반응이 없던 서울프레스는 이번에는 부록까지 발행하며 판결 내용을 상세히 보도했다. 상징적이나마 베델이 실형을 선고받았다는 사실에 무척 신이 났던 것 같다. 서울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상하이 오경진 기자 oh3@seoul.co.kr
  • 트위터 “대통령도 트윗 오남용시 퇴출”…트럼프 ‘막말 트윗’에 경고

    트위터 “대통령도 트윗 오남용시 퇴출”…트럼프 ‘막말 트윗’에 경고

    소셜네트워크(SNS) 기업 트위터는 4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트윗이 이용 약관을 위배해 오·남용 범주를 넘으면 플랫폼에서 퇴출될 수 있다고 밝혔다. ‘트위터 광’으로 알려진 트럼프 대통령의 과도한 ‘막말’ 트윗이 미국 사회의 분열을 부추기고 트위터의 이미지를 떨어뜨린다는 지적과 함께 트워터가 정치적으로 치우친 것 아니냐는 일각의 비판에 대응한 것이다. 잭 도시 트위터 최고경영자(CEO)와 바이자야 가디 최고 법률정책책임자는 5일로 예정된 연방 의회 청문회에 앞서 가진 인터뷰에서 “트위터의 독설적인 트윗 대응 정책은 뉴스 가치가 있는 세계 지도자들에게 일정한 여지를 주고 있긴 하지만 대통령이나 누구도 포괄적인 예외가 될 수는 없다”면서 이같이 말했다고 정치전문지 폴리티코가 전했다. 폴리티코는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만일 북한 지도자들이 그들의 수사를 계속한다면 그들은 그리 오래 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등 자신의 적들에게 폭력적 발언을 쏟아냈다”면서 “비판론자들은 이 트윗들이 트위터의 서비스 이용 약관을 위배한 것으로 징벌적 조처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또 자신을 인종차별주의자라고 주장한 흑인 출신 전직 백악관 직원 오마로자 매니골트에 대해서는 ‘그녀는 하류 인생’이라며 ‘미친’(deranged), ‘개’(dog) 등의 표현을 쓰기도 했다. 도시 CEO는 트위터의 콘텐츠 관행과 관련된 하원 에너지상무위원회 청문회에서 트럼프의 트위터 계정과 관련된 문항을 전화로 통보받았다고 밝혔지만, 트럼프의 트위터 계정을 삭제하는 것에 무게를 두고 있느냐는 질문에는 구체적인 답변을 하지 않았다. 한편 도시 CEO는 의회에 보낸 서면 답변서에서 ‘소셜미디어들이 보수의 목소리를 압살하려고 한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과 관련해, “트위터는 어떤 결정을 할 때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밝힌다”고 강조했다. 이는 트위터가 미국의 진보, 보수 양쪽 진영으로부터 강한 압박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과 진보진영은 트위터가 트럼프의 공격적이고 폭력적인 트윗을 허용하고 음모이론가인 알렉스 존스와 백인 우월주의자 리처드 스펜서의 사이트를 폐쇄하지 않고 중단시킨 것을 문제삼고 있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과 보수파는 “우파의 시각을 묻어버리려는 차별적이고 불법적인 트위터의 관행을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모차르트와 살리에리 한 무대서 감상해볼까

    모차르트와 살리에리 한 무대서 감상해볼까

    ‘음악사의 라이벌’이자 ‘천재와 노력파’ 등으로 비교되는 모차르트와 살리에리의 오페라가 한 무대에 오른다. 서울시오페라단은 9월 12~16일 세종문화회관에서 모차르트의 ‘극장지배인’과 살리에리의 ‘음악이 먼저, 말은 그다음’을 함께 공연한다. 이번 공연은 18세기 빈 황제 요제프 2세가 실제 개최한 오페라 경연을 토대로 모차르트와 살리에리가 자신들의 작품을 경연에 선보인다는 설정으로 마련됐다. 예산 부족이나 후원자의 무리한 요구 등으로 졸속 작품이 만들어지는 당대 오폐라계에 대한 풍자를 담고 있다고 서울시오페라단은 설명했다. 각각 1시간 분량으로, 두 오페라의 경연 당사자가 직접 자신의 극 안에서 경연작품을 소개하는 장면도 연출된다. 1막에서 모차르트와 극장지배인은 후원자의 소개로 가수 오디션을 갖는데, 실력 없는 소프라노들이 나와 신경전을 벌이는 에피소드가 경쾌하게 전개된다. 2막에서는 살리에리가 나흘 만에 새로운 오페라를 작곡해야 하는 상황에서 대본작가와 ‘음악과 가사 가운데 무엇이 우선하느냐’를 놓고 다투는 이야기가 선보인다. 이번 공연은 두 작곡가를 동등한 위치에 놓고 무대에 올린다는 점이 이채롭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살리에리가 ‘천재’ 모차르트를 시기한 것으로 묘사되고 모차르트 죽음의 배후에 살리에리가 있다는 음모론도 있지만, 이는 낭설이란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이번 무대는 2010년 대한민국 오페라대상 연출상을 수상한 장영아와 이지혜 극작가가 합류해 여성 연출가와 극작가의 세밀한 감성 표현이 기대된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과거사 피해 국가배상 길 열렸다] 양승태 대법 때 국가배상 제한 ‘바로잡기’… 과거청산 다시 탄력

    [과거사 피해 국가배상 길 열렸다] 양승태 대법 때 국가배상 제한 ‘바로잡기’… 과거청산 다시 탄력

    냉전·유신·독재의 암흑시대에 양산된 한국의 국가범죄 피해자들은 긴 세월 동안 자신의 피해를 하소연도 하지 못했다. 피해 당사자는 고문 수사 끝에 사법부가 행한 정식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받고 억울한 옥살이를 했고, 감옥 밖 가족들도 ‘용공’이란 손가락질을 받으며 사회적으로 매장됐다. 국가범죄에 대한 진상규명과 국가기관의 사과, 피해자에 대한 배상과 같은 일련의 조치들은 민주화 이후 정권교체가 한 차례 이뤄진 뒤 2000년대 들어서야 착수됐다. 형사법정에서 재심 재판이 열려 국가범죄 피해자에 대한 무죄 선고가 이뤄졌고, 이들의 피해에 대한 국가배상 조치가 취해졌다.이런 흐름이 2013년 ‘양승태 대법원’에서 깨져 버렸다. 당시 대법원은 공소시효, 기존에 받은 민주화 보상 등 갖가지 이유를 만들어 들이대며 국가배상을 청구한 피해 국민들에게 패소 판결을 내렸다. 이후 사법부는 ‘재심 뒤 6개월 내 청구, 명백한 과거사위 진상보고서’ 등이 갖춰진 건에 대해서만 국가배상 판결을 소극적으로 내렸다. 30일 헌법재판소가 당시 대법원 판결에서 적용한 법리에 위헌 요소가 있다는 결정을 내림에 따라 한국의 과거청산은 재가동될 계기를 찾게 됐다. 국가범죄 피해자에 대한 첫 판결은 2007년 8월 21일에 나왔다. 인민혁명당(인혁당) 사건 유가족이 국가를 상대로 청구한 손해배상 청구사건 1심을 담당한 서울중앙지법은 인혁당 사건 사형수 8명의 유가족 46명에게 “국가는 245억원과 이자 등 637억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내란음모 유죄 선고 확정 이튿날 사형을 집행해 ‘사법살인’으로 명명한 인혁당 사건이 있던 1975년부터 연 5% 이자를 적용해 배상액을 정했다. 이때 법원은 유가족들이 국가에 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시효를 ‘재심 무죄 확정 뒤 3년’으로 정했다. 이 기준에 따라 이후 재심 무죄 판결을 받은 많은 과거사 연루 피해자들이 무죄 확정 판결 3년 이내에 국가배상을 청구했다. 흐름은 2013년 12월 12일에 뒤집혔다. 대법원 1부(주심 박병대 대법관)가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사건의 손해배상 제기 시효를 ‘형사소송 보상 결정일로부터 6개월’ 이내로 바꿨다. 형사소송 보상 결정일은 재심 확정일과 같은 말이다. 재심 무죄를 받기까지 법정 싸움에 지쳐, 일단 형사재판이 끝난 뒤 느긋하게 국가배상 민사재판을 준비하던 피해자들에게 날벼락이 떨어졌다. 15년 동안 억울하게 수감 생활을 했던 정원섭 목사는 6개월 시효에서 열흘이 지났다는 이유로 소송 기각 판결을 받았다.6개월 내로 하더라도 민사재판 소멸시효 내 재판을 청구했던 인혁당 유가족들 역시 곤란에 처해지긴 마찬가지였다. 2011년 1월 대법원은 ‘이자가 너무 많이 계산됐다’며 이자 지급 기준일을 2심 변론종결일로 바꿨고, 그 결과 반 토막이 난 국가배상금을 유가족들에게 토해 내라고 했다. 1심 재판 뒤 가지급된 491억여원 중 210억원을 되돌려 주라는 판결인데, 간첩 가족으로 몰려 평생 생활고에 시달린 이들은 이미 가지급된 돈으로 ‘빚잔치’를 마친 상태였다. 양승태 대법원 시절인 2013~2015년 대법원은 공소시효 외에도 여러 요인을 근거로 국가배상에 소극적인 판결을 잇따라 내렸다. 민주화보상심의위 등에서 생활지원금을 받았다면 국가배상을 이중으로 받을 수 없다거나, 긴급조치 9호는 위헌이지만 긴급조치를 발령한 당시 결정은 정치적 행위이기 때문에 국가에 배상할 책임이 없다는 판결 등이 잇따랐다. 과거사위 조사보고서에 모순이 있다며 국가에 배상의무가 없다는 판결도 나왔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다르게 전임 이용훈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부에서 ‘국가범죄에 한해선 배상 시효 제한을 없애야 한다’는 논의가 나왔던 것과 정반대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이날 헌재 결정으로 양승태 대법원 시절 피해 국민에 대한 국가배상을 제한했던 판결이 헌법 정신에 부합하지 못한 근거로 이뤄졌다는 판명이 났다. 하지만 헌재는 당시 재판을 취소하는 결정을 내리지는 않았다. 헌재 결정에 따라 이미 국가배상을 못 받도록 확정 판결을 받은 피해자들에게 재심을 청구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재판부별로 헌재 결정을 존중해 민사 재심을 열지 결정한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백악관이 숨긴 진실 파헤치는 저널리스트들…‘충격과 공포’ 예고편

    백악관이 숨긴 진실 파헤치는 저널리스트들…‘충격과 공포’ 예고편

    ‘충격과 공포’는 9/11 테러 직후, 미국 전역이 패닉과 극단적 애국주의에 빠진 틈을 타 백악관이 주도면밀하게 세운 은밀한 계획을 고발한 ‘나이트 리더’가 폭로 기사를 내기까지의 여정을 그렸다. 영화는 9/11 테러 발생 후 전 세계가 공포에 휩싸였던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부시와 부통령이었던 딕 체니, 도널드 럼스펠드 미국 국방부 장관과 콜린 파월 미국 국무부 장관 등이 꾸민 음모를 담고 있다. 영화 속 그들은 테러를 벌인 집단을 찾는 게 목적이 아니라 평소 눈엣가시였던 사담 후세인 집권 세력을 몰아내기 위해 무고한 이들의 희생을 준비한다. 이처럼 충격적인 팩트를 기반으로 제작된 ‘충격과 공포’는 당시 실제 방송 인터뷰와 기자 간담회, 언론 보도 뉴스 등 다양한 자료들을 엮어 극의 밀도를 높인다. 공개된 예고편은 2002년 방송을 통해 사담 후세인의 대량살상무기 보유론을 설파하는 강경파의 주장으로 시작한다. 이후 특종 앞에 물불 안 가리는 우디 해럴슨과 제임스 마스던의 열연이 극의 완성도를 기대케 한다. 영화 ‘충격과 공포’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미져리’, ‘어 퓨 굿 맨’ 등을 통해 전 세계적으로 큰 사랑을 받은 로브 라이너 감독의 최신작이다. 9월 6일 개봉. 영상팀 seoultv@seoul.co.kr
  • [조선을 사랑한 英언론인 베델의 히스토리] 日 황무지 개간권·을사늑약 부당성 폭로… 항일의 선봉 ‘우뚝’

    [조선을 사랑한 英언론인 베델의 히스토리] 日 황무지 개간권·을사늑약 부당성 폭로… 항일의 선봉 ‘우뚝’

    1904년 7월 조선에서 대한매일신보와 코리아데일리뉴스(KDN)를 창간한 어니스트 토머스 베델(1872~1909·한국명 배설)은 신문을 발간하자마자 항일 투쟁의 선봉에 섰다. 일본의 황무지 개간권 요구를 좌절시켰고 을사늑약 체결의 부당성도 전국에 알렸다. 고종이 헤이그에 밀사를 파견한 사실을 타전해 일본의 강압적 침략 의도를 세계에 폭로했다. 베델은 한반도 항일 투쟁에 있어 가장 믿음직한 지원군이었다.●일본의 황무지 개간권 요구 저지 일본은 러일전쟁(1904~1905)을 전후해 한반도를 병합하려는 야욕을 본격화했다. 대장성(현 재무성) 관리를 지낸 나가모리 도키치로라는 일본인을 앞세워 “50년간 전국 황무지의 개간권을 위임하라”고 요구했다. 조선 땅의 개간·정리·척식(개척) 등 모든 권리를 광범위하게 이전하는 것으로 ‘나가모리 프로젝트’로도 불렸다. 나가모리 프로젝트는 다수의 일본인을 조선으로 이주시켜 한반도를 일본의 원료·식량 공급 기지로 삼으려는 의도로 조선 침략의 사전 정지 작업이었다. 1903년 12월 조선에 온 나가모리는 이듬해 3월부터 궁내부 대신 민병석과 교섭에 나섰다. 협상이 본격화되자 일본은 정부 차원에서 본격적으로 개입했다. 이런 ‘밀실야합’은 6월이 되서야 세상에 알려졌다.일제의 황무지 개간권 요구 소식에 여론이 들끓었다. 이미 국권의 상당 부분을 빼앗겨 울분에 차 있던 국민들은 전 국토의 3분의1에 달하는 황무지를 대가도 없이 가져가려는 일제의 음모를 묵과할 수 없었다. 신보가 창간된 1904년 7월은 이런 일본의 행각이 만천하에 드러나 국민의 반발이 가장 거셀 때였다. 베델은 이런 시류를 정확히 읽고 영문판 KDN을 통해 황무지 개간권 요구의 부당함을 알렸다. 당시 주한 영국공사였던 J N 조던(1852~1925)이 본국에 보고한 내용에 따르면 베델은 KDN 7월 22일자에 윤치호가 황무지 개간권 요구를 비판한 논설을 독자 투고 형태로 실은 것을 시작으로 일본 비판에 나섰다. 친일 성향의 ‘재팬 메일’과 ‘고베 헤럴드’가 KDN의 8월 4일자 논설에 대해 “(KDN이) 유해한 글을 게재하게 내버려두는 것은 일본의 너그러움을 보여주는 것”이라면서 “(KDN이) 한국과 일본을 이간질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에 KDN은 9월 1~6일 5회에 걸쳐 반박 논설을 내보내며 반일 태도를 분명히 했다. 항일단체 보안회도 일제의 음모에 각종 집회를 열며 계몽운동에 나섰다. 결국 일본은 조선인들의 저항이 커지자 8월 10일 개간권 요구를 공식 철회했다. 훗날 나가모리는 본국에 보낸 보고서에서 “황무지 개간권 요구가 좌절된 이유는 KDN과 (KDN의) 기사를 받아 써 이를 공론화한 영국인 소유 신문사들 때문이었다”고 밝혔다.●을사늑약 부당성·헤이그 특사 파견 보도 일본은 러일전쟁이 마무리된 직후인 1905년 11월 17일 조선의 외교권을 박탈하고자 을사늑약을 체결했다. 그러자 신보는 일제의 압력에 굴하지 않고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알려 나갔다. 조선의 외교권 박탈을 스스로 도운 ‘다섯 매국노’(을사오적)인 이완용(학부대신), 이근택(군부대신), 이지용(내부대신), 박제순(외부대신), 권중현(농상공부대신)은 신보의 지속적인 비판 대상이 됐다. 신보는 11월 21일자에서 “을사늑약은 일본이 강압적으로 체결한 것이며 ‘시일야방성대곡’을 쓴 장지연(1864∼1921)을 체포하고 이를 게재한 황성신문(1898~1910)을 정간시킨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비난했다. 11월 27일자에서는 호외(특별한 일이 있을 때 내는 신문)를 통해 을사늑약의 진상을 알리고 시일야방성대곡도 영어와 한문으로 번역해 게재했다. 신보는 항일운동 보도에 어느 매체보다도 적극적이었다. 을사늑약 체결을 계기로 신보는 조선인에게 가장 신뢰받는 언론으로 성장하게 됐다. 베델은 2년 뒤 ‘헤이그 특사 파견’도 집요하게 취재해 알렸다. 일본은 을사늑약으로 조선의 외교권을 박탈하자 한반도 침략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고종은 러시아와 손잡고 운명을 건 저항에 나서는데, 이것이 헤이그 특사 파견이었다. 1907년 7월 고종은 을사늑약의 부당성을 알리고자 만국평화회의가 열리는 네덜란드 헤이그에 세 명의 특사 이상설(1870~1917)과 이준(1859~1907), 이위종(1887~?)을 극비리에 파견했다. 이들은 일제의 방해와 러시아의 변심으로 회의장에 들어가지도 못하는 수모를 겪었다. 그래도 각국 취재기자들을 상대로 간담회를 열어 조선이 독립국임을 선언하는 등 의미있는 성과를 냈다. 을사늑약의 부당성을 알리는 고종의 친서를 입수한 베델은 이를 그대로 신문에 실었다. 곧바로 영국 등 세계 주요매체들이 이를 전재했다. 신보 보도에 당황한 일본은 결국 헤이그 특사 사건을 문제삼아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키고 아들인 순종을 왕위에 올렸다.●세계로 퍼질 수 있었던 KDN의 영향력 베델이 신보와 KDN을 창간한 20세기 초에는 이미 중국과 일본에 여러 영자신문이 발행되고 있었다. 이들 대부분은 규모가 작아 외국에 특파원이나 통신원을 둘 형편이 못 됐다. 이 때문에 영자지들은 외국 신문을 인용하는 형식으로 해외 소식을 전했는데, 이를 통해 영어신문들은 국가를 초월한 ‘정보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었다. 조선의 유일한 영어 일간지였던 KDN의 기사 역시 동아시아를 비롯한 여러나라의 매체들이 인용 보도했다. 당시 일본은 영국이나 미국, 독일 등 다른 열강보다 힘이 약해 국제 여론에 매우 민감했다. 첫 식민지로 삼으려던 조선에서 항일투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전 세계에 알린 KDN의 기사는 일본에 치명적일 수밖에 없었다. 통감부 초대 통감을 지낸 이토 히로부미(1841~1909)는 “나의 수백 마디 말보다도 신보의 신문기사 한 줄이 더 힘이 세다”고 탄식했다. 일제는 신보와 KDN에 대응하고자 1906년 영국인 J W 하지가 운영하던 주간지 ‘서울프레스’를 인수해 일간지로 바꿔 여론전에 나섰다. 하지만 서울프레스는 ‘통감부 기관지’라는 오명을 쓴터라 신보와 KDN의 영향력을 따라가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정진석 한국외국어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명예교수는 “신보가 한·일 두 나라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조선의 민족주의 운동을 지원하는 동시에 일본의 대(對)조선 정책도 강하게 반대해 양국 모두에서 큰 의미를 갖게 됐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영국 런던에서 만난 베델의 손녀 수전 제인 블랙(62)은 “당시 할아버지(베델)의 행동은 일본은 물론 고향인 영국에서도 전혀 이해받지 못했다. 열강의 질서를 거스르는 것이었기 때문”이라면서 “아무도 진심을 알아주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그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 길을 묵묵히 걸어갔다. 할머니(메리 모드 게일)도 이 점을 평생 자랑스러워했다”고 전했다. 서울 오경진 기자 oh3@seoul.co.kr 런던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코언 “트럼프, 러 해킹 알고 있었다”…열리는 탄핵 게이트

    코언 “트럼프, 러 해킹 알고 있었다”…열리는 탄핵 게이트

    “대선 당시 러와 내통 가능성 안다 말해”트럼프 “검찰과 거래 위해 코언이 거짓말 날 탄핵하면 시장 붕괴…모두 가난해져”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개인 변호사 마이클 코언이 2016년 대선 당시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의 민주당 전국위원회 해킹을 알고 있었다고 진술해 파장이 일고 있다. 트럼프 ‘충복’이었던 코언의 이 진술이 사실로 드러나면 ‘러시아 스캔들’이 탄핵이라는 새로운 국면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커진다. 트럼프 대통령은 “나를 탄핵하면 시장은 붕괴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코언의 변호를 맡고 있는 래니 데이비스 변호사는 22일(현지시간) MSNBC 방송 인터뷰에서 “그는 내게 2016년 대선 당시 트럼프 선거캠프가 러시아와 내통한 음모 가능성을 알고 있다고 했고,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의 해킹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선거캠프 참모들이 러시아와 내통한다는 걸 알면서도 방조했거나, 이를 지시했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이다. 데이비스는 “코언이 로버트 뮬러 특검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것들을 얘기하고 싶어 한다”고 전했다. 코언은 앞서 트럼프 대통령과 2006년 성관계를 가졌던 포르노 배우 스테파니 클리포드와 ‘플레이보이’ 표지모델 캐런 맥두걸의 입을 틀어막기 위해 대선 당시 총 28만 달러를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로 선거 캠프에서 제공받아 건넸다고 밝혔다. 또 코언은 트럼프 일가가 ‘트럼프 재단’에서 25만 8000달러를 불법 유용한 혐의 수사에도 협조하기로 했다. 미 정보기관들은 러시아가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을 위해 대선에 개입했다고 판단하고 있다. 코언의 진술이 구체적이라는 점에서 결정적 증거인 ‘스모킹 건’이 드러나면 뮬러 특검도 대통령에 대한 기소 의견을 낼 수 있다. 다만 현직 대통령을 기소하지 않는다는 미 법무부의 불문율에 따라 뮬러 특검팀이 기소 의견을 제시하면 의회가 탄핵 절차를 진행할 가능성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튿날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탄핵과 관련, “모두가 가난해질 것”이라면서 “나는 규제를 없앴다. 감세는 대단한 것이었다. 일을 잘해낸 누군가를 어떻게 탄핵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또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내가 잘못한 유일한 것은 부정직한 힐러리 클린턴과 민주당이 이길 것으로 예상됐던 선거에서 이긴 것”이라며 “코언이 (검찰과) 거래를 하기 위해 이야기를 지어낸다”며 모든 혐의를 부인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나나 ‘사자’ 하차, 촬영 중단→감독 교체에 결국..“계약 해지 통보”

    나나 ‘사자’ 하차, 촬영 중단→감독 교체에 결국..“계약 해지 통보”

    배우 나나가 드라마 ‘사자’ 하차한다고 밝혔다. 나나 소속사 플레디스 측 관계자는 23일 “드라마 ‘사자’ 측에 계약 해지 통보서를 보냈다. 계약 관계는 적법하게 종료됐다. 이후 법률 대응을 통해 정리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제작사 측 입장도 확인했다. 법률 대리인을 통해 보다 자세하게 밝힐 예정이다”라고 덧붙였다. 앞서 나나는 ‘사자’의 여주인공으로 발탁돼 지난 1월부터 5월까지 촬영을 진행해왔다. 그러나 그 사이 드라마 연출을 맡고 있던 장태유 PD가 제작사와 갈등으로 일을 중단하며 약 3개월 동안 제작이 중단, 김재홍 PD로 교체됐다. 이어 배우들에게도 8월 중 촬영 재개를 고지한 바 있다. 그러나 나나는 8월 25일 대본리딩에 불참할 것으로 전해졌다. 제작사 빅토리콘텐츠 측은 “나나에게 출연료를 100% 지급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했다. 이 상황에 대해 함구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소통했다. 당혹스럽다”면서 “우리는 나나의 합류를 고대하고 있다”는 입장을 전했다. 한편 ‘사자’는 어머니의 의문사를 파헤치던 한 남자가 자신과 똑같은 얼굴의 인간을 하나 둘 만나면서 더 큰 음모에 휘말리는 미스터리 휴먼 드라마다. 박해진, 곽시양, 이기우 등이 출연할 예정이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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