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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인의 젊은 춤꾼 한무대에

    ◎월간 ‘춤’·LG화재 올 7월부터 연례행사로/안무가 발굴 역점… 평론가들이 대상자 선정 요즘의 공연예술계,그중에서도 특히 무용쪽은 판을 벌이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기업의 후원이 썰물처럼 급속히 자취를 감추는 데다 일반 관객을 기대하기도 힘든 상황이기 때문이다.하물며 새 판을,그것도 커다란 무대로 펼친다는 것은 시대감각이 없거나 아니면 일종의 객기에서 비롯되는 무모한 행위로 비쳐지는게 현실이다. 이런 면에서 무용전문지 월간 ‘춤’과 LG화재(주)가 올 7월부터 연례행사로 ‘젊은 무용가 초청공연’의 새 판을 차리기로 한 것은 무용계의 일대 ‘사건’으로 받아들여질 만하다.월간 ‘춤’이 오히려 이런 때일수록 젊은 춤꾼들의 열정을 살릴 수 있는 춤판이 더욱 절실하다는 뜻에서 행사를 대담하게 기획했고 LG화재가 이 취지에 선뜻 동참,6천만원을 후원하기로 해 마련된 가뭄속의 단비같은 무대다. ‘젊은 무용가 초청공연’의 기본 골격은 장르를 가리지 않고 매년 30대 무용가중 가장 우수한 안무가 겸 춤꾼 8명을 뽑아 한 무대에 세우는 것.이전에도 신예와 유망주 등 젊은 춤꾼들을 대상으로 한 기획공연들이 없지 않았지만 대부분 춤에 초점을 맞춘 것과 달리 안무가 발굴에 역점을 둔 점이 이번에 행사의 차별적 특징이다.게다가 무용계의 고질인 계파와 파벌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초청대상자 선정을 객관적 입장의 평론가들에게 완전 일임하고 있는 것도 신선한 시도로 받아들여진다.물론 △30대 이하로서 △대학교수가 아니며 △2회이상 공연경력을 갖추고 △안무와 함께 자신이 직접 무대에 설 것 등 기본 자격은 주최측으로부터 제시되지만 이 범위 내에서 실제 선정작업은 무용계 전체의 흐름이나 현상을 꿰뚫어 관찰하는 무용평론가들이 맡는다.올해는 김경애·김영태·김채현·김태원·이순열·이종호·정병호·조동화·채희완씨 등 9명이 심사를 했다. 오는 7월 8∼10일 서울 문예회관 대극장에서 펼쳐질 첫 공연에는 발레의 김나영(29)과 한국무용의 김은희(36)·은혜진(28)·이명진(37),현대무용 박호빈(32)·송미경(35)·신용숙(37)·최일규(29) 등 8명이 올해의 첫 ‘젊은무용가’들로 뽑혀 꿈의 도약무대를 밟는다.762­3595.
  • 국태공의 보은(비록 남가몽:2)

    ◎대원군,정권잡사 신세진 쌀장수에 관직/이조판서 홍종응 집서 무참하게 냉대받고/서 강사는 쌀장수 이천일 찾아가 사정하니/쌀 20섬·돈 1천냥 꾸러미·정육 100근 선뜻/아들 보위 오를던날 궁중잔칫상 차려 대접 고종이 즉위하자 아버지 흥선군은 대원군이 되고 세상사람들은 그를 국태공이라 불렀다.운현궁도 초가 삼간에서 대궐같은 기와집으로 탈바꿈했다.당시의 돈으로 1만7천830냥이나 들여 신축하였으니 만일 그 때가 IMF시절이었다면 즉각 공사중지 명령이 내려졌을 것이다. 그러나 오랜만에,실로 오랜만에 권좌에 오른 대원군이었던 만큼 그까짓 1만이나 2만냥 같은 돈을 쓰는 것은 당연한 일로 여겼고 무엇보다 먼저 해야할 일이 나라 일이라 생각하지 않았다.그동안 자기를 도와준 사람에게 보답하고 자기를 능멸했던 사람에 대해서는 응분의 불이익을 주어야만 한다는 생각이 앞섰다. 먼저 대원군이 손을 보려 했던 사람은 이조판서 홍종응이었다.이사람은 당대 유수의 대학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보는데 안목이 없었고 세상일에 너무 각박했다.○하인폭거로 왼손에 유혈 1863년 임술민란(일명 진주민란) 직후의 경제는 특히 어려웠다.요즘과 같은 경제난국이 닥쳐 모든 사람들이 하루 끼니를 잇기가 어려웠는데,흥선군도 예외가 아니었다.그래서 하루는 흥선군이 홍판서 댁을 찾아가 구걸하게 되었는데,홍판서는 문전박대를 했다.문전박대 뿐만 아니라 그 댁 하인이 대원군에게 폭행까지 하여 손가락에 유혈이 낭자하였다. “국태공이 흥선군 시절에 너무 가난하여 늘 꾸워 먹고 살았다.임술민란이후에 인심이 점점 각박하여 먹고 살 길이 막막하였다.이조판서 홍종응의 집에 가서 입을 열고 싶었으나 여러 번 은혜를 입은 처지라서 쉽게 말하기도 어려웠다.그러나 염치를 불고하고 부득이 찾아가니 하인들이 나와서 말하기를 ‘우리 대감께서는 근래에 건강이 좋지 못하여 잠시 산정의 사랑에 쉬러 갔습니다. 소인들에게 분부하시기를 아무라도 들이지 말라고 하셨으니 다른 날 다시 오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고 했다.그러나 세모에 날씨가 너무 추운데다 배도 고프고 목마름이 심하여 일이 성사되건 안되건간에 한번 만나 얘기나 해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흥선군이 애걸하니 하인들이 차마 거절하지 못하여 협문을 열어 들어오게 하였다. 그러나 홍종응이 답하기를 ‘이왕에 몇번 청구하신 것은 즉시 봉행해 드렸습니다만 지금은 세모를 당하여 너무 많은 사람들이 날마다 구걸하니 이들을 다 구제해주기 어렵습니다.얼마 안되는 이조판서의 봉급으로는 그 사람들을 다 기쁘게 해주기 어려우니 대감께서 금번에 청하시는 것은 어찌할 수 없습니다.차차 형편을 보아 후일에 도와드리겠습니다’ 하고 흥선군의 청을 거절했다. 거기까지는 좋았는데 흥선군이 그 집 문밖을 나설 때에 불상사가 생겼다.뒤를 따라 나온 홍종응의 하인이 발길로 협문의 판자를 찼다.그 조각이 흥선군의 손을 내리치니 다섯 손가락에 유혈이 낭자하였다.” 그러나 서강에 사는 쌀장수 이천일의 경우는 전혀 달랐다.홍종응의 집에서 쫓겨나다시피 한 흥선군은 손에 붕대를 감은 채 그 길로 이천일의 집을 찾아갔는데 맞이하는 태도부터가 홍종응과는 크게 달랐다. ○“집권자 되면 은혜 갚겠다” “부득이 서강에 사는 쌀가게 주인 이천일을 찾아갔다.흥선군을 맞은 천일은 크게 놀랐다.문안을 드린 후에 보니 흥선군의 왼손 다섯 손거락에 피가 엉기어 얼었고 상처의 흔적이 매우 심하였다.천일이 ‘어찌해서 이 지경에 이르렀습니까’하고 물으니 대원군은 ‘나귀를 모는 아이가 실수하여 빙판에 떨어져서 그렇게 되었다’고 하였다.천일이 약수로 피를 씻어낸 후에 손을 헝겊으로 싸니 조금 통증이 가셨고 정신이 들었다. 그런 뒤 천일이 ‘대감은 어찌해서 누한 곳(누지)에 행차를 하셨습니까.’고 물으니 대원군은 ‘다른 이유가 없고 몇년 전부터 내가 그대의 은혜를 입어 왔으나 지금 세모를 당하니 추운 절기에 살아갈 길이 막연하여 염치불고하고 찾아왔네’ 하고 답했다.이에 천일이 아뢰기를 ‘형편이 그러시다면 물건 보내라는 패지(메모지) 한 장이면 족하실텐데 대감께서 예까지 친림하셨습니까.송구할 따름입니다.염려하지 마시고 돌아가십시요.내일 아침일찍 조처하여 보내 드리겠습니다’고 황송해했다. 대원군은 집에 돌아왔으나 저녁을굶은 터라 추위가 더욱 혹독하여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이천일은 약속대로 이튿날 아침 일찍이 물자를 보냈다.흥선군이 조반 후에 서강의 이천일에게서 보내 온 목록을 보니 쌀 20섬,돈 1천꾸러미,장작나무 50바리,정육 100근,서초(평안도에서 나는 담배) 30근이나 되었다.흥선군은 ‘이 은혜를 어찌 갚을꼬’ 생각하면서 ‘만약에 하늘이 도와 내가 집권자가 된다면 제일 먼저 그 은혜를 갚겠다’고 맹세하였다.” ○경상감사와 비슷한 녹봉 세상 일은 알 수 없는 것.거지 흥선군이 국태공이 될 줄을 누가 알았으랴.1863년 12월8일 젊디 젊은 철종이 갑자기 승하하니 운현궁에 왕기가 서렸다. 아들이 임금이 되고 흥선군이 대원군으로 뜬 것이다. 즉위식 날 대원군이 서강의 쌀장수 이천일을 특별히 부르니 천일이 발이 땅에 닿지 않을 정도로 달려와 운현궁으로 들어섰다. 대원군이 친히 손을 잡고 인도해 가니 천일은 떨리고 황공하여 나아가지 못하고 약간 떨어진 거리에서 몸을 굽히고 있었다.그 두터운 은혜를 이루다 헤아리기 어려웠다. 이 때 대원군의부인 민씨가 이천일이 온 것을 알고 궁중의 잔치상을 내어오게하니 천일은 손이 떨려 진수성찬을 다 먹을 수가 없었다.이에 대원군이 친히 천일의 손을 잡아 상에 앉게 한뒤 큰 은반에 홍로주를 가득 부어주니 천일에게 그렇게 큰 영광은 처음이었다.” 대원군은 왕실의 체면을 많이 떨어 뜨렸으나 그 정분은 잃지 않았던 것이다.뿐만 아니었다. “드디어 이천일이 선혜청 고직에 임명되니 그 수입이 경상감사의 봉급보다 못하지 않았다.선을 쌓은 집에는 반드시 경사스런 일이 있다하더니 과연 헛말이 아니었다.” 지금도 홍종응 처럼 한치 앞을 못 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천일같이 착한 사람이 없지 않을 것이니 이 일은 두고 두고 후세 사람들이 명심할 일이라 할 것이다.
  • 새정부 각료 17명의 프로필

    ◎이정무 건설­실물경제 해박… 여야 교류폭 넓어 원만하고 합리적 성품으로 여야를 초월,교류폭이 넓다.노태우 전 대통령으로부터 13대 민정당 공천을 받아 정계에 첫 진출했으며 14대때 낙선,절치부심끝에 재기에 성공했다. 대구백화점 사장을 지내는 등 실물 경제에도 밝으며 자민련내 역학구도의 한 축을 차지하고 있는 T·K(대구·경북)출신이면서도 특정계파에 치우치지 않는 중립적 태도로 당지도부의 신임을 받고 있다.지난 15대 대선때 상당수 T·K의원들이 동요할때 좌고우면하지 않고 당을 고수,김종필 명예총재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는 후문.부인 구순모 여사(53)와 2남 1녀. ◎주양자 보건­보스기질 강한 의료계 여성대부 추진력이 강하며 솔직한 성품으로 대외관계도 원만하다는 평.구민자당 시절 여성으로서 제3사무부총장을 지낼정도로 보스기질도 강하다. 지난 92년 14대 총선때 구민자당 전국구 공천을 받아 원내 진입에 성공했으나 15대 총선에서는 공천을 받지못해 원외에 머물다 지난 96년 10월 자민련에 입당한 홍일점 여성 부총재. 지난 56년 서울시립병원 의사를 시작으로 의료계에 발을 들여놓은뒤 서울시의사회 고문 등을 역임하는 등 의료계의 여성대부로 불린다.남편 이태헌씨(75)와 1남 3녀. ◎최재욱 환경­언론인 출신 TJ측근… 소신·의리파 의리파로 불리우며 조용하면서도 맡은 일은 철저하게 챙기는 스타일.5·18특별법 제정때 구민자당 당론에 반대,국회에서 홀로 부표를 던지고 탈당한 소신파이기도 하다.언론인 출신으로 구민자당 시절부터 자민련 박태준 총재의 측근으로 활동해 왔으며,이번 조각에 박탈되는데도 박총재의 천거가 크게 작용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는 환경부를 소관부처로 두고 있던 사회문화분과위 간사를 맡아 원만한 일처리 솜씨를 보임으로써 김대중 대통령의 눈에 들었다는 후문이다.부인 박해경 여사(58)와 사이에 1남 1녀. ◎신낙균 문화­방송·문화계 인연 깊은 여권운동가 매사에 꼼꼼하고 빈틈없는 자세로 주위 사람들을 긴장시키지만,원만한 대인관계로 사람들을 모으는 처신 또한 뛰어나다.방송위원회 심의위원을 지내는 등 방송계와의 인연도많은 편.한국여성유권자연맹 회장시절 모금운동을 주로 음악회를 통해 벌여 문화계에서도 이름이 알려져 있다. 한국여성유권자연맹 청년부장부터 시작,지난 95년 국민회의 부총재로 정치입문할 때까지 줄곧 여성운동에 몸담아 왔다.국회 여성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여성의 정치참여를 주장하면서 실천적인 정책추진에 앞장서 왔다.남편 김훈섭씨(63)와 1남2녀. ◎박태영 산업­보험사서 잔뼈 굵은 ‘에너지 박사’ 치밀한 성격과 추진력을 겸비한 전문경영인 출신. 지난 86년 어느 기업인모임에서 김대중 대통령을 처음 만난뒤 동교동을 찾아가 정치입문 의사를 밝히고 14대때 원내에 진출했다. 14대 재경위의 국세청 국정감사에서 한화그룹 계열사인 경인에너지의 외화도피 및 탈세의혹을 폭로하는 등 ‘에너지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발탁배경이라는 후문.대한교육보험 과장 시절 ‘종업원퇴직적립보험’을 최초로 입안,회사 자산을 매년 3백20억원씩 늘려 입사 2년만에 이사로 승진하는 진기록을 세웠다.부인 이숙희 여사(52)와 1남1녀. ◎김선길 해양­미서교수생활… 관·금융계 마당발 관료출신 답지않게 성격이 원만하고 대인관계가 부드럽다는 평을 듣고 있다.고향인 충북 충주에서 세번 출마끝에 지난 15대 총선에서 금배지를 다는 등 끈질긴 면도 있다. 상공차관과 기업은행장을 지내는 등 관계와 금융계에서 오랫동안 재직한 경험이 발탁 배경이 됐다는 후문. 미 아메리칸대학에서 행정학 박사학위를 받은뒤 교수생활을 하다 해외두뇌 유치책에 따라 지난 71년 귀국,과학기술처 진흥국장으로 관계에 발을 들여놓았다.부인 윤병수 여사(63)와 사이에 2남 1녀. ◎강창희 과기­원만·합리적… 민정당 창당작업 참여 육사 출신이나 부친이 충남대총장을 지낸 학자집안 출신답게 원만하고 합리적 성품이라는 평을 듣는 4선의원. 육군대 교수로 재직하다 지난 80년 신군부 실세였던 허화평씨의 권유로 민정당 창당작업에 참여한뒤 11대에 전국구 예비후보 1번으로 의원직을 승계,정계에 첫 발을 내디뎠다. 5공시절에는 39세에 진의종 전 국무총리 비서실장에 발탁되는 등 출세가도를 달리기도 했다. 13대때 낙선과3당합당으로 지구당위원장도 뺏기는 등 시련을 겪기도 했으나 14대에 무소속으로 재기했다.부인 이재숙 여사(49)와 1남1녀. ◎이기호 노동­양노총서 신뢰… 행정능력 인정받아 온화하고 합리적인 성품에 뚝심도 갖추고 있으며 소재가 무궁무진할 정도로 달변이다. 경제기획원에서 잔뼈가 굵은 경제관료로 노사정 위원회의 노동관계법 개정과정에서 중재·조정 능력을 발휘,이번 조각에서 유일하게 재임명됐다.당초부터 기획예산위원장 물망에도 오르는 등 발탁 대상자로 꼽혔었다. 실업종합대책 수립과정에서 조직적인 행정능력을 인정받아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에서도 무난하다는 평과 함께 후임 장관으로 추천했다는 후문이다.취미는 등산.부인 양인순 여사(47)와 1남1녀. ◎박정수 외통­학자출신의 매너 깨끗한 국제신사 대인관계가 원만하고 매너가 깨끗한 ‘국제신사’.학자 출신의 5선의원으로 IPU집행위원을 맡고 있는 등 국회내 대표적 ‘외교통’. 특히 미조지타운대와 아메리칸대학원을 졸업,미국의회와 행정부에 지인이 많아 미국과의 통상외교를 주도하는데 적격이라는 점이 발탁배경.대선직후 김대중 대통령의 ASEM참가 및 미국방문 준비위원장을 맡아 일찌감치 외무장관후보 0순위에 올랐다. 지난 96년초 15대 총선전 민자당을 탈당, 국민회의 부총재로 영입됐다.유정회 의원을 지낸 이범준 여사(64)와 1남. ◎박상천 법무­다혈질 ‘법안제조기’… DJ 신임 각별 매사에 진지하고 성실하게 임하는 열성파.다소 다혈질이라는 평가도 받고있으나 업무추진에 열성을 다한다는 것은 장점. ‘법안 제조기’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국회 각종 입법활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해오고 있다. 20여년간 판·검사를 지낸 법조인 출신의 3선의원.13대 총선에서 평민연 케이스로 김대중 대통령과 인연을 맺어 정계에 입문했다.김대통령의 신임이 두터운 것을 바탕으로 어려운 ‘충언’도 서슴치않는 소신파로 알려져있다. 하루 흡연량이 2갑을 넘는 애연가.부인 김금자 여사(51)와 1남2녀. ◎강인덕 통일­합리적 보수주의… 중청 대북 정보통 통일문제에 있어 보수적 색채를 보이고 있으나 사고가 유연해서 ‘합리적 보수주의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성격이 활달하고 호탕한 편이지만 업무처리는 매우 치밀하다. 지난 71년부터 10년동안 중앙정보부에서 통일문제를 다룬 대북 정보통.중앙정보부 퇴직 이후 극동문제연구소 이사장으로 재직하면서 공산주의 일반과 소련의 개방·개혁 정책에 대해 많은 연구를 해 학자로서의 명성도 쌓았다. 북한전문가로서 항상 바쁜 생활을 해와 취미도 독서 및 저술.부인배정숙 여사(61)와 2남1녀. ◎천용택 국방­군사전략가… 대선때 북풍 차단 공신 결단력 있는 업무처리가 돋보이며 국방업무 전반에 능한 군사 전략가.논리적인데다 말보다 행동이 앞서는 스타일로 조직 장악력이 뛰어나다. 군내 핵심요직을 두루 거쳐 정책,전략,기획,군사교리 등의 분야에 밝지만출신 지역 탓에 93년 진급에서 밀려 전역한뒤 비상기획위원장을 맡았다.이후 국민회의 입당으로 정계에 입문,15대 국회에 전국구의원으로 진출했다.대선 과정에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장남의 병역의혹을 제기하고 북풍을 잠재우는 등 김대중 대통령의 안보 분야 핵심참모로 맹활약했다. 부인 김아미 여사(55)와 3녀. ◎이해찬 교육­기획력 치밀… ‘민청학련’ 옥고 치러 모든 면에서 성실하며 날카로운 기획력과 업무파악 능력을 갖고 있어 각종 의정활동 여론조사에서 항상 선두를 지키는 국회의원.국회 상임위에서 정부당국자들이 가장 두려워했던 의원중 하나다.88년 광주청문회 당시 ‘송곳질문’으로 청문회스타로 떠올랐다. 서울대 문리대 재학중인 지난 74년 민청학련사건으로 제적,1년간 실형을 살면서부터 재야의 길을 걸어오다 13대때 평민당 공천을 받아 여의도 입성에 성공했다. 바둑과 늦게 배운 골프에 재미를 붙이고 있다.부인 김정옥 여사(45)와 1녀. ◎이규성 재경­원리원칙 중시하는 정통 재무관료 원리원칙을 강조하고 공사가 분명하다.판단력이 뛰어나고 빈틈이 없어 ‘면도날’로 불리는 전형적인 재무관료.일을 많이 시키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후배 관료들을 심하게 야단친 뒤에는 소주잔을 기울이는 인간미도 있다.겉으로는 차고 깐깐하게 보이지만 잔정이 많다.충남 강경중 2학년때 월반해 대전고와 서울대 상대를거치면서 줄곧 수석을 놓치지 않은 전형적인 수재형이다.역대 재무장관중 인기 1위에 뽑힐 정도로 따르는 후배들이 많다.그러나 재무장관 재임중인 지난 89년 12·12 증시 부양조치로 투신.증권사를 부실의 늪에 빠트린 장본인이라는 약점도 있다.부인 정수자씨와 1녀. ◎김성훈 농림­국제적 명성 높은 농업경제전문가 농업경제전문가로 개혁적 목소리를 많이 내왔다.북한의 식량난 실태를 학계에 보고,국제 농학계에도 잘 알려진 인물이다.95년 지방선거때는 김대중 아태재단이사장 후원으로 전남지사 후보경선에 나섰다가 허경만 현 지사에게 고배를 마셨다.동교동계 경제브레인으로 지난 대선때에도 김대중 대통령의 정책자문역을 했다.‘우리 쌀지키기 범국민대책회의’ 집행위원장을 맡아 쌀시장 개방저지투쟁을 주도하기도 했다.온화하면서 리더십을 갖췄다는 평가.‘한국농업,이길로 가야 한다’‘쌀,어떻게 지켜야 할 것인가’등의 저서가 있다.부인 박인아씨(46)와 3남1녀. ◎배순훈 정통­MIT 출신 전문경영인 ‘탱크주의’ MIT 박사 출신으로 한국과학기술원 교수를 거쳐 대우그룹에 영입된 전문경영인.치밀하고 합리적이어서 ‘배박사’로 통한다.다기능 첨단제품을 중시하는 쪽과 내구성을 중요시하는 세계 가전업계의 양대 흐름 가운데 후자인 ‘탱크주의’를 채택,대우전자를 국내 가전3사의 반열에 올려놓으면서 탁월한 경영능력을 평가받았다.광고에 직접 출연,호평을 받은 스타 경영인이기도 하다.CDMA(코드분할다중접속) 등 첨단분야의 해외진출을 적극 주장해 왔다.국내보다 프랑스 사교계에서 더 유명하며 두 아들도 MIT동문이다.부인 신수희씨와 2남1녀. ◎김정길 행정­3당통합때 YS와 결별… 명분 중시 솔직담백한 성격으로 누구에게나 거부감이 적다.언변도 뛰어나 정치적 절충이나 협상에는 제격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서글서글한 인상도 친근감을 준다. 김영삼 전 대통령과 초등학교 선후배 사이로 대표적인 ‘YS맨’이었으나 지난 90년 3당통합시 김전대통령의 동행권유를 고사하고 야권통합에 힘을 쏟은 소신파. 96년 말 이기택 총재의 민주당에서 이탈,김원기 전 의원 등과 함께 국민통합추진회의를 결성한뒤 지난 대선에 임박해 김대중 대통령 지원을 선택했다.부인 이은혜 여사(43)와 2남3녀.
  • DJ 구국기도회 연설

    ◎“지금의 고통이 힘들다고 피하면/기업·국민·국가 모두가 망합니다” 김대중 대통령당선자는 19일 기독교 100주년 기념관에서 열린 ‘대통령당선자와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기도회’에 참석했다. 1시간 여동안 열린 이날 기도회에서 김당선자는 신정부의 개혁 청사진을 제시하면서 “경제를 살리는데는 마치 아편을 끊은 것과 같은 고통이 따를것”이라며 국민들의 적극적인 고통분담 참여를 호소했다. 김당선자는 신정권을 ‘국민의 정부’라고 규정한뒤,“국가 금고를 열어보니 돈은 없고 빚문서만 잔뜩 쌓여있었고 2개월 동안 밤잠을 못자고 미국과 일본에 연락,간신히 고비를 넘겼다”며 그간의 눈물겨운 노력을 설명했다. 이어 “고통받는 사람들의 눈에서 눈물을 닦아주는 정치를 하겠다”고 자신의 정치철학을 피력하면서 “지금의 고통이 힘들다고 회피하면 결국 기업과 국민,국가 모두가 망하게 되지만 국민이 힘을 합치면 반드시 나라를 살려낼 수 있다”며 경제회생의 의지를 거듭 역설했다. 이날 김당선자는 73년 8월에 일어났던 ‘김대중 납치사건’ 정황을 20여분간이나 생생히 전하면서 “죽을 고비를 넘겼다가 하느님의 은혜로 살게됐다”며 당시의 참담한 심정을 소개.이어 “그동안 역대정권은 손바닥으로 해를 가리는 진실은폐가 있었지만 정의는 반드시 밝혀지게 돼 있다”며 향후 진상규명에 무게를 실었다. 또 재벌개혁 대목에 대해선 강력한 의지를 거듭 피력했다.“IMF와 외환위기가 없었다면 지금 추진하는 (재벌)개혁에 많은 장애물이 생겼을 것”이라고 자위하면서 “철저한 기업구조조정을 통해 선진국 대열은 물론 경제회생의 토대를 이뤄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 북녘의 인권잣대/김용상 연구위원(남풍북풍)

    미국 국무부는 해마다 2월이면 다른 나라들의 인권상황을 조사 분석한 ‘인권보고서’라는 걸 만들어 의회에 제출하고 그 내용을 일반에게도 공개하고 있다.스스로 ‘인권천사’또는 ‘세계 인권경찰’로 자처하는 듯한 미국의 태도에 거부감을 갖는 나라도 적지 않지만 그걸 보면 한 나라의 인권 수준이 어느 정도인가는 가늠할 수 있다.그런데 최근 발표된 97년 인권보고서는 북한을 여전히 ‘전세계에서 인권상황이 가장 나쁜 국가중의 하나’로 지목하고 있다.주민들의 기본권은 철저히 무시되고 있고 악명 높은 정치범수용소 등지에선 공개처형이 예사로 자행되고 있다 한다.그러나 북한은 “미국식 인권론은 우리가 알 바 아니다” 며“우리는 인민 대중의 권리를 가장 높은 수준에서 완벽하게 담보해주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자기네끼리 통하는 북한식 인권 잣대가 따로 있다는 얘기다. 북한은 또 가당찮게 이따금 인권이나 인도주의를 들먹거리기도 한다.최근에는 미전향 장기수 출신 김인서 김영태 함세환씨의 가족들을 시켜 “남한당국의 인권유린을 더이상 방치하지 말고 빠른 시일내에 송환되게 해달라”는 편지를 국제인권단체들에게 보냈다.그러나 양민 학살 등의 혐의로 장기복역한 뒤 출소한 사람들을 그들이 원한다고 해서 선뜻 보내줄 수 없는 것은 상식적인 일이다.그뿐 아니라 5년전 보내준 이인모씨의 경우를 되돌아 보더라도 출소 공산주의자들을 북으로 보내는 것은 적절치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김영삼정권 출범 직후 남북대화의 물꼬를 터보겠다는 순순한 마음에서 아무 조건없이 이씨를 보내주었지만 북측은 “이씨가 돌아 온 것은 사회주의의 승리요,수령의 은혜”라며 체제보위의 선전도구로만 악용했었다.남측의기대를 저버리고 즉각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해버린 것도 이씨를 보내준 직후의 일이다.좋은 일 한 사람의 뺨을 때린 격이었다.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은 또 있다.툭하면 미전향 장기수들의 송환을 요구하면서도 휴전 이후 납치 유괴해 간 4백47명의 남한 인사들에 대해선 일언반구 하지 않는 점이다.무고한 4백47명의 인권보다 3인의 출소 공산주의자 인권이 더 값지고 소중하다고 여기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어찌됐든 북한은 아직 인권을 말할 자격이 없다는 건 분명하다.인도주의를 입에 올려서도 안된다.김인서씨 등을 송환하라고 요구하기 전에 납북 인사들을 가족의 품으로 보내주겠다는 약속부터 하는 것이 순서다.당장 시행키 어렵다면 그들의 생사 여부부터 알려주고 그 다음엔 편지라도 주고 받을 수있게 해주어야 할 것이다.
  • 초대 대선과 첫 조각(대한민국 50년:5)

    ◎하지 사령관 서재필 대통령 꿈꿨다/암살 겁내 출마거부… 결국 국회 간선서 이승만 당선/초대총리 이윤영 제청,인준 부결 수모… 이범석으로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의 정치적 지도력과 개성에 관해서는 평판이 극명하게 엇갈렸다.“대한민국을 세운 국부”“운산광산을 팔아먹은 매국노”“프린스톤 사람”(무초) “×자식”(하지)….남한에 진주한 미군 사령관 J.R.하지 중장은 애초부터 서재필을 귀국시켜 대통령에 입후보시키려 했다. 그것은 다분히 이승만에 대한 견제의 성격이 강했다.당시 하지의 개인고문으로 일하던 서재필은 이미 암에 걸려 있었다.그는 자신이 살해될 것이라는 피해의식 때문에 입후보를 거절,미국에 돌아간 직후 운명했다. 1948년 7월20일 제헌국회에서 간선으로 치러진 초대 대통령선거에는 결국 이승만과 김구,안재홍 등 3인이 나섰다.이미 예견된 대로 이승만은 196명의 재석의원 중 180표를 얻어 대통령에 당선됐다.김구는 겨우 13표를 얻었다.그리고 안재홍은 2표,무효가 1표였는데 무효는 미국 국적의 서재필에 투표한 것으로 밝혀졌다. ○7월24일 중앙청서 취임식 압도적인 다수로 대통령에 당선된 이승만은 1948년 7월24일 중앙청 광장에서 취임식을 가졌다.“죽었던 이 몸이 하나님의 은혜와 동포의 애호로 지금까지 살아 있다가 오늘 이와같이 영광스러운 추대를 받은 나로서는…” 그는 독립의 공을 연합군측에도,상해 임시정부를 비롯한 해외독립운동파에도,국내의 항일투쟁 세력 어느 곳에도 돌리지 않았다.모든 것을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돌렸다. 이승만은 취임후 곧바로 이화장에서 조각에 착수했다.‘조각의 산실’로 등장한 이화장은 문전성시를 이루었다.73세의 이승만은 철저하게 자신이 신뢰하는 측근만을 각료에 임명했다.그러나 그의 건국 내각은 국무총리 인준을 놓고 출발부터 상처를 입었다.이승만은 북한의 조선민주당 위원장인 조만식의 후광을 내세워 부위원장인 이윤영을 국무총리로 제청했다.하지만 이윤영 총리안은 제헌국회에서 인준이 부결되는 수모를 겪었다. 지면이 거의 없는 이윤영을 내세운 것 자체가 당시 정황으로 볼때 무리였다.한민당의 김성수가 국무총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국회의 공론이었다.그러나 이승만은 자칫 한민당에 업힐 것을 우려한 나머지 이를 애써 무시했다.국회의 전폭적인 지지 아래 대통령에 당선되었지만 정치적 발판을 국회에 두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초대내각은 결국 항일독립운동가 이범석을 국무총리로 실마리를 풀었다.그리고 내무 윤치영,외무 장택상,국방 이범석,재무 김도연,법무 이인,문교 안호상,농림 조봉암,상공 임영신,사회 전진한,체신 윤석구,교통 민희식,법제처 유진오,공보처 김동성,무임소 이윤영 등으로 조각을 마무리했다.그러나 이승만 대통령의 초대인선은 국회에서 친일논쟁이 가열되면서 실패라는 평가를 받았다.1948년 8월15일 우여곡절 끝에 대한민국은 출범했다.이와 함께 이날 상오 0시를 기해 미 군정은 폐지됐다. 이승만은 모든 관리들을 하향식으로 통제하려고 했다.이와 관련,미 중앙정보부(CIA)는 “이승만은 국무총리를 마치 ‘행정보좌관’처럼 부리고 있다”고 혹평했다.또한 미대사관은 상공부 장관 임영신을 “2다스의 속옷만으로도 매수당하는” 인물로 파악했다.그는 부패로 쫓겨난 최초의 각료라는 오명을 남겼다. 이같은 이승만 정권의 최고 통치방침 가운데 하나는 유엔에서의 승인을 획득하는 것이었다.그러나 새롭게 출범한 이승만 정부는 미국의 군사적 보호에 계속 의존했던 만큼 합법정부로서의 국제적 승인을 즉각 얻어내지 못했다.1948년 10월19일 재일조선청년단체의 암살 위협 속에 이승만은 일본을 방문했다.목적은 주일 연합군 최고사령관 맥아더를 만나 대한민국의 방위와 국제적 승인문제를 의논하기 위한 것이었다. 초대 주한미국대사 무초에 의하면 이승만은 맥아더를 특별히 존중했다고 한다.그래서 이승만은 자신이 정치적으로 곤경에 빠질 때마다 맥아더를 찾았다.1945년 10월 미국에 머물던 이승만은 환국과 더불어 그를 만났다.1948년 10월 회담은 주한미군 철수문제와 관련된 것이었다.미국이 한국을 지키겠다는 계획을 이승만으로 하여금 내외에 공표토록 시도했다는 점에서 이것은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대한민국 수립에 산파역을 맡았던 유엔한국임시위원단(UNTCOK)은 1948년 10월8일 유엔에 제출할 최종 보고서를 채택했다.이 보고서에는 국민이 선출한 대표들에 의해 성립된 한국정부는 정부의 기능이 점차 개선되어가고 있다는 내용을 담았다.모든 유엔 가맹국들은 한반도 전체의 독립과 통일을 이룩할 수 있도록 협력해야한다는 권고 내용도 포함시켰다.이 보고서는 제3차 유엔총회에서 심의에 부쳐졌다.1948년 12월12일 마침내 대한민국은 유엔 총회에서 46대 6으로 승인됐다.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가 된 것이다.그 후 대한민국은 소련과 그 동맹국가들을 제외한,50여개국의 자유진영 국가들로부터 개별적인 승인을 받았다. ○임정 세력 반대속 출범 대한민국의 출범은 민족사적으로 볼 때 커다란 역사적 의의를 지닌다.진정한 의미의 민족국가가 비로소 출범한 것이다.우리 민족이 주권확보를 위해 장기간 노력해온 결과로,그 자체가 민족 숙원사업의 실현이라고 할 수 있다.그러나 남북에서는 상이한 정권이 출범했다.그것은 무엇보다 미·소 강대국의 서로 다른 한반도 정책에 기인한다.이는 그 연장선상에서 보면 미국과 소련의 분할점령정책에 있다.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미국의 반소·반공정책에 의한 남한지역에서의 단독정부 수립을 유엔이 결정한 데서 비롯됐다.당시 유엔은 미국의 대한정책을 그대로 추수하는 입장이었다. 그리고 제헌국회가 남북통일특별대책위 설립안을 부결시켰다는 사실도 돌아볼 필요가 있다.이는 국회가 남북통일문제를 도외시한 뚜렷한 징표라는 점에서 그렇다.국회소집 무렵 김구·김규식 등은 통일정부 수립을 지향하는 통일독립촉성회를 결성했다.통일운동을 보다 구체적으로 전개하려고 한 이들을 이승만은 공산당으로 몰아부쳤다.그렇듯 대한민국 정부는 김구·김규식을 중심으로 한 임정세력의 반대 속에서 출범했던 것이다. ◎미,이승만 신뢰하지 않았다/본사특별취재반,미 CIA 작성 비밀보고서 입수/“독립위해 최선 다했지만 재난 불러올 행동 가능” “이승만은 한국의 독립에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던 참된 애국자였다.그러나 그는 독립한국을 자신이 차지한다는 의미에서 최선을 다했다.……위험이 도사리고 있다.이승만은 증폭된 자아의식 때문에 재난을 불러올 행동을 하거나 적어도 신생 한국정부와 미국의 이해를 상당히 당혹스럽게 만들 수 있다” 대한민국 수립 직후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미국의 직설적인 평가를 보여주는 문건이 발견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서울신문 특별취재반은 워싱턴의 국립공문서보존기록관리청에서 미국 중앙정보부(CIA)가 1948년 10월28일에 작성한 2급비밀보고서 ‘대한민국의 생존전망(PROSPECTS FOR SURVIVAL OF THE REPUBLIC OF KOREA)’을 찾아냈다. 이 보고서는 당시 워싱턴 정책담당자들의 상황인식을 그대로 반영한 자료다.이 문건에 의하면 미국은 결국 이승만을 옹립했지만 결코 신뢰하지는 않았다.따라서 미국은 이승만과 그의 각료들에 대한 통제와 감시를 계속했다.또한 미국은 군정이 끝난 후에도 CIC나 G­2,CIA 등을 통해 이승만과 그의 각료들이 행한 부정축재 사실과 같은 부정적인 정보를 모았다. 또 방위와 재원에 대해서도 통제를 가했다. 이 보고서는 제2차세계대전 기간 동안 이승만은 개인적인 이익과 로비활동도 들추어냈다. 워싱턴 임시정부 한국위원회의 수장이었던 이승만은 그 지위를 상당히 이용했다고 밝힌다.사적인 로비활동이야말로 이승만에게는 전쟁이 끝난뒤의 소중한 정치적 밑천이 되었다는 것이 보고서의 시각이다. □특별취재반 황규호 문화부 부국장급 이용원 문화부 차장 최병열 문화부 차장급 김종면 문화부 기자 박정현 문화부 기자 서정아 문화부 기자 강선임 DB부 기자
  • 일 어협 일방파기는 위험한 결단(해외사설)

    외교교섭 가운데서도 어업은 특히 어려운 분야다.해면에 물리적인 경계선을 그릴 수도 없고 어획의 규제는 바로 국내의 정치문제가 돼 버린다.영토를 둘러싼 감정적인 대립이 얽혀들면 더 어려워진다. 일본정부는 한일어업협정의 종료를 한국측에 통고했다.양국과 같이 우호관계에 있는 나라 사이에 조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하는 예는 국제적으로도 드물다.한일관계 전체의 안정이라는 시점에서 생각하면 파기통고는 대단히 나쁜시기의,위험한 결단이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한일간의 감정적 대립이 악순환에 빠지지 않을까 우려된다. 양국의 지도자도 국민도 유엔해양법조약의 역사적인 의의와 은혜를 다시금 생각해서 지금까지의 교섭이 왜 불발됐는가를 진지하게 성찰해야 한다. 일본 연안에서의 한국어선 남획에 시달려온 (일본)국내 어민과 단체가 현협정을 불평등조약이라면서 신협정의 조기체결을 정부에 요구해 온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한국측도 독도(원문에는 일본명 다케시마로 쓰여있음)의 영유권과 어업문제를 분리하는 것을 받아들여 최종단계에서는 한일 양국이 조업가능한 잠정수역을 독도주변에 설정하는데 동의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섭을 결렬시킨 원인은 사실 이 수역의 넓이를 둘러싼 작은 대립이었다. 위법조업을 방치하고 독도에 대한 실효지배를 강화하는 한국에 일본측은 반발했다.일방적인 영해 기선에 근거해 한국어선을 나포하고 해양법을 방패로 기득권을 빼앗으려 하는 일본에 대해 한국측이 반발한다.결렬의 배경에는 상호 불신이 있다.또 양국 정부에는 국내의 어업단체와 정당을 설득해서라도 교섭을 마무리지을 지도력이 결여돼 있다. 교섭을 다시 하려면 우선 하시모토 류타로(교본용태랑),김대중 양국 정상이 가급적 빨리 타결을 향한 정치적 의사를 확인해야 한다.국내 강경론을 눌러가면서,지금까지 교섭에서 도달한 성과로부터 출발하지 않으면 안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중장기에 걸친 공통이익을 위해 현실적인 협력관계를 쌓아 나가는 것이다.
  • 미 국방·하원의원 일행 잇달아 면담

    ◎DJ 경제·안보 챙기기 동분서주/“북 위협 막게 주한미군 계속주둔 필요” 강조/‘미의회 IMF 한국지원 제동 막기’ 설득 요청 김대중 대통령당선자가 일산 자택과 중앙당사 및 국회 총재실을 무대로 펼치는 외교적 행보는 거의 경제와 안보에 집중되어 있다.김당선자는 22일에도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코언 미국방장관을 만나 양국간 안보협력방안을 조율한데 이어 낮에는 일산자택에서 짐 리치 미하원 금융·재정위원장 일행등과 오찬을 함께하며 경제난 극복을위한 미국의 협조를 당부했다. ○…김당선자는 이날 코언 미국방장관과 만나 한미군사공조의 중요성과 북한정세 등에 관해 의견을 교환했다.이날 면담에서는 당초 예상과 달리 코언장관의 무기구매 요청과 관련한 구체적인 언급은 없었다고 배석했던 정동영 대변인이 전했다. 김당선자는 이날 “남북대치 상황속에서 우리의 방위태세와 군사력을 결코 등한시 할 수 없다”고 지적하고 “새 정권은 북한이 오판하지 않도록 안보태세를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차기정부의 안보방향을 설명했다 이어 “북한의 위협을 저지하고 동북아 평화유지를 위해서는 세력균형이 필요하다”면서 “통일 이후에도 한반도와 일본에 있는 미군은 계속 주둔해야 할 것”이라고 한미간 공조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이에 코언 국방장관은 “한미간 군사협력은 하나의 단위로 움직이는 게 중요하다”면서 “한국의 특수상황을 감안할 때 국방예산 삭감은 신중히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또 “한국 경제가 어렵다는 점을 북한이 유혹으로 생각하고 도발할 위험성이 있는 만큼 방위력을 굳건히 유지해야 할 것”이라는 조언도 잊지않았다. ○…김당선자는 이날 일산자택에서 짐 리치 금융재정위원장 등 미 하원의원 5명과 오찬을 나누며 경제난 극복을 위한 미국측의 적극적인 협력을 요청했다. 김당선자는 이 자리에서 “미국이 단기외채상황을 연기해주는 한편 한국에 대한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특히 “국제통화기금(IMF)의 대한자금지원에 대해 미의회 일부의 반대를 무마하는데 적극 나서달라”고 당부했다.그러면서 “미국경제가 어렵던 지난 80년대한국이 일반거래외에 별도의 구매사절단을 보낸 적이 있다”고 설명하면서 “우리는 도와주면 은혜를 잊지않는 국민”이라고 설득했다. 이에 대해 리치위원장은 “미국은 전략적 차원에서가 아니라 두나라 사이의 유대로 볼 때 한국을 도와야 한다”면서 ‘김당선자는 한국의 루즈벨트·한국의 레이건’이라고 화답했다. 김당선자와 리치위원장은 전부터 친숙한 사이로 오찬 내내 농담을 주고받는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고 박지원 당선자대변인이 전했다.
  • 신술래씨 이야기 모음집/‘만물은 서로 이렇게 사랑하고 있다’

    “애스펀 해바라기,로키산맥에서 자라는 당이 풍부한 식물/개미에게 필요한 18종의 아미노산을 함유한 꽃가루를 분비하는 노란꽃/개미는 노란 애스펀해바라기 꽃 속에서 이 꽃가루를 먹고 삽니다/그리고 해바라기를 괴롭히는 파괴적인 기생자들로부터 꽃씨를 보호합니다…”(애스펀 해바라기와 개미)중견시인 신술래씨가 자연생태계의 신비와 삼라만상의 조화로운 상생관계를 우화형식으로 노래한 이야기 모음집 ‘만물은 서로 이렇게 사랑하고있다’(솝리)를 냈다. 한 종의 새가 멸종되면 90종의 곤충과 35종의 식물,그리고 2∼3종의 물고기가 따라서 멸종된다고 한다. 자연생태계는 한 순간도 서로 영향을 주고 영향을 받지 않고는 존재할 수 없다.시인은 새·물고기·나무·꽃·공기·곤충등 그야말로 만물상을 이야기 대상으로 삼는다. 자연은 생명의 전쟁터가 아니라 출렁이는 은혜의 바다라는 게 시인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마우지의 평화’‘게르빌루스쥐와 몽구스’‘타모루고 나무와 안개’‘사구아로 선인장과 딱따구리’‘붉은 맹그로브’‘메스키트의 은인’등 생태학적 상상력이 넘쳐나는 112편의 글이 실렸다.
  • 김현희씨 지난달 결혼

    ◎전안기부경호원과 서울 모처서 신혼 살림 87년 KAL 858기 폭파사건의 범인 김현희씨(36)가 오랜 독신생활을 청산하고 지난 달 28일 결혼식을 올린 것으로 9일 확인됐다. 배필은 대구지역 출신의 사업가 C모씨(39)로 한 안보강연회에서 강사와 수강생으로 만나 연분을 맺게 됐다. 이들은 대구근교의 모 사찰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경주와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다녀온 뒤 서울시내 모처에서 신접살림을 차렸다. 결혼식은 그동안 김씨를 밀착 경호해 온 여자 수사관 등 공안당국의 몇몇관계자와 신랑측 가족만이 참석한 상태에서 비밀리에 치뤄졌다. 김씨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지만 신랑측이 불교신자여서 사찰에서 결혼식을 올리게 된것으로 알려졌다. 공안당국의 관계자는 “북한측의 보복 등이 우려돼 김씨 신변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밝힐 수 없다”면서 “결혼 후에도 신변안전을 위해 계속 수사관의 보호를 받게 되지만 생활에 큰 불편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90년 대법원에서 사형확정 판결을 받은 직후 사면된 뒤 지금까지 공안당국이 마련해준 서울시내 모처의 안가에서 혼자 생활해 왔다. 93년 안기부 관계자에게 “좋은 사람이 있으면 함께 살고 싶다”면서 처음으로 결혼의사를 내비쳤던 김씨는 지난해 9월 가진 한 기독교 신앙간증 모임에서 다시 한번 결혼문제를 언급하기도 했었다. 김씨는 귀순한 뒤 저술한 ‘이제 여자가 되고 싶어요’ ‘이은혜,그리고 다구치 야에코’등 3권의 고백수기로 벌어들인 인세와 각종 강연료 등으로 10억원이 넘는 재산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 미 오만·이기주의 각국서 비난

    ◎맹방들 “세계문제 사사건건 간섭” 불만 팽배/미국내서도 “리비아 등 제재조치 남발” 지적 【워싱턴 AFP 연합】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프랑스와 브라질에 이르기까지 지난해 세계외교가의 화두는 미국의 ‘오만’이었다.2차대전이후 어느때 보다도 막강한 힘과 자신감을 보유하게 된 미국은 세계유일의 초강대국 지위를 뽐내고 있다는 비난을 받아 왔다. 그 한 예로 클린턴대통령은 지난 6월 콜로라도주 덴버에서 열린 G­8 정상회담에서 미국경제를 세계의 모델로 내세워 가까운 맹방들의 신경을 건드렸다.유럽은 힘을 통해 쿠바·이란·리비아 등을 제재의 명목하에 고립상태로 몰아넣으려는 미국의 기도에 사사건건 이견을 보여 왔다. 리오넬 조스팽 프랑스총리는 지난 9월 이란과 프랑스 석유회사 토탈간의 계약체결에 관련한 논평에서 “미국이 자국의 법을 전세계에 적용할 수 있다는 생각을 수용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꼬집었다. 미국에 불만을 가진 것은 유럽뿐이 아니다.넬슨 만델라 남아공대통령은 그의 리비아방문을 비판한 미국을 겨냥,“그들(미국)이 어떻게 우리에게 가야할 곳이 어디이고 어떤 친구를 가져야 한다는 식으로 강요하는 오만을 부릴수 있단 말인가”라고 따졌다. 중남미와의 관계에서도 미국은 오만하다는 비난을 여러차례 받았다.지난 10월 브라질을 방문했던 클린턴의 사진을 표지에 실은 한 잡지는 “제국주의의 오만”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미국은 오타와 지뢰금지협약의 서명을 거부하고 교토 지구온난화협상에서 소극적인 자세를 보이는 등 지난해 여러차례 부정적 이미지를 심었다. 미국관리들 스스로가 문제점을 잘 알고 있다.토머스 피커링 국무부 정치담당차관은 “우리는 힘있게 리드를 하되 오만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워싱턴 소재 브루킹스연구소의 헬무트 조넨펠트 연구원은 미국의 오만에 대한 지적이 새삼스런 일은 아니라고 말한다. 미국측에서도 이같은 맹방들의 불평을 감수하기만 하지는 않는다.그들은 유럽인들이 은혜를 모르고 위선적이라고 응수한다.쿠바에 대한 헬름스­버튼법과 이란·리비아 제재를 강화하는 다마토법의 경우 클린턴이 원내 다수당인공화당의 반대에 굴복한 것은 순전히 국내정치 때문이었음을 이들은 지적한다.
  • 한국호랑이(외언내언)

    박지원은 ‘열하일기’에서 호랑이를 가리켜 “착하고 성스럽고 문채롭고 인자하며 싸움 잘하고 효성스럽고 슬기롭고 어질고 사납기가 천하에 대적할 자가 없다”고 했다.국립박물관장을 지낸 최순우씨는 듬직하고 말이 없는 이 산중군자를 ‘산전수전 다겪은 장자지풍’에 비유하기도 한다. 원래가 수렵민족이었던 우리민족은 아름다운 호피를 벽면에 장식했고 이품 이상의 벼슬아치들은 호피방석을 깔고앉기를 좋아했다.그것은 공포심을 주거나 위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순히 권위 과시를 위해서다.우리민족의 호랑이에 대한 애정은 민화속의 호랑이를 보면 알 수 있다.민화속 호랑이는 경쾌한 자태에 장난기가 담긴 친근한 얼굴을 하고 있으며 그 익살과 해학,유머러스한 표정뒤에 맹수의 용맹과 포효가 도사린 것이 특징이다. 서울시가 ‘호랑이’를 시의 캐릭터로 삼은 것은 ‘끈기와 인내’‘성급함’의 상반된 두가지 특성을 가진 한국민의 위상에 걸맞는 것 같다.중국에는 재물을 상징하는 물고기,일본에는 복을 부르는 고양이가 있듯이 우리 호랑이는 백수의 왕이면서 은혜를 갚을 줄 아는 예의바름을 상징한다. 호랑이의 단점은 충동성이 강하여 속전속결하다보니 실수가 많다는 점이다.그래서 장자는 ‘인간세편’에서 이렇게 충고한다.‘호랑이에게 날고기를 그대로 주지않는 것은 물어죽이는 버릇이 더욱 사나워질까 우려함이요,통고기를 그냥 주지 못하는 것은 잡아찢는 버릇이 매우 사나워질것이 두렵기 때문’이며 ‘그 굶주림과 배고픔을 세밀하게 살피어 사나운 마음을 풀어주기만 하면 저를 기르는 이를 알아보는 영물’이라고 했다. 98년 새해는 마침 호랑이해(무인년)이기도 하다.호랑이 해에 호랑이 캐릭터란 어쩌면 ‘호랑이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격일지도 모른다.경제위기라지만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된다’는 속담대로 우리는 성급함과 속결의 장단점을 가려 어려운 시기를 느긋하게 넘기면서 진짜 천하무적으로 슬기롭게 일어서야겠다
  • 집집마다 사교육비 줄이기 ‘비상’/IMF 여파

    ◎사립교 재학 자녀 국공립으로 전학/학원 수강과목 축소… 유명 유치원 기피 최악의 경제위기를 맞아 많은 가정에서 사교육비를 줄이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고 있다. 이에 따라 사립 초등학교와 유치원의 내년도 신입생과 원생 모집에서는 지원 미달 사태가 잇따르고 있으며 사립초등학교에서 국·공립으로 전학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학원강습도 급감,문을 닫는 보습학원이 속출하고 있다. 지난 10일 서울의 38개 사립초등학교가 내년도 신입생 모집을 마감한 결과,지난해보다 지원자가 871명이 줄어 전체 경쟁률은 지난해의 1·53대 1에서 1·44대 1로 떨어졌다. 정원에 미달한 학교도 지난 해 2개교에서 8개교로 크게 늘어나 모집기한을 연장했다. 추계초등학교의 여학생 모집정원은 40명이지만 불과 34명만 지원했다.지난해의 지원자는 80명이었다. 김기태 교감(62)은 “입학지원서는 1백50여장이 나갔지만 지원은 90여명에 그쳤다”면서 “경기불황으로 자녀들을 사립보다는 돈이 적게 드는 국·공립학교에 보내려는 부모들이 늘어난 것 같다”고 말했다.정원 160명인 광운초등학교에도 129명만이 지원했다. 신광·동북·삼육·은석·금성·은혜초등학교 등도 정원에 7∼50명이 모자라 추가모집을 하고 있다. 해마다 지원자들이 엄청나게 몰려 홍역을 치른 서울 강남의 유명 사립유치원들도 정원 채우기에 급급한 실정이다. 예년에는 모집마감 2∼3일을 남기고 정원을 넘긴 서초구 반포동의 K유치원은 지원자가 정원에 크게 못미치자 추가모집을 하고 있다. 정원이 100명인 강남의 M유치원은 현재 30여명만이 지원했다.교사 김모씨(36)는 “상담하러 오는 학부모들이 지난해에 비해 크게 줄었고 일부 학부모들은 학원비가 너무 비싸다며 되돌아가기도 한다”고 말했다.중고생 대상의 보습학원도 수강생 부족으로 애를 먹고 있다. 지난 1년 사이 서울지역에서 1천여개의 학원이 문을 닫았다.
  • 수필가 전숙희(이세기의 인물탐구:154)

    ◎새벽 집필로 하루를 여는 ‘문단의 거목’/반세기 걸쳐 한국문학 세계화 앞장선 ‘여걸’/문학관·여고­전문대 설립한 육영사업가 겉으로 나타난 활약상만으로 전숙희 전 국제펜클럽한국본부 회장은 대단한 여걸이요 당당한 남성적 위풍을 지닌 것으로 짐작될 수 있다.과연 지난 반세기동안 전세계를 누비며 한국의 세계화,한국의 문화운동에 앞장서온 거목답게 그는 지금도 만모의 기색이 없는 예용의 풍모를 지킨다.아침에 일어나면 커피를 끓이고 음악을 듣고 맑게 열려있는 시선으로 글을 써야만 ‘살아있는 보람을 느끼며’ ‘독자를 의식해서가 아니라 나의 실존을 확인하기 위해’ 한줄이라도 읽고 써야만 비로소 하루일과를 시작한다.그의 글은 청량한 운율을 지니거나 번뜩이는 기지,감각의 범람은 찾아볼수 없다.가족과 친구를 사랑하는 여성적이고 화사한 내용과 그가평생을 몸담았던 한국펜클럽에 대한 발전모색을 곡진하게 이루어내고 있다.그런중에도 언제나 남을 먼저 생각하고 불화가 불식된 휴머니즘을 그려내는 것이 그의 글의 특징이다. ○54년첫 수필집 펴내 그는 해방후 지식사회에서 우리 여성들이 어떻게 적응하고 독립해왔는가를 몸소 실천한 귀감일 수도 있다.이른바 신교육세대로서 이화여전시절에는 작가 이태준,시인 김상용에게 시와 소설론을 배웠고 졸업후엔 연세대 출신인 의사 강순구 박사를 만나 결혼,부군이 함북 무산의 철도병원장으로 근무하던 시절에는 깊은 산속마을에서 서울에 두고온 가족과 친구를 그리워하던 평범한 주부이기도 했다.그러나 그의 운명은 월남후 해방과 더불어 반전되어 경북 안강에 정착하면서 포항의 미군정청 책임관의 비서관,상경후 신문기자로 활약했으며 54년 첫번째 수필집 ‘탕자의 변’을 출판하자 그의 이름앞에 ‘수필가’라는 타이틀이 붙게 되었다.‘사람이 한평생 한권의 책을 써낸다는건 얼마나 값진 일인가’.수필가의 길로 정진하기로 결심했으나 수필은 해박한 지식과 사색과 철학없이는 어려운 장르임을 깨닫고 ‘수필에 가장 가까운 글을 성취하기 위해 마음에 감동이 넘칠때마다 샘물을 길어올리듯’ 문학에 접근해 나갔다. 그는 자라난 환경부터가 특별히 남다르다.부친 전주부 목사는 어느날 부흥회에 다녀오는 길에 5녀1남등 여덟식구가 살던 서울 종로의 계동집을 하루아침에 교회에 헌납하는 바람에 어머니 계성옥 여사가 ‘저 어린자식들을 길거리에다 버리란 말이냐’고 망연자실하던 모습이 가슴의 오랜 멍으로 남아 그때의 충격이 문학의 모태가 되었다고 말한다. ○문학지 ‘동서문학’ 창간 본래는 함남 원산출신이지만 일찍이 집안이 서울로 이전하여 해운업을 하던 조부 덕분에 초등학교에서부터 대학과정을 마쳤고 결혼후엔 문학을 이해해준 부군이 문학활동을 할 수 있게 물심으로 지원해주었다.문인으로서의 위치가 확보되자 이번엔 ‘문학은 소수의 선택된 자만의 특권이 아니라 1만명이 평등하게 누릴수 있는 인격적 수단’임을 천명하여 그는 순수문학지 ‘동서문학’ 창간을 서두르게 되었다.그때도 ‘한권의 좋은 문학잡지에서 한페이지의 좋은 글을 읽는다면 그사람은 배부를 것’이라는 신앙심이 그에게 책을 낼 수 있는 용기를 준 것이다.이 책은 나의 고지식한 집념이요,문화를 사랑하는 마음이며 내가 문화로부터 받은 은혜를 문화애호가들에게 되돌려준다’는 헌신 봉사와 휴머니즘이 지난 27년간 잡지를 이끌어온 힘이 되고있다. 그의 성품은 기운이 맑고 깨끗하면서도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은 모두 누리며 살아왔다고 할수 있다.방대하고 다양한 인간관계는 선배들에게 극진하고 상대방의 장점을 자상하게 돌보고 어루만진다.문단에서는 소설가 강신재,시인 김남조씨와 절친하고 정·재계를 비롯한 여러 각층과의 교분을 트고 있다.자녀는 2남2녀(장남 영국씨는 전자공학박사,차남 영진씨는 구조역학박사고 장녀 은엽씨는 조각가,차녀 은영씨도 화가).평소에는 그가 설립한 계원예고와 전문대인 계원조형예술학교가 있는 경기도 의왕시 내손동으로 출근하고 1주일에 두번 중구 장충동의 동서문학 편집실에 나온다. 지난 11월,계원 캠퍼스에 ‘동서문학관’을 개관했을때 문학평론가 이어령씨(이대 석좌교수)는 ‘우리주변에는 얼마나 많은 구슬들이 꿰지지 못한채로 그냥 뒹굴고 있는가.그러나 이번 전숙희 선생님이 튼튼한 실이 되어 한국문학의 구슬들을 꿰어놓으시니 여기 한국에서 처음으로 문학관이 열리게됐다’고 축사를 보냈다.이 문학관에는 그가 전생애 동안 일념으로 모아온 희귀장서와 초판본의 시집,문인들의 육필과 서예 도예품 등 국제펜클럽과 관련된 모든 자료가 집대성되어 있다.어렵고 가난하고 서러운 시대를 살아온 문인들이 오랜유랑끝에 천년의 사리탑처럼 머물곳을 찾게된 셈이다. ○국제 펜클럽 종신부회장 그를 따라다니는 수많은 직함중에서도 한국펜클럽의 1세대인 모윤숙에 이어 83년 회장에 피선된 이래 국제펜클럽 종신부회장에 선임된것과 동서문학발간,계원학원 설립,이번 동서문학관은 그만의 지대한 업적으로 평가된다.그러나 무슨 일을 하든 자신이 좋아서,하고싶어서 자청한 일이었고 그때마다 재력이 뒤따라주었다.그리고 그런 일을 통해 기쁨에 도취될 수 있었음을 신에게 감사하기를 잊지 않는다.‘그대신 주부노릇 부모노릇 등 오상의 도리를 지키지 못했으나’ 공인으로서의 삶을 후회해 본적은 없다. ‘가을이면 주렁주렁 탐스러운 열매를 맺는 나무’들이 많지만자신은 아직 ‘작은 대추나무만도 못하다’는 그는 지금도 ‘목마른 이들에게 샘이 되고 허기진 영혼을 채워주는 한그루 튼실한 나무’가 되고싶은 것이 소원이다.제펜이라는 지적 무대를 통해 우리 문학과 문화를 세계에 알려왔고 세계적인 시인 작가와 교류하면서 비풍이나 격랑이 없이 그는 자신의 주변에 문화의 힘을 임립시킨 것이다.지칠줄 모르는 정열과 샘솟는 활력으로 만사에 책임지는‘전숙희’라는 이름은 우리 문화사에 금박으로 기록되어도 손색이 없는 푸른 거목에 틀림없다. □연보 ▲1919년 함남 원산 출생 ▲1939년 이화여전 영문과 졸업 ▲1954년 첫번째 수필집 ‘탕자의 변’출간(연구사) ▲1955년 아시아재단파견 미국체류중 컬럼비아대학 비교문학과 특강 ▲1960년 국제펜클럽 한국대표 ▲1970년 월간 ‘동서문학’대표 ▲1976년 한국여류문학인회회장 ▲1977년 유네스코한국위원회 문화위원 ▲1979년 계원예술고 재단이사장 ▲1983년 국제 펜클럽 한국본부회장 ▲1985년 방송심의위원회 위원 ▲1988년 국제펜 서울대회개최 ▲1989년 예술원 정회원 ▲1991년 국제펜클럽 종신부회장,국제펜클럽 한국본부회장 ▲1992년 계원조형예술학교설립,문화부 도서관발전위원회 위원 ▲1993년 모파상100주기추모행사참가 현재­국제펜클럽 한국본부 명예회장,계원학원재단이사장,동서문학대표 ‘이국의 정서’(56년) ‘여수상 인디라 간디’(63년)‘밀실의 문을 열고’(69년) ‘삶은 즐거워라(72년) ‘영혼의 뜨락에 내리는 비’(81년) ‘이토록 아름다운 세상에’(87년) ‘전숙희의 소련기행에세이’(90년) ‘펜이야기’(92년)‘해는 날마다 새롭다’(94년) ‘문학 그 영원한 기쁨’(95년) 등 17권 대한민국문학상(89년) 대한민국 예술원상(94년) 독일연방공화국 문화훈장서훈(95년)
  • 직장인 연말정산 ‘세테크’

    ◎개인연금­저축금 40%내 최고72만원 소득공제/주식저축­1천만원 한도 5.5% 세액공제 “짭짤”/주택저축­무주택·18평이하 소유자 가입해볼만 IMF시대에는 한푼이라도 아끼는 것이 최선이다.특히 100% 소득이 노출되고,소득을 얻기 위해 쏟아부은 비용을 별로 인정받지 못하는 봉급생활자에게는 1년에 한번 뿐인 연말정산을 꼼꼼하게 처리하는 것이 중요하다.1월로 늦춰진 연말정산때 혜택을 볼 수 있는 금융상품을 한국투자신탁의 도움말로 알아본다. ◇개인연금=연간 저축금의 40%범위에서 최대 72만원까지 연말정산에서 소득공제를 받을수 있다.연말에 1백80만원을 신규로 일시납할 경우 부담세율에 따라 7만9천200∼31만6천원(주민세 포함)의 절세효과를 볼 수 있다.예를 들어 연간 소득이 4천만원 이하인 경우 소득세와 주민세를 합쳐 22%의 세율이 적용되기 때문에 15만8천400원을 절약할 수 있다. 만 20세 이상 저축이 가능하며 저축한도 내에서 중복가입할 수 있다.저축기간은 10년 단위로 정해져 있으며 월 1백만원(분기 3백만원)이내에서 마음대로 적립할 수 있다.만 55세 이후 연금을 찾으면 비과세된다. 소득공제 혜택은 가입한 해에만 받을수 있으며 5년 이내에 중도해지하면 세액공제액을 추징당한다.그러나 퇴직 등으로 인한 특별중도해지시에는 추징당하지 않는다.연금수요자와 종합과세 대상자의 경우 필수적으로 가입하도록 권할 만하며 보험으로 가입하면 보험혜택도 가능하다. ◇증권사 근로자주식저축=개인연금이나 주택상품과 달리 소득공제가 아닌 세액공제 혜택이 있어 가장 유리하다.연 급여 30% 범위에서 1천만원 한도까지 저축할 수 있는데 1천만원을 예치하면 5.5%인 55만원(소득세 주민세 포함)을 돌려받을수 있다.그러나 1년이내 중도해지하면 세액공제액을 물어내야하고 이자와 배당소득에 대한 세금을 내야 한다.올 연말까지만 가입이 가능한 한시적 상품이지만 정부가 증시부양을 위해최고 저축한도를 2천만원으로 늘리고 기한을 연장하는 방안을 빠르면 이달중 시행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공모주에 대한 청약우선권이 주어지기 때문에 주식투자 선호자에게 적합하다.주식에 투자하지 않더라도 예탁금이자 5%를 받기 때문에 최소한 연 10.5%의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다.저축기간은 1,2,3,5년 4종류이며 일시납이나 적립식 모두 가능하다. ◇장기주택마련 저축=만 18세 이상 무주택자 또는 전용면적 18평 이하의 국민주택 한채를 갖고 있으면 들 수 있다.1인 1계좌로 저축기간은 7년∼10년.소득공제 혜택은 개인연금과 마찬가지로 연간 72만원 한도내에서 연간 저축금액의 40%까지.따라서 1년에 1백80만원 이상 가입하면 개인연금과 똑같은혜택을 누릴수 있다.그러나 저축한도가 월 1백만원으로 정해져 있다.12월한달만 1백만원을 불입해도 약 8만8천원의 절세효과를 거둘수 있는셈.개인연금과 달리 5년내에 중도해지하면 공제액 전액을 추징당한다.5년이상저축하면 원리금의 2배까지 최장 30년짜리 저리주택자금대출이 가능하고 이 경우 대출원리금 상환액의 72만원까지 소득공제혜택도 주어진다.
  • ‘박제’로 귀향한 여인들(사설)

    일부 ‘북송 일본인처’들의 일시귀국이 실현되었다.38년 동안 막혀있던 귀국이어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북한은 1진 15명에 이어 2진 3진도 보낼수 있다고 생색내고 있으므로 더 늘어나기도 할 것 같다. 그러나 ‘일본인처 귀국’이 이런 모양으로 진행되는 것에 우리는 착잡하고 씁쓸한 느낌이다.북한과 일본의 정치권이 북·일 수교를 끌어내기 위해 그 방해요소를 제거하는 명분으로 ‘일본인처 고국다녀가기’를 실현시켰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그동안 북한·일본간의 수교에서 가장 가로거치는 것중 하나가 ‘북한의 일본인 납치에 대한 여론’이었다.그것을 덮는 명분용으로 이번의 일본인처 귀국카드가 등장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다.파산상태의 경제적 어려움때문에 너무나 급한 북한으로서는 ‘훈련시킨’ 북송 일인처들을 보내어 한번의 돌팔매로 여러마리의 새를 잡는 방법을 기꺼이 사용하게 된 것이다. 북송 일본인처 귀국시키기 운동이 일본서 벌어진지는 오래 되었다.일본 적십자사까지 가담하여 ‘지상낙원’북한에 볼모처럼 끌려간 일본인처들의 참상이 그들의 육친들,친지들에게 알려지면서 그들을 구해내려는 움직임이 일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 일시 귀국한 일본인처들은 일본이 구해내려는 사람들이 아니다.일본공항에 들어오자마자 “김정일 장군님의 은혜로 지상낙원인 북한에 사는 일이 행복하다”고 외쳐댔던 것이다.그들이 부는 선전의 나팔에 정작 죽음보다 처참한 실상에 놓여있는 일본인처들의 소리는 가려지게 되었다. 이들 선발된 ‘모범 일본인처’들 때문에 ‘지옥의 북한’ 생활을 하는 일본인처들은 당분간 더 어려운 지경에 빠지게 될지도 모른다. 일본인 처들의 고국방문이 이처럼 정치적으로 이용됨없이 순수한 인도적 차원에서 이루어지길 바라 마지 않는다.
  • 중국 사천성 아미산(세계 문화유산 순례:50)

    ◎3,099m 만불정엔 운해속 비경이…/중국4대 불교성지… 주변 대사찰 산재/동식물 5천여종 서식… 생태계의 보고 아미는 아리따운 여인의 눈썹이니,산이 얼마나 아름다우면 아미산이라 했겠는가.그래서 산은 아미를 숙인 여인네처럼 구름 속에 감춘 신비한 자태를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다.동편으로부터 나즈막한 산세로 시작한 산자락은 서쪽으로 올라가면서 병풍을 펼쳐 차곡차곡 쌓아올린듯 높아진다.아미산 정상 만불정은 백두산보다도 355m나 높은 3099m.동남쪽으론 민강과 청의강등 양자강의 지류를,북으론 성도 평원을,서쪽으론 만년설을 머리에 인 대설산을 바라보고 있다. 아미산은 낙산대불로 유명한 동능운산과는 지척간이다.행정구역은 사천성 아미산시이기는 하나 낙산시 낙산대불과 함께 묶여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산 아래서 정상까지 올라가자면 50여㎞를 걸어야 했다.골마다 절이고 봉우리마다 불명이다.그래서 최고봉은 만불정이요,주변 봉우리는 천불정이라 했다.아미산은 문수보살의 도량 오대산,관음보살의 보타산,지장보살의 구화산과 함께 중국 4대 불교성지의 하나다.보살행을 실천한 보현보살의 도량인 것이다.산속 여러 절에서 흰 코끼리를 탄 보현보살을 모신 보현전을 어김없이 만나는 것도 이때문이다. ○서쪽엔 만년설 대운산이 아미산의 대찰인 만년사 무량전에는 동으로 주조한 보현보살상이 있다.송나라 태종때인 980년에 만든 이 보살상은 높이 7.3m에 무게만도 62t에 이르는 대불이다.비파와 공후,피리등의 악기를 연주하는 미끈한 천인들을 그린 무량전 원형 천정의 비천도는 보현보살을 신비로운 분위기속으로 몰아넣었다.무량전의 본래 이름은 만행장엄전이었다고 한다.그런데 불에 타버려 명나라때 라마교 양식을 본떠서 그 자리에 무량전을 벽돌로 지었다.중국 전통 불교건축에 라마교 양식을 도입한 것은 파격적 불사인지도 모른다. ○청대의 강희황제도 찾아와 만년사의 역사는 우리 삼국시대에 해당하는 진나라때로 올라간다.처음에는 보현사로 불렀다.그러다 당나라 희종때 백수사로,명나라 신종때는 황제가 ‘성수 만연사’란 이름을 내렸다.만년사의 역사처럼 아미산의 절은 거의가 1천500년이상의 역사를 갖고 있다.아미산은 도교의 보금자리였다고 한다.그런데 외래종교인 불교가 중국 토속신앙격의 도교를 밀어내고 천하명산을 차지했다. 이 명산에는 복호사라는 절이 있다.절 이름은 다분히 도교적이다.복호사 터엔 원래 도교 사원인 도관이 있었다.도교의 명인 순양자가 사람을 해치는 호랑이를 법력으로 굴복시키고 그 터에 도관을 지었다는 것이다.그뒤 불교세력들이 도교사원은 헐어버리고 불교 사원을 지었다.오늘의 복호사다. 복호사 화엄동탑은 화엄세계를 재현해 놓은 탑파다.높이 5.8m로 된 14층의 이 동탑엔 화엄경을 설하는 부처와 그를 따르는 존자상과 함께 19만5천48자의 화엄경 전문이 봉안됐다.명나라 신종때인 1585년 주조돼 성적사에 있던 것을 옮겨왔다고 한다.만년사에 보관돼 있는 불아,패엽경,어인 등 세가지의 유물도 빼놓을수 없는 아미산의 보물이다.어인은 명나라 신종이 하사한 것으로 신종의 어머니는 아미산 만년사를 자주 찾았다는 것이다. 아미산 불교의 본산격인 보국사에서는 다종교사회의 갈등을 해소키위한 흔적이 역력히 보인다.보국사의 원래 이름은 회종당.1615년 명나라 신종(만역제)때 세운 이 절에는 불교의 보현보살,도교의 광성자,유교의 여러 성인들의 위패를 모셨다고 한다.유·불·도 3교를 받들어야 했던 위정자들의 통치술이 보인다고나 할까.어떻든 회종당은 청나라가 들어서고 강희황제에 이르러 이름을 보국사로 바꾸었다.종교세력도 나라의 은혜를 느껴야 한다는 입장에서 그런 조치를 내리고 충을 강조했던 것이다.지난 1930년대 일제의 침공을 피해 중경에 와 있던 장개석은 훙주산 빈관에 머물며 늘 보국사를 찾았다.절 한 모퉁이엔 그가 ‘보국충정’이라고 쓴 현액이 아직도 걸려 있다. 아미산 절경의 하나가 청음각 언저리다.일찍이 진나라때 시인 좌사가 “어찌 악기가 필요할까.이곳의 맑은 물 흐르는 소리로도 족하구나”라며 경탄했던 곳이다.1702년 청의 강희황제는 흠차대신을 보내 아미산 여러 사찰에 경서 등 황제 하사품을 전달하는 거창한 의식을 청음각에서 베풀었다.그래서 접어정이라 부르기도 한다.강희황제 자신도 여러차례아미산을 찾아왔다.보현보살이 흰 코끼리를 데리고와 흐르는 개울에서 목욕을 시켰다는 세상지 역시 절경이다. ○입구 ‘천하명산’현판 돋보여 아미산은 묏부리만을 삐죽 들어낼 뿐 늘상 운해에 묻혀 있다.그래서 산밑이 아열대일때 중턱은 온대다.그리고 산꼭대기는 한대기후라서 아미산은 식물들이 군락지를 이루었다.알려진 식물만도 5천여종이 넘는 생태계의 보고다.여름철이면 산길에 원숭이들이 나와 등산객들에게 장난을 걸기가 일쑤다.깊은 산속에 들어서면 귀여운 팬더의 재롱을 볼 수 있다. 이백은 아미산을 이렇게 노래했다.‘촉국엔 아름답고 신비로운 산이 많지만 아미산에 비길 바가 아니구나’(촉국다선산 아미요난필).아미산을 떠나면서 산입구에 우뚝한 현판 곽말야의 글씨를 한번 더 돌아보았다.현대중국의 대학자이자 문장가인 그가 쓴 ‘천하명산’이란 글씨.아미산은 과연 명산이었다. ◎여행가이드/복경∼성도 비행기편 성도∼아미산 버스로 아미산 출발지는 사천성의 수도인 성도로 잡는 것이 좋다.성도까지는 북경이나 상해에서 매일 4차례이상의 비행기편이 있다.비행기요금은 북경기준 11만5천원.북경∼성도까지 기차편도 있으나 가장 빠른 것이 31시간이나 걸린다. 보통 아미산을 갈때 1시간거리인 낙산의 대불(10월27일자 11면 참조)을 거쳐 간다.성도에서 낙산이나 아미산까지는 각각 장거리 버스가 다닌다.성도의 신남문 장거리 정류장에서 버스를 탈 수 있다.성도에서 미산현을 지나 협강현에서 낙산과 아미산으로 갈라진다.대략 4∼5시간이 소요되며 비용은 우리돈 3천원내외다.아침 일찍 성도를 출발,낙산대불을 관람하고 발길을 재촉하면 땅거미가 질무렵 아미산지역에 도착하는 것이 일반적인 여행경로다.
  • 영혼의 고향/임정규 한국수자원공사 사장(굄돌)

    흔히들 사람은 흙에서 나서 흙으로 돌아간다고 말한다.이는 눈으로 볼 수 있는 육신을 두고 하는 말이다.그렇다면 눈에 안보이는 영혼은 어떻게 어디를 오고가는 것일까.옛사람들은 더러 물을 영혼의 고향이라 믿기도 했던 듯하다.말속에 그런 흔적이 나타난다. 가령 콜롬비아 산악지대에 사는 코구이라는 인디언 부족을 보자.문명세상을 등지고 살아가는 그들에게 하늘과 산은 이 세상의 모두이며 물은 생명의 근원이다.그래서 그들은 ‘물’이라는 말을 ‘영혼’이란 뜻으로도 함께 쓴다는 것이다.그들의 조상은 물속에 영혼이 깃들인다고 생각했던 것이리라. 영어의 ‘sea­바다’와 ‘soul­영혼’도 그렇다.sea의 어근인 게르만어 saiwaz(바다·호수)에서 파생한 saiwalo(바다에서 나온 것)가 soul의 어원으로 되고 있음은 ‘바다’와 ‘영혼’이 같은 뿌리의 말임을 알린다.이는 인간의 영혼은 인간이 태어나기 전이나 죽은 다음 바다(호수)에 머무른다고 생각한 고대 게르만인들의 신앙에 기인한다.우리말에서는 그런 공통점이 보이지 않지만 물을 신성한 존재로 여긴 흔적만은 남긴다.‘물’의 옛말 ‘믈’이 상서로운 동물 용을 이르는 ‘밀­미르’와 통하는 것이니 말이다. 옛 사람들은 맑고 깨끗한 물을 보면서 마음속 때꼽재기도 씻어낸다고 믿었던 듯하다.그러면서 영혼이 깃들인다는 데로까지 생각을 펼쳐 나갔던 것이리라.그렇다.사람의 삶을 있게 하는 그 신비로운 영혼이 머물러야 할 곳이야말로 파랗게 아름다운 물속 아니었겠는가.더구나 물이 현실생활의 영위에 소중한 존재라는걸 확인하면서 그런 생각을 더 굳혀 나갔다 할 것이다.한데,오늘의 사람들은 물의 신비에 덤덤해지면서 은혜로운 고마움까지도 잊고 산다.눈이 속눈썹을 못보는 것과도 같이 너무 가깝고 흔해서일까.하기야 사람들은 공기하며 햇빛 등의 가까운 은총에도 둔감해져 있는 터이지만. 고마움을 느끼기는 커녕 은혜를 원수로 갚듯 물을 죽여가고 있는 오늘의 우리들.마침내 우리의 영혼은 어디서 오고 어디에 머무를 것인고.고향잃은 영혼과 사람의 삶을 생각해본다.
  • 일 관리의 ‘한국 불신’ 망언/강석진 도쿄 특파원(오늘의 눈)

    오부치 게이조(소연혜삼) 일본외상은 분명히 다배야 한다.29일 기자단과의 간담회에서 외무성의 한 간부가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의혹 사건을 화제로 한국의 재판에 대해 의문을 표시했다는 보도에 대해 일본 외교를 책임지고 있는 외상으로서 그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그의 발언이 사실이라면 그에 상응하는 강력한 조치를 취할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30일 한 일본신문은 일본의 대아시아 외교정책 책임자인 일본 외무성의 한 간부가 29일 기자간담회에서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의혹과 관련,질문에 답하는 형태로 “망명자의 증언 이외에 증거는 없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했다.그는 이어 “한국의 재판에서 증언이 있었다지만 한국에 붙잡힌 공작원이기 때문에 그들이 무엇을 말할지는 알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는 한국의 재판정에서 일본인을 납치했다는 것이 사실로 인정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유죄판결이 내려진 사건을 염두에 둔 것으로 이웃나라 재판과정과 판결의 신빙성을 공개적으로 문제삼은 것이다. 일본인 납치의혹은 대한항공기 폭파범 김현희의 일본어 교사 ‘이은혜’의 존재가 알려지면서 문제화됐다.그 뒤 망명자들의 증언이 잇달았고 일본정부도 조사에 나섰다.그 결과 일본정부는 ‘7건,10명’이라는 납치의혹 사건 조사 결과를 공언해왔다.이 과정에서 일본정부의 요청으로 한국은 망명자 조사결과를 일본측에 넘겨줬고 직접 면담도 허용해왔다. 신뢰감을 바탕으로 이웃나라와 대화해 나가야할 자리에 있는 그가 자국 정부 견해를 뒤엎은 것은 논외로 치더라도 협력을 아끼지 않아온 한국정부를 신뢰할 수 없다고 발언한 것은 도저히 납득되지 않는다.그의 발언은 납치의혹 사건이 한국정부의 날조라는 북한측 주장을 연상케 한다.일본의 한 공안당국자는 “어처구니없는 발언이다.기회가 닿는 대로 따질 것”이라면서 단단히 벼르고 있다. 김대중 납치사건 당시 일본정부는 원상회복하라면서 한국정부를 얼마나 윽박질렀는가.한국에 대해서는 가혹하고 의심을 품으면서 북한에 대해서는 가급적 의심을 두지 않으려는 편파적인 태도,납치의혹의 해결을 위해 노력해야할 자리에 있는 자가 그 사명을 회피하고 이웃나라에 대해 불신감을 조장한데 대해 일본정부가 납득할만한 조치를 취하길 바란다.
  • 소년 출소자위한 쉼터 열어/원불교 강남교당 용인에… 직업도 알선

    원불교강남교당(박청수 교무)은 경기도 용인군 원삼면 사암리에 4억원의 예산을 들여 1천200여평의 대지와 50평의 건평을 마련 소년원 출소자들을 위한 은혜의 집을 개설했다. 원불교 은혜의 집은 서울교구 봉공회 길광호교무가 지난 90년부터 서울 신림10동 달동네 6평의 좁은 공간에서 도시빈민과 소년원 교화를 시작했던 것이 최근 재개발지역으로 지정되자 오갈 곳 없는 이들에게 강남교당이 새롭게 마련해 준 곳. 원불교 강남교당 박청수교무는 지난 5월 길교무의 딱한 사연을 알고 범죄의 늪에 빠진 청소년들에게 사랑의 공동체를 만들어 줘야 한다는 종교적인 신념으로 강남교당에서 3억원을 마련하고 중앙총부와 다른 교당에서 후원을 받아 예산을 확보했다. “범죄청소년의 연령은 해마다 낮아지고 있습니다.이혼율이 높아지면서 범죄유혹을 받는 아이들은 그만큼 많아지고 있습니다.사형수의 80%가 소년원 출신이라는 것은 소년원에서 제대로 교화를 하지못하고 있다는 반증입니다” 박교무는 청소년 출소자들은 사회와 가정이 끌어안아 주지 않을 때 재범의 유혹에 빠져 범죄가 더욱 흉악해져 형량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은혜의 집은 출소 소년원생들이 사회를 다시 신뢰할 수 있도록 정서적 안정부터 되찾아주고 직업교육의 길을 열어주며 직장도 알선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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