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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용이 필드서 만나는 까닭은…/JP·이수성 오늘 골프회동

    ◎측근 김용환·정해창씨 대동 라운딩/내각제매개 결집 시도 가능성 “촉각” 자민련의 김종필 총재와 신한국당의 이수성 고문이 7일 골프회동을 갖는다.김총재측에서는 김용환 의원이,이고문측에서는 정해창씨가 함께 나와 상오10시부터 용인의 은화삼클럽에서 라운딩을 할 예정이다.신한국당과 자민련이 상대당 총재의 과거 사생활까지 들먹이며 정쟁을 벌이는 상황에서,두 당의 대통령 후보 경선에 출마한 두 사람의 만남 자체가 우선 눈길을 끈다. 이고문측에서는 『총리시절 김총재와 골프를 칠 때 다시 만나기로 약속해,2주전 김총재측에서 시간과 장소를 전달해줬다』고 밝혔다.이고문의 핵심측근 의원은 『일부에서 내각제 문제등을 얘기할 것으로 보지만,순수한 사적 친분에 따른 만남』이라고 강조했다.또 양측은 6일 골프회동 소식이 공개되자 한때 취소를 검토하는 등 혼선을 빚기도 했다. 두 사람의 만남이 주목되는 이유는 충분하다.가깝게는 김총재와 이고문이 각자의 경선과정에서 충청권과 대구·경부지역의 상대당 대의원들에게까지 영향력을 행사해줄수 있을까 하는 점부터 시작된다.더 나아가는 두 사람이 내각책임제를 매개로 결집을 시도할 가능성도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도 있다.신한국당 다른 예비주자측의 관계자는 이번 회동에 대해 『이고문이 큰 일을 낼 사람』이라는 반응을 보였다.그만큼 예민한 모임이다.
  • 골프도 불황바람… 회원권 값 하락/자금난에 「팔자」 몰려

    ◎중부권 한달새 1,500만원 내려 경기침체 여파로 골프 회원권 시세가 큰 폭으로 떨어지고 있다. 1일 골프 회원권 거래를 중개하는 에이스회원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3월 24일부터 지난달 28일까지 골프 회원권 시세를 비교한 결과,거래가 이뤄진 전국 70개 골프장의 회원권중 8곳을 제외한 62개 골프장의 회원권 값이 큰 폭으로 하락한 것으로 조사됐다.회원권 시세가 하락한 것은 경기침체로 기업과 개인들의 자금난이 심화되면서 당장 현금화가 가능한 골프 회원권이 매물로 많이 나왔기 때문이라고 에이스회원거래소는 분석했다. 특히 중부권의 신원골프장과 은화삼골프장,코리아골프장(주주)의 경우 한달새 1천5백만원이나 떨어져 각각 2억2천5백만원,2억5천만원,3억2천만원의 시세를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우정힐스골프장과 엑스포골프장은 각각 1천2백만원 떨어진 1억4천3백만원과 8천8백만원에 거래되고 있으며 이밖에 다른 골프장도 1천만∼1백만원의 하락세를 보였다. 반면 여주와 덕평(우대),청원골프장 등 6개 골프장 회원권은 30만∼8백50만원정도씩 올랐으며 안성과 울산은 지난달 시세가 유지됐다.에이스 회원거래소 관계자는 『골프장 회원권의 시세는 생활에 꼭 필요한 것이 아니어서 경기영향을 많이 받는다』며 『지난해 하반기부터 서서히 하락하기 시작,한보사태와 삼미부도를 거치면서 하락 폭이 커졌다』고 말했다.
  • 골프회원권 3개이상 보유자 등/1천634명 세무조사

    ◎국세청 내사 착수 국세청은 30일 골프회원권을 많이 갖고 있는 사람 등 1천600여명을 상대로 탈세혐의에 대한 정밀 세무조사에 착수했다고 발표했다.골프회원권 보유자에 대한 대대적인 세무조사는 이례적인 일로 투기행위를 억제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이에 따라 ▲골프회원권을 3계좌 이상 갖고 있으며 일정한 직업이 없거나 소득원이 불분명한 734명 ▲사전 변칙상속을 받은 혐의가 있는 미성년자·부녀자 803명 ▲지난해부터 고가의 골프회원권을 집중 취득한 56명 ▲골프회원권을 단기간에 전매하는 등 거래가 잦은 투기혐의자 41명 등 모두 1천634명을 조사 대상으로 선정,탈세혐의에 대한 내사에 착수했다. 국세청은 이들에 대해 본인과 가족의 최근 5년간 부동산거래 및 종합소득세의 탈세 여부,기업인 또는 기업 임원인 경우 기업자금 변태유출 여부,골프회원권 거래 상대방의 탈세여부 등을 집중 조사할 방침이다. 한편 국세청은 골프회원권 거래가격이 올 하반기들어 급등함에 따라 전국의 골프회원권 기준시가를 내년 1월1일자로 평균 22.2% 올렸다.경기도 용인 코리아골프장의 경우 지난 3월 1일 2억4천만원이었던 골프회원권 실거래 가격이 3억2천5백만원으로 8천5백만원,경기도 용인 은화삼골프장은 2억5천만원으로 5천7백만원이나 올랐다.일반회원권을 기준으로 할때 조정된 기준시가가 가장 높은 골프장은 경기도 고양시 서울골프장으로 2억2천3백50만원이며 가장 낮은 골프장은 경기도 여주군 여주골프장으로 2천2백만원이다.
  • 한국미술의 멋 프랑스서 한껏 과시/국제현대미술 견본시장 개막

    ◎지구촌 144개 화랑 참가… 세계적 거상과 어깨/「한국의 해」 선정 남다른 주목… 시라크 “예술발견 새 장” 치사 프랑스 미술시장의 「중흥」을 내건 파리 국제현대미술 견본시장(FIAC)이 2일 개막됐다.세계3대 미술시장의 하나인 FIAC는 올해를 「한국미술의 해」로 정하고 한국화랑 15개를 사상처음으로 대거 초청해 주목되고 있다. 자크 시라크 프랑스대통령은 2일 하오 FIAC에 참여한 한국 화랑대표들과 30여명의 국제적 화상들을 대통령궁인 엘리제궁으로 초청,리셉션을 베풀었다.시라크대통령은 FIAC소개 책자 서문에서 『한국을 특별초청함으로써 예술발견의 새로운 장을 열게 된것을 기쁘게 생각한다』고 각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1일 하오 열린 개막식 전야제 행사에는 시라크대통령의 부인 베르나데트여사,필립 두스트 블라지 문화부장관,자크 랑 전 문화부장관,이시영주불한국대사를 비롯해 세계의 화상들과 커미셔너·큐레이터등이 참석했다.참석자들은 프랑스 언론에 「한국의 해」가 대대적으로 보도된 탓인지 한국 전시장부근에 적지않은 관심을나타냈으나 한국화랑 일부 부스에는 한국측 관계자들만 북적되기도 했다. 자크 랑 전 문화부장관은 한국전시장에서 많은 시간을 할애하면서 한국측 관계자로부터 설명을 들어 돋보였다.한국화랑 전시장은 중앙 뒷부분에 밀집돼 있는데 『초청해 놓고 맨앞이 아니라 뒤쪽에 전시장 자리를 줬다』는 불만이 일부에서 나오기도 했다. FIAC에 참여한 144개 화랑가운데 외국의 화랑은 한국화랑을 포함해 60%정도다.토니 샤프레지·스페론 웨스트워터(미국),브루노 베쇼프베르거(스위스),나흐스트 셍 스테판(오스트리아)등 미술계의 세계적인 거상들이 참여해 올해 FIAC는 침체분위기가 심했던 예년과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얘기한다. FIAC가 이처럼 면모를 일신한 것은 지난해 FIAC가 실패작으로 평가됐기 때문.당시 일부 화랑들은 「FIAC가 불어권 중심으로 편중돼 있으며 민주적인 운영이 되지 않고 있다」는등의 이유로 불참을 선언했다. 이에따라 FIAC는 데니스 르네 전회장이 물러나고 이봉 랑베르 신임회장체제로 바꾸고 외국화랑을 대거 포함하게 됐으며 변신에 성공했다는 평이다.프랑스의 한 화랑주인은 『몇년동안 만나지 못했던 컬렉셔너들이 전화를 걸어 숙소등을 알아봐달라고 요청해 왔다』고 말했다. 랑베르 회장은 『초청 화랑들은 엄선된 것』이라며 FIAC의 성공을 자신하고 있다.랑베르 회장의 전략은 생긴지 얼마 되지않는 젊은화랑 30개를 선정하고 이들에게 전시장 임대비용도 할인해주는 등의 혜택을 주며 활성화를 꾀하는 것이다. 전시회 기간중 약 1억5천만프랑(2백40억원)의 거래를 해온 FIAC의 대차대조표는 오는 7일 에펠탑부근의 전시장이 문을 닫을때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 아프간 내전/문화재 큰 수난/92년이후 박물관 소장품 90%약탈

    ◎밀매업자와 결탁 런던등으로 유출 내전에 찌든 아프가니스탄의 귀중한 문화재 유출이 심각하다. 아프간은 수천년동안 고대 이란,인도,중앙아시아와의 「교역과 정복」의 교차로에 위치한 탓에 전국토가 문화 유적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나라였다.수도 카불의 국립박물관은 5만년 중앙아시아 역사를 그대로 간직한 「문화의 보고」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만큼 방대한 양의 고대유물이 소장돼 있었다. 하지만 지난 92년 4월 친소정권 붕괴이후 회교 반군끼리 내전이 터지면서 이들 문화재는 막대한 손상을 입기 시작했다.특히 카불을 번갈아 장악했던 히즈베 와다트,히즈베 이슬라미등 두 반군은 파키스탄과 아프간 중개상의 사주를 받고 희귀한 소장품을 해외로 빼돌렸다. 현재까지 박물관 소장품의 90%정도가 약탈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특히 고고학적 가치가 높은 20%정도의 유물은 이미 해외로 유출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나머지도 파키스탄 등지에서 원매자를 기다리고 있는 실정이다. 대부분 지하창고에 보관돼 있던 유물중 제일 먼저 약탈된 것은북부지역의 바그람 출토물.지난 39년 발굴돼 『20세기에 가장 놀라운 고고학적 발견』으로 지목됐던 상아조각상·청동상 및 유리제품을 포함,약 1천8백점은 일찌감치 약탈된 것으로 확인됐다. 또 78년 카불의 한 우물아래 지하의 「미르 자카 보고」에서 발굴된 2t정도의 각종 금·은화를 비롯,총 4만여점의 동전들도 하나도 빠짐없이 해외 수집상에게 팔려나갔다.이 동전들은 로마에서 중국에 이르는 여러국가의 수세기에 걸친 문화유산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같은 방대한 문화재 유출의 배후에는 아프간 반군 및 국내 밀매업자와 결탁한 파키스탄의 중개상과 골동품 수집상들이 깊숙이 개입해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이들의 손을 거친 아프간 문화재는 런던·제네바·도쿄·쿠웨이트 등지로 넘겨진다. 카불이 반군의 수중에 떨어졌을때 약탈된 인도 여인조각상은 이같은 유출경로를 그대로 보여준다.카불에서 이 조각상은 북부도시로 공수됐고 이어 우즈베키스탄으로 넘겨진 다음 이슬라마바드등지를 통해 유럽으로 빼돌려졌다. 일부 서방 외교관들은 카불이나 페샤와르에 거주하는 아프간과 파키스탄의 지도급 인사들이 고대 이슬람 동전수집에 열을 올리는 중동의 거부,불상을 탐내는 일본인 수집가를 위해 대리인 노릇을 하고 있다고 귀띔한다.현재 일본인 수중에 있는 것으로 알려진 무게 2t의 순금 불상도 역시 이들의 손을 거쳤다는 지적이다. 이같은 복잡한 유통 경로 때문에 최종단계에서 유물은 값이 뛰게 마련이다.이슬라마바드에서 개당 3만5천달러에 거래되던 2세기경에 제작된 인도의 상아 여인상은 최근 런던의 딜러를 거쳐 일본 수집가에게 개당 10여만달러에 12개가 팔렸다. 한편 아프가니스탄 당국은 현재 유실된 문화재 회수에 나서는 한편 유엔의 지원을 요청하고 있으나 그 실적은 미미하다.골동품 거래가 헤로인(마약)밀매에 버금가는 돈벌이 수단으로 여겨지는데다 전쟁에 시달리는 국민들에게 문화재가 「생존」보다 더 중요하다고 설복시키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 광복 50주년 기념주화/오천·1만원 2종 발행

    ◎한은,UN창설 천원짜리도 한국은행은 오는 14일부터 각 금융기관 점포를 통해 「광복 및 UN창설 50주년 기념주화」를 발행한다. 광복 50주년 기념주화는 앞면에 안중근 의사의 초상이 새겨진 1만원 은화,김구 선생의 초상이 새겨진 5천원 니켈화 등 2종이며,UN창설 50주년 기념주화는 각국의 어린이들이 어깨동무한 그림이 새겨진 1천원 백동화 1종이다. 이번에 발행되는 기념주화는 지난 4월3∼13일 사이에 사전 예약을 받아 제조한 것으로 신청자는 14일부터 이달 말까지 예약신청한 금융기관 점포에 예약접수증을 제출하고 기념주화와 교환하면 된다.주화별 발행량은 1만원화 6만3천1백68개,5천원화 6만4천59개,1천원화 6만8천6백40개다.
  • 역사·화합·미래 주제 국민축제로/8월을 수놓을 광복 50돌 행사

    ◎역사의 장­총독부 건물철거… 민족정기 고양/화합의 장­한민족축전 열어 남북통일 기원/미래의 장­무궁화호 발사기념 등 11개 행사 8월은 50주년을 맞는 광복절이 들어있는 달.연중 계속되는 각종 기념행사 가운데 가장 비중있고 규모가 큰 행사들이 대부분 8월에 펼쳐진다.정부부처 행사 22개,산하단체 행사 19개,민간단체 행사 16개,지방자치단체 행사 27개 등 모두 84개의 행사가 「역사의 장」「화합의 장」「미래의 장」이라는 3개의 주제로 나뉘어 열린다.정부는 광복의 의미를 되새기고 민족번영과 통일을 향해 새롭게 출발하는 전기를 마련한다는 의도에서 올해 초부터 추진해 오던 기념행사를 8월에 집중 개최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역사의 장」은 민족정기를 고양하는 사업으로 ▲일제 잔재인 옛 조선총독부건물 철거 및 대지미술전 ▲이준열사기념관과 중경임시정부청사등 독립운동 사적지 복원 ▲독립유공자 1천4백여명에 대한 대대적 발굴 포상 ▲국내외 독립운동 사적지 순례등 25개 사업이 포함되어 있다.민족의 화합과 통일을 염원하는 「화합의 장」에는 ▲여의도 고수부지 레이저영상쇼 ▲광복 길놀이 ▲95 세계 한민족축전 ▲통일 한마음 행사등 20개 사업이 들어 있다.미래의 비전을 제시하는 「미래의 장」 사업으로는 ▲세계를 빛낸 한국음악인 대향연 ▲종합학술행사 ▲무궁화통신위성 발사 기념행사 ▲지구촌 우주소년 큰잔치등 11개가 있다.이밖에 지방에서 개최되는 주요 행사로는 서울시의 조국을 빛낸 해외동포 초청행사와 경기도의 창작무용극 「제암리의 아침」 공연등 23개가 있다. 정부는 기념행사가 광복이전 세대에게는 광복의 벅찬 감격을 되새기게 하고 광복이후 세대에게는 광복의 의미를 느낄 수 있는 현장체험의 기회가 되도록 기획했다.독립유공자와 그 유족들의 숭고한 희생에 대해 다시 한번 옷깃을 여미는 자리가 될 수 있도록 준비했다.또 민간과 정부가 주관하는 행사를 전국에서 어우러지는 국민축제로 승화시키고 해외동포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해 민족단결의 계기를 마련한다는 목표 아래 행사를 추진해 왔다.옥내 행사에서 벗어나 광화문 앞과 국내외 독립운동 사적지,독립기념관 등 개방적이고 상징적인 장소를 활용함으로써 광복의 의미를 한층 되살아날 수 있도록 배려했다. 8월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광복절 당일 각계 대표와 일반 시민 각각 2만5천여명씩 모두 5만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옛 조선총독부건물 앞 광장에서 열리는 중앙경축식.「광복 50년,통일로 미래로」라는 주제 아래 상오9시부터 10시까지 식전행사,10시55분까지 본행사,10시55분부터 11시10분까지 식후행사로 나뉘어 2시간10분 동안 진행된다. 민족사를 재조명하고 광복의 환희를 재현하는 식전행사는 5백여명의 북을 멘 바라꾼과 횃불수 및 60여명의 전통군악대가 펼치는 「새아침의 소리」,옛 조선총독부건물 중앙돔 철거행사인 「어둠 거두기」,국립국악관현악단과 국립·서울시립·경기도립 무용단의 고전 및 현대무용 「다시 찾은 빛」,광복 50주년 기수단을 비롯해 각 시·군·구 기수단과 경찰 및 3군 군악대등 약 1천5백여명이 광복 길놀이 꽃차 및 장식차와 함께 벌이는 「한울림」행렬로 구성된다. 통일과 세계를 향한 민족의 결의를 다짐하는 본행사는 국민의례,광복회장의 기념사,서울시립교향악단의 연주 속에 세계를 빛낸 한국음악인 7명과 서울시립교향악단·연합합창단이 부르는 축가 「동방의 빛」,독립유공자 포상,경축사,광복절 노래제창,경축비행의 순으로 진행된다. 통일과 미래의 희망을 염원하는 식후행사는 해방둥이들이 광복절 노래를 합창하는 가운데 통일성화 봉송단이 통과하며 4백여명의 현대무용단·서울시립가무단·국민학생들의 무용 「통일로 미래로」를 끝으로 막을 내린다. 중앙경축식 행사장은 모든 국민의 출입이 허용되며 참가자들에게는 광복 50주년 공식 휘장 또는 태극무늬로 도안된 모자·부채·음료 등이 제공된다. 정부는 행사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과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3가지 종류의 포스터 6만부를 만들고 눈에 잘 띄는 곳에 홍보조형물을 설치했다.안중근 의사의 얼굴이 새겨진 1만원짜리 은화와 김구 선생의 초상을 담은 5천원짜리 니켈화 각각 7만개를 제작했다.기념우표 3백만장,소형 시트 60만장,우표책 1만부를 만들고 5천원권 공중전화카드 30만장과 기념담배 5천만갑을 발매했다.
  • 황창평 보훈처장에 듣는다(국정 어떻게 돼갑니까)

    ◎「보훈의 달」 짚어본 복지정책/“2천세대 「국가유공자 복지타운」 건립”/재중·러 독립지사후손 모국정착 지원/고엽제 「후유의증」 환자까지 보상·치료/동­서해안·제주 등 4곳에 보훈가족 휴양시설 □대담=황병의 정치부장 올해는 광복 50주년이자 한국전 발발 45주년이 되는 해다.그 의미만큼이나 우리는 자세와 각오를 새롭게 다져야 할 상황을 맞고 있다.경제개발을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고 앞뒤 가리지 않던 단계에서 벗어나 통일에 대비하고 세계중심국가로 발돋움하려는 시점에 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는 독립유공자나 6·25참전용사들이 흘린 피와 눈물의 의미를 다시 한번 차분히 되새김으로써 이들의 나라사랑정신을 국가통합의 구심점으로 승화시키는 일이 국가의 주요과제로 대두되고 있다. ○새 분위기 조성 시급 사실 일제에 항거해 희생한 독립유공자나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몸바친 참전용사들에 대한 대접은 미국등 선진국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대만에 비해서도 크게 낙후돼 있다. 미국은 참전용사모임인 재향군인회가 미국내 최대 압력단체이며 대만도 국가유공자들이 시민으로부터 최대의 경의를 받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국가유공자들은 단순히 물질적으로 「돌봐줘야 하는 대상」으로 치부되기 일쑤였고 그 결과 국가유공자 후손들은 자신들에 대한 생활지원등을 「빈곤층에 대한 그 것」으로 여겨 신분을 오히려 감추는 현상까지도 빚어졌다. 호국보훈의 개념을 한차원 발전시켜 나라사랑 정신을 국가 중심 이념으로 승화시키는 기수역을 맡은 황창평 국가보훈처장.대공일선에서 30여년 근무한 황 처장은 호국보훈의 개념을 새롭게 정립하는데 제격이라는 평이다. 황 처장은 4일 대담에서 『우리나라의 국제적 위상이 과거에 비해 크게 높아졌지만 국민들 사이에 희생에 대한 의식이 희박해지면서 각종 이기주의가 분출,국가안보와 사회불안이 크게 우려되고 있다』고 지적하고 『보훈은 국가의 뿌리라는 점에서 보훈대상자들이 당장 미국처럼 자랑스럽게 예우를 받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분위기만은 조성하자는 게 보훈정책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이틀후면 현충일입니다.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국가유공자에 대한 시각을 어떻게 가져야 하는지부터 말씀해 주시죠. ▲먼저 우리나라 국가유공자 수는 18만가구 1백만명에 이릅니다.일제∼6·25∼월남전까지의 유공자와 그 외 공상자들이지요.이 가운데 6·25관련 유공자가 5만가구로 가장 많습니다.이들은 아직도 전상의 아픔에 시달리고 있습니다.오늘 우리가 이만큼 번영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이들 유공자들의 희생이 밑거름이 됐습니다.이 점에서 국가유공자와 가족을 보살피고 예우하는 일은 당연한 도리일 것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국가유공자들은 순직이나 전사·전상등으로 경제적 능력을 상실,생활이 무척 어려운게 현실 아닌가요. ▲70년대 중반부터 보훈가족의 생활안정과 자립지원을 위해 보상금을 비롯해 교육·주택·취업등의 지원을 해 오고 있습니다.그 결과 지난해말 보훈대상자의 월평균소득은 도시근로자 월평균소득 1백31만원보다 35% 많은 1백77만원에 이르고 있습니다.또 주택보급률도 일반국민의 79.8%보다 6.4%포인트 높은 86.2%에 이르고 있지요.대부분 보훈가족들은 어느정도 자립의 기틀을 마련한 셈입니다.또 현재 한달에 35만원씩 주고 있는 기본연금을 올해와 내년에 12%씩 올려 97년에는 매달 45만원을 지급할 계획입니다. ­독립유공자나 6·25참전용사들은 오랜 세월이 흐른 만큼 대부분 노령화돼 있지 않은가요. ○8백60세대분 착공 ▲보훈대상자 평균연령은 61세에 이르고 있습니다.독립유공자의 경우 본인은 74세이고 유족은 65세이며 6·25대상자는 66세이지요.따라서 각종 노인성질환과 전상으로 인한 만성질환자가 많습니다.국가는 이들의 쾌적한 노후생활을 위해 수도권과 부산·대전·대구·광주등 대도시에 각종 편의시설을 갖춘 고령자 주거시설로 2천세대 규모의「복지타운」을 연차적으로 건립할 계획입니다.이미 수원에 8백60세대분 휴양시설이 착공됐지요.또 보훈가족용으로 동해·서해안과 제주도등 4곳에 휴양시설을 지으려 하고 있습니다. ­참전군인과 관련해서는 월남전 고엽제피해자문제가 현안인데 정부의 대책은. ▲고엽제문제를 보면 월남전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는 셈입니다.현재 고엽제환자로 검진받은 사람은 4천3백25명이며 이 가운데 14%인 5백96명이 후유증환자로 판정됐고 39%인 1천6백69명은 「후유의증」환자로 판정돼 무료진료를 받고 있습니다.말초신경병등 고엽제후유증으로 선정된 10개 질병에 대해서는 보훈병원의 판정에 따라 전상자와 같이 한달에 35만∼1백50만원의 보상금을 지급하고 무료진료를 실시하고 있습니다.그러나 문제는 후유증으로 의심되는 후유의증환자입니다.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서울대 보건대학원에서 고엽제역학조사를 진행중이므로 결과가 나오는대로 해결책을 마련할 것입니다.역학조사결과 후유의증에 대해 인정할 수 있는 범위가 확정되는대로 보상이나 치료를 해줄 생각입니다.또한 생계가 어려운 후유의증환자를 위해 현재 국회에 상정돼 있는 고엽제법개정안이 통과되면 생활조정수당을 지급할 계획입니다. ­국내 생존 유공자에 대한 처우도 중요하지만 보훈의 특성상 선열을 잘 모시는 일도 중요할 텐데요. ▲맞습니다.올해는 광복 50주년으로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는 일이 중요합니다.정부는 이를 위해 올광복절에는 아직까지 서훈을 받지 못한 1천여명의 독립유공자를 발굴,새로 포상하고 국외안장 선열 유해를 국내로 이장하는 봉환식을 대대적으로 펼칠 계획입니다.또 중국과 러시아에 흩어진 미확인 선열묘소에 대한 실태조사도 실시합니다.이와 함께 국외거주 독립유공자 후손 3백여명을 초청,발전된 우리나라의 모습을 보여줄 계획입니다.특히 이준열사가 순국한 네덜란드 헤이그시의 구드용호텔을 매입,기념관으로 개조하고 8월5일쯤 유럽한민족제전을 개최,유럽교포의 정신적 구심점으로 삼을 예정입니다. ○미확인 선열묘 조사 ­해외안장 애국선열 가운데 가장 관심사는 안중근의사의 유해가 안장된 곳을 찾는 일입니다.진척이 있습니까. ▲지난 77년부터 국제적십자사를 통해 안 의사 묘소를 찾아왔으며 최근 한중 수교이후 안 의사가 순국한 여순감옥자리를 찾아 수소문했지만 뚜렷한 진전이 아직 없습니다.정확한 묘소위치를 믿기 위해 중국과 일본의 관계자료를 모두 수집,분석하는 중입니다. ­그동안 해외에서 생활한 독립유공자후손들이 국내정착을 희망하는 경우도 있을 텐데. ▲중국과 러시아지역에는 독립유공자나 그 후손들이 많이 살고 있습니다.이들은 그동안 인도적 차원에서 친지등의 초청에 따라 일부 국내정착했지만 후손들 가운데 모국정착희망자가 많아 현재 이들에 대한 정착을 지원하고 있습니다.이들이 영주귀국을 희망하면 본인이나 가족 1명에 한해 3천만원의 정착금을 주고 있습니다.취업이나 대부지원도 있고 의료보호등도 실시하고 있습니다.현재 영주귀국한 중국거주 교포는 11가구 39명에 이릅니다. ◎미 「한국전 참전기념탑」/새달 27일 워싱턴서 제막/주요정책 심층보도… 국민과 정부를 잇는 기획/총든 병사 동상 19개… 참전 22국 각명새격/참전용사 등 50여만 참가 “축제 한마당” 오는 7월27일 미국 워싱턴 링컨기념관 앞 광장에서는 「한국전 참전기념탑」 제막식이 거행된다. 한국전 휴전일에 맞춰 갖게 되는 이 제막식에는 김영삼 대통령과 빌 클린턴 미국대통령을 포함해 한국전 참전 22개국 외교사절과 참전용사등이 참여,한바탕 축제가 열린다. 이들은 이날제막식에서 한국전이 「잊혀진 전쟁」이 아니라 「세계의 자유와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영원히 기억될 승리의 전쟁」이라고 자리매김을 하고 당시 참전용사의 희생정신을 기린다. 이 탑은 80년대초 한국전 참전용사의 명예를 높이고 미군전사자와 실종자를 추념하기 위해 미국재향군인회에 의해 처음 건립이 제안됐다. 미국의회는 재향군인회의 이같은 제의에 따라 지난 86년 대통령 직속기관으로 「미 한국전 참전 기념사업위원회」를 설치할 것을 의결,탑 건립사업이 시작됐다. 미국정부는 우선 한국전에 참전했던 알 데이비스 예비역해병대장을 위원장으로 선정하고 재원마련을 위한 기념주화 발행을 허용했다. 또 탑이 들어설 링컨기념관 앞 광장 주변 8천4백여평을 공원으로 지정했다. 재향군인회측은 이같은 정부결정에 따라 기념은화를 발행하는 한편 참전용사들로부터 성금을 모아 재원 1천7백만달러를 마련,92년 6월14일 당시 부시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기공식을 가졌다. 이 탑은 49m 높이의 화강암석벽을 V자형으로 땅위에 배열한 모습인데 승리의뜻을 담고 있다. 또 V자 안쪽에는 총을 들고 걸어가는 병사들의 동상이 19개 놓이며 탑 벽면에는 한국전 참전 22개국 이름이 새겨진다. 우리나라는 이번 제막식에 맞춰 벌어지는 나흘간의 행사에 모두 참가한다. 우선 전야제인 26일에 한국전의 의의를 살펴보는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하는데 이어 제막식 당일에는 케네디센터등에서 사물놀이·어린이 태권도시범등 다채로운 경축행사를 갖는다. 28일에는 워너극장에서 국악·현악4중주단 연주등 한국음악제를 열고 전통한복패션쇼도 펼친다.행사 마지막날인 29일에는 우리군 의장대와 미군의장대가 함께 의사당로 15번가에서 23번가까지 퍼레이드를 벌인다.
  • 구본무 회장 취임인사 초청 오늘 곤지암서… 16명 참가

    ◎전경련 회장단 10개월만에 골프회동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단을 비롯한 대그룹 총수들이 19일 낮 경기도 광주의 곤지암 골프장에서 친목을 도모하는 「골프회동」을 갖는다.전경련 회장단이 골프모임을 갖는 것은 지난 해 6월(은화삼 골프장)이후 10개월 만이다. 이번의 골프회동은 구본무 LG그룹회장의 취임인사를 겸한 초청으로 이뤄졌다.최종현 전경련회장과 최근 정계투신을 발표한 김석원 쌍용그룹 회장을 비롯,모두 16명이 참가한다.정오부터 가벼운 점심식사를 한 뒤 하오 1시 쯤부터 티업에 나설 예정이다. 나이를 「어느정도」 고려해 4팀으로 나눠 친목을 다진다.▲1조에 강신호 동아제약회장,강진구 삼성전자회장,양재봉 대신증권회장,이맹기 대한해운회장 ▲2조에 최종현 회장,김석원 쌍용그룹회장,구본무 LG그룹회장,조석래 효성그룹회장이 편성됐다. ▲3조에는 김각중 경방회장,이준용 대림그룹회장,변규칠 LG그룹부회장,성락정 한화그룹부회장 ▲4조에 박건배 해태그룹회장,박영일 대농그룹회장,황정현 전경련 상근부회장,이문호 LG회장실사장이다. 당초 이건희 삼성그룹회장도 참석할 예정이었으나,최근 「북경발언」의 파문에 따라,갑자기 불참을 통보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 광복·유엔50돌/기념주화 제작/8월에 3종

    광복 및 유엔창설 50주년을 맞아 오는 8월 한국은행이 3종류의 기념주화를 선보인다.이 주화는 일반화폐와 병용된다. 광복 50주년 기념주화는 1만원짜리(은화)와 5천원짜리(니켈화)의 2종이고,유엔 기념주화는 1천원짜리(백동화)하나다.1만원짜리는 30만개,5천원짜리는 70만개,1천원짜리는 1백만개이내에서 발행된다. 다음달 3일부터 13일까지 30개 예금은행의 본지점에서 예약을 받으며 1인당 한도는 종류별로 하나씩.
  • 신강위구르 성도 우루무치/허세욱(서역 문화기행:2)

    ◎동쪽 1백㎞ 천산중턱의 천지 장관/만년설 녹은 물 담겨… 설봉·수해와 함께 “한폭 그림”/시 한폭판에 호랑이모양 홍산 “우뚝”… 벼랑위엔 진요탑 남고 우루무치의 금석 청나라때 유명한 소설가였던 기윤(1724∼1805)이 1768년부터 1771년까지 우루무치에 유배되었을 때 쓴 「오로목재잡시」1백60편은 2백20여년전의 우루무치를 사생활처럼 볼 수 있었다. 「독차력록만장가 화수은화대대배. 무수홍군란초수, 유인습득봉황혜」 (오로목재잡시·유람) (삐걱 삐걱 달구지소리 거리를 누비고, 불빛 나무 은빛 꽃들,쌍쌍이 줄을 섰네. 빨간 치마들 몰려나와 왁자지껄한데, 구경꾼들은 그녀들 벗겨진 봉황신을 줍네) 정월 대보름에 불놀이하던 풍물을 그렸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우루무치엔 송아지나 노새들이 끄는 달구지나 손수레가 많았었다. 이보다 옛적인 당나라시대에는 우루무치를 윤대라 불렀다.지금 우루무치교외의 오랍박댐 근처를 말하는데 그때 변새시인이었던 음참(715∼770)이 754년부터 3년이나 안서절도사 판관으로 이곳에 주재했었다.그때에 쓴 윤대군사에는 우루무치 당시의 풍물 풍속이 생생하다. 「윤대풍물이, 지시고단우. 삼월무청초, 천가진백유. 번서문자별, 호속어음수. 수견류사북, 천서해일우」 (윤대의 풍물이 달랐다, 옛날 흉노의 땅이라서. 삼월에도 풀이 돋지 않고, 집집마다 하얀 느릅나무. 오랑캐 글씨라 글도 다르고, 오랑캐 말이라 소리도 달랐네. 사막 북녘을 망연히 보면, 하늘은 로부노오르 저편에) 1천2백년이 지났어도 별로 변함이 없다.어디를 가도 느릅나무요,거리마다 위구르 문자에 들리는 것은 낯선 언어들,다만 중화인민공화국이 건립된 뒤,비록 1954년 신강성을 「위구르족자치구」로 선포하고 소수민족의 풍습과 문화의 고유성을 보호한대지만 우루무치같은 대도시를 비롯,북로의 연도도시엔 한족들의 이주가 늘어 지금 한족대 소수민족의 인구비율은 거의 반반을 형성한 것이 크게 달라진 것이다. ○서왕모의 전설 간직 우루무치에서 시인묵객의 붓끝에 자주 오르던 명승으로는 천지와 홍산이 있었다.천지는 우루무치 동쪽 1백여㎞ 지점의 천산산맥에안긴 호면 해발 1천9백28m의 반월형 호수요,홍산은 우루무치시의 한복판에 선 해발 9백10m의 호랑이 형상을 한 적갈색의 바위산이었다. 천산산맥의 제2주봉인 해발 5천4백45m의 보고다(박격달),그 서북쪽 음지의 능선 아래로 설수의 모임이다.그 동남에 웅장한 만년설의 병풍을 두르고 그 품안에 길이 3.4㎞ 너비 1.5㎞의 호수와 호수에 누운 설봉의 그림자를 안았기로 그 천지의 절경은 백두산의 천지에,그 배경은 스위스의 몽블랑에 견줄만했다. 오죽해야 중국 최초의 허구적인 전기요,허구적인 여행기인 「목천자전」에서 주나라 목왕이 서역 선녀의 수령격인 서왕모를 만난 무대로 여기를 골랐던 것이다.그로부터 천지는 요지 용담 천경 신지등으로 미화되었다. 필자가 탄 버스가 부강현을 지나 두시간뒤에야 천산산맥으로 접어들었는데 그 첫번째 경관은 아무래도 해발1천5백m 높이서 만난 석문이었다.20∼30m 높이의 우람한 바위가 마치 두쪽 대문처럼 버티고 서 있었다.그 사이를 뚫고 굽이 굽이 산길을 오르면 파란 전나무의 진하디 진한 바람을 타고 하얀적설이 시야에 부딪는다.다시 가파른 비탈을 오르면서 기우뚱 보이는 시퍼런 호수,그게 「목천자전」에 서왕모가 발을 씻었다는 「서소천지」였다. 버스의 종점부터 필자는 4시간동안 준마 한필에 마부 한사람을 빌리곤,더덩실 안장에 가랑이를 얹고 천산의 가파른 등성이를 향해 고삐를 죄었다. 반달 모양의 천지,그 북쪽 제방을 거드름 피우며 건너가는데 늙은 느릅나무 한그루가 호수쪽으로 누운 채 버티고 있다.목책을 세워서 그 자빠진 나무를 보호했고,그 옆으로 「정해신침」,곧 「서유기」의 한장면을 표시하는 비를 세웠다.호수를 안정시키는 신침이란 뜻.듣건대 여기 산지 사람들은 그 느릅나무와 호수의 간격으로 호수의 저수량을 측정한다고 했다.그보다는 여기에도 서왕모의 전설이 서려 있었다.어느날 서왕모가 벌인 반도회잔치에 훼방을 부리는 도깨비가 있어 자기의 비녀를 뽑아 던졌더니 그 자리서 느릅나무가 돋았다는 비녀의 화신설이다. ○분지는 마치 솥바닥 천지에서 서쪽으로 3㎞쯤 올랐다.고개를 넘자 널찍한 분지,그 뒤로 팽이처럼 꼿꼿한등간산,등간산 꼭지에는 뾰족한 바위 세덩이가 창모양으로 서있다.이름하여 「정천삼석」.등간산 아래로 그 분지는 마치 솥바닥,그래서 서왕모가 밥을 짓던 솥이라는 전설이 있었는데 한때 군마를 사육하고 훈련시켰다던 곳이다. 등간산분지로부터 하산할 때 굽어보는 천지는 절경이었다.하얀 설봉에 파란 수해,거기에 저 아래로 시퍼런 호수,문득 천산의 높이와 천산의 주변을 잊고,천지가 작은 그림엽서로 보였다.청나라 역사학자요 시인이었던 홍량길(1746∼1809)이 1800년 유배길에 쓴 천산가의 한대목이 잘 말해 준다. 「지맥지차단, 천산사포천. 일월하처루, 총괘청송전」(후략) (지맥이 여기서 끊겼고 천산은 벌써 하늘을 안았으니,해와 달은 어디서 살까? 청송 가지끝에 가만 걸렸네) 천지 언저리엔 일찍이 팔대사가 있었다고 한다.그런데도 몽땅 폐허로 남았다.그중에도 천지 서북쪽 7백m 비탈에 남은 철와사가 그 유적만으로도 당시의 장관을 짐작케하는 제일사원이었다.원나라때 칭기즈칸이 유럽 정벌길에 목천자의 전설을 따라 천지를 오르고는 거기다도관을 짓토록 명령했다고.그러나 확실한 연혁은 아무래도 청나라 건륭연간,푸른 벽돌로 벽을 쌓고 쇠 기와로 지붕을 이었대서 「철와사」로 불린 것이다.학교 운동장을 방불케 널따란 폐허에 유적비만 동그마니 서 있었다. ○하사크족 파오 즐비 철와사 유적지 아래로 하사크족들의 파오가 즐비했다.몽골사람들의 그것과 다를 바 없었다.그러나 하얀 모전의 둥근 텐트형의 그 속은 난로에 식탁·침구정도의 간소한 가구지만 초원의 주막이라고 호객도 서슴지 않았다. 이토록 빼어난 경관을 지녔음에도 발길 닿는 곳마다 서왕모의 전설이 얽힌 곳.말하자면 천혜의 상품에다 전설의 포장을 덧붙여 나그네를 맞고 있었다. 우루무치로 돌아와서 곧장 홍산으로 차를 몰았다.고개를 치켜 들고 하늘로 치솟는 용이나 호랑이의 형국이다.천산에선 청색과 백색을 보았는데 홍산에선 검붉은 바위,그러니까 원색과 원색을 옮겨 다니는 강렬한 대비로 오싹한 느낌마저 없지 않았다. 홍산은 벼랑,벼랑위로 회청빛 9층탑이 섰다.거기서 우루무치 전경을 굽어 볼 수 있었는데 이름하여 「진요탑」.옛날 해마다 여름이면 범람하는 홍수로 우루무치가 물 바다였다고.그것을 요괴의 장난이라고 믿은 청나라 총독은 드디어 1788년 거기다 탑을 쌓고 요괴의 맥을 끊었던 것이다. 「진요탑」에서 정상으로 한참 오르면 「임칙서시비」가 새로운 초점으로 우뚝 섰다.청나라 아편전쟁때 아편을 금지하였던 항전파의 수령이요 시인이었던 임칙서(1785∼1850)를 기념하는 비다.거기에는 그가 영국 투항파에 쫓겨 신강으로 귀양살이하던 1845년12월4일,이곳 홍산에 올라 단숨에 썼던 「금루곡」,그 명작이 절록되어 있었다. 「임광가,취와홍산취. 풍경처,주린기」 (미친듯 노래하다가 홍산에 누웠노라! 바람 모진곳에 술잔조차 일렁인다.) 한 영웅의 강개가 뭉클하게 표출되었다.더구나 싸늘한 서역의 바위산에서
  • 가내공장에 불/일가 4명 숨져

    3일 상오 3시쯤 서울 양천구 신정5동 922 청수장여관 지하1층 박귀하씨(27)의 가내의류공장에서 불이 나 지하숙소에서 잠자던 박씨의 부인 정정란씨(28)와 딸 은화(1)·은지양(생후 2개월),박씨의 조카 김연숙씨(19·여)등 4명이 유독가스에 질식해 숨졌다. 이들과 함께 잠을 자다 공장 뒷문으로 빠져나와 화를 면한 박씨는 『숙소에서 잠을 자려는 순간 갑자기 「퍽」하는 소리가 들려 공장안으로 들어가려는데 불길이 치솟았다』고 말했다. 이날 불로 의류등을 제조하는 40여평규모의 지하공장과 숙소가 모두 불에 타 3천여만원(경찰추산)의 재산피해를 냈다.
  • 복식의 특색(백제를 다시본다:25)

    ◎스키타이계 영향… 깃관·장화 즐겨 착용/신분구별 공복제도 고이왕때 제정/왕은 자색도포에 청비단바지 입어 백제의 복식을 알 수 있는 자료는 그리 많지 않다.따라서 당시의 복식을 완벽하게 복원할 수도 없다.다만 남아있는 문헌기록과 고고학적 발굴 등에서 나타난 복식관련 유물이 더러 부합되어 복식의 대체적인 윤곽을 어느 정도 계층별로도 파악할 수 있는 길이 열리는 추세다. 이를테면 AD 501∼522년에 재위한 무령왕릉에서 발굴된 유물은 당시 왕과 왕비의 옷은 물론 장신구가 어떠했는가를 보여준다.특히 중국 양나라의 「직공도」는 당시 백제 사신의 옷을 그대로 보여준다.또 「삼국사기」기록은 고이왕 27년(260년)에 제정한 관복을 연상시키거니와 「주서」 「통전」 「북사」 등 중국측 기록은 서민들이 입었을 옷을 짐작케 하고 있다. 한국 고대문화의 원류가 북방문화,즉 스키타이계인 만큼 복식의 경우에도 스키타이계의 영향을 받았다.고대인들은 머리에 삼각형 모자(변형모)와 새깃털로 장식한 관(조우관)을 썼고 좁은 소매에 둔부선까지오는 왼쪽여밈의 저고리와 말을 탈 때의 편리성을 감안하여 좁은 바지를 입었다.상의 위에는 의례용으로 긴저고리를 입기도 했다.허리에는 가죽이나 헝겊으로 된 띠를 맸고 장화를 신었다.또 귀고리 목걸이 팔찌 반지 등의 장신구를 즐겨 착용했다. ○중국 고서화에 전해 백제와 고구려·신라 삼국이 이러한 기본 복식을 이어받고 있다는 사실은 4세기 중국 양나라의 「직공도」에서 잘 나타난다.4∼6세기에 그려진 고구려의 고분벽화도 이를 확인하는 자료라 할 수 있다. 백제 왕의 옷 매무새는 「구당서」 및 「신당서」동이전이 비교적 소상히 전한다.소매가 넓은 자색 두루마기(대수자포)에 청색 비단 바지(청금과)를 입고 가죽띠(소피대)를 맸다는 것이다.또 흑색 가죽신(오혁리)을 신고 김화가 장식된 검은비단관(오라관)을 썼다고 한다. 이 기록을 근거로 한 왕의 옷 매무새에다 무령왕릉 출토품으로 장식을 곁들여 보면 아주 찬란하다.자색옷에 꿰매어 붙인 사각형 혹은 오각형의 얇은 금판이 더욱 빛나고 허리에 두른 은제 과대는 위엄을 더했을 것이다.왕비는 물론 왕도 귀고리를 달았고 금동제 신발(금동리)을 신었다.과대는 숫돌 물고기 청동 등의 장식품을 길게 늘어뜨린 아주 화려한 허리띠다.과대는 고구려나 신라의 귀족들도 6세기까지 금·은으로 만들어 사용하였다.백제귀족들도 김과대를 사용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왕의 금동신발은 제사 등 특별한 경우의 의례용 만 아니고 평상 집무복에도 갖춘 신발인지도 모른다.금동신발은 보기와는 달리 딱딱한 신의 안쪽에 헝겊을 대면 충분히 신을 수 있기 때문이다.더욱이 밑바닥에는 뾰족한 스파이크 같은 것이 있어 신기에 불편하지 않다.현재도 일본 신사의 신관들이 금동신발과 같은 모양의 신을 나무로 만들어 신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금동신발·귀걸이도 백제의 공복제도는 고이왕 27년(260년)에 제정됐다.이것은 법흥왕 7년(520년)까지 기다려야 하는 신라 보다 무려 2백60년이나 앞선 것이다.백제의 공복은 관모의 장식,대 및 옷의 색깔로 품계를 구분했다. 관모에는 1∼6품에 한해 은화를 장식했다.그러나 그 아래 품계는 관제는 같았으나 은장식은 없었다.이 은화는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김화와 비슷한 종류일 것으로 추측되는데 새깃털(조)을 금속으로 모방하는 가운데 발전시킨 귀족적인 수식일 것이다.새깃털을 관에 장식하는 습속은 동북아시아 기마민족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난다.고구려인들이 즐겨 사용했던데 반해 백제에서는 조배나 제사 때만 사용했다. 띠(대)의 색깔은 1∼7품은 자색,8품은 검은색,9품은 붉은색,10품은 청색,11∼12품은 노란색,13∼16품은 백색을 각각 썼다.「구당서」에 따르면 관인의 옷색깔은 평민과 구별하기 위해 모두 비색(적색)이었다고 전한다. 그러나 「삼국사기」와 「통전」에는 6품까지는 자의,11품까지는 비의,16품까지는 청의이며 평인은 자의비의를 금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어느 쪽이 옳던 일반백성은 왕의 옷색깔인 자색과 관인의 색을 옷에 사용할 수 없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양나라의 「직공도」에 나타난 백제의 사신은 아주 화려한 차림새였다.짙은 연두색 장유에 고동색 선을 수구와 옷깃 섶 밑단에 둘렀으며 짙은 연두색 띠를 했다.분홍색 넓은 바지부리에는 주황색 선을 대었고 검은색 장화를 신었다.관은 잘 보이지 않으나 은화를 장식한 관을 끈으로 매어 턱 밑에서 고정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지난해 부여 능산리에서 발굴된 금동용봉봉래산향로에 새겨진 신선과 5인의 악사는 백제의 복식을 밝혀줄 또 하나의 결정적인 자료로 부상했다. 금동용봉봉래산향로에는 5인의 악사가 생생한 모습으로 부조되어 있다.이들은 관을 쓰지 않고 머리를 길게 땋아서 조선시대 내인의 새앙내리 접듯이 몇 번 접은뒤 댕기로 묶어서 오른편 귀쪽에 붙였다.이 모습은 마치 일본의 아좌태자 양쪽에 서있는 왕자들의 미즈라를 연상시킨다. 이같은 악사의 모습은 소매넓은 자색유와 치마(군)를 입고 장보관(장포관)을 썼다는 「삼국사기」의 기록과는 차이가 있다.또 신선으로 보이는 11개의 인물상도 앞으로의 중요한 연구과제다. ○서민 다·적의 못입어 백제시대의 여자옷에 관한 기록은 거의 없으나 「수서 동이전」은 백제부인은 화장을 하지 않고 머리는 땋아서 늘였는데 출가 전에는 한줄,출가 후에는 2줄로 땋아 머리위에 서렸다고 전한다.여인들은 또 무령왕릉 출토품으로 미루어 볼 때 귀고리 목걸이 팔찌 반지 등 아름다운 장식품을 사용했을 것이다. 여왕은 기본복인 치마 저고리 위에 소매 넓은 포를 입고 띠를 하였다.머리에는 김화로 장식한 관을 썼고 금귀고리와 금·은 팔찌,금·옥·호박·유리구슬로 된 목걸이를 달았다.옷에는 왕과 같이 금판을 꿰매어 붙였다. 무령왕릉 출토품에서 확인된 백제인의 금·은 세공술은 같은 시기 어느나라보다 뛰어나다.이는 곧 백제 의상의 수준 또한 매우 높은 것을 의미한다.장신구는 아름다움의 극치를 이루나 옷은 투박한 경우는 있을 수 없는 것이다.한나라의 복식문화는 문화전반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백제의 복식은 당대 백제의 금·은 세공술의 위치에 걸맞는 최고의 수준이었을 것임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인물상의 두발/무령왕릉 동자상도 「우올림머리」/「주악상」과 같아… 특정계층 두발형태 인듯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유물 가운데는 유리로 만든 한쌍의 동자상이 있다.하나는 반파되었지만 하나는 완전한 모습으로 전한다.높이 2.8㎝인 이 동자상의 허리부분에는 허리에 구멍이 뚫려 줄로 달아매놓았던 것으로 추측된다.이 유물에 대해서는 목걸이 같은 장식물로 쓰여지지 않았겠느냐는 의견과 종교적인 의미를 가졌다는 두가지 설이 나와 있다. 복식사학자들은 대체로 불교관련설,구체적으로 이 동자상이 보살이라는 설에는 회의적이다.왜냐하면 이 동자상이 완벽한 백제옷을 입고 있기 때문이다.보살을 당시의 바지·저고리를 입고 있는 것으로 형상화하기는 어렵지 않았겠느냐는 것이다. 눈길을 끄는 것은 이 동자상의 머리부분이다.얼핏 보면 동자상은 머리카락이 없는 것 같다.보살로 해석되는 이유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그러나 자세히 보면 머리 오른쪽에 돌출된 부분이 보인다.머리 왼쪽에서는 보이지 않으므로 귀는 아닌 것 같다. 그런데 지난해 부여 능산리에서 발굴된 금동용봉봉래산향로의 5인 주악상도 얼핏 삭발한 것처럼 보인다.그러나 머리 오른쪽에 돌출된 부분이 분명히 나타나 있다.5명의 악사에게서 모두 나타나는이 부분은 동자상의 경우보다 훨씬 뚜렷하다.그래서 동자상이나 주악상의 머리모양은 아마도 백제 당시 어떤 계층의 머리형태였을 가능성이 크다는 견해가 제시되고 있다.이는 향로가 백제에서 만들어졌다는 또다른 확실한 증거가 되기도 한다. 한편 향로에 새겨진 주악상의 주인공들은 성년남자임이 눈으로도 확인이 된다.백제남자의 경우도 미성년과 성년,혹은 기혼과 미혼의 머리모양이 달랐을 것이다.그런데 주악상과 동자상의 머리모양이 같다는 점을 고려하면 동자상이라고 불리는 유리조각품의 주인공은 동자가 아닌 성인남자일 가능성도 배제되지 않는다.
  • 1910년 남북한 총인구1,331만명/통계로본 구한말 경제·사회상

    ◎60명이던 인구밀도 작년 4백44명/일인이 판검사 74%·경찰 40% 장악/외국인수 184,237명… 93년도의 2.7배/쌀 1가마 현재돈 4만6천원·쇠고기 1근 699원/서울 수도보급률 18%… 전화가입자 6,448명 오는 30일은 갑오경장이 일어난 지 1백주년이 되는 날이다.이때를 기점으로 근대적인 문물제도가 본격도입되면서 조선왕조의 봉건적인 제도는 일대변혁을 맞는다.국가통계도 의정부에 기록국이 설치되면서 근대적 의미의 통계가 시작됐다. 통계청은 28일 이날을 앞두고 조선총독부 통계연감 등 당시의 각종 통계자료를 종합한 「개화기의 경제·사회상」이라는 책자를 펴냈다.변혁의 회오리바람이 거세게 몰아치던 한세기 전 우리 사회의 모습을 알아본다. ▷인구◁ 한일합방이 되던 해인 1910년 남북한을 합친 전국인구는 2백89만4천7백77호구에 1천3백31만3천여명.올해 남북한의 19%,남한의 30%수준이다.그러나 인구밀도는 60명(93년 남한 4백44명)수준으로 지난해 세계평균 41명보다 높아 당시에도 인구가 조밀했다.경북이 1백57만7천명으로 가장 많았다. ○외국인 90%가 일인 현재 남한인구의 4분의 1이 몰려 있는 서울은 당시 27만8천9백58명으로 전체의 2.6%에 불과,그동안의 인구집중추세를 여실히 알려준다.그동안 38배가 늘었다.당시 서울의 가옥은 초가집이 주종으로 기와집과 반기와집은 30%정도였다. 전체호구수의 84.1%가 농업에 종사했고 상업 6%,광공업 0.8%,날품팔이 0.2%였다. 생산활동을 하지 않는 양반과 유생은 2.5%였다.양반이 가장 많은 곳은 충남으로 전체호구수의 10.3%가 양반이었다.「충청도양반」이 헛말이 아닌 셈이다. 당시 외국인수는 18만4천2백37명으로 93년의 6만6천6백88명보다 2.7배나 많다.90%가 넘는 17만1천5백43명이 일본인으로 한반도쟁탈전에서 승리한 일본인들이 떼지어 밀려왔다.창기와 작부도 4천여명이나 됐다. 식수체계의 미비와 의료시설의 낙후로 수인성전염병에 의한 사망이 많아 1909년에는 인구 10만명당 12·2명이 콜레라에 감염됐고 치사율은 79.2%나 됐다.지금은 거의 사라진 천연두도 기승을 부려 1910년에는 4백45명이 이 병으로 숨졌으며 56%가 10세미만의 어린이였다.특히 이 해에는 발육 및 영양부족으로 죽은 어린이가 2천81명이나 됐다. ▷산업◁ 1909년의 농가당 경지면적은 1.03㏊로 지난해의 1.29㏊와 큰 차이가 없다.논은 전남이,밭은 평북이 가장 넓었고 전국 논밭의 43%가 관청과 향교 등에 소속돼 면세혜택을 받았다.쌀생산량은 7백45만8천섬으로 지난해의 23%수준.반면 보리·조·수수 등은 지금보다 수확량이 많아 잡곡이 주식이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 1910년의 가축수는 소와 돼지가 각각 현재의 25%와 10%수준인 62만8천마리와 57만6천마리였다.주요교통수단으로 이용되던 말은 3만3천마리로 지금의 6배다. 개항과 함께 근대적 형태의 공장들도 들어섰다.1910년의 공장수는 전국에 1백51개,종업원은 8천4백77명이다.한 공장에 56명이 근무한 셈이며 공장당 건평은 현재의 33%인 1백62평이다.정미·인쇄·방직·철공장이 주종이고 전국 공장의 38%가 몰린 경기도가 전국생산량의 58%를 차지했다. 상거래는 5일장에서 주로 이루어졌다.시장수도 1908년 8백46개에서 3년 뒤 1천84개로 늘었다.농수축산물이 60%,직물이 21.7%로 거래품목의 대부분이었다. 1910년의 개인사업자는 14만여명으로 한국인 83·7%,일본인 15%였다.한국인은 음식점과 여인숙 등을 주로 했으며 일본인은 총포상과 화약상 및 고철상 등 13개 업종을 독점했다. ▷수도·철도·통신◁ 1910년까지 부산과 경성 등 4곳에 상수도시설이 갖춰지면서 1만6천여가구에 식수가 공급됐다.그러나 경성의 수도보급률은 18%에 그쳤다. ○전화 한통화에 2전 1899년 인천∼노량진 간 경인선을 시작으로 깔리기 시작한 철도망은 10년 뒤에는 1천86㎞(현재의 35%수준)로 늘어났다.하루평균 5천7백30여명의 여객을 수송했고,2천5백여t의 화물을 운송했다. 전화가입자는 1902년 3백10명에서 1910년에는 6천4백48명으로 21배가 됐다.경기(46.8%)와 경남(15.6%)이 전체의 60%를 넘었다.1구역의 전화요금은 한 통화에 2전으로 달걀 1개(1.5전)보다 비쌌다.요즘 달걀값과 비교하면 당시의 전화요금이 지금보다 비싼 셈이다. 교육·의료 보통학교도 있었지만 여전히 서당이 교육기관의 중심이었다.1910년 전국의 서당수는 1만6천5백40개로 한 서당에서 평균 9명이 배웠다.보통학교는 1백73개교로 학급당 학생은 34·3명이었다.여학생은 6%에 불과했다.결석률은 1911년의 경우 11·6%,중퇴율도 30% 가까웠으며 만학도가 많아 학생들의 연령층도 다양했다. 병원은 1백25개가 있었지만 한국인 소유는 고작 14개였다.그러나 1천7백38명의 의사 가운데 한국인이 1천3백44명으로 77%였다.의사 1인당 인구는 현재의 10분의 1수준인 7천6백60명이었다. ○목수 일당 쌀한말값 ▷물가·임금◁ 1898년 서울시장의 1등미 1섬의 가격은 8원(한가마 4원)이었다.닭 한마리는 0.2원으로 쇠고기 한근(0.12원)보다 비쌌다.요즘 화폐로 환산하면 쌀 한섬은 4만6천5백원,쇠고기 한근은 6백99원정도로 추정된다.당시 목수의 평균일당은 0.82원으로 쌀 1말정도를 살 수 있었다.요즘의 일당으로 구입할 수 있는 2.5말과 비교하면 당시 임금이 박했음을 알 수 있다.한국인 노동자의 임금은 일본인의 절반에 불과했다.공무원봉급은 격차가 더 심해 일본인이 2∼3배 많았다. ▷공공행정·치안◁ 1910년의 경찰은 5천8백81명으로 40%가 일본인이었다.특히 경찰의 고위직 대부분과 판·검사의 74%가 일본인으로 치안·사법계통을 일본인들이 거의 장악했다.다만 변호사의 경우는 한국인이 51명으로 일본인보다 20명정도 많았다. 1910년의 인구 10만명당 강도발생건수는 92년의 4배인 23.9건으로 개화기의 뒤숭숭한 세태를 반영했다. ○수입이 수출의 2배 ▷무역·금융◁ 1876년 개항이후 대외교역이 본격화되면서 교역량은 1910년까지 연평균 17%씩 늘었다.1910년의 수출은 1만9천9백원,수입은 3만9천7백원으로 수입이 2배나 됐다.엄청난 무역적자인 셈이다.일본과의 교역이 수출의 74%,수입의 60%를 차지했다.수출품은 농축산물·인삼·철광,수입품은 석탄·옥양목 등이 주종이었다. 화폐발행고는 1910년 2천16만4천원으로 8년 전보다 54.3% 증가했다. 은행예금보다 대출규모가 컸으며 금리도 1909년의 경우 예금 5∼6%,대출 11∼13%로 대출금리가 월등히 높았다. 1894년 당시 엔화환율은 1엔이 우리 돈 은화 5냥(50전) 수준이었다. ◎군예산이 전체의 25%로 최고/명성왕후 장례비 쌀4만섬값/재무예산 31% 대일채무상환/19세기말 국가예산 쓰임새 1899년의 우리나라 국고는 당시 화폐로 대략 6백40만원정도.예산편성은 지금의 재무부격인 도지부(탁지부)에서 했다.예산규모는 군부(국방부)·내부(내무부)·도지부·궁내부(청와대) 순으로 요즈음과 비슷하다.지세·가호세·관세 등으로 조달된 세금은 어디에 쓰여졌을까. 궁내부의 예산은 6만5천원.대부분 황제를 모시고 궁정을 유지하는 데 쓰였지만 제사비용도 1만5천원으로 23%나 됐다.1896년과 그 이듬해에는 일본인이 시해한 명성황후의 장례비로 농상공부 예산의 2배 가까운 35만5천원을 썼다.지금으로 치면 1백여억원규모며 당시 쌀 4만4천3백섬을 살 수 있는 돈이다. 1백30만원의 내부 예산 대부분은 지방의 행정기관과 경찰·감옥 유지에 쓰였다.서울시격인 한성부 예산이 내부 전체의 0.5%에 불과한 것이 이채롭다.창궐하던 천연두예방을 위해 종두접종을 의무화해 3천원의 예산을 책정했다. 탁지부 예산은 일본 차관금 상환여부에 따라 해마다 큰 차이가 났다.1899년의 예산은 2백여만원으로이중 대일채무상환용이 31%를 차지,가장 많았다.주로 정부의 채무를 갚는 데 예산이 집행됐다.각 도에서 징수한 세금을 서울로 운송하는 데 든 돈도 10%정도인 22만원이나 됐다.세금으로 거둔 1원짜리 동전의 무게가 1.8∼2㎏이나 돼 수송비용이 많이 들었다. 군부의 예산은 전체의 25%정도로 지금처럼 가장 비중이 높았다.1899년의 예산 1백43만8천여원의 90%이상이 군대유지비에 쓰여졌다.이중 대부분이 수도군의 유지비로 쓰였다.법부(법무부)의 예산이 3만8천9백여원으로 가장 적었다.지금과 달리 교도소 등 감옥이 법부가 아닌 내부 소속이었기 때문이다.
  • 모녀전 여는 서양화가 이경순·조기주씨(인터뷰)

    ◎“표현양식 달라도 작품 세계는 통하죠”/「창」 주제로 구상·추상 연결고리 모색 여성으로는 유일하게 국전 서양화 부문 추천작가와 초대작가를 지낸 원로 서양화가 이경순씨(67)가 딸 조기주씨(39·단국대 미대 교수)와 함께 24일­6월8일까지 서울 강남 갤러리63에서 모녀전을 열고 있다. 이대 서양화과 동문이기도한 두사람은 89년부터 서울 도곡동 한 작업실에서 함께 작품활동을 해오면서 주변의 부러운 시선을 받아왔다.이번 전시회는 딸이 그림을 시작한 이래 줄곧 모녀전을 소망하던 어머니의 뜻에 따라 마련된 것으로 구상과 추상으로 표현하는 양식은 다르나 자연을 보는 관점과 본질은 일치함을 보여주는 40점이 출품됐다. 『딸이 어릴땐 데생과 수채화등을 직접 가르쳤고 대학에서는 교수와 제자의 입장이 되어 서양화실기를 가르치기도 했습니다.그런데 이제 같은길을 걷는 동료 입장이 되어 2인전을 열게되니 가슴 뿌듯함을 느낍니다.』­어머니 이씨는 솔직이 구상작가의 입장에서 처음엔 딸의 화풍을 이해하기가 힘들었다고 밝힌다.그러나 같은화실에서 함께 작품을 하고 대화를 하며 작품을 대하다보니 자신과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묘사하는 딸의 작품세계에서 자신과 똑같은 진실성을 추구하는 것을 볼줄 아는 눈이 열리더라고 덧붙인다. 이것은 딸인 조씨도 마찬가지.『아주 젊어서는 구상회화인 어머니의 작품에 답답함을 느꼈어요.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점점 어머니의 정감있는 작품세계를 이해하게 되더라』며 두사람이 화풍의 연결고리를 찾느라 주제를 「창」으로 정해 작품전을 열게 됐다고 말한다. 앞으로 1∼2년쯤후엔 캐나다 등에서 해외전도 함께 할 계획이라는 모녀는 현재 국민학교 3학년으로 화가를 지망하는 조씨의 딸이 자라면 3대에 걸친 모녀전도 재미있을 것같다며 활짝 웃는다.
  • 인삼 연초연/국내 최대 「자원식물원」 건립

    ◎대덕단지안에 4만9천평… 98년 완공 목표/희귀·약용식물 등 1천5백종 재배 멸종위기에 있는 희귀식물을 보전하고 각종 질환치료에 효과가 있는 약용식물을 증식,천연 의약품을 개발하기 위해 국내 최대 규모의 자원식물원이 조성된다. 대덕연구단지에 있는 한국인삼연초연구원(원장 박명규)은 연구원내의 야산과 밭 4만9천평을 활용,국내에 자생하는 1천5백여종의 자원식물을 키우는 자원식물원을 지을 계획이다. 오는 98년에 완공 예정인 식물원은 특성에 따라 생약초원,산채원,버섯류 등 포자로 번식하는 식물인 은화식물원,향료식물원,희귀·특산식물원 등 5개의 소식물원으로 나뉘어 조성된다. 원료연구부의 이종철 식물자원연구실장은 『조성이 끝나면 천연 약제를 첨가해 인체에 덜 해롭게 만든 약용담배와 홍삼의 효능을 높이는 생약제 개발에 관한 연구를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식물학자와 한의학자들의 연구활동과 자원식물 학습장으로도 활용된다.
  • 젊은화가 키우는 화랑 늘어난다

    ◎「가나」「예원」 화랑 등 30대작가 전속시켜 「재목감 키우기」에 눈돌려/「화가독점체제」서 탈피… 화업 뒷바라지/생활비 지원,해외무대에 소개하기도 30대 젊은 작가들을 전속, 작품활동을 지원하는 화랑들이 최근 부쩍 늘고있다.지난80년대 중반이후 일반화되기 시작한 화랑의 작가전속제가 그동안 상품성을 확보하고있는 원로·중진작가에 치우쳤던데서 벗어나 장래성이 있는 젊은 작가쪽으로 방향을 돌리고 있는것. 이는 영세했던 자본구조속에서 이른바 「농익은 과일만을 따먹던」 상업화랑들이 「재목감을 키우자」는 인식에 새롭게 눈을 뜬데서 비롯된 때문.이에따라 재능과 의욕만으로 작업에 몰두하는데 현실적 어려움을 겪어온 젊은 작가들이 큰 힘을 얻고있다. 이같은 젊은 작가 지원및 양성에 두각을 나타내는 화랑은 박영덕화랑과 가나화랑.올해초 개관한 박영덕화랑은 조택호(37)황호섭(39)문인수(39)한명호(37)문범(39)하용석(36)등 6명을 전속하고 있으며 화랑가의 중량급 가나화랑이 현혜성(39)오치균(38)한진섭(38)전병현(37)안종대(37)홍순명(37)등 역시 6명을 전속하고있다.또 최근 국제교류에 활발한 국제화랑이 김근중(39)조덕현(36)우순옥(35)홍승혜(34)등 4명을,박여숙화랑이 유종호(37)남기호(33)등 2명을 전속하고있다.그밖에 예원화랑이 사석원(34),샘터화랑이 최석운(35),예화랑이 유승돈(33)과 전속관계를 맺고있다.그리고 조선화랑이 육근병(36)과 준전속관계로 지난1년간 창작지원을 했고 상문당화랑이 김선두(36)조환(36)을 지원하고 있다. 이들 젊은 작가들과 화랑간의 전속관계는 물론 지금까지의 미술시장 관행에서 크게 벗어나는것은 아니다.그러나 「작가독점 체제하의 이익분배」에 주목적이 있던 과거의 전속제와는 성격을 다소 달리해 「선지원 후이익」이라는 융통성을 지니고 있다.따라서 양자간의 관계는 「화랑독점」체제보다는 「작가는 작업에 전념하고 화랑은 꾸준히 뒷바라지」한다는 식으로 나아가고있다. 전속조건도 화랑에 따라서 다양해 박영덕화랑은 초대전개최를 필수조건으로 삼고 있으며 향후5년간의관리·지원을 약속하고있다.가나화랑은 매달 일정액의 생활비와제작비를 지원하고 국제화랑은 작가의 전시스케줄및 작품가격과 판매를 관리하면서 해외무대 소개에 주안하고있다. 화랑전속 작가중에는 어려운 여건속에서 해외로 진출하거나 체류하고있는 작가도 있어 우수한 작가양성에 화랑의 역할이 특히 강조되기도 한다.그런 점에서 최근 박영덕화랑에 전속된 하용석이 오는9월부터 뉴욕현대미술연구소의 1년연수프로그램에 발탁된 이후 이 화랑의 지원을 받게된 점은 환영할만한 일이다. 젊은 작가 지원에 앞장서고있는 박영덕화랑대표 박영덕씨는 『공급과 수요의 적절한 균형아래 미술시장은 활성화하며 미술문화가 발전합니다.그런 점에서 미술품의 공급원인 작가에 대한 관심과 후원은 당장의 미술품매매보다 중요합니다.화랑의 젊은 작가 양성은 그래서 오늘 우리 미술계가 관심을 가져야할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말하고 있다.
  • 약초 따기와 건강생활/장준근 산야초연구소장(굄돌)

    산야에 흔한 인동덩굴에서 희고 노란 꽃이 계속 피고 지는 계절이다. 우리집 마당에서도 8년전에 옮겨 심은 인동덩굴이 거창하게 자라나 숱한 꽃을 피운다.아침마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노란 꽃을 따곤 한다.해마다 찾아오는 왕벌들은 흰 꽃만 넘나든다. 인동꽃은 흰 꽃이 벌어지면 이튿날엔 노랗게 변한다.이것을 따서 차로 우려 마실 경우 「김은화다」라 한다.이 꽃차를 수시로 마시면 감기·해열·해독·관절통·편도염·구내염·요통… 등에 효험이 있다는 경험의학의 임상보고가 있다.간염과 암에도 탁효하다고 한다. 이런 질병 치유에 앞서서 그 그윽한 인동꽃차의 맛과 향기는 기막히게 뛰어나 신선스럽다.또 소주에 담가 숙성시켜 조석으로 한잔씩 마시노라면 식욕증진,위장보호,피로회복에 좋은 점을 필자는 경험하고 있다.그래서 아침마다 열심히 인동꽃을 따는 것이다. 동네 이웃들도 짙은 인동꽃 향내를 맡기위해 자주 찾아오곤 한다.필자는 이 인동꽃을 따내면서 코로 흡수되는 그 향내가 건강에 도움이 되는 것을 느낀다.꽃 향기의 흡입이 건강에얼마나 유익한지에 대해서는 과학적으로 판명되진 않았지만 여하튼 생리기능을 활성화시킨다는 것은 경험상 틀림없다. 1시간이상 인동꽃을 정성스레 따노라면 다리·허리·목·손가락까지… 온 몸체를 몽땅 움직이지 않으면 안된다.요새 하루 일만보 걷기로 운동력을 키워야 건강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얘기를 자주 듣는다. 그러나 우리의 인체는 구조적으로 구석구석 모두 움직여야 하는 종합적인 기구로 짜여져 있다.발만 움직였다고 건강스러울 수가 없다.신체의 구조는 몽땅 활력적으로 꿈틀거려야 하는 것이다. 필자의 주장은 인동덩굴을 궂이 키워보라는 것이 아니라,수많은 유익한 산야초에 대한 관심을 갖노라면 운동·정신·영양에의 건강에 지대한 도움이 되리라는 것이다. 지구상에서 자라는 숱한 풀들은 모두 영양적이면서 약초의 구실을 한다.우리는 자연이 베풀어준 은혜에 접근할 때에 건강하고 활달하게 살수 있다고 확신한다.
  • 대전무박 기념주화 새달16일부터 시판

    대전엑스포 조직위원회는 엑스포 개최기금 조성을 위해 발행하는 기념주화를 6월16일부터 25일까지 열흘간 엑스포 공인은행인 조흥은행등 전국 32개 금융기관 지점포에서 예약접수 및 선착순 판매한다고 28일 밝혔다. 금·은·적동화 등 6개 종류로 98만개가 발행되는 엑스포 기념주화는 6,5,4종 세트와 은화의 경우 예약 및 추첨에 의해 판매되고 적동화 50만개는 금융기관 창구에서 선착순으로 현물판매된다.
  • 매체·문화·미술의 이색만남/서울 코아트 갤러리

    ◎젊은화가 7인의 「유혹…」전 열어/노래방·비디오 활용,미술의 사회역할 규명 미술과 삶,미술문화의 시회적 역할과 기능을 규명하고자 하는 젊은 작가들의 이색전이 14일 서울 코아트갤러리(517­6398)에서 개막됐다.「매체 문화 미술­유혹된 욕망」전이란 이름의 이 전시는 「화단의 문제작가」라 이를수 있는 7명(김명혜 강민권 석영기 조경숙 윤동천 오경화 박불똥)이 참여한 가운데 27일까지 공개된다. 전시장을 들어서면 음침한 분위기의 복도끝에 야한 커튼이 드리워진 조그마한 방이 있고 그곳에서는 에로비디오가 방영되고있다.비디오아티스트 오경화씨의 비디오 설치작품「비밀을 위한 구상­에로스」이다.흐릿한 조명속에 이 방을 찾는 관람객들은 남몰래 음란비디오를 구경하는 기분을 맛보게 된다.작가는 이같은 음란비디오방의 재현을 통해 이 시대 문화현실이 유혹하는 지점에서 창작을 이야기하고 실천하고있는 것이다. 여류작가 김명혜씨의 설치작품「중산층의 증명사진」은 중형차 쏘나타의 사진을 실물크기로 확대해놓고 관객들이 차안에 들어가 있는 분위기를 꾸미기 위해 그앞에 기념촬영용 카메라를 세워 놓았다.욕망에 병들어 가고있는 우리의 중산층문화를 빗대어 표현한 작품이다. 또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고대의 모형사랑방 형태속에 노래방에서 즐기는 청춘남녀를 컴퓨터로 합성한 강민권씨의 「사랑방­노래방」이 있고 광고속에 드러난 야한 육체와 가사노동에 지쳐 시들어버린 신체부위를 대비시킨 조경숙씨의 작품「관리되는 육체들」등의 작품이 있다. 이 젊은 작가들은 바로 오늘의 미술이 어디로 가야하는지 깊이있게 고민하는 모습을 전시장 구석구석에서 느끼게 하고있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미술평론가 박신의씨는 『오늘날 미술에서 매체활용의 문제가 어떻게 문화적 맥락과 연관이 되며 또 그것은 어떤 개념의 미술을 전망하는지를 가늠하기위해 전시를 마련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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