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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현희씨·여금주양이 말하는 남과 북/서울신문 첫 합동인터뷰

    ◎“진한 화장 짧은 머리… 평양패션 서양화”/“KBS듣고 남쪽 잘 산다는 것 알았어요”/“외화벌이 남자와 결혼하는게 여성의 꿈”/김/“요즘도 북한의 가족 찾는 꿈 꿔요”/여/“영어에 깜깜… 학교공부 힘들어요” 『현희언니,정말 만나고 싶었어요』 『나도 금주양이 보고 싶었어요』 15일 한국 프레스센터 20층 동백실에서 첫 대면한 김현희씨(34)와 여금주양(21)은 한동안 포옹을 풀지 않았다. 김현희.올해로 서울생활 9년째를 맞는 그가 북한탈출 귀순자를 만난 것은 김만철씨에 이어 두번째.그러나 여성 귀순자를 만나기는 여양이 처음이었다. 검은 블라우스 위에 베이지색 재킷차림의 김씨와 체크무니 재킷차림의 여양은 흡사 친자매같았다.지난해 4월30일 사회안전부 대위출신인 아버지 여만철씨(49)등 일가족 5명과 함께 동남아를 거쳐 귀순한 여양은 서울에 오기 전까지 김씨가 누구인지를 몰랐다고 한다.그도 그럴 것이 북한에선 KAL 858기 폭파사건에 대해 일절 입을 다물고 있기 때문이다.여양은 서울에 온 뒤 비디오 「마유미」와 그의 고백록 「이제 여자가 되고 싶어요」를 읽고 나서 김씨의 아픔을 알게 됐고 언니가 가여워 울었다고 한다. 『화면을 통해 봤을 때와 달리 가까이서 보니 정말 언닌 젊고 예쁘네요.언니가 똑똑하고 예쁘지 않았으면 공작원으로 뽑히지도 않았을 텐데…예쁘게 태어난게 「원수」인 것 같아요.아마 언니가 남쪽사람으로 북한에서 그런 일을 저질렀다면 벌써 죽었을 거에요』 ○93년 평양 많이 변해 김씨와 여양의 연령차는 13살.그러나 나이차보다 더 큰 간극은 두 사람 사이에 놓인 시차 7년이었다.김씨가 마지막으로 평양을 떠난 87년까지 북한여성들의 관심사는 오로지 먹고 사는 일이 전부였다.그러나 여양이 전하는 그 뒤의 북한,특히 여성사회엔 미미하나마 나름대로의 변화가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88년 처음 평양에 갔을 때는 그곳 여자들이나 내가 사는 함흥여자들이나 별로 다른게 없었어요.그러나 93년 다시 평양에 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완전히 달라진 여자들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머리모양이 짧아졌을뿐 아니라 브래지어 바람에 속이 훤히 드려다보이는 옷차림으로 거리를 활보하더라니깐요.거기다 화장도 서양식으로 진하게 하는 등 그야말로 천지가 개벽한 느낌을 받았어요』 여양이 전하는 북한의 이성교제 역시 김씨의 재북시절과는 많이 달라진듯 했다.김씨가 공작원 교육을 받던 87년엔 남녀가 대동강변을 손을 잡은채 돌아다니는게 「첨단 데이트」에 속했다는 것.그러나 요즘엔 남녀가 껴안은채 밀어를 나누는 모습을 대동강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고 여양은 말했다. 밝고 활달한 여양의 이야기에 귀기울이던 김씨는 여양이 가족과 함께 자유를 찾은 사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고 말했다.『북한이 어떤 사회인데,일가족이 고스란히 탈출할 수 있었다니 정말 천행에요』.김씨는 여양 일가의 귀순보도를 대하면서 함남 요덕 「2951정치범수용소」에 끌려간 가족생각에 한없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이젠 가족생각도 희미해졌다』고 말한 김씨는 『가끔씩 여동생 현옥이와 남동생 현수가 나타나 큰 누나 때문에 식구들이 고생을 하게 됐다고 말하거나 아니면 내가 스웨터 등 보따리 꾸려들고 우리가족을 찾아가는 꿈을 꾸기도 한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김씨가 지난 91년 3월 여의도침례교회서 세례를 받은후 신앙생활을 계속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자신에 의해 목숨을 잃은 무고한 KAL858기 희생자들에 대한 속죄와 아울러 가족들의 무사함을 하느님께 빌기 위해서라고 한다. 올해 중앙대학교 유아교육과에 입학한 여양이 한국에 와서 놀란 것은 그가 북한에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판자집과 거지 천국」에 판자집과 거지 대신 하늘을 찌를듯이 솟은 빌딩숲과 흘러 넘치는 경제적 풍요였다고 한다.여양은 북한에서 KBS 사회교육방송등을 통해 남한이 잘 산다는 사실을 어렴풋이나마 알았지만 이렇게 잘사는 줄은 몰랐다고 한다.북한에선 라디오를 구입하면 의무적으로 안전부에 등록하도록 돼있고 안전부는 채널을 납땜,남한방송청취를 원천봉쇄한다고 한다.그러나 일단 등록만 하고 나면 추후검사를 하지 않기 때문에 상당수의 주민들이 몰래 고정납땜을 뜯어내고 남한방송을 듣고 있다는 것.특히 친한 학생들끼리는 남한방송에서 들은 내용을 서로 주고 받기도 하는데 그 가운데는 『남조선에선 거리 청소부도 집에 전화를 매놓고 산다』는 얘기도 들어 있다고 한다.놀랍게도 여양은 친척이 중국에 있는 남학생으로부터 6·25가 남침이었다는 얘기를 들은 적도 있다고 밝혔다. 북한당국이 주민들에게 북조선이 「지상의 낙원」임을 끝없이 세뇌하고 있지만 정작 북한주민들은 남한이 북한보다 훨씬 잘산다는 사실을 대부분 알고 있다고 여양은 말했다.북한주민들은 주로 「귀국자」나 중국연변의 조선족,러시아벌목공들로부터 바깥 세상정보 특히 남한정보를 듣고 있는데 러시아벌목장에서 일하다 귀국하는 벌목공의 경우 품질이 좋은 남한치약을 압수당하지 않기 위해 「MadeinKorea」란 글자를 긁어낸채 갖고 들어온다고 한다.여양은 그래도 평양에서 만든 치약은 품질이 괜찮은 편이지만 지방산 치약은 흰 치분을 물에 반죽해놓은 정도여서 대부분의 가정에선 소금으로 이를 닦고 평양치약은 손님 접대용으로 모셔놓는다고 말했다. ○6·25는 남침 들었다 북한청소년들의 꿈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여양은 『북한 청소년들은 꿈을 위대하게 갖지 않는다』고 말하고 요즘엔 고등중학교를 졸업하면 장사에 나서 돈을 벌겠다는 학생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덧붙였다.최근들어 북한에서 군복무기피현상이 확산되고 있다고 전한 여양은 이같은 풍조 역시 돈을 벌어 잘살아보겠다는 청소년들의 가치관과 무관치 않은 것이라고 설명했다.김씨가 『그전엔 김일성과 조국을 위해 청춘을 바치겠다』며 입대를 자원하는 청소년들이 많았다고 말하자 여양은 『이젠 어쩔 수 없어 군에 가는 경우가 더 많다』며 김일성종합대학의 경우 전엔 고등중학교 추천 70%,군추천 30%로 신입생을 받아들였으나 이제는 고등중학교 추천 30%,군추천 70%로 그 비율을 바꿔 청소년들의 군입대를 회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여양은 젊은이들의 군입대를 기피하는 이유는 영양실조로 인한 질병과 사망,핵문제와 관련한 국제사회의 제재로 전쟁이 일어날 경우 맨먼저 죽게 될것이란 두려움 때문이라고 말했다.물론 군인은 일반 주민에 비해 훨씬 많은 식량(1일 800g)이 지급되지만 변변한 부식없이 쌀 30%,잡곡 70% 비율로 지은 밥만 먹곤 엄청 강도가 높은 훈련을 감당못해 영양실조에 걸리는 장병이 적지 않다는 것.이런 소문이 쫙 깔리는 바람에 젊은이들이 그럴듯한 구실이나 꾀병을 이유로 입영을 기피하고 있다는 것이다.여양은 인민군의 요양소는 대부분 영양실조로 쓰러진 군인들을 수용하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북한의 젊은이들이 군입대를 기피할 목적으로 자주 써먹는 방법은 신검수검 직전에 엿을 잔뜩 집어 먹고 혈압을 올려 고혈압환자로 위장하거나 X레이 촬영시 러닝셔츠속 가슴팍에 담배곽에서 떼낸 은박지를 붙여 필름에 폐결핵 환부가 나타나도록 위장하는 것 등이라고 한다. 서울생활 1년을 맞는 여양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햄버거.『북한에선 돼지고기도 꿀처럼 먹었는데 여기와선 너무 자주 먹는 탓인지 이젠 신물이 났다』는 여양.그러면서 그는 『사람의 입이 참으로 간사한 것 같다』고 했다. 이미 4권의 고백록과 2권의 번역서를 낸 김씨가 독서에 취미를 가진 반면 여양은 TV시청을 즐기는 편이다.여양이 즐겨 보는 드라마는 KBS­2TV의「딸부잣집」과 SBS의 「이 여자가 사는 법」.김씨 역시 즐겨보는 TV프로로 「딸부잣집」과 뉴스프로를 꼽았다. 강연이나 신앙간증에 나서는 틈틈이 책을 읽고 쓴다는 김씨는 최근에 펴낸 「이은혜,그리고 다구치 아예코」를 얼마전에 구입한 컴퓨터로 썼다면서 『요즘엔 컴퓨터가 생활의 또다른 즐거움으로 추가됐다』고 말했다. 한편 얼마전부터 친구들을 사귀기 시작했다는 여양의 가장 큰 고민은 학교공부다.특례입학으로 진학은 했지만 영어에 깜깜한데다 교과과정이 북한과 다르기 때문에 따라가기가 여간 힘들지 않다고 한다.또하나,여양을 괴롭히는 건 미팅이다.얼마전 같은 대학 법대생들과 그룹미팅을 가졌을 때 마음에 쏙드는 남학생을 발견,「찍었는데」 그 남학생이 다른 여학생을 파트너로 정하는 바람에 요즘 「열을 받고」있다는 것이다. ○청소년 군기피 확산 여양은 나이로 보면 분명 X세대지만 부를줄 아는 노래가 주로 가요곡집의 앞쪽에 실린 노래들 뿐이어서 노래방 가기를 꺼린단다.그러나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해 요즘 독한 마음 먹고 김건모의 「잘못된 만남」을 배우고 있다고 했다. 이상적인 남성상을 『비록 자판기 커피일망정 함께 나누며 나를 기쁘게 해주는 남자』라고 밝힌 여양은 같은 또래의 여대생들이 브랜드옷을 고집하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며 『몸에 잘맞고 색깔만 잘 받으면 됐지 메이커가 무슨 상관이냐』는 의젓함을 보였다. 서울엔 미인이 많은 것 같다는 여양 말에 김씨는 아마도 식생활이나 환경 탓일 것이라고 설명.북한여성들도 성형수술을 하느냐는 질문에 여양은 『돈을 주고 병원에서 쌍꺼풀수술을 하는데 시술수준이 낮은 탓인지 3년 못가 풀린다』고 말하고 수술이 잘못돼 고등중학교 학생이 할머니로 변하는 웃지 못할 일이 자주 벌어지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북한여성들의 꿈이 뭐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김일성종합대학이나 평양외대를 졸업,외화벌이 기관에서 근무하는 남자와 결혼하는 것』으로 두사람이 똑같았다.여양은 그래서 『요즘 북한여성들 사이에선 시집 잘가는게 대학 15곳 다닌 것보다 낫다』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생지옥」에서의21년의 생활을 마감하고 자유를 마음껏 호흡하게 된 여금주양.그는 이제 배고픔과 유일사상체제의 속박으로부터 완전히 풀려난 것이다.더는 금요노동에 나오라는 지시도 받지 않게 됐으며 영농철 두달간의 노력동원으로부터도 해방이 됐다.어디 그뿐인가.스스로 능력을 키우고 노력만 하면 원하는 것을 움켜쥘 수 있는 가능성의 문앞에 바짝 다가선 것이다.그래서 여금주양은 이제 행운의 여신과 손을 잡은 것이나 다름없다. ○인세 고스란히 저금 그러나 같은 북한에서 태어났어도 평생 벗지 못할 무거운 멍에를 지고 있는 김현희씨.그는 한 인간이 겪어야 하는 불행의 끝이 어디인가를 가늠하지 못한채 오늘도 번민과 죄책감속에서 몸부림치고 있다.그는 10억원에 가까운 출판인세를 한푼도 쓰지 않은채 고스란히 저금해놓고 있다.KAL기 희생유족들과 합의가 이뤄질 경우 그들에게 진 마음의 빚을 갚는데 쓰기 위해서다.자유의 땅 대한민국에서 거듭 자유의 소중함을 깨달았고 북한의 억압속에 신음할 가족생각에 하루도 눈물 마를 날이 없는 김현희.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이 두 여인에게 기쁨과 고통을 동시에 안겨준 이 불행한 시대상황이야말로 우리 모두가 힘을 모아 하루 빨리 청산해야할 공동의 빚이 아닐는지.여양은 4시간에 걸친 인터뷰를 끝내고 일어서면서 『언니,외롭거나 마음이 아플 때면 제게 전화 하세요』라며 김현희씨를 다시 껴안았다.
  • 오코노기 마사오/“일본은 대북수교협상 서둘지말라”(해외기고)

    일본의 와타나베 미치오(도변미지웅)전외상이 이끄는 연립여당(자민당·사회당·신당사키가케)대표단이 3월28일부터 30일까지 북한을 방문했다.일본 대표단은 김용순 노동당 서기와의 회담에서 2년 이상 중단됐던 북한·일본 국교정상화회담의 조기 재개에 합의했다.양국간의 이러한 합의는 대국적인 관점에서 볼때 지난해 10월 북한·미국 제네바합의에 따른 일본외교의 상황대응적인 조그마한 조정이라 할수 있다. 양국 대표단은 첫회담에서 정부간 교섭을 「전제조건 없이」재개한다는 데 합의했다.그러나 그후 실무회담에서는 상당한 난항을 보였다.문제가 된 1990년 9월의 3당(자민·사회당과 북한노동당)공동선언을 「역사적 선언」으로 할 것인가,「역사적 사실」로 인정할 것인가에는 하늘과 땅차이가 있다.또 「전제조건 없이」라는 말의 해석에 대해서도 북한은 이를 일본이 핵의혹과 이은혜 문제 등을 양국정부간 교섭의 의제로 내놓아 회담의 진전을 방해해서는 안된다고 해석한다. 사실 3월28일 일본대표단과의 회담에서 김 서기는 3당공동선언을 「역사적 선언」이라고 표현하며 과거의 회담은 『일본이 회담과는 관계없는 문제를 제기하여 중단됐다』고 지적했다.그러나 회담이 시작되면 일본은 그러한 문제를 제기하지 않으면 안된다. 양국 태도에는 이같이 기본적인 변화가 없기때문에 회담이 재개되더라도 이는 2년반전의 상황으로 되돌아가 다시 회담테이블에 앉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교섭이 시작되어도 그것이 지난번 회담의 계속인가 아니면 새로운 교섭인가에 대해서도 명확하지 않다.합의서는 『다시 제9회 회담을 신속히 한다』라고 애매하게 표현하고 있을 뿐이다. 합의서에 기록되지 않은 실패도 있다.솔직히 말해 대표단 파견시기에 문제가 없다고는 할수 없다.북한·미국간의 경수로 회담이 난항하고 있고 한국정부도 달갑지 않게 생각하고 있으며 남북대화도 재개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따라서 『일본은 왜 1∼2개월을 못기다렸는가』라는 비판도 충분한 근거가 있다.그때가 되면 그러한 문제들도 해결되든가 해결의 전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더욱이 그것은 북한·미국 합의의 이행이북한·일본 교섭타결의 전제조건이라는 강력한 메시지가 됐을 것이다. 또 한사람의 대표아래 여당 3당이 각각 단장을 둔 일본대표단의 구성에도 문제가 있다.이번 3당 대표단은 결속하여 북한과 교섭한 것 같은나 일본 국내정치의 역학관계를 그대로 외국으로 가져가 미묘한 외교문제에 적용한다는 것은 현명한 일이라 할수 없다. 상대방인 북한은 일본 대표단을 초청,합의를 이끌어냄으로써 외교적으로 성공했다고 생각할 것이다.북한은 난항하고 있는 경수로 문제가 해결되고 북한·미국간에 상호 연락사무소가 개설되면 그것이 일본에 대한 압력이 될 것으로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또 남북대화재개 이전에 북한·일본회담을 재개하는 것은 북한·미국 교섭에 이어 제2의 「한국 제외」 전략으로 한국과 일본관계를 불편하게 만드는 책략이기도 하다. 그러나 북한의 성공은 전술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실제로 북한·미국 합의에 따라 북한의 핵무기개발이 「동결」되어 있기 때문에 북한·일본 회담이 시작되더라도 일본이 대폭적인 양보를 하지 않으면 안되는 이유가 없어졌다.필자가 우려하는 것은 불필요하게 「버스에 늦게 타면 안된다」는 심리적 작용이 일본에 있거나 선거와 관련한 국내 정치상황에 의해 회담이 좌우되는 일이다. 그러면 앞으로의 회담 전망은 어떨까.일본정부(외무성)는 정당교섭과 정부간 회담은 다르며 정부 회담은 정당간 교섭에 구속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그리고 3당공동선언과 「전제조건 없다」는 표현에 대한 양국의 해석이 대립하고 있기 때문에 본회담 시작에 앞서 예비회담이 필요할지도 모른다.그이후 북한·미국 합의 이행과 남북대화의 진전에 보조를 맞추어 교섭을 진행시켜 나간다는 것이 일본의 방침일 것이다. 가장 주목되는 것은 핵문제 처리이다.북한·미국 합의가 이행되면 핵의혹은 해소됐다고 생각해도 좋을 것인가.그러나 그 이외의 묘안은 없는 것같다.그렇게 되면 경수로 회담이 타결되는 대로 북한·일본 회담의 초점은 「국제문제」에서 「경제문제」로 이행될지 모른다.경제문제의 중심은 청구권문제의 해결이므로 회담은 한꺼번에 결정적인 순간을 맞을지 모른다. 냉전이 끝나고 북한·미국관계가 개선되면 한반도 관련 4개국이 남북한을 동시에 승인하는 이른바 교차승인의 실현은 피할수 없다.북한·일본관계 정상화 없이는 동북아시아 정세의 안정도 북한경제의 재건도 어렵다.평화적인 남북통일도 불가능할 것이다.더욱이 그것은 일본으로서는 식민지 지배의 청산이라는 도의적인 문제이기도 하다.일본은 한·미·일 3국의 긴밀한 협조를 바탕으로 북한과의 회담을 공동사업으로 생각,주의깊게 추진하지 않으면 안된다.
  • 북·일 수교회담 새달재개/노동당·일대표단/“조건없는 재개합의”조인

    ◎오부치 곧 방한 【도쿄=강석진 특파원】 평양을 방문한 일본 연립여당 방북단과 북한 노동당은 30일 하오 전제조건없이 국교정상화 회담을 재개한다는 「북한­일본 수교회담 재개를 위한 합의서」에 조인했다. 양측은 합의서에서 『불행한 과거를 청산하고 국교를 조기 정상화하는데 노력한다』고 선언하고 「전제조건 없는 협상 재개」를 각각 정부에 촉구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지난 92년11월 제8차 회담을 끝으로 2년반 가까이 중단된 북한·일본 국교정상화 회담이 빠르면 4월,늦어도 5월께에는 재개될 것이라고 일본언론들은 보도했다. 일본 여당대표단과 북한측은 이에앞서 합의문 마련을 위한 실무회담을 열었으나 「전후 45년간 보상」을 명기한 지난 90년 자민·사회·북한노동당 공동선언을 어떻게 자리매김할 것인지와 북한 핵개발,이은혜(KAL기 폭파범 김현희의 일본인 일본어교사) 문제 등을 놓고 진통을 겪었다. 양측은 서로 의견을 조정해 애매한 표현으로 이러한 견해차를 극복,합의에 도달했으나 회담의 전망은 불투명하다. 일본 대표단은 3일간의 평양 방문을 마치고 이날 귀국했다. 한편 자민당은 오부치 게이조(소연혜삼) 부총재를 한국에 파견해 한·미·일 공조체제를 존중한다는 입장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할 방침이다.
  • 북­일/전후보상·핵 덮은채 「미봉합의」/수교교섭 재개합의 안팎

    ◎「이은혜」·「핵」 등 양측 해석 제각각/관계 정상화 교섭 전망 불투명 일본 연립여당 대표단은 북한과 일본정부가 무조건 국교정상화 교섭을 재개토록 촉구한다는데 북한측과 합의하고 3일간의 평양 방문일정을 모두 마쳤다.이번 합의는 그러나 현저하게 의견을 달리하는 여러 문제들을 미봉한 절충안이다. 일본 대표단은 북한 방문에 앞서 전후보상을 인정한 지난 90년 일본의 자민,사회당과 북한 노동당의 3당공동선언을 「역사적 사실로 인식한다」는 입장을 정리했다.여당대표단의 북한 방문을 주도한 자민당은 노동당측과 상당한 물밑 협의를 거친 것으로 보였다.「역사적 사실」의 의미는 「북한이 더이상 3당공동선언을 거론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해석됐다. 그러나 북한 노동당의 김용순 비서는 지난 28일 이들을 맞이하면서 『3당공동선언은 북한과 일본의 관계정상화에 관한 원칙을 밝힌 역사적인 선언』이라고 말했다.「역사적」이라는 단어가 「지나간 일」이라는 뜻이 아니라 「현재도 중요한 획기적인 일」이라는 의미로 해석되고 있는 것이다.공동선언에 대한 북한의 해석이 다른데 일본은 적지않게 당황했다. 정부간 교섭의 무조건 재개에 대해서도 북한은 「이은혜문제」,「핵개발의혹」등을 거론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해석하고 있는 반면에 일본은 현안을 거론하는데 대해 반대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해석하고 있다. 결국 양측은 합의문 전문에서는 일본측 입장을 반영, ▲3당공동선언에 따라 시작한 국교정상화교섭은 8회 회담으로 중단됐다고 규정,3당공동선언을 이어받는다는 직접 언급은 피했지만 마지막 항에 ▲양국 정부는 9회 회담을 곧 행한다라고 언급,앞으로 계속될 정부간 교섭이 3당공동선언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해석될 가능성을 열어놓음으로써 북한의 입장이 반영된 상태의 합의문을 내놓게 됐다. 즉 일본 여당대표단의 방북으로 양측사이에 가로놓여 있는 입장차이를 해소하지 못한 채 정부간 교섭의 재개만을 촉구한데 그친 것이다. 또 이번 방문에서는 대북한 쌀 제공과 한국형 경수로의 수용등에 대해서도 구체적 합의에는 이르지 못했다. 북한은 일본의 자금유입과 경수로교섭력의강화등을 도모하고,일본으로서는 대한반도 영향력 강화라는 이해의 접점을 찾아 양측 모두 교섭을 서두르고 있다.하지만 아직 한·미·일과 북한 사이에 많은 갈등 요소들이 남아있기 때문에 선뜻 관계정상화에 이르기 어렵다는 점을 다시 확인한 셈이다. 일본 정부는 이같은 합의에 대해 겉으로는 『교섭재개를 환영한다』고 말하고 있다.하지만 속으로는 전도다난한 교섭을 앞두고 무척 조심스러워 하고 있다.외무성의 한 간부는 『북한이 어떻게 의사결정을 하는지 알지 못하는 것은 곤란하다.합의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다』는 수준 정도의 평가만을 내놓고 있다.일본 언론들도 북한이 한국을 젖혀두고 손을 잡으려 하는데 대해서도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기 때문에 국교정상화 교섭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북·일 4당 합의문 요지 「1990년 9월 자민당·사회당 대표가 평양을 방문해 조선 노동당과 역사적인 3당공동선언을 채택했다.이로써 91년부터 시작된 국교정상화를 위한 정부간 협상이 8차례 이루어졌다.일본과 북한은 양국 관계를 정상화시키는 것이 양국 국민의 이익에 합치된다는 것을 인정하고 중단되고 있는 국교정상화 회담을 재개하기 위해 다음과 같이 합의한다. 1.양국간에 존재했던 불행한 과거를 청산하고 국교정상화를 조기에 실현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한다. 2.양국간 대화 재개와 국교정상화를 위한 회담에는 어떠한 전제조건도 붙이지 않는다.철저한 관계개선을 위한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3.양국간 회담은 철저히 자주적이고 독자적인 입장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을 확인한다. 4.집권당으로서 각각 자국정부로 하여금 조기에 회담을 개최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 이상 합의에 근거해 4당은 양국 정부가 국교정상화를 위해 다시 제9차 회담을 신속히 개최하도록 권고하기로 했다」
  • 북­일/「전후」청산·경협이해 합치/양측 수교회담 재개 배경

    ◎식량·경제난 타개위해 일 배상금 절실/북/「경수로」와 연계,외교발언권 강화 모색/일 일본과 북한의 국교정상화회담이 재개된다. 북한을 방문중인 일본여당 대표단 단장인 와타나베 미치오 전외상과 김용순 노동당 비서와의 회담에서 수교회담 재개가 합의됨에 따라 북한과 일본은 지난 92년 11월에 중단됐던 국교정상화회담을 다시 시작하게 됐다. 회담의 구체적인 일정은 즉각 알려지지 않았으나 회담을 조기 재개하기로 합의한 것은 양국의 이해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양국은 이미 지난달 싱가포르에서 비밀접촉을 갖는등 회담재개를 모색해 왔다.미국도 일본과 북한의 회담재개를 배후에서 촉구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은 북한의 핵문제로 교착상태에 빠졌던 회담의 재개를 서둘러왔다.양국간의 회담이 중단된 것은 겉으로는 KAL기 폭파범 김현희의 일본인화 교육을 맡았던 이은혜문제였으나 그 이면에는 북한의 핵문제가 있었다.그러나 일본은 미국과 북한간의 제네바합의로 북한의 핵문제는 일단락됐다고 보고 회담재개를 서둘러왔다. 일본은 또 북한에 대한 경수로지원에 10억달러라는 많은 돈을 지원하면서도 북한과의 관계가 단절된 상황에서 미국의 들러리만 서는 것은 좋지 않다고 판단하고 있다.일본은 북한과의 관계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나타내며 다른 한편으로는 어차피 협상하여야 할 식민지 배상문제와 경수로 지원을 연계시키려는 전략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북한과의 국교수립은 「전후처리」를 마무리하는 일일 뿐만 아니라 한반도와 아시아외교에서도 유리하다고 일본은 보고 있다. 북한도 현재의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일본과의 관계개선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있는 듯 하다.북한은 지금까지 미국과의 관계개선에 전념하는 전략을 추진해왔다.그러나 제네바합의이후 북경에서 일본 자민당 실력자에게 식량원조를 은밀히 요청하는등 전략의 변화를 보이고 있다.북한은 경제난 극복과 경제발전을 위해 일본의 배상금과 지원을 필요로 하고 있다. 양국은 이같이 공통적으로 회담재개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와타나베 대표단장과 김용순 비서도 회담에서 『허심탄회하게 논의하면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일본은 특히 최대의 걸림돌이었던 핵문제가 일단락됐다고 보고 있기 때문에 회담이 의외로 순조롭게 진행될 가능성도 있다.그러나 북한의 핵문제가 다시 제기될수 있고 양국간에는 보상문제라는 어려운 과제가 남아 있어 전망은 불투명하다.북한은 식민지시대 뿐만 아니라 전후 반세기에 대해서도 배상을 요구하고 있다.그러나 일본은 식민지시대의 보상만을 주장하고 있어 가장 중요한 보상문제에 많은 견해차를 보이고 있다.
  • 점령군의 실리 챙기기(새로쓰는 한국현대사:12)

    ◎소 북한서 산업설비 마구 뜯어갔다/「일제 군수공장은 소 전리품」 정령 앞세워/북 식량난속 곡식 6백여만섬 빼내가기도/미는 동척땅 경작시키고 소작료 30% 징수 광복과 함께 한반도 남북에 각각 진주한 미·소 양국은 자국의 이데올로기를 대행할 정치세력 구축과 이를 뒷받침할 경제구조 재편에도 심혈을 기울였다.미국은 궁극적 목표인 반공국가 수립을 위해 남한사회를 자본주의 체제로 재편성하려 했고,소련은 사회주의 체제 달성을 서둘렀다.특히 소련은 북한지역 몇몇 항구를 장기 조차한다든지,일제가 남긴 공업시설을 빼앗아가는 등 경제 실리를 노골적으로 챙겼다. ○연 수십억원 거둬 미국과 소련이 한반도에 설립한 대표적인 경제관련 기관은 남쪽의 「신한공사」(The New Korea Company)와 북쪽의 「조소해운주식회사」였다.이 두 회사의 설립 목적과 업무를 보면 양국이 한반도에서 시도한 경제정책의 실상이 무엇인지 뚜렷이 드러난다.미·소는 「한반도에 남은 일본관련 재산은 전리품」이라는 시각을 갖고 이를 직접 관리하기 위해 회사를 설립했다.이 회사들은 형식상 독립회사의 틀을 갖추었지만 실상 미·소의 직영기관과 다름없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신한공사는 일본 동양척식주식회사(동척)자산을 인수하는 형식으로 1945년 11월12일 출범했다.처음 지위는 군정청의 부속기관이었지만 46년 2월21일 관계법령 제정에 따라 독립회사로 탈바꿈한다.신한공사는 동척의 토지대장과 지적도를 이용,45년 말부터 이듬해 봄까지 전국에서 토지조사를 벌여 해당 토지 대부분을 확보했다. 이 과정에서 일부 지역 농민들이 큰 반발을 보였는데 이는 지역인민위원회가 일본인 토지를 주민들에게 이미 분배한 뒤였기 때문이다.아무튼 46년 2월말까지 신한공사는 논·밭·산림을 합해 34만7천여 정보의 토지를 보유하게 됐다.이같은 면적은 사실상 일본인이 남긴 토지의 대부분이었다. 신한공사는 이 땅을 55만4천여 농가에게 경작시키고 수확고의 30%를 소작료로 징수했다.그 결과 신한공사는 매년 십수억원의 수입을 올렸으며 47년에 가서는 15억1천여만원이나 거둬들였다.여기서 인건비등 경비를 제외하고도 신한공사는 5억8천여만원의 순익을 남겼다.당시 신한공사는 남한 전체 경지면적의 13·4%,생산고의 25%를 차지했다.그 농지를 소작하는 농가는 전체의 27%에 이를 정도였다. 그러나 신한공사에 대해 『일제의 식민지 수탈과 다름없다』는 비난이 갈수록 거세게 일었다.이에 미군정은 48년 4월 신한공사를 중앙토지행정처로 이름바꾸고 귀속토지를 농민에게 불하하기 시작했다. ○합법 가장해 착취 신한공사는 명목상 독립회사였으나 미군정 직영기관에 불과했다.자본금 1억원을 단독 출자한데다 미군 장교에 한정한 사장 임명권과 회사 해산권을 군정이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은 이를 입증한다.더욱이 관계법령에 『사장은 미국의 이익에 관계 있는 정책문제를 결정하는 전권을 갖고 있다』고 규정,그 성격을 분명히 했던 것이다. 북한 경제를 조종한 소련의 수법은 더욱 교묘했다.그럼에도 구소련은 그동안 해방직후의 북한­소련 경제관계를 『소련이 사심없이 일방적으로 원조한 것』이라고 선전해 왔다.즉 식량 원료 연료등을 북한에 무상 제공했다는 것과 전문가 파견을 통한 산업복구 지원,북한유학생 유치에 따른 인력양성등 은혜를 베풀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미국립공문서보존관리국(NARA)소장의 북한노획문서들을 보면 소련은 매우 적극적으로 북한지역에서 경제적 이득을 취한 것으로 돼 있다.다만 공산주의 사회 특유의 폐쇄성 때문에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다.소련측 입장은 46년 1월28일 작성된 「북한에 조소합작주식회사를 설립하는 문제에 대한 소련인민위원회의 정령(정령)」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이 문서는 소련이 전력·흑색금속·유색금속·화학·기계제작·민간항공·석탄·시멘트·어업·철도·해상운수등 모든 산업 분야에서 북조선과 합작회사를 설립한다는 지침을 담았다.곧 「회사 합작」이라는 형식을 통해 북한지역 물자를 마음껏 가져가겠다는 의도였다. 소련은 우선 지침 첫항에서 「북한지역에 있는 일본 군수물생산 관련기업들은 우리의 전리품이므로 소련정부의 재산」이라고 밝혔다.그리고 일본 기업중 일부를 북한에 넘겨주되,대부분은 합작회사로의 전환의도를 분명히 보였다.특히 발전소·흑색금속·유색금속·화학등 주요 분야 합작회사는 소련측에서 주식의 51%를 소유한다는 조항은 수탈 그것이었다.회사의 업무집행 역시 소련이 임명한 지배인에게 맡기기로 했다.이같은 지침에 따라 설립된 합작회사가 조소해운주식회사(모르트란쓰)와 조소석유정련주식회사이다. 소련이 모르트란쓰를 세운 목적은 청진·나진·웅기등 3개 항구를 30년동안 북한으로부터 조차하는 데 있었다.양국은 47년 3월 25일 이 회사 설립에 따른 협정을 맺었다.협정서에는 「북조선인민위원회」전권대표 홍기주와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동맹 외국무역성」전권대표 코스토레프스키가 각각 서명했다.홍기주는 조만식의 「조선민주당」출신으로 김일성 세력에 가담해 당시 인민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은 인물이다. 협정서에 따르면 합작비율은 5대5이다.그러나 자본금을 내지 않는 대신 소련은 화물선 3척과 여객선 1척을,북조선은 3개 항구및 그 부대시설을 회사에 30년동안 각각 임대하는 출자형식을 취했다.소련이 배 4척을 내놓은 대가로 북조선은 3개 항을 내놓았다.이 협정은 실로 엄청난 불균형을 내포했다.또 3개 항구이외의 북조선 항구를 조차할 경우 이 회사에 우선권을 준다는 조항이 포함돼 소련이 나머지 항구도 양도받았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소련이 청진 등 3개 항을 군사적·상업적으로 어떻게 활용했는지,30년만에 조차가 끝났는지,또는 연장됐는지는 관련자료가 발견되지 않아 아직은 정확히 알 수 없다.다만 소련군이 광복 2년이 채 안돼 북쪽의 주요항구들을 「합작」명목으로 장기양도받은 사실은 전통적으로 부동항을 확보하려는 야심을 그대로 실현한 것이다. 이밖에도 소련은 북에 진주한 직후부터 각종 산업시설·식량·원자재를 강제반출했다.45년에만 수풍발전소의 발전기 3대를 비롯해 ▲원산 조선석유회사의 기계 일체 ▲함흥 본궁화학의 6만㎸변압기 ▲청진 일철공장과 미쓰비시제련소의 기계 일체등 주요 설비는 몽땅 뺏어갔다.또 진남포제련소에서는 금 2t과 아연 4백t,동 3백t을,조선은행 원산지점에서는 현금 3천만원을 소련재산화했다.북쪽 땅에서 식량부족이 매우 심각했음에도 불구하고 45년에 2백44만섬,46년에 2백90만섬의 곡식을 빼내갔다. 2차세계대전 종식을 계기로 한국사 전면에 등장한 미·소 양국은 정치는 물론 경제 분야에서도 민족에게 고통을 안겨준 것이 틀림없다. ◎「한소해운」 창립 협정서 서울신문은 국사편찬위원회가 미국립공문서보존관리국(NARA)에서 발굴한 「조소해운주식회사 창립에 관한 협정서」전문을 싣는다.19 47년 3월 북한이 청진,나진,웅기항등 3개 항을 소련에 넘겨주기로 한 이 협정서는 사료적 가치가 매우 크다.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본문은 현행 맞춤법에 따라 옮겼고,「조쏘」와 같은 고유명사의 약자도 「조소」 등으로 고쳐 게재했다.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동맹 외국무역성과 북조선인민위원회는 양국간의 경제관계의 발전과 강고를 목적으로 본협정서 체결을 위하여 정식임명한,즉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동맹 외국무역성은 자기 전권대표로서 코스토레프스키를,북조선인민위원회는 자기 전권대표 홍기주를 파견하여 하기와 같이 협약함 제1조 협정체결 쌍방은 평등한 원칙에서 해운의 관리와 경계및 본협정제5조에 지적한 북조선에 있는 항구와 부두시설및 설비를 이용하며 해상수송과 교통을 조직할 목적으로 평양시에 조소해운주식회사(약칭 모르트란쓰)를 창립함.본회사는 본협정에 첨부하는 별지 정관(첨부서류 제1호)에 의하여 운영함.본회사 창립자는 다음과 같음.소련측…화태국립해운국 극동국립해운국(솜흐락드)전동맹연합회 원동운수공사등.조선측…흥남지구어민공장 북조선석탄관리국임 제2조 조소해운주식회사의 주식자본은 2천8백만원으로 정하되 그 내역은 아래와 같음.가.기선조차요금 조선화폐 1천4백만원은 본협정서 제4조에 의하여 소련측이 납입하는 자기주식자본에 충당함.나.부두시설조차요금 1천4백만원은 본협정서 제5조에 의하여 조선측이 납입하는 자기주식자본에 충당함.주식자본금의 결정에 있어서 가,나에 지적한 임차요금의 평가는 19 38년도의 시가로 계산함.회사발전에 의한 주식자본금은 쌍방의 결의에 의하여 증액할 수 있음.이 경우에 조소주주의 균등 참정권은 불변함.회사 이익금은 쌍방투자액의 비율에 의하여 분배함.회사 전주권은기명주권임.주권의 양도는 이사회의 만장일치 결의에 한하여서만 행할 수 있음 제3조 회사창립후 1개월이내에 쌍방에서 각 일천만원을 납입하여 합계 2천만원의 예비자본금을 조성함 제4조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동맹 외국무역성은 회사에 대하여 본협정서에 첨부하는 별지목록(첨부서류 제2호)에 의한 화물선 3척과 객선 1척을 30년간의 기한으로 대여함.전기기선의 조차료는 소련측의 본회사에 대한 출자금으로 충당함 제5조 북조선인민위원회는 본회사에 대하여 본협정서에 첨부하는 별지목록(첨부서류 제3호)의 창고,관할구역,상항건물및 일철공장을 포함한 청진항과 전 부두,창고건물을 포함한 나진항및 계선장,창고건물등을 포함한 웅기항을 30년간의 기한부로서 대여함.전항 항구건물등의 조차료는 조선측의 본회사에 대한 출자금으로 충당함 제6조 본협정서 제4조에 기재된 기선및 제5조에 기재된 항구건물의 1년간 조차료와 30년간 조차료 총액의 결정은 본사 창립까지 창립자간에서 이를 19 38년도 가격에 의하여 정함.본협정서 유효기간인 30년간의 총조차료 결정에 있어서 협정 일방(소련 혹은 조선측)의 납입금이 본협정서 타방의 납입금을 초과할 때는 쌍방납입금을 균등하게 하기 위하여 후방은 6개월내에 차액을 현금으로 혹은 금액에 해당하는 물품으로 납입함 제7조 북조선인민위원회는 웅기,나진,청진 각항의 운영과 적당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하여 필요한 대책을 강구하며 자비로서 항도유지에 필요한 수리·준설공사를 수행할 것.제1항 기재의 제항외에 타항구에 관하여 북조선인민위원회는 본회사에 대하여 조차에 관한 우선권을 부여함 제8조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동맹 외국무역성은 본회사에 대하여 본회사 선박이 소련항구에 입항할 시에 소련정부로 하여금 입항징수금에 대하여 최하조건을 적용하도록 대책을 강구할 것 제9조 본회사의 사업운영에 있어서 협정 쌍방은 동등하게 참여함.이사회에는 각방이 동수로 이사 2명씩 선정하고 이사장에는 조선측의 이사가 차에 임하고 부이사장에는 소련측 이사가 차에 임함.집행직무는 소련측에서 임명한 총지배인과 조선측에서 임명한 부지배인에게 일임됨. 제10조 본회사는 사업수행상 조선 국영회사와 동등한 권리와 우대를 향수함.북조선인민위원회는 본회사 창립및 등록에 관한 세금 징수금및 정리를 포함한 추후 회사변동에 관한 일체등록에 대하여도 세금및 징수금을 면제함. 제11조 본회사 사업상 외국에서 선박시설자재등의 구입을 위하여 필요로 하는 외국화폐는 본회사 운영중 수지한 외국화폐에서 특별 지장없이 꺼내 사용할 수 있음.북조선중앙은행에서 외국화폐의 매매를 행할 때는 타회사에 적용하는 최하조건을 동등하게 향유함. 제12조 이사회에서 회사운영상 이의가 발생할 때는 결정적 해결은 본협정 체결자가 행함 제13조 본회사 창립자들은 본협정에 서명하는 동시에 쌍방이 서명일로 부터 15일이내에 북조선 소요기관에 등록할 것 제14조 본협정서의 유효기간은 본협약 서명일로 부터 30년간으로 정함.30년 경과전에 본회사를 청산할 때는 쌍방간의 협약에 의하여 이를 행할 수 있음.30년 경과후 회사 전재산은 조선에 속함 제15조 본협정은 쌍방 서명일로 부터 효력을 발생함 제16조 본협정서는 19 47년 3월25일 평양시에서 노문(노문)과 조선문 각 2장씩 작성함.노문과 조선문은 동등한 효력을 유(유)함 북조선인민위원회 전권대표 홍기주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동맹 외국무역성 전권대표 코스토레프스키 □특별취재반 ▲황규호 문화부 부국장급 ▲이용원 〃 기자 ▲김성호 〃 〃 ▲김경운 조사부 〃
  • 북일 수교회담 어떻게 되나/일 여당대표단 방북 지연이후

    ◎지방선거 “발등의 불”… 5월께 재론될듯 일본 여당대표단의 북한 방문이 상당히 늦춰지게 됐다.자민당의 주도로 추진되는 대표단에 사회당이 참여를 꺼렸기 때문이다. 여당대표단의 방북은 빨라도 3월말이나 다시 논의가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하지만 일본은 23일 통일지방선거가 공고되고 정계는 4월 한달 동안 선거에 전념하게 되기 때문에 여당대표단의 방북 문제는 5월초가 지나야 재론될 가능성도 크다.이번 통일지방선거는 지난해 신진당이 창당되고 나서 첫 전국적인 선거이기 때문에 향후 정국의 흐름을 가늠하는데 중요하다.각 당은 선거가 발등의 불이다. 따라서 여당대표단이 북한을 방문,사전 정지작업을 벌이고 5월초 정부간 국교정상화 교섭을 벌인다는 일본 정부·여당의 당초 구상은 그대로 추진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정부간 국교정상화 교섭도 늦춰질 것으로 보인다. 자민당과 사회당이 주도권을 둘러싸고 일격을 가한 것은 이로써 1대1이 됐다.자민당은 지난해말 사회당의 주도로 여당대표단의 북한 방문이 추진되자 90년 전후보상을 인정한 북한 노동당,자민당·사회당 3당 공동선언의 백지화를 요구했다.이에 북한이 발끈하면서 여당대표단의 방북이 무산됐었다. 이번에는 자민당이 그동안의 물밑 접촉을 바탕으로 북한이 3당 공동선언을 거론하지 않을 듯하다면서 강력히 추진했다.그러나 3당 공동선언의 존중을 주장해온 사회당은 북한이 자민당의 주장처럼 3당 공동선언을 거론하지 않을 것인지 명확하지 않으며 입장이 변했다면 이유를 알아본 뒤 북한 방문을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반발했다. 양당 사이에서 입장이 곤란해진 것은 북한.지난해 자민당의 반발로 여당대표단의 방북이 무산되자 올해는 자민당과 활발한 접촉을 시도했는데 이번에는 사회당이 지팡이를 짚고 나선 것.9일부터 3당 공동선언에 대한 북한의 입장이 관건이 되고 있음에도 북한은 1주일의 침묵 끝에 16일에야 『3당 공동선언의 정신』이라는 표현을 쓰면서도 『준수되지 않으면 안된다』고 입장을 밝혔다.사회당은 이를 두고 북한의 입장에 변화가 없다고 해석했다. 이번 논의 과정에서 신중한 자세를 촉구한 한국의 움직임도 견제 역할을 했다.연립여당에 참여하고 있는 3당은 17일부터 3당 공동선언,이은혜 문제,KEDO의 출자 문제 등을 포괄적으로 논의하기로 했다.하지만 북한이 한국형 경수로를 수용하지 않고 있으므로 일본이 신중하게 북한에 접근해야 할 것이라는 한국정부의 요청은 결코 논의의 초점은 되지 못했다.일본이 무언가 외교적 목적을 위해 대북한 교섭 재개를 서두르고 있음은 변하지 않고 있다.
  • 북에 「제2의 이은혜」 있다/83년 영유학… 귀국통보후 실종

    ◎88년 “평양산다” 폴란드 경유 편지 【도쿄 로이터 연합】 60대 일본인 부부가 10일 지난 83년부터 북한에 억류돼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딸의 송환을 위해 노력해줄 것을 일본 외무성에 촉구했다. 아리모토 아키히로(66)와 가요코(69)씨 부부는 이날 기자회견을 갖고 사회당이 주도하고 현정부가 이 문제를 잘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이같이 요청했다고 밝혔다. 이 부부의 딸 게이코 양(실종 당시 23세)은 영국 유학생활을 마치기 직전인 83년 일본 귀국 날짜를 알리는 편지를 보내고는 실종됐다. 그후 88년 이 부부는 폴란드에서 발송된 이상한 편지를 받았다.딸 게이코양과 다른 두명의 일본인에게서 온 이 편지는 놀랍게도 그들이 평양에서 함께 살고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이 편지에는 『우리는 지금 유럽에 체류하고 있습니다.그러나 밝힐수 없는 이유로 우리는 지금 북한의 장기거주자가 되어 있습니다』라고 씌어있었다는 것이다.
  • 「이은혜」 별도 협상

    【도쿄 연합】 일본정부는 대북한 국교정상화 협상재개와 관련,쟁점중 하나인 이은혜(KAL기 폭파범 김현희 일본어교사) 신원확인문제를 본협상과 별도의 통로에서 협의하는 방안을 북한과 비공식적으로 절충하고 있다고 교도통신이 10일 보도했다.
  • 사죄와 망언(외언내언)

    일본의 나쁜 점으로 간사함을 드는 경우가 많다.강자에 약하고 약자에 강하며 한 입에 두 말하는 이중성이 지적된다.그 나쁜 특성이 가장 유감없이 발휘되는 경우가 대한관계 아닌가 한다.특히 되풀이 되는 과거사 사죄와 망언의 교차는 그 극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과거에 불행한 기간이 있었던 것은 정말 유감이며 깊이 반성한다」65년 한일국교 정상화 때의 시나(추명)외상이 한 일본의 첫 사과다.「금세기 한 시기에 불행한 과거가 있었던 것은 정말 유감이며 다시 되풀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는 84년 쇼와(소화)일왕의 사과.그는 90년에도 같은 말을 되풀이하면서 「그때 한국인들이 당한 고통에 대해 통석의 염을 금할 수 없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한쪽에선 언제 사죄를 했느냐는듯 끊임없는 망언도 계속되었다.가장 유명한 것이 53년의 구보타외무참사관 발언.「식민통치는 한국에 기여한 바 크며 은혜를 베푼 것이니 죄의식 같은 것 가질 필요없다」고 강변했던 것.58년 오노자민당부총재는 「한국 대만과 일본합중국을 만들어 대동아공영권을 재건했으면 좋겠다」고 했고 86년 후지오문부상은 「일한합방은 양국 합의로 이루어진 것이며 한국측에도 책임이 크다」고도 했다. 지금 일본의회에선 종전50주년을 맞아 태평양전쟁 사죄및 부전결의를 놓고 설왕설래가 많다.시키지도 않은 사죄를 저희끼리 「하자」「말자」로 다투고 있는 것.1백년전 일본 낭인들의 민비시해를 이제와 사죄하기로 했다고도 보도되고 있다. 가관이다.고소를 금할 수 없다.일본인들은 사죄가 우리를 위한 것으로 착각하는 모양이다.마음에도 없는 말만의 사죄는 이제 그만해도 좋으니 앞으로 망언이나 좀 삼갔으면 좋겠다.
  • “역도산 공산주의 미워했다”/유족들,북에 “이용말라” 경고

    【도쿄=강석진 특파원】 북한이 4월 「평화를 위한 평양 국제체육 및 문화축전」에 역도산의 이름을 내세우고 있는 것과 관련해 일본에 살고 있는 역도산의 아들 모모타 요시히로(백전의호)씨 등 가족들이 「역도산을 이용하지 말라」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모모타씨(마쓰다케 관광버스 상무) 등 가족들은 24일 북한과 평양축전을 공동으로 개최하는 전일본프로레슬러 이노키 간지(저목관지,안토니오 이노키) 참의원이 이날 도쿄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역도산선생의 은혜를 갚기 위해 체육문화축전을 추진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데 대해 아버지를 이용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모모타씨는 『아버지는 북쪽인 함경남도에서 태어나기만 했을뿐 공산주의를 가장 싫어했다』면서 북한이 역도산(본명 김신락)을 도와주었다는 것은 거짓말이라고 주장했다.
  • 물·물·물… 가까운 고마움 잊어서야(박갑천 칼럼)

    눈이 있다 해도 너무 큰 대상은 보지 못한다.「절대자­섭리」의 존재를 못보는 것도 그 때문이다.어김없이 주야와 사시를 운행하고 있건만 볼 수가 없다.너무 큰 것이다.땅바닥의 불개미가 과연 사람을 보는 것일까.밟으면 죽게 돼 있는 존재인데도 못보는 것과 다를 것 없다 하겠다. 보지 못하는 것은 또 있다.너무 가까우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주먹을 눈으로 바싹 갖다대보자.그게 주먹인지 돌인지 알길이 없다.눈동공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것이 속눈썹이건만 그게 안보인다.공기는 좀 가까운 곳에 있는가.하건만 보지 못한다.시각으로서만이 아니라 지각으로서도 그러하다.못보며 잊고들 산다. 가깝고도 소중한 존재를 그렇게 바로보지 못하는 것은 한두가지가 아니다.조상이나 어버이 은혜도 그중 하나라고 하겠다.『하늘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인지 흔히들 몽총하게 넘겨버린다.없으면 죽게 돼 있는 공기의 존재를 잊고 사는 것과 같다.그게 사람의 얄싸한 속성이란 말인지. 「장자」에 이런 우화가 보인다.­장주가 감하후에게 곡식을 빌리러간다.가는 도중 수레자국으로 패어 있는 곳에서 물고기가 그를 부른다.물고기는 자기는 동해에 살았는데 이꼴이 되었다면서 물을 조금만 길어다가 제목숨을 살려달라고 한다.그에 대해 장주는 오나라나 월나라왕한테 부탁해서 서강물을 끌어다가 살려주겠노라고 말한다.물고기는 섟김에 버럭 내뱉는다. 『내게는 항상 있던 것이 없어진 겁니다.나는 이제 있을 곳이 없어졌다 이 말입니다.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은 약간의 물일 뿐입니다.그런데 뭐라고요? 그럴바엔 차라리 건어물 가게에 가서 나의 몰락한 모습을 찾으시지요』 이는 감하후가 세금이 들어오면 3백금을 빌려주겠노라고 시적거리자 분통터져 한 비유이긴 하다.또 여러가지 뜻으로 해석되고도 있는 터다.하지만 오늘의 인류가 어느 땐가 그 물고기의 말을 그대로 되뇌게 되는 것 아닐까 생각해본다.당연히 항상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던 물을 잃은 물고기의 비탄.지구촌물은 갈수록 죽어간다.마르고 넘치고 한다.지금 우리에게 닥친 가뭄도 물을 어떻게 생각하고 다룰 것인가를 깨단하는 계기로 삼을 수 있어야겠다. 가까운 고마움을 잊지 않아야 한다.「장자의 물고기」신세가 돼서의 후회는 늦은 것 아니겠는가.
  • 14억 전재산 장학금기탁 70대부부/서울대생들 “보은 잔치”

    ◎수혜 학생 10명 오리털외투 선물/학교측 「윤전수장학금」 공식 제정 평생 모은 전재산 14억원을 서울대에 장학금으로 기탁한 「못배운 한」의 7순 노부부와 장학금혜택을 받은 우수대학생들이 1년만에 한자리에 모여 훈훈한 세밑의 정을 나눴다. 지난해 세밑에 어렵사리 모은 전재산을 서울대에 기탁한 윤전수(77·서울 마포구 북아현동)·이삼락(74)씨부부는 12일 상오11시30분 조촐한 오찬이 마련된 서울대 교수회관 2층에서 장학생 이호웅군(19·물리1) 등 서울대생 10명과 만나 얘기꽃을 피웠다. 학생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바라보며 시종일관 흐뭇한 미소를 지은 채 말이 없던 윤할아버지는 「한마디」 해달라는 주위의 끈질긴 권유에 마지못해 『아무쪼록 공부 열심히 해서 큰 일꾼이 되어달라』는 소박한 바람만 전할 뿐이었다. 먹을 것 안 먹고,입을 것 안 입으며 모은 전재산을 장학금으로 내주자니 아쉽기도 했다는 이할머니도 『막상 학생들의 얼굴을 마주보니 반갑고 흐뭇할 따름』이라며 할아버지의 뜻에 따르길 잘했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이성제군(23·고고미술4)은 『장학금으로 학업에 열중할 수 있었다』며 『부모님과 같은 은혜를 입은 셈』이라고 말해 박수를 받았다. 오른쪽 귀가 불편한 듯 보청기를 낀 채 학생들의 말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쓰던 윤할아버지는 감사의 꽃다발을 걸어주는 손녀 같은 손정애양(23·중문4)의 손을 꼭 잡아주며 말로는 못다한 정을 나누기도 했다. 학생들은 또 노부부의 건강한 겨우살이를 빌며 오리털외투를 선물했다. 서울대 김동진학생처장은 『앞으로 이같은 자리를 해마다 마련하는 것은 물론 「윤전수장학금」을 공식제정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경기 파주가 고향인 윤할아버지는 소학교 1학년을 다니다 중퇴한 뒤 13세부터 일본인에게 목수일을 배워 평생 해왔고 역시 소학교를 중퇴한 할머니도 목공소 옆에 솜틀집을 차려놓고 함께 돈을 벌었다.노부부는 그렇게 번 부천시 자유시장 안의 대지 1백45평,건평 3백25평의 3층건물등 전재산을 지난해 이맘때쯤 서울대에 흔쾌히 희사했다.소학교만 중퇴한 「못배운 한」이 그 주된 이유였다. 이날 만남이 그 한을조금이라도 풀어줄 수 있기를 이날 참석자들은 한결같이 기원했다. 7순의 노부부는 제대로 배운 슬하의 2남2녀를 모두 출가시키고 전재산을 장학금으로 내놓았다.
  • 시민사회의 대화/김창화 연극평론가(굄돌)

    12월이 되면 갑자기 이런 저런 모임들이 많아진다.그동안 바쁘게 지내면서 만남을 미루어 두었던 사람들을 모두 다 찾아보고,한해의 마지막 의미를 빠짐없이 기억해 보고 싶기 때문이다.이렇게 세월의 마지막 장을 음미하기 위한 모임에 자주 참석하다 보면 본의 아니게 택시를 이용하게 된다. 음주운전을 피하기 위해,지하철이나 버스와의 편안한 연결을 위해,늦은 시간 때문에 찾게 되는 택시는 시간의 변화와 흐름에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시절을 앞질러 장식된 백화점의 송년 풍경처럼,12월의 화려한 일정을 위해 거리에 나선 시민들은 택시와의 만남을 위해 오래 기다려야 한다.도시속의 심각한 인구이동을 피부로 느끼면서.기다림이란 누구에게나 지루한 것이라는 것을 절감하며.택함 받는 시민이 되기 위해 한껏 행선지를 알리는 목청을 높이며. 결국 은혜로운 운전사의 허락과 함께 택시를 타고 나면 행복한 안도감에 파묻히게 된다.그러나 짧고도 긴 하루를 되돌아 보고 싶은 잠시의 여유를 몰아내는 택시 안에서의 예기치 못했던 대화는 가끔씩 고통스러운 심문처럼 사납게 덤벼든다.우리 사회 구석구석에 파묻힌 얘기를 승객에게 자연스러운 방법으로 전하고자 하는 운전사의 능숙한 입담은 어느덧 청하지 않은 방향으로 접어들기 시작하면서 사회 구성원에 대한 일방적인 비난의 상황에 도달하게 된다.평범한 대화의 수준을 넘어 피부에 와닿을듯한 격한 감정의 표현까지 동반한 세상얘기는 결국 모르고 지나쳐도 될 시민의 권리를 여지없이 빼앗고 만다.십대의 탈선과 땅에 떨어진 시민사회의 윤리의식,정치와 경제의 모순구조,위선적인 인간들의 파렴치한 모습들에 관한 얘기는 때로 설득력도 있고 건강한 시민사회의 구현을 위해 필요하다. 그러나 시민사회의 대화는 자신의 주장보다는 다른 사람의 입장에 대한 이해가 우선적이며 목소리를 높이기 위함이 아니라 공감을 얻기 위한 노력이 앞서야 할 것이다.12월의 숱한 만남들이 즐거웠던 것은 아직 대화를 나눌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니까.
  • 정치적혼란기…신중하게 접근/일·북관계/고바야시 가즈히로

    ◎내외전문가 한반도 정세 조망/“실리외교” 여론 비등… 「전후보상」 걸림돌 「냉전의 화석」이라고 불려온 한반도에도 미·북한의 제네바합의로 「화해」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북풍의 차가운 바람이 휘몰아쳤던 북한에 「경수로 지원」 「미국과의 연락사무소 상호설치」라는 「태양」이 비치며 「핵무기 개발」이라는 얼음이 녹기 시작했다고 할까.낙관적으로 보면 동북아시아에 이제 겨우 대립구도를 벗어나 평화와 번영을 향한 새로운 질서구축이 시작되는 환경이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은 이미 「북방외교」로 중국과 러시아와 외교관계를 맺고 미국과 북한도 제네바합의로 외교관계 프로그램을 만들었다.나머지는 일본과 북한과의 관계와 한반도의 주역인 남북관계뿐이다. 이때문에 일본정부도 기본적으로는 북한과의 관계개선을 모색하고 있다.그러나 아직은 구체적으로 움직이지 않고 있다.결론부터 말하면 일본정부는 북한과의 관계개선에 매우 신중하게 대응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과 북한과의 국교정상화교섭은 지난 1991년 1월에 시작됐다.그러나 일본측은 북한의 핵개발 의혹의 해소를 요구하고 북한은 2차대전 전뿐만이 아니라 전후의 보상까지 요구,회담은 평행선을 걸어왔다.더욱이 92년 11월 제8차 교섭에서 일본측이 제기한 KAL기 폭파범 김현희의 일본인 교사 「이은혜」 문제에 북한이 강력히 반발하며 회담은 교착상태에 빠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한국과 함께 미·북한제네바합의에 따라 40억달러의 경수로 건설지원과 경수로 완성까지의 대체에너지인 중유 공급비 20억달러의 대부분을 부담할 것 같다.일본정부는 이를 「안전보장 비용」으로 보고 응분의 부담을 지겠다는 뜻을 나타냈다. 그러나 일본 국민들 사이에는 국교도 없을 뿐만 아니라 장거리 미사일을 일본을 향해 시험발사하고 일본인처의 고향방문도 허용하지않는 북한에 거액의 세금을 사용,지원할 필요가 있는가에 대한 의문과 불안이 강하다.그런 가운데 사회당은 미·북한합의후 북한과의 관계개선의 실마리를 찾기위해 같이 연립여당을 구성하고 있는 자민당과 신당사키가케에 북한방문을 요청했다.그러나 신중론이 강해 전망은 불투명하다. 신중론은 지난 90년 평양에서 발표된 자민·사회당 대표단과 조선노동당의 3당공동선언에 포함된 「2차대전 전뿐만 아니라 전후 45년간의 보상도 한다」는 내용을 이번 방문에서 확인해주는 결과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이유 때문이다.또하나는 김정일의 최고 지도자 취임이 정식 결정되기전에 북한을 방문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이유 때문이다. 일본내에서는 또 북한에 경수로지원등을 하려면 핵의혹의 불식만이 아니라 군비증강·인권문제등에 대해서도 북한에 적극적으로 발언하여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일본은 더욱이 지금 정치적 혼란기에 있어 강력한 리더십의 발휘를 기대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북한은 또 일본이 외교채널를 통한 관계개선을 추구할 경우 반발할지 모른다.이러한 복합적 요인으로 일·북관계는 진전과 후퇴를 반복하며 조금씩 진전될 것 같다.극적인 발전은 기대할 수 없다. 그러한 상황속에서 일본이 가장 주목하고 있는 것은 남북관계다.김영삼 대통령은 남북경협에 대해 「신중히 검토발전시킬 때가 됐다」고 발언하고 있으며 한국정부도 경제인의 상호방문등을 용인할 방침을 정했다.지금까지 「선통일·후교류」를 주장해온 북한이 이번 한국조치에 어떻게 대응할지는 북한의 대남정책 변화의 시금석이 된다. 북한의 부자세습은 예정대로 진행될 것 같다.북한은 권력기반을 강화하기위해 김정일에 대해서도 김일성과 유사한 신격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그러나 그러한 체제는 외부로부터의 정보유입에 무너지기 쉬운 결정적인 취약점을 갖고 있다.이때문에 북한의 개혁·개방에는 스스로의 한계가 있을 것이다. 한국인중에는 「남북이 통일되면 경제·군사면에서 일본의 위협이 되기때문에 일본인들은 통일을 바라지않고 있다」고 보는 사람들이 있다.물론 일본인중에 그러한 발언을 하는 사람이 극히 일부 있다.그러나 여론화되지는 못하고 있다. 남북이 평화적으로 통일되어 안정되는 것이 일본의 국익을 위해서도 가장 바람직하다.그러한 평화통일을 위해서는 북한이 경제적으로 좋아지고 개방체제로 바뀔 필요가 있다.그러나 현실은 북한의붕괴라는 시나리오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그 경우 한국에 심각한 경제적 타격을 줄뿐만 아니라 한반도의 불안정요인이 될지도 모른다. 북한의 이러한 붕괴를 막기위해서는 중국의 역할이 중요하다.중국도 그러한 사실를 잘알고 있어 북한과의 정치적 관계 유지를 중시하고 있다.그러나 일본정부는 남북관계개선을 위해 적극적인 역할을 담당할 의사도 없고 개입해서도 안된다.다만 중국에 대해 북한의 개혁·개방 노선으로의 전환을 촉구하도록 요청하는 정도일 것이다. 일본은 현실적으로 국내 정치적 혼란때문에 한반도및 동북아시아 지역의 새로운 질서구축의 청사진을 그릴 수 없는 상황이다.한국도 북한이라는 불안정 요인을 없애는 것이 급선무다.그러나 완벽한 해결책을 찾는 것은 어렵다.이때문에 북한의 핵문제 대응에서 보여준 것과 같이 일·미·한 3국이 연대를 유지하며 대화해 나가는 수밖에 없지않을까.
  • 구오동·이팔리/김일성 현지지도 날짜서 지명 따와(오늘의 북한)

    ◎고려대 아세아문제연,북한 행정지명 유형별 분석/김일성 가계/김정숙군·김형직군·정일봉/혁명의식고취/충성동·전승동·해방리 등/체제 충성자/김책시·김제원리·이수덕리 나진·선봉시는 북한당국이 요즈음 외자유치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경제특구이다. 그러나 북한을 고향으로 둔 실향민들조차도 선봉이라는 지명에는 고개를 갸우뚱할 수 밖에 없다.그도 그럴 것이 북한당국이 함북 웅기군을 없애는 대신 「매사에 선봉에 서라」는 뜻으로 새로운 행정지명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북한에선 김일성일가에 대한 충성심 고취나 사회주의식 노력동원을 부추기기 위한 이른바 「북한식 지명」이 수없이 많은데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최근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가 주최한 학술세미나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정치성을 띠고 개명된 북한의 행정지명은 몇가지 유형으로 분류된다. 첫째 김일성 가계의 이름을 직접 딴 행정지명으로 81년 8월 양강도 신파군을 김정숙군(김정일의 생모)으로 개편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88년 양강도 후창군을 김형직군(김일성의 부)으로,90년 풍산군을 김형권군(김일성의 숙부)으로 바꾼 것도 같은 맥락이다.이밖에 민족의 성산인 백두산 밀영속의 한 봉우리 이름을 김정일 이름을 따 정일봉으로 고친 사례도 있다. 둘째 일반어휘에 사회정치적 의미를 부여해 김일성부자에 대한 충성,혁명업적 찬양 및 사회주의적 변화상을 반영한 지명이다. 이를테면 충성동(자강도 강계시,남포시 대안구역 소재),은덕군(경흥군),은혜리(황남 은률군),은정리(황북 서흥군),영광군(함남 오로군)등이 수령과 당에 대한 충성과 감사를 기리기 위해 새로 지어진 행정지명들이다. 이와는 달리 81년 함남 회조군을 낙원을 건설했다는 뜻으로 락원군으로 개칭한 것을 비롯해 수령의 업적과시를 행정지명으로 부여한 것도 적지 않다.개선동(평양시 모란봉구역,강원도 원산시),전승동(평양시 모란봉구역)등이 이에 해당된다. 다른 한편 사회주의적 변화의 현실을 강변하거나 선전하기 위한 것으로는 해방리(황남 옹진군,강원도 고산군),혁신리(자강도 장강군),평화리(함남 금야군,황남 강병군)등이 있다. 셋째 이른바 김일성의 「현지지도」날짜가 지명으로 정착된 곳도 많다.오일노동자구(자강도 장강군,양강도 갑산군),구오동(자강도 만포시),이팔리(함남 부전군),구월동(평남 평성시)등이 그것이다. 넷째 김일성과 북한체제에 충성한 사람들의 이름을 빌린 지명이다.성진시와 학성군을 김책시와 군으로 바꾼 것이라든가 김제원리(황남 재령군),이수덕리(강원 평강군),박춘 로동자구(함북 경성군)등이 이 범주에 들어간다.
  • 북,일 여당대표단 입북거부 시사

    【도쿄 교도 연합】 북한은 7일 일본이 지난 90년 북한과 합의한 공동선언의 유효성을 재확인하지 않을 경우 조·일수교협상 재개방안 협의차 북한을 방문하는 일본 연립여당 대표단의 입북을 거부할 것임을 시사했다. 김용순 북한 노동당비서는 이와 관련,이날 일본 TBS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일본 연립여당측이 북한의 전후보상문제에 관한 자민·사회·북한노동당간의 공동선언내용이 유효하다는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은 이어 북한은 일본이 북한에 납치된 이은혜여인에 대한 정보를 제공할 것을 요구할 경우 연립여당 대표단의 입북을 허용하지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일본 자민당과 사회당은 지난 90년 북한을 방문,북한노동당과 일제식민통치에 따른 전후피해보상 등을 이행토록 일본정부에 촉구하는 내용의 공동선언을 채택했다.
  • “가족·근로수당 노동대가와 무관/통상임금서 제외돼야”/대법 판시

    초과근로수당이나 휴일수당 등의 계산기준이 되는 통상임금에 가족수당과 근속수당은 포함되지 않는다는 대법원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민사2부(주심 박준서대법관)는 31일 류권상씨 등 인천 남구 도화동 (주)청보산업의 노동조합원들이 회사를 상대로 낸 체불임금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이같이 판시,원고패소판결을 내린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통상임금이란 노동자에서 정기적·일률적으로 지급되는 금액으로 노동의 양 및 질에 관계되는 노동의 대가』라고 전제,『그러나 가족수당이나 근속수당은 노동의 양 및 질과 무관하게 지급되는 은혜적 성격의 수당이므로 통상임금의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 백제 보물급 문화재 익명 기증/일 하치우마 다다스로 밝혀져

    ◎이민섭장관,감사패수여… 특별전시실 설치 약속/통일신라 금동불상·사리5과 추가 기증/“마음에 담았던 한·일친선 도움 됐으면” 지난 9월19일 부친이 소장해오던 보물급 문화재 백제금제귀걸이등 한반도 출토유물 3백77점을 조건없이 기증한 익명의 일본인이 24일 통일신라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금동불상과 사리병안에 들어있던 사리 5과를 추가로 기증하면서 본인의 신분을 밝혔다. 문화재 기증자는 일본 효고현 아시야시에 거주하는 하치우마 다다스씨(67·부동산업)로 평소 마음속에 품어 왔던 한·일간의 친선도모를 위해 부친의 컬렉션을 모두 기증하게 됐다고 말했다. 하치우마 다다스씨가 이날 이민섭 문화체육부장관에게 기증한 금동불상은 그동안 일본 교토시의 수학원 이궁 안에 있는 촌구사에 봉안되어있어 기증 목록에서 빠졌던 것이다. 금동불상은 높이 5.5㎝로 둥근 두광에 두손을 배부분에 모으고 앉아 있는 좌상의 판불로 통견의 법의를 입고 있으며 좌대에 고정시키기 위한 돌기가 있는데 원래의 좌대는 없고 새로이 만들어 고정했다. 이불상은 수집당시의 기록에 따르면 19 22년 경주의 불국사 주변에서 발굴된것이다.국내의 학자들은 이 불상이 통일신라의 것으로 원만한 모습의 희귀한 양식적 특징을 지니고 있어 불교 조각사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될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하치우마씨는 또 이미 기증한 전남 영광군 도갑사 부근의 탑에서 출토된 사리병 속에 있던 갈색 회색빛을 띠고있는 1∼2㎝ 내외의 표주박 모양을 한 사리 5과도 함께 기증했다. 이민섭장관은 하치우마씨에게 감사패를 수여하고 앞으로 국립박물관에 하치우마 다다스실을 만들어 특별전시하면서 기증자의 뜻을 기리겠다고 말했다. 하치우마 다다스씨는 『올해 1백살이되는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양친이 함께 수집했던 한국의 문화재를 조건없이 한국에 돌려주고 싶었다』면서 『과거 일본이 한국에 큰 은혜를 입었는데 이 기회에 조금이라도 보답할 수 있게 된것을 고맙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치우마씨의 부친 하치우마 가네스케씨는 일본의 사쿠라은행총재를 지낸 원로 금융인으로 은행을 퇴직한 후에는 석유산업과부동산업으로 큰 돈을 모아 중국과 한국의 문화재를 사모았다.그가 62년 세상을 떠나자 6남매가 고르게 나누어 가졌는데 차남인 다다스씨가 소장했던 3백77점을 한국에 모두 기증한것. 처음에 이름을 숨긴것은 『불교신자로서 남의 나라의 종교와 신앙에 대한 문화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부끄러운 생각이 들어서였다』고 밝혔다. 부친인 하치우마 가네스케씨는 한국에 한번도 오지않았으며 다다스씨도 이번 방문이 지난 9월의 짧은 방문에 이어 두번째.경주에서 1박을 하면서 법주의 신비한 맛에 취했다는 다다스씨는 일본의 자기 소유 땅에 한·일 양국의 우호 친선과 문화 교류증진을 위한 건물을 짓고 싶다고 밝혔다. 건장한 체격에 귀족적인 인상인 하치우마씨는 『국립박물관에 특별전시실이 마련되면 가족과 함께 서울을 다시 방문하고 싶다』며 『당연히 해야할 일을 했을 뿐인데도 장관이 감사장을 주고 환대를 해주어 진정으로 감사한다』며 밝은 얼굴로 말했다.
  • 대북한 수교회담/무조건 재개용의/고노 일외무 밝혀

    【도쿄 교도 연합】 고노 요헤이(하야양평)일본 외상은 20일 조건없이 북한과 수교회담을 재개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고노외상은 이날 중의원 안보특별위원회 답변을 통해 『북한과 회담을 재개하는데 전제조건을 달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면서 이같이 강조했다. 그는 특히 북한에 납치된 것으로 알려진 이은혜문제 등 북한과 일본의 현안문제와 관련,『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다면 협상을 재개한후 처리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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